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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황야의 7인

-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있다. 우리가 그를 죽인 것이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자신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 니체의‘즐거운 학문’에서. (1882)   1960년 서부영화 ‘Magnificent Seven, (직역으로) 멋진 7인’을 인터넷에서 다시 본다. 우리말 제목은 ‘황야의 7인.’ 의기투합한 7인의 총잡이가 무법자들에게 약탈당하는 멕시코의 한 마을을 구출하는 줄거리.   요즈음 내 SNS 곳곳에 올라오는 명언에 심취한다. 차제에 내가 금과옥조로 삼는 명언들을 많이 남긴 7명을 선출한다.   ①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화가, 판화 제작자, 신비주의자, 낭만파 시인. 내가 좋아하는 그의 명언은, “무절제의 길이 지혜의 궁전에 도달한다.” 그의 시와 산문집, ‘천국과 지옥의 결혼’에 나오는 얼른 이해하기가 좀 어려운 말. (1790) 워낙 글이 난해하다고 소문난 블레이크.   ②도스토옙스키(1821~1881): “사랑이 있으면 행복 없이 살 수 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1879)에 나오는 예리한 말. 또 있다. “행동에 옮기는 사랑은 꿈속 사랑에 비하면 거칠고 두려운 일이지요.”라고 작품 초반부에서 가톨릭 신부가 망나니 주인공 드미트리에게 속삭이는 말.   ③마크 트웨인(1835~1910): “거짓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거짓말, 빌어먹을 놈의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그는 거짓말을 믿는 바보들에 관하여 이렇게 언급한다. “진실은 거짓말을 믿기로 결심한 바보에게는 별로 대책이 없다.”   ④니체(1844~1900): 허두에 인용한 니체의 말을 숙독하시라. “신은 죽었다!”고 니체가 마치 무슨 사망선고라도 내린 것처럼 사람들은 오해한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는 부분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데.   ⑤아인슈타인(1879~1955): “A가 인생의 성공이면, A=x+y+z. x는 일하기, y는 놀기, z는 입을 다무는 것.” 숫자만을 중시하는 과학자들에게 그는 이렇게 경고한다. “셀 수 있는 것들이 다 중요한 것이 아닐뿐더러 중요한 것들이라고 다 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⑥라캉(1901~1981): “언어는 무의식의 구조를 닮았다.”라는 진실을 설파하며 프로이트의 고전적 학설을 많이 업데이트시킨, 난이도 높은 말을 잘하는 프랑스 정신과 의사. “우리가 시를 찾는 이유는 지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혜를 해체하기 위해서다.” 사랑에 대한 냉소적인 발언도 프랑스식으로 팍팍 한다. “사랑은 원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을 주는 것.”   ⑦스누피(1950~):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스누피야, 우리는 딱 한 번 산단다. 틀렸어! 우리는 딱 한 번 죽는다. 우리는 매일매일 살거든.” 마크 트웨인처럼 스누피도 바보들에게 너그럽지 못하다. “자연에 가까워질수록 너는 멍텅구리들에게서 멀어지지.”   허허로운 지구촌 황야, 2025년 6월 중순에 격동하는 한국과 미국의 정세를 절감한다. 위에 손꼽은 7인 중 위대한 정치가, 지도자는 한 명도 없다는 걸 당신이 인지하기 바란다. 나는 무던히도 사적(私的)인 사람인 것 같다.     멕시코의 어느 마을을 약탈하려는 오만방자한 무법자들을 소탕하는 저 ‘멋진 7인’은 아니지만, 내게 있어서 블레이크, 도스토옙스키, 마크 트웨인, 니체, 아인슈타인, 라캉, 그리고 1950년 이후 지금껏 그대로인 스누피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한 작금의 무법자들을 너끈히 이겨낼 것 같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황야 블레이크 도스토옙스키 트웨인 니체 지구촌 황야

2025-06-10

[삶의 뜨락에서] 낯익은 골목

허허벌판 황야에 혼자 남기어진 사람은 길을 찾아 인적을 찾아 열심히 걸어간다. 사람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걷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원을 그리며 그 장소를 맴돌게 된다고 한다. 멀리 벗어났다고 생각하며 걷다 보면 낯익은 풍경에 고개를 갸웃하게 되고 자세히 살피면 지나쳐 온 장소에 도로 와있는 것을 깨달으며 낙담한다는 말이 있다. 이때 낯익은 풍경은 반가운 것이 아니다. 이 실망스러운 처지에서 벗어나려고 온 힘을 다하여 멀리 왔다고 믿는 때에 벗어나려던 그 낯익은 풍경 속에 그대로 놓여있다고 생각하면 그 절망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 짐작이 간다.   처음 보는 것인데도 어디서 언젠가 본듯한 데자뷔라는 말로 표현되는 느낌이 들게 되는 경우가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이 그런 느낌을 주게 되는데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때의 경험 때문이기도 하고 항상 꿈꾸어 왔던 어떤 것과 비슷한 상황을 만났을 때이기도 하고 즐겨보던 영화나 그림책의 영상 기억으로 인하여 그럴 수도 있고 똑같지 않아도 경험 속의 어느 장면과 아주 비슷한 경우에 낯익은 느낌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어릴 때 떠나와 기억 속에서 모두 희미해진 잊었던 골목길에 우연히 들어서게 되었을 때도 여기 왠지 낯이 익은데 하며 “저 구석을 돌면 파란 대문집이 있을 텐데” 하면서 깊이 숨었던 어느 시절의 기억으로 반가워하기도 하고 섭섭해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서 자신의 행동이나 말투가 많이 대하던 낯익은 것이라고 느끼는 때가 누구나 있다. 심지어는 얼굴이나 손발의 모양도 굉장히 낯익은 것일 수도 있다. 거울을 보던 어떤 이는 “아버님 웬일이세요” 불현듯 말하기도 한다고 한다. 가끔은 몹시 사이가 좋지 않아 절대로 닮지 않으리라 다짐하던 사람조차도 어느 날 무심히 바라본 자신의 언행이 그대로 판박이로 드러나고 있음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동네의 모습이 떠오르는 낯익은 골목이 그래서 꼭 반갑지만은 않다.     향수라는 것이 익숙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익숙함이 편안함이 되는 까닭에 고향이 익숙하고 편안하여서 자꾸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리가 있다. 낯익고 익숙하여도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사연이 있는 사람에게는 편안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 낯익은 골목이 두 개의 얼굴로 다가온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삶을 만들어 보려던 결심이 있었고 벌써 한 달 넘어 두 달째를 지내고 있다. 새롭게 세웠던 계획이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일은 어제와 같은 길을 가지 않으리라 하며 처음 보는 길로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는데 어느새 가만히 주위를 살펴보면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와 같은 길이어서 낯익은 느낌이 밀려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새로운 길을 열어가리라 기세 좋게 나서던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가 어느 세월 지나고 보면 자기도 모르게 낯익은 예전의 그 길을 가고 있는 현상을 많이 볼 수 있다. 지금 겨울을 보내고 봄을 기다리는 시간에 낯이 익고 익숙한 그래서 편한 골목을 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안성남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골목 영상 기억 허허벌판 황야 경험 때문

20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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