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생활 속에서] '꿈이 있는 자유'를 꿈꾸며

박병기/Jesusinculture.com 운영자

20세기 젊은이들은 '자유'를 갈망했다. 21세기 젊은이는 자유를 미친 듯이 쫓는다. 그들이 자유를 경험할 수 있는 분야는 영화나 대중음악 또는 인터넷이었다. 영화 대중음악 인터넷에서는 자유의 메시지가 있었다.

이 세 분야는 기존 문화와 기성세대가 표현하지 못한 자유를 말했다. 견제가 없다 보니 자유가 방종이 될 때도 있었지만 젊은이들은 그 자유를 만끽했다. 영화관에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영화가 쏟아내는 자유의 메시지를 그들은 즐겼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대중음악이 뿜어내는 자유 메시지에 그들은 귀를 기울였다. 블로그는 그들이 찾았던 자유를 완성시킨 도구였다.

'자유'에 대해 핵심 메시지를 갖고 있는 교회는 그 자유를 제대로 전파하지 못했다.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는 신의 은총에 의한 '자유'다.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유다. 예수의 희생은 우리의 자유를 위한 것이었고 신은 성경을 통해 인간에게 자유를 주려는 시도를 수도 없이 했다.

그런데 왜 교회는 자유의 메시지를 전하지 못했을까. 성경을 율법책의 관점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영화 대중문화 인터넷보다 더 자주 더 큰 비중으로 자유를 말한다. 죄에서 자유 율법에서 자유 상처에서 자유 고통에서 자유 꿈이 있는 자유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영화 대중음악 인터넷이 쏟아내는 자유 메시지는 사실 진정한 자유는 아니다. 자유의 그림자 정도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림자를 보고 실체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유인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종신형을 받은 죄수가 특별사면으로 석방되는 것과 비슷하다. 교도소 안에서는 제한이 많다. 제한된 공간에서 교도소 규칙과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게 교도소 생활이다.

특별사면을 받은 죄수는 세상으로 나간다.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물론 교도소 밖에도 규칙과 법칙이 있지만 교도소에 비하면 큰 자유를 허락한다. 그런데 이 사면된 죄수는 자유가 불편하다. 교도소의 '부자유' 에 익숙한 죄수는 오히려 자유에 불편함을 느끼고 수감생활을 그리워한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바로 이 특별사면된 죄수처럼 살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교회는 교도소 밖의 자유로운 생활을 말해주지만 그것은 이상일 뿐이다. 실생활은 마치 교도소 안에서의 생활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특별사면 받고도 교도소 생활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을 때 교회는 자유의 메시지를 전할 수 없게 된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 장 1절에 '주 안에서 묶인 자(the prisoner in the Lord)' 라는 표현을 썼다. 기득권 세력과 시스템에 묶인 자는 바로 특별사면을 받고 교도소 생활을 그리워하는 사람처럼 된다. 하지만 교도소 밖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자는 바로 주 안에서 묶인 자가 된다.

묶여 있는 것처럼 보여도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실제 주 안에서 묶인 자인 바울은 체포되어 감옥에 살면서도 내적인 자유를 누렸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이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