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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견우와 직녀

지금은 도시 공해와 불빛 때문에 밤하늘의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옛날에는 고개만 들면 별이 우르르 쏟아질 듯, 밤하늘은 말 그대로 별천지였다. 우리가 사는 북반구 여름 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는 모습이 보인다. 은하수 주위에서 밝게 빛나는 세 별을 꼭짓점 삼아 삼각형을 그릴 수 있는데 이를 여름 대삼각형이라고 부른다. 독수리자리에서 밝게 빛나는 알타이르星, 거문고자리의 베가星, 그리고 백조자리의 데네브星이 그 세 별인데 밤하늘에서 유독 밝게 빛나서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중 베가성은 밤하늘에서 다섯 번째로 밝은 별이다. 우리는 그 별을 직녀성이라고 부르는데 칼 세이건의 영화 콘택트에 등장하는 별이기도 하다. 지금은 북쪽을 가리키는 별이 북극성이지만 아주 오랜 옛날에는 직녀성이었고 세월이 흐르면 다시 직녀성이 북쪽을 가리키는 별이 될 것이라고 한다. 지구의 세차운동 때문이다.   우리 별 태양이 속한 은하가 은하수지만,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가 보이는데 우리도 그 안에 들어있다니 신기하다. 은하수 은하는 그 지름이 10만 광년쯤 되고 태양과 같은 별을 무려 4천억 개나 포함한 비교적 덩치가 큰 은하다. 우리의 태양은 은하수의 한 귀퉁이에 속해 있으므로 밤하늘에 보이는 은하수는 그 변두리에 사는 우리가 우리 은하의 중심부를 보는 것이다. 사실 밤하늘에서 보이는 반짝이는 것은 달과 지구의 형제 행성 몇 개와 외부 은하 몇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은하수에 속한 별이다. 은하 중심부에는 별이 밀집해 있어서 우리 눈에는 마치 강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데 옛날 사람들은 은하수 양쪽에 떨어져 빛나는 두 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붙였다. 바로 견우와 직녀 얘기다.   아주 먼 옛날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 이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에게 직녀라는 이름의 길쌈을 잘하던 손녀딸이 있었는데 혼기가 차자 하나님은 소를 치는 견우라는 청년과 혼인을 시켰다. 그런데 결혼 생활에 푹 빠진 남녀는 하던 일은 제쳐 두고 사랑놀이에 온통 정신을 쏟자 이를 본 하느님이 노하셔서 그 두 사람을 강 양편에 떼어 놓으셨다. 강을 사이에 두고 정든 남녀가 서로를 그리워하자 마음이 약해진 하느님은 일 년에 한 번 서로 만나는 것을 허락하셨지만, 강을 건너기가 쉽지 않아서 지상에 사는 모든 까마귀와 까치가 자신들의 몸으로 다리를 놔주었다고 한다. 그 다리 이름이 까마귀 오(烏)자와 까치 작(鵲)자를 써서 오작교다. 참고로 이몽룡과 성춘향이 살던 남원의 광한루에도 오작교란 이름의 다리가 있다. 물론 별에 관계된 전설이기는 하지만, 옛날에는 농사를 짓고 옷감을 짜는 일이 중요한 일상이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대변해 주는 이야기다.   별자리는 북반구와 남반구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다. 여름밤 북반구에서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를 중심으로 밝게 빛나는 별을 따라 큰 삼각형을 그릴 수 있는데 그중 두 꼭짓점이 바로 은하수를 사이에 둔 견우성과 직녀성이다. 마치 강이 흐르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해서 은하수라는 이름이 붙은 것처럼 은하수는 수없이 많은 별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우리 눈에 띌 만큼 밝게 빛나는 별이 있어서 우리 조상들은 그런 별로 여러 이야기를 지었다. 견우(牽牛)와 직녀(織女) 얘기도 농사와 길쌈이 중요했기 때문에 생겼는데 글자에서 풍기듯 견우는 소를 끄는 사람이고 직녀는 베를 짜는 사람을 말한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과학 이야기 은하수 주위 은하수 양쪽

2026.01.3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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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일 제친 한국 증시, 혁신·성장으로 내실 다져야

━ ‘오천피’ 돌파에 ‘삼천닥’ 기대…연기금 동원 ━ 1%대 저성장 고착화 땐 상승세 지속 어려워 ━ 규제 혁신·성장 이어져야 경제 선순환 가능 코스피 5000과 코스닥 1000이 동시에 달성되면서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이 독일 증시를 추월, 세계 10위에 진입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한 한국 증시 시총은 지난 28일 3조2500억 달러로, 3조2200억 달러인 독일을 넘어섰다. 한국 시총이 세계적 제조업 강국으로 꼽히는 독일을 앞선 데에는 인공지능(AI) 주도의 반도체 수퍼사이클 영향이 컸다. 이런 흐름 속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서 반도체 기업을 폭발적으로 매수하며 증시를 달구고 있다. 여기에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유도 등 증시 밸류업 정책이 잇따르자 개인투자자들까지 가세하며 사상 처음 코스피 5000, 코스닥 1000을 함께 돌파했다. AI 기술경쟁 심화로 고대역폭메모리(HBM)는 물론 D램 수요까지 급증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전례 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증시 상승을 견인하고, 최근 바이오·이차전지로 매수세가 확산되자 이들 종목이 둥지를 튼 코스닥 지수를 3000까지 올리는 ‘삼천닥’도 거론된다. 이에 기획예산처는 29일 국민연금·고용보험 등 67개 정부 연기금 운용 기본방향에 코스닥 및 벤처 투자 확대 지침을 제시했다. 연기금이 운용 중인 여유자금 1400조원 가운데 현재 3.7% 수준인 코스닥 투자 규모를 5%까지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예·적금을 깨고 신용융자로 빚투에 나선 개인투자자도 늘면서 고객예탁금은 100조원을 넘어섰다. 증시 과열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 문제는 내실이다. 증시는 달아오르고 있지만, 상승 랠리를 이끄는 반도체의 ‘착시 효과’만 빼면 경제 체력은 한계를 드러낸다. 성장률은 지난해 간신히 1%를 기록했고, 그 중 0.9% 포인트는 반도체 수출에 의존했다. 반도체를 빼면 수출은 마이너스였고, 내수 침체는 심각하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은 올해 성장률도 1.9%에 그친다. 이 경우 4년 연속 미국보다 성장률이 낮아진다. 한·미 간 성장률 격차가 지속하면 원화 가치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오천피·삼천닥’은 언제든 신기루가 될 수 있다. 한국은 독일과 대만에서 교훈을 찾을 만하다. 독일은 중국 의존을 줄이지 못해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입었다. 탈원전 고집으로 전기요금이 급등해 산업 경쟁력을 약화한 점도 실책이었다. 반면 대만은 반도체를 국가 주력 산업으로 키우며 과감한 정책 지원으로 경제 체질을 강화했다. 그 결과 수년간 고성장을 이루며,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22년 만에 한국을 앞질렀다. 시총 역시 세계 9위로 한국을 앞선다. 한국은 지금 증시 활황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저성장 탈출에 실패하면 한국은 13년째 국민소득 3만 달러의 벽에 갇힌다. 영국·프랑스 등 인구 5000만 명 이상 선진국 6곳은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로 오르는 데 평균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독일처럼 4만 달러에 진입해도 시장 다변화와 혁신이 주춤하면 경제 체력이 약화할 수 있다. 7%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 중인 대만은 올해 4만 달러 대열에 합류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8일 외국기업 대표들을 만나 국내 투자를 촉구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이 역내 경제 허브로 도약하려면 세제·노동 개혁이 필요하다”며 규제 혁파를 강조했다. 노란봉투법으로 노사 분쟁이 늘고, 근로자추정제 도입으로 고용 부담이 커지며 한국은 기업하기 어렵다는 점을 호소한 것이다. 그제 국회는 91개 법안을 처리하면서도 반도체법 ‘주52시간 예외’는 끝내 외면했다. 달아오른 증시가 내실을 다지려면 기업 투자와 고용 환경이 함께 개선돼야 한다. 혁신과 성장을 위한 실용적 정책 뒷받침이 절실하다.

2026.01.30. 8:34

[커뮤니티 포럼] ICE 단속 논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ICE 단속 논란은 ‘이민 찬반’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이민 관련 법률 상담을 하다 보면, 최근 유난히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ICE가 왜 사람을 잡아가나요? 불법체류자니까 그런 것 아닌가요? 협조하면 되는데 왜 안 해서 분란이 생기고, 심지어 총을 맞는 일까지 생기나요?”   이 질문들에는 공통적으로 불안과 혼란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불안의 핵심은 정치적 입장보다 훨씬 현실적인 문제, 즉 ‘이런 상황에서 나는,  그리고 내 가족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사안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정이나 찬반 논쟁이 아니라, 법의 문제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개인의 필요를 중심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단속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가의 문제   먼저 분명히 할 점이 있다. 현재 논란의 핵심은 이민 단속을 하지 말자는 주장이 아니다. ICE는 연방정부 기관으로서 이민법을 집행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불법체류자나 범죄 연루자를 단속하는 것 자체는 법적으로 허용된 임무다.   그러나 지금 문제로 제기되는 부분은 누구를 단속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식의 단속 환경이 형성되고 있는가이다. 이 환경은 체류 신분과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예측 불가능성과 불안정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현재 문제로 지적되는 단속 방식   최근 논란이 되는 사례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보인다.    ◆법원에서 발부된 영장 없이 체포가 이루어지는 경우.    ◆구체적인 범죄 혐의나 사전 조사 없이 길거리, 직장, 주거지 등에서 연행되는 경우.    ◆피부색, 외모, 언어 사용 등을 근거로 “일단 단속한 뒤 신분을 확인하는” 방식.   이른바 ‘아니면 말고’ 식의 단속이다. 이러한 방식이 반복될수록, 개인은 언제 어떤 상황에 놓일지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왜 이것이 법의 문제이자, 개인의 준비가 필요한 환경이 되는가   미국은 법치국가이며, 공권력은 헌법과 법률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만 행사될 수 있다. 단속의 목적이 무엇이든, 그 과정은 법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현재의 단속 방식은 다음과 같은 기본 원칙들과 충돌할 소지가 크다.   ◆영장 없는 체포·수색을 제한하는 헌법 원칙.   ◆개인에게 최소한의 절차적 보호를 보장하는 적법절차(due process).   ◆인종이나 외형을 기준으로 차별하지 않는 평등보호 원칙.   중요한 점은 체류 신분과 관계없이, 공권력의 행사 방식은 동일한 헌법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현장에서 일관되게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질수록, 개인에게는 법적 권리 이해뿐 아니라 현실적인 대비가 필요해진다.   “왜 협조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현실적으로 다시 봐야 하는 이유   “합법적으로 살고 있으면 협조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은 표면적으로는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법적으로 보았을 때, 개인의 협조 의무는 공권력이 합법적으로 행사될 때를 전제로 한다.   영장이나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이루어지는 체포나 연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라기보다 법치국가에서 허용되는 권리 행사에 가깝다.   문제는, 이러한 법적 구분이 현장에서는 즉각적으로 설명되거나 존중되지 않을 수 있다는 현실이다. 그래서 개인에게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넘어서, 상황을 최소한의 피해로 넘기기 위한 준비가 필요해진다.   인종적 외형에 근거한 단속(Racial Profiling)이 만들어내는 개인의 실제적 위험   피부색이나 외모는 범죄 혐의가 될 수 없다. 이 원칙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특정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든 공권력 앞에서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상황을 즉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는 것 자체가 하나의 보호 장치가 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논쟁은 이민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환경에서 개인과 가족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대비’다.     즉, 이런 상황에서 가장 우선되는 필요는 나와 가족의 신분과 관계를 즉시 증명할 수 있는 준비다. 전화기, 지갑, 가방 등 항상 소지하는 물건에 기본적인 신분 증빙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아이가 있는 가정의 경우, 아이들의 미국 출생증명서 사본, 여권 사본, 보호자 연락처가 있는 자료를 준비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출생증명서는 여러 장의 원본을 발급받아 분산 보관하며 원본 한장은 갖고 다니는 것이 현실적인 대비가 된다.   성인에게 가장 중요한 필요는 본인의 신원과 현재의 법적 위치를 즉시 설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료다. 모든 서류를 다 들고 다닐 필요는 없으며, 상황을 오해 없이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이면 충분하다.   불필요한 추가 질문이나 장시간 대기를 줄이기 위해 항상 소지하면 좋은 기본 서류는 사진이 포함된 신분증(유효한 여권 원본 또는 주정부 발급 ID / 운전면허증)과 체류 신분을 설명할 수 있는 핵심 서류(사본 권장)이다.   예를 들어 영주권자는 그린카드 원본, 비이민 비자 체류자는 I-94 기록 사본, 비자 페이지 사본, 신분 변경이나 연장을 진행 중인 경우는 과거 승인서와 현 접수증(I-797 Notice of Action), 노동허가 소지자는 EAD 카드 원본을 통해 현재 합법적 절차 또는 체류 상태에 있다는 점을 간단히 설명할 준비를 한다.   자녀가 있는 어른은 만일을 대비해 자녀와의 가족관계를 입증하는 서류, 시민권자 또는 영주권자 배우자가 있는 경우는 결혼증명서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준비는 과도한 공포나 정치적 메시지가 아니라, 불확실한 환경에서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 대응이다.   권리와 대응 방식은 전문적 법률 상담으로 확인   불안이 커질수록, 소문이나 단순한 구호보다 법이 무엇을 허용하고 무엇을 제한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개인의 상황은 매우 다르며, 구체적인 권리와 대응 방식은 반드시 개별 사안에 따라 전문적인 법률 상담을 통해 확인되어야 한다. 주디 장 / 변호사커뮤니티 포럼 단속 논란 단속 방식 단속 환경 ice 단속

2026.01.29. 21:23

[커뮤니티 액션] ICE에 단 한 푼도 더 주면 안 된다

지난 21일,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미교협)를 비롯 1025개 전국 단체가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관세국경보호국(CBP)이 또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분노하며 더 이상 살인을 일삼는 정부 기관에는 단 한 푼도 예산을 줘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연방 의원들에게 전달하는 이 성명은 미국 시민사회의 양심을 대변한다.   “우리 1025개 단체는 미네소타 광장에서 연방 요원들이 또 한 사람을 대낮에 사살했다는 소식에 대해 깊은 공포와 분노, 큰 슬픔을 밝힌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죽어야 하나? 얼마나 많은 거짓말이 더 이어져야 하나? 얼마나 많은 아이가 미끼로 이용되고 유괴되어야 하나? 의회가 책임을 다하여 이 통제 불능의 기관들이 계속해서 우리 이민자와 유색인 공동체, 그리고 연대자와 지지자들을 폭력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우리는 이 치명적인 작전들에 대한 모든 자금 지원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미국 사회와 이민자 구금 센터에서의 폭력, 인권 침해, 그리고 죽음이 멈출 때까지 말이다. 의회는 세출 예산 심사 과정에서 ICE 또는 CBP에 단 1달러도 제공하지 않아야 하며, 지난해 여름 조정법안을 통해 이미 지급된 수백억 달러를 즉각 회수하는 조치도 취해야 한다.   우리는 의원들이 국토안보부(DHS)와 우리 공동체에 이러한 잔혹함과 무법 행위가 용납될 수 없으며, 지금 당장 끝나야 한다는 단호한 뜻을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연방 요원들이 미국 도시의 거리에서 순찰하며 대낮에 사람들을 사살할 때, 이러한 잔혹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자금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최소한의 대응이다. 의원들은 이를 멈출 수 있는 힘과 책임이 있다.   지금 의원들이 하는 일은 미래 세대에 기억된다. 아직 그 힘이 남아 있을 때 입장을 분명히 해 주기 바란다.”     “아직 그 힘이 남아 있을 때”란 말을 의원들은 새겨들어야 한다. 이대로 가다 보면 그 힘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성명에는 미교협 등 이민자 단체들 외에도 인권, 노동, 환경, 종교, 경제 등 모든 분야의 단체들이 두루 참여했다.   그리고 국민에게도 호소했다. 첫째, ICE 등과 협력하는 기업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펼치자. 둘째, 연방의원들에게 ICE 예산 지급 중단뿐만 아니라 인권 침해와 헌법 위반에 대해 조사할 것을 촉구하자. 셋째, ICE는 즉각 미네소타에서 철수하고, 민간인을 사살한 요원들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일각에서는 ICE를 아예 없애라는 요구가 나올 정도로 지금 시민사회의 분노는 불타오르고 있다. 이 불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천만 서류미비자를 모두 추방하겠다는 정권의 그릇된 정책이 불러일으킨 저항이다. 하지만 그 정책 또한 쉽게 꺾이지 않을 터이다.   지난해 말 국토안보부의 공식 SNS 계정에서는 ‘1억 명을 추방한 뒤 미국’이라고 밝히며 “더이상 제3세계에 침탈당하지 않는다”고 썼다. 미국 인구 3억4200만 명 가운데 유색인종은 1억 4000만여 명이다. 라틴계가 6800만, 흑인 4000만, 아시안은 2000만 명 등이다. 정말 나머지 2억 백인들만 미국에 살고 싶다는 뜻일까? 이 정부 곳곳에서 백인 우월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ice ice 예산 이민자 단체들 유색인 공동체

2026.01.29. 21:19

[특별기고] 정신건강 위기, 누가 첫 번째로 손을 내밀 것인가

우리는 종종 뉴스에서 신체적 위기가 닥쳤을 때 CPR로 생명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접한다. 그렇다면 정신적 위기가 닥쳤을 때는 어떨까. 우울과 불안, 자살 위험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알고,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해답으로 미국에서는 정신건강 응급처치(Mental Health First Aid)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이 교육은 정신적 위기를 겪는 사람을 조기에 인식하고, 전문 치료로 연결되기 전까지 적절한 도움을 제공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커리큘럼은 National Council for Mental Wellbeing이 관리하며, 공인 강사 제도와 수료 인증 체계를 갖추고 있다.   정신건강 응급처치는 물론 상담 전문가를 양성하는 과정은 아니다. 대신 위기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판단이나 충고 대신 공감으로 다가가며, 전문가의 도움을 권할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이 되도록 돕는 교육이다. 우울, 불안, 자살 위험, 정신병적 증상, 중독 문제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던 이들에게 실질적인 언어와 행동의 기준을 제시한다.   필자는 이 교육을 진행하는 강사로서 2016년 첫 강의를 시작한 이후 2025년 11월 말까지 10여 년 동안 총 1138명을 교육해 왔고, 이달 말 50회 교육을 앞두고 있다. 대부분의 교육은 한인들의 정신건강에 중점을 두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에스더하재단에서 직접 대면으로 이루어졌다. 8시간이라는 절대 짧지 않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은 각자의 사연과 절실함을 안고 교육장에 모였다.   정신질환을 앓는 자녀를 돌보는 부모, 관계가 멀어질까 두려워 도움을 권하지 못했던 친구, 진심으로 돕고 싶지만 훈계밖에 할 수 없다고 느꼈던 교사와 종교 지도자들까지, 모두가 ‘제대로 돕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교육이 끝난 후 “이제는 피하지 않고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은 이 교육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준다.     정신건강 위기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찾아오지 않는다. 우리 가족과 이웃,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예고 없이 다가온다. 그렇기에 정신건강 응급처치는 병원 안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작게는 에스더하재단을 통해서 교육받은 1138명의 멘탈헬스 퍼스트에이더들이, 나아가서는 미 전역에서 현재도 열심히 교육받는 이들이 정신건강에 대한 낙인이나 편견의 공기를 바꾸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이 조용하지만 중요한 움직임이 더 넓게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현미숙 / 정신건강 응급처치 강사·에스더하재단 사무총장특별기고 정신건강 위기 정신건강 위기 정신건강 응급처치 정신적 위기

2026.01.29. 21:17

[발언대]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 재고해야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 강점기 해외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를 찾는 일을 지속해서 하고 있다. 독립유공자를 찾으면 그 공로를 인정하는 훈장을 수여하고, 돌아가신 분들의 묘지를 찾아내 유해를 한국의 국립묘지로 이장하는 절차도 진행한다.     낯선 타국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을 찾아내 그들의 희생과 공을 기리고 숭고한 독립운동 정신을 후세에 전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고 본다. 이는 국가가 국민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에게도 감사의 표시와 큰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의 상황은 달라졌다. 국가와 해외동포의 개념도 많이 달라졌고, 해외 동포사회의 모습도 과거와는 차이가 있다.  지금의 해외 동포들은 일제 강점기처럼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택한 타향살이도 아니고 유랑자의 삶도 아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해외 동포들의 행사에 참석해 보면 으레 시작하는 인사말이 “조국을 등지고 이역만리 타국에서”라는 내용이었다. 이 말은 모든 참석자의 마음을 저리게 했다.     하지만 당시 필자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줬던 것을 기억한다. “이민자는 조국을 등진 것도 아니고, 조국을 배신해서 나온 것은 더욱 아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모두 애국자다.  조국을 생각하는 애국자요, 조국에 남은 분들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조력자다.”           이제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 인구는 750만 명에 달한다. 한국의 도 인구에 맞먹는 규모다. 특히 미국의 한인 인구는  250만 명에 육박한다. 한국의 웬만한 광역시 인구와 비슷한 숫자다. 이런 규모는 국가적 입장에서 볼 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다.   미국의 한인 사회는 경제적 성장은 물론 정치력 신장도 괄목할만하다. 한인 사회는 연방 상·하원 의원을 배출했고, 다양한 분야의 공직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인도 많다.        미국의 한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울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코리안-아메리칸’으로 정착하고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   차제에 미주독립유공자 유해 봉환도 재고 되어야 한다고 본다. 과거 독립운동가들에게 조국은 반드시 되찾아야 할 절대적 귀환지였다. 나라를 잃고 부득이 떠나온 타향살이였기에 죽어서라도 조국에 묻히고 싶은 것은 그 시대의 당연한 정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미주 독립유공자의 발자취는 한인 사회의 정신적, 문화적 자산이 되고 역사의 장이 되어야 한다. 설사 독립유공자 자신이 조국에 묻히고 싶다고 했어도 한인 사회의 미래를 고려한다면 그 의사를 철회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유해의 정리는 본인이 할 수 없고, 그것은 후손의 몫으로 후손을 위한 방향으로 정리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유해를 한국으로 봉환하는 대신 현지 실정에 맞게 잘 보존하면 된다는 의미다. 이곳이 독립유공자의 묘이며 역사의 현장임을 알릴 수 있는 장치(묘비 등)를 설치하고, 필요하다면 한국의 국립묘지나 독립기념관에는 이분들을 기리는 적절한 장치를 하면 된다.       또한 이런 독립유공자들의 묘지를 표시한 세계지도를 만들어 후세들이 순례하며 찾아보고 그 뜻을 기릴 수 있게 한다면 독립정신과 애국심 고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조국과 해외의 모든 동포를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역사의 장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송정섭 / 독자발언대 독립유공자 유해 미주독립유공자 유해 미주 독립유공자 독립유공자 자신

2026.01.2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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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K-컬처의 선구자 백남준

K-컬처의 기세가 무섭다. ‘케데헌’이 기대했던 대로 골든글로브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 2관왕의 영예를 차지했다. 지금의 분위기로는 그래미상과 아카데미상도 기대할 만하다는 전망이다. 방탄소년단의 활동 재개도 큰 관심을 끌고 있는데, ‘아리랑’을 대표곡으로 내세운 것이 뜻깊다.   이처럼 파죽지세로 뻗어가는 K-아트의 인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 선구자, 개척자의 땀과 눈물 덕에 지금의 영광이 있는 것이다.   그 선구자, 개척자 중 가장 앞에 서 있는 인물은 단연 백남준(1932-2006)이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20세기를 대표한 세계적인 예술가 중 한 사람,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으로 평가받는 백남준…. 그 백남준이 올해 20주기를 맞았다. 1월29일이 20주기 기일이었다.   한국에서는 20주기를 맞아 다양한 전시회와 행사가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백남준아트센터’는 2026년 한 해, “그의 평화와 실험의 유산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하며 온 세계와 공유하고 더 많은 대화와 연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우선, 1960년대 중반 나왔던 백남준의 로봇 조형물 ‘K-456’을 복원해 과거처럼 구동시켜, 로봇 오페라를 공연하는 기념 프로젝트가 눈길을 끈다. 이어서, 백남준의 영향을 받은 동유럽 작가들의 기획전, 백남준 미술사 심포지엄, 관련 퍼포먼스, 작업을 망라한 백남준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고인의 행성 우주 작업을 결산하는 기념 전시 등의 행사가 일 년 내내 열릴 예정이란다.   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한국사회에 제대로 소개하고 조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이어령 교수였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 두 사람은 한눈에 서로를 알아봤고, 벽을 허물고 친구이자 예술적 동반자로 평생에 걸쳐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   이어령은 백남준 예술의 바탕에 깔린 한국인의 문화유전자를 읽어냈고, 천재가 창조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 없는 한국의 문화풍토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령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한국의 혼’과 연결 지어 설명하는 등 한국적 미학과 철학을 담아낸 그의 예술을 해석하는 데 주력해, 한국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에 답하듯 백남준은 한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연결하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바이 바이 키플링’ ‘손에 손잡고’ 등의 혁신적 작품을 내놓았다. 또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설치하여 한국 미술이 세계 미술계에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광주 비엔날레 태동의 산파 역할을 하는 등 한국 미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지금 백남준을 다시 소환하는 까닭은 K-컬처의 바람직한 앞날을 설계하기 위해서다. 그가 겪어온 길을 살펴보면 앞날의 방향이 보이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사유는 한 시대의 기록이 아니라, 동시대의 감각과 기술, 삶의 윤리 속에서 공명하는 ‘진행형’입니다. 전쟁과 분열, 기후위기와 불신이 겹쳐지는 오늘,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의 상상력’을 필요로 합니다. 백남준은 연결을 통해 적대의 언어를 넘어서는 길을 보여주었고, 기술을 단절이 아니라 공존의 회로로 상상했습니다.”-〈백남준아트센터〉의 새해 인사 한 구절   백남준의 예술세계와 철학을 깊이 알고 배우기 위해서는 그의 육성을 새겨듣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그는 참 많은 명언을 남겼다.   “한마디로 전위예술은 신화를 파는 예술이다. 자유를 위한 자유의 추구이며, 무 목적적인 실험이기도 하다. 규칙이 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란 힘들다. 어느 시대건 예술가는 자동차로 달린다면 대중은 버스로 가는 속도다.”   “한국에 비빔밥 정신이 있는 한 멀티미디어 시대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나는 세계적인 예술가가 아닙니다. 세기(世紀)적인 예술가입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선구자 백남준 백남준 미디어아트 백남준 예술 기획전 백남준

2026.01.2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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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지휘자 금난새 어바인에 오다

지휘자 금난새가 그의 이름 새처럼, UC어바인(UCI)의 버클레이 극장으로 또 날아왔다. 올해가 벌써 세 번째 방문이다. 딸애가 대학원 동문이기도 하지만, 해마다 지인들의 초청을 받았기에 거리는 멀지만 참석했다.     ‘금난새’ 라는 독특한 이름은 1948년에 발표된 가곡 ‘그네’ 작곡가로 유명한 그의 부친 금수현이 지어준 순우리말이다. '그네'의 노래 가사는 시인이던 금난새의 외할머니 김말봉의 작품이다.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날아 구름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가더라…'   자녀들에게 한글 이름을 지어주던 애국심이 가득한 부친 금수현과 바이올린 연주자인 어머니, 금난새는 3대가 음악가 집안이다. 금 지휘자는 병역을 마치고 이십 대 후반에 독일로 들어가 어렵게 공부했다. 그는 그곳에서 처음 만나게 된 로벤스타인 교수의 배려로 6년 동안 사사했고, 그렇게 받은 은혜를 고국에서 베풀고 싶다며 실행하고 있다.     KBS 교향악단 최연소 지휘자가 됐고 임기를 마친지 14년이 지났음에도, 그는 어렵다는 클래식 음악을 쉽게 대중에게 해설하면서 국민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또 대한민국의 곳곳을 다니며 젊은 음악도를 발굴하고 실력을 펼 기회도 마련해 주고 있다.   어바인 대학교에서의 연주는 금난새의 리듬감 넘치는 해설도 시작되었다. 그는 시종 온화한 미소와 도란도란 일상에서 대화하듯 해설을 이어갔다. 큰 행사를 열게 해준 동문 후원자와 봉사자 중에 몇 사람을 호명하며 자리에서 일어나게 해 박수를 쳐준 후, 신청곡을 받아 즉흥으로 연주하던 첫 번째 해의 연주회 모습도 나의 기억에 남아있다. 덕분에 우린 ‘닥터 지바고’의 주제곡인 ‘Some where my love’를 특별출연한 피아니스트와 오케스트라 합주로 들었다. 또 대학생 시절을 추억하는 ‘러브 스토리’ 도.     금 지휘자는 섬세하면서도 유머 있는 말들로 청중을 계속 웃게 하였다. 해마다 피아니스트, 기타리스트, 하모니카 등 특별 연주자들과 함께했다. 올해는 아코디언처럼 생긴, 나도 처음으로 보는 악기, 밴도니언(Bandoneon) 연주가 등장했다.   금 지휘자는 백발의 나이에도 먼 길 달려와 이곳의 젊은 음악가들을 연결하는 수고를 마다치 않았다. 20명도 되지 않는 작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지만 훈훈한 봄기운을 가득 불어 넣어주었다. 한국의 총동문회장과 미국 동문회가 합세해 대한민국인의 긍지를 높여주니 정말 고마운 행사이다.     이민 올 때 나는 우리 가곡전집인 LP판을 가방 속에 담고 왔지만, 여전히 미국생활은 삭막하다. 최미자 / 수필가이아침에 지휘자 금난새 지휘자 금난새 어머니 금난새 어바인 대학교

2026.01.2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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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너가’는 맞는 말일까?

“너가 이걸 할 수 있겠니?” “이번에는 너가 한번 해볼래?” 상대와 말을 주고받을 때 ‘너가’라고 하는 사람이 꽤 있다. ‘너가’는 문제가 없는 표현일까?   2인칭 대명사인 ‘너’는 뒤에 ‘가’(주격조사·보격조사)가 올 때는 ‘네’가 되는 것이 우리말 어법이다. 즉 “너는 조용히 있어라”처럼 ‘는’이 붙을 경우에는 ‘너’가 되지만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니”처럼 ‘가’가 붙을 때는 ‘네’가 된다. 따라서 ‘너가’는 ‘네가’의 잘못이다.   ‘네가’를 ‘너가’라고 하는 것은 ‘내가’와 ‘네가’가 발음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내가 가는 거냐?” “네가 가는 거냐?”라고 말한다면 발음이 비슷해 어느 경우인지 헷갈린다. 이래서 ‘네가’를 ‘너가’라고 분명히 알아듣게끔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는 ‘네가’를 ‘니가’로 발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니가 가는 거냐?”라고 대부분 얘기한다.   이때의 ‘니가’ 역시 ‘네가’가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네가’를 발음으로는 구분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네가’를 ‘니가’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사전은 ‘니가’를 사투리로 취급하고 있지만 지방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니가’라는 말은 두루 쓰이고 있다.   ‘너가’는 잘못된 표현이므로 ‘네가’라고 해야 한다는 지적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네가’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네가’를 ‘니가’라고 발음하고 적을 때는 ‘네가’라고 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말 바루기 점도 영향 현실적 대안

2026.01.29. 18:40

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2025년부터 4년간만 적용되는 공제들

앞으로 4년 동안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개인소득세 공제들이 있다. 2026년에 보고하는 2025년 세금보고부터 2028년 세금보고까지만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공제들인데, 정확히 네 가지다. 이 공제들은 모두 한시적이기 때문에, 해당되는 납세자라면 놓치지 말고 챙겨야한다.   #. 먼저 팁(Tip) 소득공제다.    팁 소득은 연간 2만 5천달러까지 공제가 가능한데, 독신으로 보고하든, 부부가 함께 보고하든 관계없이 세금보고 한 건당 최대 2만5천 달러까지 소득에서 공제된다. 모든 사람이 팁 공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행적으로 팁을 받아오던 직업에만 한정되며, 이러한 직업들은 IRS가 이미 지정해 두었다. 바텐더나 웨이터 같은 식당 종업원, 택시 기사, 골프 캐디 등 전통적인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팁 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유효한 소셜시큐리티 번호가 있어야 하며, 기혼자의 경우에는 반드시 부부가 함께 세금보고를 해야만 이 공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 소득 요건도 있는데, 독신자는 연소득 15만 달러, 기혼자는 부부합산 30만 달러를 초과하면 공제가 단계적으로 줄어들고, 일정 소득 이상에서는 공제를 받을 수 없다.   #. 다음은 초과근무(Overtime) 수당 공제다.    초과근무란 주 40시간을 초과해 근무한 경우를 말한다. 앞으로 4년 동안은 초과근무 수당 중에서 1인당 연간 최대 1만2천5백 달러까지 소득 공제를 받을 수 있다. 팁 공제와 다른 점은, 부부가 모두 초과근무 수당을 받았다면 각자 1만2천5백 달러씩, 즉 부부합산 최대 2만5천 달러까지 공제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공제 역시 일정 소득 수준을 넘으면 점차 줄어든다. 주의할 점은 초과근무 수당 전체가 공제 대상이 아니라 1.5배 초과수당 중에 0.5에 해당하는 금액만 공제가 된다는 점이다.   #. 세 번째는 개인용 새 자동차 구입과 관련된 Loan 이자 공제다.    2025년부터 2028년 사이에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할 목적으로 새 자동차를 구입하면서 자동차 Loan을 받아 이자를 지급했다면, 그 이자 지급액에 대해 연간 최대 1만 달러까지 소득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중요한 조건은, 반드시 미국에서 조립된 새 자동차여야 하고, 해당 기간 동안 구입한 차량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공제 대상은 원금이 아니라 이자 납부액에 한정되며, 기존에 이미 보유하고 있던 차량이나 중고차는 이 공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 마지막으로 살펴볼 공제는 65세 이상 연장자를 위한 추가 소득공제다.    기존에도 65세 이상 연장자들은 표준공제에 더해 1인당 약 2천 달러의 추가 공제를 받아 왔으며, 이 기존 공제는 소득 수준과 관계 없이 적용되었다. 그런데 2025년부터 앞으로 4년 동안은 여기에 더해 1인당 6천 달러의 추가 공제가 새로 생겼다. 다만 이 추가 6천 달러 공제에는 소득 제한이 있다. 독신자의 경우 연소득이 7만5천 달러를 넘기면 공제가 줄어들기 시작해 17만5천 달러를 초과하면 혜택을 받을 수 없고, 기혼자의 경우에는 부부합산 소득 15만 달러부터 공제가 줄어들어 25만 달러를 넘으면 적용되지 않는다.   네 가지 공제들은 모두 2025년부터 새로 생긴 ‘Schedule 1-A’라는 양식에 정리되어 반영된다. 납세자는 먼저 소득을 신고한 뒤, Schedule 1-A라는 양식에 팁, 초과근무 수당, 자동차 이자, 연장자 추가 공제금액을 각각 계산해 합산하고, 그 금액이 다시 개인소득세 양식으로 옮겨져 과세소득을 줄이는 방식이다. 이 공제들은 자동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본인이 해당되는 항목이 있는지 확인하고, 세금보고 시 정확하게 계산해 입력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 세금보고부터 이 네 가지 공제에 본인이 해당되는 지, 꼭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활력 개인소득세 공제들 소득 공제 추가 공제

2026.01.2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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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재개발·재건축 완화 빠진 1·29 대책, 시장 불안 잠재우겠나

━ 수도권 6만 가구 공급 계획, 서울시와 협의 부족 우려스러워 ━ 착공 시기 대부분 2028년 이후…공급 절벽 해결엔 역부족 정부가 뜸 들이며 발표를 미뤘던 주택 공급 대책이 어제 모습을 드러냈다. 이재명 정부의 네 번째 부동산 정책인 1·29 공급 대책은 서울 용산과 경기도 과천 등 수도권에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서울 3만2000가구, 경기도 2만8000가구 등 6만 가구를 짓는 내용이다. 6만 가구는 판교 신도시(2만9000가구)의 2배다. 6만 가구 중 4만 가구는 이번 대책에서 새로 추가된 물량이다. 마른 수건 짜내듯 정부가 동원 가능한 땅을 모두 끌어모으고, 착공 가능 물량을 기준으로 구체적 일정을 제시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업무지구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 주택을 배치해 직주근접형 주거 수요를 다독이고, 국공유지와 공공기관 부지가 많아 사업 추진 효율성이 높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용산국제업무지구 1만 가구, 용산 캠프킴 부지 2500가구처럼 주택 물량이 당초보다 늘어난 곳은 교통 혼잡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29 공급 대책이 집값 불안심리를 잡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주택 공급 의지를 과시했지만 계획대로 될지 시장은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공급 물량에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다가 주민 반발 등에 부닥쳐 무산된 태릉골프장과 용산 캠프킴 등이 포함돼 있다. 결국 정부가 지방정부와 협력해 정책을 현실화하는 집행 능력을 얼마나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 발표된 정책에 대한 실행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정부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고 주택시장은 안정될 수 없다. 서울시와의 정책 협의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서울시는 민간 정비사업의 숨통을 틔울 대책을 건의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현장의 여건, 지역 주민의 의사가 배제된 일방적인 대책은 과거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반복하는 공염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불협화음이 생기면 예고한 주택 공급은 결국 차질을 빚게 된다. 정부가 더 소통해야 한다. 1·29 대책의 착공 시기는 대부분 2028년 이후다. 당장의 공급 절벽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시장에 주택이 안정적으로 공급된다는 시그널을 확실하게 주기 위해선 도심 공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재개발·재건축 같은 주택 정비사업의 규제 완화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 정부가 서울시와 긴밀하게 소통해 주택 공급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후속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지난해 정부는 2030년까지 수도권에 135만 가구를 착공하겠다는 9·7 대책을 발표했지만 이에 필요한 입법 과제 23건 중 4건만 완료된 상태다. 이래서는 정책에 힘이 실릴 수 없다. 과거 민주당 계열 정부는 주택 수요를 옥죄는 정책만 펼치다가 처절하게 실패했다. 이재명 정부가 정말 실용정부를 표방한다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6.01.29.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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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외연 확장은커녕 분열의 길 가는 국민의힘

━ 지방선거 앞두고 장동혁 지도부, 17분 만에 한동훈 제명 ━ 합리적 보수 정당으로 거듭나야 거대 여당 견제도 가능 국민의힘 ‘장동혁 지도부’가 한동훈 전 대표의 당원게시판 여론 조작 사건 관련 제명안을 최종 의결하면서 당 분열이 현실화했다. 제명은 최고 수위 징계여서 한 전 대표는 당적이 박탈되고 5년간 복당도 할 수 없다. 징계 사유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를 비난하는 게시글을 올렸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8일간의 단식을 마치고 장 대표가 복귀한 첫 회의에서 17분 만에 비공개 표결로 징계를 밀어붙인 것이어서 당권파의 한 전 대표 축출로 비치고 있다. 당장 한 전 대표가 “우리가 이 당과 보수의 주인이다.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밝히면서 내홍은 극에 달하고 있다. 정당 내부에서 권력 다툼을 벌이며 자중지란에 빠지는 것은 자신들이 책임질 일이지만, 제 1야당이 회복 불능 상태로 치닫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국민의힘은 정권 교체에 성공한 이후 당정 갈등과 권력 핵심부의 비리 의혹 등으로 2024년 총선에서 대패했다. 급기야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탄핵에 이어 내란 혐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은 물론이고 합리적인 보수층도 지지를 보내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진 결과가 압도적인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집권 여당의 탄생이었다. 국민의힘이 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차기 집권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당 내분부터 끝내고 합리적인 보수 정당으로 거듭났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당권 싸움에 매달리고 아직도 ‘친윤’이냐 ‘반윤’이냐 같은 노선 다툼을 지속하고 있는 게 국민의힘의 실상이다. 이런 자해적인 내분은 거대 집권 여당의 견제 세력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중도층이나 중도보수층마저 등을 돌리게 만든다. 국민의힘의 낮은 정당 지지율이 이를 보여준다. 국민의힘의 내분은 지방선거가 불과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도 계속되는 중이다. 장 대표는 아직도 ‘윤 어게인’ 세력과 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 선거에서 이길 생각이 있다면 계엄에 반대했던 한동훈 전 대표의 중도나 중도보수층으로의 지지 확장 가능성을 보고 힘을 보태도록 했어야 한다. 하지만 ‘뺄셈 정치’를 하고 있으니 선거 승리에는 관심이 없고 계파 이익을 위한 정적 제거에 매몰돼 있다는 비난이 나오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은 한국 민주주의와 보수 정치의 위기도 노출하고 있다. 각 정당에선 강성 지지층의 구미에 맞는 인물이 당권을 장악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거대 여권을 견제할 세력의 부재는 일방적 국정 운영과 대통령의 독선이라는 폐해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국민의힘이 제 위치를 찾지 못한다면 이번 지방선거에서부터 민심의 냉혹한 퇴장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2026.01.29.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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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AI 강국, 전력·전력망·에너지믹스에 달렸다

지난 1월 22일 발효된 ‘AI 기본법’(‘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에 대한 해외 언론의 반응을 보면, ‘EU AI Act’의 핵심 의무가 본격 적용되기 전에 한국이 발 빠르게 AI 규제와 진흥을 함께 다룬 법률을 발효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눈에 띈다. 한편 스타트업의 혁신 위축이 우려되며, 기본법에 AI 시스템의 에너지 소비와 효율, 전력망 계통 연계, 데이터센터 냉각수 등을 담지 않아 향후 법적·제도적 연계가 과제라는 지적도 있다. AI 경쟁, 전력망 병목에 직면 빅테크, 24/7 CFE로 전환 동향 태양광 제약 요인 극복과 함께 전력·산업인프라 통합 접근해야 어느새 AI 경쟁은 연산(반도체·데이터·알고리즘·GPU)과 인재 경쟁을 거쳐 전력 인프라 병목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빅테크의 CEO들은 줄곧 “AI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전력과 전력망, 에너지믹스, 무탄소 전원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AI 경제의 확장과 상용화, 국가 전략도 설 자리가 없다”고 경고해 왔다.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 냉각 시스템과 AI 서비스에 필요한 전력은 실로 엄청나다. 그렇다 보니 구글(알파벳)·메타·애플·아마존(AWS)·마이크로소프트는 전력 소비자에서 벗어나 전력의 구매자·개발자·시스템 플레이어로 변신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급증, 전력 확보 불확실성, 전력 계통 연계 지연과 병목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형 변압기 부족 사태로 데이터센터 전력 인입과 계통 접속이 여러 해 지연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365일 밤낮없이 24시간 정전·변동·지연 없는 고품질 전력을 공급받아야 한다. AI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빅테크는 RE100(재생에너지 100%) 기준 대신 24/7 CFE(24시간/일주일 Carbon Free Energy)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RE100은 간헐성으로 인해 시간대 부족분을 전통 에너지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구글은 이미 2030년 24/7 CFE 사용 목표를 선언했고, 국제기구(유엔 24/7CFE Compact)가 관련 기술과 인증, 운영 기준을 개발하고 있어 국제표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로선 RE100이 기업 지표에서 사실상 글로벌 표준이다. 10여 년 사이에 태양광은 세계 전력의 7%(2024년)로 올라섰고, 균등화발전원가(LCOE)도 90%나 가파르게 하락했다. 중국이 규모의 경제, 자본 투입, 산업 정책, 금융비용 하락 등의 공세로 초저가 공급망을 구축해 세계 태양광 밸류체인(폴리실리콘-잉곳(Ingot)-웨이퍼-셀-모듈)의 80∼95%를 장악한 결과다(2023 IEA). 한국 시장에서도 2020년대 중반 중국산 비중이 90% 내외로 상승했다는 분석이다. 태양광의 LCOE 값 자체는 저렴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간헐성을 보완하는 확정전원(Firm Power), 출력 변동성 보완, 송전망 구축, 주파수 제어, 에너지저장시스템(ESS)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서 훨씬 비싸진다. 에너지믹스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주파수 유지와 전압 안정, 계통 보호·제어 체계, 송전망과 배전망의 병목을 기술적·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부담이 커진다(IEA). 발전시설의 ‘실제 발전량’과 ‘설비용량’은 전혀 별개의 개념이다. 실제 발전량을 ‘설비용량×시간’으로 나눈 값이 발전설비 이용률(Capacity Factor)인데, 태양광은 13∼17%고 원자력 발전소는 75∼85%로 큰 차이가 난다. 태양광 발전단지 입지에서는 대규모 토지 수요, 지형·일사량·송전망·수용성이 변수가 된다. 이런 제약 조건으로 한국의 태양광 산업은 만만치 않다. 우선 한국의 평균 일사량(4.0kWh/㎡/일)은 세계 중위권 정도에 들지만, 태양광 자원의 시간·공간 분산이 낮아 저장·계통 안정 비용 부담이 크다. 국토의 동서 폭이 300㎞ 정도로 짧아 하나의 기상권에 들어 태양광 출력 변동이 동시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리튬 기반 배터리는 시간 단위 단기 저장에는 적합하나 장주기 저장 기술은 아직 미흡하다. 국토의 동서 폭이 4500㎞가 넘는 미국은 아침에 뉴욕에서 발전을 시작하고 오후에는 캘리포니아가 이어받아 태양광 생산 시간대가 분산된다. 따라서 광역 계통과 시간대 분산 효과로 인해 저장장치, 예비력, 계통 투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동서 폭이 5000㎞가 넘는 중국도 서부의 풍부한 태양·풍력 전력을 초고압 직류(HVDC) 송전망을 통해 동부로 송전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망과 반도체 산업 보유국인 한국이 AI 강국이 되려면 조속히 전력과 계통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원자력(특히 SMR), 수소, 장주기 저장, HVDC(초고압 송전), 에너지 수요관리, 데이터센터 에너지 효율 개선 등 전방위 에너지 정책을 산업 정책과 연계해 데이터센터, 전력, 산업입지, 에너지 안보를 한데 엮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원전 건설은 허가 단계부터 10년 이상 걸리고 험로가 예상되지만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이다. SMR의 조기 건설도 서둘러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안전성을 전제조건으로 기존 원전의 운영 기간을 늘리는 것이 불가피하다. AI 강국이 전력 인프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김명자 KAIST 이사장·전 환경부 장관

2026.01.29.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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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근의 시시각각] 경제부총리가 안 보인다

“정부에 경제부총리는 없고, ‘AI 부총리’만 두 명이 있다.” 요즘 관가엔 이런 말이 돌아다닌다고 한다. 한 명의 AI 부총리는 이번 정부 들어 부총리급 부처로 격상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배경훈 장관을 일컫는다. 민간의 대표적 AI연구소 출신인 데다 부처의 핵심 과제와도 맞물리니 그렇게 불릴 만도 하다. 그런데 또 한 명의 부총리인 구윤철 재정경제부 장관 역시 경제부총리가 아닌 AI 부총리로 불리고 있는 건 조금 성격이 다르다. 경제부총리가 본업에선 목소리를 내지 않고 부업에만 신경을 쓴다는 핀잔이 섞여 있는 얘기다. 부동산 세제까지 대통령 SNS로 조율·정제된 ‘정책의 언어’ 없어 ‘사각지대’ 궂은일은 누가 챙기나 구 부총리가 따로 저서를 낼 정도로 AI에 관심이 많은 건 익히 알려져 있다. 한때 부처에 AI국을 신설하겠다며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AI 업무를 담당하는 부처가 있는데 따로 국 단위 부서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반대에 부닥치면서 무산됐다. 지난해 말 대통령 업무보고, 이달 초 재정경제부가 내놓은 경제성장 전략의 제1 키워드 역시 AI였다. AI 육성과 산업 전환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국가적 자원을 동원해 승부를 걸어봐야 할 주제인 것도 맞다. 하지만 정부에 딱 둘뿐인 부총리가 모두 AI에만 매달려 있어야 할 정도로 우리 경제에 다른 현안이 없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사이 경제부총리에 기대되는 ‘컨트롤타워’ 역할은 방기되거나 누군가가 대신 나서고 있다. 부동산 세제가 단적인 사례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조치를 연장하지 않고 오는 5월 종료하겠다고 선언했다. 언젠가는 손봐야 할 ‘비정상으로 인한 불공정한 혜택’이란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정치의 언어’다. 예민한 경제 정책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단순한 의지나 도덕적 판단을 언급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부동산 문제에선 특히나 의도와 결과가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건 앞서 문재인 정부 시절 충분히 겪어보지 않았던가. 양도세 문제만 해도 다주택자 당사자는 물론이고 부동산 시장 수급과 돈의 움직임에도 파급 효과를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예상되는 효과와 부작용은 무엇이고,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당국의 설명이 나와야 한다. 여기에 보유세 등 다른 부동산 세제와의 정합성은 어떻게 맞춰갈지 로드맵도 필요하다. 그래야 불확실성이 줄고 시장 참가자들이 미래를 예상해 합리적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자면 사전에 관계부처들이 치밀하게 협의하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조율되고 정제된 ‘정책의 언어’를 발신할 책임은 누가 뭐래도 경제부총리에게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단편적인 게시 글이 이어지는 동안 경제부총리에게선 어떤 설명도 나오지 않았다. 사실 종료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걸 고려하면 아무리 늦어도 연초 경제성장 전략 발표 때는 방향을 제시했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부동산 세제에 관한 언급은 “연구용역, 관계부처 TF 등을 통해 합리화 방안 마련”이란 언급뿐이었다. 시장에서 중과 유예가 올해도 그대로 갈 것이란 기대가 퍼진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컨트롤타워 기능의 약화가 온전히 구 부총리 개인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각 부처가 목을 매는 예산 편성권이 떨어져 나간 마당에 경제부총리에게 예전의 막강한 조정력을 기대하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문제는 그러는 사이 여러 부처에 책임이 분산된 사각지대의 궂은일들이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1년째 해법을 못 찾는 홈플러스 회생 문제가 대표적이다. 고용과 유통산업, 금융시장에 큰 파문을 일으킬 ‘뇌관’이지만 고용부도, 산업부도, 금융위도 나서길 주저하고 있다. 컨트롤타워라는 명예로운 별칭은 단지 그 권한이 크기 때문에 붙진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빛은 안 나도 꼭 해야 할 일을 독려하고 끌어가는 책임감을 일컫는 의미가 아마도 더 클 것이다. 조민근([email protected])

2026.01.29.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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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의 시선] ‘어니스트’한 부동산 정책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흑백요리사2’에서 안성재 셰프가 말한 “어니스트(honest)한 음식”이라는 심사평이 화제가 됐다. 재료의 맛을 살리면서 과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요리사의 의도가 요리에 구현돼 먹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돼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규제가 아니라, ‘어니스트’한 정책이다. 양도세 중과 재시행, 정상화 아냐 집값 급등에 따른 고육책일 뿐 과도한 도덕적 의미 부여는 위험 지난 23일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X(옛 트위터)에 5월 9일로 끝나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를 연장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25일엔 하루에만 4건의 글을 연이어 올렸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습니다. 버티는 이익이 버티는 비용보다 크게 해서는 안 되겠지요.” 청와대는 이를 두고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27일 국무회의에서 “비정상적으로 부동산에 집중된 자원 배분 왜곡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눈앞의 고통과 저항이 두렵다는 이유로 불공정과 비정상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문제의식 자체는 공감한다. 그러나 접근 방식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먼저 양도세 중과 유예 중단과 관련해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지난해 10·15 부동산 대책으로 조정대상지역이 서울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양도세 중과 대상 범위도 넓어졌다. 이 상태에서 유예를 종료하는 것은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중과세를 확대 시행하는 것이다. 청와대도 이를 인식한 것 같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28일 기자간담회에서 “되돌아보니 5월 9일도 좀 성급하게 결정된 날짜더라. (지난해 조정대상지역 확대로) 그분들은 갑자기 범위가 넓어져 중과 대상이 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종료는 하겠지만 좀 더 기간을 주는 내용을 포함해 논의하고 있다는 게 김 실장의 설명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는 할 수 있다. 하지만 3주택자 최고세율이 82.5%(지방소득세 포함)나 되는 것을 어떻게 정상화라고 할 수 있나. 집값 과열에 대응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결과적으로 이재명 정부 초기의 부동산 정책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반증에 가깝다. 지금 서울 전역의 아파트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실수요자가 아니면 집을 살 수 없고, 다주택자는 처분도 어렵다. 어떤 상황이 되면 이를 해제할 것인가. 이 대통령이 지난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세금 규제에 대해 “가급적 안 하는 게 바람직하다. 마지막 수단으로 하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마지막엔 세금 정책을 집값 대응 수단으로 쓰겠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은 조심해야 할 때다. 집값을 이유로 한 정책 선택에 과도한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정책은 퇴로를 잃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강한 언어가 아니라, 차분한 설계다. 한국의 부동산 세제는 조세 원칙에 충실하기보다 시장 상황에 대응하느라 누더기가 됐다. 조세의 기본은 납세자가 납득할 수 있는 예측 가능성과 지불 능력에 맞는 적정한 부과에 있다.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통합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정부도 용역을 주는 등 개편 방안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청와대의 메시지는 엇갈린다. 김용범 실장은 “한두 달 안에 발표할 내용이 아니다. 많은 조합이 가능하고, 종합적인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비정상’과 ‘불공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도덕적 언어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지난해 조정대상지역 확대로 졸지에 양도세 중과 대상이 된 이들의 반발을 ‘버티기’나 ‘압력을 넣어 정책을 흔들려는 시도’로 바라보는 시선이 적절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향후 정부가 부동산 세제 개편안을 낸다면 시장 대응용 조치와 흔들리지 않는 기본 원칙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이를 뒤섞어 정의로운 것으로 규정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부동산 정책이 성공하려면 어니스트한 음식처럼 내놓아야 한다. 조세의 기본 원칙(재료 본연의 맛)에 충실하게, 과장하지 말고, 세금을 내는 사람(먹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을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것으로 포장하지 말라. 그것은 재료 본연의 맛을 가린 채, 강한 양념에 의존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대통령의 말처럼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역대 정부는 부동산 정책에서 그러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정책 목표 설정과 집행에 이르는 과정이 어니스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원배([email protected])

2026.01.29.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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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미리 본 현대차 로봇 센세이션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저평가만 부르짖다 내가 먼저 죽을 주식.’ ‘희망고문의 끝판왕.’ 개미 투자자들은 현대자동차를 오랫동안 이렇게 불러왔다. 실적과 전망에 상관없이 주가는 늘 박스권이었기 때문이다. 반전이 일어난 건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6 무대에 차세대 전동형 휴머노이드 ‘아틀라스’가 등장했을 때였다. “문화적 토양에서 사업 성장” 테이트모던 등 10년간 후원 최근 로봇 혁신과 무관치 않아 투자든 후원이든 길게 봐야 아틀라스가 네티즌 표현대로 “최소 3년 짬밥 직장인의 출근 모습”으로 인간적으로 걷다가 돌연 인간에게 불가능한 360도 회전 관절을 선보이자 사람들은 열광했다. CES 공식미디어 파트너인 C넷은 “가장 자연스러운 보행과 양산 모델에 가까운 완성도”를 언급하며 아틀라스를 ‘베스트 로봇’으로 선정했다. 곧 현대차 주가는 폭등하며 사상 처음으로 40만원 선을 넘겼다. (29일 종가 52만8000원) 시장이 현대차를 ‘자율주행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는 전통 자동차 제조사’에서 ‘로보틱스와 인공지능을 결합한 피지컬 AI 분야의 선두주자’로 재인식한 결과다. 2014년 시작된 공격적 미술 후원 필자가 현대차의 변화를 감지한 계기는 다소 특이하다. 산업부 기자가 아닌 문화부 기자로서 2014년부터 시작된 현대차의 공격적인 현대미술 후원 프로젝트들을 보며 ‘진부한 자동차 회사가 아니네?’라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특히 2021년 현대차가 독일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협업 전시에서 당시에 막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개 ‘스팟’과 초기 아틀라스를 선보였을 때, 그리고 2022년 아트선재센터 전시 ‘서울 웨더 스테이션’에 현대차 로보틱스랩이 참여해 스팟을 뛰놀게 하는 것을 보며 ‘이 회사는 그냥 자동차 제조사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특정 기업을 홍보하거나 주식 매수를 권하려는 것이 아니다. 개미 투자자들의 추격 매수에 의한 단기간 급등은 오히려 불안 요소라고 본다. 또한 피지컬 AI 진검 승부는 이제부터다. 현대차 아틀라스가 하드웨어 완성도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임을 인정받았고 소프트웨어는 구글 딥마인드와의 협업으로 보완 중이지만, 라이벌인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옵티머스’는 자동차 수백만 대에서 수집한 자율주행 데이터로 인공지능을 빠르게 고도화하고 있다. 게다가 “노사 합의 없이 단 한 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는 노조와의 협의 및 AI와 인간의 공존에 대한 사회적 책임 등 여러 산적한 과제가 있다. 그럼에도 현대차의 사례를 주목하는 이유는 기업의 예술 후원이 그 기업의 철학과 정체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후원으로 미술 생태계를 지탱해온 기업은 많다. 삼성그룹이 ‘이건희 컬렉션’ 기증으로 한국 문화사의 한 획을 긋기 전부터 다양한 문화사업을 펼쳐온 것이나, BMW가 1970년대부터 ‘아트 카’ 시리즈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럭셔리 패션 그룹인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는 재단 미술관 및 아티스트 협업을 통해 예술을 제품에 이식하고, 구글은 ‘아트 앤 컬처’ 프로젝트로 인류 문명을 데이터화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후원이 장기적이며 기업의 본질적 성격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차의 미술 후원 프로그램에서 눈여겨볼 것은 장기 전략이다. 자체 미술관을 세우는 대신 국내의 국립현대미술관 및 영국 테이트모던, 미국 LA카운티미술관(LACMA) 등 세계적 거점 미술관들과 10년 장기 파트너십을 맺고 전시와 연구를 후원하는 길을 택했다. 2014년 당시 영국 BBC방송 미술 에디터였던 유명 저자 윌 곰퍼츠가 “10년 넘게 장기 계약으로 예술 후원을 하는 건 매우 드물고 리스크가 크다”며 “기대만큼 브랜드 이미지 상승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썼을 정도였다. 당시 현대차 관계자에게 그 우려를 전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좋은 자동차 모델 하나 개발하는 데 최소 5년이 걸리듯 우리는 장기 사이클로 움직인다. 우리의 목적은 우리의 아트 컬렉션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향후 10년간의 세계 미술사를 새로 쓰는 것이다. 비즈니스 결정은 결국 그 시장의 문화적 토양 위에서 이루어지는데, 그 토양 자체에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 현대차는 지난해 11월, 테이트 미술관과의 파트너십을 2036년까지 추가 연장했다. 브랜드 이미지 등에서 성과를 거뒀다는 방증일 터이다. 이렇게 해외 영토로 스며들어 가 그 지형을 바꾸는 전략이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를 감행한 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현대미술은 인문학부터 공학까지 아우르는 다학제적 영역이다. 지난 10여년간 실험적인 현대미술 현장을 후원하며 축적한 안목은 현대차의 모빌리티와 로봇 디자인 철학에도 유연한 토양이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잭 재코우스키 부사장이 아틀라스에 대해 “인간의 동작을 단순히 베끼지 않고, 그 장점을 취하되 때로는 인간 이상의 기능을 구현한다”고 밝힌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다. 2000년대 이후 현대미술계의 화두인 ‘포스트휴머니즘’ 즉 인간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AI나 로봇 같은 비인간과의 공존 및 결합을 추구하는 사고와 맞닿아 있다. 물론 장기적인 예술 후원이 계속 실적의 보증수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BMW는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는 시장에서 부침을 겪고 있고, 오랜 기간 디지털 아티스트 생태계를 지원해온 어도비 역시 생성형 AI의 거센 파고 속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러한 기업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지닌 ‘철학의 맷집’ 때문이다. 위기 속에서도 브랜드가 중심을 잃지 않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회복탄력성은 바로 이러한 문화적 자산에서 비롯된다. 미술 투자도 뚝심 있어야 그래서 지인들이 미술 투자를 물어올 때마다 기자는 두 가지로 답한다. “미술사 공부를 할 시간이 없다면, 작품을 사기보다 미술을 제대로 장기 후원하는 기업의 주식을 사세요.” 그리고 덧붙인다. “작품을 사고 싶다면 정말 좋아하고 후원하고 싶은 작가의 것을 사세요. 작가 10명의 작품을 사면 그중 한두 작가의 작품만 가격이 오를 것입니다. 모두 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애정을 가진 작품이기에 후회는 없을 것입니다.” 기업 투자든 미술 투자든 그 본질은 같다.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애정, 그리고 자신의 가치 판단을 믿고 견디는 뚝심이다. 특히 미술 투자는 기업의 사이클보다 훨씬 긴 호흡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소영([email protected])

2026.01.29.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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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푸른 하늘’의 그림자

“비싸도 너무 비싸요! 아예 켜지도 못하겠다니까요!” 지난 20일 중국 허베이성 랑팡시 한 농촌 마을에서 만난 노인이 소리쳤다. 기자와 대화를 나누며 손으로는 주방에 설치된 가스 난방기를 가리켰다. 안방에선 어린 손녀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집안에서도 두꺼운 점퍼 차림으로 생활한다는 그는 “낮에는 난방기를 틀 엄두조차 않는다”면서 “밤에 켜두더라도 동이 트자마자 곧바로 끈다”며 한숨 쉬었다. 곁에 있던 그의 부인은 기자를 향해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100가구 남짓 사는 이 마을 입구에선 석탄금지구역(禁煤區)이라고 적힌 파란색 표지판이 외지인을 맞는다. 허베이성 당국은 2017년부터 석탄 연료 사용을 줄이는 정책을 폈다. 대기 환경을 보호한다는 이유에서다. 그 이후 집마다 노란색 가스관이 외벽에 달라붙었다. 투박하게 구멍을 낸 뒤 시멘트를 발라 마무리한 흔적도 보였다. 온 마을을 돌아봐도 배기관에선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고작 2~3곳에서만 뽀얀 연기가 흘러나왔다. 이날은 낮에도 기온이 영하 10도를 오갔다. 혹한에도 가스난방은 언감생심이다. 돈 때문이다.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한 한 농민은 “겨우내 가스비로만 4000위안(약 82만원)을 넘게 내야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허베이성 농가의 연 소득은 400만원 정도다. 당국 정책 비판에 인색한 관영 매체들마저 비판에 나선 이유다. 한 매체는 “돈을 태워 난방하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드론까지 띄워 단속하는 터라 예전처럼 석탄을 쓸 수도 없다. 불만은 중국 수도이자 ‘높은 분들’이 몰려 사는 베이징으로 향한다. 허베이는 베이징을 동서남북으로 둘러싸고 있다. 농가가 앞장선 ‘푸른 하늘’ 정책에 힘입어 베이징 공기는 관측 이래 가장 맑은 수준을 기록했다. 고생은 허베이가, 혜택은 베이징이 본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도시와 농촌 간 소득 격차, 공공 서비스 차별 문제로까지 확산한다. 그러나 고작 며칠 사이 아이러니함을 짚어낸 관영 매체 기사는 연이어 사라지고 일부 지방 정부가 보조금 지급을 확대하기로 발표했다는 보도가 ‘허베이 난방’ 키워드를 뒤덮었다. 베이징 특파원으로선 익숙한 장면이다. 하지만 가리고 지운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다. 비싸고 좋은 반창고를 붙인다고 근본적 치료가 될 순 없는 노릇이다. 비단 중국만의 문제일까. 희망 회로를 돌리는 한국 경제는 무엇을 가리고 있을까. 새파란 베이징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멀리서 왔으니 식사하고 가라”던 노인의 입김 섞인 미소를 떠올린다. 이도성([email protected])

2026.01.29.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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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배의 퍼스펙티브] 전작권 전환 논의 속도…‘사이버-AI-핵 넥서스’ 역량 키워야

급변하는 한반도 안보 환경 최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둘러싼 한·미 간의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해 8월 현 정부 임기 내 전환이 목표로 제시되고 지난해 11월 한·미 국방장관은 전작권 전환에 필요한 검증 절차를 확인했다. 지난 2일에는 올해를 전작권 전환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국방부 장관 신년사가 나오기도 했다. 미국도 전작권 전환을 마다치 않는 분위기다. 지난 23일 발표된 미국의 국방전략(NDS)은 북한 억지에 대한 ‘주도적 책임’을 한국에 맡기고 미국은 ‘결정적이지만 제한적인 지원’을 담당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진전에도 향후 전작권의 안정적 전환을 위해서는 풀어가야 할 과제들이 많이 쌓여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억지 차원에서 제기되는 ‘사이버-인공지능(AI)-핵 넥서스’ 역량의 구축이 시급하다. 국방장관 “올해는 전작권 전환 원년”…미국도 마다치 않는 분위기 북, 핵-사이버 공격 연계 전략…AI는 ‘결합의 고리’ 역할 수행 ‘핵은 핵으로 막는다’는 기존 개념 넘어 ‘비대칭적 억지’ 개발해야 ‘사이버-AI-핵 넥서스’ 전략적 중요성 이해하고 담론 형성 시급해 ‘연결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nectere’에 어원을 두는 넥서스(nexus)는 단순한 ‘연결의 상태’라기보다는 여러 요소를 엮어주는 ‘결합의 고리’를 의미한다. 넥서스는 어느 한 요소가 다른 요소에 의존하면서도 서로 제약하는 양(陽)과 음(陰)의 피드백을 통해 생성된다. 각 요소 간의 긴장 관계로 인해 시스템을 구성하는 각 요소의 최적화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관계의 결합이 넥서스다. 어느 하나를 강조하면 다른 문제가 생기고, 이를 메우면 다른 데가 뚫리는 상황을 떠올리면 된다. 최근 미래전(戰)의 새로운 양상으로 주목받는 사이버-AI-핵 넥서스는 그 대표적 사례다. 특히 이 구도에서 AI는 핵과 사이버가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창발하는 결합의 고리 역할을 한다. ‘AI 있는 핵’과 ‘AI 없는 핵’의 차이 우선 주목할 것은 최근 강대국들의 핵전략 경쟁 과정에서 추진되는 AI와 핵의 결합, 즉 ‘AI-핵 넥서스’다. AI가 도입돼 핵무기 체계의 스마트화를 통해 핵 지휘통제체계(NC2)가 고도화되고 조기경보, 표적탐지, 미사일 방어, 정밀타격 등의 역량이 증대됐다. AI와 핵의 결합은 공격우위의 상황을 조성해 1차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과거 핵 균형의 기반이 됐던 상호확증파괴(MAD)의 관념도 흔들어 놓고 있다. AI-핵 넥서스의 군비경쟁으로 촉발된 안보 딜레마의 심화는 기존에 핵을 기반으로 형성된 국제질서의 안정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견된다. 결국 ‘AI 있는 핵’과 ‘AI 없는 핵’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져서 AI-핵 넥서스의 역량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의 핵은 그 효용성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AI-핵 넥서스를 역방향으로 읽으면 AI의 도입은 핵 역량을 제약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방어의 시각에서 보는 AI는 핵 공격을 억지하는 수단이 된다. 특히 한국과 같이 ‘핵은 없지만 AI는 있는 나라’에 주는 전략적 함의가 크다. AI의 도입은 킬체인(Kill Chain), 한국형 미사일 방어(KAMD), 대량응징보복(KMPR)으로 대변되는 ‘3축 체계’를 업그레이드해 그 억지 효과를 높일 것이다. 한·미 동맹도 과거 미국의 핵우산을 활용하는 ‘확장 억지’ 또는 ‘재래식-핵전력 통합(CNI)’의 발상을 넘어 미국의 AI-핵 넥서스 역량을 활용하는 ‘디지털 확장 억지’로 나아갈 필요성이 제기된다. AI 활용한 북핵 억지 효과 이러한 ‘AI 억지’의 구체적인 효과는 흔히 의사결정의 프레임으로 원용되는 탐지(sense)-이해(make sense)-실행(act)의 세 단계에 걸쳐서 나타난다. 첫째 AI를 활용한 우주 감시·정찰 역량의 증대, 즉 ‘AI-우주 넥서스’의 억지 효과다. AI 기반 센서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우주 공간의 인공위성 기반 ‘탐지’ 능력이 고도화되면서 핵 자산의 비닉·엄폐·기동이 쉽지 않아졌다. AI와 결합해 능력이 향상된 한·미의 군사 정찰위성과 다출처 영상융합체계가 북한 전역을 실시간 감시·정찰하게 되면서 북한은 자기의 이동식 발사대와 지휘통제 시설, 핵탄두 저장시설 등이 언제 어떻게 탐지·추적되는지를 확신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자신의 도발이 즉각 탐지·추적될 수 있다는 인식은 일종의 ‘감시와 훈육의 효과’를 낳는다. 이러한 상황은 은닉비용을 높이고 기습효과를 낮춰서 북한의 선제공격을 억지하는 효과를 기대케 한다. 둘째 AI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통합한 지휘통제체계의 구축, 즉 ‘AI-데이터 넥서스’의 억지 효과다. 최근 미국은 다영역작전(MDO)의 수행을 위해 기존에 각 군으로 분절된 지휘통제체계를 통합해 ‘합동 전 영역 지휘통제체계(JADC2)’로 알려진 차세대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JADC2 구축의 목표는 AI를 활용해 탐지에서 타격에 이르는 지휘관의 의사결정 주기를 극적으로 단축함으로써 적이 예측할 수 없는 속도와 패턴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데 있다. 사실 더 빨리 ‘이해’하고 더 나은 결심을 하는 역량은 북한에 자신들의 핵 사용 시도 자체가 사전에 무력화될지도 모른다는 ‘시간의 압박’을 부과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형 JADC2 구축과 한·미 간의 연동성 확보를 통한 ‘거부 억지’의 효과를 기대케 한다. 끝으로 AI를 활용한 재래식 무기 역량의 증대, 즉 ‘AI-재래전 넥서스’의 억지 효과다. 전통적으로 비핵 전력은 핵무기의 보조적 ‘실행’ 수단으로만 여겨졌으나 최근 AI와 결합해 핵무기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하는 전략비핵무기(SNNW)가 출현했다. SNNW는 핵 문턱을 넘지 않으면서도 즉각적이고 정밀한 재래식 공격을 통해 ‘보복 억지’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전개는 재래식 무기를 활용해 북핵에 대한 비대칭 억지력을 고민해야 하는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SNNW는 아니지만 최근 공개된 장사정포 갱도 타격용의 전술지대지유도무기(KTSSM, 일명 우레)나 초심도 지하시설 타격용의 현무-V 탄도미사일과 같은 재래식 무기는 보복 억지의 효과를 기대케 하는 전술·전략 자산이다. 사이버 위협 대응에도 AI는 필수 더 나아가 AI와 핵의 사이에 ‘사이버’ 변수가 들어오면 그 넥서스의 구도는 더 복잡해진다. ‘사이버-핵 넥서스’는 핵무기 체계에 AI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디지털 네트워킹, 소프트웨어 의존성, 원격 접속 기능 등이 확대되면서 생성되는 사이버 취약성에 주목한다. 핵무기에 대한 사이버 공격은 핵 지휘통제체계 해킹 이외에도 악성코드 설치와 데이터 조작, 시스템 오작동 등을 통해 핵무기 체계 자체의 손상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사이버 공격의 경우보다 더 위협적이다. 한반도 맥락에서는 핵무기 체계에 대한 공격이 아니어도 핵무기 변수와 연계된 북한의 사이버 공격이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핵과 사이버는 양날의 보검’이라며 핵 개발과 사이버 공격을 연계하는 사이버-핵 넥서스의 전략을 펼쳐왔다. AI 기술이 사이버 공격에 활용되는 ‘AI-사이버 넥서스’는 더 골치 아픈 문제를 일으킨다. 최근 생성형 AI를 활용한 시스템 공격, 악성코드 생성, 알고리즘 조작, 데이터 오염, 영향력 공작 등이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AI 활용 사이버 공격은 인간의 개입 없이도 핵무기 체계의 교란과 마비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AI에 의한 자율화된 사이버 공격이 사용자의 통제를 벗어나거나 혹은 AI 알고리즘에 내재한 기술적 오류와 편향이 불거져서 발생할 비의도적 위험까지 상정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향후 북한의 사이버 공격도 AI를 활용하여 그 규모와 속도를 키우고 그 정교성도 더해갈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AI-사이버 넥서스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방어자도 마찬가지로 AI를 활용한 사이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억지 차원에서 추구할 사이버-AI-핵 넥서스 역량의 구축은 향후 전작권 전환의 과정에서 풀어가야 할 큰 과제 중의 하나다. 전작권 전환이 끝내 완수해야 할 목표라면 사이버-AI-핵 넥서스 역량의 구축은 핵심 필요조건이다. 이러한 조건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핵뿐만 아니라 AI와 사이버 변수를 엮어서 보는 넥서스의 발상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핵은 핵으로 막는다’라는 ‘대칭적 억지’의 개념도 넘어서야 한다. 이미 한반도 안보 환경은 사이버와 AI·핵이라는 변수가 형성하는 비대칭적 위협의 구도를 펼쳐놓고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넥서스의 난제를 풀어갈 ‘비대칭적 억지’ 개념의 개발이다. 특히 사이버-AI-핵 넥서스의 전략적 중요성을 이해하고 이를 추진할 담론의 형성이 시급하다.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26.01.29.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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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구멍 많은 인사청문회 제도 수정·보완해야

이재명 정부의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였던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이 인사청문회 이후 지명 철회됐다. 충격·실망·분노의 여의도 인사청문회 드라마가 28일 만에 막을 내렸다. 통합·탕평·실용을 명분으로 3선 의원 경력의 야당 출신을 신설된 정부기관의 수장으로 임명하려던 이 대통령의 인사는 후보자의 보좌관 갑질 논란, 주택 부정 청약 의혹, 자녀 특혜 입학 의혹 등에 막혀 좌절됐다. 개인정보 내세워 자료 거부 남발 무용론 있지만 이원화 검토하고 본인·가족 자료제출 법에 못박길 이번 인사청문회 파행은 후보자에 대한 자격 논란과 함께 자료 제출 미비 문제를 드러냈다. 후보 지명 발표 당일 국민의힘은 “현 정권에 부역”, “사상 최악의 해당 행위” 등 거친 비난에 이어 이 후보자를 즉각 제명했고, 핵심 자료 제출 미비 등을 이유로 인사청문 보이콧을 선언했다. 하지만 후보자가 자료를 일부 추가로 제출한 데다 “소명 기회는 줘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지난 23일 가까스로 청문회가 개최됐다. 그런데도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증폭되면서 지명 철회로 이어졌다. 파행적 인사청문회 문제는 단지 이 후보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핑계로 질문을 요리조리 피해가고, 개인정보를 빌미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후보자의 미꾸라지 행태는 반복됐다. 야당은 후보자의 도덕성을 집중적으로 흠집 내고, 여당은 자기편 감싸주기로 일관하는 식상한 청문회 진행 패턴도 여전하다. 성난 여론을 아랑곳하지 않고 인사권만 고집하는 대통령의 독선적 행동은 2000년 6월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이래 반복됐다. ‘귀 막고 며칠만 버티면 된다’ 식으로 대응한 후보자들이 실제로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공직을 차지하는 사례가 많았다. 과연 이런 인사청문회가 필요한지 의구심이 커지고, 무용론조차 제기된다. 그런데도 권력분립 및 견제와 균형을 표방하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고치자는 개헌 요구가 분출한 국가에서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기 위해 여야 합의로 도입된 인사청문회를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 직선 대통령제라는 수직적 민주화의 성취만큼이나 국회와 대통령의 견제·균형이라는 수평적 민주화도 성숙한 민주주의의 제도화에 필수불가결해서다. 그렇다면 현실적 과제는 국회가 대통령 인사권을 좀 더 실효적으로 견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유능한 공직 후보자 군을 발굴하기 위해 개선안을 찾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것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이번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자료 제출과 후보자 윤리 관점에서 개선 방안을 모색해보자. 먼저 후보자의 자료 제출을 실질적으로 강제하려면 인사청문회법을 개정해 자료 제출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후보자 개인과 가족의 사생활을 적정선에서 보호하면서도 제출 의무가 있는 자료 범위를 지금보다는 더 확대해야 한다. 현행 인사청문회법 5조 1항에 따르면 후보자는 직업·학력·경력, 병역, 재산신고 사항, 납세, 범죄경력 등 5개 영역에서 증빙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많은 경우 후보자 자신에 관한 정보로 국한한다. 그러나 후보자의 청렴성·도덕성·준법성을 엄격하게 검증하려면 부동산 거래, 세금 납부, 자산 증식 과정 등 넓은 영역에서 본인은 물론 배우자·자녀·부모 관련 정보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처럼 검증에 필수불가결한 정보들이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제공되지 못한다면,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실효적인 도덕성 검증은 부실해진다. 따라서 여야는 인사청문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에 필요한 자료라 판단되면 지금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제출하게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 다만 사생활 침해를 우려해 최적의 인물이 공직 진출을 꺼린다면 이는 국가적으로 손실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청문회 이원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도덕성 평가는 비공개로 하고, 전문성과 역량 평가는 공개로 하자는 것이다. 현행 인사청문회법 14조 2항에는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명백한 경우’엔 위원회 의결로 비공개로 진행할 수 있다. 비공개로 진행하는 도덕성 검증 청문회에서 후보자와 가족이 관련 자료를 충실하게 제출하도록 필요하다면 법적 근거를 보강하면 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2026.01.29.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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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주의 고려, 또 다른 500년] 정변 가담해 출셋길, 나쁜 권력 옹위하며 승승장구

권력자와 결탁해 활개친 무뢰배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각 자기 나름대로 불행하다.” 10대 학창 시절에 톨스토이의 이 문장을 읽으면서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고 지나쳤다. 그런데 살다 보니 참 옳은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나름대로 불행하다는 대목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세상에 걱정거리 없는 집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동서고금에 불행 요인이 없는 나라가 어디 있겠나. 다만 그것을 찾아서 큰 문제가 되지 않게 관리하면 국운이 연장되고, 만약 그러지 못하면 큰 혼란에 빠지거나 심한 경우 망국의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국민 다수가 법을 경시하고 공공연히 어기면 어떻게 될까? 법을 어기는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있지만, 법의 권위가 실추되어 불법이 만연하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되는가 말이다. 계림공 집권 도운 척준경이 첫 사례 권력과의 공생 관계 갈수록 심해져 정중부 죽이고 권력 잡은 경대승 집 안의 사병조직 무뢰배로 채워 국왕 타락하자 무뢰배 온갖 난동 불법 판치는 나라에 미래는 없어 몰락한 집안 자제들의 일탈 고려시대에 무뢰배(無賴輩)란 말이 있었다. ‘성품이 막되어 예의와 염치를 모르고 함부로 행동하는 무리’라는 뜻이다. 대개는 젊은 사람들이어서 악소(惡少·나쁜 젊은이)라고도 불렀다. 이들은 길 가는 사람들의 재물을 빼앗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 온갖 범죄를 저질렀고, 대담하게 관청에 불을 지르고 공공 재물을 훔치기도 했다. 법이 있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무뢰배로 이름이 드러나는 첫 인물은 척준경이다. 그는 곡주(황해도 곡산)의 향리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가난한 탓에 공부를 하지 못하고 무뢰배들과 어울리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고려시대 향리 자제들은 대개 과거 급제를 목표로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일탈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척준경을 비롯한 무뢰배가 등장하는 시기는 12세기, 고려 중기부터였다. 그때 고려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12세기에 고려는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앞선 11세기 100년의 평화가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1019년 귀주대첩으로 거란의 침략을 물리친 데 이어 적극 외교를 통해 전쟁을 종식시킨 것이 주효했다. 국내 정치도 안정되었다. 11세기 후반 문종의 치세(1046~1083년)에는 각종 제도가 완성되는 등 모든 면에서 국가의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반란이나 정쟁, 민란 같은 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라 안팎이 편안한 가운데 농경지가 개간되고 수리 시설이 확충되는 등으로 농업 생산이 늘었고, 그 성과는 다음 세기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어두운 뒷면도 있었다. 경제 발전의 국면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었으며, 권력을 앞세운 지배층의 수탈이 일상화되었다. 기회는 누리는 사람들에게만 집중되고 발전의 성과는 소수에게 독점되었으며, 정치적 안정기에 권력을 강화한 지배세력은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기 시작했다. 그 결과 몰락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중에서 무뢰배가 되는 사람이 나타났다. 향리 계층에 속한 척준경이 공부를 못 할 정도로 가난했다는 걸 보면 어떤 사정인가로 몰락했을 가능성이 크다. 기회를 살리지 못해 빈곤해진 사람들, 권력자에게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은 당연히 사회에 불만을 가졌을 것이지만 모두가 무뢰배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수는 소작인이 되거나 심지어 노비가 되기를 감수하고 살길을 찾았다. 어떤 사람들은 고향을 등지고 타처에서 떠돌며 불안정한 삶을 이어갔다. 무뢰배의 길로 들어선 것은 오히려 극히 소수였다. 그럼에도 무뢰배가 한때의 현상으로 그치지 않은 것은 다른 한 편에 그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11세기 말에 벌어진 왕위 쟁탈전이 그 시작이었다. 14대 헌종이 어리고 병약하자 왕의 이복동생인 한산후를 옹립하려는 이자의와 왕의 숙부인 계림공이 후계 자리를 놓고 내전을 벌였다. 이때 두 사람 모두 무뢰배로 구성된 사병을 동원했다. 지방의 한낱 무뢰배였던 척준경은 계림공을 따랐고, 계림공이 승리해서 왕위에 오르자(15대 숙종) 벼슬을 얻는 데 성공했다. 무뢰배의 출셋길이 처음 열린 것이다. 그 뒤로는 전쟁이 이어졌다. 12세기 초부터 여진과 전쟁이 시작되자 무뢰배들이 군인이 되어 참전했다. 이 전쟁에서 척준경은 공을 세웠고, 윤관의 눈에 들어 승승장구한 끝에 이자겸과 권력을 다투는 이인자의 자리까지 올랐다. 무신 권력자 이의민도 무뢰배 출신이었다. 고향 경주에서 불량배 짓을 해서 온 고을의 근심거리가 되었는데, 처형되기 직전 그의 완력을 아깝게 여긴 관리의 추천으로 군인이 되어 인생 역전의 기회를 잡았다. 무신정변 이후 무뢰배 세상 1170년 무신정변은 무뢰배들에게 마치 제 세상을 만난 것과도 같았다. 정변 당시 이의민이 사람을 많이 죽인 공으로 승진했다고 하니, 무신들이 만들어준 무대에서 얼마나 많은 무뢰배들이 활개를 쳤을지 짐작이 간다. 정변이 성공한 뒤로는 권력 쟁탈전이 끊이지 않았으므로 이들의 쓸모는 더욱 커졌다. 정중부를 죽이고 권력을 잡은 경대승은 자기 집에 도방(都房)이라는 사병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 또한 무뢰배로 채워졌다. 이들은 온갖 불법을 저질렀지만, 경대승의 비호 덕에 처벌받지 않았다. 무신집권기에는 권력자와 연결된 무뢰배가 높은 관직에도 올랐다. 김의원이란 사람이 있었다. 젊을 때 집이 가난해서 무뢰배가 되었는데, 글을 몰랐지만 두 번째로 높은 관직인 평장사까지 올랐다. 권력자와의 관계가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변과 전쟁이 기회를 만들어준 데 이어, 무신정권 아래 권력자의 필요에 따라 무뢰배의 진출이 점점 더 활발해졌다. 권력자가 무뢰배를 포섭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불법 행위를 비호하거나 관직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적 유대관계를 맺었다. 예를 들어, 경대승은 도방의 사병들과 같은 이불을 덮고 합숙하면서 친밀함을 과시하고 충성을 유도했다. 당시 이런 사람을 ‘호협(豪俠)’이라고 불렀다. 본래는 호방하고 의협심 있는 사람이란 뜻이지만, 그 호방함이란 실은 법을 어기면서 호기부리는 것을 의미했고, 의협심이란 고작 아는 사람의 사정을 봐주거나 청탁을 들어주는 것을 뜻했다. 최씨정권을 무너뜨리고 권력자가 된 김준도 호협을 자처했다. 그는 최씨가의 노비였지만 최우의 후원으로 고위직에 올랐는데, 평소 아랫사람에게 공손하고 베풀기를 좋아해서 인심을 얻었다. 날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시는 바람에 집에 저축이 없었다고 하는데, 재물에 연연하지 않고 술을 좋아하는 것도 호협의 겉모습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자기 재산은 돌보지 않되 국가를 사유화하고 사치를 일삼았으니 이 또한 위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호협과 무뢰배의 결합은 14세기 들어 더욱 심해졌다. 원의 정치적 간섭을 받으면서 국왕이 자기가 총애하는 폐행(嬖幸)을 앞세워 왕권을 부지했고, 여기에 무뢰배가 끼어들 틈이 생겼다. 국왕이 호협처럼 굴면서 무뢰배들과 어울리기도 했는데, 28대 충혜왕이 특히 그랬다. 이 타락한 국왕은 무뢰배들과 어울리면서 온갖 난동을 부려 백성들을 괴롭혔다. 오죽하면 원에서도 발피(潑皮)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호협 또는 무뢰배를 가리키는 저속어였다. 공민왕에 의해 잠시 정상을 되찾는 듯했던 정치 질서가 우왕 때 다시 무너졌다. 우왕의 국왕답지 못한 행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무뢰배들과 어울려 다니며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혔고, 어느 집 딸이 예쁘다는 말만 들으면 그 집에 쳐들어가기까지 했다. 국왕이 무뢰배가 되었으니, 왕조의 운명은 불문가지였다. 민중 저항의 길, 무뢰배의 길 무뢰배가 등장한 근본 원인은 가난이었다. 그 배후에는 경제적 양극화와 지배층의 수탈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먹고살기 어려워진 사람들이 모두 무뢰배가 된 것은 아니었다. 대개는 제각각 살길을 찾았고, 정 안되면 힘을 모아 저항했다. 12세기 후반 전국에서 일어난 민란이 그것이다. 이 경우는 사회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변혁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실제로 고려 민중의 저항은 지배층을 자극해서 위민(爲民), 민본(民本)을 이념으로 새 나라를 만드는 결실을 얻었다. 반면 무뢰배의 행위는 불만을 분출하는 데 불과했다. 왜 그러는지 명분도, 어떻게 하겠다는 목표도 없었다. 자기만 잘살겠다고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약탈해서 문제를 심화시킬 뿐이었다. 무뢰배에게 오염된 정치도 고려가 망한 이유 중 하나이다. 법이 경시되고, 법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이 글을 쓰면서 채웅석(가톨릭대) 교수의 ‘고려 중·후기 무뢰와 호협의 행태와 그 성격’(역사와 현실 8, 1992)을 참고했다. 이익주 역사학자·서울시립대 교수

2026.01.29.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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