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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낯익은 골목

허허벌판 황야에 혼자 남기어진 사람은 길을 찾아 인적을 찾아 열심히 걸어간다. 사람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걷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원을 그리며 그 장소를 맴돌게 된다고 한다. 멀리 벗어났다고 생각하며 걷다 보면 낯익은 풍경에 고개를 갸웃하게 되고 자세히 살피면 지나쳐 온 장소에 도로 와있는 것을 깨달으며 낙담한다는 말이 있다. 이때 낯익은 풍경은 반가운 것이 아니다. 이 실망스러운 처지에서 벗어나려고 온 힘을 다하여 멀리 왔다고 믿는 때에 벗어나려던 그 낯익은 풍경 속에 그대로 놓여있다고 생각하면 그 절망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 짐작이 간다.
 
처음 보는 것인데도 어디서 언젠가 본듯한 데자뷔라는 말로 표현되는 느낌이 들게 되는 경우가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이 그런 느낌을 주게 되는데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때의 경험 때문이기도 하고 항상 꿈꾸어 왔던 어떤 것과 비슷한 상황을 만났을 때이기도 하고 즐겨보던 영화나 그림책의 영상 기억으로 인하여 그럴 수도 있고 똑같지 않아도 경험 속의 어느 장면과 아주 비슷한 경우에 낯익은 느낌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어릴 때 떠나와 기억 속에서 모두 희미해진 잊었던 골목길에 우연히 들어서게 되었을 때도 여기 왠지 낯이 익은데 하며 “저 구석을 돌면 파란 대문집이 있을 텐데” 하면서 깊이 숨었던 어느 시절의 기억으로 반가워하기도 하고 섭섭해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서 자신의 행동이나 말투가 많이 대하던 낯익은 것이라고 느끼는 때가 누구나 있다. 심지어는 얼굴이나 손발의 모양도 굉장히 낯익은 것일 수도 있다. 거울을 보던 어떤 이는 “아버님 웬일이세요” 불현듯 말하기도 한다고 한다. 가끔은 몹시 사이가 좋지 않아 절대로 닮지 않으리라 다짐하던 사람조차도 어느 날 무심히 바라본 자신의 언행이 그대로 판박이로 드러나고 있음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동네의 모습이 떠오르는 낯익은 골목이 그래서 꼭 반갑지만은 않다.  
 
향수라는 것이 익숙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익숙함이 편안함이 되는 까닭에 고향이 익숙하고 편안하여서 자꾸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리가 있다. 낯익고 익숙하여도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사연이 있는 사람에게는 편안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 낯익은 골목이 두 개의 얼굴로 다가온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삶을 만들어 보려던 결심이 있었고 벌써 한 달 넘어 두 달째를 지내고 있다. 새롭게 세웠던 계획이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일은 어제와 같은 길을 가지 않으리라 하며 처음 보는 길로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는데 어느새 가만히 주위를 살펴보면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와 같은 길이어서 낯익은 느낌이 밀려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새로운 길을 열어가리라 기세 좋게 나서던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가 어느 세월 지나고 보면 자기도 모르게 낯익은 예전의 그 길을 가고 있는 현상을 많이 볼 수 있다. 지금 겨울을 보내고 봄을 기다리는 시간에 낯이 익고 익숙한 그래서 편한 골목을 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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