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2008 대선] '버락 오바마는 누구인가' 백인 엄마…하버드법대 첫 흑인 편집장
연방상원선거서 70% 득표
화려한 중앙 정치무대 등장
오바마 의원의 정식 이름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다. ‘후세인’은 무슬림 할아버지 후세인 온양고 오바마에서 따왔다. 공화당측 보수언론은 그의 이름을 거론할 때 꼭 후세인을 덧붙인다. ‘사담 후세인’을 연상시키는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다. 오바마 의원의 종교는 이슬람교가 아닌 기독교다.
하와이 대학에 사상 첫 유학생으로 입학한 오바마 후보의 아버지가 그 곳에서 ‘백인’ 여성을 만나 결혼해 낳은 아기가 오바마다. 혼혈인 자신을 스스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하는 그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부모의 결별로 친척들의 손에서 자라기도 했고, 어미니가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하자,오바마는 어머니를 따라 6~10살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다. 그는 또 자신이 30대 초반에 쓴 회고록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을 통해 고교시절 마약을 접했었다는 것을 인정해 논란이 되기도 했고, 청소년 시절 인종 문제로 정체성의 갈등을 겪기도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후 그는 로스 앤젤레스의 옥시덴탈 칼리지에 입학해 교환학생으로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1985~1988년 시카고에서 비영리 빈민조직사업에 뛰어들면서 인생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후 하버드대 로스쿨에 들어갔고 1990년 법률학술지 ‘하버드 로 리뷰’ 104년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편집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오바마 의원은 법학박사 학위를 딴 뒤 시카고로 돌아가 사회운동을 계속하면서 시카고대 로스쿨 강사로 일했다. 1996~2004년 일리노이 주의회 상원의원을 거친 뒤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을 했다. 그 후 3개월 뒤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오바마는 태생적으로 운이 좋았다. 출생지인 하와이 호놀룰루는 미국 연방에 편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종에 대해 관용적이었다. 부모가 결혼했던 1960년대는 미국 전체 주 중 절반 이상이 흑인과 백인의 결혼을 중죄로 규정하던 때였다. 무엇보다 외가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흑인 오바마의 성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조부모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흑백간의 결혼을 가로막는 세태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부모의 피를 물려받은 오바마의 어머니는 인종문제에 대해서는 강인한 모습을 보였다. 어린 오바마에게 항상 흑인의 장점과 우수성을 가르쳤다.
오바마가 흑인에 대해 어머니에게 배운 것은 최초의 흑인판사, 최초의 흑인 민권 운동가, 최초의 흑인 여배우… 이런 사람들이었다. 세상의 차별로부터 아들을 철저히 차단하려고 했던 어머니 덕분에 오바마의 어린 시절은 자신감과 희망으로 충만했다. 시카고 인권변호사, 시카고 대학 로스쿨 교수를 거친 뒤 주 상원의원을 3번 연임한 그는 2004년 여름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인종에 관계없이 미국인은 모두 하나라는 내용의 기조연설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고, 이후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70%의 기록적인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중앙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등장,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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