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빛을 내는 것은 별이다. 과학적으로 말해서 별이 수소 핵융합을 하는 과정에서 빛이 나온다. 우리의 태양도 별이어서 지금 한창 핵융합을 하면서 엄청난 빛과 열을 내는 중이다. 인류는 빛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빛에 관한 생각을 꾸준히 했지만 20세기 초반까지 그 정체를 밝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뉴턴 대에 이르러 빛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뉴턴은 빛이 입자라고 생각했는데 당시 뉴턴의 권위에 그 누구도 도전하지 못했다. 뉴턴의 이론에 시비 거는 것 자체가 과학자이기를 포기하는 행위였던 시절이었다. 연금술에 푹 빠져있던 뉴턴은 평생 금(gold)을 만들어 보려고 애썼는데 간간이 짬을 내서 만유인력이라든가 운동 법칙, 혹은 빛에 관해서 연구하기도 했다. 뉴턴은 프리즘이라는 삼각 막대를 이용해서 백색광을 나누는데 성공했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은 그 굴절률에 따라 모두 일곱 가지 색으로 나뉘었다. 아무런 색이 없다고 생각했던 투명한 빛은 그 속에 일곱 색을 비밀리 품고 있었다. 뉴턴은 무지개와 같은 색의 모임을 스펙트럼이라고 이름 지었다. 스펙트럼은 라틴어로 '눈에 보이는 사물'을 뜻한다고 한다. 뉴턴에 이르러 인류는 드디어 빛의 비밀을 벗기기 시작했다. 사람에게는 개개인 고유의 지문이란 것이 있어서 어떤 범죄 사건이 나면 현장에 남겨진 지문으로 범인을 검거하기도 한다. 마치 사람의 지문처럼 원소도 가열했을 때 그 원소 고유의 선 스펙트럼이 나타나는데 이를 거꾸로 이용해서 관찰된 선 스펙트럼으로 해당 원소를 유추할 수 있다. 천체물리학에서는 멀리서 반짝이는 별에서 오는 빛을 분석하여 그 별까지의 거리는 물론이거니와 온도, 밀도, 질량을 알 수 있고 그 별이 어떤 원소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추측할 수 있다. 별이나 그 별이 속한 은하에서 나오는 빛을 분석하여 그런 세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만약 분광학이란 것이 없었다면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별의 정보를 알 수 없었을 것이고 천체물리학은 비약적인 발전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빛이 있으므로 사물을 볼 수 있다. 광원에서 출발한 빛이 산란하여 물체에 부딪혀 우리 눈에 도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빛의 성질에 관해서는 오래 전부터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아인슈타인 이후 빛에는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2중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빛에 관한 연구는 자연스럽게 양자역학을 발전시켰으며 빛을 이용한 분광학의 발달은 천체물리학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빛의 원천은 원자다. 원자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받으면 잠깐 그 상태가 변하다가 잠시 후 다시 에너지를 잃으며 일정한 색의 빛을 낸다. 분광학이란 이렇게 빛과 물질이 서로 반응하는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색을 내는데 착안해서 그 원소가 내는 빛의 스펙트럼이 마치 사람의 지문처럼 일정하다는 것을 알고 빛을 분석하여 그 빛을 낸 원소를 역추적하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나트륨은 노란색을 내기 때문에 어떤 관찰의 결과에 노란색이 보이면 나트륨이 함유되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헬륨은 우주에서 수소 다음으로 풍부한 원소지만 지구상에는 아주 귀하다. 분광학이 발달하여 천체에서 오는 빛을 연구하던 중 태양 빛을 분석하다가 미지의 원소를 발견하였는데 그리스 신화의 태양신 헬리오스 이름을 따서 헬륨이라고 명명하였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과학 이야기 원소 고유 태양신 헬리오스
2026.02.27. 13:04
━ 박영재 법원행정처장, 반발하며 전격 사퇴 ━ 정청래 대표, 조희대 대법원장 퇴진 압박 ━ 위헌 논란 입법에 사법독립·삼권분립 훼손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이 어제(27일)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사퇴 의사를 전달했다. 거대 여당이 위헌 논란에도 아랑곳 않고 법왜곡죄 법안을 시작으로 재판소원 도입 법안, 대법관 증원 법안 등 이른바 ‘사법 3법’을 밀어붙이자 직을 던지며 반발한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공개적으로 조 대법원장의 자진 사퇴를 압박했고, 여당 일각에선 조 대법원장 탄핵 추진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법원행정처장은 대법원장의 지휘를 받으며 전국 법원의 인사·예산·조직 등 사법행정 사무 전반을 총괄하는 핵심 보직이다. 박 처장의 사퇴는 지난달 천대엽 대법관 후임으로 법원행정처장에 취임한 지 42일 만으로 전례가 드물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5월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는데, 민주당은 그 사건의 상고심 주심이던 박 처장이 임명되자 사퇴를 거론해왔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의 3법 강행이 박 처장의 사퇴를 촉발한 것으로 법조계에선 보고 있다. 그동안 사법부는 민주당의 사법 3법을 저지하기 위해 나름 총력전을 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법원행정처는 3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자료를 내기도 했다. 지난 25일에는 전국법원장들이 회의를 갖고 “(사법 3법은) 신속한 재판과 기본권 보장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논의 과정에 사법부 등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당은 사법부의 줄기찬 요구를 끝내 묵살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필리버스터로 견제에 나섰지만, 민주당은 판사와 검사가 법을 왜곡해 적용할 경우 최장 징역 10년을 선고할 수 있는 법왜곡죄 도입 법안을 지난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어제는 대법원 확정판결도 헌법재판소가 번복할 수 있도록 하는 재판소원 도입 법안을 처리했고, 28일에는 현재 14명인 대법관 정원을 현 정권 임기 내에 26명으로 늘리는 대법관 증원 법안도 강행할 예정이다. 여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조희대 사법부 체제’ 자체를 흔들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어제 오전 “조희대 사법부의 불신이 사법개혁의 원동력이 된 것이 사실”이라며 퇴진론을 제기했다. 그 이후 박 처장의 사퇴 소식이 전해지자 정 대표는 SNS에 “사표 낼 사람은 조 대법원장이다. 사법 불신의 원흉, 조 대법원장은 즉각 사퇴하라”는 글을 올려 압박 수위를 높였다. 민주당 의원들은 박 처장의 대법관직 사퇴를 요구하고, 조 대법원장 탄핵 카드까지 거론한다. 이처럼 여당이 다수 의석을 앞세워 위헌성이 다분한 사법 3법을 밀어붙이고 사법부 수장의 사퇴까지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것은 우리 헌정 질서의 토대인 삼권분립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대법원과 전국 법원장들이 한 목소리로 “국민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호소하는데도 여당이 사법 3법을 마음대로 처리하는 입법 폭주는 국민을 위하는 모습이 아니다. 정권에 유리하게 사법 제도의 틀을 일방적으로 바꾸면 결국 사법부 독립이 훼손되고 국민의 재판 신뢰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그 결과는 돈 없고 권력 없는 일반 국민의 심대한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법원행정처장이 항의성 사직을 하고 대법원장 거취까지 압박받는 상황이 되자 일각에선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사법 파동’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한다. 이제 사법 3법의 위헌성을 바로잡을 기회는 이재명 대통령의 거부권에 달렸다. 당리당략을 넘어 국가통합의 대승적 차원에서 이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2026.02.27. 8:34
친구와 새 옷을 사러 갔다. “이 옷 어때?”라는 물음에 “그닥 별로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까지는’이라는 의미를 나타낼 때 일상적인 대화에서 많은 이가 이처럼 ‘그닥’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워낙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보니 ‘그닥’이 표준어이며, ‘그다지’의 준말이라고 알고 있는 이가 많다. 그러나 ‘그닥’은 말을 줄여 쓰기 좋아하는 누리꾼들에 의해 생겨난 말로, 표준어가 아니다. 입말에서는 ‘그다지’보다 ‘그닥’이 더 많이 쓰인다고 느껴질 정도로 사용 빈도가 높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는 일상생활에서뿐 아니라 언론 매체에서도 ‘그닥’이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기업의 외형은 커 가고 있지만 내실은 그닥” 등과 같은 표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닥’을 ‘그다지’의 평안도 방언인 ‘그닥지’의 준말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 생겨난 뒤 쓰임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보아 통신 언어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온라인상에서는 언어의 경제성이 큰 힘을 발휘하기에, 줄여 쓰는 말들이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 그래서 ‘그닥’이 틀린 표현인지도 모르고 표준어인 ‘그다지’보다 빈번하게 쓰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젠가는 생명력을 인정받아 ‘그닥’이 표준어로 등극할지도 모르지만, ‘그닥’은 아직 표준어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닥’은 ‘그다지’로 고쳐 써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우리말 바루기 통신 언어 평안도 방언인 언론 매체
2026.02.26. 20:00
“꼰대는 입이 열려있고, 어른은 귀가 열려있다”는 명언이 있다. 요즘 내가 글을 쓰면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꼰대 냄새’다. 걸핏하면 ‘라떼’ 운운하면서 가르치려 들고, 쓰잘데없는 설교 늘어놓고, 횡설수설 동어반복 중언부언 중얼중얼…. 그런 몹쓸 버릇이 생기지 않도록, 나이 먹을수록 더 신경을 쓰게 된다. 간단명료하고 쉽게 쓰고 싶다. 소설가 김훈 씨는 자신의 글쓰기 원칙의 하나로 ‘수다를 떨지 말자’를 꼽는데, 백번 공감한다. 말도 마찬가지다. 실은 글보다 말이 더 심각하다. 온 세상이 말로 시끄럽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말이다. 흉기가 되기 쉽다. 그래서 동서고금 말에 대한 말이 넘쳐흐른다. 말에 대한 주옥같은 명언도 많고, 속담도 많다. 그런 말씀들 가운데 내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려 애쓰는 가르침 몇 가지를 적어본다. 여러분들도 각자 가슴에 있는 명언을 되새겨 보시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떠실지? ▶인간은 입이 하나 귀가 둘이 있다. 이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 더하라는 뜻이다.-탈무드 ▶개가 짖는다고 해서 용하다고 볼 수 없고, 사람이 떠든다고 해서 영리하다고 볼 수 없다.-장자 ▶삼사일언(三思一言), 세 번 생각한 연후에 말하라. ▶말하는 걸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렸지만, 말하지 않는 법을 익히는 데는 60년이 걸렸다.-삼성그룹 이병철 회장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베를린 시청의 문구 ▶내뱉는 말은 상대방 가슴속에 수십 년 동안 화살처럼 꽂혀있다.-롱펠로우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모로코 속담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하는 자, 험담의 대상자, 듣는 자이다.-미드라쉬 ▶말을 많이 한다는 것과 잘한다는 것은 별개이다.-소포클레스 ▶남에게, 또 남의 일에 대해서 말을 삼가라. 폭풍을 일으키는 것은 가장 조용한 말이다.-필딩 ▶부드러운 말로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위엄 있는 말로도 설득하지 못한다.-안톤 체호프 ▶말이 남에게 거슬리게 나가면, 거슬린 말이 자기에게 돌아온다.-대학 말을 잘하고 많이 하는 것보다 되도록 안 하는 것이 좋다는 가르침 많아졌는데, 실은 그것이 만고의 진리이다. 요즘처럼 온갖 말 같지 않은 말, 독살스러운 말, 시뻘건 거짓말로 더러워진 세상을 견디며 살아내자니 차라리 베토벤의 불행이 부러울 지경이다. 묵언 수행이라도 하고 싶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공부 많이 하고 높으신 분들의 유식하고 현란한 미사여구보다 시골 장바닥 보통사람들의 투박한 한 마디가 훨씬 소중하다는 걸 깨치는 데 참 오래 걸렸다. 월간 〈전라도 닷컴〉에 실린 시골 할매의 말씀 한마디, 명언이다! 내 친구는 이 말씀을 크게 써서 유명 대학교 정문 앞에 붙여 놓자고 말한다. “우리 손자가 공부허고 있으문 내가 말해. 아가, 공부 많이 하지 마라.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맘 공부를 해야 헌다, 사람 공부를 해야 헌다, 그러고 말해. 착실허니 살고 놈 속이지 말고 나 뼈 빠지게 벌어묵어라. 놈의 것 돌라 묵을라고 허지 말고, 내 속에 든 것 지킴서 살아라. 사람은 속에 든 것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벱이니, 내 마음을 지켜야제. 돈 지키느라 애쓰지 말어라.”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상대방 가슴속 아가 공부 말씀 한마디
2026.02.26. 19:59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존재라고 말한다. 총성이 울리는 전장에서 지휘관의 한마디는 생과 사를 가르는 절대적 기준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계엄 사태 이후 국군의 최고 지휘관인 7명의 4성 장군이 물러나고, 적지 않은 장성들이 옷을 벗거나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현실은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명령에 충실했던 군인의 삶과 헌법적 책임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한 개의 별을 달기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을 오직 국가와 군을 위해 헌신해 온 이들이다. 혹독한 훈련과 끝없는 긴장 속에서 부하의 생명을 책임지며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경력은 단순한 직업 이력이 아니라 피와 땀, 그리고 가족의 희생으로 쌓아 올린 역사다. 그렇기에 오늘의 상황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우리 모두의 숙고를 요구한다. 군 조직의 근간은 상명하복이다. 명령 체계가 흔들리는 순간 작전은 실패하고 더 큰 희생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전시나 긴급 상황에서는 지휘관의 결단을 신속히 따르는 것이 군의 생명선이다. 우리 군은 6·25전쟁이라는 혹독한 역사 속에서 명령과 복종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배웠다. 그 경험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안보를 지탱하는 교훈이다. 그러나 또 다른 진실도 존재한다. 군은 국가와 헌법에 충성하는 조직이다. 명령이 법과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때, 지휘관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절대 가볍지 않다. 명령 불복종은 범법이지만, 위헌적 행위에 가담하는 것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군인의 직업윤리와 시민으로서의 양심이 충돌한다. 우리는 흔히 훌륭한 지휘관의 덕목을 이렇게 말한다. “책임은 나에게, 공로는 부하에게.” 이 짧은 문장은 군 리더십의 본질을 압축한다. 진정한 지휘관은 성공의 영광을 나누고 실패의 무게를 홀로 감당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바라는 것도 어쩌면 같은 모습일 것이다. 책임을 회피하거나 서로에게 떠넘기는 모습이 아니라, 국가와 조직을 위해 묵묵히 책임을 지는 자세 말이다. 군의 존재 이유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데 있다. 명령 체계를 불신하게 만드는 환경 속에서는 그 사명이 온전히 수행될 수 없다. 법치와 안보는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두 축이다. 우리는 법의 엄정함을 유지하면서도 군의 본질적 기능을 훼손하지 않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별은 계급장을 떠나지만, 군인의 명예와 책임은 역사 속에 남는다. 전장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총성이 멎은 지 오래지만 질문은 남아 있다. 위기의 순간, 우리 군은 흔들림 없이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가. 군의 명령 체계는 단순한 규율이 아니라 나라를 지켜 온 마지막 보루다. 진정한 충성 앞에 명령을 존중하면서도 법을 지키는 지혜, 그것이 우리가 찾아야 할 길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발언대 군인 명령 명령 체계 명령 불복종 최고 지휘관인
2026.02.26. 19:57
북반구에서 가장 추운 곳은 러시아 사하공하국에 있는 오이먀콘으로 겨울 평균 기온이 섭씨 영하 50도다. 이 지역은 세 개의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적 특성으로 인해 북극에서 남하한 북극 와류의 맹추위가 겨우내 머무는 곳이다. 북극 상공에서 내려온 찬 공기가 지표면에 정체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이 북극 지역 겨울철 풍경이다. 이로 인해 북극 지역인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의 겨울 풍경도 독특하다. 먼저, 차량은 히터를 연결할 수 있는 장치(winterization)가 설치된 것을 구매해야 한다. 혹한기에 배터리 등이 얼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이곳 주차장에는 주차 시 자동차 내연기관이 얼지 않도록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다. 10월 중순부터 11월 초순 사이, 겨울용 타이어로 교체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외부의 찬 공기가 차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방풍 시트도 설치해야 한다. 지난해 11월부터 섭씨 영하 35도의 추위가 페어뱅크스를 2달 이상 점령했다. 기온이 영하 40도 이하로 내려가면 자동차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히터를 틀어도 찬 공기만 나오고 핸들의 유압이 얼어 핸들링 조작이 어려워진다. 혹한기 중 빈번히 발생하는 것이 자동차 타이어 파열이다. 타이어가 지면과 접해 있는 부분이 얼어 있는 상황에서 이를 무시하고 출발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시동을 켠 후 20분 이상 예열하고 엔진이 정상적으로 가동한 후 차량을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두 번 째는 수분이 얼음 결정 (diamond dust)으로 되어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는 빛기둥(light pillar) 현상이다. 이는 강력한 손전등을 하늘을 비추는 듯하다. 빛기둥은 광원 (가로등이나 태양 등)에서 하늘로 뻗어 나가는 수직 광선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이다. 이 빛기둥은 실제로 하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를 향해 반사된 빛줄기가 모여 마치 광원과 같은 색깔의 기둥처럼 보이는 것이다. 빛기둥 현상은 밤에 주로 나타나며, 원광(sundog) 현상은 밝은 낮에 태양빛의 반사로 태양주변 각 90도 되는 부분에 강한 빛을 나타내며, 그 빛을 원으로 연결된 것을 말한다. 원광 현상은 겨울철에 툰드라에서도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이때 기온은 최소 영하 25도 이하로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가 전제되어야 한다. 대기 중 공기에는 주택의 난방이나 중유 연소로 인한 배출가스가 수분과 함께 급랭 된다. 뜨거운 물을 대기에 뿌리면 안개로 변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래서, 겨울철 얼음안개(ice fog)가 자주 발생한다. 이 얼음안개는 지표면에 점차 축적되어 대기 최악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천연가스의 연소 부산물은 대부분 수분이지만, 중유는 황화합물이, 자동차의 연소는 질소화합물이 포함되어 있다. 런던의 스모그가 전자에 해당하며, 로스엔젤레스의 스모그는 후자의 부산물이다. 이때 대기질 지표 (Air Quality Index)는 최대 200까지 상승하며, 이는 ‘건강에 매우 해로움 (very healthy)’에 해당한다. 겨울철 정상적인 대기질 지표는 20에서 50 사이이다. 겨울철 영하 40도 이하의 시기는 12월~ 2월 초 사이 약 1주일에서 10일 정도가 평균 기간이다. 하지만 2024/5년도는 영하 40도 이하의 날이 하루도 없었으며 적설량도 평년에 비해 적었다. 그러나 2025/6년 겨울은 정반대의 기상패턴을 보였다. 이러한 극단적인 기상 이상(異常)은 온난화의 징후일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영하 30도 이하의 알래스카 저온 기상은 북유럽에서의 기상과 유사한 ‘시이소 현상’을 나타낸다. 온난화는 최저 및 최고의 기온 차이가 한랭화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재난/재앙에 가까운 기후변화는 점점 극단적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에 다가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구 온난화가 점점 가속되어가고 있음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알래스카 중부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겨울철 얼음안개 빛기둥 현상
2026.02.26. 19:56
중학교 도덕 선생님의 별명은 ‘탱크’였다.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분이었다. 그분이 가장 사랑한 것은 도덕이나 정의가 아니라 자기 반 학생들이었다. 체육대회든 교내 응시 대회든, 자기 반이 관련되면 그분은 탱크였다. 반 대항 축구 경기에서 그분이 자기 반 경기의 심판을 맡은 적이 있었다. 공이 자기 반 학생 발에 맞고 나가도 드로잉은 늘 자기 반 몫이었다. 엉켜 넘어지면 반칙은 상대편 선수, 프리킥은 언제나 자기 반 몫이었다. 어린 나는 혼란을 느꼈다. 정의란, 어쩌면 자기 편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다. 제대로 된 어른을 많이 보지 못했던 나는, 정의와 편파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채 그렇게 자라났다. 그 즈음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영화를 보다가 또 다른 혼란을 겪는다. 어린 주인공은 엄마를 찾아 낯선 나라를 여행하다가, 어른들이 칠면조를 사냥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집단으로 짐승을 몰아 죽이는 모습이 잔인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러나 얼마 뒤, 춥고 깜깜하고 배고픈 상황에 처한 주인공은 길가에 쓰러진다. 하지만 곧 좋은 노부부를 만나 따뜻한 스프를 얻어먹고 살아난다. 그 스프가 아마도 칠면조로 만든 스프였던 것 같다. 방금 전까지 잔인해 보였던 그 칠면조의 죽음이, 이번에는 생명을 살리는 따뜻함이 된다. 집단으로 사냥하면 잔인하고, 한 마리 잡아 끓이면 따뜻해지는 것인가? 이 혼란은 인디언의 사냥 이야기를 접하며 조금은 풀렸다. 그들은 필요한 만큼만 잡는다고 한다. 딱 먹을 만큼만 사냥하고, 팔기 위해 더 죽이지 않고, 재미로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냥도 돈도 생존을 위해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 충족이 되면 멈출 줄 아는 절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늘 절제가 승리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정도를 지키려 했던 인디언들은 탐욕스러운 세력에 의해 정복당했고,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정의와 절제가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나 한국의 정치판을 보면 돌아가신 탱크 선생님이 떠오른다. 같은 잘못을 상대편이 저지르면 정의의 칼날을 들이대고, 똑같은 행동을 자기 편이 하면 한없이 관대해진다. 편이 바뀌면 정의가 바뀐다. 고국의 판사들이 최근 계엄령을 놓고 전직 대통령과 국무총리에게 내린 엇갈린 판결을 보며 어른이 되어 세상을 판단하는 자리에서 내리는 공적인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낀다. 법과 정의의 이름 앞에서는 자기 편을 잠시 잊어야 한다. 정의는 내 편이나 자신의 소영웅주의를 지키는 일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정의는 내가 속한 편을 넘어서고, 내 인기를 생각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매일 매일의 인간사는 그냥 무조건 내 편인 누군가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고객 중에는 내가 “우리 회사”라는 표현으로 고객의 회사를 불러 주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자기 편이 되어 준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어머니는 평생 호텔에서 청소 일을 하시며 다섯 자녀를 키우셨고, 어렵게 평생을 모은 돈으로 경기도 외곽에 작은 아파트를 장만하셨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6층까지 짐을 들고 올라갈 때면 나는 힘들다고 투덜거렸다. 지금은 돈을 내고 일부러 운동을 하러 다니면서, 그때 무조건 어머니의 편이 되어드리지 못했던 아들이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셨다면, 아무리 술을 먹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고 꾸짖으셔도 오늘만은 무조건 그 분의 편이 되어드리고 싶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활력 사냥 이야기 탱크 선생님 상대편 선수
2026.02.26. 13:17
김민석 총리가 어제(26일) 열린 ‘가짜뉴스 대응 관련 관계장관 회의’에서 가짜뉴스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고 발본색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정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행정안전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는 물론 검찰·경찰까지 동원하겠다고 했다. 김 총리는 “각종 선거나 경선을 앞두고 정부 정책을 호도하고, 정부 인사를 허위 비방하며, 특정 후보자나 정당을 음해하는 가짜뉴스와 흑색선전은 민주주의의 공적(公敵)”이라고 규정했다. 진영 양극화에 편승해 돈벌이를 노린 극우·극좌 유튜버들의 가짜뉴스 장사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까지 동원한 딥페이크 등으로 사실을 교묘하게 날조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행위는 처벌받아 마땅하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런 조짐들이 있으니 정부가 방관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과유불급의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대응의 방향에 편향이 있어서도 안 된다. 만일 온당하게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에도 가짜뉴스 꼬리표를 달아 재갈을 물리고 여론 통제로 이어진다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입틀막’이 될 수 있다. 선거를 맞아 정부·여당의 정책에 대해 국민이 찬반 입장을 분출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유독 권력에 불리한 목소리를 겨냥해 ‘정책 호도’나 ‘허위 비방’이라고 엄벌한다면 정상적 여론까지 위축시켜 민심을 왜곡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은 선거 관련 허위사실 유포 행위를 처벌하겠다며 국민투표법 개정안에 ‘국민투표자유방해죄’ 조항을 넣어 선거관리위원회에 과도한 권한을 주려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말에는 허위·조작 정보를 유통할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해 ‘입틀막법’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기도 했다. 정부와 여당은 행정력과 입법권을 무기 삼아 자신들에 유리한 억지 여론을 만들려는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헌법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는 자세를 보일 때 진정으로 민심의 지지를 받는 법이다.
2026.02.26. 8:24
더불어민주당이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위헌성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법왜곡죄’ 수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판검사가 사실을 조작하거나 법을 왜곡해 적용하는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에 대해선 위헌 지적이 잇따랐다. ‘법 왜곡’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이고 모호해 헌법이 정한 명확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수사나 재판에 불만을 품은 이들의 고소·고발이 난무할 수 있고, 처벌을 우려해 소신 있는 수사나 재판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정치 권력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법 결정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결국 친여 성향의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까지 수정을 요구하자 여당이 ‘땜질 수정’을 했지만 법관의 독립성을 훼손할 우려 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해당 법안에 반대하는 국민의힘의 ‘24시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강제 종료하고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이후 곧바로 대법원에서 확정된 판결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가 심판할 수 있도록 한 재판소원법을 상정했다. ‘조희대 대법원’ 힘 빼기를 통한 사법 장악이라는 의도가 담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 법안도 같은 방식으로 단독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사법체계를 뒤흔들 수 있는 법안을 여당이 밀어붙이데도 야당인 국민의힘의 대응은 미지근하다. 헌법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란 우려까지 제기된 법안인 만큼 필리버스터를 했으니 할 만큼 했다는 식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라 법적 대응과 토론회 개최 등의 여론전을 통해 막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어제 본회의장에서 한 의원이 법왜곡죄 반대 토론을 하는 동안 의석에 앉아 있는 야당 의원은 단 두 명뿐이었다. 재판소원법이 상정될 때 야당 의석에는 빈 자리가 많았다. 여당의 입법 폭주는 야당의 무기력한 상황을 틈타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질주하고 있는 양상이다. 야당은 ‘절윤’ 등의 노선 문제로 자중지란에 빠져 여론을 설득할 능력도, 여당과의 치밀한 협상으로 성과를 낼 준비도 돼 있지 않아 보인다. 여당의 입법 독주도 문제지만, 견제 기능을 상실한 야당은 민주주의의 또 다른 위기다.
2026.02.26. 8:22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제(25일) 막을 내린 노동당 9차 대회에서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을 두고 “서툰 기만극”이라며 “가장 적대적인 실체인 대한민국과 상론할 일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나아가 핵보유국인 자신들의 안보를 해치는 행위를 할 경우 “한국의 완전 붕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핵 공격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앞서 당 대회 직전엔 대남용 무기인 600㎜ 방사포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그간 “바늘구멍이라도 뚫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남북대화 재개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후 정부는 9·19 군사합의 복원과 한·미 연합훈련 축소 실시 등 선제적으로 양보했지만, 김 위원장의 언사를 보면 먹히지 않는 모양새다. 비핵화 등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해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하는 것은 모든 정부의 책무다. 그러나 정책 추진에 있어 북한의 전략적 입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 정부가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을 ‘피스 메이커’, 한국을 ‘페이스 메이커’로 규정한 것은 그런 점에서 냉철한 현실 인식에 따른 실용적 접근이었다. 실제 김 위원장은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미국과의 대화 용의는 언급했다. 그럼에도 최근 정부 일각에서 대북 유화정책을 밀어붙이고,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갈등이 여과 없이 노출되고 있는 것은 정부의 기존 방침과 배치되는 일이다. ‘말 따로, 행동 따로’는 미국에 불신을 심어주고, 한·미의 대북 협상력만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북한도 우리의 선의를 평화의 신호가 아니라 약점으로 간주할 뿐이다. 특히 대북정책 추진에 있어 국민적 공감대가 필수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을 핵으로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는 상황에서 대북 유화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를 과연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는가. 이 대통령은 어제 ‘한술 밥에 배 부르랴’는 옛말을 인용하면서 “대화와 협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신뢰를 쌓으면 결국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 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신뢰 구축을 위해 중요한 건 투입된 시간이나 노력의 정도가 아니라 올바른 정책 방향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2026.02.26. 8:20
어느 정도 예상된 판결이지만 생각보다 파장이 크다. 미 대법원이 2월 20일 상호관세가 법률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그 근거인 1977년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관세 부과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로써 상호관세는 곧바로 사라졌다. 10개월만이다. 그럼 지난 11월 14일 한미 ‘전략적 투자합의’는 이제 어떻게 되나? 상호관세가 이 합의의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주춧돌이 사라지며 그 구조적 안전성에 자연스레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위법’ 상호관세 사라졌지만 투자합의 속 여전히 연결고리 기본 틀, 진행 유지하더라도 변화 반영해 조정, 정리는 필요 지난 해 어렵사리 합의에 이른 만큼 이를 중단하거나 되돌린다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최소한 지금은 가능성 있는 대안이라 보기 어렵다. 투자합의는 현재 양국 관계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이 축을 흔들면 경제, 금융, 안보, 원자력 등 다른 쪽 도미노들이 순차적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불확실성에도 불구, 일단 투자합의의 기본틀을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게 현실적인 선택지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닥을 잡아도 문제가 있다. 한미 투자합의에 ‘상호관세’ 연결고리가 몇 군데 있기 때문이다. 상호관세가 없어졌는데 연결고리는 계속 놓아 두면 어떻게 되나. 정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금 이렇게 쓰여 있다. “2025년 7월 30일 양국 합의를 충실히 이행”. 한미 투자합의 첫 머리에 나오는 내용이다. ‘7월 30일 합의’의 핵심이 상호관세다. 상호관세가 무효가 된 마당에 이제 이런 구체적 서술은 헷갈린다. “한국이 투자를 충실히 이행하는 동안 미국은 조인트 팩트시트에 담긴 약속을 준수”. 투자합의 중간 정도에 나온다. 우리 투자 이행과 미국의 ‘조인트 팩트시트 약속’ 이행을 주고받는 문구다. 그런데 ‘조인트 팩트시트 약속’의 골자가 역시 상호관세다. 실제 최근 우리 투자를 채근하고자 빼든 칼도 상호관세 25% 원상 복귀였다. 이제 상호관세가 사라지며 조인트 팩트시트 속 미측 약속도 그 만큼 사라졌다. 해서 이 문구도 이젠 아귀가 어긋나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런 몇 가지 부분들에 대한 정리, 조정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일종의 업데이트 작업이랄까. 상호관세가 위법으로 확정됐는데 그대로 묻어 두고 간다면 양측 모두에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 더구나 이 합의는 10년을 내다 본다. 지금 넘어가도 나중에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얽히며 이를 끄집어 낼 여지도 다분하다. 명확한 정리가 낫다. 왜 이렇게 되었나? ‘주고받기’를 자세히 써 두었는데 한 쪽이 ‘주는 게’ 갑자기 사라진 탓이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기본틀을 유지하더라도 이제 ‘일반화’된 약속으로 바꿔야 한다. 상호관세 이음새들은 빼고, 양국 국익을 위한 전반적 협력 추진 차원에서 투자가 이루어진다는 취지가 그 자리에 들어가는게 적절하다. 게다가 한미 투자합의 끝부분엔 “양국 동의로 수정할 수 있다”는 문구도 이미 있다. 나아가 “국내법 변경 시 상대방에 통보”하도록 쓰여 있기도 하다. IEEPA는 그대로지만 그 해석과 적용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으니 “국내법 변경”에 버금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필요시 양측이 적절한 수정을 살피는 건 이미 예정된 수순이기도 하다. 대법원 판결 후 미 정부는 곧바로 ‘글로벌 관세’ 15%를 발표했다. IEEPA가 아닌 다른 법률(통상법 122조)이다. 그런데 이 관세는 150일 간 가능하다. 상호관세처럼 언제까지나 부과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애초에 50년전 IEEPA로 방향을 튼 것도 이런 제약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어쨌든 글로벌 관세는 상호관세와 다르고, 작년 논의 대상도 아니었다. 둘 다 15%라고 똑같다고 볼 순 없다. 새 관세도 언급된다. 무역확장법 232조, 통상법 301조, 201조가 오르내린다. 가능하다. 그런데 이 관세들은 정해진 절차가 있다. 한껏 줄여도 공고, 조사,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판정에 적어도 3~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그럼 빨라도 초여름이다. 더구나 여기엔 개별 품목별, 국가별 조사를 해야 한다. 복잡하다. 한번에 모든 국가를 판넬에 적고 서로 다른 숫자를 쓴 IEEPA와 사뭇 다르다. 역시 IEEPA로 간 이유다. 요컨대 이들 관세와 상호관세도 서로 성격이 다르다. 이렇듯 상호관세는 여러 면에서 독특했다. 이게 갑자기 사라졌으니 큰 변화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이를 반영하는 문서 작업이 따라야 한다. 번거롭지만 안전하다. 혹시라도 그간 투자 논의에서 확인된 새로운 사항들이 있다면 차제에 업데이트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러 번 확인된 대로 한미 투자합의는 ‘조약’이 아니다. 단지 정부간 합의 문서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서로의 입장만 확인된다면, 그리고 본질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현행화’ 작업에 그렇게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지만 종합적 양국 국익 조율의 결과인 한미 투자합의 기본틀과 진행은 일단 유지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상황 변화를 반영한 조정 내지 정리 작업은 필요하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6.02.26. 8:18
요즘 이재명 대통령이 집값 못지않게 집요하게 챙기는 게 있다. 물가다. 서민들의 삶을 팍팍하게 하는 품목을 찍어 담합이 의심스럽다고 SNS에서 직격한다. 생리대, 설탕, 밀가루, 교복이 대통령의 레이더에 걸렸다. “공권력을 총동원해 시정하라”는 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바쁘게 움직였다. 이달에만 담합 2건(설탕, 밀가루)의 조사 결과를 내놨다. 담합 벌주려 정부가 가격 결정? 또 다른 시장 왜곡의 출발점 암 잡으려다 환자까지 잡아서야 담합은 대통령 말마따나 시장경제의 암적 존재다. 제당·제분 업체의 담합으로 인한 1차 피해는 제빵사나 음료 제조사가 보지만 이들 역시 손해볼 장사를 하진 않는다. 그래서 담합의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피해자는 빵·음료를 더 비싸게 구입해야 했던, 혹은 값이 비싸져 구매를 포기해야 했던 소비자들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소비자가 피해를 배상받을 길은 없다. 대신 공정위가 담합 관련 매출의 최대 20%까지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한다. 주권자의 효능감과 정책의 성과를 중시하는 이 대통령은 공정위에 더 강력한 방망이를 주문하고 있다. ‘가격 재결정 명령’을 쓰라는 지시다. 적용 조건이 까다로운 데다 담합 조사 과정에서 업체들이 선제적으로 가격을 인하하는 바람에 공정위가 20년간 쓰지 않았던 칼이다. 공정위 시정조치 운영지침에 따르면 가격 재결정 명령이 떨어지면 담합 기업들은 각자 ‘독자적으로’ 새 가격표를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얼마쯤 값을 내려야 바람직한지에 대한 규정은 없다. 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가격은 정부가 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담합 같은 시장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나쁜 짓을 한 기업이어도 새 가격표는 스스로 정하게 한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이 지침을 고쳐서라도 명시적인 가격 개입을 준비 중이다. 지난 24일 생중계된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좋게 말할 때 해라’ 이러지 말고. 얼마까지 얼마 이하로 (가격을) 내려라, 최소한 이 이하로 해라 이렇게 해야 한다”며 “정부의 명령을 안 따를 수 없게 제재 방안을 강구해야 행정의 권위가 선다”고 했다. 공정위 직원을 대폭 늘려 담합을 확실히 잡으라는 당부도 함께. 그러나 정부가 시장 가격을 직접 결정하는 건 선을 넘는 일이다. 그러는 순간 시장의 자원 배분은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암덩어리(담합 기업)를 잡으려다 환자(시장경제)의 면역력까지 망가뜨려선 안 된단 얘기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담합을 하지 않은 경우의 적정 가격이 얼마였을지 정부가 계산할 수 있을까. ‘5%로는 부족하고 10%는 깎아야 한다’는 어림수 계산으로 벌을 줬다간 기업과 주주의 반발에 부닥칠 공산이 크다. 정부가 어렵게 계산해도 현재의 환율·인건비·이윤율 등은 새 가격표에 어느 정도 반영할 건가. 또 기업들은 그 가격을 얼마간 유지해야 하나. 이 모든 걸 정부가 정해줄 건가. 담합이나 일삼는 기업들을 걱정할 마음은 전혀 없다. 정부의 개입이 지나치면 결국 기업은 다른 방식으로 이익을 만회하려 할 게 뻔해서 하는 소리다. 그러면 소비자든, 노동자든, 하청업체든 누군가는 당장은 드러나지 않는 피해를 보게 된다. 기업을 혼내더라도 시장경제의 원칙은 지켜야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을 수 있다. 덧붙여 대통령의 품목 캐스팅에 의존한 문제 해결 방법의 한계도 생각해 볼 문제다. 기업들이 당분간 눈치는 보겠지만 언제까지 어디까지 대통령이 다 챙길 것인가. 사실 기업의 불법을 교정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금융 치료’다. 담합이나 개인정보 유출처럼 대규모 소비자가 피해를 본 사례가 늘수록 ‘미국식 집단소송’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진다. 기업을 만신창이로 만들 수 있는 집단소송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무색해지는 것은 다 부도덕한 기업들이 초래한 일이다. 기업의 자정 노력과 함께 시장의 건전한 경쟁을 회복시키는 정부의 현명한 역할을 기대한다. 박수련([email protected])
2026.02.26. 8:16
AI 혁명과 신(新)러다이트의 위협을 넘는 국가 전략 인공지능(AI) 열풍이 거세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AI 발전을 억제해야 하느냐는 논쟁이 활발했지만, 이제 세계는 거대한 AI 인프라 투자와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알파벳·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 등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5대 AI 빅테크(하이퍼 스케일러)의 올해 자본 지출 계획만 56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세계 30위권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기술 충격 극복하려면 사회 시스템의 빠른 진화와 적응 수반돼야 러다이트 이후 영국, 복지 확충과 규제 철폐로 새 산업·일자리 키워 노동의 유연성을 높이되, 탈락자 재교육과 사회 안전망은 두텁게 노동자의 암묵지를 자본이 가져갈 수도…조세 제도 선제적 개편을 AI의 영역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생성형 AI를 넘어, 스스로 판단하여 연속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트 AI’가 등장했고, 최근에는 제조 현장에 투입되는 ‘피지컬 AI’로 확장되고 있다. 올해 소비자가전쇼(CES)에서 공개된 휴머노이드 로봇은 현대차 노조의 반발로 이어지며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일부에서는 이를 ‘노-로(노동자와 로봇) 갈등’의 시작이나 19세기 러다이트 운동의 재현으로 보기도 한다. 정말 AI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가 온 것일까. 미래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변화가 끝난 이후까지 대비를 미룰 수도 없다. 기술 발전의 궤적을 돌아보며, 우리 사회가 어떤 준비에 나서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AI, 인간 고유 영역을 대체 혹은 보완 기술은 인간이 일하는 방식과 상호작용하며 발전해 왔다. 경제학자 브래드퍼드 들롱(Bradford DeLong)은 인간이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을 팔다리(물리적 힘), 손가락(정밀 조립), 입(정보 전달과 오락), 두뇌(계산과 통제), 정신(창의력과 문제 해결), 미소(즐거움과 교감)의 여섯 가지로 분류했다. 기술의 발전은 이 가운데 일부를 대체하거나 보완해 왔다. 굴착기의 등장은 삽을 든 인부의 수요를 줄였지만, 운전자에게는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가져다주었다. 팔다리나 손가락의 노동은 기계가, 입의 역할은 통신과 미디어가, 두뇌는 컴퓨터가 대체 또는 보완하였다. 정신과 미소만큼은 인간만의 고유 영역이라 믿었으나, AI는 이 경계마저 흔들고 있다. 인간 못지않은 추론 능력을 발휘하고, 미소와 공감 능력마저 모방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AI 역시 ‘대체’와 ‘보완’의 두 경로를 따를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은행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의 약 절반이 AI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그중 절반은 AI에 밀려나는 ‘대체 압력’에 직면할 것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AI를 도구로 생산성과 소득이 높아지는 ‘보완 효과’를 누릴 것이다. AI가 바꿀 직업과 노동의 운명 어떤 직업이 소멸하고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 것인가. 노동경제학자들은 직업을 구성하는 ‘직무(Task)’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AI는 유형화하기 쉬우면서 시간과 비용이 드는 초벌 번역, 기초 코딩, 데이터 정리, 계약서 검토와 같은 업무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직무가 주로 이런 일들로 채워져 있다면 위험이 크다. 반면, 다양한 직무 중에도 AI가 하기 힘든 복합적 판단이나 역할이 포함되어 있다면 AI는 든든한 무기가 된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도입 이전에 은행의 창구 직원은 대부분 시간을 단순 출납업무에 사용했다. 경제학자 제임스 베센(James Bessen)에 따르면 ATM이 도입된 후에도 은행 직원의 고용은 전혀 줄지 않았는데, 남는 시간을 고객 상담, 대출 설계와 자산 관리에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업무시간의 구성보다는 직무의 특성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AI가 주니어 수준의 업무를 주로 대신하면서 청년들이 숙련도를 높일 ‘경험의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스탠퍼드 대학의 최근 연구에서는 미국에서 AI 노출도가 높은 직업군의 20대 대졸자 고용이 16%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AI의 위협이 저숙련 청년에게 집중되리라는 예상은 섣부른 측면이 있다. 여러 초기 연구는 AI의 도입으로 인해 저숙련자와 고숙련자 간의 업무능력 격차가 줄어들었다는 결과를 제시한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데이비드 오터(David Autor)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AI의 덕을 볼 고급 인력이라도 AI가 잠식하는 직무 범위가 넓어지고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수요의 급감을 겪을 수 있다고 말한다. 승자와 패자를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좀 더 근본적으로 AI가 노동과 자본의 균형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는 “우리는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라는 말로 인간의 ‘암묵지(Tacit Knowledge)’를 정의하였다. 이는 명시된 규칙만 따를 수 있는 기존의 자동화 기술이 인간의 암묵지를 대체하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하지만, AI는 데이터와 관찰을 통해 숙련공의 노하우를 스스로 학습해 낸다. 온전히 노동자가 소유했던 암묵지가 기업의 서버(자본)로 고스란히 복제될 수 있다면 노동과 자본의 대체성은 극대화될 것이다. 이는 과거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주장했던 자본 승리와 불평등 확산의 시나리오를 떠올리게 한다. 19세기 러다이트 운동의 진짜 교훈 AI 혁명이 노동자에게 적응의 고통과 불평등의 심화 같은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음은 분명하다. 이 지점에서 러다이트 운동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를 무지한 노동자들이 벌인 촌극으로 치부해선 곤란하다. 역사가에 따르면 당시 시위에 나선 숙련공들은 기계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 새롭게 도입된 기계가 누구나 다룰 수 있는 저숙련용이어서 기존 숙련공의 지위가 크게 위협받게 된 것에 반발하였다. 오랜 숙련의 가치가 위협받고,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AI 효과와도 닮은 점이 있다. 러다이트 시위는 진압되었지만,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았다. 영국 사회가 안정을 되찾은 것은 19세기 중반 복지 제도가 확충되고 불합리한 규제 철폐를 통해 새로운 산업과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된 이후였다. 기술 진보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힘으로 멈추려 한 시도는 무모했다. 하지만, 기술의 충격을 극복하려면 사회 시스템의 빠른 진화와 적응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 러다이트 운동의 진정한 교훈이다. AI 시대에 어떤 대비가 필요한가 AI는 산업 전반을 뒤바꿀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이다. 인프라 구축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어느 순간 경제 구조 전체를 급격히 재편하는 특성을 가진다. 막대한 자본이 AI 인프라 구축에 투자되고 있는 지금이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는 골든타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첫째, AI 도입을 통한 생산성 혁신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빠른 기술 발전의 흐름과 국가 간 무한경쟁 속에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역으로 보면, 나눌 수 있는 파이를 빠르게 키우는 편이 그래도 손실을 줄이거나 없앨 여지를 만든다. 둘째, 파괴적 혁신과 신시장의 창출이 가능하도록 신산업 규제는 과감히 풀면서, 데이터 재산권 등은 명확히 해야 한다. 기술로 인간의 영역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고용 증가의 돌파구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직업’을 만들어내는 시장의 역동성뿐임은 역사가 증명해 왔다. 셋째,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Flexicurity)’을 추구해야 한다. 직무 변화에 따른 인력 재배치가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노동의 유연성을 높이되, 탈락한 이들을 위한 재교육과 두터운 사회적 안전망이 동반되어야 한다. 쉽지 않다면 적어도 AI로 인한 변화에 대응한 맞춤형 제도 개선이라도 추진해야 한다. 넷째,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지식 축적 위주에서 벗어나 AI가 복제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비판적 사고력과 정서적 역량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빠른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평생학습과 단기 인증제도의 활성화 등도 필요하다. 다섯째, 조세 제도의 선제적 개편이다. 한편으로는 기업의 AI 투자를 촉진하면서도 노동에서 자본으로 부의 축이 이동하는 데 대비한 세제 개편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투자세액공제와 자본소득세 등의 구조변화, 서민과 중산층의 자산 형성 촉진 강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기존의 규제나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에 매몰되어 우물쭈물하고 있다가는 닥쳐올 충격을 맨몸으로 맞아야 할 수도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치밀하고도 대담한 전략을 빠르게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권남훈 산업연구원 원장
2026.02.26. 8:14
무신 집권기에 재상 지낸 문신 이규보 고려 말, 최영은 용맹스러운 장수, 용장(勇將)이었다. 체격이 크고 힘이 장사였으며, 전투가 벌어지면 언제나 앞장서 싸우고 후퇴하는 법이 없었다. 이성계는 덕이 있는 장수, 덕장(德將)이었다. 온화한 성품으로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군사들이 그의 부하가 되고 싶어 했다. 용장·덕장 외에도 지략에 밝은 장수, 지장(智將)이 있다. 이 셋의 우열을 가리는 일은 부질없지만, 운이 따르는 장수, 복장(福將)이 이들보다 한 수 위임은 분명하다. 앞의 셋은 노력해서 도달할 수 있지만 복장은 그렇지 않다. 하늘이 도와야 한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느 시대에 태어나서 어떤 사람들과 살아갈지는 아무도 선택하지 못한다. 그저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할 뿐, 그 성패는 시운(時運)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동명왕편』의 저자로 유명한 이규보(1168~1241)는 시운이 따르지 않은, 불운한 사람이었다. 평생 시와 술 가까이, ‘이당백’ 별명 임금 앞에서 만취, 탄핵당하기도 10대에 술에 맛 들여 급제·임용 늦어 무신 최우 천거로 공직, 뒤늦게 출세 뒷배 티 안 내고 검소한 삶 살았지만 70, 80년대 어용지식인으로 소환도 이규보는 고려 무신 집권기의 대표적인 문신이자 시인이며 문장가이다.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문장을 잘 지어 신동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누구도 소년 급제를 의심치 않았지만, 정작 그는 과거의 예비고사 격인 국자감시에 합격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16세부터 응시했으나 번번이 낙방하고 4수 끝에 겨우 합격했다. 10대부터 술 마시기를 좋아했고, 재주를 믿고 공부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꿈에 노인이 나타나 이번 시험에서 장원을 할 것이라고 알려주면서 자기가 규성(奎星, 28개 별자리 가운데 하나)이라고 했다. 이 꿈을 믿고 ‘규성이 알렸다’라는 뜻으로 ‘규보(奎報)’라고 개명했는데, 과연 장원으로 합격했다는 것이다. 뒤에 만든 이야기겠지만, 합격을 바라는 간절함만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국자감시의 장원일 뿐이었고, 바로 이어진 예부시에는 거의 꼴찌로 급제했다. 재수를 하려 했으나 아버지의 꾸짖음과 주변의 만류로 어쩔 수 없이 홍패(紅牌, 과거 합격증)를 받아들었다. 청년의 천재성 드러난 ‘동명왕편’ 어렵사리 급제했지만 새로운 고생이 시작되었다. 고려의 과거는 관리가 될 자격을 줄 뿐이고, 급제자는 관직 임명이라는 또 하나의 관문을 넘어야 했다. 그런데 이규보가 급제했을 때는 무신정변이 일어난 지 20년이 지난 뒤로, 무신들이 활개 치는 세상에서 문신으로 입신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규보는 급제하고도 오랫동안 관직에 임명되지 못했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으나 물려받은 재산도 없는 데다 관직도 없으니 생활고에 시달릴 것은 뻔했다. 그는 뒷날 “집에 자주 식량이 떨어져 끼니를 잇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이 고난의 시기에 동명왕의 고구려 건국을 소재로 한 대서사시, 『동명왕편』을 지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이후 잊혀가던 고구려 전통을 되살리고,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의 문화적 자부심을 드러낸, 26세 청년의 천재성이 드러난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살림이 피지는 않았다. 30세가 되던 1197년에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았다. 최충헌은 유능한 문신들을 우대하는 것으로 이전의 무식한 권력자들과 다름을 보이려 했다. 이규보도 그의 눈에 들어 관직을 얻었다. 전주 사록(司錄)이라는 미관말직이지만, 급제 후 9년 만에 얻은 첫 관직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상급자와 불화한 나머지 2년도 못 가 파직되고 말았다. 다시 2년 뒤 운문(경북 청도)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그곳에 달려갔다. 민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우고 벼슬을 얻을 속셈이었다. 하지만 정작 일이 끝나자 논공행상에서 이름이 빠졌다. 전주에서처럼 주위 사람들과 융화하지 못한 때문이었다. 그 뒤로 여전히 가난에 시달렸다.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겨우내 입던 털옷을 저당 잡히기도 했는데, 그때 신세를 한탄하면서 “술 좋아하고 절제가 없어 마시면 천 잔씩 퍼마셨고, 평소 품고 있던 말도 취하면 참지를 못해, 죄다 내뱉고 말았을 뿐 비방이 따를 줄 몰랐네. 처신이 이러하니 궁핍이 너무도 당연하지”라며 자책했다. 취해 쓴 시가 일품 이규보의 인생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가 시와 술이었다. 그는 평생 8000수의 시를 지어 고려시대 문인 중 최다작이었고, 당나라 시인 이백에 빗대 이당백(李唐白)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동시에 그는 고려의 대표적인 애주가로서 술에 관련된 일화를 수도 없이 남겼다. 10대에 이미 술맛을 알았고, 과거 급제 때 성적이 안 좋았던 것도 시험장에서 술에 취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스스로 자책했듯이 술에 취하면 할 말을 참지 못해 실수한 적도 많았고, 노년에는 임금 앞에서 하사주에 인사불성이 되어 업혀 나오는 바람에 탄핵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술에 취해 시를 짓는 취중작(醉中作) 솜씨가 일품이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규보의 이런 능력을 가장 먼저 알아준 사람은 최충헌의 아들 최우였다. 그는 아버지보다 ‘한사(寒士, 궁핍한 선비)’를 더 우대했고, 유능하지만 궁핍한 이규보에게 당연히 주목했다. 이규보를 최충헌에게 추천하면서 “이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시를 짓지 못합니다”라고 했고, 취하도록 마시고 시를 짓게 했는데 최충헌이 그 시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탄했다고 한다. 이 덕에 최충헌의 천거를 받아 처음으로 제대로 된 문관직을 얻었는데, 과거 급제 후 23년 만이었고 나이는 46세였다. 최충헌에 이어 최우가 최고 권력자가 되면서 이규보 앞에 탄탄대로가 열렸다. 출발이 늦었던 탓에 동년배보다 관직은 낮았지만 승진을 거듭했다. 게다가 1219년부터는 몽골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작성하면서 문장가로서의 능력도 발휘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최우의 그늘 아래서만 가능했다. 임금 앞에서 만취한 죄로 탄핵을 받았을 때도 최우가 무마해준 덕에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최우 정권 내부에서 벌어진 권력 투쟁에 휘말려 관직에서 쫓겨나 멀리 섬으로 유배를 가기도 했는데, 최우의 사소한 의심 때문이었다. 그러다 1231년부터 몽골의 침략이 시작되면서 이규보에게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외교문서를 쓸 사람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쟁 중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일은 칼 대신 붓을 들고 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이 일을 하기에 이규보만 한 사람이 없었다. 65세에 복직된 뒤로는, 심지어 70세에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몽골에 보내는 문서는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당연히 보상도 뒤따랐다. 관직은 계속 올라 재상이 되었고, 말년까지 최우의 보살핌을 받다가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행운아였나, 불운했나 이규보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피란 수도 강화도에서 토지도 집도 장만하지 않았으며, 가난했던 젊은 시절의 생활 태도를 평생 바꾸지 않았다. 재상이 되고서도 겨울에 땔감이 떨어지자 “여름에 얼음 없이 더위를 보냈는데 겨울에 숯 없다고 추위를 걱정하랴”라며 자위했다. 최우를 믿고 경솔하게 처신하지도 않았다. 수도 누릴 만큼 누렸으니 그만하면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규보를 불운하다고 말하는가? 그는 최충헌·최우의 지우에 힘입어 출세하고 능력도 맘껏 발휘했지만 이후 역사에서 최충헌 부자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바람에 한 일이 모두 허사가 되고 말았다. 조선시대에 조광조는 이렇게 혹평했다. “이규보는 문장에 능하기는 하나 최충헌에게 빌붙었다. 최충헌이 권력을 휘둘러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데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붙좇기에 겨를이 없었다.” 그랬다. 그는 자기를 써준 은혜에 감사할 뿐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한 번도 지적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1970, 80년대 군사정권 아래서 어용 지식인의 역사적 사례로 소환되기까지 했다. 세 살 때 일어난 무신정변이 그의 피할 수 없는 시운이었고, 부당한 권력에 봉사했다는 오명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최충헌 부자가 아니었으면 이름을 알릴 수조차 없었던 것을. 출처(出處), 즉 나가고 들어감에 있어 “도(道)가 있으면 벼슬하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논어』태백편)는 원칙이 있지만, 옛사람의 이상일 뿐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시운에서 세상에 나오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자세는 최소한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이 글을 쓰면서 김용선 교수(한림대)의 저서, 『생활인 이규보』(일조각, 2013)를 많이 참고했다. 이익주 역사학자·서울시립대 교수
2026.02.26. 8:12
토지를 우물 정(井)자로 9등분한 뒤 가운데 하나는 공동 경작해 납세하고 나머지는 각자 나눠 일구는 토지·조세제도가 정전제다. 전국시대 등문공이 나라 다스리는 일(爲國)에 관해 묻자 맹자는 “꾸준한 벌이가 있어야 바른 마음을 지킬 수 있다(有恒産者有恒心, 항산항심)”고 답한 뒤 구체적 방안으로 정전제를 내놨다. 기저에 농사짓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철학이 깔렸다. 경자유전 실현을 향한 노력은 부단했다. 중국 신나라 왕망의 왕전제, 북위와 당나라의 균전제 등이 대표적 예다. 우리는 여말선초 과전법과 정도전의 계민수전, 조선 후기 실학자 유형원의 균전론, 이익의 한전론, 정약용의 여전제 등이 있다. 17세기 일본 유학자 오규 소라이도 저서 『정담』에서 정전제 실시를 주장했다. 경자유전이라는 용어를 꼭 집어 처음 꺼낸 건 중국 쑨원이다. 토지공개념 격인 평균지권론을 주창하며 “경자유기전(耕者有其田)”을 외쳤다. 경자유전을 우리 헌법에 명문화(121조 1항)한 건 1987년 개헌 때다. 제헌헌법에선 우회적으로 설명했을 뿐, ‘법률로써 정한다’(86조)고 했다. 1949년 이승만 정부 농림부 장관 조봉암은 농지의 ‘유상 몰수 유상 분배’가 뼈대인 농지개혁법을 통해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식량 자급이 지상과제였던 시절엔 농지보전이용법(1972년)을 만들어 농지 전용을 막았다. 공업입국 기치로 이촌향도가 극심하자 농지임대차관리법(1986년)으로 해결을 모색했다. 우루과이라운드와 농산물 시장개방에는 관련 법을 모둠한 통합농지법(1994년)으로 맞섰다. 투기방지에 초점을 맞춘 개정농지법(2021년)은 LH 직원 농지 투기 사태를 계기로 마련했다. 이처럼 법과 그 집행은 시대의 필요한 바를 비춘다. 부동산 투기에 맞서 선전전에 나선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에 이어 최근 부재지주를 압박한다. 맹자는 등문공에게 항산항심뿐 아니라 이런 얘기도 했다.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한 뒤 벌주는 건 백성을 상대로 그물질하는 것이다(及陷乎罪 然後 從而刑之 是 罔民也).” 압박이 그물질(罔民)로 비치지 않을 노력이 필요하다. 장혜수([email protected])
2026.02.26. 8:10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가장 많은 메시지를 발신하는 대통령일 것 같다. 기자회견이나 담화에서나 겨우 대통령의 의중을 직접 들을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SNS 등 디지털 소통이 활발해진 시대에도 이 대통령처럼 거의 매일 발 빠르게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취임 초 국무위원들과 토론을 생중계로 공개한 이 대통령은 업무보고 때도 구체적인 사안까지 질문한다. 답변이 미진하면 추가 보고를 지시하거나 대안을 제시하기도 해 쩔쩔매는 공무원들의 모습이 전파를 탄다. 정책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에 이어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내며 쌓은 행정 경륜과 특유의 정무감각 덕분일 것이다. 부동산 대책만 해도 하루에 몇 개씩 SNS에 글을 올려 시장의 변화를 유도할 정도로 순발력이 뛰어나다. 웬만한 현안에 대해 국민이 입장을 알 수 있도록 해온 이 대통령이 민주당 의원 107명이 참여한 ‘공소취소모임’에 대해선 공개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이 모임은 이 대통령이 정치 검찰로부터 조작 기소를 당했다며 공소 취소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국회 국정조사도 추진한다. 민주당이 당내 특위로 모임을 흡수하면서 공소 취소 추진은 여당의 목표가 됐다. 대선 승리로 이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중단돼 있는데, 모든 혐의에 대해 공소가 취소될 경우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는 상당수 해소된다. 수혜자가 이 대통령 본인인데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으로 모임을 주도한 이건태 의원은 “전 국민이 투표해서 정한 국가 원수를 사법부가 발목 잡고 있는 행태는 삼권분립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공소를 취소하고 퇴임 후 다음 행정부가 필요하면 다시 기소하면 된다는 논리를 편다. 이 대통령이 현직에 있는 동안 재판이 진행되지 않는데, 사법부가 국정 운영에 어떤 차질을 빚게 한다는 것일까. SNS 활용 현안에 적극 의견 개진 재판 유죄 가능성 막으려는 여당 말리는 게 헌법 수호 책무에 맞아 모임 소속 다른 의원은 “검찰이 직권으로 공소 취소를 해야 하는데, 안 하면서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며 자신들의 조작 행위를 합리화시키려 하고 있어 입법부가 나섰다”고 했다. 관련 인물들에 대한 재판은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나중에 이 대통령의 재판이 재개됐을 때 악영향이 미칠까 우려하는 셈이다. 거대 여당 의원 107명에 이어 당 공식 조직이 이 대통령 퇴임 후 열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올까 봐 사전에 움직이고 있는 게 된다. 윤석열 정부 때 견제를 받았던 이 대통령으로선 억울한 점이 있을 수 있다. 검찰의 중립성은 도마에 올랐었고 역대 정부에서 정치적 보복 수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입법부가 공소 취소를 추동하는 것은 소추와 재판 과정에 개입하는 구도로 이어져 삼권분립의 균형을 흔들 위험이 크다. 사법부가 유무죄를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법부 다수가 수사·기소의 정당성을 정치적으로 선포해버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공소 취소 요구가 관철되는 선례가 만들어지면 향후 권력을 잡은 다수 여당이 정치적으로 불리한 수사를 '조작 기소'로 규정하고 압박하는 양상이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다. 검찰권 남용에 대한 제도 개혁을 하는 것과 이를 현직 대통령의 기소 취소로 연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굳이 말리지 않겠다”는 신호로 읽혀진다. 이 대통령과 관련된 다른 인물들의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고 있다. 검찰의 조작 기소가 사실이라면 향후 재판에서 증거와 논리로 다투면 될 일이다. 자신 관련 사건에 대한 여당의 움직임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헌법수호 의무를 지닌 대통령의 역할일 것이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다. 야당도 취약하니 여권은 거리낄 게 없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민심은 이런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최근 여론을 파악하러 대전에서 만난 70대 택시기사의 반응을 전한다. 그는 자민련 시절을 빼고 줄곧 민주당만 지지해왔다고 했다. “이 대통령 인기 좋죠. 잘못하는 게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공소취소모임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지. 알 만한 사람들이 왜 그러나 몰라. 말이 안 되는 소리잖아요. 누가 봐도 '이재명 구하기'로 보이지. 더구나 송영길 사건도 상고 포기해버리고…. 검찰이 그동안 워낙 잘못했으니 잠잠하지, 계속 이런 식이면 지지자인 나부터도 민주당 안 되지. 근데 이 대통령이 왜 잠잠한지 모르겠어. 지지율이 높다고 해도 이런 게 계속 쌓이면 누가 지지하나요? 아무튼 이걸로 대통령은 한 수 깎였어.” 김성탁([email protected])
2026.02.26. 8:08
설 명절, 여유로운 시간 덕에 평소 잘 보지 않던 케이블 방송을 보게 됐다. 채널을 돌릴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홈쇼핑 광고. 화면 속은 온통 알부민 영양제 소개로 가득했다. 나이가 들수록 알부민 수치가 떨어지니 보충해야 한다며 고농도 액상 제품 구매를 권유하고 있었다. 알부민은 우리 몸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대표적인 기능은 혈관 속 수분을 붙잡아 두는 일이다. 알부민이 부족하면 수분이 혈관 밖으로 새어 나가 부종을 일으키거나 복수가 차기도 한다. 지방산·호르몬·약물 등을 필요한 곳까지 운반하는 택배 기사 역할도 한다. 각종 노폐물을 간으로 실어 날라 해독을 돕기도 한다. 이처럼 알부민은 수분 균형 유지부터 물질 운반, 해독 보조까지 담당하는 우리 몸의 핵심 단백질이다. 경구 섭취, 만능인 것처럼 선전 먹는다고 알부민 수치 오를까 삶은 달걀 먹는 게 오히려 효과적 홈쇼핑 광고의 화려한 미사여구를 믿어도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알부민은 소화 효소에 의해 아미노산이나 소형 펩타이드로 잘게 분해된 뒤에야 체내에 흡수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렇게 흡수된 아미노산은 알부민 합성에만 쓰이진 않는다. 몸의 우선순위에 따라 근육·효소·호르몬을 포함한 수만 가지 단백질 합성에 두루 쓰인다. 먹는 알부민은 양질의 단백질을 보충하는 정도의 효과일 뿐, 혈중 알부민 농도를 직접 끌어 올리는 해결책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알부민을 만능 영양제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알부민은 간에서 합성되는 단백질로, 간경화처럼 간 기능이 극도로 저하된 환자는 이를 충분히 만들지 못해 복수가 잘 생긴다. 이를 조절할 목적으로 알부민 수액을 처방하는데 이 장면을 지켜보며 일반인들 사이에 알부민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는 특별한 영양소라는 인식이 퍼진 듯하다. 알부민은 마법의 영양소가 아니다. 간이나 신장에 심각한 질환이 없는 한 알부민이 부족해지는 일은 거의 없으며 노화에 따른 미세한 수치 감소 역시 그 자체로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지금의 열풍은 정맥 주사와 경구 섭취의 본질적인 차이를 간과한 오해다. 중요한 사실은 알부민 수액은 의약품이고 먹는 알부민은 식품이라는 점이다. 많은 소비자가 이를 기능성이 입증된 건강기능식품으로 오인하고 있다. 화려한 광고 뒤에 숨은 씁쓸한 단면이다. 알부민 광고를 접한 다음 날 우연히 배우 임현식씨의 일상을 담은 프로그램을 보았다. 아내와 사별하고 반려견마저 떠나보낸 그의 뒷모습에선 짙은 외로움이 묻어났다. 홀로 선 부엌에서 그는 아침 식사를 위해 달걀 5개를 삶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저게 정답인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달걀흰자는 알부민 합성에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을 고루 갖춘 최상의 원료다. 실제로 시중에 판매되는 알부민 제품 원재료를 살펴보면 난백분말(달걀흰자)이나 농축유청단백인 경우가 많다. 결국 비싼 알부민 제품보다 달걀 같은 양질의 단백질을 꾸준히 섭취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다.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 이와 비슷한 성분 중심의 환상이 꽤 많다. 콜라젠·엘라스틴·콘드로이틴까지 그 면면도 화려하다. 대중은 이런 성분이 복용 후 해당 부위로 곧장 가 자리 잡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이 또한 소화·흡수의 기본 원리를 간과한 착각이다. 특정 성분 섭취가 특정 부위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맹신은 과학보다 마케팅이 만들어낸 달콤한 착각일 뿐이다. 이런 광고에는 신뢰도를 높일 목적으로 이른바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함께 제품을 개발했다거나 자문을 맡았다는 명목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내가 알부민 광고를 유심히 보게 된 계기는 한 기자가 대화방에 올린 이런 전문가 비판 글이었다. 내가 그 글에 ‘전문가로서 책임을 저버린 상업적 행위’라는 댓글을 달자 다른 지인은 곧장 ‘대중의 신뢰를 기만한 처사’라며 일갈했다. 우리는 정보의 비대칭이 과거보다 많이 해소된 시대에 살고 있다. 조금만 사실관계를 확인해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을 모른 채 지나치기엔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이 크다. 냉장고 속 달걀이 수만 원짜리 액상 영양제보다 못할 이유는 없다. 건강을 지키는 가장 현명한 첫걸음은 광고를 끄고 냉장고 문을 여는 것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2026.02.26. 8:06
AI 혁명의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과정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러한 극도의 불확실성은 최근 미국 증시의 움직임에서 잘 드러난다. 주가지수만 보면 매우 평온해 보이지만, 시장 내부를 들여다보면 업종별 주가 흐름이 뚜렷하게 엇갈리는 옥석 가리기가 진행 중이다. 그 중심에는 소프트웨어 기업의 부진이 자리 잡고 있다. 소프트웨어 기업 ETF인 IGV는 올해 들어 약 27% 하락하며 투자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AI를 활용한 자동화와 인건비 절감의 직접적인 수혜주로 꼽혔으나, 이제는 생성형 AI가 기존 소프트웨어 사업을 ‘강화’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대체’할 수 있다는 공포가 퍼지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소프트웨어 기업의 부진을 메우고 있는 주체가 ‘올드 이코노미’ 기업이라는 점이다. 산업재·에너지·소재처럼 대규모 설비투자를 해야 하는 자본 집약적인 전통 산업이 강세를 보이면서 대표적으로 산업재 ETF인 XLI가 올해 약 13% 상승했다. 사실 이들 기업은 오랫동안 시장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비켜나 있었다. 사업은 안정적이지만 성장 속도가 느리고 경기 변동에 민감하다는 이유로, 혁신적이고 빠르게 확장하는 기술 기업과 비교되며 ‘지루한’ 투자 대상으로 여겨졌다. 올드 이코노미의 부활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 거시경제 환경의 변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저금리·저물가 환경은 기술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먼 미래의 현금흐름이 가치평가에서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기술 기업은 자본 비용이 낮을수록 유리하게 평가받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물가가 오르고 금리가 상승하면서 계산법이 달라졌다. 먼 미래의 성장보다 눈앞의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더 중요해지고, 물가 상승 환경에서 올드 이코노미 기업의 가격 결정력도 회복되고 있다. 둘째, AI 혁명은 생각보다 ‘물리적’이다. 데이터 센터, 전력망, 산업 장비, 금속 자원 등 AI 확장의 기반이 되는 영역에서 올드 이코노미 기업들이 필수 공급자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무형의 디지털 자산이 아닌 물리적 자산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AI가 쉽게 대체하기 어렵다. AI는 거대한 기회를 열고 있지만, 동시에 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도 키우고 있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기대와 공포가 반복될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투자자는 특정 테마에만 집중하기보다 충격을 흡수할 방어벽을 갖출 필요가 있다. 안정적 현금흐름과 물리적 자산을 보유한 올드 이코노미 기업은 디지털 중심 포트폴리오의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 최정혁 한양사이버대학교 경제금융자산관리학과 교수
2026.02.26. 8:04
고대 이집트 문명은 기원전 3100년경에 시작된다. 도시, 문자, 사회 계층화, 공공건축물, 장거리 교역 등 일반적인 문명의 요소들은 이보다 조금 더 이른 시기에 등장했지만 이집트 문명의 경우 나르메르(사진)가 이집트를 최초로 통일하는 시점을 그 시작으로 삼는다. 이때부터 이집트 문명은 3000년가량 지속되어 클레오파트라 7세와 안토니우스의 연합함대가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의 로마 함대에게 패배하고 이집트가 로마 제국의 속주로 전락하는 기원전 30년 무렵에야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집트에서 독립 왕국이 사라진 이후에도 고대 이집트 문화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재생산됐다. 고대 이집트 문명의 문화적 재생산이 끝나게 되는 것은 대략 4세기 말~5세기 초의 일이다. 그 계기는 로마 제국에 의한 기독교 국교화였다. 요컨대 고대 이집트 문명은 문화적으로는 4000년 이상 지속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오랜 기간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문화의 핵심적인 요소들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성을 잘 유지하면서 이집트인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사용됐다. 이를테면 기원전 3000년경에 사용되던 모티프들이 이집트 문명이 종말을 고한 기원전 30년 무렵에는 물론이고, 서기가 시작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거의 같은 모양새와 의미로 사용된 예들이 무척 많다. 이와 같은 고대 이집트 문명의 문화적 내구성은 안정적인 자연조건과 그를 바탕으로 한 충분한 식량 생산, 생계의 안정성, 그리고 ‘세계가 창조될 때 이집트만큼은 완벽하게 창조되었다’고 믿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자신감과 이 모든 조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한 정치체계의 탁월성 덕분에 가능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은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꾼다. 이들에게 고대 이집트 문명은 중요한 참고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
2026.02.26. 8:02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2.26.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