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실과 조국혁신당까지 “내란재판부, 위헌 우려” ━ 강성 지지층만 의식한 팬덤정치, 자중지란 초래할 뿐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 왜곡죄 신설에 대해 범여권에서조차 우려와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3일 국회 법사위에서 두 법안을 의결한 데 이어 연내 처리를 목표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또 내란·외환 사건은 위헌 심판이 제청돼도 재판을 진행한다는 헌재법 개정안까지 발의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은 어제(7일) “내란전담재판부는 위헌 소지를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추진하자는 공감대가 당정 간에 이뤄져 있다”고 말했다. 조국혁신당도 6일 조국 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는) 위헌 제청과 피고인 석방이란 사태 발생 가능성이 엄존하니 위헌 소지를 없애야 한다”고 언급했다. 조국혁신당의 서왕진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추진 중인 필리버스터 제한법도 소수 의견 보호 정신을 훼손해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뿐이 아니다. 민주당 지도부는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투표 가치를 동등하게 반영하는 ‘1인 1표제’ 당헌 개정안을 밀어붙였다가 중앙위원회(5일)에서 부결돼 체면을 구겼다. 정청래 대표는 ‘당원 주권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영남 등 취약 지역이 과소 대표된다는 지적과 함께 권리당원 지지층이 두터운 정 대표의 연임 목적이 아니냐는 비판에 휩싸였다. 위헌·반민주주의 논란에도 아랑곳없이 ‘사법 개혁’ 법안과 당헌 개정안을 밀어붙인 민주당의 리더십에 대통령실과 우당(友黨), 당심(黨心)이 잇따라 제동을 건 셈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압승한 정 대표가 넉 달 만에 불신임에 가까운 옐로카드를 받은 근본 원인은 민심 대신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폭주 정치’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달 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 워크숍에서 “딴지일보의 흐름이 민심을 보는 하나의 척도”라면서 “이틀에 한 번꼴로 글을 쓴다”고 했다. 재임 중 고성국TV 등 강성 보수 유튜브만 시청하고 댓글을 올리다 민심과 유리된 끝에 스스로 몰락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례를 정 대표는 타산지석으로 삼길 바란다. 사정이 이런데도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은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국민 요구를 받들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기자들이 “조국혁신당도 내란전담재판부의 위헌성을 비판했다”고 지적하자 “그런 걱정을 불식하는 방향으로 검토·보완할 것”이란 말로 넘어갔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여당이 팬덤 확장을 위해 강성 지지층에 부화뇌동하며 독주로 일관하면 같은 진영 내부에서조차 반발을 초래해 자중지란에 휩싸여 온 게 정치사의 철칙이다. 민주당은 5200만 국민의 삶을 책임진 집권당이다. 강성 지지층 대신 민심과 소통하며 국익과 민생을 살려내는 소임을 다하길 바란다.
2025.12.07. 8:30
━ 미 북한 언급 없고, 중 비핵화 대신 정치적 해결 ━ 국제사회의 북핵 용인 막기 위한 총력전 나서야 5일(현지시간) 공개된 미국의 외교안보 종합전략서(National Security Strategy)에 북한 문제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백악관이 주도해 만드는 NSS는 미국의 안보 목표와 우선순위, 전략의 방향성을 담은 안보 지침서로, 여기서 북한 문제가 빠진 건 대단히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북핵 문제가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역대 미국 행정부는 1990년대 초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줄곧 비핵화를 정책 목표의 하나로 제시해 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NSS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가시적인 진전을 만들기 위해 확장 억제 정책을 추구한다”고 담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NSS도 북한 문제를 16차례 거론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했다. 트럼프 2기 출범 이후에도 이런 기조엔 변화가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 점에서 33쪽 분량의 NSS 어디에서도 ‘북한’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물론 아직은 이것이 미국의 북한 비핵화에 대한 정책 전환을 의미하는지 예단할 순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기 위한 분위기 조성 차원일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안이하게 볼 일은 아니다. 정부는 미국의 의도를 면밀히 파악하고, 견고한 한·미 동맹의 기조하에서 비핵화 원칙을 견지해 나가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국이 지난달 27일 19년 만에 발간한 군사 백서에서도 기존의 ‘한반도 비(무)핵화’란 표현이 사라졌다. 대신 중국은 ‘정치적 해결’이란 말을 등장시켰다. ‘한반도 비핵화’란 표현은 북한 핵 개발이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등장한 이래 중국이 공식 문서나 회담 석상에서 단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는 한반도 정책의 근간이었다. 모든 정부 문서에서 통일된 표현을 사용하는 중국의 군사 백서에서 비핵화가 사라진 것을 예사롭게 볼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이것이 곧바로 핵 보유 인정을 의미하는 건 아니겠지만, 정부는 표현이 달라진 배경을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비슷한 시기에 발간된 미·중 양국의 안보정책서에서 비핵화가 사라진 건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가장 원하던 바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위성락 대통령실 안보실장은 어제 “한·미 동맹 르네상스, 글로벌 실용외교, 남북 군사 긴장 완화”를 이재명 정부의 6개월 성과로 꼽았다. 북한과 대화를 복원하고 교류협력을 확대해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고 핵 문제가 뒷전이 돼선 안 된다. 국제사회가 북핵을 용인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 자화자찬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2025.12.07. 8:28
처음부터 그들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한때 경제 커뮤니티에서 ‘창드래곤’으로 불리며 추앙받던 인물이다. 국내외 경제 상황에 대한 이 총재의 브리핑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열광적으로 공유되곤 했었다. 풍부한 경험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그의 발언들은 답답한 관료적 설명들과 대조를 이루며 화제가 됐다. 한은 총재와 서학 개미들의 갈등 고환율 요인으로 해외투자 지목 정책엘리트와 대중의 괴리감 커 규제보다 존중이 공존의 디딤돌 좋았던 관계가 이상 기류에 접어든 것은 금년 봄 이 총재의 대학입시 제도 발언 이후였다. 그러던 중 지난달 이 총재가 환율 불안의 요인으로 청년 서학 개미를 지목하면서 추앙은 격렬한 비판으로 바뀌었다. 최근 역대급 수출 실적에도 불구하고 원 달러 환율이 1500원에 육박하는 불안한 모습이 지속되자 이런저런 진단과 해법들이 논의되고 있었다. 이즈음에 이 총재가 고환율 현상의 배경으로 젊은 층의 해외투자 쏠림 현상을 거론하면서 관계는 파탄에 이르렀다. 정부의 느슨한 재정 운영, 수출 기업들의 해외 투자 등은 제쳐두고 해외 주식 투자자에게 책임을 돌리느냐는 비판이 온라인을 뒤덮게 되었다. 원화 약세에 작용하는 수많은 대내외 변수들과 직간접 요인들을 따지는 것은 경제 전문가들의 몫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창용 총재와 서학 개미의 충돌이 우리 사회의 중요 갈등, 즉 ‘애니웨어(anywhere) 엘리트’와 ‘섬웨어(somewhere) 대중’의 갈등을 상징한다는 점이다. 화려한 경력, 인맥, 전문성을 바탕으로 서울대, 하버드대, IMF(국제통화기금)를 누비다가 한국은행 총재로 취임한 이 총재는 전형적인 ‘애니웨어 엘리트’이다. 뛰어난 전문성과 네트워크로 지구촌 어디서나 자유로이 둥지를 틀 수 있는(anywhere) 글로벌 엘리트이다. 반면에 대부분의 서학 개미들은 전형적인 ‘섬웨어 대중’이다. 해외 유학, 해외 취업을 꿈꾸기 어려운 평범한 가정 출신들이 국내에서 모은 돈으로 자립의 꿈을 담아 미국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 서학 개미 현상이다. 달리 말해, 똑똑하지만 현실에는 둔감한 엘리트와 어떻게든 현실에서 생존하려는 평범한 이들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거대한 절벽이 있다(데이빗 굿하트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필자가 보기에 청년들이 미국 주식 시장으로 몰려가는 데에는 몇 가지 중대한 흐름이 자리 잡고 있다. 첫째, 노동의 위기와 벌어지는 노동-자산의 격차. 둘째, 미래 한국에 대한 희망의 빈곤. 셋째, 미국 자본시장의 합리성과 혁신 경제에 대한 동경. 첫째, 노동의 위기와 자산 격차의 문제. 토마 피케티를 필두로 해서 숱한 학자들이 자본 수익률(r)이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률(g)을 압도한다는(r>g) 연구 결과를 발표해 왔지만 요즘 청년들에게 이는 이론이 아닌 현실이다. 적절한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 월급으로 대표 자산인 아파트값을 따라가기는 지극히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스무살 학부생들도 취업 공부, 학교 공부하는 틈틈이 미국 주식투자에 매달린다. 결국 아르바이트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서 사들이는 엔비디아 주식 몇 주에는 금융 자본주의에서 생존하려는 청년들의 몸부림이 담겨 있다. 둘째, 서학개미 청년들이 미국 주식을 통해 달러 자산을 조금씩이나마 모아보려는 데에는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비관이 담겨 있다. 성장률은 1퍼센트 대로 주저앉았는데 인구 구조는 급속히 초고령화하고 있다. 갈수록 경제활동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줄어들고 사회가 부양해야 하는 노인은 늘어나는 미래는 확정적이다. 애니웨어 엘리트와 그 자녀들은 유학이나 이민을 갈 수 있지만, 섬웨어 청년들에게는 마땅한 탈출구가 없다. 이들이 어두운 한국의 미래를 헷지(위험 회피)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미국 주식, 즉 달러 자산을 늘려가는 것이다. 셋째, 청년들은 젊은 사람답게 새로운 변화와 혁신에 더 민감하고 열광한다. 청년 서학개미들이 미국의 테슬라(자율주행, 우주개발), 양자 컴퓨팅 기업들, 생명공학 기업들, 금융혁신 기업들에 몰두하는 이유는 한편으론 현란한 주가 변동성에 몰입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혁신에 동참해보려는 욕구의 발현이기도 하다. 정리하자면, 청년 서학 개미들에게 우려스러운 바가 없지는 않다. 투자보다 투기에 가까운 행태, 과도한 쏠림, 리스크에 대한 통제의 부족 등등. 하지만 현상의 본질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은 한국 사회에 갇혀 있는 청년 섬웨어들의 생존과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 미국 주식 투자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몸은 한국에 매여 있지만, 미래를 향한 실마리를 선진 자본시장에서 찾아보려는 합리적 선택이기도 하다. 필자는 애니웨어 엘리트가 자세를 낮추고 경청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청년들이 하는 선택을 조용히 지켜보라. 동정하지도 가르치려 들지도 말라. 규제하거나 조언하려 하지 말라. 그저 그들의 선택을 인정하라.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명예교수
2025.12.07. 8:26
주말 동안 방송인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뉴스가 많았다. 이런 일 뒤에는 으레 방송 하차 여부가 회자된다. 최종 결정은 본인 혹은 방송국의 몫이다. 그런데 이걸 법으로 만든다면? ‘○○○의 방송 출연 금지에 관한 법률’ 같은 특정인만 겨냥한 법률, 어딘지 어색하다. 보통 법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규범을 규정한다. 세상사 전부를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만 담는 순간 나머지 사람과의 차별이 발생한다. ‘법 앞에 평등’이라는 원칙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여 ‘사법개혁 법안’ 위헌 소지 내포 통과되면 헌재행 유력, 결과에 촉각 합헌 시 특정인 겨냥 법 봇물 우려 그래서 일찍이 게오르크 옐리네크가 설파한 것처럼 법은 도덕의 최소한만 포함한다. 대신 그걸 어기면 처벌되도록 하는 강제력을 갖는다. 특정한 사람과 사건이 그 법 조항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고, 집행하는 것은 사법과 행정을 통해 이뤄진다. 반면에 사법과 행정을 건너뛰고 바로 집행하게 하거나, 특정 사람(사건)만 콕 짚어 적용하는 법을 ‘처분적 법률’이라고 한다. 가급적 이를 피하는 것이 입법자들의 금도다. 그런데 우리 법체계에는 의외로 처분적 법률이 많다. 당장 3대 특검이 그렇다. 법 명칭마저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김건희와~’ ‘순직 해병 수사방해~’ 등 특정인 이름으로 시작한다. 수많은 산업과 지역에 대한 특혜를 주겠다는 ‘지원법’들도 버젓이 운용된다. 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우리 헌법은 처분적 법률 제정을 금하는 명문 규정이 없으므로 특정 규범이 개인 대상 또는 개별 사건 법률에 해당한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바로 위헌은 아니다”는 것이다. 2008년 BBK 특검법 위헌심판 사건에서 내놓은 답이다. 다만 그런 차별이 합리적인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특검법 자체는 합헌이라 판단하면서도 참고인이 소환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 소환이 가능토록 한 ‘동행명령제’ 조항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처분적 법률이라고 해서 무조건 위헌은 아니지만 ‘영장주의’와 같은 기본 원칙을 침해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년에도 헌재의 시간이 이어질 듯하다. 지금 민주당이 쏟아내는 ‘사법개혁’ 입법의 대부분이 위헌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국회 법사위에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 “처분적 법률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듯 처분적 재판부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 선진 사법의 기본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법이 통과되면 곧장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하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그럴 경우 재판은 중단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기한 만료로 풀려나 거리를 활보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민주당은 뒤늦게 내란과 외환 사건에 한해 재판을 중단하지 못하도록 하는 헌재법 개정안을 내놨다. 위헌 법률의 모순을 더 심한 위헌으로 덮는 꼴이다. 법원행정처 폐지는 대법원장 인사권을 침해하는 삼권분립 저해 요소를 담고 있고, 법왜곡죄는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많다. 모두 헌재행이 유력하다. 대통령과 국회·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지명한 재판관으로 구성되는 헌재는 늘 정치 성향을 평가받는다. 지금은 6대3 정도로 진보·중도 성향이 우세하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헌재는 진영 논리보다는 헌법적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곳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지난 4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도 선고일 아침까지 “재판관 성향을 보니 5대3이 확실하다”는 추측이 돌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전원일치 파면이었다. “연륜 있는 법관들은 정치적 성향보다는 법과 원칙에 충실하려는 성향이 더 강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설명이다. 다만 헌재가 유독 집착하는 재판소원 허용을 여당이 미끼로 사용해 유혹하면 각종 ‘사법 개혁’ 법안들의 위헌 판단 결과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있다. 합헌이란 판정이 내려지면 처분적 법률의 입법을 삼가는 둑이 허물어질 수도 있다. 쓰고 보니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러다 ‘최 기자의 글쓰기 금지법’이 나오지나 않을지 말이다. 최현철([email protected])
2025.12.07. 8:24
병 주고 약 주고도 아닌 오락가락. 게다가 고무줄 규제까지.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과징금을 둘러싼 금융감독원의 행보가 그야말로 갈지자다. 지난달 28일 금감원은 홍콩 H지수 ELS 불완전판매를 근거로 은행 5곳에 2조원의 과징금을 사전 통보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최종 부과액은 금감원의 제재심을 통해 결정되고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 확정되지만, 시장이 놀랄 만큼 센 불방망이를 들었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금융 당국의 입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중요하지만 은행 입장에서 홍콩 H지수 ELS와 관련한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 통보는 당혹스러운 측면이 있다. 금융감독 당국의 말을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강해서다. ELS 사태가 본격화하고 피해 보상 논의가 진행되던 지난해 이복현 전 금감원장은 “은행이 소비자 피해 보상 조치를 선제적으로 이행할 경우 향후 검사 및 제재 절차에서 정상 참작하겠다”고 했다. 2023년 홍콩 H지수 급락 여파로 2020년부터 판매한 16조3000억원 규모의 홍콩 H지수 ELS에서 4조6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자 금융감독 당국은 선제적 배상을 종용했고 이에 대한 논란은 이어졌다. 금융사의 불완전판매로 투자자 손실이 발생했다면 당국의 검사와 제재, 법적 절차를 통해 풀어야 할 문제임에도 소비자 보호만 앞세운 당국의 팔 비틀기가 적절하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ELS가 상대적으로 안전한 중금리 상품으로 여겨지면서 홍콩 H지수 ELS 투자로 손실을 본 가입자 10명 중 9명(91.4%)이 과거 ELS 투자 경험이 있었던 만큼 은행에 속았다며 배상을 요구하는 건 과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때문에 당국의 배상 압박이 투자의 자기 책임 원칙을 훼손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우려도 컸다. ELS 과징금 2조원 통보한 금감원 대출 여력 줄며 정책 걸림돌 되자 과징금 조정·자본 규제 완화 시사 그럼에도 ‘정상 참작’을 기대한 은행들은 금융감독 당국이 제시한 분쟁 조정 기준을 바탕으로 사실 조사를 마무리하기 전 선제적 배상에 나섰다. 지난 6월 기준 투자자 96%와 합의에 성공했다. 은행 5곳이 지급한 배상액은 1조3437억원이다. 하지만 정상 참작은 온데간데없고 어마어마한 과징금 청구서만 날아들었으니, 당국을 믿은 죄를 탓할 뿐이었다. 그런데 사흘 뒤인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찬진 금감원장은 “은행의 사후 구제 노력을 충분히 참작해 금융위와 협의를 통해 과징금 한도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징금과 관련한 자본 규제 완화도 시사했다. 과징금 폭탄을 던지겠다던 금감원의 급격한 태세 전환에는 이재명 정부가 적극 추진하는 ‘생산적 금융’이 있다. 정부 방침에 발맞춰 5대 금융지주가 5년간 508조원의 자금을 생산적 영역에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과징금에 발목이 잡힐 판이 되자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과징금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모험자본에 투자하는 생산적 금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과징금이 부과되면 은행의 위험가중자산(RWA)이 높아진다. 위험가중자산은 금융사가 보유한 각 자산에 위험가중치를 곱해 산출한 금액의 총합으로, 위험가중자산이 클수록 은행은 더 많은 자기자본을 유지해야 한다. 대출 여력이 줄고 배당 등 주주환원도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특히 과징금의 위험가중치는 600~700%다. 은행이 과징금을 내면 해당 금액의 6~7배를 운영 리스크로 인식해 최대 10년간 위험가중자산으로 반영해야 한다. 과징금 규모가 2조원으로 확정되면 위험가중자산은 12조~14조원 늘어나게 된다. 금융 당국이 주택담보대출의 위험가중치 하한(15→20%)까지 높여가며 가계대출을 죄고 기업대출 여력을 확대해 생산적 금융에 드라이브를 거는 상황에서 홍콩 H지수 ELS 과징금이 복병으로 떠오르자 부랴부랴 과징금을 줄이고, 규제 완화에 나서는 모양새다. 홍콩 H지수 ELS 과징금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은 금융감독 당국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필요할 때는 정상 참작 같은 당근을 내걸고 유인하다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꿔 채찍을 휘둘러대는 모습에 믿음은 사라졌다. 더 우려스러운 건 일관된 기준 없이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하는 규제다. 플리 바겐(유죄 인정 후 형량 감경 협상)도 아닌데 금융사의 부실 관리를 위한 자본 규제를 생산적 금융이란 정책의 도구로 활용하는 금융감독 당국의 행보는 위험천만이다. 금융 상품의 불완전판매를 응징해야 할 금융감독 당국이 규제를 불완전판매 하는 꼴 아닌가. 하현옥([email protected])
2025.12.07. 8:22
현대 문명의 역사를 좀 크게 본다면 인류는 항상 에너지에 굶주려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라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니다.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그 많은 인구가 옛날에는 없었던 물건들을 만들어 소비하고,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활동을 개발해서 즐기는데, 그것이 다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점점 많은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이 문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 요건이 되고, 기존의 에너지 자원이 고갈되면 다른 종류의 자원을 개발해 왔다. 인간은 나무를 벌목하여 생태계를 파괴하고, 그 다음에는 화석연료를 대량 발굴하여 공해와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풍력이나 태양열 등 친환경적 에너지 자원은 아직 한계가 있고,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력은 큰 사고가 날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방사능을 뿜어내는 부산물들을 처리할 해결책이 없다. 에너지 미래의 꿈 핵융합발전 프랑스에 거대 연구시설 건설 한국도 개발과 건설에 참여해 같이 누릴 국제협력의 결과물 핵융합, 이상적 에너지의 원천 이러한 상황에서 핵융합(nuclear fusion)은 원칙적으로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이상적 에너지의 원천이다. 원료도 풍부하고, 부산물도 무해하기 때문이다. 핵분열 과정에서는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등의 무거운 원자가 쪼개지며 미미한 양의 질량이 사라지면서 에너지로 변환되는데, 이상한 것은 아주 가벼운 원자들을 합치게 해도 그 과정에서 미미한 양의 질량이 사라지면서 에너지로 변환된다. 수소원자들이 결합하여 헬륨을 생성하는 핵융합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나오는가는 너무나 명백하다. 그것이 수소폭탄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에너지를 쓰기 위하여 수소폭탄을 터뜨릴 수는 없고, 수소원자를 서로 조용히 결합하게 해야 하는데, 그것이 힘들다. 태양에서 나오는 에너지도 핵융합에 의한 것인데, 태양의 내부는 엄청난 고온과 고압 상태이기 때문에 핵융합이 가능하다. 수소폭탄을 점화하는 데는 원자폭탄을 터뜨려야 한다. 그런 극단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 핵융합을 가능하게 해 주는 시설을 토카막(tokamak)이라고 한다. 이것은 핵융합 연료를 플라스마로 만든 후에 강한 자기장을 사용하여 도넛 형태로 잡아놓은 상태에서 뜨겁게 만드는 장치이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얘기했지만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고, 핵융합으로 조용히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뽑아낸다는 것은 아직 꿈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꿈을 꾸준히 추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모여서 현재 건설 중인 시설이 있는데,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시골에 있는 ITER이라고 한다. 국제 열핵융합 실험로(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라는 말의 약자이다. 1950년대부터 각국에서 각종 토카막을 지어서 연구하고 있지만 제대로 성과를 올린 곳은 아직 없다. 실패를 거듭하며 얻은 결론은 그 시설을 엄청난 규모로 지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한 국가에서 하기는 힘들다고 판단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경제적으로 중요한 과업일수록 국가 간 경쟁과 견제가 심하기 때문에 협력이 힘들다. 이 상황을 바꾸어 준 것은 1980년대에 소련을 과감히 개혁하고 냉전 종식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었다. 1985년도에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 가졌던 정상회담 중 고르바초프는 미·소간 핵무기 경쟁을 자제하되, 평화적 과학기술 협력의 일환으로 핵융합 연구시설을 마련하자고 제의하였다. 소련에서 이 제안을 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의미가 컸다. 왜냐면 토카막이라는 아이디어를 처음 낸 것은 소련의 물리학자 사하로프(Sakharov)와 땀(Tamm)이었고, 실제로 토카막을 처음 지은 것도 소련이었다. 고르바초프의 획기적 제안 1년 후 소련·미국·유럽연합·일본이 머리를 맞대고 막강한 핵융합 연구 연맹을 형성하였다. 그 후 캐나다도 가세했고, 2003년에는 중국과 한국도 참여하게 되었다. 한국도 1995년에 시작했던 KSTAR 토카막 프로젝트를 통해 핵융합 연구의 상당한 역량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국제 협력은 쉽지 않았다. 협정을 체결하고 ITER시설의 설계까지 마친 후에 실제 비용을 투자하는 데 대해서 미국은 한동안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소련이 붕괴하고 ITER의 파트너로 남은 러시아는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혼란을 겪으며 이런 큰 국제협력을 주도할 역량이 없었다. 미·러가 뒷전으로 물러나면서 주도권을 잡은 유럽과 일본이 서로 시설을 유치하려는 줄다리기가 벌어졌고, 결국 프랑스로 정하는 데까지 많은 진통이 있었다. 2010년에야 겨우 시작한 공사는 또 여러 가지 기술적 어려움으로 인해 지연되고 예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총 34조원, 2033년 완공 예정 프로젝트 현재 계획은 2033년에 시설이 완공될 예정이며, 총비용은 약 34조원이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제적 협력 체계는 안정이 되었으며, 궁극적 성과는 예측할 수 없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중요한 연구 프로젝트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학이나 기술의 혁신적 발달은 예기치 못했던 방향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인공지능도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별 가능성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남달리 어떤 가능성을 감지한 선구자들은 계속 연구를 추구하였고, 그 결과 놀라운 성과를 이루게 되었다. 핵융합 에너지가 실용화하지 못한다는 보장도 없다. ITER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게 된다면, 대한민국도 당당히 참여하여 도왔던 지난한 국제 협력의 결과가 될 터이니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
2025.12.07. 8:20
두 달 넘게 1400원대를 맴돌던 원·달러 환율이 이제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원을 위협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고는 경험해 보지 못한 숫자다. 그러나 지금의 공포는 과거와 결이 다르다. 과거의 위기가 예기치 못한 ‘급성 충격(블랙스완)’이었다면, 작금의 현실은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 저하와 미국의 구조적 호황이 맞물린 ‘만성 질환(회색 코뿔소)’이기 때문이다. 환율 방어용 ‘쌈짓돈’ 활용 안 돼 최근 원화가치 하락은 만성질환 경제체질 바꾸는 개혁해야 해소 이러한 고환율 고착화의 위기감 속에서 최근 기획재정부·한국은행·보건복지부·국민연금공단 등 4대 기관이 모여 연금의 수익성과 외환시장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뉴 프레임워크’ 구축을 발표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국민연금을 동원해 환율을 방어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시장은 이를 사실상 국민 노후자금의 외환 방어 투입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정부의 다급한 사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현재 1322조원 규모인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잔액은 약 5300억 달러(약 771조원)에 달해, 4200억 달러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훌쩍 넘어섰다. 매년 해외투자를 위해 수백억 달러를 환전해 나가는 국민연금은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구조적 요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 거대한 ‘제2의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고 싶은 유혹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정부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환율 방어용 쌈짓돈’이 아니다. 연금의 존재 이유는 기금 증식을 통해 국민의 노후 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데 있다. 정부가 논의 중인 환헤지 비율 상향은 당장 외환시장에 달러를 공급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기금 운용 측면에서는 막대한 기회비용을 발생시킨다. 강달러 기조가 지속할 때 환헤지 비율을 높이면(달러 매도), 추후 환율 상승 시 누릴 수 있는 환차익을 포기해야 하고 헤지 비용까지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거시경제 안정을 위해 2200만 가입자의 수익률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욱이 지금의 환율 상승은 국민연금 탓만이 아니다. 올해 누적 순매수액이 301억 달러에 달하는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쏠림, 2020년 펜데믹 이후 지금까지 미국의 2배에 달하는 통화량(M2) 증가율(43.3%), 미국보다 1.5%포인트 높은 기준금리, 미국과의 관세협상에 따른 향후 10년간 매년 200억 달러의 대미 현금투자, ‘트럼프 트레이드’ 확산 등 글로벌 거시경제 환경 변화로 인해 달러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것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이 해외투자를 위해 보유한 달러를 선물환 시장에서 매도(환헤지)하거나, 신규 투자용 달러를 한국은행에서 빌려 쓰는 스와프 방식은 외환시장에 일시적으로 달러 공급을 늘리는 효과는 있다. 하지만 이는 진통제일 뿐 치료제가 아니다. 펀더멘털이 약화된 시장의 흐름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다. 자칫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신호를 줄 경우, 장기적으로는 연금 수익률을 갉아먹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마저 잃는 소탐대실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국민연금과 한국은행 간의 외환 스와프 한도를 탄력적으로 운용하여 시장의 변동성을 완화하는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 수준에서 협력해야 한다. 기계적인 환헤지 비율 상향 등 인위적인 자산 배분 개입은 지양하고, 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매력적인 한국’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자본시장의 수익률과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실효성을 제고하고, 노동과 기업 규제를 과감히 혁파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한다. 국내 산업의 경쟁력이 살아나 외국인 자금이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환율 안정책이다. 환율 1500원 시대, 정부는 국민연금이라는 당장 손대기 쉬운 카드에 기대기보다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고통스러운 개혁에 집중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리셋코리아 경제분과장
2025.12.07. 8:18
극단의 편향적인 정치 성향을 띠는 소셜미디어의 병폐가 심각하다. 세상을 네 편 아니면 내 편의 적대적 이분법으로 나눠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하는 공동체를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 극성 소셜미디어에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 대표자, 정치인, 정부 고위 관료의 상시 출연은 이 바보 같은 싸움이 소모전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소셜미디어가 “주변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관심을 빼앗고 우리 내면에 자리한 최악의 것들을 부채질함으로써 분노와 종족주의로 우리를 몰아넣는”(『고립의 시대』, 노리나 허츠) 행동대장이 되고 있다. 정치판 주무르는 소셜미디어 법치 무너뜨려 민주주의 파괴 이념에 물든 메시지 경계해야 편향 소셜미디어의 기승은 저널리즘 역사에 등장했던 ‘괴물 미디어’를 떠올리게 한다. 두 괴물(당파적 정론지 신문과 황색 저널리즘)은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한다는 저널리즘의 본질을 훼손한 어두운 존재였다. 정론지(政論紙·partisan press)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국이 강력한 중앙 정부 수립을 놓고 격론을 벌이던 1783년부터 1860년에 횡행했다(『미국신문발달사』, 차배근). 독립한 13개 주를 일괄적으로 통제하자는 연방파와 반대하는 공화파의 싸움에 신문이 가세하여 이전투구를 벌인 것이다. 독립투쟁 시기에 프로파간다로서 신문의 힘을 체험한 정치인들이 선전매체, 대중조작, 여론 형성의 도구로 신문을 이용하려는 속셈도 가세했다. 정론지는 사회통합 대신 갈등을 유발하고 촉진하는 미디어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낳았다. 황색(yellow) 저널리즘은 1892~ 1913년에 걸쳐 대중성을 빙자하여 부도덕, 범죄, 마약, 미스터리 사건, 청소년 자살, 범죄, 낙오자, 실패자, 희생자의 뉴스 가치를 과장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던 선정적 보도를 일컫는다. 감정적 제목, 사진의 남용, 컬러 만화, 조작 인터뷰와 기사, 거짓 정보와 지식을 발전된 제작 기술로 돋보이게 했다. 황색 저널리즘은 인쇄 기술의 혁신, 교통과 통신시설 증가, 산업화에 따른 소득 증대, 문맹률 감소, 도시화와 같은 시대변화와 정치 목적 위주, 소수 엘리트 집단 위주의 신문에서 익명적·이질적 다수의 대중에 대한 인식을 저널리즘에 구현하려는 시도도 했지만 상업성·선정성·폭력성 짙은 내용으로 부수 경쟁과 언론사의 이익 추구에 우선한 특징을 지닌다. 근래 대한민국의 편향 소셜미디어에서 재현되고 있는 두 괴물 미디어의 모습은 올바른 저널리즘에 대한 반동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론지와 황색 저널리즘의 행태를 넘어 권력과 상호 후원의 관계를 형성하고, 권력이 되고, 권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편향 정치 미디어가 미는 후보자가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대통령이 심중에 둔 후보를 물리치고, 국민의 힘 대표 선거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낮았던 후보를 당 대표로 만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특히 김어준씨가 운영하는 소셜미디어의 주장이 여당의 입장이 되고, 김씨의 미디어에 출연하여 보조를 맞추는 것이 공천과 국회의원 당선을 위한 첩경이라는 비판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18일 국회 운영위에서 고성을 지르고 화를 내는 자세를 취해 민주당 위원장으로부터 여기가 “화내는 곳인가”라는 호통을 들을 만큼 물의를 빚은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바로 다음 날 김씨 방송에 출연하고, “다음엔 더 세게 나가라”는 충고를 들었다. ‘용산 대통령’ ‘여의도 대통령’과 함께 ‘충정로 대통령’이 있다는 허망한 말이 도는 까닭일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의 미디어 현상으로서는 희귀한 사례이다. 현재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의 수감시설에서 반인도범죄 재판을 대기 중인 전 필리핀 괴물 대통령(두테르테) 정권을 비판하여 목숨을 위협받아온 언론인 마리아 레사(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소셜미디어의 역기능 체험을 밝힌다. “우리가 공유하는 현실을 파괴하고”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온라인에서의 면책이 오프라인에서의 면책으로 이어져 견제와 균형이 파괴되고” “거짓말 바이러스에 감염시키고” “서로 싸우게 만들어” 민주주의를 죽인다.(『권력은 현실을 어떻게 조작하는가』) 정론지 시대를 마감하는 기폭제가 된 1860년 3월 22일 뉴욕타임스의 ‘모든 정파의 독자들이 진실과 정의를 위한 입장에서 서로 논의할 수 있도록 사실을 보도하고, 특정 정당의 이해를 대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반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디지털 미디어 기술은 어떤 제국보다도 크고 강하고 흥미로운 소셜미디어 제국을 가능하게 한다. 공동체를 불행하게 하는 정파성·선정성·상업성·폭력성으로 물든 메시지를 전하는 괴물 소셜 미디어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2025.12.07. 8:16
한·미 관세 협상 타결 후 남은 숙제는 미래가 현실이 됐을 때, 그 미래에 대한 예측은 초라해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되고 백악관 재입성을 준비하던 지난해 이맘때, 세상은 ‘관세맨’ 트럼프의 귀환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예측으로 분분했다. 선거 유세 때 공언한 세계 모든 국가를 상대로 한 10% 보편관세, 중국에 대한 60% 징벌적 관세가 실제로 실현될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미국의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를 높은 관세로 해소하겠다는 발상의 놀라운 단순함, 상대 국가의 무역 보복 가능성, 고관세가 가져올 물가 상승 등. 이런저런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를 근거로 트럼프의 정치적 신분이 대선 후보에서 대통령으로 변화하는 순간, 그의 관세 공약(公約)은 말 그대로 공약(空約)에 그칠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2기 임기의 첫해의 끝자락에서 돌이켜 보면, 그 예측들은 순진하거나 단순했다. 상대는 상식과 원칙, 합리성의 사전적 정의를 새로 쓰는 트럼프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내건 ‘관세 4종 세트’에 사라진 국제 공조 속 각자도생만 거액 대미 투자로 관세 인하 타결 통상과 안보 패키지 딜 가능한 덕 반도체·의약품 관세 미래 진행형 한·미 FTA 불균형 해소는 과제 물가 상승, 무역 전쟁, 경기 침체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트럼프는 자신의 관세 4종 세트를 구상하고 실행에 옮겼다. 중국과 멕시코 등을 겨냥한 펜타닐 관세, 철강·자동차·반도체 등 품목별 관세, 세계를 상대로 미국 시장 입장료를 인상하는 보편관세, 국가별 수입 관세를 차등하는 상호관세까지 현란한 ‘관세 4종 세트’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표 상품이 됐다. 고관세가 물가 상승을 유발해 미국 경제 침체를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자제할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심각한 물가 상승은 없었고, 전면적인 무역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경기 침체 우려는 현실화하지 않았다. 세상은 트럼프가 ‘해방일’이라고 명명한 지난 4월 2일, 국가별 차등적인 ‘상호관세’를 부과하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같은 품목의 수입 관세를 국가별로 차별하는 ‘상호관세’를, 전 세계 모든 국가를 상대로, 전격적으로 도입하는 무모함에 세상은 경악했다. 거의 사용된 적이 없던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트럼프가 매긴 국가별 상호관세는, 상대국의 무역보복으로 이어져 세계 경제의 침체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을 비웃듯, 무역 전쟁이 아닌 무역 협상으로 이어졌다. 양자 협상 따른 관리 무역 시대 개막 별안간 수직 상승한 미국의 고관세를 인하하려는 세계 각국의 시도는, 트럼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정상 외교술을 경쟁적으로 탄생시켰다. 갑자기 높아진 미국 시장의 담을 넘기 위해 국가 간의 국제 공조는 사라지고 각자도생의 생존 전략에 골몰했다. 미국은 그들 간의 경쟁을 유도하면서 유리한 협상 국면을 조성했다. 트럼프 2기 임기 첫해가 끝나기도 전에 세계 통상 지도는 천지개벽했다. 같은 품목의 수입 관세를 국적을 가려서 차별하지 않던 미국은 사라지고, 국가별 차등 관세를 부과하는 새로운 미국으로 바뀌었다. 높아진 미국 관세를 낮추기 위해 미국산 구매를 확대하고, 미국에 거액의 투자 약속을 해야 했다. 지금까지 트럼프의 관세 압박에 협상을 타결한 국가는 한국과 일본, 영국, 유럽연합(EU) 등 미국의 동맹국과 미국을 주요 수출 시장으로 삼는 아시아 제조업 국가다. 중국은 트럼프의 관세 폭탄에 맞대응하면서 대치 국면을 이어가고 있고, 브라질 등 글로벌 사우스는 미국과의 협상에 미온적이지만,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다자규범 중심의 자유무역은 폐기되고, 미국과의 양자 협상 결과에 따른 관리 무역의 시대가 열렸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은 대우 확보’를 협상 목표로 정한 이재명 정부는 트럼프가 설정한 8월 1일 시한을 코앞에 두고 관세 협상을 타결지었다.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선언한 상호관세를 인하하고 일부 품목별 관세를 인하하는 대신, 거액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트럼프식 거래 방식으로 협상을 타결했다. 대미 투자 패키지의 성격과 운용 방식을 둘러싼 한·미 간의 첨예한 이해충돌은 10월 29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극적으로 매듭지어졌다. 달라지는 한·미 동맹 성격과 내용 과도한 현금 투자가 몰고 올 외환시장의 불안성과 외환위기 가능성을 이유로 한국 정부는 미국에 통화스와프와 현금 비중 최소화(5%)를 요구했고, 미국은 인색했다. 미국의 완강한 거부에 교착 상태에 빠졌던 협상은 ‘향후 10년간 매년 200억 달러 투자’ 방식으로 합의에 이르렀다. 통화스와프도 현금 5%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지만, 투자 기간을 10년으로 확대하고 ‘상업적 합리성’을 투자처 선정의 중요 고려요인으로 확보했다. ‘어음 주고 현찰 받은’ 고육지책이다. 양국의 합의 사항을 담은 팩트 시트, 대미투자 양해각서(MOU)도 각각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7월 말 이재명 정부와 트럼프 대통령 간의 관세 협상 타결 선언 후, 3개월간 팽팽하게 맞서던 투자 협상이 타결된 이면에는 통상과 안보를 연결하는 패키지 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미 경주정상회담에서의 합의 내용은 관세와 대미 투자, 외환시장 안정, 한반도와 인도 태평양, 대만해협, 조선·원자력 협력 등 광범위한 경제·안보 의제를 하나의 문서에 통합해서 담고 있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중국-대만 양안 관계의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를 명문화한 것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관세와 투자를 연계하는 무역 합의, 핵잠수함 추진, 한국의 방위비 인상, 전시작전권 전환 등을 담고 있는 ‘한·미 동맹의 현대화’는 북한에 대응하는 군사 동맹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축으로 한 경제 동맹이었던 한·미 동맹의 성격과 내용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고위당국자가 “북태평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아닌 동맹국 중 한국이 가장 모범적 국가”라고 평가한 것은 한국의 국방비 증가 규모뿐만 아니라 주한 미군의 성격이 한반도를 넘어선 중국 견제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런 인식은 백악관이 지난 5일 공개한 미국의 외교·안보 분야 최상위 지침인 국가안보전략(NSS)보고서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 과정과 협상 결과는 이재명 정부가 미·중 패권 경쟁 시대에 한·미 동맹을 외교 안보와 경제 통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반으로 삼고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국은 트럼프의 관세 폭탄에 저항하지 않고 협상했고, 대규모 대미 장기 투자를 약속했다. 한국은 일본, EU와 함께 미국 제조업 부흥의 핵심 파트너가 됐다. 역사 속 사라진 한·미 FTA 프리미엄 문제는 지금부터다. 핵심 파트너의 천문학적인 대미 투자가 미국 제조업의 부흥을 이끌려면, 트럼프 대통령 임기를 넘어서는 미국의 지속적인 공급망 개편 전략이 뒤따라야 한다. 반 이민 정책을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의 풀뿌리 지지 세력의 반발을 극복해야 가능한 인력 확보 문제,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희토류의 안정적 확보와 중국 의존도 해소 등 고난도의 정책 과제가 남아있다. 이번 합의에도 한·미 통상 현안이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다. 232조에 근거한 품목관세는 지속하고, 반도체·의약품 등 트럼프 대통령이 수시로 꺼내는 품목에 대한 관세 문제는 여전히 미래진행형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는 지난 4월 2일 국제비상경제권한법을 근거로 전 세계적으로 일방적으로 부과한 것이다. 한국에 부과한 25%도 이에 포함돼 있다. 이 조치는 한·미 양국이 장기간 협상과 국내 비준 절차를 거쳐 적법하게 발효한, ‘상호 무관세’를 약속했던 한·미 FTA를 철저히 무시했다. 한국은 경쟁국인 일본과 독일보다는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받아냈지만, 2012년 협정 발효 이후 지난 13년간 누려왔던 한·미 FTA ‘무관세’ 프리미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초강대국이자 동맹인 미국이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협상에서, 경제 동맹의 상징이던 한·미 FTA는 무시되고, 미국이 새로 설정한 높은 관세를 내리기 위해 한국은 대미 투자를 담보로 설정해야 하는 협상에 내몰렸다. 관세 협상 결과 미국은 25% 상호관세를 15%로 인하했지만,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무관세에서 15%로 대미 관세가 인상됐다. 미국은 한국에 일방적으로 관세를 인상했지만, 한국은 한·미 FTA에서 약속한 미국산 무관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미 FTA가 폐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비대칭적 상황을 어떻게 법적으로 처리하여야 하는지 과제로 남는다. 트럼프 정부 상호관세 플랜B 대응해야 현재 미국 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적법성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1·2심과 동일하게 ‘불법/무효’로 최종 판결될 경우, 한국 정부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거액의 투자 약속과 관세 인하를 교환하는 협상 구조 속에서 탄생한 것이 한국의 대미 투자 3500억 달러 합의 아닌가. 그 교환의 전제가 허물어진 상황이라면, 협정의 정당성도 훼손된다. 그럴 경우 그 협정은 무효화되나. 재협상을 해야 하는 것인가. 새로운 국면에서 각자도생으로 트럼프 관세 폭탄 제거에 나섰던 일본, EU, 한국은 협력 전선을 구축할 수 있을까.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가 최종 무효 판정으로 결정되면 지금까지 미국이 징수한 관세 수입금을 해당 국가에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 합리적인 상식이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를 기정사실로 하려는 플랜 B를 가동할 태세다. 트럼프 뉴노멀 시대에 기존의 합리성을 뛰어넘는 담대한 상상력이 요구된다. 최병일 법무법인 태평양·통상전략혁신허브 원장
2025.12.07. 8:14
경기 남양주시와 조안면 주민들이 팔당 상수원 규제의 근거가 된 수도법과 그 시행령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으나 지난달 27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자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남양주시가 2020년 10월 주민들과 함께 상수원 보호 규제가 평등권, 직업선택의 자유, 재산권 등을 침해한다며 위헌 소원 심판을 청구한 것과 관련, 헌재가 각하를 결정해서다. 헌재는 해당 법령이 아닌, 관련 조례나 규칙 또는 행정청의 구체적인 불허가 처분으로 주민들이 주장하는 기본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이번 헌법소원은 청구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남양주시와 조안면 주민들이 ‘상수원보호구역의 지정과 행위 허가기준’을 정한 수도법과 수도법 시행령에 대해 제기한 위헌확인 청구를 재판관 9인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했다. 남양주시와 주민들은 헌재가 5년이나 걸려 뒤늦게 결정을 내린 것도 시간 낭비를 불러왔다며 못마땅해하고 있다. 하지만 시와 주민들은 헌재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시와 주민들이 자격 및 청구요건 등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만 판단을 내렸다고 보고 새로운 도전 의지를 비치고 있다. 실질적인 관련법 저촉 여부에 대한 판단과 검토는 별도로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남양주시는 이번 결과에 굴하지 않고 조안면 주민들이 그간 받아온 피해의 복구와 기본권 침해를 해소할 수 있도록 상수원 규제 개선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주광덕 남양주시장은 “주민들의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다각적인 법적 수단이 마련되도록 중앙정부와 국회 등에 지속해서 건의해 갈 것”이라는 입장이다. 조안면은 수도권의 대표적 낙후 지역이다. 팔당호 취수로 인해 50년 전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약국·문방구·치킨집·짜장면집·미용실 하나 없는 실정이다. 조안면 전체 면적의 84%가 팔당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다. 문제는 팔당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은 개발제한구역을 그대로 따라 지정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조안면과 팔당호(북한강)를 사이에 둔 강 건너 양평군 양수리 지역의 경우 15층짜리 아파트와 식당·카페 등이 즐비한 것에 비교할 때 그렇다. 양수리는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당시 면 소재지라는 이유로 지정에서 제외됐다. 시와 주민들의 이번 일로 상수원 지역 주민들의 기본권 침해 현실을 전국적으로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일리 있는 대목이다. 이번 마찰을 계기로 중앙정부와 국회 등은 50년 동안 지속해온 상수원 지역의 불합리한 규제가 무엇인지 더 늦기 전에 세심히 살피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익진([email protected])
2025.12.07. 8:12
공자는 모국 노나라의 왕인 정공 14년 즉 53세 때에 사구(司寇·형조판서) 벼슬을 하면서 재상의 업무를 대행한 적이 있다. 3인의 간신 계씨·숙씨·맹씨 등 대부(大夫)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아가고 있었다. 이에 장차 노나라가 강국이 될 것을 두려워한 이웃 제나라에서 수십 명의 미녀와 100여 필의 명마를 보내 교란·유혹했다. 계씨 세력의 중심에 있던 계환자(季桓子)가 그것을 받아 측근들과 나눠 향유하느라 3일 동안이나 조회에 참석하지 않자 아예 조회가 열리지도 않았다. 이런 꼴을 본 공자는 벼슬을 버리고 노나라를 떠났다. 이후 자신의 포부를 이해하고 등용해줄 군주를 찾아 13년 동안이나 여러 나라를 떠돌았다. 이른바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한 것이다. 공자는 이처럼 아닐 성싶으면 과감히 떠남으로써 자신을 지키고 또 군주에게는 무언의 경고를 했다. 그러나 공자의 경고를 알아듣는 군주는 없었다. 윤석열 정권 시절 대통령이 전날의 과음으로 늦게 출근하는 경우가 빈번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 오래다. 말리고, 말려도 안 들으면 폭로하고 자리를 뜬 사람이 한 사람만 있었어도 나라가 계엄으로 요동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란재판이 너무 더디다. 손으로 해를 가릴 셈인가!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2025.12.07. 8:10
독일 쾰른 인근 시골, 메허니히에 소박한 농부 샤이트바일러 부부가 살았다. 그들이 누리는 “행복하고 좋은 삶”에 감사하며 수호성인 브루더 클라우스에게 봉헌할 작은 경당을 짓는 게 소원이었다. 스위스의 건축가 페터 춤토르(1943~)에게 의뢰 편지를 썼다. “예산은 거의 없지만 우리의 땅과 시간과 노동을 다 바치겠다”고. 인연인지 춤토르의 모친이 클라우스 성인의 흠모자였고 이 세계적 대가는 기꺼이 설계를 수락했다. 드넓은 밀밭 가운데 넓이 50㎡, 높이 12m의 구조물이 마치 선돌같이 우뚝하다. 실내는 고작 서너 평, 네 명이 들어서기도 좁은 건물이다. 냉난방과 전기 조명은 고사하고 상하수도마저 없다. 이 간단한 집을 설계에 5년, 시공에 2년을 보내 2007년 비로소 완공했다. 설계비는 물론 받지 않고 춤토르는 공사 내내 현장을 오가며 계획을 수정하고 공사 작업을 함께 했다. 112개의 긴 소나무를 원뿔형으로 세워서 내부 거푸집으로 삼았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원뿔 오두막 명칭인 위괌(wigwam)이라 불렀다. 외부에 판형 거푸집을 세우고 그사이를 램드(다진) 콘크리트를 채워 벽을 만들었다. 진흙과 자갈과 석회를 섞은 이 토속 재료를 마을의 농부들이 한 달에 한 번 50㎝씩 다지기를 2년, 총 24개 켜의 퇴적층을 가진 외벽을 완성했다. 내부 소나무 거푸집에 불을 질러 태우니 100여 개의 홈이 파인 거칠고 그을린 벽이 되었다. 15세기 스위스의 사제 클라우스는 20년을 동굴에 은거하면서 자궁 속의 암흑과 출생 때의 광명을 환상으로 보았다. 천장에 자궁 모양의 오큘러스(둥근 창)가 뚫려 햇빛과 비바람이 쏟아진다. 납을 녹여 깔아 울퉁불퉁한 바닥에 비가 오면 물웅덩이가 고인다. 성인의 신비한 체험을 고스란히 건축으로 재현했다. 간단한 벤치와 촛대 하나, 성인의 흉상이 전부이다. 그러나 빛과 어둠, 그을린 목재 냄새, 거친 벽의 촉감 등 현상학적 감각으로 충만한 공간이 되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전 총장
2025.12.07. 8:08
2026년 일본 경제를 흔들 가장 큰 변수는 바로 새 정부가 선택할 재정의 방향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경기 부양을 위해 지출을 늘리고 싶지만, 빠르게 높아지는 국채 금리가 그 선택을 좁혀놓고 있다. 일본 경제는 지금, 확장과 긴축 사이의 좁은 틈을 건너야 하는 난코스에 들어섰다.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10년 만기 일본국채(JGB) 금리는 11월에 상승한 뒤, 2025년 추가경정예산 발표 이후 약 1.8% 수준에서 머물러 있다. 예산 규모가 크지만, 인플레이션 덕분에 세수가 늘면서 기초재정수지(정부의 이자지급 전 재정수지)는 GDP 대비 2~3% 적자로 작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금융시장의 관심은 2026년 본예산으로 옮겨갔다. 정부는 이미 재정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시사하며, 보다 적극적인 재정정책 의지를 드러냈다. 기초재정수지 균형을 맞추려는 기존의 경직된 목표 대신, 정부가 장기적으로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을 낮추는 방향을 설정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정부가 단기적인 재정 악화에도 ‘전략적 지출이 향후 명목 GDP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논리를 통해 정당화할 이론적 여지를 만든다. 하지만 이런 재정 목표는 일본국채 시장을 크게 흔들 수 있다. 애초에 국가부채비율을 낮추는 일이 쉽지 않은 데다, 정부의 재정 지출이 성장에 미치는 효과도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심각한 노동력 부족으로 경제가 더 빨리 성장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전략 산업에 대한 정부 투자도 성과가 불확실하고, 국방비의 상당 부분은 미국산 장비를 들여오는 데 쓰일 전망이다. 취약계층 지원은 경기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소비를 눈에 띄게 늘리기에는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국채 금리가 오르면 국가부채비율을 줄이기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우리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10년물 금리가 1.8% 수준에 머문다는 다소 낙관적 가정에서도, 일본 정부는 부채비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GDP 대비 0.5% 규모의 기초재정적자를 유지해야 한다. 금리가 3%로 오르면 상황은 훨씬 어려워져서 GDP 대비 2.5%의 기초재정흑자가 필요해진다. 전문가들의 현재 전망으로는 2026년 10년물 금리가 2%대 초반을 약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재정적자가 GDP 대비 2~3% 수준에서 더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낙관적인 시나리오에 가까우며, 현실이 이보다 나빠질 위험도 크다. 2026년은 일본이 기존의 재정정책만으로 안개 속 항해를 계속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오르는 해가 될 것이다. 나가이 시게토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일본 대표·전 일본은행 국제국장
2025.12.07. 8:06
세계적으로는 야후와 인도 아드하르처럼 억 단위 개인정보가 침해된 사례가 있었지만, 한국처럼 인구의 3분의 2가 침해된 사건은 찾기 어렵다. 이번 쿠팡 사태가 단순한 보안 사고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판은 거세다. 독점, 노동권 침해, 불투명한 운영, 윤리 부재, 그리고 책임 회피. 그러나 분노의 언어 뒤에는 대안이 없다는 자각에서 오는 우려가 배어 있다. 불만 속에서도 국민이 이 서비스를 끊지 못한다는 사실을 정부도 잘 알고 있다. 과징금과 청문회, 강경한 언사가 줄을 잇지만, 실질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 역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플랫폼 없이는 일상이 돌아가지 않는 현실에서 한국의 딜레마는 의존의 구조에 있다. 역사적으로 국가가 통제하지 못하는 거대 민간체계와 마주했을 때 선택지는 세 가지다. 희생양을 내세워 분노를 달래거나, 처벌의 연극으로 시간을 벌거나, 아니면 구조 자체를 갈아엎는 것이다. 전쟁으로 물가가 폭등하고 공급망이 흔들리던 3세기 말,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1200여 품목에 가격 상한을 내걸고, 이를 어기는 상인에게 처형과 재산 몰수를 예고했다. 하지만 이러한 ‘처벌 연극’은 구조적 결함을 고치지 못했다. 구조를 실제로 다시 짠 경우는 극히 드물다. 1911년 미국의 스탠더드 오일, 1984년 AT&T가 그 예다. 정부는 수십 년의 법정 싸움 끝에 각각 석유와 통신 분야를 장악한 두 회사를 여러 조각으로 쪼갰다. 대체할 체계가 존재했고, 국가가 그 부담을 떠안을 준비도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문제는 기업의 도덕성 여부보다는, 민간 인프라를 생활 필수체계로 받아들인 현실에 있다. 문제의 핵심은 한 기업이 경제의 한 분야를 도덕성 여하를 불문하고 독점한다는 데 있다. 민주사회는 공정의 개념을 끊임없이 되묻는 능력에서 유지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2025.12.07. 8:04
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어떤 통합이나 일관성을 염원하는 서사적 탐색을 해나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갈림길에 마주쳤을 때, 나는 내 삶의 전반에 가장 적합하고 마음이 가는 길을 찾아내려 애쓴다. 도덕적 고민은 내 의지의 행사라기보다 내 삶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에 가깝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2025.12.07. 8:02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5.12.07. 3:30
고개를 들면 밤하늘을 빼곡히 채운 무수한 별들이 빛나는 것이 보인다. 그 많은 별은 우리 은하 안에 있는 별이다. 우리 은하 말고 외부 은하에도 각각 그만큼의 별이 있다는데 허블 딥필드가 관찰된 후 과학적 추정으로 우주에는 우리 은하수 같은 은하가 천문학적 숫자만큼 있다. 하지만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별, 그 별에 속한 행성과 위성, 성간에 산재한 수소나 헬륨 등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합해도 우주 전체의 5%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우주에는 원자로 이루어진, 우리가 소위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의 총량이 고작 5%가 안 된다는 말이다. 그 나머지는 아직도 정체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우주를 안다고는 하지만 극히 일부를 더듬었다. 이것이 우주에 대한 우리의 현주소다. 우리가 아는 5%밖에 안 되는 물질을 제외하면 우주에는 암흑물질이 27%, 암흑에너지가 68%쯤 존재한다고 한다.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는 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름 앞에 암흑이란 말이 붙기는 했는데 사실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분명히 무엇인가는 있는데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으니 그냥 암흑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는 했지만 옳은 표현은 아니다. 굳이 그런 의미의 접두어라면 오히려 알 수 없다는 뜻의 '미지(未知)'가 더 맞다.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이 우주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뉴턴이 발견한 중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낸 아인슈타인마저도 정적인 우주론자였다. 그런데 그의 우주 방정식을 보면 우주는 중력 때문에 결국 수축하게 된다. 이에 아인슈타인은 우주 상수라는 기가 막힌 항목을 방정식에 추가하여 우주가 쪼그라들지 않도록 조치했다. 그런데 벨기에의 성직자였던 조르주 르메트르 신부가 우주는 팽창한다고 대들자 이 젊은 신부를 만난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그를 질책했다고 한다. "신부님의 수학은 훌륭하지만, 물리학은 끔찍합니다." 몇 년이 지난 후 미국 윌슨산 천문대에서 에드윈 허블이란 천문학자가 적색편이 현상으로 우주가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우주 팽창의 증거를 내놓자 아인슈타인은 그제야 자신의 방정식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우주를 수축시키는 중력을 훨씬 능가하는 어떤 팽창하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 힘을 규명하지 못하자 학계에서는 임시방편으로 암흑에너지라고 불렀다. 태양계는 태양을 중심으로 여덟 개의 행성이 공전하는데 은하도 그 중심을 기준으로 모든 별이 공전한다. 태양은 은하수의 중심을 2억2천5백만 년에 한 바퀴씩 공전한다. 케플러 법칙에 의하면 중심에서 멀수록 공전 속도가 늦어야 하는데 은하 외곽에 있는 별들도 은하 중심에 가까운 별에 비해 속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별이 무거워야 했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추측하건대 멀리 있는 별 주위에 우리가 모르는 무거운 물질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일단 그것을 암흑물질이라고 이름 지었다.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은 빛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관찰할 수가 없어서 아직은 과학적인 증거가 없다. 그래도 온 우주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그 무엇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어쩌면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실수라며 추가했던 우주 상수가 그 실마리를 풀 단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긴다더니 아인슈타인은 죽어서도 우주론을 새로 쓸 업적을 남길지도 모른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우주 방정식 우주 팽창 우주 상수
2025.12.05. 13:12
━ 내란전담재판부법, 법왜곡죄 법사위 통과 ━ 정권 입맛 맞는 판사로 사법부 재편 의도 ━ 민주당, 위헌성 다분한 입법 폭주 멈춰야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3일 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안과 법왜곡죄를 신설하는 형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두 법안은 단순한 정치 쟁점을 넘어 사법부의 독립과 존재 이유를 뒤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어제(5일)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됐다. 법원장들은 회의 후 보도자료를 내고 “재판의 중립성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하여 위헌성이 크다”며 “이로 인해 재판 지연 등 혼란이 초래될 수 있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3일 국회 법사위에서 “87년 헌법 아래서 누려온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천 처장은 “특정 개인이나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처분적 법률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처럼 처분적 재판부 구성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선진 사법의 기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내란 사건만 담당하는 재판부를 정권이 설계하고, 인선에 개입하는 구조는 이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민주당은 입법 명분으로 내란세력 단죄를 내세운다. ‘내란 종식’의 중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이 재판을 위해 헌법이 규정하는 삼권분립의 원칙을 허물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을 보면 내란전담재판부 추천위원 9명 중 3명씩을 헌법재판소와 법무부, 판사회의가 추천한다. 법무부 장관이 재판부 인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는 천 처장의 우려처럼 “수사권과 행정권이 사법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나아가 헌재의 추천은 해당 법의 위헌 심판을 맡게 될 수 있는 헌재가 재판부 구성 단계에서부터 ‘선수 겸 심판’이 되는 모순을 낳는다. 여기에 민주당은 내란·외환 사건에 대해서는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되더라도 재판을 그대로 진행하고, 헌재는 제청 후 1개월 이내에 결론을 내야 한다는 헌재법 개정안까지 발의했다. 이것 역시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 특정 목적을 위해 될 때까지 법을 만들겠다는 것은 입법 폭주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민주당이 특별재판부를 고집하는 것은 결국 ‘입맛에 맞는’ 판사를 골라 쓰겠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야권에서는 이 법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1심 재판장인 지귀연 판사를 바꾸기 위한 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특정 판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법을 만들어 재판부를 교체하는 관행이 굳어지면, 그다음엔 또 어떤 ‘특별재판부’가 생길지 알 수 없다. 법왜곡죄도 마찬가지다. 이 법은 판·검사와 수사기관 종사자가 의도적으로 법을 잘못 적용하거나 사실관계를 현저히 잘못 판단했을 때 10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한다. 그러나 ‘법을 잘못 적용했다’는 기준은 어디까지인가. 여기에 민주당은 비(非)법관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법행정위원회에 법관 인사권을 넘기는 법안도 발의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사법개혁’이 아니라 집권세력의 사법통제 시도일 뿐이다. 어제 법원장 회의에 앞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법제도가 그릇된 방향으로 개편되면 국민에게 되돌리기 어려운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충분한 논의와 공론화를 거쳐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무리한 입법 시도를 멈추고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법부에 쌓인 불신을 걷어내는 일은 필요하지만, 그 해결책 또한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마련돼야 한다. 내란전담재판부와 법왜곡죄가 그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어렵게 지켜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2025.12.05. 8:34
한인 전국 권익단체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미교협)는 이민단속국(ICE)의 체포, 구금, 추방으로 가족과 생이별을 당하는 등 고통받는 한인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미교협의 활동에는 많은 고마운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한인 저스틴 정 씨는 임신 중인 아내와 강제로 이별을 당했고 결국 한국으로 추방됐다. 두 살 때 미국에 온 그는 지금 한국이 낯선 나라이지만 적응하며 살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미교협이 펼친 정 씨와 그의 가족 지원 활동에 380여 명이 함께해줬다. 지난 7월 한국에 다녀오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체포된 뒤 텍사스 수용소에 구금됐던 김태흥 씨는 결국 끈질긴 구명운동과 법정 싸움으로 ‘추방 사유’가 없다는 판결을 받고 지난 15일 4개월 만에 석방됐다. 김 씨의 억울한 석방에 맞서 140여 명이 8주 동안 매일 곳곳에 전화를 걸어 석방을 요청했다. 심지어 ICE에도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또 수용소에 있는 김 씨를 격려하기 위한 편지 보내기 운동에도 많은 분이 참여했다. 시민권이 없이 살아온 두 국제 입양인들의 영주권을 지키기 위해 ‘캘리포니아 이즈 홈(California is Home)’ 캠페인을 펼쳤다. 미교협이 후원하는 입양인정의연맹(Adoptees for Justice) 자원봉사자 50여 명이 땀을 흘렸다. 그리고 입양인의 시민권 취득을 보장하는 ‘입양인과 미국 가족 보호법’ 제정을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낸 많은 분이 있다. 결국 입양인 둘 중 한 명은 미교협의 법률 지원과 구명 활동에 힘입어 영주권을 다시 받고 추방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미교협의 주 7일, 하루 24시간 운영되는 이민자 단속 대처 비상 핫라인(844-500-3222)을 책임지는 100명의 자원봉사자, 그리고 커뮤니티의 이웃들에게 친절과 연대의 손길을 내민 많은 이들이 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등굣길을 함께 걷고, 외출이 두려운 이들에게 식료품을 배달하는 등 두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지켜 주는 사람들이 있다. 미교협의 든든한 재정 후원자, 기부자, 파트너 단체 그리고 활동에 함께한 수많은 사람 덕분에 모두가 함께 앞날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미교협은 앞으로도 이와 같은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이민자 커뮤니티 보호 기금 마련 캠페인(nakasec.org, 전화 917-488-0325)을 펼치고 있다. 25달러로 미교협의 이민자 권익 카드 400장을 만들 수 있다. 50달러로 핫라인 자원봉사자 교육 1시간을 진행할 수 있다. 100달러로 수용소에 구금된 이민자를 위해 하루 동안 지원을 할 수 있다. 입양인정의연맹(adopteesforjustice.org/donate)도 후원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 한 재단으로부터 5000달러 매칭 기금 제안을 받았다. 연말까지 커뮤니티에서 5000달러를 모으면 기금 1만 달러를 확보할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한인 이민자와 입양인들이 고통을 받을 것이다. 이들 가운데에는 변호사를 고용할 재정 여력이 없고, 가족이 없어 홀로 외롭게 싸워야 하고, 부당한 대우로 억울한 상황이지만 호소할 방법을 모르는 등 딱한 처지에 놓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들을 위해 미교협이 두 팔 걷어붙이고 앞장서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인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주기 바란다.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이민자 캠페인 이민자 커뮤니티 이민자 단속 이민자 권익
2025.12.04. 20:24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속 대사는 현실에서도 유효하다. 갓 지은 밥 한 그릇,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이 지친 마음을 녹이기도 한다. 별거 아닌 거에 위로를 받는 순간이다. 소설의 ‘별것 아닌 것’과 현실의 ‘별거 아닌 거’의 차이는 뭘까? ‘별거’는 ‘별것’, ‘거’는 ‘것’을 구어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별것 아닌 것’을 입말로 표현하면 ‘별거 아닌 거’가 된다. ‘거’에 서술격조사 ‘이다’가 붙으면 ‘거다’가 되고 주격조사 ‘이’나 보격조사 ‘이’가 붙으면 ‘게’로 형태가 바뀐다. “곧 힘낼 거다” “사는 게 뭐라고”처럼 쓰인다. “어떤 것으로 할까” “어떤 거로 할까” “어떤 걸로 할까” 중 올바른 문장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의미상 차이는 없다. ‘것으로’를 입말로 하면 ‘거로’가 된다. ‘걸로’는 ‘것으로’의 줄임말이다. ‘것’의 형태일 때는 앞말과 잘 띄다가도 ‘거’로 모습을 바꾸면 앞말에 붙이는 경우가 많다. ‘것’ ‘거’ 모두 의존명사다. 앞말과 띄는 게 원칙이다. ‘게’와 ‘걸’의 형태가 됐을 때 혼란은 가중된다. ‘게’가 ‘것이’의 줄임말이면 띄지만 어미나 조사로 쓰이면 붙인다. “힘든 게 많죠” “버티는 게 쉽지 않아”와 같이 ‘것이’가 줄어든 형태일 때는 띄어야 한다. “별명이 뭐였게?” “든든하게 먹어” “내게 줘”처럼 어미나 조사로 사용됐을 때는 앞말에 붙인다. ‘걸’도 마찬가지다. ‘걸’이 -ㄴ걸, -ㄹ걸 등 문장 끝에서 종결어미로 쓰이면 붙이나 ‘것을’의 줄임말이면 띄어야 한다. “이미 떠난걸” “꽃이 예쁜걸”과 같이 어미로 사용됐을 때는 앞말에 붙이지만 “좀 참을 걸 후회돼”처럼 ‘것을’이 줄어든 형태일 때는 띄어 쓴다.우리말 바루기 별것 의미상 차이
2025.12.04. 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