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이 웃으면서 나이 드신 백인 할머니가 카트에 겨울옷을 잔뜩 싫고 들어온다. 옷장 안에 걸려있는 입지 않은 옷들이다. 세탁해서 주위에 있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한다고 했다. 세탁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개의치 않았다. 우리도 입지 않은 옷들이 얼마나 많은가. 귀찮기도 하고 정리하기도 싫고 조금은 아깝다고 생각도 한다. 언젠가는 정리를 해야지 하면서도 미루다가 1년이 지나간다. 어떤 손님은 많은 옷을 가지고 세탁을 주문하면서 선불을 한다. 그리고 세탁을 해서 필요한 사람이나 홈리스에게 아니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한다. 연말이 되면 모든 사람이 가진 것을 나누며 어려운 사람들에게 조금의 보탬이라도 주고 싶어 한다. 나는 꽃을 키우는 일이 재미있다. 봄에 씨앗을 뿌려 새싹이 나오면 조그마한 화분에 옮겨 심고 여름 내내 물을 주고 가꾸어 교회나 양로원에 주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도마도 나무냐고 묻는다. 이름은 모르지만 조그만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그린 색 열매가 오렌지로 바뀌고 마지막으로 빨간색으로 변한다. 이탈리아 손님이 보고 자기 나라에서 키웠던 식물이라며 기뻐하면서 몇 개를 사서 갔다. 올해는 그 식물을 조그마한 것은 5달러 큰 것은 10달러를 붙여 가계 밖에 내놓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좋아하고 관심을 가졌다. 2달 동안에 50개 정도 팔았다. 우리 가게 옆 미국 교회에서는 매월 첫째 세 번째 토요일에 교회에서 직접 만든 콩 수프와 사과 1개, 물 한 병, 쿠키 1팩, 냅킨으로 스푼과 포크를 싸고 성경 말씀과 교회를 알리는 표지를 백에 넣어 홈리스와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어쩌다 우리 가게에 배달되어 먹었는데 수프에는 여러 가지 콩과 옥수수, 그린 빈이 들어있어 맛있었다. 그 뒤로 가끔 손님을 통해 후원했는데 꽃을 판매한 대금이 조금 모여 그것을 그 교회에 후원했다. 추수 감사절 전후로 우리 동네 홈리스들이 지난여름에 던져 놓고 간 겨울옷들을 찾으러 온다. 홈리스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옷이 있고 그 옷을 꼭 나에게 맡긴다. 그 많고 냄새나는 옷들을 여름에 물세탁을 해서 가게 뒤 울타리에 걸쳐 햇볕에 말린다. 냄새도 없어지고 뽀송뽀송 감촉도 좋다. 하나하나 박스에 넣어두었다가 찾으러 오면 내준다. 홈리스들도 가족이 있다. 명절에는 그 깨끗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어딘가에 사는 그 누구를 만나러 가는 뒷모습이 가슴 한쪽을 아리게 한다. 일 년 내내 방황하고 길가에서 구걸하지만 가슴 속에는 그 사람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다가 용기를 내어 대문을 두드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 해 동안 찾아가지 않은 옷들이 있다. 주섬주섬 챙겨 비닐 백에 넣어 놓고 홈리스 센터 담당자에게 전화한다. 매년 보내는 곳이다. 이때쯤이면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필요 없고 값진 옷은 아니어도 그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옷들이다. 무조건 사이즈가 크고 입고 벗기에 편리하면 좋아한다. 이번에는 두꺼운 재킷들이 제법 있어 유용할 것 같고 이불도 5개나 있다. 정신없이 살 거나 이사를 했거나 잊어버리고 찾으러 오지 않은 옷이나 이불이지만 하나하나 내 손끝이 만지작거린 정성을 들인 옷들이다. 그래도 누군가 입고 덮을 수 있다는 기쁨으로 짐을 꾸린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홈리스 센터 세탁 비용 가슴 한쪽
2025.12.16. 22:06
‘아니다’라는 답으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현대 의학에서는 환자와 보호자가 원하면 생의 마지막(end of life)을 고통 없이 편안하게 맞이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전문 분야로 통증 완화팀(Palliative Care)은 환자의 통증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 대부분 말기 암 환자나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통증을 치료한다. 견디기 힘든 통증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힘들 때 전문가의 도움으로 통증 문제를 해결해 삶의 질을 높인다는 의도이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를 감명 깊게 보았다. 초등학교 때 만난 이 둘은 경쟁자였다가 절친이었다가 서로 동경하다 미워하며 일생에 걸쳐 서로 얽히고설킨다. ‘선망과 원망’이라는 부제에 맞게 이들의 친구 관계는 우정, 미움, 질투, 동경을 경험하며 그들 사이에 교차하는 심층 변화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두 사람의 우정은 분노와 오해를 남기고 몇 번의 절교를 맞이하지만 무슨 악연인지 계속 또 만나게 된다. 10년의 공백을 깨고 40대에 재회한 상연은 은중에게 자신이 시한부 인생의 말기 암 환자여서 안락사를 택해 스위스로 가기로 했는데 동행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은중은 이 모든 사실을 믿지 않고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쇼를 벌이나 천대하며 밀쳐낸다. 그리고 이것은 “폭력이야”라고 외친다. 결국 은중은 상연의 요청을 수락하며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기 위해 스위스로 간다. 그들은 과거의 오해와 갈등을 서로 되짚어가며 서로의 감정을 이해해 보려 애쓴다. 그동안 묻어두었던 진실을 털어놓고 우정의 의미를 되새긴다. 홀어머니와 가난하게 살아왔던 은중은 자존심이 강하고 화사한 성격에 친구가 많았으나 반면 부잣집에서 태어나 뛰어난 두뇌와 미모를 타고났지만, 계속되는 불운한 가정사로 늘 사랑에 목마르고 혼자였던 상연은 은중과 비교하며 서로 가지지 못한 그것에 대해 선망하고 선망은 질투를 낳고 질투는 원망을 낳아 이 둘은 평생 애증 관계로 고통스러워했음을 서로 고백하고 오해를 풀어간다. 은중이 상연에게 꼭 이 선택(안락사)을 했어야만 했는지, 후회는 없는지 묻는다. 상연은 동성연애자였던 오빠의 자살과 말기 암 환자로 너무 괴로워 괴성을 지르는 엄마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자신은 이 결정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상연이 찾아간 스위스의 안락사 장소는 디그니타스(Dignitas)라는 비영리 단체다. 이 단체는 실제로 존재하며 외국인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한다. 엄격히 말하면 안락사가 아닌 조력자살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돕는다. 의사나 간호사가 약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고 환자 자신이 구강으로 마시거나 정맥주사의 밸브를 열어 수면 상태로 유도한 다음 혼수상태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디그니타스 비영리 단체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먼저 이 단체의 회원이 되어야 하며 가입비와 연회비를 내고 정신적 올바른 판단력이 있어야 하며 최소한의 체력과 이동성이 있어야 한다. 의사의 진단서와 소견서도 필요하며 간단한 자신의 일대기를 보내고 승인을 기다린다. 일단 서류로 승인되면 스위스에 가서 의사와 인터뷰를 마친 후 최종 승인을 받는다. 이 준비 과정에 따르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까다로운 과정이고 준비할 서류도 무척 많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과 큰 비용에도 불구하고 이를 선택하는 경우는 자기 죽음에 대해 자율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마지막 자존감이 아닐까? 맞다. 그 어떤 죽음에도 정신적인, 신체적인 고통이 따른다. 다만 인간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위해서 현대 의학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한 지인이 “난 죽음은 두렵지 않은데 죽을 때 고통스러울까 너무 두렵다”라고 고민한다. 아직 의식이 있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가족에게 본인의 의사를 전달하면 된다. 평생 많은 죽음을 목격해온 나 자신이 독자들에게 꼭 전달해 주고 싶은 내용이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죽음 고통 자기 죽음 현대 의학도 통증 완화팀
2025.12.15. 22:18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젊었을 때 유행되었던 ‘하숙생’노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입에서 중얼중얼 나올 때가 많다. 내 나이가 90에 가까워지니까, 잠재의식적으로, 나더러 죽음을 준비하라고 일러주고 있는 것 같다. 늙었으니까 멀지 않아 죽을 텐데. 그냥 무작정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죽을 준비를 미리 해놓은 후 죽는 게 좋을 것 같다. 준비라니? 무슨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예수는, 기독교 신자로서, 계명(살인·간음·도둑질·거짓 증언을 하지 않는 것)을 지키면, 죽어서 천당에 가서 영생한다고 말했다. 부처는, 계율(살생·간음·도둑질·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을 지키라고 했다. 살생은 사람뿐만 아니라, 어떤 생명체든 죽이지 말라는 말이다. 계명을 지키면, 죽은 후 하늘나라에 태어나거나 혹은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했다. 계명을 어기면, 짐승이나 지옥에 태어난다고 했다. 불교는 태어나고 죽고,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가면서 영원히 윤회한다고 했다. 도를 닦아서 도를 깨치면 생과 사의 윤회에서 벗어나 열반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부처와 예수, 두 분의 말씀이 다 맞는지 혹은 다 틀린지? 혹은 두 분 중에 한 분만 맞는지?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의 말씀이 옳다고 할 것이다. 반면에, 불교인들은 부처의 말씀이 옳다고 할 것이다. 태어나는 아이들을 볼 것 같으면, 어떤 아이는 미남미녀로, 총명하고 건강하고 부잣집에서 태어난다. 반대로, 어떤 아이는 우둔하고 못생긴 얼굴로, 병약하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다. 같은 사람으로서 태어나는데, 왜 동등하게 태어나지 못할까? 이왕이면 다음 생에서는, 좋은 복을 갖고 태어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이 세상은 인과법칙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선한 행동을 하면 좋은 업(Karma)을 짓는다. 나쁜 행동을 하면 나쁜 업을 만든다. 부처는 마음(생각)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마음을 곱게 먹으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곱다. 고운 마음에 고운 말을 하면, 자연히 하는 행동이 선하다. 그런데 생각(마음)이 나쁘면, 입에서 나오는 말도 안 좋다. 하는 행동도 거칠고 나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처는 항상 선한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처는 말했다. “사람으로서 사람을 죽이면 지옥이나 동물로 떨어지겠지만, 만약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수명이 짧게 태어난다. 왜냐하면 남의 목숨을 해쳤기 때문이다. 도둑질하면 가난하게 태어난다. 왜냐하면 남의 물건을 훔쳤기 때문이다. 나쁜 말을 많이 하면 추남추녀로 태어난다. 이게 다 인과법칙이다.” 다시 말하면, 다음 생(生)에서, 장수하고 싶으면 살인을 하지 않는다. 부자로 태어나고 싶으면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 미남미녀로 태어나고 싶으면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남들에 대해 좋은 말을 한다. 좋은 복을 많이 받고 태어나고 싶으면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한 행동을 많이 하면 된다. 젊었을 때 뭣 모르고 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다면? 부처는 말했다. “사람이 악행을 지었더라도 허물을 뉘우치면 차츰 엷어지나니, 날로 뉘우쳐 쉬지 않으면 죄의 뿌리는 아주 뽑히리.”(증일아함경). 나는 늙었다. 과거에 저지른 나의 잘못을 참회한다. 남들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될 수 있으면 선한 일을 하면서 여생을 살아갈 것이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기독교 신자들 사의 윤회 거짓 증언
2025.12.02. 18:24
APEC 2025 경주 정상회담에서 행해진 젠슨 황의 특별 연설은 대한민국 국민을 가슴 벅차게 만든 순간이었다. 그는 한국을 AI 주권 국가로 평가하면서 한국은 소프트웨어 역량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며 그 개발자와 IT 인프라를 소유하고 있다. 제조 경쟁력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로봇 분야에서 글로벌 표준을 선도하고 있다. AI 기술력은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인공지능 산업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한국은 혁신 DNA를 가진 나라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AI 생태계가 있다. 기술의 혁신은 문화와 사람이 함께 할 때 완성된다. AI 미래는 로봇이 로봇을 조율하고 로봇 제품을 제조하는 공장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로봇이 되는 시대가 된다. 전기와 인터넷이 필요하듯 전 세계에 AI 공장이 세워질 것이며 한국이 가장 많은 AI 인프라를 보유한 국가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안개 속에 싸여 있는 단어, AI라는 단어만으로도 울렁증이 오고 더는 피할 수 없어 결국 ‘AI 강의 2025’ (박태웅)을 집어 들었다. 책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 본다. 2022년 11월 챗GPT 등장 이후 우리의 일상생활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이 책은 인공지능의 기본 원리를 쉽게 설명하고 AI 트랜드에 대해 깊이 있게 소개하면서 AI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전망한다. AI를 이끄는 세계적인 엘리트들의 사상적 배경과 이 분야에서 활약하는 리더들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포럼 내용과 논문을 링크로 실어 신뢰도를 높였다. AI가 우리 삶에 미칠 실질적인 영향을 6가지로 풀어간다. ①운영 체제화된 AI는 더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모든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가 AI와 함께할 것이며 AI는 우리의 일성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이다. ②맥락 인터페이스 (Contextual Interface)는 정보 검색의 시대를 지나 이제 AI는 맥락을 파악해 스스로 정보를 분류하고 처리하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발전한다. ③AI는 이제 인간의 모든 직업에서 필수적인 파트너로서 단순한 보조 역할을 넘어 인간과 AI가 협력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④AI는 이제 Multimodal AI로 텍스트, 이미지, 음성, 동영상 등 다양한 형식을 동시에 처리하고 GPT-4를 넘어선 차세대에는 AI Multimodal 에서 Omni modal로 발전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⑤AI 성능은 더욱 저렴해지고, 더 빨라지고 더 작아지고 있다. 개인용 AI 에이전트가 보편화되고 스마트 폰에서도 AI가 강력하게 작동한다. ⑥휴머노이드 (Humanoid) AI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보고 듣고 움직이며 학습 능력을 갖추게 된다. 저자는 AI가 사회에 미치는 부작용과 데이터 편향, 개인정보 침해 등의 문제점을 심도 있게 다루며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책임 있는 관리와 통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또한 한국이 미친 속도로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으며 세계 최고의 양상 기술을 가진 제조 강국이 되어 ‘눈 떠보니 선진국’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제 한국이 원천 기술과 기초과학의 빈약함을 지적하고 능력 있는 인재들을 해외에 뺏기지 않고 잘 돌봐줄 정책이 심각하다며 ‘눈 떠보니 후진국’이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AI는 입력된 데이터로 잠재된 패턴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기계이다. 입력된 자료만으로 일을 처리하는 AI보다 4살의 어린아이가 훨씬 많은 정보를 얻는다고 한다. AI는 입력된 단어 숫자를 바탕으로 지능이 활성화되지만 4세의 어린이는 깨어 있는 시간 내내 두 개의 눈으로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만큼의 정보가 축적되기 때문이다. AI로 대체되는 직업이 많아질 거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AI로 인해서 창출되는 직업 또한 기대된다. AI 다음 세대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로 스스로 코딩해서 문제 푸는 방법 자체를 배운다. 인간은 머릿속 정보를 타인에게 직접 전달하지 못하지만, AGI에서는 인공 신경망의 데이터를 복사함으로써 정보교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참으로 놀랍고도 두려운 세계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혁명 인류 인공지능 산업 맥락 인터페이스 ai 미래
2025.12.01. 20:59
사람들은 말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있다.” 그래서 오늘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게 맞는 말일까? 호랑이는 포식동물이다. 배가 고프면, 먹이를 찾으러 다닌다. 그리고 잡아서 먹는다. 배가 부르면 빈둥빈둥 논다.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다시 먹이를 찾으러 다닌다. 내일이라는 게 없다. 내일 먹을 양식을 미리 준비해놓지 않는다. 호랑이는 오늘 일해서 오늘 먹고 그리고 오늘을 즐기면서 오늘을 살고 있다. 하지만 어떤 날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기도 했었을 것이다. 반면에 다람쥐는 다르다. 내일(겨울)의 양식을 저축해놓기 위해서, 다람쥐는 오늘을 열심히 일한다. 땅을 파고, 나무 구멍을 찾아다니며 도토리를 모은다. 다람쥐는 내일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것이다. 다람쥐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사는 것이다. 호랑이는 늙어지면, 사냥하지 못한다. 그래서 굶어서 죽는다. 다람쥐는 늙어지면, 아파서 죽는다. 혹은 다른 포식자에게 잡혀 죽어도 결코 배가 고파 굶어서 죽지는 않는다. 다람쥐처럼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랑이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오늘 공부하면서도, 어떤 학생들은 졸업 후의 삶을 계획한다. 졸업한 후, 사회에 나와서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어서 잘 먹고 잘살 수 있을까 하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오늘 열심히 공부하면서 실력을 쌓고 있다. 쉽게 말하면 다람쥐처럼 내일을 위해서 오늘 열심히 사는 것이다. 호랑이처럼 사는 학생들도 물론 있다. 나도, 학교 다닐 때 미국에 올 꿈을 꾸었었다. 밤늦도록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했었다. 다행히도 미국에 올 시험에 합격했었기에 미국에 이민을 올 수가 있었다. 미국에 와서도, 내 실력을 쌓기 위해서, 또한 매일 부지런히 일했다. 어떤 노인들은 늙었어도, 내일을 위해서, 오늘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친우들에게 그냥 주기도 하고 혹은 팔기도 한다. 어떤 노인들은 시 공부를 한다. 앞날 시집을 발간하기 위해, 오늘 열심히 시를 쓰고 있다. 오늘도 중요하고 내일도 중요하지만, 내일을 위해 사는 오늘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내일을 미리 준비해놓아야 삶이 윤택해지고 또한 인생발전을 가져올 수가 있는 것이다. 나의 시 한 편을 여기에 적는다. “꽃이 핀다 아름답다 그러나 꽃은 오늘의 아름다움을 위해 피지 않는다 벌을 부르기 위해 벌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온 힘을 다해 피어 있는 것이다 오늘의 아름다움은 내일의 열매를 위한 과정일 뿐 아름다움조차 목적이 아닌 생명의 이치다.” -‘꽃이 핀다’ 전문 꽃의 아름다움은 벌을 유혹해서, 내일의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내일을 위한 삶을 살다 보면, 우리는 자기의 삶에 의미(意味)를 갖는다. 내일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내일을 위한 일을 오늘 해야 하니까, 삶이 더 바빠질 수밖에 없다. 토마스 머튼은 “즐겁게 살 돼 아무렇게나 살지는 말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내일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즐겁게 살 돼, 아무렇게나 살지는 않을 것이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조교수삶의 뜨락에서 앞날 시집 나무 구멍
2025.11.18. 17:36
5만9000명이 참가한 축제의 뉴욕시티 마라톤 대회 날이다. 나에게는 연중행사다. 14241 번호표를 받아들고 20번째 출전이다. 햇빛이 빛나는 그야말로 좋은 날씨다. 15번 이상 뉴욕마라톤 메달을 받은 사람들은 많은 특혜 중에서도 허허벌판 추운 곳에서 기다리지 않고 체육관에서 따뜻한 커피, 물, 베이글 등 먹을 것과 화장실도 있어 편안하게 쉬면서 기다릴 수 있다. 베라자노브리지 중간쯤 가면 2~3시간대 뛰는 젊은이들이 쏜살같이 지나가면 나의 독무대였다. 사진 찍고 연기를 하면서 경관들과 담소하고 추위도 잊어버리고 달렸는데 올해는 전혀 다른 광경이 벌어졌다. 기부자들에게도 제일 먼저 출발하는 특전을 부여했다. 그분들은 마라톤을 연습하고 달리는 힘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한 번쯤 마라톤이 어떤 것인지 또 그 환경과 이치를 알기 위해서 참가한 사람들이다. 브루클린 4가에 들어서니 또 빨리 달리는 다른 팀이 오고 있다. 그 무리를 따라 스피드를 내다보니 숨이 차올랐다. 바로 스피드를 줄이고 내가 연습한 상태로 몸을 조절했다. 포니테일이 달랑거리고 짧은 바지에 소매 없는 셔츠까지 그래도 등 뒤에서 땀이 흐른다. 1마일마다 물을 공급해 주는데 그냥 스치고 앞만 보고 달리는 젊은이들 무리에 힘을 받는다. 3시간대 달리는 사람들은 연습도 많이 했고 마라톤에 진가를 터득한 마니아들이다. 뉴욕마라톤 한 번 완주하는 것이 다른 마라톤 대회보다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첫 번째 완주한 사람들의 반은 계속해서 마라톤을 이어가고 나머지 반은 포기한다고 통계에 나와 있다. 작년에 나에게 꽃을 사 온 켈리는 운 좋게 당첨되어 뛰었는데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 회사 일도 바쁘고 연습도 어렵고 코스가 언덕이 많아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도전 정신을 배웠고 아주 좋은 인생 경험과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젊은 청년이 갑자기 쓰러졌다. 길가에 반드시 눕히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도와준다. 눈을 감고 몸을 옆으로 당겼다가 느슨하게 풀고 움직여보지만 얼굴색이 변하고 호흡곤란으로 힘들어하는 사이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당뇨병 환자가 당이 떨어져 털썩 주저앉은 것은 보았지만 젊은 청년이 쓰러지는 것은 처음 보았다. 자기 스피드보다 빨리 뛰거나 호흡 조절이 안 되어 다리에 쥐가 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젊은 남성들이 뛰다가 전봇대에 기대어 다리를 스트레칭하거나 다리 운동을 하면서 걸어가는 경우도 있다. 퀸즈브리지 앞이 14마일이다. 그때는 허기를 느낀다. 친구가 모지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맛있고 긴요한 요기인지 모른다. 입가에 모지 하얀 설탕 가루가 묻어있는 것을 보고 바로 옆에 있던 백인 남자가 티슈를 내민다. 감사함과 포만감으로 쉽게 다리를 건너 1가에 도착했다. 응원 함성이 저절로 등을 미는 것 같다. 날씨도 좋아 양쪽 길을 빼곡히 메웠다. 76가에서 식구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응원 열기로 브롱스를 향해 전진한다. 길가에서 물을 나누어 주는 자원봉사자들도 피곤을 모르고 물컵을 내밀면서 응원한다. 두 다리 대신 의족으로 달리는 사람 다리 하나와 크러치를 이용해서 달리는 사람, 한 사람은 휠체어를 밀고 두 사람은 양옆에서 보호하면서 휠체어에 앉아 두발은 열심히 걷는다. 장애인 팔을 자원봉사자 어깨에 얹고 끌리다 걷다 반복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종점을 통과하는 사람, 다리가 아파 기어서 마치는 사람, 절룩거리면서 뛰고 걷고 자원봉사자가 밀고 앞에서는 당기고 그래도 환한 웃음으로 끝마치는 사람. 이 모든 이들을 “You are amazing”이라고 함성을 지르는 응원객 틈에 끼어 두 손을 번쩍 들고 전광판을 보니 7:00:22가 나를 반긴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amazing 이상 뉴욕마라톤 마라톤 대회 뉴욕시티 마라톤
2025.11.10. 22:04
Burning Man을 공부하면서 Default World라는 단어와 조우하게 되었다. 이 단어 또한 엄청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원래 디폴트란 단어는 기본 설정값을 의미한다. 경제적으로 채무 불이행으로 쓰이고 컴퓨터에서는 초기 설정값, 게임에서는 기본 설정을 의미한다. 원래의 뜻은 이렇지만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고 많은 신조어를 낳기도 한다. Burning Man의 주제는 탈 사회 문화예술 축제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 Default World에서 벗어나 무한한 가능성을 재량껏 표현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이벤트다. 난 요즘 버닝맨의 증후군을 앓고 있다. 조금만 일찍 이 행사를 알았더라면 주저 없이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핑계일지 모르겠지만 열악한 환경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사막 지대에서 밤낮 기온이 낮에는 100도 이상의 불볕더위와 뜨거운 모래 폭풍이, 밤에는 서늘한 기온으로 극심한 일교차를 보이고 2023년도에는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행사가 엉망이 되고 진흙 축제가 되기도 했다. 주거시설은 텐트나 캠핑카를 직접 마련하고 식수, 음식, 잠자리 등 기본 생필품을 준비하고 모래 폭풍에 대비해 고글과 마스크는 필수품이라고 한다. 화장실과 목욕시설이 불편한 환경에서 내가 과연 일주일을 견뎌낼 수 있을까. 그렇다. 우리는 이미 디폴트 세상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와 생년 월일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리고 부모님의 보호 아래 또 그들의 가치관에 따라 교육받고 양육되어 진다.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유독 인간만이 한 개체로 독립하기까지 제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16년의 학창 시절을 보낸다. 그 후 전문직을 위해 더 공부하거나 아니면 직장을 구한다. 마음 맞는 상대를 찾아 결혼하고 애 낳고 그렇게 Circle of Life는 계속된다. 우연히 좋은 부모 만나고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다면 그것은 당신의 운이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족한 환경에서 태어나 더 노력해서 성공한 사례가 훨씬 많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은 우리가 디폴트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규격화(pre set world) 되어있는 디폴트 세계에서 끓어오르는 창작열을 주체하지 못해 분출구를 찾는 이들이 버닝맨이다. 버닝맨 축제에 참석했던 사람을 버너(Burner)라 부른다. 버너들은 디폴트 세계에서 불협화음이나 부조화를 경험하고 버닝맨 축제에 열광하고 기대한다. 버너들은 축제가 끝난 뒤 디폴트 세계에 돌아가는 것을 힘들어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세계에서 현실 세계로의 복귀는 또 다른 후유증을 유발한다. 심할 때는 우울증(Post Playa Depression)에 빠지기도 한다. 갑자기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기도 한다. 그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들만의 감정에 갇혀 살기도 한다. 이들을 위한 모임이 지역사회에서 활발하게 활성화되어 있다고 한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새로운 세계, 흥미로운 세계를 알게 되어 이 축제를 알려준 그 친구에게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모르고 죽을 수도 있었으니 나는 행운아다. 정말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알게 마련이다. 하루살이는 이 세상 모든 생물이 하루살이라 믿고 우물 안 개구리는 보이는 하늘이 전부라고 믿는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이 코끼리 뒷다리 정도에 해당하지 않는지 생각하니 두렵기도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 이미 세상은 AI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인간의 두뇌 자원은 무궁무진해서 지금도 두뇌의 10% 정도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하니 앞으로 어떤 세계가 열릴지 크게 기대된다. 우리는 이제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기에 벅찬 나이가 되었지만 이미 탄 기차에서 하차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답은?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default world default world 디폴트 세계 버닝맨 축제
2025.11.03. 21:47
지인 중에 정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있다. 나의 경우는 별명이 교과서였고 항상 teacher’s pet으로 살아왔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알고 있는 세상 밖에 호기심과 관심이 더 많이 갔고 그 세상은 무한대임을 배우게 되었다. 지금도 나의 기본 생활권은 모범생의 틀에 갇혀있으나 나의 내부에서는 항상 새로운 경험과 변화를 원한다. 가끔 나에게 주어진 의무에서 벗어나 나의 내부에서 원하는 beat에 따라 행군하고 싶을 때가 많다. 나는 현재에 충실하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주어진 삶을 열정적으로 살고 두려움 너머 호기심을 갖고 제한을 넘어 자유롭게 도전해 보는 삶이 바로 free spirit이 아닐까. 결국 혼자일 때 편안해서 생각하고 창조하고 내부 세계를 탐험할 수 있어 자신을 찾고 내부 성장을 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 지인한테서 갑자기 메시지가 날아왔다. “I am going to Burning Man!!! I can’t wait. It’s going to be a feast of the eyes!” “Burning Man?” 뭐지? 어느 장소인가? 아니면 어떤 행사를 말하는 건가? 처음 들어보는 단어여서 바로 구글 해 보았다. WOW! Burning Man에 대해 줄줄이 나오는 정보에 계속 놀람의 연속이었다. 내가 어떻게 지금까지 이런 행사를 모르고 있었지? 호기심이 많은 나는 항상 나의 오감과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많이 보고 듣고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편이다. Burning Man Festival은 198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고 매년 8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서 노동절까지 미국 네바다주 Black Rock Desert에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생활 공동체인 도시를 세우고 행사가 끝나면 단 한 점의 쓰레기도 남기지 않고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참여자들은 거대한 건축물과 독창적인 조형물을 세우고 예술 작품을 창조하고 개성 있는 운송 수단을 만든다. 행사 마지막 날 전야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조형물을 태우면서 하늘 높이 치솟은 불길과 함께 분위기는 절정에 이른다. 이 의식은 우리의 삶은 소유가 아닌 경험을 중요시함을 상징한다. 혁신적인 기업문화를 창출한 구글의 두 창업자,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등이 좋아하는 축제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다양성과 창의를 추구하는 실리콘밸리의 정서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그 외 할리우드 스타들, 전위 예술가, 음악인, 댄서, 요기들이 자기표현에 전력투구한다. 참여자들은 태어나면서 저절로 속하게 된 세상을 벗어나 내가 스스로 선택한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세상을 추구하는 이들이다. 여기서는 무엇을 표현하든 자유를 보장받는다. 참가자들은 수동적이 아닌 적극적인 행위자가 된다. 해마다 7만 명 이상의 엘리트와 예술인이 허허벌판인 사막에 신기루와 같은 도시를 건설한다. 주최 측에서는 간이 화장실, 긴급 의료지원, 얼음과 커피를 제공하고 화폐는 통용되지 않는다. 오직 아이디어, 발명품, 창작 활동으로 물물교환이 가능하고 매일 밤 열리는 파티에서 자유롭게 교류한다. 어떤 이는 이를 탈 사회 문화예술 축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곡을 연주하고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곳곳에 댄스클럽과 요가 강의도 있다. 참가자는 각자 잠자리 (Motor Home, 혹은 텐트)와 음식을 준비한다. 낮에는 100도 이상의 폭염과 밤의 냉기에 알맞은 옷가지들과 모래폭풍을 견디기 위한 고글과 마스크는 필수다. 그렇다면 이토록 적대적인 환경과 만만치 않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열광할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 눈과 뇌를 자극하는 예술 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 공간과 그들을 편견 없이 보아줄 관객이 있다는 사실에 모두 매혹되고 압도당하기 때문이다. 사막에 가능성의 문화를 경험하고 꿈꾸는 자와 행동하는 자에게 힘을 실어준다. 오늘, 이 축제에서 돌아온 이 지인과 꿈같은 시간을 가지면서 free spirit의 그녀가 한없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spirit free free spirit burning man 사회 문화예술
2025.10.13. 18:57
아마 삼사년 전인가 보다. 어떤 총장이 65세에 은퇴했다. 그리고 이럭저럭 살다 보니 어느새 95세가 되었다. 은퇴 전에 총장은, 무엇을 해야겠다 하고 인생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서 열심히 연구하고 일했다. 그래서 총장까지 되었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서, 아무 일도 뚜렷하게 해놓은 게 없이 그냥 95세가 되어버렸다. 지난 30년을 허송했다고 그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러면서, 우리더러는 은퇴하거든 즉시 무언가 목적을 세우라고 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번에, 10명 이상의 시니어 노인들이 시를 공부하겠다고, ‘뉴욕 중앙 시문학’에 참여했다. 장한 일이다. 여생을 허송하지 않고, 그 대신, 무언가 해보겠다는 의욕이 좋다. 대부분의 시인은 어렸을 때부터 즐겨 시를 읽었고 어려서부터 시를 써오고 있다. 하지만 늙은 나이에 시 공부를 시작해도 절대 늦지 않다. 우리가 시를 쓰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시로 표현하고 싶어서, 그리고 깊이 쌓인 원한과 분노를 시로 노출해 승화시키자는 것이다. 시를 써서 유명해지고 싶겠지만, 유명해지려고 일부러 애를 쓰면 좋은 시는 써지지 않을 것이다. 그냥 쓰고 싶어서, 좋아서, 시를 쓰다 보면 좋은 시가 저절로 써지는 것이다. 하지만, 늙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해서 유명해지지 않으란 법은 또한 없다. 일본의 시바타 도요(1911~2012)는, 아들의 권유로, 92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아들은 문학인이었다. 아들은 매주 토요일에 어머니를 방문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써놓은 시를 놓고, 둘이서 토론을 해가면서 시를 수정했다. 그녀가 죽으면 장례비용으로 쓸 그 돈으로, 98세에 첫 시집을 발간했다. 그게 일본에서 100만 권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 그리고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그러니 약해지지 마”라고 그녀는 힘차게 말했다.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라는 그녀의 말이 내 마음에 든다. 나도 80세에 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85세에 첫 시집을 발간했다. 그래, “인생이란 지금부터야”라는 말은, 아무리 늙었어도, 지금이라도 시를 쓰겠다고 마음을 즐겁게 먹고 시를 쓰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좋은 결실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시 공부를 시작할 때, 왜 내가 시 공부를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목표가 뚜렷하면, 시를 쓰다가 괴로울 때 중단하지 않는다. 계속 시를 쓸 가능성이 높다. 시작부터 자기 마음에 드는 시를 쓴다는 게 쉽지는 않다. 자기 마음에 드는 시가 안 써질 때는 고민이고 고통이다. 어떻게 처음부터 좋은 시가 써지겠는가. 시간이 걸린다. 나부터도, 시가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왜 내가 이런 고생을 해야 하지? 그만둬버릴까 하고 여러 번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다가 며칠 지나면 내 생각이 달라진다. 이전에 내가 시를 썼지 않았나, 전에 내 마음에 드는 시를 썼으니까, 좀 기다리면 다시 쓸 수가 있겠지 하고 스스로 위안을 한다. 모든 창조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고통 없이 어떻게 시를 창조해낼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고통은 오래가지 않는다. 하나의 시를 완성하고 나면 그만한 기쁨이 꼭 따라오기 마련이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공부 인생 목표 자기 마음 원한과 분노
2025.10.08. 22:17
이번에는 이슬람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이 아닌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 편협된 고정관념을 벗어나 그들의 찬란한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예찬하고 싶다. 그동안 튀르키예, 알람브라 궁전 그리고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유명한 모스크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장대하고 웅장한, 섬세한 기교에 머리로는 경외감이 일었으나 마음에 감동이 일렁이지는 않았다. 아마 내 마음에 그들의 진가를 알아보고 이해할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회는 항상 준비된 자들에게 온다. 아는 만큼 보이고 준비된 만큼 배우기 마련이다. 이번에 ‘도시로 보는 이슬람 문화’를 읽고 나니 그들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혹자는 그 위험한 곳을 왜?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외국인들은 한국을 훨씬 더 위험한 나라로 알고 있다. 한국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이기에 언제 북한이 공격해 올지 불안하다는 말이다. 전 세계 인구의 1/4을 차지하고 57개국 나라의 20억 인구가 이슬람교도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역시 내면의 평안과 세계의 평화를 지향한다. 실제로 테러 집단은 이슬람교에서도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중동 이슬람권과 적대적인 나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이다. 우리는 당연히 미국이 제공하는 미디어만 접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만 갖게 되었다. 상업을 중요시하고 생활과 종교가 밀착된 이슬람 교인들은 도시를 중심으로 이슬람 문명의 뿌리를 내린다. 도시를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문화유산인 건축물과 그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는 전통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천 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이슬람 도시의 매력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적어냈다. 저자는 이슬람을 대표하는 도시탐방을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로 시작한다. 20억 이슬람 교인들이 평생 꿈꾸는,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아야 하는 순례지이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세 종교의 공동 성지로 겸손한 인간으로 돌아가게 하는 회개의 공간이다.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서 당시의 찬란한 기독교(동로마교회) 전통과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5000년 전 고대문명이 태어난 곳이자 로마와 이슬람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웠던 곳이고 중동의 진주로 불린다.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는 사막에 세계 최대의 스키 리조트를 만들고 뉴욕과 파리를 넘어 세계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향로의 도시, 오만의 살랄라, 시가지 전체가 박물관인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이슬람의 종교적 영성이 가득한 신비주의 도시인 코나, 페르시아 문화의 당당한 후예인 이란의 테헤란, 17세기에 세상의 부와 문화를 다 모아들인 세상의 절반이라고 하는 이스파한, 지식과 문화가 넘치는 실크로드를 자랑하는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파키스탄의 고도, 라호르 성채는 이슬람과 힌두문화의 만남이 이루어낸 작품이다.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 타지마할은 화려하고 우아한 무굴예술의 극치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의 카이로는 고대문명의 집산지, 리비아의 트리폴리는 로마 시대의 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고대도시이며,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튀니스는 이미 나의 버킷리스트에 올려놓았다. 카뮈와 지드의 소설의 산실인 알제리, 모로코의 마라케시, 스페인의 코르도바, 그라나다는 인류 최고의 보석으로 알려진 알람브라 궁전을 자랑하고 있으며 기독교 세력에 무너져가던 위기감 속에서도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완성한 이슬람 문명의 결정체다. 이슬람교에서는 우상숭배가 금기되어 있어 사람이나 동물의 형태 대신 모든 건축물에 기하학적 문양이나 꽃을 모자이크 형식으로 표현한다. 그들은 또한 수학, 건축학, 천문학, 과학을 고대 시대부터 생활에 적용해 왔으며 종교와 생활의 일치를 주장하고, 인류의 공존과 세계 평화를 기원한다. 중동의 전쟁은 왜 멈추지 않는 것일까.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이슬람 문명 이슬람 문명 이슬람 문화 이슬람 도시
2025.10.06. 21:53
중동 지역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전쟁과 세계 최첨단의 도시 두바이에 관한 관심은 현대인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하다. 난 개인적으로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잘랄루딘 루미와 19세기 레바논 시인 칼릴 지브란을 좋아한다. ‘우리의 삶은 지금 이 순간과의 결혼이다.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고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영혼을 자유케 한다.’라는 이 진리는 내 인생의 모토가 되었다. 이슬람 문화를 공부하기 위해 내가 속해 있는 독서 클럽에서 ‘도시로 보는 이슬람 문화’(이희수)를 읽게 되었다. 저자는 국내 최고의 이슬람 문화 연구자로 튀르키예 이스탄불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아랍 여러 지역에서 현장 연구를 수행했다. 그는 21개 이슬람 문명을 형성한 주요 도시들을 통해 이슬람 세계의 이해를 돕고자 각 도시의 건축물 특징과 민중의 삶을 배울 수 있는 시장과 뒷골목 등을 직접 보고 듣고 머물며 이슬람의 역사와 현재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37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다 읽고 나서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갖고 사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어렸을 적 역사 시간에 4대 인류 문명의 발상지(BC 4000~3000년경)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거대 신전을 짓고 태음력, 60진법과 과학의 기초를 세웠으며 함무라비 법전과 쐐기 문자로 국가 기반을 마련했고 바빌로니아 왕국을 세웠다고 배웠다. 우리는 천일 야화와 같은 중동을 배경으로 한 모험담들의 모음집, 동방박사, 페르시안 카펫 등 아랍인들의 문명과 문화를 배우면서 자랐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소녀 시절에는 ‘비잔티움(지금의 이스탄불)’이 주는 깊고 무게감 있는 어감에 매혹되어 언젠가는 이 도시를 꼭 방문하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나는 가끔 미국에서의 삶이 길어감에 따라 한국에서 살았던 25년이 나의 전생이지 않았나?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꿈을 꾸며 미래에 대한 준비 기간이었다면, 미국에서의 생활은 현실이었다. 큰 병원에서 일하다 보니 놀랍게도 나는 많은 아랍 출신 의사들과 일할 기회가 많았다. 그들과 가깝게 지낼수록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오히려 그들은 정이 많고 우정을 매우 중요시하고 믿음과 신뢰 또한 중시함을 배웠다. 난 2011년부터 진지하게 여행을 시작했다. 당연히 이스탄불과 이즈미르(Izmir·city in Turkey)도 방문했다. 미국에 오래 살면서 아랍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했던 나는 어렸을 적에 기대했던 ‘비잔티움’에 대한 환상은 까마득하게 잊고 눈요기만 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BC 11세기에 지어진 Izmir Ephesus Ruins를 보며 이슬람 건축물의 규모, 기술, 정교함에 넋을 잃고 말았다. 이번에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머릿속에 번개가 스쳐 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 년의 중세 암흑기는 바로 이 이슬람 역사가 아니었을까? 암흑시대라는 관념은 로마의 멸망으로부터 르네상스 사이의 유럽을 지적인 암흑시대였다고 폄하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우리가 배운 지식의 통로가 십자군 전쟁 이래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권 세력이 그 당시 막강한 경제 세력이었던 이슬람권의 도전적인 이미지를 부정하는 지극히 유럽 중심적인 인식 체계를 바탕으로 역사를 썼기 때문이다.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식민지 약탈은 정당화시키고, 확장해 나가고 번성해 황금기를 맞는 이슬람 문명과 문화는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슬람 교인은 57개국 19억 인구로 세계 인구의 1/4을 차지하는 단일 문화권이다. 지금도 세계는 이슬람 교인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이고 배타적이다. 테러, 전쟁, 종교만이 그들의 관심사이고 일상인 양 그들을 배척한다. 이는 유럽 서구권의 역사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세계사일 뿐이다. 잘못되고 편협된 지식은 편견을 가져온다. 세상의 지식은 너무나 방대해서 우리는 전부 다 흡수할 수는 없다. 다만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3차원으로 확장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편견 왜곡 이슬람 문화 이슬람 문명 이슬람 세계
2025.09.22. 21:24
롱아일랜드 끝 시골집 43년을 살아온 뒷마당에 아직 겨울잠이 채 가시기 전 봄은 또 어김없이 찾아 왔다. 매년 4월 20일이 지나야 왔던 강남 갔던 제비, 올해는 4월 15일 꿈에도 생각지 못한 42년의 역사를 만들어 고향 집에 짝을 짓고 돌아왔다. 너무도 놀랬다. 이렇게 일찍 돌아온 해는 한 번도 없었고 지난해는 4월 17일에 왔었다. 우리 인간은 그들의 계획을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그들은 자연의 순리대로 어김없는 생존의 기지를 잘 알고 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을까. 십여일이 지날 때까지 그들은 봄샘 추위에 떨었고 마침내 후속대가 합세했다. 재잘대는 그들의 언어는 다 알 수는 없지만 42년 동안 지켜온 차고 둥지의 경험을 통해 새끼들에게 내리는 경계의 소리는 알 수 있다. 천적이 나타나면 “째재잭”하고 소리를 낸다. 둥지 속으로 숨으라는 경고에 모두 쏘옥 숨는다. 가족들이 다 모였다. 짝들을 짓는다. 처음 온 두 마리가 알을 품고 고행의 길에 들어갔고 다른 가족들은 둥지 3개를 보수하고 새 둥지도 2개를 만들었다. 봄의 꽃잎들이 바람에 날리고 많은 다른 새들도 모여들어 봄을 노래하고 있었다. 올해는 특이하게 네 쌍이나 조금 늦게 알을 품었다. 이따끔씩 엄마 제비의 짧은 외출이 필요할 때는 아빠 제비가 잠깐 교대를 해주지만 엄마의 고행은, 쪼그린 무릎과 다리는 얼마나 힘에 겨울까? 머리만 둥지 밖을 내다보며가슴 털은 따스한 온도를 유지한 채 13~17여일(포란 기간)이 지나면 부화가 이루어지며 어미의 자세가 어정쩡 어색함을 나타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때 가슴 털 밑의 움직임을 누를 수가 없다. 새끼들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첫 둥지에 새 생명이 태어날 즈음에 다른 세 둥지가 알을 품었다. 새끼들이 태어나면 어미들은 먹이 사냥에 바쁘다. 24여일 동안을 키워야 한다. 어릴 때는 파리, 모기, 벌 등을 먹이고 크면 나비, 잠자리, 이화명충 나방 등을 먹고 자란다. 올해는 한 번에 여러 둥지에 새 생명을 부화했는데 불행한 일이 몇 가지 일어났다. 북쪽 둥지에 4마리가 태어났지만 두 마리가 무더운 기후에 허우적대다가 떨어졌다. 두 마리 모두 둥지 속에 다시 넣어주었지만 한 마리는 끝내 죽어서 땅에 묻어주었다. 동쪽 둥지에서 2마리는 잘 자라서 하늘을 정복했고 앞쪽 둥지엔 4마리가 건강하게 잘 자랐다. 일반적으로는 한여름에 두 번 번식한다. 그런데 올해에는첫 번째로 품었던 짝만 다시 알을 품었다. 좀 늦은 감이 있었다. 계속 관찰을 했는데 3마리가 태어났다. 그중에서도 빨리 자라는 새끼는 늘 부산스럽다. 그래서 떨어지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그날도 제일 큰 새끼가 떨어져 숨을 거두어 또 묻어 주었다. 올해는 특이하게 네 둥지에 다섯번의 부화가 있었고 두 마리가 희생되었다. 마지막 태어난 형제는 어렵게 하늘을 정복했지만 과연 무난히 제2의 고향에 안착이 될까 걱정이다. 강행군의 비상 훈련 속에 시간이 흘렀다. 모든 식구가 지붕 위의 창공을 수없이 돌고 돌았다. 그들은 평균적으로 8월 25일이면 떠났다. 그런데 8월 20일 아침 집을 선회했던 모습이 마지막 날인 줄을 몰랐다. 다음 날 아침 늘 요란스럽게 재잘대던 그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빈 하늘 삼각형의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찡했다. 그다음 날도 그랬다. 너무 일찍 온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 보내는 마음과 내년 봄의 기다림이 나를 위로 했다. 그 먼 길 얼마나 힘겨웠을까. 두 번째 태어난 두 마리가 눈에 선하다. 잘 무사히 도착했을까? 43년의 역사는 다시 이루어질까? 오광운 / 시인삶의 뜨락에서 한여름 제비 엄마 제비 앞쪽 둥지 북쪽 둥지
2025.09.15. 21:38
‘숲속의 두 갈래 길(The Road Not Taken)’이란 명시를 남긴 로버트 프로스트의 다른 시에 Mending Wall이 있다. 이 시에 ‘좋은 울타리는 좋은 이웃을 만든다. (Good Fence Makes Good Neighbors)’ 라는 말이 나온다. 시에 등장하는 이웃은 처음에 소를 키우고 있었다. 소의 주인이 누군지, 소들이 서로 놀다가 섞이고 달아나다 보면 구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두 이웃은 울타리를 만들어 자기 소를 보호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은 더는소를 키우지 않았다. 그래도 울타리는 허물지 않았다. 두 집 사이에는 여전히 경계가 필요한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다니엘 디포우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 브라질에서 출발해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잡아 오려던 배는 폭풍우로 어느 무인도에 표류했다. 혼자 외딴 섬에 고립된 주인공은 큰 바위 밑에 움막을 짓고 동물들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방안에 큰 벽을 쌓았다. 섬에는 사람은 없었으나 야생동물은 살았다. 그는 울타리를 만들어 동물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잡아서 먹었다. 불과 150~200년 전만 해도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국경 개념이 약했다. 전쟁에서 이긴 나라가 패전국의 땅을 빼앗아 말뚝을 막고는 자기 땅이라고 주장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 가인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에 따르면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등을 빼앗았다. (샌디에이고 밑에 멕시코령 바하칼리포르니아가 있다) 전쟁에서 이긴 후 백인 지배계급은 허허벌판에 말뚝을 박고는 자기 땅이라고 우겼고, 나중에 자기들끼리 만든 법으로 이를 합법화했다. 지주들은 오클라호마, 서부 텍사스 등지에서 이주 노동자를 모아 캘리포니아 농장에 데려다 저임금으로 착취했다. 서부 개척 시대, 캘리포니아의 오렌지, 포도, 목화 농장은 불쌍한 노동자들이 흘린 ‘분노의 눈물’로 재배한 것이었다. 요즘 같이 외국 노동자들을 데리고 온 것이 아니었다. 가뭄으로 농토를 잃은 동족을 울린 수치스러운 노동력 착취였다. 미국은 당시 군사적 위협으로 여러 섬나라를 합병하고 루이지애나, 알래스카를 각각 프랑스와 러시아로부터 사들였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베를린 연설에서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벽을 허무세요” 하고 선언했다. 이후 소련연방 사이의 벽이 하나둘 무너지고 소련연방은 붕괴하였다. 세계사에 남는 ‘가장 큰 벽’이 없어진 것이다. 프로스트는 그의 시에서 사람과 사람, 이웃 사이의 장벽은 임의적이고 불필요한 것으로 은유하고 있다. 자연은 사람이 만드는 벽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는 벽을 높이 쌓고 허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장벽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철조망을 넘어온 사람들은 검거돼 낯설고 무서운 나라로 추방되고 있다. 돌아보면 지난 행정부 시절, 너무 많이 들어왔다. 뉴저지 인구보다 많은 사람이밀입국했고그중에는 범죄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두 나라 간의 울타리는 튼튼하지 못하고 구멍이 많았다. 좋은 울타리가 아니었다. 두 이웃 나라가 사이좋게 만든 좋은 울타리였다면 좋은 이웃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어느 정도의 울타리(경계)는 필요할 것 같다. 우리 주변에는 남의 사생활을 침범하고, 개인 정보를 훔쳐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 할 수 없이 벽을 쌓고 이중 삼중으로 보호망을 구축해야 한다. 울타리는 단단한가. 자주 점검해 구멍이 발견되면 보수해야 한다. (Mending Wall) 울타리가 필요 없는 시대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울타리 이웃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사람 이웃 멕시코령 바하칼리포르니아
2025.09.10. 21:47
내가 평생 다니는 직장에서도 동료들이 은퇴하면 제삼의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한다. 그중 우선순위는 따뜻한 장소와 생활비가 저렴한 곳이다. 아무래도 노인은 추위에 약하고 제한된 수입에 의존해 살기 때문이리라. 나도 은퇴 후 어디서 내 남은 생을 마감할까 많이 고민해 본 결과 결국 지금 사는 이 집이 가장 편안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내가 사는 글렌코브는 내가 필요로 하는 많은 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맨해튼까지는 한 시간, 내 직장까지는 25분, 플러싱까지는 35분이면 되고 우선 동네가 조용하고 나무가 많다. 주위에 수목원이 많아 경관이 수려하고 수영할 수 있는 바닷가가 3분 이내에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날마다 운동할 수 있는 YMCA가 4분 이내에 있다. 아무리 운동을 좋아하고 하고 싶어도 장소가 멀면 귀찮아 가지 않게 된다. 일단 나는 내 집에 정을 주고 사랑하기로 했다. 이 집에 이사 온 지도 올해로 22년째다. 사람 몸처럼 20년 이상을 날마다 쓰면 집도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마련이다. 전에 살던 집에서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낡은 짐 처리 문제로 곤욕을 치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당시 이 집이 새집이어서 새 가구를 마련하려고 모든 가구와 살림살이를 그대로 두고 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새 집주인은 집을 깨끗이 비워주기를 요구했다. 덤스터를 하나 주문해 짐을 치우기 시작했으나 두 번째 세 번째까지 불러 겨우 낡은 짐들을 치울 수 있었다. 그 중노동에서 겨우 살아남은 나는 이사 가는 새집에서는 미니멀리스트로 살겠다고 결심했었다. 이번에 화장실을 새로 고치기로 했다. 시작 동기는 간단했으나 결국 대 공사가 되고 말았다. 컨트랙터는 초대형 크기의 덤스터를 미리 갖다 놓았다. 난 처음에 그 덤스터의 크기에 압도당했었으나 이번 기회에 20년 묵은 집안 물건들을 정리하고자 마음먹었다. 서랍과 옷장 구석구석에 그동안 얼마나 물건들을 사재고, 쌓아놓았는지 숨이 막혔다. 그리고 정말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나에게 쇼핑 벽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항상 스스로 낭비가 아닌 합리적인 쇼핑한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내 나이 또래의 지인들은 이제 사는 것은 그만하고 있는 물건들을 정리한다고들 한다. 나 자신도 매해 1월이 되면 정리를 시작하다가 끝도 없고 표도 나지 않는 이 작업을 결국 포기하고 만다. 차라리 치우는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훨씬 행복하다. 지금까지 사들인 물건들은 할 수 없지만 앞으로는 사재기를 자제하는 것만이 답이다. 하지만 평생 몸에 밴 이 사재기 습관을 과연 버릴 수 있을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자녀들과 지인들을 불러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가고 나머지 물건들은 다 덤스터에 버리라고 말하련다. 버리고 버려도 끝이 없는 이 작업을 겪으면서 ‘삶이란 온갖 쓰레기를 모으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죽을 때 하나도 가져갈 수 없는 이 물건들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감에 괴리감을 느낀다. 이번에는 내 주변에 있는 보이는 물건 정리에 초점을 두었지만, 이 기회에 내 뇌(brain)도 한번 되돌아보며 정리하고 싶다. 지난 평생 내 뇌 안에 계속 쌓여 나를 혼동하게 하고 어지럽히는 생각, 기억을 이번에 깔끔하게 정리 정돈 하고 싶다. 앞으로 남은 내 생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만 남겨두고 남아있는 내 생을 위해 여백을 남겨두고 여유롭게 살고 싶다. 남아있는 삶은 실생활에서나 정신적으로도 아름답고 행복한 꽃을 피우며 살고 싶다. 내가 가진 자산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만 있다면 더 이상의 바람은 없겠다. 그동안 나를 지배해온 어둡고 무거운 기억의 파장과 혼란을 모두 비우고 새롭고 아름다운 꽃봉오리들로 꽃피우고 싶다. 워즈워스는 ‘우리 영혼은 불멸의 바다 풍경을 품고 있다’라고 했다. 인생은 물음을 던지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시인이 될 수 없다면 시처럼 살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작업 집안 물건들 물건 정리 나머지 물건들
2025.09.08. 21:53
차정은 시인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를 썼다. 지금은 20세다. 그녀의 시 ‘시인 키우기’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작은 시인은 어느새 훌쩍 자라나/ 자신이 꿈꾸는 사랑으로 집을 짓는다/ 팔리지 않아도 괜찮아/ 멋쩍은 내 글짓기 실력으로 건네는 위로/ 온갖 더위에 먹음직스러운 시집이 되어/ 내 집을 지어 준 것도 아닌데/ 리어카 위에 갓 구운 시를 싣고 판매원을 자처한다” 시를 써놓고 그리고 ‘팔리지 않아도 괜찮아’ 해놓고는 ‘리어카 위에 갓 구운 시를 싣고 판매한다고 했다. 아마 판매의 덕택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지금 그녀의 시집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로서 인기리에 잘 팔리고 있다. 마종기 시인의 산문집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에 보면, 한국에 시인이 4만 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런데 1년에 한 편의 시를 발표할 수 있는 시인은 백 분의 일이될까요?”라고 말했다. 백 분의 일이라는 말은 400명의 시인을 말한다. 이 중에서 200명 정도만 원고료를 받을 거라고 했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일 년에 한 편의 시도 쓰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일 수도 있다. 왜냐면 모든 문예지는, 문예지도 돈을 벌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유명하지 않은 시인들한테는 시를 써달라고 청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인은 발표할 지면이 없으니까, 쓰고 싶은 의욕이 사라지고 만다. 나부터도 글을 쓰는 이유는, 발표해주는 신문사나 잡지사가 있기 때문이다. 차정은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거꾸로 나는 80세에, 김정기 선생님의 지도 아래, 시 공부를 시작했다. 여기에 나의 시 ‘80에 시공부하다’ 한 토막을 적어본다. “여기는 시 학습교실/ 어느 사람이 묻는다/ 몇 살이요?/ 80/ 늙은 나이에 시 공부는 왜 합니까? 편안하게 사시다가 죽을 채비나 하시는 게 나을 텐데요/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시공부하니 내 삶이 더 편안해진 것 같습니다.” 나는 생사윤회와 인과응보를 믿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시를 아주 잘 쓴다. 천재시인으로 태어난 것이다. 불교에서는 전생의 업을 믿는다. 전생에 시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으면, 태어날 때 천재시인으로 태어난다. 나는 늙었다. 은퇴했다. 시간이 남아 돌아가기에, 지금 시 공부를 하고 있다. 내가 죽은 후, 다음 세상에서 어느 정도의 시 천재성을 갖고 태어나리라고 믿고 있다. 왜 시를 택했는가? 시는 짧아서 쓰기가 쉽고, 읽기가 쉽다. 소설은 너무 길어서 쓰기도 어렵고 또한 읽기도 힘이 든다. 그래서 나는 시를 선택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차정은 시집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시에 대한 그리고 시를 쓰는 느낌이나 감정은 젊은이나 늙은이나 거의 같다는 것을 알았다. 차정은이는 젊으니까 시를 ‘리어카에 싣고 다니면서 팔아야만 하지만’, 나는 늙었기에, 취미로 시를 쓰니까, 팔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다르다. 대부분의 나이 먹은 시인들은 자기 돈을 써가면서 시를 쓴다. 왜? 시 쓰는 것을 취미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 자기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나태주는 말한다. “‘어디 시가 밥 먹여주나?’고 묻는 세상을 향해 영혼의 허기를 채워준다고 답한다.”고 했다. 영혼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시를 쓴다?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리어카 마종기 시인 김정기 선생님 글짓기 실력
2025.09.04. 17:50
일요일 아침이다. 편안하고 시원한 운동복을 골라 입고 운동화 끈을 조이고 밖으로 나오면 저절로 달리게 된다. 오랫동안 습관이 되었는지 문밖 공기 탓인지 구분이 안 되지만 자연스럽게 한 발 한 발 빠르게 움직인다. 90도가 넘는 햇볕이 살갗에 닿으면 벌에 쏘인 느낌을 받는다. 오늘도 14마일 연습 목표다. 단조로운 일상생활에 일요일 아침에 달리기 연습은 잔잔한 호수에 돌 하나 던져 보고 싶은 충동이다. 일주일을 치열하게 살아온 나에게 주는 다독임이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내 등을 밀어주는 바람과 아스팔트의 단단함에 무딘 내 발이 압력으로 느끼는 무게를 실감하면서 속도를 내본다. 고개를 들어 눈을 찡그리고 눈 부신 해를 마주한다. 쉼 없이 앞으로 나가는데도 해는 여전히 그 자리다. 조금 더 속도를 내 본다. 심박 수가 오르면서 귓속으로 심장의 박동 음이 전해져 온다. 내가 한걸음 내밀 때마다 해는 조금씩 내 뒤로 멀어진다. 마치 내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내 발과 내 리듬으로 이제 내 발을 감싸는 땅의 촉감이 제법 익숙해진다. 앞서 난 발자국들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 지나간 걸까 누가 지나간 걸까 여러 모양의 발자국들이 뒤섞여 이 길이 커다란 판화 같다. 흙 위에 오롯이 남은 개의 발자국에 속도를 늦추고 뒤를 돌아본다. 나의 발자국은 선명하지 않다. 이 개는 얼마나 힘차게 발을 내디뎌서 이렇게 또렷한 발자국을 남긴 걸까. 시원한 공기에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그저 좋아서 달리는 개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구름이 몽글몽글하다. 머물러 있는 건지 떠다니는 건지 소리도 없고 정해진 모양도 없이 그저 그렇게 자기만의 것들이 보인다. 매미들의 요란한 합창의 계절이다. 정확하게 7월 초부터8월 말까지 울어댄다. 조용한 숲 공원에서 한 마리가 소리를 내면 덩달아 가까이에 있는 매미들이 한목소리로 함성을 지르며 장단을 맞춰가며 자기들의 있음을 과시하는 것 같다. 비가 내리지 않는 데다 90도 이상의 기온이 한 달 이상 계속되어 공원 잔디밭은 노랗고 밟으면 잔디 부스러지는 소리가 난다. 나무들도 목이 말랐는지 이파리가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 날씨가 화창하고 무덥지 않으면 개와 같이 산책하는 무리가 많은데 더운 날씨에는 개를 끌고 나오는 사람도 드물다. 산 중턱에 나무 그늘로 가려지지 않은 땅에서 살고 있던 지렁이가 모두 길가로 기어 나와서 죽어있다. 땅속이 뜨거우니까 밖으로 기어 나왔는데 길바닥은 더 뜨거워 죽을 수밖에 없다. 비가 오지 않고 기온이 올라가면 자연에서 생식하는 많은 생물도영향을 받는 것 같다. 지나가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졸졸졸 흐르던 냇가도 메말라 흐르는 물 양옆으로 잡풀들이 자라고 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물이 가득 차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했고 물안개를 날리며 산책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했었다. 냇가 주변으로 작은 꽃과 풀들은 예쁘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설사 이름이 없더라도 변함없이 청초하다. 그저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에서 움튼 작은 생명이 이리 고울까. 이리저리 뒤엉켜 자라나는 것들은 그 나름의 사랑스러움이 있다. 아무렇게나 빛 따라 비 따라 자라고 피어난 꽃들의 싱그러움을 부러워하며 다시 달린다. 이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내 발을 품어주는 흙과 내 등을 쓰다듬는 햇살을 응원 삼아 달리기는 나를 채우는 시간이다. 개똥에도 너그러워지고 바지런히 움직이는 벌레에도 애정이 생긴다. 뛰다 잠깐 멈춰 서서 보게 되는 작고 다정한 것들에 마음을 쏟으며 충만함을 가득 느낀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다정 공원 잔디밭 달리기 연습 나무 그늘로
2025.08.26. 17:27
올여름엔 특별한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았었는데 땡 더위가 기습을 하자 뉴욕에서 탈출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한 지인이 버킷리스트 일 순위로 미국 내 국립공원을 샅샅이 돌아보고 싶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 캐나다 로키산맥으로 정했다. 일단 뉴욕에서 시애틀로 날아가 밴쿠버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밴쿠버 시내와 브리티시 콜럼버스의 수도인 빅토리아 시티에 페리를 타고 다녀왔다. 이 아담하고 예쁜 도시는 유럽의 아기자기한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지금도 캐나다는 영연방과 깊은 관련이 있어 영국풍의 건물, 거리, 시가지가 고풍스러운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운 좋게도 나는 그토록 환상적인 빅토리아시를 수채화로 그리고 있는 화가를 만나 그의 화법에 넘어가 작품 몇 점을 사서 왔다. 다음에 들린 곳은 그 유명한 캐필라노 현수교였다. 이 흔들다리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에서 제일 순위의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다. 원주민의 토템으로 시작되는 이 흔들다리는 1889년에 지어졌는데도 관리를 워낙 잘해와 지금도 안전하게 이용되고 있다. 이 다리는 깊은 숲속에 450피트 길이의 아찔한 흔들다리로 지어졌으며 그 주변의 생태학적인 환경을 고려해 지은 교육실습 현장으로 다 돌아보는데 2시간 이상이 걸린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끝없이 펼쳐진 정글 참나무 숲과 계곡이 만나 이루는 광경은 나의 고개를 숙이게 했다. 밴쿠버에서 다음 코스인 재스퍼 국립공원까지는 8시간 장거리여서 중간에 하룻밤을 쉬고 계속 달려 도착했다. 재스퍼는 밴프와 비교해 볼 때 조금 덜 개발된 국립공원으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울울창창한 침엽수림 사이사이로 흐르는 강물이 계곡을 이루고 계곡이 모여 거대한 폭포가 되어 부서진다. 산 위쪽은 빙하가 서서히 녹아 얼음물로 흘러내려 호수를 이루고 호수는 온통 터키옥(turquoise) 색이다. 물색도 날씨의 영향을 받아 시시각각 변하고 감히 인간이 아니 화가도 흉내 낼 수 없는 신비로운 색채다. 가장 근접하게 옥색이나 에메랄드색이라고들 하지만 난 동의할 수가 없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트레일은 숨이 막히는 경관으로 많은 하이커를 유혹한다. 계곡은 계속 옥빛을 품어내 폭포가 되고 찬란한 옥빛 물보라가 되어 춤을 추며 하늘로 올라간다. 폭포 뒤로 보이는 먼 산은 눈에 덮여있거나 빙하로 흰 녹색의 빛이 화창한 햇빛에 반사되어 영롱하다. 재스퍼를 떠나 밴프로 달린다. 밴프는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에 꼭 꼽히는 곳이다. 워낙 유명한 곳이다 보니 구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미지가 많다. 하지만 사진으로도 매우 아름답지만 실제로 보면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고 할 말을 잃게 된다. 모레인 호수, 루이스 호수, 페이토 호수, 에메랄드 호수 등 가는 곳마다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호수가 많아 세상은 온통 Turquoise World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많이 녹아내렸지만, 설상차를 타고 올라가 빙하 위를 걷는 기분은 지구가 아닌 하늘과 맞닿은 우주를 걷는 듯했다. 자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겸손이다. 이런 무공해의 자연을 벗 삼고 있으면 나의 눈은 정화되고 머리는 맑아지며 가슴은 뻥 뚫리고 마음은 맑은 호수가 된다. 명랑한 하늘에 경이로운 구름이 시시각각 그리는 수채화를 배경으로 황홀한 신록을 뚫고 그 사이사이로 스쳐 나오는 향긋한 바람이 나를 흔들면 나는 비틀거린다. 찬란한 태양 아래 하늘과 구름, 참나무 숲과 바람으로 물든 나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호수 속으로 퐁당 빠진다. 일본인 유키 구라모토가 레이크 루이스를 방문하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작곡한 곡이 있다. 그 음악을 들으면서 그의 재능이 한없이 부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리의 스승인 자연을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안타깝다. 정명수 / 시인삶의 뜨락에서 turquoise world turquoise world 에메랄드 호수 호수 페이토
2025.08.25. 20:21
젊었을 때 나는 직장에서 분주하게 일했다. 사회봉사 활동도 많이 했었다. 늙어지리라는 생각 없이 살았었다. 그런데 늙어지고 말았다. 나이가 90에 가까워지니, 눈앞에 죽음이 아련하게 서 있는 게 보이는 것 같다. 유튜브에서 동물들의 삶에 대한 영상을 가끔 본다. 사자나 호랑이는, 먹이를 잡아서 먼저 죽여 놓은 후 뜯어 먹는다. 그런데 독수리 같은 맹금류는 다르다. 이네들은 먹이를 죽일 줄을 모른다. 그냥 살아있는 먹이를 뜯어 먹는다. 그러니, 먹이는, 살아 있는 채, 뜯겨 먹히니, 얼마나 아파하면서 죽어가겠는가! 아프리카 들개나 하이에나도 마찬가지다. 먹이를 죽여 놓은 후 뜯어먹지 않는다. 먹이가 살아 있는 채, 여럿이 함께 뜯어먹는다. 그러니, 먹이의 죽음은 얼마나 고통이었을까. 사람도 마찬가지다. 예수도 살아 있는 채, 몸에 못이 박히고 십자가에 매달린 채 죽었다. 예수의 죽음은 정말로 처절하게 아픈 죽음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심하게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서 혹은 칼로 난자하게 찔리어서 죽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전쟁터에서 폭탄의 파편이나 총알에 맞아, 피를 많이 흘리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젊은이들도 있다. 이런 죽음은 결코 좋은 죽음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은 늙어서, 병이 들어서, 집에서나 병원에서 편안하게 죽는다. 복 받은 죽음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건강하게 장수하고 편안하게 죽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사고(事故)로, 혹은 병이 들어서, 일찍 불운하게 죽는가? 이 문제를 놓고 수없이 오랜 세월 동안 생각해보았다. 이 세상은 연기(緣起)로 운영되고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어짐으로 저것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연기는 인과응보이다. 이 세상은 인과응보에 의해 운행(運行)되고 있다. 사람이 못된 짓을 했으면, 그 과보가 즉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안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기어코 나타난다. 이 세상에서 과보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음 세상에서 나타나게끔 돼 있다. 내일도 다음 세상이고 그리고 저승도 다음 세상이다. 몹시 나쁜 짓을 저질렀으면, 죽은 후, 지옥에 떨어진다고 했다. 『방등경』에 보면, 태자가 부처에게 “무슨 인연으로 보살은 장수하고 무병하며 이별이 없습니까?”하고 물었다. 부처는 대답하셨다. “보살은 자비심으로 살생하지 않았으므로 장수함을 얻고, 흉기로 사람을 상하게 아니했음으로 병이 없으며, 다른 사람의 싸우는 것을 보면 권하여 화합하게 하였으므로 이별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아끼지 않았으므로 재물을 잃거나 도둑맞지 않고, 남의 재산을 탐내거나 시기하지 않았으므로 장자(부자)의 집에 나며, 살생하거나 교만이 없었으므로 존귀한 집에 태어나는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은, ‘잘 죽으라는’ 말이 아니다. ‘저승에서 잘 살 준비를 미리 해놓으라는’ 말이다. 저승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살생, 도둑질, 간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부처는 말했다. 젊었을 때, 뭣 모르고 못된 짓을 저질렀으면, 지금 참회한다. 남을 해치려는 나쁜 마음을 버린다. 그 대신 남을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면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여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게 바로 ‘죽음의 준비’인 것이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죽음 살생 도둑질 아프리카 들개 사회봉사 활동
2025.08.14. 22:28
“I came in heavy, but now I am in light” 환자 아들이 ‘Palliative Care Meeting’을 마친 후 바로 한 말이다. 갑자기 정원 일을 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가 거의 뇌사에 빠졌다. 지난 5일 동안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그가 경험한 시간은 절망과 좌절, 무기력과 혼돈의 절정이었다. 82세의 M은 고혈압 말고는 건강한 편으로 교회와 지역 사회에 많은 봉사활동을 하며 정원 가꾸기가 취미였다고 한다. 사고가 난 그날 오전에도 정원에 새로 사 온 모종을 심다가 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소파에 앉자마자 구토하면서 쓰러졌다. 엠블런스에 실려 응급실에 도착, 바로 인공호흡기를 꽂고 CT Scan을 해보니 뇌의 3곳에 심한 출혈이 있었다. 조속하게 응급처치했으나 24시간 만에 뇌 탈장이 왔다. 환자는 이미 의식을 잃고 동공은 풀렸으며 팔다리 경직 증세도 보였다.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호흡과 맥박도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생명이 위독한 응급상황이 되었다. 거의 뇌사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오직 한 가지 살아있는 증후로는 자가 호흡이 2~5번 정도 있었다. 의사는 가족에게 환자의 회복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고 언질을 주었다. 환자는 남편과 아들, 딸을 각각 하나씩 두고 있었다. 가족 간의 사랑이 넘치고 화목함을 첫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일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질병만큼이나 다양한 가족관계(family dynamic)를 경험하게 된다. 상상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관계부터 비인간적인 냉혈한 행위들도 쉽게 만난다. 하루하루 평화롭게 일상을 이어가던 가족에게 이 환자와 같은 갑작스러운 사고는 가족을 엄청난 충격에 빠뜨린다. 가족 멤버 셋은 입원 당시부터 지금까지 5일 동안 줄 곳 환자 곁에 머물렀다. 적당히 병실에서 구겨서 자고 먹고 했다. 5일 동안 환자 상태가 호전을 보이지 않자, 의사는 Palliative Care Meeting을 주선했다. 간호사들도 그 미팅에 참석할 수 있지만 우리는 또 다른 환자도 돌보아야 하므로 보통 참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번에는 꼭 참석하고 싶었다. 미팅은 한 시간을 훌쩍 넘었다. 먼저 의사는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고 난 다음 가족 일원 개개인에게 그들이 현재 상황을 어떻게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지 물었다. 참 우연이지만 이 가족은 모두 고등학교 교사였다. 환자와 환자 남편은 물론 은퇴했고 아들과 딸은 현역이다. 환자는 평소에 자상하고 너그럽고 베푸는 타입이어서 많은 사람한테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지난 며칠 동안 환자를 방문한 수십 명의 지인만 보아도 그녀가 얼마나 많은 사람한테 사랑을 받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집은 항상 열려 있었고 지역 사회 모임에 중요하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왔다고 한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요즘처럼 화창한 날씨, 뺨을 어루만지는 달콤한 바람, 손에 들어온 맛있는 음식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사람과의 교류를 진심으로 즐겨왔다고 딸이 울먹이며 전한다. 또한 환자는 회생 가망성 없는 생명을 기계에 의존하며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유서에 명시해 놓았다. 가족은 한결같이 이성적으로는 환자의 뜻을 존중해야 함을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 생명 장치를 제거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인지 한없이 밀려오는 죄책감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의사는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 환자와 작별 인사가 필요한 지인들에게 연락하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치료책이 없는 지금은 증상 완화 방법으로 진통제, 안정제, 가래 말리는 약 등을 처방해 놓겠다고 설명한 후 미팅을 마쳤다. 그때 환자 아들이 ‘I came in heavy, but now I am in light“하며 긴장을 풀었다. 이처럼 Quality Time을 함께한 우리는 무거웠지만 가볍게, 서로 깊은 포옹을 했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heavy leave 환자 아들 환자 남편 in light
2025.08.11. 21:54
우리 가게 옆으로 조그마한 미국 교회가 있다. 여러 민족이 다양하게 모이는 곳이다. 그 교회에서는 매월 둘째 주 넷째 주에 교인들이 음식을 손수 만들어 지역 내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원하는 사람에게는 두 손 모아 기도를 해준다. 봉지에는 여러 가지 콩으로 만든 수프와 사과나 바나나·오렌지 하나, 초콜릿 바 하나 물병 냅킨에 스푼과 포크를 싸고 성경 말씀과 교회 안내서가 한장 들어있다. 교인들이 번갈아 봉사한다. 우리 가게 앞 사거리에서 음식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길거리를 다니면서 나누어 주기도 한다. 음식을 받은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웃으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교인들이 아침 일찍 모여 음식을 만들고 포장해서 나누기까지 정성을 들인 모양새가 저절로 배어난다. 어느 날 손님이 그 배송 음식을 나에게 준다. 받아서 먹어보니 여러 가지 콩 종류에 특별한 양념을 다 집어넣었는지 맛있었다. 미안하고 고마워 그 손님을 통해 정기적으로 후원하게 되었다. 가게 옆이고 손님들이고 동네 사람들이다 보니 교인은 아니지만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내 삶이 훌륭하다고 생각지도 않고 그렇다고 걱정할 만큼 내 삶의 질이 떨어져 있지도 않다. 물론 나는 나만을 위한 욕망은 많이 내려놨지만 오히려 그러고 나자 더 충만한 행복과 평안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삶을 산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치 않는다. 나도 이와 비슷하다. 내 삶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큰 사랑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너희 영혼을 높이 끌어 올렸는가? 무엇이 그대의 영혼을 가득 채우고 기쁨을 주는가? 프리드리히 니체의 질문에 가만히 답을 하다 보면 내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사람들이 살면서 허무하다고 느끼는 때를 보면 자신의 삶이 또는 자신이 이루어 나간 것이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이다. 타인을 돕거나 누군가의 힘이 되어줄 때 우리는 우리 존재의 의미를 실감하고 순수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 즉 봉사라는 삶은 우리에게 또 다른 삶의 활력이 되어줄 수 있다. 가게 손님 루시는 항공사에서 25년 일하고 정년퇴직했다. 오랫동안 어린이 암 치료 병원에 매달 20달러를 보낸다. 아이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생활이 넉넉하지도 어렵지도 않지만 꼬박꼬박 우체국에 가서 돈을 부친다. 나는 삶 속에서 행하는 작은 선의의 봉사와 기부는 균형 있는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나 자신만을 위한 욕망과 돈을 밤낮으로 쫓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세계의 부자라는 사람은 결혼식에 사람들이 놀랄 만큼 돈을 뿌려댄다. 결혼식 비용의 1만분의 1이라도 가자지구에 먹을 것이 없어 배급을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식량이라도 나누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욕망은 채우면 채울수록 마음은 더욱 공허해진다. 현대인이 갖는 불안과 공허를 잘못된 방법으로 극복하려 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만이 아닌 타인이나 다른 생명체를 위해 작은 일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내가 얻는 것이 많다. 나를 희생하는 이타심이라기보다는 나에게 있는 것을 조금 나눈다는 생각의 봉사는 장담컨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충만함을 선사할 것이다. 조금씩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은 어쩌면 더 희망차게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봉사 배송 음식 결혼식 비용 교회 안내서
2025.08.07. 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