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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가시 도마뱀의 기적

경제가 안 좋은 때 호황을 누리고 있는 기업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라면을 만드는 회사이다. 불경기에는 라면 한 개가 한 끼 때우는 데는 최고라는 것이다. N 라면 회사는 지난 해 1조원대의 라면을 팔았고 뒤늦게 라면 시장에 뛰어 든 O 식품회사도 9천 700억 원대에 이르는 엄청난 양의 라면을 팔았다고 한다. 유제품 전문업체로 유명한 Y 회사도 '비빔면'이라는 즉석 국수를 5억 개나 팔았으며 '왕뚜껑'이라는 즉석 사발면은 10억 개를 팔아 총 매출 1조 2000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모든 기업이 안 된다고 하는 불황의 때에도 되는 기업은 있는 것이다. 호주의 거친 사막에 사는 '가시도마뱀'은 몸길이는 평균 16cm에 온 몸에 가시 같은 돌기가 돌출해 있는 괴이하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작은 동물이다. 이 도마뱀은 어떤 면에서 생존이 가장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이다. 우선 그 작은 도마뱀 주변에는 치명적인 적들이 많다. '가시도마뱀'이 사는 지역에는 '인랜드타이판'(코브라과의 독사)이라는 뱀을 위시하여 이름만 들어도 오싹한 세계 최강의 독사들이 수십 종류가 사는 곳이다. 특히 '인랜드타이판'은 그 뱀이 지니고 있는 단 30g의 독으로 사람을 100명 이상을 순간적으로 죽일 수 있는 무선 독사이다. 그러나 이 작은 '가시도마뱀'에게 더 치명적인 것은 그 뱀이 매일 매일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인 자연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뱀이 사는 곳은 연중 강우량이 거의 없는 곳인데다 이곳에 부는 바람은 초강력 헤어드라이어 같아서 어떤 생물이든지 이 바람을 맞으면 타죽을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삭막한 대륙에서는 거의 모든 생물들이 생존에 필요한 물을 구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열악한 상황 속에서 '가시도마뱀'은 넉넉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도마뱀이 물이 전혀 없다시피한 사막지대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특이한 신체 구조 때문이다. 온몸이 날카로운 가시로 덮여 있는데 그 가시 사이를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몸 전체에 작은 돌기가 솟아 있다. '가시 도마뱀'은 바로 그 수많은 돌기를 이용하여 물을 모으고 돌기들 사이에는 있는 미세한 구멍을 통해 그 모은 물을 몸으로 빨아들인다. '가시 도마뱀'은 피부에 약간의 습기라도 닿으면 그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엄청난 집중력으로 습기를 모아 미세 구멍을 통해 모세관 현상을 이용하여 위에 공급한다. 그렇게 모은 물의 양은 물 한 방울도 안 되는 매우 적은 양이지만 그 것은 가시 도마뱀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것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생존이 가장 힘든 곳에서 넉넉히 살아가는 미물에 속한 작은 '가시 도마뱀'의 이야기는 살아가기 힘들다고 불평하며 심지어 목숨까지 끊어버리는 인생들을 부끄럽게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피부에 닿은 약간의 습기라도 놓치지 않을 정도의 끈질기고 치열한 노력이 필요한 삶의 현장이다. 우리가 하는 일 비록 적은 것이라도 가시 도마뱀과 같은 집중력이 있다면 결국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2010-06-01

[변화] 포퓰리즘적 설교

작년 8월 일본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총선 유세 도중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오키나와 밖으로 미군기지를 옮기겠다고 갑작스런 약속을 했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승리했고 오키나와 선거에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려니 옮길 곳은 없고 미국과 관계만 나빠졌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그는 요즘 사퇴 압력마저 받고 있다. 포퓰리즘은 본래 엘리트 지배층에 대응하여 국민들의 권리와 권력을 강조하는 정치이념을 표현하는 것으로 1892년 미국 인민당(populist party)의 정치이념을 일컫는 말이다. 대표적인 포퓰리즘의 전형은 1945년 집권한 아르헨티나의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의 '페론주의'정책이다. 그 결과로 1940년대 세계 6위 경제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오늘날 남미의 빈국으로 추락했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면서 권력을 유지한 결과 국가 경제만 망쳐놓았다. 요즘 한창 시끄러운 태국 반정부 시위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인물이 탁신 친나왓 전 총리다. 탁신은 2001년 총선 승리로 집권한 다음 2005년 재선에 성공했으나 탈세와 입찰비리 뇌물수수 등 각종 권력형 비리 혐의가 밝혀지면서 군사쿠데타로 실각한 2006년 말부터 해외를 떠돌고 있다. 탁신을 다시 국가지도자로 모시자는 빨간셔츠 부대와 현 정권을 지지하는 노란셔츠 부대가 유혈 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탁신은 농가부채를 3년 유예해주고 누구든 10달러 만 내면 기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고 도시와 농촌 간 소득격차를 줄인다며 농촌 마을마다 100만바트(3만달러)씩 나눠줬다. 결국 국가 재정은 바닥났고 세금은 올랐다. 결국 도시 중산층의 반발이 확산되면서 탁신은 쫓겨났다. 그러나 서민층과 빈곤층은 이미 포퓰리즘 정책의 단맛에 중독돼 버린 상태였다. 라디오나 인터넷을 통해 전해지는 설교들을 듣다보면 성도들이 듣기에 달콤한 설교들이 많다. 가르침과 훈계의 설교는 들어보기 힘들정도가 되었다. 현대 교회가 가장 신경쓰는 주일 예배의 설교가 이렇듯 포퓰리즘적 설교로 흘러간다면 머지 않아 많은 한국교회는 포퓰리즘적 설교의 단맛에서 헤어나기 힘들게 될 것이다. 거친 음식이 몸에 좋듯 때로 불편한 설교도 소화할 줄 아는 성도가 성숙한 성도이다.

2010-06-01

[미션의 향기] 까마귀와 효도

한국 가톨릭 신문사 주간으로 근무하다 미국에 온 지 2달이 넘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하였고 괜히 미국에 왔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익숙해 있던 한국의 거리 풍경들과 생활의 패턴들이 그립고 한국에 남아있는 가족들과 특히 연로하신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5월 9일 Mother's day가 되니 가슴에 카네이션 하나 달아드리지 못하는 것이 더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그날 하루 종일 허전한 마음으로 지내다가 예전에 읽었던 짧은 글 하나를 생각해 내고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과연 이러하구나! 편찮으신 어머니를 공손하게 모시지 못하고 은연중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낸 적은 없는지'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짧은 글의 내용은 이러하다. 82세의 노인이 45세 된 아들과 거실에 마주 앉아있었다. 그때 우연히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의 나무에 날아와 앉았다. 노인이 아들에게 물었다. "저게 뭐야?" 아들은 다정하게 말했다. "까마귀에요. 아버지." 아버지는 그런데 조금 후 다시 물었다. "저게 뭐야?" 아들은 다시 "까마귀라니까요." 노인은 조금 뒤 또 물었다. 세 번째였다. "저게 뭐야?" 아들은 짜증이 났다. "글쎄 까마귀라고요." 아들의 음성엔 아버지가 느낄 만큼 분명하게 짜증이 섞여있었다. 그런데 조금 뒤 아버지는 다시 물었다. 네 번째였다. "저게 뭐야?" 아들은 그만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외쳤다. "까마귀 까마귀라고요. 그 말도 이해가 안 돼요. 왜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해 물으세요?" 며칠 뒤 아들은 아버지의 서재에서 우연히 아버지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무심코 펼친 일기장에 눈길을 건넨 아들은 1분도 되지 않아 책을 덮고 말았다. 부끄러움에 계속 펼치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언제나 공손한 태도로 아버지를 모시게 되었다. 자기가 네 살짜리 아기였을 때의 아버지의 일기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은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어린 아들은 "저게 뭐야?"하고 물었다. 나는 까마귀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연거푸 23번을 똑같이 물었다. 거의 오전 내내 같은 질문만 했다. 나는 귀여운 아들을 안아주며 끝까지 다정하게 대답해주었다. 아들에게 사랑을 준다는 게 기뻤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방법은 첫째가 공손함이요 둘째가 자기 신상에 대한 정보를 드리는 것이라고 배웠다. 부모님은 늘 자녀들의 근황이 궁금하시다. 건강은? 사업은? 손자들은? 이러한 걱정에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자. 귀찮더라도 설명해도 모르셔도 간략하게라도 설명을 드리자. 이게 최고의 효도다. "그저 그렇지요 뭐! 별일 없어요! 모르셔도 되거든요!"이러지 말자. 어버이날 용돈 많이 드리고 효도관광 보내드리는 것보다 더 큰 효도는 최소한의 정보라도 부모님께 드리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어머니 그립다 인상만 쓰지 말고 전화라도 한 번 드려야겠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2010-06-01

[지혜의 향기] 불교 문화상품은 한국의 보물

어릴 때 서양 소설들을 우리말로 처음 읽으면서 힘들었던 점은 우선 등장인물들의 낯선 이름을 익히는 것이었다. 영어 불어 독일어 따위로 된 이상한 이름들 게다가 거칠고 기다란 러시아어 이름들은 매력도 있었지만 익숙해지기가 힘들었다. 하기야 일본 소설에 나오는 길고 단조로운 이름들은 또 어떡하고? 이런 서양 고전 작품들에는 견진성사니 영성체니 하는 천주교의 의식이나 명절이름들도 자주 나왔는데 뭣 하는 날들인지 도무지 상상이 잘 안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 사람들은 노상 모여서 춤추고 먹고 마시며 지껄이기만 하는 건지 사교계라는 말도 자주 나왔고 파티니 살롱이니 하는 장면들도 많았다. 그렇다면 일은 누가 하고 밥은 누가 짓나? 어린 마음에 은근히 걱정까지 됐었다. 그러나 걱정할 것도 없었다. 다 자랄 때까지 나라 바깥을 나가 본 적이 없었지만 물밀 듯이 들어오는 구미의 대중문화에다가 제도화 된 서양식 교과 과정은 위에 말한 이런 것들을 은연중에 그럭저럭 알게 만들었다. 조금씩 앞뒤를 알게 되니 기억도 쉬웠고 위화감도 줄었으며 어떤 것들은 제법 좋아하게 되었다. 역시 좀 알고 자주 접해야 좋아지는 법이다. 게다가 이렇게 무엇을 좋아하게 되면 그게 생겨 나온 그 나라 그 고장에 언젠가는 가보고 싶고 그런 이름들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가면 그냥 가는가? 돈을 쓰고 따라 배우며 닮는다. 은근하고도 지속적인 문화의 힘이다. 그러니 문화 강국이야말로 진짜 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수백 년을 우려먹을 수 있는 고전적인 작품 하나가 수만 명의 군대보다 더 보탬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고국은 조그맣고 붐비는데다가 안타깝게도 분단은 고착 되어 있다. 살아남는 길은 교류와 무역뿐이다. 웬만한 상품으로는 이제 가격 경쟁이 안 된다. 땅은 좁고 인건비는 오른 데다 환경 문제 등 걸리는 게 많다. 이런 걱정 안 하고 제 발로 걸어오는 손님들에게 지속적으로 팔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관광 상품이요 문화 상품이다. 세계 곳곳의 동포 사회는 고국의 문화 상품이 상륙하는 교두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은 이러한 문화 상품이 겨루는 시험대요 세계 최대의 시장이다. 우리는 고국의 문화 상품을 즐기고 파는 전위대가 되며 아이디어 제공과 개발의 첨병이 되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속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러자면 한 가지 너나없이 우선 불교를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 왜 그런가? 한국이 요즘은 냉장고도 잘 만들고 자동차 같은 품목도 궤도에 올라섰다지만 문화 쪽은 여태 걸음마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한류라고 해서 연속극이라든가 대중음악 영화 따위도 있지만 밑천이 얼마나 갈까 불안스럽기도 하다. 한국 재래의 정신문화 내지는 종교에 튼튼하게 뿌리박지 못한 한시적인 현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장 한국적인 게 세계적이고 오래갈 텐데 천육백 년이나 연륜이 쌓인 불교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잘 활용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한국적인 기독교 문화 상품도 어느 정도 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불교는 주인을 기다리며 묻혀 있는 흙 속의 보물더미와 같다. 발굴도 분류도 덜 된 상태이다. 그 중에 몇 가지 최근에 활용한 아이디어들로 기대 이상의 히트를 치고 있다. 초파일의 연등 행사는 해마다 발전하여 이미 외국에 알려진 유명 관광 상품이 되었으며 템플 스테이 산사 음악회 등도 대표적인 문화현상이 되었다. 그러니 불자든 아니든 우리 동포들도 이제 겉보기에 울긋불긋하다고 외면만 하지 말고 눈을 좀 돌리기 바란다. 더군다나 소재가 떨어진 예술가라든지 무슨 분야든 아이디어가 말라 버린 개발자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2010-06-01

[생활 속에서] 도둑질을 보상한 예수

수 년 동안 작업을 한 음악인데 단 한 번의 클릭으로 모든 사람에게 공짜로 배포되었다면 이는 단순히 돈문제가 아니라 그 작업을 한 사람에게는 정신적인 충격까지 안겨줘 외상을 입힌 것이나 다름 없게 된다. 미국에서는 그래서 저작권법을 굉장히 비중있게 다룬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수많은 사람의 재산을 알게 모르게 가져가는 합법적인 도둑질이 미국에 만연해 있다. 의사가 보험에 대해 치료비를 과다 청구한다든가 변호사가 돈을 벌기 위해 거짓으로 서류를 꾸며 클라이언트의 승소를 이끈다는가 하는 행위는 합법적인 도둑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정부의 혜택을 받기 위해 일부러 일을 하지 않는다든가 거짓말을 해서 정부의 혜택을 받는다든가 세금을 속여서 내지 않는 것도 도둑질이다. 교수가 사례비를 받고도 학생을 잘 가르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 학생이 장학금을 받으면서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 것 등도 도둑질이다. 직장인이 일하는 시간에 개인적인 목적으로 인터넷 서핑을 한다든가 컴퓨터 게임을 한다면 이는 절도행위와 같다. 세일즈맨이 제품의 가치를 지나치게 과대포장하는 것도 남의 재산을 훔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좋은 제품이라고 광고해놓고선 이 제품을 수리하기 위한 워런티를 파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경험하게 된다. 미국의 경우 불법체류자를 고용해서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 노동착취를 하는 일 식당에서 웨이터나 웨이트리스의 서브를 받은 후에 제대로 팁을 놓지 않는 것 등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귀중한 노동력을 훔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도박은 다른 사람의 손해를 통해 내가 이익을 얻고 기쁨을 누리는 도둑질이다. 이 땅에 사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8계명을 어기면서 살고 있다. 도둑질로 경찰에 붙잡혀 가지 않았을 뿐이지 대부분의 사람은 8계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십자가 사건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도둑 사이에 매달린 예수님은 도둑이 마음을 열기만 하면 당장 그들을 구원해주실 마음을 가지셨다. 그리고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던 한 강도가 구원을 원하자 예수님은 낙원을 약속하셨다. 도둑과 같은 신세가 되었던 예수님이 도둑을 구원하셨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도둑을 위해 죽으셨고 도둑 심보를 가진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다. 우리는 법적으로는 도둑이 아닐 수 있지만 청지기직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점에서는 강도라고 할 수 있다. 칼만 들지 않았지 강도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 예수님이다. 8계명을 어긴 자라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와 예수께 의지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은 그의 보상(atonement)으로 가능했다. 강도처럼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우리의 죄는 보상된 것이다. Atonement(어톤먼트)는 at-one-ment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가 됨'으로 보상이 이뤄진 것이다.

2010-05-25

[변화] 계획된 자유

인생은 우연히 시작되어서 우연 속에 살다가 우연히 죽게되는 것일까 아니면 필연 속에서 시작 되어서 필연 속에 살다가 필연에 의해 생을 마감 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드라마 영화 소설 할머니 이야기… 우리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지어 본 사람이라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간의 만남과 이야기 속의 사건 사고가 우연의 연속으로만 이어지는 설득력없는 플롯(plot)으로는 아무 이야기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이야기에는 필연적 요소가 반드시 있다. 만약 내 인생이 조물주가 만들어가는 이야기 속의 한 등장 인물로 이 땅에 잠시 등장한 것이라면 우리의 인생은 결코 우연으로 시작해서 우연으로 종결되지 않을 것이다. 잠시 등장하는 단역 배우의 눈에는 하찮아 보이겠지만 작가는 결코 쓸데 없는 인물을 등장 시키지 않는다. 그의 삶에는 작가의 숨은 코드가 숨겨져 있고 등장 인물마다 중요한 복선이 감추어져있다. 수많은 만남 사건 역시 우연으로 발생한 것 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만남과 사건에는 하나님의 숨은 코드 즉 '섭리'라는 것이 반드시 숨겨져있다. 우리의 시작이 우연이 아니듯 우리 인생에 펼쳐지는 수많은 중요한 일들 또한 우연이 아니다. 나를 너무나도 빼닮은 2세를 보면서 어찌 그 생이 우연히 시작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배우자를 저 멀리 아프리카 대륙이나 혹은 남미의 오지에서 만나지 않았다. 내 삶의 주변에서 만나 오늘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온 땅에 살게 하시되 그들이 어느 시대를 살고 어디에 살지의 경계도 정해 주셨다.(행17:26) 그와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운명이었던 것이다. 나는 컴퓨터 게임을 보면서 이 진리를 깨달았다. 게임 속 캐릭터가 자기 맘대로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미리 조작된 프로그램 속에서 움직이게 된다. 갈길도 정해져있을 뿐만아니라 모든 움직임에 대한 정교한 리액션(Reaction)들이 이미 짜여져있다. 결국 게이머는 미리 계획된 정교한 프로그램 속에서 자유(?)한 것이다. 초보자건 프로게이머건 모두가 프로그래머가 설정해 놓은 프로그램을 벗어날 수 없게 되어있다.

2010-05-25

[미션의 향기] 함께하는 삶

이론 물리학에서 근래 들어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 중 하나가 '협동현상(cooperative phenomena)'이라고 합니다. 협동현상의 대표적인 것이 물과 얼음입니다. 물은 H2O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온도를 낮추면 얼어서 얼음이 되고 온도를 높이면 녹아서 물이 됩니다. 물을 구성하는 H2O 분자와 얼음을 구성하는 H2O 분자는 완전히 똑같지만 서로 모여 상호작용을 하고 있을 때는 전혀 다른 성질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렇게 어떤 감각 대상의 구성 요소 하나 하나를 놓고 보면 차이가 없는데 이를 한데 모아 놓으면 분자 하나하나의 성질과 관계없이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 때문에 전혀 다른 성질이 떠오르는 것을 '협동현상'이라고 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전혀 다른 성질이 떠오른다고 하여 '떠오름(emergence)'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협동현상(cooperative phenomena)'이라고 칭하든 '떠오름(emergence)'이라고 칭하든 그 단어들이 가리키는 것은 개개의 것이 함께 모이면 개개의 것으로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을 드러낸다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함께 모여 서로 상호 작용하는 것입니다. 서로 떨어져서 제 각각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서로 교류하며 상호작용함으로써 '떠오름'의 현상을 만들어 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릴 당시 대한민국은 온통 "붉은 악마 응원단"으로 뒤덮였습니다. 월드컵 대회 참가 역사상 처음으로 4강 신화를 이룩한 것도 큰 이슈였지만 대한민국 전체가 응원 열기로 휩싸였던 것은 그 이후에도 수많은 문화적 아류를 양산하며 대한민국 대중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아마도 단순한 응원이 한 나라 대중 문화의 획을 긋는 사건으로 남게 된 것은'협동현상'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아니고 대한민국 전체가 함께 했기에 전혀 다른 성질의 것 전혀 다른 문화적 떠오름으로 평가될 수 있었던 것이죠. 마찬가지로 내가 속한 가정 공동체 신앙 공동체 지역 공동체 안에서 "너"라는 타자(他者)와 호흡을 맞추며 함께할 때 지구촌이라는 운명 공동체의 모습도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것 같습니다.

2010-05-25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사기를 당해 괴롭습니다

Q: "제 친구가 땅을 담보로 2부 이자로 돈을 빌려 쓰는 사람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친구를 믿고 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9개월 만에 사기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을 고발할 일은 내 생전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제가 고발을 하게 됐습니다. 평생 힘들게 번 돈을 갑자기 잃게 된 일도 괴롭고 중간에서 소개해 준 친구도 원망스럽습니다. 빌려준 그 돈을 못 받으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집이 경매에 들어갈 형편입니다. 어떻게 기도하면 좋을까요?" A: 추석이나 설에 가족들 데리고 고향을 방문하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일가족이 다 죽었다는 기사를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내가 의도하거나 원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해외여행을 가다가 비행기가 추락해 죽는 경우도 있고 놀러가다가 교통사고로 죽는 경우도 있고 유람하다가 배가 뒤집혀 물에 빠져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돈을 떼인 일은 나한테는 큰 일일지 모르지만 남이 보면 큰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일이 아닌 걸 가지고 내가 지금 하늘이 무너질 듯이 큰 일로 생각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은 내가 나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 당장 죽어가는 사람도 있는데 사람 목숨만 살아 있으면 됐다고 마음을 탁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해지고 정신이 맑아져서 재판을 하더라도 이길 가능성이 생깁니다. 질문하신 분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은 그만큼 남보다 돈이 있었다는 얘기니까 다른 사람보다 좋은 처지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사기를 당한 뒤라 해도 가지고 있던 돈이 없어져버렸으니 앞으로는 사기를 당할 일이 없습니다. 이 또한 좋은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 우리 인생인데 지금 자기 자신의 좋은 걸 못 보고 좋아진 걸 모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그 일 자체로 좋은 일도 없고 나쁜 일도 없습니다. 그 일을 나쁘게 받아들이면 나쁜 일이 되고 좋게 받아들이면 좋은 일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질문하신 분은 지금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나쁘게 받아들이니까 그토록 괴로운 것입니다. 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묻기 전에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법문 들을 수 있어 고맙고 사람들 얼굴 볼 수 있어서 고맙고 아직도 이가 괜찮아서 음식을 씹을 수 있어서 고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고마운 건 굉장히 많습니다. 지금이라도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내면 나빠지던 것이 여기서 멈추고 앞으로 좋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나빠진 것에 대해서 계속 나쁜 생각을 하면 상황이 계속 더 나빠집니다. 그러니까 돈을 못 받는 데 신경을 쓰면 나만 손해입니다. 과거에 속은 건 내가 어리석은 것이고 지금이라도 이 사건을 통해 정신을 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처럼 계속 어리석은 길을 가면 앞으로도 손해를 더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를 두고 제1의 화살은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질문하신 분은 돈을 잃었다는 억울한 감정에 휩싸여 지금 두 번째 화살을 맞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바보 같은 짓 하지 않겠습니다. 망한 줄 알았더니 자세히 보니까 나한테도 재산이 아직 많습니다. 건강 재산 남았고 가족 재산 남았고 친구 재산 남았고 가진 게 너무 많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시간이 흐르면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2010-05-25

[변화] 우리의 가난은…

'새마을 운동'이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작년까지 74개국에서 4만7000여 명의 외국인이 '새마을운동'을 배우고 돌아갔다고 한다. '조제프 카빌라' 콩고민주공 대통령은 "콩고는 내전을 끝내고 빈곤과 맞서 또 다른 전투를 치르는 중"이라고 선포하면서 '가난과의 전투'에서의 주무기로 1970년 4월 시작된 새마을운동을 선택했다. 우리 민족의 가난 극복 사례가 세계인의 성공자산이 되어가고 있는것이다. 가난은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자주 쓰시는 유용한 영적 도구이다. 인간이 가난하게 되면 낮아지고 낮아진 인간은 하나님을 찾게 된다. 그러나 가난이 남긴 상처는 자칫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부하게도 가난하게도 말고 먹고살 만큼'(잠30:8)만 요구했던 것이다. 가난이 남긴 부작용은 지나친 욕심을 낳게 만든다. 가난할 때 갖고자 했던 것들이 생각나 과도하게 손에 넣고 싶어진다. 가난할 때 무시당한 기억 때문에 자랑하고 싶어 한다. 가난 할 때 소외된 생각 때문에 더 인정받고 싶어 한다. 욕심 많은 이웃이 있는가? 가난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입만 벌리면 자랑일색인 사람이 있는가? 배고픔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없이 산 것이 상처로 남아서 그렇다. 가난을 잘못 겪은 사람은 '나도 혼자 힘으로 일어섰으니 너도 할 수 있다'며 인색한 사람이 된다. 가난을 잘 겪은 사람들은 긍휼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가난의 처절함을 잘 겪은 사람은 배고픈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이 시대 최고의 부자 중에 한 사람인 워렌 버펫은 자신의 저서에서 '돈으로 행복을 절대 살 수 없다'고 고백했다. 행복은 부의 유무에 있지 않음을 모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 민족의 최대 영적부흥기는 '보릿고개'를 한창 겪고 있던 70년대를 전후해서 일어났다. '인간은 자신의 과거도 오늘의 현실도 바꿀 수 없으나 태도만큼은 내 맘대로 바꿀 수 있다'고 C. S. 루이스는 말한다.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이 나의 영적자산이 될 것인지 아니면 불평과 원망으로 시간을 보낼 것인지는 나에게 달린 것이다.

2010-05-18

[생활 속에서] "수고의 땀은 아름답습니다"

수 년 전 한국 MBC TV에서 방영하였던 코미디 프로그램 가운데 장수무대라는 시간이 있었다. 방송국에서 시골의 노인들을 직접 찾아가서 자녀들에게 전할 안부를 녹화하여 방송하는 프로인데 나이 많은 시골 어르신들이 농사를 짓다가 들판에서 있는 그대로 출연하여 "예들아 나 KBS(사실은 MBC)에 나왔다! 건강하게 잘 있었는가?"하면서 소박하게 안부를 전하는 가족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간단한 게임도 추가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 낱말 맞추는 게임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낱말 맞추는 게임에 '평생 연분'이라는 문제가 나왔다. 필자는 그 때 출연하신 할아버지가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궁금했다. 할아버지는 자신 있다는 듯이 "당신하고 나 사이는 어떤 사이?"라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그 할머니가 당연히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듣고 '천생연분!'이라고 답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만 '웬수!'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할아버지는 얼른 "답이 두 글자가 아니고 네 글자야!" 하니까 이번에는 할머니가 '평생 웬수!'라고 대답하였다. 그 방송을 본 전 국민이 그 날 밤 모두 한바탕 웃었다. 할머니에게는 늘 고생만 시키고 자신을 부려먹은 할아버지가 마치 '평생 웬수' 같이 느껴진 모양이다. 우리는 때로 가까이에서 친절하게 대해주는 가족이나 이웃에 대해 전혀 고마움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이민 사회에서 대부분 부부가 함께 일하는데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온 아내가 집안일 하고 식사까지 준비할 때 남편들은 그 고마움을 잘 몰라줄 때가 있다. 피곤에 지친 아내들이 정성껏 식사를 준비해서 대접하여도 식구들은 언제나 반찬 타령만 한다. 또한 자녀들은 부모들이 아무리 희생하여도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자녀들은 그에 대해 전혀 고마움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교회 안에도 늘 수고하며 봉사하는 분들이 있다. 누군가를 대접하기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봉사위원도 있고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자원하여 봉사하는 사람도 있고 주차위원으로 뜨거운 햇볕과 싸우며 차량을 안내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봉사자들의 수고를 당연하게 생각할 때가 많다. 비록 그들이 칭찬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볼 때 따뜻한 말로 격려해야 한다. 그저 일주일에 한 번 나오는 사람들은 일주일 동안 누군가 교회를 위해 수고의 땀을 흘린다는 것을 잘 모를 때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화장실을 청소하며 어떤 사람들은 교인들이 어지럽게 해놓고 가버린 모든 것을 정돈한다. 따라서 우리가 매주 편안하게 예배드릴 수 있는 것도 당연한 것은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못했는데 누군가 이 예배를 위해 수고했구나!" 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그 예배는 더욱 귀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모든 아름다운 일에는 수고의 땀을 흘린 분들이 반드시 있다. 가정의 달 5월에는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고마움을 깊이 느끼는 축복의 계절이 되기를 바란다.

2010-05-18

[미션의 향기] '전조현상!'

요즘처럼 지진이 자주 일어난 해도 드문 것 같다. 올해 1월 아이티 대지진을 시작으로 타이완과 일본에서 2월에는 칠레에서 3월에는 타이완과 터키에서 강진이 발생하였다. 4월 들어서도 멕시코에서 강진이 발생하였다. 필자도 본당 신자들과 회의를 하는 도중에 건물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회의를 잠시 중단하고 건물 밖으로 나오는 소동(?)을 겪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지진으로 인한 흔들림을 느낀 적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날이 환할 때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것을 느낀 적이 없었기에 순간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지진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다면 그렇게 당황하진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진으로 인한 인명피해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질 학자들의 큰 과제 중 하나가 지진을 미리 정확히 예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꽤 많은 연구비를 들이고 있지만 아직도 그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동물들은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그 전조현상을 미리 안다는 과학자들의 견해가 있다. 왜냐하면 동물들은 사람보다 뛰어난 감각기관을 통해 공기나 물 등을 통해 전해지는 미세한 음파나 기압의 변화를 감지하여 지형의 변화 땅울림 발광현상 등 지진의 전조 현상을 미리 감지해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1971년 2월 9일 이른 새벽 캘리포니아의 샌 페르난도 계곡 주변에서 그 지역을 순찰하던 경찰과 두 명이 거대한 쥐 떼를 발견했고 몇 시간 후에 대지진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왕 쥐에 대해 말이 나왔으니 십이지(十二支)에 나오는 동물 중에 쥐가 제일 첫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유는 쥐의 뛰어난 감지력 때문이라고 한다. 옛날 하늘의 대왕이 동물들에게 지위를 주고자 했다. 하늘 대왕은 선발 기준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정월 초하루에 제일 먼저 천상의 문에 도달한 짐승으로부터 그 지위를 주겠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각 짐승들은 기뻐하며 저마다 빨리 도착하기 위한 훈련을 했다. 그 중에서도 소가 가장 열심히 수련을 했는데 각 동물들의 이런 행위를 지켜보던 쥐는 자신이 너무 작고 미약하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보다 먼저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챘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그 중 제일 열심인 소에게 붙어 있는 것이었다. 정월 초하루가 되어 동물들이 앞 다투어 달려왔는데 소가 가장 부지런하여 제일 먼저 도착하였으나 도착한 바로 그 순간에 소에게 붙어 있던 쥐가 뛰어내리면서 가장 먼저 문을 통과하였다. 소는 분했지만 두 번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쥐가 십이지(十二支)의 첫 자리를 차지하게 된 방법은 그 자체로 놓고 보면 얄밉기 그지없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쥐가 자신의 예민한 감지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신의 한계와 부족을 명확하게 알고 대처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기에 소를 이용할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핵심은 쥐가 자신의 한계와 약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칭송하는 현자(賢者) 또는 각자(覺者)도 실은 자신의 한계를 자신의 부족함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처를 미리 준비하며 행동한 사람들을 두고 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위태로움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신의 한계와 약점을 깊이 인식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2010-05-18

[지혜의 향기] 법보시·무외보시·재보시

장사의 기본은 간단하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돈 모으는 것도 부자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많이 벌고 적게 쓰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많이 얻어먹고 적게 베푸는 것으로서 바로 구두쇠의 철학이다. 그런데 별로 주는 것도 없어 보이는데 자꾸 베풀라고만 하니 난감하기도 할 것이다. 돈 안 들고 종교 좀 할 수는 없나? 짐 내려놓으러 갔다가 군더더기 번뇌까지 덤으로 지고 오는 분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돈 안 드는 방법이 있다. 아니 전혀 안 드는 것은 아니고 조금은 든다. 숨을 쉬어도 들고 눈을 감아도 드는 게 돈인데 기본적인 거야 불교를 하든 안 하든 드는 거니까 불교 때문에 돈 든다고 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먼저 법을 전하면 된다. 바로 법보시다. 남편과 아내 사귀는 애인부터 시작이다. 하고 한날 먹고사는 얘기나 어디 놀러 다니면서 즐기는 얘기만 하지 말고 적당한 분위기를 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섞어 넣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광신자처럼 상대를 질리게 하란 소리가 아니다. 알고 있는 만큼 관심 있는 만큼 자연스레 화제로 삼고 행동에 모범을 보인다. 그러자면 평소에 법문도 귀 기울여 듣고 책을 읽기도 하는 등 공부를 좀 해 두어야겠지. 꽃을 하나 키우거나 강아지 한 마리를 기르더라도 제대로 하자면 공부를 좀 해야 되지 않나. 이리하면 사랑하는 이와의 속삭임도 한층 아기자기해지고 정분도 도타워질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 무게가 실리면서 오래 가고 좋은 결실을 맺을 확률이 상당히 높아진다. 장담한다. 그리고 자식과 부모 친척 친구들에게도 좋은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법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동심원이 직장 동료 이웃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에게까지 퍼져 나가면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고 나 자신도 차차 깊고 넓어질 것이다. 누구나 완벽하게 전체를 알고 있거나 이미 도를 깨치고 성불을 해서 법을 전하는 게 아니다. 내가 아는 만큼 내가 깨달은 만큼 전하는 것이 법보시다. 나에게 부족한 만큼은 다른 훌륭한 분들의 법보시를 도우면 된다. 스님의 좋은 법문을 여러 사람들이 더 많이 들을 수 있도록 이끈다. 그 밖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여러 방편들 불교 서적이나 잡지 음성이나 영상물 시각이나 공연 예술 등이 진흥 되도록 힘을 보탠다. 단순한 오락물이나 기호품에 쓰는 돈을 쪼개서 웬만하면 표를 사거나 구독을 해 주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팔아 준다. 십시일반이다. 돈이 별로 안 드는 게 또 있다. 사람을 안심시키는 무외보시다. 미신에 사로잡혀 있거나 외로움과 두려움에 떠는 이들을 달래고 편안히 잠재우는 것이다. 세상에는 믿기든 안 믿기든 뭘 안 믿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이들이 많다. 한 번이라도 무슨 집회에 빠지거나 하면 무슨 큰 재앙이 오는 줄 알고 안절부절 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을 달래고 진정시키는 게 무외보시다. 그런 게 다 부질없는 헛걱정임을 알게 하며 부처님의 밝은 이치로 혼돈을 걷어내 주고 대안을 제시하고 이끈다. 그리고 사해동포의 따뜻한 가슴으로 토닥거려 홀로 되는 두려움을 덜어 주는 것이다. 마지막이 돈이 좀 드는 재보시다. 좋은 일에 돈 쓰는 것만큼 좋은 일도 드물지만 금액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어떤 원이 서렸으며 얼마나 깨끗하고 정성 어린 보시냐가 관건이다. 내 형편에 맞게 내 정성에 찰만치 하는 게 보시지 고정된 액수나 비율이 있을 수 없다. 많고 적음은 오직 부처님이 아실 것이고 내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부처인 나 자신이 알 것이기 때문이다.

2010-05-18

[변화] '배신자'

인간은 배신당할 때 굉장히 아파한다. 다시는 사람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만큼 배신의 감정은 혹독한 것이다. 그렇기에 '변함이 없다'는 말에 대해 저항감을 갖기 마련이다. 특별히 믿고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했을 때는 정말로 견디기 힘들어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야할 부모로부터 배신 당했을 때 평생동안 사람을 믿지 못하며 살게된다. 사람은 왜 배신을 하는 것일까? 나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자신도 배신당했기 때문이다. 배신의 상처는 절대로 혼자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식을 버리고 싶은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자식을 배신하는 부모들은 대부분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의 요셉은 형제들에게 왕따를 당했고 결국 형제들의 손에 팔려 노예로 전락하게된다. 주인 보디발로 부터의 배신 술따르는 관원장으로부터의 배신 요셉의 인생은 배신으로 얼룩졌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름을 붓기위해 찾아왔을 때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아들을 모두 불렀지만 다윗은 아예 부르지도 않았다. 아버지로부터의 배신 장인 사울 왕으로 부터의 배신 아끼던 부하 아히도벨로부터의 배신 아들 압살롬으로부터의 배신... 하나님이 쓰신 일꾼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배신의 상처를 극복한 사람들이었다. 인간이 가장 믿기 힘들어하는 것이 '하나님은 변함이 없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번도 변함이 없는 존재를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부모님마저 변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에 절망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환경이 변하면 하나님이 변심했다 생각한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 당장 쌀이 떨어지면 곧 하나님을 원망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 방식대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를 배신 한 것으로 생각했다. 온갖 배신의 상처로 얼룩져있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키위해 급기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신다. 그리고 그의 능력있으심을 보여주시기 위해 기도하지 않은것마저도 끊임없이 우리에게 공급하고 계신다. 성경은 배신자 인간에 대한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하나님은 인간처럼 이기적이지도 능력이 없지도 않기 때문에 한결같이 당신을 사랑하실 수 있다.

2010-05-11

[생활 속에서] 분별력을 찾아야 할때

최근에 어떤 기도 모임에 참여하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기도모임에서 중보기도자들은 인간의 몸에 '마이크로칩(micro-chip)'이 심어지는 것을 우려하며 기도를 했다고 한다. "마이크로칩은 오바마 정부가 '의료개혁안'에 포함한 내용이며 오바마는 적 그리스도"라는 말이 기독교계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나는 그래서 그런 말을 전달하는 분과 대화를 하게 되었고 그 근거는 어디에 있냐고 질문했다. 그는 "의료개혁안 O페이지에 있다"고 답했다. 개혁안 내용은 인터넷에 올려져 있기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해당 페이지를 가보았더니 CHIP이라는 단어는 분명 있었다. 이는 '마이크로칩'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Children's Health Insurance Program'의 약자였다. 그리고 개혁안 그 어느 곳에서도 마이크칩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오바마 정부를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온 내용을 억지로 껴맞춘 루머가 기독교 내에서는 기정사실처럼 되어 가고 있다. 이는 노인들에 대한 혜택을 축소한다는 '죽음의 위원회' 소문과 유사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적 그리스도'라는 표현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을 적 그리스도로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르친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오바마와 그의 아내는 분명 자신들은 크리스천이며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고 지금도 다니고 있다고 고백하는데도 일부 기독교인들은 오바마를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앞잡이'인 것처럼 여기며 지나칠 정도로 미워하고 있으니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의료개혁안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루머에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휩쓸리는데도 이를 제대로 보고 잡아주는 통찰력 있는 교계 지도자가 거의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 중 제5계명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강력한 명령인데 이 내용을 배울 때 우리는 연장자들을 존중하고 정부의 관리에 순종하고 선생님을 존경하고 종교 지도자를 순전하게 따르고 피고용인은 고용주에 최선을 다할 것을 배운다. 물론 '하나님 안에서'라는 전제가 항상 붙는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직장상사에 대해 좋은 말을 하는 것은 5계명을 지키는 것의 연장이다. 정부 관리에 순종함은 법 준수를 잘하고 세금을 속이지 않고 정부의 정책에 적절한 반응을 보이며 관리에 대해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않는 것이다. 또한 권위를 가진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권위에 적절히 반응할줄 알아야 하고 권위를 남용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독교 내 일부 선지자 또는 예언자들은 '마지막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은 분별력을 잃어 점점 균형을 못 잡게 되고 이를 이단이 더욱 교활하게 이용하고 종교계는 더욱 어수선해진다. 분별력 회복을 위해 교계의 영성 회복이 시급한 것 같다.

2010-05-11

[미션의 향기] 과달루페의 성모마리아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땅에 특히 히스패닉계가 주류를 이루는 캘리포니아주 LA에 가톨릭교회를 이끌고 나갈 새로운 지도자 호세 고메즈 대주교가 얼마전 임명되었습니다. 지난 주 미션에 대한 이야기에서 가톨릭의 선교 역사와 캘리포니아만이 품고있는 신앙의 향기를 말씀 드린바 있습니다. 물론 새로운 대주교는 멕시코 출신 성직자로서 다양한 인종과 민족을 지니고 있는 LA 대교구의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증진을 위해 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울러서 가톨릭이 아닌 다른 많은 이민자들을 위해서도 역시 헌신하게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임명식 기자회견에서 고메즈 대주교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자신은 새로운 임지에서의 새로운 직무를 "과달루페의 성모마리아의 사랑과 보호에 맡길것"이라고 언급한바 있습니다. LA대교구의 교구장 직책 수여는 가톨릭 내부의 일이지만 결코 집안의 일만은 아닌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캘리포니아에서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대주교께서 자신의 중요한 직무를 수행하면서 과달루페의 성모 마리아의 사랑과 보호에 맡기겠다고 하신 그 성모님은 누구이신가? 오늘은 짧게나마 그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531년 12월 9일 성모 마리아께서 예비자 교리를 배우고 있던 가난하고 낮은 계층의 인디언 농부 멕시코 원주민 후안 디에고(Juan Diego)에게 발현했습니다. 이 시기는 콜롬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지 10년째 되는 해로서 멕시코 원주민들은 정복자의 폭정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발현 장소는 원주민들이 신전을 세웠던 테페약(Tepeyac) 언덕이었고 성모님은 인디언의 피부를 하고 장밋빛옷에 푸른 망토를 두르고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으로 발현하셨습니다. 성모님은 "나는 평생 동정이며 하느님의 어머니임이 알려지기를 원하고 어려울 때에 정성을 다해 나를 찾는 이들에게 나의 자비를 드러내도록 이 자리에 성당을 짓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과달루페라는 이름은 루르드나 파티마처럼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지명의 이름이 아니고 성모님께서 직접 붙여주신 것으로서 '뱀의 머리를 짓밟는 분'이란 뜻의 인디언 말입니다. 역사상으로 볼 때 과달루페의 발현만큼 한 민족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은 없었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발현 후 7년간에 걸쳐 당시 멕시코 인구의 거의 전부에 해당하는 약 8백만명에 달하는 멕시코 인디언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멕시코는 인구의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가톨릭 국가입니다. 이처럼 성모님은 멕시코사람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으셨습니다. 저는 멕시코의 과달루페 성모마리아 발현지를 두번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 성지는 일년내내 수없이 많은 멕시코 주민들과 다른 여러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그곳 아름다운 성전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뜨거운 믿음의 기적들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아주 소중한 기억으로 지금도 생생합니다. 성모마리아는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예수의 어머니로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한사람 한사람의 어머니로서 우리 모두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으로 깊이 인식되어 있습니다. 멕시코 시티에서 여행하면서 저는 그곳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진심으로 느끼고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이 가톨릭에 입교하게 되었을까 라고 묵상하면서 그 신비의 원천에는 누가 서있는가를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분명하게 느껴진 것은 역시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로서의 위대한 사랑과 손길이었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5월 한달을 성모성월로 정하여 여러 가지 아름다운 신심행사를 가집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있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자연재해 어려운 병으로 그리고 인간의 오만으로 고통이 만연하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여름의 길목으로 가는 계절의 여왕 5월에 저는 다시 새로운 대주교님의 겸손한 의탁과 기도가 의미하는 바를 되새겨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님! 어려울 때에 정성을 다해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녀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 주소서. 모든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에 축복해 주시고 꿈과 희망을 간직하여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도록 도와주소서.

2010-05-11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담배 못끊어 괴로운데…

Q: "저는 스무 살 때부터 담배를 피웠고 지금 마흔이 넘었는데도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밖에 나오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긴장을 하니까 안 피는데 집에만 가면 혼자 있고 싶고 아이들도 가까이 못 오게 하고 담배를 피웁니다. 이게 아닌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니까 대중 앞에 서면 너무 부끄럽고 자식들 앞에서도 부끄럽습니다. 불자로서 태도가 아닌 것 같아서 9개월 전부터 천천히 금연 시도를 해보는데 하루를 못 넘깁니다. 밤만 되면 도저히 못 참아서 담배를 사러 가는 행동이 반복되면서 괴롭습니다." A: 담배를 피우는 것이 범법 행위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흡연이 무슨 큰 잘못도 아니니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전체 분위기가 점점 흡연자가 줄어드는 추세니까 질문하신 분은 나쁜 일은 아니지만은 시대에 뒤처지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자로서 수행을 하는 것은 어째든 해탈을 하기 위해서지요. 자식으로부터 배우자로부터 이 경계로부터 좀 더 자유롭고 싶어서 수행을 합니다. 그런데 담배를 못 끊는다는 것은 담배로부터 자유롭지가 못하다는 것이고 그러면 이것은 벌써 담배가 해탈의 장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담배에 중독이 심하다면 담배를 수행의 과제로 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다생겁래로 지은 업장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것이 불자의 원인데 하물며 이생에서 고작 20년 피운 담배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면 다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담배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해서 해탈하는 것은 아니지만은 담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수준에서는 해탈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금연을 해탈로 나아가는 수행의 과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흡연이 나쁘기 때문에 끊으라는 게 아니라 내가 까르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척도 해탈의 척도로 삼으면서 금연해 보면 좋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부터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된다는 말은 적당치 않습니다. 피워야 된다 피우지 말아야 된다는 것은 결국 옳다 그르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옳다 그르다는 관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냥 수행의 과제로 삼아보라는 말입니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 그 마음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어 지금 내가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구나.' 그렇게 알아차립니다. 사람들은 보통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담배를 피워버림으로써 욕망에 끌려갑니다. 그런데 거기 끌려가지 말자는 거지요. '안 피워야지'라고 결심도 하지 말고 피우고 싶다고 피우지도 말고 그냥 피우고 싶은 마음을 알아차리기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내 상태를 점검하고 계속 보면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기도 모르게 담배를 피웠다면 담배를 피운 죄로 행동을 한 죄로 알아차림을 놓친 죄로 법당에 가서 1천배씩 절을 해보십시오. 이렇게 자기 결정이 딱 있으면 무의식 세계에서 저절로 조심하게 됩니다. 알아차림을 지속하고 혹시 놓쳐서 행위를 한 뒤에는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반드시 내가 정한 기준으로 스스로를 처벌하는 겁니다. 이렇게 피우고 싶어도 안 피우고 안 피우고 싶어도 안 피우고 몸이 아파도 안 피우고 잠이 안 와도 안 피우고 죽을 것 같아도 안 피우고 다만 안 피우기만 한다고 작정을 하고 다만 피우지 않는 겁니다. 이렇게 해보면 열흘 고비 넘기고 한 달 고비 넘기고 이렇게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면 담배가 더 이상 나에게 장애가 되지 않게 됩니다.

201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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