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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의 마켓 나우] 강달러·고유가, 유동성 위기의 뇌관

중앙일보

2026.03.1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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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 『관세 이야기』 저자
1981년 달러당 675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1985년 896원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달러화 강세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었다. 미 달러화와 주요 6개 통화의 상대가치를 측정하는 달러지수(DXY)는 1981년 85포인트에서 1985년 160포인트로 88% 급등했다.

배경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차례 오일쇼크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물가가 급등했고 경제는 침체에 빠졌다. 1980년대 초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21%까지 올리는 충격요법을 시행했다.

미 국채 장기금리가 10% 위에서 고공행진하고 미 경제도 강한 회복세를 타며 달러화 강세에 기름을 부었다. 달러 초강세로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달러 약세를 유도하도록 지시했다.

1985년 9월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주요 5개국(G5) 재무장관이 만나 인위적 달러 약세에 합의했다. 이른바 ‘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지수는 1988년 3월 88포인트까지 떨어졌고 원·달러 환율도 이듬해 달러당 669원으로 내려앉았다.

김지윤 기자
2000년 닷컴 버블과 물가 불안으로 연준은 기준금리를 6.5%로 인상했다. 달러화는 다시 강세 흐름을 탔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 9·11 테러가 발생하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로 달러지수는 120포인트까지 치솟았다.

이때까지도 달러 강세 자체가 글로벌 경제를 직접 위협하지는 않았다. 달러 강세로 미국으로의 수출이 늘어난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은 혜택을 누렸다. 또한, 달러가 강세를 보일 때는 국제유가 안정으로 부담을 덜었다.

전환점은 2008년이었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달러화 가치가 급락했다. 달러지수가 사상 최저치인 72포인트로 급락했다. 문제는 국제유가였다. 그해 미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147달러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중국 경제 성장으로 원유 수요가 급증했지만, 산유국의 정치 불안으로 공급 확대는 지지부진했다. 국제유가와 달러지수를 곱해 산출하는 글로벌 금융 스트레스 지표가 처음으로 1만 포인트를 넘어섰다.

역사는 2022년 봄 반복됐다. 연준이 고강도 긴축 정책에 돌입하자 달러지수는 100포인트를 상회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했다. 금융 스트레스 지표는 다시 1만 포인트를 넘어섰고, 주가는 폭락했다.

최근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고 달러지수도 100포인트 안팎에서 횡보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 스트레스도 급격히 높아지고 있어, 시장 유동성 고갈에 대한 주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 『관세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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