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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비운만큼 채운다

김세환 목사/LA연합감리교회

어렸을 때 동네에 거지 아주머니가 한 분 있었습니다. 정신을 놓은 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아주머니도 항상 히쭉히쭉 웃으면서 돌아다녔습니다. 머리카락은 언제부터 안 감았는지 밧줄을 꽈 놓은 것처럼 두껍게 떡이 져 있었고 얼굴과 손은 까마귀도 혀를 내 두를 만큼 새까맣게 때가 껴 있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이 아주머니를 바보라고 놀려대며 나뭇가지나 돌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이 아주머니는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습니다. 거지로 살아가는 것이 타고난 사명인 양 깡통을 들고 이 집 저 집 기웃기웃 돌아다니며 빌어먹는 데에 만 전념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항상 작은 수레에 큰 가방 세 개를 싣고 다녔습니다. 큰 짐 보따리도 머리에 이고 있었습니다. 밥 만 빌어먹는 것도 쉽지 안았을 텐데 케케묵은 짐들을 전부 끌고 다녔습니다.

"도대체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 것일까?" 어린 나이에도 많이 궁금했습니다. 그 분은 한 여름인데도 긴 팔 소매의 두꺼운 코트를 입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체구가 항상 크게 보였습니다.

그 거지 아주머니를 딱하게 여긴 동네 어른들이 함께 모여 회의를 하고 그녀를 도와 주기로 결정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동네 아주머니들 서 너 분이 강제로 달라붙어 그녀를 목욕탕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옷을 벗기는데도 몇 시간이 걸렸습니다. 설득을 하고 달래 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위협까지 하면서 옷을 벗겼는데 삼복 더위에 다섯 벌의 옷을 껴 입고 있었습니다.

보따리와 가방을 뒤져보니 수 십 년 동안 묶은 옷가지와 잡동사니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곳 저곳 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준 것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싸 들고 다녔던 것입니다. 이 아주머니는 기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재활센터로 옮겨졌습니다.

'거지'라는 말의 뜻은 '받을 줄만 알고 줄 주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거지는 항상 달라고만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가난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일단 자기 손에 들어 온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놓을 줄을 모릅니다. 거지는 충분히 주어져도 정신적인 공복감 때문에 '욕심이 이끄는 삶'(Desire Driven Life)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다행히 현실적으로는 절대빈곤을 경험하지 않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미 거지 수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거지처럼 한번 입력된 감정은 도무지 버릴 줄을 모릅니다.

영혼에 새겨진 문신처럼 나쁜 기억들과 해 묵은 상처들을 가슴 깊이 되새기며 힘들게 살아 갑니다. 섭섭한 마음 미워하는 마음 불안한 마음 그리고 온갖 깨어진 마음들을 다 품고 새해를 시작합니다. 이들이 바로 영적인 거지들(spiritual beggars)입니다.

하나님은 묵은 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들에게 새 것을 채워 주십니다. 믿었던 형들에게 배반을 당하고 몇 푼의 돈에 이방 상인들에게 종으로 팔린 요셉(Joseph)을 기억하십시오. 그가 훗날 애굽의 최고 통수권자가 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자신의 아픈 상처와 기억을 벗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을 비운 사람 요셉에게 하나님은 미래의 꿈과 비전으로 그 빈 자리를 채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애굽과 열국을 축복하는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200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제 지난 일은 단지 지난 일일 뿐입니다. 아픈 감정들은 다 털어버리고 새롭게 새해를 시작합시다.

얼마만큼 자신을 비우든지 우리는 비운 만큼만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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