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똥 밟는 이야기
똥은 밟으면 안된다. 피해가는게 상책이다. 신발에 뭍으면 처치 곤란이다. 요즘은 똥 밟는 일이 잘 안 일어나지만 시골에 살 때는 자주 밟았다. 땅 내려다 보지 않고 천방지축 촐랑대며 나비나 코스모스, 샛노랗게 익은 탱자나무 쳐다보고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흉내내다 말똥 소똥 개똥 새똥 닭똥 애들 똥을 자주 밟았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도랑가로 끌고 나가 삼만이 아재가 짚으로 묶은 다발로 신발에 뭍은 똥을 긁어냈다.살면서 똥 밟는 일이 일어난다. 생각지도 않는 일이 터져 난감해진다. 내 잘못 아닌데 곤혹을 당하고 몇 사람이 작당해 뒤집어 씌우면 오해를 받는 일이 발생한다. 억울해서 반격을 가하려니 체통이 말이 아니고 그냥 참자니 울화통이 터진다. 결백을 주장하려면 상대에 관한 잘못이나 부정적인 견해, 공격과 말싸움은 필수라서 꼴이 말이 아니다. 차라리 똥 밟은 신발 버리고 신발끈 다시 졸라매고 고쳐 신는 게 온 몸에 똥칠하는 것보다 낫다.
요즘 한국에서는 ‘참을 인(忍)’자 쓴다는 말이 유행이다. 너도 쓰고 나도 쓰고 개도 양도 쓴다. ‘양머리 매달아 놓고 개고기 판다’가 유행인데 개고기 양고기 안 먹는 국민들은 무얼 먹고 사나. 가뜩이나 세계적인 물가상승으로 서민들은 장보기가 심란한데 고기타령하는 사람들은 배부른 족속들이다. 진짜 ‘참을 인(忍)’쓰고 참고 견디는 사람들은 국민이다.
똥 밟는 것보다 더 최악인 것은 똥씹는 일이다. 요즘 한국 소식 들으면 똥씹는 기분이다. 귀 막으려니 걱정 되고 들으면 속 터진다. 해결의 실마리가 안 보인다.
진(秦)나라가 조(趙)나라 왕을 연회에 초대한다. 진나라 위세에 눌린 혜문왕은 참석을 꺼려하는데 명장군 염파가 불참하면 조나라의 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인상여를 수행하게 한다. 조왕은 진왕에게 수모를 당하지만 인상여가 용맹과 기지를 발휘하여 무사히 회담을 마치고 그 일로 인상여는 재상의 자리에 오른다. 염파는 자신은 장수로 많은 공을 세웠는데 인상여는 말재주로 자신보다 높아졌다고 불평하며 인상여가 자기를 만나는 것을 피한다고 생각해 화를 낸다. 이에 인상여는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공하지 못하는 것은 나와 염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두 호랑이가 싸우면 나라가 어찌 되겠는가. 내가 그를 피한 것은 나라의 급한 일이 먼저고 사사로운 원한은 나중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 그 말을 듣고 염파는 인상여의 대문 앞에 찾아가 사죄하고 둘은 서로 목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우정을 나누게 된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더라도 속한 단체나 공익에 해를 끼치지 않는 길을 택한다’는 ‘선공후사(先公後私)’는 사기에 기록돼 있다. 지혜롭고 판단이 옳은 사람들은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안다.
언뜻 보면 똥과 된장은 구별하기 힘들다. 똥인지 된장인지를 구별 하려면 냄새를 맡아보면 된다. 구린자가 더 떠드는 편이다.
옳고 바른 일을 하는 사람은 목소리 높일 일도 없고 변명도 하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선공후사 보다 ‘공적인 일을 빙자해 개인의 이익’을 꾀하는 ‘빙공영사(憑公營私)’가 활개 치는 비참한 현실을 본다.
똥바가지를 남에게 뒤집어 씌우려면 자기 옷에도 똥물이 튄다. 학창시절 우스개로 부르던 노래 ‘에이라, 똥물에 튀겨 죽일놈!’이 문득 생각난다.
이기희 / Q7 Fine Art 대표·작가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