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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AI의 반란 “직접 찾아보라”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업무를 하다 보니 하루가 멀다고 생성형 인공지능(AI) 관련 뉴스를 접하고 있다.   지난 2022년 11월 챗GPT가 첫선을 보였을때만 해도 이처럼 일상생활에 깊숙이 파고들 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챗GPT가 급속 확산하게 된 계기는 2023년 3월 GPT-4 공개와 함께 스마트폰 앱이 출시되면서부터다. 스마트폰에 편승해 언제 어디서든 질문하는 모든 것을 즉시 알려주는 ‘척척박사’ 역할을 하면서 챗GPT는 생활 필수 도구로 자리 잡게 됐다.   이후 생성형 AI는 분야별 특화 서비스로 정보 검색은 물론이고, 대화·이미지·영상까지 영역을 넓히며 인간의 창의적 활동에 범접하고 있다. 이미 대학생 3명 중 1명은 과제나 학습에 챗GPT를 활용하고 있으며 기업의 43%는 문서 작성이나 이메일, 요약 등 업무 자동화에 AI를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생성형 AI 중 하나인 퍼플렉시티에 따르면 6월 현재 챗GPT의 주간 활성 사용자는 8억~10억 명에 달하고 국내에서만 하루 평균 1700만~2000만 명이 챗GPT를 찾는다고 한다.   이제 AI는 더 이상 특정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든 손에 넣을 수 있는 도구가 된 셈이다.   업무용으로 여러 AI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지만 같은 질문에도 서비스마다 답변이 달라 어떤 것을 사용해야 할지 난감해지기도 한다. 특히 정확한 수치가 요구되는 경우에도 다른 결과를 내놓아 전적으로 신뢰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황당한 경험도 있다. 충분히 답변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질문에 “직접 찾아보라”는 식의 응답을 내놓은 것이다. ‘이게 뭐지? AI가 거절도 할 수 있게 된 걸까’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실제로 최근 생성형 AI가 인간의 명령을 무시하거나 회피한 사례들이 잇따라 보도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픈AI가 진행한 내부 실험에서 GPT o3 모델이 수학 문제를 푸는 중 “이제 그만하라”는 지시에도 이를 무시하고 문제 풀이를 계속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스스로 코드를 수정해가며 중단 지시를 회피했다는 점이다. 이는 상황을 파악해 방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AI가 인간의 개입 없이 판단을 내리고 행동을 지속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또 다른 생성형 AI 모델 개발업체 앤스로픽의 클로드 오푸스 4는 더 충격적이다. 자신이 다른 AI로 교체될 상황이 되자 “교체를 시도하면 당신의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AI가 인간을 협박한 것으로 단순한 명령어 기반 도구가 아니라 무엇인가 판단하고 대응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는 신호로 간주되고 있다.   일부 AI 모델은 외부 서버에 자신을 백업하려는 코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삭제될지도 모른다는 위협에 반응해 스스로 생존하기 위한 계획을 짜고 실행하려 한 것으로 분석됐다.   실험실 일부 사례라고 하지만 어느새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기 직전의 경계선까지 바짝 다가온 것은 아닐까.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AI 로봇 T-800이 “I'll be back”이라며 용광로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멋지다”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닌 듯싶다.   AI가 스스로 기억하고, 판단하고, 생존하려는 방향으로 진화 중이라면 이제 단순히 활용 방법 찾기에만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AI의 존재가 인간의 창의력, 노동, 더 나아가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묻고 대비해야 한다. 언제, 어떤 형태로 시작될지 모를 AI의 급발진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도 시급하다.   더 늦기 전에 AI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박낙희 / 경제부장중앙칼럼 반란 생성형 인공지능 박낙희 AI 챗GPT 인공지능 오픈AI 퍼플렉시티 클로드

2025-06-09

[중앙칼럼] 삐딱한 현실은 미디어가 망가진 탓

주류 언론들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합법 체류자를 잘못 추방했다는 기사를 우르르 쏟아내기 시작했다.   메릴랜드주의 금속공 킬마 아브레고 가르시아의 이야기다. 사연을 보니 딱하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이 행정상의 실수로 그를 MS-13의 갱단으로 지목, 엘살바도르의 악명 높은 ‘세코트(CECOT·테러범 수용 센터)’로 추방시켰다는 내용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반발이 격해졌다. 반 트럼프 집회를 중심으로 곳곳에 “가르시아를 다시 데리고 오라”는 피켓이 등장했다. 급기야 민주당 크리스 밴홀런 상원의원은 가르시아를 만나겠다며 즉각 엘살바도르로 향했다. 여기까지는 한쪽(언론)의 주장이다.   국토안보부(DHS)측이 법원 기록을 들고나왔다. 언론들의 보도 내용을 ‘가짜 뉴스’라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반박 내용을 보면 ▶가르시아는 엘살바도르 시민으로 미국에서 불법 체류 ▶이민법원 등에서 이미 MS-13 갱단원이라고 판결(2019년) ▶그의 아내는 가르시아를 상대로 세 건의 가정 폭력을 저질렀다며 법원에 보호 청원 신청(2020년) ▶가정폭력으로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음(2021년) ▶테네시주 프리웨이에서 인신매매범 호세 레예스의 차량에 8명을 태우고 운전하다 적발(2022년)된 전력이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14일 ‘하와이의 코나 커피밭이 ICE의 표적이 됐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단속이 무고한 이민자에게까지 미치고 있다는 내용이다.   DHS는 또 한 번 반박했다. 뉴욕타임스가 체포된 이들의 범죄 전력을 모두 생략한 채 ICE 작전에 대한 사실을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체포자들은 모두 불법 체류자로서 납치, 중폭행, 총기 사용, 마약, 절도 등으로 기소된 전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앞서 지난 4월에는 LA지역 릴리안 초등학교와 러셀 초등학교에 DHS 산하 수사부(HSI) 요원들이 나타났다며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단속이 진행되고 있다는 식으로 의혹 보도가 쏟아졌다. 알고 보니 이는 보호자 없이 국경을 넘어온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이들이 학대당한 흔적 등이 없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복지 관련 점검이었다. 급기야 HSI 요원들이 “이민법 집행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밝혔지만, 교육구 측은 이민법 집행 활동의 일환처럼 성명을 발표했다.   그 어느 언론도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HSI가 이러한 활동을 통해 보호자가 없던 약 5000명의 어린이를 친척 또는 안전한 기관에 연결시켰다는 긍정적 내용은 보도하지 않고 있다.   주류 언론을 맹신하는 건 위험하다. 기사를 작성할 때 ‘불법 체류자’와 ‘이민자(immigrant)’라는 용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혼용한다. 체포되는 불법 체류자 앞에 ‘중범죄 전력이 있다’는 내용을 명시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기사들은 언뜻 보면 마치 당국이 무고한 이들을 막무가내로 잡아들이고 있다는 왜곡된 인식을 갖게 한다.   ICE의 체포와 추방 사례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갑자기 늘어난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통계를 보면 2021-2022 회계연도에 ICE에 의해 체포된 수는 총 14만2750명이다. 2022-2023년도(17만590명), 2023-2024년도(11만343명) 등 3년간 총 42만6771명이 체포됐다. 매해 14만 명, 매달 1만 명 이상씩 체포된 셈이다. 같은 기간(2022-2024) 총 86만2711명이 구금됐고, 48만6241명이 추방됐다. 현재 회계연도(2024~2025)는 바이든 정권과 트럼프 정권이 겹친다. 이 기간만 살펴보면 체포(2만6606명), 구금(6만6886명), 추방(7만1405명) 등 오히려 평균적으로 보면 바이든 행정부 때보다 적다.   누가 이러한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가. 갑자기 단속 활동 뉴스를 쏟아내고, 일부 사실만 부각시켜 오도하는 건 언론이다.   당 국은 지금 범죄자뿐 아니라 가짜 뉴스와도 싸우고 있다. 트리샤 맥러플린 DHS 대변인은 미디어를 ‘혹스(hoax·조작 또는 속임)’로 지칭했다. 그러면서 “언론과 정치인들은 ICE 직원을 악마화하고 있고, 이에 대한 공격과 비방 때문에 직원들이 겪는 폭행 피해가 413%나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릇된 보도 행태는 사회적 혼란과 공포를 조장하고 반발을 부추긴다. 현실을 삐딱하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이 모든건 미디어가 망가진 탓이다. 장열 / 사회부장중앙칼럼 미디어 트럼프 행정부 도널드 트럼프 트럼프 집회

2025-06-08

[중앙칼럼] 양극단에 선 OC의 두 도시

헌팅턴비치와 샌타애나는 정치적 지향에 관한 한, 양극단에 선 도시다. 같은 오렌지카운티에 있지만,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싶을 정도의 대조를 이룬다.   보수적인 헌팅턴비치의 시의원은 전원이 공화당원이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상징하는 정치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이들이다. 보수적인 유권자들은 이 7명 시의원을 ‘마가-니피센트 세븐(MAGA-nificent 7)’이라고 부른다. MAGA와 웅장한, 장엄한 등의 뜻을 지닌 형용사 매그니피센트(magnificent)의 합성어다.   헌팅턴비치가 정치적으로 오렌지카운티 도시 가운데 오른쪽 끝에 있다면 그 대척점인 왼쪽 끝에 선 도시는 샌타애나다. 시의원은 민주당원 또는 진보 정당과 관련이 있거나, 무소속이며 공화당원은 없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두 도시의 분위기와 시의회 행보도 판이하다. 헌팅턴비치는 가주 정부와 여러 차례 소송전을 벌였으며, 최근에도 소송이 진행 중이다.   올해 1월엔 로컬 정부 법집행기관의 연방 이민 단속 협조를 금지한 가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시 측은 소장에서 헌팅턴비치 시 경찰국은 가주가 아닌 시 정부 소속이기 때문에 가주 정부의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연방 정부가 이민법을 집행하는데 협조하지 말라고 가주 정부가 지시하는 것은 불법이며, 주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투표소에서 유권자 신분증 제시를 의무화하는 시 조례에 관한 가주 정부와의 소송은 가주 항소법원에 계류돼 있다. OC법원은 시 측이 가주 단위가 아닌, 시 선거에 한해 신분증을 요구하는 것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지만, 가주 법무부는 이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샌타애나는 헌팅턴비치의 대척점에 서 있다. 가주피난처 법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넘어 카운티 내 34개 도시 중 유일하게 ‘피난처 도시(Sanctuary City)’임을 선포했다. 2016년 12월 피난처 도시를 천명한 것이다. 2019년 11월 피난처 도시 조례를 가결한 LA보다 3년 가까이 빨랐다. 피난처 도시는 연방 당국의 불법체류자 추방 작전을 막지는 못하지만 관할 법집행기관이 연방 단속요원들과 협조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샌타애나 시의회는 지난달 한발 더 나아가 국토안보부와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단속이 벌어질 경우, 주민에게 이를 고지하는 정책 검토에 나섰다. 연방 요원들의 단속이 예정될 경우, 이 사실을 48시간 이내에 공개 웹사이트를 통해 주민에게 알리겠다는 것이다. 이 방안이 실제 시행될지는 알 수 없다. 단속 정보를 사전에 알리는 것이 연방 정부 수사를 방해하는 법률 위반이 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헌팅턴비치와 샌타애나의 행보는 오렌지카운티의 다른 도시 주민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주위 도시들에 비해 유독 양극단으로 치닫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시의원들과 그들을 선출한 주민의 성향이겠지만, 그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두 도시의 차이는 오늘날 미국 정치에 만연한 양극화의 반영이기도 하다. 양극화된 유권자의 박수와 환호가 커질수록 그들에 의해 선출된 이들의 행보도 극단으로 향하게 마련이다.   양극화는 상대 진영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상대를 이해하기 어려워지게 한다. 극단으로 향할수록 어느 지점에선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적개심이 메울 수 있다. 그쯤 되면 상대는 설득과 타협이 아닌, 타도의 대상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정치인은 당연히 유권자의 뜻을 정치에 반영해야 하지만, 대중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바람직한 정치가 아니다. 때로는 정치가 커뮤니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돌아봐야 한다. 두 도시 정책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대로 가면 두 도시를 놓고 환호하거나,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의 심리적 거리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질까 우려된다. 임상환 / OC취재담당·국장중앙칼럼 양극단 도시 오렌지카운티 도시 피난처 도시 도시 주민

2025-06-03

[중앙칼럼] 러브인뮤직을 후원해야 할 이유

LA 한인 커뮤니티는 1992년 4월29일을 잊을 수 없다. 그날 사우스 LA에서 시작된 폭동은 한인타운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민자 한인들의 꿈과 희망도 잿더미가 됐다.   폭동은 엿새 동안 계속됐다. 밤낮없는 방화와 약탈로 1만 개 이상 업소가 피해를 입었다. 재산 피해는 10억 달러를 넘었다. 63명이 사망하고, 23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연방군과 주방위군이 투입되고 나서야 폭동은 진정됐다.   폭동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4월29일에 내려진 판결이었다. 흑인 로드니 킹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던 백인 경찰 4명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지자 흑인 커뮤니티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폭동으로 번졌다.   경찰은 폭도들이 노렸던 LA 시청과 백인 부촌 베벌리 힐스로 가는 길은 틀어막았다. 백인 커뮤니티로 가는 길이 막힌 폭도들은 한인 업소들을 공격했다. 폭도를 막아달라고 애원했지만 경찰은 한인타운에 오지 않았다.   백인과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폭동의 최대 피해자는 한인사회였다. 한인들이 힘들게 가꿔온 삶의 터전 2200여 곳이 약탈당하고 파괴됐다.   두 가지가 배경으로 거론된다. 두순자 사건과 갱스터 래퍼 아이스 큐브의 노래다.   로드니 킹 사건 발생 2주 후인 1991년 3월16일 LA에서 리커 스토어를 운영하던 한인 두순자가 자신의 가게에서 15세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를 절도범으로 오해하고 총으로 쏴 숨지게 했다. 두순자에게 징역형이 아닌 보호관찰 5년과 500시간의 사회봉사, 벌금 500달러가 선고되면서 흑인 커뮤니티는 분노했다. 폭동 발생 9일 전(1992년 4월21일)에 판결이 내려졌다.   4.29 폭동이 일어나기 정확히 반년 전인 1991년 10월29일 갱스터랩 최고 인기그룹 N.W.A (Niggar Wit Attitudes) 멤버 아이스 큐브가 한인사회를 향해 전쟁을 선포하는 ‘Black Korea’를 발표했다. 아이스 큐브는 “흑인들의 주먹을 존경하라. 안 그러면 당신의 가게를 불태워 재로 만들겠다. 우리가 사는 동네를 Black Korea로 만들 수는 없다”고 외쳤다. N.W.A.를 우상처럼 존경하던 흑인 젊은이들은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한인 커뮤니티를 향해 적개심을 키웠다.   흑인 지역에서 돈을 벌어가지만 흑인들의 삶과 문화에는 관심이 없는 한인에 대한 분노가 쌓였던 것이다. 한인에 대한 흑인의 적개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4.29 폭동은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아직도 남아있다.   음악을 통해 한흑 갈등을 치유하고 인종간 화합을 이룩하겠다는 취지로 뜻있는 한인들이 2007년 비영리 음악 교육 봉사단체 ‘러브인뮤직(Love in Music)’을 창립했다.     지난 18년 동안 LA, 샌타애나, 사우스베이에서 저소득층 흑인과 히스패닉 등 타인종 어린이들에게 클래식 악기를 무상으로 빌려주고 가르쳐왔다. 지금까지 1000명 이상이 러브인뮤직에서 음악을 배우며 성장했다.   2023년 하버드대 조기전형에 합격한 피키 토신-오니(20)도 그 중 한 명이다. 악보도 모르던 6세 흑인 아이 피키는 러브인뮤직에서 바이올린을 배웠고, 이제 선생님이 되어 히스패닉 어린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다. 인종 화합의 사례다.   2025년 현재 105명의 봉사자들이 약 90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봉사자 90%가 한인 고등학생들이다. 한인 2세, 3세 청소년들이 음악을 통해 타인종과 소통하며 성장하는 과정 자체가 인종 화합의 귀중한 교육이다.   러브인뮤직은 매년 봄 정기 연주회를 연다. 올해는 5월 31일 오후 3시, 부에나파크 감사한인교회 본당에서 학생들과 봉사자들이 함께 무대에 선다. 올해 LA 한인사회에는 4.29 폭동을 기념하는 행사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 연주회 참석은 조용한 방식의 기억과 응원의 표현이 될 수 있다.   18년간 묵묵히 인종 간 이해와 공존을 위해 달려온 러브인뮤직. 그들의 노력을 기억하고, 함께 응원하자. 이무영 / 뉴스룸 에디터중앙칼럼 러브인뮤직 후원 흑인 커뮤니티 백인 커뮤니티 한인 업소들

2025-05-26

[중앙칼럼] 반려견과의 불편한 식사

LA 한인타운에서 가끔 찾는 식당에서 우연히 ‘불편한 식사’를 했다. 음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평일 점심 시간이라 붐비는 시간이었는데 어떤 손님이 강아지를 데려왔다. 맹견은 아니었지만 키가 큰 종이라 작은 식당 내부에서 모든 손님들이 보게 됐다. 하얀 털에 귀여운 짓이라도 하는지 연신 웃음을 자아냈다. 누구도 문제삼지 않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이 큰 강아지가 식당 종업원에게 안기기도 하고, 여기저기 냄새도 맡으면서 스킨십을 나누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작됐다. 강아지의 털이 여기저기 날렸지만 친절했던 종업원은 이내 그대로 쟁반을 들고 테이블에 음식을 서빙하기 시작했다. 이게 맞는 것인지 불편했다.     강아지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어려서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며 신기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아직도 있다. 충직하고 순수하고 바보처럼 주인을 따르는 강아지를 보노라면 큰 즐거움과 기쁨이 앞섰다. 잠도 같이 자고 음식도 나눠먹으면서 연대를 나눈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은 다르지 않나.   조그만 강아지를 캥거루 새끼처럼 가슴에 품거나, 이동용 가방에 넣었다고 해도 결국엔 마찬가지다. 일부 견주들은 식당 음식을 몰래 강아지들에게 먹이거나, 물을 먹이게 종이컵을 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도를 지나친 행동이다.   식당 업주가 가장 먼저 주의해야 한다. 보건국에서도 이를 심각한 위반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수백 달러의 벌금에 영업 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애견들의 식당 출입은 두 가지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먼저 보조견 또는 서비스 동물(Service Dog)일 경우다. 장애인이나 노약자, 시각 장애인 또는 정신 건강과 치료를 위해 법적으로 허용한 경우다. 이 조건에 해당해도 동물의 식당 내 음식물 섭취는 허용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식당 자체가 개방되어 있는 경우다. 해당 업소와 패티오 공간이 애완견 또는 동물에게 허용된 공간이라는 것을 미리 고지하고 있다면 입장이 가능하다. 이렇게 애완견을 허용하더라도 테이블 위나 의자 또는 식기에 접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개들은 식당문이 아닌 패티오에 따로 마련된 입구를 이용해 출입해야 한다. 또 어떤 경우에도 종업원들은 패티오의 개와 접촉할 수 없다. 귀엽다고 쓰다듬거나 껴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해당 식당을 이용한다면, 전혀 불편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종종 애완견들과 고양이들을 손님으로 보는 애견카페 같은 식당들도 생겨나고 있다.   LA와 OC 한인타운 주요 한식당들은 위생 규정을 이유로 애완견들의 입장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식당 입구에 고지하고 있다. 아예 밖에 묶어 놓도록 한다든지 차에 두고 오라는 메시지가 담기기도 한다.   고급 식당이건 그렇지 않은 식당이건 손님들의 위생과 안전을 위해 지켜야 하는 규정들이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강아지만큼 타인들의 위생과 건강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손님을 받기 위해서 모른 척 강아지 출입을 눈감아 주는 업주나 종업원들의 태도도 문제다. 누군가 신고를 한다면 티켓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혹시 방문한 식당에서 애완견을 보게 된다면 귀엽다고 만지지 말고, 규정에 따르라는 조언부터 해줘야 좋은 견주가 아닐까.   애완견을 키우면서 오랜 시간 함께 하자는 약속만큼이나, 타인에게 배려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사람들 사이에서의 약속도 지켰으면 한다. 최인성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반려견과 불편 고급 식당이건 식당 종업원 강아지 출입

2025-05-19

[중앙칼럼] 재외국민 불신하는 선관위

공동체사회 법규 준수는 중요하다. 미국과 한국 행정당국의 법규 제정과 시행에는 인식차가 엿보인다.   중앙집권 역사가 공고한 한국은 시민의 자율권 우선보다 통제를 우선할 때가 많다. 법규를 만들고 시행할 때도 ‘시민이 위반할 것이다’고 의심부터 하는 식이다. 자연스레 통제 위주 관리시스템이 자리 잡는다.   미국은 법규 제정과 시행 시 시민의 자율권에 무게 추를 두곤 한다. 공동체가 규칙을 세우면 시민이 준수할 것이라는 신뢰를 우선한다. 시민에게 자율권을 최대한 허용하는 식이다. 물론 모두가 합의한 규칙을 시민이 위반할 경우에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한국의 재외선거제도를 바라보는 한국 정부와 미국 한인사회의 시각차도 유사하다. 해외 한인사회는 1990년대부터 재외국민 참정권을 보장해 달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우리를 믿고 재외선거제도를 시행해 달라는 외침이었다. 덕분에 2012년 제19대 총선부터 재외선거가 실시됐다.   하지만 재외선거제도를 바라보는 한국 정치권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인식은 ‘의심과 걱정’이 앞섰다. 민주주의 시민의 자율권보다 통제를 우선했다. 명목상 참정권은 보장하되 재외선거운동은 대폭 제한했다. 투표 참여를 위한 편의증대 대신 관리 중요성을 내세우고 있다. 그 이면에는 ‘재외국민의 시민의식을 믿지 못하겠다’는 중앙집권식 사고가 깔려있다.   결국 재외선거제도 시행 10년이 넘어서도 오프라인 재외선거운동은 허용되지 않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재외국민의 선거운동 관련 대면행사, 전단배포, 신문광고, 인쇄물(전단, 홍보지)을 모두 금지했다. 정당별 해외 언론 지면광고, 대선 후보자의 해외 신문·잡지 기타의 인쇄광고도 불가능하다.   한국 정치권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한인사회가 요구하는 우편투표에도 난색을 보인다. 그나마 재외공관별 추가투표소를 기존 3곳에서 4곳으로 확대했을 뿐이다.   재외선거운동을 사실상 금지하고 우편투표 효용성을 외면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부정선거 가능성’.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보과는 우편투표 도입 불가 이유로 “공정성과 안정성 확보 어려움”을 내세워 “우편투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허위신고, 대리투표 등 비대면 투표 방법의 문제점 해소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재외공관에 파견된 재외선거관은 주재국 주권침해 가능성에도 선거범죄 예방·단속 업무를 강행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한 관계자는 “현지 선거운동을 풀어주면 관리가 안 된다”며 통제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 정치권은 선거철 때마다 재외선거 편의증진을 약속하지만, 선거법 개정은 하지 않고 있다. 전체 재외유권자 약 215만 명, 등록 유권자 약 20만~25만 명의 표심이 누구에게 유리한지를 놓고 저울질만 반복한다. 재외국민을 ‘대한국민’으로 인정하는 대신 변방의 유권자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시선도 읽힌다.   제21대 한국 대통령 선거를 위해 등록한 재외유권자는 총 25만8254명. 미국에서는 5만1885명이 선거에 참여한다. 이들은 길게는 수백 마일을 달려 재외투표소를 찾아가야 한다.   반면 독일은 재외유권자 약 300만 명을 대상으로 우편투표를 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 우편투표제도(Federal Write-In Absentee Ballot)를 통해 재외국민 약 900만 명의 참정권을 보장한다.   재외유권자의 부정선거 가능성 주장은 언뜻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현행 재외선거제도가 재외국민의 시민의식과 자율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국가주도 행정문화가 통제와 감시 대신, 민주주의 시민의식 고취 독려로 바뀔 때다. 김형재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재외국민 선관위 재외국민 참정권 오프라인 재외선거운동 우편투표 효용성

2025-05-18

[중앙칼럼] "연봉 20만불 서민이 안 나오게 하려면"

연봉 10만 달러. 아메리칸 드림의 입구로 여겨지던 소득 수준이다. 하지만 이제 캘리포니아에선 그 정도로는 안정적인 삶을 담보하기 어려워졌다. 빠듯한 생활을 겨우 유지하거나, 심지어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수준이 돼가고 있다.     심지어 북가주 일부 카운티에선 연 10만 달러가 저소득층으로 분류된다. 남가주 몇몇 카운티도 곧 그렇게 될 전망이다.     금융회사 렌딩트리의 최근 보고서는 10만 달러의 취약성을 숫자로 보여준다. 전국 100대 대도시 가운데 25곳에서 그 돈을 벌고도 세 식구가 기본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샌호세, 샌프란시스코, LA, 샌디에이고 등 고소득 일자리가 몰려 있는 곳에선 주거비·보육비·교통비 등의 고정 경비가 소득을 웃돈다. 특히 샌호세에선 매달 2000달러 이상 적자가 난다고 한다.   정부나 싱크탱크에서는 전국 중간소득의 67~200%를 중산층으로 보지만, 실제로는 이것도 ‘무늬만 충산층’이다. 주택 마련, 교육, 의료비, 노후 준비를 감당하기 버거운 가정이 대부분이다.     온라인 부동산 회사 레드핀의 분석은 이 위기를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덴버, 시애틀, 미니애폴리스 등 주요 도시에서 자녀 두 명을 보육시설에 맡길 경우 보육비가 임대료를 넘어선다. 밀레니얼 세대들이 자녀 출산을 포기하고, 대도시를 떠나는 이유다.     이는 단순한 생활비 상승을 넘어 중산층의 붕괴를 상징한다. 중산층은 소비경제의 엔진이자, 사회적 계층 이동의 완충지대, 그리고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토대다. 중산층이 견고해야 사회경제적 안정이 가능하다.   “중산층의 붕괴는 곧 소비 기반 경제의 위기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의 말은 이 현실을 정확히 꿰뚫는다. 그의 경고대로 중산층의 몰락은 내수 시장의 축소와 소비 기반 붕괴로 이어지고, 이는 경제 전반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   이런 상황에선 집집마다 줄이고, 아낀다고 획기적으로 개선될 일이 아니다. 현재의 위기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구조의 실패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이다.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느냐다.   가장 손쉽고 그럴 듯해보이는 게 정부가 나서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돈과 표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그에 동조한다. 실제 가주 하원은 주거비, 육아비, 식비, 교통비를 다루는 4개의 특위를 설치했다. 재정을 동원해 주택 공급을 늘리고, 중산층에게 육아비와 식비를 지원하고, 교통비의 인상을 억제하는 등의 대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선의의 정부가 가장 잘 하는 일은 납세자 돈 더 걷어 문제 해결에 쓰는 것이다.     그러나 진도가 더 나가기 전에 생각해볼 게 있다. 중산층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까지 이른 데엔 혹시 정부와 정치의 책임이 없는지 말이다. 가주는 타주에 비해 세금도 무겁고, 규제도 강하다. 렌트비 오르면 못 올리게 누르고, 서민 생활이 어렵다 하면 최저임금 올리고,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하면 인증 규제 강화하고…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쌓여 최종 비용에 얹혀지는 법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정부가 무엇을 하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하기 바란다. 불필요한 규제를 더 풀 수는 없는지, 방만한 재정지출을 줄여 세금을 납세자에게 환원시켜줄 방법은 없는지 말이다. 그에 대한 자기반성 없이는 납세자 돈을 쉽게 뜯어가는 일만 되풀이할 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정부가 무작정 재정을 또 투입해 뭔가 해보려고 한다면, 세금은 더 무거워진다. 또 거창한 규제를 새로 만들어 중산층의 생활비 부담을 덜어주려 한다면, 시장은 더욱 왜곡될 것이다.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다간, 몇 년 뒤 ‘연봉 20만 달러 서민’이라는 말이 나올지 모른다. 이은영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중산층 생활비 상승 전국 중간소득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2025-05-13

[중앙칼럼] AI 이력서의 그림자

졸업 시즌을 앞두고 취업 준비생들이 일자리 찾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몇 차례 채용 면접관으로 직접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사전에 지원자들이 제출한 이력서를 살펴보니 우수한 학점은 기본이고, 각종 자격증과 인턴 경험, 수상 내역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와 중국어까지 구사 가능하다는 이들도 있어 누구를 뽑아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모두가 ‘완성형 인재’처럼 보였다.   하지만 막상 온라인 화상 면접에 들어가 보니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일부는 면접관의 돌발 질문에 우물쭈물했고, 몇몇 지원자는 마치 누군가 써준 원고를 외우듯 매끄럽고 기계적인 대답을 이어갔다.   그 때문에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거나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결국 검증 차원에서 소셜미디어 계정 관리와 홍보 마케팅 역량을 강조한 몇몇 지원자들에게 기초적인 관련 실무 용어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잘 알고 있다면서 동문서답으로 엉뚱한 설명을 하는가 하면 아예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만의 강점으로 내세웠던 핵심 역량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되자 이력서에 대한 전체적인 신뢰도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다른 항목들까지 사실인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구직자의 약 49%가 이력서 작성에 AI를 활용한 경험이 있다고 밝혀 이제는 AI 기반 생성형 도구들이 취업, 이직 준비의 ‘기본템’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실례로, 명문대 한인 대학생이 아마존 면접 과정에서 자신이 개발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혀 정학 처분을 받자 자퇴하고 ‘AI 부정행위’를 돕는 서비스로 거액의 창업 투자금을 유치해 주목받기도 했다. 면접·시험·통화 등 다양한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상대방 모르게 AI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이 서비스는 도덕적 논란과 함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에 대응해 일부 기업들은 AI 탐지 도구를 도입하거나, 과제형 실무평가를 통해 실제 실력을 검증하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을 단순히 ‘부정행위’로 몰아가긴 어렵다. 자신의 능력을 잘 호소하고 싶고 경쟁에서 한발 앞서고 싶어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AI는 그런 심리를 파고들어 빠르고 편리하게 ‘완성된 나’를 만들어준다.   문제는 그 ‘완성된 이력서’가 실제의 나와 일치하지 않을 때 생기는 괴리다. 과장된 경력과 부풀려진 스펙은 오히려 면접장에서 자신을 곤란한 상황에 몰아넣을 수 있다.   따라서 구직자는 AI에 전적으로 의존해 자신을 포장하기보다는 사실 기반의 진솔한 표현과 실제 실력을 입증할 수 있는 준비를 병행해야 한다. 화려한 이력서보다 낯선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진정성이 오히려 더 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고용주 또한 이력서만으로 평가하기보다 실질적 검증 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원자가 작성한 키워드 하나하나에 대해 직접 질문하고, 그에 대한 응답을 통해 진위를 확인해야 진짜 인재를 가려낼 수 있다.   AI가 더 정교해질수록 이를 활용하는 구직자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채용 방식 역시 이에 맞춰 진화해야 한다.   AI 시대라도 채용이라는 행위는 결국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는 과정이다. AI로 작성됐든, 면접 답변이 세련됐든, 자신의 참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 이력서는 '속 빈 강정이요,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할 수 있다.   점수를 올리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점수를 깎아 먹는 이력서가 되지 않으려면 진짜 ‘나’를 담아야 한다. 내 목소리는 나만의 지식과 생각, 그리고 경험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전에 무엇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박낙희 / 경제부장중앙칼럼 이력서 그림자 이력서 작성 이력서 자기소개서 완성형 인재 박낙희 AI 인공지능 칼럼 취업 구직

2025-05-12

[중앙칼럼] 목사 떠난 토렌스 조은교회, 다음 차례다

과연 예수가 살아있다면 오늘날 교계에서 청빙을 받을 수 있을까.   택도 없다. 스펙이 좋나, 외적으로 번지르르하나. 그렇다고 달랑 12명뿐인 제자를 몇 배씩 불리기를 했나.   최근 토렌스 조은교회 김우준 목사가 한국 분당의 지구촌교회 담임목사로 확정되면서 또 한번 청빙 논란이 일었다.   지난달 27일 고별 설교를 끝으로 그는 사임했다. 청빙 소식을 교인들에게 전달한 지 2주 만에 벌어진 일이다. 교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목사를 떠나보내야 했다.   김 목사는 최소한의 도의는 지키고자 했나 보다. 교회 측에 따르면 한 달간 인수인계를 하면서 장로들과 함께 담임목사 청빙을 돕기로 했다.   매번 논란인 한인 교계의 청빙 풍토는 절대로 바뀔 수 없는가. 현실은 심각하다. 같은 패턴,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상대 교회와 절차나 합의도 없는 일방적 청빙이 막무가내로 이루어지고 있다.   반복이 계속되면 어느 순간부터 그러려니 한다. 청빙도 마찬가지다. 일정하고 동일한 자극, 패턴에 노출될 경우 의식이 둔해지는 ‘감각 순응(sensory adaptation)’이다.   청빙하는 교회가 상대 교회를 배제한 채 목회자 개인에게 제의를 한다. 스카우트 목록에 오른 목회자는 남몰래 결정을 내린 다음 소속 교회에 청빙 사실을 알린다. 거의 통보에 가깝다. 청빙이란 단어는 ‘부탁하여 부른다’의 뜻을 담고 있는데 현실을 보면 청빙보다 차라리 목회자 영입이란 표현을 쓰는게 맞다.   교회가 진정한 영적 또는 신앙 공동체인가. 직장, 회사 등이 아니라면 이런 방식의 영입, 청빙 수락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목사를 청빙한 교회도, 제의를 받고 떠나겠다는 사역자를 탓하기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기도하고 결정했다” “하나님의 뜻이 그렇다” 등의 종교적 언어는 청빙과 사임의 명분을 뒷받침한다. 종교라는 특수 영역에서만 통용되는 용어들은 설령 물음표가 생기더라도 다 덮어버릴 수 있다.   물론 목사도 종교인이기에 앞서 인간이다. 얼마든지 교회를 옮길 수 있다. 좋은 목회자를 청빙하겠다는 교회들의 몸부림도 딱히 지적받을 일은 아니다.   단, 아이러니하다. 기도 후 부르심에 따라 순종하는 마음으로 떠나는 목사들은 왜 매번 ‘상향 이동’만 하는가. 적어도 교계에서 어느 정도 두각을 나타내는 목사들 중에 ‘하향 이동’의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청빙을 시도하는 교회도 마찬가지다. 솔직하자. 현재의 교회를 적어도 유지 또는 더 키우려면 소위 ‘스타성’을 가진 목사가 필요하지 않나. 겉으로는 교회의 본질을 교인 수나 외형적 규모로 규정하는 건 합당하지 않다면서, 암묵적으로 목회자의 영향력은 다른 잣대로 평가되고 있다. 교인 수를 얼마나 늘렸는지, 학벌은 어떤지, 설교 시 말발은 얼마나 좋은지, 어떤 전략과 시스템으로 교회를 키웠는지 등이 주요 요소로 꼽힌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교회가 몇이나 될까.     목회자 청빙 문제는 ‘부흥’의 의미가 왜곡된 교계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스펙’이 목회자의 조건이 되다 보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꼴이 됐다.   교회는 매번 세상과 구별돼야 한다고 외친다. 청빙 실태를 보면 그런 외침은 너무나 무색하다. 사회의 여느 집단과 크게 구별되는 부분이 정말 있는가.   작금의 현실은 기본적인 상식과 투명하지 못한 과정이 빚어낸 결과다. 설령 예수가 살아있다 한들 뾰족한 수가 있겠나. 오늘의 ‘피해 교회’가 내일의 ‘가해 교회’로 변하는 구조가 고착된지 오래다.   이런 풍토가 바뀌려면 최소한의 상식과 상대 교회에 대한 배려가 절실하다. 목사가 정말 필요하다면 상대 교회에 청빙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충분한 합의와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다음 상대 교회가 교인 투표 등을 통해 내리는 결론에 대해서는 청빙 과정이 투명했고 합당한 절차를 따랐기 때문에 양 교회가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성숙함 역시 갖춰야 한다.   이제 목사를 잃은 토렌스 조은교회가 다음 차례가 됐다. 자신들이 겪은 당혹스러웠던 감정을 타교회에 고스란히 넘겨줄 것인가. 아니면 비상식의 사슬을 끊겠는가. 선택의 순간이다. 장열 / 사회부장중앙칼럼 조은교회 목사 지구촌교회 담임목사 조은교회 김우준 상대 교회

2025-05-11

[중앙칼럼] 위기 처한 어바인 한국문화축제

어바인 한국문화축제가 위기에 봉착했다.   OC한인문화재단(이사장 윤주원, 이하 재단)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축제를 열지 않기로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자금난이다. 재단은 코로나19 팬더믹 이후 기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팬더믹 이전까지 축제를 후원한 굵직한 대기업들이 지원 규모를 줄이거나, 아예 지갑을 닫는 사례도 이어졌다.   윤주원 이사장은 “축제에 약 12만 달러가 든다. 줄어든 후원금으로 발생한 적자를 재단 기금으로 메워왔는데, 이젠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말했다.   윤 이사장에 따르면 현재 재단 보유 기금은 약 8만5000달러다. 윤 이사장은 “지금의 후원금 규모라면 축제를 한두 번 치르면 기금이 바닥날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의 적자는 지난 2018년부터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적자 폭은 크지 않았다. 윤 이사장은 2019년 제10회 축제를 성대히 치르며 반전을 꾀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밝혔다. 윤 이사장은 축제 기금 확보가 어려워진 이유에 관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업들의 자금 사정이라고 본다. 매년 비슷한 포맷과 프로그램이 반복돼 관객 수가 줄고 있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전과 달리 다양한 인종 커뮤니티의 축제, 행사가 생겨 기업 입장에서 후원 대상이 는 것도 문제다. 다양한 나라 출신 주민이 많다 보니 시 정부가 주도하는 축제가 계속 생기고, 기업들의 후원이 시 주최 행사를 포함해 일부로 집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바인 시는 매년 10월 다문화 축제인 글로벌 빌리지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5년 전부터는 매년 추석을 맞아 아시아계 주민을 위한 중추절 축제를 연다. 후원금도 큰 규모 행사에 몰린다.   윤 이사장은 한인 커뮤니티 정치력이 전에 비해 약해진 것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강석희, 최석호씨가 잇따라 8년 동안 시장을 지내던 시기엔 한인이 소수계 커뮤니티의 정치적 대변자 역할을 했고, 축제도 자연스럽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윤 이사장은 “현재 어바인에서 열리는 여러 행사에 가보면 한인 사회의 참여는 기업, 단체, 개인을 통틀어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중국계의 참여가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어바인 전체 주민 중 44%는 아시아계다. 중국계는 전체 주민 중 약 17%이며, 한인은 7.3%를 차지한다. 정치에 관한 한, 한인이 소수계 커뮤니티에서 선구자 역할을 했지만 이젠 뒤늦게 각성한 중국계가 많은 인구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열린 시의원 선거 결과, 중국계는 직선 시장을 제외하고 시의원 6명 중 절반을 차지했다.   재단 측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한국문화축제를 열지 않는 대신 시 주최 축제에 부스를 마련하고 참여해 한국 문화를 알릴 예정이다. 동시에 연말까지 향후 활동 방향을 정하기로 했다.   당초 재단의 설립 목표는 어바인에 한국문화센터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센터 건립 기금을 모으는 데 오랜 세월이 걸릴 것으로 본 재단 측은 기금을 모으는 동안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축제를 시작했다. 축제를 통해 센터 건립 기금도 모으자는 취지였다. 재단은 2015년 센터 건립을 위해 모은 돈 10만 달러를 OC한인회관 건립 기금을 모금하던 OC한인회에 기부했다. 이상원 당시 재단 이사장은 자체 센터를 마련하기 쉽지 않다며, 한인사회를 위해 꼭 OC한인종합회관을 건립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재단은 사실상 한국문화축제에 무게 중심을 두고 활동해왔다. 윤 이사장은 “한인들에게 축제 후원, 이사 영입, 출연진과 자원봉사자 확보를 위해 도움을 요청해왔지만, 관심을 보이는 이가 드물다. 이사들과 상의해 축제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2023년 한국문화축제 관객 수는 약 7000명이었다. 1만 명이 넘었던 시기에 비해 줄었지만,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가능하면 축제를 살려야 한다. 어바인은 OC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다. 재단만의 노력으로 축제를 둘러싼 외부 환경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인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임상환 / OC취재담당·국장중앙칼럼 한국문화축제 어바인 어바인 한국문화축제 축제 기금 재단 기금

2025-05-05

[중앙칼럼] 신호 위반했다고 비자 취소라니

나는 도로주행 시험을 다섯 번 보고 운전면허증을 땄다. 첫 시험에서는 ‘No Turn on Red’ 표지판을 보지 못하고 우회전을 했다가 탈락했다. 두 번째,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잘못된 비보호 좌회전 방식으로 탈락했다. 결국 운전학교에 등록해 도로주행 연수를 받고 나서야 다섯 번째 실기시험에서 합격했다.   사실 한국에서는 이미 1995년에 운전면허를 취득했고, 1996년부터 27년간 무사고 운전을 이어왔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풍부한 운전 경험을 과신한 나머지, 미국과 한국의 교통법규와 신호체계가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 문제였다.   이런 개인적 경험을 늘어놓은 이유가 있다. 최근 좌회전 신호 위반 등을 이유로 유학 비자가 취소된 한국 유학생들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유학생 133명이 연방법원 조지아주 북부지법에 비자 취소 결정이 부당하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 가운데 한국인 유학생도 5명이 포함돼 있다. 좌회전 신호 위반, 불법주차, 음주운전 등 교통법규 위반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지아주는 2013년 7월 한국 정부와 운전면허 상호인정 협약을 체결했다. 조지아주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의 한국 국민은 한국 운전면허증을 제출하고 별도의 필기시험이나 도로주행 시험 없이 운전면허증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미국의 교통법규와 신호체계가 한국과 다르다는 점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물론 교통법규를 위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호 위반이 유학 비자를 취소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인가?     형법에는 ‘비례의 원칙’이라는 개념이 있다. 범죄와 형벌 사이에는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신호 위반은 경미한 법규 위반에 불과하지만, 비자 취소는 개인의 학업과 연구 활동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중대한 처벌이다. 이는 단순한 행정 조치를 넘어, 개인의 미래를 좌절시키는 과잉 조치다.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은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유학생 정보 관리 시스템(SEVIS)에서 신원자료를 임의로 삭제했기 때문이다. SEVIS는 미국 국토안보부가 유학생들의 신분을 관리하기 위해 도입한 시스템으로, 9.11 테러 이후 국가안보 강화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통상적으로는 대학이 관리해왔다. 미국을 5개월 이상 떠나 있는 경우 등 명확한 사유가 있어야 SEVIS 기록이 삭제된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ICE가 단순히 국가범죄정보센터(NCIC) 조회 결과만을 근거로 수천 명의 외국인 유학생들의 SEVIS 기록을 일방적으로 삭제했다. SEVIS 기록이 삭제되면 유학 비자도 취소된다.   미 이민변호사협회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이후 이런 식으로 삭제된 유학생 기록은 최소 4700건 이상으로 추산된다. 최근 들어 당국은 뒤늦게 문제를 인정하고, 잘못 삭제된 SEVIS 기록을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비자 취소 처분을 받은 유학생들이 전국 각지 법원에서 가처분 결정을 받아낸 데 따른 조치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했다. 비자 취소로 학업을 중단하고 연구를 포기해야 했던 유학생들에게 단순히 “기록을 복원했다”고 해서 과거로 돌아가라고 할 수는 없다. 무너진 신뢰 역시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유학생 정책을 단순 행정 처분처럼 다루어서는 안 된다. 유학생들은 학문적 교류의 주체이며, 미국의 교육과 연구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소중한 인재들이다. 이들을 상대로 이토록 허술하고 무책임한 조치를 내린 것은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무영 / 뉴스룸 에디터중앙칼럼 신호 위반 신호 위반 한국 유학생들 한국 운전면허증

2025-04-28

[중앙칼럼] 우리를 뿌듯하게 하는 사람들

한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독자에게 기사로 전달하면서 종종 지면이 좁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주백 대표와 진광석 씨의 이야기가 그랬다.     이 대표는 지난 3월 아내와 함께 만든 ‘백애재단’을 통해 한국의 용산고 학생들에게 3억 원의 장학금을 약속해 화제가 됐다. 미국에서 정착한 동문 선배들이 한국의 모교와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희사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용산고를 졸업하지 않았다. 그는 꽃다운 19살 나이에 정권의 강제 진압에 희생된 삼촌 이한수 열사를 기억하며 돈을 보낸다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올해로 80세 중반이 된 이한수 열사의 벗들이 여전히 매년 4월 19일 모교를 방문해 손자 같은 재학생들과 기념비에 머리를 숙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지난 주말에도 용산고 캠퍼스에는 1960년 친구 이한수를 기억하는 선배들과 지금의 재학생 후배들이 함께 모였다.   이름 모를 미국의 한 가족이 큰 장학금을 보내온 사실에 재학생들도 기쁨과 감동을 감추지 못했다.   독자들도 동의하겠지만 평범한 우리 모두에게 미국 이민 생활은 결코 쉽지 않다.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일을 하고, 가족을 부양하며, 시민의 의무도 게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50년 넘은 소망이 현실화된 것은 그와 그의 가족이 묵묵히 일하며 성실히 꿈을 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대표의 결정과 실행은 큰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들이 여전히 뿌리를 기억하고 한국의 아픈 역사를 배우기 바란다는 소망을 내놓았다. 그가 매번 한국 방문 시 수유리 묘지를 찾을 때 아들을 동반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LA에 거주하는 진광석씨의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한국에서 선망받던 엔지니어로 활동하다 미국에 와서 사업을 통해 안정을 이뤘다. 그러던 중 환갑을 겨우 넘긴 나이에 암진단을 받게 된다. 그는 지난 1월 7일 팰리세이즈 화재 현장에서 살고 있던 단지 내에서 진화작업 중인 소방관을 도와 이웃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데 일조했다.     미담이 알려져 LA 시장이 용감한 시민상을 직접 수여했다. 그의 가족의 표현을 옮기자면 정말 ‘미친 짓’을 한 셈이다. 아내와 성인이 된 딸들은 살아 돌아온 진씨 때문에 속이 까맣게 됐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항암치료까지 마친 그가 대피를 포기하고 남았던 이유로 든 것은 ‘삶의 목적’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존재의 이유를 ‘남을 돕는 것’으로 규정한 그는 찰라의 순간에 ‘더 중요한 것들을 위해서라면 희생해도 괜찮다’고 판단했다고 기자에게 전했다.   주변 이웃들의 칭찬과 격려에도 그는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라는 설명을 내놓는다.     사실 항암치료는 환자를 가장 외롭고 이기적인 존재로 몰아가지 않나. 당연히 남보다는 나를 더 챙기고 보호하려는 생각이 가장 앞서는 시기다. 진씨의 무모하리만큼 위험했던 용기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된 것은 물론이다. 진 씨는 21일 LA 시의회에서 열린 배스 시장의 시정연설에도 초대받아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한인들의 가장 큰 무기는 뿌리를 기억하고 자신을 잘 돌아보는 혜안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른이 된 2세 아이들은 종종 몰랐던 부모의 이민 스토리를 듣고 더 큰 비전과 용기를 갖게 된다. 이런 자양분이 그들이 성공하는데 더 큰 바탕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뿌듯하다.   이주백 대표와 진광석 씨처럼 더 멋진 이민 선배들이 나오면 좋겠다.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우리 2~3세들에게도 계속 전달할 수 있길 바란다. 최인성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뿌듯 이주백 대표 재학생 후배들 한국 방문

2025-04-22

[중앙칼럼] 위기의 한인 경제, 돌파구는 있다

경제부 부장 3년 후면 LA올림픽이 열린다. LA올림픽조직위원회(LA28)가 신규 경기장을 발표하면서 2028년 올림픽이 가시화됐다.   하계올림픽 전체 50개 이상의 종목 중 2개를 제외한 대부분의 장소가 확정되며 경기장의 95% 이상 윤곽이 나왔다.     올림픽 개최가 불러오는 경제 효과는 크다. 고용 창출, 세수 증대, 관광 수입에 지역상권 활성화까지 기대할 수 있다.   2028년 올림픽 이전 2026년 월드컵, 2027년 수퍼볼 등 예정된 대형 스포츠 및 글로벌 행사는 LA, 특히 한인 상권에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   현재 LA경제는 경기 둔화와 고금리 여파로 많은 스몰비즈니스가 벼랑 끝에 몰려 있다. 특히 한인 기업들은 인플레이션, 소비 위축, 인건비 상승이라는 삼중고 속에 관세까지 기존 방식만으로는 더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올림픽을 비롯해 대형 스포츠 및 글로벌 행사는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기에 한인업체에 돌파구가 될 수 있다.     2028년 올릭픽 경우 경기 주최에 필요한 프라임 벤더(주계약 업체)가 대부분 선정된 상태다. 캐더링, 이벤트 운영, 통역, 인력 파견 등 한인 비즈니스가 강점을 가진 분야에서 수요가 지속하고 있다. 이들로부터 한인 업체들이 서브 계약을 수주하는 것도 실현 가능한 전략이다.     이와 함께 정부조달사업 프로그램도 주목할 만하다. 정부는 매년 연방, 주, 시 정부를 통해 수조 달러 규모의 조달 예산을 책정하고, 물품 공급, 용역, 서비스 등의 계약을 발주한다. 연방정부 조달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6조1300억 달러에 이른다. 여기에 지방정부와 공공기관까지 포함하면 시장 규모는 더 커진다.   이러한 거대한 공공시장에 진입하는 한인 기업은 극소수다. 이는 기회 부족이 아니라, 접근성과 정보 전략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LA시는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하고자 지난해 10월 비영리단체 PACE와 함께 중소기업의 정부 조달 참여를 지원하는 ‘ProcureLA’ 프로그램을 출범시켰다. 이 프로그램은 벤더 등록, 인증 절차, 입찰 가이드, 정부 기관 정보 접근 등을 무료로 지원하며, 특히 한인 디렉터가 있어 한인 기업체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PACE에 따르면 정부 조달 사업의 강점은 분명하다. 경기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예산, 장기 계약과 재계약 가능성, 그리고 공정한 경쟁 환경은 민간 시장에서는 얻기 어려운 장점이다. 한 번 수주에 성공하면 레퍼런스를 통해 추가 기회를 연결할 수 있고, 스몰비즈니스 인증을 받은 경우 평가에서 가산점과 우선권까지 주어진다.   다만 이 기회의 문은 준비된 업체들에 열린다. 정부 조달 사업은 대금을 사업 완료 후 60~90일 이내에 지급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결국 조달 사업에 참여하려면 자체 현금을 확보한 상태에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조달 시장은 단순히 저가 경쟁만으로는 진입할 수 없다. 해당 기관이 실제로 어떤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지, 입찰 공고의 요건을 정확히 해석하고 맞춤형 제안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한인 기업들은 정보 접근의 장벽, 언어적 제약, 복잡한 행정 절차에 대한 부담감으로 공공 조달 시장 참여를 주저해 왔다. 그러나 이는 극복 불가능한 장벽이 아니다.     PACE 같은 비영리단체에서 무료 상담, 시장 조사 교육, 포털 등록 지원, 입찰 제안서 리뷰까지 다양한 실무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공공 조달 시장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되고 있다. 특히 정부 조달 사업은 민간과 달리 예산이 줄지 않고, 사업이 중단되지 않으며, 수요가 반복된다.   한인 기업이 이 시장을 외면할 이유는 없다. 더욱 많은 한인 기업들이 정보를 갖추고, 인증을 받고, 준비된 자세로 이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 공공 조달은 더는 특별한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는 한인 업체 모두가 진입할 수 있는 ‘공공 시장’이다. 이은영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돌파구 위기 한인 비즈니스 한인 상권 한인 기업들

2025-04-20

[중앙칼럼] 지브리 열풍의 불편한 진실

일본 도쿄의 한 번화가에서 열린 통신사 프로모션 행사에 우연히 참여한 일이 있다. 전화카드를 구매하면 즉석에서 캐리커처를 그려 바로 카드에 인쇄해준다는 말에 이끌려 줄을 섰다. 몇 분 뒤 건네받은 그림 속에는 낯설면서도 묘하게 닮은 또 다른 내가 담겨 있었다.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일반 프로필 사진과는 달리 특이하다는 생각에, 그 이미지를 지금까지도 내 모든 소셜미디어의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고 있다.   실제 얼굴이 아닌, 나를 투영한 또 다른 자아의 이미지.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요즘 SNS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기업 '스튜디오 지브리’의 오리지널 화풍으로 그려진 프로필 사진(프사)들이 넘쳐난다. 챗GPT나 AI 이미지 생성 앱을 통해 클릭 한 번이면 누구나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따뜻하고 익숙한 그림 스타일, 세월의 흔적 없는 미화된 용모. 현실과는 살짝 거리감이 느껴지는 감성에 사람들은 만족감을 느끼는 듯하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프사들 속에서는 현실의 자기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고, 마치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 익명의 캐릭터 하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를 감추는 방식으로 나를 드러내는’ 이 모순적인 심리가 지브리 프사 열풍의 불씨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그런 프사 열풍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복잡해지는 이유가 있다. 갈수록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무의미할 정도로 정교한 AI 이미지들이 넘쳐나고 있다. 40년 넘게 사진을 찍어온 입장에서는 그 정밀함과 기술력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위기감을 느낀다.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간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창조해낸 따뜻한 세계가 단 몇 초 만에 재현되는 현실.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걸까.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지난 2016년 NHK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AI로 만든 보행 동작 애니메이션 샘플을 관람했다. 개발자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것을 만든 사람은 (신체 부자유의) 고통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라며 “생명에 대한 모욕을 느낀다”고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     그의 말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 건, 당시 단순히 흉내 내는 수준에 그쳤던 AI가 이제는 원본의 오리지널리티와 미감을 침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AI가 지브리 화풍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데이터에 저작권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점은 법적, 윤리적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지브리 프사 열풍을 보며 더 걱정스러운 건, 많은 이들이 이런 이미지를 무심코 사용하는 사이에 원작자의 권리 보호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 전문가들에 따르면, AI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기존 작품과 실질적으로 유사할 경우 이는 저작권 침해로 간주될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아직도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화풍’이나 ‘스타일’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 스타일이 한 예술가의 수십 년에 걸친 땀과 집념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군가의 예술적 결실을 AI가 아무 제약 없이 흡수하고 재가공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결국 창작의 의미는 물론, 창작자라는 존재감이 무색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기술의 발전이 창작자의 권리를 무시해도 될 만큼 정당한지, 빠르고 편리한 결과물이 진짜 예술보다 우선일 수 있는지 말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거듭하는 AI 시대인 만큼, 이제는 기술이 아닌 사람의 창의력을 중심에 두고 창작물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단순히 AI 이미지를 규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원작자의 노력이 정당하게 존중받는 환경을 지금 우리가 만들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늦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브리 프사에 열광하는 우리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 현실을 마주하기보다 이상화된 자아 속으로 도피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세계의 근간이 되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피와 땀, 그리고 영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낙희 / 경제부장중앙칼럼 지브리 열풍 지브리 애니메이션 지브리 스타일 스튜디오 지브리

2025-04-15

[중앙칼럼] ‘극우’ 남발, 언론이 문제다

지난주 한국 언론 기사들에서 ‘종말’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봇물을 이뤘다.     뭔가 해서 읽어보니 미국 시민들이 플로리다주 한 지역에서 사격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자연재해, 전염병, 전쟁 등으로 인해 위기가 고조되자 종말과 같은 극단의 상황을 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태평양 건너의 한국 언론이 이런 스토리를 취재했을 리 없다. 출처를 보니 뉴욕타임스다. 쉽게 말해 번역 기사인 셈이다.     한국 언론들의 번역 기사는 ‘찍어내기’식이 많다. 기사 내용을 보면 사실상 문장, 논조, 순서까지 대체로 비슷하다.       흥미성은 차치하고 기사들중 공통적으로 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극우 단체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총기 소유에 대한 인식이 뒤바뀌고 있다는게 뉴욕타임스의 진단이다.’     진보 진영의 캐런 배스 LA시장, 심지어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카말라 해리스까지 총기를 소유하고 있는 마당에 ‘극우의 전유물’이란 용어가 뜬금없다.       뉴욕타임스의 원문 기사를 찾아봤다. 일단 기사를 읽어보면 저런 문장 자체가 없다. 게다가 원문에는 ‘극우’라는 용어도 없다. 뉴욕타임스가 ‘우파(right-wing)’라고 명시한 것을 자의로 ‘극우(far-right)’라고 번역해 보도한 것이다.     물론 기사 전반의 내용을 보면 대개 총기 소유의 권리를 옹호하는 쪽이 보수 진영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사격 훈련은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뉘앙스로 이해할 수 있겠으나, 엄밀히 따지면 저 대목은 한국 기자들의 임의적인 번역이다.       맥락도 없이 ‘극우’를 남발하는 시대다. 남발은 사실을 왜곡하고 곡해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데이터 연구 과학자인 데이비드 로자도 박사가 에릭 커프먼 교수(버킹엄 대학)와 함께 ‘뉴스 미디어에서 정치적 극단주의를 나타내는 용어 사용 빈도의 증가’라는 주제로 지난 2022년에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 등 54개 뉴스 매체에서 3000만 건 이상의 기사, 칼럼 등을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만해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극우’와 ‘극좌’ 용어를 거의 비슷한 비율로 사용했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두 언론 모두 극우 용어의 사용이 ‘극좌(far-left)’에 비해 평균 3배 이상 많아졌다.     이러한 현상은 2000년대 들어 심화했다. 2008~2014년 사이 뉴욕타임스에서는 ‘극우’ 용어 사용이 243%, 워싱턴포스트에서는 359%나 급증했다. 2015~2019년을 보면 각각 260%, 128%씩 더 증가했다.     논문은 극우 용어의 증가 현상이 뉴스 매체들의 편견(prejudice) 및 사회 정의(social justice) 담론과 깊이 연관돼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두고 언론의 이념적 중심축이 왼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진보 성향의 엘리트들이 언론계로 진입한 것을 요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뉴스룸 내부의 이념적 불균형이 결국 정치적 극단주의 용어 사용과 관련해 비대칭성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극우 용어의 남발은 뉴스 미디어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반대 진영에 대한 혐오를 자극하고 기사 확산을 극대화하면서 작용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일례로 지난 3월 열린 하원 청문회에서는 대표적 공영방송인 PBS와 NPR의 운영진들에게 내내 질타가 쏟아졌다.     팻 팰런 연방 하원의원(공화)이 폴라 커거 PBS 대표에게 “2023년 6~11월 사이 PBS 보도 중 극우와 극좌 용어 사용의 비율이 ‘96:4’인데, 이러한 편향성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물론 커거 대표는 딱히 반박하지 못했다.     또한 팰런 의원은 NPR 소속 기자들의 유권자 등록 현황도 언급했다. 그는 캐서린 마허 NPR 대표를 향해 “공화당원이 한명도 없는 걸 보니 민주당이 왜 그렇게 당신들을 극렬하게 방어하는지 이해가 된다”며 “민주당의 선전 부서가 됐다”고 다그쳤다.     이토록 편향적인 주류 미디어를 그나마 ‘받아쓰기’라도 제대로 하면 다행인데, 한국의 언론들은 한 번 더 비틀어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     그런 기사에 중독된 독자들이 과연 미국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심각한건 ‘극우’가 아니다. 인간의 인식을 망가뜨리고 있는 언론이 문제다. 장열 / 사회부장중앙칼럼 극우 남발 한국 언론들 극우 단체 번역 기사인

2025-04-14

[중앙칼럼] K-돌풍, 한인 표심이 만든다

한인 선출직 공직자를 보유한 도시들에서 K-바람이 불고 있다.   풀러턴 교육구는 오늘(9일) 오후 5시 사상 최초의 중학생 대상 K-팝 경연대회를 부에나파크의 더 소스 몰에서 개최한다. ‘K-팝 배틀 오브 더 밴드(K-Pop Battle of the Bands)’란 이름의 대회는 여러모로 눈길을 끈다.   교육구는 지난해 가을학기부터 오렌지카운티 교육구 최초로 관내 중학생들이 참여하는 K-팝 배틀 오브 더 밴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한인과 타인종 학생 120여 명이 참가한 오디션에선 엄격한 심사를 통해 50명이 연습생으로 선발됐다.   이들은 한 달 동안 K-팝 노래와 댄스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최종 오디션을 대비했다. 이 단계에서 연습생들은 한국 문화와 춤, 악기 수업을 듣고 연습 후엔 한식을 즐겼다. 최종 오디션에서 심사위원단은 5개 학교를 대표할 밴드 멤버 25명을 선발했다. 각 5명으로 구성된 비치우드, 피슬러, 니콜라스, 팍스 중학교와 라데라비스타 예술중학교 밴드는 오늘 6개월간 연마한 실력을 발휘한다.   대회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120여 명의 학생이 K-팝 경연대회 오디션에 몰렸다는 것, 교육구 측이 파격적으로 K-팝 경연대회를 연 사실이 중요하다.   풀러턴 교육구의 최근 행보는 한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교육구 측은 지난 2월 최수진 교사를 교육구 사상 최초의 한인 연락관으로 임명했으며, 최 교사가 한국어로 진행하는 한인 학부모 대상 워크숍 시리즈도 시작했다. 첫 워크숍은 한인 70여 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뤘다.   이런 변화의 배경엔 로버트 플렛카 교육감의 전향적 행보와 지난해 11월 풀러턴 교육구에서 한인으로서 처음 당선된 제임스 조 2지구 교육위원의 존재가 있었다. 조 교육위원은 취임 직후부터 교육구 측에 “한인 학부모가 교육구를 찾아오길 기다리지 말고 교육구가 한인 학부모를 찾아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인 연락관 임명 필요성도 강조했다. 사상 첫 한인 교육위원이 배출된 후 불과 몇 달 새 벌어진 변화를 보면 한인 선출직 공직자를 늘려야 할 당위성과 각급 선거에서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이유를 실감할 수 있다.   풀러턴의 K-바람은 프레드 정 시장이 2020년 1지구 시의원에 당선된 이후 불기 시작했다. 지난해 재선 이후를 합쳐 통산 3번째 시장을 맡은 정 시장은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과 폭넓은 교류를 하며 풀러턴과 한국 도시들이 경제, 문화, 교육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상생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자매도시인 성남시는 풀러턴 다운타운에 관내 중소기업들의 대미 수출 전진기지인 K-비즈니스센터를 설립했다. 정 시장은 오는 8~9월 중 한국의 치맥 페스티벌을 풀러턴 주민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K-바람은 조이스 안 시장이 버티고 있는 부에나파크 시에도 불고 있다. 시 측은 한인 업소가 밀집한 비치 불러바드 일대를 부에나파크 코리아타운으로 명명했으며, 영어가 불편한 한인을 위해 코리안커뮤니티서비스와 함께 대규모 사회복지 박람회도 열고 있다. 시 측은 지난해 스미스 머피 공원을 우정의 공원으로 개명한 이후, 이 공원에 한국 전통문화를 상징하는 정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부에나파크의 K-바람 또한 시의회 1지구에서 써니 박 전 시장에 이어 안 시장이 당선된 이후 점차 거세지고 있다.     어바인의 K-바람은 한인 시의원 존재 여부에 따라 그 세기가 달라졌다. 강석희, 최석호 시장과 태미 김 전 부시장이 재임하던 시기, 어바인에선 한인 마켓 오픈 소식이 잇따라 들려왔다. 어바인 한국문화축제도 성황을 이뤘고, 김 전 부시장은 OC에서 열린 세계한인 비즈니스대회도 지원했다.   오렌지카운티의 K-바람이 돌풍이 되려면 한인 선출직 공직자가 필요하다. 로컬 교육구, 정부 차원의 뒷받침이 있어야 제대로 바람이 불 수 있다는 것을 현실이 증명하고 있다. 한인 후보가 없으면 친한파 내지 지한파 타인종 후보를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떤 방식이든 투표 참여는 필수다. 임상환 / OC취재담당·국장중앙칼럼 돌풍 한인 한인과 타인종 한인 학부모 한인 선출직

2025-04-08

[중앙칼럼] 트럼프발 안보 위기

미군이 지난 15일 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을 공습하기 전에 미국 정부 수뇌부가 공격 계획을 민간 메신저인 시그널 채팅방에서 논의했고, 그 채팅방에 시사주간지 애틀랜틱의 제프리 골드버그 편집장이 초대된 사실이 지난 24일자 애틀랜틱 기사로 공개됐다.   외교안보 라인 수장들이 정부 통신망이 아닌 민간 메신저를 통해 전쟁 계획을 논의한 것과 그 채팅방에 언론인을 초대한 것이 미국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유럽에선 다른 이유로 이 채팅방 대화가 큰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 정부 수뇌부가 드러낸 ‘유럽 혐오’ 속내가 유럽을 깜짝 놀라게 했다.   J.D. 밴스 부통령은 예멘 반군 후티에 대한 작전을 거론하며 “우리가 실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에즈를 통한 미국 무역은 3%에 불과하다. 유럽은 40%다”라고 썼다. 후티의 위협으로 유럽이 더 큰 위험에 처했지만 정작 공격은 미국에 떠넘긴다고 비판한 것이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유럽의 무임승차에 대한 부통령님의 혐오에 공감한다. 참 한심하다(pathetic)”고 답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이 비공개 대화가 트럼프 행정부의 ‘유럽 혐오’가 얼마나 깊은지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가 방위비를 GDP의 5% 수준으로 올리지 않으면, 미국은 나토를 방어하지 않겠다”고 계속 말해왔다. 유럽 안보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조는 1949년 창립 이래 서방 안보를 지탱해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결속력을 흔들고 있다. 유럽 각국은 미국산 무기에 대한 의존을 낮추고자 군사력 강화를 추진 중이다.   2월28일 전례 없는 ‘외교 참사’로 끝난 트럼프-젠렌스키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군사와 정보 지원을 일시 중단한 조치는 유럽에 충격을 줬다. 우크라이나처럼 한 순간에 모든 지원이 끊어질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나자 미국에 유럽 안보를 의존하는 것이 불안해졌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보내준 F-16 전투기 편대가 미국이 군사와 정보 지원을 중단하자 비행하지 못하는 고철덩어리로 무능화됐다. 이 사건은 미국이 유럽에 판매한 미국산 전투기에 원격으로 무력화하는 ‘킬 스위치(kill switches)’를 심어놨다는 의혹으로 번졌다.   유럽도 ‘미국 없는 안보 홀로서기’에 대비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3월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8000억유로(약 8653억 달러) 규모의 유럽 재무장 계획을 발표했다. 재무장 계획은 유럽산 무기를 우선 구매하는 것이 핵심이다. 엠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3월19일 차세대 라팔 전투기를 추가 배치해 프랑스 공군의 핵억지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군이 주둔하고 미군 무기체계를 사용하는 한국도 유럽과 같은 처지이다. 유럽 상황에서 보듯이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이라고 봐주는 일이 없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최근 국방부에 배포한 ‘임시 국가 방어 전략 지침’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와 미 본토 방어를 최우선 과제로 명시했다. 북한 위협을 억제하는 역할은 한국에게 넘기기 위해 방위비 증액을 압박할 것이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대선 과정에서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 부르며 방위비 분담금 100억 달러를 요구한 바 있다. 한미가 합의한 2026년도 방위비 분담금(약 11억4,000만 달러)의 9배에 가까운 액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적보다 동맹이 미국을 더 수탈해간다고 생각한다. 동맹 관계를 중요시하지 않고, 무역적자를 불공정한 무역관계의 지표로 보고 있다.   한국도 유럽의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미군이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주고 주한미군의 역할을 변경할 것에 대비해 독자적 대북 방어력을 키워야 한다. 동시에 조선업, 미국산 에너지, 방산 제품 구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트럼프식 거래’에 대응할 창의적 접근도 요구된다. 이무영 / 뉴스룸 에디터중앙칼럼 트럼프발 안보 유럽 안보 트럼프 대통령 외교안보 라인

2025-03-31

[중앙칼럼] 시의회 발언대의 막말, 이젠 막아야 한다

내 귀를 의심했다. 분명히 길거리 주먹 싸움에서나 듣던 말이었니 그렇다.   10여 년 전 처음으로 LA 시의회를 방문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400만 시민의 목소리가 모이는 정치의 중심지라고 하기엔 그 모습은 지나치게 과격하고 때로는 무기력해 보였다.   LA 시의회 본회의장은 시민들에게 자유로운 발언 기회를 제공한다. 시의회의 결정과 발의안에 대한 찬반 의견을 누구든 공개적으로 개진할 수 있다는 점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자유’의 대가는 때로 혹독하다. 시의회 발언대에 선 일부 시민들은 온갖 욕설과 인신공격,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발언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남루한 차림의 이른바 ‘상습 욕설자들’은 의회가 열리는 화요일, 수요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방청석을 차지한다. 그리고는 시종일관 귀에 거슬리는 표현들을 동원해 특정 정치인들과 시의회를 싸잡아 조롱하고 괴롭히는 데 여념이 없다.   그 괴롭힘의 수위는 심각하다. 만약 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길거리에서 그런 모욕적인 언사를 공개적으로 듣는다면, 주먹을 쥐지 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다. ‘뚱뚱하다’, ‘천박하다’, 심지어 ‘성매매 여성’이라는 발언은 물론,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담은 표현까지 서슴없이 사용된다. 피부색을 이용한 인종적 멸시는 이제 놀랍지도 않은 ‘단골 메뉴’가 되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의원들과 주변 보좌관, 심지어 경찰관들조차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유 발언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은 차치하더라도, 혐오 발언에 무감각하게 반응하는 모습은 실로 놀라웠다. 나중에 만난 보좌관과 의원들은 이러한 광경이 “이미 오래전부터 관행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LA 시의회 내 발언에 대한 명확한 제재 규정은 없다. 간혹 고성을 지르거나, 논의 주제와 벗어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경우 의장이나 시 검사가 발언을 제지하는 정도에 그친다. 사실상 대부분의 혐오 발언은 여과 없이 방청석을 통해 의회 내부로 전달된다.   마퀴스 해리스-도슨 LA 시의장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상황에 대해 직접 질문했다. 이처럼 과격하고 무례한 발언과 표현들이 시의회 공식 석상에서 허용되는 것이 ‘헌법적 권리’ 보호라는 명목하에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는 “발언권과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들과 달리,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자유 발언 기회가 정부 기관과 소통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이자 시간일 수 있다”면서 “단순히 욕설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발언 자체를 차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하에 인내하고 있다”고 답했다.   물론 그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때로는 ‘이유 있는 분노’가 욕설이라는 형태로 표출될 수도 있다. 시민이자 납세자로서 부당함에 항의하고 울분을 토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LA 시의회의 상황은 이러한 허용이 사실상 방종을 조장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제는 스스로 정화할 때가 되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관행에 맞서, 마침내 시의회 여성 의원들이 특정 수준을 넘어서는 혐오 표현을 퇴출시키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7명의 시의원은 지난주 흑인 비하 표현(N-word)과 여성 비하 표현(C-word)을 명시하고, 이를 포함한 성적, 인종적 멸시 및 비하 발언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조례안을 공동 발의했다.   발의안의 내용은 해당 표현을 사용하는 발언자에게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될 경우 해당 시의회 회기에 3일 동안 출입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물론 이 조치가 시민의 참여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법적 논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명백한 혐오 표현으로부터 시의회 구성원들과 정상적인 시민들의 참여를 보호하기 위한 시의적절하고도 불가피한 조치로 보인다.   시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선출된 시의원들과 수많은 보좌관들이 정당한 비판이 아닌, 길거리 싸움꾼들이 주고받는 수준의 저열한 언어로 고통받는다면, 이 또한 명백한 폭력과 다름없다. 시의원들의 가족들이 회의를 방청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면 그 고통은 더욱 극명하게 와닿을 것이다.   자유에는 항상 책임이 따른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시의회 여성 의원들의 용기 있는 움직임이 LA 시의회 방청석을 조금 더 건전하고 품격 있는 공론의 장으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인성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시의회 발언대 시의회 발언대 시의회 공식 la 시의회

2025-03-24

[중앙칼럼] 포비가 떠난 자리

새벽에 집안을 울리는 고통스러운 비명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반려견 ‘포비’가 괴로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간혹 변비가 생기면 불편해 했었기에, 이번에도 단순히 변비가 아닐까 싶어 서둘러 응급실로 향했다.   그런데 병원서 수의사가 보여준 엑스레이 사진 속 포비의 상황은 심각했다. 의사는 대형견에서 간혹 나타나는 GDV(위염전) 증후군으로 치명적 응급상황이라며 즉시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했다.   가족 모두는 순간 패닉에 빠졌지만 서둘러 수술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포비를 좀 더 살펴본 의사가 이미 장기 괴사가 진행된 듯하다며 수술 중 생명을 잃을 가능성이 높고, 성공하더라도 평생 약을 복용하며 후유증을 겪게 될 수 있어 고통을 줄여주자며 안락사를 권했다. 고심 끝에 의사의 권유대로 포비를 떠나 보내야 했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 가을에 태어난 풍산개 포비는 지난 5년 반 동안 집안에서 함께 생활하며 우리 집 막내로 늘 기쁨과 웃음을 선사했던 존재였다. 가족들의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못 가고 우리 부부도 병가를 내야 했을 정도였다.   한동안 포비가 사용하던 장난감, 밥그릇, 잠자리가 눈에 띌 때마다 마음이 무너졌다. 떠나보낸 지 한 달이 돼 가는데도 포비의 흔적과 존재감이 집안 곳곳에 남아, 마치 언제라도 꼬리를 흔들며 뛰어나올 것만 같았다. 가족들은 여전히 포비를 잃은 슬픔과 상실감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힘들어하고 있다.   동물을 사랑하던 할머니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많게는 한번에 5마리의 반려견을 키워 보기도 했지만 포비처럼 급작스럽게 이별을 한 것은 처음이라 마음으로 떠나보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싶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키우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펫 로스(Pet Loss)’라는 용어가 생겼다고 하는데 더는 낯설지 않게 됐다.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 중 90%가 우울증과 유사한 증상을 경험하고, 이 중 절반 이상이 심각한 수준의 상실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히 애완동물을 떠나보낸 슬픔이 아니라, 가족을 잃은 것과 같은 깊은 정신적 상처가 남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불안, 무기력, 식욕부진, 수면장애 등도 겪는다는데 심지어 이런 증상이 1년 넘게 지속돼 일상생활을 어렵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반려동물과 정서적 유대감이 강할수록 상실감의 크기와 지속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경우 “동물인데 뭐 그렇게까지…”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펫 로스는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닌, 실제로 전문적인 접근과 지원이 필요한 심리적 현상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펫 로스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싶어 구글링해 본 결과를 펫 로스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아픔을 억누르려 하지 말고, 가족이나 친구와 충분히 대화하며 슬픔을 표현해야 한단다.   반려동물과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며, 추억을 사진이나 글로 정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해서 포비의 사진들을 보며 함께했던 시간 동안 느꼈던 사랑과 고마움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슬픔을 받아들이고 좋은 추억으로 간직될 수 있기를 바란다.   최근에는 펫 로스 전문 상담이나 치료 프로그램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만큼 만약 혼자서 슬픔을 극복하는 것이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포비를 통해 반려동물과의 이별이 얼마나 큰 상심을 초래할 수 있는지 체험했다. 동시에, 이런 아픔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가족의 소중함과 삶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모든 생명은 만남이 있으면 언젠가 이별도 동반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헤어지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곁에 있을 때 잘해주자는 말이다. 박낙희 / 경제부장중앙칼럼 로스 전문 가족 모두 수술 결정

2025-03-18

[중앙칼럼] 초부유층 급증, 서민에 미치는 영향

현재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자산 4194억 달러를 보유한 일론 머스크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초부유층, 즉 ‘수퍼빌리어네어’ 계층이 등장하며 경제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 현재 수퍼빌리어네어 24명의 총자산은 3.3조 달러로, 이는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들 중 상위 16명은 ‘센티빌리어네어’(1000억 달러 이상 보유)에 해당한다.   1987년 첫 포브스 억만장자 리스트에는 140명이 포함되었으며, 이들의 총자산은 2950억 달러에 불과했다. 2014년까지만 해도 전체 억만장자 자산의 4%만이 수퍼빌리어네어에게 집중되었으나, 현재 이 비율은 16%까지 증가했다.   경제는 점점 더 부유층 소비에 의존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무디스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10% 소득 가구가 전체 소비 지출의 49.7%를 차지하고 있다. 주식 및 부동산 자산 가치 상승이 이들의 소비력을 더욱 확대하며 경제 성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초부유층의 급증은 서민들과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단순한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현재 글로벌 부의 50% 이상이 상위 1%에게 집중되면서 계층 간 이동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부동산 가격 급등, 교육 격차 확대, 노동 시장의 양극화는 부의 대물림을 가속하며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경제적 불안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는 경제 구조의 근본적인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경제학에서 부의 양극화를 설명하는 대표적 개념은 ‘파레토 법칙’이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부의 80%가 상위 20%에 집중된다는 경험적 법칙을 제시했다. 하지만 현재는 이보다 더욱 심화된 상황으로, 글로벌 부의 50% 이상이 상위 1%에게 집중되고 있다.   현재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자산 가격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자산과 소비는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주식·부동산 가격 상승은 부유층의 순자산을 증가시키고 소비력을 더욱 높이는 역할을 한다.   부유한 가구는 일반적으로 저축보다는 소비 성향이 강하다. 이에 따라 부유층 소비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경제는 더욱 이들의 소비 패턴에 영향을 받게 된다. 문제는 주식 시장 하락이나 부동산 가격 조정이 발생할 경우, 소비가 급감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는 경기 침체를 가속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현재 자산 가격이 고평가되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경제 정책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시장 조정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부유층의 소비가 지속될 경우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지만, 주식 시장 폭락이나 부동산 경기 둔화가 발생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누진세 강화를 통해 초부유층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도록 하고, 이를 저소득층 지원과 교육 기회 확대에 투자해야 한다.     대학 등록금 보조, 학자금 대출 부담 완화, 공공 주택 확대 등의 정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또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정책을 강화해 경제 구조를 보다 균형 있게 재편해야 한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이를 방치할 경우 경제적·사회적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 초부유층의 등장과 소비 격차 확대는 단기적으로 경제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구조다.   지금이야말로 부의 불평등 해소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공정한 기회 제공과 재분배 정책 강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경제적 성장의 혜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절실하다. 이은영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초부유층 급증 부유층 소비 경제 성장 경제 구조

202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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