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직립, 호모사피엔스의 특권

장소현 시인, 극작가
“죽음을 앞두고 언제 가장 힘들어 하시던가요? 딱 한 번 펑펑 우신 적이 있다고 하시던데…”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강인숙 관장은 담담하지만 깊은 슬픔이 배어있는 말투로 이렇게 대답했다. “가장 심하게 운 것은… 걷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곧 못 걷게 생겼을 때… 그러니까 직립이 불가능해져 갈 때… 그냥 걸으려고 마지막까지 애를 쓰셨어요. 근데 내가 보기에 그게 더 위험해 보이는 거예요. 서서 무너져내려요. 그대로 무너져… 그냥 돌아가시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일어나려고 애쓰지 말라고… 그날 선생도 울고 나도 울었지요. 또 하나는 기억력이 깜빡깜빡하기 시작하니까… 이러다가 치매가 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그때 또 심하게 울었어요. 결국 두 발로 서서 호모사피엔스로 살고 싶다. 그게 아니면… 안 살고 싶다는 건데…”.
직립, 호모사피엔스 같은 낱말이 눈물겹게 가슴에 꽂힌다. 두 발로 서서 걷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힘겨워지는 걸 실감하는 터라서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직립보행, 인간에게만 주어진 고마운 특권….
인간의 문명은 직립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짐승들과는 달리 두 발로 서서 걸으며 생활하게 되면서, 자유로워진 두 손이 이루어낸 창조력이 인류 문명과 문화의 씨앗이라는 것이다. 직립하면서 뇌의 기능도 넓고 자유로워졌다. 손과 뇌의 조화로운 협력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걷고 뛰고 나르고 하면서 인간사회는 혁신적 발전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
늘 손이 중심이었고, 급기야 지금은 손가락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휴대폰이나 컴퓨터 자판을 누르는 손가락의 기능은 참으로 막강하고 신비롭다.
두 발로 서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 육체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정신적으로도 아무 데나 함부로 기대지 말고, 혼자 힘으로 바르게 서야 한다. 영혼은 한층 더 바르게 서야 한다.
그런데 세상은 날이 갈수록 정신적 직립보행이 참 어렵게 변해가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 덕에 온갖 정보와 소식이 넘쳐나다 보니, 무슨 일이건 혼자 힘으로 생각해서 판단하기보다 세상에 흘러다니는 정보에 기대게 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신경 쓰고 기대게 된다. 뚜렷한 내 생각이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최첨단 통신기술 탓에 그럴듯한 가짜 뉴스, 거짓 정보, 악의적 헛소문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능력이 없다. 이런 식이면, 뭐가 문제인지조차 모르는 까막눈이 될 판이다.
악독한 생각을 가진 악당들이 마음먹고 세상을 뒤엎으려 하면, 우리에게는 막을 힘과 재간이 없다. 그저 머리 좋은 천재들이 도덕적이기도 한 사람들이기를 바랄 따름이다. 이건 인공지능에 내 일자리를 빼앗기느냐 아니냐 하는 식의 밥그릇 싸움 차원이 아니다. 참 심각한 문제다.
이어령 선생 식으로 풀어 설명하자면, 현실 판단 면에서 스스로 직립하지 못하고, 서서 무너져 내릴 위기 앞에 서 있는 것이다. 펑펑 울어야 할 상황….
사태를 조금이나마 막을 방법은 우리가 똑똑해지는 길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공부하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정신 근력을 키우는 운동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생각이 사라지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