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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한인의 자부심 높여준 대미 투자

지난주 한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에서 내리자마자 세계 최대 반도체 공장이라는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를 방문했고 이재용 부회장과 만났다. 이틀째는 한미정상회담 후 환영 만찬에서 재계 수장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마지막 날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만나 미국 투자 계획을 논의했다. 한국은 물론, 미국 언론들도 바이든의 이번 방한을 성공적인 비즈니스 트립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동해를 건넌 바이든 대통령이 정갈한 일본식 정원에서 정성껏 준비한 말차를 대접받았다는 헤드라인과 크게 대조되는 부분이었다.   평택에서 만난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방명록 대신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반의 3나노 반도체 웨이퍼에 상징적으로 서명했다. 3나노미터(nm·1나노=10억 분의 1m) 공정은 세계 최초 삼성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분야 세계 1위인 대만의 TSMC에 맞설 핵심전력으로 평가된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21세기 진정한 전쟁터를 대표하는 곳’을 첫 행선지로 찾았다고 논평했다.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 설립지를 텍사스주 오스틴 인근의 테일러 시로 결정했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도 “텍사스 역사상 최대의 외국기업 직접 투자 성과”라고 환영했다.   현대차는 105억 달러의 미국 투자 계획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과 나란히 선 정 회장은 “조지아주에 55억4000만 달러를 들여 전기차 공장을 짓고 로보틱스·도심항공 모빌리티(UAM))·자율주행·인공지능(AI)에 5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화답해 바이든 대통령은 6개월 남은 중간 선거를 의식한 듯 “현대차의 투자가 미국에 8000명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반겼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기조를 유지했지만 새 정부 들어 ‘안미경미’ 또는 ‘안미경세’(경제는 세계)로 방향을 틀었다는 평가다.   이런 거대한 변화는 미주 한인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중국과 동남아 등지로 향했던 인적 이동과 물적 투자가 미국으로 방향을 틀 수 있기 때문이다.     LA세계무역센터(WTCLA)는 매년 캘리포니아에 직접 투자한 외국 기업의 국가별 순위를 집계한다. 지난해 한국은 388개 기업이 1만3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 14위를 기록했는데 앞으로 변화가 주목된다. 특히 한국의 대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결정한 분야 중에는 세계적으로 아직 선도기업이 분명치 않은 첨단 분야가 많은 점도 고무적이다. 대기업의 투자 결정이 앞으로 한 세대 이상을 미리 보고 이뤄진다는 점에서 미국에 대한 투자 약속이 단기성 호재가 아님은 여러 측면에서 분명해 보인다.   물론 미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 입장에서도 이익이 크다.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를 투자하지만 이중 최대 76억 달러의 세액 공제와 재산세 90% 감면을 약속 받았다. 한국에서 이 정도를 투자했다면 세금 혜택은 20억 달러를 넘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차의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투자도 부지 무상 제공과 대규모 세금 감면 등이 예상된다.   한국 기업들의 미국 시장에서 선전은 한인들에게 이득이다. LA 자바시장에서 40년 가까이 의류사업을 하는 한인업체 대표는 “국격과 국력이 강해지는 점이 사업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미국 내 사업망 확장을 추진 중인 한국의 임플란트 업체 대표도 “미국은 최고의 시장이다. 양국 사이에 좋은 교두보 역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30년 전 억울하게 4·29 폭동의 피해를 겪은 한인들의 어깨에도 이제 좀 힘이 들어가게 됐다. 류정일 / 경제부 부장중앙 칼럼 자부심 한인 투자 계획 투자 성과 물적 투자

2022-05-24

[전문가 기고] 약이 필요한 이유

음식으로 콜레스테롤을 조절하기는 어렵다. 과거에는 그게 가능하다고 믿었다. 1984년 3월 26일자 시사주간지 타임은 표지 기사에서 육류와 달걀을 많이 먹으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간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소고기 100g에는 콜레스테롤이 90㎎ 들어있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보자. 풀을 먹는 소에게 콜레스테롤이 있다고? 그렇다. 음식을 어떻게 먹든 동물은 스스로 콜레스테롤을 만들어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혈중 콜레스테롤의 80%는 인체에서 합성한 것이다. 음식으로 섭취하여 들어오는 콜레스테롤의 비중은 나머지 20%에 불과하다. 유전적으로 취약한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는 식이조절로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기 어려운 이유다.   우리 몸이 콜레스테롤을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필요하니까. 뇌세포에 필수적이다. 그래서 모유에도 콜레스테롤이 들어있다. 성호르몬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건강에 그렇게 중요하다는 비타민D도 콜레스테롤을 재료로 만든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문제가 생긴다. 간에서 콜레스테롤을 너무 열심히 만들기 시작한다. 과잉의 콜레스테롤이 혈관 벽에 쌓이고 혈관이 좁아지면 혈액 순환을 방해한다. 스타틴과 같은 약으로 간세포가 콜레스테롤을 만드는 걸 억제해야 비로소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진다.   인체는 불완전하다. 나이 들수록 분명히 알게 되는 사실이다. 늘리고 싶은 근육은 줄고, 줄이고 싶은 뱃살은 늘어난다. 콜레스테롤은 열심히 만들고 성호르몬은 줄어든다. 정수리의 머리숱은 줄고, 코털과 눈썹은 굵고 길게 변한다. 피지샘이 너무 열심히 일하여 피지선 증식증이 생기기도 한다.     노화는 양방향으로 일어난다. 한쪽에서는 세포 활동이 약해지고 반대로 다른 쪽에서는 너무 활발해지기도 한다. 식사와 운동에 주의를 기울이면 노화로 인한 이런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불완전한 인체를 완전하게 만들 수는 없다.   약으로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약으로 혈압을 조절한다. 약으로 봄철 앨러지로 간지러워 고생하는 눈과 코를 구한다. 하지만 약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알약을 삼킬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부작용이다. 약사인 나도 그렇다. 장기간 약을 먹으면 나도 모르는 어떤 부작용이 생길까 두려움이 앞선다. 사람이 만든 약은 불완전하다. 효과만 있는 게 아니고 부작용도 있다. 약 복용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어떻게 하면 약을 더 적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이 시작된다.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약 없이도 살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불완전한 약이 불완전한 인간을 도와서 생명을 구한다. 약과 싸우기보다는 타협하는 게 건강 문제 해결에 더 나은 선택이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전문가 기고 혈중 콜레스테롤 콜레스테롤 수치 백신 부작용

2022-05-24

[독자 마당] 요리하는 남자

얼마 전, 스마트폰에 귀여운 꼬마 요리사의 사진이 올라왔다. 위가 높고 하얀 요리사 모자에 청색 앞치마를 두른 꼬마 요리사는 귀여운 외손자였다. 어린이집에서 ‘마더스데이’를 앞두고 한 행사였다.   요즘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 중에 남자가 많다. 친정 엄마가 이런 세태를 보셨다면 “남자가 무슨 음식을 한다고…”하며 혀를 차셨을 것이다. 시어머님도 마찬가지다. 여러 자녀를 키우면서 직장생활도 했던 시어머님은 “얘야, 난 아무리 바빠도 남자들은 부엌에 못 들어 가게 했다”라고 하신다. 그때만 해도 어머니들은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 음식을 하면 장차 큰 일을 못한다 생각했었다.     남편은 고등학교 때부터 자취를 했다고 하는데 요리 감각은 별로다. 한국의 남자들이 스스로 한 끼를 해결하기 시작한 것은 라면이 나온 후부터라 생각한다. 물만 넣고 끓이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지금은 남자들이 부엌에 쉽게 들어갈 수 있게 구조도 많이 바뀌었다. 옛날의 한국 부엌은 문지방도 높고, 어둡고, 물은 부엌 바깥에 있었다. 수도와 하수구도 없었다.     지금은 부부가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남편들도 가사 노동에 협조해야 하는 사회로 변했다. 학교 교육도 바뀌었다. 남녀가 하는 일을 구분해 가르치지 않는다. 시대에 따라 조화와 협조가 필요하다.     된장 두부찌개를 끓이더라도 바쁜 아침 시간이라면 아내가 두부를, 남편이 파를 썰어 준다면 시간도 절약되고 협조의 조화로 행복감까지 더 할 것이다.   재료에 따라 맛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음식의 맛이 제대로 난다. 가정의 행복도 마찬가지로 조화가 필요하다.     손주의 요리 사진을 보면서 그 옛날 음식을 준비하던 어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고 요리를 하는 방식과 남녀의 역할도 변하고 있다. 박영혜·리버사이드독자 마당 요리 남자 꼬마 요리사 요리사 모자 한국 부엌

2022-05-24

[시론] 우크라 전쟁과 러시아 핵위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3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비교적 작은 나라인 우크라이나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온국민이 뭉쳐 맞서면서, 강대국인 러시아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일각에서는 체면이 깎인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 등 극단적 수단을 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푸틴은 “외부 세력의 우크라이나 개입은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한 번도 유례가 없었던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때 전쟁의 참화를 겪었고 현재는 북핵의 위협에 맞서고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이같은 상황이 남의 일이 아니다. 과연 핵전쟁은 벌어질 수 있을까. 이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한다.     비영리단체 군축협회(ACA)의 사무총장이자 월간지 ‘암즈 컨트롤 투데이(Arms Control Today)’의 필진인 대럴 킴벌 소장은 “핵전쟁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 물어본다면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경우, 푸틴이 전황을 바꾸려고 단거리 전술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킴벌 사무총장은 “일단 핵무기가 한 번 사용되면 상대방에서 응사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푸틴의 발언이 미국과 나토(NATO)의 우크라이나 원조를 방해하기 위한 허세에 불과하다고 해석한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9일 전승절 행사 연설에서도 핵에 대해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았다. 또한 킴벌 사무총장은 “미군 정보당국이 100여개의 전술 핵탄두를 보유한 러시아가 아직까지 공격을 개시한다는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소재 신문 ‘우크라이나 위클리’의 앤드루 닌카 편집장도 푸틴의 핵무기 위협이 미국 및 우방 분열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푸틴은 핵전쟁 가능성을 거론하며 적을 분열시키려 하고 있다”며 “핵위협만 제외하면 현재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핵전쟁의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킴벌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위험은 커진다. 우리는 현재 위험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마이클 클레어 햄프셔칼리지 교수도 러시아 뿐만 아니라 중국의 핵무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도 핵무기 투사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클레어 교수는 “모스크바와 베이징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새로운 재래식 무기가 자국의 군사력과 시설을 겨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반면 미국의 지도자들은 대만을 또 다른 우크라이나로 만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킴벌 사무총장과 클레어 교수는 러시아와 미국이 핵무기 감축협정(New START)의 2026년 만료를 앞두고 무기 감축 협상에 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조된 양국 긴장 관계를 감안하면 협상 재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킴벌 사무총장은 지적했다. 이들은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핵무기에 대한 규제조치가 사라질 수 있다”며 “이는 우리가 그동안 겪어보지 않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핵무기의 위협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러시아의 핵무기 위협을 지켜본 북한도 자신들의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전쟁이 아닌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시키고 그동안의 과오에 대해 반성시키며 국제사회에 복귀시킬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한인들도 미국 정치인들을 통해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건의해야 할 것이다. 이종원 / 변호사시론 우크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핵전쟁 가능성 우크라이나 위클리

2022-05-24

[이 아침에] 대화의 출발은 경청이다

열흘 전쯤 갑자기 인터넷 속도가 느려졌다. 줌으로 이사회를 하다가 연결이 끊어지고, 아내는 유튜브가 안 열린다고 불평이다. 인터넷 회사에 전화를 하니 상담원은 상투적인 콜센터 직원의 대본을 말한다. 전원을 껐다, 30초 후에 다시 켜라. 연결선들을 모두 풀었다, 다시 연결하라.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며칠 후 다시 전화를 했다. 이번에도 전화를 받은 상담원은 비슷한 과정을 거친 후, 모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모뎀을 새로 보내주겠다고 한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무래도 모뎀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주말 아침, 다시 전화를 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상담원은 잠시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10분 만에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갑자기 인터넷이 잘 터지니 묵은 체증이 사라진다. 고맙다고 하며 어떻게 다른 상담원이 해결 못한 것을 쉽게 고쳤냐고 물어보니, 그냥 웃는다. 아마도 경험이 많은 직원이 아니었는가 싶다. 그가 다른 상담원들과 달랐던 점은 대화하는 방법이었다.   앞의 두 상담원은 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이미 답을 가지고 있었다. 콜센터의 대본에는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대처하고, 저런 경우에는 저렇게 대처하라는 요령이 나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상담원은 내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고 문제를 정확히 진단했던 것 같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아내는 요즘 다람쥐와 전쟁 중이다. 복숭아나무의 열매가 커지자 매일 다람쥐가 와서 따먹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100개도 넘게 달렸던 복숭아를 모두 그놈들에게 빼앗기고 우리는 겨우 3~4알을 먹었다.   아내는 복숭아를 지키겠다고 나무에 그물을 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람쥐는 틈을 만들어 복숭아를 따먹고, 다음날이면 아내는 보수 공사를 한다.   만약 다람쥐와 대화가 가능하다면, 아주 쉽게 해결될 문제다. 익지 않은 아삭한 열매를 좋아하는 다람쥐에게 나무에 달린 열매의 절반을 주겠다고 하면, 다람쥐가 열매를 솎아주니 우리는 크고 달콤한 절반의 열매를 먹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놈들과는 대화가 안 되니.   대화의 열쇠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일이 아닌가 싶다. 말은 끝까지 잘 들어보아야 화자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런데 말을 듣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이 생겨난다. 그리고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나 뜻을 내 마음대로 판단해 버린다. 대답할 말을 준비하는데 신경을 쓰다 보면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제대로 듣지 못한다. 심한 경우에는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고, 나머지 말은 흘려버린다. 대화는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치기도 한다.   60여년 내 삶을 돌아보아도 폭력이나 손실로 입은 상처보다는 말로 인한 상처가 훨씬 더 깊고 오래간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하지 않았나. 힘든 사람 곁에서 진지한 눈빛으로 이야기만 들어주어도 그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된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이 아침에 대화 경청 요즘 다람쥐 인터넷 회사 인터넷 속도

2022-05-24

[이 아침에] ‘스테이시 박 밀번’을 아십니까

나는 인터넷 검색할 때 구글 크롬을 사용한다. 이유는 가끔 ‘Google’이라는 로고가 다양한 그림과 함께 영웅들을 소개하기 때문이다. 쌈박한 아이디어로 만든 동영상은 100년에 태어난 과학자를 만나게 만들고 재즈 가수의 노래를 소개했다. 만화를 곁들인 게임 동영상이 뜬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 눌러서 즐거움을 느끼곤 했다.   지난 5월19일은 독특한 그림이 구글 로고 대신 올라왔다. 하와이 꽃과 함께 호랑이 꼬리에 감긴 안경을 쓴 여자의 그림이었다. 몇 번은 그냥 지나치다 결국 호기심에 나는 그 이미지를 클릭을 했다.     그러자 모니터에서는 폭죽이 터지듯 색색의 종이와 하와이 꽃이 화면 아래로 흘렀다. 나는 그 화려함에 여러 번 마우스를 클릭하며 쏟아지는 색종이를 즐겼다. 그리고 휠체어에 앉아있는 안경 낀 여자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누굴까.   스테이시 박 밀번(Stacey Park Milburn), 그녀가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라는 사실에 놀랐고, 그녀의 삶이 33세 끝이 났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글을 읽는데 슬픔이라고 할 수 없는 감정이 압력기로 누르는 듯 가슴으로 전해졌다.   해외에서 상을 타거나 주목을 받게 되면 한국인 피가 반만 섞였어도 한국인이라고 서로 앞 다퉈 언론매체에 오르내리던데 왜 그녀의 이름은 한국 사회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까. 장애인이라서 그랬을 거라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려웠다.   동영상에서 접한 그녀의 생전의 모습은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들어 보였다. 그럼에도 16살부터 그녀는 장애인 권익을 부르짖었다. 불필요한 수술을 반대했고 편견 없이 장애인에게 공정한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글을 쓰고 연설을 했다. 지적 장애인을 위한 대통령 위원회에 임명되었던 그녀는 2년 동안 오바마 행정부에 조언하는 등 장애인들의 소통창구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2020년에 세상을 떠났다. 팬데믹 사태로 병원 시스템이 엉망이 되었던 그 시절이 아니던가. 빠르게 진행되던 신장암 수술이 연기되었고 수술 합병증으로 33살 생일날 세상을 떠났다고 위키피디어에 적혀 있었다.   지난 코로나바이러스 기간 동안 세상은 경직되었다. 당연히 신체적인 장애로 활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사각지대로 몰리기 마련이다. 그때도 그녀는 뜻을 같이하는 친구와 함께 오클랜드 야영지 노숙자에게 전할 손소독제, 마스크 등을 넣은 질병예방 키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녀의 삶을 들여다 본 그날 하루는 여러 생각에 잠겼다.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경영학 석사 공부까지 취득한 그녀의 성실과 집념 때문이 아니다. 누군가의 권익을 대변하는 일에 앞장서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고 후원자를 구하지 않으면 그 뜻을 펼치기 어렵다. 그런 그녀의 업적을 구글은 세상에 소개했다.   눈으로 보기에 화려한 업적에 열광하고 번듯한 무대를 쫓아다니는 세상에서 지금, 나는 어느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권소희 / 소설가이 아침에 스테이시 장애인 권익 지적 장애인 한국인 엄마

2022-05-23

[기고] 증오범죄 참극 부른 ‘대체론’

프랑스의 인종주의 작가 르노 카뮈가 2011년 저서에서 주장한 ‘대체론(The Great Replacement)’이 백인 극단주의자들의 행동지침으로 수면에 떠올랐다. 이는 뉴욕주 버펄로 수퍼마켓에서 총기 난사를 한 18세 페이튼 제드런이 범행 전에 쓴 180쪽 선언문 때문이다. 그는 5개월 전에 자신의 집에서 200마일 떨어진, 집코드상 흑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골라 계획을 세웠다. 여러 번 답사를 했으며 최소 30명 살해 목표를 세웠다.     대체론은 이민자와 유색인종이 늘어나게 되면 주류인 백인을 대체한다는 음모론이다. 타국에서 온 유색인종이 미국에 많아지면 미국서 출생한 백인들이 무력화된다는 것이다. 대체론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퍼졌고 이를 극우 정치인과 극우 언론이 수용했다. 실제 폭스 뉴스의 간판 앵커인 터커 칼슨은 2016년 이래 대체론을 400번 이상 언급하면서 민주당이 권력 유지를 위해 이민자들에게 투표권을 준다고 주장했다.     AP 공무연구센터(AP-NORC Center for Public Affairs Research)가 2020년 12월에 조사해서 이번 달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32%가 대체론을 믿고 있다. 29%는 이민자의 증가는 미국의 경제, 정치, 문화의 힘을 악화시킨다고 생각한다. 19%는 위의 두 가지를 다 믿는다. 음모론을 믿는 사람일수록 이민자의 부정적인 영향을 걱정한다.     백인 극단주의자들은 유색인종은 미국적이 아니며 완전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폭력이 정당하다고 믿는다.     과거와 달리 요즘의 백인우월주의자는 고등학생이 많다. 그들은 경제적 결핍과 미래에 대한 좌절감을 갖고 있으며 외톨이로 온라인에 몰입하며 총쏘기를 비디오 게임처럼 여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역사학자이며 저술가인 캐서린 벨류는 대체이론의 기원이 19세기 미국 정치라고 말했다. 당시 미국의 인종 분포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폭력과 위협이 백인 우생학 캠페인과 반이민 활동가들을 고무시켰다.     우월론은 백인 극우의 모태가 되어 극단주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유색 인종의 희생으로 출생률이 낮은 백인의 다수 지위를 지키려 하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미국서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450명 이상이 살해됐다고 ‘반명예훼손 연맹(ADL)’이 밝혔다. 이중 75%는 보수 극단주의자에 의해, 20%는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해, 4%는 진보 극단주의자들에 의해서라 한다.   증오범죄가 멈추지 않는데 ‘총기소유 자유 권리’가 대량살상을 부추긴다. 얼마 전 밀워키주 다운타운에서 MBA게임 후 총기 사건으로 17명이 다쳤다. 14일 버펄로에서 10명이 죽고 3명이 다쳤다. 15일 오렌지카운티 라구나우즈의 교회에서 정치적 이유로 중국계 미국인이 대만계 1명을 살해하고 5명을 다치게 했다. 이 사건이 올해 미국의 199번째 총기 사고다.   팬데믹 이후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향한 증오범죄도 급상승했다. 작년은 그 전 해에 비해 339% 증가했다.     인간의 행동은 아주 복잡한 힘에 의해 움직인다. 대다수의 증오범죄자들은 범행 전에 자신의 행동을 미화하는 글을 남기고 언론 주목을 원한다.     대체론은 더 이상 변방의 생각이 아니다. 대체론의 주류화는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정치인이 표심을 위해 증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무섭다. 대량살상이 계속되지만 총기 규제법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정 레지나 / LA독자기고 증오범죄 대체론 이래 대체론 백인 극단주의자들 이슬람 극단주의자

2022-05-23

[중앙 칼럼] 다시 찾아온 ‘스크루플레이션’ 공포

고물가가 지속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도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물가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내달리고 있다. 작년 5월 처음으로 5% 선을 돌파한 후 12월에는 7%에 다다랐다. 올 3월에는 8.5%, 4월에는 8.3%로 8% 선을 웃돌았다. 서민가계에 상당한 부담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폭등한 에너지 가격 탓에 서민들의 지갑은 더 쪼그라들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경기가 침체하는 가운데 물가가 상승하는 걸 가리킨다. 이미 지난 1분기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시장의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실상 -1.4%로 역성장했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 6.9%에서 급전직하한 것이다. 그런데도 물가 상승률은 8%대를 유지해 일각에선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돌입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잡히지 않은 물가 때문에 연방준비제도(Fed)는 0.50%포인트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빅스텝을 시행했다. 다음 달에도 한 차례 더 예정돼 있다. 이런 조치에도 물가가 안정되지 않으면 '스크루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스크루플레이션은 '쥐어짜다'라는 뜻의 '스크루(screw)'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용어다. 물가의 가파른 상승세를 소득 증가가 따라가지 못해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하는 현상을 뜻한다. 스크루플레이션의 가장 큰 문제는 고소득층보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에 더 큰 타격을 주어 빈부격차를 더 확대한다는 점이다.   스크루플레이션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고물가로 인해 서민들의 실질 소득은 줄었다. 4월 평균 시간당 임금은 작년보다 2.3%가 감소했다. 인력난과 호경기에 작년엔 봉급 인상과 보너스 지급 등으로 소득 증가가 뚜렷했다. 하지만 급등한 물가가 임금 상승효과를 갉아먹고 있다.     물가는 오르고 소득은 줄자 쇼핑거리와 식당가에는 고객의 발길이 뜸해지고 있다고 업계는 전한다. 경기부양 지원금과 자녀세금크레딧(CTC)이 풀렸던 작년만 해도 마켓과 레스토랑에는 고객들로 붐볐다. 또 마켓 주차장에는 빈틈 없이 차가 가득했다. 이제는 빈자리가 보일 정도이고 줄 서지 않는 식당도 증가세다. 서민들의 소비가 위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스크루플레이션이라는 용어는 스태그플레이션보다도 충격이 더 크고 해결도 쉽지 않다는 점에서 2011년 무렵 생겨났다. 최근 급등한 물가로 인해 10여년 만에 생경한 경제 용어가 다시 등장했다.     특히 이코노미스트들은 글로벌 금융 위기였던 10여년 전과 현재를 비교하면 경제상황과 연준의 정책에 유사점이 많다며 근심 어린 시선을 보낸다.   당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과감하게 유동성을 살포했는데도 경기부양 효과는 미흡했다. 반면 자산 양극화만 부추겼다는 게 이코노미스트들의 비판이다. 제롬 파월 현 의장은 가파른 물가 상승에도 공급망 차질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버티다가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의 급격한 긴축이 자칫 경기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고조되고 있다.     금리인상에도 고물가는 잡지 못하고 경기마저 하강하면 저성장·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맞을 수 있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차질 지속에다 전쟁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식량 부족 및 에너지 위기까지 겹치면 스크루플레이션의 본격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개스 가격을 안정시키고 물가를 내릴 수 있는 요인들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해서 각개격파하고 인상 요인에 대한 선제적인 조치로 물가를 잡아야 한다. 물가 안정화가 스태크플레이션도 스크루플레이션도 막을 수 기본 수단이기 때문이다.  진성철 / 경제부 부장중앙 칼럼 스크루플레이션 공포 스크루플레이션 징후 가운데 스크루플레이션 물가 상승률

2022-05-23

[J네트워크] 낙태 판결문이 유출된 '이유'

그는 왜 기자를 찾았을까. 이달 초 낙태권(임신중단 권리)의 헌법적 권리를 박탈하려는 미국 대법원의 판결문 초안이 유출됐다. 전례가 없는 사건이다. 이를 특종 보도한 폴리티코는 ‘사건 관계자’에게 초안을 입수했다고 썼다. 대법원이 수사를 의뢰했으니 제보자가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다. 그런데도 이런 극단적 방법을 택했으니,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판결문의 내용을 보며 유출 이유를 설명하는 이도 있다. 초안을 작성한 보수 성향의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낙태권의 박탈이 진정한 민주주의 회복이라 설파한다.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에서 당시 미국 대법관들이 7(찬성):2(반대)라는 압도적 표결로 보장한 여성의 헌법적 권리를 법원이 아닌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들이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얼리토의 이런 논리는 동성결혼 등 다른 소수자의 권리를 박탈하는데도 적용될 수 있다. 지금 많은 주의 대표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추종자다. 그와 반대 진영에 있는 이들에겐 견딜 수 없는 법 논리다. 그러니 올해 11월 중간 선거 전 여론을 환기해 ‘판례 뒤집기’를 막으려 했단 것이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제보자는 언론에 터트리는 것 외에는 낙태권을 공론화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 미국 사회는 낙태와 같은 사회적 쟁점을 해결할 능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정치권은 갈등을 조정하는 곳이 아닌 폭발시키는 곳이 됐다. 미국 의회엔 낙태권을 법으로 명문화할 수 있는 50년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다. 대법원에 기댄 채 수십년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정치인은 없었다. 초안이 유출된 뒤에야 민주당에서 낙태권을 연방법으로 보장하려는 ‘건강보호법안’을 제출했지만 49(찬성):51(반대)로 부결됐다. 부결이 예상된 터라 사실 쇼에 가까웠다.   한국도 상황은 반대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2020년 말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국회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검수완박을 두고 한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투표를 주장했다. 2014년 헌재가 일부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국회는 역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위헌인 법이 그대로니 실시 자체가 불가능하다. 서글픈 코미디다. 우리 정치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   얼리토 대법관이 말한 진정한 민주주의는 판결문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상 아닐까. 현실 속에서 우리를 대표하는 이들은 망가져 버린 지 오래다. 정치가 갈등을 해결할 능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제보자에겐 선택지가 많지 않았을 테다. 유출만으로도 추락할 대법원의 신뢰 역시 치러야 할 값비싼 대가다. 판결문 유출은 망가진 정치가 초래한 예고된 재앙이다. 우리 역시 피해가기 어려운 가까운 미래다. 박태인 / 한국 중앙일보 기자J네트워크 판결문 낙태 판결문 유출 낙태 판결문 판결문 초안

2022-05-23

[열린 광장] 넷플릭스의 겨울

지난주 넷플릭스가 직원 150명을 해고했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관련 업계에서는 우려하던 사태가 닥쳤다고 반응했다.     넷플릭스 주가는 팬데믹이 끝나가면서 서서히 하락세를 보이다가 지난달 20일 구독자 수가 11년 만에 처음으로 20만 명 감소했다는 발표가 나온 이후 폭락했다.     한때 700달러를 넘보던 주당 가격이 요즘은 180달러 선을 지키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넷플릭스는 비상이다. 주주에게 경영 개선을 보여줘야 하니 예전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방법도 고려 중이다. 계정 공유 단속에서 시작해서 구독료를 낮추는 대신 광고를 보여주는 저가상품까지 다양하다.     직원 수 감축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변화는 후속편 제작을 포기하는 영화·드라마가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콘텐트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생명과 같기 때문이다.   그동안 막대한 자금을 들여 업계 인력을 빨아들였던 넷플릭스의 성장이 멈추는 건 경쟁사에도 좋은 소식이 아니다.     1위 주자에게 힘든 시장은 후발 주자들에게도 유리할 리 없다. 스트리밍은 계속 인기를 유지하겠지만 시장 포화로 과거와 같은 성장은 끝났고, 이제 조정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모셔가기 경쟁이 벌어졌던 영상 콘텐트 업계에선 대량 해고마저 우려하고 있다.     일부에선 넷플릭스가 경쟁 기업을 인수하거나 플랫폼 기업에 인수되는 것이 위기를 탈출하는 방법이라고 얘기하지만, 시총 800억 달러의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있다고 해도 미국 정부가 테크 기업들의 반독점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는 상황에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도 아니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열린 광장 겨울 스트리밍 서비스 업계 인력 후발 주자들

2022-05-23

[중앙 칼럼] 전기차로 이룰 '포니의 꿈'

초등학교 시절 출장 갔던 아버지가 반짝이는 은색 자동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바로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인 현대 포니였다.  어렸을 때부터 기계,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차 탐색에 열중했다. 겉모양과 인테리어 곳곳에 현대 마크와 조랑말 엠블럼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후드를 열어보니 엔진부터 팬벨트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다이아몬드 마크가 보였다. 주요 파트인 파워트레인 대부분이 미쓰비시 제품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연휴나 방학이면 가족과 함께 포니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닌 덕분에 어린 시절 포니에 대한 추억이 남다르다. 펑크로 차가 서 본 일은 있어도 큰 문제 없이 잘 달렸다. 그래서인지 포니 이후로 40여년간 계속 현대차만 고집한 아버지의 생전 마지막 차도 에쿠우스였다.     최근 현대차가 선보인 첫 순수 전기차 아이오닉5를 처음 본 순간 포니에 대한 추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1974년 11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를 통해 데뷔했던 포니가 47년 만에 심장은 물론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업그레이드된 아이오닉5로 부활한 것 같았다. 시승회에서 만난 아이오닉5는 주행 성능은 물론 디자인까지 만족스러웠다. 지난해 미국 내 판매량에서 혼다를 제친 현대차 그룹이 차기 대세로 떠오르는 전기차 시장에서도 테슬라를 상대로 충분한 경쟁력을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예상을 뛰어넘는 호평 속에 아이오닉5에 대한 각종 수상 소식이 이어졌다. 굿디자인 어워드를 비롯해 ‘올해 구매해야 할 해치백’ ‘최고의 신차’ ‘가족들을 위한 최고의 전기차’에 선정됐다. 뉴욕 국제오토쇼에서 발표된 월드카 어워드에서는 대상격인 ‘세계 올해의 차’는 물론 ‘올해의 전기차’ ‘올해의 자동차 디자인’까지 휩쓸며 3관왕에 올랐다.   기아의 첫 순수 전기차 EV6도 각종 수상과 함께 한국차 최초로 ‘유럽 올해의 차’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이 같이 한국 전기차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향후 시장을 선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는 것은 기존 개스차와 달리 전기차는 근본적으로 태생과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독일, 일본차에 비해 역사가 짧은 개스차의 경우 한국차들이 개솔린 엔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성능, 안전성을 업그레이드하며 뒤쫓는 입장이었다. 단기간에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지만, 여전히 주행성능이나 엔지니어링 부문에서 경쟁차를 압도하기가 쉽지 않다.     내연 기관차라는 마라톤에서 이미 반환점을 돌아선 경쟁자들을 벤치마킹하며 뒤늦게 출발한 한국이 전기차에서는 거의 동시에 출발한 셈이다. 그러다 보니 현대차 그룹뿐만 아니라 경쟁업체들이 앞다퉈 전기차 연구, 개발을 위해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다.     한국차들의 선전이 기대되는 것은 전기차의 핵심인 충전과 배터리 기술 분야에서 앞서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실시된 전기차 설문조사에서 전기차 구매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사양이 1회 충전으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와 배터리 충전 시간 단축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한국 전기차들이 경쟁력을 갖췄다고 본다.     이 밖에도 전기차의 클러스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직결되는 반도체, 스마트폰, 고화질 HDTV 등 전자 분야에서도 한국이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실제로 해가 거듭할수록 시승한 한국 신차들의 주행 보조 전자시스템 성능이 일취월장하고 자동차 디자인 면에서도 한발 앞서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현대 아이오닉5나 기아 EV6는 딜러에 입고 되기 무섭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차가 없어서 못 팔 정도라니 쾌조의 스타트라고 할 수 있겠다. 이달부터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가 첫 순수 전기차 GV60를 시판하고 12월부터는 판매 신기록 행진을 견인하고 있는 GV70의 전동화 모델이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특히 20일에는 6조3000억원을 투입해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과 배터리셀 공장 등 전기차 생산 거점을 2025년까지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1986년 울산서 생산된 엑셀로 미국 시장을 두드린 이후 35년만인 지난해 총판매량 670만대를 기록하며 세계 4위로 급부상한 현대차 그룹이 전동화 프로젝트를 통해 선보일 혁신으로 세계를 질주하는 ‘포니의 꿈’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낙희 / 경제부 부장중앙 칼럼 전기차로 전기차 시장 순수 전기차 자동차 디자인

2022-05-22

[독자 마당] 자유의 의미

2년여 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아직도 끝을 모르게 위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쳤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의 삶이 위축되고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세계가 지구촌 한 공동체로 묶여 있음을 다시금 실감나게 한다.     한국에서는 지난 대선기간 동안 경합을 벌였던 두 후보의 지지자들로 인해 전 국민이 두 진영으로 나뉜 듯했다. 하지만 혼란스럽던 대치가 표면상 큰 불상사 없이 끝나고, 새로운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참으로 다행스럽다.     지금의 현실에서 보듯, 국가 지도자의 정치 이념에 따라 국가 정체성이 결정되고, 국정 능력에 따라 국민의 위상과 삶의 질이 정해진다.     이번 신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말이 ‘자유’라고 한다. 이 흔히 쓰이는 말이 국가적으로 중대한 시점에 여러 차례 되풀이 적시되었음은 그 안에 여러 중요한 의미를 함축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다.     자유의 일반적 의미는 무엇에든 방해 받지 않고 구속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이 자유의 영역을 사회 공동체로 넓혔을 때, 개인 각자의 자유가 상충하고 간섭 받게 됨을 최소화하려고 조절하고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가 정치이다.     또 이번 취임사에 인용되고 이후 널리 회자되고 있는 ‘반지성주의’는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 보전과 역사 진전의 최대 걸림돌이다. 한 저명한 역사학자는 세계 경제가 물질기반에서 지식기반으로 바뀌고 있어 인류사에서 전쟁은 사라져 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도 도처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지식기반의 이성적·합리적 사고의 지성주의를 가로막는, 자기욕구를 절제하지 못하는 반지성주의 때문이다.   지성주의에 기초한 자유를 최대한 신장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선진 복지사회로 가고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이 새 대통령의 과제이다. 윤천모 / 풀러턴독자 마당 자유 의미 자유 보전 일반적 의미 우크라이나 전쟁

2022-05-22

[오픈 업] 여권 신장의 전환점 ‘타이틀 나인’

얼마 전 딸네 부부 대신에 운동 경기가 있는 학교에 손녀를 데리러 갔다. 운동장에서는 여러 종류의 경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스포츠에 열중하는 남녀 다인종 학생들의 진지한 태도와 경쟁 상대 선수에게도 응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0여년 전, 뉴욕타임스는 스포츠 활동이 여학생들에게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보도했다. 여학생들의 교육열을 높여 학교 성적이 좋아진다고 한다. 자신감도 생기고, 취직률도 높아지는 반면 비만증, 10대 임신, 우울증 등은 대폭 내려간다고 한다.     지금은 각종 스포츠나 경기에서 남녀의 차별이 없다. 많은 여성들이 여러 스포츠 분야에서 뛰어난 활동을 하고 있다.     남녀가 평등하게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공정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선구자들 덕분이다. 그들이 겪은 시련은 적지 않았고, 불공평이 시정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국대학스포츠연합(NCAA)의 보고서에 따르면 56년 전인 1966~1967년 사이에 등록된 여자 대학생 운동선수는 1만5182명에 지나지 않았고, 남자 선수들은 10배나 되는 15만1918명이었다.     1972년 제정된 남녀교육평등법인 ‘타이틀 나인(IX)’ 덕분에 이 같은 불균형은 많이 개선됐다. ‘타이틀 나인’은 50년 전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한 법이다. ‘1964 민권법’인 ‘타이틀 세븐(VII)’을 보강한 것이다. 인종, 민족, 출신국, 종교, 성별 등에 대한 차별을 불법화한 기념비적 법안 ‘타이틀 세븐’에는 아쉽게도 기회균등의 교육에 관한 조항이 빠졌다. 그래서 8년 후 1972년 교육 수정안이 만들어졌다. 그  일부가 타이틀 나인이다.     타이틀 나인은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모든 교육기관은 어떠한 형태로도 성차별을 할 수 없다는 법이다. 초안은 미국 최초의 유색인종 여성 상원의원이었던 일본계 3세 펫지 다케모도 밍크가 이디트 그린과 함께 발의했다.     하와이 출신인 그녀는 여러 차례 상원의원을 지냈다. 원래 희망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지만 원서를 제출한 22개 의과대학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여자 또는 아시안이라서 거절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결국 그녀는 불평등한 세상을 고치려고 법학대학에 진학했고 법조인으로서 사회정의를 위해 노력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유색인종 여성들의 리더십이 돋보이고 있다.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 233년 만에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연방대법관이 된 커탄지 브라운 잭슨, 109년 전 설립된 연방준비제도에 최초로 영입된 흑인 리사 쿡 미시간대학 교수가 바로 그들이다.     어쩌면 카말라 해리스, 커탄지 잭슨, 리사 쿡 세 여성들은 ‘타이틀 세븐’과 ‘타이틀 나인’의 수혜자일지도 모른다. 이 두 법안으로 미국은 많은 발전을 할 수 있었고 현재도 발전하고 있다. 지금은 단순히 남녀의 평등성만 뜻하는 타이틀 나인이 아니라 지난 50년 동안 변화되어 온 사회상에 걸맞게 성소수자 보호를 포함하는 평등성이 이 법의 또 다른 해석이다. 조만간 바이든 행정부에서 시대에 맞는 조항을 넣어 보강할 것이라고 한다.   다인종 여학생들이 참여했던 손녀의 운동 경기는 더욱 공평해질 미래 사회의 모습을 암시했다. 남녀, 인종에 상관없이 앞으로 더 많은 뛰어난 선수들이 배출될 것이다. 또 운동으로 단련된 우수한 인재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공헌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류모니카 / 종양방사선전문의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전환점 타이틀 타이틀 세븐 타이틀 나인 유색인종 여성

2022-05-22

[이 아침에] 아빠가 딸의 남자를 만날 때

내가 교꼬를 처음 만난 것은 27살 때였다. 교꼬는 23살,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생활 1년차. 그녀를 만난 지 딱 24시간 만에 그녀의 아빠를 만났다.     교꼬와 나는 당시 미국 국적의 컴퓨터 회사 직원이었다. 나는 한국 지사에 근무하고 그녀는 일본 지사 직원이었다. 회사의 대외관계를 다루는 신생 부서의 일을 맡게 되어 업무 수습차 가는 출장길. 일본 지사의 같은 업무를 하는 부서의 책임자는 상무급, 직원이 60여명 있었다. 한국 지사에는 달랑 나 혼자. 그래도 아버지 뻘이 되는 담당 임원은 나를 자신의 상대역으로 깍듯이 대해 주었다.     금요일 오후 날 보고 ‘우리’ 회사의 경영 철학에 관해서 직원들을 상대로 강연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일본으로 뭔가 배우러 갔는데 입사 1개월짜리 보고 모회사의 경영 철학에 대해서 강의를 하라니. 어쨌든 강단에 올랐다. 40여명의 부서 직원들이 모였고 앞줄에 열댓 명의 여직원들이 앉아 있었다.     그때 눈에 띈 여인이 교꼬였다. 모두 명찰을 달고 있어서 이름을 알 수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사내 전화 번호부를 찾아서 전화를 했다.     “교꼬상, 내가 일본이 처음인데 주말에 뭘 할지 모르겠어요. 주말에 안내를 좀 부탁할까요?” 당시 일본 지사는 주 5일 근무였다.     “갑작스러운 말씀이라 뭐라고 대답을 드려야 할지.” 교꼬의 망설임, 이해가 가는 대답이었다.     저녁에 호텔로 전화가 왔다. “저는 주말이면 부모님을 뵈러 가요. 효도행이라고 하지요. 내일 같이 가실래요?”     황당한 나의 요청에 더 황당한 제안. 속으로 ‘Why not?’ 기내에서 산 12년 시바스 리갈도 한 병 있겠다, 갑작스러운 손님 노릇 준비가 되어 있었다.     토요일 새벽 기차를 타고 가나가와에 있는 교꼬의 집으로 향했다. 중간에 일본의 고도 가마쿠라에 내려서 하루 종일 놀면서, 배스킨로빈슨 아이스크림도 먹고, 가마쿠라 큰 부처님도 보고.     저녁에 교꼬의 집에 도착했다. 2층짜리 아담한 일본식 가옥. 한 상 가득 차려 놓고 교꼬의 부모가 기다렸다. 아버지는 아마 50 전후.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둘이 대작을 했다. 정종잔을 주거니 받거니. 반 시간도 안 되어서 그는 술이 취해 누워 버렸다. 교꼬의 어머니는 조용히 차를 따라 주기만 했다.   그날 밤 교꼬의 집에서 묵었다. 1층에는 부모가 쓰는 방, 2층에는 교꼬의 방 그리고 그녀의 오빠 방이 있었다. 오빠는 취직을 해서 다른 도시에 살고 있어서 내가 그의 방을 차지했다. 그 이튿날은 후지산을 구경하고, 도쿄로 돌아와야 하는 일정이 바빠서 다시 교꼬 아버지와 대작을 할 기회는 없었다.     세월이 지나 나도 딸의 아버지가 되고 난 다음 가끔씩 교꼬 아버지가 생각난다. 딸이 불쑥 집으로 데리고 온 첫 남자가 한국인, 불편한 상황이었을 터이다. 그래서 일찌감치 술이 취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딸의 남자를 처음 만날 때,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한 순간이다. 내가 교꼬 아버지 입장이었다면 어찌했을까? 딸 바보 아빠는 아마도 술기운을 빙자해서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겠지.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아빠 남자 바보 아빠 부서 직원들 한국 지사

202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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