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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쌍둥이 우주선

우주 탐사에는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특히 고장 났을 때 고치러 갈 수도 없다. 지구를 떠난 우주선에 이상이 생기면 큰일이므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하고 발사 전에 충분히 점검하는 수밖에 없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지구 저궤도를 도는 망원경이어서 그동안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주왕복선을 보내서 고칠 수 있었기에 1990년에 발사된 이후 지금까지 35년 동안 고쳐가며 사용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5년 더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반면 그 후에 발사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은 라그랑주 점에 자리해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거기까지 너무 멀어서 고장 나도 수리하려고 갈 수가 없다.   미국 항공 우주국에서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한 번의 우주 탐사 계획에 두 대의 탐사선을 사용하기도 한다. 문제가 생기면 첫 번째 것은 포기하고 쌍둥이로 만든 것이라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은 태양계의 안쪽 행성 탐험을 계획하여 금성 탐사 계획을 세웠다.     1962년 마리너 1호가 발사되었는데 지구를 떠난 지 5분도 되지 않아 발사체에 문제가 생겼고 결국 계획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런 일을 대비해서 쌍둥이 우주선을 하나 더 만들어 놓은 NASA는 바로 다음 달에 마리너 2호를 발사했고 이번에는 예정된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2년 후 이번에는 방향을 바꿔서 화성으로 향했다. 마리너 3호는 예정대로 발사되었으나 태양 전지판이 펼쳐지지 않는 바람에 실패했고 마찬가지로 쌍둥이로 만들어 놓은 마리너 4호가 3주 후에 발사되어 화성을 비행한 첫 번째 우주선이 되었다.     1969년에 화성 탐사를 위해 발사된 마리너 6호와 7호는 두 우주선이 모두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쳤다. 이 성공에 힘입어 1971년에 마리너 8호와 9호를 발사했는데 아쉽게도 마리너 8호는 이륙 직후 이상이 생겨 추락하는 바람에 쌍둥이 우주선인 마리너 9호 혼자 임무를 수행했다.   이런 수고 덕분에 화성에 착륙할 수 있게 된 인류는 화성 표면 탐사를 시작했고 2003년에 한 달 사이를 두고 발사된 쌍둥이 탐사차 스피리트 로버와 오퍼튜니티 로버는 예상 수명보다 훨씬 더 오래 임무를 수행하고 지금은 화성 표면에 잠들어 있다.   또한, 태양계 바깥 행성을 탐험하려던 미국 항공 우주국은 마침 176년마다 태양계의 외행성들이 일렬로 늘어서던 1977년, 보이저 1호와 쌍둥이 2호를 발사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 때의 대비책이었지만 두 우주선이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하자 보이저 2호를 천왕성과 해왕성 쪽으로 향하게 하고 보이저 1호는 태양계 밖 성간으로 보냈다.     〈코스모스〉란 TV 프로그램으로 천문학의 대중화를 이룬 칼 세이건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콘택트〉에서 천문학자로 분한 조디 포스터는 베가성에서 수신한 신호를 분석하여 그것이 웜홀을 이용하여 항성 간을 여행할 수 있는 설계도라는 사실을 안다. 기구는 시험 운전 중 광신도 테러리스트에 의해 폭파되었는데 한 때 조디 포스터의 연구를 지원한 적이 있는 대부호 과학자가 아무도 몰래 똑같은 쌍둥이 기구를 만들어 놓았고 조디 포스터는 그 기구를 타고 베가성에 가서 죽은 아버지 모습으로 나타난 외계인과 만나고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쌍둥이 우주선이 왜 필요한지 그 역할을 보여준 영화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쌍둥이 우주선 쌍둥이 탐사차 쌍둥이 기구

2026.03.2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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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호르무즈 파병 딜레마, 선례에서 묘수 찾아야

━ 투자 선물과 배려 외교로 예봉 피한 다카이치 ━ 정부, 대미 투자 프로젝트 조속히 방향 잡아야 ━ 이라크전 비전투병 파견 선례 등에 해답 있어 이란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상황도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상황이 교착에 빠질수록 한국 등 호르무즈 항로 의존도가 큰 나라들의 어려움은 배가될 것이고, 해군 함정 등 파병을 요구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도 계속 높아질 것이다. 그런 가운데 같은 압박을 받아온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그제(19일)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했다. 2024년 기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수입 의존도는 한국이 62%, 일본이 69%여서 두 나라의 처지가 대동소이하다. 그런 점에서 다카이치의 방미 행보는 한국에도 참고가 될만한 점이 많다. 다카이치 총리는 우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전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규탄하고 안전한 항로 확보를 위해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7개국 공동성명에 참여해 대이란 공격의 적법성을 놓고 비판을 받아온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줬다. 그러면서 평화헌법 체제에서 자위대 파견이 쉽지 않은 점을 설명하고 법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파병 못지않게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관심사인 대미 투자와 관련해 다카이치는 선물 보따리를 안겨줬다.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을 포함해 총 730억 달러(약 109조원)에 달하는 2차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했다. 이는 1차 프로젝트의 360억 달러의 두배가 넘는 액수다.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전 총리가 애용했던 “일본이 돌아왔다”는 표현까지 쓰면서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정부는 한·일 외교채널을 가동해 다카이치 총리의 방미 결과를 공유 받고 향후 대응에 참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란 사태의 향방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 구상을 다카이치 총리를 통해 듣는 것은 향후 한국의 정책 결정에 활용할 수 있다. 국가안보실 차원의 소통은 물론 당초 3월 중 논의되던 다카이치 총리의 셔틀 외교 재개도 조속히 추진하길 바란다.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7개국 공동 성명에 추가로 참여해 안전한 항로 확보에 대한 의지를 밝힌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또 정부는 대미 투자 프로젝트 추진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일본이 2차 프로젝트까지 합의한 상황에서, 우리도 조선, 원자력, 에너지 등 투자비 회수 및 수익이 예상되는 투자처를 선점하는 노력을 가시화할 시점이다. 트럼프 시대 한·미 관계에 있어 통상과 안보 이슈는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통상 분야의 합의 이행이 파병 요구,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주한미군 위상 등 각종 안보 현안 협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1기 때인 2019년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미국이 ‘호위 연합’을 추진할 때의 전례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조사·연구 목적의 자위대 함정 파견, 한국은 아덴만 청해부대의 활동 범위 확대 카드를 통해 미국 요구를 일부 수용하되, 전쟁 개입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이에 앞서 2003년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파병 요구 사례도 참고했으면 한다. 당시 대규모 전투병 파병 요구에 정부는 이라크 내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에 3000명 수준의 비전투병 파병이란 대안을 찾은 바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과거 이라크 파병 요구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극심한 국론 분열에 빠져들었던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6월 지방선거를 앞둔 터라 더욱 우려된다. 정치권은 이념적·정략적 접근을 지양하고 함께 국익을 지키고 동맹을 배려하는 최선의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2026.03.20. 8:34

[혈자리로 보는 세상만사] ‘왕사남’ 활줄의 비애와 사약(賜藥)의 본질

일요일 오후, 오랜만에 찾은 극장에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만났다. 아내의 한국 방문으로 홀로 극장 나들이에 나선 것은 수십 년 만의 일이었다. 스크린 속 단종의 마지막은 익히 알려진 ‘사약’이 아닌, 차디찬 ‘활줄’에 의해 묘사된다. 조력자의 손에 의해 생을 마감하는 그 처연한 장면 앞에서 필자는 차마 소리 내지 못하고 어깨로 울음을 삼켜야만 했다.   사약(賜藥)은 사약(死藥)이 아니다. 역사적 기록인《조선왕조실록》은 단종이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고 전한다. 흔히 사람들은 목숨을 끊는 약이라 하여 ‘죽을 사(死)’자를 쓴다고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줄 사(賜)’자를 사용한다. 즉,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마지막 하사품이라는 뜻이다. 신체 훼손을 극도로 꺼렸던 유교 사회에서 참형이나 교수형 대신 몸을 온전히 보존하며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것은 왕실이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예우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약은 단순히 생명을 끊는 독물이 아니라, 왕실의 품격과 정치적 비정함이 뒤섞인 상징적 장치이기도 하다.   사약의 정확한 처방은 국가 기밀이었기에 오늘날 완전히 복원하기는 어렵다. 다만 역사적으로는 부자(附子)와 초오(草烏) 같은 극독성 약재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널리 언급된다. 이들 약재에 함유된 아코니틴(Aconitine) 성분은 소량일 경우 냉증을 치료하는 약이 되지만, 다량으로 사용하면 심장 마비와 호흡 곤란을 유발하는 강력한 독이 된다.   문득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과연 침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경동맥과 가까운 인영(ST9)혈이나 중추신경과 가까운 아문(GV15)혈 같은 혈자리가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거의 불가능하다. 침은 매우 가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침뜸의학은 본래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의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국가 형벌의 수단으로 채택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한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약은 언제나 살리는 도구이지만, 권력과 결합할 때는 생명을 앗아가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한의학의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바로 ‘용량의 미학’이다. 적절히 사용하면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되지만, 권력의 도구가 되는 순간 사람의 생명을 끊는 사약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말과 행동 역시 누군가에게는 기운을 북돋는 보약이 되기도 하고, 서서히 숨을 조이는 사약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단종의 죽음은 조용히 시사한다.   왜 사약 대신 ‘활줄’이었을까? 영화 속에서 금부도사가 차마 사약을 내밀지 못하고 주저하는 순간, 단종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혹은 외부의 압박 속에서 ‘활줄’이라는 즉각적인 수단이 등장한다. 한방적 관점에서 보면 사약은 장기를 서서히 손상하며 타들어 가는 고통을 동반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활줄을 이용한 교살은 경동맥을 압박하여 비교적 빠르게 의식을 잃게 만드는 방식이다.   어쩌면 감독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왕실 권위의 상징인 사약보다는, 단숨에 끊어지는 활줄을 통해 단종의 비애를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특히 누에 실로 만든 활줄이라는 설정은 삶을 위한 도구가 죽음의 도구로 변하는 역설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것은 왕과 신하 사이에 남아 있던 마지막 ‘관계의 끈’이라는 상징으로도 읽힌다.   영화 후반부, 엄흥도가 단종의 부탁을 받아들여 울면서 활줄을 당기는 장면에서 필자의 눈시울이 더욱 뜨거워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16년 전 열반하신 법정 스님께서 천장(天葬)을 위해 준비하셨던 보길도의 배 한 척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 속 대사가 내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강은 흐르고 또 흐르지만, 사람의 한은 강물처럼 흘러가지 않는구나.” “내가 먼저 가 있겠소… 부디 편히 사시오.”   어린 왕 단종의 비극을 넘어, 먼저 떠나간 이들에 대한 그리움까지 겹쳐지며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차가운 활줄보다 더 시린 것은 어쩌면 권력이라는 독일지도 모른다. 그 독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한방의 시선으로 다시 되새겨 본 일요일 오후였다. 강병선 / 한의학 박사·강병선 침뜸병원 원장혈자리로 보는 세상만사 사약 활줄 사약 대신 반면 활줄 영화 후반부

2026.03.19.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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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예술 감상은 신체 건강에도 좋다

예술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오래된 상식이다. 미술치료나 음악치료처럼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예술을 생활과 별개의 특수한 것으로 생각한다. 예술이란 그저 고상한 취미나,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장식품 정도로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최근 예술 감상이 정신건강은 물론 신체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이 계속 나오면서, 예술과 건강의 결합은 감성적 주장을 넘어, 사회 제도권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적 처방’의 한 축이 되고 있다. 실제로, WHO(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해 정부 기관들이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역할을 전시를 넘어 치료, 예방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미술관 나들이가 병원 처방이 되기도 한다. 캐나다, 미국, 스위스에서는 환자에게 전시회 관람이나 예술활동을 ‘약 대신’ 권하고 있다. 2024년 영국 정부 보고서는 문화활동 참여로 우울증 환자가 약 12만7000명 감소했다고 추산했다.   과학이 밝혀낸 최근의 자료 몇 가지를 간추려 본다.   ▶미술작품 감상과 건강 효과   미술관에서 마네, 반 고흐, 폴 고갱 등과 같은 거장들의 원본 예술작품을 감상하면 스트레스 완화는 물론 면역체계를 강화에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단, 이러한 효과는 예술작품이 진품일 경우에 컸다.   예술 감상이 신체의 회복력과 면역 균형을 돕는 생리적 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실제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느끼는 몰입감이 자율신경과 면역계를 동시에 자극해 스트레스 반응을 완화하고 염증 반응을 줄였을 것이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18~40세 참가자 5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1그룹은 런던 코톨드미술관에서 원본 작품을, 2그룹은 복제품을 각각 20분간 보게 하면서 심박수와 피부 온도를 측정했다. 분석 결과, 원본 작품을 관람한 그룹에선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수치가 평균 22% 감소했는데 이는 복제품을 본 그룹(8% 감소)의 거의 3배에 육박했다. 만성질환과 더불어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도 원본 그룹에선 28~30% 감소했지만 복제품 그룹에선 변화가 없었다. 스트레스 호르몬과 염증 지표는 심장병, 당뇨병부터 불안, 우울증에 이르는 광범위한 건강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음악 매일 들으면 치매 위험 감소   호주 모나시대학교가 치매 진단 이력이 없는 70세 이상 노인 1만 800명을 대상으로 음악 감상이나 연주가 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 결과, 항상 음악을 듣는 사람은 전혀 듣지 않거나, 거의 듣지 않거나, 가끔 듣는 사람에 비해 치매 발병 위험이 39%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악기 연주도 35%의 감소 효과를 보였다.   ▶예술작품 감상이 건강에 좋은 이유   예술작품이 스트레스를 낮추고, 심장 건강을 지키며, 심지어 뇌 속 ‘행복 호르몬’까지 자극하는 이유는 스트레스 완화,사회성과 회복탄력성 강화, 면역력 강화와 혈압 안정,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의 분출 등이다.   운동하면 성인병을 유발하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고 기분을 밝게 해주는 세로토닌 수치가 향상되듯, 20분간의 낙서나 노래만으로도 정신신체 상태가 개선될 수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미술관 방문이나 음악회 참석은 건강과 행복을 동시에 얻는 가장 아름다운 투자일 수 있다.   그러니 “예술이 밥 먹여주냐?”는 식의 말씀은 제발 좀 그만하시고, 출발합시다!! 좋은 그림 만나러 미술관이나 갤러리로 출발!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예술 감상 예술과 건강 원본 예술작품 예술 감상

2026.03.19.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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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사이시옷 규정

“선배, ‘재룟값’ ‘원자잿값’이라고 ‘사이시옷’을 붙여야 해? 너무 이상해 보여. 또 ‘우윳값’ ‘구릿값’은 어떻고. 이거 규정을 따라야 할까?”   “‘재료값’ ‘원자재값’이라 적는 게 상식적이라고 생각해. 소리를 표기에 반영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형태가 일그러지다 보니 거부감이 많이 들어.”   “사이시옷 규정을 그대로 따른다면 ‘둘레길’도 ‘둘렛길’로 적어야 하잖아. ‘둘렛길’을 누가 받아들이겠어.”   한글맞춤법 30항은 ‘사잇소리’가 날 때 ‘ㅅ’을 받쳐 적도록 하고 있다. 순우리말로 된 합성어나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에서 ‘냇가’[내까]처럼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날 때, ‘아랫니’[아랜니]나 ‘냇물’[낸물]처럼 ‘ㄴ’ 소리가 덧나거나 ‘나뭇잎’[나문닙]처럼 ‘ㄴㄴ’ 소리가 날 때 ‘ㅅ’을 적으라고 한다. 한자어 단어는 예외(곳간·셋방·숫자·찻간·툇간·횟수)를 빼곤 안 적는다. 이 규정 때문에 끝없이 ‘ㅅ’을 받쳐 적는다. ‘최댓값, 채솟값, 등굣길, 막냇손자….’ 그런데 ‘갯수’나 ‘마굿간’은 한자어로만 돼 있어 ‘개수’ ‘마구간’으로 적어야 된다.   도처에서 아우성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한글맞춤법에서 사이시옷 규정을 빼버리는 거다. 그렇다고 ‘냇가’나 ‘아랫니’ 등에서도 사이시옷을 뺄 건 아니다. 사이시옷이 굳어진 단어들은 그대로 두면 된다. ‘최댓값’ 같은 말들에선 빼는 게 낫다. 사이시옷 표기 여부는 국어사전에서 확인하면 된다. 우리말 바루기 사이시옷 규정 사이시옷 규정 사이시옷 표기 이거 규정

2026.03.19. 19:38

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탈세의 공소시효

소득세 보고 자료는 몇 년 동안이나 보관해야 할까? 세금을 내지 않고 소득을 줄여서 보고한 사람은 몇 년 동안이나 불안해야 할까? 납세자가 정상적으로 소득세 신고를 한 경우, IRS는 일반적으로 3년 이내에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소득세 감사의 기본 공소시효는 3년이다. 또한 세금 환급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도 신고 마감일로부터 3년이다. 하지만 소득의 25% 이상을 누락해서 신고한 경우에는 이 기간이 6년으로 늘어난다.   가끔은 납세자가 세금보고를 하지 않고 해외로 도망을 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 정부는 공소시효가 멈춘 것(tolling)으로 가정을 한다. 그래서 납세자가 미국으로 다시 들어온 시기부터 6년이라는 기간을 세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보통 세금보고 자료는 6년 동안은 보관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부동산을 보유하고 세를 받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보다 더 오랜 기간 세금보고 자료를 보관해야만 한다. 나중에 사업체나 부동산을 매각할 때 정확한 세금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의 모든 자료가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금 관련 사건의 입증 책임은 납세자에게 있다. 세금을 줄이거나 비용을 공제받기 위해 자료를 보관하고 제시해야 할 책임이 납세자에게 있다는 말이다.   헐리우드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Nicolas Cage)는 한때 수백만 달러의 세금 문제로 IRS와 분쟁을 겪었다. 그는 개인 섬을 구입하고, 유럽의 성(castle) 구입 등 부동산 투자 실패와, 개인 전용 비행기 구입 등의 과도한 소비 지출로 인해 약 600만 달러 이상의 세금을 내지 못했다. IRS는 결국 그의 부동산에 유치권(lien)을 설정했고, 그는 결국 여러 채의 부동산을 급히 처분해서 세금을 납부해야만 했다.   액션 영화 블레이드 시리즈로 유명한 흑인 배우 웨슬리 스나입스(Wesley Snipes)는 아예 세금 신고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는 “세금은 내지 않아도 된다”는 이상한 이론을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영화에 출연했는지, 그리고 영화출연으로 얼마를 벌었는지 대략 알고 있던 IRS에 의해서 700만 달러 이상의 세금 문제로 기소가 되었고, 결국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아 실제로 감옥에서 복역했다.   한 사람은 세금 보고를 했지만, 납부하지 않아서 재산을 잃었고, 다른 사람은 세금 보고 자체를 하지 않아서 자유를 잃었다.   그렇다면 6년만 버티면 완전범죄가 될까? 아니다. 때로는 납세자가 죽어야만 끝나기도 한다. 공소시효가 6년을 넘어가는 경우는, 소득세 신고를 하지 않았거나, 실수가 아닌 고의로 소득을 누락해서 신고한 경우다. 세금 보고를 해야만 공소시효가 시작된다. 만일 세금보고 자체를 하지 않았다면 공소시효는 시작한 적도 없는 것이 된다. 시작한 적이 없는 것은 끝날 수가 없으므로 세금보고를 하지 않은 경우는 공소시효가 없다. 또한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사기죄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러므로 IRS가 납세자의 탈세를 사기죄로 본다면 6년의 공소시효도 무용지물이 된다. 그렇다고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국세청이 아주 오래된 옛날의 세금 보고를 문제 삼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공소시효 손헌수 기본 공소시효 기간 세금보고 세금 신고

2026.03.1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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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액션] 하루에 10억 달러를 쓰는 전쟁

20여 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란과의 전쟁에 정부는 국민의 세금을 얼마나 쓰고 있을까? 하루에 10억 달러를 쓰고 최근까지 총 3650억 달러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이 계속되면 최대 1조 달러까지 쓰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국민 1인당 하루 30~36달러씩 쓰는 셈이다. 전쟁이 한 달 안에 끝나지 않으면 국민은 매달 1000여 달러, 한 해 1만2000여 달러를 부담해야 한다.   전국우선순위프로젝트는 최근 이를 국내 복지 비용과 비교해 소개했다. 1년간 미국 내 모든 성인 메디케이드 혜택 비용이 6792만 달러, 어린이 메디케이드는 1억473만 달러, 푸드스탬프 비용 1억6067만 달러다. 이 액수를 다 합쳐도 전쟁 비용에 못 미친다. 이렇게 엄청난 돈을 쓰면서까지 전쟁을 이어갈 이유가 있을까?   미국은 지난 100년 동안 150여 회 이상 외국에 군사 개입을 했다. 정권 교체 시도만 100여 회에 이른다. 성공 비율은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장기적으로 해당 국가에 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이른바 ‘친미’ 정권이 유지되는 경우는 20~30%에 불과하고 대다수가 안정적 민주주의조차 정착되지 않았다. “내 임기 중에 전쟁은 없다”던 트럼프 정부는 10개 나라에 쳐들어갔다. 조지 부시 5회, 버락 오바마 7회, 조 바이든 5회 등과 비교할 때 이미 가장 호전적인 정부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도 2년 반 이상 남았다.   이렇게 전쟁을 벌이면 군수업체들은 떼돈을 번다. 군수업체들은 지난해에만 국민 세금 4081억5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록히드 마틴 한 회사가 지난해 409억 달러를 벌었다. 전쟁이 이어지면서 무기가 소진되면 정부는 또 수백억 달러의 세금을 군수업체들에 지불해야 한다. 미국은 국민 세금으로 사들인 무기들 가운데 250억 달러어치 이상을 해마다 이스라엘에 보내고, 이스라엘은 그 무기로 폭격을 한다.     끝이 없는 전쟁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다. 올해에만 1만여 명 가까이 숨졌다. 전쟁은 또 난민을 양산한다. 현재 전 세계 난민은 1억1700만이고, 곧 1억39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게 유엔의 추산이다. 지난 10년간 2배 이상 늘었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난민이 된 팔레스타인 사람만 590만 명이다. 국경을 넘는 난민이 4000만 명, 70% 이상이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이나 중진국에 살고 있다. 보금자리를 잃은 난민들은 외국으로 밀려가고, 그 나라의 반이민 정책에 시달린다. 난민 지위도 인정받지 못하고 추방되는 사람들도 많다.     미국은 지난해 난민 수용 프로그램을 전면 중단했고 정착 지원도 축소했다. 바이든 정부 당시 난민 수용 제한 12만5000명을 트럼프 정부는 7500명으로 줄였다. 90% 이상 줄인 것이다. 전쟁과 피난, 이주와 추방의 악순환이다.   미국 국민은 심지어 전쟁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로이터 통신 조사에 따르면 이란 전쟁 지지는 25~27%에 그친다. 언제나 과반수가 전쟁을 반대하지만 정부는 군사개입에 중독된 것처럼 끊지 못한다. 미국은 이제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에도 이란 파병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전쟁’이란 마약을 전파하려고 한다.    김갑송 미교협 나눔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전쟁 전쟁 비용 트럼프 정부 국민 세금

2026.03.19.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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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노사정 대타협 잘되려면 친노동 정책부터 균형 잡아야

이재명 대통령이 어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1기 출범에 맞춰 열린 노동정책 토론회에서 “노동자들 입장에서 해고는 죽음”이라며 “기업이 원하는 고용 유연성에 대해 노동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충분한 사회안전망’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며 “긴 목표를 가지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자”고 강조했다. 노동계가 고용 유연성을 양보하는 대신, 이로 인해 혜택을 보는 기업이 사회안전망 강화 비용을 부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대통령의 구상은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정성(Security)을 결합한 덴마크식 유연 안정성(Flexicurity) 모델에 가까워 보인다. 덴마크는 기업이 해고는 쉽게 하되, 실업급여의 기간·금액을 높이고 직업 재교육을 강화하는 정책을 노사정 대타협으로 확립해 왔다. 북유럽의 유연 안정성은 조직률 높은 노조, 두터운 실업급여,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뒷받침했다. ‘해고는 죽음’이라는 노동계의 호소를 가벼이 들어서는 안 되지만, 뒤집어 보면 그 자체가 기존 일자리에 대한 과잉보호를 방증한다. 노동생산성에 맞는 임금을 받고 있다면 해고돼도 다른 일자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대기업·정규직이 노조의 과잉보호를 받으며 노동생산성을 웃도는 임금을 만끽하는 반면,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는 더 힘들어지는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가 굳어졌다.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유노조·대기업·정규직은 무노조·중소기업·비정규직에 비해 근속 기간은 4.8배, 임금은 2.4배라고 했다. 신규 채용 가운데 대기업·정규직 근로자는 2%에 불과하다. 청년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로 가는 문이 사실상 닫혀 있는 셈이다. 2월 청년 실업률이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7.7%)으로 치솟은 데엔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노사의 주고받기가 잘되려면 상호 신뢰와 균형 잡힌 정부 정책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노란봉투법 시행, 노동자 추정제, 정년 연장 논의, 근로시간 단축 등 일련의 정부 정책이 기업에 부담을 주는 친노동 편향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산업 현장에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는 노란봉투법 보완부터 정부는 서두르기 바란다.

2026.03.19.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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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상임위원장 다 갖겠다”…견제와 균형은 여당 사전에 없나

더불어민주당이 후반기 국회에서 국회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할 수도 있다면서 국민의힘의 법안 처리 협조를 압박하고 있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어제 “상임위원장 여야 배분 문제가 국민들께 고통을 주고 국정 발목잡기용으로 전락한다면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전날 정청래 민주당 대표도 “후반기 원 구성 때 상임위원회를 다 가져올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국회의 18개 상임위원장을 의석수 비율로 배분하는 국회 관례를 무시하겠다는 것이다. 민생과 개혁을 위한 입법이 지체된다는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의회주의의 미덕이자 불문율인 상임위원장 배분을 훼손하는 발상은 매우 부적절하다. 숫자를 앞세워 관행을 깨는 순간,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 원리는 흔들리고 다수 독재의 위험성은 커지기 때문이다. 현행 국회법은 투표로 위원장을 선출하게 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단독 과반 의석을 확보한 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을 가져갈 수 있다. 그러나 법에 근거가 있어도 역대 국회가 관행을 따르려고 노력한 것은 야당의 견제도 다수결 못지않게 의회주의의 한 축을 이룬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제1 야당이 무기력한 정치 상황에선 야당 상임위원장은 사실상 마지막 견제 장치인 셈이다. 국민의힘은 “야당을 배제하겠다는 선전포고”라고 반발했다. 정부의 입법이 야당 상임위원장의 비협조에 발목을 잡히는 것 또한 비난받아야 한다. 상임위원장 독식 카드가 나온 것도 이재명 대통령이 “상속세법,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야당이 정무위원장이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한 데 따른 일이다. 현재 정무위원장은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며, 올해 법안 소위가 한 번도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 여당의 분노가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상임위원장 배분 관례까지 흔드는 것은 과하다. 민주당은 지금도 통상 야당이 갖던 법사위원장을 차지하고 그 힘과 의석수를 바탕으로 사법 3법 도입 등의 입법 독주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여야 모두 의회주의를 훼손하는 손쉬운 선택을 멈춰야 한다. 정부는 이 대통령의 말대로 공무원들이 야당을 찾아 읍소라도 하는 등 지혜로운 해법을 먼저 찾길 바란다.

2026.03.19.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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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계 이목 쏠린 BTS 공연, K컬처 한 단계 업그레이드 계기로

내일(2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가 세계인의 시선이 집중되는 거대 야외 공연장이 된다. 3년9개월 만에 7명 완전체가 된 방탄소년단(BTS)의 컴백쇼 ‘BTS 컴백 라이브: ARIRANG’이 펼쳐지면서다. 2013년 데뷔 당시 무명에 중소 기획사(현 하이브) 소속이었던 BTS는 ‘너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라는 일관된 메시지로 전 세계 10대들을 사로잡았다. 공동체 개념의 글로벌 팬덤 ‘아미’를 3000만 명 규모로 키우며 한국은 물론 세계 대중문화사를 새롭게 작성해 왔다. 하루 전날 공개되는 다섯 번째 정규 앨범 ‘아리랑’과 21일 컴백쇼는 K헤리티지, 한국 문화유산을 선명하게 각인시키려는 모양새다. 한국적 정한을 콘셉트로 한 ‘아리랑’의 14곡을,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 있는 역사 공간인 광화문 무대에서 공연한다. 1시간가량의 컴백쇼를, 미국 수퍼볼 하프타임 쇼를 연출한 프로듀서 해미시 해밀턴이 총연출을 맡아 공룡 OTT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국에 라이브로 송출한다. 3억 명으로 추산되는 넷플릭스 가입자 가운데 동시 접속 숫자가 얼마나 될지 점치기 어렵지만 “동시에 경험하는 라이브 이벤트는 강력한 결속력과 집단 기억을 만든다”(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진단을 고려하면 세계인들에게 K헤리티지의 추억을 심을 절호의 기회다. 광화문이 왕과 백성이 소통하던 역사 공간(월대)이나 촛불 군중이 집결하는 민주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K컬처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문화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경제 효과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컴백쇼의 경제 효과를 1억7700만 달러(약 2700억원)로 추산했다. 광화문 일대에는 26만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아미들의 성지순례가 이미 시작됐다. 서울 용산에 있는 BTS 소속사 하이브 사옥 주변 카페 등에는 외국인만 보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종로·중구 일대의 테러 경보 단계를 격상하고 6000명이 넘는 경찰을 투입해 안전관리를 한다고 하지만 안전에 관한 한 지나쳐도 나쁠 것은 없다. 이재명 대통령도 SNS를 통해 안전과 성숙한 시민의식을 당부했다. 세계인은 공연만 보고 돌아가지 않는다. 안전하고 흥겨운 컴백쇼는 우리 모두가 만들어야 한다.

2026.03.19.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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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당은 무엇으로 사는가

대중정당은 거액의 후원자 없이 일반 당원의 당비로 운영된다. 정당들이 경쟁을 줄이고 국고 지원을 공유하면 카르텔정당이라 한다. 우리 정당들은 어느 쪽일까. 점점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다. 큰 당일수록 선출직 공직자가 되고자 하는 후보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큰 돈을 번다는 것이다. 이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면 ‘새로운 정당 유형의 출현’으로 국제학계에 보고될 만한 일이다. 정당이 공직 진출권이라는 독점 상품으로 권리금을 받아 번성하는, 거대 플랫폼 기업으로 변모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국민의힘도 다르지 않지만, 이번 선거에서 압승이 예상되는 민주당은 안성맞춤 사례다. 공천권 장사하는 거대 정당 후보자의 헌신을 이용해 번성 선거 비용의 사후 보전을 유혹 새로운 정당 유형의 출현 예고 국고보조금이 민주당 운영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총수입 가운데 가장 큰 항목은 이월금이다. 올해 1월 중앙선관위가 발표한 ‘2024년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를 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이월금 합계는 2489억이다. 국고보조금 합계는 1884억에 그쳤다. 2026년 올해는 훨씬 더 큰 규모의 이월금이 발생할 텐데, 비결은 특별당비에 있다. 민주당의 당비는 일반당비, 직책당비, 특별당비로 구성된다. 2024년 당비 총액은 376억원이었다. 그런데 특별당비 부분에서 놀라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은 3월 중순 현재 후보자등록과 심사를 마치고 예비경선에 들어갔다. 등록비는 1인당 50만원, 심사비는 기초의원 3백만원, 광역의원 4백만원, 기초단체장 6백만원, 광역단체장 8백만원 정도였다. 경선기탁금은 선거구 크기에 따라 다른데, 심사비와 큰 차이는 없었다. 후보들이 낸 이 돈을 민주당은 “반환하지 않는 특별당비”로 잡는다. 전체 규모는 얼마나 될까. 경쟁률을 일률적으로 3대 1로 낮게 가정하는 대신 금액 감면이나 면제 사유 등 기타 조건을 무시하고 결과를 추정해 보자. 17개 광역단체장 후보는 51명으로 가정했다. 1인당 등록비·심사비·기탁금은 1650만원이다. 총액은 8억원이다. 같은 방법으로 226개 기초단체장 후보는 총 678명이고, 1인당 납부한 1250만원의 총액은 85억원이다. 872개 광역의원과 2988개 기초의원 후보도 3배수로 계산하면 각각 222억원과 583억원이다. 다 더하면 총 898억원이다. 2024년 한 해 동안 민주당이 걷은 당비 전체(376억원)의 2.4배나 되는 돈을 오로지 특별당비로, 그것도 2개월 반 만에 걷은 대기록이 아닐 수 없다. 직책당비라고 다를까. 그렇지 않다. 직책당비를 내는 당직자의 상당수는 공직 후보 희망자다. 그들의 직책당비는 미래의 공직 희망 후보자가 미리 납부한 돈에 가깝다. 당 소속 공직자도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당내 경선을 거쳐야 그 자리에 간다. 그들 가운데 시·도지사는 월 1백만원, 기초단체장은 월 50만원, 광역의원은 월 20만원, 기초의원은 월 10만원의 직책당비를 낸다. 미래의 당 소속 지방 공직자가 낼 직책당비만 연 30억원에 이를 것이다. 일반당비도 마찬가지다. 일반당비를 내는 권리당원의 절반 이상은 지금의 후보자들이 매집한 당원들이다. 이들이 낸 당비는 대납되거나 보상받는다. 이 비용 역시 후보자들이 감당해야 한다. 1백만 명 정도의 권리당원 가운데 50만 명이 매집 당원이라면 그들의 6개월 당비 30억원도 후보자들의 부담이다. 이 모든 일이 후보자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미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썼다. 4월 예정인 본경선과 결선투표 때는 여론조사비를 포함해 또 돈을 내야 한다. 경선에서 탈락하면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다. 몇 표를 얻었으며 왜 탈락했는지조차 당은 말해주지 않는다. 항의해도 소용이 없다. 비밀투표가 아니라 비밀 개표가 당의 원칙이라는 말만 들을 것이다. 프랜차이즈 본사에 대한 가맹주의 처지보다 훨씬 못하다. 당은 돈을 받고 경선을 관리만 할 뿐, 하는 게 없다. 이념도 정책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럴 실력도 없다. 그저 상대 당이 승리하면 나라 망한다는 적대적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이 전부다. 당원들은 선거운동에 나서지 않는다. 후보 각자가 알아서 유급 선거운동원을 돈 주고 구매해야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당선되면 후보자들은 그간 지출한 천문학적 비용을 보전할 은밀한 방법을 찾는다. 말로만 풀뿌리 지방선거일 뿐, 실제로는 돈 잔치가 우리의 지방선거이자 정당정치가 되었다. 대중정당은 가치를 공유하는 당원들이 당비를 걷고 선거운동을 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카르텔정당은 국고에 의존하고 그에 책임을 지는 공기업에 가깝다. 형태는 달라도 이들은 자기 당을 대표하는 공직 후보자를 길러내는 최소한의 정당 기능을 한다. 우리는 어떤가. 당은 공직 후보자 양성 기관이 아니다. 후보들은 알아서 성장해야 한다. 공천을 받으려면 당원을 매집하고 직책도 맡고 막대한 당비를 내야 한다. 기묘한 정당 생존법이 아닐 수 없다. 박상훈 정치학자

2026.03.19.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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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의 시시각각] 끝나지 않은 검찰 개혁 부조리극

한 편의 부조리극 같다. 검찰 개혁에 대한 ‘당·정·청 협의안’ 발표 전후, 여권은 이치에 맞지 않는 연극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관객과 소통이 안 되는 부조리극처럼 당·정·청의 말잔치는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가장 궁금한 검찰의 보완수사권 존폐는 지방선거 이후로 연기했을 뿐 가타부타 설명이 없다. 무소불위의 정치 검찰을 개혁하는 것엔 동의하지만 그 기본 시스템을 없앴을 때의 허점은 따져볼 기회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누군지도 모르는 고도(Godot)를 기다리는 부조리극의 주인공처럼, 국민은 그저 기다리기만 하라는 얘기인가. 당·정·청 협의안 소통·숙의 실종 음모론 무대서 ‘이심정심’ 봉합 보완수사권 존폐 혼돈은 방치 지난 17일 오전 9시 긴급 기자회견부터 아리송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검찰 개혁 관련 논란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며 “귀한 결실을 보게 된 건 국민의 지지와 이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 덕분”이라고 했다. 공소청 법안과 중대범죄수사청 법안에서 공소청 검사의 수사 개입 여지를 둔 조항이 사라졌다. 영장 청구·집행 지휘권,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 지휘·감독권, 중수청의 수사 착수 통보 조항이 삭제됐다. 강경파의 뜻이 반영된 것이지만, 정작 법사위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미완성이라고 했다. 그는 “수사 절차법인 형사소송법의 전면 개정을 통해 반드시 수사와 기소 분리 원칙을 관철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에는 검사의 수사권과 보완수사권(196조), 보완수사요구권(197조의 2)이 규정돼 있다. 그런데 ‘관철시켜야’ 한다니. 당·정·청이 원보이스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공교롭게 한 시간 뒤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도 그답지 않은 애매한 발언을 했다. “정청래 대표가 발표했어요? 그러면 이제 다 된 거예요?”라고 한 뒤 “검찰 개혁의 핵심은 수사는 수사기관이 하고 검찰은 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여의 소지도 최소화하고… 최소화, 또 뭐라고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소화라는 표현에 신경을 쓴 것은 보완수사권 존치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숙의가 중요하다”며 그동안 논의 과정에 아쉬움도 나타냈다. 두 장면은 당·정·청이 보완수사권 존치 논란에서 솔직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앞서 이 대통령은 “보완수사권이 예외적으로 필요하다”(1월 기자회견)고 했고, 이를 철회하지 않았다. 변호사로 반평생을 살면서 경찰의 ‘장난질’을 지켜본 이 대통령은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소신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측근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증거를 보완하라고 하지 못하면 사건을 돈 받고 덮어버리는 것도 해결하지 못하게 될 것”(중앙일보 인터뷰)이라고 했다. 협의안 발표 다음 날 김어준씨의 유튜브에 출연한 정 대표의 속내도 컴컴해 보인다. 그는 이 대통령의 개혁안 추인을 칭찬하며 ‘이심정심’이라고 했다. 그런데 잠깐, 김어준 유튜브가 어떤 곳인가. 불과 열흘 전 ‘공소취소 거래설’을 터뜨려 정부의 검찰 개혁 진정성을 산산조각낸 무대 아닌가. 당시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보완수사권과 대통령에 대한 공소취소를 거래하려 한 용의자 취급을 받았다. 그 엄청난 음모론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이 검찰 개혁 축하 파티를 여는 처신이 과연 대통령에 대한 예의인가. 정 대표는 “중간에 내용이 새면 반격이 올 수 있어 철통보안 속에서 논의했다”는 뒷얘기까지 풀었다. 바로 전날 “터놓고 소통하며 지겨울 정도로 숙의해야 한다”고 한 대통령의 당부는 한 귀로 흘렸다. 당·정·청의 모습에서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 앞뒤 안 맞는 상황, 어정쩡한 수습이 반복되는 건 감출 게 많기 때문이다. 6월 지방선거, 8월 당 대표 선거가 다가올수록 계파별 비밀스러운 셈법은 늘어날 것이다. 걱정스러운 건 그런 계산속으로 정체불명의 형사사법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이 최대 피해자가 되는 부조리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승현([email protected])

2026.03.19.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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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선] ‘빵집 주인의 이기심’ 간과한 노란봉투법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한쪽의 말만 듣고 제도를 만들면 부작용이 뒤따른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도입된 비정규직보호법이 그런 경우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늘려나가자 근무기간 2년을 초과하면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의무화한 법이다. 얼마나 좋은 취지인가. 공정과 정의,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가 떠올라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대다수 기업은 2년이 되면 계약직 직원을 기계적으로 내보냈다. 제도에 대한 시장의 역습이다. 결과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한 청년들은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청춘을 보낸다.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 봇물 사용자는 로봇 더 늘리게 돼 교섭 범위 좁혀야 노사 상생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최저임금 1만원 정책도 많은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제도였다. 최소한 시급 1만원은 받아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 아니냐는 취지였다. 시장의 역습은 거셌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취약계층인 비정규직부터 내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아르바이트 직원을 내보내는 편의점 사장이 줄을 이었다.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자 키오스크가 봇물 터지듯 설치되면서 종업원 자리를 대체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2년 국무회의를 통과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전통시장 보호를 명분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을 강제한 이 제도는 유통시장 전체를 보지 않고 대형마트 규제 필요성을 강조한 쪽의 얘기만 들었다. 그 사이 온라인 유통이 급성장했고, 획일적 규제로 한국 기업의 손발이 묶인 틈을 타 유통시장은 미국계 쿠팡 중심으로 재편됐다. 지난 10일 시행된 노란봉투법의 파장은 앞선 세 정책보다 더 클 수 있다. 노동조합법을 개정한 이 제도 시행 첫날 407개 사업장에서 “진짜 사장 나오라”는 하청 노조의 투쟁이 막을 올렸다. 시장의 역습은 이미 시작됐다. 기업들은 로봇 투입과 공장 자동화를 서두르고 있다. 이에 따른 경제적 귀결은 일자리 위축이다. 이를 막기 위해 노조가 반발하겠지만, 시대적 흐름인 로봇 투입과 공장 자동화를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하청 노조의 무차별적 교섭 요구는 로봇 투입 속도를 더 재촉할 수 있다. 비정규직보호법, 최저임금, 유통산업발전법, 노란봉투법은 모두 정의로운 취지를 내세운 정책이다. 하지만 경제적 귀결은 취약계층의 일자리 기반을 흔들고 경제 생태계를 오히려 불안하게 만드는 시장의 역습으로 이어졌다. 왜 이런 정책 실패가 반복될까. 한쪽만 보기 때문이다. 정통 경제학자는 단정적으로 말하는 법이 없다. 어떤 정책이 있으면 “한편으로는 효과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작용이 있다”는 점을 반드시 말한다. 오죽했으면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어디 한손잡이 경제학자 없느냐”고 했을까. 정부는 서둘러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원청 기업과 하청 노조의 분쟁이 발생하면 노동위원회 조정 절차를 거쳐 노사가 자율적으로 풀어나가도록 하자는 식으로는 부족하다. 노사 분쟁이 늘어나는 것 자체보다 더 큰 우려는 사람이 해도 될 일자리까지 급격히 로봇으로 대체되는 사태다. 이 정책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국회의원 자신이 기업을 경영한다면 어떤 판단을 하게 될지 생각해보면 결과는 자명하다. 하청 노조와 일일이 경영상 사항을 논의하고 끝없는 임금 인상 요구를 받게 된다면 기업 경영자는 하청과의 거래를 끊거나 줄이는 출구를 찾게 된다. 이런 인간의 이기심이 시장경제의 원리다. 애덤 스미스가 250년 전 『국부론』에서 빵집 주인은 자비심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빵을 만든다고 설명한 그대로다. 물론 노란봉투법의 취지 자체를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기업 활동이 아무리 분업화·전문화되었다고 해도 원청 기업이 생산 활동의 성과를 독점한다면 경제 생태계는 유지되기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이 SNS에서 말했듯 호랑이도 풀밭이 있어야 생존한다. 초식동물이 살아야 호랑이도 산다는 뜻일 것이다. 노사 상생을 위해 노란봉투법이 필요하다면 사용자도 수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법은 유지하되 허용된 행위만 가능하고 나머지는 금지하는 ‘포지티브 방식’으로 하청 노조의 무차별적 교섭 요구를 제한해야 한다. 지금처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친다면 경영상 사항도 교섭 대상이 되고, 노조가 원하면 교섭창구를 단일화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라면 기업은 연중 노사 교섭으로 몸살을 앓게 된다. 하청 노조의 원청 교섭 요구도 사용자성이 명확할 때만 가능해야 한다. 정부는 무차별적 교섭 요구가 가능한 현행 시행령 해석 지침을 조속히 고쳐 써야 한다. 불 보듯 뻔한 혼돈의 경제적 귀결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김동호([email protected])

2026.03.19.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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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의 이코노믹스] 위기 가능성은 작지만 내수기업·자영업 어려움 커질 것

달러 약세 속에서도 지속되는 한국의 고환율 최근 중동 전쟁 이후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훌쩍 넘어 1500원을 오르내리고 있다. 환율 고공행진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원-달러 환율은 중동사태 훨씬 전인 지난해 9월 이후 계속 달러당 1400원을 웃돌고 있다. 1400원을 넘는 환율은 과거 외환위기 때나 보던 수준이다. 이번 고환율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볼 대목이 있다. 지난해부터 달러는 다른 통화 대비 약세를 보이는데, 유독 원화 대비로는 강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그림1〉의 미국 달러인덱스(빨간색)는 세계 각국의 통화 대비 미 달러 가격(무역가중평균)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원화 대비 미 달러 가격 (원-달러 환율, 파란색)과 인덱스가 비슷한 하락세를 보이다가 여름부터는 유독 원화에 대해 큰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 중앙은행 외환곳간 금 18% 한국, 2013년 이후 금 매입 안해 트럼프의 불합리·변덕 정책 탓에 외환시장 변동성 더 커질 가능성 자본유출·대미투자, 낮은 생산성 고환율 초래하며 양극화 더 심화 원-달러 환율 움직임에는 원화 또는 한국의 경제여건뿐 아니라 달러 또는 미국의 경제 여건도 큰 영향을 미친다. 전반적인 달러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것은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이 한국 고유의 여건 때문인지 아니면 달러의 전반적인 변화 때문인지 구분하는 등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축이다. 그런 면에서 역사적이고 국제적인 시각에서 달러를 조망해 볼 필요가 있다. 세계 넘버원 통화인 달러의 지배는 영원할 것인가? 최근 달러 가치는 왜 하락하는 것인가? 트리핀 딜레마와 신트리핀 딜레마 영국 파운드화가 기축통화였던 시대를 뒤로하고, 세계 제2차대전 이후 달러 중심의 브레턴우즈 체제가 출범했다. 금 1온스와 미화 35달러의 교환을 보장해 달러 가치를 금에 고정시키고, 다른 통화들의 가치는 달러에 고정하는 고정환율제가 출발했다. 하지만 이후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라고 불리는 문제가 부각됐다. 이러한 체제가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원활한 국제 거래를 위해 기축통화인 달러가 세계 각국에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하지만 과도한 공급은 달러의 금 태환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켰고 결국 고정환율제도의 붕괴를 초래하였다. 이후 국제통화체제는 변동환율제도로 변화했다. 현재까지도 달러는 기축통화 역할을 하면서 달러 중심의 국제 통화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 체제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먼저 신 트리핀 딜레마(New Triffin Dilemma)가 나타났다. 현 국제통화체제 하에서 각국은 국제 거래와 외환보유액 등을 위해 안전한 달러 자산을 충분히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지속적으로 안전 달러자산이라 할 수 있는 미국 국채를 공급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의 재정적자와 대외부채가 확대된다. 장기적으로 미국 국채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자산이 되며 달러에 대한 신뢰가 훼손돼 국제통화체제 유지가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달러의 과도한 특권 남용한 미국 또한 미국은 기축통화로써 달러가 가지는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을 남용해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막대한 통화 발행과 지속적인 재정적자는 물론, 달러의 국제통화로서의 특권을 이용해 대외 금융 제재의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예를 들어 2014년의 러시아 금융 제재는 러시아 압박에 많은 역할을 했지만, 이후 러시아와 다른 국가들이 미국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다른 국제 결제 시스템을 모색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일으키면서, 무역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달러 체제에 대한 우려가 더해졌다. 〈그림 2〉는 전 세계 중앙은행의 준비자산 중 주요 통화의 비중을 보여준다. 미 달러는 2015년 60%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후 지속적으로 비중이 하락해 2024년 4분기에 50.3%, 이후 불과 1년도 안 되어 46.4%가 되는 등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더욱 급격히 하락했다. 한편 달러 비중 축소에도 불구하고, 유로·엔·위안 등의 비중은 거의 늘지 않았다. 유로·엔·위안은 여전히 달러의 위상을 대체하기에는 금융 시장의 깊이, 유동성, 경제 및 제도의 안정성, 거래 규모 등 여러 측면에서 미흡하다. 더욱이 일본 경제의 지속적인 저성장 추세, 중국의 자본 통제 등은 엔화와 위안화의 한계를 보여준다. 외환보유액 운용, 긴 안목과 비전 필요 달러 위상이 추락하고 다른 통화의 뚜렷한 약진이 없는 사이에, 금의 안전자산 역할이 확대되고,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 중 달러의 상당 부분을 금으로 대체했다. 2015년 6%였던 비중이 2025년 3분기 18.4%까지 증가하였고, 특히 2024년 4분기 이후 비중이 4%포인트 이상 급증하였다. 최근에 나타난 금값 폭등에는 달러의 위상 저하와 이에 따른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이 명확한 역할을 했고, 민간에서도 금을 사재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아쉬운 부분은 한국은행의 금 보유 비중이 낮고, 2013년 이후로는 금 매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계 중앙은행이 금 비중을 3배 정도 늘리는 동안 한국은행은 금 비중을 오히려 줄였다. 올해부터 한국은행이 금 매입을 하기로 하였으나 그사이에 이미 금 가격은 3배 이상 폭등했다. 외환보유액 운용에 긴 안목과 비전이 필요하다. 다시 시선을 한국으로 돌리면, 전반적인 달러 약세 흐름과 달리 최근 한국은 달러 강세를 걱정하는 몇 안 되는 (선진)국가이다. 이번 중동사태 후에도 다른 화폐들에 비해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더 많이 하락했다. 지난해 여름 이후 지속적인 원화 약세가 나타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여러 요인을 들 수 있다. 환율 상승에 서학개미 역할은 제한적 자본 유출 증가, 특히 해외 주식 매입의 급증은 환율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종종 언급되는 서학개미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국제수지표의 (서학개미가 포함된) ‘비금융기업등’ 부문의 매입액은 2025년 313.5억 달러로 총 주식매입액 1143.4억 달러의 27% 정도에 불과하다. ‘일반정부’ 부문과 ‘기타금융기관’ 부문의 매입액은 각각 400억 달러 이상이다. 국민연금이 해외주식매입을 조정하는 등 다른 부문의 매입액이 줄어 2026년 1월 ‘비금융기업 등’의 비중은 증가하였으나 50%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환율 때문에 서학개미·국민연금 등의 해외주식매수를 줄이려다 국민의 투자수익이 크게 줄게 되면 오히려 국민경제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향후 예상된 자본 유출도 현재 환율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에 합의했고, 이 중 2000억 달러는 현금 형태의 직접투자로 하기로 했다. 외환시장에서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금 형태를 연간 최대 200억 달러 한도 내에서 약 10년 이상에 걸쳐 분할 투자하기로 했지만, 상당액의 미래 자본 유출이 예상돼, 미래 환율 상승 기대를 형성하고, 이는 미래 여건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금융 변수인 현재의 환율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생산성 저하도 역할을 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발라사-사무엘슨(Balassa-Samuelson)의 이론에 따르면 교역재 부문의 높은 생산성 향상은 실질 환율을 절상시킬 수 있다. 즉 미국에 비해 점점 더 감소하는 한국의 생산성이 원화의 실질 환율을 절하시키고, 이는 명목환율 절하를 이끌었을 수 있다. 미국의 유동성 증가와 재정 적자가 달러 가치를 하락시킬 수 있듯이, 한국의 상대적인 저금리와 유동성 변화, 정부 재정 상황 그리고 향후 재정 상황에 대한 기대도 원화 환율 상승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또한 최근 발발한 중동 전쟁은 안전자산 선호 심리 강화, 유가 급등에 따른 한국의 달러 결제 수요 상승 등으로 환율 상승을 더욱 부추겼다. 환율이 지속적인 고공행진을 하는 상황이지만 그동안 외환보유액의 축적, 대외 달러 부채 관리 등 다방면으로 위기 대비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위기 가능성은 이전에 비해서는 작다. 하지만 트럼프의 예측하기 어려운 불합리하고 변덕스러운 정책들은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급격히 상승시킬 수 있기에 만전을 기해야 하고, 환율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국내 경제 여건에도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한편 현 상황에서 고환율 지속으로 발생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슈는 양극화 심화이다. 고환율이 지속함에 따라 수출 중심의 기업들은 더 많은 이익을 얻고 있지만, 내수 중심의 기업들, 자영업자들은 수입 재료비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동 전쟁 이후 유가 상승 등으로 그 어려움은 가중됐다. 현재 전체적인 수치로 나타난 경제 상황보다 이들이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2026.03.19.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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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엽의 괴짜열전] 스스로 자신을 착취한 끝에 탈진하는 현대인의 초상

“안 하는 편이 좋겠어요”라고 되풀이하다 굶어 죽은 바틀비 소설 속 인물들 중에서 손꼽힐 만한 괴짜로 바틀비를 들 수 있습니다. 변호사 사무실의 조수로 일하는 바틀비는 자신을 고용한 변호사가 지시하는 업무를 “안 하는 편이 좋겠어요(I would prefer not to)”라고 말하며 거부합니다. 처음에는 문서 필사 이외의 일을 거부하다가 나중에는 필사 일도 거부하고, 해고도 거부하고, 변호사가 사무실을 옮긴 뒤에도 그 건물의 계단과 복도에 남아 이동을 거부하고, 결국 감옥에서 밥 먹는 일도 거부하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지금 보아도 기괴해 보이는데 이 단편소설이 1853년에 처음 발표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시에는 얼마나 더 기괴해 보였을지 짐작이 갑니다. 허먼 멜빌의 1853년 단편의 주인공 일도, 해고도, 먹기도 거부하다 숨져 이해 못할 기행에 숱한 해석 쏟아져 “바틀비=메시아”로 보는 시각은 공허 부분 집착 말고 텍스트에 집중해야 제목의 ‘필경사’는 적절한 번역 아냐 『모비 딕』만큼 유명해진 이해 못할 소설 이 소설의 한국어 번역 제목은 『필경사 바틀비』이고 영어 원제목은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 Street’이며 작가는 장편소설 『모비 딕』으로 유명한 허먼 멜빌입니다. 1819년생인 멜빌은 뉴욕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돌아가신 뒤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 스무 살 때부터 선원 일을 시작했습니다. 1841년부터 포경선을 탔고 1844년에 보스톤으로 돌아온 뒤 선원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써서 문명을 얻었지만 작풍을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쪽으로 바꾸면서 독자들에게 외면당합니다. 이때부터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고민하던 멜빌은 생활고로 인해 작품활동에서 멀어졌고 1891년에 문단에서 거의 잊혀진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멜빌 소설의 재평가는 1920년대부터 시작되었고 이후 멜빌은 미국 문학사의 가장 위대한 작가들 중 하나로, 그리고 그의 대표작 『모비 딕』은 가장 중요한 작품들 중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단편소설 『필경사 바틀비』가 점점 유명해져서 이제는 『모비 딕』 못지않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바틀비라는 인물이 19세기적 인물이 아니라 20세기적 인물, 더 나아가서는 21세기적인 인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 큰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이 단편소설에 대한 해석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모비 딕』의 출판이 참혹한 실패를 겪은 뒤의 작가 자신의 심경을 투영했다는 해석부터, 바틀비가 일하는 월스트리트는 자본주의의 심장부이고 바틀비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소외된 개인이며 그의 단순 반복 노동은 인간성의 소모이고 “안 하는 편이 좋겠어요”는 소극적 저항이라는 가장 일반적인 해석, “안 하는 편이 좋겠어요”라는 말에 대한 난해한 철학적 해석들, 예를 들면 기존의 언어체계와 논리를 이탈한다는 들뢰즈의 해석, 무언가를 실행함으로써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소진해버리는 대신에 끝까지 ‘하지 않음’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잠재성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아감벤의 해석, 단순히 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해야 한다’는 강요와 ‘거부한다’는 반항 사이의 게임 자체를 거부함으로써 지배 이데올로기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든다는 지젝의 해석 등. 철학적 해석을 위한 해석 이 철학적 해석들에 대한 저의 솔직한 느낌을 말하면, 소설이 해석을 위해서 읽힌 것이 아니라 그들의 철학을 입증하기 위한 사례로 동원된 것 같습니다. 바틀비의 죽음에 대한 그들의 해석을 보면 이 느낌은 더욱 강해집니다. 예컨대 아감벤은 감옥에서 굶어 죽은 바틀비를 새로운 메시아로 봅니다. 먹는 행위조차 하지 않는 편을 택함으로써 생물학적 생명마저 중단시키는 바틀비는 세상을 변화시켜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정지시킴으로써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해석들 대부분은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많은 경우 작품 속의 어느 일부분에 대한 해석에 그치는 것 같고, 특히 이 작품을 알레고리로 읽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작품에 그려진 것이 무언가 다른 것에 대한 우의(寓意)라고 보는 것이죠. 알레고리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런 해석 이전에, 먼저 작품에 그려진 것 자체를 좀더 자세히 읽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알레고리적 해석을 보류하고 먼저 작품 내적으로 읽으려면 바틀비의 모습을 병리학적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본 해석들도 이미 많습니다. 그렇게 보면 바틀비의 모습은 우울증 혹은 우울장애(depressive disorder)의 증상에 가깝습니다. “의욕 저하와 우울감을 주요 증상으로 하여 다양한 인지 및 정신 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이 우울증입니다. 바틀비가 점점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은 우울증이 심해져서 정신적으로 붕괴되는 과정이라고 이해될 수 있겠습니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책 『피로사회』에서 철학자 한병철은 근대(모던)의 규율사회와 후기근대(포스트모던)의 성과사회를 구분하고 성과사회의 주요 질병으로 우울증을 지목합니다. 한병철의 설명을 옮기면, 규율사회는 부정성의 사회이고, 이러한 사회를 규정하는 것은 금지의 부정성입니다. ‘~해서는 안 된다’가 여기서는 지배적인 조동사가 되며 그 부정성은 당위의 부정성입니다. 이에 반해 성과사회는 긍정성의 사회입니다.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입니다. 이제 금지·명령·법률의 자리를 프로젝트·이니셔티브·모티베이션이 대신합니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이 광인과 범죄자를 낳은 데 반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바틀비는 19세기 중반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산 사람입니다. 그는 성과사회가 무엇인지 모르고, 오직 규율사회 속에서 살았습니다. 한병철도 이 점을 지적합니다. 멜빌이 묘사한 사회는 규율사회이고, 바틀비에게는 자신이 부족하다든가 열등하다는 느낌, 실패에 대한 불안 같은 자책과 자학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후기근대적 성과사회의 표징인 우울증의 증상과 바틀비의 증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병철은 바틀비가 보이는 것은 신경쇠약의 특징적인 증상이고 “안 하는 편이 좋겠어요”라는 말은 아무런 의욕도 없는 무감각 상태의 징후라고 말합니다. 규율사회 대치한 성과사회에서 각광 하지만 아직 규율사회에 살던 바틀비의 신경쇠약이나 성과사회의 표징으로서의 우울증이나 둘 다 탈진과 소진이라는 망가진 상태로 귀결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것으로 보입니다. 성과사회에 살면서, 한병철의 표현을 사용하면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하고 있는 우리에게 19세기 소설 속 인물 바틀비가 단순히 기괴한 것만이 아니라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소설은 바틀비가 전에 배달 불능 우편물 취급소(Dead letter office)에서 근무했었다는 소문을 언급하는 데서 끝납니다. 이 소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작품 해석이 꽤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 소문이 없어도 바틀비라는 인물의 완성에 별 지장은 없습니다. 또 소문은 소문일 뿐이고 화자도 믿을 수 없는 화자이어서 이 소문을 중시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소박하게 본다면 바틀비는 ‘죽은 편지’를 취급하는 일을 하다가 이미 망가진 상태가 된 채 월스트리트로 옮겨왔다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또 옮겨온 곳이 하필 월스트리트이어야만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제 말씀은 해석할 때 부수적이거나 지엽적인 것들을 지나치게 중시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작품 제목의 한국어 번역에 대해 재고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원 제목의 ‘scrivener’를 왜 한국에서만 필경사라고 번역할까요?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에서는 ‘서기원(書記員)’이나 ‘녹사(錄事)’로, 일본에서는 ‘서기(書記)’나 ‘대서인(代書人)’으로 번역했습니다. 필경(筆耕)은 전통시대에 ‘직업으로 글이나 글씨를 쓰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고 근대에 와서는 ‘등사 원지에 철필로 글씨를 쓰는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변호사 사무실의 조수는 하는 일로 볼 때 필경사가 아니라 서기입니다. 한국에서 이 작품 제목의 번역에 필경사라는 한자어를 누가 처음 사용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정착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적절하지 못한 맥락이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고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성민엽 문학평론가

2026.03.19.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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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의 음악의 세계] ‘샬라메의 공습’에 대처하는 법

한 진영이 공격을 받았다. 적절한 대응은 뭘까. 즉각 응수한 이들이 있었다. “발레와 오페라는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 발을 들일 수 있다.”(발레리나 메건 페어차일드) “인공지능의 세상에서 인간이 필요한 곳이 오페라와 발레다.”(안무가 마틴 샤익스) 오페라·발레 디스하는 듯한 발언 관련 종사자들 똘똘 뭉치게 해 통 큰 후원 필요한 현실 일깨워 발단은 할리우드의 수퍼스타인 티모시 샬라메의 문제적 발언이었다. 그는 지난달 말 CNN·버라이어티가 주최한 토크 프로그램에서 오페라와 발레에 대해 “아무도 관심이 없는데 계속 유지해달라는 식의 일”이라며 “나는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빠르게 후회한 듯 “발레와 오페라 관계자 여러분께 존경을 표합니다”라고 수습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페라와 발레를 조용히 사랑해온 사람들이 공습경보를 울리고 대대적인 반격을 퍼부었다. 이 과정에서 새삼 부각된 사실이 있는데, 바로 샬라메의 발레 DNA다. 외할머니·어머니·누나가 발레를 배웠고 무용수로 활동했다. 특히 어머니 니콜 플렌더와 누나 폴린 샬라메는 아메리칸 발레 스쿨에서 공부했다. 그가 발레를 몰라서 이런 얘기를 했을까. 오히려 매우 잘 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따라서 정색한 반격이 조금 어색해진다. 발언의 맥락을 보면 더 그렇다. 대화의 흐름은 이랬다. “요즘 영화는 앞부분에 클라이맥스를 배치해 눈길을 끌려고 한다. 하지만 Z세대는 오히려 더 진지한 영화 관객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전개가 빠르지 않았지만 관객이 많았다. 나 또한 ‘영화관이 죽어가니 살려달라’고 한 적이 있지만 ‘바비’ ‘오펜하이머’ 같은 영화는 홍보 없이도 사람들이 볼 거라고 믿는 중간적 입장이다.” 여기에 이어서 발레와 오페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매우 악의적인 공격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런 상황에 적절한 대응 매뉴얼을 쓴다면 다음 두 단체를 꼽아야 할 것 같다. 우선 시애틀 오페라 극장. 이 오페라단은 샬라메의 발언을 영리하게 역이용했다. 5월 열리는 오페라 ‘카르멘’을 예매할 때 할인 코드로 ‘TIMOTHEE(티모시)’를 입력하면 일부 좌석을 14% 할인해주기 시작했다. 티모시가 문제의 방송에서 “시청률이 14% 떨어졌겠다”며 웃었던 장면을 이용했다. 효과가 있었다. 프로모션 게시물은 조회수 320만을 기록했다. 또 시애틀 타임스에 따르면 13~15일 티켓 203장이 할인 코드로 판매됐고 2만8000달러(약 42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오페라와 발레의 숭고함을 강조하는 대신 즉각 행동을 끌어내는 방식이 울린 작은 승전보다. ‘우리가 관심 있어(We care)’라는 문구를 앞세운 런던 로열 오페라, 무대 뒤 수많은 스태프의 노고를 영상으로 빠르게 편집했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보다 앞섰다. 다음은 뉴욕타임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피터 겔브 대표 취임 20주년을 맞아 공들여 취재한 기사를 ‘샬라메 타이밍’에 발행했다. 10년 전보다 2000만 달러(약 298억원) 감소한 티켓 판매금액, 손대지 않는 불문율을 깨고 3분의 1을 인출해야 했던 오페라단 기금, 내년 2월까지 갚아야 할 대출 6200만 달러(약 924억원). 겔브 대표는 사우디 정부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으며 일론 머스크에게 우주 오페라 제작을 제안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수퍼스타가 느슨하게 쏜 탄환을 정밀 타격으로 변환시켰다. 현대 오페라가 과감하게 도입해 오페라의 미래가 될 것 같았던 영상화 작업도 오페라단을 심폐 소생할 수는 없음이 증명되고 있다. 제작비와 인건비가 막대한 오페라와 발레는 태생부터 그랬듯 통 큰 후원자를 기다릴 뿐이다. 다만 그 규모가 매우 크다. 겔브 대표의 희망 후원 금액은 10억 달러. 1조5000억원이나 된다. 예고 없이 터진 샬라메 발언은 오페라와 발레 종사자, 애호가를 똘똘 뭉치게 했다. 큰물이 거친 파도 같이 들어오는데도 노를 잘 젓는 곳은 있었다. 그의 발언이 아주 틀리지는 않아서, 현실을 정확하게 보도록 했다. 무엇보다 누군가 여력 있는 이가 이 장르를 멋지게 후원할 시점을 만들어줬다. 이 동네가 오히려 나아질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김호정([email protected])

2026.03.19.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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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의 뉴스터치] 봄날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그린 한시다. 시인은 사랑을 눈과 날개가 하나뿐이어서 암수가 함께해야 날 수 있는 새(비익조)와 두 개의 나무에서 나와 하나가 된 나뭇가지(연리지)에 빗댔다. 그런 시인이 시심 솟는 봄날을 놔둘 리 없다. 시인은 한시 ‘춘풍(春風)’에서 봄날을 이렇게 노래했다. “봄바람에 정원의 매화가 먼저 피고(春風先發苑中梅)/ 앵두꽃 살구꽃 복사꽃 자두꽃이 그 다음에 핀다(櫻杏桃李次第開)/ (…).” 안도현 시인은 시 ‘스며드는 것’에서는 간장 속 꽃게의 모성애를, ‘너에게 묻는다’에서는 타버린 연탄재의 열정을 포착했다. 그런 시인 또한 시심 돋는 봄날을 지나칠 리 없다. 시 ‘순서’에서 봄날을 이렇게 그렸다. “맨 처음 마당 가에/ 매화가/ 혼자서 꽃을 피우더니// 마을회관 앞에서/ 산수유나무가/ 노란 기침을 해 댄다 // 그 다음에는/ 밭둑의 조팝나무가/ (…) // 그 다음에는/ 재 너머 사과밭 사과나무가/ (…) // 사과밭 울타리 탱자꽃이 / (…).” 1300년 간극에도 두 시인은 비슷한 데에 주목했다. 개화 순서다. 봄을 기다리는 건 실상 봄꽃을 기다리는 거다. 기다리지 못해 노란 복수초를 찾아 눈밭을 뒤지는 이도 있다. 짓궂은 계절은 때론 봄꽃을 시샘해 눈꽃을 피운다. 지난 2017년, 20대 초반 청년 7명은 “허공을 떠도는 작은 먼지처럼 날리는 눈”이라며 “그리움이 얼마나 내려야 봄날이 올까”라고 노래했다. 방탄소년단(BTS)의 스페셜앨범 ‘YOU NEVER WALK ALONE’의 타이틀곡 ‘봄날’에서다. 이젠 멤버 대부분 30대인 BTS가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복귀공연을 한다. 4년 만에 멤버가 다 모이는 이른바 ‘완전체’ 공연이다. ‘봄날’ 이후 9년간 이들은 월드 스타로 발돋움했다. 또 병역 혜택 부여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무색하게 군 복무까지 마쳤다. “벚꽃이 피나봐요 이 겨울도 끝이 나요 (…) 조금만 기다리면 며칠 밤만 더 새우면 만나러 갈게 데리러 갈게.” 피어나길 기다린 가사 속 벚꽃처럼 손꼽아 기다린 BTS가 봄날에 온다. 장혜수([email protected])

2026.03.19.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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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경의 마켓 나우] 호르무즈 청구서, 누가 내고 누가 버는가

2026년 3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에너지 쇼크를 넘어선 쓰나미로 아시아를 덮치고 있다. 이전 분쟁이 유가 충격에 그쳤다면, 이번 위기는 비료·식량·물류망을 동시에 타격한다는 점에서 파급의 차원이 다르다. 해협을 통과하는 비료 원료 무역의 33%가 차단되자, 요소 가격이 일주일 만에 40% 폭등했다. 바이오연료와 석유화학의 원료인 메탄올 가격도 동남아에서 24% 급등하며 인도네시아의 에너지 전략에 부담을 더했다. 여기에 전쟁 보험료와 운임이 50% 치솟으며, 농산물 수출 의존도가 높은 태국·베트남·인도네시아의 수출 전선에 경고등이 켜졌다. 채산성 악화와 물가 상승으로 경제성장률 하방 압력이 거세지는 위기다. 그러나 이 위기는 역설적으로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호르무즈 봉쇄는 에너지 문제를 단순한 경제 이슈에서 생존의 안보 리스크로 격상시켰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며 태양광 발전 단가가 화석연료보다 낮아지는 역전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2년간 루프탑(옥상) 태양광을 급속히 보급한 파키스탄은 이번 LNG 충격을 과거보다 훨씬 완화된 형태로 흡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이 태양광 설치를 두 배 넘게 몰아붙였듯(2021년 26GW에서 2024년 66GW), 아시아 역시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속할 것이다. 유가가 다시 내려가도 한 번 각인된 에너지·안보 리스크는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전방위적 압박 속에서도 기회를 잡는 기업들은 반드시 있다. 인도네시아 팜유 산업에서 업스트림(재배·원유 생산)과 다운스트림(가공·소비재) 기업 간 희비가 극명하게 갈린다. 고유가로 인한 바이오디젤 수요 폭증과 비료 수급난이 팜유 가격을 밀어 올리자, 팜유 원유(CPO)를 직접 생산하는 켄차나아그리는 올해만 주가가 67% 급등했고, 퍼스트 리소스와 부미타마아그리도 각각 36%, 24% 올랐다. 반면 원룟값 상승과 물류비 폭등을 떠안은 다운스트림 기업들은 마진 압착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에너지와 원자재를 전량 수입하는 한국은 위기 때마다 직격탄을 맞지만, 자원 업스트림을 보유한 신흥국에 가격 상승은 오히려 완충 지대가 된다. 일부 신흥국이 예상보다 잘 버티는 이유는 결국 산업구조의 차이다. 위기는 끝난다. 문제는 그 이후, 공급망 어디에 서 있었느냐와 재생에너지 전환을 얼마나 서둘렀느냐다. 이 두 질문이 기업과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가른다. 같은 파고도 누구에게는 위기고, 누구에게는 구조적 전환의 기회다. 에너지를 수입하는 나라는 위기도 수입한다. 에너지를 만드는 나라는 기회도 만든다. 고영경 연세대학교 디지털통상연구센터 연구교수

2026.03.19.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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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의 읽는 클래식 듣는 문학] 브람스의 죽음을 넘어선 사랑

브람스(사진)는 독일 문화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겼다. 그의 음악 여정에서 일관성 있게 관찰되는 성실과 인내, 장인다운 진지함과 전통에 대한 존중은 독일적 미덕의 모범이었다. 그러한 지향이 가장 잘 나타난 작품은 ‘독일 레퀴엠’이다. 본래 레퀴엠이란 라틴어 가사로 불리는 ‘진혼미사곡’이다. 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이므로 일반 미사에서 ‘글로리아(영광송)’가 나올 자리에 ‘디에스 이레’, 곧 ‘진노의 날’이 대신 들어간다. 그러나 브람스는 구약적인 라틴어 레퀴엠보다는 사죄의 은총과 영원의 희망을 약속하는 신약적인 레퀴엠을 쓰고자 했다. 그래서 통상 미사곡의 처음인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대신 루터의 독일어 성경에서 예수의 설교 ‘산상수훈’(마태복음)으로 곡을 시작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세상에서 약하고 버림받고 멸시받는 이들에게 복을 약속하는 위로의 메시지가 먼저 울려 퍼지는 것이다. 두 번째 곡도 인생의 무상함을 말하긴 하지만 ‘디에스 이레’처럼 심판을 선포하는 대신 남은 자들이 노래를 부르며 본래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희망의 약속을 노래한다. ‘독일 레퀴엠’은 브람스가 어머니를 잃고서 쓴 곡이다. 만년에 브람스는 다시 한번 성경을 가사로 택한다. 평생의 은인이자 은밀한 연모의 대상이었던 클라라 슈만이 세상을 떠난 뒤였다. ‘네 개의 엄숙한 노래’에서 브람스는 죽음과 상실을 거쳐 결국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다. 사도 바울의 고린도후서 13장에 붙인 마지막 네 번째 곡은 사랑에 관한 위대한 묵상이다. 인간사의 모든 상실과 한순간의 에로스를 뛰어넘는 영원한 사랑에 대한 찬가다. 그렇게 브람스는 평생 가장 소중했던 두 사람의 여인과 독일 문화의 정수, 루터 성경을 함께 기념했다.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2026.03.19.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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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석 만평] 3월 20일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3.19.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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