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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환의 도시의 맛] 프리츠커상 블루스

중앙일보

2026.03.18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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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환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장·건축학부 교수
해마다 프리츠커상 수상자 발표 시기가 다가오면 건축계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1979년 미국의 프리츠커 가문이 제정한 이 상은 오늘날 세계 건축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여겨지며, 흔히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불린다. 이 상의 역사가 쌓여가는 동안 해마다 강력한 후보로 거론돼온 거장 건축가들도 적잖다. 미국 건축가 스티븐 홀도 그중 한 명으로, 그는 한 인터뷰에서 “프리츠커 시즌이 되면 우울해진다”고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다. 수십여 년간 세계적인 건축가로 불려온 그 역시 아직 이 상을 받지 못했다. 올해 수상의 영예는 칠레의 건축가 스밀얀 라디치에게 돌아갔다.

건축계 주목하는 최고 건축상
올해는 칠레 건축가가 수상
해마다 ‘왜 못 받나’ 한탄 말고
우리만의 건축 문화 축적해야

채석장 바위를 구조로 활용한 라디치의 메스티조 레스토랑. [사진 하얏트재단]
“라디치의 건축은 일시적이거나 불안정하거나 의도적으로 미완성처럼 보이며, 거의 사라질 것 같은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낙관적이고 조용한 기쁨을 담은 하나의 구조적 피난처를 제공한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이 발표한 공식 심사평이다. 그의 건축은 세상의 주목을 끄는 거대한 스케일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소규모 건축에서 거친 재료와 원초적인 물성을 통해 풍경과 건축의 관계를 만드는 방식으로 실현된다.

건축은 건축주·건축 담론 어우러져야
프리츠커상은 건축가 개인에게 주어지는 상이지만 건축이라는 작업은 개인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뒤엔 평생에 걸쳐 그를 후원했던 사업가 에우세비 구엘이 있었다. 구엘 공원과 구엘 저택은 그가 가우디의 실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설계를 의뢰했기에 지어질 수 있었다.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는 낙수장 설계를 의뢰한 에드거 J 카우프만이 있었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이름을 세계 건축계에 알린 스미요시의 아즈마 주택 역시 한 건축주의 결단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건축가라도 그것을 현실에서 실험할 수 있는 건축주와 그것을 이해해주는 사회적 기반이 없다면 좋은 건축을 만들어낼 수 없다.

스밀얀 라디치
건축가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과정에는 또 하나 중요한 전제가 있다. 건축가의 작업을 해석하고 확장시키는 건축 담론이다. 이런 의미에서 올해 수상자인 스밀얀 라디치의 나라 칠레의 건축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칠레는 건축 산업의 규모로 보면 결코 큰 나라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두 명의 프리츠커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최근 이십여 년 사이에 국제 건축계에서 매우 주목받는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칠레에서 처음으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와 그의 공공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공공건축 그룹 ‘엘레멘탈(Elemental)’은 저소득층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주택 예산으로 집의 절반만 먼저 짓고 나머지는 주민이 스스로 완성하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른바 ‘반집 프로젝트’이다. 이 실험은 건축이 사회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며, 칠레 건축이 국제 건축 담론 속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계기가 됐다.

프리츠커상을 이야기하며 우리는 종종 일본 건축을 우리의 건축과 비교한다. 일본은 미국과 함께 아홉 명의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 건축이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데에는 뛰어난 건축가들의 작업이 큰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의 역량이 성장할 수 있었던 사회적 환경 역시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소규모 건축물에서도 건축가의 설계가 적극적으로 반영된다. 젊은 건축가에게도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기회가 주어진다. 이러한 작업들은 젊은 건축가들의 실험의 장이 되었고, 그 축적이 건축가의 고유한 언어를 만들어냈다.

세계적 스타 건축가 작품은 곳곳에
아이러니하지만 프리츠커 수상자가 한 명도 없는 한국에는 프리츠커 수상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이 적지 않다. 세계적인 건축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한국 건축가가 자신의 언어를 만들고 그것을 축적할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 측면도 있다.

일본인 최초의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단게 겐조는 젊은 시절 전후 일본의 재건 과정 속에서 히로시마 평화기념관과 같은 국가적 공공 프로젝트를 맡으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단게의 연구실에서 배출된 후미히코 마키와 아라타 이소자키 같은 건축가들이 일본 현대 건축의 흐름을 형성하며 일본 건축을 세계 건축 담론 속에 자리 잡게 했다.

그런 지금 국내 상황은 어떤가. 얼마 전 미래의 한국 건축계를 이끌 건축가를 발굴하던 중요한 제도인 ‘젊은 건축가상’의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상은 다행히 유지되었지만 수상자가 자비로 행사를 준비했다는 후일담이 씁쓸했다.

프리츠커상은 한 건축가의 업적을 기리는 상이지만 동시에 그 시대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최근 수상 경향을 보면 인간의 삶, 지역의 맥락, 그리고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중시하는 건축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오랜 세월 자연과의 조화를 삶의 기본 태도로 삼아 온 우리 전통 건축의 감각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 건축이 세계 무대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만의 건축을 꾸준히 만들어 가야 한다. 건축을 존중하는 문화와 제도, 그리고 건축가가 자신의 작업을 실험하고 축적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프리츠커상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결과일 것이다.

프리츠커상 발표 시기가 오면 언론에서는 늘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왜 우리는 아직 프리츠커 수상자가 없을까?” 우리는 이제 다른 질문을 던졌으면 한다. 건축이 건축가 개인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작업이라면, 지금 한국 사회는 얼마나 성숙한 건축 문화와 제도를 가지고 있을까.

임영환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장·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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