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5.12.22. 3:30
19세기 말 한국을 여행하고 자세한 여행기를 남긴 영국인 비숍 여사의 글을 보면 한국인은 매우 유쾌한 민족으로 나옵니다. 한국인에게 한이 많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국인이 신이 많고, 유머가 많음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어쩌면 가장 우울해 보이는 시대 19세기에도 한국인은 외국인의 눈에 즐겁게 비치었습니다. 사실 우리의 말하는 습관을 살펴보면 늘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코미디 방송 중에 ‘웃으면 복이 와요’가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웃으면 복이 옵니다. 만나면 즐겁고, 좋은 방송이 모토이기도 합니다. 웃으면 복이 올 거라는 믿음은 오래되었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웃습니다. 누군가가 어처구니없는 일을 해도 화를 내기보다는 웃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지금 웃음이 나와?’라고 물으면 ‘그럼 웃어야지, 울어?’라고 대답을 합니다. 때로는 ‘어이가 없어서 웃는다’는 말도 합니다. 화를 내야 하는 장면인데도 자연스레 웃음이 나온 겁니다. 물론 모든 순간에 웃지는 않겠지요. ‘일소일소일노일로’는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과 연결이 됩니다. 사람의 가장 튼 소망은 아마도 늙지 않고 건강한 것일 겁니다. 그게 지극한 복이겠지요. 그래서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화내면 한 번 늙는다는 말은 큰 깨달음입니다. 웃으면 젊어집니다. 신체적 나이가 젊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심리적 나이는 젊어집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얼굴 표정이 미소를 따라 갈라집니다. 편해 보인다는 말은 웃는 이에게 드리는 찬사입니다. 화를 내면 그 모습대로 굳어 갑니다. 가만있을 때도 화를 내는 듯하여 다가가기조차 무섭습니다. 당연히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사람이 가까이에 없으니 즐거울 일도 줄어듭니다. 한국 속담에 ‘때린 놈은 다리 오므리고 자고, 맞은 놈은 두 다리 뻗고 잔다.’는 말이 있습니다. 참 속이 편한 속담입니다. 맞은 놈이 낫다니요? 때린 놈은 불안한 마음에 잠을 못 이룹니다. 도둑이나 강도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피해를 보는 쪽이 마음은 편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도 실제 상황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믿는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피해자의 마음을 다독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억울한데, 가해자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 더 힘이 들 겁니다. 최소한 가해자가 잠이라도 못 자기 바랍니다. ‘부부 싸움 칼로 물 베기’와 같은 속담도 실제로는 희망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부부 싸움은 화해가 쉬운 게 아닙니다. 어쩌면 싸운 후 곧바로 또 봐야 하기에 화가 더 쌓일 수도 있습니다. 이혼이 쉬워진 것도 아마 부부 싸움의 해결이 어려워서일 겁니다. 부부 싸움으로 물을 베는 것이 아니라, 몸을 베고 마음에 상처를 깊게 남기기도 합니다. 같이 살기 어렵겠지요. 부부 싸움의 화해는 쉽지 않습니다. 그때 던지는 말이 칼로 물 베기입니다.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뜻입니다. 서로 마음에 담아두면 부부는 헤어지는 게 정답처럼 됩니다. 그러나 빨리 화해하고, 미안하다고 먼저 툭 이야기하고 나면 부부는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이때 칼로 물 베기가 실현되는 겁니다. 한국 속담에 나타나는 긍정적 마음은 실제로 그렇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불행한 일이 없어서 긍정적인 게 아닙니다.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위로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은 힘들어도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 어서 화해해야 더 큰 화를 막을 수 있다는 지혜가 모여서 속담이 된 겁니다. 지금은 이런 속담을 잃어버리고 삽니다. 그래서 더 힘이 듭니다. 앞으로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절망과 계속 이렇게 싸우느니 이쯤에서 그만 갈라서자는 생각이 희망 없는 삶으로 귀결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한국어 속담 한국 속담 부부 싸움 한국어 긍정
2025.12.21. 18:26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모두는 자연스럽게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볼 것이다. 무엇보다 이민자의 삶에 있어 끝없이 변하는 현실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가. 지나온 시간, 성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라는 풍요와 가능성의 땅이면서도, 끊임없는 경쟁과 생존의 압력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그래도 대견한 것은 수많은 갈등과 혼잡에서도 한 해를 버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로받기에, 충분하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은 누구나 던져진 존재’고 했다. 특히 이민자들은 그 말의 의미를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이해한다. 주어진 조건은 내 뜻과 다를 때가 많고, 상황은 내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하지만 우리는 매일 아침 일터로 나선다. 삶에 숱한 파편들을 안고 우리는 한 해 내내 몸으로 증명하며 살아왔다. 반복되는 생존의 연속에서도 이해타산을 앞에 놓고 짐처럼 흔히 잘잘못을 나누려 한다. 니체의 말처럼, 과거는 짐이 아니라 다시 어떤 형태나 형상을 만들 수 있는 재료이기 때문일까. 사실 올 한 해는 우리 모두에게는 직간접으로 숱한 파편들이 있었다. 특히 올해 물가는 물론 집값, 보험료의 인상이 교민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거기에 불체자 단속은 생업에 충격으로 사업을 접어야만 했던 아픔, 가족 건강 문제로 인한 불안, 자녀 교육비와 생활비 사이에서의 갈등, 관세문제, AI의 기술 변화 속에서 느낀 뒤처짐의 두려움, 이것들은 우리가 어떤 존재로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현실의 변화이다. 한 해의 끝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이민자의 삶은 내 힘만으로 버티기에는 너무 자주 흔들린다. 그럴 때면 성경에서 시편 기자가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라고 고백한 말이 생각난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우리 삶을 붙들고 계셨다는 것이다. 성경의 시간관에서 보면 이 회고는 단순한 연말의 습관이 아니다. “여호와여, 나의 날이 한 뼘 같사오니” 인간의 시간은 짧고 유한하며, 그렇기에 우리는 순간순간을 통해 성찰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를 향해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2026년이 기대되는 것도 가능성의 시간, 존재의 방향을 새롭게 확립하는 순간을 찾을 수 있기에 새해의 포부가 크다.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이 열리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이데거가 인간을 “가능성으로 자신을 던지는 존재”라고 규정한 것도 결국 현실 속에서 하루를 조금 더 성실히 살아내는 일이란 것이 아니겠는가. 나와 가족을 더 잘 돌보고, 공동체를 향해 작은 연대의 손을 내밀며 불확실성 속에서도 나만의 리듬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특히 언론을 통해 정보를 나누고, 종교단체나 사회 각종 모임을 통해 고립된 이들을 연결하고, 어려움이 생기면 함께 해결책을 찾아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체는 단순한 사적 모임이 아니라 존재를 비춰주는 거울이기에 말이다. 이민자의 삶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그러나 이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누구보다 깊이 ‘삶의 이유’를 묻고, ‘존재의 의미’를 찾고, ‘새로운 가능성’을 선택하며 살아왔다. 새해의 포부 또한 이 거울을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성경에서 예레미야 기자는 미래 계획에 대한 확신을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 라고 말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는 조용히 지난 시간과 화해하며, 다가올 시간을 향해 다시 한걸음 내딛겠노라고 결단하며 새해를 맞이하자.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결산 새해 시간 존재 지난 시간 갈등 관세문제
2025.12.21. 18:00
2025년, 인공지능(AI) 붐은 미국 경제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2022년 말 챗GPT 등장 이후 불과 3년 만에 160명이 넘는 신흥 억만장자가 생겨났고, 이제 미국 억만장자 수는 900명을 넘겼다. 이들이 보유한 자산은 7조에 근접해 중세 이후 가장 극단적인 부의 집중을 보이고 있다. 이 엄청난 부가 워싱턴으로 유입되어 정치 질서를 흔들고 있다. 자커리 바수(디지털미디어 ‘엑시오스’의 뉴스, 정치국장)는 억만장자들의 기부는 세제 혜택과 권력 접근성을 확보하는 수단이라고 분석한다. 그들의 진짜 힘은 의회를 우회하여 때로는 대통령의 정책을 직접 구현하는 실행 도구가 되는 데 있다. 억만장자의 정치 개입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2010년 ‘시티즌스 유나이티드 판결(Citizens United v. FEC)’ 이후 수퍼팩(Super PAC)을 통한 무제한 기부가 허용되면서 정치와 자본의 경계는 흐려졌다. 하지만, AI 호황으로 급부상한 테크 억만장자들의 워싱턴 진출은 그 영향력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그들은 후원자가 아니라 정책 결정의 파트너처럼 움직인다. 바이든 행정부의 기업 규제 강화에 반발해 실리콘밸리는 지난 몇 년 사이 보수 진영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공화당은 AI 규제 완화, 세금 감면, 암호화폐 친화 정책 등으로 테크 기업의 지지를 얻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2024년 총선에서 미국 상위 100대 부자들이 전체 선거 비용의 7% 이상을 부담했으며, 그 중 80%가 공화당으로 향했다. 현 정부의 핵심에는 억만장자와 테크 기업 간부 출신이 대거 포진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인공지능과 암호화폐 정책 특별 공무원(SGE)’ 데이비드 삭스(David Sacks)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삭스는 지난해 자택에서 트럼프를 위해 1200만 달러를 모금한 인연으로 현재 테크 업계와 백악관을 잇는 핵심 통로 역할을 맡고 있다. 기업 친화적 정책도 속도감 있게 추진 중이다. 트럼프는 캘리포니아 등 주 차원의 AI규제안을 무력화하기 위해 ‘AI 단일 규제’ 행정명령을 내렸다. 일론 머스크가 이끌던 정부효율성부는 기존의 감시, 규제 장치를 대폭 축소했다. 또한, 국세청의 대규모 인력 감축으로 탈세 단속은 약화됐고,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핵심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이처럼 공공과 사익의 경계가 무너지는 가운데, 정책과 기부는 점점 더 밀착하고 있다. 테크 기업과 방산 업체, 코인베이스는 미 육군 창설 250주년 군사퍼레이드를 후원했다. 정부 셧다운 시기에는 사업가 티머시 멜론이 미군 급여 보조금을 부담했다. 백악관 무도회장 건축에는 37명의 기업인과 개인이 자금을 댔다. 델컴퓨터 창업자 마이클 델은 중간소득 15만 달러 이하 지역의 10세 이하 아동을 위해 62억 5000만 달러를 약속했다. ‘트럼프 구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를 위한 이 기부는 ‘베이비 본드’ 정책을 연상시키며 큰 관심을 받았다. 문제는 이들 기부가 선행인지, 영향력 투자인지 구분이 어렵다는 점이다. 공적 재원이 필요한 영역을 사적 기부가 메우면서 시민들은 정치 기부가 민주적 참여인지 영향력 매수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됐다. AI 시대의 부와 정치의 결합은 전례 없는 속도와 규모로 진행되어 워싱턴의 권력 구조는 이미 변했다. 억만장자 대통령이 다른 억만장자들과 사교클럽을 이루어 비즈니스 거래와 협상을 하는 듯한 국정 운영은 민주국가에서 목격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투명성 회복과 제도적 견제 장치다. 정치 자금 공개 강화, 수퍼팩 기부 한도 제정, AI 기업의 로비 활동 추적 등 실질적인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연방 대법원이 대통령의 권한 확대를 옹호하는 상황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은 가슴보다 머리로 정치를 이해해야 할 시기다. 레지나 정 / LA독자발언대 억만장자 워싱턴 테크 억만장자들 신흥 억만장자가 워싱턴 진출
2025.12.21. 18:00
흔히 이민 생활을 안정적으로 꾸리기 위해서는 세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고들 했다. 변호사, 회계사, 그리고 부동산 브로커다. 특히 LA한인타운 요식업 업주 입장에서는 ‘위치’가 중요한 만큼 이번 칼럼에서는 타운의 맛을 내는 ‘자리’의 전문가들인 부동산 브로커들의 역사를 되짚어보려 한다. 필자와 동종 업계에 있는 선배, 후배들이기도 하다. LA 한인타운 형성 초기, 부동산 분야에서 큰 손으로 꼽히던 인물로는 훗날 한미은행 초대 이사장을 지낸 ‘국제부동산’의 조지 최 사장과, 한인 사회에서 ‘여걸’로 불리던 ‘소니아 석 부동산’의 소니아 석 사장을 들 수 있다. 특히 석 사장은 한인 최초로 부동산 중개업자(브로커)와 감정평가사 자격을 동시에 취득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올림픽길 한인타운에 한글 간판을 달자는 운동을 주도해 초기 한인타운의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갤러리아 마켓 투자그룹을 이끄는 ‘팩코 인베스트먼트’의 현재 사장 역시 국제부동산 출신이다. 그는 다수의 대형 부동산 거래와 상업용 부동산 관리에 관여하며 한인타운 상업 부동산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한인타운 올드타이머들이 기억하는 ‘럭키부동산’은 한때 대형 호텔과 골프장 등 굵직한 상업용 부동산 거래를 성사시키며 명성을 떨친 회사다. 현재의 사장은 필자가 직접 모셨던 몇 안 되는 보스 중 한 분이기도 하다. 한인타운을 좌지우지하던 상업용 부동산·관리 회사들 가운데에는 윌셔 일대 다수의 오피스 빌딩을 관리하던 ‘토탈 매니지먼트’가 있었고, 각종 부동산 관련 소송 끝에 아쉽게 사라진 ‘칼베스트 부동산’도 기억에 남는다. ‘아주부동산’은 한인타운 아파트 매매와 관리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회사다. 같은 세대의 상업용 부동산 회사로는 ‘원부동산’과 ‘샘 해리 부동산’이 있었고, 지금은 부동산 관리 사업을 접은 ‘하나 인베스트먼트’도 한때 활발히 활동했다. 스몰 비즈니스가 중심이었던 한인 커뮤니티 특성을 반영하듯, 한때 100여 명의 에이전트를 거느린 비즈니스 전문 대형 회사 ‘비지컴 부동산’도 존재했다. 필자 역시 몸담았던 이 회사는, 한국의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2대 진행자로 발탁된 박원홍 씨가 LA에서 운영하던 부동산 학교를 인수해 수많은 부동산 에이전트를 배출하기도 했다. 현재 한인타운 내 최대 비즈니스 전문 부동산 회사로 자리 잡은 ‘비부동산’의 사장 역시 비지컴 부동산에서 리커 마켓 총괄 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처럼 한인 부동산 업계는 인적 계보와 경험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성장해왔다. 요즘이야 온라인 강의로 공부하고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것이 일반화됐지만, 초기에는 한인 소유 부동산 학교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오렌지카운티와 LA에서 운영되던 ‘데니스 부동산 학교’ 역시 수많은 에이전트를 배출하며 그 역할을 했다. OC에서 1987년 ‘리얼티 월드(Realty World)’ 프랜차이즈로 출발한 ‘뉴스타 부동산’이 사세를 키워 LA에 자체 사옥을 마련하고, 전국적인 지점·프랜차이즈 네트워크로 확장한 일은 당시로서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주택 거래뿐 아니라 다수의 에이전트들이 비즈니스 거래를 병행하면서 한때는 거래량 면에서 비부동산과 쌍벽을 이루기도 했다. 뉴스타 부동산은 현재도 부동산 학교를 운영 중이다. 이외에도 OC에서는 부동산 호황을 타고 샌디에이고까지 사업을 확장한 ‘팀스피리트 부동산’이 있었고, OC에서 성장해 LA까지 진출한 ‘레드포인트 부동산’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탑 에이전트 출신으로 ‘초이스100’을 이끄는 사장은 회사 운영보다는 개인 투자 성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 외에도 소속 회사의 규모와 무관하게 압도적인 거래량을 기록하는 ‘수퍼 에이전트’들이 존재하지만, 이 글은 회사 중심의 기록이기에 포함하지 못했음을 미리 밝힌다. 한인타운 주택 전문 부동산 회사로는 전통의 ‘아이비 부동산’ 외에도 뉴스타 부동산 출신 사장이 독립해 설립한 ‘드림 부동산’이 빠르게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에이전트 수로만 보면 현재 타운 내 최대 규모일지도 모른다. 한때 한인타운에 콘도 분양 열풍이 불었을 당시, ‘CB 레지덴셜’은 분양센터를 포함해 에이전트 수가 100명에 육박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실상 기억 속의 이름이 됐다. 상업용 부동산 분야에서는 ‘CBRE’ 출신 브로커가 운영하는 ‘코러스(Korus) 부동산’, 그리고 ‘CB 커머셜 부동산’ 등이 한인타운에서 활동하고 있다. 부동산 관리 회사로는 ‘팩코 인베스트먼트’를 비롯해 ‘HK Properties’, ‘Korus’, ‘리얼티랜드’, ‘바인프로퍼티’, ‘킴앤드케이시’ 등이 이름을 올린다. 한인타운을 넘어 남가주 전체에서 손꼽히는 부동산 보유 기업인 ‘제이미슨 프로퍼티’는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부동산 회사이자 관리 회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한인들이 그 거대한 자산 운영의 그늘 아래서 긍정적인 낙수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이미슨을 비롯해 초기 한인타운의 초석을 다져온 모든 한인 부동산인들은,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먼저 걸어간 선구자들이었다. 그들의 발자취 위에 오늘의 한인타운이 서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한인타운 터전 초기 한인타운 la한인타운 요식업 상업용 부동산
2025.12.21. 18:00
━ 3년7개월 용산 시대 접고 청와대로 복귀 ━ 3실장과 근무…대통령, ‘소통의 머슴’ 돼야 연말부터 다시 ‘청와대 시대’가 열린다. 대통령실이 용산에서 청와대로 이사를 시작했고, 이재명 대통령도 올해 안에 집무실을 옮길 예정이다. 이로써 용산 대통령실 시대는 3년7개월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대통령실의 청와대 귀환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경은 복잡하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이 써내려 온 ‘애증의 역사’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간 청와대는 특권과 불통, ‘구중궁궐’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역대 대통령은 하나같이 소통을 약속하며 입성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간의 폐쇄성에 갇혀 ‘제왕’으로 변해 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하겠다”며 용산 이전을 결정했을 때 일정한 지지를 받았던 것도 정치적·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라는 국민적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불법 계엄이라는 ‘제왕적 선택’으로 그 기대를 배반했다. 이전과 복귀 과정에서 쓰인 1000억원 넘는 예산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됐다. 대통령실 이전은 단순한 이사를 넘어 치유와 회복의 의미를 담아야 한다. 국민에게 상처를 안겨준 정치에 다시 기대를 품을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 대통령실이 용산 이전의 폐해를 극복하고 청와대의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이 대통령이 참모 업무동인 여민관에 집무실을 두고, 3실장(비서실장, 정책실장, 국가안보실장)과 한 건물에서 일하기로 한 점도 주목된다. 본관 집무실은 정상회담 등 외빈 행사에 쓰이게 된다. 기자실과 대통령 집무실이 한 건물에 있던 용산 시절보다 언론과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기자회견장이 있는 춘추관은 가장 가까운 비서동인 여민관과 200∼300m 정도 거리가 있다. 대통령실 업무보고를 생중계할 정도로 투명한 소통을 강조해 온 이재명 정부의 국정 스타일과 배치될 수 있다. 대통령실은 디지털 소통 프로그램을 강화한다지만, 대면 소통의 공백을 메울 과감하면서도 효율적인 방식이 필요하다. 청와대는 국민과 더 가까워져야 한다. 3년2개월간의 개방 기간 동안 85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아왔을 정도로 청와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높다. 미국 백악관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웨스트윙(서관)’을 제외하고 ‘이스트윙(동관)’과 중앙 관저 등 상당 부분을 개방하는 점을 참고할 만하다. 대통령 경호처가 청와대로 접근 가능한 5개 진입로에서 검문·검색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하니, 보다 친근한 청와대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이 대통령은 평소 “대통령은 머슴 중에 상머슴(큰 머슴)이 돼야 한다”고 했다. 다시 열린 청와대는 불통의 제왕이 아닌 ‘소통의 머슴’이 일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2025.12.21. 8:34
━ 이 대통령 “수도권 과밀 해소 위해 물꼬 터야” 제안 ━ 야당과 협의하고 세수 이양, 자치 확대 뒷받침 필요 지난 18일 이재명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전·충남 의원들과의 오찬에서 “수도권 과밀화 해법과 균형 성장을 위해 대전과 충남의 통합이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당시 균형 발전 전략으로 ‘5극(수도권·동남권·대구경북권·중부권·호남권) 3특(제주·전북·강원)’이라는 초광역권 육성 방안을 내놓았다. 대전·충남 통합은 그 시발점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수용 가능한 최대 범주”를 언급하며 적극적인 지원을 할 의사를 내비쳤다. 다음 날 민주당도 특위를 구성하고 통합 특별법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기초자치단체 통합은 일부 사례가 있지만, 광역자치단체 차원에서 실현된 적은 없다. 역대 정부에서 추진됐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에 가로막혀 번번이 좌초됐다. 그만큼 이번 논의는 단기적 유불리를 넘어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장기 전략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수도권 집중 현상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인구와 자본, 일자리와 교육 기회가 수도권으로 빨려들어가 다른 지역의 생존이 위협받을 지경이다. 대안은 일정한 규모를 지닌 광역자치단체가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전과 충남이 통합하면 인구 357만 명의 새 자치단체가 탄생한다. 연구·과학 중심 도시인 대전과 제조업·농업 기반을 가진 충남이 결합하면 새로운 성장의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방식이다. 통합이 국가의 미래와 균형 발전이라는 대의보다 내년 지방선거 전략에 종속되는 순간, 정책 신뢰와 추진 동력은 급격히 가라앉을 수 있다. 실제로 여권에선 특별법 처리 시점을 내년 지방선거 이전으로 못 박고, 대통령실 인사의 차출설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대전충남특별시 설치 특별법안을 발의한 국민의힘 내에선 환영이라는 반응과 선거공학적 접근이라는 비판이 교차하고 있다. 광역 지자체 통합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부산·울산·경남 통합이나 대구·경북 통합도 논의됐지만 진척을 보지 못했다. 새 지자체 명칭과 행정기관 배치, 재정 배분, 주민의 생활권 변화까지 고려해야 할 사안이 적지 않다. 지역 주민의 공감대를 얻는 것은 물론이고 야당과도 충분한 협의를 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전폭 지원’ 약속도 선거용 메시지가 아니라 중앙정부의 세수 이양이나 자치 권한 확대라는 실질적 제도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대전·충남 통합이 성공한다면 다른 지자체 통합의 기폭제가 될 수 있고, 실패하면 지방 개편 논의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 그렇기에 정권의 성과나 선거 전략이 아닌, 행정 통합을 통해 국가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이냐는 대승적 관점에서 추진돼야 한다.
2025.12.21. 8:32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를 “매우 안정된 천재(very stable genius)”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하버드대 주디스 허먼과 동료 정신과 의사들은 그가 ‘자기애성 인격장애(NPD·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를 가졌다고 판정했다.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을 무시하는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이다. 트럼프 1기 때 그의 황당한 정책에 반대하는 ‘어른의 축’ 인사들은 줄줄이 보따리를 쌌다. 그를 비판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러시아 게이트’ 수사 관계자들은 지금도 보복수사를 받고 있다. 자기중심적 트럼프도 반대 수용 공개 비판한 비서실장 계속 신임 윤석열, 한동훈 직언에 분노…몰락 직언자 안 보이는 이 대통령 위험 그런데 냉철한 ‘얼음공주(ice baby)’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이 배니티페어와 가진 인터뷰가 보도된 이후 트럼프의 반응은 의사들의 예상과 달랐다. 와일스는 트럼프가 상호관세를 발표하기 전 “좋은 정책인지에 대해 엄청난 의견 불일치가 있었다”며 “밴스 부통령과 함께 속도를 늦추려고 시도했다”고 털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적(政敵) 기소에 대해서는 “(취임) 90일이 지나기 전에 보복을 끝내기로 느슨하게 의견 일치를 봤다”고 했다. 와일스는 트럼프가 “알코올 중독자의 성격을 가졌다”며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는 시각으로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분노하지 않았고 “그녀는 훌륭하게 일하고 있다”며 계속 신임했다. 트럼프가 올해 참모의 반대로 자신의 뜻을 접은 사례도 있었다. 파월 연준 의장을 ‘실패자’로 모욕하면서 쫓아내려고 했지만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며 반대하자 물러섰다. 민주당 상원의원을 반역 혐의로 처벌하려다 공화당 소속 상원 군사위원장이 제지하자 포기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관세에 대해 “부패의 온상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이지만 트럼프의 실용감각은 인정한다. “미친 것 같은 정책을 내놨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금방 바꾼다”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멍청한 정책을 고집하는 민주당과는 다르다”고 평가했다. 디 언포퓰리스트 편집장인 시카 달미아는 “트럼프의 이념적 확고함 부족과 거래적인 통치 방식이 공존 불가능해 보이는 마가(MAGA) 파벌들을 결속시키는 데 필수적”이라고 했다. 허술한 것 같지만 영리하고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부처 업무보고 발언이 생중계로 알려지면서 구설에 올랐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과는 ‘책갈피 외화 반출 전수조사’를 둘러싸고 “천하의 도둑놈 심보”라며 설전을 벌였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겐 학계에서 위서(僞書)로 정리된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대해 “문헌이 아니냐”고 물었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들을 상대로 한 공격적인 발언이었지만 감히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여권은 4심제, 내란전담특별재판소 설치, 대법관 증원, 법왜곡죄 신설, 검찰 해체를 사법개혁이라며 추진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둥인 삼권분립 원칙을 위협하는 일이다. 대통령 가족과 측근 비리를 감시하는 특별감찰관 도입은 감감무소식이다. 새 정부 인사에 비선 실세가 관여하고 있다는데 너나없이 침묵하고 있다. 비판을 극도로 싫어하는 보스를 상대로 직언을 거듭하는 트럼프 참모들과 대비된다. 현실감각이 탁월한 실용 대통령을 상대로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이 경직된 분위기를 어떻게 바꿀지 이 대통령은 고민해야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서슬이 퍼럴 때도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는 민심을 전달했다. 그는 “무수히 많은 비공식적 경로와 방식을 통해 김건희 여사와 의대 증원, R&D 예산 삭감, 명태균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요구했다”고 했다. 윤석열은 그를 ‘빨갱이’로 불렀고, 군사령관들에게 “한동훈을 잡아오라. 총으로 쏴 죽이겠다”고 했다. 그 오만과 독선의 비극적 결과가 12·3 불법 계엄이다. 이 대통령의 이너서클에는 한동훈처럼 단호하게 “노(No)”라고 할 사람이 없다. 대통령이 잘못을 성찰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면 계속 독주하게 된다. 내부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고 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 대통령이 언로(言路)를 열면 국민이 편안해진다. 불완전한 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국정의 오류와 허점이 다양한 시각을 통해 발견되고 현실에 맞도록 수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선출된 황제’가 된 지 오래다. 그가 호승심(好勝心)이 앞서 상대를 향해 “천하의 도둑놈 심보”라고 쏘아붙이면 누구도 입을 열기 어렵다. ‘황제’ 한 사람이 만사를 결정하게 되고 공화(共和)의 정신은 소멸된다. 비극의 출발점이다. 와일스는 “트럼프가 항상 내 의견을 존중한다”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했다. 취임 6개월이 지난 이 대통령에게도 “야당과 그만 싸우고 통합의 길을 가자”고 직언하는 ‘얼음공주’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하경([email protected])
2025.12.21. 8:30
마치 대한민국에 유전이나 금맥이 터진 것 같다. 요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 드는 착각이다. 전북 정읍시는 내년 1월 전 시민에게 1인당 30만원의 민생지원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이학수 정읍시장은 “위기를 견디고 있는 시민들께 온기를 드리기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취지는 좋지만 문제는 돈이다. 310억원의 재원이 필요한데 정읍시의 재정자립도는 9.6%에 불과하다. 정읍시뿐이 아니다. 전남 순천시·보성군·고흥군과 충북 보은군·괴산군 등도 민생회복지원금 명목으로 전 주민에게 돈을 뿌린다. 정부·지자체 선심성 정책 남발 통화 급증해 원화값 추락하면 성실한 중산층도 가난해질 것 한국의 기초자치단체가 인건비 등 기본 운영 경비를 스스로 충당하려면 재정자립도가 최소 30%대 후반은 돼야 한다. 하지만 순천만국가정원 수입 등으로 비교적 사정이 나은 순천시의 재정자립도도 19%에 불과하다. 전국 시 평균(30%대 초반)에 못 미친다. 나머지 보성·고흥·괴산·보은군은 전국 최저 수준이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2024년 말 기준 국가부채가 4632조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이는 GDP(국내총생산)의 181%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하는 공공부채(1738조원)에 국민연금 미적립부채(1575조원), 군인연금 충당부채(267조원), 공무원연금 충당부채(1052조원)를 합친 것이다. 물론 박 의원의 주장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환율 방어에 동원되고 청년임대주택 재원 등 정치적 목적으로 남용될 경우 국가가 연금을 주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이를 수 있다. 가계부채도 세계 최고를 찍었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한국의 가계신용(2248조원)과 전세보증금(1002조원)을 합친 가계부채는 3250조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지난 30년간 모든 정부가 저금리 정책, 대출 규제 완화, 재정 확대 등 총수요 부양정책을 펼쳤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금융위기 압력을 높이고 있다. 올해 9월 기준 통화량(M2)은 4430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무려 352조원이 늘었다. 경기 부양을 위한 돈 풀기는 원화가치를 추락시키는 주범이다. 감사원이 새출발기금 감면 실태를 감사한 결과 월소득이 8084만원인데 빚 2억원을 감면받거나 4억3000만원의 가상자산을 보유하고도 1억2000만원을 탕감받는 등 ‘도덕적 해이’ 사례가 무더기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가난한 사람이 비싼 이자를 적용받는 것은 금융계급제”라고 질타했다. 이 때문에 고신용자보다 저신용자의 금리가 낮아지는 왜곡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또 탈모·비만치료제를 건강보험에 적용하는 방안을 지시했다. 해당자는 좋겠지만 건강보험 재정지출이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늘어난 재정 부담은 주로 소득과 자산이 중간을 넘는 계층이 지게 된다. 문제는 중산층 이상도 세금과 사회보험 부담이 과중하면 빈털터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통계청 기준 상위 1%의 순자산은 33억원이다. 이 중 부동산을 뺀 금융자산은 6억원 정도다. 이들은 은퇴 후 근로소득이 없어져도 부동산 보유세와 건강보험료로 연간 수천만원을 내야 한다. 상위 1% 순자산가도 은퇴 후 고정수입이 없다면 여생(평균 30여 년)을 마치기 전에 가진 돈을 전부 써버려 서민층으로 추락할 수 있다. 공짜 점심을 먹으면 그때는 좋겠지만 나중에 그보다 더 비싼 청구서를 받게 된다. 돈을 풀면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물가는 오르게 된다. 인플레이션은 서민층에 가장 가혹한 세금이다. 부자는 부자대로 세금을 피해 해외로 탈출할 것이다. 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 그리고 유럽의 복지국가에서 우리가 이미 목격한 현실이다. 포퓰리즘은 싸구려 마약 ‘펜타닐’ 같은 것이다. 이에 중독되면 인간은 자율 의지를 잃은 좀비처럼 정부가 주는 최소한의 구호물품을 구하러 거리를 비틀거리며 배회하게 될 것이다. 정철근([email protected])
2025.12.21. 8:28
1811년 영국, 밤의 적막을 깨고 직물 공장에 횃불이 날아들었다. ‘러다이트 운동’의 시작이었다. 역사는 이를 기술 진보를 거부한 기계 파괴 폭동이라 기록했지만, 사실 그들이 부수려 했던 것은 기계 자체가 아니었다. 그들은 기술 전환이 초래할 파국적 빈곤을 방치한 ‘사회의 무책임’에 돌을 던진 것이다. 기계가 인간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비정한 시스템에 대한, 생존을 건 저항이었다. 200여 년이 흐른 지금, 기시감이 느껴진다. 대한민국은 ‘세계 3대 인공지능(AI) 강국’을 향해 국가적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수백조 원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와 규제 혁파는 시급한 생존 전략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청사진엔 결정적인 질문이 간과되어 있다. 기술 엔진의 출력을 높이는 투자만큼, 그 속도에 튕겨 나갈 사람들을 위한 안전망은 과연 준비되어 있는가. 기술 혁신 과정에서 실직자 양산 ‘AI 영향평가’로 복지·고용 챙겨야 커지는 디지털 불평등 방치 안 돼 기술 낙관론자들은 반문한다. “혁신은 결국 낡은 일자리보다 더 많은 새 직업을 만들고 인류를 진보시키지 않았나?” 하지만 이 매끈한 거시적 명제는 잔인한 함정을 품고 있다. 구산업 붕괴와 신산업 태동 사이의 아득한 시차, 바로 그 전환의 계곡에서 질식해가는 구체적인 삶들은 통계 숫자 뒤로 철저히 지워진다는 사실이다. 인류라는 종(種)의 차원에서는 진보일지 모르나, 그 과도기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현실의 개개인에게 기술 혁신은 삶 전체의 파탄을 의미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혜택이 돌아간다는 말은 당장 생계가 끊긴 가장에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 한국은 빈약한 안전망 탓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라는 비극을 안고 있다. 직업 상실이 곧 사회적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세상에서, AI가 초래할 고용 불안은 빈곤을 넘어 목숨을 위협하는 치명적 뇌관이 될 수 있다. 대비 없는 낙관론은 폭력이다. 우리는 화려한 발전의 수레바퀴 아래 깔린 개인의 호소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 경고등은 이미 켜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선진국 일자리의 60%가 AI 영향권이라 했고, 한국은행은 청년 고용 감소의 대부분이 AI 노출 산업에 집중됐다고 분석했다. 기술 진화 속도가 사회 조정 능력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지체가 아니라, 사회 안전 시스템의 붕괴를 예고하는 전조다. 이제 AI 시대의 복지는 시혜를 넘어, 이 고통스러운 전환기를 건너게 해줄 사회적 교량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사회적 대응이 시급하다. 첫째, 가장 시급한 과제는 공공 영역의 ‘AI 영향평가’ 제도화다. 복지, 고용 등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공공 영역에 AI를 도입할 때, 인권에 미칠 치명적 영향을 사전에 검증해야 한다. 이미 유럽연합(EU)은 ‘AI 법’을 통해 고위험 AI에 대한 기본권 영향평가를 의무화했고 미국도 안전장치 마련을 지시했다.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알고리즘이 소외계층을 차별하는 디지털 불평등을 방치해선 안 된다. ‘선(先) 검증 후(後) 도입’ 원칙은 필수다. 둘째, 복지의 패러다임을 사후 구제에서 예방적 개입으로 전환해야 한다. AI는 역설적으로 위기 징후를 가장 먼저 포착하는 도구가 된다. 연체 기록, 에너지 사용량 급감 등 데이터 신호를 분석해 가계 파산 전 개입하는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반도체 공장 건설만큼이나 시급한 사회적 투자다. 셋째, AI와 공존할 인간 고유성에 투자해야 한다. 지식 처리는 AI에게 맡기되,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공감과 돌봄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 AI 시대 인간의 자리를 묻고 그 역량을 기르는 교육만이 대량 실업이라는 디스토피아를 막을 방파제가 된다. 마지막으로, 기업이 국민 데이터를 학습 연료 삼아 창출한 혁신 이익을 사회안전망 재원으로 환류하는 데이터 배당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 기술은 미래로 나아가는 엔진이며, 사회안전망은 공동체 가치를 조향하는 핸들이자 주위를 돌아보게끔 속도를 조절하는 브레이크다. 제어 장치 없는 고성능 자동차는 위험하다. 200년 전 러다이트의 교훈은 명확하다. 진정한 AI 강국은 기술 고도화만 이룬 나라가 아니라, 그 기술이 초래할 전환기의 고통을 조율하고 인간의 복지와 동행할 품격을 갖춘 나라다. 혁신을 향한 투자만큼 사람을 보호하는 시스템 구축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리셋코리아 불평등해소 분과위원장
2025.12.21. 8:26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후 대학 수시모집 합격자 등록이 마무리됐다. 오는 29일 대학 정시모집 원서접수가 시작된다. 예나 지금이나 수능 만점자를 포함해 지방 고교를 다니며 좋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은 지방 의대가 아니라면 상당수가 서울 상위권대를 지원할 것이다. 거꾸로 서울 상위권 학생들의 지방행은 지역 의대에 진학하는 경우 정도다. 지방 우수 인재들이 고교 졸업 무렵 상경한 뒤 직장을 잡고 평생 수도권에 산다.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겠지만, 지방에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고 경제·문화 인프라와 사교육 시설까지 서울과의 격차가 너무 큰 게 한국의 실상이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했으니 지방에 사는 이들이 자식의 상경을 싫어할 리 없겠지만, 요즘 같아선 참으로 허탈할 것 같다. 자고 일어나면 오른다는 서울 집값을 뉴스로 접하다 보면 낭패감이 들 수밖에 없다. 강남 한강변 아파트가 평당 2~3억 한다는 뉴스에 놀랐는데 '신고가 행진'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한다는 소식이 이어진다. 지방은 광역시일지라도 미분양이 쌓이고, 부동산을 투자로 접근할만한 지역이 극소수다. 그래서 요즘 부동산 업계에선 “지방 현금 부자들이 ‘반포’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매입하려고 대기 중”이라는 말까지 돈다고 한다. 그나마 임대료를 낼 수 있어서인지 지방 도시에 가보면 어지간한 건물에 의원·병원 간판만 즐비하다. 수도권이 돈과 사람을 빨아들이는 와중에 대전·충남 통합 움직임이 본격화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민주당 대전·충남 국회의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대전·충남을 통합하고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 자치단체장을 선출하자고 말했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지역 경쟁력 강화와 수도권 집중 완화를 위해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과 지역 의원들이 논의를 이어왔으며 관련 특별법도 국민의힘 주도로 이미 발의한 상황이다. 대전·충남은 수도권과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과학 단지와 반도체 단지 등 지역 경쟁력을 살릴만한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충청은 특정 정당에 몰표를 주지 않고 선거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며 수도권과 비슷한 경향을 보이곤 했다. 대전충남특별시의 등장은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하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재명 정부는 ‘수도권 1극’을 동남권(부산·울산·경남), 중부권(대전·충청), 대경권(대구·경북), 서남권(전북·광주·전남), 강원·제주권 등 '5극3특 초광역권'으로 바꿔 지역별 성장엔진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산업부는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내년 2월 5극3특 권역별 성장엔진 산업을 선정해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남부권 반도체 혁신 벨트 구축을 위해 첨단 패키징(광주), 전력반도체(부산), 소재·부품(구미) 등 특화 클러스터 조성과 충청-호남-영남을 잇는 배터리 트라이앵글 특화단지 조성 등이 열거됐다. 정부가 균형 발전을 우선순위에 두고 정책 수단을 집중하겠다고 나선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기존 인프라 수준을 볼 때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도전이 없이는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더욱이 정권이 바뀌면 또 그럴싸한 청사진을 선포하고 과거 정부 정책은 온데간데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돈·인재 빨아들이는 수도권 세종시 전국서 차로 2시간 이 대통령, 개헌 시동 걸어야 그래서 이재명 정부가 행정수도 세종 이전까지 본격 추진했으면 한다. 조만간 용산에서 청와대로 집무실을 옮기는 이 대통령은 세종시 행정수도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었다. 행정수도 명문화 개헌, 대통령 세종집무실 및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 조속 추진, 미이전 공공기관 이전과 법원 설치 등이다. “국가균형발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최우선 과제이며, 행정수도 세종시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균형발전 꿈이 깃들어 있는 도시”라며 국토 대전환을 약속했었다. 대통령실 참모진의 3분의 1이 강남에 부동산을 갖고 있는 마당에 규제를 쏟아내 봤자 유례 없는 아파트 값 고공 행진만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전국 어디에서나 차로 2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로 행정수도를 옮기는 변혁을 시도할 만하다. 신행정수도를 중심에 두고 영·호남과 강원 등으로 산업 시설이 자리 잡을 때 5극3특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 대통령의 정원오 성동구청장 띄우기에 이어 대전충남특별시가 되면 현재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들이 있는 자리를 민주당 인사로 바꿀 수 있다는 선거 전략 차원이라는 일각의 시선은 거론하고 싶지도 않다. 대통령으로서 국가 개조를 위한 개헌 작업 등에 나서주기 바란다. 김성탁([email protected])
2025.12.21. 8:24
원화 가치 저평가, 언제 해소될까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70원 안팎의 높은 수준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고 있다. 정책 당국은 외환 건전성 부담금 한시적 면제, 금융기관 외화예금 초과지급준비금에 한시적 이자 지급,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연장 등 동원 가능한 정책 수단을 내고 있지만, 환율 수준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환율은 글로벌 자본 이동, 교역 상대국의 경제 및 통화 정책, 위험 선호도의 변화 속에서 상대적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환율의 방향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환율을 결정하는 기본 여건(fundamentals)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원-달러 환율 1480원까지 터치 11월 기준 원화값 13% 저평가 환율 방향 가르는 미 달러 가치 ‘3A 성장’ 한계로 하락 전망 속 한미 금리차 줄고 경상수지 흑자 원화 강세에 우호적 작용할 전망 원-달러 환율을 설명하는 핵심 변수는 5가지로 요약된다. 달러 인덱스, 엔-달러 환율, 위안-달러 환율,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 경상수지다. 이 변수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환율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한다. 이들 변수를 이용해 회귀분석을 해보면 지난달 말 기준 원화 가치는 13.4% 저평가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현재 환율 수준이 과도하게 높은 수준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저평가 상태가 곧바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시기에 따라서 환율은 저평가 상태로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향후 환율 변동의 동력이 무엇인가다. 2009년 1월~2025년 10월 데이터를 대상으로 동일한 변수를 활용해 벡터자기회귀(VAR) 모형을 구성하고 분산 분해를 해보면, 1~12개월 이후 원-달러 환율 변동의 기여율은 달러 인덱스가 58.2%로 압도적으로 높다. 엔-달러 환율은 2.2%, 위안-달러 환율은 2.8%, 한·미 금리 차는 1.9%, 경상수지는 2.8%에 불과하다. 나머지 32.2%는 원-달러 환율 자체의 결정 요인, 즉 단기 수급과 시장 심리 등이다. 이 결과는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단기적으로는 외환시장의 수급이나 심리가 환율을 좌우할 수 있지만, 중기적인 방향은 결국 달러의 방향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원화 가치 저평가가 언제 해소될지를 판단하려면, 달러 약세가 구조적으로 가능한 환경인지부터 점검해야 할 것이다. 미국, AI 투자가 성장·자산 시장 견인 2026년 미국 경제 전망을 고려하면 달러 가치가 하락할 확률이 높다. 2025년 미국 경제는 ‘인공지능(AI) 투자→자산가격(Asset Prices) 상승→부유층(Affluent)의 소비’로 이어지는 이른바 ‘3A 성장’ 구조에 의해 지탱됐다. 성장의 출발점은 단연 AI 투자였다.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를 중심으로 한 AI 생태계는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 경쟁과 초대형 데이터센터 건설 붐을 촉발하며 전례 없는 규모의 설비 투자를 유도했다. 실제로 미국의 설비 투자 비중은 세계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10.5%까지 하락했으나, 올해 상반기에는 15.3%로 급등했다. 이는 2000년 정보통신(IT) 거품 정점 당시의 11.5%를 크게 웃돌 뿐만 아니라 사상 최고치다. 문제는 이번 투자 사이클의 성격이다. 과거 제조업이나 IT 투자 확대는 생산성 향상과 고용 증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번 AI 투자의 상당 부분은 서비스 상용화 이전 단계에서 인프라를 선점하는 데 집중돼 있다. 단기간에 현금 흐름을 창출하기보다는 미래 성장 기대에 기반한 선행 투자 성격이 강하다. 이는 기술 혁신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투자 성과가 지연될 경우 기업 재무 구조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AI 투자 확대는 곧바로 자산시장으로 전이됐다. 지난 10월 S&P500 지수는 6920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가계는 금융자산의 절반 이상을 주식 형태로 보유하고 있어, 주가 상승은 강력한 자산 효과를 만들어냈다. 지난 6월 기준 미국 가계의 금융자산은 134조5000억 달러, 부동산 자산은 53조2000억 달러로 모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자산 가격 상승은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통해 소비를 자극했다. 특히 전체 소비의 약 40%를 차지하는 소득 상위 10% 계층의 소비 증가가 두드러졌다. 소비가 GDP의 69%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 구조에서 자산 시장 호황은 경기의 핵심 방어막 역할을 했다. Fed 금리 인하, 달러 약세 이어질 듯 그러나 이 구조는 동시에 취약점도 내포하고 있다. 최근 소비 기반이 임금 상승이나 고용 개선보다는 자산 가격 변동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산 가격, 특히 주가가 고평가 영역에 있다. 2025년 2분기 기준 미국 전체 주식 시가총액은 GDP 대비 32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광의통화(M2) 대비 시가총액 비중도 454%로 IT 거품(2000년 1분기 443%) 당시를 상회했다. S&P500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5배 내외로 장기 평균인 16배를 크게 웃돌고 있고,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술주가 전체의 약 40%를 차지하는 극단적인 쏠림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자산 가격이 조정 국면에 들어서면 소비 위축이 빠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며, 이는 실물 경제 전반으로 부정적 파급 효과를 확산할 수 있다. AI 투자 기대가 약화하거나 자산 가격이 조정 국면에 진입할 경우 ‘주가 하락→부유층 소비 위축→경기 둔화’로 이어지는 경로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 경우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경기 방어를 위해 금리 인하 폭을 확대할 수밖에 없으며, 2026년 기준금리가 3%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금리 인하는 장기 금리 하락과 달러 약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2025년 12월 현재 4%를 웃돌고 있는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2026년에 3%대 중반까지 하락할 여지가 있다. 여기에 과도한 정부 부채와 누적된 대외 불균형은 달러화에 구조적인 약세 압력을 더할 것이다. 2024년 말 108.49였던 달러 인덱스가 2025년 9월에 97수준까지 하락한 데 이어, 2026년에는 90 이하로 내려갈 확률이 높다. 두 번째 변수는 미·일 금리 차의 축소 가능성이다. 지난 몇 년간 엔화 약세의 가장 중요한 배경은 미국과 일본의 통화 정책 차별화였다. 미국 Fed가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기준금리를 5.5%까지 끌어올렸지만, 일본은행(BOJ)은 초저금리 정책을 고수하며 미·일 기준금리 차는 2015년 11월 0.25%포인트에서 2023년 7월에는 5.5%포인트까지 확대됐다. 이는 엔화를 차입해 고금리 통화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를 확산시키며 엔-달러 환율을 2024년 6월에는 160엔 이상으로 밀어 올렸다. 금리 올리는 일본, 엔화 가치 상승 전망 그러나 이러한 환경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미국 경제는 앞에서 본 것처럼 ‘3A 성장’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소비 둔화로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고, Fed는 금리를 더 내릴 전망이다. 반면 일본의 통화 정책 방향은 정반대다. 지난주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0.5%에서 1995년 이후 최고 수준인 0.75%로 인상했다.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고 내년 춘투(春鬪)에서 임금 인상률이 5% 안팎에 이를 전망인데, 이 경우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 미·일 기준금리와 더불어 시장금리 차이가 더 줄어들 것이라는 뜻이다. 2010년 이후 미·일 10년 국채수익률 차이와 엔-달러 환율의 상관계수는 0.69에 달한다. 미·일 금리 차가 줄어들수록 엔화가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시장의 기대가 한쪽으로 기울 경우, 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면서 엔화 가치가 급격하게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 번째는 중국이다. 중국은 수출과 투자 중심의 성장 모델에서 소비 중심으로 구조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위안화의 과도한 약세를 용인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중장기적으로는 위안화가 점진적인 강세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네 번째는 한·미 금리 차다. 한국은행은 당분간 기준금리를 2.5% 수준에서 유지할 가능성이 크지만, Fed의 금리 인하로 한·미 금리 차는 자연스럽게 축소된다. 이는 원화 강세에 우호적인 요인이다. 다섯 번째는 경상수지다. 한국은행의 2025년 11월 ‘경제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올해 1150억 달러, 내년에는 1300억 달러로 연이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상수지 흑자만큼 직접투자와 증권투자 등 금융계정을 통해 달러가 해외로 나가고 있지만, 경상수지 흑자는 중장기적으로 환율 안정의 핵심 버팀목이다. 물론 한·미 관세 협상 결과에 따른 3500억 달러(연간 최대 2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는 외환시장 수급 불안 요인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내년 6월 원화값 달러당 1412원 예상 경제 변수, 특히 환율 전망은 매우 어렵고 틀리기 쉽다. 단기적으로는 지정학적 리스크나 시장 심리에 따라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달러 약세 및 엔화와 위안화 강세 가능성, 한·미 금리 차 축소, 대폭의 경상수지 흑자라는 근본적 요인을 종합하면, 원화의 저평가는 2026년 들어서면서 점진적으로 해소될 전망이다. 블룸버그 컨센서스(2025년12월19일, 국내외 28개 금융회사 전망치 중앙값)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 예상치는 내년 6월 1412원, 12월 1400원, 2027년 말 1350원이다. 원-달러 환율을 결정하는 앞의 5가지 요인으로 평가하면 2025년 11월 적정 환율은 1270원 안팎이다. 수년간 글로벌 통화 환경의 변화 속에서 흔들렸던 원-달러 환율은 천천히 이 수준으로 접근할 확률이 높다. 김영익 전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2025.12.21. 8:22
모든 생명체는 탄소화합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은 물론이고 동물·식물·세균까지 모두 수많은 탄소화합물의 집합체다. 단백질·핵산·지방·탄수화물 등 세포를 구성하는 물질들은 탄소를 중심으로 수소·산소·질소·인 등이 다양한 조합으로 결합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우리 몸을 이루는 탄소는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에서 비롯되지만, 그 근원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다.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여 포도당을 만든다. 이것이 다양한 화학적 반응을 거쳐 다른 탄수화물과 단백질·핵산, 지방 등으로 변환된다. 동물은 식물과 반대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만 채식과 육식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따라서 식물은 인간과 동물의 생존에 필수적인 소중한 존재다. 식물이 초록색 잎사귀에서 햇빛 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로부터 포도당을 만드는 화학 반응을 광합성이라고 한다. 식물이 동물과 달리 이런 기적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식물세포 속에 엽록체가 가득 들어 있기 때문이다. 엽록체가 붉은색과 파란색 빛을 흡수하고 초록색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식물은 녹색을 띠게 된다. 엽록체는 식물세포 내에 존재하는 작지만 놀라운 공장이다. 생태계, 탄소·산소 순환사이클 CO2 마시고 산소 내뿜는 식물 가장 효율적인 탄소흡수 장치 광합성 뛰어난 식물 개발해야 작지만 놀라운 공장, 엽록체 엽록체가 수행하는 광합성은 자연이 설계한 가장 섬세하고 완벽한 에너지 변환 시스템이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땅에서 흡수한 물, 그리고 햇빛이 엽록체 내부에서 어우러져서 6개의 탄소 원자로 구성된 포도당과 산소를 만든다. 동물은 식물이 생산한 산소를 들이마시고, 먹이를 통해 얻은 포도당을 세포 속 또 다른 공장인 미토콘드리아에서 산화해 에너지를 얻는다.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호흡을 통해 배출된다. 이는 마치 자동차 엔진에서 또 다른 탄소화합물인 가솔린이 산소와 격렬히 반응해 산화하면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가솔린이 지닌 화학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변환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식물은 동물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여 탄수화물과 산소를 만들면서 탄소와 산소의 순환 사이클이 이어진다. 흥미롭게도 엽록체는 식물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전혀 다른 세균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과학자들은 엽록체가 먼 과거, 자유롭게 살던 광합성 세균이 원시 식물세포에 포획되어 공생 관계를 이루면서 생겨났다고 본다. 수억 년 동안 두 생물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고, 결국 하나의 세포 안에서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동반자가 되었다. 엽록체가 세포핵 DNA와는 별도로 고리 모양의 자체 DNA를 가지고 있는 것도 이 오래된 동거의 흔적이다. 공교롭게도 미토콘드리아 역시 수억 년 전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세균이 원시 진핵세포에 포획되어 공생하면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미토콘드리아도 세포핵 DNA와 별개로 고리 모양의 자체 DNA를 가지고 있다. 모든 동물 세포 안에 수백, 수천 개씩 들어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이용해 포도당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얻고 부산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한편 식물세포 내에 존재하는 엽록체는 햇빛 에너지와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포도당과 산소를 만든다. 서로 다른 세균에서 유래한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가 마치 탁구 하듯이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주고받는 것이다. 엽록체는 지구 환경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후위기가 심화하는 지금,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식물과 엽록체는 인류를 지켜주는 중요한 방패다. 유엔 산하기구 IPCC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산림과 농작물이 연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는 각각 76억t, 60억t에 달한다. 육상 식물이 연간 136억t의 이산화탄소를 대기에서 제거하는 셈이다. 바다와 식물성 플랑크톤도 매년 100억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반면 인류가 한 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370억t이 넘는다. 세계 각국의 감축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출량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으며, 그 결과 매년 130억t 넘는 이산화탄소가 쌓여 지구 온도를 높이고 있다. 탄소포집 기술 경쟁하는 세계 이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동시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직접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그중 가장 주목받는 기술은 직접공기포집(DAC·Direct Air Capture)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물리적, 화학적 방식으로 흡수해서 고체화한 후 이를 지하에 영구 저장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0.04%로 희박해서 이를 포집하려면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전기를 사용하면 오히려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문제가 있고 DAC 시설 설치와 유지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에 비해 식물과 엽록체는 가장 오래되고 효율적인 탄소 흡수 장치다. 식물은 전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만 흡수해 식품·사료·목재·펄프 등 인간에게 필요한 자원을 생산한다. 많은 의약품 역시 식물에서 비롯된다. 만약 광합성 효율을 높인 식물을 개발할 수 있다면, 가장 친환경적이고 비용 효율적이며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탄소 저감과 식량 안보를 동시에 강화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방식을 ‘녹색탄소포집’(GCC·Green Carbon Capture)이라 부른다. 아직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고 절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고, 꼭 해야 하는 일이다. 김진수 KAIST 교수
2025.12.21. 8:20
지난 18일 도쿄역에서 야마가타(山形)현으로 향하는 신칸센을 타고 꼬박 3시간. 종착역 신조(新庄)에 내려 또다시 차로 20여분을 달리자 인구 약 3700명의 도자와(戸沢) 마을을 관통하는 강줄기가 맞이한다. 일본 3대 급류로 꼽히는 약 230㎞ 길이의 모가미(最上)강이다. 뱀처럼 구불거리는 모가미강을 내려다보는 나지막한 언덕엔 낯익은 처마와 기와, 단청으로 치장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고려관(高麗館)이다. 국도 47호선에 붙어있는 이곳은 한국으로 치면 도로 휴게소에 해당하는 ‘미치노 에키(道の駅)’다. 넓은 주차장에 붙어있는 음식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간판엔 일본어로 ‘본고장 한국의 맛, 한류식당’이라고 쓰여있다. 고소한 부침개 냄새가 진동하는 가게 안에선 손님 서넛이 돌솥비빔밥과 김밥, 부침개를 먹고 있다. 대형 안내판엔 한글과 영어, 일본어로 된 고려관 소개가 적혀있다. ‘음식문화관, 민족문화관, 놀이마당, 휴게소 도자와의 역사(驛舍), 산사태 자료관 등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모가미강의 흐름이 고대 한반도 문화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우호친선의 교류의 폭을 더욱 넓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계단을 향해 발길을 옮기자 이번엔 정겨운 얼굴의 해태 두 마리가 반긴다. 거대한 용이 새겨진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고려관(高麗館) 현판이 붙어있는 건물이 나타났다. 현판은 38년간 한·일 관계 구축에 공헌한 김태지(1935~2025) 전 주일 한국대사가 쓴 것으로 한국에서 제작해 가져왔다. 흥겨운 K팝이 흘러나오는 역사 안은 한국 가게를 그대로 가져왔다고 해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한국 제품으로 가득했다. 김치, 6년근 홍삼음료는 물론 빨간 고무장갑, 한국 소주와 라면, 양은냄비, BTS(방탄소년단) 사진까지 빠짐없이 갖춰져 있었다. 여행길에 도로를 지나가다 한국식 건물이 보여 들어왔다는 젊은 부부는 “한국 물건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며 즐거운 표정으로 물건을 둘러봤다. 판매점을 지나 긴 복도를 따라가면 한국 식당인 ‘코리나(Colina)’로 이어지는데 한쪽엔 한복체험장이 마련돼 있다. 쓰치다 후미코(土田文子) 역장(驛長)은 다양한 한복을 보여주며 “보다 많은 사람이 한국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복을 늘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작은 시골 마을에 왜 고려관이 들어서게 된 것일까. 가토 후미아키(加藤文明) 도자와 촌장은 ‘풀뿌리 국제 교류’를 이유로 꼽았다. 1985년부터 충북 제천 송학면과 교류를 시작한 데 이어, 비슷한 시기 영농 후계자 감소를 고민하던 마을이 직접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에 나선 것이 계기가 됐다. 이 덕에 한국과 필리핀 며느리가 생겨났는데, 그 가운데서도 한국 며느리가 가장 많았다. 한때 70명에 달하는 많은 한국 며느리들이 생겨나면서 자연스레 문화 교류 속도가 빨라졌다. 솜씨 좋은 며느리들이 김치를 담그고 한국 음식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88올림픽이 끝난 이듬해에 도자와로 시집와 두 아이를 낳은 오오토모 순호(大友淳浩·64)씨는 고려관 설립 초창기를 함께 했다. 그는 “한국 며느리가 많아지면서 일본 사람들이 고려는 잘 모르니 고려를 알려주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한국과의 문화 교류에 적극적인 촌장이 강변 구릉지에 고려시대 궁궐을 본뜬 고려관 설립을 추진하면서 고려관 건설이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약 3만6000평에 달하는 부지에 당시 투입된 비용은 우리 돈 약 100억원. 5년에 걸친 공사 끝에 고려관이 97년 문을 열며 이곳은 마을 활성화를 위한 중심지가 됐다. 한국 며느리들이 담그기 시작한 13종류에 달하는 김치도 한 몫 했다. ‘우메찬’ 김치 브랜드를 일궈 일본 전역으로 확장한 김매영(일본명 아베 우메코·64)씨도 그중 한 명이다. 한국 며느리들이 만든 김치는 고려관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는데 ‘본고장 맛’이란 입소문에 인기를 끌었다. 한국을 테마로 한 이색 시설을 보기 위해 관광버스를 대절해 학생들이 찾아올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라는 시대 흐름이 이어지면서 고려관에도 위기가 닥쳤다. 마을 인구는 고려관 설립 당시의 절반으로 줄었고, 건물 등 시설 노후화로 인한 보수와 재정 문제까지 불거졌다. 전체 시설 운영을 4명이 담당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하자 도자와 마을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가토 촌장은 “재일본 대한민국 야마가타현 민단 본부 지원 등으로 유지 관리를 해왔지만 규모가 커 전면 수선은 이뤄지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마을 시설인 고려관의 위탁운영을 맡고 있는 모가미쿄바쇼(最上峡芭蕉)라인 관광주식회사에 따르면 연간 방문자 수는 2023년만 해도 6만5004명에 달했지만, 지난해엔 5만6667명으로 줄었다. 최근엔 인근에 고속도로까지 개통하면서 방문자 수가 약 9% 감소했다. 쓰치다 역장은 “고려관은 정말 소중한 존재”라며 “고려관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봄과 가을에 코스프레 행사를 열고 1년에 한 번 랜턴 페스티벌을 여는 등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지만, 방문객을 대규모로 불러오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최근엔 고려관의 안타까운 사정이 재일 동포 사이에 알려지면서 관심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고려관을 보기 위해 오사카에서 찾아온 재일본한국인총연합회 방성민 기획분과 위원장은 “고려관 활성화를 위해 동포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려관 쇠락을 바라보는 ‘한국 며느리’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질 못했다. 오오토모씨는 “고려관이 되살아나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한인타운에 버금가는 명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매영 대표도 “야마가타현에만 2500명의 동포가 있다”면서 “고려관이 동포들의 친정 같은 곳이 되고, 한·일 우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현예([email protected])
2025.12.21. 8:18
1조758억 달러(약 1588조원). 올 1~11월 중국의 무역흑자 규모다. 연간 무역흑자 1조 달러 돌파는 사상 처음. 누구도 못했던 일을 중국이 지금 해내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도 그들의 수출 ‘욕망’을 꺾지 못한다. 이 기간 중국의 대미 수출은 18.9% 줄었지만, 전체 수출은 오히려 6.2% 늘었다. ‘미국 없어도 수출에 아무런 문제 없다’는 그들의 호언이 빈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은 동남아·중남미·아프리카 등을 더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이웃 궁핍화 전략(Beggar-thy-neighbor)’이다. 중국은 다 한다. 임가공 제품인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첨단 전기차까지, 모든 기술 단계의 상품을 만들어 수출한다. ‘공급과잉 제품을 덤핑으로 밀어내고, 인위적인 위안화 저평가로 경쟁국을 압박한다’는 비난을 듣는다. IMF는 이 방식이 중국 경제의 불균형을 심화하고, 글로벌 성장을 둔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중국도 방어 논리가 있다. ‘수출 증가는 정상적인 국제 분업의 결과요, 기업의 제품 혁신이 시장을 만들고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들은 또 ‘소비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매년 내수 확대를 경제 정책의 우선순위로 올려놓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크리스마스트리를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다. 오는 2030년까지 경제 운용 계획을 담은 ‘15·5 규획’은 완구·가구 등 전통산업의 도태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내륙으로의 이전, 디지털화를 통한 생산 효율 향상 등 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중국이 임가공 산업을 쥐고 있으니, 주변 저개발 국가의 산업은 숨 막힐 지경이다. 기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첨단기술 분야 중국 정책의 핵심은 자립이다. 독자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반도체·로봇·인공지능(AI) 등 분야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한국·일본·대만 등에 의존했던 중간재(부품)도 이젠 혼자 다 하겠다고 나선다. 미국의 기술 압박이 이를 가속한 측면도 있지만, 어쨌든 중국은 이웃 국가와 제조 공정을 나눌 뜻이 없다. 우리나라의 대중 교역이 2023년 이후 적자로 돌아선 근본 이유다. 혼자 모든 산업을 다 하겠다고 달려들고, 주변국과의 공정 분업도 줄여가고 있다. 그 결과가 1조 달러 무역흑자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중국은 지금 이웃을 거지로 만들고 있다. 우리 역시 기술 없으면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우덕([email protected])
2025.12.21. 8:16
현대미술과 제도 비평을 주로 다뤄왔지만, 나의 인문학적 관심은 역사와 기억을 향해 있다. 30여년간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융합적으로 다루어온 리움미술관에서의 경험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물건이나 공간에 자연스럽게 끌린다. 근·현대사의 기억이 남아 있는 건물이나 오래된 마을, 사찰과 성당을 즐겨 찾기도 한다. 경제적 효율과 개발 논리가 우선시되면서 우리가 살아온 삶의 흔적과 기억의 터가 사라져가는 풍경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상실 중 하나다. 서울은 역사와 기억 축적된 땅 성장 위한 개발 불가피하지만 구도심의 골격과 구조 살펴서 서로 다른 시간 공존하게 해야 최근 종묘 앞 대규모 개발 논쟁을 지켜보며, 500년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서울을 우리가 역사 도시로서 체감하며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간 정부는 문화유산의 가치 회복을 위해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와 경복궁·청계천·한양도성의 복원 사업 등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하지만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전통적 경관은 점차 도심 속에 고립되어 가고 있다. 조선의 건국과 함께 수도 설계를 주도한 정도전은 유학자로서 한양도성과 궁궐, 종묘와 사직, 사대문의 위치와 명칭에 이르기까지 조선 사회가 구현하고자 한 통치 질서를 도시 공간 속에 담아내려 했다. 리움에서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2015) 전시를 기획하며 한국의 전통건축뿐 아니라 서울 도심의 과거 역사를 깊이 들여다본 경험이 있다. 당시 ‘한양도성도’와 ‘동궐도’, 경복궁과 육조거리 모형, 종묘를 주제로 한 영상과 서울의 지형 변화 자료 등을 통해 우리가 서 있는 땅이 역사와 기억이 축적된 장소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인왕산·북악산·낙산·남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조성된 한양도성 안의 구도심 지형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터를 경영하는 조선시대 국가 이념이 결합된 도시 구상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도성의 핵심축을 이루는 종묘는 조선 왕실의 제례 공간이자 오랜 시간이 축적된 기념비적 건축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에 묻힌 이러한 역사적 숭고함의 의미를 종종 인식하지 못한다. 이번 종묘 논쟁은 단순한 개발의 찬반을 넘어, 서울이라는 역사 도시가 어떤 공간 철학을 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서울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대문 안의 도시재생과 개발을 피할 수는 없다. 문제는 문화유산으로부터 거리 규정과 고도 제한을 정하는 법적·물리적 기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도시 인문학의 관점에서 역사 도시의 정체성과 인간의 삶과 시간이 반복되며 축적된 비가시적 가치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핵심이다. 특히 한양도성 안의 중심부는 그 어떤 곳보다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공공적이며 무형의 가치를 지닌 공간이다. 구도심이 개발에서 뒤처지고 낙후된 배경에는 국가유산과 문화재 보호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해 온 것도 사실이다. 보존 구역에서는 고도 제한과 각종 규제가 불가피하고, 그 부담은 종종 주민과 토지 소유주에게 집중된다. 역사적 공간의 보존이 개인의 희생에 의존할 때, 보존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국가유산청과 서울시 간의 행정적 갈등을 조정하고,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경우에는 규제의 공공성을 사회적으로 분담할 수 있는 보다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보완책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세계화의 결과로 대부분의 도시가 마치 고층 빌딩이나 랜드마크 경쟁처럼 비슷한 도시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역사적인 도시들에서도 전통건축과 현대건축이 조화롭게 화해하지 못한 채 충돌하곤 한다. 『영원의 건축』의 저자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이러한 전통과 현대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관계의 조화’를 강조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개별 건축물의 집합이 아니라, 시간이 축적된 도시 패턴의 지속성이었다. 역사 도시의 품격을 결정하는 것은 건축물의 높이나 새로움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질서를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의 주변 경관 관리에서 ‘맥락’과 ‘조화’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세계의 역사 도시들은 오래전부터 이 질문과 마주해 왔다. 파리는 고도 제한을 통해 도시의 골격과 시선의 흐름을 지켜왔고, 로마와 교토는 현대적 편의의 일부를 포기하면서까지 오래된 도시 구조와 시간의 층위를 유지해 왔다. 그 결과 이 도시들은 과거에 고착된 공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이 현재의 삶 속에서 공존하는 장소로 남아 있다. 문화유산은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시간이 축적된 기억의 구조이자 미래를 지탱하는 공공의 자산이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단절이 아닌 관계 속에서 공존하는 질서를 지켜낼 때, 서울은 역사를 살아 있는 현재로 만드는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준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미술비평가
2025.12.21. 8:14
“태양광 개발 이익을 햇빛의 주인인 주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게 ‘햇빛연금’의 근본 취지입니다.” 장희웅(52) 전남 신안군 신재생에너지국장이 지난 20일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6일 햇빛연금을 모범 사례로 언급하며 “(신안군 담당 국장을) 데려다 쓰는 것을 검토해보라”고 지목한 인물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통해 “신안군 내에서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려면 주민 몫으로 30%가량 의무 할당하고 있지 않으냐. 아주 모범적 형태”라며 햇빛연금의 전국 확산을 주문했다. 햇빛연금은 태양광 발전 이익을 개발자와 주민이 공유하는 정책이다. 신안군은 풍력 이익을 나누는 ‘바람연금’을 합쳐 1인당 연간 최대 600만원을 지급할 방침이다. 현재는 신안군 안좌도와 자라도 등에서 발전소와 거리에 따라 1인당 최대 272만원이 지급되고 있다. 햇빛연금은 박우량(70) 전 신안군수가 2018년 10월 전국 최초로 조례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이후 총 317억원의 햇빛연금이 2021년 4월부터 신안군 인구 3만8835명 중 45%(1만7455명)에게 지급됐다. 2028년 완공 예정인 390메가와트(㎿)급 신안 우이해상풍력 발전소가 가동되면 군민 100%가 햇빛·바람연금을 받게 된다. 신안군의 햇빛연금은 2020년 3만명대로 떨어졌던 인구를 증가세로 돌려세웠다. 매년 급감하던 인구가 연금 지급 후인 2023년과 2024년 각각 179명, 2024년 136명 늘어나더니 올해는 지난 9월까지 710명 증가했다. 지방소멸 위기 상황에서 군(郡) 단위 인구가 9개월 새 700명 이상 늘어난 것은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햇빛연금에 이어 도입된 바람연금은 에너지 이익공유 규모를 크게 늘릴 분야다. 신안군은 2035년까지 임자도 앞바다에 8.2기가와트(GW)급 해상풍력단지가 조성되면 3000억 원대의 바람연금이 생길 것으로 본다. 신안군의 조례대로라면 인구 5만명에게 1인당 햇빛·바람연금 상한인 600만원을 줄 수 있는 규모다. 신안군 안팎에서 “인구가 5만명을 넘어선 안 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햇빛연금은 시행 직후부터 국민 기본소득의 선진 모델로 꼽혀왔다. 사업비 부담 없이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전국 지자체들을 자극했다. 국민의 세금 대신 햇빛·바람으로 재원을 충당할 수 있어 포퓰리즘 논란을 빚고 있는 농어촌기본소득을 뒷받침할 대안으로도 주목받는다. 햇빛연금의 주역인 장희웅 국장은 “섬 지역 태양광 발전소 옆에 여러 채의 새집이 들어서는 걸 보면 햇빛연금 효과를 실감한다. 마치 기적 같다”고 했다. 햇빛연금이 신안군을 넘어 전국 국민에게도 현금을 쥐여주는 기적 같은 햇살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최경호([email protected])
2025.12.21. 8:12
성탄절 기간에만 열리는 임시 장터, 크리스마스 마켓이 가장 활발한 나라는 단연 독일이다. 나라 곳곳의 2500여 장소에서 크고 작은 마켓이 성탄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그 가운데 뉘른베르크는 17세기에도 성행한 유서 깊고 가장 큰 규모의 마켓으로 유명하다. 특이한 벽돌 고딕 건물인 성모교회 앞, 중앙시장 광장에 알록달록 단장한 200여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 들어선다. 대림절부터 성탄절까지 4주간 ‘나무와 천으로 만든 작은 마을’에 각지에서 온 200만 방문객들이 북적인다. 특산 생강빵인 레브쿠헨에 소시지인 브라트부르스트를 곁들여 먹으며 갖가지 장식과 멋진 공예품에 기뻐한다. 마르틴 루터는 성인 축일 중심의 가톨릭 축제에 대응해 예수 탄생을 개신교의 축제로 진흥시켰다. 뉘른베르크는 어린이 전도를 위해 성탄 선물을 나누어 주었고, 어린이는 이 도시 성탄 축제의 중심이 되었다. 축제의 주제도 ‘어릴 적이 있었던 여러분, 오늘 다시 어린이가 되어 보세요’다. 선물을 나눠주는 어린 예수, 크리스트킨들이 축제와 마켓의 상징이다. 왕관을 쓰고 황금 날개를 단 어린 천사의 모습으로 디자인해 도시 곳곳을 장식한다. 16~19세의 금발 곱슬머리 소녀 중에 실제 황금 천사를 선발해 홍보대사 역할을 담당한다. 이 역시도 산타클로스 모델인 가톨릭의 성 니콜라스에 대응해 개신교의 캐릭터로 창조한 것이다. 인근 한스-자흐스 광장에 어린이 마을을 열어 다양한 선물과 놀이기구들을 제공한다. 또한 시청 광장엔 세계의 자매 도시 마켓도 동시에 열린다. 프라하·니스·안탈리아 등 50여 외국 도시에서 참여해 국제적인 축제로 확대했다. 마켓이 열리는 3개의 광장을 지나면 중세 공예품을 제작 판매하는 장인의 광장으로 연결된다. 이들을 중세 성곽이 에워싸고 산 위에는 고성이 자리해 그럴싸한 축제의 배경을 이룬다. 루터에게 크리스마스는 선교와 자선의 절기였지만, 이제는 연대와 나눔의 축제가 되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전 총장
2025.12.21. 8:10
2025년 한국 경제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2속도 경제(two-speed economy)’다. 반도체와 AI 중심의 수출은 급성장했지만, 내수와 고용은 정체 상태다. 올해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기묘한 거시경제 성적표를 받았다. AI 붐은 고성능 메모리와 첨단 반도체 수요를 급증시키며 일부 대기업의 실적과 수출을 예상 밖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제조업 고용은 팬데믹 이전 추세를 회복하지 못했고, 금융·건설·가계 수요 등 내수 부문은 상승 국면에 합류하지 못했다. 자본집약적 생산 구조와 자동화의 진전 속에서 성장의 확산 경로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통화정책의 방향도 바뀌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50%로 유지했지만, 정책 기조는 분명히 매파적(긴축 선호적)으로 이동했다. 가계대출 관리와 원화 약세의 물가 전이 효과가 다시 정책의 중심에 섰다.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고, 인플레이션이나 환율 압력이 재부상할 경우 긴축 재개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현재의 2.50%가 금리 인하의 최종 수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은 이미 이를 반영하고 있다. 10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10월 말 이후 약 0.3%포인트 상승했다. 고금리의 장기화와 함께, 향후 경기 대응의 부담이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주택시장은 여전히 불안 요인이다. 거래는 둔화됐지만, 서울 집값은 상승세를 이어가며 가계부채에 대한 중앙은행의 경계심을 자극하고 있다. 대외 환경도 녹록지 않다. 중국은 관세와 규제 속에서도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며 시장 점유율을 지켜냈다. 그 결과 중급 전자제품과 기계류 등 한국의 전통적 주력 분야는 중국의 확대된 생산능력과 공격적 가격 전략에 직면해 있다. 이는 기초수지를 악화시키고, 자본 유출 압력을 키웠다. 원화가 달러당 1400원을 넘는 수준을 새로운 기준선으로 받아들여지는 배경이다. 문제의 핵심은 성장률이 아니라 연결의 부재다. AI와 반도체가 만들어낸 성과가 금융·내수·고용으로 퍼지지 못한다면 이 2속도 경제는 구조로 굳어진다. 통화정책은 이미 한계에 가까워졌다. 해법은 재정과 산업정책에 있다. 재정은 단기 부양이 아니라 생산성과 고용을 잇는 데 집중해야 하고, 산업정책은 선도 기업을 넘어 중견·서비스 부문으로 기술 확산의 경로를 넓혀야 한다. 금융 규제 역시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성장을 가로막지 않도록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한국 경제는 위기는 아니지만, 방향을 바로잡지 않으면 강한 부문과 약한 부문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장의 혜택이 막힘없이 흐를 수 있는 혈로를 다시 여는 정책적 대전환이다. 루이즈 루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
2025.12.21. 8:08
두 시간째 이어지는 염불 소리가 밴쿠버 퉁린곡위엔(Tung Lin Kok Yuen) 법당을 채우고 있었다. 10여 명의 스님이 합송하는 만다린의 선율이 겹쳐졌다. 토론토에서 밤 비행기를 타고 아침에 도착한 나는 비몽사몽, 옆자리의 낯선 얼굴들과 함께 미숙한 발음으로, 영문으로 표기된 염불문을 더듬으며 따라 읊조렸다. 최근에 타계한 로버트 H N 호(사진)를 기리는 자리였다. 그가 10년 전에 세운 불교학 연구소(Ho Centre for Buddhist Studies)의 현직 소장 자격으로 참가했다. 호의 박애주의는 여러 세대에 걸친 가문의 전통 위에 놓여 있다. 그의 할아버지인 호퉁 경(Sir Robert Ho Tung)은 근세 홍콩을 대표하는 거부이자 자선가로, 교육·의료·구호 사업에 광범위하게 관여했다. 호는 홍콩에서 신문 편집과 언론 단체 활동을 이끌었고, 이후 불교와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한 장기적 후원에 집중했다. 그가 설립한 로버트 H N 호 패밀리 파운데이션은 불교학 연구와 교육, 문화 교류를 핵심 축으로 삼아 북미와 아시아 여러 대학과 기관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왔다. 단발성 기부나 이미지 관리 차원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제도 기반을 마련하는 방식의 후원이었다. 한국 기업과 재단들이 미국 명문대에 한국학 석좌직을 세우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장기 기부가 한국 대학 안에서 뿌리내리는 경우는 드물다. 그날 저녁 리셉션에서 만난 가족들은 소탈했고, 권위의식이 없었다. 찾아온 이들과 차례로 악수와 이야기를 나눴고, 회고 시간에 고인을 둘러싼 기억들이 이어졌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중국의 기부금 문화는 큰 규모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홍콩의 쇼브라더스 영화사 주인인 소일부는 중국의 교육과 수학·의학·천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는데, 그가 지은 도서관 등 건물만 6013동에 이른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2025.12.21. 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