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3.26. 3:30
지난달 28일 ‘이란 전쟁’이 시작된 이후 가주의 개솔린 가격이 무섭게 오르고 있다. 가주의 레귤러 개솔린 갤런당 평균 가격은 25일 현재 5달러80센트로 한 달 새 1달러20센트나 급등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가격이 1달러 가량 오른 것에 비해 훨씬 상승폭이 크다. 가주 운전자들의 체감 상승폭은 더 심하다. 도심 주유소들의 레귤러 개솔린 갤런당 가격은 이미 6달러를 넘어섰고, 심지어 7달러나 8달러대를 받는 곳도 있다. 가뜩이나 가주의 개솔린 가격이 다른 주에 비해 비싼 상황에서 이런 급등은 운전자들에게 큰 부담이다. 정유업체들은 유가 상승을 이유로 든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유가 상승에 비해 개솔린 가격 인상폭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를 경우 개솔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갤런당 10센트 정도다. 이런 분석을 고려하면 전쟁 시작 이후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가량 올랐으니 개솔린 가격은 갤런당 30센트 정도 오르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가주의 개솔린 가격 상승폭은 몇 배나 된다. 정유 업체들의 폭리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소비자 단체는 전쟁 이전 갤런당 49센트였던 정유업체의 마진이 현재는 1달러25센트로 급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가주에서 정유업계의 횡포가 심한 이유는 구조적 문제 탓이라고 지적한다. 즉, 개솔린 소비량의 80%를 주내 정유시설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운전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마침내 주 정부도 나섰다. 주에너지위원회 산하 원유시장감독국이 정유업체들의 폭리 혐의 조사 방침을 밝힌 것이다. 이 부서의 책임자는 “철저한 가격 모니터링을 통해 불공정 행위나 폭리 등의 혐의가 발견되면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이번 조사가 용두사미로 끝나지 말고 정유업계의 폭리 행위를 근절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사설 정유업계 폭리 정유업계 폭리 폭리 혐의 폭리 행위
2026.03.25. 19:17
미주 최대 한인 은행인 뱅크오브호프가 LA한인타운에 있던 본점을 LA다운타운으로 이전한다. 은행 측은 금융 중심지라는 입지 조건, 고객 접근성 향상, 직원 업무 환경 개선 등을 이유로 꼽았다. 그러면서 이번 이전이 은행의 지속적인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기존 뱅크오브호프 본점의 외부 모습은 한인 최대 은행, 리저널 뱅크라는 위상에 어울리지 않았다. 수차례의 인수·합병(M&A) 과정을 거치며 탄생한 은행이다 보니 내부 통합과 정비가 더 시급했을 것이다. 따라서 본점 이전 발표는 내부 정리를 끝내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인타운의 위상과 미래라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타운의 상징적 존재 하나가 또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행 측은 기존 본점 지점의 유지 등 고객 서비스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타운 고객들의 심리적 공백은 클 것이다. 사실 한인 은행의 이전은 처음이 아니다. 한미은행도 지난 2021년 타운에 있던 지주사를 다운타운으로 옮긴 바 있다. 이제 자산 규모 1,2위의 한인 은행 핵심이 모두 타운을 떠나는 셈이다. 최근 한인 타운의 상징적 존재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다른 곳으로 이전하거나 문을 닫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타운에 새로 둥지를 트는 곳은 많지가 않다. 물론 이유가 있겠지만 타운과 한인 사회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한인 타운은 한인 사회의 기반이다. 타운이 성장해야 한인 사회도 발전한다. 한인 업체나 단체들의 외면으로 한인타운이 이름만 남게 된다면 한인 사회의 구심점도 약화할 것이다. 몇몇 사람의 노력만으로 한인 타운이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각 분야의 주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남의 일’인 것처럼 방관만 하다가는 시기를 놓친다. 뱅크오브호프의 케빈 김 행장은 본점 이전 계획을 밝히며 “한인타운은 우리 정체성의 중심”이라고 말했다. 한인 사회가 같은 마음이었으면 한다. 사설 한인타운 공동화 한인 타운 한인 은행 한인 사회
2026.03.25. 19:16
오는 3월 28일, 세 번째 ‘노 킹스 데이(No King’s Day)’ 집회가 전국에서 열린다. ‘노 킹스 데이’는 현 연방정부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모여 행동하는 날이다. 특히 이민단속국(ICE)의 무차별 체포와 구금, 추방 정책에 반대하는 이민자 권익에 대한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또 이란과의 전쟁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노 킹스 데이’가 시작된 것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시민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과 10월에 열린 두 번의 ‘노 킹스 데이 집회’에는 전국 2700여 곳에서 최대 700만여 명이 참여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시위였다. 올해 ‘노 킹스 데이’ 집회 참가자 목표는 1200만여 명이다. 1200만이라는 숫자는 나름대로 뜻이 있다.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 하버드대 교수가 밝힌 3.5% 법칙 때문이다. 체노웨스 교수는 2011년 정치학자 마리아 스테판과 함께 펴낸 책 ‘왜 시민 저항이 효과적인가’에서 인구의 3.5%가 지속해서 비폭력 저항 운동을 펼치면 정권 변화와 중대한 정치적 전환을 통해 부당한 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저자들은 1900년부터 2006년까지 100여년간의 시위, 불매운동, 시민 불복종 등 다양한 형태의 비폭력 운동을 연구한 뒤 이런 결론을 내렸다. 비폭력 저항은 폭력 저항보다 도덕적·신체적 참여의 장벽이 낮아 더 많은 사람의 참여를 끌어낸다. 또 높은 참여 비율은 운동의 회복력을 높이고, 전술적 혁신의 기회를 넓히며, 체제에 현상 유지를 포기할 유인을 제공하고, 군 내부를 포함한 기존 지지 세력의 충성심 이탈을 유도한다. 성공적인 비폭력 저항이 더 지속 가능하고 내부적으로 평화로운 민주주의를 낳으며, 이러한 민주주의는 내전으로 퇴행할 가능성이 작다는 설명이다. 성공 비율도 폭력 저항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고 한다. 그래서 시민운동 단체들은 “당신의 참여는 실제로 세상을 바꾼다”는 구호 아래 미국 인구의 3.5%인 1200만여 명이 오는 3월 28일 ‘노 킹스 데이’ 행사에 참여하길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1200만 명이 조직적, 지속해서 행동한다면 현 정부의 폭정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노 킹스 데이’에 1200만 명을 채우려면 지난해 행사보다 500만 명이나 더 참여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한인을 비롯한 아시아계의 참여가 절실하다. 우리 이웃들이 ICE에 차별당하고, 두들겨 맞고, 잡혀가고, 쫓겨나는 모습을 지켜만 볼 수는 없다. 우리도 떨쳐 나서야 한다. ‘노 킹스 데이’는 대도시의 대규모 집회 말고도 전국 곳곳의 소도시, 마을에서도 일제히 열린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하면 된다. 집회가 열리는 장소는 인터넷 웹사이트(https://www.mobilize.us/nokings/)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노 킹스 데이’는 특정 정파나 정당, 정치인을 지지하는 ‘정치 행사’가 아니다. 인권을 지키고,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살리고, 금권 정치를 막고, 망가진 나라의 바른길을 찾으려는 시민운동이다. 훗날 한인 사회도 이 값진 행동에 함께 나섰다는 역사를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목표 데이 데이 집회 비폭력 저항 비폭력 운동
2026.03.25. 19:15
‘마약에 취한 미국’하면 금방 떠오르는 곳이 캘리포니아, 그중에서도 LA와 샌프란시스코다. 약물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마약중독자와 홈리스의 모습이 매일같이 언론에 보도되는 현실이다. 다행히 수치상으로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LA카운티의 약물 과다복용 사망률이 22% 감소했다. LA카운티 공중보건국(LA DPH) 약물남용 예방·통제 책임자인 브라이언 헐리 박사는 “펜타닐 관련 사망자가 크게 줄었고 메스암페타민 관련 사망자도 감소했다”고 밝혔다. LA카운티 약물 과다복용 사망률 감소 이유는 날록손(naloxone)이라는 약물의 배포 확대다. LA카운티는 오피오이드 과다복용으로 멈춘 호흡을 되살리는 이 약물 수백만 회 분량을 배포했다. 그 결과 2019년 이후 5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 LA카운티 보건서비스국(LA DHS) 피해 감소 부서 책임자인 쇼샤나 스콜라는 “이웃이, 가족이, 친구가 서로를 살렸고 지역사회가 응급 처치자가 되었다. 공식 시스템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 사람들이 서로의 안전망이 되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숫자 뒤에 가려진 진실이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LA카운티에서는 흑인의 과다복용 사망률이 가장 높으며, 인구가 가장 많은 라틴계는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인종으로 나타났다. 모든 생명이 평등하게 구해지고 있지는 않다는 뜻이다. 특히 약물중독 노숙자 대부분은 휴대전화도 없다. 지원 체계도 부족하다. 과다복용 상황에서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 누군가 지켜보지 않으면 그가 위험에 처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약물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피해 감소 전략과 지역사회 기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우스 LA 지역 비영리단체 호픽스(HOPICS·Homeless Outreach Program Integrated Care System)의 켈빈 드리스콜 국장은 “현장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 지원하는 아웃리치 활동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호픽스의 자원봉사자 오로라 모랄레스는 과거 홈리스 생활과 메스암페타민 중독을 경험했다. 지금은 스키드로와 맥아더 파크에서 약물 과다복용 대응팀을 이끌고 있다. 그는 “당시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비난이 아니라 공감과 지원이었다”며, 산소공급 장비와 날록손을 들고 거리를 걷는다. 그 결과 호픽스는 지난해 599명의 생명을 구했고, 스키드로 케어 캠퍼스에 하루 3000명을 치료하고 있다. 한인 사회와 미국 사회는 약물 중독을 개인의 도덕적 실패로 본다. 중독자를 범죄자로 낙인찍는다. 치료와 회복보다 처벌과 격리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LA의 사례는 다른 길을 보여준다. ‘피해 감소(harm reduction)’라는 접근이다. 약물 사용을 당장 멈추지 못하더라도 생명을 지킨다. 그 생명이 살아있는 한 회복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약물 위기는 캘리포니아만의 문제가 아닌, 미국 전체의 문제다. 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구조의 문제다. 빈곤, 주거 불안정, 정신건강 지원 부족, 의료 접근성 격차가 얽혀 있다. 그래서 해결책도 구조적이어야 한다. 날록손 배포는 시작에 불과하다. 주거 지원, 정신건강 서비스, 치료 프로그램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역사회가 응급 대응자가 되는 것을 넘어, 회복을 지지하는 생태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의 변화다. 중독자를 ‘그들’이 아닌 ‘우리’로 보는 것. 비난 대신 공감을 선택하는 것. 모랄레스의 말처럼 “더 많은 대화와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약물 위기 해결의 시작일 것이다. 이종원 / 변호사열린광장 약물 남용 약물남용 예방 약물 과다복용 la카운티 약물
2026.03.25. 19:13
오늘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게시물을 올리고 제일 먼저 ‘좋아요’ 버튼을 누른다. 내 게시물의 첫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나다. 혹시 까먹고 안 누른 하트가 있으면 돌아가 하트가 빨간색으로 꽉 차도록 ‘좋아요’를 누른다. 이런 모습에 여동생은 언니는 진짜 특이하다고 놀렸는데 내겐 당연한 것이 여동생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그럼 사람들은 자기 게시물에 하트를 안 눌러?” “보통은 그럴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동생은 “언니는 진짜 자기애의 끝판왕”이라며 혀를 찼다. 애써 쓴 자기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내겐 의아한 지점이었다. 나는 내 게시물에 ‘좋아요’를 열 번이고 백번이고 누를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반장 선거에 출마하곤 했다. 그때마다 꼭 나에게 투표를 했는데 함께 출마한 친구가 0표가 나오면 이상해 보였다. ‘저 친구는 자기를 뽑아 달라고 친구들에게 연설해 놓고 정작 자신은 왜 자신을 뽑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본인이 투표할 만큼 좋은 후보자가 있다면 그 친구가 당선되도록 본인은 나오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내가 찍은 한 표가 전부인 적도 있었지만 부끄럽기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지할 자신감이 있다는 사실에 어깨가 펴졌다. 굳이 친구들에게 저 한 표가 내가 던진 표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엄마, 아빠는 웃었지만 정말 잘했다고 칭찬까지 해줬다.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동양 문화권에서는 자신을 높이기보다 낮추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본인이 만든 결과물은 본인이 가장 인정해 주고 높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도 인정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인정해 달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 아닐까.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내보내기 전에 가장 많이 사랑하고 지지하고 보듬어주고 싶다. 거친 세상에 나가 넘어지고 쓰러지는 날이 올 때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과 온기가 역경을 헤쳐 나갈 힘과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 나 역시 부모님의 아낌없는 사랑과 지지를 받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부족한 부모지만 줄 수 있는 만큼의 사랑과 돌봄을 아낌없이 주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이 알았으면 한다. 항상 엄마가 뒤에 있다는 것을. 오늘도 SNS의 바다에는 ‘좋아요’를 갈구하는 게시물들이 여기저기 쏟아져 나온다. 어떤 글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 하트 수가 쑥쑥 올라가고, 또 어떤 글은 첫 ‘좋아요’를 누를 그 누군가를 기다리며 SNS 바다 위를 외로이 떠다닌다. 오늘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써 고이 접은 작은 돛단배를 망망대해에 띄워 보내기 전에 연료부터 꽉 채워준다는 심정으로 ‘좋아요’를 힘차게 눌러준다. 그렇게 나는 또 내 글의 최초 지지자가 된다. 이 글도 꼭 안아 데워 세상에 띄워 보낸다. 이보람 / 수필가이아침에 지지자 최초 지지자 자기 게시물 엄마 아빠
2026.03.25. 19:11
최근 한 어린이집 교사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우천시 ○○으로 장소가 변경될 수 있다’는 공지에 “우천시가 어디에 있는 곳이냐” “우천시에 있는 ○○이라는 곳으로 장소가 변경된 것이냐”고 묻는 학부모들이 있다는 것이다. 교과서와 신문, 책 등에 한자를 병기해 쓰던 세대에게는 황당하다 싶을지 모를 이야기지만, 한자를 잘 쓰지 않고 문자보다 영상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있을 법한 상황이기도 하다. ‘우천시’는 어딘가에 있는 도시가 아니다. ‘비 우(雨)’ 자와 ‘하늘 천(天)’ 자가 만나 비가 오는 날씨를 의미하는 ‘우천(雨天)’에 ‘때 시(時)’ 자가 이어진 표현이 ‘우천 시’이다. ‘우천시’는 사전에 하나의 낱말로 등재돼 있지 않으므로 ‘우천 시’와 같이 띄어 써야 한다. 이뿐이 아니다. ‘중식을 제공합니다’라는 글에 “우리 아이는 중식 말고 한식으로 달라”는 이도 있다고 한다. ‘가운데 중(中)’ 자에 ‘먹을 식(食)’ 자를 더해 점심 식사를 나타내는 ‘중식(中食)’을, 중국 음식을 의미하는 ‘중식’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이는 젊은 세대의 문해력에 대한 우려로 귀결되곤 한다. 그러나 언어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언중(言衆)이 많이 쓰는 방향으로 흘러가며, 그 흐름을 개개인이 막을 수는 없다. 문장을 보다 명확하고 알기 쉬운 우리말로 고쳐 쓰면 어떨까. “비가 올 땐 ○○으로 장소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점심 식사가 제공됩니다”와 같이 쓰는 것도 한 방법이다.우리말 바루기 우천 점심 식사 온라인 커뮤니티 어린이집 교사
2026.03.25. 19:10
토요타 자동차가 중서부를 대상으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토요타 자동차는 켄터키주 렉싱턴 인근 지역에 대형 조립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곳과 남부 인디애나 지역 공장을 대상으로 10억달러를 투자키로 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토요타 자동차의 이번 발표는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향후 5년간 10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의 일부로 알려졌다. 켄터키주의 주도인 렉싱턴에서 20마일 북쪽에 위치한 조지타운 공장은 토요타의 공장 중에서 전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만 1만명에 가깝고 전체 공장 부지가 1300에이커, 공장 면적만 900만평방피트다. 매년 55만대의 차량과 44만개의 엔진이 이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 공장에 8억달러를 투자할 예정인 토요타는 올해말 시장에 선보일 전기 SUV 하이랜더를 위해 생산 라인의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다. 2025년 기준 판매량과 생산량에서 전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기록한 바 있는 토요타는 남부 인디애나주 공장에도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그랜드 하이랜더와 시에나 하이브리드, 렉서스 TX 모델을 생산하고 있는 인디애나주 프린스턴 공장에 2억달러를 들여 생산 라인 현대화에 나선다고 밝힌 것이다. 프린스턴 공장은 인디애나주 최남단 에반스빌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번 투자는 2024년 14억 달러를 투자해 향후 배터리 사업을 준비하겠다는 계획에 이은 것이다. 그러니까 향후 토요타 자동차의 배터리, 전기 자동차 투자는 켄터키와 인디애나주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파악할 수가 있다. 토요타의 인디애나주 프린스턴 공장은 설립된지 30년이 넘었고 현재 7300명의 노동자가 매년 42만대 이상의 인기 토요타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현대 자동차도 최근 일리노이에 대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현대차의 자회사인 현대 트랜스리드(Translead)라는 회사가 있는데 이 회사는 트럭에 부착되는 트레일러와 플랫베드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회사다. 일반 승용차나 트럭이 아니라 상용 트럭 트레일러 등에 특화된 현대차의 자회사다. 본사는 캘리포니아주에 있는데 이번에 4억5000만달러를 투자해서 윌카운티 졸리엣 인근에 2곳의 공장을 확보했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계획대로 투자가 완료되면 총 2500명의 풀타임 직원이 채용될 예정이다. 공장이 들어설 곳은 데스 플레인강 인근으로 이전에는 캐터필러와 라이온 전기 버스 공장으로 이용됐던 곳으로 알려졌다. 공장 부지 면적은 총 52에이커. 특히 라이언 전기 공장의 경우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준비 과정을 거쳐 2027년부터 본격 생산에 돌입할 수 있는 상황이다. 현대 트랜스리드가 투자할 또 한 곳의 공장 시설은 예전까지 피오리아에 본사를 둔 캐터필라가 주요 부품을 생산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데스 플레인강에서 5마일 정도 북동쪽에 위치한 이 공장은 일리노이를 대표하는 제조업체인 캐터필라가 1951년부터 2019년까지 운영했었다. 호황일 때에는 7000명의 노동자가 이 곳에서 생산활동에 전념하기도 했다. 하지만 캐터필라는 국내 생산이 줄어들자 7년 전 이 공장을 폐쇄했고 현대 트랜스리드가 인수하기 전까지 비어 있었다. 마치 쇠퇴한 일리노이 제조업을 상징하는 곳처럼 여겨졌으나 다시 투자의 대상이 된 셈이다. 현대 트랜스리드가 본사인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중서부 일리노이에 생산 거점을 확보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회사측은 이번 투자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전국에 있는 딜러 네트워크와 생산 시설이 더욱 원활하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생산 거점을 중서부에 확보함으로써 고객들과 보다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라는 것이다. 시카고를 포함한 중서부가 물류의 허브면서 이 곳을 중심으로 전국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 트랜스리드의 중서부 공장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소위 러스트 벨트라고 불리는 중서부 지역에도 주요 투자 계획이 발표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다. 다만 정권에 따라 투자가 성급하게 이뤄지고 일부 계획들은 축소되거나 연기되는 일도 보인다. 주요 자동차 회사들의 전기 배터리 공장 투자가 대표적이다. 제조업이 중서부 지역의 산업 근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장기적이고 합리적인 투자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Nathan Park 기자시사분석 nathan 토요타 자동차 현대 자동차 투자 계획
2026.03.25. 13:27
현직 검사 수십 명이 국회에 불려나올 수도 있는 전례 없는 국정조사가 열리게 됐다.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 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어제 채택한 증인 102명 명단에 대북송금 사건 등 국정조사 대상 사건에 관여한 검사 40여 명이 포함됐다. ‘조작 기소 의혹’이라는 이름에서 예견된 상황이지만, 국정조사 특위 시작부터 현행 법률과 배치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위헌·위법성을 지적하며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현행 국정조사법은 감사와 조사의 한계를 정하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8조)이 있다. 이는 입법부가 사법부와 행정부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해 삼권분립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대북송금 사건 등 국정조사 대상 7개 사건은 대부분 재판 중이거나 재판이 중단된 상태다. 그 사건을 수사하거나 공소유지를 한 검사를 국회로 불러 조사하는 것 자체가 사건의 소추에 관여하는 법 위반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국회법 해설서를 근거로 “국회가 독자적인 진실 규명, 정치적 책임 추궁, 의정 자료 수집 등의 목적으로 조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차라리 재판을 재개해서 조작된 기소인지 법정에서 밝히는 것이 상식적인 처사다. 법적인 명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이런 무리수를 두기 때문에 여당이 입법권을 무기로 이재명 대통령의 공소 취소를 위해 판을 깔고 있다는 의심이 커지는 것이다. 민주당은 “특정인을 위한 게 아니라 잘못된 수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라지만 여러 정황상 설득력이 떨어진다. 앞서 친명계 의원들은 ‘공소 취소 모임’을 만들어 논란을 자초했고, 대북송금 사건 진상에 대한 법무부의 특별점검이 진행 중인데도 국정조사를 서둘러 도입했다. 엊그제는 특위 위원들이 “일단 쌍방울 사건에 모든 포격을 가한다”는 비공개 논의를 한 사실이 중앙일보 보도로 들통나기도 했다. 정치 검찰의 조작 기소가 있었다면 그것은 일벌백계해야 할 범죄이지만, 거대 여당이 힘으로 몰아붙이는 모양새는 국민의 불신만 조장할 뿐이다.
2026.03.25. 8:28
어제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고위공직자 정기 재산공개 내역을 관보에 게재했다. 국회와 사법부도 지난 1년간 변동 내용 등을 동시에 공개했다. 뚜껑을 열어 보니 고위공직자 가운데 다주택자와 서울 강남 3구 고가주택 보유자가 적지 않았다. 청와대의 경우 이번에 재산 공개 대상인 고위 공직자 48명 중에 12명(25%)이 다주택자(복합건물 제외)였다. 부동산을 보유한 대통령실 참모 가운데 10명 중 대략 4명 꼴로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재지와 평형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최근의 집값 흐름을 고려하면 대부분 고가 주택으로 볼 여지가 있다. 이 대통령은 다주택자를 부동산값 폭등의 주범으로 간주하는 인식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최근엔 부동산 정책 결정 과정에서 다주택이나 비거주 고가 주택을 보유한 공직자를 원천 배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대통령의 이런 방침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도곡동과 세종시에 다수 주택을 보유한 이성훈 국토교통비서관부터 배제 대상이 될 수 있다. 신고 내역으로 볼 때, 공직자들의 다주택 보유 비율은 일반 서민들보다 상당히 높다. 대통령 측근으로 불리는 청와대 참모들 중에서도 다주택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이들이 투기꾼이라면 공직 부적격자가 요직에 기용돼 있다는 얘기가 된다. 투기 혐의가 있다면 부동산 관련 업무에서 배제하는 것으로만 그칠 일이 아니라 공직자의 자격부터 문제가 된다. 반면에 신고 내용으로 볼 때 결혼·이사·교육·상속·증여 등으로 인한 다주택 소유 등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모든 다주택자들을 일률적으로 투기꾼으로 몰아 매도할 수 없고, 그런 인식에 바탕을 둔 정책은 곤란하다는 것이 공직자 재산 신고로도 확인된 셈이다. 실제로 김현지 제1부속실장 등 청와대 공직자들이 매물을 내놨지만 제때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신고 내용으로 확인됐다. 토지거래허가제 등의 다층적 규제 때문에 원매자가 선뜻 나서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는 다주택자 문제뿐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한 요인들이 중층적으로 얽혀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2026.03.25. 8:26
한국 최초의 다목적 전투기인 KF-21의 양산형 1호기가 어제 출고식을 했다. 공군은 성능 확인을 거쳐 9월부터 모두 120대의 KF-21을 실전에 배치할 예정이다. 2001년 3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국산 전투기 개발 비전을 천명한 지 25년 만이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등에 이어 초음속 전투기 자체 생산국에 진입했다. 한국의 자주국방 역량 증대와 방위산업 발전에 큰 이정표를 새긴 것으로 평가될 만한 일이다. KF-21은 한때 우리 군의 주력 기종이었지만 노후화로 인해 전력에서 제외된 F-4와 F-5를 대체하기 위해 8조1000억원을 들여 개발한 전투기다. 처음엔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한국형 첨단 전투기를 제작하는 게 무리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자국산 전투기 판매를 염두에 뒀던 미국이 능동 전자주사식 위상배열(AESA) 레이더, 적외선 탐색·추적(IRST), 전자광학 표적획득추적장비(EO TGP), 전자파 방해장비(RF 재머) 등 4대 핵심 기술 이전을 거부하며 난항을 겪었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개발 기간을 1년6개월가량 단축하며 K방산의 저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안주해선 안 된다. KF-21에 첨단 기술이 적용됐지만 5세대인 미국의 F-35 스텔스 전투기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한 게 사실이다. 군사 선진국들은 이미 6세대 전투기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65% 수준인 KF-21의 국산화 비율을 늘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5세대 전투기로 진화하는 작업에 속히 나서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어제 “첨단 항공 엔진과 소재, 부품 개발 등에 신속하게 착수해 우리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미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 체계 등 주한미군의 무기들을 수시로 차출하는 상황에서 다른 영역의 무기 첨단화를 통해 자주국방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KF-21 1호기의 출고를 전투기 완성이 아닌 자주국방의 시발점으로 삼길 바란다.
2026.03.25. 8:24
벌써 20년쯤 전의 일이다. 한 학기에 30명쯤 장학금을 받는데, 학과 조교가 장학생 명단 초안을 만들어서 가지고 오면 교수회의에서 수정 후 확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마침 그 업무를 담당하는 주임교수였는데,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학과 전체에서 수석을 차지한 학생은 모든 과목 A+를 받아서 만점이었는데도 장학생 명단에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보니 그 학생은 압구정동에 살기 때문에 굳이 장학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장학금이란 것이 뛰어난 학업성취에 대한 포상의 성격인지 아니면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의 성격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형편이 넉넉하다고 해서 1등조차 아무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누가 굳이 열심히 공부하려고 할까. 게다가 장학금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외국에서는 나이 60이 넘은 세계적인 학자들조차 이력서에 학창 시절 장학금 받은 이력을 빼놓지 않고 쓸 정도로 성실히 살아온 삶의 증거이기도 하다. 결국 다른 교수들과 의논 끝에 1등에게는 장학금을 주기로 하고, 다음 학기부터는 장학금이라는 돈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이 사람이 뛰어난 학업성취를 이루었다는 포상을 만들어서 상급학교 지원이나 취직 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부동산 자금 자본시장 보내는 게 국정 최우선 과제인 듯 보이나 모든 시장엔 승자와 패자가 존재 자본시장도 격차 줄이진 못할 것 공부 잘한 사람이 장학금도 싹쓸이한다면 분명한 격차가 존재하게 되고, 누군가는 그것을 불공정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거꾸로 공부를 아무리 잘했어도 아무 상도 주지 않는다면 성취에 대한 보상이 없는 세상이고 따라서 아무도 어떤 성취도 하지 않으려 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선택은 어떨지 궁금하다. 공부 잘하면 칭찬해주는 학교와 잘하든 못 하든 똑같이 대하는 학교. 당신의 자녀를 어느 학교에 보내고 싶은가. 나라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자산지니계수가 0.6이 넘어서 역대 최고치가 되었다며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보도되는데, 진실은 수치가 주는 공포감과는 좀 다르다. 불평등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소득지니와 자산지니로 나뉘는데, 그때 그때의 소득 흐름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소득지니와 달리 그동안의 격차가 누적된 자산의 차이를 나타내는 자산지니는 원래부터 높은 것이 정상이다. 보통 소득지니의 두 배쯤 된다. 서울에서 제일 비싼 아파트 가격이 100억원에서 200억원이 됐다 한들 나의 삶과는 실제로는 아무 관계도 없지만, 지니계수 산식의 특성상 그 값은 올라가게 돼 있다.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해도 한국의 자산지니는 중간 혹은 중상 정도 구간에 머무른다. 이재명 정부에서는 내란 청산에 이어 마치 부동산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인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의 인식은 부동산 투기를 내버려두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고, 하다못해 다주택을 가진 사람은 부동산 정책 관련 업무에서도 배제한다고 한다. 그렇게 부동산으로 흘러가지 못하는 자금은 자본시장으로 흘러가기를 바라는 것 같다. 상법개정, 자사주 소각, 코스피 5000은 물론이고 세금 폭탄을 맞는 부동산과는 달리 각종 분리과세, 소득공제, 양도세 감면 등을 통해 돈이 흘러들 수밖에 없는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하나씩 따지고 들자면 자사주 소각 함부로 했다가 2003년 소버린 사태처럼 한국의 대표적 기업들이 기업 사냥꾼의 표적이 되었을 때 경영권 방어를 어떻게 할 것이냐 등의 구체적인 문제들이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저평가 되어온 자본시장을 육성하겠다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부동산 대신 자본시장이 과연 격차를 줄여줄 것인지는 회의적이다. 모든 시장에는 항상 승자와 패자가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노른자 지역에 먼저 입성한 사람이 승자가 된다. 그 지역의 부동산 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일찍부터 들어와 있던 사람들은 점점 부자가 되고 미처 입성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진입장벽은 높아진다. 먼저 와있던 사람들이 전부 투기꾼인 것도 아니다. 강남 개발 이전에 압구정에서 배추농사 짓던 사람들이 준재벌이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투기이든 운이든 먼저 와있던 사람의 자산은 커지고 남들이 쉽게 진입하지 못하는 상층으로 고착된다. 반면 자본시장에서는 돈이 많은 사람이 더 큰 승자가 된다. 월급 쪼개 투자하는 사람은 여유자금으로 투자하는 사람을 절대 못 이긴다. 월급 쪼개 투자하는 사람은 한번이라도 잃으면 큰일이다. 하루종일 주식가격 들여다보다가 쫄아서 팔면 오르고 그래서 사면 내린다. 여유자금으로 투자하는 사람의 손실은 숫자상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 오를 때까지 기다리면 그뿐이다. 소액으로도 투자를 시작할 수 있는 자본시장은 부동산에 비해 진입장벽은 낮지만 격차의 폭은 더 크다. 우리는 격차의 고착이냐 격차의 확장이냐 중에서 선택하는 것일 뿐, 격차를 없애지는 못한다. 이것이 과연 국정의 최우선 과제일 수 있을 것인가.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2026.03.25. 8:22
요즘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에선 ‘야수의 심장’이냐, ‘불나방’이냐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이란전쟁의 전황에 따라 증시가 급등락을 반복하며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경제 기본 지표인 유가(물가)와 환율·금리까지 동시에 요동을 친다. 야수의 심장론자들은 지난달 25일 6000을 돌파한 코스피 저력을 바탕으로 대세 상승 추세를 회복할 것이란 신념을 갖고 있다. 반면에 불나방론자들은 전쟁같이 예측 불가능한 위험 상황에 무턱대고 뛰어들면 불길에 휩싸여 깡통을 찰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란전 장기화에 증시 변동성 커져 ‘빚투’ 33조에 강제청산 4125억원 자산격차 분노한 2030, 합류 우려 ‘야수의 심장’은 주식·코인 시장에서 상승·하락장을 개의치 않고 용기 있게 베팅하는 투자자를 일컫는 말이다. 코스피지수 상승률의 2~3배 대박을 노린다. 케인스가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에서 인간의 도덕·쾌락·경제적 행동의 대부분은 수학적 계산보다 자발적 낙관론에 기댄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의 결과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경제적으로 비합리적 행동을 왜 하게 되는지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 현재까지의 상황은 야수의 심장론이 우세한 것 같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월 들어 24일까지 개인투자자는 코스피에서 26조2552억원을 순매수했다. 외국인이 22조2577억원을 순매도한 상황에서 개미들이 주가를 떠받쳤다. 개전 이후 첫날인 3일 코스피가 7.24% 급락했을 때 5조7975억원, 6.49% 하락한 23일에도 역대 일일 최대 기록인 7조29억원어치 순매수했다. 롤러코스터 장세에 지수 상승 또는 하락 때 2~3배 수익을 겨냥한 레버리지 또는 인버스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지수증권(ETN)에도 이달 10일 기준 지난해 말(12조4000억원)보다 75% 급증한 21조7000억원이 몰렸다. 2~3배 손실을 볼 수도 있는 리스크에 눈감은 ‘고위험’ 투자다. 문제는 증시 내적으로도 위험 경고등이 켜졌다는 점이다. 투자자가 증권사에서 현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한 신용거래융자 규모가 이달 5일 33조6945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은 이래 33조원을 넘고 있다. 이 가운데 이달 들어 23일까지 2거래일 내 미수금을 갚지 못해 보유 주식을 강제청산(반대매매) 당한 금액만 지난달(2295억원)의 2배 수준인 4125억원에 달했다. 2030세대는 물론 5060까지 ‘빚투’(신용거래)에 뛰어든 결과다. 국내 대형 증권사 2곳의 개인투자자 계좌 460만 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달 1~9일 빚투 투자자의 평균 수익률은 -19%로 본인 보유 현금 투자자(-8.2%)보다 두 배를 넘는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하락률(15.9%)보다 빚투 성적표가 더 나빴다. 주식시장은 언뜻 공정해 보이나 현금 자산의 격차만큼 정보는 물론 장기·분산·가치투자 능력의 차이가 반영되는 ‘머니 게임’의 장이다. “주식시장은 인내심 없는 사람의 돈을 인내심 있는 사람에게 옮기는 도구”란 워런 버핏의 격언도 같은 취지다. 한국 증시에 약 300조원을 투자하는 국민연금을 상대로 개미가 이기긴 어렵다. 주가가 오르기만 할 땐 누구나 이익을 볼 수도 있지만 폭락장이나 롤러코스터 장세에선 매매 당사자 중 한쪽이 이익을 보면, 한쪽은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이 되기 쉬운 구조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바이 코리아’ 펀드 열풍 이래 한국 증시는 최고 활황이다. 코스피 시가총액 합계액은 25일 기준 4651조원이고 주식 보유자 수도 1456만 명에 달한다. 이 중 증시 활황에 뒤늦게 빚투에 나선 2030세대와 60대 이상도 각각 20%, 30%가량 된다는 게 금융투자업계 추산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상위 20% 가구의 순자산이 하위 20%의 45배에 이르는 역대 최대 자산 격차(순자산 지니계수 0.625)에 분노한 2030세대 상당수도 인생 역전을 위해 빚투에 나섰단 점에서 특히 우려스럽다. 금융당국의 ‘고위험 상품 투자는 자제해 달라’ ‘투자의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경고만으로 위험을 회피할 수준은 넘은 것 같다. 정효식([email protected])
2026.03.25. 8:20
“부산에서 규모가 큰 전통시장이라면 자갈치시장, 부전시장 그다음에 구포시장이거든. 내일은 장돌뱅이들까지 다 여기로 와. 시장 골목에도 할매들이 가득 찬다니까….” 주말이던 지난 22일 부산 북구 구포시장은 인파로 붐볐다. 낙동강 하류 포구였던 구포는 내륙과 해안에서 나는 물산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그 이튿날에는 오일장도 열려 한층 분주해진다고 상인들은 소개했다. 구포시장이 속한 부산 북구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가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 지역구에서 3선을 한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이 부산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전 의원은 부산 18개 지역구 중 유일한 민주당 현역 의원이다. 그는 현재 여론조사에서 현직인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이나 최근 출마를 선언한 주진우 의원 등을 상대로 앞서고 있다. “그 양반이 시민들 대할 때 이야기를 옆집 아저씨처럼 편안하게 하는데 그래 노니까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시장 횟집에서 도다리 회를 썰던 이모(58)씨는 ‘부산 유일 민주당 의원’의 경쟁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식당에서 모임을 하던 박천기(63)씨도 전 의원이 허물없이 주민들을 대하는 점을 칭찬했다. “자기보다 나이 많으면 무조건 ‘형님’이고 한 살이라도 적으면 ‘아우’ 이래가 술자리도 어울리고 허물없이 그래서 좋아들 합니다. 저번에 예식장에서도 봤는데, 개인택시 하시는 분이 청첩하니 직접 참석하더라고. 북구가 보수색이 강한 곳인데 그리 안 했으면 민주당으로 2선, 3선 했겠습니까. 처음 선거운동할 때 ‘저 양반이 되겠나’ 했거든. 근데 사무실 밑에서 비가 오는데도 부인하고 우의를 입고 막 인사하더라고. 정성을 보니 될 거 같았어.” 보수로 기운 운동장 펴지는 추세 "박형준 성과 없다" 전재수 우세 해수부 이전 등 이 대통령 호평 국힘 지지자 "젊은 주진우 기대" 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전 의원이 해볼 만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 데에는 현직 박형준 시장에 대한 불만도 작용한 듯했다. 약재를 파는 이영순(59)씨는 “박 시장은 3년을 갖다가 그냥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닌가 할 정도로 특별히 한 게 없다”며 “공약으로 내세운 글로벌허브도시인가도 된 게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박 시장은 24일 국회를 찾아 삭발하며 여당에 부산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하지만 현지에선 이미 실망감이 퍼져있었다. "화끈한 이재명 대통령 스타일 부산과 상통" 민주당에 대한 부산 여론이 달라졌다는 주민들의 전언은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택시기사 변점석(68·부산진구)씨는 “부산 분위기는 민주당 고정표가 35% 정도 있었는데, 국민의힘 쪽에 있던 54% 정도 중 절반가량이 민주당으로 와버렸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이 너무 엉망으로 했고 이재명 대통령이 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대통령 스타일이 부산 사람들과 통하는 면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대통령 누가 해도 똑같지’ 했는데 이 대통령이 하는 것 보니까 잘하거든. 한번 말한 것은 그대로 밀고 가며 밀어붙이는 성격도 있고, 뭐가 된다 안 된다를 빨리 정하는 걸 보면 화끈하잖아요.” 취임 초기부터 이 대통령이 독려해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한 것은 민주당의 호감도를 높였다. 해수부는 현재 부산 동구 수정동 빌딩을 임대해 임시청사와 별관으로 쓰고 있다. 23일 점심시간이 되자 청사에서 직원들이 빠져나와 흩어졌다. 카드회사 고객센터로 쓰이던 건물이 공실이었다가 해수부 직원들이 들어갔으니 인근 식당가와 카페 등에는 새로운 고객이 생겨난 셈이다. 주민 허진석(52)씨는 “부산은 제조업 쪽으로는 힘들기 때문에 해운 쪽과 연관 산업이 집적화되면 낫지 않겠느냐”며 “전재수 의원이 해수부 장관도 했으니 시장으로서 이런 일을 책임지고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해수부 직원들이 낙후된 동구보다 학군과 거주 여건이 나은 부산 다른 지역에 거주하면서 셔틀버스를 타고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상인은 “해수부 이전 특수를 기대하며 새로 진입한 상인들이 저녁 장사가 안돼 가게를 내놓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한동훈·조국 '빅매치' 성사 불투명 부산은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재·보궐선거로도 이목이 쏠리는 지역이다. 전 의원의 시장 선거 출마가 확실시되면서 부산 북갑 지역구에 누가 출마할 것인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여당에선 마땅한 주자가 부각되지 않고 있다. 야권에선 국민의힘에서 제명된 한동훈 전 대표가 구포시장을 방문하기도 해 출마 의사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민주당과 지방선거 연대 불발로 정치적 시험대에 오른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도 지역 연고를 바탕으로 북갑 도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구포시장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김모(62)씨는 “한동훈씨가 왔을 때 외부에서 온 사람들까지 시장이 북적거렸다”면서도 “부산은 배신자라는 인식이 박히면 끝”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지지자라는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잘했든 못했든 자기를 키워줬는데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한동훈만큼은 배신하면 안 됐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 지역에서 의원을 지낸 국민의힘 박민식 전 의원이 출마하니 힘을 밀어줘야 한다고 모이자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함께 있던 김건예(56)씨는 “조국씨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다지 인기는 없는 것 같아서 부산 말고 다른 곳으로 가야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은 전과가 있으면 취직도 못 하는데 국회의원들은 어쩌고 저리 다시 출마하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했다. 여당을 지지한다는 상인 이선자(59)씨는 “본인이 잘못했으면 본인만 처벌하면 될 일이지 검찰이 자식들까지 파헤치는 것을 보고 너무 한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지금은 잘하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부산 선거에 꼭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고 했다. 한 전 대표가 주호영 의원과 연대설 속에 대구 출마를 저울질하고, 조 대표가 부산 출마에 대해 난색을 보이는 배경에는 이들에게 냉랭한 현지 민심이 작용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박 시장과 경선을 치를 주진우 의원에게 기대를 거는 경향도 관찰됐다. 자갈치 시장에서 건어물을 파는 박재순(63)씨는 “주 의원이 법률가 출신으로 이재명 대통령 관련해서 할 말을 하더라”며 “박형준 시장이 양보하고 젊은 사람을 내세우면 전재수 의원과 막상막하가 될 것도 같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힘이 부산에서는 아직 표가 좀 있는데 고령층은 투표를 많이 하고 젊은 층은 투표장에 잘 가지 않기 때문에 보수가 좋아하는 주 의원이 나가면 해볼 만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이들은 재판소원제나 법왜곡죄 등 사법 3법이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리스크를 지우기 위한 것이라며 매우 비판적이었다. 반면 이 대통령이 일을 잘한다고 답변한 이들 중에는 “솔직히 걸면 안 걸릴 사람이 어디 있느냐. 대통령이 직접 사법리스크를 없애주라고 한 게 아니고 밑의 사람들이 하겠다는 것인데 달갑진 않아도 죽일 놈 살릴 놈 할 일은 아니다”는 반응이 나왔다. 총선·지선에서 민주 득표율 꾸준히 상승 부산 민심의 변화와 관련해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장기적인 득표율을 분석해보면 부산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굉장히 천천히 펴지고 있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차 교수에 따르면 2014년 제6회 지방선거 이후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당선자의 규모는 국민의힘 전신을 포함한 보수 정당이 앞선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차 교수는 “당선자 규모는 선거 당시 나타났던 구도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고, 실제로는 2010년대 초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거의 모든 선거에서 부산에서 민주당이 조금씩 득표력을 축적해오는 흐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의 부산 지역구 평균 득표율은 50%대 초반 수준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평균 약 38.5%로, 10%포인트 이상 격차가 났었다. 하지만 2020년 21대 총선에서 부산지역 민주당의 평균 득표율이 약 44%로 크게 상승하면서 격차가 줄었다. 당시 미래통합당의 평균 득표율은 40%대 중후반 정도로, 양당이 비슷한 구도가 된 지역이 다수였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 부산지역 민주당 평균 득표율은 약 45%로 좀더 상승했다. 하지만 보수 결집과 PK 재보수화 흐름 속에 국민의힘 후보들이 상당수 지역에서 50% 안팎 또는 그 이상을 득표하며 17대 1이라는 의석 구조로 이어졌다. 차 교수는 “비상계엄 이후 취임한 이 대통령에 대한 의심이 걷히면서 부산 여론은 새로운 단계로 넘어서고 있다”며 “부산의 중도무당층은 거의 민주당에 가깝게 연결돼 있는 것으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정 이슈에 대해서는 민주당의 약한 지지층보다 더 진보적인 스탠스를 강하게 취하는 경우도 관찰된다”고 덧붙였다. 민주화 세력이 강했던 부산의 경우 민심이 왔다 갔다 한다고 보일 수 있지만 보수 정당에 실망한 표가 이동해 왔다는 설명이다. 김성탁([email protected])
2026.03.25. 8:18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의 한 직영 주유소를 찾았다. 13일 최고가격제 시행 대비 휘발유 가격을 올린 200개 주유소 중 한 곳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김 장관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외면했다”며 강도 높은 비판도 함께 내놨다. 산업부는 이날 김 장관이 방문한 주유소가 얼마나 가격을 올려 받았는지는 알리지 않았다. 관련 내용을 질의하자 “가격 인상 폭이 공개되면 주유소가 특정될 수 있다”고만 했다. 장관이 직접 현장까지 찾아가 호통을 쳤음에도 구체적인 ‘죄목’은 밝히지 않은 셈이다. 김 장관이 찾은 주유소는 얼마를 올렸을까. 송파구 일대 직영 주유소 중 14일 가격을 올린 곳은 2곳뿐이다. 이 주유소들은 13일 판매가격보다 각각 L당 8원, 10원씩 가격을 인상했다. 판매 가격은 각각 1816원과 1818원이다. 해당 일자의 서울 지역 평균 14일(1868원)보다 50원가량 싸다. 이들 주유소는 김 장관 방문 후 가격을 다시 15원과 10원씩 내렸다. 가격 통제는 정부 입장에서는 달콤한 정책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가격표를 낮추다 보니 국민 입장에서는 체감도 크다. 중동사태가 터지자마자 가격을 올린 정유소와 주유소에 경종을 울리는 ‘사이다 정책’이기도 하다. 마침 이날 김 장관의 현장 방문도 17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관련 행보를 칭찬한 후 나온 세 번째 방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장관이 직접 상대해야 할 대상이 과연 L당 10원 올린 주유소일까? 가격은 초과수요 또는 공급을 없애 시장의 균형을 유지해주는 신호 역할을 한다.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 통제로 이런 신호 기능이 무뎌지면 위기 때 수급 불안 등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시장에 내는 신호의 엇박자다. 정부는 25일부터 공공부문 차량 5부제를 시행했다. 2011년 이후 15년 만이다. 이란전쟁의 여파로 각종 석유화학 제품의 원재료인 나프타 수급에 비상이 걸려 수출 제한 조치까지 시행된다. 한쪽에서는 수급 위기라며 비상조치를 쏟아내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장관이 주유소 가격표를 단속하며 수요를 떠받치는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 산업부 장관은 에너지 수급을 안정시키고, 기업 피해를 줄일 근본 해법을 찾아야 하는 자리다. 이번 위기는 1970년대 오일쇼크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 가스 쇼크를 합쳐 놓은 수준이라고 한다. 산업부 장관이 ‘주유소 암행어사’처럼 L당 10원 올린 주유소를 단속하는 데 시간을 쏟는 사이 더 큰 위기가 이미 눈앞에 닥쳐와 있을지 모른다. 안효성([email protected])
2026.03.25. 8:16
동물은 솔직하다. 식물만큼 그렇다. 그 솔직함은 때로 비정함으로도, 때로 깊은 신뢰로도 나타난다. 같은 공간에서 한 가족이 되어 사는 동물들, 가령 개가 그렇듯 말이다. 내면과 외면이 따로 있어야 거짓을 행할 수 있을 텐데, 동물은 내면과 외면이 없다. 먹이를 향한 욕망 때문에 사납고, 똑같은 의미에서 함께 살아온 가족들에게 충실하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동물과 함께 산다. 동물이 수행하는 기능, 예컨대 집을 지키거나 쥐를 잡거나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저런 솔직한 동물의 세계의 일원이 되는 게 좋아서 함께 산다. AI가 만든 감쪽같은 동물 영상 진짜 동물에 대한 오해 유발 개·고양이와 함께한다는 것은 한 세계를 끝까지 책임지는 일 개나 고양이를 너무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 화를 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사르트르는 자서전 『말』에서 ‘개의 묘지’를 친구와 방문했던 일화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 여자가 자신의 죽은 개의 무덤 앞에 와 있다. “‘폴로니우스, 너는 나보다 훌륭한 놈이다. 내가 먼저 죽었다면 너도 따라 죽었을 게다. 그런데 네가 죽었는데도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니!’ 하고 슬픔에 젖은 한 여인이 말하고 있었다. 나와 동행했던 미국인 친구는 그만 비위가 틀려서 시멘트로 만든 개를 걷어차 한쪽 귀를 깨어 버렸다. 그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린애와 짐승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은 인간을 배반하면서 사랑하는 것이니까 말이다.”(정명환 역) 미국인은 개를 너무도 사랑하는 것에 대해 빈정 상한 나머지 묘지에 장식해 놓은 개 석상의 귀를 깨트려 버렸던 것이다. 여기에 드러나 있는 것은 깊은 인간중심주의다. 동물을 너무 위하는 것은 인간을 저버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우선순위에서 인간이 가장 먼저 와야 하며 인간이 가장 존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왜 인간이 가장 존엄하다고 믿어야 할까? 인간만이 목적이고 그 외 다른 생명은 인간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인가? 그래서 하이데거는 『형이상학 입문』에서 이렇게 비꼬듯 반문했다. “도대체 이 인간이라는 존재자는 무엇이 별났기에!” 인간중심주의보다 뿌리 깊은 동물 존중 우리는 왜 인간을 위해서 동물이 죽어야 하는지, 반대로 동물을 위해서 인간이 희생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만일 윤리가 인간종의 이기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들뢰즈가 종종 말하듯 우리는 동물을 대신하여, 동물을 위하여 말하는 자일 수 있는 것이다. 동물에 대한 존중은 사실 인간중심주의보다 뿌리가 깊다. 기원전 570년에 태어난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매를 맞고 있는 강아지를 보게 된다. 그 강아지를 불쌍히 여긴 피타고라스는 말한다. “때리지 마라. 내 친구의 영혼이다. 울음소리에서 그를 알아보았다.” 영혼은 불멸하며, 식물이나 동물 그리고 인간으로 환생한다는 피타고라스의 생각은 수학에 관한 그의 이론들보다 사상사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피타고라스는 이집트로 건너가 신전에서 일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이집트의 영혼불멸론은 피타고라스에게 영향을 주었고, 피타고라스의 영혼불멸론은 플라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플라톤의 영혼불멸론은 고대 세계가 사라진 뒤에 기독교의 교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집트에서 시작한 영혼불멸론이 고대 그리스 철학과 중세 기독교를 거쳐 현대에까지 이르는 기나긴 노정에서 피타고라스는 중요한 연결 고리를 이루며, 강아지에게서 친구의 영혼을 발견하는 저 일화는 피타고라스의 사상을 상징적으로 집약하고 있다. 관점을 바꾸어 말해보자면, 저 일화는 동물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 동물은 귀중한 친구와 똑같다는 것, 무엇보다 인간과 다를 것이 없는 영혼을 지니고 있다는, 인류 최초의 사상사적 주장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저 사상의 끝자락에 있는 우리 역시 동물의 친구이고 동물을 보호하는 일을 즐거워하며, 동물의 눈 속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표현하는 영혼을 만난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AI가 만들어낸 위험한 가짜 동물의 시대이기도 하다. 유튜브에는 너무도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는 개들과 고양이들 동영상이 넘친다. 말할 수 없이 예쁘고 너무도 인간적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고, 가사 일을 도우며 아이도 돌보는 개나 고양이를 사람들은 처음에는 ‘진짜’인 줄 안다. 인간과 똑같이 희생할 줄도 아는 사자의 행동은 너무나 놀랍다. 그러나 자주 보다 보면, AI가 만들어낸 동물 이미지의 뻔한 패턴을 눈치채게 된다. 인간에게서 특유의 땀 냄새나 입 냄새가 나는 것처럼 AI가 쓴 글이나 그림에서는 특유의 기계 냄새가 난다. 재주꾼 AI의 발명품은 처음엔 흥미로웠지만 이제는 금방 물리는 음식처럼 식상하다. AI는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작가’인가? 저 매너리즘을 밝히는 AI 특유의 문체론, AI 특유의 화풍론이 앞으로 평론가들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매너리즘은 극복되고, 훨씬 진짜 같은 AI 이미지는 버전업되며 계속해서 출현할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 정말 꼭 들게 생기고 너무도 인간 같이 행동하는 동물, 한 마디로 ‘가장 귀여운 동물’, 그러면서도 허구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동물의 모습으로. 동물의 야생성·고집·체취 그리하여 AI가 만들어낸 동물 이미지와 사랑에 빠져든 아이들이 입양이라도 하려고 진짜 동물을 만나게 되면 깜짝 놀랄 것이다. 인간 세계에 태생적으로 저항하는 야생성, 고분고분하게 순치되지 않는 고집, 각각의 동물 종들이 가진 특유의 냄새, 동물이 품고 있는 각종 질병의 세계가 나타나는 까닭이다. AI가 만들어낸 인간 입맛에 꼭 맞는 동물의 이미지, 저 가짜 생물 도감이 진짜 동물에게 가는 길을 방해하는 것이다.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마음에 꼭 드는 장난감을 하나 얻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르는 한 세계를 인내심 속에 책임지는 일이다. 어쩌면 종교적 표현을 빌려 ‘계약’이라고 일컬을 수도 있지 않을까? 늘 생활과 마음을 꼭 쥐고 있는 파기할 수 없는 계약 말이다. 서동욱 서강대 철학과 교수
2026.03.25. 8:14
당대 최고의 전략가라 해도 눈앞의 위기가 장기적으로 미칠 영향을 전망하기란 쉽지 않다. 필자는 2002년 미국 국가안보전략(NSS) 집필에 참여했는데, 이 전략서는 당시 9·11 테러로 테러리즘이 최대 도전 과제이자 주요 강대국 간 협력의 동인이라고(필자는 이 부분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정의했다. 결론적으로 오판이었다. 혼돈에 직면한 인간은 논리를 찾지만 당면한 충격에 매몰돼 해당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실제보다 크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중·러·북·이란 연대 한계 드러나 미-유럽 관계엔 지속적인 악재 미, 종전 후 아시아 회귀 재확인 그렇다면 현재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사작전과 에너지 위기의 장기적 여파를 어떻게 전망해야 할까. 예단하긴 어렵지만 향후 여러 세대에 걸쳐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분명한 점은 경제, 정치, 지정학적 여파가 수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먼저 이번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위기는 전쟁의 전개 방향과는 별개로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이번에 공격받은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의 에너지 인프라 시설은 수년이 걸려야 복구될 수 있을 것이다. 페르시아만을 지나가는 석유와 가스에 대한 리스크 프리미엄이 붙고, 공급 다각화 수요가 높아지면서 시장의 심리적 여파는 이보다 훨씬 더 오래 갈 것이다. 전쟁 전 배럴당 72달러였던 유가가 올해나 내년 중에 그 수준으로 낮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 선거에서 고물가가 주요 의제로 부상하고 있는 시점에 이는 국내 정치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호주에서는 한때 비웃음을 샀던 소수 극우정당인 원네이션(One Nation)당이 28%의 지지를 받아 연립 야당의 지지율을 넘어섰다. 영국에서도 나이절 패라지 개혁당 대표의 인기가 높아져 지지율이 제1 야당 보수당을 넘어서고 있다. 미국에서는 보수 진영에 타격을 주고 있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미국 역대 현직 대통령이 전쟁 초기에 받았던 지지율 중 최저치인 40% 수준을 보였다. 인플레와 경제에 대한 부정 여론이 41%에 달한다. 공화당은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 패배가 점쳐졌는데 이젠 상원마저 위태롭다.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을 차지하면 관세에서 이민에 이르기까지 트럼프의 모든 정책은 타격을 입는다. 호주와 유럽에서 극우가 힘을 얻고 있지만, 미국의 극우는 내부 분열과 지지 기반 약세를 겪고 있다. 이번 전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영향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전쟁 이전부터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CRINKs) 간 동맹 강화와 영향력 확대를 위한 거대한 흐름이 있었고, 이에 맞서 아시아를 위시한 미국 동맹국은 억지력 확보를 위해 더욱 공고하게 결속했다. 그런데 이번 전쟁으로 중·러·북·이란 간 협력이 약화됐고 집단 안보 수준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다. 표적 정보를 이란에 제공한 러시아는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공급 안정화를 위한 느슨한 제재 덕에 뜻밖의 이득을 얻었다. 단기적으로 이는 우크라이나와 유럽 안보에 위기일 수 있다. 중국은 보다 조심스럽게 접근 중인데 아마도 자국 유조선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고 있는 데다 전쟁이 끝나면 페르시아만 국가들이 재건과 시장 접근을 위해 중국의 문을 두드릴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란군의 역량과 전략적 영향력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점은 중·러에도 악재다. 특히 전쟁 후 미군 자산이 다시 아시아로 집중되면 더욱 그렇다. 일각에서 말하는, 이란 전쟁으로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은 끝났다는 주장엔 동의할 수 없다. 이란 전쟁은 무엇보다 미-유럽 관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나토 동맹국은 트럼프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와 유럽 혐오 정책으로 이미 분개한 상태였다. 트럼프는 개전에 앞서 나토와 협의하지 않았고 이란전쟁은 유럽 경제와 안보에 지속적인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아시아 동맹국들은 미국의 관심과 군 자산이 중동으로 집중되는 것에 우려하고 있다. 3월 19일 개최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아시아 동맹국과의 굳건한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트럼프에게 분쟁의 조기 종식과 에너지 위기 수습을 요청했다. 중국이나 북한이 동맹 간의 ‘파열음’을 기대했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2026.03.25. 8:12
한 해에 7만8058종이나 된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납본 접수된 도서를 기준으로 삼으면 2025년에 한국에서 출판된 책의 종수가 그렇게나 많다. 모든 책이 단독 저서가 아니라는 점, 썼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출간되지 않은 경우까지 감안하면 정말 많은 사람이 글을 쓰고 있다. 인간은 글을 왜 쓰는 것일까? 글쓰기 고민 끝에 일가 이룬 오웰 AI 글쓰기에 오웰식 고뇌는 없어 고민 없는 쓰기는 퇴행 불가피해 조지 오웰(사진)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그 이유를 물었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욕망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이나 문장 자체의 묘미를 발견하려는 심미적 열정 또한 글을 쓰는 이유이다. 진실한 사실을 발견하여 후세에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글을 쓰게 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지향해야 할 사회를 꿈꾸며 세간의 생각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쓰기는 적절한 수단이다. 글을 쓰는 네 가지 동기는 서로 견제한다. 네 가지 동기 사이의 긴장이 사라진 채 글을 쓰면 퇴행은 불가피하다. 자기 과시가 지나친 글은 전달하려는 뜻을 오히려 불투명하게 만든다. 아름다운데 알맹이가 없는 글은 읽는 사람을 허무하게 만든다. 사명감에 사로잡혀 기록될 가치 여부도 묻지 않고 기록하기 위해 쓰고 있다면 맹목적이다. 세계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욕구만 남은 문장은 선동문을 벗어나지 못한다. 네 가지 동기가 글 속에서 팽팽한 긴장을 유지할 경우, 그 긴장 속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기억되고 언급되는 고전이 탄생한다. “왜 쓰는가?”라는 질문은 작가라면 피할 수 없는 업(業)이다. 인간 작가는 이 질문에 답을 내리며 고통스럽게 문장을 짓기에, 그 생산량에는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2025년, 단 3개월 동안 무려 115권의 책을 써낸 작가가 등장해 충격을 주었다. 한 출판사는 1년 남짓한 기간에 9000여 종의 책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 경이로운 다작(多作)의 비밀은 인간의 사유가 아닌 생성형 AI라는 글 쓰는 기계에 있었다. 우리는 글 쓰는 사람을 작가라 부른다. 너무 흔하게 쓰여 그 무게를 잊기 쉽지만 작가란 단순히 문장을 나열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사유의 씨앗을 뿌리고 그것을 풍성하게 키워내는 창조적 권위를 가진 존재다. 작가는 단순히 글을 쓴다고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 “왜 쓰는가” 묻고 또 물으며 나름의 일가를 이룬 사람에게만 부여되는 명예 호칭이다. 세상은 변했다. 표지의 저자란에 ‘제미나이 저(AI 생성)’ ‘인문출판 에디팅팀’과 같은 표기가 등장하는 책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어는 글을 쓰는 행위(write)와 무엇을 사용하는 행위(use) 모두를 ‘쓰다’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기에 1946년 오웰의 질문은 2026년 오늘, “왜 생성형 AI를 ‘써서’ 글을 ‘쓰게’ 하는가?”라는 중의적인 물음으로 변모한다. 한국은행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 63.5%가 생성형 AI를 사용하는데, 이는 미국(26.5%)의 약 2배에 달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싱크탱크 AI 경제연구소가 발표한 AI 확산 보고서에 따르면 AI 활용 누적 성장률은 2024년 10월 이후 80%로 세계 평균(35%)과 미국(25%)을 압도한다. AI는 거대 언어 모델의 데이터를 증류(Distillation)하여 효율적으로 요약하며 글을 쓴다. 증류의 과정에서 오웰식의 고뇌는 생략된다. 왜 쓰는지 묻는 시간 대신 AI는 데이터를 신속하게 처리할 뿐이다. 생성형 AI를 써서 글을 쓰게 하는 것은 시간 절약을 위한 유일한 치트키이자 가장 손쉽게 효율성의 극치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빠른 시간 안에 요구되는 문서를 대량생산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는 사무직 노동자에게 유일하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탈출구는 기계에게 글을 써달라고 요청하는 프롬프트 작성이다. 추진 배경 및 목적, 프로그램 개요, 세부 일정 및 운영 결과, 운영 성과, 문제점 및 개선 방안을 남김없이 작성해서 1주일도 채 안 되는 시일 내에 제출하라는 이메일을 받은 날, 나 역시 AI에게 각 항목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속도전으로 글을 쓰라고 요구해야 하는지 그 ‘까닭’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지만, 몸은 하나인데 마감 기일을 놓치지 않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다들 그렇게 쓰지 않는가? 노명우 아주대학교 경제정치사회융합학부 교수
2026.03.25. 8:10
한때 ‘10억 자산가’가 재테크의 종착지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고액 자산가(HNW)는 단순한 자산 관리를 넘어 삶 전반을 조율해줄 코디네이터를 찾는다. 이들에게 ‘위험 대비 수익’은 출발점일 뿐, 더 중요한 것은 자산의 지속성, 세대 간 이전, 그리고 삶의 질이다. 이 변화는 금융의 성격을 바꾸고 있다. 부자들의 금융은 속도 경쟁에서 품격 경쟁으로 이동했다. 수익률보다 고객의 시간·취향·가치관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가 기준이 됐다. 새로운 부유층(New Rich) 역시 ‘얼마를 벌 것인가’보다 ‘자산이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묻는다. 이는 라이프스타일과 정서, 사회적 관계까지 아우르는 확장형 자산관리로 전환을 요구한다. 이 흐름은 더는 부유층에만 머물지 않는다. 아마존 프라임이 배송과 콘텐트를 묶고, 토스와 카카오뱅크가 자산관리와 생활금융을 연결하듯, AI와 구독 경제는 컨시어지의 문턱을 빠르게 낮추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컨시어지 금융’이 부상한다. 본질은 ‘실현’이다. 돈을 불리는 데 그치지 않고, 부와 삶을 하나의 체계로 엮어 관리하는 것. 금융이 ‘상품’을 넘어 ‘철학’을 제시할 때 고객 충성도가 형성된다. AI가 초개인화를 가능케 했지만, 핵심은 여전히 신뢰와 관계다. 최근 증권사의 VIP 컨시어지 서비스가 빠르게 진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융이 다루는 대상이 수익률을 넘어 삶의 질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는 시간, 그 시간의 질을 관리하는 것이 새로운 서비스의 중심이 되고 있다. 컨시어지의 초점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명품이나 호화 여행 같은 일회성 혜택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일상의 질을 꾸준히 유지하는 데 방점이 찍힌다. 식재료의 신선도, 소재의 감촉, 반복되는 선택까지 관리의 영역에 들어온다. 좋은 경험을 한 번 제공하는 것보다, 그 수준을 365일 유지하는 일이 더 높은 역량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금융회사는 자산 운용자를 넘어 고객의 일상을 설계하는 코디네이터로 진화하고 있다. 고액 자산가에게 가장 비싼 비용은 돈이 아니라 ‘수고’다. 자신의 필요를 직접 파악하고 선택을 관리하는 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다. 결국 고액 자산가가 원하는 금융은 ‘상품’에서 출발해 ‘품격’으로 완성된다. 자산을 지키는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고객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다. 이것이 컨시어지 금융의 출발점이다. 결론은 단순하다. ‘내 삶을 대신 챙겨주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자산 규모와 무관하다. 누구의 삶이든, 그것을 더 깊이 이해하는 쪽이 결국 시장을 가져간다. 심동규 한국투자증권 PB전략본부 상무
2026.03.25. 8:08
말은 하고서 후회하는 경우는 많아도 안 해서 후회하는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늘의 『현문(賢文)』은 아예 퍼센트까지 정해 “사람을 만났을 때 30%만 말하라, 일편심을 다 던져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하고 있다. 일편심(一片心)은 ‘작은 조각의 하찮은 마음’이란 뜻이 아니라, 일편단심(一片丹心)의 줄임말로서 ‘흔들리지 않는 곧은 마음’이라는 의미다. 단심(丹心)은 단사(丹砂)에서 유래했다. 단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붉은색 광물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단사로 약을 조제해 먹으면 오래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게 바로 신선술에서 말하는 단약(丹藥) 혹은 영단(靈丹)이라는 신비의 약이다. 이러한 단약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마음이 일편단심이고 그 줄임말이 일편심이다. 허심탄회(虛心坦懷)라는 말이 있다. 허심은 상대를 어떻게 해보고자 하는 의도성이 없는 투명한 마음이고, ‘평탄할 탄(坦)’ ‘품을 회(懷)’를 쓰는 탄회는 거리낌이 전혀 없는 평탄한 마음이란 뜻이다. 투명하고 평탄한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를 허심탄회하다고 한다. “30%만 말하라, 일편심을 다 던져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말은 결코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허심탄회한 대화와 무절제한 자기 노출은 완전히 다르다. 허심탄회를 빙자해 많은 말을 하는 사이에 끼워 넣는 음흉한 일편단심이 곧 속마음인데, 많은 말로 일편단심을 강조할수록 상대는 속마음을 다 털어간다. 화를 당할 수밖에 없다. 중국 송나라 사람 사마광은 “남을 속이려 들면 발꿈치를 돌리기도 전에 남이 먼저 알아차린다(欺人者, 不旋踵人必知之)”고 했다. 마음이 투명한 사람은 30%만 말해도 충분히 허심탄회하다. 꼭 말했어야 하는 건데 말하지 못해 평생을 아쉬워하는 말은 첫사랑 고백 외에는 없는 것 같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2026.03.25. 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