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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액션] 이민자 단속 대응 행동 요령

미 전역에서 이민자 단속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 단속 현장에서 이를 목격하는 이웃들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미교협)는 곳곳에서 ‘이민자 단속 대응 주변인 행동 요령’ 온라인 세미나를 열고 있다. 최근 뉴욕 뉴저지에서 결성된 ‘이민자 보호 한인 커뮤니티 네트워크(이한넷)’, 시카고 이민자보호교회와도 공동으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지금까지는 주로 단속을 당하는 이민자 자신이 알아야 할 권리를 알리는 데 힘을 쏟았다. 체포 뒤 침묵, 법원 영장 없는 이민단속국(ICE) 요원 출입 거부, 변호사 상담과 대리, 전화 통화와 가족 연락 권리 등이다. 하지만 최근 ICE 요원들이 법적 권리를 무시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이에 이민자 단속 때 주변에서 어떻게 돕는지 알리는 일에도 나섰다.   가족이나 친지가 잡혀가면 ICE 구금인 위치 찾기(locator.ice.gov/odls/#/search) 웹사이트에서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출신국(한국) 영사관에 알려 지원을 받아야 한다. 또 이민 변호사를 구하고, 구금된 사람이 실수하지 않도록 법적 권리를 알린다. 단속 현장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신분을 밝히지 않는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쓴 단속 요원들에게는 항의해야 한다. 단속 대상 이민자들에게 법적 권리를 알리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주변 사람에게 연락해 지원을 요청한다. ICE의 단속 행위를 안전하게 기록하고, 절차 위반이 있다면 문서로 만들어야 한다.   ICE는 대중교통 정류장, 법원 등 공공장소에서 이민자 단속을 벌이고 있다. 평상복을 입은 ICE 요원들도 많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차량으로 이동한다. 이전 추방 명령, 법원 출석 기한을 어긴 정보, 공공 데이터베이스(지역 경찰, 차량국 등) 등을 사용해 체포 대상을 정한다. 그리고 대다수 판사의 서명이 없는,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는 행정 영장을 들이민다. ICE 요원이 집이나 차를 수색하면 판사가 서명한 영장이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 누군가 체포, 연행되면 그의 이름, 요원과 차량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좋다. 만약 ICE 요원이 방해하면 침착하고 위협적이지 않게 “나는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체포를 목격하면 안전한 거리에서 영상을 찍고, 이름과 배지 번호 그리고 차량 번호판을 기록하고, 이민자 보호 핫라인이나 신속 대응팀에게 연락한다. 체포 뒤 어떤 서류에도 서명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침묵 권리가 있다고 알려준다. 이민자 권익단체들이 배포하는 권리 카드, 신속 대응 핫라인 번호, 이민자 법률 서비스 제공 기관 목록, 가족을 위한 비상 연락 카드 등을 가지고 다니면 좋다.   영상 촬영은 공공장소 또는 사유지인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수정헌법 제1조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따라 체포를 방해하지 않는 한 단속 과정의 공공장소 촬영은 합법이다. 이후 영상은 피해자 법률 담당에게 보낸다. 가족과 변호사의 연결을 돕고, 이민자 권익 단체와 정보를 나눈다.   목격자가 법률가를 사칭하는 등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현장 상황을 악화시켜 본인과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은 절대로 금물이다. 본인이 서류미비자라면 반드시 멀리서 바라보며 전화, 기록 등 다른 방식으로 도와야 한다.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이민자 단속 이민자 단속 시카고 이민자보호교회 이민자 보호

2025.12.18. 20:58

[삶과 믿음]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삶

원불교에서 주요한 행동 수행 덕목의 하나는 ‘무아봉공(無我奉公)’입니다.     원불교 정전에 무아봉공을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습니다. “무아봉공은 개인이나 자기 가족만을 위하려는 사상과 자유 방종하는 행동을 버리고, 오직 이타적 대승행으로써일체중생을 제도하는 데 성심성의를 다 하자는 것이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 방법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아봉공의 궁극 방향과 내용은 “오직 이타적 대승행으로써일체중생을 제도하는 데 성심성의를 다 하자는 것”이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즉 무아봉공의 핵심이자 최종 열매는 ‘일체중생을제도’하는 것입니다.       빈민 교화를 한 목사님들이 한결같이 다음을 말합니다. 가난한 지역에서 그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 등을 해결해 주는 것이 우선 급한 것 같아 이들을 경제적 물질적으로만 도와주면, 그들은 결국 교회를 원망하고 교회를 떠난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금전적으로 사람들은 도와주어도, 항상 그들의 정신을 일깨워 줘야 하는 것, 즉 진리를 가르쳐 주는 것이 동행되어야 하고 그래야 선교의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서울 모 대학에서 철학, 역사를 강의했던 한 교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대학을 퇴임하고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많은 홈리스와 경제적으로 열악한 사람들이 그 급식소에서 식사했는데, 식사한 후 많은 사람이 바로 식당을 떠나는 것을 교수님께서 보았습니다. 무료급식을 받은 많은 사람은 시간도 있고 건강도 괜찮았는데도 설거지를 돕거나 뒷정리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식사 후 바로 떠나는 것을 보고 교수님께서는 “이 같은 그들의 사고와 행동이 빈곤의 악순환을 야기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급식소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다음을 제안했습니다. “제가 이 급식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역사와 철학, 교양을 무료로 가르치겠습니다. 이 급식소에 오는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이 강의를 들어야 식사를 할 수 있게 한동안 정책을 바꾸어 주십시오.”   많은 직원이 회의적이었지만 한번 해 보기로 했습니다. 점심 무료 급식이 시작하기 한 시간 전에 강의가 시작되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강의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강의를 듣고 식사한많은 사람은설거지 등 여러 가지 도움을 주기 시작했고, 그 후 많은 이들이 자력을 얻어서 더는 무료급식을 받지 않고 오히려 그 급식소에서 봉사자로서 활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타인을 돕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아봉공의 핵심이자 참으로 남을 돕는 방법은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고기를 몇 마리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 즉 정신을 각성시키는 것입니다.     금강경에서도 부처님께서 수 없는 칠보를 보시하는 것보다 진리를 가르쳐 주는 공덕이 훨씬 크다는 것을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금강경』 24. “수보리야 만일 삼천 대천 세계 가운데에 있는 모든 수미산 왕과 같은 칠보 무더기를 어떤 사람이 가져다 보시하더라도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경이나 내지 사구게 등을 수지 독송하며 남을 위해 말해 주면 앞의 복덕으로는 백 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만억분과 내지 숫자의 비유로도 능히 미치지 못하느니라.”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 말씀입니다. “살·도·음 같은 중계(重戒)를 범하는 것도 악이지마는, 사람의 바른 신심을 끊어서 영겁 다생에 그 앞길을 막는 것은 더 큰 악이며, 금전이나 의식을 많이 혜시하는 것도 선이지마는, 사람에게 바른 신심을 일으켜서 영겁 다생에 그 앞길을 열어 주는 것은 더 큰 선이 되니라.”   대종사님께서는 무아봉공의 핵심이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며, ‘성심성의’를 다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시간상으로 금전적으로 너무 무리해서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성심성의를 다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무아봉공 원불교 창시자 영겁 다생 원불교 정전

2025.12.18. 20:56

[기고] 북극을 덮친 태풍의 경고

지난 2022년 9월 11일, 태풍 13호 ‘므르복(Merbok)’이 서부 알래스카의 ‘놈(Nome)’을 강타했다. 당시 한국에서 파견된 극지연구소 연구진은 물론 지역 주민들에게까지 막대한 피해를 안긴 이 재난 상황을 필자는 같은 해 10월 말 기고한 바 있다.     피해 주민들은 생활용수 부족과 도로 유실 등으로 수년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알래스카 주정부와 미군, 민간 구호단체의 지원으로 비교적 빠른 복구가 이뤄졌고, 놈을 중심으로 도로망이 복구되면서 인근 소규모 빌리지(인구 100~500명 내외 원주민 정착촌)들의 회복 속도 또한 빨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3년 뒤인 지난 10월 또 한 번의 거대한 재난이 서부 알래스카를 덮쳤다. 10월5일 북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 ‘할롱(Halong)’은 일본 남부 해안을 따라 북동쪽으로 이동하며 일본 서쪽 해상에서 저기압으로 약화돼 큰 피해 없이 소멸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북태평양 해수면 온도 상승의 영향으로 거대한 폭풍으로 변해 10월 11~12일 이틀간 서부 알래스카 여러 빌리지를 강타했다.   피해 지역은 광활한 ‘쿠스코퀌 델타(Kuskokwim Delta·약 13만㎢)’ 일대로, 폭풍 해일과 대규모 홍수, 시속 45km에 이르는 허리케인급 강풍이 겹치며 참혹한 상흔을 남겼다. 특히 ‘킵눅(Kipnuk·인구 488명)’, ‘크위길링옥(Kwigillingok·461명)’, ‘나파키악(Napakiak·345명)’ 등 세 곳의 피해가 가장 컸다. 킵눅에서는 주택과 공공시설 등 구조물의 90%가 파괴되거나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크위길링옥에서는 전체 주택의 3분의 1 이상이 붕괴됐다. 사망자도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1500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들 지역은 도로가 없어 이동수단이 비행기와 선박에 의존하는 곳이다. 태풍 이후 주민들은 군용기를 이용해 앵커리지와 ‘베델(Bethel)’ 등지로 긴급 대피했다. 알래스카 주지사는 연방정부에 재난지역 선포를 요청했고, 피해 규모가 워낙 커 대부분의 이재민이 최소 18개월 이상 고향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공식 발표도 나왔다. 현재도 공청회를 통해 피해 최소화 대책과 이재민 이주 계획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한편 알래스카 대학을 비롯한 기후과학자들은 이번 태풍의 발생 원인과 이동 경로, 과거 태풍보다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진 이유, 동베링해에 미친 영향, 향후 태풍 발생 빈도 등을 분석하는 긴급 회의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수 온도 상승이 태풍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으며, 기후변화와 온난화가 극지방까지 태풍의 위력을 키우고 있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원주민 공동체는 본래 생존력과 회복력이 강하지만, 이번처럼 생활 기반이 거의 전면적으로 파괴된 상황에서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생존과 복구가 불가능하다. 현재 대대적인 공중 수송 작전이 진행 중이지만, 수송기가 착륙할 공간조차 확보되지 않은 지역이 많아 헬기를 통한 소수 인원 이동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알래스카 주정부는 2022년 므르복 피해 당시와 유사한 대규모 장기 지원 계획을 다시 준비 중이다. 현재 베델의 구호소는 이미 포화 상태이며, 대부분의 이재민은 앵커리지로 이송되고 있다.   이번 재난은 기후변화 시대에 어떤 대응과 대비가 필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경고다. 북극권 공동체가 앞으로 직면하게 될 새로운 위기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해졌다. 알래스카 원주민들, 특히 에스키모인은 조상 대대로 수렵과 어로를 위해 연안에 삶의 터전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온난화는 이들의 삶의 기반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연안 침식(coastal erosion)이다. 태풍과 강풍으로 연안 지반이 무너지며 주민들은 내륙으로 이주를 강요받고 있다. 침식으로 노출된 동토층은 온난화를 더욱 가속시키는 악순환을 낳고 있으며, 알래스카와 러시아 전역에서 이런 사례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더 나아가 연안에 위치한 조상의 봉분까지 유실·노출되며 공동체는 깊은 상실감과 정신적 고통까지 겪고 있다.   온난화로 인해 북태평양 수온이 계속 상승할 경우, 아시아에서 발생한 태풍이 알래스카까지 장거리 이동하는 빈도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 규모와 위력 역시 지금보다 훨씬 강력해져, 평지가 많은 서부 알래스카 지역은 현재보다 더 큰 재난에 노출될 수 있다.   이제 인간이 자연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무거운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이번 알래스카 재난은 기후변화가 더 이상 이론이나 예측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생존을 위협하는 현실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태풍 북극 서부 알래스카 알래스카 주정부 알래스카 주지사

2025.12.18.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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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이웃이 준 크리스마스 선인장

두 해 전, 12월에 이웃이 50 년간 살아온 집을 팔고, 식사를 제공해주는 리빙 어시스턴트로 옮겼다.     밥을 못하게 된 아내 때문이지만, 사실은 딘 아저씨도 세상 떠날 준비를 한 것이다. 몇 해 전 자기가 묻힐 국립묘지를 우리 가족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피부암을 극복한 강인한 성품인 미 육군장교 출신인 딘 아저씨는 대형 병원의 약사로 은퇴했다. 우편으로 날아오는 카드 속 단정한 글씨체처럼, 부지런하고 집 안팎을 정리정돈 잘하던 가장이기도 했다.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표정이 없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긴 세월 이웃으로 살아오며 자주 대화했기에 나의 이웃 중에 최고의 한 분이다, 아내는 토요일이면 여성 축구팀에서 활동했고 좀 냉정한 성격이지만, 내가 오픈 하우스로 저녁을 대접한 후, 자기 집에서 라쟈냐로 우리를 대접해준 다정함도 보여주었던 아주머니다.   모든 게 생소했던 이민 초기, 나는 동네를 자주 걸으면서 부지런한 가장들이 차고 앞에서 일을 할 때면 들여다보며 서 있곤 했다. 나의 서툰 영어로 묻고 배우며 안내도 받아서 지붕 등 집 수리도 했다. 삼십 년 전인가 개스 버너에 어떻게 불을 지필지도 모를 때, 새 텔레비전을 사서 연결이 잘 안 될 때도 내가 부탁하면 형제처럼 달려와 주던 이웃, 딘 아저씨.     한번은 탱크리스 물통 청소 기구를 아저씨는 호스를 만들고 나는 펌프를 사서 함께 사용했다. 잘 되지 않아 그가 와서 도와주고 있는데, 아내가 쫓아 와 투덜대며 떠난 적이 있었다. 몇 시간 후에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우리 집 대문 앞에서 딘의 아내가 서 있다.     그녀가 훌쩍거리며 조금 전 일을 나한테 사과하는 것이었다. 조용한 남편이 어떻게 호통을 쳤기에, 놀라운 사건이었다. 늘 서툰 영어로 고생하던 우리를 딘 아저씨는 “나도 한국말 하나도 모른다”며 도와주려 애쓰곤 했다. 딸이 방학에 찾아 와 인사를 가면 반가워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손재주도 없고 집 일에 관심이 없었던 내가 집 정원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다른 이웃이 남편에게 시키라며 조언하던 이민 초기였다. 남편이 은퇴하고 많은 집안일이 놀라 지금은 도우려고 애를 쓰지만, 답답한 영어는 여전히 우리 부부의 골칫거리다.     딘 아저씨가 이사 짐을 정리하며 나를 불러 식탁과 정이든 물건을 가져가 달라고 청했다. 집에 공간이 없어 나는 망설였는데 딸아이가 책상으로 사용하겠다며 몽땅 들고 왔다.     무엇보다도 나는 아저씨가 손수 안고 온 커다란 ‘크리스마스 선인장’ 화분에 감동했다. “미자, 이것은 네 것이야.” 오래전 여러 지인에게 내가 선물했던 작은 화분들 중에 하나였다. 그가 십 년 넘게 정성들여 탐나게 길러온 화분이다, 뜻밖에 되돌려 받은 선물이었다. 지금 그 화분은 딘 아저씨의 조용한 미소처럼 화사하다. 12월이면 그리움은 뭉클하고 진해진다.  최미자 / 수필가이아침에 크리스마스 선인장 크리스마스 선인장 세월 이웃 이민 초기

2025.12.1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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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올해, 시대를 떠난 이름들

해마다 연말이면 신문에 단골로 실리는 것이 ‘올해 세상을 떠난 유명 인사’라는 기사다. 우리와 친숙했고, 우리 삶에 영향을 주었던 그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아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올해도 많은 유명 인사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국제적인 인물로는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동물행동학자이며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 박사, 이태리 패션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 2001~2009년 부시 행정부 당시 부통령을 지내며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 중 하나로 손꼽히는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 등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사상 최초의 남아메리카 출신 교황이면서,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으로, 세상을 향해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던졌다. 그의 모든 활동과 지향의 뿌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다. 2014년 한국 방문 때는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족을 만났고, 음성 꽃동네를 찾아가 장애인들도 만났다.   LA 월트디즈니 콘서트홀과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프랑스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등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도 올해 별세했다. 현대 건축 역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 게리는 “건축은 인간 삶의 혼란과 감정, 민주적 정신을 담아야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연예인으로는 지난 11월25일 세상을 떠난 국민배우 이순재를 비롯해,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며 한국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미녀배우 김지미, 원로배우 윤일봉, 코믹 감초연기로 유명한 배우 남포동, ‘노란 셔츠의 사나이’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한명숙, ‘쨍하고 해뜰 날’의 가수 송대관, 개그계의 맏형 전유성, ‘우정의 무대’ 사회자로 군인들의 큰 형님으로 알려진 방송인 뽀빠이 이상용, 연극무대와 방송에서 활동한 배우 이주실, 배우 김새론, ‘명랑운동회’ 사회자로 이름난 아나운서이며 국회의원을 지낸 변웅전 등이 올해 별세했다.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난 이순재는 69년 연기 인생을 후회 없이 살다간 ‘평생 현역’ 배우로, 노력과 성실함을 강조하는 철학, 확고한 직업의식을 통해 후배들에게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 정부는 고인에게 문화 예술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미국의 인기인으로는 할리우드의 대표적 미남배우 중의 한 명인 로버트 레드포드, ‘프렌치 커넥션’, ‘포세이돈 어드벤쳐’ 등의 영화에서 개성적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진 해크먼, 영화 ‘대부’의 여주인공으로 유명했고 우디 앨런 감독의 ‘애니 홀’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다이앤 키튼, ‘킬링 미 소프틀리’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로버타 플랙 등이 올해 타계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폴 뉴먼과 출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 등의 할리우드 스타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로, ‘선댄스 영화제’를 만드는 등 영화계 발전을 위해 다각도로 힘썼던 ‘할리우드의 위대한 별’이었다.   한편, 한국 문화예술계의 인사로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 등 여러 권의 시집을 통해 섬과 바다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섬 시인’ 이생진, ‘엉겅퀴꽃’, ‘철원 평야’ 등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노래한 민영 시인, 소설가이며 시인, 화가로 활동한 윤후명 작가, 재일동포 소설가로 1972년 외국인 최초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이회성 등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   한국의 얼과 정신을 담은 사진으로 인간의 근원을 탐구한, 특히 예술가 초상사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육명심, 한국화가 홍석창 등도 올해 타계했다.   또한, 제3세계 최고 권위의 로터스 상, 노니노 국제문학상, 박경리 문학상 등을 수상한 케냐의 탈식민주의 문학의 기수 응구기 와 시옹오, 소설 ‘천상의 푸른 빛’ 수필집 ‘노인이 되지 않는 법’ 등의 저자인 일본작가 소노 아야코 등이 올해 별세했다.   미주 문인으로는 시인 겸 소설가 곽상희 작가, 김신웅 시인, 조만연 수필가, 김태영 동화작가, 손명세 시인, 영어 교재 저술가이며 소설가로도 활동한 조화유 작가 등의 원로 문인들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 원로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울 젊은 문인들의 등장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울러 고인들의 예술작업에 대한 한인사회의 따스한 관심도 절실하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이름 국민배우 이순재 미녀배우 김지미 프란치스코 교황

2025.12.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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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생각지’인가 ‘생각치’인가?

글을 쓰면서 늘 헷갈리는 것이 ‘생각지/생각치’와 같은 경우다. 어느 쪽이 맞는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발음으로 구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읊어봐도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것은 ‘-하지’가 줄어들 때 ‘-지’가 되느냐 ‘-치’가 되느냐의 문제다. ‘-하지’ 앞이 유성음이냐, 무성음이냐를 따지면 된다. 목청이 떨려 울리는 소리가 유성음이고, 성대를 진동시키지 않고 내는 소리가 무성음이다.   ‘-하지’ 앞이 유성음(모음이나 ㄴ, ㄹ, ㅁ, ㅇ)일 때는 ‘ㅏ’만 떨어져 ‘ㅎ+지=치’가 된다. ‘흔치, 간단치, 만만치, 적절치, 가당치, 온당치’ 등이 이런 예다.   ‘-하지’ 앞이 무성음(ㄱ, ㅂ, ㅅ)일 때는 ‘-하지’가 줄어들 때 ‘하’ 전체가 떨어지고 ‘지’만 남는다. ‘넉넉지, 익숙지, 거북지, 답답지, 섭섭지, 떳떳지, 깨끗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현상은 ‘-하다’ ‘-하게’ ‘-하도록’ ‘-하건대’가 줄어들 때도 마찬가지다. ‘다정하다→다정타’ ‘간편하게→간편케’ ‘이바지하도록→이바지토록’, ‘생각하건대→생각건대’ 등으로 적어야 한다.   유성음 뒤에서는 자연스럽게 거센소리가 나므로 크게 헷갈리지 않는다. 무성음인 ‘ㄱ, ㅂ, ㅅ’ 뒤에선 거센소리가 아닌 ‘지’ ‘게’ ‘다’ ‘기’ 등으로 적는다고 생각하면 쉽다. 그러나 일반인으로서는 무성음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따라서 무성음엔 ‘ㄱ, ㅂ, 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면 좋다. 우리말 바루기 생각

2025.12.18. 20:23

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평균의 함정과 투자손실

수학에 이런 농담이 있다. "키 1미터 80센티인 사람이 평균 수심 1미터인 강을 건너다가 빠져 죽었다". 평균이 1미터인 것이지, 이 강의 어떤 곳은 30센티 정도로 얕았지만, 강 중간의 어떤 곳은 수심이 3미터가 넘었기 때문이다. '평균'이 얼마나 현실을 왜곡할 수 있는지, 평균을 맹신하는 것이 왜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평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산술평균'과 '기하평균'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시험 점수 평균은 과목별 점수들을 전부 다 더해서 과목수로 나누는 산술평균이다. 하지만 주식의 수익률과 손실율은 냉정한 '기하평균'이다. 기하평균은 산술평균 금액보다 작거나 같다. 다시 말해서 기하평균은 절대로 산술평균보다 클 수는 없다. 이 차이를 모르는 순간, 아무리 열심히 투자해도 우리의 계좌는 조용히 줄어든다.   예를 들어보자. 1만 불을 가지고 투자를 시작했다. 첫날은 운이 좋게 10%를 벌었고, 다음 날은 안타깝게 10%를 잃었다. 산술평균으로 계산하면 수익률은 0%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본전은 했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손해다. 1만 불이 10% 올라 1만 1천 불이 되었다가, 거기서 10%인 1천 1백 불이 빠지면 최종 금액은 9,900불이 된다. 순서를 바꿔서 만불에서 먼저 10%를 잃어서, 9,000불이 된 후에 10%인 900불을 벌어도 결과는 똑같이 처음보다는 100불이 손해다. 이것이 기하평균의 무서움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하루는 40%만큼 수익이 났다. 하지만 다음 날은 -30%로 손실이 발생했다. 산술적으로는 10% 이익 같지만 사실은 손해다. 만불의 40%를 벌면 14,000불이 된다. 하지만 14,000불에서 30%를 잃으면 9천 8백불이 된다. 처음 만불보다 200불이 손해다. 이렇게 큰 변동성을 반복하면 가진 돈은 계속해서 줄어든다. 변동성이 클수록 리스크는 커지고 기하평균은 더 줄어드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분산투자를 추천하는 것이다. 가진 돈을 한 곳에 집중투자 하면 수익률이 손실율보다 크다고 해도 결국은 변동성 때문에 큰 돈을 한꺼번에 모두 잃을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어떤 연구에 따르면 40%의 투자자는 오로지 한 종목에 투자하고 있고, 70%의 투자자는 세 종목 이하에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분산투자는 단순히 종목을 분산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산을 현금이나 부동산등 다양하게 보유해서 변동성과 위험을 줄이라는 이야기다.     위의 예에서 가진 돈의 절반만 투자해보자. 처음 1만 불 중, 5천 불만 투자해 40% 이익을 보면 7천 불이 된다. 여기에 투자하지 않은 5천 불을 더하면 총자산은 1만 2천 불이 된다. 이제 다시 총자산의 절반인 6천 불을 투자해 30% 손실을 보면 6천 불은 4,200불이 된다. 여기에 투자하지 않았던 6천 불을 더하면 최종 자산은 10,200불이 된다. 원금이 200불 늘었다.    분산투자는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 아니다. 전재산을 잃을 위험을 줄이고 시장에서 물이 전부 빠졌을 때를 대비해 속옷을 미리 입는 전략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투자손실 손헌수 산술평균 금액 변동성 때문 과목별 점수들

2025.12.1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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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전체제 흔드는 정부·여당 움직임, 한·미 공조 문제 없나

━ 유엔사, 여권의 DMZ 법안 추진에 이례적 반발 ━ 남북대화 조급증 대신 한·미 공조 원칙 다질 때 여당과 통일부가 비군사적인 목적의 비무장지대(DMZ) 출입을 한국 정부가 승인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하자 유엔군사령부가 이례적으로 공식 성명까지 내며 반발하는 일이 벌어졌다. 유엔사는 최근 성명을 통해 “DMZ 구역에 대한 출입 통제는 정전협정에 따른 유엔사의 고유 권한”이라고 밝혔다. 정전협정 1조 10항을 근거로, DMZ 내 민사 행정과 구호 활동도 유엔군 사령관의 권한에 속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여당 일각에서는 정전협정이 군사적 성격의 협정인 만큼 유엔사가 비군사적 민간 출입까지 통제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DMZ 출입을 영토주권 문제로까지 연결하면서 여당 법안을 지지하자 유엔사가 성명 발표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낸 것이다. 그만큼 이 사안을 중대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남측 DMZ 출입은 유엔사가 일관되게 통제해 왔고, 이는 정전체제 유지의 핵심 축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유엔사가 대북 제재 저촉을 이유로 DMZ 출입을 허용하지 않아 대북 인도적 지원이 불발된 사례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문 정부는 ‘유엔사 흔들기’에 나섰고, 북한 어민 강제 북송 당시엔 유엔사를 패싱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다시금 유엔사를 중심으로 한 정전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듯한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최근 통일부가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협의를 ‘제2의 한·미 워킹그룹’이라며 보이콧한 것이나, 국방부가 군사분계선(MDL)을 침범하는 북한군에 대해 경고사격을 해야 할 경우 “상황 평가를 면밀히 하라”며 사실상의 ‘자제’ 지시를 한 것도 이런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정부의 DMZ 출입 승인권 법안은 ‘조약(정전협정)과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는 헌법 6조에 위배될 소지도 다분하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번 일이 한·미 공조를 통한 대북 정책 추진이라는 원칙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유엔사는 한반도 유사시 18개 회원국의 즉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소중한 안보 채널이다. 한·미 국방부 장관은 지난 11월 한·미 안보협의회(SCM)에서 유엔사의 역할을 재확인하는 한편, 정전협정 유지와 집행을 위해 긴밀한 소통과 협조를 하기로 했다. 당정의 일방적인 유엔사 역할 변경 추진은 SCM 합의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최근 여권 일각에서는 한국이 한반도의 ‘페이스 메이커’가 아니라 ‘피스 메이커’로 아예 나서야 한다는 주장까지 대두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대북 독자 제재 발표 이후 이런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북한은 현재 한국과의 대화를 전면 거부하고 있다. 당정은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조급증을 내려놓고, 한·미 공조 원칙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 한다.

2025.12.18.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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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민 화만 돋운 쿠팡 청문회…엄중히 책임 물어야

━ 외국인 대표 “한국어 모른다” 청문회 희화화 ━ 시장 지배가 부른 오만…경쟁 묶는 법 고쳐야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둘러싼 정부 대응이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는 어제(1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개인정보보호위원회·경찰 등이 참여하는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조사와 수사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이용자 보호 대책과 쿠팡의 책임 강화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는 영업정지까지 거론됐다. 제재 논의와 함께 유통산업 전반에서 쿠팡 독점체제를 완화할 방안도 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문제의 본질은 쿠팡의 태도다. 쿠팡은 3400만 명에 달하는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대규모로 유출된 초유의 사태 앞에서도 끝내 무성의로 일관했다. 김범석 쿠팡 의장은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라 일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국회 출석을 거부했다. 그를 대신해 취임 직후 청문회에 출석한 해럴드 로저스 대표는 언어 장벽 탓에 원활한 질의응답조차 하지 못했고, “아는 한국어는 장모님 정도”라는 발언으로 청문회를 희화화했다. 국민의 화만 돋운 청문회였다. 미국이라면 이런 방식이 통했을 리 없다. 기업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면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의회에 출석해 해명하는 것이 상식이다. 페이스북 개인정보 유출 사태 당시 마크 저커버그가 그랬고,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역시 청문회를 회피하지 않았다. 2010년 토요타 리콜 사태 때도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직접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더구나 로저스 대표가 “이러한 유형의 정보 유출은 미국 법령 위반이 아니다”고 말한 것은 사안의 중대성을 외면한 인식이다. 이런 태도가 지속되는 한 정부는 정보통신망법과 개인정보보호법 등 모든 법 체계를 동원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쿠팡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020년 10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20대 청년 근로자가 심근경색으로 숨진 사건을 둘러싸고 사측이 고강도 노동 실태를 은폐·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은 법적 공방으로 번졌다. 특히 최근 드러난 메신저 대화록은 당시 김 의장의 기만적 대응 정황을 뒷받침하며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쿠팡의 오만한 태도는 유통산업에서 차지하고 있는 독점적 지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부는 휴일 영업 제한 등 각종 규제로 국내 토종 유통업체의 경쟁력을 약화했고, 그 결과 미국 기업인 쿠팡의 시장 지배력만 키워주는 역설을 초래했다. 유통산업발전법을 손질하는 등 쿠팡의 독점 폐해를 완화할 제도적 해법을 모색할 때다. 쿠팡에 의존하지 않고도 국민이 쇼핑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장 환경이 조성돼야 독점 기업의 횡포도 견제할 수 있다. 국민 신뢰를 잃은 기업은 설 자리가 없다는 점을 제도로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2025.12.18.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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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저커버그 청문회와 쿠팡 청문회

2018년 4월 10일. 미국 워싱턴 DC 연방 의회 청문회장. 증인석에 앉은 이는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기업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8700만 명의 페이스북 고객 정보가 정치적 목적으로 유용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 사건을 규명하기 위해 열린 청문회였다. 의원들은 정중했지만 예리하게 저커버그를 추궁했다. 리처드 더빈 민주당 상원의원은 “어젯밤 묵은 호텔 이름을 알려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저커버그가 잠시 머뭇거린 뒤 “아니오”라고 하자 “그게 바로 프라이버시”라는 일침을 놨다. 이후에도 “페이스북은 정보 통제 능력이 있는가” “사태의 최종 책임자는 누구인가” 등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저커버그는 또박또박 답변했지만 변명은 늘어놓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는 충분히 예방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은 회사를 설립한 저에게 책임이 있습니다”고 사과했고, 여러 차례 “죄송하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로부터 7년 뒤인 지난 17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쿠팡 청문회. 마찬가지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다루는 자리였다. 하지만 풍경은 사뭇 달랐다. 증인석은 실질적 지배주주인 김범석 의장 대신 미국인 경영진이 채웠다. 할 줄 아는 한국어가 ‘아내’와 ‘안녕하세요’ 정도라는 이들의 말에 청문회장 안팎에선 영어 듣기평가 같다는 냉소가 나왔다. 국민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거나 구체적인 사과를 내놓는 장면은 없었다. 두 청문회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미국에서 개인정보 유출은 단순 사고를 넘어 민주주의와 시민 권리를 침해하는 중대 사안으로 다뤄진다. 그래서 책임의 정점에 있는 오너가 직접 증인석에 앉는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여전히 기술적 사고로 치부되고, 실질적 지배자는 월급 사장 뒤에 숨는다. 책임 경영은 안 보인다. 페이스북은 청문회 뒤 막대한 대가를 치렀다. 연방거래위원회(FTC)로부터 징벌적 책임을 이유로 50억 달러(약 7조3900억원)라는 천문학적 벌금을 부과받았다. 무엇보다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업은 막중한 책임을 진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남겼다. 쿠팡 청문회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사고 원인과 책임 규명에 실패한 채 맹탕으로 흐른 청문회는, 미국에 상장한 외국계 회사라는 외피 뒤에 숨어 시간은 결국 기업 편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쿠팡 청문회를 다시 연다고 한다. 하지만 7년 전 저커버그가 했던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이 당연한 한마디 말을 들을 수는 있을까. 김형구([email protected])

2025.12.18.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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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의 시시각각] 백해룡 분란, 이 대통령이 정리해야

세관 마약 반입 의혹 수사를 담당하는 서울동부지검 검경 합동수사단에서 벌어지는 일은 국가 수사 시스템의 규율 붕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주 중간수사 결과가 나왔는데도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이 지휘하는 합수단과 ‘의혹 폭로자’인 백해룡 경정의 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일 합수단은 “마약 반입 도움과 수사 외압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며 세관·경찰 공무원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합수단 내 별도 수사팀을 이끄는 백 경정은 “검찰이 사건을 덮었다”며 서울중앙지검과 세관 등을 상대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다. 한쪽에선 무혐의, 다른 쪽에선 수사를 새로 하겠다고 하니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동부지검은 지난 17일 “막연한 추측 외에는 객관적 자료가 없다”며 백 경정이 신청한 영장을 반려했다. 백 경정은 이번엔 영장 신청서와 검찰의 반려 처분서까지 공개하며 수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임은정 지시 무시, 수사 자료 공개 검찰 “위법”…경찰은 조치 없어 항소 포기 반발 검사 강등과 대조 지난 10월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로 백 경정이 수사팀에 합류할 때부터 계속 잡음이 이어지는데 아무도 이를 제어하지 못했다. 서울동부지검은 백 경정이 수사 서류 등을 공개하자 다시 자료를 내고 “서류에는 확인되지 않은 피의 사실과 공무상 비밀, 민감한 개인정보 등이 포함돼 있다”며 “이는 중대한 위법행위로 엄중 조치를 관련 기관에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사는 기본적으로 강제성이 있는 만큼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만큼 절제해서 행사해야 한다. 새로운 단서도 없이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임 지검장은 백 경정이 수사팀에 합류할 때 폭로자가 외압 의혹을 직접 수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니 마약 유통 부분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백 경정은 마약 밀수범이나 유통책에 대한 수사를 통해 단서를 모아가기보다 외압 의혹에 집중했다. 그는 이번 의혹의 배후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개인 심증이나 추측을 드러낸 상태에서 국가의 강제력을 동원해 입증하겠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위험하다’는 말은 임 지검장이 백 경정을 비판하며 페이스북에 쓴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합수단의 수사 결과에 반발하면서 각종 수사 자료를 공개하는 행동은 단순한 공보규칙 위반을 넘어 위법 소지가 있다. 법무부는 대장동 항소 포기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는 이유로 검사장급인 정유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고검 검사로 사실상 강등했고, 다른 간부들도 한직으로 보냈다. 그런데 위법 소지가 있는 행동을 한 백 경정은 건재하다. 경찰 쪽에선 가시적인 조치가 없으니 너무나 대조된다. 백 경정을 이대로 둘 것인가. 나아가 합수단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합수단은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건희 일가의 마약 밀수 의혹과 검찰의 사건 무마 은폐 의혹 수사는 계속하겠다고 했다. 김건희 일가의 마약 밀수 의혹이 성립하려면 대통령실을 통해 검찰·경찰·세관에 압력을 넣어 밀수꾼을 봐줘야 한다. 그런데 합수단의 수사 결과로 이 가능성은 상당히 줄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대대적인 수사를 한 만큼 관련된 단서가 나올 법도 한데, 그런 소식도 없다. 검찰의 사건 무마 의혹 부분은 서울동부지검이 백 경정이 신청한 서울중앙지검 압수수색영장 등을 반려하면서 “수긍하기 어려운 추측 외에는 근거 자료가 없다”고 명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백 경정의 자료 공개로 자연스럽게 드러난 내용이다. 그렇다면 합수단이 계속 수사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업무보고에서 마약 검색 인력 부족을 언급한 이명구 관세청장에게 “얘기한 지 몇 달이 됐는데 왜 인력 보강이 안 됐나”라고 질타했다. 그런데 서울동부지검엔 25명 정도로 알려진 마약 수사 인력이 상당 부분 무혐의로 결론난 사건에 매달려 있다. 이젠 백 경정을 그 자리로 보낸 이 대통령이 결자해지할 때다. 김원배([email protected])

2025.12.18.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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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경기회복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해방의 날’을 선언했을 때 많은 경제학자와 투자자들은 금년도 세계 경제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측했었다. 그러나 그런 비관적 예상과는 달리 세계 경제와 미국경제는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왔다. 금년도 세계경제성장률은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3.2%로 예측되고, 미국의 성장률도 지난해보다는 떨어졌지만 당초 예상보다는 상당히 높은 약 2%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주된 이유는 금년 상반기에 관세 인상에 대비해 기업들이 선 수출입과 생산을 늘렸고, 주요국들과의 관세율 협상이 당초 예상보다는 낮은 수준으로 타결되었으며, 무엇보다 AI 관련 막대한 투자, 주식시장의 큰 폭 상승과 견조한 소비에 기인하고 있다. 올해 세계경제는 예상보다 선전 내년 국내외 전망도 나쁘지 않아 그러나 이는 경기순환적 개선일 뿐 한국 경제의 조로 현상 고쳐나가야 한국 경제도 비상계엄 사태 이후의 정국 혼란으로 인한 소비위축, 미국의 관세정책, 통상 환경의 변화가 초래한 불확실성, 건설경기 부진 등으로 상반기에는 크게 침체하였으나 새 정부 출범, 소비쿠폰 발행,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 반도체 슈퍼사이클 본격화, 소비심리 회복 등으로 인해 하반기에는 회복 조짐을 보여 당초 0%대 예측보다 높은 1%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지난 3분기에는 전 분기 대비 1.3% 성장해 2021년 4분기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내년도 국내외 전망도 그리 나쁘지 않다. 국제통상 환경 변화가 교역 신장률을 위축시키고, AI 거품론 등 불확실성이 높지만, 관세율 관련 불확실성이 다소 완화되고 각국의 확장적 재정정책과 완화적 통화정책이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어 세계 경제는 금년보다는 다소 낮지만 3% 내외 성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경제도 미 연준은 2.3% 성장률을 전망하고 있다. 관세 수입을 감안하더라도 감세로 인한 내년도 미국의 재정적자는 GDP의 약 6%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그동안 AI 디지털 혁신 주도로 세계의 자본을 끌어들이며 연일 신고가를 갱신해왔던 증시 활황에 의한 자산 효과는 소비 증가세를 지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비관론자로 널리 알려진 누리엘 루비니 교수도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를 내년도 미국 경제의 기본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그러나 관세 인상이 점차 물가 압력으로 전이되어 미 연준의 금리 인하가 지연되고, 미 국채 발행이 순조롭지 않거나 AI 버블론이 힘을 받게 될 불확실성도 높은 편이다. 우리 경제의 전망은 더욱 낙관적이다. 금년 하반기 들어 일어나고 있는 회복세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확장되고, 건설 경기가 오랜 침체에서 바닥을 치고 나아지며 소비 회복세가 성장률을 견인해 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금년 들어 집값이 크게 올랐고, 주요국 중 최고 상승률을 보인 국내 증시에서 비롯되는 자산 효과와 재정확장 기조는 내년도 소비 회복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기관에 따라서는 내년 성장률을 2% 이상으로 보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경기순환적 측면에서 본 개선이다. 금년도 우리 경제는 OECD 국가 중에서도 최하위권의 성장률을 보였으며, 내년도에 잠재성장률 정도로 성장한다고 해도 이는 세계 평균보다 현저히 낮은 성장률로 향후 한국경제의 위치는 점점 내려갈 것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향 추세가 지속된 지는 이미 오래다.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어느 경제나 당면하게 되는 현상이지만 우리 경제의 하강 속도는 과거 어떤 선진국의 경우에 비해서도 너무 가파르다. 국민소득 3만 달러대에서 조로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재정·통화정책에 기댄 경기 대책은 있었지만, 그보다 우리 경제에 훨씬 필요한 구조혁신 정책은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60여년 우리 경제를 선진국 수준까지 끌어준 가장 큰 요인은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를 모두 얻었기 때문이었다. 제2차 대전 후 부상한 자유무역질서란 국제환경(天時)이 자원이라고는 사람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제조업과 수출로 일어설 기회를 열어주었고, 한미동맹에 의한 막대한 경제·안보적 지원, 선진 이웃 일본으로부터의 기술이전과 자본 도입, 후진 이웃 중국과의 생산공급망 형성을 통한 지리(地利), 조선 시대까지 이어져 온 신분계급 질서의 빠르고 완전한 붕괴로 국민 모두에게 열리게 된 동등한 경쟁기회가 준 역동성과 인적 자본의 급성장, 시대가 요구한 적절한 정책 방향 도입과 강력한 행정적 추진이란 인화(人和)가 따라주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천시와 지리는 우리에게 이미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고, 인화는 흔들리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인화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 그 길은 좁아진 계층 간, 기업 간 사다리를 넓혀 역동성을 높이고, 돈과 인재의 흐름을 개선하며, 정부의 기능과 관료의 역량을 바로 잡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 경제·사회를 지배하는 제도와 보상유인체계를 혁신하는 것이다. 지금은 경기 회복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그래야 한국 경제가 제대로 살아날 수 있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 교수

2025.12.18.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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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천의 퍼스펙티브] 다주택자 규제 완화하고 ‘부자도 혜택’ 기초연금 개편을

자산 불평등과 빈곤율을 줄이는 방법 최근 국가데이터처는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발표했다.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처분 가능한 소득의 불평등(이하 ‘소득 불평등’)이 확대됐다. 처분 가능한 소득이란 본인이 벌어들인 시장소득에서, 세금을 내고 복지혜택을 받은 이후의 소득이다. 가처분 소득 불평등 지수는 2011년 이후 최근까지 추세적으로 하락했다. 지니계수 기준으로 2024년은 0.323였는데 2025년은 0.325가 됐다. 0.002포인트 증가했다. 지니계수가 1에 가까워질수록 불평등이 심해진다. 지난해의 소득 불평등 확대는 수출 증가로 인한 ‘좋은 불평등’ 순자산 불평등 심화는 소득·연령·수도권-지방 간 격차 커진 탓 청년 주택담보대출 지원하고 ‘똘똘한 한 채 촉진법’은 폐지를 부자 노인도 받는 기초연금이 빈곤율 끌어올리는 부작용 커져 둘째, 순자산 불평등이 확대됐다. 2012년 자산 불평등 조사 이후 가장 크게 확대됐다. 셋째, 상대적 빈곤율(이하 ‘빈곤율’)이 상승했다. 빈곤율은 2008년 이후 약 15년 동안 꾸준히 하락했다. 그런데, 2022년부터 상승하기 시작했다. 2022~2024년에 걸쳐 3년 연속으로 상승했는데, 2008년 이후 처음 나타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수출 좋아지면 소득 불평등은 확대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소득 불평등은 세 가지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 ①임금 소득 ②세금 ③복지혜택이다. 이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소득은 임금소득이다. 약 70%를 차지한다. 임금소득을 변동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수출 실적’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대기업들은 임금에서 상여금 비중이 크다. 상여금의 크기는 사실상 수출 실적에 의해 결정된다. ‘수출연동형’ 임금체계다. 대기업 수출이 좋아지면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하고, 이들은 상위 10%에 해당하기에 상층의 소득 상승으로 결과적으로 불평등이 증가하게 된다. 즉, 한국의 임금 불평등은 대기업 수출 대박→대기업 노동자의 임금 상승→불평등 확대 구조를 갖고 있다.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대기업 수출 저조→대기업 노동자 임금 하락→불평등 축소가 작동한다. 역대 정부 중 노무현 정부 때 불평등이 가장 많이 증가했다. 그 이유는 ‘중국 수출 대박’ 때문이었다. ‘좋은 이유’로 인한 불평등 증가였기에, 나는 이를 ‘좋은 불평등’이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사례로 이명박 정부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출범 이후 종부세 환급과 공기업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했음에도 임금 불평등이 축소된다. 왜 그랬을까?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전 세계 교역량이 반토막 났고 한국 수출도 급감했기 때문이다. ‘교역이 축소되는’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국의 임금 불평등을 축소시킨다. 이명박 정부의 불평등 축소는 ‘나쁜 평등’의 대표 사례다. ②세금의 경우, 가장 중요한 변수는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인상 여부다. 상위 10~20%의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소득세를 인상하면 소득 불평등은 줄어든다. 상위 10~20%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기업과 공기업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조합원인 경우가 많다. 서울 거주자들도 많다. ③소득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변수는 ‘복지혜택’인데, 이는 후반부에 ‘빈곤율 증가’와 함께 설명하기로 하자. 세금과 복지혜택이 그대로라고 가정하면, 소득 불평등의 변동은 ‘수출의 등락’과 연동해서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출이 대박 나면 불평등은 커진다. 수출이 죽쑤면 불평등은 줄어든다.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시장소득 지니계수 상승은 수출 증가 때문이다. 불평등 증가이긴 하지만, ‘좋은’ 불평등인 셈이다. 순자산 불평등 줄이려면 둘째, 순자산 불평등 증가를 살펴보자. 먼저, 순자산 불평등은 2011년 조사 이후 역대 최고가 됐다. 순자산 불평등은 2016년에 최저점을 찍고 다시 상승하기 시작한다. 2016년은 0.584였고, 2024년은 0.625로 역대 최대가 됐다. 큰 틀로 볼 때, 그 이후는 부동산 가격 상승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전인 2021년과 직후인 2022년에는 순자산 불평등이 ‘살짝’ 줄어든다. 0.606에서 0.605가 된다. 그 이유는 러-우 전쟁으로 인해 폭등한 물가를 잡기 위해 미국을 포함 전 세계가 금리를 대폭 올렸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부동산 가격 하락 국면이었다. 순자산 불평등이 증가하는 요인을 더 세분화해보면 무엇 때문일까? ①소득 ②연령 ③수도권-비수도권의 격차가 동시에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은 저소득과 고소득의 격차가 커지고 있고, 연령은 20·30세대는 순자산이 감소하는 데 반해 50·60세대들은 순자산이 커지고 있다. 수도권의 순자산 상승률이 비수도권에 비해 약 2.5배 정도 가파르다. 순자산 불평등을 실제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원인을 인수분해 했으니, 그 반대 방법으로 정책을 사용하면 된다. 두 가지 정책이 필요하다. 하나, ‘고소득+저자산’ 청년 직장인들의 자산 접근권을 높여야 한다. 쉽게 말해, ‘소득을 지렛대로’ 주택담보대출을 받도록 도와줘야 한다. 20·30세대는 소득은 있지만 자산은 아예 없거나 저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자산을 매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상환능력의 범위내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것이다. 소득 있는 청년세대가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것 자체가 자산 불평등을 축소하는 가장 효과적인 해법이다. 물론, 이 정책은 유동성을 줄여서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는 역대 진보정부의 정책과 상충된다.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청년들의 자산접근권을 희생시키는 것이 정책적으로 가능한지, 혹은 바람직한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둘, ‘똘똘한 한 채 촉진법’을 폐지해야 한다. 똘똘한 한 채 현상이 본격화된 것은 다주택자 규제의 부작용 때문이다. 지방 3채 20억원이 서울 1채 40억원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다주택자를 부동산 가격 상승의 주범으로 생각해서, 다주택자에게는 불이익을 주고 1가구 1주택에게는 엄청난 혜택을 줬다. 다주택자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인해 ‘똘똘한 한 채 현상’이 발생했고, 강남 3구와 한강벨트 아파트 매수세가 더욱 강화됐다. 다주택자에 대한 과도한 규제=똘똘한 한 채 선호=수도권·비수도권의 격차 확대=강남 3구와 한강벨트 아파트 가격 급등=자산 불평등 확대다. 사실상 같은 내용의 다른 표현들이다. 다주택자 규제는 취득세, 보유세(종부세+재산세), 양도소득세를 통해 작동하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보유세는 다주택 여부와 무관하게 합산 금액으로 부과해야 한다. 취득세와 양도세도 비서울 다주택인 경우 폐지할 필요가 있다. 이는 서울 쏠림을 완화하고 지방으로 수요를 분산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동시에 자산 불평등 축소 효과가 있다. 빈곤율 상승의 진짜 원인 이제 빈곤율 상승 문제를 살펴보자.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 내내 줄기만 하던 ‘처분가능소득 빈곤율’이 다시 상승하고 있다. 2022년 처음 상승 추세를 보였는데, 2023년, 2024년 3년 연속 처분가능소득 빈곤율이 상승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지점인데, 아쉽게도 비중 있게 보도한 언론을 접하지 못했다. 처분가능소득 빈곤율은 세금을 내고, 복지혜택을 받은 이후의 소득이다. ‘복지 투입 이후’의 빈곤율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분가능소득 빈곤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면 현행 복지정책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암시한다. 바로 ‘그걸’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빈곤율의 재상승을 주목해야 한다. 빈곤율의 상승원인을 찾아내려면, 2011~2021년 기간 빈곤율이 축소된 원인을 알아야 한다. 2011~2021년은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가 모두 걸쳐 있었다. 진보·보수 정부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럼 뭐였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기초연금 제도’ 때문이었다. 기초연금은 노무현 정부 때, 당시 박근혜 대표의 제안으로 제도화됐다. 2008년에 처음 지급됐다. 당시 65세 이상 노인 중에서 국민연금 수급자는 약 30%에 불과했다. 노인 70%가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있었던 셈이다. 2008년 기초연금 도입은 사각지대를 메꿔줬다. 2008년 이후 노인 빈곤율이 줄어들고, 심지어 노인 자살률도 급감하게 된다. 기초연금을 통한 빈곤율 축소와 가처분소득 불평등 축소는 노무현과 박근혜의 공동업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65세 이상 노인 중 약 70%가 국민연금 수급자가 됐다. 그런데 기초연금은 여전히 하위 70%에게 지급한다. 기초연금을 받는 70%에 딱 걸리는 최고 소득자 노인의 소득은 얼마나 될까? 노인 1인 가구는 월 소득 438만원, 노인 2인 가구는 월 소득 745만원도 기초연금을 받고 있다. 평균적인 청년세대보다 훨씬 소득이 많은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현행 기초연금은 ‘부자 노인’에게도 지급되고 있다. 상대적 빈곤율의 정의는 중위소득 대비 50% 미만 비율이다. 2022년 이후 빈곤율 상승은 기초연금을 받는 부자 노인들이 중위소득 자체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현행 기초연금은 빈곤 노인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예산지출 그 자체를 위한 제도로 전락했다. 2008~2022년 기간은 순기능이 더 컸지만, 지금은 부작용이 압도적으로 크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좋은 불평등』 저자

2025.12.18.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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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슬의 숫자읽기] 부동산 미혼모 세대

지인은 미혼모다. 결혼식도 성대히 잘 치르고, 본인과 남편도 멀쩡한 직업이 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다. 법적으로 ‘남’이어야 지금 집에 계속 살 수 있어서다. 사연은 이렇다. 현재 그네들이 거주하는 집은 법적으로 남편 명의다. 남편이 전세를 낀 갭투자로 집을 샀고, 그렇게 전세로 들어온 세입자가 법적으로 미혼모인 아내다. 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겨도 혼인신고를 할 수가 없다. 혼인신고를 통해 부부가 되는 순간 1인 가구 두 사람이 한 가구로 묶이면서, 가구 대출 총량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서울 부동산 가격 급등이 만든 새로운 미혼모다. 아쉽게도 국가 통계는 이런 현상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국가데이터처에서 발표한 ‘2024년 신혼부부 통계’를 살펴보자. 초혼 신혼부부 기준 혼인 1년 차 부부의 주택 보유율은 2019년 이후 매년 상승해 2024년엔 35.8%로 고점을 경신했다. 전체 신혼부부 세 쌍 중 한 쌍은 혼인신고 시점에 이미 자택을 보유하고 있으니, 상황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해당 통계를 단편적으로 인용한 이들은 2030의 부동산 실책 지적이 언론과 정치에 놀아난 가짜 이슈라는 극단적 주장까지도 내놓지만, 이 통계를 그대로 믿긴 곤란하다. 왜곡이 있어서다. 해당 통계는 공식적으로 혼인신고를 진행한 부부만 대상으로 삼는다. 앞서 소개한 부동산 미혼모 커플 혹은 사실혼 관계의 부부는 애초에 부부 통계에 집계되질 않는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해당 통계는 신혼부부가 척척 집을 사는 게 아니라, 집을 사는 데 성공한 이들만 혼인신고를 하니 생기는 착시다.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데 혜택을 주긴커녕 1인 가구라는 대안적 가구 단위를 각자 유지하는 게 훨씬 이득이니, 성평등가족부의 비혼 동거 커플 조사에서도 27.3%가 ‘상속’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혼인신고를 미룬다는 응답이 나온다. 국가가 혼인신고를 권장하기는커녕 기피하게 만드는 잘못된 유인 설계의 전형이다. 가구 단위의 대출 통제 정책은 외벌이 가장이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시대에 자리 잡은 옛 유산에 가깝다. 이미 30대와 40대에서는 맞벌이 비중이 60% 수준에 육박하고 있고, 각기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부부가 소득과 재산을 별산(別算)하는 경우도 흔해졌다. 외벌이 남편이 집안 경제권을 전업주부 아내에 맡겨 가구가 하나의 경제 주체로 굴러가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런데도 제도가 따라 바뀌질 못하니, 법적으로 가족이 아닌 상태가 가족을 꾸리기엔 더 유리해졌다. 결혼이 경제적 징벌이 되는 기형적 구조를 방치한 채 저출산 극복을 논하는 건 기만이다. 국가가 가족 해체를 유도하는 나쁜 유인 설계부터 바로잡자. 박한슬([email protected])

2025.12.18.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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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성탄인터뷰 “찬란한 손해의 절정은 십자가의 예수.”

━ 2025 성탄 인터뷰-고진하 목사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의 시골마을에서 11일 고진하 목사를 만났다. 그는 등단한 시인이자 영성가다. ‘불편당’이란 당호를 걸어놓고, 낡은 한옥에서 불편을 벗삼아 일상의 시어와 영성을 일군다. 하루 중 사랑채 아궁이에 앉아서 불 때는 시간이 유독 좋다는 그에게 ‘성탄’을 물었다. 고 목사는 자신이 생애 처음으로 배운 영어 단어가 ‘메리(merry)’라고 했다. Q : 메리, 무슨 뜻인가. A : “‘메리 크리스마스’ 할 때 ‘메리’다. ‘즐겁다’는 뜻이지만, 좀 더 떠들썩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 시골 교회의 성탄이 그랬다.” 고 목사의 고향은 영월군 주천면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동네 예배당을 들락거렸다. “시골에는 마땅한 놀이가 없으니까. 시골 교회 목사는 가난했다. 그 집에 아이들도 많았다. 딸 넷에 아들 둘.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나. 힘드니까 흰 염소를 키웠다. 그 젖을 짜서 그 댁 아이들이 팔러 다녔다. 이웃집에 산다는 이유로 나는 자주 그 집에 갔다. 그때 ‘예수’를 생각했다.” Q : 왜 예수를 생각했나. A : “그때는 시골에 분유도 없을 때다. 구경도 못 했다. 한 번은 내가 몸이 약해서 쓰러졌다. 목사님이 너 다리에 기운이 없어서 그렇다며, 내게 따뜻한 염소젖을 주셨다. 그리고 직접 내 발과 다리를 씻어주셨다. 그때 생각했다. 아, 예수라는 분은 나처럼 약하고, 가난하고, 낮은 자리에 있는 존재를 돌봐주는 분이구나.” 고 목사는 “그런 기억이 내가 목사로 살면서 나를 지켜냈다. 나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 최인호 작가의 소설 『상도』를 다시 꺼내서 읽었다며, 조선 후기의 거상 임상옥 이야기를 했다. “임상옥이 이런 말을 했다. ‘상즉인(商卽人)’.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이윤이란 뜻이다. 가뭄이 들거나 흉년이 오면 임상옥은 자기 창고를 열어서 백성을 살렸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재물도 고이면 썩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거기서 예수의 자비를 본다.” “예수의 자비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고 목사는 오래전에 읽었다는 한 원로시인의 시구를 짧게 읊었다. “자비란 흉한 이익이 아닌 것/그것은 찬란한 손해.” 고 목사는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는 건 무자비다. 자비는 그런 식의 흉한 이익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 손해 보는 짓은 안 하려고 한다. 손해는 나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손해에도 ‘찬란한 손해’가 있다.” Q : 찬란한 손해, 어떤 건가. A : “내가 커지는 손해다. 좁은 박스 속에 갇혀 있던 에고가, 박스를 깨고 나와서 더 확장하게끔 하는 손해다. 인간은 그런 손해를 통해서 자란다. 더 깊어지고, 더 성숙해진다. 그러니 ‘찬란한 손해’는 내게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감사한 일이지 않나. 인간은 그런 손해를 통해서 더 확장되고, 그런 확장의 과정이 찬란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찬란한 손해’다.” Q : 그리 보면 십자가의 예수야말로 ‘찬란한 손해’ 아닌가. A : “그렇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나를 먹어라’고 말했다. 예수는 먹는 존재가 아니라 먹히는 존재다. 우리는 어릴 적 엄마의 젖을 먹고 자란다. 아이는 엄마의 젖을 먹고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을 유지한다. 어머니가 된다는 건 먹는 존재가 아니라 먹히는 존재가 되는 거다.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청정한 먹거리다.” Q : 하늘에서 내려온 청정한 먹거리. 그걸 통해 예수께서 건네는 메시지는 뭔가. A : “그 음식을 먹고 너도 다른 사람을 살리는 예수가 돼라. 그 젖을 먹고 너도 다른 사람을 살리는 엄마가 돼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다.” 그 말 끝에 고 목사는 중세 독일의 신학자이자 영성가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260~1328)의 어록을 꺼냈다. ‘신과 하나가 되기 위해 우리가 할 유일한 일은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덜어내는 거다.’ 고 목사는 “손해도 그렇다. 찬란한 손해는 나에게서 무언가를 덜어내는 일이다. 그걸 통해 우리는 예수에게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된다.” Q : 그렇게 자꾸 덜어내면 우리는 점점 더 가난해지지 않나. A : “아니다. 거꾸로다. 덜어낼수록 점점 더 풍요로워진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본래 비단 포목상의 아들이다. 그걸 걷어차고 나왔다. 잘 지어진 교회나 건물도 걷어찼다. 그리고 들판으로 나갔다. 굶주린 사람들과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Q : 그게 왜 가능했나. A : “그의 내면이 풍요로웠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더 풍요로워진다. 예수님도, 프란치스코도 우리에게 풍요로운 길을 일러주시고, 풍요롭게 살아라 말씀하신다. 풍요로운 삶. 그 과정에 찬란한 손해가 있다.” 백성호([email protected])

2025.12.18.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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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유럽 따라하다 ‘규제 갈라파고스’에 갇힌 한국

유럽 경제는 누적된 위험의 둑이 터지는 형국이다. 독일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공장 폐쇄와 대규모 감원을 단행했고, 프랑스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 부채 때문에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수년 전부터 유럽연합(EU) 스스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개혁을 시도해왔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지금 유럽이 몰락의 길에 들어선 근본 원인은 생산성 정체에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빅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파괴적인 혁신을 거듭해왔지만, 유럽은 현실에 안주했다. 변변한 인공지능(AI) 기업 하나 없으면서 유럽 국가들은 “AI 혁명은 사람 중심이어야 한다”며 산업 진흥보다 규제를 앞세웠다. 미국 기업이 과감한 구조조정과 자동화 투자로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동안 유럽 기업들은 고용유지 제도에 묶여 일자리 지키기에 급급했다. 변화를 거부하고 규제의 성을 쌓은 대가를 유럽은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유럽, 규제 때문에 생산성 정체 한국, 유럽 모델 무비판적 모방 일본 수준으로 규제 완화해야 문제는 대한민국이다. 미국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2004년에 출간한 『유러피언 드림(The European Dream )』이 영향을 주면서 한국은 ‘삶의 질’과 ‘안정’을 중시하는 유럽식 모델을 비판 없이 동경하며 모방해 왔다. 에너지 빈국인데도 무리하게 ‘탈원전’을 강행했고, 제조업과 소프트웨어 산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인데도 경쟁국들보다 더 과도하게 화학물질과 AI를 규제했다. 그 결과 한국은 유럽보다 더 심한 ‘규제 갈라파고스’로 전락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조차 “한국의 규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을 정도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화학물질 규제다. ECCK는 2025년 백서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화학물질평가법(화평법)과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서로 다른 기준을 들이대며 중복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문제일 뿐이고 더 심각한 것은 규제의 함량 미달과 파급효과다. 정부는 과학적 평가 역량도 없이 유럽의 겉모습만 흉내 내며 규제를 남발해왔다. 결국 해외 경쟁 기업들은 문제없이 쓰는 필수 화학물질을 한국 기업만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래야 하는지 공론화도 없었고, 평가 결과도 공개하지 않았다. 외국계 기업은 해외에서 쓰면 되지만, 도망갈 곳 없는 한국 제조업체들엔 치명적이다. 해결책은 관련 부처 기능을 통폐합하고 일본 수준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내년 3월 시행을 앞둔 ‘노란봉투법’은 가뜩이나 힘겨운 기업 입장에서 보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ECCK는 하청기업이 원청을 상대로 협상을 요구하는 ‘사용자 범위 확대’를 걱정하는데, 진짜 뇌관은 ‘노동쟁의 대상의 확대’다. 경영 활동의 일부만 수행하는 외국계 기업엔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모든 경영 판단이 국내에서 이뤄지는 한국 기업엔 생존이 걸린 문제다. 노란봉투법은 즉각 중단해야 마땅하다. 무분별한 면책 특권을 주는 대신 독일식 ‘노동 이사제’ 도입을 공론화하면 어떨까. 독일의 경우 노조 추천 이사가 경영에 참여하되 이들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명확한 법적 책임을 지운다. 지금처럼 노조가 권리만 주장할 게 아니라 책임도 함께 지도록 하면 더 합리적이고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실행이다. 안타깝게도 정부가 강성 노조에 휘둘려 스스로 규제를 개혁하지 못한다면 시장이 심판할 것이다. 최근의 환율 급등(원화 가치 급락)은 단순히 대외 변수 때문이 아니다. 금리를 올릴 수 없는 한국의 어려운 경제 현실을 시장이 간파하고 원화 약세에 베팅한 결과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되고 산업 현장에서 혼란이 벌어지면 환율은 더 요동칠 것이다. 만약 외국계 기업의 ‘코리아 엑소더스’가 시작되면 원화 가치는 속절없이 추락할 것이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인 유럽과 상황이 다르다. 유럽 경제가 어렵다지만 달러 대비 유로 환율은 지난 5년간 4.39% 상승한 반면, 원화 환율은 35.5% 상승했다. 유럽은 경제가 어려워도 유로가 버티지만, 한국 원화는 신뢰를 잃으면 끝없이 추락한다. 유럽을 꿈꾸며 규제의 벽에 갇혀 혁신을 거부한다면, 유럽 같은 정도의 성장 정체가 아니라 한국경제가 아예 침몰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곽노성 연세대 객원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 기술혁신연구회장

2025.12.18.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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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화장장 부족, 중앙정부와 지자체 공동 책임

인구 1300만 명이 넘는 경기도에는 화장장이 4곳뿐이다. 이렇다 보니 경기도민 중에 전남 해남의 땅끝마을까지 ‘원정 화장’을 하는 사례도 있다. 세계인들에 K컬처와 K기술을 자랑하고 화장률이 95%나 되는 한국에서 망자가 화장장을 찾아 팔도를 헤매는 화장 대란이 방치되고 있다니 어처구니없다. 이전에는 겨울철에만 화장 대란이 벌어졌지만, 근래에는 한여름에도 대란 조짐이 보인다. 화장장 부족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상시적·구조적 문제라는 의미다. 화장장 부족은 인구의 과반이 밀집한 수도권에 국한하는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 문제다. 수도권 화장장 부족은 충청·강원을 넘어 경남·전남에까지 여파를 준다. 양주 화장장 재검토 결정 무책임 복지부·행안부·경기도 뒷짐 행정 장례 대란 해결 위해 적극 나서야 전국적인 화장장 대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경기도 북부권의 화장 시설 부재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양주시 등 경기 북부 6개 지자체가 공동으로 양주시 백석읍 방성1리에 화장장을 추진해왔다. 양주시가 지난봄 행정안전부에 재정투자심사를 요청하자 행안부는 지난 10월 중앙투자심사위원회를 열었지만, 옥정·회천지구 신도시 주민의 반대 등을 이유로 재검토를 결정했다. 앞으로 경기도가 지시한 갈등조정협의체 구성 등 보완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당초 목표로 내세운 2027년 착공, 2030년 개원 일정에 차질을 빚을 판이다. 모두 합심해도 시원찮을 판에 제동이라니 어이가 없다. 양주 화장장 추진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정책 결정 시스템이 단단히 잘못됐다. 6개 지자체의 문제는 공감대 형성 부족, 화장문화 연구 부족 등을 들 수 있다. 화장장을 건립·운영한 경험이 없다 보니 미숙함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기초 지자체들의 이런 부족함을 보완해줘야 할 경기도와 중앙정부의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주민과 소통을 내세워 시간만 허비해왔다. 장사(葬事)법에서는 도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의 화장장 설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외면한다면 무책임하다. 그럴 리는 없을 거라 믿고 싶지만, 만약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서 주저하는 것이라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보건복지부는 화장 정책에 관한 최상위 중앙정부 기관이다. 복지부는 지방자치단체를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순환보직제 때문에 담당 부서 공무원들은 잠깐 스쳐 가는 ‘과객’들일 뿐이다. 전문성이나 적극적인 행정까진 기대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최소한 법정 의무는 이행해야 마땅하다. 장사법 시행령 제4조는 ‘지방자치단체가 갖추어야 하는 화장시설에 관한 기준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역별 인구·사망자 수·화장수요 등을 고려하여 고시로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복지부는 이런 법조문에도 불구하고 지난 15년 동안 한 번도 관련 고시를 정하지 않았다. 장사시설 수급 계획에 두루뭉술 언급은 하고 있지만, 명확하게 책임 기준을 밝히는 고시 대신 공문 시달에 그치고 있다. 이게 지자체에 제대로 먹힐 리 만무하다. 양주시 재정투자 심사를 담당했던 행안부 담당관은 “이게 과연 필요한 사업인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화장장 부족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현장을 전혀 모르는 것 아닌가 싶어 당황스러울 정도다. 행안부는 지자체 행정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지도하는 중앙행정기관인데, 그 많은 화장장 대란 보도에 대해 눈과 귀를 막고 있었다는 말밖엔 되지 않는다. 주무 부처인 복지부 관계자들도 비슷한 태도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000년대 초 감사원이 화장 업무를 감사한 적이 있다. 당시는 화장을 선택하는 비율이 30% 안팎이던 시절이라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은 허점투성이였다. 이후 화장률이 꾸준히 상승함에 따라 정부의 지자체 국고지원금이 한때 1000억원을 넘기도 했다. 최근에도 매년 수백억원이 지원된다. 그런데도 지난 20여년간 감사원이 제대로 감사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국민의 사후(死後) 복지는 중요한 정책 과제다. 그런데도 중앙 행정기관이나 정치권은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화장장 부족 문제 해결은 국민의 고통을 줄이는 시급한 민생 과제다. 화장장 대란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국민의 사후 복지를 책임지는 정부와 지자체, 정치권의 각성과 노력을 촉구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태호 장례와 화장문화 연구포럼 공동대표

2025.12.18.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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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의 뉴스터치] 원전, 대통령의 본심은?

“원전 정책이 정치 의제처럼 돼 버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7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후에너지환경부·원자력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한 말이다. 이 대통령은 “효율성이나 타당성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없고 편 가르기 싸움만 벌어지고 있다”며 원전정책 결정의 과학화를 강조했다. 이념이 아닌 과학으로 원전정책을 결정하자는 대통령의 발언이 반갑다. 그간 원전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춤을 췄다. 우파는 원전 건설을, 좌파는 탈(脫) 원전을 노래했다. 영화 ‘판도라’를 감명 깊게 봤다는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후 탈원전을 밀어붙였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이 한때 중지됐고, 신규 원전 건설은 백지화됐다. 이후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신한울 3, 4호기 건설 허가를 승인했다. 이재명 정부는 어떨까.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 가속화를 명문화했지만, 문재인 정부와는 달리 ‘탈원전’을 공개적으로 말하진 않았다. 원자력발전이 수출산업이 되고,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에서 인공지능(AI) 시대의 필수 발전원으로 떠오르는 현실에 눈감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년 예산안에 소형모듈원자로(SMR)가 포함된 것도 이런 기조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모순되는 현실도 있다. 기존 원전들의 수명연장을 위한 절차가 늦어지고, 신규원전 부지 선정을 위한 절차도 중단됐다.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원전은 지을 곳도 없고, 지어도 15년”이라며 재생에너지를 대대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원전정책 과학화 발언’이 진심이길 바란다. ‘AI 3대 강국 목표’를 재생에너지만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낙관이 과학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최준호([email protected])

2025.12.18.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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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진의 돈의 세계] 플랫폼의 플랫폼

플랫폼은 승객과 열차를 이어주는 공간이고, 인터넷 플랫폼은 여러 집단이 무언가를 교환하도록 돕는 토대다. 구글은 인터넷 플랫폼을 다수 거느렸다는 점에서 ‘플랫폼 중의 플랫폼’이다. 구글 검색 플랫폼에서 콘텐트 제공자와 이용자는 정보를 주고받는다. 광고주는 플랫폼이 콘텐트 제공자와 나누는 수익을 댄다. 구글 플레이에서 개발자와 사용자는 앱을 거래하고, 개발자는 구글 플레이에 수수료를 낸다. 이외에 유튜브도 구글의 플랫폼이다. 이런 구글이 굽히고 들어가는 회사가 삼성전자다. 구글은 올해 1월부터 삼성전자에 다달이 일정 금액을 지급하고 있다고 지난 4월 밝혔다. 자사의 인공지능(AI) 제미나이를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에 탑재하기 위해서다. 계약 기간은 짧아도 2년이라고 알려졌다. 아울러 제미나이 수익의 일부도 삼성전자와 공유한다고 전해졌다. 구글은 플랫폼 강자이지만 인공지능(AI)에서는 챗GPT의 오픈AI보다 후발주자인 만큼, 많이 판매되는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제미나이를 ‘입점’하고자 하는 것이다.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채택한 스마트폰 판매량 중 가장 많은 비중인, 약 30%를 삼성전자가 차지한다. 2위 샤오미의 비중은 15% 정도다. 구글이 샤오미에도 제미나이 탑재에 대해 돈을 지불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는 삼성전자가 구글에 준플랫폼 지위를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제미나이 덕분에 갤럭시 스마트폰이 챗GPT를 쓰는 애플 아이폰에 비해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게 됐다. 지난달 선보인 제미나이3가 주요 평가에서 챗GPT-5를 능가하자 이런 전망이 나왔다. 필자도 제미나이3가 챗GPT-5보다 사고력이 뛰어남을 확인했다. 아이폰은 자체 음성비서 시리와 챗GPT의 연동이 매끄럽지 않은 등 AI에서 뒤처진 상태다. 삼성전자-구글 동맹의 애플-챗GPT 연합 추격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백우진 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 대표

2025.12.18.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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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완의 마켓 나우] 무너진 AI 공식, 한국의 선택지

오픈AI의 공동 창립자 일리야 수츠케버는 최근 “스케일링의 시대는 끝났고, 다시 연구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했다. 데이터와 연산 자원을 늘리면 인공지능(AI) 성능이 개선된다는, 지난 5년간 실리콘밸리를 지배해온 정설에 대한 내부자의 파기 선언이다. 그는 ‘AI 이후의 AI’를 향한 ‘신(新) 연구 시대’의 개막을 알린 것이다. 스케일링의 한계는 ‘재기드니스(jaggedness)’에서 드러난다. 고난도 추론은 수행하면서도 기초 개념에서는 반복적으로 실수하는 성능 불균형이다. 이는 정확성과 재현성이 필수인 산업 현장에서 AI 활용을 제약하는 구조적 결함이다.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성능이 고르게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AI는 여전히 기본 개념을 안정적으로 연결하고 해석하는 데 취약하다. 이 불균형은 AI가 기초 개념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보다, 통계적 확률에 의존해 답을 생성하는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데이터의 총량이 아무리 커도 세상을 이해하는 정합적 지식 구조는 자동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GPT 계열 모델에서는 확률적으로 그럴듯한 답이 진실을 가리는 경우가 반복된다. 기술의 진화 경로도 바뀌고 있다. 피지컬 AI와 월드모델, 인간 수준의 범용 인공지능(AGI), 인간을 넘어서는 초지능(ASI)의 연구개발이 병렬로 전개되고 있다. 수츠케버가 말한 ‘새 연구 시대’는 이 가운데 ASI에 무게를 둔다. 인간 데이터를 모방하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 고품질 지식을 생산하는 AI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후발 주자인 한국은 이제야 GPU와 인프라 확보에 매달리고 있다. ‘스케일링의 종말’은 선두 주자 미국의 이야기다. 우리는 좋든 싫든 기초 스케일링 역량을 쌓아야 한다. 문제는 스케일링 추격과 동시에 월드 모델·AGI·ASI 같은 미래 축까지 병렬 대응하기에는 민관 역량이 절대적으로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지금 외치는 소버린 AI, 즉 자국 언어·문화·데이터 기반의 독자적 AI가 시대에 뒤떨어진 스케일링의 답습이라면 주권이 아니라 고립이다. K-AI 챗봇이나 특정 산업에 특화된 버티컬 AI도 좁은 범위의 활용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산업화 시대처럼 압축성장으로 격차를 메울 수 있을까? 뱁새가 황새를 따라잡겠다고 모든 축을 무리하게 붙잡을 수도 없다. 스케일링의 종말로 한국은 전략과 선택의 딜레마에 내몰리게 되었다. 수츠케버의 경고는 해답이 아니라 딜레마를 직시하라는 요청이다. 스케일링·월드모델·AGI·ASI 중 무엇을 우선하고 어떤 순서와 속도로 나아갈 것인지. 새 정부 2년 차는 바로 이 선택을 설계해야 하는 지점이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및 미래자동차석사과정 교수

2025.12.18.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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