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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소청 보완수사권은 국민을 위한 안전 장치

━ 정성호 “혁명 아닌 개혁을…보완수사는 증거 보완” ━ 보완수사 요구권만으론 기소와 공소 유지 어려워 ━ 수사 개시·종결 가능한 경찰…견제와 균형 필요 최근 여당 내 강온 양파 간 혹은 친명·친청 간 대립의 중심엔 보완수사권 논쟁이 있다. 오는 10월 문을 닫는 검찰청 대신 출범하는 공소청 소속 검사에게 보완수사권을 줄 것인지, 아니면 보완수사 요구권만 부여할 것인가다. 강경파는 수사·기소 분리 원칙을 이유로 보완수사권 자체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온건파는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지난 12일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공소청 검사에겐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검사들의 직접수사 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이 폐지된 상황에서 보완수사는 사실상 ‘수사’가 아니라 ‘증거 보완’에 가깝다”며 보완수사권은 제대로 된 기소와 공소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정 장관의 설명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치 공방을 떠나 형사사법 제도의 틀 안에서 보면 보완수사 요구권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보완수사 요구는 원칙적으로 한 차례만 할 수 있다. 경찰이 보완수사를 한 뒤 사건을 다시 송치하면 검사는 더 이상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없고 그 상태에서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어도 무혐의 처리될 수도 있고,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소가 이뤄질 수도 있다. 이런 구조에서 ‘사건 떠넘기기’가 일어나면서 처리가 지연되거나 뒤늦게 문제가 생기면 기관끼리 책임 공방을 벌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8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보좌진 명의로 차명 주식 투자를 한 장면이 포착돼 수사를 받아온 이춘석 의원 사건의 경우, 경찰과 검찰 사이를 오가며 아직 기소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은 게 대표적 사례다. 공소청 검사에게 제한적이나마 보완수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효율성의 차원을 넘어 수사·기소기관 간의 견제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정 장관은 “증거를 보완하라고 하지 못한다는 것은 수사 과정을 아무도 지켜보지 못한다는 의미”라며 “그렇게 되면 누군가 돈을 받고 사건을 덮어버려도 이를 바로잡을 방법이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수사 개시권과 종결권을 가진 경찰이 무조건 착하고 완벽하다고 믿는 것은 위험하다는 정 장관의 지적은 타당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권한은 이전보다 강화됐다. 여기에 공소청의 보완수사권마저 없어진다면 경찰 수사를 통제하기가 어려워진다.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주면 표적 수사를 하고 결국 과거의 검찰이 부활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공소청은 직접수사 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이 없다. 공소청보다는 신설되는 중대범죄수사청이나 경찰이 훨씬 더 큰 권한을 갖는다. 만일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권조차 문제가 된다면, 중수청이나 경찰의 표적 수사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특정한 수사기관이 비대해지고 통제를 받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검찰 개혁의 핵심은 검찰에서 권력을 빼앗는 것이 아니다. 최종 목표는 국민의 권리 구제와 인권 보호”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예외적으로 보완수사권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권 강경파의 주장은 검찰 개혁이 아니라 검찰 완전 해체에 가깝다. 이는 정 장관의 표현대로 국가기관의 기능을 다 없애고 새로 시작하자는 혁명이나 다름없다. 개혁을 내세우지만 결과적으로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권리 구제가 늦어진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또 다른 비효율일 뿐이다. 형사사법 제도는 추상적 원칙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기준으로 설계돼야 한다.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실용적 관점에서 판단한다면 공소청에 제한적 보완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이 마땅하다.

2026.03.13. 8:34

[중앙칼럼] ‘추천 모델’ 서 사라진 현대·기아차

자동차 구매에 나선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참고하는 매체 중 하나가 바로 비영리 소비자 단체가 발행하는 컨수머리포트다. 소비자들에게 컨수머리포트의 ‘추천’ 마크는 구매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신뢰도 높은 지표로 통하기 때문이다. 컨수머리포트는 광고를 받지 않고 제조사 협찬 차량 대신 직접 구매한 차량으로 테스트한다. 또한 수십만 명의 실제 차주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뢰성을 평가해 일종의 품질 성적표로 통한다.     컨수머리포트의 평가 결과는 판매 실적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제동 거리가 대형 픽업트럭 수준으로 길게 측정됐다며 테슬라 모델 3를 ‘추천’에서 제외하자 일론 머스크가 즉각 조사에 착수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대응한 것은 이 매체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런 점에서 최근 몇 년간 컨수머리포트 평가에서 나타난 변화는 한국차에 경고음이 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26년 최고의 신차(Top Picks) 톱10 가운데 일본차들이 신뢰성과 소비자 만족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절반 이상을 차지한 반면 한국차는 단 한 대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한국차가 마지막으로 이 리스트에 포함된 것은 지난 2023년 기아 텔루라이드와 현대 싼타페 하이브리드였다. 이후 최근 3년 동안 한국차는 추천 모델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유는 단순히 성능 때문만은 아니다. 컨수머리포트는 도로 테스트뿐 아니라 예상 신뢰성, 안전성, 소유자 만족도를 종합해 평가한다. 최근 조사에서 현대와 기아 전기차 소유주의 2~10%가 충전 불능이나 주행 중 동력 상실과 같은 문제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일반 전기차 평균 문제 발생률이 1% 이하라는 점과 비교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는 부품이 바로 ICCU(통합충전제어유닛)로 고장이 발생할 경우 전기 시스템이 멈추거나 차량이 주행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     문제는 이 부품이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사용하는 여러 모델에 공통으로 장착된다는 점이다. 효율성과 원가 절감을 위해 플랫폼을 공유하는 전략은 생산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지만, 특정 부품에 문제가 발생하면 동시에 여러 브랜드와 차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구조적 위험도 함께 안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 아이오닉 5·아이오닉 6, 기아 EV6·EV9, 제네시스 GV60 등 일부 전기차에서 비슷한 사례가 보고되면서 리콜과 레몬법 소송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판매 성적만 보면 한국차의 전기차 전략은 나름 성과를 거두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 내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에 이어 판매량 2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디자인과 충전 속도, 가격 경쟁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줬다. 그러나 기술 선점이 소비자 신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동시에 드러났다. 어떤 제품이든 “기술력은 앞서지만, 품질이 불안하다”는 인식이 퍼질 경우, 신뢰도는 빠르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보조금 정책 폐지로 전기차 수요 성장세가 일시적으로 둔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조지아주의 메타플랜트에서 전기차뿐 아니라 하이브리드 모델을 함께 생산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방향을 수정한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조치로 알려졌다.     따라서 한국차가 직면한 선결 과제는 단순히 판매 확대가 아니라 완성도와 품질 안정성을 바탕으로 하는 신뢰성 회복이 아닐까 싶다. 기술력은 따라잡을 수 있지만, 신뢰는 한 번 흔들리면 회복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컨수머리포트의 평가는 소비자들에게 구매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 성적표에서의 부진은 단순한 이미지 문제가 아니라 시장 경쟁력과 직결된다. 결국, 한국차가 다시 컨수머리포트 추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는 소비자의 신뢰를 얼마나 빠르게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낙희 국장/경제부중앙칼럼 기아차 추천 추천 모델 테슬라 모델 소비자 만족도

2026.03.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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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화가 김수철, 화가 박신양

한국의 가수 김수철과 배우 박신양의 미술작품 개인전 기사를 읽고, 많은 생각이 든다. 우선은 예술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자유로움이 기존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과 긍정적 자극을 줄 것으로 보인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실제 작품과 전시회를 보지 못하고, 영상이나 기사 이미지만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두 사람의 작품세계나 미술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가 만만치 않다. 그저 ‘아트테이너’라고 넘기기엔 여러모로 살펴볼 점이 많다.   ‘아트테이너’란 아티스트와 엔터테이너의 합성어로, 그림 그리는 연예인을 말한다. 조영남, 하정우, 솔비, 최백호, 임하룡… 밥 딜란, 폴 매카트니, 앤소니 홉킨스… 같은 이들이 대표적인 예다.   김수철과 박신양은 기존의 아트테이너들에 비해 신선하고 파격적이다. 음악 천재로 알려진 가수 겸 작곡가 김수철의 첫 개인전 ‘소리그림’은 소리를 붓 터치와 색채로 시각화한 대작 및 소품 100여 점을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넓은 전시실에 펼쳐 놓았는데, 그 자유분방하고 힘찬 표현이 상당한 수준이다. 30년 넘게 남들 모르게 작업해 온 1000점 이상의 그림 중 엄선한 작품들이라고 한다. 30년, 1000점 이상의 작품! 미술가들에게 한 방 먹이는 것 같다.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얼마 전에는 국악기와 서양악기 합동 100인조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스스로 지휘하며 노래도 부르는 파격적 음악회를 열어 화제를 모으더니, 이번엔 그림이다. 그러니까, 서양음악과 우리 음악을 하나로 아우르는 작업의 연장 선상에서 그림과도 하나로 융합하는 노력인 셈이다. 그동안 그가 발표했던 많은 음악 작업의 바탕에 그림이 깔렸었던 것이다. 그는 말한다.   “음악과 그림, 시는 본디 하나다.”   한편, 박신양의 개인전 ‘제4의 벽’은 한층 대담하고 실험적인 도전이다. ‘전시쑈’ ‘한국 최초 연극적 전시’라는 설명으로 알 수 있듯, 오랜 세월 배우로서 축적해온 ‘표현’의 경험을 회화로 확장하고, 전시와 연극의 경계를 지혜롭게 허무는 새로운 시도로 주목된다.   박신양은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1, 2 전관 전시장을 화가의 가상 작업실로 구성하고, 작업실의 사물들이 ‘정령’이 되어 살아 움직인다는 설정 아래, 15명의 배우가 등장해 회화와 연극이 교차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관람객은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이야기 속에 초대된 존재로 전시를 경험하게 된다.   “대형 작품 200점 규모의 대형 전시, 배우들의 연기와 퍼포먼스, 화가 자신이 무대감독, 미술감독, 연출자가 되어, 박신양 작가만의 정서와 방식으로 풀어낸 특별한 공간에서 작가와 관람객들의 예술적 소통이 펼쳐진다!”는 설명만으로도 기대가 커진다. 멋있다.   배우 박신양이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흥미롭다. 촬영 중 허리를 여러 차례 다쳐 수술을 받았고, 이후 갑상선 이상까지 겹치면서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스스로 몸을 가누기 어려운 시간이 10년 넘게 이어졌다고 한다.   긴 투병생활 중 ‘그리움’이 그의 삶의 방향을 바꿔주었다. 러시아 유학 시절 함께 공부했던 친구가 몹시 그리웠고, 그 감정을 붙잡기 위해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붓을 잡아본 적은 없었다”고 한다. 첫 그림을 완성한 뒤 그림 작업은 곧 삶의 중심이 됐다. 결국, 박신양은 그림을 통해 구원을 얻은 것이다. 그림은 그리움이다.   박신양은 얘기를 찾고 싶고, 찾은 얘기를 조금이라도 하고 싶어서, 그림을 팔지 않는다는 원칙도 고수하고 있다.   음악인 김수철, 연기자 박신양 같은 ‘아트테이너’ 작가들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모든 예술은 장르의 장벽을 넘어 하나로 통할 수 있다는 것, 기존의 틀에 갇혀 안주하지 말고 계속 도전해야 한다는 것….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김수철 박신양 배우 박신양 박신양 작가 가수 김수철

2026.03.1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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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페르시아 하늘, 이란 사람들

‘페르시아 시장에서’를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으면 낙타들의 발소리가 다가오는 듯, 공주와 마술사들을 보는 듯 신나고 경쾌하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어떠한가? 신드바드의 희한한 모험과 알라딘 램프, 알리바바와 40인 도둑 등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이 책은 인도, 페르시아, 아랍 등에서 구전되던 이야기를 18세기 프랑스인 앙투안 갈랑이 모은 설화집이다. 내용은  페르시아 사산 왕조 때 왕비 세헤라자드가 살아남기 위해 1000일 동안 왕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렇듯 먼 나라 페르시아는 기원전 550년 아케메네스 왕조를 시작으로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로 이어 오다가 1935년에는 국호가 이란으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지금의 이란은 어떤가? 경제 제재와 인플레 등 경제 위기로 지난해 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자 이란 정부는 무자비한 탄압으로 맞섰다.  이슬람 시아파 중심의 신정 체제는  반미의 근거지가 되어 왔고, 비밀리에 핵개발까지 추진했다. 이런 이유는 지금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맹폭을 당하고 있다.     10여년 전 ‘테헤란의 지붕’이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이란에서 성장한 마보드 세라지라는 미국 작가가 쓴 것으로 친미 팔레비 왕조가 1979년 반정부 시위로 무너지기 전인 1973년의 이란이 배경이다.     당시 팔레비 왕조는 근대화와 여성 권리 확대, 그리고 산업화로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종교계의 반발과 빈부 격차의 심화를 초래했다. 국민의 반발이 커지자 팔레비 왕조는 권력 유지를 위해 사바크라는 비밀 경찰 조직을 강화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지식인이나 대학생들은 감시당하고 죽거나 실종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소설의 주인공도 그렇게 희생이 되고 만다.  ‘박사’라고 불린 대학생을 멘토로 여기며 따르던 파샤는 그가 사바크에 끌려가자  그 자리에 장미 나무를 심는다. 민중들의 절망과 희망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하고 보존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도 귀하다고 생각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주인공의 약혼녀인 ‘자리’가 국왕(샤)의 생일 축하 퍼레이드가 있는 날 광장에서 분신한다. 약혼자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촛불을 밝힌다는 의미였다. 그들의 항거는 동시대에 민주화를 염원하던 한국의 사회 상황과도 비슷했다.     소년들은 밤이 되면 지붕 위에 모여 꿈을 키우고 부모들은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자녀들에게 들려준다. 신뢰와 사랑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튼튼한 내면세계가 정감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슬람이 전래 되기 전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던 유구한 역사의 페르시아 땅, 이제는 이란 사람들이 왕조나 신정체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잘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권정순 / 전직 교사발언대 페르시아 하늘 페르시아 시장 페르시아 사산 인도 페르시아

2026.03.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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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기지개는 ‘켜야’

나른한 오후, 잠이 솔솔 몰려오고 피곤이 쌓여 몸이 찌뿌드드한 것같이 느껴지면 하는 행동이 있다. 바로 ‘기지개’다. 손을 머리 위로 하고 몸을 쭉 펴 주면 몸의 긴장이 풀어지고 정신이 들기도 한다.   “지치고 피곤할 땐 기지개를 한번 켜 보라”고 권유하면, 어떤 이들은 ‘기지개를 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듯하다. ‘기지개를 켜다’ 못지않게 ‘기지개를 펴다’라는 표현도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펴다’는 굽은 것을 곧게 하는 행위, 움츠리거나 오므라든 것을 벌리는 행위를 나타낼 때 쓰는 단어다. 그렇기에 팔다리를 펴는 행위인 ‘기지개’에도 ‘펴다’를 결합시켜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될 법하다.   그러나 ‘기지개’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피곤할 때 몸을 쭉 펴고 팔다리를 뻗는 일’이라고 풀이돼 있다. 다시 말해 ‘기지개’에는 이미 ‘펴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의미가 중복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펴다’가 아닌 ‘켜다’와 함께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간혹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키는 것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에서와 같이 ‘기지개를 키다’로 쓰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이 역시 바르지 못한 표현으로, ‘기지개를 켜다’라고 고쳐 써야 한다.   ‘기지개를 켜다’는 팔다리를 쭉 펴는 행위만 나타내는 게 아니라 “경기가 바닥을 찍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에서처럼 ‘서서히 활동하는 상태에 들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말 바루기 기지개 머리 위로

2026.03.12. 20:20

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시카고 재산세는 왜 미국에서 가장 비쌀까

시카고 지역에서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질문을 한다. “왜 일리노이의 부동산세는 이렇게 비싼가.” 미국에서 재산세 또는 부동산세(Property Tax)는 집이나 건물을 가진 사람이 내는 세금이다. 소득세는 돈을 번 사람이 내는 세금인 데 반해, 재산세는 건물이나 주택과 같은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매년 내는 세금이다. 이런 재산세는 지방정부의 가장 중요한 재원이다. 경찰서, 소방서, 학교, 공원, 도서관 같은 지역 공공서비스를 유지하는 비용의 상당 부분이 재산세에서 나온다. 재산세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계산된다. 부동산세(재산세) = 부동산 가치 × 세율.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부동산의 가치이고, 둘째는 세율이다. 이 중에서 부동산의 가치를 결정하는 곳은 카운티의 감정사무소(Assessor)다. 쿡 카운티에서는 Cook County Assessor가 부동산의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부동산의 가치를 산정한다. 쿡 카운티에서는 모든 부동산을 동시에 재평가하지 않는다. 시카고 지역, 북부 교외 지역, 남부 교외 지역, 이렇게 셋으로 나누어 약 3년 주기로 돌아가며 순환 재평가 방식으로 평가한다. 따라서 자기 지역이 재평가되는 해에는 그 지역의 재산세가 크게 변동하기도 한다.   재산세는 단순히 자기 집의 가치가 올라서 증가하는 것만은 아니다. 카운티가 받아야 할 재산세 총액이 해마다 먼저 결정되고, 그 총액을 집과 건물을 가진 사람들이 나누는 구조다. 이때 총액을 결정하는 것은 지역의 공공기관들이다. 공립학교, 커뮤니티 칼리지, 카운티 정부, 공원관리기관, 도서관 등 수백 개의 지방 공공기관들이 매년 각각 자신들이 필요한 예산을 정한다. 카운티 클럭(County Clerk)은 이 예산 총액을 모두 합한 뒤, 감정사무소가 결정한 각 부동산의 가치를 기준으로 나누어 세율을 거꾸로 결정한다. 결국 재산세는 부동산의 가치와 지방정부의 예산총액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리노이의 예산 구조는 다른 주들과는 조금 다르다. 이 차이가 비싼 재산세의 원인이다. 첫째, 학교 재정 구조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공립학교 재정의 상당 부분을 주정부가 주소득세로 부담한다. 하지만 일리노이주는 공립학교 교육 재정의 상당 부분을 카운티의 재산세에 의존한다. 둘째는 공무원 연금이다. 일리노이와 시카고는 오랫동안 공무원 연금 재정을 충분히 적립하지 못해 왔고, 그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세금 압박이 커졌다. 셋째는 엄청난 수의 지방정부의 수다. 일리노이에는 약 6,000개 이상의 지방정부 단위(local taxing districts)가 존재한다. 학교, 타운십, 공원구, 소방구 등 다양한 특수 행정구역이 각각 자신들의 예산을 확보하려 한다. 행정 단위가 많을수록 세금 구조도 복잡해지고 부담도 커지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이유 때문에 일리노이의 부동산세는 미국에서 거의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한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일리노이의 평균 실효 부동산 세율은 약 2% 안팎으로 미국 평균 1%보다 훨씬 높다. 레이크 카운티 같은 곳에서는 2.5%에서 3%에 가까운 세율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말은 집값이 50만 달러인 주택의 주인이 매년 약 1만 달러에서 1만 5천 달러 정도의 재산세를 낸다는 의미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한국은 0.1% 정도밖에 안 된다. 그래서 미국의 많은 주택 소유자들이 재산세 이의 신청(Appeal)을 한다. 세율을 고칠 수는 없으니 자기 부동산의 가치를 재평가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카운티의 감정사무소는 수많은 주택과 부동산의 가치를 평가하다 보니 완벽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어필을 신청하는 사람 가운데 절반 이상이 어느 정도 감액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미국 손헌수 재산세 총액 공립학교 재정 부동산 가치

2026.03.1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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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법왜곡죄 1호 고발 대법원장…사법부 흔들기 우려가 현실로

조희대 대법원장이 어제부터 시행에 들어간 법왜곡제의 1호 피고발인이 됐다. 사법부를 비판해 온 현직 변호사가 조 대법원장과 박영재 대법관을 법왜곡죄 시행을 전제로 지난 2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법왜곡죄(형법 123조의2) 위반 혐의로 고발함에 따른 것이다. 여당이 강행 처리한 ‘사법 3법’ 가운데 법왜곡죄와 재판소원제도가 어제 관보에 게재되면서 즉시 시행에 들어가자마자 사법부 흔들기 등 우려스러운 현상이 벌어졌다. 3법 가운데 대법관 증원만 시행이 2년 유예됐다. 고발인은 조 대법원장 등이 지난해 5월 이재명 대통령(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을 문제삼았다. 당시 재판 서류 7만여 쪽을 충실히 검토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아 징역 10년 이하에 처할 수 있는 법왜곡죄(형법 123조의2)를 범했다는 주장이다. 앞서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사법 3법의 국회 통과를 전후해 “사법 불신의 원흉, 조희대 대법원장은 즉각 사퇴하라”며 공개적으로 사퇴를 압박했는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현직 대법원장이 피고발인 신분으로 수사를 받을 처지에 놓이게 됐다. 사법부 수장부터 고발당하는 상황에서 일선 판검사들이 압박을 느끼지 않고 의연하게 재판이나 기소 업무에 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동시에 시행된 재판소원도 첫날 16건(오후 6시 기준)이 접수됐다. 민주당 소속으로 어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한 양문석 전 의원도 재판소원 제기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복 사례가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헌법재판소는 대법원 확정판결 사건뿐 아니라 상고 포기한 1, 2심 사건도 재판소원 신청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연간 1만5000건이 접수될 것으로 예상해 그만큼 사건 처리 지연과 소송 비용 부담이 늘어날 상황이다. 각계의 위헌 우려에도 여당의 속도전으로 통과된 사법 3법은 형사사법 체계를 근본부터 흔드는 중대한 변화다. 국민의 헌법적 권리와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법 시행 과정에서 부작용을 정밀 모니터링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신속히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헌재와 수사 당국도 신중한 법 적용으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2026.03.12.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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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석유 최고가격제, 단기 비상조치에 그쳐야

정부가 오늘부터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정부가 직접 석유시장 가격에 개입하는 건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29년 만이다. 특히 가격 상한선을 설정하는 건 1970~80년대 오일쇼크 때 외에는 시행된 사례가 없는 초강력 대책이다. 국제 유가가 급등한 상황에서 물가 불안과 민생 고통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데다 시행 과정에서 상당한 부작용도 예상되는 만큼 어디까지나 단기 비상조치에 그쳐야 한다.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방안이 나온 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일 국무회의에서 검토를 주문한 지 일주일 만이다.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대책이 필요한 건 맞다. 하지만 정부가 다양한 정책 수단의 장단점을 충분히 검토한 뒤 최고가격제를 꺼냈는지는 의문이다. 역대 정부는 통상 유가가 급등할 때 유류세 인하나 취약층 보조금 지원, 비축유 방출 등의 수단을 우선 활용했다. 직접적 가격 통제에 따른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우선 자원 배분의 왜곡을 피할 수 없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 수요를 줄여 적응하는 게 시장이다. 그러나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누르면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위기 상황에서도 수요 조절이 곤란해지고 공급이 위축될 수 있다. 장기화할 경우 유류 소비가 많은 대형 승용차 이용자 등에게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는 결과가 돼 일반 국민과의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다. 게다가 정유업계의 손실을 결국은 정부 재정으로 메워줘야 한다. 국제 유가 불안이 얼마나 지속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강력한 수단을 너무 이른 시점에 소진한다는 지적도 일리 있다. 무엇보다 향후 유가 변동 때마다 비슷한 개입 요구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행도 “소비자 부담을 일시적으로 줄여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다”면서도 “도입 기간이 길어질수록 초과 수요 발생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관리하는 한편 출구 전략도 세워둬야 한다. 또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대중교통 이용 유도 등 수요 관리를 병행하고, 에너지 대체 공급선 발굴 등 구조적 대응에도 더 속도를 내야 한다.

2026.03.12.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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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비거주 1주택자 보유세도 강화하겠다는 정부

정부가 초고가·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보유세 강화를 공식화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어제 라디오 인터뷰에서 초고가·비거주 1주택자도 보유세 세제 개편 대책에 들어가냐는 질문에 “당연히 들어간다”며 “‘똘똘한 한 채’ 문제도 있고, 비거주 1주택을 포함해 강력한 정부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지금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유세 부담이 올라가는 것이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말했다. 정부의 칼날이 다주택자를 넘어 1주택자까지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비거주 1주택자가 받는 현행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도 손댈 뜻을 분명히 했다. 김 장관은 “(살고 있는 집 외에)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대통령의) 말에 정부 정책의 모든 지향과 방향이 함축돼 있다”며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을 잡으려는 정부의 진정성을 이해한다 해도 ‘실거주 1주택’만이 정답인 듯 비거주자를 투기 세력으로 몰아가는 기계적인 규제 의식은 우려스럽다. 우리 사회엔 자녀 교육이나 직장 등의 사정으로 보유 주택이 아닌 곳에 살고 있는 비거주 1주택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실거주라는 잣대를 앞세워 이들을 투기 세력으로 간주해 무거운 세금을 물리거나 집을 처분하라고 몰아가는 건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이 될 수 있다. 역대 정권에서 각종 부동산 정책과 관련 규제를 쏟아내면서도 1주택자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을 유지했던 것은 최소한의 국민 주거 안정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였고, 국민들도 이에 부응했다. 지금 문제삼고 있는 똘똘한 한 채로의 쏠림도 1가구 1주택을 유도해 온 정부의 각종 규제와 정책이 낳은 산물이다. 1주택자에 대한 세금 강화는 부동산 제도의 오랜 기조가 바뀌는 일인 만큼 더욱 신중한 접근과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한 사안이다. 실거주자 위주의 주택시장 조성이라는 정부 정책의 방향은 결국 투기 근절과 주택시장 정상화를 위해서일 것이다. 그럴수록 정부는 시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세심하고 촘촘한 정책 설계로 부당한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6.03.12.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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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련의 시시각각] 돌아온 무역법 301조 시대, 준비됐나

마침내 미국 정부가 무역법 301조 카드를 꺼냈다. 미국의 무역을 제한하는 외국 정부의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행위나 정책, 관행이 확인되면 보복 관세 등 조치를 취하겠다는 엄포다. 미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 동맹국 다수까지 조사 대상에 올린 데엔 노림수가 있다. USTR이 향후 디지털 서비스 거래 분야도 들여다보겠다는 문구에 답이 있다. 미국 빅테크 플랫폼 기업에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 규제를 문제삼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법이나 망 사용료 부과, EU의 디지털서비스법을 비관세 장벽으로 꼽아 왔다. 미 정부와 손잡은 빅테크 기업들 기업 이익 위해 통상 갈등 점화 ‘경제안보’ 위해 데이터 주권 지켜야 ‘미국의 이익’을 주장하는 트럼프 정권은 첨단 기술 기업들과 그 어느 때보다 끈끈하게 동조화돼 있다. 엔비디아는 특정 칩의 중국 매출 일부를 미 정부에 수수료로 내기로 했고, 인텔도 미국 정부를 주주로 받아들였다. 7500만 달러(약 1100억원)를 들여 영부인 멜라니아에 관한 다큐 영화를 제작한 아마존처럼 국익이 아니라 트럼프 일가의 사익에 충성하는 기업도 종종 있다. 대신 미국 정부는 이들 기업이 AI 기술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거나 상업 활동을 하는 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앞장서서 치워 준다. 지난달 미 국무부는 세계 각지의 대사들에게 ‘각국의 데이터 주권, 데이터 현지화 규제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로이터 보도). 유럽의 디지털서비스법을 두고는 표현의 자유를 해친다고 성토한다. 하지만 미국 기업의 생성AI 서비스가 아동 성 착취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문제는 철저히 외면한다. 미국은 ‘문화 전쟁’으로 포장하려 하지만 실상은 미국 빅테크 이익 지키기다. 쿠팡도 이들처럼 ‘미국 정부가 보호해야 할 미국 기업’으로 인정받으려고 애써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미 의회에 내는 기부금, 트럼프 인맥 확보를 넘어 최근의 행보는 더 과감하다. 쿠팡의 관리 부실로 일어난 고객정보 유출 사건인데, 쿠팡은 이를 한·미 간 통상 문제로 교묘하게 비화시켰다. 한국 국회에선 부실하게 답하던 쿠팡의 미국인 대표는 미 하원에 자진 출석해 입장을 호소하고, 쿠팡 본사의 투자사들은 USTR에 무역법 301조 카드를 한국에 써달라고 청원했다. 하지만 이들은 쿠팡 물류 노동자들의 사망 사고나, 한국의 직전 정권이 전에 없던 조항까지 만들어 쿠팡 창업자를 공정거래법상 총수 지정 규제에서 제외해 준 특별대우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문제는 앞으로 쿠팡 같은 사례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주형(국제통상법)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는 “트럼프 정부가 디지털 규제 같은 ‘비관세 장벽’을 문제삼는다는 걸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미국 기술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진단한다. 특히 AI 산업의 경쟁 규칙을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기 위해 한국의 데이터 주권을 압박하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 우리는 이 압력을 견뎌낼 수 있을까. 최근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고려해 19년간 미뤘던 구글의 정밀지도 해외 반출 요청을 허가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쪽에선 AI 산업에서 부가가치가 큰 민간 데이터들이 해외 기업으로 줄줄 새고 있다. 산업계에 따르면, 철강·조선 등 한국의 핵심 제조업 현장에 AI나 로봇을 투입해 훈련시키는 미국 기업들이 제법 많다. 제조업이 무너진 미국에선 데이터를 구할 수 없기에 한국 기업들과 손잡고 싶어 한다. 생산성 향상이 급한 우리 기업들로선 합리적 선택이겠으나 한국의 경제안보 측면에선 고민스러운 지점이다. 한국이 축적한 제조업 암묵지(경험과 학습으로 몸에 쌓인 지식)로 미국 AI 로봇의 두뇌와 근육을 훈련시키는 꼴이 될까봐서다. 이제는 쿠팡을 때려잡겠다고 국회·정부가 너도나도 몽둥이를 들었다가 미국 측 한마디에 화들짝 놀라는 수준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정교한 전략으로 새로운 무역전쟁에 대비할 때다. 박수련([email protected])

2026.03.12.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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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제 칼럼] 한국의 성공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1963년 10월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의 윤보선 후보는 454만 6614표(득표율 45.1%)를 얻어, 군정을 끝내고 민정에 참여하기로 한 박정희 후보가 얻은 470만 2640표(득표율 46.6%)에 15만 6000표라는 근소한 차로 석패했다. 기독교계 원로들이 모두 나서서 외무부장관 출신 변영태 후보의 사퇴를 권했으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인기를 믿고 완주해 22만 4000여표를 얻었는데, 대부분 당시 야당지지표였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그때 변영태 후보가 사퇴했더라면 한국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 왔을까? 당시 박정희 후보는 46세로서 윤보선 후보보다 20세가 젊었다. 윤보선 후보가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가 출신이었던 데 비해 박정희 후보는 경북 구미의 빈한한 소작농가 출신이었다. 그 후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는 우리가 아는 바다. 국민들의 작은 행위들이 모아져 역사의 큰 강물을 이루며 흘러와 지금 우리가 서있는 곳은 분수령 정치에 젖줄 대는 국민이 물길 정해 보다 가까이는 이인제 후보가 1997년 대선에서 사퇴했더라면? 심상정 후보가 2022년 대선에서 사퇴했더라면? 역사는 그렇게 흐른다. 작은 차이가 큰 차이로 굳어지며 역사는 흐른다. 작은 분수령들을 거치며, 물이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흘러갈 수 있었지만 그 물은 왠지 그 방향으로 흘러와 시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며 오늘을 흘러오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았을 때 그 것이 운명이었다고 해야 할까, 또는 대중의 힘과 민족의 업과 시대환경이 뭉쳐진 필연이었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 흐름들이 이어져 우리는 오늘을 산다. 지금도 훗날 역사의 가정을 상상해 볼 일들이 우리에게는 일어나고 있다. 그 만큼 우리가 선택하는 하나 하나의 오늘의 결정들이 모여져 우리가 몸담고 사는 국가와 사회의 물줄기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약 70년 대한민국은 세계사에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던 압축적 성장을 이뤄냈다. 이는 경제뿐 아니라 민주화, 문화발전의 면에서도 그랬다. 지난 70년간 대한민국이 이룩한 기적과 같은 이 성공은 역사의 우연이 가져온 결과인가, 아니면 필연이 가져온 결과인가? 만약 후자라면 우리는 우리 국민의 저력을 지목할 수밖에 없다. 1953년 프랑스 르몽드지가 ‘한국은 국가가 아니고 원조로 연명하는 거대한 난민촌’, 1954년 미국 타임지가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하게 파괴된 나라’라고 표현했던 그 나라가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일어섰다. 1979년 2차 오일쇼크, 박정희 대통령 시해로 정치혼란, 경제위기가 왔을 때 해외기자들은 이제 한국은 정체의 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예산과 임금을 동결하며 경제안정화를 이뤄내고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뤘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는 ‘한국이 국제적 구걸꾼으로 전락했다’고 썼다. 그러나 금 모으기로, 대대적 기업금융 구조조정으로 한국은 다시 일어서서 오늘에 이르렀다. 난데없던 비상계엄사태도 성숙하게 극복해오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사회와 정치적 논쟁을 보며 지난 70여년간의 성공은 필연인가, 아니면 우연인가를 다시 묻게 된다. 보수 야당은 시대흐름을 잃고 미망에 빠져 있다. 진보 여당은 가진 힘에 비해 숙려가 부족하다. 지금 우리 국가지배구조에서 전반적으로 결여되어있는 것은 장기적 시각과 합리적 토론 과정이다. 우리의 진보와 보수 구도는 서구와는 달리 추구하는 가치와 정책의 차이에서 갈라져 나왔다기보다 과거체제와 북한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중심에 서있다. 지난 수 차례 대선 과정들에서 드러났듯이 보수와 진보 양대 정당의 정책적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양당은 사사건건 사생결단식 언어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금 한국이 서있는 지점은 또 다른 분수령이다. 세계는 이미 대전환기에 들어섰고, 국제질서는 요동치고 있으며 인류문명을 바꿀 AI·디지털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혼돈과 불안이 짙어져 가는 이 세상에서 지금 우리가 하는 하나 하나의 선택과 대응이 우리의 미래 입지와 운명을 바꾸게 될 것이다. 전환의 시대에 한치라도 앞서 나가는 나라는 수 세대에 걸친 입지를 구축하게 되고, 뒤떨어지면 만회의 기회는 역사 책의 한 장이 넘어간 뒤에나 가능할 지 모른다. 우리는 다시 역사의 필연을 믿을 것인가? 그렇다면 남은 21세기 우리의 필연은 어떤 형식과 양태로 나타날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국가지배구조 재구성과 국민 집단지성의 성장, 새로운 사회기풍의 함양으로만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적어도 오늘날 SNS나 정치현장에서 오가는 언어의 순화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험한 언어는 지성을 흐리고, 사회의 기운을 흩트린다. 격변의 시대를 헤쳐 나가려면 정치를 탓할 것만 아니라 정치에 젖줄을 대고 있는 우리 국민들이 관용과 절제, 포용과 배려로 통합과 협력의 기풍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배타적 문화의 국가가 융성한 역사는 없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2026.03.12.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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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퍼스펙티브] 초소형 학교 통폐합, 민사고 수준 초중고 300개 만들자

세계 1위 공교육비 제대로 쓰기 한국의 복지 분야 지출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라는 것은 제법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한국의 분야별 재정지출 중 OECD 국가, 아니 전 세계에서 으뜸인 것이 있다. 국방도 아니고 경제도 아니다. 바로 교육이다. 정확히는 초중고 교육이다. 초중고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절대 규모로는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며, 1인당 GDP 대비로는 압도적인 1위이다. 〈그래픽 ①〉을 보자. 막대 그래프는 1인당 공교육비 절대액을 나타낸다. 우리는 OECD 국가 중 2위이다. 그런데 1위인 룩셈부르크는 인구 60만 명의 소국으로 1인당 GDP 자체가 예외적으로 높은 국가이다. 이를 제외하면 사실상 우리가 1위이다. 꺾은 선은 나라별 1인당 GDP 격차를 제거하기 위해서, 1인당 GDP 대비 상대 비중으로 나타낸 것이다. 우리는 40%로서 압도적인 1위이다. 1인당 교육비 6000만원 넘는 곳도 민사고 수준 교육 제공하고도 남아 각 군마다 최고 공립학교 만들면 그 자체가 탁월한 지방소멸 대책 학교당 적정 학생수 유지할 필요 교육감 후보들에 제대로 요구해야 우리는 복지지출뿐만 아니라 총지출 규모도 OECD 국가 중 하위권이다. 그런데 어떻게 초중고 교육만은 탑일까? 초중고 공교육비의 가장 큰 재원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다. 이는 법에 따라 국세의 일정 비율(20.79%)로 고정되어 있다. 그래서 매년 걷히는 국세의 20% 이상이 무조건 유치원 및 초중고 교육에 배정된다. 저출생으로 학령인구가 감소함에도 예산은 늘어난 덕에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매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재정 전문가들은 학령인구는 감소하는데, 교육재정은 국세의 일정 비율로 고정한 탓에 초중고 교육에 너무 많은 재원이 배분되고 있으니 이를 조정하자고 한다. 교육재정교부금으로 배정되는 국세 비율을 낮추거나, 아예 고정 배분 자체를 없애자고 한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교육재정에 칸막이를 쳐 놓고 다른 곳에 못쓰게 하는 것은 국가 재정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면에서 문제가 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효과성이 매우 낮다는 데 있다. 학생 1인당 공교육비가 세계 최고라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공교육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어떤 기준으로 봐도 전혀 그렇지 못하다. 국제학력평가(PISA) 성적은 과거보다 낮아졌다. 학습부진아 지원, 다양한 예체능 활동, 직업교육 등 학력 이외의 기준에서도 그다지 탁월하지 않다. 지난 10년간 1인당 공교육비는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공교육의 질은 얼마나 높아졌을까? 학생 수가 감소하니 교육 예산 줄이자는 주장에 대해, 교육 전문가들은 반박한다. 학생 줄어도 학교와 교원은 유지해야 하니 예산을 줄일 수는 없다고 한다. 얼핏 생각하면 맞는 말 같다. 학생이 있는 한, 공교육은 제공되어야 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때문에 우리 공교육이 예산 대비 극악한 효과성을 보이는 것은 물론, 교육의 질도 형편없어지고 있다. 전교생 1명에 교직원 7명인 곳도 전북 부안의 한 중학교는 전교생이 1명인데 교직원은 7명(교사 5인, 직원 2인)이었다. 한 명의 학생을 위한 지출은 7억원이 넘었다(김학수 외, 인구축소사회에 적합한 초중고 교육 행정 및 재정 개편방안, 2023) 결국, 이 학생마저 졸업하자 폐교했다. 이 사례를 어찌 봐야 할까. 한 명의 학생이라도 남아 있는 한, 아무리 큰 비용이 들어도 공교육을 제공한다는 정부의 투철한 책임감에 감동해야 할까. 이 학생 입장으로 생각해 보자. 학창 시절을 친구 한 명 없이 혼자 보내는 것을 좋아했을까. 5명의 교사가 한 학생을 가르친다고 과연 교육의 질이 높았을까. 이 학교에서 차로 10분 이내의 거리에 수백 명이 다니는 중학교가 두 개 있었다. 그렇다면 이 학생을 인근 중학교로 배정하고 교통편을 제공하는 게,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양질의 교육과 행복한 학창 생활을 위해 백번 나았을 것이다. 이 사례는 좀 극단적이지만, 전국에 학생보다 교직원이 많은 학교는 제법 있다. 전교생이 30명 이하인 초등학교는 전체의 10%에 달한다. 전라남북도와 강원도는 30% 내외이다. 이보다는 덜하지만, 중고등학교 역시 초소형 학교가 매우 많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학생 수가 어느 정도 이상 되어야 양질의 교육이 가능하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다. 다양한 전공의 교사 확보, 충실한 수업 준비와 강의, 학생끼리의 협력과 경쟁 등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학생 수가 웬만큼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전교생 30명 이하인 초소형 학교의 1인당 교육비는 6000만원이 넘는다. 전교생 200명이 넘는 학교에 비해 6배가 넘는 액수다(이철희 외, 인구변화의 주요 부문별 전망과 대응 방향 연구, 2025). 그럼에도 교육의 질은 전교생 200명 이상인 학교에 훨씬 못 미친다. 초소형 학교의 증가는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인구 감소가 맞물린 탓이다. 그러나 학령인구와 지방인구 감소 대응으로는 얼마든지 다른 해법이 가능하다. 민족사관학교(민사고)는 전국에서 가장 학비가 비싸다.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이곳의 1년 학비는 기숙사비 포함 3000만원이 넘는다. 학비 이외에 재단전입금 등도 고려하면 민사고 학생의 1인당 교육비는 4000만원이 넘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전국의 수많은 초소형 학교 1인당 교육비의 2/3 수준이다. 이는 초소형 학교에 투입되는 비용이면, 민사고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고도 남는다는 얘기다. ①전교생 30명 미만의 동네 학교, ②민사고 수준의 기숙학교. 여러분은 자녀를 어디에 보내고 싶은가. 본인이 학생이라면 어디에 다니고 싶겠는가. 민사고는 예외적으로 학비가 비싼 곳이다. 이를 제외하면 아무리 비싼 자사고나 외고라도 학비는 2000만원에 못 미친다. 사립초등학교 중 가장 학비 비싼 곳도 그보다 훨씬 적게 든다. 전국 82개 군 마다 최고 초중고를 전국에 82개의 군이 있다. 모든 군에 민사고에 버금가는 중·고등학교, 영훈초교나 경복초교 못지않은 초등학교를 만들자. 적어도 모든 군에 하나씩, 수요 많은 군에는 두 개씩 만들면 초중고 합쳐서 300개 정도가 된다. 아, 초등학생은 기숙학교가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집에서 다니고 싶은 중고등학생도 있겠다. 이런 경우에는 통학 차량을 대거 운행하면 된다. 대한민국은 도로망이 잘 갖춰져서, 군의 변두리에서 중심부까지 30분 이내에 갈 수 있다. 무료로 호화 기숙사를 운영하고 최고급 통학 차량을 운행해도, 기존 초소형 학교 유지 비용보다 훨씬 적게 든다. 귀농을 고려하는 후배들이 있다.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 교육이다. 귀농하려는 지역에 민사고에 버금가는 학교가 있고 무료로 다닐 수 있다면? 귀농 생각이 전혀 없던 사람들도 귀농할 판이다(이 얼마나 탁월한 지방소멸 대책인가!). 지금 초소형 학교로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들이, 정부가 맘만 먹으면 자녀들이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음을 안다면 심정이 어떨까. 민사고를 예로 들었지만, 그렇다고 민사고 커리큘럼을 그대로 따라서 할 필요는 물론 없다. 지역 특성에 맞되, 내용은 최고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면 된다. 다문화가정이 많은 곳에서는 해당 국가 원어민교사를 초빙하여 그 나라의 언어·역사·문화를 가르칠 수 있다. 아예 그런 목적의 외국어학교를 만들 수도 있다. 그리 되면 아이들은 자긍심을 가질 것이고 훗날 많은 지역 전문가가 배출될 것이다. 충실한 직업교육으로 소문난 북유럽이나 독일을 뛰어넘는 최고의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를 세울 수도 있다. 매년 해외로 수학여행을 보내 견문을 넓힐 수도 있다. 원하는 학생은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체류하게 할 수도 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해보고 싶은 것은 뭐든지 할 수 있을 만큼 재원은 충분하다. 학생 수 감소에도 한국만 초소형 학교로 학생 수가 계속 감소함에도 통폐합 대신 초소형 학교를 고집하는 나라는 우리 외에는 찾기 어렵다. 우리보다 앞서 학령인구 및 지방인구 감소를 겪었던 일본, 인구 대비 땅덩이가 커서 농촌 인구밀도가 낮은 호주나 미국 등은 통폐합을 통해 학교당 적정 학생 수를 유지한다. 이 나라들은 교육재정에 칸막이가 없어서 교육 지출을 줄이면 다른 분야 지출을 늘릴 수 있으니, 재정 효율화 차원에서 통폐합하는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교육의 질을 담보하려면 일정 수준의 학생 수 유지가 필요하다는 원칙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향후 10년 사이 초중고 학령인구는 30% 더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에 따라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지금보다도 훨씬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 조만간 교육재정 조정이 진지하게 검토될 것이다. 이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풍부한 교육재정을 제대로 활용하여 교육의 질을 높이고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학창 생활을 누리게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필요하다. 아동·청소년 행복지수 최하위권인 대한민국이지만, 다행히 우리에게는 세계 1위의 풍부한 초중고 공교육비라는 구명줄이 있다. 그럼에도 어른들의 이기심과 태만으로 인해 이 좋은 여건을 전혀 못 살리고 있다는 것에 나는 분개한다. 얼마 뒤에 교육감 선거가 있다. 유권자들이여, 세계 1위 재정에 걸맞은 수준의 교육을 요구하자,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2026.03.12.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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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빈의 수장고 안팎 훑기] 조각 감상자들을 하나로 묶는 35초간의 흥얼거림

보로프스키의 ‘노래하는 사람’ 몇 년 전, 국립현대미술관 직원들을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소장품을 뽑는 이벤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작품은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과천관에서 근무할 때는 야외조각장을 산책하며 이 작품이 흥얼거리는 노래를 듣는 것만큼 기분 좋은 시간도 없다.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경관 덕분에 10년 넘도록 봐도 질리지 않는다. 같은 조각이 일본 도쿄의 도심에도 서 있는데, 자연 속에 있는 모습이 훨씬 좋다. 육성 멜로디 흘러나오는 야외 조각 같은 경험 한다는 연대의식 일깨워 11개국에 설치된 ‘망치질하는 사람’ 노동해야 사는 인간 숙명 환기시켜 청춘의 불안, 세상의 악에 대한 고민 숫자 강박 시기 거쳐 공공미술로 주말에는 휴식하는 ‘망치질하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보다 더 유명한 작품은 광화문 흥국 생명 빌딩 앞에 서 있는 ‘망치질하는 사람’이다. 이 조각은 번잡한 고층 빌딩 사이에 서 있는 모습이 꽤 어울린다. 구부정한 자세로 망치를 천천히 내리치는 동작을 기계적으로 반복한다. 평일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하고 주말과 공휴일에는 쉰다. ‘망치질하는 사람’은 1979년에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노동자’라는 제목으로 처음 발표되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일을 하며 생활을 영위하는 우리 모두를 상징하는 작품”인데, 당시에는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생각하며 구상한 것이라고 한다. 노동자의 사무직 버전도 있다. 모자를 쓰고 서류 가방을 든 이 조각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앞에 서 있다. 그런데 망치질하는 사람만큼 보편적인 공감을 자아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일단 중절모와 정장에서 성별과 계급, 문화권이 한정되고, 무엇보다 너무 멀끔하다. 반면 ‘망치질하는 사람’은 성별과 시대, 지역을 초월하여 좀 더 노동의 원형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환기시킨다. 비록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일한 적은 없지만 눈앞의 과제에 몰입하는 거북목 자세에는 감정 이입이 된다. 핵심은 앞으로 숙인 머리와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팔. 작가도 말했듯, 인간은 결국 머리를 쓰고 손을 움직이며 각자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존재이다. 이렇게 보편적인 울림을 주는 덕분에 이 조각은 유난히 인기가 많아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미국 시애틀, 스위스 바젤, 노르웨이 릴레스트룀, 일본 나고야 등 전 세계 11군데 설치돼 있다. 그중에서 22m, 55t에 육박하는 서울의 조각이 가장 크다. 보로프스키의 이런 작품들을 보면, 그가 젊어서는 불안 때문에 강박적으로 매일 숫자만 센 적이 있다는 사실, 한때는 세상의 악을 이해해 보고자 히틀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다. 보로프스키는 30대와 40대까지는 꽤나 전위적인 작업을 하면서 뉴욕과 LA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갑작스레 고향인 보스턴 외곽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는 은둔자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공공 조각에만 몰두해 왔다. 그의 모교인 카네기 멜런 대학에서는 그를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삶을 단순화하는데 전념하는 복잡한 사람”이라는 말로 이 작가를 묘사했다. 조너선 보로프스키는 1942년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건축을 전공한 화가, 아버지는 피아노와 오르간을 연주하는 음악가였다. 예술적 분위기에서 자라난 보로프스키는 여덟 살 때부터 이웃집 화가에게 그림을 배우고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서는 순수미술 외에도 산업 디자인을 배웠는데, 이때 용접으로 추상 조각을 만드는 데 몰입하기도 했다. 보로프스키가 학교를 마친 60년대 중반의 미국은 사회적 갈등과 반문화가 절정에 달던 격동기였다. 베트남 전쟁으로 사회는 분열되었지만 경제는 호황이었고 예술계는 실험과 혁신이 가득한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선택할지 더 어려운 시절이었다. 이 무렵 그는 자신의 예술적 진로를 두고 엄청나게 방황했다. 작업은 못 하고 앉아서 생각만 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매일 두세 시간씩 앉아서 종이에 숫자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첫날 1에서 1000까지를 쓰면, 다음날엔 1001부터 시작하는 식이었다. 아버지는 대학원까지 보내줬더니 숫자나 세고 있다고 농담을 건넸다. 5년 동안 숫자 적은 종이더미 전시 그는 이렇게 매일 두 세시간씩 숫자만 적는 것으로 예술 활동을 대신했고, 이를 2년 넘게 지속한 후에야 제대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작품을 그날 센 숫자와 연결하기 시작했다. 작업을 완성한 후 서명 대신 그 날의 마지막 숫자를 적기 시작한 것이다. 32세에 열린 첫 개인전에는 5년 동안 매일 적어 내려간 숫자, 즉 1에서 234만6502까지가 적힌 종이 더미를 작품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1970년대 중반부터는 꿈속에서 본 이미지들을 드로잉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많아 무의식의 세계에 몰입했다. 일부러 잠에서 덜 깬 상태로 그린 즉흥적인 드로잉들에 그날의 숫자를 함께 남겼다. 꿈과 무의식을 반영한 이 이미지들은 벽화나 조각으로 구현되기도 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드로잉이 특히 흥미로운데, 사람의 머릿속을 좌우로 나눈 후 한쪽에는 ‘망치질하는 사람’의 형상이, 오른쪽에는 ‘2,669,857’이라는 숫자가 그려져 있다. 밝음과 어두움, 의식과 무의식, 노동과 예술의 이분법이 표현된 것일까? 불안이 가득해 보이는 얼굴은 분열증적 상태로 읽히기도 한다. 이 시절 보로프스키의 작품을 보면, 생각이 많고 불안이 가득한 젊은 예술가의 내면이 엿보이는 듯하다. 결국 숫자를 세는 기계적이고 단순한 행위는 그의 예민한 정신세계를 적절히 통제하고 안정시키는 일종의 수행이었던 셈이다. 보로프스키는 베트남전을 경험한 세대로서 전쟁과 폭력에 대해서도 깊이 고뇌했다. 1980년대에는 미국의 수감자들을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그 이후에는 히틀러의 생애를 연구한 작업도 발표했다. 세상의 비극들을 이해하기 위한 나름의 고민이 투영된 작품들이었다. 보로프스키의 공공조각은 그가 한때 이렇게 머릿속이 복잡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단순해 보인다. 이는 “공공미술은 나 혼자만의 일기장이 아니”라는 확고한 철학 덕분이다. 지나가는 사람 모두가 강제로 관람해야 하는 작품인 만큼, 작가의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원형적인 상징들을 사용하되, 여기에 의미와 깊이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작품은 기도, 작업실은 사원 이런 노력 덕분에 그의 대형조각들은 한눈에 이해할 수 있고, 주변 경관과 무리 없이 어울리는 단순한 형태를 띤다. 바쁜 발걸음을 멈추게 하면서 경탄을 자아내는, 대체로 기분 좋은 작품들이다. 젊은 시절에 불안을 경험하고 세상의 악에 대해 고민하던 젊은이가 나이가 들어 공공조각에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이 근본적으로 모두 같은 것을 공유하는 존재임을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사람들이 동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의식이 강해질수록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을 기도에 비유하고 자신의 작업실을 “사원”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제작되어 나가는 작품들이 긍정적인 메시지를 온 세계에 전파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예술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1970년대에 처음 만든 ‘분자 인간’이다. 동일한 분자 구조를 공유하고 있는 인류의 통합을 상징하는 이 작품은 세계 곳곳에 설치돼 있는데, 특히 독일 베를린의 슈프레강에 설치된 버전이 유명하다. 한편 과천의 ‘노래하는 사람’은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불안과 싸운 자신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표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육성으로 녹음한 35초짜리 멜로디는 신기하게도 머릿속이 복잡한 날에는 귀에 들어오지 않다가 여유가 생기면 기분 좋게 들려온다. 자연스럽게 배경 속에 스며드는 편안한 선율이다. 세상이 좋아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스튜디오 안에서 멜로디를 녹음했을 모습을 떠올리면 왠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봄이 시작하는 이 계절에 한 번쯤 과천관을 산책하면서 ‘노래하는 사람’의 허밍을 들어 보기를 추천한다. 이사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2026.03.12.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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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민주당이 키워준 김어준 발 ‘공소취소 거래설’

12개 혐의, 8개 사건으로 5개의 재판을 받아온 이재명 대통령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사건을 들라면 단연 대북 송금 사건일 것이다. 이 대통령은 경기지사 시절 “북한에 스마트팜 지원비 500만 달러와 자신의 방북 비용 300만 달러 등을 부하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 부지사를 통해 쌍방울 그룹이 대납하게 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는데 대통령이 되면서 재판이 중단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이 전 부지사는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7년 8개월의 실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이는 이 대통령 재판에 중요한 증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공취모’ 띄우고 사법 3법 강행 음모론 제기될 토양 제공한 자충수 ‘조작기소’ 여부, 수사결과 봐야 민주당 친명계가 ‘공취모(대통령 사건 공소취소 모임)’를 결성하고 검찰에 공소취소를 압박하는 대상 1순위도 자연 대북 송금 사건이다. 이 대통령이 필리핀 순방 중이던 지난 4일 SNS에 올린 글 역시 대북 송금 사건 관련이다. 쌍방울 김성태 전 회장이 2023년 3월 10일 수원구치소로 면회온 측근에게 “(이재명에) 돈 준 게 있으면 줬다고 하고 싶다”고 했다는 기사를 링크하면서 “(검찰의) 사건조작은 강도나 납치 살인보다 더 나쁜 짓”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이 기사를 들어 ‘조작 기소’라면서 이 대통령 공소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사건 당사자인 대통령까지 참전했으니 파장은 커지는 듯하다. 문제의 기사는 법무부 특별점검팀의 1600여 쪽 녹취록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법무부는 이화영 전 지사를 수사한 박상용 검사가 ‘연어 술 파티’로 이 전 지사를 회유했다는 의혹을 조사해 왔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검찰은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조작기소란 있을 수 없는 범죄다. 다만, 민주당이 언론 기사 등을 근거로 ‘조작 기소’를 주장하면서 공소 취소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증거인 것처럼 단정하며 정치 공세로 밀어붙이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그보다는 조작 기소 의혹의 공식 수사를 맡고 있는 서울고검 TF의 결론이 나오기를 지켜보는 것이 우선이다. 대북 송금 사건의 조작 기소 여부는 서울고검 TF가 지난해 9월부터 수사를 해온 사안이다. 반년이 다 됐지만 수사 결과는 발표되지 않고 있다. 법조계에선 “현재까지 TF가 결론을 내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 나온다.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결과에 따라 대응을 해도 늦지 않을 일이다. 만일 검찰 기소에 조작이 있다면, 구체적 물증을 재판에서 제시해 무죄 선고를 끌어내는 사법 절차로 해결할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을 생략하거나 무시한 채, 정치적 힘으로 공소취소부터 밀어붙이는 건 일의 순서가 바뀐 것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공소취소는 향후 어떤 선례로 작용할 지 모를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기에 더욱 그렇다. 또한 민주당은 이와 별도로 대북송금 의혹을 비롯해 이 대통령과 그 주변 관련 7개 사건의 조작 기소 여부를 규명하는 국정조사요구서를 그제 제출했다. 국정조사에서 조작 기소의 증거가 밝혀질 경우 특검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정조사는 진행 중인 수사나 재판에 관여할 목적으로는 할 수 없도록 법에 규정돼 있어 이에 대한 논란도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대통령은 그제 SNS에 올린 글에서 “집권 세력이 됐다고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나의 의견만이 진리이자 정의이고, 너의 의견은 불의이고 거짓이라는 태도는 극한적 대립과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여권이 대통령 관련 수사나 재판을 공소 취소 압박 등 힘으로 뒤집으려 한다면 대통령의 이같은 말과 정면 배치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제 김어준 유튜브는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검찰에 ‘공소취소 거래’를 제의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제기해 여권 전체가 뒤집어졌다.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파동 등 ‘명청 전쟁’ 고비마다 친청계를 옹호해온 김어준씨가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대북 송금 사건에 거래설을 엮어 대통령을 ‘협박’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억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김어준 측이 이런 충격적인 주장을 거침없이 터뜨린 데는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문명국의 수치’란 비난에도 사법 3법 입법과 7개 사건 국정조사를 밀어붙이며 대통령 사법리스크 방어에 당력을 쏟아 부어온 행태가 검찰과의 ‘거래설’이 불거질 온상이 된 것 아닌가. 답은 하나다. 권력의 힘으로 사법질서를 뒤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공소취소 공세부터 멈추는 것이다. 강찬호([email protected])

2026.03.12.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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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의 뉴스터치] 토크빌의 역설

지난 2012년 말, 당시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왕치산이 반부패를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참석자에게 “요즘 포스트 자본주의 시대 책을 많이 보는데 그 이전 시기 것도 봐야 한다”며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이 1856년에 쓴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중국어판 『구체제와 대혁명』)을 한 권씩 돌렸다. 당시는 후진타오에서 시진핑으로, 중국의 권력 이양기였다. “혁명이란 반드시 사태가 악화되는 과정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압제적인 정부 아래에서도 마치 아무것도 느끼지도 못하는 듯이 별 불평 없이 잘 참아내던 사람들이 그 압력이 완화되는 순간, 정부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한다. 따라서 혁명으로 파괴된 체제는 대개 바로 그에 앞선 체제보다 더 낫기 마련이다. (…) 한때는 불가피한 것으로 체념하고 감내하던 폭정도 일단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즉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억압으로 여겨지게 된다.”(이용재 번역본, 308~309쪽) 정치철학의 고전적 명제인 토크빌의 역설(Tocqueville Paradox, 또는 토크빌 효과)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역사는 이 역설을 증명해왔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폭정의 절정기가 아닌 루이 16세의 개혁기 때 일어났다. 1980년대 후반 동유럽 공산권 붕괴, 2010년대 초반 아랍의 봄 등도 개혁 시도가 억눌린 요구 폭발의 계기가 된 역사 속 또 다른 사례다. 사용자 정의를 확대하고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법률, 일명 노란봉투법이 10일 시행됐다. 첫날 하청 노조 407곳이 원청 사업장 221곳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 등 억눌렸던 권리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그런 모습이 1987년 6월 민주 항쟁 직후 뜨거웠던 노동자 대투쟁의 데자뷔 같기도 하다. 토크빌의 역설이 주는 진정한 교훈은 개혁의 속도와 기대의 속도 사이 괴리를 어떻게든 좁혀야 한다는 거다. 그건 노동자나 사용자, 정부만이 아닌 모두의 숙제다. 장혜수([email protected])

2026.03.12.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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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원의 마음상담소] 힘을 빼는 기술

난이도가 높은 삶을 살며 그 안에서 지혜를 길어 올린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특유의 힘과 깊이가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도 적당한 좌절을 경험하며 자기 결함을 마주하고, 이를 다루기 위한 자기만의 원천 기술을 갈고닦는 것은 실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과업입니다. 그러나 자기 안의 못나 보이는 모습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도리어 자신을 해칠 정도로 과도한 경우가 있습니다. 높은 기준을 세우고 과도하게 애를 쓰느라 자꾸 힘이 들어갑니다. 자신과 타인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져도 되는데, 좀처럼 경계를 늦추지 못합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생각과 감정을 편히 바라보지를 못하고 자꾸만 어깃장을 놓고 반기를 듭니다. ‘아닌데요?’가 말 습관이 됩니다. 우리의 나쁜 대처 전략 중 ‘과잉보상(overcompensation)’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잠깐, ‘난 아닌데?’라 단정하지 마시고 조금만 더 읽어 주세요. 누구에게나 있는 모습이니까요!). 동기부여 지나치면 마음 폐허 돼 과한 초연함도 일종의 과잉보상 근육의 힘 빼고 다정한 말 건네야 과잉보상은 개인이 극복하려는 주제에 따라 그 모습이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고 늘 환영하게 만들겠어’라며 대인관계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고 감정 노동을 자처하는 것이 흔한 과잉보상 전략입니다. ‘꼭 남보란 듯 성공해 보일 거야’ ‘저 사람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라며 성공이나 돈, 지위에 골몰하고 타인에 가혹한 평가를 내리는 것 역시 자신의 실패나 열패감을 감추려는 전략입니다. 마음 깊은 부정적인 감정에 맞서 싸우려, 매사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세상 낙관적이고 초연한 말들로 일관하는 것도 독특한 과잉보상의 형태입니다. 이렇게 과도한 투쟁 뒤에는 개인의 역사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쉽지 않았으니까. 늘 방어하고 이겨내야 했으니까. 세상에서 믿을 이는 없고, 실제로 나는 그렇게 많은 것들을 이루어 왔으니까. 이는 일견 삶의 에너지나 동기부여처럼도 보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종국엔 나를 해치는 전략임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다양한 과잉보상 전략을 휘황찬란하게 두르며 지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 이 전략이 건강한 자기계발과 구분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어떤 전략을 사용하면 할수록, 애초에 극복하려던 생각과 감정에 역설적으로 더 몰두하게 된다면 이는 과잉보상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 마음의 중심은 온통 내가 싸워서 이겨내야만 하는 숙제들로 가득합니다. 나의 성장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자꾸만 지치고 공허한 마음이 듭니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버텨 왔는데’ 하는 마음에,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 점점 혐오감과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세상을 선과 악, 흑과 백, 내 편과 남의 편으로 나누기를 반복하며 마음은 폐허가 됩니다. 잠시, 우리 몸을 돌아봐 주세요. 이 글을 읽는 동안 어느새 몸에 잔뜩 들어간 힘을 알아차리세요. 몸의 어느 부분에 가장 긴장이 높아져 있나요. 어깨, 목, 허리, 혹은 손가락 마디마디. 나도 모르게 힘을 주고 있는 곳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긴장감은 언젠가 통증으로 돌아옵니다. 이제, 나의 못난 모습이 자꾸만 튀어나올 때 내가 무기처럼 꺼내 드는 여러 기술 중에서, 유독 힘이 들어가는 기술은 무엇인지 살펴보세요. 어떤 행동을 할 때 자꾸만 부담스럽고 아파지나요? 사용할수록 엉켜버리는 과잉보상 전략들을 이제 알아차리고, 천천히 시간을 두어 내려두세요. 대신 힘 빼기의 기술을 챙겨 주세요. 오늘은 몇 가지 힘 빼는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첫째, 자신과 타인에게 자비를 가져오는 말 습관을 하나 만들어 주세요. ‘아닌데?’ 말고 ‘그런가? 그럴 수도 있지’로 조금씩 바꿔 가세요. 모든 것을 문제 삼기보다, 문제가 아니게 무력화시키세요. 둘째, 마음에 여러 감정의 폭풍이 몰려올 때, 홍콩 무협 영화의 고수처럼 행동하세요. 느리고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자기 안의 고요한 중심을 찾으세요. 셋째, 내가 생각해도 참 절묘하고 지혜롭다 싶은, 나만의 원천 기술을 다시 추리세요. 나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다른 사람을, 세상을 어떻게 다정하게 대하나요? 그 방법들을 적어주세요. 마지막,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이제 자신에게 들려주세요. ‘나는 내가 참 짠해, 그동안 고생했어.’ 자, 이제 몸과 마음에 들어간 힘을 천천히, 내려놓습니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2026.03.12.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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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완의 마켓 나우] 머스크의 서사, 카프의 축적

팔란티어라는 회사명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마법 구슬 ‘팔란티르’에서 유래했다. 멀리 떨어진 사건을 비추는 팔란티르처럼, 데이터로 세상의 흐름을 통찰하겠다는 기업 철학을 담았다. 2003년 창업 당시 팔란티어는 검색·광고·소셜네트워크 대신 데이터 통합과 위협 예측의 길을 택했다. 9·11 이후 테러 분석 플랫폼을 갈구하던 미국 정부의 수요가 결정적 성장 토양이 됐다. 핵심 제품인 ‘고담’은 파편화된 데이터를 하나의 구조로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구조화하는 ‘온톨로지(ontology)’를 기반으로 정보를 통합해 최적의 의사결정을 돕는다. 고담의 진가는 AI를 다루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은 필요에 따라 연결되는 엔진일 뿐, 교체 가능한 부품에 가깝다. 팔란티어의 경쟁력은 개별 모델의 성능이 아니라, 다양한 정보 자산을 통합·지휘하는 ‘구조’ 그 자체에 있다. 이 견고함은 투자 시장에서 ‘상상력의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여기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와 팔란티어의 알렉스 카프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머스크는 자율주행·로보택시·휴머노이드·화성 이주 같은 거대 서사를 끊임없이 투척하며 시장과 소통한다. 테슬라의 기업 가치는 현재의 실적보다 미래의 가능성에 의해 움직인다. 물론 서사가 늘 현실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전기차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휴머노이드 분야도 기술 평준화가 진행 중이다. 결국 시장은 기술 완성도와 가격 경쟁력이라는 냉혹한 잣대로 테슬라를 평가할 것이다. 반면 카프의 접근은 지독할 정도로 절제되어 있다. 선언보다 축적에, 자극보다 반복에 집중하며 정부 기관과 대기업 내 점유율을 조용히 넓혀간다. 팔란티어 모델은 고객이 늘수록 데이터와 사례가 쌓여 플랫폼이 정교해지고, 동시에 고객의 이탈 비용을 높여 ‘고착성’을 강화하는 구조다. 제조 역량과 브랜드 리더십을 앞세워 가치를 확장하는 테슬라와 데이터 축적으로 성벽을 쌓는 팔란티어 중 누가 최후에 웃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시장은 대개 화려한 서사에 먼저 반응하고, 머스크는 그 기대를 동력으로 활용한다. 반면 카프는 시장의 소음에서 벗어나 플랫폼의 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 결국 두 기업의 차이는 ‘평가 시점’에 있다. 서사는 지금의 시장을 움직이지만, 축적의 힘은 시간이 흐를수록 증명된다. 역사는 화려한 약속을 남긴 이보다 고요히 세상을 지휘하는 구조를 세운 이를 더 늦게, 그러나 더 또렷하게 기억할지도 모른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스마트자동차학과 및 미래자동차석사과정 교수

2026.03.12.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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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의 이집트 문명] 고대 이집트와 현대 이집트

“찬란한 고대 문명을 꽃피웠던 이집트가 지금은 왜 이렇게 낙후된 상태인가?” 이집트 전공자로서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다. 자연스러운 질문으로 보이지만 몇 가지 측면에서 좀 더 성찰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이 질문은 이집트를 낙후된 나라로 전제하는데, 서구적 기준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비교 대상도 한국 포함 20여 개 선진국에 불과하다. 전 세계 200여 개 국가 가운데 일부가 표준으로 설정되고, 나머지 국가들은 그 기준에 따라 평가되는 구조다. 현대 이집트(사진)는 일반의 인식처럼 정체된 사회도 아니다. 90년대 이후 연평균 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해왔다. 평균 수명은 늘고 있고, 에너지 생산량도 증가하고 있다. 인구 역시 90년대 초반 약 5000만 명 수준이던 것이 1억 명을 넘어섰다. 경제 규모는 아프리카 54개국 중 남아공·나이지리아와 함께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26년 GDP 규모는 세계 42위다. 전 세계에 200여 국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낮지 않다. 구매력 평가(PPP) 기준 GDP는 세계 18위에 해당한다. 1인당 GDP는 세계 100위권에 머물러 있지만, 경제 규모로 보면 이집트를 낙후된 국가라고 말하기 어렵다. 고대와 현대를 직접 비교하는 것도 문제다. 고대 이집트와 오늘날의 이집트 사이에는 수천 년의 시간이 놓여 있다. 두 시대를 단순히 연결하려는 것은 무리다. 같은 논리를 한반도에 적용한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해진다. “강화도 주민들은 예전에 고인돌을 그렇게 잘 만들었는데 지금은 왜 안 만드나요?” 이 질문이 얼마나 황당하게 들리는가. 역사적 시간의 스케일을 고려하지 않는 사유는 잘못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정말로 고민해야 할 것은 ‘이집트는 왜 예전 같지 않냐’가 아니라 ‘우리가 왜 그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나’일지도 모른다.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

2026.03.12.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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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석 만평] 3월 13일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3.12.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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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개스값 급등에 “작은 대가” 공감 어려워

개솔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이 지속하면서 원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제 유가는 한때 배럴당 11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다행히 현재는 80달러대로 떨어졌지만 전쟁이 악화할 경우 다시 100달러대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원유는 여전히 현대 산업의 필수재다. 그만큼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유가는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다. 유가가 급등하면 생산 단가 상승은 물론, 유통 비용 인상을 불러오고 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서민들이 유가 급등을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것은 개솔린 가격이다. 11일 현재 남가주 지역 레귤러개솔린의 평균 가격은 갤런당 5.37달러까지 올랐다. 전쟁 시작 직전과 비교해 77센트(17%)나 오른 가격이다. 불과 12일 만의 상승폭이다. 전국 평균가 역시 2.98달러에서 3.58달러로 20%나 급등했다. 자고 나면 오르는 개솔린 가격으로 인해 주유소 가기가 겁난다는 운전자가 많다.    미국 경제는 아직 인플레와 전쟁 중이다.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2.4%를 기록하는 등 연방준비제도(Fed)가 원하는 2%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가 급등은 물가에 또 다른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 전문가들이 다음 주 열릴 연준의 금리회의(FOMC)에서 금리 인하 가능성이 적을 것으로 보는 것도 이런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유가가 폭등하자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과 세계의 안전, 평화를 위한 작은 대가일 뿐이며, 달리 생각하는 것은 바보뿐”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부유층에게는 개솔린 가격과 물가 상승이 ‘작은 대가’일지 몰라도 서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다. 인내를 요구하려면 전쟁의 당위성에 대해 국민이 공감할만한 충분한 설명이 먼저다.사설 개스값 급등 개스값 급등 유가 급등 전쟁 시작

2026.03.1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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