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침대 옆 구글 커넥트에게 묻는다. 헤이 구글, 지금 몇 도야? 오늘은 화씨 6도란다! 세상에, 몇 년 따뜻한 겨울을 지내다 보니 이런 숫자는 정말 낯설다. 하지만, 이번 겨울에 유난히 차가운 것은 날씨만이 아니다. 작년부터 시작되어 점점 심화하고 있는 미국 사회 전반과 어쩌면 세계적인 긴장과 불안, 그 몰상식과 억울함, 답답함의 한복판에서, 먼 곳이 아니라 내 바로 옆 이웃들의 삶이 흔들리는 장면들을 마주할 때, 마음의 온도까지 한없이 함께 내려가는 요즘이다. 최근 만난 몇몇 클라이언트들은 세션마다 끝내는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신분을 약속받고 도착한 미국 땅에서 사기만 당하고 서류 미비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너무도 주위에 많다. 이후 미국을 모국으로 여기며 긴 세월을 착실하게 세금 내며 이웃까지 도우며 살아온 이들의 삶이, 여지없이 공포 속에 파묻혀가는 요즘의 모습은 너무도 바라보기가 힘이 든다. 신분 문제, 단속 공포,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일상. ICE라는 세 글자는 그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그림자다. 24/7 이민단속관이 뜨는 현장을 보고해주는 앱을 들여다보며 “오늘은 괜찮을까?”라고 물으며 살아가는 그들을 위로할 말이 없어 난 그저 말을 잃고 만다. 그런데 요즘, 작고 조용한 온기가 스며들고 있다. 북클럽 멤버 한 분이 히스패닉 이웃들을 위해 컵라면과 삶은 계란을 준비하여 나누어주고 있다. 홍보도, 사진도, 거창한 선언도 없이, 단지 “오늘은 이들에게 이게 필요할 것 같아서” 혼자 맹추위로 얼어붙은 거리로 나갔다. 숨어있던 남미 친구들은 주변을 살피며 나와 자신들의 아미고(친구) 것까지 받아가더란다! 그 이야기가 북클럽 단톡방에 올려지자, 다른 회원들이 기증하는 각종 컵라면과 스낵들이 그분의 뒷마당 테이블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흰 눈더미를 배경으로 쌓여가는 이 물품들은, 배고픔 앞에서, 두려움 앞에서, 인간은 결국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듯 조용히 놓여 있었다. “차 히터가 꼭짓점을 찍는데도 장갑 낀 손가락 끝은 날카로운 냉기로 뻣뻣해졌습니다. ‘한명이라도 걸려봐라. 박스를 안겨주마’ 팰팍 고객을 향해 한명의 확률을 걸고 출발했습니다. 지난번 만났던 페이퍼 있다는 고객이 다가왔습니다. 대뜸 묻는 게치킨 수프였습니다. 한 냄비 끓여다 냄비째 안겨주었던 그 메뉴가 제법 그들의 입맛에맞아떨어졌나 봐요. 라면과 커피 스낵을 라면 박스 반 개 덜어내고 담아주었습니다. 잇달아 나타난 3명에게 라면몇 개? 물어보자 5개라고 했어요. 넉넉히 담아주었습니다. 지난번 카페로 치킨 수프 냄비 들려 보내고비워달라 했는데 그 카페 여자 두 명이 튀어나왔어요. 방긋 웃으며 라면 3개 달라고 다가오는데 제겐 블랙핑크 멤버였던 제니로 보였습니다. 통통 빵빵한 제니로요. 활짝 웃으며 ‘그라샤’ 한 다발 선물 받았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이런 횡재도 하네요. 오늘 아침 그 회원님으로부터 받은 문자다. 라면 한 그릇이 세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삶은 계란 하나, 치킨 수프 한 그릇으로 불안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분명히 사람의 몸과 마음을 조금은 풀어준다. 그리고 그 ‘조금’이 모여 그들의 불안한 하루를 견디게 할 것이다. 차가운 계절 속에서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치킨 수프를 끓이고 라면을 나눈다. 그 두 장면 사이 어딘가에서, 그래도 아직 이 사회에 온기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숨을 고른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맹추위 컵라면 각종 컵라면 치킨 수프 북클럽 멤버
2026.02.04. 22:01
전기차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묘한 불편함이 남는다. 기후 위기, 미래 산업, 기술 진보라는 이름 아래 전기차 보급 정책은 거의 도덕적 명령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 흐름에 의문을 던지면 시대를 거스르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책이란 실행하며 여러 질문 위에서 건강해질 수 있다. 전기차 정책 역시 이제는 물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과연 이 정책은 무엇이 문제인가. 전기차 산업의 성공 사례로 언급되는 기업은 단연 테슬라다. 테슬라는 혁신의 상징이 되었고,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을 뒤흔든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시가총액, 브랜드 영향력만 놓고 보면 이미 ‘승자’의 자리에 올라섰다. 그러나 이 성공을 시장 경쟁의 결과로만 설명하기에는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다. 바로 국가 정책이다. 테슬라의 성장 과정에는 각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충전 인프라 투자,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가 깊이 얽혀 있다. 전기차 보조금은 구매 장벽을 낮췄고, 충전 인프라는 민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초기 비용을 사회가 대신 떠안는 구조였다. 특히 탄소배출권 제도는 테슬라에게 막대한 수익원을 제공했다. 차량 판매 외에도 배출권 판매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테슬라는 기술 기업이자 동시에 정책의 수혜자였다. 테슬라의 성공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특정 기업이 아니라 정책의 구조다. 산업 정책은 언제나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다만 그 영향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고, 그 비용이 누구에게 전가되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전기차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전기차 보급이 확대될수록 전력 수요는 증가한다. 충전소 설치, 송배전망 확충, 변압기 교체, 전력 공급 안정화를 위한 설비 투자도 필요하다. 이 비용은 어디에서 나올까. 대부분 전기요금이나 세금의 형태로 사회 전체가 부담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전기차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 역시 이 비용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기차를 타지 않는 시민도 전기요금 인상, 기본요금 조정, 공공 재정 투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비용을 분담하게 된다. 전기차 충전소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의 전기요금 고지서에도, 전기차 보급 정책의 흔적은 남는다. 정책의 혜택과 비용이 일치하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보조금 정책도 문제를 안고 있었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은 현실적으로 차량 구매 능력이 되는 소득 수준을 전제로 한다. 이로 인해 보조금 혜택은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에 집중됐다. 결과적으로 공공 재원은 전기차 구매 능력이 있는 소비자와 대규모 제조사, 글로벌 기업에 더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구조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친환경’ 정책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용 배분의 형평성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그러나 환경 정책일수록 더욱 정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의로 시작한 정책이 사회적 불균형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점점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전기요금 인상, 전력망 투자 비용, 세제혜택 등 전기차 특혜는 이미 정치적·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 특히 전기차 전환 속도가 빠를수록, 전력 인프라에 대한 부담 역시 빠르게 커진다. 전기차 정책은 더 이상 자동차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생활비 문제로 연결되고 있다. 물론 전기차 정책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기후 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방식이다. 전기차 보급 속도를 높이려면 전기 요금 체계, 인프라 투자 방식, 그리고 비용 분담 구조까지 함께 설계되야 한다. 정책은 언제나 선택의 결과다. 누군가는 혜택을 받고, 누군가는 비용을 부담한다.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다. 전기차 정책 역시 이제는 성과를 자랑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그 혜택과 부담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분배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전기차가 진정 모두를 위한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그 질문을 피하지 않는 정책이 필요하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 광장 전기차 문제 전기차 정책 전기차 보조금 전기차 산업
2026.02.04. 19:44
리버사이드에 추진 중인 도산안창호기념관 건립 사업이 진척은커녕 진위 논란만 빚고 있다. 미주도산기념사업회 곽도원 회장의 지난해 12월 발언이 발단이었다. 민주평통 오렌지·샌디에이고 지역 협의회 회장 자격으로 22기 민주평통 출범식에 참석한 곽 회장은 “리버사이드시가 제공한 10에이커 부지에 도산기념관 건립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참석한 공식 석상에서 한 발언이었다. 곽 회장의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한국 정부의 청원 웹사이트에 ‘사실 확인 요청’ 내용이 접수됐다. 용지 확보 여부, 건축비용 등을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 리버사이드시 측은 “검토 단계일 뿐 확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의회가 도산기념관 건립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은 승인했지만 부지 제공 관련 내용은 없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예산 지원 문제도 사실과 차이가 있었다. 곽 회장은 지난 2024년 한국 정부가 건립비용의 30%를 지원키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지만 담당 부처인 보훈부 관계자는 “사업계획서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역시 예산 지원을 결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사업회 측의 조바심도 이해는 간다. ‘2025년 착공, 2028년 완공’ 발표는 공수표가 된 지 오래다. 2019년 시작된 사업이 7년 동안 거의 진척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어떻게든 불씨를 살리고 싶은 것이 사업회의 입장일 것이다. 하지만 곽 회장의 발언은 너무 성급했다. 의욕을 보이는 것은 좋지만 검토 중인 사안을 마치 확정된 것처럼 발표하는 것은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앞으로의 발표는 좀 더 투명하고 신중히 해야 한다. 성급하거나 설익은 발표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뿐이다.사설 도산기념관 건립위 건립위 신뢰 도산기념관 건립 회장 자격
2026.02.04. 19:40
연방중소기업청(SBA)이 내달 1일부터 융자 신청 자격 규정을 변경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대표적인 SBA 융자 프로그램인 7(a) 등의 신청 자격을 미국 시민권자(US citizen)나 미국 국적자(US national) 소유 업체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시민권자나 국적자가 100% 지분을 소유한 업체에만 융자 신청 자격을 주겠다는 의미다. 즉, 영주권자나 외국인이 지분의 일부라도 가진 업체는 앞으로 SBA 융자를 받을 수 없게 됐다. SBA의 지침 변경은 지난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미국인 보호’ 행정명령과 궤를 함께한다. 당시 백악관 측은 “외국인의 공격으로부터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이민법과 공공안전 강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SBA의 느닷없는 규정 변경은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성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다. SBA 융자는 스몰비즈니스 활성화를 위한 정책 금융이다. 담보 능력이 부족한 소기업 업주를 위해 연방 정부가 지급 보증을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으로 인해 한인을 포함해 많은 이민자가 SBA 융자를 통해 사업 기반을 다졌다. 금융업계에서는 전체 SBA 융자에서 이민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5~15% 선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인 은행들에도 SBA 융자는 주력 대출 상품 가운데 하나다. 이번 조치로 영업에 상당한 타격이 우려된다. SBA 대변인은 규정 변경 방침을 밝히며 “미국 시민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SBA 융자 프로그램 운영 취지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스몰비즈니스의 경우 이민자들의 창업 의지가 더 강하다. 재원이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융자는 민간 금융 업체들이 담당하고 SBA는 보증을 서는 역할만 하기 때문이다. 이민자들의 창업이 활발해지면 시민권자의 일자리도 늘어난다. 결국 SBA의 이번 조치는 경제 논리보다 대통령의 심기를 먼저 살핀 정치적 판단으로 볼 수 있다. 잘못된 지침은 신속히 철회해 초가삼간 태우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사설 영주권자 차별 영주권자 차별 융자 프로그램 융자 신청
2026.02.04. 19:39
최근 미네소타에서 총격으로 두 명을 살해한 이민단속국(ICE)이 시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불법체류자 단속은 올해 들어서도 한 달 만에 최소 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사흘에 한 명꼴이다. 1월 3일, 두 아이의 아버지인 쿠바 출신 이민자 헤랄도 루나스 캄포스(55)가 텍사스 엘파소 수용소에서 목과 가슴 압박으로 질식사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그는 이날 ICE 요원들과 몸싸움 중 목을 강하게 졸렸다. 검시관은 가족에게 ‘살인 사망’이라고 통보했다. 1월 5일, 온두라스 출신 이민자 루이스 구스타보 누녜스 카세레스(42)가 구금 중 텍사스 휴스턴 병원으로 옮겨진 뒤 목숨을 잃었다. 그는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 가족은 수용소에서 적절한 처우를 받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1월 6일, 온두라스 출신 이민자 루이스 벨트란 야녜스-크루스(68)가 구금 중 심장 관련 문제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뉴저지주 뉴왁에서 체포됐다. 20년 이상 미국에 살며 세 아이의 아버지였던 그는 캘리포니아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의 딸은 아버지가 구금 뒤 심장 문제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1월 7일, 미네소타에서 시민권자 르네 니콜 매클린 굿(37)이 ICE 요원의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 1월 9일, 캄보디아 난민 파라디 라(46)가 펜실베이니아에서 구금 중 사망했다. 가족에 따르면 그는 구금시설에서 약물치료를 받다 장기 부전으로 병원에서 숨졌다. 가족은 1월 8일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가족은 수일간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찾아 헤매고 있었다. 1월 14일, 니카라과 출신 이민자 빅토르 마누엘 디아스(36)가 어린 아들이 기다리는 가운데 구금 중 사망했다. 그도 엘파소 수용소에 구금됐었다. ICE는 그가 숨진 채 발견됐다며 자살이 의심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족은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1월 16일, 멕시코 출신 이민자 헤베르 산체스 도밍게스(34)가 조지아주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는 무면허 운전 혐의로 ICE에 체포된 지 6일 만에 사망했다. 구금시설 측은 그가 목을 매달았다고 밝혔는데 멕시코 영사관은 “사건의 경위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요청했다. 1월 24일, 미네소타에서 중환자실 간호사이며 시민권자인 알렉스 제프리 프레티(37)가 ICE의 총격에 사망했다. 지난해 ICE 구금 중 사망자는 32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반 년간 국토안보부 요원이 체포 과정 또는 시위 참가자들에게 16차례 총격을 가했다. 시민권자 4명을 포함, 10명이 총에 맞았고, 그중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 사건과 관련 기소되거나, 징계를 받은 요원은 없다. 비번인 요원이 살인을 한 일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31일, 캘리포니아주 노스리지에서 비번 요원이 총을 쏴 흑인 키스 포터 주니어(43)가 목숨을 잃었다. ICE는 포터가 먼저 총을 쐈다고 밝혔으나 가족은 믿을 수 없다며 인종차별에 대한 진상 조사를 요구했다. 이제 ICE는 통제 불능 기관이 됐으며 해체돼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ICE를 보면 과거 노예 순찰대가 되살아난 듯한 모습이다. 공포와 인종차별을 수단으로 현 정권의 권력을 등에 업고 미친 듯 날뛰고 있다.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목숨 ice 요원 구금시설 측은 온두라스 출신
2026.02.04. 19:39
시카고 서버브에 들소가 등장했다. 시카고 서부 서버브인 케인 카운티의 산림 보호소에는 최근 6마리의 들소(Bison)가 서식하기 시작했다. 케인 카운티에 들소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무려 200년만이다. 들소가 시카고 서버브에 다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최근 들어 진행된 들소 복원 사업 덕분이다. 사실 들소는 미국 역사와 함께 했다고 봐야 할 정도로 친근했던 동물이다. 적어도 수천년동안 북미 대륙에만 수천만 마리의 들소가 서식하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들소가 주로 서식하고 있었던 장소는 중서부 지역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초원(prairie)과 숲(forest) 지대였다. 하지만 1870년 이후 단 20년만에 들소의 개체수는 500두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서부 개척과 동시에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특정 지역을 보호 구역으로 지정한 뒤 이쪽으로 몰아내면서 들소 역시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들소는 이런 목적 의식으로 인해 사냥꾼과 군인들에 의해 도살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들소는 이전까지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는 꼭 필요한 식량이었으며 가죽은 옷과 집을 만드는데 빠질 수 없는 필수 품목이었다. 들소가 있었기 때문에 주변 환경 역시 이에 맞춰 조성될 수 있었고 다른 동물 역시 함께 공존하는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 인디언 중 하나인 라코타 부족은 들소를 타탄카(tatanka)라고 불렀는데 이는 ‘큰 형’이라는 뜻으로 인디언들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중서부 지역에 주로 거주하던 라코타 부족은 결국 서부 지역 보호 지역으로 쫓겨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케인 카운티에 들소가 다시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수년전부터 일기 시작한 들소 복원 운동의 일환이다. 케인 카운티 주민들은 주민 투표를 통해 세금 500만달러를 들소 복원에 필요한 대지 확보 등에 사용하는데 동의했다. 그래서 들소가 지난해 12월부터 산림 보호소에 서식하게 됐다. 이후 들소를 관리하는 것은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맡게 된다. 시카고 지역에서 비영리단체를 통해 활동하고 있는 아메리칸 인디언 후손들이 들소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먹이를 주게 되는 것이다. 들소의 행동반경을 제한하고 관람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전기 펜스 역시 인디언들이 관리한다. 이를 통해 한때 중서부 지역을 거닐었던 들소들이 개체 수를 늘리고 주민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들소는 보통 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민첩한 동물이다. 무게만 1톤이 쉽게 넘어가고 시속 35마일로 달릴 수 있을 정도로 빠르다. 몸의 민첩성 역시 다른 여느 소들과 달리 빨라 6피트를 점프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북미 대륙에 서식하고 있는 포유류 중에서 가장 큰 동물이다. 현재 북미 대륙 기준 들소의 개체 수는 복원 노력의 결실로 약 50만마리까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케인 카운티 산림 보호소 외에도 시카고 지역에는 일부 단체에서 들소를 기르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바타비아의 페르미 연구소다. 입자 물리학을 주로 연구하면서 가속기를 통해 할 수 있는 각종 연구 실험을 하는 페르미 연구소 내 초원에 들소가 서식하고 있다. 현재 20마리 정도가 페르미 연구소에 살고 있는데 이들은 800에이커 넓이의 서식지에 퍼져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우주 생성의 원리를 연구하는 페르미 연구소에 들소도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다. 윌 카운티에 있는 마이드윈 국립 초원(Midewin National Tallgrass Prairie)은 연방 산림 보호국이 운영하고 있다. 이 초원 지역은 이전에는 육군에 공급하는 탄약 제조 공장이 있었던 곳인데 현재 70마리의 들소가 1000에이커 규모의 초원에 살고 있다. 일리노이에서 가장 많은 들소가 서식하고 있는 곳은 리 카운티다. 나추사 초원(Nachusa Grassland)은 식물원이 관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약 100마리의 들소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들소가 사는 지역은 높게 자라는 식물은 먹이가 되면서 땅에 붙어 자라는 낮은 식물들은 잘 자라게 된다. 또 들소가 지나가는 곳은 땅이 다져지면서 물이 고이게 되어 물 공급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된다. 아울러 자연 퇴비로 땅이 비옥해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결국 들소가 중서부 초원에 다시 살게 되면 이전 생태계로 돌아갈 수 있고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아메리칸 원주민들에게는 자신들이 오랫동안 살아왔던 땅으로 돌아올 수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시카고 지역에는 약 6만5000명의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은 원래 초원 지역에 살고 있었으나 미국 역사의 발전과 함께 보호 구역으로 쫓겨나거나 대도시에 살면서 자신들만의 유산과 전통을 잃어가고 있다. 이들에게 들소는 친척과 다름없다. 이들에게 들소는 단순히 사냥해서 음식으로 소비하고 말 것이 아니라 보듬고 함께 살아야 할 동반자로 여겨지고 있다. 케인 카운티에 들소가 들어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주민들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소식을 알리는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5만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올해 봄 부터는 들소를 보기 위한 주민들을 위해 셀프 가이드 투어도 마련된다. 이를 통해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역사를 널리 알리고 이들의 전통 음식과 약품도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시카고 지역에는 170개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연방 정부가 1950년대 자신들을 인디언 부족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정체성 유지에 힘겨워 하고 있다. 예전에 들소가 거닐었던 일리노이에는 단 1%의 대지만이 진짜 초원 지역으로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들소가 더 많이 서식할 수 있게 되고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들소와 함께 자신들의 DNA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것인지는 케인 카운티 산림 보호국의 시도가 어느 정도 해답을 가져다 줄 것이다. (편집국) Nathan Park 기자시사분석 nathan 케인 카운티 들소 복원 아메리칸 원주민들
2026.02.04. 13:50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측이 어제 당정 회의를 열고 대형마트 규제를 푸는 방안을 추진키로 한 것은 늦어도 한참 늦은 조치다. 당정은 민주당 의원 발의 형태로 대형마트의 심야 배송을 허용하자는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에 월 2회 의무휴업과 함께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금지하고 있다. 해당 시간대 온라인 배송도 할 수 없었다. 이와 달리 쿠팡 같은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은 새벽 배송을 포함해 사실상 24시간 영업해 왔다. 당정은 의무휴업은 그대로 두되 심야 온라인 배송은 허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당정이 규제 완화에 나선 건 3370만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해 물의를 빚은 ‘쿠팡 사태’가 계기였다. 대형마트가 규제에 묶이는 사이, 쿠팡은 온라인 쇼핑 위주로 재편된 시장의 선두주자가 됐다. 국내 온라인 유통업 비중은 지난해 기준 59%에 달한 반면, 오프라인 유통업인 대형마트나 기업형 수퍼마켓(SSM)의 점유율은 각각 9.8%, 2.2%에 그쳤다.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생겨난 것은 시대착오적인 규제가 오래 유지됐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규제는 골목상권 보호가 명분이었다. 지역 상권이 잠식되는 것을 막자며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했다. 하지만 유통 환경이 급변하는데도 규제 당국과 정치권은 규제를 유지했다. 그렇다고 딱히 재래시장이나 골목상권이 살아난 것도 아니었다. 대신 생겨난 것이 ‘쿠팡 독주’ 구조였다. 대형마트는 점포 인력 외에도 물류나 협력업체, 인근 상권 등과 함께 고용과 소비로 사슬처럼 얽히는 업종이다. 홈플러스 사례에서 보듯 지역 일자리와 세수, 골목상권까지 연쇄 효과를 낸다. 그런 만큼 규제를 풀어 공정하게 경쟁할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 해당 입법안을 낼 예정인 민주당 의원은 “전통시장 발전이라는 취지는 쿠팡의 등장으로 실효성이 없어졌다”고 인정했다. 지역 상인들과의 마찰이 우려된다면 지자체별로 주말 의무휴업일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등 세밀한 개선책을 만들기 바란다. 한국은 국회에서 ‘타다 금지법’이 통과되는 등 ‘모빌리티 혁신의 무덤’으로 불려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법인택시 단체가 현대차 등과 자율주행 업무 협약을 체결하자고 나서고 있다. 정책 당국과 정치권은 미래의 가능성을 없애버리는 규제의 위험성을 이번 기회에 깨닫기 바란다.
2026.02.04. 8:26
검찰이 경기도 성남시 위례신도시 개발 비리 혐의로 기소된 민간업자 등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 판결에 대해 항소를 포기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어제 오후 언론 공지를 통해 “법리 검토 결과 및 항소 인용 가능성 등을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개발 비리 사건과 비슷한 범죄 구조와 수법으로 이뤄져 ‘대장동 판박이’라고 불렸다. 검찰로선 대장동 사건에서 이미 항소를 포기한 마당에 이번 사건에서 항소를 제기하면 자기모순에 빠지는 점을 고려했겠지만,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서 상급심의 판단을 받아볼 기회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부적절한 결정이다. 연이은 항소 포기는 검찰이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대장동 사건에서 항소를 포기했다가 “수사·사법 시스템 파괴 행위”라는 맹비난을 받고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대장동 사건과 같은 피고인들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이 이번 사건에서 검찰의 항소 포기로 무죄가 확정됐다. 검찰이 1심 판결의 법리를 검토한 결과 무죄가 맞다고 판단했다면 처음부터 수사와 기소가 무리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셈이다. 그렇지 않다면 상급심 판단을 구하지 않고 이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번 사건의 항소 포기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결정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로선 ‘권력 눈치 보기’라는 외부의 의심과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에선 항소를 하는 게 마땅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 등에서 민간업자들에게 이익을 챙기게 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관련 재판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만일 검찰 지휘부에 이 대통령의 퇴임 후 ‘사법 리스크’를 덜어주기 위한 고려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중대한 실책이다. 범죄 수사와 기소에서 불편부당해야 할 검찰이 유독 정치 권력 앞에선 약해지는 모습을 되풀이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2026.02.04. 8:24
이재명 대통령이 어제(4일) 청와대에서 10대 기업 총수들과 만나 “메뚜기도 있고 토끼도 있어야 호랑이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말처럼 “경제는 생태계”이고 성장의 과실을 중소기업과 지방·청년도 골고루 누리는 게 중요하다. 재계는 10대 그룹이 5년간 270조원의 지방 투자를 하는 등 총 300조원의 투자계획을 공개했다. 대통령의 요청에 대기업이 적극 화답하는 모양새지만 기업도 고민이 없을 수 없다. 관세를 무기로 흔드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투자 압박에 대응하면서 산업 공동화를 걱정하는 국내 우려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말처럼 기업이 지방에 부담 없이 투자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인프라를 마련하고 교육·문화시설 등 정주 여건을 개선해 유인체계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정부의 대미 투자에 ‘상업적 합리성’이 중요하듯, 우리 기업의 지방 투자에도 ‘상업적 합리성’ 원칙이 흔들리면 안 된다. 그런 인프라를 잘 설계하는 건 정부의 몫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역할을 정부·여당이 잘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이달에 처리하겠다고 예고했다. 재계는 합병이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취득한 ‘비자발적 자사주’까지 일률적으로 소각하면 부작용이 크다고 하소연한다. 비자발적 자사주를 강제 소각하면 자본금이 축소되는 감자가 된다. 회사의 재산이 변동되면 상법상 채권자 보호 절차가 개시돼 채권자들이 이자율을 올리는 등 대출 조건을 바꾸거나 조기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상장사 2417개사 가운데 933곳이 이런 ‘빚 독촉’에 노출될 수 있다고 했다. 중장기적으로 주주 가치를 훼손할 수 있고, 산업의 구조조정을 막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상법 3차 개정은 속도를 내면서 기업이 호소했던 배임죄 개선은 별로 진전이 없다. 배임죄는 경영자의 사업가적 결단을 과도하게 제약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외국에 비해 한국의 배임죄 처벌이 과도해 기업의 의사 결정을 지연시키고 기업가의 혁신 경영에 걸림돌이 된다는 평가를 외면하지 말길 바란다.
2026.02.04. 8:22
행여 오해를 부를까 봐 미리 말하자면 필자는 1주택자이고 그중에서도 장기 보유자다. 집을 더 살 여력도 없고, 설사 여력이 있다 한들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이다. 그러니 집값이 빨리 잡혀 시장이 안정되기를 바랄 뿐,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악귀에 영혼을 홀린 사람이 아니란 이야기다.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결기에 찬 SNS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모두가 반신반의하던 코스피 5000도 보란 듯 해냈는데 부동산쯤이야 못 잡겠느냐는 자신감도 읽힌다. “전 세계 부동산 가격이 다 올라도 한국은 올라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절박함을 떠오르게도 하지만, 자신감과 의지만으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게 부동산이란 건 이제 우리 국민 모두가 아는 사실이 됐다. 아파트는 집이자 투자의 대상 모든 다주택자 악마로 몰지 말고 개인의 이익추구 욕망 인정해야 제대로 작동하는 정책 나올 것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를 끝내기로 한 결정은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다. 단기적으로는 매물을 유도해 부동산 오름세를 꺾어보자는 목적일 것이다. 보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다주택자의 부동산 이익으로 대표되는 불로소득은 고율의 세금으로 환수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한다는 민주당 정부의 기본 철학이 반영된 정책일 것이다. 부동산(不動産)은 그 이름처럼 수요가 있는 곳으로 옮겨지지도 않고, 신규 공급과 수요 사이엔 시차가 발생한다. 더구나 토지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과 달리 공급 총량이 한정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주무장관이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새 만들겠지만…”이라고 한 건 말 자체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니 남들보다 많은 토지나 부동산을 소유한 다주택자에게 적정한 범위 안에서 규제를 가하고, 그 정도가 문제일 뿐 상대적으로 많은 세금을 내게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모든 다주택자를 무주택 청년들의 피눈물을 짜내는 악마로 보는 대통령의 인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더러는 정부 정책의 빈틈을 노리고 금융 공학을 총동원해 아파트 사재기로 시장을 교란하는 탐욕의 화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복수의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무주택자에게 세를 주고 적정한 수준의 임대료를 받고 그에 따른 세금을 꼬박꼬박 낸다면, 임대 수입과 가치 상승이란 개인의 투자 목적과는 별개로 사회적으로는 주거 사다리의 일익을 담당하는 순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다주택자의 두 얼굴이다. “이번이 마지막 탈출 기회”라는 대통령의 SNS에 그럼 청와대 참모들은 뭐냐는 반론이 쏟아졌다. 전국적으로 230만명이 넘는다는 다주택자를 모두 악마로 볼 수 없듯, 청와대 참모들을 집이 두 채 이상이란 이유만으로 악마로 볼 순 없다. 약탈적 투기꾼이 아닌 다음에야 딱히 그들만을 비난할 이유도 없다. 만일 그들이 정녕 악마라면 대통령은 아무런 검증도 없이 악마를 참모로 뽑아 썼다는 이야기가 되고, 그들이 악질 투기꾼이 맞다면 5월 9일 이전에 집을 내놓더라도 참모로 계속 기용해선 안 된다. 악마가 개과천선했다고 대통령 참모로 쓸 수는 없지 않나. ‘집’과 ‘직’ 의 선택 갈림길에서 청와대 참모 일부가 집을 내놓았다는 소식은 그래서 ‘웃픈’ 소극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우린 그런 소극을 여러 편 보았고, 그 효과와 결말이 어땠는지도 알고 있다. 엊그제 참모 한 사람은 강남 집은 놔두고 용인 집을 내놨는데, 대부분의 다주택자들이 그런 선택을 할 것이다. 강남 집값에 주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고, 이론적으로는 강남과 비강남의 가격 차만 더 벌리는 효과가 생긴다. 선악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는 건 종교나 윤리의 영역에선 효용이 있겠지만, 현실 정치나 경제활동을 보는 기준으로는 잘 맞지 않는 법이다. 만인의 이익이 걸린 부동산만큼 정책과 정치가 뒤엉키기 쉬운 분야도 없다. 아파트는 ‘돈’이 아니라 ‘집’이라고 정책 설계자들은 강조하고 싶겠지만 현실의 아파트는 집인 동시에 욕망의 대상이며 값이 늘 변하는 상품이고, 그래서 투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다. 이 현실을 인정해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업자, 빵집 주인들의 착한 마음씨 덕분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세상은 선인(善人)들의 선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이익 추구에 의해 굴러간다는 뜻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익 추구 행위를 악마로 보면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부동산에 대한 욕망도 달리 볼 이유가 없다. 소수의 악인, 그보다는 많은 수의 선인,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범인(凡人)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예영준([email protected])
2026.02.04. 8:21
이재명 대통령의 언어 순발력은 국민 MC 유재석급이다. 장차관들이 대통령의 유머 감각을 따라가느라 헉헉댄다. 대통령 업무보고, 국무회의, 수석보좌관 회의가 완전히 공개되면서 증거 영상은 쌓이고 있다. 이 대통령의 화려한 언변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복싱 영웅의 풋워크와 펀치를 보는 것 같다. 지난 3일에도 명장면이 펼쳐졌다. 뜨거운 현안인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에 대한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다. 이 대통령은 구윤철 경제부총리의 사소한 언어 습관을 정책 메시지로 치환하는 역대급 순발력을 선보였다. ‘죄명’도 활용한 이재명식 유머 친밀감 주지만 방어기제 역할 방탄 입법 메시지로 읽힐 수도 ▶구윤철 부총리=“이번이 ‘아마’ 중과를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아마’ 이런 기회를 이용해 국민이 중과받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장관님, 말씀 도중에 ‘아마’라는 표현을 두 번 하셨거든요. ‘아마’ 없습니다.” 양도세 중과를 세 번이나 유예한 전례는 끝났고 이번엔 확실히 시행하는 것이어서 ‘아마’라고 말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구 부총리가 습관적으로 ‘아마’를 한 번 더 언급하자, “아마 하지 말라니까요”라고 쐐기를 박았다. 좌중에선 폭소가 터졌고, 메시지는 더욱 선명해졌다. 아마 구 부총리에겐 당분간 ‘아마’가 금지어일 것이다. 이 대통령의 언어 순발력은 자신을 주제로 삼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이른바 ‘자학(自虐) 개그’에 탁월하다. 3일 업무보고에서도 그랬다. 중소기업을 위한 기술 무료 지원 방안을 논의하다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자발성을 전제로 대기업 등이 참여하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내자 그를 빤히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산업부 장관님이 세상 험한 것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 정부 업무와 관련해 기업의 기부를 받으면 지금 검찰 입장에서는 제3자 뇌물죄입니다. 감방에 갑니다.” 비슷한 대안을 제시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에게도 “이재명 사례에 의하면 제3자 뇌물로 기소입니다” 라며 웃었다. 성남 시장 때 일을 빗댄 블랙 유머다. 당시 성남FC 구단주였던 이 대통령은 시의 인허가가 필요한 기업들이 180억원을 구단에 지원하는 데 관여했다. 윤석열 정부의 경찰과 검찰은 그 과정에 제3자 뇌물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2023년 기소했다. 이날 업무보고에서 중소기업 지원을 활성화하려는 장관들의 선의와 열정을 이재명 성남시장과 연결 지어 억울함을 호소한 셈이다. 지난해 12월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교육부 업무보고에서도 자학 개그가 작렬했다. 한국고전번역원장이 최근 학생들의 한자 실력 부족을 지적하며 “이 대통령 이름의 한자 ‘있을 재(在)’ ‘밝을 명(明)’도 잘 모른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그래서 ‘죄명’이라고 쓰는 사람이 있지 않냐”고 했다. 사법 리스크를 부각하는 멸칭마저 거리낌 없이 개그에 활용한 것이다. 신년 기자회견에선 검찰 개혁에 대한 질문에 “‘진짜 마녀’인 검찰에 가장 많이 당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제가 무죄 받은 것도 많아요. 그래서 살아서 여기까지 왔죠”라고 했다. ‘유머의 원천은 기쁨이 아닌 슬픔’이라고 했다는 마크 트웨인이 떠오른다. 자학 개그엔 이중성이 있다. 인간미를 극대화해 친근감을 높이지만 자신에 대한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어 기제이기도 하다. 빵 터진 자학 개그의 뒷맛이 씁쓸하기도 한 이유다. 최고 권력자의 꾸준한 자학 개그는 여당 지도부에 어떤 메시지로 전달되고 있을까. 마침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가 3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시대정신’을 내세워 “3대 사법개혁 법안을 신속히 처리하겠다”고 했다. 3대 법안인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제, 법왜곡죄는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해소를 위한 ‘방탄 입법’으로 의심받은 사안들이다. 대통령의 개그를 여당의 입법과 연결하는 건 견강부회일까. 말 그대로 ‘개그는 개그일 뿐’이길 바란다. 김승현([email protected])
2026.02.04. 8:18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검찰청 폐지를 결정함에 따라 오는 10월 2일 검찰청은 공식적으로 해체되고, 검찰청을 대신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의 2개 기관이 신설된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5일 정책 의원총회를 열고 공소청·중수청 설치 법안에 관한 당내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앞서 지난 2일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2월 내에 국회에서 공소청과 중수청 설치 관련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중수청·공소청 설치법 관련 정부안이 지난달 12일 공개된 이후 민주당 안팎에서는 수정 필요성을 제기하며 당내 찬반 의견 수렴 절차를 밟아왔다. 정부안에 대한 입법예고 기간이 지난달 26일 종료되면서 민주당은 남은 검찰개혁 법안 처리에 속도전을 펼 전망이다. 정청래 "절대 독점은 절대 부패한다" 이제 검찰청 폐지는 돌이키기 어렵게 됐고, 여당은 이참에 비가역적으로 쐐기를 박을 태세다. 최근 몇 년 검찰 조직은 대통령까지 배출했지만, 검찰이 스스로 권력으로 군림하면서 살아있는 권력에 치우치는 바람에 엄청난 민심의 역풍을 맞았다. 검찰청이 해체된다고 해도 누구 하나 공개적으로 반발하지 못할 정도로 검찰 개혁의 명분은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달 20일 민주당 주최로 공소청·중수청 입법 공청회가 열렸고, 유튜브로도 생중계됐다. 그날 공청회에서 검찰개혁론자들은 중수청이 '제2의 검찰청'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그러나 입법 공청회 전체를 유심히 살펴봐도 권한이 집중된 경찰에 대한 견제 방안은 보이지 않았다. 여 "공소청·중수청법 2월 처리" 검찰 해체하며 경찰 조직 비대 총경 이상 62%가 경찰대 출신 불법 사찰 '정보경찰'도 되살려 경찰, 권력 비리 수사에 소극적 경찰국 폐지, 경찰위 역할 미흡 그 자리에서 정청래 당 대표는 "절대 독점은 절대 부패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강조했다. 현대사를 돌아보면 누구도 반론을 펴기 어려운 말이다. 그런데 그의 논리는 공룡처럼 비대해지는 경찰에도 적용돼야 한다.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을 해체하는 수술 과정에서 정작 또 다른 수사 권력이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민의 경찰'을 표방하지만, 군사정권 이래로 검찰 못지않게 경찰에도 흑역사가 있다. 김근태 민청학련 의장 고문, 박종철 고문치사, 권인숙양 성고문 사건 등 인권 침해 사례를 헤아리기 어렵다. 문재인 정권, 경찰에 권한 몰아줘 민주화 이후 1991년 경찰은 내무부(행정안전부 전신)에서 경찰청으로 독립하면서 '민주 경찰'로 거듭났고 권한과 몸집도 커졌다. 검찰 수사를 받던 중 비극을 맞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승한 문재인 정권의 검찰 개혁은 경찰의 공룡화에 결정적 계기였다. 2020년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형사소송법을 66년 만에 개정하면서 경찰에 권한이 쏠렸다. 이 때 정치권력이 검찰의 경찰 수사 지휘권을 박탈하는 바람에 경찰 수사의 문제점과 인권침해 등을 촘촘히 따지던 검찰의 시어머니 역할이 사라졌다. 검찰의 수사권은 6대 범죄(중수청은 9대 범죄)로 대폭 축소됐고, 경찰은 모든 사건의 1차 수사권 및 수사종결권을 갖게 됐다. 반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2021년 1월 경찰 국가수사본부(국수본)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출범했다. 국가수사본부장(치안정감) 밑에 수사국·형사국·안보수사국 등이 포진했다. 국수본은 전국 18개 시·도경찰청과 일선 경찰서 수사 부서를 총괄하고, 약 3만 명의 수사 경찰을 지휘·감독하는 거대 조직이다. 검사 정원 2292명과 전체 경찰 13만여명의 숫자를 대비시켜 보면 국수본이 얼마나 방대한지 알 수 있다. 게다가 경찰청은 이달부터 전국 경찰서 198곳에 정보과를 부활시켜 1400여명의 '정보 경찰'을 배치한다. 2024년 2월 당시 윤석열 정부가 현장 치안 인력 증원을 이유로 정보과를 폐지하고 시·도 경찰청 중심의 광역정보팀으로 재편했는데, 이재명 정부가 원상 복구하는 것이다. 치안본부 시절 불법 사찰을 저지른 정보경찰의 부활이 왜 필요한지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경찰은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도 넘겨받았다. 경찰 권한 커지면 국민 삶 나아지나 현재의 경찰엔 엘리트 의식이 강한 경찰대학 출신들이 요직을 대거 차지하고 있다. 1981년 경찰대 1기 입학 이후 최근까지 경위 임관 졸업생은 누적 4000명을 돌파했다. 가장 최근 공개된 2022년 자료를 보면 총경 이상 경찰 754명 중 경찰대 출신이 469명(62.2%)으로 쏠림 현상이 심하다. 하지만 막강해진 경찰에 대한 견제 장치는 너무 헐겁고 부실하다. 윤석열 정부 시절이던 2022년 8월 행안부에 설치한 경찰국은 찬반 논란 끝에 이재명 정부 들어 폐지하기로 했다.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행안부 소속 심의·의결 기관으로 1991년 국가경찰위원회가 신설됐지만, 민주적 통제 역할은 여전히 미흡하다. 특히 경찰의 권력형 비리 수사는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이춘석·전재수·김병기·강선우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의 대형 의혹이 불거졌지만, 경찰은 증거자료나 신병 확보 시기를 놓치는 등 수사에 소극적으로 나서 증거인멸 기회를 준다는 비판을 받았다. 경찰은 인지 수사권을 갖고 있는데도 마땅히 해야 할 수사는 머뭇거리고, 권력의 입맛에 맞는 하명수사에는 민첩하게 반응했다. 그만큼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에 의구심을 키웠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1일 민주화운동기념관을 방문하기 직전 80주년 경찰의날 기념사에서 "수사·기소 분리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 경찰의 권한이 늘어나면 과연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지느냐는 질문에 우리 경찰이 더욱 진지하게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뿐 아니라 정부·여당도 제대로 응답해야 할 문제다. [인터뷰] "중국 공안처럼 한국 경찰도 비대해질 위험 크다" 허일태(75)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평생 연구한 진보 성향의 법학계 원로다. 형사법학회장과 형사정책학회장을 역임했고, 비교형사법학회 창립을 주도했다 .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촉구해온 허 교수를 부산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Q : -검찰청 해체를 어떻게 보는지. A : "검찰이 직접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해 권력을 남용했고, 표적 수사와 제 식구 감싸기 등 정치적 편향으로 법 집행의 공정성을 상실했다. 검찰청 해체는 검찰 권력의 역사적 종언을 고하고 법치주의 시대로 넘어가는 산통이다." Q : -중수청이 9대 범죄 수사를 맡으면 '제2의 중수부'가 될까. A : "기존 특수부의 수사 전문성을 살려야 하고, 권력형 비리를 성역 없이 수사하려면 행정부 영향력에서 벗어난 독립 수사기구가 필요하다. 민생 범죄는 경찰이 수사하고, 중대범죄는 중수청이 수사해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Q : -대통령은 보완수사권 필요성을 거론했다. A : "수사기관이 공소청에 넘긴 사건에 증거가 부족하거나 법적 맹점이 있을 경우 공소청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하지 못하고 수사기관에 돌려보내기만 하면 사건 처리가 지연될것이다. 보완수사권은 사법 시스템의 마비를 막을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국민권익 보호를 위해 불가피하다." Q : -2020년 문재인 정권이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줬는데. A : "독일·오스트리아 등 대륙법계 국가는 '경찰국가' 회귀를 막고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공권력을 쥔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주지 않는다. 그 대신 법률 전문가이자 준사법기관인 검사가 수사 주재자로서 경찰을 법률적으로 통제한다. 한국도 검사에게만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것이 맞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주면서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장기미제 사건이 급증했다." Q : -바람직한 검찰개혁 및 사법개혁 방향은. A :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제도는 많이 정착됐지만, 법을 다루는 검사와 판사의 잘못과 실수가 잦았다. 작동하는 제도를 한꺼번에 바꾸는 것보다 검사든 판사든 법을 제대로 안 지킨 경우 책임을 묻는 것이 더 효과적 개혁이다. 독일과 같은 '법왜곡죄'를 도입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온 이유다." Q : -1996년부터 한·중 형사법 학술 교류를 해왔는데. A : "중국 공안(경찰)은 광범위한 수사권과 행정 처벌권으로 형사사법 절차를 주도하는데, 중국 검찰은 수사종결권도 없이 기소와 제한적 감독에 그친다. 중국 학자들은 2020년 형사소송법 개정 이전의 한국을 모델로 여긴다. 인민의 권익을 충실히 보호하려면 공안 권력을 분산해 검찰이 수사종결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은 검찰을 개혁한다며 검찰 힘을 빼면서 경찰 권한이 과도해졌다. 이러다 자칫 한국 경찰이 압도적 권력을 휘두르는 중국 공안처럼 비대해질 위험과 우려가 크다." 장세정([email protected])
2026.02.04. 8:16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동맹국을 대상으로 전대미문의 도발을 감행했다. 베네수엘라의 강권 통치자 니콜라스 마두로를 생포하고, 나토(NATO) 동맹국인 덴마크로부터 그린란드를 가져오겠다며 군사 옵션까지 고려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미국 내에서는 미네소타에서 평화시위를 벌이던 시민 2명이 이민세관집행국(ICE) 요원에게 살해당했다. ICE는 또 이탈리아 동계 올림픽을 감시하겠다며 요원들을 파견했다. 유럽의 반(反)트럼프 시위는 미네소타 시위만큼이나 격렬했다. 미국 없는 안보 논의 촉발됐지만 독자적인 방위 체제 구축엔 한계 동맹은 트럼프 이후에도 지속 미국의 유럽 동맹국들의 분노는 임계치까지 치솟았다. 다보스 포럼에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강대국의 괴롭힘을 비판하며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는 은연중에 트럼프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동일시하며 캐나다와 같은 중견국들이 결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명의 바이든 행정부 출신 국가안보 전문가도 포린 어페어즈 1월호에서 비슷한 언급을 했는데, 앞으로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동맹국들은 이제 미국을 제외한 ‘안보 플랜 B’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강변했다. 트럼프 때문에 미국 주도의 동맹이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논쟁이 촉발된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견국들이 미국을 배제하고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결속한다는 이야기는 환상에 가깝다. 실제 카니 총리나 포린 어페어즈 기고자들 모두 실행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어떤 종류의 플랜 B도 그럴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먼저 트럼프의 광기 어린 발언과 SNS 게시물에 기반해 장기 전략을 수립할 수 없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소동 직후 주식시장과 공화당 의원들의 반발이 나오자 트럼프는 바로 물러섰다. 트레이드 마크인 ‘충격과 공포’ 정치를 멈출 가능성은 낮지만 유사 사건이 반복될수록 여론과 정치권의 반응도 더욱 악화될 것이다. 미국 정치는 미국과 동맹과의 연대를 침식하는 외교정책을 장기적으로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미국의 여론은 동맹국 편이지, 동맹을 공격하는 트럼프의 편이 아니다. 한국, NATO, 일본, 호주와의 동맹에 대한 지지율은 트럼프 행보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덕분에 여전히 높게 유지되고 있다. 트럼프가 캐나다 병합을 위협했을 때 미국인의 85%는 캐나다를 좋아한다고 답했고, 이 수치는 트럼프 지지율보다 두 배 이상 높다. 물론 미국인들은 동맹국들이 방위를 위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지만 동맹국을 괴롭히는 것에 찬성하지는 않는다. 셋째, 비용과 리스크 때문이다. 카니 총리는 기립 박수를 받았지만, 현실을 보면 캐나다의 1인당 국방예산은 미국에 비해 너무 낮다. 미국 없이 캐나다 수호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NATO 사무총장이 경고했듯이 유럽 역시 미국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다. 물론 유럽과 캐나다가 국방비를 증액하고 있지만 독자적인 군사 행동이 가능한 수준에 미치려면 한참 멀었다. 결국 복지를 희생해야 하는데 과연 국민이 이를 지지할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기존 동맹 네트워크가 이미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군은 그 어느 때보다 동맹국들과 통합돼 있고 서로에 대한 의존성이 매우 높다. 호주의 오커스(AUKUS), 일본 군 지휘 통제 체계의 현대화, 한미연합사령부의 강력한 연합은 동맹국 군대들이 자율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미국과의 상호운용성 강화에 나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동맹국은 자국 내 국방 혁신을 통해 역량 강화를 원하지만, 미국으로부터의 독립보다는 미국과의 집단 방위체제가 훨씬 저렴하고 효과적인 선택지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미국이 까다로운 상대라고 해도 결코 개별적으로 중국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동맹국들엔 트럼프의 변덕을 관리하는 것이 미국 없는 새로운 안보체제를 구축하는 것보다 나은 대안이다. 국방비 증액, 국방 생산 및 혁신의 현지화, 동맹국 간 연계 강화와 같은 헤징은 설령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미국 동맹 체제에 유익하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플랜 B’가 아니라 ‘강화된 플랜 A’일 뿐이다. 트럼프가 동맹 체제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동맹 체제는 트럼프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동맹은 미국 안보에 있어 필수 요소이며 미국민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2026.02.04. 8:14
퇴직자들이 IRP(개인형퇴직연금)로 돈을 옮겨 놓고 어떻게 해야 꾸준히 월급 같은 소득을 받을 수 있을지 많이 물어본다. 간단한 질문 같지만 고령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인구가 증가하는 시기는 자산 축적이 관심이었다면 고령사회가 되면 축적된 자산에서 소득을 만드는(from asset to income) 것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젊을 때 보험료를 내고 퇴직 후에 종신토록 연금을 받는 국민연금은 자산을 축적하고 거기서 안정적인 소득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제도이다. 문제는 국민연금 이외에 안전한 은퇴 소득을 만들만한 자산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원금 분할상환 되는 은퇴채권 연금처럼 균등한 현금 흐름 줘 물가연동까지 되면 금상첨화 소득이 나오는 자산은 예금, 국·공채, 실적배당 상품 등이 있다. 그런데 예금은 만기가 1년으로 짧아 긴 현금흐름을 만드는 데 맞지 않다. 최근에 자본시장이 호황을 보이면서 배당주, 리츠(REITs), 월배당 커버드콜 ETF 등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자산 가격이 크게 하락할 수 있다. 안전한 소득을 장기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금융상품은 국채와 보험사가 제공하는 연금이 있다. 국채는 5년 만기 이상이 국채 발행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만기가 길어(50년 만기도 있다) 오랜 기간 안정적인 소득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국채가 은퇴 소득을 만드는 데 가장 큰 단점은 현금흐름이 균등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10년 만기에 금리가 3%인 국채가 1억원 있다고 하자. 1년에 300만원 이자를 받으니 6개월이면 150만원(월 25만원)이다. 이 국채는 6개월마다 이자를 150만원씩 20번 지급한다. 다만 10년 만기 시점에서는 1억원 원금이 상환되므로 현금이 1억150만원 들어온다. 정리하면, 6개월마다 150만원을 19번 받다가 20번째 1억150만원을 받는다. 극단적으로 평탄하지 않은 현금 흐름이다. 이러다 보니 월 100만원의 현금흐름을 만들려면 4억원의 국채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10년 뒤에 돈이 왕창 만기 상환된다. 보통사람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노후 소득 자산이다. 현금 흐름을 평탄하게 하는 방법은 있다. 10년 만기 국채를 한꺼번에 4억원 사지 않고 ‘10년 만기 4000만원, 9년 만기 4000만원…1년 만기 4000만원’으로 만기가 다르게 나누어 사는 방식이다. 이러면 매년 4000만원의 원금이 상환되어 비교적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만들어진다. 매월 사면 더 평탄한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만기를 꼼꼼하게 나누어 사기 어려우며, 만기에 따라 금리도 모두 다르니 곤혹스럽다. 만기는 같지만 매입 시점을 달리할 수 있다. 은퇴를 10년 이상 앞둔 사람이라면 10년 만기의 국채를 매년(혹은 매월) 매입하여 퇴직 후부터 매년(매월) 채권 만기가 돌아오게 하면 된다. 이것 역시 실행하기 까다롭다. 당장 받게 되는 이자를 퇴직 전에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만만치 않다. 한 가지 간편한 방법은 채권 발행자가 은퇴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발행자가 원금을 만기에 일시 상환하지 않고 분할해서 상환해준다. 4억원을 대략 매년 4000만원씩 10년 분할해서 상환하는 식이다. 발행자는 불편하지만 투자자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주택담보대출의 일반적인 형태인 원리금균등상환 방식이다. 은퇴채권은 은퇴 소득뿐만 아니라 생애에 걸쳐 자산 축적과 인출의 과정을 모두 포괄할 수도 있다. 퇴직 전까지는 이자를 복리로 재투자해서 자산을 축적하고 퇴직 후에는 원리금을 분할해서 상환받으면 된다. 예를 들면, 55세에 3% 이자의 국채를 1억원 사서 10년 동안 복리로 두면 1억3400만원이 되는데 10년 후 퇴직할 때 이를 원리금분할상환으로 연금처럼 수령하는 것이다. 전자(10년까지)는 복리채이고 후자(10년 이후)는 원금분할상환채권으로, 둘이 결합된 구조이다. 거액을 발행하는 채권 시장에서 개인들의 수요에 맞춰 소매 채권을 발행하려면 비용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고령화로 재정적자가 증가하는 시대에 국채 수요 기반을 만들 수 있고 은퇴자들에게 안정적인 은퇴소득 수단을 제공해주는 장점이 있다. 은퇴채권에 물가연동까지 되면 노후의 안정적인 구매력을 확보하는 데 금상첨화(錦上添花)이다. 김경록 옵투스자산운용 고문
2026.02.04. 8:12
간만에 한 달째 박스오피스 1위인 로맨스 영화가 나왔다. ‘만약에 우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이 사랑 통역되나요?’는 글로벌 무대를 달구고 있다. 한쪽은 가난한 청춘의 현실 로맨스, 다른 한쪽은 그림 같은 화면에 최강 비주얼 커플이 눈 호강시켜주는 로맨틱 코미디로 결이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K컬처를 이끄는 K로맨스의 힘이다. (이하 스포 있음) #현실 공감 로맨스의 저력 ‘만약에 우리’ 충무로에는 ‘로맨스물은 잘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다. 송중기·박보영의 순수미가 절정인 ‘늑대소년’(2012)이 706만 명으로 역대 로맨스 흥행 1위이고 김아중의 뚱녀 변신 ‘미녀는 괴로워’(2006) 608만, 국민 첫사랑 수지의 ‘건축학 개론’(2012) 411만 등의 기록이 있지만, 모두 한국영화가 한창 흥했을 때 얘기다. 충무로 흥행공식이 한 작품 안에 코믹·액션·감동 등을 버무리는 쪽으로 바뀌면서 로맨스물은 흥행 타율이 낮은 마이너 장르가 됐다. 극장가 불황이 깊어진 2020년대 로맨스물로 200만을 넘긴 것은 3일 현재 234만 명을 모은 ‘만약에 우리’, 코믹 터치가 강한 ‘30일’(216만·2023) 두 편이다. ‘아바타’ 밀어낸 ‘만약에 우리’ 연애조차 사치인 현실 일깨워 넷플릭스 흥행작 ‘이 사랑…’ 비주얼의 매력으로 낭만 극대화 2018년 개봉된 중국 영화 리메이크작인 ‘만약에 우리’가 애초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한 것은 당연한 얘기였다. 그러나 함께 개봉한 ‘아바타:불과 재’를 밀어내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더니 4주째 정상을 지키며 장기 흥행 중이다. 작은 영화라 손익분기점도 일찌감치 넘어섰다. 영화는 10년 만에 재회한 남녀가 하룻밤 사이 과거를 돌아보는 얘기다. 평범한 스토리에 담담한 TV 단막극 같은 평작임에도 관객을 모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평범함과 현실 밀착 일상성 때문이다. 영화는 달달하거나 절절한 로맨스를 대리 체험하게 하는 대신 취업난·가난 등 연애마저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고달픈 청춘의 현실을 일깨운다(리얼리즘 영화의 무게와도 거리를 둔다). 불안한 미래 때문에 서로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 마지막이었던 남녀는 10년 만의 재회에서 비로소 “안녕”이라고 작별 인사를 한다. 구교환의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읽는 대목이 ‘눈물 버튼’이란 평이 많다. 배우 출신으로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했던 50대 중반 여성 감독 김도영이 안타를 쳤다. 문가영이 연기파 구교환에 밀리지 않으며 호연한 것도 인상적이다. 굳이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는 관람평이 많음에도 선전 중이니, 극장가 흥행 공식이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웰메이드 K로맨스의 매혹 ‘이 사랑…’ 최근 K로맨스 중 넷플릭스 글로벌에서 가장 흥행한 작품이다. 지난달 공개 2주차에 넷플릭스 비영어 TV 부문 1위에 올랐고 15개국에서 1위, 60개국에서 톱 10에 진입했다. 넷플릭스 통합(영어권 포함) 순위에서도 최고 3위, 3일 현재 6위로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3일 넷플릭스 국내 순위는 3위인데 인도네시아·대만·베트남에서는 1위고, 3위 안에 든 나라가 총 11개국이라 국내보다 해외 성적이 더 좋은 편이다. 넷플릭스에서 K드라마는 ‘오징어게임’(2021)의 성공 이후 ‘지금 우리 학교는’ ‘마이 네임’ 등 오리지널 액션·장르물이 인기를 견인하다가 최근에는 로맨스물이 크게 약진하는 모양새다. 2024년 ‘눈물의 여왕’(tvN)이 6억8000만 시청시간으로 K로맨스 1위를 찍으며 기염을 토했다. 시청 지역도 아시아·중동·남미 외에 영어권 국가로 확대되고 있다. 로맨스물은 반복·장기 관람이 많고, 드라마의 사회적 맥락에 대한 별다른 이해가 필요 없는 장르라 시청 허들이 낮은 편이다. 한류의 원조인 ‘겨울연가’부터 로맨틱 판타지를 최고도로 직조해내는 K로맨스는 시대 변화에 맞춰 전복적인 성 역할을 반영하며 변신해왔다. 이 드라마에서도 여주인공이 플러팅을 일삼고, 기습 키스를 먼저 하는 것도 여성이다. 드라마는 남모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여배우가 여러 외국어에 능하지만 사랑의 언어에는 서툰 통역사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통역’을 사랑의 소통을 상징하는 장치로 활용하고, 통통 튀는 대사와 심리적 티키타카에 능한 홍자매의 대본, ‘붉은 단심’으로 영상미를 보여준 유영은 연출의 결합이 시너지를 냈다. 캐나다·이탈리아·일본의 아름다운 배경에 ‘역대급 비주얼 케미’란 평을 받은 김선호·고윤정의 연기 합이 더해져 보는 눈부터 만족스런 드라마다. 특히 고윤정의 사랑스러운 캐릭터 연기가 일품. 후반부 밀도가 느슨해지는 한계에도, 자극적인 서구 로맨스물과 달리 동화적인 분위기, 매혹적인 비주얼, 감정의 빌드업과 폭발, 설렘 포인트의 적절한 배치로 로맨틱 판타지를 극대화해 일종의 대리 연애로 소비되는 K로맨스의 강점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차무희(고윤정 분)가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이중인격(도라미)이 되는 설정도 호불호가 엇갈리는데, ‘너는 사랑받을 수 없는 아이’라고 낙인찍어버린 어머니가 부정적인 자기로 내재화돼 행복을 망치는 ‘내 안의 훼방꾼’이라는 설정은 충분히 흥미롭다. 차무희는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을 믿지 못하고, 막상 사랑이 찾아오면 스스로 사랑을 깨버리는 회피형 인물이다. “절대로 사랑받을 수 없는 아이가 가장 안전하게 행복해지는 방법은 사랑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버리는 거야.” 도라미가 차무희에게 하는 말이다. 회피형 연애를 했거나 회피형 캐릭터인 사람들이라면 크게 공감할 대사다.
2026.02.04. 8:10
‘흠경각 옥루(玉漏)’라는 게 있다. 조선시대 자동 물시계 자격루의 발명가 장영실이 세종대왕만을 위해 만든 자동 물시계다. 겉모습만 보면 3m 높이의 아름다운 산이다. 꼭대기엔 해와 달의 움직임을 알려주는 혼천의가, 산의 사분면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담겨있다. 산 아래 평지엔 계절에 맞춰 모내기와 밭 가는 농부, 눈 내린 기와집 등이 미니어처로 돼 있다. 하지만 분명히 시계다. 네 명의 선녀 인형이 매시간 요령을 흔들고, 12지신상이 각자의 때에 맞춰 튀어나와 시간을 알린다.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이 조선왕조실록 등 옛 문헌을 연구해 2019년 복원에 성공한 ‘작품’이다. 자격루처럼 4각 형태를 한 물시계는 중국에도 있지만, 아름다운 산 모양을 한 물시계는 세계에서 옥루 하나뿐이다. 물시계 옥루엔 천문학과 애민(愛民) 정신, 그리고 예술성까지 담았다. 영국의 세계적인 과학사학자 조지프 니덤(1900~1995)은 옥루를 당대 동아시아 기계시계 기술의 정점이며, 천문 시계와 자동인형 예술의 결합체라고 평가했다. 옥루는 지금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2층 한국과학기술사관에 있다. 바로 옆엔 2022년 10월 서울 고궁박물관에서 옮겨온 보루각 자격루(복원품)가 자리 잡고 있다. 자격루가 전시돼 있던 자리엔 지금 물항아리만 남은 진짜 ‘자격루’ 일부(국보)가 대신 들어섰다. 아쉬운 건, 니덤이 극찬한 옥루와 자격루를 수도 서울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고궁박물관엔 지난해 84만 명이 찾았고, 이 중 29%가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화려한 한복을 빌려 입고 경복궁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고궁박물관에도 몰려들고 있다. 반면 ‘국립중앙’ 이름을 단 대전 한국과학기술사관엔 한 달 평균 1만7000명이 찾는다. 외국인 관광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사실상 건물만 남아 텅 빈 우리 궁궐의 모습이 떠오른다. 임진왜란과 대화재, 일제강점기 수탈 등의 아픈 역사 탓이겠지만 검증된 복원품이 있는데도 진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한 탓도 크겠다. 옥루가 들어섰던 흠경각은 경복궁 내 임금의 침전인 강녕전 바로 옆에 있었다. 임금이 직접 옥루의 작동을 살피고, 시간과 천문 현상을 보고받았다. 조선시대 국가 표준시계였던 자격루는 경복궁 경회루 남쪽 보루각에 있었다. 자랑스러운 국가문화 유산이라도 진품이 아니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워싱턴DC와 베이징의 한복판에 있는 그들의 과학관을 살펴볼 일이다. 최준호([email protected])
2026.02.04. 8:09
2024년 3월 11일자 ‘필향만리’에서 “능히 가까이서 취하여 비유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인(仁)을 행하는 방법이다”라는 뜻의 공자말씀 ‘능근취비(能近取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인을 행하게 하는 효력을 가진 말은 형이상학적 전문 담론이 아니라, 가까이서 찾은 최적 비유의 쉬운 말이라는 뜻이다. 중국의 옛 책 중에는 황석공(黃石公)의 『소서(素書』, 편저자를 알 수 없는 『증광현문(增廣賢文)』, 홍자성(洪自誠)의 『채근담(菜根譚)』 등 ‘능근취비’의 효력을 가진 명언집 성격의 책이 많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한때 추적(秋適)이 편간했다고 알려졌던 『명심보감』 외에 이런 부류의 책이 거의 없다. 엄격한 신분사회를 주도한 조선의 양반들은 지식을 독점한 채 성리학적 전문 담론에 몰두했을 뿐, ‘능근취비’의 명언집을 엮어 대중과 공유할 생각은 거의 하지 않은 것 같다. AI의 말을 듣느라 쫓기듯이 사는 이 시대야말로 ‘능근취비’의 쉽고 감동적인 사람의 말이 필요하다. 풍요와 과학의 힘이 인류를 복되게 했다지만, 만약 소크라테스·부처님·공자님·예수님 등의 귀한 말씀이 없었다면 인류는 진즉에 자멸했을지도 모른다. 말이 생명이다. AI 시대가 진화할수록 ‘능근취비’의 사람 말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지난주로 『논어』 말씀 연재를 마치고 금주부터는 매주 목요일에 더욱 평범한 ‘능근취비’의 명언을 모은 『증광현문』을 소재로 ‘필향만리’를 이어가고자 한다. 한 글자씩 한자를 익혀가며 읽다 보면, 삶의 지혜 터득뿐 아니라, 학생들의 어휘력과 문해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의 애독을 바란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2026.02.04. 8:06
1980년 3월 26일, 명품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가 뉴욕타임스에 이례적인 광고를 실었다. 광고는 “귀금속인 은을 누군가 매점매석해 아기용 수저와 티스푼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해악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월가 투자자들은 그 ‘누군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은을 쓸어담아 천문학적 수익을 올리고 있던 헌트 형제였다. 1974년 석유재벌 해럴드슨 헌트가 별세하자 막대한 유산을 상속한 삼 형제 중 두 아들이 은 매입에 나섰다. 이들은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금본위제의 종료를 선언하자 달러 가치 폭락을 예측했다. 오일쇼크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물가가 두 자릿수로 상승하자 확신은 강해졌다. 화폐 가치 하락에 대한 대안으로 은을 선택했다. 1965년 정부가 은화 주조를 중단하자 은이 본격적으로 상품으로 거래되었다. 그전까지 미국 정부는 주조대상인 은 가격 상한선을 온스당 1.29 달러로 제한했다. 하지만 광학필름 등 산업재 수요가 급등해 내재가치가 공식가격을 뛰어넘었다. 은화를 녹여 실물로 보유하는 경우도 늘었다. 1974년 은 가격은 온스당 5달러를 넘어섰다. 전설적 투자자 워런 버핏도 1960년대 후반 은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펀더멘털을 보고 은을 사 모았다. 그는 몇 배의 이익을 거두었다. 헌트 형제는 가족 자본까지 끌어모아 약 1억 온스의 은을 매수했다. 전체 민간 보유 물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더불어 파생상품인 은 선물 계약까지 공격적으로 사들였다. 1980년까지 이들이 매입한 은 포지션 총액은 45억 달러에 달했다. 설상가상, 헌트 형제는 거래소 등에서 투자금을 차입해 과도한 레버리지를 일으켰다. 헌트 형제가 실제 투자한 돈은 10억 달러에 불과했다. 헌트 형제가 보유한 은 선물 매수 포지션은 뉴욕 상품거래소(COMEX) 전체의 69%에 이르렀다. 개인이 은 가격 방향을 통제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1980년 1월 은 가격은 마침내 온스당 48달러로 치솟았다. 수년 만에 몇 배가 부풀려졌다. 티파니의 뉴욕타임스 광고가 게재된 다음 날, 상품거래소는 새로운 은 선물 거래 규제를 발표했다. 이 규제를 통해 거래소는 은 매수 포지션의 청산만 허용하고 신규 매입을 금지했다. 선물 거래에 필요한 증거금 요건도 대폭 강화했다. 거래 제한 충격으로 은 가격은 온스당 11달러로 급락했다. 목요일의 폭락으로 은 시세의 절반이 하루 만에 사라졌다. 헌트 형제는 17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 펀더멘털에 투자한 버핏은 큰 수익을 남겼지만, 가격 움직임에만 집중했던 헌트 형제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오래된 사건이지만, 교훈은 새롭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관세 이야기』 저자
2026.02.04. 8:05
스승과 제자 사이(師承)는 아니지만 나는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박시인(朴時仁) 교수와의 인연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젊은 시절에 대학출판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신입생을 위한 고전 백선(百選)의 선정과 필자 섭외를 맡았다. 나는 먼저 박시인 교수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넣고 원고 청탁을 위해 뚝섬 자택을 찾아뵈었다. 취지를 설명했더니 박 교수의 말씀인즉, “나라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보다 먼저 권할 책이 있소.” “그게 뭔가요?”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과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입니다.” 나는 당황했다. 내가 처음 들어 본 책이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박 교수가 기독교인인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학교에 돌아와 편집회의에서 그 안건을 보고했다가 한마디로 거절되었다. 보에티우스(480?~525)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후손으로 학식과 덕망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는 30대에 집정관과 원로원의원을 지냈고 뒷날 두 아들이 또한 집정관이 되었다. 그는 플라톤의 이상주의적 정의를 로마에 구현해보고 싶었던 마지막 철학자요, 시인이자, 정치가였다. 황제 테오도리쿠스도 그를 신임했다. 그러나 그는 부패한 로마의 정가에 정적이 많았고, 아리아교도인 황제가 가톨릭 신자인 그를 혐오했다. 보에티우스는 끝내 불의한 정적의 공격을 이겨 내지 못하고 사형 판결을 받은 다음 롬바르디아의 파비아로 유배되었다. 세속의 온갖 부귀공명을 모두 누리다가 이제 죽음을 기다리며 옥 창 너머로 아들을 보듬으며 아픔을 달랬다. 삶을 되돌아보니 인생에서 누린 극단의 행복과 나락으로 떨어진 불행을 상쇄하면 세상 누구나 다 같더라는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그는 불의한 행복보다는 정의로운 죽음을 택하되 운명과의 투쟁에서 역경을 피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2026.02.04. 8:02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2.04.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