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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막힌 공소취소 거래설…여당 스스로가 음모론 키웠다

친여 성향 유튜브에서 제기된 이재명 대통령 사건의 ‘공소취소 거래설’에 여권이 발칵 뒤집혔다. 더불어민주당에선 “황당함을 넘어 기가 막히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지라시 수준도 안 되는 음모론”이라는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일 김어준씨의 유튜브에 나온 한 패널이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인 정부 고위 관계자가 고위 검사 다수에게 ‘이 대통령 공소취소해 줘라’고 했다”고 주장한 뒤 벌어진 후폭풍이다. 그는 메시지를 받은 검찰은 ‘이재명 정부가 우리랑 거래하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공소취소를 검찰의 보완수사권 존치와 주고받으려 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국가 기강을 흔드는 심각한 직권남용이다. 반면에 근거 없는 음모론이라면 비난받아 마땅한 불신 조장 범죄다. 난데없는 논란에 황당하고 기막힌 건 국민이다. ‘민주당 상왕’이라 불리는 김어준씨의 방송에서 터뜨린 의혹이라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면서도, 내용은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다. 이번 논란이 검찰 개혁과 공소취소 추진 과정에서 친명계와 친청계가 갈등을 빚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점도 혼란을 키우고 있다. 공소취소 거래설도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존치시키려는 정부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음모론이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음모론이 그럴듯하게 나돌 수 있는 원인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여당은 이 대통령 공소취소를 최우선에 두고 치밀하게 움직여 왔다. 이 대통령도 직접 자기 사건을 거론하며 “검찰의 사건 조작이 살인보다 더 나쁜 짓”이라고 했다. 방탄법이란 의심을 받은 사법 3법도 국민의 법감정이나 후속 대책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밀어붙였다. 어제는 대장동·대북송금 등 7개 사건을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 기소 의혹 사건’으로 규정하고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이처럼 대통령의 사법리스크 방어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야말로 공소취소의 칼자루를 쥔 검찰과의 거래설이 나도는 토양이라 할 수 있다. 거래설의 당사자로 의심받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특정 사건의 공소취소와 관련해 말한 사실이 없다”며 “황당한 음모론으로 인해 숙의돼야 할 검찰 개혁 논의가 소모적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고 반박했다. 사실이길 바라지만, 명쾌하게 의혹은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특검을 요구했다. 불신의 확산을 막으려면 공소취소를 다수의 힘으로 몰아붙이는 공세 자체를 중단하는 것이 우선이다.

2026.03.11. 8:28

[사설] ‘벚꽃 추경’ 드라이브 거는 당정…선거용 퍼주기는 안 돼

중동 전쟁으로 ‘3고(고유가·고물가·고금리)’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당정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 소상공인과 한계기업 지원을 위한 추가 재정 필요성을 언급하며 조기 추경을 공식화했다. 구윤철 부총리도 민생과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추경을 포함한 모든 정책 수단을 활용하겠다고 했다. 여당도 추경안의 신속한 심의·의결을 약속했다. 중동 전쟁으로 인한 석유값 급등이 민생 경기를 어렵게 하는 상황에서 취약 계층이나 피해 기업을 위한 재정의 역할은 필요하다. “반도체 업황 개선과 증권거래세 증가로 국채 발행 없이 추경을 할 수 있다”는 구 부총리의 말대로 초과 세수에 따른 여력도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추경이 야기할 수 있는 부작용이다. 우선 시장 금리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현재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는 6%에 육박하고, 회사채 금리도 뛰고 있다. 지난 9일에는 회사채(무보증 3년물 AA-) 금리가 4%대를 찍었다. 국제유가가 뛰며 커지는 인플레이션 우려에 국채 금리가 오르며 시장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간 나랏빚이 빠르게 늘면서 국채 금리는 상승세를 이어 왔다. 1년 전 2.76% 수준이었던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 9일 3.739%로, 국채 3년물 금리는 2.56%에서 3.43%로 뛰었다. 재정적자로 인한 국채 발행이 늘어난 탓이다. 국가채무는 올해 말 1415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추경으로 시장 금리가 더 오르고 물가가 뛰게 되면 서민들의 생계비 부담을 키우게 되고 영세 기업의 자금난을 심화시킬 수 있다. 취약 계층을 돕겠다는 추경이 서민 가계를 더 어렵게 만드는 역설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벚꽃 추경’의 필요성과 방식, 규모는 국제 정세를 면밀하게 살펴 검토돼야 한다. 특히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인 만큼 선거용 선심 사업의 개입을 차단해야 한다. 과거의 숱한 추경이 그러했듯 민생을 위한다는 추경이 나랏빚만 키운 채 정치인 공약 사업 등에 허투루 쓰이는 일이 재현돼선 안 된다.

2026.03.11. 8:26

[사설] 공보의 없는 보건소 속출…현실로 다가온 취약지 의료공백

그동안 지역 보건소 등을 지켜 왔던 공중보건의사(공보의)의 40% 이상이 조만간 복무 기간 만료로 떠날 것이 예고되면서 취약 지역의 의료 공백이 심각해지고 있다. 현재 일반 의사들이 지원을 기피하는 지역 보건소나 보건지소에선 병역의무를 대신하는 공보의들이 필수 인력으로 근무 중이다. 그중 2023년에 배치받은 공보의들은 다음 달이면 36개월의 의무복무 기간을 마치고 떠날 예정이다. 하지만 이들의 빈자리를 책임질 신규 공보의 충원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이미 일부 지역에선 복무 만료를 앞둔 공보의들이 밀린 휴가를 떠나면서 공보의 없는 보건소나 보건지소가 속출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의료 자원이 부족한 취약 지역 환자들이 의사를 만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 공보의 수급이 깨져 의료 공백으로 이어진다는 건 수년 전부터 예고됐던 문제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 등 관계 당국이 실효적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적으로 남자 의대생 사이에선, 재학 중 현역병 입영과 졸업 후 공보의 지원의 선택지 가운데 현역병 입대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진 게 공보의 충원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힌다. 여기엔 현역병(18개월)의 두 배인 공보의 복무기간이 의대생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복지부는 단계적으로 공보의 복무기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지만, 국방부는 학사장교·군법무관 등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다. 그사이 공보의 지원자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대체 인력 확보 등 보완책을 서둘러야 한다. 내년도 입시부터 도입하는 지역의사제가 공보의 미충원으로 인한 지역 의료자원 부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역의사제의 첫 졸업생이 나오려면 2033년까지 기다려야 하므로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없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취약 지역 환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대안을 시급히 마련해 주기 바란다.

2026.03.11. 8:24

[중앙시평] 작은 법정이 되어가는 교육 현장

새 학년이 시작된 지 열흘이 지났다. 학교폭력 사건을 오래 다뤄 온 변호사 지인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요즘도 많이 바쁘냐고 물었더니 사건이 계속 늘어나고 있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물어보았다. 본인 아이가 중학생인데 학교폭력 사건에 휘말리면 어떻게 대응하겠느냐고. 잠시도 망설임 없이 돌아온 답은 예상 밖이었다. ‘학폭으로 커지기 전에 자퇴부터 시키겠다’는 것이었다. 학폭 사건, 입시 연계 정책 여파로 변호사 선임 늘고 법률 분쟁화 취약한 학생이 더 피해보는 구조 학교가 갈등 해결할 권한 가져야 제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대응 경험도 충분한 사람이 왜 그렇게까지 생각하느냐고 되묻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가 겪게 될 고통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 모든 일을 견디게 하고 싶지 않다’고. 이 한마디가 지금 대한민국 학교폭력 제도의 민낯을 보여주는 듯하다. 학교폭력예방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넘었다. 법이 생기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법률을 누더기 땜질하다보니 최근 학교폭력 제도는 교육 현장에서 갈수록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학교가 법정 축소판이 되고 있다. 학생 사이의 사소한 갈등부터 심각한 폭력까지 학교폭력 사건으로 신고되면 조사와 기록, 진술 절차가 시작된다. 사건의 경중과 관계없이 법적 다툼에 대비하는 방식으로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는 방대한 서류를 작성해야 하고 상당수 사건은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넘어간다. 전체 신고 사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학교 밖 심의 절차로 이어지는 중이다. 불복률도 높아져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으로 나아가는 경우도 늘고 있다. 교실에서 풀려야 할 문제가 법률 분쟁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가해 학생에게 대학 입시에서 불이익을 주는 정책은 여기에 기름을 붓는다. 정의 실현이라며 날로 강화되는 이 정책을 현장에서 실제 사건에 적용해보면, 그 부작용이 적지 않다. 학폭 기록이 입시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사건은 교육적 해결보다는 기록과 증거 수집을 둘러싼 싸움으로 흘러가기 쉽다. 가해 학생 측은 사과와 화해보다 맞신고와 법적 대응을 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피해 학생의 회복은 뒤로 밀린다. 학교에는 민원과 분쟁이 쌓이고 교사들은 갈등에 개입하는 것을 점점 더 부담스러워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학교폭력 신고 전부터 변호사를 선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만큼 대응 능력의 격차도 커진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은 사건화되기 전부터 변호사와 상담하며 대응 전략을 세운다. 증거를 어떻게 정리하고 어떤 진술을 해야 하는지 세세하게 조언을 받는다. 반면 제도에 대한 정보나 법적 지원을 충분히 얻기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은 복잡한 절차를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장애나 이주 배경 가정의 아이들 사건을 지원하다 보면 이런 격차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현실에서는 오히려 더 취약한 아이들에게 불리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학교는 법정과 달라야 한다. 성장 과정에 있는 아이들은 때로 미성숙한 판단으로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다. 물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교육의 목적은 응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잘못을 인정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다시 공동체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본래 역할이다. 지금의 제도는 그 균형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학교폭력 제도를 다시 돌아볼 시점이다. 먼저, 어디까지 학폭 사건으로 다룰 것인지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사소한 갈등부터 형사사건에 가까운 폭력까지 거의 동일한 절차로 처리하는 방식은 학교를 분쟁의 공간으로 만든다. 실제 법원에서는 친구에게 ‘분신사바를 해봤더니 너 목 매달아 죽는대’라고 말한 사건이나, 문자메시지로 절교하자고 보낸 사건까지 학교폭력 여부를 두고 다투어지고 있다. 피해 학생 보호의 방식 역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지금의 제도는 가해 학생에 불이익을 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정작 피해 학생의 회복을 중심에 두고 있지는 않다. 법적 다툼이 장기화할수록 피해 학생의 학교생활은 사건에 매몰된다. 피해 학생이 원하는 것은 가해 학생의 인생을 망치는 처벌이 아니라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과 충분한 회복의 시간일 때가 많다. 피해 학생의 치료와 상담, 보호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학교가 그 회복 과정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학교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교육적 권한과 책임을 다시 가져야 한다. 학교는 아이들이 처음으로 사회를 배우는 공간이다.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해 관계 회복을 시도하는 역할은 결국 학교만이 할 수 있다. 아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이라면 그 안에는 아동과 학생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야 하지 않을까. 학교폭력 제도를 평가하는 기준은 처벌의 강도가 아니라, 취약한 아이들을 얼마나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다. 김예원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2026.03.11.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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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식의 시시각각] 내란 청산은 혁명이 아니다

미국 워싱턴 DC의 명소인 내셔널몰 서쪽 끝 포토맥 강변 언덕 위에 흰색 대리석 신전이 우뚝 서 있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기념관이다. 높이 5.8m의 석조상 링컨은 근엄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직선으로 3.2㎞ 정면에 위치한 미 의회 의사당을 응시한다. 분리주의자를 상대로 미 연방(합중국) 통합을 수호한다는 의미다. 링컨, 남북전쟁 종전 후 치유·통합 여야, 내란청산 놓고 각각 내분 벌여 선거철 지나 사법 3법 머리 맞대야 링컨 오른쪽 남실 벽에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1863년 11월 19일)이 새겨져 있다. 반대편 북실 벽에는 대통령 재선 취임 연설문(1965년 3월 4일)이 음각돼 있다. 남북전쟁 종전을 불과 41일 앞둔 연설에서 링컨은 전쟁 승리를 환호하거나 반란세력 척결에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치유와 화해, 재건과 통합을 얘기했다. “누구에게도 적의가 아닌 관용을 베풀며 국가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 자신과 모든 국가들 사이에 정의롭고 영속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다하자”고 하면서다. 내란 청산을 놓고 여야가 벌이는 내분 양상을 보고 있자면 링컨의 통합 노력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무망해 보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이후 검찰 폐지에 이어 ‘사법 3법’ 강행 처리를 통한 사법부 변혁까지 내란 척결 시즌1, 시즌2로 한걸음에 내달렸다. 1948년 제헌헌법 이래 78년간 유지해 온 형사사법 체계는 물론이고 민주주의 헌정 질서의 기본인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법조계와 언론, 국민 우려에도 귀를 닫았다. 그러다가 중수청·공소청 설치 후속대책 성격인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권 문제를 놓고 여권 내 강경파(폐지론자)와 친명 지지층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강경파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재야 책사’ 역할을 해 온 구독자 228만 유튜버 김어준씨가 주동이다. 김씨가 10일 진행한 유튜브 방송에서 한 패널이 정부 고위 관계자가 검사들에게 수사권 존치와 이 대통령의 대장동·대북송금 사건 공소취소를 거래하려 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더니 급기야 11일 방송에선 다른 패널이 “사실이라면 그건 정말 대통령 탄핵 사유”란 언급까지 했다. 정부 출범 10개월 만에 여권 내부에서 탄핵이란 단어가 공공연히 거론된 건 역대 정권 전부를 통틀어도 초유의 일이다. 야당인 국민의힘 역시 한심한 정도를 넘었다. 지방선거를 80여 일 앞두고 계엄 사과와 노선 혁신에 대한 장동혁 대표의 버티기로 오세훈 서울시장, 김태흠 충남지사 등 현직 광역단체장이 당 후보 등록 신청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정도면 정당이 선거를 치르지 않겠다는 포기 선언에 다름 아니다. 그러곤 하루 만인 9일 소속 의원 107명 전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 복귀를 명확히 반대한다”가 골자인 이른바 ‘절윤 선언문’이란 걸 채택했는데, 내용 자체가 코미디다. 그간 국민의힘은 내란 우두머리죄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석열 복귀’를 암암리에 도모해 왔단 얘긴가. 노선을 어떻게 혁신해 보수정당을 되살릴 수 있을지 실질적 내용은 한 자도 씌어 있지 않은 ‘윤 어게인’과의 절연 선언은 국민에게 아무런 감동을 줄 수 없다. 정작 이 같은 노선 투쟁을 촉발한 장동혁 대표는 의총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소극적 찬성’을 한 모양인데 진정성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링컨이 종전 닷새 만에 남부 지지자에 의해 암살될 정도로 미국의 통합은 지난했다. 미국 역사상 최대 사망자(85만 명)를 낳은 ‘내전’의 단층선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남북전쟁 후 노예 해방과 시민권·투표권 부여를 골자로 수정헌법을 만드는 방식, 즉 개헌을 통해 헌정 질서를 재건했다. 이 대통령 말처럼 개혁이 번거롭다고 혁명을 할 수는 없다. 선거철이 지난 뒤라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내란 청산으로 불거진 헌법적 혼란을 수습해야 한다. 정효식([email protected])

2026.03.11.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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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근의 경제를 묻다] “과속이 널뛰기 불러…증시 마지막 퍼즐은 상속세”

1세대 가치투자가 이채원 의장 대세 상승에 열광하던 증시가 어느새 심각한 조울증에 빠졌다. 하루걸러 급등과 급락이 반복되는 널뛰기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밤잠 이루지 못하는 투자자도 그만큼 늘었다. 투자 대기자금인 고객예탁금은 1년 전 50조원 수준에서 이달 132조원까지 불어났다. 빚을 내 투자한 금액인 신용융자잔고도 같은 기간 18조원대에서 32조원으로 급증했다. 상장지수펀드(ETF) 거래 규모도 하루 평균 32조원으로 석 달 새 5배가 됐다. 새로 진입한 투자자들이 ETF를 주로 활용하면서다. 전쟁 아니라도 겪었어야 할 조정 기업 실적 나오는 4월이 분기점 기업 승계 숨통 틔워야 돈도 돌아 코스닥 활성화, 정체성 확립부터 우리 증시는 어디쯤 와 있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국내 대표적 가치투자가인 이채원(62)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을 만나 물었다. 시장의 변덕 속에서도 주가는 결국 제 가치를 찾아간다는 게 가치투자자의 믿음이다. 단꿈을 잠시 접고 현실을 냉정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때 이들의 시각만큼 유용한 게 없다. 이 의장은 한국투자밸류운용 대표를 거치며 가치주펀드인 ‘10년 투자’ 시리즈 등을 키워 냈다. 38년째 시장에 몸담은지라 웬만한 변동성에는 이골이 났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 역시 “이런 정도의 급변동은 처음 겪는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 한국 증시가 본격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극복의 출발점이자 갈림길에 섰다고 했다. 외국인 장기 자금 유입이 관건 Q :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 탄 증시다. 단순히 이란 사태 때문이라고 하기엔 변동성이 지나치게 큰 데. A : “가장 큰 원인은 주가가 너무 급하게 올랐다는 데 있다. 2024년 말 비상계엄 사태 이후 2200선까지 떨어졌던 코스피 지수가 미국의 이란 공격 전까지 무려 3배 가까이 올랐다. 단기간에 이렇게 주가가 급등한 사례는 1999년 미국 닷컴버블 때를 제외하곤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에선 10년이 걸린 일이 우리 증시에선 불과 14개월 만에 이뤄졌다. 결국 전례 없는 상승 속도가 전례 없는 변동성도 낳은 셈이다.” Q : 어차피 거쳐야 했을 조정이란 얘기인가. A : “이란 문제가 아니었다면 다른 핑계로라도 지수는 빠졌을 것이다. 신용잔고가 급증하는 등 시장의 모든 지표가 이미 초과열 신호를 내고 있었다. 만약 이란 사태가 없었다면 몇달 간 지루하게 흘러내리며 조정을 거쳐야 했을 것이다. 늘 오르는 주식은 없다. 역사상 초강세장에서도 10% 이상 조정은 항상 있었다. 가까이는 지난해 코스피가 4000을 넘어섰을 때도 상당 폭 빠졌다가 다시 오르지 않았었나. 시장 전체로 보면 거품이 끼었다고 하긴 어렵지만 이른바 유망 산업 중에도 기대만으로 이미 가격이 많이 오른 종목들도 눈에 띈다. 열기를 한번 식히고 갈 필요가 있다.” Q : 증시가 빠르게 튀어 오르게 만든 힘은 무엇이었다고 보나. A : “워낙 눌려 있었다. 주가수익비율(PER)이 주요국 증시 평균의 절반도 안 됐다. 계엄사태 이후 6개월간 거의 무정부 상태에서 관세 리스크까지 닥치는 등 최악의 상황이었다. 새 정부 들어서 경기 부양에 나서고 1차 상법 개정과 배당소득 분리 과세 등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을 펼치면서 3500선까지 빠르게 간극을 메웠다. 이후에는 반도체의 역할이 컸다. 10여년 새 우리 산업구조도 많이 변했다. 시총 10위권 기업들의 구성부터 크게 바뀌었다. 과거에는 철강, 석유화학 등 경기에 민감하고 대외 의존도가 너무 높은 산업들이 많았다. 지금은 AI 시대에 필수적인 반도체, 우주항공, 배터리, 바이오 등이 대신 자리 잡고 있다.” ※주가수익비율(PER): 주가가 기업이 한 해 벌어들이는 주당 이익의 몇 배인지를 나타낸다. 배수가 낮을수록 주가는 저평가됐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Q : 개미 투자자들이 대거 진입한 반면 외국인은 많이 팔았다. A : “외국인이 한국을 떠난다기보단 기계적 매매로 보인다. 그간 주가가 많이 오른 만큼 차익 실현 성격이 강하다. 우리가 접촉하는 미국 현지 투자사들도 한국 시장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외국인 자금도 성격이 천차만별이다. 관건은 10~20년 들고 가는 장기투자 자금이 본격적으로 들어올 것인가인데 아직은 좀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아무래도 단기 급등이 부담스러운 데다, 이란 문제 등 외부 환경도 좀 안정돼야 할 것이다.” 주식 매력도 높여야 ‘머니무브’ Q :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탈출했다고 봐야 하나. A : “이제 본격적인 출발점에 섰다고 봐야 한다. 극심한 저평가 상태는 벗어났지만, 경쟁국 증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향후 1년간 상장기업들이 벌어들일 이익 추정치를 기준으로 본 PER은 10배 수준이다. 반면 일본과 대만은 18배 수준으로 우리보다 훨씬 높다. 급증한 반도체 이익 전망치 등이 현실화할 것인지, 내년 이후에도 증가세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인지 아직은 반신반의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의미다. 분기점은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이 나오는 4월이 될 것으로 본다. 안정적인 실적과 함께 긍정적 전망이 나온다면 증시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수도 있다.” Q :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제도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없나. A : “마지막 퍼즐이 하나 남아 있다. 상속세 문제다. 전 세계 어디에 가도 모든 지배주주들은 자기 회사 주가가 오르길 원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를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다. 상속세율이 최고 60%에 달하는 상황에서 주가 상승이 승계 비용 부담으로 직결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장기업 대주주에게 주가를 올릴 수 있는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건네면 ‘아직 애도 어리고 승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며 손사래를 치기도 한다. 이래서는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의 이해를 일치시키기 어렵다.” Q : 정부는 부자 감세 논란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 A : “물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진보 정부이니 추진해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세율 조정이 당장 어렵다면 가업 승계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방안을 활용할 수 있다. 독일은 승계를 ‘부의 이전’이 아니라 ‘책임의 이전’으로 본다. 꼭 자식이 아니라도 직원이나 제3자에게도 승계할 수 있고, 일정 기간 기업을 유지하면 상속세를 최대 100% 면제한다. 회사를 정리하기 이전에는 과세를 이연해 주는 방식으로 일단 승계에는 문제가 없도록 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Q : 여권은 주가 누르기 방지 법안 통과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A : “자산 가치에 비해 주가가 낮은 기업은 상속세 부담을 늘리는 방식으로 압박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산업의 성장성이나 업황이 나빠 주가를 올리고 싶어도 못 올리는 경우가 있다. 채찍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당근도 같이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 투자도 살아나고, 고여있는 돈이 돌 수 있다. 지금도 현금만 잔뜩 들고 가만히 있는 기업들이 많은데, 돈이 생산적인 분야로 투입될 수 있도록 숨통을 좀 틔워 줘야 한다.” Q : 정부는 증시 활성화로 돈이 부동산에서 자본시장으로 옮겨가는 머니무브가 일어날 것이라 기대한다. A : “우리 가계자산의 65%가 부동산에 쏠려 있으니 다른 나라에 비하면 높은 게 맞다. 다만 돈은 수익성과 안정성을 좇는다. 쏠림이 생긴 건 그만큼 부동산의 상대적 매력도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부동산에서 이른바 ‘불패신화’가 만들어지는 사이 주식은 그렇지 못했다. 꾸준히 자본시장의 매력도를 높여주는 게 쏠림을 완화하는 길이다.” ‘빚투’는 투기, 결코 성공 못 해 Q : 코스피에 이어 코스닥 활성화가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부실기업을 더 솎아내겠다는데. A : “코스피도 그렇지만 코스닥도 특정 지수를 목표로 내걸고 부양하는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 지수는 자본시장 활성화의 결과물이지 목표가 아니다. 코스닥은 코스피와는 상황이 좀 다르다. 코스피는 기업 이익에 비해 저평가됐다는 근거가 있었다. 하지만 코스닥은 상장기업들 이익을 모두 합해도 SK하이닉스 한 기업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단순히 부실기업을 더 솎아낸다고 시장이 활성화되긴 어렵다. 현재 코스닥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덩치가 커지면 코스피로 빠져나가 버린다. 코스닥을 진취적이고 성장성이 강한 핵심 전략산업의 플랫폼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진입 기업에 확실한 혜택을 주되 아무나 진입할 수 없는 프리미엄 시장으로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Q : 활황장에 새롭게 증시에 뛰어든 개인 투자자가 많다. ‘빚투’와 레버리지 활용도 부쩍 늘었는데. A : “빚을 내거나 레버리지를 쓰는 건 투자가 아니라 투기다. 길게 봐선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이번 급락에서도 나타났지만, 주식시장에선 어떤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다. 우량주는 충격을 받더라도 결국 회복된다. 하지만 ‘빚투’는 결국 청산 당하니 그 기회도 잃는다.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도 중요하다. 미치도록 사고 싶을 때 팔아야 하고, 너무 두려워 내던지고 싶을 때 사야 하는 게 주식이다. 그 두려움과 욕망을 이겨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투자 대가 워런 버핏이 ‘주식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높은 지능이 아니라 건전하고 지적인 체계’라고 한 것도 그런 의미다.” 조민근([email protected])

2026.03.11.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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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번째 천만영화가 일깨우는 것 [이지영의 문화난장]

한 편의 영화에 전국이 들썩인다. 지난 6일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 “값진 결실”이라며 축하와 감사 메시지를 내놨다.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국가유산청장도 “우리 영화의 희망이자 축복” “감회가 남다르다” 등 축하의 뜻을 공개적으로 전했다. 국제영화제 수상 때나 볼 수 있었던 국가적 경사 대접이다. 투자·기대작 가뭄 속 기적 흥행 박찬욱 감독도 "큰일 했다" 축하 집단적 감동 경험 여전히 유효 작품 좋으면 기꺼이 극장 찾아 그만큼 목말랐던 것이다. 한국 영화시장은 2024년 4월 개봉한 ‘범죄도시4’ 이후 2년 가까이 천만영화를 배출하지 못했다. 지난해 최고 흥행작인 ‘좀비딸’조차 관객 수 564만 명에 그쳤다. OTT의 공세와 영화 티켓 가격 상승으로 이제 극장 시대는 끝났다는 비판론이 팽배한 상황이었다. 극장 관객 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크게 줄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연평균 관객 수는 1억1600만 명 정도다. 팬데믹 이전 2015년부터 2019년까지의 연평균 관객 수 2억1840만여 명의 절반 수준이다. 시장이 위축되니 투자가 마르고, 투자가 줄면서 좋은 영화가 줄고, 볼만한 영화가 없어 관객이 외면하는 악순환이 굳어졌다. 대통령·장관도 축하 메시지 역대 국내 개봉작 중 34번째, 한국영화로는 25번째 천만영화에 이름을 올린 ‘왕과 사는 남자’는 이제 더이상 천만영화가 안 나올지 모른다는 체념 속에서 일궈낸, 일종의 기적으로 여겨진다. 박찬욱 감독도 장항준 감독에게 “큰일을 해내서 고맙고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영화계가 내 영화 네 영화 따지지 않고 한마음으로 기뻐하고 있다. 한국 영화시장에서 ‘1000만’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흥행 기록이 아니다. 때로는 산업의 흐름을 바꾸는 이정표였고, 때로는 시장의 예측을 뒤집는 의외의 사건이었다. ‘이정표 천만’이 영화산업의 기준을 만들고, ‘의외의 천만’이 매너리즘에 빠진 업계에 경종을 울리며 한국영화는 지금의 규모와 다양성을 갖게 됐다. 한국영화 최초의 천만영화는 2003년 개봉한 ‘실미도’다. ‘실미도’의 천만 흥행은 한국영화가 비로소 산업으로서의 골격을 갖췄음을 선포한 사건이었다. 꼭 10년 전인 1993년 ‘서편제’가 세운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이 ‘서울 관객 103만 명’인 것을 생각하면, 천만 관객은 꿈꿀 엄두조차 못 낸 경지였다. 하지만 1998년 첫 등장한 멀티플렉스는 영화시장의 규모를 바꿔놨다. ‘실미도’에 이어 ‘태극기 휘날리며’(2004)도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천만’은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된다. 한국적 서사와 대형 스펙터클이 결합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탄생은 거대 자본이 영화라는 산업에 확신을 갖게 만든 신호탄이 됐다. 2010년대는 한국 영화사에서 ‘천만영화 대량 생산기’로 불린다. 멀티플렉스 확장으로 스크린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천만 관객을 모을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이 완성된 때였다. 대기업 배급사와 멀티플렉스의 결합은 스크린 점유율을 극대화해 단기간에 관객을 끌어모으는 흥행공식을 안착시켰다. 2012년 ‘도둑들’부터 2019년 ‘기생충’까지 8년 동안 14편의 천만 영화가 나왔다. 특히 ‘명량’(2014)은 관객 1761만 명을 동원, 시장 규모의 한계를 넘었다. 하지만 정형화된 흥행 공식이 늘 시장을 지배한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관객은 예상을 뒤엎는 선택으로 이변을 만들어냈다. ‘왕의 남자’(2005)는 톱스타 없는 저예산 사극이었지만, 광대의 서사와 시대적 한을 녹여내며 1230만 관객을 모았다. 가족애라는 고전적 코드를 통해 관객의 눈물샘을 터뜨린 ‘7번방의 선물’(2013)은 진부한 흥행 코드로 여겨졌던 휴먼 드라마의 저력을 보여줬다. 수사물과 코미디 결합이라는 평범한 포맷의 '극한직업’(2019)은 자극적 소재 없이 오직 재미만으로 162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역대 한국영화 흥행 2위에 올랐다. 입소문 폭발한 영화에 관객 몰려 팬데믹 이후 천만영화의 반열에 든 여섯 편의 영화, ‘범죄도시’ 2·3·4와 ‘서울의 봄’ ‘파묘’ ‘왕과 사는 남자’는 영화시장이 확실한 경험을 소비하는 구조로 재편됐음을 보여준다. 이미 검증된 IP나 입소문이 폭발한 영화, 즉 관객으로서 실패할 확률이 없다고 믿어지는 영화만 천만의 반열에 올랐다. 마케팅보다 입소문, 실시간 관객 평판의 위력이 훨씬 커졌다. 관객에게 영화 관람은 시간 대비 효용을 꼼꼼히 따지는 특별한 외출이 된 것이다. 제작비 105억원 중예산 영화인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은 단순히 한 감독의 성공을 넘어, 극장가 부활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의 방대한 콘텐트를 손쉽게 소비하는 시대지만, 관객들은 여전히 극장에서 타인과 함께 호흡하며 느끼는 집단적 감동을 기대하고 있었다. 자신을 매료시킬 이야기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마음을 내어줬다. 엉성한 호랑이 CG도 그냥 웃어넘길 만큼 관객들은 너그러웠다. 관객을 다시 불러모을 열쇠는 오직 이야기의 본질에 있다. 관객의 마음을 읽는 날카로운 통찰과 탄탄한 서사가 있다면 천만이라는 기적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25번째 천만영화가 위기의 극장가에 증명해 보인 가장 확실한 생존 전략이다. 이지영([email protected])

2026.03.11.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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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편법적 개헌 지적 나오는 재판소원…부작용 최소화 노력해야

재판소원법(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12일 시행되지만 법안 내용과 통과 과정에서 드러난 허점은 여전하다. 법원의 판결이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생각하면 확정판결이라도 뒤집을 길이 열렸다. 기존 3심제 구조가 사실상 4심제로 바뀌었다는 평가다. 분쟁 종결이 지연되고 소송비용이 증가해 실질적인 권리구제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헌재는 “법원의 헌법 해석을 교정할 뿐”이라고 설명하지만 법원 내부에서는 판결·재판 과정에서의 기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법률 적용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헌법 101조 1항)나 ‘최고 법원은 대법원으로 한다’(101조 2항) 등의 헌법 조항에 위배돼, 하위 법률을 통한 편법적 개헌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처럼 기존 헌법과 사법체계를 뒤흔드는 법안인데도 사법3법 통과 과정은 국회 입법 공청회 한 번 없이 졸속으로 진행됐다. “국민의 기본권을 위한다는 명분의 법안이 국민을 배제한 채 통과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헌재는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제가 되지 않도록 요건에 맞지 않는 사건을 상당수 각하하고, 충실히 심리해야 할 사건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대법에서 승소하지 못한 재판 당사자들이 헌재로 달려갈 수 있어 헌재가 상고심 불복률 25~30%를 기준으로 예상한 연간 1만여건의 수치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인력으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관측한다. 헌재도 재판소원과 함께 운영되는 가처분 제도와 관련,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법원을 향한 ‘경고성’ 메시지도 놓치지 않았다. “헌재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반복해서 동일한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헌법 위반이자 법률 위반인 재판, 법관의 위헌·위법한 행위로도 치환될 수 있다”고 했다. 지난달 25일 전국법원장회의에 모인 법원장들은 재판소원 도입 부작용으로 “소송 당사자들이 반복되는 재판으로 고통받고, 법적 불안정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예상된다”는 입장을 내놨다. 법 시행에 대비한 구체적 제도 정비에 대한 내용은 내놓지 않았다. 이런 여러 맹점을 안고도 법안은 오늘 공포 즉시 시행된다.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위상 다툼을 하기보다 국민의 불편이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헌재와 법원 모두 제도 정비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김보름([email protected])

2026.03.11.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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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민 다수가 원하는 개헌, 더는 미룰 수 없다

개헌(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의 절실함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회가 1만2000명을 조사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응답자 10명 중 7명 꼴(68.3%)로 개헌을 원했다. 모든 연령대와 지역, 정치성향을 통틀어 개헌 찬성이 반대보다 훨씬 높았다. 개헌에 대해 잘 안다고 답변한 사람일수록 찬성률은 더 높아졌다. 10명 중 7명 지지, 논의도 충분해 사회변화, 새로운 문제 대응 필요 합의가능한 부분부터 개헌해야 특히 개헌에 찬성하는 사람 10명 중 7명(70.4%)이 ‘사회적 변화와 새로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고규범이고, 기본권을 둘러싼 환경이 변화한다면 그 보장 체계도 그에 맞춰 당연히 손을 봐야 한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촉발하는 사회·경제의 대전환, 인구절벽 및 지역소멸, 그리고 기후변화라는 전례 없는 복합위기 상황에 직면해있다. 이런 변화는 현행 헌법이 마지막으로 개정된 1987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발맞춰 헌법상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는지 구조적으로 점검하고, 미래헌법으로 혁신해 가야 한다. 개헌 의제 관련 답변에서도 이 같은 흐름이 뚜렷하다. 생명권(85.9%), 안전권(87.2%), 개인정보 자기결정권(79.9%)의 명문화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가 확인됐다. 이는 시대적 변화에 조응해 국민을 더욱 존귀하게 보호하고 지킬 수 있는 헌법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하루빨리 낡은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국민은 알고 있다. 미래지향적 개헌 이슈에 대한 국민의 의식 수준도 법조문을 앞질러 가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포함해 ‘미래세대의 이익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국가 운영 원칙을 헌법에 명시하자’는 항목에 대해 조사 대상의 74.8%가 찬성했다. ‘과학기술 발전이 인간의 존엄과 기본권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원칙 명시에도 85.7%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AI 관련 조항을 헌법에 넣은 나라는 지구 상에 아직 없다. AI 기술 변화에 발맞춘 헌법을 한국이 세계 최초로 만들면 국제사회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시대 변화에 대한 소극적 대응이 아니라 적극적 변화를 이끌어가는 미래지향적 개헌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헌법 전문에 민주화운동을 추가로 명시하자’는 제안에 많은 국민이 공감했다. 명시 대상으로 5·18 민주화운동(90.6%)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고, 6·10 민주항쟁(73.9%)과 부마민주항쟁(58.2%)이 뒤를 이었다.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국가 책임을 헌법에 명시하는 개헌에는 83%가 찬성했다. 더는 지역 격차와 지방소멸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지난 40년 동안 개헌 논의와 연구는 학계와 국회를 중심으로 충분히 이뤄졌다. 가장 최근 운영된 ‘국민미래개헌자문위원회’에 필자가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 이 위원회를 포함해 국회에 개헌 관련 자문위가 지금까지 여섯 차례 만들어져 운영됐다. 이제 국민 대다수는 국회가 더는 개헌을 미루지 않고 합의 가능한 부분만이라도 추진하길 바라고 있다. 국회 조사에서 69.5%가 정치권에서 합의 가능한 의제를 중심으로, 단계적 개헌을 추진하기를 원했다. 개헌 시점으로는 ‘곧 있을 6월 지방선거(39.6%)’를 ‘2028년 총선’이나 ‘2030년 대선’보다 더 많이 선택했다. 법률 전문가나 시민단체 등이 아니라 국회가 개헌을 주도해야 한다는 응답(37.2%)이 가장 많았다. 개헌을 더는 미룰 필요가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오직 국회의 결단이다. 당장에라도 개헌특위를 만들어 가동하자. 합의를 어렵게 만드는 권력구조 개편 논의는 추후로 미루고,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선에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정략적 문제가 아니라 대승적 과제다. AI 관련 조항 등 선진국도 참조할 만한 헌법 혁신에 머리를 맞댄다면 미래세대에 부끄럽지 않은 국회가 될 수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K컬처로 세계문화를 선도해가듯 헌법도 혁신을 통해 미래헌법으로 바뀌어야 한다. 언제까지 외국 헌법을 따라 읽어야 하나. 국회가 이번에도 실기해 국민의 뜻을 저버렸다는 오점을 역사에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재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2026.03.11.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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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화의 마켓 나우] AI 시대의 이순신, 국민개발자

미군이 최근 이란 공습 표적 분석에 AI를 활용했다는 보도는 블랙코미디처럼 들린다. 정부기관의 AI 활용에 제동을 거는 대통령 행정명령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알고리즘이 ‘전장의 안개’를 걷어냈다. 정보 해석 능력은 승패를 가른다. 85년 전 미군 정보부는 진주만 공격의 단서를 갖고도 이를 해석하지 못했다. 콜로서스에서 오늘날의 딥러닝에 이르기까지 데이터 해독 기술의 진화는 전쟁의 규칙을 바꾼다. 문제는 데이터의 규모다. 폭증하는 정보 앞에서 인간의 직관은 힘을 잃는다. 코어 덤프(core dump), 즉 비정상 종료 시 메모리 기록을 떠올려 보라. 며칠 밤을 새워 해독하던 기록을 AI는 순식간에 훑고 원인을 지목한다. 변화는 전쟁의 개념도 바꾸고 있다. 과거 비대칭 전력이 병력과 화력의 양적 우위였다면 이제는 초지능적 분석력이다. 더 빠르고 정확한 정보 해석 능력이 새로운 전략 자산이다. 데이터 시대에는 개인도 AI라는 참모를 통해 비대칭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 존 그리샴의 『레인메이커』 속 서류 더미에 파묻힌 초짜 변호사의 모습은 낡은 풍경이다. 미래 수퍼히어로는 단 12척으로 대함대를 격침한 명량의 이순신에 더 가깝다. 울돌목 물살을 무기로 삼았듯 개인은 ‘AI 에이전트’로 데이터의 격랑을 통제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정부의 ‘AI 3강 도약’ 구상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G2를 추적하는 데 급급하면 주도권을 쥘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소프트웨어(SW) 생태계가 취약하다. 외주와 하청 중심 구조 속에서 기술 축적과 도전이 줄어들었고, 게임 산업도 자본 공세 속에 힘을 잃고 있다. AI 시대의 국가 경쟁력 또한 데이터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SW 생태계에서 갈린다. SW가 도구라면, AI는 도구를 쥔 손이다. AI 강국은 곧 SW 강국이다. 우리의 저력은 늘 벼랑 끝에서 드러났다. AI 시대의 비대칭 전력 역시 다르지 않다. 5000만 국민이 코딩의 최전선에 서는 ‘국민개발자의 나라’가 되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 전문가와 기업에 문제 해결을 맡기던 수동적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핵심은 단순하다. 개인이 AI를 참모 삼아 철학과 창의성으로 벼려낸 코드, 즉 ‘오토마타(Automata)’다. 각자가 문제를 직접 코드로 푸는 순간, 비용과 시공간의 벽은 무너지고, 개인의 한계는 빠르게 재정의된다. 명량의 승리는 울돌목을 읽은 개인의 통찰에서 비롯됐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 통찰이다. 5000만이 저마다의 오토마타를 손에 쥐는 날, ‘K오토마타’ 생태계는 무너진 SW 산업을 일으키는 토대가 될 것이다. AI 강국의 길은 각자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이수화 서울대 빅데이터혁신융합대학 연구교수·법무법인 디엘지AI센터장

2026.03.11.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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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인간적인 수, 인간적인 바둑

10년 전 이세돌과 대결한 알파고(AlphaGo)를 알파고 리(AlphaGo Lee)라 부른다. 인간의 바둑을 학습한 프로그램이다. 그 후 알파고 제로(AIphaGo Zero)가 등장했다. 단지 바둑규칙만 알려주고 스스로 대국하며 학습했다. 처음 3시간 무렵엔 바둑을 막 배운 어린이 대국을 보는 것 같았다. 천지사방으로 갈팡질팡 대국이 이어졌다. 하나 불과 3일 후 알파고 제로는 인간 고수는 물론 알파고 리를 넘어섰다. AI의 학습능력은 경이적이었다. 이제 바둑은 알파고 제로의 후손들이 지배하고 있고 인간과의 격차는 오히려 점점 커지고 있다. 인간적인 바둑 두라 권하면서도 인간의 특별함은 뭐냐고 묻는 AI 기계한테 쫓기고 위로받는 인간 그 강력한 벽 앞에서 바둑기사들은 가끔 환상에 젖는다. 인간이 어느 날 초능력을 얻어 AI를 이기는 대반전은 없을까. 영화 ‘루시’를 보면 인간의 뇌도 어떤 경우 무한의 능력을 갖게 된다. AI가 인간 뇌의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방법을 찾을 수는 없을까. 챗GPT에게 물어보니 ‘불가능’이란 답이 돌아온다. 인간의 뇌에 AI를 장착하면, 즉 ‘인간+AI’가 되면 압도적으로 강해질 수 있지만 그래도 AI를 넘어설 수는 없다고 한다. 대신 다른 충고를 한다. 인간적인 수, 인간적인 바둑에서 답을 찾으라는 것이다. AI는 최강이지만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은 행마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승부의 드라마를 만든다. AI는 계산한다. AI에게 바둑은 계산을 통해 승률이 가장 높은 수를 찾는 것이다. 인간에게 바둑은 기풍과 아름다움의 표현이며 자존심과 기세, 배움의 현장이다. 그러므로 완벽함은 기계에게 내주고 실수나 분노, 후회 같은 불완전함을 인간의 영역으로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고 기계는 충고한다. 기술은 어차피 상대가 안 되니까 그쪽은 포기하고 이제라도 ‘인간적인 수’ 또는 ‘인간적인 바둑’에 집중하는 것이 바둑의 미래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가령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4국에서 둔 78수. 이 수가 신의 한 수였건 본인의 표현대로 꼼수였건 그 한 수는 서사를 만들었다. 백척간두에 선 이세돌의 처절한 비명과 반격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사실 용기나 불안, 고통은 인간 고유의 것이고 아름답기조차 하다. 우리는 그런 감정·행동에서 인간적인 공감을 느끼게 된다. 하나 바둑은 승부다. 이길 수 없는 기계의 완벽함 앞에서 인간은 문득 초라해진다. 기계는 그걸 ‘인간적’이란 단어로 포장하여 우리를 위로하고 있지만 우리는 거대한 실력 차 앞에서 힘없이 고개를 떨구게 된다. 게다가 기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되묻는다. “만약 AI가 단순 계산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목적까지 모방하게 된다면 그때 인간과 AI의 차이는 어디에 남을까요.”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바이센테니얼맨』이 생각난다. 가정용 로봇 앤드루는 점점 더 인간에 가까운 존재가 된다. 이윽고 “나는 인격체다”라며 소송을 내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를 요구한다. 정부는 “인간은 유한한데 로봇은 불멸”이라며 인정하지 않는다. 앤드루는 스스로 불멸성을 포기하고 자신의 죽음을 설계한다. 죽기 직전 공식적으로 인간이 된다. 이 소설은 로봇이 오히려 더 인간적인 느낌을 준다. 챗GPT는 인간과 기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 “AI가 감정을 표현하고 (인간이 부여한) 목적을 수정하고 창조성을 보이며, 실수도 하고 좌절과 기쁨을 얘기하고 자신의 존재를 성찰한다면, 그리하여 인간과 구별이 안 된다면 그때 우리는 인간이 특별하다고 말할 근거가 남아있을까요.” 기계의 질문이 은연중 섬뜩하다. 바둑 얘기를 하다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AI의 바둑 실력을 탐하지 말고 인간의 바둑에 집중하라고 말하면서도 그 인간적인 요소마저 기계의 영역이 되면 어쩔 것이냐 묻는다. 인간이 AI와 같이 살면 언젠가 인간의 정체성은 붕괴하고 기계와 인간은 구별이 불가능할지 모른다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 같다. 기계의 진지한 태도를 보건대 이런 질문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폭발하는 AI 시대, 그 빠른 변화를 감안할 때 2, 3년 후엔 어떤 질문이 나올지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세돌과 알파고가 대결한 지 불과 10년, 우리는 기계한테 질문받고 쫓기고 그리하여 위로받는 처지가 됐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2026.03.11.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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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의 ‘필향만리’] 運去金成鐵 時來鐵似金(운거금성철 시래철사금)

‘지자불여복자(知者不如福者)’라는 속언이 있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사리에 밝은 사람이라도 복이 굴러 들어오는 사람만은 못하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대개 노력에 비해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을 운(運)이고 복이라고 여긴다. 운이 떠나면 황금도 무쇠 역할밖에 못 하고, 운이 들어와 때를 만나면 무쇠도 황금의 역할을 한다. 이런 때 사람들은 운의 존재를 느끼곤 한다. 운이 나쁘다고 느낄 때는 용기 내어 운에 맞설 필요도 있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때를 기다리는 지혜도 필요하다. 맞섬은 불운을 다 막지 못하지만 지혜는 불운을 피하게 한다. 대개의 행운은 잡스러운 생각을 버리고 맑은 생각을 갖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청나라 때 문인 장조(張潮)는 “첩의 아름다움이 아내의 현숙함만 못 하고, 돈 많음이 처지가 순탄함만 못하다(妾美不如妻賢, 錢多不如境順)”고 했다. 첩을 거느리겠다는 잡스러운 생각을 하는 사람은 현명한 아내를 잃고, 돈으로 잡다한 욕심을 다 채우겠다는 망상에 빠진 사람은 결국 불행한 처지에 처하게 된다. 운이나 복에 대해 흔히 ‘굴러 들어온다’는 표현을 쓰지만, 사실 운이나 복은 스스로 ‘지은’ 결과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복 많이 받으세요”보다는 “복 많이 지으세요”가 진짜 복을 불러들이게 하는 인사말이다. 조선 전기의 문인 나세찬(羅世纘·1498~1551)은 ‘추국춘란각유시(秋菊春蘭各有時)’, 즉 ‘가을 국화와 봄 난초는 피는 철이 각기 다르다’고 읊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전에 쓴 ‘필향만리’ 글에서 ‘북송남죽별소처(北松南竹別所處)’, 즉 ‘북쪽의 소나무와 남쪽의 대나무는 처지가 다르다’는 대구를 지어 붙인 적이 있다. 금이 무쇠가 되는 불운이나 무쇠가 황금이 되는 행운은 따로 있지 않다. 다 때와 장소에 맞게 사는 지혜의 결과일 뿐이다. 지은 대로 굴러 들어오는 것이 운과 복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2026.03.11.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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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의 신 영웅전] 죽산 조봉암의 기구한 생애 ①

섬이라고는 하지만 강화도는 서구 문물을 먼저 받아들인 첨단 지역이었다. 현대사에서 비극적 삶을 살다 간 죽산 조봉암(曺奉岩·1898~1959·사진)의 고향이 이곳이다. 그는 독실한 감리교 신자로서 일찍이 권사(장로)의 직분을 맡아 신앙생활을 했다. 그런 그가 공산주의자가 되어 간첩 활동을 하다가 처형되었다. 여한이 많았을 것이다. 1980년대 어느 날, 한 중년 여성이 내 연구실로 찾아왔다. 단정했다. “누구시죠?” “죽산 조봉암 선생의 딸입니다.” 당대 최고 영화감독이었던 이봉래(李鳳來)의 아내 조호정(曺滬晶)여사였다. 나는 가슴이 먹먹하여 왜 오셨느냐고 묻지도 못했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뒤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그 선친의 오랜 동료였던 최익환(崔益煥)의 사위이고 한국현대사를 전공했다니 선친의 신원(伸冤)을 위해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엄혹하던 군사 정부 시절, 한국현대사를 전공하고 알 만큼 안다 해도 병아리 교수가 도와줄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좋은 세상 올 때까지 좀 더 기다리시죠.” 처진 어깨로 연구실을 나가던 그 여인의 모습이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아 있다. 조봉암에 대한 논점은 세 가지인데 첫째로 ‘그는 공산주의자였는가?’ 하는 점이다. 그가 청년 시절에 모스크바 노동자대학을 졸업한 공산주의자였지만 박헌영(朴憲永)의 과격 노선에 반대하다가 민족주의 민족전선에서 제명되었을 때 이미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더욱이 고양·강화 일대에서 민족주의 지도자로 명성이 높던 이가순(李可順) 장로를 만난 뒤로 그는 공산주의를 버렸다. 이가순은 정(鄭) 트리오의 외할아버지이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평가한다면, 일제 치하와 해방정국에서 젊은 지식인들이 붉은 책 하나쯤은 유행처럼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시절, 조봉암도 낭만적 공산주의에 심취했지만, 그는 “덜 한 공산주의자”였을 뿐이다. (계속)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2026.03.11.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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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있는 아침] (319) 매창(梅窓)에 월상(月上)하고

매창(梅窓)에 월상(月上)하고 김천택(생몰연대 미상) 매창에 월상하고 죽경(竹逕)에 풍청(風淸)한제 소금(素琴)을 빗기 안고 두세 곡조 흩타다가 취하고 화오(花塢)에 져있어 몽희황(夢羲皇)을 하놋다 -청구영언 진본(珍本) 춘래불사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봄은 왔건만 아침저녁 바람이 아직은 차다. 매화 핀 창가에 달이 떠오르고 대나무 우거진 길에 바람이 맑다. 수수한 거문고를 비스듬히 끌어안고 두세 곡조 흐드러지게 타본다. 술에 취하여 꽃핀 언덕에 기대어 있으니 희황상인(羲皇上人)을 꿈에 보누나. 봄은 아름답다. 가인(歌人)이 만사를 잊고 자연에 몸을 맡길 만큼 황홀한 계절이다. 그가 꿈에 보았다는 희황상인은 전설 시대 중국의 복희씨가 나라를 다스릴 때 평화롭게 살던 상고인들을 가리킨다. 비록 세계는 전란이 그치지 않는다 해도, 우주가 우리에게 준 큰 선물을 감사히 받을 일이다. 옛사람처럼 삶의 찬가를 한껏 부르는 계절이 왔다. “있잖아 불행하다며/ 한숨 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시바타 도요 유자효 시인

2026.03.11.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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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석 만평] 3월 12일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3.11.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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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아메리칸 드림’은 아직 유효한가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라는 표현은 1931년 역사학자 제임스 트러슬로 애덤스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저서 ‘미국의 서사(The Epic of America)’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부와 권력의 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능력과 성취에 따라 더 나은 삶을 살 기회가 있는 나라에 대한 꿈”이라고 설명했다. 출신, 배경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는 사회, 그것이 미국이 세계에 약속했던 이상이었다.   20세기 동안 이 개념은 하나의 사회적 상징이 됐다.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미국으로 몰려든 이유도 바로 이 기회의 약속 때문이었다. 집을 사고, 자녀를 교육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은 단순한 경제적 성공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의 가능성 자체를 의미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이 오래된 서사를 흔들고 있다. 이제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사람보다 미국을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순이주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미국 시민들이 유럽과 멕시코, 캐나다, 동남아시아 등지로 이동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을 떠나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 현상을 일시적 유행으로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미국 사회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지만 동시에 생활비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주거비와 의료비, 교육비는 중산층에게도 큰 부담이 됐다.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뿐 아니라 중소 도시에서도 집값과 렌트비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반면 세계화와 디지털 기술은 삶의 공간을 바꿔 놓았다. 원격 근무의 확산으로 일터와 거주지가 반드시 일치할 필요가 없어졌다. 미국 기업에서 일하면서 유럽이나 동남아에서 생활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높은 미국 임금과 상대적으로 낮은 해외 생활비가 결합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중산층이 등장했다.   삶의 질에 대한 인식 변화도 중요한 요인이다. 유럽의 많은 도시는 보행 중심의 도시 구조와 공공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치안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총기 사건과 정치적 갈등이 반복되는 미국 사회와 비교하면 일상적 안정감이 더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이러한 요소는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미국 시민이 해외로 이동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미국 경제의 힘 덕분이라는 사실이다. 실리콘밸리와 금융 산업이 만들어낸 고임금과 원격 근무 환경 때문에 많은 미국인이 해외에서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미국 경제의 호조가 역설적으로 미국을 떠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든 셈이다.   그렇다면 진짜 아메리칸 드림은 무엇일까. 애덤스가 말했던 아메리칸 드림은 부자가 되는 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였다. 노력한 만큼 기회를 얻고 가족과 공동체 속에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사회였다. 지금 미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바로 그 기본적인 약속이 흔들리고 있다는 데 있다.     결국 삶의 비용과 사회적 안정이라는 두 가지 문제로 압축된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나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기회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래를 믿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그 핵심이다. 미국이 다시 매력적인 삶의 공간으로 남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회뿐 아니라 삶의 질과 사회적 안정성을 동시에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오래된 이야기의 방향은 앞으로도 계속 바뀌어 갈 가능성이 크다. 이은영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아메리칸 드림 아메리칸 드림 사회적 상징 사회 내부

2026.03.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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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도산 안창호, 한인 교회의 씨를 뿌리다

3월 10일은 민족의 위대한 스승 도산 안창호 선생의 순국 88주기였다. 그런데 많은 한인이 도산을 조국 독립에 일생을 바친 위대한 애국자이자 민족 지도자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도산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으며, ‘미주 한인교회의 씨를 뿌린 개척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도산이 기독교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895년 무렵이었다. 청일전쟁 직후 상경한 그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설립하고 밀러 선교사(F.S. Miller, 민노아)가 운영하던 구세학당(예수교학당)에 입학하면서 복음을 접했다. 도산은 학교의 접장으로 일하며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고, 예수교에 입교한 후 곧바로 기독교 진리를 전도하는 일에 헌신했다. 도산은 신앙을 받아들인 후 고향으로 내려가 21세의 나이에 점진학교를 세우고 직접 교회를 개척하며 전도에 힘썼다. 특히 서당 훈장이었던 유학자 장인 이석관을 끈질기게 설득해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아내가 될 이혜련이 서울 정신여학교에서 기독교와 신학문을 배울 수 있도록 이끌었다.   1902년 제중원(현 세브란스 병원)에서 밀러 선교사의 주례로 결혼한 도산과 이 여사는 곧장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이 여사 역시 평생을 교회에 헌신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도산이 독립운동을 위해 전 세계를 떠도는 동안, 그녀는 백인 가정에서 가사 도우미와 삯바느질을 하며 5남매를 키우고 한인 부인단체를 조직해 독립자금을 모았다. 부부의 굳건한 신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가시밭길이었다.   1902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그는 이국땅에서 인삼 판매 구역을 놓고 상투를 부여잡고 싸우는 동포들의 참담한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이에 도산은 동포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 1903년 9월 23일, 9명의 한인과 함께 ‘친목회’를 조직하고 가정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미주 본토 최초의 한인 교회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샌프란시스코 한인연합감리교회)’의 기초가 되었다.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는 지금도 도산을 창립자로 기리고 있다. 도산은 스스로 예수교인으로 살고자 노력했을 뿐 아니라, 방황하는 한인들을 신앙으로 다잡으며 교회를 중심으로 한인 사회를 만들어 나갔다.   1904년 로스앤젤레스 인근 리버사이드로 이주한 후에도 도산의 신앙적 개척은 계속되었다. 그는 오렌지 농장에서 일하는 한인들을 이끌며 캘버리 장로교회와 협력 한인장로선교회를 설립하고 한인들이 예배와 성경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오렌지 한 개를 정성껏 따는 것도 나라를 위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던 도산의 철학은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골 3:23)는 성경적 직업 소명설의 철저한 실천이었다. 도산의 지도 아래 한인들은 술과 도박을 끊고 주일마다 예배당에 모였으며, 미국인들은 “당신네 나라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왔소”라며 놀라워했다. 이를 바탕으로 파차파 캠프의 한인 공동체는 미국 사회로부터 깊은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도산의 신앙이 철저하게 ‘현실 참여적’이었다는 사실이다. 100년 전 일부 선교사들은 “세상일을 멀리하고 오직 예수만 믿어야 천당 간다”며 어려운 국가적 현실을 외면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도산은 이를 비판하며, 기독교의 복음과 사랑이 개인의 구원을 넘어 위기에 처한 민족을 구하는 실천적 힘이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가 1913년 창립한 ‘흥사단’의 입단식이나 서약례 등은 모두 기독교의 세례 문답과 의식을 본뜬 것이었으며, 조직 운영 역시 교회의 민주적 원리를 바탕으로 삼았다.   100년 전 시인 김동환은 도산을 구약성경 속 눈물의 선지자인 ‘한국의 예레미야’라고 불렀다.  도산은 조국과 동포를 위해 밤을 지새우며 회개하고 기도했던 참된 신앙인이었다. “우리 2000만 동포가 모두 손에 신약전서를 한 권씩 가지는 날에 우리 민족의 희망이 있다”고 부르짖었던 그의 외침 속에는, 성경의 윤리와 십자가의 사랑만이 분열된 민족을 치유할 수 있다는 굳건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도산의 순국 88주기를 맞이한 지금, 한인 교회들은 역사적 뿌리를 깊이 되돌아보아야 한다. 오늘날 한인들이 누리는 이민 교회의 따뜻한 교제와 울타리는 결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시작점에는 동포들의 척박한 삶을 보듬고 예배의 자리로 이끌었던 도산의 눈물 어린 헌신과 기도가 깃들어 있다. 그런데 지금의 한인 교회들은 도산 안창호 선생을 너무 멀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거짓을 버리고 참되기를 힘쓰는 ‘무실역행(務實力行)’의 정신, 그리고 파벌을 뛰어넘어 서로를 용납하려 했던 그리스도의 사랑이 한인 사회와 모든 한인 교회 위에 온전히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도산 안창호, 그는 진정 미주 한인 교회의 거룩한 씨를 뿌린 위대한 신앙의 선배였다. 조한희 /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사무총장기고 안창호 도산 샌프란시스코 한인연합감리교회 미주 한인교회 협력 한인장로선교회

2026.03.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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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시키다’의 남용

“너 거짓말시키지 마!” “왜 나한테 거짓말시켰어?”   어린아이들끼리 싸움이 났을 때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서로 상대방이 거짓말했다며 이같이 말하곤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표현에는 어폐가 있다.   ‘시키다’는 남에게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하게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거짓말을 시키다’는 ‘남에게 거짓말을 하게 만들다’는 말이 된다. 위 표현은 모두 남에게 거짓말을 시키는 것이 아닌,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 상황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너 거짓말하지 마!” “왜 나한테 거짓말했어?”와 같이 고쳐야 바른 표현이 된다.   이처럼 ‘-시키다’를 쓰지 말아야 할 곳에 불필요하게 ‘-시키다’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에 당신에게 제 친구를 소개시켜 드릴게요” “사무실 리모델링을 통해 근무 환경을 개선시켰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왔다” 등이 모두 그러한 사례다.   문장의 주체가 자기 스스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남으로 하여금 어떤 동작이나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을 사동 표현이라고 하는데, ‘-시키다’를 붙이면 사동 표현이 된다. 위 예문은 모두 사동의 의미가 없는데도 사동 표현이 남용된 사례라 할 수 있다.   남을 시킨 것이 아니라 문장의 주체가 스스로 행한 행위이므로, “다음에 당신에게 제 친구를 소개해 드릴게요” “사무실 리모델링을 통해 근무 환경을 개선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왔다” 등처럼 ‘-시키다’를 ‘-하다’ 형태로 쓰는 게 바람직하다.우리말 바루기 남용 사동 표현 사무실 리모델링 모두 사동

2026.03.10. 20:11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영혼이 털릴 때 나를 이기는 힘

‘영혼이 털린다’는 말은 극심한 스트레스나 피로, 지나친 감정 소모로 정신적,육체적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를 뜻한다. 과도한 업무나 고강도 운동,견디기 힘든 충격 등으로 멘탈이 무너지는 상황이다. 머리가 멍해지거나,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으로 시달린다.   영혼은 육체에 담겨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하는 비물질적 실체다.영혼은 문화•학문•종교에 따라 의미가 다르지만 인간의 정신적•본질적 성격을가리키는 말이다. 혼(soul)이 사람의 마음과 감정, 의지를 표명하는데 비해영(sprit)은 신과 교통하며 사람을 새롭게 하는 생명의 힘으로 간주된다.   괴테는 남편 있는 부인에게 연정을 품은 친구가 자살한 것과 약혼자 사라테부프와 못이룬 사랑을 엮어 14주 만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완성했다.   1774년 출간되자 감동의 소용돌이에 빠진 소설은 질풍노도의 시대를 이끈괴테의 대표작이자 사랑의 열병을 앓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영혼을 울렸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직장인’이었다. 변호사•행정가•경영자•극장장 등으로 일하며 글을 썼다. 바이마르 군주의 초청을 받아 군사•외교•사법 행정까지 국정 운영을 도맡았다. 격무에 시달리며 번아웃이 온 서른일곱의괴테는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이탈리아 로마로 떠난다.   독일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괴테의 ‘파우스트’는 인간의 욕망과 구원이란깊이 있는 주제를 다룬 대작이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모든 학문을 섭렵했지만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해 고뇌하는 학자다.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현세의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주겠다는조건으로 영혼을 팔기로 한다. 그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맺지만 더 큰 세계에서정치 예술 전쟁 등 다양한 경험을 한 늙은 파우스트는 영혼의 구원을 받는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전진하는 자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메세지다.     길은 잃고 방황하는 자는 영혼이 살아 숨쉬는 사람이다. 절망은 희망을 등에 업고뜀박질할 내일을 기다린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괴테의 말을인용한다.   영혼이 갈피를 못잡고, 이도 저도 안 되면 가만히 멍 때리기를 계속하라.멍 때리기는 더럽고 너덜해진 영혼에 새 살을 돋게 한다.   죽지 않으면 산다. 영혼이 털려도 육신이 살아 있는한 살기를 멈추지 않는다.목숨 줄이 끓어지지 않으면 살 것이고, 살아있는 육신은 영혼의 축복이다.   아무도 내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다. 출구를 모를 때는 서두르지 말고 그 자리에머무르면 된다. 영혼은 복귀 능력이 탁월하다. 참고 기다리면 정상으로 회귀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춤추는 별을 낳기위해선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라고 설파한다.   별이 빛나는 밤 춤을 추자. 혼돈의 시간에 매듭을 묶고 우주를 향해 팔을 벌리고생명의 기쁨을 담은 왈츠를 추자. 연인이 없으면 어떠리. 운명은 내 편이다.   나를 이기는 힘은 내게서 나온다. 인생이 끝나지 않는 혼돈이라해도, 별빛머리에 이고 달빛을 연인 삼아 춤을 추리라. 전쟁과 평화에서 애틋한 눈길 보내며사랑의 화살로 속삭이던 연인들처럼 ‘Natasha’s Waltz’에 맞춰 춤을 추리라.   잠시 영혼이 털린다해도, 흔들리는 것들은 바람을 타고 영원 속에 머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주인공 파우스트 정신적육체적 에너지 대문호 괴테

2026.03.10.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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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주한미군 방공 전력의 중동 반출, 북핵 억지 약화 우려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어제(10일) “주한미군이 군사적 필요에 따라 일부 방공 무기를 반출하는 것에 반대 의견을 내고 있지만, 전적으로 관철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한·미 군 당국은 주한미군 전력 반출 여부에 모호한 입장을 취해 왔는데, 이 대통령이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 미국 언론에는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THAAD) 포대의 일부가 중동으로 이동 중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 대통령은 이어 한국의 군사력 수준이 세계 5위, 연간 국방비 지출이 북한 국내총생산(GDP)의 1.4배라는 구체적인 수치는 물론 국군 장병의 높은 사기와 책임감까지 언급하면서 “전혀 우려할 상황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의 안보 불안은 북한의 재래식 무력보다는 핵무력 때문이다. 김여정 노동당 부장은 이날 한·미 연합연습 시작에 맞춰 위협적 발언을 하며 “압도적인 특수 수단”을 거론했는데 이는 곧 핵무기를 말한다. 현재 주한미군의 반출 1순위는 패트리엇이나 사드 같은 방공 무기들이다. 사드는 현재 국내에 대체 무기가 없다. 안 그래도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대응 수단이 부족한데 그마저도 줄어든다니, 실상은 우려스러운 상황임에 틀림이 없다. 주한미군의 무기 반출은 ‘한국은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는 2006년 합의에 따른 것이다. 당시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대만 사태 등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 이런 타협을 했는데, 이로 인해 우리의 반대 의견을 관철할 수 없게 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동맹 현대화’와 맞물려 주한미군 전력 반출은 앞으로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반출된 전력의 임무 종료 후 즉각 복귀에 힘을 쏟아 대북 전력 누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한·미 연합훈련 축소는 당장의 주한미군 전력 반출 반대 입장과도 앞뒤가 맞지 않는 조치다. 이와 함께 지난해 한·미가 합의한 원자력잠수함 건조, 핵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허용 등 우리 군의 안보 역량을 강화할 조치도 이행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것이 현시점에서 이 대통령이 말한 자주국방의 핵심 실천 과제다.

2026.03.10.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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