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불확실성에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증시 활성화 고삐를 다시 죄고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를 위한 간담회’에서 “이런 위기 때야말로 필요한 개혁 과제를 잘해야 한다”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극복을 위한 체질 개선을 주문했다. 금융 당국도 중복 상장 금지와 부실기업 시장 퇴출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 개선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반도체주 호조에 정책 기대감까지 겹치며 이날 코스피 지수도 5900선을 탈환했다. 하지만 유례없는 변동성 속에 투기성 거래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당국이 제대로 된 경계 메시지나 대책을 내놓지 않은 건 의아스럽다. 자칫 섣부른 기대감과 낙관론만 키워 증시 과열과 변동성 확대를 부추기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0일까지 고위험 투자상품인 레버리지·인버스 상장지수상품(ETP)의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은 5조600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무려 3.5배 규모다. 개인 투자자의 포모(FOMO·소외 불안)성 자금이 고위험 상품에 대거 몰리면서 증시 변동성도 커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 당국은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코스닥 활성화 방침에 벌써 자금 쏠림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우후죽순 등장한 코스닥 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에 단기간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면서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됐다는 데 대해 동의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코스닥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을 가진 이가 많다. 부실기업 퇴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다. 이를 개선하는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돈부터 몰리는 건 분명 이상 조짐이다. 자본시장을 키워 돈이 생산적 부문으로 흐르게 하고 국민의 노후 안전판을 마련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칫 과열이 빚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는 것도 당국의 역할이다. 급등과 급락의 반복은 한국 주식을 위험자산으로 인식시키고 안정적인 장기 투자자금의 유입을 막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키울 뿐이다.
2026.03.18. 8:26
삼성전자 노조가 오는 5월 총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지난 9일부터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93.1%의 찬성률로 쟁의권을 확보하며, 5월 21일부터 18일간의 파업을 예고했다. 실제 파업이 벌어지면 창사(1969년) 이후 첫 번째 파업이었던 2024년 7월 이후 2년 만이다. 수출을 견인하는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고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례없는 반도체 호황 속에 삼성전자 노사는 성과급을 둘러싸고 평행선을 이어왔다. 노조는 SK하이닉스 수준에 준하는 성과급 확대를 요구하며 성과급 산정 기준 투명화와 보상 체계의 공정성을 주장하고 있다. 최대 쟁점은 초과이익성과급(OPI) 상한 폐지다. OPI는 사업부 실적이 연초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 초과 이익의 20% 한도 내에서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 주는 성과급이다. 사측은 성과급 상한을 없애면 인건비 부담이 늘며 시설투자나 연구개발(R&D)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도체(DS) 사업부와 다른 사업부 간 형평성과 ‘상대적 박탈감’ 우려도 사측의 반대 논리다. 이런 가운데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 위원장은 최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파업에 돌입하면 평택공장 생산량의 절반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어렵사리 고대역폭메모리(HBM)4 양산 등으로 반등의 계기를 마련한 상황에서 파업으로 생산 차질이 빚어지면 시장 신뢰 훼손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회사 차원뿐 아니라 우리 경제에 악재가 아닐 수 없다. 기업의 이익이 늘면 주주뿐 아니라 근로자도 그 과실을 나누는 게 맞다. 하지만 노조가 파업 불참자를 강제 전배나 해고 1순위로 올리겠다고 사실상 협박을 가하는 등 선을 넘는 행위를 하는 것은 국민들의 공감을 받기 어렵다. 사측도 보상체계를 둘러싼 노조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도록 기준을 공개하고 성의 있는 설득을 계속해야 한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핵심 엔진이다. 중동전쟁 등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고 초일류 기업의 저력을 지킬 수 있도록 노사가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2026.03.18. 8:24
조희대 대법원장이 법왜곡죄의 첫 피고발인이 된 데 이어 지귀연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도 법왜곡죄로 고발돼 경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지 판사는 서울중앙지법 재직 시절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 사건의 1심 재판장이었다. 직접적인 고발 사유는 지 판사가 지난해 3월 윤 전 대통령의 구속을 취소하고 풀어준 것이다. 판사의 결정이나 판결에 불만이 있을 순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판사 개인을 처벌해 달라며 경찰에 고발하는 행태는 매우 우려스럽다. 무리한 입법을 지적하는 사법부와 법조계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법왜곡죄가 이제는 일선 판사까지 겨냥하는 모습이다.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할 판사들이 형사 고발 가능성으로 압박을 느낀다면 과연 공정한 재판이 이뤄질 수 있겠나. 지 판사는 사실 민주당이 법왜곡죄를 입법하는 과정에서부터 표적이 된 측면이 있다. 지난해 3월 지 판사가 형사소송법상의 구속 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 단위로 계산해 윤 전 대통령의 구속취소 청구를 인용해 풀어준 것을 계기로 법왜곡죄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탔기 때문이다. 설령 법왜곡죄가 신설돼 시행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일선 판사에 대한 고소·고발을 남발하며 형사사건으로 만드는 것은 자유롭고 공정한 재판의 진행과 사법부의 안정을 심대하게 해칠 수 있다. 법왜곡죄 고발 사건을 맡게 될 경찰이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사할 수 있느냐도 중요한 과제다. 검찰 수사권이 박탈된 상황에선 경찰이 권력의 입맛에 맞는 사건을 선별적으로 처리하더라도 견제할 장치가 없다는 게 큰 문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어제 명태균 여론조사 관련 재판에 출석하면서 민중기 특별검사를 법왜곡죄로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여당뿐 아니라 야당 정치인도 법왜곡죄 고발을 수사기관이나 재판부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법원의 경우 1심 재판장이 법왜곡죄로 고발돼 수사를 받는다면 상급 법원 판사들도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법왜곡죄의 부작용으로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훼손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는다. 지금이라도 보완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2026.03.18. 8:22
하버마스의 죽음은 상징적이다. 합리적 소통을 위한 이상적 담화의 조건, 그 위에 형성되는 공론의 장. 물론 그런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합리적 의사소통을 원하는 이들이 추구하는 이상일 뿐이다. 이상은 관념일 뿐,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유물론적 욕망이다. 프로이트에게 그것은 ‘권력의지’, 마르크스에게는 ‘이해관계’, 그리고 프로이트에게는 ‘성욕’이었다. 공소취하 거래 소동의 본질은 친명과 친청의 공천권 권력투쟁 음모론을 먹고살아 온 민주당 김어준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 이런 유물론은 이미 20세기에 사회의 상식이 되었다. 공론장의 붕괴를 한탄할 필요는 없다. 그런 건 애초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존재해야 붕괴도 할 게 아닌가. ‘공론장의 붕괴’라는 말은 그저 ‘그나마 규제적 이념의 노릇이라도 했던 합리적 소통의 바람마저 사라졌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공론장의 이념은 인쇄문화를 배경으로 한다. 전자매체들도 이 모델을 따랐다. 하지만 디지털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유시민은 레거시 미디어를 ‘재래식 언론’이라 불렀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그 표현으로 폄하에 동참했다. 두분이 좋아하는 최신식 언론은 재래식 언론과는 애초에 규제이념이 다르다. 김어준의 ‘겸공’은 아예 편파성을 표방하지 않던가. 이렇게 공정성이 편파성으로 교체될 때, 공론장 대신에 선동판이 펼쳐지기 마련이다. 공소취하 거래설. 정성호 장관이 검찰에 공소취하의 사인을 보낸 것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다만, 그 대가로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주기로 했다는 것은 전형적인 음모론으로, 그 유형이 김어준의 시그니처 음모론들과 일치한다. ‘누군가 대통령을 팔아 검찰과 공소취하를 놓고 거래를 했다. 그 결과 다 죽어가던 검찰이 회생했다. 그렇게 지켜낸 수사권으로 검찰은 언젠가 대통령을 겨눌 것이다. 그러니 정부 입법안을 막아야 한다.’ 딱 김어준스럽다. 이 소동의 본질은 차기 공천권을 둘러싼 친명과 친청의 권력투쟁이다. 동시에 차기 대권을 향한 청와대와 충정로의 힘겨루기이기도 하다. 겸손이 힘든 김어준은 ‘킹 메이커’로서 차기 대통령 후보 지명권을 자신이 쥐려 한다. 여당은 벌써 대권과 공천권을 둘러싼 권력 재생산 국면에 들어갔다. 음모론의 칼날이 자신들의 목을 겨누자, 음모론을 그렇게도 좋아하던 이들이 갑자기 “음모론의 폐해”를 설파한다. 보아하니 김어준마저 손절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섰다. “표현의 자유와 특별한 보호를 악용해 특권적 지위를 누리려는 아주 극히 소수의 사람과 집단이 있다.” 과거의 ‘영웅’이 목하 ‘빌런’으로 전락하는 중이다. 그들이 이제 정신을 차린 것일까? 그럴 리 없다. 그들은 음모론 자체를 청산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청산한 것은 그저 특정한 음모론, 즉 자기들을 겨냥한 딱 하나의 음모론 뿐이다. 그들이 과연 김어준을 청산할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음모론을 먹고 살아왔다. 그 음모론의 생산·유통·확산에 김어준만한 귀재가 없다. 이제야 ‘겸공’의 대안을 찾는다고 하나, 그 바닥에서 그처럼 ‘교주’ 수준의 영빨을 가진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민주당에서는 “대장동·위례신도시·대북송금 등 7건의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음모론은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다. 심지어 의사당 안의 ‘국정’이다. 아찔하지 않은가? 이화영의 대북송금 사건은 유죄가 확정됐다. 법원은 쌍방울이 이재명 경기지사의 방북 대가로 북한에 수백만 불을 대신 줬다고 인정했다. 이게 사실이다. 조작기소는 허구다. 그럼에도 이 허구가 현실로 행세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머릿속에 사실과 허구가 뒤집힌 세상을 창조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게 누구던가. 그동안 그들은 김어준이 뿌려주는 만나를 먹고 살아왔다. 그들은 아직 배가 고프고, 앞으로도 계속 고플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20여년 동안 김어준의 팟캐스트와 유튜브 폭격을 받아왔다. 전두엽이 파괴될 때 생기는 도파민의 쾌락은 중독성이 너무 강해 다른 자극으로 대체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김어준을 끊을 수가 없다. 외견상으로는 김어준이 궁지에 몰린 것 같다. 하지만 저변에서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그래서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봉합’된 것이다. 당정청이 마련한 합의안의 내용은 사실 김어준측의 승리로까지 보인다. 공론장은 현실이 아니라 목표다. 하지만 이 뜬구름을 추구하는 일 자체를 포기할 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음모론으로 추동된 ‘검찰개혁’의 대가는 앞으로 애먼 국민들이 맨몸으로 치르게 될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8월에 본격적으로 벌어질 대혈전에 대한 기대다. 전초전이 이렇게 스릴이 넘치니, 본 경기에선 장관이 펼쳐질 게다. 하긴, 이런 볼거리라도 없으면 이 우울한 세상, 어떻게 견디겠는가. 진중권 광운대 교수
2026.03.18. 8:20
중소기업 근로자 중 부업을 하는 경우가 2020년 27만7000명에서 2025년 37만9000명으로 37% 늘었다고 한다(중소벤처기업연구원 분석).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의 변화다. 2015~2020년엔 별 변화가 없었다. 코로나19 요인도 있겠지만, ‘주 52시간제’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많은 전문가 예측대로다. 과로를 막겠다며 52시간 이상 일을 못 하게 한 정책이 오히려 중기 종사자들을 퇴근 후에도 일해야 하는 과로 시대로 내몰았다. 세상사가 다 그렇지만, 특히 경제엔 ‘공짜 점심’은 없다. 근사해 보이는 정책의 이면에서 누군가는 비싼 대가를 치른다. 토허제 시행에 전월세난 심화 휘발유값 급등, 최고가격제 등장 포퓰리즘 정책 값비싼 대가 치러 충격적인 이란전쟁 중에도 국내 주식 열풍은 식지 않고 있지만 무주택자들, 특히 결혼을 앞둔 이들에겐 전월세 구하기가 급할 것이다. 그런데 집이 없다. 18일 현재 서울 성북구의 전세는 1년 전보다 91% 줄었고(1427건→128건), 중랑·노원·관악·강북구 등에선 약 80% 감소했다(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 사정은 월세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물건이 귀하니 가격이 뛴다.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지난달 151만원을 넘었다. 결코 작은 부담이 아니다. 수도권의 전월세난은 다분히 지난해 10·15 대책의 결과물이다. 시장에선 2년간 실거주를 의무화한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로 인해 전월세가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안타깝게도 그 예상이 들어맞고 있다. 10·15 대책은 토허제로 거래를 억누른 게 핵심이다. 여기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가 얹어지며 강남 3구의 아파트값은 하락하고 있지만 그 대가를 전월세집이 필요한 무주택자들이 치르고 있다. 경제 정책에선 효과와 부작용을 함께 살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이나 주 52시간제, 윤석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처럼 부작용이 정책 효과를 훨씬 능가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최근 ‘사법 3법’의 통과로 행정·입법·사법 3권을 사실상 모두 장악한 정권의 힘이 경제 현장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다. 이란전쟁 이후 휘발유값이 요란하게 뛰자 최고가격제가 등장했다. 약 30년 만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가격 담합을 한 밀가루 업체 등에 20년 만에 가격재결정 명령을 내리는 조치를 진행 중이다. 가격 개입은 당장 약발이 듣는다. 치솟는 물가에 허덕이는 국민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 포퓰리즘 성격이 다분하다. 그러나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선 시장의 가격조절 메커니즘이 망가진다. 높은 가격은 소비를 줄이게 하지만, 가격 규제는 그런 시장 기능을 고장낸다. 게다가 기업 자율성 침해는 시장의 활기를 꺾는다. 가령 과도한 가격 규제로 기업 수익이 줄면 ‘투자 감소→내수 위축’의 방아쇠가 당겨진다. 민주화 이후 수십 년간 역대 정권이 가격 개입을 극도로 꺼렸던 이유다. 정유사들에 대한 손실 보전 방침도 논란이다. 손실을 어떻게 산정하느냐가 관건일 텐데, 손실을 계산하려면 예상 매출을 정해야 하고, 기업 경영의 핵심 비밀인 원가가 필요하다. 내밀한 사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기업엔 그 자체가 고역이다. 지금의 고유가·고환율 상황과 닮은꼴이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위기였다. 그해 7월 국제유가는 배럴당 140달러를 넘었을 정도로 비상이었다. 그러나 그때 이명박(MB) 정부는 최고가격제를 쓰지 않았다. 경제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가격상한제는 당시 경제팀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MB 정부는 대신 유류세와 할당관세 인하로 대응했다. 이란전쟁이 30년 만에 불러낸 최고가격제는 정부의 힘이 점점 더 막강해지는 한국 경제의 단면을 보여준다. 위기 시엔 민생을 지키기 위한 정부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번 최고가격제가 정부와 소비자들이 가격 통제의 단맛에 길들여지는 계기가 될까 우려스럽다. 그렇게 시장의 자율성이 짓눌린 경제는 제대로 날아오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상렬([email protected])
2026.03.18. 8:1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일본·영국·프랑스·중국 등 7개국에 파병을 요청했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대응해 항로 안전 확보를 위한 군함 파견 등 국제공조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호르무즈해협은 세계 원유량의 약 20%, LNG의 25%가 통과하는 핵심 해상교역로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시작한 중동전쟁 와중에 이란이 이 해협을 봉쇄하면서 국제 에너지 수급에 최대 불안 요인으로 떠올랐다. 한국 에너지 수입 물량 60% 통과 공조 참여하면 국가 위상 높아져 한·미동맹 강화 차원에서 접근을 파병 요구에 반응이 시큰둥하자 트럼프는 불만을 토로했지만, 국제공조는 말처럼 쉽지 않다. 먼저 미국-이란 전쟁의 정당성을 놓고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남의 전쟁에 연루된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해군 함정을 파견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현장 상황이 엄중하다. 이 해협의 가장 좁은 구간은 폭이 21해리(38㎞)인데, 석유 해상 수송의 동맥이 이 수역에 압축돼 있다. 항로에 기뢰가 한 발만 발견돼도 해상교통은 중단되는데, 이란은 이미 기뢰를 부설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뢰뿐 아니라 이란은 드론·미사일 등 비대칭 수단을 이용해 통항 선박의 국적을 선별해 타격하면서 해협을 봉쇄하고 있다. 아무리 미사일 방어능력이 뛰어난 함정이라도 포화공격이 방어망을 뚫고 들어오는 틈이 생겨 심각한 손상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국제공조에 참여하는 함정은 선체와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이란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핵폭탄이 아니라 호르무즈해협 통제라는 말이 이래서 나온다. 하지만 이런 위험성이나 정치적 찬반 논란과는 별개로 냉정하게 국익을 고려하면 가능한 범위에서 국제공조 활동에 참여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호르무즈해협은 한국의 해외 에너지 수입량의 60% 이상이 통과하는 사활적 교역로다. 교역로 확보는 남의 일이 아니다. 둘째, 국제 공조에 참여하면 한국이 국제 해양질서와 해양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해군력을 구비한 중견국가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사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 해군을 포함해 세계 어느 나라 해군도 단독으로 해상교역로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이는 국제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남중국해와 인도양에 걸쳐 길게 뻗어있는 한국의 해상교역로도 마찬가지다. 셋째,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서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 정책을 추진하면서 동맹 및 파트너가 자국 안보를 스스로 책임지고 국제안보에 기여할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중요한 안보 지원을 하겠다고 공언해왔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을 통해 투자·안보 등 미국과 여러 방면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해양 팽창 등을 고려해 한국은 미국의 협력 요청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전쟁으로 한국의 해상교역로 안전 확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해상교역로는 크게 3단계로 확보된다. 첫째, 한반도 주변 관할 해역에서는 해군과 해경이 ‘하나의 국가함대’처럼 일사불란한 합동작전 능력을 구비해 주요 무역항만을 방호하고 연안 무역항로를 보호한다. 둘째, 중동항로나 미국항로 같은 한국의 관할해역 너머 해상교역로 안전은 국제법에 따른 해양질서와 우방국과의 협력을 통해 확보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이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셋째, 국적 상선에 대한 협력 및 지도 체제 구축도 필요하다. 이는 해상교역로에서 항행 중인 국적선을 유사시에 안전한 항로로 유도·호송하기 위한 통신 및 상황공유 체계를 평소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 위성통신을 중심으로 한 실시간 정보통신망이 국적 선박에서 운용되고 있다. 해양수산부와 해군 및 해경 함정, 그리고 국적 선박 사이의 비상 연락체계를 정비해야 위기 상황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은 안전한 해상교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각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은 지역 해양안보를 미국 해군에 의존하면서 해상교통 안전을 당연시해왔다. 그러나 미국 해군력 감축 와중에 중국이 새로운 해양강국으로 등장하면서 국제정치 현실이 급변하고 있다. 안보정책 결정자들은 이런 변화를 엄중하게 주시하며 해상교통 안전에 빈틈없이 대비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호섭 해군협회 회장·전 해군참모총장
2026.03.18. 8:16
해마다 프리츠커상 수상자 발표 시기가 다가오면 건축계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1979년 미국의 프리츠커 가문이 제정한 이 상은 오늘날 세계 건축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여겨지며, 흔히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불린다. 이 상의 역사가 쌓여가는 동안 해마다 강력한 후보로 거론돼온 거장 건축가들도 적잖다. 미국 건축가 스티븐 홀도 그중 한 명으로, 그는 한 인터뷰에서 “프리츠커 시즌이 되면 우울해진다”고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다. 수십여 년간 세계적인 건축가로 불려온 그 역시 아직 이 상을 받지 못했다. 올해 수상의 영예는 칠레의 건축가 스밀얀 라디치에게 돌아갔다. 건축계 주목하는 최고 건축상 올해는 칠레 건축가가 수상 해마다 ‘왜 못 받나’ 한탄 말고 우리만의 건축 문화 축적해야 “라디치의 건축은 일시적이거나 불안정하거나 의도적으로 미완성처럼 보이며, 거의 사라질 것 같은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낙관적이고 조용한 기쁨을 담은 하나의 구조적 피난처를 제공한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이 발표한 공식 심사평이다. 그의 건축은 세상의 주목을 끄는 거대한 스케일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소규모 건축에서 거친 재료와 원초적인 물성을 통해 풍경과 건축의 관계를 만드는 방식으로 실현된다. 건축은 건축주·건축 담론 어우러져야 프리츠커상은 건축가 개인에게 주어지는 상이지만 건축이라는 작업은 개인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뒤엔 평생에 걸쳐 그를 후원했던 사업가 에우세비 구엘이 있었다. 구엘 공원과 구엘 저택은 그가 가우디의 실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설계를 의뢰했기에 지어질 수 있었다.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는 낙수장 설계를 의뢰한 에드거 J 카우프만이 있었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이름을 세계 건축계에 알린 스미요시의 아즈마 주택 역시 한 건축주의 결단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건축가라도 그것을 현실에서 실험할 수 있는 건축주와 그것을 이해해주는 사회적 기반이 없다면 좋은 건축을 만들어낼 수 없다. 건축가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과정에는 또 하나 중요한 전제가 있다. 건축가의 작업을 해석하고 확장시키는 건축 담론이다. 이런 의미에서 올해 수상자인 스밀얀 라디치의 나라 칠레의 건축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칠레는 건축 산업의 규모로 보면 결코 큰 나라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두 명의 프리츠커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최근 이십여 년 사이에 국제 건축계에서 매우 주목받는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칠레에서 처음으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와 그의 공공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공공건축 그룹 ‘엘레멘탈(Elemental)’은 저소득층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주택 예산으로 집의 절반만 먼저 짓고 나머지는 주민이 스스로 완성하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른바 ‘반집 프로젝트’이다. 이 실험은 건축이 사회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며, 칠레 건축이 국제 건축 담론 속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계기가 됐다. 프리츠커상을 이야기하며 우리는 종종 일본 건축을 우리의 건축과 비교한다. 일본은 미국과 함께 아홉 명의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 건축이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데에는 뛰어난 건축가들의 작업이 큰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의 역량이 성장할 수 있었던 사회적 환경 역시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소규모 건축물에서도 건축가의 설계가 적극적으로 반영된다. 젊은 건축가에게도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기회가 주어진다. 이러한 작업들은 젊은 건축가들의 실험의 장이 되었고, 그 축적이 건축가의 고유한 언어를 만들어냈다. 세계적 스타 건축가 작품은 곳곳에 아이러니하지만 프리츠커 수상자가 한 명도 없는 한국에는 프리츠커 수상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이 적지 않다. 세계적인 건축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한국 건축가가 자신의 언어를 만들고 그것을 축적할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 측면도 있다. 일본인 최초의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단게 겐조는 젊은 시절 전후 일본의 재건 과정 속에서 히로시마 평화기념관과 같은 국가적 공공 프로젝트를 맡으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단게의 연구실에서 배출된 후미히코 마키와 아라타 이소자키 같은 건축가들이 일본 현대 건축의 흐름을 형성하며 일본 건축을 세계 건축 담론 속에 자리 잡게 했다. 그런 지금 국내 상황은 어떤가. 얼마 전 미래의 한국 건축계를 이끌 건축가를 발굴하던 중요한 제도인 ‘젊은 건축가상’의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상은 다행히 유지되었지만 수상자가 자비로 행사를 준비했다는 후일담이 씁쓸했다. 프리츠커상은 한 건축가의 업적을 기리는 상이지만 동시에 그 시대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최근 수상 경향을 보면 인간의 삶, 지역의 맥락, 그리고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중시하는 건축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오랜 세월 자연과의 조화를 삶의 기본 태도로 삼아 온 우리 전통 건축의 감각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 건축이 세계 무대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만의 건축을 꾸준히 만들어 가야 한다. 건축을 존중하는 문화와 제도, 그리고 건축가가 자신의 작업을 실험하고 축적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프리츠커상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결과일 것이다. 프리츠커상 발표 시기가 오면 언론에서는 늘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왜 우리는 아직 프리츠커 수상자가 없을까?” 우리는 이제 다른 질문을 던졌으면 한다. 건축이 건축가 개인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작업이라면, 지금 한국 사회는 얼마나 성숙한 건축 문화와 제도를 가지고 있을까. 임영환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장·건축학부 교수
2026.03.18. 8:14
한국인이 너무나 사랑하는 빨간 양념의 매콤달콤한 고추장 떡볶이. 언제부터 먹었을까?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1953년 신당동 마복림 할머니가 가래떡을 우연히 자장면 그릇에 빠뜨렸다가 맛을 본 후, 춘장과 고추장을 섞어서 양철 냄비에서 떡과 함께 끓여 판 것이 그 기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1950년대에 이 빨간 고추장 떡볶이를 동네에서 먹어 봤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참기름 활용한 짭조름한 레시피 60년대 말 대량 생산한 고추장에 밀떡 버무린 매운맛으로 바뀌어 고추장이 들어간 떡볶이는 당시 대중화된 레시피가 아니었다. 20여년이 지난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에 들어서 고추장 떡볶이가 급격히 대중화된다. 게다가 신당동 마복림 할머니의 떡볶이는 엄밀하게는 떡을 볶는 것이 아니라 냄비에 끓이는 형태다. 이 레시피 계보는 1990년대 말까지 크게 유행했던 ‘신당동 즉석 떡볶이’의 형태로 이어진다. 근대 떡볶이의 레시피를 살펴보자. 1936년 1월 11일자 동아일보에 나타난 ‘조선요리 성분 계산표’에는 떡볶이의 성분으로 떡·소고기·버섯·계란 등과 함께 간장과 참기름이 등장한다. 고추장은 없다. 당시의 떡볶이는 참기름에 볶은 고소하고 짭조름한 음식이었다. 이후 1950, 60년대의 문헌에 등장하는 떡볶이 레시피도 모두 기름에 볶는 형태다. 고추장 등 매운 향신료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1960년대 말을 지나며 고추장을 쓴 빨간 떡볶이가 전국 각 학교 인근에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추장 떡볶이는 가정식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번데기와 함께 하교하는 아이들의 군것질거리로 주로 소비되었다. 신기하게도 이 시기에 고추장 떡볶이가 전국에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나며 유행하기 시작한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55년 새해를 맞은 경향신문의 ‘희망 좌담회’ 기사에서는 우리나라에도 외국과 같이 대형 식품 제조사가 필요하고, 김치와 장을 편리하게 사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즉, 1950년대는 공장에서 생산한 장 제품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1960년에 이르자 변화가 보인다. 1962년 조선일보에 샘표 고추장 광고가 지속적으로 실리는데, 고객이 공장을 직접 방문하여 구매하는 방식이었다. 즉, 공장에서 생산하는 고추장은 있지만 아직 슈퍼마켓의 매대 위에서 구매할 수 있는 포장 고추장 제품은 아니었다. 포장 고추장 제품은 196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출시되는데, 원래는 파월 군장병을 위해 개발한 것이었다. 1967년 조선일보 광고에는 400g들이 샘표 캔 고추장 광고가 실렸고, 당시 여러 기사에서 캔 고추장의 시장 수요가 꽤 빠르게 증가 중이라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 캔 고추장 시장의 성장은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 낸다. 공장에서 생산한 장류의 실효성을 확인한 정부가 1968년 새마을 운동의 주요 아젠다로 ‘장독대 없애기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장독대 없애기 운동은 도시 미관을 해치고 비위생적이니, 장독대를 없애고 당시 공업화를 통해 시판되기 시작한 된장·고추장·간장을 사 먹자는 캠페인이었다. 이를 통해 주부들의 장 담그는 수고를 덜고, 본격적인 경제 활동에 참여토록 하겠다는 의도도 숨어 있었다. 특히 서울시에서는 이듬해 장독대 없애기 운동을 구체화하는 정책을 본격 시행한다. 서울시가 나서서 직접 장독대를 없애고, 나아가서 시가 직접 투자를 하거나 민자를 유치해 장 공장을 건립하여 장을 실비 가격으로 각 가정에 공급토록 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전국에 규모 있는 장 공장들이 빠르게 들어서기 시작한다. 1970년대 초가 되면 대량 생산 고추장이 전국 각 판매 대리점을 통해 공급 확산될 정도로 일상화된다. 이즈음 고추장 떡볶이가 갑자기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학교 인근에 떡볶이 가게와 포장마차가 등장한다. 결국 빨간 떡볶이의 대중화는 장독대 없애기 운동이 만들어 낸 저렴한 고추장의 전국적 보급 확산, 그리고 당시 혼분식 장려 운동의 결과물인 밀떡의 대중화가 결합되어 나타난 새로운 문화 현상이었다. 한때 불량식품이라고 비난받기도 했지만, 학교 뒤편 문방구에서 사 먹던 그 매콤달콤했던 국민학교 시절의 떡볶이 맛이 아련하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는 이 빨간 고추장 떡볶이가 없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
2026.03.18. 8:12
“머슴이 마당을 쓸어야지, 부엌에서 밥 짓고 있으면 되나요.” 최근에 만난 한 정부 부처 관계자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어쩐지 요즘 세종 관가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관통하는 것 같아서다. 표면적으로는 ‘국민의 머슴’인 공무원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해서야 되겠느냐는 의미인데, 알고 보면 뼈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국무회의 생중계’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말이라서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29일 산업재해 관련 국무회의를 시작으로 대국민 공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국민은 특정 사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나 국정 철학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고, 이를 통해 정부의 정책 방향을 가늠하기도 비교적 쉬워졌다. 국무위원들이 대통령의 질문에 답을 잘 못하거나, 뜬구름을 잡다가 호되게 질책당하는 모습을 보고 통쾌함을 느낀다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톱다운’ 행정의 부작용이다. 최근 들어 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 정책 결정이 많아지고 있다. 밀가루 담합 사건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가 20년 만에 꺼내 든 ‘가격 재결정 명령’, 중동 사태 이후 산업통상부가 29년 만에 시행한다고 밝힌 ‘석유 최고가격제’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24일에는 ‘농지 투기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며 농림축산식품부에 농지 전수조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실무자들은 이를 구현해내느라 휴일을 반납하고, 때론 밤을 지새운다. 하지만 ‘정책 입안자’로서의 자부심이나 효능감은 떨어지게 되는 구조다. 또 다른 부처 관계자는 “솔직히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구체적인 정책 하나하나를 지시하고 방향을 정하면, 부처 장관들은 다음번에 숙제 검사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고 자괴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김세직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한 만큼 ‘창의적인 인적 자본’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고 강조했다. 교통사고 예방에 기여한 ‘색깔 유도선’ 정책에 이를 설계한 공무원의 이름을 붙이는 식으로 개개인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취지다. 물론 공직사회가 늘 역동적이고 위기 대응에도 탁월하다면 ‘복지부동(伏地不動)’이나 ‘소극 행정’이란 말이 자주 등장할 리 없다. 다만 ‘톱다운’식 정책이 늘어나고, 공직사회가 그대로 이행하느라 분주한 것을 지켜보는 건 좀 씁쓸한 일이다. 김경희([email protected])
2026.03.18. 8:10
‘쓸 용(用)’과 ‘뜻 의(意)’를 쓰는 ‘용의(用意)’는 글자대로 풀이하자면 ‘뜻을 사용함’이다. 그러므로 용의에는 당연히 뜻에 상응하는 동기·의도·목적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에 국어사전은 용의를 “어떤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음. 또는 그 마음”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따라서 ‘독서유용의’ 구는 ‘독서는 분명한 동기·의도·목적을 갖고 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현 대학교 1학년 학생에게 한문 ‘讀書有用意’ 구를 풀어주기 위해 필자는 위와 같은 긴 설명을 했다. 학생이 용의라는 단어의 뜻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설명이 길어진 것이다. 요즈음 학생들의 문해력 부족 현상을 다시 한번 실감하며 기본적인 한자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성악설로 유명한 순자(荀子)는 배움을 위인지학(爲人之學)과 위기지학(爲己之學), 두 종류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얼핏 듣기에는 ‘다른 사람을 위한 배움’으로 번역되는 위인지학이 좋은 의미로 들리지만, 실은 위인지학은 남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한 거짓 배움이라는 의미이다. 위기지학이야말로 자기를 위한 배움 즉 자신의 성장을 꾀하는 진정한 배움이다. 독서는 가장 좋은 배움의 길이다. 그러므로 독서의 용의는 위기지학에 두어야 한다. 위기지학에 뜻을 두면 한 글자가 천금 만금의 값어치임을 느낄 수 있다. 짧은 한 문장으로도 삶의 의미를 깨닫고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검색이 독서역할을 하는 시대이다. 검색을 통해 남을 이기기 위한 경쟁의 도구나 위인지학의 허세만 얻으려 말고, 위기지학의 의미를 찾아 심신을 연마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 위기지학을 통해 천근 만금 값의 한 글자, 한 구절을 얻는다면 이보다 값진 소득이 또 있겠는가! 남 앞에 나를 있어 보이도록 꾸미는 독서는 허무한 시간 낭비일 뿐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2026.03.18. 8:08
1981년 달러당 675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1985년 896원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달러화 강세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었다. 미 달러화와 주요 6개 통화의 상대가치를 측정하는 달러지수(DXY)는 1981년 85포인트에서 1985년 160포인트로 88% 급등했다. 배경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차례 오일쇼크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물가가 급등했고 경제는 침체에 빠졌다. 1980년대 초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21%까지 올리는 충격요법을 시행했다. 미 국채 장기금리가 10% 위에서 고공행진하고 미 경제도 강한 회복세를 타며 달러화 강세에 기름을 부었다. 달러 초강세로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달러 약세를 유도하도록 지시했다. 1985년 9월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주요 5개국(G5) 재무장관이 만나 인위적 달러 약세에 합의했다. 이른바 ‘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지수는 1988년 3월 88포인트까지 떨어졌고 원·달러 환율도 이듬해 달러당 669원으로 내려앉았다. 2000년 닷컴 버블과 물가 불안으로 연준은 기준금리를 6.5%로 인상했다. 달러화는 다시 강세 흐름을 탔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 9·11 테러가 발생하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로 달러지수는 120포인트까지 치솟았다. 이때까지도 달러 강세 자체가 글로벌 경제를 직접 위협하지는 않았다. 달러 강세로 미국으로의 수출이 늘어난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은 혜택을 누렸다. 또한, 달러가 강세를 보일 때는 국제유가 안정으로 부담을 덜었다. 전환점은 2008년이었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달러화 가치가 급락했다. 달러지수가 사상 최저치인 72포인트로 급락했다. 문제는 국제유가였다. 그해 미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147달러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중국 경제 성장으로 원유 수요가 급증했지만, 산유국의 정치 불안으로 공급 확대는 지지부진했다. 국제유가와 달러지수를 곱해 산출하는 글로벌 금융 스트레스 지표가 처음으로 1만 포인트를 넘어섰다. 역사는 2022년 봄 반복됐다. 연준이 고강도 긴축 정책에 돌입하자 달러지수는 100포인트를 상회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했다. 금융 스트레스 지표는 다시 1만 포인트를 넘어섰고, 주가는 폭락했다. 최근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고 달러지수도 100포인트 안팎에서 횡보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 스트레스도 급격히 높아지고 있어, 시장 유동성 고갈에 대한 주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 『관세 이야기』 저자
2026.03.18. 8:06
조봉암을 둘러싼 두 번째 논쟁은 농지 개혁의 문제이다. 한국인에게 땅은 영혼과 같은 것이며(Soil is soul) 신분이자 권력이었다. 그렇기에 부모를 죽인 원수는 세월이 가면 잊히지만, 땅과 아내를 빼앗아 간 사람은 죽어서도 못 잊는다.(마키아벨리) 한국인이 땅에 집착하는 이유는 국토가 좁기 때문이다. 중국과 같이 영토가 넓은 나라에서는 “땅이 땅을 낳지 않는다(Land does not breed land).”(인류학자 페이샤오퉁) 영토가 좁은 나라에서는 땅에 목숨을 건다. 해방정국에서 인구의 2.7%가 농지의 64%를 장악하고, 가구의 80%가 소작농이었다. 1946년 2월, 북한이 무상 몰수 무상 분배의 토지 개혁을 발표했을 때 미군정은 태연한 듯하지만 내심 당황했다. 다급한 이승만은 정부 수립과 함께 좌익인 조봉암을 농림부장관에 임명하여 북한 토지 개혁의 의미를 희석하고 남한의 농민을 달래고자 1949년 2월에 서둘러 개혁을 추진했다. 이승만 정부는 개혁의 내용은 3㏊(9900평) 이상의 농지를 개혁하되, 농지를 받는 농민은 1년 소출의 150%를 5년에 걸쳐 갚는 것이었는데, 산술적으로는 헐값이었으나 지주와 농민 모두로부터 거절되었다. 지주는 농지를 양도한 대가로 지가 증권을 받는 것이 불만이었다.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연간 소출의 30%를 더 지급해야 하는데 이미 장리(長利) 연 100%를 물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토지 분할 대금을 더 물어야 하는 부담을 감당할 수 없었다. 농민들은 소작마저 뺏겠다는 지주의 협박을 견딜 수 없게 되자 농사지을 수 없는 자작농보다는 농사지을 수 있는 소작의 길을 선택했다. 따라서 1949년의 농지 개혁은 지주제의 해체에는 성공했지만, 소작제의 폐지에는 실패했다. 이것이 농지 개혁의 진실이다. 이는 내가 아버지의 뒤 바지춤을 잡고 본 것이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2026.03.18. 8:04
내게 쓰는 엽서 김상묵(1947~ ) 깨꽃 나붓는 날은 어둠을 베개하고 혼자 울리라 하늘 청청(靑靑) 땅 청청 이날 사위면 가도 가도 끝없을 지평(地平) 어디메 창 닫고 눈 닫고서 숨어 울리라 별 하나 달 하나 거기쯤 두고 놓아 보낸 젊음을 빚어 울리라 -골뱅이 편지(태학사) 김상묵과 초원의 빛 젊은 시절 김상묵이 쓴 연시를 읽으며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봄빛처럼 눈 부셔야 할 그 시절에 어찌 그리도 눈물이 많았을까? 혼자 우는 밤은 또 왜 그리도 흔했을까? 그러나 그 울음은, 그 눈물은 순수한 영혼의 훈장이었음을 나이 들어서 안다. “한때는 그렇게도 밝았던 광채가/ 이제 영원히 사라진다 해도/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 시절을 다시 돌이킬 수 없다 해도/ 우리 슬퍼하기보다, 차라리/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 -초원의 빛(윌리엄 워즈워드 시, 장영희 역) 김상묵 시인은 사설시조의 독보적 존재다. 그가 고향인 충남 성환읍 대홍리(홍경)를 소재로 쓴 ‘횡겡이 사설’은 현대시조에서 사설시조의 영역을 확장시킨 문학적 업적이다. 그런 그가 절정의 시기에 돌연 시조를 접고 목회의 길을 걸었다. 유자효 시인
2026.03.18. 8:02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3.18. 3:30
세바스찬 승 프린스턴대 교수 인터뷰 인간의 뇌는 또 다른 우주다. 질량이 1.5㎏에도 못 미치지만, 약 1000억개의 뉴런(신경세포)과 1000조개의 시냅스로 이뤄져 있다. 뇌 속 연결선들을 한 줄로 이어붙이면, 길이가 16만~19만㎞에 달한다. 지구를 네 바퀴 이상 감을 수 있는 거리다. 그 복잡한 연결망 속에 인간 의식과 기억의 비밀이 숨어있다. 첨단 인공지능(AI)시대를 살면서도 뇌는 우주처럼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뇌 과학·공학이 빠르게 발전하고, 병원에선 뇌수술도 이뤄지지만, 뇌과학의 현주소는 ‘대륙의 윤곽만 겨우 그린 15세기의 세계지도’ 수준이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의 도전은 가속화하고 있다. 2003년 완성한 인간 지놈(Genome·유전체) 지도처럼 ‘인간 뇌 신경망 지도’ 즉 커넥톰(connectome)도 그려내겠다는 시도다. 1986년 300개의 뉴런을 가진 몸길이 1㎜ 벌레 ‘예쁜꼬마선충’의 뇌 지도를 파악한 게 시작이었다. 당시 12년이 넘게 수작업한 결과였다. 시간이 흘러, 2024년 10월엔 14만 개 뉴런과 5450만 개의 시냅스를 가진 초파리의 커넥톰이 완성됐다. 그사이 발전한 AI의 도움과 수많은 세계 연구자의 땀이 결합된 11년 만의 결실이었다. 초파리는 뇌의 뉴런 수가 인간 뇌의 100만분의 1도 안 되지만 인간 유전자의 약 60%를 공유하고 있어 다양하고 복잡한 행동을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런 유사성을 바탕으로 초파리 뇌 연구가 사람 뇌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바스찬 승(한국명 승현준·60)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 초파리 뇌 신경망 지도 완성의 주역이다. 그는 이같은 공로로 올 1월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NAS)가 주는 2026 프라델 연구상을 받은 데 이어, 2월엔 와일리재단의 와일리 생물의학상까지 공동수상했다. 와일리상은 역대 수상자 중 많은 이들이 노벨상을 받아 노벨상의 등용문으로 불린다. 승 교수의 연구는 실험실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말에는 AI 기반의 커넥톰 분석 기술을 상용화하는 스타트업 ‘미메이징(Memazing)'까지 설립했다. 그의 연구의 최종 목표는 인간 커넥톰 완성이다. 미국 뉴저지에 살고있는 승 교수와 수차례 화상과 이메일을 통해 AI 시대 뇌과학에 대해 탐구했다. 커넥톰, '진정한 나'를 정의하는 지도 Q : 인류가 뇌를 이해하는 정도는 1%밖에 안 된다고들 하는데. A : 그만큼 여전히 잘 모른다는 말이다. 인간의 뇌는 1000억 개의 뉴런과 1000조 개의 시냅스로 구성돼있다. 방대하긴 하지만 결국 유한하기 때문에 인간 커넥톰 완성도 궁극적으로는 가능하다. 커넥톰 분야에서 ‘100% 이해’는 달성 가능한 목표다. 하지만 커넥톰을 다 안다는 것이 뇌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과 같지는 않다. 인류의 이해도가 1%라고 말하는 것은 나머지 99%라는 ‘유한한’ 끝이 있다고 가정하는 거다. 나는 오히려 뇌가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Q : 당신은 “나는 나의 커넥톰이다(I am my connectome)"라는 말로 유명한데, 무슨 뜻인가. A : 사람마다 마음이 다르고 성격·지능·기억이 다르다. 그 이유는 커넥톰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인종마다 눈 색깔이 다른 것은 DNA 차이 때문이지만, 기억과 같은 것들은 유전자에 기록된 것이 아니다. 신경과학자들은 나와 타인의 기억이 다른 이유가 바로 커넥톰에 있다고 생각한다. 커넥톰은 유전자에 의해서도 형성되지만, 경험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 (승 교수는 평소 강연에서 커넥톰은 단순한 신경 연결망을 넘어, 한 사람의 자아와 삶의 궤적이 담긴 진정한 ‘나’를 정의하는 지도라고 말한다.) Q : 당신의 책 『커넥톰, 뇌의 지도』와 연구에 대해 얘기해 달라. A : 나는 20년 전 커넥톰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동료들은 이것을 무모한 생각이라고 했다. 존 화이트가 고작 300개의 뉴런을 가진 예쁜꼬마선충의 뇌 지도를 그리는 데만 12년이 넘게 걸렸기 때문이다. 많은 과학자가 커넥톰 연구는 너무 느리고 노동 집약적인 시간 낭비라고 비판했다. 나는 커넥톰 책을 통해 정반대의 주장을 펼쳤다. 커넥톰 없이는 뇌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답할 수 없다고 믿었기에, 이 연구가 충분히 가치 있다는 점을 세상에 설득하려고 했다. 다행히 AI 기술의 발전으로 뇌 지도 구축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졌고, 덕분에 2024년에 14만개의 뉴런을 가진 초파리 뇌 지도를 발표할 수 있었다. 이제 초파리를 연구하는 모든 학자에게 커넥톰은 필수적인 도구가 됐다. (존 화이트는 1986년, 인류 최초로 생명체의 신경망 지도를 완성한 영국의 생물학자다. 그는 예쁜꼬마선충의 뉴런과 시냅스를 지도화하기 위해 선충을 8000등분 한 뒤, 단면을 하나하나 다 살펴가며 신경망을 전부 그려냈다. 올 2월 와일리상 공동수상자이기도 하다.) 뇌 질환은 뉴런 네트워크의 문제 Q : 인간 커넥톰을 왜 만들려고 하나. A : 인간의 뇌 지도를 만들고 모델링하는 것은 질병 치료와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유전 질환이 DNA 염기서열의 오류로 발생한다면, 치매·파킨슨 등 뇌 질환은 뇌 내부의 뉴런 네트워크 문제다. 커넥톰은 바로 이 네트워크의 지도이므로, 뇌가 어떻게 작동하고 왜 고장이 나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 지식이 된다. 1950년대 이후 뇌 질환 치료는 오직 약물에만 의존해 왔지만, 지금은 BCI(뇌·컴퓨터 인터페이스)라는 새로운 기술이 산업으로까지 성장하고 있다. 뉴럴링크 같은 회사가 대표적이다.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 전극을 심어 자극을 주는 치료법 같은 게 여전히 있지만, 최근에는 두개골을 뚫지 않고 초음파나 자기장을 이용하는 비침습적 방식의 회사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런 산업이 뇌 장애 치료에 중요해지겠지만, 효과를 보려면 더 정밀한 인간 뇌 지도와 모델이 필요하다. 지금의 기술은 눈을 가리고 다트를 던지는 것과 같다. 이게 성공하려면 인간 뇌 지도, 즉 커넥톰이 필수다. Q : 초파리나 쥐와 인간의 뇌는 규모 면에서 천문학적인 차이가 난다. 인간 커넥톰 완성은 언제쯤 가능할까. A : 인간의 뇌는 쥐보다 1000배 크고, 쥐는 초파리보다 1만배 크다. 아직 쥐의 커넥톰도 완성하지 못한 상태다. 커넥톰 연구의 발전은 빅데이터와 AI에 달려 있는데, 이 기술들은 역사적으로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발전해 왔다. 이런 추세라면 내 생애 안에 인간 커넥톰 완성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Q : 뇌과학이 AI 연구에 기여할 부분도 있다고 들었다. A : 인간의 뇌는 단 10W의 전력으로 작동하면서도 10kW를 소모하는 AI보다 뛰어난 성능을 낼 때가 많다. 왜 더 인간 뇌를 닮은 AI가 없을까. 커넥톰이 밝혀지기 전까지 뇌는 베일에 싸인 소프트웨어와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커넥톰을 통해 뇌의 비밀이 드러났고, 뇌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처럼 변했다. 뇌의 물리적 배선 구조가 실리콘 칩의 설계와 유사하다는 점도 밝혀졌다. 이는 우리가 ‘커넥토믹 AI’라는 새로운 형태의 인공지능을 만들 기회를 얻었음을 의미한다. (커넥토믹 AI란 커넥톰 연구를 이용해 밝힌 뇌의 모든 연결지도를 바탕으로 만든 새로운 AI 구조를 의미한다. 뇌를 더 정확하게 모방해 더 효율적인 AI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다.) Q : 언젠가 인간 커넥톰이 완성되고, 이를 업로드할 수 있다면 그 존재는 ‘디지털 자아’로 봐야 할까. A : 커넥톰 자체만으로는 SF영화 '트렌센던스'(2014)에서와 같은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을 실현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커넥톰을 이용해 뇌를 정교하게 디지털로 시뮬레이션하는 건 가능할 수 있다. 이게 한 개인의 디지털 버전이 될 수도 있겠다. 아직은 공상과학의 영역이지만, 초파리의 마음을 커넥톰 기반으로 업로드하는 연구는 이미 주류 과학의 일부가 돼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뇌 일부 대체하는 기술 개발 목표 Q : 스타트업 미메이징은 어떤 사업을 하나. A : 커넥토믹 AI를 개발하고 상용화하기 위해 미메이징을 지난해 말 설립했다. 초파리는 인간처럼 시각 기능이 매우 발달한 동물이다. 초파리 뇌의 절반 이상이 시각 체계에 할당돼 있을 정도다. 우리는 이 작은 초파리 뇌에 응축된 시각 능력을 분석해, 기존의 말단 컴퓨팅 기기용 시각 솔루션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성능이 뛰어난 ‘커넥토믹 AI 알고리즘’의 실효성을 이미 입증했다. 커넥토믹 AI 전용 칩 분야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인간 뇌 커넥톰 완성이 회사의 목표이기도 하다. 뇌의 일부를 디지털로 시뮬레이션해 손상된 뇌 부위를 대체하고 싶다. 다리를 잃으면 의족을 쓰듯, 뇌의 일부를 잃었을 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려고 한다. Q :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은 AI와 생명공학 기술로 인류가 신에 버금가는 초인류로 진화한다고 예언했는데. A :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는 레이 커즈와일의 낙관적인 비전을 더 선호한다. 스티븐 호킹은 AI가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고, 많은 예언자가 인류가 AI의 노예가 되거나 절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이런 파멸론자들보다 커즈와일을 좋아하는 건 내가 낙천주의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세바스찬 승 한국명 승현준. 1966년 미국 뉴욕 생. 만 16세에 하버드대에 입학, 이론물리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히브리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낸뒤 벨연구소 연구원과 메사추세츠공대(MIT) 물리학과 및 뇌인지과학과 교수를 거쳐 2014년부터 프린스턴대 교수로 있다. 삼성리서치 사장(2020~2024)도 겸임했다. 호암상(2008) 수상에 이어 올해 초 프라델연구상, 와일리 생물의학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저서로는 『커넥톰, 뇌의 지도』가 있다. 커넥톰(Connectome) 뇌 속에 있는 수천억 개의 뉴런(신경세포)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나타낸 ‘포괄적인 뇌 신경망 지도’를 말한다. 유전체 지도인 ‘지놈(Genome)’에 비유해 ‘뇌의 유전자 지도’라고도 불린다. 2005년 미국 인디애나대 신경과학자 올라프 스포른스가 지놈처럼, 뇌 전체의 연결망을 하나의 통합된 데이터 세트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며 ‘커넥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최준호([email protected])
2026.03.18. 3:05
아메리칸 드림은 다양한 것이 특징이자 매력이다. 성공하겠다는 꿈의 크기도 다르고, 국가에 대한 애정과 헌신의 깊이도 차이가 있다. 이민자들은 특히 큰 바람을 갖는다. 돈도 많이 벌면 좋겠고,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아 성공하며, 모든 것이 풍요롭길 기대하는 것이다. 이민자들의 꿈은 어떻게 진화해왔을까. 세대와 미국 사회가 달라지고 있으니 아메리칸 드림의 개념도 변화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실 70~90년대 한인들이 미국에 도착하면 일상에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생존’이 아니었을까. 남의 나라,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각오다. 이런 질긴 버팀이 성공의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도 같은 생각일까? 지금 젊은 세대는 생존을 넘어 ‘안정’을 중요한 목표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으로 ‘화려한 성공’을 위한 무리한 투자보다는 꾸준하고 편안한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사바나 예술대학(SCAD)이 내놓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Z세대(1996~2012년생)와 밀레니얼 세대(1981~1995년생)는 아메리칸 드림을 주택 마련, 안정적인 직업, 의료 접근성, 교육 기회 등 기본적인 삶의 안정을 이루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이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힘들고 불안정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아메리칸 드림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멀게 느껴진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특히 ‘재정적 안정’이 젊은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고 강조했다. 연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과거에는 영화배우가 되거나 저택에 사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이었지만, 지금 젊은 세대는 그런 수준의 꿈을 꾸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젊은 세대가 느끼는 가장 큰 장애물은 주거비와 의료비다. 조사에 따르면 69%의 젊은 응답자가 주택 소유를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 요소로 꼽았지만, 동시에 가장 큰 장벽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첫 주택 구매자의 평균 연령은 현재 40세로 높아졌으며, 많은 젊은 층이 주택 구매 자체를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여기엔 “꼭 무리해서라도 집을 살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도 들어있다. 주택 구매를 목표로 허리띠를 졸라매던 부모 이민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또한 젊은 응답자의 69%가 ‘의료 접근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답해 전체 성인 평균(43%)보다 훨씬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런 인식에는 달라진 경제 환경이 큰 몫을 했다. 일단 취업 시장 위축, 고물가, AI(인공지능)로 인한 일자리 경쟁, 정치·지정학적 불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특히 젊은 응답자 100%가 학자금 대출을 주요 장애물로 꼽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은퇴 후 소셜연금에서도 삭감할 정도로 학자금 융자는 실제 평생 족쇄가 되기도 한다. 한 분석에 따르면 현재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평생 약 50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물가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편안한 삶’의 기준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자동차, 양질의 의료 서비스, 자녀 교육, 보육 비용, 은퇴 준비 등이 모두 필수 요소로 인식되면서 기본적인 안정에 필요한 비용이 점점 더 비싸지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가 야망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라고 본다. 성공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먼저 월 페이먼트와 의료비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의미가 변한 것이다. 청년들은 부모세대와 달리 성공을 안정적인 삶, 공동체 소속감, 개인의 행복 추구 등 다양한 형태로 재정의하고 있다. 이런 청년들의 꿈을 한인 어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최인성 / 경제부 국장중앙칼럼 젊은이 성공 아메리칸 드림 현재 아메리칸 주택 구매자
2026.03.17. 20:02
최근 미국이 한국에 배치된 사드(THAAD) 일부를 중동 지역으로 옮겼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반도 방어를 위한 자산이 일부라도 이동한다면 안보 태세를 다시 점검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정부는 오래전부터 ‘자주국방’을 강조해 왔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재래식 군사력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수준이 됐고, 방위산업 또한 세계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바라봐야 할 현실도 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상대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은 북한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 속에서도 핵무력을 체제 생존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으며, 그 야심을 결코 내려놓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래식 전력의 규모나 방산 수출 성과만으로 안보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다면 지나친 낙관일 수 있다. 핵무력 앞에서 필요한 것은 군사 장비의 확충만이 아니다. 어떤 각오로 나라를 지킬 것인가 하는 정신적 무장이 더욱 중요하다. 강한 무기보다 더 강한 것은 국가를 지키겠다는 국민의 의지와 지도자의 결단이기 때문이다. 3월 26일은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151회 탄신일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돌아볼 때 그가 남긴 역사적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건국 초기 혼란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틀을 세우고, 국제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의 생존을 지켜낸 그의 결단은 국가의 뿌리가 되었다. 특히 6·25전쟁 전후의 시기를 돌이켜보면 그의 지도력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그는 국가 원수이자 군 통수권자로서 흔들리지 않는 결단을 내렸다. 예비역은 물론 친일파 논란이 있던 인물들까지 불러 모아 나라를 지키는 전선에 세웠다. 그 기준은 단 하나, 조국에 대한 충성이었다. 그는 외교 무대에서도 탁월한 전략을 보여 주었다. 자유 진영과의 협력을 통해 대한민국의 생존 기반을 확보하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국가의 정통성을 지켜낸 그의 외교력은 현대사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치에는 좌와 우가 있지만 국가 안보에는 하나의 기준만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충성이다. 현재의 한국 안보 환경 역시 가볍지 않다. 북한은 여전히 핵무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국제 질서 또한 급변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군사력의 수치나 성과에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국가를 지키겠다는 정신적 각오와 국민적 결속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 역사는 늘 묻는다. 위기의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선택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안보 앞에서 우리의 대답은 분명해야 한다. 정치적 진영을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서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 조국에 대한 충성이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발언대 충성 시기 국가 안보 대한민국 건국 자유민주주의 국가
2026.03.17. 20:00
중동 지역에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 때 금융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투자자들은 에너지 가격 급등과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 그리고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어진 1970년대 오일 쇼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이란 전쟁은 과거보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적다. 주식시장은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으며, 원유 가격 상승폭도 크지 않고, 주요 경제 지표 역시 전문가들의 예상만큼 악화하지 않고 있다. 경제의 이런 회복력은 몇몇 글로벌 경제 구조 변화에 따른 것이다.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미국 에너지 산업의 구조적 전환이다. 미국은 오일 쇼크 당시 수입 원유에 크게 의존했다. 특히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은 원유 수출국이다. 셰일 오일 생산 증가에 힘입어 원유 및 석유 제품 수출국으로 자리 잡았다. 셰일 오일의 강점 가운데 하나는 가격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가격이 오려면 신속하게 생산량 확대가 가능하다. 이러한 유연성은 글로벌 원유 시장의 안정과 미국 경제의 지정학적 충격 완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두 번째는 현재 글로벌 원유 시장이 비교적 충분한 공급 여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뿐 아니라 비OPEC 산유국들의 생산 증가로 공급 기반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이는 지정학적 리스크 발생 시 가격 폭등 현상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시장은 여전히 주요 수송로에 불안 요인이 발생하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장기간 봉쇄될 경우, 에너지 시장과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세계 경제의 에너지 효율성이 1970년대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기술 발전과 산업 구조 변화, 특히 서비스업 중심 경제로의 전환은 경제 성장에 필요한 원유 사용량을 크게 줄였다. 1970년대와 비교하면 GDP(국내총생산) 단위당 원유 소비량은 약 50~60%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시에 원유 생산 지역도 다양해졌다. 과거 중동이 세계 생산의 약 60%를 차지했던 것과 달리, 현재는 그 비중이 약 35% 수준으로 낮아졌으며 북미 등 다른 지역의 생산 비중이 확대되었다. 유가 상승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 역시 과거보다 제한적이다. 연구에 따르면 유가가 10%가량 상승해도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물가는 일부 오르겠지만 경제 성장률 하락 요인은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도 수요 증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공급 차질에 따른 것이라 연방준비제도(Fed) 역시 적극적인 긴축 정책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주식시장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투자자들이 기업 실적에 대한 기대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지정학적 긴장보다 기업의 수익 전망을 더 중요한 변수로 보고 있다. 현재 전망은 S&P 500 기업들의 올해 수익은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경제가 완만하게 성장하고 인플레이션이 점차 안정되며, 금리 인하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환경은 기업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정학적 위기로 발생한 시장 상황을 매각 대신 오히려 매수 기회로 보는 투자자도 많다. 결국 ‘이란 전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기간과 확전 여부에 달려 있다.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 원유 공급에 큰 차질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영향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고 주변 국가로 확전할 경우 파장은 훨씬 커질 수 있다. 현재 금융시장이 패닉 상황 대신 비교적 신중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이란 전쟁이 통제 가능한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손성원 / 로욜라 메리마운트대 교수·SS 이코노믹스 대표경제 안테나 금융시장 패닉 글로벌 경제 글로벌 원유 중동산 원유
2026.03.17. 19:59
어릴 적 꿈이 택시운전사였던 남편은 운전을 좋아한다. 그 좋아하던 운전을 요즘엔 잘 못 한다. 허리에서 엉덩이 그리고 허벅지에서 종아리로 이어지는 라인이 저릿하고 통증이 있다고 한다. 병명은 척추관 협착증. 치료차 맞는 주사는 마취해야 해서 보호자가 함께 와야 한단다. 허구한 날 내 간병인 역할을 했던 남편의 보호자로 따라갔다. 환자가 환자를 돌보는 격이다. 주사 맞은 후의 운전은 보호자가 꼭 해야 한다고 한다. 보호자로 입장이 바뀌니 책임감에 잔소리도 하게 되고 보양식도 먹여야겠다는 의무감도 불끈 생겼다. 나는 싫어서 안 먹는 염소탕을 진상하고 홍삼, 공진단도 억지로 먹게 했다. 처음 맞은 통증 주사가 별 효과가 없어 2주 후에 한 번 더 맞았다. 주사 맞고 대기실에서 15분 쉰 후 나오는데 환자가 약간 어지럽다고 한다. 평소 무쇠 같은 남편으로 내 의지처였던 사람이 아프다니 가슴이 덜컹한다. 나보단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할 사람이다. 내게 신장하나를 떼어주고도 건강했던 사람인데 나이 드니 건강도 장담을 못 하는가 보다. 통증은 심했다가 덜했다가 간헐적이고 속 시원히 낫질 않는다. 아프다면서 회사 일도 하고 교회도 가고 늘 하던 수영도 꾸준히 했다. 남편이 아픈 것이 내 탓인듯해 미안했다. 지난 토요일엔 협착증으로 고생하면서도 선배님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아침에 나가서 함흥차사. 비행기 타러 나간 날은 온종일 불안하다. 특히 86세 선배님을 모시고 갔기에 더욱 걱정되었다. 세스나는 장난감처럼 부실해 보여 나는 잘 안 탄다. 선배님들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또 타고 싶다 하셨다며, 경비행기 운행 중엔 다리 통증이 없었다고 한다. 거참 신기하기도 하다. 놀 때는 안 아프다니 말이다. 그러더니 이번엔 맘모스 스키장에 스노보드를 타러 갔다. 안 아팠단다. 그야말로 내 맘대로 통증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통증을 못 느끼는 모양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그런 통증이 있다. AI(인공지능)와 위키백과에 의하면 ‘선택적 통증’이란다. ‘선택적 통증(Selective Pain)은 특정 신경병증성 통증이나 신체형 통증 장애 등에서 주로 사용되는 개념으로, 특정 자극, 자세, 혹은 부위에서만 선택적으로 발생하는 통증을 의미한다. 이는 통증이 주관적으로 특정 상황에서만 나타나거나 심해지는 특징을 보인다.’ 심인성 통증과도 관련이 있다는데 그건 나도 겪어보아 안다. 집에서 부엌일 할 땐 한 시간도 못 견디는데 좋은 사람들과 밥 먹고 놀 땐 반나절 앉아있어도 피곤하지 않다. 꾀병처럼 보이는 이걸 전문용어로 ‘선택적 통증’이라고 하나보다. 남편의 병이 차라리 꾀병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이정아 / 수필가이아침에 선택 통증 선택적 통증 통증 주사 심인성 통증
2026.03.17. 19:58
“낮엔 무덥다.” “밤엔 선선해진다.” 이 문장들을 그대로 이으면 “낮엔 무덥고, 밤엔 선선해진다”가 된다. 그런데 뭔가 좀 어색하다. ‘무덥다’는 ‘어떻다’, ‘선선해진다’는 ‘어찌하다’ 형태여서 그렇다. 앞뒤가 ‘어떻다’로든, ‘어찌하다’로든 같아져야 문장이 부드러워진다. “낮엔 무덥고, 밤엔 선선하다”로 하거나 “낮엔 무더워지고, 밤엔 선선해진다”로 해야 자연스럽다. “몽룡이는 오고, 춘향이는 간다”는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몽룡이는 달리고, 춘향이는 아름답다”는 부자연스럽다. ‘달리다’는 ‘동작’(어찌하다)을, ‘아름답다’는 ‘상태’(어떻다)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동작은 동작끼리, 상태는 상태끼리 대비돼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다음과 같은 문장도 어색함을 준다.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드립니다.” 급하다 보니 이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상태를 나타내는 ‘행복하다’와 동작을 나타내는 ‘감사드리다’가 이어졌다. 둘로 나눠서 말하는 게 나았다. “너무나 행복합니다. (여러분) 감사드립니다”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들린다. “관광객은 1000만 명을 돌파했고, 공항 이용객은 1억1800만 명이다.” 여기서 ‘돌파했고’는 ‘동작’을, ‘1억1800만 명이다’는 ‘상태’를 나타낸다. 그래서 어색한 문장이 됐다. “관광객은 1000만 명이고, 공항 이용객은 1억1800만 명이다” 혹은 “관광객은 1000만 명을 돌파했고, 공항 이용객은 1억1800만 명을 기록했다”처럼 바꾸는 게 좋겠다. 우리말 바루기 앞뒤 형태 공항 이용객
2026.03.17.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