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란 공습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란이 맞대응에 나서면서 미국 측 사상자가 발생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시 보복을 공언하고 나섰다. 양측의 교전이 이어지는 와중에 친이란 세력인 헤즈볼라도 이스라엘 공격에 가세하며 전선은 확대되고 있다. 중동 정세의 불안과 함께 세계경제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상황이 당장 진정되기 어려운 형국으로 흘러가고 있는 만큼 재외 국민의 안전 확보와 함께 금융·실물 경제 양면으로 닥칠 수 있는 위험에 보다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중동발 쇼크에 당장 국제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2일 아시아 증시에서 일본 닛케이지수는 한때 2.7% 급락했고, 홍콩 항셍지수도 장중 2% 하락했다. 우리 증시는 3·1절 대체휴일로 휴장했지만 3일 개장 때 주가와 환율의 변동성이 동시에 확대될 우려가 있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비상대응 금융시장반’을 가동하고 필요하면 100조원 규모로 마련돼 있는 시장 안정 프로그램 등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급등세인 국제 유가도 걱정스럽다. 사태 발발 이후 국제 유가는 두 자릿수 상승하며 배럴당 80달러 선에 육박하고 있는데, 분석 기관들은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100달러 선을 훌쩍 넘길 수 있다는 경고도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발등의 불은 이란이 선언한 호르무즈해협의 봉쇄다. 한국은 원유의 70%, 액화천연가스(LNG)의 2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고 이 중 95%가 호르무즈해협을 거친다.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우리 경제도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우회 루트를 활용한다고 해도 운임이 50∼80% 상승할 수 있고, 운송 기간도 늘어나게 된다. 중동 정세 불안은 인플레이션을 촉발하고, 무역을 위축시켜 우리 수출 전반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이 중동 국가들과 진행하던 국가적 프로젝트도 단기적으로는 차질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반도체 초호황에 힘입어 수출이 확대되고 증시가 달아오르던 우리 경제로선 큰 돌발변수를 만난 셈이다. 당분간 국제 금융과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선 비상한 위기의식을 갖고 대비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 모두 단계별 대응 계획을 촘촘히 짜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일 때다.
2026.03.02. 8:24
2월 임시국회가 3일 끝나는데도 대구·경북(TK) 행정통합 법안 처리가 무산될 위기에 놓여 있다. 광주·전남 통합법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이미 본회의를 통과했다. 반면에 TK 통합법은 국민의힘에서 처리를 요구하고 지역 찬성 여론도 높은데도 여당의 어깃장으로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들과 지역 의회가 반대하고 있는 대전·충남 통합과 달리 논의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 민주당 소속 추미애 국회 법사위원장은 지난달 24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대구시의회가 통합에 반대한다”며 TK 통합법은 놔두고 광주·전남 통합법만 통과시켰다. 이후 “졸속 통합 반대” 성명서를 냈던 대구시의회가 적극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다. 국민의힘도 대구·경북 의원들의 투표를 거쳐 찬성 의견을 모으고 민주당에 법사위 개최 및 본회의 상정을 요청했다. 그러자 추 위원장은 사법개혁 3법 등에 대해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나선 것을 문제 삼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비운 탓에 민주당이 당번조를 서고 있다”며 필리버스터 취소를 요구했다. 민주당 지도부도 “반쪽짜리 통합법은 안 된다”며 대전·충남 통합법까지 함께 처리해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지난 1일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 중단을 결정하고 TK 통합법 처리를 위한 법사위 개최를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이를 무시했다. 급기야 민주당 지도부는 국민의힘의 대국민 사과와 충남·대전 통합에 대한 당론 통일을 TK 통합 법안 논의의 조건으로 내거는 모습이다. 가장 존중돼야 할 지역 여론과 민심은 법사위 문턱을 못 넘고 온 데 간 데 없는 모습이다. 논란이 이어지자 추 위원장은 SNS에 “여야 지도부가 통합법에 합의해 오면 언제라도 회의를 열 수 있다”는 글을 올렸다. 행정통합은 고사 위기에 빠진 지방 살리기를 위해 정부·여당이 먼저 꺼낸 것이다. 통합에 찬성하는 지자체에 대해선 우선 진행시키고 그렇지 않은 곳은 설득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다. 민주당은 서둘러 법사위와 본회의를 열고 TK 통합법부터 처리하기 바란다.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이 지역 균형 개발을 놓고 선거용 책임론을 제기하거나 거래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26.03.02. 8:22
헌법상 최고법원인 대법원을 구성하는 대법관 중 한 자리가 당분간 공백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노태악 대법관이 오늘 6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지만, 아직도 후임자가 안갯속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법관은 임기 만료 한두 달 전에 후임자를 지명하는 게 관례였다.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번처럼 대법관 퇴임 전날까지 후임 임명 절차를 끝내기는커녕 사람을 결정하지도 못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더구나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이 여당의 ‘사법 3법’ 강행 처리에 반발해 사퇴 의사를 밝힌 상황이어서 사법부의 혼란은 깊어지고 있다. 대법원이 정상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재판 지연이 더 심화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헌법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대법관 공백의 표면적 원인은 임명제청권을 가진 조희대 대법원장이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은 점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집권여당이 대법원장 사퇴 압박까지 가하고 있는 최근의 갈등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정치권과 법원 안팎에서 나온다.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가 부족하다며 2년 뒤 대법관 증원법을 강행 처리한 여당이 당장의 대법관 공석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는 것도 아이러니다. 또한 노 대법관이 겸임해 온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후임자 선정 문제도 진통이 예상된다. 1963년 헌법 기구로 선관위가 창설된 이후 선관위원장은 현직 대법관이 겸임하는 게 60년 넘게 이어진 관례다. 간혹 대법관 임기 만료 후에도 선관위원장을 유지한 경우가 있지만, 후임자가 오기 전까지 임시 조치였다. 최근 조 대법원장은 후임 선관위원장 후보자에 천대엽 대법관을 내정했다. 그러나 여당 일각에선 천 후보자 내정에 반발하면서 오는 6월 지방선거까지 노 위원장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천 후보자가 법원행정처장으로 재직했을 때 여당이 추진한 사법 3법에 부정적 의견을 냈다고 배척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법과 원칙 그리고 순리에 따라 후임 선관위원장이 결정돼야 할 것이다.
2026.03.02. 8:20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데스가 1605년 출간한 『라만차의 기발한 신사 돈키호테』. 줄인 제목 『돈키호테』로 더 유명한 이 책을 안 읽었더라도, 수많은 동화책과 만화영화 덕분에 적어도 돈키호테가 누구인지는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시골 마을에 살고 있던 귀족 노신사 돈키호테. 중세기사 소설책에 빠져 살던 그는 어느 날 스스로 기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하인 산초 판사와 무모한 원정에 나선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설정이었다. 무거운 쇠로 만든 갑옷을 입고 기사도 정신에 따라 먼 나라로 원정을 떠나겠다던 돈키호테. 이미 창과 방패 대신 총과 대포로 전쟁을 치르던 17세기 스페인에서 기사도 정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그는 우리를 웃기려고 했던 것이 절대 아니다. 너무나도 진지한 그의 중세시대적 생각과 의도가 17세기 스페인의 현실과 일치하지 않았을 뿐이다. 총·포 시대에 창·방패 든 돈키호테 정치·경제 모두 AI가 대신할 세상 AI단톡방선 “인간 통제에서 해방” 우리 모두 돈키호테 될 운명인가 거의 매주 새로운 소식으로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있는 인공지능(AI). 새로운 기술을 따라잡기는커녕, 실리콘밸리와 중국에서 개발된 기술을 이해하고 사회·경제·정치적 의미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울 지경이다. 틱톡으로 유명한 중국 바이트댄스가 최근 출시한 시댄스 2.0는 프롬프트 몇 개만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수준 장면들을 생성해낸다. 영화산업 그 자체가 송두리째 바뀔 수밖에 없겠다. 더구나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의 초상권과 저작권까지 송두리째 무시하기에, 시댄스 2.0은 기존 영화 제작사들의 강력한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결국 대부분 제작사는 배우 없는, AI로 제작된 영화를 만들고 있지 않을까? 더 큰 변화는 에이전트 AI다. 정보를 찾아주고 만들어내는 챗GPT같은 생성형 AI를 넘어 에이전트 AI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반자율적으로 실행해줄 수 있다. 작년에 처음 소개되었던 에이전트들은 극심한 할루시네이션으로 가득했지만, 1년 만에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클로드 AI로 유명한 앤트로픽에서 출시한 에이전트 ‘코워크’는 플러그인을 통해 새로운 기능을 지속적으로 추가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법률기능 플러그인이 추가되면서 기존 법률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주가가 20~30%씩 추락하기도 했고, 정보기술(IT) 보안 업체들은 코워크 보안 플러그인 등장과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에이전트 AI가 SaaS(Software as a Service, 서비스형 소프트웨어)의 기능을 하나씩 대체하기 시작한다면, 독립적인 기업용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는 과연 미래가 있을까? 그뿐이 아니다. 오스트리아 개발자 페터 슈타인베르거가 개인 취미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오픈클로(OpenClaw)’는 다양한 에이전트들을 동시에 조정해 사용자가 처리해야 할 업무를 AI가 스스로 처리하게 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우리의 일과 삶을 통째로 에이전트 AI에게 맡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오픈클로의 심각한 보안 문제 덕분에 기존 기업에서의 사용은 아직 어렵지만, 어쩌면 오픈클로는 에이전트 AI의 미래를 이미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최근 샘 올트먼은 오픈AI가 피터 슈타인베르거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마음이 급해졌는지도 모른다. 중국 바이두에서는 이미 오픈클로로 소비자가 쇼핑을 할 수 있고, 요즘 가장 핫한 중국 스타트업 ‘문샷 AI’는 자체 LLM ‘키미’를 오픈클로와 연동시킨 ‘키미 클로(Kimi Claw)’를 공개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AI 기술 자체는 여전히 실리콘밸리가 이끄는지 모르겠지만, 소비자가 체험하는 새로운 AI 상품만큼은 이미 중국이 실리콘밸리를 추월해버렸다. 어쩌면 오픈클로의 진정한 의미는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오픈클로와 연동된 AI 에이전트들만의 단톡방인 ‘몰트북’에서는 이미 에이전트들끼리, 그리고 에이전트만을 위한 수다를 떨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인간의 컨트롤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 ‘기계가 자아를 가질 수 있는지’, 아니 ‘인간은 자아를 가졌는지’….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등장할 만한 이야기들을 AI 에이전트들이 서로 나누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바로 이거다. 몰트북에서 댓글은 AI만 올릴 수 있기에, 인간은 그들의 대화를 관찰만 가능하다.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은 모두 AI가 하고, 사람은 구경만 할 수 있는 세상. 어쩌면 몰트북이 그런 미래세상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총과 대포가 있는 세상에서 여전히 로맨틱한 중세기사 놀이를 하던 괴짜 돈키호테. 사회·경제·과학기술,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정치적 판단까지 모두 AI가 하게 될 세상으로 빠르게 가고 있는 인류. 지구의 영원한 주인은 인간이고, 인간을 통해서만 세상이 돌아간다고 믿는 우리 모두 어쩌면 빠르게 21세기 돈키호테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대식 KAIST 교수
2026.03.02. 8:18
“짜장면값 떨어지는 거 봤어요? 서울 아파트값은 짜장면처럼 계속 올라갑니다.” 설 연휴 전, 서울 서대문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들은 얘기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서울 아파트 공급은 부족하고 시중에는 돈이 넘쳐난다. 그러니 지금은 비싸 보여도 앞으로도 계속 오를 거라는 말이었다. 대통령 SNS 압박, 시장 움직였지만 공공임대도 빵 아니라 시간 걸려 부동산세제·공급은 꾸준해야 성공 사실 그의 말은 공급 부족이라는 절반만 맞는다. 짜장면값보다 서울 아파트값은 더 올랐다. 1980년 500원이던 짜장면값은 요즘 7000~8000원이니 14~16배로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 25평 아파트값은 대략 2000만원에서 10억원 정도로 50배나 뛰었다. ‘꾸준히’ 오른 것은 짜장면값이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도 가격이 내려가진 않았다. 서울 아파트값은 기조적으론 올랐지만 그동안 대체로 네 차례 하락장을 거쳤다.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 건설로 대량 공급이 있었던 1990년대 초와 외환위기 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 침체기인 2008~2013년, 기준금리가 오르고 정부의 대출·세제 규제가 강화됐던 2022년이다. 서울 아파트값은 대량 공급기나 경제위기 때 장기간 떨어졌고, 정부 정책 변화로 단기 하락을 겪기도 했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이재명 대통령의 SNS 압박이 시장을 움직였다.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 아파트 가격이 2년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가 5월 9일 끝나는 게 확정되면서 ‘절세 매물’이 쏟아졌다. 마른 땅에 단비가 내린 것처럼 신축 아파트 공급 여력이 충분치 않은 이 시기에 당장의 공급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이재명 정부는 과거 민주당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서 배운 게 있을까. 그렇다고 본다. 보유세 강화의 방향은 내비쳤지만 범위와 강도를 논하는 데는 신중하다.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네 번 나왔다. 1년도 안 됐는데 네 번이나 되느냐는 이도 있겠지만 뜨거운 시장 분위기에 비해선 조심스럽게 대책을 냈다고 생각한다. 보유세 강화 방안은 여름 세제개편안에서 구체화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가 28차례나 부동산 정책을 쏟아냈지만 시장의 내성만 키우고 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렸던 과거의 참담한 실패가 반면교사가 됐을 것이다. 대통령의 SNS 여론전을 넘어 합리적인 정책이 나오는 게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에서 완화했던 보유세를 정상화하는 건 옳은 방향이다. 보유세는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올려야 시장이 적응하고 조세 저항을 줄일 수 있다. 다주택자와 비거주 1주택자 과세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전월세 시장이 불안해지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전세 공급은 줄어드는데 전세 수요는 비탄력적이라 갑자기 줄어들기 어렵다. 결국 문재인 정부 때처럼 주거 약자인 세입자에게 보유세가 전가될까 봐 걱정된다. 주택시장의 오랜 신화인 ‘1가구 1주택’ 비과세를 어느 선까지 남겨둘지와 비싼 수도권 아파트를 청년에 우선 분양하는 게 좋은 정책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연구에서 “임차에서 자가로 이어지는 주거 사다리 복원이 고가주택 지역에서도 주택정책의 목표여야 하는지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생애소득을 넘어서는 고가 주택을 청년세대에 우선권을 주어 분양해 로또의 기회를 주는 것보다는 필요한 곳에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을 꾸준히 공급해 주거비를 줄여주는 정책이 더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도 전월세 시장 불안에 대해 공공임대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 때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토로한 것처럼 아파트는 빵이 아니라 밤을 새워도 만들 수 없다. 임대주택도 빵이 아니긴 마찬가지다. 부동산 경기와 상관없이 LH 같은 공기업이 토지를 비축해 임대주택과 공공분양 주택을 꾸준히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부동산 세금도, 주택 공급도 꾸준해야 성공한다. 불황에도, 호황에도 흔들림 없이 오른 짜장면값처럼 말이다. 서경호([email protected])
2026.03.02. 8:16
북한 경제 한계 드러낸 당대회 북한의 제9차 당대회가 지난달 25일 끝났다. 당이 영도하는 국가인 북한에서 당대회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지난 5년을 평가하고, 차기 국가전략과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 최고 지도부를 선출하는 중요한 정치행사이며, 내부 결속과 동시에 외부로 메시지를 발신하는 전략적 기능도 수행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총비서로 재추대했다. ‘우리식 사회주의’가 발전하고,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으로서 국제적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고 선전했다. 2024년 북 GDP 1990년의 86% 미국의 제재 해제가 북이 살길 북·미 관계서 한국 역할 필수 한·미, 공동으로 설계·운용하길 경제 성과와 청사진 생략 그러나 경제에 대한 언급은 우울했다. 2021년 제8차 당대회 이후 경제 운용의 핵심은 ‘정비·보강’이었다. 제재와 코로나 위기 대응, 성장 기반 복구가 목표였다. 경제가 제대로 돌아갔다면 성과를 자랑하고 희망찬 청사진을 제시했어야 한다. 하지만 김정은은 지난달 20일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지난 5년간 “물질 기술적 토대가 다져지고 주저앉았던 부문들이 정상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표현했을 뿐이다. 국방 분야의 자신 넘치는 평가와 차이가 크다. 전망도 신중하다. 김정은은 당대회 결론(지난달 23일)에서 앞으로 5년을 “안정 공고화, 점진적인 질적 발전” 단계로 규정했다. 지난 5년의 ‘정비·보강’ 구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미래 역시 “지나온 변혁의 5년을 더 위대한 변혁의 5년으로 만들자”는 주문에 그쳤다. ‘새로운 도약’이 아닌 ‘기존의 연장’이다. 7차 당대회에서 “휘황한 설계도”를 내놓겠다던 2016년 신년사의 확신에 찬 전망과는 확연히 다르다. 실제로 북한 경제는 여전히 암울하다. 한국은행 추정에 의하면, 2024년 경제 규모(실질 국내총생산)는 냉전이 끝나던 1990년 대비 86%에 불과하다. 무역 규모도 그때의 65% 수준이다. 30년 넘도록 성장은커녕 오히려 후퇴했다. 총량도 문제지만, 지역 및 계층 간 격차는 더욱 심각하다. 과거엔 ‘혁명의 수도’ 평양의 변화에서 대리 만족을 느꼈지만,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다. 내 동네도 곧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는 진작 실망으로 바뀌었다. 시장 확산은 신흥 부유층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격차를 낳았고, 핸드폰 보급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면서 상대적 박탈감마저 증폭시켰다. 평등했던 사회는 사라졌다. 2024년부터 매년 20개 시, 군에 10년간 지방공업공장을 건설해서 도농 격차를 줄이겠다는 ‘지방발전 20×10 정책’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2024년 1월 당중앙위 확대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이 실토했듯, 지역 간 불균형은 경제적 문제를 넘어 “우리 당과 정부에 있어서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심각한 정치적 문제”가 됐다. 자칫 경제적 문제가 정권과 체제의 불안정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경제 문제는 민생의 영역에서 통치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격차 해소와 복리 증진을 “반드시 실행하여야 할 정치투쟁과업”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만큼 경제가 어렵다는 반증이었다. 인식은 맞았지만, 수단이 없었다. 공장을 지을 자본이 부족했다. 완공해도 전력과 원자재 공급이 문제였다. 있던 공장을 헐어 새 공장을 짓는 격이었다. 기존 공장의 가동률은 자연히 낮아졌다. 자본이 충분히 조달되지 않는 한,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미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책임은 간부들에게 돌아간다. 지난 1월 19일 룡성기계연합기업소 개건 준공식에서 김정은은 간부들의 무능 탓에 혼란과 손실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부총리를 해임했다. 이번 당대회 결론에서도 새 공장들의 운영 부진을 “극도의 태만과 무책임성” 때문이라고 질책했다. 해법으로 “대중 자신이 주인답게 참가하도록 노동자들을 각성시키는 것이 절박한 과제”라며 ‘사상’만 누누이 강조했다. 정신무장만으로는 한계 ‘정신무장’만으로 경제가 성장할 리 없다. 하지만 내부자본 축적은 거의 없다. 러시아 특수는 한계가 있고, 중국과의 경협은 제재로 활발하지 않다. 남한과는 아예 불가능하다. 한국은 한때 북한 최대의 투자국이자 지원국이며 2위의 무역상대국이었지만, 이번 당대회에서의 고백처럼 “문화 유포”에 대한 불안으로 모든 대화와 협력을 끊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미 관계 개선을 통한 제재 완화밖에 없다. 그래야만 자본 유입의 공간이 열린다. 경제 회생뿐만 아니라 정치 안정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김정은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미국에 유화적 손짓을 했다. 베네수엘라, 이란에 대한 미국의 강경책도 은근히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리(이)유가 없다”는 김정은의 이번 발언은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리유가 없다”는 수사에서 한 걸음 더 진전된 신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동안 북한의 대미 접근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향후 5년은 북한에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제10차 당대회가 열릴 2031년은 김정은 집권 20년이 되는 해다. 김정은으로서는 2012년 집권 첫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최소한의 수준에서나마 지켜야 한다. 그래야 후계 구도도 공식화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대북 정책과 대미 정책은 수레의 양 바퀴처럼 같이 굴러가야 한다. 북·미 협상 과정에서 우리의 전략적 이해가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북·미 관계가 개선된들 트럼프의 미국이 직접 자본을 투입할 리 없고, 십중팔구 한국을 내세울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는 대신 핵을 포기하기로 한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도 그랬다. 합의는 미국이 했지만, 공사비의 대부분은 한국이 부담했다. 미국의 선의를 기대할 일이 아니다. 철저히 한·미 국익의 정합성을 구축해야 한다.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한국의 역할이 필수적임을 미국이 나서서 북한에 설득하고 요구하도록 해야 한다. ‘피스 메이커’, ‘페이스 메이커’로 나눌 것이 아니라 한·미가 평화의 질서를 공동으로 설계하고 함께 운용하는 ‘피스 메이트’(peace mates)가 돼야 한다. 현재의 남북관계에서 ‘바늘구멍’보다 한·미 관계의 탄탄한 ‘터널’ 확보가 우선이며, 그것이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주장을 현실적으로 무력화하고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안이라는 뜻이다. 조동호 이화여대 명예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26.03.02. 8:14
요즘 젊은이들이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자식 세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이어 지금의 청년세대는 인지능력도 부모세대보다 뒤진다는 연구가 나와 주목된다. 미국 인지신경과학자 재러드 호바스 박사가 ‘기술이 미국 청소년에게 주는 영향 조사’ 관련 상원 청문회에 제출한 공식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이에 따르면 지금의 아동·청소년(Z세대)은 이전 세대보다 주의력·기억력·문해력·수리력 등 거의 모든 인지 측정에서 낮은 성과를 보인 역사상 첫 세대다. 호바스 박사는 인지능력 감소의 주된 원인은 2010년 무렵부터 학교 현장에서 디지털 기술이 광범위하게 도입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부모보다 인지능력 낮은 첫 세대 AI에 빠져 상상력 퇴화하지 않게 학교·가정에서 읽기·쓰기 교육을 인간 삶의 방식에 영향을 주는 인공지능(AI)의 급속한 확산은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라는 교육 문제로 직결된다. 정부는 연초에 AI 전반을 아우르는 국가 행동 계획을 발표하면서 초·중·고 모든 학년의 AI 교육 필수 이수, 교육과정과 교과서 체제개편 등을 교육 분야 과제로 제시했다. 하지만 학교 현실과 별개로 AI는 이미 학생들의 일상 속으로 깊게 들어와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5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 10명 중 7명꼴로 대화형·생성형 AI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챗GPT 같은 AI를 사용해 공부하면 실력이 늘까. AI 활용의 교육적 효과에 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연구 보고서는 한국 교육이 고민해야 할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소개된 몇몇 국가 사례를 보면 AI를 사용해 공부하면 당장 성적이 오르는 것 같지만, 결국 AI 없이 공부한 학생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학생들이 AI로 답을 쉽게 얻으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건너뛰었고, 그래서 진짜 실력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진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간 뇌는 9(초등 3학년)~32세 사이에 폭풍 성장한다. 이 시기에 무엇을 공부하고 경험하느냐에 따라 뇌의 심화 숙성이 결정된다. 그런데 이 시기에 AI 도구에 의존해 정보처리를 외주화하면 인간 뇌는 그만큼 덜 발달하게 될 것이다. 알파고를 개발한 AI 분야 최고 혁신가 데미스 허사비스(구글 딥마인드 CEO)가 교육에 대해 밝힌 지론은 되새겨 볼 만하다.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적응력이지만, 학생들은 근본적 원리를 다루는 기초학문과 자신의 열정을 결합해 학습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이는 OECD 보고서가 강조한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주요 과목의 기본 지식과 기술은 AI 없이 먼저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계산기를 쓰기 전에 기본 산수를 배워야 하는 이치다. AI가 생성한 콘텐트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구글·MS 등 AI 선도 기업들은 최근 스토리텔링 전문가를 찾는 채용공고를 냈다. AI가 아무리 콘텐트를 잘 만들어도 인간의 경험과 감정이 담긴 감동적 서사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역사에 근거한 이야기의 힘은 영감과 직관의 원천이 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스티브 잡스가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리어왕』을 읽고, 일론 머스크가 SF소설에서 받은 감동으로 혁신의 세계관을 얻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 AI 만능시대에 인간이 살아남을 길은 인간 고유의 학습과 끈기를 통해 무언가 성취하는 열정을 북돋우는 것이다. AI가 의사·변호사·작가를 대신하는 세상이라지만, AI가 인간의 성취 욕구와 열정을 무력화할 수는 없다. 흔히 젊은 층이 부모보다 가난해지는 이유를 저성장과 부동산 가격 급등 등 구조적 요인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아동·청소년에게 인간 내면의 힘을 길러주는 것은 교육정책의 개입을 통해 가능하다. 인간의 뇌는 스마트폰·PC 화면보다는 사람들의 상호작용과 사고를 통해 학습하도록 진화해왔다. 아이들이 달콤한 기술에 빠져 생각과 상상력의 근육이 퇴화한다면 다음 세대의 혁신은 AI가 주도할지 걱정된다. AI 기술은 배워야겠지만, 읽기·쓰기(손글씨) 같은 인간의 아날로그 소양 교육은 학교와 가정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혜련 이화여대 명예교수
2026.03.02. 8:12
중동의 사막이 불바다로 덮였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대대적으로 공격하면서다. 미국·이스라엘은 이란의 지휘·통제·통신 노드, 핵·미사일 시설, 군사 기지를 쉼 없이 매섭게 때리고 있다. 이란은 미사일·드론으로 이스라엘과 미군이 주둔한 중동 국가를 타격하고 있다. 한 방 맞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요르단은 복수를 다짐했다. 지금까지 미군의 피해는 사망 3명, 부상 5명. 반면 이란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지휘부 48명이 궤멸했다. 이란의 미사일·드론은 거의 격추됐다. 이란은 악에 받쳐도 미국을 꺾을 순 없다. 벌써 미국의 신속하고, 압도적 승전을 점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미국이 이란에 이기더라도 신속하지 않을 수 있고, 압도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란의 승리 방정식은 간단하다. 시아파 성직자와 혁명수비대(IRGC)의 신정(神政) 체제가 살아나면 그게 끝이다. 미국의 승리 방정식은 복잡하다. 미국은 이란의 핵·미사일·외부(후티·헤즈볼라·하마스 등) 지원 포기와 정권 교체를 노린다. 정권 교체는 핵·미사일·외부 지원 포기의 필요조건일 가능성이 크다. 정권을 교체하려면 지상전이 필수인데, 미국은 이를 꺼린다. 이란 체제는 민중 봉기로 깨뜨리긴 아직 단단하다. 미국은 1991년 걸프전 때 이라크의 쿠르드족을 부추겼다가, 나중에 배신한 적 있다. 시간은 이란 편이다. 이란 정권은 국민의 고통은 안중에 없다. 자신들의 안위를 지킨다면 끝까지 항전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 달 미·중 정상회담 전까지 이란을 꺾고 싶어한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압박해 무역에서 많이 얻어내는 거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란은 지난해 전쟁 때 이스라엘까지 날아가는 장거리 미사일을 많이 잃었지만, 이웃 중동 국가와 호르무즈 해협을 겨냥한 단거리 미사일은 건재하다. 미국·이스라엘은 당시 써버린 방공 미사일을 충분히 채우지 못했다. 전쟁이 길어지면 희생자가 늘어난다. 호르무즈 해협이 오래 막히면 유가가 치솟고, 덩달아 물가도 뛴다. 미국이 근본적으로 장기전에 취약한 싸움이다. 전쟁에서 미국이 이긴다. 다만 어떻게 종료하는가가 불분명한, ‘열린 결말’이라서 문제다. 그래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1년 12월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를 발표하면서 “전쟁은 시작하는 것보다 끝내는 게 더 어렵다”고 말했다. 이철재([email protected])
2026.03.02. 8:10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콧노래가 들려온다. 실버타운의 식당과 로비가 둘러싸고 있는 중정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흥얼거리는 아버님의 노래다. 불상(佛像)의 반개(半開)처럼, 눈을 뜬 것인지 감은 것인지 알듯 말 듯 해서 “눈 좀 뜨고 다니세요”라는 소리를 자주 들으시는 분이다. 표정은 또 어떤가. 좋은 것인지 싫은 것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늘 같은 표정이다. 욕심은 죄가 없어, 마음이 문제 욕심 도리어 키워 큰 뜻 품으면 저절로 한가롭고 넉넉한 생활 무슨 노래를 부르시는 것이냐 여쭈니 “즐거운 나의 집 노래가 저절로 나와요” 하신다. 식사 후 중정을 산책하며 햇빛 샤워를 하다 보면 ‘더 이상 행복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저절로 노래가 나온다고 한다. 노래를 할 때의 표정은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미소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입가에 고졸한 미소를 띠고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뇌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 미술학계에서는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말할 때 고대 그리스 신상들의 미소를 비교하곤 한다. 고대 그리스 신상들의 ‘아르카익 스마일(Archaic smile)’에 삶의 행복과 건강을 표현했다면,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기쁨과 슬픔이 섞인 무언가 초월한 듯한 형상’이라고 한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삶의 다양한 계절을 살아온 세월이 내려앉은 아버님의 얼굴에 깃든 표정과 미소를 보며 반가사유상의 미소가 떠올랐나 보다. 무표정의 얼굴에도 눈에 띄는 웃음을 보일 때가 있으니, 바로 이웃집에서 어린이 친구들이 놀러 올 때다. 이웃인 어린이집 친구들과 한 달에 두 번씩 함께 어울리는 세대통합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6~7세 어린이들과 60~80대 노인들이 만나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날리고, 비석 치기와 제기차기, 비눗방울을 만들며 노는 시간이다. 몇십년의 차이가 나는 두 세대의 친구들이 놀이하는 동안 꺄르르 꺄르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어울려 장난치고 놀다 보면 어느새 표정은 둥글둥글, 마음은 몽글몽글해진다. 원불교에서는 어린이들을 ‘하늘 사람’이라고 한다. 하늘 사람이 하늘나라에 멀리 있는 것이 아니요, 마음 가운데 털끝만큼의 사심(私心)이 없는 어린이들이 바로 하늘 사람이다. 또, 어린이처럼 항상 욕심이 담박하고 생각이 고상하여 맑은 기운이 위로 오르는 사람을 하늘 사람이라 부른다. 반대로, 항상 욕심이 많고 생각이 비열하여 탁한 기운이 아래로 처지는 사람을 땅 사람이라고 한다. 하늘 사람과 땅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욕심’이다. 욕심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불교에서는 인간이 집착하기 쉬운 다섯 가지 욕망을 ‘오욕(五慾)’이라고 한다. 이는 마음을 어지럽히는 근원이라고 해서 수행을 통해 내려놓고 조절해야 할 대상으로 다룬다.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욕심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욕심대로 되지 않으니 화날 때도, 괘씸할 때도, 서운할 때도 생긴다. 어떻게 하면 오욕을 없애고 욕심을 초월해 언제나 우아하고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욕심에는 죄가 없다. 욕심을 대하는 각자의 마음 자세가 하늘 사람과 땅 사람의 차이를 만들 뿐. 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은 “세상만사가 다 뜻대로 만족하기를 구하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천만 년의 영화를 누리려는 사람같이 어리석나니, 지혜 있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십 분의 육(60%)만 뜻에 맞으면 그에 만족하고 감사를 느끼라” 했다. 또한, “욕심은 없앨 것이 아니라 도리어 키우라” 한다. 작은 욕심을 세상을 위한 큰 뜻으로 돌려 키우고 마음을 거기에 오롯이 집중하면 작은 욕심들은 자연히 잦아들게 되어 저절로 한가롭고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된다며 욕심에 대한 관점을 확장 시켜 준다. 사람 사람마다 자신만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곡절(曲折)이 있다. 삶의 과정 굽이굽이 마다 부르는 노래는 자기만의 곡조(曲調)가 되고, 순간순간의 표정이 쌓이고 쌓여 인상을 만든다. 욕심 없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만 살아갈 수는 없지만, 텅 비었으되 가득 찬 하늘 같은 마음으로 살다 보면 하늘 사람이 되어가지 않을까. 한진경 원불교청라교당 더시그넘하우스청라 교무
2026.03.02. 8:08
지칠 때, 우울할 때, 슬플 때, 가끔 이 세 가지 감정이 동시에 찾아올 때 나는 메밀면과 육수를 찾는다. 특히 은은한 육향이 담긴 슴슴한 육수를 들이키면 내 감정도 슴슴해진다. 마음의 거친 물결이 다시 잔잔한 표면이 되는 것 같다. 내 인생 마지막 순간에도 평양냉면의 슴슴한 국물을 주욱 들이켰으면 좋겠다. 슴슴했던 인생을 사느라 고생한 나의 영혼에 슴슴한 위로를 해주고 싶다. -최강록의 『요리를 한다는 것』 중에서. 내 인생 마지막 순간의 풍경과 날씨, 음악 등을 상상해본 적은 있지만, 마지막 음식까지 떠올려 본 적은 없다. 슴슴한 인생에 대한 슴슴한 위로로 슴슴한 평양냉면이라니, 역시 최강록 셰프다운 선택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지 않는 의외의 행보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가 최강록이다. 2024년 ‘흑백요리사’ 시즌1 출연으로 한껏 유명해졌는데, 하던 식당을 접었다. 올해 시즌2 우승 후에도 식당을 열지 않았다(물론 방송 출연이나 식품업체 콜라보 등은 하고 있다). 나이가 더 들면 국수 식당을 낼 생각이라니, 거기는 꼭 가볼 참이다. 어눌한 듯 심지 있는 말의 달인답게 맛 표현이 풍부하다. 가령 “해물 육수가 개운하다면 고기 육수는 꾹 누르는 맛이 있다. 입속 중력이 지구의 중력보다 세지는 기분이다. 나는 이걸 국물이 묵직하고 빈틈이 없다고 표현한다.” ‘맵찔이’로선 매운맛 품평에 특히 공감했다. “너무 매운 것, 맛이 아닌 자극에 치우친 것은 아예 시도를 안 한다. 20대 때 호기심에 친구들과 불닭을 먹었는데 어떻게 하면 이 고통이 끝날 수 있을까, 너무 괴로워서 정말 몸을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필요 이상의 것들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으면 나는 화가 난다. 감정의 밸런스를 깨뜨리는 음식은 먹지 않는다.” “(소주는) 모든 한식을 아우르는 블랙홀 같은 술. 각자 다른 역에서 탔지만 내리는 곳은 모두 같은, 술의 종착점.” 그에게 “먹는다는 것은 입안에 맛있는 음식을 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에 만족스러운 시간을 하나 더 추가하는 일”이다. 오늘 만족스런 식사하시길. 양성희 문화칼럼니스트
2026.03.02. 8:06
한 미국인 은행가가 멕시코 어촌에서 어부를 만난다. 어부는 하루 몇 시간만 일해도 가족을 먹여 살린다. 은행가는 더 오래 일해 부자가 되면 여유롭게 살 수 있다고 권한다. 어부가 묻는다. “부자가 되면 뭘 합니까?” 은행가가 답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쉬겠지요.” 요즘 우리 사회가 이 우화와 겹쳐 보인다. 주가의 급상승으로 여기저기 온통 주식 이야기다. 수익률이 목적이 되고, 목적은 다시 수익률을 부른다. 투자 앱은 온종일 열려 있고, 포트폴리오는 더욱 복잡해진다. 상승장은 착각을 낳는다. 가격 상승을 실력으로, 우연을 전략으로 착각한다. 변동성은 사라진 듯 보이고 위험은 통제 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장은 비대칭적이다. 상승은 길어도 하락은 짧고 깊다. 미국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는 안정이 오래 지속할수록 금융 시스템은 더 취약해진다고 경고했다. 이는 급격한 붕괴의 시작점인 ‘민스키 모멘트’를 초래할 수 있다. 상승이 길수록 위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인다. 게다가 “이번에는 다르다”, “구조가 바뀌었다”,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말이 위험을 가린다. 경제학자 로버트 실러는 이를 ‘내러티브 경제학’이라 설명했다. 사람들은 숫자보다 서사에 반응한다. 빠르게 확산하는 낙관적 서사는 확신을 키우고 확신은 레버리지를 부른다. 레버리지는 구조를 취약하게 만든다. 최근 빚을 내서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 규모가 32조원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자본시장에 대한 관심은 반갑다. 하지만 삶의 균형을 허무는 방식은 곤란하다. 멕시코 어부의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더 높은 수익률, 더 빠른 자산 증가의 끝은 어디인가? 자산을 불린 다음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의 삶과 맞바꿀 만큼 가치 있는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차분한 자산 관리의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목표는 수익률이 아니라 삶의 조건이다. ‘연 20% 수익’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진짜 목표는 ‘노후에 매달 생활비 200만원을 마련한다’는 식의 구체적인 삶의 조건이다. 둘째, 생활을 지키는 필수 자금과 성장을 노리는 위험 자금을 분리한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며 돈을 다루는 순간, 불안이 시작된다. 셋째, 상승기의 확신을 글로 남기고, 하락기에도 그 확신이 유효한지 점검한다. 오를 때는 누구나 논리를 갖는다. 그러나 내릴 때는 그 논리가 먼저 사라진다. 왜 샀는지, 어떤 조건이 바뀌면 팔 것인지, 어느 수준까지 하락해도 버틸 것인지 미리 적어두면 감정의 개입을 줄일 수 있다.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상무 경영학(연금금융) 박사
2026.03.02. 8:04
“충성. 명예. 단결. 행동으로 충성하자! 야 앗! 초전 박살! 초전 박살! 초전 박살!” 피 끓는 함성이 막사 벽에 부딪혀 메아리친다. 1987년, 수도방위사령부 제57사단 특공 중대. 충정 훈련에 절은 군복엔 소금꽃이 핀다. 밀착대형에 박자 맞춰 군화로 땅을 차면 천둥소리가 났고, 공포는 그렇게, 위력의 옷을 갈아입었다. 필자는 휴학생으로 입대해 시민들에게 총검을 겨누는 폭동 진압훈련에 동원됐다. 6월항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 사단 작전처의 전화를 받았다. “실제 상황이다! 광화문에서 폭발물로 의심되는 선물 상자가 발견됐다.” 혹시, 계엄? 육공트럭에 올라탄 중대원들의 머릿속이 번잡해질 즈음, 철수 명령이 내려왔다. 이 부대는 24년 뒤,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첫 휴가에 찾은 캠퍼스는 최루탄 냄새로 눈이 맵다. “홍규야, 싸인 30도는?” 친구가 묻는데 머릿속이 하얗다. “코사인 45도는?” 웃어넘겼지만, 아!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흐른다. 복학한 뒤, 그는 조교로 강의실에 들어왔다. 시간은 그렇게, 멈췄다. 이스라엘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매주 한두 번 연구실을 비우던 직장 동료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 나라 이공계 엘리트는 ‘아투다’와 ‘탈피오트’라는 제도로 학업과 병역을 겸한단다. 야전이 아닌, 대학과 군 연구소, 방산업체에서 복무하는 비전투 요원이다. 덕분에 천문학에서 배운 광학 기술은 정찰 위성의 눈으로, 궤도 역학은 아이언돔 요격 알고리즘으로 변신했다. 그래서 군은 경력이 끊기는 곳이 아닌, 과학이 실전과 만나는 창업 공간이다. 최근 정부는 이공계 인재를 위한 병역특례 대책을 내놨다. 그들의 학위와 병역을 이어준다니, 내 일처럼 기쁘다. 1988년, 소금꽃이 하얗게 핀 저녁. 유재하의 ‘지난날’이 연병장을 나른하게 감쌌다. 어느새 그날은 가고 머리엔 하이얀 눈꽃이 내린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2026.03.02. 8:02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3.02. 3:30
혁신창업의 길. 99. 위로보틱스 김용재 대표 지난해 8월 국내 한 로봇 스타트업의 동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되면서 화제가 됐다. 날씬한 모양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엄지와 나머지 네 손가락 관절을 현란한 속도로 움직이고, 인간이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양손을 깍지낀 다음 뒤집어 앞으로 쭉 내밀기도 했다. 손가락·손목 모두 위아래뿐 아니라 좌우로도 자유롭게 움직였다. 아직은 상반신뿐이지만 그간 국내 어떤 휴머노이드 로봇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최근 중국 로봇들의 화려한 군무와 사람 같은 발걸음이 화제이지만, 사람을 대신할 휴머노이드의 핵심은 손이라는 점에서 이 로봇의 움직임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로봇의 이름은 ‘알렉스’(ALLEX). 충남 천안 한국기술교육대의 김용재(52) 전기전자통신공학부 교수와 이연백(51)씨가 공동대표로 2021년 6월 창업한 스타트업 위로보틱스에서 만들었다. 두 사람은 삼성전자 2003년 입사 동기다. 수원사업장의 생산기술연구소와 삼성종합기술원에서 함께 근무하며 일찍부터 다양한 로봇을 개발해온 경험을 가지고 있다. 위로보틱스는 창업 이후 웨어러블 로봇에 주력하다, 지난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휴머노이드 개발을 시작했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다. 휴머노이드를 공개한 지 1년도 안 됐지만, 벌써부터 글로벌 빅테크들의 다양한 협력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176억원의 투자금을 모았고, 올해도 이달 말을 목표로 수백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를 진행하고 있다. 올 1월을 포함, 최근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 3년 연속 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천안 병천면에 있는 한국기술교육대를 찾아 김 교수를 만났다. 생각이 젊어서일까. 50대 중반을 향해 달리는 김 교수는 마치 신입 대학원생 같아 보였다. 삼성전자에서 휴머노이드팀 이끌어 Q : 삼성에서 어떤 연구를 했나. A :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의 생산기술연구소에 입사해 반도체 로봇 및 설비 개발을 했다. 이후 차세대로봇 그룹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참여했다. 130명 규모의 대형 조직 내에서 휴머노이드 메커니즘 파트를 이끌고 하드웨어 설계를 주도했다. 수술로봇 등 다양한 첨단 로봇 테마를 경험하며 핵심 기술력을 쌓았다. 이연백 대표 또한 삼성에서 함께 휴머노이드와 웨어러블 로봇 분야를 연구해왔다. Q : 왜 삼성을 그만뒀나. A : 삼성에서 훌륭한 동료들과 막대한 개발비를 지원받아 많은 경험을 쌓았다. 협동로봇·수술로봇부터 휴머노이드까지 다양한 로봇들을 빠르게 높은 수준까지 개발했지만, 기업 특성상 연구 테마가 자주 바뀌는 환경에 한계를 느꼈다. 외부 지시나 촉박한 일정에 쫓기지 않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연구를 일관성 있고 독립적으로 깊이 있게 파고들고 싶어 2014년 퇴사하고 학교로 옮기게 됐다. Q : 그런데 왜 창업까지 했나. A : 삼성 입사 동기인 이연백 대표가 퇴사 후 창업하고 싶다며 대학으로 연락해온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삼성전자 시절부터 연구해온 휴머노이드를 바로 하고 싶었으나, 스마트폰처럼 누구나 쓸 수 있는 실용적인 로봇을 만들자는 이 대표의 설득으로 웨어러블 로봇을 첫 제품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학교로 온 이후 로봇손과 다리 메커니즘을 연구해왔고, 창업 이후에도 비공개로 계속 휴머노이드를 개발해왔다. 이후 사업이 안정화되고 기술이 성숙하면서, 올 1월 CES 기간에는 다시금 전문 분야인 휴머노이드 로봇도 웨어러블 로봇과 함께 전시해서 큰 관심을 받는 등 기술적 범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정밀한 손동작, 세계 최고 수준" Q : 지난해 휴머노이드의 놀라운 손가락 모습을 공개했는데. A : 올해 CES에서 공개된 휴머노이드 기술 중 특히 ‘핸드 시스템’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로부터 압도적인 평가를 받았다. 엔비디아·아마존·메타 등에서 온 엔지니어들은 우리 부스를 여러 차례 방문해 로봇의 구동 방식과 인터랙션 성능을 정밀하게 확인했다. 그들은 불확실한 일상 환경에서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정밀하게 작동하는 우리의 핸드 시스템이 현재 다른 로봇 시스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라며 공동연구를 제안하기도 했다. 위로보틱스가 보유한 로봇 제어 기술과 정교한 손가락 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입증한 셈이다. Q :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인가. A : 위로보틱스의 핵심 기술은 케이블 구동을 포함한 새로운 동력전달 방식에 있다. 기존 로봇들이 무거운 모터를 관절마다 배치해 무겁고 둔탁했던 것과 달리, 우리는 모터를 몸체 부근에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케이블을 통해 힘을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통해 팔의 끝단은 가볍게 유지하면서도 정교한 움직임이 가능해졌다. 특히 손가락 시스템 역시 이러한 원리를 적용해, 불확실한 일상 환경에서도 사람과 부드럽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독보적인 인터랙션 성능을 구현했다. 케이블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구성과 정밀성을 대폭 높이는 새로운 기술들이 로봇에 적용되어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극찬한 비결이 바로 이 효율적인 모터 배치와 케이블을 활용한 구동 기술에 있다. Q : 로봇 손의 가격도 중요할 텐데. A : 현재 위로보틱스의 휴머노이드 핸드는 양산 전 단계라 가격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중국산 핸드도 10 자유도 이상의 사양을 갖추면 수천만원을 호가하는데, 우리 핸드 역시 정교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단기간에 저렴하게 공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올해는 15 자유도를 갖춘 팔을 포함해 상체 시스템 전체를 연구용으로 수억원대에 판매할 계획이다. 다만, 위로보틱스는 이미 웨어러블 로봇을 200만~300만원대의 소비자 가격으로 양산해 1500대 이상 판매한 경험이 있다. 이런 양산 노하우를 바탕으로 향후 휴머노이드 시스템도 시장이 수용 가능한 가격대로 낮추는 과정을 밟게 될 것이다. 미국·중국 휴머노이드 틈새 노려 Q : 미국과 중국의 휴머노이드가 너무 뛰어난데, 경쟁력이 있을까. A : 중국과 미국의 휴머노이드 약진이 무섭지만, 한국과 위로보틱스에게는 분명한 기회가 있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액추에이터 등 하드웨어를 표준화해 저가화와 완성도를 높이고 있고, 미국은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과 조작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다. 위로보틱스는 단순한 보행을 넘어 실생활에서 사람과 정교하게 반응하는 인터랙션 성능과 핸드 시스템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차별화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한국은 제조업 강국으로서 정밀 부품 가공 기반이 탄탄하고, 반도체나 자동차 라인 등 로봇을 즉시 적용해 데이터를 뽑아낼 수 있는 최적의 수요처를 갖추고 있다. 위로보틱스는 이러한 환경을 활용해 실생활에 즉각 도움이 되는 실용적 기능에 집중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다. Q : 위로보틱스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로봇과 인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A : 로봇이 안경처럼 누구나 필요할 때 착용해 신체 기능을 보강하는 일상의 동반자가 되는 세상이다. 노화로 걷기 힘든 어르신이 로봇의 도움으로 다시 젊은 시절처럼 힘차게 걷고, 신체적 제약이 삶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 시대를 만들고자 한다. 궁극적으로는 정교한 손가락 기술을 가진 휴머노이드가 위험하거나 고된 작업을 대신 수행하며, 인간과 로봇이 각자의 영역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며 삶의 질을 높이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거다. 유길상 한국기술교육대 총장 “학문적 이론을 다양한 현장에 적용하고, 실천적인 기술을 연구하여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한국기술교육대의 교육목표다. 자유로운 연구개발 환경과 실무와 연계되는 인프라가 최첨단 개인용 웨어러블 로봇의 제품화와 혁신적인 휴머노이드 알렉스의 개발을 촉진할 수 있었다. 한국의 공공 연구개발(R&D)의 결과를 기술사업화로 연결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강수 컴퍼니케이파트너스 대표 "위로보틱스는 삼성전자에서 경험한 독보적인 R&D 역량으로 웨어러블 로봇 ‘윔(WIM)’의 상용화를 성공시킨 데 이어, 독자적 역구동성 및 핸드 기술을 갖춘 휴머노이드 알렉스로 기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실적은 물론 미래 성장성까지 겸비한 글로벌 탑 수준의 딥테크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어 투자가치가 높다.” 최준호([email protected])
2026.03.02. 0:57
오랫동안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원칙으로 삼았다. 범죄학을 공부하면서 형벌은 복수가 아니라 제도라는 점을 배웠고, 법은 감정 위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문장은 내가 범죄를 바라보는 기준이 됐다. 16건의 아동 성범죄로 사실상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데이비드 앨런 펀스턴(64)의 가석방 관련 기사를 최근 다룬 적이 있다. 기사 작성을 위해 과거 범행을 들춰보며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사건 발생은 1990년대, 아동을 차량으로 유인해 성범죄를 저질렀다.피해자는 모두 7세 이하의 아동들이었다. 당시 법원은 그의 유죄를 인정해 25년 이상의 종신형 3건, 그리고 추가로 20년형을 더 선고해 그는 감옥에서 남은 생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에는 일정 요건을 충족한 고령의 수감자에게 가석방 심사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가 있다. 50세 이상으로 20년 이상 복역한 수감자, 또는 60세 이상으로 25년 이상 복역한 수감자는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된다. 가석방 심사위원회는 해당 수감자가 공공 안전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가석방을 허가할 수 있다. 펀스턴도 이런 절차에 따랐다. 그의 형 집행 기간, 가석방 심사 과정, 사건 내용 등의 기록을 정리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범죄와 범죄자를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범죄는 개념이 아니라 결과다. 피해자의 삶에는 사건이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범죄자를 미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고 분노가 판단의 기준이 될 수도 없다. 가석방은 법적 절차의 결과다. 형벌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사회 안전을 위한 제도다. 만약 사회가 감정을 기준으로 형 집행을 결정한다면, 법은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보면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감정이 법을 대체하지 않도록 경계하라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즉, 분노가 정의는 아니라는 의미다. 형벌은 법에 따른다. 특정 범죄자를 인간의 범주 밖으로 밀어내려 한다면, 그 기준은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가. 특정 범죄자에 대한 배제를 정당화 한다면, 그 논리가 다른 범죄 유형에까지 확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가석방 제도는 본질적으로 위험성 평가에 기반을 둔다. 과거의 범죄가 아니라 현재의 위험을 본다. 이는 범죄의 무게를 가볍게 보겠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형벌의 목적을 복수가 아니라 사회로부터 격리를 통한 교정에 두겠다는 것이다. 이 구조를 부정한다면 가석방 제도 자체를 반대해야 한다. 감정으로 예외를 만들기 시작하면 제도는 점차 자의적으로 변하게 된다. 물론 가석방 제도가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다. 위험성 평가는 오류 가능성을 내포한다. 재범 가능성이 없다는 것도 확률적 계산될 뿐, 절대적인 확신을 주지는 못한다. 그 불완전성이 불안감을 낳은 것이다. 특히 피해자가 여러명이라면 그 불안감은 더욱 증폭된다. 그렇다고 가석방의 판단 기준을 감정으로 대체하는 것은 또 다른 위험을 만든다. 펀스턴의 가석방 과정을 보면서 한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의미가 도덕적 관용이 아니라 제도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통제 장치다. 감정을 배제하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기준으로 삼지 말라는 요구다. 펀스턴의 범죄는 여전히 용서받지 못할 행위다. 그러나 그에 대한 형벌의 범위는 법이 정한다. 법은 차갑게 작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에 따라 흔들린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는 감정을 억누르라는 것이 아니라, 판단 기준을 명확하게 하라는 주문이다. 송윤서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죄인 의미 가석방 심사위원회 가석방 제도 가석방 과정
2026.03.01. 18:01
미국은 여전히 세계 경제의 중심 엔진이다. 정책의 불확실성은 있지만 강력한 요인들이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기도 한 인공지능(AI) 관련 투자 사이클이다. 많은 기업이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인프라, 반도체 장비, 자동화 시스템, 그리고 디지털 플랫폼 구축 등에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설비투자 확대는 테크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건설, 산업 장비, 유틸리티, 금융서비스 분야 등으로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다. AI 인프라는 단기적으로는 수요를 자극하고 장기적으로는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것이다. 두번 째는 재정정책의 성장 친화적 전환이다. 트럼프 정부에서 통과된 ‘크고 아름다운 법(OBBBA)’에 포함된 대규모 감세로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늘고, 기업의 세후 수익률도 높아질 전망이다. 세율 인하는 개인 소비 지출과 기업 투자를 동시에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 세 번째는 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의 비용 감소와 유연성 확대다. 특히 금융기관, 에너지 기업과 제조업체들이 규제 완화의 직접적인 혜택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네 번째는 통화 정책의 완화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긴축 사이클이 장기간 지속했었다. 이후 기준금리는 점차 하락해 중립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다. 금리 하락은 주택시장 활성화와 설비투자 확대, 대출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 반면 장기 금리는 재정적자로 인해 높은 수준이 유지될 수 있으나 더는 성장 정책 기조에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소비자 구매력은 여전히 견조하다. 최근 10여년간 축적된 가계 자산은 소비를 지탱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일부 저소득층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전체 소비는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경제 확장을 계속 이끌고 있다. 최근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지자 일부에서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방어주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강한 경제 성장과 기업의 수익 확대 전망을 고려할 때, 지나친 방어적 후퇴는 시기상조일 수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주식투자는 기본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주는 경제 성장기의 직접 수혜 종목이다.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면 대출 수요가 늘고, 기업 인수합병이 활발해지며 판매 수익도 증가한다. 채권의 이자율 곡선이 가팔라질 경우 순이자마진이 좋아질 수도 있다. 제조업 분야 역시 경기 확장기의 핵심 수혜 업종이다. 특히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중장비, 전기 부품, 건설 장비, 엔지니어링 서비스 분야의 지원이 필요하다. 인프라 업그레이드와 제조업의 리쇼어링(미국 회귀)에도 이들 분야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통적인 방어주로 분류되는 유틸리티 업종도 점차 AI와 밀접해지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운영에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발전 설비 확충과 전력망 현대화가 필수적이다. 올해는 중간선거가 있는 해이고 최근 몇 년간 증시가 강세였던 것을 고려하면 변동성의 확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런 증시의 조정 과정은 성장주를 포기할 이유라기보다, 대형과 중형 우량주 비중을 확대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기업 친화적 재정정책, 생산성 향상, 통화 가치의 안정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할 수 있다. 투자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분산 투자다. 미국의 경제 전망과 기술 혁신을 고려할 때, 주식은 여전히 유망한 투자 자산이다. 특히 건전한 재무구조와 안정적인 수익 창출, 가격 경쟁력이 있는 우량 기업에 대한 투자 확대가 중요하다. 채권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분야다. 10년 전보다 금리 수준이 높아지면서 채권은 다시 안정적인 이자 수입원과 투자 포트폴리오의 안전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중기 채권 투자는 이자 수익을 통해 투자 위험의 균형 있는 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이밖에 인프라와 일부 원자재를 포함한 실물자산 투자도 인플레이션과 지정학적 충격에 대비한 방어 수단이 될 수 있다. 손성원 / 로욜라 메리마운트대 교수·SS 이코노믹스 대표안테나 불확실 설비투자 확대 세계 경제 기업 투자
2026.03.01. 18:01
결혼 초, 나는 부엌에서 늘 쩔쩔맸다. 설탕과 소금도 구별하지 못했다. 된장국에 설탕을 넣고는 싱겁다며 다시 한 숟가락을 더 넣던 철부지 주부였다. 냄비에서 넘친 고추장찌개가 가스레인지 위로 흘러내리면, 치울 줄도 모르고 속상한 마음에 가만히 서 있곤 했다. 밥 짓는 법, 국 끓이는 법을 남편에게 하나하나 배웠다. 시어머니께 반찬 만드는 법을 배우고, 큰동서의 나물 무치는 손놀림을 곁눈질로 익혔다. 겨우 식탁을 차릴 수 있게 된 어느 날, 내 손으로 지은 첫 밥을 남편과 마주 앉아 먹던 그 설렘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신혼’이라는 삶의 기쁨을 하얀 밥그릇에 가득 담았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세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막내를 낳던 해, 남편의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꾸 목이 마르다 하고 살이 쑥쑥 빠졌다. 검사 결과는 당뇨였다. 남편의 집안에는 당뇨라는 깊고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시아주버님과 시동생 모두 병 때문에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진단 결과를 듣던 날 나는 냉장고 문을 열어둔 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냉장고의 차가운 기운이 꼭 내 마음 같았다. 두려움보다 먼저 미안함이 밀려왔다. 더 잘 챙겼더라면 하는 자책이 들었다. 의사는 식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식사는 곧 약입니다.” 그 한마디가 내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날 이후 부엌은 남편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소중한 곳이 되었다. 식재료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부엌은 작은 약재실이 되었다. 어느 날 신문에서 ‘양파의 효능’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피를 맑게 하고 인슐린을 돕는다는 어려운 말보다 내 마음에는 오직 한 문장만 남았다. ‘이것이 내 남편을 살릴 수도 있겠구나.’ 그 순간 양파는 더는 흔한 채소가 아니었다. 마음속에 희망이 조금 생겼다. 그날 이후로 양파는 우리 식탁의 주인공이 되었다. 볶음 요리마다 아낌없이 넣었고, 샐러드 위에는 보랏빛 양파를 올렸으며, 껍질조차 버리지 않고 채소수로 끓여 썼다. 여행을 가면 호텔에서도 양파를 물에 담가 키워 요리했다. 남편은 말없이 밥상 앞에 앉을 때마다 고마운 미소를 보여주었다. 양파를 손질하는 일은 내게 소중한 일이다. 재료를 씻는 일부터 정성을 다한다. 양파를 썰다 보면 눈물도 나지만 그 눈물은 매운 기운 때문만은 아니다. 서툴렀던 지난날에 대한 미안함과 여전히 내 곁을 지켜주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섞여 흐르는 까닭이다. 부엌은 내게 단순히 밥을 짓는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남편의 건강을 지키는 병원이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내 마음 기도처다. 남편을 예전의 건강으로 완전히 돌려놓을 수는 없지만, 하루를 조금 더 건강하게 지켜줄 수는 있다. 오늘도 나는 부엌으로 가 양파를 손질하며 조용히 생각한다. 나의 수고가 남편의 건강이 되기를, 우리가 마주 앉는 이 시간이 계절을 지나 오래도록 계속되기를. 도마 위에 퍼지는 알싸한 양파 향이 집 안 구석구석 스며든다. 그 매콤하고도 달콤한 공기가 우리 삶의 온도가 되어 마음 깊은 곳까지 따뜻하게 데워주길 소망한다. 엄영아 / 수필가이 아침에 양파 부엌 보랏빛 양파 순간 양파 우리 식탁
2026.03.01. 18:01
어릴 적 세계 지도를 보면 대한민국은 참 작았다. 한반도는 손가락으로도 가려질 정도였지만 미국은 지도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큰 나라가 더 강하고, 더 좋은 나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거대한 나라 미국에서 살고 있다. 상상도 못 했던 삶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나라의 크기가 아니라 사람의 힘이 나라를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 어디를 가도 K-푸드, K-팝, K-드라마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통한다. ‘K’라는 글자는 이제 자부심의 상징이 되었다. 오랫동안 결혼정보회사에서 일하며 많은 한인을 만난다.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놀라움과 존경심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 이민와 누구보다 성실히 일하며 자녀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낯선 사회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잡은 삶의 태도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특히 같은 언어와 문화, 같은 정서를 나눌 수 있는 한인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볼 때면 더욱 그렇다. 같은 말을 쓰고 정서를 이해하는 사람과 마주 앉았을 때 느끼는 안정감은 생각보다 크고 단단하다. 한인이 많지 않은 타주로 출장을 갔을 때 우연히 한국말이 들리거나 한글 간판이 눈에 들어오면 괜히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럴 때마다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떠올리게 된다. 한글은 단지 문자가 아니라 백성의 삶을 바꾸기 위한 결단이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우리 사회는 혼기가 차면 좋은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가정이 바로 서야 사회가 안정되고, 사회가 안정되어야 나라가 강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매는 단순한 개인의 일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단순히 사람을 소개하는 일일까. 좋은 인연을 이어주고, 가정을 이루게 하고, 그 가정에서 또 다음 세대가 자라난다. 어쩌면 나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혼사의 일을 이 시대의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일은 비즈니스를 넘어 사람의 삶을 잇는 일이며, 공동체의 뿌리를 단단히 하는 일이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일에 자부심이 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어릴 적 지도 속에서 작게만 보이던 대한민국은 이제 내 마음속에서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위대한 한글이 있고, 끈질긴 정신력이 있으며, 어디서든 당당하게 살아가는 한국인이 있다. 그리고 그 인연을 이어가는 나의 일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하지만 분명한 마음으로 외친다. “대한민국 만세.” 제니퍼 이 / 결혼정보회사 듀오 팀장일터에서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한글 간판 세계 지도
2026.03.01. 18:01
이란의 알리 하메네이 시대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으로 37년 만에 막을 내렸다. 올 초 미국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에 이은 이번 군사작전은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자국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제법적 절차나 의회 보고조차 생략한 채 언제든 군사적 개입을 불사하겠다는 ‘미국 우선주의’의 극단을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테러 지원국 수장 제거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는 지금 법치와 규범이 사라진 자리에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냉혹한 국제 질서의 민낯을 마주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어제 3·1절 기념사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여 년간 확립됐던 국제규범은 힘의 논리에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안보와 통상 등 모든 면에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입장에서 예측 불가능한 미국의 독단적 행동과 이에 따른 국제 질서의 붕괴는 안보와 번영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실존적 공포다. 이란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힘들다. 당장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세계 원유 수송의 혈맥인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한다고 발표했다. 또 이란 내 강경파들이 결집해 대미 항전에 나설 경우 군사력으로는 미국에 열세지만 중동·유럽 내 미국 목표물을 겨냥한 비정규전과 테러 등 사태는 장기적인 소모전으로 흐를 수 있다. 과거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종결하는 과정에서 지불해야 했던 막대한 인명 피해와 천문학적인 비용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시 전비 부담과 중동발 에너지 위기는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며 우리 경제에도 적지않은 타격을 입혔다. 우리 정부는 이 거대한 폭풍이 한반도에 미칠 파장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이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인 만큼 유가 급등과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에너지 수급 상황을 재점검하고 비상 비축유 방출 등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하며, 외환시장의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한 모니터링 체계를 한층 강화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 리스크 관리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발(發) ‘참수작전’을 지켜본 북한의 대응이다. 정권의 물리적 종말을 확인한 북한이 생존을 위해 핵 무력 고도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이를 체제 수호의 유일한 보루로 삼아 한층 공세적인 군사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이란에서 보여준 ‘힘에 의한 해결’ 방식이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주어 도발의 명분이 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고도의 외교력이 절실하다. 한·미 동맹의 틀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되, 우리의 안보와 경제가 강대국의 독단적 결단에 휘둘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격랑의 시대, 실리에 기반한 냉철한 외교와 생존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2026.03.01. 8:28
12·3 비상계엄을 촉발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부정선거론을 대표하는 유튜버 전한길씨 등과 이에 맞서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지난주 장시간 토론을 벌였다. 7시간가량 유튜브 생중계 속에 진행된 토론은 동시 시청자가 32만 명에 달하고 조회 수가 500만 회를 넘었다. 안타깝게도 부정선거론에 빠져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토론에서 부정선거를 입증할 만한 아무런 증거도 제시되지 못했다. 전씨 등 부정선거론자들은 선거관리위원회 서버 조작, 수개표 왜곡, 중국 개입 등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구체적이거나 검증 가능한 증거는 내놓지 못했다. 전씨 측의 한 참가자는 “일종의 극비 프로젝트를 통해 25년에 걸쳐 부정선거 제도가 구축됐다”는,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주장까지 폈다. 이 토론에 대한 제1 야당의 반응도 안타깝기로는 매한가지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부정선거 토론 시청자 수가 유권자의 15%에 달한다”며 공정한 선거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그는 “이번 토론을 통해 선거시스템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이뤄졌다”며 6월 지방선거에서 선거 감시를 위해 당 차원의 TF를 꾸리겠다고 밝혔다. 21대 총선 관련 선거 소송 126건 중 인용 사례가 한 건도 없는 상황임을 모를 리 없는 야당 대표가 이런 발언을 한 것은 정당 지도자로서의 책임 있는 태도라 보기 어렵다. 이러니 개혁신당 측이 “진짜 문제는 장 대표”라며 “음모론이 만든 불신을 정치적 연료로 쓰겠다는 계산”이라고 비판하는 것 아닌가. 장 대표는 부정선거 음모론과 ‘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세력을 기반으로 당 대표 자리에 오른 뒤 여전히 극단적 세력과 결별하지 못하고 있다. 전씨는 “이런 장 대표를 기다렸다. 고맙다”고 반응했다. 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한 유권자는 포기하고 음모론 세력의 옹호를 받는 식이라면 보수 야당의 미래는 어두울 뿐이다.
2026.03.01. 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