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정리하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정리라면 당연히 주변의 물건을 버리고 재배치하고 하는 일이겠지만 이와 함께 요즘은 마음 정리에도 노력한다. 어찌 보면 물건보다 마음 정리를 더 크게 신경 쓰고 있는 듯하다. 어느덧 한해가 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날이 나이 듦의 무게가 더욱 강하게 어깨에 느껴지고 있어서다. 마음 정리라? 주변 곳곳에 쌓여있는 물건을 치우는 일이야 곁에 커다란 빈 박스 준비해 놓고 눈 딱 감고 휘리릭 버리면 그만이지만 이 마음 정리는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쉽지는 않다. 살아온 날이 길었으니 그만큼 마음에 쌓여있는 감정, 생각, 기억들이 만만치 않다. 이 가운데 불필요한 것, 부정적인 것부터 말끔히 치우고 긍정의 마인드를 묘목처럼 든든하게 심어놓으며 될 터이지만 그게 또 그렇게 간단하게 처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름대로 찾아낸 방법이 책의 도움을 받자는 것이었다. 다행히 마음정화 도움서 가운데 소노 아야코의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소노 아야코의 계로록)’가 좋은 가이드 역할을 한다. 그가 40세부터 쓰기 시작했다는 이 책을 요즘 곁에 두고 읽고 또 읽는다. 94세 나이로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소노 아야코는 일본의 대표적 여류소설가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등 많은 삶의 교훈서를 집필한 다양한 장르의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존경해온 작가라 그의 타계 소식은 큰 슬픔을 주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폭력적 부친 곁에서 자라며 삶의 어두움 가운데 문학을 유일한 의미로 삼았다. 그러던 그는 50세에 희귀 망막 질환으로 작가로서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실명위기에 처했으나 수술이 기적적으로 성공하며 시력을 되찾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새 삶을 되찾은 그는 한국의 소록도를 포함 극한 상황에 놓인 전세계 많은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그 과정에서 경험한 성취와 행복의 비결을 책으로 엮었다. 그래서 그가 권하는 삶의 조언은 상당히 마음에 와 닿는다. ‘마음이 그렇지 않더라도 겉으로라도 항상 웃으며 명랑하게 생활하라’, ‘남의 일, 특히 자녀 일에 끼어들지 말라’, ‘고정 관념을 버려라’, ‘지나간 이야기를 정도껏 하라’, ‘어떠한 경우든 푸념하지 말라, 자신만 비참해진다’, ‘인생에서는 큰 방향을 정하고 나면 사소한 것들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둬라. 쓸데없이 저항하기보다 당당히 삶의 흐름에 따라가라’, ‘세상은 모순투성이 임을 받아들여라. 하지만 이 모순이 생각하는 힘을 준다.’ 이런 소노 아야코의 귀한 권유 중에서도 요즘 특별히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은 ‘말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쉽게 풀자면 만사에 말조심하라는 조언이다. 특히 그는 가족 등 가까운 관계일수록 말조심을 명심하라고 강조한다. 얼마 전 심하게 병을 앓게 됐다는 교인이 털어놓았다. “한 구역원이 기도해 준다며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라고 문자를 보냈는데 오히려 그 날벼락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병이 더 심해진 듯 했다”는 것이었다. 집 근처에 살고 있는 후배가 몸이 불편해 가끔 찾아간다. 건강이 나빠진 후 신앙심이 더욱 견고해 진 그는 볼 때마다 어찌나 긍정적인지 오히려 위로를 받고 온다. 얼마 전 ‘힘들어도 좋은 것만 생각하고 이겨내자’고 문자를 보냈더니 그가 이렇게 답신을 보냈다. ‘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선배가 곁에 계신 것도^^’ 후배가 보낸 단 몇 마디에 갑자기 따뜻한 선배가 된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좋은 말은 분명 선물이다. 마음의 양식이 되는 많은 작품을 내고 세상을 떠난 소노 아야코의 삶의 지혜가 담긴 책을 권한다. 특별히 나이 듦의 무게가 나날이 크게 느껴진다면 분명 삶의 귀한 영양제가 될 것 같다. 유이나 / 칼럼니스트무대와 시선 첫걸음 마음 마음정화 도움 마음 정리 소노 아야코
2025.12.02. 20:23
화사가 2025년에 발표한 신곡 ‘Good Goodbye’의 가사는 통렬하다. “나를 그냥 짓밟고 가/ 괜찮아 돌아보지 마/ 내가 아파봤자 너만 하겠니/ 이젠 너를 헤아려 봐”로 시작하는 노래는 “내 편이 돼 줄 사람 하나 없어도/ Don’t worry, It’s okay/ 난 내 곁에 있을게/ I’ll be on my side instead of you”로 확장된다. ‘난 내 곁에 있을게’ 라는 문장이 심장을 찌른다. 한때 유행했던 자기구조(Self Rescue)의 문장, ‘괜찮아. 나에겐 내가 있잖아!’가 쌓아놓은 옹벽을 덮치며 자기 위로의 슬픔을 배가시킨다. 가슴에 총 맞은 표정으로 “구멍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흘러 넘쳐”, 라고 울먹이는 백지영 노래 버전이 발전하여 자기구제(自己救濟)에 이른 후렴구 같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연인과 헤어지고 돌아온 날 밤, 명시 한편이 탄생한다.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다(Tonight I Can Write the Saddest Lines)’. 사랑은 너무 짧고, 잊는 것은 너무 길다고 한탄하는 이 시는 이별의 선언이 아니라, 이별을 받아들이기 위한 숨 고르기였다. 시작은 그에게 이별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별을 견디기 위한 방식이었다. 이별 후에야 비로소 깨닫는 감정이 있다. 연인과의 이별이 슬픈 이유는 이미 떠난 사람을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떠난 뒤에도 그 감정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사라진 사람보다 내 안에 남은 기억이 더 완고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울림은 함께 있을 때보다 떠난 뒤에 더 크다. 네루다는 그 울림을 기록했고, 그 울림은 여러 사람의 가슴속에서 되살아나 명시가 되었다. 오래전, 두 번 연속으로 보았던 영화가 ‘리틀 포레스트’다. 연인과의 이별을 결심한 주인공이 고향을 찾은 표면적인 동기는 배고픔이다. 하얗게 오르는 김 속에 식향까지 배어있는 듯한 요리 시리즈는 육신의 배고픔이 아니라 영혼의 허기를 달래주는 메타포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서울 사는 딸이 7년간의 사랑을 접고 제주도 고향집에 들어서면서 지친 영혼이 풀썩 주저앉듯 내지르는 첫 일성도 “엄마, 나, 밥, 나 배고파”다. 배가 고픈 게 아니라 마음이 고픈 거다. 그대여, 외로움과 배고픔을 관장하는 뇌신경이 근접해 있기 때문이라고 따지지 말라. 스타일이 본질을 앞서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외롭다. 직간접적으로 하루에 3000 개의 광고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는 욕망의 절제로 속이 늘 불편하다. 내 친구와 이웃은 자기 외로움에 갇혀 내 외로움을 눈치채지 못한다. ‘내가 네 곁에 있어줄게’가 ‘난 내 곁에 있을게’로 변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세상이다.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미소로 다독여주어야 한다. “괜찮아. 나는 항상 네 편이야. 오늘 하루,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친구를 슬프게 한 너를 나는 여전히 사랑한단다.” 어떤 순간에도 나는 내 곁에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외로운 나를 배신하면 안 된다. 하정아 / 수필가이아침에 자기 외로움 백지영 노래 good goodbye
2025.12.02. 20:22
최근 내린 폭우로 남가주 산간 지역에서는 눈이 내렸다. 그래서 SNS에는 눈 사진과 함께 ‘첫눈의 설레임’이란 제목이 꽤 올라왔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문제 하나. ‘설레임’은 맞는 표현일까? 익숙한 ‘설레이는 이 마음’이란 표현을 생각하면 ‘설레임’이나 ‘설레이는’이 문제가 없는 말로 생각하기 쉽다. ‘설레임’과 ‘설레이는’의 기본형은 ‘설레이다’이다. 그러나 ‘설레이다’는 ‘이’가 없는 ‘설레다’가 맞는 낱말이기 때문에 ‘설레이다’를 활용한 말은 모두 바른 표현이 아니다. 따라서 ‘설레다’를 활용한 ‘설렘’과 ‘설레는’이 맞는 말이다. ‘보다→보이다’ ‘놓다→놓이다’처럼 ‘설레다’에 피동을 만드는 ‘이’를 붙여 ‘설레이다’로 쓰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설레다’는 애초에 피동 표현이 불가능한 말이다. 마음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지 남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레다’를 ‘설레이다’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를 넣어 잘못 쓰는 것이 적지 않다. ‘날씨가 개이다’ ‘정처 없이 헤매이다’ ‘목이 메이다’ ‘살을 데이다’에서의 ‘개이다’ ‘헤매이다’ ‘메이다’ ‘데이다’ 역시 ‘개다’ ‘헤매다’ ‘메다’ ‘데다’가 바른 표현이다. 이들의 명사형은 각각 ‘갬’ ‘헤맴’ ‘멤’ ‘뎀’이다. ‘설레임’이나 ‘설레이는’처럼 ‘이’를 추가하는 것은 이것이 더욱 리듬감 있게 발음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혹 말할 때는 이렇게 하더라도 글을 쓸 때는 ‘설렘’ ‘설레는’으로 바르게 적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설레임 피동 표현 남가주 산간 문제 하나
2025.12.02. 20:21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젊었을 때 유행되었던 ‘하숙생’노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입에서 중얼중얼 나올 때가 많다. 내 나이가 90에 가까워지니까, 잠재의식적으로, 나더러 죽음을 준비하라고 일러주고 있는 것 같다. 늙었으니까 멀지 않아 죽을 텐데. 그냥 무작정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죽을 준비를 미리 해놓은 후 죽는 게 좋을 것 같다. 준비라니? 무슨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예수는, 기독교 신자로서, 계명(살인·간음·도둑질·거짓 증언을 하지 않는 것)을 지키면, 죽어서 천당에 가서 영생한다고 말했다. 부처는, 계율(살생·간음·도둑질·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을 지키라고 했다. 살생은 사람뿐만 아니라, 어떤 생명체든 죽이지 말라는 말이다. 계명을 지키면, 죽은 후 하늘나라에 태어나거나 혹은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했다. 계명을 어기면, 짐승이나 지옥에 태어난다고 했다. 불교는 태어나고 죽고,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가면서 영원히 윤회한다고 했다. 도를 닦아서 도를 깨치면 생과 사의 윤회에서 벗어나 열반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부처와 예수, 두 분의 말씀이 다 맞는지 혹은 다 틀린지? 혹은 두 분 중에 한 분만 맞는지?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의 말씀이 옳다고 할 것이다. 반면에, 불교인들은 부처의 말씀이 옳다고 할 것이다. 태어나는 아이들을 볼 것 같으면, 어떤 아이는 미남미녀로, 총명하고 건강하고 부잣집에서 태어난다. 반대로, 어떤 아이는 우둔하고 못생긴 얼굴로, 병약하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다. 같은 사람으로서 태어나는데, 왜 동등하게 태어나지 못할까? 이왕이면 다음 생에서는, 좋은 복을 갖고 태어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이 세상은 인과법칙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선한 행동을 하면 좋은 업(Karma)을 짓는다. 나쁜 행동을 하면 나쁜 업을 만든다. 부처는 마음(생각)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마음을 곱게 먹으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곱다. 고운 마음에 고운 말을 하면, 자연히 하는 행동이 선하다. 그런데 생각(마음)이 나쁘면, 입에서 나오는 말도 안 좋다. 하는 행동도 거칠고 나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처는 항상 선한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처는 말했다. “사람으로서 사람을 죽이면 지옥이나 동물로 떨어지겠지만, 만약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수명이 짧게 태어난다. 왜냐하면 남의 목숨을 해쳤기 때문이다. 도둑질하면 가난하게 태어난다. 왜냐하면 남의 물건을 훔쳤기 때문이다. 나쁜 말을 많이 하면 추남추녀로 태어난다. 이게 다 인과법칙이다.” 다시 말하면, 다음 생(生)에서, 장수하고 싶으면 살인을 하지 않는다. 부자로 태어나고 싶으면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 미남미녀로 태어나고 싶으면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남들에 대해 좋은 말을 한다. 좋은 복을 많이 받고 태어나고 싶으면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한 행동을 많이 하면 된다. 젊었을 때 뭣 모르고 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다면? 부처는 말했다. “사람이 악행을 지었더라도 허물을 뉘우치면 차츰 엷어지나니, 날로 뉘우쳐 쉬지 않으면 죄의 뿌리는 아주 뽑히리.”(증일아함경). 나는 늙었다. 과거에 저지른 나의 잘못을 참회한다. 남들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될 수 있으면 선한 일을 하면서 여생을 살아갈 것이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기독교 신자들 사의 윤회 거짓 증언
2025.12.02. 18:24
견딜 수 없을 땐 눈물이 흐른다. 닦을 손수건이 없으면 빗물처럼 흘러내린다. 별빛마저 사라진 캄캄한 밤, 흐느껴 울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몸을 사린다. 눈발이 목화밭처럼 대지를 하얗게 덮으면 슬픔은 새가 되어 회색빛 하늘가를 맴돌다가 마지막 얼굴 내미는 마른 잎새에 방울로 반짝인다. 고통은 아픔을 삼키며 슬픔이 땅에 닿을 때까지 심장에 박힌 못을 뽑는다. 세월이 가면 상처에는 새 살이 돋고, 대지에 뿌리내리는 단단한 나무 될 거라고, 부대껴도 흔들리지 말고, 눈처럼 그냥 녹아내리라고 말한다. 목숨만 살아있으면 슬픔도 아픔도 지나가는 바람이다. 절망은 깊고 어두운 웅덩이에 몸과 영혼을 송두리째 가둔다. 빠져나올 수 없어 웅크리고 견디면 잘 익은 포도주처럼 달콤한 날이 올 거라 믿었었다. 아픔은 입술 깨물고 상처를 숨길 수 있었지만 흐르는 눈물은 감출 수 없다. 꿈은 꿈을 먹고 자란다. 아지랑이처럼 따습고 포근한 유년의 꿈을 꾸었다. 시인이 되고 싶었다. 전국 여고생 백일장에 ‘백목련’이 당선, 고김춘수 시인의 칭찬 듣고 양키시장에서 헐값에 구입한 바바리코트 입고 시인 흉내내며 동성로를 왔다 갔다 했다. 아무도 날 알지 못해도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정월 대보름 삼만이 아재가 연실을 풀어 날리면 내 연은 곤두박질 쳤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실을 단단히 감아 또 날리면 된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 햇빛에 대하여 / 바람에 대하여 / 또는 인간의 눈빛에 대하여 / (중략) 그동안의 모든 기다림에 대하여 / 견딜 수 없었던 / 폭풍우의 폭력에 대하여-정호승의 ‘낙과(落果)’ 중에서 미국으로 왔다. 꿈 같은 무지개는 잠시 떴다가 지축의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국어선생님 격려(?)로 국문학을 전공한 탓에 영어 실력은 미국 어린이 수준도 안 됐다. 당시에는 한국말을 잊을 정도로 인터넷과 유투브가 발달되지 않았다. 일요일 한국교회에서 한국말로 떠들며 무인도에서 홀로 물구나무서기를 했다. 사업이 자리 잡기 시작하고 미국사람보다 더 확실한 미국인이 되기 위해 뼈가 삭도록 노력했다. 열심히 공부했다. 혀가 플리기 시작했다. ‘살만하면 죽는다’는 맞는 말이다. 사업하고 애들 뒷바라지하고 아메리칸 드림이 가까워지자 흘러간 시간의 파편들이 꿈틀거리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제일 두려운 것은 어머니 젖줄 같은 모국어를 잊어버리는 일이다. 시인의 꿈이 사라져도 어머니 젖꼭지 만지작거리던 유년의 기억은 자음과 모음으로 남아 어머니의 젖줄처럼 내 핏속으로 스며들었다. 20년이 넘도록 어떻게 매주 칼럼을 쓰느냐고 묻는다. 목숨 부지하기 위해 숨을 쉬듯, 한국인으로 남기 위해 나는 모국어를 껴안고 산다. 시인이 되지 못했어도 꿈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은 나의 약속을 지키는 당당한 내 길이다. ‘꿈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 옷은 바겐세일로 사 입더라도 꿈은 절대로 헐값에 사서는 안 된다. 네 아름다운 꿈을 가로막은 어떤 것들과도 타협해선 안 된다.’ 내 자전 에세이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 표지에 적힌 문구다. 물레방아는 물이 떨어지는 여린 힘으로 큰 바퀴를 굴려 곡식을 찧는다. 생의 소중함을 알면 고통이 위로가 되고 아픔이 슬픔의 눈물을 닦는다. (작가,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회색빛 하늘가 어머니 젖줄 어머니 젖꼭지
2025.12.02. 12:35
━ 계엄 1년…헌정 회복했지만 정치 양극화 심화 ━ 정치권, 강성 지지층만 보고 국민 통합은 외면 ━ 민주주의 회복력, 분열·갈등으로 소진해서야 1년 전의 충격을 우리는 아직 기억한다. 경악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12·3 비상계엄은 국민의 일상을 뒤흔들었고, 국가 제도와 질서에 큰 상처를 남겼다. 국민의 신임을 배신한 폭력에 민주주의의 원칙이 흔들렸다. 지난 1년은 국격 훼손과 국민적 상실감을 회복하는 시간이었으며, 헌정 질서를 재정립하는 과정이었다. 다행히 대한민국과 국민은 저력이 있었다. 두 차례의 헌법적 회복을 이뤄냈다.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했고, 6월 3일 대선은 이재명 대통령을 새 리더십으로 선출했다. 최악의 위기에도 법치주의는 최후의 보루로 작동했고, 민주공화국의 기본 원칙을 지켜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은 선거와 제도를 통해 재확인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우리 민주주의의 강인한 회복력은 세계 민주주의의 새로운 희망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곳곳에 숨겨진 내란의 어둠을 온전히 밝혀내 진정으로 정의로운 국민 통합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달로 모두 마무리되는 3대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의 권한 남용과 비위를 하나둘 규명하고 있다. “국회 담을 넘는 의원을 체포하라”는 윤 전 대통령의 위법적 명령도 관련자 진술로 확인되면서 당시 상황의 성격도 구체화되고 있다. 그러나 여권의 ‘내란 극복’ 드라이브가 통합의 길을 열어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은 통합의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국가 폭력 범죄 처벌 강화, 종교의 정치 개입 금지 등 강도 높은 개혁 과제를 제시했다. 응징과 통합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종합적이고 고차원적인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개혁’이 분열의 씨앗 되는 일 경계해야 집권 후 정부 여당을 바라보는 시선에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통합보다는 응징이 부각되는 권력의 질주가 사회적 긴장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내란전담재판부, 법 왜곡죄 추진 등은 사법부 독립 훼손 논란을 낳고 있다. “내란의 어둠을 밝혀내자”는 대통령의 요구가 더 강경한 입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승자 독식의 87년 체제를 극복하자는 약속, 국민 통합의 새 시대를 열자는 기대에 의구심이 섞이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 국회 앞에서 열리는 ‘12·3 내란·외환 청산과 종식, 사회 대개혁 시민대행진’에 참석하는 이 대통령의 메시지가 갈등보다 통합을 가리키길 기대한다. 개혁이 또 다른 분열의 계기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권이 진정 통합의 정치를 바란다면 정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진단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최근 중앙일보와 한국갤럽 조사에서 “계엄 이후 정치적으로 더 양극화됐다”는 응답이 77%에 달했다. 3대 특검 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도 46%에 그쳤다. 진보 성향 67%, 보수 성향 25%로 인식의 간극도 컸다. 과거의 잘못을 파헤치는 일만으로는 국민 통합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경고일 것이다. 정치 양극화는 우리의 민주주의 회복력을 갉아먹는다. 그런데도 여당은 3대 특검이 끝나기도 전에 추가 특검을 거론하고 있다. 국민 절반이 피로감을 호소하는 현실을 외면할수록 통합의 길은 멀어진다. 헌법존중 TF, 공직 사회 혼란 우려 공직 사회의 분위기 역시 통합과는 거리가 있다. 총리실 주도의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는 공직자 간 상호 고발과 불신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이를 ‘신상필벌’의 논리로만 접근하는 것은 행정 조직의 안정성을 해칠 소지가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의 삶을 바꿀 실력도, 의지도 없는 정치 세력만이 권력 유지를 위해 국민을 편 가르고 혐오를 심는다”고 말했다. 이 경고가 지금의 정부와 여당의 국정 운영에 해당하지는 않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공직 사회에 새로 도입된 ‘위법 명령 거부권’이 현장에 안착하도록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여당은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 때 지휘부에 반발한 검사들을 ‘항명’으로 매도하는 이율배반적 모습도 보였다. 군의 경우, 상시적 안보 위협 속에서 지휘 체계의 안정성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여전히 숙제다. ‘계엄의 강’에 빠진 채 존재감 상실한 보수 야당 통합과 재건의 다른 한 축이 돼야 할 보수 야당은 존재감을 상실하다시피 했다. 1년이 지나도록 국민의힘은 ‘계엄의 강’에 빠진 채 계엄에 대한 분명한 입장 정리와 대국민 사과,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도 하지 못하고 있다. 강성 지지층 중심의 ‘체제 전쟁’ 구호로는 중도층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사과했을 때 지난 대선에서 이겼나. 왜 지는 방식을 고수하느냐”는 정치적 셈법은 민심과의 거리만 더 늘릴 뿐이다. 여당의 폭주에도 불구하고 중도층 민심이 제1 야당을 외면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지지율 추락과 당내 갈등 상황을 여권과의 대립 구도로 넘어서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장동혁 대표는 “우리가 황교안이다” 같은 퇴행적 발언을 거듭하고 있다. 강경한 수사가 지지층 결집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지금 필요한 것은 분열을 키우는 구호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언어다. 현재의 리더십이 보수 정치의 대표 얼굴이 될 만한 무게를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나오는 이유다. 시선을 세계로 돌리면 비생산적 갈등에 몰두하는 한국 정치의 자화상이 더욱 부끄러워진다. 한·미 관세 협상은 동맹조차 언제든 시험에 드는 시대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AI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국제 경제 환경도 만만치 않다. 우리 정치 리더십이 감당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가 즐비하다. 어렵게 입증한 민주주의 회복력이 분열과 갈등으로 소진돼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열과 갈등의 언어가 아니라 통합과 재건의 언어다.
2025.12.02. 8:28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에서 한 달 전, 34세의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가 시장으로 선출되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파격적인 그의 공약이 서민과 젊은 층의 마음을 사로잡은 결과다. 그는 시내버스 요금 무료화, 생후 6주부터 5세 이하 영유아의 무상 보육, 시영 식료품점을 통한 생필품의 저가 공급을 약속했다. 또한 100만 채에 달하는 임대료 안정 아파트의 집세 동결과 10년간 주택 20만 호 건설을 공언했다. 이에 필요한 재원은 시의 법인세 최고세율을 7.25%에서 11.5%로 인상하고, 연봉 100만 달러를 초과하는 부유층을 대상으로 소득세율을 2%포인트 올려 마련할 계획이다. 서민 표로 당선된 맘다니의 정책 ‘사회주의자’의 자본주의 구하기 낡은 도구로는 성공하기 어려워 창의적 방법으로 불평등 낮춰야 맘다니의 당선은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논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그는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SA)’의 회원이다. DSA는 필수 공공 분야에 대한 기업의 공유(公有)와 부분적인 계획경제 도입을 주장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뉴욕을 파괴할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맘다니가 사회주의를 만들려 한다는 비판은 공정하지 않다. 여전히 대부분 기업의 사유(私有)와 가격 메커니즘의 절대적인 역할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그의 공약은 사회주의보다 ‘다양한 자본주의’의 한 형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뉴욕의 자본주의는 위기다. 한국 인구의 17%인 850만 명이 거주하고 있지만, 뉴욕시의 경제 규모는 한국 국내총생산의 75%에 달할 정도로 부유하다. 그러나 불평등 또한 극심하다. 뉴욕의 지니계수는 0.56으로 미국 평균(0.48)은 물론, 세계에서 불평등도가 가장 높은 지역인 남미 국가들의 수준(0.49~0.52)을 상회한다. 뉴욕시의 중위 가계소득은 미국 전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월세는 미국 평균의 2.5배, 식료품비는 20% 더 비싸다. 연 20억원을 버는 상위 1%의 부유층과 연 2000만원의 소득으로 버텨야 하는 하위 20%의 저소득층이 조밀한 지역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뉴욕 서민은 부유층의 소비와 행동을 매일 눈앞에서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회주의가 가장 쉽게 뿌리내릴 토양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맘다니의 시도는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다. 지나친 불평등으로 병든 자본주의를 ‘덜 불평등한 자본주의’로 개선하려는, 자칭 사회주의자의 ‘자본주의 구하기’다. 그러나 그의 공약이 자본주의를 구할 가능성은 작다. 비전은 원대하나 정책 수단은 과거에서 빌려온 낡은 도구다. 서민의 숨을 틔울 정도의 미시적 성과는 거둘 수 있다. 무상 보육과 시영 식료품점 운영은 점진적, 단계적으로 시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임대료 동결과 버스요금 무료화는 달콤한 독과 같다. 서비스 질이 악화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지속하기 힘들거나 정치적인 이유로 되돌리기 어렵다. 이같이 약효가 의심되는 과거의 처방으로썬 중병을 앓는 자본주의를 건강하게 회복시킬 수 없다.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특유의 창발성과 유연성으로 도전을 극복해 왔다. 참정권 확대로 귀족 자본주의에서 민주 자본주의로 이행한 덕분에 인류는 기록적인 번영과 자유의 시대를 누릴 수 있었다. 경제적 불평등이 극심해지자 복지 제도를 도입해 체제의 건강성을 되찾고 사회주의와의 경쟁에서도 앞서갔다. 모든 개혁의 핵심에는 내부 기득권자 대신 외부 진입자를 우대하는 정책이 있었다. 정치적 권력을 나누고 서민을 보호하고 미래 세대를 안심시키는 포용적 제도를 도입했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100년도 지나지 않아 무너진 사회주의와 달리 지금까지 30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한 창의적인 실험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 단번에 세상을 바꿀 묘책이 있다는 주장은 허구다. 지금같이 복잡해진 자본주의를 구하는 지름길은 없다. 그러기에 더 많이 연구하고 결과를 축적해 정책의 재료로 삼아야 한다. 한쪽에서는 부유층과 서민,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의 상호 신뢰를 북돋우는 정책 실험이 일어나고, 다른 쪽에서는 노동시장과 교육 개혁을 목표로 한 다양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자발성, 신뢰, 효율성을 원칙으로 하면서, 민간 기업을 관여시키고,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업이 유휴 시설이나 네트워크를 공익에 활용할 때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생필품의 가격 안정을 위해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수급을 조절할 수도 있다. 나이 든 세대와 젊은 세대, 부유층과 서민을 신뢰로 연결할 방안도 찾아야 한다. 부유층과 고령 세대에게 보편적 복지 혜택을 스스로 양보할 선택권을 주고, 그 재원을 경제적 약자와 청년층에 집중하는 방식도 있다. 이는 갈라진 세대와 계층을 잇는 사회적 신뢰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기로에 섰다. 자본주의가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퇴행한다. 인류 문명도 쇠락한다.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뉴욕은 격렬한 실험을 시작했다. 한국은 조용하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건강한가.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
2025.12.02. 8:26
1년 전 오늘을 방문하곤 한다. 입법부와 대통령 간 극심한 갈등 와중에 온전치 못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꺼내 들며 자폭한 날이다. 왜 그랬을까. 원래 그런 인물이었나, 대통령직이 그를 변질시켰나. 우리는 묻고 또 묻게 될 것이다. 후손들도 그러할 테니, 다른 대통령들의 이름은 잊혀도 그는 기억될 것이다. 윤석열. 그로 인해 보수·진보가 경합하던 구체제가 무너졌고 진보 우위의 신체제가 들어섰다. 이재명·민주당 정부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정상궤도로 돌아왔는가. 윤석열 '자폭' 계엄 이후 새 질서 다수결주의 앞세우며 권력 질주 "민주" 외친 세력의 퇴행 아닌가 대선 전 “이재명·민주당 정부가 현실화한다면 사상 초유의 일극 체제 정부 여당이다. 이미 야당 시절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한다는 걸 보여줬다. 정부 여당이라면 더 강력한 효율성을 보일 것”이라고 썼다. 헌법재판소가 민주당을 향해 “국회는 당파의 이익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했어야 한다”고 주문했던 걸 거론하며 대통령이 되고 여당이 되면 존중·관용·자제·대화·타협이 생겨날지 궁금해했다. 그러곤 “이들이 어디로 향하고 어디서 멈출지 순전히 이들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 행정부·입법부를 장악한 데다 사법부의 일부 법관들도 이들의 자기장 내에 있는 거로 확인되고 있다. 이들이 권력의 팽창주의적인 본성에 저항할까”라고 물었다. 이제 좀 보인다. 이들은 투항을 택했다. 그리고 권력 팽창 중이다. 멈추겠지 싶은데 멈추지 않는다. 가까운 이에겐 관직을 안겼고 일부는 '재벌'이 될 터이다. 검찰은 형해화하고 사실상 특검(2차 종합특검도 한단다)을 통해 국가형벌권을 자신들의 정파를 위해 쓰도록 하고 있다. 감사원을 구박하면서도 ‘국회(사실상 민주당)의 감사 의결'이란 형식으로 동원한다. 내란 청산을 빌미로 공직사회를 해체하고 이간질하며 '치유' 프로그램으로 밀어넣기도 한다. 삼권분립의 사법부도 태풍권에 있다. 정치적 사안과 관련한 판결에서 여권에 밉보이는 결과를 낸다는 건 ‘여론의 조리돌림’ 그 이상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 됐다. 짐짓 거리를 둔 듯한 이재명 대통령이 때때로 ‘종교전쟁’ ‘곳곳에 숨겨진 내란 행위’ 등을 발언하는 걸 보면, 그의 진의가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데 있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권력은 잔인하게 쓰는 것인가. 100석 남짓의 존재감 없는 국민의힘은 군소정당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당권을 내놓을 수 없다는 ‘윤 어게인’파들의 완고함에, 없는 존재감마저 사라지고 있다. 사과하지 않는 전 대통령은 ‘물귀신’이다. 이로 인해 정치적으론 민주당의 도우미가 됐다. 둘 다엔 무슨 일을 해도 지지해줄 사람들(팬덤)을 동원해낼 능력이 있다. 당분간 견제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위안거리를 찾는다면 이런 일들을 우리만 겪는 게 아니란 점이다. “오늘날 선거는 정치를 바로잡고 민주적으로 토론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에서 이탈하는 수단”(인류학자 아르준 아파두라이)이자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상황은 다수가 국가를 사유물로 바꾸어 놓는 다수결주의 정권의 부상이다. 이는 대중의 의지가 정치적 정당성의 유일한 근원”(정치이론가 이반 크라스테브, 이상 『거대한 후퇴』)이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라면 정당한 법 절차, 신중하고 합리적인 행동, 정치적 인내심이 필요하다. 인간이 완전하지 않기에, 우리 사이에 이견·갈등이 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이젠 자유주의자를 자처했던 이들에 의해 자유주의가 위협받고 한때 민주주의를 목 놓아 불렀던 이들에 의해 민주주의가 고사하고 있다. 1년 전, 계엄을 좌절시키고 탄핵을 이뤄낸 힘으로 부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길 진심으로 고대했다. 현실은 더 나빠졌다. 고정애([email protected])
2025.12.02. 8:24
지난 9월 말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기존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을 신설했다. 동시에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넘겨받는 새로운 기관인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행정안전부 산하에 설치하기로 했다. 두 기관은 내년 10월 출범한다. 70년 넘게 이어온 형사사법체계를 허물고 새로 만드는 수준의 개편임에도 입법과정에서 왜 중수청을 만드는지에 대한 설명은 납작했다. “검찰이 하던 수사를 넘겨받아 수사 공백을 막겠다”는 설명만 반복될 뿐이었다. 한 달 전 쯤,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회는 공소청법과 중대범죄수사청법을 우선 논의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중수청은 어떻게 설계된다는 걸까. 현장에선 중대범죄 경계 애매 관심사건 맡으려 경찰과 경쟁 민생사건 서로 회피할 공산 커 일단, 지금까지 국회에 발의된 법안을 살펴보면 중수청은 1차 수사기관으로 보인다.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범죄, 마약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죄를 직접 수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설명도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검찰개혁 TF 단장을 맡았던 김용민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경찰과 관할이 중첩되는 새로운 수사기관을 만들어 서로 경쟁하고 견제하도록 하는 것이 설계의 취지”라고 밝힌 바 있다. 중수청이 단지 1차 수사기관이 아니라 경찰을 견제·통제하는 성격까지 포함한다는 뜻인가. 이처럼 제도의 설계자들조차도 ‘중수청은 무엇을 하는 기관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일관된 답이 없다는 것은 우려할 상황이다. ‘뭐하는 곳’ 질문에 일관된 답 없어 만약 경쟁을 위해 두 기관에 중복적 관할을 허용하면 어떻게 될까. 검경 수사권 조정 이전의 경찰과 검찰의 구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나 둘은 서로 전혀 다르다. 그 당시 경찰과 검찰이 모든 사건에 대한 중복적 관할을 가졌던 이유는 검찰이 ‘수사통제’ 기관이기 때문이다. 경찰이 수사한 모든 사건은 검찰에 송치되었고, 검찰은 이를 다시 처음부터 검토해 위법·부족한 부분을 보완한 뒤 기소 여부를 결정했다. 어차피 기소권자인 검찰에 사건이 다 모이는 구조였기 때문에 중복적 관할의 부작용이 적었다. 하지만 중수청은 경찰과 같은 1차 수사기관일 뿐이다. 그럼에도 두 기관이 같은 사건을 다루도록 설계할 경우, 현장에서 ‘중복 견제’가 아니라 ‘중복 회피’가 벌어질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사건이나 대형 사건은 두 기관이 서로 맡겠다고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이 겪는 소액 피해나 사회적 약자의 범죄 피해는 그 반대다. 피해 규모가 적은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기에 민생 사건은 고소장 접수조차 어렵다. 장애인 시설 내 학대, 직장 내 추행과 같이 폐쇄적 환경에서 발생하는 범죄는 피해자 진술이 어려워 정황·행동증거, 신체·심리 변화 등을 종합하여 사건을 풀어가야 한다. 다른 수사기관으로 넘길 방법이 열린다면 직접 사건 처리보다는 그 방법을 택하고 싶지 않을까. 혹여나 경찰과 중수청이 동일 사건을 수사했다가 결론이 다를 경우 발생하는 혼란은 어찌할 것인가. “두 기관을 경쟁시키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조직의 생리를 외면한 탁상공론자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관할 중복을 방지하고자 중수청은 ‘중대범죄’만 수사하라고 법을 만들어도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마약사건’을 중수청 관할로 정한다 해도 그 안에는 마약 제조자나 유통자가 있고, 마약을 주된 범죄의 미끼나 도구로 사용하는 자도 있다. 점조직과 공범으로 얽혀있다. 어디까지가 중대범죄인 마약범죄인가. 던지기 수법을 통해 1회 투약한 자도 중대범죄자로 보아야 할까. 진화하는 신종 기술로 나날이 늘고 있는 신종 중대범죄는 어떡하나. 대통령령으로 실시간 중수청의 수사개시 범위를 빠르게 업데이트할 수 있을까. 그 변화를 일반 국민이 이해하며 따라갈 수 있을까. 같은 사건이라도 사회적 관심도가 달라지면 그 ‘해석의 여지’를 이용해 사건을 서로 가져오거나 떠넘기려 할 수 있다. 중대범죄인지 아닌지 갑론을박하는 사이 범죄자가 도망가고 주요 증거가 인멸되면 누가 책임을 지는 건가. 이뿐만 아니다. 수사기관이 새로 생기면 관련 법령과 규칙이 폭증하며 제도가 몹시 복잡해진다. 지금도 형사소송법 외에 행안부령의 ‘경찰수사규칙’, 대통령령의 ‘일반적 수사준칙’, 경찰청 훈령·예규 등 수십 개의 지침이 존재한다. 여기에 중수청이 생기면 가칭 ‘중대범죄수사청 수사규칙’과 ‘중수청 수사준칙’, 그리고 수십 개의 중수청 지침이 우후죽순으로 추가될 것이다. 제도 복잡하면 법률 비용만 커져 형벌권은 국민 기본권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국가 권력이므로 어떤 제도보다 높은 완결성을 요한다. 그러나 중수청 출범까지 1년도 안 남았는데 형사소송법 개정안조차 없다. 어려운 제도를 급하게 만들면 조문 중복이나 누락, 해석 충돌과 같은 혼란을 피할 수 없는데 법률 비용은 그만큼 크게 증가한다. 절차가 기관마다 다르게 쪼개지면 그 단계마다 법률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좋을지 몰라도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사람은 결국 대응을 포기하게 된다. 이제 1년도 남지 않았다. 중수청을 설계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무의 현실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법률가들이 쌓아온 경험과 합리적 대안이 제도 설계에 충분히 반영될 때에야 비로소 가난하고 배움이 적은 사람들, 그리고 생업에 바빠 권리 주장조차 어려운 시민들이 억울함을 덜 수 있을 것이다. ◆김예원=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사법연수원 41기 수료 후 장애인·아동·노인 등 자기방어가 어려운 범죄 피해자를 무료로 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범죄 피해자 지원 공로로 대통령 표창과 변호사 공익대상 등을 받았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12.02. 8:22
세대 불문 미래 불안과 정체성 혼란. 삶에 훅 들어온 AI와 기대 이상으로 늘어난 수명 탓에 사회가 정한 낡은 생존 방정식이 무용지물이 돼버린 전인미답의 길 위에서, 우리가 불안을 줄이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엔진은 뭘까요. 많은 전문가는 '질문'을 꼽습니다. 질문만이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인생을 재정의하는 통찰에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질문하는 인생' 시리즈는 다른 이들의 질문을 통해 내 질문을 찾아 나서는 여정입니다. 오늘은 한국 섬유·아웃도어 산업 선구자인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입니다.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인터뷰 어머니 손에 이끌려 어릴 적 딱 한 번 본 점쟁이가 말했다. "얘는 외국에 1005번 갈 사람"이라고. 1950년대에 어디 가당키나 한 상상인가. 그런데 그게 스펠(주문)이 됐는지, 수십 년 동안 1년의 절반은 해외에서 보내는 사업가가 됐다. 서울상대 무역학과를 나와 스물일곱에 영원무역을 설립한 성기학(78) 회장 얘기다. 노스페이스 런칭(1997) 등 국내 아웃도어 신시장을 개척한 후 한 우물을 파 국민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가 거둔 큰 성공을 보고 남들은 "미래를 내다본 현자 아니냐"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단호히 부인한다. "우연의 연속이었고, 차이를 만든 건 태도였다"고. 남보다 더 잘해내겠다는 집요함으로 열심히 살면서, 위기 앞에서도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고 거짓 없이 정직하게 맞서며 포기하지 않았기에 이룬 결과라고. 그래서 이젠 다른 이들에게 조언한다. 질문하라고. 충분히 집요한가, 남 탓 아닌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가. 지난 10월 22일 서울 영원무역 본사에서 그를 만나 인생을 뒤흔든 결정적 장면을 듣고, 그의 시각에서 정리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선견지명 아닌 집요함 큰 성공 뒤엔 선견지명이 있을 거라 사람들은 지레짐작한다. 아니다. 인생을 돌아보니 그저 우연의 연속이다. 1980년 한국 기업 최초의 해외 직접 투자였던 방글라데시 의류공장도 그랬다. 현재 그 나라의 압도적 1위 수출 기업에 올라 여의도 세 배 크기 산업단지(KEPZ)를 직접 운영하니 사람들은 "대단한 혜안"으로 또 포장한다. 그런 거 없다. 물론 꾸준히 해외 진출을 모색했고, 인구가 많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영원무역 초기 동업자 3인 중 하나가 혼자 여행 갔다 덜컥 사업 약속하고 돌아와 어쩔 수 없이 시작했을 뿐이다. 기계 발주까지 마친 이듬해 지아우르 라흐만 대통령이 암살당해 정국이 요동치자 정작 그 동업자는 겁먹고 "못 간다"며 발을 뺐고, 내가 나섰다. 믿을 만한 현지 파트너가 살해당할 정도로 정말 불안했다. 북한 스파이 연루설 등 흉흉한 소문과 함께 나 역시 신변 위협을 여러 번 받았다. 다들 말을 안 해 그렇지 해외 투자는 온갖 위협에 노출된다. 나라고 왜 겁이 안 나겠나. 하지만 나 밖에 해결할 사람이 없다는 마음으로 선두에 섰다. 40년 동고동락 동갑 운전사 보며 65세 넘어 72세 정년 연장 어떤가 50년 경제 순풍, 역풍 변환 시기 관성 대신 '다른 질문' 던져야 한다 인생 첫 직장, 창업도 마찬가지였다. 거창한 계획은커녕 늘 우연에 이끌렸지만 일단 시작하면 집요하게 매달렸다. 경기가 최악이던 1972년 군 제대 후 우연히 신문 채용 공고 보고 신입 공채로 입사한 가발·스웨터 수출 OEM 기업 서울통상 시절이 딱 그랬다. 처음엔 남들처럼 월급 벌자는 생각이 전부였다. 하지만 유럽 전역의 스웨터 마케팅을 맡은 첫날부터 신입 아닌 사장처럼 일했다. 거래처를 이미 확보한 미주·중동과 달리 유럽은 주문이 아예 없다시피 해서 8자짜리 ORD 전보나 15자짜리 레터 텔레그램 써가며 열심히 영업했다. 별 볼일없는 지역이라 신입에 맡기고 다들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오히려 좋았다. 간섭 안 받고 자유롭게 해보고 싶은 거 다 하며 성실히 일한 결과 성과가 좋았고 상응하는 후한 대접을 받았다. 사장은 석 달 치 월급 정도의 거금을 내 손에 쥐여주며 외국 바이어 대접을 맡길 만큼 나를 신뢰했다. 창업 과정도 똑같다. 한 번도 사업을 꿈꾼 적 없는데, 내 역량을 눈여겨본 스웨덴 바이어의 이런저런 요청이 1974년 3자 동업 의류 수출회사인 지금의 영원무역으로 이어졌다. 한국 전체 수출액이 44억 6000만 달러, 그중 36%를 섬유가 채우던 시절이었다. 이젠 영원무역 매출액만 30억 달러가 넘는다. '때문에' 아닌 '불구하고' 방글라데시·엘살바도르 등 전 세계 영원무역 직원 9만여 명 중 국내 근무 한국인은 1000여명에 불과하다. 생산기지가 전부 해외에 있어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1980년 말까진 오히려 매출 대부분 국내에서 나왔다. 그런데 노사분규가 들끓던 1989년 1년 가까운 노조 투쟁 속에 성남공장 불법 점거로 50일간 공장 가동이 멈춘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장의 생산물량은 인도네시아 하청으로 맞췄지만, 더는 한국에서 제조업 못 한다고 판단해 철수했다. 이런 엄청난 위기가 닥칠 때마다 되뇌는 말이 있다. "Don't panic, calculate(흥분하지 말고 냉정히 계산하라). " 사업은 무수한 위기와 선택의 연속인데, 겪어보니 패닉이 제일 나쁘다. 눈앞의 문제만 해결하려 서두르거나 거짓말로 둘러대면 장기적으로 나쁜 결과를 낳는 선택을 한다. 난 계산이 먼저였다. 공장 점거로 회사 존립이 위협받는 와중에도 노조와 직접 협상에 앞서 체계적 대응을 위해 중간 관리자 교육부터 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이런 인재(人災)는 치유가 어렵고, 한국에선 세계적 기업으로 클 수 없다. 문 닫고 해외로 가자. 그 결과가 지금의 해외 생산 기지다. 한국의 인건비 급상승 직격탄을 피해 글로벌 주요 OEM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991년 방글라데시를 강타한 사이클론과 해일 피해 때도 그랬다. 나이키가 처음으로 30만장 주문을 냈는데, 치타공 공장이 바닷물에 잠겨 전부 버려야 했다. 나이키 본사에선 "왜 이런 데 공장을 돌려 낭패를 보게 하느냐"고 질책했다. 다들 공장 철수를 예상했다. 난 패닉 대신 장단기를 아우르는 계산을 했다. 한 달 유예를 얻어 기어이 납품을 맞췄다. 이때 쌓은 신뢰는 더 큰 주문으로 이어졌다. 이런 경험을 해서인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때문에"다. 누구든 "때문에"라고 하면 야단친다. 대신 "불구하고"를 요구한다. 한국의 강성 노조 "때문에" 사업하기 어렵다 하지 말고 극렬 노동운동에도 "불구하고" 해내야 세계적 기업이 된다. 방글라데시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타오르고 있는 MZ 혁명은 당연히 우리 공장에도 큰 차질을 준다. 하지만 그럴수록 품질 챙기고 납품기일 엄수하는 게 사업의 기본 임무다. 정치 탓하며 변명하면 누가 우리를 믿고 주문을 주나. 그래서 오늘도 말한다. "방글라데시 정치 불안에도 '불구하고' 납품엔 아무 영향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오더 달라. " 우대 아닌 성과주의 운전면허증이 없다. 대신 40년 넘게 함께한 동갑내기 운전기사가 있다. 젊은 기사로 바꾸라는 조언을 가끔 듣는데 무시한다. 업무 능력이 떨어졌다면 모를까 늘 시간 엄수하고 헌신하는데 고령이라고 바꿀 이유가 없다. 나도 똑같이 78세인데 한국에 있으면 매일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해서 종일 근무해도 끄떡없다. 최근 양대 노총 요구로 법정 정년 65세 연장 논의가 한창이다. 대다수 기업은 반대인데, 난 수명이 늘어난 만큼 지금보다 20% 더 늘려 72세로 했으면 좋겠다. 나이에 맞는 일 하고 상응한 월급 받으면 된다. 젊은 층 일자리 갉아먹는 베이비부머 세대 욕심이라는 비판도 있던데, 난 동의하지 않는다. 고령층 빈곤 문제는 차치하고 오히려 너무 이른 은퇴는 연금 고갈 등 다음 세대의 사회적 부담만 가중한다. 물론 이런 주장은 우리 회사에 호봉제가 없어 가능하다는 걸 잘 안다. 과거 어느 대기업에선 호봉제로 과한 연봉 받은 기사가 문제 됐지만, 우린 업무 대비 터무니없이 높은 연봉을 주지 않는다. 거꾸로 나이 먹었다고 내보내지도 않는다. 이런 게 성과주의 아닌가. 나이는 물론 성별·학벌, 심지어 인종도 안 따진다. 지난 10월 높은 여성 관리자 비율 등 여성에게 기회 준 공로로 세계여성이사협회(WCD)의 비저너리 어워드를 수상했다. 그걸 보고 내가 여성 우대 정책을 폈다고 오해하는데 아니다. 차별도 없지만 우대도 없다. 성과에 보상한다는 원칙만 지킨다. 수상 소감 쓰려고 돌아보니 집안 분위기가 컸다. 할아버지는 1920년대 경남 창녕에 신학문 가르치는 남녀 공학 강습소(학교)를 세워 여자도 가르쳤다. 시집온 며느리(내 어머니)를 서울로 유학 보내 신학문을 배우게 할 정도였다. 기업들이 현지화를 부르짖으면서도 고위직은 한국인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우린 다르다. 차별 않고 승진 등 똑같이 보상한다. 최근 방글라데시 공장장 후보 5명 전부 현지인이었다. 다들 27년 전 공장 들어와 밑바닥부터 온갖 어려운 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견딘 직원들이었다. 누굴 시켜도 5000~6000명 규모 공장 정도는 거뜬히 운영할 인재들이다. 문득 한국엔 외부환경이나 타고난 조건 탓하지 않고 집요하게 노력해 마지막 순간까지 현장에서 자기 능력을 증명하는 인재가 이제 별로 없다고 깨달았다. 젊은이는 너무 쉽게 포기하고, 나이 들면 직급에 취해 현장을 무시한다. 우리 회사를 비롯해 한국은 지난 50년 순풍으로 비행해왔지만 이젠 관세전쟁의 역풍을 맞으며 비행해야 한다. 이런 위기가 세대 불문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안혜리([email protected])
2025.12.02. 8:20
12·3 계엄 1년 동안 보수와 진보 진영의 혐오 발언과 정쟁이 ‘심리적 내전’ 수준을 넘어 폭발 직전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강성 지지층에 올라타 서로를 공격하는 동안 정작 중요한 진영 내부의 ‘거악 세력’이 가려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윤어게인’과 ‘개딸’로 불리는 두 진영의 팬덤은 서로를 ‘민주주의의 적’이라 비난한다. 하지만 양쪽 모두 민주공화국을 위협하는 ‘반(反)공화주의의 쌍생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쌍생아라는 말에는 적대적 공생관계 의미가 담겨 있다. 그들은 정치 양극화를 통해 팬덤 결집 효과를 누리는 등 기득권으로 공생한다. 개딸 팬덤이 민주당 운영 좌우 윤어게인 세력, 국힘에 큰 영향력 거악이 거악을 덮는 구조 극복을 민주당의 개딸 현상은 정당 운영을 좌우하는 고정변수가 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장동 리스크가 언급되기만 하면 수박·내부총질·배신자·정치공작 등의 문자폭탄을 쏟아낸다. 정당 내부의 이견과 다양성은 사라지고 맹목적 충성 경쟁만 남는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박용진 전 국회의원의 공천 탈락은 개딸의 행패와 잔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강성 팬덤정치에 올라타 당 대표로 선출됐다. 그는 친여 성향의 강성 유튜버 김어준이 운영하는 딴지일보를 거론하며 “민심의 척도이며 나도 10년 동안 1500번 글을 썼다”고 자랑했다. 그는 내란 청산 프레임을 앞세워 국민의힘의 정당 해산을 선동한다. 정 대표가 대통령실과 충돌하는 배경에 개딸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정 대표가 개딸 중심의 대중정당 모델로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고 나중에 대권까지 쥔 ‘이재명식 일극정치 모델’을 흉내내면서 대통령실과 조율없이 자기 정치를 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윤어게인 현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윤어게인을 지지하는 강성 유튜버 전한길 등의 지지로 당 대표가 됐다는 해석이 있다. 장 대표는 황교안 전 총리가 내란 선전·선동 혐의로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고 대놓고 옹호하고, 아스팔트 극우라는 전광훈 목사와의 연대를 거론했다. 그는 선거 경쟁자인 ‘정치적 적수(adversary)’와 ‘군사적 적(enemy)’을 정확히 구별하지 못하고 체제 전쟁과 자유 전쟁을 선동하고 있다. 이런 발언 때문에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대해 “내란옹호 정당”이라 공격할 빌미를 주고, 정당 해산 공세를 자초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딸과 윤어게인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서로를 적대시하면서도 공생하는 전략적 파트너다. 개딸은 대통령의 대장동 리스크를 덮기 위해 윤어게인의 거악, 즉 불법계엄 및 내란 정당임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반대로 윤어게인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위헌·위법적 계엄을 덮기 위해 개딸의 거악, 즉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집중적으로 타격한다. 거악이 거악을 덮는 구조다. 양극단 팬덤은 서로를 혐오하고 악마화해 마녀사냥을 하면서 상대를 필요로 한다. 상대 정당을 독재정당으로 규정하고 타도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민주화 이전의 ‘독재 대 민주’라는 낡은 구도를 부활시키려 한다. 이런 대립 구도는 민주화가 실현된지 38년이 지나 이제는 공화(共和) 단계로 이행해야 하는데도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인 프레임이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은 민주와 공화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는 체제다. 그러나 그동안 민주에만 집중한 나머지 공화의 가치에 소홀했다. 다수파의 지배를 중시하는 민주주의가 견제와 균형, 법치주의를 통해 공동선을 추구하는 공화주의를 가리면서 정당은 대화·숙의의 장이 아니라 팬덤의 전쟁터로 변질했다. 최근 한국공화협회 준비위원회가 ‘민주공화국의 적들, 개딸과 윤어게인’을 주제로 토론회까지 연 것은 좌우 극단으로부터 민주공화국을 지키려는 취지였다. 강성 당원을 결집시키는 대중정당 모델과 여론조사 공천은 ‘미국식 원내정당 모델-오픈 프라이머리’로 재편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개딸과 윤어게인을 막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도자를 군주처럼 숭배하는 극단적 팬덤이 아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권력분립과 법치주의 등 민주공화국의 원칙을 지키는 동료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그들이 선거로 결집할 때 민주공화국을 지킬 수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원
2025.12.02. 8:18
이쯤 되면 한국인의 개인정보는 글로벌 공공재라는 말이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올해만 벌써 몇 번째인가. SK텔레콤, KT, 롯데카드에 이어 쿠팡에서 3300만 명이 넘는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유출 방식도 다양하다. 서버해킹에 의한 유심 정보유출(SKT), 초소형이동기지국을 이용한 정보탈취(KT), 결제서버 해킹(롯데카드)에 이어, 이번엔 내부 직원에 의한 유출 가능성이 거론된다. 용의자로 지목된 중국인은 퇴사 후에도 내부에 접근할 수 있는 인증키를 가지고 있었다니 어이가 없다. ‘글로벌 공공재’가 된 한국인의 개인정보가 곳곳에서 마케팅 수단이 되고 피싱 범죄에 활용될 거다. SKT·KT 이어 쿠팡 정보유출 사고 때마다 나온 보호대책 무색 더 든든한 디지털 방파제 구축을 쿠팡은 개인정보 유출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후에야 고객에게 안내 문자를 보냈다. 내게는 29일 토요일 오후 6시43분에 왔다. 제목은 ‘개인정보 노출 통지’. 사과문도 아니고 ‘노출 통지’라니…. 화가 난다. 책임을 최대한 줄이려는 표현이다. 노출과 유출, 그 어감은 얼마나 다른가. 노출은 정보가 보이게 되거나 접근 가능해진 상태 자체를 말한다. 그로 인한 책임은 유출보다 불명확하다. 유출은 정보가 외부로 빠져나가고 전달되는 행위로 책임·과실·보안사고와 연결된다. 쿠팡에 따르면 ‘노출된 정보’ 는 ‘고객님의 이름,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록, 주문 정보’로 ‘고객님의 카드 정보 등 결제정보 및 패스워드 등 로그인 관련 정보는 노출이 없었음을 확인’ 했다고 한다. 그 확인을 믿기 어렵다. 불안하다. 새벽마다 아파트 층층이 문 앞에 쌓이는 쿠팡의 프레시 박스를 보면서 온라인 거래의 위력을 실감하는데 3300만 명이 넘는 방대한 고객 정보가 털렸다는 소식은 불편함이 아니라 실제적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금융당국은 소비자경보 주의를 발령했고 대통령은 철저한 조사와 엄중한 책임을 말했다. 쿠팡은 5개월 동안이나 고객 정보 유출과 관련된 이상 징후를 몰랐다고 한다. 연 매출 40조원이 넘는 거대 기업의 내부 보안시스템이 이런 정도라니 납득하기 힘들다. 그 정도 규모면 개인정보 내부 통제와 이상 탐지 시스템은 최우선으로 구축돼 있어야 한다. 이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몇 년 새 몸집은 엄청 커졌는데, 그에 걸맞은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도 국내 정보보호 및 개인정보보호관리체계(ISMS-P) 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ISMS-P 인증은 조직이 마련한 정보보호 및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일련의 조치와 활동이 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제도다. 상급종합병원, 재학생 1만 명 이상인 학교, 정보통신서비스부문 매출액 연 100억원 이상인 기업, 정보통신 이용자 수가 100만 명 이상인 통신서비스업자는 의무적으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정보보호 관리체계 수립 및 운영, 보호대책 등 101개 사항을 점검하게 돼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 금융보안원 등이 함께 엄격하게 운용·관리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2025 국가정보보호백서). 이렇게 엄격하게 한다는 ISMS-P를 통과한 쿠팡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인증 자체가 엉성하거나 쿠팡이 인증 관련 현황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개인정보보호가 해킹 등 외부 공격에 대비하는 측면이 강해 이번처럼 내부 직원에 의한 유출은 막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어불성설이다. 개인정보의 엄격한 내부 통제는 기본이다. 정부는 SK텔레콤 사태 후 ‘대규모 정보처리자 긴급 점검 회의’를 열고 개인정보침해 사고 예방을 위한 보안 점검을 강화하고,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해 향후 유출 사고에 대비하겠다고 했는데 실질적으로 어떤 대비를 했는지 궁금하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더 높은 수준의 디지털 방파제를 구축해야 한다. 올해 연이어 일어난 개인 정보 유출에서 보듯이 데이터 탈취 방식은 다양해지고 정교해진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맞춤형 공격도 늘고 있다. 이번에 허술함이 드러난 정보보호 인증 기준도 강화해야 한다. 서비스 이용자가 1000만 명을 넘는 거대 기업은 별도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우리는 점점 더 정교해지는 디지털 파놉티콘에 갇혀가는 듯하다. 나의 SNS·로그인·검색·구매 이력이 거대 디지털 기업에 의해 끊임없이 수집·분석된다. 때론 거기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었고 불가능에 가깝다. 클릭 한 번, 결제 한 번으로 물건을 사고 호텔을 예약한다. 얼마나 편리한가. 하지만 편리하면 편리할수록 그 뒤는 더 위험하고 복잡하다. 편리함 뒤의 리스크를 늘 의식하고 대비할 수밖에 없다. 염태정([email protected])
2025.12.02. 8:16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 있는 타오르미나 극장을 최근에 다녀왔다. 기원전 3세기에 이 지역을 다스렸던 그리스인들이 세운 극장이라 그레코 극장이라 부르지만 이후 로마식 증축이 이어져 그레코로만 스타일이 혼재하는 흔치 않은 유적이다. 가톨릭 신자가 바티칸을 찾듯 연극쟁이들의 성소는 고대의 극장이다. 비록 그 극장을 목적으로 삼은 여행은 아니었지만 우연히 지역이 겹쳐, 나는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그 성소를 찾았다. 절벽 위에 우뚝 선 야외극장. 산토리니의 티라 지역처럼 섬에 있는 고대 그리스의 극장은 외부 침입에 대비해 높은 곳에 자리 잡곤 한다. 타오르미나 극장도 그랬다. 에트나 화산을 배경으로 발아래에 이오니아 해안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객석에서는 절벽 위에 있다는 아찔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자체가 음향판인 거대한 반원형의 객석이 관객을 품어주고, 절벽과 객석 사이의 무대가 부드럽게 완충지대를 만들어준다. 하늘 바로 아래의 객석에서 무대를 보자니 연극의 진짜 주인이 관객이라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무대는 제단처럼 올려다보는 곳이 아니라 내려다보는 곳이었다! 마침 누군가 피리를 불었다. 수천석이 되는 넓은 객석이었지만 가냘픈 피리 소리가 바람 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고스란히 들려, 음향이 좋은 극장이라는 소문을 입증시켜 주었다. 오래된 돌계단의 객석에 앉아 무대와 그 너머의 자연을 보면서 피리 소리를 듣자니 과거와 현재가, 자연과 예술이 그리고 인간까지 하나로 합쳐지는 듯 혹은 모두가 텅 비는 듯했다. 이런 것이 무상일까. 돌아오니 계엄 1년의 혼란스러운 현실이 기다린다. 여행은 그 자체도 좋지만 돌아갈 집이 있을 때 더 좋은 법이다. 이제 아수라장 같은 혼란 속에서 묵묵히 연극을 만드는 동료들 곁으로, 이 시절을 함께 견디는 관객에게로 돌아가자. 그들이 나의 집이다. 김명화 극작가·연출가
2025.12.02. 8:14
오랫동안 ‘60% 주식, 40% 채권’으로 구성된 60/40 포트폴리오는 투자자들의 기본 전략이었다. 그러나 금리 변동성 확대로 채권의 방어력이 약해지고, 상장 시장에서는 기업공개(IPO) 감소와 대형 종목 쏠림이 동시에 심화하면서 이 공식은 힘을 잃고 있다. 2025년 10월 기준 S&P500에서는 상위 10개 대형주가 전체의 40%를 차지한다. 몇몇 종목에 시장이 지나치게 쏠리면서, 서로 다른 주식을 사도 결국 비슷하게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분산투자 효과가 약해진 것이다. 반면 비상장 투자주식인 사모주식(PE)은 이런 대형 상장주와 다른 흐름을 보여, 포트폴리오의 흔들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가치 창출의 중심도 이미 사모시장으로 이동했다. 기업의 상장 시점은 2000년 평균 6년에서 2024년 14년으로 늘었고, 성장의 상당 부분이 비상장 상태에서 일어난다. 현재 상위 비상장 기업의 평균 기업가치는 2500억 달러에 이른다. 사모시장 전체 운용자산은 2027년 18조 달러를 넘길 전망이다. 비상장 기업은 글로벌 경제의 주축이다. 북미·유럽·아시아에서 매출 2억5000만 달러 이상인 기업 중 약 86%가 비상장 기업이다. 투자자들은 기술·에너지·인프라·소비재 등 다양한 산업의 비상장 기업을 통해 기존 포트폴리오와 다른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있다. 사모펀드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신시장 진출, 인수합병(M&A), 제품 개발 등 기업 성장 경로를 넓힌다. 동시에 이사회·경영진 보강을 통해 지배구조를 강화한다. 여기에 AI·데이터 기반 운영 역량을 내재화해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효율성 개선을 끌어낸다. 다수의 포트폴리오 기업을 보유한 규모의 경제도 경쟁력이다. 유리한 계약을 체결하거나 인재 확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러한 지원은 실질적인 이익 개선으로 이어지며, 많은 기업이 상장 압박 없이 비상장 상태에서 장기적 가치 제고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이 같은 장점은 이미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먼저 반영하고 있다. 연기금·보험사·대형 자산운용사는 PE 비중을 지속해서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최소 투자금액 인하와 다양한 펀드 구조 덕분에 개인투자자 접근성도 올라가며 사모시장의 저변이 크게 넓어졌다. 변동성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전통적 60/40 포트폴리오의 위력은 약해지고 있다. 사모주식은 상장 시장의 취약한 분산 구조를 보완하고 장기적 성장성을 제공하는 핵심 전략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래의 자산 배분은 성장과 안정의 균형을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 중심에는 빠르게 팽창하는 사모시장이 있다. 비랄 파텔 블랙스톤 BXPE CEO
2025.12.02. 8:12
오랜만에 인사동 거리를 걸었다. 선배들과의 송년 저녁은 인사동 밥집이 인기다. 우리 세대는 주로 신촌이나 홍대입구를 들락거렸지만 윗세대들은 인사동이 활동무대였다. 간만에 찾은 인사동, ‘귀천’과 ‘부산집’은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시인 기형도의 단골이었다는 ‘평화만들기’ ‘시인’ 등등 그 옛날 공간들은 흔적도 없다. 그래도 연말, 거리는 제법 붐빈다. 안국동 쪽으로 가는데 낯익은 선율이 들린다. ‘섬집아기’다. 놀랍게도 외국인 바이올리니스트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로 시작되는 만인의 명곡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얘기했다. 요즘 이 노래를 듣는 MZ 세대는 고개를 갸웃거린다고 한다. 어린 아기를 혼자 두고 나간 엄마를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동학대로 고발될 위험이 크다고 했다. 모두가 적잖이 신기해한다. 놀랄만한 세대차다. 또 있다. ‘고향의 봄’이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안다. 특히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은 절로 그림이 그려진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노래를 흥얼거리면 가슴 밑바닥부터 뭉클해져 온다. 가끔은 눈시울이 젖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만주·연해주 등을 떠돌던 동포들이 두고 온 고향을 그리는 심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노래는 해외에서도 단연 인기다. 유학 시절, 교포들의 행사에 가면 예외 없이 마지막에 합창으로 부르던 노래가 바로 ‘고향의 봄’이었다. 그러나 국민동요쯤으로 인정받던 ‘고향의 봄’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음악 교과서에서도 삭제되었다고 한다. 지금 세대에게 고향에 대한 애틋한 정서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에게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 아니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 놀이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시나브로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섬집아기’를 부르고 ‘고향의 봄’을 그리워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정든 고향도, 그 고향을 못 잊는 세대도 사라지고 있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2025.12.02. 8:10
밤공기가 부쩍 차고 건조해졌다. 늦은 밤, 마른기침에 잠이 깨기 일쑤다. 그렇게 자주 깨는 밤이면 간혹 불안해져서는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이제는 육신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걸 느낄 만큼 중노릇도 꽤 오래 했나 보다’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며칠 전 30년 이상의 출가자에게 주는 조계종단의 ‘법계(法階)’를 품서 받았다. 그날따라 겨울을 독촉하듯 찬비가 새벽부터 내려서인지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더 시리게 느껴졌다. 처음 삭발하던 날도 찬바람에 머리가 시렸는데, 30년이 넘도록 내 두피는 아직도 적응을 못 하는 모양이다. 주마등처럼 흘러간 출가 30년 덧없는 꿈 같고 후회도 남지만 미완성에서 완성의 희망 싹터 시간에 맞춰 조계사 법당에 도착해 맨 앞에 자리 잡았다. 장궤합장(長跪合掌·무릎을 꿇은 채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합장한 자세)을 하고 이런저런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30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가장 먼저 스친 것은 못나고 초라했던 젊은 시절이었다. 젊은 날의 나는 그리 아둔하진 않았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굽힐 줄 몰랐으며 자주 오만했다. 겸손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일이 많다는 걸 나이를 한참 먹고서야 알게 되었다. 세상이 바뀌어도 겸손이 최고의 미덕임을 느즈막에야 알게 된 것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그런 후회가 밀려와서인지, 뭔지 모를 설움 같은 게 순식간에 밀물처럼 전신으로 퍼져 들어왔다. 그나마 마지막 순서로 기존의 가사를 벗고 새로운 가사를 받아 왼쪽 어깨에 걸칠 때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듯했다. 큰스님들께서는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셨지만, 생뚱맞게도 나는 앞으론 더없이 가볍고 자유롭게 살리라 다짐했다. 법계 품서식이 있던 그 날은 동분서주하며 종일 바빴다. 그런 와중에도 내 머릿속은 계속해서 과거를 떠돌며 헤매고 있었다. 마치 현재가 아닌 과거 속에 사는 사람처럼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몹쓸 과거들만 골라 회상하면서 계속 후회할 일들을 찾아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출가자로서 살아온 세월이 오직 수행과 자비행만으로 채워졌더라면 더없이 좋았으련만, 그러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사소한 일에도 화를 냈고, 어떤 날엔 약속을 어겼으며, 어떤 때는 며칠씩 내 안의 굴속에 들어앉아 숨어 지냈다. 물론 열심히 수행 정진하던 때도 있었고, 전법에 힘쓰며 선한 일도 꽤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모든 게 덧없고 꿈같은 시간일 뿐이었다. 아무튼 잘했든 못했든, 지나간 그 모든 행위가 지금의 나를 이루는 것만은 틀림없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도 내 것이고, 행복한 순간도 내 삶의 기쁨일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라며 살아가긴 해도 우리가 원하는 행복은 연기처럼 쉽게 사라진다. 심지어 언제 그랬냐는 듯 하루 이틀 지나면 잊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최근에 읽은 책 가운데 『모든 삶은 서툴다』(이문필 편역)에 이런 글이 나온다. “나는 세상의 온갖 풍파를 겪으면서 달콤하고 강렬했던 기쁨의 순간이 오래도록 감동으로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쁨의 순간은 마치 생명이란 긴 강줄기에 띄엄띄엄 떠 있는 조각배처럼 가끔 찾아올 뿐만 아니라 너무나 짧아서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요즘도 나는 향로에 꽂힌 향처럼 쉼 없이 타들어 가듯 살아간다. 금방 사라지는 기쁨과 행복도 자주 느끼면서 말이다. 어쩌면 삶은 그 짧은 순간들을 붙잡으려 애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사라지는 기쁨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순간들이 모여 내 하루를 빛나게 하지는 않았을까. 불완전하고 서툰 걸음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음을, 타오르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삶을 더 깊고 따뜻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돌아보면, 삶은 그 짧은 기쁨을 오래 붙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순간 속에서 자신을 비추어 보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불완전한 하루가 쌓여 결국 나를 이루듯, 덧없음 속에서 더 환히 드러나는 빛이 있지 않은가. 그 빛은 오래 머물지는 않지만, 사라진 자리마다 작은 흔적을 남겨 내 마음을 천천히 적신다. 나는 그 흔적을 따라 걸으며, 끝내 다다를 수 없는 완전함 대신 서툶에서 의미를 배우고 있다. 출가자의 삶은 생각보다 더 불안정하고, 때로는 허무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수행자의 삶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고요한 울림이 있다. 그 울림은 나를 멈추게 하고, 멈춤으로써 더 깊이 울리며, 다시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짧은 기쁨이 사라진 뒤에도 여운은 오래 남아 내 안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이야기는 완성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지만, 바로 그 미완성의 자리에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깃든다. 또한 그 증거가 오늘을 다시 희망으로 이끈다.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2025.12.02. 8:08
“고등학교에서 행렬 더하기만 배운다. 곱하기도 못 하고 역행렬 개념도 모른다.”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기초과학 학회협의체 교육정책포럼에서 나온 대학교수의 성토다. 이 자리에서 이윤희 충남대 수학과 교수는 “학교가 공부 양을 덜어주고 있지만 채우는 행위는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않는다”며 “배워야 할 걸 배우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보면 문제가 많다”고 꼬집었다. 행렬은 2진법을 사용하는 컴퓨터에 입체적인 개념을 불어넣는 수학적 장치다. 국가적 관심사인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연구도 행렬부터 시작한다. 전공 교수 입장에서 보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학한 신입생이 행렬을 큐브 장난감처럼 다룰 것이라 기대했는데, 첫 수업에서 눈만 깜빡거리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란다. 과학자들이 고교 교육에 보낸 경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0월에도 한국과학교육학회 등 7개 과학교육 학술단체 연합은 “(이대로라면) 학생들의 과학 지식수준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담은 공동 성명을 냈다. 이들의 걱정을 더한 건 올해 고1부터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다. 고교학점제 시행에 앞서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미적분Ⅱ·기하뿐 아니라 학교에 따라서는 (대학 과정에 근접한) 고급대수와 고급미적분도 배울 기회가 열린다”(지난해 1월)고 홍보했다. 정말 그렇게 될까. 고교학점제를 처음 겪은 현재 고1은 3개월 뒤인 고2 과정부터 본격적으로 선택 과목을 수강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어느 고교에서 훌륭한 강사를 초빙해 AI 시대를 대비한 고급 강의를 열었다는 소식, 그런 강의에 학생이 몰린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학부모 사이엔 ‘어떤 수업을 들어야 내신을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한 소문만 파다하다. 자연계 전공을 지원하고도 ‘입시공학’에 휘둘려 학교에서 배운 과학탐구 대신 사회탐구를 선택하는 수능의 ‘사탐런’ 현상은 이런 불안을 더욱 드높인다. 지금 고1이 고3이 돼 치르는 2028학년도 수능에는 통합과학 도입으로 심화 과목을 아예 선택할 수 없다. 1일 포럼에서 권홍진 송양고 교사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깊이 있는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데 통합과학으로 수능을 보면 3학년 때 다시 쉬운 내용으로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권석준 성균관대 고분자공학부 교수는 요즘 AI·반도체와 연계된 교육 과정이 활발한 중국이 2010년부터 수학·물리학 등 기초과학 연구를 강조했다는 점을 소개했다. 이어 “기초과학 뿌리를 흔든 교육의 결과가 어떨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교육과정을 짜는 당국이 이런 기초과학 교육의 공백을 메꿀 수 있을까. 분명한 건 기초가 사라진 한국 교육의 해법을 구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김민상([email protected])
2025.12.02. 8:06
흰 푸들이 우다다다 해변을 달린다. 궁금한 듯 앞발로 모래를 파헤쳐 머리도 넣어 보고, 주인을 향해 날아갈 듯 달려든다. 호기심 많은 개를 따라 카메라도 바쁘다. 개의 목에 걸어둔 소형 액션캠이 목줄과 부딪혀 딱딱 소리를 낸다. 카메라는 때론 거꾸로 뒤집혀 개의 뒷다리를 통과한 세상을 보여준다. 내 개가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주인이라면 문득 궁금해질 법하다. 미국 퍼포밍 아트의 선구자 조안 조나스(89)는 반려견 오즈의 목에 고프로를 달았다. 2014년 내놓은 21분 영상 ‘아름다운 개’(사진)다. 주인이 가장 좋아한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이름을 딴 푸들 오즈가 퍼포머이자 공동 창작자다. 예술가의 개는 할 일이 많다. 조나스는 움직임과 시간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첫 퍼포먼스 영상은 16㎜ 흑백 무성 영화인 ‘바람’(1968). 뉴욕 롱아일랜드 해변에서 동료들과 삭풍을 맞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시각화한 작품이다. 새로운 매체에 대한 젊은 예술가들의 경이와 즐거움이 57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남았다. 백남준 예술상을 받은 조나스의 국내 미술관에서의 첫 회고전 ‘인간 너머의 세계’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작품이다. 용인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내년 3월 29일까지다. 반려견은 주인보다 수명이 짧아 오즈는 이제 세상에 없다. 고령으로 본인의 회고전에 오지 못한 조나스는 부엌이 보이는 자기 집 거실에서 영상 메시지를 찍어 보냈다. “작품의 의미를 애써 알아내려 마시고, 천천히 둘러봐 주세요. 여러분들이 느끼는 바가 맞는 겁니다”라고. 권근영([email protected])
2025.12.02. 8:04
인간 삶의 비참함과 혼란의 가장 큰 원인은, 한 지속적인 처지와 다른 지속적인 처지 사이의 차이를 과대평가하는 데서 비롯되는 듯하다.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1759).
2025.12.02. 8:02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5.12.02.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