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얽힘이란 것이 있다. 한쪽 입자의 상태가 변하면 다른 쪽 입자의 상태도 따라서 변하는 현상으로 직관적인 고전역학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무척 생소한 개념이다. 심지어는 두 입자 사이의 거리가 수억 광년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동시에 변하기 때문에 우주의 최고 속도인 빛의 속도를 위반한다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양자얽힘은 속도와는 관계가 없는 현상이어서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마저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유령 현상이라고 했다. 아직도 신비하기만 한 양자의 세계에는 또 다른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는데 바로 터널 효과 현상이다. 20세기 초반에 시작된 양자역학은 아직도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양자역학적 현상은 이미 여러 분야에 이용되고 있다. 여기 소개하는 양자 터널 효과 역시 직관적,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쉽게 얘기해서 벽을 향해 던진 야구공이 벽을 통과하여 계속 날아갔다는 말이다. 쉬운 예를 드느라 억지를 부렸는데 공은 입자이기 때문에 벽에 부딪히면 당연히 튀어나와야 하겠지만 파동으로 행동한다면 확률적으로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가 아니라 아원자 규모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미시세계의 운동을 다룬 양자역학에서 입자는 입자처럼 행동하기도 하지만 파동의 성질도 갖는다. 파동의 좋은 예가 전자기파인데 전자기파는 유리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반사되지만, 일부는 투과하기도 한다. 아원자 규모의 세계에서는 물질파도 그런 식으로 사물을 투과할 수 있기도 한데 이를 터널 현상이라고 한다. 양자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신기한 일이다. 원자핵 속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다. 그중 +전하를 가진 양성자는 자기끼리 서로 밀쳐내므로 강한 핵력이 그런 척력을 이기고 양성자를 묶어 놓는다. 그래서 양성자는 강력을 이기고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고, 그 때문에 원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양성자 수에 따라서 고유의 성질을 갖는다. 이렇듯 양성자 두 개가 묶여 있으면 헬륨 원소이고, 양성자 여덟 개가 묶여 있으면 산소 원소가 된다. 양성자의 수에 따라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기본 원소의 성질이 판이해진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양성자가 핵력을 이기고 원자핵 밖으로 탈출하기도 한다. 입자가 파동의 성질을 보이는 경우인데 이를 알파 붕괴라고 하며 양자 터널의 한 예다. 뉴턴에서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지는 고전물리학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하이델베르크가 말한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서 양자 터널 현상은 존재하며 우리는 이미 실생활에 이용하고 있다. 부도체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체를 말하는데 양자 터널 현상으로 전자를 통과시켜, 즉 전기를 흐르게 하여 반도체 역할을 하게 한다니 놀랍다. 심지어는 항성의 핵융합 반응도 양자 터널 효과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한다. 현재 우리는 나노 기술과 반도체에서 양자 터널 효과를 이용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과학 기술이 아직은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한 수준은 아니다. 마치 인수분해를 깨우친 중학생이 미적분 문제를 대하는 것과 같다. 수학은 수학인데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해서 헤매는 꼴이다. 우리의 물리학의 현주소는 우주 대부분을 이루는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블랙홀의 실체도 명쾌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갈 길은 먼 것 같지만, 큰 문을 열고 들어갈 전야에 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양자역학적 현상 양자 터널 양성자가 핵력
2026.01.09. 14:41
━ 잠재성장률 넘는 2% 성장인데 왜 확대재정 ━ 성장양극화 핑계로 재정풀기 이어갈까 걱정 ━ 정년 연장은 청년 고용 위협하지 않도록 해야 정부가 올해 성장률 목표를 2.0%로 내걸었다. 재정경제부가 어제(9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2026년 경제성장전략’에서다. 한 달 전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1.8%+α’를 성장률로 언급했었는데 이번에 0.2%포인트를 더 높였다. 이는 올해 1.8%로 전망한 국제통화기금(IMF)·한국개발연구원(KDI)·한국은행 등 국내외 주요 기관의 전망치보다 높다. 정부의 성장률 전망은 단순한 경제 전망을 넘어 정부의 정책 의지를 담은 것이다. 올해 수출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호조를 이어가고 소비심리 개선과 증시 활성화로 인한 자산효과 등으로 내수도 살아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가 내세운 숫자가 무리한 장밋빛 전망은 아니다. 정부는 잠재성장률 반등을 최우선 목표로 제시했다. 맥을 잘 짚은 것으로 보인다. 2010년 3%대였던 우리 잠재성장률은 생산인구 감소와 투자 위축 등으로 최근 1%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경제의 기초 체력을 보여주는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것은 단기적인 경기 대응을 넘어 꾸준히 추진할 중장기 정책과제다. 정부는 반도체산업 지원을 위해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위를 신설해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어제 정부 부처가 이런 내용을 발표하는 ‘경제성장전략 국민보고회’에서 참석해 “소위 성장의 양극화는 단순한 경기의 차이가 아닌 경제 시스템이 던지는 구조적 질문으로, 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신년사에서 강조했던 ‘K자형’ 성장 양극화를 다시 거론한 것이다. K자형 성장이란 계층별로 경기 상승의 속도와 크기에 차이가 생기면서 성장 그래프가 알파벳 K자처럼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을 가리킨다. 이 대통령은 청년과 중소벤처기업, 지방이 모든 정책에서 최우선으로 고려되도록 세심한 배려를 주문했다. 특히 청년에 대한 언급은 주목할 만하다. 이 대통령은 “무엇보다 K자형 성장의 그늘이 미래를 짊어지는 청년 세대에 집중되고 있다”며 “고용 절벽에 내몰린 우리 청년의 현실을 국가적 위기로 엄중하게 인식하고,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난 40만 명이 넘는 청년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해야 한다. 청년을 위해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정년 연장 논의가 청년 일자리를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 목표처럼 올해 2.0% 성장을 이뤄낸다면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수준이다. 정부의 적극 재정과 고환율이 물가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거시경제를 잘 관리해야 한다. 올해 잠재성장률보다 더 높이 성장하는데 내년에도 확장재정이 불가피하다는 대통령의 인식은 문제가 있다. 경제 회복세가 뚜렷하고 위기 국면을 벗어났다면 지속가능한 재정을 위해 재정 규율을 강화하는 자세를 대내외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K자 성장 탓에 국민이 2.0%의 경제성장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핑계로 재정 풀기를 이어갈까 걱정된다. 정부의 올해 경제성장전략은 기획예산처가 분리되고 새롭게 출범한 재정경제부가 단독으로 내놓은 첫 작품이다. 세제와 국제금융 정책이 다수 포함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경제성장전략이 예산의 뒷받침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우리 경제의 중장기 정책과제와 일맥상통한 것인지 우려의 시각이 없지 않다. 부처 간 엇박자가 나오지 않도록 청와대가 잘 조율할 필요가 있다. 올해가 정부의 발표처럼 경제 재도약의 원년이 되려면 정부 내 정책 혼선의 여지부터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2026.01.09. 8:34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미국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재판을 받는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대통령만이 아니다. 60만 난민들이 미국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미 정부는 지난해 베네수엘라 출신 이주민의 임시보호지위(TPS)를 박탈한다고 밝혔다. 까닭은 “베네수엘라 상황이 개선돼 TPS가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TPS는 모국의 전쟁, 폭력, 자연재해 등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임시 체류와 취업을 허가하는 것이다. 중단 조치로 60만이 넘는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추방될 수 있다. 연방지법은 정부가 법적 검토와 절차 없이 TPS를 끝냈다며 위법 판결을 내렸지만 지난해 10월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손을 들어주며 중단 조치가 허용됐다. 이에 60만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갑자기 체류 신분이 없어졌다. 그리고 일자리를 잃었다. 그 뒤 정부는 TPS 대신 난민 신청을 하라고 밝혔는데 조건이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려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미 정부가 지난해 TPS 중단을 밝히며 “상황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던 베네수엘라에 쳐들어가 대통령 부부를 잡아 왔다. 상황이 개선된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럼 TPS 신분은 다시 되돌려줄까? 그럴 리는 없다. 유엔은 미 정부가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체포’한 것은 ‘회원국이 다른 국가의 주권, 영토 보존, 정치적 독립에 대해 무력 사용 또는 위협을 해서는 안 된다’는 헌장 제2조 4항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유엔 협약을 오래전부터 어기고 있었다. 난민 심사 금지 조치 등으로 박해 위험이 있는 국가로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난민협약 ‘강제송환금지’를 수없이 어겼다. 또 2026년 회계연도 난민 상한을 7500명으로 정해, 미국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낮췄다. 그래서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TPS 대신 난민 신청을 해도 승인을 받기가 어렵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게 한 것이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재판보다 이들 60만 명이 어떻게 될지를 더 살펴야 할 상황이지만 앞날은 캄캄하다. 한때 한인들도 IMF 난민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1997년부터 외환위기로 한국에서 더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한 한인들이 대거 미국 방문 뒤 체류 기간을 넘기고, 캐나다 국경을 넘어와 지금의 서류미비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정확한 수치는 파악하기 힘들지만 최대 30만 명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 가운데 최대 10만 명이 서류미비자로 지금도 미국에 사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지만 사실상 난민이었다. 그래서 지금 베네수엘라 사람들의 처지를 남의 얘기로만 여길 수 없다. 우리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아픔이다. 잡혀 온 뒤 미국에서 재판 중인 대통령을 바라보는 베네수엘라 ‘난민’들의 심정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착잡할 듯하다. 베네수엘라 출신 등 미 전역 46개 주에 17만3000여 명의 라틴계 회원이 있는 카사(CASA)는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불법 군사 도발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 카사는 베네수엘라 가족들과 연대하며, 외교·책임·돌봄으로의 즉각 전환을 촉구한다. 베네수엘라의 앞날은 강압·폭력·외부의 통제 없이, 오직 베네수엘라 국민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베네수엘라 대통령 베네수엘라 대통령 베네수엘라 상황 지난해 베네수엘라
2026.01.08. 20:45
“Bonane!(Happy New Year!)” 새해 첫날, 하우스 오브 홉 고아원의 디렉터 에도아르에게서 새해 인사 메시지가 왔다.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우리의 안부를 물었다. 우리가 잘 있다고 답하자, 그도 조심스럽게 근황을 전해왔다. 아이들은 비교적 안정되어 있지만, 여전히 주변 상황이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나라 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없고, 갱단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여전히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쁜 소식을 덧붙였다. 새해에는 아이들 가운데 두 명이 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황무지에 꽃이 피듯, 새해에도 아이들의 삶에 작은 기적들이 계속 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뒤이어 현지 스태프 조나단이 보내온 소식은 그리 밝지 않았다. 연말연시 총소리는 다소 줄었지만, 여러 고아원에 아픈 아이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대부분의 고아원은 물이 부족해 씻는 일조차 쉽지 않고, 그 때문에 아이들이 피부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석유 수입이 원활하지 않아 주유소에서 기름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고, 그 여파로 교통비와 쌀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굶주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전기가 안 들어와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는 날도 잦아 외부와 연락이 끊기는 날도 허다하다. 새해에는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아지길 바랐던 소망이 다시금 현실의 벽에 부딪히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키는 고아원 원장들은 오히려 더 굳건했다. 모두 같은 마음으로, 더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다섯 명의 아이를 대학에 보내게 된 브니엘고아원의 마담 도리스는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다고 했다. “끝까지 해보겠다”는 그녀의 각오가 오히려 내 마음을 다잡게 했다. 우리가 지원하는 대부분의 고아원은 십 년, 혹은 이십 년을 훌쩍 넘겨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우리 역시 아이티 고아들과 울고 웃으며 지내온 지 어느덧 열여덟 해다. 아이티는 점점 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생존 자체가 버거운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포기한 것은 아니다. 히브리서 3장 14절은 이렇게 권면한다. “우리가 처음 믿을 때에 가졌던 확신을 끝까지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을 함께 누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이티를 생각하며 묵상하는 이 말씀은, 늘 그랬던 것처럼, 숨을 죽이며 한 걸음씩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이들과 함께 우리 역시 ‘끝까지 같은 걸음으로’ 가라는 주님의 부르심으로 다가온다. 지난해에도 우리는 사랑과 격려의 손을 내밀어 준 많은 이들 덕분에 고아들과 다시 일어설 꿈을 나눌 수 있었다. 어둠이 짙을수록 작은 빛이 더 또렷이 보이듯, 고난 속에서 내민 손길 하나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올해도 우리는 그 부르심을 따라 아이티를 위해 계속 심부름을 하려 한다. 살렘 고아원의 쟌 목사는 새해 인사 끝에 이렇게 말했다. “그냥 늘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천천히 살아가야지요.” 그 마음을 받아 기도한다. 새해에도 ‘끝까지 같은 걸음으로’, 힘겨운 길을 걷는 아이들과 함께 참빛이신 주님께 나아갈 수 있기를.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걸음 살렘 고아원 고아원 원장들 새해 인사
2026.01.08. 20:43
2025년 12월 20일, 뉴저지 해켄색(Hackensack) Riverside SQ Mall에 있는 Riverside Gallery에서 내 개인전 오프닝을 했다. 작업실에 틀어박혀 바람도 쐬지 못하고 조명도 받지 못한 66점 작품이 갤러리 조명 아래에서 행복한 듯 밝은 모습을 띠고 있었다. 나는 평생 고등학교 시절과 같은 몸무게를 유지한다. 아직도 40여 년 전 옷들을 서너 벌 간직하고 있다. 옷장에 갇혀 나들이 못 하는 옷들에 미안해서 일 년에 한두 번씩은 입고 바람도 쐐주고 햇볕도 받게 한다. 내 작품들에도 전시회를 통해 바깥세상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물건 사는 것을 싫어하지만, 일단 가진 물건에는 사람 같은 동질감을 느끼며 중얼거리는 버릇이 있다. “미안해. 어두운 옷장 안에 가둬서. 내 작품들에도 미안하구나. 작업실에 처박아 둬서.” 하물며 오래전에 타던 빨간 차는 효녀 딸이라고 불렀다. 차를 타고 안자마자 “효녀야, 오늘도 안전하게 돌아다니다가 무사히 집에 오자.” 11년 동안, 사고 한번 없이 말 잘 듣던 차를 버리고 욕심내어 BMW 새 차를 뽑았다. 딜러 주차장에서 왜 나를 두고 가냐는 멀뚱한 모습의 효녀 빨간 차가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것을 보며 눈물 흘렸다. “미안해. 너를 여기에 혼자 두고 나만 잘살겠다고 떠나서.” 서울에서 만난 동기 왈, 너를 만나러 오기 전, 차를 폐차시키고 한 묶음의 꽃다발을 놓고 오는 중이야. 그녀의 여린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졌나 보다. “우리 효자 안전운전할 거지. 너를 믿는다.” BMW가 든든한 아들 같은 느낌에 효자라고 불렀다. 4만 마일까지는 잘 달리다가 워런티 끝나자마자 고속도로에 서서 말썽부렸다. 한번 고장 날 때마다 엄청난 수리비가 들었다. 불효자와 매일 마주하는 것이 괴로웠다. 미련 없이 팔아 없앴다. 사물에도 애착을 갖는 나에게 전시회가 끝나면 어찌 될까? 내 작업을 누군가 좋아서 가져가지 않으면 어두운 작업실에 도로 들어가 처박힐 것이다. 갤러리에서 밝게 빛나는 작품들을 둘러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다행히도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내 작품이 좋다고 사길래 갤러리 주인에게 가격을 낮추라고 했다. 작품이 아늑한 집에 걸려 그들을 기쁘게 하고 편안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일수록 내가 끼고 있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분에게 사랑받기 위해 그림 가격을 낮춘다고 세상이 쪼개지는 일도 아니다. 사랑하는 자식일수록 멀리 보내 스스로가 홀로 서서 빛을 내며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과 같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마음 갤러리 조명 riverside gallery 갤러리 주인
2026.01.08. 20:42
코코는 단거리 달리기를 좋아했고, 기계체조를 취미로 하던 소녀였다. 또래 관계도 원만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딸이 인스타그램이라는 소셜미디어 계정을 만드는 것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옆에서 지나가며 들여다보면, 화면 속에는 주로 음악이나 무용 영상이 흘러나오는 듯 보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알지 못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3년 전 가족이 LA로 이사 오기 전, 뉴욕에 살던 시절부터 코코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성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 남성은 코코에게 다정하게 접근하며, 마치 ‘큰 오빠(Big Brother)’ 같은 존재로 자신을 포장했다고 한다. 17번째 생일을 맞기 직전, 이주를 앞둔 어느 날 코코는 집 근처에서 그 남성을 만났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했다. 그가 건넨 펜타닐(Fentanyl) 때문이었다. 펜타닐은 일반 마약성 진통제보다 수십 배에서 백 배 이상 강력한 합성 오피오이드다. 올해 12월 초, 미국의학협회 공식 학술지(JAMA)에는 ‘소셜미디어 사용과 청소년 인지 능력 변화’에 관한 연구 논문이 실렸다. 샌프란시스코 의대 소아과·정신과 연구진이 9~11세 학생 6554명을 대상으로 장기간 추적 조사한 결과다. 남학생이 51.1%, 여학생이 49.9%로 성비는 거의 비슷했다. 연구진은 이들을 하루 평균 소셜미디어 사용 시간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눴다. 첫째,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거의 사용하지 않는 그룹(57.6%)이다. 이들은 2년 뒤인 13세가 되었을 때도 하루 평균 20분(0.3시간) 정도만 사용했다. 둘째, 9세 때는 사용량이 적었지만 13세에 하루 평균 1.3시간으로 늘어난 그룹이다. 셋째, 9세 때는 낮은 수준이었으나 13세에는 하루 3시간 이상 사용하는 ‘급증 그룹’이다. 13세 시점에서 인지 능력 검사를 실시한 결과, 두 번째와 세 번째 그룹 모두 첫 번째 그룹에 비해 학습·집중·기억 능력이 유의미하게 낮았다. 연구진은 그 원인으로 수면 장애를 우선 지목했다. 뇌 발달과 학습에 필수적인 수면 시간이 소셜미디어 사용으로 침해됐을 가능성이다. 또 다른 가설은 잦은 결석, 과제 미이행, 수업 집중력 저하가 누적되며 감정 조절 능력까지 떨어졌을 가능성이었다. 필자는 한국인 자살 예방과 정신건강 인식 개선을 목표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 지 3년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소셜미디어의 긍정적 기능도 경험해왔다. 하지만 틱톡은 사용해본 적이 없어, 휴대전화로 사용법을 검색해봤다. 화면에는 “크리에이터가 콘텐츠를 올리면 오른쪽 상단의 종 모양을 누르라”는 설명이 이어졌고, “답변이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다”, “너지(nudge)나 알람이 올 수 있으니 기다리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그 설명 아래로는 ‘Best (un)dressed’라는 광고와 함께, 거의 벗다시피 한 젊은 모델의 브라와 언더웨어 사진이 클로즈업되어 반복 노출됐다. 열세 살 아이가 이런 화면을 마주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과연 잠을 잘 수 있을까. 할머니 나이인 필자가 보아도 머리가 아찔해졌다. 코코의 이야기를 전한 LA타임스는,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거대 테크 기업들이 밀집한 캘리포니아가 어린이들을 이런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목소리를 함께 전했다. 2024년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13~17세 청소년의 약 절반이 소셜미디어를 “거의 계속해서” 사용한다고 답했다. 열 명 중 아홉은 유튜브를 이용하고, 여섯은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며, 55%는 스냅챗을 쓴다. 캘리포니아주가 아동·청소년 소셜미디어 사용을 규제하는 법을 제정하자, 메타·구글·틱톡 등은 이미 법적 대응에 나섰다. 강력한 규제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코코의 어머니는 말했다. 딸이 생명을 잃기 훨씬 이전부터, 밝고 사랑스러웠던 코코는 이미 소셜미디어에 중독돼 있었고 좋아하던 운동과 취미에서 멀어졌다고. 상담사의 권유로 온라인 사용 시간을 제한하자, 모녀 간에는 끊임없는 갈등이 시작됐고 관계는 점점 무너졌다. “아이들이 자기 방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이 미디어들은 약탈자가 돼서 아이들의 침실로 들어오고 있어요. 마치 현관문을 열고 걸어 들어오듯이 말이에요.”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약탈자 침실 소셜미디어 사용 소셜미디어 계정 사용 시간
2026.01.08. 19:57
과연 모든 사람에게 가장 큰 필요는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만약 누군가 그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지식이나 정보, 재산이나 즐거움 같은 차원의 필요였다면, 인류는 이미 그에 걸맞은 위대한 선물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지니는 가장 깊은 필요는 무엇일까. 지난 한 해의 여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서로에게 선물을 건넨다.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선물은, 지나온 시간을 잠시라도 멈춰 서서 돌아볼 수 있는 이즈음의 시간 자체가 아닐까 싶다. 각자에게 주어진 이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선물이다. 지난 한 해 큰 근심이나 아픔 없이 지낼 수 있었다면, 그 행복을 감사로 누리면 된다. 혹시 근심과 아픔이 동반된 여정이었다면, 가장 낮은 자리로 임하신 성육신의 의미를 개인적으로 더 깊이 묵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또 한 해의 시간을 살아냈다.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나이의 언덕을 하나 더 넘어온 셈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삶의 부서지기 쉬움은 세대를 막론하고 더해진다. 병원 원목으로서 환자들과 만날 때, 병리학적 안위보다 영적 안목을 더 많이 나누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병약함과 낙망, 힘겨운 치료의 과정을 지나온 이들에게 ‘마음의 평화’는 이전과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적 안목이란 단순히 교회 출석이나 종교적 실천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영성의 자세다. 새날을 기다리며 질병과 낙망, 회복과 소망을 돌아보고, 중년과 노년에 접어들며 삶의 목적을 다시 정의해 보는 대화다. 시간과 노화, 사랑과 상실 사이에서 생명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살피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 ‘기계문명의 시대’라고 불러왔다. 요즘은 여기에 더해 ‘낙망의 시대’라는 이름도 붙인다. 자동화와 인공지능, 눈부신 기술 발전이 편리함을 제공하며 한때 인류가 희망의 끈을 붙잡은 듯 보이지만, 정작 낙망의 감정이 짙어지고 있는 현실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나는 다시 극심한 절망의 시대를 통과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눈을 돌리게 된다. 나치 강제수용소라는 극한의 상황을 겪은 한 정신의학자는, 자유를 얻은 지 불과 몇 달 만에 강단에 서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결코 낡지 않은 메시지를 전했다. 어제 삶의 의미에 대한 긍정이 내일의 희망을 낳았고, 그 희망이 오늘을 버티게 했다는 고백이다. 그는 모든 절망적 환경과 경험 속에서도 생명에 대한 정의는 끝내 퇴색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빅토르 프랭클의 『그럼에도 삶에 예스라 말하다(Yes to Life In Spite of Everything)』에 담긴 통찰이다. 병상 곁에서 수많은 사람의 진지한 이야기를 들으며 배운 것이 있다. 각자의 가장 큰 필요가 채워지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귀한 영적 경험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모든 사람의 가장 깊은 필요는 여러 차원을 넘어, 마음과 영혼의 평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성서는 성육신 사랑의 목적을 이렇게 전한다. “땅에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새해의 새로운 시간 여정 속에서, 우리 모든 교민 가정과 일터마다 건강과 평화가 늘 함께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김효남 / HCMA병원원목협회 디렉터열린광장 낙망 정작 낙망 낙망 회복 시간 여정
2026.01.08. 19:55
나이가 좀 든 이들은 월간잡지 '샘터'를 기억할 것이다. 작고 얇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뜻밖에 가슴을 울리는 글들이 알차게 실려 있던 잡지, 맑고 시원한 물 찰랑거리는 샘터 같은 책…. 개인적인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이들도 꽤 있을 것 같다. 그 월간 샘터가 2026년 1월호(통간 671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창간 56년 만이다. 무기한 휴간에 대해 김성구 발행인은 잠시 쉼표를 찍는 것이고, 힘을 길러서 맑은 물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스마트폰이 종이책을 대체하고 영상 콘텐츠의 수요가 활자 미디어를 월등히 뛰어넘는 시대적 흐름을 이기지 못한 데 따른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독서 인구의 감소, 인쇄 매체의 전반적 쇠퇴로 영상 콘텐츠가 활자 미디어를 뛰어넘는 시대적 흐름을 못 이겨 일단 멈출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한 시대가 저물고, 종이책의 시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위기를 실감하며 마음이 짠하다. 출판 잡지계 전체에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월간 샘터는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하며 1970년 4월 창간된 한국 최장수 교양지다. 창간발행인 고(故)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샘터는 거짓 없이 인생을 걸어가려는 모든 사람에게 정다운 마음의 벗이 될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스타 필자’들의 맛깔나는 글과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쓴 진솔한 글들이 어우러져 공감대를 이루며 큰 사랑을 받아, 디지털 시대 전인 1990년대 초까지는 월 50만 부 판매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시인이자 수필가 피천득 교수, 법정 스님, 소설가 최인호, 이해인 수녀, 동화 작가 정채봉, 장영희 교수 등이 지면을 빛냈다. 소설가 한강, 정호승 시인 등 많은 문인들이 샘터의 맑은 물을 마시며 성장했다. 최인호는 자전적 이야기인 연재소설 〈가족〉을 34년간, 법정 스님은 수행 중의 사색을 기록한 〈산방한담〉을 16년간 연재했다. 장욱진, 천경자, 이종상 등 유명 화가들이 그린 표지 그림과 삽화로도 유명하다. 샘터가 월간지로 사랑받아 온 비결의 핵심은 독자들의 사람 냄새 물씬한 소박한 삶의 이야기들이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만1000여 개에 이르는 독자의 사연과 목소리를 담았다. ‘어머니에게 편지 보내기’ 공모에서는 한 달에 1만여 통의 편지가 날아들기도 했다고 한다.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깊은 공감과 감동, 웃음을 자아내는 소박한 삶의 이야기들은 많은 이들을 위로했다. 휴간호인 2026년 1월호의 표지는 창간호와 같은 반 고흐의 그림 ‘장미와 해바라기’로 꾸며졌고, 특집도 창간호와 마찬가지로 ‘젊음을 아끼자’를 주제로, 창간호에 기고했던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오랜 단골 필자였던 이해인 수녀, 편집부 기자로 근무했던 정호승 시인 등의 글이 실렸다. 창간호와 같은 표지그림과 특집을 실은 의미를 더듬어 보게 된다. 월간 샘터는 지난 2019년에도 그해 12월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 방침을 발표했으나, 당시 기업 후원과 애독자들의 구독 참여 등 각계에서 뜨거운 성원이 잇따르면서 재발간되어 발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번에는 어떨지? 한 시대가 저물고 새 시대가 오는 현장에 서 있는 심정은 참 복잡미묘하고 서글프다. 나 같은 아날로그 글쟁이의 마음은 한층 심하게 일렁인다. 세상이 변해도 소중하게 지켜야 할 가치는 있는 법이다. 그걸 지켜내는 것이 성숙한 사회의 저력이다. 그래서 김성구 발행인의 말에 더 희망을 걸게 된다. “월간 샘터는 잠시 쉬어 가지만… 물질보다 삶의 태도를 중시하는 샘터의 정신을 계속 지켜나갈 방법을 모색해나가겠습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샘터 휴간 샘터가 월간지 월간잡지 샘터 월간 샘터가
2026.01.08. 19:53
2025년 11월,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이하 다우 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4만8000선을 돌파했다. 다우 지수가 처음 1만을 넘기기까지는 무려 103년이 걸렸지만, 그 이후 상승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다. 1만에서 2만까지는 18년, 2만에서 3만까지는 4년, 그리고 3만에서 4만까지는 불과 3년 반이 걸렸다. 이처럼 상승 속도가 빠른 이유는 단순하다. 1만에서 2만으로 오르려면 100% 상승이 필요하지만, 3만에서 4만으로 가는 데는 33% 상승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지수가 높아질수록 같은 숫자만큼 오르는 데 필요한 시간은 자연스럽게 짧아진다. 미디어는 연일 사상 최고치 소식을 전하며 투자자들의 마음을 흔든다. “지금이라도 들어가야 하나?”라는 조급함이 생긴다. 이미 투자한 사람은 고점이 아닐까 걱정한다. 아직 투자하지 않은 사람은 가격이 너무 비싸 보인다는 이유로 망설인다. 여기에 “내가 들어가면 꼭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도 따라붙는다. 이런 심리는 투자자라면 누구나 겪는다. 1950년 이후 주식시장은 수없이 새로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해 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최고점에서 투자한 경우에도 장기 평균 수익률이 연 10.3%에 달했다는 점이다. 반면 다른 시점에 투자한 사람들의 평균 수익률은 11.3%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즉, 운이 좋지 않아 ‘최고점’에서 투자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산은 결국 성장해 왔다는 뜻이다. 작년 주식시장은 30번이 넘는 새로운 최고점을 기록했다. 오늘의 최고점이 내일의 최저점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또 다른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단기적인 가격 움직임에 집착하기보다, 시장에 계속 머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투자자는 누구나 “내가 사면 떨어질 것 같다”라는 불안을 느낀다. 실제로, 단기적으로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하지만 주식시장의 역사적 흐름을 보면, 두려움이 얼마나 짧은 순간인지 알 수 있다. 통계적으로 하락장은 평균 10개월, 상승장은 평균 4.5년 동안 이어진다. 결국 시장은 잠시 흔들려도 장기적으로는 성장 방향을 향한다. 다우 지수가 4만8000을 돌파한 것도 그 긴 흐름의 결과다. 투자 전에 꼭 점검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첫째, 투자 목적에 맞는 위험 조절이다. 10년 이상을 바라보는 노후 준비 자금이라면 일정 수준의 변동성을 감수할 수 있다. 반면 이미 은퇴했다면 수익보다 자산의 안정성을 더 중시해야 한다. 둘째,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다. 자산은 주식, 채권, 현금으로 나누는 것이 기본이다. 지난 90년간 주식의 연평균 수익률은 약 10%, 채권은 약 5.5%였다. 채권은 수익률은 낮지만, 변동성이 작아, 투자자의 상황에 따라 비중 조절이 필요하다. 셋째, 분산 투자다. 시장의 방향도, 어떤 산업이 오를지도 미리 알 수 없다. 따라서 미국과 해외 주식, 대형주와 중소형주, 부동산 등 여러 자산군에 분산 투자해야 한다. 채권 역시 단기·중기·장기로 나누어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 10년간 미국 주식시장은 연평균 약 14%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투자금을 약 네 배로 키웠다. 이런 성과는 시장을 정확히 맞춘 사람이 아니라, 시장에서 떠나지 않은 사람이 얻은 보상이다. 주식시장의 역사는 한 가지 사실을 반복해서 증명해 왔다. 시장을 맞추려 애쓰기보다, 원칙을 지키며 꾸준히 투자한 사람만이 주식시장의 높은 수익을 받는다. 새해를 맞아 제대로 하는 투자로 우리가 모두 큰 부자 되기를 희망해 본다. 이명덕 / 경영공학 박사재정칼럼 최고점 다우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최고점 다우 연평균 수익률
2026.01.08. 19:52
고대에는 순장(殉葬)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순장이란 통치자 등 신분이 높은 사람이 사망했을 때 신하를 죽여 함께 묻거나 남편이 죽으면 아내를 뒤따르게 하는 장례 풍속을 말한다. 이와 관련해 생겨난 말이 ‘미망인’이다. 미망인(未亡人)은 남편이 죽었는데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이다. 춘추시대 역사를 기록한 책인 『춘추좌씨전』의 ‘장공편’에 ‘미망인’이란 표현이 나온다고 한다. ‘미망인’은 남편을 따라갔어야 하나 그러지 못해 죄를 지은 사람이란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남편과 사별한 여자가 남들에게 스스로를 낮추어 이르는 말로 주로 사용돼 왔다. 세상이 변한 요즘에 생각해 보면 순장이란 미개하기 짝이 없는 풍습이고 미망인이라 부르는 것 역시 사리에 맞지 않는다. 스스로 겸손하게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제삼자가 미망인이라 부르는 것은 예의에도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망인’이란 말이 요즘도 쓰이고 있다. 생전에 이름을 날린 남자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용어처럼 이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미망인’을 대신할 말이 마땅치 않은 게 사실이다. 지혜를 모아 대체어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우선은 남의 아내를 존대하는 말로 ‘부인’이 있으므로 이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몰군경 미망인’의 경우는 ‘전몰군경 부인’이라고 해도 별문제가 없다. ‘미망인 재산 상속’이라면 ‘남겨진 부인 재산 상속’이라고 해도 된다. 우리말 바루기 미망인 전몰군경 미망인 미망인 재산 재산 상속
2026.01.08. 19:49
최근 고국에서 ‘저속 노화’라는 말이 큰 화제가 되었다. 노화를 피할 수는 없지만,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는 메시지는 많은 중장년층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이 개념을 대중화한 인물은 노인학 전문의 정희원 박사다. 그는 여러 강연과 유튜브, 저서를 통해 노화를 늦추는 핵심 원칙을 비교적 단순명료하게 제시했다. 그가 강조한 저속 노화의 요지는 세 가지였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근육을 키워야한다는 것이다. 노화의 속도는 근육 감소와 비례하므로, 나이가 들수록 유산소 운동보다 근력운동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둘째, 하루 7시간 이상의 충분한 수면이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신체 회복과 호르몬 균형, 인지 기능 유지의 핵심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셋째, 스트레스를 관리하라는 것이다. 만성 스트레스는 염증과 노화를 가속화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라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진 그의 사생활 논란은 그에 대한 대중의 신뢰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자신을 도왔던 여자 연구원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의혹과, 그녀와의 불륜 가능성까지, 그는 상대방과 맞고소 뿐만 아니라 경찰 조사까지 받는 상태에 놓였다. 드러난 모습과 공개된 그의 녹취나 메세지를 보면, 그는 늘 잠이 부족했고 운동할 시간도 없었으며, 늘 죽고 싶다고 할만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자신이 주장한 ‘저속 노화를 위한 삶의 태도’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최근에 어떤 분야의 ‘전문가’를 만난 적이 있다.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그의 자랑으로 흘러갔다. 자신이 얼마나 바쁘고, 얼마나 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출장을 얼마나 자주 다니는지. 나는 말을 할 틈이 없었다. 한 시간 남짓한 만남이 끝났을 때,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들었지만, 그 사람의 자기 자랑 외에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외모와 건강에는 집착하면서, 말은 많아지고, 잔소리는 늘어난다. 체력을 유지하려 애쓰면서도, 관계에서는 경계를 잃고, 젊은 이성에게 추근덕거린다. 몸은 ‘저속’으로 관리하면서, 정신과 태도는 ‘저속’해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나이 드는 모든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노화의 모습이다. 저속 노화는 몸은 천천히 늙도록 유지하면서, 정신과 행동은 품위를 갖추며 깊고 무겁게 천천히 해야 한다. 근육을 키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내면을 단련하는 일이다. 잠을 충분히 자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인간 관계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는 것이다. 자신이 스트레스를 피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남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절제가 필요하다. 판단도 천천히 해야 하며, 무엇보다 자기확신과 자기자랑을 내려놓아야 한다. 근육은 키우면서, 자기 과시는 줄이고, 듣는 시간은 늘리면서, 말하는 시간은 줄여야 한다. 육체는 열심히 꾸미고 관리하면서, 정신은 추하게 나이가 든다면 저속 노화가 아니라 ‘저속한 노화’로 가는 것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활력 저속 노화 만성 스트레스 정신과 태도
2026.01.08. 13:54
━ 공론화 핑계로 날 지새울 이유도, 여유도 없어 ━ 신규 원전 빨리 확정해 불확실성 걷어내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문재인 정부 시절의 탈(脫)원전 정책의 오류를 시인하고 원전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정책 주무장관이자 문 정부 시절 탈원전론을 펼쳤던 인사의 자기 고백이자 반성이다. 김 장관은 지난 7일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2차 토론회에서 “한국은 반도체 등 중요한 산업을 많이 갖고 있어서 전력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면서 “마음 같아선 전체 전력을 재생에너지로만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그렇게 하긴 쉽지 않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동서 간 길이가 짧아 태양광 발전에 필요한 햇빛이 비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짧다는 점을 언급하며 “최근에서야 그 문제를 느꼈다”고 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 때 국내에선 원전을 짓지 않겠다고 하면서 원전 수출을 하는 게 한편으로는 궁색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신규 원전 건설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김 장관은 과거 “탈원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했던 여권 내 대표적인 탈원전론자였다. 하지만 에너지 주무장관이 되면서 원전 없이는 AI(인공지능) 시대에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도 어렵거니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이란 한계도 극복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환경론자로서 탈원전 논쟁에 매달리다가는 더 중요한 ‘탈탄소’마저 불가능할 것이란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앞서 1차 토론회에서 그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탈원전 논쟁에 휩싸이면서 석탄도 빨리 퇴출하지 못하고 5년을 보내는 안타까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늦었지만 바람직한 인식 변화다. 문제는 달라진 현실 인식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번 토론회의 핵심 쟁점은 신규 원전 2기를 지을 것인지 여부다. 그런데 이 2기는 지난해 초 여야 합의로 마련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서 이미 짓기로 했던 것이다. 기후부는 이를 다시 공론에 붙여보겠다며 토론회를 열고 있고, 결론은 올 하반기 확정될 12차 전기본에 담겠다는 계획이다. 일단 신규 원전 건설에는 청신호가 켜졌지만, 여전히 일정표는 한가해 보인다.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2040년 석탄발전소 폐쇄’를 공약한 상황에서 현실적 대안은 원전밖에 없다. 게다가 AI 패권 전쟁이 불붙으며 전 세계가 질 좋고 값싼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원전 증설에 나선 것은 물론,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까지 원전 재가동에 나섰다. 이미 한번 합의한 원전 건설을 놓고 토론회를 열며 날을 지새울 이유도, 여유도 없다. 기왕에 전향적 입장을 밝힌 만큼 하루빨리 계획을 확정해 산업계가 맞닥뜨린 불확실성을 걷어주길 바란다.
2026.01.08. 8:34
━ 부양가족 수 부풀려 ‘로또 아파트’ 당첨받은 의혹 ━ 갑질, 투기 의혹까지…공직 적격에 심각한 의심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가족이 부양가족 수를 부풀려 ‘로또’로 불리는 서울 강남의 수십억원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현행 청약제도에서 인정하는 부양가족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부정한 수법을 동원했다는 의혹이다. 핵심 경제부처 장관 후보자로서의 적격 여부에 심각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실에 따르면 이 후보자의 남편은 2024년 7월 모집공고가 나온 서울 서초구 반포동 신축 아파트 137A형에 청약해 당첨됐다. 청약 가점은 74점으로 81대 1의 경쟁을 뚫고 턱걸이 당첨됐다. 문제는 이 후보자 측이 부양가족 수를 부풀린 정황이다. 청약에서 인정하는 부양가족은 자녀의 경우 미혼이고 부모와 같은 주소에 거주해야 하는데 이 후보자의 장남은 2023년 결혼식을 올렸고, 용산구 아파트 전세를 배우자와 공동명의로 구하는 등 사실상 분가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후보자의 장남은 혼인신고와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채 세대원 상태를 유지했고, 청약 신청이 마감된 이튿날에야 신혼집으로 주소를 옮겼다고 한다. 청약 가점을 노린 의도적 행위가 아니었냐는 합리적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장남이 부양가족에 포함되지 않았더라면 당첨되지 못했을 점수였다. 청약점수 뻥튀기는 공급 질서 교란행위에 해당하는 불법이다. 사실로 확인되면 계약 취소나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해질 수 있는 행위다. 이 후보자 측은 중앙일보에 “성년인 자녀의 혼인신고에 대해 부모가 개입할 수 없었다”며 “장남은 주말에 이 후보자 자택에서 살았고, 용산 신혼집은 며느리가 살았다”고 해명했다. 상식적으로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다.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 의혹에 대해선 그 어느 사안보다 여론이 엄중함을 이 후보자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국민 눈높이의 수준에서 납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해명이 나와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보수 인사인 이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통합과 실용을 실천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진영을 불문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려는 시도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자격이 충분한 인사여야 한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이 후보자에게는 보좌진 갑질·폭언을 시작으로 상속·증여세 회피 의혹, 영종도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잇따라 불거진 상태다.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인사청문회를 통해 적격 여부를 가리도록 돼 있다. 하지만 국민 여론이 엄중한 부동산 의혹에 대해서만큼은 청문회 이전이라도 명쾌한 해명을 해주기 바란다.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스스로 후보 자격을 내려놓거나 청와대가 나서 지명 철회를 검토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2026.01.08. 8:32
2022년 11월 말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한 후 3년 남짓밖에 안 지났지만, 벌써 AI는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산업현장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챗GPT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코파일럿, 그리고 구글의 제미나이 같은 AI 프로그램들은 문서 요약이나 자료 조사에 탁월한 성능을 보여 이미 학교나 기업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챗GPT 3년 만에 일상생활 큰 변화 10년 내에 범용AI가 출현할 전망 AI시대 5년은 영원에 가까운 시간 교육 제도 변화는 거북이 걸음만 예를 들어 대학교에서는 에세이를 쓰는 숙제나 시험에서 학생들이 AI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그 대책을 마련하는데 골치를 앓고 있다. 또한 AI는 고용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법률사무소에서는 과거 판례 조사를 주로 하던 젊은 변호사들 채용을 줄이고 있고, AI가 컴퓨터 코딩을 할 수 있게 되자 많은 IT회사들이 프로그래머들의 채용을 줄이거나 해고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유수 대학의 컴퓨터 전공 졸업생들까지 취업에 애로를 겪고 있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변화가 매우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빅테크 회사들이 사운(社運)을 건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AI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고 있고, 여기에 중국 회사가 뛰어들어 미·중 간의 경쟁이 불꽃을 튀기기 때문이다. AI 기술의 선점이 앞으로 회사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 믿고 모두 전력투구를 하는 상황이다. AI가 이처럼 빨리 발전한다면 앞으로 10년 이내에 모든 면에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범용AI(AGI)가 출현할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의 AI는 특정한 분야에서만 인간을 도울 수 있다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앞으로 범용AI가 출현한다면 그 변화의 크기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과연 인류 사회가 적응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가히 인류 문명의 전환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중차대한 시기에는 잠시의 방심이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기에, 우리나라도 ‘AI 3대 강국 도약’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는 등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AI 3대 강국 도약’ 실현을 위해 추진되는 정책으로는 AI 컴퓨터 인프라 확충, 독자(소버린) AI 프로그램 개발, AI 관련 산업 발전, AI 인재 양성 등이 있다. 물론 모두 필요한 일이지만, 이들은 모두 ‘공급자’ 위주의 정책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하였듯이 AI는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기술이다. 일부 AI 관련 종사자(공급자)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가 AI 때문에 하는 일이 바뀌거나, 없어지거나,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는 등 영향을 받는 기술인 것이다. 예를 들어 AI 중심의 제4차 산업혁명 사회를 주창하는 세계경제포럼 (WEF)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2/3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종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므로 AI 종사자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이에 대한 대비가 되어야 한다. 즉 교육을 통해 국민 모두에게 AI시대에 대비할 능력을 키워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이 아직도 과거 산업화 시대의 ‘따라가기’ 모델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교실에서는 암기식 교육이 이루어지며, 5지선다의 객관식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학생들의 창의성을 말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교육 정책의 변화는 긴 준비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속도가 매우 느리다. 예를 들어 2015년에 개정된 교육과정은 2020년에야 전면 시행되었고, 대입 수능시험에 온전히 적용된 것은 그 후로도 3년이 더 걸렸다. 심지어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 수능과 내신에서 서술형 문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된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검토 중이다. 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보면 5년, 10년이라는 시간은 영원에 가까운데, 이처럼 우리나라 교육 제도의 변화는 거북이 걸음이다.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AI 기술에 적응하기 위해 이제 우리는 좀 더 가벼워져야 한다. 우선 AI시대에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지부터 논의하자. 계산기가 흔해 빠진 시대에 학생들에게 암산을 가르칠 필요는 없듯이, 챗GPT가 세상의 지식을 모두 요약해 주는 시대에 학생들에게 과거 지식을 외우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보다는 남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비판적 질문을 하고, 현장의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AI 시대에 적합한 교육과정이 마련되면 이를 신속히 도입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자. 과거처럼 5년, 10년을 허비하면 세상은 벌써 저 멀리 가 있을 것이다. AI시대에 대비한 교육 개혁을 하루빨리 서둘러야 할 이유이다. 오세정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2026.01.08. 8:30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발탁은 대한민국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어떤 사람이 장관이 돼야 하는가. 이재명 대통령은 ‘통합’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 인선은 통합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이 후보자는 보수 진영의 존경을 받는 이도 아니고, 보수 진영이 천거하지도 않았다. 보수 야당과의 협의도 없었다. 통합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가치지만, 살펴봐야 할 다른 가치도 많다. 고위 공직자 되려면 인성이 중요 이 후보자, 확장 재정 옹호 모양새 이 대통령 ‘용인’에 의구심 커져 이 후보자에겐 탄핵 반대 활동 말고도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의 인성(人性)과 정부 내 역할이다. 우선 인성. 이 후보자가 국회의원 시절 인턴 직원에게 했다는 폭언(“널 죽였으면 좋겠다” 등)은 귀를 닫고 싶을 만큼 소름 끼친다. 해당 인턴은 방송 매체에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 사람에 대한 예의도 고위공직자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백번 맞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인사청문회 검증을 지켜보겠다고 한다. 무엇을? 우리 사회가 지도층의 언어폭력과 갑질을 어디까지 용인하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인가. 만약 그 정도 언어폭력은 괜찮다는 인식이라면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이 후보자 가족의 엄마 찬스, 아빠 찬스,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연일 얹어지고 있다. 둘째는 이재명 정부에서 그의 역할이다. 이 후보자는 그간 진보 정권의 확장 재정과 이 대통령의 기본소득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해 온 인물이다. 청와대는 이 후보자가 ‘레드팀’(조직 내부에서 반대 입장을 제시해 문제 시정에 기여하는 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레드팀 전략은 이 후보자가 확장 재정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현실성 없는 얘기다. 확장 재정은 이재명 정부의 트레이드 마크다. 이미 올해 예산을 작년보다 8% 넘게 늘렸다. 중기재정계획엔 확장 재정이 앞으로도 계속돼 2029년 국가채무가 2025년(본예산 기준)보다 515조원 이상 많은 약 1789조원으로 불어나는 걸로 돼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8.1%에서 58%로 치솟는다. 이 후보자 스스로 재정 파수꾼의 사명감을 갖고 방만한 재정에 적극 메스를 대는 상황도 잘 그려지지 않는다. 이 후보자는 재정 수술의 전문가도 아니고, 사명감도 의문이다. 오히려 계엄과 탄핵에 대해 입장을 180도 바꾼 것처럼 확장 재정 옹호론자로 돌변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는 벌써 “재정이 적극적인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시동을 걸었다(6일 재정정책간담회). 결점 많은 사람이 중용되면 더 충성을 보인다는 세간의 말은 역시 틀리지 않는 것인가. 이 후보자 인선이 던진 파장은 크다. 여당은 이 대통령의 인선 원칙에 의구심을 품게 됐고, 야당의 적개심은 더 커졌다. 무엇보다 자괴감을 느끼는 국민이 많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낙점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그래서 중국 병법서의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남의 칼을 빌려 상대를 죽이는 계책)가 소환된다. 여기서 이 후보자가 ‘남의 칼’이고, ‘살’의 대상은 보수 진영이다. 일단은 성공으로 볼 수 있겠다. 이 후보자의 민낯은 보수 진영이 얼마나 엉터리였는가를 드러냈다.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세 번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이후 두 번 낙선했다. 공당의 검증이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가. 그래서인지 민주당은 태연자약하다. “국민의힘에서 다섯 번인가 공천했던데 다섯 번 공천할 때는 왜 가만히 있었는가”(정청래 민주당 대표)라는 식이다. 지난 공천은 국민의힘의 허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결격 인물을 장관직에 앉히는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될 수는 없다.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사실 차도살인지계는 위험하고 비겁한 ‘수’다. 이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예산처 장관 기용에 그런 정략을 썼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나라 안팎이 어렵다. 인사가 만사인데, 여러모로 잘못된 인사가 아닐 수 없다. 이상렬([email protected])
2026.01.08. 8:28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입주하는 공장을 전북 새만금으로 옮기라는 요구는 기존의 지역 산업 유치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친환경 에너지를 지렛대로 삼아, 이미 확정돼 추진 중인 국가 전략 산업 계획을 정치적으로 뒤집으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그랬다.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일부 전북 정치인들이 제기한 주장에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금이라도 전기가 많은 지역으로 옮겨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이 있다”고 동조하면서 문제를 키웠다. 논란이 커지자 8일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은 “클러스터 대상 기업 이전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이전은 기업이 판단해야 할 몫”이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클러스터 이전론에 선을 그은 모양새지만, 앞으로도 비슷한 요구가 이어질 가능성은 여전하다. 용인새만금 이전 요구는 무리 청와대 뒤늦게 “이전 검토 안 해” 지역 장점 살려 기업 선택 받아야 이번 새만금 이전 요구는 중앙정부를 움직여서 짓고 있는 공장까지 이전하라고 요구한 점에서 매우 부적절했다. 에너지 지산지소(지역 생산·지역 소비)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 기준으로 볼 때 새만금이 최적의 장소인지도 불분명하다. 정부의 전력통계정보시스템 자료를 보면 2024년 가장 많은 전력을 생산한 시도는 화력발전소가 밀집한 충남(10만3618GWh)이다. 자급률 기준으론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경북과 전남, 그리고 충남이 200%를 넘는다. 자체 소비 전력의 두 배를 생산해 절반은 다른 지역으로 보낸다는 의미다. 반면 전북(1만5878GWh)은 2024년 전력 생산이 충남의 15% 수준이고 자급률도 73%에 그쳤다. 새만금에 100% 재생에너지를 쓰는 RE100 산업단지를 조성한다고 하지만 전력 생산 시간이 제한된 친환경 에너지만으로는 반도체 공장이 쓰는 막대한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하다. 그렇다면 기존 전력 생산이 많거나 자급률이 높은 지역에서 친환경 에너지 시설을 보강할 테니 반도체 공장을 우리 지역으로 보내 달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할 텐가. 이렇게 되면 끝이 없다. 정치적 압박으로 기업의 선택을 왜곡한다면, 피해는 해당 산업과 국가 전체로 확산된다. 다만 지금처럼 수도권이 지방의 전력과 자원을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 모델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방에서 나오는 불만엔 타당한 문제의식이 있다. “전기는 주로 지방에서 생산하는데,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공장은 왜 수도권이 독식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지방이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수도권에서 걷힌 세수가 지방교부금과 국고보조금 형태로 지방에 지원되지만 이것만으로 수도권 집중을 정당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도 사실이다. 해법은 분명하다. 지방이 중앙정부를 향해 이전을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이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지를 만들어내는 경쟁으로 전환해야 한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업용수도 풍부해야 하고 인재가 정착할 수 있는 주거·교육·의료 환경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일본 규슈는 지방정부와 기업이 함께 인프라·인력·공급망을 장기간 구축한 결과 반도체 단지로 성장했다. 소니 등 일본 기업뿐 아니라 대만의 TSMC까지 규슈에 투자한 것은 지방이라서가 아니라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업들이 몰리는 미국 텍사스주도 마찬가지다. 2024년 기준으로 텍사스주는 미국 내 천연가스 생산 1위 지역답게 천연가스 발전 비중이 44%나 된다. 하지만 풍력 발전 비중이 24%, 태양광도 10%를 차지하는 등 신재생 에너지 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원자력과 석탄 발전도 뒤를 받치고 있다. 여기에 주 정부 차원의 과감한 세제 혜택, 대학과 연계한 인력 양성 등을 결합해 반도체와 첨단 제조업을 끌어들였다. 그 결과 삼성전자도 미국 내에서 텍사스를 핵심 생산 거점으로 삼았다. 이는 강제 이전이 아니라 기업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였다. 전북 정치권에서도 지금 당장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이전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현실론이 있었다. 새만금 지역에 국제학교를 신설하는 계획도 있다고 한다. 이런 노력과 준비를 통해 새만금을 기업 친화적인 곳으로 만드는 게 먼저다. 친환경 에너지 생산을 협상 카드가 아닌 경쟁력의 토대로 바꿔야 한다. 중앙정부의 역할은 지자체가 이런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 특정 기업의 공장을 특정 지역에 배정하는 것이 아니다. 수도권 역시 송전망 확충과 자체 발전소 건설 등을 통해 전력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언제까지 지방이 참아줄 것이라고 기대할 것인가. 김원배([email protected])
2026.01.08. 8:27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베네수엘라 공습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생포는 전술적으로 성공했을지는 모르나 전략적 함의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파는 아마도 지구 반대편 한반도에까지 미칠지도 모른다. 마두로 제거는 성공적이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잔혹한 정적 억압, 마약 밀매 그리고 쿠바 독재정권을 지지했던 마두로 정권의 몰락에 대해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거주 베네수엘라인들은 기뻐했고, 베네수엘라 국민도 앞날은 불투명하지만, 독재자가 사라진 것에는 내심 반색했을 것이다. 최선은 임시 대통령과의 협력 미 직접 통치, 국내 반발 가능성 아프간 철수 사태 재연되면 최악 이제 앞으로 벌어질 일을 놓고 우리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트럼프나 미국의 동맹국에 최선의 시나리오는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임시 대통령)이 미국과 손잡고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로 부상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베네수엘라 국민의 정치 참여를 보장해 이들의 무더기 해외 이주를 막고, 베네수엘라가 마약 밀매의 허브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이는 트럼프가 무력을 사용해 마두로를 축출한 것에 대한 입장차를 극복하고 미 동맹과 역내 파트너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과 베네수엘라 관계가 긴밀해지면 쿠바·러시아·중국에 대한 카리브해 국가들의 지지세도 약화시킬 수 있다. 반정부 시위가 거세지고 있는 이란 정부도 큰 압박을 느낄 것이다. 미국은 장차 쿠바에 대한 압력 수위를 높이려고 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중국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긍정적인 시나리오가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번 작전 이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 국민의 17%만이 마두로 제거 작전을 지지했다는 점에서 이번 작전의 성공으로 트럼프가 얻을 정치적 이득은 커 보이지 않는다. 핵무기와 사이버 역량, 엄청난 규모의 지상군을 보유한 중국·러시아도 크게 위축될 것 같지 않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제거 작전 성공 이후 수 주간 종적을 감추긴 했지만, 그의 아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아버지와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군사력을 갖고 있고, 이미 2018년 트럼프의 유명한 ‘화염과 분노’ 경고도 비웃은 바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트럼프에겐 성공일지 모르겠지만, 미국 의회나 전 세계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트럼프가 공언한 대로 미국이 석유와 가스를 통제하며 베네수엘라를 통치하는 그림이다. 이는 19세기에 성행했던 미국의 함포 외교와 유사한 것으로, 국제적 비난과 베네수엘라 내 반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게다가 베네수엘라 석유에서 나온 수익이 트럼프 일가나 측근들에게 돌아간다면 의회 조사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트럼프가 엡스타인 파일 공개를 저지하려고 했을 때 공화당 내 마가(MAGA) 세력의 이탈을 불러왔던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가 세력 일부는 이번 베네수엘라 침공에 격분하고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 이전이라도 이들이 청문회와 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민주당의 편을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칫 잘못하면 트럼프는 스스로 정치적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트럼프와 세계 모두에 불행한 결과인데 바로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에 대한 통제권을 잃는 상황이다. 로드리게스 부통령은 지금까지는 미국의 침공을 규탄하면서 마두로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반발이 지속된다면 트럼프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 꼴이다. 트럼프는 필요하다면 강력하게 추가 대응하겠다고 밝혔지만, 베네수엘라는 우크라이나와 비교할 때 훨씬 큰 나라이고 지형적으로 더 험난하다. 베네수엘라 국민이 우크라이나처럼 저항에 나선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맞서기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통제권 상실은 결국 2021년 바이든 행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버금가는 굴욕이다. 그런 상황은 중·러에 커다란 기쁨을 안겨줄 것은 명약관화다. 이는 곧 동아시아와 한반도 안보에 있어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2026.01.08. 8:24
235년 만에 역적에서 복권된 성삼문 “1672년 4월, 인왕산의 무너진 벼랑 돌무더기 사이에서 도자기 하나가 나왔다. 열어 보니 세 사람의 신주(神主)가 들어 있었는데, 성삼문과 그의 외손 박호(朴壕) 부부의 것이었다.”(『성근보집(成謹甫集)』) 서리 엄의룡의 보고를 듣고 현장으로 달려간 관리와 유생들은 ‘성삼문년무술생(成三問年戊戌生)’ 일곱 자가 박힌 신주에 숙연한 심신으로 예를 올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추념(追念)일 뿐이다. 외손 박호와 함께 인왕산 기슭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낸 1418년생 성삼문은 죽은 지 216년이 흘렀지만 난신(亂臣)의 이름을 떼지 못한, 아직은 위험한 인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성삼문의 신주는 그가 태어난 홍주(현재의 홍성) 노은동(魯隱洞)의 옛집에 봉안되었다. 한양에서 홍주까지, 성삼문의 신주를 모신 발인행렬이 지나는 길목마다 옛 충신을 기리는 마음들이 모여들었다. 세조가 성삼문을 일러 “지금은 난신이지만 후세에는 충신이 될 것”이라고 한 말이 사실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난신에서 충신으로 갈아타기는 인왕산 신주 사건이 일어나고도 19년이 더 걸렸다. 숙종 17년(1691), 병자년의 참화가 일어난 지 235년 만에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死六臣)의 복권이 이루어졌다. 멸족 형벌 알면서도 단종 복위 주도 세조조차 “나중에 충신될 것” 예언 “마음이 정치의 근본, 법은 도구 불과” 자식뻘 단종 즉위하자 늘 안위 걱정 아내·딸·제수·며느리 모두 노비 신세 가까스로 신주 발견된 후 복권 논의 사지 찢어 처형한 후 효시 우리 가운데 성삼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충신열사의 이미지에 그 어떤 죽음보다 참혹하게 삶을 마감한 인물로 각인되었다. 단종 복위를 주도한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자신은 물론 온 가족이 도륙을 당한 것이다. “백관들을 군기감(軍器監) 앞길에 모아 빙 둘러서게 한 다음 성삼문 등을 거열(車裂·사지를 다섯 대의 수레에 매달아 찢어 죽이는 형벌)하여 두루 보이고 3일 동안 거리에 효수(梟首)하였다.”(세조 2년 6월 8일) 아버지 성승(成勝)과 세 동생 성삼고·성삼빙·성삼성 그리고 성맹첨·성맹평·성맹종 등의 다섯 아들이 모조리 한날한시에 참화를 입은 것이다. 혁명이 실패할 경우 멸족의 형벌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겠으나 무엇이 성삼문을 이러한 길로 안내했는지, 전해오는 기록에는 그의 심중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세조와의 싸움에서 성삼문은 완벽하게 졌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이긴 자의 편이라지만 졌던 성삼문이 만고충신으로 되살아났다.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능한 그에 대한 기록을 모아 보는 수밖에 없다. 거사를 일으키기까지 그의 행적과 생각, 그리고 살아남은 가족들의 행방을 통해 그의 삶과 죽음이 함축하는 의미를 반추해보려 한다. 성삼문은 홍주의 외가에서 도총관 성승(成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조선전기 명문가로 일컬어지는데, 증조 성석용은 개국 공신으로 대사헌을 지냈고 조부 성달생은 무과에 급제하여 공조판서를 지냈다. 성달생은 딸이 공녀로 뽑혀 명나라 황실의 후궁이 되면서 황친(皇親)의 자격으로 명나라를 자주 왕래한 인물이다. 부친 성승 또한 무과 급제로 관직에 진출하여 병마절도사와 의주 목사를 지냈고 성절사로 명나라를 다녀왔다. 성삼문은 21세이던 1438년에 생원시에 하위지와 함께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서는데, 집현전 학사에 뽑혀 세종의 어문정책에 깊이 관여하였다. 세종은 중국의 명사(名士)가 요동에 유배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신숙주와 성삼문 등을 보내 한어(漢語·중국어)를 배우게 하는데, 특히 성삼문은 요동을 13번이나 왕래하며 역학(譯學) 연구에 몰두했다. 한글 창제 최대 공신 조선은 중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지정학적 특성상 중국어(한자)의 국어 표기가 중요한 학문 영역을 이루던 시대였다. 이에 성삼문을 비롯한 정인지·신숙주 등 세종이 총애하는 8명의 학자는 왕이 직접 뽑았다는 뜻의 친간명유(親揀名儒)라 불리며 훈민정음의 창제와 그 해례본 작성에 참여했다. 특히 성삼문은 중국어에 능통했을 뿐 아니라 중국어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훈민정음을 사용하여 외국어 학습의 방법을 개발하는데, 『직해동자습(直解童子習)』이 그것이다. 그의 역학 연구는 중종조 최세진을 거쳐 조선후기 실학자들에게 그대로 계승되었다. 성삼문은 충신이기 이전에 우리말 창제와 연구의 최대 공신이었다. 한편 성삼문은 1447년의 문과 중시(重試)에 장원으로 급제하는데, 30세에 이르러 학자 관료로서의 탄탄한 길이 열린 셈이다. 성삼문의 역사의식이나 평소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드문 가운데, 그가 제출했던 과거 시험의 답안지도 중요한 정보원이 된다. 세종이 낸 시제(試題)는 팔준도(八駿圖) 즉 태조가 탔던 여덟 마리 준마의 그림에 관한 것이었다. 그 대책에서 성삼문은 말한다. “마음은 정치의 근본이 되고 법은 정치의 도구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 마음이 아니면 온갖 변화가 일어나지 못하며, 이 마음이 아니면 모든 정치가 시행되지 못합니다.”(『성근보선생집』) 또 말한다. “모진 추위 뒤에는 반드시 따뜻한 봄이 있고, 격동하는 물굽이 아래는 반드시 깊은 못이 있나니, 치란(治亂)이 서로 잇대는 것은 고금이 동일합니다.”(‘팔준도명(八駿圖銘)’) 한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라는 것, 세계는 끊임없이 교체되며 운동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약관의 나이에 집현전 학사로 참여하며 성군(聖君) 세종의 지도 편달로 몸집이 커진 근보(謹甫) 성삼문은 문과 급제 3년 만에 왕의 죽음을 맞게 된다. 자신보다 네 살이 많은 문종이 37세로 보위에 오르자 왕의 경연(經筵)에 참여하는 직책으로 그 역할이 커졌다. 직집현전(直集賢殿)이라는 당상관으로 집현전의 운영과 학문 연구를 주관하던 성삼문은 국왕 자문과 세자 교육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국가 제도에 집현전의 관리는 20인(人)인데, 10인은 왕을 위한 경연에, 10인은 차기 왕 교육인 서연(書筵)에 배치되었다. 그런데 문종은 보위에 오른 지 2년 3개월 만에 죽음을 맞게 되고 12세의 어린 임금 단종이 즉위하였다. 왕과 신하의 관계지만 성삼문은 자식뻘인 단종 이홍위(李弘暐·1441~1457)가 늘 염려되었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왕은 성삼문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서적 간행을 빌미로 성삼문을 승진시키는 인사를 단행한다. 이에 성삼문은 왕에게 상소하여 인사의 부당함을 알리고 철회를 요청한다. 즉 자신은 문장을 짓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 배불리 먹고 안락한 삶을 즐기고 있는데, 잠시 수고한 것에 대해 직책까지 올리는 것은 공공성을 해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은총에 한갓 감격하고 기뻐하는 것만을 알고 시비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안으로는 마음에 부끄럽고, 밖으로는 청의(淸議)를 더럽히는 일이니 공기(公器)를 중하게 하소서.”(단종 1년 4월 24일) 그런 가운데 왕의 숙부 수양대군은 권력에의 야망을 키워가고, 노련한 정치가 정인지와 한확을 혼맥으로 내 편을 만든다. 정인지의 아들을 사위로, 환확의 딸을 며느리로 삼은 것이다. 이들은 각각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자리를 꿰차고 불시에 부왕을 잃은 가련한 어린 왕을 들었다 놨다 한다. 가까스로 버티기를 만 3년, 단종은 숙부에게 왕위를 넘기는데 1455년 윤 6월 11일의 일이다. 단종실록에는 직전 5일 동안 연달아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어둡다(霧塞)”라고 기록되었다. 왕위를 넘기던 날 정3품 동부승지 성삼문은 상서사(尙瑞司)에서 옥새를 꺼내 환관 전균으로 하여금 경회루 아래의 단종에게 올리게 했다. 이로써 옥새는 단종에게서 세조로 넘어갔다. 성삼문은 집현전 부제학으로 세조의 조정에 서 있지만, 불법으로 왕위를 빼앗기고 좁은 곳에서 역사(力士)의 감시를 받는 상왕(上王) 단종을 한시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는 현재의 왕 세조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차기 왕은 현재의 세자가 아닌 상왕이 되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말했다. 이런 생각이 단초가 되어 단종 복위사건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성삼문을 비롯한 성씨 남자 가족들이 몰살을 당한 지 3개월 후 집안 여자들은 사대부 가의 여비(女婢)로 나눠졌다. “성삼문의 아내 차산(次山)과 딸 효옥(孝玉)은 부원군 박종우에게 주고” “성삼고의 아내 사금(四今) 및 한 살 된 딸은 우찬성 정창손에게 주고” “성삼성의 아내 명수(命守)는 병조참판 홍달손에게 주고” “성삼빙의 아내 의정(義貞)은 판종부시사 권개에게 주고” “성맹첨의 아내 현비(現非)는 판내시부사 전균에게 주고” “성승의 아내 미치(未致)는 계림군 이흥상에게 주고.”(세조 2년 9월 7일) 이들은 19년이 지난 성종 6년에 노비의 신분에서 해방되었다. 김차산은 노속된 집에서 딸과 함께 남편의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성삼문도 외손 박호도 대 끊겨 성삼문의 신주는 박임경과 혼인한 차녀 성씨에게 맡겨졌다. 한양에서 살던 외손 박증(朴增·1461~1517)은 부모가 돌아가시자 외조의 옛터로 낙향하여 그의 절의 정신을 기리며 평생을 은거하여 사림들의 존숭을 받았다. 과거 급제로 현달한 박호(朴壕·1466~1533)는 형의 뜻에 따라 외조부 성삼문의 제사를 맡았다. 하지만 외손 박호 또한 후손이 끊어져 성삼문은 친손도 외손도 모두 적멸했다. 후세 사람들은 성삼문(1418~1456)을 명나라 충신 방효유(方孝孺)와 나란히 놓았다. 잔인하고 패악한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성삼문, 우리가 그를 절실하게 기억해야하는 이유이다.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6.01.08. 8:22
새해 벽두부터 국제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를 군사공격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해 지난 수개월 동안 주도면밀하게 준비했다. 육·해·공군과 우주 사이버 특수군 등 전 영역 통합 체계(JADC2)뿐만 아니라 정보 및 법 집행 당국까지 결합한 첨단 기술이 기반이었다. 이번 공격이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 2기의 외교안보 방향과 인도·태평양(인·태) 지역 등 국제 정세 전반에 미치는 전략적 함의가 크기 때문이다. 패권 다툼 이어지는 국제 상황 불확실성의 시대 이어질 듯 미, 북핵 거리 두기 가능성도 연대와 자강 혼합, 역량 키워야 힘과 협상을 통한 평화 추구 미국은 지난해 말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에서 서반구 방어 방침을 최우선 지역 목표로 격상시켰다. 이로부터 불과 한 달 만에 베네수엘라를 첫 번째 행동 대상으로 삼았다. 중남미에 대한 미국의 패권을 확실히 하겠다는 뜻이다. NSS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반구에서 “우방을 결집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확장(Enlist and Expand)”하겠다고 밝히고, 역외 세력의 서반구 침투에 대해 경고했다. 특히 지난 20여 년 동안 중남미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크게 잠식하고 베네수엘라를 일대일로의 중남미 거점으로 추진해 온 중국의 특사단이 마두로를 면담한 직후 공격을 감행한 것은 상징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4년이 되고 지난해 말 중국이 최대 규모의 대만 포위 군사 훈련을 통해 ‘하나의 중국’ 실현을 위한 무력 통일 방침을 재차 밝힌 시점에서 미국마저 유엔 헌장 등을 무력화하는 베네수엘라 공격에 나선 것은 역설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행동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더 큰 우려는 강대국들 간 영향권(spheres of influence) 정책이 부활하고, 미국도 그러한 인식을 NSS에서 밝힌 점이다. 미국은 러시아를 향해 수정주의라는 표현 대신 “전략적 안정성” 재구축을, 중국과는 트럼프의 거래주의적 시각을 염두에 두고 “호혜적인 관계 추구”를 명시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 장관도 최근 연설에서 미국이 원하는 것이 세력 균형이라고 솔직히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역시 최근 미국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중국의 발전과 충돌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강대국들의 패권 정치에 추세는 적성국보다 동맹과 우방에 대한 전략적 우선순위를 뒤로 미루고, 주변화시키고 있다. 유럽에 대한 “문명 말살” 경고나, 북한과 북핵의 위험성이나 한반도 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표현들이 사라진 전례 없는 상황이 이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힘을 통한 평화’ 전략에 입각한 군사력 사용은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들에 대한 강력한 억제 수단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군사 공격 직후 이란 핵 시설 무력화 등 군사 작전 성공을 강조했다. 헤그세스 장관도 트럼프의 힘을 통한 평화 정책이 적대국에 대한 메시지임을 시사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즉각 “지정학적 위기와 국제적 사변” 속에서 “핵전쟁 억제력 고도화”를 강조한 이유다. 트럼프는 NSS 서문에서 지난 8개월간 8개의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그 연장선에서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을 열어 9번째의 성과를 꿈꾸면서 최적의 시점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11월로 예정된 미국 중간 선거 때까지 향후 10개월이 가장 민감한 결정적 시기가 될 것이다. 4월 미·중 정상회담과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담 등이 북·미 정상회담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미, 북핵보다 인·태 지역 안보에 관심 인·태 지역이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의 최우선 순위에서 서반구에 밀리긴 했지만, 여전히 두 번째 핵심 지역에 포함됐다. NSS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해양 안보, 특히 대만 해협의 현상 유지를 부각하면서 중국의 대만 침공 거부(denial) 전략을 중심으로 인·태 안보에 대한 동맹국들의 지역 역할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동맹의 우선순위가 인·태 지역 집단적 억제, 이중 억제로 바뀌고 한반도 의제는 주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러시아의 위협을 억제할 전략적 중심축이라고 밝힌 것도, 한·미동맹의 현대화나 전략적 유연성이 강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역내 중대 위협으로 간주되던 북핵 위협 언급은 사라졌고, 한국은 국방비 증액 차원에서 거론됐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병력 규모보다 역량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나선 건 네트워크 전쟁의 시대적 흐름에서 일정 부분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북한의 핵무장이 고도화되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연루 가능성과 피해 취약성을 줄이려는 ‘거리 유지(out-boxing)’ 전략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문제의 성격은 달라진다. 특히 최근 NSS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사라진 데 이어 지난달 트럼프 2기 출범 후 최초의 핵협의그룹회의(NCG)에서 과거 유지해온 “공동기획 및 공동 실행” 표현마저 사라진 것을 미국의 핵보장 의지 약화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북한이 핵 선제 사용 정책을 천명하고, 북·러 간 전략적 협력이 제도화되는 상황에서 이런 움직임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핵군축을 염두에 둔 미국의 유화 조치가 아니기를 바란다. 이처럼 한국은 복합 위기 시대의 고난도 복합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중대한 전환기에 있다. 새해 들어 한·중 정상 회담에 이어 이달 중순 예상되는 한·일 정상회담 개최는 격동하는 세계 질서에 대응하는 치열한 외교전이다. NSS 발표 직후 트럼프의 장남은 카타르 도하 포럼에서 “아버지의 최대의 장점은 그가 무슨 행동을 할지 아무도 모르며,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이 정직한 거래를 압박한다”고 했다. 세계는 향후 3년간 트럼프의 불확실성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주목하고 있다. 유럽·일본·중동 모두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려고 한다. 지난해 미국과 상대하면서 더욱 자신만만해진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및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위주의 신흥 개발도상국)와 연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몇 안 되는 미국의 모범 동맹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불확실성은 산적해 있다. 미국 이외에도 위기의 요인은 도처에 깔려 있다. 이런 위험 요인을 최소화하고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동맹 연대와 자강을 혼합해 전략적 공간을 확대해야 한다. 동맹과 자강을 토대로 글로벌 체스판을 전체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다층적 연대망을 구축해야 한다. 한국형 전략을 통해 새 국제질서 형성 과정에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윤병세 서울국제법연구원 이사장·전 외교부 장관
2026.01.08. 8:20
“오페라 위촉받아서 기쁜데, 그다음은 부럽더라고요.” 작곡가 이영조(83)가 소식을 전하며 말했다. 그는 최근 독일 도르트문트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 ‘춘향’을 위촉받았다. 이미 ‘처용’(1987), ‘황진이’(1999)와 같은 창작 오페라로 해외 공연을 했던 작곡가다. 독 오페라 극장 감독 임기 4~6년 ‘춘향’ 작곡 일찌감치 국내 의뢰 우리는 수장 공석인 단체 많아 새로운 작품을 앞에 놓고 무엇이 부러울까. “어떻게 4년 후의 공연 날짜를 벌써 정할 수 있는지 말이에요.” 도르트문트 극장은 작곡가에게 정확한 타임라인을 줬다. 2026년 대본 완성, 2027년 작곡 완료, 2028년 오페라단 연습, 2029년 4월 14일 초연. 충분한 기간 동안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자는 일종의 자신감이 보인다. 도르트문트 극장의 극장장에게 서면 질문지를 보냈다. 헤리베르트 게르메스하우젠은 2018년부터 극장장 겸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아무래도 가장 궁금한 점은 긴 제작 기간이었다. “저는 장기 계획의 신봉자입니다.” 그는 2025년 초여름에 ‘춘향’을 주제로 하는 오페라를 구상했고, 대본부터 초연까지 4년을 잡았다고 했다. “2028년 여름까지의 계획이 모두 수립된 상황이었고, 다음 수순으로 2029년을 예정하게 됐다”고 설명하는 그의 답변에는 당연한 듯한 여유로움이 흘렀다. 하지만 그다음 문단부터는 약간 조급해졌다. “저는 한국 오페라 극장과 함께 ‘춘향’을 공동 제작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기획 기간을 가진 협력자가 없어서 연락할 수가 없었어요.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한국 예술 단체의 감독 임기는 보통 3년이다. 그마저 제대로 채우기도, 후임자에게 바로 넘겨주기도 힘든 임기다. 제대로 못 채우고 흐지부지되거나 후임자 결정은 해를 넘기는 게 보통이니. 2029년을 약속할 수 있는 예술 단체는 현재로써는 없다. “독일의 예술 감독 임기는 보통 4~6년이 기본입니다. 만료 2~3년 전에는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고요. 만일 다섯 시즌이 연장된다면 앞으로 8년 정도를 확보하고 계획할 수 있는 거죠.” 이영조 작곡가는 창작자인 동시에 예술 기관의 사정을 잘 아는 인물이다. 한국 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현 국립심포니)의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현재는 국립오페라단의 비상임 이사다. 제작 기간 4년을 받아 든 그의 부러움은 그래서 더욱 깊다. “예술 감독 임기가 3년이면 첫해는 전임자 작품하고, 그다음에는 시간이 없어서 뭘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해외에서 활동하는 뛰어난 성악가들이 “외국 오페라단은 빠르면 5년 전에 캐스팅이 오는데 한국은 1년 혹은 한 달”이라며 안타까워하는 말도 이제 식상할 지경이다. 그나마 누가 있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현재 한국 예술계는 수장들의 공백 상태다. 서울 예술의전당, 국립심포니, 국립국악원에 기관장이 없다.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 임기는 올해 초 끝나는데 임기 연장 확정이나 후임자 지명도 당연히 없다.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6월부터 공석인 예술의전당 사장을 찾았다. “예술의전당, 여기도 책임자 선정을 아직 못하고 있죠? 누가 나오셨어요? 직원은 375명이고. 여기 지금 공연이나 연간 일정 수행하는 데는 문제 없어요?” 이재석 예술의전당 사장 직무대리가 답했다. “네,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없어도 되겠네요, 그럼. 사장.” 모두 웃고 넘어갔지만 웃을 일은 아니었다. 농담이라며 웃고 있을 때, 도르트문트 오페라의 극장장은 “한국에는 뛰어난 오페라 가수들이 정말 많은데, 정작 작곡가들은 한국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지 않는다”며 개탄하고 있다. “일본은 ‘나비 부인’, 중국은 ‘투란도트’의 배경이 되는데 한국은 연관된 오페라가 무엇이 있나”라고 되묻고 있다. 그는 또 열심히 자료를 찾아 “‘춘향’이야말로 한국판 ‘라 트라비아타’ 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윽고 한국의 작곡가에게 긴 시간을 주고 독일어로 춘향의 오페라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춘향’이 오페라계의 새로운 고전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비록 4년을 내다보고 함께 할 수 있는 한국의 협력 단체는 한 곳도 찾지 못했지만 말이다. 김호정 음악 에디터
2026.01.08. 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