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의 향기] 용서와 화해
한상만 신부/성 크리스토퍼 한인성당
어떤 아주머니의 용서 못할 사연을 듣고 가슴 아팠던 일이 더불어 생각났다. 그분의 딸 결혼식에 즈음하여 그분에게 앙심을 품었던 어떤 여자가 선물 상자로 위장하여 보낸 저주의 메시지는 소름 끼치는 것이었다.
상자 속에 들어있던 조그만 신랑 신부 인형이 마디마디 조각 나 있더라는 것이다. 열심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 아주머니는 용서를 위해 기도했지만 열심히 기도 할수록 용서 못할 이유만 더 알게 되더라고 했었다.
죄란 그런 것이다. 죄는 죄를 부르게 되어있다. 그것이 죄의 속성이다. 그것이 용서 못하고 잊지 못할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 174) 하셨다. 하지만 청하지도 않는 용서를 어떻게 하란 말인지 불평이 앞서기는 믿는 이나 아니거나 마찬가지다.
그렇다. 용서는 우리 것이 아니다. 용서하는 권한은 하느님만의 것이다. 용서의 기원은 그래서 은총이다. 우리가 하는 용서와 화해의 시작은 이 사실을 아는 데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 주님의 기도에서 다음처럼 가르치신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기도에서 구하는 일곱 가지 청원 중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이 기도는 "처럼;하오니(as; sicut)"로 연결되는 두 기도문이다. 이 "하오니"는 저희 죄를 용서하시라는 것과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한다는 것이 나누어질 수 없을 뿐 아니라 뒤의 것을 위하여 앞의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저희 죄를 용서하시라'는 청원의 바탕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자각과 그 비참함에 대한 깊은 인식이다.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심에 의지하여 용서를 청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에 일치하고픈 열망과 희망이다. 이를 동력으로 삼아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한다'는 선행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용서와 화해를 가능하게 하는 하느님의 전능하신 힘이 드러나는 자리이다.
마침내 원수까지도 용서하도록 만드는(마태543) 이 "처럼(as)"의 가르침은 아주 자주 매우 적절하게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씀에 사용된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 48)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이 때 요구되는 "처럼"은 단순히 외적 모방을 의미하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하느님의 거룩함과 자비와 사랑을 향한 적극적인 참여를 의미한다. 이리하여 용서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구체화된다.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 모든 것을 매고 푸는 것이다.이 "처럼"의 신비에 의존하여 성령께 마음을 여는 사람은 모욕을 동정으로 바꾸고 상심을 전구로 변화시켜 기억을 정화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용서와 화해의 신학이다. 한도 없고 끝도 없이 우리의 잘못을 앞서는 하느님의 용서를 생각하며 그 "처럼" 또는 "하오니"의 신비로 세상에서 평화의 도구가 되어보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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