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마스의 죽음은 상징적이다. 합리적 소통을 위한 이상적 담화의 조건, 그 위에 형성되는 공론의 장. 물론 그런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합리적 의사소통을 원하는 이들이 추구하는 이상일 뿐이다. 이상은 관념일 뿐,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유물론적 욕망이다. 프로이트에게 그것은 ‘권력의지’, 마르크스에게는 ‘이해관계’, 그리고 프로이트에게는 ‘성욕’이었다.
공소취하 거래 소동의 본질은
친명과 친청의 공천권 권력투쟁
음모론을 먹고살아 온 민주당
김어준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
이런 유물론은 이미 20세기에 사회의 상식이 되었다. 공론장의 붕괴를 한탄할 필요는 없다. 그런 건 애초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존재해야 붕괴도 할 게 아닌가. ‘공론장의 붕괴’라는 말은 그저 ‘그나마 규제적 이념의 노릇이라도 했던 합리적 소통의 바람마저 사라졌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공론장의 이념은 인쇄문화를 배경으로 한다. 전자매체들도 이 모델을 따랐다. 하지만 디지털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유시민은 레거시 미디어를 ‘재래식 언론’이라 불렀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그 표현으로 폄하에 동참했다. 두분이 좋아하는 최신식 언론은 재래식 언론과는 애초에 규제이념이 다르다. 김어준의 ‘겸공’은 아예 편파성을 표방하지 않던가. 이렇게 공정성이 편파성으로 교체될 때, 공론장 대신에 선동판이 펼쳐지기 마련이다.
공소취하 거래설. 정성호 장관이 검찰에 공소취하의 사인을 보낸 것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다만, 그 대가로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주기로 했다는 것은 전형적인 음모론으로, 그 유형이 김어준의 시그니처 음모론들과 일치한다.
‘누군가 대통령을 팔아 검찰과 공소취하를 놓고 거래를 했다. 그 결과 다 죽어가던 검찰이 회생했다. 그렇게 지켜낸 수사권으로 검찰은 언젠가 대통령을 겨눌 것이다. 그러니 정부 입법안을 막아야 한다.’ 딱 김어준스럽다.
이 소동의 본질은 차기 공천권을 둘러싼 친명과 친청의 권력투쟁이다. 동시에 차기 대권을 향한 청와대와 충정로의 힘겨루기이기도 하다. 겸손이 힘든 김어준은 ‘킹 메이커’로서 차기 대통령 후보 지명권을 자신이 쥐려 한다. 여당은 벌써 대권과 공천권을 둘러싼 권력 재생산 국면에 들어갔다. 음모론의 칼날이 자신들의 목을 겨누자, 음모론을 그렇게도 좋아하던 이들이 갑자기 “음모론의 폐해”를 설파한다. 보아하니 김어준마저 손절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섰다. “표현의 자유와 특별한 보호를 악용해 특권적 지위를 누리려는 아주 극히 소수의 사람과 집단이 있다.” 과거의 ‘영웅’이 목하 ‘빌런’으로 전락하는 중이다. 그들이 이제 정신을 차린 것일까? 그럴 리 없다. 그들은 음모론 자체를 청산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청산한 것은 그저 특정한 음모론, 즉 자기들을 겨냥한 딱 하나의 음모론 뿐이다.
그들이 과연 김어준을 청산할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음모론을 먹고 살아왔다. 그 음모론의 생산·유통·확산에 김어준만한 귀재가 없다. 이제야 ‘겸공’의 대안을 찾는다고 하나, 그 바닥에서 그처럼 ‘교주’ 수준의 영빨을 가진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민주당에서는 “대장동·위례신도시·대북송금 등 7건의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음모론은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다. 심지어 의사당 안의 ‘국정’이다. 아찔하지 않은가? 이화영의 대북송금 사건은 유죄가 확정됐다. 법원은 쌍방울이 이재명 경기지사의 방북 대가로 북한에 수백만 불을 대신 줬다고 인정했다.
이게 사실이다. 조작기소는 허구다. 그럼에도 이 허구가 현실로 행세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머릿속에 사실과 허구가 뒤집힌 세상을 창조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게 누구던가. 그동안 그들은 김어준이 뿌려주는 만나를 먹고 살아왔다. 그들은 아직 배가 고프고, 앞으로도 계속 고플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20여년 동안 김어준의 팟캐스트와 유튜브 폭격을 받아왔다. 전두엽이 파괴될 때 생기는 도파민의 쾌락은 중독성이 너무 강해 다른 자극으로 대체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김어준을 끊을 수가 없다.
외견상으로는 김어준이 궁지에 몰린 것 같다. 하지만 저변에서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그래서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봉합’된 것이다. 당정청이 마련한 합의안의 내용은 사실 김어준측의 승리로까지 보인다. 공론장은 현실이 아니라 목표다. 하지만 이 뜬구름을 추구하는 일 자체를 포기할 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음모론으로 추동된 ‘검찰개혁’의 대가는 앞으로 애먼 국민들이 맨몸으로 치르게 될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8월에 본격적으로 벌어질 대혈전에 대한 기대다. 전초전이 이렇게 스릴이 넘치니, 본 경기에선 장관이 펼쳐질 게다. 하긴, 이런 볼거리라도 없으면 이 우울한 세상, 어떻게 견디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