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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개스값 급등에 “작은 대가” 공감 어려워

개솔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이 지속하면서 원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제 유가는 한때 배럴당 11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다행히 현재는 80달러대로 떨어졌지만 전쟁이 악화할 경우 다시 100달러대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원유는 여전히 현대 산업의 필수재다. 그만큼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유가는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다. 유가가 급등하면 생산 단가 상승은 물론, 유통 비용 인상을 불러오고 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서민들이 유가 급등을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것은 개솔린 가격이다. 11일 현재 남가주 지역 레귤러개솔린의 평균 가격은 갤런당 5.37달러까지 올랐다. 전쟁 시작 직전과 비교해 77센트(17%)나 오른 가격이다. 불과 12일 만의 상승폭이다. 전국 평균가 역시 2.98달러에서 3.58달러로 20%나 급등했다. 자고 나면 오르는 개솔린 가격으로 인해 주유소 가기가 겁난다는 운전자가 많다.    미국 경제는 아직 인플레와 전쟁 중이다.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2.4%를 기록하는 등 연방준비제도(Fed)가 원하는 2%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가 급등은 물가에 또 다른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 전문가들이 다음 주 열릴 연준의 금리회의(FOMC)에서 금리 인하 가능성이 적을 것으로 보는 것도 이런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유가가 폭등하자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과 세계의 안전, 평화를 위한 작은 대가일 뿐이며, 달리 생각하는 것은 바보뿐”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부유층에게는 개솔린 가격과 물가 상승이 ‘작은 대가’일지 몰라도 서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다. 인내를 요구하려면 전쟁의 당위성에 대해 국민이 공감할만한 충분한 설명이 먼저다.사설 개스값 급등 개스값 급등 유가 급등 전쟁 시작

2026.03.11. 19:51

[사설] 메디케어 허위·과다 청구 뿌리 뽑아야

65세 이상 시니어와 장애인을 위한 정부 의료 혜택 프로그램인 메디케어(Medicare) 악용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부 보험사와 의료시설 등의 허위 또는 과다 비용 청구다. 이로 인해 매년 메디케어 재정에 수백억 달러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LA카운티 호스피스(Hospice)들의 사기 행위다. 카운티 내 1800여개 호스피스 시설 가운데 절반 가까운 740여 곳이 의혹을 받고 있다고 한다. 비용 과다 청구를 비롯해 유령 시설 설립, 직원 중복 채용 등 수법도 다양하다. 또 현금 리베이트를 미끼로 가짜 환자를 유치한 후 이들의 개인 정보를 이용해 하지도 않은 의료 비용을 청구해 거액을 챙기기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더 큰 문제는 이미 수년 전 이런 사실이 드러났지만 해당 업체들이 아직도 버젓이 영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보험사의 비용 부풀리기다. 메디케어 어드벤티지 플랜을 제공하는 일부 보험사가 허위 질병 기록을 첨부하는 수법으로 메디케어로부터 더 많은 돈을 받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가입자의 질병이 많을수록 보조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악용한 수법이다.     이런 행태는 곧바로 가입자의 피해로 돌아간다. 사기 청구로 인한 예산 부족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작 호스피스의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어드밴티지 플랜 가입자들은 보험료가 오르는 불이익을 겪게 된다.   가뜩이나 트럼프 정부는 의료 혜택 축소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메디케어 사기는 시니어 등 수혜자들의 건강까지 해치는 행위다. 감독 기관의 적극적이고 철저한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적발된 의료 시설이나 보험사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메디케어 수혜자들의 자세도 중요하다. 공돈에 혹하거나 본인의 이익만을 위해 편법이나 위법 행위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사설 메디케어 허위 메디케어 사기 메디케어 어드벤티지 메디케어 재정

2026.03.11. 19:50

[이아침에] 비누 향기로 남은 사랑

인연의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그 여운은 오래 남았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날, 나는 그녀를 ‘삼월 언니’라 불렀다. 칠월에 태어난 친구는 ‘칠월 언니’, 시월생인 나는 자연스레 ‘시월이’가 되었다. 달 이름으로 부르는 호칭은 금세 우리 사이의 거리가 되었다.   처음 만난 날, 그녀의 첫인상은 참 따뜻했다. 언니는 내 어깨에 빨간 숄을 조심스레 둘러주었다. 직접 뜬 것이라 했다. 한 코 한 코에 담긴 온기가 어깨를 타고 전해졌다. 우리는 칠십 중반의 나이를 잠시 잊고, 열일곱 소녀로 돌아가 첫사랑 이야기에 웃음이 터졌고, 그 웃음은 유난히 맑았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 언니의 삶은 오랜 인내의 연속이었다. 언니의 남편은 스무 해가 넘도록 뇌졸중을 앓았다. 언니는 그 시간을 묵묵히 함께 견뎠다. 휠체어를 밀어 공원과 바닷가를 거닐었고, 남편이 좋아하는 빵을 사기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언니는 늘 호박꽃을 닮고 싶다고 했다. 넓은 잎 아래 수수하게 피어나 아픔을 견딘 끝에 기어이 열매를 맺는 꽃. 하지만 세월은 그 열매마저 서서히 약하게 만들었다.   남편의 기력은 급격히 쇠했다. 요양원으로 하루 두 번 발걸음을 옮기며 식사를 거부하는 남편을 지켜보는 언니의 마음은 말라갔다.   얼마 뒤 언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릿 오하라가 했던 말이 떠오르네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 이제는 남편의 거친 숨소리에도 겁나지 않아요. 그냥 그러려니 해요. 77세 희수의 센티멘털인가 봐요.” 이별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다가온 시간은 예고 없이 시렸다.   사랑이란 결국 함께 늙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언니는 남편의 가장 빛나던 시절부터 가장 초라해진 순간까지 그 모든 시간을 끝까지 동행했다.   운명은 묘하게도 정교했다. 동부에서 달려온 두 아들이 가족들과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각자의 집으로 떠나기로 한 날 아침, 남편은 마지막 고비를 맞았다. 위독하다는 연락 앞에서 언니는 직감했다. 아들들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홀로 남을 아내를 위해 두 아들의 손을 남겨주려는 남편의 배려였음을.   그렇게 남편은 사랑하는 이들의 배웅 속에 조용히 떠났다. 고통은 끝났지만, 남겨진 이들의 가슴에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그리움이 남았다.    장례를 마친 뒤, 서울에서 온 딸이 욕실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엄마, 비누에서 아빠 냄새가 나요….”   사람은 떠나도 향기는 남는다는 말을 그날 처음 실감했다. 비누 한장에 스민 체취가 큰 파도가 되어 마음을 흔들었다.    언니는 말했다.   “내 몫의 사랑은 다 했으니, 남은 시간은 잘 살아야지요.”   그 말에는 상실을 견뎌낸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담담함이 있었다. 이제는 서로의 빈자리를 보듬으며 남은 길을 같이 걷고 있다. 우리의 노년이 너무 쓸쓸해지지 않도록.   삼월 언니는 여전히 호박꽃 같은 사람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낮은 곳에서 제 몫을 다하고, 끝내 열매를 남긴 사람. 그 사랑은 이제 조용한 향기로 남아 언니의 뒷모습을 따라온다.   엄영아 / 수필가이아침에 비누 향기 비누 향기 첫사랑 이야기 남아 언니

2026.03.1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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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안테나] 식어가는 고용시장, 침체 신호는 아니다

최근 발표된 2월 고용보고서는 미국의 고용시장이 예상보다 다소 빠르게 침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농업 일자리는 전달보다 9만2000개 감소했고, 실업률은 4.4%로 소폭 상승했다. 몇 년 동안 이어졌던 강한 고용 증가세와 비교하면 분명히 냉각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다만 이 같은 변화가 곧바로 경기 침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해고 규모는 여전히 크지 않고 실업률도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고용 감소에는 일시적인 요인도 적지 않다. 의료 분야의 파업과 일부 산업 분야의 구조조정이다.  의료 분야는 파업 등의 여파로 약 2만8000개의 일자리가 줄었지만 병원 고용은 오히려 증가해 감소폭 일부를 상쇄했다. 의료 산업은 지난 1년 동안 매달 평균 3만6000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고용 성장 분야였다. 이 때문에 이번 감소는 구조적 약화라기보다 단기적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정보기술 부문에서도 1만1000개의 일자리가 줄어들며 지난 1년간 이어진 하락 흐름이 계속됐다. 또한 연방정부의 고용 역시 약 1만 명 감소했다. 연방 공공부문 고용은 2024년 10월 정점을 찍은 이후 약 33만 명이 줄어들었는데, 이는 재정 압박과 정부의 구조조정 영향이 반영된 결과다. 이처럼 최근 고용시장의 특징은 전체적인 약화보다는 산업별로 엇갈린 흐름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일부 산업에서는 여전히 고용이 늘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정체 또는 점차 감소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미국 고용시장은 점차 활력을 잃어왔다. 일자리 증가세는 크게 둔화했으며 최근 1년 동안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 수는 경기 침체기를 제외하면 2003년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기업들이 고용 확대에 신중해진 것도 중요한 배경이다. 관세 정책과 각종 경제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은 인력 확충을 서두르기보다 상황을 지켜보는 태도를 보인다.   기술적인 발전 역시 기업들의 고용 전략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AI(인공지능)를 비롯한 새로운 기술이 향후 노동 수요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전망이 확산하면서 기업들은 장기적인 인력 구조를 다시 검토하고 있다. 대규모 해고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규 채용을 줄이면서 고용시장 전체의 수요가 점차 약해지는 모습이다.   또 하나의 구조적 요인은 노동력 증가세의 둔화다. 이민 제한 정책으로 미국 경제에 유입되는 노동력이 줄어들면서 신규 일자리 수도 예전보다 감소했다. 많은 경제학자는 현재 인구 구조를 고려할 때 매달 약 10만 개 정도의 일자리 증가만으로도 실업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수정 발표된 통계에서도 고용시장 둔화 흐름이 확인된다.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고용은 기존 4만8000개 증가에서 1만7000개 감소로 크게 하향 조정됐다. 1월 고용 증가 역시 12만6000개로 소폭 낮아졌다. 그런데도 임금 상승세는 비교적 견조하다. 지난 12개월 동안 평균 임금은 3.8% 상승해 고용 증가가 둔화하는 상황에서도 가계 소득은 여전히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2월 고용보고서가 보여주는 핵심 메시지는 고용시장의 ‘냉각’이지 ‘붕괴’는 아니라는 점이다. 고용 감소는 특정 산업에 집중됐고 일부는 파업 같은 일시적 요인에 영향을 받았다. 실업률은 여전히 낮고 임금 상승도 이어지고 있으며 많은 산업에서 고용 수준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현재 미국 고용시장은 최근 몇 년 동안의 과열된 상태에서 정상적인 속도로 돌아가는 전환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책 당국, 특히 연방준비제도(Fed) 입장에서는 고용시장 압력이 완화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둔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질 경우 경제 전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향후 고용 지표의 흐름을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손성원 / 로욜라 메리마운트대 교수·SS 이코노믹스 대표경제 안테나 고용시장 침체 최근 고용시장 동안 고용시장 고용 증가세

2026.03.1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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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삼월이 왔다. 강남 갔던 제비들이 춤을 추고 노래 부르면서 날아오는 계절이다. 하지만 날씨는 봄철인데 사람 사는 것은 아직도 추운 겨울 같다.     미국에는 삼월에 관한 세 가지 속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삼월의 처음 사흘 동안엔 괜찮은 일이 일어나도 썩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3월 1일은 네브라스카가 37번째 주가 된 날이고, 3월 2일은 텍사스가 멕시코에서 독립한 날이다. 그리고 플로리다는 3월 3일에 미국의 27번째 주가 됐다. 그런데 이런 속설의 영향인지 이들 주는 해당 날짜에 큰 잔치를 벌이지 않는다.    3월에는 역사적 사건도 많았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인 1770년 3월 5일 영국군과 보스턴 시민과의 충돌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보스턴 학살사건으로 부르지만 일부 역사학자들은 군민충돌사건으로 보기도 한다. 영국군을 싫어한 보스턴 시민 50~60명이 파수병을 공격한 데서 사건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공격을 받은 영국군은 토마스 프레스톤 대위의 지휘로 시민들을 향해 발포, 현장에서 3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했다. 이후 부상자 가운데 2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그런데 3월 하순엔 훌륭한 한 인물이 나타나 명언을 남긴다.  미국의 정치가며 법률가인 패트릭 헨리는 1775년 3월23일 버지니아주에서 열린 집회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는 명언을 남긴다. 하지만 헨리가 이 말을 했다는 실제 기록은 없으며, 다만 윌리엄 와트가 쓴 헨리의 전기에만 있을 뿐이다. 1736년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난 헨리는 정식 학교 교육은 많이 받지 않았지만 부친에게서 훌륭한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헨리는 많은 공직을 제안받았지만 거의 다 사양했고 버지니아 주지사만 세 차례 역임했다.  헨리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United we stand,  devided we fall)”는 말도 남겼다.    한국에서 삼월에 가장 유명한 것은 3·1 운동이다. 당시 일제는 여러 지방에서 양민을 학살했다. 강서학살사건, 맹산학살사건, 사천학살사건, 밀양학살사건, 남원학살사건, 정주학살 사건 등이다.    삼월에는 안타까운 이름도 떠오른다. 한국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 (1900-1930) 이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휘문고교를 중퇴하고 미국인 비행사의 시범비행을 보고 1918년 3월에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오사카 자동차학교를 거쳐 아싸보 비행기 제작소에서 비행기 제작법을 배우고 오꾸리 비행학교에서 조종술을 익혔다. 그리고 1921년 비행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1922년 일제의 감시와 억압 속에서도 고국 방문 비행에 나서 민족의 자긍심을 높였다.     끝으로 3자가 들어간 낱말 ‘삼저호황(三低好況)’은 언제 또 우리를 찾아와 미소 짓게 해줄지 모르겠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정이월 밀양학살사건 남원학살사건 강서학살사건 맹산학살사건 보스턴 학살사건

2026.03.1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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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1982년생으로’

“이 집은 나무로 지었다.” “나는 집으로 간다.” 이 문장들에서 ‘나무로’ ‘집으로’는 부사어다. 이 말들은 ‘지었다’ ‘간다’ 같은 서술어들을 꾸미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그는 1982년생으로 서울 출신이다’ 같은 문장도 흔히 보인다. 어문기자 몇이 웅성거렸다.   “이런 형태의 문장이 적지 않은데, 어떻게 생각해?”   “‘1982년생으로’가 ‘출신이다’를 꾸민다고 보기는 어렵지. ‘1982년생인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다’로 고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면 전달하려는 의도가 조금 달라지는 듯해. 깔끔해 보이지도 않아. ‘그는 1982년생으로 서울 출신이다’가 그리 어색하게 느껴지지도 않는걸.”   “맞아. 따지고 들면 조금 어색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해. 나는 수정하지 않고 대부분 그냥 놔두는 편이야. 이 문장은 ‘그는 1982년생이다’와 ‘그는 서울 출신이다’를 한 문장으로 줄인 것 같아.”   “나도 그대로 받아들이긴 해. 그런데 ‘그는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가 더 자연스럽거든.”   “그러네.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가 더 편하게 읽혀. 하지만 ‘그는 1982년생으로 서울 출신이다’는 다른 의미로 읽히는 게 있어. 이 문장에선 ‘1982년생’도, ‘서울 출신’도 강조되는 느낌을 주거든.”   “‘1982년생으로…’에선 ‘으로’가 조금 다른 기능을 하는 것 같아. ‘-ㄴ데’와 비슷한 정도로? 어미조사사전엔 이렇게도 쓰인다는 풀이가 보여.”우리말 바루기 서울 출신

2026.03.11. 19:45

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포에버 케미칼의 위협

환경문제는 언제나 남의 일이라는 인식은 자신에게도 위협이 된다고 느끼는 순간 절실한 문제로 다가선다. 마시는 물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시카고 주민들은 미시간 호수 물을 마시고 있기 때문에 물 부족 현상이라든지 오염된 상수원 문제는 항상 남의 문제였다.     하지만 최근 포에버 케미칼 문제가 대두되면서 이러한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포에버 케미칼은 과불화화합물(PFAS)이라고 부르는 물질이다. 강력한 탄소와 불소의 결합으로 자연에서는 분해되지 않고 환경과 체내에서 영원히 잔류한다고 해서 포에버 케미칼이라고 흔히 불린다. 이 물질은 지난 1950년대 이후 옷과 포장지, 코팅제 등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상 생활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물질이다.    하지만 이 물질이 면역계 손상과 암, 간 질환 등에 심각한 건강 문제를 유발한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규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주요 연구를 통해 신장암과 고환암을 유발할 수 있고 호르몬 체계에 영향을 줘 유방암 및 전립선암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아울러 체내에 화학물질이 쌓이게 되면 면역 체계를 약화시키고 호르몬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게 된다.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온 물질이 이제는 환경 오염의 주범이 된 셈인데 이게 마시는 물에서도 검출되기 때문에 심각성이 크다.     포에버 케미칼이 일상 생활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 곳이 프라이팬이다. 달걀 등 조리하는 음식이 프라이팬에 달라붙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이 물질로 프라이팬 표면을 코팅할 때 사용됐다. 흔히들 테플론 코팅이 사용되었다고 표기된 프라이팬에는 포에버 케미칼이 사용됐다고 보면 된다. 지금도 가정에서 이런 프라이팬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음식점에서 포장할 때 사용되는 용기가 맨질맨질할 경우 포에버 케미칼이 사용된 것으로 의심할 수 있다. 음식이 용기에 오랫동안 남아 있으면 용기가 젖거나 찢어지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포에버 케미칼이 사용되곤 한다. 또 불이 잘 붙지 않게 만든 소화 폼, 카펫 등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오랜 기간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에 일반 주민들의 혈액에서 검출될 정도로 포에버 케미칼은 최근 환경 및 보건 분야에서 가장 심각한 오염 문제로 거론되기도 한다.     일리노이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최근 일리노이 정부는 주내 모든 지역을 대상으로 포에버 케미칼이 수돗물에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총 21개 지역의 수돗물이 연방 정부가 정한 상한선을 넘기는 포에버 케미칼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해당되는 도시들은 콜린스빌, 크레스트 힐, 엘번, 두포 등으로 미시시피강을 상수원으로 사용하는 도시들이다. 그나마 미시간 호수를 상수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시카고 등은 포함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미시시피강을 상수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도시들이 포에버 케미칼이 들어간 물을 마시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포에버 케미칼을 제조 과정에서 사용한 3M 공장이 미시시피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리노이주의 코도바, 미네소타주의 코티지 그로브의 3M 공장에서 포에버 케미칼이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현재 이 공장에서는 포에버 케미칼이 사용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23년 합의를 통해 3M과 BASF, 듀폰 등은 총 125억달러를 상수도 공급업체에 지불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제조사들이 포에버 케미칼이 유출되고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합의로 인해 일리노이주 콜린스빌 역시 480만달러의 합의금을 수령한 바 있다.     하지만 합의금은 포에버 케미칼을 처리하는데 필요한 시설을 건설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보통 지역에 따라 처리 시설 건설에만 500만달러에서 2000만달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향후 운영 비용 역시 합의금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결국 콜린스빌 주민들은 포에버 케미칼로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직접 부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런 사실에 불안을 느낀 일부 주민들은 3천달러 이상을 들여 각 가정에 자체 정화 시설을 부착하기도 했다.       결국 콜린스빌은 미시시피강이 아니라 미시간 호수를 상수원으로 사용키로 하는 결정을 내렸다. 아예 물의 공급처를 바꾸기로 한 것이다. 시카고의 미시간 호수에서 졸리엣으로 대형 파이프라인을 건설한 뒤 필요한 도시들에 물을 공급키로 하는 공사가 진행 중인데 콜린스빌도 이에 동참키로 한 것이다. 물론 막대한 비용은 필요하다. 여기에 필요한 비용은 콜린스빌에 1억6000만달러에 달한다. 주민들에게 오염되지 않는 물을 공급하는데 필요한 비용인 것이다. 공사는 2030년에야 완공될 예정이기 때문에 콜린스빌은 그 전까지 포에버 케미칼이 들어간 물을 정화시킬 시설도 필요하다.     연방 정부도 90억달러를 투자해 포에버 케미칼 정화에 사용할 예정이다. 일리노이에도 4000만달러가 배정됐으나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납 파이프라인 교체에 필요한 1억2500만달러의 예산을 삭감하는 등 환경 오염 개선에 필요한 자금을 줄이고 있는 상황이라 연방 정부의 도움을 기대하긴 어렵다. 일리노이 주민들은 최근 급격하게 오른 전기요금과 천연가스 요금 등으로 공공요금 부담이 높은 상황인데 마시는 물에도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됐다.         Nathan Park 기자시사분석 nathan 포에버 케미칼 합의금은 포에버 최근 포에버

2026.03.1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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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막힌 공소취소 거래설…여당 스스로가 음모론 키웠다

친여 성향 유튜브에서 제기된 이재명 대통령 사건의 ‘공소취소 거래설’에 여권이 발칵 뒤집혔다. 더불어민주당에선 “황당함을 넘어 기가 막히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지라시 수준도 안 되는 음모론”이라는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일 김어준씨의 유튜브에 나온 한 패널이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인 정부 고위 관계자가 고위 검사 다수에게 ‘이 대통령 공소취소해 줘라’고 했다”고 주장한 뒤 벌어진 후폭풍이다. 그는 메시지를 받은 검찰은 ‘이재명 정부가 우리랑 거래하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공소취소를 검찰의 보완수사권 존치와 주고받으려 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국가 기강을 흔드는 심각한 직권남용이다. 반면에 근거 없는 음모론이라면 비난받아 마땅한 불신 조장 범죄다. 난데없는 논란에 황당하고 기막힌 건 국민이다. ‘민주당 상왕’이라 불리는 김어준씨의 방송에서 터뜨린 의혹이라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면서도, 내용은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다. 이번 논란이 검찰 개혁과 공소취소 추진 과정에서 친명계와 친청계가 갈등을 빚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점도 혼란을 키우고 있다. 공소취소 거래설도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존치시키려는 정부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음모론이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음모론이 그럴듯하게 나돌 수 있는 원인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여당은 이 대통령 공소취소를 최우선에 두고 치밀하게 움직여 왔다. 이 대통령도 직접 자기 사건을 거론하며 “검찰의 사건 조작이 살인보다 더 나쁜 짓”이라고 했다. 방탄법이란 의심을 받은 사법 3법도 국민의 법감정이나 후속 대책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밀어붙였다. 어제는 대장동·대북송금 등 7개 사건을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 기소 의혹 사건’으로 규정하고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이처럼 대통령의 사법리스크 방어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야말로 공소취소의 칼자루를 쥔 검찰과의 거래설이 나도는 토양이라 할 수 있다. 거래설의 당사자로 의심받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특정 사건의 공소취소와 관련해 말한 사실이 없다”며 “황당한 음모론으로 인해 숙의돼야 할 검찰 개혁 논의가 소모적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고 반박했다. 사실이길 바라지만, 명쾌하게 의혹은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특검을 요구했다. 불신의 확산을 막으려면 공소취소를 다수의 힘으로 몰아붙이는 공세 자체를 중단하는 것이 우선이다.

2026.03.11.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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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벚꽃 추경’ 드라이브 거는 당정…선거용 퍼주기는 안 돼

중동 전쟁으로 ‘3고(고유가·고물가·고금리)’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당정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 소상공인과 한계기업 지원을 위한 추가 재정 필요성을 언급하며 조기 추경을 공식화했다. 구윤철 부총리도 민생과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추경을 포함한 모든 정책 수단을 활용하겠다고 했다. 여당도 추경안의 신속한 심의·의결을 약속했다. 중동 전쟁으로 인한 석유값 급등이 민생 경기를 어렵게 하는 상황에서 취약 계층이나 피해 기업을 위한 재정의 역할은 필요하다. “반도체 업황 개선과 증권거래세 증가로 국채 발행 없이 추경을 할 수 있다”는 구 부총리의 말대로 초과 세수에 따른 여력도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추경이 야기할 수 있는 부작용이다. 우선 시장 금리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현재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는 6%에 육박하고, 회사채 금리도 뛰고 있다. 지난 9일에는 회사채(무보증 3년물 AA-) 금리가 4%대를 찍었다. 국제유가가 뛰며 커지는 인플레이션 우려에 국채 금리가 오르며 시장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간 나랏빚이 빠르게 늘면서 국채 금리는 상승세를 이어 왔다. 1년 전 2.76% 수준이었던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 9일 3.739%로, 국채 3년물 금리는 2.56%에서 3.43%로 뛰었다. 재정적자로 인한 국채 발행이 늘어난 탓이다. 국가채무는 올해 말 1415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추경으로 시장 금리가 더 오르고 물가가 뛰게 되면 서민들의 생계비 부담을 키우게 되고 영세 기업의 자금난을 심화시킬 수 있다. 취약 계층을 돕겠다는 추경이 서민 가계를 더 어렵게 만드는 역설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벚꽃 추경’의 필요성과 방식, 규모는 국제 정세를 면밀하게 살펴 검토돼야 한다. 특히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인 만큼 선거용 선심 사업의 개입을 차단해야 한다. 과거의 숱한 추경이 그러했듯 민생을 위한다는 추경이 나랏빚만 키운 채 정치인 공약 사업 등에 허투루 쓰이는 일이 재현돼선 안 된다.

2026.03.11.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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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보의 없는 보건소 속출…현실로 다가온 취약지 의료공백

그동안 지역 보건소 등을 지켜 왔던 공중보건의사(공보의)의 40% 이상이 조만간 복무 기간 만료로 떠날 것이 예고되면서 취약 지역의 의료 공백이 심각해지고 있다. 현재 일반 의사들이 지원을 기피하는 지역 보건소나 보건지소에선 병역의무를 대신하는 공보의들이 필수 인력으로 근무 중이다. 그중 2023년에 배치받은 공보의들은 다음 달이면 36개월의 의무복무 기간을 마치고 떠날 예정이다. 하지만 이들의 빈자리를 책임질 신규 공보의 충원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이미 일부 지역에선 복무 만료를 앞둔 공보의들이 밀린 휴가를 떠나면서 공보의 없는 보건소나 보건지소가 속출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의료 자원이 부족한 취약 지역 환자들이 의사를 만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 공보의 수급이 깨져 의료 공백으로 이어진다는 건 수년 전부터 예고됐던 문제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 등 관계 당국이 실효적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적으로 남자 의대생 사이에선, 재학 중 현역병 입영과 졸업 후 공보의 지원의 선택지 가운데 현역병 입대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진 게 공보의 충원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힌다. 여기엔 현역병(18개월)의 두 배인 공보의 복무기간이 의대생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복지부는 단계적으로 공보의 복무기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지만, 국방부는 학사장교·군법무관 등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다. 그사이 공보의 지원자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대체 인력 확보 등 보완책을 서둘러야 한다. 내년도 입시부터 도입하는 지역의사제가 공보의 미충원으로 인한 지역 의료자원 부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역의사제의 첫 졸업생이 나오려면 2033년까지 기다려야 하므로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없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취약 지역 환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대안을 시급히 마련해 주기 바란다.

2026.03.11.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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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작은 법정이 되어가는 교육 현장

새 학년이 시작된 지 열흘이 지났다. 학교폭력 사건을 오래 다뤄 온 변호사 지인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요즘도 많이 바쁘냐고 물었더니 사건이 계속 늘어나고 있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물어보았다. 본인 아이가 중학생인데 학교폭력 사건에 휘말리면 어떻게 대응하겠느냐고. 잠시도 망설임 없이 돌아온 답은 예상 밖이었다. ‘학폭으로 커지기 전에 자퇴부터 시키겠다’는 것이었다. 학폭 사건, 입시 연계 정책 여파로 변호사 선임 늘고 법률 분쟁화 취약한 학생이 더 피해보는 구조 학교가 갈등 해결할 권한 가져야 제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대응 경험도 충분한 사람이 왜 그렇게까지 생각하느냐고 되묻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가 겪게 될 고통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 모든 일을 견디게 하고 싶지 않다’고. 이 한마디가 지금 대한민국 학교폭력 제도의 민낯을 보여주는 듯하다. 학교폭력예방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넘었다. 법이 생기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법률을 누더기 땜질하다보니 최근 학교폭력 제도는 교육 현장에서 갈수록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학교가 법정 축소판이 되고 있다. 학생 사이의 사소한 갈등부터 심각한 폭력까지 학교폭력 사건으로 신고되면 조사와 기록, 진술 절차가 시작된다. 사건의 경중과 관계없이 법적 다툼에 대비하는 방식으로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는 방대한 서류를 작성해야 하고 상당수 사건은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넘어간다. 전체 신고 사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학교 밖 심의 절차로 이어지는 중이다. 불복률도 높아져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으로 나아가는 경우도 늘고 있다. 교실에서 풀려야 할 문제가 법률 분쟁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가해 학생에게 대학 입시에서 불이익을 주는 정책은 여기에 기름을 붓는다. 정의 실현이라며 날로 강화되는 이 정책을 현장에서 실제 사건에 적용해보면, 그 부작용이 적지 않다. 학폭 기록이 입시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사건은 교육적 해결보다는 기록과 증거 수집을 둘러싼 싸움으로 흘러가기 쉽다. 가해 학생 측은 사과와 화해보다 맞신고와 법적 대응을 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피해 학생의 회복은 뒤로 밀린다. 학교에는 민원과 분쟁이 쌓이고 교사들은 갈등에 개입하는 것을 점점 더 부담스러워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학교폭력 신고 전부터 변호사를 선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만큼 대응 능력의 격차도 커진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은 사건화되기 전부터 변호사와 상담하며 대응 전략을 세운다. 증거를 어떻게 정리하고 어떤 진술을 해야 하는지 세세하게 조언을 받는다. 반면 제도에 대한 정보나 법적 지원을 충분히 얻기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은 복잡한 절차를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장애나 이주 배경 가정의 아이들 사건을 지원하다 보면 이런 격차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현실에서는 오히려 더 취약한 아이들에게 불리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학교는 법정과 달라야 한다. 성장 과정에 있는 아이들은 때로 미성숙한 판단으로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다. 물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교육의 목적은 응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잘못을 인정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다시 공동체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본래 역할이다. 지금의 제도는 그 균형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학교폭력 제도를 다시 돌아볼 시점이다. 먼저, 어디까지 학폭 사건으로 다룰 것인지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사소한 갈등부터 형사사건에 가까운 폭력까지 거의 동일한 절차로 처리하는 방식은 학교를 분쟁의 공간으로 만든다. 실제 법원에서는 친구에게 ‘분신사바를 해봤더니 너 목 매달아 죽는대’라고 말한 사건이나, 문자메시지로 절교하자고 보낸 사건까지 학교폭력 여부를 두고 다투어지고 있다. 피해 학생 보호의 방식 역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지금의 제도는 가해 학생에 불이익을 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정작 피해 학생의 회복을 중심에 두고 있지는 않다. 법적 다툼이 장기화할수록 피해 학생의 학교생활은 사건에 매몰된다. 피해 학생이 원하는 것은 가해 학생의 인생을 망치는 처벌이 아니라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과 충분한 회복의 시간일 때가 많다. 피해 학생의 치료와 상담, 보호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학교가 그 회복 과정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학교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교육적 권한과 책임을 다시 가져야 한다. 학교는 아이들이 처음으로 사회를 배우는 공간이다.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해 관계 회복을 시도하는 역할은 결국 학교만이 할 수 있다. 아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이라면 그 안에는 아동과 학생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야 하지 않을까. 학교폭력 제도를 평가하는 기준은 처벌의 강도가 아니라, 취약한 아이들을 얼마나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다. 김예원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2026.03.11.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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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식의 시시각각] 내란 청산은 혁명이 아니다

미국 워싱턴 DC의 명소인 내셔널몰 서쪽 끝 포토맥 강변 언덕 위에 흰색 대리석 신전이 우뚝 서 있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기념관이다. 높이 5.8m의 석조상 링컨은 근엄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직선으로 3.2㎞ 정면에 위치한 미 의회 의사당을 응시한다. 분리주의자를 상대로 미 연방(합중국) 통합을 수호한다는 의미다. 링컨, 남북전쟁 종전 후 치유·통합 여야, 내란청산 놓고 각각 내분 벌여 선거철 지나 사법 3법 머리 맞대야 링컨 오른쪽 남실 벽에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1863년 11월 19일)이 새겨져 있다. 반대편 북실 벽에는 대통령 재선 취임 연설문(1865년 3월 4일)이 음각돼 있다. 남북전쟁 종전을 불과 41일 앞둔 연설에서 링컨은 전쟁 승리를 환호하거나 반란세력 척결에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치유와 화해, 재건과 통합을 얘기했다. “누구에게도 적의가 아닌 관용을 베풀며 국가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 자신과 모든 국가들 사이에 정의롭고 영속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다하자”고 하면서다. 내란 청산을 놓고 여야가 벌이는 내분 양상을 보고 있자면 링컨의 통합 노력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무망해 보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이후 검찰 폐지에 이어 ‘사법 3법’ 강행 처리를 통한 사법부 변혁까지 내란 척결 시즌1, 시즌2로 한걸음에 내달렸다. 1948년 제헌헌법 이래 78년간 유지해 온 형사사법 체계는 물론이고 민주주의 헌정 질서의 기본인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법조계와 언론, 국민 우려에도 귀를 닫았다. 그러다가 중수청·공소청 설치 후속대책 성격인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권 문제를 놓고 여권 내 강경파(폐지론자)와 친명 지지층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강경파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재야 책사’ 역할을 해 온 구독자 228만 유튜버 김어준씨가 주동이다. 김씨가 10일 진행한 유튜브 방송에서 한 패널이 정부 고위 관계자가 검사들에게 수사권 존치와 이 대통령의 대장동·대북송금 사건 공소취소를 거래하려 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더니 급기야 11일 방송에선 다른 패널이 “사실이라면 그건 정말 대통령 탄핵 사유”란 언급까지 했다. 정부 출범 10개월 만에 여권 내부에서 탄핵이란 단어가 공공연히 거론된 건 역대 정권 전부를 통틀어도 초유의 일이다. 야당인 국민의힘 역시 한심한 정도를 넘었다. 지방선거를 80여 일 앞두고 계엄 사과와 노선 혁신에 대한 장동혁 대표의 버티기로 오세훈 서울시장, 김태흠 충남지사 등 현직 광역단체장이 당 후보 등록 신청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정도면 정당이 선거를 치르지 않겠다는 포기 선언에 다름 아니다. 그러곤 하루 만인 9일 소속 의원 107명 전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 복귀를 명확히 반대한다”가 골자인 이른바 ‘절윤 선언문’이란 걸 채택했는데, 내용 자체가 코미디다. 그간 국민의힘은 내란 우두머리죄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석열 복귀’를 암암리에 도모해 왔단 얘긴가. 노선을 어떻게 혁신해 보수정당을 되살릴 수 있을지 실질적 내용은 한 자도 씌어 있지 않은 ‘윤 어게인’과의 절연 선언은 국민에게 아무런 감동을 줄 수 없다. 정작 이 같은 노선 투쟁을 촉발한 장동혁 대표는 의총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소극적 찬성’을 한 모양인데 진정성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링컨이 종전 닷새 만에 남부 지지자에 의해 암살될 정도로 미국의 통합은 지난했다. 미국 역사상 최대 사망자(85만 명)를 낳은 ‘내전’의 단층선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남북전쟁 후 노예 해방과 시민권·투표권 부여를 골자로 수정헌법을 만드는 방식, 즉 개헌을 통해 헌정 질서를 재건했다. 이 대통령 말처럼 개혁이 번거롭다고 혁명을 할 수는 없다. 선거철이 지난 뒤라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내란 청산으로 불거진 헌법적 혼란을 수습해야 한다. 정효식([email protected])

2026.03.11.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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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근의 경제를 묻다] “과속이 널뛰기 불러…증시 마지막 퍼즐은 상속세”

1세대 가치투자가 이채원 의장 대세 상승에 열광하던 증시가 어느새 심각한 조울증에 빠졌다. 하루걸러 급등과 급락이 반복되는 널뛰기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밤잠 이루지 못하는 투자자도 그만큼 늘었다. 투자 대기자금인 고객예탁금은 1년 전 50조원 수준에서 이달 132조원까지 불어났다. 빚을 내 투자한 금액인 신용융자잔고도 같은 기간 18조원대에서 32조원으로 급증했다. 상장지수펀드(ETF) 거래 규모도 하루 평균 32조원으로 석 달 새 5배가 됐다. 새로 진입한 투자자들이 ETF를 주로 활용하면서다. 전쟁 아니라도 겪었어야 할 조정 기업 실적 나오는 4월이 분기점 기업 승계 숨통 틔워야 돈도 돌아 코스닥 활성화, 정체성 확립부터 우리 증시는 어디쯤 와 있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국내 대표적 가치투자가인 이채원(62)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을 만나 물었다. 시장의 변덕 속에서도 주가는 결국 제 가치를 찾아간다는 게 가치투자자의 믿음이다. 단꿈을 잠시 접고 현실을 냉정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때 이들의 시각만큼 유용한 게 없다. 이 의장은 한국투자밸류운용 대표를 거치며 가치주펀드인 ‘10년 투자’ 시리즈 등을 키워 냈다. 38년째 시장에 몸담은지라 웬만한 변동성에는 이골이 났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 역시 “이런 정도의 급변동은 처음 겪는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 한국 증시가 본격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극복의 출발점이자 갈림길에 섰다고 했다. 외국인 장기 자금 유입이 관건 Q :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 탄 증시다. 단순히 이란 사태 때문이라고 하기엔 변동성이 지나치게 큰 데. A : “가장 큰 원인은 주가가 너무 급하게 올랐다는 데 있다. 2024년 말 비상계엄 사태 이후 2200선까지 떨어졌던 코스피 지수가 미국의 이란 공격 전까지 무려 3배 가까이 올랐다. 단기간에 이렇게 주가가 급등한 사례는 1999년 미국 닷컴버블 때를 제외하곤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에선 10년이 걸린 일이 우리 증시에선 불과 14개월 만에 이뤄졌다. 결국 전례 없는 상승 속도가 전례 없는 변동성도 낳은 셈이다.” Q : 어차피 거쳐야 했을 조정이란 얘기인가. A : “이란 문제가 아니었다면 다른 핑계로라도 지수는 빠졌을 것이다. 신용잔고가 급증하는 등 시장의 모든 지표가 이미 초과열 신호를 내고 있었다. 만약 이란 사태가 없었다면 몇달 간 지루하게 흘러내리며 조정을 거쳐야 했을 것이다. 늘 오르는 주식은 없다. 역사상 초강세장에서도 10% 이상 조정은 항상 있었다. 가까이는 지난해 코스피가 4000을 넘어섰을 때도 상당 폭 빠졌다가 다시 오르지 않았었나. 시장 전체로 보면 거품이 끼었다고 하긴 어렵지만 이른바 유망 산업 중에도 기대만으로 이미 가격이 많이 오른 종목들도 눈에 띈다. 열기를 한번 식히고 갈 필요가 있다.” Q : 증시가 빠르게 튀어 오르게 만든 힘은 무엇이었다고 보나. A : “워낙 눌려 있었다. 주가수익비율(PER)이 주요국 증시 평균의 절반도 안 됐다. 계엄사태 이후 6개월간 거의 무정부 상태에서 관세 리스크까지 닥치는 등 최악의 상황이었다. 새 정부 들어서 경기 부양에 나서고 1차 상법 개정과 배당소득 분리 과세 등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을 펼치면서 3500선까지 빠르게 간극을 메웠다. 이후에는 반도체의 역할이 컸다. 10여년 새 우리 산업구조도 많이 변했다. 시총 10위권 기업들의 구성부터 크게 바뀌었다. 과거에는 철강, 석유화학 등 경기에 민감하고 대외 의존도가 너무 높은 산업들이 많았다. 지금은 AI 시대에 필수적인 반도체, 우주항공, 배터리, 바이오 등이 대신 자리 잡고 있다.” ※주가수익비율(PER): 주가가 기업이 한 해 벌어들이는 주당 이익의 몇 배인지를 나타낸다. 배수가 낮을수록 주가는 저평가됐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Q : 개미 투자자들이 대거 진입한 반면 외국인은 많이 팔았다. A : “외국인이 한국을 떠난다기보단 기계적 매매로 보인다. 그간 주가가 많이 오른 만큼 차익 실현 성격이 강하다. 우리가 접촉하는 미국 현지 투자사들도 한국 시장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외국인 자금도 성격이 천차만별이다. 관건은 10~20년 들고 가는 장기투자 자금이 본격적으로 들어올 것인가인데 아직은 좀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아무래도 단기 급등이 부담스러운 데다, 이란 문제 등 외부 환경도 좀 안정돼야 할 것이다.” 주식 매력도 높여야 ‘머니무브’ Q :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탈출했다고 봐야 하나. A : “이제 본격적인 출발점에 섰다고 봐야 한다. 극심한 저평가 상태는 벗어났지만, 경쟁국 증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향후 1년간 상장기업들이 벌어들일 이익 추정치를 기준으로 본 PER은 10배 수준이다. 반면 일본과 대만은 18배 수준으로 우리보다 훨씬 높다. 급증한 반도체 이익 전망치 등이 현실화할 것인지, 내년 이후에도 증가세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인지 아직은 반신반의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의미다. 분기점은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이 나오는 4월이 될 것으로 본다. 안정적인 실적과 함께 긍정적 전망이 나온다면 증시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수도 있다.” Q :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제도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없나. A : “마지막 퍼즐이 하나 남아 있다. 상속세 문제다. 전 세계 어디에 가도 모든 지배주주들은 자기 회사 주가가 오르길 원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를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다. 상속세율이 최고 60%에 달하는 상황에서 주가 상승이 승계 비용 부담으로 직결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장기업 대주주에게 주가를 올릴 수 있는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건네면 ‘아직 애도 어리고 승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며 손사래를 치기도 한다. 이래서는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의 이해를 일치시키기 어렵다.” Q : 정부는 부자 감세 논란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 A : “물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진보 정부이니 추진해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세율 조정이 당장 어렵다면 가업 승계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방안을 활용할 수 있다. 독일은 승계를 ‘부의 이전’이 아니라 ‘책임의 이전’으로 본다. 꼭 자식이 아니라도 직원이나 제3자에게도 승계할 수 있고, 일정 기간 기업을 유지하면 상속세를 최대 100% 면제한다. 회사를 정리하기 이전에는 과세를 이연해 주는 방식으로 일단 승계에는 문제가 없도록 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Q : 여권은 주가 누르기 방지 법안 통과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A : “자산 가치에 비해 주가가 낮은 기업은 상속세 부담을 늘리는 방식으로 압박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산업의 성장성이나 업황이 나빠 주가를 올리고 싶어도 못 올리는 경우가 있다. 채찍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당근도 같이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 투자도 살아나고, 고여있는 돈이 돌 수 있다. 지금도 현금만 잔뜩 들고 가만히 있는 기업들이 많은데, 돈이 생산적인 분야로 투입될 수 있도록 숨통을 좀 틔워 줘야 한다.” Q : 정부는 증시 활성화로 돈이 부동산에서 자본시장으로 옮겨가는 머니무브가 일어날 것이라 기대한다. A : “우리 가계자산의 65%가 부동산에 쏠려 있으니 다른 나라에 비하면 높은 게 맞다. 다만 돈은 수익성과 안정성을 좇는다. 쏠림이 생긴 건 그만큼 부동산의 상대적 매력도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부동산에서 이른바 ‘불패신화’가 만들어지는 사이 주식은 그렇지 못했다. 꾸준히 자본시장의 매력도를 높여주는 게 쏠림을 완화하는 길이다.” ‘빚투’는 투기, 결코 성공 못 해 Q : 코스피에 이어 코스닥 활성화가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부실기업을 더 솎아내겠다는데. A : “코스피도 그렇지만 코스닥도 특정 지수를 목표로 내걸고 부양하는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 지수는 자본시장 활성화의 결과물이지 목표가 아니다. 코스닥은 코스피와는 상황이 좀 다르다. 코스피는 기업 이익에 비해 저평가됐다는 근거가 있었다. 하지만 코스닥은 상장기업들 이익을 모두 합해도 SK하이닉스 한 기업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단순히 부실기업을 더 솎아낸다고 시장이 활성화되긴 어렵다. 현재 코스닥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덩치가 커지면 코스피로 빠져나가 버린다. 코스닥을 진취적이고 성장성이 강한 핵심 전략산업의 플랫폼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진입 기업에 확실한 혜택을 주되 아무나 진입할 수 없는 프리미엄 시장으로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Q : 활황장에 새롭게 증시에 뛰어든 개인 투자자가 많다. ‘빚투’와 레버리지 활용도 부쩍 늘었는데. A : “빚을 내거나 레버리지를 쓰는 건 투자가 아니라 투기다. 길게 봐선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이번 급락에서도 나타났지만, 주식시장에선 어떤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다. 우량주는 충격을 받더라도 결국 회복된다. 하지만 ‘빚투’는 결국 청산 당하니 그 기회도 잃는다.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도 중요하다. 미치도록 사고 싶을 때 팔아야 하고, 너무 두려워 내던지고 싶을 때 사야 하는 게 주식이다. 그 두려움과 욕망을 이겨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투자 대가 워런 버핏이 ‘주식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높은 지능이 아니라 건전하고 지적인 체계’라고 한 것도 그런 의미다.” 조민근([email protected])

2026.03.11.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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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번째 천만영화가 일깨우는 것 [이지영의 문화난장]

한 편의 영화에 전국이 들썩인다. 지난 6일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 “값진 결실”이라며 축하와 감사 메시지를 내놨다.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국가유산청장도 “우리 영화의 희망이자 축복” “감회가 남다르다” 등 축하의 뜻을 공개적으로 전했다. 국제영화제 수상 때나 볼 수 있었던 국가적 경사 대접이다. 투자·기대작 가뭄 속 기적 흥행 박찬욱 감독도 "큰일 했다" 축하 집단적 감동 경험 여전히 유효 작품 좋으면 기꺼이 극장 찾아 그만큼 목말랐던 것이다. 한국 영화시장은 2024년 4월 개봉한 ‘범죄도시4’ 이후 2년 가까이 천만영화를 배출하지 못했다. 지난해 최고 흥행작인 ‘좀비딸’조차 관객 수 564만 명에 그쳤다. OTT의 공세와 영화 티켓 가격 상승으로 이제 극장 시대는 끝났다는 비판론이 팽배한 상황이었다. 극장 관객 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크게 줄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연평균 관객 수는 1억1600만 명 정도다. 팬데믹 이전 2015년부터 2019년까지의 연평균 관객 수 2억1840만여 명의 절반 수준이다. 시장이 위축되니 투자가 마르고, 투자가 줄면서 좋은 영화가 줄고, 볼만한 영화가 없어 관객이 외면하는 악순환이 굳어졌다. 대통령·장관도 축하 메시지 역대 국내 개봉작 중 34번째, 한국영화로는 25번째 천만영화에 이름을 올린 ‘왕과 사는 남자’는 이제 더이상 천만영화가 안 나올지 모른다는 체념 속에서 일궈낸, 일종의 기적으로 여겨진다. 박찬욱 감독도 장항준 감독에게 “큰일을 해내서 고맙고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영화계가 내 영화 네 영화 따지지 않고 한마음으로 기뻐하고 있다. 한국 영화시장에서 ‘1000만’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흥행 기록이 아니다. 때로는 산업의 흐름을 바꾸는 이정표였고, 때로는 시장의 예측을 뒤집는 의외의 사건이었다. ‘이정표 천만’이 영화산업의 기준을 만들고, ‘의외의 천만’이 매너리즘에 빠진 업계에 경종을 울리며 한국영화는 지금의 규모와 다양성을 갖게 됐다. 한국영화 최초의 천만영화는 2003년 개봉한 ‘실미도’다. ‘실미도’의 천만 흥행은 한국영화가 비로소 산업으로서의 골격을 갖췄음을 선포한 사건이었다. 꼭 10년 전인 1993년 ‘서편제’가 세운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이 ‘서울 관객 103만 명’인 것을 생각하면, 천만 관객은 꿈꿀 엄두조차 못 낸 경지였다. 하지만 1998년 첫 등장한 멀티플렉스는 영화시장의 규모를 바꿔놨다. ‘실미도’에 이어 ‘태극기 휘날리며’(2004)도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천만’은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된다. 한국적 서사와 대형 스펙터클이 결합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탄생은 거대 자본이 영화라는 산업에 확신을 갖게 만든 신호탄이 됐다. 2010년대는 한국 영화사에서 ‘천만영화 대량 생산기’로 불린다. 멀티플렉스 확장으로 스크린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천만 관객을 모을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이 완성된 때였다. 대기업 배급사와 멀티플렉스의 결합은 스크린 점유율을 극대화해 단기간에 관객을 끌어모으는 흥행공식을 안착시켰다. 2012년 ‘도둑들’부터 2019년 ‘기생충’까지 8년 동안 14편의 천만 영화가 나왔다. 특히 ‘명량’(2014)은 관객 1761만 명을 동원, 시장 규모의 한계를 넘었다. 하지만 정형화된 흥행 공식이 늘 시장을 지배한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관객은 예상을 뒤엎는 선택으로 이변을 만들어냈다. ‘왕의 남자’(2005)는 톱스타 없는 저예산 사극이었지만, 광대의 서사와 시대적 한을 녹여내며 1230만 관객을 모았다. 가족애라는 고전적 코드를 통해 관객의 눈물샘을 터뜨린 ‘7번방의 선물’(2013)은 진부한 흥행 코드로 여겨졌던 휴먼 드라마의 저력을 보여줬다. 수사물과 코미디 결합이라는 평범한 포맷의 '극한직업’(2019)은 자극적 소재 없이 오직 재미만으로 162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역대 한국영화 흥행 2위에 올랐다. 입소문 폭발한 영화에 관객 몰려 팬데믹 이후 천만영화의 반열에 든 여섯 편의 영화, ‘범죄도시’ 2·3·4와 ‘서울의 봄’ ‘파묘’ ‘왕과 사는 남자’는 영화시장이 확실한 경험을 소비하는 구조로 재편됐음을 보여준다. 이미 검증된 IP나 입소문이 폭발한 영화, 즉 관객으로서 실패할 확률이 없다고 믿어지는 영화만 천만의 반열에 올랐다. 마케팅보다 입소문, 실시간 관객 평판의 위력이 훨씬 커졌다. 관객에게 영화 관람은 시간 대비 효용을 꼼꼼히 따지는 특별한 외출이 된 것이다. 제작비 105억원 중예산 영화인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은 단순히 한 감독의 성공을 넘어, 극장가 부활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의 방대한 콘텐트를 손쉽게 소비하는 시대지만, 관객들은 여전히 극장에서 타인과 함께 호흡하며 느끼는 집단적 감동을 기대하고 있었다. 자신을 매료시킬 이야기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마음을 내어줬다. 엉성한 호랑이 CG도 그냥 웃어넘길 만큼 관객들은 너그러웠다. 관객을 다시 불러모을 열쇠는 오직 이야기의 본질에 있다. 관객의 마음을 읽는 날카로운 통찰과 탄탄한 서사가 있다면 천만이라는 기적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25번째 천만영화가 위기의 극장가에 증명해 보인 가장 확실한 생존 전략이다. 이지영([email protected])

2026.03.11.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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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편법적 개헌 지적 나오는 재판소원…부작용 최소화 노력해야

재판소원법(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12일 시행되지만 법안 내용과 통과 과정에서 드러난 허점은 여전하다. 법원의 판결이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생각하면 확정판결이라도 뒤집을 길이 열렸다. 기존 3심제 구조가 사실상 4심제로 바뀌었다는 평가다. 분쟁 종결이 지연되고 소송비용이 증가해 실질적인 권리구제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헌재는 “법원의 헌법 해석을 교정할 뿐”이라고 설명하지만 법원 내부에서는 판결·재판 과정에서의 기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법률 적용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헌법 101조 1항)나 ‘최고 법원은 대법원으로 한다’(101조 2항) 등의 헌법 조항에 위배돼, 하위 법률을 통한 편법적 개헌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처럼 기존 헌법과 사법체계를 뒤흔드는 법안인데도 사법3법 통과 과정은 국회 입법 공청회 한 번 없이 졸속으로 진행됐다. “국민의 기본권을 위한다는 명분의 법안이 국민을 배제한 채 통과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헌재는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제가 되지 않도록 요건에 맞지 않는 사건을 상당수 각하하고, 충실히 심리해야 할 사건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대법에서 승소하지 못한 재판 당사자들이 헌재로 달려갈 수 있어 헌재가 상고심 불복률 25~30%를 기준으로 예상한 연간 1만여건의 수치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인력으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관측한다. 헌재도 재판소원과 함께 운영되는 가처분 제도와 관련,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법원을 향한 ‘경고성’ 메시지도 놓치지 않았다. “헌재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반복해서 동일한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헌법 위반이자 법률 위반인 재판, 법관의 위헌·위법한 행위로도 치환될 수 있다”고 했다. 지난달 25일 전국법원장회의에 모인 법원장들은 재판소원 도입 부작용으로 “소송 당사자들이 반복되는 재판으로 고통받고, 법적 불안정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예상된다”는 입장을 내놨다. 법 시행에 대비한 구체적 제도 정비에 대한 내용은 내놓지 않았다. 이런 여러 맹점을 안고도 법안은 오늘 공포 즉시 시행된다.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위상 다툼을 하기보다 국민의 불편이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헌재와 법원 모두 제도 정비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김보름([email protected])

2026.03.11.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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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민 다수가 원하는 개헌, 더는 미룰 수 없다

개헌(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의 절실함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회가 1만2000명을 조사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응답자 10명 중 7명 꼴(68.3%)로 개헌을 원했다. 모든 연령대와 지역, 정치성향을 통틀어 개헌 찬성이 반대보다 훨씬 높았다. 개헌에 대해 잘 안다고 답변한 사람일수록 찬성률은 더 높아졌다. 10명 중 7명 지지, 논의도 충분해 사회변화, 새로운 문제 대응 필요 합의가능한 부분부터 개헌해야 특히 개헌에 찬성하는 사람 10명 중 7명(70.4%)이 ‘사회적 변화와 새로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고규범이고, 기본권을 둘러싼 환경이 변화한다면 그 보장 체계도 그에 맞춰 당연히 손을 봐야 한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촉발하는 사회·경제의 대전환, 인구절벽 및 지역소멸, 그리고 기후변화라는 전례 없는 복합위기 상황에 직면해있다. 이런 변화는 현행 헌법이 마지막으로 개정된 1987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발맞춰 헌법상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는지 구조적으로 점검하고, 미래헌법으로 혁신해 가야 한다. 개헌 의제 관련 답변에서도 이 같은 흐름이 뚜렷하다. 생명권(85.9%), 안전권(87.2%), 개인정보 자기결정권(79.9%)의 명문화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가 확인됐다. 이는 시대적 변화에 조응해 국민을 더욱 존귀하게 보호하고 지킬 수 있는 헌법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하루빨리 낡은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국민은 알고 있다. 미래지향적 개헌 이슈에 대한 국민의 의식 수준도 법조문을 앞질러 가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포함해 ‘미래세대의 이익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국가 운영 원칙을 헌법에 명시하자’는 항목에 대해 조사 대상의 74.8%가 찬성했다. ‘과학기술 발전이 인간의 존엄과 기본권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원칙 명시에도 85.7%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AI 관련 조항을 헌법에 넣은 나라는 지구 상에 아직 없다. AI 기술 변화에 발맞춘 헌법을 한국이 세계 최초로 만들면 국제사회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시대 변화에 대한 소극적 대응이 아니라 적극적 변화를 이끌어가는 미래지향적 개헌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헌법 전문에 민주화운동을 추가로 명시하자’는 제안에 많은 국민이 공감했다. 명시 대상으로 5·18 민주화운동(90.6%)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고, 6·10 민주항쟁(73.9%)과 부마민주항쟁(58.2%)이 뒤를 이었다.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국가 책임을 헌법에 명시하는 개헌에는 83%가 찬성했다. 더는 지역 격차와 지방소멸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지난 40년 동안 개헌 논의와 연구는 학계와 국회를 중심으로 충분히 이뤄졌다. 가장 최근 운영된 ‘국민미래개헌자문위원회’에 필자가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 이 위원회를 포함해 국회에 개헌 관련 자문위가 지금까지 여섯 차례 만들어져 운영됐다. 이제 국민 대다수는 국회가 더는 개헌을 미루지 않고 합의 가능한 부분만이라도 추진하길 바라고 있다. 국회 조사에서 69.5%가 정치권에서 합의 가능한 의제를 중심으로, 단계적 개헌을 추진하기를 원했다. 개헌 시점으로는 ‘곧 있을 6월 지방선거(39.6%)’를 ‘2028년 총선’이나 ‘2030년 대선’보다 더 많이 선택했다. 법률 전문가나 시민단체 등이 아니라 국회가 개헌을 주도해야 한다는 응답(37.2%)이 가장 많았다. 개헌을 더는 미룰 필요가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오직 국회의 결단이다. 당장에라도 개헌특위를 만들어 가동하자. 합의를 어렵게 만드는 권력구조 개편 논의는 추후로 미루고,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선에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정략적 문제가 아니라 대승적 과제다. AI 관련 조항 등 선진국도 참조할 만한 헌법 혁신에 머리를 맞댄다면 미래세대에 부끄럽지 않은 국회가 될 수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K컬처로 세계문화를 선도해가듯 헌법도 혁신을 통해 미래헌법으로 바뀌어야 한다. 언제까지 외국 헌법을 따라 읽어야 하나. 국회가 이번에도 실기해 국민의 뜻을 저버렸다는 오점을 역사에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재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2026.03.11.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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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화의 마켓 나우] AI 시대의 이순신, 국민개발자

미군이 최근 이란 공습 표적 분석에 AI를 활용했다는 보도는 블랙코미디처럼 들린다. 정부기관의 AI 활용에 제동을 거는 대통령 행정명령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알고리즘이 ‘전장의 안개’를 걷어냈다. 정보 해석 능력은 승패를 가른다. 85년 전 미군 정보부는 진주만 공격의 단서를 갖고도 이를 해석하지 못했다. 콜로서스에서 오늘날의 딥러닝에 이르기까지 데이터 해독 기술의 진화는 전쟁의 규칙을 바꾼다. 문제는 데이터의 규모다. 폭증하는 정보 앞에서 인간의 직관은 힘을 잃는다. 코어 덤프(core dump), 즉 비정상 종료 시 메모리 기록을 떠올려 보라. 며칠 밤을 새워 해독하던 기록을 AI는 순식간에 훑고 원인을 지목한다. 변화는 전쟁의 개념도 바꾸고 있다. 과거 비대칭 전력이 병력과 화력의 양적 우위였다면 이제는 초지능적 분석력이다. 더 빠르고 정확한 정보 해석 능력이 새로운 전략 자산이다. 데이터 시대에는 개인도 AI라는 참모를 통해 비대칭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 존 그리샴의 『레인메이커』 속 서류 더미에 파묻힌 초짜 변호사의 모습은 낡은 풍경이다. 미래 수퍼히어로는 단 12척으로 대함대를 격침한 명량의 이순신에 더 가깝다. 울돌목 물살을 무기로 삼았듯 개인은 ‘AI 에이전트’로 데이터의 격랑을 통제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정부의 ‘AI 3강 도약’ 구상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G2를 추적하는 데 급급하면 주도권을 쥘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소프트웨어(SW) 생태계가 취약하다. 외주와 하청 중심 구조 속에서 기술 축적과 도전이 줄어들었고, 게임 산업도 자본 공세 속에 힘을 잃고 있다. AI 시대의 국가 경쟁력 또한 데이터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SW 생태계에서 갈린다. SW가 도구라면, AI는 도구를 쥔 손이다. AI 강국은 곧 SW 강국이다. 우리의 저력은 늘 벼랑 끝에서 드러났다. AI 시대의 비대칭 전력 역시 다르지 않다. 5000만 국민이 코딩의 최전선에 서는 ‘국민개발자의 나라’가 되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 전문가와 기업에 문제 해결을 맡기던 수동적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핵심은 단순하다. 개인이 AI를 참모 삼아 철학과 창의성으로 벼려낸 코드, 즉 ‘오토마타(Automata)’다. 각자가 문제를 직접 코드로 푸는 순간, 비용과 시공간의 벽은 무너지고, 개인의 한계는 빠르게 재정의된다. 명량의 승리는 울돌목을 읽은 개인의 통찰에서 비롯됐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 통찰이다. 5000만이 저마다의 오토마타를 손에 쥐는 날, ‘K오토마타’ 생태계는 무너진 SW 산업을 일으키는 토대가 될 것이다. AI 강국의 길은 각자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이수화 서울대 빅데이터혁신융합대학 연구교수·법무법인 디엘지AI센터장

2026.03.11.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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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인간적인 수, 인간적인 바둑

10년 전 이세돌과 대결한 알파고(AlphaGo)를 알파고 리(AlphaGo Lee)라 부른다. 인간의 바둑을 학습한 프로그램이다. 그 후 알파고 제로(AIphaGo Zero)가 등장했다. 단지 바둑규칙만 알려주고 스스로 대국하며 학습했다. 처음 3시간 무렵엔 바둑을 막 배운 어린이 대국을 보는 것 같았다. 천지사방으로 갈팡질팡 대국이 이어졌다. 하나 불과 3일 후 알파고 제로는 인간 고수는 물론 알파고 리를 넘어섰다. AI의 학습능력은 경이적이었다. 이제 바둑은 알파고 제로의 후손들이 지배하고 있고 인간과의 격차는 오히려 점점 커지고 있다. 인간적인 바둑 두라 권하면서도 인간의 특별함은 뭐냐고 묻는 AI 기계한테 쫓기고 위로받는 인간 그 강력한 벽 앞에서 바둑기사들은 가끔 환상에 젖는다. 인간이 어느 날 초능력을 얻어 AI를 이기는 대반전은 없을까. 영화 ‘루시’를 보면 인간의 뇌도 어떤 경우 무한의 능력을 갖게 된다. AI가 인간 뇌의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방법을 찾을 수는 없을까. 챗GPT에게 물어보니 ‘불가능’이란 답이 돌아온다. 인간의 뇌에 AI를 장착하면, 즉 ‘인간+AI’가 되면 압도적으로 강해질 수 있지만 그래도 AI를 넘어설 수는 없다고 한다. 대신 다른 충고를 한다. 인간적인 수, 인간적인 바둑에서 답을 찾으라는 것이다. AI는 최강이지만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은 행마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승부의 드라마를 만든다. AI는 계산한다. AI에게 바둑은 계산을 통해 승률이 가장 높은 수를 찾는 것이다. 인간에게 바둑은 기풍과 아름다움의 표현이며 자존심과 기세, 배움의 현장이다. 그러므로 완벽함은 기계에게 내주고 실수나 분노, 후회 같은 불완전함을 인간의 영역으로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고 기계는 충고한다. 기술은 어차피 상대가 안 되니까 그쪽은 포기하고 이제라도 ‘인간적인 수’ 또는 ‘인간적인 바둑’에 집중하는 것이 바둑의 미래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가령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4국에서 둔 78수. 이 수가 신의 한 수였건 본인의 표현대로 꼼수였건 그 한 수는 서사를 만들었다. 백척간두에 선 이세돌의 처절한 비명과 반격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사실 용기나 불안, 고통은 인간 고유의 것이고 아름답기조차 하다. 우리는 그런 감정·행동에서 인간적인 공감을 느끼게 된다. 하나 바둑은 승부다. 이길 수 없는 기계의 완벽함 앞에서 인간은 문득 초라해진다. 기계는 그걸 ‘인간적’이란 단어로 포장하여 우리를 위로하고 있지만 우리는 거대한 실력 차 앞에서 힘없이 고개를 떨구게 된다. 게다가 기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되묻는다. “만약 AI가 단순 계산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목적까지 모방하게 된다면 그때 인간과 AI의 차이는 어디에 남을까요.”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바이센테니얼맨』이 생각난다. 가정용 로봇 앤드루는 점점 더 인간에 가까운 존재가 된다. 이윽고 “나는 인격체다”라며 소송을 내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를 요구한다. 정부는 “인간은 유한한데 로봇은 불멸”이라며 인정하지 않는다. 앤드루는 스스로 불멸성을 포기하고 자신의 죽음을 설계한다. 죽기 직전 공식적으로 인간이 된다. 이 소설은 로봇이 오히려 더 인간적인 느낌을 준다. 챗GPT는 인간과 기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 “AI가 감정을 표현하고 (인간이 부여한) 목적을 수정하고 창조성을 보이며, 실수도 하고 좌절과 기쁨을 얘기하고 자신의 존재를 성찰한다면, 그리하여 인간과 구별이 안 된다면 그때 우리는 인간이 특별하다고 말할 근거가 남아있을까요.” 기계의 질문이 은연중 섬뜩하다. 바둑 얘기를 하다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AI의 바둑 실력을 탐하지 말고 인간의 바둑에 집중하라고 말하면서도 그 인간적인 요소마저 기계의 영역이 되면 어쩔 것이냐 묻는다. 인간이 AI와 같이 살면 언젠가 인간의 정체성은 붕괴하고 기계와 인간은 구별이 불가능할지 모른다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 같다. 기계의 진지한 태도를 보건대 이런 질문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폭발하는 AI 시대, 그 빠른 변화를 감안할 때 2, 3년 후엔 어떤 질문이 나올지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세돌과 알파고가 대결한 지 불과 10년, 우리는 기계한테 질문받고 쫓기고 그리하여 위로받는 처지가 됐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2026.03.11.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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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의 ‘필향만리’] 運去金成鐵 時來鐵似金(운거금성철 시래철사금)

‘지자불여복자(知者不如福者)’라는 속언이 있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사리에 밝은 사람이라도 복이 굴러 들어오는 사람만은 못하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대개 노력에 비해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을 운(運)이고 복이라고 여긴다. 운이 떠나면 황금도 무쇠 역할밖에 못 하고, 운이 들어와 때를 만나면 무쇠도 황금의 역할을 한다. 이런 때 사람들은 운의 존재를 느끼곤 한다. 운이 나쁘다고 느낄 때는 용기 내어 운에 맞설 필요도 있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때를 기다리는 지혜도 필요하다. 맞섬은 불운을 다 막지 못하지만 지혜는 불운을 피하게 한다. 대개의 행운은 잡스러운 생각을 버리고 맑은 생각을 갖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청나라 때 문인 장조(張潮)는 “첩의 아름다움이 아내의 현숙함만 못 하고, 돈 많음이 처지가 순탄함만 못하다(妾美不如妻賢, 錢多不如境順)”고 했다. 첩을 거느리겠다는 잡스러운 생각을 하는 사람은 현명한 아내를 잃고, 돈으로 잡다한 욕심을 다 채우겠다는 망상에 빠진 사람은 결국 불행한 처지에 처하게 된다. 운이나 복에 대해 흔히 ‘굴러 들어온다’는 표현을 쓰지만, 사실 운이나 복은 스스로 ‘지은’ 결과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복 많이 받으세요”보다는 “복 많이 지으세요”가 진짜 복을 불러들이게 하는 인사말이다. 조선 전기의 문인 나세찬(羅世纘·1498~1551)은 ‘추국춘란각유시(秋菊春蘭各有時)’, 즉 ‘가을 국화와 봄 난초는 피는 철이 각기 다르다’고 읊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전에 쓴 ‘필향만리’ 글에서 ‘북송남죽별소처(北松南竹別所處)’, 즉 ‘북쪽의 소나무와 남쪽의 대나무는 처지가 다르다’는 대구를 지어 붙인 적이 있다. 금이 무쇠가 되는 불운이나 무쇠가 황금이 되는 행운은 따로 있지 않다. 다 때와 장소에 맞게 사는 지혜의 결과일 뿐이다. 지은 대로 굴러 들어오는 것이 운과 복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2026.03.11.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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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의 신 영웅전] 죽산 조봉암의 기구한 생애 ①

섬이라고는 하지만 강화도는 서구 문물을 먼저 받아들인 첨단 지역이었다. 현대사에서 비극적 삶을 살다 간 죽산 조봉암(曺奉岩·1898~1959·사진)의 고향이 이곳이다. 그는 독실한 감리교 신자로서 일찍이 권사(장로)의 직분을 맡아 신앙생활을 했다. 그런 그가 공산주의자가 되어 간첩 활동을 하다가 처형되었다. 여한이 많았을 것이다. 1980년대 어느 날, 한 중년 여성이 내 연구실로 찾아왔다. 단정했다. “누구시죠?” “죽산 조봉암 선생의 딸입니다.” 당대 최고 영화감독이었던 이봉래(李鳳來)의 아내 조호정(曺滬晶)여사였다. 나는 가슴이 먹먹하여 왜 오셨느냐고 묻지도 못했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뒤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그 선친의 오랜 동료였던 최익환(崔益煥)의 사위이고 한국현대사를 전공했다니 선친의 신원(伸冤)을 위해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엄혹하던 군사 정부 시절, 한국현대사를 전공하고 알 만큼 안다 해도 병아리 교수가 도와줄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좋은 세상 올 때까지 좀 더 기다리시죠.” 처진 어깨로 연구실을 나가던 그 여인의 모습이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아 있다. 조봉암에 대한 논점은 세 가지인데 첫째로 ‘그는 공산주의자였는가?’ 하는 점이다. 그가 청년 시절에 모스크바 노동자대학을 졸업한 공산주의자였지만 박헌영(朴憲永)의 과격 노선에 반대하다가 민족주의 민족전선에서 제명되었을 때 이미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더욱이 고양·강화 일대에서 민족주의 지도자로 명성이 높던 이가순(李可順) 장로를 만난 뒤로 그는 공산주의를 버렸다. 이가순은 정(鄭) 트리오의 외할아버지이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평가한다면, 일제 치하와 해방정국에서 젊은 지식인들이 붉은 책 하나쯤은 유행처럼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시절, 조봉암도 낭만적 공산주의에 심취했지만, 그는 “덜 한 공산주의자”였을 뿐이다. (계속)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2026.03.11.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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