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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험대 오른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외교

━ 대중 외교는 원칙 지키는 일관성 필요 ━ 대만 문제 입장 요구엔 신중한 대처를 ━ 비핵화 재확인, 한한령 해제 등 챙겨야 이재명 대통령이 4일부터 3박4일간 중국을 국빈 방문한다. 뒤이어 이달 중순 일본 나라현에서 한·일 셔틀외교를 이어간다. 지난해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대미 통상 문제 타결이란 급한 불을 끈 뒤 중국·일본과의 관계 다지기에 나선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외교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국빈 방중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이후 9년 만이다. 한·중 관계의 재정립이란 무거운 과제가 놓여 있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한한령(限韓令) 등의 보복 조치로 갈등이 깊어졌고, 미·중 패권경쟁이란 글로벌 환경이 더해져 한·중 관계는 풀리지 않는 고차방정식이 되어버렸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이 신속하게 성사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엊그제 한·중 외교부 장관 통화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한 발언이 그런 현실을 대변한다. 왕 부장은 “한국 측이 올바른 입장을 취하고 국제 정의를 수호할 것이라 믿는다”며 “대만 문제를 포함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해 달라”고 말했다. 이번 방중을 계기로 대만 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는 요구 내지 무언의 압박이 담긴 발언인 셈이다. ‘하나의 중국’ 존중은 한·중 수교 당시부터 한국이 견지해 온 원칙이지만, 원론적 수준에서 더 나아간 입장 표명을 하기란 대단히 난감하다. 중국이 지난 연말 강도 높은 대만 포위 훈련을 실시했고, 시진핑 주석이 신년사에서 ‘조국 통일’을 강조해 2027년 무력침공론까지 거론되고 있는 데다 최근 대만 문제로 인해 중·일 관계가 험악해졌다. 이런 상황에선 한국이 어떤 입장을 내느냐에 따라 국제 사회에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며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중국은 박근혜 정부 시절 안중근 기념관 건립 등으로 한국 여론의 호응을 얻으며 한·중 연대를 강조한 적이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천안문 망루에까지 서면서 중국을 중시했으나 사드 배치 이후 호된 보복조치를 당했다. 문재인 정부는 한·중 관계 복원을 장담하며 “중국은 큰 산…”이란 식의 저자세 외교까지 마다 않았지만 돌아온 것은 ‘혼밥’ 푸대접 외교였다. 이 과정에서 얻은 값비싼 교훈을 망각해선 안된다. 반대로 우리가 재확인을 요구해야 할 원칙이 있다. 중국이 한달여 전 발행한 군사 백서에서 ‘한반도 비핵화’란 표현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북핵 문제 발생 이래 초유의 일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기대하고 협력을 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비핵화 원칙 없는 대화는 공허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과제는 산적해 있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과 서해 구조물 문제는 주권과 직결된 사안이다.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이 사드 사태처럼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불필요한 오인을 차단해야 한다. 한한령도 해결해야 하는 숙제다. 전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K컬처가 유독 중국에서만 공식적으론 막혀 불법적 경로로 소비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묵과할 수 없는 손실이다. 우리가 일본 대중문화 상품을 개방한 것이 오늘날 K컬처 성장의 계기가 됐다는 점을 들어 한한령 해제가 중국에도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득해야 한다. 이번 방중에 4대 그룹 총수와 200명 규모의 경제사절단이 동행하는 만큼 경제협력도 다시 끌어올려야 한다. 국민이 거는 기대는 분명하다. 원칙과 실리를 결합한 실용외교로 국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 본인이 신년사에서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9년만에 실현되는 중국 방문과 뒤이은 일본 방문에서도 이 원칙은 확고하게 지켜져야 할 것이다.

2026.01.02. 8:34

[우리말 바루기] 적절한 새해 인사 표현

다음 중 서술어가 바르게 쓰인 것은?   ㉠ 행복한 새해 되세요.   ㉡ 새해 만사형통하길 바래.   ㉢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 행복한 한 해 보내세요.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눌 때다. 인사로 오갈 만한 문구 몇 개를 골라 봤다.   ‘㉠ 행복한 새해 되세요’에서 ‘되세요’는 문제가 없는 표현일까? ‘되다’는 주로 어떤 지위나 상태에 이르는 것을 뜻하는 단어다. “커서 의사가 되고 싶다”처럼 쓰인다. 이때는 장래의 ‘나=의사’가 성립한다. “행복한 새해 되세요”는 듣는 사람이 행복한 새해로 바뀔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즉 ‘당신=행복한 새해’가 성립하지 않는다. “행복한 새해 보내세요”가 적절한 표현이다.   ㉡에서 ‘바래’는 ‘바라’가 맞는 표현이다. 생각대로 어떤 일이 이뤄졌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의 기본형은 ‘바라다’이다. 어간 ‘바라-’에 종결어미 ‘-아’가 붙으면 ‘바라아’가 되고 줄어서 ‘바라’가 된다. ‘타다’의 ‘타+아(타아)’가 ‘타’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본형이 ‘바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빛이 바랬다”처럼 이는 볕이나 습기를 받아 색이 변한다는 뜻을 가진 낱말이다.   ㉢의 ‘받으십시요’는 괜찮을까? 정중한 명령이나 권유 등을 나타내는 종결어미는 ‘-십시오’가 맞는 말이다. ‘받으십시오’로 바꿔야 한다.   ‘㉣ 행복한 한 해 보내세요’에서 ‘보내세요’의 ‘-세요’는 명령·요청의 뜻을 나타내는 어미 ‘-시어요’의 준말로 문제가 없는 표현이다. 따라서 정답은 ㉣.우리말 바루기 적절 새해 새해 인사

2026.01.01. 17:00

[이아침에] 함께 익어간다는 것

몇 해 전, 단감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무릎까지 오던 묘목은 흙의 촉촉한 생기와 햇살이 건네는 따스한 기운을 마시며 어느새 내 키만큼 훌쩍 자랐다.   바람만 불어도 휘청거리던 가녀린 줄기가 안쓰러워 지지대를 세우고 정성스레 끈으로 묶어 주었다. 스프링클러가 주기적으로 물을 주니 손이 갈 일이 없어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올해 첫 열매가 맺혔다. 여린 줄만 알았는데 대여섯 알이 가지에 매달린 모습이 그저 대견스러웠다.   여행에서 돌아온 날, 딸아이가 들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엄마, 빨리 뒤뜰로 와 봐요!”     한 달 반 집을 비운 사이, 잘 익은 주황빛 단감들이 나를 반겼다. 가느다란 가지들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축 늘어져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했다. 가지를 모아 지지대에 살짝 고정해 주니 무게가 골고루 나뉘어 한결 편안해 보인다.   단감을 유난히 좋아하는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 따 먹어도 돼요?” “응, 조금만 더 기다리자. 생스기빙에 손님들 오면 자랑도 하고, 그때 따자.”   그날 이후 우리는 틈틈이 뒤뜰로 나가 감나무를 들여다보며 보살폈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큰일났어, 어서 나와 봐!”     새들인지 다람쥐인지, 누군가 먼저 맛을 보고 간 뒤였다. 열매는 군데군데 쪼아 먹힌 흔적만 남아 있었다. 애지중지 지켜보던 첫 열매라 가슴이 툭 내려앉는 듯 허탈했다. “하나만 먹고 가지, 왜 다 건드렸대….”     그 순간 스쳤다.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이 이토록 절묘하게 와닿은 적이 있었던가. 차라리 딸아이에게 먼저 맛보게 할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문득 시어머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아버님과 사별한 뒤, 생전에 남편을 살뜰히 챙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마음에 가장 크게 남았다고 하셨다. 귀한 것이 있으면 자식들부터 먹이겠다며 아껴 두다가 상한 적도 많았다며,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한켠이 저릿하다고 하셨다. “애들은 살아가면서 더 좋은 것 많으니까 너는 꼭 아범부터 챙겨라.”     그 말의 여운이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돌아보면 우리 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편은 늘 “애들 먼저 줘. 나는 괜찮아.” 하고 뒤로 물러났고 나는 그것을 당연한 부모의 마음이라 여겼다. 그 사이 남편은 언제나 뒷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때가 되면 자식들은 각자의 시간표대로 삶을 향해 떠나고, 결국 부부만 남는 날이 찾아온다. 젊은 날의 열정도, 자녀들을 키우며 분주히 살아낸 세월도, 삶의 굽이마다 서로에게 기대어 버텨낸 그 모든 순간은 우리만의 연대기로 새겨진다.   오랜 세월을 함께 걸어온 부부는 어느 순간부터 일상마저 하나의 언어가 된다. 침묵 속에서도 대화가 흐르고, 표정만으로도 마음을 읽는다. 나이가 더해갈수록 마지막까지 곁을 지켜 줄 사람은 배우자임을 가슴 깊이 새긴다. 너무 익숙해 소중함마저 잊고 있었던 남편을 바라본다. 남은 생의 희로애락과 삶의 무게까지도 함께 나눌 사람. 이제라도 그를 내 삶의 맨 앞자리에 다시 두리라 다짐한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다. 세월이라는 강을 나란히 건너며 서로의 마음을 깊고 단단히 익혀 가는 과정일 뿐이다. 언젠가 강 건너 저편에 다다랐을 때 묵묵히 걸어온 삶의 흔적을 마주하며, 과연 후회 없이 살아냈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김윤희 / 수필가이아침에 아침 남편 사이 남편 가슴 한켠

2026.01.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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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비우고 가벼워지는 새해

희망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의 모든 날들이 부디 조용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기를,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고, 사랑, 기쁨, 보람, 자랑스러움, 즐거움으로 가득하기를, 무엇보다도 하늘 우러러 부끄럽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새해 결심’을 합니다. 올해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한문 공부도 부지런히 하고 싶다, 건강을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야지 등등… 야무지게 결심을 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작심삼일! 그래도, 또 새해 아침이면 올해는 무슨 일에 집중할까를 궁리하게 되네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뭔가 달라져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하는 모양입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올해 나의 새해결심은 ‘뺄셈 공부’로 정했습니다. 이어령 선생의 책을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새는 날짐승이잖아. 그런데 무거운 새는 못 날아요. 그때는 날개가 덮개가 되죠(웃음). 인간도 몸이 불으면 못 날아. 늙고 병들면 머리가 빠지고 이빨이 빠지고 어깨에 힘이 빠져요. 비극이지. 그런데 마이너스 셈법으로 몸이 가벼워지면 날아요. 고통을 통과해서 맑고 가벼워진 영혼은 위로 떠요.   덩컨 맥두걸이라는 학자가 실험했어요. 죽은 후 위로 떠오르는 영혼의 무게를 쟀더니 21g이었죠. 그러니 죽어갈수록 더 보태지 말고 불순물은 빼야 해요. 21g의 무게로 훨훨 날아야지요.”   -이어령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 말씀대로 훨훨 날기 위해서는 빼고, 버리고, 비우고, 정리해서 가벼워져야겠다는 생각…. 그런 눈으로 주위를 보니 웬 쓸데없는 물건이 이리도 많은지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당장 쓰지 않을 물건은 과감하게 버리고, 하는 일에 대한 집착도 줄이고, 몸무게도 줄이고, 똥배도 줄이고…. 온통 버릴 것, 없앨 것, 줄일 것, 뺄 것투성이네요.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이 가장 급하네요. 욕심, 집착, 헛꿈, 지나친 기대 같은 것들 말입니다. 찾아보니, 명상, 종교적 묵상, 좌선, 기도 등등 마음을 비우고 챙기고 다스리기 등 수련방법이 참 많네요. 그만큼 현대인들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최근에 알게 된, ‘호오포노포노(ho-o-pono-pono)’도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네요. 고대 하와이인들의 용서와 화해를 위한 전통적인 문제 해결법입니다. 하와이 말로 ‘호오’는 원인 또는 목표, ‘포노포노’는 완벽함을 의미하므로, 합쳐서 ‘호오포노포노’는 ‘잘못을 바로잡는다’라는 의미를 담는 단어가 된다네요.   고대 하와이의 전통적 기법은 종교 지도자가 문제 해결의 중재자 역할을 하지만, 현재의 수행방식은 혼자서 하는 방법으로, 문제 발생의 원인이 되는 기억을 해방시키는 전통적 문제 해결법이 현대판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방법은 매우 단순합니다. 먼저 자신이 겪고 있는 신체적 혹은 정서적, 정신적 고민과 고통을 알아채고, 정화를 시작하면 되는데, 정화는 4개 문장을 되뇌는 것이 전부라네요.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마법의 네 단어는 마음속에 응어리진 부정적인 에너지들이 정화되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는 근간이 된다는 설명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라면,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도 때도 없이 주문처럼 중얼거리면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어떤가요?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지 말고 나의 내면을 향해 되뇌면 마음 편하겠지요.   올해는 버리고 비워,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의 내면과 많은 대화를 나누려 합니다. 부디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기를!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새해 새해 결심 전통적 문제 고대 하와이인들

2026.01.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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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평균의 함정과 투자손실

수학에 이런 농담이 있다. “키 1미터 80센티인 사람이 평균 수심 1미터인 강을 건너다가 빠져 죽었다”. 평균이 1미터인 것이지, 이 강의 어떤 곳은 30센티 정도로 얕았지만, 강 중간의 어떤 곳은 수심이 3미터가 넘었기 때문이다. ‘평균’이 얼마나 현실을 왜곡할 수 있는지, 평균을 맹신하는 것이 왜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평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산술평균’과 ‘기하평균’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시험 점수 평균은 과목별 점수들을 전부 다 더해서 과목수로 나누는 산술평균이다. 하지만 주식의 수익률과 손실율은 냉정한 ‘기하평균’이다. 기하평균은 산술평균 금액보다 작거나 같다. 다시 말해서 기하평균은 절대로 산술평균보다 클 수는 없다. 이 차이를 모르는 순간, 아무리 열심히 투자해도 우리의 계좌는 조용히 줄어든다.   예를 들어보자. 1만 달러를 가지고 투자를 시작했다. 첫날은 운이 좋게 10%를 벌었고, 다음날은 안타깝게 10%를 잃었다. 산술평균으로 계산하면 수익률은 0%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본전은 했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손해다. 1만 달러가 10% 올라 1만 1000달러가 되었다가, 거기서 10%인 1100달러가 빠지면 최종 금액은 9900달러가 된다. 순서를 바꿔서 1만 달러에서 먼저 10%를 잃어서, 9000달러가 된 후에 10%인 900달러를 벌어도 결과는 똑같이 처음보다는 100불이 손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하루는 40%만큼 수익이 났다. 하지만 다음 날은 -30%로 손실이 발생했다. 산술적으로는 10% 이익 같지만 사실은 손해다. 1만 달러의 40%를 벌면 1만4000달러가 된다. 하지만 1만4000달러에서 30%를 잃으면 9800달러가 된다. 처음 1만 달러보다 200달러가 손해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분산투자를 추천하는 것이다. 가진 돈을 한 곳에 집중투자 하면 수익률이 손실률보다 크다고 해도 결국은 변동성 때문에 큰 돈을 한꺼번에 모두 잃을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어떤 연구에 따르면 40%의 투자자는 오로지 한 종목에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분산투자는 단순히 종목을 분산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산을 현금이나 부동산등 다양하게 보유해서 변동성과 위험을 줄이라는 이야기다.   위의 예에서 가진 돈의 절반만 투자해보자. 처음 1만 달러 중, 5000달러만 투자해 40% 이익을 보면 7000달러가 된다. 여기에 투자하지 않은 5000달러를 더하면 총자산은 1만 2000달러가 된다. 이제 다시 총자산의 절반인 6000달러를 투자해 30% 손실을 보면 6000달러는 4200달러가 된다. 여기에 투자하지 않았던 6000달러를 더하면 최종 자산은 1만200달러가 된다. 원금이 200달러 늘었다.   분산투자는 전재산을 잃을 위험을 줄이고 시장에서 물이 전부 빠졌을 때를 대비해 속옷을 미리 입는 전략이다.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열린광장 투자손실 함정 산술평균 금액 과목별 점수들 시험 점수

2026.01.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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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45년간 ‘국산차’ 고집한 이유

지난 12월 18일자 미주중앙일보에 실린 ‘리서치ON 한인 자동차 선호도 조사’ 기사를 읽으며 여러 생각이 스쳤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일본을 경계해야 할 나라로 인식해 왔고, 일본 제품을 쓰지 않으려 애써온 한국인 중 한 사람이다.   전자제품과 카메라 등 일제가 시장을 장악하던 시절에도 일본 제품은 가급적 피했고, 일본어를 쓰거나 일본 노래를 즐기는 이들마저 달갑지 않게 느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돌아보면 다소 감정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뿌리 깊은 문제의식이었다.   미국 생활 45년 동안 개인용과 사업용을 합쳐 10여 대의 자동차를 구매했지만 일본 차는 단 한 번도 선택하지 않았다. 1981년 처음 구입한 차는 셰비 임팔라 스테이션 왜건이었고, 이후 포드 익스플로러, 포드 이코노라인, 뷰익 등을 차례로 탔다. 일본 차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선택의 폭은 좁았지만, 오히려 고민이 단순해지는 장점도 있었다.   한국 차와의 인연은 1986년 현대 엑셀이 미국 시장에 처음 들어왔을 때 시작됐다. 주머니가 가벼웠던 시절이었고, 반가운 마음도 커서 한 대를 구입했다. 가격은 5000달러가 채 되지 않았고, 비슷한 가격대에 ‘유고’라는 브랜드도 있었다. 이후 선루프까지 달린 엑셀 풀옵션 모델을 한 대 더 샀던 기억이 난다. 당시 현대차가 미쓰비시에서 버린 엔진을 가져다 쓴다는 루머도 돌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 무렵 한인 사회에서 벤츠나 BMW 같은 고급차를 제외하면 대부분 일본 차를 선호했다. 고장이 적고, 중고차 가격이 잘 유지되며, 연비가 좋다는 이유였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지만, 나는 늘 이렇게 반박하곤 했다. 첫째, 고장이 나지 않는 기계는 없다.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선입견이 크다. 둘째, 리세일 밸류가 높은 만큼 초기 구매 가격도 높아 결국 차이는 크지 않다. 셋째, 연비는 차량 크기와 엔진 배기량에 비례하는 문제다.   당시 LA 한인타운에는 ‘한국자동차’, ‘서울자동차’라는 이름의 딜러들이 있었지만, 정작 가보면 한국 차도, 미국 차도 거의 없고 일본 차만 권했다. 나는 “그럴 거면 간판을 일본자동차나 도쿄자동차로 바꾸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곤 했다.   나의 자동차 구매 원칙은 단순하다. 새 차를 사서 가능한 한 오래 탄다. 가격이 부담되면 등급이나 옵션을 낮추면 된다. 10년쯤 타고 나면 리세일 밸류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아이들이 자라 운전을 시작했을 때도 기준은 같았다. 내가 타던 차로 1~2년 연습을 시킨 뒤 새 차를 사줬고, 선택지는 늘 한국 차였다. 한국 차는 내 나라 차이니 국산이고, 미국 차는 내가 사는 나라 차이니 그것 역시 국산이라고 생각했다.   큰아이는 포드 머스탱 스틱 차량을 탔고, 둘째는 기아 세피아를 골랐다. 큰아이는 한동안 일본 차를 타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시 기아 K5와 카니발을 탄다. 막내는 유럽 차를 탄다. 나는 에쿠스를 거쳐 현재 제네시스를 타고 있다. 차도 만족스럽고, 마음도 편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를 속이 좁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것을 내가 중요하게 여기고, 써주지 않으면 누가 지켜주겠는가.   일본인들은 자국 제품을 철저히 우선한다. 이는 내가 직접 보고 겪은 일이다. 자국산이 먼저고, 그 다음이 대만·중국산, 그래도 안 되면 한국산이다. 왜 그럴까.   ‘아지매 떡도 싸야 사 먹는다’는 말이 있지만, 아지매 떡이라면 조금 비싸도 사는 게 맞다. 그래야 아지매도 살고, 그 옆에 사는 나도 산다.   지금의 미국을 보라. 싸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수입에 의존하고, 공장을 외국으로 옮긴 결과 제조업은 붕괴됐고 기술자는 사라졌다. 이제 와서 억지로 되돌리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그 길이 언젠가 우리의 모습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송정섭 / 독자발언대 국산차 고집 자동차 구매 한인 자동차 포드 이코노라인

2026.01.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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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방선거 비상 걸린 국민의힘, 벼랑 끝에 서 있다

━ 신년 3개 격전지 여론조사에서 하락세 보여 ━ 30% 부동층 잡으려면 중도층 민심 되찾아야 6·3 지방선거를 5개월 앞둔 신년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이 주요 격전지에서 지지율 약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가상 대결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더불어민주당의 신인급 후보인 정원오 성동구청장과 37%대 34%로 오차 범위 안에서 접전을 벌였고, 경기지사와 부산시장 가상 대결은 민주당 김동연 지사와 전재수 의원이 국민의힘 후보군에 오차 범위를 넘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의 약세는 계엄 후 1년여간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하지 못하고 강성 지지층만 바라본 결과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오 시장이 어제 “국민의힘은 벼랑 끝에 서 있다”며 당 지도부의 사과와 반성을 촉구한 것도 여론 흐름이 심상치 않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통일교 측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는 전 의원이 악재에도 불구하고 가상 대결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국민의힘으로선 뼈아픈 성적표다. 유권자들에게 제1 야당의 존재감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중도층 지지율에서도 오 시장이 정 구청장에게 32%대 38%로 뒤졌고, 박형준 부산시장은 전 의원에게 24%대 49%로 크게 밀렸다. 확장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외연 확장에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나타난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말로만 변화를 외치고 이전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책임이 크다. 그런데도 장 대표는 “국민의 삶을 진심으로 돌보면 선거의 승리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만 보인다. 게다가 신년 여론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의 갑질 논란, 강선우 의원의 공천 헌금 의혹 등 여당의 대형 악재가 반영된 것이다. 야당의 무대가 열렸는데도 지지율을 높이지 못한 셈이다. 국민의힘은 오히려 당원 게시판 논란으로 계파 갈등을 키우고 자중지란에 빠졌다. 윤 전 대통령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지도부를 중도층은 외면했다. 오죽 답답하면 현직 시장들이 “계엄을 옹호하는 발언은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오세훈)거나 “강성 지지층만으로는 선거에서 못 이긴다”(박형준)는 하소연을 하겠는가. 이번 여론조사에서 지지 후보 없음과 모름, 무응답이 30%에 이른다는 점이 국민의힘으로선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야 모두에 실망한 부동층이 여전히 두텁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여당의 독주에 맞서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균형을 잡아준다면 제1 야당의 존재감을 되찾을 수 있고 반전의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말의 해를 맞아 “뼈를 깎는 각오로 뛰겠다”는 장 대표의 향후 행보가 중요한 이유다.

2026.01.01.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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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서해 공무원 사건, 검찰에 항소포기 지침 내렸나

━ 1심 무죄 후 대통령·총리 검찰 수사 비판 발언 ━ 항소 시한 임박…검찰 상급심 판단 구해야 마땅 검찰이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은폐 의혹으로 기소된 문재인 정부 고위 공직자 5명에 대한 법원의 1심 무죄 판결 이후 항소 시한(2일 자정)이 임박하도록 침묵하고 있다. 유가족은 억울하다며 검찰에 항소를 촉구하고 있다. 검찰이 신중한 판단을 위해 고심 중이라면 다행이지만, 대통령과 총리가 검찰의 수사와 기소 자체를 문제 삼는 발언을 한 것에 영향을 받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이 사건은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0년 9월에 발생했다. 해양수산부 산하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8급 공무원 이대준씨가 선상에서 이탈해 실종된 이후 북한 쪽 바다에서 총격을 받고 불태워졌다. 사건 직후 해경·국가안보실·국방부 등은 “월북으로 판단한다”고 발표했다. 공교롭게도 이씨가 피살된 다음 날 새벽 종전선언 필요성을 역설한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연설이 예정돼 있던 터여서 당시 정부가 북한을 의식해 월북으로 몰았다는 의혹이 퍼졌다. 2022년 정권 교체 이후 감사원이 감사한 뒤 고발이 이뤄지자 검찰은 북한의 피격 첩보를 확인하고도 보안 유지를 지시하며 자진 월북으로 사건을 왜곡했다는 혐의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과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을 기소했다. 지난해 12월 26일 서울중앙지법은 당시 월북 판단과 발표 과정이 결과적으로 미흡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고의로 (은폐 등) 범죄가 이뤄졌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5명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법리와 증거를 고려해 선고를 내렸을 1심 재판의 판단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유무죄를 치열하게 다투는 이런 형사사건의 경우 수사·기소 검찰이 곧바로 항소해 2심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선례도 그래 왔다. 우리 사법체계가 3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30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검찰 수사를 문제 삼으며 “책임을 묻든지 해야 할 것 같다”고 했고, 김민석 총리는 “사실상 조작 기소다.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발언했다.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할 검찰에 행정부의 1, 2인자가 항소 포기 지침을 내린 것으로 비칠 수 있는 언급이다. 바로 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검찰은 극도로 신중한 분위기다. 당시 국정원과 국방부 등에서 5000여 건의 문건 삭제가 벌어졌고, 문 대통령의 구체적 지시와 행적은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는 바람에 이 사건의 진상이 아직도 완전하게 규명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국민의 생명이 무참하게 희생된 중대 의혹 사건에서, 더구나 그 진실이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이 특별한 이유 없이 항소를 포기한다면 두고두고 나쁜 선례가 될 것이다.

2026.01.01.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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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나를 향해 걷는 일과 나라를 살리는 일

기원전 11세기께, 신(上帝)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세계관으로 살던 시대에 주(周)나라가 상(商)나라를 멸망시켰다. 상나라나, 주나라나 각각의 멸망과 건국이 신의 뜻임을 구성원들에게 설명해야 했다. 신은 덕(德)이 사라진 곳을 버리고, 덕이 있는 곳에 찾아든다는 새로운 관념이 생겼다. 상나라는 덕을 잃었기 때문에 신이 떠나버려 멸망했고, 주나라는 덕을 지켰기 때문에 신이 찾아와 건국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덕은 자신을 자기자신이게 하는 힘 덕 상실하면 직업을 꿈으로 착각 나라 흥망, 국민 개개인의 덕에 달려 자신을 묻는 질문이 나라 살리는 길 상(商)과 주(周)의 교체기에 출현한 ‘덕’이라는 개념으로 인간은 제한적으로나마 신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격이 높아졌다. 덕은 신과도 통할 수 있는 순수한 인간의 본질이자 자기를 자기로 지키는 힘이다. 덕이 없어지면 자기 자신도 무너지고, 나라도 멸망한다. 덕이 있으면 자기 자신도 탁월함에 이르고, 나라도 번영한다. 민주주의로 번성하던 아테네는 어느 순간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어느 나라나 쇠퇴기에 들면 ‘말의 질서’가 무너질 뿐만 아니라 올바름이 객관적 기준을 잃고 각자의 이익에 따라 해석되는 상대주의에 빠진다. 이것을 중우(衆愚)정치라고 한다. ‘중우’를 ‘어리석은 대중’이라 직역하기도 하지만, 의미는 ‘자아를 상실한 자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자기를 자기이게 하는 힘인 덕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정해진 마음’이나 돈, 명예, 권력, 진영 등의 피상적인 것을 삶의 기준으로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이 어떤 상태인지 돌보지 않는다. 덕(德)을 아테네 사람들은 아레테(Aretē)라고 했다. 플라톤은 “국가는 그 구성원들의 ‘성격(ēthē)’으로부터 생겨난다. 그 성격의 기울어짐이 나머지 모든 것을 자기 방향으로 끌고 간다”고 말한다. ‘에테(ēthē)’는 에토스(ēthos)의 복수형이다. 에토스는 도덕적 기질이나 성격, 품성을 가리킨다. ‘성격의 기울어짐’은 에토스가 아레테의 지도 여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남을 함축한다. 아레테의 지도를 받은, 즉 덕을 지키는 방향으로 형성된 기질은 자신뿐 아니라 나라에도 질서 있고 성장하는 기운을 주지만, 아레테의 지도를 받지 않은, 즉 덕을 지키지 않은 방향에서 형성된 기질은 그 반대라는 뜻이다. 정리하면, 국가는 구성원의 기질(에토스)에 의해 결정되는데, 기질의 핵심은 덕(아레테)을 갖췄느냐의 여부다. 따라서 개인의 덕(아레테)을 회복하는 것만이 무너져 가는 국가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우선 내면의 덕성을 지키는 일부터 해야 한다는 뜻을 담아,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플라톤은 경고한다. 만일 자신으로 돌아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자신의 덕을 돌보지 않은 채, 말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철이나 동의 기질을 가진 자가 통치하게 되는 날, 그 국가는 파멸할 것이다.” 망해 가는 자신의 나라, 명(明)나라를 보면서 “나라의 흥망은 필부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한 고염무의 말도 이런 맥락에서 쉽게 이해된다. 한 나라의 흥망은 전적으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덕이 어떠한가가 결정한다는 웅변이다. 덕은 자신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게 하는 힘이다. 이 힘을 통해서 인간은 언제나 ‘지금의 자기’를 넘어서려는 야망을 갖는다. 꿈이라고도 부르는 이 야망이 우리를 혁신하고 도약하게 한다. 왜냐하면 꿈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을 하나 차지해서 수행하려는 기능적인 태도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려는 창의적이고 존재론적인 도전이기 때문이다. 덕이 상실돼 꿈을 잃은 상태에서는 직업을 꿈으로 착각한다. 예를 들어, 검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사람은 검사가 되는 순간 꿈을 이뤘기 때문에 할 일을 다 한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이런 느낌에 사로잡히는 순간 존재론적인 성장은 멈춘다. 지위가 올라가는 성장은 모르겠지만 영혼이 튀어오르는 성장은 없다. 내 내면이 나에게 하는 소리는 들을 수 없게 되고 돈, 자리, 권력, 진영 등의 피상적인 것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더 무서운 것은 ‘덕’이나 ‘영혼’이나 ‘내면’이나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자신의 소리’ 등등의 표현이 한없이 사소하게 들려버리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렇게 영향력이 크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헤르만 헤세)이지만, 자기 자신을 향해 걷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기도 하다. 덕을 잃기는 쉬워도, 덕을 지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다음의 몇 가지 질문을 자주 해보는 일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자기 얼굴을 자신에게 이르는 길 쪽으로 향하게 할 수는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죽을 때까지 완수하고 싶은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이 나라를 살리는 길에 드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 최진석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

2026.01.01.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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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사니즘 2.0’이 필요하다 [조민근의 시시각각]

“문재인 정부는 에너지 대전환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원전 논쟁을 하다가 5년을 다 보내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탄소중립과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정책토론회.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의 인사말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문재인 정부의 실패’에 대한 자성이었다. 이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새울 3호기의 운영을 허가했다. 문 정부 시절 공사가 중단되는 등 사연이 많았던 원전이다. 속도를 내는 인공지능(AI) 산업에 전력 수요 폭증이 예고된 상황에서 그나마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문재인 정부 답습 않겠다지만 ‘적당한 실용주의’로는 역부족 더 과감해지고, 더 유연해져야 문 정부의 ‘탈(脫)원전’은 이재명 정부에서 ‘에너지믹스’로 대체됐다. 하지만 그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났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문제는 신규 원전인데, 기후부는 이미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담겼던 2기의 원전을 사실상 원점 재검토로 돌려놓았다. 정책토론회 역시 이를 위한 이른바 ‘공론화’의 시작이었다. 공론화가 갈등을 관리하는 장치라고는 하지만 골치 아픈 결정을 미루는 수단으로 활용됐던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때 흔히 벌어진 일이었고, 이날 토론회 현장에서도 같은 의심이 제기됐다. 한 기업인은 “에너지믹스도 중요하지만 철강 등 기간산업이 죄다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경쟁력 있는 에너지를 확보할지, 앞으로 뭘 먹고살지도 고민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 정부는 시작부터 문재인 정부를 의식했고, 차별화하려고 했다. 대선 직후 만난 경제 분야 핵심 관계자는 “우리는 문 정부와 다르다. 아마추어나 설익은 이론가가 발 붙일 곳은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문 정부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특히 경제, 즉 먹고사는 문제에서의 실패가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뼈아픈 결과를 낳았다는 공감대가 현 정부 내부에 있었다. 그리고 그 핵심 요인을 이념의 도그마에 빠진 아마추어적인 국정 운영에서 찾고 있었다. 이 정부가 실용주의와 함께 유능함을 유독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를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여야 한다”는 말로 정리하기도 했다. 정권 출범 6개월이 지난 지금, 공언했던 차별화는 과연 성공하고 있을까. 경제팀의 핵심 포스트를 채운 인사들의 결은 사뭇 다르다. 정부와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지언 성향의 인사들이 포진한 건 과거와 유사하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처럼 족보에도 없는 이론을 내세우는 이들이 전면에 나서는 일은 없었다. 배경훈 과학기술 부총리,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등 기업을 거친 인사들도 내각에 다수 진출했다. 하지만 원전 논란에서 보이듯 완연한 실용주의로 돌아섰다고 보기도 어렵다. 특히 결정적 장면에서 멈추고 주저하기 일쑤다. 대통령과의 각종 간담회에 참석했던 기업인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기업들이 처한 현실을 예상보다 더 소상히 파악하고 있고, 실용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려 한다고 한다. 하지만 건들지 말아야 할 ‘레드라인’도 확실하다고 한다. 대표적인 게 핵심 지지층인 노동조합과의 이해관계다. 그러니 글로벌 무한경쟁에 내몰린 반도체 업계의 호소에도 ‘주 52시간 예외’는 결국 수용되지 않았다. 기업들의 투자와 구조조정까지 불확실성의 함정에 빠뜨릴 노란봉투법도 3월 3월 시행된다. 돌이켜보면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단지 무능함에서만 비롯된 건 아니었다. 더 본질적인 건 무책임이었다. 지지층이 열광하는 선심성 정책에만 열을 올리고, 표는 안 돼도 꼭 해야 할 ‘궂은일’은 미루고 방기했다. 그 실패가 누적된 결과가 악화한 재정과 만성화한 저성장, 심화한 양극화라는 이재명 정부가 맞닥뜨린 환경이다. 멈칫거리고 주저하는 ‘적당한 실용주의’로는 돌파하기 어려운 위기다.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더 과감해지고, 더 유연해지는 수밖에 없다. 조민근([email protected])

2026.01.01.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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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재의 시선] 세 개의 ‘사업보국’

조금 고리타분한 얘기로 새해를 시작해 보자. 사업보국(事業報國), 10여 년 전 기업 총수 신년사에나 등장했던 표현이다. ‘사업으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 여기서 보(報)는 ‘갚다’ ‘보답하다’는 의미다. 국가·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에 기업이 일자리와 세금, 수출로 공헌하겠다는 인식이다. 사업보국(報國)의 국내 원조는 이병철(1910~1987) 삼성 창업주가 아닐까. 그는 자서전 『호암자전』에 이렇게 남겼다. “독립 국가 한국의 기업가로서 무엇을 해야 할까. 나라 부강의 기초가 되는 민족자본의 형성이야말로 최우선 과제다. 사업 입지를 굳혔던 것을 제1의 각성이라고 한다면, 해방과 함께 결심한 사업보국 신념은 제2의 각성인 셈이다…때로는 돈벌이주의자라는 비난까지 사면서 고난의 길을 가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고용·세금·수출 공헌 ‘보(報)국’ 관세협상 땐 ‘지킬 보(保)’ 존재감 정부·기업 ‘도울 보(輔)’ 관계 돼야 일자리 하나 더 만들고, 해외에서 1달러라도 벌어오는 게 생존이고 애국이었다. 이렇게 호암의 사업보국엔 유교적·도덕적 결연함이 묻어 있다. 그 사업보국의 개념이 조금 달라지고 있다. 지난 한해 가장 짜릿했던 비즈니스 장면으로 ‘인공지능(AI) 깐부’를 맺은 젠슨 황과 이재용, 정의선의 쓰리 샷이 꼽힌다. 사진만 찍은 게 아니다. 젠슨 황은 한국에 AI 칩 26만 장을 깜짝 선물로 내놨다. 관세 협상 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사로잡았던 ‘마스가(MASGA·미 조선업 부활 패키지) 카드’도 인상적이었다. 젠슨 황이 깐부라서 ‘전략 자원’을 덥석 넘기고, 트럼프는 마스가를 시그니처 프로젝트(대표 사업)로 밀고 나갈까. 그럴 리가. 한국이 보유한 ‘넘사벽’ 반도체 칩과 조선 경쟁력 덕분이다. 무역 전쟁과 지정학 리스크 속에서 말 그대로 존재감 뿜뿜이다. 이쯤 되면 나라를 지킨 보국(保國)이다. ‘갚을 보’ 사업보국이 이병철식 기업관이라면, ‘지킬 보’ 사업보국은 아산 정주영(1915~2001) 스타일과 닮았다. 아산의 기업보국은 지난함에서 나온다. 세월을 사야 한다. K조선이 대표적이다. 최근엔 가스터빈이 그렇다. 지난해 말 두산에너빌리티가 대형 가스터빈을 ‘종주국’ 미국에 수출했을 때 업계가 화들짝 놀랐다. 제너럴일렉트릭·지멘스 등 전 세계 서너 개 업체만 생산하던 제품이었는데 신출내기 두산과 손을 잡아서다. 여기엔 두산그룹 4세 박지원 회장의 ‘20년 설득’이 숨어있다. 그는 20년 내내 봉급쟁이 사장이 바뀔 때마다 가스터빈 국산화를 주문했고, 어김없이 ‘지금 역량으로 안 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이때마다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설파했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확보에 열을 올리고, 안정적 전력 조달이 숙제가 됐다. 덩달아 가스터빈 수요가 급증하면서 두산은 ‘귀하신 몸’이 됐다. 이번엔 사업보국(輔國)이다. 이때 보는 ‘돕는다’는 의미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독립운동가 김기오(1900~1955) 선생 얘기를 듣다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일제의 고문으로 하반신 불구가 된 그가 마흔여덟에 대한교과서를 창업할 때 슬로건이 ‘출판보국(輔國)’이었다. 가장 먼저 펴낸 게 『누에치기』 『거름』 『농작물 두루풀이』 같은 실업 교과서다. 도서당 발행 부수가 400부 미만, 돈이 될 리가 없었다. 그래도 그는 “실용 교육은 갓 태어난 나라가 못하는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며 소신을 밀어붙였다(이태룡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장). ‘도울 보’ 사업보국은 국가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거나 부족한 영역을 민간이 채우는 방식이다. 그게 해방 후 실용 교육이었다면, 지금은 AI나 플랫폼 영역일 것이다. 경제 안보와도 직결되니 보국(保國)과 보국(輔國)은 동전의 양면 같다. 돈만 잘 벌면 문제없다는 시대는 지났다. 독점 해도, 갑질 해도 나라에 기여하니까 괜찮다는 마인드는 이제 소비자가, 투자자가 용서하지 않는다. 지속가능성이 경영 화두가 되고, ESG(환경·사회적 가치·지배구조) 열풍이 불면서 ‘세 개의 보국’은 필수 구비세트가 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정부·여당은 어떤가. 여전히 대기업 하면 하청업체 쥐어짜고, 서로 짬짜미나 하는 집단이라고 재단한다. 기업인은 벤츠 타고 다니며 로비하는 부류로 여긴다. 그러니 노란봉투법에 이어 제3차 상법 개정을 논의 중이다. 탄력근로제 확대, 업종별 차등 적용 같은 융통성을 열어두지 않고 주 52시간제 족쇄에 가둔다. 세계는 거꾸로다. 보조금 퍼주고, 규제 풀면서 기업을 모시고 있다. 이렇게 급박한데도 일단 기업 때려잡기, 이거야말로 고리타분함을 넘어선다. 지금은 그 이상의 위기다. 이상재([email protected])

2026.01.01.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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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양극화 심각한데, 기본소득은 소득 불균형 심화시켜”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문화체육관광부가 연말에 흥미로운 보고서를 내놨다. 1996년부터 30년 가까이 한국인의 속마음을 추적해온 ‘한국인의 의식 및 가치관 조사’의 9번째 결과물이다. 6180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 보고서를 훑어보면 한 가지 경향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인은 경제적 양극화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지만, 결과적 평등을 향한 단순한 재분배 처방에는 점점 더 냉담해지고 있다. 현 정부 핵심 정책 과제인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부정적 견해가 더 크다. 문체부, 13~79세 6180명 조사 “기본소득이 불균형 심화” 38% “경제 양극화 심각” 답변 89% AI는 변수, 64%가 “불평등 심화”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10명 중 9명(89.7%)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2022년보다 소폭 늘었고, “매우 심각하다”는 비중은 18.9%에서 32.2%로 크게 뛰었다. “우리 사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도 “빈부격차”(23.2%)가 1위를 차지했고, 뒤이어 “일자리”(22.9%), “부동산·주택 문제”(13.2%)가 뒤따랐다. “노력에 따른 격차 인정”은 61% 그런데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결과도 함께 나온다. “노력에 따른 소득 격차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최근 10년간 꾸준히 상승해 2025년 61.8%에 이르렀고, “소득을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13.5%)를 크게 앞섰다. 생계·복지 책임을 “당사자 책임”(37.6%)으로 보는 경향도 “정부 복지 책임”(31.1%)보다 높다. 2016년에는 반대로 정부 책임이 거의 2배였다. 교육에서도 “차등적 교육환경”(42.2%) 지지가 “동일한 교육환경”(27.0%)보다 우세해졌다. 하지만 이것은 모순이라기보다, 한국인이 ‘격차 자체’보다 ‘격차가 만들어지는 방식’에 더 민감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대표 사례가 기본소득 인식이다. “소득 불균형을 완화할 것”이라는 기대(28.2%)보다 오히려 “소득 불균형을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38.0%)가 우세했다. 단순히 복지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를 넘어, ‘일하지 않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시스템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거부감이 작동한 결과로 풀이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자유냐 평등이냐’에는 별 관심이 없고 ‘공정하냐’에 큰 관심을 갖더라”고 최근 만난 세계사 만화가 이원복 전 덕성여대 총장은 말했다. 이번 조사는 만 13~79세를 대상으로 했고, 처음으로 만 13~18세 청소년층이 포함됐다. 아직 연령별 세부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아, 이런 경향을 특정 세대가 주도했다고 단정하긴 이르다. 다만 청년층이 많이 이용하는 유튜브·소셜미디어를 보면, 실력과 노력에 따른 격차를 ‘공정’으로 여기고 ‘무임승차’를 혐오하는 정서가 두드러진다. 관료·정치인의 자녀 입시 비리, 채용 비리, 규제 정보를 미리 입수한 것으로 의심되는 부동산·주식 투자 등은 대표적 ‘불공정’이자 ‘사다리 걷어차기’로서 격렬한 비난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조사에서 ‘집단 간 갈등의 크기’를 묻는 문항에서 세대 갈등·남녀 갈등이 커졌다는 응답이 늘어난 반면, ‘부유층 vs 서민층 갈등’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감소한 것도 흥미롭다. ‘공정하게 얻은 부는 인정한다’는 분위기가 반영된 것 아닐까. 양극화는 해결해야 하지만, 무조건 배분이 아니라 ‘불공정 해소’ 및 ‘계층 사다리 복원’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식이 이동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 흐름은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이 말한 “각 개인이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물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정당성을 지니는 사유재산제”에 대한 민감성과도 맞닿아 있다. 기본소득에 반감이 큰 것은 궁극적으로 사유재산제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재산·소득·노동 여부와 무관하게 지급되는 정기 소득이다. 기본소득·기본주택 등이 결합된 기본사회는 재원 조달을 위해 정부가 더 많은 세금을 걷어 다시 나누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 세금으로 나간 돈을 궁극적으로 돌려받더라도, 그 시기와 형태는 정부 결정에 좌우된다. 개인의 투자·소비 결정권이 제약받는 것이다. 나아가 국민이 소득·주거 등에서 국가에 더 의존할수록, 정부 결정에 종속될 위험도 커진다. 밀이 사회주의의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끝내 사유재산제를 지지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국가가 설령 유익한 목적을 위해서라고 할지라도, 국민들을 자기 손안에서 다루기 쉬운 고분고분한 도구로 만들기 위해 그들을 난쟁이로 만든다면, 그렇게 작아진 사람들로써는 그 어떤 위대한 일도 결코 성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현실적 우려도 있다. 기본소득 같은 보편 현금이 풀리면 물가, 특히 자산 가격이 오르기 쉽다. 최종적으로 이득을 보는 집단이 자산 보유자와 시장 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 커지면서 “오히려 소득불균형이 심화될 것”이라는 응답이 자연스레 나왔으리라. ‘AI로 인한 일자리 나누기’ 51%가 동의 다만 이번 조사에서 AI 시대에 대한 응답은 변수가 된다. 시민 64.3%는 AI가 일자리 불평등을 심화할 것이라고 봤다. 경제학자들과 IT 전문가 중에는 AI 및 관련 자본을 소유하고 잘 활용하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사이에서 양극화가 발생할 것이고, 근로소득 기회를 잃은 사람들의 기초생활 보장을 위해 일종의 기본소득이 필요하리라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 가운데 조사 대상 시민들은 “AI로 인한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에 51.8%가 동의했다. 더 많은 여가를 누리되 밀의 말처럼 “개인이 자신의 노력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그 대가를 받는 시스템”은 유지하고 싶다는 대중의 의지가 읽힌다. 연말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불평등을 걱정하는 사회이지만 동시에 “평등”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자동적으로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사회다. 그 사이에서 새로 떠오른 키워드가 “공정”이다. 공정은 구호가 아니라 설계다. 불평등을 줄이되 노력의 보상을 훼손하지 않는 설계, AI가 일자리를 위협하는 가운데에도 고용과 시장의 역동성을 살리되 반칙과 불로소득을 줄이는 설계. 한국인의 의식이 원하는 것은 이것이다. 2026년의 한국은, 그 어려운 실험을 해야 할 것이다. 문소영([email protected])

2026.01.01.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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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실제 지지율은 64%” 주장의 불편한 진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소셜미디어(SNS)에 “내 지지율은 64%”란 글을 올렸다. 그리고는 “그럴 만하다. 강력한 국경, 인플레이션 없는 환경, 막강한 군사력, 훌륭한 경제를 갖게 된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라고 했다. 여론분석 업체 ‘디시즌데스크HQ(DDHQ)’ 기준 트럼프의 지지율 평균은 44.1%다. 30%대 결과도 줄줄이 나온다. 트럼프는 이를 “작가들의 글보다 훨씬 조작됐다”고 치부했다. 그럼 64%의 근거는 뭘까. 첨부된 사진엔 ‘트라팔가’란 표기가 있다.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당선을 예측해 유명세를 탔던 업체다. 공화당 성향이 강하지만 당내 여론팀도 “조사기법을 공개하지 않아 어떻게 조사하는지 모른다”고 평가한다. 트라팔가의 조사 결과를 확인해봤다. 찬성 50.2%, 반대 44.6%라는 결과표와 함께 응답자의 대략적 비율만 공개한 7장짜리 리포트였다. 64%는 없었다. 가장 근접한 데이터를 찾아봤다. 그랬더니 트럼프의 인식을 추정할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번째 가능성. 조사에서 ‘강한 반대’를 택한 37.4%를 제외하면 62.6%가 나온다. 이 경우 7.1%의 ‘반대’와 5.2%의 무응답자가 트럼프가 인식하는 지지자에 포함된다. 두 번째 가능성은 응답자의 36.5%인 민주당 지지자 전체를 제외한 63.5%다. 반올림하면 정확히 64%다. 두 가지 가능성의 공통점은 이분법이다. 이러한 극단적 ‘뺄셈의 정치’를 위해선 명확한 적(敵)의 개념이 필요하다. 64%가 자신을 지지한다고 믿는 트럼프는 야당 내 강한 반대론자는 물론, 더 나아가 유권자의 절반인 야당 지지자 전체를 적으로 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지난해 12월 17일 대국민연설에서 표출됐다. 트럼프는 18분으로 제한된 생방송 연설 내내 바이든 전 대통령만 공격했다. 고물가와 일자리 부족, 복지비용 증가, 주거비 상승 등 모든 부정적 상황은 모두 바이든 때문이고, 바이든 정책의 핵심은 불법 이민자라고 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은 이를 ‘이민자 혐오 증후군’이란 정신이상 증세라고 했다. “대부분의 유권자는 이민자가 일자리를 뺏는다는 증오가 ‘이민자가 들여온 병든 소 때문에 쇠고기 가격이 올랐다’는 재무장관의 황당한 발언으로 확대된 상황까지 감당하기는 어려워한다”는 주장이다. ‘선진 미국’의 모범 사례를 좋아하는 한국의 정치도 참고하기를 권한다. 정치적 의도를 떠나 야권 인사의 발탁과 관련해 나오는 “변절자의 말로는 비참할 것”이라는 등의 무시무시한 대사는 조폭 영화만으로도 충분하다. 강태화([email protected])

2026.01.01.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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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택배 배송시간, 일할 권리와 국민 편의 존중을

택배의 배송 시간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정부 정책이 가닥을 잡아가는 듯하다. 일상화된 새벽배송이나 주 7일 배송이 금지된다면 그동안 서비스를 이용해온 2000만 명의 소비자는 엄청난 불편을 겪을 것이다. 새벽배송 금지, 주 7일 배송 금지 등은 노동계 편향적인 거대 여당을 등에 업고 특혜적 지위를 누리는 노동계의 이기적 행위다. 상대적으로 젊고 택배 경력이 짧은 많은 택배기사가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하는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다. 새벽배송, 주 7일 배송 금지 추진 비노조 택배기사 소득 감소 우려 물류비용, 자영업·직장인에 전가 한국노동경제학회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했더니 야간택배 기사의 월평균 소득은 581만원으로, 주간택배 기사의 소득보다 월등히 높았다. 야간택배 기사 중에 약 10%는 월 9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53%는 지금의 소득에 ‘만족 이상’이라 답했으며, 66.3%는 야간택배 업무를 시작한 이후 생계가 나아졌다고 답했다. 이들이 야간배송을 선택한 주된 계기는 ‘수입이 좋아서’가 51.5%였고, 최대 장점으로 ‘원활한 교통과 적은 방해로 인한 높은 업무 효율’을 꼽았다. 야간택배 기사 중에 78.2%는 향후에도 지금의 업무를 지속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쿠팡의 많은 택배기사는 2023년 민노총을 탈퇴했다. 민노총 산하 쿠팡택배노조 조합원 수는 수백 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벽배송이나 주 7일 배송 금지는 사업자 신분인 비노조 택배기사의 일자리를 빼앗아 소득을 깎고, 민노총 소속 노조원들의 소득을 높이려는 의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노동경제학회 연구에 따르면 심야배송이나 주 7일 배송이 금지되면 상당수 택배기사가 생계유지를 위해 택배 외에 다른 부업 등 대체 일자리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야간배송 불가시 대처 방안에 대해 ‘배송 외 다른 물류 야간 업무로 전환’하겠다는 응답자가 45%, ‘물류와 무관한 다른 야간 업무로 전환’하겠다는 응답이 8.4%였다. ‘주간 배송 업무 등 주간업무로 전환’은 32%에 그쳤다. 응답자의 40%는 줄어든 소득 보전을 위해 업무 시간을 늘리겠다고 응답했다. 이렇게 되면 총근로시간 증가로 이어져 근로자들의 건강권과 휴식권이 실질적으로 더 악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주 7일 배송이 금지되더라도 수입 보전을 위해 다른 일자리를 찾게 되면, 주 52시간 제도 도입으로 인해 많은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근로자가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투잡(Two Job)’으로 생활이 오히려 엉망이 됐던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추가적인 택배기사 고용으로 인해 증가한 물류비용은 배송시간 규제로 물자 조달이 어려워진 소상공인이나 생활용품 구입이 어렵게 된 직장인, 특히 맞벌이 부부에게 전가될 우려가 높다. 국민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한국로지스틱스학회 연구에 따르면 새벽배송과 주 7일 배송 규제시 최대 54조3000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미국 나스닥 증시에 상장된 K-물류산업 기업들의 경쟁력에도 타격을 줄 것이다. 미국 아마존 등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새벽배송은 물론 1시간 내 배송 같은 초고속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야간택배 기사들은 배송시간을 규제하려는 정부 정책에 대부분 반대한다. 87%는 택배기사의 업무시간(주간·야간)은 본인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답했고, 85%는 새벽배송을 포함한 야간배송을 법이나 지침 등으로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보고 있다. 택배기사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심야시간대에 배송을 제한해야 한다고 찬성한 비율은 7.4%에 그쳤다. 민노총이 대안의 하나로 제시한 주간·야간 배송 교대제 도입에도 90% 이상이 반대했다. 결론은 자명하다. 정부가 택배기사 건강권 보호를 명분으로 삼아 90% 이상이 반대하는 새벽배송 제한, 주 7일 배송 금지 등 업무시간을 규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비노조원의 소득을 줄이고 노조원의 소득을 올린다면, 한 푼이라도 아쉬운 젊고 경력 짧은 택배기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태다. 영세 자영업자의 생존권도 위협하고 국민 생활을 불편하게 만들며, K-물류산업의 경쟁력도 해칠 것이다. 택시기사도 심야 영업을 하고 있는데, 유달리 택배기사의 건강권에 집착하는 것은 논리적 타당성이 떨어진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2026.01.01.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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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훈의 퍼스펙티브] 노동 경직성, 신산업 진입장벽, 과도한 환경비용 뜯어고쳐야

한국 산업의 전환 기회로 삼아야 할 2026년 2026년이 밝았다. 2025년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와 같은 시간이었다. 상반기만 해도 정치적 혼란과 글로벌 통상환경의 급변으로 국내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극에 달했지만, 하반기에 접어들자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모습이 나타났다. 국내 정치 안정의 틀이 다시 잡히고, 수출과 주가 등 주요 경제 지표들이 반등했다. 비록 환율 지표의 불안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주요 기관들은 2026년의 우리 경제가 나쁘지 않은 궤적을 그리리라는 낙관적 전망을 하고 있다. 트럼프 관세 부정효과 가시화될 전망…미국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AI는 제조업 AI 전환(M.AX) 등 실속 중심의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중국 산업정책의 전략적 정합성과 집요한 실행력에 맞설 수 있나 산업정책의 효율성마저 뒤처지면 한국은 만년 추격자로 전락할 것 그러나 긍정적 전망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절대 녹록지 않다. 현재의 경제 회복세가 지속의 힘이 있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2026년은 한국 산업이 앞으로도 건실하게 성장할 것인지, 아니면 저성장의 늪에 깊숙이 빠져들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저성장 극복 위해 생산성 향상 절실 올해 경제 성장률에 대해 산업연구원은 1.9%, 한국개발연구원(KDI)·한국은행·국제통화기금(IMF) 등은 1.8% 수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보다 더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 기관들도 여럿 있다.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이라 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이 1.8% 내외임을 감안하면, 이는 우리가 가진 역량을 전부 발휘했을 때 도달할 수 있는 수치다. 그 정도면 선방하는 성적표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2% 미만의 성장은 선진국 기준으로 봐도 명백한 저성장 국면이다. 더 큰 문제는 미래의 경로다. 한국개발연구원은 2040년께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0%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은 바 있다. 특히 국내총생산(GDP) 통계에는 노후 자본을 대체하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질적인 생활 수준의 하락은 통계상의 0% 성장보다 훨씬 이른 시점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잠재성장률을 결정하는 세 가지 축인 노동·자본·생산성 중에서 노동은 인구 절벽으로 곧 마이너스 요인으로 돌아선다. 자본투자 역시 성숙기에 접어든 우리 경제 구조상 큰 기여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유일한 돌파구는 생산성 향상에서 찾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총요소생산성(TFP) 증가율은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며 최근에는 0.6%대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에 우리보다 생산성이 이미 두 배 가까이 높은 미국의 총요소생산성 성장률이 1.5%에 달했음은 생각해 볼 지점이다. 단순히 기술혁신 투자를 늘리면 해결되는 일도 아니다. 우리의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은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다. 그러나 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고난도의 특허를 획득하더라도 실제 매출이나 이익으로 연결되는 비중은 미국 기업보다 현저히 낮았다. 좋은 구슬을 만들어도 제대로 꿰지 못하는 셈이다. 시스템 전반의 효율성을 빠르게 제고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멈춰 설 것이다. 시차 두고 찾아올 트럼프 관세 영향 2025년 4월, 이른바 ‘해방의 날’ 선포와 함께 시작된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 폭격은 당초 우려보다는 파괴력이 크지 않았다. 지난해 미국의 실질 평균 관세율은 10% 초반대에 머물렀고, 다른 국가들은 보복관세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유일하게 중국이 보복에 나서자 미국 측도 속도를 조절했다. 오래 쌓아 올린 세계 무역구조가 단숨에 붕괴하지는 않는다는 학습 효과를 얻은 한 해였다. 하지만, 관세가 미국과 세계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시간을 두고 나타날 것이다. 지난해에는 관세 부과 이전에 급증한 선구매 수요와 사업자의 일시적 가격조정 억제가 완충 역할을 했다면, 올해부터는 관세 효과가 본격적으로 기업의 실적과 미국 소비자 물가에 전이될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관세 충격을 상쇄할 요인들도 많다.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이 식지 않고 있으며, 이자율 인하에 우호적인 미 연준 의장의 취임,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대규모 감세와 지출이 수요 위축을 막을 것이다. 트럼프가 얻어낸 대미 투자 약속 이행도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경기 하강을 막는 방어막이 될 것이다. 진짜 위기는 그 이후다. 무리한 확장 재정으로 비대해진 미국의 국가부채와 관세로 인한 비용 상승으로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심화할 수도 있다. 미국 경제와 긴밀히 동조화된 우리 산업계로서도 올해를 단단히 준비하는 시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제조업 우선순위의 AI 전략 필요 AI 열풍은 2026년에도 산업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다. 버블에 대한 경고음이 끊이지 않지만, 유망 기술이 산업의 중심부로 진입할 때 겪는 통과의례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도 조정의 폭과 시기에 따라서는 관련 산업의 충격이 클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국가자원의 상당 부분을 AI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최대한 효율적 투자로 성공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한국은 최근의 반도체 수요 폭증으로 AI 열풍의 주요 수혜국이 되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의 위기설까지 돌았지만, 메모리 반도체의 전략적 가치는 오히려 더욱 공고해졌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명확하다. 첫째, AI 혁신의 열매는 AI 그 자체보다는 우리가 이미 강점을 지닌 분야와 연계될 때 크게 열릴 것이다. 둘째, 산업의 변화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과 속도로 전개되며, AI에 대해서도 급한 마음보다는 실속 중심의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한다. 두 가지 모두 제조업을 우선순위에 둔 AI 전략 추진 필요성을 시사한다. 제조업은 우리가 가장 강점을 지닌 분야로, AI에 필요한 요소들을 공급하면서 동시에 AI로 얻어질 혁신의 주요 수요처다. 위험관리 관점에서도 AI가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수록 제조업이 이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정부가 제조업 AI 전환을 위한 M.AX(Manufacturing AI Transformation) 전략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바람직하다. 중국 산업정책 성공에서 얻는 교훈 중국은 두려운 존재다. 세계 1위의 제조업 생산국이라거나, 무역흑자가 1조 달러를 넘는다거나, 첨단 산업에서도 미국과 경쟁하는 나라가 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이 그동안의 산업 정책을 통해 보여준 전략적 정합성과 집요한 실행력에 우리가 충분히 맞설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한 예로 중국이 탄소 감축이라는 국제적 압박을 선진국을 추월할 기회로 삼은 사례는 정교한 산업 정책의 승리라 할 만하다. 국제사회에는 자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달성할 만한 수준의 목표를 제시했다. 전기차·배터리·태양광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기술혁신, 수요 창출, 인프라 구축, 자금 지원 등 전방위적 육성에 나섰다. 그 결과로 이들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호령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2030년으로 잡았던 탄소 피크 목표도 조기 달성하였다. 이러한 성취는 환경 보호에 대한 도덕적 의지 때문이 아니라 철저한 계산의 산물이다. 다른 국가에서는 논란의 대상이 되는 원전 건설을 10년 사이 5배나 늘릴 정도로 공격적으로 접근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중국과 같은 일방적 정책의 추진은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와는 차별된 수준의 정교하고 적극적인 산업 정책의 필요성은 크다. 중국의 산업은 우리보다 젊고, 투입할 수 있는 자본과 인재의 규모도 다르다. 정책의 효율성마저 뒤처진다면 우리는 곧 만년 추격자로 전락할 것이다. 국가 전략의 정교한 재설계 필요 이제는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첫째,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주력 산업의 전열을 재정비하고, 반도체·조선·방위산업 등 국제 정세와 밀접하게 연계된 부문은 민관 협력의 수준을 한 차원 더 고도화해야 한다. 둘째, 연구개발 투자가 기술혁신으로 그치지 않고, 시장 수요 창출과 공급망 확보로 이어지는 유기적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생산성을 제약하는 규제를 성역 없이 재검토해야 한다. 노동의 경직성, 신산업 진입의 허들, 과도한 환경비용 부담 등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 올해는 한국 경제에 불어닥칠 거대한 태풍을 앞둔 마지막 정비의 해가 될 수 있다. 산업계와 정부가 일체가 되어 2026년을 진정한 전환의 해로 만들어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권남훈 산업연구원 원장

2026.01.01.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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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주의 고려 또 다른 500년] 사익 위해 나라 팔았으나 끝내 경계인으로 남아

몽골에 충성 바친 고려인 반역자들 매국(賣國). 나라를 판다는 말이다. 사전에는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나라의 주권이나 이권을 남의 나라에 팔아먹음’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이 말이 나온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기원전 4세기에 진(秦)나라 왕이 소진(蘇秦)을 두고 “나라를 팔아먹고 변절을 거듭한 신하”라고 비난했다는 기록이 『사기』에 나온다. 소진은 전국시대 최강국 진에 대항하기 위해 나머지 여섯 나라(초·연·제·한·위·조)가 협력해야 한다는 소위 합종책을 주창했고, 그래서 진왕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다. 따라서 소진의 매국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였다고 보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자기 나라를 판 것이 아니었다. 그 뒤로 중국에서는 ‘반역’이란 말을 더 많이 썼는데, 황제를 거역하는 행위를 ‘反逆’, 자기 나라에 해를 끼치고 타국을 이롭게 하는 행위를 ‘叛逆’이라고 했다. 뒤의 ‘叛逆’이 매국과 같은 말이 되겠다. 고려도 긴 역사에서 반역자가 없을 수 없었다. 『고려사』는 ‘반역전(叛逆傳)’을 따로 두고 40여 명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고려인 부대 끌고 고국 쳤던 홍복원 인질 고려 왕족 홀대하다 처형돼 홍복원 아들 홍차구 용맹 떨쳤지만 충렬왕 외교 담판, 고려에서 쫓겨나 고려사 ‘반역전’에 나오는 40여 명 몽골 내 행적 불분명 쓸쓸한 삶 산 듯 앞장서 항복 권유한 홍대순 고려시대의 반역자 가운데는 몽골과 전쟁 중에 항복한 사람이 많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살길이 막힌 상황에서 항복한 것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항복의 동기나 항복 이후의 행적은 평가의 대상이 된다. 홍대순(洪大純)이란 사람이 있었다. 1218년 압록강 바로 남쪽 인주(평안북도 의주)의 군대 지휘관이었는데, 몽골군이 들어오자 싸우지 않고 나가서 맞이했다. 몽골과의 첫 접촉이고, 이때까지만 해도 몽골을 적대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이 행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양국 관계가 악화되어 1231년부터 몽골의 침략이 시작되자 아들 홍복원(洪福源)을 데리고 재빨리 항복했다. 그리고는 몽골군에게 길을 안내하거나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역할을 했다. 생존을 위한 항복으로 보기 어려운 태도였다. 1232년 겨울, 처인성(경기도 용인)에서 몽골군 지휘관 사르탁이 김윤후의 화살에 죽고 몽골군이 모두 철수하는 일이 있었다. 그때 홍복원은 서경(평양)에서 1년 동안 버티고 있다가 조정의 토벌에 밀려 몽골로 도망쳤다. 몽골에서는 자원해서 건너왔거나 포로로 끌려온 고려 사람들을 심양(랴오닝성 선양)과 요양(랴오닝성 랴오양) 일대에 집단 거주시키고 홍복원에게 관령귀부고려군민장관(管領歸附高麗軍民長官)이라는 관직을 주어 관리하게 했다. 홍복원은 이들로 군대를 조직해서 많을 때는 3000을 헤아렸는데, 이 군대를 끌고 고려 침략에 앞장섰다. 1235년 자주(평안남도 순천)·귀주(평안북도 구성), 1254년 동주(강원도 철원)·춘주(강원도 춘천)·충주, 1256년 해양(지금 광주) 등이 그가 출몰한 지역이었다. 거기서 그가 동족을 살상하며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반역의 대가로 홍복원은 원에서 출세했다. 쿠빌라이 칸을 직접 만나 갑옷과 안장 등을 하사받는 영광도 누렸고, 요양에 설치된 동경(東京)의 최고 관직인 총관까지 승진했다. 『고려사』와 『원사』 열전에 모두 이름을 올린 것은 홍복원이 유일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 반역자를 몽골 사람들도 마음속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쓸모가 다하자 헌신짝처럼 버렸다. 전쟁 중 몽골에 인질로 파견된 고려 왕족 왕준(王綧)과의 불화가 발단이었다. 그의 최후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고려사』 열전). 왕준이 처음 몽골에 갔을 때 홍복원의 집에 거처하며 신세를 졌다. 하지만 그의 눈에 평민 출신인 홍복원이 하찮게 보였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심양·요양 지역에 살고 있는 고려 사람들에 대한 관리권을 홍복원에게서 빼앗으려고 여기저기 청탁했다. 홍복원이 이 사실을 알고는 “공이 제게 은혜를 입은 지 오래되었는데 어찌 저를 모함하십니까? 이는 기르던 개가 주인을 무는 격입니다”라며 따졌다. 곁에서 이 말을 듣던 왕준의 부인이(이 사람은 몽골의 황족이었다) 화를 내며 홍복원을 무릎 꿇게 하고는 물었다. “너는 네 나라에 있을 때 무얼 하던 사람이냐?” 홍복원이 “변방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다시 “우리 공은 무얼 하던 사람이냐?” 하고 물었다. “왕족이셨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렇다면 우리 공이 주인이고 네가 개이거늘, 도리어 공을 개라고 하고 주인을 문다고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황제께서 우리 공이 왕족이라며 혼인시켜서 내가 공을 모시고 살고 있는데, 만약 공이 개라면 내가 개와 산다는 말이냐?”라며 곧바로 황제에게 일러바쳤다. 그러자 황제 쿠빌라이는 장사 수십 명으로 하여금 홍복원을 밟아 죽이게 했다. 나라를 팔아 출세한 사람답지 않은 초라하고 비참한 죽음이었다. 홍차구 중앙관직 못 얻어 홍복원의 아들 홍준기는 어려서부터 몽골군에 종군했고, 용맹스럽다는 소리를 들었다. 쿠빌라이 칸이 어릴 적 집에서 부르던 이름인 ‘차구(茶丘)’라고 불러 친근함을 보였고, 그 때문에 홍차구로 더 알려졌다. 열다섯 살 때 아버지를 잃었지만, 2년 만에 쿠빌라이에게 호소해서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고 왕준에게 빼앗겼던 장관 자리도 되찾았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고려를 침략해서 몽골에 충성 바칠 기회는 없었다. 그사이에 강화가 맺어지고 전쟁이 끝났기 때문이다. 강화의 조건으로 고려에서는 전쟁 중 항복한 사람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몽골로서는 돌아가면 죽을 게 뻔한 이 ‘충견’들을 버릴 수 없었다. 그 바람에 홍차구를 비롯한 반역자들이 몽골에 남아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홍차구는 양국 관계가 삐걱거릴 때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로 활용했다. 삼별초의 반란이 일어나자 군대를 이끌고 와서 진도와 제주도를 공격했고, 몽골이 일본을 침략할 때는 힌두와 함께 몽골군 최고 지휘관으로 참전했다. 이 무렵 홍차구는 고려 국왕을 보고도 절을 하지 않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여기까지 보면 온전한 몽골인으로 정착한 듯했지만, 여전히 몽골의 주류 사회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중앙 관직에는 임명되지 않았고, 몽골의 변방인 동경을 떠나지 못했다. 홍차구조차 그랬으니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끝내 몽골인이 될 수도 없고, 고려로 돌아올 수도 없게 된 경계인의 삶이었다. 몽골에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충성심을 증명해야 했는데, 몽골에 빌붙어 고려를 모함하거나 몽골의 고려 수탈에 앞장서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반역 행위를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이추(李樞)라는 사람이 있었다. 고려의 관리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일찌감치 몽골로 도망해 들어갔다. 1271년부터 본격적으로 반역 행위를 시작해서 금칠(金漆)·청등(靑藤)·팔랑충(八郞虫)·비목(榧木)·노태목(奴台木) 같은 희귀한 물건이 고려에서 생산된다고 일러바쳤다. 이 말을 듣고 몽골에서는 그를 고려로 파견해 가져오도록 했고, 고려에서는 이런 물건을 찾아내느라 진땀을 흘렸다. 또 고려에 큰 목재가 있다고 하고 고려에 와서는 배 10척 분량의 목재를 실어 갔다. 이밖에도 조윤통이란 자는 산삼이 난다고 하고, 임유간은 진주가 난다고 하고, 홍종로는 금이 난다고 하고는 고려에 와서 몽골의 약탈을 돕고, 겸해서 사사로운 이익을 챙겼다. 일본의 국권 침탈 때 ‘매국노’ 단어 등장 반역자의 존재는 고려 외교에 큰 짐이 되었다. 1278년 충렬왕은 몽골에 가서 쿠빌라이 칸을 만나 담판을 벌였다. 고려에 주둔하고 있는 몽골 군대와 다루가치를 철수시키고 아울러 홍차구를 몽골로 불러들일 것을 요구했고, 대신 앞으로 있을 몽골의 일본 침략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반역의 무리를 고려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이후 이들이 몽골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이름을 남긴 사람이 없는 거로 보아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고려·조선시대에는 매국의 의미로 반역이란 말이 더 많이 쓰였다. 그러다 1900년대 초 일본에 국권을 침탈당하는 상황에서 매국노(賣國奴)라는 말이 등장했다. 나라를 팔아먹는 행위는 노예처럼 남에게 종속된 사람이나 하는 짓이라는 비하의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국권을 빼앗긴 적 있는 우리에게는 매국노에게 치를 떨며 살아온 역사가 있다. 2026년 새해에는 부디 이 아픈 기억을 떠올리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이익주 역사학자·서울시립대 교수

2026.01.01.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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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란의 쇼미더컬처] ‘흑백요리사2’로 ‘오징어게임’ 넘어서기

총 13부작 중 3회분(1월 6일 공개)만 남겨둔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2’를 보다 보면 또 다른 넷플릭스 히트작 ‘오징어게임’(이하 ‘오겜’)이 절로 떠오른다. 단계별 경쟁을 통과해야 살아남는 서바이벌 구도, 승자독식의 규칙은 기본적으로 같다. 흑수저들이 본명 대신 닉네임을 쓰는 설정 역시 참가자 번호로만 불렸던 ‘오겜’의 익명성을 연상시킨다. 시즌2는 이런 닮은꼴을 한층 노골적으로 밀어붙인다. 비장하게 재도전에 나선 ‘히든 백수저’는 ‘오겜 2’의 기훈(이정재)을 떠올리게 했다. 4라운드 흑수저 패자부활전 ‘라스트 박스’ 미션에서는 ‘오겜’의 핑크 리본 관을 떠올리게 하는 상자가 등장했다. 결정적인 순간은 따로 있다. 2인 1조로 연합전을 치른 직후, 바로 그 파트너와 1대1 사생전을 벌이는 장면이다. ‘오겜 1’에서 생존을 위해 ‘깐부’를 제거해야 했던 ‘구슬치기’의 악몽이, 조금 전까지 같은 재료로 손발을 맞췄던 요리사들 사이에서 재현된다. 그러나 두 프로그램의 세계는 여기서 갈라진다. 사생전의 결과가 그리 잔혹하지 않다는 점에서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오겜’에선 죽고 사는 문제였던 반면에 ‘흑백요리사’에서 탈락자는 명패를 들고 무대를 떠나면 그만이다. 물론 명예를 건 경쟁에서 승리가 아닌 패배를 반길 이는 없다. 세속에 초연해야 할 선재 스님마저 “봐주는 것처럼 보이면 자존심이 상한다”며 진심을 다했다. 그럼에도 결과가 나오자 그는 김희은 셰프가 올라가길 바랐다며 덕담을 건넸다. “저는 사부님의 영원한 제자”라며 눈물을 훔친 천상현 셰프나 “내가 졌어야 했다”며 제자를 다독인 후덕죽 셰프에게 승패는 부수적인 결과일 뿐이었다. “이 세트장은 다 허구다.” 시즌1에서 최강록이 남긴 이 말이야말로 이 프로그램의 본질을 꿰뚫는 것 아닐까. 결국 이것은 쇼이고, 인생이라는 더 큰 무대에서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연기하며 살아간다. 탈락하든 우승하든, 요리사들은 화면 밖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만든 요리는 폐기되지 않고, 경험과 기술은 현실로 이월된다. 안성재를 대표로 한 심사위원들이 참가자들에게 끊임없이 묻듯, 진짜 남은 과제는 ‘무엇을 만들었고 왜 그렇게 했는가’다. 이 답을 찾는 여정은 넷플릭스 쇼 안에 갇히지 않는다. “최선을 다했고, 이제 돌아가 내 요리를 하겠다.” 탈락자들의 공통된 이 말에서 이상하리만치 위안을 받는다. 이 세계에 단 하나의 경쟁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나아가 경쟁이 더 넓은 세계로 이끌어주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오겜’은 지독한 성과주의와 물질만능, 비정한 승자독식을 보여줘 ‘21세기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란 평가를 낳았다. 흥미롭게도 그 포맷을 차용하면서 ‘흑백요리사’는 ‘오겜’을 넘어서는 사회를 상상하게 만든다. 새해 벽두에 스스로, 그리고 모두에게 드리는 응원의 말이기도 하다. 강혜란([email protected])

2026.01.01.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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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진의 돈의 세계] 토정비결과 경제전망

“미신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은 확률을 이용한 과학이었는지도 모른다.” 문화부 장관으로도 활동한 고 이어령 교수는 “오늘날에도 연말연시가 되면 여전히 날개 돋친 듯 팔린다”, “무엇인지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묘한 매력이 있는 모양이다”라며 이 책에 대해 위와 같이 분석한 바 있다(『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이것이 한국이다』, 1963). 바로 토정비결이다. 이 분석에서 더 들어가 통계를 낼 수 있다. 토정비결 144괘 중 행운이 57가지이고 불운은 40가지다. 나머지 47가지 중 모호한 운수(‘만리를 가는 구름이 무심히 산에서 나온다’)가 12가지이고, 조건부 행운(‘노력하면 빛이 나리라’)은 13가지, 금지·금기(‘서로 다투면 구설이 우려된다’)는 22가지다. 이로부터 토정비결이 신년운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이목을 수백 년간 끈 비결을 추측할 수 있다. 첫째, 행운이 불운보다 더 높은 확률로 나오도록 운세를 배합했다. 둘째, 해석의 여지가 넓어서 결과가 대략 그 구절 속에서 풀이될 수 있는 괘를 다수 넣었다. 셋째, 조건부 행운과 조건부 금지로 사람들의 심리를 사로잡았다. 행복한 결과에 이르는 활동이나 불행을 피하려면 경계해야 할 일을 담은 구절이 실행 지침으로서 공감을 얻은 것이다. 올해 경제는 다행히 지난해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이리라는 전망이 많다. 토정비결에 비추어볼 때, 경제의 방향 못지않게 중요한 ‘점괘’가 조건부 전망이다. 이는 ‘주요 변수가 어떻게 전개될 듯하니, 이러저러하게 대응하라’는 형식을 띤다. 어떤 기관은 인공지능(AI) 변수를 성장률과 관련해 낙관·비관 시나리오로 펼쳐 보인다. 필자라면 이런 틀 대신 조건부 전망으로 다음을 내걸겠다. “AI가 일으킨 두뇌 산업혁명과 피지컬 AI 변화의 흐름을 한국이 주도하지 못할 경우, 선도국들과의 격차는 가속적으로 벌어지게 된다.” 백우진 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 대표

2026.01.01.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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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혁의 마켓 나우] 2025년이 남긴 세 가지 투자 교훈

2025년 역시 쉽지 않은 장세였다. 예상을 뛰어넘는 고관세 정책이 시장을 뒤흔들더니, 곧이어 관세 완화와 AI 투자 열풍이 시장의 불안을 빠르게 잠재웠다. 이처럼 투자를 둘러싼 변수는 예측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단기 대응에 급급하다 보면 시장의 오랜 역사가 알려주는 중요한 사실들을 간과하기 쉽다. 새해를 맞아 지난해가 남긴 투자 교훈을 정리한다. 첫째, 급락장에서 쫓기듯 매도하는 것은 금물이다. 공포에 사로잡혀 성급히 매도하면 재매수 시점을 포착하기 어렵다. 지난해 4월 관세 충격으로 고점 대비 19% 급락했던 S&P500 지수는 불과 1주 만에 바닥을 확인한 뒤 연말까지 38% 상승하는 반전을 보였다. S&P500 지수는 연중 고점 대비 10% 이상 하락하는 조정을 겪고도 연간 수익률이 상승 마감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JP모건의 분석에 따르면, 1980년 이후 연중 고점 대비 최대 하락폭의 평균은 14.1%에 달했지만, 지난 45년 가운데 34차례는 연간 수익률이 플러스로 마감됐다. 둘째, 주가순이익비율(PER, 주가/주당순이익)로 주가의 고점과 저점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S&P500 지수는 인터넷 버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인 PER을 이유로 고평가 논란에 시달려 왔지만, 현재까지도 강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PER은 계산이 쉽고 직관적이라는 장점 덕분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가치평가 지표다. 그러나 PER은 주가를 결정하는 독립적인 수치가 아니라 기업의 실적과 미래 성장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반영된 결과물일 뿐이다. 기업이 투자 활동을 통해 주주가 요구하는 수익률을 상회하는 성과를 창출하며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면, 주가는 상승하고 높은 PER 역시 유지될 수 있다. 셋째, 환헤지는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보유 자산의 대부분이 원화 기반인 상황에서 해외 투자 자산마저 환헤지로 원화 가치에 고정하는 것은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불리할 수 있다. 2025년을 되돌아보면, 원·달러 환율 급등에 따른 달러 유출과 물가 상승 우려로 국가적 위기감이 조성되기도 했다. 과거 데이터 역시 해외 장기투자에서는 환헤지를 하지 않는 환노출 전략이 위험(변동성)을 최소화하면서도 효율성(변동성 대비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데 더 유리함을 입증한다. 2025년 시장은 장기투자에서 복리의 힘을 온전히 누리려면 무엇보다 투자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단기적인 시장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고점을 성급히 단정하지 않으며, 환헤지를 지양해 구조적 위험을 낮추는 태도가 그 출발점이다. 최정혁 한양사이버대학교 경제금융자산관리학과 교수

2026.01.01.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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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의 뉴스터치] 60년 만에 은퇴하는 워런 버핏

6,100,000%. 워런 버핏(95)이 이끈 버크셔 해서웨이가 지난해 말까지 60년간 올린 것으로 추산되는 누적 수익률이다. 1965년 망해가던 직물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한 뒤 보험과 철도 등 200여개 자회사를 둔 연 매출 약 400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지주사로 키워내며 버크셔 해서웨이와 버핏은 동의어가 됐다. 지난 1일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CEO직은 그레그 에이블 부회장이 물려받았고, 버핏은 회장직만 유지한다. 버핏의 퇴진은 예정된 바다. 지난해 5월 ‘연례 주주 서한’에서 2025년 말 CEO직 승계를 밝힌 그는,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 서한’에서는 “나는 이제 조용히 지내려 한다”며 은퇴 결심을 재확인했다. 장기 투자와 가치 투자, 복리의 힘을 강조하는 버핏이 이룬 부는 어마어마하다. 지난 1일 기준 포브스의 ‘억만장자 순위’에 따르면 버핏의 자산은 1540억 달러다. 세계 6위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이룬 부의 대부분을 사업가로서가 아니라 전문투자자로서 일궈 냈다는 점이다. 전설적 투자자란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다. 버핏은 재산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며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오마하의 현인’이란 수식어답게 버핏이 남긴 철학적인 조언도 수많은 이들에게는 삶의 지침이 되고 있다. 버핏 어록 중 새해를 맞아 새로운 다짐을 새길 이들에게 어울릴 말을 골라보았다. “과거의 실수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 그 경험에서 조금이라도 배우고 나아가면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나아질 수 있다.”(2025년 11월 ‘추수감사절 서한’ 중) 하현옥([email protected])

2026.01.01.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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