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의 향기] 놀부 전성 시대
전달수 신부/성마리아 엘리자벳 성당
스님이 건네준 차 한잔에 넋을 잃고 한참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분이 하신 말씀이 지금도 내 머릿속에 뚜렷이 남아 있다. "요즈음은 주역의 궤를 거꾸로 놓고 보아야 합니다."
'끝나지 않은 바지 소송'이란 기사가 우리를 다시 한번 놀래키는가 하면 '처녀성 경매'로 학비를 마련한다는 기사도 있고 낮에는 학교의 선생님으로 밤에는 몸 파는 여성으로 돈을 번다는 국제 뉴스도 눈에 띤다.
놀라운 일이라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모르겠다. 도저히 감이 가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주역의 궤가 거꾸로 서는 시대를 말하는 것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아름다운 민담들이 있다. 대부분 선을 권장하고 악을 경계하며 피하라는 권선징악을 가르치는 민간 윤리지침이다. 선을 행하면 상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인 상선벌악의 원칙과 너무나 비슷하여 나는 이 민담들을 좋아한다. 그 중의 하나는 흥부놀부전이다.
동생 흥부는 착하고 형 놀부는 악한 사람이다. 부창부수라더니 그 남편에 그 부인이라 악한 놀부 부인도 남편못지않게 시동생에게 악하게 군다.
어느 날 흥부는 굶은 배를 채우려고 더구나 굶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밥을 얻으려 큰집에 갔더니 밥을 퍼고 있던 형수가 밥주걱으로 시동생의 뺨을 때리니 얼굴에 묻은 밥풀을 떼어 먹었다고 하니 인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못된 형수와 배고픈 시동생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도 착한 흥부는 성실히 살아간다. 그런 흥부에게 하늘의 축복이 내린다.
겨울을 나기 위해 강남 갔던 제비가 봄이 되어 흥부 집을 찾아와서는 집을 지어 살곤 했는데 어느 해는 제비들이 좋은 선물을 흥부에게 날라다 주었다. 박씨였다. 그것을 심었더니 달덩이 같은 박이 주룽주룽 열렸단다. 흥부 부부는 신나게 박을 짜르고 있는데 이게 왠 일이냐. 박 속에서 황금빛이 비치지 않는가. 이게 꿈이냐 생시냐. 분명 꿈이겠지 내가 하두 굶어서 헛것이 보이겠지.
혹시나 해서 잠시 톱질을 멈추고 손으로! 만져보니 분명 금덩이구나! 알밤만한 금덩어리가 몇 주먹이나 나오지 않느냐. 이를 어쩌나 하느님.
이걸 팔아 양식을 사서 배고프고 허기진 배를 채우고 누더기를 입고 다니던 아이들에게 옷도 사주고 오두막을 헐고 대궐 같은 집을 지으니 동네 사람들도 놀래고 더더욱 놀랜 것은 욕심 많은 형 놀부가 아니던가.
이야기는 끝이 없다… 제비의 발을 부러뜨려 억지로 박씨를 얻어 키운 놀부는 동생처럼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톱질을 하였으나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번쩍이는 황금이 아니라 뱀이요 독충들이니 이 일을 어찌할꼬!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에는 놀부라는 이름을 좋아하는 상가도 생겨나고 놀부정신이 있어야 생존경쟁 사회에서 살아남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의 것을 빼앗아야 산다는 사고방식이다.
여대생이 마음에 드는 교수를 만나 스승으로 존경하기보다는 그의 아내를 물리치고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교수 부인과 싸움질을 하거나 친구를 유인하여 80여차례 성매매를 시키고는 1300만원을 가로챈 여고생 이야기나 자기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온갖 감언이설로 꾀어내어 이간질 하는 신도들은 분명 현대판 놀부들이리라.
흥부놀부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볼 때는 주역의 궤가 거꾸로 서는 시대라 한탄할 일이다. 순리에 따르지 않는 지나친 탐욕과 이기심은 화를 부른다.
주 예수님은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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