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이 없을 때 '텅 비었다'라고 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사실 산소, 질소, 아르곤, 그리고 미량의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많은 것들로 꽉 차 있다. 아무것도 없는 진짜 공간은 진공(眞空∙vacuum)이라고 하는데 실험실에서 그 비슷한 상태를 만들 수 있지만, 100% 진공은 불가능하다. 은하 깊숙한 곳, 별과 별의 사이인 성간은 거의 완벽한 진공 상태라고 하는데 가로, 세로, 높이가 각 1m씩 되는 정육면체 모양의 공간에 수소 원자 몇 개 정도 들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 완벽에 가까운 진공은 지구상에서는 존재 불가능하다. 수학에서는 0이라고 하며, 불교에서는 무(無)라고 하는데 과학적 용어로는 진공이다. 진공의 개념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진공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음극선 실험을 하면서부터다. 공기 중에서는 음극선이 흐르지 않았다. 음극선의 흐름이란 다시 말해서 전자의 이동인데, 공기 속의 여러 입자가 전자의 이동을 방해했다. 그래서 공기가 희박할수록, 그러니까 진공에 가까운 상태일수록 음극선의 흐름이 더 빠르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실생활에서 진공은 아주 중요하다. 빛을 내는 전구는 속의 공기를 없애서 필라멘트가 산화되지 않아야 오래 사용할 수 있고,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진공청소기가 있고, 진공포장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곳에 쓰이고 있다. 의미를 혼동하는 일이 많은데 어떤 용기 속에 공기를 뺐다고 진공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모든 물질, 즉 원자까지 모두 없어야 제대로 된 진공이다. 그래서 실험실에서 진짜 진공을 만드는 일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고전역학에서는 진공은 텅 빈 곳이었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진공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라 진공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좀 어려운 말 같지만, 진공 속에서 입자와 반입자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그럴 때 에너지와 빛이 나온다. 만약 진공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다면 에너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직 우리의 과학기술 수준이 그 단계는 아니다. 지구와 달, 태양계, 은하 등 우주를 우주답게 유지해 주는 것이 바로 중력이다. 중력은 미시세계에서는 약한 힘이기는 하지만 은하나 우주의 규모에서는 가장 강한 힘이다. 중력 때문에 우리가 지구에 붙어서 살 수 있고, 여덟 행성이 태양이란 별을 공전하면서 태양계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 은하인 은하수의 크기는 그 지름이 약 10만 광년이나 되는 거대한 덩치지만 중력으로 말미암아 모두 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수조 개나 되는 은하가 모인 우리 우주도 중력에 의해서 서로 흩어지지 않고 우주의 모습을 지탱한다. 그런데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주는 가속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은하와 은하 사이가 점점 빨리 멀어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좀 이상하다. 중력 때문에 서로 잡아당긴다면 당연히 은하와 은하 사이도 점점 가까워져야 할 텐데 멀어진다니 뭔가 비밀이 있는 모양이다. 과학자들은 중력을 이기는 어떤 힘, 즉 척력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고 그 알 수 없는 힘을 밝히려고 했으나 아직 성과가 없다. 어쨌든 우리는 그 모르는 힘에 암흑에너지란 이름을 붙였고 우주는 암흑에너지가 중력보다 커서 점점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혹시 암흑에너지가 바로 진공 에너지가 아닌가 의심한다. 그런 과학적 추측이 과학 기술이 향상되면서 실험적, 관찰적 증거가 발견되는 것이 물리학의 발달 과정이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진공 에너지 진공 vacuum 과학 이야기
2025.07.11. 13:19
━ 초단시간·초단기 근로자 보호 강화 추진 ━ 최저임금 2.9% 인상, 자영업자 부담 가중 ━ 주휴수당·퇴직금 대상자 확대 신중해야 이재명 정부가 취약계층을 위한 노동정책 강화에 시동을 걸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국정기획위원회에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근로자에게 주휴수당을 지급하고, 현재 1년 이상 일해야 받을 수 있는 퇴직금을 초단기 근로자가 3개월 이상만 일해도 받도록 하는 등의 제도 개선 로드맵을 보고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자영업자를 비롯한 소상공인들 사이엔 비상이 걸렸다. 서울 강서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50)씨는 “인건비를 줄이려 주말에만 알바생을 고용했는데 주휴수당까지 줘야 한다면 더는 알바생을 쓰기 어려울 것 같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주중 아르바이트생을 없앤 지 3년쯤 됐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른 이후 주휴수당까지 감당할 여력이 안 돼서다. 앞으로 인건비가 또 오르면 버티기 어렵다. 지난해 전체 취업자 2857만6000명 중 자영업자는 19.8%(565만7000명)를 차지했다. 자영업자 비중이 20% 아래로 내려간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산업구조 변화로 인한 측면도 있지만, 경기 부진으로 폐업이 늘어난 여파가 크다. 그제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 10명 중 4명은 “3년 내 폐업을 고려한다”고 응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는 자영업자 부담을 가중하는 노동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음식·숙박, 도·소매업 등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자는 것인데, 정책 방향은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주휴수당의 경우 현행 근로시간 기준을 소득 기준으로 바꾸면, 예컨대 주당 15시간 미만을 일해도 일정 소득 이상이 되면 유급 휴일수당(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퇴직금의 경우도 3개월 이상만 근무했다면 현행 기준인 12개월에 비례적으로 퇴직금을 산정함으로써 훨씬 많은 초단기 근로자가 혜택을 볼 수 있다. 문제는 늘어나는 고용 비용을 누가 댈 것이냐는 점이다. 정부가 아직 구체적인 시행 방법을 제시한 건 아니지만 결국 자영업자가 상당 부분을 떠안게 된다. 한시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방안이 동원될 가능성도 있지만, 저성장 기조에 나라 곳간 사정도 좋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선의의 정책이라지만 현실은 엄혹하다. 더구나 최저임금은 해마다 오르고 있다. 그제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 최저임금을 1만320원으로 정했다. 올해보다 2.9% 인상한 것으로 역대 정부 첫해로는 최저 인상률이다. 인상 속도 조절을 고심한 결과로 보이지만, 벼랑 끝에 서 있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겐 그마저도 작은 부담이 아니다. 자영업자들에겐 문재인 정부 당시의 소득주도성장(소주성) 기조에 맞춰 추진된 최저임금 과속 인상에 대한 트라우마가 크다. 문 정부는 임기 5년간 최저임금을 41.6% 올렸다. 같은 기간 10%였던 1인당 국민총소득 증가율의 4배를 웃도는 폭등이었다. 자영업자들은 아르바이트 직원을 대거 내보내고 남은 아르바이트 일자리는 주휴수당을 줄이기 위해 15시간 미만의 ‘쪼개기 아르바이트’로 대처했다. 아르바이트 여러 개를 전전하는 N잡러의 등장 배경이다. 지금처럼 최저임금이 거듭 오르고, 주휴수당과 퇴직금까지 줘야 한다면 문 닫는 자영업자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선의의 노동정책이 결국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없애고 자영업자까지 옥죄어 경기를 가라앉게 만드는 ‘소주성 시즌 2’가 벌어질 수 있다. 애초 주휴수당과 퇴직금은 정규직 고용을 전제로 한 제도다. 그렇다면 정부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더욱 힘쓰고 취약계층 보호 정책은 정교한 설계로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야 취약계층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소주성 같은 결과가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다.
2025.07.11. 8:14
부고 기사 등에서 “2년간의 투병 생활 끝에 운명을 달리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등과 같이 ‘운명을 달리했다’고 쓴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말은 맞는 표현일까? ‘운명(殞命)’은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형은 오랜 객지 생활로 아버지의 운명을 보지 못했다” 등처럼 사용된다. 따라서 사람이 죽었음을 뜻할 때는 ‘운명을 달리했다’가 아니라 ‘운명했다’고 써야 바르다. 이전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됐다는 의미로 ‘운명이 달라졌다’고 표현할 수는 있다. 이때의 ‘운명’은 ‘운명(殞命)’이 아닌 ‘운명(運命)’이다. ‘운명(運命)’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이나 그것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가리킨다. ‘운명을 달리했다’로 잘못 쓰는 이유는 ‘운명’과 ‘유명’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나타낼 때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은 ‘유명을 달리하다’이다. ‘유명(幽明)’은 어둠과 밝음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저승과 이승을 나타내기도 한다. ‘유명을 달리하다’는 이승의 밝은 세상을 떠나 저승의 어두운 곳으로 갔다는 의미로 ‘죽다’를 완곡하게 표현한 말이다. 따라서 “유명을 달리했다” 또는 “운명했다” 둘 중 하나를 사용하면 된다. 우리말에는 이 밖에도 죽음을 완곡하게 나타내는 표현이 많다. “세상을 떠나다” “한 줌의 재가 되다” “잠들다” “돌아가다” “고동을 멈추다” 등과 같은 표현이 있다. “별세(別世)하다” “타계(他界)하다” “영면(永眠)하다” “작고(作故)하다”와 같은 한자어식 표현도 있다.우리말 바루기 운명 한자어식 표현 투병 생활 객지 생활
2025.07.10. 18:49
미국에 백만장자는 2300만 명으로 전 세계 백만장자의 40%를 차지한다. 한국에서의 백만장자도 130만 명 세계 10위를 기록했다. 여기저기에 백만장자가 많이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하루에 1000명씩 백만장자가 탄생하는데 나는 어디에 있는가. 부자가 되려는 방법은 다양하다. 미국에 이민 온 우리가 모두 부자가 될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자. 코로나가 시작한 2020년 3월 말 이후 미국 전 국민의 순자산이 110조(trillion) 달러에서 180조 달러로 불어났다. (참고로 1 trillion이란 1000 billion을 말하고 1 billion은 1000 million을 말한다). 순자산이란 집, 주식, 채권, 자동차, 현금 모두에서 주택 융자금, 신용카드, 학자금, 자동차 융자, 등 모든 빚을 제하고 남은 자산을 말한다. 미국 전 국민 전체 자산 180 조 달러에서 탑 10%가 차지하는 비율은 62.6%이며 빚은 24.5%이다. 그 다음 국민 40%는 자산이 33%이며 빚은 45%가 된다. 나머지 50%의 국민은 자산이 5.6%에 빚은 무려 30.9%가 된다. 요약하면 부자는 빚보다 자산이 훨씬 많고 가난할수록 자산보다 빚이 훨씬 많아지는 것이다. 미국 부자 대부분의 자산은 주식에 투자되어 있다. 부자 탑 1%가 주식시장 50% 이상을 차지하지만, 인구의 절반인 바닥(Bottom)에서 50%는 단 1%만이 주식시장에 투자되어 있다. 참고로 탑 10%가 주식시장의 거의 90%를 차지한다. 이것이 부자가 계속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경제가 어렵다, 물가 상승으로 생활하기 어렵다 등은 부자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미국의 탑 부자 10%가 미국 경제 소비의 50%를 차지한다. 미국 부자 소수가 경제 활동 소비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지난 5년 주식시장 연평균 무려 15% 이상이다. 지난 10년도 연평균 수익률은 13%이다. 나의 투자 돈이 3배로 증가한 놀라운 수익률이다. 부자가 부지런히 소비해도 자산은 그 이상 더 불어난다. 부자는 경제 침체기, 주식시장 폭락, 등 그때 그 시점에 염려(It’s always something)해야 하는 일에 개의치 않고 낙관적인 마음으로 주식시장에 꾸준히 투자하여 높은 수익금을 받는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투자할 자금도 많지 않지만, 투자해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비관적인 마음 때문에 투자하지 못한다. 또한 수시로 변화하는 주식시장에 민감하게 대응하기에 대부분 실패하는 투자로 이어진다. 미국은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나라이며 주식시장이 금융 경제의 중심이다. 주식시장에 투자하지 않고 개인 재정을 튼튼히 하며 부를 쌓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주식시장이란 한 아이가 요요를 하며 언덕을 올라가는 것과 비슷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주가는 오르고 내림을 반복한다. 그러나 언덕을 올라가고 있기에 한 지점에서 요요의 최저점이 지나온 최고점보다도 높은 지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장기 투자해야 하는 이유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투자 경험과 주식시장 폭락 등으로 다시는 투자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기도 한다. 이러한 잘못된 판단은 은행 저축이나 현금 보유 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물가는 끊임없이 올라가고 돈의 가치는 계속 떨어진다. 특히 요즘 은퇴 기간이 30년 이상이라는 장기간을 고려하면 백만장자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빈곤한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분명한 투자의 목적과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히 투자하면 성공적인 투자로 여유로운 은퇴를 기대할 수 있다. 성실과 끈기로 뭉쳐있는 우리가 모두 백만장자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이명덕 / 재정학 박사재정칼럼 부자 낙관 주식시장 연평균 투자 경험 주식시장 폭락
2025.07.10. 18:47
“예술가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 가르침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으며 컸다. 만고의 진리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기서 ‘인간’이란 물론 ‘좋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훌륭한 사람, 빼어난 인간, 성공한 사람, 완벽한 인간, 아름다운 사람을 뜻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예술가가 꼭 윤리적인 성인군자이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예술가와 세상의 윤리 도덕의 관계는 늘 골치 아픈 문제였다. 역사적으로 그래왔다. 창조적인 예술가는 일반적 모범 인간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인, 괴짜, 별종, 미치광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도 예술가니까 그러려니 너그럽게 용서하며 지내왔다. 실제로 반듯한 모범생이 뛰어난 작가로 성공하는 예는 많지 않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예술가에게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도덕군자이기를 요구한다. 그런 기대에서 빗나가면 가차없이 비판하고 냉엄하게 단죄한다. 그 단죄의 칼날이 무자비하게 준엄할 때도 많다. 예를 들어, 친일파, 미투, 공산주의자, 블랙 리스트 등 칼날은 정말 무섭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한번 찍히면 살아남지 못한다. 노벨문학상에 가장 가깝다던 고은 시인 같은 이도 한 방에 가는 걸 보면…. 물론 한국만 그런 건 아니다. 플라시도 도밍고 같은 거물도 한 방 맞고 재기하지 못하는 걸 보면 미국에서도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예술세계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고, 옳고 그름을 무 자르듯 명쾌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비정한 단죄의 칼춤으로 날아가 버린 예술적 성취가 생각보다 많아 당황스럽다. 여기서 하나하나 예를 들 필요는 없겠지만, 역사를 바르게 정리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인데, 제대로 거론하고 평가조차 하지 못하는 예들이 많은 것이다. 이건 정말 문제다. 단죄의 빌미가 되는 죄목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어느 한 시기의 잘못이거나, 한 인간의 극히 한 부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재수 없게(?) 들켰기 때문에 칼날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일부분의 허물로 한 인간 전체를 단죄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지나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친일파 낙인이 찍힌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에서 일본 냄새를 맡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운보 김기창의 바보 산수나 예수의 생애 그림에서 왜색을 느끼지 못한다. ‘한번 친일파는 영원한 친일파’라는 논리는 우습다. 친일파가 그린 영정이나 친일파가 만든 동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멀쩡한 작품을 철거하고 새로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그나마 새로 만든 것이 철거한 친일파의 작품만 못할 때의 허망함이란…. 그런데, 그 준엄한 단죄는 도대체 누가 하는가? 기준은 무엇인가? 미투의 경우는 피해자가 있으니까 그나마 납득할 만한 성토와 고발이 가능하겠지만, 친일파 단죄는?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가 하는가? 문득 떠오르는 성경 말씀 “누구든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 좀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한국 현대의학계의 거목 장기려 선생이 창씨개명으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이에 대해 함석헌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창씨개명을 한 장 선생이 여전히 사람을 살리는 의사인 한, 장기려는 나의 친구입니다. 하지만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더라도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의사라면 장기려는 나의 친구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창씨개명을 거부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지 못한 함석헌은 장기려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줄임)… 잠깐 욕됨을 참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길을 택하세요.” -손흥규 ‘청년 의사 장기려’에서 먼저 사람이 되라는 말씀과 함께 용서와 관용에 대해서 생각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친일파 단죄 친일파 낙인 거목 장기려
2025.07.10. 18:46
전투는 멈췄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1953년 7월 27일, 한반도는 ‘정전’이라는 이름으로 총성이 멎었지만, 그 과정은 복잡하고 불완전했다. 북한과 중공, 소련은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고, 유엔군 내에서도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각국의 입장은 제각각이었다. 결국 휴전은 미국 측의 의도대로, 제한된 전쟁의 틀 안에서 마무리되었다. 우리 입장에서 이 휴전은 억울함 그 자체였다. 3년 1개월 동안 온 국토는 폐허가 되었고,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됐다. 당시 북한은 소총, 기관총, 박격포 등 보병 화기 정도는 자체 생산이 가능했지만, 우리는 총알 하나, 수류탄 하나조차 만들지 못한 상태였다.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사실상 선택지가 없었다. 중공군의 참전 이후, 당시 전선 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주장한 만주 폭격은 군사적으로는 당연한 판단일 수 있었지만, 미국은 처음부터 6·25 전쟁을 세계대전으로 확산시키지 않기 위해 ‘제한 전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특히 맥아더를 제외한 대부분의 미국 장성과 일선 지휘관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이 아닌 유럽 전선에서 복무한 인물들이었다. 여기에 더해,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미국 내부의 정치적 상황도 전쟁 장기화를 꺼리게 만든 요인이었다. 전쟁 말기에는 매일 중대 병력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를 감당할 여론적 기반도 붕괴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미국은 한반도 방어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선이라 판단한 ‘캔자스(Kansas) 방어선’을 유지하기 위해 판문점 일대의 서부 전선을 고착화했다. 휴전회담이 이뤄지고 있다는 명분 아래 서부 전선의 북진을 포기했고, 중동부와 동부 전선에서도 대대급 이상의 공격을 금지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한국전의 승리를 포기한 셈이었다. 더욱이 영국은 이 전쟁을 소련의 유럽 침공을 위한 양동작전으로 판단했기에 하루라도 빨리 종전하고 유럽 방어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결국, 유엔군은 하루빨리 휴전을 원했지만, 오히려 칼자루를 쥐게 된 공산군은 느긋하게 2년 넘게 협상을 끌며 유리한 조건을 모색했다. 그리고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각, 정전협정이 발효됐다. 협정문은 영문, 한글, 중국어 3개 국어로 작성되었고,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대장,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 팽덕회, 북한의 김일성 세 사람의 서명이 담겼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정식 서명국은커녕 배석자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직접 당사자였음에도 정전협정에 서명할 자격조차 인정받지 못했다. 그로부터 72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은 기회만 되면 도발을 일삼고, 불리한 국면에서는 ‘민족애’를 앞세운 평화 공세를 되풀이하고 있다. 남북 간의 대치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장기 휴전 상태이며, 이산가족 간의 편지 한 장조차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가 아직도 한반도의 주권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휴전 직전, 7월 13일 백마고지 전선에서 적군의 포로가 된 수도사단 부사단장 임익순 대령(1917~1997)은 자신의 회고록 『내 심장의 파편』에서 정전 회담 기간 중 평양으로 끌려가며 직접 목격한 북한의 전황을 기록하고 있다. 유엔군의 공중 폭격으로 인해 철도망은 마디마디 끊겨 있었고, 무기와 보급품은 확보되었더라도 운송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공산군은 이 시점에 더 이상의 전쟁은 패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고, 마침내 휴전 협정에 서명했다. 하지만 일선에서 싸운 군인들은 전투 의지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전 시각을 알지 못한 채 싸움을 계속했다. 그 결과, 정전 발효 직전 몇 분, 몇 초를 남기고 전사한 병사들도 있었다. 그 유가족들이 느꼈을 참담함과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날, 금성천 골짜기에서는 미군, 국군, 중공군, 북한군 병사들이 함께 물장구를 쳤다는 전언이 전해진다.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전쟁의 비극적 단면이다. 임익순 대령은 이후 남쪽으로 송환되어 포로복을 벗고 팬츠 바람으로 부대 사열을 받은 유일한 일선 지휘관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북한에는 돌아오지 못한 국군 포로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주영세 / 은퇴목사·ROTC 1기열린광장 휴전 제한 전쟁 전쟁 말기 유럽 전선
2025.07.10. 18:45
현 정부가 그토록 바라던 ‘원 빅 뷰티풀 법’이 지난 4일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법은 하나도 아름답지 않은 추악한 ‘원 빅 어글리 법’이다. 트럼프가 공약했던 팁과 시간외 수당에 대한 세금 면제는 이뤄졌다. 하지만 미국 역사상 최대 액수인 1조3000억 달러 복지혜택 예산 삭감으로 당장 1180만 명이 건강보험을 잃는다. 10년 뒤에는 4000만 명 이상이 무보험자가 된다. 오바마케어 메디케이드 확대 수혜자는 일을 해야 보험이 적용된다. 난민 등 일부 합법 이민자가 받는 메디케이드, 차일드헬스플러스 연방정부 지원도 끊어진다. 푸드스탬프에 대한 주 정부 부담이 생겼고, 수혜자의 근로 요건이 확대된다. 이 또한 이민자에 대한 제한 조항이 적용된다. 이를 통해 수백만 명이 혜택을 못 받게 될 수 있다. 이렇게 복지혜택을 삭감하는 탓에 일부 주어진 면세 혜택은 서민들의 주머니에 들어가더라도 바로 털린다. 그리고 어차피 대다수 서민은 소득세 신고를 할 때 항목별 대신 기준(스탠다드) 공제를 택하기 때문에 팁과 시간외 수당 세금 면제가 소용이 없다. 빌 클린턴 대통령 때 노동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지난 50년간 미국인 90%의 자산이 최고 부자 1%에게 무려 80조가 옮겨갔다고 밝혔다. 이른바 ‘낙수효과 이론’이라는 속임수의 결과다. 이번에도 감세 혜택의 70%는 상위 부자 20%에게 돌아간다. 1조3000억 달러를 복지혜택에서 깎아 부자들에게 바친다. 한편 이민자 단속 예산은 1700억 달러로 늘어난다. 옛 예산의 80배다. 닥치는 대로 잡아들이는 잔인한 정책은 더 거세질 것이다. 이민단속국은 올해 1~6월 20만 명 이상을 추방했다. 범죄 이력이 없는 이민자 체포가 807% 늘었고 30%만 범죄에 연루돼 있다. 폭력 범죄자는 7% 남짓이다. 예산이 늘어나면 체포, 구금, 추방은 폭증할 전망이다. 다수의 국민들은 이 법에 반대했다. 여론조사 결과 반대 59%, 찬성 38%였다. 그래도 법은 제정됐다. 법 제정 전부터 현 정부의 예산 삭감은 한인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 제공 노인 취업 프로그램으로 한인 시니어 단체에서 일하던 어르신들의 임금 지급이 끊어졌다. 한인 장애인 단체의 취업 프로그램도 지원금이 모두 삭감됐다. 메디케어 규정이 바뀌어 어르신들의 약값이 수십 배 치솟았다. 트럼프를 지지한 많은 유권자들이 고개를 떨구고 있다. 특히 트럼프가 한반도 평화에 힘써줄 것으로 믿은 한인들도 후회한다. 미국에서 인권과 평등, 평화를 파괴하는 대통령에게 어떻게 국제 평화를 기대할 수 있나? 곳곳에서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는 정권에게 우리만 선물을 받겠다고 고개를 조아리는 비겁한 마음은 버려야 한다. 차라리 한반도와 관련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라며 하더라도 반대한다. 지금 정부는 평화를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트럼프는 최근 악어가 사는 플로리다주 습지 안에 지어진 이민자 수용소 ‘앨리게이터 앨커트래즈’를 찾았다. 그리고 “이민자들에게 도망치는 법을 가르쳐야겠다”고 했다. 그는 “악어는 빠르다. 도망치려면 직선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달려야 한다. 그러면 살 확률이 1% 높아질 것”이라고 이곳에 갇힐 이민자들을 조롱했다. 이런 사람에게 이 세상 어느 곳의 평화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어글리 복지혜택 예산 이민자 체포 이민자 단속
2025.07.10. 18:04
아이티에 왔다. 몹시 안타깝고 그리웠던 아이들을 만나려고 뉴저지에서 마이애미로 가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새벽같이 나와 비행기를 타고 아이티 북부 도시 캡 헤이션에 도착했다. 갱들의 피해를 보지 않아 조용한 캡 헤이션에서 다섯 시간을 기다려 작은 비행기를 타고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했는데, 20분이 걸렸다. 이번 방문은 10개월 만이다. 작년 9월 초에 다녀간 후, 11월부터 미국 항공편의 운항이 중단되었고, 이후 계속 연장되어 지금도 포르토프랭스는 국제선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다. 그나마 국내선이 지난 6월부터 정부가 보험을 보증하면서 정기운항을 시작했지만, 국제선은 내년까지 재개되지 못할 것으로 대부분 예상한다. 지금 포르토프랭스는 전기가 전혀 공급되지 않는다. 얼마 전, 발전소 인근 주민들이 갱들의 습격을 받았을 때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이 애꿎은 송전탑 여섯 개를 절단해 넘어뜨리면서 전력 공급이 완전히 끊겼다. 우리가 머무는 센터도 제한적으로만 발전기를 돌리고 있다. 일반 서민들은 밤이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지내고, 낮에는 전기로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수도 전체가 완전히 단전 상태다. 이런 사정 속에서, 오랜만에 온 우리는 고아원 아이들을 차례대로 센터로 불러서 만났다. 전기도 전혀 들어오지 않고, 갱들은 여전히 밤낮없이 총격전을 벌이며 사람들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고아원은 갱 점령지역에서 숨죽여 지내고 있다. 긴장하며 지내는 아이들을 위로하고, 사랑을 나누고자 만나서 신체검사도 하고, 모처럼 푸짐한 도시락도 함께 먹으며 격려했다. 아이들은 표현이 없지만, 원장들은 어려운 걸음을 해준 우리에게 뜨거운 포옹으로 감사를 전하며 맞잡은 손을 놓지 못한다. 어찌 지냈느냐는 안부도 부질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자주 울컥한다. “버텨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눈빛으로 나누며, 우리는 씩씩한 척 큰 소리로 노래도 부르고, 길고 깊은 감사 기도도 함께 드렸다. 아예 문을 닫은 학교가 수업을 하는 학교보다 훨씬 많은 상황인데, 문을 연 학교도 수업을 제대로 못 해 방학을 늦추고 있다. 그런 가운데 고등학교 졸업 국가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가 이번 주에 치러졌고, 고아원 아이들도 여러 명 응시했다. 이 시험에 합격하면 대학 입학시험을 볼 자격을 준다. 우리는 지금 4명의 대학생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는데, 9월 학기에 최소한 두 명을 추가로 지원하기 위해 기도 중이다. 갱단의 폭력으로 나라의 존립이 흔들리고, 국제사회의 외면 속에 소망이 보이지 않는 이 땅에서, 갱들이 활동할 때는 아이들이 학교도 갈 수 없지만 우리는 그래도 아이들 교육을 좀 더 지원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후원받은 식량을 받아가려면 적지 않은 통행료를 갱단에 내야 하고, 숨 한 번 크게 쉬기도 어려운 현실 속에 삶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있지만, 우리는 고아들의 삶이 처참해질수록 더욱 하나님만 바라본다. 시편 140편 12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이 고난받는 사람을 변호해 주시고, 가난한 사람에게 공의를 베푸시는 분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아이티에서 고아들을 품고 소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이유는, 고난받는 사람 편에 계신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참혹한 땅에서 하나님이 우리 편이심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하나님 국제선 비행기 가운데 고등학교 고아원 아이들
2025.07.10. 18:01
━ 직권남용·공무집행 방해 혐의…법원 “증거인멸 염려” ━ 철저한 후속 수사로 진상 규명…먼지털기식은 피해야 윤석열 전 대통령이 어제(10일) 새벽 다시 구속수감됐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난 3월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으로 풀려난 지 4개월여 만이다. 윤 전 대통령은 그제(9일) 영장실질심사에 직접 나와 최후진술을 통해 “비상계엄은 경고용이었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차원이 아니었다”고 항변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세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법조계에선 윤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린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과 김성훈 전 경호처 차장이 초기 진술을 번복한 것이 영장 발부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이는 윤 전 대통령 측의 회유나 압박 가능성, 나아가 증거인멸 우려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이 다시 구속된 것은 이유를 막론하고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이후 7개월 넘게 이어진 국가 혼란을 생각하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위헌적 계엄을 실행한 군 지휘관들이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최종 책임자인 윤 전 대통령이 석방돼 있다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더구나 재판 중인 내란 우두머리 혐의와 별개로 추가된 혐의 하나하나가 국가의 법질서를 형해화한 중대 사안이다. 국가기관인 경호처를 사실상 사병화해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고, 경찰에 “총을 보여주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의 심의권 행사를 침해했고, 허위 공문서인 사후 계엄선포문 작성·폐기에 관여했다고 봤다. 또 외신 대변인에게 비상계엄이 적법한 것처럼 홍보하게 하고, 경호처에 비화폰 내용을 삭제하라고 한 혐의도 적용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 측은 영장실질심사에서도 “규정상의 조치였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전 대통령이 구속수감되면서 내란 특검은 물론이고 김건희 특검과 순직 해병 특검의 수사도 보다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특검도 유의할 점이 있다. 피의자의 인신 구속이 성과라는 도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흘리면서 여론몰이를 하거나 먼지털기식 수사를 통해 구속 대상자를 늘리는 방식이어선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도입 취지에 맞게 독립적으로 엄정하게 수사해 진상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윤 전 대통령 역시 “지시한 적 없다”는 식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 본인이 책임을 미루면 다른 사람들이 과도한 수사와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객관적인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궤변과 변명을 멈추고 책임 있는 자세로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2025.07.10. 8:34
━ 방위비 증액 이어 “미군 1만 명으로 감축” 주장 ━ 미국 요구 살피면서 유연한 대책 미리 모색해야 어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했다. 이 대통령은 “국가 안보는 언제나 사후 대응보다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한·미 현안과 관련, 안보(국방비 등)와 통상(관세 협상)을 연계하는 패키지딜 대책 등이 두루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통상·안보 협의를 위해 사흘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그제 방미 결과를 설명하면서 “(정상회담의) 구체적인 일자까지는 나와 있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불발된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대면 정상회담이 기약 없이 늦어지는 것은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서는 동맹인 한국을 배려하지 않는 자극적 발언들과 충격적 메시지가 속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1년에 100억 달러(약 13조7350억원)를 지불해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압력을 가했다. 나토 동맹국들이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 등에 지출하도록 압박한 데 이어 한국·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들에도 동일한 기준을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해 온 미국의 입장을 고려하면 이제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이나 재배치, 나아가 부분 감축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 5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주한미군 4500여 명을 괌 등 인도·태평양 지역의 다른 미군 기지로 이동하는 방안을 미 국방부가 검토 중이라고 보도한 데 이어 그제는 현재 2만8500명인 주한미군을 1만 명 수준으로 대폭 감축하는 방안을 제안한 미국 싱크탱크 보고서가 공개됐다. 물론 미 국방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라고 하지만, 오는 8월 발표될 미 국방전략서(NDS)에 유사한 내용이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 제기된다. 그동안 줄기차게 나온 트럼프 2기 정부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미국은 한·미 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동맹 청구서를 공식적으로 제시할 공산이 커 보인다. 공식 통보 전이라도 한국 정부가 미국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대응 카드를 다각도로 준비해 둬야 하는 이유다. 미국의 요구를 무작정 일축할 수도 없으니 흐름을 잘 살펴가면서 현실성 있는 유연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위성락 실장은 방미 결과 브리핑에서 “통상·안보 전반을 패키지로 협의하자고 미 측에 제안했다”면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도) 논의 대상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시작전권 전환 등 민감한 이슈는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파장 등을 다각도로 신중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2025.07.10. 8:32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대(大)홍역을 치르고 난 이후의 새출발이라는 점에서 정부 개편을 통한 나라의 정비와 방향 전환은 큰 의미를 갖는다. 그 근본 중의 근본이 헌법개혁을 통한 권력분산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인구소멸과 국가소멸을 방지하기 위한 화급한 과제로서 인구부(人口部)의 설치 역시 필수다. 그러나 이 두 사안은 필자로서는 자주 강조한 바 있기에 오늘은 정부조직 개혁의 다른 한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통일정책, 한반도정책으로 전환을 평화 관리가 한반도 문제의 최우선 국민도 통일보다 분립·공존 희구 헌법의 영토 조항·통일 원칙은 유지 오늘의 한국 현실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통일부의 한반도부로의 전환이다. 무엇보다 현재의 국제 및 한반도 조건에 비추어 통일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관념과 구호의 성격이 크다. 물론 불가능하다고 해서 꼭 포기할 필요는 없다. 더 중요한 문제는 통일 담당 부처로 존재할 경우 독립된 정부기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그런 연유로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원회 시기에 아예 통일부를 폐지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인원과 기구를 대폭 축소했다. 그러나 한반도부로 전환할 경우 다루어야 하고 다룰 수 있는 사안이 많다. 통일부 폐지냐, 유지냐 논란이 한창일 때 필자는 두 주장 대신에 대안으로 한반도부로의 전환을 주창한 바 있다. 나아가 통일정책과 대북정책 역시 한반도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지금도 유효하다고 믿는다. 이후 한 정부는 통일정책·대북정책 대신 공식적으로 한반도정책 용어를 채택한 바 있다. 그러나 한반도부로의 전환은 시도되지 않았다. 한국의 관점에서 한반도정책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치로 인한 한반도 문제 전반을 포괄한다. 즉 한반도평화, 한반도비핵화, 한반도인권, 한반도화해, 한반도교류협력, 한반도보건, 한반도방역, 한반도생태환경, 한반도통일을 포함한다. 즉 진보의제와 보수의제를 망라한다. 또 통일 문제·대북 문제에 갇힌 기존 범주를 크게 넘어선다. 정부가 필요와 현실에 맞추어 사안별로 결정·조율·추진·협상·배제하면 된다. 한반도부는 한반도의제의 추진에 있어 정부 내 의제에 따라 주도·조율·보조·참여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물론 정부 조직상의 통일부 명칭 폐지가 헌법상의 평화통일 정신과 원칙을 포기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우선 정부 부처의 명칭은 헌법의 정신·원칙·조문과 직결된 사안이 아니다. 실제로 박정희 정부가 통일부 전신인 국토통일원을 만든 것은 헌법에 통일 원칙과 조항이 전혀 없을 때였다(1969년 1월 29일 대통령령 제3754호). 즉 통일부의 설립은 헌법과 직결된 것이 아니었다. (통일 문제와 헌법의 여러 조항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여 따로 논의해야 한다.) 헌법에 일련의 통일 조항이 삽입된 것은 유신헌법 때가 최초였다. 건국헌법 이후 당시까지는 통일 원칙과 조항이 없었다. 한국의 유신체제와 북한의 주석체제가 상호 긴밀한 소통하에 등장했다는 점은 여러 비밀문건에서 밝혀진 바 있다. 물론 이 점이 궁극적인 통일 목표와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두 분단 독재체제의 등장과 만난 통일 조항과 쌍방 통일 원칙 합의였다. 한반도평화부도 대안이 아니다. 무엇보다 진보정부는 평화를 추구하고, 보수정부는 통일을 추구한다는 오도된 이분법을 고착시킬 우려가 있다. 게다가 훗날 보수정부가 집권했을 때 다시 통일부로 바꾸려 시도할 경우 불필요한 이념 논쟁을 유발할 수 있다. 즉 “통일 포기냐?”의 무의미한 이념 논쟁처럼, “평화 포기냐?”의 또 다른 이념 논쟁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군과 국방부가 국가 수호를 통한 평화를 담보하는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평화부를 따로 설치하는 것은 모순이며 불필요하다. 남북관계부는 통일부보다 더 맞지 않는다. ‘남’과 ‘북’은, 한국의 헌법과 법률상 전혀 존재하지 않는 정체(政体)다. 국민 여론과 시대정신도 중요하다. 많은 조사에서 국민들은 통일보다는 분단공존, 즉 평화공존과 독립공존을 원한다. 특히 청년세대는 압도적이다. 국민의 이 지혜처럼 이제 남북·북한 문제는 한국 문제와 한반도 문제의 한 중심인 동시에 일부분이다. ‘한반도 문제’ 관리 차원에서 전쟁과 대결 방지를 위해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서로 따로 가면 된다. 그게 최선이다. 물론 미래 세대의 통일 실현과 한국 주도성의 확보를 위해 헌법의 영토 조항과 통일 원칙은 폐기하면 안 된다. 독일은 빌리 브란트 정부하에 전독부(全獨部)를 내독부(內獨部)로 변경하여 독일 문제의 전환과 이원화에 성공하여(1969), 공식적으로 대독일주의·통일노선을 포기함으로써-헌법의 영토와 통일 조항은 그대로 두었다-거꾸로, 그리고 연속하여, 소련(1970), 폴란드(1970), 나아가 미국·소련·영국·프랑스 4대국(1972), 끝내는 동독(1972)과의 사이에 독일 문제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어, 분단공존과 평화교류, 그리고 훗날 다가올 독일 통일의 장기 초석을 놓은 바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3중·4중 지혜가 아닐 수 없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2025.07.10. 8:30
그야말로 ‘내로남불’이다. 최근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논문 표절 의혹을 지켜보며 떠오른 말이다. 한번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이 후보자 대신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게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반응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아마 ‘벌떼처럼’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맹공격을 퍼부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후보자에겐 어떤가. 놀라울 정도로 조용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 물밑에서 자기들끼리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지극히 실망스럽다. 물론 국민의힘 의원들도 잘한 건 없다. 김 여사의 표절 의혹에는 아무 말도 못 하거나 오히려 옹호하다가 이 후보자의 표절 의혹에는 날카로운 검증을 요구하고 나섰다. 남의 연구 성과를 마치 제 것처럼 베껴 쓰는 표절은 명백한 지식 도둑질이다. 그게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교육자이고 학자라면 더없이 부끄러운 일이다. 김건희 여사 표절엔 난리쳤다가 이진숙 후보자 표절 논란엔 침묵 ‘우리 편 봐주기’ 부끄럽지도 않나 김 여사의 숙명여대 석사학위 논문은 결국 공식적으로 표절 판정을 받고 학위도 취소됐다. 지난달 숙명여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거쳐 교육대학원위원회가 내린 결론이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21년 12월 언론에서 표절 의혹을 제기한 지 3년 6개월 만이다. 이게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일이었나. 해당 논문(‘파울 클레의 회화의 특성에 관한 연구’)은 관련 서적(로즈메리 램버트의 『20세기 미술사』)을 대놓고 베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똑같았다. 하지만 숙명여대는 즉시 심사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최종 결론이 나온 건 지난달 대선에서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뒤였다. 정치권력에 대한 대학의 눈치보기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숙명여대 동문들이 대학 홈페이지 게시글에서 “우리 숙대가 그렇게 무능한가”라고 한탄할 만하다. 특정 대학을 넘어 대한민국 학계 전체에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다. 이 후보자의 논문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면 된다. 이 후보자의 논문과 제자의 논문을 비교해 보면 ‘복붙’(복사+붙여넣기)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이 후보자가 제자의 연구 성과를 부당하게 가져다 쓴 게 사실이라면 표절 판정을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이 후보자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아야 한다. 제자의 논문에선 ‘10m 정도’라고 쓴 부분을 이 후보자의 논문에선 ‘10m wjd도’라고 오타를 낸 대목에선 그저 쓴웃음이 나온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오는 16일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 계획이다. 아무리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했어도 청문회가 통과의례의 요식행위로 그쳐선 안 된다. 표절 의혹을 포함해 국무위원으로서 자격과 도덕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민주당 의원들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상식에 맞는 판단을 하길 바란다. 이 후보자 문제를 어물쩍 넘어가려 해선 안 된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배우자 농지법 위반 의혹도 심각한 문제다. 우리 헌법 121조는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런 헌법 정신에 따라 농지법 6조는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일부 예외 조항은 있지만 정 후보자의 남편이 법이 정한 농지 소유 자격에 해당하는지는 의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정 후보자의 남편이 인천에서 의사로 근무하면서 강원도 평창을 오가며 농사를 지었다는 것부터 이해가 잘 안 된다. 만일 실제로 농사를 지은 게 맞는다면 관련 근거를 제시하고 검증을 받으면 될 일이다. 해당 농지에서 정부 보조금인 농업 직불금을 다른 사람이 받아갔다는 것도 미스터리다. 정 후보자의 남편이 농사를 지은 게 사실이라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누군가 정부 보조금을 부당하게 받아갔다면 당연히 법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 한다. 2021년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의 부친 농지법 위반 의혹이 불거졌을 때를 돌이켜보자.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아버지가 부동산 투기를 한 것을 몰랐다고 해도 그 혜택은 본인이 볼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결국 윤 의원은 책임을 지고 스스로 의원직에서 물러났다. 정 후보자에게도 4년 전과 같은 잣대를 적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민주당 의원들이 윤 전 의원에게 한 말에서 ‘아버지’를 ‘남편’으로만 바꾸면 된다. 그렇지 않고 우리 편은 봐주고 반대편에는 난리를 치는 식의 이중잣대로는 ‘삼류 정치’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주정완([email protected])
2025.07.10. 8:28
대한민국이 탄생한 이래 처음 겪은 영토 침탈 위기는 75년 전 북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최근 영토 주권에 대한 두 번째 침탈이 본격화되고 있는데 이번엔 서쪽이다. 이른바 중국의 서해공정이다. 이 두 번째 침탈은 6·25와 달리 완만하게 진행되고 있어 국민이 쉽게 체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서해를 중국의 내해(內海)로 만들겠다는 서해공정이 성공한다면 한국은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된다. 서해공정 한국 안보에 심대한 위협 일관ㆍ단호한 국가 의지 중요한데 중국 규탄안 범여권 7명이나 기권 내해란 육지로 둘러싸여 좁은 해협을 통해서만 공해로 진출할 수 있는 바다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무해통항권(외국 선박이 연안국의 안전을 해치지 않는 조건으로 통과할 수 있는 권리)이 인정되는 영해와 달리 내해는 육지처럼 무해통항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즉 중국이 서해를 내해화한다는 건 중국 영토가 한반도를 향해 부쩍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게 한국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불문가지다. 물론 서해가 중국의 내해라는 주장은 국제법상 말이 안 되는 소리다. 한국과 중국은 2000년 어업협정을 체결하면서 서해에서 양국의 EEZ(배타적 경제수역)가 중첩되는 해역을 잠정조치수역(PMZ)으로 설정하고 공동 관리하기로 합의했다. PMZ에선 어업 이외의 시설물 설치나 자원 개발 등이 금지된다. 하지만 2018년부터 중국은 양식시설이란 명분으로 철골 구조물을 여러 개 설치해 논란을 일으켰다. 양식도 어업이라고 주장하지만 얼마든지 군사용으로 전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한국 외교부가 항의를 해봤지만, 중국은 들은 체도 안 한다. 지난 2월 한국의 해양조사선 온누리호가 문제의 구조물을 조사하기 위해 접근하자 중국은 대형 함정 2척과 고무보트 3척을 동원해 물리적으로 조사를 저지했다. 심지어 고무보트에 탔던 중국인은 흉기로 위협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고정 구조물을 계속 설치해 나중에 일방적으로 서해 상에 중국의 주권을 선포하겠다는 속셈이 뻔하다. 중국은 이미 남중국해에서 인공섬을 만들어 내해화 전략을 편 지 오래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남해 9단선’을 지도로 보면 기가 막힌다. 중국 본토에서 1000km 이상 떨어진 인도네시아 앞바다까지 자기네 영해라고 우기는 판이다.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9단선은 무효라고 판결했지만, 중국은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국제법은 힘의 논리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다. 중국의 서해공정은 발해만에서 베이징으로 이어지는 정치·경제 요충지를 보호하겠다는 국가전략이다. 한두 번 시도해 보다가 잘 안 되면 그만둘 성격이 아니다. 설령 시진핑 체제가 막을 내린다고 해도 후계 권력이 서해공정을 집요하게 밀어붙일 것이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다지만 한·미·일 협력체제가 유지되는 한 한국 영토 주권이 실질적으로 위협받는 것은 없다. 반면 서해공정은 ‘실제 상황’이며 점증하는 위협이다. 독도 문제보다 백배는 심각하다. 한국이 서해를 지키려면 정권에 상관없이 장기적으로 일관되고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일단 중국이 구조물을 철거하지 않는다면 그에 대응하는 위치에 우리도 유사한 시설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중국 인공섬에 맞서 베트남도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다수 건설한 사례를 참고하자. 또 미국·일본 등 국제사회와 연대해 공동 대응에 나서야 한다. 해군력 강화도 필수다. 이번 추경에서 정부가 소비쿠폰으로 뿌리는 13조2000억원이면 최신예 이지스함인 정조대왕 함을 10척이나 건조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서해 주권을 지키겠다는 국가 의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지난 3일 국회가 ‘중국의 서해 구조물 설치 규탄 결의안’을 통과시킬 때 범여권에서 7명이나 기권표를 던졌다. 더불어민주당 김영배·이기헌·홍기원, 조국혁신당 신장식, 진보당 손솔·전종덕·윤종오 의원이 그들이다. 일반 국민도 아니고 국회의원이 이런 생각이라니 서해 주권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하([email protected])
2025.07.10. 8:26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24일 참석한 강원도 원산 갈마 관광지구 개장식을 통해 북한의 현주소를 몇 가지 엿볼 수 있었다. 첫째, 먼저 북한의 고립이 보였다. 외국인은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한 러시아 대사와 대사관 직원들이 유일하게 참석했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이 정도 규모의 행사에는 수십 명의 평양 주재 외국 대사들과 해외 특별 사절단이 참석했다. 북한 언론에 따르면 왕야쥔(王亞軍) 북한 주재 중국 대사도 참석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초대받지 못했다면 중국 경제에 대한 높은 의존도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이 이제 북한에 가장 중요한 정치·외교 관계는 러시아라는 메시지를 발신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러시아만 참석, 북한의 고립 확인 낭비적 프로젝트 무리하게 추진 향후 관광사업 지속될지 의문도 둘째, 북한의 형편없는 행사 기획력이 드러났다. 원래대로라면 원산 갈마 지구는 2019년에 개장했어야 했는데, 6년이나 지연됐다. 관광지구 개발이 시작된 2014년만 해도 북한은 지금과 다른 위치에 있었다. 지금처럼 고립되지도 폐쇄되지도 않았고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이 가능했다. 그 당시 개장했더라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북한이 합리적인 사회였다면 이러한 개발 프로젝트는 경제적 효과가 없기에 수년 전에 폐기됐을 것이다. 그랬다면 개발 비용도 아낄 수 있었을 테지만 북한은 다르다. 개발 자체가 위에서 내려온 것이라 누구도 감히 폐기를 건의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고, 지도부도 실패를 인정하는 프로젝트 폐기를 지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개발 사업은 그나마 부족한 북한의 자원과 에너지를 흡수하며 굼뜨게 진행됐다. 필자의 북한 지인들은 1992년 완공을 꿈꿨던 류경호텔을 원산 갈마 지구와 빗대었다. 공사 초기부터 엘리베이터 샤프트가 기울어져 105층 높이의 호텔 건설은 불가능했지만, 누구도 공사 중단을 감히 입에 올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셋째, 개장식을 계기로 북한은 다시 한번 공허한 경제 개발계획을 강조하며 어려운 경제 현실을 주관적 의지로 돌파해 보겠다는 시도를 보여줬다. 2만 명이 묵을 수 있다는 원산 갈마 지구를 채울 관광객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모두 17개의 호텔 중 6개만 손님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7월 1일 문을 연 첫날 많은 북한 주민들이 시설을 즐기는 모습이 북한 매체에 방송됐지만 실상 이들은 모두 북한 엘리트층이다. 일부 러시아 관광객이 있을 수는 있다. 지난 7일 첫 러시아 단체 관광객이 원산 갈마 지구를 찾았고 8월에도 방문이 예정돼 있다. 평양을 포함하는 관광 프로그램에서 4박은 원산 갈마 지구에서 보낸다. 여름에 스키를 탈 것도 아닌데 스키장이 있는 마식령 방문도 들어간 이들 러시아 관광 그룹의 일주일 관광에 1840달러를 받았다. 러시아 평균 임금을 고려할 때 비싼 관광 프로그램이다. 해변 리조트는 재방문 고객에 의지하는데 인기가 시들해지면 다시 찾아갈지 의문이다. 특히 중국과 튀르키예 해변 리조트는 원산 갈마 지구의 절반 가격에 즐길 수 있다. 북한은 중국인의 원산 갈마 지구 방문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북한을 찾는 해외 관광객의 90%가 중국인이었다. 그러나 방문이 허가된다 하더라도 중국인들이 원산 갈마 지구를 찾을지는 의문이다. 대부분의 서구권 국가가 북한 여행 자제를 권고함에 따라 여행 보험 상품을 제공하는 보험사도 거의 없다. 게다가 평양에서 제대로 기능하는 서구권 대사관도 거의 없어 여행 중에 문제가 발생해도 영사 조력을 받을 수 없다. 최근 방문했던 러시아 관광객들도 북한 당국의 철저한 감시에 불만을 토로했다. 북한에서 해변 휴가를 보내는 것은 비용도 비싸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다. 사정이 이런데도 김 위원장은 실망하지 않는 듯하다. 그는 개장식에서 환하게 웃으며 “여러 지역에 각기 다른 유형의 유망한 대규모 관광문화 지구들을 최단 기간에 건설하는 중대 계획을 확정 짓겠다”고 말했다. 북한 정권은 경제 미래를 위해 관광을 중요한 요소로 여긴다. 그러나 북한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외국인의 방문을 허가하지 않는 이상 이는 요원하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대체적 진단이다. 북한이 실제로 이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징후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2025.07.10. 8:24
영국 작가 라프카디오 헌의 120년 전 예측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 1850~1904)이라는 아일랜드계 영국 작가가 있었다. 일본에서 14년간 체류하며 영문 저작 활동을 통해 일본의 전통세계를 서양에 알린 인물이다. 자신의 집에서 일하던 하녀 고이즈미 세쓰와 재혼하고 그녀의 성을 따서 고이즈미 야쿠모(小泉八雲)라는 이름으로 귀화, 일본인이 되었다. 헌은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그리스 레프카다 섬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 군의관 아버지와 그리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이혼으로 더블린의 고모할머니 집에서 성장했다. 16세가 되던 해, 사고로 한쪽 눈을 실명했다. 고모할머니가 파산하자 다니던 학교를 중퇴, 19세가 되던 1869년 이민선을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첫 직업은 신시내티 지역의 유력일간지 기자였다. 타고난 글재주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서인도제도 마르티니크 여행기로 명성을 얻었다. 일인 하녀와 결혼, 귀화까지 했지만 중국 근대화는 서양의 위기 단언 중국인의 적응력·근검 최대 장점 일본의 과학·예술 분야 높게 평가 청일전쟁 직후 대두된 황화론 중국만 경계하자 일 작가 불만 토로 라프카디오 헌은 일본인들 사이에서 ‘일본인 이상으로 일본을 깊이 이해한 서양인’으로 통한다. 그러나 이는 ‘평생에 걸쳐 일본을 사랑한’ 벽안의 외국인에 대한 우호의 감정에서 표출된 다소 과장된 표현이다. 여러 나라를 방랑하며 신비롭고 이국적인 것을 동경하던 헌은 일본에 와서 자신이 보고자 했던 일본의 모습만을 글에 담았다. 자본주의 경쟁원리가 지배하는 서구 문명을 혐오했던 그는 일본을 소박하고 순수한 영성이 살아있는 대안의 장소로 이상화해야 했다. 헌 스스로가 토로했듯이 그는 일본 신문을 읽을 수 없었다. 그가 말하는 짧은 일본어는 매우 독특해서 오직 부인 세쓰 만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듣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좋아서 그는 부인이 들려주는 일본의 옛날이야기를 영어로 재창작했다. 서구열강의 동점과 그 후과 굴곡 많은 그의 삶만큼이나 그가 쓴 글의 범주는 광대하다. 18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에 대한 그의 평론은 읽는 사람을 단숨에 사로잡을 정도로 정교한 설득력이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일본과 서양의 미래를 내다본 몇몇 논설은 남다른 통찰이 담긴 격조 높은 문명비평에 해당한다. 사후 100년이 훌쩍 지난 이 시점에서 라프카디오 헌을 불러낸 이유이다. 헌은 1904년 1월 일본 구마모토에서 ‘극동의 미래’라는 강연을 했다. 중국과 일본을 묶어 두 나라의 미래를 논하는 내용이었다. 200자 원고지 50매 분량의 이 글에서 그는 일본보다는 중국에 많은 비중을 할애했다. 그는 중국 땅을 밟은 적이 없지만, 그러나 기자로서 미국 서부의 중국인 노동자와 관련된 폭동·학살 등의 동향을 파악해왔다. 당시 몇몇 서양 지식인이 출판한 서양문명 쇠망론(예를 들면 찰스 피어슨의 『국민의 생활과 특질』, 1893)에 거론된 중국·일본 등의 기술 내용에 자극을 받기도 했다. 헌에 의하면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이 시장개척을 목적으로 유색인종의 지역에 진출하여 이익을 챙기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화근을 남긴 일이었다. 예컨대 서양 열강은 완강히 저항하는 중국을 굴복시키거나 약체화하는 데 실패한 데 이어, 중국 상대 무역에서도 학습능력이 뛰어난 중국 상인들이 만만치 않은 경쟁 상대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중국인들은 무역을 독점하고 갖가지 상업에 진출함으로써 미국인 노동자를 시장에서 몰아냈고, 이에 격분한 백인들은 폭동과 학살로 대응했다. 헌에 의하면 이 모두가 강제로 동아시아 각국의 항구를 열어젖힌 서양세력이 자초한 사태이다. 인종 간 경쟁의 서막 헌은 중국에 대해 논한 다른 글에서 “청국 민중의 대부분은 놀라운 인내력, 지칠 줄 모르는 근면함, 변함없는 충성심, 가혹한 조건에서의 복종심을 지니고 있다”(‘중국의 미래’)고 적었다. 그러나 그는 중국인들이 보여주는 모든 환경에 대한 자기적응력과 검약 정신이야말로 서양문명을 위협하는 중국인만의 최대 장점이라고 봤다. 예를 들면 영·중 양국의 기술자가 비슷한 정도의 숙련도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할 때 중국인이 영국인의 5분의 1의 돈으로 생활할 수 있다면 영국인 기술자는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의 중국인 노동자는 현지인들의 10분의 1의 비용으로 생활한다. 이 현실을 민족 또는 문명 단위로 확장하여 적용할 경우, 두 세력이 동등한 재능과 지력을 가지고 있다면 서양문명이 지구상에서 패퇴할 가능성이 크다. 단지, 중국이 아직 서양의 산업방식과 기계장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점은 서양에게는 행운이라고 헌은 말한다. 그러나 결국 언제가 중국이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서양의 과학과 산업을 채용하는 것은 확실하며, 그때 서양은 50년 전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단언한다. 헌은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 일본을 사례로 든다. 일본은 중국에 비해 상업 면에서의 능력은 뒤처지지만, 상업보다 중요한 과학·기술·예술과 같은 지적 분야에서는 서양과 경쟁할 가능성을 이미 보여준 바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인이 이미 보여준 지적 능력이 동일 문화권에 속하는 중국인들에게도 미개발 상태로 잠재해 있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중국과 일본이 동아시아 지역을 대표해서 통상 면은 물론이고 인종 간의 지적 투쟁에 있어서 서양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헌의 그런 예측은 2025년 1월 이른바 ‘딥시크 쇼크’를 통해 충분히 현실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황화론의 망령 ‘황화론(Yellow Peril)’은 우리에게 그다지 익숙한 단어가 아니다. 의미로는 ‘황인종의 위험함에 대한 언설’ 정도가 될 것이다. 황화론이라는 단어가 유럽과 미국의 언론에서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청일전쟁(1895) 직후이다. 1차 세계대전까지 유행했다. 당초의 주된 표적은 중국이었다. 신기하게도 전쟁의 승자는 일본인데, 패자인 중국을 서구세계에 대한 위협으로 다뤘다. 독일의 대표적인 황화론 논객 힘멜스체르나는 국토·인구·군사·종교 면에서 일본보다 중국이 유럽에 보다 더 큰 잠재적 위협이라고 보았다. 일본이 발화장치라면 중국은 폭탄이었던 셈이다. 러시아·독일·프랑스는 삼국간섭을 통해 본래는 승자 일본의 전리품이었던 랴오둥반도를 러시아에 할양함으로써 발화장치를 제거했다. 독일에 유학했던 소설가 모리 오가이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중국을 유럽의 황화론자들이 주된 논의대상으로 삼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기록을 남겼다. 공격의 표적이 되는 것도 훈장이 될 수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황화론 공격의 표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러일전쟁 직후이다. 찰스 피어슨 등 서구 문명 위기론자들은 아시아의 흥륭과 서양의 쇠퇴를 논했지만, 아시아의 승리를 점치지는 않았다. 아시아인의 생활 수준이 백인의 그것에 근접하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백인 문명의 정신과 도덕적 수준으로 저하하는 방향으로 수렴될 것이라는 ‘문명소멸론’의 관점을 취했다. 그에 반해 라프카디오 헌은 명백히 동아시아의 승리를 점쳤다. “미래는 서양이 아니라 동아시아 편에 서 있다고 나는 믿는다. 적어도 중국에 한해서는 그렇다고 믿는다. 일본의 경우는 위험성이 있다. 나는 일본이 검소함과 질박함을 유지할 때는 강하겠지만, 만일 서양에서 들어온 사치 성향을 받아들인다면 쇠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헌이 강연록 마지막을 채우며 한 말은 그의 알찬 강연내용 중에서 가장 허술한 부분이다. 21세기의 4분이 1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볼 때 동아시아가 승리한다는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아직까지 동아시아는 승리한 적이 없고, 아직 서양은 패배하지 않았다. 검소함과 질박함의 보전이 일본이 승리하는 조건이라는 황당한 전제에서 그는 스스로 오리엔탈리스트로서의 속성을 드러냈고 아울러 그의 예측은 파탄을 잉태했다. 어쩌면 라프카디오 헌이라는 문필가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중 스파이 같은 면모에 주목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의 서양필패론은 서양 독자들에게 학술적 훈련을 받은 백인 필자의 황화론보다 강력한 황인종 경계론이 될 수 있었고, 그의 동아시아 필승론은 일본의 국수주의자·아시아주의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언설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인종적 사고가 지배적인 시대에 황화론은 준동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구를 뒤덮었을 때, 19세기에나 익숙했던 인종적 사고,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스멀스멀 자취를 드러냈다. 언제부터인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외교 전략의 상수가 된 중국봉쇄론은 황화론의 또 다른 변주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윤상인 전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
2025.07.10. 8:22
우울과 불안이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을 때 가장 피해야 할 일은 자꾸만 ‘모든 세상’의 중심에 나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러나 정확히는 나는 ‘내 세상’의 중심이고, 다른 사람 세상의 중심에는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가장 건강한 마음의 틀입니다. 모든 세상에서 환영받고 이해받을 수 있는지 머릿속으로 지레 생각하고 자기 존재의 의미와 정체성에 천착하는 게 자의식 과잉의 씨앗, 내 고통의 시작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지만 이는 건강할 때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더욱이 정체성은 시간과 맥락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므로 긴 시간을 두고 느슨하게 작업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울할 때 가장 피해야 할 일은 세상의 중심에 나를 세우는 일 사람들은 나만 관찰하지 않아 생각해보세요. 제가 마트에서도, 분리수거장에서도, 가족들 앞에서도 교수라는 정체성에 몰두해 있다면 그 꼴이 얼마나 딱할까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교순데’ 자의식의 괴물이 되어 학생들을 앉혀두고 의도 가득한 말과 행동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측은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는 누구와도 진실로 접촉하지 못합니다. 머릿속은 자기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고, 행동은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러워집니다. 지금 이 순간을 모조리 놓칩니다. 분석 마비(Analysis Paralysis)라는 심리학적 개념이 있습니다. 너무 많은 생각을 거듭하다, 오히려 그 무엇도 시작하지 못하고 얼어 붙어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누군가 지네에게 “넌 어떻게 그렇게 유려하게 움직이니?” 하고 물었고, 스스로의 걸음걸이를 생각하기 시작한 지네가 별안간 걷는 법을 잊었다는 이야기가 분석 마비의 예가 됩니다. 현실과 접촉하지 못하고 규칙(‘나는 이래야만 하고, 사람들은 응당 저래야만 하고’)과 가정(‘내가 성공하기만 하면 나는 행복해질 거야’)이 기이한 논리의 벽을 세웁니다. 다른 사람들과도 섞이지 못하고 이다음 발자국을 내디딜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기능적인 나를 잃고야 맙니다. 이런 이유로 심리학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반복해서 강조하는 이야기는 두 가지입니다. 가상의 청중(Imaginary Audience)에서 벗어날 것. 개인적 우화(Personal Fable)를 주의할 것. 임상발달심리학자였던 데이비드 엘킨드(David Elkind)는 스스로에게 몰두 되어 있고 타인도 나만큼 나에게 관심 있을 것이라 굳건히 믿는, 청소년기 특유의 자기 중심성에 대한 이론을 정립했습니다(1967). 이 이론에서 두 가지 핵심적인 구성요소는 가상의 청중과 개인적 우화입니다. 청소년들은 수많은 사람들(가상의 청중)이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자신의 외모나 능력치를 두고 매일 깊은 생각에 빠져듭니다. 이때 경험하는 자신만의 감정, 생각, 고통과 번뇌를 몇 시간이고 곱씹고 이 세상 누구도 완전히 이해해줄 수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자신의 이야기(개인적 우화)에 굉장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어차피 다른 사람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해봤자 소용도 없다는 생각에 타인과 거리를 두고 날을 세웁니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 모든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극도의 분노감과 외로움을 느낍니다. 여기까지가, 청소년기에 일단 한번 끝내야 하는 일들입니다. 청소년기에는 그럴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지나와야 하는 과업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성인기 내내 지속되면 이게 자의식 과잉입니다. 자기가 만든 괴이한 자기만의 세계에서 갑자기 ‘내가 낸데!’ 주술에 빠지거나 ‘나는 사라져야 돼’ 병이 옵니다. 아… 그러나 굳이 안 그러셔도 됩니다. 있지도 않은 관객들을 두고 섀도복싱을 하고, 내가 만든 내 정체성 안에 갇혀, 해야‘만’ 하는 일들과 하지 않아야‘만’ 하는 일들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되뇌고 매일을 경계하고 분석하며 살다가는, 걷는 법을 잊는 지네가 되어 개인적 우화를 눈물로 적어 내리며 자기 굴 안에 머무르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 왜요? 누구보다(누군가를 의식하지 않았을 때는 더욱이) 잘 걸을 수 있었잖아요. 경직된 규칙과 가정 금지, 자의식 과잉 금지, 특히 잠들기 전 깊은 생각 금지입니다. 저를 시험 삼아 떠올려 보세요. 제가 진실로 가상의 청중과 자기 중심성에서 자유로워지고, 제 삶에 몰입하고, 제 고난과 희비극에 유별난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답을 알고 계시겠지요. 끊임없이 현실접촉을 하는 것입니다. 매일 결함 가득한 나 자신을 만나고, 결함 가득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만 행동하고, 내 모든 지금의 변화무쌍한 순간에 호기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입니다. 내 가족들이나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 상점의 직원들과 우연한 만남 모두에서, 순간순간 접촉하고 함께 머무르는 것입니다. 만나고, 행동하세요. 매일 행동하는 한, 내가 중심에 선 나의 세계는 단정하고 견고하게 깊어집니다. 청중도, 서사도 필요 없는, 내게 가장 적절한 세계입니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2025.07.10. 8:20
국가안보 전략산업으로 거듭나야 할 K조선 지난해 11월 7일, 트럼프 대통령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의 조선업은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을 꺼냈다. 트럼프가 당선된 첫날부터 우리에게 이런 요청을 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이는 우리 조선업이 주력 제조업의 위상을 넘어 새로운 국제질서하에서 통상 및 안보 지렛대가 될 것임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조선업은 산업정책이 다시 주목받는 시대에 정부의 역할 재정립을 고민해야 하는 대표적 산업이기도 하다. 일본 자민당, 조선업 재생 위해 공정거래법 적용 재검토 등 요구 규제 환경 달라져 다양한 친환경 선박 기술에 적극적 투자 필요 미국이 협력 원하는 MRO와 벌크선 건조 등은 우리 주력 벗어나 성공하려면 국가 차원의 체계적 준비와 긴밀한 의사소통 있어야 세계 1~3위 조선소 보유한 한국 우리 조선업은 대형 3사를 중심으로 상당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은 세계 1~3위 규모의 조선소를 가지고 있으며, 대형 LNG운반선 등 고기술 선박에서 중국·일본보다 크게 앞선 건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물량으로 보면 중국이 이미 압도적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기업별 규모로 보면 18개의 조선소를 보유한 중국 국영기업 CSSC가 한참 앞선 1위이고, 상위 10개 기업 중 6개가 중국 기업이다. 중국 기업들은 2024년 세계 선박 수주의 70%를 쓸어 담으며 15%의 한국과 7%의 일본을 크게 따돌렸다. 건조량 기준으로도 중국과 한국의 점유율은 53%대 28%로 큰 차이가 난다. 자동화가 어렵고 고된 작업을 요구하는 조선업의 특성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몇 차례 위기를 겪은 경험 때문에, 한국 조선업의 장래를 어둡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조선업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보면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해양패권과 무관한 한국은 왜 강한가 대항해 시대 이래 조선업은 늘 해양 패권을 확보한 국가가 주도했다. 해운 수송은 세계 무역의 90%를 담당하고 있으며, 전함의 군사적 가치가 달라지지 않는 한, 조선업의 중요성은 지속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전후로는 미국과 유럽이, 이후에는 일본으로 넘어갔던 세계 조선업의 주도권을 해양 패권과는 무관한 한국이 이어받았던 것은 놀라운 전개였다. 조선업의 경쟁력은 대규모의 선박 수요와 튼튼한 제조업 기반을 확보하지 않고는 얻기 어렵다. 막대한 시설투자와 관리능력이 필요하고, 수주에서 인도까지 몇 년이 걸리며, 시장 예측은 종종 빗나가는 난해한 산업이다. 당시에는 몰랐던 한 번의 전략적 선택의 실수가 돌이키기 어려운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국은 온화한 기후의 바다에 면해 있고, 우수한 노동력을 갖췄으며, 철강과 기계 등 기반 산업을 확보한 드문 나라다. 조선업과 잘 맞는 조건을 가졌지만 1980년대 일본의 전략적 실수가 아니었다면 주도권 국가가 되기는 쉽지 않았다. 당시 일본은 치솟는 원가 부담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구조조정과 표준화된 생산방식 도입에 나섰다. 그 결과 원가절감에 성공하고 세계 1위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대가로 대형 선박의 건조 능력과 고객 맞춤형 기술력을 상실하였으며, 지금도 한국의 기술우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경험 역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2008년 금융위기는 국내 중소형 조선사들이 대거 무너지며 중국으로 주도권이 확실히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시황 급변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기업의 능력 부족이 컸지만, 우량기업임에도 키코(KIKO) 금융상품 손실로 사라지는 걸 방치하는 등 정부도 조선업 기반 유지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책임이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2015년에는 해양플랜트 투자의 참담한 실패로 인한 위기를 겪었음에도 대형 3사의 경쟁력을 보존할 수 있었고, 다시 찾아온 호황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요약하면 한국이 조선업에서 지금처럼 경쟁력을 확보한 것은 여건과 노력, 실력과 운이 모두 작용한 결과다. 앞으로도 중국이라는 버거운 경쟁자를 상대해야 하지만, 쉽게 포기하거나 단기적 시야로 접근해서도 안 된다. 국제정세의 흐름과 장기적 시장 전망을 바탕으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산업정책이 가장 요구되는 업종이기도 하다. 친환경 전환과 한·미 협력의 기회 해운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를 배출하는 고탄소 배출업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규제를 확대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배출권 거래제, 해상연료 기준 등 규제를 도입하며 선박의 친환경화를 압박하고 있다. 친환경 규제는 저탄소 및 무탄소 연료추진 선박의 신규 수요는 물론, 기존 선박의 교체나 개조 수요를 빠르게 높일 것이다. 대표적 조사기관인 클락슨 리서치는 선박 발주 수요가 2050년까지도 고수준을 지속하는 등 초장기 호황 사이클이 시작된다고 예상한다. 다만 우리 주력 분야인 LNG운반선 수요는 2028년 이후에는 줄어들 것이며, 선박 개조 시장도 수리에 강점을 지닌 중국이 주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위협요인이다. 기회를 살리려면 다양한 친환경 선박 기술에 대한 적극적 투자가 필요하다. 한·미 조선 협력 역시 새로운 기회요인이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조선업은 크게 약화하였고, 이는 중국의 부상과 대조되며 군사적으로나 경제안보 관점에서 미국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중국의 전투함 수는 2015년 이후 미국을 추월하며 격차를 벌리고 있다. CSSC의 장난(Jiangnan) 조선소와 대련(Dalian) 조선소에서는 전투함 15척과 이지스함 5척을 동시 건조할 수 있지만, 미국의 FMM 조선소는 10척의 주문이 밀려도 1년에 1척을 겨우 건조하는 실정이다. 미 해군의 유지보수(MRO) 수요를 처리하는 데만 20년이 걸려 기다리다 못해 군함을 퇴역시키기도 한다. 중국의 해양패권 확대로 남중국해와 대만해협 긴장이 높아지고, 지구 온난화로 북극 항로 경쟁과 미·중 통상마찰이 심화하자 미국은 조선업 재건과 중국 견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지난 4월 중국산 선박 및 중국 선사 소유 선박에 입항 수수료를 물리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통과시킨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에는 군함 조달 및 조선업 육성을 위한 수백억 달러의 예산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미 붕괴한 미국의 조선업을 재건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불가능할 수도 있다. 미국이 우리의 조선 협력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유다. 군함 MRO와 신규 군함 건조 참여, 미국 조선소 투자 및 상선 건조 협력, 알래스카 LNG와 같은 극지 개발 쇄빙선 건조 등 가능한 분야는 다양하다.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미국이 원하는 MRO 사업이나 벌크선 건조 등은 이미 우리의 주력 분야에서 벗어난 사업이다. 미국산 선박만 미국 연안 해상운송을 허용하는 존스법(Jones Act)도 걸림돌이다. 현지 조선소 투자 역시 인력이나 기자재 등 산업 생태계가 크게 미흡한 상태여서 효과가 미지수다.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준비와 빠르고 긴밀한 의사소통, 장기적 투자 없이는 결실을 기대하기 어렵다. 조선 업무의 해수부 이관, 패착될 수도 이제는 조선업 육성을 국가안보의 차원에서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움직였다. 최근 자민당에서는 ‘일본 조선업 재생을 위한 긴급 제안’을 통해 조선업이 ‘경제·국민 생활을 지탱하며 안보 관점에서도 필수적인 기반’임을 재인식할 것과 적극적 육성 정책을 요구하였다. 구체적으로는 군함과 상선 건조 기반 확대를 위한 1조엔 이상의 기금 창설, 국립 조선소의 설립 검토, 기업 간 정보교환 및 구조 재편에 대한 공정거래법 적용 재검토, 외국 인재의 적극적 유치 및 활용, 차세대 탈탄소 선박 시장 지배력 확보를 위한 선제적 지원, 미국 군함 MRO와 함정 건조 협력 강화, 글로벌 사우스·북극권 연계 등 국제협력 확대, 일본 내 해운 선주 육성을 통한 안정적 수주량 확보 등이 제시되었다. 하나하나 우리도 생각해 볼 만한 적극적이고 야심적인 제안들이다. 이재명 정부도 대선 과정에서 조선업 관련 공약을 여럿 제시했으며, 업계도 긍정적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조선업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추진과 더불어 조선 업무의 해수부 이관을 주장하는 움직임이다. 조선업의 광범위한 제조업 연계 효과나 신국제질서 하의 핵심적 위치, 해운과 조선을 묶은 실패 사례로 보이는 일본의 경우 등을 고려하면 해운업과의 시너지만을 고려하는 것은 패착이 될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권남훈 산업연구원 원장
2025.07.10. 8:18
한·미 연합방위체제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위하는 근간이다. 유엔군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전시작전통제권, 한국군, 주한 미군 등은 이를 수행하는 핵심주체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 연합방위체제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덴 콜드웰 전 미 국방장관 수석고문 등이 작성해 어제 공개한 보고서엔 주한미군의 지상 전투병력 대부분과 2개 전투비행대대를 철수하고, 2만8500명인 병력 규모를 1만명으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앞서 국방 분야에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지휘하고 있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은 지난 3월 “미국은 북한과 큰 충돌에 휘말릴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이후에도 미국에선 주한 미군의 역할 변화, 전작권 전환, 방위비 증액과 관련한 언급이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서울에 있는 유엔사를 일본으로 옮기고 사령관도 주일 미군 장성으로 바꾸려 한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하나같이 우리의 안보 태세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다. 새삼 6·25전쟁 직전 미국이 한반도를 극동 방어선에서 제외한 ‘애치슨 라인’ 이 떠오른다. 자칫 북한의 오판을 불러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반도 지정학 가치 커졌는데도 1만명으로 감축 주장까지 나와 전작권 환수로 연결될 수 있어 한 치 앞 내다보는 지혜 짜내야 중국 해양력 견제 힘 부치는 미국 최근 미국의 움직임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우선, 미국이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버거워 우리를 도울 여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중국의 해양 팽창 정책이 미국의 전략적 핵심 가치인 해양 통제권을 위협하고 있다. 또 새로 출범한 한국 정부를 길들이려는 차원일 수 있다. 정권 교체 때마다 달라지는 우리의 대미·대중 정책에 미국이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 장관이 지난 5월 31일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한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은 없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장은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최우선 정책 과제다. 미국이 중국 견제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하지만 미국 입장에선 과거에 비해 역량이 약화했고, 국제 환경 변화로 힘에 부치는 게 사실이다. 반면, 중국은 해양 팽창 정책을 펼치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12개국에 항만을 건설해 조만간 군사기지로 만들어 전 세계 바다의 통제권을 노리고 있다. 중국은 해양 영유권 주장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남중국해에 이미 12개의 인공섬을 건설했고 서해에도 인공구조물을 설치 중이다. 중국의 성장에 반해 미국의 해양 세력 약화는 옛 소련이 무너진 뒤 레이건 행정부의 조선·해운 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급 중단이 화근이다. 전 세계의 해양을 호령하며 패권을 유지하던 근간이었던 미국의 조선 산업은 후퇴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조선과 해운 협력을 손짓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에서 제 기능을 하는 조선소는 5개 안팎에 불과한 반면, 조선업 육성에 매진했던 중국의 조선 능력은 미국의 230배에 이른다. 2020년대 초 통계에 따르면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상선대의 숫자는 미국 82척, 중국 7000척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사태가 발생하면 치명적이다. 필자는 지난 5월 HD현대중공업을 방문한 존 펠런 미 해군성 장관을 수행하며 미국 해운 세력의 쇠퇴로 인한 심각성을 실감했다. 미국은 신 해양전략(SHIPS ACT)을 세워 열세를 만회하려 하지만 무너진 조선 기간 산업을 부활시키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린다. 그 공백을 우리의 조선 능력으로 메우려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이다. 우리에겐 기회다. 미국과 안보·관세 협상 등에서 중요한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한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버틸 각오해야 동시에 미국 우선주의에 적응하기 위한 우리의 정책은 한 치 앞을 더 내다봐야 한다. 우리의 국방비를 인상하고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미국의 압박이 주한미군 주둔비만을 염두한 게 아닐 수 있어서다. 스티븐 조스트 주일미군사령관이 지난달 28일 일본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주일미군사령부가)향후 몇 년간 지휘 권한을 점차 확대해 나갈 것”이라는 언급에 힌트가 있다. 그는 한·미 연합사령부의 일본 이전 가능성도 언급했다. 1950년 7월 채택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문(제84호)에는 유엔사령부와 사령관의 위치와 관련한 조항은 없다. 그러나 사령부를 일본으로 옮긴다는 건 유엔사가 한반도의 정전 관리나 북한의 억제를 넘어 지역 관리에 치중하겠다는 의미다. 북·중·러와 한·미·일 대립 구도가 극명해지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가 더욱 커진 상황이다. 그런데도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분명 올바른 판단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의 판단이나 희망과 달리, 일방주의라는 비난 속에서도 자신의 입장에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애치슨 라인뿐만 아니라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고조되던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아시아 각국은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는 독트린(괌 선언)을 선언하며 주한미군 일부를 철수시킨 적도 있다. 필자는 2015년 한·미 연합작전계획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획 문서를 만들면서도 우리의 의지를 주도적으로 반영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절감했다. 어쩌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모든 힘을 끌어모아 중국 견제에 전력투구하는 일환으로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자연히 전작권을 한국으로 이양하는 문제로 연결될 수도 있다. 전작권 환수는 필자가 합참의장으로 재직할 때 중점적으로 검토했던 사안이다. 노무현 정부는 2012년에 전작권을 환수하는, 시기에 기초(Time Based)한 전작권 전환을 추진했다. 그러나 한반도 안보환경과 한국군의 환수 준비 상황이 여의치 않자 한·미는 2014년 한국이 일정한 조건을 갖춘 뒤 전작권을 환수하는 ‘조건에 기초한(Condition Based)’ 전환으로 원칙을 수정했다. 한·미가 합의한 3가지 조건은 ▶연합방위를 위한 충분한 군사적 능력 확보 ▶동맹의 포괄적인 북한 핵미사일 대응능력 확보 ▶전환 조건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역내 안보 환경 조성이다. 이 조건들은 어느 것 하나 달성하기 쉽지 않은 어렵고 막연한 조건들이다. 특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고도화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이 부분은 특히 난감한 과제다. 이와 관련 지난 4월 존 대니얼 케인 미 합참의장이 청문회에서 “아직은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직은 한국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북한의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한국이 미국만 쳐다보고 있을 순 없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야 하는 상황에 대비하는 게 유비무환의 자세다. 최윤희 한국해양연맹 총재·전 합참의장
2025.07.10. 8:16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따라 해봤을 이 대사는 동화 ‘백설공주’ 속 마법 거울이라는 강력한 존재에 대한 호기심과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 질문을 던지면 즉석에서 대답하는 거울은 이제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이 됐다. 질문에 즉각적으로 답을 주고,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주는 이 거울은 ‘인공지능(AI)’이라 불리며 하루가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 AI를 기반으로 한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는 2021년 안경 제조사 레이밴과 협업해 첨단 스마트 안경을 선보였다. 지난해 소개된 모델까지 200만 개가 팔렸다는데, 한 단계 더 진화된 모델 출시를 앞두고 미국·영국·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 오늘(11일)부터 사전예약을 받는다. 스포츠 안경 브랜드 오클리와 협업한 이번 모델의 이름은 ‘오클리 메타 HSTN(하우스틴)’. 외관은 기존 모델의 모던 클래식 디자인에 스포츠와 일상의 경계를 아우르는 고유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진짜 혁신은 내부에 있다. 이 안경은 울트라HD 화질의 카메라, 개방형 스피커, 그리고 메타 AI 음성비서를 탑재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대화할 수 있는 웨어러블 AI 디바이스로 작동한다. “헤이 메타(Hey Meta)”라고 말을 걸면, 주변 사물을 인식해 설명해주거나, 언어를 실시간으로 번역해주고, 사진과 동영상을 손을 쓰지 않고도 기록할 수 있다. 마법 거울에게 자신의 외모를 확인하는 왕비처럼, 사용자가 음성으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맞는 답변을 곧바로 내놓는 형식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안경은 마법이 아닌 방대한 데이터와 알고리즘 분석을 통해 결과물을 도출한다는 점이다. 우려되는 점 역시 존재한다. 동화 속 마법 거울이 왕비의 집착을 키우고 파멸로 이끌었던 것처럼, 현대의 AI 기술 역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감시·편향·의존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울이 “당신보다 예쁜 사람은 따로 있다”고 답한 뒤 초래된 부정적 결과처럼, AI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자존감이나 합리적 판단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AI 안경은 단순한 ‘스마트 기기’를 넘어서는, 인공지능 기술의 대중화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굳이 스크린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눈이 보는 세계와 AI가 분석하는 정보가 합쳐진 새로운 차원의 마법 같은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서는 것이다.
2025.07.10. 8:14
외롭고, 힘들고, 지친다. 슬슬 몸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하면, 당장에라도 기권하고 싶은 유혹이 고개를 든다. 그래도 일단 이를 악물어본다. 무념무상으로 팔을 휘젓고 다리를 움직인다. 그렇게 아득하던 결승선이 가까워진다. 바다에서 수영하는 오픈워터 스위밍(open water swimming) 선수들 얘기다. 오픈워터 스위밍은 수영장이 아닌 바다·강·호수 등에서 자유형으로 헤엄치는 종목이다. 최장거리인 10㎞ 레이스는 ‘수영의 마라톤’으로 불린다. 레인이 따로 없으니, 선수들 간에 몸싸움이 치열하다.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햇빛·파도·바람 등 온갖 자연의 변수와 싸워야 한다. 엄청난 체력과 그보다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한국 오픈워터 국가대표 박재훈(25)은 “8~9㎞ 지점쯤 가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터치패드(선수의 손이 닿으면 최종 기록이 표시되는 장치) 하나만 바라보고 앞으로 가는 거다”라고 했다. 페이스가 좋을 땐 그나마 아드레날린이 솟는다. ‘더 가도 소용없다’ 싶을 땐 실낱같이 남아있던 체력마저 바닥난다. 그래도 오픈워터 선수들은 또다시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올림픽 같은 세계 무대에 서고 싶다는 의지가 이들을 ‘고생길’로 이끈다. 한국은 오픈워터 스위밍의 불모지다. 지난해 11월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 남자부 출전 신청 선수는 11명에 불과했다. 그중 3명이 경기 도중 기권했고, 1명이 불참했다. 완주한 7명 중 박재훈과 오세범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여자부는 더 적다. 출전 선수 4명 가운데 고교생 김수아와 황지연이 1·2위로 발탁됐다. 이들 넷이 오는 15일 시작하는 싱가포르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오픈워터 경기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다. 세계선수권에선 60여명이 한꺼번에 경쟁한다. 남녀 합해 4명뿐인 한국 선수단은 실전 대비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박재훈은 “국제대회에선 선수들끼리 서로 몸싸움을 벌이다 팔이 엉킨 상태로 수영해야 할 때도 있다”면서도 “이제는 경기 중에 몇 대 얻어맞아도 당황하지 않고 내 레이스를 한다. 그 정도로 익숙해졌다”고 털어놨다. 박재훈은 2023년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오픈워터 동메달을 땄다. 지난해 2월 도하 세계선수권에서는 부진해 7월 열린 파리 올림픽엔 나가지 못했다. 오픈워터가 2026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에서 제외돼 사기도 떨어졌다. 그래도 그는 다시 바다로 나가 파도에 맞선다. 세계의 벽이 여전히 높아도, 확고한 ‘아시아 1위’로 자리 잡겠다는 목표를 품었다. 경남 김해 인근 바다의 뙤약볕 아래서 수없이 물살을 가르며 무더운 여름의 시작을 버텨냈다. 그 사이 얼굴과 온몸은 까맣게 그을렸고, 꿈은 더 자랐다. 때로는 이렇게 금빛 메달보다 빛나는 도전이 있다. 배영은([email protected])
2025.07.10. 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