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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커넥톰 완성하면 치매·파킨슨병도 극복한다" [최준호의 사이언스&]

중앙일보

2026.03.18 03:05 2026.03.18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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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찬 승 프린스턴대 교수 인터뷰
 세바스찬 승 프린스턴대 교수. 삼성리서치 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사진 삼성전자}
인간의 뇌는 또 다른 우주다. 질량이 1.5㎏에도 못 미치지만, 약 1000억개의 뉴런(신경세포)과 1000조개의 시냅스로 이뤄져 있다. 뇌 속 연결선들을 한 줄로 이어붙이면, 길이가 16만~19만㎞에 달한다. 지구를 네 바퀴 이상 감을 수 있는 거리다. 그 복잡한 연결망 속에 인간 의식과 기억의 비밀이 숨어있다. 첨단 인공지능(AI)시대를 살면서도 뇌는 우주처럼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뇌 과학·공학이 빠르게 발전하고, 병원에선 뇌수술도 이뤄지지만, 뇌과학의 현주소는 ‘대륙의 윤곽만 겨우 그린 15세기의 세계지도’ 수준이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의 도전은 가속화하고 있다. 2003년 완성한 인간 지놈(Genome·유전체) 지도처럼 ‘인간 뇌 신경망 지도’ 즉 커넥톰(connectome)도 그려내겠다는 시도다. 1986년 300개의 뉴런을 가진 몸길이 1㎜ 벌레 ‘예쁜꼬마선충’의 뇌 지도를 파악한 게 시작이었다. 당시 12년이 넘게 수작업한 결과였다. 시간이 흘러, 2024년 10월엔 14만 개 뉴런과 5450만 개의 시냅스를 가진 초파리의 커넥톰이 완성됐다. 그사이 발전한 AI의 도움과 수많은 세계 연구자의 땀이 결합된 11년 만의 결실이었다. 초파리는 뇌의 뉴런 수가 인간 뇌의 100만분의 1도 안 되지만 인간 유전자의 약 60%를 공유하고 있어 다양하고 복잡한 행동을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런 유사성을 바탕으로 초파리 뇌 연구가 사람 뇌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바스찬 승(한국명 승현준·60)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 초파리 뇌 신경망 지도 완성의 주역이다. 그는 이같은 공로로 올 1월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NAS)가 주는 2026 프라델 연구상을 받은 데 이어, 2월엔 와일리재단의 와일리 생물의학상까지 공동수상했다. 와일리상은 역대 수상자 중 많은 이들이 노벨상을 받아 노벨상의 등용문으로 불린다. 승 교수의 연구는 실험실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말에는 AI 기반의 커넥톰 분석 기술을 상용화하는 스타트업 ‘미메이징(Memazing)'까지 설립했다. 그의 연구의 최종 목표는 인간 커넥톰 완성이다. 미국 뉴저지에 살고있는 승 교수와 수차례 화상과 이메일을 통해 AI 시대 뇌과학에 대해 탐구했다.

초파리 뇌 커넥톰에서 가장 큰 신경세포(뉴런) 50개의 정확한 위치와 배열 지도.[사진 프린스턴대]
커넥톰, '진정한 나'를 정의하는 지도

Q : 인류가 뇌를 이해하는 정도는 1%밖에 안 된다고들 하는데.
A : 그만큼 여전히 잘 모른다는 말이다. 인간의 뇌는 1000억 개의 뉴런과 1000조 개의 시냅스로 구성돼있다. 방대하긴 하지만 결국 유한하기 때문에 인간 커넥톰 완성도 궁극적으로는 가능하다. 커넥톰 분야에서 ‘100% 이해’는 달성 가능한 목표다. 하지만 커넥톰을 다 안다는 것이 뇌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과 같지는 않다. 인류의 이해도가 1%라고 말하는 것은 나머지 99%라는 ‘유한한’ 끝이 있다고 가정하는 거다. 나는 오히려 뇌가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Q : 당신은 “나는 나의 커넥톰이다(I am my connectome)"라는 말로 유명한데, 무슨 뜻인가.
A : 사람마다 마음이 다르고 성격·지능·기억이 다르다. 그 이유는 커넥톰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인종마다 눈 색깔이 다른 것은 DNA 차이 때문이지만, 기억과 같은 것들은 유전자에 기록된 것이 아니다. 신경과학자들은 나와 타인의 기억이 다른 이유가 바로 커넥톰에 있다고 생각한다. 커넥톰은 유전자에 의해서도 형성되지만, 경험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
(승 교수는 평소 강연에서 커넥톰은 단순한 신경 연결망을 넘어, 한 사람의 자아와 삶의 궤적이 담긴 진정한 ‘나’를 정의하는 지도라고 말한다.)


Q : 당신의 책 『커넥톰, 뇌의 지도』와 연구에 대해 얘기해 달라.
A : 나는 20년 전 커넥톰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동료들은 이것을 무모한 생각이라고 했다. 존 화이트가 고작 300개의 뉴런을 가진 예쁜꼬마선충의 뇌 지도를 그리는 데만 12년이 넘게 걸렸기 때문이다. 많은 과학자가 커넥톰 연구는 너무 느리고 노동 집약적인 시간 낭비라고 비판했다. 나는 커넥톰 책을 통해 정반대의 주장을 펼쳤다. 커넥톰 없이는 뇌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답할 수 없다고 믿었기에, 이 연구가 충분히 가치 있다는 점을 세상에 설득하려고 했다. 다행히 AI 기술의 발전으로 뇌 지도 구축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졌고, 덕분에 2024년에 14만개의 뉴런을 가진 초파리 뇌 지도를 발표할 수 있었다. 이제 초파리를 연구하는 모든 학자에게 커넥톰은 필수적인 도구가 됐다.
(존 화이트는 1986년, 인류 최초로 생명체의 신경망 지도를 완성한 영국의 생물학자다. 그는 예쁜꼬마선충의 뉴런과 시냅스를 지도화하기 위해 선충을 8000등분 한 뒤, 단면을 하나하나 다 살펴가며 신경망을 전부 그려냈다. 올 2월 와일리상 공동수상자이기도 하다.)
초파리 커넥톰이 실린 2024년 네이처

뇌 질환은 뉴런 네트워크의 문제

Q : 인간 커넥톰을 왜 만들려고 하나.
A : 인간의 뇌 지도를 만들고 모델링하는 것은 질병 치료와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유전 질환이 DNA 염기서열의 오류로 발생한다면, 치매·파킨슨 등 뇌 질환은 뇌 내부의 뉴런 네트워크 문제다. 커넥톰은 바로 이 네트워크의 지도이므로, 뇌가 어떻게 작동하고 왜 고장이 나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 지식이 된다. 1950년대 이후 뇌 질환 치료는 오직 약물에만 의존해 왔지만, 지금은 BCI(뇌·컴퓨터 인터페이스)라는 새로운 기술이 산업으로까지 성장하고 있다. 뉴럴링크 같은 회사가 대표적이다.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 전극을 심어 자극을 주는 치료법 같은 게 여전히 있지만, 최근에는 두개골을 뚫지 않고 초음파나 자기장을 이용하는 비침습적 방식의 회사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런 산업이 뇌 장애 치료에 중요해지겠지만, 효과를 보려면 더 정밀한 인간 뇌 지도와 모델이 필요하다. 지금의 기술은 눈을 가리고 다트를 던지는 것과 같다. 이게 성공하려면 인간 뇌 지도, 즉 커넥톰이 필수다.


Q : 초파리나 쥐와 인간의 뇌는 규모 면에서 천문학적인 차이가 난다. 인간 커넥톰 완성은 언제쯤 가능할까.
A : 인간의 뇌는 쥐보다 1000배 크고, 쥐는 초파리보다 1만배 크다. 아직 쥐의 커넥톰도 완성하지 못한 상태다. 커넥톰 연구의 발전은 빅데이터와 AI에 달려 있는데, 이 기술들은 역사적으로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발전해 왔다. 이런 추세라면 내 생애 안에 인간 커넥톰 완성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Q : 뇌과학이 AI 연구에 기여할 부분도 있다고 들었다.
A : 인간의 뇌는 단 10W의 전력으로 작동하면서도 10kW를 소모하는 AI보다 뛰어난 성능을 낼 때가 많다. 왜 더 인간 뇌를 닮은 AI가 없을까. 커넥톰이 밝혀지기 전까지 뇌는 베일에 싸인 소프트웨어와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커넥톰을 통해 뇌의 비밀이 드러났고, 뇌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처럼 변했다. 뇌의 물리적 배선 구조가 실리콘 칩의 설계와 유사하다는 점도 밝혀졌다. 이는 우리가 ‘커넥토믹 AI’라는 새로운 형태의 인공지능을 만들 기회를 얻었음을 의미한다.
(커넥토믹 AI란 커넥톰 연구를 이용해 밝힌 뇌의 모든 연결지도를 바탕으로 만든 새로운 AI 구조를 의미한다. 뇌를 더 정확하게 모방해 더 효율적인 AI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다.)


Q : 언젠가 인간 커넥톰이 완성되고, 이를 업로드할 수 있다면 그 존재는 ‘디지털 자아’로 봐야 할까.
A : 커넥톰 자체만으로는 SF영화 '트렌센던스'(2014)에서와 같은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을 실현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커넥톰을 이용해 뇌를 정교하게 디지털로 시뮬레이션하는 건 가능할 수 있다. 이게 한 개인의 디지털 버전이 될 수도 있겠다. 아직은 공상과학의 영역이지만, 초파리의 마음을 커넥톰 기반으로 업로드하는 연구는 이미 주류 과학의 일부가 돼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승현준 교수가 삼성전자 사장(삼성리서치 소장) 시절인 2021년 CES 삼성 프레스컨퍼런스에 나와 당시 최고 혁신상'을 수상한 '마이크로 LED' 110형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뇌 일부 대체하는 기술 개발 목표

Q : 스타트업 미메이징은 어떤 사업을 하나.
A : 커넥토믹 AI를 개발하고 상용화하기 위해 미메이징을 지난해 말 설립했다. 초파리는 인간처럼 시각 기능이 매우 발달한 동물이다. 초파리 뇌의 절반 이상이 시각 체계에 할당돼 있을 정도다. 우리는 이 작은 초파리 뇌에 응축된 시각 능력을 분석해, 기존의 말단 컴퓨팅 기기용 시각 솔루션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성능이 뛰어난 ‘커넥토믹 AI 알고리즘’의 실효성을 이미 입증했다. 커넥토믹 AI 전용 칩 분야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인간 뇌 커넥톰 완성이 회사의 목표이기도 하다. 뇌의 일부를 디지털로 시뮬레이션해 손상된 뇌 부위를 대체하고 싶다. 다리를 잃으면 의족을 쓰듯, 뇌의 일부를 잃었을 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려고 한다.


Q :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은 AI와 생명공학 기술로 인류가 신에 버금가는 초인류로 진화한다고 예언했는데.
A :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는 레이 커즈와일의 낙관적인 비전을 더 선호한다. 스티븐 호킹은 AI가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고, 많은 예언자가 인류가 AI의 노예가 되거나 절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이런 파멸론자들보다 커즈와일을 좋아하는 건 내가 낙천주의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세바스찬 승
한국명 승현준. 1966년 미국 뉴욕 생. 만 16세에 하버드대에 입학, 이론물리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히브리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낸뒤 벨연구소 연구원과 메사추세츠공대(MIT) 물리학과 및 뇌인지과학과 교수를 거쳐 2014년부터 프린스턴대 교수로 있다. 삼성리서치 사장(2020~2024)도 겸임했다. 호암상(2008) 수상에 이어 올해 초 프라델연구상, 와일리 생물의학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저서로는 『커넥톰, 뇌의 지도』가 있다.

커넥톰(Connectome)
뇌 속에 있는 수천억 개의 뉴런(신경세포)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나타낸 ‘포괄적인 뇌 신경망 지도’를 말한다. 유전체 지도인 ‘지놈(Genome)’에 비유해 ‘뇌의 유전자 지도’라고도 불린다. 2005년 미국 인디애나대 신경과학자 올라프 스포른스가 지놈처럼, 뇌 전체의 연결망을 하나의 통합된 데이터 세트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며 ‘커넥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영옥 기자



최준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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