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강력통 검사의 새로운 도전
200년째 ‘백인 일색’ 귀넷 사법부에 도전장 내민 제이슨 박 검사 “한인, 말없는 ‘모범 이민자’ 만족해선 안 돼” 귀넷 선출직 판사 출마 제이슨 박 21일 후원회 지난 2월 귀넷 카운티 경찰의 대규모 갱단 소탕 작전이 전국적인 화제가 됐다. 살인부터 마약유통, 불법무기 소지까지 온갖 험악한 혐의로 악명높은 갱단원 25명이 쇠고랑을 찼다. 작전명 ‘브레이킹 배드’는 필로폰 제작으로 시작해 범죄 세계를 평정한 화학 교사의 이야기를 다룬 인기 드라마 제목에서 따왔다. 마치 한 편의 영화와도 같았던 이 작전의 보이지 않는 주인공은 한인 제이슨 박 귀넷 카운티 특별 수사부 검사였다. 그는 10여년 경력의 강력부 강골검사로, 뉴욕 브루클린부터 애틀랜타 다운타운, 지금은 귀넷에서 마약, 갱, 살인, 매춘 같이 가장 위험한 범죄를 전담해왔다. 박 검사는 형량 15년 미만의 사건은 취급하지 않는다. 10여년 전 뉴욕 브루클린의 스산한 밤거리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한 박 검사는 애틀랜타에서도 살인, 마약, 갱, 매춘같이 가장 다루기 힘들고 피고인들의 생사여탈을 사실상 쥐락펴락할 수 있는 중형 선고 예상 사건을 도맡아 다뤄왔다. 그가 법률가이자 공무원으로서, 또한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새로운 소명을 감당하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내년 귀넷 카운티 수피리어 법원 판사에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그가 당선되면 귀넷 카운티 설립 200주년만에 첫 소수계 판사라는 역사적인 상징성을 갖는다. 박 검사의 출마는 개인의 도전을 뛰어넘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내년 200주년을 맞이하는 귀넷 카운티는 자타공인 귀넷 최고의 아시안 검사를 최고위직 판사로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귀넷 카운티 정부는 1818년 설립 이래 그야말로 백인 일색이었다. 동남부에서 가장 큰 이민자 상권이 귀넷에 뿌리를 내렸고, 흑인 주민들도 꾸준히 증가한 덕분에 귀넷 유권자들 중 인구통계 용어로 과반을 넘는다는 뜻의 ‘다수인종’은 지난해를 기해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도 귀넷 운영위원회나 선출직 판사, 교육위원회, 셰리프국장과 같은 카운티 정부 요직은 모두 백인들이 독식하는 현실이다. 귀넷 일부 지역에서 한인과 히스패닉 주의원들이 선출된 게 전부다. 최근 귀넷 운영위원 헌터 힐이 ‘막말 논란’을 일으키고도 요지부동할 수 있는 것은 귀넷 엘리트 집단 일부의 시대착오적인 의식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 때문에 박 검사의 도전은 함의가 크다. 그는 풀턴 카운티 차장검사 출신이자, 귀넷 카운티에서 가장 어려운 사건들을 다루는 특별수사반 소속 검사 3명 중 1명으로, 법률가로서 실력을 공인받고 있다. 출중한 자격 요건을 갖춘 이민자 출신 40대 검사가 살인, 강도 같은 중범 재판의 1심 법원인 귀넷 수피리어 판사 선거에서 승전보를 울릴지, 이번 선거를 귀넷 유권자의 의식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 박 검사가 출마를 결정한 데에도 이같은 인식이 반영돼 있다. 그는 “출마를 준비하며 귀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러 분들께 조언을 구했다. 그런데 ‘한인들은 안 도와줘도 잘 사는 것 같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더라”며 “우리 한인들이 계속 말없는 ‘모범 이민자’로 살 것인지, 이 곳을 우리 땅으로 삼고 주인으로 살아갈 것인지는 결국 정치적 행동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또 “어떤 분은 ‘얼굴만 봐도 코리안 아메리칸인데, 한인사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출마하는 의미가 없다’는 조언을 했다. 그래서 오기가 생겼다”며 “우리 코리안 아메리칸이 이런 사람들이다, 메세지를 던지고 싶다”고 밝혔다. 뉴욕 밤거리 노상범죄 단속하며 검사생활 첫발 내디뎌 외압에 굴복하지 않고 불의와 타협 않는 강직한 성품 신학 공부한 신앙인, 한때 교회 전도사 활동도 지금은 애틀랜타에서 날고 긴다는 범죄자들이 이름만 들어도 떨 만큼 ‘악명’이 높은 강골검사 제이슨 박. 하지만 그는 대학 새내기 시절,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목표가 없는 학생이었다. 박 검사는 11살에 도미해 뉴욕 최고의 명문 특목고인 스타이브센트를 졸업하고 뉴욕대학(NYU)에 전액 장학생으로 진학했다. “공부는 잘한 것 같은데, 전공이나 인생의 목표가 없었다”는 것이 당시 그의 모습이었다. 그러던 그는 교내 기독학생 모임에서 삶의 큰 변화를 겪었고, 신학을 접하기 위해 기독교계 자유인문대학인 매사추세츠 고든대학으로 편입, 신학과 철학을 전공한 다음 뉴욕의 유니언신학대학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것 보다 일상에서 말씀을 전파하는 생활 신학에 관심이 있었고, 로스쿨을 목표로 잡았다”고 말했다. 브루클린법대 재학중에는 브루클린 검찰청에서 학생 보조로 일하며 검사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졸업 후 곧바로 브루클린의 노상 범죄를 단속하며 검사 생활을 시작했고, 8년 전 애틀랜타로 이사해 풀턴 카운티 검찰청에서 서열 2순위인 차장검사직을 맡았고 2년 전에 귀넷 카운티로 소속을 옮겼다. 박 검사는 15년에서 무기징역, 사형까지 해당하는 무거운 범죄 사건들만 다룬다. 한 사람의 자유를 평생 앗아갈 수도 있다는 데 대한 무거운 책임감이 부담이 되진 않을까. 그는 “커뮤니티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법의 잣대를 공평하게 들이대는 것이 검사 본연의 임무다. 도덕적이거나 신학적인 갈등은 없다”고 소신있게 말했다. 한인들이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끔 수표사기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는 사람들이 있지만, 형량이 낮은 혐의라 박 검사가 직접 다루는 경우는 드물다. 다만 강력 범죄의 피해자로서는 한인들과 때때로 대면하기도 한다. 박 검사는 지난 2015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간혹 강도 사건 등에서 한인 피해자들과 만나곤 한다. 미국이란 나라가 피해자를 소홀히 생각하지 않고, 신분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보장하는 나라라는 것을 한인 피해자들에게 내가 직접 보여줄 수 있어 축복”이라고 말했다. 사실 깨끗한 피부에 단정하게 머리를 깎고 안경을 낀 박 검사의 모습은 애틀랜타 슬럼가의 밤거리 보다는 교회에 어울리기도 한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 뷰포드에 있는 한 한인교회에서 중고등부 담당 전도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인 후배를 양성하기 위한 활동도 꾸준히 펼쳐왔다. 박 검사는 2015년 중앙일보가 주최한 칼리지페어에서 세미나 강사로 나와 검사를 꿈꾸는 아시안 청소년들에게 검사 생활과 검사가 되는 과정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 작년 10월에는 한인변호사협회(KABA-GA)가 주최한 오찬 세미나에서 검사 생활에서 느낀 점에 대해 나눴다. 현재 귀넷 수피리어 법원에는 10명의 판사가 활동 중이다. 이중 내년 임기가 끝나는 2명의 판사는 곧 은퇴를 발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선거 일자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내년 여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 검사는 “21일 한국식으로 어른들께 인사드리고, 좀 더 준비한 다음 공식적으로는 8월 중에 보도자료를 내고 공식 출마를 알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 검사는 출마에 앞서 한인사회에 인사하고 한인들의 지지를 구하기 위해 21일 저녁 6시30분 애틀랜타한인회관에서 후원회를 갖는다. 조현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