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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스물여섯 조각의 미덕

매년 늦은 여름이면 미동부 해안의 끝자락 뉴욕 허드슨강의 계곡과 연결된 허드슨 캐년에 참치 무리들이 먹이볼을 찾아온다. 오징어, 고등어, 멸치 등의 먹이볼이 형성되어 참치들의 먹이가 풍부하다. 원래 미동부 해안은 어획량이 풍부하고 다양한 어종들이 서식하는 바다로 참치 철이 시작되면 너도나도 많은 낚시꾼이 모여든다. 참치 무리가 언제 나타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물의 흐름과 온도를 수시로 측정하며 그들의 이동상태를 점검한다.     모두가 큰 기대를 하고 먼 길을 떠난다. 각자 기호에 맞는 장비와 자기만의 노하우를 준비한다. 한밤중의 무리를 기대하고 떠나는 팀과 낮과 저녁노을의 시간대를 선호하는 팀들이 있다. 지난해는 상황이 너무 좋았지만 올해는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오늘은 26명이 롱아일랜드 프리포트에서 출발하는 선박에 올랐다. 모두 반가운 꾼들의 만남이다. 남녀노소 관계없이 모두 승선했다. 거의 시즌이 끝나가는 시점이지만 그래도 예측할 수 없었다. 푸짐한 음식과 다양한 음료수를 즐기며 바늘을 매는 사람, 지깅과 파핑, 기타 등등 만반의 준비도 해야 되고 충분한 휴식도 필요하기 때문에 밤새도록 새우잠이라도 자야 한다.     일행 중에 두 젊은 남자가 자리가 없어서 서성거리며 자리를 찾고 있었다. 나의 자리 일부분을 서슴없이 양보했다. 그들의 복장과 준비물을 살펴보니 초보자들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전부가 새것들로 무장했다.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낚시도 참치도 처음이란다. 문득 떠오른 미국인들의 속담 ‘Beginner is winner’란 말이 생각났다. 네가 오늘의 승자가 될 거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선박은 밤새도록 대서양을 흔들며 어둠 속 깊은 곳에 도착했다. 모두가 승자의 꿈을 꾸었다. 선장과 승무원의 지시를 따라 칠흑의 밤 밝은 조명의 불을 밝힌다. 한밤중 허드슨 캐년의 촛불들이 여기저기에 나름대로 행운의 자리를 잡고 닻을 내리고 고등어, 오징어, 정어리, 넙치 등의 미끼를 내린다. 현장의 산 오징어를 잡아서 사용하면 훌륭한 미끼다. 선장의 안내 방송(참치의 위치, 깊이 등)에 따라서 바늘을 내리고 밤을 새운다.   오늘 밤은 참치의 입질이 없었다. 때로는 대형 상어가 물고 늘어지는 싸움과 황새치들을 잡는 긴 싸움이 있고 특히 하늘을 향해 날듯이 물 밖으로튀어나오는 모습은 장관이며, 특별손님으로 찾아오는 참다랑어, 눈다랑어는 모두 초대형으로 100파운에서 1000파운드가 넘는데 규정이 무척이나 까다롭다. 특히 참다랑어는 선박에 사람 수 관계없이 한 마리만 잡을 수 있는 최고의 생선 미식가들의 기호품이다.     오늘은 미끼, 지깅, 파핑, 드리핑 방법을 총동원했다. 마지막으로 저인망 상선을 따라가면서 바늘을 물 위로 띄우며 쫓아가는 방법(작은 생선들이 그물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참치가 따라가며 먹는다)으로 바늘과 미끼를 흘린다. 저인망선의 뒤를 따르며 많이들 잡는다. 한데 오늘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순간 “Fish on”이라고 누군가 소리쳤다. 물고 늘어진 15여 분 동안의 줄당기기 힘자랑이 끝나고 드디어 무척이나 큰 황다랑어를 갑판 위로 올렸다. 25명은 모두 그와 참치를 보며 부러워했다. 참치는 최후의 마침표로 꼬리로 갑판을 때리며 대서양과의 하직을 고했다. 바로 그 젊은 두 사람이었다. ‘Beginner is winner’란 말이 적중했다. 그는 매우 흥분되어 기분이 최고로 상승하여 기쁨의 악수를 하며 나의 말이 맞았다고 고마움을 표시했고 오늘의 승자는 결정되어 25명은 허공 속에 대서양의 바람을 접었다.     회항 길에 모두 한판 승부를 승복하고 항구에 도착했는데 26명의 손은 빈손이 아니었다. 그는 혼자 독식을 하지 않고 26조각으로 다듬어 한 조각씩 모든 손에 쥐여 주었다. 이 각박한 세상에 이런 젊은이의 미덕이 대서양의 바람을 더욱더 훈훈하게 했다. 모두 따뜻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간 아름다운 바다의 노숙자들이었다. 오광운 / 시인열린광장 조각 미덕 낚시도 참치도 오징어 고등어 고등어 오징어

2026.02.10. 20:53

[우리말 바루기] ‘그치?’ ‘그쵸?’

상대방의 공감을 유도하며 되묻는 언어 습관을 지닌 사람이 많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말끝마다 “그지?” “그죠?” 혹은 “그치?” “그쵸?”를 덧붙이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이 맞춤법상 올바른 표현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이는 틀린 표현이다. ‘그지’ ‘그치’는 ‘그렇지’를 줄여 쓴 표현이다. ‘그렇지’는 ‘그렇다’를 활용한 표현인데, ‘그렇다’는 ‘그러하다’가 줄어든 말이다. 결국 ‘그러하지→그렇지→그지/그치’가 된 셈인데, ‘그지’는 ‘그렇지’에서 ‘렇’이 통째로 빠진 형태다. ‘그치’는 ‘러’가 빠지고 받침으로 쓰인 ‘ㅎ’과 뒤에 오는 ‘지’가 결합해 거센소리인 ‘치’로 변한 모습이다.   ‘그렇다’는 ‘그렇고, 그렇게, 그러니, 그런, 그러면’ 등과 같이 활용된다. ‘그렇다’는 ㅎ불규칙용언으로, 활용할 때 어간인 ‘그렇-’에서 ‘ㅎ’이 불규칙적으로 탈락하기도 하지만 ‘렇’이 통째로 사라지진 않는다. 다시 말해 ‘그지’나 ‘그치’와 같이 줄어들 수 없다. ‘그죠’와 ‘그쵸’도 마찬가지다. ‘그러하죠→그렇죠→그죠/그쵸’가 될 수 없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에는 ‘그지’와 ‘그죠’를 ‘그렇지’와 ‘그렇죠’가 줄어든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입말에서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는 표현이기에 국민 누구나 올릴 수 있는 개방형 국어사전인 ‘우리말샘’에 표제어로 올라 있을 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표준어로 인정된 맞춤법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지/그치’ ‘그죠/그쵸’는 ‘그렇지’ ‘그렇죠’로 표기해야 바르다.우리말 바루기 언어 습관 국민 누구

2026.02.10. 18:43

[K컬처에 빠지다] 한국 현대미술의 부상

한국 현대미술은 지난 몇 년 사이 국제무대에서 인지도와 가치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한국에는 오래전부터 뛰어난 작가들이 존재해 왔는데,  왜 최근에야 국제적 주목도가 높아진 것일까?     그 배경에는 한국의 상업 예술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영향이 크다. 이로 인해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인식도 엄청나게 달라진 것이다.  K-팝과 K-드라마의 성공이 불러온 관심은 순수미술을 포함, 한국 문화 전반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한국 문화에 매료된 외국인들은 한국의 창조적 자산들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하고 싶어 한다. 이는 한국 아트페어 참가자 수가 급증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의 미술 관련 단체들이 늘어나면서 한국 현대미술 작품의 해외 전시 기회도 늘어났다. 한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국제 갤러리들에 문호를 개방해 활발한 교류도 이뤄지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영어권 학술 연구 역시 양과 질 모두에서 크게 성장했다. 조앤 기(Joan Kee)의 2013년 저서 ‘한국 현대미술: 단색화와 방법의 긴급성(Contemporary Korean Art: 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책은 단색화를 다룬 최초의 영어권 단행본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014년 뉴욕의 ‘알렉산더 그레이 갤러리’와 로스앤젤레스의 ‘블럼 앤 포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를 기점으로, 하종현·윤형근 등 그동안 국제적으로 덜 알려졌던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이 세계 미술계에 널리 소개되었고, 인지도와 평가가 급격히 높아졌다. 사실 평론가 로버트 C. 모건과 화가인 도널드 저드는 이미 오래전부터 평론과 강연 등으로 단색화의 중요성을 주장해 왔다. 조앤 기의 책 출간이 폭발적 반응을 얻은 것은 이처럼 앞선 연구자들이 살려 둔 불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의 다른 미술 운동들, 즉 1950년대의 앵포르멜(Informel), 1980년대의 민중미술 등 역시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국제적 관심 증가의 수혜를 입었다. 또한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강수정과 안경이 공동 기획한 ‘오직 젊은이들만: 한국의 실험미술(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전시회는 1960~70년대 한국 아방가르드(avant-garde) 미술에 대한 국제적인 주목을 끌어냈다. 전시회와 함께 출간된 도록은 이 중요한 주제를 다룬 최초의 영어권 주요 출판물이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엘리자베스 아그로와 우현수가 기획한 ‘시간의 형상: 1989년 이후의 한국 미술(The Shape of Time: Korean Art after 1989)’ 전시는 20세기 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로 전개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전시회 도록 역시 이 분야에 대한 중요한 자료로 꼭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체계적인 독서를 원한다면 두 권의 종합적 개설서를 추천한다. 하나는 20세기 전반을 다룬 버지니아 문 편저의 ‘경계의 공간: 한국 미술의 근대(The Space Between: The Modern in Korean Art)’ 이고, 다른 하나는 20세기 후반을 조명한 정연심, 김선정, 킴벌리 정, 키스 와그너 공저의 ‘1953년 이후의 한국 미술: 충돌, 혁신, 상호작용(Korean Art from 1953: Collision, Innovation and Interaction)’이다. 더 많은 추천을 원하신다면 이메일([email protected])로 연락 주시기 바란다.   한국 현대미술의 세계적 위상 상승에는 한국 정부와 사회공헌활동가들의 지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는 이전 칼럼인 ‘사회공헌활동과 2000년 동안의 예술 전시(Philanthropy and 2000 Years of Art on Display)’에서 이 주제를 다룬 바 있다.     한국의 미술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오늘날 한국은 국제적인 예술 허브로 인정받고 있다. 이는 오랜 시간에 걸쳐 마땅히 받아야 할 평가였다. 그 혜택은 한국의 예술가들과 한국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해외의 미술 애호가들 역시 그동안 과소평가되어 왔던 아름답고 영감을 자극하는 예술 작품들을 더 폭넓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행운을 누리고 있다. 로버트 털리 / 코리안 아트 소사이어티 회장K컬처에 빠지다 현대미술 한국 한국 현대미술 한국 문화 한국 아방가르드

2026.02.1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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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반스앤노블’ 재기가 증명한 가치

“오프라인 매장은 끝났다.” 이런 통념에 정면으로 맞서는 존재가 있다. 바로 반스앤노블이다.     디지털에 밀려 사라질 상징처럼 여겨졌던 반스앤노블은 ‘서점의 부활’을 선언하며 올해 60여 개의 새 매장을 연다. 이미 아이다호, 뉴욕 등에 매장을 열었고 올해 캘리포니아, 시카고, 텍사스, 플로리다 등에도 문을 열 예정이다. 종이책과 서점 문화가 다시 동네의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서곡이다.     반스앤노블은 독서 문화의 흥망을 그대로 겪어온 브랜드다. 이 거대한 서점 체인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오프라인의 몰락이 아니라 진화를 보게 된다.     반스앤노블의 시작은 놀라울 만큼 소박했다. 1873년, 뉴욕에서 찰스 반스가 연 작은 서점은 교과서와 참고서를 파는 곳이었다. 화려함도, 문화 공간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핵심은 단 하나, 책을 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상업 서점이었다. 이후 반스 가문에 노블 가문이 합류하면서 이름은 오늘날의 반스앤노블(Barnes & Noble)로 완성된다.     초창기 반스앤노블은 지식의 낭만보다 ‘유통의 효율’에 충실한 서점이었다. 변화는 1970~80년대 찾아왔다. 동네 서점과 중소 체인을 인수하며 규모를 키운 반스앤노블은 빅박스 서점 모델을 도입해 넓은 공간과 방대한 재고, 머물 수 있는 좌석을 갖췄다. 여기에 1990년대 스타벅스가 들어오면서 결정타를 날린다. 책을 사러 왔다가 커피를 마시고, 다시 책장을 넘기는 공간. 이때 반스앤노블은 단순한 서점을 넘어 하루를 보내는 장소가 된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0년대,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온다. 온라인 가격 경쟁, 전자책과 킨들의 등장, 클릭 한 번이면 책이 집 앞에 도착하는 시대. 여기에 본사 중심의 획일적 운영은 지역성과 개성을 지워버렸다. 매장은 줄어들고 실적은 악화됐다. 사람들은 말하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서점은 끝났다.”       하지만 반스앤노블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책은 온라인에서 살 수 있지만, 머무는 경험은 오프라인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 이 단순한 진실을 반스앤노블은 1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증명해 왔다.   반스앤노블의 진짜 반전은 운영 철학을 완전히 뒤집은 순간부터 시작됐다. 그 전환점이 된 해가 2019년이다. 그해 반스앤노블의 최고경영자(CEO)로 영입된 인물은 제임스 던트. 영국에서 대형 서점 체인 워터스톤스를 되살린 장본인이다. 그의 등장은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서점은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의 감각으로 운영돼야 한다.”     던트가 이끄는 반스앤노블은 코로나19와 디지털 전환으로 한때 매출과 매장 수가 줄었지만 최근 매장 매출이 회복되면서 확장 여력이 생겼다.     반스앤노블은 운영 전략도 전환했다. 본사 중심의 획일적 통제를 줄이고 지역 매장에 자율성을 부여해 고객 취향에 맞는 책과 상품을 구성하도록 한 것이다. 과거에는 어느 도시를 가도 같은 진열과 추천이 반복됐지만 이제는 매장마다 다른 얼굴을 갖는다. 대형 매장 위주 전략에서 벗어나 동네에 스며드는 중·소형 서점을 지향하며 체인 서점이 동네 서점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경기 침체로 비어 있는 쇼핑몰·대형 매장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신규 매장을 빠르게 열 수 있는 환경도 서점 부활에 한몫했다.     이런 변화는 예상보다 빠르게 성과로 이어졌다. 특히 Z세대가 반응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역설적으로 아날로그 감성에 끌린다. 틱톡을 중심으로 확산된 ‘북톡(BookTok)’ 독서 붐은 책을 콘텐츠이자 취향의 표현으로 만들었다.     ‘서점의 부활’에서 중요한 건 더는 아마존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아마존이 할 수 없는 것을 한다. 세대별 기억과 문화가 겹겹이 쌓인 생활 공간, 신간 트렌드, 베스트셀러, 저자 사인회, 북 토크가 모두 모이던 오프라인 지식 허브 등 오프라인의 가치를 다시 증명하고 있다.   이은영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반스 노블 오프라인 서점 노블 가문 초창기 반스

2026.02.1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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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아디아포라(Adiaphora)’

남편이 매주 한 번씩 치러 가는 교회 탁구실이 문을 닫았다. 10년 이상 운영되던 탁구 교실이다. 탁구를 안 치는 내가 더 서운하다. 남편이 없는 그 시간은 오롯한 나만의 시간으로 독서나 사색하기 좋았는데 말이다.     며칠 전 후배를 만났더니 나와 똑같은 말을 한다. 후배의 남편인 집사님도 같은 탁구부원이었다. 그러고 보니 탁구를 좋아서 치는 당사자들에겐 운동으로 힐링이 되고, 그 배우자에겐 또 다른 휴식의 일석이조의 기회였는데 참 아쉽다.   생각이 짧은 누군가가 “금요예배도 안 나오면서 수요일엔 탁구를 치다니!” 하고 마치 신앙적으로 큰 죄를 짓는 듯 말을 하니 그야말로 김이 새서(?) 탁구실을 잠정적으로 닫기로 했다는 거다.   중세의 수도사도 아니고 현대교회의 평신도에게 그런 구닥다리 잣대로 신앙을 평가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교회의 건물은 커뮤니티에 되도록 많이 개방하여 신앙인이 아닌 이에게도 유용하게 쓰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미국교회들을 보면 커뮤니티의 시니어 교육, 요리교실, 댄스교실 등으로 개방하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나도 오래전 유학생 배우자 신분으로 미국에 왔을 때 남침례교단의 부인회에서 많은 걸 배워 큰 도움을 받은 기억이 있다.   탁구부원이었던 원로목사님도, 다른 교회에서 오시던 탁구애호가도, 전도 대상으로 점찍었던 이웃 주민도 탁구실을 닫았다니 실망이 크시다.   ‘아디아포라(adiaphora)’라는 말이 있다. 헬라어 ‘아디아포로스’에서 유래한 용어로, 기독교의 성경이나 교리가 명시적으로 명령하거나 금지하지 않은 중립적인 영역을 뜻한다. 음식, 복장, 취미, 예배 형식 등 행동의 여부가 신앙의 본질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대수롭지 않은 것” 즉 “해도 좋고 안 해도 괜찮은 일”을 뜻하며 간단히 말해 목숨 걸 필요가 없는 일들이라는 말이다. 세상엔 굳이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이 참견하거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들이 많다.   그 일을 계기로 요즘 교회가 “신앙의 고백과 교리는 있으나 사랑의 실천이 없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상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자기애’적 신앙생활만 하는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그가 비록 교회에서 리더역할을 하고 있을망정. 사랑 없는 특권의식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희생을 무효화시키는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요즘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데 혹시 이런 일들이 원인일 수도 있지 않나 걱정스럽다.   복음은 ‘관계의 화해’이며 ‘제한성의 극복’이고 ‘시선의 확장’이라는 것을 믿는다. 이정아 / 수필가이아침에 교회 탁구실 요즘 교회 오래전 유학생

2026.02.1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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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하나님의 자녀

외출하려고 옷을 골랐다. 이 옷 저 옷 입어 보면서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옷들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면서 옷장 속을 마구 휘젓다 보니 괜한 일거리만 쌓였다. 아무리 옷을 바꿔 입어 보아도 내가 원하는 이전의 멋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봄,여름,가을, 그리고 겨울, 사계절은 질서 있게 왔다 가고 다시 오건만 인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흐르는 강물처럼 일방통행이다.   세월은 나를 이렇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 흘러간 세월 속에 한참 헤매다 보니 약간 멋쩍은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떠올랐다.   눈은 현실에 맞춰야 한다. 흘러버린 지난날에 맞추면 문제투성이다. 옷장 속을 휘젓고 나니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     나의 변화된 현실을 보면서 어릴 때 자랐던 북녘땅이 새삼 그리워진다. 우리가 살던 함경남도 고원에서 해방 직후 다녀왔던 이웃 도시 영흥이 생각난다. 그곳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생가가 있던 곳이다. 하늘을 찌르는 듯한 아름드리 나무들에 감탄사를 연발했던 것이 마치 어제 일 같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일제강점기의 잔인했던 민족 말살 정책의 만행도 잊을 수 없다.   미국에 온 지 어느덧 반세기가 지났지만 떠나온 조국에 대한 생각으로 종종 가슴을 태우곤 한다. 한번 가 보고 싶었던 북녘의 고향 땅은 이제 추억으로 남긴 채….    마음속으로 ‘우리의 참 안내자 되신 주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겠습니다’라고 다짐한다. “오늘도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평강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겠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 12)’ 이영순 / 산타클라리타독자마당 하나님 자녀 함경남도 고원 아름드리 나무들 태조 이성계

2026.02.10. 18:29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랑과 예술, 심장의 불꽃은 타오른다

빈자리에 누군가 있을 때와 없을 때는 천지차이(天地差異)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광기다. 천둥과 비비람이 몰아쳐도 함께 있는 순간은 따스하고 평화롭다.   이탈리아 고대 도시 폼페이 베스비오 화산이 폭발하기 전 벽면에 시민들이 남긴 비문과 그림 79건이 새롭게 발견됐다. 벽면에는 검투사 두 명이 맞붙어 싸우는 장면과 ‘에라토 사랑한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누구를 사랑하는지 목적어 없는 고백이지만 사랑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우주를 떠돈다.   사랑은 광야에 몰아치는 모래 바람이다. 형체도 없이 경계를 허물고 세월의 강을 건너 국적을 초월해 사랑없는 모든 것들에게 생명의 환희를 새긴다.   제25회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대회가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시로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화려하게 개막됐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아르모니아(Armonia)’. 영어로는 하모니, 즉 조화와 균형을 말한다. 복잡다난하고 전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21세기, 세계 정세와 세대-계층과 균열이 심각한 사회 분위기를 아우르는 시의적절한 주제다.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가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아리아 ‘네순 도르마(Nessun Dorma), 잠들지 말라’를 열창할 때는 가슴이 저렸다.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개회식 무대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가 부른 ‘Nessun Dorma’는 내 생애 잊지 못할 가장 아름다운 아리아다.   추억은 왜 하릴없이 시공을 뛰어넘고, 사랑했던 순간들은 축지법을 쓰며 세월의 흔적을 무자비하게 허무는가? 예술이 없었다면 사랑도 없고, 사랑이 없었다면 예술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지막지한 고통 속에서 가슴 떨리는 선율이 없었다면 높고 낮은 절망의 순간들을 어찌 참고 견딜 수 있었을까?   베토벤은 청력을 잃는 극한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는 열정으로 절망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불굴의 상징으로 칭송받는다. 제자가 교향곡 제5번 ‘운명’ 1악장 서두의 주제를 물었을 때 베토벤이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들긴다”라고 해서 제목이 붙여 졌다고 전해진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비켜가는 수밖에 없다. ‘운명’ 교향곡으로 생의 고통과 좌절을 견디며, 모닝 커피를 마시며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를 듣는다.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심장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이다.   여린 풀잎에 입맞추고, 늙어 껍질이 벗겨진 고목을 껴안고 사랑을 고백하겠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오직 예술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말을 남긴다.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앞에서 피처럼 붉은 하늘의 아픔을 삼키고, 봄이 오면 모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처럼 뒷마당에서 이웃들과 조촐한 파티를 하겠다.   사랑은 견딜 수 없는 인생의 하루 하루를 아름답게 채색한다.   ‘살아가는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살아가야 할 인생의 목표는 여태 남아있다.   인생의 완벽한 그림은 없다. 구도도 없이 불시착해서 미완성으로 끝이 난다.   사는 것이 바람개비의 펄럭임이라 해도 꼭 붙잡고 살기로 한다. 심장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 예술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각자의 색깔로 생을 채색한다.   뿌리 없는 나무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심장의 불꽃은 사랑으로 타오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예술 심장 이탈리아 밀라노 올림픽 스타디움

2026.02.1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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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미 관세협상 난항, 왜 장관마다 엇갈린 발언 나오나

대미 관세협상이 다시 시계 제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미 투자 관련 한국의 입법 지연을 이유로 관세 25% 재인상을 통보한 뒤 이를 풀기 위해 정부가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미국이 비관세 장벽 해소를 압박하면서 원점으로 돌아온 모양새다. 비관세 장벽과 관련해 미국은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과 구글에 대한 정밀 지도 허용,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추진 중단 등을 요구해 왔다. 지난해 협상 합의 당시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에 대한 부담에도 관세 인하와 함께 한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쌀과 소고기 시장의 추가 개방을 막고, 전략물자인 지도 반출 등이 빠지면서 나름 선방했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관세협상 재논의 과정에 우리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비관세 장벽 이슈가 다시 협상 테이블에 오르게 되면서 미국과의 접점을 찾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더 큰 문제는 협상에 임하는 통상과 외교 라인의 엇박자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어제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국회에서 대미투자특별법이 통과될 경우 미국 정부의 한국에 대한 관세 재인상이 정상화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특별법 통과만 되면 문제 없을 것이란 뉘앙스였다. 반면에 전날(9일) 조현 외교부 장관은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의 대화를 공개하며 “미국이 한국과의 비관세 장벽 관련 협상에서 진척이 없을 경우 한국에 대한 관세를 인상해 무역적자를 개선하려고 한다”며 김 장관의 진단과는 상당한 온도 차를 보였다. 관세협상에 있어 통상과 안보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합의를 이끌어내 온 구조로 인해 통상과 외교 라인 간의 이견과 균열은 애써 합의를 이뤄낸 통상 안보 패키지 딜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 협상 과정이나 내용을 속속들이 공개할 수는 없겠지만, 정부의 엇갈린 목소리는 관세 인상의 직격탄을 맞을 기업과 산업계의 불안을 키우고 협상 상대인 미국의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다양한 이슈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부처 간 이견이 있더라도 정부 내 혼선을 줄이며 국익을 최대화하고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면밀히 검토해 일관된 원칙을 바탕으로 협상에 총력을 다해 임해야 한다.

2026.02.10.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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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당한 절차로 정한 의대 증원안, 더 이상 반대 명분 없다

보건복지부가 어제(10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2027~2031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확정했다. 내년도 490명을 시작으로 5년간 총 3342명을 늘리는 내용이다. 이번 결정은 법에 근거한 절차와 과정을 거쳐 도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윤석열 정부 시절 충분한 협의 없이 대규모 증원을 추진하면서 전공의와 의대생이 병원과 학교를 떠났고, 의료 현장은 장기간 파행했다. 증원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있었지만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아 갈등이 증폭됐다.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갔다. 대한의사협회가 반발하고 있지만 이번 의대 증원 결정은 의사 인력 수급 추계위원회의 추계 결과를 토대로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해당 위원회는 의료공급자 단체가 추천한 인사가 과반을 차지하는 구조로 운영됐다.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데 참여해 놓고,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이를 부정하는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 의료인 단체는 대승적 차원에서 이번 증원 안을 수용하기 바란다. 만일 의료계가 또다시 집단행동에 나선다면 ‘직역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증원은 단순히 의대생 숫자만 늘리는 것이 아니다. 늘어나는 정원은 비(非)서울권 32개 의대에 배정되고 지역의사제 선발 전형으로 충원된다. 재학 중에는 정부 지원을 받고 졸업 후 지역 공공의료기관 등에서 10년간 일하게 된다. 2030년부터는 공공의대와 지방의대도 신설된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분야의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다. 다만 지역의사제나 공공·지역의대가 도입 취지에 맞게 기능하려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의료계의 협력이 꼭 필요하다. 아울러 필수 진료에 대한 수가 인상, 의료인의 과도한 형사책임 완화, 열악한 근무 환경 개선 등 보완책도 뒤따라야 한다. 인력만 늘리고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증원 이후의 보완·실행 대책을 촘촘하게 마련해 실행해야 하고, 의료계 역시 정당한 절차를 거쳐 확정된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더 이상 대립과 불신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이번 의대 정원 확정은 또 다른 의·정 갈등의 출발점이 아니라 국민 건강권을 증진하는 협력의 계기가 돼야 한다.

2026.02.10.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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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합당 무산, 정략에 골몰한 정청래의 예고된 결말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이 결국 무산됐다. 어제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은 정청래 대표가 추진한 합당에 대해 필요성은 공감했으나 현 상황에서 추진하는 것은 어렵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정 대표가 지난달 22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전격 제안한 양당의 합당은 20일 만에 동력을 잃게 됐다. ‘범진보 통합’이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설득력을 얻지 못한 채 여권 분열의 후유증만 남기면서 정 대표의 리더십도 흔들리고 있다. 통합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의원이 상당수였는데도 합당이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은 정 대표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우선 정 대표는 최고위원·의원단 등과 사전에 어떠한 상의도 없이 기습적으로 합당 추진을 발표했다. 당의 정치적 진로를 당대표가 혼자 결정해 밀어붙이니 “절차적 정당성이 없는 독단”이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 6·3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객관적인 자료나 전략적 구상 등을 제시하지 못했다. 초선 의원들은 “졸속 합당 중단”을 요구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정 대표가 합당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략적 수단으로 쓰려 한다는 의심이었다. 합당을 통해 정 대표가 당대표 연임을, 조국 대표가 차기 대권 주자를 노린다는 밀약설이 퍼질 정도였다. 친명 의원을 중심으로 한 당 주류가 견제와 반대에 나서면서 ‘명·청 갈등’이 두드러졌다. ‘친명’ 이언주 최고위원이 정 대표 면전에서 “2인자, 3인자들이 프레임을 바꿔 당권과 대권을 향한 욕망을 표출한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당원 여론조사로 논란을 돌파해 보려던 정 대표의 시도는 한병도 원내대표마저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집권 8개월을 막 지난 여권에서 합당 제안을 계기로 ‘명·청 갈등’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미 관세협상과 부동산값 폭등 대책 등 국정 현안이 수두룩한데 친명이니, 친청이니 하며 권력 투쟁을 벌일 여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나. 심지어 합당 갈등의 이면에는 주류 친명과 구주류 친노·친문계의 권력투쟁이 있다는 말까지 나도는 작금의 상황을 여권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2026.02.10.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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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중간지대를 다시 세워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의 온도는 여전히 높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목소리는 커지고, 말은 점점 거칠어진다. 그러나 정작 많은 사람의 감정은 식어가고 있다. 분노와 조롱은 넘치는데, 신뢰는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지금 한국 민주주의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신호는 양극화 그 자체보다, 그 사이를 지탱해주던 어떤 공간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중간지대의 붕괴다. 동원의 정치가 밀어낸 중간지대 정보와 제도의 왜곡으로 이어져 정치적 중간지대 복원의 목표는 다시 예측 가능한 사회 만드는 것 중간지대는 여론조사에서 말하는 ‘중도층’과 다르다. 어느 당을 찍을지 망설이는 유보의 태도도 아니고, 모든 사안에서 양쪽을 비판하는 태도도 아니다. 중간지대란 갈등이 존재하더라도 정치가 규칙과 절차로 돌아오도록 붙잡아두는 완충 공간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불완전하고 잠정적일지라도 그 결정을 떠받치는 합의의 영역이 필요하다. 중간지대는 바로 그 합의가 쌓이는 제도의 공간이다. 이 말을 조금 더 쉽게 풀어보자. 중간지대는 이미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매일 출근해 일하고, 아이를 키우며, 기술 변화에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고, 열심히 살아도 제도가 갑자기 바뀌어 손해 보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정치적 구호에는 쉽게 흥분하지 않지만, 사회가 불안정해지는 데에는 누구보다 민감하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특정 이념의 승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측 가능성이다. 북유럽 국가들이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단지 민주주의가 더 성숙해서가 아니다. 이들 사회에서는 중간지대가 제도적으로 유지된다. 타협은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통치의 기술로 이해되고, 정치가 잠시 멈추고 조정하는 시간을 갖더라도 그 과정이 제도 안에서 관리될 것이라는 신뢰를 갖는다.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면 개인의 삶은 안정성을 얻는다. 문제는 우리의 정치가 이 중간지대의 공간을 점점 견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언어는 빠르게 도덕화되고, 상대는 경쟁자가 아니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잘못된 존재’로 규정된다. 타협은 책임 있는 선택이 아니라 배신처럼 받아들여지고, 유보와 숙의는 무능의 증거로 취급된다. 정책의 옳고 그름은 제도의 설계나 효과보다 ‘누가 말했는가’에 따라 판단된다. 이 과정에서 실용적 역량과 제도 설계 능력은 점점 가려진다. 정치에서 동원되는 도덕은 자의적이고 불완전하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치가 도덕을 잃어서가 아니라, 도덕을 독점하면서 제도의 언어를 잃어버렸을 때 시작된다. 왜 우리 사회에서 중간지대는 사라졌을까. 정치의 작동 방식이 설계와 조정보다 동원과 결집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동원 정치는 명확한 구호와 빠른 판단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불편한 존재는 즉각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분노의 언어에 쉽게 동원되지 않고, 단순한 선악 구도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이다. 자기 일과 삶에 더 집중하려는 이들은 동원 정치에서 늘 주변으로 밀려난다. 중간지대의 상실은 정보와 제도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복잡한 정책과 데이터는 단순한 프레임으로 잘려 전달되고, 제도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진영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도구로 소비된다. 언론과 소셜미디어는 갈등을 증폭시키는 구조 위에 놓여 있다. 이렇게 왜곡된 정보와 제도 위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삶을 합리적으로 설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무너진 중간지대는 개인의 침묵과 회피로 바뀐다. 이 침묵은 정치적 무관심과는 다르다. 중간지대에서 물러난 사람들은 정치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고 느낀 사람들이다. 제도 하나가 흔들릴 때마다 대출과 연금, 아이 교육 계획을 다시 계산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그간 사회를 떠받쳐 온 사람들은 정치적 열정 대신 계산기를 든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진전은 언제나 이 중간지대가 “이건 아니다”라며 움직일 때 이뤄졌다. 민주화 과정에서도, 민주주의를 지켜낸 결정적 순간에서도, 이들은 잠시 정치의 중심으로 나와 사회의 축을 움직였고, 역할을 마치면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늘 전면에 서지는 않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방향을 바꾸는 힘이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중간지대를 다시 정치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옮겨놓는 일이다. 모든 사안에서 중도를 택하자는 뜻도 아니고, 분노를 지우거나 갈등을 숨기자는 제안도 아니다. 중간지대 복원의 목표는 특정한 정치 노선이 아니라,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을 다시 세우는 데 있다. 법과 제도의 연속성을 회복하고, 변화하는 사회와 기술 환경 속에서도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예측 가능하게 설계할 수 있도록 사회의 작동 원리를 재정립하는 일이다. 이 과제를 먼저 현실의 선택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주체가 다음 단계 정치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이재승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국제학부 교수

2026.02.10.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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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이 대통령 어제의 말 오늘의 말

지도자들의 내면(soul)을 탐색해 온 정치학자 월러 뉴웰이 “지도자라면 대담해야 하고, 기존 입장을 고수해야 하지만 변화가 꼭 필요하다는 확신이 섰을 때조차 기존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 걸 뜻하진 않는다”면서 이런 말을 했다. “이념적 일관성이나 정책적 지속성을 원하는 사람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분통을 터뜨리곤 했다.” 이해한다. 아무리 최고의 선택도 효용이 다하는 순간이 온다. 사람도, 정책도, 제도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 원로 학자가 5년 단임제의 폐해를 얘기해 왔으나 달리 생각하게 됐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대통령감이 아닌 이들이 연속으로 집권하는 걸 보면서 8년(4년 중임제)보단 5년이 낫겠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부동산·외교서 과거와 다른 입장 변화 불가피했다면 설명 필요 그래야 억측·냉소 생기지 않아 그렇더라도 이재명 대통령의 최근 선회를 보며 몇 가지 아쉬운 대목이 있다. 숙고의 결과라고 보기엔 단기간 내 변화인 데다 설명도 부족해서다. “세금으로 집값 잡는 일을 하지 않겠다”며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한 게 지난해 5월 말이었다. “민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많으니까, 집값이 오를 거니까 집을 사자 그런다고 한다. 왜 그럴까 생각을 참 많이 해봤는데, 일부 분석가들에 의하면 부동산이 움직일 때 수요와 공급이 작동하는 것인데 이럴 때 수요를 억제하려고 하면 풍선효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원리로 이럴 때는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진보 정권은 기본적으로 수요 억제 정책을 했다. 세금을 부과한다든지, 소유를 제한한다든지 저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근데 이건 수요, 시장을 이겨내는 것이다. (중략) 정책의 목표는 집값 안정이다. 지금까지의 민주 정부와는 좀 다를 거다.”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숙고한 목소리였다. 합리적이었다. 지난달 하순에도 이 대통령은 “시중엔 50억원이 넘는 데만 보유세를 내게 하자는 이야기도 있더라”면서도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건) 마지막 수단으로 하는 게 좋다. 최대한 뒤로 미루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대한 뒤로 미룬다’의 ‘최대한’은 어느 정도였을까. 단, 이틀 뒤 이 대통령은 다주택자 중과세 유예 중단을 발표했고 이후 거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급기야 비거주 1주택자 불이익까지 시사했다. 부동산 가격이 예상보다 더 올랐을 것이다. 공급책은 덜 먹혔을 것이다. 그래도 이전 난감했던 ‘민주 정부’의 정책으로 돌아가는 듯한 정책을 정당화할 정도인가 의문이다. 이 대통령은 예의 갈라치기 언어를 구사할 뿐, 복잡다단한 이면과 고민의 과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외교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다. “합의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된 회담”은 지금도 진통 중인데 대통령의 설명이 없다가 갑자기 국회를 탓하는 발언이 나왔다. 검찰 관련 법안을 빼곤 원하는 법을 원하는 때에 통과시켜 왔던 걸 떠올리면 뜬금없다는 느낌을 준다. 진정 국회 탓인가. 한∙일 관계에서도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 있다. 2년 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두고 이 대통령은 “인류 건강에 대한 테러”라고 할 정도로 ‘반일 정서’를 드러내곤 했다. 지금도 방류가 이뤄지는데 아무 말이 없고 일본 정상과 친근한 모습을 보인다. 원래 그런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지정학에선 맞는 방향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이 대통령이 과거와 달리 행동하기로 했다면 왜 그런지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유사한 ‘반일 광풍’을 덜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지도자라면 현재 모습을 설명함으로써 동료들에게 나아갈 미래를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과거와 말이 달라졌다면 연유를 알려야 한다. 그래야 현재의 말에도 힘이 실린다. 오늘의 말이 과거의 말을 설명하지 못하면, 미래의 말이라고 오늘의 말과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예정할 수 있겠는가. 설명이 없는 자리엔 대신 추측과 억측, 냉소와 음모가 스며든다. 이 대통령이 이걸 원하는 건 아닐 거라고 믿는다. 고정애([email protected])

2026.02.10.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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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의 시선] ‘문재인 정부 시즌2’로 집값 잡힐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문재인 정부 시즌2’를 향해 가고 있다. 세부 내용은 약간 다르지만, 전방위적 규제라는 큰 틀에선 지난 문재인 정부와 현 정부가 상당히 일치한다. 20년 전 노무현 정부까지 포함하면 역대 세 번째로 겪는 일이다. 사람은 달라져도 민주당 정권의 ‘규제 본능’은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각 정부의 규제가 ‘100% 판박이’는 아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상대적으로 ‘순한 맛’이었다면 현 이재명 정부는 훨씬 ‘매운맛’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토허제 확대에도 집값 못 잡으니 보유세 포함 ‘징벌적 세금’ 만지작 지난 정부 정책 실패 되풀이하나 지금까지 나온 매운맛 규제에서 가장 강한 조치는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 대폭 확대였다. 문재인 정부 때도 부분적으로 토허제를 동원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2020년 4월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동)을 토허제로 묶은 게 시작이었다. 이때부터 이름은 토허제지만, 사실상 주택거래허가제로 변질했다. 다만 최소한의 선을 지키려는 노력은 있었다. 일부 동 단위로 토허제를 적용했을 뿐 서울 전역을 토허제로 묶는 식의 ‘극약처방’까지는 쓰지 않았다. 현 정부는 지난해 10·15 대책에서 파격적으로 토허제를 확대했다. 서울 25개 구 전역과 경기도 남부 12곳을 토허제로 묶었다. 세입자가 낀 집은 아예 사지도 팔지도 못하게 거래를 막아 버렸다.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갭투자(전세 끼고 주택 매수) 봉쇄를 내세운 정부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정부가 원하는 대로 집값을 잡았을까. 통계 숫자가 보여주는 현실은 정반대다. 정부가 공식 통계로 사용하는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보자. 토허제 확대 이후에도 서울 집값은 한 주도 쉬지 않고 계속 올랐다. 서울의 주간 아파트값 상승률은 올해 들어 한때 0.3%를 넘어서기도 했다. 주간 상승률 0.3%는 지난 문재인 정부 때 주택시장 과열로 판단했던 기준점이다. 민간 통계인 KB부동산 자료에선 집값 상승세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서울의 주간 아파트값 상승률은 지난달 19일 이후 3주 연속 0.3%를 웃돌았다. 토허제가 잠시 거래를 억누르는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약발’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자 정부는 다음 카드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이번엔 ‘징벌적 세금’이다. 지난해 대선 때 “세금으로 집값 잡지 않겠다”던 약속은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게 좋겠다. 1단계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부활이다. 오는 5월 10일부터 다주택자가 집을 팔면 시세차익의 최대 82.5%를 양도세로 내야 한다. 다주택자의 시세차익을 ‘불로소득’으로 규정하고 그 대부분을 세금으로 거둬들인다는 방침이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다. 양도세 중과는 보유세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이 논리적 귀결이다. 이렇게 가정해 보자. 양도세만 올리고 보유세를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될까. 주택시장에서 가뜩이나 부족한 매물이 더욱 자취를 감출 것이다. 양도세가 아무리 무거워도 주택 소유자가 집을 팔지 않으면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버티다가 규제 지역에서 풀리거나 정권이 바뀌면 양도세도 달라질 수 있다. 양도세 중과만으로는 매물 잠김의 부작용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양도세 중과를 유예하는 기간에는 일시적으로 매물이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유예 기간 종료와 함께 매물 증가 효과도 사라질 것이다. 양도세 중과와 보유세 인상은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도 경험했던 일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7·10 대책이 바로 그런 내용이었다.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취득·보유 및 양도의 모든 단계에서 세 부담을 크게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다주택자 매물이 시장에 나오도록 2021년 6월 1일까지 양도세 중과를 유예하겠다고 했다. 그 결과는 다들 기억하는 대로다. 집값이 폭등하면서 ‘벼락 거지’란 말이 유행어가 됐고, 정부는 시장을 무시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오래된 이솝우화의 한 대목을 다시 떠올려보자. 해님과 바람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한다는 얘기다. 바람은 아무리 세차게 불어도 목적 달성에 실패했지만, 따뜻한 햇볕은 나그네가 스스로 옷을 벗게 했다. 부동산에서도 과도한 규제는 부작용만 커질 뿐 결국 집값 폭등으로 이어지는 걸 이미 두 번이나 경험했다. 북한과의 관계에선 그렇게도 ‘햇볕정책’을 강조하는 민주당 정권이 유독 부동산에선 규제 일변도 정책을 고집하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 집값 안정이란 목적이 정당하다고 과도한 규제라는 수단까지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서민을 위한다면서 오히려 서민을 옥죄는 역설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정완([email protected])

2026.02.10.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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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의 직격인터뷰]"쿠팡에 분노할수록 쿠팡에 유리하다"

김갑유 국제중재 변호사 인터뷰 한국인에게 국제투자분쟁(ISDS)은 공포다. 지난해 말 론스타 사태가 한국 정부 완전 승소라는 대반전 해피엔딩으로 끝나긴 했지만, 미국계 사모펀드 하나가 10년 넘게 온 나라를 흔들며 우리 세금 수조 원을 가져갈 수 있다는 걸 목격한 탓이다. 다야니(이란)·메이슨(미 사모펀드) 등 수천만 달러씩 물어줘야 하는 정부 패소 사례도 한몫했다. 쿠팡 측, ISDS로 한국 정부 압박 정권 교체마다 전 정부 실책 공개 정보 노출 많고 만만해 집중 타깃 권력자·정치인 과격 발언도 불리 그런 한국인 보란 듯이, 쿠팡의 미국 주요 투자자 두 곳(그린옥스·알티미터)이 지난달 22일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S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90일 후엔 정식으로 중재를 제기할 수 있다. 이들은 정말 중재를 제기하려는 걸까, 단지 한국 정부 압박용 카드로 내민 걸까. 또 만약 제기한다면 한국 정부는 유리할까, 불리할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지난달 31일 김갑유 피터앤김 대표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이번 쿠팡 사건과 연결고리는 없지만, 론스타 중재 13년 내내 한국 정부 측 대리인을 맡아 승소로 이끈 국내 최고 국제중재 전문가다. 이미 정부가 한 번 패소한 미 헤지펀드 엘리엇 사건 항소도 맡아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배경 파악은 물론 대응책 조언의 적임자라는 얘기다. 김 변호사는 "지금 단계에선 쿠팡 측 승산이 크지 않다"면서도 세 가지 전제조건을 달았다. 바로 무관심·배려심(형평성)·말조심이다. 무슨 얘기일까. 다음은 일문일답. 안혜리 논설위원. Q : -쿠팡 투자자(이하 쿠팡 측)가 국제중재 강수를 꺼냈다. 예상했나. A : 그렇다. 삼성·현대차 등도 미국 주주는 있다. 과거 그 기업 회장들이 국회 청문회 불려 나갈 때 미국 주주가 뭐라고 한 적이 있나? 없다. 그런데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 국회가 김범석 쿠팡Inc 의장을 핵심증인으로 불렀을 때는 쿠팡과 쿠팡 측 대응 모두 국민이 기대하는 방식과 달랐다. 잘못 인정과 신속한 후속 조치를 기대했는데, 쿠팡은 협조 대신 정부와 다투는 방식으로 갔다. 쿠팡 측은 ('구실을 내세운 공격'이라며) 정부를 압박하는 중재를 꺼내 들었다. 처음부터 ISDS 행 의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법률 분쟁으로 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법적 공방에선 협조보다 다투는 방식이 더 좋다. 쿠팡이 언론의 과도한 관심을 원할 수 있다. Q : -문제 당사자 쿠팡이 언론 입막음 아닌 관심을 선호한다고? A : 국민이 너무 화가 나, 언론이 난리 치고, 정부는 그런 압력을 받아 취하면 안 되는 지나친 조치를 내리는 등 오버하면 최악이다. 그게 론스타 사건이다. 론스타는 정치권과 언론의 압박 탓에 한국 정부가 론스타의 정상적인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지연하고 가격 인하 압박을 해 손해 봤다고 주장하며 중재를 제기했다. 정치권과 언론이 쿠팡에 관심을 좀 덜 가졌으면 좋겠다. 국민의 과도한 관심이 의도치 않게 쿠팡을 도와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분노 대신 '무관심'이 필요하다. Q : -론스타는 결국 한국 정부가 승소했는데. A : 언론과 정치권 압박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랐다는 걸 인정받았기에 가능했다. 정부는 원래 정책 재량권이 있다. (매각 승인 등) 인허가 과정에서 형사 절차 진행이나 법 위반이 있어도 무조건 해줘야 하나, 아니면 절차를 다 거친 다음에 해도 되나. 다들 품고 있던 질문이라 전 세계 정부가 론스타 판정을 눈여겨보는 와중에 '한국 정부가 론스타의 주가 조작 사건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 건 잘못이 아니다'라고 인정받았다. 정부의 금융 규제 재량권 테스트를 한국 정부가 견뎌낸 거다. 한국 시스템의 승리였다. Q : -한국은 여전히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는 나라인가. A : 맞다. 설령 정부가 잘못해도 법원이 바로잡는다. 세무조사로 론스타에 부과한 법인세 가운데 1700억원은 한국 법원이 취소 판결로 해결해줬다. 여기서 우리가 꼭 생각할 게 있다. 과거 론스타처럼 지금 쿠팡도 마찬가지인데, 기업에 미운털 박히면 정부와 국회가 세무조사나 국정조사 등 전방위적 압력을 행사한다. 한국 기업에는 당연한데, 외국 기업은 이게 너무 가혹하고 국제적 기준에 안 맞는다고 문제 삼는다. 외국 기업이 문제 제기하는 일은 국내 기업에도 하면 안 된다. 우리가 그동안 국내 기업에만 너무 과했던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배려심(형평성)' 얘기다. Q : -국제중재에선 그 나라에서 일반적이라면 부당한 압박도 괜찮나. A : 대체로는 그렇다. 투자자 자국 기준과 다르다는 정도로는 타 정부 상대로 승소 못 한다. 한국 정부가 쿠팡에 하는 압박을 비슷한 사례에 놓인 한국 기업에 똑같이 해왔다면 외국 투자자를 차별했다고 볼 근거가 없다. Q : -차별만 아니면 괜찮나. A : 그건 아니다. 공정과 형평(Fair & Equitable) 원칙에 맞아야 한다. 형평은 비교다. "국내 기업과 똑같이 대했으니 차별은 아니다"가 형평인데,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절차적 정당성 등 공정해야 한다. ※쿠팡 측은 지난달 22일 ISDS에 중재의향서를 제출하는 동시에 미 무역대표부(USTR)에도 통상법 301조에 근거해 통상 보호 조처를 요청했다. 청원서엔 '한국 정부가 쿠팡을 상대로 범정부적 공격을 전개하고 있고, 과도한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 등 최고 권력 차원에서 시작됐다'고 썼다. 또 공정위가 반독점 아닌 데이터 유출로 조사 시작한 걸 예로 들었다. Q : -공정위 등 10여개 부처의 전방위적 쿠팡 조사는 공정을 어긴 걸까. A : 공정위는 개인정보 유출이든 뭐든, 계기가 있어 어떤 기업이 관심 대상이 됐다면 공정거래법 관련 사안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조사할 수 있다. 영업정지도 요건만 맞는다면 문제가 안 된다. 그 과정에서 위법 행위를 하거나 잘못하지 않았는데 처벌하면 문제다. Q : -쿠팡 측은 중재의향서에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총리 발언을 문제 삼았다.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나. A : 불리하다. 권력자나 정치인이 국회 청문회나 대정부질문에서 한 사실과 다른 단정적 표현이나 언론 보도 전부 상대편에 유리한 증거가 된다. '말조심'해야 한다. 비단 국제중재가 아니어도 경제의 상당 부분을 글로벌 시장에 의존하는 입장에서 괜한 싸움의 빌미를 줘선 안 된다. 이재명 정부 생중계 국무회의 발언이 언제 불리한 증거로 쓰일지 모를 일이다. 물론 대통령이나 고위 관료 발언이 곧 정부 행위는 아니다. (이 대통령의 값비싼 생리대 문제 제기 후 세무조사 등 정부 부처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처럼) 실제로 구체적 정부 조치로 이어졌다 해도 그 과정에서 절차를 다 지키는 등 위법한 권력 남용이 없거나, 심지어 정부의 위법이 있어도 행정소송 등 사법적 구제 절차가 있다면 큰 문제는 안 된다. 투자자 보호가 남의 나라 내정 간섭이나 주권 침해하라는 뜻은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할 때 중재 도입하면 나라 말아먹는다고 반발했지만, 남용을 막는 조항이 상당 부분 들어가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약한) 처벌은 효과 없다. '무슨 팡'인가 하는 곳도 규정 어기지 않았나. 처벌이 두렵지 않은 것, 망할 게 두려울 정도로 처벌 세게 해야 한다"고 했다. 김 총리는 쿠팡에 대한 직접 언급 없이 "마피아 소탕할 때 같은 각오"를 얘기했다. Q : -그렇다면 말조심할 이유는 뭔가. A : 상대편 주장에 상당한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정부는 절차를 내세우지만 실은 외국 투자자를 차별하려는 의도가 뒤에 숨어있다"고 중재판정부를 설득할 근거를 우리가 제공하는 셈이 된다. 국회의 과격한 주장이나 쿠팡 바로잡기 TF 같은 활동 뒤에 실제 입법이 이어지면 명백한 정부 행위라 더 불리하다. ※김범석 의장이 불출석한 지난해 12월 과방위 청문회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대한민국과 공존을 거부하는 반사회적 기업"(조인철)이라거나 "특별법 제정 통해 매출 10% 과징금 부과해야 한다"(이훈기)는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민주당은 1월 27일 출범 예정이었던 쿠팡 바로잡기 TF를 사실상 무기한 연기했다. 쿠팡이 한미 관세 협상 악재로 등장하고, 미 하원이 오는 23일 법사위 청문회에 해럴드 로저스 한국 쿠팡 대표를 소환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는 데 따른 조치다. Q : -쿠팡 측이 중재를 제기할까. 한다면 유리할까. A : 뭐든 쿠팡 측이 시늉만 한다는 식으로 가볍게 생각해선 절대 안 된다. 동시에 지레 겁먹고 정부가 원래 해야 할 조사를 멈춰서도 안 된다. 공정거래법이든 노동법이든 잘못한 게 있다면 바로잡는 게 정도다. 정식 제기 전 90일 동안 충분한 협상을 통해 오해를 푸는 등 담담하게 대응해야 한다. Q : -한국이 유독 ISDS 집중 타깃이 되는 이유는. A : 만만하고, 정보가 많다. 미·중이 한국 기업을 명백하게 차별해도 더 큰 후폭풍이 두려워 우리는 제기 못 한다. 우리 정부는 누가 중재 건다고 보복 안 한다. 또 우리 기업은 다른 나라 정부가 뭘 했는지 알 수 없다. 우린 정권 바뀔 때마다 이전 정부 정책 결정이 전부 외국 기업에 다 밝혀진다. 이런 나라가 없다. 안혜리([email protected])

2026.02.10.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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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암살 공포에 잠 못든다…22년 전 '용천역 폭발' 미스터리 [장석광의 세계는 첩보 전쟁]

지난달 3일 북한 TV에서 이른바 ‘최고 존엄’의 암살을 다룬 영화가 방영됐다. ‘대결의 낮과 밤’은 반체제 세력이 외국 정보기관과 공모해 김정일의 암살을 기도하는 과정과 실패를 그렸다. 이야기는 20년 후인 2024년 김정은을 노린 또 다른 침투 시도를 예고하면서 막을 내린다. 영화는 국제 화물열차와 김정일 동선이 겹치는 설정, 질산 비료를 이용해 폭발을 ‘사고’로 위장하는 플롯, 실존 지명을 살짝 비켜 간 가상의 ‘용암역’ 등 22년 전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소환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2004년 4월 22일 오후 2시 평안북도 용천역에서 대규모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154명이 사망하고 1300여 명이 부상했다. 반체제 세력, 외부와 공모 서사 2004년 용천역 폭발 상기시켜 북, 부인에도 모사드 개입설 솔솔 최근 상영 후 김정은 경호 강화 북한 “용천역 폭발은 단순 열차 사고” 폭발의 원인을 둘러싸고 단순 열차 사고설, 김정일 암살 기도설, 모사드 공작설이 제기됐다. 단순 사고설은 북한의 공식 입장이다. 북한 중앙통신은 질산암모늄 비료를 실은 화차와 유조차를 옮기던 중 부주의로 전기선에 접촉해 폭발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설명은 기술적 경위 제시에 그쳐 논란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다. 김정일 암살 기도설은 체제 실패의 책임을 외부의 적대적 음모로 전환하고 내부 통제를 정당화하는 서사로 활용되면서 현재까지도 소멸하지 않는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사실관계만 놓고 보면 김정일이 이미 용천역을 통과한 뒤 8~9시간이 경과한 시점에 폭발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낮다는 평가다. 정보 세계의 관심을 끈 것이 모사드 공작설이다. 사건 전후에 포착된 몇 가지 이례적 정황에서 출발한 가설이다. 사고 당시 열차에 탑승해 있던 시리아 과학연구센터 소속 연구원 12명이 전원 사망했다. 모사드가 시리아군 장교와 과학자들의 평양행 동선을 추적하고 있었다는 분석도 제기됐는데, 이는 『기드온의 스파이』의 저자 고든 토머스의 추정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 직후 북한 당국이 휴대전화 서비스를 전면 중단하고 약 1만 대의 휴대전화를 회수한 점도 의문을 키웠다. 폭발 현장 인근에서 테이프로 감긴 휴대전화기가 발견됐다는 주장까지 더해지면서 북한이 휴대전화를 기폭장치로 사용한 가능성을 의심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반론도 존재한다. 모사드의 개입을 입증할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는 현재까지 공개된 바 없다. 제기된 정황들 역시 대부분 간접적이며 추론에 기대고 있다. 그런데도 왜 이런 서사가 되풀이될까. 정보 세계선 모사드 공작설 계속 나와 ‘대결의 낮과 밤’은 반체제 세력과 암살을 공모하는 외국 정보기관을 등장시킨다. 해외 공작, 기업 위장, 표적 암살이라는 요소는 모사드의 이미지와 겹친다. 영화는 용천역 폭발사고를 단순한 사고나 내부 음모의 차원을 넘어 모사드가 개입한 ‘최고 존엄 암살 기도’의 서사로 확장하고 있다. 북한은 왜 지금 이 같은 연출을 선택했을까? 북한이 영화를 통해 호출한 것은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라 그 이후 축적돼 온 위협 인식의 역사다. 용천역 폭발사고를 시리아 과학자를 제거하기 위한 모사드의 공작으로 해석한 순간부터 모사드는 단순한 외국 정보기관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언제든 지도부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실체적 위협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용천은 시작점이었다. 이후 중동에서 반복된 이스라엘의 표적 제거 작전들은 그 인식을 현실로 고정하는 계기가 됐다. 2007년 시리아 핵시설 공습, 북한과 연계된 군사협력 책임자 암살, 미사일 과학자 제거로 이어진 일련의 작전은 모사드의 실행력을 북한에 각인시켰다. 그 인식은 최근에도 재확인됐다. 2024년 레바논과 시리아 전역에서 헤즈볼라가 사용하던 수천 개의 호출기와 무전기가 동시에 폭발한 사건은 용천역 폭발을 연상시켰다. 지난해 7월 김정은은 모사드의 사례를 직접 언급하며 지휘부 제거를 상정한 대응 전략 강화를 지시했다. 공식적으로는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한 군사 조치였지만, 이면에는 ‘자신이 다음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개인적 불안이 짙게 배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과잉 연출, 오히려 공포 드러내 이 같은 인식은 영화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영화의 표면적 메시지는 목숨 바쳐 김정은을 사수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 상영 이후 김정은의 경호 수위가 한층 강화됐다는 정황도 전해진다. 그러나 과잉된 연출은 역설적으로 김정은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그만큼 커졌음을 반영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여기까지의 논의는 용천역 폭발사고를 모사드 공작으로 가정한 정보 전문가의 상상에 기반을 둔다. 여기에 ‘어둠의 제왕’으로 불리던 모사드의 다간 국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을 만큼 현장에서 발군이었던 후배 A의 기억을 겹쳐본다. 모사드의 해외 공작은 현장 활동팀과 지원팀으로 분리된다. 현장팀은 폐쇄적인 고위험 국가에서는 요원의 직접 침투를 최소화하고 현지 불만 세력이나 소수민족, 국경 지대 협력자 등 현지인을 활용한다. 지원팀은 인접국에 머물면서 통신 연락, 현지 협력자와의 연결, 위기 대응을 맡는다. 모사드 해외 공작의 원칙이다. 2004년 4월 모사드 공작팀이 한국에 입국했다. 명목은 산업연수생으로 체류 중인 외국인 테러 용의자 동향 확인. 지원에 나선 A는 곧 이상함을 느꼈다. 매사에 철저하던 그들이 회의 도중 수시로 자리를 비웠다. 테러 용의자와 무관한 유대인 자치주와 수시로 위성 통신을 했다. 유대인 자치주는 북한 벌목공들이 많이 나가 있는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 사이의 지역이다. 모사드 팀은 이후 속초항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하며 “현지에서 활동 중인 동료와 합류할 예정이다”라고 했다. 시점을 맞춰보니 용천역 사고 일주일 전 입국해 사고 사흘 뒤 출국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김정은의 영화가 당시 품었던 의문을 소환한다.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2026.02.10.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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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의 문화노트] 37만 명 홀린 금기숙의 ‘패션아트’

“이토록 투명하게 눈부신 드레스라니!” 관람객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이 작품 앞에서 탄성을 지릅니다. 밤하늘처럼 어두운 전시장 가운데 하얀 매화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린 듯한 풍경입니다. 철사에 투명한 구슬을 꿰고 엮어 만든 이 드레스의 제목은 ‘백매(白梅)’. ‘한국 패션아트의 선구자’ 금기숙(73)의 솜씨로 만들어진 예술 작품입니다. 서울 안국역 인근의 서울공예박물관(관장 김수정)은 요즘 ‘금기숙 기증 특별전’(3월 22일까지, 월요일 휴관, 무료)을 보러 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23일 개막한 이래 지난 10일까지 37만 명이 전시를 보았고, 이는 2021년 11월 말 박물관 개관 이래 역대 최다 방문 기록입니다. 작가 이름도 낯설고 ‘패션아트’라는 장르는 더 생소하지만, 사람들은 ‘금기숙의 마법’에 홀린 듯이 전시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금기숙은 종이와 직물, 그리고 철사와 구슬, 스팽글, 리본, 단추에 이르는 다양한 재료로 옷을 만드는데, 이 옷들 하나하나가 궁극적으론 섬세하고 입체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공간 예술이 됩니다. 작가가 1995년 고려청자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진사 연화 청자 드레스’에선 동·서양의 미, 재료, 시간의 경계를 넘고자 한 작가의 야심과 실험 정신이 엿보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이 전시에 열광하는 것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의 작업에 흥미롭고 통쾌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재료의 반전입니다. 어쩌다 그는 철사로 엮어 만드는 옷을 생각하게 됐을까요. 충북 옥천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 감나무 아래 떨어진 감꽃을 모아 명주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곤 했다고 합니다. 예술은 이렇듯 자유로운 감각과 놀이, 기억과 상상에서 시작된다는 평범한 진실을 그가 다시 일깨웁니다. 둘째, 장르의 반전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패션과 공예,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가 그의 작품에선 아무런 의미 없습니다. ‘이게 뭐지?’ ‘저것도 디자인인가? 예술인가?’ 등 그가 남들이 던지는 말에 쉽게 흔들렸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겠지요. 전시를 기획한 김성미 학예연구사의 말마따나 “무언가를 엮고 있는 행위 자체에 대한 끊임없는 끌림”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었습니다. 작가는 지난해 자신의 주요 작품 55건 총 56점을 서울공예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덕분에 그 어느 장르에도 속하지 못해 기록되지 못하고 묻힐 뻔했던 작업이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은주([email protected])

2026.02.10.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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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도허티의 마켓 나우] BESS, 전력 시장의 새 강자

재생에너지의 치명적 약점은 변동성이다. 태양은 밤에 뜨지 않고, 바람은 항상 불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신재생에너지는 저렴한 비용과 빠른 설치 속도를 앞세워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이 약점을 해결하지 못하면 완전한 에너지 전환은 불가능하다. 구조 변화를 주시하는 투자자에게 해법은 ‘배터리 에너지 저장 시스템(BESS)’이다. 시장조사 기관들은 대부분 2030년 BESS 시장 규모를 1000억~1500억 달러 수준으로 예상한다. 완전한 에너지 전환을 이루려면 전력 변동성을 줄이고 안정성을 확보하는 저장 기술에 대규모 투자가 필수다. EU 같은 선진 시장에서 BESS 설치 용량은 2021~2023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했고, 2024년에도 15% 성장했다. 2025년 이후에는 신규 신재생 설비 증가와 경제성 개선에 힘입어 성장세가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태양광·풍력 세액공제가 단계적으로 축소되지만, BESS는 2033년까지 세제 혜택을 유지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정책 환경을 확보했다. BESS는 AI와 디지털 자산 확산이 촉발한 신규 전력 수요를 충족할 유력한 대안으로도 떠오르고 있다. 데이터센터 건설 붐은 미국과 EU의 전력 수요를 약 15년 만에 정체에서 성장 국면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요구한다.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이를 충당하기 어렵다. 배터리는 신재생에너지와 결합해 낮은 발전 단가와 빠른 구축 속도를 동시에 제공하며, 새로운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는 핵심 요소로 작동한다. BESS와 신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 가격 변동성을 상쇄하는 전략적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천연가스 가격은 기후, 인프라 제약, 지정학적 사건 등 통제 불가능한 요인에 따라 급변해 왔다. 반면 신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를 핵심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BESS를 활용하면 신재생에너지 공급 과잉 시점을 수요가 높은 시점으로 이동시켜 화석연료 발전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도매 전력 가격에 미치는 원자재 가격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BESS 투자는 장기 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추구하는 방식부터, 현물시장 거래와 전력망 보조 서비스 참여로 초과 수익을 노리는 전략까지 폭넓은 선택지가 있다. 후자는 수익 잠재력이 크지만, 위험도 높다. 최소 수익을 보장하는 계약 같은 보호 장치, 보수적인 자금 조달 구조, 지속가능성과 순환경제 요소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손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 BESS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라면 시장 구조와 운용 방식에 따라 위험과 수익의 스펙트럼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닐 도허티 IFM인베스터스 인프라부문 전무이사

2026.02.10.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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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공동 건축의 기적, 파주 출판도시

1988년 출판인 7인이 영세하고 분산된 출판계의 발전을 위해 출판문화산업단지를 구상했다. 출판사들을 모아 박물관 같은 문화도시를 만들자는 이상적인 비전이었다. 360여 업체가 공동 기금을 마련하고 정부에 청원해 1997년 파주시 문발동 일대 140만㎡의 땅을 분양받았다. 당대의 건축가 민현식·승효상·김영준 등을 코디네이터로 초청해 도시계획 및 건축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도시 환경의 공공성 실현을 위해 건물 규모를 통일적으로 조정하고 지속 가능한 재료와 조화로운 색채 등 지침을 제시했다. 전체를 몇 블록으로 나누어 블록별로 암석형·가젤형·책꽂이형·독립형 등 개별 건물도 유형에 따르기를 권장했다. 건물 사이에 ‘바람길’이라는 공지를 확보하는 등 공동성도 추구했다. 건축과 도시가 조화되고 일체화하기 위한 고도의 도시설계 방법이었다. 건축가 선정부터 디자인의 개념과 방향을 전문가 집단에 위임하는 ‘위대한 계약’을 맺었다. 도시의 철학과 건축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상징적 선언이었다. 실력 있는 60여 건축가로 풀을 구성했고 이들은 주어진 지침 속에서 최선을 다해 150여 창의적인 건물을 설계했다. 중심시설인 아시아출판정보센터를 비롯해 한길사·웅진씽크빅·사계절 등 빼어난 작품 건물이 즐비해 현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 전시장이 되었다. 외국 대가들도 참여해 열화당·미메시스 사옥 등 국제적 위상도 더했다. 개성 넘치는 건물들이 조화되고 블록별로 다양하며 공공성이 우선한 도시가 가능하다는 기적적인 사례다. 출판계와 건축계의 역량을 총동원한 공동체적 노력의 결과였다. 출판 기획부터 유통까지 일관한 지식산업의 본향이 되었고, 세계에도 드문 건축-도시로 국제적인 연구 대상이 되었다. 주거와 상업 기능이 약한 태생적인 자생성의 문제도 있다. 그래도 출판도시에 용기를 얻어 2단계 출판-영상도시가 진행 중이고, 이미 조성된 헤이리 예술마을은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전 총장

2026.02.10.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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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의 마음 읽기] 고향으로 가는 길

설날이 오기를 학처럼 길게 목을 빼고 기다리던 옛날이 있었다. 도시에 나가 직장생활을 하는 형과 누나가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설 전날이나 당일에 오기도 했는데 내 관심사는 그들이 사 오는 선물에 있었다. 70년대엔 각종 과자가 들어 있는 ‘종합선물세트’가 유행이었다. 공고를 졸업한 형은 안양의 공장에서 근무했고 누나는 강릉에서 버스 안내양으로 일했다. 산골 마을에 완행버스가 도착할 시간이면 눈보라가 일렁거리는 정류장으로 달려나갔다. 손과 발이 시려 오는 걸 참으며 신작로의 서쪽과 동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일이 바쁜 누나는 설날에 오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형까지 함께 못 오는 해는 서럽기 그지없었다. 늙으신 엄마가 계시는 고향 간밤에 이불 투정하는 꿈 꿔 궁금해지는 엄마 주름진 얼굴 대관령 산골짜기 외딴 우리 집엔 아직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전화, 텔레비전도 없었다. 신작로 옆 전기가 들어오는 건넛마을이 부러웠다. 엄마는 등잔불 아래서 상 위에 쏟아놓은 콩을 골랐고 아버지는 꿩을 잡기 위해 가느다란 송곳으로 콩에 구멍을 뚫었다. 나와 작은누나는 입을 닷 발이나 내민 채 방바닥에 엎드려 만화책을 넘겼다. 형도 누나도 오지 않은 어느 섣달그믐날 밤이었다. 창호지를 바른 문밖으로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등잔불이 흔들렸다. 나는 무슨 소리라도 들리면 벌떡 일어나 눈꼽재기창에 얼굴을 대고 집으로 들어오는 눈길을 살폈다. 그러다 결국 포기하고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는 엄마의 말도 무시한 채 솜이불 속으로 들어가 형과 누나를 원망하다가 잠들었다. 설날 아침엔 큰댁으로 차례를 지내러 갔다. 큰댁엔 코흘리개 사촌들이 북적거리며 빨리 차례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차례상 위에는 평소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이 즐비했다. 음식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아침을 먹은 뒤의 세배였다. 친척 어른들로부터 받을 세뱃돈에 온 신경이 집중돼 있었다. 올해는 과연 얼마를 받을 것인가. 세뱃돈을 모아 사고 싶었던 걸 꼭 사야만 하는데.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이북 출신이라 남쪽에 친척이 없는 고모부 둘과 고모 둘, 그리고 아버지와 엄마에게 세배했다. 기대는 컸는데 실적은 저조했다. 오백 원짜리 지폐가 나온 건 큰아버지의 지갑뿐이었다. 사촌들의 인원수가 많은 것도 문제 중의 문제였다. 인근의 작은할아버지댁으로 몰려갔으나 거기도 백 원짜리 지폐가 전부였다. 다른 친척 집에서는 세뱃돈 대신 군것질거리만 내놓았다. 나는 우울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마을의 친한 친구들 집에 세배를 가볼까도 생각했는데 친척들에게서도 나오지 않은 세뱃돈을 거기서 받을 확률은 희박했다. 우리 코흘리개 사촌들이 세뱃돈에서 점점 멀어지면서부터 친척 어른들도 하나둘 세상을 뜨기 시작했다. 설날 아침 다 함께 큰댁에 모여 더 이상 차례를 지내지도 않게 되었다. 가끔 부모님께 세배를 오던 사촌들도 살 곳을 찾아 고향을 떠났다. 서로 연락하는 일도 소원해졌다. 친척이란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실감하는 세대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이젠 설날에 가족들끼리만 고향 집에 모인다. 게다가 누나들은 시댁으로 찾아가니 형제들마저 반토막이 된 명절을 보낸다. 다행인 점은 그 세월 동안 조카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조카들의 자식들에게 나도 세뱃돈을 주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으니 이걸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삼촌이었던 호칭이 작은아버지에서 작은할아버지로 바뀌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옛날의 어른들도 나 같은 생각을 하며 옹졸하게 세뱃돈을 깎았을까. 설날이 돌아오면 늙으신 엄마가 계시는 고향으로 간다. 간밤 꿈엔 겨울밤 내가 덮고 있는 이불을 끌어가 덮는 엄마에게 고래고래 화를 냈다. 장롱 속에 이불이 많은데 왜 아끼는 거냐고. 새 이불은 언제 덮을 거냐고. 꿈속의 엄마는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대체 왜 이 모양인가. 꿈에서라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그런데 그 꿈은 내 마음의 무엇이 뒤틀려 있었기에 찾아온 것일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기저기서 넘어진 내 마음의 울화를 엄마에게 쏟아부은 것은 아닐까. 이번에 고향에 가면 점점 작아지는 엄마의 주름 가득한 얼굴을 오래 들여다봐야겠다. 김도연 소설가

2026.02.10.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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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의 테아트룸 문디] 줄을 타면 신이 났지

최근에 공연 집단 컨컨의 ‘곡예사 훈련’이라는 공연을 인상적으로 보았다. 두산아트센터에서 진행하는 랩(Lab) 시리즈의 일환이다. 랩 시리즈는 젊은 공연 예술가들에게 실험적인 워크숍을 발표할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17년째 진행하고 있다. 제목 그대로 ‘곡예사 훈련’은 서커스를 하는 세 광대가 출연해 곡예를 직접 연마하는 과정을 무대 위에서 실감 나게 보여준다. 일종의 토크쇼처럼 서커스를 연구하는 젊은 학자(손옥주)가 이야기의 물꼬를 트면, 출연자들이 그들의 곡예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움직임을 보여주는 식이다. 처음엔 그저 그런 공연이려니 했다. 그런데 그들의 몸이 움직이자 그리고 그 몸에 그들의 인생을 덧입히자 공연의 결이 달라졌다. 교육받을만한 변변한 기관이나 제도는 잠시 생겼다가 사라지고, 이후론 혼자 기예를 익혀야 하는 한국의 서커스 광대들. 스페인의 서커스 학교에 입학하지만 코로나가 터져 돌아오고, 연봉이 50만원인데 SNS로 접한 곡예를 배우고 싶어 80만원짜리 휠(wheel)을 제작하고, 줄 위에서 버틸 힘을 기르려고 10㎏의 쇠를 배낭 속에 넣고 걸어 다니는 이야기를 그들은 웃으면서 했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공포와 싸우며 익힌 기술들, 중력을 벗어난 아름다운 기술들을 보여주었다. 어린 시절 『피터 팬』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피터 팬이 죽어갈 때 팅커벨은 “여러분의 박수가 피터 팬을 살릴 수 있다”고 독자들에게 외쳤다. 같은 마음이었을까. 공연이 끝났을 때 관객들은 아프지만 위트 있고 고독하지만 꾸준한 그들에게 진심을 다해 오랫동안 박수를 쳤다. 그들의 이름은 김준봉·권해원·박상현이다. 국가는 문화 강국을 외치며 문화 관련 예산을 증액한다는데, 화려한 K컬처의 이면은 이렇게 쓸쓸하다. 그 쓸쓸함에 굴하지 않고 오늘도 공포와 싸우며 중력을 거부하는 그들이야말로 K컬처다. 김명화 극작가·연출가

2026.02.10.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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