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칼럼] 한인들의 '쉼터' 성인학교를 살리자
장열/사회부 기자
'school(학교)'은 그리스어 'schole(스콜레)'에서 비롯됐는데 이는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거나 자유롭게 시간을 즐기는 '여가'란 뜻을 담고 있다.
어원과 달리 학생들에게 학교는 지겹기만 하다. 성적 진학 졸업 학위 등의 부담적인 요소들과 얽혀 애초의 의미가 변질된 탓이다. 하지만 진정한 학교는 '쉼' 속에서 배움을 전한다.
이러한 '쉼'의 의미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곳이 한인타운내 성인학교다. 오는 6월 타운내 성인학교 3곳이 교육구의 예산부족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이는 단지 학교가 문을 닫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여가와 배움이 공존하는 성인학교는 한인들에게 있어 생활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폐쇄위기에 처한 타운내 성인학교에는 현재 1000여명의 한인들이 다니고 있다. 대부분 중.장년층 또는 노인들이다. 그중에서는 버스를 타는 학생들이 상당수다.
학교에 오기 위해 길게는 몇십 분을 걸어야 하고 혼잡한 버스에 시달려야 하지만 학생들은 기꺼이 등교를 한다. 성인학교에서 배움 이외에도 얻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성인학교는 한인사회의 작은 '아고라 광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안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풍부한 생활정보는 미국생활에 도움을 준다.
인간적인 따뜻함도 배어있다. 수업이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즐기는 데서 오는 위로는 이민생활의 답답함을 씻어준다. 얄밉기만 한 며느리 애증이 교차하는 남편 이야기부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 자랑까지 다양한 대화가 오고가는 성인학교는 공공의 '사랑방' 이다. 이 뿐인가. 자식들 조차 열심히 가르쳐주지 않는 컴퓨터나 궁금한 영어 표현도 "선생님!" 하고 손만 번쩍 들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미국은 19세기부터 이민자가 급격히 늘기 시작하면서 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고 미국식 생활방식과 사고를 양성하도록 돕는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지금의 성인학교는 이민자들에게 그런 역할을 충분히 담당하며 미국이 자랑하는 사회교육의 풀뿌리가 되고 있다. 학비 걱정없이 무료로 편안하게 배울 수 있는 성인학교는 이민자들에게 귀중한 자산이다. 물론 한인들에게 있어 타운내 성인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가 폐쇄될 수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학생들은 매우 안타까워 하며 슬퍼하고 있다. 여러 한인단체나 교육 관계자들이 침묵하는 가운데서도 어떤 방법으로든 학교를 살리기 위해 학생들이 직접 청원서를 보내는가 하면 서명운동 등을 통해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심지어 교육구가 잔여 예산을 집행하기 위해 추가 수업을 제공하자 학생들은 지난 2주간의 봄방학까지 반납한채 매일같이 학교에 왔다. 어쩌면 이번이 그들에게는 마지막 학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1000여명의 한인들에게 적어도 성인학교는 하버드 대학 못지 않은 '명문'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한인들이 웃었고 얻었고 배웠다. 이들에게 쉬어가는 터를 절대 없애서는 안될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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