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시론] 호르무즈해협 봉쇄, 남의 일이 아니다

중앙일보

2026.03.18 08:16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정호섭 해군협회 회장·전 해군참모총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일본·영국·프랑스·중국 등 7개국에 파병을 요청했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대응해 항로 안전 확보를 위한 군함 파견 등 국제공조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호르무즈해협은 세계 원유량의 약 20%, LNG의 25%가 통과하는 핵심 해상교역로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시작한 중동전쟁 와중에 이란이 이 해협을 봉쇄하면서 국제 에너지 수급에 최대 불안 요인으로 떠올랐다.

한국 에너지 수입 물량 60% 통과
공조 참여하면 국가 위상 높아져
한·미동맹 강화 차원에서 접근을

파병 요구에 반응이 시큰둥하자 트럼프는 불만을 토로했지만, 국제공조는 말처럼 쉽지 않다. 먼저 미국-이란 전쟁의 정당성을 놓고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남의 전쟁에 연루된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해군 함정을 파견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현장 상황이 엄중하다. 이 해협의 가장 좁은 구간은 폭이 21해리(38㎞)인데, 석유 해상 수송의 동맥이 이 수역에 압축돼 있다.

항로에 기뢰가 한 발만 발견돼도 해상교통은 중단되는데, 이란은 이미 기뢰를 부설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뢰뿐 아니라 이란은 드론·미사일 등 비대칭 수단을 이용해 통항 선박의 국적을 선별해 타격하면서 해협을 봉쇄하고 있다. 아무리 미사일 방어능력이 뛰어난 함정이라도 포화공격이 방어망을 뚫고 들어오는 틈이 생겨 심각한 손상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국제공조에 참여하는 함정은 선체와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이란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핵폭탄이 아니라 호르무즈해협 통제라는 말이 이래서 나온다.

하지만 이런 위험성이나 정치적 찬반 논란과는 별개로 냉정하게 국익을 고려하면 가능한 범위에서 국제공조 활동에 참여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호르무즈해협은 한국의 해외 에너지 수입량의 60% 이상이 통과하는 사활적 교역로다. 교역로 확보는 남의 일이 아니다.

둘째, 국제 공조에 참여하면 한국이 국제 해양질서와 해양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해군력을 구비한 중견국가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사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 해군을 포함해 세계 어느 나라 해군도 단독으로 해상교역로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이는 국제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남중국해와 인도양에 걸쳐 길게 뻗어있는 한국의 해상교역로도 마찬가지다.

셋째,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서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 정책을 추진하면서 동맹 및 파트너가 자국 안보를 스스로 책임지고 국제안보에 기여할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중요한 안보 지원을 하겠다고 공언해왔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을 통해 투자·안보 등 미국과 여러 방면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해양 팽창 등을 고려해 한국은 미국의 협력 요청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전쟁으로 한국의 해상교역로 안전 확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해상교역로는 크게 3단계로 확보된다. 첫째, 한반도 주변 관할 해역에서는 해군과 해경이 ‘하나의 국가함대’처럼 일사불란한 합동작전 능력을 구비해 주요 무역항만을 방호하고 연안 무역항로를 보호한다. 둘째, 중동항로나 미국항로 같은 한국의 관할해역 너머 해상교역로 안전은 국제법에 따른 해양질서와 우방국과의 협력을 통해 확보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이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셋째, 국적 상선에 대한 협력 및 지도 체제 구축도 필요하다. 이는 해상교역로에서 항행 중인 국적선을 유사시에 안전한 항로로 유도·호송하기 위한 통신 및 상황공유 체계를 평소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 위성통신을 중심으로 한 실시간 정보통신망이 국적 선박에서 운용되고 있다. 해양수산부와 해군 및 해경 함정, 그리고 국적 선박 사이의 비상 연락체계를 정비해야 위기 상황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은 안전한 해상교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각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은 지역 해양안보를 미국 해군에 의존하면서 해상교통 안전을 당연시해왔다. 그러나 미국 해군력 감축 와중에 중국이 새로운 해양강국으로 등장하면서 국제정치 현실이 급변하고 있다. 안보정책 결정자들은 이런 변화를 엄중하게 주시하며 해상교통 안전에 빈틈없이 대비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호섭 해군협회 회장·전 해군참모총장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