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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낯섦’이 낯설다고요?

낯선 곳에 가면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 등으로 설렘이 동반되곤 한다. 그래서인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새로운 곳에서 느끼는 ‘낯설음’은 나를 항상 설레게 만든다”와 같은 게시 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   이처럼 ‘낯설다’를 명사형으로 만들 때 ‘낯설음’이라고 쓰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이므로 주의해 써야 한다.   우리말에서는 용언(서술어의 기능을 하는 동사, 형용사)을 명사형으로 만들 때 받침의 유무에 따라 ‘-ㅁ’이나 ‘-음’을 붙인다. 용언의 어간에 받침이 없을 땐 ‘-ㅁ’을 붙이고, 받침이 있을 땐 ‘-음’을 붙여 명사형을 만든다.   예를 들어 ‘설레다’는 어간 ‘설레-’가 받침 없이 끝나므로 ‘-ㅁ’을 붙여 ‘설렘’이라고 명사형을 만들면 된다. ‘귀찮다’의 경우엔 어간 ‘귀찮-’이 받침 있는 말로 끝나므로 ‘-음’이 붙어 ‘귀찮음’이 명사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용언의 어간이 ‘ㄹ’ 받침으로 끝날 땐 ‘-음’이 아닌 ‘-ㅁ’을 붙여야 하기 때문에 특히 주의해 써야 한다. 한글맞춤법 제19항에는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따라서 ‘만듬(만들다)’ ‘줌(줄다)’ ‘힘듬(힘들다)’ 등과 같이 ‘ㄹ’을 생략하고 표기해선 안 된다. ‘만들다→만듦’ ‘줄다→줆’ ‘힘들다→힘듦’ 등과 같이 원형을 밝혀 적는다.   ‘낯설다’는 어간이 ‘낯설-’로, ‘ㄹ’ 받침으로 끝난다. 따라서 명사형을 만들 때 ‘낯설음’이 아닌 ‘낯섦’이라 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우리말 바루기 한글맞춤법 제19항 동사 형용사

2026.03.22. 19:01

[열린광장]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에 대한 기억

지난해 5월 갑자기 세상을 떠난 최정우 배우는 LA 한인 사회와도 인연이 있다. 그가 연기 공부를 위해 LA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1997년 초, 우리는 만나면 연극 이야기로 시작해서  연극 이야기로 밤을 새웠다.     어느 날 최정우가 33회 동아 연극상에서 작품상과 남녀 주연상을 휩쓸었던 ‘돌아서서 떠나라’(이만희 작/채윤일 연출)의 LA공연을 추천했다. 본인이 한국에서 이 작품에 출연하였기에 여자 주연인 채희주 역을 맡을 여배우만 캐스팅되면 공연이 가능하다는 의견이었다. 나 또한 좋은 기회라 생각되어 곧 제작 준비에 들어갔다     우선 한인 여자 연극인 중에서 극 중 의사인 채희주 역에 적합한 배우를 찾았다. 디행히 무대 경험도 많고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 방송인 고영주씨를 캐스팅할 수 있었다. 당시 그는 ‘동네방네 쇼’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인기가 있었던 때라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해 5월 첫째 주를 공연 날짜로 정하고 공연장을 물색했다. 그렇게 찾은 곳이 한인타운에 있는 가든 스위트 호텔 2층 테라스였다. 당시 이 호텔은 한국 첫 프로 테니스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이덕희씨가 운영하고 있었다.     호텔 2층 야외 테라스에 가설무대를 설치하고 200석 규모의 디너 좌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5월 8일부터 11일까지 4회 공연을 올리기로 하고 준비 단계에 있을 때 마침 서울에서 작가 이만희가 합류하게 되어 연출부는 한층 힘을 얻었다.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는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는 이만희 작가의 대표적인 2인 극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자수를 앞둔 조직폭력배 두목 공상두와 여의사 채희주의 가슴 아픈 사랑과 이별을 다룬 작품으로 작가는 “아름답고 멋지게 헤어지는 법, 슬픔의 재미, 감동적인 언어 미학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말했다.     5월 초순, 다소 서늘한 바람이 불었던 주말 저녁, 저녁 식사를 끝낸 관객들은 극의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와 함께 연극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공상두가 “당신께서 저한테 ‘네 죄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이 여자를 만나고...사랑하고...혼자 남기고  떠나는게 가장 큰 죄일 것입니다”라는 중요한 대사를 하는 순간, 호텔 앞에서 경찰 차량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연극이 10초가량 정지되는 비상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두 배우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멋지게 연극을 갈무리하며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한인 타운에서 처음 시도된 야외 연극 무대에  4일간 800여명의 관객이 몰렸다.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는 LA 공연 후 1998년 영화 ‘약속’(주연 박신양, 전도연)으로 재탄생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광진 / 문화기획사 에이콤 대표열린광장 연극 기억 연극 이야기 동아 연극상 여의사 채희주의

2026.03.2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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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프리즘] ‘상호관세’ 환급 언제 시작될까

미국 국제무역법원(Court of International Trade, CIT)은 3월 4일, 세관국경보호국(CBP)이 IEEPA(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에 근거해 부과한 관세를 정산해 환급하도록 명령한 바 있다. 법원의 이런 명령은 미국 내 수입 업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관심을 끌었다. 당연히 한국 기업과 한인 수입 업체들도 관세 환급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됐다.     그러나 3월 6일 국제무역법원에서 열린 비공개 콘퍼런스 이후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국제무역법원의 리처드 이튼 판사는 CBP가 제출한 선언서(Declaration)를 검토한 뒤, 환급 명령에 포함된 ‘즉각적인 이행’ 부분을 일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즉, 환급 명령 자체가 취소된 것은 아니지만 환급의 즉시 집행을 잠정적으로 중단한 것이다. 이번 조치는 CBP가 현재 시스템과 행정 절차로는 대규모 환급을 즉시 수행하기 어렵다고 설명한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CBP는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서 IEEPA 관세 환급 규모가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CBP에 따르면 IEEPA 관세가 적용된 수입 업체는 약 33만 개, 관련 수입신고 건수는 약 5300만 건에 달한다. 지금까지 징수된 IEEPA 관세 규모는 약 1660억 달러로 추산된다.     CBP측은 이러한 규모의 환급을 기존 시스템으로 즉시 처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CBP에 따르면 환급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수입 신고 단위로 환급 금액을 계산하고 검증해야 하며, 환급 전에 CBP 내부 부서의 검증 절차와 재무부를 통한 지급 절차가 필요하다. 이런 방식으로 환급 업무를 처리할 경우 수백만 시간에 달하는 행정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수입 업체가 통관 신고 과정에서 IEEPA 관세를 다른 관세와 함께 신고했기 때문에 실제 환급 대상 금액을 분리하는 작업 역시 상당 부분 수작업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 외에도 이자 계산 또한 단순하지 않으며, 동일한 수입 신고에 대해 여러 차례 관세가 납부된 경우 별도의 계산이 필요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CBP는 ACE(Automated Commercial Environment) 시스템을 활용한 자동화 환급 절차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CBP 측이 법원에 설명한 계획에 따르면, 수입 업체가 ACE 시스템에 IEEPA 관세가 적용된 수입 신고 목록을 제출하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해당 신고를 검증하고 관세를 재계산한 뒤 환급액과 이자를 산정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후 환급 금액은 수입 신고 단위가 아니라 수입 업체 단위로 합산되어 전자 방식으로 지급될 가능성이 높다.     CBP는 이러한 자동화 환급 시스템을 약 45일 내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적 절차 역시 아직 완전히 종료된 것은 아니다. 무역법원의 환급 명령에 대해 미국 정부가 연방순회항소법원에 항소할 가능성이 여전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환급 절차 자체가 추가적인 법적 심리를 거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연방대법원 판결로 IEEPA 관세가 위헌이라는 것은 확정되었지만, 무역법원의 환급 명령 ‘즉시 이행’ 부분은 현재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이로 인해 향후 환급 절차는 CBP의 시스템 구축 상황과 추가적인 법적 절차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IEEPA 관세를 납부한 수입 업체들은 무역법원의 사건 진행 상황과 CBP의 환급 시스템 구축 동향을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 김진정 / 변호사·관세사경제 프리즘 상호관세 환급 관세 환급 대규모 환급 환급 명령

2026.03.2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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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경험’ 구매에는 지갑을 여는 이유

우리는 왜 ‘보이지 않는 것’에 점점 더 많은 돈을 지출하는 것일까. 최근 LA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K카페 문화’를 취재하며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은 듯하다.     K카페를 찾는 고객들은 단순히 음료를 마시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그들은 공간의 분위기를 느끼고, 사진을 남기고, 친구와 시간을 함께하는 ‘경험’ 자체에 더 큰 가치를 뒀다. 특정한 콘셉트의 카페를 찾기 위해 제법 먼 거리에서 오는 고객도 있을 정도였다. 그들에게는 비용이나 시간보다 그곳에서 보내는 순간이 더 중요해 보였다.   고물가 시대에 소비는 분명 더 신중해졌다. 외식 횟수를 줄이고 장을 볼 때 가격을 비교하는 것은 이제 보편적인 일이다. 하지만 여행, 공연 및 전시회 관람 같은 체험에는 주저하지 않고 지갑을 연다. 생활비는 아끼면서도 여행과 체험에는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 삶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과거에는 무엇을 소유했는지가 개인의 안정과 성공을 설명했다면, 지금은 어떤 순간을 살아봤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물건은 시간이 지나면 낡거나 사라지지만 경험은 기억으로 남아 생각과 선택에 영향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MZ세대에게 경험은 자기표현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어디를 가봤고, 무엇을 느꼈는지가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언어가 된다. 여행지에서의 순간이나 문화 공간에서의 체험은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되고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며 또 다른 소비를 만들어낸다. 경험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 사회적 소통의 수단이 되는 셈이다.   K카페 취재 현장에서 만난 한 방문객은 “이곳에 설치된 영수증 사진기와 여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료를 경험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카페의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독특한 체험 요소, 그리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어우러진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 자체를 특별한 경험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카페는 단순히 음료를 소비하는 장소에서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경험 소비는 시야를 넓히는 과정이기도 하다. 낯선 도시를 걷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순간 우리는 세상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된다.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세계가 몸의 감각으로 다가오고 삶에 대한 생각도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이런 경험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사고의 범위를 넓히는 역할을 한다.   이런 변화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영향이 크다. 많은 여행객의 이동은 항공과 숙박뿐 아니라 음식, 쇼핑 등 산업 전반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또한 다양한 공연이나 문화 이벤트가 열리는 도시도 관람객 유입으로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많은 도시와 기업이 이제는 무엇을 팔 것인가보다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경제가 제품 중심에서 경험을 중시하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경험에 돈을 쓴다는 것은 낭비와 절약의 문제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현재의 시간을 더 밀도 있게 보내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투자한다는 것은 현재의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물건의 효용 가치는 갈수록 떨어지지만 경험은 기억과 이야기로 남는다. 그리고 그 경험은 또 다른 선택을 만들고 새로운 길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계산기를 두드리다가도 어느 순간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낯선 공간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송영채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경험 구매 경험 소비 k카페 문화 문화 공간

2026.03.2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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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로봇이 어떻게 연애까지?

“가장 좋은 노동자 로봇은 가장 값싼 로봇, 일하는 데 필요한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을 제거한 노동 로봇이 최고다.”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프가 쓴 희곡 R.U.R. (Rossom Universal Robots)에 등장하는 로봇 생산 공장 공장장이 한 말이다. 희로애락, 이런 감정은 노동자 로봇 그리고 군인 로봇에게는 필요가 없다. 그래서 로봇은 즐거움이나 두려움이 없이 주어진 일을 시키는 대로 한다. 인간 사용자들에게는 가장 경제적 효율성이 높은 노동자가 로썸 로봇이다.     겉보기에는 사람과 똑같은 로봇 노동자에게 인간적인 대접을 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난다. 헬레나라는 여인이 로썸 로봇 회사에 온다. 그녀는 로봇에게 ‘영혼’을 주자는 요구를 한다. 로봇 디자인 담당자가 그녀의 말을 조금 들어준다. 로봇에게 고통을 느끼는 신경(pain nerve)를 만들어 준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로봇이 사람처럼 될 수 있는 첫걸음이다.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어떤 일에 대해 좋고 나쁜 감정이 생기고, 좋은 일에는 애착을 갖고 나쁜 일은 피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사랑도 미움도 다 아픔에서 시작된 감정이다.     로봇마다 호불호의 감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가 모여 로봇 사이에서 ‘나’와 ‘남’의 구분이 생긴다. 비슷한 감정을 가진 로봇끼리 ‘우리’를 만든다.  남자 로봇, 여자 로봇 간에 애정도 일어난다. 로봇(robot) 프리머스와 로봇테스(robotess) 헬레나, 그들은 상대방을 위해 대신 죽어줄 수 있는 마음도 갖게 된다. 이 상황은 로봇이 죽음이라는 현상을 이해하고 이미 감정적으로 내재화했다는 이야기다. 죽음이 존재의 끝이고 존재가 끝나면 사랑하는 상대와 더는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초기 로썸 로봇은 죽음에 대해 전혀 감이 없었다. 자신을 해부하면 그들의 생명이 없어진다는 사실이 로봇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고통을 느끼면서,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고,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다.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 삶이라는 반대 개념도 따라오고, 탄생이라는 개념도 생기게 된다.     한 로봇의 수명이 다하면 새 로봇으로 채워지는 끊김 없는 흐름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순간 죽음의 순간과 삶의 세월로 나누어 진다.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이 생기고 그 애착이 죽음 뒤에 새로운 탄생을 바라는 마음이 된다.     이러한 마음이 로봇으로 하여금 “번성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라고 간청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로봇 프리머스와 로봇테스 헬레나는 아담과 이브가 된다. 새로운 아담과 이브는 지상에서 새로운 발생과 소멸의 굴레 속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탄생의 기대를 안고 역사를 만들어 간다.     이 희곡을 쓴 차페프는 1920년대에 이미 100년 후 인류가 맞게 될 운명을 정확하게 그려냈다. 인공지능(AI)을 가진 로봇이 인간을 밀어내고 지구의 주인이 되는 상황이 상상 속의 허구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인간 멸종, 인류에게는 대재앙이겠지만 그렇다고 지구나 우주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사람인 듯 아닌 듯한 존재가 사람의 자리를 차지할 때가 오고 있다. 김지영 / 변호사이아침에 로봇 연애 순간 죽음 universal robots 헬레나 그들

2026.03.2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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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조작 기소 의혹 국정조사, 진심과 책임의 무게 갖췄나

국회에서 사상 초유의 국정조사가 이뤄진다. 어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 기소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는 사실상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 취소를 위한 ‘빌드업’으로 의심받고 있다. 국회가 검찰에 대해 특정 사건, 더구나 최고권력자의 사건을 놓고 공소 취소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정치적 권력으로 형사사법 체계를 흔드는 잘못된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검찰의 조작 기소는 단죄해야 할 범죄임이 분명하다. 검찰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려야 하지만, 지금처럼 여당이 우격다짐으로 국정조사를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이 대통령의 대북 송금 사건의 경우, 쌍방울 김성태 전 회장이 “돈 준 게 있으면 줬다고 하고 싶다”고 한 진술을 근거로 조작이 의심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법무부 특별점검팀이 이화영 전 지사를 수사한 박상용 검사의 ‘연어 술 파티’ 의혹 등도 조사 중이다. 조사가 더디긴 하지만 결과를 지켜보는 게 순서다. 결국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건 정치 공세로 결론을 압박한다는 의심을 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여당은 ‘공취모(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 모임)’까지 결성하며 검찰을 압박했다. 오죽하면 민주당 진영에서 “미친 짓”(유시민 작가)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공소 취소 거래설’까지 등장했겠는가. 이 대통령이 “사건 조작은 살인보다 더 나쁜 짓”이라는 글을 올리자 여당 친명계가 조바심을 낸 것으로 세간은 의심한다. 민주당은 “특정인 보호가 아니라 무소불위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정치적 편향 없이 이뤄졌는지 국민 앞에 확인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공정한 형사사법 절차에 따를 일이지 정치 공세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17시간 넘는 필리버스터를 한 시각장애인 김예지 의원의 지적에 여당이 귀 기울였으면 한다. 그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말에 담긴 진심과 책임의 무게 같은 것들을 뚜렷하게 느낀다”면서 “정치가 원칙보다 유불리를, 제도보다 진영을, 국민의 삶보다 정치적 효과를 앞세운다”고 일갈했다. 이번 국정조사에 딱 맞는 지적이다.

2026.03.22. 8:28

[사설] 불법 증축한 곳에 사망자 집중된 대전 화재사고

지난 20일 낮 대전시 대덕구의 자동차 부품업체 안전공업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14명이 숨지고 60명이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다. 사고 당시 화재경보기가 제대로 작동했음에도 170명의 직원 중 상당수가 신속하게 대피하지 못하고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이번 화재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휴게 공간 등으로 사용된 복층 형태의 무허가 시설에서 사망자가 다수 발견됐다. 점심시간 무렵에 휴식을 취하던 직원들이 대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도면에 없는 330㎡(약 100평) 규모의 공간은 업체 측이 층고가 높은 건물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임의로 증축한 것이다. 원래 2층인 곳을 2층과 3층으로 나눠 썼고 창문은 건물 정면이 아닌 좁은 측면에만 있었다. 만일 창문이 건물 정면에도 있었다면 에어매트 설치가 가능해 탈출과 구조가 보다 용이했을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초 발화 지점은 1층이지만 불법 증축이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게다가 공장 내부에 있는 절삭유나 찌꺼기 등 가연성 물질이 화재 확산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물과 반응하면 폭발하는 나트륨이 다량 보관돼 있어 초기 진화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위험 요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무허가 복층 구조, 가연성 물질 관리, 위험 물질 보관 등은 사전 점검을 통해 개선이 가능했던 사안이다. 이런 사고의 재발을 막으려면 철저한 원인 규명과 함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 발화 지점과 확산 경로는 물론 불법 시설 설치와 안전 점검 과정의 책임 소재까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동시에 공장 내부의 무허가 증축에 대한 규제와 관리 기준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화재가 일어난 곳은 엔진의 주요 부품을 국산화해 연간 1000억원어치를 수출하는 업체다. 하지만 이런 화재가 일어나면 그동안의 성과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산업 현장의 안전은 근로자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며 기업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작업장 내 안전 문제를 개선해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26.03.22. 8:26

[사설] 끝없는 야당의 공천 갈등, 유권자가 당을 걱정한다

지방선거 공천을 둘러싸고 국민의힘에서 파열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어제 대구시장 후보 공천 내정설 등과 관련해 “당 대표로서 죄송스럽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마땅한 해법은 내놓지 못했다. 장 대표는 “공천관리위원장과 소통해서 여러 상황을 빨리 종료하고 시민들도 납득할 수 있는, 제대로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낼 수 있는 공천이 되도록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어제 비공개 회의에는 대구시장에 출마한 주호영(6선)·윤재옥(4선)·추경호(3선) 의원 등 대구 지역 의원 12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장 대표는 중진들이 주장한 ‘시민 공천’을 이정현 공관위원장에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이후 주 의원과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을 컷오프하고 “보수의 심장 대구를 살려 한국 정치를 살리는 선택”이라고 밝혔다. 현역 중진의 컷오프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갈등이 불거지고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을 대구시장 후보로 염두에 뒀다는 ‘내정설’이 확산되는데도 국민의힘 지도부는 무기력했다. 그 과정에서 공관위원장과 중진 사이에 지역감정까지 드러내는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다. 다른 곳에서도 현역·중진 물갈이 시도가 독단적으로 이뤄진다는 지적이 나오자 한발 물러서는 양상이 반복됐다. 부산에선 박형준 시장 컷오프(공천 배제) 시도를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면서 공관위 내부에서도 일부 위원이 반발했다. 이런 내홍이 “누가 내정돼 있다”거나 “누구는 배제 대상”이라는 식으로 번지면서 선거운동을 접거나 출마를 포기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또 “정수리를 쳐야 당이 변한다”며 현역 컷오프를 통한 혁신공천을 내세우더니 강원·울산·경남 등 세 곳에선 현역 지사·시장을 단수 공천했다. 그러니 기준 없고 일관성 없는 공천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큰 차이로 여당에 밀리고 있다. 최근엔 대구·경북에서의 지지율이 28%로 민주당의 29%와 엇비슷하게 폭락했다는 여론조사(갤럽)까지 나왔다. 참신한 공천을 통해 유권자에게 좋은 인상을 줘도 부족할 판에 공정성 시비만 불거지니 지지율 반등은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거대 여당의 독주를 견제할 제1 야당의 모습을 선거 전까지 갖출 수 있을지, 유권자가 당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2026.03.22. 8:24

[중앙시평] 10년 후 이재명 정부 사법개혁은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가

소위 ‘사법개혁 3법’ 중 어떤 것이 가장 악법일까? 다수의 전문가는 법왜곡죄를 최악으로 꼽는다. 판사나 검사 등이 의도를 가지고 법을 잘못 적용하는 것을 막겠다고 만든 이 법은 내용과 적용 범위가 불분명해서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처벌을 받는다는 것인지 미리 알기 힘들다. 사건 결과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판·검사를 상대로 고소를 남발하는 것은 덤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 법이 대한민국 사법 질서에 큰 타격을 입히기는 어렵다. 위헌이라는 점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로스쿨 형법 강의 첫날에 배우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 만에 하나 이 법조항 위반으로 판사나 검사가 기소된다면 틀림없이 위헌 결정을 받을 것이다. 혼란을 초래할 뿐 영구적인 퇴행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법왜곡죄, 위헌 결정으로 정리 가능 대법관 증원법, ‘사법개혁’ 중 최악 학급당 학생 수 넘는 대법관 25명은 민주주의 퇴보시킨 실패 사례 될 것 재판소원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상 4심제가 되고 분쟁 해결에 더 큰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는 비판은 분명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조직의 크기나 인력 구조에 비추어 볼 때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에서 확정되는 사건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겠다고 나설 가능성은 극히 작다. 초기에는 신청이 폭주하겠지만 조금 지나면 찻잔 속의 태풍처럼 큰 파장 없이 자리를 잡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를 아래로 보던 대법원 자존심에 생채기는 남을 수 있겠다. 가장 큰 부작용을 불러올 것은 대법관 증원법이다.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여권의 사법개혁 방향에 부정적인 사람들도 큰 반대는 하지 않았다. 연간 4만 건이 넘는 사건에 시달리는 대법원에 인력을 증원해서 사건 처리를 신속하게 한다는 명분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비판은 대체로 현직 대통령이 너무 많은 신임 대법관을 임명하게 되어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그쳤다. 그러나 대법관의 수를 대폭 늘리는 일에는 그보다 훨씬 큰 함의가 있다. 최고법원의 권위를 실추시킴으로써 3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을 약화시키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약자,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보호에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왜 그런지 보자.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전원합의체에서 사건을 심판한다. 전원합의체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이 모두 참여하고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아서 13명으로 구성된다. 대법원에 오는 사건이 워낙 많아서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사건은 대법관 4명으로 이루어진 부(部)에서 처리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외적이고 불가피한 현상일 뿐이다. 기존의 판례를 바꾸거나 행정법규의 위헌, 위법이 문제되는 경우는 물론 국민의 인권과 관련되는 중요한 사건은 모든 대법관이 참여해서 논의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숙의를 거쳐야 한다. 때문에 대법관의 숫자는 지극히 중요하다. 너무 많으면 제대로 된 토론이나 합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정원 9명을 고수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민주당의 대법관 증원법은 이 숫자를 25명으로 늘린다. 2025년 대한민국 학급당 학생수 20.91명을 훌쩍 넘는다. 13명이 하는 회의와 25명이 하는 회의는 질적으로 다르다. 각자 한마디씩 하기도 힘들다. 결과에 대한 각 구성원의 책임이 절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엉뚱하고 무책임한 주장을 펼치기도 쉽다. 자신을 임명해 준 권력자의 눈에 드는 의견을 내려는 대법관도 등장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위대한 반대자’의 산실이었던 소수의견 란은 일부 자격 미달 대법관들이 독단적인 입장을 내세우는 장이 될 수 있다. 국회나 거리에서 양극단의 강경파들이 쏟아내는 거친 주장들이 대법원 판결문에 실리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전원합의체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대법관들은 4명씩 모여 하급심 판결의 사소한 흠집이나 잡아내는 제3심의 역할만을 하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에 관한 모든 교과서가 삼권분립과 사법의 독립을 이론 없이 지지하는 것은 선거를 의식하거나 여론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법원이야말로 가장 어두운 시기에 소수자, 약자가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대법원에서 그 역할을 해온 것은 전원합의체다. 대법관 증원법을 그대로 시행해서 전원합의체를 형해화하면 그 후과는 지금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소수자가 됐을 때도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불과 얼마 전에 권위주의 시절을 겪었고 최근에도 2명의 대통령이 탄핵된 나라에서 사법의 힘을 이렇게 약화시켜도 되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다른 모든 부문과 마찬가지로 우리 법원은 공도 있고 과도 있다. 정당하지 않은 판결을 한 일도 있고 정치권력의 눈치를 본 굴욕스러운 기억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법부를 적대시하고 무력화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10년 후 이재명 정부의 공과를 판단할 때 대법관 증원법 강행은 가장 크게 실패한 대목으로 꼽힐 가능성이 크다. 어렵겠지만, 합리주의와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이번 정부가 유연성을 발휘해서 되돌리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금태섭 전 국회의원

2026.03.22.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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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의 시시각각] ‘객관 강박’이 진짜 필요한 사람들

“이재명 대통령에게 ‘객관 강박’이라고 10년 전부터 불렀는데, 자기가 스스로 레드팀이 되는 성격이 있어요. 자기 결정에 대해서 ‘내가 당사자라서 내가 피해자라서 치우치는 것 아닌가’ 객관 강박이 있다… 있는 용어가 아니라 내가 그냥 부르는 것이다. 자기 판단이 3자적 관점에서 이성적 합리적인가 강박적으로 자기 진단을 한다.” ‘검찰 개혁’과 ‘공소 취소’ 국면에서 도마에 오른 대통령의 ‘객관 강박’ 주제파악 못 하는 야당이 더 문제 지난 9일 친여 유튜버 김어준씨가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한 말이다. 소위 ‘검찰 개혁’에 대한 이 대통령의 태도를 거론하다 이런 얘기를 했다. 검찰 수사의 피해자인 이 대통령이 스스로 감정적이 되지 않도록 레드팀으로서 이 문제를 검찰 입장에서 보는 것 아닌가, 그래서 더불어민주당 강경파의 주장과 일부러 거리를 두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었다. 김씨의 발언 의도를 떠나 만약 ‘객관 강박’이 사실이라면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에겐 대단히 훌륭한 덕목이라 생각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면 안 된다” “내 의견만이 정의라는 태도는 실패 원인”이라며 강경파의 폭주를 견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당·정·청 찰떡 공조”(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표현)로 완성됐다는 법안의 실제 내용은 완전 딴판이었다. 극히 일부 조항을 빼면 여당 강경파의 요구가 대부분 수용됐다. 이 대통령이 ‘레드팀’ 임무를 수행하긴 했는지, 레드팀 역할을 하긴 했지만 지지층 내부의 갈등을 우려해 당의 요구를 극적으로 수용한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청와대와 여당이 굿 캅, 배드 캅 역할을 나눠 맡은 것인지 진실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국민 중엔 민주당의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 드라이브에 대한 청와대의 태도를 미심쩍어하는 이가 많다. 친여 인사인 유시민 작가까지 “내가 미쳤거나, 그 사람들이 미친 것인데, 제가 미친 것 같지는 않다”며 관련 의원 모임을 비판했던 바로 그 이슈다. 지난해 민주당이 추진했던 현직 대통령 재판 중지법엔 “정쟁에 (대통령을) 끌어들이지 말라”며 제동을 걸었던 청와대가 왜 공소 취소는 만류하지 않는지 의문스러워하는 이도 많다. 이 대통령의 ‘객관 강박’이 진짜인지, 대통령 마음속 레드팀이 정말 가동 중인지를 증명하는 시금석이 될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객관 강박’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야당 쪽에 더 많은 것 같다. 1층을 뚫고 지하실까지 추락한 지지율이 보여주듯 “야당 관련 뉴스는 하나도 보고 싶지 않다”는 이들이 이념 성향과 진영을 떠나 너무나 많아졌다. 실제로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은 매일매일이 역대급이다. 당 대표와 공천관리위원장이 번갈아 주연을 맡고 조연만 하루 걸러 바뀌는 막장 드라마인데, 그나마 지루하고 재미도 없다. 대혼란의 한복판에 서 있는 당 대표의 경우 누가 봐도 과거 황교안 전 대표가 걸었던 코스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지만, 본인만 그 뻔한 결말을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객관 강박’은커녕 최소한의 자기 객관화와도 담을 쌓고 있다. 싸우면서 닮아가는지 당 대표와 180도 대척점에 서 있다는 전직 대표의 태도 역시 국민 시선에선 도긴개긴이다. 최근엔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뷰에서 했다는 “나를 발탁한 건 대한민국이다. 윤석열(전 대통령)이 아니다”는 말이 논란을 낳았다. ‘정치적 쇼맨십’에서 아예 못 할 말은 아니지만 그의 정치 입문과 성장 과정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어리둥절 당황스러운 부분이 있겠다 싶다. 잘못된 계엄에 반대했고, 정치적 스탠스가 멀쩡하고, 바른말을 꽤 하는데도 본인에 대한 호감도가 생각만큼 왜 높지 않은지에 대한 객관적 성찰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상식적이지 않은 공소 취소 추진에, 황당한 거래설과 자폭성 권력투쟁까지 난무해도 그런 일들이 여권의 큰 위기로 느껴지지 않는 건 정치가 상대평가이기 때문이다. 봄이지만 전혀 봄 같지 않은 현실, 보수의 처지가 답답하다. 서승욱([email protected])

2026.03.22.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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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불붙인 적색육 논쟁, 빌 게이츠·머스크도 갈려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저속노화 담론으로 인기를 얻은 의학박사가 지난해 말 사생활 스캔들에 휩싸였을 때, 관련 뉴스에 쏟아진 비난과 조롱의 배경은 단순하지 않았다. 유명인의 추락을 즐기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의 건강 담론에 반감을 품어온 이들이 이때다 싶어 불만을 표출한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저속노화 식단은 소고기·돼지고기 같은 적색육, 빵·떡·면·백미밥 등의 정제 탄수화물, 가공식품을 줄이고 통곡물·채소를 늘리며 콩·생선 등으로 단백질을 섭취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숏폼 영상, 술, 커피, 자극적인 음식에서 오는 값싼 도파민을 억제하고 독서·음악·운동·명상 같은 느린 도파민을 추구하는 이른바 도파민 리모델링도 권한다. 그런데 왜 이런 메시지가 일부에서 강한 반감을 불렀을까. 적색육·지방 권장 식단 발표 기존 곡물 강조 식단과 충돌 적색육 유해성, 학계 의견 갈려 엘리트 불신 겹쳐 문화전쟁화 저속노화 의사 추락에 가해진 조롱 오늘날 건강 담론은 단순한 의학적 조언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코칭과 자기계발의 성격을 띤다. 반감을 가진 이들은 이런 조언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은근한 죄의식을 불어넣는다고 느낀다. 여기에 환경 담론까지 결합하면 압박감은 더 커진다. 이 의사는 ‘지구 건강 식단(planetary health diet)’이 자신의 저속노화 식단과 결이 같다며 “붉은 고기를 덜 먹어 내 건강도 지키고 환경도 지키자”고 여러 차례 말했다. 2019년 영국 의학저널 랜싯과 노르웨이 재단 EAT의 협업으로 발표된 이 식단은 대규모 축산업이 온실가스 배출과 기후 위기에 크게 기여하고, 붉은 고기가 심혈관질환과 암 위험을 높인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식물성 위주 식사를 하고 적색육은 일주일에 스테이크 반 개 정도만 먹으라고 권한다. 이런 캠페인이 확산될수록 붉은 고기를 즐기는 이들은 자신이 건강도 못 챙기고 환경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는 압박을 느낄 수 있다. 스캔들이 터졌을 때 “음식 절제하라더니 다른 데서 도파민을 찾으셨네” “저는 삼겹살로 도파민 충전하면서 건전하게 살게요” 같은 빈정거림이 쏟아진건 그런 죄의식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과학적 논쟁도 있다. 가공식품과 단순당이 건강에 해롭다는 데는 이제 큰 이견이 없다. 그러나 가공육이 아닌 적색육, 즉 스테이크나 갈비구이까지 얼마나 해로운가를 두고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적색육에만 있는 필수 영양소가 있으므로 섭취는 하되 최소화해야 한다는 견해가 아직 주류지만, 적색육이 암과 심혈관질환 위험을 유의미하게 높인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논문도 최근 적지 않다. 국내 의사들 사이에서도 유튜브 등을 통해 관련 논쟁이 거세다. 다만 한국은 아직 미국처럼 본격적인 이념·문화 전쟁 단계까지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적색육 논쟁이 이미 전쟁에 가깝다. 올해 1월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새 식단 지침은 그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탄수화물은 과거보다 훨씬 줄이고 단백질은 늘리며 지방은 크게 제한하지 않는, 이른바 저탄고지에 가까운 방향이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부 장관은 과거 가이드라인에서 금기시되던 적색육과 전지방 유제품을 최상위에, 곡물을 최하위에 둔 역삼각형 도표를 제시하며 “진짜 음식(real food)을 먹을 권리”를 강조했다. 이전 식단 지침은 1977년 맥거번 보고서 이후 저지방 권고와 적색육 경고를 핵심으로 삼아왔다. 빵·시리얼 등이 권고 식단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것이 설탕·곡물 업계 로비의 결과였다고 의심한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가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 적색육을 2A군 발암추정물질로 분류한 것도 이런 흐름을 강화했다. 비판자들은 지방과 지방 많은 적색육이 악의 축으로 공격받는 동안 정제 탄수화물과 당, 그리고 이들이 결합된 시리얼 같은 가공식품이 미국인의 건강을 망가뜨렸다고 본다. 트럼프 식단 뒤에 축산업계 로비 있나 물론 새 식단 지침도 축산업 로비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과거 지침이 지방의 위험만 과장하고 정제 탄수화물과 당의 위험을 과소평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적색육과 동물성 포화지방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의 월터 윌렛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적색육·전지방 권장이 “순전히 틀렸고 미국인의 건강에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 역시 예전 같은 무오류의 권위는 아니다. 그가 공동 주도한 지구 건강 식단 자체에 대한 반감과 반박도 최근 몇 년간 거세졌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첫째, 영양학 자체에 대한 불신이다. 어제는 지방이 적이었다가 오늘은 설탕이 더 큰 적이라 하니, 내일은 또 다른 말이 나올지 모른다. 둘째, 기후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다. 건강하게 먹자는 권고가 어느 순간 지구를 구하기 위한 도덕적 의무로 제시되면 사람들은 지친다. 셋째, 엘리트 불신이다. 하버드와 국제기구, 글로벌 재단이 내놓는 식단이 과연 모두의 현실을 반영하느냐는 의심이다. 통곡물과 신선한 채소는 서민에게 오히려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고, 고기를 귀하게 여겨온 오랜 정서도 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한 채 선민의식으로 가르치려 든다고 느끼는 것이다. 트럼프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어 식단 문제를 “평범한 미국 서민의 접시에서 스테이크를 빼앗으려는 글로벌리스트 리버럴 엘리트”의 문제로 프레이밍한다. IT 거물들도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빌 게이츠는 식물성 대체육과 실험실 합성육을 미래의 대안으로 제시해 왔다. 반면에 일론 머스크는 적색육·고단백 식사를 공개적으로 옹호한다. 그는 2024년 어느 팟캐스트에서 “활력을 위해 아침으로 스테이크와 달걀을 먹는다”며 축산업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완전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머스크에게는 ‘환경 문제를 무시하는가’라는 비난이, 빌 게이츠에게는 ‘그럼 대체육은 초가공식품이 아닌가’라는 반박이 따라다닌다. 적색육의 진실은 무엇일까. 감정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과학은 여전히 모호하다. 바로 그 애매함 위에 정치와 계급 감정, 기후 담론이 덧씌워져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어떤 이론도 맹신하지 않는 것, 내 몸의 반응에 귀를 기울이는 것, 쏟아지는 정보 뒤에 숨은 자본과 권력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이다. 식탁에서도 비판적 태도가 필요한 시대다. 문소영([email protected])

2026.03.22.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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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평양발 열차가 던지는 질문

“어디니? 이미 밖으로 나왔으니 빨리 오라!” 지난 12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기차역 출구 앞에서 한 남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또렷한 북한 말투였다. 누군가를 한참 기다리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일행들과 뜨겁게 포옹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은 그의 옆에서 방방 뛰었다. 평양발 여객 열차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온 북한 승객들이다. 이날 이들을 비롯해 200여 명의 사람이 쏟아져 나왔다. 여행용 가방과 무언가 가득 담긴 대형 봉투를 양손에 들었다. 기차역 앞은 만남의 광장으로 변했다.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여객 열차가 코로나19 이후 6년 만에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지난해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에서 만난 지 6개월 만이다. 압록강 위로 놓인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를 매일 달린다. 평양과 베이징을 왕복하는 국제열차는 지난 1954년부터 운행했다. 북·중 우호의 상징의 복원과 함께 양국 관계도 정상화 궤도에 오른다. 지난 몇 년간 차갑게 식었던 오랜 혈맹 사이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각기 다른 계산기를 두드리던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북한은 경제적 이득을, 중국은 외교적 카드를 얻었다. 지난 1~2월 북·중 교역액은 1년 만에 20%나 늘었다. 무려 6000억원에 달한다. 2017년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다. 북한은 최근 노동당 제9차 당 대회에서 국가 성장 전략의 한 축으로 관광을 공식화했다. 러시아에 이어 중국 관광객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중국은 당근을 흔들며 북한을 품에 안는다. 대북 영향력 회복을 만천하에 과시한다. 지난해 천안문 망루에서 김 위원장을 첫 다자외교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시 주석은 머지않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 테이블에 앉는다. 꾸준히 김정은에 러브콜을 보냈던 트럼프다. 중국을 뺀 북·미 대화는 꿈도 꾸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북한과 중국에 미국까지 서로 시선을 교환한다. 한국이 낄 자리는 있을까.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7일 내외신 기자회견서 90분 동안 질문 21개를 받았다. 한국 매체엔 2년 연속 입 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한반도 문제 역시 일언반구도 없었다. 뒷전으로 밀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음 주 열릴 듯했던 미·중 정상회담이 한 달여 미뤄졌다. 트럼프 대통령도 재차 북한과의 대화를 언급했다. 복잡한 수 싸움 오가는 외교 바둑판 위에서 한국이 꺼내 들 카드는 무엇일까. 이도성([email protected])

2026.03.22.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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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조의 혁신의 우주경제] 운명처럼 느껴지는 일론 머스크의 화성 탐사

1969년 7월 20일. 인류가 처음으로 다른 천체에 발을 디딘 역사적 순간이었다. 닐 암스트롱의 “인류를 위한 한 걸음”이라는 말과 함께 달 표면에 새겨진 발자국. 전 세계 6억 명이 흑백 TV 앞에서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그 장면을 가능하게 한 건 거대한 새턴 V 로켓이었다. 그리고 그 로켓을 설계한 사람은 베르너 폰 브라운(1912~1977)이었다. 나치 독일에서 V-2 로켓을 만들던 과학자가 미국으로 건너와 우주개발의 아버지가 됐다. 그는 달 착륙을 이뤘지만, 그의 눈은 늘 달 너머를 향해 있었다. 붉은 행성, 화성. 1961년 존 F 케네디가 “1960년대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폰 브라운은 속으로 화성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에게 달은 단지 중간 기착지일 뿐이니까. 달 탐사 로켓 제작한 폰 브라운 1948년 쓴 책서 화성탐사 기획 최고 관직명이 공교롭게 ‘일론’ 탐사 방식도 스타십 쏙 빼닮아 텃세 답답함 풀기 위해 화성탐사 집필 하지만 그는 끝내 화성 땅을 밟지는 못했다. 그러나 1948년, 전쟁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절에 한 권의 기묘한 책을 썼다. 본인에게 더 편한 언어인 독일어로 쓴 책, 『프로젝트 마스(Das Marsprojekt)』. 이건 단순한 공상과학(SF) 소설이 아니었다. 로켓 공학자로서의 치밀함이 그대로 녹아든 기술 청사진이었다. 당시 폰 브라운은 뉴멕시코 화이트 샌즈 미사일 실험장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냉전 초기라 로켓 개발 예산이 넉넉지 않았고, 기존 로켓 전문가들의 텃세 속에 천재의 재능을 쏟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 답답함을 풀기 위해 그는 펜을 들었다. 소설 속 배경은 1980년대. 인류는 이미 지구 궤도에 거대한 우주정거장을 완성하고, 그곳에서 10척의 거대한 우주선을 조립한다. 연료 보급을 마치고 화성으로 향하는 대함대. 놀랍게도 그가 계산한 비행시간은 오늘날의 정밀 계산과 거의 일치한다. 이 책은 1952년에 일부 내용이 기술 서적으로 먼저 나왔고, 완전한 영어 소설 형태로는 2006년에야 세상에 공개됐다. 그리고 그 안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한 문장이 숨어 있었다. ‘화성의 최고 지도자 직함은…일론(Elon).’ 폰 브라운은 화성을 이미 고도로 발달한 문명사회로 설정했다. 소설 속 문장은 명확했다. 화성 정부는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들의 최고 행정 지도자는 보통 투표로 선출되었는데, 그 직함은 ‘일론(Elon)’이라 불렸다. 그는 이 단어를 히브리어에서 따온, 그냥 멋진 관직명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다. 누군가의 실제 이름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72년이 흐른 2020년 12월 30일 밤.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캐나다와 미국을 거쳐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이끄는 한 남자가 영화 ‘영 프랑켄슈타인’의 대사를 인용하며 “Destiny, destiny. No escaping that for me”(운명, 운명.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것)라는 글을 X(옛 트위터)에 남겼다. 화성 이주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자신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한 문장이었다. 사람들은 늘 그를 미치광이냐 천재냐로 갈랐다. 그때 한 사용자가 댓글을 달았다. 오래된 책 페이지 사진 한장. 희미한 흑백 인쇄 속에 선명하게 박힌 단어 하나. ‘Elon’. 일론 머스크는 스마트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숨이 막혔을 것이다. 1948년에 쓰인 소설 속에서 화성의 최고 지도자 직함이 정확히 자신의 이름과 일치한다니. 철자 하나 틀리지 않았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답글을 썼다. ‘Are we sure this is real?(이게 정말 사실인가요)’ 이어 곧바로 덧붙였다. ‘Time to read this book(이 책을 읽어볼 때가 됐군요).’ 온라인은 폭발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크린숏을 퍼 나르고, 논쟁이 벌어졌다. 머스크 본인조차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평소처럼 밤늦게까지 일하다가 알림 하나에 깜짝 놀랐으리라. 70년 전 과거의 한 페이지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삶과 오버랩된 것이다. 각본 없는, 소름 돋는 운명의 장면이었을 것이다. 폰 브라운 씨앗, 일론 머스크가 키워 이 우연은 이름의 일치로 끝나지 않았다. 더 섬뜩한 건 기술적 유사성이었다. 폰 브라운이 1948년에 구상한 화성 탐사 방식은 지금 스페이스X의 스타십 계획과 놀랍도록 닮았다. 지구 저궤도에 대형 정거장을 만들고, 거기서 다수의 우주선을 조립, 연료 보급 후 함대 형태로 출발. 폰 브라운은 종이와 연필로 계산한 그 시나리오를, 머스크는 21세기 최첨단 로켓으로 구현하고 있다. 단순히 한 번 다녀오는 탐사가 아니라, 대규모 이주와 영구 정착을 목표로 한다는 점도 똑같다. 폰 브라운은 많은 전문가들의 회의적인 시각 속에서도 새턴 V로 달을 정복했다. 머스크 역시 민간 로켓을 만든다고 했을 때 전문가들은 “돈만 태우다 끝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새턴 V는 달에 갔고, 팰컨 9이 재사용 로켓 시대를 열고, 스타십은 화성 착륙을 꿈꾼다. 2026년 무인 화성 착륙, 2030년대 초반 유인 착륙. 76년 전 한 과학자가 꿈꾼 청사진이 이제 현실의 시간표가 됐다. 이건 초자연적인 예언이 아니라, 인류의 우주 개척 의지가 만들어낸 서사의 연속이다. 폰 브라운이 뿌린 씨앗이 머스크라는 토양에서 자라난 것이다. 언젠가 화성 붉은 먼지 위에 인류의 첫 도시가 세워지고, 첫 발자국이 찍히는 날. 우리는 그때야 비로소 깨달을 것이다. 2020년 12월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순간, 머스크가 지은 놀란 표정이야말로 우주가 우리에게 보낸 가장 강렬한 신호였음을. 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

2026.03.22.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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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김어준과 고성국이라는 쌍생아

유튜버 김어준과 고성국이 함께 웃고 떠드는 장면. 지금으로선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모습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들은 (최소한 방송에서) 가까웠다. ‘나는 꼼수다’가 한창 주가를 올리던 2011년 6월 고성국은 나꼼수 게스트로 출연했다. 김어준은 고성국을 “진보 진영 출신의 예리한 시사 평론가”로 소개하며 반겼다. 비슷한 시기 한겨레TV의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선 고성국이 아예 ‘고성방가’란 코너를 진행했다. 지금 봐서는 마치 국공합작 같은 의외의 조합이지만 당시만 해도 두 사람은 그런 사이였다. 둘이 본격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된 건 2012년 12월 대선 전후다. 하지만 각기 진영해서 활동했을 뿐 행적은 매우 닮아 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고성국은 여러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며 ‘친박’ 인사임을 누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 당선 이후엔 김어준이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진행자로 발탁되며 새 세상이 왔다는 걸 알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당선은 고성국이 KBS 라디오 간판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를 꿰차는 기회를 선사했다. 게다가 두 사람은 부정선거 주장 이력까지 공유하고 있다. 김어준은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패하자 부정선거 의혹을 다룬 ‘더 플랜’ 영화까지 제작했다. 부정선거는 ‘윤 어게인’과 함께 지금의 고성국을 만들어준 핵심 토대다. 이렇듯 닮은 둘은 현재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가장 핫한 사람이다. 각 당원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어쩌면 여야 대표보다 더 크다고 볼 수도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든 김어준·고성국 앞에선 얌전한 고양이가 따로 없다. 정청래·장동혁의 반대파가 김어준·고성국을 싫어한다는 유사점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나꼼수 팬 사이에선 진보 매체 프레시안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해 ‘우리 편’으로 알았던 고성국이 친박 인사로 거듭나자 “김어준이 키운 고성국”이라며 김어준을 원망하는 듯한 볼멘소리가 나왔었다. 물론 김어준이 뜨기 훨씬 전인 1996년 KBS ‘추적 60분’을 진행해본 고성국 입장에선 ‘키웠다’는 표현이 거슬릴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키웠든, 누가 먼저 권력을 이용하는 법을 배웠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 노는 물이 다를 뿐 어차피 많은 게 닮은 판박이어서다. 쌍생아와 같은 김어준과 고성국은 현재 한국 정치의 커다란 근심거리가 됐다. 언제까지 이들이 정치판을 휘저어 뿌연 흙탕물로 가득 차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까. 허진([email protected])

2026.03.22.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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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호르무즈 파고 비켜간 일본의 실리 외교

지난 19일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미·일 정상회담은 양국 간 폭넓은 협력을 확인하고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되었다. 미국은 일본의 대규모 대미 투자를 얻었고, 일본은 이란 정세 관련 미국의 강한 압박에 맞서 전투가 지속하는 현시점에서의 자위대 파견 불가 원칙을 지켜냈다. 이번 회담은 당초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에 앞선 대중국 정책 협의가 주된 목적이었으나, 2월 말 이란 전쟁이 발발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관련 일본의 대응이 최대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첫 방미가 극도로 어려운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일본은 헌법적 제약과 동맹의 의무 사이의 줄타기에서 노련한 외교술을 선보였다. 안전 항로 확보에 일본 공헌 약속 군함 파견 압박 막고 신뢰도 얻어 실익 추구와 리스크 관리가 교훈 회담 전 트럼프 대통령은 SNS를 통해 일본을 비롯한 동맹국들의 비협조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호르무즈해협의 안전 확보를 위한 함선 파견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나 실제 공개된 정상회담의 모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의외로 온화한 태도를 보이며 “일본은 충분히 대응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반전은 다카이치 총리의 철저한 논리적 대응과 전략적 메시지 관리 덕분이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란의 핵 개발, 호르무즈 봉쇄 관련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미국과 긴밀한 소통 지속”을 약속하였고, “세계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뿐이다”라고 치켜세웠다. 그렇지만 그는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 일본 헌법 9조와 안보법률의 한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란 정세의 조기 안정이 중요하다는 일본의 입장을 전달하고, 군함 파병 등 구체적인 공헌책은 약속하지 않았다. 일본은 아베 신조 내각 시기에 헌법 해석 변경과 안보법제 개정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다카이치는 이번 전쟁이 미국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었기에 법률 적용에 의한 자위대 파견이 곤란함을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러한 법적 한계를 이해하고, 지난해 일본이 보여준 관세 및 방위비 협력의 진정성, 그리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대중국 견제를 위한 다카이치 내각의 역할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본 외교의 노련함은 이란 관련 다자간 공동성명의 도출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 일본은 회담 2시간 전에 영국·프랑스·독일 등 6개국과 공동으로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를 강력히 규탄하고 안전한 항로 확보를 위한 ‘적절한 노력’에 공헌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함으로써 그의 체면을 세워주는 동시에, ‘적절한 노력’에 대한 각국의 입장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대응의 유연성을 남긴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미국은 호르무즈해협의 자유 항행을 위한 국제연대를 제안하고 있다. 이번 회담의 비공개 세션에서 일본은 전쟁 종료 후 유엔 결의를 통한 다국적 관리체제에 소해정 파견, 상선 호위 등 비전투적 기여 가능성을 제안하여 미국의 장기적 기대를 충족시키려 했을 수 있다. 동맹의 도리는 다하면서 당장의 위험한 군사적 개입은 피하는 전략이다. 주목할 점은 일본 외교가 미국 일변도로 기울어지지 않고 실익 추구와 리스크 헤지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의 뼈아픈 경험을 기억하는 일본은 중동 산유국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2019년 미·이란 갈등 당시 호위 연합에 참여하는 대신 독자적인 정보 수집 활동을 펼치며 중재를 시도했던 전례가 있다. 현재도 자국 선박의 안전 항행을 위해 이란 측과 독자적인 채널로 협의 중이다. 일본 외교의 이러한 모습은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과잉 반응하기보다는 긴밀한 소통을 통해 미국의 진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우리 역시 관세, 대미 투자, 방위비, 핵 협상 등 다양한 현안이 얽혀 있는 만큼, 전쟁의 장기화 가능성 등 불확실성을 전제로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는 현실적인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 우리 선박의 안전과 전후 복구를 고려해 이란과의 양자 관계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유연함도 필요하다. 중동 분쟁으로 인한 인태 지역 내 미국의 전략자산 약화에 따른 안보 공백에 대한 철저한 대비 태세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리셋코리아 한일관계 분과장

2026.03.22.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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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의 소통카페] 장관 낙마자의 가혹한 말 폭력

모든 사달의 시작은 보좌관에게 내던진 언어공격행위였다.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후 신문, 방송, 유튜브, 국회 청문회에서 막말과 함께 공개된 부정직, 몰염치, 탈법 의혹은 국민을 놀라게 했다. 1월 21일 대통령은 지명을 철회했다. 지명 취소에 이르게 한 많은 이유 중에서 ‘수십억 원 차익 로또’로 불린 반포동 원펜타스 부정 청약을 포함하는 경제적 이슈가 언론에 집중적으로 부각되었다. 우리 사회를 압도하고 있는 경제 만능주의, 돈에 종속된 현실을 대변하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상대를 존중하는 품격있는 말을 할 줄 모르거나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 행위만으로도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며 권력을 행사하는 장관직이나 공직에 오를 수 없는 문화를 정립해야 한다. 빈곤을 타파한 산업화와 평등한 권리 신장을 목표한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로 세계로부터 칭송받는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사회의 모습은 대화하고 설득하는 공동체가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말 폭력은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 폭력에 둔감한 사회 초래할 수도 공직 못 오르게 하는 기준 돼야 후보자의 ‘말 폭력’은 가혹했다. 상대에 대한 배려는커녕 존재 자체를 무시했다. 윤리 의식도 부재했다. 자신의 활동을 다룬 언론보도 관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너 그렇게 똥오줌을 못 가려?”라고 소리쳤다. 바보로 비하하며 인성을 모욕한 것이다. “너 뭐 아이큐가 한 자리야”라며 능력을 부정하고, “너 대한민국 말을 못 알아들어?”라며 정체성을 조롱하고 부정했다. 더욱이 “내가 널 정말 죽였으면 좋겠다”며 신체에 대한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두려움으로 얼어붙은 보좌관을 “야 답을 해라 정말”로 다그치며 투명 인간으로 멸시하였다. 악을 쓰는 고음, 비하하는 호칭, 속사포 힐난이 담긴 녹취록의 정황은 살벌한 비언어적 상황을 보여준다. 이러니 보좌관들은 신경안정제 복용으로 자아의 상실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폭력적인 언어공격행위는 “상대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상대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비하하거나 부정적으로 느끼게 하는 언어 행위”로 타인을 물리적·상징적으로 지배하려는 행위에서부터 타인의 신체, 소유물, 정체성, 논쟁적 이슈에 대하여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것이다(‘Verbal aggressiveness’, Infante & Wigley). 언어폭력이 사람의 인성·인격·능력을 부정하고 두려움을 야기하며 개인과 공동체의 존재감을 파괴한다는 의미이다. 물리적으로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폭력이 아닌 언어 행위라고 해서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더욱이 언어적 공격은 신체적 공격보다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법적·사회적 제재가 가볍고 낮아서 모방할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가정, 학교, 일터, 사회적 인간관계와 같은 일상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겨지게 한다. 또한 공격적인 말과 공격적인 대응이 지속하며 발생하는 ‘나선 현상’은 폭력적인 환경을 확대하고 언어적 폭력에 둔감한 공동체 의식을 초래할 수 있다. 파괴적인 말에 대한 엄격한 대처와 함께 건설적인 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말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 까닭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의 말처럼 각자의 생각과 주장을 진리의 척도로 받드는 시대다. 절대 진리는 후퇴하고 모든 게 상대적이 되었다. ‘상대적’의 대두에 따른 불확실성 속에서 자기(집단)의 이익을 위한 공격적, 폭력적 언행과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불신감 증가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인간은 유일하게 말을 사용해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관계를 형성 유지 발전하고, 공동체의 유대감과 협력을 고양할 수 있는 동물이다. 동시에 인간은 말 때문에 타인과 관계가 악화되고 해체되며, 공동체의 구성원끼리 분열하고 적대시할 수 있는 동물이다. 인간의 공동체는 결국 말이 만드는 공동체이다. 말이 폭력적이면 공동체도 폭력적이고, 말이 따뜻하면 공동체도 따뜻하다. 사람들은 좋은 말로 이웃과 소통하며 신뢰의 정을 나누는 좋은 관계가 빚어내는 행복감을 그리워한다. 대화와 설득의 좋은 말이 정치·경제적 요소 못지않게 중요하게 인식되고, 개인의 인성, 능력, 품성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때 합리적인 행복한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2026.03.22.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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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루의 마켓 나우] 대만의 에너지 리스크, AI 모멘텀 흔든다

중동 전쟁과 카타르의 LNG 수출 차질로 세계 LNG 공급의 약 20%를 차지하는 물량이 흔들리고 있다. 아시아에 이는 역내 산업의 심장부를 직격하는 충격이다. 아시아의 기술 산업은 에너지 집약적이며 구조적으로 수입 의존도가 높다. 중동산 LNG는 역내 전력망의 핵심 연료이며 대만의 사정은 특히 심각하다. 2025년 마안산(馬鞍山) 원자력발전소가 가동 종료 절차에 들어가면서 전력 믹스에서 천연가스 비중이 높아졌지만, 저장 여력은 2주 안팎에 불과하다. 단기적으로는 대만의 전력망 구조가 어느 정도 완충 역할을 한다. 공급이 빠듯해지면 당국은 시스템 안정과 전략 산업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아왔다. 남부 과학단지에 밀집한 첨단 반도체 제조 공장은 초기에는 보호받을 공산이 크다. 부담은 가정과 저부가가치 제조업으로 전가돼, 전기요금 인상과 간헐적 공급 불안으로 나타난다. 전략 산업을 우선 보호하는 ‘실리콘 방패’가 충격 초기 국면에서 생산 지표를 떠받친다. 그러나 이 회복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최첨단 반도체 공정은 전력 안정성에 극도로 민감하다. 공정에서는 미세한 전압 변동만으로도 웨이퍼 배치 전체가 폐기될 수 있다. 에너지 우선 배분은 혼란을 늦출 뿐 없애지는 못한다. 우리 모델에 따르면 반도체 생산에 대한 초기 충격은 제한적이지만, 공급 제약이 지속될수록 광범위한 산업 생산은 점차 기준선 아래로 밀려난다. 역내 파급 효과 역시 피할 수 없고, 다만 지연될 뿐이다. 아시아 전자 공급망은 재고 완충분과 대만 외 지역에서 생산되는 범용 반도체에 대한 분산된 의존도 덕분에 당장의 충격을 일부 흡수되지만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 재고가 소진되는 데는 통상 한 분기면 충분하고, 그 이후부터는 대만발 공급 제약의 여파가 역내 제조업 전반에 가시화된다. 카타르산 LNG를 대체하기란 쉽지 않다. 호주의 물량 대부분은 장기 계약으로 묶여 있고, 대서양 지역에서 현물 시장을 통해 조달하는 LNG는 상당한 웃돈을 요구한다. 결국 조정의 무게는 생산 감축보다 재무 부담으로 쏠릴 것이다. 이미 완충 여력이 빠듯한 국영 전력사들이 높아진 수입 비용을 떠안으며 충격을 사회 전체에 분산시키는 구도다. 이번 에너지 충격은 역내 투자와 산업 생산 증가율을 약 0.4%포인트 갉아먹을 것으로 추정된다. AI가 이끄는 제조업 사이클은 계속되겠지만, 더 빡빡한 제약 속에서다. 아시아의 반도체 패권은 세간의 인식보다 훨씬 취약한 에너지 기반 위에 서 있다. 루이즈 루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

2026.03.22.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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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타임머신] 수에즈 운하 마비

2021년 3월 23일 오전 7시 40분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이집트 수에즈 운하 일대에 모래 섞인 폭풍이 몰아쳤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Ever Given)호가 시속 74㎞의 강풍을 맞았다. 기울어진 배를 조종할 수 없게 되었고 선체가 항로를 이탈하면서 시계 방향으로 회전했다. 결국 에버기븐호는 수에즈 운하 남측 입구에서 약 6㎞ 떨어진 위치에 좌초되어 수로를 완전히 막았다. 수에즈 운하 마비 사고의 시작이었다. 수에즈 운하의 수면 폭은 약 200~280m에 불과하다. 그 좁은 틈으로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12~15%, 컨테이너 물동량의 30%가 오가고 있다. 반면 에버기븐호는 폭 59m, 길이 400m, 22만t 크기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이었다. 길이 20피트(6.09m)의 표준 컨테이너 1개를 1TEU로 표기하는데, 에버기븐호는 2만TEU급 선박이었다. 축구장 네 배 길이의 배 위에 촘촘하게 배치된 컨테이너는 바람이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고 무게 중심을 높였다. 측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세계 무역을 마비시키는 데에는 단 한 척의 배로도 충분했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수에즈 운하는 21세기의 물류를 감당하기 벅찼다. 구조 노력이 계속되었지만 사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보름달이 뜨면서 밀물이 높게 차오른 다음에야 에버기븐호가 물 위로 떠오를 수 있었다. 사고 발생 6일 만의 일이었다. 수에즈 운하 마비 사고는 국제 무역과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일부 핵심 해상 통로가 마비되면 물류가 멈추고 산업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걸프 산유국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수송되는 호르무즈 해협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선박이 오가는 항로의 폭이 6㎞가량에 지나지 않는 바닷길을 통해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30%가 지나간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국제 유가가 요동치고 세계 경제가 불안에 떨고 있다. 평화를 되찾은 바다 위로 풍요를 실은 배가 바삐 오가는 날이 어서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2026.03.22.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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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일본 읽기] 줄기세포 한·일 격차

2006년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사진) 교토대 교수가 성숙한 체세포를 초기 상태로 되돌리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을 때, 세계 과학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성인의 피부 세포처럼 이미 역할이 정해진 세포를 유전자 조작으로 어린 세포로 되돌린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iPS세포는 심장·간·뇌 등 인체 거의 모든 세포로 자라날 수 있다. 배아줄기세포의 윤리 논란과 면역 거부 문제를 크게 완화한 이 연구로 그는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20년, 일본은 기초 연구 성과를 실제 치료로 연결하는 ‘실용화 단계’에 세계 최초로 진입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최근 iPS세포를 활용한 중증 심부전과 진행성 파킨슨병 치료제 등 재생의료 제품 2종의 제조·판매를 승인했다. 일정 기간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조건부 승인이다. 일본은 이를 발판으로 당뇨병과 실명 치료 등으로 적용 범위를 빠르게 넓혀갈 계획이다. 한국의 상황은 대조적이다. 그동안 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 환자들이 많게는 1억원을 들여 일본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는 ‘줄기세포 망명’까지 나타나고 있다. 매년 1만 명 안팎의 환자가 해외로 나간다. 이는 규제에 가로막힌 국내 재생의료의 현실을 보여준다. 뒤늦게나마 한국도 지난해 2월 ‘첨단재생바이오법’ 개정을 통해 희귀·난치 질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확대했다. 규제가 완화되면서 국내 기업들도 iPS세포 기반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일본이 이미 고난도 치료제의 상용화 단계에 진입한 것과 비교하면, 한국은 이제 제도권 치료의 길을 열고 걸음마를 떼는 수준이다. 혁신 기술을 실용화하는 힘은 기초과학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서 나온다. 일본이 이미 상용화에 들어선 지금, 이 격차를 얼마나 빨리 좁히느냐가 한국 바이오산업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김동호([email protected])

2026.03.22.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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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석 만평] 3월 23일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3.22.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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