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타운 남쪽 10번 프리웨이와 연결되는 주요 도로 가운데 하나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불러바드(Martin Luther King Jr. Blvd, 이하 MLK Blvd)다. 이 도로는 서쪽 끝이 볼드윈 빌리지 지역의 오바마 불러바드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사우스 알라메다 스트리트까지 이어진다. 현재는 LA 남부를 관통하는 간선도로로 기능하지만, 이 길이 지금의 이름을 갖기까지는 긴 역사가 있다. 이 도로의 원래 이름은 샌타바버러 애비뉴(Santa Barbara Avenue)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00년 이전에는 ‘40번 도로’로 불렸으며, 당시에는 버몬트 애비뉴와 연결되는 비교적 작은 도로 중 하나였다. 이 도로명이 바뀐 계기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결정이었다. LA 시의회는 1982년부터 도로명 변경을 추진했고, 이듬해인 1983년 1월 15일, 킹 목사의 54번째 생일을 맞아 공식적으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불러바드로 개명했다. 당시 시의원 로버트 C. 패럴이 개명 작업을 주도했는데 시민 반대가 적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이었다. 새 도로 표지판 정비 등으로 약 6만4000달러가 필요하다는 점이 논란이 됐다. 그럼에도 LA시는 흑인 커뮤니티의 역사적 중심축이었던 이 도로에 킹 목사의 이름을 붙이는 결정을 내렸다. 마틴 루터 킹은 1929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유복한 목회자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옳지 않은 일에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3대째 이어진 목사 가정의 영향 속에서 그는 신학과 사회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지도자로 성장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첫 전환점은 1954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덱스터 애비뉴 침례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부터였다. 당시 몽고메리는 미국 내에서도 인종차별이 가장 심각한 지역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이 바로 1955년 12월 1일, 로자 파크스 여사의 버스 좌석 거부 사건이다. 로자 파크스는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체포됐고, 이 사건은 곧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으로 확산됐다. 킹 목사는 이미 그해 여름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회의에서 로자 파크스를 만난 인연이 있었다. 당시 그는 초청 강사였고, 로자 파크스는 협회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버스 보이콧 운동은 무려 381일간 이어졌다. 당시 몽고메리의 법은 버스 좌석을 백인석과 흑인석으로 나누고, 공용석에 앉은 흑인도 백인이 요구하면 자리를 양보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흑인은 요금을 앞문에서 낸 뒤 다시 내려 뒷문으로 타야 했고, 운전사는 반드시 백인이어야 했다. 이 부당한 제도에 처음으로 집단적 저항이 시작된 것이 바로 이 운동이었다. 젊은 목사 킹은 비폭력 저항 원칙 아래 이 운동을 이끌었고, 결국 미국 연방대법원은 대중교통에서의 인종 분리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로자 파크스는 인권운동의 상징이 되었고, 마틴 루터 킹은 전국적인 지도자로 떠올랐다. 킹 목사는 학문적으로도 탁월했다. 15세에 모어하우스 대학에 조기 입학해 사회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크로저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학생회장을 지냈다. 이후 보스턴대에서 조직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그 과정에서 평생의 동반자인 코레타 스콧을 만나 결혼했다. 그는 1960년 애틀랜타로 돌아와 에벤에셀 침례교회에서 아버지와 공동 목회를 이어갔으며, 전국 각지에서 인권운동을 주도했다. 특히 1963년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반대 시위와, 이 과정에서 옥중에서 쓴 공개서한은 그의 비폭력 저항 철학을 집약한 문서로 평가받는다. ‘지연된 정의는 거부된 정의(Justice too long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문장은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같은 해 워싱턴 대행진에서 발표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은 미국 인권운동의 정점으로 남았다. 이어 1965년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이어진 투표권 행진은 투표권법 제정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로써 미국의 법적 인종차별 시스템은 사실상 해체됐다. 그는 196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말년에는 빈곤 문제와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도 앞장섰다. 사생활에 대한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과 실천은 그 모든 평가를 압도한다. 오늘날 그는 세대와 인종, 종교를 초월해 존경받는 인물로 남아 있다. 미국은 매년 1월 셋째 월요일을 ‘마틴 루터 킹의 날’로 지정해 그의 정신을 기린다. 미국 전역에는 수많은 기념관과 도서관, 공원이 조성돼 있으며, 1000개가 넘는 도로와 고속도로가 그의 이름을 달고 있다. 필자가 방문한 여러 도시에서도 어김없이 마틴 루터 킹의 이름을 딴 길을 만날 수 있었다. LA의 MLK 불러바드도 그 긴 역사와 기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강태광 / 월드쉐어USA 대표·목사길 위의 인문학 이름 길이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로자 파크스 당시 몽고메리
2026.01.15. 19:32
새해는 언제나 분주하다. 사람들은 달력을 넘기며 계획을 세우고, 결심을 말하며, 더 빠르고 더 멀리 가야 할 이유를 찾는다. 그러나 새해의 첫 문턱에서 문득 조선의 르네상스 인물로 외교관이면서 문인이었던 최립(1539~1612)이 말한 ‘정관(靜觀·조용히 바라봄)’을 자연스레 떠올린다. ‘움직이지 않고 바라보는 일,’ ‘말보다 먼저 침묵으로 사유하는 태도’ 말이다. 정관은 결코 멈춤이 아니다. 오히려 성급한 판단과 요란한 감정에서 한걸음 물러나 사물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는 지적인 자세다. 최립에게 있어 세상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깊이 바라볼수록 스스로 의미를 드러내는 존재였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고, 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다만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 깊게 조용히, 오래, 그리고 정확히 보았다. 새해를 맞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어쩌면 더 많은 결심이 아니라 더 깊은 관찰일지 모른다. 지난해의 성공과 실패를 즉각 평가하기보다, 그것들이 어떤 맥락에서 일어났는지 차분히 바라보는 일. 타인의 말과 세상의 소음에 그저 휩쓸리기보다, 내 안에서 무엇이 흔들리고 무엇이 굳건했는지를 혼자서 조용히 살피는 일이다. 정관의 시선은 판단을 유예한다. 그래서 미워할 이유도, 조급해질 이유도 줄어든다. 대신 ‘사물의 결’을 이해하게 되고, ‘사람의 사정’을 헤아리게 된다. 최립의 글에서 느껴지는 고요함은 감정의 부재가 아니라, 바로 사유의 밀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새해는 새로움보다 ‘새로운 방식의 바라봄’에서 시작된다. 빠르게 반응하는 대신 천천히 응시하고, 즉각 말하기보다 한 번 더 생각하며, 결과를 재촉하기보다 과정을 이해하려는 태도. 이것이 바로 정관의 미덕이다. 올해가 우리에게 더 바쁘고 복잡한 해가 되더라도, 하루의 어딘가에 ‘정관의 시간’이 꼭 있기를 바란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일 수도 있고, 하루를 마감하며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짧은 침묵일 수도 있다. 그 짧은 고요가 생각을 바로 세우고, 삶의 방향을 조정해 줄 것이다. 최립은 우리에게 조용히 보여주었다. 깊이 보는 사람은 결코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조용히 사유하는 사람은 오래간다는 것을. 이 새해가, 더 빨라지는 해가 아니라 ‘더 깊어지는 한 해’가 되기를, 우리 모두가 정관의 눈으로 세상을 느긋하게 바라보면서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걸어가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최영배 / 리전트대학 교수열린광장 정관 새해 한걸음 한걸음 고요가 생각 르네상스 인물
2026.01.15. 19:30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신호일까? 지난해 연말부터 새해 초에 걸친 짧은 기간에 여러 명의 큰 별이 우리 곁을 떠나 하늘로 갔다. 이순재, 김지미, 안성기, 윤석화… 이름만으로도 한 시대를 상징하는 대중문화의 주역들이다. 여기에 지난해 세상을 떠난 윤일봉, 남포동, 한명숙, 송대관, 이상용, 전유성, 변웅전, 송도순 등의 유명 연예인을 더하면 정말 한 시대가 저문다는 실감이 강해진다. 세계적으로도 할리우드의 대표적 미남배우 로버트 레드포드, 성격배우 진 해크먼, 개고기 식용 반대에 앞장선 프랑스 배우 브리지드 바르도, 철학적 예술영화를 만든 마지막 거장 헝가리의 영화감독 벨라 타르 등 큰 별이 졌다. 대중문화의 주인공들이 중요하게 평가되며 대접받는 것은 그들이 한 시대를 기록했고, 대중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고향이기 때문이다. 가령 누가 주연으로 나오는 무슨 영화를 언제 어디서 누구랑 같이 봤는데, 그 당시 사회상은 이러저러했다는 식이다. 연애 시절이나 특별한 사연이 있을 때 본 영화나 연극, 음악 등은 더욱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지나간 삶의 소중한 한 부분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것이 바로 대중문화의 힘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스타가 있다. 그래서 가신 이들의 빈 자리가 한층 더 커보이는 것이다. 가신 이들의 빈 자리를 누가 어떤 식으로 채울까? 세월이 흐르면 사람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순재의 빈자리를 신구, 박근형 등이 채울 수 있고, 무섭게 떠오르는 젊은 스타들도 많다. 하지만, 지금의 혁신적 변화를 보면, 단순히 사람이 바뀌는 것으로 그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완전히 새로운 질서의 세상이 열리고 있는 양상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이라는 설명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그런 상황이다.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사람과 기계의 싸움에서 인간이 기계에 밀려 점점 왜소하고 초라해지고 있다. 그런 현상은 대중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진 큰 인물이 나오기가 어려운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문화의 핵심은 사람이다. 대중들이 열광하는 것은 공감을 통한 감동, 즉 진한 사람 이야기, 사람 냄새다. 영화관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스크린을 보면서, 함께 울고 웃으며 같은 느낌을 갖는 일체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감, 같은 공간에서 같은 느낌을 공유하는 경험의 중심에 스타가 있다. 그래서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계 시대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나 감동이 점점 사라져간다. 지금의 추세로는 머지않은 앞날에 영화도 기계가 만들어내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열정과 땀으로 빚어내는 영혼의 작업이 아니라, 차가운 기계가 명령대로 찍어내는 영화의 시대… 실제로 할리우드에는 이미 인공지능 배우가 등장했고, 여러 분야에서 기계가 사람을 밀어내고 있다. 게다가 대중들은 영화관에 가지 않고, 안방에 편안하게 앉아서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기로 영화를 감상한다. 그리고, 오늘의 대중은 끈적이는 인간적 감동보다 산뜻한 재미와 자극적 쾌락을 추구한다. 집단적 일체감이나 공동체 의식 따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라지고 ‘나들’의 세상로 변해가고 있다. ‘나들’이란 나의 복수다. ‘우리’와는 달리 각 개인의 자아가 살아있는 집단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관계보다 독립성을 우선으로 여기는 개념이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뭉클한 감동이 생기기 어렵고, 대중문화도 그런 식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삭막하다. 아무리 편리한 것이 좋다지만, 사람냄새 물씬한 감동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가신 이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철학적 예술영화 영화감독 벨라 레드포드 성격배우
2026.01.15. 19:24
새해를 앞두고 며칠 전부터 옷장을 비우기 시작했다. 해마다 마음만 먹고 미뤄 두었던 일이었는데, 배우 윤석화의 부고를 접한 뒤 마음이 급해졌다. ‘내일 일을 모른다’라는 평범한 진리가 갑작스러운 실체로 다가왔다. 죽음은 늘 남의 이야기처럼 멀리 있다가도, 어느 날 불현듯 일상의 문을 두드린다. 내가 떠난 뒤, 남은 옷들과 물건을 누가 정리할까. 한국에는 고인의 유품을 전문적으로 정리해 주는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내게 그런 도움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멀리 떨어져 사는 아이들이 과연 내가 남긴 물건을 하나하나 정리해 줄 수 있을까. 내가 살아있을 때 스스로 정리하는 것이야말로 남겨진 이들에 대한 마지막 책임이자 배려일 것이다. 그때 마침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런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내가 사는 동네에 ‘세컨드 스트리트(Second Street)’라는 중고 상점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입던 옷과 구두, 핸드백을 가져가면 그 자리에서 값을 매겨 사고, 매입하지 않는 물건은 자선단체에 기부해 준단다. 멀쩡한 물건을 버리는 부담도, 괜한 죄책감도 덜 수 있는 구조였다. 무엇보다 물건에 ‘두 번째 생명’을 부여한다는 이 상점의 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한 사람의 옷장에서 역할을 다한 물건이 또 다른 누군가의 일상으로 건너가 다시 쓰이는 일, 그것은 이별이 아니라 조용한 환승처럼 느껴졌다. 은퇴한 지도 어느덧 3년이 되어간다. 은퇴는 인생의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반환점, 혹은 ‘세컨드 라이프’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여행하러 다니고, 춤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일하느라 미뤄 두었던 일들을 몰아서 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바쁘고 풍요한 나날이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있다. 옷장을 비우는 일은 단순한 정리가 아니다. 그것은 내 첫 번째 삶의 속도와 역할을 되돌아보며, 새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이다. 필요 없는 물건을 보내며 한때의 나와 작별 인사를 한다. ‘세컨드 스트리트’의 계산대 위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처럼, 나 역시 두 번째 삶의 형태를 천천히 그려 나간다. 오늘도 나는 형사 콜롬보가 되어 옷장을 열어본다. 사건의 결정적 단서가 늘 사소한 곳에 숨어 있듯, 내 두 번째 삶의 방향 역시 이 조용한 비움 속에 숨어 있으리라 믿는다. ‘세컨드’는 결코 차선이 아니다. 다시 살아 볼 기회이자, 다르게 살아 볼 가능성이다. 비워낸 옷장에서 개운함과 후련함을 느낀다. 물건에 두 번째 생명이 있듯, 나에게도 아직 살아갈 시간이 남아있다. 은퇴 후에도 배우고 움직이며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 비워낸 만큼 새로움으로 채워질 시간, 그건 과거의 연장이 아니라 새로 시작할 나의 이야기다. 최숙희 / 수필가이아침에 옷장 세컨드 스트리트 세컨드 라이프 마음 한구석
2026.01.15. 19:23
살다 보면 어색하고 쑥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릴 때가 있다. 이럴 때 가벼운 웃음을 지으면서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심리가 발동한다. 그렇다면 이를 나타낼 때 ‘멋적은 미소’ ‘멋쩍은 미소’ 어느 것이 맞는 표현일까. ‘멋적은 미소’라고 하기 쉽지만 ‘멋쩍은 미소’가 맞는 말이다. ‘멋쩍다’는 “그들을 다시 보기가 멋쩍었다” “자신의 행동이 멋쩍은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등처럼 사용된다. ‘멋쩍다’ 외에 ‘겸연쩍다’ ‘수상쩍다’ 등도 비슷하게 헷갈리는 경우다. 이처럼 ‘-적다’로 써야 할지, ‘-쩍다’로 써야 할지 헷갈리는 것은 ‘-쩍다’의 어원이 ‘-적다(少)’에서 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를 구분하려면 어원의 의미, 즉 ‘적다(少)’에서 멀어졌는지를 보면 된다. ‘적다’는 의미가 유지되고 있다면 ‘-적다’를, 어원에서 멀어져 ‘적다’는 의미로 쓰이지 않고 있으면 ‘-쩍다’를 붙인다. 따라서 재미나 흥미가 거의 없어 싱겁다는 뜻을 가진 ‘맛적다’의 경우 발음은 [-쩍다]로 소리 나지만 ‘적다’는 의미가 포함됐기 때문에 ‘맛적다’로 써야 한다. 기력이 약해 힘차게 앞질러 나서는 기운이 없다는 의미의 ‘딴기적다’ 역시 같은 이유로 ‘-적다’가 붙는다. 이와 달리 ‘멋쩍다’ ‘겸연쩍다(쑥스럽거나 미안해 어색하다)’ ‘수상쩍다(수상스러운 데가 있다)’ ‘객쩍다(행동 등이 쓸데없고 싱겁다)’ ‘맥쩍다(심심하고 재미가 없다)’ 등은 ‘적다’는 어원의 의미에서 멀어졌으므로 ‘-쩍다’를 붙여 써야 바르다. 어원의 의미를 가지고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으므로 철자를 외워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말 바루기
2026.01.15. 19:22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미교협)는 최근 일어난 이민단속국(ICE)의 잔혹한 불법 살인 행위를 규탄하는 성명을 미네소타주 아시안 단체들과 함께 발표했다. 성명에는 트랜스포밍제너레이션스, 동남아시안액션, 동남아시아자유네트워크 등이 함께했다. 지난 7일, 연방 이민단속 요원이 37세의 어머니, 르네 니콜 굿을 총으로 쏴 살해했다. 이 끔찍한 사건은 미네소타를 겨냥한 트럼프 행정부의 지속적인 공격 연장선에 있다. 전 미네소타주 하원의장 멜리사 호트먼 살해 사건에 대한 거짓 주장부터, 주정부의 아동 보육 예산을 빼앗고 팀 월즈 주지사를 공격하기 위한 조직적인 캠페인에 이르기까지 공격은 이어져 왔다. 르네 니콜 굿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며 그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마음을 함께한다. 르네는 지금도 살아 있어야 했다. 미교협은 6개 주에서 한인과 아시안 아메리칸 이민자를 지원하는 전국 네트워크다. 미교협은 “르네의 죽음은 전적으로 예방이 가능했으며 무책임한 행정의 결과”라며 “누군가에게 총을 쥐여주고, 마스크를 씌우고, 행정 승인과 책임 면제를 제공하면 폭력이 만들어진다”고 지적했다. 또 “그것은 대낮의 이웃 납치에서부터 냉혈한 살인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우리는 ICE 구금 하에서 어머니, 아버지, 이웃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목격해 왔고, 추방과 투옥으로 수천 명의 삶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보아 왔다”고 규탄했다. 미네소타주에서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자, 생존자를 지원하는 트랜스포밍제너레이션스는 “우리 공동체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있으며 분노하고 있다. 현재 여러 언론이 우리 주와 도시를 묘사하는 방식과 달리 우리는 생명의 상실, 가족의 분리 그리고 우리 마을에 ICE 요원들이 점령하듯 상주함으로써 무너진 안전 감각에 대한 집단적 슬픔을 평화 시위로 표현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남아시아 자유 네트워크는 “통제되지 않은 군사화된 이민 단속이 초래한 비극이며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결과”라고 규탄했다. 동남아시안액션은 “이미 전쟁, 강제 이주, 재정착을 겪어 온 동남아시안 커뮤니티는 이번 일로 더욱 불안에 휩싸이고 있다”며 “가족들은 갈라지고, 공포는 확산되며, 생명은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 공동체를 계속 위험에 빠뜨리는 폭력적인 관행의 중단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연방법 집행기관과 요원들이 법을 무시한 채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시민이든 아니든 우리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다. 르네의 죽음은 이 사실을 상기시키는 끔찍한 사례다. 인간의 생명보다 더 큰 대가는 없다. 개선을 위한 행동이 취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생명의 상실을 보게 될 것이다. 미교협은 ①르네를 살해한 연방 요원의 즉각적인 직무 배제 ②르네의 살해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 ③연방 요원과 기관에 대한 책임성 확보 ④ICE를 우리 도시들에서 철수시킬 것을 요구했다. 또 르네의 죽음은 기록과 증거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준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자신들의 서사에 맞게 사건을 왜곡하려 했지만 영상과 목격자들은 분명하다. 르네는 아무 잘못이 없었고 연방 요원은 그를 차갑게 살해했다. 감시자들의 존재와 ICE 폭력에 대한 기록이 없었다면 선전이 진실을 압도하고 진실은 훨씬 더 쉽게 사라졌을 것이다.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잔혹 행위 동남아시안액션 동남아시아자유네트워크 ice 요원들 이민단속 요원
2026.01.15. 17:41
행복은 마음먹은 만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늘어나는 주름만큼 마음도 가벼워지고 가벼워진 만큼 행복한 순간도 자연스레 늘어난다. 무언가를 더 얻기보다는 덜어내는 쪽으로 삶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나는 문득 어깨 위에 내려앉은 조용한 행복을 발견하곤 한다. 젊은 날에는 앞만 보고 달렸다. 이뤄야 할 목표, 증명해야 할 존재, 멈추면 안 된다는 강박, 그 시절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천천히 시야에 들어온다. 눈이 6인치 이상 내린 토요일 딸에게 전화했다. 나를 너희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9살 된 손주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눈이 많이 내리면 둘이서 눈사람을 만들기로 했다. 집에 내가 도착하니 손주가 너무 좋아했고 벌써 스키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나도 대충 두꺼운 재킷과 스키 신발로 갈아 신고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추웠지만 손주와 나는 눈을 굴리다가 힘이 들어 더럭 눈 위에 누워 버렸다. 조금 쉬운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 쓰레기통을 가져와 눈을 듬뿍 쓸어 담았다. 서로 꾹꾹 눌러가면서 담아서 뒤엎어 눈을 빼냈다. 다음은 조금 작은 쓰레기통을 사용했고 제일 윗부분은 큰 화분을 이용했다. 손주는 너무 신나고 좋은지 뛰어가 옆집 친구들을 불러 왔다. 모두 모인 아이들이 눈사람 만드는 것이 처음이라서 서로 만져보고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한 아이에게는 솔방울 두 개를 주면서 눈을 붙이라고 코는 긴 당근을 주면서 입은 조그마한 자두를 주고 만들어 보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간격도 조화 있고 보기 좋게 만들면서 웃고 난리가 났다. 오래된 마후라를 목에 걸치고 모자를 씌워 주었다. 아이들이 눈을 손으로 뭉쳐 서로 던지고 맞고 야단법석이다. 너무 놀아 지쳤는지 눈 위에 누워 눈으로 덮어 달라고 주문한다. 아이들이 나란히 눈 이불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눈과 같이 호흡하고 눈 인양 좋아한다. 소박하지만 잊지 못할 순간들이었다. 눈 위에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누웠는데 문득 허탈함 속에서 잃어버린 일상을 되짚게 되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복권에 당첨된 사람과 큰 사고를 겪은 사람의 1년 후 행복지수는 거의 같다고 한다. 외부 자극은 일시적일 뿐 우리는 결국 익숙한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즉 행복은 어느 지점에서 얻는 무언가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다. 집안으로 들어온 손자 친구들에게 따뜻한 코코아차를 만들어 주고 서랍 속에 있는 쿠키를 내어주었다. 마시고 먹으면서 재잘거리는 소리도 귀엽고 빨개진 볼이 보기 좋았다. 오후 햇살은 창틀에 머물고 바람은 커튼을 가볍게 흔들었다. 이 평온한 시간이 행복이라는 말이 마음 깊은 곳에서 새어 나왔다. 특별하지도 않고 거창한 성취도 없는 날 그저 평화롭지만 심심한 시간 속에서 내가 나를 만나는 순간 행복은 복을 행한다는 뜻인 것 같다. 복은 하늘이 내리는 선물이고 행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행복은 삶을 누리는 능력이며 지금 이 자리에서 그것을 알아채는 감각이다. 주행 중 푸르게 바뀐 신호등, 반가운 문자 알림, 내 호의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준 친구, 행복은 그렇게 일상의 틈마다 조용히 숨어있다. 행복은 얻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삶을 감사의 눈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드러난다. 때로는 불행의 그림자를 지난 자리에 조용히 앉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행복 발견 친구 행복 순간 행복 옆집 친구들
2026.01.15. 17:40
원불교 삼대 종법사이셨던 대산 종사님께서 한때 삼동원에 계실 때 교도 한 분이 종법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삼동원부지를 더 많이 매입을 하셨나 봐요. 부지가 훨씬 넓게 보입니다.” 실지 부지를 더 매입한 것이 아니라 삼동원 내에 있는 돌담을 많이 제거했기에 부지가 넓게 보인 것이라고 대산 종사께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마음공부를 하는 것은 큰 나와 작은 나의 싸움입니다. 작은 나를 벗어나 큰 나로 키워 가는 것이 신앙 수행의 성숙과정입니다. 내 안에서 남과 나를 나누는 분별심을 버리고, 남의 일을 내 일 같이 해주면 그 삼동원의 돌담을 제거한 것과 같이 내 인생이 참으로 넓어지고 자유롭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나’와 동일시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단지 내 물질과 육신 혹은 내 가족을 나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교당, 교단, 사회, 국가 혹은 전 세계 사람을 나로 생각하는가, 나의 범위를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원불교 이대 종법사 정산종사 말씀입니다. “옛날 초(楚)나라 사람이 실물하매, 초왕은‘초인이 잃으매 초인이 얻으리라’ 하였는데, 그 후 공자께서는 ‘사람이 잃으매 사람이 얻으리라’ 하셨고, 우리 대종사께서는 ‘만물이 잃으매 만물이 얻으리라’ 하시었나니, 이는 그 주의의 발전됨을 보이심이라, 초왕은 나라를, 공자는 인류를, 대종사는 우주 만물을 한 집안 삼으셨나니, 이가 곧 세계주의요 일원주의니라.” 어느 날 예수님께서 무리와 함께 있을 때,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마태복음 12:46-50) 나의 살림과 가족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계명을 지킬 것을 말씀하셨고, 그는 이미 계명을 잘 지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완전해지려거든, 네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러자 그 청년은 슬퍼하며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는 재물이 많은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보다 쉽다.” (마가 10:17-22) 필자는 그 청년의 인생을 한 번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가 세상 재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면 예수님의 십이사도와 같은 성자가 될 수도 있었고 후래에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성인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 청년은 참으로 소중한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 청년과 같지 않은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청년처럼 작은 것을 얻기 위해 큰 것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눅 12:34)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눅16:1-13)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을 통하여 무엇이 소중한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진리공부, 경전 공부를 하지 않고 이를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죽은 사람을 위한 특별한 옷이 있는데, 이를 ‘수의’라고 합니다. 수의는 일반적인 옷과 유사하지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주머니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대종사님께서 영원한 나의 소유는 “정법에 대한 서원과 그것을 수행한 마음의 힘”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평생에 비록 많은 전곡을 벌어 놓았다 하더라도 죽을 때에는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나니,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는 것을 어찌 영원한 내 것이라 하리오. 영원히 나의 소유를 만들기로 하면, 생전에 어느 방면으로든지 남을 위하여 노력과 보시를 많이 하되 상(相)에 주함이 없는 보시로써 무루(無漏)의 복덕을 쌓아야 할 것이요, 참으로 영원한 나의 소유는 정법에 대한 서원과 그것을 수행한 마음의 힘이니, 서원과 마음공부에 끊임없는 공을 쌓아야 한없는 세상에 혜복의 주인공이 되니라.” (천도17)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범위 영생 모친과 동생들 이때 예수님 우주 만물
2026.01.15. 17:39
알렉산더 대왕과 예수는 모두 서른 세 살에 죽었다고 전해진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바꾸었지만, 둘 다 참 일찍 사라졌다. 어릴 때는 죽음을 먼 이야기로 느꼈다. 내가 죽기 전에 영원히 사는 약이 발명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모든 인간이 왜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2025년 말부터 시작한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현재 전국적으로 격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란은 1979년 ‘호메이니’ 이후 줄곧 ‘신정’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와 종교가 일치된 국가를 유지해 왔다. 1989년 호메이니 사망 후 권력을 승계 받아 37년 넘도록 이란을 지배해 온 ‘하메네이’는 그동안 이란을 사실상 거지 국가로 만들었다. 시민봉기가 커지자, 정부는 국민 일인당 한달에 7달러씩 넉달동안 샐활비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고, 이 약속에 더 크게 분노한 반정부 시위 참가자 중 2만 명 이상이 진압군에 의해 사망했을 것이라는 추측 기사까지 나오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87세가 된 ‘하메네이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까지 외치고 있다. 지구상에 남아 있는 공산 3국은 어떤가. 푸틴은 25년째 러시아를 통치하며 독재를 일삼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 시진핑 황제 역시 13년 이상 독재를 이어가고 있으며, 얼마 전 헌법을 개정해 이제 죽을 때까지 집권이 가능해졌다. 세 마리의 돼지가 3대째 권력을 세습하고 있는 북한은, 이제 42세밖에 안 된 세 번째 돼지가 아직 열두세 살밖에 안 된 자신의 딸 돼지에게 또 한 번의 정권 상속을 하려는 듯 보인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미네소타에서는 얼마 전 권총을 든 이민국 단속원들이 자국민을 쏘아 죽였다. 그 총은 나라를 지키라고 국민들이 쥐어 준 총이었다. 아무도 인정하고 싶어 하지는 않지만, 미국에 분명히 존재하는 인종 피라미드의 최상위 언저리에 있는 백인 여성 시민권자를 백주대낮에 총으로 쏘는 장면을 온세상이 지켜보았어도, 그것이 법집행 중 일어난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그동안 불법 이민을 단속하겠답시고 다른 인종이나 서류 미비자들을 그들이 어떻게 대했을 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지금 벌어지는 세태에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었던 많은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여지없이 종말론자들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인간이 영원히 산다면 돈이나 권력은 결국 한 사람에게 집중될 것이다. 권력은 지속될수록 권력 스스로 자신을 지속할 힘을 더 강화한다. 독재는 계속되고, 세상은 죽지 않은 알렉산더나 시저, 혹은 징기스칸에 의해 아직도 지배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영생의 알약이 발명된다면, 트럼프나 푸틴, 시진핑 같은 사람이 세상을 지배할 수도 있다. 돈은 또 어떤가.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본은 더 큰 자본을 만든다. 결국 세상의 모든 돈은 죽지 않은 록펠러나 카네기가 다 갖고 있거나, 죽지 않을 일론 머스크나 워런 버핏의 독차지가 될 것이다. 그나마 이런 불평등과 독점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자연의 힘이 바로 ‘죽음’이다. 돈과 힘이 단 한사람에게 집중된 세상에서 영원히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나, 그런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봉기를 일으키다가 학살을 당하는 것보다, 나이가 들면 누구도 예외없이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은 가장 공평하고 자연스러운 해결책인지도 모른다. 그 힘에 순응하기 위해 나도 기꺼이 죽어야한다. 87세가 되어서도 자기 자리를 내려놓지 않겠다고 국가의 인터넷망을 차단하고, 물러나라는 시민들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하는 지도자는 세상을 위해서 하루라도 빨리 자연의 위대한 힘을 만나야만 한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활력 반정부 시위 이민국 단속원들 호메이니 사망
2026.01.15. 13:40
━ 6월까지 지자체장 수사 가능…지방선거용 의구심 ━ 통일교·공천 헌금 특검은 거부, ‘내로남불’ 아닌가 더불어민주당이 어제 국회 본회의에 ‘2차 종합특검법안’을 상정했다. 3대(내란·김건희·채 상병) 특검 가동이 마무리되자마자 연장선에 있는 추가 특검을 또 출범시키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등 야당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들어가며 반발했다. 하지만 다수 의석을 가진 여권은 24시간이 지나는 16일 필리버스터 종결 표결에 이어 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여권발 2차 특검은 여러 측면에서 부적절하다. 우선 수사 대상이 사실상 3대 특검 내용과 겹쳐 ‘재탕 수사’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2차 특검법은 3대 특검 수사에서 미진하거나 새로 드러난 범죄 혐의를 수사토록 했다. 미진한 부분은 보완 수사를 해야 하지만 다른 수사기관으로 보내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더구나 내란 수사는 지난 13일 사형 구형을 받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포함한 주요 관련자들에 대한 결심 공판이 이뤄졌고,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국민 모두가 차분하게 이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또다시 특검을 한다는 건 다수당의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무한 특검’을 가동할 수 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상황이 이런데 2차 특검을 밀어붙이니 6월 지방선거에서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2차 특검법은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군 등이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후속 조치를 지시·수행한 혐의가 있는지를 수사 대상에 담았다. 기간도 최장 170일이어서 6·3 지방선거까지 수사가 이어질 수 있다. 여권 일각에선 오세훈 서울시장, 박형준 부산시장 등 국민의힘 소속 지자체장들이 계엄 당시 청사를 폐쇄하는 등 동조했다고 주장했었다. 야당 주장대로 “야당 지자체장을 내란 세력으로 몰아가려는 술수”가 아니기만 바랄 뿐이다. 특검에 들어가는 예산과 인력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3대 특검에 500여억원이 투입됐는데, 2차 특검에 150억원가량이 들 것이라고 국회 예산정책처는 추계했다. 특검은 수사로 규명하기 어려운 사안에 한해 예외적으로 도입돼야 하는 제도다. 말 그대로 특수한 경우에 국한해 할 일이지, 특검이 상설화되는 건 나라 전체로 봐도 정상이 아니다. 새로운 범죄 사실이 나올 가능성이 크지 않은데도 여권은 다수 의석을 이용해 특검을 원할 때마다 꺼내 쓰는 카드처럼 활용하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야당이 통일교 정치권 로비 의혹과 민주당 ‘공천 헌금’ 의혹을 특검으로 규명하자고 하면 여당은 “신천지 특검도 같이 하자”며 반대한다. 자신들이 원하는 특검은 하고 불리한 특검은 하지 않겠다는 태도야말로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2026.01.15. 8:34
━ 환율 방어에 미 재무장관 사상 초유 구두개입 ━ 섣부른 개입과 대응, 외환시장 내성만 키울 뿐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사이클에 제동이 걸렸다. 어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2.5%로 유지했다. 제자리걸음한 금리보다 시장이 주목한 것은 통화정책 방향 회의 의결문에서 사라진 ‘금리 인하 가능성’이란 문구다. 저성장 우려가 커지는 상황인데도 한은은 사실상 금리 인하 종료를 시사하며 통화정책 기조 변화의 가능성을 열었다. 우리보다 경제 형편이 나은 미국이 머지않아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 같은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 인하로 뻗었던 발을 거둬들인 건 서울을 중심으로 들썩이는 집값의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원화 약세 탓이 크다고 할 것이다. 금리를 인하하면 원화 약세를 더 부추길 수 있어서다. 이창용 총재는 이날 금통위 직후 “금리 결정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환율이었다”고 밝혔다. 외환시장은 살얼음판이다. 정부와 외환 당국이 지난 연말 외환보유액과 국민연금 등을 동원한 총력전을 펼친 데 힘입어 1420원대까지 떨어졌던 원-달러 환율은 연초부터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급기야 미국 재무장관이 우리 외환시장 구두개입에 나서는 사상 초유의 일도 벌어졌다. 스콧 베센트 장관은 지난 12일 “최근의 원화가치 하락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글을 SNS에 올리며 원화가치 방어에 가세했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 약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단숨에 12원 넘게 떨어졌던 원-달러 환율은 이내 1469.7원까지 다시 올랐다. 지난해 수출이 7000억 달러를 넘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경상수지 흑자도 역대 최대치가 예상되는 만큼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은 괜찮다는 당국의 주장이 근거 없지는 않다. 하지만 최근 환율 급등을 서학개미와 기업 탓으로 돌리는 오진(誤診)에서 나온 섣부른 개입과 땜질식 대응은 오히려 외환시장의 내성을 키우고 달러 저가 매수 기회만 만들어줄 뿐이다. 문제는 치솟는 원-달러 환율에 투영된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과 위기감이다. 반도체를 제외하고 석유화학과 철강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은 점점 약화하고 있다. 기업을 옥죄는 각종 법률과 규제로 투자와 고용은 위축되고 있다. 정부의 확장 재정 등으로 급증하는 나랏빚도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외환 수급 개선을 위해 당장의 대응책도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와 외환 당국의 주장대로 경제 펀더멘털과 따로 노는 환율을 제대로 잡으려면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한 구조개혁과 함께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촉진하는 시장 친화적인 정책이 실행돼야 한다. 이창용 총재는 “달러는 풍부하지만 환율 상승 기대에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강해져야 비로소 달러가 시장에 나오고, 환율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걸맞게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2026.01.15. 8:32
한국은 정부의 역할과 국가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강할 수밖에 없는 나라이다. 역사적, 전통적, 문화적 측면에서 보아도 그렇다. 국민들이 이를 지지하건 지지하지 않건 내심 국가가 나서서 크고 작은 일들을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사실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저 신뢰사회이기 때문이다. 국가기관, 정부에 대한 신뢰도 매우 약하지만 국민들간 상호신뢰는 더욱 약하다. 우리의 사회적 자본은 여전히 최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관계, 중소기업들 협동조합의 실질적 운영행태, 자영업자들의 상가조합 운영행태들을 보아도 그렇다. 이들은 스스로의 자율적 규율과 상호협력을 위한 역할보다 세금, 예산지원 등 정부기관들과의 관계에 주력하고 전직 관료들을 영입해 로비스트 역할을 맡기고 있다. 동대문상가에서도 옆 가게 새로운 디자인의 도용이 비일비재해도 이를 조합에서 스스로 규율을 세우지 못한다. 같은 시장이라고 불리지만 오랜 길드조직의 뿌리를 가지고 자율규제, 상호협력의 전통을 가진 서구의 시장문화와는 다른 것이다. 노동조합의 행태도 비슷하다. 유럽과 달리 산별노조의 협력에는 적극적이지 않고, 대기업 노조의 배타적 이익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격차는 어느 나라보다 크게 벌어져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저신뢰 사회 국가의 기능과 역할 여전히 중요 반면에 정부 역량은 점점 떨어져 국가지배구조개편 논의 일어나야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솔직히 직시하고 그 위에 국가의 제도와 정책을 설계하고 운영해 나가야 한다. 문제는 그래야 할 국가의 기능과 역량이 점점 떨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가 동력을 잃고 장기침체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금과 같은 정치와 권력구조에서 국가리더십은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국가정책을 끌어가기 어렵다. 장기적 효과보다 단기적으로 시선을 끌고 차별화하는데 더 집중하게 된다. 인재들의 흐름도 그렇다. 우수한 청년들은 의대와 법대에 가 안주하길 바라고, 경험을 쌓은 엘리트들은 유수 로펌들로 몰려들어 이들이 결국 대기업 고객들을 위한 쟁송과 정부기관 로비를 위한 한국최고의 인재집단으로 부상해있다. 반면에 정부와 공공부문은 점점 더 우수한 인재를 끌어오기 힘들어지고, 그 인재들의 충성도도 점점 약화되고 있다. 거기서 열심히 일한다고 본인과 가족의 삶, 장래가 보장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라가 기울어져가는 길이다. 오늘날 세상의 추세는 다시 산업정책 시대로 돌아섰다. 중국 경제의 추격에 당황한 미국, 유럽이 모두 산업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중국은 전략적, 장기적 산업정책에 의한 굴기를 지속하고 있다. 동맹도, 정의도, 가치도 없이 오로지 국익만 좇는 오늘날 세상에서 국가간 경쟁은 결국 국가지배구조와 정부의 능력간 경쟁이 되고 있다. 지난 해 이맘때쯤 한국은 극도의 혼란 속에 있었다. 한 겨울 거리는 양쪽으로 분열된 시위대로 넘쳐났고, 나라가 파국으로 치닫지나 않을지 우려되었다. 많은 이들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우려했고, 정치와 국가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제언들이 쏟아졌다. 일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고, 새 정부는 미국과의 관세협상, 실용적 외교노선의 추구, 경기활성화 대책 등을 빠르게 추진해오며 정국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이와 함께 정치제도, 국가지배구조 등 미래한국에 대한 담론도 쑥 들어갔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정치, 사회, 경제에 쌓인 문제들을 있게 한 어떤 요인들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았다. 비상계엄사태는 단순히 대통령 자리에 있던 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해버릴 수만 없는 여러 얼굴들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반년간 이어진 특검 활동은 관련된 인사들과 전 대통령 부부의 비리를 캐고 사법적 처리를 하는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다. 이미 선진국이라고 자처한 우리가 어떻게 해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맞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조적, 제도적, 사회적 분석과 판단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세월호 사태가 누구의 책임이냐를 따지는데 집중하며 그 근본적, 구조적 요인들에 대한 분석과 개선책은 흐지부지 외면되고 끝난 거와 같다. 비상계엄사태는 국가지도자로 양성되고 선출되는 과정, 국가권력구조, 정당제도와 운영행태, 정부의 역할과 역량 등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던졌다. 이에 제대로 접근해야 현 정권이 말하는 ‘내란극복’이 될 수 있다. 날로 험난해지는 세계정세에서 우리가 어떻게 국가발전을 지속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국가리더십, 권력구조, 정당 및 선거제도, 정부혁신 등의 관점에서 새해에 깊이 있는 논의가 다시 일어나게 되길 바란다. 정권 초기에 이러한 논의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면도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충분히 긴 시간을 가지고 국민의 지성을 모아 깊이 있게 토의하고 모색해 나가야 할 이 시대 중요한 국가적 과제이다. 대한민국의 국가건설은 아직 진행 중에 있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2026.01.15. 8:30
원화가치가 다시 고꾸라지고 있다. 다만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옆 나라 일본도 비상이다. 엔화 가치는 연초부터 급락하며 달러당 160엔 선을 위협하고 있다. 급기야 일본 재무상은 지난 14일 ‘전례 없는 과감한 조치’를 언급하며 구두개입에 나섰다. 어찌 익숙하게 보던 풍경이다. 엔화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조기 총선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면서 미끄럼틀을 탔다. ‘아베 노선’을 추종하는 다카이치 총리가 확실한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 재정 확대 속도도 빨라질 것이란 예상에서다. 위안 대신 엔을 따라가는 원화 G2에 치이는 ‘동병상련’의 동조화 협력 통해 ‘죄수의 딜레마’ 넘어야 그런데 외환시장에선 최근 원화 약세가 엔화의 움직임을 따라간 영향이란 분석이 많다. 이른바 ‘동조화(coupling)’ 현상이라는 것이다. 환율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달러의 방향이다. 하지만 다른 변수도 있다. 주변의 힘 센 통화의 움직임이다. 특히 경제 의존성이 강하고 처한 환경이 비슷할 때 동조화도 강해진다. 원화와 엔화의 ‘이인삼각’은 특히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관세를 앞세운 미국의 압박에 나란히 천문학적 투자를 약속한 그즈음이다. 흥미로운 것은 원화가 엔화에 동조하면서, 중국 위안화와는 ‘탈동조(decoupling)’하는 흐름을 보인다는 것이다. 위안화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강세를 이어가더니 최근에는 달러당 7위안 선을 깼다. 2년여 만에 최고 수준이다. 원화가 한때 위안화의 ‘프락시(proxy·대리)’ 통화로 불리며 찰떡같이 붙어 다녔던 걸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한국의 원, 중국의 위안, 일본의 엔은 모두 둥글다는 뜻의 한자 원(圓)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세 나라 간 얽히고설킨 관계만큼이나 복잡한 행로를 보였다. 새로운 조합이 구성된다는 건 동북아 3국 간 경제 구도가 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원화와 엔화의 커플링은 ‘동병상련(同病相憐)’형이다. 두 나라 모두 패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여 등이 터지는 형국이다. 자유무역 질서를 이끌던 미국은 거칠디 거친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현금 인출기’ 역할을 강요한다. 이웃 중국은 어떤가. 한편으론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견제하며 으름장을 놓고, 다른 한편으론 자국 기업에 보조금을 쏟아부어 타국 기업을 고사 상태로 내몰고 있다. 한·일 두 나라가 처한 상황은 게임이론에서 얘기하는 ‘죄수의 딜레마’를 연상시킨다. 이럴 땐 경쟁보다는 협력의 이익이 훨씬 큰 법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유독 살가웠던 분위기 역시 밑바탕엔 이런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 일본 내에서 한·일 ‘미들 파워(middle power)’ 연대론, 독도 문제로 한국을 자극하지 말자는 전향적 목소리가 나온 것도 진전이다. 반대로 원화와 위안화의 탈동조화는 단단했던 경제적 결속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는 신호다. 한때 중국의 경기가 곧 한국의 경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사드 사태와 한한령(限韓令), 공급망 재편으로 상황이 많이 바뀐 게 사실이다. 2018년 26.8%에 달했던 대중 수출 비중은 지난해 18.4%로 내려왔다. 대중 무역수지는 2023년 이후 3년째 내리 적자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지평을 상품 무역에서 서비스·투자로 확대하는 등 전환의 계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야 한다”고 했다. 글쎄, 날것의 국익이 맞부딪치는 세계에서 옳은 편이 어딘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먹고사는 편’, 즉 실리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는 양국의 통화가 답을 주고 있다. 시 주석의 언급에 대해 “공자 말씀으로 들었다”는 이 대통령의 답변 역시 이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패권을 다투는 대국답게 먼저 얼토당토않은 한한령부터 풀겠다고 나섰다면 아마도 답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조민근([email protected])
2026.01.15. 8:28
어떤 학교에서 중요한 시험을 쳤다고 가정해보자. 한 학생이 부정행위로 내신등급을 대폭 올렸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구체적인 부정행위의 정황이 보인다. 공교롭게도 이 학생은 전교 학생회 임원 후보자다. 그러면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 조사 결과 부정행위가 확인되면 시험 성적을 취소하고 엄중히 징계해야 한다. 임원 후보자로서 자격 상실은 당연하다. 이걸 그냥 뭉개고 넘어가는 건 다른 학생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반포 아파트 당첨 이혜훈 후보자 기혼 자녀를 부양가족 포함 의혹 사실이라면 책임지고 사퇴해야 이와 비슷한 논란이 장관 후보자 인사 검증 과정에서 불거졌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아파트 ‘부정청약’ 의혹이다. 부양가족 부풀리기로 부당하게 청약가점을 높인 뒤 서울 서초구 대형 아파트에 당첨됐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결과적으로 이 후보자 부부는 수십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사실이라면 단순한 착오가 아니라 중대한 범법 행위다. 그동안 국토교통부는 이런 식의 부양가족 부풀리기를 공급질서 교란 행위로 규정하고 형사 처벌 대상이라고 경고해왔다. 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되면 주택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나씩 따져보자. 2024년 7월 서초구 반포동의 래미안원펜타스(신반포15차 재건축) 단지가 입주자 모집공고를 냈다. 이 후보자의 배우자는 이 단지의 137A형(전용면적 137㎡, 공급면적 54평형)에 청약해 당첨자가 됐다. 해당 주택형의 당첨 커트라인은 74점이었다. 청약통장 가입 기간(17점)과 무주택 기간(32점)에서 모두 만점을 받더라도 부양가족 수가 네 명(25점)이어야 가능한 점수다. 이 후보자 부부에겐 세 명의 아들이 있다. 아파트를 청약할 때 아들 셋을 모두 부양가족에 포함해야만 당첨이 가능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이들 중 한 명은 입주자 모집공고 7개월 전인 2023년 12월에 결혼식을 했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는 부양가족 수를 계산할 때 “자녀의 경우 미혼으로 한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규칙에 따라 이미 결혼한 자녀는 부양가족에서 제외된다. 논란이 커지자 이 후보자는 “성년인 아들의 혼인신고에 부모가 개입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문제의 본질을 비껴간 엉터리 해명이다. 중요한 건 이 후보자 아들이 아파트 청약 시점에 기혼이었느냐, 미혼이었느냐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주택공급 규칙에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자녀는 미혼으로 본다는 내용이 없다. 입주자 모집공고 시점에서 혼인신고 여부와 상관없이 기혼 자녀를 부양가족에 포함했다면 부정청약으로 당첨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 아파트를 청약할 때 부양가족이 몇 명인지는 청약자가 직접 입력하는 사항이다. 청약자 본인도 모르게 자동으로 계산되는 게 아니란 얘기다. 청약 과정에서 부양가족 수를 허위로 입력했다면 부정청약으로 당첨되겠다는 적극적인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후보자 부부가 소유한 아파트의 분양가는 36억7840만원이었다. 현재 이 단지에서 같은 면적의 매물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그보다 작은 전용면적 107㎡(공급면적 42평형)의 저층 매물이 74억원에 나와 있다. 현재 시세에서 분양가를 뺀 시세차익은 4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오는 19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이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은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후보자는 부정청약 의혹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내놓든지,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물러나는 게 마땅하다. 부정청약이 맞는다면 청와대도 부실한 인사 검증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건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이념이나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운영 중인 아파트 청약 시스템의 공정성과 신뢰에 대한 문제다. 이번 기회에 분양가 상한제라는 제도에 대해서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민간 아파트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한 지 벌써 19년이 됐다. 겉으로는 분양가 상승을 억눌러 집값 과열을 차단하기 위한 제도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로또 분양’이란 말처럼 당첨자에게만 막대한 시세차익을 안겨주는 제도로 변질했다. 의도가 좋았다고 해서 그 결과도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 지금처럼 새 아파트 분양가를 억지로 누르면 누를수록 극소수 당첨자가 가져가는 시세차익만 많아질 뿐이다. 반면에 대다수 청약 탈락자에겐 상실감을 안겨주고, 새 아파트의 공급은 더욱 줄어드는 부작용만 커진다. 차라리 분양가를 다소 높이더라도 주택 공급을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게 바람직하다. 주정완([email protected])
2026.01.15. 8:26
━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담임목사 인터뷰 5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실에서 이영훈(72) 담임목사를 만났다. 그는 “한국 사회의 근본 문제 중 하나는 ‘부정적 사고(Negative thinking)’”라고 짚었다. 과거나 지금이나 세계 역사를 리드하는 상위 5% 지도자의 공통점은 ‘긍정적 사고’라고 했다. 거기서 창의성도 나온다고 했다. 이 목사는 “그걸 바꾸기 위해 ‘감사 운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Q : 왜 ‘감사 운동’인가. A : “우리나라는 반만년 역사 이래 가장 풍족한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마음은 지치고 메마르다. 주위를 돌아보라. 극한의 경쟁과 끊임없는 비교 의식에 다들 지쳐 있다. 불평과 불만은 이제 일상이 됐다. 그로 인해 사회는 점점 양극화로 달려가고 있다. 지금은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나는 우리 사회에 ‘영적 백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 영적 백신, 어떤 건가. A : “ 다름 아닌 ‘감사’라는 백신이다. 단순한 삶의 태도나 예의범절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삶의 방향을 긍정과 만족으로 돌릴 수 있는 영적인 결단을 말한다. 그게 감사 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다.” 이 말끝에 이영훈 목사는 ‘감사’의 어원을 꺼냈다. “‘thank(감사하다)’와 ‘think(생각하다)’, 그리고 ‘thought(생각)’는 모두 하나의 어원에서 나왔다. 그 뿌리는 게르만어로 ‘thankona(싼코나)’다. 감사가 없는 삶이란 어떤 삶인가. 결국 생각 없는 삶이 된다. 사유가 없는 삶이 된다. 한국의 K-POP이 왜 인기인지, 미국인에게 직접 이유를 들은 적이 있다.” Q : 이유가 뭐라고 했나. A : “그 사람은 ‘긍정의 메시지’라고 하더라. K-POP은 파괴적이고 저주하는 게 아니라 긍정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좋다고 했다. 감사 운동도 그렇다. 긍정의 에너지다. 모든 사람의 삶에는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어느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살아갈 건가. 그건 아주 중요한 문제다.” Q : 그게 왜 중요한 문제인가. A : “나의 삶에 없는 것, 나의 결핍만 맛보며 사는 삶은 어떻게 될까. 남과 비교하며 갈수록 불만이 쌓이고, 결국 불행한 삶이 되지 않겠나. 반면 나에게 이미 주어진 것들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어떨까. 하루하루가 즐겁지 않을까. 결국 행복한 삶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 사회에는 이제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 의식혁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감사 운동’을 제안한다. 여기서 말하는 감사는 하나의 도구다.” Q : 무엇을 위한 도구인가. A : “긍정적 사고로 미래를 열어 가기 위한 도구다. 다들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행복이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꿈이라면, 감사는 그 꿈을 위한 실천이다. 부부간에평생 함께 밥을 먹지 않나. 날을 잡아서 남편이 아내에게 말해 보라. ‘당신, 너무 고마워. 그동안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었는데, 정말 고마워.’ 그 말은 아내가 하루 종일눈물짓게 할 거다. 나도 행복하고, 상대도 행복하게 하는 말이다. 그런 게 감사다.” 이영훈 목사는 최근 ‘순직 해병 특검팀’에 의해 압수 수색을 받았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자신의 해임이나 처벌을 피하기 위해 개신교계 유력 인사를 통해 대통령실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었다. 휴대 전화는 디지털 포렌식을 했고, 자택은 물론 컴퓨터와 차량의 블랙박스까지 압수 수색을 했다. 종교 지도자에 대한 과도한 수사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정작 이 목사는 주위에 아무런 내색이나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교직원들까지 놀랄 정도였다. 결국 특검은 아무런 혐의점이 없다며 수사를 종결했다. 대통령실과 민주당 의원들이 찾아와 무리한 압수 수색에 대한 위로와 유감을 표할 정도였다. Q : 억울한 일이다. 화가 나지 않았나. A : “솔직히 마음은 상했다. 막상 당해보면 압수 수색은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감사’의 키워드를 생각했다. 진실은 어차피 역사가 밝혀주는 법이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의연하게 대처하자고 다짐했다. 이번 일을 통해 제가 절감한 게 있다. ‘감사’는 역시 미래전략이란 사실이다. 제가 아무 잘못도 없다는 게 밝혀지니까, 우리 교회가 오히려 더 건강한 교회가 됐다. 더 굳건해졌다. 그래서 그 모든 일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잠시 생각에 잠긴 이 목사는 1950년대와 현대를 비교했다. “50년대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필품은 72가지, 그중 절대 필수품은 18가지였다. 오늘날 현대인의 생필품은 500가지 이상이고, 그중 절대 필수품은 50가지가 넘는다. 지금은 분명히 모든 게 풍족한 시대다. 이런 풍요를 누리면서도, 왜 이전 사람들보다 행복하진 않은 걸까?” Q : 그 이유가 뭐라고 보나. A : “사람들의 마음에서 ‘감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기준이 비교 우위적 경쟁에서의 승리와 물질적 성취의 논리에 갇혀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제부터라도 감사의 고백을 시작하면 좋겠다. 배우자와 자녀에게 ‘고맙다, 수고했다’는 말부터 해보자. 서로에게 용기가 생기고,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달라진다. 그래서 ‘365 감사챌린지’를 시작하고자 한다.” 백성호([email protected])
2026.01.15. 8:24
한국의 금융 글로벌화, 어떻게 볼 것인가 서학 개미는 한동안 발 빠른 국제감각을 가진 K금융 리터러시의 진화로 대접받았다. 고소득을 올리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최근 서학 개미의 해외주식 매입은 더욱 급격하게 증가했다. 서학 개미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는 2024년 105억 달러에서 2025년 326억 달러로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서학 개미의 행보가 최근에는 지속적인 고환율과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걱정 등으로 우려의 대상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대외자산과 부채 합계의 GDP 대비 비중, 한국은 세계 평균 절반에도 못 미쳐 한국 10년간 2873억 달러 해외 주식 순매수, 외국은 한국주식 순매도 코스피 급등보다는 꾸준히 오르는 게 중요…경제성장 뒷받침 돼야 해외 충격의 국내 영향 커질 것…국내외 자본 급격한 유출입 경계를 서학 개미의 등장은 한국의 ‘금융 글로벌화(Financial Globalization)’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국제 자본 유출입이 자유로워지면서, 한국과 외국 간의 주식, 채권, 국제 대출 등 대외 금융자산 거래는 급격히 증가했다. 한국은 외국의 해외 금융자산을, 외국은 한국의 금융자산을 매입, 축적하기 시작했다.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의 연도별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외자산과 부채는 꾸준히 상승했고, 2024년 말에는 GDP 대비 대외자산과 부채 비율은 각각 134%와 75%에 달했다. 특히 대외자산의 양은 우리나라 국민이 평균적으로 연 소득의 134%에 달하는 해외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는 상당한 수치라 할 수 있다. 금융 글로벌화의 편익과 전망 금융 글로벌화가 진행된 것은 대외 금융자산의 거래가 다양한 경제적 편익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해외 금융자산이 국내 금융자산보다 더 높은 수익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 서학 개미들은 미국 증시 수익률이 한국보다 지속적으로 높았던 것을 잘 알고 있고, 이에 미국 증시에 뛰어들어 높은 수익을 얻고 있다. 둘째, 보다 일반적으로 다양한 해외 금융자산 거래는 한국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분산투자 기회를 제공해, 보다 안정적으로 수익률을 제고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경제 전체적인 입장에서도 국내 투자 기회가 제한적인 경우 해외 투자 기회로 더 높은 수익을 얻어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제 분산 투자를 통해 국가 고유의 위험을 줄이면 불황이 와도 해외 소득을 통해 소비 등 경제활동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혹자는 한국의 금융 글로벌화가 지나치게 진행된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향후에도 금융 글로벌화는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이미 엄청난 자산을 해외에 투자한 것이라 여길 수 있으나, 사실 아직 세계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림 2〉는 세계 80개국과 한국의 대외자산과 대외부채 합계의 GDP 대비 비중을 보여주는데, 한국은 아직 세계 평균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 상태다. 대외자산만 보면 세계와의 갭이 작아지기는 하지만, 이 역시 세계 평균보다 훨씬 낮은 상태다. 또한 간단한 국제분산투자(international portfolio diversification) 이론에 따르면, 세계에서 차지하는 본국의 GDP 비중만큼 본국에 투자하는 것이 최적이고, 세계 전체와 비교하면 경제 규모가 상당히 작은 한국의 경우 총자산의 대부분인 98% 이상을 해외자산으로 구성하는 것이 최적이다. 실제 한국의 최적 해외투자 비중은 이보다 낮겠지만, 적어도 현재 수준에서 향후에도 금융 글로벌화가 진행되리라는 것은 명확하다. 서학 개미는 더 많아지고 더 많은 해외주식을 매입할 것이다. 대외 자산과 부채의 비대칭적 구조 최근 한국의 금융 글로벌화 과정의 또 다른 특징은 대외 금융자산과 부채의 증가 속도가 비대칭적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외 금융부채의 축적은 완만하지만, 대외 금융자산의 축적은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주식 거래의 차이가 상당 부분을 설명한다. 2024년 말까지 지난 10년간 한국은 2873억 달러의 해외 주식을 순매수한 반면, 외국은 70억 달러의 한국 주식을 순매도하였다. 한국은 더 많은 해외 금융자산을 매입하고 있고 구입한 미국 주식 등의 가격도 급격히 상승한 반면, 외국은 한국 주식을 순매도했을 뿐 아니라 기존 자산의 가치도 더 천천히 올라간 점이 반영돼 있다.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벌어들인 달러로 대외 금융자산을 추가로 구입할 수 있었던 측면도 있다. 이러한 비대칭 구조를 한편으로는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대외 금융자산이 부채보다 많으므로 한국은 대외 국부(External Wealth of Nations)를 많이 축적했다는 점을 자랑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해외에서 더 많은 투자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투자수익이, 외국에 줘야 할 투자수익보다 더 많다는 것, 그리고 국내 수익이 낮더라도 해외 투자를 이용하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측면이다. 지속적인 주가 상승이 중요한 이유 하지만 그러한 비대칭적 구조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생각해보면 그냥 즐거워만 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배경 중 하나는 국내 투자수익률이 해외 투자수익률보다 훨씬 저조했기 때문에, 한국 투자자들은 물론 외국 투자자들도 국내 시장을 외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2024년까지 지난 10년간 S&P500의 수익률(배당 포함, 환율 변동 제외)은 연 13%를 초과하는 반면, 10년간 KOSPI200의 수익률(배당 포함)은 연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국 주식가치가 상승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뉴스다. 한국 주식시장에 더 많은 국내외 투자자들을 유인하고 비대칭 구조 해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단번에 코스피가 5000을 넘어 7000, 1만까지 가는 것보다 향후 매년 꾸준히 높은 수익률을 얻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예를 들어 몇십년 만에 한번 코스피가 100% 이상 수익률을 올리면서 반짝하고, 이후 매년 지지부진해진다면 투자자들은 다시 떠날 것이고, 향후 한국 증시를 도박이나 로또와 같이 여기게 될 것이다. 특히 단기적으로 지나치게 과열되다가 일부 급락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면, 꼭지를 잡은 투자자들은 급락장에서 큰 손실을 보게 되고, 이후 도박이나 로또 같은 한국 증시를 다시 외면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실 코로나 사태 후 코스피가 급등 후 급락했을 때 뒤늦게 뛰어든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봤고, 이후 투자자들이 국내 시장을 외면하는 경향이 더욱 커졌었다. 향후 코스피가 상승하여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돼 한국 주식이 외국에 상장된 주식만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된 이후에도, 코스피가 지속적으로 좋은 수익률을 내면서 상승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코스피의 꾸준한 상승을 위해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지다. 향후 점점 더 낮은 경제성장률이 예상되는 경제에서 지속적인 주가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 전통적으로 경제의 글로벌화는 상품과 서비스의 수출과 수입, 즉 국제 무역의 확대를 의미해왔다. 한국은 이를 선도했던 국가였고, 이를 통해 과거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브렉시트, 코로나 사태, 트럼프 집권 후 무역 전쟁 등을 거치면서 무역을 통한 글로벌화는 더 진전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경제의 글로벌화의 다른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 투자의 글로벌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특히 한국은 향후에도 빠르게 금융 글로벌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와 관련한 이슈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금융 글로벌화에서 유의할 점 금융 글로벌화가 진행됨에 따라 해외 충격이 국제 금융 연계를 통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부정적 해외 충격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다. 한·미 장기 금리가 동조화되는 등, 미국 등 해외 금융 여건이 한국 금융 여건에 미치는 영향도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외 금융 여건이 불안할 때 국내 금융 여건을 어떻게 안정시킬 수 있을지, 한국의 독자적인 금융 통화 정책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지도 점점 더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금융기관과 개별 투자자도 이러한 현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급격한 국제 자본 유출입이 발생하면서, 환율·주가·금리 등 금융 변수들과 실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항상 유의해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해외자본이 은행 대출 등의 형태로 국내에 들어왔다 갑자기 빠져나가면서 경제의 불안정성을 증폭시켰다. 향후 국제자본이동의 반전은 국제 거래가 증가하고 축적된 국가 간 자산이 더욱 많아진 만큼 그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 국제 자산 거래가 주식 등 포트폴리오 투자나 가상자산·코인 등 새로운 자산의 형태로 진화되면서 더욱 급격하게 나타날 수 있다. 해외 자본뿐 아니라 국내 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을 통해서도 경제 불안정성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2026.01.15. 8:22
대한체육회에서 체육단체 선거제도 개선을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마침 국회에서 공청회가 열렸고,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번 회장은 영원한 회장이 되지 않도록 민주적 제도를 잘 마련하라”고 주문해 체육회 선거제도 개선 방향이 주목받고 있다. 현행 체육회장 선거 제도는 약 2000명의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다. 이를 앞으로 30만 명 이상의 체육인의 직선제로 전환하고 모바일 투표를 도입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명분과 방향성에서 보면 개선 방향은 무난하다. 좀 더 고심이 필요한 부분은 모든 득표를 등가로 합산해 최다 득표자를 가리는 평등선거 원칙을 적용하느냐 여부다. 적임자가 선출될 수 있는 제도에 대한 숙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직선제 도입, 모바일 투표 논의 단체 유형·직군 불균형 고려해 전문성·리더십 적임자 선출해야 체육회는 정부 지원을 받는 공공기관이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인정한 국가올림픽위원회(NOC)다. 정부가 기관장을 임명하는 일반적 공공기관과 달리 체육회는 자체 선거로 회장을 선출하는데, 이는 올림픽 헌장이 보장하는 NOC 자율성을 존중하기 위함이다. 회장 선출 제도를 정비한다면 국제적으로 NOC 수장, 국내에서는 공공기관장으로 두 역할을 모두 수행할 적임자가 선출되도록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헌법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에 직선제와 평등선거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모든 직선제 선거에 평등선거를 적용하지는 않는다. 의도치 않은 부작용 우려 때문이다. 우선 유권자 집단 간에 인원 불균형에 따른 대표성 왜곡이 생길 수 있다. 체육회의 경우 회원 단체 유형과 유권자 직군에 따른 불균형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종목 단체 간에 인원 편중은 자명하다. 체육단체 선거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축구·배드민턴 등 상위 5개 종목의 투표권 비중이 65%나 된다. 단순 합산 방식의 직선제를 적용하면 체육회장이 아닌 ‘상위 5개 종목 회장’이 선출될 수 있다는 의미다. 체육회장이 NOC 대표로 자체 선거를 가능하게 한 만큼 올림픽 유관 단체의 비중도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 체육회 회원종목 단체에는 족구 등 비올림픽 종목이 43%나 된다. 전국 17개 시·도, 228개 시·군·구 지방 체육회 조직과 함께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비올림픽 조직의 득표를 단순 합산하는 방식이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NOC 수장을 선출하는 최적의 방법인지 고민해야 한다. 유권자 직군별 비중도 중요한 요소다. 임원·대의원·선수·지도자는 수가 크게 변하지 않지만, 생활체육 동호인은 신규 등록이 비교적 쉽다. 1인 1표 평등선거를 적용하면 미래의 체육회장을 전국의 생활체육 동호인이 결정할 수 있다. 생활체육 동호인은 기준이 모호할 뿐 아니라 체육행정과 정책 이해도가 낮을 수 있고, 후보들이 지지층 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동호인 영입을 할 경우 선거가 혼탁해질 수 있다. 평등선거는 모든 득표를 등가로 합산하기에 인기투표나 이미지 선거로 흐를 우려가 있다. 정책과 전문성보다 단기 이익과 후보자 유명세에 따라 투표하는 이른바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릴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직선제와 모바일 투표, 그리고 평등선거 원칙은 분리해서 판단해야 한다. 현장투표 방식은 지방이나 해외 훈련 중인 유권자의 참여가 어렵다. 기술적 준비가 충분하다면 모바일 투표 도입을 검토할 만하다. 모바일 투표는 참여 장벽을 낮춰 직선제 도입을 한층 현실적으로 만든다. 그렇다고 직선제가 반드시 평등선거를 전제로 할 필요는 없다. 평등선거는 모든 표를 산술 합산하므로 과열, 유권자 동원, 포퓰리즘, 대표성 왜곡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선제를 도입하더라도 회원 단체 유형과 유권자 직군별 득표를 적정 비율로 환산해 최종 순위를 정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이때 단체 유형에는 개별 종목 간의 편차와 올림픽 유관 종목 및 지방 체육회의 비중을 고려하고, 유권자 직군에서는 생활체육 동호인의 비중을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최적의 비중을 정하는 것은 난제다. 그렇기에 시한을 정해 서두르지 말고 다각도로 분석하고 숙의를 거쳐 대안이 무르익었을 때 결론을 내는 것이 안전하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자리에 맞는 전문성과 리더십을 갖춘 적임자가 선출되는 좋은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기한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2026.01.15. 8:20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구체적 성과를 꼽으라면 조세이 탄광 수몰자 DNA 감정에 양국이 협력하기로 한 점이다. 조세이 탄광 사고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으로 석탄 채굴에 열을 올리던 시기, 야마구치현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해저 탄광을 무리하게 채굴해 지반이 약해졌고 결국 1942년 2월 3일 바닷물이 갱도로 침투했지만 183명이 빠져나오지 못했다. 조선인 광부는 136명이었다. 일본에서조차 잊힌 사건이었다. 이 역사를 알리고 유골 발굴을 위해 애썼던 것은 ‘조세이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라는 일본 시민단체였다. 희생자 신원을 모두 파악했고, 2024년엔 갱도 입구를 발견해냈다. 이후 잠수부를 동원해 유골 발굴에 지속적으로 나선 결과 지난해 8월, 유골 4점을 육지로 끌어올렸다. 유골은 일본 경찰에 인계됐지만 DNA 감정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양국 정상회담에선 유골 감정부터 협력하기로 한 점을 인도주의적 성과로 꼽았다. 시민단체도 정치적 합의가 추진동력이 된다며 기대해온 만큼 이번 성과를 깎아내릴 순 없다. 그럼에도 유골이 땅 위에 있었던 5개월 동안 일본 정부의 태도는 바다 밑에 그대로 가라앉아 있었다. 한국과의 외교적 스킨십을 위한 카드로 끌어올려지기 전까지, 그것도 시민단체가 여태껏 고군분투한 노력의 결과가 버젓이 나와 있는데 말이다. 시민단체가 지금껏 유가족들을 접촉하며 확보해온 DNA 대조군은 84명(한국 83명, 일본 1명)분이다. 이번 DNA 감정을 통해 한 명이라도 일치하는 결과가 나온다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 한·일 양국은 DNA 감정은 물론 나머지 100여 명의 대조군 확보와 수몰된 해저 탄광의 유골 발굴 작업에도 적극 협력해야 한다. 이노우에 요코(井上洋子) 시민단체 대표는 “한·일 공동 사업으로 양국 정부와 기업, 시민이 함께 자금을 마련해 전문가 팀을 구성해 유골 수습을 진행하면 좋겠다”면서도 “만약 정부가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시민의 힘만으로 끝까지 해낸다는 각오부터 다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 유골 발굴 조사는 사고 발생일로부터 꼭 83년째인 다음 달 3일부터 11일까지 예정돼 있다. 한국에서도 유가족 일부가 다음 달 6일부터 사흘간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에도 성과가 나온다면 그것은 정부의 결단보다는 시민들이 버텨온 시간과 쏟아부은 노력 덕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양국 정상의 공식 석상에서 언급된 협력이 말로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정원석([email protected])
2026.01.15. 8:18
강유미의 유튜브 코미디 ‘중년 남미새’를 두고 논란이 뜨거웠다. 누군가는 통쾌한 풍자라 하고, 누군가는 여성 비하라고 비난한다. 이 콘텐트는 중년 여성을 조롱하는가, 아니면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회적 병리를 꼬집는 것일까. 재빨리 판결을 내리기 어려운 이유는 이 코미디는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기보다, 지독할 정도의 재현만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현실 들춘 코미디 논란 성급하게 옹호나 비난하기보다 왜 불편한지 스스로 살펴봐야 화면 속 50대 여성은 명품 로고가 선명한 액세서리를 착용한 채 남직원에겐 노골적 호의를, 여직원에겐 “눈웃음 살살 치는 스타일”이라며 악담을 한다. 외아들에 대한 맹목적 애정과 “요즘 여자애들이 얼마나 영악한데” 같은 편견 섞인 발언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강유미는 이 인물을 그저 보여줄 뿐, 해석의 전권은 관객에게 넘어간다. 풍자는 장르적 약속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맥락과 아이러니를 읽어내는 능력이 없다면 풍자는 쉽게 공격으로 오독된다. 특히 확증 편견이 연료가 되는 유튜브 같은 공간에서 풍자는 쉽게 혐오의 정당화로 돌진한다. 실제로 일부 시청자는 여기서 “저런 여자들은 비하당해도 싸다”는 메시지를 추출했고, 이 불편함을 제거하고 사과할 것을 강유미에게 요구했다. 그동안 강유미는 인간 군상을 정교하게 묘사하며 ‘코미디 인류학자’라는 칭송을 쌓아왔다. 그런 그가 비난의 과녁이 된 것은 이번만 풍자의 칼날이 어긋났기 때문일까. 나는 이 논란을 지켜보며 ‘풍자냐 비하냐’라는 이분법적 질문 자체가 바뀌어야 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강유미의 코미디는 일종의 ‘불쾌한 거울’이다.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의 민낯을 징그러울 정도로 정확하게 비춘다. 관객은 웃으면서도 가슴한구석이 섬뜩해지는 불편함을 느끼는데, 이는 ‘불편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닮았다. 인간과 너무나 똑같아서 구별하기 힘든 존재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본능적 거부감. 강유미의 코미디는 실제 현실과 너무 닮아 있는 그 지점에서 작동하며 우리를 심리적 언캐니 밸리로 밀어 넣는다. 흥미로운 것은 거울 앞에서 나타난 반응의 스펙트럼이다. 맘 카페를 중심으로 “아들맘에 대한 희화화”라는 비판이 터져 나오자, 댓글창에는 영상 속 캐릭터 같은 어른들 밑에서 자란 아들들에게 성희롱과 혐오를 겪고 있다는 여학생들의 호소가 쏟아지며 논란은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 같은 거울 앞에서 있지만 누구는 피해자를, 누구는 가해자를 본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과 공포, 편견을 이 영상 위에 투사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이 불편함이 대상에 대한 혐오인지, 뒤틀린 현실을 직면한 수치심인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편을 가른다. 도덕적 선명함을 얻기 위해 서둘러 비난이나 옹호 중 하나를 선택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런 이분법은 콘텐트가 지닌 풍부한 내러티브의 결을 지워버린다. 코미디가 도덕적 선명함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닌 무미건조한 훈화 말씀에 불과할 것이다. 진정한 코미디는 우리를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대면하게 만듦으로써 사유를 촉발한다. 예술은 정답보다 질문을 던지는 법이다. 때로는 폭력과 풍자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줄타기하며 현실의 얼룩을 가감 없이 보여주어야 한다. 그 얼룩을 놓고 누구는 천사를, 누구는 악마를 보는 것이 대중문화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비하인가?’라는 닫힌 질문보다 중요한 것은 ‘왜 우리는 똑같은 현실을 마주하며 이토록 다르게 반응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불편함 속에 이 질문을 던지게 했다는 것 자체가 이 콘텐트가 이뤄낸 성취다. 우리는 너무 빨리 판결을 내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알고리즘은 ‘좋아요’와 ‘차단’ 사이의 광활한 회색 지대를 지워버린다. AI는 복잡한 갈등이나 모호함을 노이즈나 오류로 분류하고 제거하려 하겠지만, 인간은 그 노이즈 속에서 우리 사회의 병리와 슬픔을 읽어낼 수 있다. 시인 존 키츠는 성급하게 사실을 찾으려 애쓰지 않고 불확실함 속에 머무를 줄 아는 능력인 ‘소극적 수용력(Negative Capability)’을 제시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하와 풍자를 가르는 날카로운 칼날이 아니라, 정답 없는 모호함 속에서 사유를 지속하는 사회적 근육이 아닐까. 불편한 코미디를 만났을 때, 판결 버튼을 누르기 전에 한 번 더 멈춰보려 한다. 내가 불편한 이유는 저 영상 때문인가, 아니면 내 안의 어떤 그림자 때문인가. 거울 속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정답은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모호함을 견디며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알고리즘의 이분법에서 한 발짝 벗어나게 된다. 도덕적 판결을 유예하고 결론 나지 않는 상태를 견뎌내며 질문의 층위를 쌓아가는 것, 그것이 강유미가 쏘아 올린 불편함에 대한 의미 있는 해석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2026.01.15. 8:16
“지금 티샷 준비하는 저 선수를 봐. 우여곡절이 많은 친구라던데.” 지난해 초 싱가포르의 센토사 골프 클럽에서 열린 LIV 골프 대회 현장. 취재 도중 만난 대회 조직위원회 관계자가 한 선수를 가리켰다. 표정 변화 없는 얼굴, 한쪽 팔을 뒤덮은 문신 그리고 포니테일로 묶었지만 여기저기 삐져나온 잿빛 곱슬머리. 직접 본 그의 첫인상은 정돈되고 잘 차려진 골프장 분위기와는 사뭇 이질적이었다. 앤서니 김(41·미국). 한때 ‘타이거 우즈의 후계자’로 불리며 전 세계 골프 팬들의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그러다 어느 날 신기루처럼 모습을 감췄고, 무려 12년간 두문불출했다. 2년 전, 이번엔 전격 컴백해 또 한 번 대중을 놀라게 했다. 그의 커리어는 ‘천재의 몰락’이라는 표현으로 갈음된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신인이던 지난 2007년 2승을 거둘 때만 해도 거칠 게 없었다. 이후 세계 랭킹을 6위까지 끌어올렸다. “나는 호랑이(타이거 우즈) 잡으러 온 사자”라 일갈했으니, 재능뿐 아니라 스타성까지 흘러넘쳤다. 하지만 이른 성공은 결과적으로 독이 됐다. 2010년부터 크고 작은 부상과 함께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2년 아킬레스건을 다친 뒤 좀처럼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자 그는 골프채를 집어 던지고 은둔을 시작했다. 회복에 힘써야 할 시기에 회피를 택했다. 그렇게 마침표를 찍은 듯했던 앤서니 김의 골프 인생 시나리오는 2년 전 필드 복귀와 함께 속편으로 접어들었다. 처절한 자기 고백과 반성도 뒤따랐다. 그는 “한때 술과 약물에 의존했고, 지독한 자살 충동에도 시달렸다”면서 “내 인생의 가장 큰 성취는 알코올과 약물을 끊은 것이다. 가족의 응원 덕분에 가능했다”고 털어놓았다. 선수로서 실패보다 인간으로서 약점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게 어쩌면 더 힘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냈다. 바로 그 순간이 재기의 출발점이 됐다. 드라마 같은 부활 스토리는 아직 없다. 지난 2년간 LIV 골프 무대에서 재기를 위해 몸부림쳤지만, 지난해 말 ‘퇴출’ 도장이 찍힌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호랑이 잡으러 왔다”던 그 청년은 어느덧 40대 아저씨가 됐다. 경기력과 스코어 또한 전성기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최근 LIV 골프 무대를 다시 노크하기 위해 프로모션(승격) 대회에 참여했고, 3위에 올랐다. 상위 3명까지 주어지는 2026시즌 와일드카드 출전권을 확보해 올해도 도전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앤서니 김이 완성형 서사를 이루기까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이제 그는 참고 견디고 극복하는 방법을 안다. 그의 도전뿐만 아니라 또 다가올지 모를 좌절과 실패까지도 응원한다. 그 길의 끝자락 어딘가엔 분명 성공이 기다릴 테니. 송지훈([email protected])
2026.01.15. 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