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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불교 문화상품은 한국의 보물

이원익/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어릴 때 서양 소설들을 우리말로 처음 읽으면서 힘들었던 점은 우선 등장인물들의 낯선 이름을 익히는 것이었다. 영어 불어 독일어 따위로 된 이상한 이름들 게다가 거칠고 기다란 러시아어 이름들은 매력도 있었지만 익숙해지기가 힘들었다. 하기야 일본 소설에 나오는 길고 단조로운 이름들은 또 어떡하고?

이런 서양 고전 작품들에는 견진성사니 영성체니 하는 천주교의 의식이나 명절이름들도 자주 나왔는데 뭣 하는 날들인지 도무지 상상이 잘 안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 사람들은 노상 모여서 춤추고 먹고 마시며 지껄이기만 하는 건지 사교계라는 말도 자주 나왔고 파티니 살롱이니 하는 장면들도 많았다. 그렇다면 일은 누가 하고 밥은 누가 짓나? 어린 마음에 은근히 걱정까지 됐었다.

그러나 걱정할 것도 없었다. 다 자랄 때까지 나라 바깥을 나가 본 적이 없었지만 물밀 듯이 들어오는 구미의 대중문화에다가 제도화 된 서양식 교과 과정은 위에 말한 이런 것들을 은연중에 그럭저럭 알게 만들었다. 조금씩 앞뒤를 알게 되니 기억도 쉬웠고 위화감도 줄었으며 어떤 것들은 제법 좋아하게 되었다. 역시 좀 알고 자주 접해야 좋아지는 법이다.

게다가 이렇게 무엇을 좋아하게 되면 그게 생겨 나온 그 나라 그 고장에 언젠가는 가보고 싶고 그런 이름들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가면 그냥 가는가? 돈을 쓰고 따라 배우며 닮는다. 은근하고도 지속적인 문화의 힘이다. 그러니 문화 강국이야말로 진짜 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수백 년을 우려먹을 수 있는 고전적인 작품 하나가 수만 명의 군대보다 더 보탬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고국은 조그맣고 붐비는데다가 안타깝게도 분단은 고착 되어 있다. 살아남는 길은 교류와 무역뿐이다. 웬만한 상품으로는 이제 가격 경쟁이 안 된다. 땅은 좁고 인건비는 오른 데다 환경 문제 등 걸리는 게 많다. 이런 걱정 안 하고 제 발로 걸어오는 손님들에게 지속적으로 팔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관광 상품이요 문화 상품이다.

세계 곳곳의 동포 사회는 고국의 문화 상품이 상륙하는 교두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은 이러한 문화 상품이 겨루는 시험대요 세계 최대의 시장이다. 우리는 고국의 문화 상품을 즐기고 파는 전위대가 되며 아이디어 제공과 개발의 첨병이 되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속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러자면 한 가지 너나없이 우선 불교를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 왜 그런가?

한국이 요즘은 냉장고도 잘 만들고 자동차 같은 품목도 궤도에 올라섰다지만 문화 쪽은 여태 걸음마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한류라고 해서 연속극이라든가 대중음악 영화 따위도 있지만 밑천이 얼마나 갈까 불안스럽기도 하다. 한국 재래의 정신문화 내지는 종교에 튼튼하게 뿌리박지 못한 한시적인 현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장 한국적인 게 세계적이고 오래갈 텐데 천육백 년이나 연륜이 쌓인 불교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잘 활용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한국적인 기독교 문화 상품도 어느 정도 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불교는 주인을 기다리며 묻혀 있는 흙 속의 보물더미와 같다. 발굴도 분류도 덜 된 상태이다. 그 중에 몇 가지 최근에 활용한 아이디어들로 기대 이상의 히트를 치고 있다. 초파일의 연등 행사는 해마다 발전하여 이미 외국에 알려진 유명 관광 상품이 되었으며 템플 스테이 산사 음악회 등도 대표적인 문화현상이 되었다.

그러니 불자든 아니든 우리 동포들도 이제 겉보기에 울긋불긋하다고 외면만 하지 말고 눈을 좀 돌리기 바란다. 더군다나 소재가 떨어진 예술가라든지 무슨 분야든 아이디어가 말라 버린 개발자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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