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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환골탈퇴’를 할 수 없는 이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연초에는 지난해와는 달라진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겠다는 각오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많이 올라온다. “올해부터는 지금까지의 게을렀던 모습에서 ‘환골탈퇴’해 부지런한 사람이 돼 보겠다” “음주와 폭식, 야식으로 망가진 몸뚱이에서 ‘환골탈퇴’해 ‘몸짱’으로 거듭나겠다” 등과 같은 글들이 눈에 띈다.   ‘회원 가입’과 ‘탈퇴’에 익숙한 시대적 상황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일을 일컬어 ‘환골탈퇴’라고 표현하는 이가 많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라고 해야 바르다.   ‘환골탈태’의 유래를 잘 알지 못해 많은 이가 이처럼 잘못 쓰곤 하는데, ‘환골탈태’는 중국 남송의 승려 혜홍(惠洪)의 ‘냉재야화(冷齋夜話)’에서 나온 말이다. ‘환골’은 도가(道家)에서 인간이 속골(俗骨)을 선골(仙骨)로 바꾸어 몸에 털이 난다는 뜻으로, 신선이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탈태’는 뼈대를 바꾸어 끼고 태를 바꾸어 쓴다는 뜻으로, 고인의 시문 형식을 바꿔 그 짜임새와 수법이 먼저 것보다 잘되게 함을 이르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 시인의 시상(詩想)이 마치 어머니의 태내에 아기가 있는 것처럼 그 태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시적 경지로 승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환골’과 ‘탈태’ 모두 뼈대를 바꾸고, 태 역시도 바꾼다는 뜻이니 이를 합친 ‘환골탈태’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환골탈태’는 부정적 의미로는 쓸 수 없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뀐다는 뜻으로만 사용할 수 있으니 주의해 써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부정적 의미 회원 가입 폭식 야식

2026.01.11. 18:00

[K타운 맛따라기] 장인이 끓인 서민 한끼, 라멘

한국인에게 사나이의 눈물을 자아내는 신라면이 있다면, 일본인에게는 ‘면’이라는 음식의 깊이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라멘이 있다. 단순한 국수 한 그릇 같지만, 라멘은 일본 음식 문화의 집요함과 장인정신이 농축된 결과물이다.   라멘은 엄밀히 말해 일본 고유의 음식이 아니다. 19세기 말, 중국에서 건너온 밀가루 면과 국물이 요코하마·하카타 같은 항구 도시를 통해 퍼지면서 일본식으로 재해석되었다. 이후 지역별로 육수와 간, 면발을 달리하며 발전했고, 전후 일본의 대중식 문화 속에서 ‘서민의 한 끼’이자 ‘장인의 음식’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갖게 됐다.   대부분의 일본 라멘에는 돼지고기 차슈가 올라간다. 그래서 돼지고기 특유의 향을 이겨내지 못하면 라멘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기 어렵다. 특히 돈코츠 라멘은 돼지뼈를 장시간 고아낸 육수가 핵심인데, 이 국물은 일본 열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산의 잘 끓인 돼지국밥 육수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문화는 달라도 혀가 기억하는 감각은 비슷하다.   라멘은 육수와 간에 따라 성격이 뚜렷하게 갈린다. 진하고 묵직한 돼지 육수의 돈코츠 라멘, 일본 된장을 더해 구수하고 깊은 맛을 낸 미소 라멘, 간장 베이스의 닭·해물 육수로 맑고 정갈한 쇼유 라멘, 소금으로 간을 해 담백함을 살린 시오 라멘까지, 한 그릇 안에 지역성과 철학이 담긴다.   LA 한인타운에서 최고의 라멘집을 하나 꼽으라면 웨스턴과 7가 인근의 이키라멘을 빼놓기 어렵다. 유명 일식집 매니저 출신의 인도네시아계 중국인이 운영하는 이곳에서 특히 인상적인 메뉴는 간장 베이스의 쇼유 라멘이다. 국물은 깔끔하고, 차슈에서는 돼지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차슈를 꺼리는 일행에게는 매운 비건 미소 라멘을 권할 수 있는데, 고기 대신 두부가 올라가 단백질 식감까지 살렸다. 유자 향이 은은한 시오 라멘도 신선하다. 저녁 시간에는 사케와 곁들일 수 있는 이자카야 메뉴와 오마카세까지 즐길 수 있어, 손님 구성도 백인·히스패닉·아시아계가 자연스럽게 섞인다. LA 본점을 중심으로 웨스트 LA와 할리우드까지 지점을 둔 이유가 분명하다.   8가 옥스포드 센터의 슬러핑 라멘은 한인타운 라멘 지형도를 바꾼 집이다. 한인타운 최초의 본격 돈코츠 라멘 전문점으로, 짙고 진한 국물을 선호한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다. 낮은 식탁 대신 높은 공용 테이블과 바 스타일 좌석은 ‘후다닥 먹고 일어나는’ 라멘 문화에 충실하다. 쇼유 라멘은 따로 없지만, 간장 베이스의 베지 라멘은 채소가 산처럼 올라와 만족도가 높다. 동네 히스패닉 주민들도 부담 없이 드나드는, 말 그대로 ‘동네 편한 맛집’이 됐다.   채프맨 플라자에는 실버레이크에서 시작해 신화를 쓴 실버레이크 라멘의 가맹점이 성업 중이다. 주력은 역시 진한 돈코츠 라멘이다. 파킹 공간도 변변치 않던 예술가 동네 실버레이크에서 출발해, 맛 하나로 줄을 세우더니 지금은 30여 개가 넘는 지점을 둔 브랜드로 성장했다. 채프맨 플라자점 역시 한인 손님보다 외국인들에게 더 유명하다. 오래 공사를 거쳐 문을 연 공간은 이제 타운의 또 다른 명소가 됐다.   웨스턴 6가 마당몰 2층의 코판 이자카야는 라멘과 일식 전 메뉴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모두푸드는 코판 라멘, 영동순두부 등을 포함해 40여 개 매장을 보유한 한인 외식업계의 강자다. 가부키 출신 경영진들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는 LA 일식 시장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다.   윌셔와 알렉산드리아 코너, 옛 산누들 자리에 새로 문을 연 아카토라 라멘은 돼지 육수 중심의 흐름에서 한발 비켜 서 있다. 닭과 해물 육수를 사용한 쇼유·시오 라멘, 홍합 라멘이 주력이다. 계란밥, 차슈 덮밥, 명란 덮밥 등 곁들임 메뉴도 다양해 다시 찾고 싶게 만든다.   한때 해장 라멘으로 이름을 날렸던 6가와 카탈리나 인근의 텐라멘은 ‘오빠 라면’으로 간판을 바꾸며 한국식 라면집으로 변신했다. 투나 스팸 김치 라면, 스테이크 앤 에그 라면 등 이른바 ‘혼종 라면’ 메뉴들은 한인타운이라는 공간이 가진 유연함을 상징한다.   LA 한인타운의 라멘은 문화가 섞이고 변주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풍경이다. 돼지국밥과 닮은 국물에서 공감을 느끼고, 비건 라멘에서 시대의 변화를 읽으며, 한국식 라면으로 재해석된 그릇에서 타운의 정체성을 본다. 한 그릇의 라멘은, 오늘도 LA 한인타운이 얼마나 다층적인 공간인지 증명하고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장인 서민 한인타운 라멘 돈코츠 라멘 미소 라멘

2026.01.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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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올해 삶의 안전 운행을 위하여

태풍이 지나고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펼쳐진 주말에 다시 사이클을 타러 나갔다. 겨울이라고 하지만 남가주 날씨는 한국의 가을처럼 화창하다.     이십여 킬로가 되는 길 내내 페달을 힘껏 밟고 달렸더니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는다. 궂은 날씨였던 크리스마스 연말 휴가 때에 받은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가는 듯하다. 돌아오는 길에 5번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교량에서 잠시 땀을 닦을 겸 휴식을 취했다.     남북 양방향으로 가는 열두 차선 모두 자동차로 가득 차 있다. 승용차에서 대형 트럭까지 형형색색의 차량들이 정신없이 달리고 있다. 저편 멀리 휘어져 가물가물한 고속도로로 빨려가듯 질주하고 있다. 다리 위에서 도로를 내려다보는 내 눈이 어지러웠고, 휙휙 거리며 지나는 차 소리에 살짝 겁도 났다.   바쁘게 움직이는 자동차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운전자는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해 운전대를 꼭 잡고 가속페달을 누르고 있을 것이다. 신호등이 없는 고속도로에서 일말의 멈춤도 없이, 모든 차선에서 마치 경쟁하듯이 차량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어디선가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최종 목적지로 운전해 갈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삶’이라는 소중한 차량을 매일 운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을 운행하고 내일을 찾아간다. 그러나 정말 삶의 목적지를 알고 가고 있을까.     나처럼 길치라면 잘못된 길로 들어가 당황 속에서 운전하는 경험이 여러 번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도전의 연속인데 삶의 운전이 단순할 수만 없다. 가끔은 과속으로 티켓도 받고, 크고 작은 교통사고도 접하게 된다.   젊은 시절 나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한 적이 있다. 원하는 대학을 선택하지 못해 좌절감에 짓눌렸다. 빙빙 돌고 돌아 마침내 내가 원하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었지만, 대학에서부터 최종 학위 과정을 마치는 데 십사 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어디 이것뿐만이랴. 주행 중에 규칙 위반으로 받는 속도위반 티켓과 같은 징계 통지가 인생이라는 운전에도 있다. 귀중한 시간을 허투루 보낸 일, 타인의 말을 쉽게 오해한 일, 진실을 왜곡한 일, 건강에 해로운 습관들을 버리지 못한 일들이다. 또는 격한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인 일도 징계 통지를 받을 만하다. 나의 잘못을 누가 직접 말해주지 않아도 자신은 알 수 있다.   한 해를 보냈다. 마지막은 항상 허전하다. 그러나 한 해의 끝이 새로운 해의 시작이라는 것이 감사하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두가 흔들리고 넘어져도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생의 모범 운전사는 흔들리고 넘어지더라도 운전대를 잡고 처음처럼 운전하는 것이 아닐까.     한해를 되돌아보니 먼길을 잘 운전해 왔다. 위험한 길도 있었지만 잘 버텨냈다. 스스로 장하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피곤도 했지만,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길을 보는 안목이 깊어지고, 조금은 성장한 기분이 든다.     내 심지를 굳게 세워보면 새해에는 실수도 줄어들 수 있을 것 같다. 새해에는 내 인생의 속도를 약간 줄이더라도 안전 운행을 하고 싶다. 이효종 / 수필가열린광장 안전 운행 안전 운행 모범 운전사 속도위반 티켓

2026.01.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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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단체장 신년 포부, 약속 지켜야

2026년 새해를 맞아 본지가 지난 1일부터 연재 중인 주요 한인 단체장들의 신년 인터뷰에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정과 포부가 담겨 있다. 로버트 안 LA한인회장을 비롯해 이현옥 LA 한인타운 시니어 & 커뮤니티 센터 회장, 빌 로빈슨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 의장, 이창엽 올림픽경찰서후원회(OBA) 회장, 송정호 한인타운청소년회관(KYCC) 관장 등 각계 단체 리더들이 밝힌 청사진은 하나같이 고무적이다.   공공 안전 강화, 환경 개선, 세대 통합, 치안 인프라 확충 등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과제들이다. 이러한 계획들이 현실이 된다면, 한인타운의 위상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베벌리힐스나 브렌트우드 같은 인근 부촌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명품 거주지로 거듭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특히 LA는 올해 북중미 월드컵을 기점으로 오는 2028년 하계 올림픽까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국제무대의 중심이 된다. 이 시기에 한인 사회의 내실을 다지겠다는 단체장들 다짐은 단순한 지역 사업을 넘어 한인 사회의 국제적 위상을 결정지을 중요한 약속이다.   하지만 이들의 말이 메아리에 그치지 않고 결과물로 증명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단체장이 화려한 수사로 임기를 시작했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광경을 숱하게 목격해 왔다. “하겠다”, “추진하겠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들은 매년 반복됐다. 그러나 그 결과를 체감한 경험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 비극적 사례가 바로 한미박물관 건립 사업이다. 지난 2013년 LA시로부터 금싸라기 땅을 사실상 무상으로 50년 장기 임대받으며 기대를 모았던 이 프로젝트는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사 중’이 아닌 ‘계획 중’이다.   디자인 변경에 따른 지연, 물가 상승에 따른 예산 부족 등 변명은 늘 화려했다. 하지만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할 장재민 이사장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게 프로젝트는 풀 한 포기 베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한인사회의 숙원 사업이 리더십의 부재와 무책임 속에 어떻게 고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선례다.   올해 포부를 밝힌 단체장들이 한미박물관처럼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이들이 내뱉은 공공 안전 심포지엄의 지속성, CCTV 설치를 통한 치안 강화, 세대 통합의 열린 공간 조성 등은 모두 막대한 실행력과 예산, 그리고 정치적 협상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과제들이다.   결국 이들의 공약(公約)이 빈껍데기인 공약(空約)으로 전락하지 않게 하는 힘은 한인 개개인의 ‘감시’에서 나온다. 리더들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때 가장 무서워 해야 할 대상은 시의원이나 시장이 아닌, 바로 자신들을 지켜보는 한인들이어야 한다.   이제 한인들은 구경꾼에 머물러선 안 된다. 단체장들이 밝힌 계획이 실제 예산에 반영되는지, 유관 기관과의 공조는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워치독(Watchdog)이 되어야 한다.   단체장들이 내뱉은 말은 한인 사회와의 엄중한 계약이다. 2026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이들이 약속한 ‘안전하고 품격 있는 한인타운’의 실체를 확인해야 한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리더에게는 엄중한 책임을 묻고, 실행하는 리더에게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건강한 비판 문화가 정착될 때 비로소 한인타운의 발전은 현실이 될 것이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단체장 신년 단체장들 다짐 한인 사회 신년 인터뷰

2026.01.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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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사나?

한국인이 먹는 식재료를 보면 비교적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고추나 마늘입니다. 한국인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식재료이기도 합니다. 한국 음식 중에는 쓴맛이 강한 경우도 있고, 썩은 맛인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민족이 먹기에는 부담스럽거나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식재료가 그 나라 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는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같이 식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인이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고 하는 것은 ‘고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이후입니다. 고추장이 만들어진 것도 일반적으로 18세기 이후로 보고 있습니다. 당연히 고추의 매운맛을 좋아한 지도 오래되지 않습니다. 붉은 김치나 고추장 비빔밥, 매운 떡볶이는 모두 후대에 발달한 음식입니다. 김치는 어원이 침채(沈菜)에서 왔다고 보는데, 물에 담그는 김치 즉 물김치가 기원이었을 겁니다. 김치, 김장을 담근다는 표현도 그래서 생겼습니다.     사실 고추라는 말은 어원이 고초(苦椒)에서 온 말로 보입니다. ‘고초당초(苦椒唐椒) 맵다지만’의 고초와 당초는 모두 후추를 의미하는 말에서 변한 것으로 봅니다. 후추는 호초(胡椒)에서 온 말입니다. 서역에서 들어온 매운맛을 더하는 향신료로 보아야 할 겁니다. 호(胡)는 주로 서역에서 들어왔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호떡이나 호주머니도 호(胡)로 보입니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한국인의 성향에 맞아서일까요? 널리 보급되었고, 지금은 한국인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한편 제사 음식에 고춧가루를 쓰지 않는 것은 제 생각에는 우리 전통의 식재료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상에게 바치는 음식에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합니다. 붉은색이 귀신을 쫓아서라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는데, 제사상에 홍동백서라고 하여 붉은 음식이 올라가는 것으로 봐서 꼭 맞는 이야기는 아닌 듯합니다.   한국인이 ‘마늘’을 좋아함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단군신화에도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웅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렇게 마늘은 우리 역사 최초의 식재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군신화에 나오는 마늘은 ‘달래’였을 것으로 보는 입장이 우세합니다. 우리나라에 마늘이 들어온 것은 그 이후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마늘이 한국을 대표하는 식재료가 된 것은 매운맛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 때문으로 보입니다. 생마늘을 고기와 함께 먹는 민족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요리에 마늘을 듬뿍 넣습니다.     단군신화에 나온 또 하나의 식재료 ‘쑥’은 우리 민족의 음식 중에서 빠질 수가 없습니다. 단군신화처럼 쑥만 먹는 경우는 적겠으나 우리의 대표 음식과 쑥은 잘 어울립니다. 우선 쑥은 떡과 잘 어울립니다. 쑥으로 만든 절편이나 송편 등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쑥은 국으로도 끓입니다. 도다리쑥국 등은 지금도 인기가 높습니다. 쑥은 차로 마시기도 하고, 칼국수 등에 쓰이기도 합니다. 쑥은 건강에 매우 좋은 음식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쑥은 아예 뜸의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쑥은 치유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식재료에는 자극적인 것도 많습니다. ‘씀바귀, 고들빼기’처럼 쓴 음식 재료도 있습니다. 쓴맛이 한국에서는 꼭 싫은 맛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 가지 맛이 강하면 덜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어에서 ‘달다’가 좋다는 의미도 되지만, 달아서 싫은 경우도 생깁니다. 그래서 한국어에서는 ‘달달하다’와 같이 첩형을 사용하면 좋은 맛이 됩니다. ‘짭짤, 쌉쌀’과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아니면 ‘-콤’을 붙여도 좋습니다. ‘달콤, 매콤, 새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맛의 느낌을 잘 보여줍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식재료는 우리 땅에서 나고 자라는 재료일 겁니다. 동물도, 식물도 우리 땅에서 나는 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먹었을 것이고, 우리 몸에 익숙해져 있을 겁니다. 심지어는 물도 그렇습니다. 낯선 지역에 가면 물갈이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물뿐이 아닙니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납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는 삶의 원리이자 지혜일 수 있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대표 음식 한국 음식 음식 재료

2026.01.11. 17:37

[사설] 북, 무인기 침투 주장…북에 끌려가지 말고 냉정한 대응을

━ 북한 의도 파악하고, 도발 명분 삼는 오판 막아야 ━ 대통령까지 나선 건 성급, 대응 수위도 조절해야 북한군이 지난 9일 북한 지역으로 침투한 무인기를 강제 추락시켰으며, 출발지는 한국이라고 주장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중대 주권침해 도발”로 규정하며 “대가에 대해 심중히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위협적 언사까지 늘어놓았다. 이에 대해 우리 군 당국은 해당 기종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며 “민간 영역에서의 무인기 운용 가능성”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도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지시했다. 대북 무인기는 윤석열 전 대통령 시절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기 위해 보낸 것으로 조사된 사실도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사건이 흘러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우리 안보 당국이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의도가 뭔지 파악하는 것이다. 북한 발표에 따르더라도 두 차례 ‘침투’가 있었는데 지난해 9월에는 가만히 있다가 왜 지금 공개하는지 의문이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일 남북관계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대남 도발을 위한 명분을 쌓기 위한 의도가 있다면 안보 당국은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이 이재명 정부의 의중을 떠보려는 전술을 펴고 나왔을 가능성도 열어 놓고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만일 민간 단체가 무인기를 북한 지역으로 날려보낸 것이 사실이라면 목적이 무엇이든 즉시 중단돼야 한다. 행여 북한을 자극해 엉뚱한 쪽으로 상황을 몰고 가는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까지 나서 “평화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 범죄”로 규정하며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지시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 건 성급한 측면이 있다.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나왔다고 해서 우리까지 똑같이 과도한 대응을 하면 안 된다. 사안의 경중에 맞게 합당한 수준에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 행여 김여정이 나서니 대통령까지 움직인다는 식의 잘못된 메시지를 북한에 주는 건 결코 득책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김여정이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삼자 정부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한 것이 ‘김여정 하명법’이란 반발을 일으켜 남남갈등이 일어난 사례도 있다. 군 당국은 우선적으로는 이 사건이 북한의 적대행위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북한 눈치보기가 돼선 곤란하다. 정부는 민간 단체가 무인기를 보낸 것인지 여부 등 진상을 파악하되 내밀하고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이 사건이 남북대화 추진에 악재가 될까 봐 북에 끌려가서도 안 되고, 정부의 의도와 달리 그렇게 비칠 빌미를 줘서도 안 된다. 김여정은 큰 일이 난 것처럼 엄포를 놨지만 상대가 흥분할수록 정부와 안보 당국은 단단히 중심을 잡고 냉철하게 대응해야 한다.

2026.01.11.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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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여당 새 원내대표, 공천 의혹 규명이 위기 극복 첫걸음이다

━ 공천 비리 위기 속 선출된 한병도 원내대표 ━ 특검 불사 리더십 보이고 여야 대치 풀길 기대 더불어민주당 새 원내대표에 한병도 의원이 어제(11일) 선출됐다. 한 신임 원내대표는 공천 헌금 의혹으로 사퇴한 김병기 전 원내대표의 남은 임기 4개월간 민주당의 야전사령관을 맡는다. 임기는 짧지만 과제는 막중하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한 여당의 신뢰를 회복하고, 6·3 지방선거 승리를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의 원인이 된 김 전 원내대표와 강선우 의원의 공천 비리 의혹을 규명하는 것이 새 원내대표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어물쩍 넘겼다가는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충격적인 의혹인데도 민주당 지도부는 ‘꼬리자르기’로 일관하는 듯한 안일함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공천 비리 의혹에 임하는 자세는 한 원내대표가 민주당의 개혁 추진과 지방선거 승리에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를 가늠할 척도가 될 전망이다. 한 원내대표는 “일련의 혼란을 신속하게 수습하고 내란 종식, 검찰 개혁, 사법 개혁, 민생 개선에 나서겠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어제 민주당에서는 김 전 원내대표의 탈당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기자간담회에서 “애당의 길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보시길 요청한다”고 했다. 새 원내대표 체제 출범에 맞춰 ‘애당(愛黨)’이란 명목으로 민주당의 시스템적 오류를 덮으려 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앞서 정청래 대표 등 당 지도부가 “휴먼 에러” “개별 인사의 일탈” 등으로 규정한 것도 진상 규명 의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제 새로 뽑힌 민주당 최고위원 3명 중 친정청래계가 2명(이성윤·문정복 의원)이어서 정 대표의 입장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한 원내대표는 정청래 당대표와 원팀을 이뤄 한목소리를 내면서도 새로운 당 2인자로서의 소신을 보여줘야 한다. 임기응변식 회피보다 근원적인 처방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선거 과정에서 거론된 공천 헌금 전수조사 등의 조치도 불사할 수 있는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면 민주당에 실망한 여론을 반전시키기가 쉽지 않다. 공천 헌금 특검에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 어제 저녁 입국해 경찰 조사를 받은 김경 시의원에 대해 출국금지가 이뤄지지 않았던 사실은 공분을 일으킬 만한 수사기관의 실책이 분명하다. 권력 실세가 연루된 공천 헌금 의혹, 경찰 수사 무마 청탁 의혹, 봐주기 수사 의혹까지 특검이 불가피한 요건이 하나둘이 아니다. 야권의 특검 주장을 정치 공세로만 치부하면 여야의 극한 대치를 벗어나기 어렵다. 여기에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2차 종합특검법 등 정면 충돌이 예고돼 있다. 어느 때보다 여당 원내대표의 지혜가 필요한 상황이다. 꽉 막힌 여야 대치를 풀고 개혁 입법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자당 의혹에 더 냉철한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2026.01.11.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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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오만의 정치, 윤리의 정치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정치인의 태도로도 결정된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전 원내대표와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악행(惡行)은 한국 정치의 치부를 드러냈다. 배우자, 아들, 며느리, 손주까지 등장하는 갑질과 사익 추구의 막장극은 범부(凡夫)의 순진한 상상을 뛰어넘는다. 오만한 권력이 악취를 뿜고, 현기(眩氣)를 일으키고 있다. 김병기·이혜훈 막장극…정치 오염 정치의 출발은 윤리임을 망각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은 달랐다 거취 결단해 윤리정치 회복해야 김병기는 보좌관에게 국정원 직원인 장남의 업무를 돕고 차남의 예비군 훈련을 연기하라고 지시했다. 며느리와 손주의 공항 의전까지 챙기게 했다. 보좌관을 ‘가신(家臣)’으로 부려먹었다. 장남을 국내 1위 가상자산 거래소에 입사시키려다 거절당하자 경쟁 업체에 취업시켰다. 이후 보좌진에게 “문을 닫게 해야 한다”며 1위 업체를 공격하는 질의서를 작성하게 했다. 두 업체 모두 김병기가 속한 국회 정무위원회 피감기관이었다. 헌법기관에 주어진 공적 권한을 사적 이익 추구와 보복을 위해 휘두른 명백한 직권 남용이다. 김병기는 항의하는 보좌진 6명을 단칼에 잘랐고, 이들은 폭로전으로 복수에 나섰다. 이혜훈은 자기 이름이 언급된 언론 기사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턴 에게 “아이큐가 한 자리냐” “널 죽였으면 좋겠다”는 폭언을 했다. 심야에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똥오줌을 못 가리냐”고도 했다. 언어폭력을 넘어선 ‘인격 살인’ 수준이다. 직무상 취득한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로 30억원대 시세차익 의혹, 장남을 미혼으로 위장한 고가 아파트 청약 당첨 의혹도 터졌다. 사실이라면 그가 호기 있게 외쳤던 ‘경제 정의’와 정반대의 편법, 탈법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달랐다. 보좌진은 종처럼 부려먹는 ‘을(乙)’이 아니라 ‘동업자’이고 ‘동지’였다. 김영삼은 인간미가 넘쳤다. 김기수 수행비서의 실수로 혼자만 배에 붉은색 띠를 두른 연미복을 입고 청와대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상도동 자택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기수야, 니 한강에 뛰어내리레이”라고 혼을 냈지만 뒤끝은 전혀 없었다. 이렇게 너그러운 김영삼을 김기수뿐 아니라 모든 비서가 끝까지 모셨다. 김대중은 비서들을 “권(노갑) 동지” “김(옥두) 동지”로 불렀다. 대통령이 된 뒤 젊은 행정관의 보고를 받을 때도 학생처럼 노트 필기를 했다. 자신의 사형 집행을 앞두고도 고문당한 ‘동지’와 그 가족들의 생계와 안위를 걱정했다. 서거한 지 16년이 지났지만 고난의 시절을 함께 견뎌온 참모들은 지금도 매주 현충원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노무현 의원 보좌관이었던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노 의원은 활동비와 수당을 모두 보좌진에게 주었고, 지방 출장을 가면 한방에서 잤다”고 했다. 노무현은 “의정활동을 하려면 법을 알아야 한다”며 보좌진에게 법학을 가르쳤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구속되자 “나 대신 매를 맞고 있다”며 눈물 흘렸다. 황이수 전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은 “의원 시절부터 열아홉 살 어린 참모에게 ‘이수씨’ ‘광재씨’ ‘희정씨’라고 존댓말을 썼다”며 “낙선하면 다른 의원실에 부탁해 어떻게든 우리를 취직시켰다”고 했다. 노무현은 약자에게 관대하고 강자에게 당당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4세기에 제자들과 함께 그리스 158개 도시국가의 통치체제를 실증적으로 연구해 『정치학』을 썼다. 1권 1장에서 “모든 공동체는 어떤 선(善)을 실현하기 위해 구성된다”고 선언했다. 통치자가 법을 무시하고 사욕(私慾)에 따라 권력을 휘두르면 최악의 정체인 ‘참주정(僭主政·tyranny)’이 된다고 했다. 참주는 신하들이 서로를 불신하고 감시하게 해서 권력을 유지한다. 바로 이혜훈이 보좌진을 관리한 방식이다. 그리스인은 휴브리스(Hubris·오만)를 가장 큰 죄악으로 생각했다. 상대방을 학대하면서 자기 만족을 추구하면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Nemesis)가 그를 파멸시킨다고 믿었다. 보좌진을 노예처럼 부리고 존엄성을 훼손한 김병기·이혜훈 두 사람의 악행은 현대판 휴브리스에 해당한다.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을 집필하기에 앞서 3권의 윤리학 책부터 썼다. 근대의 막스 베버가 저서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강조한 것도 바로 윤리였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가 양 날개다. 그에게 윤리는 “착하게 살자”는 도덕적 훈계가 아니다. 폭력적 속성을 갖는 위험천만한 실체인 권력을 다루는 정치인이 반드시 갖춰야 할 전문적 역량이다. 정치의 출생지는 윤리인 것이다. 윤리를 파괴한 정치인인 김병기와 이혜훈이 법을 만들고 예산을 주무르게 하는 것은 굶주린 맹수에게 어린 양을 맡기는 위험한 결정이다. 눈앞에서 울고 웃고, 살아 숨 쉬는 개별적 존재를 학대하는 사람이 저 멀리 있는 추상적 집단인 국민을 사랑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은 양심에 따라 스스로의 거취를 결단해야 한다. ‘오만의 정치’를 ‘윤리의 정치’로 되돌리기 위한 최소한의 참회다. 이하경([email protected])

2026.01.11.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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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불면 죽어'와 '내편에 서라'는 겁박 [장세정의 시시각각]

외교는 연극이다. 잘 짜인 시나리오를 토대로 배우들이 대사를 읊조리는 연극처럼 외교에도 연기가 중요하다. 국제정치의 연극 무대에서 이 시대 주연배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두 사람의 연기에 따라 지구촌엔 언제든지 격랑·지진·쓰나미가 몰아닥칠 수 있다. 트럼프 'FAFO'와 시진핑의 훈계 힘을 앞세운 강대국 행태 엇비슷 자강 역량, 외교적 연기력 키워야 새해 벽두부터 두 주연배우는 각자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연극을 선보였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 그는 지난 3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전격 체포해 미국으로 압송했다. 마약 범죄는 명분이고, 석유 이권이 배경으로 꼽힌다.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다목적 포석도 있다. 중남미 좌파 독재자들은 경악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일곱 시간 뒤 탄도미사일 발사로 반응했다. 한국 좌파들은 "신제국주의"라며 흥분했다. 트럼프 2기 들어 신고립주의 경향을 보이던 미국이 신개입주의로 급변침했다. 트럼프의 현란한 연기 변신이다. '돈로주의(Donroe Doctrine)'란 신조어에서 보듯 먼로주의를 변형한 트럼프의 팽창주의적 패권주의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국제법을 함부로 무시하는 '선택적 편의주의'다. 트럼프의 맞춤 연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두로 체포 직후 백악관은 공식 SNS 계정에 비장한 표정으로 계단을 오르는 트럼프 흑백사진을 게시했다. 사진 밑에 붙은 'No games(더 이상 게임은 없다). FAFO(까불면 죽는다)'란 글귀는 비속어를 동원한 노골적 협박이었다. 이 사진이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미국에 도전하는 적대국이거나, 미국 이익에 어긋나는 동맹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사진의 배경이 김해공항이다 보니 지난 10월 경주 APEC 당시 김해공항에서 트럼프를 만난 시진핑 주석 보란 듯 올렸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 대통령의 친중 행보를 간접 겨냥했다는 해석도 있다. 이처럼 사진 한 장으로 핵폭탄급 반향을 일으켰으니 트럼프야말로 글로벌 연기대상감이다. 시진핑의 연기도 만만찮다. 미·중 패권 경쟁에 이어 터진 중·일 갈등 와중에 한·미·일 진영의 한국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했다. 이 대통령이 남북 사이에서 중국의 적극적 중재 역할을 주문했지만, 시 주석은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말로 선을 그었다. 대신 북한의 반발을 의식했는지 중국 발표문엔 비핵화도, 통일 언급도 없었다. 시 주석이 연극 대사를 잊은 것인지, 원래 대본에 없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이 대통령은 한한령(限韓令) 해제, 서해 중간수역 구조물 철거 등 현안 해결에 공을 들였으나 시 주석은 손에 잡히는 확답을 주지 않았다. 공동성명도 없었다.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 전면 복원이 (이번 방중의) 최대 외교 성과"라고 자평했다. 문재인 정부 때의 굴욕적 혼밥이 없었고, 윤석열 정부 시절의 감정 대립에서 벗어났으니 성과라면 성과다. 시 주석이 선물한 중국산 스마트폰으로 정상 부부 셀카 사진을 찍은 이 대통령의 애드리브 연기만 눈에 띄었다. 시 주석 대사에서 압권은 따로 있었다. 이 대통령을 앞에 두고 "역사의 올바른 편에 굳건히 서서 정확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 장면이다. 미·중 사이와 중·일 사이에서 중국 편에 서라는 이간책이자 압력성 발언이었다. 표현은 점잖았지만, 내용은 훈계여서 외교적 결례란 뒷말이 들린다. 흥미로운 사실은 트럼프의 '까불면 죽어'라는 표현이나 시 주석의 '올바른 편에 서라'는 말은 본질에서 같다는 점이다. 내 말을 듣고, 내 이익을 존중하고, 딴생각 하지 말고, 내 편에 서라는 강대국의 경고다. 단순히 공자 말씀으로 간주하거나, "착하게 살자"는 의미로 이해하고 넘어갈 문제인가. 외교 무대에서 주연배우로 도약하려면 싱가포르 지도자를 배울 만하다. 깊게 생각하고, 말은 줄이고, 행동은 간결하게 하면서 자강 역량과 외교적 연기력을 키우자는 거다. 장세정([email protected])

2026.01.11.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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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된 진보, 부패로 망할 위기 [김성탁의 시선]

“국민의힘에나 있을 일 아닌가 생각해왔는데 우리 당에 있다니….”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이 강선우 전 민주당 의원과 김병기 전 원내대표가 연루된 공천 헌금 의혹이 불거지자 했던 말이다. 그는 “너무 충격적이라 의원들 모두 거의 '멘붕' 상태”라고 했었다. 박 대변인의 반응처럼 한국 정치에선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회자하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 권위주의 세력이 장기 집권하는 동안 금권선거나 부정부패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사회적 약자 보호나 공정, 투명성을 내세웠던 진보 세력은 상대적으로 도덕적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운동 세력을 중심으로 풍찬노숙에 익숙하던 세력이 집권에 성공한 이후에도 권력형 비리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당시 대통령 아들 비리는 돈과 로비, 청탁과 이권 개입이 결합돼 진보의 도덕성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청렴 이미지가 강했던 노무현 정부에서도 대통령 가족과 측근이 연루된 박연차 게이트가 터지면서 탈권위 흐름에 흠집이 났다. 문재인 정부에선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일가의 입시 의혹이 검찰 수사와 재판으로 이어지며 정권이 내세웠던 공정의 가치를 뒤흔들었다. 보수·진보가 번갈아 집권하는 경향이 나타난 최근에도 정치인들의 일탈과 비리는 반복되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일이 터지면 ‘너희도 그렇지 않았냐’며 상대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셀프 면죄부’를 주고받는다. 증거 불충분 등의 사유로 경찰이 내사 종결한 황보승희 전 국민의힘 의원의 공천 대가 금품 수수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뇌물의 힘’”이라고 날을 세웠었다. 하지만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의 공천 헌금 의혹에 대해선 ‘휴먼 에러’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가 11일 김병기 의원에게 사실상 자진 탈당을 요구하면서 “애당의 길을 고민해 달라”고 요청했다. 강선우 의원 제명에 이어 당에서만 내보내면 민주당과 관련이 없어진다고 보는 모양이다. 하지만 도덕적 우위를 상실한 진보는 진영 논리에 기대 기득권을 향유하는 정치 집단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념 성향이 대립하고 지역감정이 남아있는 한국에선 한번 국회에 진입하면 다시 당선될 가능성이 커진다. 영·호남은 강세 정당이 뚜렷해 공천이 곧 당선이고, 한번 당선되면 지역구 관리 등을 통해 생명 연장이 용이하다. 집값이 많이 오른 서울이 격전지로 꼽히지만 강남 3구는 보수 정당이, 서울 동북·서남권 등은 진보 정당이 강세다. 대전·충청이 ‘스윙 보터’로 꼽힐 뿐 경기·인천에선 진보 정당 후보가 훨씬 많이 뽑히고 있고, 강원에선 보수 정당 우세가 두드러진다. 계엄 후 집권 세력의 내로남불 먹이 사슬 익숙해진 진보 정치 민심 식는 것 청와대만 모르나 의원 배지를 단 뒤에는 대통령이나 대선후보, 당 대표 등 실세에게 충성하며 다시 공천을 받는 데 집중한다. 국내 정당에선 국회의원 공천에 국회의원이 관여한다. 의원들이 마음대로 보좌관을 뽑을 수 있다 보니 시종처럼 부리는 일이 발생한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시의원이나 구의원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돈을 갖다 바치는 출마 희망자들이 생겨난다. 이런 먹이 사슬 구조에서 진보 진영 정치인들도 예외 없이 기득권이 돼 왔다. '공천 개혁'이라 부르는 의원 물갈이는 보스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람이나 다른 계파를 쫓아내는 기제로 쓰일 뿐이다. 참신한 외부 인재 영입은 소수에 그친다. 이런 작업도 실세들끼리 밀실에서 한다. ‘비명횡사’ 공천을 주도했던 김 의원이 버티는 것이 여러 국면마다 그와 얽히고설킨 현 여권 정치인이 많기 때문이라는 자조가 나오는 까닭이다. 윤석열 정부의 무도한 계엄으로 인한 탄핵을 거쳐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여당이 된 민주당의 도덕적 일탈은 그래서 더 실망스럽다. 1억원 수수 의혹에도 해당 시의원이 공천된 것을 김 전 원내대표는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강 의원을 여성가족부 장관에 앉히려 안달하던 여권은 뭐 하는 집단인가. 김 의원 측에 금품을 줬다는 탄원서가 의혹의 당사자에게 가도록 한 이재명 당시 대표실은 알고도 덮으려 한 것 아닌가. 갑질 논란에 이어 수십억 원 '로또 아파트' 부정 청약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를 그대로 두는 청와대는 또 뭔가. 민심은 차갑게 식어가는데 청와대만 모르는 것 같다. 이러다가는 결국 진보도 자신들의 비리 의혹 덮기에 바빴던 윤석열 정부보다 나은 게 없지 않느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성탁([email protected])

2026.01.11.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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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권력의 딜레마…시진핑 3기 中 외교·군부 숙청이 잦아진 이유는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1. 이재명 대통령이 베이징에 도착했던 지난 5일. 중국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톈쉐빈(田學斌·63) 전 수리부(水利部) 부부장(차관)의 체포를 알렸다. 그는 원자바오(溫家寶·84) 총리를 모셨던 비서였다. #2. 지난해 12월 18일 중앙기율위는 왕원화(王文華·69) 산둥성 칭다오시 인민대표대회 전 당 서기를 심각한 기율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권력서열 4위까지 오른 목수 출신 리루이환(李瑞環·92) 정협(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의 비서다. 원자바오와 리루이환은 공교롭게도 지난 2024년 건국 75주년 국경일 리셉션 헤드테이블에서 시진핑(習近平·73) 국가주석 좌우에 앉은 인물들이다. 비서방(秘書幫·비서 출신 정치인 집단) 왕원화와 톈쉐빈의 낙마는 시진핑 3연임 이후 잦아진 숙청의 한 패턴이다. 시 주석은 지난 2022년 20차 당 대회에서 크게 승리했다. “임기 제한을 깨며 3연임에 성공했고, 중앙 리더십을 재편하며 잠재적 라이벌을 배제했으며, 당의 정치 의제를 경제 발전에서 정권과 국가안보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우궈광(吳國光) 미국 스탠퍼드대 중국경제·제도연구센터 교수가 학술저널 차이나리더십모니터(CLM) 최신호에서 내린 평가다. 권력이 정점에 올랐지만 숙청은 강화했다. ━ 친강→리상푸→류젠차오 순차 숙청 균열은 외교부에서 시작했다. 2023년 6월 말 친강(秦剛)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증발했다. 곧 다른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 리상푸(李尙福)가 석연찮은 이유로 숙청됐다. 2024년 하반기 군부 상장(대장) 청산이 본격화했다. 11월 말 군 서열 5위 먀오화(苗華) 정치공작부 주임의 조사가 시작이었다. 시 주석이 2012년 군사위 주석에 취임한 뒤 81명의 상장을 임명했다. 아직 무사한 장군은 손가락으로 꼽힌다. 숙청은 숫자가 말한다. 장관급 요직인 20기 당 중앙위원회 376명 가운데 지난해 말 기준으로 30명이 숙청됐다. 8%다. 18기(2012~2017) 같은 기간 낙마한 중앙위원 비율 4.8%를 크게 웃돈다. 지난해 10월 열렸던 4중전회에는 30명의 중앙위원이 참석하지 못했다. 이 중 21명, 70%는 군 장성이다. 우 교수는 “(내년에 열리는) 21차 당 대회까지 숙청 가능성이 있는 중앙위원은 50명 이상”이라고 추산했다. 시 주석이 취임하기 전에 꾸려졌던 18기 중앙위원 가운데 숙청당한 숫자 38명을 훨씬 능가한다. ‘1인 권력의 딜레마’는 급증한 숙청을 설명하는 프레임이다. 시 주석은 2018년 개헌으로 연임 제한 규정을 깨 장기 집권을 합법화했다. 장기 집권의 또 다른 장애물이던 간부의 정년 규제도 풀었다. 2002년 16차 당 대회부터 확립된 ‘칠상팔하(七上八下, 67세는 정치국 유임, 68세 이상은 퇴임하는 정년 규정)’ 관례를 해체했다. 장관급 ‘이상삼하(二上三下, 만 62세는 유임, 63세는 정기인사 때 퇴임)’, 차관급 ‘칠상팔하(만 57세 유임, 58세는 정기인사 때 퇴임)’ 규정까지 흔들었다. 엘리트의 세대교체를 관리하던 약속이 폐기됐다. 게다가 시 주석 말고 장유샤(張又俠)와 왕이(王毅)가 각각 72세, 69세 나이로 정치국에 남았다. 우 교수는 “20차 당 대회 이후 군사와 외교 두 분야가 숙청의 핵심 격전지가 됐다”며 “승진이 가로막힌 간부들이 정치적 불충(不忠)으로 해석되기 쉬운 불만을 품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엘리트 내부 갈등을 줄여왔던 정년규정이 깨지자 간부들의 불만이 늘어났고, 이런 불만의 표출이 불충으로 파악돼 숙청 증가로 이어졌다는 논리다. 친강·리상푸·류젠차오·허웨이둥이 차례차례 낙마한 숨은 이유다. ━ 세대교체와 권력승계는 어떻게 다시 권력교체기다. 21기 당 대회는 지난해 말 사실상 시작됐다. 시 주석은 앞서 2020년 말부터 직접 20기 인사를 총괄 기획했다고 ‘20기 중앙위·기율위 탄생기’가 기록했다. 오는 3월 양회(전인대와 전국정협)가 끝나면 시 주석은 차기 인선을 지휘할 간부고찰영도소조를 꾸려 직접 조장을 맡는다. 7월에는 차기 중앙위원의 정원과 면접 매뉴얼을 확정한다. 7월 말부터 45개 팀을 31개 지방 성시, 123개 기관에 파견한다. 중앙군사위는 8개 팀을 꾸려 별도로 평가한다. 이어 올해 중으로 신장(新疆)을 시작으로 14개 지방의 지도부를 교체한다. 성급 당 대회에서다. 내년 4월부터 6월까지 17개 지방 당 대회가 이어진다. 차기 24~25명의 정치국원의 세대교체 시즌이 시작됐다. 시진핑 4기를 앞두고 ‘하위 파벌(亞派系)’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지난달 대만 정치대학 강연에서 우 교수는 “각 파벌은 전략적 우세와 ‘포스트 시진핑 시대’의 판도를 쟁탈하기 위해 격렬한 내전을 벌일 것”이라고 했다. 또 “명확한 후계자가 나타나기 어렵다”며 “젊은 얼굴이 나오더라도 ‘페이크(가짜)’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의 당 대회는 민주 선거가 아니다. 우 교수는 당 대회를 파헤친 『권력의 극장』(중앙공론신사, 2023)에서 “중국 당 대회에서 선거의 결과는 회의 개최와 투표 전에 이미 결정된다”며 “발표되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민주국가에서 권력의 분배는 정해진 절차를 따라 결과가 결정되지만, 당 대회를 통한 권력의 재분배는 정해진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절차를 왜곡하는 과정이라고 논증했다. 박상수 충북대 교수는 후계와 관련 “지난 1970년대 중국 정치에 미래의 복선이 숨어있다”며 “당시의 후계자와 최후의 승리자였던 제2의 화궈펑과 덩샤오핑을 생각하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마오쩌둥이 지정한 후계자 화궈펑이 끝내 권좌를 지키지 못했듯, 후계는 불확실성의 드라마라는 의미다. 신경진([email protected])

2026.01.11.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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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영의 이코노믹스] 커지는 전기료 상승 압력…산업용 요금 합리적 조정해야

한국 제조업 경쟁력 갉아먹는 전기요금 대한민국 성장의 두 축은 ‘뛰어난 인적 자원’과 ‘저렴하고 질 높은 에너지’였다. 우리나라는 화석 연료의 90% 이상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 빈국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원자력을 중심으로 한 기저부하 전원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전력 품질을 유지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반도체와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조선 등 에너지 집약적인 제조업을 국가 주력 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산업 전기요금 4년 새 71% 급등 산업용과 주택용 전기요금 역전 전력 확보에 사활 거는 빅테크 한국 기업, 전기료에 발목 잡혀 탄소 중립 관련 각자도생 시대 에너지 전환 속도 고민 필요해 그러나 최근 이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산업용 전기 요금이 2021년 kWh당 105원에서 2025년 180원으로 불과 4년 만에 71% 폭등했다. 같은 기간 주택용 전기 요금이 46% 인상된 것과 비교하면 매우 가파른 상승세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는 미국이나 중국보다 비싸졌고, 에너지 전환 비용이 높은 독일 수준에 접근해가고 있다. 전기 비용 상승은 제조업의 원가 부담으로 이어져 중국의 거센 추격을 받거나 이미 역전당한 우리 기업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특히 에너지는 인공지능(AI) 산업의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다. AI 전환은 노동력을 에너지로 대체해서 자동화와 지능화를 통해 생산성 혁명을 이루는 과정이다. AI에 필요한 데이터 센터와 반도체 생산에는 막대한 전력이 소모된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글로벌 빅테크 리더가 전력 확보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미국은 현재 전기 확보를 위한 전쟁 중이다. 미국 최대 지역을 관할하는 계통 운영자인 PJM의 용량 시장(전기를 생산하는 발전 능력을 거래하는 시장)에서 2027~2028년 용량 요금이 3년 전 대비 11.5배 폭증했다. PJM 용량시장은 3년 선도 시장으로 3년 후 AI를 중심으로 전력 수요는 폭증하는데 발전소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투자자가 판단한 것이다. 그 결과 가스터빈 주문량이 2024년 약 9GW에서 2025년 약 30GW로 3배 이상 껑충 뛰었다. AI 데이터 센터 확대가 필요한 빅테크 기업은 원자력 전력 확보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미국의 이런 상황은 우리 에너지 산업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의 뛰어난 대형 원자력 발전소 건설 능력, 가스터빈 제조 능력, 소형 모듈 원자로(SMR) 잠재력은 미국과의 관세 협정에 따른 향후 2000억 달러 투자 약정의 효과적인 이행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 에너지 산업의 경쟁력을 활용해 과도한 대미 투자의 부담이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동시에 우리의 에너지 산업 경쟁력도 키우는 1석2조의 그림을 만들 수 있다. 산업용이 주택용 보조하는 기형적 구조 문제는 이런 상황 속에서 무리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이 결국 대한민국의 미래 먹을거리인 AI 경쟁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20여 년 전인 2004년 주택용 전기요금은 kWh당 110원이었고 산업용은 60원이었다. 주택용 대비 산업용 요금은 약 55% 수준이었다. 공급 원가 측면에서 보면 산업용은 대용량 전기를 고압·고효율로 사용하기 때문에, 저압이며 배전망 비용이 많이 드는 주택용보다 저렴한 것이 당연하다. 당시 55%의 비율은 원가 차이 이상으로 국가가 제조업 성장을 위해 전략적으로 기업을 지원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재산권에 대한 시민 의식 상승, 주택용과 산업용 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산업용 요금이 오르기 시작했다. 2017년 기록적인 폭염과 누진 요금 폭탄 등으로 주택용 전기요금이 하향조정되면서 주택용과 산업용이 균형을 이뤘다. 2021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가스 가격이 폭등하면서 전기 요금 인상 압력이 커졌고, 산업용 중심으로 오르면서 결국 산업용이 더 비싸졌다. 그 결과 현재의 전기 요금은 산업용이 주택용을 보조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됐다. 이를 넉넉한 기업이 빠듯한 국민을 지원하는 훈훈한 장면으로 볼일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중 한국보다 산업용/주택용 전기 요금 비율이 높은 국가는 없다. 영국 71%, 일본 68%, 미국과 독일 50%다. 에너지 전환의 선두에 서 있는 독일도 주택용 요금이 440원이지만, 산업용 요금은 220원에 불과하다. 전기요금을 빠르게 인상했지만, 제조업 경쟁력을 위해 산업용 요금은 절반으로 낮췄다. 미국은 AI와 제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산업용 요금을 우리의 65% 수준으로 낮췄다. 정치적 결정으로 산업 전기료 급등 한국의 주력 산업은 반도체와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등 에너지를 많이 쓰는 제조업이다. 그럼에도 가정용 대비 산업용 전기 요금 비율이 이렇게 높은 건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요금 구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전기 요금 인상 때마다 산업용을 우선적으로 올리는 정치적으로 쉬운 결정을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전체 전력 소비량 중 산업용은 52%, 주택용은 16%를 차지한다. 산업용을 10원 인상하면 주택용을 30원 인상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 조금만 올려도 판매 수익이 크게 증가하고, 정치적 반발이 적은 산업용 요금 인상은 달콤한 해결책이다. 하지만 달콤한 해결책은 결국 몸을 병들게 하고 성장을 막는다. 지난 20년간 진행된 산업용과 주택용 전기 요금 역전 현상은 산업 경쟁력이 국가 정책 우선순위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후퇴해 왔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이런 방향성을 상징하는 사건이 최근 에너지 기능을 산업부에서 환경부로 이관한 것이다. 에너지는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중요한 도전 과제지만 동시에 우리 산업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다. 에너지를 산업의 지원 대상이 아닌 탄소 중립을 위한 규제 대상으로 보는 관점 변화가 산업용 전기 요금 상승과 함께 국익에 올바른 방향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최근 가파르게 오른 전기요금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미래 전기 요금은 국제 천연가스 가격과 연동돼 있어 예측이 쉽지 않다. 하지만 부문별로 쪼개어 살펴보면 전체적인 흐름을 가늠할 수 있다. 전기 요금은 크게 ‘발전·판매’와 ‘망·계통’, ‘세금·부담금’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에너지 전환으로 전기료 상승 압력 커 첫째, ‘발전·판매’ 부문은 전력 생산 연료비와 관련 있고 국제 가스 가격에 연동된다. 2025년 가스 가격 안정으로 한전이 약 15조원의 영업 이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2021~23년 누적된 42조원의 영업 손실 회수를 위해 향후 2~3년은 현재 요금 수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불확실성이 높지만, 가스 가격이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면 3년 뒤에는 이 부문의 요금 하향 조정이 일정 부분 가능할 것이다. 둘째, ‘망·계통’ 부문은 전력 공급 인프라와 관련된 비용으로 정부 계획에 구체적인 투자 규모가 잡혀 있다. 11차 장기 송·변전 계획에서 송전망 확충에 향후 15년간 72조8000억원, 1차 배전망 계획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배전망에 40조~50조원, 11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23GW의 재생에너지 백업 저장장치에 약 40조원이 소요될 전망된다. 또한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기 이용률이 현재 41%에서 2038년 12%까지 급락함에 따라, 전력 공급 안정성과 신규 발전기 투자 유인을 위해 LNG 용량 요금(CP) 보상 규모가 현재 연간 3조3000억원에서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셋째, ‘세금·부담금’ 부문은 에너지 전환 정책 비용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RPS)’ 비용은 2030년까지 의무 비중 확대에 따라 연간 약 8조8000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ETS) 비용은 4차 배출권 계획 기간에서 목표로 하는 유상 할당 확대(10→50%)와 배출권 가격 상승(1만원/tCO2→5만원/tCO2)이 실현될 경우 연간 약 5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해외 주요국의 전기 요금 구조를 보면 우리의 전기 요금 예측이 가능하다. 에너지 전환이 빠르게 진행 중인 유럽 국가들은 정책 비용인 부담금 비중이 크다. 반면 땅이 넓어 망인프라 비용이 많이 드는 미국은 송·배전망 비용이 높다. 한국은 과거에는 기저부하 중심의 효율적 공급으로 망 비용과 부담금 비용이 매우 낮았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이 진행되면 해외 국가처럼 자연스럽게 망·계통 비용과 부담금 비용이 증가할 것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부문별 전기 요금 전망과 일치한다. 탄소 중립과 AI 경쟁, 우선순위 따져야 종합하면 발전·판매 부문은 가스 가격에 따라 하향 가능성이 열려 있으나 망·계통과 세금·부담금 부문에서 이를 상쇄할 만큼 강력한 상향 조정 요인이 존재한다. 여기에 해상풍력, 청정수소발전 의무화 제도(CHPS), 청정열 의무화 제도(CHO) 등 검토되고 있는 추가 비용 항목까지 고려하면 전체적인 전기 요금은 강한 상향 압력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탄소 중립이 우리가 달성해야 하는 목적지라는 점에 이견은 없다. 범지구적인 협력이 필요한 탄소 중립에 있어 국제 사회는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냉혹한 국제 사회의 현실을 염두에 둔다면 탄소 중립과 관련한 우선순위와 속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미래 30년 먹을거리인 AI 경쟁력과 탄소 중립 중에 무엇에 우선순위를 둬야 할까. 국익 관점에서 냉철하고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그 실행의 첫걸음은 산업용 전기 요금의 합리적 조정일 것이다. 전우영 서울과학기술대 인문사회교양학부 교수

2026.01.11.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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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읽기] 마두로 지키지 못한 중국산 레이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정초부터 미국에 붙잡혀 압송된 사건은 중국에 큰 악재다. 크게 세 가지 방면을 생각할 수 있다. 우선 군사적 타격이다. 베네수엘라 특수부대는 1999년부터 중국군과 합동 군사훈련을 해왔다. 지난 10년간 중국군이 베네수엘라군에 지원한 무기만 6억 달러 이상에 달한다. 특히 중국의 지원으로 구축된 베네수엘라 방공시스템은 남미 최강으로 선전됐다. 중국이 자체 개발한 JY-27 레이더가 핵심으로 스텔스 대응 장비라고 홍보됐다. 실제 중국 언론들은 지난해 10월 베네수엘라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JY-27 레이더가 성공적으로 미군의 F-35나 F-22 스텔스 전투기의 종적을 탐지하는 데 성공했다고 자랑했다. 또 VN-16, VN-18 장갑차 외에 SR-5 다연장 로켓 시스템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번 미군의 작전 기간 내내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했다. 대만의 군 전문가는 미군 장비는 실전을 통해 검증된 무기지만 중국의 장비는 실험실에서 성능만 체크한 정도라 실제 전장에 투입했을 때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미군은 무기의 결함을 찾는 걸 출발점으로 삼지만, 중국은 아름다운 데이터를 상부에 제출하는 걸 출발점으로 삼으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밀정보 누출이다. 미국이 알고 싶어하는 중국 관련 많은 고급정보를 마두로가 폭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중국이 수출하는 펜타닐 원료가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들어가는 검은 거래 과정, 그리고 중국이 쿠바에 설치한 4개의 스파이 기지 운용 등에 대해 마두로가 꽤 고급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한다. 마두로 경호원 상당수가 쿠바 사람인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정보원으로서 마두로의 가치는 상당히 높다. 끝으로 경제적 타격이다. 베네수엘라는 2018년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동참했고 현재 600억 달러의 빚을 중국에 지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하루 평균 60만 배럴의 원유를 중국에 팔아 이 부채를 갚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통신은 마두로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받은 화웨이(華爲) Mate X6 폴더블 핸드폰을 쓰고 있다고 자랑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마두로가 미국에 붙잡히기 불과 수 시간 전 만난 인물도 바로 중국의 중남미·카리브해 특사인 추샤오치(邱小琪)로 수백 건의 협약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한데 이제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바뀌었고 중국의 베네수엘라 내 각종 이권은 풍비박산의 위험에 처하고 만 것이다. 유상철([email protected])

2026.01.11.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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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프리즘] 진보도시 세종과 행정수도 완성

행정수도를 지향하는 세종은 ‘진보도시’ 또는 ‘제2의 호남’으로 불린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세종은 2012년 7월 출범 이후 선거에서 주로 진보 좌파 성향 후보가 당선됐다. 전교조 출신 교육감이 3선을 하다 이재명 정부의 교육부총리로 영전했고, 국회의원 2명도 민주당 소속 또는 민주당 출신이다. 현 세종시의회도 민주당이 다수다. 세종은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 득표율(55.22%)이 충청권 4개 시·도에서 가장 높았다. 세종시민 평균 나이는 지난해 3월 말 현재 37.4세로 17개 광역단체 가운데 가장 젊다. 젊은 층은 주로 민주당을 지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부처에도 젊은 공무원이 다수다. 호남 출신도 많다. 2020년 세종시가 실시한 출생지별 주민 조사 현황을 보면 수도권과 충청을 제외한 시·도 가운데 전북 출신이 1만6849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래서인지 세종에서는 다른 곳에서 잘 볼 수 없는 장면이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난다. 이에 “진보도시답다”란 말이 나온다. 일부 세종 시민은 운전면허시험장 조성을 반대한다. 초보 운전자의 미숙한 운전으로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민주당 시의원도 “대전·청주 운전면허시험장을 사용하면 된다”라며 반대 행렬에 가세했다. 전국 시·도 가운데 운전면허시험장이 없는 곳은 세종뿐이다. 세종시는 면허시험장을 만들기 위해 시민 설득에 나섰다. 세종 시민은 데이터 센터도 반대한다. 오케스트로클라우드㈜는 정부세종1청사 인근 건물에 2027년까지 데이터센터를 지을 예정이라고 한다. 세종시는 이 시설이 들어서면 일자리도 생기고, 공공기관 유치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시민들은 “전자파·소음·열섬 현상 등으로 건강 등 피해가 우려된다”고 한다. 여기에 국회의원까지 거들고 있다. 한국전파진흥협회에 따르면 이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는 인체 보호 기준의 0.045% 수준으로 가전제품 전자파에도 미치지 못한다. 소음도 기준을 넘지 않고 열섬 현상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웃 충남도가 AI 데이터 센터를 2곳이나 유치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신도시 세종시민은 숙박업소 등이 들어서는 것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세종은 숙박업소 부족난에 시달린다. 반면에 세종시민은 해양수산부(해수부) 이전이나 물 공급을 위해 필요한 세종보(湺) 가동 문제에는 미온적인 반응이다. 해수부 이전에 찬성하는 시민이 30% 정도 된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해수부 이전에 따라 지난해 12월부터 인구가 급속히 줄고 집값 하락 조짐을 보이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렇다 보니 정치권을 중심으로 외치는 “행정수도 완성”이 공허하게 들린다. 해수부가 빠져 나간 만큼 행정수도 완성에 흠집이 났기 때문이다. 진보도시 세종에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김방현([email protected])

2026.01.11.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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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확장 재정이 집값 불안 더 키운다

올해 한국 경제는 대규모 재정 확대 국면에 진입했다. 이에 따른 본예산은 총지출 기준 역대 최대인 729조9000억원 규모로 편성됐고, 경기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논의까지 더해지면서 실제 재정지출은 75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 같은 확장 재정 기조는 소비 둔화와 투자 위축이 겹친 복합적 경기 하강을 완화할 수 있다. 재정 풀수록 집값 견고히 떠받쳐 기업 규제는 아파트 분양비 올려 선심성 돈 풀기와 규제 자제해야 그러나 부동산 시장에서는 이 신호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 재정 확대가 통화의 유동성을 높여 부동산 가격의 하방을 지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가격 안정에 필요한 심리적 긴장감이 느슨해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더구나 예전에는 기업으로의 투자로 유동성이 어느 정도 흡수되었으나 한국은 현재 다른 나라에 비해 규제가 많고 인센티브가 적어 국내에 투자할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로 인해 금융권은 이익을 찾기 위해 손쉬운 부동산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더 우려되는 점은 6·3 지방선거를 앞둔 재정 지출 확대가 부동산 시장을 더 자극할 가능성이다. 지난해 13조원이 투입된 단발성 소비 쿠폰이나 지역 맞춤형 지원금 형태의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경기 회복을 위한 조치로 추진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단기 유동성을 증가시켜 부동산 시장의 ‘가격 방어’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시장에 대한 신호 역시 ‘정부는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지갑을 더 열 것’이라는 기대를 확대하고, 이는 곧바로 부동산 시장의 심리적 바닥을 다지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부가 재정 확대로 경기 하락을 방어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로 인해 부동산 시장의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강해지는 것을 방치한다면, 재정 확대의 효과는 오히려 희석되고 장기적 부담만 커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순한 규제 강화나 억압적 가격 통제는 부동산 시장 불안을 더 키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공급 측면의 비용을 낮추고 시장의 구조적 비효율을 해소해 분양가 상승 압력을 근본적으로 낮추는 방향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현재 분양가 상승의 상당 부분은 건설사의 인건비 부담 증가, 안전 규제 준수 비용 확대 등 공급 비용 증가 요인이 누적된 결과다. 특히 주 52시간제, 중대재해처벌법 그리고 노란봉투법은 건설 현장에서 비용을 상승시키는 핵심 요소로 지적된다. 지난 연말 다녀온 베트남을 보자. 호텔 바로 앞에서 야간·새벽·주말 가릴 것 없이 불야성을 이루며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건설업은 레버리지, 즉 적은 자기자본으로 더 큰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차입금을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남의 돈이기에 공사 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금융비용, 장비 임대비용, 인건비 상승은 필연적이다. 52시간제는 건설 현장의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인력 투입의 경직성을 높였고, 이는 생산성 저하와 비용 증가를 초래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안전 확보라는 대의에는 이견이 없지만, 과도한 형사 책임 부담과 영업정지는 비용을 증가시키고 현장 운영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만들었다. 노란봉투법 역시 원청업체의 인건비 상승을 초래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안전이라는 명분 아래 도입됐으나, 건설 현장에서는 결국 분양가 상승 요인의 일부로 전가되고 있다. 지금의 부동산 시장이 필요로 하는 것은 ‘수요 억제’가 아닌 ‘공급 비용 합리화’다. 규제 완화는 결코 안전이나 노동권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법과 제도의 취지를 유지하면서도 현장의 현실을 반영한 합리적 조정이 가능하다면, 공급 측 압력을 줄이고 가격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주 52시간제와 중대재해처벌법의 대폭 수정은 이러한 조정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지금의 정책 환경에서는 분양가 상승 요인 해소와 동시에 용적률 확대, 과감한 그린벨트 해제 등 도심 내 대규모 재개발 활성화를 통해 공급 측 개혁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부동산 시장은 언제나 심리와 구조적 요인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재정 확대와 선심성 정책이 심리에 작용한다면, 규제 완화와 제도 개혁은 구조에 작용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조의 교정이다. 이것이야말로 혼란스러운 시장에 지속 가능한 안정성을 제공하는 유일한 길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상근 서강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리셋코리아 부동산분과 위원

2026.01.11.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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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진의 마켓 나우] 증시 1월 효과, 전략적 의심이 필요하다

주식시장에서 달력은 단순한 시간표가 아니다. 투자 심리를 움직이는 오래된 지표다. 증시에는 뚜렷한 호재가 없어도 1월 주가가 다른 달보다 강세를 보이는 이른바 ‘1월 효과(January effect)’가 있다. 이는 연말에 절세 목적으로 주식을 매도했던 투자자들이 연초에 재매수에 나서고, 신년 보너스 유입과 새해 경기나 정부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맞물리며 발생하는 계절적 현상이다. 다만 1월 상승 확률 자체는 약 60% 수준이니 맹신은 금물이다. 실제로 1928년부터 2025년까지 S&P500 지수의 1월 평균 상승률은 1.18%에 그쳐 12개월 가운데 네 번째에 불과했다. 더 의미 있는 지표는 ‘1월이 가면 1년이 보인다’는 시장 격언이다. 역사적으로 1월 흐름이 연간 성과로 이어질 확률은 70~80%에 달한다. 특히 업종별 연속성이 두드러진다. 1월에 강세를 보인 업종이 연간 수익률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산업 사이클의 연속성과 연초에 가시화되는 실적 윤곽이 포트폴리오 재편에 즉각 반영되기 때문이다. 반도체처럼 업황 사이클이 뚜렷한 업종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더욱 선명하다. 올해 1월 증시의 출발은 비교적 순조롭다. 만약 올해도 강세장이 이어진다면 미국은 4년째, 한국은 2년 연속 랠리를 기록하게 된다. 현재 시장에는 주가 고평가에 대한 경계심과 ‘나만 소외될 수 있다’는 포모(FOMO) 심리가 맞서며 높은 변동성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그간 주가 상승으로 비대해진 빅테크와 AI 업종 대신, 다른 산업이나 아시아 증시로 수급이 이동하는 ‘풍선 효과’도 일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관건은 기존 주도주인 AI와 반도체가 동력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타 종목으로 온기가 퍼지느냐다. 만약 주도주가 급락한다면 강세장 유지 자체가 어렵다. 결론적으로 올해 증시의 향방 역시 ‘핵심 기술주들의 실적 지속성’에 달려 있다. 우리 증시의 경우, 반도체 업종의 실적이 시장의 기대를 상회해 준다면 강세장의 동력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시장은 고점에 대한 경계심은 커지겠지만 ‘의심의 벽’을 타고 계속 오를 수 있으며, 주도주가 비워둔 빈틈을 나머지 업종들이 메우는 순환매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주가가 더 급하게 가열될 경우 언제든 균형이 깨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국면임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적어도 당분간은 1월 효과를 신뢰하는 투자자들이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매수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금 필요한 것은 1월 효과에 대한 맹신이 아니라 조건부 신뢰다. 실적 없는 랠리는 오래 가지 않는다. 달력을 따르되, 실적을 의심하라. 김한진 삼프로TV 이코노미스트

2026.01.11.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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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의 소통카페] 국회는 협치로 애국해야 하는 곳

초등생 손녀와 아내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충무공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2025년 11월 28일~2026년 3월 3일)을 보았다. 충무공의 나라 사랑에 뭉클한 마음을 전하는 말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공은 1592년 4월 13일 700척의 전함을 동원한 기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에서 목숨을 바쳐 존망에 처한 나라를 구했다. 정쟁에 빠져 타협 사라진 국회 독주는 또다른 독주 부를 뿐 충무공 애국심 흉내라도 내야 충무공이 7년 임진왜란을 꼬박꼬박 기록한 『난중일기』는 증언한다. “자려 해도 잠들 수 없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1593년 7월 1일) 원균이 이끈 칠천량 전투에서 일본에 궤멸당해 이름만 남은 조선 수군을 백의종군 중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이끌 때도 결연했다. “지금 열두 척의 배가 있고, 신(이순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며 올돌목(명량)의 조수 변화를 이용해 330척의 적선을 쳐부수는 명량대첩(1597년 9월 16일)을 거두었다. 철수하는 적을 끝까지 섬멸한 마지막 전투인 노량대첩(1598년 11월 19일)에서는 총탄을 맞고 “지금 싸움이 급하구나. 부디 내가 죽었다고 말하지 말라”며 운명했다. “공의 죽음이 알려진 후 통곡이 바다를 덮었다.”(『칼의 노래』, 김훈) 장군은 감성을 겸비한 무장이었다. 바다를 정찰한 후 귀로 길을 “석양을 타고 왔다”(1592년 2월 12일)고 적고 “비가 아주 많이 쏟아졌다. 모든 일행이 다 꽃비에 젖었다”(1592년 2월 23일)고 썼다. 어느 날 일기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한 살을 더했다. 이는 전쟁 중이라도 행복한 일이구나”(1594년 1월 1일)라고 했다. 흉년과 전염병으로 고통을 겪을 때는 농사짓는 둔전을 마련하고, 물고기와 소금을 팔아 군량을 확보하고 전선을 건조했다. 공은 전투 지혜를 구하기 위해 고을의 수령, 군관, 백성의 의견을 경청하였다. 충무공은 용맹한 장수이고, 탁월한 지략가이며, 군사와 백성을 살피는 따뜻한 인품의 애국자였다. 그러한 충무공도 정쟁에 희생되어 파직되고(1597년 2월 6일) 옥고의 고초를 겪었다. 서인과 동인으로 갈라져 권력 쟁취에 혈안이 된 정치 모리배들 때문이었다. 당파적 정쟁은 대마도주가 전해온 일본 통일을 이룬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할 수 있다는 정보에 대한 통신사의 평가(1591년 3월)도 ‘곧 쳐들어올 것이니 대비가 필요하다’(서인 황윤길)와 ‘그런 위인이 못 된다’(동인 김성길)로 정반대로 갈리게 했다. 나라의 안위마저 당파성에 휘둘린 것이다. 이러니 부산 앞바다에 나타난 일본군(15만8000여 명)이 닥치는 대로 조선인을 죽이고 코를 베어 승리의 표식으로 삼으며 파죽지세로 북진하여 수도 한양을 함락하는 데 고작 20일밖에 걸리지 않는 무방비의 나라가 된 것이다. 협치 대신 상대방을 헐뜯고 배제하는 당파적 정쟁이 21세기 우리 국회를 지배하는 것은 비극이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적대 의식으로 갈등과 균열은 확장일로고 이해와 통합은 종적이 묘연하다. 정당의 대표와 강성 정치인들이 앞장서고 있는 팬덤 정치는 국회의 생명인 대화·토론·타협의 실종을 낳고, 교조주의를 강요한다. “교조주의(자)는 인간의 다양한 경험을 무시한다. 교조주의자일수록 이런 경험을 극단적으로 무시한다. 이들은 다양한 삶의 경험을 하나의 렌즈로만 바라보고, 그 렌즈로 볼 수 없는 것들은 모두 무의미하다며 외면한다.”(『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버트런드 러셀). 정쟁은 우리 공동체에 전방위적으로 크나큰 병폐를 낳고 있다.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면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어울리지도 않고, 연애나 결혼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노골화하고 있다.(‘2023년 사회갈등과 사회통합 실태조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합으로 기적 같은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 공동체의 와해를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국회는 여야가 협치를 통해 공유를 도출하고 입법하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대화와 타협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고, 공동체가 처한 보편적 사실(진실)을 파악하고, 적절한 입법 공론장의 역할로 협치하는 국회가 되게 할 것이다. 강성 지지자의 요구를 대변하고, 당파 이익에 매몰되고, 삼권분립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을 제정하는 국회는 편향된 국회이다. 협치가 부재하고, 야당 의견이 소외되고, 여당이 독주하는 국회는 모든 국민을 위한 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진정한 국회와는 거리가 멀다. 상대에 대한 포용이 없는 오늘의 일방통행은 또 다른 내일의 일방통행을 잉태한다. 국회는 의원 개인이나 정당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일하는 곳이다. 충무공의 애국심을 흉내라도 내려고 애쓰는 의원과 국회를 보고 싶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2026.01.11.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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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트럼프식 먼로 독트린

2026년 1월 3일, 미국이 군사작전을 감행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부인 실리아 플로레스를 체포해 뉴욕으로 압송한 것이다. 12년간 베네수엘라를 통치해 온 지도자를 불과 3시간 만에, 미군 사상자 없이 사실상 ‘제거’한 셈이다. 부부는 마약 밀매는 물론 관련 테러 공모, 무기 관련 혐의 등으로 기소되어 미국 법정에 섰다. 일부 SNS에는 베네수엘라 시민들이 거리에서 환호하는 장면이 퍼졌지만, 그중 다수가 베네수엘라 현장이 아니라 해외에서 촬영됐거나 과거 시위 영상으로 확인됐다. 마두로 한 사람을 끌어내렸다고 체제가 곧장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 과연 누가 미국에 그런 권한을 부여했는가? 더구나 트럼프는 이번 개입을 민주주의나 인권의 언어로 포장하지도 않았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석유와 서반구에서의 미국 지배를 노골적으로 거론한다.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개입은 단발적 군사행동이 아니라 트럼프식 먼로 독트린의 재가동이다. 민주주의의 언어를 벗어던지고, 아메리카대륙을 미국의 관리 구역으로 선언한 것이다. 고대 로마 역시 처음부터 제국을 선언하지 않았다. 공화정 말기의 질서 회복과 폭군 처벌의 명분으로 개입하며, 스스로를 지배자가 아니라 ‘치안 유지자’로 규정했다. 그러나 단속으로 시작된 군사 행동은 상주 주둔과 행정 관리로 굳어졌고, 불가피라는 논리는 끝없이 연장됐다. 질서를 세운다는 명분은 결국 로마인들의 삶을 타율에 종속시키는 장치가 됐다. 그 경직성은 결국 황제 체제를 탄생시켰고, 기독교를 황제교화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작전은 위험한 선례를 세웠다. 힘의 언어가 점점 노골화되는 국제정치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방중·방일 외교에 나섰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국익을 지키는 실용주의적 계산과 기술이다. 강대국이 제멋대로 움직일수록, 중견국은 더 지혜로워야 한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2026.01.11.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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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의 과학하는 마음]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해야 할 일

지나간 한 해를 돌이켜볼 때 과학기술분야에서 가장 떠들썩했던 주제는 인공지능(AI)이었다. 미국의 타임지는 2025년 ‘올해의 인물’로 인공지능 분야에 기여한 8명의 인물들을 선정하였다. 세계 각국의 정부도 사업가도 기술자도 다들 미친 듯이 인공지능에 몰입하였고, 그 중심에 자리잡은 엔비디아라는 회사는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5조 달러를 돌파한 기업이 되었다. 그러나 무조건 좋아할 일은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인공지능 관련 기업들의 폭발적 성장이 결국 꺼지고 말 거품이라는 경고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고, 그보다도 더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은 무서운 속도로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오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활동과 존재 자체에 미칠 영향이다. 인간 영역에 깊게 침투한 AI ‘사람의 쓸모’ 깊은 의문 들어 인간의 자기성찰 더욱 필요해 최종 판단과 경험은 인간 몫 근래에 개발된 인공지능 에이전트들은 수준 높은 자료 수집과 분석을 엄청난 속도로 해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과학 연구에도 사용된다. 그뿐 아니라 뛰어난 언어능력을 발휘하며,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고 시를 쓰는 등 창의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쓰는 경지에 이르렀다. 기계가 이렇게 모든 일을 한다면, 또 사람보다 훨씬 더 빠르게 효율적으로 한다면 도대체 사람은 무슨 쓸모가 있는 것인지, 사람이 직접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공지능이 특별한 이유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물론 오래전부터 있어온 일이다. 공업·농업·건설업에서 힘 세고 정밀한 기계는 인간의 노동을 많은 부분 불필요하게 했으며, 인지적인 영역에서도 계산기나 구식 컴퓨터로 인간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와 정확성을 가진 작업을 하는 것은 일상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특별한 혼란을 가져오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일들을 의외로 잘 해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벌써 오래전, 알파고가 바둑의 달인 이세돌을 물리쳤을 때 그 생생한 충격을 경험했다. 최근 개발된 인공지능을 볼 때 가장 경이로운 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가 글을 쓴다는 것은 대개들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챗GPT 등 인공지능 에이전트들이 웬만한 사람보다 글을 더 잘 쓴다. 말끔한 문장을 지어내고 글의 구성도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해낸다. 한 가지 언어로 글 쓰는 것을 넘어서, 번역과 통역도 거침없이 해낸다. 이것은 인간 중에도 다년간 훈련받고 경험을 쌓은 최고의 전문가들만이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인데, 이제는 그 전문가들이 인공지능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이제 예술도 거기에 맡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대단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림과 시를 내가 끄적거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으며, 인공지능이 지은 노래가 인기 차트에 오르는 사건까지 이미 일어났다. 그러면 이제 인간 특유의 직관이나 창의성은 낡아빠진 개념에 불과한가? 그렇게 섣불리 생각하기는 이르다. 인공지능이 박학다식한 것은 세상에 나와 있는 정보를 검색할 수 있기 때문이며, 언어를 잘 사용하는 것은 인간들이 말해 놓은 것을 다 섭렵해 모방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데이터 속에 있는 패턴을 잘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내놓은 결과의 가치에 대한 판단력은 미미하고, 결국 그 판단은 인간의 임무이다. 인공지능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아직 경험이 부족한 조수에게 일을 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조수가 가져온 결과는 일 시킨 사람이 보고 판단해 채택하든지 폐기하든지 다시 해오라고 시키든지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가진 가치관에 의하여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인공지능에 시킬 수 없다. 인공지능이 극단적인 정치적 발언 등을 하는 것을 자동화된 알고리즘으로 막으려는 시도는 있지만 잘 안 되고 있다. 우리가 정치인들에 대한 많은 비판을 하지만, 인공지능이 모여서 하는 국회나 내각은 생각할 수 없다. 인생의 의미는 직접 경험하는 것 그러나 어떤 것도 영원히 인간만의 영역이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기술은 아무리 조심스레 개발한다 해도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발전될 것이고,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여겼던 곳들을 계속 침범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래도 인간만이 가진 능력과 인간이 직접 해야만 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따분하고 피곤한 일이지만 그런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포기한다면 인간은 그야말로 기술의 노예가 될 것이다. 또 한가지 상기할 점은, 인생의 의미는 직접 경험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는 계산기를 쓰더라도 어린이들에게는 산수를 가르쳐서 직접 계산하는 법을 우선 깨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숫자를 곱하고 나누고 해 본 경험 없이 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방정식을 풀어 보고 미적분을 해 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그렇다. 인공지능이 번역해 주면 내가 애써 할 필요는 없지만, 외국어를 직접 힘겹게 배우면서 이국적 사고방식을 배우고, 또 그러한 다른 사고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게 되는 일은 인공지능이 해 줄 수 없다. 무슨 일이 되었건 인공지능이 더 잘한다고 거기에 모든 것을 맡긴다면 우리는 직접 경험하면서 배우는 기회를 빼앗기므로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없다. 사람이 해주건 인공지능이 해주건 남이 다 해주는 인생은 무의미한 인생이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

2026.01.11.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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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필향만리’] 小人之過也 必文(소인지과야 필문)

오늘날 흔히 ‘글월 문’이라고 훈독하며 문장(文章)은 물론 문화·문명 등에 널리 쓰이는 한자 ‘文’은 원래 ‘무늬’라는 뜻으로 탄생한 글자이다. 무늬는 ‘꾸밈’으로 진화하고, 꾸밈은 다시 야생에 인공의 변화를 가하여 이룬 모든 문화와 문명 현상을 칭하는 말로 진화하였다. 그러므로 文의 바탕에는 꾸밈이라는 의미가 자리하고 있는데, 꾸밈이 나쁜 의미로 쓰이면 곧 거짓과 핑계가 된다. 공자의 제자 자하는 “소인은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文한다”고 말했는데, 이때의 文이 바로 거짓으로 꾸며 핑계를 댄다는 의미이다. 2025년 7월 7일자 ‘필향만리’에서 “군자구저기 소인구저인(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즉 “군자는 (잘못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는 말을 소개한 적이 있다. 모든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서만 찾으려 드는 소인은 당연히 자신의 잘못은 거짓으로 꾸며 가리면서 갖가지 핑계만 댄다. 거짓이 거짓을 낳고 핑계가 핑계로 불어나게 된다. 지금 우리는 거의 매일 이런 소인배들의 비열한 핑계 소식을 접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속담처럼 반복되는 보도를 보고 듣자니 오염될까 봐 두렵다. 악에 대한 심판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2026.01.11.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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