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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무에게로 온 별빛

그때마다 나는 나무였다 / 언덕에 홀로 심겨진 나무였다 / 계절에 따라 잎을 내고 황홀히 / 물들다 취하여 돌아오곤 했다 / 부러진 잔가지들이 쌓이던 어느날 / 슬픔 속에 있을 때 / 당신이 죽어가고 있을 때 / 살아 숨쉬고 있는 내가 싫었다 // 외로운 마음으로 한 달만 살자 / 파도소리 들리는 언덕에서 / 뜬눈으로 한달만 살아보자 / 그리운 것들 사라지려나 / 팔을 뻗어 안지 못하고 / 빙빙 호숫가를 돌았다 / 발밑까지 따라와 밟히고 싶어하던 / 호수가 펑펑 울음을 터뜨리던 내내 / 그때에도 나는 나무였다 / 언덕 위 벙어리 나무였다 // 파도처럼 친밀한 사이였다가 / 모르는 사이로 돌아간다는 것도 / 당신이 나를 알지 못하는 날이 / 언젠가 오고야 말 것이라는 / 이것이 인생이라면 / 10년 후 쯤 마지막이 될 시를 / 오늘 당신께 쓰고 싶다 // 기억하고 싶은 것 모두 / 다 기억해 내 길고도 아득한 / 목이 긴 슬픈 이름의 시를 쓰겠다 / 한달 살이가 무엇이라고 / 파도가 높고 잔뜩 찌푸린 / 불편한 풍경이 가지에 자꾸 걸리는 // 수 억 광년의 길을 걸어 / 나무에게로 온 별빛을 모아 / 기초를 다지고 허공에 떠다니는 문장으로 / 기둥을 세웠다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 단어들을 모아 창문을 만들고 / 잊을 수 없는 풍경을 엮어 커튼을 만든다 / 목이 긴 슬픈 이름으로 지붕을 덮는다 / 떨어진 가지를 모아 마당에 친 / 울타리를 바라보며 그집에 누웠다 // 나무는 뼈만 남은 가지처럼 시가 되었다   한국 방문에서 시카고로 돌아온 지 오늘이 일주일이 되는 날이다. 번번히 시차 때문에 한 달을 고생하곤 했다. 오는 날부터 낮에 잠을 자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떠나기 전 미처 정리 하지 못했던 정원을 이틀 동안 다듬어 주었다. 짧은 소매 옷들을 다른 옷장으로 옮기고 수년 동안 입지 않았던 양복들을 큰 백에 담아 모아두었다. 긴 추수감사절 연휴를 지나면서 그동안 미뤄왔던 서재의 책들도 두 박스나 모아 버렸다. 자동차 바퀴 공기도 체크 해주고 차고안 낙엽도 치워주었다. 그렇게 분주한 일주일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오늘 그 노력이 허사가 되었다.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허공에 무수히 떠다니는 단어와 문장 때문에 눈을 감지 못했다. 하늘에 떠 있는 별들 같이 반짝이는 문장들을 놓치고 잠들 수 없었다. 반짝이는 한 문장을 데려다 기초를 다지고 다른 문장을 모셔와 기둥을 세웠다. 누웠는데 다시 별빛이 반짝인다. 지금 그 별빛을 데려오지 못하면 영영 사라질 것만 같아서 다시 일어나 그 별빛을 엮어 지붕을 덮었다. 둥둥 떠 다니는 단어들로 창문을 만들었다. 책상을 지었고 잊혀지지 않는 풍경을 이어 커튼을 만들었다. 어느 새 나는 그 집의 주인이 되어 마당에 울타리를 치고 그 곳에 다시 누웠다.   찬바람에 가지만 남은 언덕 위 나무가 추워 보였다. 다가가 그를 안아주었다. 나무는 내 체온보다 더웠다. 그는 나에게 떨어진 가지를 주워 잊을 수 없는 이름을 땅 위에 써주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잊으면 안 되는 따뜻한 풍경도 보여주었다. 찬바람에 앙상해진 온 몸으로 오래 품어왔던, 자칫 잃어버릴 뻔한, 낙옆의 깊은 속내까지 드러내 보였다. 돌아오기 위해 떠나야만 하는 계절의 아픔도 감수한 채 이제 한 겨울을 살아야 한다. 몽롱하게 깨어나는 봄의 향기에 취할 때까지. 어둠의 깊은 뿌리로 부터 솟아나는 연두의 싹을 보게 될 때까지 참아야 한다. 꿈꾸며 살았어도 죽은 나무로 살아야 한다. 기억하고 기억해 내어 켜켜이 쌓여 목이 긴 슬픈 이름의 시를 기억해 내야 한다. 펑펑 울음을 쏟아내던 출렁이는 파도를 내려다 보는 벙어리 나무가 되어야 한다. 부서지는 파도를 싸매고 마음에 안아 그 울음을 삭혀야한다. 수억 광년의 까마득한 길을 걸어 내게로 온 별 빛처럼 다 타버리고 뼈만 남은 시만 남겨야 한다. 밤 하늘을 가르는 가녀린 별빛만 남겨져야 한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벙어리 나무 문장 때문 추수감사절 연휴

2025.12.0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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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여당-통일교 의혹엔 눈감은 민중기 특검의 선택적 수사

━ “여권 인사에 수천만원” 진술 나와도 수사 외면 ━ 정치적 중립 의무 저버리면 수사 신뢰성 의문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의 선택적 수사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통일교가 2022년 대선 이전에 국민의힘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지원했다는 진술을 받고도 이를 수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에게 금품을 준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은 지난 5일 법정에서 “한쪽에 치우쳤던 게 아니라 양쪽 모두 어프로치(접근)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2017∼2021년에는 국민의힘보다 민주당과 가까웠다”며 “현 정부의 장관급 네 분에게 어프로치했고, 이 중 두 분은 (한학자) 총재에게도 왔다 갔다”고 증언했다. 특검 면담에선 “문재인 정부 시절 전현직 국회의원 2명에게 수천만원씩을 지원했다”고 진술했으며, 출판기념회 책 구매 등으로 후원을 받은 민주당 의원이 15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특검팀은 한학자 총재와 윤씨를 구속기소하며 2022년 통일교 측이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에게 1억원을 전달한 혐의와 통일교 단체 자금 1억4400만원을 국민의힘 의원 등에게 쪼개기 후원한 혐의만을 적용했다. 종교단체의 쪼개기 후원이 문제라면 여당에 대한 후원도 혐의에 넣었어야 하지만, 특검은 민주당과 통일교의 유착 의혹은 손을 대지 않았다. 함께 구속된 권 의원의 경우도 김 여사 의혹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별건수사 논란이 일었는데, 수천만원을 줬다는 구체적 진술이 나온 여권 인사 2명에 대해서는 왜 수사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민 특검팀은 어제(8일) 브리핑을 하고 “민주당 지원 부분은 특검의 수사 대상이 아니다”며 수사기관에 이첩하겠다고 밝혔다. 민 특검팀은 ‘통일교 교단의 조직적 지원’이라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는데, 이것이 과연 합당한지 의문이다. ‘김건희 특검법’에는 특별검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가 명시돼 있다. 수사 신뢰를 위해서는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에 균형감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 이번 사안처럼 수사 형평성에 시비가 붙으면 특검에 대한 불신과 함께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민 특검팀은 수사 도중 양평군 공무원이 자살하며 강압수사 논란이 일었음에도 담당 수사관에게 책임을 묻는 일에 소극적이란 지적도 받고 있다. 민주당은 3개 특검 이후에도 종합특검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특검 제도는 원천적으로 선택적 수사 논란이 생길 위험을 안고 있다. 통상 명시되는 ‘관련 범죄’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특검에만 의존할 것인가. 이제는 기존 수사기관이 엄정한 수사를 전개해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2025.12.08.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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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코레일·SR 통합 추진…방만 경영 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 좌석 1만6000개 추가 공급, 안전 강화 기대 ━ 공청회 등 공론화 절차 부족…청사진도 부재 정부가 고속철도인 KTX와 SRT의 단계적 통합을 내년 말까지 추진하기로 했다. 우선 내년 3월부터 서울역에 SRT를, 수서역에 KTX를 투입하는 KTX·SRT 교차 운행을 시작한 뒤 내년 하반기부터는 통합 편성·운영에 나선다. 국토교통부는 어제 이런 내용의 고속철도 통합 로드맵을 발표했다. 통합을 통해 고속철도 운행 횟수를 늘리는 등 국민 편의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KTX를 운영하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SRT 운영사인 SR의 통합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다. 공공기관 통폐합과 구조개편 작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철도노조와 코레일도 통합을 주장해 왔다. 고속철도 분리 운영 체제로 인해 연간 400억원이 넘는 중복 비용이 발생하고, 철도 서비스 이원화로 승객 불편이 커진 만큼 통합을 통해 효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고속철도 통합에 속도가 붙은 건 만성적인 좌석 부족 때문이다. 특히 SRT의 좌석 부족 사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코레일의 추산에 따르면 KTX와 SRT의 통합으로 하루 1만6000석을 추가로 공급할 수 있을 전망이다. 게다가 안전관리 체계 일원화를 통한 안전성 강화도 통합을 주장하는 주요 근거 중 하나다. 정부의 예상대로라면 국민 편익을 제고하는 효과가 기대되지만 우려스러운 부분도 많다. 2016년 SRT 운행이 시작되며 코레일이 독점하던 철도 서비스 시장은 경쟁 체제로 바뀌었다. SRT 운임이 KTX보다 평균 10% 저렴해진 데다 철도노조 파업에도 대체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돼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졌다. 코레일은 통합 이후 KTX 운임을 10% 할인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지만, 독점 체제에서 가격결정권을 쥐게 되면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열차 추가 도입과 병목 구간(평택~오송, 광명~수색) 해소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고속철 운행 횟수 확대를 통한 추가 좌석 공급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현재도 관제와 선로 유지 보수 및 차량 정비를 코레일이 모두 담당하는 상황에서 양사 통합으로 안전 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여지도 많지 않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한국 철도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으로 통합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지만 로드맵에서 통합 이후 청사진을 찾기는 어려웠다. 추진 과정에서 공청회 한 번도 열리지 않은 것도 문제다. 규모의 경제를 위한 고속철도 통합이 독점체제 강화에 따른 비효율과 방만 경영 심화,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 통합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졸속 추진한다면 철도노조의 압박에 떠밀려 노조의 영향력만 키워주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25.12.08. 8:32

[중앙시평] 정청래의 당원 주권 기획

주권(sovereignty)은 무서운 말이다. 법조차 주권 앞에서는 침묵해야 한다. 주권은 법 위에 있다. 권력자는 늘 주권에 유혹된다. 자신과 주권자의 의지를 동일시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권력자가 주권을 앞세우면 조심해야 한다. 러시아의 푸틴처럼 ‘주권 민주주의’를 내걸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주권을 악용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총투표다. 기존 법·제도의 제약을 벗는 데 더 효과적인 도구는 없다. 박정희 정권은 국민 총투표로 유신체제를 만들었다. 야당과 학생들의 반대가 커지자 또 총투표를 했다. 1975년 2월 ‘유신헌법 유지 여부’를 묻는 총투표를 했고, 찬성률은 73%였다. 그 뒤 유신 반대는 주권자의 결정에 반하는 것으로 탄압됐다. 정당-당원은 주권 관계일 수 없어 정 대표, 총투표 무리수 끝에 낭패 권력화한 팬덤 당원 믿고서 강수 진퇴양난 덫에 빠져버린 민주당 주권은 절대적이다. 어떤 권력도 그보다 상위에 있을 수 없다. 주권은 배타적이다. 외부자의 개입은 곧 내정 간섭이다. 주권은 영속적이다. 정권은 바뀌어도 주권이 확고해야 국가가 유지된다. 주권은 하나여야 하며, 두 개면 내전이다. 주권이 양도되면 식민지다. 주권은 버릴 수도 없는데, 버리면 무국적자로 살아야 한다. 정당과 당원은 권리의 관계일 뿐, 국가와 국민처럼 주권의 관계가 아니다. ‘소비자 주권’이나 ‘당원 주권’이라는 표현을 쓸 수는 있다. 다만 소비자나 당원의 권리를 중시하라는 ‘은유’일 뿐, 실제로는 주권 관계가 아니다. 당이 싫으면 당원은 떠날 수 있다. 정당은 자유롭게 선택해도 되지만 국가는 그럴 수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당원인 사람도 없다. 당원이 되는 일은 강제가 아니다. 루소는 주권을 가리켜 ‘자유를 위한 강제’라 했다. 기아·질병·전쟁·재난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우리는 조세와 국방 등의 의무를 감수한다. 그렇듯 주권의 본질은 강제다. 안전한 자유를 위해 국민은 국가와 주권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정당과 당원의 관계는 그와 다르다. 국민이 아니게 되면 삶이 위험해지나, 당원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자유롭다. 정청래 대표는 ‘당원 권리’가 아니라 ‘당원 주권’이라는 무리한 합성어로 무리를 한다. 당의 주요 사안을 당원 총투표로 결정하려 한다. ‘당원 주권국’ 설치도 서두른다. 자신을 따르는 팬덤 당원의 권력을 최대화하고 싶다는 뜻이자, 자신을 따르지 않는 의원들에게는 ‘말 안 들으면 당원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협박이다. 당원 참여의 열기는 큰데 당의 제도가 못 따라간다고 정청래는 말한다. 황당하다. 민주당에는 ‘참여’가 없다. 참여(participation)란 부분(part)이나 협력(partnership)과 어원이 같다. 역할을 달리 가진 부분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공동의 미래를 위해 협력하는 활동을 참여라 한다. ‘내가 주권자이니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라며 함부로 하는 것은 참여가 아니다. 민주당은 참여가 아니라 동원으로 움직인다. 누가 선거 운동을 하는가. 당원이 아니다. 동원된 사람과 그들을 고용하는 데 필요한 돈으로 선거 운동을 한다. 참여의 열기가 넘치는 정당이라면, 유권자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기계적으로 구호만 반복하는 유급 운동원을 돈 주고 살 일이 없다. 당의 지역 활동에는 당원들이 참여할까. 하지 않는다. 지역 행사는 ‘핵심 당원’이 주도한다. 핵심 당원이란, 지역위원장의 무리한 동원에도 불이익을 걱정해 응해야 하는 지방의원들과 지역 대의원 및 각종 이권 관련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들은 권리당원 매집을 포함해 당 홍보 및 행사 실적을 지역위원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그들은 당이 주최하는 집회나 시위에도 동원된다. 지역위원회별로 인원이 할당되고, 현장에서는 출석 체크가 이루어진다. 국회에서 열리는 집회에도 의원실은 물론 시도당별로 나눠서 인원을 동원한다. 권리당원의 참여가 두드러질 때가 있긴 하다. 당 대표나 대선 후보를 선출할 때다. 2022년 대선 경선은 72만 명(투표율 51%)이 참여했다. 올해 4월 대선후보 경선은 68만 명(투표율 60%)이, 8월 당 대표 경선은 63만 명(투표율 57%)이 참여했다. 권력의 향배와 관련된 사안에서는 어느 당이나 열기가 높다. 그렇지 않을 때 당원 참여는 크게 낮아지는데, 민주당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당헌·당규 개정안에 대한 민주당 권리당원의 투표율은 16.8%였다. 당원 주권을 일상화해서 당을 운영할 수 있는 정당은 없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정 대표는 실수했다. 그를 따르는 팬덤 당원이 의원들을 협박하는 데는 충분한 수이지만 당원 전체로는 소수다. 그들에 의존해 총투표를 밀어붙인 게 잘못이었다. 정청래는 정당성을 잃었고 친명 팬덤은 기회를 얻었다. 권리를 주권으로 둔갑시킨 당원 주권론은 억지스럽다. 권력화된 팬덤 주도의 정당은 미래가 없다. 하지만 당도 정청래도 포기할 수 없다. 당원 주권은 민주당의 정체성으로 굳어졌다. 실현도 포기도 불가능한 당원 주권론이 결국 민주당의 덫이 되었다. 박상훈 정치학자

2025.12.08.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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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호의 시시각각] 쿠팡의 초심, 김범석의 초심

2013년 쿠팡 대표였던 당시 35세의 김범석 창업주가 한국의 스타트업 콘퍼런스에서 강연했다. 창업할 때 하기 쉬운 네 가지 실수로 그가 꼽은 첫째는 ‘모든 것을 잘하려고 한다’였다. “한 가지 핵심 경쟁력을 파악하고 그것에 집중하라”는 조언이다. 쿠팡의 우선순위는 고객 유치다. 둘째 실수, 고객이 아닌 경쟁에 집중한다. 회사의 장기적 성공은 결국 고객이 결정한다고 했다. 매출이 3억원에 불과하던 쿠팡 초창기에 콜센터 직원 100명을 채용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쿠팡의 ‘고객’에는 내부 고객인 직원도 포함된다. 그래서 좋은 조건으로 임직원 단체의료보험에 가입했다. 셋째 실수, 선입견 또는 문화적 결정론에 빠지는 거다. “한국 정서상 이런 건 안 돼”라는 조언을 믿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도전할 명분이 사라진다고 했다. 넷째 실수, 인력에 맞춰 사업을 운영한다. 인력에 사업을 맞추지 말고 사업에 인력을 맞추라는 조언이다. 옛날엔 야전침대 놓고 현장 지휘 정보 유출에도 창업주는 안 보여 고객감동 벤처 정신 어디로 갔나 2010년 6월 달랑 가방 두 개를 끌고 한국에 온 하버드대 졸업생 김범석은 그해 8월 쿠팡을 창업했다. 창업 2년 반 만에 회원 수 1800만 명, 직원 850여 명, 연 거래액 8000억원, 모바일 1위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초고속 성장했고 결국 한국의 1호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에 등극했다. 김범석 창업주가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시절 가장 영감을 준 인물이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교수다. 그의 가르침인 ‘파괴적 혁신’을 쿠팡은 한국에서 실감나게 보여줬다. 물품을 직매입하고, 외부 용역이 아니라 직접 고용한 인력이 고객 주문 24시간 이내에 배송해 주는 로켓배송을 처음 시도했다. 처음엔 무모해 보였던 물류혁명이 지금은 업계 표준이 됐다. 물류센터를 만든다고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를 감수하는 쿠팡을 보며 ‘저러다 언제 망하나’ 하며 혀를 차는 이가 많았지만 쿠팡은 “계획된 적자”라고 밀어붙였다. 김범석의 뚝심과 추진력 덕분이다. 2023년에 흑자 전환을 이뤘고, 삼성전자에 이어 국내 2위 고용 기업이 됐다. 지난해 매출(41조원)은 대형 마트 3사인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합계를 뛰어넘었다. 이제는 거대 권력이다. 고객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말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김범석의 꿈은 현실이 됐다.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에도 JP모건이 “쿠팡 이탈 고객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할 정도다. 쿠팡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게 된 데에는 유통산업발전법이 한몫했다. 골목상권을 살리겠다고 기존 유통 대기업의 손발을 묶어 심야와 새벽 유통시장을 쿠팡의 독무대로 만들었다. 자신의 개인정보가 졸지에 공공재가 돼버린 소비자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탈팡’(쿠팡 회원 탈퇴)과 함께 집단소송이 추진되고 있다. 이번 사태로 불거진 쿠팡의 개인정보 내부 통제의 문제점과 법적 책임 뒤에 숨는 창업주의 무신경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피해 소비자에게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하고, 재발 방지 대책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쿠팡이 보여준 혁신 성과마저 도매금으로 깎아내리는 듯한 분위기는 지나치다. 한국에서 돈 벌고 미국에 상장한 게 쿠팡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2021년 쿠팡의 미국 상장 당시, 차등의결권 없는 한국의 문제점이 잠시 도마 위에 올랐지만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투자의 종잣돈을 대며 쿠팡을 키운 것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비롯한 글로벌 투자자다. 쿠팡과 창업주의 진짜 문제는 벤처의 초심을 잃어버렸다는 점이 아닐까. 고객 만족을 넘어 고객이 ‘와(Wow)’라고 탄성을 터뜨릴 정도의 고객 감동(Wow the Customer)을 추구하던 그 벤처는 어디로 갔는가. 내부 고객인 직원을 그때 그 시절처럼 살뜰하게 모시고 있는가. 물류센터에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장을 뛰었던 창업주는 미국에서 지금 뭐하고 있는가. 이 지경이 돼도 창업주가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는 한국 고객의 불만을 가벼이 넘기지 말기를 바란다. 서경호([email protected])

2025.12.08.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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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형법의 ‘간첩 범위’ 확대는 세계적 추세

세계는 지금 보이지 않는 정보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첨단기술과 국방력이 곧 국가경쟁력인 시대에 국가기밀과 산업기밀을 보호하는 방첩(Counter-Intelligence) 활동은 국가안보의 핵심 울타리가 됐다. 대한민국 경제와 국격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국가가 지켜야 할 기밀 범위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에서 방어 체계는 1953년 휴전협정 당시의 낡은 틀에 머물러 있다. 마치 녹슨 성문처럼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반도체·2차전지 같은 첨단산업기술은 물론이고, 세계 10위권으로 발돋움한 방산 무기 수출은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하지만 국내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를 노리는 외부 위협은 더욱 거세지고 지능화하고 있다. 방첩 대상 범위 넓히고, 역량 강화 형법 개정안 국회 조속 처리 기대 국정원, 검·경·방첩사 협력하길 최근 잇따라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들은 현행법의 공백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고 있다. 2024년 6월 중국인 유학생이 부산 해군기지에 정박한 미국 항공모함 등 군사시설을 무단 촬영해 중국 SNS에 유출했다. 평택 미군기지와 수원 공군기지 등에 대한 중국인의 드론 촬영 시도는 평시에도 한반도가 얼마나 광범위한 정보 수집 활동의 표적이 되고 있는지 일깨워 줬다. 2017년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의 군사기밀 30여 건 유출 사건은 내밀한 국가정보가 얼마나 쉽게 외국 정보기관에 넘어갈 수 있는지 그 민낯을 드러냈다. 이런 행위들이 발각되더라도 현행 형법으로는 이들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다. 형법상 간첩죄는 오직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만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처럼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범위를 확대해야 하는 이유다. 자국 이기주의가 판치는 새로운 안보 환경에서는 과거의 명확한 적국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적대 관계 여부를 따지기 어려운 복잡다단한 오늘날의 국제정세에서 특정 국가를 적국으로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현실적 제약 때문에 현행 법체계에서는 국가기밀 유출 행위를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 등을 적용해 경미한 처벌만 가능하다. 이는 국가안보의 핵심을 훼손한 중대 범죄를 솜방망이 처벌함으로써 정보 유출에 대한 경각심을 무디게 한다. 한국이 국가안보를 지키는 법적 방패막이를 낡은 상태로 방치하는 동안 다른 주요 국가들은 안보 환경 변화에 맞춰 방어 수단을 이미 대폭 강화했다. 미국은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적용을 확대하고, 영국은 2023년 국가안보법을 도입해 처벌 수위를 대폭 높였다. 중국도 2023년 간첩법을 개정하면서 국가기밀 유출뿐 아니라 국가 안보 및 이익 관련 문서·데이터·자료 유출까지 처벌 범위를 확대했다. 이처럼 적국 여부와 관계없이 국익과 안보를 침해하는 모든 형태의 첩보 활동에 대한 방어 수단을 강화하는 것이 세계적 흐름이다. 이처럼 엄중한 안보 환경 변화를 직시한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은 인사청문회 당시 간첩죄 개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행히 간첩죄 적용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하는 형법 개정안이 지난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야당도 반대하지 않았다. 국가안보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반영된 결과다. 개정안의 핵심은 적대 관계 여부를 떠나 외국의 정보 활동으로부터 국가안보를 침해하는 행위를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국가기밀 유출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가안보는 곧 경제안보이고, 이는 결국 우리 모두의 민생안보로 직결된다. 첨단기술 유출은 수십년간 쌓아 올린 산업 경쟁력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 군사기밀 유출은 국방력을 약화해 국가 생존을 위협한다. 이번 기회에 국회가 간첩죄 적용 범위를 확대한 형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조속히 처리하길 기대한다. 이를 통해 낡은 법적 굴레를 이제는 벗어던져야 한다. 법 개정은 시작에 불과하다. 법이 마련되면 국가정보원을 중심으로 검찰·경찰·국군방첩사 등 관계기관이 힘을 모아 방첩 정보 공유 및 대응 체계를 정비하고, 명확한 법적 절차 안에서 국가기밀 보호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법 개정 이후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국가안보와 국익수호를 위해 맹활약하길 기대해 본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후곤 변호사·전 서울고검장

2025.12.08.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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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련의 시선] 쿠팡과 기술 봉건주의

‘이런 홀대를 받고도 쿠팡을 계속 써야 하나.’ 지난 열흘간 한국 소비자들이 느낀 건 일종의 모욕감이었다. 퇴사한 쿠팡 직원이 5개월간 가입자 3370만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했다. 로켓배송 상품을 추천하는 데 필요한 소비자 구매·행동 데이터는 중히 다루는 쿠팡이, 그 데이터를 생산해주는 소비자들의 집주소·실명·연락처가 줄줄 새는 건 전혀 몰랐다. 한국 소비자들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싶게끔 만들겠다던 김범석 쿠팡 창업자는 목표를 달성했지만, 소비자들은 씁쓸하기만 하다. 이 큰 사고를 치고도 개인정보 유출 아닌 ‘노출’이라 고집하고, 창업자는 그 흔한 사과 한마디 안 하는 이유가 있다.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자신감. 탈퇴 못 할 거라며 오만한 쿠팡 소비자는 데이터 헌납 농노 신세 기술 기업과 봉건적 관계 깨야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상품 후기 조작 사건으로 과징금 1600억원을 받은 쿠팡이 ‘공정위가 로켓배송 상품 추천을 금지한다면 지금 같은 로켓배송 서비스는 유지할 수 없다’며 협박성 자료를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쿠팡은 이런 이상한 방식을 ‘합리성’으로 설명해왔다. 더중앙플러스 기업연구 시리즈 ‘쿠팡연구’에 따르면, 쿠팡 경영진의 핵심 판단 기준은 ‘올바름’이다. 정의나 공정을 뜻하는 게 아니다. 더 합리적이고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것, 자본가다운 올바름(capitalistic correctness)이다. 기업이 효율을 추구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닌데도, 책임에 인색하고 사과에 꾸물대는 쿠팡이라 반감을 산다. 그럼에도 쿠팡 같은 미국 기술기업에게 한국은 사업하기 너무 좋은 땅이다. ‘빨리빨리’ ‘미친 속도’를 좋아하는 문화적 속성에, 땅덩이가 좁아 물류 투자 효율도 뛰어나다. 대기업이란 이유로 대형마트의 새벽·주말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규제는 10년 넘게 그대로다. 경쟁이 무력화된 시장에서 기업은 소비자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개인정보의 가치가 이렇게 저렴한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있을까. 쿠팡은 과거 정보유출 사건 판례 분석을 끝냈을 것이다. 쿠팡 이전까지 역대 최악의 사례로 꼽혔던 2014년 카드 3사(KB국민카드·롯데카드·NH농협은행) 개인정보 유출에선 1억 명의 실명·주민등록번호·집주소·카드번호 정보가 털렸다. 그러나 당시 대법원 판결에서 기업들에 물린 벌금은 회사당 1000만~1500만원에 그쳤다. 소비자 집단소송에서도 금전적 피해는 없었다며 1인당 위자료 차원에서 10만원씩 지급하라는 게 전부다. 다 합쳐봐야 약 260억원. 이후 유사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배상금은 인당 10만원 선에 걸렸다. 대부업자들에게 팔린 정보로 인한 피해는 모두 소비자 몫이었다. 그때도 쿠팡 같은 인재(人災)였다. 용역업체 직원이 카드 3사에 가입자 데이터를 USB에 이관하겠다고 요구하자 암호화도 안 한 원본 정보를 순순히 통째로 내줬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선 주민등록번호·실명 조합 정보를 이렇게 관리해도 된다. 그 정보의 가치는 잘 쳐줘도 10만원이니까. 기업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이렇게 낮은 시장에서 재범이 안 나올 수 없다. 롯데카드는 정확히 10년 후 정보유출 사고를 또 냈다. 정부와 국회의 게으름은 더 큰 사고도 예고하고 있다.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에서 지난달 27일 새벽 54분 동안 445억원 어치의 코인이 해킹됐지만, 현재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엔 거래소에 책임을 물을 근거가 없다. 기술기업의 선의에만 기대는 사회에서 소비자는 언제든 ‘호구’가 될 수 있다. 이번 사태로 쿠팡이 괘씸하지만 차마 탈퇴할 엄두는 못 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데이터 농노’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일까. 중세시대 농노가 영주의 통제 하에 살며 세금을 바치는 대신 영주로부터 경작권을 보장받았듯, 우리는 지금 쿠팡 같은 플랫폼 서비스에 갇혀 내 돈과 시간을 써가며 데이터를 바치고 대신 로켓배송을 받고 있다. 한때는 창의와 혁신, 기업가정신의 상징이었던 빅테크 기업은 이제 독점을 지향하고 공적 영역을 봉건화하려는 ‘기술 봉건주의’의 상징이 돼버렸다(세드릭 뒤랑 『기술 봉건주의』). AI 시대에 기술 봉건주의는 더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다른 AI 기업들도 쿠팡처럼 ‘○○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의 지위를 탐내고 있어서다. 이들은 AI 훈련을 위해, AI 서비스 개선을 위해 우리의 데이터를 노린다. 이런 일을 당하고도 구조적 변화 없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가 꺼지는 퇴행을 반복할 것인가. 이들 기업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에겐 디지털 농노가 아니라 AI 노예로 전락하는 길밖에 없다. 박수련([email protected])

2025.12.08.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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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도의 퍼스펙티브]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중동 질서, 과거 공식 안 통한다

도하포럼에서 바라본 중동의 변화 국제사회 관련 다양한 문제를 논의하는 공론의 장으로 유명한 카타르의 도하포럼은 올해도 예외 없이 가장 날씨가 좋은 12월에 여러 흥미로운 주제로 시선을 끌었다. 올해는 지난 6월 13일 이란·이스라엘 간 12일 전쟁이 일어났고, 지난 9월 9일에는 이스라엘이 카타르 수도 도하 소재 하마스 지도부를 공격해 지역 내 긴장감이 극도로 올라간 가운데 열리기에 중동정세와 관련하여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증이 컸다. 이스라엘의 카타르 공습 이후 걸프협력회의 안보 재정비 논의 강화 예전 불편한 관계였던 이란과 주변 중동 국가 간 대화·협력 움직임도 중동에서 미국은 제한적 역할, 유럽은 존재감 상실, 이스라엘은 고립 미국·유럽 영향력 컸던 중동 질서의 축, 지역 국가 중심으로 이동 중 2015년 이란 핵 협상을 이끈 당시 이란 외교장관이자 현 페제시키안 정부에서 부통령을 역임했던 모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자심 무함마드 알부다이위 걸프협력회의(GCC) 사무총장, 나탈리 토치 국제문제연구소장이 지난 6일 ‘이란과 변화하는 지역 안보환경’을 주제로 의견을 주고받은 자리에서 중동 질서가 조용하게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란이 지역 불안정의 근원이고, GCC는 미국의 보호 아래 존재하며, 유럽이 중동의 중재자라는 익숙하고도 오랜 공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란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사회를 맡은 ‘퀸시 책임 있는 국정연구소’ 부회장 트리타 파르시는 이란이 지난 2년 동안 상당히 크게 후퇴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여러 대리 조직이 약해졌고 과거의 동맹 시리아가 사실상 적대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파르시는 이처럼 크게 변한 지역 질서에 이란이 적응했는지가 확실치 않은 가운데 새로운 전략을 세웠는지, 기존 전략을 유지하는 것인지, 아니면 변화가 너무 커서 사실상 마비된 것인지 알기 어렵다면서 “지금 이란은 마비 상태인가” 물었다. 이에 자리프는 대화 내내 이란은 흔들리지 않고 있으며, 지난 수십 년 동안 외부의 집요한 공격을 이겨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자리프는 이란의 건재함을 드러내고자 이란·이라크 전쟁을 거론했다.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공격했을 때 모두가 사담을 도왔고 이란은 몰락 직전까지 갔다. 당시 많은 이들이 이란은 7일 안에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란 문제로 첫 결의안을 내기까지 7일이나 기다렸다. 우리에게는 상승세도, 하강세도 있었다. 현재는 상승세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영원할까? 그렇지 않다. 이란은 지난 거의 7000년 동안 수많은 침략과 점령을 당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굳건하게 서 있고 계속 그렇게 서 있을 거다.” 타협에서 저항으로 돌아선 이란 자리프는 지난 6월 핵보유국인 미국과 이스라엘 두 나라가 아무런 명분도 없이 이란을 공격했다고 거론했다. 지난 6월 13일 금요일 이스라엘이 공격했을 때 월요일쯤이면 이란이 사라지리라 생각한 이들도 있었다고 하면서 군 지휘관 17명이 희생되었지만 버텼고 이스라엘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때 중동 내 모든 기지 병력을 대피시켰다고 지적하면서 그처럼 이란이 강하다고 강조했다. 자리프는 “우리의 능력은 외부에서 사 온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안보를 사들이지 않는다. 핵 능력도 우리가 스스로 개발한 것이다. 그러니 현실을 인정하고 이란과 협력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다”라고 주장했다. 자리프에 따르면 이란은 저항 전략을 이어오다 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라는 이름으로 타결된 핵 협상에 임하면서 타협으로 전환해 국내에서 큰 반발을 겪었다. 이란은 저항에 익숙하고, 미국은 강요에 익숙한데 양쪽 모두 익숙하지 않은 전략을 택했으니 반발이 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란은 다시 저항 전략으로 복귀했다고 말했다. 자리프는 저항이 최선은 아니지만, 이란은 저항 전략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란은 “2년 동안 JCPOA라는 예외적 상황을 경험했고 다시 원래의 익숙한 전략으로 돌아왔다”고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반(反)이스라엘 정서 확산 자리프의 화살은 자연스럽게 이스라엘로 향했다. 이스라엘이 주변 국가를 이스라엘 땅으로 표시한 ‘대이스라엘’ 지도를 들고나오는 것이야말로 현재 불안정한 중동 지역의 상황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아랍 국가들은 이란을 중동의 문제로 지목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는 것이다. 이에 사회자 파르시는 “미국은 여전히 ‘이란이 지역의 주요 불안정 요인’이라고 하지만, 최근 오만 외교장관이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이 지역 불안정의 주된 원천임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전 정보수장 투르키 알파이살도 같은 말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파르시는 알부다이위 GCC 사무총장에게 이스라엘이 문제라는 오만 외교장관의 발언이 GCC 회원국 전체 시각과 같은지 물었다. 알부다이위는 즉답을 피하면서 GCC 회원국 어느 한 나라도 이란이 몰락하길 바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1980년대에 이란도 GCC 국가에 영향을 준 정책을 시행했고 자신도 이를 직접 경험했다고 전제하면서도 “오늘은 과거를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부다이위는 신뢰를 구축하고 서로에게 안정적인 이웃이 돼야 한다면서 이란과 형제처럼 지내기를 바랐다. GCC 국가가 효율적인 정부와 안정된 정책으로 세계 9위 경제권이 됐는데 이란도 분명 훌륭한 잠재력이 있다고 치켜세웠다. 다만 이란의 혁명 수출 정책, 이웃 국가 내부 문제 개입, 아랍에미리트(UAE)가 주장하는 세 개 섬 영유권 문제 등을 ‘기본적 신뢰 구축’의 저해 요소로 규정하며 이를 해결하지 않고 안보협력으로 뛰어들기는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스라엘의 카타르 공격 이후 GCC 내부에서 안보 재정비 논의가 급격히 강화된 점도 중요한 변화다. GCC는 더이상 외부 충격을 단순히 지켜보지 않는다. 스스로 안보 구조를 조정하는 단계로 들어갔다. GCC의 메시지는 간결하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 걸어가고 싶다. 그러나 이란이 먼저 신뢰를 보여야 한다.” 조건만 맞는다면 안보를 두고 이란과 충분히 협력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동서 영향력 약해진 유럽 유럽을 대변한 토치는 유럽이 중동에서 사실상 ‘전략이 없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전했다. 유럽이 모두 우크라이나 전쟁에 쏠리면서 ‘러시아와 어떤 관계인가’라는 틀을 통해서만 중동을 바라보다 중동에서 존재감을 잃은 유럽의 잘못을 지적했다. 토치는 또한 미국이 더는 유럽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는다는 점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2015년 JCPOA 이후 유럽은 미국을 따라 이란 문제에서 결정적 역할을 스스로 포기했고 그 대가로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서 ‘유럽이 민주주의의 위협’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결론적으로 “유럽은 이제 중동의 1차 행위자가 아니다. 새로운 다자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자리프·알부다이위·토치, 이 세 사람의 발언에서 드러난 공통점은 중동 질서의 중심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미국-유럽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GCC-지역 국가 중심 질서로 변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역할은 제한적이고 유럽의 역할은 축소됐으며 이스라엘은 불안정 요인으로 고립됐고, 이란과 GCC는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대화를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중동을 ‘지역 행위자 중심의 다극 지역’으로 바꾸고 있다. 향후 몇 년 동안 중동 질서를 결정할 핵심축은 이란·GCC 관계 회복 속도, 이스라엘의 고립 심화 여부, 미국의 중동 개입 축소다. 이스라엘의 공격성이 높아질수록 이란과 GCC는 공통의 이해 관계를 더 강하게 인식할 것이다. GCC와 유럽 일부에서 이미 ‘이스라엘이 위협’이라는 인식이 등장했으며 미국이 전략적 자원을 아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집중하면서 중동은 점점 더 지역 중심 질서로 이동하고 있다. 유럽은 다시 중동으로 돌아오길 원하지만, 비집고 들어 올 공간이 예전처럼 넓지 않다. 2025 도하포럼은 이란과 GCC 국가 사이에서 ‘전략적 오해’가 줄어들고 이스라엘이 새로운 긴장 축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꽤나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

2025.12.08.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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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중국에 포획된 애플”, 트럼프 압박에도 떠날 수 없다

화제작 『애플 인 차이나』 저자 스티브 맥기 FT 기자 인터뷰 미·중 갈등이 최고조다. 지정학적 갈등만이 아니다. 경제 부문에서도 대결이 치열하다. 이런 두 나라 사이에 낀 한 기업이 있다. 바로 정보기술(IT) 혁신의 아이콘 미국 애플이다. 글로벌 미디어는 애플 신제품에 반영된 화려한 혁신을 주목한다. 그런데,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특파원 스티브 맥기는 애플의 화려하지 않은 이면을 추적했다. 아이폰 등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고 있는지를 들여다봤다. 그 결과가 최근 펴낸 『애플 인 차이나(Apple in China)』(사진)다. 맥기는 책에서 “애플이 중국의 덫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무슨 의미인지를 중앙일보가 화상 인터뷰를 통해 직접 들어봤다. 자체 생산공장이 없는 애플 중국의 저임금·저인권에 중독 특히 일용 노동자 의존도 커 인도는 중국만큼 일손 공급 불가 애플, 중국에선 을(乙) 애플은 중국에서도 큰소리치는가. A : “중국에서 애플의 위상은 시진핑(習近平)이 국가주석에 오른 2013년 이후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애플이 갑(甲)의 지위를 누렸다(took the upper hand). 그 시절 시장경제 혁신의 상징인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은 건들 수 없는 글로벌 기업이었다. 애플은 중국의 저임금·저복지·저인권을 활용해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거뒀다. 중국에서 아이폰을 값싸게 만들어 많은 이윤을 챙긴 것이다.” Q : 그런 애플의 위상이 시진핑 집권 이후 어떻게 됐나. A : “중국 언론이 기업의 비리와 문제점 등을 비판하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후반부터다. 불량식품을 만들어 파는 자국 기업을 먼저 거세게 비판했다. 그런데 2010년대엔 외국 기업도 비판하고 나섰다. 2012년 미국 맥도널드와 프랑스 유통업체 까르푸가 위생 문제로 지적받았다. 이듬해인 2013년에 표적이 된 외국 기업은 애플이었다. 그해 중국 관영 매체인 CC-TV는 애플이 중국 소비자들을 차별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해외에서는 고장 난 아이폰을 새 제품으로 교체해 주면서 중국에서는 재생 부품으로 수리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보도 이후 중국 정부가 나섰다. 결국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CC-TV 사태 이후 18일 만에 중국어 사과 편지를 내놓아야 했다. 그런데 이는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390조원짜리 달래기 Q : 무슨 말인가. A : “중국에서 미디어를 총괄하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 2016년 아이튠스와 아이북스 스토어 서비스를 막았다. 서비스가 시작된 지 반년만이었다. 애플이 중국 기업을 끼지 않고 단독으로 서비스했다는 게 이유였다. 다급해진 쿡은 중국 권력자를 찾아가 2700억 달러(약 394조원) 정도를 중국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투자 덕분에 ‘중국제조 2025’를 계획하고 추진할 수 있었다.” 중국제조 2025는 IT 등 10대 전략 산업에서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여,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2025년까지 ‘제조 강국’으로 변신하기 위한 전략이다. 맥기에 따르면 쿡이 약속한 2700억 달러가 일본이 1979~2007년 사이에 한 중국 투자 300억 달러나 2차대전 직후 미국이 서유럽 부흥(마셜플랜)에 쓴 1300억 달러(2016년 달러가치 기준)보다 훨씬 많다. Q : 이런 애플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좋아할 리가 없는데, 트럼프-애플 사이에 갈등은 아직 표면화하지 않고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질문이다. 『애플 인 차이나』 5장엔, 쿡이 미국 워싱턴에서 어떤 식으로 플레이하는지가 설명돼 있다. 쿡은 시진핑이 주석이 된 2013년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권위주의 정부와 거래해 왔다. 그 과정에서 위싱턴의 권위주의 정부(트럼프 행정부)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터득했다.” “비밀스러운 이유” Q : 영문판의 부제인 ‘세계 거대 기업의 포획(The Capture of the World’s Greatest Company)’이 눈길을 끈다. 여기서 말한 포획이란 무슨 의미인가. A : “애플은 삼성 등 다른 IT 기업과는 달리 자체 공장을 갖고 있지 않다. 모든 제품 제작을 해외 생산업체에 아웃소싱해야 한다. 그런데, 아웃소싱 업체의 공장에는 애플이 소유한 제작 기계 수십억 달러어치가 설치돼있다. 게다가 생산 과정의 모든 일을 철저하게 통제한다. 스티브 잡스 전 CEO와 쿡이 중국 폭스콘에 원한 것은 무엇을 만들 능력이 아니라 자신들이 시킨 대로 하는 태도였다. 저임금에도 군소리 없이 시킨 대로 장시간 일할 수 있는 인력을 원했다. 이런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 Q : 미·중 갈등 때문에 애플이 생산기지를 인도 등으로 옮기려 한다는데. A : “인도 인구가 중국보다 많다. 하지만 애플이 중국을 떠나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이유가 있다. 바로 일용 노동자다. 중국에선 수많은 일용 노동자가 서부 농촌 지역에서 선전 등 동부 해안 지역으로 흘러들어 일정 기간 일하다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애플의 아이폰 생산은 봄철에 줄어들었다가 9월에 피크에 이르곤 한다. 애플이 봄철에 쓰는 일용 노동자는 90만 명 안팎이다. 반면에 9월에는 200만 명까지 늘려 생산을 대거 증가시킨다. 또 새 아이폰이 개발되면, 일용 노동자를 더 공격적으로 채용해 쓰다가 아이폰 판매가 정체되면 내보낸다.” Q : 인도에도 그 정도 일용 노동자는 있을 듯한데. A : “인도에는 17~19세 여성들이 고향을 떠나 먼 곳에서 일하는 문화가 거의 형성돼 있지 않다. 일부 지역에서 형성돼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여성 노동자가 애플이 원하는 만큼 많지 않다. 애플 경영진이 인도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긴다고 말은 하지만, 나는 뜻대로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스티브 맥기=영국 런던대 SOAS에서 국제외교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기자로 일하기 시작해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회사채 시장을 담당하기도 했다. FT에서 일하기는 2013년부터다. 홍콩에 주재할 땐 아시아경제 전체를, 독일에서 근무할 때는 자동차 산업을 담당했다. 애플에 대한 탐사보도로 2023년 ‘샌프란시스코 프레스 클럽 어워드’를 수상했다. 더 중앙플러스 글로벌 머니(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10)를 구독하시면 다양한 해외 전문가 인터뷰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강남규([email protected])

2025.12.08.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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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이민자들에게는 슬픈 날, 크리스마스

1940년대 미국 뉴욕의 한 고급 아파트. 수동 엘리베이터를 운전하는 남자가 승객들에게 툴툴댄다. 이런 박봉으로는 성탄절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가난한 자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슬픈 날이라고. 남자의 과장된 넋두리에 동정심이 발동한 입주민들이 음식이며 옷, 술과 지갑까지 건네기 시작했고, 그의 사물함과 방은 금세 선물로 가득 찼다. 남자는 이제 행복해졌을까. 존 치버의 단편소설 ‘가난한 자들에게는 슬픈 날, 크리스마스’의 내용이다. 성탄절이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설파되는 사랑과 나눔, 그 실체는 무엇인가. 이 짤막한 소설은 그것이 ‘위선’일 수 있음을 담담히 고발한다. 선물이 넘치자 남자는 들뜨고, 동정하던 입주민들의 마음에도 미묘한 균열이 생긴다. 자신만이 ‘유일한 자선가’이길 바랐기에, 그가 여러 사람에게서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불쾌했던 것이리라. 끝내 그는 들뜬 상태로 엘리베이터를 난폭하게 몰다 ‘문제 직원’으로 낙인찍혀 해고된다. 지난 4일 백악관 앞에서 열린 ‘국가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을 취재하며 이 소설을 떠올렸다. 캐럴이 연주되는 가운데 연단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은 치버의 소설 속 입주민들처럼 이웃을 연민하는 일의 가치를 강조했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고 섬기라고 우리를 부릅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거대한 트리 앞에서 그는 자신의 더 거대한 업적을 늘어놓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날의 성탄 메시지는 그래서 한 편의 부조리극처럼 들렸다. 그는 “우리는 미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돌봐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다른 대목에선 “국경순찰대가 선을 보호하고 악을 막아냈다”고 강조했다. 그러니까 트럼프에게 이민자는 ‘이웃’이 아니라 ‘악’이었던 셈이고, 오로지 미국 시민만이 ‘우리’에 속하는 ‘선’이었던 것이다. 최근 백악관 인근 총격 사건의 범인이 아프가니스탄 출신으로 밝혀지며 이민자 단속이 더 강화됐다. ‘아메리카 퍼스트’가 성탄절마저 지배하는 트럼프의 미국에선 합법 이민자도 차별의 시선을 견딜 때가 많다. 트럼프는 점등식에서 요한복음 1장 4절을 인용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부디 그 생명의 빛마저 미국인의 것이라고 우기지 말기 바란다. 예수 정신은 국적이나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억압하는 배타주의가 아니라, 어떤 출신의 타자라도 포용하려는 ‘이웃 사랑’에 있다고 믿는다. 가난한 자에게도 이민자에게도, 크리스마스가 슬픈 날이 되지 않기를. “미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정강현([email protected])

2025.12.08.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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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곤의 이슈진단] 러-우 전쟁 어떻게 끝나든 한반도 안보환경 악화

종전 앞둔 러-우 전쟁, 향후 세 가지 시나리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 11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양측의 군 사상자는 최소 수십만 명에서 최대 백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민간인 피해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주민들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우크라이나 전쟁의 민간인 사상자는 5만 3000명을 넘어섰다. 이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최악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47개월째 접어든 우크라 전쟁 트럼프 종전 노력에도 안갯속 종전 이후 우리 안보에도 영향 ‘확장된 전장’이란 절박성 필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자신이 당선되면 24시간 이내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하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불러 종전을 압박했다. 지난 8월엔 알래스카에서 미·러 정상회담을 통해 중재를 시도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20일 전쟁 종식을 위한 28개 평화안을 공식 제안했다. 미국은 겉으로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주권을 인정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우크라이나가 도네츠크·루한스크 등 동부 영토를 양보하고, 우크라이나의 군대 축소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논란이 일자, 미국·우크라이나·유럽연합은 지난달 23일 제네바에서 미국이 제안했던 조항의 일부를 수정한 19개 항목에 잠정 합의했다. 핵심 쟁점인 영토 양보, 나토 불가입 등을 뒤로 미루는 방식이다. 이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정치권의 부패를 비판하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평화 협정을 체결하지 못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발을 뺄 수도 있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 여부는 안갯속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질서에 미친 파장은 거대하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방식에 따라 한반도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북한은 한국을 주적으로 규정한 상태에서 이 전쟁에 직접 개입했고, 이는 한반도가 총성이 울리지 않는 ‘확장된 전장’으로 편입됐음을 의미한다. 세 가지 정도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시나리오와 이에 따른 대비가 필요하다. ① 러시아 승리와 국제질서의 붕괴 첫째는 러시아의 실질적 승리로 전쟁이 종결되는 경우다. 러시아가 도네츠크 전 지역 통제권을 확보하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불가입 공식화와 유럽의 평화유지군이 우크라이나에 상주하지 않는 형태다. 이것은 1945년 이후 국제사회가 유지해온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 ▶주권존중 ▶영토보전 등 규범적 원칙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결과다. 전쟁이 이렇게 끝난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불법으로 규정했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그 존립 근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유엔 안보리 국가(미·중·영·프·러)에 거부권을 부여한 건 전쟁 억제라는 공동 목표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인접국가를 침략해 영토를 합병하고 국제사회가 이를 말리지 못한다면 안보리는 ‘형해화한 기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한이 이미 러시아에 파병해 직접 참전했고, 중국은 지난 9월 3일 전승절 행사에서 북·러 연대를 사실상 승인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을 양옆에 두고 천안문 망루에 오른 장면은 권위주의 블록의 정치적 상징성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이들은 앞으로도 사실상 반미·반서방의 기치 아래 연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타전했다. 이런 구조에서 북한은 러시아의 승리를 곧 ‘자신의 승리’로 포장할 것이다. 동시에 반미·반서방 진영의 전진을 선전하며 핵보유국 지위를 정당화하고, ‘핵을 가진 전략국가는 제재를 뚫고 생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이는 한국 안보 환경에 매우 불리한 구조 변화를 초래한다. ② 불완전한 전쟁 종식 둘째는 현재의 교착상태가 장기화한 채 완전한 종전도, 정전도 아닌 불완전한 휴전상태인 한국전쟁과 유사한 ‘동결분쟁’ 상태에 머무는 경우다. 양측은 불가침 조약을 맺을 수 있지만 언제든 파기될 위험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은 전쟁을 억제해온 기존 규범이 무력화됐다는 점에서 국제질서의 구조적 약화를 초래한다. 강대국이 무력으로 인접국가의 영토를 점유하고 버티면 국제사회가 이를 되돌릴 수 없다는 나쁜 선례가 될 수도 있다. 이 역시 유엔 안보리는 ‘전쟁을 막는 경찰’ 기능을 상실한 채, 강대국 간의 진영 대결과 거부권 행사로 마비되는 ‘식물 안보리’ 상태가 될 것이다. 결국, 세계질서는 어느 한 쪽이 국제질서를 재설계하지 못하고 장기 전략적 경쟁과 간헐적 충돌이 상시화되는 회색지대 질서로 이동할 수 있다. 무엇보다 완전한 승리는 아니어도, 서방의 제재와 압박을 견뎌내고 영토를 확보한 러시아의 사례는 북한, 이란 등 다른 권위주의 국가에 ‘핵을 가진 상태에서 버티면 이길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중국은 겉으로는 중재자 코스프레를 하며 ‘냉전 사고 반대’를 외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서방의 단일대오가 동결분쟁 과정에서 피로감을 느끼고 균열되는 틈을 타 ‘대안적 국제질서’를 주창하며 리더십 확장을 꾀할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의 승리 서사에 편승해 자신들의 파병을 성공 사례로 포장하고, 러시아와의 군사·경제 밀착을 통해 제재 체제에 구멍을 내는 ‘생존 모델’ 완성을 시도할 게 분명하다. 러시아는 여전히 전쟁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므로 북한의 지속적인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국 정보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1200만 발 이상의 152㎜ 포탄을 러시아에 공급했고, 이는 러시아 국내 연간 생산량(200~230만 발)의 5배를 넘는 규모다. 분쟁이 동결되더라도 전투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러시아는 무기고를 채우기 위해 북한과의 군사교류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③ 권위주의 연대의 구조화 마지막으로 전쟁이 장기전에 빠져들면 규범적 국제질서는 붕괴도, 복원도 아닌 ‘정지상태’에 놓이게 된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훼손된 질서가 복원되지 않고 어정쩡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이 경우 북·중·러 등 권위주의 연대는 강화될 것이다. 러시아는 전쟁 장기화에 따라 북한의 포탄과 병력, 중국의 반도체·부품·자금에 사활을 걸게 되는 의존 관계가 유지된다. 북한은 이들 재래식 군수품의 장기 공급처로 기능하고, 러시아는 북한에 식량·에너지·원자재·비료·공산품 등을 ‘물자 패키지’로 보상하는 구조를 심화시키는 상호 의존성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해 침공당했다는 식의 논리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자신들의 핵 개발 정당성과 제재의 부당성을 강조하는 소재로 삼을 수 있다. 동시에 북한은 무기와 병력 지원의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공급받은 식량이나 에너지·비료·공산품 등을 경제난 해소에 활용할 수 있다. 3중 접근의 필요성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떤 식으로결말을 맺든 우리 안보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승리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정당화하고, 동결분쟁은 ‘핵을 가지고 버티면 이긴다’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 또 전쟁 장기화는 북·러 군사협력을 구조화한다. 세 시나리오 모두 북한의 전략적 지위 상승과 대북제재 체제 약화, 권위주의 연대 강화로 귀결돼 한반도의 안보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한·미동맹 기반의 확장억제 강화, 유럽과의 전략 연대 확대, 중국과 소통 유지라는 3중 접근이 필요하다. 확장억제 강화를 위해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주기를 단축하고, 핵협의그룹(NCG)을 통한 공동 기획·운용 체계를 구체화해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을 더욱 높은 수준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유럽·나토와 안보협력을 확대해 우크라이나 문제와 북핵 문제를 연계하는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권위주의 연대의 구조화를 막기 위해선 중국에 북·러 군사협력 강화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고, 한·중 간 전략적 소통 채널을 유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한반도가 ‘확장된 전장’이 된 현실을 직시하고 지속 가능한 전략 수립이 절실하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2025.12.08.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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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이상한 나라의 할머니

붐비는 지하철에서 무심결에 내가 누군가의 발을 살짝 스친 것 같았다. 갑자기 권총을 쏘듯 누군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따진다. “할머니, 발을 밟았으면 사과하세요.” 당황한 내가 답한다. “아유, 몰랐어요. 미안합니다.” 다시 그가 따진다. “내가 할머니가 내 발을 밟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어떻게 알아요? 내가 밟혔다면 그냥 사과해야죠.” 졸지에 할머니 호칭 듣는 봉변 ‘오늘도 참는다’ 되뇌며 넘어가 외할머니 기억 활어처럼 생생 스무 살인지 서른 살인지 내게는 나이가 가늠되지 않는 청년의 무례함에 가슴 속에서 훅하고 화가 치민다. 하지만 속으로만 소리를 지른다. “이 나쁜 놈아, 너는 네 할머니한테 발 밟았다고 사과하라 소리 지르냐?” 나는 오늘도 참는다. 고로 존재한다. 법정 스님이 생전에 남긴 이런 구절도 생각난다. “오늘 나의 취미는 끝없는, 끝없는 인내다.” 이 순간부터 나의 취미도 인내로 바꾸는 셈 치고 참는다. 잘못하다간 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분에게 얻어맞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례한 청년이 따발총처럼 쏘아댄 말들이 내 안에서 어디선가 많이 들은 기분 나쁜 느낌, 내가 혐오하는 정치인들의 말도 안 되는 막말들로 이어진다. 게다가 나는 그날 할머니라는 호칭을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할머니라는 호칭은 오래전 아줌마라는 호칭을 처음 들었을 때보다 훨씬 아팠다. 왜 아픈 건지도 모르겠다. 묻지 마 폭력을 당한 기분이다. 대체 이런 호칭은 왜 없어지지 않는 건가? 덕분에 오랜만에 나의 할머니를 생각한다. 외할머니는 언제나 나의 든든한 보호자였다. 40도 안 된 나이에 혼자 되어 딸 셋을 기르신 할머니는 늘 어딘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부족한 나를 길러준 고마운 분이다. 하지만 어릴 적 할머니는 내게 죽음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내었다. 늘 나이 드신 할머니가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시달렸다. 바쁜 어머니 대신 할머니가 학교에 오시곤 했고, 70의 나이에 운동회에서 학부모 최고령의 나이로 뛰었다. 뛰는 할머니를 향해 “할머니 화이팅” 하는 꿈을 꾼 지도 너무 오래되었다. 할머니는 내 어린 시절의 다정함에 관한 기억과 우울한 상실의 예감을 동시에 심어준 채, 오래오래 97세까지 사셨다. 초등학교 시절 채변 검사 봉투를 가져가야 할 때도 나는 귀찮아서 할머니 것을 가지고 학교에 갔다. 할머니는 철없는 손녀딸이 원하면 뭐든지 다 들어주었다. 학교 가기 싫으면 선생님께 손녀딸이 아프다고 말해주었고, 나를 괴롭히는 동네 머슴아이를 혼내주었다. 누군가 나를 할머니라고 부르는 바람에 할머니의 기억을 소환한 시간, 할머니가 “이 나쁜 놈아 내 애지중지 손녀딸한테 할머니라니”, 막 그렇게 야단치실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무렵 내 나이 마흔이 넘었으니 기억을 간직한 이래 너무 오랫동안 나는 할머니의 죽음에 관한 두려움을 껴안고 살았다. 그런 내가 할머니를 잊었는가? 그 어린 손녀딸이 할머니가 되었다는 걸 할머니는 아실까? 우리는 천천히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에 관한 아픔을 잊는다. 그리고 갑자기 생전의 생생한 기억이 활어처럼 되살아나기도 한다. 결혼한 내 친구들은 실제 거의 다 할머니가 되었다. 손주가 애틋한 마지막 사랑임을 고백하고 싶은 얼굴들을 보며 나만은 외모뿐 아니라 마음도 할머니가 아니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돌아오는 길의 지하철에서 나는 문득 할머니처럼 행동하고 싶어졌다. 이 나이에 뭐가 무서울 게 있단 말인가? 서 있는 내 앞의 임산부 지정석에 손톱에 한 5㎝는 되어 보이는 긴 초록색 인조 손톱을 단, 뱀파이어 느낌의 젊은 여성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옆에 앉은 중년 남성은 눈을 감고 있다. 그리고 옆을 보니 내 곁에 만삭의 여성이 서 있는 거다. 나는 할머니처럼 굵은 목소리로 “아무도 자리 양보를 안 하네” 하고 볼멘 목소리로 허공을 향해 말한다. 정작 임산부석에 앉은 초록 손톱 여성은 핸드폰에서 눈조차 떼지 않고, 그 옆의 눈 감은 중년 남성이 깜짝 놀라 일어나 자리를 내준다. 그때 나는 무심코 위를 쳐다보다가 임산부를 구분하는 법에 관한 그림이 있는 스크린을 발견했다. 배가 부르지 않은 임산부도 있고 배가 부르다고 다 임산부는 아니다. 임산부는 가방이나 옷에 분홍색 임산부 배려 배지를 달고 다닌다. 내 눈은 그 안의 모든 여성의 배 위에 머문다. 젊은 날 어느 옷집에서 점원이 옷을 입어보라면서 “어머나 아기 가졌네요” 하던 생각에 웃음이 난다. 그때 나의 배는 똥배였다. 임산부 보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종종 눈에 띈다. 나라를 구할 장한 여성이 누구인지 세심하게 살펴보는, 오늘부터 나는 이상한 나라의 할머니다. 황주리 화가·동국대 석좌교수

2025.12.08.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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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상 읽기]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챗봇

인터넷에 존재하는 유해한 콘텐트와 극단주의 등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구글이 만든 조직인 ‘직소’에서는 음성으로 대화가 가능한 AI 챗봇을 사용해서 미국의 유권자 2400명을 상대로 여론을 조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소셜미디어나, 기존의 여론 조사 방식에서는 상대와 대화하거나 의견을 나누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직소에서 만든 챗봇과는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직소에서는 사람이 전화해서 질문지를 읽어주고 조사 대상자의 답을 듣는 방식과 달리, AI를 대화의 보조 도구로 활용해서 사람들과 더 오래, 더 깊이 대화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듣도록 설계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의견을 잘 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챗봇과 대화하기 전 40%에서 한 시간 대화 후 68%로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근래 들어 정치 관련 여론조사가 선거 결과 예측에 실패하는 이유가 응답자들이 대답을 거부하거나,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임을 생각한다면 직소의 AI는 여론조사를 더욱 정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이렇게 AI와의 대화만으로 유권자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인터넷 거버넌스를 강화하는 스터디 세션을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서는 AI를 ‘사회 통제 및 국가 역량을 위한 기능적 수단’으로 보고, AI를 통해 여론을 더 잘 이해하고, 예측적 거버넌스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AI 챗봇이 인간을 상대로 뛰어난 효과가 있음이 밝혀진 이상, 앞으로 남은 문제는 누가 어떤 방향으로 이를 활용하느냐와 그 결정 과정을 우리가 어떻게 민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2025.12.08.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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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의 마켓 나우] 내수 침체와 수출 중심 패러다임의 귀환

한국 경제는 오랫동안 수출 중심의 성장 모델을 유지해왔다. 2024년 기준 수출의존도(GDP 대비 수출 비율)는 36.5%로, 미국(7.1%), 일본(17.6%), 중국(19.1%), 영국(14.1%) 등 주요국과 대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앞세워 글로벌 수출 강국으로 확고한 위상을 구축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결과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 달러를 넘어 4만 달러에 육박하며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했다. 자연스럽게 ‘수출 중심’이던 한국 경제가 부유해진 국민의 소비 확대에 힘입어 ‘수출과 내수의 균형’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기대가 한동안 커졌다. OECD 등 국제기구도 한국의 잠재성장률 둔화를 지적하며 내수·서비스 산업의 비중 확대를 권고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대는 팬데믹 이전까지 자본시장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주식시장에서는 소비재·유통·헬스케어 업종이 주목받았고, 사모펀드 시장에서도 이들 분야에 투자가 집중됐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내수시장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면서, GDP 성장률에 대한 내수 기여도는 OECD 주요국 중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1인당 GDP의 증가가 소비력 향상과 내수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명확하다. 고령화와 저출산, 가계부채 증가, 고금리 등 구조적 요인이 지속해서 소비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환율 상승 등 외부 요인까지 겹치면서 내수 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크게 늘었다. 특히 최근의 환율 급등은 수입물가를 자극해 향후 내수 시장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흐름은 자본시장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활황인 주식시장에서 기술 기반 수출 기업 중심의 수출주는 강세를 보이지만, 식품·유통·서비스 등 내수 의존 업종의 주가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고환율이 장기화되어 ‘뉴노멀’로 자리 잡는다면, 내수 시장의 성장 기대를 접고 오히려 환율 수혜를 누릴 수 있는 수출 기업에 투자자금이 몰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모든 내수 기업의 투자 매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부 과감한 투자자들은 ‘수출 전환형 기업’, 즉 이미 수출 역량을 갖추었거나 향후 급격한 수출 확대가 가능한 기업을 발굴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또 수출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산업 구조의 고도화를 통해 부가가치가 커질 여지가 있는 폐기물 처리, 소프트웨어 등 산업에도 관심이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다만, 내수 부진이 단기적으로 극복되지 못하고 구조적 변화로 아예 굳어질 경우, 투자 패러다임의 중심축이 완전히 수출 위주로 옮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

2025.12.08.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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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겨울의 행복한 북카페] 우리는 그날 그곳에 있었다

우리는 다 보았다. 경찰이 국회를 둘러싸고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을 막아서는 것을 보았다. 특전사 부대의 헬기가 국회에 착륙하는 모습을 모았다. 총을 찬 군대가 국회의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모습을 보았다. 시민들은 국회를 둘러싼 경찰과 맞서며 국회의원들을 담 너머로 넘겨주었다. 시민들은 스크럼을 짜고 국회 본회의장을 지켰다. 시민들은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섰다. 『12.3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2025)는 KBS 유튜브 채널의 인터뷰 시리즈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를 활자로 엮어낸 책이다. 계엄의 그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증언한다. 생산직 노동자도, IT 개발자도, 뮤지션도, 대학생도, 환경미화원도, 무역업체 대표도, 식당 자영업자도, 육군 예비역 준장도 계엄을 저지하기 위해 그곳에 달려갔다. 시민들의 증언에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반복해서 드러난다. 고양이 밥을 일주일치 부어놓고, 마지막을 각오하며 가족에게 전화하고, 같이 가자는 직원을 말리고, 이름 석 자라도 남기려 헬멧에 이름 스티커를 붙인 마음을 알았다면 일부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이 계엄을 두고 그리 함부로 굴지는 않았으리라. 우리는 다 보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이 아닌 당사로 향하는 모습을 보았다. 김용현이 계엄의 실패를 두고 ‘중과부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 모습을, 대통령의 체포를 막아서는 모습을 보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취소한 법원의 결정에 검찰이 즉시 항고하지 않는 것도 보았다. 우리는 다 보았고, 우리가 그것을 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차가운 길바닥에서 사람들과 몸을 맞대어가며 목소리를 모은 몸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분노 역시, 조용히 살아 있다.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2025.12.08.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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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의 아트&디자인] 꿈인 듯 현실인 듯…화가 신경철이 포착한 숲

숲은 어둠과 빛을 모두 품고 있는 마법 같은 공간입니다. 나무와 덤불과 이슬, 햇살이 어우러진 그곳에선 소멸과 생성의 서사가 끊임없이 이어지죠. 영화 ‘제이 켈리’(노아 바움백 감독)에서 삶의 위기에 직면한 주인공은 어둡고 깊은 숲에서 길을 잃고, 일상의 철학자들은 생명의 순환에 감탄하며 삶의 지혜를 얻습니다. 혼돈과 질서의 신비로운 조화가 그곳에 있습니다. 이 화가는 어떤 이유로 숲을 계속 그리게 됐을까. 서울 경복궁 인근의 리안갤러리에서 신경철(47)의 개인전 ‘공기 사이의 빛(Light Between Air)’(30일까지)을 보며 떠오른 질문이었습니다. 전시장에 걸린 30여 점의 작품이 한결같이 나무와 덤불이 있는 풍경을 담고 있는데, 각기 다른 호흡으로 그려진 회화와 드로잉이 흥미롭습니다. 그의 회화에서 숲은 마치 꿈이나 기억 속의 한 장면 같습니다. 차분한 한 가지 색으로 칠해진 흐릿한 형상은 시간이 멈춰 버린 공간을 재현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효과 뒤엔 독특한 작업 과정이 있습니다. 설명에 따르면, 작가는 흰색·금색·은색·베이지색 등으로 바탕을 칠한 뒤 붓의 마른 터치감만으로 형상을 표현하고, 나중에 물감이 칠해진 곳들의 가장자리를 연필 선으로 그려 마무리합니다. 밑그림을 먼저 그리고 그 위에 색을 얹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반대순서입니다. 그의 작업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빛’입니다. 그의 숲에는 공기와 함께 빛의 입자가 떠다니는 듯합니다. 금·은빛 바탕 안료와 그 위에 얹힌 물감, 연필로 그은 선들은 보는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게 보입니다. 이는 작가의 의도이기도 하지만, 그만이 경험하는 환경에서 나온 산물입니다. “시력이 나빠져 12년 전 렌즈 삽입술을 한 뒤 눈부심이 심해졌다”는 그는 “한때 좌절했지만, 결국 내 시선으로 포착한 세계를 그대로 표현하기로 했다”고 말합니다. 그의 눈에 겹쳐 보이고, 흐릿하고, 파편화돼 보이는 풍경과 빛은 관객에게 색다른 숲을 만나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또 주목할 것은 작가 스스로 “날 것의 에너지를 보여준 느낌”이라고 소개한 대규모 드로잉 시리즈입니다. 종이 위에 바탕색을 바른 뒤 목탄으로 선을 그리고, 손으로 문지르는 방식으로 완성한 드로잉은 정제된 화면의 회화와는 달리 꿈틀거리는 숱한 선들이 특징입니다. 회화가 멀리서 본 숲을 담았다면, 드로잉은 그 안의 치열한 생명의 움직임을 포착했습니다. 왜 숲인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부터 대구 작업실에서 일하는 지금까지 숲은 늘 내 가까이 있었다”며 “숲은 늘 나의 상상을 자극한다. 그곳에서 보는 빛과 그림자 모든 게 경이롭다”고 답했습니다. 예술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감탄할 줄 아는 시선에서 시작됩니다. 이은주([email protected])

2025.12.08.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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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타임머신] 천연두 박멸 공식 선언

1979년 12월 9일 세계보건기구(WHO)의 과학자들이 천연두의 박멸을 공식 확인했다. 다섯 달 후인 1980년 5월 개최된 제33회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는 ‘세계와 모든 사람이 천연두로부터의 자유를 얻었다’고 선언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무서운 전염병 중 하나를 인류 스스로의 힘으로 멸종시킨 것이다. 천연두는 가장 오래된 전염병 중 하나다. 기원전 1122년 중국에서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고,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문헌에도 천연두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기원전 1156년 사망하여 미라가 된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머리에서도 천연두 감염 증거를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사진)는 소의 젖을 짜는 여인들이 인수공통감염병 우두(牛痘)에 걸리는 대신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우두에 걸린 사람의 고름을 통해 우두에 감염된다면 천연두의 면역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1796년 5월 용감한 8세 소년이 실험 대상으로 나섰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가볍게 앓고 회복한 소년은 천연두의 면역력을 얻었다. 종두법의 발명이 천연두의 종말로 곧장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1967년만 해도 세계적으로 200만 명이 천연두로 죽었다. 전 세계인을 상대로 예방접종을 하여 자연 상태의 전염병을 박멸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제너의 종두법 발명 이후 200년 가까이 흐른 1979년에 이르러서야 천연두를 박멸할 수 있었다. 이제는 그 어떤 나라에서도 정규적인 천연두 예방접종을 실시하지 않는다. 옛날 어린이들이 무서워했다는 호환·마마·전쟁 중 마마, 즉 천연두의 공포는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심지어는 백신에 대한 불신과 음모론을 퍼뜨리는 이들이 등장할 지경이다. 현대 의학의 성취와 혜택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2025.12.08.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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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문장

좋은 이야기는 게으르고 성급하게 선악을 나누거나 인간을 편협하게 재단하지 않는다. 찬찬히 있는 그대로 빛과 그림자를 다루며 불편하지만 입체적인 진실을 탐구한다. 당파성의 덫에 빠지지 말아야 보편성을 획득한다. 그래야 사회를 조금이나마 변화시킬 수 있다. 반대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세상은 조금이나마 바뀐다. 판사 출신 드라마 작가 문유석의 신간 에세이 『나로 살 결심』에서.

2025.12.08. 8:02

[박용석 만평] 12월 9일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5.12.08.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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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노래방, 타운 재기의 상징이 되다

가라오케는 ‘비어 있다’는 뜻의 일본어 ‘가라(空)’와 ‘오케스트라’의 합성어로, 연주자 없이 반주만으로 노래를 부르는 오락문화를 뜻한다. 일본에서 시작된 가라오케는 미국에서도 1980년대 말 ‘가라오케 나이트’라는 이름의 클럽 문화로 자리 잡았었다. 가라오케는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주류 사회에서 이벤트 형식으로 부활하는 추세다. 한인타운 윌셔가의 백인 운영 바 ‘브라스 몽키’에서도 정기적으로 가라오케 나이트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일본식 가라오케는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완전히 다른 형태로 진화했다. 무대형 공개 공간이 아닌, 개별 룸 단위의 사적인 공간에서 가족·친구·동료끼리 노래를 즐기는 ‘노래방’이라는 독특한 문화로 변모했다.     이 한국식 노래방 문화는 ‘나성’이라 불리는 LA 한인타운에도 그대로 전파되어, 이제는 한인 사회의 일상적 여흥이자 세대와 계층을 잇는 공동체 문화로 깊이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초, 8가와 킹슬리의 현재 케네디 하이스쿨 부지에 있던 ‘대호 나이트클럽’은 LA한인타운 노래방 역사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당시 나이트클럽은 밴드 연주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인건비 부담으로 최신 가라오케 기계를 도입해 곡당 5달러씩 받고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했다. 노래 솜씨를 경쟁하듯 뽐내는 무대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필자는 인테리어업을 하던 친구와 함께 방음이 완비된 소형 룸 두 개를 설치해 동시에 여러 사람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이것이 사실상 LA 최초의 ‘룸형 노래방’의 시작이었다.   정식 상호를 걸고 문을 연 LA 최초의 노래방은 윌셔와 그래머시, 현재는 고깃집이 들어선 자리에 있었던 ‘LA 노래방’이다. 각 방에 69장의 레이저디스크를 장착한 파이오니어 기계가 설치됐고, 신청 가능한 곡 수는 적었지만 ‘최초’라는 상징성 때문에 손님들은 번호표를 뽑아 두 시간씩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그 후 불과 2년 사이에 자동 반주기, DJ가 LP를 직접 돌리는 방식 등 다양한 시스템이 실험됐고, 태진과 금영 반주기가 본격 도입되면서 노래방은 비로소 안정적인 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초창기 노래방들은 주방도, 술 라이선스도 없는 순수한 ‘노래 연습장’ 개념이 강했다.   버몬트길 현 이태리 안경점 자리에 들어섰던 ‘신촌노래방’을 시작으로, 올림픽길 호돌이식당 2층 ‘딩동댕’, 3가의 ‘벌몬트 노래방’, 6가의 ‘데뷔’·‘영동’·‘럭키’, 윌셔의 ‘노래하나방’, 8가의 ‘꾀꼬리’, 웨스턴의 ‘DJ’·‘코러스’, 올림픽의 ‘스마일 노래방’ 등이 속속 등장했다. 이후 윌셔와 윌튼 코너에는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사용한 대형 ‘리사이틀 노래방’까지 들어서며 노래방은 한인타운 밤 문화의 핵심 업종으로 급부상했다.   LA 폭동 이후 타운 내 상가 공실이 늘어나고, 불탄 한인 업소들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풀리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던 자금들이 노래방 업계로 대거 유입되기도 했다. 이 시기 노래방은 단순한 유흥업소를 넘어, 타운 복구와 재기의 상징적 산업 중 하나로 기능했다.   3가 ‘숲속의 빈터’ 사장이 시작한 ‘숲속 노래방’은 LA 최초로 양주 라이선스를 취득해 술을 판매한 노래방으로 기록된다. 이 무렵부터 노래방 업주들은 인테리어와 콘셉트에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올림픽길 ‘MGM 노래방’은 같은 이름의 카지노로부터 상호 사용 문제를 제기받아 ‘MGeeM’으로 이름을 바꾸는 해프닝을 겪었고, 이후 ‘와와 노래방’으로 간판을 바꿨다.   노래방의 흥망은 그대로 한인타운 개발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한때 잘나가던 6가 채프먼 플라자의 ‘블리스’, 길 건너 ‘화이트’, 윌셔의 ‘별밤’, 대형 ‘팜트리 노래방’, ‘고성방가’, 뉴햄프셔의 ‘이가주 노래방’ 등은 재개발로 문을 닫은 곳이다.   현재 한인타운의 노래방들은 대부분 주류 판매 라이선스를 갖추고 있다. 6가의 필·영동·On&Off·리사이틀·전 감 K-Pop·슈라인, 3가의 숲속, 윌셔의 ‘베뉴’·‘파라호’, 8가의 ‘펑크’·‘로젠’·‘글로우’·‘인피니티’·‘갤럭시’, 후버의 전 ‘오디션’, 웨스턴의 ‘파블릭’·‘아코’·‘보’·‘콘서트’ 등이 성업 중이다. 8가의 ‘Epic’, 웨스턴의 ‘Jade’ 노래방도 조만간 새롭게 문을 연다.   한인타운에서 노래방은 40년 가까이 세대가 뒤섞여 노래로 소통하는 ‘정서적 광장’이자 작은 쉼터 역할을 해왔다. 1세대에게는 향수와 위로의 공간이었고, 2·3세에게는 한국 문화를 몸으로 익히는 체험장으로 한인타운의 밤을 밝혀왔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노래방 타운 la한인타운 노래방 한국식 노래방 룸형 노래방

2025.12.0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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