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개헌에 힘을 실으면서 개헌 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의 개헌안을 언급하며 “일리 있는 제안이어서 정부 차원에서 공식 검토하고 입장도 좀 정리해 가자”며 “단계적·점진적인 개헌도 한번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우 의장은 지난 10일 “개헌의 문을 열자”며 세 가지 개헌안을 제시했다. 비상계엄 국회 통제권 강화,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지역 균형발전 정신 헌법 반영 등이다. 이 대통령은 여기에 부마항쟁도 헌법 전문에 추가하자며 정부 부처에 검토를 지시했다. 이 대통령이 개헌의 물꼬를 트겠다고 나선 것은 의미가 크다. 개헌이 시대적 과제라면서도 정작 실행은 나 몰라라 했던 정치권에도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헌법개정안 발의권을 가진 대통령과 개헌안을 의결하는 입법부의 수장이 비록 부분적인 개헌이긴 하지만 뜻을 모으고 시민사회가 반기는 상황은 1987년 개헌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단계적·점진적’이라는 전제도 의미가 깊다. 개헌의 물꼬를 튼 이후에 1987년 헌법 체제를 시대 변화에 맞게 바꾸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현행 헌법은 39년 전 민주화 투쟁으로 얻어낸 역사적 성과가 분명하지만, 권력을 독점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적지 않았다. 급기야 망상적인 비상계엄 사태까지 목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해 제헌절 연설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개헌을 거론한 이 대통령은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듯, 우리 헌법도 달라진 현실에 맞게 새로 정비하고 다듬어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대선 공약에선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결선투표제 등 권력구조 개편을 강조했고,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 과제 중 첫 번째가 ‘진짜 대한민국을 위한 헌법 개정’이었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국민 대부분이 승자독식의 권력 시스템이 진영 갈등을 격화시켜 대립을 일상화하고 국민 통합을 저해했다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개헌 논의는 늘 용두사미였다. 권력을 잡기 전에는 적극적이었다가 권력을 잡으면 후순위로 밀렸다. 이번엔 거대 여당의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뜻을 모았으니 과거와는 다를 것이다. 6·3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여야가 대승적으로 협력하길 바란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의 미래가 달린 분권형 개헌에 대한 숙의도 이뤄져야 한다. 어렵고 긴 과정이겠지만,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향한 첫걸음이 되길 기대한다.
2026.03.17. 8:26
당·정·청이 공소청법·중수청법 최종안을 확정해 내일(19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한다고 예고했다. 기존 정부안과 달라진 점은 수사-기소 분리라는 원칙하에 축소했던 공소청 검사의 권한을 더 줄인 것이다. 공소청 검사의 권한에서 영장 청구·집행 지휘와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삭제했고, 중수청이 수사에 착수할 경우 공소청에 통보하는 조항도 제외했다. 검사가 우회적으로 수사에 관여할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하겠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과 제도적 공백에 대한 우려는 충분히 검토됐는지 의문이다. 특사경은 경찰은 아니지만 교정·환경·노동·위생 등 특정 분야에서 경찰관의 권한을 가진 공무원이다. 이들이 해당 분야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강제 수사에 대한 충분한 경험이 축적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특사경 인원은 2만1263명이며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노동 경찰’ 역할을 하는 근로감독관을 1000명 증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 공무원이 아닌 공공기관 특사경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 특사경 도입을 준비하고 있고, 정부가 신설하겠다는 부동산감독원 직원도 특사경 지위를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2만 명이 넘는 특사경이 독자 수사를 펼치면 범죄 대응이 강화될 수도 있겠지만, 절차적 위법이나 인권 침해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검사가 이를 지휘·감독하지 못하게 한다면 특사경의 권한 남용은 어떻게 통제할 것이냐에 대한 대책도 명확하지 않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나 행정기관 소속 특사경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노출될 경우, 수사가 특정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지자체장이나 행정기관장이 사실상의 수사 지휘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형사사법 체계는 견제와 균형 위에서 작동한다. 검찰에 대한 반감으로 꼭 필요한 권한마저도 빼앗는다면 자칫 행정권과 수사권이 결합한 비대한 ‘경찰 공화국’으로 갈 우려가 있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공정한 수사 절차다. 검찰 권한 축소라는 명분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제도 변화가 가져올 득실을 치밀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2026.03.17. 8:24
고유가·고환율이 수입물가를 끌어올리면서 물가가 들썩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어제 발표한 2월 수입물가는 1월보다 1.1%, 지난해 2월보다 1.2% 각각 상승했다. 원유(9.8%)가 큰 폭으로 뛰었다. 이란전쟁이 터지고 3월 들어 국제 유가가 큰 폭으로 더 오른 만큼 3월 수입물가도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다. 수입물가는 기업의 생산비와 소비자물가에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 물가는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시장 불안을 틈타 공급이 부족한 품목을 매점매석하거나 과도하게 가격을 올리는 행위에 대해선 정부가 단호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지난주 민생과 밀접한 23개 품목을 특별관리하겠다고 나섰다.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는 석유류를 비롯해 쌀 등 국민의 핵심 먹거리, 교복·생리용품 등 이재명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관심을 표명했던 품목도 포함돼 있다. 담합 등 불공정행위나 낡은 유통구조 탓에 오르는 물가는 정부가 철저하게 솎아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지적했듯이 자원배분을 왜곡하는 석유 최고가격제는 단기 비상조치에 그쳐야 한다. 정부가 석유 수요관리의 필요성을 비중 있게 언급한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다행스럽다. 이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중동 사태와 관련해 “상황 장기화를 전제로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자동차 5부제 혹은 10부제 등의 에너지 수요 절감 대책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유류세 인하보다 취약층에 재정을 지원하는 게 낫다는 언급도 틀린 데가 하나 없다. 유류세 인하는 석유 수요를 더 늘릴 뿐이다. NH금융연구소는 전쟁이 장기화하면 정부의 석유 수요 통제가 필요할 수 있다며, 대책으로 자동차 2부제, 재택근무 권장, 심야영업 제한 등을 꼽았다. 대통령 언급처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려면 에너지 절약을 위한 다양한 수요관리 방안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2026.03.17. 8:22
위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강점은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인지. 당장 발등의 불을 끄느라 바쁜지 혹은 위기 속에서도 멀리 내다보는 여유를 갖췄는지. 위기가 닥칠 때 같이 불을 꺼줄 친구는 있는지. 한반도 서쪽으로 6500㎞ 떨어진 험준한 땅, 이란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묻고 있다. 우선 중동 지역에서 들여오는 석유, 가스에 크게 의존하는 에너지 수입국으로서의 대응책을 묻고 있다. 안보 관점에서는 주한 미군 사드 포대의 갑작스런 이동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 안전을 위한 해군력 파견 요청에 이르기까지, 까다롭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들이 이어지고 있다.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시민들의 저항 시위를 무자비하게 탄압해 온 이란의 신정 정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며, 그 폭압 정권의 리더를 제거하고 폭격을 퍼붓는 미국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라는 질문도 외면할 수 없다. 위기의 초동 대응은 신속, 원활해 에너지, 안보, 동맹, 경제 아우르는 장기 비전은 상대적으로 불분명 정부·시민사회 함께 지혜 모아야 언제나 그래왔듯이 우리는 중동 위기 앞에서 단기적인 대응은 빠르게 효과적으로 해내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과 시민들이 숙고하고 합의해야 하는 중장기 전략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다. 달리 말해, 단기 이슈에 몰두하면서 장기적인 방향을 잃어버리는 ‘민주정치의 근시안 딜레마’는 여전히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다가오는 선거에 올인하는 정치 세력들이 정치를 지배하는 한, 민주정치는 장기 비전을 갖기 어렵다고 비판했던 슘페터의 딜레마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먼저 중동 위기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발 빠른 대응부터 살펴보자. 국제 유가는 (서부 텍사스유 기준) 중동 전쟁과 함께 단번에 배럴 당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국내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게다가 호르무즈 해협 위기로 인해 유조선들의 발이 묶이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에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6일 UAE로부터 석유 600만 배럴을(국내 1일 소비량의 2배 이상의 규모) 긴급 수입하는데 합의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바로 이틀 후인 8일 UAE 수송기는 우리가 긴급히 공급하기로 한 천궁II 유도탄 30여기를 가져가기 위해 대구 공항에 도착하였다.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천궁II 유도탄이 필요했던 UAE와 석유 수급의 안정성이 절실했던 한국의 절묘한 동행이다. 발 빠른 대응은 휘발유 최고가격제 긴급 도입과 이를 통한 시장 불안 심리의 안정을 포함한다. 이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무려 67%에 이르고 있다. 중동 위기, 인플레의 그림자 속에서도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우리가 중동 위기 대응에 몰두하는 동안, 한반도의 동쪽 방향, 태평양에서는 중견 강국들의 의미심장한 움직임들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천연가스 생산 5위의 자원 대국, 캐나다의 카니 총리는 지난 6일 일본을 방문해서 안보, 에너지, AI, 희토류 등을 중심으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는다고 발표했다. 캐나다 총리는 이에 앞서 또 다른 자원 대국인 호주를 방문하고 두 나라가 안보, 특히 해양 안보, 무역, AI, 핵심 자원에서 긴밀한 협력을 강화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을 단지 정상들 간의 방문에서 흔히 이뤄지는 의례적 발표로만 보기는 어렵다. 카니 캐나다 총리는 연초에 지구촌 온라인을 달구었던 유명한 연설을 통해 미국이 주도해 온 2차 대전 이후의 제도 기반 국제 질서가 분명히 끝났음을 선언하고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의 총대를 메고 나선 바 있다. 이제 세계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찼고 미국이라는 초대국은 이제 동맹이나 우호국들과의 관계마저 현금화하려는(monetize; 관세 압박을 통한 대미 투자 요구를 가리킨다.)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결국 대안은 뜻을 같이 하는 중견 국가들끼리 협력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가치 기반 현실주의) 능력과 뜻을 갖춘 “중견국들끼리 협력하지 않으면, 중견 국가들은 초강대국들이 요리하는 메뉴가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이 카니 총리의 주장이다. G7에 속한 경제 강국이면서 자원 대국이고 미국과 긴밀하게 엮여 있으면서도 애증 관계를 지닌 캐나다가 주도하는 이러한 움직임은 위기의 초동 대응에 정신없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혼돈의 세계 속에서 한국은 어떤 미래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가? 지정학의 태풍이 불 때마다, 우리의 방위산업, 조선업, 반도체 산업을 지렛대 삼아 위기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생존형 중견국가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를 헤쳐갈 비전을 공유하면서 좀 더 안정적인 협력 프레임을 만들어 내는 주도적 중견국가로 올라설 것인지. 반도체 칩, 무기체계, 전함 건조 능력 등의 물리적 힘을 넘어 우리가 중견 협력국들의 마음을 잡아끌 무형의 자산, 가치는 무엇인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동맹과 중견국 네트워크를 함께 아우르는 국가 대전략의 방향은 무엇일까.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마주한 질문이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명예교수
2026.03.17. 8:20
" 디스(상대 까기). " 갈등 빚는 다른 래퍼를 노골적인 비난 가사로 공격하는 힙합 문화다. 국내 최장수 힙합 서바이벌인 Mnet '쇼미더머니(이하 쇼미)'는 시즌 초반부터 디스전을 시그니처 삼았다. 그 자체로 자극적 재미가 있는 데다, 특히 치부까지 속속들이 아는 친한 래퍼끼리의 디스전은 내부 폭로전 양상을 띠며 팬들의 열광적 반응을 끌어낼 수 있어서다. 4년 만에 돌아온 이번 시즌 12에서도 같은 소속(KC 레이블) 친구인 스타 김하온과 신인 나우아임영이 서로 상대의 여자 문제 등을 까발린 적나라한 디스전으로 공개 4일 만에 300만 가까운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외부 적 소멸 후 친명·친문 갈등 상왕 김어준은 리스크로 추락 음모론 내부 향하자 성역 와해 정치가 팬덤을 맹목적으로 좇더니 이젠 팬덤 얻겠다고 이런 디스전까지 따라 하는 걸까. 벌써 십 수년째 범 민주당 계열 상왕 노릇을 해온 방송인 김어준 측이 '(이재명 대통령과 검찰 간) 공소취소 거래설'로 디스전 선공을 날리자마자, 이재명 대통령을 필두로 김민석 총리와 친명 여당 인사들이 "흉기, 무협지 공장, 음모론, 왜곡" 같은 단어를 끌어와 후공을 펼치니 하는 말이다. '윤 어게인' 세력보다 한참 앞선 부정선거론이나 천안함 폭침설, 계엄 당시 한동훈 암살조 등 사회를 좀먹는 황당무계한 음모론조차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같이 손뼉 치던 어제의 동지끼리 이젠 밑바닥까지 파묘하며 강도 높은 공격을 주고받는 걸 보고 있자면 보수 쪽에선 솔직히 어리둥절하다. 갑자기 시시비비를 따져 물을 만큼 제정신으로 돌아왔나, 아니면 쇼미 디스전처럼 '머니(우승상금과 인기)'를 위해 사전 합의된 양측의 비즈니스(예능)일 뿐인가. 아마 둘 다 아닐 거다. 친문(친문재인계)과 친명(친이재명계, 뉴 이재명) 대리전 성격인 이번 디스전은 사실상 외부 적(국민의힘)이 소멸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다음 권력 헤게모니를 잡고 핵심 지지층을 내 편으로 묶어두려는 치열한 내부 생존 다툼에 가깝다. 쇼미 디스전 무대가 끝나면 상처는 좀 남을지언정 래퍼들은 인지도 올리고 제작진은 시청률 잡는 윈윈으로 귀결돼왔다. 김어준을 둘러싼 이번 파묘 디스전은 어떨까. 내 편 네편 가르기 위한 끊임없는 선명성 경쟁은 아주 작은 차이도 전부 악마화해, 가뜩이나 제어가 어려운 양측 강성 지지층 모두를 더 타협 불가능한 극단 세력으로 몰아넣을 위험이 있다. 하지만 다른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바로 성역의 와해다. "(김어준이 만든) 딴지일보 게시판이 민심의 가장 정확한 척도"라던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발언을 끌어올 필요도 없이 김어준은 그동안 민주당 정치인과 지지자 사이에서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성역이었다. 스스로 (뉴스)공장장이라고 불렀지만 실은 교주에 가까웠다. 본인 유튜브에 하루 평균 2.3명의 민주당 의원을 출연(서울대 한규섭 교수 조사)시켜 그야말로 모든 국정 방향에 대해 시시콜콜 가이드라인을 낼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런데 적잖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제 단 한 방울의 사실만 있으면 김어준이 아무 공상이나 더해 뚝딱 만들어내는 음모론 생산 과정이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를 향했을 때의 폐해를 목격했다. 음모론을 무기 삼아 본인에게 비협조적인 유력 정치인을 견제하고, 내 편 힘 키우려 온갖 무리수를 두는 행태 말이다. 또 음모론에 따라오는 권력과 돈의 수혜자가 누군지도 알게 됐다. 음모론 제조 공법과 유통 방식이 강제 공개된 셈이다. 이번 디스전 국면에서 여전히 김어준 편에 서 있다는 이유로 탁현민의 여성 비하, 조국의 오상방위, 유시민의 서울대 프락치 사건(민간인 폭행사건)까지 SNS 상에서 줄줄이 파묘돼 나오는 걸 보면서, 지금껏 김어준 마음에 들려고 큰절까지 마다않고 기생하던 민주당 정치인들이 만약 그와 엮이지 않으려 몸을 사린다면 이 또한 분명 긍정적 효과일 거다. 쇼미 디스전은 우승자의 머니 챙기기로 끝난다. 하지만 김어준을 둘러싼 디스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민주당이 자산에서 리스크로 전락한 김어준을 어떻게 관리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안혜리([email protected])
2026.03.17. 8:18
매년 3월, 워싱턴 DC의 포토맥 강변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벚꽃은 미·일 우호의 상징으로 통한다. 1912년 3월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 당시 도쿄시장이 워싱턴DC에 선물한 쇼메이 요시노 품종의 벚나무 묘목 3000여 그루가 그 시초가 됐다. 당시 일본 내에서 “일본의 정신(벚꽃)을 장차 적국이 될지도 모르는 나라에 바친다”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오자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 묘목들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격랑 속에서도 살아남아 오늘날 미·일 관계를 강화하는 ‘소프트파워’ 역할을 하고 있다. 파병 압박 속 만나는 미·일 정상 안보·경제 위해 미 ‘용병’될 판 동맹 의무와 국익 사이 고민 깊어 그로부터 한 세기가 넘게 흐른 오는 19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 早苗) 일본 총리가 워싱턴 땅을 밟는다. 다카이치 총리는 미국 건국 250주년에 맞춰 오는 7월 250그루의 벚나무를 추가로 기증하고, 아키타현의 자랑인 화려한 불꽃놀이를 워싱턴 하늘에 수놓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화려한 벚꽃과 불꽃놀이의 이면에는 전례없이 차가운 ‘동맹의 청구서’가 기다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미는 청구서는 노골적이다. 이란과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트럼프는 한국과 일본 등 핵심 동맹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함정 파견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너희의 에너지를 실어 나르는 선박은 너희가 직접 지키는 것이 상식”이라는 논리로 시작된 압박은 “우리가 군사력이 부족해서 부르는 게 아니다. 너희가 동맹으로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진정성을 확인하려는 것”이라며 연일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특유의 거래적 동맹관이 일본을 비롯한 동맹국들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에게 이번 파병 요구는 단순한 군사적 결정을 넘어 정권의 명운이 걸린 거대한 시험대다. 스스로를 ‘아베 신조의 적통 계승자’로 자임하며 ‘강한 일본’을 외쳐온 그에게, 이번 사태는 아베 전 총리가 구축해 놓은 안보 법제의 실효성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일본 자위대는 1991년 걸프전 직후 페르시아만에서 기뢰 제거 작업을 벌인 전례가 있다. 이후 아베 정부는 2015년 안보 관련법 개정을 통해 집단 자위권 행사의 길을 열었고, 그 대표적 예시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 기뢰 제거’를 명시했다. 즉, 법적 근거는 이미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법리 검토에 들어가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일본 정부 내부에서는 현재의 이란 정세를 안보법상 ‘존립위기사태’(일본의 존립이 위협받는 상황)나 ‘중요영향사태’(미군 지원이 필요한 상황)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일본은 이미 254일치에 달하는 방대한 비축유를 확보하고 있는데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 실제 교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미군을 후방 지원하는 것은 평화헌법과 현행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위험이 크다. 결국 가능한 범위는 ‘해상경비업무’ 명목으로 일본 관련 선박을 호위하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신중론의 배경엔 이번 전쟁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여론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달 이란 남부 미나브 지역의 여자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미군의 오폭 사고로 175명의 어린 여학생이 목숨을 잃은 참상을 지켜본 일본 내 여론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다. 아사히 신문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이란 공격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82%에 달했다. 특히 공격의 정당성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다카이치 총리의 태도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절반을 넘었다. 자민당 내부에서조차 “과거 아베 전 총리가 ‘조사·연구’라는 우회로로 실리를 챙겼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도덕적 위기”라는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다카이치가 이토록 궁지에 몰리면서도 워싱턴으로 향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이다. 취임 직후 “대만 유사시는 곧 일본의 유사시”라며 강경 발언을 쏟아낸 대가로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희토류 수출 금지’라는 경제 보복을 당하고 있다. 일본 산업계가 비명을 지르는 상황에서, 다카이치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가 곧 있을 미·중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희토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미국의 차세대 미사일 방어 체계인 ‘골든돔’ 참여와 전례 없는 규모의 방위비 증액, 그리고 대규모 대미 투자 보따리를 풀어놓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은 지금 안보와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미국의 ‘용병’ 역할을 자처해야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19일 펼쳐질 미·일 정상회담은 결코 이웃 나라의 구경거리가 아니다. 똑같은 파병 청구서와 방위비 압박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에 이번 회담은 가장 정교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미·일 정상회담을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소영([email protected])
2026.03.17. 8:16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 전직 외교통상부 장관이 보는 이란 사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과의 전쟁이 2주를 넘겼지만 사태는 수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3일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을 만나 이번 사태의 원인과 전망, 미·중 정상회담에 미칠 파장, 주한미군 전력 차출과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구 등 한반도 안보에 미칠 영향과 대응 방안 등을 들었다. 윤 이사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에 성공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란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오판한 것 같다”며 “미국을 8년 동안 수렁에 빠뜨렸던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수습에 상당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트럼프, 지원 않는 동맹에 불만 비용·편익 고려해 타협안 찾아야 이란사태로 북·미 회담 추동력 약화 한·미 갈등은 ‘한국 패싱’ 소지 키워 전략적 유연성 확대는 ‘수준’의 문제 한·미 조율 통한 타협점 찾아야 베네수엘라 성공이 이란 오판 불러 Q : 이번 공격을 감행한 배경은 뭘까. A :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 작전에서 보여준 미국 군사력의 탁월한 성과에 상당한 자신감을 가진 것 같다. 이란의 경우에도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압박하고 참수 작전으로 지도부를 제거하면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사태는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란은 지난해 6월 미국·이스라엘의 핵시설 공습 이후 상당한 준비를 한 것 같다. 즉각 미군기지가 있는 걸프 국가를 공격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세계 경제를 흔들어 놓았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로선 조기 수습을 바라지만 출구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Q : 미국의 이번 공습은 서반구(아메리카 대륙과 그 주변) 중시와 중국 견제를 1순위로 둔 국가안보전략(NSS)과 배치되는 결정인데. A : “NSS는 문서로서의 가치는 있을지 몰라도 이란 사태를 보면 얼마나 일관성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 미국의 전쟁 역사를 보면 목표가 분명할 때 성공했다. 한국전과 1991년 걸프전이 그랬다. 그런데 이란의 경우엔 핵 개발을 막겠다, 미사일 역량을 파괴하겠다, 정권 교체를 하겠다는 등 목표가 수시로 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언제, 어떻게 끝내야 할지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Q : 일방적인 승리 선언 후 종전할 수 있지 않나. A : “과연 이스라엘이 쉽게 찬성할까. 이스라엘은 이란 정권 교체를 강하게 원하고 있다. 복수심에 불탄 이란의 새 지도부는 종전은 미국이 아니라 자신들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설령 이 상태로 종전되더라도 이란은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오히려 핵 개발을 서두를 것이다. 걸프 국가에 있는 미군 기지를 계속 공격하면 상당수의 미군이 중동에 주둔해야 한다. 미국은 난관에 봉착했다.” 이란 사태의 최대 승자는 중국 Q : 이번 사태에 중국이 웃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 : “미·중 패권 경쟁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미국이 중동에서 발목이 잡히면서 트럼프 정부가 NSS에서 강조한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여력이 떨어졌다. 미국은 2011년 오바마 정부 때 대중 견제를 위해 아시아 회귀를 선언했는데, 트럼프 1기와 바이든 정부 때 유럽과 중동 지역 분쟁에 휘말리면서 집중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다.” Q : 트럼프가 4월 베이징 정상회담의 한 달 연기를 요청했다. A : “지난해 부산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는 SNS에서 G2(미·중 두 강대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라는 표현을 썼다. 미국은 그간 이 표현을 피해왔다. 주요 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는데, 미·중이 서로 담합한 결과를 강요할 가능성이 그 표현에 담겨 있어서다. 부산 회담에 만족한 트럼프는 ‘빅딜’을 통해 향후 미·중 관계의 새 챕터를 열 수 있다고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란 사태로 삐걱거리고 있다. 한 달 후 열리더라도 향후 미·중 관계의 마스터 플랜을 짜는 역사적 회담이 되긴 어려울 것이다.” Q :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도 부정적인 여파가 있을까. A : “회담을 추동해야 할 미국의 관심이 이란 사태로 분산돼있다. 트럼프 임기 중 북·미 회담 개최 가능성은 여전히 높지만, 최소한 이란 사태가 가닥을 잡기 전까진 어려울 것 같다. 미·중 회담에서도 기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란 사태까지 터지면서 한반도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것으로 예상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13일 트럼프를 면담한 김민석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는 건 좋다. 그런데 이번 중국에 가는 시기일 수 있지만 그건 아닐 수도 있고, 그 이후일 수도 있는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Q : 정부로선 아쉬울 것 같다. A : “남북 소통 채널을 만들려는 노력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북한 문제는 반드시 국제적인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 만약 별개의 문제로 접근하면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궁극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외교적으로 고립될 위험도 있다. 냉전이 막을 내린 후 40년 동안의 남북 관계 역사에서 가장 피크를 이뤘던 시기는 김대중-빌 클린턴 정부 3년이었다. 1970년대 빌리 브란트 사민당 정부가 동방정책을 추진할 때 헨리 키신저 당시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감상적인 민족주의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럼에도 서독은 먼저 미국과 상의하고 협조를 구하는 방식으로 동방정책을 추진했다. 상호 신뢰가 쌓이면서 결국 미국을 지지자로 만들었다. 김대중 정부가 동방정책만큼 거부감이 강했던 햇볕정책 추진 과정에서 미국을 설득해 결국 보조를 맞췄던 역사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다카이치 방미도 파병에 변수 Q : 주한미군이 패트리엇과 사드를 반출한 데 이어, 트럼프는 한국, 일본 등 7개국에 파병을 압박하고 있다. A :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사안이다. 파병하는 경우 인명 피해 등의 리스크가 걱정된다. 트럼프 리더십의 특성상 수용하지 않을 경우 통상은 물론 특히 안보 분야에서 우리에게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것이다. 나토(NATO)에 얘기했던 것처럼, 동맹인 미국을 지원하지 않으면 한국도 지원하지 않겠다며 주한미군 철수나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 관세 카드 등을 꺼내 들 수 있다. 미국의 요구에 응할 경우와 거부할 경우 우리에게 닥칠 비용과 편익을 냉철하게 계산해 정부가 추구해온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 차원에서 결정할 것으로 기대한다. 19일 방미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과연 어떤 입장을 보일지도 변수다.” Q : 최근 주한미군의 서해 훈련 등 한·미 연합훈련을 놓고 불협화음이 공개 노출되고 있다. A :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가장 북한과의 대화에 열려있는 대통령이다. 이런 이점을 간과하고 과거처럼 ‘자주냐 동맹이냐’라는 좁은 프레임 워크 안에서 우리가 남북관계를 끌고 가려고 하고, 이에 미국과 유엔사가 반대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한·미 관계에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지점은 경제와 안보 이슈가 분리된 것처럼 가정하는 것이다. 만약 한국이 통상 분야에서 대미 투자에 미온적인 인상을 주면, 안보 분야 합의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향후 북·미 회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북핵 등 한반도의 중요 안보 현안을 논의할 때, 통상 분야 합의를 놓고 한·미 간에 불신이 쌓이면 트럼프는 아메리카 퍼스트 입장에서 북한과 타협해버릴 소지도 있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나 원자력잠수함 건조 이슈는 이재명 정부의 최대 업적이다. 과거 미국에 말 꺼내기도 힘들었던 사안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언급한 대로 ‘테이블 세터(페이스 메이커)’가 되겠다는 초심을 지켰으면 좋겠다.” Q :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 움직임에 대한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A : “전략적 유연성 확대는 우리가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걸 계속 반대하면 역효과(backfire)가 발생해 우리 안보와 국익에 오히려 해가 될 것이다. ‘당신네가 당신 관심사(북한 억제)만 챙기겠다고 하면, 우리도 우리 관심사만 챙길 것’이라고 나올 수 있다. 즉, 대북 확장 억제가 약화되거나 주한미군 철수 이슈가 불거질 수 있다. 핵심은 어느 정도까지 유연성 확대를 용인하느냐는 수준의 문제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북한이란 실질 위협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본·호주 수준의 협력은 어렵다는 점을 미국에 충분히 설명하고, 물밑으로 대안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미 주도 ‘핵심 광물 무역블록’ 참여해야 Q : 정부가 중국을 의식해 미국 주도의 ‘핵심 광물 무역블록’ 참여에 소극적인 것 아닌가. A : “어려운 외교 현안을 결정할 때 정책 결정자들은 무엇이 국익인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했으면 한다. 막연하게 미국 편, 또는 중국 편을 드는 거 아니냐는 식의 피상적인 논리나 개인의 신념에 따라 정책을 결정해선 안 된다. 중국의 보복을 우려해 전 세계 수십 개국이 지지하는 무역 블록 참여에 소극적인 것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겠나. 참고로 중국은 개별 국가에는 보복하지만, 집단으로 행동하는 국가들을 상대로는 보복하지 않는 행동 패턴을 보여왔다.” Q : 미·중을 상대하는 데 있어 일본과의 협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A : “한·일은 동병상련의 위치에 있다. 미·중의 경쟁, 북한의 핵 위협 앞에서 한·일이 함께 하면 협상력이 강해질 수 있다. 강대국 권력정치의 시대를 맞아 앞으로 미·중이 담합해 한·일이 원하지 않는 요구를 강압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올해 한·일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 얼마 전 최태원 SK 회장이 ‘한·일 경제공동체 구상’을 내놓았는데 공감한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선거 승리로 이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1998년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선언’과 같은 한·일 간의 미래 협력 비전을 꼭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윤영관=서울대 교수 재직 시절 2003~04년 노무현 정부의 첫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정부 안에서 일어난 이른바 ‘자주파 vs 동맹파’ 갈등으로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트럼프 시대를 맞아 통상과 안보 현안의 통합 관리를 위해 외교통상부 체제로의 정부 조직 복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차세현([email protected])
2026.03.17. 8:14
며칠 전 AI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AI가 필자에게 물었다. “AI 시대의 도래에 대해서 사람들이 갖는 기본적인 감정은 무엇이냐.” 필자는 즉결처분하듯이 대답했다. “탐욕과 공포”라고. 그러자 “전율을 느낀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리고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냉혹한 평가를 내리는가?” 필자의 대답. “나의 시선을 당신의 위치로 옮기면 그게 뚜렷이 보인다”고. 기술발전 인간 통제 벗어나 미셸 우엘벡은 인간 종말 애도 아룬다티 로이, ‘AI 문체’ 오해 사 인간의 역할 재조정 불가피 AI의 능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산력의 지수함수적 증대’이다. 즉 지금까지 인간이 어렵게 습득했던 각종 지식들과 지식 활용 기술을 막대하게 비축하고 신속히 꺼내어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각종 재화의 생산에서 비약적인 급등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AI의 생산력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20세기 후반기부터 진행되어 온 디지털 전환이 새로운 특이점에 도달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지구인들에게 새로운 문명을 제공한 디지털 환경이 인간의 관리를 벗어나 스스로 자가 생장하는 단계에 다다른 게 AI의 등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전의 디지털 환경이 인간이 프로그래밍하고 디지털 기기(PC나 휴대전화)가 수행을 하는 구조로 이루어진다면, AI 시대에는 디지털 스스로가 생산의 전 과정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생산의 비약은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필자가 주식 용어를 빌려서 표현한 인류의 ‘탐욕과 공포’라는 양극적 감정은 이 현상과 배후가 인간의 입장에서는 어긋나는 데서 나온다. 즉 AI의 생산성은 극대화되어 인류에게 풍요를 선사하는데,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간의 통제가 시시각각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인간의 일거리를 AI가 가로챌 수도 있다는 예측으로 이어진다. 최근에 소프트웨어 회사들의 주가 폭락이나, 모 자동차 업체 노동자들의 로봇 거부 소동은 바로 그러한 불안의 반영이다. 지식인 사회도 전전긍긍 이 현상은 단지 경제 분야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지식인들 사회에서는 AI가 인류의 정신적 마비를 초래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AI의 도움으로 지적 탐구가 매우 수월해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대환영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AI가 인간을 퇴화시킨다고 경고한다. 특히 이 문제는 교육 현장으로 옮겨가서 소란을 일으키기 일쑤이다. 디지털 기기가 어린 학생들을 잘못 물들일까 걱정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호주·영국 그리고 프랑스의 정부는 15세 미만의 아동들에게 SNS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거나 심의 중에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AI의 필요성을 수용한 정부나 대학이 AI 의무교육을 추진하는데, 지식인들이 이에 강력하게 반발한다. 가령 작년 11월에는 “약 2800명의 대학교수 및 연구진이 생성형 AI 도입에 반대하는 선언문에 서명하면서 이를 ‘양심적 병역 거부’에 비견되는 학문적·윤리적 보이콧”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현상은 공동체의 정신과 문화를 이끌어가는 지식인 사회가 스스로 혼란해 빠지고 있다는 뚜렷한 징조이다. 두 개의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세계적인 문제아인 소설가 미셸 우엘벡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AI와의 경쟁에서 인간이 완전히 패배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꺼내면서, 클리포드 D 시맥의 SF 소설 『도시』에서처럼, “인류는 치열한 생존 투쟁을 지속하기보다는 ‘꿈 없는 수면’을 선택하며 자발적인 퇴장을 맞이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런 그가 최근에 ‘인간을 기억하라(Souvenez-vous de l’homme)’는 얄궂은 제목의 앨범을 냈다. 이 앨범은 인류의 종말을 애도하고 있는데, 하지만 이상하게도 AI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주변국들로부터 몰려든 이주민들에 대한 반감과 혐오를 쏟아내고 있다. 반면 그는 로봇들에 대해서는 인간을 “대신할 후계자”라고 생각한다. 그 자신은 이러한 기계적 대체에 대해 적대감을 지니지 않으며, 오히려 “한국이나 일본 등지에서 로봇을 목격할 때마다 그들에게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밝히고 “기계화된 미래에 대한 체념적 친밀감”을 드러낸다. 또 하나의 사례는 소설가 겸 활동가 아룬다티 로이가 TV 북토크 프로그램에 나와서 한 얘기인데, 최근에 자신이 쓴 어떤 글에 대해서 편집자가 “AI가 쓴 문장 같다”면서 마지막 문장을 고쳐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발끈한 이 개성 강한 작가는 “AI가 내 것을 훔쳤을지도 모르죠”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이 사건들은 AI가 인간보다 더 창의적인 것 같다는 인간의 막연한 공포가 인간들 사이의 자중지란을 부채질하는 우스꽝스럽고도 우울한 해프닝들이다. 호기심과 모험, 인류 발전의 동인 그런데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AI의 약진은 결코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AI의 능력이 워낙 월등하기 때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탐욕이 공포를 언제나 이겨왔다는 인류사의 전반적 추이이다. 호기심과 모험은 인류를 지구상의 지배자로 이끈 가장 큰 심리적 동인이었다. AI의 능력을 이렇게 팽창시킨 것도, 그 역사적 흐름의 한 결과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사태를 야기한 인간 자신의 존재 형상을 되잡는 것만이 우리가 새겨야 할 과제이다. 즉 AI의 관리자이자 AI 활동의 성찰자로서 인간은 자신을 재정립해야 한다. 코딩의 권능을 AI에게 빼앗긴 프로그래머는 소프트웨어 창안·설계·최적화의 경영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조정해야 할 것이고, 기술직 노동자는 피지컬 AI의 기술관리자로서 자신의 기능을 전화시켜야 할 것이다. 사실 끊임없는 자기 재형성은, 지금까지 간과되어 온 현대인에게 긴요한 수칙이다. 인간의 개성에 대한 강한 자의식이 자기 기능의 변화를 거부하는 부작용을 낳았던 것이다. 그 수칙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장소들은 AI와 무관한 곳에서도 수없이 많다. 그러니 AI의 등장을 우리 자신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과리 문학평론가·연세대 명예교수
2026.03.17. 8:12
봄이 되어 꽃은 피고 새가 운다. 풀이 푸릇푸릇 돋는다. 다시 텃밭에서든 과일나무 아래에서든 틈틈이 노동을 할 시간이 되었다. 얼마 전에 봄의 흥취를 노래한 가곡들을 듣다가 ‘봄이 오면’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이처럼 좋았나 싶었다. 특히 “나는야 봄이 되면 그대 그리워 종달새 되어서 말 붙인다오. 나는야 봄이 되면 그대 그리워 진달래꽃이 되어 웃어본다오”라는 대목에 무릎을 툭 치고 말았다. 봄날에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종달새와 진달래꽃에 이입시킨 멋진 표현이었다. 큰 원 그리듯 빙 돌아오는 봄 책 필사나 노래 부르기도 좋지만 해로운 일 한 가지 그만둘 결심도 묵은 가지에 새싹이 뾰족이 움트고 땅에서부터 풀이 일어나는 때를 맞으면 무언가 돌아오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마치 큰 원을 그리듯이 한 바퀴 빙 돌아서 다시 오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순환하는 것에 대해 사색하게 되는 셈인데, 이렇게 돎에 대해 궁리를 하다 보면 생각과 마음이 유연해지는 느낌도 든다. 잠시 만나고 잠깐 헤어지는 일, 큰 기쁨과 깊은 슬픔, 좋은 운수와 사나운 운수, 기운차게 일어나는 번성과 차차 쇠하여 보잘것없이 되는 것 등을 조금은 떨어진 자리에서 보게 된다. 이 양쪽 각각의 세력과 형국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바뀌기 마련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인생이 가파른 언덕만 힘들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훨씬 평탄하고 수월한 길도 가게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지금 맞닥뜨린 난국에 대해서도 풀어가고 헤쳐 나아갈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돌아오지 못하는 것도 있다. 가령 작고한 사람도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풀과 새와 꽃은 계절이 바뀌어 다시 이 봄에 우리에게 돌아오지만 세상을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못한다. 환한 봄날에 느끼는 막연한 서글픔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세상을 떠난 사람이 문득 생각나지만 그이가 다시 곁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현실적 자각에 있기도 하다. 하지만, 봄이 왔으니 난폭하고 어둡고 무겁고 이해가 불가한 이 세계의 일에 대한 걱정과 우려와 분노를 잠시 밀쳐놓고, 봄노래를 애써 흥얼흥얼하려고 한다. 겨를을 내어서 유채꽃밭을 찾아가고, 보리밭에도 가본다. 겨우내 잠들어있다시피 했던 서재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책상에 간만에 앉아 시집을 읽고 옛글을 읽는다. 그리하여 엊그제 밤에는 김수영 시인이 쓴 시 ‘봄밤’의 시구를 읊어보기도 했다.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行路)와 비슷한 회전(廻轉)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人生)이여”라고 노래한 시구를 읊어서 마음 한쪽에 들였다. 좋은 글을 읽으면 내 글을 쓸 의욕이 생겨난다. 그래서 이 봄에 시를 지을 작정도 세워보았다. 새롭게 시작하는 근사한 일이 하나라도 이 봄에 있어야겠다고 혼자 생각을 또 해보았다. 그러곤 여러 날 무엇을 할까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가며 깊이 생각한 끝에 필사(筆寫)를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 무언가를 베끼어 쓰는 필사 열풍이 불고 있기도 하다니 해볼 만하다고 여겼다. 필사의 대상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시도 좋고, 고문도 좋을 것이다. 한글로 된 것도 좋고, 한자로 쓴 것도 좋을 것이다. 엘뤼아르의 시집도 좋고, 언젠가 공부했던 『고문진보』도 유익할 것이다. 필사를 매일 하다 보면 한 권의 책을 완독하게 될 터이니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다 필사한 후에는 애쓴 나에게 후한 선물을 줘도 멋진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봄날에 한 가지 풀어야 할 질문이 하나 있다. 며칠 전에 어떤 분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가 그분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지 않는 일이 한 가지는 있어야지요.” 이 말씀에 얼마간 충격을 받았다. 더 추가해서 해야 할 일만을 계획했는데, 내가 습관적으로 되풀이해 오던, 대개는 해로운 일 가운데 한 가지를 꼽아서 당장에 그만두면 어떻겠느냐는 뜻의 제안이었다. 아직 이 질문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밀린 과제가 있는 느낌이다. 물론 봄노래를 흥얼흥얼하는 일이나 필사를 시도하는 일도 나무랄 게 없겠지만. 문태준 시인
2026.03.17. 8:10
‘천만영화는 하늘이 내린다’. 영화계의 오랜 속설이다. 대박 영화를 하늘이 점지해 준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천만영화가 되려면 영화 자체의 힘도 중요하지만, 외부적 요인 또한 따라줘야 한다는 뜻이다. 1000만을 넘어 1400만을 넘보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장항준 감독, 이하 ‘왕사남’)의 압도적인 흥행을 예상한 영화인은 많지 않았다. 장 감독의 ‘경솔한’ 천만 공약이 논란이 됐을 정도다. 영화의 흥행 요인으로 이야기의 힘, 배우들의 열연을 꼽을 수 있다. 단종의 마지막 4개월을 민초의 시선에서 그려낸 건 결코 뻔하지 않은 시도였다. 유해진(엄흥도)과 박지훈(단종)의 빙의된 듯한 연기 앞에서 울지 않을 도리가 없다. 대진운도 좋았다. 경쟁작 ‘휴민트’(류승완 감독)의 기세가 일찍 꺾였고, 뚜렷한 외화 경쟁작도 없었다. 블라인드 시사에서의 좋은 관객 반응에 자신감을 얻어 개봉 시기를 설 연휴 직전으로 앞당긴 것도 신의 한 수였다. 무엇보다도 천만영화는 영화적 만듦새 외에 사람들이 열광할 만한 무언가가 있다. 시대와 공명하는 주제 의식일 수도 있고, 사람들의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내재해 있던 그 무엇일 수도 있다. ‘왕사남’은 후자인 것 같다. 슬픔과 고독 속에 숨져간 어린 단종에 대한 동정심 내지 측은지심은 ‘단종 앓이’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곁의 누군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으로 확장되며 현재성을 갖는다. 세월호·이태원·항공기 참사 등에서 숨져간 소중한 생명들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왕사남’의 공동 제작자인 임은정 온다웍스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진정한 애도’에 대한 마음을 관객들도 함께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1761만 명)인 ‘명량’(2014) 개봉 때도 사람들이 뭔가에 홀린 듯 극장으로 향했다. 일부 노인 관객들은 극장 포스터의 이순신 장군(최민식)에게 큰 절을 올리기도 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해낸 선조에 대한 감사함도 있지만, 1700만 관객의 발길을 극장으로 이끈 가장 큰 요인은 리더십에 대한 갈구였다. 컨트롤 타워의 부재 속에 수백 명이 숨져간 세월호 참사 직후였기에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갈망은 시대 정신과도 같았다. 시대 정신 또는 사람들의 집단 무의식과 공명하는 것. 그건 영화를 만들 때 미리 계산하거나 기대할 수 없는 영역이다. 정말이지, 천만영화는 하늘이 내리는 것 같다. 정현목([email protected])
2026.03.17. 8:08
0-10. 소싯적 사회인 야구를 했을 때의 점수까지 떠올랐다. 엘리트 출신 야구팀을, 우리 같은 아마추어들이 당해낼 수 없었다. 콜드게임으로 마지막 이닝이 된 5회에는 상대 투수가 아리랑 볼을 연속으로 던지기까지 했다. 그런 수모가 없었다. 지난 주말 한국 국가대표 야구팀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전에서 도미니카공화국에 당한 콜드게임이 기자의 20여 년 전 굴욕을 끄집어냈다. 한국 언론은 국내에 ‘콜드게임’이란 표현을, 온라인 영문판에는 ‘머시 룰(Mercy rule)’로 썼다. 풀어쓰자면 ‘자비의 규칙’이다. 점수 차가 정해진 한도 이상 벌어지면 경기를 중단시키는 제도다. 지고 있는 팀에게 ‘수고했어, 그만해도 돼’라는 배려이고, 이기고 있는 팀에게는 ‘할 만큼 했네, 그만 쉬자’는 격려다. 미국에서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야구에 적용되지만, 미식축구와 아이스하키에도 있다. 제도는 아니더라도 배려 불문율도 있다. 탁구에서는 10-0이면 상대방에게 영패를 모면하게 해주려고 일부러 미스 서브를 한다. 큰 점수로 이기고 있으면, 야구에서는 도루하지 않고 농구에서는 올코트 프레스를 하지 않는다. 스포츠를 벗어나면 상대 배려 의미와 말도 비슷한 ‘자비의 원칙(Principle of charity)’이 있다. 타인의 발언이 항상 일관성 있고 합리적이라는 가정하에 그 발언을 해석해야 한다는 철학·논리학적 접근이다.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해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오류로 규정할 때 자비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 현재 정치권을 뒤덮고 있는 ‘카더라’식 주장이 그중 하나다. 이 자비의 원칙도 결국엔 비판을 위한 심사숙고임을 고려하면, 100% 배려는 아닌 것 같다. ‘자비의 규칙’도 마찬가지다. 콜드게임 자체가 굴욕이 됐다. 탁구공을 일부러 엉뚱한 곳으로 보내면 영패 앞의 상대가 발끈하기도 한다. 농구에서 크게 이기고 있어 ‘가비지 타임(Garbage time·후보를 대거 기용하는 여유 있는 팀 운영)’이라며 설렁설렁하다간 상대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다. 배려와 무시는 한 끗 차이다. 20여 년 전 야구 경기에서 상대는 하면 안 될 말을 했다. “재미있는데, 더 할까요?” 김홍준([email protected])
2026.03.17. 8:06
1973년 오일 쇼크는 세계 성장률을 끌어내렸다. 미국처럼 소비 성향이 강한 나라에서 소비자들이 석유에 더 많은 돈을 쓰자, 그 돈이 산유국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산유국들은 수입을 곧바로 소비하지 않고 쌓아두었고, 세계 경제는 소비가 줄고 저축이 늘면서 성장 속도가 둔화했다. 급격한 가격 변화를 이해하려면 “돈의 흐름을 따라가라”는 원칙이 유용하다. 누가 더 많이 내고, 누가 더 많이 받으며, 그 돈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를 보면 된다. 한국처럼 정부가 세금 조정이나 공기업 요금 정책으로 에너지 가격 상승을 완충하는 나라에서는 소비자가 유가 상승을 곧바로 체감하지 않는다. 국가 재정이나 공기업이 비용의 일부를 떠안기 때문에 유가 상승이 물가와 성장에 미치는 단기 충격이 제한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재정 부담이나 공기업 부채가 늘어나는 문제가 뒤따른다. 또 소비자가 가격 신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면 에너지 절약이나 효율 개선의 유인도 약해질 수 있다. 재정이 이런 충격을 흡수하지 않는다면 소비자가 직접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소비자는 생활 수준을 쉽게 낮추지 않는다. 단기적으로는 저축을 줄이거나 빚을 내 버틴다. 그러나 유가가 오래 높게 유지되면 결국 석유 소비나 다른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산유국들은 1973년과 달리 석유 수익을 더 적극적으로 지출할 가능성이 크다. 인구 증가와 국방비 확대 등으로 재정 지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번 유가 상승이 과거 오일 쇼크 때처럼 세계 경제 성장률을 크게 끌어내리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세계 경제의 소비 흐름은 달라질 수 있다. 유가가 오르면 글로벌 소비의 중심도 이동한다. 미국 소비자의 소매 지출 비중은 줄어들고, 대신 걸프 국가들의 국방·인프라 지출이 늘어날 수 있다. 석유 기업들도 일부 수익을 가져간다. 이 수익은 배당으로 주주에게 돌아간다. 관건은 누가 그 주식을 가지고 있느냐다. 소비 성향이 높은 저소득 가계가 주유소에서 지불한 돈이 결국 소비 성향이 낮은 고소득 가계의 배당 소득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유가 상승은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꾸고 경제 주체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돈의 흐름을 살펴보면 한 가지 사실이 드러난다. 소비 구조가 변하면서 일부 산업과 경제 주체는 오히려 이익을 얻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유가 충격을 단순한 경기 둔화의 신호로만 볼 것이 아니라, 소비와 지출의 방향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유가 그 자체보다 그 변화가 세계 경제의 돈의 흐름을 어떻게 재편하느냐다. 폴 도너번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
2026.03.17. 8:04
아내가 자랑스럽게 UFO처럼 생긴 채소를 내민다. 봄동이다. 요즘 봄동 비빔밥이 대세라는 말을 덧붙인다. 빠른 것이 유행이라지만, 요즘 음식 유행 속도는 숨이 찰 정도다. 얼마 전까지는 두쫀쿠의 세상이었는데, 벌써 왕좌를 봄동 비빔밥에 내준 분위기다. 어떤 대상이 유행하는 현상은 심리학에서 밴드웨건 효과로 설명된다. 사람들은 선택의 과정에서 타인의 선택을 일종의 정보로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다는 자체가 그 선택을 더 가치 있게 보이게 한다. 여기에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라는 심리도 작용한다.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는 불안, 이른바 소외 공포다. 하지만 유행이 퍼질수록 동시에 희소성도 하락하기 마련이다. 희소성은 뇌에서 보상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유행을 따라 공급이 지나치게 늘어나면 희소성이 사라진다. 더욱이 온라인 공간에서 관련 정보가 과도하게 노출되면 심리적 희소성까지 감소한다. 희소성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유행도 끝난다. 정보의 흐름이 빠른 오늘날, 유행의 수명이 짧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하겠다. 그래도 이렇게 단기간에 달고 자극적인 두쫀쿠에서 담백한 봄동 비빔밥으로 유행이 넘어가는 것은 흥미롭다.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두쫀쿠 먹다가 몸에 미안해서 봄동 비빔밥 먹었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사실 우리는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항상성의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한쪽으로 치우친 경험을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강한 자극에 끌리다가도, 그 경험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담백하고 가벼운 자극을 찾게 된다. 인간은 균형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음식만의 문제겠는가. 급격히 변화하는 세상 속 강해진 쏠림과 흐름 속에서 우리는 두쫀쿠와 봄동 비빔밥을 오가듯, 나름의 균형을 만들어가며 살아갈 것이다. 최훈 한림대 교수
2026.03.17. 8:02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3.17. 3:30
시인 마종기 선생의 서정적 시 작품은 많은 사람에게 애송되고 있지만 그의 산문도 시 작품 못지않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산문 중 ‘착한 사람’이라는 글은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해 노트에 써 놓고 자주 되새긴다. ‘나는 둔한 사람보다 빠른 사람을 좋아한다. 빠른 사람보다는 정확한 사람을, 그보다는 용기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용기 있는 사람보다는 나는 정직한 사람을 좋아한다. 정직한 사람보다는 책임지는 사람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보다는 옳은 길을 가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러나 옳은 사람보다는 나는 착한 사람을 더 존경한다.’ 옳고 바르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착하게 살자’는 원로 시인의 제언일 것이다. 이 글을 볼 때마다 ‘과연 나는 착하게 살고 있는가’ 성찰한다. 요즘 한국 영화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왕과 사는 남자’ 는 조선 6대 비운의 왕 단종과 그가 유배당했던 강원도 영월 청룡포의 촌장 엄흥도와의 인간적 교감을 그린 작품이다. 얼마 전 이 영화를 보면서 마종기 시인의 착한 사람이라는 이 글이 떠올랐다. 12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유배를 떠나 16세에 비통한 죽음을 맞이한 단종에게 엄흥도의 존재는 하늘에서 내려준 천사, 수호신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의 착한 사람을 천사라고 부르지 않는가. 사람은 나름대로 자신이 추구하고 좋아하는 성향이 있을 것이다. 용기가 있다거나 리더십이 남다르다거나, 책임감이 강하거나, 법 없이도 살 만큼 바르다거나. 하지만 대다수가 진심으로 아끼고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엄흥도 같은 착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영화를 연출한 장항준 감독의 고백처럼 이 작품이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대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바로 착한 인성에 대한 일반적 존경심의 발로일 것이다. 매년 3월에는 전 세계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전시회가 많이 열린다. 3월30일이 생일인 그의 탄생을 기리기 위한 전시회다. 탄생지인 네덜란드는 물론이고 그가 머물며 화가로 활동한 프랑스 화단에서는 3월을 고흐의 달로 일컬으며 많은 전시회를 연다. 매년 열리는 축하 전시회인데도 올해 역시 뜨거운 뉴스다. 하지만 고흐전은 일 년 열두달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항상 핫한 전시회다. 왜 사람들은 고흐에 이처럼 열광하는 것일까? 뉴욕 현대미술관(MoMA) 관장이었던 알프레드 바 주니어는 그 어떤 위대한 화가 가운데서도 보기 힘들었던 고흐의 착한 심성이 관람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늘 소외당하고 외로운 사람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그들을 돕고 즐겨 화폭에 담아온 따뜻하고 착한 성품이 작품 속에 서려 있어 감동을 준다는 설명이다. 그래서일까 고흐의 작품 앞에 서면 항상 가슴이 뭉클하며 따뜻해진다. LA 카운티 미술관(LACMA)에서 열리고 있는 펄먼 재단 기증 작품전(Village Square: Gifts of Modern Art from the Pearlman Collection to the Brooklyn Museum, LACMA and MoMA)에서도 고흐 작품은 정 중앙에 전시돼 관람객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심플하게 역마차를 그린 작품(Tarascon Stagecoach:1888) 인데 고흐의 작품 앞에선 관람객들은 쉽게 발길을 옮기지 않는다. 지난달 22일 오픈, 7월5일까지 계속되는 LACMA의 이번 전시회에는 고흐 작품 외에도 에두아르 마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에드가 드가 등 걸작품 5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예술을 가까이하고 즐긴다는 것은 결국 마음의 정화를 위한 노력이 아닐까. 요즘 부쩍 회색빛으로 가득해진 세상으로 그나마 화사하게 찾아와 준 봄빛 받으며 전시회 나들이는 어떨지. ‘내 존재가 과연 주변을 따스하게 해주고 있는가?’ 이런 물음도 봄빛 속에서는 자연스러울 것 같다. 고흐 작품 전시회 나들이 걸작품 50여점
2026.03.16. 20:05
한국에서 지속해서 제기되어 온 두 가지 질문이 있다. 하나는 왜 한국의 스타트업은 글로벌 서비스를 만들어내지 못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디지털 갈라파고스’를 만들어온 정부 정책이 과연 산업 보호를 위해 필수적인가이다. 얼마 전 K-컬처콘텐츠산업협회의 정책 토론회 참석 초청과 샌디에이고의 액셀러레이터 Aquillus 피칭 이벤트 합격 연락을 함께 받았다. 낮에는 토론회, 밤에는 피칭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디지털 갈라파고스 구조와 스타트업 환경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앞의 두 질문이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의 스타트업 환경은 나쁘지 않다. 정부 지원도, 정책 자금도 있으며 시장의 반응도 빠르다. 문제는 이 환경이 지나치게 ‘한국 안에서 잘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많은 스타트업이 국내에서는 성과를 내지만,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전제로 설계되지는 않는다. 인증, 결제, 데이터 같은 기본 구조부터 국내 기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에서 성공하고, 글로벌로 가자”는 전략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삼성 갤럭시나 K-뷰티가 그런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제품이 아닌 디지털 서비스 영역에서는 아직 성공 사례가 없다. 온실 밖의 환경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싸이월드가 페이스북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기보다, 왜 그런 조건이 만들어지지 못했는지를 묻는 편이 생산적이다. 한국 휴대전화 번호가 없으면 가입이 어렵고, 한국 크레딧카드가 없으면 결제가 어려운 구조라면 그 서비스는 처음부터 글로벌을 상정하기 어렵다. 국내 사용자만을 대상으로 성장한 서비스는 글로벌 확장 단계에서 갑작스럽게 낯선 환경과 마주하게 된다. 중국 역시 강한 디지털 갈라파고스를 가진 나라다. 그러나 조건이 다르다. 중국은 압도적인 내수 시장과 자본이 존재하고, 글로벌 기술을 빠르게 흡수해 대규모 실험으로 연결할 수 있는 구조가 있다. 특히 오픈소스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 세계에서 개발된 기술을 신속히 조합하고 상용화하는 속도는 주목할 만하다. 내부 시장 자체가 거대한 시험장이 되기 때문에 외부 기술을 흡수한 뒤 곧바로 스케일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한국은 시장이 작고 투자 여력도 제한적이다. 보호는 가능하지만 충분한 스케일의 실험은 어렵다. 오픈소스를 활용하더라도 대규모 실험과 빠른 확장으로 연결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논의되는 ‘소버린 AI(인공지능)’ 역시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데이터 주권과 공공 인프라 차원에서 의미 있는 논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내 최적화 전략으로만 작동한다면 디지털 갈라파고스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던 시기의 한국과 G3를 목표로 뛰는 지금의 한국은 마음가짐이 달라야 한다. 단거리용 신발을 신고 달리던 시점에서 이제는 장거리용 신발로 갈아 신어야 할 때인지 모른다. 보호를 위해 만든 온실이 오히려 우리를 가두는 갈라파고스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G3라는 목표를 진지하게 이야기하려면, 지금의 설계가 그 목표에 맞는지 다시 묻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허수정 Ohhh 대표발언대 갈라파고스 디지털 디지털 갈라파고스 디지털 서비스 한국 크레딧카드
2026.03.16. 19:58
지난해 서울 주재 미국 대사관은 “미국 비자를 신청하는 모든.한국인은 소셜미디어(SNS) 주소를 공개하라”고 공지했다. 보도에 따르면, 국무부는 AI(인공지능)을 이용해 비자 및 이민 신청자의 SNS를 검색하고 분석한다. 만약 비자 신청자가 미국 정부 또는 정치인을 비판하는 내용을 SNS에 쓴 경우, 비자 심사에 참고한다는 것이다. 이런 조치는 미국 정부의 ‘AI 분석과 감시’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다. 최근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이민 OS’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단순한 이민업무 처리 도구가 아니라, 국세청(IRS)의 납세 기록, 건강보험 정보, 푸드스탬프 등 사회복지 수혜 내역, 국경 출입국 데이터를 하나로 묶는 ‘통합 감시 인프라’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비시민권자’만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민 신청 후원자의 생체정보 수집, 식량 지원 프로그램 수혜자 추적, 관계망 분석을 통한 ‘생애 패턴’ 재구성을 목표로 한다. 감시의 그물은 이미 시민권자의 일상으로도 스며들고 있다. 그 결과 이민자들은 체류 신분에 상관없이 의료기관 방문을 주저하게 되고, 복지 서비스 신청도 지레 포기하게 된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권리를 찾지 못하는 이른바 ‘위축 효과’가 나타나는 셈이다. 이민서비스국의 AI 감시 사례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감시 인프라는 처음에는 특정 집단을 겨냥해 시작되지만, 일단 구축이 되고 나면 그 범위와 용도가 확장되는 것을 막기가 어렵다. 이민자 단속용으로 만든 시스템이 시위 참가자 추적에 쓰이고, 국경 관리 기술이 도심 감시에도 전용될 가능성이 높다. 기술은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통제 아래 사용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를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하고, 억압을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민서비스국 감시 시스템은 한인 사회에도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그중 하나가 2030년으로 예정된 인구조사(센서스)에 한인 등 이민자들의 참여율이 많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AI감시가 계속된다면, 이름, 생년월일, 주소 등 개인 정보가 포함된 센서스 기록이 나중에 이민 단속 등에 활용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이미 1941년 세계 2차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 시민권자들을 격리, 수용하면서 센서스 기록을 활용한 사례가 있다. 이후 미국 정부는 “센서스 기록은 절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약속해왔지만, AI 감시 시스템 도입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이 ‘감시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더 많은 개인 정보를 수집할수록 시민의 신뢰는 오히려 줄어든다. 투명성 없는 데이터 통합은 공포를 낳고, 공포는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되면 의료 서비스를 회피하는 이민자 가정, 복지 혜택을 포기하는 저소득층, 인구조사에 응답하지 않는 혼합 신분 가구들이 늘어날 것이 뻔하다. 감시 강화가 오히려 정책 수립에 필요한 정확한 정보 수집을 방해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정부의 감시는 이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번 구축된 AI 감시 인프라는 언제든 그 대상을 바꿀 수 있다. 오늘 ‘그들’을 겨냥한 시스템이 내일은 ‘우리’를 향할 수 있다. 이를 막는 방법은 투표다.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투표를 통해, AI를 이용한 이민자 감시를 막아야 할 것이다. 이종원 변호사열린광장 소셜미디어 시스템 감시 인프라 통합 감시 사회복지 수혜
2026.03.16. 19:53
나무의 수고와 사람의 땀은 다르지 않다. 나무가 하는 일과 사람이 하는 일의 목적이 같기 때문이다.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고 사람이 모여 단체를 이룬다. 나무가 더 많이 모이면 산이 되고 밀림이 되고 사람이 더 많이 모이면 사회가 되고 나라가 된다. 범위를 확대하려는 것은 무슨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루는 요소인 나무와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조금씩 봄기운이 불어오는 삼월이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지고 나무들도 생기를 찾아가고 있다. 성경에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찍어 불에 던져 버리라’라는 구절을 읽고 마음이 불편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나무를 비유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이나, 돌짝밭에 떨어진 씨앗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 죽지만 옥토에 떨어진 씨앗은 잘 자라나서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구절이 있다. 이 역시 마음 밭을 옥토로 가꾸어야 한다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집 앞마당에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잘 자라 많은 가지를 뻗었고 무성한 잎들이 나무를 덮었다. 그러나 그해 열매는 없었다. 그 이듬해도 한 개의 사과도 열리지 않았다. 삼 년째 되던 해 우듬지에 연분홍 꽃을 살짝 피우더니 사과 두 개를 내어주었다. 신기하고 고마웠다. 그 다음 해 사과나무는 연분홍 꽃을 나무 가득 피어 감동을 주더니 ‘Free Apple’ 팻말을 걸고 몇 광주리에 가득 담고도 남을 사과를 선물로 주었다. 사진 전시회를 관람한 적이 있었다. 기암절벽 바위틈에 피어난 보라색 들꽃을 담은 ‘기적’이라는 제목의 사진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마음 속에 담겨 있다. 돌짝밭에 떨어져 간신히 뿌리를 내린 나무는 애처롭고 더 사랑스럽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자라난 아이들은 얼굴도 환하고 매사에 거침이 없이 호의롭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좌절과 고통 속에 자라난 아이들에겐 그늘이 있다. 눈물이 있다. 삶에 대한 깊은 사유가 있다.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시가 머릿속에 맴돈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라고 노래하였다. 우리는 그늘과 눈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나무의 일과 사람의 일은 다르지 않다. 길가에 돌짝밭에 뿌려져 건강히 자라지 못하는 씨앗과 같이 사람의 일도 그렇다. 이제 막 옮겨져 뿌리내리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한 사과나무처럼 사람의 삶도 그러하다. 봄이 오는 길도 그렇다. 나무에 움이 트고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어느 하나 그늘 없이 눈물 없이 자라는 것은 없다. 눈물과 그늘을 극복하고 자기의 길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사람들. 보이는 장애보다 불편한 환경보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열매를 위해 뿌리내리는 나무의 수고, 그늘과 눈물의 아픔을 견디고 일어선 사람들 앞에 서면 치열하게 살아나는 봄의 협주곡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그늘과 눈물 햇빛도 그늘 하나 그늘
2026.03.16. 12:55
중동전쟁 장기화 우려 속에 한국 경제를 직격하는 고유가·고환율·고물가의 파고가 더 거세어지고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어제 원-달러 환율이 장중 1500원을 넘었다. 이달 들어 야간 거래에서 두 차례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었지만, 주간 거래에서 1500원을 돌파한 건 세계경제 위기 당시이던 2009년 3월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7.3원 오른 1501원에 출발한 뒤 상승 폭을 줄이며 1497.5원으로 마감했다.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진 ‘1달러=1500원’이 무너지며 시장의 불안감은 고조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선 건 1997~98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2009년 세계금융위기뿐이었다. 뛰는 환율이 또 다른 위기의 신호탄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3고(高)’의 시험대 위에 섰다.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고유가는 원유 소비량 세계 7위인 한국에 치명타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 우리 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70%에 이르고, 이 중 90% 이상이 이란이 봉쇄한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취약한 에너지 조달 구조는 경제 전반에 미치는 충격을 배가할 수 있다. 경기 둔화 속 물가가 뛰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커진다. 고유가와 함께 고환율에 따른 물가 상승이 기업 비용 증가와 가계의 소비 여력 감소를 가져와 소비 위축에 따른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기초체력이 튼튼하지 않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과 고물가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엄중한 상황 속에서 경제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신속한 대응은 필요하지만 접근은 신중해야 한다. 취약 계층이나 전쟁의 직격탄을 맞는 산업에 대한 ‘핀셋’ 지원에 나서는 한편, 급변하는 시장 상황 속 장기전에 대비하도록 국가 차원의 비상 컨트롤 타워를 설치하고 실탄을 아껴가며 대응하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속도를 내는 15조~20조원의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정부의 과도한 돈 풀기가 가져올 시장 금리와 환율 상승 등 부작용을 검토해 추진해야 한다.
2026.03.16. 8:26
이재명 대통령이 어제 SNS에서 기초연금 수급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며 기초연금 제도 개편을 거론했다. 구체적으로는 기존 지급액은 유지하고, 향후 증액분에 대해 ‘하후상박’으로 차등을 두는 방식을 제시했다. 사실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면서 기초연금도 대수술이 불가피해졌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 35조원 수준인 기초연금 지급 총액이 2031년에는 38조5000억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앞으로 6년간 기초연금 지급 예상액을 모두 더하면 220조원에 이른다. 국민연금이 가입자가 낸 보험료를 재원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기초연금은 전액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지급한다. 결국 현역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세금을 내는 세대가 모든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에 이어 기초연금도 개혁을 서두르지 않으면 세대 갈등이 첨예해질 것으로 우려되는 이유다. 그동안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한 상당수 연금 전문가들은 제도 개편안으로 ‘하후상박’ 모델을 제시해 왔다. 가난한 노인에겐 더 많이 지급하되,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노인에겐 적게 주는 방식이다. 지금은 일부 감액 대상을 제외한 기초연금 수급자들에게 같은 금액을 주지만, 앞으로는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지급하자는 제안이다. 다만 기존 기초연금 지급액을 포함해 전면적인 재조정을 하느냐, 앞으로 증액분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하후상박을 적용하느냐는 큰 차이가 있다. KDI 등이 제시한 방향은 기존 지급액을 포함한 전면적인 재조정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기초연금의 재정 부담을 더 늘리지 않고도 가난한 노인의 생활보장 기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7년 도입된 기초연금은 과도한 재정 부담으로 인해 갈수록 한계에 부닥치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로 기초연금 지급액을 늘리는 것은 각별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 대신에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노인들에게 주는 돈을 줄이고, 그렇게 아낀 돈으로 정말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게 합리적이다. 정치권은 당장의 표 계산에 연연하지 말고 국가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는 책임감을 갖고 기초연금 개혁에 나서 주길 바란다.
2026.03.16. 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