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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전기톱, 한국에 더 필요할지도

[아르헨티나 현장에서] 관련기사 밀레이 ‘전기톱 개혁’ 아르헨티나를 살렸다 자유주의가 하지 말라는 일 골라 하다 몰락 탈세가 미덕이라는 골수 자유주의 대통령 개혁은 비포장길…긴축 고통에 저항도 여전 개혁의 강 건넌 아르헨티나, 이번엔 다르다 좌파 포퓰리즘이 반세기 넘게 망쳐놓은 아르헨티나는 지금 수술대에 올라 있다. 의사는 ‘미친놈(El Loco)’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그는 메스 대신 전기톱을 휘두른다. 재정, 보조금, 정부조직, 공무원, 각종 규제가 그의 전기톱에 뭉텅뭉텅 잘려나가고 있다.   자유지상주의 개혁 현장에서 보름 동안 택시 기사부터 정재계 인사에 이르기까지 40여명을 만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렇게라도 안 하면 도저히 바꿀 수 없을 지경이 됐다’고 설명한다. 포퓰리즘은 더 이상 안된다는 공감대가 감지됐다.     아르헨티나 몰락의 원인은 대중영합 정책으로 요약되는 페로니즘이다. 한 마디로 선심성 복지 포퓰리즘이다. 그에 취해 흥청망청 쓰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처음 손을 내민 게 1958년. 그 잘 살던 나라가 기울기까지 불과 10여 년밖에 안 걸렸다. 그 뒤부터는 익숙히 알려진 아르헨티나 경제의 흑역사가 21세기까지 이어졌다.   밀레이는 포퓰리즘의 달콤한 중독을 깨우기 위해 쓴 약을 내밀었다. 당연히 금단현상과 저항이 나올 수밖에.     지난 3월 12일과 19일 시위 현장엔 땅이 뒤흔들릴 함성이 터져나왔다. 수천 명이 경찰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화염병을 던졌다. 그곳에서 취재 중 최루탄 가스를 들이마시고, 경찰 고무탄을 맞고 길바닥에 주저 앉았다. 종아리와 엉덩이에 맺힌 핏멍울의 고통은 ‘이게 무슨 자유주의냐’라며 나를 시위대와 공감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크게 보면 이 역시 거쳐야 할 개혁의 과정이다. 1년 반 남짓한 밀레이의 개혁은 가시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성장률, 물가, 환율, 주가, 빈곤율… 대부분의 경제지표들이 포퓰리즘 시절에 비해 몰라보게 개선됐다.   아르헨티나의 개혁은 지금까지 대세였던 복지국가 모델과는 궤를 달리 한다. 정부에게 기대지 말고 개인과 시장이 알아서 하라는 자유방임 또는 자유지상주의에 입각해 있다. 한물간 신자유주의의 원조쯤으로 여겨지던 사조다. 이게 밀레이의 개혁을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아르헨티나처럼 정부효율부(DOGE)를 설치해 일론 머스크에게 맡겼다. 밀레이는 머스크에게 전기톱을 선물하기도 했다. 공공부문 축소라는 공통분모를 부각시킨 셈이다.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도 아르헨티나를 두고 말이 많다. 정말 와보고 말하는 건지는 의문이다. 지도자 잘못 뽑으면 아르헨티나처럼 된다면서도, 내세우는 공약은 정작 아르헨티나 포퓰리즘을 빼다박았다. 특히 민주당의 기본소득, 기본금융, 기본주택 등 '기본 시리즈' 공약이 그렇다. 그럴 듯하게 포장한 지역화폐도 아르헨티나에선 이미 여러 차례 해보다 부작용만 키웠다. 먼 훗날 한국에도 전기톱이 나와 잘라내야 할지 모른다.     개인의 윤택한 삶을 국가가 보장해줄 수는 없다. 아르헨티나의 반세기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도 국민을 위한다며 뭐든 다 해줄 것처럼 유혹한다. 실패의 낭떠러지가 뻔히 보이는데도 말이다.   이를 두고 미국 보수층에선 포퓰리즘을 넘어 사회주의에 다가서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나온다. 반공주의자로 유명한 고든 챙 박사도 본지 영문매체인 koreadailyus.com과의 인터뷰에서 그런 우려를 표했다.     포퓰리즘은 유혹하고, 사회주의는 덮친다. ‘비야31’이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빈민가를 보고 든 생각이다. 한인들의 자랑스러운 모국이 그에 당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장열 기자ㆍ[email protected]아르헨티나 기획

2025-05-18

개혁의 강 건넌 아르헨티나, 이번엔 다르다

  [특별기획] 1. 아르헨 살린 '전기톱' 개혁 2. 100년 전 선진국의 몰락 3. 리버태리언 밀레이는 누구 4. 페로니즘의 향수는 아직도 5.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흔히 택시 기사들의 여론을 ‘민심의 풍향계’라 한다. 서민층에 속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접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체감하기 때문이다. 그럼 부에노스아이레스 택시 기사들은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개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본지 취재팀이 지난 3월 33회에 걸쳐 현지 택시와 우버를 이용하면서 직접 설문한 결과 32명이 지지를 표명했다. 밀레이를 지지하는지, 반대하는지 묻자 모두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였다. 압도적으로 밀레이 편이다. 우버 드라이버 다니엘 에두아르도는 “이번에 바뀌지 않으면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기사 앤젤 프란스시코도 “많은 것이 바뀌고 있고, 사람들도 점점 희망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공감대는 확실해 보인다. 실패한 포퓰리즘 경제에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다들 알기 때문이다. 당장에라도 차 세우고 반정부 시위대에 합류할 법한 택시 기사들이 외려 밀레이를 지지하는 이유다. 이들은 과거 대부분 페로니스트 정부 지지층이었으나, 이젠 돌아섰다고 한다. 포퓰리즘 정책의 실패에 따른 피해를 처절하게 경험한 계층이기에 노선 변화가 두드러진 것이다.   좌파 페로니즘 정권에서 산업부 산업정책국장(2019~22)을 지낸 레안드로 모라 알폰신도 이런 정서를 인정한다. “40년의 민주주의를 지나면서도 약 45%가 기본 생계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기존의 방식을 바꾸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대중의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물가, 성장률, 빈곤율 등 각종 통계가 부쩍 개선되자 긴가민가하며 관망하던 여론층도 개혁에 호감을 보이게 됐다. 밀레이 정부는 그들에게 과거보다 미래를 얘기한다. 페데리코 스투르제네거 규제개혁장관은 지난 13일 “향후 15년간 매년 4%씩 꾸준히 성장하면 아르헨티나 국민소득은 스페인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라틴 아메리카 정치경제학자인 마리아노 토마시 산안드레스 대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수십 년간의 침체와 실정에 반발한 국민은 완전히 다른 접근방식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었는데, 이게 밀레이의 스타일과 맞아떨어졌다. 특히 그의 이념적 일관성은 밀레이 개인뿐 아니라 그의 정책적 방향에 일정 수준의 신뢰성을 주고 있다.”   밀레이를 향한 대중의 지지는 개혁에 대한 갈구의 표출이다. 밀레이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지금의 개혁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저변에 깔렸다. 실패는 곧 끔찍한 과거로의 회귀를 뜻한다는 걸 다 알기 때문이다. 킨토 투자자문의 바우티스타 부르디외 애널리스트는 “현재 추진 중인 정책과 변화가 실패한다면, 아르헨티나는 과거의 인플레, 부채 위기, 빈곤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밀레이는 경제에서만 득점하고 있는 게 아니다. 기득권 정치 엘리트들에 대한 공격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 국회의원 특권 축소가 대표적이다. 라디오 방송 진행자인 조엔나 메사 알퍼트는 “그동안 아무도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 그 점에서 정말 긍정적이다. 그런 위험을 감수했다는 점에서 존경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선 아르헨티나인에게 ‘밀레이가 성공할까’라는 질문은 차라리 우문에 가깝다. “그렇게 물으면, 밀레이가 실패하면 안 된다고 답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거다. 나도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밀레이가 꼭 성공하길 바란다. 페론주의자들도 알 거다. 자기들도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꼭 성공하면 좋겠다.”(물류회사 LK글로벌 강태민 대표)   두터운 지지를 의식해서인지 밀레이는 과격 시위대의 요구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 과거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면 형식적으로라도 요구를 받아들이곤 했는데, 지금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야당을 설득하려는 자세도 안 보인다. 자유지상주의 개혁 정책에 타협이란 없다. 최고 권력기관인 정부 자체를 혐오하는 무정부주의 성향의 밀레이가 파쇼라는 형용모순적 비난을 받는 이유다.   그가 임기 중 개혁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것이라는 데 대해선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정치적으로 큰 분기점인 오는 10월 중간선거에서 대중의 지지를 받는 밀레이 여당의 승리가 예상된다. 지금의 여소야대 구도가 뒤집어지거나, 여당 의석수가 두드러지게 늘 경우 개혁엔 더 탄력이 붙을 수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헤럴드의 칼럼니스트 릴리아나 프랑코는 “정치 분석가들은 밀레이의 자유전진당이 여러 의석을 추가로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야권이 상당히 분열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가전메이커 피바디의 최도선 회장도 “중간선거에서 밀레이가 압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야당에서 밀레이에 대적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페론당은 나라를 망쳐놨기 때문에 그렇다.”   문제는 그 다음, 즉 밀레이가 임기를 마친 뒤다. 자유지상주의 개혁의 관성은 유지될까, 아니면 포퓰리즘의 기운이 다시 고개를 들까.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변동사에 해박한 토마시 교수는 다소 조심스러운 견해다. “밀레이가 야심 찬 개혁의 일부를 성공적으로 실행하더라도, 향후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후퇴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은 큰 리스크로 남아 있다.”   과거 아르헨티나의 정정불안을 감안한다면 일리 있는 말이다. 개혁의 실패, 또는 개혁 피로감 탓에 정권이 바뀐다면 과거로의 회귀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밀레이의 개혁 정책이란 것도 무슨 대못을 박아둔 게 아니다. 자른 공무원들이야 다시 고용하면 되고, 줄인 정부부처도 금방 되살릴 수 있다. 틀어막은 보조금 다시 푸는 건 일도 아니다. 규제 역시 다시 법령 만들어 채울 수 있다.   그러나 경제 현장에선 자유지상주의 개혁을 되돌릴 수 없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방향이 옳고, 성과가 확실한 데다, 많은 국민이 이에 적응했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의 생활과 시장의 흐름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것이다. 정권 교체 이후에도 개혁은 나름의 관성을 타고 비가역적으로 굴러갈 것이라는 뜻이다.   아르헨티나 최대 회계법인 리식키 리트빈의 세자르 리트빈 대표는 “밀레이의 후임자가 그 비전을 이어갈지가 중요하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예전으로 돌아가진 못할 것이다. 밀레이가 워낙 많이 바꿔놨고, 이젠 사람들이 거기에 제법 익숙해져 있다.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자유지상주의와 결이 다른 사람들도 지속가능성을 높게 본다. 페로니스트 정부에서 산업부 장관(2019~22)을 지냈던 마티아스 쿨파스는 “개혁의 일부는 지속가능하다. 특히 재정준칙과 원칙적인 통화관리는 앞으로도 오래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하이퍼 인플레이므로, 그 원인이었던 방만재정과 현금 살포를 다음 정권이 답습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포퓰리즘의 실패를 겪을 만큼 겪은 국민은 과거로 돌아가는 게 어떤 뜻인지 잘 안다. 아르헨티나를 유럽 수준의 국가로 만들자는 밀레이의 비전은, 그래서 공감을 얻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에선 ‘이번엔 다르다’는 시민들의 기대감을 체감할 수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남윤호·장열 기자   관련기사 개혁의 강 건넌 아르헨티나, 이번엔 다르다 개혁은 비포장길…긴축 고통에 저항도 여전 탈세가 미덕이라는 골수 자유주의 대통령 자유주의가 하지 말라는 일 골라 하다 몰락 밀레이 ‘전기톱 개혁’ 아르헨티나를 살렸다   □ 도움말 주신 분(무순) 기예르모 모레노 (원칙과가치 당대표)   마르틴 라팔리니 (산업연합회 회장) 세자르 리트빈 (회계법인 리식키 리트빈 대표)   에두아르도 헤커 (전 방코나시옹 행장)   마티아스 쿨파스 (전 산업부 장관)   릴리아나 프랑코 (부에노스아이레스헤럴드 칼럼니스트) 다리오 쿠신스키 (UNPAZ 총장)   실비나 카탈디 (UNPAZ 국제국장)   마리아노 토마시 (산안드레스대학 교수) 엘리오 델레 (금속산업협회 회장)   리안드로 모라 알폰신 (전 생산개발부 산업정책국장)   루시아노 볼리나가 (아우스트랄대학 아시아연구센터 소장)   알레한드로 젠타일 (테친그룹 디렉터) 바우티스타 부르디외 (킨토투자자문 애널리스트) 에르난 로메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출판사)   구스타보 에이리즈 (라플라타 시립 오케스트라 비올리스트)   마르티나 이바르 (케네디대학)   엘피나 로한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학생)   알레한드로 김 (변호사)   조애나 메사 알페르트 (콘덕토라 칼럼니스트) 이용수 (주아르헨티나 한국대사) 유정아 (주아르헨티나 한국대사관 참사관)   남선우 (코트라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장) 배성용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 부관장)   최도선 (피바디 회장)   정유석 (중남미한상연합회 대표)   강태민 (LK글로벌 대표) 케빈 강 (LK글로벌 이사)   양수민 (강남익스프레스 대표)   김광복 (전 포스코 아르헨티나 법인장)   김미숙 (부에노스아이레스 한국문화원장) 정세훈(신성교회 목사) 고훈 (신성교회 장로) 박진성 (사업가)   조연미 (사업가)   황진이 (변호사)   이 우리엘 (포스코)   캐롤라인 김 (부에노스아이레스 병원 의사)   김소희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대생) 남윤호·장열 기자아르헨티나 기획

2025-05-15

개혁은 비포장길…긴축 고통에 저항도 여전

[특별기획] 1. 아르헨 살린 '전기톱' 개혁 2. 100년 전 선진국의 몰락 3. 리버태리언 밀레이는 누구 4. 페로니즘의 향수는 아직도 5.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대로 그냥 죽으라는 거냐.”   시위대 맨 앞에서 악에 받친 고함이 터져 나온다. 지난 3월12일 오후 아르헨티나 국회의사당 앞. 연금개혁 반대 시위대의 밀라그레스 에레라(41)는 “어머니가 무료로 약을 받았는데 정부가 빼앗아갔다”고 목청을 높였다. 시위대는 ‘또라이 자유주의자’라는 “리베르톤토(Libertonto)”를 연신 외쳐댔다.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을 향한 욕이다.   훌리건과 전문 시위꾼들이 가세해 폭력 시위로 번지자 경찰은 물대포·최루탄·고무탄으로 진압했다. ‘맑은 공기’라는 뜻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은 매캐한 최루가스와 펑펑 터지는 고무탄 발사음으로 뒤덮였다. 현지 사진기자 파블로 그리요는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중태에 빠졌다. 본지 취재팀 장열 기자도 종아리(사진) 등에 고무탄 세 발을 맞았다.     30년간 미래로여행사를 운영 중인 정유석 대표는 “페론당의 퍼주기 정책에 길들었는데, 밀레이가 바꾸려다 보니 반발이 심하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 일부에선 페로니즘의 향수를 못 버리고 있다. 놀면서 쉽게 보조금을 받았는데, 갑자기 끊으니 반발할 수밖에. 우버 기사 메히야 헤리베르토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밀레이를 좋아하고,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욕한다”고 했다.     개혁의 금단현상은 주로 취약계층에서 비대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그 고통의 신음은 매주 수요일 열리는 시위에서 연신 터져 나온다. 다만, 격렬한 시위 현장에만 빠져들면 개혁에 호응하는 또 다른 큰 흐름을 놓치기 쉽다. 아르헨티나 최대 회계법인 리식키리트빈의 세자르 리트빈 대표는 나무와 숲을 함께 보라고 한다.     “정부 보조금에 기대 살려던 사람들이 저항하는데, 그 수는 점점 줄고 있다. 그들이 많지는 않지만 대단히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다. 자신의 몫을 침해당한다는 의식, 자신의 삶이 바뀐다는 피해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저항하고 시위하는 것이다.”   긴축에 대한 반발은 시위로만 표출되는 게 아니다. 불만과 저항심리가 뭉근하게 끓고 있는 곳이 있다. 교육 현장이 그렇다. 밀레이 취임 직후 교육부는 졸지에 타 부처에 흡수되고, 대학 보조금도 끊겼다. 국립대의 연구 프로젝트, 캠퍼스 공사들이 딱 멈춰섰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에서 북서쪽 30마일 거리의 국립대 UNPAZ도 그런 케이스다. 짓다 만 캠퍼스 건물이 가림막으로 둘러쳐져 있다. 최신 체육시설을 만들어 학생과 지역주민에게 개방할 예정이었는데 예산이 끊겨 중단 상태다. 다리오 쿠신스키 총장은 답답해한다. “대학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 있다. 그간 정부가 대학의 교육과 연구를 다 지원해 왔다. 이게 밀레이 때문에 끊겼다. 가장 좋은 투자가 연구개발인데 그걸 못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학생들 역시 밀레이를 곱게 볼 수 없다. 본관 로비 벽면엔 온통 페로니스트와 좌파 단체 포스터들로 빼곡하다. UNPAZ는 서민층 자제들의 고등교육을 지원하는 대학으로, 재학생 대부분이 집안의 첫 번째 대학생들이다. 재학생 칸델라리아(23)는 “과거 어느 정부도 우리 같은 사람들에 신경을 안 썼지만, 밀레이 정부는 특히 서민층을 돌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혁을 환영한다는 재계에서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불만이 적잖다. 특히 법인세나 준조세보다 관세를 덜커덕 먼저 내린 탓에 수입품이 밀려들어 국내기업 다 죽게 생겼다고 아우성이다. 한국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산업연합회(UIA) 마르틴 라팔리니 회장은 “자유롭게 경쟁하라면서 국내 기업들만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건 외국 기업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도 진짜 경쟁하고 싶다”는 말을 서너 차례 반복했다.   개혁의 큰 성과인 페소화 안정이 다 좋은 것만도 아니다. 페소 강세의 그늘이 슬슬 짙어지고 있다. 수출품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입품이 밀려들고 있다. 쇠고기 먹으러 여행 간다는 아르헨티나에 곧 쇠고기가 수입될 판이다. 해외소비는 성큼성큼 늘어 지난 1월 해외 신용카드 사용액이 7년만에 최고치(6억4500만 달러)를 찍었다. 그러니 경상수지 적자는 자꾸 불어 가뜩이나 모자라는 외환보유액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3월 경상수지 적자는 16억7400만 달러로 밀레이 취임 후 최대폭이었다.   그런데도 페소가 강세인 건 정부의 개입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이 강력하고, 시장도 이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자유지상주의자 밀레이도 외환시장만큼은 꽉 움켜쥐고 있다. 이게 과도기적 역설인지, 곧 깨질지 모를 살얼음판인지, 시간이 좀 지나봐야 알 수 있다.   개혁 성과를 유보적으로 보는 이들도 적잖다. 최근의 개선된 거시경제는 충격요법에 따른 반짝효과라는 논리다. 한국의 산업은행 격인 방코 나시옹의 에두아르도 헤커 전 행장은 ‘표면적’이라고 평가한다. “국제 경쟁력은 더 높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통해 확보되는데, 아직 그런 변화가 시작되지도 않았고, 경제를 보다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없다.”     페로니스트 정부에서 산업부 장관(2019~22)을 지냈던 마티아스 쿨파스는 과도한 긴축의 영향을 지적한다. 밀레이의 긴축은 너무 가혹해 인프라, 연구개발 등 미래를 위해 필수적인 부문에 타격을 준다는 것이다. 또 에너지 보조금 삭감에 따른 부담이 가계 부문으로 전가되고 있다고 했다.   “도로, 교량 등 인프라가 빠른 속도로 노후화되고 있다. 얼마 전 바릴로체에 휴가 갔다 움푹 팬 도로 때문에 사고당할 뻔 했다. 에너지 보조금 삭감은 가계의 구매력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며, 경제 성장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쿨파스와 같은 시기에 산업부 산업정책국장을 역임한 리안드로 모라 알폰신도 현재 상황을 “매우 우려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극단적인 정책 추진으로 갈등과 대립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국민들의 물질적 생활 조건과 관련된 문제에 부딪혀 결국 한계를 맞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래된 생활의 타성과 깊이 뿌리내린 인식을 바꾸긴 쉽지 않다. 어느 나라, 어느 방향의 개혁에서도 반발과 저항은 거쳐야 할 과정이다. 게다가 아르헨티나에선 다른 나라엔 없는, 특이한 정서가 개혁의 발목을 끈끈하게 휘감고 있다. 바로 에바 페론에 대한 향수다.   페로니즘이라 하면, 후안 페론 전 대통령보다 두 번째 부인 에바 페론을 먼저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그는 1940~50년대 서민과 노동자들의 우상이었다. 강한 카리스마의 연설과 통 큰 복지로 성녀처럼 추앙받았다.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해 뭐든 다 해주겠다는 국모로서의 시혜가 국가 복지정책으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포퓰리즘으로 번졌다. 그 달콤한 온정이 국가 쇠락의 연결고리였다는 점은 잊혀진 채 낭만적 회고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그 자취는 지금도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레콜레타 공동묘지의 에바 페론 묘소(사진)엔 늘 꽃다발이 놓여 있다. 내외국인 모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오면 꼭 거쳐가는 성지가 돼 있다. 국회의사당엔 그를 기념하는 여성의원 전용 회의실도 마련돼 있다. 에바 페론의 초상·유품·흉상이 전시돼 있다. ‘에바 페론’ 간판을 내건 레스토랑·술집도 성업 중이다. 이곳엔 어김없이 페론 부부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다. 대학생들로 북적이는 UNPAZ의 본관 로비엔 페론 부부를 그린 현수막과 배너가 많이 붙어 있다.      또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부의 보건부 청사엔 높이 31m짜리 에바 페론의 금속 초상(사진)이 한쪽 벽면을 덮고 있다. 페로니즘의 상징물이자, 누구나 한 번쯤 둘러보는 관광코스다. 택시 기사 다니엘 에두아르도(61)가 “밀레이가 곧 허물지 모르니 기념사진을 찍어두라”고 했다. 밀레이 정부는 그동안 보건부 청사 철거 계획을 내비쳐 왔다. 페로니즘의 색채를 빼려는 시도다. 살아 있는 밀레이가 죽은 에바 페론을 의식하고 있다.   뮤지컬 ‘에비타’의 ‘Don’t Cry for Me Argentina'는 그의 헌신을 찬미했지만, 아르헨티나는 지금 그 향수에 젖어 있을 여유가 없다. 페로니즘의 늪에서 벗어나려는 개혁의 길은 어차피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다. 하지만 그 끝엔 포퓰리즘과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질지 모른다. 문제는, 과연 아르헨티나가 그 지점까지 개혁을 지속할 수 있느냐다. 밀레이의 임기와 무관하게.   관련기사 개혁의 강 건넌 아르헨티나, 이번엔 다르다 개혁은 비포장길…긴축 고통에 저항도 여전 탈세가 미덕이라는 골수 자유주의 대통령 자유주의가 하지 말라는 일 골라 하다 몰락 밀레이 ‘전기톱 개혁’ 아르헨티나를 살렸다 □ 도움말 주신 분(무순) 기예르모 모레노 (원칙과가치 당대표)   마르틴 라팔리니 (산업연합회 회장) 세자르 리트빈 (회계법인 리식키 리트빈 대표)   에두아르도 헤커 (전 방코나시옹 행장)   마티아스 쿨파스 (전 산업부 장관)   릴리아나 프랑코 (부에노스아이레스헤럴드 칼럼니스트) 다리오 쿠신스키 (UNPAZ 총장)   실비나 카탈디 (UNPAZ 국제국장)   마리아노 토마시 (산안드레스대학 교수) 엘리오 델레 (금속산업협회 회장)   리안드로 모라 알폰신 (전 생산개발부 산업정책국장)   루시아노 볼리나가 (아우스트랄대학 아시아연구센터 소장)   알레한드로 젠타일 (테친그룹 디렉터) 바우티스타 부르디외 (킨토투자자문 애널리스트) 에르난 로메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출판사)   구스타보 에이리즈 (라플라타 시립 오케스트라 비올리스트)   마르티나 이바르 (케네디대학)   엘피나 로한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학생)   알레한드로 김 (변호사)   조애나 메사 알페르트 (콘덕토라 칼럼니스트) 이용수 (주아르헨티나 한국대사) 유정아 (주아르헨티나 한국대사관 참사관)   남선우 (코트라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장) 배성용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 부관장)   최도선 (피바디 회장)   정유석 (중남미한상연합회 대표)   강태민 (LK글로벌 대표) 케빈 강 (LK글로벌 이사)   양수민 (강남익스프레스 대표)   김광복 (전 포스코 아르헨티나 법인장)   김미숙 (부에노스아이레스 한국문화원장) 정세훈(신성교회 목사) 고훈 (신성교회 장로) 박진성 (사업가)   조연미 (사업가)   황진이 (변호사)   이 우리엘 (포스코)   캐롤라인 김 (부에노스아이레스 병원 의사)   김소희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대생) 부에노스아이레스=남윤호·장열 기자아르헨티나 기획

2025-05-14

탈세가 미덕이라는 골수 자유주의 대통령

[특별기획] 1. 아르헨 살린 '전기톱' 개혁 2. 100년 전 선진국의 몰락 3. 리버태리언 밀레이는 누구 4. 페로니즘의 향수는 아직도 5.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2023년 가을 아르헨티나 기업인들이 대선 후보 하비에르 밀레이와 간담회를 했다. 대화 도중 밀레이가 옆의 대기업 사주에게 불쑥 물었다. “탈세하고 있죠?” 당황한 기업인은 아니라고 답했다. 밀레이는 정말이냐고 재차 묻다 실망한 듯 이렇게 말했다. “탈세하는 사람이 영웅입니다.”   동석했던 가전업체 피바디의 사주 최도선 회장의 목격담은 밀레이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준다.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의 오른쪽 끄트머리에 선 그는 정부를 악으로, 세금을 정부의 도둑질쯤으로 본다. 스스로 무정부를 지향하는 아나코-캐피털리스트라고 한다.   무정부 성향을 지닌 국가원수. 이 역설이야말로 아르헨티나가 좌파 포퓰리즘과 결별하게 된 출발점이다.   밀레이가 누구인가. 어떤 성향이고, 어떤 배경을 지녔나. 아르헨티나 사람들도 외국인과 마찬가지로 잘 모른다. 워낙 혜성처럼 정계에 진출해 2년 만에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다. 서점엔 밀레이를 다룬 책들이 많이 깔렸다.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구내서점 직원 에르난 로메로는 “인기가 있어서라기보다 궁금해하기 때문에 많이 사간다”고 말한다. 독자 반응을 묻자 “극과 극으로 갈린다. 어중간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밀레이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부친에게 자주 얻어맞으며 컸다. 두들겨 맞을 때마다 꼭 여동생 카리나(52)가 다독여 줬다고 한다. 소싯적부터 밀레이의 카리나에 대한 의존도는 매우 높다. 생활비 관리에서 개 먹이 주기에 이르기까지 카리나가 도맡아 해줬다. 밀레이가 카리나를 ‘보스’로 부를 정도다. 지금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밀레이를 밀착 수행한다. 밀레이 남매와 산티아고 카푸토 자문역이 모든 실권을 쥔 ‘철의 삼각형’으로 불린다.   음악에 재능을 보여 록밴드의 리드 보컬을 했고, 주니어 축구클럽에선 골키퍼로 꽤 활약했다.     1980년대 후반 하이퍼 인플레를 겪으며 경제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명문 벨그라노 대학(UCEMA)에서 경제학 학사를, 이어 경제사회개발연구소(IDES)와 토르콰토 디텔라 대학(UTDT)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두 개 취득했다. HSBC은행과 맥시마 AGJP 자산운용에서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일했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2010년대 중반 TV에 출연해 신랄한 어조, 괴짜 이미지, 록스타 풍 외모로 주목을 받았다. 수퍼히어로 복장으로 등장하거나, 굉음을 내는 전기톱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강한 시각적 메시지로 시선을 끌었다. 2021년 11월 신생 자유전진당(LLA) 후보로 하원에 입성했고, 2년 뒤 대선에서 승리하며 초고속으로 대통령이 됐다.   하원의원 시절, 매달 자신의 세비를 전액 추첨으로 유권자에게 나눠줬다. 국가가 세금으로 뜯어낸 더러운 돈을 주인인 국민에게 되돌려준다는 뜻에서다. 대중은 열광했고, 얼마나 많은 돈을 받는지 만천하에 드러난 동료 의원들은 경악했다. 2023년 12월 그가 하원에서 받은 마지막 세비 210만 페소(2500달러)까지 추첨으로 뽑은 한 시민에게 줬다.     그의 별명은 ‘미친놈(El Loco)’. 이글거리는 눈, 마구 헝클어진 머리, 불규칙 바운드로 튀는 언행… 이런 겉모습만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를 가까이 겪어본 사람들은 딱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한다.   “여러 번 만나 보니 제정신이 아니더라. 그는 무정부주의자다. 제대로 아는 것도 없더라. 또 작은(50m2)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큰 개를 네댓 마리나 길렀다. 월급을 개에게 다 쓴 탓에 제대로 못 먹어 그런지, 내 사무실에 오면 테이블 위의 과자를 깡그리 먹어치우곤 했다. 원래 제정신 아닌 사람들이 재미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는 건 심각한 일이다.”   내무무역부 장관(2006~2013)을 지낸 골수 페론주의자로 ‘원칙과 가치’라는 정당의 당수인 기예르모 모레노(70)가 취재팀에 들려준 말이다.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논쟁적 정치인이자 기인인 모레노의 눈에도 밀레이는 제정신이 아니라고 비쳤던 모양이다.   밀레이는 머레이 로스바드(사진)의 '인간 경제 국가'(1962)를 읽고 오스트리아학파의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고색창연한 이름의 오스트리아학파가 도대체 뭔가. 1871년 빈 대학의 카를 멩거가 '경제학 원리'를 통해 자유시장주의를 주장했고, 이에 동조한 제자와 동료들이 합류해 형성한 학파다. 시장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작동하므로 국가가 끼어들면 되레 망가진다는 게 핵심 철학이다.     오스트리아학파라는 이름은 멩거를 비판하던 독일 학자들이 붙였다. 제대로 된 이론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쑥덕공론이라는 비아냥이었다. 이게 폰 미제스, 하이에크, 로스바드 등을 거쳐 자유지상주의 경제철학으로 발전했다.   로스바드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루트비히 폰 미제스에 비해 극단적인 자유주의를 주장한다. 국가를 없애야 한다는 식의 무정부주의 색채가 짙다. 밀레이가 아나코-캐피털리스트를 자임하는 데엔 로스바드의 영향이 크다.   그는 자유지상주의를 신봉한 나머지 일거수일투족을 일관성 있게 그 논리에 맞게 포장한다. 기르는 개 이름도 밀턴 프리드먼의 ‘밀턴’이나 머레이 로스바드의 ‘머레이’ 등으로 부른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돼버린 헝클어진 헤어스타일을 두고는 애덤 스미스의 말을 빌려 “그냥 자유롭게 내버려 두면 바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빗겨준다”고 한다. 실제론 엘비스 프레슬리와 엑스맨 캐릭터 울버린의 중간처럼 보이려고 전문 스타일리스트에게 머리를 맡긴다.     연설할 땐 그냥 “자유 만세”라고 외치지 않는다. 꼭 “자유 만세, 빌어먹을(¡Viva la libertad, carajo!)”이라고 내지른다. 마치 앙시앙 레짐을 향해 돌격하는 혁명군의 결의를 연상시키듯 말이다.   그가 자유지상주의에 깊이 빠진 이유에 대해선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어릴 때 부친의 폭력에 대한 반발심리로 극단적인 반권위, 반국가주의로 흘렀다는 것이다. 증명할 수는 없으나, 아르헨티나의 전기작가 후안 루이스 곤잘레스가 내놓은 정신분석학적 설명이다.   그럼 도대체 무정부주의자가 어떻게 국가를 통치하나. 그게 바로 밀레이 정부의 역설이다. 비대해진 국가가 무능과 비효율에 빠져 경제를 망쳤으니, 국가를 최소화시켜 많은 걸 시장에 맡기자는 게 그의 철학이다. 그는 권력으로 이를 실현하겠다며 정치에 뛰어들었다. 1960년대 학생운동의 정신적 지주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 루디 두치케가 국가기구 내부로 들어가 자본주의를 타도하자며 ‘제도권으로의 대장정’을 좌파의 전략으로 제시했던 것과 같다. 방향만 반대일 뿐, 체제를 내부에서 뒤엎자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그에 대한 오해도 많다. 서방 언론은 흔히 그를 포퓰리스트로 묘사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대중에 직접 호소한다는 면에선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정작 그의 정책은 포퓰리즘과 정반대다. 과거의 인기영합적 정책을 다 폐지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국민에게 고통 감내를 요구하고 있다. 세상에 포퓰리즘 때려잡는 포퓰리스트도 있나. 한국의 좌파처럼 국민 뜻이 제일 중요하다, 기본 복지로 국민을 섬기겠다, 재정을 곳간에 쌓아두면 썩는다, 정도는 해야 포퓰리스트다.   그를 극우 파쇼로 비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오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지도자로 알려지면서 ‘미니 트럼프’ 딱지와 함께 극우로 몰렸다. 유럽 극우 리더들과 친하다는 점도 더해졌다. 그가 사회주의, 공산주의, 워크(Woke) 등 좌파 이념을 혐오한다는 점에서 우파인 건 확실하다. 그러나 이민 규제에 별 관심이 없고,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점에서 극우와는 거리가 멀다. 또 그는 독재 권력을 추구하기는커녕 의도적으로 정부 권한을 줄이고 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행정명령에 의존해 개혁을 추진하다 보니, 야당이 파쇼라고 비난하는 것뿐이다.   그는 의외로 실용적인 면이 있다. 후보 시절 중국 공산당을 비난했지만, 취임 후 대중 관계를 원만하게 관리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과 회담도 추진 중이다. 루시아노 볼리나가 아우스트랄대 교수는 “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과의 만남이 다가오면서 중국과의 대립적인 어조가 점점 약화됐다”며 “아무리 밀레이가 강경하더라도 현실적 한계를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3월 남부 지역에 홍수가 났을 땐 긴축에서 벗어나 긴급 재난지원 예산을 편성했다. 그 외에 마약 단속을 강화하는 등 교조적 자유지상주의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헤럴드의 칼럼니스트 릴리아나 프랑코는 “밀레이가 자신의 신념에도 불구하고 실용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운도 좋다. 특히 야당복이 많다. 여소야대인데도 야당은 쪼개져 힘을 못 쓴다. 아르헨티나의 저명한 정치경제학자인 마리아노 토마시 산안드레스대학 교수의 설명이다.   “밀레이의 개혁을 저지할 다양한 세력들이 존재하지만, 이해관계가 달라 강력한 연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밀레이의 인기가 여전히 높다는 점이 강력한 저항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개혁에 대한 강경한 반대가 오히려 정치적으로 위험한 전략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포퓰리즘에 대한 환멸, 변화에 대한 갈망, 지리멸렬한 야당… 민심은 이미 개혁 쪽으로 기울었다. 바람의 방향은 분명히 바뀌었다. 리버태리언 밀레이는 그 바람에 올라타 가장 높이 떠오른 연이 됐다.   부에노스아이레스=남윤호·장열 기자ㆍ사진=김상진 기자    관련기사 개혁의 강 건넌 아르헨티나, 이번엔 다르다 개혁은 비포장길…긴축 고통에 저항도 여전 탈세가 미덕이라는 골수 자유주의 대통령 자유주의가 하지 말라는 일 골라 하다 몰락 밀레이 ‘전기톱 개혁’ 아르헨티나를 살렸다   □ 도움말 주신 분(무순) 기예르모 모레노 (원칙과가치 당대표)   마르틴 라팔리니 (산업연합회 회장) 세자르 리트빈 (회계법인 리식키 리트빈 대표)   에두아르도 헤커 (전 방코나시옹 행장)   마티아스 쿨파스 (전 산업부 장관)   릴리아나 프랑코 (부에노스아이레스헤럴드 칼럼니스트) 다리오 쿠신스키 (UNPAZ 총장)   실비나 카탈디 (UNPAZ 국제국장)   마리아노 토마시 (산안드레스대학 교수) 엘리오 델레 (금속산업협회 회장)   리안드로 모라 알폰신 (전 생산개발부 산업정책국장)   루시아노 볼리나가 (아우스트랄대학 아시아연구센터 소장)   알레한드로 젠타일 (테친그룹 디렉터) 바우티스타 부르디외 (킨토투자자문 애널리스트) 에르난 로메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출판사)   구스타보 에이리즈 (라플라타 시립 오케스트라 비올리스트)   마르티나 이바르 (케네디대학)   엘피나 로한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학생)   알레한드로 김 (변호사)   조애나 메사 알페르트 (콘덕토라 칼럼니스트) 이용수 (주아르헨티나 한국대사) 유정아 (주아르헨티나 한국대사관 참사관)   남선우 (코트라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장) 배성용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 부관장)   최도선 (피바디 회장)   정유석 (중남미한상연합회 대표)   강태민 (LK글로벌 대표) 케빈 강 (LK글로벌 이사)   양수민 (강남익스프레스 대표)   김광복 (전 포스코 아르헨티나 법인장)   김미숙 (부에노스아이레스 한국문화원장) 정세훈(신성교회 목사) 고훈 (신성교회 장로) 박진성 (사업가)   조연미 (사업가)   황진이 (변호사)   이 우리엘 (포스코)   캐롤라인 김 (부에노스아이레스 병원 의사)   김소희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대생) 남윤호·장열 기자아르헨티나 기획

2025-05-13

자유주의가 하지 말라는 일 골라 하다 몰락

[특별기획] 1. 아르헨 살린 '전기톱' 개혁 2. 100년 전 선진국의 몰락 3. 리버태리언 밀레이는 누구 4. 페로니즘의 향수는 아직도 5.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세계엔 네 종류의 나라가 있다. 선진국, 후진국, 일본, 그리고 아르헨티나.”     1971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사이먼 쿠즈네츠의 말이다. 아르헨티나가 그만큼 특이한 나라라는 뜻이다.   20세기 초 아르헨티나는 세계 5대 부자에 꼽히던 금수저 국가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프랑스·독일보다 높았고, 스페인의 거의 배에 달했다. 당시 유럽 이민자들이 뉴욕으로 갈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갈지, 고민했을 정도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엔 LA보다 80년이나 앞선 1913년 지하철이 개통됐다. 지금도 건재하다.   그러다 대공황에 이어 포퓰리즘과 군부독재의 실정을 거쳐 쇠락했다는 건 다 알려진 일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헤럴드의 칼럼니스트 릴리아나 프랑코는 분배 중심의 정치를 쇠락의 범인으로 지목한다.     “분배 중심의 정치가 자리 잡으면서, 저축 인내 노력과 같은 기본적인 가치들이 약화됐다. 이렇게 몇 세대가 지나자, 국가는 마치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이며, 복지를 책임지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다. 페로니즘은 이를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가가 뭐든 다 해주다 보니,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여느 자본주의 사회와는 달라졌다. 가전업체 피바디의 사주 최도선 회장은 포퓰리즘에 길든 근로자들의 가치관을 지적한다.   “포퓰리즘으로 인해 3~4대째 정규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아버지가 매일 출근하는 걸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시간 지켜 일하러 나가는 걸 문화적으로 못 받아들인다.”   포퓰리즘과 동의어로 통하는 페로니즘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다. 세상만사, 객관적 여건과 주관적 의지의 결합으로 이뤄지는 법. 대공황 이후 서서히 하락세를 보인 아르헨티나에선 과거 번영에 대한 향수와 상대적 박탈감이 쌓여갔다. 이게 기성 엘리트에 대한 불신과 겹쳐 곧 폭발할 듯한 거대한 정치 에너지로 부풀어 올랐다.     이 흐름을 포착해 권력을 잡은 인물이 후안 페론(1895~1974)이었다. 그는 부인 에바와 함께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하는 언동으로 대중을 결집하고, 국가가 불평등을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페론의 포퓰리즘은 단순한 인기영합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상실감에 대한 정치적 응답이었다. ‘피크아웃 코리아’ 국면에서 포퓰리즘 공약이 활개 치는 한국도 그와 다르지 않다.   누구 말처럼, 페로니즘이 서민을 위한다니까 진짜 서민을 위했다고 보면 오산이다. 페로니스트 정권은 부유층의 기득권도 인정해줬다. 연방 상속세와 증여세가 없다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아르헨티나에선 주 정부가 지방세로 상속세를 걷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경우 상속세율 최고 구간이 9.51%로 한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방대한 재정지출을 감당해야하는 페로니스트 정권은 법인세·소득세·부가세를 두루 무겁게 만들었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35%. 이게 적용되는 과세표준은 30만 달러 초과에 불과하다. 웬만한 중소기업은 죄다 최고세율이다. 한국은 과세소득 3000억원(약 2억1000만 달러)을 넘어야 최고세율 24%를 낸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35%인데, 이 역시 연 소득 약 6000달러만 넘으면 다 내야 한다. 부가세도 21%로 북유럽 국가와 맞먹는다.       세율을 높이면 세금이 많이 걷힐까. 천만의 말씀이다. 아르헨티나 최대 회계법인 리식키리트빈의 세자르 리트빈 대표는 “아르헨티나는 그동안 전형적인 ‘래퍼 곡선’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고 말한다.   세율이 어느 선을 넘어 높아질수록 세수는 되레 감소한다는 게 경제학자 아서 래퍼의 이론이다. 미국 레이건 행정부 감세정책의 이론적 근거였다. 래퍼 곡선의 세수 위축 효과가 아르헨티나를 괴롭혀온 것이다.   기업들은 법인세에다 약 5%의 지방세와 각종 준조세를 더 낸다. 이게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고, 전체 공급망의 효율을 떨어트린다. 한국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아르헨티나 산업연합회(UIA)의 마르틴 라팔리니 회장은 이를 ‘아르헨티나 비용(Argentine cost)’이라고 부른다. 그는 “세금·규제 등 모든 문제가 응집된 결과 높은 가격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또 “우리 기업인은 그 체제의 생존자들”이라는 표현도 썼다.     무거운 세금을 다 내고, 까다로운 규제를 다 지키며 사업을 할 수 있을까. 누구나 피해가는 길을 찾기 마련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세금부담액이 기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국가별로 계산한 결과 아르헨티나는 106.3%에 달했다. 번 것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낸다는 뜻이다. 이게 100%를 초과하는 나라는 아프리카의 콩고와 코모로 정도다. 있을 수 없는 구조인데도 돌아가는 걸 보면, 세금을 제대로 안 걷고 안 내거나, 지하경제가 크게 형성돼 있다는 뜻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은퇴한 한인 사업가 고훈 씨의 얘기다.     “예전엔 세관에 돈을 집어주면 뭐든 수입할 수 있었다. 컨테이너에 무엇을 넣어 들여오든 통관서류엔 못을 수입한다고 신고했다고 한다. 그게 단가가 제일 싸니까. 그런 식의 밀수로 돈 번 사람들이 많다.”   생활 속의 세세한 규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물류회사 LK글로벌의 케빈 강 이사의 경험담이다.   “2023년 9월 캐나다의 친구가 생일 축하 엽서를 보내왔다. 그거 한장 받는데 세금만 20달러 냈다. 그마저도 받는 데 한 달이나 걸렸다. 그게 당시 아르헨티나 상황이었다.”   그런 환경에서도 사람들은 살아야 했다. 뭐가 어떻게 바뀌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다른 나라에선 몰라도 될 일들을 자세히 알아야 했다. 라플라타 시립 오케스트라 단원 구스타보 에이리즈는 요즘 살림이 어떠냐는 질문에 휴대폰을 꺼내 환율, 주가 차트를 펼쳐 보인다. 해외녹음으로 번 외화를 언제, 어떻게 들여오느냐를 놓고 애널리스트처럼 시장을 분석한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거의 준경제학자다. 인플레가 심하고, 경제사정이 어지러워 나 같은 뮤지션도 경제지식이 많다. 상황에 맞게 다들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했다.”   포퓰리즘 체제에선 경제적 보상 구조도 사회주의를 따라간다. 미국에선 고소득이 보장되는 의사의 초임이 이곳에선 월 1000달러에 불과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의사로 일하는 모니카 마르티네즈(55)는 “수많은 의사가 힘들게 일만 하다가 최저 연금으로 은퇴한다”고 말했다. 또 사립병원 영상의학과 의사 김 캐롤라인(31)은 “의사들이 보통 2~3개 병원에서 동시에 일한다. 한계를 느낀다”고 말한다. 그와 곧 결혼할 케미컬 엔지니어 이 우리엘(33)은 전공을 포기한 채 포스코 현지법인에서 월급 3500달러를 받고 통역사로 일한다. 그는 “의사, 엔지니어보다 통역사가 돈을 더 번다는 건 이상한 일 아닌가”라고 되물으며 “결혼 후 다른 나라로 갈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유능한 인재들의 선택은 나라를 떠나는 것이다. 라나시옹 등 현지 언론 분석에 따르면 2020년 9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약 30만 명의 전문직 인재가 해외로 유출됐다. 정착지는 주로 스페인·브라질·미국이었다. 애써 인재 키워 남의 나라 좋은 일 해주고 있다.   커나가야 할 기업은 발목 잡히고, 능력 있는 인재는 떠나고, 일해야 할 사람은 손 놓고… 100년 전 부잣집이었던 아르헨티나가 이런 지경이 됐다. 자유주의 경제이론에서 하지 말라는 것을 골라 하다 말이다.   관련기사 개혁의 강 건넌 아르헨티나, 이번엔 다르다 개혁은 비포장길…긴축 고통에 저항도 여전 탈세가 미덕이라는 골수 자유주의 대통령 자유주의가 하지 말라는 일 골라 하다 몰락 밀레이 ‘전기톱 개혁’ 아르헨티나를 살렸다   □ 도움말 주신 분(무순)   기예르모 모레노 (원칙과가치 당대표)   마르틴 라팔리니 (산업연합회 회장) 세자르 리트빈 (회계법인 리식키 리트빈 대표)   에두아르도 헤커 (전 방코나시옹 행장)   마티아스 쿨파스 (전 산업부 장관)   릴리아나 프랑코 (부에노스아이레스헤럴드 칼럼니스트) 다리오 쿠신스키 (UNPAZ 총장)   실비나 카탈디 (UNPAZ 국제국장)   마리아노 토마시 (산안드레스대학 교수) 엘리오 델레 (금속산업협회 회장)   리안드로 모라 알폰신 (전 생산개발부 산업정책국장)   루시아노 볼리나가 (아우스트랄대학 아시아연구센터 소장)   알레한드로 젠타일 (테친그룹 디렉터) 바우티스타 부르디외 (킨토투자자문 애널리스트) 에르난 로메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출판사)   구스타보 에이리즈 (라플라타 시립 오케스트라 비올리스트)   마르티나 이바르 (케네디대학)   엘피나 로한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학생)   알레한드로 김 (변호사)   조애나 메사 알페르트 (콘덕토라 칼럼니스트) 이용수 (주아르헨티나 한국대사) 유정아 (주아르헨티나 한국대사관 참사관)   남선우 (코트라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장) 배성용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 부관장)   최도선 (피바디 회장)   정유석 (중남미한상연합회 대표)   강태민 (LK글로벌 대표) 케빈 강 (LK글로벌 이사)   양수민 (강남익스프레스 대표)   김광복 (전 포스코 아르헨티나 법인장)   김미숙 (부에노스아이레스 한국문화원장) 정세훈(신성교회 목사) 고훈 (신성교회 장로) 박진성 (사업가)   조연미 (사업가)   황진이 (변호사)   이 우리엘 (포스코)   캐롤라인 김 (부에노스아이레스 병원 의사)   김소희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대생) 부에노스아이레스=남윤호·장열 기자, 사진=김상진 기자아르헨티나 기획

2025-05-12

밀레이 ‘전기톱 개혁’ 아르헨티나를 살렸다

[특별 기획]   1. 아르헨 살린 '전기톱' 개혁 2. 100년 전 선진국의 몰락 3. 리버태리언 밀레이는 누구 4. 페로니즘의 향수는 아직도 5.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한국에게 아르헨티나는 훌륭한 거울이다.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국민이 온통 깡통을 찰 수도, 그러다 다시 일어설 수도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포퓰리즘으로 거덜 나, 툭 하면 부도내고, 국제통화기금(IMF)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골칫덩이… 우리가 알던 아르헨티나는 더 이상 없다. 2023년 12월 취임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개혁 이후로 말이다.   개혁의 핵심은 대대적인 긴축과 광범위한 규제 철폐다. 포퓰리스트 정부가 뭉텅뭉텅 나눠주던 보조금과 선심성 지출을 틀어막았다. 18개 정부 부처를 8개로 줄이고, 공무원 4만2000여명을 내보냈다. 취임 후 하루 2개꼴로 규제를 없앴다. 트럼프 정부가 공공지출 삭감, 규제 철폐, 행정 간소화를 위해 정부효율부(DOGE)를 둔 것도 밀레이의 개혁에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수십 년간 앓던 고질병들이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다. 2023년 말 월 25%였던 인플레는 2~3%대로 떨어졌다. 재정은 14년 만에 첫 흑자를 냈다. 성장률은 올해 5.5%를 무난히 달성할 전망이다. 또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는 취급받던 페소는 유례없는 강세다. 해외 투자자들의 시각이 달라지면서 외화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지금은 달러를 팔고 페소를 살 때’라고 했다.   포퓰리즘을 때려잡고 완전히 다른 나라로 나아가려는 아르헨티나의 현장을, 미주 한인 언론 최초로 취재했다.       ━   포퓰리즘 대수술, 물가 잡고 성장률 높였다      아르헨 살린 밀레이 ‘전기톱 개혁’ ①    재정지출 30%, 공무원 4만명⭣ 월 25.5% 인플레가 1% 눈앞 경제, 페로니즘 수렁서 회복세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플로리다 거리. LA로 치면 다운타운의 브로드웨이 거리와 비슷한 곳이다. 쇼핑몰, 기념품점, 레스토랑, 호텔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여기저기 큰 목소리로 “캄비오(환전)”를 외치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암달러상들이다.   하지만 이들과 흥정하는 관광객은 보기 어렵다. ‘블루 달러’라 불리는 암달러 환율과 공식 환율의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2023년 말 25% 정도, 그 전엔 배에 달했던 게 말이다. 4월 말 이후엔 가끔 암달러가 더 싸지는 날도 있다. 지난 8일 은행의 공식 환율은 달러당 1138페소(소매 기준), 암달러 환율은 1170페소였다.   암달러상은 외환 통제를 먹고 산다. 외환 수급이 원활하고 시장이 안정되면 굳이 암달러상을 찾을 일이 없다. 플로리다 거리에서 빈손으로 돌아서는 ‘캄비오’들은 통제에서 개방으로, 불안에서 안정으로 향하는 아르헨티나 경제를 잘 보여준다.   아르헨티나에선 이를 ‘밀레이 효과’라고 부른다.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취임 이후 일관성 있게 추진한 자유지상주의 개혁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리버태리언 밀레이의 논리는 명확하다. 선심 정책 탓에 재정이 거덜 나고, 하이퍼 인플레가 일어났다. 따라서 이를 잡으려면 긴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퍼주기 복지, 방만 재정, 철밥통 공무원, 밑도 끝도 없는 보조금 … 뭐든지 전기톱으로 썰어내겠다고 공약했다. 과거 정부가 개혁 시늉을 할 때 쓰던 소품이 가위였던 데 비해 굉음을 내는 전기톱은 대중에게 그의 의지를 각인시켰다. 밀레이는 미국의 일론 머스크와 친해 올 초 정부효율부(DOGE)를 이끌던 그에게 전기톱을 선물했다.   그는 당장 보조금과 복지성 경비 등 공공지출을 대폭 삭감했다. 정부조직도 확 줄였다. 18개 부처 이름을 적은 테이프를 보드에 붙여놓고 “꺼져(¡Afuera!)”라고 소리치며 하나하나 잡아떼는 퍼포먼스는 유명하다. 취임 후 15개월간 전체 공무원의 8.4%인 4만2000여 명을 내보냈다. 이래저래 재정지출을 단번에 30% 줄였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국채를 인수하던 것도 끊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개혁의 성과를 평가해 지난달 200억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1년여 만에 거시지표들이 모두 좋아지기 시작했다. 인플레는 잡히고, 성장률은 오르고, 통화가치는 높아지고, 빈곤율은 떨어지고, 재정은 흑자로 돌아섰다. 사람으로 치면 독한 몸만들기로 혈압, 당뇨, 콜레스테롤이 두루 개선된 셈이다.     최대 성과는 역시 물가 안정이다. 보통 물가가 1년에 두 자리 수로 뛰면 나라가 흔들리지만, 아르헨티나에선 한 달에 두 자리 수도 예사였다. 땔감 사는 것보다 지폐를 태우는 게 싸다고 할 정도의 하이퍼 인플레였다. 그러던 게 이젠 월 1%대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1976년 이민 와 물류사업을 하며 역대 정권을 겪어본 LK글로벌 강태민 대표는 “인플레를 잡은 건 과거 아르헨티나를 되돌아보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했다.     물론 인플레가 잡혔다고 물가수준이 낮은 건 아니다. 외국인이 느끼는 달러 환산 물가는 의외로 높다. 올초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빅맥 지수에 따르면 아르헨티나가 미국보다 약 20% 높았다. 플로리다 거리 선물가게에선 젊은층에 인기인 스탠리 텀블러에 11만6500페소라는 가격표를 붙여놨다. 취재 시점(3월14일)의 환율로 약 97달러. 미국 판매가의 거의 세 배다. 근처 나이키 매장에선 ‘보메로(vomero) 17’ 모델을 31만4999페소(262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미국보다 100달러를 더 줘야 한다. 시간당 2.3~3.2달러인 최저임금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높은 가격대다. 스페인에 근무했던 코트라의 남선우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장은 “이곳 물가가 3년 전 마드리드보다 비싸다”고 말한다. 또 주아르헨티나 한국대사관의 유정아 참사관도 “제네바 근무 시절의 체감물가와 비슷하다”고 한다.     성장률은 지난해 하반기 플러스로 돌아섰다. IMF는 2024년 성장률을 -2.8%로 예상했으나 가속이 붙어 -1.7%로 높아졌다. 올해 전망치는 5.5%로 급반등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헤럴드의 칼럼니스트 릴리아나 프랑코는 “IMF 전망에 대해 경제학자들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며 “예상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최대 회계법인 리식키리트빈의 세자르 리트빈 대표는 “내년 이후에도 비슷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10년 넘게 제자리 걸음이던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한다는 건 큰 변화다. 정부통계국(INDEC)에 따르면 2024년 민간부문 정규 근로자는 660만 명이다. 2013년에 비해 불과 20만 명 증가한 데 그쳤다. 아르헨티나의 고용탄성치가 0.6이므로 밀레이의 남은 임기 3년 간 같은 수준으로 죽 성장한다면 고용은 매년 3.3%씩 모두 10%쯤, 약 67만 명 증가하게 된다.   잠시 높아졌던 빈곤율은 뚝 떨어졌다. 초기 공공부문 실업자들이 쏟아지자 야당은 나라가 더 가난해졌다고 거품을 물었다. 소득이 기본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구의 비중으로 측정하는 빈곤율은 지난해 중반 52.9%로 치솟았다. 그 뒤 물가 안정과 고용 회복으로 최근 38.1%로 낮아졌다. 자유지상주의 개혁이 빈곤을 양산한다는 비난은 힘을 잃었다.     물론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에선 노숙자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들을 부각시킨 언론보도만 보면 마치 경제위기라도 온 듯하지만, 실제론 다르다. 그 숫자나 밀도에서 ‘노숙자 천국’ LA와는 비할 바가 못된다.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걸 체감할 곳은 많다. 유명 레스토랑은 미국 수준의 가격임에도 예약하기 어렵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극장 테아토르 콜론의 주말공연 티켓 역시 구하기 쉽지 않다.   본격적인 규제철폐로 일상생활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주거환경이다. 월세를 눌러놓고, 세입자 못 내보내게 하던 임대규제를 밀레이 정부가 싹 없앴다. 세입자 보호는커녕, 임대물건을 줄이고 임대료를 폭등시켜 원성이 자자한 규제였다. 가주의 세입자보호법(AB1482), LA시의 임대 안정화 조례도 그와 비슷하다. 1년도 채 안 돼 임대물건은 170% 늘고, 임대료는 40% 떨어졌다. 지난해 대선 때 카말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가 비슷한 임대 규제를 공약하자, 월스트리트저널이 이를 비판하며 모범사례로 든 게 밀레이였다.   시장이 살아나자 기업들은 움직이기 수월해졌다. 엘리오 델레 금속산업협회 회장은 “거시경제가 정돈되면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해졌고, 개방에 속도가 붙었다”고 말했다. 통관, 인증, 대금 지급 절차는 몰라보리 간소화됐다. 과거엔 수입 승인을 받으려면 중앙은행에 서류를 제출하고 하염없이 기다렸으나, 지금은 웬만하면 48시간 안에 허가가 난다.  남선우 무역관장은 “무역대금 지급규제가 많이 풀려 기업들이 크게 반긴다. 투자 문의도 몰라보게 늘었다”고 전했다. 자유지상주의는 포퓰리즘에 오염된 경제토양에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다.   관련기사 개혁의 강 건넌 아르헨티나, 이번엔 다르다 개혁은 비포장길…긴축 고통에 저항도 여전 탈세가 미덕이라는 골수 자유주의 대통령 자유주의가 하지 말라는 일 골라 하다 몰락 밀레이 ‘전기톱 개혁’ 아르헨티나를 살렸다   ━   □ 도움말 주신 분(무순)   기예르모 모레노 (원칙과가치 당대표)   마르틴 라팔리니 (산업연합회 회장) 세자르 리트빈 (회계법인 리식키 리트빈 대표)   에두아르도 헤커 (전 방코나시옹 행장)   마티아스 쿨파스 (전 산업부 장관)   릴리아나 프랑코 (부에노스아이레스헤럴드 칼럼니스트) 다리오 쿠신스키 (UNPAZ 총장)   실비나 카탈디 (UNPAZ 국제국장)   마리아노 토마시 (산안드레스대학 교수) 엘리오 델레 (금속산업협회 회장)   리안드로 모라 알폰신 (전 생산개발부 산업정책국장)   루시아노 볼리나가 (아우스트랄대학 아시아연구센터 소장)   알레한드로 젠타일 (테친그룹 디렉터) 바우티스타 부르디외 (킨토투자자문 애널리스트) 에르난 로메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출판사)   구스타보 에이리즈 (라플라타 시립 오케스트라 비올리스트)   마르티나 이바르 (케네디대학)   엘피나 로한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학생)   알레한드로 김 (변호사)   조애나 메사 알페르트 (콘덕토라 칼럼니스트) 이용수 (주아르헨티나 한국대사) 유정아 (주아르헨티나 한국대사관 참사관)   남선우 (코트라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장) 배성용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 부관장)   최도선 (피바디 회장)   정유석 (중남미한상연합회 대표)   강태민 (LK글로벌 대표) 케빈 강 (LK글로벌 이사)   양수민 (강남익스프레스 대표)   김광복 (전 포스코 아르헨티나 법인장)   김미숙 (부에노스아이레스 한국문화원장) 정세훈(신성교회 목사) 고훈 (신성교회 장로) 박진성 (사업가)   조연미 (사업가)   황진이 (변호사)   이 우리엘 (포스코)   캐롤라인 김 (부에노스아이레스 병원 의사)   김소희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대생) 부에노스아이레스=남윤호·장열 기자, 사진=김상진 기자아르헨티나 기획

2025-05-11

평화의 소녀상, 남미 최대 도서 박람회에 첫 전시

평화의 소녀상이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 문화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다. 남미에선 처음이다.   지난 202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기억의 박물관(Museo de la Memoria)’에 설치하려다 일본 정부의 반발로 미뤄지다 약 3년 만에 대중에 공개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한인회, 만영문화재단 등에 따르면 오는 24일부터 5월 12일까지 열리는 제49회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 도서 박람회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한다.   이 박람회는 지난해만 112만 명 이상이 방문할 정도로 남미 최대급 문화 행사로 꼽힌다.   아르헨티나의 가전업체 피보디(Peabody)의 대표이자 만영문화재단 설립자인 최도선 회장은 “한국은 광복 80주년, 아르헨티나 한인 이민은 60주년이 되는 올해 소녀상 설치를 추진했다”고 말했다. 또 국제 도서 박람회와 연계한 데 대해 “남미에서 열리는 가장 큰 문화 행사이기 때문에 많은 방문객에게 소녀상의 의미와 역사를 널리 알릴 기회”라고 설명했다.   평화의 소녀상은 박람회장 내 아르헨티나한인회와 만영문화재단 측이 마련한 부스에 설치된다. 김서경·김운성 작가가 제작한 높이 1.4m의 소녀상은 가로세로 2m의 대리석 판 위에 놓이게 된다. 소녀상 개막식은 25일 오후 6시(현지 시각)다. 박람회 기간만 전시되는 평화의 소녀상은 행사가 끝나면 다시 만영문화재단측에서 설치 장소를 찾을때까지 보관하게 된다.     평화의 소녀상 개막식과 함께 박람회에서는 다양한 관련 행사들도 열린다.   만영문화재단 측은 이번 행사를 위해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생애를 다룬 만화 ‘풀(Grass)’로 만화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하비상을 수상한 김금숙 작가를 초청해 좌담회를 진행한다.   또, 아르헨티나 한인 2세인 세실리아 강 감독이 제작한 위안부 다큐멘터리 영화 ‘내게서 출발한 배(Partio de mi un barco llevandome)’의 상영회도 열린다. 위안부 역사와 관련한 에세이 공모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대, 아우스트랄대 등 7개 대학의 한국학 학자들로 구성된 한국학협회가 심사를 맡는다.   한인회와 만영문화재단 측은 소녀상의 의미를 담은 팸플릿도 제작해 방문객에게 나눠 줄 예정이며, 역사 홍보를 위해 관련 웹사이트도 만들었다.   이번 국제 도서 박람회에 소녀상이 설치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최 회장은 “원래는 방문객이 가장 많이 다니는 행사장 정문에 설치할 계획이었는데 일본 정부가 반발해 전시장 내에 설치하기로 했다”며 “소녀상 설치는 일본 정부를 비판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아니라, 지난 역사를 바르게 알리고 다시는 아픔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웹사이트: www.laninadelapaz.com.ar 장열 기자 [email protected]아르헨티나 국제도서 소녀상이 설치되기 소녀상 설치 소녀상 개막식

2025-04-22

[격렬한 논란 현장 르포] 세계가 주목하는 아르헨티나 '연금 개혁'

'남미의 트럼프'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54)은 다시 위대한 아르헨티나를 꿈꾸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미국, 두 나라는 닮은 데가 많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은 아르헨티나를 향해서도 또 한 번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Make Argentina Great Again"   남반구의 먼 나라 아르헨티나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연금 개혁 반대 시위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겉으로는 연금 개혁을 둘러싼 이익 갈등 같지만, 근저에는 가치의 충돌이 있다. 리버태리어니즘(Libertarianism) 개혁과 이에 저항하는 이념의 대결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리버태리어니즘의 사령관인 밀레이 대통령은 국가의 개입이 필요 없다는 수준을 넘어 국가의 존재 자체를 악으로 여기는 입장이다. 지난 40여년간 포퓰리즘에 젖어 나락으로 떨어진 아르헨티나이기에 반작용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지도자라고나 할까. 급진적인 개혁은 거센 저항을 낳는다. 이는 지금 우파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미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일 오후 1시(현지시간), 긴장감으로 꽉 찬 공기가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국회의사당 앞을 휘감고 있다. 도시명에 담긴 ‘상쾌한 바람’이라는 뜻의 정취는 찾을 수 없다. 약 3시간 후면 대대적인 연금 개혁안 반대 시위가 진행된다.   아르헨티나 연방경찰(PFA) 등이 의사당 주변으로 철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곳곳에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 “쾅” “쾅”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의사당 주변의 라바다비아 애비뉴, 카야오 애비뉴 등의 차량 진입은 통제됐고, 시민들의 출입 역시 금지됐다.   이미 지난 12일 이곳에서는 대규모 폭력 시위가 일어난 바 있다. 당시 100여명이 체포됐고, 15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오후 4시가 가까워지자 의사당 앞으로 쩌렁쩌렁한 북소리와 함께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Libertonto!”   ‘자유주의자(Libertario)’와 ‘바보(Tonto)’를 합친 말로 밀레이 대통령을 조롱하는 욕설이다.   시위에 나선 모가도 플로렌시아는 “생계 유지조차 힘든 시니어도 많은데 연금법을 바꾸겠다는 밀레이는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며 “오늘 우리는 시민 혁명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리버태리어니즘은 ‘자유 지상주의’다. 개인의 자유, 자본주의 시장 원리에 관한 한 신자유주의, 네오리버럴리즘보다 더 오른편에 서 있다.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와도 가깝다. 밀레이는 스스로 ‘아나코-캐피탈리스트’를 자임한다.   그는 집권 후 거침없이 개혁을 단행했다. 18개 정부 부처를 단 7개로 줄여놨다. 재정지출은 거의 올스톱이다. 그렇게 할 일이 없어진 공무원 3만4000여 명(올해 1월 기준)을 잘랐다. 이번 시위의 단초인 은퇴자 연금 동결도 정부 지출을 줄이겠다는 밀레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결정이다. 그렇게 만성적자의 대명사이던 아르헨티나 정부 재정은 급진적 개혁 정책을 통해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그럼에도 이처럼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는 건 이면에 서로 섞이거나 수용하기 어려운 가치의 충돌이 있기 때문이다.   시위대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곳곳에는 사회주의노동자운동(MST), 좌파 혁명 조직 폴리티카 오브레라(PoliticaObrera), 사회주의 좌파당(IzquierdaSocialista) 등의 사람들이 대형 깃발을 휘날리며 바리케이드로 몰려들었다. 모두 밀레이의 정책과 이념적으로 대척점에 놓인 이들이다.   한인 최초로 아르헨티나 방송국에서 앵커로 활동했던 황진이 씨는 “그동안 이 나라에서는 연금을 받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까지 연금이 주어졌다”며 “이런 상황에서 밀레이 정부의 연금 개혁안이 이슈화되면서 축구팀의 훌리건까지 가세해 규모가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곳곳에 헬멧을 쓰고 '구조팀(rescate)' 조끼를 입은 이들이 눈에 띈다. 지난 12일 벌어진 시위에서 수십명이 부상을 당하자 이에 대비해 구성된 민간 의료팀이다.   카르아노 모레노(71)씨는 “'최루탄 2개 가격이 최저연금보다 비싸다(2 cartuchos de gas valen mas que 1 jubilacion)'는 피켓을 들었다. 그는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대신 저들(경찰)은 힘없는 이들에게 최루탄과 고무탄을 쐈다”고 분개했다   지난 시위에서 경찰에게 폭행을 당해 정신을 잃기까지 했던 비아트리지 비안코(87)씨도 이날 다시 의사당 앞으로 나왔다. 당시 비안코 할머니가 폭행 당해 쓰러진 영상은 전국적으로 퍼졌고, 이번 시위를 앞두고 공분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밀레이 정부가 들어선 후 아르헨티나의 물가는 잡히기 시작했다.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수준이던 페소화는 이제 몸값이 훌쩍 뛰었다. 이코노미스트가 올 1월 발표한 빅맥 지수에서는 아르헨티가가 가장 높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맥도널드 햄버거 가격은 LA나 뉴욕보다 20% 이상 비싸다. 불가능할 것이라고 포기 상태에 빠졌던 일들이다. 이 모든 건 하려고만 한다면 아르헨티나도 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같은 거시경제적 자신감은 밀레이 개혁의 최대 성과다.   물론 온정주의적, 나쁘게 말해 ‘퍼주기 식’ 복지와 시혜에 익숙한 집단은 아직도 굳건하게 존재한다. 개혁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가 계속되는 이유다.   마리아노 후리코씨는 “저들(경찰)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아니다”라며 “저들의 가족도 이 정권의 정책 때문에 피해를 입을텐데 아랑곳하지 않는 건 권력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소리쳤다.   마스크와 복면을 쓴 일부 시위대가 철제로 된 바리케이드를 발로 차며 경찰을 자극하자 몇몇 시민들이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극단적인 시위대와 평화 시위를 외치는 시민들 사이에서 시비가 붙기도 했다. 시민 100여명이 난폭해진 일부 시위대를 둘러싸고 “경찰을 자극하지 말라”며 자제를 촉구했다.   경찰은 시위가 격화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물대포를 장착한 장갑차를 바리케이드 시위대 앞으로 배치했다. 방패를 들고 무장한 경찰이 바리케이드 앞을 막아섰고, 오토바이 굉음을 울리며 시위대에게 통제선을 넘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를 했다.   흥분한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빈 병 등을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찰이 곧바로 최루탄을 여러 발 발포했다. 지난주 경찰이 쏜 최루탄이 한 취재 기자(파블로 그리요)의 머리를 직격해 치명상을 입힌 사건을 고려해서인지, 이날 조준 사격을 하진 않았다. 최루탄을 길바닥으로 하향 발사해 시위대를 분산시키는 데 주력하는 양상을 보였다.   오후 9시 30분, 경찰이 의사당 주변의 모든 골목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경찰이 계속해서 최루탄을 발포하자 시위대도 더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르헨티나 최대 언론인 클라린의산티 가르시아 디아즈 사진기자는 “다음 주 수요일에 또 이곳에서 시위가 열릴 것”이라며 “이게 아르헨티나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다음 주 이곳은 밀레이 정책의 반대 세력이 내뱉는 욕설과 난동으로 또 뒤덮일 수 있다. 이게 켜켜이 쌓인 포퓰리즘의 퇴적물이 리버태리언 개혁에 쓸려나가며 지르는 비명인지, 저만치 물러선 듯한 포퓰리즘이 다시 저벅저벅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인지, 아직은 미지수다. 장열·김상진 기자격렬한 논란 현장 르포 연금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연방경찰 나라 아르헨티나 밀레이 대통령

2025-03-20

[실시간 현장 르포] (종합) 전진이냐, 후퇴냐 기로에 선 아르헨티나

19일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종일 긴장감으로 뒤덮여 있었다. ‘상쾌한 바람’이라는 뜻의 정취는 찾을 수 없었다.  국회의사당 주변은 저녁께부터 시위대의 욕설과 경찰의 최루탄으로 뒤범벅이 됐다.     남반구의 먼 나라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진 이 시위에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리버태리어니즘 개혁과 그에 저항하는 쪽의 거대한 이념 충돌이다. 툭 하면 벌어지던 시위와는 사뭇 다르다. 겉으로는 연금 개혁을 둘러싼 이익갈등으로 보이지만, 근저엔 이념대결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서로 섞이거나 수용하기 어려운 가치의 충돌이다.   리버태리어니즘의 사령관은 2023년 12월 대통령에 취임한 하비에르 밀레이(54)다. 국가의 개입이 필요없다는 수준을 넘어 국가의 존재 자체를 악으로 부정하는 입장이다. 국가원수가 그런 생각을 하니 세계의 주목을 끌 수밖에. 지난 40여년 포퓰리즘에 젖어 나락으로 떨어진 아르헨티나이기에 그 반작용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지도자라고나 할까.   우리말로 자유지상주의로 옮길 수 있는 리버태리어니즘은 개인의 자유,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관한 한 신자유주의, 네오리버럴리즘보다 더 오른 편에 서 있다.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와도 가깝다. 밀레이는 스스로 ‘아나코-캐피탈리스트’를 자임한다. 집권 후 거침없는 개혁을 해냈다. 18개 정부부처를 단 7개로 줄여놨다. 재정지출을 거의 올스톱시켰다. 그렇게 할 일이 없어진 공무원 3만4000여 명을 잘랐다. 만성적자의 대명사이던 아르헨티나 재정이 1년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그뿐인가. 초인플레의 대명사인 아르헨티나의 물가가 잡히기 시작했다.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수준이던 페소화는 이제 몸값이 훌쩍 뛰었다. 이코노미스트가 올 1월 발표한 빅맥 지수에서 아르헨티나가 가장 높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맥도날드 값은 LA나 뉴욕보다 20% 이상 비싸다.   불가능할 것이라고 포기상태에 빠졌던 일들이다. 그러나, 하려고만 한다면 아르헨티나도 할 수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그 같은 거시경제적 자신감이 밀레이 개혁의 최대 성과다.   물론 온정주의적, 나쁘게 말해 퍼주기식 복지와 시혜에 익숙한 집단은 아직도 강력하게 존재한다.개혁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가 이어지는 이유다.     19일 오후 9시30분 연방 경찰이 의사당 주변 골목을 모두 막아서자 본지 취재팀은 현장에서 철수했다. 골목으로 빠져나가려던 일부 시위대는 경찰에 막히자 맥주병을 던지며 과격한 행동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최루탄을 발포하자 시위대도 더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한 시위 참가자는 “개자식들아, 우리는 다시 오겠다”며 소리쳤다. 경찰들은 방패를 들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최대 언론인 클라린의 산티 가르시아 디아즈 사진기자는 “다음주 수요일에 또 이곳에서 시위가 열릴 것”이라며 “이게 아르헨티나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위는 약 6시간만에 마무리 됐다. 다음주 이곳은 그 절반을 차지하는 반대세력의 욕설과 난동으로 또 뒤덮일 수 있다. 이게 켜켜이 쌓인 포퓰리즘의 퇴적물이 리버태리언 개혁에 쓸려나가며 지르는 비명인지, 저만치 물러선 듯한 포퓰리즘이 다시 저벅저벅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인지, 아직은 미지수다. 관련기사 [실시간 현장 르포] (6보) 아르헨티나 시위대, 무장경찰과 맞서 [실시간 현장 르포] (5보) 아르헨티나 시위, 의사당 앞서 일촉즉발 [실시간 현장 르포] (4보) 아르헨티나 시위대 격화 [실시간 현장 르포] (3보) 아르헨티나 MAGA 시위 본격 시작 [실시간 현장 르포] (2보) 아르헨티나 MAGA의 현장 [실시간 현장 르포] (1보) 아르헨티나 MAGA의 현장 부에노스아이레스=김상진 장열 기자실시간 현장 르포 아르헨티나 종합 아르헨티나 재정 나라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최대

2025-03-19

[실시간 현장 르포] (6보) 아르헨티나 시위대, 무장경찰과 맞서

부에노스아이레스 현지시각 밤 8시40분 현재 시위대를 몰아내기 위해 무장 경찰이 의사당 주변 골목을 차단하고 있다. 흥분한 시위대가 경찰이 골목을 막고 있자 유리병을 던지며 맞서고 있다.   그러자 경찰이 곧바로 최루탄을 여러 발 발포했다. 지난주 경찰이 쏜 최루탄이 취재기자의 머리를 직격해 치명상을 입혔다는 점을 고려해서인지, 이날 조준사격을 하진 않았다. 최루탄을 길바닥으로 하향 발사해 시위대를 분산시키는데 주력하는 양상이다.   현재 시위 현장에는 최루 가스가 가득하다. 시위대는 철문 쪽에서 물러난 상태다. 경찰은 바둑판 구조의 골목길을 완전 차단하지 않고 주로 교차지점에 최루탄을 쏴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있다. 퇴로를 차단한 상태에서 시위대를 검거하는 작전은 아직 시행되지 않았다. 한편 지난주 시위에서 검거된 100여명의 시위 가담자들은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전원 한꺼번에 풀려났다.   관련기사 [실시간 현장 르포] (5보) 아르헨티나 시위, 의사당 앞서 일촉즉발 [실시간 현장 르포] (4보) 아르헨티나 시위대 격화 [실시간 현장 르포] (3보) 아르헨티나 MAGA 시위 본격 시작 [실시간 현장 르포] (2보) 아르헨티나 MAGA의 현장 [실시간 현장 르포] (1보) 아르헨티나 MAGA의 현장 부에노스아이레스=김상진 장열 기자실시간 현장 르포 아르헨티나 무장경찰 아르헨티나 시위대 현재 시위대 시위 가담자들

2025-03-19

[실시간 현장 르포] (5보) 아르헨티나 시위, 의사당 앞서 일촉즉발

  부에노스아이레스 현지시각 저녁 8시 현재 경찰과 시위대는 일촉즉발 상황이다. 난폭해진 시위대가 바리케이트를 부수며 의사당 앞 통제구역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방패를 들고 무장한 경찰이 바리케이트 앞을 막아섰고, 오토바이 굉음을 울리며 시위대에게 통제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현지 기자들은 최루탄에 대비해 방독면을 쓰고 대비 중이다. 한 현지 기자는 방독면을 준비하지 못한 본지 취재팀에게 "아무 방비 없이 최루가스를 뒤집어 쓰면 레몬즙을 코에 문지르거나 우유로 눈을 씯어내면 고통을 덜 수 있다"고 알려줬다. 일부 시위대가 과격한 행동을 하기 전까지 시위 현장 부근의 점포들은 정상 영업했다. 레스토랑이나 카페의 경우 해지기 직전까지 노천 테이블에 손님을 받기도 했다. 평화적으로 출발한 시위가 과열되기까지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관련기사 [실시간 현장 르포] (4보) 아르헨티나 시위대 격화 [실시간 현장 르포] (3보) 아르헨티나 MAGA 시위 본격 시작 [실시간 현장 르포] (2보) 아르헨티나 MAGA의 현장 [실시간 현장 르포] (1보) 아르헨티나 MAGA의 현장 부에노스아이레스=김상진 장열 기자실시간 현장 르포 아르헨티나 일촉즉발 아르헨티나 시위 일부 시위대 시위 현장

2025-03-19

[실시간 현장 르포] (4보) 아르헨티나 시위대 격화

부에노스아이레스  현지시각 저녁 7시 현재 의사당 앞에는 여전히 수천명의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다.   시위대와 의사당 사이의 거리는 불과 약 100피트. 그 가운데는 철제 바리케이트가 가로 막고 있다. 이곳에서 한인 최초로 아르헨티나 방송국에서 앵커로 활동했던 황진이 씨는 “매주 수요일마다 집회가 열렸는데 오늘이 1001번째“라며 ”밀레이 정부의 연금 개혁안이 이슈화하면서 축구팀 훌리건까지 가세해 규모가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시위대는 바리케이트를 발로 차는가 하면 맥주캔 등을 경찰에게 던지고 있다. 경찰을 향한 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마리아노 후리코씨는 “저들(경찰)은 우리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아니다”라며 “저들의 가족들도 이 정권의 미친 정책 때문에 피해를 입을텐데 아랑곳하지 않는건 권력의 개가 됐기 때문”이라고 소리쳤다. 연방경찰은 시위대가 격화되는 움직임이 보이자 물대포를 장착한 장갑차를 바리케이트 앞으로 배치했다.   바리케이트 건너편에는 무장 경찰 약 300여명이 시위대와 대치 중이다. 마스크와 복면을 쓴 일부 시위대가 바리케이트를 발로 차며 경찰을 자극하자 몇몇 시민들이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극단적인 시위대와 평화 시위를 외치는 시민들 사이에서 시비가 붙기도 했다. 시민 100여명이 난폭한 일부 시위대를 둘러싸고 경찰을 자극하려는 행위를 자제시켰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지만, 시위는 이어지고 있다. ‘남미의 트럼프’ 밀레이 대통령의 급진 자유주의 개혁을 둘러싼 마찰음은 의사당 앞을 계속 울리고 있다. 관련기사 [실시간 현장 르포] (3보) 아르헨티나 MAGA 시위 본격 시작 [실시간 현장 르포] (2보) 아르헨티나 MAGA의 현장 [실시간 현장 르포] (1보) 아르헨티나 MAGA의 현장 부에노스아이레스=김상진 장열 기자실시간 현장 르포 아르헨티나 시위대 아르헨티나 시위대 일부 시위대 아르헨티나 방송국

2025-03-19

[실시간 현장 르포] (3보) 아르헨티나 MAGA 시위 본격 시작

19일 오후 4시, 의사당 앞으로 시위대가 몰려들고 있다. 사회주의노동자운동(MST), 노동자 권익 단체이자 좌파 혁명 조직인 폴리티카 오브레라(Política Obrera), 사회주의 좌파당(Izquierda Socialista) 등의 깃발이 곳곳에서 휘날리고 있다.   “Libertonto!“ ’자유주의자(Libertario)‘와 ’바보(Tonto)’를 합친말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을 조롱하는 욕설이다.     시위에 나선 모가도 플로렌시아 “생계 유지조차 힘든 노인들에게 연금법을 바꾸겠다는 밀레이는 완전히 정신병자”라며 “오늘 우리는 시민혁명에 나선 것이며 밀레이를 이제 끌어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북소리가 사방에서 귓가를 때린다. 시위대의 외침이 점점 더 쩌렁쩌렁 울리고 있다.     헬멧을 쓰고 ‘구조팀(rescate)’ 조끼를 입은 이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지난 12일 벌어진 연금법 개혁 반대 시위에서 수십명이 부상 당하자 이에 대비한 민간 의료팀이다. 카르아노 모레노(71)씨는 “최루탄 2개가 최저연금보다 비싸다(2 cartuchos de gas valen más que 1 jubilación mínima)”는 피켓을 들고 있다. 그는 “저들(경찰)은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대신 힘없는 우리에게 최루탄과 고무탄을 쐈다”며 “아르헨티나 사람으로서 노인을 이렇게 대하는 내 조국이 너무나 부끄럽다”고 말했다.     지난 시위에서 경찰에게 폭행을 당해 정신을 잃은 비아트리즈 비안코(87)씨도 이날 다시 의사당 앞으로 나왔다. 당시 비안코 할머니가 폭행 당해 쓰러진 영상이 퍼지면서 전국적으로 공분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긴축 정책과 IMF는 이제 그만!’ ‘치안장관 파트리시아 불리치와 밀레이 대통령은 물러나라‘ ’우리의 권리를 박탈하면 민주주의도 없다’ 곳곳엔 온통 현 정권에 대한 규탄이 피켓에 담겨 있다. 경찰들은 대형을 갖춘 채 시위대를 응시하고 있다.   관련기사 [실시간 현장 르포] (2보) 아르헨티나 MAGA의 현장 [실시간 현장 르포] (1보) 아르헨티나 MAGA의 현장 부에노스아이레스=김상진 장열 기자실시간 현장 르포 아르헨티나 시위 아르헨티나 사람 지난 시위 시위 본격

2025-03-19

[실시간 현장 르포] (1보) 아르헨티나 MAGA의 현장

‘남미의 트럼프’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다시 위대한 아르헨티나를 꿈꾸고 있다.   두 나라는 현재 닮은 데가 많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은 아르헨티나를 향해서도 또 한 번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Make Argentina Great Again!”   반면, 급진적 개혁 정책은 거센 반발을 초래하고 있다.     정부 부처를 18개에서 7개로 축소하고, 강력한 긴축 드라이브를 걸었다. 연금을 대대적으로 손질하는 과정에서 수급 조건을 까다롭게 변경하기로 하자, 수많은 노인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급진적인 개혁은 강력한 저항을 낳는다. 이는 우파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미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일 오전, 긴장감으로 꽉 찬 공기가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국회의사당 앞을 휘감고 있다.   오후 4시(현지 시간), 대대적인 연금 개혁안 반대 시위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이곳에서는 대규모 폭력 시위가 일어나 100여 명이 체포됐고, 15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취재기자 파블로 그리요는 머리에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중태에 빠졌다.  오늘 시위는 한층 격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앞 광장엔 통행제한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언론은 물론이고 전세계 미디어들이 모여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다. 본지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의회 앞에서 이번 시위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도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김상진 장열 기자아르헨티나 하비에르 밀레이 연금법 시위 중앙일보 미주중앙일보 로스엔젤레스 트럼프 MAGA

2025-03-19

'세상의 끝'에서 길을 찾다, 파타고니아

파타고니아(Patagonia)는 가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막연한 동경이 담긴 '세상의 끝'이다. 그러나 이 세상 끝에서 여행객들은 저마다의 새로운 시작을 찾기 위해 결코 녹록치 않은 여정을 시작한다. 그래서일까. 파타고니아는 여행에 진심인 이들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두 나라에 걸쳐 자그마치 26만평방마일에 달하는, 빙하와 황금빛 초원인 팜파스(Pampas)가 공존하는 파타고니아 여행의 모든 것을 알아봤다.     ▶언제 가면 좋을까   파타고니아의 여행 적기는 남반구의 봄과 여름인 10월부터 4월까지다. 이때는 낮 최고 기온이 59~76도 사이로 하이킹, 산악자전거, 빙하 트래킹 등 야외 활동을 즐기기에 최적의 날씨여서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시기다. 특히 기온이 가장 따뜻하고 날씨가 온화한 12~ 2월 사이가 성수기다.     ▶가기 전 알아두면 좋은 정보   파타고니아는 그 규모가 방대하므로 방문 전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부분의 국립공원과 주요 명소는 렌터카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일부 지역은 사전 허가 또는 가이드를 동반해야 할 수도 있어 웹사이트 등을 통해 정보를 미리 확인하고 예약해야 한다.     ▶어느 도시서 시작할까   2개국에 걸쳐 있는 데다 그 규모도 워낙 방대하다 보니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여정을 시작할까는 파타고니아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이다. 파타고니아 여행의 시작점으로 삼을 수 있는 거점 도시들 중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도시는 아르헨티나 엘칼라파테(El Calafate)와 우수아이아(Ushuaia), 칠레 푼타아레나스(Punta Arenas)다. 이중 비에드마 호수(Lake Viedma)에 위치한 엘칼라파테는 아르헨티나 쪽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려는 이들에게 인기 있는 거점 도시다. 로스 글라시아레스(Los Glaciares) 국립공원과 가까워 숙소를 옮기지 않고도 주요 명소들을 편리하게 방문할 수 있다. 만약 티에라델푸에고(Tierra del Fuego) 국립공원과 비글 해협을 목표로 한다면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서 시작하면 편리하다. 칠레 쪽 파타고니아를 보려면 푼타아레나스를 고려할 만하다. 이곳은 토레스델파이네(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에 진입하기 쉬운 도시이며 남극 대륙으로 가는 관문이어서 늘 여행자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다만 국립공원까지 차로 5시간 가량 소요되므로 이를 감안하고 숙소를 정해야 한다. 이외에도 아르헨티나 푸에르토매드린 (Puerto Madryn), 엘찰텐(El Chalten), 바릴로체(Bariloche), 푸에르토몬트(Puerto Montt), 코야이케(Coyhaique) 등도 파타고니아 여행을 위해 많이 찾는 거점 도시들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   칠레에 위치한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은 파타고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국립공원. 이 공원에서는 'W트래킹(The W)'이 유명한데 장장 31마일에 달하는 이 트레일을 걷다보면 그레이 빙하(Grey Glacier), 프란세스 계곡 (French Valley), 토레스의 삼형제 봉우리 (The Three Towers of Torres) 등 파타고니아의 야생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명소들을 둘러볼 수 있다. 이보다 더 긴 약 74마일 길이의 'O트래킹(The O-Circuit)'도 인기 코스인데 완주하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므로 여행 전 캠핑장 예약은 필수다.     ▶로스 글라시아레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곳은 빙하의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곳인데 안데스산맥의 동쪽 기슭에서 형성된 빙하들이 푸른 호수로 떨어지기 전의 장관을 근접해서 볼 수 있어 인기다. 공원 남쪽인 엘칼라파테 인근에서는 그 유명한 페리토 모레노 빙하(Perito Moreno Glacier)를 보트나 카약을 타고 근접해 볼 수 있다. 또 공원 북쪽에 있는 마을인 엘찰텐에서 시작해 세로토레(Cerro Torre) 또는 피츠로이 산(Mount Fitz Roy)으로 향하는 하이킹 코스도 도전해 볼 만하다. 이 코스는 파타고니아의 웅장한 자연을 아주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어 자연과 모험을 사랑하는 이들이 강추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레푸히오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다 보면 트래킹 도중 숙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럴 때는 트레일 중간중간 있는 공용 숙박시설인 레푸히오(Refugio)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레푸히오는 대부분 다인실로 구성돼 있으며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일부 레푸히오에서는 식사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성수기에는 이곳에 숙박하려는 여행객들이 많아 예약은 필수다.  이주현 객원기자파타고니아 장거리 파타고니아 여행 아르헨티나 엘칼라파테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2025-02-13

[돈의 세계] 비트코인을 사랑한 대통령

지난해 11월 아르헨티나에서 비트코인 지지자 하비에르 밀레이(사진) 대통령이 승리했다. “비트코인은 돈을 창조한 인간에게 다시 화폐를 돌려주려는 움직임이다.” 그가 비트코인을 사랑하며 한 말이다. 우리의 김치 프리미엄처럼 비트코인의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아르헨티나 프리미엄’이 있다. 살인적 물가와 그로 인한 비트코인의 높은 수요 때문이다. 그의 취임 후 디폴트로 악명 높은 이 나라의 국가 신용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디폴트스와프(CDS)가 4년여 만에 최저치로 내려왔다. 그는 임기 중 기준금리를 133%에서 이달 35%까지 내려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주식시장은 사상 최고 랠리로 답했다.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화한 엘살바도르를 포함해 중남미의 비트코인 사랑이 유별나긴 하다.   이달 미국 47번째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그는 지난 7월 미국 테네시주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 등장했다. 당시 그는 비트코인을 “전략적 국가 비축물(strategic national bitcoin stockpile)”로 규정했다. 각종 공약을 내세우며 선거판의 큰 손이 된 친(親)크립토 투심(投心)을 공략한 것은 유효했다. 전략적 비축물에 비트코인이 포함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비트코인은 금이나 기축통화 수준에서 논의될 수 있다는 말일까.   트럼프 당선 정치자금 모금단체(America PAC)에만 1억1800만 달러 이상을 지원한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주가 상승으로 입이 째져있다. 테슬라 주가는 52주 신고가를, 비트코인은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도 2021년 고객이 비트코인으로 테슬라를 구매토록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머스크의 기쁨과 달리 성전환한 딸은 슬퍼한다. 성소수자를 박해하는 트럼프의 승리에 미국을 떠나겠단다. 부녀간 희비의 엇갈림 속에 세상은 트럼프 2.0에 비상이 걸렸다. 세상은 과연 어디로 가는 걸까. 조원경 /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돈의 세계 비트코인 대통령 비트코인 사랑 비트코인 지지자 아르헨티나 프리미엄

2024-11-20

텍사스 등 10개주는 ‘아르헨티나’

 텍사스 주민들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달라스 abc 뉴스가 최근 보도했다. 저지 등 축구 용품을 판매하는 웹사이트 ‘월드 사커 샵 닷컴’(WorldSoccerShop.com)은 1월부터 7월 1일까지의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국내 50개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축구 국가대표팀을 순위를 매겼다. 그 결과, 텍사스 주민들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론 스타(Lone Star) 주라는 자부심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한 남다른 애국심으로 잘 알려져 있는 텍사스 주민들이 축구에서만큼은 미국이 아닌 아르헨티나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 의외의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abc 뉴스는 전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사커(MLS) 인터 마이애미팀의 스타인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는 미전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축구 국가대표팀이다.   월드 사커 샵 닷컴은 올해 1월부터 7월 1일까지의 각 팀별 판매 데이터를 집계해 미전역 각 주별로 어느 축구 국가대표팀이 가장 인기가 있는지를 파악했다. 2024년 미국에서 축구 관련 용품이 가장 많이 팔린 국가대표팀 톱 10은 1위 아르헨티나, 2위 포르투갈, 3위 독일, 4위 미국(남자), 5위 프랑스, 6위 영국, 7위 멕시코, 8위 브라질, 9위 이태리, 10위 미국(여자)이었다.   각 주별 국가 대표팀별 판매 순위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텍사스에서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매출이 가장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 마이애미가 텍사스 주내 프리스코시에서 리그 컵 경기를 가졌을 때 메시의 경기를 보러 몰려든 축구 팬들로 인해 프리스코에 300만달러의 경제적 이득을 안겼을 정로로 텍사스에서도 메시 열풍은 대단했다. 메시가 출전하는 미국내 축구 경기는 모두 티켓이 매진되기 때문에 아르헨티나가 1위를 차지하는 것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 텍사스에서 아르헨티나의 판매액을 능가할 유일한 국가는 틀림없이 멕시코다. 멕시코 국가 대표팀(El Tri)은 친선 경기를 특히 텍사스 북부(AT&T 스타디움)에서 자주 갖기 때문에 강력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월드 사커 샵 닷컴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텍사스를 비롯해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조지아, 워싱턴, 매릴랜드, 델라웨어, 버몬트, 웨스트 버지니아, 유타 등 10개주에서 높은 매출을 기록했으며 포르투갈은 애리조나, 네바다, 와이오밍, 아이오와, 사우스 캐롤라이나, 뉴저지, 로드 아일랜드, 코네티컷, 매사추세츠, 알래스카주에서 많았다. 독일은 일리노이, 위스칸신, 미조리, 사우스 다코타, 루이지애나, 미시간, 오하이오, 테네시, 펜실베니아, 하와이주에서 많았고 미국 대표팀은 콜로라도, 아이다호, 네브라스카, 캔자스, 노스 다코타, 아칸사, 미시시피, 알라배마, 노스 캐롤라이나, 뉴욕, 메인, 인디애나주에서 매출이 많았다. 이밖에 프랑스는 오레곤주에서, 영국은 몬태나와 뉴 햄프셔주에서, 멕시코는 오클라호마와 웨스트 버지니아주에서 매출이 높았다.  미국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축구 아르헨티나 대표팀 축구 국가대표팀

2024-07-17

식당서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관람하던 시민들 '집단 난투극'

14일 밤 LA의 한 지역에서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을 관람하는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과음 등의 이유로 폭력사태가 발생, 여러 명이 병원에 이송되는 일이 발생했다.     KTLA 방송에 따르면 이날 사건은 피코 유니언 지역에 위치한 콜롬비아 식당 인근 주차장에서 일어났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등 수백 명의 팬들이 대회 결승전인 콜롬비아와 아르헨티나의 경기를 보기 위해 모인 상황이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경기가 끝난 후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한 목격자는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며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셨고 결국 폭력사태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현재까지의 보도에 따르면 유리병이 던져졌고 최소 한 명이 칼에 찔렸다. LA 경찰국(LAPD)은 자상 환자를 포함한 여러 명이 병원에 이송됐고 여러 건의 폭행 신고가 접수됐다고 설명했다.     15일 오전 7시 현재까지 해당 사건으로 체포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날 결승전에서는 아르헨티나가 연장 승부 끝에 콜롬비아를 1대 0으로 꺾었다. 아르헨티나는 통산 16번째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15번 우승한 우루과이를 제치고 코파 아메리카 최다 우승 국가가 됐다. 김영남 기자 [[email protected]]아메리카 폭력사태 코파 아메리카 콜롬비아 식당 우승 국가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결승전

2024-07-15

[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남미의 붉은 보석

아르헨티나를 보석에 비유한다면 열정을 상징하는 붉은 루비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축구 경기장, 숨이 막힐 듯 정열적인 마성의 탱고는 아르헨티나 하면 흔히 떠올리게 되는 것들이다. 또 아르헨티나는 '남미의 보석'이라 불릴 만큼 볼거리가 풍부한 나라다.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이과수 폭포를 위시하여 호수의 도시 바릴로체, 빙하국립공원을 품은 갈라파테, 거대한 초원 지대 팜파스, 세상의 끝인 남극으로 향하는 우수아이아 항구, 미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은 아르헨티나에서 주목해야 할 면면이다.   먼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국경에 걸친 이과수 폭포는 세계에서 가장 장엄하고 아름다운 폭포로 통한다. 이과수의 275개 폭포 중 대부분이 아르헨티나 쪽에 위치하며 특히 '악마의 목구멍(Devil's Throat)'이라 불리는 폭포의 하이라이트 부분도 이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과수 폭포 줄기 가운데 최대 수량을 자랑하는 악마의 목구멍은 이과수강을 통째로 삼키기라도 하듯 초당 6만여 톤의 물이 거대한 절벽으로 빨려 들어간다. '쉭' '쉭' 거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가 다시 하늘로 솟구치며 온몸에 짜릿한 전율을 일으키고 감각들을 일제히 깨운다.   또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예부터 '남미의 파리'라고 불렸다. 100여 개에 달하는 미술관과 박물관, 극장 등이 몰려 있어 문화 중심지 역할을 담당해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고풍스러우면서도 화려한 장식의 콜론 극장은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으로 유명하다. 1908년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개관 무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세계 정상급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극장을 나와 가볼 곳은 세계에서 도로 폭이 제일 넓은 것으로 알려진 '7월 9일 대로'. 아르헨티나의 독립과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리이며, 도로 가운데 부에노스아이레스시 제정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다. 분홍빛 외벽이 인상적인 대통령궁도 명물이다. '핑크 궁전'으로 유명한 이곳은 본래 요새로 지어졌으나 지금은 대통령궁으로서 아르헨티나 대통령들의 초상화와 역사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에 왔다면 반드시 보고 가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동남쪽 항구도시이자, 탱고의 발상지인 보카(Boca) 지구다. 벽과 지붕을 원색으로 칠한 건물이 많아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대부분의 레스토랑과 카페에서는 탱고 공연이 펼쳐져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이곳에는 또한 보카 주니어팀 축구장도 위치해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삶 자체이며 자랑이자, 자부심인 축구 문화도 엿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 거리에서는 음악을 틀어놓고 탱고를 추는 남녀를 쉽게 볼 수 있다. 강렬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열정적으로 추는 탱고 춤사위는 전 세계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2023년, 루비같이 강렬하고 정열적인 에너지를 회복하고 싶다면 여기다, 아르헨티나! 박평식 /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남미 보석 아르헨티나 대통령들 이과수 폭포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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