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알리 하메네이 시대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으로 37년 만에 막을 내렸다. 올 초 미국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에 이은 이번 군사작전은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자국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제법적 절차나 의회 보고조차 생략한 채 언제든 군사적 개입을 불사하겠다는 ‘미국 우선주의’의 극단을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테러 지원국 수장 제거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는 지금 법치와 규범이 사라진 자리에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냉혹한 국제 질서의 민낯을 마주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어제 3·1절 기념사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여 년간 확립됐던 국제규범은 힘의 논리에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안보와 통상 등 모든 면에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입장에서 예측 불가능한 미국의 독단적 행동과 이에 따른 국제 질서의 붕괴는 안보와 번영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실존적 공포다. 이란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힘들다. 당장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세계 원유 수송의 혈맥인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한다고 발표했다. 또 이란 내 강경파들이 결집해 대미 항전에 나설 경우 군사력으로는 미국에 열세지만 중동·유럽 내 미국 목표물을 겨냥한 비정규전과 테러 등 사태는 장기적인 소모전으로 흐를 수 있다. 과거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종결하는 과정에서 지불해야 했던 막대한 인명 피해와 천문학적인 비용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시 전비 부담과 중동발 에너지 위기는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며 우리 경제에도 적지않은 타격을 입혔다. 우리 정부는 이 거대한 폭풍이 한반도에 미칠 파장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이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인 만큼 유가 급등과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에너지 수급 상황을 재점검하고 비상 비축유 방출 등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하며, 외환시장의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한 모니터링 체계를 한층 강화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 리스크 관리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발(發) ‘참수작전’을 지켜본 북한의 대응이다. 정권의 물리적 종말을 확인한 북한이 생존을 위해 핵 무력 고도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이를 체제 수호의 유일한 보루로 삼아 한층 공세적인 군사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이란에서 보여준 ‘힘에 의한 해결’ 방식이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주어 도발의 명분이 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고도의 외교력이 절실하다. 한·미 동맹의 틀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되, 우리의 안보와 경제가 강대국의 독단적 결단에 휘둘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격랑의 시대, 실리에 기반한 냉철한 외교와 생존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2026.03.01. 8:28
12·3 비상계엄을 촉발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부정선거론을 대표하는 유튜버 전한길씨 등과 이에 맞서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지난주 장시간 토론을 벌였다. 7시간가량 유튜브 생중계 속에 진행된 토론은 동시 시청자가 32만 명에 달하고 조회 수가 500만 회를 넘었다. 안타깝게도 부정선거론에 빠져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토론에서 부정선거를 입증할 만한 아무런 증거도 제시되지 못했다. 전씨 등 부정선거론자들은 선거관리위원회 서버 조작, 수개표 왜곡, 중국 개입 등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구체적이거나 검증 가능한 증거는 내놓지 못했다. 전씨 측의 한 참가자는 “일종의 극비 프로젝트를 통해 25년에 걸쳐 부정선거 제도가 구축됐다”는,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주장까지 폈다. 이 토론에 대한 제1 야당의 반응도 안타깝기로는 매한가지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부정선거 토론 시청자 수가 유권자의 15%에 달한다”며 공정한 선거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그는 “이번 토론을 통해 선거시스템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이뤄졌다”며 6월 지방선거에서 선거 감시를 위해 당 차원의 TF를 꾸리겠다고 밝혔다. 21대 총선 관련 선거 소송 126건 중 인용 사례가 한 건도 없는 상황임을 모를 리 없는 야당 대표가 이런 발언을 한 것은 정당 지도자로서의 책임 있는 태도라 보기 어렵다. 이러니 개혁신당 측이 “진짜 문제는 장 대표”라며 “음모론이 만든 불신을 정치적 연료로 쓰겠다는 계산”이라고 비판하는 것 아닌가. 장 대표는 부정선거 음모론과 ‘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세력을 기반으로 당 대표 자리에 오른 뒤 여전히 극단적 세력과 결별하지 못하고 있다. 전씨는 “이런 장 대표를 기다렸다. 고맙다”고 반응했다. 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한 유권자는 포기하고 음모론 세력의 옹호를 받는 식이라면 보수 야당의 미래는 어두울 뿐이다.
2026.03.01. 8:26
정부가 지난달 27일 구글이 요구해 온 1대5000 축적 고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조건부로 허가했다. 구글이 2007년 처음 반출을 요청한 지 19년 만이다. 다만 국가 안보 관련 영상을 보안 처리하고, 구글의 국내 제휴 기업이 국내 서버에서 원본을 가공한 뒤 정부의 검토와 확인을 거친 뒤 반출하는 조건을 달았다. 반출 대상 지도도 내비게이션과 길찾기 서비스에 필요한 데이터로 제한했다. 정부는 그동안 안보 우려로 고정밀 지도 반출을 불허했다. 50m를 1㎝로 표시하는 축적 1대5000 지도는 세밀해 군사시설과 산업 보안시설까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입장을 바꾼 건 대미 관세 협상의 지렛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비관세 장벽을 문제 삼아 관세 인상을 압박하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통상·안보 패키지딜 자체가 흔들리는 걸 막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고정밀 지도 반출 허용으로 국내에서도 구글 지도로 길찾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건 긍정적이다. 하지만 네이버나 카카오·티맵모빌리티 등 국내 업체가 주도해 온 지도 및 공간 데이터 시장의 판도 변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규제의 그늘에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사업해 왔던 국내 기업이 자본과 기술력으로 무장한 글로벌 업체와 본격적인 경쟁 체제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만큼 기업은 경쟁력 강화에 매진하고 정부는 해당 조치가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고정밀 지도 반출에 따른 안보 훼손을 막기 위해 구글의 조건 이행 여부를 철저하게 관리 감독해야 한다. 촘촘한 대미 협상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온라인 플랫폼법 등 비관세 장벽 해소를 내세운 미국 빅테크 기업의 압박이 더 거세어질 수 있는 만큼 우리의 안보와 국익을 해칠 수 있는 과도한 요구에 대해 정부도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2026.03.01. 8:24
12·3 계엄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실패한 친위 쿠데타’이다. 그래서 현직 대통령이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단죄되는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지귀연 재판장은 지난 2월 19일 선고에서 1649년 잉글랜드 왕 찰스 1세 처형을 윤석열 단죄의 역사적 근거로 인용했다. 영국 런던의 화이트홀 궁전 마당에서 있었던 찰스 1세 참수형은 세계 민주주의 발전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왕이 암살되거나 전사하는 경우는 있어도 재판을 거쳐 사형 집행된 첫 사례로서 “법이 왕 위에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지 재판장은 "주권을 위임받은 의회에 대한 공격은 왕이라 하더라도 반역죄가 성립한다는 개념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라며 윤석열은 대통령이라도 내란죄의 처벌 대상이 된다고 했다. 그는 이 사건의 핵심은 "군대를 국회로 보낸 것이다"라고 몇 차례 강조했다.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창가엔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왕정(王政)을 폐지, 공화정(共和政)을 열었던 청교도 혁명의 지도자 올리버 크롬웰의 석관(石棺)이 있었다.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는, 크롬웰이 죽은 뒤 왕정으로 돌아가자 복위(復位), 아버지를 처형하는 데 관계하였던 이들의 명단(이를 후세에 ‘블랙리스트’라 했다)을 만들어 죽이기 시작했다. 그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크롬웰을 아버지가 참수된 지 12주년 되는 날에 부관참시(剖棺斬屍)한 뒤 장대에 해골을 꽂아 아버지가 재판받았던 웨스트민스터 홀 지붕 위에 20여 년간 전시했다. 해골은 그 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떠돌다가 1960년에야 모교인 케임브리지 대학 경내에 묻혔다. 그래도 역사의 전진을 멈출 순 없었다. 온건했던 찰스 2세를 이은 동생 제임스 2세는 가톨릭 교도로서 개신교 세력과 갈등하다가 1688년 명예혁명에 의하여 밀려났다. 그리고 나고 개신교도인 그의 딸(메리 2세)과 사위(윌리엄 3세)가 공동왕으로 영입되는데 이때 의회가 선포한 것이 세계 민주주의 헌법의 표준이 되는 권리장전이었다. 군대에 대한 의회의 문민 통제권, 조세권, 고문 금지 등이 명시되었다. 그 이후로는 영국에선 쿠데타 등 정변이 없어진다(프랑스는 1961년에도 알제리 주둔 부대가 쿠데타를 시도). 지난 2월 20일 미국 대법원은 6 대 3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난폭한 상호 관세 정책이 헌법 위반임을 확인하며 무효화시켰다. 미국 헌법 제1조 8항은 세금 징수권이 의회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멋대로 이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을 만들 때 영국의 권리장전을 많이 반영했는데 이때 들어간 의회의 조세권이 트럼프를 잡은 것이다. 권리장전에 있던 ‘개신교도 무기 소지권'은 미국 헌법에선 ‘모든 국민들의 무기 소지 권한’으로 명기되었다. 미국에서 아무리 총기 사고가 많이 나도 총기를 금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재판 통해 처형된 최초의 왕 현행범 단죄된 첫 현직 대통령 찰스 1세의 피묻은 헌법의 힘으로 피 흘림 없이 친위 쿠데타 해결 그런데 지귀연 선고문 이전에 찰스 1세를 학술 논문에서 맨 처음 언급한 한국인이 있다. 이승만(李承晩)이다. 그는 1910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논문을 썼다. “미국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중립”이라는 수준 높은 국제법 논문이다. 당시 35세의 이승만은 국제법의 아버지 휴고 그로티우스를 소개하고 영국의 전시(戰時) 중립 정책을 설명할 때 찰스 1세 시대를 다룬다. 유럽 역사의 본류를 논문 주제로 잡은 안목이 놀랍다. 프린스턴은 청교도 혁명 때 크롬웰과 동맹했다가 원수가 되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세력이 18세기 미국으로 건너가서 세운 대학이다. 아담 스미스로 대표되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확산시키고 미국 건국의 지도자들을 많이 양성했다. 미국 헌법 제정을 주도한 제임스 메디슨 대통령이 이 대학 출신이다. 청교도들이 세운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던 이승만은 프린스턴 재학 시절에는 총장이던 우드로우 윌슨(나중에 대통령)의 총애를 받으면서 자유무역, 시장경제, 공화국 시민의 윤리 함양을 중시하는 학풍에 젖었다. 이승만과 개신교를 매개로 하여 세계사의 본류인 영국과 미국의 민주주의 투쟁사는 우리의 건국과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토마스 제퍼슨은 “민주주의는 피를 마시며 자라는 나무”라고 했고, 이승만은 자신을 ‘제퍼슨주의자’로 규정하기도 했다. 제퍼슨이 기초한 독립선언서의 가장 핵심적인 문장이 고스란히 대한민국 헌법의 심장으로 불리는 10조에 들어와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다. 후발 국가에서 친위 쿠데타 실패는 내전으로 가는 길목인데 한국은 찰스 1세의 피가 묻은 헌법의 힘으로 피 흘림 없이 해결하고 있다. 세계사의 주류에 올라탄 덕분에 공산주의, 독재자, 전근대성(前近代性)과의 3면 전쟁에서 이기는 중이다. 계몽령 운운하는 극우파의 저항은 역사에 대한 반동이다. 역사는 흘러야 한다.
2026.03.01. 8:22
법왜곡죄, 재판소원제, 대법관 증원 등 ‘사법 3법’이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 위헌 논란과 부작용에 대한 우려, 충분한 숙의가 필요하다는 경고는 개혁이란 명분 아래 무시됐다. 여당 주장대로 과연 사법 정의로 가는 이정표일지, 아니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사법 파천황’으로 가는 길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사법 3법’ 통과로 헌재 위상 강화 하지만 제도적 신뢰 여전히 취약 개헌 통해 정치적 입김 탈피해야 분명한 것은 우리 사법체계의 최정점을 놓고 다퉈온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중 헌재가 승리했다는 사실이다. 법원 재판까지 위헌 심판 대상으로 포함한 재판소원제로 헌재는 명실상부하게 사법 질서의 최종 심판자 자리에 올랐다. 법왜곡죄의 모호함 역시 헌재의 존재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빈틈’이다. 법이 모호할수록 그 해석을 둘러싸고 정치가 개입할 여지가 커지고, 이를 정리해야 할 헌재의 역할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헌재가 ‘최종 심판자’의 역할에 걸맞은 신뢰와 제도적 기반을 충분히 갖추고 있느냐는 점이다. 물론 두 차례 대통령 탄핵 인용을 비롯해 헌법 수호기관으로서 헌재가 수행해 온 역할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예민한 정치적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우리 사회가 극심한 분열과 갈등에 빠져들어 왔다는 사실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그 배경에는 헌재의 구성 방식이 있다.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재판관 3명을 지명·선출하는 구조는 형식상 삼권분립의 균형 장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구조가 ‘정치적 나눠먹기’로 작동해 왔다. 여야는 국회 몫 3석을 두고 힘겨루기를 벌이고, 대통령 몫은 정권 성향을 반영하며, 사법부 몫은 그 중간쯤이다. 지난해 탄핵 심판을 앞두고 벌어진 재판관 임명 난맥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재판관의 임명 배경과 성향이 분석되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이쯤 되면 헌재는 헌법 법정이라기보다 정치의 연장선으로 인식된다. 여당은 사법 3법을 강행하며 독일 사례를 전범으로 들었다. 그러나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연방하원과 연방참사원(상원 격)은 각각 8명의 헌법재판관을 선출하는데, 하원에서는 출석 3분의 2 이상 및 재적 과반 찬성이 필요하며, 상원에서는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이 요구된다. 특정 정당이나 정파가 재판관 구성을 좌우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 12년 단임제는 재판관이 정치적 눈치를 볼 유인을 원천 차단한다. 이런 제도적 토대 위에서 독일 헌재는 높은 신뢰를 유지해 왔다. 각종 조사에서 그 신뢰도는 70% 전후로, 국가기관 중 단연 최고다. 반면에 우리 헌재는 탄핵 심판 등 굵직한 정치적 사건에 따라 요동치는 등 가변적 신뢰에 머문다. 실제로 지난해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무렵에는 전국지표조사(NBS)나 한국갤럽 조사에서 50%를 넘겼지만, 하반기 시사IN 조사에서는 40%대 초반으로 내려왔다. 헌재의 권위가 제도적으로 축적된다기보다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출렁인다는 의미다. 헌법재판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띤다. 권력의 한계를 긋고, 다수의 결정을 제어하며, 추상적 헌법 규범을 현실 정치 위에 세우는 과정이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그러나 정치적 재판과 정파적 재판은 전혀 다른 문제다. 갈등이 첨예할수록 헌법재판관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객관성과 독립성이 요구된다. 헌재는 단순한 승패의 판정자가 아니라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헌법적 기준을 제시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사법 3법 통과로 헌재의 위상은 분명 올라갔다. 그러나 권한의 확대만으로는 헌재의 권위와 신뢰가 보장되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권한은 오히려 더 큰 정치적 갈등을 부를 수 있다. 이 문제는 이미 법률의 차원을 넘어섰다. 결국 개헌 테이블에 올려야 할 사안이다. 민주당이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사법체계를 정치의 그늘로 밀어넣었다는 시선에서 벗어나려면 이 과제를 외면해선 안 된다. 이현상([email protected])
2026.03.01. 8:20
더불어민주당이 어마어마한 일을 해냈다. 해방 이후 80년 간 유지되어 온 3심제의 틀을 깨고 4심제(재판소원)를 도입했다. 더불어 2030년까지 대법관의 수를 두 배(14명→26명)로 늘리기로 했고, 검사와 판사는 법왜곡 혐의로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살게 됐다. 범죄 혐의자 입장에선 3심까지의 결과가 억울하면 “한 판 더”를 외쳐 볼 수 있게 됐고, 자신을 처단한 판사나 검사에게 수사의 고통과 처벌의 위협을 되돌려 줄 수도 있게 됐다. 범죄 혐의자에게 무기를 얹어준 셈이니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고통받으면 안 된다”(윌리엄 블랙스톤)는 사법적 이상에 다가가려는 시도라고 주장해 볼 순 있겠다. 여당, 우려 눈감고 ‘사법 3법’ 강행 ‘파기환송 기획설’ 믿음이 동력 야당, 음모론 뿌리 ‘윤’ 절연 못해 그러나 입법 주도자들의 자위적 쾌감은 곧 다수의 비참함과 막대한 사회의 비용으로 치환될 것이다. 정확한 계산은 사법시스템이 마비될 즈음 법경제학자들이 내놓겠지만, 대혼돈은 예정돼 있다. 개개인의 송사는 끝없이 늘어질 것이고, 그 사이 법원 밖의 사회적 갈등은 심화·확산될 게 불보듯 하다. 판·검사직에 대한 선호가 추락하면서 사법서비스의 질도 곤두박질칠 것이다. 여기에 민주당 강경파가 고집하는 보완수사권 폐지가 맞물리면 가공할 마이너스 시너지가 발생할 것이다. 거사 과정에서 162석 거여 내부의 숙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공청회는 유유상종의 장이었고, 법조계와 학계의 우려는 묵살됐다. 지난 26일 법왜곡죄 표결에서 민주당 의원 중 유일한 반대표를 던졌던 곽상언 의원은 “완성된 법안을 본 건 하루 전 의원총회 때”라고 말했다. 간혹 우려를 드러내는 의원들은 어김없이 강성 지지층의 마녀 사냥에 시달려야 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이런 폭주를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제거를 위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3법 통과에 따라 8개 혐의 5개 재판이 중지 상태인 이 대통령이 재판 재개시 법왜곡죄 고발과 재판소원을 무기로 삼을 수 있고, 임기 중 대법관 22명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해 훗날 상고심에 대비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아예 이런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검찰을 압박해 공소를 취소시키겠다고 당론을 정한 참이니 야당 말도 일리는 있다. 그럼에도 이런 폭주가 이 대통령을 위한 것인지 심히 의문이다. 이 대통령은 당선 직후 “나의 신상과 관련된 법안은 무리해서 처리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이후로도 사법 개혁과 관련해 ‘숙의’를 요청해 왔다. 이 대통령은 “강박인가 싶을 정도로 성공한 정부를 만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지난달 9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인터뷰)는데, 사법 대혼란이 이 길에 큰 걸림돌이라는 걸 모를 리 없다. 3법 폭주의 주역인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최근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는 지난달 22일 출판기념회에서 “지금 하는 일(법사위원장)을 내려놓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 조희대 대법원장님이 마음 놓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경기지사 출마 의사를 공식화하는 자리에서 꺼낸 이 말은 “법사위원장 자리를 곧 강성 지지층을 향한 선거운동의 무기로 삼겠다는 뜻”(수도권 중진)으로 읽혔다. 그렇다면 강경파들의 행태가 불만인 의원들은 왜 제동에 나서지 않았을까. 강성 지지층의 닦달만으로는 불충분한 이유를 합리파로 평가되는 한 3선 의원과 대화 중에 알게 됐다. 그는 지난해 5월 1일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이야기를 꺼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한 모종의 의도를 가지고 내린 판결인 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당선됐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지만, 민주당 다수 의원들의 세계관은 근거 없는 ‘파기환송 모의설’에 갇혀있다. 비이성적이지만 음모론에 취했다는 이유로 민주당 의원들을 비난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의 과학자 마이클 셔머는 ‘음모론이란 무엇인가’에서 대중의 음모론 추종을 걷어내기 어려운 핵심 이유로 어떤 음모론은 현실이 된다는 점을 꼽았다. 국민 모두가 2024년 여름 음모론에 불과했던 ‘윤석열 계엄설’의 실현을 그해 12월 3일 목도하지 않았던가. ‘파기환송 모의설’을 토대로 민주당 의원들은 “법원을 그냥 두면 검찰 공화국을 뛰어넘는 사법 공화국을 시도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공유한다. 윤 전 대통령이 모든 음모론을 정당화할 근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 음모론의 뿌리와 절연하지 않은 채 자멸의 길을 택했다. 이대로면 6월 3일 민주당이 지방권력마저 석권하게 된다. 그때쯤 검찰과 법원은 정치권력을 견제할 기력을 상실할 것이다. 삼권분립이 숨 쉴 공간이 얼마 안 남았다. 임장혁([email protected])
2026.03.01. 8:18
이번에는 다를까? 최근 이재명 정부의 과학기술 청사진을 그려낼 과학기술기본계획 수립위원회가 출범했다. 정부가 2026년 R&D 예산을 역대 최대인 35조3000억원으로 편성하며 연구 생태계의 복원을 선언한 만큼 현장의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단순히 예산 확대를 넘어, 연구 현장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성과를 축적할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35.3조, 역대 최대 R&D 예산 과제중심제 폐지도 반갑지만 독일의 ‘정직한 진단’ 사례 참조 계획 집행과 평가구조 바꿔야 그러나 기대감과 함께 기시감도 존재한다. 노무현 정부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과학기술 청사진이 제시됐다. 성장동력과 전략기술이 새롭게 호명됐고, 기초과학과 인재 육성을 포함하는 국가혁신체제(NIS) 강화가 반복적으로 강조됐다. 정책은 늘 출발선에 선 듯 보였지만, 무엇이 작동했고 무엇이 실패했는지에 대한 치열한 복기는 실종됐다. 정부 바뀌면 연구 기획도 바뀌어 이 같은 정책 초기화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곳은 연구 현장이다. 연구 주제가 궤도에 오를 즈음 과제가 종료되면, 연구자는 새로운 정부 기조에 맞는 주제를 찾아 다시 연구기획을 해야 한다. 장기적 문제의식보다 정책 성과로 설명하기 쉬운 주제가 선택되고, 연구의 언어도 ‘다음 공모’에 맞춰 조정된다. 이를 반복적으로 학습하면 연구자와 조직은 축적형 발전보다 유행하는 키워드와 대세 적응을 택하게 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혁신체제 강화라는 구호가 반복될수록 현장의 냉소가 깊어졌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가 국가혁신체제를 국정 아젠다로 전면화한 이후, 역대 모든 정부의 기본계획은 예외 없이 ‘R&D 생태계 혁신’이나 ‘혁신체제 고도화’를 핵심 목표로 세웠다. 그러나 지난 25년간 무엇이 실제로 강화되었는지, 어떤 구조가 개선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은 보이지 않았다. 진단 없이 처방만 반복되는 사이, 혁신 담론은 점점 설득력을 잃었다. 그럼에도 이번 제6차 기본계획을 향한 과학기술계의 시선에는 이전과는 다른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지난 수십 년간 금기시되던 국가혁신체제의 해묵은 숙제, PBS(과제중심제도) 폐지라는 거대한 균열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예산 복원이라는 양적 회복과 함께 연구자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의미로, “이번에는 다를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겨나는 이유다. PBS 폐지는 출발점일 뿐 PBS 폐지는 출발점일 뿐이다. 제도의 한 축을 바꾸는 것과, 정책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번 기본계획이 진정한 변화 도구가 되려면 계획을 만들고 집행하며 평가하는 구조까지 바뀌어야 한다. 그 실마리는 이미 혁신체제의 한계를 경험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해 온 주요국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독일식 모델의 핵심은 정직한 진단에 있다. 지난해 독일 연구혁신자문위원회(EFI)는 강력한 연구 기반을 갖춘 독일이 최근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이유로 행정 지연, 과도한 관료주의, 느린 정책 조정, 구체성이 부족한 미래 전략을 지목했다. 위원회의 진단은 문서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출범한 메르츠 정권은 흩어져 있던 기술 관련 조직을 연구·기술·우주부로 통합했고, 기동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실패 요인을 공개적으로 복기하고 제도 개편의 동력으로 삼은 사례다. 일본은 최고 의결 기구를 통해 계획과 실행을 총괄한다. 총리가 의장을 맡는 종합과학기술혁신회의(CSTI)에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예산 배분과 정책 평가까지 관장한다. 계획과 자원배분이 하나의 사령탑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정책은 자동으로 실행력을 확보한다. 그 결과 일본의 기본계획은 부처 간 합의 문서를 넘어 종합과학기술혁신회의가 책임을 지는 국가 차원의 중장기 전략으로 작동한다. 중국의 과학기술 5개년 규획은 이어달리기식 구조를 갖는다. 5년마다 새로운 규획이 시작되지만, 실제로는 이전 단계의 성과와 과제를 이어받아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는 방식이다. 수립 과정에서는 당이 방향을 제시하고 주무 부처가 이를 구체화한다. 집행 과정에서는 중간 평가와 수시 점검을 통해 목표 달성도를 확인하고 필요시 조정한다. 올해 제15차 주기를 시작하는 중국의 5개년 규획은 하나의 정책 문서라기보다 국가 역량을 한 방향으로 모으는 운영 체계에 가깝다. 이처럼 주요국들은 복기와 축적을 통해 정책의 연속성을 제도화했다. 반면 우리는 정권 교체기마다 계획이 새로 시작되는 구조를 반복했다. 이제는 관성적인 계획 수립의 한계를 넘어설 시점이다. 과학기술은 시간이 자산인 장기 여정 그렇다면 제6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지난 계획에 대한 정직한 복기를 제도화해야 한다. 지난 5년의 성과와 실패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그 결과를 다음 계획의 출발점으로 명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복기가 축적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둘째, 계획을 끝까지 완수할 책임의 중심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정책이 정권 주기에 따라 사실상 새로 짜이는 배경에는 책임 구조의 분산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부처 간 칸막이를 넘어서는 범정부적 조정 권한과 정치적 책임이 결합할 때, 기본계획은 선언을 넘어 국가 전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셋째, 5년 계획을 고정된 문서가 아니라 점검과 조정을 전제로 한 살아 있는 계획으로 운영해야 한다.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중간 평가와 수시 점검을 통해 목표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유연한 구조가 필수다. 그래야 계획은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며 진화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과학기술은 시간을 자산으로 삼는 장기 여정이다. 연속된 도전의 경험이 쌓일 때 국가 경쟁력은 깊이를 갖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크고 멋진 구호가 아니라, 세대를 넘어 국가적 기술 자산을 축적해 나갈 설계도와 그 운영 체계다. 이번 제6차 기본계획이 과학기술계로부터 “이번에는 정말 달랐다”고 평가받기를 기대한다.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6.03.01. 8:16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베이징 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해 부산에서 합의한 ‘무역전쟁 휴전’이 연장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고율의 대중 관세와 희토류 대미 수출 통제가 서로에게 아킬레스건이라는 점을 확인한 두 나라는 각자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다. 새 국가안보전략(NSS)과 지난 1월 발표된 대통령 행정명령에 따라 희토류를 국가 안보의 핵심 자산으로 선언한 미국은 중국의 희토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올인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NSS에서 “희토류의 안정적인 확보 실패는 작전 능력의 실질적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국가 안보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서반구 희토류 확보, 전략 비축도 ‘핵심 광물 무역블록’ 구상 발표 정부, 공급망 다변화 추진하지만 중 보복, 안보 현안 파장도 우려 미, 매장량 3위 브라질에 화해 제스처 먼저 NSS에서 미국은 앞마당인 서반구(아메리카 대륙과 그 주변) 패권 재확립과 희토류 등 전략물자 확보를 연계하고 있다. 중국·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것과 함께 서반구에 매장된 희토류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그린란드-북미 본토-중남미를 연결하는 전략물자 공급망 구축이 그것이다. 이런 전략에 따라 미국은 유럽의 강력 반발에 일단 물러서긴 했지만, 관세 부과와 군사작전 카드까지 꺼내 들면서 그린란드 병합을 시도했다. ‘남미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전 대통령에 대한 불공정한 재판을 이유로 지난해 50%의 관세 폭탄을 부과했던 브라질과도 관계 회복에 나서고 있다. 브라질은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의 희토류 매장국. 지난해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는 브라질 북부에 위치한 세하 베르지(Serra Verde·초록 산맥) 희토류 광산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대규모 금융지원을 승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과 2기 취임 이후 첫 정상회담도 개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미국은 약 120억 달러 규모의 전략 광물 비축 계획인 ‘프로젝트 볼트’(Project Vault·일명 금고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이 프로젝트는 석유 전략비축(SPR)과 유사한 방식으로 핵심 광물을 비축해 중국발 공급망 충격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동맹 및 파트너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공급망 협력 전략도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미국은 핵심 광물 공급망 재편을 위한 무역 및 협력 블록 형성을 추진 중인데, 이를 위해 지난 2월 핵심 광물 장관급 회의(56개국 참여)를 개최했다. 회의에서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1년간 우리 경제가 핵심 광물에 얼마나 크게 의존하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알게 됐다”며 ‘핵심 광물 무역블록’ 구상을 밝혔다. 이 구상에는 과잉 생산과 저가 공세로 신규 광산 개발 프로젝트가 좌초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 일정 수준의 가격 하한(price floor)을 설정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일, 심해·아프리카 채굴 추진 지난해 11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 이후 중국의 희토류 등 이중 용도 물자(군사용과 민간용으로 모두 사용 가능 물자) 수출통제 제재를 당하고 있는 일본은 발등의 불이 떨어진 상태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달 미쓰비시조선 등 일본의 20개 기업·기관을 군사력 제고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수출 통제 관리 명단에 포함했다. 또 스바루 등 20개 기업·기관은 “이중용도 물자의 최종 사용자와 최종 용도를 확인할 수 없다”며 관찰 리스트에 넣었다. 이에 맞서 일본은 미국 이상으로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해저 5700m에서 끌어올린 진흙에서 희토류 추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환경성은 60억 엔의 예산을 투입해 폐기 모터 등에서 희토류를 다시 추출하는 재활용 사업에 착수했다. 또 일본 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는 2020년부터 개발을 추진해온 아프리카 나미비아 광산에서 희토류 중에서도 희소한 것으로 평가되는 디스프로슘과 터븀(전기차의 고성능 모터 등에 사용)의 매장 사실이 확인되자 본격적인 아프리카 광산 투자에 나섰다.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산업상은 “희토류는 산업 경쟁력과 경제 안전보장 확보에 필수적”이라며 “광산 개발, 분리·정련은 국내 사업 가능성도 검토하면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비판 입장 바꿔 해외자원 개발 착수 정부는 지난달 희토류 공급망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자립화에 시동을 걸었다. 단기적인 수급 위기관리와 중장기적인 해외 자원개발·생산 내재화의 투트랙 전략이다. 야당 시절 이명박 정부의 자원 외교를 비판해온 현 정부는 입장을 바꿔 과거 부실 경영과 인사 논란으로 해외 직접 투자가 금지됐던 한국광해광업공단에 해외자원 개발 총괄 기능을 부여할 방침이다. 문제는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미국 주도의 핵심 광물 무역블록 구상 참여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조현 외교부 장관이 올 6월까지 이 구상을 논의할 장관급 회의의 의장이지만 약 35개국이 참여 의사를 밝혔는데도 아직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현재까지 참여 요청을 받은 바 없지만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표면적으로 미국 제안대로 가격 하한 등이 현실화할 경우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우리 주력 산업의 원가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중국을 의식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당장 중국은 미국 주도의 블록 구상에 대해 “국제 경제·무역 질서 훼손에 반대한다”며 보복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다. 만약 중국이 일본처럼 한국에 수출 통제를 할 경우 당장 대체선 확보가 쉽지 않은 데다 북한 비핵화 협력,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 원자력잠수함 건조 등 주요 안보 현안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하상섭 외교안보연구소(IFANS) 조교수는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희토류 전략은 한국에 자원 안보 강화와 산업 경쟁력 제고, 외교 지평 확대라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균형 외교와 국내 산업기반 조정이라는 과제도 던져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차세현([email protected])
2026.03.01. 8:14
트루스 소셜(Truth Social).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1년 직접 만든 SNS다. 주류 언론과 SNS가 자신에게 적대적이라면서다. 트럼프는 지난해에만 트루스 소셜에 6168건(일평균 16.9건)의 게시글을 올렸다. 게시글을 거칠게 분류하면 ‘본인 자랑 50%, 타인 비난 50%’쯤 될 것이다. 그에게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트루스 소셜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트럼프가 자랑과 비난의 경계에서 수시로 SNS를 비(非)공식 정책 소통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어서다. 올해만 해도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관세 정책 발표를 SNS에서 수차례 이어갔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미국 연방대법원이 상호 관세가 위법하다고 판결하자 즉각 SNS를 통해 글로벌 관세를 10%, 15% 부과하겠다고 알렸다. 권력자의 SNS는 빠르고, 국민과의 직접적인 소통이란 장점이 있다. 의제를 선점하고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국내에선 트럼프 못지않은 인플루언서다. 유튜브 구독자 185만명, 인스타그램 팔로워 131만명, X(엑스, 옛 트위터) 팔로워 99만명, 페이스북 팔로워 52만명을 갖고 있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SNS를 십분 활용해왔다. 올해 들어 X로 정책을 소통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가 5월 9일에 종료되는 것은 지난해 이미 정해진 일.”(1월 25일) “담배처럼 설탕 부담금으로 설탕 사용 억제, 그 부담금으로 지역·공공의료 강화에 재투자… 여러분 의견은 어떠신가요.”(1월 28일) “주가 조작 패가망신.”(2월 6일) “다주택자에게 대출 만기가 됐는데도 대출 연장 혜택을 추가로 주는 것이 공정할까요.”(2월 13일)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다주택자는 물론 주거용이 아닌 투자·투기용 1주택자도 보유보다 매각이 유리한 상황을 만들 것.”(2월 26일) 트럼프 못지않게 날것 그대로 발언을 쏟아내다 보니 그 파장이 만만찮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SNS에서 설전을 벌이는 풍경도 벌어졌다. 일각에선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로 혼선을 초래한다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통령이 진행 중인 개별 정책 사안을 SNS에 불쑥 던지는 게 맞느냐는 비판도 일리가 있다. 공직사회 특성상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표명한 의사는 반드시 추진해야 할 최종 정책 주문으로 여길 수 있어서다. 무엇보다 소통으로 포장한 상의하달식 일방통행이 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권력자의 SNS 등판을 두고 소통이라고 하는 건 절반만 맞는 얘기다. 댓글은 열렸지만, 결론은 닫혀 있는 경우가 많아서다. 김기환([email protected])
2026.03.01. 8:12
“영세 자영업자들은 다 떠나야 할 판입니다.” 최근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에서 자영업을 하는 상인들을 만나면 듣는 이야기이다. 일본 정부가 경영관리 비자와 영주권 취득 조건을 엄격하게 조정하면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은 자본금 500만 엔이면 경영관리 비자를 취득해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나라였다. 사실상 4600만원으로 투자 이민이 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를 악용 문제가 불거졌다. 코로나 사태 직후였던 2022년부터 2025년 9월까지 오사카(大阪) 시내의 노후 빌딩 5개에 중국계 법인을 무려 677개나 등기한 것이 대표 사례이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이 중 666개사의 자본금은 최저금액인 500만 엔만 맞췄고, 같은 사무실 주소는 여러 회사가 공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무실이 비어있기도 해 페이퍼 컴퍼니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비자를 취득하면 가족도 불러들일 수 있다 보니 일본 건강보험에 가입해 고가의 의료서비스를 받곤 보험료는 체납하는 등 사회 문제도 불거졌다. 이런 사례가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중국의 내수 경기가 안 좋아지자 중국 투자금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던 일본 부동산 시장으로 눈을 돌렸는데, 맨션 가격 상승의 원인이라는 불만은 물론, 경영 관리 비자로 일본 건물을 취득한 뒤 임대료를 대폭 올린 사례들까지 언론에 보도되는 등 여론은 악화일로였다. 이에 일본 정부는 자본금을 500만 엔에서 6배인 3000만 엔으로 인상하고, 재류 자격이 필요 없는 일본인 1명 상시고용 등 경영관리 비자 발급 요건을 대폭 강화했다. 난립하는 비자 취득을 막기 위한 조치이지만, 모든 외국인에게 해당하는 조치이다 보니 실상 정당하게 사업을 영위해온 사람들까지도 갱신 시에는 큰돈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경영 비자 유예 조치는 3년으로 2028년 10월까지이나 기간 내 갱신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향후 3000만 엔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지 벌써부터 증명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자 은행 대출이 어려운 외국인이 많은 상권을 중심으로 사채업자들이 돌아다닌다는 소문도 돈다고 한다. 다카이치 정권은 자본금이나 상근 직원 고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도 스타트업 비자를 통해 최장 2년간 일본에 체류하며 창업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문은 열어뒀지만, 어디까지나 한시적 대응만 가능할 뿐이다. 선의의 외국인이 곤경에 처하는 딱한 현실이다. 정원석([email protected])
2026.03.01. 8:10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의 론 뮤익 전시에서 눈길을 끈 것은 익숙한 그의 작품보다 한편의 작업실 영상이었다. 제작에 몰입하게 만드는 작업실의 환경과 조각가의 탐구적 태도, 그리고 휴식 중 새와 교감하는 장면까지 인상 깊게 다가왔다. 작업실은 작품 이면에 놓인 작가적 삶의 흔적과 취향, 그리고 내면을 가식 없이 드러낸다. 큐레이터로서 오랜 시간 창작의 현장을 방문하며 확인한 것은 작가의 삶의 방식과 태도가 예술의 내용과 형식을 결정한다는 사실이었다. 영감과 노동 깃든 공방에서 탈피 제작·아카이빙·전시 기능 겸비한 기술 교류·협업 플랫폼으로 전환 많은 작가들에게 작업실은 자신만이 몰입할 수 있는 사유와 창작의 공간이자 작품의 보관창고이며, 이상을 실현하는 장소다. 제임스 홀은 『The Artist’s Studio: A Cultural History(예술가의 작업실: 문화사)』(2023)에서 작업실을 단순한 제작 공간이 아니라, 예술가의 신화와 현실이 모순적으로 교차하는 장소로 읽는다. 과거에는 천재의 영감이 깃드는 신화적 공간이자 고된 육체노동의 현장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작업실의 성격과 정체성이 다양하게 변형·확장·재구성되고 있다. 이 전환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것은 1960년대 앤디 워홀이 자신의 작업실을 ‘스튜디오’가 아니라 ‘팩토리’라 부른 순간이다. 그에게 예술은 더 이상 작가의 손작업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반복과 복제, 협업과 유통이 창작의 일부가 되었고, 예술가는 장인이 아니라 생산을 총괄하는 감독이자 기획자가 되었다. 워홀 이후 제프 쿤스와 데미안 허스트, 그리고 올라퍼 엘리아슨의 스튜디오를 더 이상 ‘개인 작업실’이라고 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때 작업실은 예술가 혼자만의 은신처가 아니라, 기획과 제작은 물론 협업과 공론, 토론이 함께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변화한다. 백남준의 스튜디오는 이 변화를 또 다른 방식으로 증명했다. 한때 빈티지한 골동품과 전자부품이 뒤섞인 공방처럼 보이던 그의 작업실은, 2000년 구겐하임 회고전을 앞두고 방문했을 때 레이저 아트 같은 첨단기술을 실험하는 테스트베드로 확장되어 있었다. 그는 휠체어에 앉은 몸으로도 신문과 TV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며 시시각각 들어오는 뉴스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미지와 정보, 기술과 매체가 교차하는 작업공간은 단순한 제작 현장이 아니었다. 그에게 작업실은 공방이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실험하는 장치였다. 오늘날 성공한 작가들이 선택하는 단독 스튜디오나 지식산업단지형 작업실은 점차 최적화된 시스템을 닮아가고 있다. 연구와 제작, 보존과 아카이빙, 전시는 물론 높은 천장과 넓은 출입구, 장비 이동과 물류 동선까지 고려하여 국제적 수준에 맞춰 운영된다. 예술은 여전히 사유에서 출발하지만, 그 실행은 점점 제작 시스템과 유통, 효율성의 논리에 의해 재편된다. 작업실의 변화된 풍경은 예술가의 삶의 방식뿐만 아니라, 예술이 어떤 조건에서 생산되고 관리되며 유통되는지를 함께 읽게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예술가에게 작업실은 여전히 생존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임대료와 관리비, 장비와 재료비, 불규칙한 수입 사이에서 작업실은 로망이 아니라 버텨야 할 현장이다. 젊은 세대 작가들은 하나의 스튜디오에 정착하지 않고 국내외 레지던시를 오가며 유목주의처럼 이동하는 삶을 선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작업실은 더 이상 고정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교류와 협업, 현장 경험과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임시 거점에 가깝다. 작은 작업실은 사유의 밀도를 말해주지만, 거대한 제작 단지는 예술이 산업과 자본, 시장의 논리 속에 깊숙이 편입되었음을 증언한다. 이동하는 스튜디오는 동시대 예술이 얼마나 유연하게 조건을 바꾸며 진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작업실은 ‘장소’라기보다 물질과 기술, 관계가 교류하는 플랫폼이 되어가고 있다. 팩토리에서 플랫폼 시대로의 전환은 작업의 방식뿐 아니라,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조건 자체의 변화를 가리킨다. 비평에 있어서도 작업의 결과보다는 과정이,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어떤 방식과 태도, 어떤 윤리 속에서 작업이 이루어졌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작업실은 또 하나의 전환에 서 있다. 이준 미술비평가·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
2026.03.01. 8:08
4대 시중은행의 2025년 합산 당기순이익이 14조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업의 높은 수익은 원칙적으로 환영할 일이다. 그렇지만 한국 상황에서 은행의 고수익은 그 성격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은행은 규제산업이자 보호산업이다. 정부 인가를 얻어야만 영업이 가능하며 건전성·자본비율·업무행위 등 전방위적 규제를 받는다. 은행들의 총이익 가운데 90% 정도가 예대마진에서 발생한다. 진입장벽이 높은 ‘온실’ 속에서 비교적 수월하고 안정적으로 이익을 거두는 구조다. 혁신을 통한 글로벌 경쟁우위 확보, 시장 개척을 위한 눈물겨운 투혼의 결과로 보기 어렵다. 이 점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자동차·LG전자 등의 수익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고수익에 기댄 은행 최고경영자의 거액 보수나 임직원의 성과급 잔치는 종종 손가락질 대상이 된다. 주주의 의사에 반하는 전형적인 ‘대리인 문제’이기도 하다. 금융당국이 이 문제를 엄정히 관리·감독하지 않는다면 공직 퇴임 이후의 재취업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은행의 막대한 초과이익이 바람직한지, 불가피하다면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요구된다. 초과이익은 독과점 등에 힘입어 비용을 모두 보전하고 기업 존속에 필요한 정상이익을 넘어서는 이익을 말한다. 은행의 초과이익은 제도에 의해 만들어진 지대(rent)의 성격이 짙다. 마침 정부의 연속적인 상법 개정 추세와 맞물려 시중은행들이 배당 등 주주환원을 늘려나가 주주환원율이 평균 50%에 이르고 있다. 일반 민간기업이라면 배당 확대를 주주중시 경영의 일보 진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설립 인가권자가 정부이고 제도적 보호 아래서 올리는 수익은 가능한 한 다수에게 환원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협력업체와 지역사회, 고객, 나아가 일반 국민까지 포괄하는 이해관계자 중시 경영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일부 학자들은 은행업 면허를 경매에 부쳐 낙찰금 일부를 공익적 용도로 활용할 것을 주장한다. 기존 은행의 초과수익을 금융 구조조정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금융지원 등에 쓰자는 제안도 나온다. 문제는 이러한 방법을 통한 지대의 사회화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더라도 실행하기가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정상이익과 초과이익의 판별 문제 외에도 사유재산권·경영자율성 침해 논란, 높은 지분율을 가진 외국인 투자자의 반발 등의 저항도 예상된다. 현실적으로는 세제 인센티브를 통한 자율적 서민대출 확대, 사회적 기여기금의 자율적 증액 유도, 은행사회공헌(CSR)의 획기적 확대 등이 대안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신민영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2026.03.01. 8:06
북미 원주민이 살던 텍사스에 스페인 탐험대가 처음 발을 디딘 건 1528년의 일이었다. 1685년 프랑스가 매터고다만에 식민지를 세웠고 스페인도 경쟁적으로 정착지를 늘렸다. 1718년 스페인은 새로운 정착지 샌안토니오를 만들었고, 1820년 버지니아 주에서 온 모제스 오스틴은 스페인 정부로부터 텍사스주 식민지 개척을 허가받았다. 이듬해 그가 사망하자 아들 스티븐 오스틴이 정착을 주도했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텍사스를 둘러싼 경쟁은 점입가경으로 빠져들었다. 텍사스에 이주한 백인들과 지역 토착 혼혈민들이 멕시코의 지배를 탐탁잖게 여겼던 것이다. 정치적으로 무능한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 장군이 쿠데타로 멕시코 대통령이 되고 텍사스의 자치 요구를 강경 진압하자 주민들의 불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1836년 3월 1일 ‘1836년 회담’을 가진 텍사스인들은 다음날인 3월 2일 독립을 선언했다. 멕시코 입장에서 보면 엄연한 반란이었다. 산타 안나가 원정을 친히 지휘하다 포로로 잡히지 않았다면 텍사스는 독립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독립 전쟁에서 승리하자 텍사스 공화국은 실체를 가진 나라가 됐다. 그해 10월 전쟁 영웅 샘 휴스턴(사진)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1845년 국민투표로 미국에의 편입을 결정하고 1846년 2월 19일 공식적으로 미합중국의 28번째 주가 될 때까지, 텍사스 공화국은 10년간 국제적 승인을 받은 독립국가로 존속했다. 벌써 200년 가까운 옛날 일이지만 텍사스 공화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텍사스는 미국의 동·서부와 별개의 전력망을 사용한다. 석유와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기에 언제건 독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 텍사스(Texas)와 탈퇴(Exit)를 합성한 ‘텍시트(Texit)’, 텍사스 분리주의 운동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독자적인 생활과 정체성을 지닌 지역을 통합하는 일은 이토록 어렵고 지난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속도전으로 치러지는 졸속 행정구역 통합을 보면 우려를 감추기 어렵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2026.03.01. 8:04
중국은 권위주의 체제의 나라다. 민주·자유·인권 등과는 거리가 있다. 경직된 사회에서는 학자들의 연구가 꽃 피기 어렵다.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많은 전문가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다. 논문·특허·대학평가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의 과학 연구 실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4년도 기술 수준 평가 결과’만 봐도 그렇다. 중국은 이차전지, 첨단 모빌리티 등 50개 전략기술 분야에서 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1.4년으로 좁혔다. 2년 전보다 0.8년 줄었다. 유럽·일본·한국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다. 권위주의와 혁신은 공존할 수 있는가? 캐나다의 중국 전문가 댄 왕은 책 『브레이크넥』에서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자유로운 연구 환경은 인문·사회 과학에서는 꼭 필요하지만 물리·화학·수학 등 자연 과학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소련 권위주의 체제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쏟아졌고, 중국도 마오쩌둥 시기에 원자폭탄을 만들고 인공위성을 띄웠다는 걸 사례로 든다. 자유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과학 분야 연구에서 정치적 자유는 필요하다. 그러나 자연과학 분야 학자들이 더 절실히 요구하는 건 ‘돈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돈이 없어 실험실 연구 설비를 구할 수 없다면, 그건 자유가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시진핑 체제의 중국은 실험실 자유가 풍부하다.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뒤따른다. 물론 전략적으로 선정된 분야에만 돈이 몰린다. 그게 중국 기술 굴기를 가능케 하는 힘이다.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은 2022년 처음 중국에 추월당한 후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혹 실험실의 자유 정도가 두 나라의 기술 격차를 벌리고 있는 건 아닐까? 돌아볼 일이다. 최소한 ‘자유’를 찾아 중국으로 떠나는 학자들은 막아야 한다. 한우덕([email protected])
2026.03.01. 8:02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3.01. 3:30
우주에서 빛을 내는 것은 별이다. 과학적으로 말해서 별이 수소 핵융합을 하는 과정에서 빛이 나온다. 우리의 태양도 별이어서 지금 한창 핵융합을 하면서 엄청난 빛과 열을 내는 중이다. 인류는 빛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빛에 관한 생각을 꾸준히 했지만 20세기 초반까지 그 정체를 밝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뉴턴 대에 이르러 빛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뉴턴은 빛이 입자라고 생각했는데 당시 뉴턴의 권위에 그 누구도 도전하지 못했다. 뉴턴의 이론에 시비 거는 것 자체가 과학자이기를 포기하는 행위였던 시절이었다. 연금술에 푹 빠져있던 뉴턴은 평생 금(gold)을 만들어 보려고 애썼는데 간간이 짬을 내서 만유인력이라든가 운동 법칙, 혹은 빛에 관해서 연구하기도 했다. 뉴턴은 프리즘이라는 삼각 막대를 이용해서 백색광을 나누는데 성공했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은 그 굴절률에 따라 모두 일곱 가지 색으로 나뉘었다. 아무런 색이 없다고 생각했던 투명한 빛은 그 속에 일곱 색을 비밀리 품고 있었다. 뉴턴은 무지개와 같은 색의 모임을 스펙트럼이라고 이름 지었다. 스펙트럼은 라틴어로 '눈에 보이는 사물'을 뜻한다고 한다. 뉴턴에 이르러 인류는 드디어 빛의 비밀을 벗기기 시작했다. 사람에게는 개개인 고유의 지문이란 것이 있어서 어떤 범죄 사건이 나면 현장에 남겨진 지문으로 범인을 검거하기도 한다. 마치 사람의 지문처럼 원소도 가열했을 때 그 원소 고유의 선 스펙트럼이 나타나는데 이를 거꾸로 이용해서 관찰된 선 스펙트럼으로 해당 원소를 유추할 수 있다. 천체물리학에서는 멀리서 반짝이는 별에서 오는 빛을 분석하여 그 별까지의 거리는 물론이거니와 온도, 밀도, 질량을 알 수 있고 그 별이 어떤 원소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추측할 수 있다. 별이나 그 별이 속한 은하에서 나오는 빛을 분석하여 그런 세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만약 분광학이란 것이 없었다면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별의 정보를 알 수 없었을 것이고 천체물리학은 비약적인 발전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빛이 있으므로 사물을 볼 수 있다. 광원에서 출발한 빛이 산란하여 물체에 부딪혀 우리 눈에 도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빛의 성질에 관해서는 오래 전부터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아인슈타인 이후 빛에는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2중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빛에 관한 연구는 자연스럽게 양자역학을 발전시켰으며 빛을 이용한 분광학의 발달은 천체물리학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빛의 원천은 원자다. 원자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받으면 잠깐 그 상태가 변하다가 잠시 후 다시 에너지를 잃으며 일정한 색의 빛을 낸다. 분광학이란 이렇게 빛과 물질이 서로 반응하는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색을 내는데 착안해서 그 원소가 내는 빛의 스펙트럼이 마치 사람의 지문처럼 일정하다는 것을 알고 빛을 분석하여 그 빛을 낸 원소를 역추적하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나트륨은 노란색을 내기 때문에 어떤 관찰의 결과에 노란색이 보이면 나트륨이 함유되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헬륨은 우주에서 수소 다음으로 풍부한 원소지만 지구상에는 아주 귀하다. 분광학이 발달하여 천체에서 오는 빛을 연구하던 중 태양 빛을 분석하다가 미지의 원소를 발견하였는데 그리스 신화의 태양신 헬리오스 이름을 따서 헬륨이라고 명명하였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과학 이야기 원소 고유 태양신 헬리오스
2026.02.27. 13:04
━ 박영재 법원행정처장, 반발하며 전격 사퇴 ━ 정청래 대표, 조희대 대법원장 퇴진 압박 ━ 위헌 논란 입법에 사법독립·삼권분립 훼손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이 어제(27일)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사퇴 의사를 전달했다. 거대 여당이 위헌 논란에도 아랑곳 않고 법왜곡죄 법안을 시작으로 재판소원 도입 법안, 대법관 증원 법안 등 이른바 ‘사법 3법’을 밀어붙이자 직을 던지며 반발한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공개적으로 조 대법원장의 자진 사퇴를 압박했고, 여당 일각에선 조 대법원장 탄핵 추진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법원행정처장은 대법원장의 지휘를 받으며 전국 법원의 인사·예산·조직 등 사법행정 사무 전반을 총괄하는 핵심 보직이다. 박 처장의 사퇴는 지난달 천대엽 대법관 후임으로 법원행정처장에 취임한 지 42일 만으로 전례가 드물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5월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는데, 민주당은 그 사건의 상고심 주심이던 박 처장이 임명되자 사퇴를 거론해왔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의 3법 강행이 박 처장의 사퇴를 촉발한 것으로 법조계에선 보고 있다. 그동안 사법부는 민주당의 사법 3법을 저지하기 위해 나름 총력전을 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법원행정처는 3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자료를 내기도 했다. 지난 25일에는 전국법원장들이 회의를 갖고 “(사법 3법은) 신속한 재판과 기본권 보장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논의 과정에 사법부 등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당은 사법부의 줄기찬 요구를 끝내 묵살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필리버스터로 견제에 나섰지만, 민주당은 판사와 검사가 법을 왜곡해 적용할 경우 최장 징역 10년을 선고할 수 있는 법왜곡죄 도입 법안을 지난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어제는 대법원 확정판결도 헌법재판소가 번복할 수 있도록 하는 재판소원 도입 법안을 처리했고, 28일에는 현재 14명인 대법관 정원을 현 정권 임기 내에 26명으로 늘리는 대법관 증원 법안도 강행할 예정이다. 여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조희대 사법부 체제’ 자체를 흔들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어제 오전 “조희대 사법부의 불신이 사법개혁의 원동력이 된 것이 사실”이라며 퇴진론을 제기했다. 그 이후 박 처장의 사퇴 소식이 전해지자 정 대표는 SNS에 “사표 낼 사람은 조 대법원장이다. 사법 불신의 원흉, 조 대법원장은 즉각 사퇴하라”는 글을 올려 압박 수위를 높였다. 민주당 의원들은 박 처장의 대법관직 사퇴를 요구하고, 조 대법원장 탄핵 카드까지 거론한다. 이처럼 여당이 다수 의석을 앞세워 위헌성이 다분한 사법 3법을 밀어붙이고 사법부 수장의 사퇴까지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것은 우리 헌정 질서의 토대인 삼권분립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대법원과 전국 법원장들이 한 목소리로 “국민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호소하는데도 여당이 사법 3법을 마음대로 처리하는 입법 폭주는 국민을 위하는 모습이 아니다. 정권에 유리하게 사법 제도의 틀을 일방적으로 바꾸면 결국 사법부 독립이 훼손되고 국민의 재판 신뢰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그 결과는 돈 없고 권력 없는 일반 국민의 심대한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법원행정처장이 항의성 사직을 하고 대법원장 거취까지 압박받는 상황이 되자 일각에선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사법 파동’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한다. 이제 사법 3법의 위헌성을 바로잡을 기회는 이재명 대통령의 거부권에 달렸다. 당리당략을 넘어 국가통합의 대승적 차원에서 이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2026.02.27. 8:34
친구와 새 옷을 사러 갔다. “이 옷 어때?”라는 물음에 “그닥 별로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까지는’이라는 의미를 나타낼 때 일상적인 대화에서 많은 이가 이처럼 ‘그닥’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워낙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보니 ‘그닥’이 표준어이며, ‘그다지’의 준말이라고 알고 있는 이가 많다. 그러나 ‘그닥’은 말을 줄여 쓰기 좋아하는 누리꾼들에 의해 생겨난 말로, 표준어가 아니다. 입말에서는 ‘그다지’보다 ‘그닥’이 더 많이 쓰인다고 느껴질 정도로 사용 빈도가 높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는 일상생활에서뿐 아니라 언론 매체에서도 ‘그닥’이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기업의 외형은 커 가고 있지만 내실은 그닥” 등과 같은 표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닥’을 ‘그다지’의 평안도 방언인 ‘그닥지’의 준말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 생겨난 뒤 쓰임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보아 통신 언어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온라인상에서는 언어의 경제성이 큰 힘을 발휘하기에, 줄여 쓰는 말들이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 그래서 ‘그닥’이 틀린 표현인지도 모르고 표준어인 ‘그다지’보다 빈번하게 쓰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젠가는 생명력을 인정받아 ‘그닥’이 표준어로 등극할지도 모르지만, ‘그닥’은 아직 표준어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닥’은 ‘그다지’로 고쳐 써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우리말 바루기 통신 언어 평안도 방언인 언론 매체
2026.02.26. 20:00
“꼰대는 입이 열려있고, 어른은 귀가 열려있다”는 명언이 있다. 요즘 내가 글을 쓰면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꼰대 냄새’다. 걸핏하면 ‘라떼’ 운운하면서 가르치려 들고, 쓰잘데없는 설교 늘어놓고, 횡설수설 동어반복 중언부언 중얼중얼…. 그런 몹쓸 버릇이 생기지 않도록, 나이 먹을수록 더 신경을 쓰게 된다. 간단명료하고 쉽게 쓰고 싶다. 소설가 김훈 씨는 자신의 글쓰기 원칙의 하나로 ‘수다를 떨지 말자’를 꼽는데, 백번 공감한다. 말도 마찬가지다. 실은 글보다 말이 더 심각하다. 온 세상이 말로 시끄럽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말이다. 흉기가 되기 쉽다. 그래서 동서고금 말에 대한 말이 넘쳐흐른다. 말에 대한 주옥같은 명언도 많고, 속담도 많다. 그런 말씀들 가운데 내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려 애쓰는 가르침 몇 가지를 적어본다. 여러분들도 각자 가슴에 있는 명언을 되새겨 보시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떠실지? ▶인간은 입이 하나 귀가 둘이 있다. 이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 더하라는 뜻이다.-탈무드 ▶개가 짖는다고 해서 용하다고 볼 수 없고, 사람이 떠든다고 해서 영리하다고 볼 수 없다.-장자 ▶삼사일언(三思一言), 세 번 생각한 연후에 말하라. ▶말하는 걸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렸지만, 말하지 않는 법을 익히는 데는 60년이 걸렸다.-삼성그룹 이병철 회장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베를린 시청의 문구 ▶내뱉는 말은 상대방 가슴속에 수십 년 동안 화살처럼 꽂혀있다.-롱펠로우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모로코 속담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하는 자, 험담의 대상자, 듣는 자이다.-미드라쉬 ▶말을 많이 한다는 것과 잘한다는 것은 별개이다.-소포클레스 ▶남에게, 또 남의 일에 대해서 말을 삼가라. 폭풍을 일으키는 것은 가장 조용한 말이다.-필딩 ▶부드러운 말로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위엄 있는 말로도 설득하지 못한다.-안톤 체호프 ▶말이 남에게 거슬리게 나가면, 거슬린 말이 자기에게 돌아온다.-대학 말을 잘하고 많이 하는 것보다 되도록 안 하는 것이 좋다는 가르침 많아졌는데, 실은 그것이 만고의 진리이다. 요즘처럼 온갖 말 같지 않은 말, 독살스러운 말, 시뻘건 거짓말로 더러워진 세상을 견디며 살아내자니 차라리 베토벤의 불행이 부러울 지경이다. 묵언 수행이라도 하고 싶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공부 많이 하고 높으신 분들의 유식하고 현란한 미사여구보다 시골 장바닥 보통사람들의 투박한 한 마디가 훨씬 소중하다는 걸 깨치는 데 참 오래 걸렸다. 월간 〈전라도 닷컴〉에 실린 시골 할매의 말씀 한마디, 명언이다! 내 친구는 이 말씀을 크게 써서 유명 대학교 정문 앞에 붙여 놓자고 말한다. “우리 손자가 공부허고 있으문 내가 말해. 아가, 공부 많이 하지 마라.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맘 공부를 해야 헌다, 사람 공부를 해야 헌다, 그러고 말해. 착실허니 살고 놈 속이지 말고 나 뼈 빠지게 벌어묵어라. 놈의 것 돌라 묵을라고 허지 말고, 내 속에 든 것 지킴서 살아라. 사람은 속에 든 것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벱이니, 내 마음을 지켜야제. 돈 지키느라 애쓰지 말어라.”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상대방 가슴속 아가 공부 말씀 한마디
2026.02.26. 19:59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존재라고 말한다. 총성이 울리는 전장에서 지휘관의 한마디는 생과 사를 가르는 절대적 기준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계엄 사태 이후 국군의 최고 지휘관인 7명의 4성 장군이 물러나고, 적지 않은 장성들이 옷을 벗거나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현실은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명령에 충실했던 군인의 삶과 헌법적 책임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한 개의 별을 달기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을 오직 국가와 군을 위해 헌신해 온 이들이다. 혹독한 훈련과 끝없는 긴장 속에서 부하의 생명을 책임지며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경력은 단순한 직업 이력이 아니라 피와 땀, 그리고 가족의 희생으로 쌓아 올린 역사다. 그렇기에 오늘의 상황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우리 모두의 숙고를 요구한다. 군 조직의 근간은 상명하복이다. 명령 체계가 흔들리는 순간 작전은 실패하고 더 큰 희생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전시나 긴급 상황에서는 지휘관의 결단을 신속히 따르는 것이 군의 생명선이다. 우리 군은 6·25전쟁이라는 혹독한 역사 속에서 명령과 복종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배웠다. 그 경험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안보를 지탱하는 교훈이다. 그러나 또 다른 진실도 존재한다. 군은 국가와 헌법에 충성하는 조직이다. 명령이 법과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때, 지휘관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절대 가볍지 않다. 명령 불복종은 범법이지만, 위헌적 행위에 가담하는 것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군인의 직업윤리와 시민으로서의 양심이 충돌한다. 우리는 흔히 훌륭한 지휘관의 덕목을 이렇게 말한다. “책임은 나에게, 공로는 부하에게.” 이 짧은 문장은 군 리더십의 본질을 압축한다. 진정한 지휘관은 성공의 영광을 나누고 실패의 무게를 홀로 감당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바라는 것도 어쩌면 같은 모습일 것이다. 책임을 회피하거나 서로에게 떠넘기는 모습이 아니라, 국가와 조직을 위해 묵묵히 책임을 지는 자세 말이다. 군의 존재 이유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데 있다. 명령 체계를 불신하게 만드는 환경 속에서는 그 사명이 온전히 수행될 수 없다. 법치와 안보는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두 축이다. 우리는 법의 엄정함을 유지하면서도 군의 본질적 기능을 훼손하지 않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별은 계급장을 떠나지만, 군인의 명예와 책임은 역사 속에 남는다. 전장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총성이 멎은 지 오래지만 질문은 남아 있다. 위기의 순간, 우리 군은 흔들림 없이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가. 군의 명령 체계는 단순한 규율이 아니라 나라를 지켜 온 마지막 보루다. 진정한 충성 앞에 명령을 존중하면서도 법을 지키는 지혜, 그것이 우리가 찾아야 할 길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발언대 군인 명령 명령 체계 명령 불복종 최고 지휘관인
2026.02.26.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