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사상 초유의 국정조사가 이뤄진다. 어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 기소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는 사실상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 취소를 위한 ‘빌드업’으로 의심받고 있다. 국회가 검찰에 대해 특정 사건, 더구나 최고권력자의 사건을 놓고 공소 취소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정치적 권력으로 형사사법 체계를 흔드는 잘못된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검찰의 조작 기소는 단죄해야 할 범죄임이 분명하다. 검찰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려야 하지만, 지금처럼 여당이 우격다짐으로 국정조사를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이 대통령의 대북 송금 사건의 경우, 쌍방울 김성태 전 회장이 “돈 준 게 있으면 줬다고 하고 싶다”고 한 진술을 근거로 조작이 의심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법무부 특별점검팀이 이화영 전 지사를 수사한 박상용 검사의 ‘연어 술 파티’ 의혹 등도 조사 중이다. 조사가 더디긴 하지만 결과를 지켜보는 게 순서다. 결국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건 정치 공세로 결론을 압박한다는 의심을 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여당은 ‘공취모(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 모임)’까지 결성하며 검찰을 압박했다. 오죽하면 민주당 진영에서 “미친 짓”(유시민 작가)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공소 취소 거래설’까지 등장했겠는가. 이 대통령이 “사건 조작은 살인보다 더 나쁜 짓”이라는 글을 올리자 여당 친명계가 조바심을 낸 것으로 세간은 의심한다. 민주당은 “특정인 보호가 아니라 무소불위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정치적 편향 없이 이뤄졌는지 국민 앞에 확인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공정한 형사사법 절차에 따를 일이지 정치 공세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17시간 넘는 필리버스터를 한 시각장애인 김예지 의원의 지적에 여당이 귀 기울였으면 한다. 그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말에 담긴 진심과 책임의 무게 같은 것들을 뚜렷하게 느낀다”면서 “정치가 원칙보다 유불리를, 제도보다 진영을, 국민의 삶보다 정치적 효과를 앞세운다”고 일갈했다. 이번 국정조사에 딱 맞는 지적이다.
2026.03.22. 8:28
지난 20일 낮 대전시 대덕구의 자동차 부품업체 안전공업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14명이 숨지고 60명이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다. 사고 당시 화재경보기가 제대로 작동했음에도 170명의 직원 중 상당수가 신속하게 대피하지 못하고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이번 화재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휴게 공간 등으로 사용된 복층 형태의 무허가 시설에서 사망자가 다수 발견됐다. 점심시간 무렵에 휴식을 취하던 직원들이 대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도면에 없는 330㎡(약 100평) 규모의 공간은 업체 측이 층고가 높은 건물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임의로 증축한 것이다. 원래 2층인 곳을 2층과 3층으로 나눠 썼고 창문은 건물 정면이 아닌 좁은 측면에만 있었다. 만일 창문이 건물 정면에도 있었다면 에어매트 설치가 가능해 탈출과 구조가 보다 용이했을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초 발화 지점은 1층이지만 불법 증축이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게다가 공장 내부에 있는 절삭유나 찌꺼기 등 가연성 물질이 화재 확산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물과 반응하면 폭발하는 나트륨이 다량 보관돼 있어 초기 진화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위험 요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무허가 복층 구조, 가연성 물질 관리, 위험 물질 보관 등은 사전 점검을 통해 개선이 가능했던 사안이다. 이런 사고의 재발을 막으려면 철저한 원인 규명과 함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 발화 지점과 확산 경로는 물론 불법 시설 설치와 안전 점검 과정의 책임 소재까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동시에 공장 내부의 무허가 증축에 대한 규제와 관리 기준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화재가 일어난 곳은 엔진의 주요 부품을 국산화해 연간 1000억원어치를 수출하는 업체다. 하지만 이런 화재가 일어나면 그동안의 성과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산업 현장의 안전은 근로자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며 기업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작업장 내 안전 문제를 개선해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26.03.22. 8:26
지방선거 공천을 둘러싸고 국민의힘에서 파열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어제 대구시장 후보 공천 내정설 등과 관련해 “당 대표로서 죄송스럽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마땅한 해법은 내놓지 못했다. 장 대표는 “공천관리위원장과 소통해서 여러 상황을 빨리 종료하고 시민들도 납득할 수 있는, 제대로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낼 수 있는 공천이 되도록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어제 비공개 회의에는 대구시장에 출마한 주호영(6선)·윤재옥(4선)·추경호(3선) 의원 등 대구 지역 의원 12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장 대표는 중진들이 주장한 ‘시민 공천’을 이정현 공관위원장에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이후 주 의원과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을 컷오프하고 “보수의 심장 대구를 살려 한국 정치를 살리는 선택”이라고 밝혔다. 현역 중진의 컷오프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갈등이 불거지고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을 대구시장 후보로 염두에 뒀다는 ‘내정설’이 확산되는데도 국민의힘 지도부는 무기력했다. 그 과정에서 공관위원장과 중진 사이에 지역감정까지 드러내는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다. 다른 곳에서도 현역·중진 물갈이 시도가 독단적으로 이뤄진다는 지적이 나오자 한발 물러서는 양상이 반복됐다. 부산에선 박형준 시장 컷오프(공천 배제) 시도를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면서 공관위 내부에서도 일부 위원이 반발했다. 이런 내홍이 “누가 내정돼 있다”거나 “누구는 배제 대상”이라는 식으로 번지면서 선거운동을 접거나 출마를 포기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또 “정수리를 쳐야 당이 변한다”며 현역 컷오프를 통한 혁신공천을 내세우더니 강원·울산·경남 등 세 곳에선 현역 지사·시장을 단수 공천했다. 그러니 기준 없고 일관성 없는 공천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큰 차이로 여당에 밀리고 있다. 최근엔 대구·경북에서의 지지율이 28%로 민주당의 29%와 엇비슷하게 폭락했다는 여론조사(갤럽)까지 나왔다. 참신한 공천을 통해 유권자에게 좋은 인상을 줘도 부족할 판에 공정성 시비만 불거지니 지지율 반등은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거대 여당의 독주를 견제할 제1 야당의 모습을 선거 전까지 갖출 수 있을지, 유권자가 당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2026.03.22. 8:24
소위 ‘사법개혁 3법’ 중 어떤 것이 가장 악법일까? 다수의 전문가는 법왜곡죄를 최악으로 꼽는다. 판사나 검사 등이 의도를 가지고 법을 잘못 적용하는 것을 막겠다고 만든 이 법은 내용과 적용 범위가 불분명해서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처벌을 받는다는 것인지 미리 알기 힘들다. 사건 결과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판·검사를 상대로 고소를 남발하는 것은 덤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 법이 대한민국 사법 질서에 큰 타격을 입히기는 어렵다. 위헌이라는 점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로스쿨 형법 강의 첫날에 배우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 만에 하나 이 법조항 위반으로 판사나 검사가 기소된다면 틀림없이 위헌 결정을 받을 것이다. 혼란을 초래할 뿐 영구적인 퇴행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법왜곡죄, 위헌 결정으로 정리 가능 대법관 증원법, ‘사법개혁’ 중 최악 학급당 학생 수 넘는 대법관 25명은 민주주의 퇴보시킨 실패 사례 될 것 재판소원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상 4심제가 되고 분쟁 해결에 더 큰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는 비판은 분명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조직의 크기나 인력 구조에 비추어 볼 때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에서 확정되는 사건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겠다고 나설 가능성은 극히 작다. 초기에는 신청이 폭주하겠지만 조금 지나면 찻잔 속의 태풍처럼 큰 파장 없이 자리를 잡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를 아래로 보던 대법원 자존심에 생채기는 남을 수 있겠다. 가장 큰 부작용을 불러올 것은 대법관 증원법이다.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여권의 사법개혁 방향에 부정적인 사람들도 큰 반대는 하지 않았다. 연간 4만 건이 넘는 사건에 시달리는 대법원에 인력을 증원해서 사건 처리를 신속하게 한다는 명분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비판은 대체로 현직 대통령이 너무 많은 신임 대법관을 임명하게 되어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그쳤다. 그러나 대법관의 수를 대폭 늘리는 일에는 그보다 훨씬 큰 함의가 있다. 최고법원의 권위를 실추시킴으로써 3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을 약화시키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약자,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보호에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왜 그런지 보자.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전원합의체에서 사건을 심판한다. 전원합의체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이 모두 참여하고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아서 13명으로 구성된다. 대법원에 오는 사건이 워낙 많아서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사건은 대법관 4명으로 이루어진 부(部)에서 처리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외적이고 불가피한 현상일 뿐이다. 기존의 판례를 바꾸거나 행정법규의 위헌, 위법이 문제되는 경우는 물론 국민의 인권과 관련되는 중요한 사건은 모든 대법관이 참여해서 논의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숙의를 거쳐야 한다. 때문에 대법관의 숫자는 지극히 중요하다. 너무 많으면 제대로 된 토론이나 합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정원 9명을 고수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민주당의 대법관 증원법은 이 숫자를 25명으로 늘린다. 2025년 대한민국 학급당 학생수 20.91명을 훌쩍 넘는다. 13명이 하는 회의와 25명이 하는 회의는 질적으로 다르다. 각자 한마디씩 하기도 힘들다. 결과에 대한 각 구성원의 책임이 절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엉뚱하고 무책임한 주장을 펼치기도 쉽다. 자신을 임명해 준 권력자의 눈에 드는 의견을 내려는 대법관도 등장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위대한 반대자’의 산실이었던 소수의견 란은 일부 자격 미달 대법관들이 독단적인 입장을 내세우는 장이 될 수 있다. 국회나 거리에서 양극단의 강경파들이 쏟아내는 거친 주장들이 대법원 판결문에 실리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전원합의체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대법관들은 4명씩 모여 하급심 판결의 사소한 흠집이나 잡아내는 제3심의 역할만을 하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에 관한 모든 교과서가 삼권분립과 사법의 독립을 이론 없이 지지하는 것은 선거를 의식하거나 여론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법원이야말로 가장 어두운 시기에 소수자, 약자가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대법원에서 그 역할을 해온 것은 전원합의체다. 대법관 증원법을 그대로 시행해서 전원합의체를 형해화하면 그 후과는 지금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소수자가 됐을 때도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불과 얼마 전에 권위주의 시절을 겪었고 최근에도 2명의 대통령이 탄핵된 나라에서 사법의 힘을 이렇게 약화시켜도 되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다른 모든 부문과 마찬가지로 우리 법원은 공도 있고 과도 있다. 정당하지 않은 판결을 한 일도 있고 정치권력의 눈치를 본 굴욕스러운 기억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법부를 적대시하고 무력화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10년 후 이재명 정부의 공과를 판단할 때 대법관 증원법 강행은 가장 크게 실패한 대목으로 꼽힐 가능성이 크다. 어렵겠지만, 합리주의와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이번 정부가 유연성을 발휘해서 되돌리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금태섭 전 국회의원
2026.03.22. 8:22
“이재명 대통령에게 ‘객관 강박’이라고 10년 전부터 불렀는데, 자기가 스스로 레드팀이 되는 성격이 있어요. 자기 결정에 대해서 ‘내가 당사자라서 내가 피해자라서 치우치는 것 아닌가’ 객관 강박이 있다… 있는 용어가 아니라 내가 그냥 부르는 것이다. 자기 판단이 3자적 관점에서 이성적 합리적인가 강박적으로 자기 진단을 한다.” ‘검찰 개혁’과 ‘공소 취소’ 국면에서 도마에 오른 대통령의 ‘객관 강박’ 주제파악 못 하는 야당이 더 문제 지난 9일 친여 유튜버 김어준씨가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한 말이다. 소위 ‘검찰 개혁’에 대한 이 대통령의 태도를 거론하다 이런 얘기를 했다. 검찰 수사의 피해자인 이 대통령이 스스로 감정적이 되지 않도록 레드팀으로서 이 문제를 검찰 입장에서 보는 것 아닌가, 그래서 더불어민주당 강경파의 주장과 일부러 거리를 두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었다. 김씨의 발언 의도를 떠나 만약 ‘객관 강박’이 사실이라면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에겐 대단히 훌륭한 덕목이라 생각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면 안 된다” “내 의견만이 정의라는 태도는 실패 원인”이라며 강경파의 폭주를 견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당·정·청 찰떡 공조”(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표현)로 완성됐다는 법안의 실제 내용은 완전 딴판이었다. 극히 일부 조항을 빼면 여당 강경파의 요구가 대부분 수용됐다. 이 대통령이 ‘레드팀’ 임무를 수행하긴 했는지, 레드팀 역할을 하긴 했지만 지지층 내부의 갈등을 우려해 당의 요구를 극적으로 수용한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청와대와 여당이 굿 캅, 배드 캅 역할을 나눠 맡은 것인지 진실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국민 중엔 민주당의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 드라이브에 대한 청와대의 태도를 미심쩍어하는 이가 많다. 친여 인사인 유시민 작가까지 “내가 미쳤거나, 그 사람들이 미친 것인데, 제가 미친 것 같지는 않다”며 관련 의원 모임을 비판했던 바로 그 이슈다. 지난해 민주당이 추진했던 현직 대통령 재판 중지법엔 “정쟁에 (대통령을) 끌어들이지 말라”며 제동을 걸었던 청와대가 왜 공소 취소는 만류하지 않는지 의문스러워하는 이도 많다. 이 대통령의 ‘객관 강박’이 진짜인지, 대통령 마음속 레드팀이 정말 가동 중인지를 증명하는 시금석이 될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객관 강박’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야당 쪽에 더 많은 것 같다. 1층을 뚫고 지하실까지 추락한 지지율이 보여주듯 “야당 관련 뉴스는 하나도 보고 싶지 않다”는 이들이 이념 성향과 진영을 떠나 너무나 많아졌다. 실제로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은 매일매일이 역대급이다. 당 대표와 공천관리위원장이 번갈아 주연을 맡고 조연만 하루 걸러 바뀌는 막장 드라마인데, 그나마 지루하고 재미도 없다. 대혼란의 한복판에 서 있는 당 대표의 경우 누가 봐도 과거 황교안 전 대표가 걸었던 코스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지만, 본인만 그 뻔한 결말을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객관 강박’은커녕 최소한의 자기 객관화와도 담을 쌓고 있다. 싸우면서 닮아가는지 당 대표와 180도 대척점에 서 있다는 전직 대표의 태도 역시 국민 시선에선 도긴개긴이다. 최근엔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뷰에서 했다는 “나를 발탁한 건 대한민국이다. 윤석열(전 대통령)이 아니다”는 말이 논란을 낳았다. ‘정치적 쇼맨십’에서 아예 못 할 말은 아니지만 그의 정치 입문과 성장 과정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어리둥절 당황스러운 부분이 있겠다 싶다. 잘못된 계엄에 반대했고, 정치적 스탠스가 멀쩡하고, 바른말을 꽤 하는데도 본인에 대한 호감도가 생각만큼 왜 높지 않은지에 대한 객관적 성찰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상식적이지 않은 공소 취소 추진에, 황당한 거래설과 자폭성 권력투쟁까지 난무해도 그런 일들이 여권의 큰 위기로 느껴지지 않는 건 정치가 상대평가이기 때문이다. 봄이지만 전혀 봄 같지 않은 현실, 보수의 처지가 답답하다. 서승욱([email protected])
2026.03.22. 8:20
저속노화 담론으로 인기를 얻은 의학박사가 지난해 말 사생활 스캔들에 휩싸였을 때, 관련 뉴스에 쏟아진 비난과 조롱의 배경은 단순하지 않았다. 유명인의 추락을 즐기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의 건강 담론에 반감을 품어온 이들이 이때다 싶어 불만을 표출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저속노화 식단은 소고기·돼지고기 같은 적색육, 빵·떡·면·백미밥 등의 정제 탄수화물, 가공식품을 줄이고 통곡물·채소를 늘리며 콩·생선 등으로 단백질을 섭취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숏폼 영상, 술, 커피, 자극적인 음식에서 오는 값싼 도파민을 억제하고 독서·음악·운동·명상 같은 느린 도파민을 추구하는 이른바 도파민 리모델링도 권한다. 그런데 왜 이런 메시지가 일부에서 강한 반감을 불렀을까. 적색육·지방 권장 식단 발표 기존 곡물 강조 식단과 충돌 적색육 유해성, 학계 의견 갈려 엘리트 불신 겹쳐 문화전쟁화 저속노화 의사 추락에 가해진 조롱 오늘날 건강 담론은 단순한 의학적 조언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코칭과 자기계발의 성격을 띤다. 반감을 가진 이들은 이런 조언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은근한 죄의식을 불어넣는다고 느낀다. 여기에 환경 담론까지 결합하면 압박감은 더 커진다. 이 의사는 ‘지구 건강 식단(planetary health diet)’이 자신의 저속노화 식단과 결이 같다며 “붉은 고기를 덜 먹어 내 건강도 지키고 환경도 지키자”고 여러 차례 말했다. 2019년 영국 의학저널 랜싯과 노르웨이 재단 EAT의 협업으로 발표된 이 식단은 대규모 축산업이 온실가스 배출과 기후 위기에 크게 기여하고, 붉은 고기가 심혈관질환과 암 위험을 높인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식물성 위주 식사를 하고 적색육은 일주일에 스테이크 반 개 정도만 먹으라고 권한다. 이런 캠페인이 확산될수록 붉은 고기를 즐기는 이들은 자신이 건강도 못 챙기고 환경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는 압박을 느낄 수 있다. 스캔들이 터졌을 때 “음식 절제하라더니 다른 데서 도파민을 찾으셨네” “저는 삼겹살로 도파민 충전하면서 건전하게 살게요” 같은 빈정거림이 쏟아진건 그런 죄의식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과학적 논쟁도 있다. 가공식품과 단순당이 건강에 해롭다는 데는 이제 큰 이견이 없다. 그러나 가공육이 아닌 적색육, 즉 스테이크나 갈비구이까지 얼마나 해로운가를 두고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적색육에만 있는 필수 영양소가 있으므로 섭취는 하되 최소화해야 한다는 견해가 아직 주류지만, 적색육이 암과 심혈관질환 위험을 유의미하게 높인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논문도 최근 적지 않다. 국내 의사들 사이에서도 유튜브 등을 통해 관련 논쟁이 거세다. 다만 한국은 아직 미국처럼 본격적인 이념·문화 전쟁 단계까지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적색육 논쟁이 이미 전쟁에 가깝다. 올해 1월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새 식단 지침은 그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탄수화물은 과거보다 훨씬 줄이고 단백질은 늘리며 지방은 크게 제한하지 않는, 이른바 저탄고지에 가까운 방향이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부 장관은 과거 가이드라인에서 금기시되던 적색육과 전지방 유제품을 최상위에, 곡물을 최하위에 둔 역삼각형 도표를 제시하며 “진짜 음식(real food)을 먹을 권리”를 강조했다. 이전 식단 지침은 1977년 맥거번 보고서 이후 저지방 권고와 적색육 경고를 핵심으로 삼아왔다. 빵·시리얼 등이 권고 식단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것이 설탕·곡물 업계 로비의 결과였다고 의심한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가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 적색육을 2A군 발암추정물질로 분류한 것도 이런 흐름을 강화했다. 비판자들은 지방과 지방 많은 적색육이 악의 축으로 공격받는 동안 정제 탄수화물과 당, 그리고 이들이 결합된 시리얼 같은 가공식품이 미국인의 건강을 망가뜨렸다고 본다. 트럼프 식단 뒤에 축산업계 로비 있나 물론 새 식단 지침도 축산업 로비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과거 지침이 지방의 위험만 과장하고 정제 탄수화물과 당의 위험을 과소평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적색육과 동물성 포화지방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의 월터 윌렛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적색육·전지방 권장이 “순전히 틀렸고 미국인의 건강에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 역시 예전 같은 무오류의 권위는 아니다. 그가 공동 주도한 지구 건강 식단 자체에 대한 반감과 반박도 최근 몇 년간 거세졌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첫째, 영양학 자체에 대한 불신이다. 어제는 지방이 적이었다가 오늘은 설탕이 더 큰 적이라 하니, 내일은 또 다른 말이 나올지 모른다. 둘째, 기후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다. 건강하게 먹자는 권고가 어느 순간 지구를 구하기 위한 도덕적 의무로 제시되면 사람들은 지친다. 셋째, 엘리트 불신이다. 하버드와 국제기구, 글로벌 재단이 내놓는 식단이 과연 모두의 현실을 반영하느냐는 의심이다. 통곡물과 신선한 채소는 서민에게 오히려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고, 고기를 귀하게 여겨온 오랜 정서도 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한 채 선민의식으로 가르치려 든다고 느끼는 것이다. 트럼프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어 식단 문제를 “평범한 미국 서민의 접시에서 스테이크를 빼앗으려는 글로벌리스트 리버럴 엘리트”의 문제로 프레이밍한다. IT 거물들도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빌 게이츠는 식물성 대체육과 실험실 합성육을 미래의 대안으로 제시해 왔다. 반면에 일론 머스크는 적색육·고단백 식사를 공개적으로 옹호한다. 그는 2024년 어느 팟캐스트에서 “활력을 위해 아침으로 스테이크와 달걀을 먹는다”며 축산업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완전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머스크에게는 ‘환경 문제를 무시하는가’라는 비난이, 빌 게이츠에게는 ‘그럼 대체육은 초가공식품이 아닌가’라는 반박이 따라다닌다. 적색육의 진실은 무엇일까. 감정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과학은 여전히 모호하다. 바로 그 애매함 위에 정치와 계급 감정, 기후 담론이 덧씌워져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어떤 이론도 맹신하지 않는 것, 내 몸의 반응에 귀를 기울이는 것, 쏟아지는 정보 뒤에 숨은 자본과 권력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이다. 식탁에서도 비판적 태도가 필요한 시대다. 문소영([email protected])
2026.03.22. 8:18
“어디니? 이미 밖으로 나왔으니 빨리 오라!” 지난 12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기차역 출구 앞에서 한 남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또렷한 북한 말투였다. 누군가를 한참 기다리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일행들과 뜨겁게 포옹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은 그의 옆에서 방방 뛰었다. 평양발 여객 열차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온 북한 승객들이다. 이날 이들을 비롯해 200여 명의 사람이 쏟아져 나왔다. 여행용 가방과 무언가 가득 담긴 대형 봉투를 양손에 들었다. 기차역 앞은 만남의 광장으로 변했다.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여객 열차가 코로나19 이후 6년 만에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지난해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에서 만난 지 6개월 만이다. 압록강 위로 놓인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를 매일 달린다. 평양과 베이징을 왕복하는 국제열차는 지난 1954년부터 운행했다. 북·중 우호의 상징의 복원과 함께 양국 관계도 정상화 궤도에 오른다. 지난 몇 년간 차갑게 식었던 오랜 혈맹 사이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각기 다른 계산기를 두드리던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북한은 경제적 이득을, 중국은 외교적 카드를 얻었다. 지난 1~2월 북·중 교역액은 1년 만에 20%나 늘었다. 무려 6000억원에 달한다. 2017년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다. 북한은 최근 노동당 제9차 당 대회에서 국가 성장 전략의 한 축으로 관광을 공식화했다. 러시아에 이어 중국 관광객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중국은 당근을 흔들며 북한을 품에 안는다. 대북 영향력 회복을 만천하에 과시한다. 지난해 천안문 망루에서 김 위원장을 첫 다자외교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시 주석은 머지않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 테이블에 앉는다. 꾸준히 김정은에 러브콜을 보냈던 트럼프다. 중국을 뺀 북·미 대화는 꿈도 꾸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북한과 중국에 미국까지 서로 시선을 교환한다. 한국이 낄 자리는 있을까.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7일 내외신 기자회견서 90분 동안 질문 21개를 받았다. 한국 매체엔 2년 연속 입 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한반도 문제 역시 일언반구도 없었다. 뒷전으로 밀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음 주 열릴 듯했던 미·중 정상회담이 한 달여 미뤄졌다. 트럼프 대통령도 재차 북한과의 대화를 언급했다. 복잡한 수 싸움 오가는 외교 바둑판 위에서 한국이 꺼내 들 카드는 무엇일까. 이도성([email protected])
2026.03.22. 8:16
1969년 7월 20일. 인류가 처음으로 다른 천체에 발을 디딘 역사적 순간이었다. 닐 암스트롱의 “인류를 위한 한 걸음”이라는 말과 함께 달 표면에 새겨진 발자국. 전 세계 6억 명이 흑백 TV 앞에서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그 장면을 가능하게 한 건 거대한 새턴 V 로켓이었다. 그리고 그 로켓을 설계한 사람은 베르너 폰 브라운(1912~1977)이었다. 나치 독일에서 V-2 로켓을 만들던 과학자가 미국으로 건너와 우주개발의 아버지가 됐다. 그는 달 착륙을 이뤘지만, 그의 눈은 늘 달 너머를 향해 있었다. 붉은 행성, 화성. 1961년 존 F 케네디가 “1960년대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폰 브라운은 속으로 화성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에게 달은 단지 중간 기착지일 뿐이니까. 달 탐사 로켓 제작한 폰 브라운 1948년 쓴 책서 화성탐사 기획 최고 관직명이 공교롭게 ‘일론’ 탐사 방식도 스타십 쏙 빼닮아 텃세 답답함 풀기 위해 화성탐사 집필 하지만 그는 끝내 화성 땅을 밟지는 못했다. 그러나 1948년, 전쟁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절에 한 권의 기묘한 책을 썼다. 본인에게 더 편한 언어인 독일어로 쓴 책, 『프로젝트 마스(Das Marsprojekt)』. 이건 단순한 공상과학(SF) 소설이 아니었다. 로켓 공학자로서의 치밀함이 그대로 녹아든 기술 청사진이었다. 당시 폰 브라운은 뉴멕시코 화이트 샌즈 미사일 실험장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냉전 초기라 로켓 개발 예산이 넉넉지 않았고, 기존 로켓 전문가들의 텃세 속에 천재의 재능을 쏟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 답답함을 풀기 위해 그는 펜을 들었다. 소설 속 배경은 1980년대. 인류는 이미 지구 궤도에 거대한 우주정거장을 완성하고, 그곳에서 10척의 거대한 우주선을 조립한다. 연료 보급을 마치고 화성으로 향하는 대함대. 놀랍게도 그가 계산한 비행시간은 오늘날의 정밀 계산과 거의 일치한다. 이 책은 1952년에 일부 내용이 기술 서적으로 먼저 나왔고, 완전한 영어 소설 형태로는 2006년에야 세상에 공개됐다. 그리고 그 안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한 문장이 숨어 있었다. ‘화성의 최고 지도자 직함은…일론(Elon).’ 폰 브라운은 화성을 이미 고도로 발달한 문명사회로 설정했다. 소설 속 문장은 명확했다. 화성 정부는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들의 최고 행정 지도자는 보통 투표로 선출되었는데, 그 직함은 ‘일론(Elon)’이라 불렸다. 그는 이 단어를 히브리어에서 따온, 그냥 멋진 관직명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다. 누군가의 실제 이름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72년이 흐른 2020년 12월 30일 밤.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캐나다와 미국을 거쳐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이끄는 한 남자가 영화 ‘영 프랑켄슈타인’의 대사를 인용하며 “Destiny, destiny. No escaping that for me”(운명, 운명.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것)라는 글을 X(옛 트위터)에 남겼다. 화성 이주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자신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한 문장이었다. 사람들은 늘 그를 미치광이냐 천재냐로 갈랐다. 그때 한 사용자가 댓글을 달았다. 오래된 책 페이지 사진 한장. 희미한 흑백 인쇄 속에 선명하게 박힌 단어 하나. ‘Elon’. 일론 머스크는 스마트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숨이 막혔을 것이다. 1948년에 쓰인 소설 속에서 화성의 최고 지도자 직함이 정확히 자신의 이름과 일치한다니. 철자 하나 틀리지 않았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답글을 썼다. ‘Are we sure this is real?(이게 정말 사실인가요)’ 이어 곧바로 덧붙였다. ‘Time to read this book(이 책을 읽어볼 때가 됐군요).’ 온라인은 폭발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크린숏을 퍼 나르고, 논쟁이 벌어졌다. 머스크 본인조차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평소처럼 밤늦게까지 일하다가 알림 하나에 깜짝 놀랐으리라. 70년 전 과거의 한 페이지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삶과 오버랩된 것이다. 각본 없는, 소름 돋는 운명의 장면이었을 것이다. 폰 브라운 씨앗, 일론 머스크가 키워 이 우연은 이름의 일치로 끝나지 않았다. 더 섬뜩한 건 기술적 유사성이었다. 폰 브라운이 1948년에 구상한 화성 탐사 방식은 지금 스페이스X의 스타십 계획과 놀랍도록 닮았다. 지구 저궤도에 대형 정거장을 만들고, 거기서 다수의 우주선을 조립, 연료 보급 후 함대 형태로 출발. 폰 브라운은 종이와 연필로 계산한 그 시나리오를, 머스크는 21세기 최첨단 로켓으로 구현하고 있다. 단순히 한 번 다녀오는 탐사가 아니라, 대규모 이주와 영구 정착을 목표로 한다는 점도 똑같다. 폰 브라운은 많은 전문가들의 회의적인 시각 속에서도 새턴 V로 달을 정복했다. 머스크 역시 민간 로켓을 만든다고 했을 때 전문가들은 “돈만 태우다 끝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새턴 V는 달에 갔고, 팰컨 9이 재사용 로켓 시대를 열고, 스타십은 화성 착륙을 꿈꾼다. 2026년 무인 화성 착륙, 2030년대 초반 유인 착륙. 76년 전 한 과학자가 꿈꾼 청사진이 이제 현실의 시간표가 됐다. 이건 초자연적인 예언이 아니라, 인류의 우주 개척 의지가 만들어낸 서사의 연속이다. 폰 브라운이 뿌린 씨앗이 머스크라는 토양에서 자라난 것이다. 언젠가 화성 붉은 먼지 위에 인류의 첫 도시가 세워지고, 첫 발자국이 찍히는 날. 우리는 그때야 비로소 깨달을 것이다. 2020년 12월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순간, 머스크가 지은 놀란 표정이야말로 우주가 우리에게 보낸 가장 강렬한 신호였음을. 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
2026.03.22. 8:14
유튜버 김어준과 고성국이 함께 웃고 떠드는 장면. 지금으로선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모습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들은 (최소한 방송에서) 가까웠다. ‘나는 꼼수다’가 한창 주가를 올리던 2011년 6월 고성국은 나꼼수 게스트로 출연했다. 김어준은 고성국을 “진보 진영 출신의 예리한 시사 평론가”로 소개하며 반겼다. 비슷한 시기 한겨레TV의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선 고성국이 아예 ‘고성방가’란 코너를 진행했다. 지금 봐서는 마치 국공합작 같은 의외의 조합이지만 당시만 해도 두 사람은 그런 사이였다. 둘이 본격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된 건 2012년 12월 대선 전후다. 하지만 각기 진영해서 활동했을 뿐 행적은 매우 닮아 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고성국은 여러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며 ‘친박’ 인사임을 누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 당선 이후엔 김어준이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진행자로 발탁되며 새 세상이 왔다는 걸 알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당선은 고성국이 KBS 라디오 간판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를 꿰차는 기회를 선사했다. 게다가 두 사람은 부정선거 주장 이력까지 공유하고 있다. 김어준은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패하자 부정선거 의혹을 다룬 ‘더 플랜’ 영화까지 제작했다. 부정선거는 ‘윤 어게인’과 함께 지금의 고성국을 만들어준 핵심 토대다. 이렇듯 닮은 둘은 현재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가장 핫한 사람이다. 각 당원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어쩌면 여야 대표보다 더 크다고 볼 수도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든 김어준·고성국 앞에선 얌전한 고양이가 따로 없다. 정청래·장동혁의 반대파가 김어준·고성국을 싫어한다는 유사점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나꼼수 팬 사이에선 진보 매체 프레시안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해 ‘우리 편’으로 알았던 고성국이 친박 인사로 거듭나자 “김어준이 키운 고성국”이라며 김어준을 원망하는 듯한 볼멘소리가 나왔었다. 물론 김어준이 뜨기 훨씬 전인 1996년 KBS ‘추적 60분’을 진행해본 고성국 입장에선 ‘키웠다’는 표현이 거슬릴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키웠든, 누가 먼저 권력을 이용하는 법을 배웠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 노는 물이 다를 뿐 어차피 많은 게 닮은 판박이어서다. 쌍생아와 같은 김어준과 고성국은 현재 한국 정치의 커다란 근심거리가 됐다. 언제까지 이들이 정치판을 휘저어 뿌연 흙탕물로 가득 차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까. 허진([email protected])
2026.03.22. 8:12
지난 19일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미·일 정상회담은 양국 간 폭넓은 협력을 확인하고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되었다. 미국은 일본의 대규모 대미 투자를 얻었고, 일본은 이란 정세 관련 미국의 강한 압박에 맞서 전투가 지속하는 현시점에서의 자위대 파견 불가 원칙을 지켜냈다. 이번 회담은 당초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에 앞선 대중국 정책 협의가 주된 목적이었으나, 2월 말 이란 전쟁이 발발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관련 일본의 대응이 최대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첫 방미가 극도로 어려운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일본은 헌법적 제약과 동맹의 의무 사이의 줄타기에서 노련한 외교술을 선보였다. 안전 항로 확보에 일본 공헌 약속 군함 파견 압박 막고 신뢰도 얻어 실익 추구와 리스크 관리가 교훈 회담 전 트럼프 대통령은 SNS를 통해 일본을 비롯한 동맹국들의 비협조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호르무즈해협의 안전 확보를 위한 함선 파견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나 실제 공개된 정상회담의 모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의외로 온화한 태도를 보이며 “일본은 충분히 대응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반전은 다카이치 총리의 철저한 논리적 대응과 전략적 메시지 관리 덕분이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란의 핵 개발, 호르무즈 봉쇄 관련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미국과 긴밀한 소통 지속”을 약속하였고, “세계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뿐이다”라고 치켜세웠다. 그렇지만 그는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 일본 헌법 9조와 안보법률의 한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란 정세의 조기 안정이 중요하다는 일본의 입장을 전달하고, 군함 파병 등 구체적인 공헌책은 약속하지 않았다. 일본은 아베 신조 내각 시기에 헌법 해석 변경과 안보법제 개정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다카이치는 이번 전쟁이 미국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었기에 법률 적용에 의한 자위대 파견이 곤란함을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러한 법적 한계를 이해하고, 지난해 일본이 보여준 관세 및 방위비 협력의 진정성, 그리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대중국 견제를 위한 다카이치 내각의 역할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본 외교의 노련함은 이란 관련 다자간 공동성명의 도출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 일본은 회담 2시간 전에 영국·프랑스·독일 등 6개국과 공동으로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를 강력히 규탄하고 안전한 항로 확보를 위한 ‘적절한 노력’에 공헌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함으로써 그의 체면을 세워주는 동시에, ‘적절한 노력’에 대한 각국의 입장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대응의 유연성을 남긴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미국은 호르무즈해협의 자유 항행을 위한 국제연대를 제안하고 있다. 이번 회담의 비공개 세션에서 일본은 전쟁 종료 후 유엔 결의를 통한 다국적 관리체제에 소해정 파견, 상선 호위 등 비전투적 기여 가능성을 제안하여 미국의 장기적 기대를 충족시키려 했을 수 있다. 동맹의 도리는 다하면서 당장의 위험한 군사적 개입은 피하는 전략이다. 주목할 점은 일본 외교가 미국 일변도로 기울어지지 않고 실익 추구와 리스크 헤지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의 뼈아픈 경험을 기억하는 일본은 중동 산유국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2019년 미·이란 갈등 당시 호위 연합에 참여하는 대신 독자적인 정보 수집 활동을 펼치며 중재를 시도했던 전례가 있다. 현재도 자국 선박의 안전 항행을 위해 이란 측과 독자적인 채널로 협의 중이다. 일본 외교의 이러한 모습은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과잉 반응하기보다는 긴밀한 소통을 통해 미국의 진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우리 역시 관세, 대미 투자, 방위비, 핵 협상 등 다양한 현안이 얽혀 있는 만큼, 전쟁의 장기화 가능성 등 불확실성을 전제로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는 현실적인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 우리 선박의 안전과 전후 복구를 고려해 이란과의 양자 관계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유연함도 필요하다. 중동 분쟁으로 인한 인태 지역 내 미국의 전략자산 약화에 따른 안보 공백에 대한 철저한 대비 태세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리셋코리아 한일관계 분과장
2026.03.22. 8:10
모든 사달의 시작은 보좌관에게 내던진 언어공격행위였다.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후 신문, 방송, 유튜브, 국회 청문회에서 막말과 함께 공개된 부정직, 몰염치, 탈법 의혹은 국민을 놀라게 했다. 1월 21일 대통령은 지명을 철회했다. 지명 취소에 이르게 한 많은 이유 중에서 ‘수십억 원 차익 로또’로 불린 반포동 원펜타스 부정 청약을 포함하는 경제적 이슈가 언론에 집중적으로 부각되었다. 우리 사회를 압도하고 있는 경제 만능주의, 돈에 종속된 현실을 대변하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상대를 존중하는 품격있는 말을 할 줄 모르거나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 행위만으로도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며 권력을 행사하는 장관직이나 공직에 오를 수 없는 문화를 정립해야 한다. 빈곤을 타파한 산업화와 평등한 권리 신장을 목표한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로 세계로부터 칭송받는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사회의 모습은 대화하고 설득하는 공동체가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말 폭력은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 폭력에 둔감한 사회 초래할 수도 공직 못 오르게 하는 기준 돼야 후보자의 ‘말 폭력’은 가혹했다. 상대에 대한 배려는커녕 존재 자체를 무시했다. 윤리 의식도 부재했다. 자신의 활동을 다룬 언론보도 관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너 그렇게 똥오줌을 못 가려?”라고 소리쳤다. 바보로 비하하며 인성을 모욕한 것이다. “너 뭐 아이큐가 한 자리야”라며 능력을 부정하고, “너 대한민국 말을 못 알아들어?”라며 정체성을 조롱하고 부정했다. 더욱이 “내가 널 정말 죽였으면 좋겠다”며 신체에 대한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두려움으로 얼어붙은 보좌관을 “야 답을 해라 정말”로 다그치며 투명 인간으로 멸시하였다. 악을 쓰는 고음, 비하하는 호칭, 속사포 힐난이 담긴 녹취록의 정황은 살벌한 비언어적 상황을 보여준다. 이러니 보좌관들은 신경안정제 복용으로 자아의 상실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폭력적인 언어공격행위는 “상대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상대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비하하거나 부정적으로 느끼게 하는 언어 행위”로 타인을 물리적·상징적으로 지배하려는 행위에서부터 타인의 신체, 소유물, 정체성, 논쟁적 이슈에 대하여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것이다(‘Verbal aggressiveness’, Infante & Wigley). 언어폭력이 사람의 인성·인격·능력을 부정하고 두려움을 야기하며 개인과 공동체의 존재감을 파괴한다는 의미이다. 물리적으로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폭력이 아닌 언어 행위라고 해서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더욱이 언어적 공격은 신체적 공격보다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법적·사회적 제재가 가볍고 낮아서 모방할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가정, 학교, 일터, 사회적 인간관계와 같은 일상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겨지게 한다. 또한 공격적인 말과 공격적인 대응이 지속하며 발생하는 ‘나선 현상’은 폭력적인 환경을 확대하고 언어적 폭력에 둔감한 공동체 의식을 초래할 수 있다. 파괴적인 말에 대한 엄격한 대처와 함께 건설적인 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말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 까닭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의 말처럼 각자의 생각과 주장을 진리의 척도로 받드는 시대다. 절대 진리는 후퇴하고 모든 게 상대적이 되었다. ‘상대적’의 대두에 따른 불확실성 속에서 자기(집단)의 이익을 위한 공격적, 폭력적 언행과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불신감 증가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인간은 유일하게 말을 사용해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관계를 형성 유지 발전하고, 공동체의 유대감과 협력을 고양할 수 있는 동물이다. 동시에 인간은 말 때문에 타인과 관계가 악화되고 해체되며, 공동체의 구성원끼리 분열하고 적대시할 수 있는 동물이다. 인간의 공동체는 결국 말이 만드는 공동체이다. 말이 폭력적이면 공동체도 폭력적이고, 말이 따뜻하면 공동체도 따뜻하다. 사람들은 좋은 말로 이웃과 소통하며 신뢰의 정을 나누는 좋은 관계가 빚어내는 행복감을 그리워한다. 대화와 설득의 좋은 말이 정치·경제적 요소 못지않게 중요하게 인식되고, 개인의 인성, 능력, 품성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때 합리적인 행복한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2026.03.22. 8:08
중동 전쟁과 카타르의 LNG 수출 차질로 세계 LNG 공급의 약 20%를 차지하는 물량이 흔들리고 있다. 아시아에 이는 역내 산업의 심장부를 직격하는 충격이다. 아시아의 기술 산업은 에너지 집약적이며 구조적으로 수입 의존도가 높다. 중동산 LNG는 역내 전력망의 핵심 연료이며 대만의 사정은 특히 심각하다. 2025년 마안산(馬鞍山) 원자력발전소가 가동 종료 절차에 들어가면서 전력 믹스에서 천연가스 비중이 높아졌지만, 저장 여력은 2주 안팎에 불과하다. 단기적으로는 대만의 전력망 구조가 어느 정도 완충 역할을 한다. 공급이 빠듯해지면 당국은 시스템 안정과 전략 산업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아왔다. 남부 과학단지에 밀집한 첨단 반도체 제조 공장은 초기에는 보호받을 공산이 크다. 부담은 가정과 저부가가치 제조업으로 전가돼, 전기요금 인상과 간헐적 공급 불안으로 나타난다. 전략 산업을 우선 보호하는 ‘실리콘 방패’가 충격 초기 국면에서 생산 지표를 떠받친다. 그러나 이 회복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최첨단 반도체 공정은 전력 안정성에 극도로 민감하다. 공정에서는 미세한 전압 변동만으로도 웨이퍼 배치 전체가 폐기될 수 있다. 에너지 우선 배분은 혼란을 늦출 뿐 없애지는 못한다. 우리 모델에 따르면 반도체 생산에 대한 초기 충격은 제한적이지만, 공급 제약이 지속될수록 광범위한 산업 생산은 점차 기준선 아래로 밀려난다. 역내 파급 효과 역시 피할 수 없고, 다만 지연될 뿐이다. 아시아 전자 공급망은 재고 완충분과 대만 외 지역에서 생산되는 범용 반도체에 대한 분산된 의존도 덕분에 당장의 충격을 일부 흡수되지만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 재고가 소진되는 데는 통상 한 분기면 충분하고, 그 이후부터는 대만발 공급 제약의 여파가 역내 제조업 전반에 가시화된다. 카타르산 LNG를 대체하기란 쉽지 않다. 호주의 물량 대부분은 장기 계약으로 묶여 있고, 대서양 지역에서 현물 시장을 통해 조달하는 LNG는 상당한 웃돈을 요구한다. 결국 조정의 무게는 생산 감축보다 재무 부담으로 쏠릴 것이다. 이미 완충 여력이 빠듯한 국영 전력사들이 높아진 수입 비용을 떠안으며 충격을 사회 전체에 분산시키는 구도다. 이번 에너지 충격은 역내 투자와 산업 생산 증가율을 약 0.4%포인트 갉아먹을 것으로 추정된다. AI가 이끄는 제조업 사이클은 계속되겠지만, 더 빡빡한 제약 속에서다. 아시아의 반도체 패권은 세간의 인식보다 훨씬 취약한 에너지 기반 위에 서 있다. 루이즈 루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
2026.03.22. 8:06
2021년 3월 23일 오전 7시 40분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이집트 수에즈 운하 일대에 모래 섞인 폭풍이 몰아쳤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Ever Given)호가 시속 74㎞의 강풍을 맞았다. 기울어진 배를 조종할 수 없게 되었고 선체가 항로를 이탈하면서 시계 방향으로 회전했다. 결국 에버기븐호는 수에즈 운하 남측 입구에서 약 6㎞ 떨어진 위치에 좌초되어 수로를 완전히 막았다. 수에즈 운하 마비 사고의 시작이었다. 수에즈 운하의 수면 폭은 약 200~280m에 불과하다. 그 좁은 틈으로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12~15%, 컨테이너 물동량의 30%가 오가고 있다. 반면 에버기븐호는 폭 59m, 길이 400m, 22만t 크기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이었다. 길이 20피트(6.09m)의 표준 컨테이너 1개를 1TEU로 표기하는데, 에버기븐호는 2만TEU급 선박이었다. 축구장 네 배 길이의 배 위에 촘촘하게 배치된 컨테이너는 바람이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고 무게 중심을 높였다. 측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세계 무역을 마비시키는 데에는 단 한 척의 배로도 충분했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수에즈 운하는 21세기의 물류를 감당하기 벅찼다. 구조 노력이 계속되었지만 사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보름달이 뜨면서 밀물이 높게 차오른 다음에야 에버기븐호가 물 위로 떠오를 수 있었다. 사고 발생 6일 만의 일이었다. 수에즈 운하 마비 사고는 국제 무역과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일부 핵심 해상 통로가 마비되면 물류가 멈추고 산업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걸프 산유국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수송되는 호르무즈 해협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선박이 오가는 항로의 폭이 6㎞가량에 지나지 않는 바닷길을 통해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30%가 지나간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국제 유가가 요동치고 세계 경제가 불안에 떨고 있다. 평화를 되찾은 바다 위로 풍요를 실은 배가 바삐 오가는 날이 어서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2026.03.22. 8:04
2006년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사진) 교토대 교수가 성숙한 체세포를 초기 상태로 되돌리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을 때, 세계 과학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성인의 피부 세포처럼 이미 역할이 정해진 세포를 유전자 조작으로 어린 세포로 되돌린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iPS세포는 심장·간·뇌 등 인체 거의 모든 세포로 자라날 수 있다. 배아줄기세포의 윤리 논란과 면역 거부 문제를 크게 완화한 이 연구로 그는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20년, 일본은 기초 연구 성과를 실제 치료로 연결하는 ‘실용화 단계’에 세계 최초로 진입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최근 iPS세포를 활용한 중증 심부전과 진행성 파킨슨병 치료제 등 재생의료 제품 2종의 제조·판매를 승인했다. 일정 기간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조건부 승인이다. 일본은 이를 발판으로 당뇨병과 실명 치료 등으로 적용 범위를 빠르게 넓혀갈 계획이다. 한국의 상황은 대조적이다. 그동안 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 환자들이 많게는 1억원을 들여 일본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는 ‘줄기세포 망명’까지 나타나고 있다. 매년 1만 명 안팎의 환자가 해외로 나간다. 이는 규제에 가로막힌 국내 재생의료의 현실을 보여준다. 뒤늦게나마 한국도 지난해 2월 ‘첨단재생바이오법’ 개정을 통해 희귀·난치 질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확대했다. 규제가 완화되면서 국내 기업들도 iPS세포 기반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일본이 이미 고난도 치료제의 상용화 단계에 진입한 것과 비교하면, 한국은 이제 제도권 치료의 길을 열고 걸음마를 떼는 수준이다. 혁신 기술을 실용화하는 힘은 기초과학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서 나온다. 일본이 이미 상용화에 들어선 지금, 이 격차를 얼마나 빨리 좁히느냐가 한국 바이오산업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김동호([email protected])
2026.03.22. 8:02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3.22. 3:30
우주 탐사에는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특히 고장 났을 때 고치러 갈 수도 없다. 지구를 떠난 우주선에 이상이 생기면 큰일이므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하고 발사 전에 충분히 점검하는 수밖에 없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지구 저궤도를 도는 망원경이어서 그동안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주왕복선을 보내서 고칠 수 있었기에 1990년에 발사된 이후 지금까지 35년 동안 고쳐가며 사용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5년 더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반면 그 후에 발사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은 라그랑주 점에 자리해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거기까지 너무 멀어서 고장 나도 수리하려고 갈 수가 없다. 미국 항공 우주국에서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한 번의 우주 탐사 계획에 두 대의 탐사선을 사용하기도 한다. 문제가 생기면 첫 번째 것은 포기하고 쌍둥이로 만든 것이라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은 태양계의 안쪽 행성 탐험을 계획하여 금성 탐사 계획을 세웠다. 1962년 마리너 1호가 발사되었는데 지구를 떠난 지 5분도 되지 않아 발사체에 문제가 생겼고 결국 계획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런 일을 대비해서 쌍둥이 우주선을 하나 더 만들어 놓은 NASA는 바로 다음 달에 마리너 2호를 발사했고 이번에는 예정된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2년 후 이번에는 방향을 바꿔서 화성으로 향했다. 마리너 3호는 예정대로 발사되었으나 태양 전지판이 펼쳐지지 않는 바람에 실패했고 마찬가지로 쌍둥이로 만들어 놓은 마리너 4호가 3주 후에 발사되어 화성을 비행한 첫 번째 우주선이 되었다. 1969년에 화성 탐사를 위해 발사된 마리너 6호와 7호는 두 우주선이 모두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쳤다. 이 성공에 힘입어 1971년에 마리너 8호와 9호를 발사했는데 아쉽게도 마리너 8호는 이륙 직후 이상이 생겨 추락하는 바람에 쌍둥이 우주선인 마리너 9호 혼자 임무를 수행했다. 이런 수고 덕분에 화성에 착륙할 수 있게 된 인류는 화성 표면 탐사를 시작했고 2003년에 한 달 사이를 두고 발사된 쌍둥이 탐사차 스피리트 로버와 오퍼튜니티 로버는 예상 수명보다 훨씬 더 오래 임무를 수행하고 지금은 화성 표면에 잠들어 있다. 또한, 태양계 바깥 행성을 탐험하려던 미국 항공 우주국은 마침 176년마다 태양계의 외행성들이 일렬로 늘어서던 1977년, 보이저 1호와 쌍둥이 2호를 발사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 때의 대비책이었지만 두 우주선이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하자 보이저 2호를 천왕성과 해왕성 쪽으로 향하게 하고 보이저 1호는 태양계 밖 성간으로 보냈다. 〈코스모스〉란 TV 프로그램으로 천문학의 대중화를 이룬 칼 세이건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콘택트〉에서 천문학자로 분한 조디 포스터는 베가성에서 수신한 신호를 분석하여 그것이 웜홀을 이용하여 항성 간을 여행할 수 있는 설계도라는 사실을 안다. 기구는 시험 운전 중 광신도 테러리스트에 의해 폭파되었는데 한 때 조디 포스터의 연구를 지원한 적이 있는 대부호 과학자가 아무도 몰래 똑같은 쌍둥이 기구를 만들어 놓았고 조디 포스터는 그 기구를 타고 베가성에 가서 죽은 아버지 모습으로 나타난 외계인과 만나고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쌍둥이 우주선이 왜 필요한지 그 역할을 보여준 영화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쌍둥이 우주선 쌍둥이 탐사차 쌍둥이 기구
2026.03.20. 14:14
━ 투자 선물과 배려 외교로 예봉 피한 다카이치 ━ 정부, 대미 투자 프로젝트 조속히 방향 잡아야 ━ 이라크전 비전투병 파견 선례 등에 해답 있어 이란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상황도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상황이 교착에 빠질수록 한국 등 호르무즈 항로 의존도가 큰 나라들의 어려움은 배가될 것이고, 해군 함정 등 파병을 요구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도 계속 높아질 것이다. 그런 가운데 같은 압박을 받아온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그제(19일)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했다. 2024년 기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수입 의존도는 한국이 62%, 일본이 69%여서 두 나라의 처지가 대동소이하다. 그런 점에서 다카이치의 방미 행보는 한국에도 참고가 될만한 점이 많다. 다카이치 총리는 우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전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규탄하고 안전한 항로 확보를 위해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7개국 공동성명에 참여해 대이란 공격의 적법성을 놓고 비판을 받아온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줬다. 그러면서 평화헌법 체제에서 자위대 파견이 쉽지 않은 점을 설명하고 법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파병 못지않게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관심사인 대미 투자와 관련해 다카이치는 선물 보따리를 안겨줬다.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을 포함해 총 730억 달러(약 109조원)에 달하는 2차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했다. 이는 1차 프로젝트의 360억 달러의 두배가 넘는 액수다.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전 총리가 애용했던 “일본이 돌아왔다”는 표현까지 쓰면서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정부는 한·일 외교채널을 가동해 다카이치 총리의 방미 결과를 공유 받고 향후 대응에 참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란 사태의 향방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 구상을 다카이치 총리를 통해 듣는 것은 향후 한국의 정책 결정에 활용할 수 있다. 국가안보실 차원의 소통은 물론 당초 3월 중 논의되던 다카이치 총리의 셔틀 외교 재개도 조속히 추진하길 바란다.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7개국 공동 성명에 추가로 참여해 안전한 항로 확보에 대한 의지를 밝힌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또 정부는 대미 투자 프로젝트 추진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일본이 2차 프로젝트까지 합의한 상황에서, 우리도 조선, 원자력, 에너지 등 투자비 회수 및 수익이 예상되는 투자처를 선점하는 노력을 가시화할 시점이다. 트럼프 시대 한·미 관계에 있어 통상과 안보 이슈는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통상 분야의 합의 이행이 파병 요구,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주한미군 위상 등 각종 안보 현안 협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1기 때인 2019년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미국이 ‘호위 연합’을 추진할 때의 전례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조사·연구 목적의 자위대 함정 파견, 한국은 아덴만 청해부대의 활동 범위 확대 카드를 통해 미국 요구를 일부 수용하되, 전쟁 개입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이에 앞서 2003년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파병 요구 사례도 참고했으면 한다. 당시 대규모 전투병 파병 요구에 정부는 이라크 내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에 3000명 수준의 비전투병 파병이란 대안을 찾은 바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과거 이라크 파병 요구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극심한 국론 분열에 빠져들었던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6월 지방선거를 앞둔 터라 더욱 우려된다. 정치권은 이념적·정략적 접근을 지양하고 함께 국익을 지키고 동맹을 배려하는 최선의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2026.03.20. 8:34
일요일 오후, 오랜만에 찾은 극장에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만났다. 아내의 한국 방문으로 홀로 극장 나들이에 나선 것은 수십 년 만의 일이었다. 스크린 속 단종의 마지막은 익히 알려진 ‘사약’이 아닌, 차디찬 ‘활줄’에 의해 묘사된다. 조력자의 손에 의해 생을 마감하는 그 처연한 장면 앞에서 필자는 차마 소리 내지 못하고 어깨로 울음을 삼켜야만 했다. 사약(賜藥)은 사약(死藥)이 아니다. 역사적 기록인《조선왕조실록》은 단종이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고 전한다. 흔히 사람들은 목숨을 끊는 약이라 하여 ‘죽을 사(死)’자를 쓴다고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줄 사(賜)’자를 사용한다. 즉,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마지막 하사품이라는 뜻이다. 신체 훼손을 극도로 꺼렸던 유교 사회에서 참형이나 교수형 대신 몸을 온전히 보존하며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것은 왕실이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예우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약은 단순히 생명을 끊는 독물이 아니라, 왕실의 품격과 정치적 비정함이 뒤섞인 상징적 장치이기도 하다. 사약의 정확한 처방은 국가 기밀이었기에 오늘날 완전히 복원하기는 어렵다. 다만 역사적으로는 부자(附子)와 초오(草烏) 같은 극독성 약재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널리 언급된다. 이들 약재에 함유된 아코니틴(Aconitine) 성분은 소량일 경우 냉증을 치료하는 약이 되지만, 다량으로 사용하면 심장 마비와 호흡 곤란을 유발하는 강력한 독이 된다. 문득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과연 침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경동맥과 가까운 인영(ST9)혈이나 중추신경과 가까운 아문(GV15)혈 같은 혈자리가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거의 불가능하다. 침은 매우 가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침뜸의학은 본래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의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국가 형벌의 수단으로 채택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한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약은 언제나 살리는 도구이지만, 권력과 결합할 때는 생명을 앗아가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한의학의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바로 ‘용량의 미학’이다. 적절히 사용하면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되지만, 권력의 도구가 되는 순간 사람의 생명을 끊는 사약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말과 행동 역시 누군가에게는 기운을 북돋는 보약이 되기도 하고, 서서히 숨을 조이는 사약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단종의 죽음은 조용히 시사한다. 왜 사약 대신 ‘활줄’이었을까? 영화 속에서 금부도사가 차마 사약을 내밀지 못하고 주저하는 순간, 단종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혹은 외부의 압박 속에서 ‘활줄’이라는 즉각적인 수단이 등장한다. 한방적 관점에서 보면 사약은 장기를 서서히 손상하며 타들어 가는 고통을 동반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활줄을 이용한 교살은 경동맥을 압박하여 비교적 빠르게 의식을 잃게 만드는 방식이다. 어쩌면 감독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왕실 권위의 상징인 사약보다는, 단숨에 끊어지는 활줄을 통해 단종의 비애를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특히 누에 실로 만든 활줄이라는 설정은 삶을 위한 도구가 죽음의 도구로 변하는 역설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것은 왕과 신하 사이에 남아 있던 마지막 ‘관계의 끈’이라는 상징으로도 읽힌다. 영화 후반부, 엄흥도가 단종의 부탁을 받아들여 울면서 활줄을 당기는 장면에서 필자의 눈시울이 더욱 뜨거워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16년 전 열반하신 법정 스님께서 천장(天葬)을 위해 준비하셨던 보길도의 배 한 척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 속 대사가 내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강은 흐르고 또 흐르지만, 사람의 한은 강물처럼 흘러가지 않는구나.” “내가 먼저 가 있겠소… 부디 편히 사시오.” 어린 왕 단종의 비극을 넘어, 먼저 떠나간 이들에 대한 그리움까지 겹쳐지며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차가운 활줄보다 더 시린 것은 어쩌면 권력이라는 독일지도 모른다. 그 독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한방의 시선으로 다시 되새겨 본 일요일 오후였다. 강병선 / 한의학 박사·강병선 침뜸병원 원장혈자리로 보는 세상만사 사약 활줄 사약 대신 반면 활줄 영화 후반부
2026.03.19. 19:42
예술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오래된 상식이다. 미술치료나 음악치료처럼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예술을 생활과 별개의 특수한 것으로 생각한다. 예술이란 그저 고상한 취미나,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장식품 정도로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최근 예술 감상이 정신건강은 물론 신체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이 계속 나오면서, 예술과 건강의 결합은 감성적 주장을 넘어, 사회 제도권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적 처방’의 한 축이 되고 있다. 실제로, WHO(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해 정부 기관들이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역할을 전시를 넘어 치료, 예방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미술관 나들이가 병원 처방이 되기도 한다. 캐나다, 미국, 스위스에서는 환자에게 전시회 관람이나 예술활동을 ‘약 대신’ 권하고 있다. 2024년 영국 정부 보고서는 문화활동 참여로 우울증 환자가 약 12만7000명 감소했다고 추산했다. 과학이 밝혀낸 최근의 자료 몇 가지를 간추려 본다. ▶미술작품 감상과 건강 효과 미술관에서 마네, 반 고흐, 폴 고갱 등과 같은 거장들의 원본 예술작품을 감상하면 스트레스 완화는 물론 면역체계를 강화에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단, 이러한 효과는 예술작품이 진품일 경우에 컸다. 예술 감상이 신체의 회복력과 면역 균형을 돕는 생리적 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실제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느끼는 몰입감이 자율신경과 면역계를 동시에 자극해 스트레스 반응을 완화하고 염증 반응을 줄였을 것이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18~40세 참가자 5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1그룹은 런던 코톨드미술관에서 원본 작품을, 2그룹은 복제품을 각각 20분간 보게 하면서 심박수와 피부 온도를 측정했다. 분석 결과, 원본 작품을 관람한 그룹에선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수치가 평균 22% 감소했는데 이는 복제품을 본 그룹(8% 감소)의 거의 3배에 육박했다. 만성질환과 더불어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도 원본 그룹에선 28~30% 감소했지만 복제품 그룹에선 변화가 없었다. 스트레스 호르몬과 염증 지표는 심장병, 당뇨병부터 불안, 우울증에 이르는 광범위한 건강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음악 매일 들으면 치매 위험 감소 호주 모나시대학교가 치매 진단 이력이 없는 70세 이상 노인 1만 800명을 대상으로 음악 감상이나 연주가 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 결과, 항상 음악을 듣는 사람은 전혀 듣지 않거나, 거의 듣지 않거나, 가끔 듣는 사람에 비해 치매 발병 위험이 39%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악기 연주도 35%의 감소 효과를 보였다. ▶예술작품 감상이 건강에 좋은 이유 예술작품이 스트레스를 낮추고, 심장 건강을 지키며, 심지어 뇌 속 ‘행복 호르몬’까지 자극하는 이유는 스트레스 완화,사회성과 회복탄력성 강화, 면역력 강화와 혈압 안정,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의 분출 등이다. 운동하면 성인병을 유발하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고 기분을 밝게 해주는 세로토닌 수치가 향상되듯, 20분간의 낙서나 노래만으로도 정신신체 상태가 개선될 수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미술관 방문이나 음악회 참석은 건강과 행복을 동시에 얻는 가장 아름다운 투자일 수 있다. 그러니 “예술이 밥 먹여주냐?”는 식의 말씀은 제발 좀 그만하시고, 출발합시다!! 좋은 그림 만나러 미술관이나 갤러리로 출발!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예술 감상 예술과 건강 원본 예술작품 예술 감상
2026.03.19. 19:40
“선배, ‘재룟값’ ‘원자잿값’이라고 ‘사이시옷’을 붙여야 해? 너무 이상해 보여. 또 ‘우윳값’ ‘구릿값’은 어떻고. 이거 규정을 따라야 할까?” “‘재료값’ ‘원자재값’이라 적는 게 상식적이라고 생각해. 소리를 표기에 반영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형태가 일그러지다 보니 거부감이 많이 들어.” “사이시옷 규정을 그대로 따른다면 ‘둘레길’도 ‘둘렛길’로 적어야 하잖아. ‘둘렛길’을 누가 받아들이겠어.” 한글맞춤법 30항은 ‘사잇소리’가 날 때 ‘ㅅ’을 받쳐 적도록 하고 있다. 순우리말로 된 합성어나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에서 ‘냇가’[내까]처럼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날 때, ‘아랫니’[아랜니]나 ‘냇물’[낸물]처럼 ‘ㄴ’ 소리가 덧나거나 ‘나뭇잎’[나문닙]처럼 ‘ㄴㄴ’ 소리가 날 때 ‘ㅅ’을 적으라고 한다. 한자어 단어는 예외(곳간·셋방·숫자·찻간·툇간·횟수)를 빼곤 안 적는다. 이 규정 때문에 끝없이 ‘ㅅ’을 받쳐 적는다. ‘최댓값, 채솟값, 등굣길, 막냇손자….’ 그런데 ‘갯수’나 ‘마굿간’은 한자어로만 돼 있어 ‘개수’ ‘마구간’으로 적어야 된다. 도처에서 아우성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한글맞춤법에서 사이시옷 규정을 빼버리는 거다. 그렇다고 ‘냇가’나 ‘아랫니’ 등에서도 사이시옷을 뺄 건 아니다. 사이시옷이 굳어진 단어들은 그대로 두면 된다. ‘최댓값’ 같은 말들에선 빼는 게 낫다. 사이시옷 표기 여부는 국어사전에서 확인하면 된다. 우리말 바루기 사이시옷 규정 사이시옷 규정 사이시옷 표기 이거 규정
2026.03.19. 1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