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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법 개혁, 국민에게 피해 간다는 대법원장 지적 경청해야

조희대 대법원장이 어제(12일) 여당이 추진 중인 ‘사법 개혁 3법’에 대해 공개적으로 강한 우려의 입장을 표명했다. 지난해 12월 법 왜곡죄 법안(판사·검사 처벌이 가능한 형법 개정안)에 이어 그제 재판소원 법안과 대법관 증원 법안을 법사위에서 의결하고 이달 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방침을 거듭 천명하자 바로 다음 날 입장을 낸 것이다.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서 공개적으로 입장을 내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3법에 대한 사법부의 우려가 크다는 얘기다. 재판소원법은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행 헌법 101조는 사법부는 법원에 있고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명기하고 있기 때문에 최고 법원의 판결로 재판 결과가 최종 확정되고, 사법부에 속하지 않는 다른 기관(헌법재판소)에 소원을 제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란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소원을 허용하면 사실상 초헌법적인 4심제가 된다는 의미다. 이번 법안이 모델로 삼았다고 하는 독일의 재판소원은 헌법에 해당하는 연방기본법에 명시적인 규정이 있어 위헌 논란에서 자유롭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 위헌 논란을 비껴갈 수 없다. 위헌 논란 외에도 조 대법원장이 재판소원을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가 가는 문제”라고 표현한 대목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국민의 입장에선 사법 절차가 한 단계 더 늘어나는 만큼 비용 부담이 발생하고, 재판을 통한 분쟁의 최종적 해결이 지연되는 등의 부작용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문형배 전 헌재소장 대행, 김선수 전 대법관 등 진보 성향 전직 고위 법관까지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조 대법원장은 사법 개혁 3법에 대해 “헌법과 국가 질서의 큰 축을 이루는 문제”라면서 “공론화를 통해 충분한 숙의 끝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현 단계에선 충분한 사회적 숙의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 여당은 강성 지지층을 의식해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기 전에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숙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사법 개혁은 특정 정치 세력의 이익이나 당리당략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라 헌법 질서와 3권 분립 원칙의 근간에 관한 문제란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바란다.

2026.02.12.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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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통령에게 직접 따질 기회 날려버린 장동혁 대표

어제 열릴 예정이던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청와대 오찬 회동이 장 대표의 불참 선언으로 무산됐다. 민주당이 그제 밤 법사위에서 재판소원법 등을 강행 처리한 게 원인을 제공했지만, 제1 야당 대표가 대통령을 직접 만나 법안의 위헌성을 따지며 야당과 국민의 목소리를 전할 기회를 날린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거대 여당의 입법 폭주는 이번에도 사실상 예고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어제 불참 사유로 재판소원법 강행 처리를 언급하며 “한 손으로 등 뒤에 칼을 숨기고 한 손으론 악수를 청하는 것에 대해 응할 수 없다”며 “밥상에 모래알로 지은 밥을 내놓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했다. 목숨을 건 단식까지 해가며 어렵게 마련된 만남에서 이 대통령이 쌍수를 들고 환영이라도 해주길 바랐던 것인가. 원래 영수회담은 만면에 웃음을 띤 악수를 나누면서도 정치적 칼을 겨누는 자리다. 진영의 메시지를 던지고 상대 논리를 격파하며 협치의 계기를 만들어 가는 고도의 정치 행위가 이뤄진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만남을 우두머리(영수) 회담이라 부른 것도 지지층을 대변한다는 준엄한 의미가 담긴 것이다. 특히 어제 회담은 국민의힘엔 여권에 견제구를 날릴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최근 이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발언과 여당의 불안한 독주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 대표에게도 강성 지지층을 달래며 외연을 확장한다는 식의 어정쩡한 행보를 보완할 기회였다. 그러나 결국 강성 최고위원들의 건의를 받아 회동 불참으로 선회하면서 ‘말은 중도, 몸은 극우’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작태”라고 비판한 것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회동 하루 전에 방탄용이라는 의심까지 받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야말로 소통과 협치를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국제사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입법 속도를 높여야 한다”며 국회 협조를 당부했던 이 대통령의 국익에 대한 진정성도 의심받게 됐다. 초당적 협력을 기대한 국민만 바보였던 셈이다.

2026.02.12. 8:22

[사설] 이 대통령 공소취소 운동 나선 민주당 의원이 무려 87명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 모임’이 어제 출범했다. ‘대장동 변호인’ 출신인 이건태 의원을 포함해 더불어민주당 의원 87명이 모임에 이름을 올렸다. 친명계 의원 다수가 참여했고, 6·3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출마 희망자도 대거 동참했다. 이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통령에 대한 조작 기소는 당장 공소 취소해야 한다”며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정치 검찰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임에 속한 한 의원은 1000만 서명운동도 제안했다. 모임 측은 대장동 사건,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등 이 대통령 관련 재판이 모두 대통령 당선 후 중지됐지만, 윤석열 정권의 정적 제거 목적에 따른 조작 기소였기 때문에 검찰이 공소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된 공직선거법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사건에서 공소 취소가 되면 재판은 진행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퇴임하더라도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는 셈이다. 민주당 의원들의 이런 움직임은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헌법상 형사소추와 공소 유지·취소는 행정부 소속인 검찰의 권한이고, 유무죄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다. 그런데 입법부 소속인 의원들이 특정 사안의 공소 취소를 압박하면 소추와 재판 과정에 사실상 개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재판이 끝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정치적인 압박을 가해 공소 취소를 유도하는 것은 사법부가 증거와 법리에 따라 재판할 기회를 없애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니 야당인 국민의힘에서 “입법권으로 사법부를 짓밟는 헌법 파괴 모임”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집권당인 민주당 의원들의 이런 행태는 한국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에 나쁜 선례가 될 것이다. 집권 세력과 의회 다수 정당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기소를 철회시킬 수 있다면 권력층 비리 척결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번에 여권이 무리수를 둘 경우 사법제도 개편의 목적이 ‘이재명 지키기’가 아니냐는 국민적 의구심은 더 커질 것이다. 민주당의 재판중지법 추진에 “정쟁에 대통령을 끌어들이지 말라”고 했던 이 대통령은 이번에도 분명하게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2026.02.12. 8:20

[박수련의 시시각각] ‘거대한 수레’와 창업 오디션

지금 전 세계의 돈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인공지능(AI)이다. 미·중 힘겨루기의 핵심은 AI이며, 구글·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 등 4개 기업이 올해 계획한 자본지출만 7000억 달러(약 1022조원)다. 한국의 지난해 총수출, 일본 정부의 올해 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중국마저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AI가 기업과 국가의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거란 기대 때문에 몰린 돈이다. 법률·재무 지식이 없어도 AI 비서를 시켜 뚝딱 보고서를 쓸 수 있고, 24시간 일하는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산업 현장에 투입될 채비 중이다. 이러니 기업의 투자는 노동(인간)보다 데이터센터, 로봇 같은 자본집약적 기술 인프라에 더 쏠릴 수밖에. 기업의 이익이 근로소득 형태로 순환될 통로는 점점 더 좁아진다는 뜻이다. AI 폭풍에 줄어드는 일자리 대안으로 ‘창업’ 꼽은 정부 오디션 전에 묵은 숙제부터 그래서 휴머노이드의 공장 투입을 반대한다는 현대차 노조의 반응은 놀랍지 않았다. 대기업 노조의 철밥통 지키기에 진절머리가 난 이들은 ‘거봐라. 노조가 큰소리치는 시대는 끝났다’고 냉소하지만, 위태로운 게 대기업 일자리만은 아니란 걸 우리는 안다. 사무직에선 이미 AI가 일자리를 없애는 징후가 뚜렷하다. 국내 서비스업 일자리 중 전문·과학 및 기술 분야 취업자 수가 지난해 12월(전년 동월 대비 5만6000명 감소)에 이어 1월에도 9만8000명(6.6%)가량 줄었다. 법률·회계 같은 영역에서 신입이 하던 일을 AI가 대체한 영향이 컸다. AI가 고용 지형마저 바꾸고 있으니 이제 월급을 모아 자산을 불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수도권 부동산 투자는 길이 막혔고, 돈이 흘러갈 곳은 주식시장뿐이다. 성과급 2964%를 받는 SK하이닉스의 직원이 될 수 없다면 주주라도 되자는, 이번이 막차일지 모른다는 ‘불안’의 소용돌이가 빚투를 부르고 주식 시장을 달구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는 냉골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소비쿠폰 13조원을 뿌렸지만 내수와 고용은 여전히 차갑고, 자본이 절실한 기업들의 회사채는 안 팔린다. 그나마 돈이 도는 코스피 시총의 40%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두 회사 몫이다. AI와 로봇의 일자리 위협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는 없다”며 양극화 돌파구로 ‘창업’을 제시했다(1월 30일 국가창업시대 전략회의). 수도권 대기업 고용 중심의 성장 물길을 창업-청년-지방으로 틀겠다는 거다. 방향 자체는 맞다. 그런데 방법이 이상하다. 전 국민 창업 오디션을 열어 5000명에게 1인당 200만원씩 지원하고, 최종 100명이 도전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TV로 방영하겠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1년에 한 번은 너무 적다. 분기별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문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창업이 취업의 대안이 되지 못한 문제가 붐업 이벤트로 풀릴지는 미지수다. 정부·지자체가 상금을 내건 창업 오디션은 이전에도 많았다. 창업자들을 좌절시킨 건 겹겹이 쌓여 있는 규제의 벽이었다. 게다가 한번 실패하면 재기가 쉽지 않고, 투자금 회수를 어렵게 하는 자본시장의 한계 등 묵은 숙제들 때문이었다. 현장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왔다. “보조금 준다고 아이 낳지 않듯, 창업도 하고 싶어야 하는 것” “스타트업이 크기도 전에 두들겨 맞고 꺾이면 누가 창업하겠나. 미래지향적인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정치를 해 달라”(한상우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 우리 정치권은 택시기사든, 변호사든, 약사든 직역단체와 신생 스타트업 간 갈등을 현명하게 풀어낸 적이 없다. 최근엔 AI 창업자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글로벌’이 생존 조건인 AI 경쟁에서 미국 실리콘밸리로 자본·인재·기술이 더 집중되는 마당에 한국은 지난달부터 세계 최초로 AI기본법을 시행 중이다. 사전 통제 성격의 플랫폼 규제도 강화하는 중이다. 규제를 더 촘촘히 하면서 ‘창조적 파괴’를 외치는 건 공염불이다. 오디션보다 생태계 회복이 먼저다. 박수련([email protected])

2026.02.12.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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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선] 다카이치 총리의 ‘강한 일본’이 불러올 변화

일본 중의원 선거가 한창이던 지난주 도쿄와 요코하마, 요코스카 일대를 돌아봤다. 대학 교수와 대학생을 만나고, 식당과 상점에서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선거 분위기를 읽었다. 도쿄로 가기 전에는 유튜브로 유세 현장을 살폈는데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압승을 직감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확신에 찬 비전 제시로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새벽 3시에 출근해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자세는 전형적 카리스마 리더십을 보여줬다. 정계에 진출한 1993년 이후 현장 유세 경험에 방송 캐스터 경력이 더해지며 호소력 있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비전과 헌신의 카리스마 앞세워 17개 첨단산업 분야 투자 본격화 일본의 변화에 한국도 긴장해야 이번 총선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가는 곳마다 수천 명이 몰려들었다. 청중을 몰입하게 만든 동력은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피부에 와 닿는 공약이었다. “국민의 생활을 지키고, 의료·복지·교육·일자리 환경을 개선해 일본 열도를 지키겠다”는 약속이다. 당연해 보이는 공약 같지만 지금 일본에서 이만한 민생 이슈는 없다. 0%대 저성장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엔화 약세로 수입물가가 오르며 생활 불안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 불안을 ‘강하고 풍족한 일본’이라는 구호로 반전시키고 있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는다”는 호소는 국가 재설계 선언이었다. 그 결과 자민당은 316석이란 압승을 거뒀다. 일본 유권자들이 선택한 것은 자민당이 아니라 다카이치 총리다. ‘다카이치의 리더십이 있어야 일본이 오랜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강한 일본’은 어떤 변화를 예고하고 있나. 일본은 ‘잃어버린 30년’ 동안 끊임없이 출구를 모색해왔다. 1990년 버블 붕괴 이후 경제는 구조적 저성장에 빠졌다.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은 행정개혁과 금융빅뱅을 추진하며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2001년 취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성역 없는 개혁’을 내걸고 부실채권 정리와 우정 민영화를 단행했다. 소리는 요란했지만 성장 모멘텀은 제한적이었다. 2012년 출범한 아베 신조 정권은 금융완화·확장재정·구조개혁이라는 ‘세 개의 화살’로 아베노믹스를 추진했다. 주가 상승과 고용 개선 등 성과도 있었지만,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사나에노믹스’로 불리는 다카이치 총리의 정책은 아베노믹스의 연장선에 서 있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다. 과거 재정 지출이 경기 부양을 위한 토목·인프라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전략산업 중심의 국가 주도 투자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기술, 차세대 배터리, 방위산업 융합 등 17개 전략 분야를 선정해 대규모 재정 투입을 예고했다. 이는 국가채무만 부풀리는 단기 부양책이 아니라 산업 구조를 개조하는 시도다. 한국과 대만, 중국에 빼앗기거나 추월당한 반도체·배터리·방산 등 고부가가치 분야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중국 제조 2025’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의 일본판 첨단산업 전략이 본격 가동되는 셈이다. 자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중의원 465석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의석을 차지했다.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참의원이 법안을 부결해도 재의결이 가능해 무소불위의 권력이 됐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기반으로 과감한 재정 투자에 나선다. 17개 첨단산업을 전국에 배분해 지역별 클러스터를 육성한다. 도쿄 중심에서 탈피해 일본 열도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전략이다. 안보 측면에서도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이 동맹국의 방위 부담 확대를 요구하는 기조에 맞춰 일본은 안보 법제 정비와 방위력 증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입장에선 일본과 협력해야 하지만 군사와 산업에 모두 쓰이는 반도체·조선·방산 분야에서 경쟁이 불가피하고,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강한 일본’의 두 얼굴이다. 결국 질문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일본이 강력한 리더십을 만나 국민이 똘똘 뭉쳐 강한 일본을 만들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우리는 답해야 한다. 한국은 지금 성장 둔화와 산업 경쟁력 약화 우려 속에서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기조차 쉽지 않은 환경에 놓여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에 따르면 2020년 세계 9위까지 올랐던 한국의 경제 순위는 계속 밀려나 올해 15위로 내려앉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칫 일본은 부활하는 데 한국은 침체의 수렁에 더 빠져드는 형국이 아닌가. 그동안 배울 게 없다고 했던 일본이 깨어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의 정책을 잘 지켜보면서 한국도 다시 신발 끈을 매야 할 때가 왔다. 김동호([email protected])

2026.02.12.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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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원의 이코노믹스] 불확실성의 비용은 너무 큰데 근로조건 개선 여지는 적어

‘노란봉투법’ 시행에 앞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들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노동조합, 기업, 정부 등 모두 3월 10일 이후를 대비하느라 분주하다. 금속노조는 법 시작과 동시에 원청에 교섭요구 공문을 보내기로 했다. 거부하는 경우 노동위원회 구제 신청과 고소·고발을 병행할 예정이다. 원청 사용자는 실질적 지배관계 배제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계약사항 점검, 시스템 개편, 관리 관행 수정 등 ‘완벽한 타인’을 위한 준비에 몰입 중이다. 개정법이 의도대로 하도급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을까? 원청, 특정 협력사 의존 낮추고 AI·로봇 대체나 해외 이전할 수도 파업기금 없는 하청노조 쟁의여력 없어…파업 시 노노 갈등 우려 기대보다 걱정 큰 노란봉투법, 하청 노동자의 처우 개선 어려워 연관 제도 종합적으로 재점검하고 보완·대체입법 적극 고려해야 사용자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로부터 노동조합의 교섭권을 보호하기 위해 추진한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개념을 확대했고, 사업상 의사결정도 단체교섭 의제에 포함했다. 모두 불명확하고 모호한 개념(실질적·구체적 지배, 사업상 의사결정)을 핵심으로 포함해 3월 10일 이후 단체교섭과 법률 다툼 과정에서 논란이 불가피하다. 형식상 무리한 입법이지만 그 효과로 하청 근로자들의 임금·근로조건이 개선된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는 산업구조와 노동시장, 연관된 제도와 정책, 이해관계자들의 상호작용, 노동조합의 조직과 교섭력 등 복잡한 변수의 터널을 무사히 지나야 가능한 것이어서 쉬운 일은 아니다. ‘비용의 하방 전가’ 터널이 된 가치사슬 부품을 매개로 한 기업 간 거래는 산업 발달과 기술분업 심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확대되며, 이 과정에서 원청과 하청 사이의 거래관계는 단순한 재화 교환을 넘어 장기적 상호의존을 동반한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초기부터 대기업을 정점으로 부품 협력사를 수직으로 통합해 장기거래를 관행화했다. 고도성장에 진입하던 1970년대 중반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1975년)은 장기계약, 생산·판매 알선, 자금·세제 지원, 기술개발 등을 통해 대·중소기업 간 계열화를 촉진했으며 이에 기반해 대기업의 성과가 중소기업에 이전되었다. 하청 근로자의 임금과 근로조건이 개선되었고 이에 기반해 제조업을 중심으로 중산층이 형성됐다. 하지만 낙수효과의 시대는 1997년 외환위기로 끝났다. 기업 구조조정과 경쟁환경 변화에 따라 공급망이 재편되었고 글로벌 생산네트워크가 결합하면서 중층적 모듈화의 새로운 구조로 전환되었다. 정리해고와 글로벌화에 따른 고용불안으로 주요 대기업 노동조합의 임금 요구(wage militancy)가 거세졌으며, 변동성과 불확실성, 노동조합의 임금 프리미엄에 직면한 기업은 초과비용을 공급망에 이전했다. 원·하청 공동 ‘성과의 하방 이전’ 채널이던 가치사슬은 오히려 ‘비용의 하방 전가’ 터널로 전환되었다. 위계적 통제와 거래상 우월적 지위가 결합한 공급사슬은 경제성장기에는 하청과 성과를 공유하면서도 경제위기나 제도 충격의 시기에 비용을 아래로 떠넘기는 속성을 드러낸 셈이다. 이로써 1997년 이후 대기업 정규직의 중심부 시장과 중소기업·비정규직의 주변부 시장 간 분단이 심화하였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상반기 5~299인 사업체 임금은 300인 이상 대기업 대비 71.8% 수준이었으나, 2025년 같은 기간 62.1%까지 떨어졌다. 2025년 상반기 대기업 근로자 임금(월 653만7084원) 대비 중소기업 근로자(1~299인) 임금은 56.8% 수준이다. 같은 통계에서 대기업 근로자는 정규·비정규직을 합해 347만2000명(20%)이며, 중소기업 근로자는 1672만6920명이다(이상, 사업체 노동력조사). 정확히 20 대 80의 노동시장이다. 노동조합 조직률 차이도 크다.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2024년) 결과 300인 기준 대기업 조직률은 31.0%이며, 중소기업은 6.4%다. 노동조합의 임금 프리미엄은 점점 커지는 추세이며, 조직률이 높을수록 외주화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노동시장 분절과 근로조건 격차의 원인이 공급망에만 있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거래의 불공정을 해소하고 하청 종사자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고자 국회·정부·노사 모두는 수십 년간 노력을 지속했다. 그 정책과 제도의 결과물은 다양하며, 노란봉투법도 그중 하나다. 원·하청 거래의 경제법·노동법 규율 원·하청 거래는 경제법과 노동법 등의 두 가지 규범으로 규율된다. 경제법적 규율은 세 가지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간 거래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계약서의 서면 발급 의무화, 부당한 대금 감액 금지, 기술자료 제공 요구 제한, 대금의 적기 지급 등이 핵심이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과 양극화 완화를 목적으로 한다. 상생결제, 납품대금 연동 등이 주요 수단이다. 마지막은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하도급계약서’다. 표준계약서는 거래조건의 균형을 유도하는 연성 규제로, 분쟁 예방과 준법 비용 측면에서 거래비용을 낮추고 계약 조건의 일방적 설정을 제한한다. 노동법적 규율은 ‘고용관계, 단체교섭, 안전보건’을 축으로 설계되어 있다. 우선, 근로자 지위에 대한 규율이다. 적법 파견을 제외하고 원청이 하청노동자를 실질적으로 지휘·명령하는 경우 계약 형태와 무관하게 고용관계가 인정된다. 법원은 하도급 계약으로 위장한 근로자 파견의 경우 직접고용 의무를 부과한다. 다수 기업에서 불법 도급이 인정되었고, 법적 다툼이 진행 중인 기업들도 많다. 산업안전보건 및 중대재해 처벌 영역에서도 원청 의무와 책임이 부과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원청 회사는 하청 노동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조치 의무를 지며,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 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의 안전 확보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 부과를 통해 ‘위험의 외주화’가 곧 ‘책임의 외주화’로 이어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은 개정노조법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어도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 인정하고, 단체교섭 대상을 사업상 의사결정까지 확대했다. 무력한 제도들 위에 또 얹은 노란봉투법 이상이 공정거래와 하도급 근로자 보호를 위한 입법의 역사다. 여러 제도를 덧대며 계약상 불이익, 근로조건 격차, 안전사고 등을 예방·개선하고자 노력해 왔으나 그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청기업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의 속도는 대기업에 비해 터무니없이 더디며, 원청과 연계한 하청 노동자 안전사고도 줄지 않았다. 2024년 기준 중대재해 사망자 중 47.7%가 하청 소속이며 이는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 수준이다. 노란봉투법은 이렇듯 무력한 제도들 위에 법 하나 더 얹은 셈이다. 한계효용이 얼마나 될지 두고 볼 일이지만 법안 내용에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기대보다 걱정이 크다. 기업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불확실한 경제 환경이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은 공급망의 초과이윤(준지대) 분배에 직접 개입하는 제도로, 1997년 외환위기 때와 같이 가치사슬 구조 자체를 전면 재편하는 촉매다. 이는 당사자 간 계약 이행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거래 위험과 거래비용을 확대해 사용자와 원청 노동조합의 기회주의를 유인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사용자성 여부 및 교섭 단위 등 불명확성에 따른 법적 위험을 최소화하고자 원청은 거래 구조를 재설계하고 책임을 분산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교섭이나 책임 부담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거래관계를 더 ‘시장적’으로 바꿀 수 있다. 계약 기간을 단기로 쪼개고 다수의 공급업체를 경쟁시켜 특정 협력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식이다. 이는 하청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과 임금 삭감을 초래한다. 하도급 단계를 세분화하거나 중간업체를 끼워 넣어 법적 책임의 경계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도 유력한 방법이다. 공급망의 층위를 복잡하게 만들면 기업 간 직접 연결이 약해지고, 사용자성 인정이나 책임 귀속에 대한 사실관계 입증이 어려워진다. 마지막은 하청이 담당하는 사업을 인공지능(AI)·로봇으로 대체하거나, 해외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노동집약도가 높거나 기피 업무 등은 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필요조건을 모두 갖춰도 교섭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법적 분쟁이 불가피하다. 대·중소기업 격차해소 특별법도 고려를 여러 난관을 넘어 하청 노조가 원청 사용자와 단체교섭 테이블에 앉는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교섭력의 지렛대는 쟁의행위 즉 파업뿐인데 이를 조직하고 지탱할 힘(파업기금)이 하청노조에 없다. 파업이 발생해도, 그로 인해 생산과 서비스 공급이 중단되면 원청 노동조합과의 이해 충돌이 불가피하다. 협력회사의 파업으로 생산이 중단되는 경우 그 손해가 원청근로자에게 전가되는데 이를 기꺼이 수용할 원청 노동조합이 얼마나 될까. 요컨대 기업별 교섭구조에서 원청사용자와 하청노조의 교섭이 본격화하면 원청노조와 하청노조 간 노노 갈등은 불가피하다. 결국, 현재의 개정노조법으로 하청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실질적·구체적 지배’ ‘사업상 의사결정’ 등 개념의 불확실성이 초래할 거래비용이 너무 큰 반면,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담보 능력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입법 취지를 되짚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다시 논의해야 하며, 보완입법 또는 대체입법 등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적 보호제도, 파견법(불법파견) 등과의 충돌 가능성도 점검하고 제도 간 시너지가 가능하도록 연관 제도를 종합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여러 제도를 모아 패키지 법 형태의 ‘대·중소기업 격차 해소를 위한 특별법’을 설계하는 것도 고려할 대안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원장

2026.02.12.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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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제 칼럼] AI 정책의 핵심은 국가의 흡수 능력

최근 몇 년간 급속한 기술발전과 국제 정치·경제 환경의 변동은 미래 전망과 예측을 반복적으로 무력화해왔다. AI 발전속도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앞질렀고, 지정학적 갈등심화는 글로벌 경제질서를 구조적으로 바꾸고 있다. 효율보다 안보를 고려해야 하는 생산공급망의 재구성은 기업인과 정책당국자들의 고심을 깊게 하고 있다. 기업의 기술경쟁력, 산업생산능력이 국가안보정책과 직결되는 시대로 들어섰다. 불확실성은 이제 상수가 되어있고, 갈등은 날로 깊어지는 이 세상에서 세계경제포럼(WEF)이 금년 다보스포럼을 개최하기에 앞서 『새로운 경제의 네 가지 미래: 2030년의 지경학(geoeconomics)과 기술』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글로벌기업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들 중 72%가 향후 5년간 세계경제구조를 바꿀 가장 중요한 변화동인으로 ‘AI 기술 발전’을, 52%가 ‘지정학적 분절화’를 꼽았다. 이 두 가지 핵심 동인이 세계경제구조를 어떻게 재편할지에 대해 향후 5년간 변해갈 세계모습의 네 가지 시나리오를 가상하고, 기업인들에게 이에 대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기술 발전 속도보다 활용 속도가 국가경제 생산성 향상에 더 중요 AI 시대에 한국이 수혜자 되려면 구조개혁으로 AI 수용도 높여야 이 보고서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기술발전속도’가 선두 빅테크들의 기술개발 속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를 포함한 단위 조직에 AI와 관련기술이 얼마나 넓고 깊게 스며드는가 하는 속도를 말하고 있는 점이다. 다시 말해 AI, 휴머노이드 등 신기술 발전이 기업생산성과 경제에 변화를 가져오는 속도는 기술개발 속도 그 자체보다 국가와 조직이 이를 넓고 깊게 활용할 수 있는 수용성에 달려있으며, 결국 이는 그 나라 노동시장, 고용구조, 정부조직, 기업구조가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AI 기술은 이미 글로벌 공공재에 가까운 성격을 띠고 있으며 모델과 알고리즘의 격차는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AI 시대가 도래하며 국가간, 기업간 격차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AI기술 개발 능력보다도 이를 받아들이는 경제구조와 제도적 수용성이 될 것이다.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났으나 독일과 미국이 후에 신기술 발명의 최대수혜자로 부상하게 된 것은 새로 발명된 기술을 생산현장에서 넓고, 깊게 도입해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이 나라들의 경제제도와 사회구조가 이를 수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AI 정책들-대규모투자, GPU 확보, AI 인재 양성, 법체제 정비, 대통령 직속 AI 전략 조직 강화 등-은 모두 필요한 조치들이다. AI 인프라는 초기 진입 비용이 높고, 국가 차원의 전략적 개입 없이 민간부문의 힘만으로 구축하기는 어렵다. 특히 컴퓨팅 자원과 핵심인력 확보, 데이터 활용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다뤄가야 할 사안이다. 이러한 점에서 현 정부의 문제 인식은 바르고 이를 추진하는 열의는 희망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과제는 여전히 묻혀있다. 우리가 미국이나 중국처럼 AI 기술을 선도해 나가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를 빨리 넓게, 깊이 활용하는 나라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지금 한국의 개인들은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AI 모델들을 빠르게 사용하고 있지만 AI와 신기술이 실제 기업과 사회 전반의 조직에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구조와 수용성을 우리는 갖추고 있는가? 많은 GPU를 확보하고, 소버린 AI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이를 현장의 업무 프로세스, 조직구조, 생산 방식에 빨리, 깊이 적용하지 못한다면 경제적 효과는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 AI 시대는 기존의 업무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수준(이는 개인의 AI 활용으로 이뤄질 수 있다)을 넘어 업무 자체를 재설계하고 조직을 재구성하며, 인적자원의 배분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기를 요구하고 있다. 고용구조의 조정, 직무의 재정의, 조직 간 경계의 변화, 그리고 임금과 보상체계의 개편이라는 통로가 막혀있는 사회에서는 AI는 개인의 용도와 시범사업에 머물고 생산성 혁명으로 우리를 끌어가지 못할 것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AI와 신기술을 우리경제의 생산성 혁신으로 연결하려면 지금 우리에게 AI 투자 못지않게 시급한 것이 구조개혁이다. 또한 이를 뒷받침할 사회안전망 구축과 재정구조의 재설계이다. 유연한 인력조정을 위한 노사제도의 변화, 성과 평가제도 및 임금체계 개편 등을 빠르게 해 나가지 못하면 AI의 실제 생산현장, 업무공간에서의 활용은 제약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인터넷 시대에 발빠르게 대응한 것이 오늘날 반도체, 정보통신산업, K-culture의 경쟁력을 확보하게 했듯이, AI 시대에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지금 광범위한 구조개혁의 시동도 함께 걸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제들이고 정치적 부담도 클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AI 자체에 대한 투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국가능력에 대한 투자이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2026.02.12.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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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빈의 수장고 안팎 훑기] 스스로 예술이 되려 했던 예술가의 텅 빈 이미지

‘팝아트의 교황’ 앤디 워홀의 ‘자화상’ 세트 미술관 수장고에는 1970년대 초부터 수집한 작품이 2만 점 가까이 있다. 그중에는 적기에 잘 샀다고 무릎을 치게 되는 작품들이 있는데, 1987년에 구입한 앤디 워홀의 ‘자화상’ 세트가 대표적이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미술관 소장품을 좀 더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취지에서 야심 차게 구입한 작품으로 신문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워홀이 58세의 나이로 급작스럽게 사망한 지 1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내면 알 수 없는 표정, 오히려 매력적 백남준 덕에 싸게 구입 후 가격 올라 상업미술 스타, 순수미술이 내치자 대량생산으로 순수 미학 전복 꾀해 매체 노출 즐겼지만 속내 안 드러내 신비주의 전략, 성공적으로 수행 당시 기사에 따르면, 미술관은 이 두 작품을 1점당 약 2500만원에 구입했다. 이 작품을 구입할 때는 백남준이 다리를 놓아 당초 제시된 가격보다 40%나 저렴하게 구할 수 있도록 흥정을 도왔다는 후문이다. 생전 작품가, 바스키아보다 낮아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10년에는 동일한 시리즈의 (그러나 사이즈가 더 큰) 보라색 작품이 경매에서 400억원에 낙찰되었다. 디자이너 톰 포드의 소장품이었다. 사실 앤디 워홀은 생전에 소위 ‘셀럽’으로서 엄청난 명성을 누렸지만 작품 가격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한때 그와 협업했던, 그러나 나이는 서른네 살이나 어린 장 미셸 바스키아보다 작품가가 낮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사망 이후에 평가도 달라지고 작품 가격도 지속적으로 올랐다. 2022년에는 메릴린 먼로의 초상화가 약 2000억원에 판매되면서 미국 화가 중 가장 높은 경매 기록을 세웠다. 워홀이 생전에 명성에 비해 작품가가 높지 않았던 이유는 상업미술가로 시작한 이력, 지나치게 두드러진 사업가적 면모, 그리고 괴짜 연예인 같은 행보 때문에 진지한 예술가로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워홀은 팝아트의 기수가 되기 전, 패션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1928년 피츠버그의 체코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아홉 살 때부터 드로잉에 재능을 보여 고향의 기술학교에서 상업미술을 전공했다. 그리고 스무 살에 뉴욕으로 가자마자 독특한 구두 드로잉으로 패션계를 사로잡으며 빠르게 성공을 이루었다. 1950년대는 사진이 패션 잡지의 화보로 사용되기 전. 독특하고 아름다운 그의 그림들은 보그·뉴욕타임스에 정기적으로 실렸고 음반 표지나 명품 브랜드의 광고로까지 확대됐다. 스물넷에 이미 드로잉만으로 개인전을 열었고 서른 무렵에는 뉴욕에서 가장 성공한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순수미술에 대한 열망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이탈리아 여행에서 르네상스 대가들의 작품을 본 것이 여기에 불을 지폈다. 그는 미술계에 진입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추상표현주의 양식을 시도하기도 하고 인맥 관리에도 힘을 썼지만 벽은 높았다. 상업미술로 너무 성공한 것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수장고 공간 없다” 기증 퇴짜 맞아 뉴욕 현대미술관에 드로잉을 기증하려다 거절당한 일화는 양쪽 모두에게 웃지 못할 일화로 남아 있다. 알프레드 바 관장이 쓴 ‘귀하의 기증 신청은 감사하지만 수장고에 적절한 공간이 없어 반려한다’는 내용의 편지는 두고두고 회자되었다.(이 미술관은 오늘날 워홀의 최대 소장처 중 하나로 워홀 사후 2년 만에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당시 워홀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택했다. 상업미술가로서 쌓아 올린 명성은 명품을 아름답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직접 그린 실력 덕분이었다. 그는 방향을 반대로 틀어 대중문화의 이미지들을 전혀 독창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재현하기 시작했다. 캠벨 수프와 코카콜라, 메릴린 먼로와 엘비스 프레슬리. 일상생활과 대중 매체에서 소비되는 이미지들을 소재로 삼았다. 처음에는 손으로 그렸지만 점차 실크스크린이라는 판화 기법으로 옮겨갔다. 이 방식으로는 같은 이미지를 여러 장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야말로 대중문화를 대량 생산으로, 기계적으로 다루는 작업이었다. 조수들을 고용하여 작업량을 늘리고 커다란 작업실에는 ‘공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순수미술이 내세우는 가치, ‘독창성과 유일성’을 완전히 뒤집은 전략이었다. 작가의 해석과 손길을 최소화하여 일상의 물건을 그대로 재현한 워홀의 작품들은 결국 팝아트의 대명사가 되었다. 예술가의 내면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기계적 재현 방식은 감정 표출이 적은 그의 성격, 그리고 사업가적 기질과도 잘 맞았다. 그는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팝아트의 교황(pope of pop)”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자화상은 앤디 워홀 예술의 정수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워홀은 예술가의 이미지가 곧 예술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은빛 머리칼이 삐죽삐죽 서 있는 모습 때문에 ‘깜짝 가발(fright wig)’이라는 애칭으로도 유명하다. 죽기 전 마지막 자화상이라는 점이 아우라를 더한다. 까만 배경 속에서 공허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워홀의 얼굴은 그의 예술과 인생을 동시에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이 자화상의 가치와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앤디 워홀 손안에 넣기(I bought Andy Warhol)』, 그리고 후속작 『나는 앤디 워홀을 너무 빨리 팔았다(I sold Andy Warhol (too soon))』, 두 권의 책이 있다. 필자인 리처드 폴스키는 워홀 생전부터 활동해온 갤러리스트로 워홀 예술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을 강박적으로 찾아다닌 12년의 여정 끝에 이 작품을 발견해 구입했다. 폴스키의 작품은 미술관 소장품보다는 크기가 작은 30×30㎝짜리 녹색 버전. 그는 1988년에 이 작품을 4만7500달러에 구입한 후 2005년에 37만5000달러에 판매했으나, 그로부터 2년 뒤 260만 달러에 거래가 되는 것을 보고 엄청난 후회에 휩싸인다. 폴스키의 집착과 회환의 대상이 된 이 자화상은 앤디 워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워홀은 평생 자신의 외모에 강박적으로 집착했다. 자서전적 에세이에는 어려서 ‘빨간 코 앤디’로 놀림을 받은 일이며 지나치게 하얀 피부색 등에 대해 구구절절 토로했다. 외모에 어느 정도로 신경썼는지 보여주는 재미있는 구절도 있다. “안색이 원래부터 창백하다면 볼 터치를 더 많이 해야 한다. 코가 크다면 그것을 강조하고, 뾰루지가 났다면 그것이 두드러져 보이게 크림을 발라라-‘나 뾰루지 크림 발랐어!’라고 말하는 듯이. 그러면 그게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가 항상 “이건 가발이야!”라고 외치는 듯한 특이한 가발을 쓴 것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탈모가발 벗겨질까 봐 평생 노심초사 워홀은 20대부터 탈모가 심해 평생 가발을 썼는데 혹시라도 벗겨질까 봐 노심초사했다. 한 번은 사인회에서 어떤 여성이 기습적으로 가발을 벗겨서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었는데, 평상시에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워홀은 그날의 일기에 그 여자를 발코니 너머로 밀어버리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고 남겼다. 그렇다면 워홀은 이 ‘깜짝 가발’ 자화상에 만족했을까? 그렇지 않다. 이 시리즈는 애초에 앤서니 도페라는 영국 갤러리스트의 아이디어였다. 도페는 1985년의 어느 날 요제프 보이스와 식사를 하다가 워홀이 만든 보이스의 초상 작품을 보고 신박한 생각을 떠올렸다. 도페가 보기에 워홀은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였다. 그런데 한동안 초상작업을 하지 않았으니, 작가 자신을 소재로 한 초상화를 제작하여 전시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워홀 예술의 핵심은 바로 워홀이라는 인물 그 자체임을 간파하여 작가가 곧 주제인 전시를 열기로 한 것이다. 워홀은 도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작업을 위해 폴라로이드로 자신의 얼굴을 여러 컷 찍어서 보여주었다. 그러나 도페가 고른 이미지는 워홀이 원한 이미지와 달랐던 모양이다. 워홀은 도페가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로 캔버스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몇 주 뒤, 도페는 스튜디오로 찾아와서 진행 중인 작업을 보더니 “우리가 합의한 그 사진으로 다시 그려 달라”고 주문했다. 워홀은 군말 없이 갤러리스트의 말에 따랐고, 전시는 대성공이었다. 당시 가디언에서는 ‘60년대를 대표하는 가장 신비로운 얼굴’이라며 텅 빈 듯한 표정, 어린아이 같은 순진함, 완벽한 괴짜다움, 무심함과 신비로움이 제대로 드러난 작품이라는 평을 남겼다. 도페가 선택한 이 얼굴은 워홀이라는 예술가의 핵심을 담고 있다. 워홀은 종종 스스로를 거울에 비유하곤 했다. 작품의 의미나 철학을 묻는 질문에 “작품의 표면을 봐라. 그게 나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답했다. 거울이 오직 앞에 있는 사물만을 투영하듯 그의 예술도 대중이 소비하고 욕망하는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할 뿐이었다. 이는 삶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워홀은 꽤나 솔직해 보이는 방대한 기록과 일기를 남겼다. 그럼에도 수줍음이 많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 무심하고 일관성 없는 말들 때문에 그가 진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주변에서도 알기 힘들어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대중매체에 노출시켰지만 그 누구도 진짜 속마음과 의도를 알 수 없게끔 행동함으로써 신비주의 전략을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한 셀럽이기도 했다. 그런데 예술에 있어서,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감정만큼 매력적인 요소도 드물다. 워홀과 그의 작품을 둘러싼 신화는 아무래도 계속될 것 같다. 이사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2026.02.12.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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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의 뉴스터치] 불모지

드라마 ‘하얀 거탑’의 원작 소설가 야마사키 도요코의 또 다른 대표작이 『불모지대』다. 극우 미화 논란이 있지만, 한국에서도 정치인·관료·기업인 등이 열독했다. 일본군 주인공 이키 다다시는 시베리아에서 포로생활을 마치고 귀국한다. 상사맨으로 변신한 그는 무역 전쟁의 전장을 누빈다. 이토추 상사 입사 20년 만에 회장까지 오른 세지마 류조가 이키의 실존 모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등과 가까웠던 세지마는 1965년 수교 등 한·일 외교 막후에서 활약했다. 세지마는 서울과 일본 나고야가 맞붙은 1988 하계올림픽 유치전 당시 한국을 위해 물밑에서 뛰었다. 스포츠 외교 불모지였던 한국은 이를 계기로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그 30년 뒤 평창에서 2018 동계올림픽도 열었다. 서울 대회 이래 대부분의 하계올림픽에서 한국은 메달 순위 톱10에 들었다. 동계는 그렇지 못했다. 메달이 빙상 종목에 쏠린 탓이다. 입상은커녕 출전조차 언감생심이던 시절, 세상은 설상 종목을 “불모지”라고 불렀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첫 주, 설상 종목 스노보드가 메달 레이스를 이끌었다. 37살 아저씨 김상겸이 평행대회전(PGS) 은메달로 문을 열었다. 18살 여고생 유승은이 빅에어 동메달로 뒤를 이었다. 그간 한국의 동계올림픽 첫 메달은 늘 스피드 또는 쇼트트랙 스케이팅 등 빙상 종목에서 나왔다. 설상 종목은 8년 전 평창에서야 이상호의 스노보드 PGS 은메달로 첫 씨앗을 뿌렸다. 『삼국지』 속 제갈량은 위나라 정벌에 앞서 올린 ‘출사표’에 “5월에 노수를 건너 불모(지) 깊숙이 들어갔다(五月渡瀘 深入不毛)”고 썼다. 앞선 남만 원정을 되새기는 대목이다. 뒤집어 보면 천하의 제갈량에게도 불모지를 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국 설상 종목은 ‘불모지’라는 비하 속에서도 묵묵히 갈고 일궈 메달의 싹을 틔웠다. 그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장혜수([email protected])

2026.02.12.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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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의 음악의 세계] 임윤찬의 ‘모차르트 사이클’

30개의 변주 중 어느 하나도 평범한 것이 없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해석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다. 음악가들이 마치 경전처럼 취급하는 이 작품에 그는 “한없이 진지할 필요는 없다”며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표현을 불어넣었다. 음반 발매가 이달 6일이었다. 지난해 4월 뉴욕 카네기홀의 공연에서 녹음한 음원을 전 세계에 공개했다. 1955년 캐나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파격적으로 연주한 음반을 떠올리게 한다. “진솔하고 탐구하는 목소리가 훌륭하며, 들어볼 가치가 충분하다”(그라모폰)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차르트 소나타 18곡 전곡 연주 카네기홀 “62년 만의 첫 사이클” 피아노 신성 어디까지 성장할까 문제는 바로 같은 날, 그만큼 놀라운 소식이 하나 더 나왔다는 점이다. 카네기홀이 2026년과 2027년의 공연 계획을 발표했다. 임윤찬은 올 10월부터 내년 5월까지 총 4번 독주회를 연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8곡 전곡과 3곡의 환상곡까지, 모두 21곡을 연주하는 사이클이다. 모두가 바흐에 주목하는 사이 모차르트 전곡 연주라는 만만치 않은 폭탄을 터뜨렸다. 바흐의 30개 변주를 채 듣지 못한 청중은 어리둥절하겠지만, 이 새로운 소식이야말로 피아니스트 경력에서 커다란 전환이다. 카네기홀은 소수의 피아니스트에게 이런 무대를 허락한다.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연주는 1964년 하노크 그린펠트라는 이스라엘 피아니스트가 기록했다. 세 번에 걸친 독주회였다. 카네기홀 측은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기록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공연”이라고 11일 확인했다. 그만큼 62년만인 임윤찬의 이번 프로젝트는 파격적이다. 우치다 미츠코가 2019년부터 5번의 연주에서 모차르트 협주곡 10곡을 탐구하고, 2018년부터 4회에 걸쳐 슈베르트 소나타 12곡을 들려준 여정에 비교할 수 있을까. 아르투르 슈나벨, 알프레드 브렌델, 다니엘 바렌보임 등은 카네기홀에서 베토벤 피아노 전곡(32곡)을 한 시즌에 연주했고 음악사에 중요한 피아니스트로 기록됐다. 명문 공연장은 어떻게 22세 피아니스트에게 이런 기회를 허락하게 됐을까. 임윤찬의 바흐 음반 안에 힌트가 있다. 카네기홀의 대표 겸 예술감독인 클라이브 길린슨은 음반의 내지에 임윤찬에 대한 헌사를 적어넣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의 연주를 목격한 직후 우리 예술기획팀은 여태껏 내린 것 중 가장 쉬운 결정을 통과시켰다. 카네기홀의 메인 무대인 스턴 오디토리움 페렐만 스테이지에서 독주회를 연 것이다.” 길린슨 대표가 설명하듯 카네기홀의 데뷔 연주는 대개 작은 무대인 잰켈(599석)이나 웨일(268석) 홀에서 열린다. 하지만 임윤찬은 2024월 스턴/페렐먼(2790석) 무대로 직행해 독주회를 열었다. 쇼팽의 연습곡 전곡(27곡)으로 시작해 이듬해에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피아노 문헌의 본론으로 들어갔다. 기존의 해석을 참조하거나 머뭇거리는 대신 분명한 자신의 목소리가 있는 두 번의 무대였다. 길린슨 대표는 “카네기홀이 그의 여정에 앞으로도 오래 함께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했다. 그 결과가 모차르트 전곡 시리즈다. 임윤찬은 15세에 우승했던 윤이상 국제 콩쿠르의 첫 본선 무대에서 첫 곡으로 모차르트 소나타(9번 K.311)를 연주했다. 사람의 목소리로 노래하듯 신선하게 연주한 이 모차르트야말로 독특한 피아니스트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었다. 카네기홀에서 연주할 21곡의 모차르트 또한 새로운 충격을 던질 것이다. 그는 10월 21일 소나타 1번으로 시작해 초기와 중기의 작품을 섞어 12월 14일, 내년 3월 24일에 연주한다. 내년 5월 11일에는 마지막 네 개의 소나타를 연이어 연주하고 사이클을 끝낸다. 작곡 시기와 조성을 고려한 21곡의 배열 방식에도 모차르트에 대한 피아니스트의 메시지가 있다. 임윤찬은 이전 인터뷰에서 모차르트의 소나타 18곡, 베토벤의 32곡을 언젠가 연주해야 하는 작품들로 꼽았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그 시점이 왔다. 그것도 카네기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기회가 열렸다. 그다음은 무엇일까. 이 음악가의 경력이 예상보다 더 빠르고 강력하게 성장하고 있다. 김호정([email protected])

2026.02.12.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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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완의 마켓 나우] 휴머노이드 시대, 이익보다 안전이 먼저다

올 것이 진짜 오고 있다. 생산·물류·돌봄 노동의 구조적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첨단 전동화 휴머노이드(AEH)’가 거론된다. 정책 논의는 이미 궤도에 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휴머노이드 도입을 둘러싼 노사 갈등과 관련해 “밀려오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전이 이익보다 중요하다. 조립 라인처럼 공정 밀도가 높은 환경에 휴머노이드를 투입하려면 ‘인간-로봇 상호작용(HRI)’에 대한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이 지점에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인 인간 보호, 명령 복종, 자기 보호가 휴머노이드 도입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책임·제어 기준으로 소환된다. 세 가지 선결과제가 있다. 첫째, 인간 보호의 실효성. 부품 낙하나 작업자의 돌발 행동이 잦은 조립 현장에서 피지컬 AI가 위험을 판단하고 회피하는 능력을 완벽히 보장하기는 어렵다. 둘째, 명령 복종의 모호성. ‘빠르되 안전하게’ 같은 지시는 인간에게는 맥락의 문제지만, 로봇에게는 충돌하는 연산 과제다. 생산성과 안전이 충돌할 때 명확한 우선순위가 없다면 판단 중지나 오작동 위험이 커진다. 셋째, 자기 보호와 책임 소재. 시스템 보호를 이유로 가동을 중단했을 때 그로 인한 공정 손실의 책임 소재가 제조사인지 운용사인지 아직 불분명하다. 선결과제 해결이 중요하다. 도입 시점을 앞당길 것이 아니라, 안전 표준과 책임 체계를 먼저 확정해야 한다. 아시모프의 원칙을 추상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센서 정확도, 반응 속도, 비상 정지 메커니즘 같은 구체적 엔지니어링 요구사항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동시에 재교육·전직 지원과 데이터 관리 규범 등 노동 전환을 위한 보호장치도 병행돼야 한다. 기술이 준비됐다는 이유만으로 밀어붙이는 혁신은 갈등만 증폭시킨다. 첨단 휴머노이드는 로봇 청소기나 단순 서비스 로봇과는 차원이 다르다. ‘필요하다’는 사실이 ‘지금 투입할 수 있다’는 허가증은 아니다. 특히 인간과 로봇이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자동차 산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질문은 ‘언제’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안전하게 통제할 것인가다. 한국은 휴머노이드로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나라에 머무를 것인가. 설계·제조·운영까지 전 생태계를 주도해야 노동 공백을 메우는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와 수출 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 출발점은 기술 낙관론이 아니라 신뢰다. 기술을 안전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가 휴머노이드 시대에 더욱 중요해졌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미래자동차석사과정 교수

2026.02.12.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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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고대 이집트 역사 틀을 만든 마네토

오늘날 사용되는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여러 사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네토의 저술이다. 마네토는 기원전 305~285년경에 살았던 이집트인 신관이다. 고대 이집트어와 그리스어에 모두 능통했을뿐더러, 신관이었던 만큼 신전에서 소장하고 있던 고대의 원사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마네토는 총 여덟 편의 저작을 남긴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 가운데 프톨레마이오스 2세(사진) 치세에 집필된 『아이귑티아카(Aegyptiaca·이집트의 역사)』가 있다. 그리스어로 쓰인 이 책에서 그는 기원전 3100년경 이집트 최초의 통일부터 기원전 343년 페르시아 침공까지 파라오들의 업적을 연대기로 정리했다. 일반적으로 ‘고대 이집트 시대’라고 하면, 마네토가 다룬 시대에,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의 이집트 정복 이후 들어서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포함한 시기를 뜻한다. 둘을 합쳐 ‘왕조 시대’ 혹은 ‘파라오 시대’라고도 한다. 마네토는 이집트 역사를 총 30개의 왕조로 구분했는데, 이 체계가 명확한 논리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대체로 혈연으로 연결된 왕들을 하나의 왕조로 구분하고, 다른 가문이 왕위를 차지하면 왕조가 바뀌는 식이다. 하지만 이 기준이 언제나 일관되게 적용되지는 않았다. 한 가문이 둘 이상의 왕조에 걸쳐서 통치하기도 하고, 한 왕조에 둘 이상의 가문이 관계된 경우도 있다. 현대의 이집트학자들은 여전히 마네토의 왕조 체계를 역사 서술의 기본 틀로 사용하고 있다. 마네토의 저술은 현재까지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지는 않았다. 대신 서기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저작과 더 후대의 기독교 연대기 작가들의 저작 속에서 발췌된 내용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에 인용되는 마네토의 기록은 이 발췌본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

2026.02.12.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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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LA시장 선거, 이젠 유권자의 시간

LA 시장 선거가 후보 난립 양상을 보인다. 후보 접수 업무를 담당한 LA시 서기국은 지난 7일 마감 결과, 캐런 배스 현 시장을 포함 무려 41명이 등록을 마쳤다고 밝혔다. 후보 명단에는 앤드루 김, 수지 김 등 2명의 한인 이름도 있어 눈길을 끈다.     역대급 후보 숫자다. 현직 시장이 재선 도전에 나섰는데도 후보가 난립한 것은 현 배스 시장의 인기가 높지 않다는 방증이다. ‘현직 프리미엄’이 있지만 “해볼 만 하다”는 생각해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배스 시장은 야심차게 추진했던 노숙자 정책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 데다 산불 관리 부실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점수를 잃었다.     물론 41명 모두 완주할 가능성은 제로다. 상당수는 6월2일 예비선거 이전에 후보직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4년 전인 2022년 선거 당시에도 40명 가까이 후보로 나섰지만 마지막까지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12명에 불과했다.   인구 400만 명의 전국 2대 도시인 LA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재정적자와 노숙자 문제 해결, 주거비 안정, 신속한 산불피해 복구 등이 대표적이다. 연방 정부의 강력한 불법체류자 단속에도 효과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여기에 2028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서 준비 작업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만큼 차기 시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선거 전문가들은 배스 시장에 맞설 후보로 4명 정도를 꼽고 있다. 커뮤니티 활동가인 래 황, LA시의원인 니디아 라만, IT기업가이자 자선 사업가인 아담 밀러, 리얼리티 TV쇼 스타인 스펜서 프렛 등이다. 이들 가운데 프렛만 공화당 후보다.     예비선거까지는 아직 4개월 가까운 시간이 남았다. 후보 검증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하다는 의미다. 유권자들은 이제부터 유력 후보들의 자질을 살피고 내놓는 공약들을 꼼꼼히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LA시 재건의 첫 단추다. 사설 la시장 유권자 예비선거 이전 선거 전문가들 배스 시장

2026.02.11. 20:44

[사설] 재외 선거 개선 이번엔 결실을

한국 국회에서 재외국민 참정권 보장을 위한 국민투표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미주 한인 등 재외국민의 투표권 행사를 보장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실 그동안에도 관련 논의들은 있었지만 반짝하다 지지부진해졌다.     한인 사회는 꾸준히 제도 개선을 요구해 왔다. 현행 방식은 현실성 부족으로 많은 재외 유권자들이 투표권 행사에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의 21대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LA총영사관 관할 지역에는 총 4곳의 투표소가 마련됐다. LA총영사관 관내를 비롯해 오렌지와 샌디에이고 카운티에 각각 한 곳씩, 그리고 애리조나주 마리코파카운티에 투표소가 설치됐다. 역시 LA총영사관 관할 지역인 네바다, 뉴멕시코주에는 한 곳도 설치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투표하려면 생업을 포기하고 가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런 불편함은 유권자 등록률 저조로 이어진다.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관심이 높았던 21대 대선 당시에도 LA총영사관 지역 유권자 등록률이 6%대에 불과했다는 분석이 있다.       물론 투표소 확대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장소 선정부터 보안 문제, 투표함 이송, 이에 필요한 인력 확보 등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연히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한인 사회가 줄곧 요구하는 것이 우편 투표와 전자 투표의 도입이다. 유권자는 편하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고 무리하게 투표소를 늘리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투명성과 보안 등을 이유로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흐지부지됐다.     우편투표는 미국에서는 보편화한 투표 방식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고 있지만 호용성이 더 크다. 선거제도가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높은 투표율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재외선거의 우편투표와 전자투표 도입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고 하니 이번에는 개선을 기대해 본다.   사설 재외 선거 재외국민 참정권 재외 유권자들 투표소 확대

2026.02.11. 20:43

[커뮤니티 액션] ICE 납세자 정보 악용에 제동

시민사회가 정부의 과도한 이민자 단속과 권위주의 행태에 맞서 싸우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는 법원 소송이고, 둘째는 부당한 협조를 하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 셋째는 정치권 압박, 넷째는 끊임없는 시위와 집회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지난주 아시안 권익 단체들은 법원으로부터 중요한 결정 하나를 받아냈다. 매사추세츠주 연방 지법은 지난 5일 이민세관단속국(ICE)이 국세청(IRS)의 납세자 기록을 받아 체포와 구금, 추방에 악용하는 일에 제동을 걸었다. 이번 소송은 아시안법률협회(ALC)와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미교협) 등 아시안 단체들이 주도해서 제기했다.   이들 단체는 국세청과 사회보장국, ICE가 이민자 단속을 위해 납세자 기록 등을 공유하는 것은 개인 정보를 비밀리에 취득해 남용하는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를 연방 지법이 받아들인 것이다. ICE와 국세청 등은 비밀 협약을 통해 지난해부터 정보를 공유해왔으며 이 때문에 10만 명이 넘는 이민자들이 위험에 처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사는 1100만여 서류 미비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소득세 신고를 하고 있다. 정부는 서류 미비자 취업은 금지하지만, 국세청은 세금 납부를 권장하고 있는 까닭이다.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합법 체류 신분 취득 기회에 대비해 수많은 서류미비자들이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면서 세금을 낸다. 세금 납부는 이민 심사에서 이른바 ‘도덕성’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국세청 정보를 이용해 이민자 단속을 벌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서류 미비 납세자들은 불안에 휩싸이게 됐다. 세금을 내라고 해서 납부했더니 그것 때문에 이제는 단속 대상이 되는 어이없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물론 정부가 항소하겠지만 연방 지법의 중단 판결은 일단 이민자 커뮤니티에는 귀중한 승리다.   법원은 강력한 가처분 명령을 내렸다. 앞으로의 기록 공유를 중단시켰을 뿐 아니라, ICE와 국토안보부(DHS), 그리고 모든 대리인이 이미 불법적으로 취득한 납세자 정보를 사용하거나 심지어 열람하는 것조차 금지했다. 그리고 이를 이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라고 명령했다. 이런 수준의 판결은 매우 드문 일이며 그동안 개인정보 침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준다.   ALC의 조시 로젠탈 노동자 권리 디렉터는 “불법적인 데이터 공유 협약은 모든 미국인에게 심각한 우려가 되고 있다”며 “명백히 개인정보 보호법을 무시하는 기관들의 시도를 법원이 중단시킨 것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ICE는 가족과 지역사회를 파괴하는 불법 체포를 반복해 왔으며, 개인 정보의 무분별한 이전은 특히 위험하다”며 “해마다 수백만 명의 이민 노동자들이 세금을 내고 있으며, 이번 판결은 납세 의무를 안전하게 이행할 권리를 지켜준다”고 강조했다.   미교협의 베키 벨코어 공동 사무총장은 “정부는 정보 공유 관행을 통해, 세금을 신고하든 하지 않든 가족 분리, 구금, 추방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이중 함정’에 납세자들을 빠뜨리려 했다”며 “사적 정보를 무기화하려는 시도는 납세자 개인뿐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에 해를 끼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법원은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납세자 정보 납세자 기록 국세청 정보 이민자 단속

2026.02.1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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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안테나] 1월 고용 시장 보고서에 담긴 의미

최근 발표된 고용 상황 보고서는 미국 노동시장에 대한 엇갈린 신호를 담고 있다. 노동부의 11일 발표에 따르면 1월 비농업 부문 고용은 13만 명이 증가했고, 실업률은 4.3%로 소폭 하락했다. 이런 수치는 표면적으로는 노동시장의 회복력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노동시장은 안정적이지만 성장 동력은 점차 약해지고 있으며, 예상보다 훨씬 약한 모멘텀으로 올해를 시작했다는 점이 드러난다.    1월의 고용 증가는 시장의 예상치를 웃돌았지만, 중요한 것은 숫자보다 채용의 구성이다. 신규 일자리의 대부분은 의료 분야에서 나왔고, 사회복지와 건설 분야에서도 증가가 있었다. 반면 제조업, 전문·기업 서비스, 소매업 등 주요 산업 대부분은 큰 변화가 없었다. 연방정부의 고용은 더 감소했고, 금융 분야의 일자리도 계속 줄었다. 이는 경기 사이클의 후반부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성장에 민감한 산업보다 필수 서비스 분야와 인구 구조 변화에 기반을 둔 산업에 채용이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업률이 4.4%에서 4.3%로 소폭 하락한 것도 노동시장이 좋아지고 있다기보다 안정 상태에 가깝다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노동력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거의 변하지 않아, 대규모 해고보다는 신규 채용 둔화가 노동시장 냉각의 주된 요인임을 시사하고 있다. 기업들은 비교적 수요가 확실한 분야에서만 신중하게 인력을 늘리고 있다.   더 중요한 변화는 연간 기준 수정에서 나타난다. 2025년의 고용 증가폭은 기존 58만4000명에서 18만1000명으로 대폭 하향 조정됐다. 이는 노동시장이 2025년 말에 서서히 둔화한 것이 아니라, 이미 연중 상당 기간 정체에 가까운 상태였음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1월의 고용 증가는 고용시장이 재가속되고 있다기보다는 이미 약화된 기반에서의 안정화에 가깝다.   전체 고용은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계층과 산업별 상황은 크게 다르다. 특히 기술, 금융, 전문직종을 희망하는 젊은 대졸자들은 더 어려운 취업 환경에 직면해 있다. 신규 직원 채용 공고는 줄었고, 많은 기업이 인력 확대보다는 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결과 노동시장은 두 갈래로 나뉘고 있다. 의료·필수 서비스 분야는 비교적 견조한 인력 수요를 유지하는 반면, 화이트칼라 및 고임금 분야는 신규 채용에 신중한 모습이다.     경기 순환 요인 외에 정책의 불확실성 역시 기업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관세 정책에 대해 계속되는 의문은 향후 원가와 공급망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으며, 이민 정책은 고숙련 및 필수 인력의 공급에 영향을 준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많은 기업이 사업 확장 계획을 미루고 있으며, 이는 채용을 더욱 조심스럽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의 1월 보고서를 보면 단기간 내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고용은 예상보다 강했고, 실업률은 하락했으며, 시간당 평균 임금도 전월 대비 0.4% 상승해 연간 기준으로도 견조한 증가세를 유지했다. 이는 노동시장이 급격히 악화하기보다 점진적으로 냉각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2025년 고용 통계의 대폭 하향 수정과 채용 분야 편중 현상은 우려 요인이다. 이에 따라 연준은 임금 인상 압력이 더 완화되고 노동시장 둔화가 광범위하게 확산하지 않는다는 보다 명확한 신호를 확인할 때까지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높다.   1월의 고용 보고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적이지만 노동시장의 축소를 보여준다. 의료 분야의 강세가 다른 산업 분야의 약세를 상쇄하고 있다. 신규 대학 졸업자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더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정책 불확실성과 기업들의 비용 절감 기조가 더해지며, 향후에도 재확장보다는 느리고 불균형 성장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안정이 미래의 둔화 위험성을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 정책 당국과 투자자 모두 신중함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손성원 / 로욜라 메리마운트대 교수·SS 이코노믹스 대표경제 안테나 보고서 고용 고용 증가폭 노동시장 냉각 고용 상황

2026.02.1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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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화하다’ ‘~화되다’

‘~화하다’와 ‘~화되다’ 가운데 어느 것을 써야 할까? “채산성이 악화했다” “채산성이 악화됐다” 처럼 두 가지가 모두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맞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화하다’ ‘~화되다’에서 ‘화’는 한자어로 ‘될 화(化)’ 자다.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화(化)’에 ‘되다’는 뜻이 들어 있으므로 ‘화+하다’는 괜찮지만 ‘화+되다’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미 중복이므로 ‘~화되다’를 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논란은 한자어와 우리말이 결합할 때 자주 발생하는 것이다. ‘공감을 느끼다→공감을 하다’ ‘결론을 맺다→결론을 내다’ ‘계약을 맺다→계약을 하다’ ‘낙엽이 떨어지다→낙엽이 지다’가 이런 예다. 실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이지만 의미의 중복 때문에 가급적 피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조합들이다.   ‘~화하다’ ‘~화되다’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화하다’로만 써야 한다. 그러나 우리 언어생활에서 이미 ‘~화되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어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은 두 가지 모두 인정하고 있다. 즉 “핵가족이 보편화했다[보편화됐다]” “대응이 곧 가시화할[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모두 가능한 표현이다.   ‘~화되다’는 의미 중복이어서 싫고 ‘~화하다’는 어쩐지 부자연스러워 내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방법은 있다. 아예 ‘화’를 쓰지 않는 것이다. “합의 사항이 무효화됐다”를 “합의 사항이 무효가 됐다”고 하는 것처럼 말을 바꾸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중복 때문 합의 사항 우리 언어생활

2026.02.11. 20:37

[교육칼럼] 정보 전달식 대화와 공감적 대화

눈 폭풍과 한파가 일상을 지배하는 겨울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환경 조건이 인간의 심리와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한다. 인간은 외부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시에, 인지적·정서적 조절을 통해 그 영향을 완화하거나 증폭시킨다. 이 과정에서 언어는 개인의 경험을 형상화하고 사회적 관계를 매개하는 핵심 도구로 기능한다. 이해와 공감을 담은 언어는 혹독한 계절적 스트레스 속에서도 심리적 안녕을 지탱하는 중요한 보호 요인이다.   사회언어학자 데보라태넌(Deborah Tannen)은 『You Just Don’t Understand: Women and Men in Conversation』(1990)이라는 책에서 남성과 여성의 대화 양식을 정보 전달식 대화(Report Talk)와 공감적 대화(Rapport Talk)로 개념화하며 학문적·사회적 논의를 촉발시켰다. 태넌에 따르면 여성은 대화를 정서적 유대 형성과 관계의 유지·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과정에서 경험의 공유, 감정의 명명, 상대에 대한 반응적 경청은 친밀성을 구축하는 핵심 요소로 작동한다. 반면 남성은 대화를 정보 전달과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고,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제시하고 해결책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대화에 참여한다. 이 과정에서 언어는 정서적 연결보다는 독립성과 역량,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그 결과 여성은 공감 없는 문제 해결 중심의 반응을 정서적 거리감으로 느끼는 반면, 남성은 감정 공유를 요구하는 대화를 비효율적이거나 부담스러운 상호작용으로 인식하기 쉽다. 이러한 인식의 불일치는 대화의 내용 자체보다 대화가 수행하는 사회적 기능에 대한 기대 차이에서 비롯되며,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반복적인 오해와 갈등을 낳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발달심리학적 관점에서 이러한 성차를 남녀의 본질적 특성으로 일반화하는 데에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다수의 연구는 인지, 정서, 성격 및 행동 영역 전반에서 성차보다 개인차가 더 크다는 점을 일관되게 보고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 방식에서 일정한 성별 경향성이 관찰되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정서 처리를 담당하는 두뇌 변연계(Limbic System)와 언어 중추의 발달적 특성, 그리고 성장 과정에서 내면화되는 사회·문화적 성 역할 기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여성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정서 표현과 공감, 돌봄을 강조하는 환경에 노출되며, 이러한 경험은 대인 관계에서의 언어 사용 방식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요한 것은 정보 전달식 대화와 공감적 대화는 상호 배타적인 기능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의사소통은 두 방식을 상황과 맥락에 따라 유연하게 통합할 때 가능하다. 또한, 이러한 능력은 언어 발달이 급격히 이루어지는 유아기부터의 반복적 상호작용과 교육을 통해 형성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인공지능(AI)의 발전과 그 폭넓은 활용일 것이다. 인공지능이 정보 전달을 넘어 정서적 공감과 위안을 주는 대화의 상대로도 활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공감은 통계적 예측과 패턴 모방에 기반한 반응일 뿐, 관계적 책임이나 윤리적 판단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진다 해도 인간의 감정을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관계적 책임을 동반한 공감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결국 사회적 관계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능력이며, 이러한 공감적 소통이야말로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근원적인 힘일 것이다. 김현경 / 호튼대학교 심리학과 부교수교육칼럼 talk 대화 공감적 대화 rapport talk report talk

2026.02.11. 17:41

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노만 락웰의 ‘더 덕아웃’

시카고 미술관은 뭐니뭐니 해도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고흐, 고갱, 르느와르, 마네, 모네, 슈라, 캘리봇 등 내노라하는 인상파 작가들이 작품이 시카고 미술관에는 가득하다.     시카고 미술관이 인상파 작가들의 대작들을 대거 수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활동하던 당시 이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수집한 시카고 지역 컬렉터들이 작품을 미리 확보한 뒤 나중에 이를 시카고 미술관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이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뒤 작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뛴 뒤 사들였다면 이 같은 대작들을 소장하기는 사실상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고대와 중세 대작들에 비해 인상파 작품이 시카고 미술관에 많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카고 미술관에는 유럽 작가들의 인상주의 작품 말고도 미국 작품도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은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일 것이다. 1930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현재 시카고 미술관 아메리칸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아메리칸 미술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중년 남성과 여성이 전형적인 미국의 단독 주택 앞에서 무표정한 모습으로 농기구를 들고 서있는 모습은 여러 광고나 코미디 프로에서 패러디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 그림의 모델이 작가의 여동생과 그녀의 치과 의사라는 점은 부부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짐작을 깨트리기에 충분하다.     ‘아메리칸 고딕’이 전시된 건너편 벽에 새로운 작품 하나가 10일 걸렸다. 미국 작가 노만 락웰의 ‘더 덕아웃’(The Dugout)이라는 작품이다. 1948년에 만들어진 이 그림은 그리 크지 않다. 작품 제목과 같이 야구장 덕아웃과 관중석 일부를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선수들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가슴에 시카고가 새겨진 컵스 선수들이 덕아웃에 앉아 있거나 덕아웃 앞쪽에 서 있는데 고개를 괴고 눈을 감고 있거나 팔짱을 끼고 방관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가장 앞에 서 있는 선수는 두 팔을 힘없이 내린 채 처진 눈으로 그라운드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 뒤 선수 역시 생기없이 두 팔을 앞으로 모은 채 그라운드를 응시하고 있다. 반면 덕아웃 윗쪽의 관중들은 활기가 넘친다. 두 손을 입 옆으로 모은 채 크게 소리지르고 있는 모습도 보이는 등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시카고 컵스를 응원하는 홈 관중들은 아닌 모양이다. 실제 이 그림을 위해서 작가는 컵스 선수와 감독의 사진을 찍고 나중에 그림으로 그렸다고 알려졌다. 덕아웃 뒤 홈 관중은 상대팀 보스턴 브레이스팀의 선수 와이프도 포함돼 있다. 그리고 컵스 유니폼을 입고 덕아웃 오른쪽 앞에 서 있는 선수는 실제로는 브레이브스팀 볼보이였다고 한다. 이런 디테일까지 알고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그림에 대한 이해도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락웰은 1916년부터 1965년까지 모두 323개의 잡지 표지를 그렸다. Saturday Evening Post라는 잡지였는데 이 잡지는 한 때 주간 구독자가 300만명을 기록하는 등 당대 최고의 매체였다. 이 잡지 표지로 그린 뒤 나중에 별도 작품으로 남긴 것이 ‘더 덕아웃’이다.   이 작품을 시카고 미술관에 기증한 사람은 브루스 라우너, 다이앤 라우너 부부다. 전 일리노이 주지사였던 바로 그 브루스 라우너다. 라우너 부부는 이 그림을 2009년에 크리스티에서 경매를 통해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구입가는 66만2500달러. 라우너 부부가 이 그림을 소장하게 된 것은 열렬한 컵스 팬인 동시에 유명 미국 작가인 락웰을 좋아했기 때문이었고 작품이 창작된 이후 공공에 전시된 적이 없이 개인적으로만 소장됐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작품이 개인이 아니라 커뮤니티에 포커스가 맞춰져 개인이 소장하기보다는 공중에 널리 알리는게 좋다고 생각해 기증했다고 한다.     라우너 주지사는 근래 당선된 일리노이 주지사 중에서는 유일한 공화당 소속 정치인이었지만 재선에서는 JB 프리츠커 현 주지사에 패한 바 있다. 재임 중에도 민주당이 장악한 주의회와의 대립으로 인해 오랫동안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해 제대로 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퇴임 후 시카고를 상징하는 유명 그림을 미술관에 기증하는 선행을 하게 됐다.       이 작품이 시카고 미술관에 기증된 사실이 알려지자 컵스 구단도 공식 성명서를 냈다. 작품과 시카고 미술관이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올해가 시카고 컵스가 내셔널리그에 가입한지 150주년이 되었다는 점도 잘 맞는다. 컵스팬들은 이 기운 빠진 선수들이 등장하는 그림을 보고 염소의 저주를 떠올리며 비관적으로만 보지는 않을 듯하다. 컵스는 이미 2016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사랑스러운 패자라는 이미지를 떨쳐 버렸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오랜 부진을 어느 정도 털어버렸기 때문에 ‘더 덕아웃’ 하나로 패자의 저주를 다시 우려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 덕아웃 그림이 만들어진 1948년 컵스가 최하위 팀이었다는 사실은 맞다. 다만 한가지 확실히 할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컵스가 전체 리그를 통틀어서 최하위 팀은 아니었다. 당시 최악의 팀은 다름 아닌 시카고 화이트삭스였다. 이래저래 덕아웃 그림 하나로 시카고 야구팬들의 이야기 거리가 늘어날 것은 확실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시카고 박물관을 찾을 때에는 본관 2층의 인상파 작품을 본 뒤 콜롬버스 드라이브쪽에 마련된 갤러리로 이동해 ‘아메리칸 고딕’과 ‘더 덕아웃’을 관람하면 되겠다. 근처에는 역시 미국 작가인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크’도 자리잡고 있다. 바로 옆에는 시카고 출신 화가 아키발드 모틀리 주니어의 시카고 남부의 생동감을 표현한 ‘나잇라이프’도 관람할 수 있다.       Nathan Park 기자시사분석 nathan 시카고 미술관 야구장 덕아웃 덕아웃 앞쪽

2026.02.1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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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위헌 소지’ 재판소원법, 여당은 왜 이리 서두르나

사실상의 ‘4심제’라는 비판이 제기된 재판소원 도입 법안(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어제 여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대법원 확정판결에 대해서도 이의가 있으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법안의 골자다. 야당은 물론 대법원도 “위헌 소지가 크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지만, 여당은 이달 중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을 강행 처리할 태세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제 최고위원회의에서 “시간표대로 차질 없이, 타협 없이 처리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사법체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법안을 사회적 공감대도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대법원 소속 법원행정처는 재판소원에 대해 “헌법 개정 없이 (국회가) 입법으로 도입할 수 없다”는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재판소원의 모델로 삼았다는 독일의 경우 연방기본법(헌법에 해당)에서 법원이 아닌 헌재를 최고 사법기관으로 했지만, 우리 헌법은 대법원을 최고 법원으로 규정하고 있어 재판소원과 같은 형태의 4심제 도입은 위헌이라는 게 대법원의 공식 입장이다. 반면에 헌재는 “법원 재판을 통한 기본권 침해도 구제할 필요가 있다”며 재판소원 도입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과 헌재라는 두 헌법기관의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점을 고려하면 관련 법안 처리는 각별히 신중을 기하는 게 마땅하다. 여당이 추진하는 사법 관련 ‘3대 법안’에는 대법관 증원과 법 왜곡죄 도입도 있다. 대법관 증원 법안은 재판소원 법안과 함께 법사위에서 논의했고, 법 왜곡죄 법안은 지난해 12월 법사위 의결을 거쳐 본회의로 넘어간 상태다. 여당은 ‘사법 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야당은 ‘사법부 장악 시도’라고 반발한다. 일각에선 여당이 지나치게 서두르는 게 이재명 대통령의 퇴임 후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려는 의도가 있지 않으냐고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아무리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라도 헌법이 보장한 사법부 독립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삼권분립의 원칙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우려가 있다. 여당은 무리한 입법 시도를 멈추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폭넓게 들어 사회적 합의를 구하는 노력부터 기울여 주길 바란다.

2026.02.11.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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