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칼럼] 전화번호부에서 찾은 '보물'
신승우/정치·탐사부 기자
대학생 시절 사용하다 10년 전 미국에 건너올 때 가져왔던 검은색 가죽으로 된 '다이어리'였다.
서랍 정리는 뒷전으로 하고 양반다리를 치고 바닥에 앉아 앞 표지부터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내용을 살펴봤다.
거기에는 당시 학교 동아리 교회 생활을 통해 기록했던 회의 내용들이 남겨져 있었다.
각종 이벤트를 준비하며 적어 두었던 진행 순서와 참석자 명단도 있었고 얇은 종이로 된 영화티켓 친구들과 찍었던 스티커 사진도 빛이 바랜 채 붙어 있었다.
유럽여행을 계획하며 스위스 프랑스 등의 국가별로 기록해뒀던 기차 시간표와 호텔 연락처도 남겨져 있다.
아름다웠던 20대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러다 마지막 부분에 있던 전화 번호부에 눈길이 한참동안 머물렀다.
고등학교 시절을 친 형제처럼 보냈던 교회 친구들 인생을 알게 해준 대학 선후배들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군대 선후배들….
기회가 생긴 김에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국제전화 카드를 지갑에서 빼며 그들의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015 012…. 대부분 현재는 서비스가 중단된 번호들이 아닌가.
011로 시작되는 번호도 있어 연락해 봤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번호가 변경된지 오래였다.
'이메일로 연락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당시 이메일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때라 받아 놓은 이메일이 하나도 없었다.
10년 전 잃어버렸던 보물을 어렵사리 발견했지만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변해 있었다.
그러다 집 전화전호가 적힌 한 사람을 발견했다. 대학 때 선배로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을 나와 꽤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다. 정말로 10년 넘게 연락이 끊어졌던 사람인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거기 00씨네 집이죠?" "맞는데 누구시죠?" "대학 후배인데요 혹시 통화할 수 있나요?" "휴대전화로 해보슈."
간단한 대화 끝에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 낼 수 있었고 드디어 통화에 성공했다.
너무나 반가웠다.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고 대학 때부터 은행에서 파트타임을 했던 경력을 인정받아 금융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선배를 통해 또 다른 사람들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고 연락처도 몇 개 얻어냈다. 깊은 바다 밑에 가라앉은 보물선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연락처를 받게 된다. 물론 나의 연락처를 주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전화번호는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고 바뀔 수 있다.
앞으로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이메일을 받아 놓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간단한 메모와 특징들도 기록을 해야겠다.
또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들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전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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