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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강 건넌 아르헨티나, 이번엔 다르다

달리는 개혁열차…멈출 수는 없다 ⑤ 끝
택시민심은 압도적인 친밀레이
국민호응이 자유주의 개혁의 대못
"15년 뒤 소득, 스페인 수준 될 것"

밀레이 대통령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행사장에서 군중을 향해 손 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

밀레이 대통령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행사장에서 군중을 향해 손 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

흔히 택시 기사들의 여론을 ‘민심의 풍향계’라 한다. 서민층에 속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접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체감하기 때문이다. 그럼 부에노스아이레스 택시 기사들은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개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본지 취재팀이 지난 3월 33회에 걸쳐 현지 택시와 우버를 이용하면서 직접 설문한 결과 32명이 지지를 표명했다. 밀레이를 지지하는지, 반대하는지 묻자 모두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였다. 압도적으로 밀레이 편이다. 우버 드라이버 다니엘 에두아르도는 “이번에 바뀌지 않으면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기사 앤젤 프란스시코도 “많은 것이 바뀌고 있고, 사람들도 점점 희망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공감대는 확실해 보인다. 실패한 포퓰리즘 경제에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다들 알기 때문이다. 당장에라도 차 세우고 반정부 시위대에 합류할 법한 택시 기사들이 외려 밀레이를 지지하는 이유다. 이들은 과거 대부분 페로니스트 정부 지지층이었으나, 이젠 돌아섰다고 한다. 포퓰리즘 정책의 실패에 따른 피해를 처절하게 경험한 계층이기에 노선 변화가 두드러진 것이다.
 
좌파 페로니즘 정권에서 산업부 산업정책국장(2019~22)을 지낸 레안드로 모라 알폰신도 이런 정서를 인정한다. “40년의 민주주의를 지나면서도 약 45%가 기본 생계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기존의 방식을 바꾸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대중의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물가, 성장률, 빈곤율 등 각종 통계가 부쩍 개선되자 긴가민가하며 관망하던 여론층도 개혁에 호감을 보이게 됐다. 밀레이 정부는 그들에게 과거보다 미래를 얘기한다. 페데리코 스투르제네거 규제개혁장관은 지난 13일 “향후 15년간 매년 4%씩 꾸준히 성장하면 아르헨티나 국민소득은 스페인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라틴 아메리카 정치경제학자인 마리아노 토마시 산안드레스 대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수십 년간의 침체와 실정에 반발한 국민은 완전히 다른 접근방식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었는데, 이게 밀레이의 스타일과 맞아떨어졌다. 특히 그의 이념적 일관성은 밀레이 개인뿐 아니라 그의 정책적 방향에 일정 수준의 신뢰성을 주고 있다.”
 
늦은 토요일 오후 식당과 술집들이 몰려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팔레르모의 한 골목길이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김상진 기자

늦은 토요일 오후 식당과 술집들이 몰려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팔레르모의 한 골목길이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김상진 기자

밀레이를 향한 대중의 지지는 개혁에 대한 갈구의 표출이다. 밀레이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지금의 개혁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저변에 깔렸다. 실패는 곧 끔찍한 과거로의 회귀를 뜻한다는 걸 다 알기 때문이다. 킨토 투자자문의 바우티스타 부르디외 애널리스트는 “현재 추진 중인 정책과 변화가 실패한다면, 아르헨티나는 과거의 인플레, 부채 위기, 빈곤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밀레이는 경제에서만 득점하고 있는 게 아니다. 기득권 정치 엘리트들에 대한 공격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 국회의원 특권 축소가 대표적이다. 라디오 방송 진행자인 조엔나 메사 알퍼트는 “그동안 아무도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 그 점에서 정말 긍정적이다. 그런 위험을 감수했다는 점에서 존경한다”고 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 기차역인 레티로에서 아침 출근길에 시민들이 개찰구를 빠져나오고 있다. 김상진 기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 기차역인 레티로에서 아침 출근길에 시민들이 개찰구를 빠져나오고 있다. 김상진 기자

이런 상황에선 아르헨티나인에게 ‘밀레이가 성공할까’라는 질문은 차라리 우문에 가깝다. “그렇게 물으면, 밀레이가 실패하면 안 된다고 답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거다. 나도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밀레이가 꼭 성공하길 바란다. 페론주의자들도 알 거다. 자기들도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꼭 성공하면 좋겠다.”(물류회사 LK글로벌 강태민 대표)
 
두터운 지지를 의식해서인지 밀레이는 과격 시위대의 요구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 과거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면 형식적으로라도 요구를 받아들이곤 했는데, 지금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야당을 설득하려는 자세도 안 보인다. 자유지상주의 개혁 정책에 타협이란 없다. 최고 권력기관인 정부 자체를 혐오하는 무정부주의 성향의 밀레이가 파쇼라는 형용모순적 비난을 받는 이유다.
 
지난 3월 19일 부에노스아이레스 국회의시당 앞에서 열린 연금 개혁안 반대 시위. 전주 시위에 이어 이날도 밀레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과격 시위대가 경찰과 5시간 가량 대치하며 바리케이드를 발로 차고 욕설을 내뱉는 등 폭력 양상을 보였다. 경찰들은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시위대의 과격한 행동에도 대응을 자제하며 지켜보고 있다. 김상진 기자

지난 3월 19일 부에노스아이레스 국회의시당 앞에서 열린 연금 개혁안 반대 시위. 전주 시위에 이어 이날도 밀레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과격 시위대가 경찰과 5시간 가량 대치하며 바리케이드를 발로 차고 욕설을 내뱉는 등 폭력 양상을 보였다. 경찰들은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시위대의 과격한 행동에도 대응을 자제하며 지켜보고 있다. 김상진 기자

그가 임기 중 개혁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것이라는 데 대해선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정치적으로 큰 분기점인 오는 10월 중간선거에서 대중의 지지를 받는 밀레이 여당의 승리가 예상된다. 지금의 여소야대 구도가 뒤집어지거나, 여당 의석수가 두드러지게 늘 경우 개혁엔 더 탄력이 붙을 수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헤럴드의 칼럼니스트 릴리아나 프랑코는 “정치 분석가들은 밀레이의 자유전진당이 여러 의석을 추가로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야권이 상당히 분열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가전메이커 피바디의 최도선 회장도 “중간선거에서 밀레이가 압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야당에서 밀레이에 대적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페론당은 나라를 망쳐놨기 때문에 그렇다.”
 
문제는 그 다음, 즉 밀레이가 임기를 마친 뒤다. 자유지상주의 개혁의 관성은 유지될까, 아니면 포퓰리즘의 기운이 다시 고개를 들까.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변동사에 해박한 토마시 교수는 다소 조심스러운 견해다. “밀레이가 야심 찬 개혁의 일부를 성공적으로 실행하더라도, 향후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후퇴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은 큰 리스크로 남아 있다.”
 
과거 아르헨티나의 정정불안을 감안한다면 일리 있는 말이다. 개혁의 실패, 또는 개혁 피로감 탓에 정권이 바뀐다면 과거로의 회귀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밀레이의 개혁 정책이란 것도 무슨 대못을 박아둔 게 아니다. 자른 공무원들이야 다시 고용하면 되고, 줄인 정부부처도 금방 되살릴 수 있다. 틀어막은 보조금 다시 푸는 건 일도 아니다. 규제 역시 다시 법령 만들어 채울 수 있다.
 
그러나 경제 현장에선 자유지상주의 개혁을 되돌릴 수 없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방향이 옳고, 성과가 확실한 데다, 많은 국민이 이에 적응했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의 생활과 시장의 흐름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것이다. 정권 교체 이후에도 개혁은 나름의 관성을 타고 비가역적으로 굴러갈 것이라는 뜻이다.
 
아르헨티나 최대 회계법인 리식키 리트빈의 세자르 리트빈 대표는 “밀레이의 후임자가 그 비전을 이어갈지가 중요하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예전으로 돌아가진 못할 것이다. 밀레이가 워낙 많이 바꿔놨고, 이젠 사람들이 거기에 제법 익숙해져 있다.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자유지상주의와 결이 다른 사람들도 지속가능성을 높게 본다. 페로니스트 정부에서 산업부 장관(2019~22)을 지냈던 마티아스 쿨파스는 “개혁의 일부는 지속가능하다. 특히 재정준칙과 원칙적인 통화관리는 앞으로도 오래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하이퍼 인플레이므로, 그 원인이었던 방만재정과 현금 살포를 다음 정권이 답습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포퓰리즘의 실패를 겪을 만큼 겪은 국민은 과거로 돌아가는 게 어떤 뜻인지 잘 안다. 아르헨티나를 유럽 수준의 국가로 만들자는 밀레이의 비전은, 그래서 공감을 얻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에선 ‘이번엔 다르다’는 시민들의 기대감을 체감할 수 있다.
 
 
창밖으로 건네는 인사.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버스 안에서 두 소녀가 카메라를 향해 브이 사인을 보이고 있다. 김상진 기자

창밖으로 건네는 인사.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버스 안에서 두 소녀가 카메라를 향해 브이 사인을 보이고 있다. 김상진 기자


남윤호·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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