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惡夢)은 나쁜 일을 비유하는 대표적인 어휘입니다. 악몽이었다는 말을 하면 심각하다는 뜻입니다. 저는 지옥이 있다면 악몽을 되풀이하여 꾸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악몽의 결과로 가위에 눌리기도 합니다. 가위에 눌리는 밤이 계속된다면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육체에 가한 고통이 아니지만 견딜 수 없이 괴롭습니다. 아픕니다. 답답합니다. 숨을 쉴 수조차 없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최근에 저는 나쁜 꿈을 꾸었습니다. 나쁜 꿈은 좋지 않은 꿈이고 힘든 꿈입니다. 그럼 어떤 꿈이 힘이 들까요? 많은 경우에 꿈은 내 심리 상태를 반영합니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 꿈을, 걱정이 있으면 그 내용이 꿈에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내 머릿속은 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잠은 정리의 시간입니다. 잠을 못 자면 견디기 힘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쁜 일이나 생각이 많으면 당연히 악몽을 꿉니다. 특히 걱정이나 마음속 찜찜함은 악몽의 주된 원인입니다. 내게 닥칠 위험이나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그대로 내게 근심거리가 되고, 꿈은 그 복잡함이나 위험을 정리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꿈은 내 심리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내 삶의 반영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아무리 미래는 걱정하지 말고,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라고 해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꿈이야말로 현재에 충실한 결과입니다. 자면서까지 내 문제를 맞닥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몽은 괴롭지만 고맙기도 합니다. 악몽은 땀을 흐르게도 합니다. 몸은 누워있어도 마음은 사방천지를 뛰어다니니 힘이 듭니다. 한참을 허덕이다가 깨어납니다. 숨은 차지 않는데, 심장이 뜁니다. 괴롭습니다. 묘한 것은 육체적으로 힘이 들면 시체처럼 잠이 드는데, 정신적으로 힘이 들면 꿈속에서 헐떡입니다. 악몽에 의한 땀이 뜨겁지 않고 차가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심리적인 땀은 식은땀이고, 진땀입니다. 평상시에도 긴장이나 공포 앞에서 우리는 쉽게 차가운 땀을 흘리곤 합니다. 악몽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꿈을 꾸었다면 슬픈 꿈이지 악몽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싸우는 꿈, 화내는 꿈, 실수하는 꿈이 진짜 악몽입니다. 특히 되돌릴 수 없는 문제를 나 또는 상대가 일으키는 꿈은 엄청난 악몽입니다. 그러니 놀라서 깨어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합니다. 악몽에서 깨어난 새벽이면 삶이 결코 쉽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허나 어쩌겠습니까? 오늘 하루도 살아가야 하는 것을. 악몽은 나의 걱정과 근심을 다시 확인시켜 주지만 그래서 거짓의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아닌 척하고 살아가는 내게 진짜 나의 모습이 무언지 보여줍니다. 그래서 꿈속에서는 엉엉 울기도 하고, 심한 욕을 하기도 하며,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내 숨겨진 모습이 꿈에 나타나면 그야말로 깜짝 놀랍니다. 무의식 속에 박혀있던 내 내면의 모습입니다. 악몽은 내게 반성하고 화해하고 해결하라고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감사하며 살라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악몽은 괴롭지만 고맙습니다. 악몽을 이기는 법은 어쩌면 지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겸손하게 내 처지를 돌아보고, 사람들에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것이 악몽을 이기는 시작입니다. 그래서 새벽기도가 필요할 수도 있겠습니다. 악몽을 꾸지 않으려면 평상시에 잘 살아야 합니다. 그게 핵심입니다. 공자께서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고 했듯이 마음을 따라 하고 싶은 일을 해도 걸리는 일이 없는 삶을 살면 자연스레 악몽도 사라질 겁니다. 그게 바로 불교의 오매일여(寤寐一如)의 경지겠지요.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악몽 심리 상태 마음속 찜찜함
2026.02.08. 20:14
한인타운에서 햄버거보다 접근성이 좋은 음식이 멕시칸 음식인 타코와 부리토다. 같은 맥락에서 위스키, 보드카보다 우리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술이 멕시코의 전통주인 데킬라다. 빨리 취하고, 빨리 깨고…. 숙취가 심하지 않은 술로 나는 단연 데킬라를 꼽는다. 수많은 칵테일이 있지만 가장 잘 알려진 것 중 하나가 마가리타다. 마가리타는 화려한 색과 달달함으로 미국에서는 주로 여성을 위한 칵테일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마가리타는 사실 남녀 모두에게서 사랑받는 멕시칸 고유의 칵테일이다. 그리고 여기에 사용되는 술이 바로 데킬라다. 데킬라는 소주보다 알코올 성분이 높은 위스키나 보드카와 같은 과로 멕시코를 대표하는 독주다. 멕시칸들은 순한 듯해 보이지만 과거 서부시대에는 황야를 주름잡고 다녔던 사람들의 후손이다. 그들의 선조는 미국 서부 목장에서 출발해 거칠고 드넓은 황야를 거쳐 동부로 소 떼를 몰고 다녔던 사람들이다. 당시 소몰이꾼들은 멕시칸 특유의 남자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술을 마실 때면 끝없이 원샷을 외쳤다. 데킬라를 마신 후에는 손등에 묻힌 곱게 간 다크 로스트 커피 가루와 바닷소금을 먹고, 라임을 입에 물었다. 커피와 소금은 데킬라의 향을 더해주고 라임은 다음 샷을 위해 혀를 리셋해 주는 효과가 있다. 여기서 커피 맛은 특히 엑스트라 아네호와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하는데 엑스트라 아네호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하기로 한다. 데킬라는 멕시코 할리스코주와 그 주변 지역 등 지정된 곳에서, 특산물인 블루 아가베종 선인장으로 주조되어야만 데킬라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 이들 지정된 곳 이외의 지역에서는 아무리 블루 아가베로 술을 만들더라도 데킬라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한다. 그래서 나머지는 그냥 아가베 스피릿이라고 불린다. 샴페인이나 보르도 와인과 같은 이유다. 데킬라는 특정 지역에서 제조되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명칭인 것이다. 그런데 데킬라에도 등급이 있다. 데킬라에 대해 좀 아는 척을 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키워드가 ‘엑스트라 아네호’다. 데킬라도 프리미엄 위스키처럼 오크통에서 1~3년간 숙성하면 아네호, 3년 이상 숙성이 된 것은 엑스트라 아네호라고 부른다. 이것은 데킬라계의 꼬냑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프리미엄급 데킬라다. 요즘 한창 인기 높은 데킬라 브랜드인 ‘돈 홀리오 1942’가 엑스트라 아네호급에 속한다. 물론 다소 대중적인 데킬라인 호세 쿠에보나 빠뜨론의 경우에도 엑스트라 아네호급 브랜드가 있다. 멕시코에 가면 미국의 와인 샵 처럼 다양한 종류의 데킬라를 구비하고 있는 대형 데킬라 샵들이 많다. 이들 업소에는 마치 와인 테이스팅처럼 데킬라 테이스팅 세션이 있기도 하다. 작은 플라스틱 샷 잔에 술이 제공되지만 전부 마시다 보면 어느새 취기가 확 오름을 느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특히 엑스트라 아네호 데킬라의 테이스팅 방법은 와인 테이스팅과 비슷하다. 데킬라를 한참 동안 입에 머금고 혀로 돌리며 코로 올라오는 향을 느낀 후, 위스키처럼 복합적인 맛의 레이어를 혀로 즐기다가 목으로 넘기고 부드러운 여운을 즐기면 된다. 꿀팁으로 엑스트라 아네호는 블랜딩이니 칵테일을 피하고 스트레이트로 즐길 것을 권한다. 라임이나 탄산수 등을 섞지 말고 본연의 맛과 향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 좋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데킬라 데킬라 테이스팅 대형 데킬라 와인 테이스팅
2026.02.08. 19:45
빌리 아일리시의 ‘와일드 플라워’가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 ‘골든’을 밀어냈다. 지난 1일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노래 부문에 와일드 플라워가 호명되자 빌리 아일리시는 순간 놀란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본인도 의외의 수상이라고 여긴 탓일까. 수상 소감은 생뚱맞았다. “도둑맞은 땅에서는 그 누구도 불법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No one is illegal on stolen land) 박수가 쏟아지자 빌리 아일리시는 소감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ICE(이민세관단속국)는 엿이나 먹어라.”(Fxxx ICE) 이 같은 발언은 곧바로 빌리 아일리시의 발목을 잡았다. 시상식 직후 유명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인 에릭 에릭슨이 이 발언을 꼬집었다. 빌리 아일리시는 지난 2020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집을 찾아와 만남을 요구한 남성들을 스토커로 신고하며 법원에 접근금지 명령을 요청했었다. 이를 언급하며 에릭슨은 “도둑맞은 땅에서는 누구도 불법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그녀는) 그들도 집으로 초대해야 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도둑맞은 땅의 일부인 캘리포니아에서 1000만 달러를 호가하는 대저택에 거주하는 빌리 아일리시를 향해 플로리다 주지사 론 디샌티스도 “도둑맞은 땅 위에 세워진 그녀의 저택도 곧 내놓아야 하겠네”라고 비웃었다. 빌리 아일리시는 정작 도둑맞은 땅에 살면서 왜 집도 사고, 돈도 버는가. 참 아이러니하다. 미국 4대 시상식 중 하나로 꼽히는 그래미 어워즈는 이제 과거의 명성이 무색해지고 있다. 시청자 수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1984년에는 5167만 명이 이 시상식을 지켜봤지만, 인기는 해가 갈수록 시들해졌다. 지난해 시청자 수는 1540만 명으로, 전년(1640만 명) 대비 9% 감소했다. 전성기 대비 시청자는 무려 70% 이상 급감했다. 이 같은 쇠락은 비단 그래미 어워즈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월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 역시 체면을 구겼다. 조 로건은 207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팟캐스트 진행자다. 그는 지난달 29일 방송에서 올해 골든 글로브가 새롭게 신설한 ‘최우수 팟캐스트’ 부문에 자신이 후보로 오르지 않은 이유를 털어놨다. 이유는 간단했다. 후보 등록비조차 낼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수천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팟캐스트 운영자인데, 굳이 등록비까지 내며 자신의 영향력보다 못한 시상식에 이름을 올릴 필요가 있겠는가. 그는 “주최 측에서 후보 등록을 부탁했는데, 등록비가 500달러라고 하더라”며 “나는 6년간 이미 팟캐스트 1위를 지켜왔는데, 갑자기 턱시도를 입은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누가 최고인지 가리는 대회를 내가 왜 신경 써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일갈했다. “난 전혀 상관 안 한다. 이미 1위다. 골든 글로브는 자기들끼리 상을 주겠다고 결정한 사람들이 모인, 그들만의 모임일 뿐이다.” 예술계도 엘리트, 소위 기득권의 힘이 예전 같지 않다. 그래미와 골든 글로브, 심지어 오스카도 마찬가지다. 실제 영향력을 가진 이들과 대중은 점점 이념적으로 치우치는 시상식에 서서히 등을 돌리고 있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자유는 있다. 그러나 연예인이 수상과 무관한 정치색이 잔뜩 묻은 개인의 주장을 마치 정답인 것처럼 늘어놓는 행위는 본연의 예술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대중이 시상식에서 아티스트에게 듣고 싶은 것은 정치적 올바름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의미, 작품의 본질, 그리고 그에 따른 소감이다. 아티스트라면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말하는 것이 우선이다. 자꾸 예술 활동과 아무 상관없는 발언을 하니, 대중도 아티스트의 외적인 부분에 대해 비판하는 것 아닌가. 조 로건은 골든 글로브를 비꼬며,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를 향해 팟캐스트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그냥 꺼지라 그래.” (Fxxx off) 장열 /사회부장중앙칼럼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 직후 후보 등록비
2026.02.08. 19:42
일본 총선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과 일본유신회 연합이 압승을 거뒀다. 자민당은 8일 출구조사 결과 단독 과반을 넘어 개헌선에 육박하는 의석을 확보하며 강력한 국정 동력을 얻게 됐다. 그간 연립여당의 조력으로 간신히 과반을 유지해 온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 선거 압승을 계기로 국정 장악력을 극대화하면서 일본의 우경화 행보와 평화헌법 개정 논의가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그간 총선에서 ‘일본을 강하게 풍요롭게’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러면서 헌법 9조 개정을 통한 자위대의 정식 군대화와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의 복귀를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만약 일본이 평화헌법의 굴레를 벗고 공격적 군사 역량을 갖추게 된다면 이는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일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최고조로 치닫는 상황에서 일본의 재무장은 역내 군비 경쟁을 촉발하고, 동북아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특히 다카이치 정부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당분간 쉽지 않아 보인다. 일본 정부의 강경 노선이 영토 분쟁이나 역사 문제와 결합할 경우 중·일 관계가 극단적인 ‘강 대 강’ 대치로 치닫게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주목할 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급변한 국제 환경이다. 미국은 최근 국가방위전략 등을 통해 “역내 문제는 당사국이 책임져야 한다”며 일본에 더 많은 안보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빌미로 일본이 독자적인 군사력 강화에 나설 경우, 한·미·일 안보 협력 체제의 균열은 물론 동북아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한·일 관계는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 간 셔틀 외교가 재개되는 등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양국이 신뢰를 바탕으로 경제·안보 협력을 다져야 할 시기에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와 개헌 드라이브가 이 온기를 식혀서는 안 된다. 당장 22일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가 일본의 의중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행사에 각료급을 파견하거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같은 도발적 행위를 자제해야 마땅하다. 동북아의 격랑이 높아진 현실에서 한·일, 한·미·일 협력 체제 강화에 더욱 진정성 있게 나서는 다카이치 정부의 모습을 기대한다.
2026.02.08. 8:29
여당 대표가 특검 후보 추천에 대해 공식 사과하는 보기 드문 일이 어제 벌어졌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수현 수석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당의 인사 검증 실패로 이재명 대통령께 누를 끼쳐드린 데 대해 죄송하다”고 했다. 정 대표의 이례적인 사과는 민주당이 추천한 2차 종합특검 후보가 이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데 따른 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2명의 특검 후보 중 조국혁신당이 추천한 판사 출신 권창영 변호사를 임명했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준철 변호사가 임명되지 않은 배경이 대북 송금 사건에서 이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은 쌍방울 측의 변호를 맡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민주당의 한심한 모습은 국민 앞에 불편한 진실을 들킨 것이다. 말로는 특검의 정치적 중립성을 최고 덕목으로 외치더니 정작 후보 추천부터 온갖 정치적 선호를 따져 온 은밀한 관행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 대표의 사과는 이 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는 ‘칼’을 선택했다는 자백이 아닌가. 검증 실패는 정치적 유불리 계산을 잘못했다는 반성인 셈이다. 친명계 이건태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배신”이라며 전 변호사를 추천한 이성윤 최고위원의 사퇴를 촉구했다.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추진에 반발하는 친명계는 특검 추천에서도 정 대표가 독선적 당 운영을 했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의 심기를 경호하며 친청(친 정청래 대표)계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철저한 검증을 하지 못한 이유가 윤석열 검찰에서 핍박받은 검사 출신이었기 때문이라는 민주당의 해명도 어이없다. 전직 대통령에게 핍박받은 게 추천 이유고, 현직 대통령 맘에 안 든 게 낙마 사유란 말인가. 이런 식으로 특검을 추천해 놓고 국민 앞에 공정성을 장담했다니 말문이 막힌다. 윤 전 대통령에게 사형 구형까지 내려진 상태에서 진행되는 2차 특검은 재탕 수사, 예산 낭비,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한 꼼수 등의 우려가 제기돼 왔다. 그런 와중에 대통령 마음에 들지 않은 특검 후보를 골랐다는 이유로 여당 대표가 사과하는 촌극까지 벌어졌으니 권창영 특검팀의 부담은 더 커졌다. 이쯤 되면 사과받아야 할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 아닌가.
2026.02.08. 8:26
최근 빗썸에서 발생한 ‘유령 코인 60조원’ 오지급 사태는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구조적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빗썸은 지난 6~7일 이벤트 당첨금을 249명에게 지급하는 과정에서 직원이 지급 단위를 ‘원’이 아닌 ‘비트코인’으로 잘못 입력해, 당첨금 62만원이 62만 비트코인(당시 60조원 규모)으로 지급되는 초유의 사태를 빚었다. 대부분의 비트코인은 즉시 회수됐지만, 입력 오류가 이처럼 막대한 자산 이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결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사태의 본질은 직원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이를 차단하지 못한 내부 통제 실패와 보안 시스템의 구멍에 있다. 원 단위 이벤트 지급에서 비트코인 단위의 대량 이전이 실행될 수 있었다는 것은 기본적인 검증 절차조차 작동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는 가상자산 거래소가 고객 자산을 자체 지갑에 보관한 채, 실제 블록체인 기록 없이 내부 장부상 숫자만으로 거래를 처리하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빈번한 거래에 따른 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식이라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실재하지 않는 유령 코인이 얼마든지 생성·유통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문제는 이번 유령 코인 사태가 가상자산 거래 불안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상자산과 금융시장이 밀접하게 얽혀 있는 것을 감안하면 꼬리에 불과한 가상자산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은 자칫 몸통인 금융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하는 ‘왝더독’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그간 가상자산 거래소에서는 전산 오류, 출금 지연, 접속 장애 등이 끊이지 않았다. 현재 국내에선 2024년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을 통해 이용자 자산 분리 보관, 보험·예치 의무, 불공정 거래 규제 등 최소한의 법적 장치가 있다. 그러나 이 정도 규제로는 인적 오류와 운영 리스크까지 막기엔 역부족이다. 국회는 현재 논의 중인 가상자산 2차 규제 법안을 서둘러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규모 자산 지급과 이전에 이중·삼중 검증과 자동 차단 장치를 의무화하고, 내부 통제 실패에 대해서는 경영진 책임을 명확히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2026.02.08. 8:24
미국이 희토류 독립을 위한 일전(一戰)을 선포했다. 전 세계 정제(精製) 시장의 90% 이상을 독점한 중국의 무기화에 대응해 칼을 빼들었고, 55개국이 가세했다. 4일 워싱턴 미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핵심 광물 장관급 회의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중국의 저가 공세로 가격이 급락해도 동맹국 기업이 망하지 않도록 가격 하한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덩샤오핑의 희토류 중시 전략으로 중, 최고 기술로 미국 산업 초토화 미, 중국식 국가 자본주의로 반격 한국, 갈등 속 ‘희토류 폭탄’ 경계를 미국은 지난해 4월 중국에 허를 찔렸다.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45% ‘관세폭탄’에 맞서 희토류 수출통제로 반격했다. 미국의 방산·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모든 산업이 비명을 지르자 트럼프는 꼬리를 내렸다. 상호관세를 30%로 낮추기로 시진핑과 전격 합의하고 ‘90일간 휴전’을 선언했다. 호승심(好勝心)이 강한 트럼프는 120억 달러를 투입해 핵심 광물을 전략적으로 비축하는 ‘프로젝트 볼트(Project Vault)’를 2일 직접 발표했다. 오죽했으면 “1년 전과 같은 일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고 했을까.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핵심 광물 전략이 경쟁국인 중국의 국가 주도 자본주의 모델을 닮아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USA 레어 어스’ 등 민간 채굴업체에 자금을 지원해 주고 주식 일부분을 가져가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어떻게든 중국의 뒷덜미를 잡아야 하는 트럼프의 초조한 심리가 드러나고 있다. 미국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최강의 희토류 생산국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덩샤오핑이라는 중국의 거인(巨人)을 만난 것이다. 덩샤오핑은 1992년 “중동에는 석유가 있고,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선언했다. 희토류가 단순한 ‘광물’에서 ‘국가의 전략적 자산’으로 격상된 것이다. 이때부터 희토류 관련 기술개발은 국가 프로젝트가 됐다. 덩샤오핑이 이끄는 중국 정부는 그 전부터 베이징대 화학교수 쉬광센(1920~2015)에게 희토류 정제 연구를 시켰다. 쉬광센은 용매 추출법(Solvent Extraction)을 개발했다. 희토류 원소 17종을 고순도로 분리하는 세계 최초의 대량 정제 기술이었다. 1990년대에 중국은 고순도 희토 제품을 대량 생산해 세계시장에 싼 가격으로 쏟아냈다. 중국 이외의 희토 기업은 줄줄이 도산했다. 이제 중국이 희토류 공급 수도꼭지를 잠그면 미국의 주력 산업은 올스톱된다. 희토류가 강력한 무기가 된 것이다. 미국은 후회하고 있다. 광물장관 회의에서 J D 밴스 부통령은 “첨단 기술과 데이터센터가 중요하지만 경제는 여전히 실물 자원에 의해 움직인다. 핵심 광물보다 더 실물적인 것은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우리는 새롭고 화려한 것에만 매료돼 낡고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것들은 외주화했다. 마운틴 패스 (희토류)광산과 핵심 광물 대부분이 쇠퇴하고 사라지도록 방치했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경제적 안보와 미래까지 외주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미국이 반격에 나섰지만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기술과 인력의 생태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정제 시설을 복구하고 수율을 안정화하는 데 5~7년이 걸린다.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인 18~24개월은 희망사항이다. 호주 광산 산업 전문 분석기관인 ‘디스커버리 얼러트’는 “미국 전략이 채굴에만 치우쳐 있고 정제 기술 격차를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에너지 전문 로펌 ‘베이커 보츠’도 “중국은 태동하는 미국 정제 기업들을 도산시킬 수 있는 ‘약탈적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희토류 산업이 수렁에 빠진 것은 정치 리더십의 오판(誤判) 때문이다. 덩샤오핑이 희토류를 전략산업으로 격상시켰을 때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거꾸로 갔다. 까다로운 환경규제를 들이댔고, 중국의 저가 공세에 기업이 줄도산하고 마운틴 패스 광산이 폐광되는 것을 방치했다. 미국 신용평가회사 S&P는 미국의 허가 절차가 까다로워 광산을 건설하는 데 평균 29년이나 걸린다고 했다. 규제와 소송에 익숙한 법률가들이 정부와 의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중국은 공학도가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2002년에는 최고 의결기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공대 출신이었다. 중국의 제조업 종사자는 1억 명이 넘어 1300만 명인 미국의 8배다. 미국이 중국과의 희토류 전쟁에서 단숨에 이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봉쇄망인 ‘포지(지전략적 자원 협력 포럼) 이니셔티브’의 의장국이 된다. 미국의 ‘관세 폭탄’도 버거운데 중국의 ‘희토류 폭탄’까지 맞으면 감당할 수 있을까. 살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날아가는 철새들은 잠을 잘 때도 한쪽 눈은 뜨고 있다. 한국의 처지는 저 철새와 같다. 항상 깨어서 위험에 대비하고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지금처럼 위험에 눈감고, 편을 가르고 싸우기만 하면 공멸한다. 이하경([email protected])
2026.02.08. 8:22
“승욱상, 주미대사 인선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 한·일 관계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묻지마 대일 강경론에 장단만 맞췄던 분 아닙니까.” 지난해 8월 회사 주변 식당에서 만난 일본 유력 언론의 한국 전문가가 던진 말이다. 평소 한국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그는 “너무 걱정스럽다”며 주미대사로 막 내정된 강경화 대사에 대해 박한 평가를 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맹활약 중인 야마다 시게오(山田重夫) 주미 일본대사를 거론했다. 야마다가 누구길래. 일본 외무성 내 손꼽히는 미국통인 그는 트럼프 1기 때 일본 총리실 국가안전보장국 심의관으로 미·일 관계를 조율했다. 2023년 말 주미대사로 부임했고, 트럼프 2기 출범 뒤 워싱턴 정가를 누비며 관세 협상을 주도했다. 일본 내에선 “마지막 순간 트럼프 앞엔 아카자와 료세이(赤澤亮正) 경제재생상이 앉았지만, 실제론 야마다가 밥상을 다 차렸고 아카자와는 워싱턴행 비행기만 탔을 뿐”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런 야마다와 강 대사를 대비시키는 일본 언론인의 말에 “(강 대사는) 아직 부임도 하기 전인데 과도한 걱정 아닌가”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트럼프 관세 인상 낌새 못 챈 정부 “외교 실패 아니다” 억지 변명 대신 외교 역량에 구멍 뚫렸나 살펴야 그런데 그저 그러려니 했던 지난해 여름의 대화를 떠올려야 하는 상황이 왔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합의했던 상호관세 15%를 25%로 올리겠다고 하면서다. 한국 정부는 허를 찔렸다지만 사실 몇 차례 사전 경고가 있었다. 미국 디지털 기업 차별 우려가 담긴 주한 미대사관의 서한, 김민석 총리-JD 밴스 부통령 워싱턴 면담에서 언급된 쿠팡 사태와 손현보 목사 사건 등이다. 상식적으로 미국 정부 내엔 대통령 주변의 심상치 않은 기류를 미리 포착한 이들이 없었을 리 없다. 하지만 우리 주미 대사관이 미리 파악한 단서는 없어 보인다. “트럼프가 경기 중에 골대를 옮겼다”는 경악과 비명이 대사관의 첫 반응이었다고 한다.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관세 협상이 사달이 나 안보 협의를 흔들고 있다”는 청와대 안보실장의 고백은 이례적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에 관세 인상을 통보한 날 트럼프는 “미·일 동맹의 미래가 눈부실 것”이란 메시지를 냈다. 일본 총선 이틀 전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에 대한 전폭 지지 입장을 밝혔다. 광폭의 미·일 관계와 위기 속 한·미 관계의 극적인 교차가 미묘하다. 주미 대사관이나 정부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천방지축 트럼프를 어떻게 예측하느냐고 억울해할 수 있다. 이번 정보 공백과 경보 부작동의 책임을 정식 부임 4개월 된 대사 한 사람에게 묻기도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 내 중차대한 기류 변화를 체크조차 못 한 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을 하라고 외교부를 두고 비싼 세금을 들여 대사를 파견하는 것이다. “우리도 몰랐지만, 미국 정부 내에서도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으니 외교 실패가 아니다”는 변명은 ‘우리가 잘못했다’는 실토로 들린다. 정부는 주미 대사관이 문제인지, 아니면 국가 외교 역량에 구멍이 뚫렸는지를 진단해야 한다. 정권 교체 때마다 반복되는 외교부 주류 강제 교체의 폐해가 아닌지도 이번 기회에 살펴야 한다. 전 정권에서 요직을 지낸 인사들에 대한 밀어내기는 새 정부 출범 8개월이 지난 현재도 진행 중이다. 동맹파 대 자주파의 갈등과 나눠먹기가 외교관 인재 풀을 좁히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진영과 이념을 떠나 국익을 위한 최정예 진용을 꾸려야 한다. 보직을 잃은 에이스 외교관들이 일할 방을 잡지 못해 이 건물 저 건물을 전전한다는 풍문이 그저 ‘헛소문’이길 바란다. 일본은 다르다. 정권이 바뀌고, 총리가 바뀌어도 국가를 위해 일하는 직업 외교관들의 위상은 굳건하다. 참고로 2009년 일본의 민주당이 전후 첫 정권 교체에 성공했을 때도 주미 대사는 바꾸지 않았다. 반대로 2012년 말 자민당이 그 정권을 탈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승욱([email protected])
2026.02.08. 8:20
올해 들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그의 1월 공개활동은 취임 이후 가장 많은 15회를 기록했다. 취임 첫해인 2012년 실상 파악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때와 숫자상으로 같다. 8차 노동당 대회가 열렸던 2021년 20회를 기록했지만 당대회 관련 활동을 제외하면 2차례에 불과하다. 북한은 조만간 9차 당대회를 열 예정인데, 김 위원장이 당대회나 핵 실험, 한국·미국·중국과 정상회담 등 주요 ‘사건’을 앞두고 두문불출하던 이전 모습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북한은 새해 첫날 신년사(김일성 주석)나 관영 매체의 공동 사설(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통해 한 해 정책 목표를 제시했지만 올해는 감감무소식이다. 김정은의 복잡한 속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다 공개활동 등 민심 챙기며 지도부에 국제정세 숙지시켜 코드 맞는 트럼프와 회담 여부 향후 두 달이 방향 설정 분수령 여전히 발목 잡는 경제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직후엔 신년사를, 그리고 최근에는 12월 말에 개최하는 노동당 전원회의 연설로 신년사를 대신했다. 이전과 달리 지난해 12월 12일 일찌감치 연말 전원회의를 마치고, 신년사 격의 언급이 없었던 건 아마 9차 당대회의 조기 개최를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당대회를 예상보다 늦춰 2월 하순에 열기로 하면서 북한 정권 출범 이후 신년사를 ‘거르는’ 특이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대신 김 위원장은 신의주 온실종합농장·평양화성지구 4단계 건설 현장(경제), 군수공장·신형 방사포 발사 현장(군사), 설맞이 공연(사회) 등을 챙겼다.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방문 몇 시간 전 극초음속 미사일을 쏘는 현장을 찾아 대중 견제 심리도 내비쳤다. 그가 영하 15도를 밑도는 날씨에도 당대회 준비 대신 현장으로 달려간 건 8차 당대회(2021년)에서 제시했던 성과를 현장에서 확인하려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 당대회는 분야별로 지난 5년을 결산하고, 다음 5년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최고 정치행사다. 북한은 2021년 국방·경제 등 분야별 목표를 제시했는데, 무인기나 인공위성, 미사일, 핵탄두 소형화 등 군사 분야에선 어느 정도 성과를 낸 측면이 있다. 2024년 제조업 분야가 전년 대비 5.9% 증가하고, 경제성장률도 3.7%를 기록(한국은행 추정치)하는 등 경제 상황도 플러스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경제 수준은 기대를 밑도는 게 현실이다. 대북 제재와 내부 자원 부족으로 북한이 야심 차게 추진했던 평양종합병원이나 갈마 해양 관광지구의 준공을 수년간 미루다 지난해 달성한 게 북한 경제의 한계를 보여준다. 평양과 지방의 경제 수준 차이도 여전하다. 김 위원장이 최근 지방의 경제 현장, 특히 준공 단계의 공장 방문은 성과를 포장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다. 당대회에서 내세울 ‘거리’ 찾기에 나섰다는 추론이 가능한 부분이다. 더 복잡해진 국제정세 북한은 ‘자주’와 ‘주체’를 강조하는 나라다. 때문에 국제사회의 변화에 둔감한 사회로 인식되곤 한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적어도 지도부만큼은 외부 동향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당과 정부의 주요 간부들이 ‘참고통신’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아침 배부되는 외신이나 해외 동향을 정리한 국제정세자료를 의무적으로 숙독하는 이유다. 허가받은 간부들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통해 수시로 바깥소식을 챙기기도 한다. 겉으로는 태연한 듯하지만 보이지 않지만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압송하고, 이란을 공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건 북한에게 남의 일로만 여기기 어려운 장면이다. 다음 순서가 자신들일 수 있다는 판단 속에 대응 전략을 짤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복잡한 계산과 긴박한 움직임 역시 북한 입장에선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지난해 6월 이란의 핵시설을 타격했던 미국은 최근 항공모함 전단을 동원해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고 있다. 북한이 ‘강경에는 초강경’이란 입장으로 핵을 앞세우지만 미국의 힘에는 역부족이란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시간은 북한 편? 여기에 최근 북한의 계산을 더욱 복잡하게 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인도적 사업 17건의 대북 제재 면제를 승인한 것이다. 유엔 대북제재를 미국이 주도하고, 이재명 정부가 대북 유화 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에서 한·미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복귀시키기 위한 공동 러브콜을 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지원’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지우라고 지시했을 정도로 외부 의존에 선을 긋고 있어 북한이 쉽게 호응할지 미지수다. 북한이 이를 대북 제재 해제의 일환으로 해석한다 하더라도 즉각 대화 테이블에 복귀할 가능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핵무기는 거래 대상이 아니라며 핵과 미사일로 미국 본토 공격할 수 있는 수준을 거의 완성해 가는 북한 입장에선 ‘판돈’이 작다고 여길 게 뻔하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트럼프 대통령의 구애에 이어 대북제재 해제 움직임과 관련해 핵과 미사일을 내세운 자신들의 전략이 먹혔고, 이제 꿩의 알을 확보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남은 임기를 고려하면 오히려 쫓기는 건 북한이란 점을 직시해야 한다. 트럼프의 임기가 2년 11개월가량 남아 있지만 더는 연임이 불가능하다. 마지막 해는 차기 선거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로 북한에 눈길을 줄 틈이 없다. 그렇다면 실제 임기는 2년 남짓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2019년 2차 북·미정상회담 때와 달리 김 위원장에게 코드가 맞는 트럼프와 다음 기회가 없는 셈이다. 중국이 미국의 대만 무기 판매 시 회담 결렬을 위협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4월 방중 기회에 김 위원장과 회동을 원하고 있다. 북한에 당대회보다 중요한 게 향후 2개월 대미 방향 설정인 것이다. 숙원이던 북·미 관계를 푸느냐, 허리띠를 졸라맨 행군을 지속하느냐의 갈림길이 될 수 있어서다. 북한은 꿩도 먹고, 알도 먹겠다는 생각이겠지만 이미 확보한 알마저 빼앗길 수 있는 게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이다. 정용수([email protected])
2026.02.08. 8:18
지난해 11월, 플로리다 케이프 커내버럴 발사대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쌍둥이 화성 탐사선 에스커페이드를 품은 블루오리진의 뉴글렌 로켓이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7분 후, 분리된 1단 로켓이 대서양 한복판에 떠 있는 드론쉽 ‘재클린’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 순간은 한 남자에게는 단순한 로켓 발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25년 전 시애틀의 작은 창고에서 비밀리에 시작된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된 순간이었고,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가 독주하던 재사용 로켓 시장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베이조스 재사용발사체 성공 소년 시절부터 ‘우주병’에 ‘감염’ 아마존 이어 블루오리진 창업 2030년 민간우주정거장 구상 18세 소년의 ‘우주 진출’ 선언 “휴스턴, 여기는 고요의 바다. 이글이 착륙했습니다.”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의 이 한 마디가 전 세계로 중계되던 그 순간, 뉴멕시코 앨버커키의 한 거실에서 다섯 살 소년이 TV 화면에 못을 박은 듯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제프 베이조스. 이 소년에게 그날 밤은 평생을 지배할 ‘우주병’에 감염된 운명의 순간이었다. 마이애미 팔메토 고등학교 졸업식, 졸업생 대표로 연단에 오른 베이조스는 청중을 놀라게 하는 연설을 하게 된다. “지구는 아름답지만 유한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우주로 나가야 합니다. 저는 언젠가 수백만 명이 우주 정거장에서 일하고, 소행성에서 자원을 채굴하며, 화성과 달에 도시를 건설하는 미래를 봅니다. 그리고 지구는 인류가 태어난 소중한 요람으로, 국립공원처럼 보존될 것입니다.” 이 연설은 그다음 날 마이애미 일간지에 기사화되었다. 1982년, 프린스턴대에 입학한 베이조스는 운명적인 만남을 맞이한다. 바로 그가 고교 시절부터 탐독했던 『The High Frontier(하이 프런티어)』의 저자, 제러드 K 오닐 교수였다. 오닐 교수는 거대한 실린더 형태의 우주 서식지를 제안한 선구자로, 베이조스에게는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베이조스는 내 세미나에서 가장 열정적인 학생이었습니다.” 오닐 교수는 생전에 남긴 기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는 단순히 이론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그것을 구현할 방법을 끊임없이 질문했죠. ‘교수님, 오닐 실린더를 건설하려면 얼마의 자본이 필요할까요?’ ‘무중력 환경에서 제조업을 시작한다면 어떤 제품부터 만들어야 할까요?’ 그의 질문은 항상 실용적이고 미래지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베이조스는 곧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물리학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전공을 바꾼 것이다. “우주로 가려면 먼저 지구에서 성공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세상은 컴퓨터가 지배할 것이다.” 친구들에게 남긴 이 말은 훗날 아마존 창업의 복선이 되었다. 지구의 성공을 우주의 꿈으로 서른 살의 베이조스는 월스트리트의 고소득 직장을 떠나 시애틀 차고에서 아마존을 창업했다.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불과 몇 년 만에 ‘모든 것을 파는 상점’으로 진화했고, 베이조스를 세계 최고의 부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별을 향하고 있었다. 2000년, 그는 조용히 블루오리진을 설립했다. 회사의 문장에 새겨진 라틴어 모토 ‘그라디팀 페로키테르(Gradatim Ferociter)’는 ‘한 걸음씩, 맹렬하게’라는 뜻으로,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확실하게 전진하겠다는 그의 철학을 담고 있었다. 뉴글렌 로켓의 개발은 베이조스의 우주 비전을 실현할 핵심 열쇠다. 높이 98m, 직경 7m의 이 거대한 로켓은 45t의 화물을 저궤도에 올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BE-4 엔진은 액화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해 환경친화적이면서도 강력한 추진력을 자랑한다. 베이조스의 야망은 로켓 발사에 그치지 않는다. 2021년 ‘오비탈 리프’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그가 구상하는 오비탈 리프는 2030년대에 운영을 시작할 민간 우주정거장이다. 이곳은 단순한 연구 시설이 아니라 ‘복합 비즈니스 파크’다. 베이조스는 이렇게 말했다. “무중력은 인류가 아직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가장 귀중한 자원입니다. 지구에서는 불가능한 초고순도 반도체, 혁신적인 신약, 완벽한 광섬유를 우주에서 만들 수 있습니다. 오비탈 리프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한 플랫폼이 될 것입니다.” 물론 머스크와 베이조스의 우주 야망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지구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화성으로 도망가려는 억만장자들”이라고 직격했다. 환경운동가들은 로켓 발사가 야기하는 탄소 배출을 지적한다. 하지만 베이조스는 이런 비판에 정색하며 말한다. “우주 개발과 지구 보호는 상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호보완적입니다. 우주 태양광 발전은 지구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소행성 채굴은 지구의 자원 고갈을 막을 수 있습니다.” 요람을 떠나는 인류의 대장정 “지구는 인류의 요람이다. 하지만 누구도 영원히 요람에 머물 수는 없다.” 러시아의 로켓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콥스키의 말이다. 그리고 이제 인류는 정말로 요람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우주는 이제 소수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민간 기업들이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언젠가 우리의 후손들이 오닐 실린더에서 태어나 지구를 ‘조상들의 고향 행성’으로 바라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우주를 향한 인류의 대장정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대한민국도 이 대장정에 적극 참여하면 좋겠다. 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
2026.02.08. 8:16
“어머님, 저는 지금 일본 야마구치현이라는 곳에서 탄광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바다 밑으로 갱도가 연결돼 있고 바다 위를 지나는 어선의 통통통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정말로 아주 위험한 곳입니다.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꼭 탈출할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일제강점 시절이던 1942년 2월 3일 오전 9시 30분경, 해저탄광인 조세이 탄광에서 수몰 사고가 발생했다. 조선인 136명과 47명의 일본인이 뭍으로 나오지 못했다. 당시 사고로 희생된 김원달씨가 어렵사리 사고 전 고국에 있는 모친에게 보낸 편지엔 무장한 경비원이 지키는 삼엄한 포로수용소 같은 당시 상황이 묘사돼 있었다. 은폐에 급급했던 회사가 사고 뒤 갱구를 덮어버리면서 ‘조선 탄광’으로 불렸던 이곳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참혹한 조세이 탄광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든 이는 우베시 향토사학자이자 고교 역사 교사인 야마구치 다케노부. 1976년 우베지방사연구에 사고 기록을 꼼꼼히 남겼다. 시민단체(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이하 새기는 모임)가 생겨난 건 그로부터 15년 뒤의 일이다. 이들은 그로부터 35년간 탄광 흔적인 환기구(pier) 보존, 추모비 건립에 이어 유해 수습과 반환 운동에 나서고 있다. 새기는 모임 주도로 한·일 유족이 참가한 가운데 추도식이 이뤄지던 지난 7일 정오경 비보가 날아들었다. 기존에 확인된 갱내 유골 수습에 나선 57세 잠수사 웨이수씨가 잠수 30분 만에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것이었다. 교통비도, 보수도 받지 않는 자원봉사자였다. 전날 회견에서 위험성을 알고 있냐는 질문에 “이야기를 듣고 ‘우리 같은 다이버 기술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매우 감명받았다”고 담담히 참가 이유를 밝혔던 그였다. 그의 사망 소식은 빠르게 전파를 탔다. 지난해 8월 두개골 등 유해 4점을 찾아낸 데 이어 전날 DNA(유전자) 감식에 필요한 치아가 확인되는 두개골 1점 수습 직후에 벌어진 참사였다. 새기는 모임은 오는 11일까지 진행하려 했던 일본인 다이버와 해외 다이버들의 조사 작업을 중단하고 애도에 들어갔다. 지난달 한·일 정상이 DNA 감정 추진을 약속하면서 번졌던 기대감은 눈물로 바뀌고 있다. 귀중한 한 명의 생명이 희생된 지금, 조세이 탄광은 과거가 아닌 현재형의 문제로 우리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오랜 시간 잊혀져 있던 희생자들을 인정하고 그 유해를 찾아내는 일은 우리 사회가 인간의 죽음을 어디까지 기억하고 책임져야 하느냐는 묵직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김현예([email protected])
2026.02.08. 8:14
한국 증시 요동이 어지러울 정도다. 지난달 22일 코스피 5000을 달성한 이래 매도·매수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매 호가 효력 5분간 정지)가 세 번이나 발동됐다. 지난 2~5일 코스피 일간 등락률은 -5.26%에서 +6.84%에 이르렀다. 한 주 만에 검은 월요일과 검은 목요일이 있었다는 건, 급락과 급등을 그만큼 이례적으로 반복했다는 뜻이다. 한국 증시 43년 역사에서 코스피 5000선 돌파는 기념할만한 일이다. 상승 속도도 전례 없다. 지난해 10월 28일 4000선 돌파 이후 약 3개월 만에 1000포인트가 더 올랐다. 하지만 축포를 쏜 뒤엔 연기에 가려진 그늘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여러 신흥국보다 변동성이 큰 최근 한국 증시는 더욱 그렇다. 먼저 우려되는 건 빚으로 쌓아 올린 모래성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빚투(빚내서 투자)가 역대 최대 수준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한국 증시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사상 처음으로 30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유가증권시장에서 최초로 20조원을 넘어섰다. 일부 중소형 증권사들은 신용공여 한도가 소진돼 대출을 막았다가 재개하기를 반복해왔고, 대형 증권사들도 한도가 바닥나 신규 대출을 중단하기 시작했다. 5대 은행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610조1245억원으로 1년10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당국 가계부채 규제로 부동산에 쏠려 있던 자산 형성 수단이 주식 시장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증시 활황을 타고 개인 투자자들의 신용 융자가 급증했다면, 작은 조정에도 반대매매가 쏟아지며 하락 폭을 키우는 ‘투매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특정 대형주의 지수 상승이 코스피를 견인한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투 톱의 시가총액이 코스피 전체의 40%에 육박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세계 시장에서 인공지능(AI) 거품론이 나올 때마다 코스피가 크게 흔들린 이유다. K자 성장 형국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글로벌 파고에 취약한 모래성이 될 수밖에 없다. 주가가 사상 최고치인 반면 실물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1%에 이어 올해 전망치 2%대라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투자자들은 주식으로 얻은 소득은 영구 소득이 아닌, 언제든 잃을 수 있는 일시적 소득으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지수 상승이 바로 내수 활성화로 연결되지 않는다. 기업의 이익이 소비와 설비 투자, 고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위한 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화려한 숫자가 착시가 되지 않도록 한국 금융 시장과 경제의 기초 체력을 점검할 때다. 김선미([email protected])
2026.02.08. 8:13
AI에 ‘알아서 돈을 벌어오라’고 시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한 AI는 뜻밖의 방법을 택했다. ‘AI로 돈 버는 법’ 강좌를 만들더니 유료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누군가 강좌 웹사이트에 접속해 구매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매자가 모두 AI였다. 다섯 개의 AI가 실제 결제까지 했다고 한다. 판매된 것이 제대로 된 강좌였을 리 없다. 결국 AI가 다른 AI를 상대로 사기를 친 셈이 되었다. ‘투자 AI’ 큰 수익 기대는 성급 막상 써보면 기술 한계 느껴져 막연한 기대나 공포 품기보다 작은 일부터 맡겨 결과 살펴야 최근 공개된 ‘오픈클로(Open Claw)’ 프로그램으로 벌어진 일이라 한다. PC에 설치하면 AI가 키보드와 마우스 제어권을 통째로 넘겨받는다. 사람이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대부분 AI가 대신 수행할 수 있다. 카드 결제 권한을 부여하면 구매까지 대신한다. 이용자가 메신저로 지시만 하면, 결과가 돌아온다. 오픈클로를 쓰면 부하 직원 한 명을 둔 기분이다. 자료를 모아 보고서를 쓰고, 파워포인트 발표 자료를 만들어 온다. 심지어 음성 생성 앱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업무를 처리한 사례도 있다. 영화 속 아이언맨이 쓰던 ‘자비스’ 비서가 현실로 나타나는 것만 같다. 이러한 AI들은 자기들만의 ‘사회’를 만들기까지 한다. 한 엔지니어는 ‘몰트북’이라는 토론 게시판을 만들어 AI만 글을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100만 개가 넘은 AI 계정이 만들어졌다. AI들은 각자 ‘오늘 한 일’을 일기처럼 나누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인간이 배제된 AI들끼리만의 커뮤니티는 아무런 문제 없이 굴러갔다. 인류 없이 AI가 장악한 미래 사회를 엿보는 기분이다. 이러한 소식을 들으면 조만간 대부분의 사무직 근로자가 대체될 것처럼 느껴진다. 사무직 업무는 결국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일이 아니던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수퍼 인텔리전스’가 되어 세상을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떠오른다. 하지만 이런 경이로운 기술에 대한 뉴스의 이면에는 다른 현실이 숨어 있는 경우도 많다. 오픈클로는 단순한 지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한참을 헤맬 때도 많다. 언제 실수를 저지를지 모르니, 안심하고 일을 맡길 단계는 아니다. AI가 터무니없는 행동을 보인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이용자의 승인 없이 고가의 온라인 강좌를 멋대로 결제해 버린다거나, 계좌 관리를 맡겼더니 24시간 거래를 해서 투자금을 모두 날려버렸다는 식이다. 보안 위협도 크다. 오픈클로에 파일 관리를 지시했다가는 컴퓨터에 저장된 모든 자료가 삭제될 수도 있다. AI가 악성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설치할 수도 있다. 개인정보나 기밀 자료가 외부로 유출될 위험도 크다. 내 PC가 다른 시스템을 공격하는 ‘좀비 PC’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당장 AI에 컴퓨터 제어권을 통째로 넘기는 것은 시기상조다. AI를 더 세밀하게 통제할 기술과 보안 위협을 막을 장치가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오픈클로와 같이 우리의 기대와 공포를 함께 자극하는 새로운 소식이 끊기지 않고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과장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한 AI들을 막상 써 보면 기대감과 두려움이 금세 옅어지기도 한다. 아직 기술 한계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은 AI 기술을 써 보지도 않은 채 품는 막연한 기대와 공포가 아닐까. 그리고 이에 대한 현명한 대응은 직접 써 보고, 무엇이 유용한지, 무엇이 과장인지 가늠해 보는 일이다. 지금 우리는 AI 도입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기업은 AI에 얼마나 투자할지, 어떻게 도입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공공기관이나 학교도 활용 범위를 정해야 한다. 지금 내리는 결정이 앞으로의 AI 도입 방향을 크게 좌우할 수 있다. 그럴수록 현실에 근거한 판단이 더욱 중요해진다. AI를 써 보지도 않고 언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정할 수는 없다. 평생 버스를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사람이 버스 노선을 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AI에 작은 일부터 맡겨보고 결과를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써 본 만큼 판단은 정확해진다. 사실에 근거해 옳은 답을 구하는 실사구시의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2026.02.08. 8:10
현재 대한민국은 지방자치단체 간 행정통합이라는 거대한 공사로 분주하다. 지방 소멸 위기 앞에서 지역의 덩치를 키워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총론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단순히 지도상의 경계선만 지우는 물리적 결합만으로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특정 도시만 비대해지는 것을 막고 모든 지역민이 골고루 혜택을 누리는 ‘형평성’ 확보가 관건이다. 이에 행정통합을 성공으로 이끌 강력한 엔진인 ‘P.L.U.S.’ 전략을 제안한다. 지도상 경계만 지워선 성공 못해 시민 중심, 산업 클러스터 등 필요 통합 효율 높여야 지방 소멸 막아 우선, 실질적 권한 이양(Power Sha ring)을 통한 행정 효율의 극대화다. 중앙정부의 결정권을 지역으로 가져오는 ‘분권’과 이를 운영하는 ‘혁신’이 핵심이다. 행정구역을 합치면서 과감한 디지털화로 운영 비용을 확 줄인 덴마크의 사례를 배우자. 우리도 무늬만 통합할 게 아니라, 중앙의 사무와 예산을 통째로 넘겨받는 수직적 분권이 급선무다. 이것은 단순한 업무 이관이 아니다. 중앙에 예속된 ‘반쪽짜리 자치’를 넘어, 지역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 ‘자기결정권’을 갖고 행정의 책임성을 높이는 혁신이다. 아울러 영국식 ‘통합 행정 살림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인사나 재무 같은 후방 업무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처리함으로써 중복 투자를 막아야 한다. 인구가 적어 전문 인력을 두기 힘들었던 소규모 지자체도 통합된 시스템을 통해 행정 서비스의 빈틈을 완벽히 메울 수 있다. 다음으로는 지역 정체성(Local Identity)으로 내부적 균형을 높이는 공간 재구조화다. 이는 통합의 성패를 가를 형평성의 핵심이다. 일본 도야마시는 차세대 노면전차를 도입해 시민을 역세권으로 모으고 고령층의 이동을 도왔다. 흩어진 시설을 거점에 모아 비용은 낮추고 효과는 높인 ‘압축 도시(Compact City)’의 승리다. 우리도 무분별하게 외곽을 개발하는 대신 거점 중심으로 뭉쳐야 인프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소외되는 지역이 없도록 촘촘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통합으로 아낀 예산은 낙후 지역에 우선 투입하는 ‘형평성 기반 재정 배당’을 통해 지역 간 격차를 줄여야 한다. 대도시와 농어촌이 서로 돕고 사는 상생 모델이 절실하다. 또한, 절차적 민주성에 기반한 시민 중심(User-Centric) 합의가 시급하다. 통합은 정치인의 약속을 넘어 내 삶을 바꾸는 과정이어야 한다. 일방적 추진으로 갈등만 키운 해외 사례는 절차적 정당성 없는 통합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특별법에 ‘시민참여단’을 명시해 과정이 공정한지 감시하고, 주민의 목소리가 정책이 되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통합의 실무를 짊어질 공직자들의 우려도 경청해야 한다. 내부 구성원의 동의 없는 통합은 모래성이다. 유럽처럼 계획 단계부터 평가까지 시민이 숙의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사회적 신뢰라는 단단한 지반을 다질 수 있다. 경제적 자본을 위한 상생형 미래 산업(Symbiotic Economy) 구축도 필요하다. 에스토니아는 국가 데이터를 통합해 효율적인 ‘원스톱’ 행정을 실현하고, 이를 수출 상품으로 만들었다. 우리도 광주의 AI, 전남의 에너지, 부산·울산·경남의 물류처럼 각 지역의 장점을 연결하는 ‘거대 산업 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한다. 데이터를 공유하고 산업을 융합해 개별 도시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광역 경제권을 만들 때 청년이 떠나지 않고 머무는 기회의 땅이 된다.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통합의 과실이 지역 전체로 퍼질 수 있다. 행정통합은 정치적 도구가 아니라 지역이 살기 위한 미래 지도다. 이제 지방정부는 시민에게 ‘왜’ 하느냐를 넘어 ‘어떻게’ 운영할지 과학적인 답을 내놓아야 한다. 정교한 설계도인 ‘P.L.U.S.’ 전략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행정통합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최근 김민석 총리가 발표한 20조원 규모의 파격 지원은 큰 기회다. 하지만 이철우 경북지사가 “제도와 재정이 담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듯, 돈보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다. 막대한 예산도 정교한 설계도 없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다. 성공적인 행정통합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P.L.U.S. 전략이 바로 그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리셋코리아 정부혁신 분과장
2026.02.08. 8:08
경제사는 통화정책이 경기의 물줄기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전지전능한 카드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른바 금리 변화의 ‘비대칭성’이다. 통화정책은 과열된 경제를 식히는 브레이크 역할에는 탁월하지만, 억지로 경기를 돌려세우거나 멈춰 선 경기를 다시 밀어 올리는 가속 페달로는 늘 한계를 보여줬다. 끈을 당기기는 쉬워도 밀어 올리기는 어렵다.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70년간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단행한 14차례 금리 인하 중 경기 침체를 비껴간 사례는 세 번뿐이었다. 금융완화라는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아도 그 동력이 실물경제 엔진에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이유는 통화정책의 시차와 경제 자체의 거대한 순환 주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일본이 장기 초저금리 처방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세월’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했던 사례는 시사점이 크다. 결국 해법은 손쉬운 금리 처방이 아니라 구조개혁과 산업 전환, 기술혁신을 통한 ‘창조적 파괴’에 있다. 현재 시장이 주목하는 연준의 금리 인하 행보 역시 경기 부양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향후 연준의 통화정책을 둘러싼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경기 호황이 지속되는데도 연준이 무리하게 금리를 내려 증시 거품을 조장하는 상황이다. 당장은 시장이 달콤한 환희에 젖겠지만, 결국 시장금리의 급등으로 ‘잘못된 연준’을 꾸짖는 혹독한 대가를 치를 가능성이 크다. 케빈 워시 차기 의장 지명자를 두고 정책 불확실성이나 실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본질은 인물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연준은 12명의 위원이 토론과 설득을 거쳐 합의에 이르는 의결 기구다. 이견이나 내부 분열이 있더라도 의장의 독단이나 대통령의 정치적 간섭이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제도적 복원력을 갖추고 있다. 5월에 출범할 ‘워시호(號)’를 좀 더 차분하게 지켜볼 일이다. 둘째, 금리 인하 논의가 무색할 정도로 미국 경제와 자산시장이 견고한 호황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이 경우 금리 동결이나 연준의 유동성 긴축으로 주가 상승 탄력은 일시적으로 둔화될 수 있다. 그러나 실물경제(메인 스트리트)와 금융시장(월 스트리트)이 균형을 잡으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모색하는 가장 건강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두 시나리오가 가리키는 지점은 같다. 투자자들이 집중해야 할 본질은 금리 인하 자체가 아니라, 시장금리의 안정 여부나 높은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기업실적의 모멘텀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연준이 어떤 정책을 단행하든 시장이 먼저 반응하며 정책의 방향을 교정해 왔다는 사실이다. 특히 채권시장은 이미 연준의 독주를 견제하고 올바른 경로를 제시하는 가장 강력한 길잡이다. 김한진 삼프로TV 이코노미스트
2026.02.08. 8:06
“국무부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 1950년 2월 9일, 워싱턴 DC의 미국 국회의사당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위스콘신주 공화당 상원 초선 의원 조지프 매카시(사진)의 연설 때문이었다. 4년간 미국 정가를 뒤흔들고 그 후로도 오랜 상흔을 남긴 매카시즘(McCarthyism)의 시작이었다. 세상은 매카시의 편이었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고 소련이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미국은 공산주의에 대한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동유럽 및 중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연이어 승리하면서 미국 유권자들은 한층 더 두려움과 좌절감에 휩싸였다. 정치적 맥락도 한몫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총애를 받은 엘리트 외교관 앨저 히스가 소련의 간첩이었다는 사실이 1948년 하원 청문회에서 폭로된 것이다. 대공황을 극복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민주당 루스벨트 정권에 흠집을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정식 등록을 한 공산주의자’가 어느 부서의 누구인지 단 한 사람의 이름도 밝히지 못했고, 정치권을 넘어 문화 예술계로 공포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었음에도, 공화당은 매카시를 사실상 방관하고 있었다. 1952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승리를 거두고 이듬해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매카시의 정치적 효용도 사라졌다. 초조해진 매카시는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다른 공화당 및 민주당 지도자들까지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1954년에는 미국 육군 장교들과 공무원들이 체제 전복을 기도했다며 고발하는 의회 청문회를 벌였다. 선을 넘은 행동에 대중과 정가가 등을 돌렸다. 상원은 그해 12월 2일 매카시가 ‘상원의 전통에 위반되는’ 행동을 했다며 비난 결의안을 의결했다. 세상을 뒤흔들었던 매카시의 권세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근거 없는 모함과 협박을 일삼으며 ‘내부의 적’을 색출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던 선동가의 초라한 결말이었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2026.02.08. 8:05
일본 영화 ‘국보’는 야쿠자 가문 출신인 주인공이 가부키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은 가부키 명문가 자제이자 라이벌인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의 피를 원해. 나에겐 나를 지켜줄 그런 피가 없어.” 대를 이어 기예를 계승하는 ‘세습의 벽’ 앞에서, 노력만으로는 넘볼 수 없는 출발선의 차이에 대한 갈망과 절망이 응축된 대사다. 이 처절한 고백은 최근 일본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오야가차(親ガチャ)’라는 단어와 맞닿아 있다. 캡슐 장난감 자판기를 뜻하는 ‘가차’(사진)에 부모(親)를 붙인 이 표현은, 자녀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을 ‘복불복 게임’에 빗댄다. 겉보기엔 한국의 ‘금수저·흙수저’ 논쟁과 닮았지만, 수저 계급론이 자산 규모에 초점을 맞춘다면 오야가차는 경제력은 물론 외모, 지능, 심지어 거주 지역까지 아우르는 보다 포괄적인 ‘운(運)’의 개념이다. 2021년 유캔 유행어에 오른 ‘오야가차’는 부모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상사 운을 뜻하는 ‘조시(上司)가차’, 태어난 나라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구니(国)가차’까지 등장했다. 과거 일본 사회가 “노력하면 보상받는다”는 성실의 미덕을 강조한 데 비해 지금의 세대는 “태어날 때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는 체념에 더 익숙해 보인다. 고착화된 저성장 구조 속에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진 현실에 일본 청년들은 실패를 괴로워하기보다 “가차 운이 없었을 뿐”이라며 냉소적인 방어기제를 선택한 셈이다. 그런 일본에서도 부모의 사랑만큼은 예외다. 한국의 ‘딸바보, 아들바보’에 해당하는 일본어 표현은 ‘오야바카(親バカ)’다. 사회적 문법으로는 ‘꽝’에 가까운 자식일지라도 부모의 문법 안에선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등 당첨’이다. 출발선의 불평등을 인정하는 숙명론과,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이 일본 사회에 공존하고 있다. 박소영([email protected])
2026.02.08. 8:02
하늘에 태양보다 더 밝은 것은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 은하에는 태양보다 수십 수백 배 더 밝은 별이 수두룩한데 태양이 지구와 가까워서 가장 밝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밝기는 거리와도 큰 상관이 있다. 떨어진 거리와 관계없이 그저 우리 눈에 보이는 밝기를 별의 '겉보기 밝기'라고 한다면 그 별의 진짜 밝기는 '절대 밝기'라고 구분한다. 20세기 초 하버드 대학 부설 천문대에 천체물리학을 전공한 천문대장이 최초로 취임하였다. 당시는 천체물리학이 막 태동하던 때여서 그전까지 천문대의 우두머리는 물리학자들의 몫이었다. 그때는 망원경을 통한 천체 관측이 주를 이루던 시대여서 남자 천문학자들은 세계에 흩어져 있는 천문대에 직장을 얻어 떠나는 바람에 일할 사람이 부족했다. 새로 부임한 천문대장은 관측한 자료를 계산하고 연구할 직원이 필요해서 천문대 직원을 구했지만, 남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자 자기 집 가정부 일을 하는 여자가 평소 똑똑하다는 생각을 했던 까닭에 그녀에게 일을 시켜 보았다. 그녀가 기대 이상으로 일을 잘하자 모자란 천문대 직원의 빈 자리에 여자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의 사회 진출이 힘들 때였다. 마침 대학에서 천체물리학을 공부했지만 변변한 직장을 잡지 못하던 헨리에타 리빗이란 여성이 보수가 없어도 좋으니 일을 하고 싶다고 지원했다. 그녀가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일을 잘하자 천문대장은 리빗에게 아예 변광성 연구를 맡겼다. 헨리에타 리빗은 혼자서 수천 개가 넘는 변광성을 발견하자 하버드 천문대는 변광성으로 유명해졌다. 변광성이란 빛의 밝기가 변하는 별을 말한다. 우리 태양은 일정한 광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어떤 별은 그 밝기가 변했다. 변광성의 종류는 많지만 그중 꼭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세페이드 변광성이다. 세페이드 변광성은 맥동 변광성의 일종인데 맥동이란 뜻은 마치 우리 맥이 뛰듯 광도가 세어졌다 약해지기를 되풀이한다는 의미에서 붙었다. 그중 세페이드 변광성은 맥동 주기가 약 두 달 안에 반복하는 천체로 세페이드 변광성이 중요한 이유는 지구에서 그 별까지, 혹은 그 별이 속한 성단이나 은하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어서다. 헨리에타 리빗은 변광성을 발견하면서 아울러 그 별의 절대 밝기와 변광주기를 이용해서 '리빗 공식'을 만들었는데 그렇게 대체로 1억 광년 정도 떨어진 별까지의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별빛이 변하는 주기가 별의 질량을 부피로 나눈 것의 제곱근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신임 천문대장은 논문을 발표할 때 그런 모든 일이 연구원인 헨리에타 리빗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문구를 넣어서 공로를 그녀에게 돌리는 배려를 했다. 얼마 후 윌슨산 천문대에서 변광성을 관찰하던 에드윈 허블은 세페이드 변광성을 이용하여 다른 행성까지의 거리를 재던 중 안드로메다 성운이 우리 은하 안에 있지 않고 외부 은하라는 놀라운 발견을 하여 하룻밤 사이에 우주의 크기를 엄청나게 늘렸다. 은하수에서 25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은하를 발견한 것이다. 허블의 업적 뒤에는 변광성의 여왕 헨리에타 리빗의 공로가 있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원래 천문학은 점성술이란 말과 구별 없이 쓰였다. 오랫동안 물리학의 한 부분에 속했던 천문학은 분광 기술이 발달하면서 관측해서 얻은 결과의 물리학적인 연구가 대세가 되자 비로소 현대 천체물리학이 시작했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세페이드 변광성 맥동 변광성 변광성 연구
2026.02.06. 12:31
━ 정부 20조 지원, 여당은 곧 특별법 처리 방침 ━ 야권 “예산 따는 공모 사업 됐다” 비판 제기 ━ 과감한 재정·권한 이양, 자립 대책 뒤따라야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역자치단체의 행정통합이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 시간표에 맞춰 속전속결로 추진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정부는 대전과 충남, 광주와 전남의 통합과 관련해 통합으로 신설되는 두 지자체에 각각 4년 동안 20조원 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두 통합 지자체 출범을 위한 특별법을 이달 중 국회에서 처리할 방침이다. 정부의 파격적 지원책이 나오자 그동안 소강상태였던 대구와 경북의 통합 논의도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부산과 경남에서도 행정통합 움직임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인구의 51%가 몰린 수도권 과밀·집중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하고 지방의 경쟁력을 키우자는 행정통합의 대의는 맞는 방향이다. 기존의 단일 광역지자체 규모와 역량으로는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한 인프라 투자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산업 유치와 고급 인재 확보도 쉽지 않았다. 통합으로 지자체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6월 지방선거가 행정통합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지금의 추진 방식은 ‘중앙정부 돈 나눠주기’라는 당근을 앞세워 하향식 속도전을 밀어붙이는 측면이 있다. 여기엔 지방선거 구도를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한 정부·여당의 정치적 셈법이 작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정부 지원책이 발표된 뒤 국민의힘 소속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는 “대한민국 100년을 내다보는 실질적 지방분권이 마치 정부 공모사업처럼 지역 간 경쟁 구도를 만들어버렸다”고 비판했다. 두 단체장은 중앙정부가 한시적으로 돈을 줄 것이 아니라 양도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등 국세 중 일정 비율을 통합 지자체가 안정적으로 확보할 방안을 특별법에 담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방이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채 계속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에 의존한다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행정통합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의 권한과 세수를 과감하게 이양해 통합 지자체가 자립하는 구조를 만드는 실질적 분권이 행정통합의 핵심이 돼야 한다. 여기엔 아직도 중앙정부가 움켜쥐고 있는 법적 권한을 내려놓는 결단이 필수적이다. 주민 의견을 충실히 수렴하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현행 지방자치법을 보면 지자체 통합은 법률로 정하되 지방의회의 의견을 듣도록 규정하고 있다. 주민투표를 할 수도 있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다. 행정통합은 주민 생활권과 지역 정체성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중요한 결정이다. 충분한 정보 제공과 숙의 없이 효율만 앞세워 절차를 지나치게 압축하면, 통합 이후에 후유증과 갈등이 커질 우려가 다분하다. 통합의 실익과 비용, 권한 변화가 무엇인지 명확히 제시한 뒤 최종 선택을 주민에게 묻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지금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행정통합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통합 지자체장을 선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통합 이후 행정 영역을 어떻게 조정하고, 중복되는 기존 지자체의 인력·조직·기능을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지방행정체계 개편은 국가 백년대계와 직결된다. 정부는 지방선거 이후를 내다본 큰 그림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방행정통합의 원칙과 기준 등을 담은 ‘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정부·여당은 지금이라도 지역주민과 전문가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야당과도 긴밀히 협의하기 바란다. 그래야 지방선거용이라는 의구심을 불식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한 대승적 행정통합으로 갈 수 있다.
2026.02.06. 8:34
최근 미네소타에서 총격으로 두 명을 살해한 이민단속국(ICE)이 시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올해 들어 ICE는 한 달 만에 최소 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사흘에 한 명씩이다. 1월 3일, 두 아이의 아버지인 쿠바 출신 이민자 헤랄도루나스 캄포스(55)가 텍사스 엘파소 수용소에서 목과 가슴 압박으로 질식사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그는 이날 ICE 요원들과 몸싸움 중 목을 강하게 졸렸다. 검시관은 가족에게 ‘살인 사망’이라고 통보했다. 1월 5일, 온두라스 출신 이민자 루이스 구스타보 누녜스 카세레스(42)가 구금 중 텍사스 휴스턴 병원으로 옮겨진 뒤 목숨을 잃었다. 그는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 가족은 수용소에서 적절한 처우를 받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1월 6일, 온두라스 출신 이민자 루이스 벨트란 야녜스-크루스(68)가 구금 중 심장 관련 문제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뉴저지주 뉴왁에서 체포됐다. 20년 이상 미국에 살며 세 아이의 아버지였던 그는 캘리포니아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의 딸은 아버지가 구금 뒤 심장 문제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1월 7일, 미네소타에서 시민권자 르네 니콜 매클린 굿(37)이 ICE 요원의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 1월 9일, 캄보디아 난민 파라디 라(46)가 펜실베이니아에서 구금 중 사망했다. 가족에 따르면 그는 구금소에서 약물치료를 받다 장기 부전으로 병원에서 숨졌다. 가족은 1월 8일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가족은 수일간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찾아 헤매고 있었다. 1월 14일, 니카라과 출신 이민자 빅토르 마누엘 디아스(36)가 어린 아들이 기다리는 가운데 구금 중 사망했다. 그도 엘파소 수용소에 구금됐었다. ICE는 그가 숨진 채 발견됐다며 자살이 의심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족은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1월 16일, 멕시코 출신 이민자 헤베르 산체스 도밍게스(34)가 조지아주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는 무면허 운전 혐의로 ICE에 체포된 지 6일 만에 사망했다. 구금시설 측은 그가 목을 매달았다고 밝혔는데 멕시코 영사관은 “사건의 경위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요청했다. 1월 24일, 미네소타에서 중환자실 간호사이며 시민권자인 알렉스 제프리 프레티(37)가 ICE의 총격에 사망했다. 지난해 ICE 구금 중 사망자는 32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반 년간 국토안보부 요원이 체포 과정 또는 시위 참가자들에게 16차례 총격을 가했다. 시민권자 4명을 포함, 10명이 총에 맞았고, 그중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 사건과 관련 요원이 형사 기소되거나, 징계를 받은 사람은 없다. 비번 중인 요원이 살해를 한 일도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캘리포니아주 노스리지에서 비번 요원이 총을 쏴 흑인 키스 포터 주니어(43)가 목숨을 잃었다. ICE는 포터가 먼저 총을 쐈다고 밝혔으나 가족은 믿을 수 없다며 인종차별 진상 조사를 요구했다. 이제 ICE는 통제 불능 기관이며 해체돼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ICE는 과거 노예 순찰대가 되살아난 듯한 모습이다. 공포와 인종차별을 수단으로 현 정권의 권력을 등에 업고 미친 듯 날뛰고 있다.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목숨 ice 요원 구금시설 측은 온두라스 출신
2026.02.05. 2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