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에서 종종 접하는 말이 ‘어닝시즌’이다. 이뿐이 아니다. ‘어닝서프라이즈’ ‘어닝쇼크’ 등 ‘어닝’이 들어간 용어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런 말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가 꽤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닝시즌(earning season)’은 기업들이 영업실적을 발표하는 시기를 뜻한다. 보통 분기별로 영업실적을 발표하므로 1년에 네 번 어닝시즌이 돌아온다. “1분기 어닝시즌 본격화” 등처럼 사용된다. ‘어닝서프라이즈(earning surprise)’는 어닝시즌에 발표된 실적이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렇게 되면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다. “위기에도 어닝서프라이즈” 등과 같이 쓰인다. ‘어닝쇼크(earning shock)’는 영업실적이 예상보다 크게 낮은 경우를 말한다. 좋은 실적을 냈어도 기대치보다 많이 낮으면 어닝쇼크라 할 수 있으며 그만큼 주가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어닝쇼크로 주가 반토막” 등처럼 사용된다. 국립국어원은 이들이 어려운 외래어이므로 ‘어닝시즌’은 ‘실적 발표 기간’, ‘어닝서프라이즈’는 ‘실적 급등’으로 대체어를 선정한 바 있다. ‘어닝쇼크’는 대체어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실적 급락’으로 하면 어떨까 싶다. 이 밖에도 밸류에이션(→평가가치), 펀더멘털(→(경제)기초여건), 애널리스트(→(증시)분석가), 오버행(→물량 부담), 모멘텀(→성장동력·계기), 로스컷(→손절매), 가이던스(→회사 측 전망치), 이머징마켓(→신흥시장), 소프트랜딩(→연착륙), 스몰캡(중소형주), 매크로(→거시적) 등이 있다. 모두가 우리말로 바꿔 쓸 수 있는 것들이다.우리말 바루기 어닝서프라이즈 어닝시즌 본격화 실적 발표 earning surprise
2025.11.25. 19:57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있던 지난달 15일 수요일, 일상적인 우편물 속에서 LA수도전력국(DWP)의 청구서가 도착했습니다. 8월 1일부터 10월 1일까지, 딱 두 달 치 사용료였습니다. 우편물을 열어본 남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평소와 달리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다가갔을 때, 그는 충격적인 숫자가 찍힌 용지를 보여주었습니다. $2,800. 두 달 동안 텅 비어있던 전셋집에 청구된 수도료였습니다. 나와 남편은 얼굴을 맞대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 한 방울 제대로 쓰지 않은 빈집에서 어떻게 이토록 엄청난 금액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매니저 시오는 우리를 달랬습니다. “얼마 전에도 다른 집 미터기를 잘못 읽은 적이 있어요. 아마 컴퓨터 오류일 겁니다.” 우리는 그 말에 희망을 걸고 즉시 수도국에 연락했습니다. 수도국은 당장 계량기 수치를 읽어 보내라고 했고, 시오가 사람을 보내 미터를 확인하는 데 이틀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계량기 수치는 정확했습니다. 이제 문제는 ‘누수’였습니다. 미터 근처에서 물이 새었다면 수도국 책임, 집 안에서 새었다면 우리 책임이라는 냉정한 통보. 시오는 배관공(플러머)을 보냈지만, 주말 내내 어떤 결과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며칠 뒤면 여행을 떠나야 했기에 이 막대한 수도료를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우리를 짓눌렀습니다. 올해는 유독 나쁜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해였습니다. 6월에는 도난당한 차가 전셋집 앞 철문을 부수고 달아났고, 일식집에서 물린 벌레 독 때문에 일주일 간 온몸이 가려웠고 결국 푸르뎅뎅한 상처가 남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리집 화장실 벽 누수는 아래층 방의 크라운 몰딩을 뜯어내야 할 만큼 심각한 피해를 끼쳤습니다. 이 모든 일이 나의 잘못이 아닌 불운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더 큰 무력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한편, 중앙일보 기사는 우리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주었습니다. 다른 동네에서도 우리와 같은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매번 80달러만 나오던 80세 노인 집에서 수도료 8383.50달러가 청구되었고, 수도국은 미터가 맞으니 전액 내라는 입장이었습니다. 그 노인의 딸이 방송국에 연락해 미디어의 힘을 빌리자, 그제야 환급이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이 사례는 수도국이 자신들의 미터기를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대항할 방법이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추수감사절이 다음주로 다가오는데 이 모든 불운 속에서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교훈은 때로는 공허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 감사는 ‘더 이상의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음에 감사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2800달러라는 절망적인 숫자 앞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싸울 수 있는 의지가 남아있음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 부부는 이 미스터리한 누수의 원인을 밝혀내고 DWP와 협상해야 합니다. 불운의 잔재를 털어내고, 여행을 떠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규련 / 수필가이아침에 수도료 폭탄 폭탄 수도료 수도국 책임 즉시 수도국
2025.11.25. 19:55
한국이 엔비디아 GPU 26만 개를 확보한다는 소식은 그 자체만으로 기술업계의 판도를 흔들기에 충분하다. 이는 단순한 기술 투자나 기업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한국 산업 전반을 AI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국가적 전략이다. 반도체·자동차·로봇·배터리·조선·통신 등, 인공지능이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산업을 두루 갖춘 나라는 많지 않다. 한국은 바로 그 드문 국가 중 하나다. 이러한 산업 기반 위에 세계 최고 수준의 GPU 인프라가 얹힌다면, 한국 산업은 한 단계 도약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와 산업계의 구체적 계획을 들여다보면, 이 움직임이 단순한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약 5만 개의 GPU를 국가 AI 컴퓨팅 허브로 삼아 대학·연구기관·스타트업이 고성능 컴퓨팅 자원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SK는 반도체 설계 자동화 등 제조 원천 기술 혁신을 목표로 하고, 현대차는 자율주행·로봇·스마트팩토리 중심의 물리세계 AI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네이버는 6만 개 GPU를 기반으로 아시아권 AI 클라우드 허브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모든 움직임은 각 산업 현장에서 즉각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산업 AI’에 초점을 맞춘 것에 가깝다. 이 전략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평가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AI 도입 효과가 가장 큰 산업들을 한국은 이미 갖추고 있으며, 이들 기업의 실행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결정이 내려지면 조직 전체가 빠르게 움직이고, 필요한 자금과 인력, 설비가 순식간에 투입되는 한국 대기업의 속도는 큰 장점이다. 엔비디아와의 협력도 다른 나라와 비교해 상당히 밀접하다. 엔비디아는 한국을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전략적 파트너로 보고 있으며, GPU 클러스터 설계부터 데이터센터 운영, 패브릭 최적화, 기업 맞춤형 AI 모델 개발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AI 전문 인력이 부족한 국가라도 엔비디아의 기술 지원을 통해 상당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 상당한 경쟁 우위를 가진다. 여기에 한국 제조업 전반에 쌓여 있는 방대한 공정 데이터와 품질 데이터는, 미국 빅테크조차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자산이다. 하지만 이 모든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위협 요인은 현실적이고 크다. 가장 큰 문제는 부족한 인프라다. GPU가 아무리 많아도 이를 수용할 전력과 냉각 시스템,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없다면 활용률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수도권 전력망은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깝고, AI 전용 데이터센터는 인허가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데이터센터 건립에 필수적인 냉각 시스템 기술도 부족하다. 이 속도라면 확보한 GPU의 20~40%만 활용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두 번째 문제는 고급 AI 인력 부족이다. 특히 초대형 GPU 클러스터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고성능 컴퓨팅 전문가나 시스템 아키텍트는 세계적으로도 부족하며, 한국은 그 중에서도 경쟁력이 약하다. 일반 AI 고급 인력도 부족하고, 대규모 GPU 클러스터를 운영할 수 있는 인력도 부족하다. 정부와 기업이 해외 인재 영입과 국내 엔지니어 재교육에 나서고 있지만, 임금 경쟁력 등 한국적 상황에서는 고급 인력 확보가 쉽지 않아 GPU 도입 속도를 따라가기엔 여전히 턱없이 느리다. 더구나 한국의 데이터 규제는 지나치게 엄격해 산업 AI 모델 개발에 불리한 측면이 많고, 에너지 정책과 규제 역시 장기적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 모든 요소를 고려하면, 엔비디아 GPU 확보를 활용한 한국의 AI 전략은 성공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절반은 기회, 절반은 위험’에 가까운 상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산업 AI-특히 제조, 반도체, 자동차 분야-에서는 한국이 높은 수준의 성과를 낼 확률이 높다. 그러나 국가 전체 AI 인프라 구축이나 초대형 모델 개발 분야에서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분야와 낮은 분야가 극명하게 갈리는 구도다. 결국 한국이 AI 전략에서 성공할지 여부는 앞으로 2~3년 동안 전개될 ‘속도전’에 달려 있다. 전력 인프라 확충, 데이터센터 건립, 해외 인재 영입, 데이터 규제 개혁 같은 핵심 과제를 얼마나 빨리 해결하느냐가 GPU 투자 규모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 중 한두 가지라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전체적인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한국이 서 있는 지점은 거대한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는 갈림길이며,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앞으로 한국이 얼마나 빠르게 혁신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김선호 / USC 컴퓨터 과학자AI 인사이트 엔비디아 의미 엔비디아 gpu 한국 산업 gpu 인프라
2025.11.25. 19:53
지난 10월 남가주 동신교회 에서 ‘2025년 밀알의 밤’ 행사가 ‘돌보심’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집이 가난한 장애인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위한 행사였다. 시간이 되어 교회로 들어서자 교회 문 앞에서 밝은 유니폼을 입은 젊은 청년들이 밝게 웃으며 참석자들을 맞이했다. 본당 로비에도 많은 청년들이 책상을 놓고 앉아 “하나님이 OOO님을 돌보십니다”라고 적인 예쁜 카드에 일일이 참석자들의 이름을 적어 나누어 주고 있었다. 한글이 서툰 저 어린 청년들에게 밝게 웃으며 진심 어린 인사를 하게 누가 가르쳤을까? 출석하고 있는 교회가 큰 교회여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곳을 지나칠 일이 없는데, 어쩌다 만나는 어린이들이 밝게 웃으며 예의 있게 인사를 했다. 인사를 받고 처음에는 깜짝 놀랬다. 주위를 돌아봤다. 분명 내게 하는 인사였다. 지금은 40대인 우리 자녀들이 교회 학생이었을 때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 학생들은 교회 어른들에게 인사하지 않고 슬쩍 피했다. 누군가가 교회 학생들의 예의교육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집에서도 못하는 것을 교회 학교의 교사들에게 요구할 수 없는 것이라고 결론 지었다. 포기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교육은 사람을 바뀌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린이까지도. 행사가 시작됐다. 오프닝 메시지에서 교회의 담임인 백정우 목사는 “지금까지 우리는 돌보심을 받으며 살아 왔습니다. 이제부터는 내 이웃에 돌보심이 필요한 사람이 없는지 세밀하게 돌아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아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행사 주제가 배우 오윤아와 함께하는 ‘돌보심’인 만큼 그녀의 간증이 ‘메인 이벤트’였다. 그녀는 학생 때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레이싱 모델로 선발되었다가 자연스럽게 탤런트가 되었다. 여러 작품에 출연하였고, 연기 대상 최우수 조연상 드라마 부문 최우수 연기상 등을 수상하며 인기를 얻고,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결혼을 하고 첫 아들을 얻기까지는 그랬다. 그녀는 아들이 발달 장애를 겪는 중증 자폐로 진단받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미칠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름이 알려진 성공한 배우였기에 그 고통의 무게도 더 컷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혼하고 홀로 아들을 키우기로 했다. 그 후 그녀가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고난 속에서 인격적으로 다시 만난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을 위로하고 지금까지 돌보아 주셨는지를 이야기했다. 믿음을 통해 마음이 안정되고, 평안을 얻게 되자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는 일에 적극 참여했다. 사회가 그들을 좀 더 따뜻하게 보아 주도록 변하게 하는 일에 일조하고 싶었다. 그녀는 자신이 겪었던 고통처럼, 사회에서 여러 가지 고난을 겪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통해 치유되고 마음의 평안을 얻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간증을 마쳤다. 예쁜 카드에 적혔던 “하나님이 모두를 돌보십니다” 라는 성경 한 절은 모두를 위로했다. 최성규 / 베스트 영어 훈련 원장열린광장 오윤아 배우 배우 오윤아 교회 학생들 교회 학교
2025.11.25. 19:52
농장에서 허브 오일 만들기 워크숍, 티벳 발마사지 체험, 헌팅턴 로즈가든 티타임, 도예 스튜디오 워크숍, 그래피티 클래스, 요세미티 상공 스카이다이빙, 개인 다이닝룸에서 아프리카 요리 체험…. 다가오는 할러데이 시즌 이런 체험 활동을 감사 선물로,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으면 어떨까. 최근 LA타임스는 ‘기억에 남을 경험형 선물’을 제안했다. ‘물건이 아닌 경험을 선물하자’는 관점에서 선정된 이 목록들은 받는 사람이 직접 체험하고 기억할 수 있는 활동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할러데이 시즌을 앞두고 실제 소비의 흐름이 ‘물건에서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소비는 선물의 가치를 가격이 아닌 기억·체험·관계로 평가를 매긴다. 단순한 문화적 변화가 아니라 소비의 정체성이 물질 중심에서 경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 기업들도 이런 소비의 변화를 인식하고 있다. 한국 1세대 가치투자가인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설립자는 인터뷰에서 기업을 보는 관점 중 하나로 소유의 소비에서 경험의 소비로 이동을 만드는 기업을 언급했다. 최근 소매업체들은 소비자를 구매자가 아닌 경험의 참여자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의 조기 돌입, 자체 체험형 콘텐츠 개발, 프리미엄 서비스 확대 등을 통해 새로운 소비자층 유입에 집중하고 있다. 소비자 행동 연구에서도 경험 소비가 개인의 만족도, 충성도, 브랜드 연결성을 강화하는 데 더 유의미한 효과를 가진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소비자가 ‘어디에서, 무엇을, 어떤 이유로’ 소비하는가가 기업의 명운을 가르는 시대가 온 것이다. 가치 소비도 두드러지고 있다. 월마트의 저소득층 고객은 눈에 띄게 지출을 줄였지만 중·상위 소득층 소비자는 더 늘어나고 있다. TJ맥스, 로스 등 할인점 업체는 가치 소비 흐름과 맞물려 주가가 급등했다. 최근 소비의 또 다른 추세는 첨단 기술보다 실제 소비자의 지갑이 움직이는 속도가 경제의 현주소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I) 열풍이 주식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실제 경제 체온은 월마트·갭·TJ맥스·타깃 등 대형 소매업체 실적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웰스파고 투자연구소가 “경제를 움직이는 건 결국 ‘요가 팬츠와 치즈버거’”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가운데 경제는 높은 인플레이션과 고용 감소로 저소득층 소비가 줄어드는 반면 부유층 소비는 유지되면서 ‘투 스피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들이 스테이크 대신 햄버거를 고르는 식으로 소비 방식을 바꾸며 지출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고소득층을 겨냥한 브랜드들은 호조를 보이고 있다. 마이클 코어스와 지미추 브랜드를 보유한 카프리 홀딩스는 이달 초 기대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버버리·LVMH 등 유럽 럭셔리 기업들도 잇따라 판매 호조를 발표했다. 물가 상승, 고용 불안, 관세 부담 등 복합적 압력이 소비 심리를 약화하고 있지만 어떤 형태든 소비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대신 소비자는 더 신중해졌고 가성비 또는 의미, 가격 대비 가치와 경험의 질을 중심으로 선택을 재편하고 있을 뿐이다. 다가오는 할러데이 시즌은 경제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다. 과연 소비자는 다시 지갑을 열 것인가, 아니면 허리띠 졸라매기가 일상화될 것인가. 기업은 가격만 낮추는 전략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삶에 의미를 제공하는 경험 설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 소비자는 물질보다 경험을 원하고 그 경험이 브랜드 충성도를 더욱 강화하는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곳에 소비가 집중될 것은 분명하다. 할러데이 시즌 우리는 무엇을 소비해야 할까. 이은영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가성비보 기억비 소비자층 유입 소비자 행동 경험 소비
2025.11.25. 19:51
유튜브에서 눈길이 끌렸다. 언어 학습에 심취한 한 미국 여자가 물음표 없이 던지는 타이틀에. “Are Bilingual Brains Really Different, 이중언어의 뇌는 정말로 다른가.” 깜짝 놀란다. 2018년 중앙일보에 ‘어라이벌’이라는 제목으로 쓴 칼럼에서 내가 언급한 사피어-워프의 가설, ‘언어적 결정론’, ‘Sapir-Whorf’s ‘Linguistic Determinism(1929)’을 그녀가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서. 무슨 말을 하는 순간 자기가 한 말과 결속관계가 일어난다. 당신의 미국인 친구가 “I will give you my word.”라 말했을 때의 ‘word’는 ‘약속(約束)’이라는 의미가 된다. 맺을 約, 묶을 束. 그리고 그 친구는 당신을 향한 스스로의 발언에 단단히 묶여진다. 그는 자기가 뱉은 말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드라마틱하게 말하면 한마디의 말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연이면서 좀 비관적인 냄새마저 풍긴다. 말은 결속감을 야기한다. “I promise.”와 “I will give you my word.”는 비슷하게 들리지만 뉘앙스의 차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자, “약속하다”는 캐주얼한 의미로 쓰이면서 공식적인 계약에도 사용되는 반면에, 후자, “내가 한 말을 지킬게요”는 상대에게 자기 약속을 믿어달라는 맹세에 가까운 진술이다. 관료적 언어보다 짧고 순수한 말이 더 호소력이 있다는 것이 인지상정. 우리는 그만큼 말이 발산하는 진실된결속감을 추구하면서 제발 젠체하는 말을 멀리하고 싶다. 미국에서 반백 년을 넘게 갈고 닦은 나의 언어생활. 아직도 한국어에서 영어로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영어로 전화통화를 하는 도중 누가 옆에서 한국말로 뭐라 하면 말의 흐름이 끊겨버린다. 영어를 할 때와 우리말을 할 때 내 성격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심하게. 우리말을 할 때 나는 감정에 마음 놓고 지배당하기를 잘한다. 쉽게 다정해지기도 하고 별것도 아닌 거로 흥분한다. 또 한편, 영어를 할 때는 분석적이고 냉정하고 상대와 심리적 거리감을 둔다. 나는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이중인격자다. 언어 속에 한 나라의 역사, 전통, 관습 같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어릴 적 일본식 발음으로 듣던 ‘빳떼리’, ‘빤쓰’와 요즘 식으로 발음하는 ‘배터리’와 ‘팬츠’의 뉘앙스를 비교, 분석하면 재미가 난다. 같은 생활용품을 두고 유년기의 향수심과 미국 생활습관의 일부인 ‘AA battery’ TV 광고와 패션쇼에 나오는 멋진 바지가 교차되다니. 누가 빳떼리, 빤스, 하고 말하는 순간에 내 성격이 어린 시절 한국 배경을 떠올리는가 했더니, 배터리, 팬츠, 하면 내 성격이 얼른 다시 21세기 미국 배경과 엇갈리다니. 신기해. 6살 때 경상도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다녔다. 지금도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대학 친구와 대화를 하면 그때 말투가 튀어나온다. 그러는 동안 나는 계면쩍고 퉁명스러운 경상도 사나이 같은 성격으로 돌변하는 경이로움에 마음 놓고 빠져든다. 이중언어의 뇌는 단일어 뇌보다 훨씬 분주하고 다양하다. 한 언어의 인덱스 시스템이 딸리면 다른 언어 인덱스를 찾아보면 해답이 나온다. 이중언어의 뇌는 김소월의 시 ‘가는 길’에서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하는 언어적 ‘결정’을 따르지 않는다. 그것은 이민자로서 우리가 꾸준히 연마하는 문화적 ‘설정’이다. 우리에게는 그 ‘setting’을 변경할 수 있는 자유의사가 있는 것이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결정 설정 언어적 결정론 different 이중언어 언어 인덱스
2025.11.25. 17:39
할머니 침대는 등이 굽었다. 할머니를 닮았다. 할머니 방 퀸 사이즈 침대에 손녀 손자 둘이 붙어잔다. 잠만 자는 게 아니라 널 뛰기 하듯 춤 추고 설쳐대니 침대 한 가운데가 찌그러졌다. 초등학생이 된 아들은 스스로 쪽팔린다는 건 알았는지 일단 할머니 방에서 철수, 제 방에서 자기로 합의했다. 밤이면 베이비담요 껴안고 뱀이 땅바닥 기듯 스르르 계단 내려가 할머니 방으로 숨어든다. 미국 아이들이 애지중지, 낡아 손 때 묻은 Security blanket을 소중하게 간직하듯 할머니는 우리 애들을 지켜주는 영원한 보호막이고 사랑의 피신처다. 어릴 적 옷칠한 반들반들한 장판에 누워 엄마 팔 베게 삼아 말랑말랑한 가슴에 손 얹으면 포근해 이내 잠이 들었다. 넘어지면 아까징끼 대신 침 발라주는 엄마 손은 약손이고 어머니 젖무덤은 공포와 두려움, 귀신까지 쫓아내는 주술방망이였다. 다시 한 해가 떠나간다. 민족 대이동이 시작된다. Thanksgiving Holiday는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서로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휴일이다. 메이플시럽, 칠면조, 크랜베리 소스 등으로 준비된 만찬을 나누며 한 해의 수확과 가족, 공동체의 소중함을 기념하며 감사를 전한다. 딸은 미 대륙의 동쪽 끝 뉴저지에, 아들은 서쪽 끝에 살고 있어 견우 직녀 오작교에서 상봉하듯 일정 조절은 팔방마녀인 딸이 잡는다. 올 크리스마스는 샌디에이고 아들 집에서 뭉치기로 하고 추수감사절은 각자도생 본가(?)에서 보내라고 했다. 내 욕심만 채우면 사위와 며느리에게 미운 틀이 박힌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한게 사랑이고 선물이다. 올해는 ‘Gift Money Allowance(선물 제한 금액 적용)’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안(?)했다. 신용카드 번호를 부모들에게 주고, 손주들에겐 나이에 따라 배당 액수를 알려 주었다. 나이 탓에 적게 배당 받은 손주는 ‘모자라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서 Allowance를 주는 거지. ‘한도액 초과 금지’라는 문자를 보낸다. 녀석, 손가락 세며 잔머리 굴리느라 고심할 것 생각하면 웃음이 터진다. 새 집으로 이사 온 뒤 식구보다 다정한 이웃들을 만났다. 친 형제, 자식보다 더 살뜰하게 돌봐준다. 고장난 컴퓨터 손봐주고, 무식한 하이텍 기능공 훈련시키고 쓰레기 수거 날엔 쓰레기통 옮겨 주고, 눈이 오면 드라이브웨이를 치워준다. 이토록 좋은 가족 같은 이웃이 앞집에 살다니! 양아들(Chosen Family)로 맺은 이웃은 내 품을 떠난 리사와 동갑이다. 하늘은 한 사람이 떠나면 다른 한 사람을 선물로 보내준다. 별이 어둠 속에 다시 빛나듯 태양은 지면 내일 다시 뜬다. 내게 근사한 가족, 형제 같은 ‘바라기’가 생겼다. ‘바라기’는 ‘음식을 담는 조그마한 사기그릇’인데 ‘한쪽만 바라보도록 목이 굳은 사람’을 가르킨다. 누군가를 위해 사랑으로 목이 굳어진다면, 달콤한 감홍시 먹을 때처럼 사는 게 달짝지근 하고 말랑말랑 하지 않을까? 해(Sun & Son)바라기로 맺은 나의 새 가족이 좋아할 요리 창조(?)하느라 머리가 뱅뱅 도니 치매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 추수감사절 함께 보낼 식당은 미리 예약했다. 새 식구들과 나누는 행복한 만찬! ‘미미’라 애칭 부르는 손주들에게 줄 성탄절 봉투에 이름을 예쁘게 적는다. 가슴이 따스하다.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차가운 겨울, 눈발 흩날리는 오후에도, 조각이불처럼 따스한 사랑 수놓으며 가슴 속 한 송이 꽃을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할머니 침대 가족 형제 수확과 가족
2025.11.25. 12:39
어느 쌀쌀하게 가을 바람이 몹시도 세게 부는 날이었다. 나는 당이 떨어져, 전혀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졸린 눈을 비비며 무작정 카페로 향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정말 운 좋게도 오븐에서 막 구워 나온!) 블루베리 머핀을 따뜻한 커피와 함께 먹을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백인 여성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와우, 머리를 위로 아주 간단히 한 번에 틀어 올리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이네요. 나도 내 머리를 그렇게 쉽게 하고 싶어요. 무척 예뻐 보여요!” 아마도 그날 아침 거울도 보지 않고 부시시하게 나선 내가, 무의식 중에 혹시나 해서 머리를 만져 정돈하고 있었나 싶다. 아무튼 낯선 사람의 예상하지 못한 칭찬 한마디는 그날 아침의 달콤한 머핀보다 훨씬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러다 문득 나의 중학교 담임 선생님이 생각났다. 어느 오후 면담 중에 선생님은 내 성적 등에 대해서 말씀하시다가, 나의 성격에 대해서 “너는 참 착하고, 대나무 같이 매우 곧고 바르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조금 과장을 섞는다면, 사실 그때 이후로 ‘대나무’라는 단어는 나의 뇌리에 깊이 박혀서 내 삶의 스키마(schema)와 동시에 길잡이(guide)가 되었다. 물론 나는 실수하고, 오류를 범하며, 의지 또한 약하다. 하지만 대나무라는 개념은 내게 분명히 하나의 ‘자정 장치(self-correcting mechanism)’의 역할을 해주었다. 대나무(bamboo)의 특성을 보면, 보통 푸른색에 줄기가 바르게 자란다. 또한 강하고 유연한 성질에 더해서 탄력성도 있으며, 지조와 절개, 정직함, 장수 등을 상징한다. 지금 돌아보면 비록 이런 대나무의 모든 상징성을 알지도, 특별히 굳이 의식하며 살 지는 않았어도, 어쩌면 대나무의 이미지가 나의 잠재 의식에 자리잡아 세상사의 힘든 여정 속에서 그나마 나를 잡아주었던 것 같다. 자기계발 전문가로 매우 유명한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책, ≪행동하지 않으면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2024)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의 주변 환경은 감정의 수영장과 같다. 당신은 그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다. 그러므로 환경을 통제해서 물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사실상 이 구절은 원초적으로 감정의 동물인 인간이, 하루 동안에 아니 한 시간만 놓고 보더라도, 느끼고 겪게 되는 그 수많은 정서를 품은 바다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면 충분히 이해와 수긍이 가고도 남는다. 예를 들어 아침에 산뜻하게 가벼운 기분으로 일어났어도, 출근길 지나가는 차에 튀긴 흙탕물로 새로 입은 바지가 젖어 더러워지면 이내 기분이 무척 상하고 안 좋게 된다. 그런데 점심에 동료가 위로해주고, 부드러운 에그 샌드위치를 먹고 포만감에 차면, 또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유쾌하게 일에 전념하곤 한다. 이렇게 우리는 하루에도 이리저리 끝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정서의 만화경(kaleidoscope) 속에서, 특히 나쁜 감정들의 소용돌이와 분노와 좌절들을 잘 관리하려면, 일종의 자정 장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실상 적절히 유효한 ‘자정 장치’는 맛있는 음식도, 한바탕의 큰 웃음도, 친구의 위로도, 낯선 이의 칭찬도, 혹은 어느 현자가 남긴 훌륭한 문구도 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내게 ‘대나무’라는 상징성을 심어준, 그 선생님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대나무 손원 자정 장치 위스콘신대 교육학 교수 교육학
2025.11.25. 12:37
━ 여당, 법원행정처 폐지 후 사법행정위 신설 추진 ━ 비법관이 절대 다수, 인사권 통해 재판 개입 우려 더불어민주당이 어제(25일) 입법공청회를 열고 사법개혁안을 발표했다. ‘사법불신극복·사법행정정상화 태스크포스(TF)’가 주도한 개혁안에는 법원행정처 폐지와 사법행정위원회 설치, 대법관 퇴임 후 5년간 대법원 사건 수임 제한, 법관 징계 강화, 판사회의 실질화 등이 담겼다. 연내에 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이 목표라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법원행정처를 대신해 법관 인사 등을 담당할 사법행정위 신설이다. TF안에 따르면 위원 13명 중 9명을 비(非)법관으로 두면서 2명의 상임위원과 사무처장·차장직에서 현직 법관을 배제했다. 먼저 복잡한 법원의 인사 행정을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이는 비상임 위원들이 제대로 결정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생긴다. 자칫하면 정치권의 비호를 받는 특정 세력이 위원회 전체를 장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구조라면 법관 인사에 외부 입김이 반영될 가능성이 커지고, 이를 통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검찰 인사를 보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에서 잘나가던 검사들이 한직으로 밀려나곤 한다. 이런 일이 법원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정치 검사’에 이어 ‘정치 판사’가 양산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사법부는 다수가 환영하지 않더라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정직하고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 국민의 투표로 선출하는 대통령이나 입법부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민주당은 그제 ‘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도 다시 꺼내들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 전담 재판부는 당연히 설치한다. 국민의 명령이다.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란 전담 재판부는 헌법적 근거가 부족한 데다 재판부의 무작위 배당이라는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현재 윤석열 전 대통령 등의 내란 혐의 재판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중계되면서 많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 여당이 법원을 불신하고 헌법의 틀에서 벗어나는 조치를 언급하는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 사법부를 적절히 견제할 필요는 있겠지만, 이것이 과도하면 사법부가 정치권력에 예속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연내 통과 목표를 정해놓고 급하게 서둘러서는 안 된다. 다만 사법부도 불신을 받게 된 이유를 겸허하게 돌아봐야 한다. 정치가 양극화될수록 사법부를 향한 압박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사법부가 중심을 잡고 국민적 신뢰를 얻어야 한다. 재판 지연을 해소하고, 재판 결과의 신뢰성을 높이는 대책을 스스로 마련하기 바란다. 아울러 전관예우 방지나 비위 판사의 징계에 대해서는 사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선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2025.11.25. 8:36
━ 중·일 갈등에도 트럼프, 일본 지지 입장 안 밝혀 ━ 한·미 통상·안보 합의했지만, 긴장의 끈 조여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제(2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했다. 지난달 30일 부산 정상회담 이후 거의 한 달 만이다. 1시간 동안 진행된 통화는 화기애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4월 방중 입장을 재확인하며, 시 주석의 내년 국빈 방문도 제안했다. 그는 SNS에 “우리의 (부산) 합의를 정확한 상태로 유지하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뤘고, 이제 우리는 ‘큰 그림(big picture)’에 시선을 둘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두 정상이 양국 관계와 대만, 우크라이나 문제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했다. 특히 대만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은 중국이 대만 문제를 중요시한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지난 7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집단자위권 행사’ 발언 이후 중·일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상황에서 중국 편을 드는 듯한 발언을 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 관련 자신의 발언을 SNS에 소개하지 않았지만, 사실이라면 일본으로선 당혹스러운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트럼프 대통령은 어제 다카이치 총리와 전화 통화를 했다. 하지만 이 통화에서도 대만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언급은 없었다. 다카이치 총리도 “일·미 간 긴밀한 연계”를 확인했지만, 중·일 갈등을 논의했는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이익을 앞세워 동맹을 배려하지 않는 트럼프식 거래주의 외교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중·일 갈등에서뿐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놓고도 유럽과 우크라이나보다는 러시아의 입장을 반영한 종전안을 제시해 빈축을 사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일본은 트럼프식 거래주의 외교의 최신판인 셈이다. 중국 견제의 최전선인 대만에 20% 관세를 부과한 뒤 한국보다 많은 40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압박하는 것도 또 다른 사례다. 한국 역시 안심할 수 없다. 한·미는 경주 정상회담을 통해 통상·안보 협상을 마무리했지만, 향후 이행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갈등은 불가피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통상 분야에선 대미 투자처 선정과 수익 분배 방식 등을 놓고, 안보 분야에서는 북한 비핵화,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 등을 놓고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은 여전하다. 이런 주요 쟁점에서 미국이 ‘동맹’ 관점이 아닌 ‘단기적 이익’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미·중 빅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한·미 동맹은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과거와는 다른 신중한 대미 접근과 철저한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다시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게 오늘의 외교·안보 현실이다.
2025.11.25. 8:35
김민석 총리가 2025 중앙포럼 ‘AI 시대의 새로운 비전과 리더십’ 축사에서 “AI(인공지능) 시대에는 하루 늦으면 한 세대가 뒤처진다”라고 한 것은 시의적절한 발언이다. 전 세계가 AI에 경쟁적으로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책 의도만 좋다고 바라던 효과가 저절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AI 시대 맞아 국제경쟁 치열해져 외국보다 관련 예산 턱없이 부족 AI 활용 시장과 수요 창출도 중요 데이터 활용 등 각종 규제 풀어야 미국은 초대형 AI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2029년까지 우리 돈으로 거의 750조원에 달하는 5000억 달러를 투자하고, 20개 초대형 AI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AI를 산업 전반에 적용하는 AX 전략을 추진한다. AI 개발을 위한 시장 자유화와 규제 완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1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AI 개발에 소극적이었던 유럽도 변했다. 유럽위원회는 지난 10월 산업 및 공공 부문에 AI 도입을 위해 340조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프랑스는 AI 인프라에 185조원을 투자하여 유럽의 AI 파워하우스가 되려고 한다. 2018년 빌라니 보고서를 통해 AI를 연구·개발(R&D)과 산업에 활용하기 위한 3단계 전략도 추진 중이다. 독일 메르츠 수상도 최근 AI 개발이 미국과 중국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을 비판하며 유럽의 기술 주권 확보를 주장했다. 중국 중앙과 지방정부의 2025년 R&D 예산은 약 800조원으로 AI, 바이오, 양자기술, 6G 기술개발에 집중 투자될 것으로 보인다. 민간 기업인 알리바바도 클라우드와 AI 인프라에 3년간 7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LLM 모델은 딥시크, 알리바바의 QwQ 등 80개 이상이 경쟁 중이다. 우리 정부는 내년 예산 중 AI에 총 10조1000억원을 배정했다. 공공분야 AI 도입에 2조6000억원, 인재양성에 7조5000억원이다. 하지만 이는 전체 예산 728조원의 1.4%에 불과하다. 미국은 내년도 9300조원의 정부 예산 중 AI 관련 예산으로 7.7%에 달하는 720조원을, 중국은 중앙 및 지방정부 내년 예산 5200조원에서 15.4%인 800조원을 AI 등 첨단기술개발 예산으로 배정했다. 필자는 11월 초 베이징포럼에서 베이징대를 비롯한 많은 대학과 함께 AI 기반 미래 교육에 대해 발표할 기회를 가졌다. 이미 중국은 AI로 교육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는 것에 놀랐다. 중고 수학에서 교사 대신 AI가 핵심 내용을 분석하여 개인 맞춤형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에듀테크 기업들은 AI로 분석한 학생들의 학습활동과 평가를 그래프와 그림으로 보여주는 대시보드를 모니터에 띄워주고, 강의 목소리를 AI로 분석하여 그래프로 제시한다. 음높이와 발음의 명확도를 개선하는 AI 시스템을 개발한 것이다. AI 경쟁력을 위해서는 컴퓨팅 센터, 데이터, 인력의 3대 요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AI를 활용하려고 하는 AI 문화이고, 컴퓨팅센터 구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를 활용하려는 수요 창출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개발되어도 시장이 형성되어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면 기술은 사장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산업기술 정책에서도 기술공급(technology-push)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수요 창출(demand-pull)이라고 강조한다. 전 세계 에듀테크 시장은 2025년에서 2029년까지 연평균 15.9%로 성장하여 722조원 규모로 전망된다. 우리나라 에듀테크 회사들이 혼신의 노력으로 개발한 디지털 AI 교과서가 정권이 바뀌자 교과서로 채택되지 못하고 교육 자료가 되었다. 그것도 채택률은 전국 평균 32.4%에 불과하다. 지역별로 대구 98.1%에 비해 서울은 24.8%에 그쳤다. 개발에 참여했던 에듀테크 회사들은 수천억 원의 손실을 보았다고 불만이다. 교사들과 충분한 사전 소통이 부족했다고 하지만, 교사들은 지식의 전달이 AI 교과서로 바뀌면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할지 모른다. 이제 영어나 수학 교육에서도 형식지의 전달은 AI 교과서에 맡기고, 교사들은 교과와 관련된 폭넓은 사고와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주는 코치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일 년간 1만 5000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대부분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지원부서 인력이었다. 코딩과 프로그래밍은 AI가 더 잘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지원하는 AI대학원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만 교육하여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AI 시대에는 집을 지을 때 벽돌공보다 건축 설계사가 더 중요하듯, 프로그래머보다 창의적인 AI 활용 인력이 더 필요하다. 개인정보 보호 등 규제로 막혀있는 병원의 의료 데이터, 법원의 판례 데이터, 기업의 제조 데이터 등 다양한 데이터들을 활발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AI 기술 발전도 가속화될 수 있다. 흔히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을 한다고 한다. AI를 육성한다면서 AI 규제는 오히려 강화되는 것은 아닌지, 정책 의도와 효과의 미스매치 현상을 꼼꼼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
2025.11.25. 8:33
10월의 마지막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준비 없는 이별이었다. 황망함은 빈소에서 끝나고, 슬픔만 견디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발인 다음 날 주민센터에서 사망 신고와 함께 신청한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는 감내를 각오했던 비통함 대신 분노만 불러왔다. 그리고 알게 됐다. 나뿐 아니라 가족 떠나보낸 유족 대부분 겪어왔고, 겪을 일이라는 걸. 또 정부가 망자와 유족 편의를 돕기보다 채무 징수 궁리만 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납부는 쉽게 독촉, 조회는 발품 법 탓하지만 정부 편의 앞세워 '원스톱' 홍보에 걸맞게 바꿔야 지난 2015년 시작한 이 서비스는 '사망자가 남긴 여러 재산과 채무를 한 번에 조회 신청할 수 있는 서비스'라는 행안부 홍보 문구 그대로 사망자 정보를 상속인에게 알려주는 재산조회 통합처리 서비스다. 금융거래는 물론 각종 연금, 토지·건축물 등 20여 가지 정보를 알려준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항목별 정보 조회가 가능해지면 상속인 휴대전화로 알림 문자가 온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일 빨랐다. URL 없이 '홈페이지에서 4대 보험 징수자료 조회가 가능하다'고 왔다. 모든 조회 서비스는 모바일 아닌 PC에서 인증 거친 후에야 가능한데, 어렵게 인증하고 신청 접수 번호까지 입력했더니 10월분 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별 미납 보험료를 내라는 화면이 떴다. 한참의 통화 대기 후 AI를 거쳐 어렵게 상담원과 닿았는데, 납부 가능한 은행 가상계좌번호를 줄 테니 오늘 당장 돈을 내라고 했다. 원래 예정일에 내려면 그때 다시 전화해 다른 가상계좌번호를 새로 받으라고 했다. 매달 아버지가 받던 연금 정보 확인인 줄 알았다가 거꾸로 낼 돈을 알게 돼서가 아니라, 지나친 행정 편의적 접근에 기분이 상했다. 처음부터 보험료와 계좌를 안내하면 할 필요 없는 수고였다. 신용카드 결제대금 안내문자는 다행히 달랐다. 입금용 가상계좌번호까지 한 번에 안내했다. 이 서비스 신청할 때 기대했던 방식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금융투자협회 문자는 건보공단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피상속인 증권 계좌 있음 상세내용은 홈페이지에서 직접 조회'라는 문자를 받고 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거래했던 증권사 대표전화만 있었다. '잔고내역은 해당 금융회사에 문의 바란다'는 안내 문구와 함께. 어렵게 증권사 상담사와 연결이 됐다. 내 신원과 서비스 신청 접수 번호까지 다 확인한 후 상담사는 이렇게 말했다. " "유선상으로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필요서류 확인하셔서 가까운 영업점에 가서 확인하세요. " " 필요서류와 영업점 정보를 문자로 달라고 요청했다. 사망 확인서류에 상속인 확인서류, 인감증명서…. 확인을 접고 싶을 만큼 많았다. 영업점 안내 링크는, 심지어 해당 증권사 앱 까는 앱스토어로 연결됐다. 이쯤 되면 원스톱 서비스가 아니라 한 번에 끝낼 일을 일부러 여러 스톱 더 일 시키면서 사람 화 돋우는 서비스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시중은행 등 1금융권은 홈페이지에서 은행별 잔액은 알려준다. 그런데 유족이 대략 알던 것과 차이가 컸다. 홈페이지를 보니 '신청서의 사망자 이름과 은행 보유 사망자 성명이 일치하지 않으면 금융거래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고 돼 있었다. 엄격한 금융실명제라 사망자 이름과 계좌 이름이 일치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유족이 사망자 계좌 정보를 전혀 몰랐다면 상속세 신고든, 나중에 인출할 때든 손해 볼 가능성이 크다. 유족이 내야 할 망자의 보험료와 카드대금은 척척 알려주면서, 잔액 조회는 어렵게 막고 부정확한 정보를 주는 이유가 궁금했다. 행안부 담당자는 "이런 내용은 몰랐다"며 "다만 개인정보보호법이나 금융실명제법을 넘어서는 법률이 없어 벌어지는 문제이고, 금융정보는 금융결제원 담당"이라고 했다. 지난 10년간 이를 해결하려는 정부 입법이 있었느냐는 질문엔 "없었다"고 했다. 돌고 돌아 금융감독원 담당자를 어렵게 찾았는데 그 역시 "해본 적 없어 잘 모르지만 법률문제"라고 했다. "서류 준비해서 직접 개별 금융사에 가면 정확했을 텐데"라면서. 채무와 잔액 조회가 다른 이유도 설명하지 못했다. 문득 정책 홍보와 정반대인 이런 실망스런 서비스가 어디 사망자 재산 조회뿐일까 싶었다. 안혜리([email protected])
2025.11.25. 8:32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 - 12·3 계엄 1년, 당시 여당 대표가 회고하는 그날 밤 막전막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입니다. 국민과 함께 막겠습니다. 국민의힘 당대표 한동훈” 지난해 12월 3일 밤 10시 48분. 느닷없이 TV에 등장한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합니다”고 외친지 5분 만에 쓰여져 나온 이 38자 메시지는 충격과 불안에 휩싸인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희소식이었다. 그 후 1년. 한동훈 전 대표는 론스타 국제투자 분쟁 취소 신청 항소 승리의 주역이자, 대장동 일당 항소 포기에 맞서 싸우는 투사로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계엄 1년을 한 주 앞두고 그를 만났다. 윤 담화 끝나기 전 반대메시지 써내려가 ‘계엄 성공 시 국민 봉기 보수절멸’ 우려 미 고위인사 ‘윤 선의만 믿으면 되냐’ 반문 국힘, 항소 포기 맞서 대동단결해 싸울 때 “처음엔 북 남침해 계엄했나 생각” Q : 먼저 론스타 승소부터 물어보죠. 민주당에 “숟가락 얹지 말라”고 일침을 날렸는데요. A : “이건 국민의 승리입니다. 저는 검사와 법무부 장관 시절 국민의 공복으로 심부름만 한 거죠. 민주당을 비판한 건 실상은 반대만 해놓고도 ‘이재명 정부의 쾌거’라며 국민의 승리를 민주당 공으로 가로채려 하니까 그런 겁니다. (개인적으로 보람 있던 순간은요?) 개인적으론 근 20년간 해온 사건이라 감회가 큽니다. 검사 시절인 2012년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해 스모킹건 증거를 찾고 미국 관련자들 자백도 받아 유죄를 끌어낸 게 이번 승소에 역할을 해 보람을 느낍니다. 유죄선고 뒤 중재재판에서도 10년 가까이 실무를 도운 것도 이번 승소로 결실을 맺은 듯해 기쁩니다. 또 하나는 법무부 국제법무국 신설입니다. 장관 시절 법무부 실세조직인 검찰국과 동등한 인력·예산으로 국제법무국을 출범시켰죠. 여기 직원들이 큰일을 한 겁니다.” Q : 12·3 계엄 선포 순간을 회고하면요. A : “차 타고 귀가하던 길에 방송을 들었어요. 처음엔 북한의 침공 같은 변고가 났나 했어요. 그로 인한 계엄이었다면 반대 안 했을 겁니다. 그런데 담화를 들어보니 민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찍어 치겠다는 거더군요. 민주당이 잘못한 건 맞지만, 정치로 대응해야지 계엄으로 제거하겠다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위헌이거든요.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담화가 끝나기 전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죠.” Q : 38자가 어떻게 떠올랐나요? A : “먼저 ‘잘못’이라 못 박는 건 당연했고요. 계엄 막는 데는 진영이 없으니 ‘국민과 함께 막겠다’가 떠올랐죠. 다음이 ‘국민의힘 대표’ 였어요. 집권당도 계엄에 반대한다고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죠. ‘우린 내란 정당 아니다’는 걸 못 박은 측면도 있고요. (당시 심정은요?) ‘이 계엄을 막지 않으면 봉기가 일어나고, 유혈 사태 나고, 정부가 전복될 거다. 민주주의는 나락으로 후퇴하고, 보수 정치는 절멸할 거다’는 생각에 여당 대표가 가장 먼저 반대 입장을 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계엄군에게도 메시지를 줘야 했고요. 그래서 ‘계엄군은 부역하지 말라. 항명했다고 책임질 상황이 된다면 우리가 지켜주겠다’는 메시지를 냈죠. 나중에 장교들 여러 명이 ‘고마웠다’고 연락해오더군요. 계엄 방송 보고 ‘어떡하지’ 하다가 ‘여당 대표가 반대한다고 했다. 명령에 따르지 않을 명분이 생겼다’고 안도했다는 거죠.” Q : 메시지 낸 뒤 어떻게 했나요? A : “두 문장을 휴대전화에 쓰자마자 당에 보내 공지로 띄웠어요. 민주당 이재명 대표보다 훨씬 빨랐고 정치권에서 가장 먼저 나간 메시지였죠. 다음 수순은 계엄 해제였죠. 휴대전화로 법전을 찾아보니 국회 표결로 해제하는 것 외에 답이 없어요. 일단 당사로 달려가는데, 휴대전화에 불이 나요. ‘여의도에 탱크 떴다’‘가지 말라’등 문자가 초 단위로 떠요. 밤 11시쯤 당사에 도착하니 종편방송 기자 한 분만 있길래 당 간판 앞에 서서 ‘계엄은 위헌입니다. 국민 여러분 안심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장면을 찍어 나가게 했어요. 이어 의원들 10여 명과 국회로 달려갔죠. 국민의힘 의원이 한명이라도 더 본회의장에 들어가 계엄 해제 표를 던지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Q : 국회에선 어땠나요? A : “정문이 막혀 도서관 쪽으로 진입했는데, 우리가 들어간 직후 죄다 봉쇄됐어요. 본회의장에 들어가니 민주당 의원들이 겁먹은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안도하면서 ‘고맙다’고 인사하더군요. ‘여당이 왔으니 군인들에게 끌려나가진 않겠구나’고 생각한 거죠. 한참 뒤 이재명 대표가 들어왔는데, 굳이 저한테 오더군요. 의원들은 ‘피하세요’ 했지만 맞아줬죠. 뒷얘기인데, 해제 표결이 끝난 뒤에도 이재명 대표·우원식 국회의장이 제게 여러 번 전화했어요. 안 받았죠. 언론플레이 같은 정치적 활용 의도가 훤히 보여서죠.” 미 측 “급변사태 시 누구랑 상의?” 물어 Q : 계엄 며칠 뒤 미 대사관 관계자를 만났는데요. A : “계엄 다음날부터 미국 측이 만나자고 했는데 바빠서 며칠 뒤에야 만났어요. 이재명 대표도 미국 측에 만나자고 제의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 고위 관계자가 ‘여당 대표가 신속하게 계엄을 막았으니 인상 깊다(impressive)’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한국이 미국의 우방 맞느냐. 계엄의 밤에 외교부 장관과도 통화가 안 됐으니 우리 불안감이 어땠겠나’고 해요. 당시 여당 대표였던 저는 대통령은 2선 후퇴하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정을 대행하는 ‘질서 있는 퇴진’을 추진했는데 그는 ‘북한 급변 사태가 터지면 미국은 대통령·총리 중 누구랑 상의해야 하나’고 물어요. ‘총리’라고 답하니까 그는 ‘총리 측은 다른 얘기 하던데’라고 되받더군요. 그러면서 ‘질서 있는 퇴진이라지만 헌법상 대통령이 권력자니까 그가 변심하면 그만 아니냐. 미국이 윤의 선의만 믿고 있으면 되냐’고 물어요. 그래서 ‘구조적으론 그렇지만 국민이 질서 있는 퇴진에 동의하니 국정은 안정될 것’이라고 답했어요. 그는 ‘무슨 얘기인지는 이해했다’고 해요. ‘당신 뜻은 알겠는데, 동의는 못 하겠다, 솔직히 불안하다’는 거죠. 걱정됐어요.” Q : 본인의 정치 이념은 뭡니까? A : “그냥 민주주의가 아니라 법치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죠. 민주주의엔 인민민주주의도 있으니까요. 또 자유민주주의만 강조하면 사회가 방향성을 잃으니 공화주의가 함께 가야 합니다. (한동훈이 보는 공화주의는 뭡니까?) ‘방향성’인데, 구체적으론 공공선이죠. 어릴 때부터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게 공화주의로 이어진 겁니다. 만일 12·3 계엄이 성공했다면 대한민국이 가꿔온 이런 이념들이 다 무너졌을 겁니다. 5·18 만으로도 45년째 나라가 논쟁 중인데 또 계엄이라니요. 저는 5·18 때 유치원생이라 죄책감을 느끼는 세대가 아닙니다. 이제 5·18은 8·15나 4·19 같은 자랑스러운 역사이니 놓아줘야죠.” Q : 지난 7일 검찰의 대장동 일당 항소 포기에 가장 빨리 메시지를 내며 참전했는데요. A : “항소 기한 마감일인 7일 밤 10시 40분쯤 방송에서 ‘항소 안 할 수도 있을 듯’이란 보도가 떴어요. 저도 검사 시절 외압을 많이 받았으니 감이 왔죠. 즉각 ‘검찰이 항소 포기하면 처벌된다’고 메시지를 띄우고 분 단위로 ‘항소장 넣으라’고 재촉했어요. 그런데도 못하더군요. 그래서 ‘7일 자정 대한민국 검찰은 자살했습니다’는 메시지를 냈어요. 공소권이 짓밟힌 초유의 상황이라 치고 나간 거죠. 그 결과 비판 여론이 거세지며 ‘항포 정국’이 조성된 겁니다.” “검찰총장 제지에도 국세청장 구속” Q : 검사 시절 어떤 외압을 받았나요? A : “윗선이 ‘○○○씨 사건 불기소하거나 구형량 낮춰’라는 쪽지를 주거나 전화하는 일이 많았죠. 그냥 씹고, 원칙대로 구형하거나 항소한 끝에 좌천 4번, 압수 수색 2번을 당했고 독직 폭행까지 당했습니다. 부산지검 시절인 2007년 11월, 대선 한 달 앞둔 시점에 전군표 국세청장의 뇌물 비리를 잡아내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는데, 검찰총장이 불러요. 서울 대검 총장실에 갔더니 이 트집 저 트집 잡으면서 ‘영장 청구하지 마’라고 해요. 거부하니 총장이 ‘수사 기록 두고 가’라고 해요. 기록 없으면 영장 못 칠 거라 여긴 거죠. 들은 척도 않고 기록 들고 부산에 내려와 ‘영장 기각되면 사표 내겠다’고 약속하고 영장을 청구했고, 전씨는 현직 국세청장으로 처음 구속돼 징역 3년 반을 선고받았죠.” Q : 국민의힘은 ‘한동훈’ 얘기만 나오면 언급을 피하는데요. A : “나라가 독재의 길목에 있어요. 지금은 반목할 때가 아니라 어깨 맞대고 길목을 지킬 때입니다. 현 정권은 항소 포기 정국에서 국민 저항이 견딜 만하다고 판단하면 이재명 대통령 공소를 취소할 겁니다. 항소 포기 1차 책임자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부터 사퇴시켜 수사받게 하고, 특검을 추진하며 함께 싸워야죠.” Q : 12·3 계엄 1년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사과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는데요. A : “중도는 없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는데, 중도는 실존합니다. 항소 포기 여론을 보면 반대가 48%인데, 국민의힘 지지율은 24%입니다.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도 민주당의 폭정에 반대하는 국민이 24% 된다는 얘깁니다. 이들이 중도인데 계엄에 반대하는 분들이죠. 이들을 대변해야 독재를 막고 수권정당이 될 수 있습니다.” Q : 내년 지방 선거에 출마할 계획은요? A : “민심 경청 행보 도중 만난 치킨집 사장님이 ‘치킨 2만7000원어치 팔아도 배달 앱에 1만원을 내야해 남는 건 1만7000원뿐’이라 한숨 쉬더군요. 수백 명을 만났지만 물가, 집세, 취직 걱정만 하지 지방선거 얘기하는 이는 없었어요. 지금 정치권이 할 일은 지방선거가 아니라 민생 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더중앙플러스-한동훈, 그는 어떤 사람인가 “야! 휴게소다”“또 들르게요?” 윤석열·한동훈 10시간 부산행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8516 “파렴치범 변호” 尹 후회할 때…거물 치는 ‘초짜’ 한동훈 등장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2651 “얼맙니까?” 술값 다 냈다…스폰서 물먹인 초임 한동훈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30811 “형, 딱 보니 되는 사건이야” 33세 검사 한동훈과 론스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57352 강찬호([email protected])
2025.11.25. 8:30
무당파나 귀가 얇은 사람들에게 정치 양극화 시대는 괴롭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자기 검열 상황에 수시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런 얘기 해도 될까’, 스스로 묻게 되는 순간 말이다. 알려진 대로 세운상가는 1960년대 후반 준공 때만 해도 전후 잿더미를 딛고 일어선 한국 모더니즘 건축의 상징과 같은 건물이었다. 1급 상권으로서 생명은 짧았다. 하지만 70~80년대 이곳의 기술자들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 얘기되는 품목들은 실로 다양했다. 잠수함·미사일부터 인공위성까지 제작할 수 있었다니. 과장치고도 너무 나갔다. 그만큼 저력이 있었다는 얘기다. 종묘 앞 세운지구 재개발 문제 정치 양극화 시대 정쟁으로 소비 갈등 당사자, 총리와 시장 만나야 종묘는 어떤가. 95년 팔만대장경·석굴암과 함께 한국의 첫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민족 자존심을 한껏 치켜세웠다. 중앙일보 옛 기사를 검색하면, 중국은 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협약에 가입해 만리장성 등 14건, 일본은 92년에 가입해 호류지(法隆寺) 등 5건이 지정됐는데 한국은 88년에 가입해 이제야 3건이 지정됐다면서도 기뻐하는 대목이 보인다. 귀하거나 의미 있는 두 건축물이 요즘 정쟁 대상으로 소비되는 상황은 순전히 정치권 탓이다. 지난달 말 서울시가 종묘 코앞 1만 평 넓이 세운4구역의 용적률 등을 늘려 고층 재개발의 길을 터주자 당장 국가유산청이 “깊은 유감”이라고 반응한 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치자. 이달 7일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허민 국가유산청장과 함께 종묘를 찾아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종묘를 지키겠다고 했고, 10일 김민석 국무총리 역시 종묘를 찾아 한강버스 문제까지 거론하며 오세훈 서울시를 압박했다. 빛나는 문화유산을 지키겠다는데 토 달 사람은 없다. 하지만 김 총리 등의 일사불란을 마냥 순수한 문제 제기로 봐줄 순수한 사람 또한 없다. 덕분에 민심은 갈라진다. 진영 결집이다. 와중에 세운상가 철거 문제를 다룬 건축가 유현준의 유튜브 에피소드(‘한국에서 건드려선 안되는 OO상가’)는 디지털 장롱에서 꺼내져 새롭게 소비되고 있다. ‘(박원순 시장 시절) 리모델링은 정말 하지 말았어야 할 일’ ‘모든 건축은 정치적’ ‘제자들이 버티고 있는데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을 부수기는 어려울 것’…. 이런 파격적인 내용 때문인지 2년 전 에피소드인데 148만 명이 보고 1300개의 댓글이 달렸다. 종묘 앞 세운지구 재개발 논란이 불거진 이후 붙은 댓글은 23일 오후까지 69개. 상가 철거 찬성 입장이 50개, 반대가 6개, 이도 저도 아닌 반응이 13개쯤 된다. 유 건축가의 요즘 입장이 궁금해 물었더니 “정치 이슈는 일절 노코멘트”라는 답을 전해 왔다. 싸움은 대개 쌍방 과실인 법. 서울시의 처신에도 아쉬움은 있다. 세운4구역 용적률 상향 등을 두고 국가유산청과 협의를 이어온 것까지는 좋았다. 상대의 양보가 없다고 지난달 말 재개발 계획을 기습 발표했다. 정부의 즉각적인 흥분까지 내다봤을까. 소위 선거에선 ‘현직 프리미엄’이 있다는데, 오 시장 입장에선 갈등 확대가 반가울지 모르겠다. 고층 재개발이냐, 종묘의 무탈과 세운상가 존치냐. 갈림길에서 무당파는 괴롭다. 서울대 도시계획학과 김경민 교수는 요즘 열일 한다. 스스로 무소속을 자처하며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을 비판했지만, 앞서 10일 김 총리의 종묘 방문 때 동행했다. 최근 SBS 토크쇼(‘뉴스헌터스’)에 출연해 서울시 김병민 부시장에 맞서 세운4구역 재개발 계획의 문제점들을 인상 깊게 지적했다. 서울시가 4구역 용적률을 660%에서 1008%로 높인 건 특혜, 세운상가 철거 후 공원 조성 비용은 용적률 거래제를 법제화해 종묘 앞 용적률은 억제하는 대신 다른 지역에서 용적률을 늘려주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디테일은 사태 파악에 도움이 된다. 서울시(조남준 도시공간본부장) 측의 주장은 이런 거다. 용적률 거래제는 국토교통부 반응이 미온적인데다 설득해 법제화하더라도 몇 년 걸린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현재 7000억원가량인 시행사(SH)의 부담과 4구역 토지주들의 추가 비용과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갈등의 핵심인, 종묘 경관을 해치는 4구역 최고 높이(141.9m)에 대해 서울시는 며칠 새 ‘협의 가능’을 언급하고 있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하나마한 소리 같지만 정쟁화한 갈등은 정치로 푸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실망감을 안겨주는 미국 정치에서도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무슬림 뉴욕 시장 맘다니를 만났다. 우리 총리와 시장도 만나야 한다. 신준봉([email protected])
2025.11.25. 8:24
수험생 55만여 명의 인생행로에 큰 영향을 주는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지난 13일 끝났다. 그런데 올해 수능은 유독 씁쓸하다. 시험을 앞둔 교실 밖에서 챗GPT를 이용한 부정시험, 인공지능(AI) 커닝 논란이 잇따라 터졌다. AI가 인간의 사고를 대신하고, 학생들이 그 AI를 부정행위에 이용하는 현실을 보면서 의문을 갖게 된다. 수능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챗GPT 이용 부정시험·커닝 논란 문항풀이형 수능에 아직도 매몰 신뢰 회복하는 교육개혁 절실해 지금의 우리 교육 현실은 단순히 부정행위나 윤리의 문제만 심각한 것이 아니다. 수능은 이미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거대한 컨베이어벨트가 된 지 오래다. 초등학교의 사교육 경쟁은 중학교 내신으로, 중등 단계의 서열은 다시 수능과 대학 서열로 이어진다. 서울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느냐, 부모의 소득이 얼마냐가 점수로 환산되는 나라다. 이것이 지금의 대한민국 교육 구조다. 문제의 본질은 시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유일한 관문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AI가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정답을 찾는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인간에게 정답 찾기를 훈련한다. AI가 이미 대체한 영역을 뒤늦게 답습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AI가 만든 답을 들키지 않는 방법을 배우고, 교사는 그것을 잡아내기 위한 탐지 기술을 동원한다. 무의미한 창과 방패의 경쟁이다. 이런 문항 풀이형 수능에 매몰된 사회는 결국 AI에게 가장 먼저 대체될 인력을 양산할 뿐이다. 수능의 공정성 논란과 챗GPT 부정시험 사태는 교육의 위기가 아니라 시스템의 파산을 보여준다. 낡은 시스템이 인재 양성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잃은 채 불평등과 무의미한 경쟁만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교육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정답만 찾는 인재로는 AI 시대에 생존 경쟁을 버티기 어렵다. 그런 인재만 길러내는 국가는 결국 경쟁력을 상실한 채 도태될 것이다. 교육은 더 이상 어느 정부 부처만의 행정개혁이 아니라 사회개혁의 초석이 돼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이 불신의 고리를 끊을 것인가. 교육개혁의 본질은 제도나 시험 형식이 아니라 신뢰 회복이다. 부모는 학교를 믿지 못하고, 대학은 학생부를 신뢰하지 않으며, 학생은 제도를 믿지 않는다. 이런 총체적 불신이 “그래도 수능이 가장 공정하다”는 낡은 믿음을 떠받치고 있다. 그러나 그 공정은 불평등의 제도화일뿐이다. 공정의 이름으로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평등의 이름으로 경쟁을 강화하는 이 모순된 시스템을 바로잡는 것이 개혁의 핵심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회 전체의 대타협이다. 이를 위해 일선 교육감이 객관적 조정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교육감이 대학 입시를 명령할 권한은 없다. 그러나 바로 그 권한 없음 때문에 교육감이 가장 객관적인 조정자가 될 수 있다. 정부와 대학은 개혁의 대상이자 이해당사자이지만, 교육감은 수천 개 학교와 수험생을 책임지는 공교육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심 이해당사자들인 주요 대학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공적 플랫폼 역할을 주도할 최적임자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서울형 공교육 신뢰 인증제’ 같은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 체계를 최초의 선도모델로 제시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학부모·교사·대학·산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서울교육개혁 10년 사회협약’을 끌어내면 좋겠다. 서울에서 시작된 이런 신뢰 회복 모델이 전국 표준이 될 때 비로소 수능이 바뀌고 사회의 불평등 구조도 변할 수 있다. 정치권도 이 문제를 5년짜리 정책이 아닌 국가적 지속 과제로 법제화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개혁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교육은 정치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미래를 설계하는 상수이기 때문이다. 수능은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이 얼마나 뿌리 깊고 견고한지 비춰주는 거울이다. 이제는 그 거울 속 낡은 얼굴을 바꿔야 한다. AI 부정시험 시대에 정답만을 달달 암기하는 시험은 더 이상 미래 인재 양성에 적합하지 않다. 교육개혁은 곧 사회개혁의 시작이며, 수능 시험 개혁은 대한민국이 불평등의 굴레를 끊어내는 첫 단추다. 교육개혁을 더는 미룰 수 없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현철 서울교육자치시민회의 준비모임 대표
2025.11.25. 8:20
“인공지능(AI)이 민주주의를 수호한다.” 독일 방위산업(방산) 벤처 헬징(Helsing)의 사훈이다. 독일 뮌헨에 소재한 이 기업은 첨단 드론을 만들어 우크라이나에 한 달에 1000대 정도 수출하고 있다. HX-2 전투 드론의 경우 사거리가 100㎞ 정도이고 최대 시속은 220㎞다. AI를 탑재한 무게는 12㎏으로 탱크나 건물 파괴용 폭탄을 싣고 적진으로 들어가 정밀폭격이 가능하다. 미국 공백에 방위력 키우는 EU 방산 기업 시총 늘고 호황 구가 회원국 중심 시장 분절 극복해야 지난 6월에는 전투기 자율 조종에도 성공했다. 인간 조종사의 평생 비행시간은 보통 5000시간이다. 반면 AI는 3일 만에 수백만 시간의 조종 기술을 배워 스웨덴 전투기 ‘그리펜(Gripen E)’을 조종할 수 있었다. 자율주행차처럼 조종사는 부조종석에 앉아 백업 기능만 수행했다. 헬징은 5년 안에 AI가 조종하는 전투기를 현장에 배치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헬징의 기업 가치는 창립 4년 만에 120억 유로(약 20조원)로 급증했다. 이처럼 유럽의 여러 방산기업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 다만 국가별로 시장이 분절화했고, 재정 투입 대비 경제 성장 효과는 작다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방산업체의 호황은 주가에 그대로 반영된다. 독일의 최대 방산업체 라인메탈(Rheinmetall)은 포탄·탄약과 장갑차 등을 생산한다. 독일 각지에 6개 공장이 있고, 헝가리와 스페인 등 해외에도 5개 공장이 풀가동 중이다. 또 우크라이나에도 신규 공장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기 전까지 이 업체는 무기 수요가 많지 않아 생산 시설을 대폭 줄였으나 전쟁 발발 후 설비를 크게 증설했다. 올 초 라인메탈의 시가총액은 270억 유로(약 45조원)에 불과했지만 이달 초 800억 유로(약 136조원)로 3배 가까이 폭증했다. 미사일과 레이더 등을 생산하는 프랑스의 탈레스(Thales)도 이 기간에 시가총액이 2배 넘게 증가했다. 유럽, 국방비 GDP 3.5%까지 늘리기로 유럽 각국이 국방비를 증액하면서 영국을 포함한 유럽연합(EU) 27개국의 무기 구입액이 올해 처음으로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올해 유럽은 1800억 달러(약 265조원)를 무기 구입에 지출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2021년보다 두 배 더 늘어난 액수다. 올해 미국의 무기 구입비는 1700억 달러(약 250조원)가 조금 넘을 것으로 보이고, 4년 전과 비교해 소폭 늘어났을 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종전 시기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지난 6월 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서 유럽 각국은 2035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현재의 2%에서 3.5%까지 증액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더해 국방 관련 인프라에 1.5%를 쓸 예정이다. 이 전쟁이 멈춘다 해도 유럽은 계속해서 국방비를 확대 지출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안전을 보장해왔던 미국이 점차 역할을 줄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유럽은 자주국방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유럽 방산업체에 호재만 있는 게 아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여전하다. 유럽 각국이 국방비를 증액해도 방산시장은 기본적으로 회원국 중심으로 분절돼 있다. 범유럽 시장으로 통합돼있지 않다는 의미다. 이는 유럽 차원에서 전력을 보강해 중복 투자를 줄이고 시장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어렵게 한다. 그러나 안보 상황은 이런 취약성을 파고 든다. 만일 러시아가 유럽을 다시 침략한다면 유럽의 NATO 회원국은 5조의 ‘집단방위조항’에 따라 함께 군사 개입해야 한다. 범유럽 차원의 방위산업 강화가 중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하나의 방산시장이 있어야 규모의 경제도 가능하고 무기 가격도 낮아지며 경쟁도 더 치열해진다. EU 차원에서 하나의 방산시장 형성 노력은 이제 첫걸음을 뗐다. 행정부 역할을 하는 EU 집행위원회는 1500억 유로(약 254조원)의 유럽 방위력 증강 기금을 조성 중이다. 집행위원회가 국제자금시장에서 최우량 신용등급을 기반으로 30년 만기 단일 유로채권을 발행한다. 최소 2개 이상의 EU 회원국이 무기를 공동 구매할 경우 이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회원국 공동의 방공망 구축과 미사일 구입, 사이버전, 드론전과 반드론전 등에 지원된다. 공동자금을 사용해 공동의 방위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EU는 2020년 코로나19 때에 8000억 유로(약 1356조원)의 단일채권을 발행했다. 국방비 증액을 위해 이번에도 단일채권을 발행하기 때문에 유럽 차원의 재정통합이 진전되는 효과도 생긴다. 공동기금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방산벤처에 특히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방비 지출의 승수효과, 1 밑돌아 방위산업의 호황은 경제 성장에 기여하지만 단기적 효과는 크지 않다. 국방비 지출의 승수효과는 평균 1을 밑돈다. 1유로를 투자하면 얻는 게 1유로가 안 돼 단기 경기부양책으로는 적절치 않다. 이 때문에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방비 지출이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을 촉진하려면 선(先) 현금을 지출하고 생산성을 제고하는 연구·개발(R&D)에 집중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중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것은 국방비 증액보다 교통 인프라와 에너지 전환, 교육 투자가 더 높다. 런던정경대(LSE)의 파울로 수리코((Paolo Surico) 교수는 방위비 지출이 R&D에 집중 투자될 경우 GDP 1%에 해당하는 추가 국방비 증액이 장기적으로 2% 경제 성장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2024년 기준으로 EU 27개국은 국방 R&D에 GDP의 0.04%를 지출하지만 미국은 0.62%를 지출해 격차가 크다. 방위산업의 경제 성장 기여를 높이는 것은 국방비 지출의 지속성을 확보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EU의 방위산업은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국방비 증액이 가져다 준 특수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시장 통합과 R&D 확대라는 본질적 과제를 숙고해야 한다.
2025.11.25. 8:19
날씨가 꽤 차가워졌다. 얼마 전 한라산에는 눈이 내렸다. 절기가 입동을 지나 소설을 거쳐서 대설을 향해가고 있으니 첫눈 소식이 낯설지는 않다. 제주의 농가에서는 노지의 감귤을 따는 일에 바쁘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귤밭이 몇 군데 있다. 귤을 딴 후 귤 창고에서 귤을 가려내는, 선과(選果)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일본의 한 시인은 “귤을 깐다/ 손톱 끝이 노란색/ 겨울나기여”라는 하이쿠를 썼는데, 지금의 때야말로 이 하이쿠의 내용에 가장 크게 공감할 때가 아닐까 한다. 내가 아는 지인은 귤을 하도 많이 까먹어서 손바닥이며 손가락이며 손톱에 감귤의 물이 다 들었다며 내게 손을 들어 보여줘서 서로 크게 웃은 적이 있었다. 올해에도 내 집 현관 앞에는 한 상자의 귤이 놓여 있었다. 아내의 친척 집에서 갓 딴 귤을 놓고 갔다. 한동안 귤을 까서 먹느라 내 손도 노란색으로 감귤의 물이 들 것이다. 산승 거처에 걸린 편액 문구 얼음장의 시간 다가오지만 얼싸안는 온기는 겨울의 선물 멀구슬나무에서 떨어진 나뭇잎을 빗자루로 쓸거나 저만치에 있는 감나무의 꼭대기에 빨갛게 익은 감의 개수가 줄고 줄어 이제 단 몇 개만 남아 있는 것을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시간은 조용하고 평화롭다. 아마도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짧게 수일 동안만 즐길 수 있는 고요한 여유가 아닐까 한다. 어제는 석류나무에서 껍질이 쩍 갈라진 석류를 하나 거두어들였다. 얻어다 심은 석류나무가 매달고 있던 최초의 석류였다. 바라보고 있노라니 한 알의 석류는 내게 가을의 끝을 알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서 보는 영상이 있다. 오지의 겨울 풍경과 산에 사는 사람들의 겨울나기와 겨울 산사의 일과를 기록한 영상이 그것이다. 나는 눈에 덮인 산등성이가 끝없이 이어지는 장면을 넋 놓고 본다. 눈이 종일 푹푹 내리는 산골의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의 일상을 또 넋 놓고 본다. 산골의 집이 오들오들 떨고 있다. 모든 것이 고드름처럼 얼었는데도 산골에 사는 사람은 얼음을 깨며 겨울에는 일 않고 논다고 말한다. 산골 사람은 눈길을 걸어가려고 설피를 만들고, 콩으로 메주를 쑤고, 겨울 동안에 땔 장작을 팬다. 산골 사람은 서늘한 곳에 감자와 무 등을 보관한다. 그리고 나는 겨울 산사의 새벽 예불 장면을 보기도 한다. 겨울에 절에서는 무엇으로 공양을 하시나 보기도 한다. 꽤 많은 영상을 보았고 개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한 스님이 거처하는 산방(山房)의 부엌 한쪽에 걸려있던 문장이었다. 나무판자에 새겨서 쓴 양관(良寬) 스님의 시구였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영상을 재빠르게 찍은 것을 살펴보니 시구는 이러했다. “자루엔 쌀 석 되/ 화롯가엔 땔나무 한 단/ 밤비 부슬부슬 내리는 초막에서/ 두 다리 한가로이 뻗고 있네” 산골 산방에 거처하는 스님은 처마 밑에 ‘정검(靜儉)’이라고 쓴 편액도 걸었는데, 고요하고도 단순하게 그리고 소박하게 살자는 뜻이니 이 편액도 양관 스님의 시구와 대동소이한 것이었다. 산방의 스님도 겨울에 쓸 땔나무를 장만해 한가득 쌓아두었는데 특이하게도 한쪽에 따로 장작을 쌓아둔 것이 눈에 띄었고, 그것들은 스님이 세연(世緣)이 다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자신을 다비할 장작들이라고 했다. “죽은 사람이 뒷사람에게 빚을 져선 안 되지요”라고도 했다. 산방 스님의 영상을 본 후로 정검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번 겨울에 비록 온전히 고요하고도 단순하게 그리고 소박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은 그것과 엇비슷하게 혹은 때때로 그것처럼 살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가만히 되짚어보면 산에 사는 사람들의 겨울 살림이 공통적으로 그렇기도 했다. 시인 유자효 선생이 최근에 펴낸 시집에는 ‘겨울 행(行)’이라는 제목의 시가 실려 있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본격적인 겨울을 앞두고 또 한 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선생은 이렇게 적었다. “겨울을 사랑한다/ 살을 에는 고통/ 얼음장 같은 외면의 진실을/ 그 겨울의 포옹을 사랑한다/ 사람을 끌어모으는 냉기/ 그래서 스스로 찾아와/ 얼싸안는 힘/ 늙음을 사랑하듯이/ 처음 보는 세상, 시간들/ 끝없는 미완(未完)에/ 가슴 설렘을 사랑한다” 이 시에서 노래한 것처럼 겨울은 얼음장과 냉기의 시간이다. 인생에 견주면 겨울의 시간은 늙음의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살갗을 에는 듯한 겨울의 고통은 그리운 사람을 찾게 하고, 얼싸안도록 하고, 늙어 가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나는 “얼싸안는 힘”이라는 시구가 특히 마음에 닿았고, 이것이야말로 겨울이 주는 따뜻한 선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떠나가는 가을의 뒷모습을 흐릿하게 볼 수 있지만, 겨울은 눈보라와 얼음덩어리를 싣고서 저기서 오고 있다. 겨울의 일과 겨울을 살아갈 사람이 지녀야 할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문태준 시인
2025.11.25. 8:14
# 어느 가을, 파주 비무장지대(DMZ) 인근 들판에서 열린 대형 락 페스티벌. “전쟁의 땅에서 평화를 노래하자”는 슬로건 아래 모인 수천 명의 청년이 빼곡한 텐트 사이에서 밤새 축제를 즐긴다. 앰프엔 마지막 곡이 흐르고 어느새 동이 튼다. 그때 하늘에서 드론이 뜨고 동시에 장사정포가 날아든다. 서둘러 축제장을 빠져나가려던 차량 행렬로 자유로 진입로는 금세 꽉 막힌다. 이유를 몰라 경적이 울려 퍼지는 사이 멀리서 연기가 치솟고 총성이 들린다. 북한군으로 보이는 무장 인원이 몸을 낮춘 채 대전차로켓포를 멈춰있는 차량들을 향해 겨눈다. 이 가상의 장면은 마냥 낯설지는 않다.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 232번 도로와 노바 페스티벌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을 한반도의 지명과 도로로 바꿔봤더니 ‘머나먼 중동의 비극’쯤으로 소비됐던 사건이 바로 옆 동네 이야기로 다가온다. 닮은 건 이뿐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하늘엔 방공체계 ‘아이언돔’, 땅에는 펜스와 센서로 촘촘히 둘러친 ‘아이언월’이 있다는 믿음 위에 나라를 운영해 왔다. 장비를 믿고 경계 병력 상당수를 서안지구로 옮겼다. 그런 신화가 하마스에 의해 단 몇 시간 만에 무너졌다. 한국도 DMZ와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각종 감시장치를 깔고 이를 ‘과학화 경계시스템’이라 부른다. 병력 감축과 복무 기간 단축 논의에는 늘 “장비가 지켜준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마스와 북한의 관계가 그리 먼 것도 아니다. 무기와 전술 면에서 두 조직은 놀랄 만큼 유사하다. 합참도 당시 이를 언급했다. ▶휴일 새벽 기습공격 ▶대규모 로켓포 발사로 방공체계 혼란 야기 ▶드론 공격으로 각종 감시·통신·사격통제 체계 파괴 후 침투 ▶패러글라이더를 이용한 침투작전 등 하마스가 구사한 수법은 북한이 평소 강조한 전술교리다. 이스라엘의 안보 신화가 깨지는 과정을 북한이 선행학습의 교범으로 삼을 것이란 예상은 자연스럽다. 하마스가 스스로를 ‘포위된 약자’로 포장해 온 선전술 역시 북한이 다듬어온 ‘피포위 의식’과 다르지 않다. 수십 년간 군사력을 축적하고 공격 의지를 갈고 닦았으면서도 약자 프레임으로 상대의 내부 갈등을 야기하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하마스와 북한은 또 수뇌부를 지키기 위해 민간인 희생을 거리끼지 않는다. 하마스는 요격체계 대신 민간인을 방패로 쓰는 일종의 ‘민간인돔’을 세우고 지휘부를 땅굴에 숨겨놨다. 김정은 정권도 유사시 주민을 내팽개치고 도주할 수 있도록 지하 갱도를 촘촘히 팠다. 232번 도로의 악몽을 한반도에 대입해보는 건 섬뜩하지만 필요한 경고일 수 있다. 하마스의 서사가 진화를 거듭하는 북한 정권의 생존법과 투쟁법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다. 이근평([email protected])
2025.11.25. 8:12
최근 금융시장이 금리 변동성 심화, 인플레이션 우려, 자산 간 상관관계 약화 등 복합적 위험에 노출되면서 전통적 투자 방식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워졌다. 이 과정에서 민간이 직접 기업에 자금을 융통하는 ‘사모대출(private credit)’이 회복력과 매력적인 수익을 동시에 제공하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기관투자자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투자되고 있지만, 북미 등 주요 시장에서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15%씩 성장하며 주류 투자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성장 배경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은행 대출이 위축된 자리를 사모대출이 채우며 기업과 프로젝트는 새로운 자금 조달 창구를 얻었고, 투자자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이라는 이점을 누린다. 금융 구조가 단순해지면서 비용이 낮아졌고, 변동금리 비중이 높아 고금리 상황에서 특히 경쟁력을 갖는다. 최근 변동성에 흔들리는 시장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 점이 이 상품군의 견고함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보다 중요한 것은 운영 원칙이다. 지속가능한 성과를 위한 핵심 역량은 세 가지다. 첫째, 기업의 자금 수요가 생애주기 전체에 걸쳐 다양하게 변화함을 이해하고 이에 맞춰 유연한 금융 전략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초기 조달부터 위기 대응, 구조조정, 장기 안정화까지 단계별로 상황에 맞는 금융상품과 솔루션을 적절히 조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둘째, 경험 기반의 보수적 리스크 관리다. 담보비율, 현금흐름 점검, 금리 헤지, 적극적 자산관리가 장기 성과를 좌우한다. 단순 만기 연장이 아닌 상황 진단과 적시 대응으로 투자자 신뢰를 지켜야 한다. 셋째, 글로벌 네트워크와 심층 분석 능력이 중요하다. 정보가 제한된 시장에서 현지 특성과 산업별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회를 선별하고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 대표적인 사모대출 상품으로는 ‘구조화 크레딧(structured credit)’이 있다. 이는 여러 대출이나 채권을 묶어 신용 투자 상품으로 구성함으로써 위험 분산과 수익 창출을 동시에 노리는 전략이다. 또한 변동성이 큰 시장 환경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스페셜 시추에이션(special situations)’ 전략이나, 비교적 안정적인 담보인 ‘부동산 대출(real estate lending)’도 주요 수단이다. 사모대출은 이제 전통 채권의 대체재를 넘어 시장 변동성에 대응하는 전략적 도구로 자리 잡았다. 장기 성과는 자산 통찰력, 투자 철학, 리스크 관리, 그리고 글로벌 시각에서 갈린다. 결국 명확한 원칙과 기준으로 운용하는 투자자만이 금융 불확실성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성과를 거둘 것이다. 데이비드 맨로 베네핏스트리트파트너스 CEO·글로벌 COO
2025.11.25. 8:10
아폴로 11호에 탑승한 우주 비행사는 3명이다. 한 명은 인류 최초로 달을 밟았다는 그 유명한 닐 암스트롱. 다른 한 명은 버즈 올드린이다. 영화 ‘토이 스토리’의 실제 모델이다. 나머지 한명은 마이클 콜린스다. 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은 3명 중 가장 덜 알려진 콜린스에 조명을 비췄다. 그는 달 탐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대중에겐 잊힌 이름이다. 동료들이 달에 발자국을 남기는 동안 그는 달 궤도에서 사령선을 조정했다. 올드린이 사령선을 조정할 능력이 안 돼 콜린스가 남았다고 한다. 그에게 붙은 수식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외로운 인물’이다. 이 작품에서 지구와 교신이 끊긴 뒤 나타나는 콜린스의 모습은 ‘절대적 고독’의 순간을 보여준다. 외로움에 울부짖기라도 할법한데 콜린스는 평온하다. “내 발자국이 남겨지지 않아도 괜찮아. 달에 가자. 어두운 뒷모습은 내가 기억할 테니.” 지구로 돌아온 뒤 콜린스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다. 암스트롱은 과도한 관심에 부담스러워하고 올드린은 반대로 자신의 성과가 묻힌 게 불만이다. 가장 외로웠던 콜린스가 가장 평온한 일상을 이어간다. ‘관종’이 넘쳐나는 세상이어서 그런지 이런 콜린스의 모습이 신선하다. 이 작품은 1인극이다. 초고는 5인극이었는데 콜린스를 더 잘 보여주기 위해 형식을 바꿨다는 게 제작진 설명.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도재학’으로 이름을 알린 정문성은 콜린스를 비롯해 암스트롱·올드린 등을 홀로 연기하며 ‘어쩌면 해피엔딩’ 등을 통해 쌓은 내공을 여실히 보여줬다. 유준상·고훈정·고상호도 캐스팅됐다. 공연은 내년 2월 8일까지 충무아트센터에서. 하남현([email protected])
2025.11.25. 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