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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석 만평] 3월 12일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3.11.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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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아메리칸 드림’은 아직 유효한가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라는 표현은 1931년 역사학자 제임스 트러슬로 애덤스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저서 ‘미국의 서사(The Epic of America)’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부와 권력의 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능력과 성취에 따라 더 나은 삶을 살 기회가 있는 나라에 대한 꿈”이라고 설명했다. 출신, 배경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는 사회, 그것이 미국이 세계에 약속했던 이상이었다.   20세기 동안 이 개념은 하나의 사회적 상징이 됐다.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미국으로 몰려든 이유도 바로 이 기회의 약속 때문이었다. 집을 사고, 자녀를 교육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은 단순한 경제적 성공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의 가능성 자체를 의미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이 오래된 서사를 흔들고 있다. 이제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사람보다 미국을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순이주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미국 시민들이 유럽과 멕시코, 캐나다, 동남아시아 등지로 이동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을 떠나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 현상을 일시적 유행으로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미국 사회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지만 동시에 생활비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주거비와 의료비, 교육비는 중산층에게도 큰 부담이 됐다.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뿐 아니라 중소 도시에서도 집값과 렌트비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반면 세계화와 디지털 기술은 삶의 공간을 바꿔 놓았다. 원격 근무의 확산으로 일터와 거주지가 반드시 일치할 필요가 없어졌다. 미국 기업에서 일하면서 유럽이나 동남아에서 생활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높은 미국 임금과 상대적으로 낮은 해외 생활비가 결합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중산층이 등장했다.   삶의 질에 대한 인식 변화도 중요한 요인이다. 유럽의 많은 도시는 보행 중심의 도시 구조와 공공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치안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총기 사건과 정치적 갈등이 반복되는 미국 사회와 비교하면 일상적 안정감이 더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이러한 요소는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미국 시민이 해외로 이동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미국 경제의 힘 덕분이라는 사실이다. 실리콘밸리와 금융 산업이 만들어낸 고임금과 원격 근무 환경 때문에 많은 미국인이 해외에서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미국 경제의 호조가 역설적으로 미국을 떠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든 셈이다.   그렇다면 진짜 아메리칸 드림은 무엇일까. 애덤스가 말했던 아메리칸 드림은 부자가 되는 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였다. 노력한 만큼 기회를 얻고 가족과 공동체 속에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사회였다. 지금 미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바로 그 기본적인 약속이 흔들리고 있다는 데 있다.     결국 삶의 비용과 사회적 안정이라는 두 가지 문제로 압축된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나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기회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래를 믿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그 핵심이다. 미국이 다시 매력적인 삶의 공간으로 남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회뿐 아니라 삶의 질과 사회적 안정성을 동시에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오래된 이야기의 방향은 앞으로도 계속 바뀌어 갈 가능성이 크다. 이은영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아메리칸 드림 아메리칸 드림 사회적 상징 사회 내부

2026.03.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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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도산 안창호, 한인 교회의 씨를 뿌리다

3월 10일은 민족의 위대한 스승 도산 안창호 선생의 순국 88주기였다. 그런데 많은 한인이 도산을 조국 독립에 일생을 바친 위대한 애국자이자 민족 지도자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도산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으며, ‘미주 한인교회의 씨를 뿌린 개척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도산이 기독교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895년 무렵이었다. 청일전쟁 직후 상경한 그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설립하고 밀러 선교사(F.S. Miller, 민노아)가 운영하던 구세학당(예수교학당)에 입학하면서 복음을 접했다. 도산은 학교의 접장으로 일하며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고, 예수교에 입교한 후 곧바로 기독교 진리를 전도하는 일에 헌신했다. 도산은 신앙을 받아들인 후 고향으로 내려가 21세의 나이에 점진학교를 세우고 직접 교회를 개척하며 전도에 힘썼다. 특히 서당 훈장이었던 유학자 장인 이석관을 끈질기게 설득해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아내가 될 이혜련이 서울 정신여학교에서 기독교와 신학문을 배울 수 있도록 이끌었다.   1902년 제중원(현 세브란스 병원)에서 밀러 선교사의 주례로 결혼한 도산과 이 여사는 곧장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이 여사 역시 평생을 교회에 헌신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도산이 독립운동을 위해 전 세계를 떠도는 동안, 그녀는 백인 가정에서 가사 도우미와 삯바느질을 하며 5남매를 키우고 한인 부인단체를 조직해 독립자금을 모았다. 부부의 굳건한 신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가시밭길이었다.   1902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그는 이국땅에서 인삼 판매 구역을 놓고 상투를 부여잡고 싸우는 동포들의 참담한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이에 도산은 동포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 1903년 9월 23일, 9명의 한인과 함께 ‘친목회’를 조직하고 가정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미주 본토 최초의 한인 교회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샌프란시스코 한인연합감리교회)’의 기초가 되었다.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는 지금도 도산을 창립자로 기리고 있다. 도산은 스스로 예수교인으로 살고자 노력했을 뿐 아니라, 방황하는 한인들을 신앙으로 다잡으며 교회를 중심으로 한인 사회를 만들어 나갔다.   1904년 로스앤젤레스 인근 리버사이드로 이주한 후에도 도산의 신앙적 개척은 계속되었다. 그는 오렌지 농장에서 일하는 한인들을 이끌며 캘버리 장로교회와 협력 한인장로선교회를 설립하고 한인들이 예배와 성경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오렌지 한 개를 정성껏 따는 것도 나라를 위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던 도산의 철학은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골 3:23)는 성경적 직업 소명설의 철저한 실천이었다. 도산의 지도 아래 한인들은 술과 도박을 끊고 주일마다 예배당에 모였으며, 미국인들은 “당신네 나라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왔소”라며 놀라워했다. 이를 바탕으로 파차파 캠프의 한인 공동체는 미국 사회로부터 깊은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도산의 신앙이 철저하게 ‘현실 참여적’이었다는 사실이다. 100년 전 일부 선교사들은 “세상일을 멀리하고 오직 예수만 믿어야 천당 간다”며 어려운 국가적 현실을 외면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도산은 이를 비판하며, 기독교의 복음과 사랑이 개인의 구원을 넘어 위기에 처한 민족을 구하는 실천적 힘이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가 1913년 창립한 ‘흥사단’의 입단식이나 서약례 등은 모두 기독교의 세례 문답과 의식을 본뜬 것이었으며, 조직 운영 역시 교회의 민주적 원리를 바탕으로 삼았다.   100년 전 시인 김동환은 도산을 구약성경 속 눈물의 선지자인 ‘한국의 예레미야’라고 불렀다.  도산은 조국과 동포를 위해 밤을 지새우며 회개하고 기도했던 참된 신앙인이었다. “우리 2000만 동포가 모두 손에 신약전서를 한 권씩 가지는 날에 우리 민족의 희망이 있다”고 부르짖었던 그의 외침 속에는, 성경의 윤리와 십자가의 사랑만이 분열된 민족을 치유할 수 있다는 굳건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도산의 순국 88주기를 맞이한 지금, 한인 교회들은 역사적 뿌리를 깊이 되돌아보아야 한다. 오늘날 한인들이 누리는 이민 교회의 따뜻한 교제와 울타리는 결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시작점에는 동포들의 척박한 삶을 보듬고 예배의 자리로 이끌었던 도산의 눈물 어린 헌신과 기도가 깃들어 있다. 그런데 지금의 한인 교회들은 도산 안창호 선생을 너무 멀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거짓을 버리고 참되기를 힘쓰는 ‘무실역행(務實力行)’의 정신, 그리고 파벌을 뛰어넘어 서로를 용납하려 했던 그리스도의 사랑이 한인 사회와 모든 한인 교회 위에 온전히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도산 안창호, 그는 진정 미주 한인 교회의 거룩한 씨를 뿌린 위대한 신앙의 선배였다. 조한희 /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사무총장기고 안창호 도산 샌프란시스코 한인연합감리교회 미주 한인교회 협력 한인장로선교회

2026.03.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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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시키다’의 남용

“너 거짓말시키지 마!” “왜 나한테 거짓말시켰어?”   어린아이들끼리 싸움이 났을 때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서로 상대방이 거짓말했다며 이같이 말하곤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표현에는 어폐가 있다.   ‘시키다’는 남에게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하게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거짓말을 시키다’는 ‘남에게 거짓말을 하게 만들다’는 말이 된다. 위 표현은 모두 남에게 거짓말을 시키는 것이 아닌,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 상황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너 거짓말하지 마!” “왜 나한테 거짓말했어?”와 같이 고쳐야 바른 표현이 된다.   이처럼 ‘-시키다’를 쓰지 말아야 할 곳에 불필요하게 ‘-시키다’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에 당신에게 제 친구를 소개시켜 드릴게요” “사무실 리모델링을 통해 근무 환경을 개선시켰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왔다” 등이 모두 그러한 사례다.   문장의 주체가 자기 스스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남으로 하여금 어떤 동작이나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을 사동 표현이라고 하는데, ‘-시키다’를 붙이면 사동 표현이 된다. 위 예문은 모두 사동의 의미가 없는데도 사동 표현이 남용된 사례라 할 수 있다.   남을 시킨 것이 아니라 문장의 주체가 스스로 행한 행위이므로, “다음에 당신에게 제 친구를 소개해 드릴게요” “사무실 리모델링을 통해 근무 환경을 개선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왔다” 등처럼 ‘-시키다’를 ‘-하다’ 형태로 쓰는 게 바람직하다.우리말 바루기 남용 사동 표현 사무실 리모델링 모두 사동

2026.03.10. 20:11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영혼이 털릴 때 나를 이기는 힘

‘영혼이 털린다’는 말은 극심한 스트레스나 피로, 지나친 감정 소모로 정신적,육체적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를 뜻한다. 과도한 업무나 고강도 운동,견디기 힘든 충격 등으로 멘탈이 무너지는 상황이다. 머리가 멍해지거나,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으로 시달린다.   영혼은 육체에 담겨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하는 비물질적 실체다.영혼은 문화•학문•종교에 따라 의미가 다르지만 인간의 정신적•본질적 성격을가리키는 말이다. 혼(soul)이 사람의 마음과 감정, 의지를 표명하는데 비해영(sprit)은 신과 교통하며 사람을 새롭게 하는 생명의 힘으로 간주된다.   괴테는 남편 있는 부인에게 연정을 품은 친구가 자살한 것과 약혼자 사라테부프와 못이룬 사랑을 엮어 14주 만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완성했다.   1774년 출간되자 감동의 소용돌이에 빠진 소설은 질풍노도의 시대를 이끈괴테의 대표작이자 사랑의 열병을 앓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영혼을 울렸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직장인’이었다. 변호사•행정가•경영자•극장장 등으로 일하며 글을 썼다. 바이마르 군주의 초청을 받아 군사•외교•사법 행정까지 국정 운영을 도맡았다. 격무에 시달리며 번아웃이 온 서른일곱의괴테는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이탈리아 로마로 떠난다.   독일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괴테의 ‘파우스트’는 인간의 욕망과 구원이란깊이 있는 주제를 다룬 대작이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모든 학문을 섭렵했지만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해 고뇌하는 학자다.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현세의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주겠다는조건으로 영혼을 팔기로 한다. 그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맺지만 더 큰 세계에서정치 예술 전쟁 등 다양한 경험을 한 늙은 파우스트는 영혼의 구원을 받는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전진하는 자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메세지다.     길은 잃고 방황하는 자는 영혼이 살아 숨쉬는 사람이다. 절망은 희망을 등에 업고뜀박질할 내일을 기다린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괴테의 말을인용한다.   영혼이 갈피를 못잡고, 이도 저도 안 되면 가만히 멍 때리기를 계속하라.멍 때리기는 더럽고 너덜해진 영혼에 새 살을 돋게 한다.   죽지 않으면 산다. 영혼이 털려도 육신이 살아 있는한 살기를 멈추지 않는다.목숨 줄이 끓어지지 않으면 살 것이고, 살아있는 육신은 영혼의 축복이다.   아무도 내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다. 출구를 모를 때는 서두르지 말고 그 자리에머무르면 된다. 영혼은 복귀 능력이 탁월하다. 참고 기다리면 정상으로 회귀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춤추는 별을 낳기위해선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라고 설파한다.   별이 빛나는 밤 춤을 추자. 혼돈의 시간에 매듭을 묶고 우주를 향해 팔을 벌리고생명의 기쁨을 담은 왈츠를 추자. 연인이 없으면 어떠리. 운명은 내 편이다.   나를 이기는 힘은 내게서 나온다. 인생이 끝나지 않는 혼돈이라해도, 별빛머리에 이고 달빛을 연인 삼아 춤을 추리라. 전쟁과 평화에서 애틋한 눈길 보내며사랑의 화살로 속삭이던 연인들처럼 ‘Natasha’s Waltz’에 맞춰 춤을 추리라.   잠시 영혼이 털린다해도, 흔들리는 것들은 바람을 타고 영원 속에 머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주인공 파우스트 정신적육체적 에너지 대문호 괴테

2026.03.10.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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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주한미군 방공 전력의 중동 반출, 북핵 억지 약화 우려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어제(10일) “주한미군이 군사적 필요에 따라 일부 방공 무기를 반출하는 것에 반대 의견을 내고 있지만, 전적으로 관철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한·미 군 당국은 주한미군 전력 반출 여부에 모호한 입장을 취해 왔는데, 이 대통령이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 미국 언론에는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THAAD) 포대의 일부가 중동으로 이동 중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 대통령은 이어 한국의 군사력 수준이 세계 5위, 연간 국방비 지출이 북한 국내총생산(GDP)의 1.4배라는 구체적인 수치는 물론 국군 장병의 높은 사기와 책임감까지 언급하면서 “전혀 우려할 상황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의 안보 불안은 북한의 재래식 무력보다는 핵무력 때문이다. 김여정 노동당 부장은 이날 한·미 연합연습 시작에 맞춰 위협적 발언을 하며 “압도적인 특수 수단”을 거론했는데 이는 곧 핵무기를 말한다. 현재 주한미군의 반출 1순위는 패트리엇이나 사드 같은 방공 무기들이다. 사드는 현재 국내에 대체 무기가 없다. 안 그래도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대응 수단이 부족한데 그마저도 줄어든다니, 실상은 우려스러운 상황임에 틀림이 없다. 주한미군의 무기 반출은 ‘한국은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는 2006년 합의에 따른 것이다. 당시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대만 사태 등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 이런 타협을 했는데, 이로 인해 우리의 반대 의견을 관철할 수 없게 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동맹 현대화’와 맞물려 주한미군 전력 반출은 앞으로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반출된 전력의 임무 종료 후 즉각 복귀에 힘을 쏟아 대북 전력 누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한·미 연합훈련 축소는 당장의 주한미군 전력 반출 반대 입장과도 앞뒤가 맞지 않는 조치다. 이와 함께 지난해 한·미가 합의한 원자력잠수함 건조, 핵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허용 등 우리 군의 안보 역량을 강화할 조치도 이행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것이 현시점에서 이 대통령이 말한 자주국방의 핵심 실천 과제다.

2026.03.10.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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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헌법재판소, 재판소원 제대로 처리할 준비 됐나

재판소원제를 도입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포(관보 게재)만 남겨 놓은 상황에서 어제(10일) 헌법재판소가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손인혁 헌재 사무처장은 “이 제도를 조기에 안착시키고 원활히 운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촘촘한 기본권 보장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헌재의 준비 상황을 보면 과연 당장 재판소원제를 무리 없이 시행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헌재는 앞으로 연간 1만~1만5000건의 재판소원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헌재의 연간 접수 사건(약 3000건)의 3~5배에 달한다. 이에 대비해 헌재는 심판 규칙 등 제도를 정비하고 있고, 인력 보강을 위해 예산 당국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보통 새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법을 제·개정하면 일정한 유예 기간을 두고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을 함께 마련해 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 재판소원제는 그런 유예기간 없이 공포와 함께 바로 시행에 들어간다. 법원의 확정판결이 취소될 수 있는 중대한 제도 변화임에도 일의 순서는 앞뒤가 바뀐 상황이다. 헌재가 최소한 시행 시기라도 조정하자고 공식 요청하지도 않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법률가들 사이에서는 재판소원은 단순한 법 개정이 아니라 사실상 헌법 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헌재는 헌법을 수호하고 헌법 질서를 유지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논란이 되는 문제를 잘 정리하고 일반 국민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헌재 본연의 기능인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소원 심리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큰 변화가 있는 상황에서 헌재 사무처장이 인사말을 하는 것만으론 곤란하다. 적절한 시기에 김상환 헌재 소장이 직접 나와 국민에게 이 제도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직접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판소원제 시행과 관련해 대법원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내부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재판소원제 도입이 일방적으로 추진된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의 혼란을 막기 위해선 대법원과 헌재가 머리를 맞대고 보완 방안을 협의할 필요가 있다.

2026.03.10.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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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의 예고된 혼란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인 어제 노동단체들의 원청 교섭 요구가 쏟아졌다. 민주노총은 금속노조 등 7개 산별노조 소속 사업장을 중심으로 원청 사용자에게 교섭 요구 공문을 일제히 발송했다. 900여 개 사업장의 하청 노조 조합원 13만7000여 명이 참여한다고 한다. 실제로 어제 대학의 청소·경비 노동자들과 택배노조, 공기업 자회사 노조가 ‘진짜 사장’과의 교섭을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는 이미 이틀 전 100개 원청 건설사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산업계 전반의 춘투(春鬪)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어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을 독려하기 위한 간담회에서 “지속적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생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청 노동자에게도 원청과 동일하게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한 한화오션의 사례를 “매우 모범적”이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한화오션 사업장에선 생산 공정과 직접 관련이 없는 청소·급식업체까지 동일한 성과급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분업화·전문화로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게 했던 도급 제도가 자칫하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장의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정부가 균형을 잘 잡아줘야 한다. 정부는 자문기구인 ‘단체교섭 판단 지원위원회’를 통해 모범 사례를 축적하겠다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문기구의 해석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교섭 대상 여부 등 주요 쟁점을 일차적으로 판단하는 노동위원회의 공정한 역할이 중요하다. 박수근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 중노위원장을 맡았을 때 CJ대한통운 사건에서 직접 고용관계가 없어도 원청이 하청 근로자와 단체교섭해야 한다는 결정을 처음 내렸다. 이것이 노란봉투법의 이론적 근거가 됐다고 보는 이가 많다. 노동위원회가 노란봉투법 관련 쟁점을 균형 있게 판단하지 못하면 이런 과거 역사까지 소환돼 불필요한 논란과 불신을 키울 수 있다. 노동위원회는 치우치지 않는 중재자로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통해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2026.03.10.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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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호르무즈의 경고, 에너지 안보를 다시 짤 때

이란 전쟁이 격화되면서 에너지 시장의 가장 민감한 경고등이 켜졌다. 세계 원유 해상 수송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위기가 발생하는 순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동맥 경화를 일으킨다. 한국 경제의 심장으로 들어오는 에너지의 관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셰일 혁명 이후 세계 에너지 시장은 안정적인 공급 환경 속에 있었고, 지정학적 변수는 과거처럼 장기적인 시장 충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주요 경제국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에 관심을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중동 긴장이 다시 고조되면서 이러한 공급 환경이 영구적인 것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지난 10여 년의 안정은 하나의 착시에 가까웠다. 작동 멈춘 미국의 에너지 우산 에너지 안보 역량 스스로 갖춰야 정치적 성과주의론 번번이 실패 컨트롤 타워와 전문가 관리 필요 주목해야 할 변화는 미국의 위치다. 냉전 이후 미국은 중동 에너지 공급의 안전판 역할을 해 왔다. 카터 독트린 이후 페르시아만의 에너지 공급은 미국의 사활적 이해로 간주되었고, 미 해군은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을 보장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에너지 자립에 도달하면서 중동의 위기는 더 이상 자국 에너지 수급의 직접적 위기가 아니다. 미국이 씌워주던 에너지 안보 우산은 더 이상 자동적으로 펼쳐지지 않는다. 섬처럼 고립된 수급 구조를 가진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와 첨단 제조업, AI 데이터센터 같은 신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에너지 안보 역량을 가져야 한다. 이는 특정 에너지원이나 가격만을 강조해서는 달성할 수 없다. 에너지 안보는 총체적 에너지 시스템의 역량으로 평가된다. 에너지 시스템은 축구 경기와 같다. 공격수, 수비수, 미드필더가 각각 다른 역할을 맡는다. 신재생에너지는 미래의 공격수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기저전력을 담당해 온 석탄과 원자력은 수비수다. 빠른 출력 조절 능력을 가진 천연가스는 미드필더에 가깝다. 석유는 여전히 산업과 물류의 중심 에너지원으로 중앙에 남아 있다. 경기에서 이기려면 모든 포지션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조율하는 감독의 역할이 정부의 책임이다. 에너지 정책과 환경 정책은 기후 대응이라는 목표를 공유하지만 작동 원리는 다르다. 환경 정책은 규범에 기반한 ‘보호’를, 에너지 정책은 실용적 변수 위에서 ‘사용’을 전제로 한다. 이 차이를 인정하고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안보가 상호보완적으로 기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왜곡을 막을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에너지 시스템은 산업 구조 재편과 공기업 재무 구조라는 압력을 동시에 받고 있다. 글로벌 경쟁 강화와 공급 과잉, 그리고 수요 구조 변화는 석유 산업의 구조조정을 촉발한다. 한국석유공사는 여전히 심각한 재무 구조 하에 있다.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은 약 14조 원에 이르고, 한국전력의 부채는 200조 원을 넘어섰다. 에너지 정책의 비용을 공기업에 쌓아두는 방식은 결국 국가 경제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석탄은 장기적으로 축소될 에너지원이지만, 노후 석탄 발전소 폐쇄가 본격화되면서 고용과 지역경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은 급속도로 증가하게 된다. 원자력 역시 탈원전과 복귀가 반복되면서 정책 일관성이 흔들렸고, 사용후 핵연료 저장 문제도 남아있다. SMR의 상업화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외부 공급 충격이 발생했을 때 시스템을 버티게 하는 것이 바로 에너지 안보다. 전환을 추진하더라도 각 에너지원의 역할을 현실적으로 점검하고 체질을 개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국제 유가 상승 국면에서 가격 통제나 유류세 조정은 단기적으로 소비자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조치가 반복되면 시장 신호가 약화되고 투자 여력을 줄일 수 있음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에너지 가격이 정치적 변수에 영향을 받을수록 산업 경쟁력의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 안보는 빛이 나는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작업은 빈틈을 메우는 일이다. 공급망을 점검하고 계약 구조를 관리하며 비축을 유지하고 산업 경쟁력을 지켜내는 일이다. 화려한 정책이 아니라 조용한 관리의 기술이다. 그래서 에너지 안보에는 정치적 조급성과 과시가 가장 위험하다. 과거 해외 자원개발 실패의 교훈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의지 부족이 아니라 정치적 성과주의였다. 국제 에너지 시장은 정치, 안보, 금융, 기술이 뒤엉킨 전쟁터다. 정치적 이벤트로 사진을 찍는 순간 협상력은 사라진다. 결국 필요한 것은 에너지 안보의 안정적인 컨트롤 타워와 전문가 중심의 상시적 관리다. 산업, 환경, 외교 정책이 따로 움직이면 에너지 안보는 작동하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하나의 경고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지금은 에너지원 경쟁력을 유지하고 국제 공조를 강화하는 한국형 에너지 안보 전략을 다시 설계할 때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2026.03.10.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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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이래도 드론사 해체부터 하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차세대 육군(Army After Next)’을 실행 가능한 작전 개념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죄책감과 함께 살고 있다. 결국 성공은 아이디어의 우아함이 아닌, 육군이 그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어떻게 무장하고 구조를 재편하는가로 평가된다.” 미 육군전쟁대학원 원장을 지낸 로버트 ‘밥’ 스케일스 장군이 2018년 군사전문 온라인 플랫폼 ‘워 온 더 록스’에 올린 소회였다. 그는 1995년에 2025년의 미래 전쟁을 연구하는 ‘차세대 육군’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전쟁 변수들의 변화 속도는 빨라졌지만, 무기·조직을 구축하는 군의 능력은 둔화하고 있다. 군은 더 먼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데 시간의 지평선이 멀어질수록 전망은 더욱 불분명해지고 심각한 오류를 범할 가능성도 커진다”는 한계 속에서도 아이디어를 응축해냈다. 1997년엔 미래 비전을 설계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결과적으론 잘못이었다. 여기엔 외부 요인도 있었다고 한다. 매년 또는 격년 ‘우주적 슬로건’을 전략화하라는 요구도 있었다. 그는 “미래를 상상하는 건 좋은 와인을 빚는 것과 같다”고 했다. 중동전쟁에서 더 부각된 드론전 우린 '계엄' 탓 드론사 해체 수순 '50만 드론 전사' 실현될 수 있나 ‘차세대 육군’은 2008년 중단됐다. 그는 앞선 1999년 열 가지 주제를 정리해 두었는데, 이런 내용이 있다. “미래 전쟁에서 최소 비용으로 승리하려면 속전속결이 필수적이다. 경량화·소형화된 조기 투입 부대가 수적으로 우세하고 중무장한 적을 제압하려면 ‘잠들지 않는 눈(Unblinking Eye)’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무인 항공 플랫폼에서 생성되는 지속적이고 신뢰성 있으며 어디에나 존재하는 압도적 정보 우위를 의미한다.” 이번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엔 그가 내다본 ‘미래 전쟁’의 양상이 있다. “이란 미사일 대원의 기대 생존 시간을 몇 시간”(무기 전문가 파르진 나디미)으로 만든 탐지·타격이 한 예다. 그가 못 본 것도 있었다. 드론전이다. 2010년대 등장했는데 급속도로 진화했고, 이번엔 “일종의 소모 가능한 탄약처럼 활용·운용”(윤용진 KAIST대 교수)되는 것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런 급변에 우린 대비돼 있는가. 사정을 아는 인사들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국방부 자문위가 드론작전사령부 폐지를 권고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었다. ‘50만 드론 전사 양성’의 슬로건만 나올 뿐, 대안이 제시되지 않아서다. 드론 전술·전략을 연구하고 규모가 큰 작전을 기획·통제할 조직의 필요성이 더 커진 마당에 드론 운용 자체를 금기시하는 듯해서다. 군 출신 인사는 “그런데도 말을 못 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왜 그러나. “드론사를 윤석열 정부가 급조한 면도, 목적이 불분명했던 면도, 각 군과 중첩됐던 면도 있다. 그러나 고유의 역할과 임무를 식별해 가며 자리 잡았는데, 단순히 무인기를 (북한으로) 날려보냈다는 이유로 해체할 일인가. 하지만 계엄의 ’계‘자만 들어가도 총장까지 직무배제시키니 군은 물론이고 군과 관련된 사람들도 미운털이 박힐까 봐 공개적으로 반발하지 못하고 있다. 예비역들도 대개 방산 기업과 관련돼 있다 보니 말을 못 한다. 대단히 심각하다.” -누군가 드론을 해야 하지 않나. “사실 미국에선 육군이 드론 전략을 다 한다. 우린 관련 토론 등 준비가 필요한데 해당 전력 분야의 경험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빼고 학자들로만 하니 제대로 되기 어렵다.” 그는 그러면서 미국 쪽 인사들이 외려 우리를 걱정해 준다면서 이런 말을 했다. “미국 당국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이 러시아서 들여간 (드론) 기술과 전투 경험을 보면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다.” 이재명 정부가 불신감을 내보이고 있는 육군에 그 역할을 맡길까. '좋은 와인'을 빚질 못할 망정 어렵사리 자리를 잡아 가던 드론사를 해체부터 하는 게 타당할까. 드론전은 종국엔 누가 하게 될까. 50만 드론 전사란 슬로건은 현실화할 수 있을까.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고정애([email protected])

2026.03.10.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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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의 인생] "3년 방황하자"는 선택이 엔비디아 뚫은 무기

손해인 업스테이지 부사장 인터뷰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순 없겠지만 일론 머스크나 다리오 아모데이(앤트로픽 CEO) 같은 빅테크 창업자를 비롯해 세상 흐름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지식은 AI로 대체되는 만큼 인간은 자율성과 몰입에 경쟁력의 핵심을 둬야 한다는 조언이다. 결국 흥미있는 일이 뭔지 찾아서 의지를 갖고 파고 드는 인간만 인간답게 살아남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진작부터 이런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있다. 정부 주도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서 스타트업으로는 유일하게 2단계에 진출해 '국가대표 AI 스타트업' 별명을 얻은 업스테이지 창업 멤버이자 교육 총괄 손해인(34) 부사장 얘기다. '울산의 대치동'이라는 옥동 키즈로 나고 자라 여느 한국 학생처럼 시험에 목 매던 범생이였지만,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집요하게 찾기 시작하면서 AI 세상이 오기 전 이미 새 시대에 걸맞는 준비를 했다. 코드 한 줄 못 짜는 문과 출신이 엔비디아를 거쳐 AI 스타트업 임원이 된 배경이다. 지난 5일 업스테이지 공유 오피스가 있는 서울 강남역에서 만나 그의 독특한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안혜리 논설위원 남들 좇아 대기업 가는 대신 스스로에게 '나'를 찾을 시간 줘 최저시급 받고 대표처럼 일했더니 AI 시대 인간 고유 경쟁력 됐다 최저시급 인턴의 야망 그 시절 최저시급(5580원, 월 100만원 수준)보다 한참 적은 월 70만 원짜리 신생 비영리재단(한국화가협동조합) 인턴이 2015년 대학 졸업 후 내 인생 첫 커리어였다. 온갖 잡무를 하다 홈페이지 만드는 일까지 맡았다. 지금처럼 AI가 있던 시절도 아니고, 문과생에겐 벅찬 일이었다. 다행히 이 재단 만든 대학 은사님이 본인 지인인 이용덕 엔비디아 지사장더러 "도와주라"고 부탁하셨고, 난 그분 도움받아가며 밤낮없이 주말까지 반납한 채 정말 열심히 일했다. 어느 날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 "엔비디아 코리아 인턴 해보겠나?" " 때는 2015년 말. IT 세상 밖에선 엔비디아 이름조차 생소하던 시절이다. 네이버 검색부터 했다. 여전히 뭐 하는 곳인지 모호했지만 대충 컴퓨터게임 관련 회사라는 건 알았다. 주변에 IT 쪽 사람이 전무한 데다 난 모바일 게임도 안 하는 사람이라 거절했다.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경영학과 출신이라며 막연히 예술경영 분야에서 승부 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런 계획과 결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인턴 시작하면서 매일 그 날 뭐가 재밌었고, 의미 있었는지 정리하는 출근일기를 썼는데, 그날 벌어진 일을 써내려가다 보니 안정적인 취직을 미루면서까지 '나'를 찾겠다고 스스로에게 3년의 방황할 시간을 줘놓고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분야라는 이유만으로 안 간다는 건 원래 목표와 굉장히 어긋나는 결정이라는 걸 말이다.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부탁해 인턴 채용 과정을 밟았다. 사실 특별한 채용 과정이랄 게 없었다. 그 시절 엔비디아 코리아는 개발자든 영업이든 경력직만 가득한 직원 80여 명의 군살 없는 조직이었다. 비서 말고는 인턴은커녕 신입도 안 뽑았다. 조건은 딱 최저시급인 월급 115만원에 1년짜리 마케팅 담당이었다. 희망고문일지라도 많이들 내거는 조건부 정규직 전환 약속조차 없었다. 회사와 무관하게 목표를 세웠다. 1년 뒤 정규직 되기? 아니다. 인턴 끝나는 날 나랑 같이 일한 사람들이 계속 나랑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만들기였다. 계약직 전환이 감사한 이유 엔비디아에서 폼 나는 '마케팅 담당' 간판을 달았지만 실제 한 일은 당시 선풍적이던 PC방 게임 '오버워치' 게임 커뮤니티에 엔비디아 게임 커뮤니티인 '엔비디아 프렌즈' 자격으로 댓글 달기였다. 엔비디아 브랜드를 알리려는 장기 전략 차원에서 지사장이 캠퍼스 투어와 커리어 토크 할 때 쓸 자료 만들기도 내 몫이었다. 누군가는 잡일이나 불필요하다 치부할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뚜렷한 목표가 있던 난 달랐다. 마침 엔비디아는 정규직이든 아니든, 경험이 있든 없든 필요한 일을 기획하면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분위기였다. 아무도 안 시키는데 오너십 갖고 온갖 일을 벌였다. 가령 댓글.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 고민하다 당시 유행하던 커뮤니티 밋업(meet-up·번개 모임) 찾아다니며 게임판 사람들과 친해졌다. 댓글 달 때 잘 모르는 내용이 나와 어려워하면 다들 대댓글로 도와줬다. 돌이켜보면 타이밍이 참 좋았다. '오버워치'가 워낙 흥해 엔비디아의 지포스 GPU 업그레이드 수요가 급증한 건 말할 것도 없다. 입사 불과 몇 달 뒤인 2016년 3월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로 세간의 AI 관심이 폭발한 덕분에 딥러닝이나 GPU 같은 테크 용어, 그리고 엔비디아가 어떤 회사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넘쳤다. 세상을 바꾼다고 느꼈던 이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면, 특히 기술 기반 없는 나로선 이런 용어 이해는 기본이었다. 급한 마음에 『파이선 첫걸음』이런 류 책을 샀다. 어려운 걸 떠나 너무 재미없었다. 공부할 수밖에 없는 흥미로운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공부를 일이자 놀 거리로 만드는 마법을 부려야 했다. 그게 페이스북 커뮤니티였다. 'Ctrl Alt Del밖에 모르는 문과생이 전하는 기술 이야기'라는 셀프 프로젝트를 만들어 페북에 테크 관련 내용을 포스팅했고, 단숨에 업계 주목을 받았다. 포장만 그럴듯한 게 아니라 실제 초등생도 이해할만한 눈높이의 풍성한 자료를 끊임없이 올렸기에 가능했다. 순식간에 1년이 지났다. 한국 지사는 내 일의 가치를 인정했지만 본사는 정원을 안 늘려줬다. 새 제안이 왔다. " "계약직으로라도 해보겠나?" " 당연히 "예스"였다. 고용 형태나 찔끔 월급 인상은 중요하지 않았다. 팀원들이 기꺼이 나랑 같이 일하고 싶다는 게 감사했다. 1150만원 받는 것처럼 일하기 경영학과(아주대) 입학과 동시에 빡세기로 유명한 마케팅 소학회(RPM) 들어가 4학년 1학기까지 쉬지 않고 프로젝트를 했다. 이제 남들처럼 대기업·은행 입사하려면 취업 준비에 전력을 쏟아야할 시간이 왔다. 그런데 문득 "날 뽑을 이유가 있나" 싶었다.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다시 말해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게 우선이었고, 그걸 찾겠다고 무작정 프랑스 배낭여행을 떠났다. 답은 못 찾았지만 귀국 비행기에서 결심했다. "살러 다시 와야겠다. " 이에젱(IÉSEG) 비즈니스 스쿨에서 1학기짜리 교환학생을 마치고도 프랑스가 너무 좋아 1년을 더 눌러앉았다. 여전히 답은 못 찾은 채 돌아와, 남들처럼 포털 '독취사(독하게 취업하는 사람들)' 카페 들어가 자소서 쓰고 인터뷰 준비했다. 나도 독한 사람이었는지 20~30 군데 떨어진 후에 대기업 한 곳, 시중은행 한 곳에 합격했다. 독취사가 알려준 그 회사 인재상을 반영한 모범답안을 달달 외운 덕분이었다. 문제는 자소서·인터뷰 어디에도 진짜 내가 없었다는 점이다. 서른 즈음 후회할지 모르는 리스크를 안는 대신 다른 선택을 했다. " "나에게 3년의 시간을 주자. " " 그렇게 취업을 포기하고, 3년을 스스로에게 주면서 약속했다. '어떤 선택이든 돈을 1순위로 놓지 않겠다'는 거였다. 학교 지원금 명목으로 받은 최저시급보다 적은 70만원 인턴 월급, 115만원 최저시급 인턴, 그리고 여전히 미래 보장 없는 계약직 사원…. 보잘것없는 고용형태만큼 하찮은 월급명세서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뭘 할 때 행복한지 찾는데 온 에너지를 써야 했으니까. 그래도 눈물 쏟을 일은 있었다. 당시 엔비디아 사무실이 물가 비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있었는데, 115만원으로는 빠듯했다. 친구라도 만나려면 점심을 걸러야 했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가 "한 달에 고작 100만원밖에 적금 못 넣었다"고 푸념하면 "왜 나만 이런 어려운 길을 가는가" 싶어 위축됐다.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 "내가 비록 115만원을 받지만 1150만원 받는 사람처럼 일하겠다. 115만원만큼만 일하면 난 3년 뒤에도 그 정도에 머물러 있겠지만 1150만원 받는 사람처럼 일하면 그 돈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돼 있을 거다. " " 엔지니어팀·영업팀 가리지 않고 모든 회식, 모든 워크숍에 다 따라다녔다. 유일한 비정규직인 동시에, 팀 간 왕래가 잦지 않은 이 조직에서 전 직원을 다 아는 유일한 직원일 수 있었던 이유다. 안 불러도 재밌어서 무작정 갔다. 모두 머리에 일 생각만 가득해서 회식 때도 기술 얘기뿐이었다. 한때 한국 자주 오던 창업자 젠슨 황 얘기도 흥미로웠다. 놀면서 자연스럽게 공부한 셈이다. 2년이 또 훌쩍 흘러, 정규직 전환 또는 퇴사의 갈림길에 섰다. 본사에선 이번에도 정원을 더 주지 않았는데 내부 업무 조정 등 모두 힘 써준 덕분에 정규직이 됐다. 드디어 정규직이 됐다는 기쁨보다 열심히 일한 걸 회사와 동료가 알아봐 줬다는 경험이 더 컸다. 스스로에게 준 3년의 방황은 이렇게 가치 있는 결말로 이어졌다. 그때 결심했다. 방황을 3년으로 끝내지 않고 평생 이어 가겠다고. 5년의 엔비디아 생활을 접고 2020년 업스테이지 창업멤버로 합류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 방황은 또 어떻게 이어질까. 안혜리([email protected])

2026.03.10.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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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광의 세계는 첩보 전쟁] 휴민트의 다른 사용법…미국은 안보에, 중국은 기술 확보에 활용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지난달 12일 중국 군인을 대상으로 CIA와 비밀 접촉을 권유하는 중국어 홍보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1분 30초 정도의 짧은 영상이지만 ‘이 길을 택하는 것이 가족과 조국을 위한 나의 싸움 방식이다’라는 자막이 눈길을 끌었다. 중국 군인이 느낄 수 있는 죄책감이나 심리적 갈등을 덜어 주려는 메시지다. 절차 중시 미국, 우방에도 냉정 산업 치중 중국, 연구 인력 눈독 우리 간첩법도 외국 확대 적용 단호한 집행 의지·역량 보여야 냉전 시기 한국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리처드 롤리스가 2023년 『Hunting Nukes(핵무기 추적)』라는 회고록을 출간했다. 1970년대 중반 CIA 서울지부 요원이었던 저자가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는 과정도 담겨 있다. 그는 핵 개발 정보를 누설한 한국 인사들을 북한의 위협을 막은 ‘애국자’로 묘사했다. 비밀 누설 한국인 칭찬한 CIA 요원 누군가에게는 배신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이 다른 관점에서는 애국으로 기록된다. 그것이 국가 간 정보전의 냉혹한 현실이다. 미국·중국·러시아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보이지 않는 정보 경쟁을 끊임없이 벌여 왔다. 우방국은 있어도 우호적인 간첩법은 없다. 국회를 통과한 간첩죄 확대 형법 개정안이 지난 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북한 중심의 ‘적국’ 개념에 묶여 있던 간첩죄의 적용 범위가 외국으로 확대됐다. 한국도 이제 정보 경쟁의 현실을 법제도 차원에서 마주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보전의 핵심 수단이 바로 휴민트(HUMINT·인적 정보)다. 한쪽에서는 협조자나 공작원으로 불리지만 다른 쪽에서는 간첩으로 규정될 수 있는 존재가 휴민트다. 이번 간첩법 개정 역시 외국의 휴민트 활용 현실을 법적으로 반영한 조치다. 나라마다 운용 방식은 다르지만, 오늘날 정보전의 양상은 미국과 중국 사례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미국과 중국은 정보활동의 목표부터 다르다. 미국이 국가안보와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둔다면 중국은 경제적 이익과 기술 확보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비중을 둔다. 목표의 차이는 휴민트의 표적, 포섭 방식, 운용 주체, 시간 전략에서도 서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미국보다 휴민트 스펙트럼 넓은 중국 먼저 휴민트의 표적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미국이 정부 고위 관료, 군 지휘부, 핵 개발 관계자, 테러 조직원 등 국가안보 핵심에 집중한다면 중국은 그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 첨단기술 연구자와 기업 경영진, 대학과 산업 공급망 등 경제·기술 생태계 전반이 대상이다. 여기에 학술 교류와 문화 네트워크, 해외 화교 인맥까지 더해진다. 포섭 방식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미국 정보기관은 전통적으로 돈과 이데올로기 등을 활용해 휴민트를 포섭해 왔으며 특히 정치적 불만이나 이념적 동기가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라크전과 아프간전 당시 쿠르드족 무장세력과 긴밀히 협력하며 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확보했다. 보복 위험에 노출된 휴민트 보호를 위해 특별이민비자(SIV)와 난민 지위 제공 등을 지원하면서 정보 네트워크의 신뢰를 다진다. 반면 중국은 경제 협력, 사업 기회, 연구 교류, 투자,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장기적 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진다. 휴민트 운용 주체 역시 다르다. 미국의 정보활동은 CIA와 같은 전문 정보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중국의 경우 국가안전부(MSS)가 중심이 되지만, 국유기업, 민간기업, 학자, 유학생, 해외 교포 등 다양하고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정보활동에 활용된다. 시간 전략에서도 차이가 보인다. 미국의 휴민트가 정책 결정이나 군사 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단기적·현안 중심 정보에 상대적으로 무게를 두는 데 비해 중국은 기술 축적과 산업 경쟁력 확보, 영향력 확대를 염두에 둔 장기적 정보 수집 전략을 병행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차이는 양국의 정치·전략적 인식과도 연결된다. 미국은 의회와 사법 체계의 감독 아래 법적 정당성과 절차를 중시하는 반면, 중국은 효율성을 우선한다. 전쟁의 경계를 허문다는 초한전(超限戰) 인식 아래, 기업과 학계, 해외 교포 네트워크 등 다양한 사회적 자원이 정보활동에 동원된다. 공작 거점 의심 받는 공자학당 이 같은 구조적 차이는 한국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중국은 국가정보법을 통해 개인과 기업, 단체 모두에게 국가 정보활동에 협력할 의무를 부여한다. 사회 전체가 정보기관의 잠재적 휴민트가 될 수 있는 구조다. 문제는 이런 위험이 국경 밖에서도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개방적이고 교류가 활발한 한국은 중국 정보활동이 실제로 스며들 여지가 상대적으로 큰 환경에 놓여 있다. 지난해 6월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 273만 명 가운데 중국 국적자는 약 97만 명으로 가장 많다. 영향력 공작의 거점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온 공자학당도 세계 최초로 한국에 설립됐고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국가가 한국이다. 개방성과 교류가 활발할수록 중국 정보활동이 스며들 공간도 그만큼 넓어진다는 의미다. 반대로 미국은 정보활동만큼 정보보안과 법 집행에도 엄격하다. 로버트 김 사건, 백동일 대령 사건, 수미 테리 사건에서 보듯 동맹을 위한 행위라 하더라도 국가기밀을 넘기면 끝까지 추적해 처벌한다. 정보전의 세계에서 기준은 단순하다. 우방국은 있어도 우호적인 간첩법은 없다. 이번 간첩법 개정은 한국도 냉혹한 국제 정보전 현실을 제도적으로 마주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오래전 동남아로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현지에서 영사 신분으로 활동하던 후배 A가 농담조로 “한국에서는 노바디(nobody)였지만, 여기서는 섬바디(somebody)”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존재감이 별로 없었으나 주재국에서는 제법 영향력이 있는 인사라는 의미였다. A는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그 나라에서 못 만날 인물은 없다고도 했다. 국내 방첩 분야에 근무했던 또 다른 후배 B도 비슷한 말을 했다. 미국이나 중국 정보기관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을 때 거절하는 한국 인사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미국이나 중국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우쭐한 마음에 떠들고 다니는 인사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휴민트의 세계에서도 국력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 차이는 간첩법의 집행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법 조문은 같아 보일지 몰라도 그것을 얼마나 단호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는 결국 국가의 의지와 역량에 달려 있다. 개정된 간첩법은 이제 곧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이 법이 실제 현실 속에서 어떻게 집행되는지 두고 볼 일이다.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2026.03.10.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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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의 시선] ‘규제의 역설’ 전세난, 6년 만에 재발하나

대한민국 부동산 규제의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을 장면이 있다. 2020년 7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임대차 2법을 강행 처리하던 순간이다. 야당의 강력 반대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속도전으로 법안 통과를 밀어붙였다. 당시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법안 통과 직후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며 승리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다음날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책 의지는 확고하며 언제든 더 강력한 추가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다시 불안해진 서울 전세 시장 규제 부작용에 공급 부족 심각 문 정부 정책 실패 되풀이 조짐 그 후 서울 전세 시장에선 ‘지옥’이 펼쳐졌다. KB부동산에 따르면 2020년 하반기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10%를 웃돌았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86년 이후 34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었다. 세입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강도는 통계 수치보다 훨씬 심각했다. 일부 아파트 단지에선 전세 매물이 거의 자취를 감추면서 전셋집을 구경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됐다. 정치적 후폭풍도 거셌다. 임대차법 통과 약 8개월 뒤인 2021년 4월 1일 김태년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는 “민주당이 부족했다”며 “내로남불 자세도 혁파하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성난 부동산 민심은 결국 투표로 민주당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심판했다. 6년 전의 ‘악몽’이 다시 찾아오는 걸까. 현재 서울 주택 시장에선 전세난이 재발할 조짐이 점점 뚜렷해진다. KB부동산의 조사 보고서를 살펴보자. 지난달 서울의 전세수급지수는 166.8을 기록했다. 임대차법으로 인한 전세난이 이어졌던 2021년 9월 이후 최고치다. 이 지수가 100을 넘으면 전세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약 3년 전인 2023년 1월 이 지수가 45까지 떨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특히 올해부터 서울 지역엔 극심한 ‘입주 가뭄’이 예고된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월세도 급등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1월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처음으로 150만원을 넘어섰다. 그런데 정부 정책은 전·월세 물량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줄이는 방향에 맞춰져 있다. 대표적으로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의 대폭 확대를 꼽을 수 있다. 법적으로 토허제 지역에서 거래한 아파트는 최소한 2년간 전·월세를 주는 게 불가능하다. 토허제 대상 아파트를 사면 2년 이상 실거주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실거주를 안 하면 금전적 손해를 감수해야 할 뿐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정책 당국은 주택 매수자의 실거주로 전세 공급이 줄면 다른 한편으로 전세 수요도 같이 줄지 않느냐고 보는 듯하다. 예컨대 A단지에서 전세로 살던 무주택자가 B단지에서 집을 사서 들어갔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B단지에선 전세 공급이 줄겠지만, A단지에선 오히려 전세 수요가 줄고 공급이 늘어난다는 식이다. 지난달 23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서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의 답변이 바로 그런 얘기였다. 이날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 전세 매물이 1년 전보다 32% 급감했다. 결국 전세가 실종되고 월세 지옥이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고 추궁했다. 그러자 이 차관은 “(전세) 수요 측면에서 같이 빠지기 때문에 그것을 함께 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현실의 주택 시장은 초등학생의 더하기 빼기처럼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일단 집이라고 다 같은 집이 아니다. 전국의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고 시골에 빈집이 속출해도 주요 지역 집값은 내려가지 않고 계속 오르는 이유다. 아파트 시장 안에서도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수요자들이 신축으로 쏠리고 구축은 기피하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더구나 주택 시장에서 수요는 고정되지 않고 신규 유입이 꾸준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수도권에선 13만 쌍 넘는 신혼부부가 혼인신고를 했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인구 유입도 멈추지 않고 있다. 여기에 청년 세대의 독립으로 인한 주택 수요까지 생각하면 서울은 물론 수도권 전체적으로 새집이 더 많이 필요하다. 6년 전 문재인 정부는 세입자 보호를 내세워 임대차법을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전셋값과 집값의 동반 급등이란 부작용을 자초했다. 현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며 전세 물량 감소와 전셋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규제의 방법은 달라졌지만, 세입자를 더욱 힘들게 하는 규제의 역설은 마찬가지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주정완([email protected])

2026.03.10.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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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란의 문화노트] 천만영화 ‘왕사남’ 속 일그러진 자화상

천만영화는 당대의 현상이다. 2003년 ‘실미도’를 시작으로 관객 1000만 이상 영화가 탄생할 때마다 극적 서사와 흥행 간의 함수뿐 아니라 블록버스터 제작의 허실, 스크린 독과점의 명암, 관련 경제의 파급 효과 등이 잇단 주목거리가 됐다. 애초 기대가 크지 않았던 작품이라면 뜻밖에 감응한 관객 심리 분석도 이어진다. 사극의 경우엔 오늘날에 빗댄 설정 분석이 포인트다. ‘왕의 남자’(2005)는 2000년대 신자유주의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계급 역전 얘기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선 진짜보다 정치를 더 잘하는 왕의 대역에 투영된 ‘좋은 정치에 대한 갈망’이 흥행 요인으로 풀이됐다. 1200만 관객을 향해 달려가는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에선 일차적으로 쿠데타에 권좌를 뺏기고 17세에 생을 마감한 비운의 왕을 연민하는 심정이 부각된다. 단종(박지훈 분)의 유배지였던 영월 청령포와 장릉(단종 묘)에 관광객이 몰리고 단종 관련 도서가 불티나게 팔린다. 그러나 ‘단종 앓이’는 현상일 뿐 ‘몰입’ 지점은 다른 얘기다. 영화적 긴장은 단종 측 세력이 복위를 꾀하면서 가열되는데, 그들이 거사에 다가설수록 유배지 촌민들의 설 자리는 좁아진다.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에서 그들이 최대한 멀어져 있는 게 유리하단 걸 관객은 안다. 역사적 사실을 뒤집지 않는 한 패배가 예정된 길이라서다.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정우성 분) 장군 무리를 향한 안타까움처럼 말이다. 흥미롭게도 ‘왕사남’은 쿠데타 주역 수양대군을 화면에 등장시키지도 않고 단종 복위의 정당성을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관객 시선은 두메산골 촌장 엄흥도(유해진 분)를 따르게 되는데, 영화 전반부 그가 유배객을 간절히 기다리는 건 그로 인해 마을 살림이 살아나리란 기대 때문이다. 일종의 ‘유배 경제’ 속물주의, 철저한 ‘먹고사니즘’이다. 제작사 온다웍스의 임은정 대표는 이와 관련한 매체 인터뷰에서 “현대인의 부동산에 대한 갈망까지 반영해 엄흥도의 입체성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치 격변이나 사회적 비극에도 내 주식은 어떻게 되나 경제적 저울질이 우선인 게 요즘 세태다. 그런 엄흥도가 할 수 있는 최대치는 어린 폐왕이 ‘강을 건널 수 있게’ 노끈을 잡아당기는 일이었다. 권력을 조롱하거나 풍자하면서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 서사를 상상했던 관객들이 이젠 누구라도 위태로울 수 있는 각자도생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염치를 곱씹는 듯한 풍경이다. 강혜란([email protected])

2026.03.10.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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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상대성이론 건축, 아인슈타인 타워

1911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의 기본 아이디어를 개진했다. 태양 근처를 지나가는 빛이 태양의 질량으로 인해 굴절된다는 가설이었다. 6년 후 천체물리학자 프렌들리히는 상대성이론의 실험동 설계를 에리히 멘델스존(1887~1953)에게 의뢰했다. 4년 동안의 계획과 모금 끝에 공사를 시작해 1924년 아인슈타인 타워(사진)를 완공했다. 길게 뻗은 기단부와 중앙의 5층 타워로 구성된, 자체가 하나의 실험기구와 같은 건물이다. 타워 정상에 회전 돔을 설치해 태양 빛을 수집하고 편광거울 장치를 통해 기단부의 대물렌즈로 수직 투사한다. 이 빛은 다시 분광실험실로 수평 투사되어 스펙트럼 분석에 이용된다. 이 분광 실험을 통해 빛의 굴절 여부를 입증하리라 기대했으나 태양 표면의 난류 등 장애로 정밀한 실험이 불가능했다. 반면 이 건물의 형태는 그야말로 획기적이었다. 모든 부분을 유려한 곡선으로 처리해 마치 파도를 가르는 기선이나 이륙 중인 비행기와도 같아 보인다. 상대성이론의 신비함을 표현하기 위해 무수한 아이디어 끝에 나온 표현주의 건축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멘델스존은 당시 최첨단의 과학과 예술 이론을 섭렵했다. 칸딘스키의 정신적 추상예술, 미래주의의 속도와 에너지, 독일 아르누보의 식물적 유연성 등을 융합해 표현했다. 이 유려한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애초에 콘크리트조로 설계했으나 당시 기술과 물자 부족으로 벽돌을 쌓은 조적식 구조로 바꾸었다. 회반죽으로 세부 곡면을 다듬고 시멘트 뿜칠로 표면을 마감해 마치 콘크리트 건물 같아 보인다. 구조를 변경했으나 설계를 보완하지 않아 태생적인 균열과 누수로 준공 5년 후부터 상습적인 개보수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시공간의 왜곡과 굴절이라는 아인슈타인의 핵심 개념을 표현한 걸작으로 이름 높다. 이 건물이 세워진 포츠담의 텔레그라펜베르크에는 천체물리학연구소와 지구과학센터 등 10여 중요한 연구시설이 산재한다. 1999년 ‘아인슈타인 과학공원’으로 재단장해 과학과 관광의 명소가 되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전 총장

2026.03.10.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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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의 마음 읽기] 젖은 책을 말리다

3월이 되자 도서관 옆 학교에 학생들이 돌아왔다. 겨울 내내 적막하던 학교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피어나 담장을 넘어오니 오래 기다린 봄꽃을 보는 듯 절로 흥겨워진다. 점심시간이 되면 급식실 앞에 줄을 서서 재잘거리는데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하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 밖으로 삼삼오오 몰려나오는 하굣길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 역시 즐겁다. 녀석들의 방앗간인 편의점의 소란스러움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까 봄은 단연코 학교에서 먼저 시작된다. 담장 옆의 꽃나무들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겨울잠에서 깨어나 꽃피울 채비를 하는 게 틀림없을 것이다. 개울물에 책보 빠뜨렸던 기억 쪼잔하게 주가 걱정하는 사이 전장에선 교과서가 피에 젖어 70년대 강원도 산골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처음엔 누나들과 함께 책보를 메고 다녔다. 보자기에 교과서를 싸서 어깨나 허리에 둘러매고 다녔다는 얘기다. 책보는 불편했다. 뛰거나 장난질을 치다 보면 쉽게 풀어져서 책과 공책이 한꺼번에 쏟아지기 일쑤였다. 땅바닥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어느 여름날 하굣길 개울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물에 빠트린 적이 있었다. 황급히 건졌지만 이미 교과서는 흠뻑 젖었고 시간이 흐르자 퉁퉁 불어났다. 무서운 선생님에게 혼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개울 옆 땡볕이 쏟아지는 자갈밭에 국어·산수·도덕 교과서와 공책을 빨래처럼 쭉 펼쳐놓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말리는 수밖에. 그때 처음으로 나도 책가방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여튼 그렇게 말린 책은 다른 아이들의 책보다 덩치가 두 배는 커져 있었다. 공책의 글씨는 지워졌지만 그나마 책 속의 글자가 지워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책보를 사용하던 저학년 시절엔 새 교과서를 받으면 누나들이 반듯하게 겉장을 싸줬는데 책가방을 사용하면서부턴 내가 직접 하기로 마음먹었다. 겉장으로 가장 좋은 종이는 달력의 반들반들한 흰 뒷면이었는데 어느 집이나 늘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밀가루 포대의 황토색 속지를 쓰거나 그마저 없으면 신문지로 싸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교과서 겉장을 쌌는지 안 쌌는지는 선생님이 직접 검사를 했기에 형제들이 많은 친구들은 밀가루 포대를 얻으러 이웃집을 전전하기도 했다. 나 역시 누나들과 넓은 달력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느라 바빴다. 어떤 해는 등교 전 혼자 남아(누나들은 일찍 학교로 튀어버렸다) 울며 겨자 먹기로 엄마가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밀 때 사용했던 얼룩덜룩한 달력으로 겉장을 싼 적도 있었으니…. 학교를 떠난 지 오래되었고 요즘은 도서관 담장 너머로 가끔 학교 풍경을 기웃거리며 옛날 일들을 떠올리고 있는데 인터넷에 뜬 사진 한장을 발견했다. 피가 얼룩진 분홍색 책가방이었다. 뒷면 작은 주머니엔 하늘색 히잡을 두른 소녀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펼친 채 기도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토요일 아침 폭격으로 무너진 여학교에서 찾아낸 먼지투성이 책가방이었다. 가방의 주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가방만 남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방 안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교과서와 공책, 연필이 들어 있을 것이다. 가방의 크기로 보아 초등학교 저학년이 주인일 것이다. 가방의 주인이 사는 중동의 나라는 금요일에 학교가 쉬고 토요일엔 등교하는 교육제도라고 한다. 그림 속 소녀의 동그랗게 뜬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소녀는 저세상에 있는 학교에 가방도 없이 등교하려면 얼마나 속이 상할까…. 며칠 뒤 굴삭기가 폭격에 사망한 여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묻을 묘혈을 파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이어 흰 수의에 쌓인 시신들의 사진이. 시신 옆 영정사진 속의 소녀들은 맑게 웃고 있었다. 살아 있는 엄마들은 그 옆에서 오열하고. 도서관 담장 너머 학교의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불이 꺼진 교실을 가끔 올려다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 미사일과 드론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하늘을 날아간다. 기름값이 껑충 뛰었고 주식은 급락과 반등을 했다. 우리는 고작 이딴 것들을 근심하는 쪼잔한 어른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아이들만이 훌쩍거리며 피에 젖은 교과서를 말리고 있는 건 아닐까. 봄이 오려면 아직 멀고 멀었다. 김도연 소설가

2026.03.10.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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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모그타더의 마켓 나우] 지금 시장에서 주목받는 ‘낮은 추적오차’

추적오차(tracking error)는 펀드 수익률이 벤치마크(비교지수)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수치가 높을수록 펀드 성과가 벤치마크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의미다. 자산운용 업계에서는 “추적오차가 높아야 진정한 액티브 운용”이라는 통념이 널리 퍼져 있다. 벤치마크와 다른 포지션이 초과성과를 낸다는 논리다. 그러나 낮은 추적오차 안에서도 충분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추적오차는 목표로 설정하는 수치라기보다 운용 철학과 리서치에 기반을 둔 투자 프로세스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결국 성과를 가르는 것은 추적오차의 크기가 아니라 리스크를 어떻게 배분하고 활용했느냐다. 벤치마크와 크게 다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높은 추적오차 전략’은 특정 투자 스타일이나 거시적 포지션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 방식에는 두 가지 구조적 한계가 따른다. 첫째, 특정 섹터나 스타일에 집중할수록 투자 가능한 종목의 범위, 즉 기회 집합이 좁아지고 평균적인 성공 확률도 낮아진다. 둘째, 금리·경기·지정학 등 거시 변수에 대한 판단이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 이 때문에 높은 추적오차 전략에서는 포트폴리오 조정의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시장에서는 타이밍 포착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섹터와 국가 간 상승 순환이 빨라지고 성과 격차도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기술주와 방어주 사이의 수익률 차이가 크게 벌어졌고, 신흥국 시장에서는 중국과 인도 간 성과 격차가 두드러졌다. 반면 벤치마크와 유사한 구조를 유지하면서 종목 선택으로 초과성과를 추구하는 ‘낮은 추적오차 전략’은 타이밍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국가·섹터·시가총액 노출을 벤치마크와 크게 다르지 않게 유지하면서, 여러 종목에서의 작은 비중 차이를 통해 초과성과를 축적하기 때문이다. 이 전략은 현금흐름 안정성이나 장기 성장 잠재력 같은 기업 고유의 펀더멘털 분석에 집중한다. 특정 방향성에 대한 단일한 판단에 베팅하기보다 다수의 독립적인 투자 판단에 리스크를 분산함으로써 리스크 대비 수익률을 높인다. 낮은 추적오차는 거시 리스크를 통제하고 지속 가능한 수익 원천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단기간의 극적인 성과보다는 다양한 시장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초과성과를 꾸준히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변동성이 큰 요즘 같은 시장 환경에서는 트렌드 추종형 집중 베팅보다 장기적으로 효율적인 리스크 배분 전략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낮은 추적오차 안에서도 투자 기회는 충분히 존재한다. 폴 모그타더 라자드자산운용 퀀트어드밴티지팀 매니징 디렉터

2026.03.10.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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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의 테아트룸 문디] 휘브리스를 경계하라

이란의 옛 이름은 페르시아다. 기원전의 고대 그리스 비극 중 ‘페르시아인들’이라는 작품이 있다. 제2의 배우를 도입하며 연극의 기본 틀을 만들었던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으로, 문명의 승패를 좌우했던 페르시아 전쟁을 다룬다. 그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그리스는 서구 문명의 출발점으로 자리 잡았고 오랫동안 인류의 정신과 문명을 지배했다. 만약 그때 페르시아가 승리했다면 인류는 어떻게 되었을까. 작가 아이스퀼로스는 마라톤과 살라미스 해전에 직접 군인으로 참여했던 사람이다. 덕분에 살라미스 해전의 상황을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어 ‘페르시아인들’은 사료로서의 가치도 크다. 그리스가 군함의 선수에 장착한 놋쇠 충각(衝角)을 사용해 수적으로 월등하지만 움직임이 느린 페르시아제국의 함대를 격파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달해준다. 지금으로 치면 드론처럼 가격은 싸지만 날렵한 신형무기를 사용한 전술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스퀼로스는 승리자의 오만에 도취하지 않았다. 당대 그리스인들은 절제와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신의 영역을 넘보는 인간의 교만(휘브리스)을 경계하거나 판단의 착오(하마르티아)로 생긴 파국조차 책임지려고 했다. 아이스퀼로스는 특히 휘브리스에 예민한 작가였다. 절제력을 상실한 영웅의 교만이 어떤 파국에 도달하는지 피와 광기의 역사를 반추하곤 했다. ‘페르시아인들’ 역시 그런 작품이다. 패배한 ‘페르시아인들’의 탄식에 초점을 맞추었고, 헬레스폰토스 해협에 다리까지 놓으며 신과 자연의 질서를 해칠 정도로 전쟁에 열광했던 군주의 교만을 성찰하였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다시 중동이 불타오른다. 도시에 검은 비가 내리고 집속탄이 터지는 이 무지막지한 전쟁에 과연 승자가 있을 수 있을까. 휘브리스를 경계하는 그리스 비극의 정신이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다. 김명화 극작가·연출가

2026.03.10.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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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석 만평] 3월 11일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3.10.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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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AI 코드 에이전트, 산업 질서를 흔들다

지난 2월, AI(인공지능)가 산업 구조를 뒤흔들자 월스트리트가 떨었다. 연초에만 해도 월가는 AI 낙관론에 들떠 있었지만, 예상을 뛰어넘은 AI 발전 속도가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이른바 ‘AI발 공포 매도’의 진원지로 앤트로픽이 지목됐다. 앤트로픽(Anthropic)이 2월 초부터 업무 자동화 도구를 연이어 출시하며 AI의 지식 노동 영역 대체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2월 9일, 투자자이자 스타트업 CEO인 매트 슈머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AI의 발전 속도가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있음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글은 순식간에 8000만 뷰 이상 공유되면서 AI의 영향력을 둘러싼 논쟁을 촉발했다.     이 후 위기론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22일 시트리니(Citrini) 리서치가 ‘2028년 지구적 지능 위기’ 보고서를 통해 2년 후의 가상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AI 확산으로 화이트칼라 실업률이 10% 이상 치솟고, 소비 없는 성장의 악순환과 경기 위축, 그리고 신용 리스크가 겹쳐 기존 산업 시스템이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이 가상 보고서 역시 큰 파장을 일으켰다.   26일에는 핀테크 기업 블락의 창업자 겸 CEO 잭 도시가 직원의 40% 감원을 발표하며 1년 이내에 대부분의 기업이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다음 날, 신용 위기 우려 등으로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금융권과 자산 운용사들의 주가가 급락하며 2월이 마감됐다. AI가 소프트웨어 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수익 지속성을 흔들자 수혜주들이 순식간에 피해주로 바뀐 것이다.   이 변화의 핵심은 소프트웨어 권력의 이동에 있다. 우리가 누리는 디지털 서비스는 모두 소프트웨어의 힘인데, AI 에이전트가  프로그래머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개발 능력을 부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역사적 변곡점이 2월 5일이라 할 수 있다. 이날 오픈AI는 ‘GPT 5.3코덱스’를 발표했고, 앤트로픽은 고난도 추론과 코딩에 특화된 ‘클로드 오퍼스 4.6’을 공식 출시하며 AI 코드 전쟁의 서막을 올렸다.     코드 AI 사용자들이 특히 클로드에 열광하는 이유는 AI와 인간이 한 팀처럼 협업하는 ‘클로드 코워크(Claude Cowork)’ 플랫폼 덕분이다. 코워크는 지식 노동자의 중앙 두뇌이자, AI 에이전트들의 공동 작업실 역할을 한다. 여기에 다양한 분야로 기능을 확장하는 플러그인 도구가 추가되면서, 사용자는 마치 팀장처럼 법률, 경영, 회계, 채용, 엔지니어링, 보안, 데이터 분석 등의 전문가를 불러내 자유자재로 협업할 수 있다.     ‘클로드 코드’를 활용하면 50년 경력의 프로그래머가 두 달 걸리던 코딩 작업이 이틀 만에 끝난다고 한다. 이른바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은 코드 문외한도 AI의 도움으로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든다는 말이다.     코드 문외한인 필자 역시 클로드 AI를 통해 주식 11개의 변동을 추적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의 주가 변화를 쉽게 알 수 있어 그 위력을 실감했다.   하지만 파격적인 유용함 뒤에 도사린 그림자는 공포스럽다. 앤트로픽이 새 플러그인을 출시할 때마다 관련 산업의 기업들은 주가가 곤두박질친다. 재무 분석 및 전략 리서치 플러그인은 수천 시간짜리 업무를 수 초로 압축 가능해 컨설팅, 리서치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했으며, 오래된 ‘코볼(COBOL)’ 언어의 현대화 플러그인이 발표된 직후 IBM 주가는 26년 만에 일일 최대 낙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지만, 이를 다룰 사회적 합의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AI의 통제 가능성을 묻기 전에 먼저 통제의 의지가 있는지를 논의해야 한다. 레지나 정 / LA독자열린광장 에이전트 코드 소프트웨어 산업 산업 구조 ai 에이전트

2026.03.0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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