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요 몇 년 사이 트로트가 대단한 인기인 모양이다.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붙인 불씨가 뜻밖의 큰 인기를 끌며 들불처럼 번져나가 대세가 되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옛날 노래가 벌떡 일어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부활했고, 송가인, 임영웅 같은 젊은 수퍼스타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가수들이 노래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 양국에서 방영되고, 일본말 노래가 버젓이 전파를 타는 모습을 대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 가수들이 복고풍의 흘러간 옛 노래를 청승맞고 간드러지게 불러제끼는 모습이 영 낯설기도 하고, 달리 보면 새롭고 신기하기도 하다. 옛것을 존중하는 마음이 기특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런데, 왜 지금 느닷없이 트로트 열풍일까? 대중문화 전문가들은 다양한 설명을 내놓는다. 한국인의 정서 밑바탕에는 늘 울고 싶은 마음이 진하게 깔려 있는데, 요새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영 답답하다 보니, 한(恨)과 정(情)이 듬뿍한 트로트 가락에 마음이 움직였다는 설명도 있다. 그런가 하면, 서양음악에다 우리 정서를 덧입힌 K-팝이나 요란한 댄스 음악 일변도에 대한 반감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트로트는 가장 뿌리 깊은 우리의 대중가요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뽕짝이니 왜색(倭色)가요니 신파조니 하는 푸대접을 받아왔다. 한국 대중가요 대표곡 중의 하나인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가 왜색가요라는 이유로 약 20년간이나 방송 금지곡으로 묶여 있었다. 그런 박해(?)에도 잡초 같은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것을 보면, 트로트에는 한국인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한때는 한국의 트로트와 일본의 엔카(演歌)를 비교하며 설왕설래가 뜨거웠다. 대체적인 결론은 트로트가 일본의 엔카를 흉내 낸 것이라는 쪽으로 기울었고, 그것이 왜색가요를 금지곡으로 묶는 논리적 근거가 되었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실제로, 일본 ‘엔카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작곡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 1904-1978)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할 때인 유소년기에 한국에서 살았고, 그때 자연스럽게 한국의 노래를 들으며 영향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나는 조선인들이 흥얼거리는 민요를 날마다 들었다. 이후 작곡을 하게 되었을 때 조선에서 들었던 멜로디가 나의 작곡에 큰 도움이 되었다.” 고가 마사오는 우리의 민요 ‘아리랑’을 편곡하여, 당시 조선 최고의 가수 채규엽과 일본 최고 여가수 아와야 노리꼬에게 듀엣으로 부르게 하여 유행시키기도 했다. 한국적 정서가 자신의 음악적 기반이었음을 시인했다. 아무튼, 트로트와 엔카 중 누가 원류냐를 따지는 일은 부질없어 보인다. 인터넷 사전의 설명이 정확한 것 같다. “트로트와 엔카는 1920~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된 장르로, 어느 한쪽이 절대적인 원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 두 장르는 일란성 쌍둥이처럼 복잡한 상호 관계를 맺고 있어, 단순한 원조 논쟁보다는 역사적 교류의 산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트로트를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지난날의 아픈 경험, 서글픈 정서를 왜 되살려야 하는 건지? 내가 보기에는, 젊은 가수들이 철삿줄로 꽁꽁 묶인 채로 맨발로 절며 절며 울고 넘던 그 고개, 눈보라가 흩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 같은 옛 노래 가사에 담긴 아픔을 느끼며 노래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의 트로트’가 아닐까? 새로 작곡된 오늘의 이야기와 정서, 희망찬 미래의 설계를 담은 흥겨운 트로트 명곡….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트로트 뽕짝 트로트 뽕짝 트로트 명곡 트로트 가락
2026.03.26. 19:16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여기서 ‘길’이란 낱말이 참 재미있다. 사람의 ‘키’를 일컫는 말인데 사람의 키를 자로 쟀을 때 여덟 자나 열 자쯤 된다면 물의 깊이는 사람 키의 열 곱절이 되는 깊은 물이 되는 것이다. 깊은 물 속에 있는 것은 알아차리면서 제 키만큼도 안 되는 마음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의 능력을 비꼬는 말이다. 사실 사람의 속마음처럼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몇 십년 동안 살을 맞대고 산 부부일지라도 그 속내평을 속속들이 다 알고 지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우리는 직업이나 사회적 위치, 대인관계 등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을 알고 지내기 때문에 속마음은 헤아리기가 어렵다. 특히 유명인들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들이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제 허물을 털어놓는 일일 것이다. 갖고 있던 지위와 명예가 하루아침에 무너질까 두렵기 때문이며 어쩌면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나타니엘 호톤의 소설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에 등장하는 아더 딤즈데일 목사와 여주인공 헤스터 프린의 이야기도 그런 예다. 프린은 행방불명된 의사 남편을 찾다가 미남인 딤즈데일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딸까지 낳게 된다. 당시는 청교도 정신이 지배하던 사회였으므로 딤즈데일과의 관계를 밝힐 수 없었던 프린은 스스로 감옥에 가고 간통이란 의미의 A자가 새겨진 죄수복을 입고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이 와중에 행방불명됐던 프린의 남편은 돌아오고 프린이 낳은 아이가 딤즈데일의 딸임이 밝혀지자 양심의 가책을 받은 딤즈데일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프린은 딸을 키우면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웃들은 그녀를 천사와 같은 여자라고 부르게 되고 간통의 A(Adultery)는 천사의 A(Angel)로 바뀌게 된다. 딤즈데일은 목사였다. 본인이 입어야 할 A자가 새겨진 옷을 프린이 대신 입었다. 하지만 늦게나마 그는 자신의 죄를 뉘우쳤다. 양심은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딤즈데일은 일곱 해 동안이나 자신의 죄를 숨기고 살았지만 마침내 죄를 털어놓고 세상을 떠난다. 죄를 감추고 거짓말을 하면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이 거짓 없이 산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좋은 의미의 거짓말이라도 해야 할 때가 제법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열 길 물속은 노란 H(거짓과 교만(Hypocrisy, Haughtiness)) 를 낳게 하고, 한 길 사람 속은 파란 H (정직과 겸손(Honesty, Humbleness)) 를 낳게 하는 바탕이 되기 쉽다는 촌철살인 (寸鐵殺人)을 귀담아 들여야 한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물속 입고 봉사활동 hypocrisy haughtiness honesty humbleness
2026.03.26. 19:15
한 사람은 “나는 내일 강릉에 간다”고 표현했고, 어떤 사람은 “나는 내일 강릉에 갈 예정이다”라고 했다. 두 문장의 차이는 ‘확실성’이다. ‘간다’고 하면 확실하게 간다는 얘기다. ‘갈 예정이다’라고 하면 반드시는 아니라는 거다.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변경 가능성’ ‘책임 회피’를 염두에 둔 표현이라 하겠다. 그렇지 않다면 ‘갈 예정이다’는 생각 없이, 이유 없이 내놓은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나는 갈 예정이다”는 ‘무엇은 무엇이다’ 방식의 표현이다. 그런데 조금 다르다. “여기는 강릉이다” “저쪽이 바다다”는 ‘여기=강릉’ ‘저쪽=바다’ 관계다. 자연스럽다. “나는 갈 예정이다”는 ‘나=예정’이 되는데, 겉으로는 어색하다. 그렇지만 ‘나=예정’ 그대로 읽히진 않는다. “나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나=아이스아메리카노’로 읽지 않고 ‘나는 아이스아메리카노 먹을래’로 읽듯, ‘나는 갈 예정을 하고 있다’ 정도로 받아들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갈 예정이다’ 투의 말은 덜 편하게 보인다. 다음 같은 문장에선 더욱 그렇다. “가끔 비가 올 예정이다.” “내일도 매우 무더울 예정이다.” 이 문장들은 주어가 모두 사람이 아니라 사물, 날짜 등이다. 사물이 사람처럼 의지를 가진 것 같아 보인다. 의도적으로 그럴 수 있겠지만, ‘예정’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간결하지 않은 문장이 된다. ‘가끔 비가 온다’ ‘내일도 무덥다’처럼 써야 내용이 분명히 전달된다.우리말 바루기 예정 내일 강릉 변경 가능성 책임 회피
2026.03.26. 19:14
무리의 리더를 ‘알파’라고 부른다. 알파는 무리 중에 가장 힘이 센 녀석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관찰에 의하면 늑대 무리의 알파는 가장 사납고 지배적인 수컷이 아니다. 사실은 가족 중심의 경험 많은 번식 리더, 즉 가족 사회를 처음 이루었던 어미와 아비라고 한다. 늑대 무리와는 달리 침팬지 무리의 알파는 경쟁자 중 서열 1위가 맡는다. 그래서 침팬지 무리의 알파는 싸움 능력도 뛰어나야 하고, 머리도 좋으며 때로는 잔인하고 교활하다. 정치적인 계산에 따라 때로는 다른 경쟁자와 동맹을 하고, 때로는 힘으로 제압하기도 한다. 늑대형 리더의 대표적인 예로 학자들은 아브라함 링컨을 든다. 링컨은 미국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였던 남북전쟁을 이끈 대통령이다. 그를 늑대형 알파라고 보는 이유는 그가 권력을 잡은 방식보다 권력을 유지한 방식에 있다. 그는 자신을 강하게 비판했던 정치인들까지 내각에 포함시켰다. 이를 “경쟁자들과 이룬 팀(Team of Rivals)”이라고 부른다. 침팬지형 리더라면 경쟁자의 말을 듣지 않고 제거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링컨은 경쟁자를 적으로 두지 않고, 자신의 무리 안으로 끌어들였다. 국가가 분열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권력 유지가 아니라 집단의 생존이라고 본 것이다. 늑대 무리에서 부모 늑대가 새끼를 지키고 무리를 유지하듯이, 링컨은 자신의 감정이나 자존심보다 미국 전체를 살리는 선택을 했다. 침팬지형 리더의 대표적인 사례로 학자들은 스티브 잡스를 든다. 잡스는 애플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든 인물이지만, 그의 리더십은 매우 강렬하고 때로는 거칠었다. 그는 회사 내부에서 치열한 경쟁을 유도했고, 직원들에게는 극단적으로 높은 기준을 요구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은 바로 배제했고, 사람들을 거칠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동시에 그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비전과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언제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하는지, 어떻게 밀어붙여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 모습은 침팬지 사회의 알파와 닮았다. 침팬지 알파는 단순히 힘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다. 동맹을 만들고, 경쟁자를 견제하고, 필요할 때는 무리를 압박하고 제거하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링컨은 무리를 지키는 데 탁월한 리더였고 잡스는 정상에 올라가는 데 뛰어난 리더였다. 인간 사회에서는 침팬지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 기회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늑대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그 자리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현실적인 전략은 침팬지처럼 정상을 차지하고, 늑대처럼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인생에서 기회를 잡을 때는 주저하지 말고 경쟁하고, 관계를 만들고 자신의 위치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자리를 차지한 이후에는 사람을 지키고 신뢰를 쌓고 공동체를 유지해야 한다. 진짜 리더는 상황에 따라 침팬지도 되고 늑대도 될 줄 알아야 한다. 사람 좋은 리더로 남아 무리를 모두 굶어 죽게 하는 것도, 치열하게 경쟁만 하고 잔인하게 제거만 하다가 모두에게 미움 받고 혼자 남겨지는 것도 진정한 리더가 피해야 할 일이다. 결국은 중용이고 결국은 균형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균형을 깨닫고 실천하는 순간, 단순한 성공을 넘어, 오래 살아남고, 무리와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침팬지 침팬지형 리더 늑대형 리더 늑대형 알파
2026.03.26. 12:46
중동발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극도로 커지고 있다. 이에 대응해 정부는 25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가격 통제, 절약 캠페인 등 단기 대책을 총동원하고 있다. 공공부문의 차량 5부제에 이어 주요 기업의 차량 10부제가 시행되고, 절전 조치가 이어지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불가피한 응급 대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어제 2차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열고 “전기요금은 변경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전기 절약에 각별히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문제는 이 같은 ‘마른 수건 짜기’식 단기 대응만으로는 이 거대한 파고를 넘기에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넘어선 ‘자원의 무기화’에 있다. 지정학적 충돌이 에너지 공급망을 흔들고, 그 충격이 생산 차질과 물가 급등 등 경제 전반으로 전이되는 구조적 위험이 현실화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근본 처방 없이 단기 대응 조치에만 매달린다면 자원의 무기화라는 실존적 위기 때마다 국민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그간 누적된 에너지 가격 구조 왜곡은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정치적 논리에 따라 전기요금을 묶어둔 것이 에너지 낭비를 부추기는 역설을 낳았고, 한국전력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번에 석유 최고가격제를 30년 만에 부활하고 유류세 인하 폭까지 확대하면서 가격 구조는 더욱 왜곡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절약 캠페인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정공법은 에너지 믹스의 재설계다. 정부가 원전 이용률을 80%대로 끌어올리고 정비 중인 원전을 조기 재가동하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바람직하다. 값비싼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 안보를 지키려면 기저 전원인 원전 확대가 필수적이다. 안전성이 확보된 원전은 신속히 재가동하고, 선진국처럼 운영 기간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에너지 위기는 소나기처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상수가 됐다. 원전 활용 확대뿐 아니라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확충을 아우르는 입체적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가격 통제와 절약 캠페인을 넘어 에너지 믹스 혁신으로 발전시키는 게 에너지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2026.03.26. 8:24
정부의 부동산 규제와 다주택자 압박에 둔화하던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다시 소폭 반등했다. 서울 외곽 지역에서 상승세가 확대되면서다. 여기에 전월세난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강남 집값은 꺾였지만, 무주택·실수요 서민들의 주거 사정은 오히려 불안해지고 있는 형국이다. 26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넷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의 주간 상승률은 0.06%로 지난주(0.05%)보다 소폭 반등했다. 7주 연속 둔화세가 멈춘 것이다. 강남 3구와 이른바 ‘한강 벨트’는 하락했지만 노원(0.23%)·구로(0.2%)·은평(0.17%) 등의 상승세는 오히려 확대되면서다. 60주 연속 상승한 전셋값도 오름폭(0.15%)이 커졌다. 역시 성북(0.26%)·강북(0.24%)·도봉(0.23%) 등 외곽 지역의 상승세가 눈에 띈다. 서울 외곽 아파트값과 전셋값의 동시 상승은 악순환의 성격이 짙다.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무주택 서민들이 전월세를 구하기 힘들어지니 중·저가 아파트로 몰리고, 서울 외곽의 가격은 뛴다. 전월세 불안은 2년 실거주를 의무화한 토지거래허가제 확대 당시 예견됐다. 이어 정부의 다주택자 압박에 매물은 늘었지만, 임대시장은 더 얼어붙었다. 다주택자들이 임대 물건을 매매로 돌리면서다. 서울 아파트·오피스텔 전세 매물은 연초 2만3060건에서 이달 26일 1만6826건으로 27.1% 급감했다. 전세에 이어 월세 물건도 비슷한 비율로 줄고 있다. 그 바람에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지난달 151만원으로 1년 전(135만원) 대비 11.9% 급등한 상태다. 이런 부동산 시장의 흐름은 수요 억제만으로는 집값 불안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5월 9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이후에는 그나마 매물도 잠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정부가 세금 인상 카드를 매만지고 있지만, 이 역시 임대료를 끌어올리는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근원적인 시장 안정을 위해선 결국 공급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 하지만 당국자의 입에서 공급이란 말은 어느새 쑥 들어갔다. 강남 집값만 볼 게 아니라 실질적 주거 안정을 위한 보다 촘촘한 대책이 필요하다.
2026.03.26. 8:22
돌봄이 필요한 노인·장애인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이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2년 전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의결한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에 따른 것이다. 통합돌봄은 노인과 장애인이 요양원·요양병원 같은 시설에 의존하지 않고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필요한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한국보다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2005년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법제화하고 통합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전통적인 가족 중심의 돌봄이 한계에 부닥친 점을 고려하면 지역사회가 돌봄의 주역으로 나서는 것은 난관이 많더라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의 1단계 사업은 일상생활에 도움이 필요한 노인과 고령 장애인, 65세 미만의 중증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에겐 방문 진료와 정신건강 관리 등 30가지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중증 질환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이 집에서 삶을 마무리하도록 돕는 재가임종케어는 내후년부터 진행하는 2단계 사업에 포함됐다. 통합돌봄이 제대로 정착한다면 노인·장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존엄을 지키고, 가족은 과도한 돌봄 부담에서 벗어나며, 건강보험 등 사회적 비용은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예산·인력·인프라가 모두 부족한 실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유기적 협력이 긴요한 과제다. 복지부는 올해 노인 돌봄 관련 예산을 늘렸다고 했지만, 전국 229개 시·군·구로 나누면 평균적으로 돌아가는 예산은 한 곳당 수억원에 그친다. 결국 지자체별 재정 여건과 준비 상황에 따라 지역 불균형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기본적인 의료 인력과 인프라가 부족한 농어촌 지역에선 통합돌봄이 말로만 그치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 재가임종케어의 경우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보완도 필요한 과제다. 출발선에서 이제 겨우 한 걸음을 뗀 통합돌봄이 방향을 잃지 말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2026.03.26. 8:20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흥망은 일반 국민이 좌우한다는 뜻이다. 세상을 망하게 하는 일반 국민이 바로 우중(愚衆)이다. 우중이란 단순히 지식이 부족한 이들이 아니다. 스스로 사유하기를 포기하고, 지적인 성장이 멈췄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집단이다. 그들의 치명적인 결함은 ‘구조’를 못 보고 ‘현상’에만 매몰된다는 데 있다. 시스템 파괴자들의 공통 매뉴얼 기존 시스템을 기득권으로 규정 사법부와 언론은 개혁대상 낙인 자신의 의지가 곧 법이 되는 체제 집을 보는 일에서, 인식의 단계가 낮은 사람은 화려한 조명과 벽지 같은 인테리어에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집의 본질을 아는 이는 벽면 뒤에 숨은 골조와 하드웨어를 살핀다. 벽지에 곰팡이가 피는 현상이 있을 때, 우중은 그냥 거기에 새 벽지를 덧바를 뿐이다. 반면 인식의 단계가 높은 사람은 결로 현상이나 배관 누수 같은 구조적인 결함을 찾아내어 대처한다. 세상의 모든 거대한 힘은 현상이 아니라 구조에서 나온다. 지적이라는 것은 곧 현상이라는 소음 속에서 구조라는 신호를 추출하는 능력이다. 양파를 직접 심는 고된 노동보다 양파의 유통 구조를 장악한 자가 더 큰 부를 거두는 이치 또한 구조가 가진 압도적인 힘을 증명한다. 역사는 구조를 보지 못한 우중이 어떻게 국가라는 집의 기둥을 망가뜨리는지 증언한다. 로마 공화정이 대표적이다. 로마가 왕정을 타도하고 세운 공화제의 핵심은 권력의 분산과 임기 제한이었다. 그러나 자영농이 몰락하고 빈부격차가 심해지자, 대중은 복잡하고 지루한 법 절차(구조)에 진저리를 치고, 눈 앞의 굶주림과 분노(현상)를 해결해줄 단 한 명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갈구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그는 가난한 시민들에게 토지를 나누고 화려한 검투사 경기를 선사하며 대중의 구원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진정한 파괴자는 서두르지 않는 법이다. 카이사르는 단번에 왕관을 쓰는 악수를 두지 않았다. 그는 대중의 광적인 환호를 동력 삼아, 국가 비상사태에만 엄격히 허용되던 6개월 임기의 독재관직을 수단으로 삼았다. 본래 임기가 끝나면 평시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함에도, 그는 비상시라는 명분을 내세워 임기를 조금씩 늘려갔다. 결국 기원전 44년, 그는 종신 독재관에 취임하며 공화정의 숨통을 조였다. 사실상의 절대 군주에 등극하였다. 이는 집수리를 위해 고용된 목수가 기둥을 잘라 내어 자신의 의자를 만든 격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과격한 구조 파괴가 일어나는 동안에도, 원로원과 민회가 이 직위를 헌정하는 형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우중의 눈에 이 파멸적 과정은 정의롭고 순조로운 개혁처럼 보였다. 결국 시스템이 한 사람의 선의와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 그 자리에서 시작하여, 로마는 공화정이라는 시민의 자부심을 잃고, 황제의 변덕에 운명을 맡기는 거대하고 부패한 관료 국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내리막길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사에서 가장 민주적이라 칭송받던 바이마르 공화국이 합법의 탈을 쓴 나치즘의 광기에 무릎을 꿇은 사건은 더욱 정교한 구조 파괴의 사례다. 바이마르 헌법은 진보적이었으나,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제48조)이라는 치명적인 구조적 허점을 품고 있었다. 히틀러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실업에 시달리던 독일인들에게 강한 독일과 빵이라는 현상적 약속을 던졌다. 대중이 나치의 선동적 연설과 화려한 제복(인테리어)에 취해 있는 사이, 히틀러는 제48조를 디딤돌 삼아 의회의 입법권을 정부에 통째로 넘기는 수권법을 통과시켰다. 국가의 운영체제를 스스로 마비시킨 이 사건으로 사법권과 언론의 자유라는 최소한의 견제 구조는 증발했다. 구조가 사라진 빈자리에는 오직 광기 어린 지도자의 의지만이 남았고, 이는 인류사 최악의 비극으로 연결되었다. 이처럼 시스템을 파괴하는 자들끼리는 서로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의 ‘매뉴얼’을 공유하는 것 같다. 첫째, 기존 시스템(구조)을 무능하고 부패한 기득권 카르텔로 규정하여 대중의 적개심을 극대화한다. 둘째, 복잡한 대의제 절차와 법적 검토를 발목잡기로 매도하며, 지도자와 대중이 직접 소통한다는 포퓰리즘적 현상을 강화하여 강력한 팬덤을 형성한다. 셋째, 감시 기관인 사법부와 언론을 개혁의 대상이나 적으로 낙인찍어 구조적 견제 장치를 무력화한다. 끝으로, 조작된 비상 상황을 근거로 임시 조치를 상설화하여, 예외 상태를 일상화하고, 자신의 의지가 곧 법이 되는 지배 체제를 고착시킨다. 결국 지적인 성찰 능력을 상실한 우중은 집이 예뻐지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화려한 벽지를 바르는 행위에만 몰두한다. 지도자가 미소를 지으며 집을 지탱하는 서까래를 뽑아 자신의 땔감으로 써버려도, 그 서늘한 진실을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구조를 보지 못하는 눈은 반드시 그 대가로 자신의 삶을 지탱하던 안전한 울타리를 잃게 된다. 그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잔혹하고도 명확한 교훈이다. 최진석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
2026.03.26. 8:18
애플이 다음 달 1일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Think different(다르게 생각하라)’라는 슬로건, 독창적인 디자인과 이를 떠받치는 기술력, 집착에 가까운 완벽주의. 애플에 붙는 익숙한 수식어들이다. 여기에 최근 추가된 ‘원 모어 싱’이 있다. 중국에 완벽하게 포획된 미국 기업이라는 타이틀. 애플의 ‘탈중국’ 모색 쉽지 않아 삼성전자 노조, 5월 총파업 결의 보상 요구안 접하는 국민들 불편 스티브 잡스 생전인 1990년대부터 애플은 대만·중국에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제조의 전 과정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전략이었다. 애플은 하청업체가 쓸 장비를 직접 구매해 줬고, 근면성실하며 손끝 야무진 중화권 노동자들을 쥐어짜내 맹훈련시켰다(패트릭 맥기 『애플 인 차이나』). 탄탄한 부품 공급망에, 인건비를 후려쳐도 일할 사람이 넘치는 ‘소셜 덤핑(social dumping)’이 횡행하는 중국의 제조 기반에서 애플은 다르게 생각할 여유를 즐겼다. 삼성전자가 늘 비교당하는, 애플의 경이로운 30~40%대 영업이익률에는 하청 노동자들에게까지 이익을 나눠줄 필요 없는 사업 모델의 기여분이 작지 않다. 하지만 애플의 그 좋은 시절이 끝나 간다. 중국과 미국의 경제가 이혼 중인 지금 애플은 인도나 베트남으로, 일부는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려 하지만 어떤 카드도 중국의 고효율 고숙련 노동을 대체하긴 어려울 거다. 애플의 미래가 만리장성에 갇혀 있는 사이, 삼성전자는 노조 문제로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 있다. 창립 49년 만인 2018년에야 첫 노조가 생긴 삼성전자로선 매년 강도가 높아지는 노조의 투쟁 의지가 곤혹스러울 것이다. 이 회사 노조는 2024년 사상 첫 총파업을 했고, 반도체 부문 노조가입률이 70%에 육박한 올해 다시 ‘5월 총파업’을 결의했다. 둘 다 성과급이 문제였다. 메모리 반도체 값이 치솟는 요즘 같은 때 파업을 강행한다면 생산 차질로 인한 손해 규모는 5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노조 주장의 핵심은 지난해 영업이익의 20%(SK하이닉스는 10%)를 성과급으로 나눠달라는 것이다. 호실적에 기여가 큰 메모리사업부는 1인당 4.5억원, 비메모리 사업부는 3억원 수준이다. 개개인 성과에 따른 차등 지급이나 주식 지급은 거부하고 현금을 고집한다. 여기엔 삼성 경영진의 잘못이 크다. 수십 년간 매년 실적에 따라 현금을 나눠주는 1년짜리 잔치를 반복하다가 직원들이 회사가 주는 대로 고분고분 받던 무노조 시대가 끝나고 나서야 회사의 장기 성장과 직원 개인의 이익을 일치시킬 보상 제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기 성과 중심의 보상은 삼성이 글로벌 인재를 오래 붙들어두지 못하는 원인으로도 꼽힌다. 어쨌든 이 협상의 승자는 노조가 될 가능성이 크다. SK하이닉스뿐 아니라 엔비디아·테슬라마저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인재를 찾는 상황이라서다. 애플이 당장 중국을 떠날 수 없듯이, 삼성도 핵심 생산기지인 한국에서 직원들의 협력 없이는 성장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반도체 노조들이 알아둬야 할 게 있다. 민간 기업의 성과급 문제가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된 건 반도체 기업이 ‘한국의 금쪽이’이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역대 모든 정부는 수출 효자이자 국가첨단전략기술인 반도체를 육성해 왔다. 올 1월 국회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은 반도체 기업의 투자에 세제혜택을 확대하고,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이 발 벗고 나서도록 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수도권에 집중된 팹(반도체 공장)을 지방으로 옮겨 낙수효과를 확산하고 싶어 하지만, 여론은 정부의 압박에 기업 경쟁력이 흔들릴까 더 걱정한다. 반도체 기업의 성과가 오롯이 임직원들만의 노력으로 이룬 것은 아니다. 이렇게 물심양면으로 밀어주는 산업이건만, ‘5조원 이상 손해보기 싫으면 성과급을 쏘라’는 노조의 주장을 듣고 있으면 주주도, 국민도 한숨이 나온다. 금쪽이들의 잔치는 빠르고 조용히 끝내는 게 답이다. 박수련([email protected])
2026.03.26. 8:16
BTS 공연과 기로에 선 K컬처 “광화문에서 방탄소년단이 공연을 한다는데, TV를 아무리 찾아봐도 안 나오더라.” 우연히 만난 80대 어르신이 지난 21일 광화문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라이브 이야기를 꺼냈다. 아마도 어르신은 방탄소년단은 잘 몰라도 이들을 위해 서울시가 광화문 한복판을 내줬다는 사실은 알았을 거다. 당연히 ‘얼마나 대단하길래...’ 하는 궁금증을 가졌을 테고. 하지만 어르신은 궁금증에도 방송을 볼 수 없었다. 넷플릭스가 아닌 KBS, MBC 같은 지상파에서 공연이 생중계될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과거라면 광화문을 내주는 공연은 당연히 국가적인 차원에서 가능한 일이었고, 그건 공영방송이 생중계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하지만 광화문 한복판에서 아이돌 그룹의 복귀 공연이 펼쳐지고 그것을 지상파가 아닌 넷플릭스가 전 세계 190개국에 생중계하는 광경은 여러모로 이례적이다. 이 이례적인 사건은 이미 글로벌 환경에 들어와 과거와는 전혀 달라진 K컬처의 현 위치를 보여준다. 그 글로벌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글로벌 OTT 넷플릭스는 어떤 야심을 갖고 있고, 그것은 K컬처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을까. 글로벌 OTT와 K컬처의 동거 새로운 문화로 가는 포털 제시 세계 대중, 같은 취향으로 뭉쳐 국가 경계 갇히지 않는 관점 필요 글로벌 지상파가 되려는 넷플릭스 야심 BTS의 컴백 라이브 공연 하루 전, 넷플릭스는 사전 미디어 브리핑을 열었다. 여기서 넷플릭스 논픽션 시리즈 및 스포츠 VP인 브랜든 리그(Brandon Riegg)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내놨다. 그는 넷플릭스의 글로벌 라이브 방송의 비전이 ‘지상 최고의 순간을 모두가 함께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전 세계에 너무나 많은 엔터테인먼트와 볼거리들이 넘쳐나는 세상이고 그래서 전 세계가 동시에 연결될 수 있는 기회가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지난 1월 등반가 알렉스 호놀드가 대만 타이베이의 빌딩을 맨손으로 등반하는 ‘스카이 스크레이퍼 라이브’가 같은 비전으로 진행된 글로벌 생중계였다. 어떤 순간을 다 함께 시청한다는 걸 지상파 시절에는 ‘본방사수’라고 불렀다. 그 동시간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는가에 따라 시청률이 기록되던 시대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 본방사수의 개념을 깬 게 사실 VOD(주문형 영상 서비스) 개념으로 선택적 시청이라는 콘텐트 소비 방식의 변화를 일으킨 넷플릭스가 아닌가. 그런데 넷플릭스는 이제 본방사수까지 접수하려 한다. 물론 전 세계 190개국이 같이 하는 본방사수다. 글로벌 버전의 지상파라고 해야 할까. 넷플릭스는 이제 글로벌 라이브라는 과거 로컬 공영방송들이 했을 법한 일들을 벌이며 전 세계인들의 주력 미디어가 되려 한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K컬처의 매력 그리고 이 야심에 K컬처는 중요한 조력자로 등장한다. 이미 대만에서의 맨손 등반 이벤트가 있었지만, BTS 컴백 라이브가 실질적으로 이 야심을 전 세계에 선언하는 모양새를 띤 건 우연이 아니다. 물론 라이브 방송은 기대만큼 완성도 높게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거의 유일하게 인상적이었던 오프닝 영상은, 전 세계가 바라보는 K컬처의 특징과 이를 넷플릭스가 어떻게 담아내 글로벌한 성과를 내려 하는가에 대한 전략을 읽기에 충분했다. 아주 짧게 보여졌지만 경복궁 근정전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나아가는 부감샷 오프닝은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비벼내 기발한 맛을 내는 K컬처의 특징 그대로다. 데스서바이벌 장르에 한국의 놀이문화를 섞고(오징어 게임), 조선시대판 좀비물(킹덤)을 내놓으며, 한식에 파인다이닝을 더하는 요리 서바이벌(흑백요리사)을 내놓는 게 K컬처다. K컬처 안에서는 공간적으로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시간적으로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다. 이 세계는 그래서 시공간을 넘나들고 혹은 겹쳐지기도 하는 ‘포털(통로)’ 같다. BTS 컴백 라이브 공연에 세워진 거대한 사각형 구조물은 아마도 그 포털을 상징하는 것이었을 게다. 그 포털을 통해 전통(경복궁)과 현대(광화문 광장)가 겹쳐지고 그 사이로 전통의상을 현대화한 옷차림의 BTS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광경을 세계 각국에서 온 팬덤 아미가 한자리에 모여 환영한다. 만일 그 포털 모양의 검은색 사각형 구조물에서 넷플릭스가 시작될 때 ‘투둠’하며 보이는 로고가 떠올랐다면 제대로 본 것이다. 그것이 이번 BTS 컴백 라이브라는 K컬처의 정점을 전 세계에 라이브로 연결하면서, 이제 넷플릭스가 그 시공간을 넘나드는 콘텐트의 포털로 거듭나겠다는 선언이니 말이다. 이러한 비전을 가진 넷플릭스에게 동서양이 결합하고 시공간을 뛰어넘는 콘텐트의 퓨전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K컬처만큼 매력적인 건 없다. K컬처와 경계인, 글로벌 협업의 새 양상 넷플릭스와 유튜브로 대변되는 글로벌 OTT들은 2016년을 기점으로 한국에 본격 상륙했고, 이를 기점으로 K컬처도 글로벌 컬처가 되었다. BTS는 빌보드를 장식했고,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석권했으며, ‘오징어게임’이 글로벌 신드롬을 만들었는데,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존재했다. 그들이 만들어낸 글로벌 비전의 비즈니스들이 K컬처와 만나 시대를 바꾸는 시너지를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이른바 ‘국위선양’이라는 다소 예스러운 표현이 그럴듯하게 여겨졌고 한국인들은 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하지만 이 연장선에서 등장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글로벌 신드롬은 이 국가적 개념을 가진 ‘국위선양’이라는 표현이 어딘가 어색하다는 걸 느끼게 했다. K팝과 전통의상을 입은 무녀가 등장하고, 컵라면부터 한의원, 목욕탕, 남산타워 등등의 한국문화가 담겨 있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엄밀히 말해 넷플릭스가 투자하고 소니 픽처스가 만든 작품이다. 왜 한국에서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았는가에 대한 아쉬움은, 왜 한국에서는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없는가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졌다. 한국문화에 대해 국뽕으로 치우치거나 혹은 냉소적인, 양극단의 입장을 갖는 한국인들은 적당한 거리에서의 존중을 담는 이런 작품을 만들어내기 어려웠을 거라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결국 K컬처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이 양극단의 균형을 잡아줄 수 있는 글로벌 협업이 필수라는 걸 이 작품은 보여줬다. 한국계 캐나다인으로서 ‘경계인’의 정체성을 가진 매기 강 감독은 이러한 글로벌 협업을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녀가 남긴 수상 소감은 그래서 의미심장한 경계인의 선언처럼 들렸다. “대한민국께, 그리고 모든 곳에 있는 한국인들께 이 영광을 바칩니다(This is for Korea, and Koreans everywhere).” 이 말을 곱씹어보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분명 아시아에 존재하지만, 한국인은 이제 그곳에서만 사는 이들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곳 바깥에서 K컬처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여기는 모든 경계인이 한국인이라는 걸 매기 강 감독은 에둘러 표현했다. 전 세계와 협업되고 공유되는 K컬처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OTT의 야심 위에 시공간을 넘나드는 독특한 매력으로 급성장한 K컬처는 이제 매기 강 감독의 ‘경계인 선언’처럼 새로운 기로에 서게 됐다. K컬처는 더 이상 한국이라는 공간적 경계 안에서 만들어져 해외로 ‘진출’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또 한국인들만을 위한, 한국인들만에 의한, 한국인들만의 문화도 아니다. 전 세계와 협업하고 공유되는 문화다. 이런 변화는 광화문광장도 알고 있다. 이 광장은 더 이상 1987년 민주화 운동과 2002년 월드컵에 머물러 있지 않다. 한국인들만이 모이는 곳이 아니고, 전 세계인들이 BTS 같은 K컬처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곳이다. 우리들만의 광장이 아닌 것이다(그러니 광장 사용법도 달라져야 한다). 또한 한국인의 범주도 확장된다. 전 세계의 매기 강 같은 경계인들은 이제 K컬처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들이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와 K컬처의 동거는 새로운 글로벌 문화로 가는 포털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K컬처는 광화문 한복판에 전 세계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위상과 자신감을 갖게 됐지만, 이 새로운 시대의 비전이 국가 같은 과거의 틀에 머물러서는 실효를 얻기 어렵다는 걸 아직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 새로운 시대에 국가의 자리에 세워지는 건 같은 취향으로 뭉쳐지는 글로벌 대중이다. K컬처의 비전은 그래서 ‘국위선양’ 같은 국가적 틀을 넘어서는 글로벌 대중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고 묶어내는 지점에 있지 않을까. 광화문 한복판에서 시작해 글로벌로 이어지는 K컬처 포털의 문은 이미 마련되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
2026.03.26. 8:14
단군조선을 되살린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고려는 어떤 나라였는지, 열 글자 문장으로 정리해보았다. 지방 사람들이 세운 나라. 조선과 많이 달랐던 나라. 불교 유교가 공존한 나라. 귀족 문화가 발달한 나라. 넓은 세상과 교류한 나라. 외교로 전쟁을 막은 나라. 딸도 재산을 상속한 나라. 여기 하나를 추가하자면, ‘단군 조선을 되살린 나라’이다. 고려 이전에는 단군에 대한 기록이 없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고려 후기 『삼국유사』가 단군신화를 처음 기록했고, 그로부터 단군조선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그때 왜 그런 일이 있었던 걸까? 고려 이전에는 단군 계승 인식 없어 몽골과 전쟁 후 내부 결속 필요성 단군과 요, 건국 시기 같다는 사료 중국과 다른 ‘자주국 고려’ 뒷받침 뿌리 깊은 삼국 분립의식도 사라져 마음속의 통일, 조선 왕조로 이어져 단군 삭제된 삼국의 건국신화 지금이야 우리 역사가 단군이 세운 조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온 국민의 상식이지만,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고대 삼국의 건국 설화에는 단군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고구려는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와 하백(河伯)의 딸 유화 사이에서 태어난 주몽이 건국했고, 백제는 주몽의 아들 온조가 건국했으며, 신라는 큰 알에서 태어난 혁거세가 건국했다고 되어 있다(『삼국사기』). 이밖에 북부여는 해모수가, 가야는 황금알에서 태어난 수로가 각각 건국했다는 전설이 있었다(『삼국유사』). 건국 시조의 출현이 하늘로 연결되거나(부여·고구려·백제) 아버지를 알 수 없는 난생(卵生)으로 꾸며졌는데(신라·가야), 이는 다섯 나라 모두 독자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단군조선을 계승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그럼 단군의 존재를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단군신화가 옛날부터 구전되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니만큼, 이 이야기가 전해지는 동안 단군이나 조선의 존재는 잊히지 않았을 것이다. 씨름하는 그림으로 유명한 고구려의 각저총 벽화에 곰과 호랑이가 나란히 그려져 있는 데서도 고구려 사람들이 단군신화 내용을 알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조법종, ‘고구려 사회의 단군인식과 종교문화적 특징’, 2001). 고려 전기에도 조선의 존재를 알았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가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신라가 건국되기 전 조선의 유민(遺民)들이 서라벌로 이주해 와서 6촌을 이루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단군이 세운 조선이 역사의 시작이라는 생각, 즉 삼국과 고려가 단군조선으로부터 시작된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는 생각까지는 미치지 않았다. 그들에게 조선은 그저 먼 옛날에 있다가 사라진, 이야기 속의 나라에 불과했던 것이다. 통일신라의 ‘일통삼한’론 조선이 아니라면 삼국 이전에는 어떤 역사가 있다고 생각했을까?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세 나라 모두 이전 역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부터 역사를 정리할 필요를 느끼기 시작했다. 무력에 의한 강제 통일의 후유증으로 고구려·백제 유민의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그들의 마음을 사야 한다는 정치적 고려도 한몫했다. 그 결과 삼국 앞에 삼한(三韓)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삼국은 제각각 세워진 서로 다른 나라가 아니라 마한·진한·변한, 즉 삼한을 계승한 나라라는 주장이었다. 이에 따르면 삼국은 한(韓)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으며, 신라의 통일은 ‘일통삼한(一統三韓)’이라고 해서 셋으로 갈라져 있던 삼한을 다시 하나로 합친 행위로서 역사적 정당성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삼한이 삼국으로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두고 논란을 벌였는데, 신라 말의 대학자 최치원이 마한-고구려, 진한-신라, 변한-백제설을 주장해서 일단 종지부를 찍었다. 삼한이 삼국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나, 마한이 고구려가 되었다는 등의 학설은 모두 근거 없는 추단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우리 역사의 시작이 삼한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민심이었다. 아무리 ‘일통삼한’을 주장해도 고구려·백제 유민들의 자기 역사에 대한 생각이 바뀌질 않았다. 통일 후 200년이 지나도록 고구려·백제 계승의식은 사라지지 않았고, 견훤과 궁예가 후백제와 후고구려를 건국했을 때 호응하며 분출했다. 후삼국시대는 서로 다른 역사인식의 각축장이기도 했다.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한 뒤 ‘일통삼한’을 다시 꺼내 들었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 아래 고구려 사람, 백제 사람, 신라 사람의 구분을 없애고 모두 고려 사람으로 만들려는 노력이었다. 공식적으로는 고구려 계승을 내세웠지만 신라와 백제 계승의식을 억누르지 않았고, 잘못 알려진 것처럼 차령 이남 지역을 차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후삼국 통일 후 300년이 지난 13세기 전반까지도 고구려·백제·신라를 부흥시키겠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긴 세월을 지나며 많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의 불쏘시개가 될 만큼의 영향력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몽골의 침략이 시작되었다. 몽골과의 전쟁은 30년 가까이 계속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건국 후 처음으로 전 국토가 전쟁터가 되었다는 점에서 고려 사회의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강력한 외적과 장기간 싸우면서 내부의 결속이 강화되고, 그 결과 삼국 분립의식이 완전히 사라지는 효과도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로 고구려·백제·신라를 계승했다거나 부흥시키겠다는 사람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은 것이 그 증거이다. 역사인식에도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조선을 발견한 것이다. 전쟁은 졌지만 외교로 나라 지켜 조선의 건국 설화인 단군신화는 1280년대에 일연의 『삼국유사』와 이승휴의 『제왕운기』에 처음으로 기록되었다. 두 사람 모두 몽골 침략을 직접 겪었고, 전쟁이 끝난 뒤 거의 동시에 책을 썼다. 따라서 이 책에는 전쟁을 경험한 승려·유학자 지식인의 절실한 현실 인식이 담겼다. 이들은 특히 종전과 동시에 시작된 몽골제국의 간섭을 목도하면서 국가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고민했다. 고려 특유의 외교 역량을 발휘해서 가까스로 국가를 지켜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그때까지 고려 사람들이 알던 나라들(금·서하·남송)은 모두 몽골에 멸망했고, 일본과 안남(베트남)은 몽골의 공격을 막는 데 성공했지만 언제까지 버틸지 알 수 없었다. 전쟁에 지고 외교로 지킨 나라는 고려가 유일했다. 일연과 이승휴는 고려의 국가 유지가 역사적으로 당연한 일임을 입증하고자 했다. 『제왕운기』에는 단군신화 앞에 “요동에 따로 천하가 있으니, 뚜렷이 중국과 구분된다”라는 문장을 배치했다. 요동과 한반도는 본래 중국과 다른 세상이며, 따라서 고려가 몽골과 다른 나라인 것이 당연하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다른 세상’의 역사를 조선부터 시작하면서 단군신화를 기록했다. 『삼국유사』는 단군왕검의 건국 사실을 기록하면서 “요임금과 같은 때였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요임금은 당시 고려 사람들의 지식으로는 중국에서 최초로 나라를 세운 사람이었다. 단군과 요의 건국 시기가 같다면, 조선에서 시작하는 우리나라 역사와 요 임금에서 시작하는 중국의 역사가 출발부터 다르며, 지금 고려와 몽골이 서로 다른 나라인 것도 당연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역사에서 조선을 되살림으로써 현재의 고려를 살리고자 했던 것이다. 일연과 이승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선에서 고구려·백제·신라를 거쳐 고려로 이어지는 역사를 연결했다. 이제 조선은 이야기 속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 역사의 출발점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으며, 삼한보다 강력한 구심력으로 삼국 분립 의식을 해소하는 데 기여했다. 고려 말 1370년에 고려군이 압록강 국경을 넘어 요동의 동녕부를 정벌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선무공작의 일환으로 방을 붙여 “우리나라는 요임금과 동시에 세워졌으며, 요하 동쪽의 영토를 대대로 지켜왔다”고 선포했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나온 내용이 고려의 공식적인 역사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그 무렵 사람들은 나라의 운명이 다했음을 알았다. 그들은 고려보다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었고, 새 나라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역사 속에 잠들어 있던 조선을 되살려 새나라 조선을 만들었던 것이다. 모든 시대는 역사 속에서 자기 사명이 있다. 막강한 몽골의 침략에서 나라를 지켰고, 뿌리 깊은 분립 의식을 불식시켜 마음속의 통일을 이루었으며,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까지, 고려는 ‘역사적 사명을 다한 나라’였다. 이익주 역사학자·서울시립대 교수
2026.03.26. 8:12
1996년 9월 18일 새벽 강릉 앞바다에 북한 잠수함이 좌초된 상태로 발견됐다. 68년 1월 21일 김신조 부대의 청와대 습격 사건을 들어보긴 했지만, 북한군이 후방 지역에 직접 침투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쉽지 않았다. 당시 사회부 기자였던 필자도 취재를 위해 강릉으로 갔다. 사건 초기 일주일 정도는 군 당국이 취재진을 통제하지 않아 직접 현장을 가볼 수 있었다. 어느 날 밤 산 중턱에서 매복에 나선 군인들을 만났다. 한 시간 남짓 있었지만 아직도 그 기억이 남아 있다. 96년 북 잠수함 침투…18명 희생 이를 기억 않으면 누가 나서겠나 제복 입은 이에 대한 존중 필요 사건 첫날 잠수함 승조원은 집단 폭사했지만 도주한 나머지는 특수부대원이었다. 기습 사격에 이미 아군 전사자가 나온 상태였다. 밤공기는 차가웠고, 참호 속 병사 몇몇은 극도의 긴장 속에서 떨고 있었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보이지 않는 적이 나를 향해 총탄을 날릴지 모른다는 원초적 두려움이었다. 국가 안보는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49일간 이어진 작전에서 군인·경찰·예비군·민간인 18명이 전사하거나 사망했다. 올해가 사건 발생 30년이다. 과연 그들은 얼마나 기억되고 있을까.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경험 위에 서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군은 ‘외침을 막는 존재’로 인식됐다. 한국사의 명장 대부분이 외침을 막은 영웅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은 전혀 다른 조건에 놓여 있다. 에너지와 교역을 해외에 의존하는 구조 속에서 안보는 더 이상 국경선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정세를 보면 힘의 논리가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최근 들어 미국-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이 막히면서 유가가 치솟고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제 국익이 있는 곳까지 안보의 범위도 확장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가 길어지면 역할 분담 요구가 커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금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지만, 상황이 격화되면 한국 역시 선택의 갈림길에 설 수 있다. 설령 이번이 아니라도 언젠가 닥칠 수 있는 일이다. 이미 우리 해군은 청해부대를 통해 해외 해역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는 해적 대응 중심이지만, 위협이 고도화될 경우 임무의 성격과 위험 수준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신 장비로 무장했을지라도 언제 어디서 뭐가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느끼는 마음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두려움 속에서 임무를 다하는 이들에 대한 감사와 존중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미국의 유명 가수 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레이’에는 1948년 주인공이 장거리 버스를 타는 장면이 나온다. 흑인에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퉁명스럽고 고압적으로 반응하던 백인 운전사는 레이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시력을 잃었다고 말하자 태도를 바꾸며 돌봐줄 테니 뒷자리에 타라고 말한다. 이는 거짓말이었지만, 극심한 인종차별의 시대에도 다친 2차 대전 참전용사는 존중의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지난달 24일 미 의회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연설이 있었다. 이날의 주인공은 한국전쟁에서 소련의 미그기 4대를 격추한 100세의 앨머 로이스 윌리엄스 예비역 대령이었다. 멜라니아 여사가 이 노병에게 직접 미국 최고의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달아줬다. 평소 대립하던 공화당과 민주당의 의원들이 모두 일어나 그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우리는 어떠할까. 10년 전 군인 대상 무료 커피 제공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제복을 입은 이들에 대한 할인이 특혜인지, 아니면 당연한 예우인지조차 사회적 합의가 분명하지 않았다. 이런 인식으로 큰 위기를 감당할 수 있을까. 고대 그리스의 중장보병 밀집 대형인 팔랑크스에서 병사는 왼손에 둥근 방패를 들었다. 긴 창을 쥔 오른쪽은 옆 전우의 방패에 의지했다. 서로를 지킨다는 믿음이 대형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오늘날 제복을 입은 이들의 ‘오른쪽’은 사회적 신뢰와 지지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오늘(3월 27일)은 제2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서해 수호의 날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일은 공동체의 의무다. 이념과 정파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첨단무기가 중요한 시대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전쟁 같은 국가적 위기 앞에 기꺼이 나서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안보를 지탱하는 힘이며 결국 우리 모두의 일상을 지켜내는 원동력이다. 김원배([email protected])
2026.03.26. 8:10
중국 당송 교체기, 오대십국 중 하나인 오월의 역사를 기록한 『오월비사』에 무기체계 하나가 등장한다. “화유(火油)는 바다 남쪽 대식국에서 왔는데, 철통에 넣어 발사했고 그 불은 물을 부으면 오히려 더 강하게 타올랐다.” 위력을 강조해 사나울 맹(猛)을 붙인 맹화유를 쓰는 맹화유궤라는 무기다. 맹화유를 분사 장치로 뿜은 뒤 불을 붙여 적을 공격하는 일종의 화염방사기다. 앞서 7~8세기 비잔틴제국 해군도 비슷한 무기로 이슬람제국 함대에 맞섰다. 이 무기가 대식국, 즉 이슬람제국을 거쳐 중국에 전래했다. 물을 부으면 더 강하게 타오르는 맹화유가 오늘날의 나프타(Naphtha)다. 고대 페르시아인은 땅의 갈라진 틈에서 배어 나오는 검은 액체, 즉 원유를 가리켜 나프트라 했다. 현재 아랍어·히브리어 모두 기름을 나프트라 한다. 나프트는 그리스어로 넘어가 지금의 발음(나프타)으로 바뀐다. 원유 자체를 뜻했던 나프타는 18~19세기에 원유 중 휘발성 강한 액체성분으로 그 의미가 축소된다. 원유 정제 기술이 확립된 현재 나프타는 섭씨 30~200도에서 추출한 성분만을 가리킨다. 원유는 낮은 온도부터 액화석유가스(LPG)-가솔린-나프타-등유-경유-중유-아스팔트 순으로 추출한다. 나프타를 고온 분해해 에틸렌·프로필렌·벤젠·톨루엔 등의 성분 물질을 얻는다. 이들이 플라스틱과 비닐 등 합성수지, 나일론과 폴리에스터 등 합성섬유, 타이어 등의 재료인 합성고무 등의 원료 물질이다. 고옥탄가 휘발유·페인트 용제 등도 나프타 없이는 못 만든다. 나프타를 ‘산업의 쌀’로 부르는 이유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로 나프타 수급이 차질을 빚자 국제 시세가 급등했다. 석유화학업계는 일부 공장 가동을 멈췄다. 비닐 제품인 종량제 쓰레기봉투, 플라스틱인 포장용 음식 용기 등의 품귀나 가격 인상을 우려한 사재기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나프타 수출을 제한하고 쓰레기봉투 등의 비축량이 충분하다고 알려도 그런다. 사재기는 자기실현적 예언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 거라 믿고 움직이면 결국 그게 쌓여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헛된 믿음의 악순환 고리는 끊어야 한다. 장혜수([email protected])
2026.03.26. 8:08
탐욕과 욕망의 인류는 다시 한번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류는 전쟁의 구렁텅이에 또 떨어지고 말았다. 미국은 연초부터 베네수엘라에 군사적 정밀 공격을 감행하더니, 이번에는 이란이다. 이번 미국과 이란 전쟁의 중심에는 인공지능(AI)이 있다.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이제는 인간을 더 빠르고 더 효율적으로 죽이는 계산을 한다. 위성사진과 데이터 분석을 통해 표적을 찾고, 공격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한다. 자폭 드론이나 미사일은 스스로 날아가 사람을 죽였다. 이제 전투기 조종석에는 조종사가 아닌 AI가 앉아 있다. 전쟁은 AI 신무기의 박람회장이 되었다. 몇 시간 만에 수십 차례의 정밀 타격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은 분명 놀라운 능력이다. 그러나 그 능력이 인간의 생명을 겨누는 순간, 우리는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인간성의 후퇴를 목격한다. 전쟁 일으킨 미국도 흉측하지만 주식계좌만 챙기는 우리도 추악 탐욕 이기는 힘은 우리에게 있어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보이는 미국의 민낯은 흉측하다 못해 괴기스럽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전쟁 개시의 명분으로 세계 평화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들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에는 마약 밀매 혐의로, 이란에는 핵 개발을 들어 전쟁을 일으켰다. 설령 그것이 미국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라고 쳐도, 모든 과정이 너무나 즉흥적이다. 동맹국에도 전쟁에 대한 어떠한 힌트도 알려주지 않아 중동을 찾아간 우리 여행객들이 급하게 짐을 싸고 나오는 모습은 우리가 알던 미국과 너무나 다르다. 이란을 폭격하고는 “그냥 재미로(Just for fun)” 더 공격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섬뜩함이 느껴진다. 군대 안 간 대통령은 총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른다. 흉측한 건 미국만이 아니다. 이번 전쟁에는 우리의 추악한 탐욕이 있다. 사람들은 이란의 학교와 가정집에 떨어지는 폭탄에 가슴 철렁하지 않고, 내가 가진 주식이 전쟁으로 떨어지면 밤잠을 설쳤다. 사람들은 전쟁을 멈추라고 소리쳤지만 인류 평화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전쟁으로 녹아내리는 내 돈을 위한 기도였다. 이란의 초등학교에 미사일이 떨어져 꽃다운 나이의 어린 여학생들이 목숨을 잃어도 나의 주식계좌만 성장할 수 있다면야 모든 게 괜찮다. 가족을 잃은 이의 피눈물 위에서 나의 행복을 찾는다면, 우리는 트럼프와 무엇이 다른가.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투자는 경제적 의미뿐만 아니라 도덕적 의미도 지닌다고 말한다(회칙 ‘진리 안의 사랑’). 투자가 단순히 경제행위로만 보여도, 투자도 결국 인간의 일이기에 윤리적이어야 한다. 아무리 돈이 좋다고 양심까지 팔지 말자는 말이다. 더욱이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며 투자가 이루어지는 지금, 투자를 통해 기업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소비자 불매 운동처럼 투자로 기업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인간을 파괴하는 탐욕의 기업과는 손절하겠다는 것을 투자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생산하는 군수 산업 기업이나 낙태·배아 줄기세포 연구 등 생명 존중을 하지 않는 제약·바이오 기업은 투자 종목에서 배제해야 한다.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반인권 기업이나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에도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공동의 집 지구를 지키기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에너지 기업에는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 중동 전쟁은 우리가 말하는 번영과 발전의 바탕에는 여전히 화석연료를 포함한 에너지 중독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석유를 포함하여 천연가스·석탄 등 여전히 우리 공동체는 화석연료를 통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움직인다. 더욱이 인공지능이 필요한 전기 생산을 위해 핵발전까지 사용하겠다는 인간이다. 후쿠시마의 참상을 보고서도 인류의 기억에 안전은 사라지고 탐욕이 자리 잡았다. 인류의 기반인 자연마저 대규모로 파괴해서라도 성장을 이루겠다는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그럼에도 탐욕과 욕망을 이기는 힘은 결국 우리임을 믿는다. 탐욕의 빵이 아닌 사랑의 진리를 선택한 이들이 희망이다. 너의 아픔을 우리의 아픔으로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사랑이다. 조승현 가톨릭평화방송 신문(cpbc)보도주간
2026.03.26. 8:06
만약 당신이 이란 전쟁을 사전에 알았다면 어떤 거래를 해두었을까. 아마도 금이나 미 국채 같은 안전자산에 투자를 늘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실제 시장의 움직임은 기대와 크게 달랐다. 공습 개시 이후 금은 16%, 미 장기 국채는 5% 하락했다(3월 24일 기준). 같은 기간 S&P500 지수가 5% 하락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믿었던 안전자산이 포트폴리오 방어는커녕 오히려 손실을 키운 셈이다. 안전자산은 주식 같은 위험자산이 하락하는 위기 상황에서도 가치가 유지되거나 상승해 포트폴리오 손실을 제한해주는 자산을 의미한다. 평상시에는 주식보다 기대수익률이 낮아 기회비용이 크지만, 위기가 닥치면 빛을 발하는 ‘보험’ 같은 존재다. 금과 미 국채, 일본 엔화와 스위스 프랑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최근 시장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과거 위기의 성격에 따라 안전자산의 성과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주요 연구들에 따르면 미 국채는 경기침체나 금융위기에서 금리 하락과 함께 가격이 상승하며 대표적인 안전자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동반한 위기에서는 양상이 달라진다. 지정학적 충격으로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인플레이션 기대가 높아지고, 이는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국채 가격을 끌어내린다. 금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금융위기와 같은 거시경제 충격에서는 비교적 강한 안전자산 역할을 하는 경향이 있지만, 전쟁이나 원자재 가격 상승과 같은 공급 충격 앞에서는 그 기능이 약화하거나 아예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관건은 위기가 인플레이션과 성장 둔화 중 어느 쪽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느냐다. 이는 금리의 방향을 결정하고, 다시 안전자산의 성과를 좌우한다. 현재는 유가 급등으로 인플레이션 기대가 높아지고 미국 금리가 상승하는 국면이다. 그 결과 전통적 안전자산들이 동시에 부진한 흐름을 보인다. 더욱이 금은 지난해부터 투자 열풍에 투기 수요까지 겹치며 급등했던 만큼, 출구를 찾는 투자자들의 매도 압력까지 더해지고 있다. 투자자는 위기가 인플레이션과 경기 중 어느 방향으로 작용하는지를 계속해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시장은 인플레이션 충격은 상당 부분 반영했지만, 성장 둔화 가능성은 아직 반영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성장 둔화 우려가 커지며 금리 하락과 함께 안전자산이 반등할 수 있다. 반면 조기 종전 시에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되며 금리 부담이 줄어 안전자산은 반등할 여지가 있다. 결국, 경로는 달라도 금리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안전자산은 다시 힘을 받을 수 있다. 최정혁 한양사이버대학교 경제금융자산관리학과 교수
2026.03.26. 8:04
기원전 3세기 역사가 마네토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의 제1왕조는 메네스(Menes)와 함께 시작한다. 그는 상·하이집트를 통일하고, 멤피스에 통일 수도를 건설했다. 통치 기간은 짧게는 30년, 길게는 62년으로 본다. 메네스의 이름은 다른 기록에도 나온다. ‘아비도스 왕명표’(사진)와 ‘토리노 왕명표’는 모두 메네스와 동일인으로 여겨지는 ‘메니’라는 이름의 인물을 이집트 최초의 파라오로 기록하고 있다. 두 왕명표 모두 신왕국 19왕조 시대(기원전 1292~1189년)의 것으로 메네스의 시대보다 약 2000년 후의 기록이다. 그러나 정작 메네스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시대의 유물과 기록에서는 그의 존재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고고학적으로 확인되는 실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록은 그 자체로 사료적 가치를 갖는 게 아니다. 사료적 가치는 다른 기록이나 고고학적 근거 등을 토대로 교차 검증될 때 생겨난다. 현재 거의 유일한 고고학적 단서는 나카다에서 출토된 상아 라벨이다. 이 유물에는 세레크(왕의 이름을 둘러싼 궁전 형태 테두리)에 ‘아하(Aha)’라는 왕명이 새겨져 있다. 이는 파라오 호르-아하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동시에 그 옆 건물 형상 내부에는 ‘mn’이라는 표기가 등장하는데, 이를 메네스의 이름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러나 ‘mn’이 인물의 이름인지 동사인지, 호르-아하와 메네스가 동일 인물인지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메네스나 메니라는 이름 자체가 통일 군주의 일반적 칭호였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또 다른 첫 파라오 후보도 있다. 나르메르(Narmer)다. 그는 나르메르 팔레트 등의 유물을 통해 고고학적으로 존재가 입증된 인물이다. 그가 메네스와 동일 인물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지만, 그의 역사적 실체만큼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
2026.03.26. 8:02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3.26. 3:30
지난달 28일 ‘이란 전쟁’이 시작된 이후 가주의 개솔린 가격이 무섭게 오르고 있다. 가주의 레귤러 개솔린 갤런당 평균 가격은 25일 현재 5달러80센트로 한 달 새 1달러20센트나 급등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가격이 1달러 가량 오른 것에 비해 훨씬 상승폭이 크다. 가주 운전자들의 체감 상승폭은 더 심하다. 도심 주유소들의 레귤러 개솔린 갤런당 가격은 이미 6달러를 넘어섰고, 심지어 7달러나 8달러대를 받는 곳도 있다. 가뜩이나 가주의 개솔린 가격이 다른 주에 비해 비싼 상황에서 이런 급등은 운전자들에게 큰 부담이다. 정유업체들은 유가 상승을 이유로 든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유가 상승에 비해 개솔린 가격 인상폭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를 경우 개솔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갤런당 10센트 정도다. 이런 분석을 고려하면 전쟁 시작 이후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가량 올랐으니 개솔린 가격은 갤런당 30센트 정도 오르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가주의 개솔린 가격 상승폭은 몇 배나 된다. 정유 업체들의 폭리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소비자 단체는 전쟁 이전 갤런당 49센트였던 정유업체의 마진이 현재는 1달러25센트로 급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가주에서 정유업계의 횡포가 심한 이유는 구조적 문제 탓이라고 지적한다. 즉, 개솔린 소비량의 80%를 주내 정유시설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운전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마침내 주 정부도 나섰다. 주에너지위원회 산하 원유시장감독국이 정유업체들의 폭리 혐의 조사 방침을 밝힌 것이다. 이 부서의 책임자는 “철저한 가격 모니터링을 통해 불공정 행위나 폭리 등의 혐의가 발견되면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이번 조사가 용두사미로 끝나지 말고 정유업계의 폭리 행위를 근절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사설 정유업계 폭리 정유업계 폭리 폭리 혐의 폭리 행위
2026.03.25. 19:17
미주 최대 한인 은행인 뱅크오브호프가 LA한인타운에 있던 본점을 LA다운타운으로 이전한다. 은행 측은 금융 중심지라는 입지 조건, 고객 접근성 향상, 직원 업무 환경 개선 등을 이유로 꼽았다. 그러면서 이번 이전이 은행의 지속적인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기존 뱅크오브호프 본점의 외부 모습은 한인 최대 은행, 리저널 뱅크라는 위상에 어울리지 않았다. 수차례의 인수·합병(M&A) 과정을 거치며 탄생한 은행이다 보니 내부 통합과 정비가 더 시급했을 것이다. 따라서 본점 이전 발표는 내부 정리를 끝내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인타운의 위상과 미래라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타운의 상징적 존재 하나가 또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행 측은 기존 본점 지점의 유지 등 고객 서비스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타운 고객들의 심리적 공백은 클 것이다. 사실 한인 은행의 이전은 처음이 아니다. 한미은행도 지난 2021년 타운에 있던 지주사를 다운타운으로 옮긴 바 있다. 이제 자산 규모 1,2위의 한인 은행 핵심이 모두 타운을 떠나는 셈이다. 최근 한인 타운의 상징적 존재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다른 곳으로 이전하거나 문을 닫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타운에 새로 둥지를 트는 곳은 많지가 않다. 물론 이유가 있겠지만 타운과 한인 사회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한인 타운은 한인 사회의 기반이다. 타운이 성장해야 한인 사회도 발전한다. 한인 업체나 단체들의 외면으로 한인타운이 이름만 남게 된다면 한인 사회의 구심점도 약화할 것이다. 몇몇 사람의 노력만으로 한인 타운이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각 분야의 주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남의 일’인 것처럼 방관만 하다가는 시기를 놓친다. 뱅크오브호프의 케빈 김 행장은 본점 이전 계획을 밝히며 “한인타운은 우리 정체성의 중심”이라고 말했다. 한인 사회가 같은 마음이었으면 한다. 사설 한인타운 공동화 한인 타운 한인 은행 한인 사회
2026.03.25. 19:16
오는 3월 28일, 세 번째 ‘노 킹스 데이(No King’s Day)’ 집회가 전국에서 열린다. ‘노 킹스 데이’는 현 연방정부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모여 행동하는 날이다. 특히 이민단속국(ICE)의 무차별 체포와 구금, 추방 정책에 반대하는 이민자 권익에 대한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또 이란과의 전쟁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노 킹스 데이’가 시작된 것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시민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과 10월에 열린 두 번의 ‘노 킹스 데이 집회’에는 전국 2700여 곳에서 최대 700만여 명이 참여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시위였다. 올해 ‘노 킹스 데이’ 집회 참가자 목표는 1200만여 명이다. 1200만이라는 숫자는 나름대로 뜻이 있다.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 하버드대 교수가 밝힌 3.5% 법칙 때문이다. 체노웨스 교수는 2011년 정치학자 마리아 스테판과 함께 펴낸 책 ‘왜 시민 저항이 효과적인가’에서 인구의 3.5%가 지속해서 비폭력 저항 운동을 펼치면 정권 변화와 중대한 정치적 전환을 통해 부당한 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저자들은 1900년부터 2006년까지 100여년간의 시위, 불매운동, 시민 불복종 등 다양한 형태의 비폭력 운동을 연구한 뒤 이런 결론을 내렸다. 비폭력 저항은 폭력 저항보다 도덕적·신체적 참여의 장벽이 낮아 더 많은 사람의 참여를 끌어낸다. 또 높은 참여 비율은 운동의 회복력을 높이고, 전술적 혁신의 기회를 넓히며, 체제에 현상 유지를 포기할 유인을 제공하고, 군 내부를 포함한 기존 지지 세력의 충성심 이탈을 유도한다. 성공적인 비폭력 저항이 더 지속 가능하고 내부적으로 평화로운 민주주의를 낳으며, 이러한 민주주의는 내전으로 퇴행할 가능성이 작다는 설명이다. 성공 비율도 폭력 저항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고 한다. 그래서 시민운동 단체들은 “당신의 참여는 실제로 세상을 바꾼다”는 구호 아래 미국 인구의 3.5%인 1200만여 명이 오는 3월 28일 ‘노 킹스 데이’ 행사에 참여하길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1200만 명이 조직적, 지속해서 행동한다면 현 정부의 폭정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노 킹스 데이’에 1200만 명을 채우려면 지난해 행사보다 500만 명이나 더 참여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한인을 비롯한 아시아계의 참여가 절실하다. 우리 이웃들이 ICE에 차별당하고, 두들겨 맞고, 잡혀가고, 쫓겨나는 모습을 지켜만 볼 수는 없다. 우리도 떨쳐 나서야 한다. ‘노 킹스 데이’는 대도시의 대규모 집회 말고도 전국 곳곳의 소도시, 마을에서도 일제히 열린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하면 된다. 집회가 열리는 장소는 인터넷 웹사이트(https://www.mobilize.us/nokings/)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노 킹스 데이’는 특정 정파나 정당, 정치인을 지지하는 ‘정치 행사’가 아니다. 인권을 지키고,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살리고, 금권 정치를 막고, 망가진 나라의 바른길을 찾으려는 시민운동이다. 훗날 한인 사회도 이 값진 행동에 함께 나섰다는 역사를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목표 데이 데이 집회 비폭력 저항 비폭력 운동
2026.03.25. 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