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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중동전쟁 장기화 양상…치밀한 비상대책 세워야

중동전쟁이 장기화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따른 파장이 경제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석유 가격 급등이 현실화한 데 이어 각종 원료와 소재 수급난에 따른 생산 차질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자원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로선 1970년대 오일 쇼크 때와 같은 위기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당장 기름값 상승세가 가파르다. 정부의 2차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사흘째인 어제 서울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L당 1900원을 돌파했다. 생산 현장의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나프타 부족이다. 나프타는 플라스틱과 비닐 등 공산품 제조의 기초 원료로, 국내 수요의 50%를 수입하고 이 중 60%가량이 중동산이다. 중동 전쟁 이후 이미 공급량이 30%가량 감소했다. 식품 포장재와 종량제 봉투 등 비닐, 병원에서 쓰는 ‘수액백’ 등 의료용 플라스틱, 합성섬유 등 소비재 전반의 생산 차질이 가시화하며 ‘4월 위기설’까지 나올 정도다. 여기에 반도체 필수 냉매인 헬륨의 경우 전 세계 공급량의 30%를 차지하는 카타르의 액화천연가스(LNG) 시설 피격으로 공급망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는 여러 비상 대책을 준비 중이다. 구윤철 부총리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로 오르면 현재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시행 중인 차량 5부제를 민간으로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례 없는 공급망 위기가 될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정부는 최악의 사태까지 대비해 상황별 시나리오와 대응책을 수립해야 한다. 우선 산업 현장의 수요를 정확히 파악해 에너지와 원료 수급 계획을 짜야 한다. 또 정부와 기업이 원팀이 돼 각종 원료의 대체 물량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에너지 위기 시엔 소비 절약, 원전 가동률 제고, 대체 공급망 확대가 정답이다. 취약층 지원은 필요하지만 무분별한 포퓰리즘 카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국민에게 상황을 가감 없이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 벌어지는 종량제 봉투 사재기만 해도 불안 심리가 조기에 진화되지 않은 데 따른 것이다. 민간 차량 5부제도 생업으로 차량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상황을 감안한 세심한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2026.03.29. 8:29

[사설] 천안함 사과, 끝까지 요구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지난 27일 제11회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이 “북한의 사과를 요구해 달라”는 천안함 사건 유족의 요청에 “사과하란다고 해서 (북한이) 사과하겠습니까”라고 답해 논란이 되고 있다. 청와대는 그제(28일) “대통령의 발언은 남북 관계의 냉혹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언급한 남북 관계의 냉혹한 현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하고 일체의 대화를 차단한 상황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남북 관계 상황과 과거 북한의 도발에 대한 사과 요구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에 대한 사과 요구는 남북 대화가 재개되고 남북 관계가 좋은 때에만 요구할 성격의 사안이 아니다. 북한이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요구조차 포기하면 더더욱 안 된다. 남북 관계가 좋건 나쁘건 북한이 응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북한의 도발에 맞서 서해를 수호하다 희생된 55명의 대한민국 국군을 기리고 국민의 안보의식을 결집하자는 서해 수호의 날 제정 취지에 맞는 것이다. 청와대가 말한 대로 “영웅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북한의 책임을 묻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를 비롯한 역대 일본 총리는 재임 중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정상회담 개최를 북한에 촉구하고 있다. 최근 열린 워싱턴 정상회담에서도 다카이치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작금의 북·일 관계는 최근 김여정 노동당 부장이 “우리가 인정하지도 않는 일방적 의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것이라면 만날 의향도, 마주 앉을 일도 없다”고 말할 정도로 좋지 않은데도 말이다. 이와 함께 우려되는 점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이 문제를 또다시 정쟁화하려는 듯한 움직임이다. 우리 사회는 사건 이후 수년 동안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각종 음모론과 북한이 아닌 정부에 책임을 돌리려는 정략적 대응으로 국론 분열에 시달렸다. 2016년 서해 수호의 날 제정으로 이런 상황이겨우 일단락됐는데 또다시 이를 선거에 활용하려는 시도는 용납할 수 없다. 정치권의 자제를 엄중하게 촉구한다.

2026.03.29. 8:26

[사설] 2차 종합특검 인력 파견 확대…검찰 수사 공백은 어떻게

민주당이 2차 종합특검의 수사 인력과 대상·권한을 확대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최근 발의했다. 지난달 25일 출범한 2차 종합특검은 최장 170일 동안 17개 의혹을 수사 중이다. 수사가 이제 초기 단계를 벗어나고 있지만 여태까지는 이렇다 할 수사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파견 공무원의 최대 규모를 15%나 늘리겠다고 한다. 거대 여당이 법안을 강행 처리하면 최대 수사 인력은 271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민생 사건 수사 인력이다. 특검으로 빠져나가는 만큼의 인력 공백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미 검찰의 인력 부족 현상은 위험 수위다. 검사 정원(2292명) 대비 현원은 이런저런 이유로 수백 명이 부족한 실정이다. 앞서 내란·김건희·채 상병 등 3대 특검에 검사 120명이 최장 6개월 동안 파견됐었는데, 지금도 공소유지를 위해 파견 상태를 유지하는 검사는 30여 명에 이른다. 3대 특검과 관봉권·쿠팡 의혹 상설특검 파견에 이어 2차 종합특검까지 확대 가동하면 검찰 수사 인력난은 더 가중될 전망이다. 오는 10월 공소청과 중수청 출범을 앞두고 검찰청 폐지가 기정사실이 되면서 검찰 조직의 사기 저하에 따른 인력 유출 현상도 심각하다. 지난해 검사 175명이 사표를 냈는데, 올해도 이미 58명이 검찰을 떠났다. 게다가 민주당이 ‘조작 기소’ 의혹 국정조사를 시작함에 따라 증인으로 채택된 현직 검사 40명은 수시로 불려다닐 판이다. 인력 부족에 따른 사건 처리 지연 현상도 심각한 수준이다. 전국 검찰청의 미제 사건은 2024년 6만4546건에서 최근 12만1563건으로 2년 만에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지방검찰청 지청의 경우 검사 1인당 미제 사건이 500건을 넘은 사례도 있다. 이렇다 보니 일선 검사들은 인력 부족에 따른 업무 과부하를 호소하며 아우성이다. 검찰 조직의 사기가 떨어지고, 인력 부족으로 사건 처리가 지연되면 그만큼 사건 피해자의 권리 구제가 늦어질 수 있다. 수사 지연으로 국민이 피해를 보는 현실을 민주당은 직시해야 한다.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는 무리한 특검 확대는 자제해야 마땅하다.

2026.03.29.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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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 칼럼] ‘전 국민 회고록 쓰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머지않아 회고록을 쓴 사람과 안 쓴 사람으로 나눠질지 모른다. 쓴 사람의 삶은 AI에 의하여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고, 안 쓴 사람의 기억은 시간과 함께 사라질 수 있다. 언론이 유명인의 회고록에만 관심을 두어서 그렇지 수많은 보통사람들이 회고록을 쓰고 있고 도서관과 구청, 그리고 AI가 도우미 역할을 한다. 국민의 절반이 회고록을 쓰기까지 책을 내겠다면서 ‘이분의일’이란 이름을 단 출판사도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회고록 쓰기를 도와드립니다”는 공약도 나와야 할 정도로 조용한 붐이 일고 있다. 지난 3월 2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全) 국민 회고록 쓰기 운동’ 출범식이 있었다. 50명의 발기인으로 구성된 ‘회고 네트워크’는 큰 포부를 밝혔다. 5000만 국민의 경험과 지혜, 노하우가 쌓이면 미래 세대에 거대한 ‘지적(知的) 유산’을 넘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는 21세기 팔만대장경’ 운동이라고도 했다. 이들이 만든 온라인 플렛폼 ‘memorynetwork.org’에 접속하면 “우리는 잊혀지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가슴을 친다. “알고리즘이 당신의 삶을 정의(定義)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써야 합니다”는 문장은 AI시대의 독립선언처럼 들린다. 50명의 발기인 명단도 공개되어 있다. 대학생, 사진 작가, 웹툰 작가, 자동차 디자이너, 출판 편집장, 교수, 도서관 직원, AI전문가 등 다양하다. 출범식에서 강북청소년문화정보도서관의 전성동 주임은 지난해 7월부터 진행한 ‘아무튼, 아모르파티’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글을 써본 경험이 없는 8명의 노인들이 도서관에 상주하는 작가의 지원을 받아 회고록을 쓴 사례였다. 가족을 초대해 진행한 출판기념회는 눈물바다였다고 한다. “기록을 통해 자신의 삶을 긍정하게 되었고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고 했다. ‘퍼플넷’의 김상아 대표는 "직장인의 ‘일 경험’이 퇴사와 동시에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일 기록’을 AI데이터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퇴직하는 전문가들은 성실히 바쁘게만 살아와서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들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 노하우가 디지털 자산이 되고 사회적 자산으로 유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레페토AI의 이대범 대표는 부모 인터뷰를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에서 개발한 AI 프로그램을 회고록 출판에 활용한 사례를 소개했다. 기록에 서툰 노인들의 구술을 받아 AI 프로그램을 이용해 텍스트로 전환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문학적으로 수정하는 과정을 소개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200여 명의 회고록을 출판했다. AI 도움 받아 회고록 쓰기 붐 세계 최고·최대 데이터 베이스 한국인의 존재 증명이자 보고서 사람은 기억되기 위해 태어난다 이날 발표된 선언문은 “기록은 ‘나’를 찾는 일이다”라고 시작한다. 회고록 쓰기는 AI시대에 인간다움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했다. “고립된 개인이 기록을 통해 연결될 때, 아무도 모르게 홀로 맞는 마지막과 서서히 지워지는 기억을 함께 붙들어줄 수 있으며, 세대 간의 지혜를 전수하는 건강한 공동체로 거듭난다”고도 했다. 이들은 AI를 ‘전 국민 회고록 쓰기 운동’의 동반자로 삼으며 동시에 AI를 가르치면서 써먹겠다는 자세이다. “우리는 기록을 통해 AI에게 이웃의 온기(溫氣)와 공동체의 연대를 먼저 학습시킬 것이다”고 했다. 한국인만 쓸 수 있는 압도적 양과 질의 회고록을 통하여 더 널리, 깊게, 따뜻하게 소통함으로써 “소버린 AI를 강화, ‘데이터 주권’을 확립한다”는 대목은 작게 시작한 모임이지만 장대한 비전을 갖고 있음을 내비쳤다. 선언문은 “유명인의 연대기만이 역사가 아니라, 시장 상인의 하루, 학교를 돌보는 선생님의 삶, 난민 아이의 이야기가 모여 비로소 온전한 시대의 초상이 완성된다”고 했다. 지난 80년의 한국 현대사는 수천 년 인류 역사를 압축적으로 거친 역전 드라마인데 다행히 좋은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 역사 만들기에 참여했던 사람들, 고위직과 전문가들뿐 아니라 보통사람들이 생생한 체험기를 남기고 국가가 이런 기록을 모아서 활용 가능하도록 하면 수많은 파생 상품이 생길 것이다. 가장 위대한 이야기로 일컬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집단 체험이 AI 데이터 베이스로 모이면 정책, 영화, 소설, 논문 소재, 어떤 원리나 교훈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개발도상국이 활용할 수 있는 수많은 성공 사례들, 무엇보다도 세계 사람들에게 “한국인은 이렇게 살았다”는 존재 증명이 될 것이다. 새마을운동, 서울올림픽운동을 잇는 성공적 국민운동을 예감한다. ‘전 국민 회고록’은 1945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던 약 1억 국민이 민족사에 바치는, “우리는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는 보고서일 것이다. 모든 사람은 기억되기 위하여 태어난다. 조갑제 언론인, 조갑제닷컴·TV 대표

2026.03.29. 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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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트럼프 ‘거래의 기술’ 왜 안 통하나

미국의 대(對)이란 전쟁이 갈수록 수렁이다. 경제적 충격에 당황한 미국이 출구를 찾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개전 초기 단 6일간 소모된 비용만 113억 달러(약 17조원). 1초에 3300만원 가까이 든 셈이다. 펜타곤은 이미 2000억 달러 규모의 긴급 추가 예산을 요청한 상태다. 당초 미국이 큰소리쳤던 ‘단기 정밀 타격’ 시나리오는 실종돼 버렸다. 최대 압박 통해 상대의 굴복 요구 여론·명분 얽힌 외교 복합성 무시 한반도선 어떻게 작동할지 걱정 이번 전쟁의 기저에는 트럼프 특유의 ‘거래의 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전략은 명확하다. 상대를 극한까지 몰아붙여 공포를 유발한 뒤, 본인이 원하는 조건을 관철하는 방식이다. ‘크게 생각하기(Think Big)’로 상대를 압도하고, ‘선택의 폭 넓히기(Maximize Options)’로 예측 불가능성을 극대화하며, ‘레버리지 활용(Use Your Leverage)’으로 상대의 급소를 쥐는 것이 그 핵심이다. 개전과 함께 이란 수뇌부를 집단 제거하며 판을 장악하는 듯했다. 하지만 전쟁은 트럼프의 계산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호르무즈해협과 11월 중간선거라는 덫에 걸려 트럼프가 오히려 궁지에 몰린 분위기다. 거듭되는 허언과 타코(TACO, 막판 물러나기), 오락가락 행보는 그의 의사결정 능력에 대한 의심마저 던지고 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통하던 거래의 기술이 외교 무대에서 한계를 드러내는 이유는 자명하다. 첫째, 비즈니스는 ‘계약’으로 끝나지만, 외교는 국가 간 이해관계와 명분, 정치가 뒤섞인 복합적 과정이다. 트럼프식 거래술의 본질은 눈앞의 이득을 챙기는 제로섬(Zero-sum)이다. 그러나 외교적 협상은 서로의 실존을 인정하며 파국을 피하는 플러스섬을 지향한다. 전쟁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다른 수단을 가지고 지속하는 정치”라고 했다. 트럼프는 다짜고짜 이란 수뇌부를 제거함으로써 오히려 협상을 어렵게 해버렸다. 이런 결정의 뒤에는 전쟁으로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고 싶어 하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가 있다. 둘째, 거래의 당사자가 다르다. 비즈니스는 두 명의 CEO가 서명하면 끝난다. 하지만 정치는 국민, 여론, 동맹국, 국제기구라는 수많은 ‘국외자’가 거래의 성패를 쥐고 있다. 트럼프의 일방주의에 지친 동맹국들이 “이 전쟁은 우리 전쟁이 아니다”며 미지근한 입장을 보이는 것은 결국 국내 정치 때문이다. 미국의 동맹국 대부분이 여론에 민감한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을 트럼프가 너무 가볍게 봤다. 셋째, 논리로 계산할 수 없는 ‘감정’의 변수다. 트럼프는 이란 지도부만 제거하면 손쉽게 승리할 줄 알았다. 오판이다. 중세 유럽 전쟁에서 ‘왕은 왕을 죽이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던 것은 협상의 상대를 남겨놓기 위해서였다. 불필요한 보복심과 걷잡을 수 없는 확전으로 전쟁의 목적이 흐려지는 상황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식 비즈니스 감각으로는 지역 패권 국가 페르시아의 자존심 따위는 계산에 없었다. 단선적인 비즈니스 문법은 전쟁터에서 통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층인 미국 내 고립주의(‘MAGA’) 진영조차 흔들리고 있다. 이들은 세계화 과정에서 손해를 봐왔다는 피해의식으로 트럼프를 지지해 왔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익을 흔드는 트럼프의 결정에 인내심을 잃고 있다. 최근 국내 여권 지지층을 ABC로 나눠 논란을 빚은 유시민씨의 논법을 빌리자면, A(가치 지향 핵심 지지층)보다는 B(이익 중심 지지세력)와 C(양쪽에 걸쳐 있는 절충형)의 불만이 압도적으로 커지는 양상이다. 북핵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으로서도 남의 일이 아니다. 이란에서 보여준 ‘최대한의 압박과 이해 관철’이라는 트럼프의 거래술이 한반도에서 언제 어떻게 작동할지 모를 일이다. 트럼프에게 한반도는 이익을 남겨야 할 ‘매물’일지 모르나, 우리로선 절박한 ‘실존’의 영역이다. 동맹의 가치와 국익 사이에서 냉정하고도 정교한 생존의 설계도를 고민해야 할 때다. 이현상([email protected])

2026.03.29.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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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혁의 시선] 국민의힘이 존재감을 보여줄 유일한 길

가까운 지인 둘이 이미 보완수사요구의 위력을 체감했다. 세 자녀와 장인·장모를 부양하는 대기업 임원 A는 지난해 초 국토교통부가 생애 첫 아파트 청약을 문제 삼아 서울 한 경찰서의 조사를 받았고, 투자 사기 피해자인 B는 비슷한 시기 지방의 한 경찰서에 가해자를 고소했다. 1년 남짓 만에 A는 불송치 결정을 받았고, B는 송치 결정을 받아냈지만, 모두 검사가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바람에 사건은 아직 경찰에 붙잡혀 있다. A는 이혜훈 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부정청약 의혹의 유탄을 맞았고, B는 향판 출신 전관(가해자 변호인)과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그사이 둘 다 수천만 원을 변호사 비용으로 썼다. 보완수사요구 부작용 이미 체감 유튜버·팬덤 극성에 국회 마비 개헌 가능하단 희망 공유 절실 A는 “빨리 검찰로 넘어가기만 바랄 뿐”이라며 “기소돼도 3심까지 최소 3년이라는데 변호사비만 수억 원이 들 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전 재산이 달린 문제고 너무 억울해 끝까지 갈 것”이라며 “유죄가 되면 재판소원이고 법왜곡죄고 다 써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B는 “뜯긴 돈 일부라도 회수하고 싶지만, 이미 가해자는 살던 집까지 다 팔아버리고 배를 째는 상태”라며 “유죄를 받아낸 뒤 민사 손해배상 판결을 받으려면 10년이 걸릴 수 있다는 말에 체념했다”고 말했다. 이미 MZ 검사들은 손이 많이 가고 감정노동이 심한 직접 보완수사보다는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편한 길을 택하는 경향이 역력하다.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질주의 피날레가 다가오자 지난 2년간 보완수사요구는 크게 늘었다. 양부남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은 경찰이 송치한 75만2560건 중 14.7%(11만623건)에 대해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검사의 보완수사권이 완전 폐지되면 국민 누구나 언제든 이런 사법의 무한루프에 갇힐 수 있다. 개인과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이미 법률지식을 갖춘 수사 인력 부족이라는 경찰의 고질병을 신설 중대범죄수사청에 옮기기로 했고(수사관 직제 1원화), 특법사법경찰관리에게 직권남용의 유혹과 복지부동의 유인을 모두 제공하지 않았던가.(검사의 특사경 지휘권 박탈) 사법체계의 뿌리를 흔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유튜버 김어준의 음모론과 막말이 주는 도파민에 중독된 강성 지지층의 아우성과, 그 아우성을 정치적 기회로 여긴 정청래(당 대표)ㆍ추미애(법제사법위원장)ㆍ김용민(법사위 간사) 등 소수 정치인의 막무가내가 결합한 결과다. 수사가 엉망이라도 재판에서 바로잡으면 그만이라는 비주류 법관 출신이나 친정 권력의 비대화에 흥분한 경찰 출신 정치인들은 보조 스피커 노릇을 했다. 그동안 당내 다수 의원은 부작용을 알면서도 침묵하거나 알려고 들지 않았다. 강성 지지층의 이반이 두려웠는지 정부와 청와대도 이들을 필사적으로 막진 않았다. 검수완박을 위해 달리다 최근 경찰 수사를 받아 본 한 의원이 사석에서 “보완수사권은 필요하다”는 만시지탄을 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들려온다. 150명이 넘는 거대 정당의 의원들이 어쩌다가 유튜버와 강성 지지층에 포획된 채 이런 자학적 입법을 저지르게 됐을까. 만약 권력구조가 의원내각제였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단 1명의 리더가 누가 되느냐가 정치의 지상 목적이 되는 대통령제에선 대통령 선출 즉시 대통령과 잠룡 사이 또는 잠룡들 사이의 주도권 싸움이 핵심 갈등으로 부상한다. 이 때문에 맹목적으로 특정인을 감싸고 그 외 인물을 배척하는 정치 팬덤이 자라기도, 유튜버가 팬덤을 주무르며 장막 뒤 권력자 행세를 하기도 좋은 토양이 된다. 그에 비하면 다수당의 의사가 곧 정부의 정책이 되는 내각제에선 상대적으로 정책 결정을 위한 당내 토론과 경합이 치열하다. 당수 1인보다는 집단으로서의 정당이 주목받기 때문에 장외의 유튜버들이 특정 소수를 가스라이팅한다고 당의 진로를 주무르기가 대통령제만큼 쉽지는 않다. “개헌의 문을 열자”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외침에 눈길이 가는 것도 그래서다. 합의 가능한 최소한의 개헌으로 주권자들에게 언제든 이 망가진 정치구조를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의 근거를 체험케 하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 언젠가 권력구조를 바꿔 유튜버와 팬덤에 포획된 정치를 구해내려면 ‘개헌은 가능하다’는 인식의 공유가 필요하다. 국민의힘의 결단만 남았다. 우 의장의 진정성을 믿으라는 게 아니다. 한 번이라도 남는 장사를 해보라는 거다. 계엄 선포에 대한 국회 승인권을 규정한 개헌안 처리에 동참하는 것은 ‘절윤 논란’의 수렁에서 당을 명분 있게 끌어내는 길이다.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개헌은 지금 국회에서 야당이 존재감을 확인할 유일한 계기이기도 하다. 임장혁([email protected])

2026.03.29.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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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현의 글로벌 이슈 진단] 이란 수렁에 빠진 트럼프, 시진핑·푸틴은 웃고 있다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에서 중국·러시아·이란·북한(CRINKs) 연대의 한계가 다시 한번 드러나고 있다. 연대의 핵심 축인 이란이 공격을 받고 있지만 중·러는 2024년 시리아 알 아사드 독재정권 축출, 올 1월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 때와 마찬가지로 적극 지원에 나서지 않는 모양새다. 오히려 중·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 모험주의가 불러온 뜻밖의 ‘횡재’를 즐기는 모양새다. 중·러·이란·북한 연대, 한계 노출 러시아는 유가 급등으로 ‘횡재’ 미, 대중 견제 우선 정책에 차질 미 동맹, 고유가와 파병 이중고 “이란전쟁의 승자는 러시아” 이란은 북한과 함께 4년 넘게 이어져 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최대 지원국이었다. 과거 러시아산 무기의 주요 수입국이었던 이란은 개전 이후 공급국으로 변모했다. 러시아군의 정밀 미사일 재고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이란은 2022년 가을부터 샤헤드(Shahed) 드론 등을 공급했다. 또 지난 10년간 서방의 석유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구축한 ‘그림자 선단’을 활용한 불법 거래 네트워크를 공유해 러시아의 전시 경제를 지탱하는 데 일조했다. 전후 두 국가 간 무역 규모는 전쟁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나 50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현재 이란에 가장 절실한 첨단 전투기, 방공 시스템, 정밀 유도무기 등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여전히 발목이 잡혀서다.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중동 지역 내 미군 자산의 위치 정보를 이란과 공유하거나 개량형 드론 기술을 제공하는 수준의 지원만 하고 있다. 반면에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와 주변 걸프국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이란 전쟁의 유일한 승자는 러시아”라고 말할 정도다. 중동산 석유·가스 공급이 차단되고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느슨해진 틈을 타 인도·중국 등은 이를 러시아산으로 대체하고 있다. 러시아 우랄산 원유는 이란 전쟁 이전인 지난 1~2월 배럴당 평균 52달러 수준이었으나 3월엔 70~80달러 선으로 치솟았다. 키이우경제대 연구소에 따르면 러시아는 개전 이후 석유·가스 판매로 하루에 최소 9700억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특히, 이란은 걸프 국가의 각종 에너지 인프라 시설을 공격하고 있는데 종전 후 복구에 최소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러시아산 원유 특수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의 대우크라이나 지원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 역시 봄철 대공세에 나선 러시아엔 ‘호재’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이란 전쟁으로 미군의 주요 무기 재고가 빠르게 소진됨에 따라 미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에 공급 예정이었던 무기를 전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검토 대상에는 패트리엇, 사드(THAAD) 등 방공 요격 미사일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지난해 나토(NATO)가 ‘우크라이나 우선 요구목록(PURL)’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에 주문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영국 텔레그래프는 미국이 전쟁 초기 16일 동안 1만1000발 이상의 탄약을 사용했고, 그 비용이 260억 달러(약 39조원)라고 전했다. 여기엔 사드 198발, 해군의 SM-2·3·6 미사일 431발, 패트리엇 402발, 토마호크 미사일 850발 등이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는 현재 수준으로 무기를 빠르게 소진한다면 일부 핵심 무기의 경우 재고가 한 달 내 소진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 무기 급소진에 대중 억제력 약화 중국은 이번 이란 전쟁에 중립을 유지하면서 이집트, 튀르키예, 파키스탄 등의 중재 움직임에 지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이란 전쟁이 가져다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우선 미국의 무기 재고 부족 사태는 전반적인 안보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싱크탱크 케이토연구소 캐서린 톰슨 선임연구원은 “이번 이란 전쟁이 대만을 침공하려는 중국을 억제할 미국의 능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본적으로 현재의 중동 상황은 미국이 지난해 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과는 정면 배치된다. 이 보고서는 서반구(아메리카 대륙과 그 주변) 장악력 강화와 함께 대중국 견제를 미국의 1순위 안보 목표로 정했는데, 이란 전쟁으로 인해 거꾸로 주한미군의 방공 자산과 주일미군의 해병대가 차출되고 있다. NSS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견제를 위해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본격화해야 하는데 반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존친 연구원은 ABC 방송에 “중국이 진정 원하는 것은 국력 강화에 집중할 시간과 여유인데, 미국이 중동에 몰두하는 상황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희토류의 대미 협상력 강화 이란 전쟁으로 5월 14~15일로 연기된 트럼프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을 앞두고 중국에 유리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중국은 그간 각종 첨단 정밀무기 생산에 필요한 희토류 수출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관세 압박에 맞서왔는데, 이란 전쟁으로 희토류를 활용한 대미 협상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반면에 아시아와 유럽의 미국 동맹국들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유가 급등에 따른 경제적 타격과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풀기 위한 군사 개입 압박이 그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에 군함 파견을 거부한 나토에 “엄청난 실수”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등 미국과 동맹 간의 불협화음이 공개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 역시 중장기적으로 중국에 나쁘지 않은 흐름이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연합뉴스에 “아시아 동맹국들은 전쟁에 끌려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결국 동맹국들은 미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차세현([email protected])

2026.03.29.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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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화학이야기] 먹는 것에는 ‘방부제’를 넣지 않는다

‘빵플레이션’에 지친 서민이 즐겨 찾는 1000원짜리 저가(低價) 빵 중에는 유통기한이 무려 6개월이나 되는 중국산이 있는 모양이다. 중국의 제빵공장에서 유통기한을 늘이기 위해 ‘방부제(防腐劑)’를 너무 많이 넣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방부제 범벅’ 여부는 서울시의 성분 조사를 통해서 밝혀질 일이다. 그런데 빵과 같은 가공식품에는 ‘방부제’를 넣을 수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해놓은 ‘식품첨가물공전’에서는 ‘방부제’라는 항목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방부제가 들어있는 빵은 ‘불량식품’으로 분류되어 수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방부제를 ‘범벅’ 수준으로 넣지 않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식품엔 보존제·산화방지제 써 인체독성 매우 약한 화학물질 식약처 허용기준 넘지 않아야 당일 판매 빵집, 보존제도 안써 식품은 우리의 건강 유지에 필요한 탄수화물·지방·단백질의 3대 영양소와 비타민·미네랄(광물질) 등의 미량 영양소를 공급해준다. 그런데 박테리아·곰팡이와 같은 미생물도 식품에 들어있는 영양소를 먹고 싶어 한다. 우리가 어렵사리 만들어놓은 가공식품이 미생물에 의해 ‘부패(腐敗)’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부패 과정에서 배출되는 미생물의 대사물질 때문에 고약한 맛과 냄새를 풍기게 된다. 대기 중에 들어있는 산소도 가공식품의 품질을 떨어뜨린다. 특히 가공식품에 들어있는 지방 성분은 공기 중 산소와의 산화(酸化)에 의해 지방산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오래된 견과류는 퀴퀴한 맛과 냄새를 풍기게 된다. 기름에 튀긴 감자나 견과류의 포장에 질소 가스를 채우거나 밀폐하는 것도 지방 성분의 산화를 막기 위한 노력이다. 가공식품의 고민거리 부패·산화 부패·산화는 가공식품의 생산·유통에서 매우 심각한 고민거리다. 갓 구운 빵을 자랑하기 위해 보존기술을 포기하는 동네 베이커리는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한다. 그런 빵은 가정에서도 보관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제빵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포장해서 편의점·마트에서 판매하는 빵도 유통기한이 일주일을 넘지 않는다. 수분과 유기물이 들어있는 의약품·화장품·생활화학용품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인류는 식품이 상하지 않도록 해주는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왔다. 식품을 말리거나 훈제하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사용해왔던 전통 기술이다. 수분을 제거해서 미생물이 생존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햇빛이 드는 창가에 놓아둔 햄버거나 원시인이 살던 동굴에 남아있는 곡물이 썩지 않는 것도 수분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설탕(꿀)·소금·식초에 절이는 방법이나 효모나 유산균·아세트산균을 이용한 ‘발효’도 전 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되는 식품 보존기술이다. 20세기에는 냉장·냉동·진공포장·냉동건조·통조림 등의 첨단기술도 개발되었다. 방부제, 독성 강해 피부접촉도 안 돼 그러나 오늘날에는 미생물을 제거하는 ‘살생(殺生)물질’을 이용하는 ‘화학적 보존기술’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화학적 보존에 사용하는 살생물질은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부른다. 목재의 내구성을 개선하거나 생물표본의 훼손을 막는 용도로 사용하는 포르말린·페놀·크레졸·황산구리 등은 ‘방부제’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방부제는 인체 독성이 매우 강해서 사람이 먹을 수도 없고, 피부 접촉도 허용되지 않는다. 피부에 생긴 상처에서 미생물을 제거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살생물질은 ‘살균제’ 또는 ‘소독제’라고 부르고, 우리 몸에 침투한 세균을 제거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살생물질은 ‘항생제’라고 한다. 수분이 포함된 가공식품·의약품·화장품은 물론 비누·샴푸와 같은 생활화학용품의 부패·변질을 막아주는 용도로 사용하는 살생물질은 ‘보존제(preservative)’라고 한다. 식약처의 ‘식품첨가물공전’에서는 그런 물질을 ‘보존료(保存料)’와 ‘산화방지제(antioxidant)’라고 부른다.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설탕·소금·식초 이외에도 구연산(레몬산 또는 시트르산)·안식향산(벤조산)·소르브산·아스코브산(비타민 C)·토코페롤(비타민 E)·레시틴·이산화황처럼 낯선 이름의 물질도 보존제·산화방지제로 사용한다. 식물에서 채취한 천연 유기산·비타민·단백질도 있고, 정유사에서 생산한 나프타를 분해해서 얻은 성분을 화학적으로 가공해서 만든 합성 보존제도 있다. 가공식품에 사용하는 보존제와 산화방지제는 방부제와 달리 인체 독성이 매우 약한 화학물질이다. 그래서 장기간에 걸쳐서 상당한 양을 지속·반복적으로 섭취하지 않는다면 굳이 인체 위해성을 걱정할 이유는 없다. ‘천연’ 보존제가 ‘인공’ 보존제보다 더 안전하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억지다. 식약처를 비롯한 각국의 식품안전관리 기관은 식품첨가물의 위해성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식품첨가물공전에는 보존제·산화방지제의 종류뿐 아니라 구체적인 품질규격과 사용방법까지 자세하게 규정되어 있다. 유통기한을 최대한 늘이기 위해서 보존제를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빵처럼 쉽게 부패하는 특성을 가진 가공식품의 유통기한을 지나치게 길게 표시한 제품은 식약처나 지자체가 철저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보존제 안 쓰면 변질 위험 감수해야 보존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세균이나 곰팡이에 의한 부패나 공기 중의 산소에 의한 변질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실제로 소비자의 거부감을 걱정해서 보존제를 넣지 않은 물티슈가 유통·활용 과정에서 부패해버린 사례도 알려져 있다. 보존제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이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보존제의 사용량은 반드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해놓은 ‘허용기준’을 넘지 않아야 한다. 허용기준을 넘어서는 수준의 보존제가 포함된 제품의 생산·유통은 엄격하게 금지된다. 무엇보다 법을 지키지 않은 ‘불법제품’이기 때문이다. 허용기준은 인체 독성뿐만 아니라 경제성과 사회적 수용성 등을 고려해서 결정한다. 허용기준이 나라마다 다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2026.03.29.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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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4달러의 금기’와 ‘트럼프 해협’

‘4달러의 금기’란 말이 있다. 휘발유 가격이 갤런(3.78L)당 4달러를 넘으면 선거에서 진다는 뜻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5달러를 넘었다. 조 바이든 당시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전략 비축유를 대거 방출했지만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후 휘발유 가격 안정을 가장 큰 성과로 삼았다. 그런데 자랑거리가 사라졌다. 이란 전쟁 직전 갤런당 2.98달러였던 휘발유 평균 가격이 한 달 만에 3.98달러가 됐기 때문이다. 전쟁 초기만 해도 트럼프는 “유가가 오르면 미국은 돈을 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며 원유를 인질로 삼고 버티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물론 이란 원유에 대한 제재까지 풀었다. 자신을 겨눌 무기를 만들 돈줄을 풀어준 조치다. 그리고는 모르쇠 전략으로 전환했다. 트럼프는 호르무즈 봉쇄는 물론 이란의 인근 국가 공격에 “최고의 전문가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CNN은 이는 사실 “모든 사람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그런데도 뻔뻔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자신을 정치적으로 보호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최고 전문가도 몰랐으니 자신의 잘못도 아니라는 논리다. 이러한 거짓말이 통하는 이유는 초강경 지지층 때문이다. 실버 불리틴(Silver Bulletin)이 집계한 이란 전쟁에 대한 지지율 평균은 39%다. 이는 최저로 떨어진 트럼프의 현재 지지율 40%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전쟁 이후 1%포인트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통상 미국의 ‘실패한 대통령’을 정의하는 기준은 지지율 35%다. 문제는 콘크리트의 균열 가능성이다. 여론조사에서 공화당과 공화당 성향의 중도층 70%가 이란 전쟁을 지지했지만, ‘강력 반대’가 12%에 달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근거로 유가 폭등이 동반된 이란 전쟁이 전통 지지층을 흔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자 친(親)트럼프 성향의 매체는 호르무즈해협을 장악한 뒤 명칭을 ‘트럼프 해협’으로 변경할 거란 보도를 내놨다. 캐나다를 51번째 주로 만들고, 그린란드 병합 계획을 내세워 극렬 지지층을 열광시켜온 전략과 유사하다. 이에 대해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블로그에 “우리는 정치적 극단주의뿐 아니라 무능력이 직무 요건이 된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며 “심지어 군사력 분야에서조차 우리가 알고 있던 미국의 모습은 더는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적었다. 강태화([email protected])

2026.03.29. 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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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식약처는 7년째 숙고 중

산부인과 전문의 A씨는 그날 밤을 잊지 못한다. 최근 10대 여학생이 극심한 하혈로 응급실에 실려 왔다. SNS에서 구입한 임신중지 약을 혼자 삼켰다고 했다. 성분도, 용량도 알지 못했다. 불완전 유산으로 과다출혈이 생겼다. A씨는 “그나마 병원에 빨리 와서 다행이었다”고 했다. 그 소녀에게 필요했던 건 안전하게 처방받고, 의사의 안내 아래 복용할 수 있는 합법적인 임신중지약이었다. 그러나 한국에는 그런 선택지가 없다. 임신중지약은 임신 초기 자궁 수축을 유도해 임신을 중지시키는 약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고, 미국·일본을 비롯한 90여 개국에서 전문의 처방 아래 사용하고 있다. 부작용도 있다. 임신 주수가 늘수록 위험도 커진다. 심한 출혈로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약은 음지가 아니라 의료 체계 안에 있어야 한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7년이 흘렀다. 그러나 제도는 아직도 공백 상태다. 제도가 없다고 임신중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라지는 건 안전이다. 지난해 적발된 임신중지 약물 온라인 불법 유통 사례는 682건, 최근 5년 누적은 2971건이다. 숫자 뒤에는 기록되지 않은 위험이 있다. 지금도 성분도 모른 채 약을 삼키고, 이상 증상이 생겨도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모르는 여성들이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책임져야 할 기관의 태도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임신중지 허용 주수가 법률에 명시돼야 심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해왔다. 하지만 식약처가 직접 의뢰한 외부 법률자문에서는, 모자보건법 개정과 무관하게 현행 약사법 체계 안에서도 품목허가가 가능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스스로 받아본 자문 결과조차 외면한 채, 식약처가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업무보고에서 이 문제를 두고 “숙고를 몇 년째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질타했다. 그런데도 달라진 건 없다. 이것을 과연 신중함이라고 봐야 할까. 오히려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두고 책임 있는 결정을 미뤄온 행정의 무책임에 더 가깝다고 본다. 임신중지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된다. 찬성과 반대, 종교와 윤리, 생명과 자기결정권이 충돌하는 자리도 있을 것이다. 그 논쟁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제도 공백 속에서 여성들은 계속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논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다. 여성이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에스더([email protected])

2026.03.29.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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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은의 트렌드터치] 무감 경험의 시대

오랜만에 고객경험(Customer Experience·CX)을 다시 꺼내 든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불편한 이야기다. 그동안 우리는 고객경험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애써왔다. 더 감동적으로, 더 매끄럽게, 더 기억에 남게. 현장에서 CX를 다뤄온 사람이라면 거의 공식처럼 반복해 온 문장이다. 그런데 요즘 시장을 보면 이 공식에 변화가 일고 있다. 경험을 잘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경험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기업이 이긴다. 고객이 원하는 건 덜 피곤한 선택 선택지 줄이고 누르면 바로 도착 고객은 선택하기보다 반응할 뿐 이 변화는 보고서보다 현장에서 먼저 감지된다. 만족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데 사용 빈도는 늘고, 불만은 남아있는데 이탈은 줄어든다. 고객이 경험을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평가하는 순간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고객은 여전히 서비스를 사용하지만, 그 경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판단하지 않는 경험, 이것이 지금 시장에서 반복을 만드는 핵심 조건이 되고 있다. 우리가 언제 경험을 인식하는지를 생각해보면 대개는 어딘가 어긋났을 때다. 배송이 늦거나, 앱이 느리거나, 결제가 막히는 순간. 반대로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간 경험은 경험으로조차 인식되지 않는다. 그냥 일상이 된다. 최근 잘되는 서비스들은 이 지점을 파고든다. 고객이 경험을 느끼기 전에, 경험을 끝내버린다. 켜면 바로 이어지고, 누르면 바로 도착하고, 고르려 하면 이미 몇 개로 정리돼 있다. 이들은 무언가를 더하지 않는다. 대신 지운다. 선택을 지우고, 비교를 지우고, 판단의 과정을 지운다. 경험을 설계한다기보다, 경험을 삭제한다. 이때 고객은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사용한다. 그리고 바로 그 침묵이, 가장 강력한 선택이 된다. 요즘 고객경험의 방향은 분명하다. 감동이 아니라 감각의 제거다. 다시 말해 지금은 ‘무감(無感) 경험’의 시대다. 이 흐름은 새로운 트렌드라기보다 인간의 오래된 의사결정 방식과 맞닿아 있다. 저명한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가 말했듯 선택지는 많을수록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더 피곤하게 만든다. 행동경제학의 디폴트 효과(Default Effect)처럼 사람은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대부분은 주어진 선택을 따른다. 결국 고객이 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고객은 더 나은 선택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덜 피곤한 선택을 원한다. 그리고 지금의 서비스들은 그 욕구를 가장 정직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경쟁은 더 좋은 경험을 만드는 싸움이 아니다. 덜 생각하게 만드는 싸움이다. 브랜드가 선택을 설득하는 언어라면, 시스템은 선택을 끝내버리는 구조다. 선택지를 줄이고, 사용 이력을 쌓고, 습관을 점유하고, 속도를 높여 판단의 과정을 짧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고객은 점점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반응하는 사용자로 바뀐다. 이 흐름은 이제 고관여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선택을 없애는 대신, 선택의 방식을 설계한다. 옵션을 줄이고 기준을 제시하며, 정보 대신 확신을 제공한다. 고객이 더 똑똑해진 것이 아니라, 덜 고민해도 되도록 환경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AI와 맞물리며 더 빨라지고 있다. AI는 선택을 돕는 기술이 아니라, 선택을 대신하는 기술에 가깝다. 탐색과 비교의 과정을 줄이고, 더 빠른 결정을 유도한다. 이제 고객은 찾기 전에 추천을 받고, 고민하기 전에 답을 받는다. 경험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경험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선택의 과정이 사라질수록 선택의 속도는 빨라진다. 그래서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더 좋은 경험을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더 적은 고민을 만들고 있는가. 고객에게 선택받으려 하는가, 아니면 선택할 필요를 없애고 있는가. 이제 고객경험은 더 이상 드러나지 않는다. 잘 설계된 경험일수록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바로 그 ‘아무 일도 없음’이, 지금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2026.03.29. 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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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타임머신] 알래스카 매입

1867년 3월 29일 밤 워싱턴 DC. 암살당한 에이브러햄 링컨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앤드루 존슨 내각에서 국무장관을 맡고 있던 윌리엄 수어드(의자에 앉은 인물)의 자택에 주미 러시아 공사 에두아르트 데 슈퇴클(지구본 앞에 서 있는 인물)이 찾아왔다. 남북전쟁 전부터 추진되던 알래스카 매각 협상의 막바지였다. 러시아와 미국의 대표는 다음날인 3월 30일 새벽 4시에 합의에 도달했다. 영어와 프랑스어로 작성된 계약에 따라, 알래스카는 에이커당 약 2센트, 총 720만 달러에 미국의 땅이 되었다. “수어드의 냉장고”라고 조롱받기도 했던 그곳에서 금과 석유를 비롯한 막대한 천연자원이 발견되면서 불만은 환호성으로 바뀌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1896년 이후의 일. 조약 체결 당시 미국 여론은 냉랭했다. 연방의회 표결을 성사시키기 위해 슈퇴클은 상하원 의원에게 뇌물을 뿌려야 했을 지경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지킬 여력이 없었다. 영국령 캐나다의 손에 알래스카가 넘어가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당시로서는 러시아의 숙적이 아니었던 미국에 매각하여 돈을 버는 것이 나은 선택일 수 있었다.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냉전의 역사가 다르게 흘러갔을지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에 머물 수밖에 없다. 연방의회 표결 당일인 4월 9일자 뉴욕 트리뷴은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해군 병사 한 명을 유지하는데 연간 100만 달러가 든다. 네브래스카 평원의 인디언 한 명을 죽이는 데에는 11만5000달러가 들지만 수어드가 사온 땅의 인디언은 머리 하나에 30만 달러의 비용이 들 수 있다.” 알래스카 조약은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이런 섬뜩한 계산이 신문 지면에 아무렇지 않게 실릴 수 있었다. 요컨대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정복할 권리’를 샀던 것이다. 이제는 재현되기 힘든 역사의 한 장면이다. 오늘날 그린란드를 병합하겠다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2026.03.29.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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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영의 마켓 나우] 고유가·고환율·고금리, 이번은 다르다

늘 그렇듯 국제유가 급등으로 환율과 금리가 요동친다. 유가 상승으로 국제수지 악화 우려가 커지면 원화 가치가 하락하고 물가가 오르면서 금리도 높아진다. 이는 수요 부진을 초래해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넘나들자 한국경제 위기론이 다시 고개를 든다. 그러나 고환율을 위기의 전조로 보는 것은 무리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환율이 2000원 선을 넘었지만, 고환율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한국경제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현 상황에서 고환율은 수출 경쟁력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한국은 고환율에 기댄 수출 호조에 힘입어 빠르게 회복했다. 금리를 보면, 고유가로 인한 물가상승 우려와 재정 리스크로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4.5%에 근접하며 금융·실물 경제를 옥죄고 있다. 시장에서는 금리 기조가 인하에서 인상으로 전환될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본래 금리 인상은 수요 과열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지, 유가 급등과 같은 공급 충격에 대한 직접적 대응책은 아니다. 이미 장기금리가 높은 터에 정책금리까지 올린다면 추가 긴축을 하는 꼴이 된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뜻이다. 다만 고유가가 장기화해 인플레이션 기대가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지면 연준의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 고유가가 스태그플레이션을 불러올 가능성은 많이 낮아졌다. 세계경제의 석유 의존도가 1970년대 오일쇼크 때보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또한 1980년대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은 ‘물가 목표제’를 도입, 인플레이션 기대를 선제적으로 관리해왔다. 요컨대 유가 상승이 장기화해 물가와 장기금리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상황이 아니라면, 국내외 경제에 대한 타격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고유가가 장기화될 경우에도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물가 기대에 대한 정책 대응으로 경기가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11월 초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이 물가상승과 여론 악화를 감수하며 전쟁을 계속 끌기 쉽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을 고려하면 고유가의 지속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제조업과 수출 중심 경제 구조상 한국경제가 유가 급등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물론 경계심을 가지고 전쟁 상황과 금융시장 등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21세기 한국경제는 20세기 한국경제와 다른 경제다. IT를 중심으로 한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로 에너지 의존도가 낮아져 유가 충격의 실물경제 전이 정도가 약화됐다. 유가 급등의 영향에 대해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해석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신민영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2026.03.29.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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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중국 읽기] 와이탄 15번지

상하이 황푸(黃浦) 강변 와이탄(外灘)에는 고색창연한 건물이 줄지어 서 있다. 그중 와이탄 15번지 건물에는 두 개 간판이 걸려있다. 상하이황금거래소(上海黄金交易所)와 중국외환거래소(中國外汇交易中心)가 그것. 이들의 ‘한 지붕 두 가족’ 사연에 석유 얘기가 담겨있다. 중국은 작년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약 8000만t의 원유를 수입했다. 사우디 전체 수출의 약 25%다(미국은 5% 미만). 공식 수치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사우디-중국 원유 거래의 약 5%가 위안(元)화로 결제됐다고 본다. 위안화가 ‘페트로 달러’의 아성을 파고드는 모양새다. 중국은 그 비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며 사우디에 구애 작전을 펼친다. 핵심은 위안화의 신용이다. 석유 수출로 받은 위안화를 쓸 곳이 없다면 ‘페트로 위안(원유의 위안화 거래)’은 성립될 수 없다. 상하이 황금거래소는 그 대안이다. ‘종이 금(Paper Gold)’이 주로 거래되는 서방 금거래소와는 달리, 상하이 거래소는 실물 중심이다. 지난해 창고에서 나간 금이 약 1300t에 달한다. 압도적 세계 1위다. 외국인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중국은 이를 통해 ‘위안화=금’이라는 공식을 각인시키려 한다. 집요하고, 치열하다. 중국은 달러 금융망(SWIFT)을 통하지도 않고도 원유를 거래할 수 있는 엠브리지(mBridge) 플랫폼을 도입했다. 사우디도 끌어들였다. 그런가 하면 중동 각국과의 위안화 통화 스와프 체결을 늘려가고 있다. 위안화를 금이나 달러로 바꿔 갈 수 있는 길도 넓히고 있다. 와이탄 15번지의 두 간판은 이를 상징한다. 이란이 위안화 결제 원유에 대해서만 호르무즈해협을 통과시키겠다고 나섰다. 달러 패권에 균열을 내겠다는 계산이다. 그 틈을 위안화가 채우고 있다. 이번 전쟁의 가장 큰 수혜자는 중국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한우덕([email protected])

2026.03.29.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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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한인타운 시니어센터, 건강한 노년의 비밀

2023년 8월 넷플릭스에는 장수의 비결을 다룬 흥미로운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제목은 ‘100세까지 살기: 블루존의 비밀(Live to 100: Secrets of the Blue Zones)’. 장수 연구가 댄 뷰트너가 전 세계 장수 지역을 직접 탐방하며, 그들의 생활 방식과 공통된 습관을 분석하는 여정을 담았다. 블루존(Blue Zone)이라는 개념 역시 그가 만든 것으로, 장수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을 지칭한다.   그가 찾은 세계 5대 블루존은 오키나와(일본), 사르데냐(이탈리아), 이카리아(그리스), 니코야(코스타리카), 그리고 로마린다(미국)다. 뷰트너는 이들 지역의 장수 비결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일상 속 자연스러운 활동, 건강한 식사, 사회적 연결, 그리고 삶의 목적이다. 아무리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식단을 관리하더라도, 고립된 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없다는 메시지다.   미국 유일의 블루존인 로마린다는 LA에서 동쪽으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샌버나디노 카운티에 위치한다. 이곳 주민들은 평균보다 7~10년 더 오래 살며, 90세를 넘어서도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장수 비결이 첨단 의료기술이나 값비싼 건강식품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핵심은 단 하나,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생활 방식이다.   로마린다 주민 다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자로, 채식 위주의 식단과 금주·금연, 그리고 주 1회의 완전한 휴식을 실천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다. 교회와 지역사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서로를 돌보며, 삶의 목적을 유지한다. 즉, 로마린다는 ‘건강하게 살기 위해 애쓰는 곳’이 아니라 건강하게 살 수 밖에 없는 환경이 구축된 곳이다.   이 지점에서 LA 한인타운 시니어 & 커뮤니티 센터를 떠올리게 된다.   2013년 문을 연 이 센터는 자원봉사 강사들의 헌신으로 노래, 춤, 악기 연주, 영어회화, 붓글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해 왔다. 현재 약 50명의 자원봉사 강사가 50여 개 강좌를 운영하고 있으며, 매주 1500명, 한 달 기준 5800명이 넘는 시니어들이 이곳을 찾는다.   13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단순한 배움의 공간을 넘어 한인 시니어들의 ‘삶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친구를 만나고, 배움을 이어가며, 삶의 이유를 다시 발견한다. 2025년 LA 킹스 경기에서 미국 국가를 연주해 전국적인 주목을 받은 하모니카반은 그 상징적인 사례다. 이는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존재의 의미와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이 모습은 로마린다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첫째, 사회적 연결이다. 고립은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시니어 센터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웃고 대화하는 환경 자체가 건강이다.   둘째, 삶의 목적이다. 수업을 듣고, 공연을 준비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은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다. 이는 로마린다의 ‘이유 있는 삶’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셋째, 정신적 안정과 스트레스 완화다. 노래와 춤, 예술 활동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치유의 기능을 한다. 이는 로마린다의 ‘안식일 휴식’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결국 한인타운 시니어 센터는 이미 ‘도심형 블루존’의 조건을 상당 부분 갖춘 공간이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이 센터는 운영비 전액을 기부에 의존하고 있으며, 더 많은 강좌를 개설하는 데 한계가 있다. 무료라는 장점은 곧 재정적 취약성으로 이어지고, 수강 경쟁이 치열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로마린다가 보여주듯, 건강한 노년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공동체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LA 한인사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이 공동체를 지키고 키우는 것이다.   시니어 센터에 대한 후원은 단순한 기부가 아니다. 그것은 외로움을 줄이고, 질병을 예방하며, 삶의 의미를 되살리는 투자다.   우리는 종종 건강을 병원이나 약에서 찾는다. 그러나 로마린다는 말한다. 건강은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진다고. 그리고 지금, LA 한인타운 한복판에서도 그 가능성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이무영 뉴스룸 에디터중앙칼럼 시니어센터 한인타운 la 한인타운 시니어 센터 장수 비결

2026.03.29.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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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행복통신문]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방법

요즘 우리 상담소 직원은 물론 상담소 방문자들, 친구, 그리고 가족으로부터도 비슷한 질문을 자주 듣는다. “왜 이렇게 계속 피곤할까?”, “왜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날까?”라는 호소다.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이런 호소는 단순히 기분 문제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중요한 신호일 수 있다.   스트레스는 스스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압박이나 요구, 또는 도전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따라서 모든 스트레스가 나쁜 것은 아니다. 적절한 수준의 스트레스는 오히려 중요한 발표 준비나 마감 기한 준수, 새로운 기회를 향한 도전을 도와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스트레스가 장기간 지속하거나 과도해질 경우, 육체와 정신 건강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스트레스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어떤 사람들은 두통이나 근육 긴장, 만성 피로, 수면 장애와 같은 신체적 증상을 겪는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유 없이 예민해지거나 불안감을 느끼고, 사소한 일에도 과도하게 반응하는 감정적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는 집중력 저하와 기억력 약화 등 인지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으며, 식사 습관이 불규칙해지거나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피하는 등 일상생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신호들을 그냥 넘기지 말고 조기에 인식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중요한 첫걸음이 된다.   한인가정상담소(KFAM) 내 정신건강 담당 부서에서는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실질적인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 한 가지 방법이 깊은 호흡법과 명상, 요가와 같은 이완 기법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과도하게 긴장된 신경계를 안정시키고 신체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다른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의 감정을 글로 기록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돌아보는 과정은 자기 이해를 높이고 스트레스의 원인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 밖에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속해서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족이나 친구, 혹은 신뢰할 수 있는 직장 동료와의 친밀한 관계는 정서적인 안정과 위안에 큰 도움이 된다.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느껴질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스트레스가 일상생활이나 업무, 대인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면, 정신건강 전문가와의 상담은 문제를 보다 건강하게 풀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스트레스는 변화가 빠르고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은 현대 사회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스트레스의 완전 해소에 목표를 두기보다는 이를 인식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규칙적인 활동을 유지하며, 필요할 때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는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들이 쌓이면 정신 건강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된다.   한인가정상담소(KFAM)는 개인이나 부부, 그리고 가정을 대상으로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람들이 보다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스트레스 관리와 정서적 안정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결코 자신의 나약함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을 위한 중요한 선택이다. 캐서린 염 한인가정상담소 소장가정 행복통신문 스트레스 방법 스트레스 관리 정신건강 전문가 정신건강 서비스

2026.03.29.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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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도둑이 남긴 것

저녁을 먹으려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동네 산책을 하며 알게 된 야마모토 할아버지의 아들 폴이다. 그는 구순이 가까운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마비가 되자 부모님을 돌보기 위해 타주에서 이사 올 만큼 효심이 깊은 젊은이다. 그는 앞집에 오늘 도둑이 들었다며 혹시 우리 집은 피해가 없는지 물었다.   앞집은 얼마 전 일본에서 온 주재원 가족으로, 우리와는 이사하는 날 처음 인사를 나눈 사이였다. 히라노 부인이 딸을 데리러 나간 불과 30분 남짓한 사이, 도둑은 뒷마당으로 침입하여 잠겨 있던 거실 유리문을 따고 들어가 값나가는 귀금속만 골라 훔쳐 달아났다고 했다.   경찰이 출동하고 동네가 술렁였다. 평소 얼굴조차 모르던 이웃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무심히 스쳐 지나쳤던 한인 가정도 보였다. 나쁜 상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이웃을 마주하게 된 것이 반갑기도 했다. 우리는 “다친 사람이 없어 다행” “유리창을 깨지 않은 게 다행”이라며 서로를 위로했고, 자연스레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이야기를 나누며, 요즘 도둑들의 치밀한 수법도 들을 수 있었다. 주차된 차에 위치추적기를 달아두고 차가 움직이면 주인이 출타한 줄 안단다. 며칠간의 관찰 끝에 빈집인 걸 알고 범행에 나선다는 것이다. 택배기사가 수시로 드나드니 게이트가 있어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따라 들어올 수 있다. 모두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며칠 후 HOA에서 여러 가지 방범 권고 메일이 도착했다. 보안 카메라 업체를 고용하거나 링(Ring) 도어벨 같은 초인종 카메라를 설치할 것, 가드너와 의논해 관목이 우거진 구역을 정리해서 도둑이 숨을 수 있는 공간을 줄일 것, 그리고 이웃 감시 프로그램(Neighborhood Watch Program)에 참여해 서로를 돌볼 것 등이었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안내문이지만 이번에는 절박한 현실로 다가왔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그동안 게이트 안에 살며, 은행 안전금고를 이용한다는 이유로 너무 안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밤이 되면 자동으로 켜지고 아침이면 꺼지는 조명을 여럿 주문해 설치했다. 해 질 녘 동네를 산책하며 보니, 보안 카메라 업체의 팻말을 붙여둔 집들이 확실히 늘었다.   며칠 뒤, 다시 ‘띵 똥’하고 벨이 울렸다. 총각김치를 담갔는데 맛이 들어서 가져왔다는 한인 엔지 엄마였다. 얼마 전 도둑 사건으로 알게 된 이웃이다. 이사 온 지 3년이 넘도록 파 한 뿌리 얻을 집도 모르고 살았는데, 이게 웬 떡인가 싶다.   담장 너머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안전을 살피는 마음이 싹텄다. 인생사 새옹지마이다. 예기치 못한 도난 사건이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 준 것이니,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큰 셈이랄까.  최숙희 수필가이 아침에 초인종 카메라 보안 카메라 동네 산책

2026.03.29.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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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석 만평] 3월 30일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3.29.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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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과학과 관측

천문학 사상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견줄 만한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요하네스 케플러를 꼽을 수 있다. 그 유명한 케플러의 법칙은 한 천체가 다른 천체를 공전할 때, 정확히 원 궤도를 도는 것이 아니라 타원 궤적을 그린다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케플러가 이런 발견을 하게 된 데는 그의 스승이 평생 관측하여 물려준 기록이 큰 역할을 했다. 바로 케플러가 조수로 일했던 튀코 브라헤가 남긴 관측 자료다. 케플러는 스승이 관측했던 기록을 바탕으로 케플러의 법칙을 유도해 냈고 결국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튀코 브라헤는 남다른 시력을 가지고 태어나서 아주 멀리서도 물체를 선명히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지동설을 주창한 코페르니쿠스가 죽고 얼마 되지 않은 1546년 덴마크에서 출생한 그는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했지만, 천문학에 더 관심을 보였고 자신이 지닌 특출한 시력과 간단히 포기하지 않는 성격을 바탕으로 밤하늘의 별을 오랫동안 꼼꼼히 관찰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코페르니쿠스가 죽은 후에 태어났지만, 여전히 천동설을 신봉하여 지구 주위를 태양과 달이 공전한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 일부를 지지했다. 그러면서도 수성, 금성, 화성 등 행성은 그런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을 접목한 좀 엉뚱한 주장을 했다. 망원경이 사용되기 전에 활동했던 그는 맨눈으로 천체를 관측했는데 눈이 좋아서 그랬는지 그의 관측 결과는 지금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관측에서는 난다 긴다 하던 그였지만 그 결과를 분석하는 일은 그의 능력으로는 벅찼다. 그래서 그런 일을 해 줄 보조를 구했는데 바로 요하네스 케플러였다.   브라헤와 케플러는 그렇게 인연을 맺긴 했지만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브라헤의 괴팍한 성격 때문이었다. 그렇게 1년쯤 지난 어느 날, 스승 브라헤가 어떤 귀족의 파티에 참석했다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셨고 자주 화장실에 가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에 소변을 참다가 그만 방광에 이상이 생겨 죽었다. 세상에 불에 타서 죽거나 물에 빠져 죽은 사람도 있고, 과로해서 죽은 사람은 봤어도 오줌 참다가 죽은 사람은 처음이다. 젊은 날 결투를 하다 아차 하는 순간 코끝을 잘린 그는 평생 가짜 코를 붙이고 살았다는데 의수나 의족은 들어봤어도 가짜 코도 금시초문이다.     천체는 원 궤도를 따라 공전한다고 확신했던 케플러는 스승이 남긴 자료 중 화성이 태양을 공전하는 기록을 여러 번 계산해 봤지만, 약간의 오차가 있었다. 사실 아주 작은 오차여서 보통 사람 같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도 될 만한 차이였지만 케플러는 스승의 관측을 신뢰한 나머지 계산을 반복한 결과 정확한 원이 아니라 아주 조금 찌그러진 원, 그러니까 타원 궤도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화성을 비롯하여 행성은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로 공전한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고작 1년 정도 함께 일한 스승이었지만 케플러는 자신의 확신을 포기할 정도로 스승의 관측 기록을 믿었다.     학문이 세분되기 전 과학과 철학은 같은 범주에 속했다. 그러다 우리가 보고 접할 수 있는 것의 관찰이 이루어지고 관측되면서 그런 것들은 철학에서 벗어나 과학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관측하여 기록으로 남긴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튀코 브라헤이고, 그의 위대성은 바로 과학의 밑바탕인 관측에 있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과학과 관측 관측 기록 과학 이야기

2026.03.2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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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란 전쟁 한달…대한민국에 던진 과제

━ 호르무즈 봉쇄가 촉발한 글로벌 에너지 쇼크 ━ 에너지 길목에서 무너진 한국 경제 안보 구조 ━ 지정학 격변 속 빈틈없는 국가구조로 전환해야 미국의 ‘장대한 분노(Epic Fury)’ 작전으로 포문을 연 이란 전쟁이 오늘로 딱 한 달을 맞았다. 개전 초기, 압도적 화력과 인공지능(AI)을 앞세운 정밀 타격으로 수뇌부를 제거함으로써 전쟁을 조기에 종결짓겠다던 미국의 호언장담은 빗나갔다. 이번 사태의 결정적 변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화자찬한 전술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전장은 지루한 소모전으로 치달았고, 그 여파는 호르무즈 해협을 넘어 전 세계 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번 중동 사태가 1970년대 오일쇼크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충격이라고 경고했다. 제3국의 중재로 진행 중이라는 종전 협상의 향방도 가늠할 길이 없다. 이란 전쟁은 지구 반대편에서 터진 일이 실시간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에 타격을 준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원유 수입량의 70% 이상을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국제 유가가 10달러 오를 때마다 국가 무역수지가 80억 달러씩 악화되는 우리의 구조적 취약성은 반도체와 자동차 등 국가 주력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특히 기초 원료인 나프타 공급 차질이 석유화학 산업을 강하게 압박하면서, 제조업 전반의 도미노 충격으로 이어졌다. 안보 지형의 변화도 엄중하다. 미군 전력의 중동 집중으로 주한미군 방공 전략 자산 일부가 이동 배치된 사실은 전략적 유연성이 상수가 됐음을 말해준다. 이는 경우에 따라 일시적 대북 억지력의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 “수혜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관리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은 안보를 철저히 거래와 비용의 관점으로 치환하는 냉혹한 국제질서의 단면을 드러낸다. 이번 전쟁의 양상에서 보듯, 드론 전력과 방공망 확충이 현대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사실도 우리 안보 태세를 재점검하는 데 있어서 귀중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이란 전쟁은 우리에게도 많은 과제를 던지고 있다. 쇼크에만 매몰되지 말고 단기적 처방을 넘어 안보·경제 전반에 걸쳐 보다 근본적으로 시스템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유무형의 네트워크가 시공간을 무너뜨리는 초연결 시대이고, 예측불가능성을 전략무기로 삼는 강대국 지도자 덕분에 초유동성이 국제질서를 흔들고 있다.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위기 대응 역량을 스스로 갖추는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에너지 안보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IEA가 권고하는 90일분 비축유만으로는 해상 봉쇄라는 복합 위기를 견뎌낼 수 없다. 수입선 다변화는 물론 원전과 재생에너지, 가스를 결합한 ‘현실적 에너지 믹스’를 구축해야 한다. 최근 유럽 사례에서 확인되듯, 원전을 배제한 에너지 정책은 국가적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 안보도 동맹에 균열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과 동시에 위기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자강’의 길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전략 자산의 공백을 스스로 메울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고, 외교·산업·안보를 통합 관리하는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다. 호르무즈의 충격은 한국 경제와 안보의 취약한 고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위기는 반드시 반복될 것이며 다음 파고는 더욱 가혹할지 모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봉책이 아니라 지정학적 격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구조적 전환이다. 스스로를 지킬 자원과 힘을 갖추는 것, 그것이 이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무거운 숙제다.

2026.03.27.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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