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바나나냐 버내너냐
아이들이 주말 한글학교에 다닐 때의 이야기 한 토막. 공부를 마치고 나오는 아이의 입술이 삐죽 나와 있는 걸 보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긴 모양이다. 조심스레 물어보니, 오늘 시험을 봤는데 선생님이 맞게 쓴 답을 틀렸다고 했다는 것이다. 엄청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아이가 내미는 시험문제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이름을 한글로 쓰라는 흔한 문제였다. 틀렸다고 빨간 줄로 표시한 낱말은 ‘버내너’, ‘피애노’, ‘애플’ 등이었다. 이게 왜 틀린 거냐고 항의하는데 대답할 말이 궁색하다. 미국에서는 ‘버내너’지만 한글로는 ‘바나나’라고 써야 한다고 중얼거리기는 했지만, 왜 그런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나마, 이건 애플이 아니라 사과라고 써야 맞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당당한 반문에 말문이 또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럼 파인애플은 ‘파인사과’라고 써야 맞는 거야? 애플 컴퓨터는 사과 컴퓨터고?” 이건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특히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세다. 미국에서 ‘버내너’라고 부르는 과일을 우리는 ‘빠나나’라고 부른다. 명칭이 다르다고 해서 그 물질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버내너와 빠나나는 맛이 다를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태어나 여기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바나나’라고 가르치는 것이 옳은지, 틀렸다고 빨간 줄로 냉정하게 표시해도 되는 것인지 생각이 복잡해진다. 정신문화를 내포한 것이 되면 문제가 한층 복잡해진다. 결코, 간단하지 않다. 서양의 문화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의 근본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가령, 낭만, 로맨스, 로망스 모두 같은 말이지만, 말 맛이나 속내용은 다르다. 우리말에서 낭만과 로맨스는 그 쓰임새가 많이 다르다. ‘내로남불’ 같은 신조어에 이르면 더욱 그러하다. 이런 식으로 보면, 민주주의, 정치, 사회, 정의, 자유, 평등, 상식, 철학, 미학 등등 사회 전반에 걸친 근본적인 문제가 된다. 서양식을 존중할 것인가, 우리의 가치관을 고집할 것인가, 우리 식으로 재해석하고 절충한다면 어느 정도가 알맞는가. 새롭게 살펴봐야 할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니다. 우리의 경우, 역사적으로 외래문화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시기가 일제 강점기였다. 왕조시대에는 중국에 전적으로 기대었고, 근대는 식민지였고, 현대는 해방과 전쟁에 이어 밀려 들어온 서양 문물의 절대적 영향 아래 있었다. 한국사회의 현대화는 곧 서구화였다. 서구의 것을 따라하기도 바빴고, 우리 고유의 정신문화나 전통은 무시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외래문화를 우리 나름의 주체성을 가지고 소화하고 새롭게 재해석하기 어려웠다. 기껏해야, 부대찌개나 콩글리시, 한국적 민주주의, 번안가요 같은 정도가 고작이었다. 복잡한 주제는 접어두고, 다시 한글학교 이야기로 돌아가면, 나는 ‘버내너’라고 쓰면 틀렸다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좀 번거롭지만, ‘버내너’와 ‘바나나’ 두 가지를 다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나의 정체성이 제멋대로 일그러지는 일은 참기 어렵다. 가령, 누가 내 이름을 영어 발음대로 ‘쏘히언 치앵’이라고 부르면 매우 불쾌하고 불편하다. 어쩔 수 없이 참기는 하지만, 기분이 몹시 나쁘다. 그런 갈등이 이름의 발음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가치관이나 철학, 또는 역사 인식 등에서도 생기는 것이 문제다. 디아스포라 타국살이의 서러움 중의 하나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바나나 한글학교 이야기 주말 한글학교 사과 컴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