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장기화 우려가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를 동시에 뒤흔드는 ‘복합 쇼크’로 번지고 있다. 당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언장담과 달리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다. 이 여파로 코스피는 어제 장중 한때 8% 넘게 폭락하며 5100선이 무너지는 급락세를 보였고,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00원에 근접했다. 국제유가도 서부텍사스유(WTI)가 장중 25% 가까이 치솟았고, 심리적 저항선인 배럴당 100달러 선을 뚫고 올랐다. 세계경제가 중동발 ‘4차 오일 쇼크’에 직면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한국 경제를 엄습하고 있다. 국내 평균 휘발유 가격은 어제 이미 L당 1900원을 넘어섰다. 원유 소비량 세계 7위인 한국은 그 대부분을 중동에서 들여온다. 이런 구조에서 중동발 에너지 위기는 곧바로 우리 산업과 가계에 파급된다. 특히 고환율·고유가·고물가가 동시에 진행되면 기업 비용 부담이 커지고 소비 위축이 뒤따르며 경기가 빠르게 둔화할 수 있다. 이른바 ‘S 공포’, 즉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드는 이유다. 현재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은 탄탄하지 않다. 정부가 올해 2%로 제시한 성장률 전망은 대체로 배럴당 60달러대 초반의 국제유가를 전제로 한다. 고유가 상황이 한두 달 이상 이어질 경우 물가 상승과 실물 경기 냉각이 동시에 나타나는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위기에 대처하는 정책 대응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어제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열고 100조원 규모로 마련돼 있는 시장 안정 프로그램 확대 등을 논의했다. 특히 이번 주 안에 석유류 최고가격제가 시행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비상 상황에선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지만, 인위적 가격 통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만큼 부작용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외부 충격에 큰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과 운송·물류 업종 등 직접 타격을 받는 부문에 선별적 지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대체 공급선 신속 발굴 등 구조적 대응도 서둘러야 한다. 전쟁의 향방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 시장 안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2026.03.09. 8:26
국민의힘이 어제 의원총회를 열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를 요구하는 일체의 주장에 명백히 반대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절윤’ 등의 구체적 표현은 없었지만 ‘윤 어게인’ 세력과 단절하고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한다는 취지의 선언을 한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에게 상식으로 통하는 입장을 공식화하는 데 1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 점에서 만시지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민주공화국 제1 야당으로서 헌법 수호라는 책무를 거론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서게 됐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결의문에는 12·3 비상계엄에 대해서도 “잘못된 계엄 선포로 큰 혼란과 실망을 드린 데 대해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송구한 마음으로 사과드린다”는 입장이 담겼다. 결의문은 ‘국민의힘 의원 일동’ 명의로 작성돼 송언석 원내대표가 낭독했다. 앞서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거부했던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의원들의 총의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대변인을 통해 전했다. 어제의 결의문 발표는 6·3 지방선거를 석 달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의힘에 차갑게 등을 돌린 민심을 반영한 고육지책이었다. 국민의힘의 대표선수 격인 오세훈 서울시장마저 노선 전환이 불가피하다며 후보 등록을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국민의힘은 “대한민국도 국민의힘도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며 “다시 태어난다는 자세로 국민과 함께 결연히 미래로 전진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결의문 문구에는 결연함이 느껴지지만, 많은 국민은 말로만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버릴 수 없다. ‘윤 어게인’ 세력과 실제로 절연하는 모습을 당의 정책과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 여전히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표심을 얻으려는 ‘면피 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의힘은 결의문에 “이재명 정권의 반헌법적 폭주와 사법 파괴를 저지하고 헌법 가치와 자유를 지키겠다”는 주장도 담았다. 숱하게 외치던 구호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함으로써 비로소 설득력을 갖기 시작했다. 결의문은 시작일 뿐, 보수 재건을 위해 갈 길이 멀다.
2026.03.09. 8:24
검찰 개혁 방안을 둘러싸고 여권에서 분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에 대한 정부안이 나오자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강경파 의원들은 “검찰 개혁에 역행한다”고 반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줄 필요가 있다는 취지를 밝혔지만 강경파는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민주당은 ‘보완수사요구권’만 주기로 당론을 정했다. 강경파는 검찰총장 명칭도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이 연이어 SNS에 글을 올리며 설득에 나서는 모습이다. 지난 7일 이 대통령은 “집권 세력이 됐다고 마음대로 다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라며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정치적 입지나 선거에서의 유불리가 국가 미래나 국민 편익에 앞설 수 없다”고 했다. 강경파에 대한 불만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딴지일보 등 일부 커뮤니티에 “검찰 개혁 무산되면 지지 철회” 같은 글이 올라왔다. 반대로 친명 커뮤니티에선 강경파 의원들을 “배신자”로 지목하는 등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어제 또다시 SNS에 “모두를 개혁 대상으로 몰아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결과가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적었다. 정성호 장관도 “형사사법제도는 국민 모두의 것”이라고 거들었다. 급기야 국무총리실 검찰개혁추진단 박찬운 자문위원장이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주장에 우려를 표하며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분열에서 보듯 정부 여당이 사법 개혁과 검찰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이익과 권리보다 정치적 목적을 우선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올린 SNS 메시지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 대통령은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 몇 마리’를 제외하면 대한민국 사법부가 훌륭하다며 자신에게 무죄를 선고한 경우 등을 예로 들었다. 이러면 본인에게 불리한 판결은 사법부가 잘못한 것이란 말이 된다. 이 대통령은 “개혁은 외과시술적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도 했는데, 법왜곡죄 등 사법 3법은 헌법 개정 사안에 버금갈 정도로 사법 질서에 중대한 변화를 불러올 사안이다. 그럼에도 신속히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검찰 개혁이든, 사법 개혁이든 국민을 중심에 두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가장 합당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여권 내부 갈등을 보노라면 이런 원칙보다 헤게모니 싸움에 매달리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2026.03.09. 8:22
이재명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이른바 ‘사법 3법’이 확정됐다. 국회의 입법으로 처리되었지만 사실 이는 1948년 이후 유지되어 온 우리나라 헌정 구조의 근본적 재편을 의미한다. 형식적으로는 법률 개정이지만 내용상으로는 헌법 개정에 가까운 중대한 변화라는 말이다. 이런 엄청난 일이 충분한 사회적 공론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여야 간 협의도 없이, 더욱이 당사자인 사법부의 의견도 무시한 채 이뤄졌다. 많은 부작용과 문제의 발생이 불가피할 것이다. 개헌에 가까운 중대 변화임에도 사회적 공론·여야 협의 없이 확정 대한민국 출발 때부터 강조해 온 사법부 독립성에 심각한 위기 법원에서 확정판결한 사건에 대해 헌법소원을 하도록 한 재판소원 도입법은 기존의 3심제를 사실상 4심제로 바꾼 것이다. 1948년 이후의 사법 구조가 근본적으로 재편된 것인데, 이는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한다는 헌법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로서는 업무량도 폭주하겠지만,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이나 정치인 혹은 권력과 관련된 사건을 최종적으로 다루면서 법원과 다른 판결을 내리게 될 때의 정치적 부담도 갖게 됐다.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됐다는 권위보다 정치적, 정파적 관점에서 헌재를 바라보는 일이 잦아질 것이다.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3년 동안 모두 26명으로 늘린다는 대법관 증원법에 대해서는 작년 9월 이 칼럼을 통해 이미 그 방안의 심각성을 지적한 바 있다. 대법관 증원은 사법부를 ‘우리 편으로 만들기’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핵심 법원의 구성을 정파적으로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판사의 정원을 늘리고 그 만큼을 자기편으로 임명하는 코트 패킹(court packing)은 헝가리, 폴란드, 베네수엘라 등 민주주의가 퇴행한 국가에서 나타났던 방식이다. 그 결과는 어떨까?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2004년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이 대법원 규모를 20명에서 32명으로 늘렸고 이후 9년 동안 대법원은 정부에 반대하는 판결을 하나도 내놓지 않았다고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지적했다. 우리는 과연 다를까. 이른바 ‘법 왜곡죄’는 더 해괴하다. 우리의 통치 시스템은 국회가 법을 제정하면, 행정부가 이를 집행하고, 법원은 그 법을 해석하는 역할을 맡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법 왜곡죄는 법의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판사를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법의 해석에 대해 다시 해석하는 외부자가 생겨난 것이다. 물론 판사가 법 해석을 잘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사법 시스템은 한 번의 재판이 아니라 항소심에서 다시 다루고 또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그 해석의 옳고 그름을 살펴보도록 했다. 이제는 누구라도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이 내려졌다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법을 왜곡해서 해석한 판사의 잘못으로 돌릴 것이다. 사법 시스템의 전반적인 안정성이 떨어지게 되었다. 사법 3법이 통과되면서 민주당은 ‘제왕적’으로 불려 온 대통령에, 야당이 ‘입법독재’라고 비판해 온 입법권에 더해 사법부까지 사실상 그들의 영향력 하에 두게 되었다. 지금 여론의 추이대로라면 다가올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싹쓸이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민주당 천하’로 완성될 것이다. 민주화 이후 경험해 보지 못한 권력의 집중이다. 민주당이 이 무리한 조치를 강행할 수 있었던 건 눈치를 살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쟁 세력이 높은 지지를 받는 상황이었다면 명분 없는 사안을 다수의 힘만으로 밀어붙이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야당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되었다. 오늘날 국민의힘은 권력과 다투는 것이 아니라 유령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음모론과 그릇된 확증편향으로 부정선거라는 유령과 싸우고 있고, 나라도 망치고 보수 정치도 망친 윤석열이라는 또 다른 유령과도 싸우고 있다. 바쁘고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국민이 유령과 싸우고 있는 정당에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균형이 무너졌다. 정파 간 균형도, 제도 간 균형도 모두 무너졌다. 사람의 몸이 그렇듯 나라 역시 균형이 무너지면 건강을 잃게 된다.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는 1948년 8월 16일 국회를 방문하여 인사말을 했다. “여러분 국회의원은 온 국민을 대표하고 국회의원 여러분은 이 시기에 적당하게 법관으로 하여금 마땅히 이것을 적용할 만한 법률을 제정해 주시면 거기에 우리는 의준(依準)해서 일반 국민의 공복으로 그것을 공정하게 운영하는 데 노력을 게을리 아니 할 것을 결심하고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이 사법기관은 법관에 운영에 관한 사업에 대해서는 반드시 엄정한 독립성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다른 방면에 간접이나 직접으로 강제를 받는다든지 어떠한 정신이 거기에 첨부된다고 할 것 같으면 아무리 수신(修身)을 갖고 나간다 하더라도 거기에 지장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가인의 당부와 달리, 이제 법관은 ‘다른 방법에 간접이나 직접으로 강제를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대한민국이 출발할 때부터 강조되어 온 사법부의 독립성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26.03.09. 8:20
6·3 지방선거가 석 달도 남지 않았다. 지난해 6·3 조기 대선에서 승리해 여당으로 변신한 민주당은 최근 여론조사 흐름대로라면 지방권력까지 석권할 기세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에 이어 이재명 정부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당이 창출한 네 번째 정권이다. 지금 민주당 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이미 장악했고, 위헌 논란이 들끓은 '사법 3법' 강행 처리로 사법부까지 쥐락펴락한다. 삼권분립이 흔들리면서 민주주의의 핵심인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위태롭다. 윤석열 이어 장동혁, 도우미 역할 트럼프·김정은도 결과적 도움 줘 절대 권력엔 민심의 역풍 불수도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에 크게 밀렸던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역대급 막강 여당이 된다. 민주당 정책 지지 여부와 의원들의 실력·도덕성을 별개로 하고 보면 참 운 좋은 정당이란 생각이 든다. 정치적 대운(大運)을 잡고 순풍에 돛 단 듯 질주하는 민주당 정부를 결과적으로 도와 온 '숨은 우군(友軍)' 셋을 꼽아 보자. 첫 주인공은 국민의힘이다. 민주당의 야당 복은 역대급이다. 국민의힘이 배출한 검사 출신 첫 대통령 윤석열은 2024년 22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민주당의 선거대책 본부장'이란 비아냥을 들었다. 장바구니 물가가 폭등한 상황에서 개념 없이 대파를 들고 흔들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고, 의대생 2000명 증원 카드로 보수 성향 의료인들까지 등 돌리게 했다. 기행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임기가 절반가량이나 남은 상황에서 급기야 위헌적 12·3 비상계엄으로 파면당하면서 권력을 민주당에 헌납하듯 했다. 운 좋게 벼락 여당이 된 이후 민주당의 야당 복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릴레이로 키워온 모양새다. 어제 국민의힘 긴급 의원총회에서 탈당한 윤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에 반대한다는 '절윤(絶尹) 결의문'을 채택했지만, 선거용 꼼수라면 민주당의 야당 복은 지속될 거다. 내부 분열로 망가지는 국민의힘을 민주당은 "내란 정당"이라 공격하지만, 민주당의 장기 집권에 큰 도움을 주는 고마운 국민의힘의 해산을 속으론 전혀 바라지 않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민주당 정부에 행운을 더해 주는 둘째 주인공이다. 그가 지난해 1월 취임 이후 관세전쟁 등 충격적 조치들로 놀라게 할 때마다 이 대통령이 뒷수습하는 양상이 반복됐다. '행정 경험이 많은 유능한 소방수' 이미지를 얻으면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한국갤럽)까지 치솟았다. 정청래 대표가 수시로 '명·청 분란'을 일으켜도 민주당 지지율은 국민의힘을 압도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부정할 수도 있겠지만, 민주당 정부에 본의 아니게 도움을 주는 셋째 주인공이다. 김 위원장은 노동당 9차 당대회에서 "한국의 현 정권이 겉으로 표방하는 유화적인 태도는 서툰 기만극이고 졸작"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은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 관계'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대남 비방이지만, 남북 교류의 문을 걸어잠근 김 위원장의 쇄국 정책은 역설적으로 민주당 정부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앞서 문재인 정권은 저자세로 일관하면서 북한의 핵무장에 시간만 벌어줬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이 아예 대화의 문을 닫았으니, 접촉 시도 기회부터 차단돼 실패 리스크도 없는 셈이다. 민주당이 '사법 3법'을 모두 강행 처리한 지난달 28일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이란을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전쟁 쇼크 때문에 사법 3법의 위헌 이슈가 여론의 후순위로 밀리는 와중에 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정청래 대표는 "운도 실력"이라며 희희락락할 수도 있겠지만, 요행이 언제까지 갈지 두고 볼 문제다. 정치적 행운은 구름 같아서 권력이 오만·교만·자만하면 언제든 급변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집권 세력이 됐다고 마음대로 다 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경계했다. 누구를 향한 메시지인지 아리송한데, 정 대표의 말처럼 "절대권력은 절대 망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집권당이 기억하면 좋겠다. 장세정([email protected])
2026.03.09. 8:18
연구실 풍경이 바뀌었다. 석·박사급 연구원이 일주일 매달리던 분석을, 인공지능(AI)이 몇 시간 만에 해낸다. 그렇다고 나는 아직 조교를 줄이지 않았다. AI를 활용해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AI를 많이 활용하는 분야 종사자들은 “자신이 곧 대체될 것 같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반면 AI의 침투가 크지 않은 분야에서는 “내 영역은 AI가 대체할 수 없어”라고 안심하기도 한다. 이에 관해 경제학자들은 2025~2026년에 실증 연구 20여 편으로 답했다. 이를 소개한다. “인간 전문성 살리는 ‘친노동적 AI’를” 고용 변화 실시간 추적 인프라 만들고 청년고용 기업에 세제 등 인센티브를 로봇세·디지털세 등으로 과실 나눠야 AI 충격 이미 시작…조용히, 청년부터 전체 노동시장 지표는 아직은 평온하다. 덴마크인 2만5000명을 3년간 추적했다. 소득·근무시간 모두 변화가 없었다(Humlum &Vestergaard, 2025). 앤트로픽(Anthropic)도 3월 5일 자사 AI인 클로드(Claude) 사용 데이터와 미국 각종 노동 통계를 결합해 ‘AI 노출도’를 측정했다(Massenkoff & McCrory, 2026). AI 노출이 높은 직종의 실업률은 저노출 직종과 다르지 않았다. 왜 그럴까? 세 가지 이유다. 첫째, AI를 도입했지만 활용이 미비하다. 4개국 경영진 6000명 조사에서 AI 도입률은 70%인데 경영진의 주당 평균 사용시간은 1.5시간에 불과했다(Yotzov, Ivan, et al., 2026). 둘째, 개인이 빨라져도 산출은 당장 늘지 않는다. 가령 AI 코딩 도구 도입 후 개인 생산성은 8~9% 향상됐지만, 기업 전체의 산출량과 고용에는 변화가 없었다(Chen&Stratton, 2026). 셋째, 이론과 현실의 차이도 크다. AI는 이론상 컴퓨터·수학 분야 업무의 94%를 처리할 수 있다. 하나 실제 현장 커버율은 33%에 그쳤다(Massenkoff & McCrory, 2026). AI 혁명이 성과로 전환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공백이 지금이다. 그런데 왜 불안한가? 궁극적으로는 대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이터는 청년 고용에 먼저 경고를 보내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 직종에서 22~25세 고용이 약 20% 감소했다. 반면 30세 이상은 6~13% 성장했다(Bry njolfsson et al., 2025). 같은 직종, 같은 시점인데 방향이 정반대다. 앤트로픽의 최근 연구도 22~25세 청년 중 AI 노출 직종 신규 취업률은 14% 감소했지만, 25세 이상에서는 이 패턴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Massenkoff & McCrory, 2026, 그래픽). 한국도 마찬가지다. 최근 3년간 청년층 일자리가 21만1000개 감소했다. 이 중 98.6%가 AI 고노출 업종에서다. 반면 같은 업종에서 50대 일자리는 20만9000개 증가했다(한국은행, 2025). AI발 노동시장 변화는 해고가 아니라 채용 감소를 통해 작동한다. 기업은 기존 직원을 못 자른다. 대신 새로 뽑지 않는다. 피해는 아직 취직 못 한 청년에게 집중된다. 임금도 마찬가지다. AI 채택 후 주니어 인력은 7~12% 감소, 시니어는 6% 증가했다(Hosseini & Lichtinger, 2025). 주니어 초임은 6.3% 하락했고, 시니어 임금은 소폭 상승했다(Azar et al., 2025). 연차 편향적 기술변화, 이례적 현상이다. 같은 AI, 다른 결과 AI가 상담원 대신 답변하면 고용이 줄고, AI가 상담원을 도와주면 고용이 유지될 수 있다. ‘자동화’ 직종에서는 청년 고용 감소, ‘보강’ 직종에서는 8~12% 성장한다(Brynjolfsson et al., 2025). 결국, 어떻게 쓰느냐가 실업의 강도를 결정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도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Acemoglu et al, 2026). 지금 AI 개발은 지나치게 자동화에 치우쳐 있다. 기업의 유인이 인건비 절감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AI의 활용이 인간의 전문성을 더 가치 있게 만들고 새 과업을 창출하는 ‘친노동적 AI’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금 당장 해야 할 것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첫째, 노동시장을 체계적으로 실시간 들여다봐야 한다. 앤트로픽 연구진이 노동시장 변화의 신호를 분석한 이유는 각종 노동시장 통계를 실시간 연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이러한 인프라가 아직 없다. 고용보험 DB, 워크넷 채용공고, 사업체 패널을 연계해 AI 노출도별 고용 변화를 분기마다 추적해야 한다. 정교한 경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청년들이 이 상황을 혼자 감당하게 해선 안 된다. 이를 위해 신입 채용을 유지하거나 인턴십과 견습을 늘리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줄 수 있다. 연구 결과, ‘보강형 AI’를 쓰는 직종에서는 청년 고용이 오히려 늘었다(Brynjolfsson et al., 2025). 청년이 현장에서 배울 기회를 잃으면, 10년 뒤 우리 산업의 중간 허리가 비어버리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셋째, 과실을 적극적으로 나누어야 한다. AI 도입으로 기업은 생산성이 1.4% 상승하고, 고용은 0.7%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Yotzov et al., 2026). 이익은 기업이 가져가고, 비용은 사회 전체가 부담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불평등이 가속화 할 우려가 있으므로 로봇세, 법인세 강화, 디지털세 등을 통해 AI의 과실을 적극적으로 나누어야 한다. 넷째, 재정 시나리오를 미리 세워놔야 한다. 실업률 10%·30%·50%일 때, 출산율이 오를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기대여명이 90세를 넘을 때 등 상황 별로 각각 소득보장 재정이 얼마나 필요한지, 어떻게 충당할지 복안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기가 닥쳤을 때 설계할 시간이 없다. 기술 변화는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 AI 경쟁에서 앞서가는 나라일수록 더 큰 파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실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비용을 모두가 나눠야 한다면, 정의롭지 않다. 다가올 충격을 공동체가 함께 흡수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구체적인 사회 제도를 설계하자. 김현철 연세대 의대 교수·인구와인재연구원장
2026.03.09. 8:16
전쟁 초래하는 잘못된 정보와 오판 1950년 3월 30일부터 4월 25일 사이에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스탈린과 김일성, 그리고 박헌영의 만남은 한국전쟁의 원인과 발발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북한의 남침 3개월 전에 이루어진 이 만남의 대화록은 구소련 문서를 이용한 한국전쟁 연구자였던 웨더스비가 이용한 바 있다. 소련의 ‘미군 불개입’ 관측과 박헌영의 ‘남한 봉기’ 오판, 한국전 불러 ① 국방·경제력 ② 국제 정세 ③ 자국 여론에 대한 평가가 전쟁 결정 근거 독·일은 상대 과소 평가, 미국은 이라크전 빨리 끝내 반전 여론 피해 미국, 폭격 초기에 이란 내부 변화 기대한 정황…오판에 따른 전쟁 가능성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부가 기록한 이 대화록에 의하면 스탈린은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이 북한의 전쟁 전략에 가장 든든한 배경이 된다고 봤다. 스탈린은 남침을 최종 결정하기 전에 중국의 전쟁 지원에 대한 보증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소련이 직접적으로 참전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점도 밝히고 있다. 1949년과는 달리 북한의 남침 전략에 대해 스탈린이 찬성한 또 하나의 요인은 소련의 핵개발이었다. 소련이 핵을 갖게 되면서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됐다고 판단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이 공산화될 때에도 개입하지 않았던 미국이 한국과 같은 작은 지역에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북한의 남침 결정 이에 대해 김일성은 한반도 내부 상황도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답했다. “공격은 신속하게 이루어질 것이고 전쟁은 사흘 안에 승리할 것”이며 “남한의 게릴라 운동은 더욱 강해졌고 대규모 봉기가 예상된다”고 했다. “미국은 준비할 시간이 없고, 정신을 차릴 때쯤이면 모든 한국인이 새 공산주의 정부를 열렬히 지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더하여 부수상이었던 박헌영은 “남한에서 강력한 게릴라 운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20만 명의 당원이 대중 봉기의 지도자로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북한이 남침했을 때 남한에서는 어떤 봉기도 없었다. 남한에 있었던 공산주의자들과 게릴라들은 1949년부터 1950년으로 이어지는 겨울에 대부분 토벌되어 힘을 잃었다. 오판이었을까? 아니면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을까? 남한에서 활동하다 1946년 월북했던 박헌영이 북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일부러 과장했던 것일까? 아니면 남쪽에 있던 박헌영 계열의 공산주의자들이 과대평가한 보고서를 북으로 보냈기 때문이었을까? 그 진실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잘못된 정보와 판단이 결국 3년간의 전쟁, 80여년 간의 분단이라는 큰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오판인가? 예방전쟁인가? 전쟁은 오판에 의해 일어난다. 인간은 전쟁을 통해 상대방을 제압하고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비용보다 이익이 더 컸던 전쟁은 없다. 인간이 갖는 가치를 고려한다면, 아무리 큰 이익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인간 목숨의 가치보다 더 클 수 없다. 따라서 전쟁은 대체로 민주적이지 않은 정치지도자들에 의해 독단적으로 결정된다. 전체주의적 지도자들은 사회적 여론의 조작을 통해 한 국가 전체를 전쟁으로 몰고 간다. 히틀러와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나 때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합리적인 지도자들에 의해 전쟁이 발발하기도 한다. 미래의 전쟁으로 인한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전쟁이나 군사전략이 그러한 사례이다. 이를 예방전쟁이라고 한다. 상대방의 군사시설에 선제공격을 한다. 미래의 피해를 막기 위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래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예방전쟁은 자신들의 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전쟁 개시 결정을 위한 세 가지 조건 이렇게 전쟁은 어떠한 이익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세 가지 조건에 대한 평가에 근거해 전쟁이 결정되었다. 첫째로 내가 상대방보다 더 월등한 국방력과 경제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는 전쟁 개전의 가장 결정적 요인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주관적이고 부정확하다. 독일의 소련 침공, 일본의 진주만 습격, 유엔군의 평양 이북으로의 북진 등이 그 사례이다. 독일은 소련군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일본은 진주만의 미 해군을 파괴하면 최소한 2년간 복구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유엔군은 중국군의 능력과 전술을 잘못 판단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일본의 오판이다. 일본은 미국의 생산력과 데미지 컨트롤(damage control)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치명적 패배였다. 둘째로 국제적 상황에 대한 고려이다. 김일성의 남침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은 소련의 핵개발과 중국 혁명이었다. 일본은 독일의 소련 침공과 프랑스 점령을 보면서 진주만 공격을 시작했다. 또한 동남아시아 식민지를 갖고 있는 서유럽 국가들의 힘이 약해지는 과정을 보았으며, 미국이 대서양과 유럽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판이었다. 역내 민족주의의 이용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 초기에 동남아에서 지지를 받았던 것은 서유럽 열강들을 일본이 쫓아냈고, 아시아 사람들에 의해 미래를 개척해 나가자는 주장 때문이었다. 동남아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실체가 곧 밝혀졌지만,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은 독일의 나치즘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공적이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의 후세인은 아랍 민족주의를 이용하고자 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후 미국이 사우디에 대한 이라크 침략을 막기 위해 ‘사막의 방패 작전’을 시작하자 후세인은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계획했다. 그러나 그가 믿었던 이집트까지도 이라크를 지지하지 않았다. 아랍국가들은 별도의 아랍 연합군을 만들어 사막의 방패 작전에 참여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버지 부시 정부의 걸프전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전쟁과는 달리 국제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에 대한 대항이었기 때문이었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던 영국·독일·프랑스가 걸프전에는 참전했다. 쿠웨이트를 해방하기 위한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지상군의 투입은 100시간만에 끝났다. 상대방 국가의 내부 상황 셋째로 자국과 상대방 국가 내부의 사회적 여론이다. 내부의 강력한 지지 없이 국가의 자원을 총동원해야 하는 전쟁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히틀러와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내부의 여론을 인위적으로 움직이려고 했던 많은 선전전이 모두 이 때문이었다. 물론 상대방 국가의 여론도 중요하다. 예방전쟁이라는 목표 하에 전쟁으로 미래의 위험이 되는 상대방 국가의 정권을 교체하려 한다면, 상대방 국가의 정치적 상황과 여론을 보아야 한다. 외부의 공격과 동시에 내부의 폭동이 있다면 목표는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물론 상대방 국가의 거버넌스 상태와 능력도 고려해야 한다. 거버넌스가 탄탄하면 반대여론이 있어도 정권교체가 안 될 수 있고, 거버넌스가 약하면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더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한국전쟁의 경우 남한의 정세에 대한 김일성과 박헌영의 완전히 잘못된 판단을 볼 수 있다. 남침 후 3일이면 남한 내부의 봉기에 의해 남한 정부가 스스로 몰락할 것으로 보았다. 반면 걸프전은 상황을 적절하게 판단한 경우였다. 이라크 내 여론이 후세인 정부를 교체하기에 충분한가에 대해서도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기에 4일 만에 지상군의 전쟁은 끝났다. 비록 후세인 정부의 교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불완전하게나마 국제사회의 이라크 군사시설에 대한 감시가 가능했고, 전쟁을 단기간에 끝냄으로 인해 미국 내에서 반전 여론이 형성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 내부상황에 대한 러시아의 오판, 러시아의 공격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내부의 단합이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이란 내부 상황 판단 공화당 내부에서도 이란에서의 전쟁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분명해지는 점은 이란 내부 상황에 대한 오판의 가능성이다. 베네수엘라에서의 미국의 작전 직후 이란 내에서 반정부 시위가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정보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보기관과 주요 정책결정자에게 어떻게 전달되었을까? 막상 이란의 주요시설에 대한 폭격이 있었고, 지도자가 사망했음에도 내부에서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초기 미국 정부의 성명을 보면 폭격 초기 이란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나길 기다렸던 것 같다. 변화의 소식이 없자 쿠르드 민병대가 이란을 공격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이란에서 어떠한 상황이 전개될지 예상할 수 없지만, 분명 초기 상황은 잘못된 정보와 판단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잘못된 정보가 자칫 제2의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의 상황이 이미 제3차 세계대전의 초입에 진입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길어지는 전쟁은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울 가능성도 크며 더 많은 민간인 피해와 함께 인류에 치명적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2026.03.09. 8:14
집을 여러 채 가진 다주택자의 설 자리가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말부터 소셜미디어 엑스(X)에서 직접 포문을 열었다. 정부와 여당도 후속 조치를 서두르고 있다. 시장은 움찔했다. 다주택자 규제는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은 결이 다르다. 노·문 정부가 양도세·종부세 등 세금으로 압박했다면 이 대통령은 돈줄과 퇴로를 동시에 조이고 있다.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의 대출 연장 제한,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축소까지 거론했다. 세금만 올리던 방식에서 한 발 더 나갔다. 칼끝은 1주택자까지 향한다. 들어가 살지 않는 '투자용 1주택'이다. 이 대통령은 투자용의 절세 방안으로 꼽히는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손질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장기보유특별공제는 보유 기간에 따라 양도차익을 깎아주는 제도다. 원래 '단타' 투기 억제를 위해 만들어졌다. 1989년 노태우 정부 때 양도세 누진세율과 함께 도입됐다. 장기 보유를 유도하겠다는 취지였다. 이 대통령이 장기보유특별공제까지 겨냥하면서 실수요 기준선이 분명해졌다. '거주 1주택'이다.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규제가 다주택 수요 억제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대통령은 매물 증가를 노리고 있다. 다주택자와 비거주 1주택자의 집을 시장에 나오게 하겠다는 계산이다. 매물이 늘면 가격 상승세를 꺾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하락 압력까지 만들 수 있다. 시장은 반응하기 시작했다. 2월 말 이후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의 아파트값이 앞장서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마지막까지 보유할 것으로 예상된 알짜 매물까지 호가를 낮춘 급매물로 시장에 나오고 있다. 집값이 워낙 많이 올라 5월 10일 부활하는 양도세 중과 충격이 크기 때문이다. 대출 연장이 막히고 임대사업도 어려워진다. 보유세 강화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사방이 막혀 다주택자가 버틸 자신이 없다. 증여도 쉬운 선택지는 아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 확대되면서 전세를 끼고 증여세를 줄일 수 있는 부담부증여를 할 수 없다. 시세만큼 세금을 내야 해 부담이 작지 않다. 게다가 집값 상승 기대도 꺾이고 있다. 증여는 집값이 내리기보다 오를 것으로 예상될 때 많다. 세금을 줄일 수 있어서다. 이 대통령이 직접 전면에 서서 시장에 보내는 메시지는 실거주 1주택 중심으로 시장 질서를 다시 짜겠다는 신호다. 이제 공은 정부와 국회로 넘어갔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실제 제도로 어떻게 구체화할지에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안장원([email protected])
2026.03.09. 8:12
일교차가 큰 환절기라 그런지 요즘 독감이 유행하고 있다. 단순 독감인지 코로나바이러스의 변형인지 걸렸다 하면 최소 1~2주는 앓아눕고 체중도 몇 ㎏이나 빠진다. 독감에 걸리면 그러려니 하고 병원에서 주사 맞고 처방받아 약 먹고 견딘다. 이런 가운데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코로나19 사태 당시 이물질 신고가 접수된 백신과 동일 제조번호의 백신 1420만 회분이 접종 보류 조치 없이 투여된 사실까지 확인됐다니 더 불안하다. 청와대를 비롯해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등 관련 정부 부처는 경각심을 갖고 대비해야 한다. 미국, WHO 탈퇴로 각자도생 우려 복지부·질병청만으론 대응 한계 국가위원회, 외교·기후부 포함을 지난해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코로나19 같은 제2의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 팬데믹 협정’이라는 국제조약이 채택됐다. 첫째,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에 무방비 상태로 다시는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둘째, 코로나19 당시 개발도상국들이 느낀 배신감을 해결하려는 취지도 있다. 유럽·미국 등 선진국도 엄청난 피해를 겪었지만, 개도국은 치료제와 진단 도구 등의 수급에서 배제되거나 감당하지 못해 피해가 더 컸다. 당시 개도국들이 느꼈을 배신감은 ‘형평성과 연대감 결여’라는 완곡한 언어로 대충 넘길 사안이 아니다. 팬데믹이 발생한 개도국에서 병원체 물질이나 정보를 WHO와 선진국에 신속히 알려주지 않으면 큰 재앙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도국의 반란’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WHO의 최대 후원국 역할을 해오던 미국이 지난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WHO 탈퇴 문서에 서명했다. 단순히 한 회원국의 이탈 차원을 넘는다. 팬데믹 대응을 위한 인류 차원의 장벽에 핵심 주춧돌이 빠진 것 같은 충격이다. 모더나 등 미국계 거대 글로벌 바이오 기업들의 국제적 역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자칫 국가별로 각자도생해야 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같은 제2의 팬데믹에 대한 예방과 대처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의 권한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 생활과 국가 경제에 치명타였던 코로나19에서 보듯 팬데믹은 피해 규모나 성격상 단순히 보건 문제를 넘어 국가안보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영국은 각각 2022년과 2023년에 ‘바이오 안보전략과 실행계획’을 만들어 실행하고 있다. 미국은 많은 경우 대통령실 직속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국무부·보건부·농림부·환경청 등 거의 모든 정부 부처와 기관이 지원한다. 한국도 지난 정부에서 미국·영국 등 바이오 선진국과 팬데믹에 공동 대처하고 역량을 발전시키기 위해 대통령실 차원에서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국가 바이오 전략도 마련했고, 국가바이오위원회도 설립했다. 그러나 국가안보실장이 교체되고, 비서실이 득세함에 따라 국가바이오위원회의 목적과 구성은 바이오 안보가 아닌 바이오산업 성장으로 과도하게 경도됐다. 물론 바이오산업은 거의 모든 정부에서 국정과제로 선정될 정도로 중요한 국가의 미래 핵심 성장동력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가 제2의 팬데믹을 경고하는 상황에서 국가안보 요소가 경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바이오위원회 구성도 문제다. 당연직 위원 구성에 외교부·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빠져 있어 우려스럽다. 코로나19처럼 인간과 동물 모두가 감염될 수 있는 인수공통감염병은 대부분 야생동물의 무분별한 섭취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야생 동물의 서식처를 관리하는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질병 예방 차원에서 1차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미국·영국의 팬데믹 대응 전략과 실행계획에도 이를 명확히 하고 있다. 팬데믹은 용어에서 드러나듯 전 세계를 강타하는 질병이기 때문에 국가 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어느 때보다 외교부의 전문 협상 능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국가바이오위원회를 보면 외교부 장관은 원칙적으로 참석이 불가능하다. 위원회의 민간위원 구성에도 바이오 안보 시각을 가진 위원은 한 명도 없다. “돈 많고 여유 있는 병원장들의 놀이터가 됐다”는 자조가 들린다. 이렇게 방심하면 코로나19 같은 팬데믹 재앙에 또다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 전문가들의 경고를 흘려 듣지 말아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원석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6.03.09. 8:10
아기였을 때 나는 멕시코 해먹 안에서 자고 있었다. 부모님이 이 해먹을 구해 왔는데, 낭만적이라서가 아니고 집이 너무 좁아 나를 위한 공간이 공중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방에는 벽마다 천장 끝까지 높이 쌓아놓은 칠천 권의 책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밤이면 이 책들은 나뭇잎이 서로 겹겹이 얽힌 채 자라난 나무들로 변했다. 트럭이 집 밖을 지나갈 때면 나의 멕시코 해먹은 그 숲에서 그네처럼 흔들렸다. -다와다 요코(사진) 『영혼 없는 작가』 중에서. “우리 할머니에게 여행이란 낯선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다른 고장에는 다른 물이 있단다.” 이런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을 일본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다. 예민하고 매혹적인 문장들이 빛처럼 쏟아져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뉴요커의 평이 딱이다. “다와다 요코의 책을 읽고 있으면 나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신화 속을 헤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독일에서 자라 두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의 산문집이다. 그의 남다른 언어 감각은 이중 언어 구사자라는 배경에서 온 것이다. 가령 ‘성’이 있는 언어를 처음 접했을 때 작가는 “이를테면 만년필을 보면서는 그게 실제 남자라고 느끼려고 애를 썼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말이다. 나는 만년필을 손에 쥐고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반복했다. 남자, 남자, 남자. 이 마법의 주문은 천천히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주었다.” 이는 언어에 대한 비범한 통찰로 이어졌다. “모어에서는 생각이 단어에 너무 꼭 들러붙어 있어서 단어나 생각이나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수가 없다. 외국어를 쓸 때는 스테이플러 심 제거기 같은 것을 갖게 된다. 이 제거기는 서로 바짝 붙어 있는 것과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을 모두 떼어놓는다.” “내 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단어들은 내 감정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모어에도 내 마음과 딱 맞아떨어지는 단어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낯선 외국에서 살기 시작할 때까지 그것을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가끔 나는 모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구역질이 났다. 그 사람들은 착착 준비해 척척 내뱉는 말 이외의 다른 것은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양성희 문화칼럼니스트
2026.03.09. 8:08
종로에서 태어나 지금도 종로에 사는 이가 종로의 역사와 사람 사는 이야기에 대한 책을 보내왔다. 책을 통해 조선 건국 이후 우리 역사 절반이 서울에서 이루어졌고, 서울의 역사는 곧 종로의 역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로 이곳저곳을 소개한 책 속엔 낙산공원도 소개되어 있었는데 생소하게 느껴졌다. 생소함은 곧 호기심으로 이어져 눈이 소복이 쌓인 날 아침 낙산공원을 찾았다. 입구 안내판엔 서울을 둘러싼 18㎞ 한양도성 중 낙산 구간은 동대문에서 혜화문까지 약 2㎞에 이른다고 적혀 있었다. 낙타 등 같은 능선의 낙산공원 ‘케데헌’ 덕에 외국인 관광객 몰려 모래언덕 닮았다는 중동 부부도 성곽 외벽을 따라 낙산 정상을 향해 걸었다. 조선 초에 축성된 성곽엔 거친 세월을 견디지 못해 주저앉은 곳도 보이는데 그 위엔 돌을 다시 쌓은 흔적이 보인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니 돌 위에 돌을 쌓아 올리며 손등으로 땀을 훔치는 석공들의 모습이 보이고, 돌을 나르는 인부들의 앓는 소리도 들린다. 600년의 시간을 거스르며 천천히 산을 올라갔다. 낙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짐작해보기도 했다. 성곽길을 따라 정상에 이르자 사방에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앞에는 멀리 남산이 하늘과 경계를 이루고, 오른편엔 600년 전 한양이, 왼편 동쪽에는 오늘의 서울을 짓는 타워크레인들이 곳곳에 보인다. 잠시 숨을 돌려 뒤를 돌아보니 서울을 품은 북한산이 듬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산에 오르는 동안 낙산의 ‘낙’자를 즐거울 낙(樂)자이거나 서쪽 하늘의 낙조가 아름다워 떨어질 낙(落)자로 썼으리라 짐작했는데, 낙산 정상 주변에서 ‘駱山體育會(낙산체육회)’라는 나무간판을 보는 순간, 낙자가 낙타(駱駝)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종로 이야기를 쓴 이에게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낙산의 능선이 낙타의 등처럼 굽어 옛날에는 낙타산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낙산공원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는데, 애니메이션 영화 ‘케데헌’에 낙산공원이 나왔다는 말이 귀 너머로 들려왔다. 궁금한 마음에 곧바로 영상을 살펴보았다. 몇 장면에서 기시감이 느껴져 찬찬히 보니 주인공들의 등 뒤에는 낙산성곽이 보이고 그 뒤에는 서울시내가 내려다보였다. 잠시 정상에 머물다 북한산 쪽으로 내려오며 오래된 마을과 마주했다. 마을 주택가의 좁은 골목과 가파른 계단이 수십 년 전의 추억으로 이끌었다. 마당이 있는 작은 카페가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한다. 길을 걷는 남녀노소, 내외국인 모두 밝고 편안한 표정이다. 아름다움은 찾는 자의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설 연휴에 다시 낙산을 찾았다. 낙산공원이 ‘케데헌’으로 많이 알려졌는지 지난번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이 보인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한 여성은 저고리에 노리개를 달고 머리에는 큰 비녀까지 꽂고 있다. 그녀의 동행은 양손으로 치맛자락을 쥔 채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산에 오른다. 모두 흡족한 표정이다. 산 내리막의 ‘케데헌’ 배경지에서는 남녀가 서로의 사진을 담고 셀카를 찍기도 한다. 북적거리는 곳을 지나 한적한 성곽길 끄트머리에 다다랐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남녀가 커플 사진을 부탁하는 표정으로 미소를 보낸다. 중동에서 서울로 신혼여행 왔다는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거뭇한 수염에 갓을 쓴 하산과 얌전하게 보이는 야스민에게 서울에 온 소감을 물었다. 여러 나라로 출장 다닌다는 하산이 말했다. “이곳에 오니 아라비아 사막의 모래언덕이 떠오릅니다. 서울을 둘러싼 산의 능선과 모래언덕의 곡선이 비슷해요. 차이가 있다면 서울의 산 능선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겠지만 모래언덕은 지난밤에 분 바람에 따라 다음 날 아침 모습이 달라진다는 점이에요. 내일 아침 모래언덕이 어떤 모습일지는 신밖에 모르지요. 중동사람들은 그럴 때 ‘인샬라’라는 말을 합니다. 신의 뜻이라는 말이지요. 아마 들어 보셨을 겁니다.” 야스민이 말을 이었다. “중동에서는 모래언덕의 곡선은 낙타 등과 같다고 합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세상 사람들의 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낙산공원에서 인생을 다시 생각한다. 먼 옛날 낙산이라는 이름을 지은 이는 어디서 낙타 이야기를 들었을까? 바로 옆 나뭇가지 위에 까치 가족이 조는 듯 앉아있다. 곽정식 수필가
2026.03.09. 8:06
지난 2월 26일, 넷플릭스는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WBD) 인수를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넷플릭스는 CNN 등 케이블 부문을 제외한 스튜디오와 스트리밍(HBO 맥스) 부문만을 주당 27.75달러(총 약 827억 달러)에 인수하려 했다. 그러나 파라마운트-스카이댄스가 전체 사업 부문 인수를 조건으로 주당 31달러(총 1110억 달러)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것이 판이 뒤집힌 결정적인 이유였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대표는 “있으면 좋은(nice to have) 자산이지, 반드시 가져야 할(must have) 자산은 아니다”라며, 가격을 더 높여 인수를 강행할 이유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결정으로 넷플릭스는 워너브러더스로부터 28억 달러(약 3조7000억원)라는 막대한 해약금을 챙길 예정이다.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뜨거웠다. 발표 다음 날인 27일, 넷플릭스 주가는 약 14% 급등했다. 대규모 M&A에 따른 재무적 불확실성이 해소된 데다, 기존처럼 오리지널 콘텐트 투자 확대와 미식축구(NFL) 등 스포츠 중계권 확보를 통한 성장 가능성이 다시금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수령할 해약금을 자사주 매입에 쓰겠다고 공표한 점도 주가 상승에 강한 동력을 제공했다. 파라마운트의 상황도 표면적으로는 나쁘지 않다. 발표 다음 날 파라마운트 주가 역시 20% 이상 폭등했다. 인수가 예정대로 완료되면 글로벌 미디어 시장이 넷플릭스와 아마존이 주도하는 ‘플랫폼 진영’과 디즈니·NBC유니버설·파라마운트-워너가 버티는 ‘할리우드 진영’의 양강 대결 구도로 재편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파라마운트의 성공적인 완주에는 여전히 걸림돌이 많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총 인수대금의 70~80%에 달하는 막대한 부채가 가장 큰 리스크로 꼽힌다. 이번 인수전을 막후에서 지휘한 래리 엘리슨 오라클 창업자가 400억 달러 이상의 개인 보증을 섰다는 사실은 이번 인수 구조가 내포한 위험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인수가 완료된 후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부채 리스크를 상쇄하려면 단기적인 시너지 창출이 필수적인데,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힐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파라마운트 측은 연간 60억 달러 규모의 시너지 창출을 장담하고 있으나, 거대 조직 간 통합(PMI) 과정은 늘 예상보다 험난하고 성과는 더디기 마련이다. 결국 넷플릭스가 무리한 경쟁을 피해 실리를 챙긴 진정한 승자가 될지, 아니면 파라마운트-워너가 난관을 극복하고 시장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거듭날지가 향후 미디어 산업의 장기적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
2026.03.09. 8:04
새해가 밝으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다짐을 한다. 많은 다짐 중 하나는 아마도 “새해에는 살을 빼고 건강해지겠다”가 아닐까? 그래서인지 해마다 새해가 되면 동네 헬스장은 신입 회원들로 북적거렸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이 좀 다르다고 한다. 힘든 운동이나 식이 요법을 하지 않고도 날씬해지는 길이 열린 것이다. 바로 비만 치료제다.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비만 치료제는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을 기반으로 한다. GLP-1은 식사 후 장에서 분비되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포만감을 유도하는 천연 호르몬이다. 우리 몸의 장과 췌장은 포만과 배고픔을 알리는 호르몬을 보내고, 뇌는 그 신호를 해석해 “먹을까, 멈출까”를 결정한다. GLP-1 기반의 비만 치료제는 포만감 신호를 강화해 뇌가 이미 배부르다고 느끼게 만든다. 그러면 식욕이 억제되고 위장 운동이 지연되어 혈당 조절 및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이게 된다. 한마디로 뇌로 가는 신호를 조작해 뇌가 배부르다고 느끼게 속이는 것이다. 하지만, 약이 식욕 신호를 바꿀 수는 있어도, 뇌의 기본 설정값까지 바꿔 주지는 않는다. 약을 중단하면 요요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다. 뇌는 반복을 기억한다. 반복된 행동 뒤에 보상이 계속 따라오면, 뇌는 그것을 안전하고 다시 해도 되는 선택으로 저장한다. 그래서 “운동해야지”보다 “운동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가 더 중요하다. 이때 선택은 ‘저녁 식사 후 10분 걷기’처럼 작고 구체적일수록 좋다. 같은 상황에서 같은 행동이 반복되면, 뇌는 그것을 자동화해 에너지를 아낀다. 약은 일시적으로 신호의 강도를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뇌를 바꾸는 것은 생활의 반복이다. 약으로 뇌를 속이는 것보다, 일상의 선택과 습관을 통해 뇌가 건강한 선택을 기본값으로 삼도록 길들이는 편이 훨씬 더 지속 가능하다. 한선화 UST 명예교수
2026.03.09. 8:02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3.09. 3:30
추방은 삶의 궤적에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아픔이다. 추방자라는 낙인이 찍힌채 자신이 나고 자란 한국으로 쫓겨난 이들은 이질감 속에 평생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전역에서는 불법 체류자 단속이 강화되고 있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추방 정책은 법적으로는 ‘이민법 집행’이라는 분명한 명분을 갖는다. 그러나 법과 제도가 모든 현실을 포괄할 수는 없다. 정책 이면에는 분명 그늘이 존재한다. 본지가 최근 보도한 한인 추방자 기획 기사는 바로 그 지점을 조명하는 데서 출발했다. 법적 판단이나 제도적 결과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각지대를 기록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지난해 말 본지 영어 매체 코리아데일리US(www.koreadailyus.com)에 게재된 영문 기사를 한국어권 독자를 위해 한글로 재구성해 다섯 차례에 걸쳐 소개했던 이유다. 추방자들의 사연은 기구하다. 미국에서는 신분 때문에 늘 숨어 살아야 했고, 단속과 추방의 공포 속에서 일상을 이어가야 했다. 결국 강제 추방을 당하거나 더 이상 버티지 못해 자진 출국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삶의 터전에서 밀려났다는 상실감과 수치심을 동시에 겪게 된다. 그들에게 한국은 법적으로는 ‘모국’일지 몰라도 언어, 문화, 사회적으로는 낯선 땅이다. 한국에 연고가 없거나 생활 기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한다. 여기에 추방자라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부정적 시선과 선입견에 시달릴 수 있다는 두려움도 따른다. 대부분 자신의 과거와 처지에 대해 공개하기를 꺼리는 이유다. 그동안 언론의 수많은 보도는 대부분 추방을 둘러싼 법적 절차나 정책 논쟁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추방 이후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세히 조명하지 않았다. 이번 기획 취재는 추방이라는 결과 이후에도 이어지는 현실, 낯선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고충, 그리고 누적된 삶의 상처를 기록하려 했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불법 체류 자체가 위법이고, 추방자 가운데에는 중범죄 전력이 있는 사례도 적지 않은데 왜 그들의 어려움에 사회적 관심을 기울여야 하느냐는 시선이다. 그러나 이번 보도의 목적은 불법 체류라는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특정 입장을 옹호하는 데 있지 않다. 법적 또는 정치적 판단을 대신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제도적 결정에 따른 결과 이후에 처한 인간의 삶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판단했다. 범죄 전력이나 불법 체류자라는 사실과 별개로 그들 역시 기본적인 존엄과 권리를 가진 존재다. 만약 사회가 법적으로 흠결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공적 담론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배제와 침묵을 낳을 수 있다. 특히 당사자들조차 감추고 싶어 하는 사연과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공론의 장으로 옮기는 증언자의 역할도 언론의 몫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인 추방자들은 눈물을 머금은 채 나고 자란 땅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들의 존재와 현실에 대한 관심은 미미하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추방보다 더 슬픈 건 철저히 외면받는 삶일지도 모른다. 이번 보도가 추방이라는 사건을 단편적으로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이후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추방 이후 그들이 어떤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잠시나마 살펴보고, 공공의 관심을 환기하는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 장열 / 사회부장중앙칼럼 추방 외면 한인 추방자 추방 정책 강제 추방
2026.03.08. 17:19
우리는 매일 세수하고 화장하며 얼굴을 관리하고, 좋은 음식을 챙겨 먹으며 몸을 돌본다. 그렇다면 우리 몸 전체를 지탱해 주는 ‘발’에는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 신발 속에 감춰진 발은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심장에서 멀다는 이유로 쉽게 잊히곤 한다. 하지만 발은 건물의 기초 공사와 같다. 지반이 기울면 벽에 금이 가고 건물이 뒤틀리듯, 발의 아치(Arch)가 무너지면 그 위에 연결된 모든 관절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발의 통증으로 시작된 문제가 무릎과 골반, 허리, 나아가 목까지 이어진다면 이미 몸의 정렬이 무너진 이후인 경우가 많다. 원인 모를 만성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면, 이제는 발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어릴 때부터 골프를 사랑해 온 67세의 한 미국인 환자가 클리닉을 찾아 왔다. 지난 10여년간 발목부터 무릎, 허리, 목까지 수술하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통증은 계속됐고, 결국 더 이상의 수술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골프대회 참가의 소망을 포기할 수 없어 지인의 권유로 클리닉을 찾아온 것이다. 필자가 처음 확인한 그의 발은 아치가 심하게 무너진 상태였다. 그 많은 수술 이전에 발의 정렬부터 바로잡았다면, 그렇게 오랜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다행히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라는 마음으로 맞춤형 교정구를 선택했고, 지금은 통증 없이 골프 토너먼트에도 참가하며 활기찬 일상을 되찾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 유럽에서는 발에 문제가 생기면 ‘페도티스트(Pedorthist)’라는 공인 발 교정 전문가를 먼저 찾는다.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페도티스트는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발의 변형과 보행 패턴을 분석하고, 신발과 맞춤형 교정구(Orthotics)를 통해 몸의 균형을 바로잡는 전문가를 말한다. 단순히 편한 신발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족압과 걸음걸이를 분석해 무너진 아치를 세우고 통증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말 그대로 ‘발 관리의 건축가’라 할 수 있다. 지금 신고 있는 신발 밑창을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란다. 한쪽만 유독 심하게 닳아 있거나, 뒤축이 안쪽 또는 바깥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이는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명확한 신호다. 이런 불균형을 방치할 경우 족저근막염, 무지외반증은 물론 퇴행성 관절염과 척추 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감각이 둔해지는 당뇨 환자나 근력이 약해지는 시니어에게 발 건강은 단순한 통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라 할 수 있다. 100세 시대의 핵심은 결국 ‘내 발로 얼마나 오래, 얼마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당신의 발은 정말 안녕하십니까?” 이선애 / 미국 공인 발 교정 전문가 (C.Ped)건강 칼럼 신발 밑창 신발 밑창 맞춤형 교정구 발의 통증
2026.03.08. 17:18
요즘 중동 하늘 위로 드리운 전쟁의 먹구름은 세계인의 마음까지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공습을 감행하고, 이란의 고위 지도자들이 제거되었다는 소식은 세계를 다시금 전쟁의 문턱으로 밀어 올리고 있다. 이에 맞서 이란이 보복의 칼날을 세우면서 전면전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총성이 오가는 곳마다 국제 질서는 흔들리고, 세계 경제는 출렁이며, 무고한 시민들의 일상은 산산이 부서진다. 전쟁은 시작은 있어도 끝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전쟁은 언제나 정의의 이름으로 시작되지만, 그 끝은 참혹한 상처로 남는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겉으로는 호기롭다 하나 지도자의 속마음까지 담대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는 수없이 이를 증언해 왔다. 그럼에도 인류는 또다시 같은 길목에서 갈등과 오만, 불신의 언어로 서로를 겨누고 있다. 한반도 북녘에서는 김정은이 핵무력을 내세워 위세를 과시하고 있다. 마치 그 어떤 외부 세력도 감히 넘볼 수 없다는 듯한 태도다. 그러나 힘으로 쌓아 올린 담장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위협은 또 다른 위협을 부르고, 공포는 결국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가 된다는 말이다. 더욱 안타까운 장면은 그의 어린 딸 김주애의 공개 행보다. 가죽 외투 차림으로 군부대를 방문하고, 기관총 사격 장면을 지켜보는 모습은 세계인의 눈에 낯설고도 씁쓸하게 비친다. 아직 또래 친구들과 뛰놀고 배움에 힘써야 할 나이에, 황제와 공주의 상징처럼 정치의 전면에 서 있는 모습은 안쓰러움을 넘어 깊은 우려를 낳는다. 어린 마음이 권력의 무게를 짊어진 채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질주하게 된다면, 그 종착역은 어디일 것인가. 권력은 단련된 이성 위에 놓여야지, 상징과 과시에 의해 세습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 정부의 유화적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공갈과 협박은 여전히 거칠다. 대화의 손길을 내밀어도 거친 언사로 응답하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위협적 행동은 체제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실상은 불안의 또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 그러나 강한 안보 위에 서 있는 평화, 굳건한 대비와 냉철한 판단이 있을 때, 도발은 힘을 잃는다. 진정한 강함은 절제에서 나오고, 진정한 지도력은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서 증명된다. 소위 참수의 그림자는 단지 한 나라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권력자에게 보내는 경고이자, 국제 사회가 공유해야 할 교훈이다. 세습의 교만과 두려움 위에 세운 권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북녘의 존엄이라 일컫는 오만으로 다져진 체제 또한 역사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지금 세계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보복이 또 다른 보복을 낳는 악순환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상처를 봉합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세습 권력의 불장난과 군사적 과시가 더 이상 국제 사회를 긴장 속에 몰아넣지 않기를 바란다. 힘의 언어 대신 평화의 언어로, 오만 대신 책임으로 돌아와야 한다. 전쟁은 결코 운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선택이다. 그렇다면 평화 또한 우리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지도자들이 분노가 아닌 이성으로, 야망이 아닌 양심으로 결단하기를 소망한다. 더 이상의 피 흘림이 아니라, 인류의 존엄과 미래를 지키는 길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전쟁의 먹구름 아래 역사는 힘을 과시한 지도자보다, 절제와 이성으로 평화를 지켜낸 지도자를 더 오래 기억하고 존경한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열린광장 김정은 그림자 고위 지도자들 세습 권력 군사적 과시가
2026.03.08. 17:15
식물은 구걸하지도 싸우지도 않는다. 남의 것을 탐하지도 빼앗지도 않는다. 제자리에서 열심히 혼자 물 길어 올리고 햇빛과 입맞춤하여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자신이 피운 잎을 떨어뜨려 토양을 기름지게 만들고 거기서 자양분을 얻는다. 동토에서도 새봄이 기지개를 켜면 싹을 틔워 부활을 현시한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인다. 살아남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아야 하고, 이를 위해 무기를 만들고 전쟁을 일으킨다. 물질문명이라는 도구가 인간의 생존에 위협을 주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반면, 정신문명을 노래하던 문학은 이제 난해한 문자언어의 조합 정도로 취급받는다. 돈을 사랑하는 인간들에게 문학은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 시와 소설은 서점 구석의 선반 위에서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을 뿐이다. 인류는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나? 하루가 멀다고 AI(인공지능)의 놀라운 발달 소식이 전해진다. 어느새 로봇의 배달 서비스, 무인 택시, 무인 상점이 등장했다. 물질문명의 발전으로 인간은 풍요와 편리함을 누리고 있지만, 철학, 종교, 윤리, 예술 등 정신문명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 이제 과학의 산물들은 인간에게서 떼어낼 수 없는 부속품처럼 됐다. 이로 인해 환경 파괴, 자원고갈, 기후위기, 핵무기 경쟁 등 인류를 위협하는 요소들은 점점 세력이 커지고 있다. 현대인의 정신적 공허와 소외, 우울증도 심해진다. 그렇다면 정신문명이 설 자리는 없는 것인가? 답은 있다. 너무도 평범한 진리이지만, 철학과 종교를 통해 인류의 궁극적 목적을 탐구하는 것이다. 문학과 예술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과 감성을 일깨워야 한다. 또, 인간 중심의 사고를 넘어 ‘생태철학’의 실천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강화한다면 물질문명 속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중심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 물질문명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잘못된 정신이 문제다. 정신문명이 물질문명을 이끌어야지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에 윤리를, 과학에 인간성을, 경제에는 정의를, 힘에는 사랑을 입힐 때 인류의 미래는 밝아지며 파멸을 넘어서 보다 나은 진보 (Progress for humanity) 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애리조나와 유타 주의 황량한 사막과 캘리포니아의 데스밸리가 생명이 없는 ‘죽음의 땅’이든가? 겨울비 내린 뒤 그 사막을 가보라.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사막의 꽃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곳은 ‘죽음의 땅’ 이 아니라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생명의 땅’ 인 것이다. 봄이 싹을 틔우면 여름은 이를 받아 구슬땀 흘리며 녹음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가을을 다양한 색깔의 아름다운 옷을 준비하고 풍성한 수확물을 내놓는다. 그리고는 동면의 쉼을 통하여 푸른 생명을 또 준비한다. 자연의 법칙은 물질(과학)문명을 능가하는 놀라운 아름다움으로 우리 곁에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이상훈 / 시인·수필가발언대 자연 반면 정신문명 물질문명 자체 철학과 종교
2026.03.08. 17:14
‘실시’란 낱말은 일상에선 잘 쓰지 않는다. 공문서나 그것에 가까운 글에서 흔히 보인다. 아무래도 습관 같아 보인다. 어떤 상황에서도 ‘실시’란 단어는 대부분 불필요해 보인다. ① 지난주에 방제훈련을 실시했다. ② 검진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③ 다음 달까지 평가를 실시한다. ④ 불우 이웃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⑤ 시험 감독은 시험 실시 직전에 알 수 있다. 흔하게 보이는 문장의 풍경들이지만 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①은 ‘방제훈련을 했다’고 하는 게 더 좋다. 굳이 ‘실시’를 넣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②, ③의 문장에서도 ‘실시’를 빼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④는 ‘실시하고’ 대신 ‘펼치고’라고 하면 어떨까. 그게 더 낫겠다. ⑤의 ‘실시’는 ‘시작’이 더 어울린다. ‘실시’보다 일상적인 말들이 더 좋은 문장을 만든다. ‘같은 기간’을 뜻하는 ‘동기’는 조금 어려워 보인다. 역시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자주 사용한다. 일상의 독자들에게는 그리 낯익은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동기’를 자주 사용하는 건 ‘동기’를 사용하는 집단의 전통 같다. ‘전년 동기보다 많이 올랐다’ ‘작년 동기 대비’의 ‘동기’는 ‘같은 기간’이라고 하는 게 훨씬 낫다. ‘개소’도 일상의 말이 아니다. 그래서 거리감을 준다. ‘관광지 10개소’보다는 ‘관광지 10군데’나 ‘관광지 10곳’이 친절하다. ‘상수원보호구역 12개소’ ‘열악한 20개소’의 ‘개소’도 ‘곳’이나 ‘군데’가 더 좋다.우리말 바루기 전년 동기 작년 동기 관광지 10곳
2026.03.08. 17:12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됨에 따라 중동 지역에 체류 중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 초미의 과제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중동 지역 공관장이 대거 공석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이재명 정부 출범 후 9개월이 지났는데도 중동 지역 19곳 중 6곳의 공관장이 비어 있다.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에는 대사가 없고, 중동 지역 허브 공항으로 한국 여행객들이 오도 가도 못 하는 처지가 된 두바이 총영사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튀르키예, 쿠웨이트, 이집트, 알제리 등의 대사 자리도 비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비상 철수 계획을 이중·삼중으로 치밀하게 준비해 달라”며 “필요하면 우방 간 공조도 하고 군용기·전세기·육로 교통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정작 현지에서 이런 당부사항 이행을 총괄 지휘해야 할 공관장이 공석인 황당한 상황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현재 14개 중동 국가에는 우리 국민 1만8000명이 머무르고 있다. 단기 체류자는 4900명으로, 이 중 3500명이 항공편 취소로 귀국을 기다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동 지역 공관은 현지 직원을 제외하면 5인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중동 국가들이 고위직과의 소통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공관장 부재 상황은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다. 여야 의원들이 지난 6일 국회 외통위에서 한목소리로 이런 상황을 질타한 이유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인사가 늦어지면서 현재 재외 공관장이 공석인 국가는 49곳이라고 한다. 공관장 부재로 인해 대응이 늦거나 부실했던 사례는 미국 조지아주 한국인 근로자 구금이나 캄보디아 한국인 피살·구금 사태 때 겪은 바 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늦은 공관장 인사는 여전히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을 두고 외교가 안팎에서는 특임 공관장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자리다툼 때문이라느니, 외교부 소속 대사 후보자들의 과거 정부 때 행적에 대한 검증 때문이라느니 뒷말이 무성한 지 오래다. 재외국민 보호는 정부의 기본 책무다. 정부는 공관장 인선을 서둘러 스스로 외교력의 발목을 잡는 상황을 끝내야 한다. 특히 이번 중동 사태는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나아가 사태 이후 변화된 중동 지역의 지정학을 바탕으로 방산 등 국익 외교를 펼쳐야 할 사람도, 6월 지방선거에서 재외국민의 투표권 행사를 독려할 사람도 공관장이다. 사정이 있다면 중동 지역 주요 공관장이라도 우선 임명해야 한다. 그래야 이 대통령 말대로 당장의 국민 안전을 제대로 챙길 게 아닌가.
2026.03.08. 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