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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강국 코리아, 설계실력은 바닥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9/10 08:25

공장·건축물 구조의 큰틀 잡는
설계 밑그림 90% 이상 해외의존

AI·빅데이터 등 4차 산업 접목
기본설계 능력 한층 강화해야


총연장 21.38㎞로 국내에서 가장 긴 교량인 인천대교. 시공은 국내 건설업체가 했지만 설계 등 엔지니어링 은 영국 엔지니어링사 에이멕(AMEC)이 맡았다. [연합뉴스]

스웨덴에 본사를 둔 정밀계측업체 헥사곤은 2010년 엔지니어링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미국 플랜트 설계 소프트웨어업체인 인터그래프를 21억 달러(2조여원)에 인수해서다. 이후 설계 기술에 가상현실·증강현실 등을 접목하면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엔지니어링업체 앳킨스는 2015년 ‘영국 전문성 국제상’을 수상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규모 담수저장(브리만) 시설을 설계한 공을 인정받아서다. 당시 앳킨스는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루 만에 최적 설계안 22개를 제시했다. 업계에선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 엔지니어링업체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등에 업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엔지니어링은 기획·설계·프로젝트 관리·유지 보수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 활동을 말한다. 플랜트·건설·중공업·제조업 등의 기초 분야로, 부가가치가 높고 고용 유발 효과가 크다.

그러나 이 산업은 국내에선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10일 미국 건설·엔지니어링 전문지인 ENR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엔지니어링업체의 해외 매출 비중은 1.8%에 그친다. 미국(28.5%)과 캐나다(14.7%)는 물론 중국(7.1%)·호주(6.8%)·아랍에미리트(3.6%) 등과도 격차가 크다. 최현대 서울대 엔지니어링개발연구센터 교수는 “우리나라는 플랜트·건설 강국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엔지니어링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크게 뒤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국내 산업의 ‘아킬레스건’인 설계 역량에서 찾는다. 설계는 엔지니어링의 핵심으로, 크게 개념설계와 기본설계, 상세설계로 나뉜다. 개념설계는 밑그림을 그려 큰 틀의 구조를 잡는 것이고, 기본설계는 입지와 용량 등을 정해 기초적인 계산을 설계하는 과정이다. 상세설계는 이전 단계에서 끌어낸 설계를 갖고 실제 공장 등을 만들 수 있게 자세한 설계를 하는 것이다. 설계 3단계 중 가장 하위 단계다. 대부분의 국내 업체가 개념·기본설계를 할 능력이 없어 상세설계에 머물러 있다. 서울대 엔지니어링개발연구센터가 2015년 국내 주요 기업 195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본설계 수준이 미국의 50~60% 선에 불과했다. 이재열 한국엔지니어링협회 정책연구실장은 “국내 대다수의 업체가 기본설계 역량이 거의 없다”며 “90% 이상 해외에 의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된 설계도를 그리지 못하다 보니 설계 밑그림은 선진국 업체가 싹쓸이하는 구조다. 국내 최고층 건축물인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나 국내 최장 교량인 인천대교도 기본설계는 모두 해외 업체 몫이었다.

업계에선 “인공지능·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해 기본설계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현대 교수는 “그동안 축적한 경험과 데이터를 빅데이터 수준으로 재편하고, 이를 활용해 기본설계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런 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성장은 고사하고 3~5년 후 후발국가에도 뒤처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석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기술정책연구실장은 “인공지능·자동화 등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을 것이란 우려와 달리, 생산성이 높아지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설계 역량을 갖춘 실무형 고급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업자가 요구하는 역량을 맞추기 위해선 글로벌 수준의 인재를 적극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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