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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보살의 뜰

이원익/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한국 절에 가면 보살들이 참 많은데 어떤 분들은 나무를 깎거나 녹인 쇳물로 만들어져 금칠을 한 채 불단에 점잖게 앉아 계시고 다른 분들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불단의 그 보살님들이나 부처님을 향해 열심히 절을 하거나 부엌에서 밥을 푸거나 찬불가를 부르거나 마루에 걸레질을 하시는데 대개 아주머니 아니면 나이가 좀 드신 할머니들이다.

조각이나 조상으로 만들어져 불단에 앉아 계시거나 탱화 속에 그려져 있는 보살님들은 남자인 듯도 하고 여자인 듯도 한데 같은 이름일지라도 장소나 시기에 따라 그 겉모습과 들고 계시는 물건들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관세음보살이니 지장보살이니 약사보살이니 하는 이 분들은 언제나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는 중생의 쓰라림 가운데 대략 한 켠을 어루만지고자 어느 때고 좋다 가부좌를 하고서는 지긋이 기다리고 계신다.

반면에 절간을 드나들며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보살님들은 대개 큰 스님들이 이전에 어떤 인연으로 지어 주신 세 자짜리 불명을 갖고 계신데 무슨 행이니 무슨 화니 심이니 하는 멋진 이름들이다. 이렇게 뜻 좋고 부르기 좋은 것만 고르다 보니 같은 이름이 이 절에도 있고 저 절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고 바다 건너 한국에도 있다. 어떤 이는 다다익선 한 사람이 두 세 개도 가진다.

이렇게 주어진 이름 하나하나의 뜻을 새겨 그 뜻대로 행하고 닮기를 애쓰기만 해도 더 이상의 공부가 필요 없을 만치 훌륭한 이름들이다. 옛날 유학자들이 지어 쓰던 자나 호 천주교의 세례명도 나름대로 깊은 사연과 뜻이 있겠지만 나는 이런 살아 있는 보살님들의 세 잎사귀 불명들이 참으로 그윽하고 정겨워서 이들로 인해 더욱 영롱하고 장엄해진 사부대중 네 자락 부처님나라의 뜨락을 영영 여읠 수가 없을 뿐더러 살아생전 내 뇌리에서마저 지울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불단에 계시는 보살님들과는 달리 살아 움직이는 이러한 보살님들은 혈통이 다 한국이다. 한국 불교에서만 이러한 재가 불자 여신도님들을 통상 보살이라고 일컫는다.

보살이란 말의 본뜻을 조금만 아신다면 가히 한국만큼 한국 불교에서만큼 여성을 받드는 곳은 지상 어디에도 없다고 할 만하다. 우리 수행의 마지막 목적지 열반을 이룬 부처가 될 수가 있는데도 이를 미루고 괴로움에 빠진 중생을 도와 먼저 이들을 건져 내겠다고 서원하신 분이 보살님이 아니던가!

다른 나라 불자들이 들으면 헷갈릴 법도 하고 너무 과분한 이름이라고 불편해 할지도 모르겠으나 내 느낌엔 참으로 적합한 이름이라 당연한 것을 짚어 본다는 게 오히려 새삼스럽기도 하다. 이렇게 눈가림으로 이름만 멋지게 불러 주고는 실제로 대하기는 어땠는지가 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불단에 계시는 보살님들이 그 옛날 부처님에게서 각각 명받은 바에 의하면 무릇 보살이라면 여섯 바라밀을 행해야 한다. 바라밀이란 저 편 언덕으로 건너감이니 고통에 빠진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건져내어 맞은 편 부처님 나라의 기슭에 이르게 하는 여섯 갈래의 길이다.

그 첫째가 베풀라는 것이요 다음이 계율을 지키라는 것이요 참으라 열심히 갈고 닦으라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라 그리고 참된 슬기를 가지라는 것이 그 다음들이다.

이 여섯 가지를 구태여 펼쳐 놓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불단에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보살님들 마루에는 남의 몸도 당연히 제 몸인 양 하는 세 잎사귀 보살님들 이들이 자리하여 섞여 피어난 뜨락에서 뎅 뎅 뎅 쇠북소리와 함께 일요 법회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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