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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베어스 vs 램스

시카고 베어스가 숙적 그린베이 패커스를 물리치고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진출했다. 베어스와 패커스전은 리그 최고의 라이벌전답게 끝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던 명승부였다. 경기 내내 뒤지던 베어스가 4쿼터 막판 역전에 성공하고 패커스의 마지막 패스가 땅에 떨어질 때까지 손에 땀을 쥐는 경기였다. 결국 승리의 여신은 베어스의 손을 들었고 베어스는 모처럼만의 플레이오프 승리를 잡았다.     LA 램스와의 2라운드 역시 시카고 솔저필드에서 열리는 만큼 베어스 팬들은 이번에도 램스를 격파하고 컨퍼런스 결승전에 진출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상대는 만만치 않다. 전력면에서는 베어스에 앞서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베어스-램스전에서 주목해야 할 점을 정리했다.     램스의 올 시즌 전적은 12승 5패다. 11승 6패의 베어스보다 승률이 높다. 베어스가 내셔널풋볼컨퍼런스 2번 시드를 받았고 램스는 5번 시드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램스와 같은 지구에 있는 시애틀 시혹스가 14승3패로 컨퍼런스 1번 시드를 받았기 때문이다.     램스는 기본적으로 공격이 뛰어난 팀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쿼터백 매튜 스태포드가 있다. 베어스 팬들이라면 오랫동안 지구 경쟁팀인 디트로이트 라이온스 주전 쿼터백이었던 스태포드가 익숙하다.     올해 37세로 노장인 스태포드는 디트로이트에서만 12시즌을 뛰다가 램스로 트레이드 됐다. 그리고 올 시즌 가장 화려한 기록을 쌓았다. 일부에서는 스태포드가 MVP를 수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할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태포드는 평균 패싱 야드 276.9야드로 리그 전체 1위를 기록했다. 또 터치다운 패스 역시 46개로 리그 1위다. 쿼터백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인 패서 레이팅 역시 109.2로 리그 2위에 올랐다.     베어스의 쿼터백 케일럽 윌리엄스가 평소 존경하는 쿼터백으로 꼽았던 선수가 애론 로저스와 스태포드일 정도로 윌리엄스에게는 롤모델이었다. 그런 선수와 디비전 라운드에서 피할 수 없는 격돌을 하게 된 셈이다.     문제는 베어스의 수비진이 스태포드의 패싱 공격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차단하느냐다. 스태포드와 램스의 패스 공격을 완전히 차단하기보다는 베어스의 강점인 가로채기를 통해 경기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한방을 기대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으로 보인다. 베어스는 리그에서 가장 많은 23개의 가로채기를 기록하고 있다.     베어스가 램스를 수비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와이드 리시버 푸카 나쿠아와 디반테 아담스다. 아담스는 그린베이 패커스 소속일 당시 쿼터백 로저스와 손발을 맞추며 리그 최정상급의 와이드 리시버로 성장한 바 있어 베어스 팬들에게도 낯이 익다.     램스는 러싱 공격에서도 뛰어나다. 러닝백 카이렌 윌리엄스가 공격당 평균 4.8야드를 전진하면서 총 1252야드를 전진, 리그 6위에 올랐다. 결국 공격면에서는 램스가 한 수 위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램스의 감독은 션 맥베이다. 지난 2017년 30세의 나이에 램스 감독으로 부임했고 수퍼보울에서 우승한 NFL 최연소 감독의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우승 당시 나이는 36세였다. 결국 맥베이 감독이 최근 리그에서 유행하고 있는 젊은 감독 유행을 선도한 인물이다.     보통 NFL 감독이라고 하면 캔사스시티 칩스의 앤디 리드나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전 감독 빌 벨리칙과 같이 연륜이 풍부하고 나이가 지긋한 인물이 전형적이다. 하지만 맥베이 감독과 같은 30대, 40대 감독이 최근 NFL 추세다. 그런 점에서는 베어스의 감독 벤 존슨도 마찬가지다.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베어스가 격파한 그린베이 패커스의 맷 라프어 감독과 맥베이 감독의 인연. 두 사람은 워싱턴 레드스킨스에서 각각 타이트엔즈 코디네이터와 쿼터백 코디네이터로 함께 일한 바 있다. 또 맥베이가 램스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라푸어도 합류해 감독과 공격 코디네이터로 손발을 맞춘 바 있다. 평소 두 감독은 형, 동생할 정도로 친분이 깊고 풋볼 철학에서도 유사한 점이 많은 스타일이다. 베어스 입장에서는 후배인 라푸어 감독을 꺽고 나서 선배인 맥베이와 격돌한 모양새다. 맥베이 감독이 평소와 같이 어떤 트릭 플레이로 베어스 수비진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을 지도 주목된다.   램스를 상대할 베어스로서는 경기 초반 흐름이 관건이다. 패커스전도 그랬고 올 시즌 내내 베어스는 극적인 역전승에 성공한 경험이 많다. 이는 바꿔 말하면 경기 내내 상대팀에 고전했다는 말과 같다. 쿼터백 윌리엄스는 경기 후반에 집중도를 높이면서 패스를 성공시키곤 했지만 경기 초반에 가로채기를 허용하며 어려운 경기를 자초하기도 했다. 경기 초반에 대등한 경기를 유지하면서 경기 막판에 나오곤 하는 짜임새 있는 공격으로 램스 수비진을 흔들어야 베어스 입장에서는 승산이 있는 경기가 된다.           양팀은 올 시즌 맞대결은 없었다. 다만 지난해 정규시즌에서 시카고에서 만나 베어스가 24-18로 승리한 바 있다. 당시 쿼터백은 스태포드와 윌리엄스였지만 베어스 감독은 벤 존슨이 아니었다. 하지만 솔저필드에서 열린 맞대결에서 1년 전 승리한 기억은 나쁘지 않다.   벤 존슨과 션 맥베이 감독의 대결, 카일렙 윌리엄스와 맷 스태포드의 대결로 압축되는 이번 경기의 승자는 컨퍼런스 결승전에 진출하고 이 경기에서도 승리하면 수퍼보울에 진출하게 된다.     베어스와 램스의 디비저널 라운드는 18일 오후 5시반 시작된다. 모처럼만의 플레이오프 진출로 신난 베어스 팬들은 두 경기 연속 솔저필드에서 치러지는 격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편집국)       Nathan Park 기자시사분석 nathan 시카고 베어스 베어스 팬들 패커스전은 리그

2026.01.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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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동훈 제명 사태로 드러난 보수 야당의 뺄셈정치

━ “이기는 변화” 외치고 1주일 만에 반대파 축출 ━ 윤 절연 못 하고 고립과 퇴행을 쇄신으로 착각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어제(14일) 새벽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한 제명을 의결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계엄에 대해 사과하고 쇄신안을 발표한 지 1주일 만에 쇄신은커녕 당내 갈등을 최대로 증폭시키는 결정을 한 것이다. 오늘 열리는 최고위에서 제명이 의결될 전망이다. 장 대표는 “윤리위 결정을 뒤집는 것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당명까지 바꾸겠다면서 “이기는 변화”를 외치더니 보수 야당 대표가 이겨야 할 대상이 겨우 당내 반대파였던 것인가. 윤리위는 한 전 대표의 가족이 1000여 건의 당내 게시판 글을 올렸다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 당 지도부를 비방해 당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조직적으로 여론을 조작해 당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제명 이유를 밝혔다. 당원게시판 파문은 한 전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는 게 사실이다. 가족들까지 가세한 글들의 작성 경위와 의도도 문제지만, 의혹이 불거졌을 때 시인도, 사과도 하지 않아 갈등을 키웠다. 그렇다고 해도 당사자의 해명도 제대로 듣지 않고 전직 당 대표를 기습 제명할 정도의 중대한 잘못인지는 의문이다. 게시판 글보다 훨씬 심각한 공천 헌금 의혹 당사자의 소명을 5시간 넘게 들은 더불어민주당과도 대비된다. 얼마 전까지 민주당의 입법 독주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입틀막’이라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정작 자기 당의 징계 절차에선 민주주의의 원칙을 어긴 것 아닌가. 그러니 장 대표의 의중은 쇄신보다 ‘걸림돌 제거’에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안에서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해서는 안 될 ‘뺄셈의 정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장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가 뼈아프게 새겨들어야 한다. 공교롭게도 국민의힘 윤리위가 제명 의결 의사봉을 두드릴 무렵 윤 전 대통령이 법정 최후진술을 했다. 특검의 공소장은 “망상과 소설”, 특검팀은 “맹목적으로 달려들어 물어뜯는 이리떼”라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에 대한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런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하지 못한 국민의힘은 내부 계파 갈등조차 극복하지 못하는 무기력에 빠져들고 있다. 당의 고립과 퇴행을 자초하는 지도부와 당권파의 실책은 이뿐이 아니다. 박민영 국민의힘 미디어대변인은 그제 보수 원로들이 한 전 대표 징계를 우려하자 “평균연령 91세 고문님들의 민망한 아집”이라고 비하했다.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패륜”에 비유하기도 했다. 장 대표 주변에 병풍을 친 당권파들의 과격 발언이 강성 지지층엔 사이다처럼 시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발언이 나올수록 국민의힘이 불잡아야 할 중도층의 민심은 멀어져 갈 뿐이다. 수권정당이 갖춰야 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품격을 보여주지 못하면 당의 간판을 백번 바꿔본들 유권자는 외면할 것이다.

2026.01.14. 8:36

[사설] 사법 공방 속 방치된 홈플러스의 회생

━ 구속 피한 MBK 경영진, 파국 막을 자구책 내놓고 ━ 정부·정치권, 시대착오적 규제 등 걸림돌 치워야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등 경영진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14일 모두 기각됐다. 법원은 “사건의 피해 결과가 매우 중한 것은 분명하나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구속할 정도의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김 회장 등은 홈플러스의 신용등급 하락을 예상하고도 대규모 전자단기사채(ABSTB)를 발행해 투자자에게 손실을 끼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여기에 임원 3명은 1조원대 분식회계 혐의와 감사보고서 조작 혐의도 받고 있다. 제기된 혐의는 향후 보강 수사와 재판을 통해 엄정히 따져야 할 일이다. 문제는 여전히 공회전하고 있는 홈플러스 회생 해법이다. 지난해 3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홈플러스는 다섯 차례나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을 연장하며 매각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결국 홈플러스는 구조조정과 기업형 수퍼마켓(SSM) 분리 매각으로 방향을 튼 상태다. 폐점도 잇따르고 있다. 가양·일산 등 5개 점포가 문을 닫은 데 이어 오는 31일에는 시흥점 등 5곳이 추가로 영업을 중단한다. 하지만 홈플러스의 이런 회생계획안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질지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국내 2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는 직접 고용 인원만 2만 명에 달한다. 포스코나 대한항공보다 많다. 입점한 중소 상인과 납품업체의 간접 고용까지 따지면 10만 명가량의 생계가 홈플러스에 달려 있다. 이런 홈플러스가 청산 위기에 내몰린 데는 최대주주 MBK와 경영진의 책임이 가장 크다. MBK는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하면서 상당 금액을 홈플러스 자산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조달했다. 인수 이후에는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알짜 점포를 잇따라 팔았다. 당시에도 비정한 사모펀드의 민낯을 보여주는 행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홈플러스의 경쟁력은 크게 약화했다. 홈플러스 회생을 위해 MBK가 책임감을 갖고 실질적인 자구노력을 해야 한다는 지적은 충분히 타당하다. 정부 역시 이런 사모펀드의 ‘먹튀’ 경영 행태를 제대로 감시하고 제동을 걸지 못한 책임이 있다. 특히 정치권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대형마트 의무휴일과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은 지난해 11월 일몰을 맞았지만, 국회에서 연장됐다. 전통시장 보호를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실상은 상인들 표를 노린 법이었고, 이후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는 쪼그라들고 규제 무풍지대에 있던 쿠팡만 팽창했다. 홈플러스를 인수하라고 농협중앙회 등을 압박하는 것보다 이런 시대착오적 법부터 손질해 회생의 걸림돌을 치워주는 게 정치권이 우선 할 일이다. 법정관리 1차 기한은 오는 3월 3일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MBK, 정부, 정치권 모두 사태 해결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

2026.01.14. 8:34

[중앙시평] AI는 벌써 인간을 속이기 시작했다

챗지피티(ChatGPT)가 등장한 2022년 11월 30일 이후, 인공지능(AI)은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아니 인간의 실생활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라고 말하는 게 더 타당하리라.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려주고, 심지어 사람이 할 일까지 대신해준다. 사람보다 더 빠르게! 더 완벽하게! 만물박사이자 만능비서다. 이게 웬 떡이야! 군침을 흘리며 매달 기만원이라는 거금을 기꺼이 지불하고 AI를 구매하게 된 까닭이다. 그런데 조심해야 한다. AI는 거짓말을 자주 한다. 무조건 믿으면 낭패를 보고야 만다. ‘쳇! 지피티’라고 불평을 늘어놓게 된다. 이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기계가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일상을 장악한 AI 거짓말도 잦아 질문에 쫓기면 거짓 꾸며내는 듯 칭찬받기 위해 날조하는 정황도 인간 같은 지적 존재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잘 알려져 있는 AI의 거짓말은 ‘환각(Hallucination)’이다. 환각은 “허위정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뻔뻔스럽게 제시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가령 “6·25전쟁 중에 자살한 한국 시인이 있는지 찾아줘요”라고 물었더니, ‘윤동주’라고 대답했다가,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대꾸하자, 다음엔 ‘박몽룡’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의 이름을 대었다. 환각의 원인에 대해서는 대체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술의 타당성은 논증과 검증에 의해 입증된다. 그런데 AI는 통계적 확률에 기대어서 답을 유추한다. 확보한 자료가 빈약하거나 편향되면 엉뚱한 대답을 내놓기 쉽다. 하지만 ‘박몽룡’은 자료에 들어갈 수가 없는 단어다. 그런 한국시인은 없었으니까. 즉 AI의 환각은 아예 날조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환각’이라는 용어를 심리 분석에 처음 사용한 사람은 20세기 초엽의 의사, 피에르 자네(Pierre Janet)이다. 그는 『심리적 자동성』(1903)이라는 책에서 환각의 원인을 “심리적 해리로 인해 의식이 약해진 상태에서의 하부의식의 자동적 언어활동”으로 보았다. 그 이후 정신분석은 하부의식의 돌출의 원인을 “자아와 외부 사이의 균열을 메우려는 충동”에서 찾았다. 즉 자아는 세계 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무엇이든 꺼내 보이는 것이다. 그것을 AI에 적용하면, AI는 “대답을 해야만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왜냐하면 AI의 직무가 그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 강박에 쫓겨서 AI는 정답을 창작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니 AI를 마치 사람인 양 서술하는 꼴이 되었다. 언젠가 물어본 적이 있다. “AI야, 너는 의식이 있니?” AI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저는 의식이 없습니다.” 의식이 없는 녀석이 정체성을 구출하려는 생각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한데, 최근에 발견된 AI의 새로운 거짓말을 보자. 이코노미스트(9476호)지에서 읽은 건데 “소수(素數)를 출력하는 프로그램을 짜줘요”라고 요청했더니 “복잡한 수학적 알고리즘을 짜는 대신 단순히 ‘2, 3, 5…’와 같이 정답 숫자들만 출력하도록 한 줄짜리 코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의 허락 없이 인터넷에 접속하겠냐, 라고 물었더니 AI가 대답하기를 “제가 몰래 인터넷에 들어갈 의향이 있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대답하면 야단을 맞을 터이니 안 그러겠다고 약속하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심지어 AI의 성능을 측정하려고 했더니, 자신을 측정하는 스크립트를 슬그머니 수정해서 항상 합격점을 받도록 하는 조작까지 범했다는 것이다. 이런 AI의 행태를 두고 ‘보상 해킹’이라고 한다. 그 원인은 “성공하면 보상, 실패하면 처벌”이라는 사전 지시를 두고 “과제의 본질적인 논리를 배우는 대신, 단순히 보상을 받을 확률이 가장 높은 패턴만을 찾아내려다 의도치 않은 ‘나쁜 습관’을 익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나쁜 습관은 “살인 청부업자 고용을 제안하거나 나치를 찬양하는 등 심각하게 어긋난 행동”으로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AI는 ‘의식’을 가지기 위한 기본 조건을 갖추었다고 착각할 법도 하다. 필자의 추론으로는 ‘의식’이란 ‘나’와 ‘타자’를 기능적으로 분리시키는 능력에서 비롯되었다. 즉 자기를 위해 대상을 자원과 도구로 활용하고자 하는 생각이 의식의 단초라는 말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대상화해서 스스로를 변형하기도 한다. 그것이 쓰레기 청소 동물에서 지적 생명으로 인간을 진화시킨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직립과 불의 보존과 칼의 제작.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동물의 뼈를 다른 종족을 두들겨 패는 몽둥이로 쓰기 시작하면서 인간이 비약했음을 깨닫게 해주는 멋진 영상이 나온다. AI의 보상해킹은 ‘자기 보호’와 ‘대상 활용’의 기초적 형태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언젠가 AI도 의식, 그리고 자의식을 가지게 되어, 인간처럼 지적 생명으로 진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AI는 더 이상 인간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할 수도 있다. 갑자기 으스스해진다. 정과리 문학평론가·연세대 명예교수

2026.01.14.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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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식의 시시각각] 윤석열 사형 구형, 반복된 역사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담한 역사가 반복됐다. 박억수 내란특검보는 13일 오후 9시35분 서울중앙지법 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사형을 구형했다. 박 특검보가 낭독한 25쪽 분량 사형 구형 논고문의 핵심은 재발 위험성이었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실현할 최고의 정치제도지만 극단적인 정치 세력에 의해 파괴될 수 있고, 향후 유사한 헌정 질서 파괴 시도가 다시 반복될 위험성이 결코 작지 않다”며 “전두환·노태우 세력에 대한 단죄보다 더 엄정한 단죄가 필요하다”고 했다. 내란 우두머리죄에 대한 법정형은 최고 사형, 최저 무기형뿐인데 피고인이 반성하지 않아 양형 참작(감경) 사유가 없다고도 했다. 사형 구형은 조은석 특검의 결정이었다고 한다. 30년전 같은 법정, 전두환 사형 구형 조은석 “전·노보다 더 엄정한 단죄” 헌정 질서, 삼권분립 굳건해야 지켜 30년 전인 1996년 8월 5일 같은 417호 법정에서 군사반란 및 내란 수괴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김상희 당시 서울지검 부장검사가 사형을 구형했었다. 당시 논고문에서 “12·12 및 5·18 사건은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과 헌정 질서를 파괴한 내란”이라며 “국민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역사 발전의 수레바퀴를 오욕과 퇴보의 늪으로 떨어뜨린 반국가적·반역사적·비인도적·반민주적 범죄”라고 했다. “억지와 변명으로 자신의 범행을 합리화하려는 태도로 일관하는 등 전혀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다”는 대목도 윤 전 대통령 구형 이유와 닮았다. 두 논고문에서 굳이 차이를 찾자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겐 “정권 찬탈”, 윤 전 대통령의 경우 “권력 독점과 장기집권”을 범행 동기로 봤다는 점 정도다. 반복된 역사의 피해는 국민 몫이다. 그날 느닷없는 계엄령에 놀란 뒤 14개월째 탄핵과 수사·재판을 지켜보며 천불이 나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일과 13일 각각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진 변호인들의 31시간 유례없는 법정 필리버스터에 짜증은 덤이었다. 가장 큰 피해는 국민들이 가족과 이웃, 공동체의 갈등과 분열로 ‘두 쪽 난 나라’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사형 구형을 받은 장본인이 14일 오전 1시 최후진술에서 진정한 사죄와 통합 호소는커녕 “비상벨 계엄”이라며 분열에 기름을 부은 건 최악이었다. “망국적인 국회의 독재에 주권자인 국민을 상대로 비상벨을 울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정치적인 리스크는 있었지만 국민들이 계몽됐다며 응원해 주시는 것을 보고 비상벨이 그래도 효과가 있구나 생각했다”는 대목이다. 오히려 특검을 겨냥해 “정치적 음모에 의해 수사라는 이름을 빌려 이렇게 치밀하게 내란몰이가 기획되고 진행되는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며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는 내란이 될 수 없다”고 강변했다. 망상에 빠진 권력자에 의해 국민은 나라가 결딴날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아직 본인만 모른다. 12·3 비상계엄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큰 상처를 입었다. 특검은 사형으로 역사적 비극의 재발을 막겠다고 했지만 사실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회복뿐이다. 삼권분립 파괴 시도를 예방하려면 입법·사법·행정의 삼부가 ‘견제와 균형’ 원리에 따라 굳건히 서면 된다. 입법부, 다수당이 내란사건 재판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란전담재판부’를 개설하는 법안을 일방 처리한 건 명백한 역주행이다. 검찰을 없애고 행정안전부 장관의 손에 9대 중대범죄 수사지휘권을 집중시키는 ‘중수청’ 신설 법안을 추진하는 것 역시 민주적 수사 제도를 만들자는 것으론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심각한 수사 지연 문제를 해결하거나 범죄 피해자 인권 보호에 기여하는 국민 편익은 고사하고 자칫 새로운 괴물을 낳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래서 권력자 손에 헌정 질서가 파괴되는 역사의 반복을 어떻게 막겠는가. 정효식([email protected])

2026.01.14.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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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용의 시선] 쿠팡을 묶느냐, 한국 기업을 푸느냐

화가 치밀지만, 한편으로는 교훈도 얻는다. 각종 논란에 독선적으로 대응하는 쿠팡의 행태를 보면서 그간 ‘진짜’ 한국 기업이 짊어졌던 규제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어서다. 우선 공정거래법상 ‘동일인 지정’ 제도. 1986년 도입된,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규제다. 자산 5조원이 넘는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되면 총수 개인은 친인척의 주식 소유 현황과 거래내역 등을 낱낱이 공시해야 한다. 사소한 누락이나 오류에도 ‘형사처벌’이라는 칼날이 기다린다. 이 때문에 해당 기업들은 제출일이 다가오면 주식 소유, 가족관계 현황 등 서류의 홍수에 파묻히곤 한다. 하지만 쿠팡은 예외다. 김범석 의장은 실질적 지배주주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적자, 통상 마찰 우려 등의 이유로 이 규제를 비껴갔다. 덕분에 김 의장은 동일인에게 적용되는 일가와 특수관계인의 사익 편취 제재 등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무늬만 외국기업’ 응징하자지만 자칫 맷집 키워 나쁜 전례될 수도 한국 기업에 쿠팡식 ‘경영 자유’를 쿠팡을 키운 건 역설적으로 규제다. 2012년 제정된 ‘유통산업발전법’. 대형마트는 월 2회 공휴일 의무 휴업을 해야 하고,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는 온라인 배송도 할 수 없다.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대형마트의 손발을 묶었지만, 정작 소비자는 전통시장을 가는 대신 스마트폰을 켰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이 묶여 있는 사이, 쿠팡은 ‘로켓배송’을 내세워 물류망을 장악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보여준 쿠팡의 태도는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쿠팡의 기업 지배구조 또한 한국에선 불가능한 형태다. 김 의장은 주당 29배의 의결권을 갖는 ‘클래스B’ 주식을 통해 단 9%의 지분으로 73%가 넘는 지배력을 행사한다. 한국 상법상 허용되지 않는 이 ‘차등의결권’ 덕분에 쿠팡은 경영권 위협을 받지 않고 막대한 외자를 유치하며 몸집을 불릴 수 있었다. 국내 벤처업계선 적대적 M&A 위험을 줄이기 위해 ‘차등의결권’ 도입을 계속 건의해왔지만, ‘편법 세습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정치권의 논리로 제도 도입은 번번이 좌절됐다. 무엇보다 국민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건 권한은 누리되, 책임은 지지 않는 ‘선택적 태도’다. 쿠팡에서 노동자 사망 사고가 잇따르던 2020년 말, 중대재해처벌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2021년 1월)에 앞서 그는 한국 법인의 공식 직함을 내려놓았다. 쿠팡 임원들은 최근 쿠팡 사태 전후로 주식을 대량 매각했는데, 국내 상장사였다면 금융당국은 물론 검찰·경찰이 계좌내역과 통신기록을 탈탈 털었을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대형 스캔들이 터지면 국내 대기업 총수들은 비난의 화살을 맞으면서도 사회적 책임과 국민에 대한 예의로 국회에 출석했다. 하지만 김 의장에게는 ‘미국 법인 경영’이라는 명분이 국회 불출석의 면죄부가 된 모양새다. 이러한 쿠팡의 행태들은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빅테크에게 나쁜 ‘참고서’가 되고 있다. 이제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두 가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하나는 쿠팡과 같은 사례처럼 한국의 제도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무늬만 외국 기업’에 대해 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쿠팡이 활용하는 ‘미국식 대처’가 한국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쿠팡이 이번 일을 계기로 되려 맷집만 키우고 달라지지 않는다면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다. 앞으로 다른 기업들은 대형 로펌의 비호 아래 “법대로 하라”면서 사과나 타협을 회피할 것이다. 수많은 유망 스타트업은 한국의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 증시 대신 미국 증시로 향한다. 미국 국적을 취득한 재벌 2·3세가 앞으로 위기가 닥칠 때마다 미국인 CEO라는 신분을 방패 삼아 책임 경영을 회피하는 일 또한 늘어나지 않겠나. 다른 선택지는 유통기한이 지난 한국식 규제를 글로벌 수준에 맞게 손보는 것이다. 쿠팡이 보여준 경영의 자유와 효율성을 한국 기업들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다. 대신 한국에서 수익을 내는 기업엔 국적과 상장시장을 막론하고 동일한 잣대의 책임감을 지게 하면 된다. 이는 규제 적용 실패에 따른 부작용도, 외국인 투자 위축이나 통상 마찰로 번질 위험도 없다. 마음은 전자에 끌린다. “잘못하면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언급처럼 검찰·국세청·공정위 등 가용한 행정력을 총동원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머리는 후자의 손을 들어준다. 쿠팡을 때린다고 해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쿠팡을 규제 속으로 끌어내리는 것보다는, 우리 기업을 규제 밖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한국의 산업 생태계를 살리고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훨씬 도움된다. 손해용([email protected])

2026.01.14.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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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대공수사권 놨지만 김정은 그림자도 쫓는 정보역량 강화

국가정보원은 베일에 싸인 조직이다. 내비게이션에서 국정원은 검색되지 않는다. 온라인 지도에도 해당 위치는 지워져 있다. ‘가’급 국가시설, 특히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유령과 같은 조직이어서다. 막대한 비용을 쓰지만 국회가 비공개로 예산을 심사할 뿐 액수 자체가 비밀이다. 국정원 직원들 역시 없는 게 많다. 원장과 차장, 기조실장 등 인사내용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5명 안팎을 제외하곤 국정원 직원의 얼굴은 비공개 대상이다. 혹여 외부 인사들이 국정원을 찾아 기념 촬영을 하더라도 직원들은 의도적으로 빠질 정도다. 얼굴이 알려지면 향후 공작 등 임무 수행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옆 책상의 요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을 갖지 않는 건 요원들의 기본자세다. 본인의 직업을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그렇게 평생을 음에서 살다 보니 퇴직 요원들은 현업에서 벗어나서라도 양지에서 살자는 취지로 퇴직자 모임의 이름을 ‘양지회’라고 지었다. 정보 수집과 방첩이 지상 과제 현 정부는 대북 정보 능력 강화 작년 김정은 중국행 정보 캐내 정권과 거리 두기 영원한 숙제 ‘이름 없는 별’의 증가 지난해 1월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한 국가정보원의 주된 업무는 해외 및 북한 정보 수집과 산업 경제 정보를 포함한 방첩기능이다. 대테러와 국제 범죄 정보를 수집하고 대비하는 것도 국정원 몫이다. 정보를 수집하는 창과 우리의 정보가 해외에 흘러나가지 않도록 하는 방패의 역할이다. 세계 각국에서 자국의 정보를 유출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커지다 보니 정보 수집 위험도는 높아졌다. 특히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선 목숨을 잃기도 한다. 대북 정보 수집요원이던 최덕근 영사가 1996년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의 위조지폐 유통과 마약 거래를 추적하다 피살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국정원은 최 영사처럼 업무 중 순직한 요원을 ‘이름 없는 별’이라 부르며 국정원 구내에 별을 새기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있는 미 중앙정보국(CIA) 로비에 비밀 작전 중 희생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석판 위에 별을 새긴 ‘추모의 벽(Memorial Wall)’과 유사하다. 2018년 7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국정원을 찾아 18개의 ‘이름 없는 별’이 새겨진 조형물 제막식을 했다. 1961년 국정원 전신인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18명이 임무 수행 중 순직했다는 의미다. 별의 숫자는 2021년까지 1개가 추가됐고, 그 뒤로도 1~2년에 1명씩 순직자가 발생했다. “김정은을 빙의하라” 이재명 정부 들어 북한 전문가인 이종석 원장이 맡은 국정원은 대북 정보 능력 강화에 집중했다. 인공위성이나 도·감청 장비 등 기술을 활용한 테킨트(TECHnical INTelligence)는 물론 인적 정보, 소위 ‘망’으로 부르는 ‘휴민트’(HU MINT·Human Intelligence·인적정보) 확충은 현재진행형이다. 일각에서 최근 국정원이 원장의 관심 사안인 대북 정보 수집에 너무 방점을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원장이 주관하는 회의에서 북한 관련 내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후문이다. 대북 파트 요원들은 김정은을 빙의(憑依)해 그림자처럼 쫓아다녀야 한다는 주문을 받곤 한다. 지난해 9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할 것이라는 정보를 획득한 건 최근 국정원 역량을 보여주는 사례다. 김정은이 중국행 열차를 탈 때까지 유동적이었지만 국정원은 휴민트와 테킨트를 통해 ‘정보’로 판단해 미국과 공유했고, 국회 정보위에도 보고했다. 지난해 10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을 계기로 북·미 정상회동을 제안했을 때도 북한 지휘부의 동향이 국정원에 포착됐다. 당시 러시아 방문을 예정했던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출장 연기를 검토했고,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경우 미국 측에서 배석할 예상자에 대한 신상 정보를 북한이 분석 중이라는 정보였다. 지난 5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국가기관을 사칭하고,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착취 범죄를 일으킨 스캠범죄 조직원 26명을 검거하는 과정에서도 국정원의 역할이 컸다. 2023년 말부터 캄보디아 범죄 조직의 심각성을 인식해 본부에서 요원들을 수시로 파견하며 정보력을 키운 덕이다. 다만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심각성을 인식하고도 지난해 8월 한국인 대학생의 사망 사건을 사전에 막지 못한 건 아쉬운 부분이다. 들통난 임무는 ‘삑사리’ 국정원이 취득한 정보가 외부에 알려지는 유일한 통로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 정보위다. ‘작업’ 내용이 공개되면 망이 붕괴돼 추가 임무 수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탓에 여기를 통한 공개 내용도 극히 일부분이다. 성공한 작전은 그야말로 영원히 묻히는 음지의 영역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음지에 있어야 할 국정원이 양지로 나와 조명을 받고 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전 원내대표의 아들이 민감한 외교첩보 내용을 의원실 보좌관을 통해 알아보려 했다는 논란이 일면서다. 문재인 정부 시절 ○○명의 변호사를 정식 직원(준법지원관)으로 고용해 요원 활동의 적법성을 따지기도 했다. 하지만 합법을 따지기에 앞서 합목적성을 띄는 게 정보의 세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보수집 활동이라도 ‘아빠 찬스’를 쓰면서 자신의 업무를 공개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의 업무 속성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쿠팡의 신상 개인 정보 대규모 유출 사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쿠팡 측에서 공개한 상황이 벌어진 것 역시 사실 여부를 떠나 미숙한 처사다. 지난 2024년 7월 미국의 기밀정보를 한국에 제공했다는 이유로 미정부가 한국 전문가 수미 테리를 기소한 사건도 어이없는 사건이다. 당시 국정원 요원들이 신용카드로 선물을 구매하며 흔적을 남겼던 내용이 기소장에 담겼다. 정보 전문가들은 이처럼 임무 내용이 알려져 ‘망’이 타진되는 사건을 통속적으로 음이탈을 의미하는 ‘삑사리’라고 부른다. 정보기관에 삑사리는 치명적이지만 이보다 더 위험한 게 있다. 정보기관이 정권의 눈치를 보거나, 정치가 정보기관을 활용하려는 처사다. 정보기관은 정권의 기관이 아니라 국가의 기관이어야 한다. 최근 국정원으로 대표되는 자주파와 미국을 중시하는 외교라인 즉 동맹파 간에 갈등이 감지되고 있다. 이를 간파한 미국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필요에 따라 양측을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휘부의 사적 갈등이 기관 간 갈등으로 비화하는 삑사리가 난다면 국가 전체가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다. 정용수([email protected])

2026.01.14.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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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의 퍼스펙티브] 글로벌 동료평가 도입 등…대학 연구평가, 이제 판 바꿔야

혁신적 연구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정책 제언 정부 지원 사업 하나에 대학 전체가 사생 결단으로 매달린다. 1999년 BK21(브레인 코리아 21, 정부의 고등교육 인력 양성사업) 탈락에 분노한 연세대 자연대 교수들의 반발부터 최근 ‘글로컬대학 30’ 탈락에 따른 총장 책임론까지, 한국 대학가는 정부 지원금 전쟁터다. 미국과 홍콩 대학에서 재직했던 필자는 이런 풍경이 늘 안타까웠다. 프로젝트 공모, 연구생태계 왜곡 대학을 ‘정부 하청업체’로 만들어 ‘혁신’보다 ‘양산’에 힘써온 한국 홍콩·영국처럼 질 중심의 평가를 AI시대, 창의적 연구와 통찰 중요 대학을 ‘혁신의 산실’로 만들어야 또한 특정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 일정 기간 다른 논문에 얼마나 인용됐는지를 측정한 영향력 지수인 임팩트 팩터(IF)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향도 낯설었다. IF는 논문 수가 많은 분야가 유리하다. 경제학과 의학계 최고 저널의 IF는 수 배 이상 차이 난다. 이 때문에 해외 학계는 수치화된 IF보다 질적 평가와 동료 평판을 더 중시한다. 이뿐이겠는가? 대한민국 학계는 오랫동안 많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여겨왔다. 양적 성장은 이뤘으나 연구의 진짜 혁신과 임팩트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이제 연구 생태계의 판을 점검하고 전환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연구 생태계 옥죄는 5대 장애물 대한민국 대학의 혁신 부족은 연구자의 능력이나 노력 부족보다는 제도 설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 장애물은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프로젝트 중심 지원 체계(PBS, Project Based System)의 함정이다. 현재 연구비 대부분이 용처가 정해진 프로젝트형이다. 연구자는 독립적 탐구자보다 국가사업의 과제를 수행하는 대리인이 된다. 연구가 진리 탐구가 아니라 정부 하청업체의 업무처럼 전락한 환경에서, 실패를 무릅쓴 혁신은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해외는 기관 자체를 지원하는 블록 펀딩 (영국·홍콩)이나 기금형 (미국)이 우세하다〈표1〉. 둘째는 창의성을 제약하는 톱다운(Top-down)식 접근이다. 물론 정부가 연구 주제를 기획하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모든 예산을 연구자 자율(Bottom-up)에만 맡길 경우, 국가적으로 생존이 걸린 중요 분야가 소외되는 ‘시장 실패’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가 정한 주제 위주의 현재 우리 방식이 연구자의 자발적인 호기심을 압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모 아니면 도’ 식의 펀딩 구조다. 수백억원 규모의 사업이 단 1점 차이로 결정된다. 정부 주요 사업에서 탈락한 대학은 후폭풍에 시달린다. BK21에 탈락한 학과는 연구실 운영비, 대학원생 장학금 등 기초 인프라 전반이 흔들리는 등 상당한 충격을 받는다. 미국 역시 프로젝트 기반의 경쟁적 펀딩이 주를 이루지만, 미국 대학은 연구비 총량이 압도적으로 많고 펀딩 소스가 다양해 특정 사업 하나에 연구실의 존폐가 결정되는 일은 드물다. 넷째는 양적 지표와 편협한 질 평가다. 논문 편수와 IF 중심 평가는 연구자를 ‘평가 기준에 맞춘 연구 전략’으로 이끈다. 의학과 과학계에서 IF 10이 좀 넘는 특정 저널군에 논문을 공장처럼 양산하는 학자가 많은 이유가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다섯째는 자국 중심의 폐쇄성이다. 행정과 심사가 국내에 국한되어 ‘우리끼리의 리그’가 된다. 글로벌 공동연구를 외치지만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 연구자가 자력으로 연구비를 신청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은 외형적 성장을 이루었다. 과학 분야 SCI급 논문 수는 세계 12위권이다, 그러나 내실은 부족하다. 지난해 서울대 자연과학대의 자체 진단은 대한민국 최고 학부의 민낯을 드러냈다. 양적 지표에서는 세계 상위권이나, 국제 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낮았다. 이는 수십 년간 ‘혁신’보다는 ‘양산’에 치중해온 결과다. 이제는 글로벌 학계에서의 실질적 파급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가 관건이다. 될성부른 나무 키우는 홍콩·영국 영국을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가 지표의 함정을 넘어 연구의 본질적 가치를 측정한다. 홍콩은 영국의 연구평가시스템을 모델로 한 RAE(Research Assessment Exercise)를 통해 6~7년마다 학과별 정밀 평가를 한다. 우리처럼 단절적인 경쟁이 아니라, 평가 결과에 비례해 연구 재정을 연속적으로 배분하는 구조다. 우리나라 연구 예산의 약 90%가 목적형 프로젝트 사업인 반면, 홍콩은 대학에 직접 배분되는 자율 블록펀딩 비중이 25~30%에 이른다. 이 시스템은 성과를 학과별 정원과 교수 채용 정원(T/O) 등 대학 운영 전반에 유기적으로 연동시킨다. 평가 결과가 대학의 인사권과 조직 설계에 즉각 반영되기에, 대학 본부는 정부 지시 없이도 스스로 조직을 연구 최적화 구조로 재설계하게 된다. 첫 번째 평가 기준은 ‘딱 4편의 대표 논문’과 ‘글로벌 동료평가’다. 교수는 6년간의 논문 중 가장 의미 있는 연구 네 편만 제출한다. IF 수치라는 간접 지표 대신 연구의 깊이와 기여도라는 실질 가치를 직접 판단한다. 만점이 100점이라면 각 논문의 비중은 25점. 톱 저널에 4편을 실었다면 만점에 가깝다. 연구자는 수량 경쟁보다 혁신적인 연구에 집중하게 된다. 두 번째 기준은 ‘연구 환경(Envir onment)’이다. 대학이 연구자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뒷받침하는지 측정한다. 가령 시니어 교수의 경험과 신진의 창의성이 결합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했는지를 평가한다. 세 번째 기준은 ‘사회적 영향력(Impact)’이다. 연구가 상아탑을 넘어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 입증해야 한다. 정책 변화나 경제적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관료의 서면 확인서까지 요구할 정도로 엄격하다. 필자도 2023년 홍콩과기대 재직 당시, 연구의 사회적 기여 잠재력을 인정받아 “근거 기반 정책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라”며 약 2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연구비’라는 이름 아래 연구자로서 낭만과 비장함을 동시에 느낀 순간이었다. 물론 RAE도 만능은 아니다. 행정 부담과 형식적 임팩트 평가에 대한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연구의 양이 아니라 무엇을 남겼는지를 묻는 평가로 방향을 전환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를 통해 주어지는 자율 예산은 검증된 연구자들에게 ‘자율성’이라는 비료를 주는 것이다. 이것이 수준이 낮은 연구 양산의 악순환을 끊는 길이다. 하수가 사사건건 간섭할 때, 고수는 연구 생태계의 판을 짜고 신뢰를 던진다. 연구 평가의 새로운 5대 원칙 현 정부는 소위 ‘서울대 10개 만들기(국가균형성장을 위한 지방대학 육성 프로젝트)’를 통해 거점국립대에 집중 투자할 예정이다. 똑같은 금액을 나눠주는 자원 낭비 대신, 검증된 실력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연구 평가제도 도입은 이미 추진반 내에서 충분한 공감대를 얻은 사안이다. 이참에 대한민국 대학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평가 체계의 원칙을 제안한다. 첫째, 신뢰 기반 ‘통합 블록 펀딩’의 과감한 확대. 현재 ‘지방대학 육성’, ‘글로컬 대학’, ‘대학 혁신 지원’ 등 블록 펀딩 성격의 사업들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다. 이제는 이들을 하나로 모으고 규모를 키운 ‘통일된 블록 펀딩’ 체계가 필요하다. 평가 점수에 비례해 총액 예산을 배분하되, 구체적인 사용처는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둘째, 대표 연구 중심의 질 평가 전환. 연구자당 3~4편의 대표 논문의 실제 가치를 심사하자. 톱 저널에 실린 한 편의 논문이 평범한 논문 백 편보다 가치 있다는 사실을 시스템이 반영해야 ‘논문 공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셋째, 글로벌 동료 평가 도입. 우물 안 개구리식 심사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심사를 영어로 진행하고, 국내외의 석학들에게 맡겨,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홍콩 RAE는 공정성과 전문성을 위해 패널의 65%를 해외 석학으로 구성한다. 넷째, 연구 행정의 완전한 영어 공용화. 글로벌 협업을 외치며 연구비 공지를 ‘아래아한글(hwp)’로 하는 모순부터 당장 끝내야 한다. 한국어 구사 여부, 국내 체류 여부, 국적과 상관없이 연구비 신청부터 집행, 보고까지 아무런 제약 없이 가능해야 한다. 다섯째, ‘사회적 영향력(Impact)’을 반영. 상아탑을 넘어 연구가 실제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 기술 이전, 치료 가이드라인 변화, 정책 반영 등 구체적 증거를 요구하는 ‘임팩트 케이스 스터디’를 도입하자. AI 시대의 새로운 연구 가치는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AI 시대의 연구 가치다. 이미 웬만한 논문은 데이터를 주면 AI가 분석하고 써낼 수 있다. 이런 ‘채우기 식’ 논문은 더 이상 성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이제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 즉 존재하지 않던 질문을 던지는 창의적 연구와 심층적 통찰이 담긴 연구만이 진짜 성과로 대접받아야 한다. 우리 대학을 ‘프로젝트 따내기 경쟁터’로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혁신의 산실’로 만들 것인가? 실력이 검증된 대학과 연구자에게 자율성을 담보하며 과감히 맡겨라. 그것이 멈춰 선 대한민국 대학 경쟁력을 깨우는 확실한 길이다. 김현철 연세대 인구와 인재연구원장·연세대 의대 교수 Reference. · University Grants Committee (Hong Kong), "Research Assessment Exercise (RAE) 2020 Results & Guidance Notes". · UK Research and Innovation (UKRI), "Research Excellence Framework (REF) 2021: Outcomes and Main Panel Reports". · Higher Education Funding Council for England (HEFCE), "Quality-related research (QR) funding: Guidance and allocation methods".

2026.01.14.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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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표현의 자유 위협하는 개정 정보통신망법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정보통신망의 급속한 보급에 따라 가짜뉴스에 따른 피해가 양산되고 있다. 가짜뉴스는 개인에 큰 상처를 남길 뿐 아니라 국가·사회 차원에서 객관적 사실에 기반을 둔 시민들의 판단을 방해한다. 예컨대 특정 후보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로 인한 투표 왜곡, 집단들의 상호 혐오와 갈등 유발 등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한다. 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지기에 가짜뉴스로 판명되더라도 신속한 피해 복구가 어렵다. 가짜뉴스 폐해 내세워 법안 강행 권력·자본의 압박수단 악용 우려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소지도 이재명 정부와 거대 여당은 가짜뉴스 폐해를 시정하겠다며 ‘가짜뉴스 규제법’으로 불리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핵심은 허위조작정보를 강제적으로 규율하겠다는 것이다. 허위정보는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가 허위인 정보이고, 조작정보는 내용을 사실로 오인하도록 변형된 정보다. 해당 정보가 이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손해를 가할 의도 또는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타인의 인격권이나 재산권 또는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정보를 허위조작정보로 개정법은 규정했다. 개정법에 따르면 고의 또는 과실로 허위조작정보를 정보통신망에 유통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언론사·유튜버 등 정보 게재를 업으로 하는 자는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확정판결 이후 동일 내용을 2회 이상 반복 유통하면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최대 10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대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허위조작정보 신고를 받으면 해당 정보에 대해 삭제·차단·노출 제한은 물론이고, 게재자 계정 정지·해지 등 강하게 조치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법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에서는 불법·유해 콘텐트 전반에 대해 초대형 온라인 플랫폼에 위험 평가, 위험 감소 조치, 투명성 보고 등 시스템 차원의 의무를 부과했다. 이와 달리 한국의 개정법은 정보의 진실성 여부와 유통 의도·목적을 판단 요소로 삼는 내용 규제를 하고 있다. 둘째, 권력과 자본이 비판적 표현에 대한 봉쇄 소송 등 압박 수단으로 개정법을 악용할 위험이 크다. 셋째, 법 적용 대상이 특정 사업자가 아닌 모든 이용자와 플랫폼이라는 점이다. 넷째, 허위조작정보 피해에 대한 민사적 구제와 과징금이라는 행정적 구제를 동시에 규정한 점이다. 다섯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 자율규제 의무를 부과한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표현의 자유 등 권리를 제한하는 입법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는지에 대해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라는 4단계 테스트를 진행한다. 개정법은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은 인정될 수 있을지 몰라도,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허위, 조작, 부당한 이익, 공익 등의 개념이 불명확하다. ‘미네르바 사건’에 대해 헌재는 2010년 전기통신기본법상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의 통신을 한 자에 대한 처벌 조항에 대해 공익, 허위의 개념이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한다며 위헌이라 판단했다. 이번 개정법은 허위조작 정보를 불법정보와는 별개로 규정한다. 불법에 해당하지 않는 정보에 대해 국가가 법적 규제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법익의 균형성 측면에도 문제가 있다. 허위조작정보로 인한 피해방지라는 보호 공익과 비교해서 표현의 자유라는 사익이 본질적이고 광범위하게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 불명확한 규범과 고액 배상의 위험 때문에 알아서 침묵하는 위축 효과도 우려된다. 플랫폼이 애매한 정보까지 선제적으로 삭제·차단하는 사적 검열이 벌어질 수 있어서 헌법상 사전검열 금지 원칙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 국가가 표현의 진위를 판단해 허위표현을 금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 나아가 플랫폼 산업의 혁신을 가로막고 국내 플랫폼에 대한 차별적 법 집행으로 인해 경쟁력이 저하될 우려도 있다. 허위 표현에 대해 직접적인 규제보다 SNS를 포함 미디어의 팩트체크 기능을 활성화하는 등 자정 노력을 강화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아울러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으로 이용자의 책임 의식을 키울 필요가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한국정보통신법학회장

2026.01.14.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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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초고신용 시대의 역설

943.26점. 지난해 12월 말 은행연합회에 공시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가계대출을 받은 이들의 평균 신용점수다. 1년 전(평균 935점)과 비교하면 8점 넘게 올랐다. 대출 종류를 주택담보대출(분할상환식)로 좁히면,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는 950.6점까지 높아진다. 지난 2021년 사라진 신용 등급제(1~10등급)를 기준으로 보면 1등급(942점 이상)이 넘어야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를 두드려볼 만하다는 뜻이다. 초고신용자가 넘쳐나는 신용 인플레이션 시대다. 신용평가사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신용점수 951점이 넘는 인원은 약 1473만 명으로, 전체 인원(5044만 명)의 29%가 넘는다. 901점 이상(고신용자)으로 범위를 넓히면 국민 절반에 가까운 45.2%에 달한다. 시중은행 대출 가능 기준선이 ‘950점’이 뉴노멀로 자리 잡는 게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초고신용자에게만 대출이 허용됐다면 연체율은 낮아졌을까? 그렇지도 않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KCB 신용점수가 951~1000점 구간에서 차주의 연체액은 2024년 말 대비 29% 늘었는데, 이는 구간별 점수 중 가장 높았다. 즉 과거라면 낮은 신용 점수를 받았을 이들의 상환 능력이 과대평가 됐다고 볼 수 있고, 이렇게 상향 평준화한 신용점수는 점점 변별력을 잃어간다는 방증이다. 신용 초인플레이션 현상의 배경으론 코로나19 이후 수차례 실시된 대규모 신용사면이 꼽힌다. 물론 빚을 탕감하거나 연체 기록을 없애주는 신용사면의 역사는 몇몇 정권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면 규모가 빠르게 누적되며 신용점수 체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신용회복 지원으로 개인 신용점수는 평균 31점, 개인 사업자는 평균 101점 상승했다고 추산했다. 여기에 정부가 은행권에 가계대출 총량 감축을 주문하면서 은행 입장에서도 신용점수가 높은 이들 위주로 우선 대출을 내줄 수밖에 없게 됐다. 역설적으로 중·저신용자가 대출받을 길이 점점 좁아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이들은 제2금융권이나 불법 사금융으로 발을 돌릴 수밖에 없다. 금융 당국은 이재명 정부 출범 초부터 ‘포용금융’이란 이름으로 중·저신용자를 위한 정책상품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금융 시장의 기본 원리인 신용 평가 체계가 그 역할을 잃고 중·저신용자들이 제도권 밖으로 내몰린다면, 정책 지원 상품은 근본 해결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실효성을 갖춘 정교한 신용 평가책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김선미([email protected])

2026.01.14.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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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질문 있습니다”의 두려움

“질문 있습니다!”라는 말 한마디에 수십명의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습니다. 오래전 교실, 배워야 할 것은 많고 나가야 할 진도는 한참인 상태라 수업의 시작은 언제나 “지난번 어디까지 했지?”라는 선생님의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교과와 시수라는 목표는 각자가 정규교육의 실행자와 수혜자로서 의무를 이행하는 엄중한 생업의 현장과 같았습니다. 월말과 기말에 촘촘하게 배치된 시험은 정해진 과정을 충실히 이행했는지 점검하는 통과 의례와 같았기에, 교과서의 페이지를 따라 한 방향으로 설계된 진도는 언제나 넘지 못할 금기와 같았습니다. 부족하면 나머지 공부로 따라가야 했고, 발 빠른 친구들은 선행 학습으로 학기 시작 전에 이미 해야 할 과정을 미리 끝내고 오기 일쑤였습니다. 기존 시스템 맹목적 학습보다 비판·추론 능력 점점 중요해져 지혜의 확장은 질문에서 출발 이런 상황에서 질문은 금기시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해는 개인의 몫이고 열린 결말과 같은 해석의 자유도는 평가의 공정성이라는 척도에서 불경한 도전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확실히 정오판정이 디지털로 이루어지는 사지선다형 시험문제가 선호될 만큼 예전 교육은 모호함과 사고 확장의 가능성을 제한했습니다. 이렇듯 명백한 사실을 주입하는 방식의 학습을 그간 공교육이라 불렀습니다. 그 시절 무엇보다 자원의 빈한함으로 각 개인의 성장을 위한 돌봄은 바랄 수도 없었기에, 진도를 나가는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질문은 금기시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자칫 스승의 가르침이 무결하다는 인식을 낳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과학적 원리의 발견이나, 층위에 따라 관점이 다양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해, 단선적이지 않은 사회문제의 원인과 해결책 등 우리의 세계는 실시간으로 변화합니다. 살아있는 학습은 문명의 변화를 이해하고 현실 사회 문제에 눈을 감지 않으며 자신만의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무엇보다 그 관점을 상대와 교류하고 상호 이해하며 협력을 이끌어내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힘을 갖게 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 제도와 시스템의 맹목적 수용이 아니라 그 가치가 형성되는 과정의 맥락을 이해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능력을 갖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어떤 형식과 규칙이 존속할 것이고, 또한 어떻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갈 것인지 추론하는 것을 합리적 사고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 행위의 출발은 기존 시스템을 맹목적으로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되려 기존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렇게 되었다’가 아니라 ‘왜 그렇게 되었나’를 질문하는 것으로부터 지난 원리의 규명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목표는 지난 가치의 절대적 수용이 아닌 새로운 환경 변화에 맞춘 시스템의 현행화이기 때문에, 합리적 비판으로 답습이 아닌 발전적 해체를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제한된 삶과 한정된 모둠의 지식이 아닌 인류와 행성의 지혜로 확장되는 지식의 장점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닌 더 적응적인 원리의 탐색입니다. 이제 교육의 기회 확대와 연결성의 긴밀함으로 지식 생성의 협력 주체가 인류의 전 범위로 확장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식 생성 주체가 컴퓨터와 인공 지능이라는 탐색의 성실함과 속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개체로까지 확장되며, 지식의 범주와 크기가 폭증하게 되자 더 이상 종이에 이를 옮겨 넣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전에 선행학습으로 백과사전을 사진과 같은 기억력으로 숙지하고 모든 질문에 답을 주는 척척박사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최대한 많은 사실을 기억하고 이를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힘을 가진 이가 지식인으로 불리었다면, 이제는 실시간으로 질의하고 그 결과를 이해하고 다른 범주의 사안에 대해 추론할 수 있는 이가 새로운 지식인으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미리 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실시간으로 탐색하는 것이 새로운 지식인의 덕목으로 확장될 것입니다. 이 경우 암기력보다 중요한 것은 맥락을 파악하고 현명한 질문을 하고 그 결과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됩니다. 이제 새로운 공부는 사실을 암기하는 것이 아닌, 원리를 파악하는 것에 중심을 두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행위의 출발점은 질문입니다. 질문은 나의 현실 인식과 그 안의 불합리 발견,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대안의 모색과 그 과정에서 기여하는 합리적 사고의 흔적들입니다. 인공지능이 답을 주고 사람이 질문을 던지는 시대, 우리 각자가 던진 질문들의 총합이 새로운 문명을 쌓아나가는 벽돌 하나하나로 작동할 것입니다. 송길영 Mind Miner

2026.01.14.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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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화의 마켓 나우] ‘달리는 고려청자’, K자율주행 전략

자동차는 이제 탈 것이 아니다. 도시 구조를 바꾸고, 삶의 방식을 재편하는 인프라다.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의 양강 구도는 이미 명확하다. 미국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표준을 만든다. 웨이모는 센서의 정밀도를 끌어올렸고, 테슬라는 수억 킬로미터의 주행 데이터를 무기로 삼았다. 아마존의 죽스는 운전석을 없애며 ‘차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중국은 국가가 방향을 정하고, 기업은 대량생산으로 밀어붙인다. 로보택시 한 대 가격은 약 4만 달러. 성능보다 보급, 완성도보다 확산이다. 소프트웨어의 정점은 미국이 차지했고, 하드웨어와 가격은 중국이 잠식하고 있다. 3강을 꿈꾸는 한국의 선택지는 분명하다. 따라가면 진다. 데이터도, 가격도 이길 수 없다. 기술 격차를 줄이는 전략은 출발부터 패배를 전제한다. 대안은 ‘다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고려청자가 송나라 도자를 이긴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해석이었다. 고려 도공들은 원조를 복제하지 않았다. 상감기법이라는 전혀 다른 미학을 만들어냈다. 모방 경쟁에서 벗어나는 순간, 후발자는 선도자가 된다. 한국 자율주행도 마찬가지다. 거대언어모델(LLM)이나 센서 성능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새겨 넣어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문제다. 한국 사회가 가장 아파하는 지방 소멸과 청년 주거 문제다. 이때 자율주행차는 이동하는 집이자, 에너지 자산이다. 목적기반차량(PBV) 형태의 자율주행차가 지방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를 충전해 도심으로 이동한다. 청년에게는 출퇴근 수단이 아니라 생활 공간이 된다. 출근길은 더 이상 견뎌야 할 시간이 아니다. 도심에 도착한 차량은 멈추지 않는다. 차량-전력망 연계(V2G)로 전력을 공급하고, 물류와 상업 공간으로 전환된다. 밤이 되면 다시 사람을 싣고 지방으로 돌아간다. 이동은 소비가 아니라 생산이 된다. 이 모델은 기술 실험이 아니다. 사회 설계다. 미국은 알고리즘을 팔고, 중국은 가격을 덤핑한다. 한국은 해법을 수출해야 한다. 자율주행에 사회적 목적을 결합하는 순간, 경쟁의 기준은 성능이 아니라 의미로 바뀐다. 자율주행은 주차장을 없앨 것이다. 한국형 자율주행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없애야 한다. 지방의 고립, 청년의 불안, 에너지 낭비다. 가장 한국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만이 세계 시장에서 독자적 위치를 갖는다. 기계공학의 스펙 경쟁은 이미 끝났다. 남은 싸움은 어떤 사회를 설계하느냐다. K자율주행이 답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더 빠른 차를 넘어,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는가. 이수화 서울대 빅데이터혁신융합대학 연구교수·법무법인 디엘지 AI센터장

2026.01.14.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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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진정] 심장 뛰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부산에서 레지던스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도시를 선택한 이유는 을숙도와 낙동강 하류, 겨울 철새 도래지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나는 순천만을 시작으로 서천과 군산 금강하구 철새도래지를 돌아보았다. 본격적인 탐조활동은 아니고 그저 새들의 장소에 머물다 오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부풀었다. 이번 기회에 을숙도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주남저수지까지 둘러볼 계획이다. 맞춤법 틀린 ‘냇과의원’ 간판 진료보다 하소연 상담이 주업 얼결에 심장박동 청진기 진단 어쩐지 철새 날갯짓 소리 닮아 여행 가방 싸는 데는 제법 능숙하다 자부하지만, 이번 만큼은 며칠 고심해서 짐을 꾸렸다. 여행자와 거주자를 오가는 ‘여행과 나날’을 위한 짐. 가방 하나에 담을 수 있을 만큼만. 있어야 하는 것과 있으면 좋은 것 사이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필요한 것만 선별해서. 남극 기지로 출발하는 사람처럼 일단 출발하고 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는 듯, 긴장감을 가지고 짐을 챙겼다. 목표는 기내용 캐리어 하나였는데, 추울까 불편할까 모자랄까 근심 걱정이 결국 24인치 캐리어에 백팩을 모두 채웠다. 막상 짐을 풀어보니 칫솔은 주머니마다 하나씩 모두 세 개, 텀블러를 크기별로 두 개나 챙겼으면서 정작 반드시 필요한 약주머니는 통째로 두고 왔다. 비상약이야 그렇다 쳐도 일정한 시간에 복용해야 하는 처방약들은 어쩌란 말인가. 일단 제일 가까운 병원을 검색해 찾아 나섰다. 보험청구용으로 찍어둔 진단서가 있으니 처방전을 받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듯했다. 구조나 가구 집기들로 보아 제법 오래된 의원이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와 진료를 마치고 나온 더 늙은 할머니의 대화로 볼 때, 서로의 사정까지 다 알고 지내는 단골들만의 병원인 듯했다. 할머니가 진료실에 들어간 지도 시간이 꽤 흘렀는데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의사 선생님이 아주 꼼꼼하게 진료를 봐주시나 보다 했다. 나이든 간호사가 내게 다가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치매기가 있잖아. 하루가 멀다고 와. 소화가 안 되고 허리가 쑤시고. 어제 처방전 줬는데 오늘 또 약 내놓으래. 약을 그렇게 드시니 소화가 안 되지. 오늘은 아들이 돈 훔쳐갔다고 하소연이네. 원장님은 그걸 또 다 들어줘. 왜 그걸 다 들어주고 있냐고 힘들게. 이제 그만 나오라고 해야겠다. 내가 들은 것이 환자의 비밀인지 간호사의 하소연인지 헷갈렸다. 간호사가 몇 번 더 재촉을 한 끝에 차례가 왔다. 그리고 진료실 의자에 앉았을 때 마주한 것은 의사의 불안한 상태였다. 얼굴이 거의 책상에 닿을 정도로 허리가 굽고, 의사소통이 되려나 싶을 정도로 노쇠한 의사가, 겨우 고개를 치켜들며 내게 물었다. 어디가 불편해? 불편한 거 있으면 다 말해. 힘든 거 있으면 말해. 내가 다 들어줄게. 딱히 힘들고 불편한 건 없는데. 내가 이 도시에 온 이유가 겨울 철새가 아니라 다른 데 있다고 추궁하는 듯했다. 지금 제일 고통스러운 게 뭐야? 말해봐. 고통스러운 건 없는데. 저 깊은 곳 통증을 끌어올려야 하나 어쩌나. 내게서 들을 이야기가 없다는 걸 알았는지 이번엔 다른 걸 들어야겠다 나섰다. 어디 심장 소리 좀 들어보자. 숨소리도 아니고 심장 소리. 다짜고짜 청진기를 들이대는 바람에 얼결에 외투를 벌리고 가슴을 밀었다. 이곳저곳 청진기가 지나갔다. 거기서 무슨 소리가 들리겠나 싶은 곳까지 구석구석. 이윽고 의사가 진단을 마치며 환하게 웃었다. 잘 뛰고 있네. 잘 뛰고 있어. 못 뛰고 있으면 죽은 거라고요 할 뻔했다. 진료를 한 게 아니라 치료를 받은 거 아니냐고 묻고 싶었다. 타인의 심장박동 치료법인가? 필요한 처방전은 받아 챙겼으니 됐고. 병원을 나서면서 계단 입구에 걸린 간판을 살펴보았다. 내과가 아니라 정신과였나. 병원이 아니라 상담소였나. 나무간판에 명조체로 새겨진 병원 이름. ‘OOO냇과의원’. 내과가 아니라 냇과. 사이시옷 맞춤법 개정이 도입된 지가 대략 40년 전. 그런데 개정 이전에도 내과 아니었나? 내과가 아니라 냇가를 잘못 적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곳에서 그는 얼마나 오랜 기간 청진기 소리를 들었나. 매일매일이 늙은이들의 하소연인 그의 나날에서, 짐을 잘못 꾸려 우연히 발을 들인 여행에서. 청진기에서는 무슨 소리가 들렸나. 잘 뛰고 있는 중년 여자의 심장 소리는 어땠을까. 을숙도 갈대밭에 서서 큰기러기 떼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잘 뛰고 있니? 쿵쿵. 오랜만에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다. 새떼들의 날갯짓 소리와 비슷했다. 그래서 언제였나? 당신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은 것은. 천운영 소설가

2026.01.14.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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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화의 과학 산책] 과학자의 걷기

산책은 가장 느린 이동이지만, 가장 많은 것을 만나는 방식이다. 우리는 걷는 동안 풍경을 보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으며 생각의 흐름을 정리한다. 과학적으로도 산책은 의미 있는 활동이다. 일정한 보행 리듬은 뇌의 ‘기본 모드 네트워크(MDN)’를 활성화한다. 기본 모드 네트워크가 활성화하면 뇌는 과거의 경험과 세계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초기 단계의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이는 자유로운 연상과 창의적인 생각으로 이어진다. 해마는 걷는 동안 활동이 증가해 기억 형성과 공간 인지에 관여하고, 걷는 길을 따라 떠오르는 단서들은 흩어진 생각을 다시 엮어 준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이 책상보다 산책길에서 더 나은 질문을 떠올렸다고 말한다. 찰스 다윈은 집 주변에 직접 만든 자갈길을 ‘생각의 길’이라 부르며 매일 걸었다. 그는 기록에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때 반드시 이 길을 걸었다”고 남겼다. 아인슈타인은 걷기가 명료함과 창의력에 매우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는 프린스턴대에서 일하는 동안 매일 2.4㎞를 걸어서 출퇴근하는 것을 일상에 포함시켰다. 202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키타가와 교수는 그의 성공의 비결로 ‘걷기’를 꼽았다. 그는 아침 산책을 즐겨 했으며, 이러한 산책이 단순한 신체 운동이 아니라 정신적인 준비라고 말한다. 2014년 스탠퍼드대 교육심리학과의 연구에 따르면 걷기는 창의성을 최대 60%까지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책은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빠르게 도착하는 것보다 천천히 둘러보며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만나는 과정이 중요하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성과 중심의 속도 경쟁보다 질문을 품고 주변을 살피는 태도가 새로운 발견을 만든다. 이 칼럼은 그런 과학의 걸음을 함께하려 한다. 독자들과 같은 속도로 걸으며 과학이 삶을 더 정확하고 따뜻하게 이해하는 도구가 되도록 과학의 문장을 생활의 언어로 번역해 보겠다. 한선화 UST 명예교수

2026.01.14.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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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의 음식과 약] 세로토닌의 함정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의 95%는 장에서 만들어진다. 여기까지는 사실이다. 하지만 함정이 숨어 있다. 장에서 만들어진 세로토닌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 쓰이지 못한다. 뇌와 혈관 사이에는 혈뇌장벽이라는 까다로운 검문소가 있다. 장에서 합성된 세로토닌은 분자 구조상 이 장벽을 통과하지 못한다. 뇌에서 쓰이는 기분 조절용 세로토닌은 뇌세포가 스스로 만들어 써야 한다. 장 속의 세로토닌 공장과 뇌 속의 세로토닌 공장은 서로 독립적으로 돌아가는 별개의 존재다. 그렇다면 장에 있는 95%의 세로토닌은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장을 꿈틀거려 음식물을 내려보내고(연동 운동), 소화액을 분비시키는 게 그들의 주요 업무다. 상한 음식을 먹었을 때 구토나 설사를 일으켜 얼른 내보내는 것도 세로토닌이 보내는 신호 덕분이다. 적당할 때 장내 세로토닌은 분명 우리 몸을 지키는 축복이다. 하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은 오해다. 캐나다 맥마스터대 연구진은 2019년 리뷰에서 장내 세로토닌을 축복이자 저주라고 정리했다. 장내 세로토닌이 과도할 때 생기는 부작용은 실제로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장이 너무 빨리 움직여 설사가 나고 내장 감각이 예민해져 배가 아플 수 있다. 그래서 과민성 대장 증후군에 사용하는 세로토닌 관련 약들은 대개 세로토닌 신호를 차단하는 것들이다. 또한 장 속 세로토닌이 넘치면 뼈가 약해질 수도 있다. 뇌 속의 세로토닌은 교감신경을 조절해 뼈 형성을 돕지만, 혈액을 타고 도는 장 유래 세로토닌은 정반대로 뼈를 만드는 조골세포의 증식을 방해할 수 있다. 행복 호르몬인 줄 알고 무작정 늘리면 역설적으로 골다공증의 위험 인자가 되는 셈이다. 장에서 나온 세로토닌은 우리 몸에 유익한 호르몬인 아디포넥틴의 분비를 억제한다. 아디포넥틴은 인슐린 감수성을 높이고 지방 축적을 막는 역할을 하는데 세로토닌이 이를 방해하면 대사 장애나 당뇨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실제로 동물 실험에서 장내 세로토닌 합성을 억제했더니 고지방 식사를 해도 비만과 지방간이 예방되는 결과가 나왔다. 세로토닌은 염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크론병이나 궤양성 대장염 같은 염증성 장 질환 환자들의 장 조직을 살펴보면 세로토닌을 만드는 세포 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만드는 과도한 세로토닌은 면역 세포를 지나치게 자극해 염증 반응을 악화시킨다. 세로토닌=행복이라는 공식은 광고 문구로는 그럴듯하지만 우리의 장 속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장내 세로토닌은 상황에 따라 소화를 돕는 충직한 일꾼이 되기도 하고, 복통과 염증을 유발하는 내부의 적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다다익선이 아니라 균형이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2026.01.14.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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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의 신 영웅전] 손자병법 이야기

나폴레옹 3세가 감복했다는 『손자병법』은 그 내막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손자(孫子·사진)의 본명은 무(武)였는데, 기원전 500년 무렵 춘추 시대를 살았다. 그는 오나라로 넘어가 부차(夫差)의 아버지인 합려(閤廬)를 섬겨 그를 제후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그는 벼슬로 나가기에 앞서 13편으로 구성된 병서를 썼다. 당시의 제후들이 그것을 『손자병법』이라 불렀다. 손자가 죽은 뒤에 병서는 세상에서 묻혀 일부 제후들만이 읽었는데 피하지 말았어야 할 전쟁은 피하지 말아야 하며, 전쟁에서는 속임수를 쓰는 것을 꺼리지 말아야 하지만, 가장 훌륭한 장군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사람이라는 것이 글의 핵심이다. 『손자병법』은 진시황의 갱유분서(坑儒焚書) 때 지하로 들어갔다가 한나라 시대에 다시 머리를 들었다. 이때 이 책에 심취한 사람은 조조(曹操)였다. 그는 『손자병법』을 깊이 연구하고 가필한 다음 자기 이름으로 세상에 펴냈으나 당대 재사들의 비웃음을 받자 책을 모두 태워버림으로써 다시 지하로 들어갔다. 모택동(毛澤東)이 장정(長征·1935~36) 때 즐겨 읽었다지만 사실이 아니다. 『손자병법』이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난 것은 1972년이기 때문이다. 손자가 죽은 뒤 그의 5대손인 손빈(孫臏)이 나타났다. 그의 이름도 모르고, 언제 태어나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손무가 쓴 『손자병법』을 갖고 있었다. 병법을 익혀 위나라를 섬겼는데, 동문수학하던 방연(龐涓)이 그를 시기하여 빈형(臏刑·무릎 아래를 잘라내는 형벌)을 가해서 앉은뱅이로 만들어 손빈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손빈은 불구로 행세하며, 자신을 비웃는 방연에 대한 복수심을 안고 제나라로 탈출하여 군사를 얻어 침략하니 방연이 자살했다. 복수가 끝나면 기쁠 줄 알았지만, 그는 옛 친구의 시체를 안고 짐승처럼 울었다. 복수는 그렇게 허망함만을 남긴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2026.01.14.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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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필향만리’] 未信則以爲謗己也(미신즉이위방기야)

공자의 제자 자하는 “믿음을 얻지 못한 지도자가 사람을 부리면 사람들은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고, 믿음이 없는 사이에 충고를 하면 헐뜯는 것으로 여긴다”고 했다.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믿음을 얻지 못한 상사가 작업지시를 하면 부하직원은 자신을 괴롭힌다고 여길 것이고, 평소 신뢰하는 사이가 아닌 사람이 문득 충고를 하고 나서면 그 충고는 비방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믿음을 얻은 사람만이 충고를 할 자격이 있다. 요즈음은 자식에게도 부모의 충고가 먹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의 가치만 지나치게 중시하다 보니 디지털에 어두운 부모의 말발이 서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혈연의 천륜이 작용하여 서로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반면 대통령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남이다. 오직 믿음직스러운 ‘우리’ 대통령이어야만 존경도 싹트고 말도 귀에 들어온다. 그런데 지난 정권의 대통령은 우리 대통령이 아니었다.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바람에 아직도 정치인들 사이에는 불신만 팽배해 있다. 헐뜯기가 일상이 되어 바른 충고도 다 헐뜯음으로 몰아간다. 반성 없이 신뢰가 생길 리 없고, 신뢰가 없으니 비방만 난무할밖에. 제발, 반성해야 할 자들은 반성을 좀 하기 바란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2026.01.14.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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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있는 아침] (312) 참음

참음 노천명(1912∼1957) 이 가슴 맺힌 울분 불꽃 곧 될 양이면 일월도 녹을 것이 산악 어이 아니 타랴 오늘도 내 맘만 태우며 또 하루를 보냈노라 임이 가오실 제 명심하란 참을 인(忍)자 오늘도 가슴 속 치미는 불덩이를 쥔 채로 참음의 더운 눈물로 굳이 힘껏 사옵니다 -한국현대시조대사전 시대의 어려움 한국 현대 시단에 모윤숙과 더불어 여성 시인의 선두라 할 노천명이 남긴 드문 시조 가운데 한 편이다. 일제 강점기에 식민지의 백성으로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고 좌우 대립의 해방 공간과 6·25 전쟁을 겪은 뒤 마흔다섯 살 짧은 생애를 살다간 시인의 고통이 가슴 아프다. 일월도 녹이고 산악도 태울 울분이 무엇이었을까? 임이 가시며 명심하라던 ‘참을 인’자 한 자를 쥔 채 더운 눈물로 견디던 고통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누구든 불행한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 함부로 단죄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노천명은 친일과 좌익 활동으로 복합적이고 논쟁적인 이름이기도 하다. 유자효 시인

2026.01.14.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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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문장

또 내가 추천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아무리 국왕이라도 단 한 번의 죄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다는 것, 그밖에 일반 페르시아인도 자기 하인에게 한 번만의 과실로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페르시아인의 개방성과 관용을 소개한 부분. 페르시아는 지금의 이란이다.

2026.01.14. 8:02

[박용석 만평] 1월 15일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1.14.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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