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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1월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

새해 아침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를 즐기며 책상 앞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바깥은 영하 7도의 차가운 날씨인데도 찬란한 햇빛을 머금은 하늘 전부가 쏟아진다. 나만의 공간인 책상 앞에는 남동쪽으로 난 두 개의 창문을 뚫고 눈 부신 햇살이 떼창으로 몰려온다. 창밖 오른쪽으로는 거대한 실물의 크리스마스트리(Holly Tree)가 붉고 화려한 열매로 온갖 새들을 유혹한다. 새들도 오늘과 같은 축복의 기회를 맘껏 즐기고자 신명이 났다. 갑자기 나무 한 줄기가 휘청댄다. 둘러보니 다람쥐 한 쌍이 신나게 장난치며 나에게 즐거운 아침을 선물한다. 아! 정말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다. 행복한 아침이다.     우리 집에는 유난히 키가 큰 나무들이 많아 지난 11월에 폭풍과 눈사태가 염려되어 큰 나무 6그루 이상을 베어냈다. 마음이 정말 아팠지만, 그런대로 상록수와 나목이 겨울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지켜 주어 고맙게 생각한다. 참 신기하다! 12월 말이었던 지난주만 해도 정신없이 분주하고 시간에 쫓기며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다. 단 며칠 사이 새해라는 이유만으로 이토록 마음이 차분해질 수 있는 것일까.     미국 생활에서는 여름방학이 끝나고 가을 학기가 시작되면서 바빠지기 시작한다. 거리에는 벌써 차량이 많아지고 학교 버스 천국이 된다. 10월 말이면 핼러윈, 11월엔 추수감사절,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눈앞에 벌써 와있다. 크리스마스는 성탄절이라는 본래의 의미보다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중대한 의식이 되었다. 흩어져 있던 가족이 모이고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렇게 절정을 향해 치닫던 연말을 보내고 나면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몸과 마음에서 기와 진이 다 빠져나가고 몸살을 앓게 된다. 준비의 여부와 상관없이 새해는 벌써 우리보다 먼저 우리 앞에 당도해 있다. 새해 아침에 찾아온 고요, 고요는 평화를 부르고 평화는 내 마음에 평온을 부른다.     1월은 2월 속으로 질주할 것이다. 모두 몸을 움츠리며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꾸역거리게 된다. 이때다. 1월은 나에게 집중하며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다. 겨울나무가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히 겨울잠만 자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이토록 거칠고 척박한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견디기 위해 치열하게 사투하고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온갖 뿌리들은 지하조직에서 연락망을 통해 상생의 길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이 겨울만 잘 견뎌보자고 서로 어깨를 껴안고 있을 것이다. 오는 봄에 피울 꽃과 잎을 생각하며 이 추운 겨울에 죽을힘을 다해 버텨보자며 서로 위로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자연의 순리를 생각하면 겨울은 참으로 따뜻한 계절이다.     야외생활을 하다 보면 시선과 관심이 분산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나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주위에 널려있는 물건들, 나 자신, 그리고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이들을 한 번씩 시나브로 연상해 본다. 평소 지나쳤던 시선에 애정을 담아본다. 올해의 작은 소망을 다짐해 본다. 모든 순간을 진심으로 대하고 섬세하고 예리하고 곱게 나 자신을 연마하고 싶다. 나의 오감을 존중하고 음미하며 나에게 이 감각을 선물한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삶이란 고귀한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쉽게 묵과할 수 없다. 모든 것에는 존재 이유가 있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다. 천천히 관심을 두고 바라보고 들어주어 그들만이 품어내는 향기를 음미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정제하고 싶다. 원석에서 최고의 빛이 나는 다이아몬드를 정제하듯, 백지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자신을 담아내는 노력, 생의 최고 걸작은 뼈를 깎는 고통과 인내 없이는 쉽게 얻을 수 없다. 새해 아침 고요한 시간을 맞아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시간 시간 자신 새해 아침 주위 사람들

2026.01.26. 22:16

[삶의 뜨락에서] 행복은 발견이자 누림

행복은 마음먹은 만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늘어나는 주름만큼 마음도 가벼워지고 가벼워진 만큼 행복한 순간도 자연스레 늘어난다. 무언가를 더 얻기보다는 덜어내는 쪽으로 삶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나는 문득 어깨 위에 내려앉은 조용한 행복을 발견하곤 한다. 젊은 날에는 앞만 보고 달렸다. 이뤄야 할 목표, 증명해야 할 존재, 멈추면 안 된다는 강박, 그 시절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천천히 시야에 들어온다.   눈이 6인치 이상 내린 토요일 딸에게 전화했다. 나를 너희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9살 된 손주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눈이 많이 내리면 둘이서 눈사람을 만들기로 했다. 집에 내가 도착하니 손주가 너무 좋아했고 벌써 스키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나도 대충 두꺼운 재킷과 스키 신발로 갈아 신고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추웠지만 손주와 나는 눈을 굴리다가 힘이 들어 더럭 눈 위에 누워 버렸다. 조금 쉬운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 쓰레기통을 가져와 눈을 듬뿍 쓸어 담았다. 서로 꾹꾹 눌러가면서 담아서 뒤엎어 눈을 빼냈다. 다음은 조금 작은 쓰레기통을 사용했고 제일 윗부분은 큰 화분을 이용했다. 손주는 너무 신나고 좋은지 뛰어가 옆집 친구들을 불러 왔다. 모두 모인 아이들이 눈사람 만드는 것이 처음이라서 서로 만져보고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한 아이에게는 솔방울 두 개를 주면서 눈을 붙이라고 코는 긴 당근을 주면서 입은 조그마한 자두를 주고 만들어 보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간격도 조화 있고 보기 좋게 만들면서 웃고 난리가 났다. 오래된 마후라를 목에 걸치고 모자를 씌워 주었다. 아이들이 눈을 손으로 뭉쳐 서로 던지고 맞고 야단법석이다. 너무 놀아 지쳤는지 눈 위에 누워 눈으로 덮어 달라고 주문한다. 아이들이 나란히 눈 이불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눈과 같이 호흡하고 눈 인양 좋아한다. 소박하지만 잊지 못할 순간들이었다. 눈 위에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누웠는데 문득 허탈함 속에서 잃어버린 일상을 되짚게 되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복권에 당첨된 사람과 큰 사고를 겪은 사람의 1년 후 행복지수는 거의 같다고 한다. 외부 자극은 일시적일 뿐 우리는 결국 익숙한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즉 행복은 어느 지점에서 얻는 무언가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다. 집안으로 들어온 손자 친구들에게 따뜻한 코코아차를 만들어 주고 서랍 속에 있는 쿠키를 내어주었다. 마시고 먹으면서 재잘거리는 소리도 귀엽고 빨개진 볼이 보기 좋았다.     오후 햇살은 창틀에 머물고 바람은 커튼을 가볍게 흔들었다. 이 평온한 시간이 행복이라는 말이 마음 깊은 곳에서 새어 나왔다. 특별하지도 않고 거창한 성취도 없는 날 그저 평화롭지만 심심한 시간 속에서 내가 나를 만나는 순간 행복은 복을 행한다는 뜻인 것 같다. 복은 하늘이 내리는 선물이고 행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행복은 삶을 누리는 능력이며 지금 이 자리에서 그것을 알아채는 감각이다. 주행 중 푸르게 바뀐 신호등, 반가운 문자 알림, 내 호의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준 친구, 행복은 그렇게 일상의 틈마다 조용히 숨어있다. 행복은 얻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삶을 감사의 눈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드러난다. 때로는 불행의 그림자를 지난 자리에 조용히 앉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행복 발견 친구 행복 순간 행복 옆집 친구들

2026.01.15. 17:40

[삶의 뜨락에서] 푸틴의 통곡

사람 팔자는 알 수가 없다니까! 새해를 맞이해서 즐겁게 지냈고, 다음날 2일에는 중국의 특사 대표단을 만났다. 마두로는 “올해에는 온 힘을 다해 베네수엘라 경제를 부흥시키겠다” 하고 굳게 마음을 먹고서 침대에 들어가 잠을 잤다. 그런데 난데없이 미군이 들어와서 그를 체포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사람이란 내일 일을 모른다고 했는데, 바로 마두로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미군이 전격적으로 마두로를 체포해버린 것을 보고서, 푸틴(러시아 대통령)의 속마음은 어떠했었을까. 한편 부러워했겠지. 그리고 통탄했겠지! 왜 자기는 트럼프처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에, 젤린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를 전격적으로 미리 체포하지 못했었는지, 왜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는지! 크게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중국의 시진핑은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를 보고서, “아, 이것 참 좋은 아이디어구나.” 군대를 보내서 대만을 점령할 게 아니라, 트럼프식으로, 라이칭더(대만 총통) 한 사람만을 전격적으로 체포해버리면 되겠구나! 그래서 그런 작전을 짜라고 시진핑이는 군부대에 명령을 내릴지도 모를 일이다.     반면에, 잠자는 사이에 혹시 체포되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대만의 라이칭더이나 북한의 김정은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우리가 보기에 마두로가 그냥 쉽게 체포돼버린 것 같은데, 그것은 오해이다. 마두로를 그냥 쉽게 체포한 것은 결코 아니다. 치밀한 계획에 따라 체포를 했었다. 미국은 수개월 전에 중앙정보국, 국가안보국 등 요원들을 미리 보냈다. 이들은 마두로의 일과부터 반려동물에 이르기까지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해놓았다. 마두로가 잠을 자는 ‘안전가옥’을 그대로 본뜬 모형까지 제작해 시뮬레이션 하는 등 체포 작전을 철저하게 준비했었다.     트럼프의 개시 명령을 받고서 군대는 기습 공격했다. 총 150대 이상의 전투기, 폭격기 등 항공 자산이 동원됐다. 체포부대가 카라카스(수도)에 접근하자 합동 공군부대가 베네수엘라 방공시스템에 폭탄을 던져 무력화시켰다.     체포부대는 3일 오전 1시 1분 마두로의 은신처에 도착했다. 마두로 은신처 문을 폭파했다. 마두로 대통령이 있는 곳까지 3분 만에 도착했다. 건물 진입 약 5분 만에 신병을 확보했다. 침실에서 자고 있던 마두로 부부를 체포해서 미국함대로 옮겼다. 트럼프 대통령의 작전 개시 명령을내린 지 143분 만에 작전은 끝났다. 체포과정에서 저항도 치열했다고 했다. 마두로 대통령의 경호 인력과 민간인을 포함해 약 8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미군 사망자는 없다고 했다.     마두로가 체포된 이유는 마두로가 마약을 미국에 몰래 밀수했다는 것 혹은 베네수엘라 석유를 뺏기 위해서라는 것 혹은 중국의 남미 진출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것, 그런가 하면 금년도 중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마두로를 체포했다는 설도 있다. 아마 다 맞는지도 모른다.   내가 흥미를 가진 부분은 옆 나라를 침공해서 점령하고자 하는 독재자들에게 이번 트럼프의 기습작전은 아마 아주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주고 있지나 않았나? 하는 게 나의 관심사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기습작전에 성공했다고 해서 다른 독재자들이 그리 쉽게 성공하리라고는 나는 믿지 않는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푸틴 통곡 마두로 대통령 마두로 은신처 마두로 부부

2026.01.13. 20:27

[삶의 뜨락에서] Thank you but no thank you

연말이 되어 Albany 근교에 사는 아들 Danny가 다녀갔다. 오기 며칠 전부터 전화로 이번에 엄마를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며 크게 기대할 만하다고 나를 들뜨게 했다. 그가 집에 도착해 집 앞에 주차하고 짐을 꺼내려 차 문을 여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한 마리의 거대한 독수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할 태세를 취하는 물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매의 날개 문(Falcon Wing Door)을 가진 테슬라 SUV 신형 모델 X였다. 이 차는 독특한 방식의 디자인으로 뒷문이 위로 열리며 이는 마치 매가 날개를 펼치는 모습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더욱 놀란 것은 출발에서 도착까지 거의 3시간 동안 완전 자율 주행에 주차까지 맡기고 왔단다.     그는 테슬라를 한 5년 동안 애용해 왔지만, 이번 모델은 완전히 업그레이드되어 그에게 이제 운전이란 game changer가 되었다며 신바람이 나서 행복해했다. 그러면서 시승을 적극 강요(?)했다. 2.5초 내 시속 60마일의 속도를 낼 수 있다며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나는 현기증에 아찔했다. 그가 말한 깜짝 선물이란 내가 좋다고만 하면 최신형 테슬라를 사주겠단다. 이제 엄마는 나이 들어 운전하기 싫을 때도 있고 특히 밤 운전이나 궂은 날씨에 사고 위험도 있으니, 이번에야말로 차를 바꿀 최적의 기회가 아니냐며 나를 설득하려 땀을 흘리고 있다.     한 30분 정도 시승해 주면서 테슬라 판매원보다 더한 테슬라 홍보대사가 되어 이 차를 팔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팔고 있었다. 그때였다. 자율 주행하던 차가 갑자기 적색 신호등에서 파란색으로 바뀌자 갑자기 차가 턱에 걸린 듯 덜컹덜컹하며 멈칫댄다. “OMG, What happened?” 나는 소리쳤다. Danny는 “Nothing” 하며 옆에서 들어오는 길에 적색 신호등이 있어 차가 순간적으로 혼동했지만, 곧바로 스스로 알아차려 다시 주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난 순간 본능적으로 가슴이 철렁했다. Danny는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당황하지 말고 main screen으로 들어가 해결책을 찾으라고 한다. 난 바로 Danny에게 너의 성의는 백번 고맙지만, 이 선물은 사양하겠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Danny는 나에게 천천히 생각해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며 포기할 기세가 없다. 기계는 배우면 되고 몸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니 조급해하지 말라 한다. 일단 몸에 익숙해지면 말 잘 듣는 비서처럼 충분히 가치가 있다며 전혀 물러설 기세가 안 보인다.     영어 속담에 ‘You can’t teach an old dog new tricks’직역하면 나이가 많거나 기존 습관에 익숙한 사람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치거나 변화시키기 힘들다는 의미다. 이 속담이 지금, 이 상황에 딱 맞는 말이다. 특히나 운전처럼 사람의 목숨과 관련이 있는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나처럼 나이가 들어 운전 경력이 있는 사람은 직접 손은 핸들에 발은 가속 페달이나 브레이크에 놓을 때 비로소 안심된다. 요즘엔 한 달이면 전에 일 년과 맞먹을 정도의 새로운 기술이 쏟아져나온다. 전혀 무시하고 아날로그식으로 살 수는 없지만 최신형 테슬라 모델 X SUV는 감히 내가 시도해 볼 엄두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Danny는 이 차의 빼어난 장점과 편리함을 계속 주장하지만 나는 왠지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해결하기 전에 공황 상태에 빠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결국 이 차는 전기차다. 만에 하나 Power를 잃으면 모든 기능이 정지되고 이 차는 거대한 쇳덩어리의 괴물이 된다. 얼마 전에 함께 운동하던 친구가 갑자기 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 친구는 심한 폭풍우로 집에 정전이 되어 차고 문을 열 수 없어 차를 쓸 수가 없었다고 했다. 젊고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즐길 수 있으련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자신이 안타깝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하나의 지혜라 믿는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thank thank you no thank 최신형 테슬라

2026.01.12. 22:23

[삶의 뜨락에서] 깨소금 같은 마음

가게 가까이에 사는 지인이 점심시간에 맞추어 하얀 쌀밥에 시금치나물과 무나물을 보자기에 싸 들고 왔다. 밥에서 김이 나오고 시금치나물과 무나물 위에는 깨소금이 뿌려져 있다. 지인이 반찬 위에 뿌려진 깨소금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깨소금의 뜻? 뭐 깨소금에는 소금이 안 들어가지만 풍미를 돋우지 않나. 요즈음에는 소금 들어간 깨소금도 있을까. 나는 빈약한 지식을 주절주절 읊었다. 내가 답다운 답을 내놓지 못하자 지인은 시금치나물을 가리키며 이 깨소금은, 이 시금치나물 네가 처음 먹는 거라는 뜻이라고 했다. 나를 위해 지금 막 만든 음식이고 이렇게 톡톡 뿌려 놓으니까 막 완성한 것 같고 먹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요리한 사람의 마음. 아 대접받는 거네. 어쩐지 깨를 뿌린 반찬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곰곰 따져보면 막 조리한 온기 있는 음식에 뿌려진 깨소금은 쉽게 눅눅해지거나 향을 잃기 때문에 음식을 내기 직전에 뿌려야 그 신선한 맛과 향이 온전히 지켜진다. 그래야 음식을 만든 사람과 그 음식을 먹는 사람 사이를 향긋하고 풍미 있게 이어준다. 그렇게 푸릇한 시금치 위에 별처럼 뿌려진 깨소금을 떠올려 본다. 우선 깨소금을 뿌린 반찬이 시야에 들어오면 먹기도 전에 기분이 좋아진다. 설령 상 위에 한두 가지 반찬뿐이라고 한들 정갈하게 느껴진다.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가져오면 혀끝에 순간 음식의 풍미가 입속에서 터지듯 퍼진다. 깨소금을 씹는 오독한 식감은 또 어떤가. 깨소금은 시금치 무침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는 마음의 마지막 붓 터치가 아닐까 싶다. 깨소금은 미리 만들어둔 반찬을 대충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맛이 살아있는 최상의 상태로 차려낸 정성의 표현이다. 주인공이야 당연히 시금치지만 깨소금은 시각, 향, 식감으로 음식의 감각적인 요소를 끌어올려 원재료의 맛이 잘 전해지도록 돕는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한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먹는 이에게 가 닿도록 돕는 깨소금이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 필수 불가결의 조연이다. 깨소금에 담겨 전해지는 감성이 풍부해서 좋다. 요리에서 원재료가 가진 맛처럼 사람의 본성이 깨소금을 타고 쏟아진다.   우리 가게 손님 무하마드는 가나에서 이민을 왔다. 20년 동안 어린 딸과 함께 살았다. 아파트가 좁은지 여름옷을 가져오면 다음 해 여름에 찾아간다. 겨울옷도 마찬가지다. 궁색해 보이지만 가나가 프랑스 지배를 받아서인지 옷 모두가 프랑스에서 만든 옷이다. 집에서 세탁해도 아무렇지 않을 옷을 가게에 맡기는 이유는 세탁 방법을 몰라서일 것이다. 꼬마 딸이 커서 친구와 룸메이트로 뉴욕으로 이사했다. 항상 어깨가 축 늘어져 피곤해 보이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가 조금은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몇 주 전 바지 두 개를 가져와 급하게 세탁을 부탁했다. 웬일인지 궁금했는데 너무 좋아 싱글벙글하면서 이야기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데이트한다고 수줍어하며 웃는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젊은 청춘 혼자 외롭게 딸을 키우고 이제는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 같아 나도 기뻐해 주었다. 바지를 찾으러 왔다. 바지 주머니에 돈을 조금 넣어 아무 말 하지 않고 내주었다. 바지 위에 깨소금을 함박눈 내리듯 쏟아붓고 소낙비 내리듯 쏟아부어 주었다. 내 마음속으로.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깨소금 마음 순간 음식 바지 주머니 프랑스 지배

2025.12.31. 17:10

[삶의 뜨락에서] 12월과 1월 사이의 단상

어느덧 올해도 끝자락에 와있습니다. 일 년 중 가장 많은 감정이 오가는 가슴 벅찬 12월입니다.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한 달 한 달 되새겨봅니다. 즐겁고 행복했던 일도 많았고 힘들고 아팠던 일들도 유난히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정신없이 달려온 올 한 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아 아쉽습니다. 오는 새해 또한 욕심부리지 않고 겸손하게 희망으로 맞으려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제아무리 노력해도 피해 가기 어려운 과제가 있습니다. 바로 생로병사! 인간은 태어나서 늙어가고 병들어 죽는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100세 시대라고 슬프게 떠들고 있지만 어쩌면 이 사실이 더 비극일 수도 있습니다. 한 독립된 개체로서 자기 몸과 영혼을 주도하지 못하고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짐이 된다면 이보다 더 큰 비극이 있을까요. 평생을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대하면서 살아온 내가 요즘에는 내 나이가 환자의 평균나이보다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움찔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은퇴하기가 겁이 납니다.     제 주변에서도 안타깝고 슬픈 소식을 자주 듣게 됩니다. 대부분의 내 환자들은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습니다. 우리는 숨을 쉰다는 자체의 고마움을 전혀 모르고 살지만, 이 환자들에 숨쉬기는 생사가 달린 절박한 문제인 것입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어서는 건강이 당연하다고 믿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몸의 여기저기서 이상 증후가 나타납니다. 아무리 고귀한 정신이라도 담는 그릇이 부실하면 의미가 없게 됩니다. 아무리 지혜롭고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그 재능은 종종 육체의 고통 앞에서 무력해지곤 합니다. 모든 지적 활동은 육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건강한 육체를 통해 꽃을 피우고 빛을 내게 됩니다. 몸이 멈추면 머리도 멈춥니다. 몸이 건강해야만 정신도 맑아지고 생기도 넘치기 마련입니다. 꾸준한 운동이야말로 중요한 지적 과업을 이루기 위한 가장 단단한 토대가 됩니다.     과도한 정신노동의 해악을 막으려면 적절한 운동과 휴식의 조절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은 일찍 도착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버리고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몸이 피로하면 신체 건강 유지에 적신호가 와 기능이 떨어지고 마음도 우울해집니다. 운동으로 육체의 근육을 단련시키듯 정신 근육의 단련도 중요합니다. 규칙적인 집중시간이 끝나면 무리하지 않도록 정신도 정기적으로 쉬게 해줘야 합니다. 적절한 휴식과 집중하는 습관의 조화가 규칙적인 리듬을 타야 합니다. 아침은 수면으로 정신이 새롭게 단장되고 아직 외부의 자극에 흔들리지 않은 고요한 시간입니다. 가장 컨디션이 좋은 시간에 가장 중요한 일을 하면 두뇌와 신체 상태가 더 좋아지고 몸에 오는 스트레스가 줄어듭니다.     휴식이 없다면 정신적 기력은 회복되지 못하고 어느 순간 무너집니다. 공감이 없다면 정서가 메마를 것이고 사랑이 없다면 삶의 모든 빛깔이 바랠 것입니다. 즐기는 마음과 유머 감각을 잃으면 젊음의 특권인 쾌활함도 사라집니다. 쉴 때는 고요한 물처럼 깊이 쉬어야 합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타협에 익숙해지는 순간입니다. 관심이나 유행에 따르지 않고 자신에 맞는 생활 방식을 찾음으로써 자신의 지적 생활을 최고 수준으로 이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정신생활을 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단력이 필요하고 자신에게 유일한 방식으로 생활을 조절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고매한 영혼의 소유자라 해도 이를 담고 있는 육체가 병들면 그 영혼은 방황하게 되어 슬픕니다. 우리는 당연히 영혼의 집을 잘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항상 당신을 가로막는 것은 당신입니다. 많이 읽고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어떻게 소화하고 활용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백번 각오하고 다짐하는 것보다 한번 제대로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혜로운 삶이란 제대로 숙성되고 발효된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단상 정신 근육 신체 건강 지적 생활

2025.12.29. 22:42

[삶의 뜨락에서] 주(株·Stock)와 시(詩)

은퇴하고 나서, 내 나이 80세에 시 공부를 시작했다. 시 한 편을 쓰기 위해서 많은 시를 읽었다. 동시에 많은 소설이며 수필도 읽었다. 중앙일보에 시도 써서 발표했고 수필도 써서 발표했다. 내 생활이 바빠졌다. 이런 생활이 좋았다.     그런데 친우들을 만날 때마다, 친우들은 주식(株)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를 한다. 한 친우는 “이번에 주식을 하나 샀는데, 이게 예상한 대로 값이 팍 올랐단 말이야” 하면서 좋아한다. 어떤 주식을 사면 오를 거라는 등, 어떤 주식은 장래가 없으니까, 얼른 팔아버리는 게 나을 거라는 등,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 친구들은 주식을 사고팔면서, 삶을 즐길 뿐만 아니라, 은근히 돈도 벌고 있다. 옆에서 보기에 부럽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돈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매일 신문도 있고, 경제에 관한 책도 읽는다. 그러니 매일이 바쁘고, 매일이 흥분이다. 주식이 올라가면 기분이 썩 좋다. 주식이 내려가면 속이 상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오를 거라고 믿고 있으니, 오를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코 떼돈을 벌기 위해서 큰돈을 투자해서는 안 된다고 나에게 주의를 여러 번 준다.     이런 친우들한테 시(詩)에 관해서 이야기를끄집어낼 수가 없다. 내가 시(詩)에 대해 말을 끄집어내기만 하면, 이맛살을 싹 찌푸리고 고개를 획 돌려버린다. 그러니 이런 친구들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시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그 대신 이분들이 좋아하는 주식 이야기를 내가 들어주어야만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시 쓴다고, 내 돈 써가면서 시 공부를 하고 있다. 삼 년 전에 시집을 한 권 발간했다. 아무 누구도 사가지 않으니, 내 시집을 내가 가까운 친우들에게 메일로 우송했다. 대부분은 받았다는 소식도 없다. 서너 명만 내 시를 읽었다고 전해왔다. 두세 명만 내 시가 좋았다고 칭찬해주었다. 나머지는 내 시를 읽었는지, 혹은 쓰레기통에 버렸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시모임 회원들을 식당으로 모두 불렀다. 내 시집 발간을 축하해달라면서 내 돈으로 축하파티를 열었다. 그래서 시를 공부하고 시집을 발간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모아 내 돈 소비가 많다.     주식은 생산적인 취미인 것 같다. 이에 비해 시는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취미인 것 같다. 그런데 친우가 하는 말이, 주식을 취미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거라고 말한다. 주식은 직업이라는 것이다.   그래 맞다. 돈을 벌기 위한 것은 다 직업이다. 자기 돈을 써가면서 재미로 하는 일은 다 취미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시집을 발간해서 돈을 벌려고 하면 그것은 직업이 돼버린다.   친우가, 만약 내가 주식에 흥미가 있으면, 나를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내가 너무 늙었기에, 배우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그 대신 나는 계속 시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주식은 돈을 벌 수가 있겠지만, 동시에 아차 잘못 하면 큰돈을 잃어버릴 위험도 있다. 그런데 시는 내 돈을 써가면서 나의 삶을 즐기기에 큰돈을 잃을 가능성은 전연 없다. 하지만 재수 좋으면 시집이 잘 잘려 돈을 벌 수는 있을 수 있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삶의 뜨락에서 stock 주식 이야기 시집 발간 세계 경제

2025.12.25. 17:06

[삶의 뜨락에서] 누군가 필요한 것들

지긋이 웃으면서 나이 드신 백인 할머니가 카트에 겨울옷을 잔뜩 싫고 들어온다. 옷장 안에 걸려있는 입지 않은 옷들이다. 세탁해서 주위에 있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한다고 했다. 세탁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개의치 않았다. 우리도 입지 않은 옷들이 얼마나 많은가. 귀찮기도 하고 정리하기도 싫고 조금은 아깝다고 생각도 한다. 언젠가는 정리를 해야지 하면서도 미루다가 1년이 지나간다. 어떤 손님은 많은 옷을 가지고 세탁을 주문하면서 선불을 한다. 그리고 세탁을 해서 필요한 사람이나 홈리스에게 아니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한다.   연말이 되면 모든 사람이 가진 것을 나누며 어려운 사람들에게 조금의 보탬이라도 주고 싶어 한다. 나는 꽃을 키우는 일이 재미있다. 봄에 씨앗을 뿌려 새싹이 나오면 조그마한 화분에 옮겨 심고 여름 내내 물을 주고 가꾸어 교회나 양로원에 주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도마도 나무냐고 묻는다. 이름은 모르지만 조그만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그린 색 열매가 오렌지로 바뀌고 마지막으로 빨간색으로 변한다. 이탈리아 손님이 보고 자기 나라에서 키웠던 식물이라며 기뻐하면서 몇 개를 사서 갔다. 올해는 그 식물을 조그마한 것은 5달러 큰 것은 10달러를 붙여 가계 밖에 내놓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좋아하고 관심을 가졌다. 2달 동안에  50개 정도 팔았다. 우리 가게 옆 미국 교회에서는 매월 첫째 세 번째 토요일에 교회에서 직접 만든 콩 수프와 사과 1개, 물 한 병, 쿠키 1팩, 냅킨으로 스푼과 포크를 싸고 성경 말씀과 교회를 알리는 표지를 백에 넣어 홈리스와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어쩌다 우리 가게에 배달되어 먹었는데 수프에는 여러 가지 콩과 옥수수, 그린 빈이 들어있어 맛있었다. 그 뒤로 가끔 손님을 통해 후원했는데 꽃을 판매한 대금이 조금 모여 그것을 그 교회에 후원했다.   추수 감사절 전후로 우리 동네 홈리스들이 지난여름에 던져 놓고 간 겨울옷들을 찾으러 온다. 홈리스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옷이 있고 그 옷을 꼭 나에게 맡긴다. 그 많고 냄새나는 옷들을 여름에 물세탁을 해서 가게 뒤 울타리에 걸쳐 햇볕에 말린다. 냄새도 없어지고 뽀송뽀송 감촉도 좋다. 하나하나 박스에 넣어두었다가 찾으러 오면 내준다. 홈리스들도 가족이 있다. 명절에는 그 깨끗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어딘가에 사는 그 누구를 만나러 가는 뒷모습이 가슴 한쪽을 아리게 한다. 일 년 내내 방황하고 길가에서 구걸하지만 가슴 속에는 그 사람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다가 용기를 내어 대문을 두드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 해 동안 찾아가지 않은 옷들이 있다. 주섬주섬 챙겨 비닐 백에 넣어 놓고 홈리스 센터 담당자에게 전화한다. 매년 보내는 곳이다. 이때쯤이면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필요 없고 값진 옷은 아니어도 그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옷들이다. 무조건 사이즈가 크고 입고 벗기에 편리하면 좋아한다. 이번에는 두꺼운 재킷들이 제법 있어 유용할 것 같고 이불도 5개나 있다. 정신없이 살 거나 이사를 했거나 잊어버리고 찾으러 오지 않은 옷이나 이불이지만 하나하나 내 손끝이 만지작거린 정성을 들인 옷들이다. 그래도 누군가 입고 덮을 수 있다는 기쁨으로 짐을 꾸린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홈리스 센터 세탁 비용 가슴 한쪽

2025.12.16. 22:06

[삶의 뜨락에서] 죽음은 고통인가?

‘아니다’라는 답으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현대 의학에서는 환자와 보호자가 원하면 생의 마지막(end of life)을 고통 없이 편안하게 맞이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전문 분야로 통증 완화팀(Palliative Care)은 환자의 통증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 대부분 말기 암 환자나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통증을 치료한다. 견디기 힘든 통증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힘들 때 전문가의 도움으로 통증 문제를 해결해 삶의 질을 높인다는 의도이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를 감명 깊게 보았다. 초등학교 때 만난 이 둘은 경쟁자였다가 절친이었다가 서로 동경하다 미워하며 일생에 걸쳐 서로 얽히고설킨다. ‘선망과 원망’이라는 부제에 맞게 이들의 친구 관계는 우정, 미움, 질투, 동경을 경험하며 그들 사이에 교차하는 심층 변화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두 사람의 우정은 분노와 오해를 남기고 몇 번의 절교를 맞이하지만 무슨 악연인지 계속 또 만나게 된다. 10년의 공백을 깨고 40대에 재회한 상연은 은중에게 자신이 시한부 인생의 말기 암 환자여서 안락사를 택해 스위스로 가기로 했는데 동행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은중은 이 모든 사실을 믿지 않고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쇼를 벌이나 천대하며 밀쳐낸다. 그리고 이것은 “폭력이야”라고 외친다.     결국 은중은 상연의 요청을 수락하며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기 위해 스위스로 간다. 그들은 과거의 오해와 갈등을 서로 되짚어가며 서로의 감정을 이해해 보려 애쓴다. 그동안 묻어두었던 진실을 털어놓고 우정의 의미를 되새긴다. 홀어머니와 가난하게 살아왔던 은중은 자존심이 강하고 화사한 성격에 친구가 많았으나 반면 부잣집에서 태어나 뛰어난 두뇌와 미모를 타고났지만, 계속되는 불운한 가정사로 늘 사랑에 목마르고 혼자였던 상연은 은중과 비교하며 서로 가지지 못한 그것에 대해 선망하고 선망은 질투를 낳고 질투는 원망을 낳아 이 둘은 평생 애증 관계로 고통스러워했음을 서로 고백하고 오해를 풀어간다. 은중이 상연에게 꼭 이 선택(안락사)을 했어야만 했는지, 후회는 없는지 묻는다. 상연은 동성연애자였던 오빠의 자살과 말기 암 환자로 너무 괴로워 괴성을 지르는 엄마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자신은 이 결정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상연이 찾아간 스위스의 안락사 장소는 디그니타스(Dignitas)라는 비영리 단체다. 이 단체는 실제로 존재하며 외국인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한다. 엄격히 말하면 안락사가 아닌 조력자살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돕는다. 의사나 간호사가 약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고 환자 자신이 구강으로 마시거나 정맥주사의 밸브를 열어 수면 상태로 유도한 다음 혼수상태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디그니타스 비영리 단체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먼저 이 단체의 회원이 되어야 하며 가입비와 연회비를 내고 정신적 올바른 판단력이 있어야 하며 최소한의 체력과 이동성이 있어야 한다. 의사의 진단서와 소견서도 필요하며 간단한 자신의 일대기를 보내고 승인을 기다린다. 일단 서류로 승인되면 스위스에 가서 의사와 인터뷰를 마친 후 최종 승인을 받는다. 이 준비 과정에 따르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까다로운 과정이고 준비할 서류도 무척 많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과 큰 비용에도 불구하고 이를 선택하는 경우는 자기 죽음에 대해 자율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마지막 자존감이 아닐까? 맞다. 그 어떤 죽음에도 정신적인, 신체적인 고통이 따른다. 다만 인간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위해서 현대 의학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한 지인이 “난 죽음은 두렵지 않은데 죽을 때 고통스러울까 너무 두렵다”라고 고민한다. 아직 의식이 있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가족에게 본인의 의사를 전달하면 된다. 평생 많은 죽음을 목격해온 나 자신이 독자들에게 꼭 전달해 주고 싶은 내용이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죽음 고통 자기 죽음 현대 의학도 통증 완화팀

2025.12.15. 22:18

[삶의 뜨락에서] 이제는 많이 늙었기에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젊었을 때 유행되었던 ‘하숙생’노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입에서 중얼중얼 나올 때가 많다. 내 나이가 90에 가까워지니까, 잠재의식적으로, 나더러 죽음을 준비하라고 일러주고 있는 것 같다.   늙었으니까 멀지 않아 죽을 텐데. 그냥 무작정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죽을 준비를 미리 해놓은 후 죽는 게 좋을 것 같다. 준비라니? 무슨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예수는, 기독교 신자로서, 계명(살인·간음·도둑질·거짓 증언을 하지 않는 것)을 지키면, 죽어서 천당에 가서 영생한다고 말했다. 부처는, 계율(살생·간음·도둑질·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을 지키라고 했다. 살생은 사람뿐만 아니라, 어떤 생명체든 죽이지 말라는 말이다. 계명을 지키면, 죽은 후 하늘나라에 태어나거나 혹은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했다. 계명을 어기면, 짐승이나 지옥에 태어난다고 했다. 불교는 태어나고 죽고,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가면서 영원히 윤회한다고 했다. 도를 닦아서 도를 깨치면 생과 사의 윤회에서 벗어나 열반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부처와 예수, 두 분의 말씀이 다 맞는지 혹은 다 틀린지? 혹은 두 분 중에 한 분만 맞는지?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의 말씀이 옳다고 할 것이다. 반면에, 불교인들은 부처의 말씀이 옳다고 할 것이다.     태어나는 아이들을 볼 것 같으면, 어떤 아이는 미남미녀로, 총명하고 건강하고 부잣집에서 태어난다. 반대로, 어떤 아이는 우둔하고 못생긴 얼굴로, 병약하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다. 같은 사람으로서 태어나는데, 왜 동등하게 태어나지 못할까? 이왕이면 다음 생에서는, 좋은 복을 갖고 태어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이 세상은 인과법칙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선한 행동을 하면 좋은 업(Karma)을 짓는다. 나쁜 행동을 하면 나쁜 업을 만든다.   부처는 마음(생각)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마음을 곱게 먹으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곱다. 고운 마음에 고운 말을 하면, 자연히 하는 행동이 선하다. 그런데 생각(마음)이 나쁘면, 입에서 나오는 말도 안 좋다. 하는 행동도 거칠고 나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처는 항상 선한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처는 말했다. “사람으로서 사람을 죽이면 지옥이나 동물로 떨어지겠지만, 만약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수명이 짧게 태어난다. 왜냐하면 남의 목숨을 해쳤기 때문이다. 도둑질하면 가난하게 태어난다. 왜냐하면 남의 물건을 훔쳤기 때문이다. 나쁜 말을 많이 하면 추남추녀로 태어난다. 이게 다 인과법칙이다.”   다시 말하면, 다음 생(生)에서, 장수하고 싶으면 살인을 하지 않는다. 부자로 태어나고 싶으면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 미남미녀로 태어나고 싶으면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남들에 대해 좋은 말을 한다. 좋은 복을 많이 받고 태어나고 싶으면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한 행동을 많이 하면 된다.     젊었을 때 뭣 모르고 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다면? 부처는 말했다. “사람이 악행을 지었더라도 허물을 뉘우치면 차츰 엷어지나니, 날로 뉘우쳐 쉬지 않으면 죄의 뿌리는 아주 뽑히리.”(증일아함경).     나는 늙었다. 과거에 저지른 나의 잘못을 참회한다. 남들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될 수 있으면 선한 일을 하면서 여생을 살아갈 것이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기독교 신자들 사의 윤회 거짓 증언

2025.12.02. 18:24

[삶의 뜨락에서] AI 혁명과 인류의 미래

APEC 2025 경주 정상회담에서 행해진 젠슨 황의 특별 연설은 대한민국 국민을 가슴 벅차게 만든 순간이었다. 그는 한국을 AI 주권 국가로 평가하면서 한국은 소프트웨어 역량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며 그 개발자와 IT 인프라를 소유하고 있다. 제조 경쟁력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로봇 분야에서 글로벌 표준을 선도하고 있다. AI 기술력은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인공지능 산업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한국은 혁신 DNA를 가진 나라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AI 생태계가 있다. 기술의 혁신은 문화와 사람이 함께 할 때 완성된다. AI 미래는 로봇이 로봇을 조율하고 로봇 제품을 제조하는 공장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로봇이 되는 시대가 된다. 전기와 인터넷이 필요하듯 전 세계에 AI 공장이 세워질 것이며 한국이 가장 많은 AI 인프라를 보유한 국가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안개 속에 싸여 있는 단어, AI라는 단어만으로도 울렁증이 오고 더는 피할 수 없어 결국 ‘AI 강의 2025’ (박태웅)을 집어 들었다. 책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 본다. 2022년 11월 챗GPT 등장 이후 우리의 일상생활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이 책은 인공지능의 기본 원리를 쉽게 설명하고 AI 트랜드에 대해 깊이 있게 소개하면서 AI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전망한다. AI를 이끄는 세계적인 엘리트들의 사상적 배경과 이 분야에서 활약하는 리더들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포럼 내용과 논문을 링크로 실어 신뢰도를 높였다. AI가 우리 삶에 미칠 실질적인 영향을 6가지로 풀어간다. ①운영 체제화된 AI는 더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모든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가 AI와 함께할 것이며 AI는 우리의 일성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이다. ②맥락 인터페이스 (Contextual Interface)는 정보 검색의 시대를 지나 이제 AI는 맥락을 파악해 스스로 정보를 분류하고 처리하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발전한다. ③AI는 이제 인간의 모든 직업에서 필수적인 파트너로서 단순한 보조 역할을 넘어 인간과 AI가 협력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④AI는 이제 Multimodal AI로 텍스트, 이미지, 음성, 동영상 등 다양한 형식을 동시에 처리하고 GPT-4를 넘어선 차세대에는 AI Multimodal 에서 Omni modal로 발전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⑤AI 성능은 더욱 저렴해지고, 더 빨라지고 더 작아지고 있다. 개인용 AI 에이전트가 보편화되고 스마트 폰에서도 AI가 강력하게 작동한다. ⑥휴머노이드 (Humanoid) AI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보고 듣고 움직이며 학습 능력을 갖추게 된다.     저자는 AI가 사회에 미치는 부작용과 데이터 편향, 개인정보 침해 등의 문제점을 심도 있게 다루며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책임 있는 관리와 통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또한 한국이 미친 속도로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으며 세계 최고의 양상 기술을 가진 제조 강국이 되어 ‘눈 떠보니 선진국’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제 한국이 원천 기술과 기초과학의 빈약함을 지적하고 능력 있는 인재들을 해외에 뺏기지 않고 잘 돌봐줄 정책이 심각하다며 ‘눈 떠보니 후진국’이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AI는 입력된 데이터로 잠재된 패턴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기계이다. 입력된 자료만으로 일을 처리하는 AI보다 4살의 어린아이가 훨씬 많은 정보를 얻는다고 한다. AI는 입력된 단어 숫자를 바탕으로 지능이 활성화되지만 4세의 어린이는 깨어 있는 시간 내내 두 개의 눈으로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만큼의 정보가 축적되기 때문이다. AI로 대체되는 직업이 많아질 거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AI로 인해서 창출되는 직업 또한 기대된다. AI 다음 세대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로 스스로 코딩해서 문제 푸는 방법 자체를 배운다. 인간은 머릿속 정보를 타인에게 직접 전달하지 못하지만, AGI에서는 인공 신경망의 데이터를 복사함으로써 정보교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참으로 놀랍고도 두려운 세계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혁명 인류 인공지능 산업 맥락 인터페이스 ai 미래

2025.12.01. 20:59

[삶의 뜨락에서] 내일을 위한 오늘

사람들은 말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있다.” 그래서 오늘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게 맞는 말일까?     호랑이는 포식동물이다. 배가 고프면, 먹이를 찾으러 다닌다. 그리고 잡아서 먹는다. 배가 부르면 빈둥빈둥 논다.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다시 먹이를 찾으러 다닌다. 내일이라는 게 없다. 내일 먹을 양식을 미리 준비해놓지 않는다. 호랑이는 오늘 일해서 오늘 먹고 그리고 오늘을 즐기면서 오늘을 살고 있다. 하지만 어떤 날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기도 했었을 것이다.   반면에 다람쥐는 다르다. 내일(겨울)의 양식을 저축해놓기 위해서, 다람쥐는 오늘을 열심히 일한다. 땅을 파고, 나무 구멍을 찾아다니며 도토리를 모은다. 다람쥐는 내일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것이다. 다람쥐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사는 것이다.     호랑이는 늙어지면, 사냥하지 못한다. 그래서 굶어서 죽는다. 다람쥐는 늙어지면, 아파서 죽는다. 혹은 다른 포식자에게 잡혀 죽어도 결코 배가 고파 굶어서 죽지는 않는다.     다람쥐처럼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랑이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오늘 공부하면서도, 어떤 학생들은 졸업 후의 삶을 계획한다. 졸업한 후, 사회에 나와서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어서 잘 먹고 잘살 수 있을까 하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오늘 열심히 공부하면서 실력을 쌓고 있다. 쉽게 말하면 다람쥐처럼 내일을 위해서 오늘 열심히 사는 것이다. 호랑이처럼 사는 학생들도 물론 있다.     나도, 학교 다닐 때 미국에 올 꿈을 꾸었었다. 밤늦도록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했었다. 다행히도 미국에 올 시험에 합격했었기에 미국에 이민을 올 수가 있었다. 미국에 와서도, 내 실력을 쌓기 위해서, 또한 매일 부지런히 일했다.   어떤 노인들은 늙었어도, 내일을 위해서, 오늘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친우들에게 그냥 주기도 하고 혹은 팔기도 한다. 어떤 노인들은 시 공부를 한다. 앞날 시집을 발간하기 위해, 오늘 열심히 시를 쓰고 있다.     오늘도 중요하고 내일도 중요하지만, 내일을 위해 사는 오늘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내일을 미리 준비해놓아야 삶이 윤택해지고 또한 인생발전을 가져올 수가 있는 것이다. 나의 시 한 편을 여기에 적는다.     “꽃이 핀다   아름답다     그러나     꽃은 오늘의 아름다움을 위해 피지 않는다       벌을 부르기 위해   벌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온 힘을 다해 피어 있는 것이다       오늘의 아름다움은   내일의 열매를 위한 과정일 뿐   아름다움조차 목적이 아닌   생명의 이치다.”      -‘꽃이 핀다’ 전문         꽃의 아름다움은 벌을 유혹해서, 내일의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내일을 위한 삶을 살다 보면, 우리는 자기의 삶에 의미(意味)를 갖는다. 내일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내일을 위한 일을 오늘 해야 하니까, 삶이 더 바빠질 수밖에 없다.     토마스 머튼은 “즐겁게 살 돼 아무렇게나 살지는 말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내일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즐겁게 살 돼, 아무렇게나 살지는 않을 것이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조교수삶의 뜨락에서 앞날 시집 나무 구멍

2025.11.18. 17:36

[삶의 뜨락에서] You Are Amazing

5만9000명이 참가한 축제의 뉴욕시티 마라톤 대회 날이다. 나에게는 연중행사다. 14241 번호표를 받아들고 20번째 출전이다. 햇빛이 빛나는 그야말로 좋은 날씨다. 15번 이상 뉴욕마라톤 메달을 받은 사람들은 많은 특혜 중에서도 허허벌판 추운 곳에서 기다리지 않고 체육관에서 따뜻한 커피, 물, 베이글 등 먹을 것과 화장실도 있어 편안하게 쉬면서 기다릴 수 있다.   베라자노브리지 중간쯤 가면 2~3시간대 뛰는 젊은이들이 쏜살같이 지나가면 나의 독무대였다. 사진 찍고 연기를 하면서 경관들과 담소하고 추위도 잊어버리고 달렸는데 올해는 전혀 다른 광경이 벌어졌다. 기부자들에게도 제일 먼저 출발하는 특전을 부여했다. 그분들은 마라톤을 연습하고 달리는 힘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한 번쯤 마라톤이 어떤 것인지 또 그 환경과 이치를 알기 위해서 참가한 사람들이다. 브루클린 4가에 들어서니 또 빨리 달리는 다른 팀이 오고 있다. 그 무리를 따라 스피드를 내다보니 숨이 차올랐다. 바로 스피드를 줄이고 내가 연습한 상태로 몸을 조절했다. 포니테일이 달랑거리고 짧은 바지에 소매 없는 셔츠까지 그래도 등 뒤에서 땀이 흐른다. 1마일마다 물을 공급해 주는데 그냥 스치고 앞만 보고 달리는 젊은이들 무리에 힘을 받는다.   3시간대 달리는 사람들은 연습도 많이 했고 마라톤에 진가를 터득한 마니아들이다. 뉴욕마라톤 한 번 완주하는 것이 다른 마라톤 대회보다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첫 번째 완주한 사람들의 반은 계속해서 마라톤을 이어가고 나머지 반은 포기한다고 통계에 나와 있다. 작년에 나에게 꽃을 사 온 켈리는 운 좋게 당첨되어 뛰었는데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 회사 일도 바쁘고 연습도 어렵고 코스가 언덕이 많아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도전 정신을 배웠고 아주 좋은 인생 경험과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젊은 청년이 갑자기 쓰러졌다. 길가에 반드시 눕히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도와준다. 눈을 감고 몸을 옆으로 당겼다가 느슨하게 풀고 움직여보지만 얼굴색이 변하고 호흡곤란으로 힘들어하는 사이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당뇨병 환자가 당이 떨어져 털썩 주저앉은 것은 보았지만 젊은 청년이 쓰러지는 것은 처음 보았다. 자기 스피드보다 빨리 뛰거나 호흡 조절이 안 되어 다리에 쥐가 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젊은 남성들이 뛰다가 전봇대에 기대어 다리를 스트레칭하거나 다리 운동을 하면서 걸어가는 경우도 있다. 퀸즈브리지 앞이 14마일이다. 그때는 허기를 느낀다. 친구가 모지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맛있고 긴요한 요기인지 모른다. 입가에 모지 하얀 설탕 가루가 묻어있는 것을 보고 바로 옆에 있던 백인 남자가 티슈를 내민다. 감사함과 포만감으로 쉽게 다리를 건너 1가에 도착했다. 응원 함성이 저절로 등을 미는 것 같다. 날씨도 좋아 양쪽 길을 빼곡히 메웠다. 76가에서 식구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응원 열기로 브롱스를 향해 전진한다.   길가에서 물을 나누어 주는 자원봉사자들도 피곤을 모르고 물컵을 내밀면서 응원한다. 두 다리 대신 의족으로 달리는 사람 다리 하나와 크러치를 이용해서 달리는 사람, 한 사람은 휠체어를 밀고 두 사람은 양옆에서 보호하면서 휠체어에 앉아 두발은 열심히 걷는다. 장애인 팔을 자원봉사자 어깨에 얹고 끌리다 걷다 반복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종점을 통과하는 사람, 다리가 아파 기어서 마치는 사람, 절룩거리면서 뛰고 걷고 자원봉사자가 밀고 앞에서는 당기고 그래도 환한 웃음으로 끝마치는 사람. 이 모든 이들을 “You are amazing”이라고 함성을 지르는 응원객 틈에 끼어 두 손을 번쩍 들고 전광판을 보니 7:00:22가 나를 반긴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amazing 이상 뉴욕마라톤 마라톤 대회 뉴욕시티 마라톤

2025.11.10. 22:04

[삶의 뜨락에서] 정해진 세상(Default World)

Burning Man을 공부하면서 Default World라는 단어와 조우하게 되었다. 이 단어 또한 엄청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원래 디폴트란 단어는 기본 설정값을 의미한다. 경제적으로 채무 불이행으로 쓰이고 컴퓨터에서는 초기 설정값, 게임에서는 기본 설정을 의미한다. 원래의 뜻은 이렇지만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고 많은 신조어를 낳기도 한다. Burning Man의 주제는 탈 사회 문화예술 축제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 Default World에서 벗어나 무한한 가능성을 재량껏 표현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이벤트다.     난 요즘 버닝맨의 증후군을 앓고 있다. 조금만 일찍 이 행사를 알았더라면 주저 없이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핑계일지 모르겠지만 열악한 환경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사막 지대에서 밤낮 기온이 낮에는 100도 이상의 불볕더위와 뜨거운 모래 폭풍이, 밤에는 서늘한 기온으로 극심한 일교차를 보이고 2023년도에는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행사가 엉망이 되고 진흙 축제가 되기도 했다. 주거시설은 텐트나 캠핑카를 직접 마련하고 식수, 음식, 잠자리 등 기본 생필품을 준비하고 모래 폭풍에 대비해 고글과 마스크는 필수품이라고 한다. 화장실과 목욕시설이 불편한 환경에서 내가 과연 일주일을 견뎌낼 수 있을까.     그렇다. 우리는 이미 디폴트 세상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와 생년 월일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리고 부모님의 보호 아래 또 그들의 가치관에 따라 교육받고 양육되어 진다.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유독 인간만이 한 개체로 독립하기까지 제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16년의 학창 시절을 보낸다. 그 후 전문직을 위해 더 공부하거나 아니면 직장을 구한다. 마음 맞는 상대를 찾아 결혼하고 애 낳고 그렇게 Circle of Life는 계속된다. 우연히 좋은 부모 만나고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다면 그것은 당신의 운이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족한 환경에서 태어나 더 노력해서 성공한 사례가 훨씬 많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은 우리가 디폴트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규격화(pre set world) 되어있는 디폴트 세계에서 끓어오르는 창작열을 주체하지 못해 분출구를 찾는 이들이 버닝맨이다. 버닝맨 축제에 참석했던 사람을 버너(Burner)라 부른다. 버너들은 디폴트 세계에서 불협화음이나 부조화를 경험하고 버닝맨 축제에 열광하고 기대한다. 버너들은 축제가 끝난 뒤 디폴트 세계에 돌아가는 것을 힘들어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세계에서 현실 세계로의 복귀는 또 다른 후유증을 유발한다. 심할 때는 우울증(Post Playa Depression)에 빠지기도 한다. 갑자기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기도 한다. 그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들만의 감정에 갇혀 살기도 한다. 이들을 위한 모임이 지역사회에서 활발하게 활성화되어 있다고 한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새로운 세계, 흥미로운 세계를 알게 되어 이 축제를 알려준 그 친구에게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모르고 죽을 수도 있었으니 나는 행운아다. 정말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알게 마련이다. 하루살이는 이 세상 모든 생물이 하루살이라 믿고 우물 안 개구리는 보이는 하늘이 전부라고 믿는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이 코끼리 뒷다리 정도에 해당하지 않는지 생각하니 두렵기도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 이미 세상은 AI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인간의 두뇌 자원은 무궁무진해서 지금도 두뇌의 10% 정도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하니 앞으로 어떤 세계가 열릴지 크게 기대된다. 우리는 이제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기에 벅찬 나이가 되었지만 이미 탄 기차에서 하차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답은?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default world default world 디폴트 세계 버닝맨 축제

2025.11.03. 21:47

[삶의 뜨락에서] Free Spirit

지인 중에 정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있다. 나의 경우는 별명이 교과서였고 항상 teacher’s pet으로 살아왔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알고 있는 세상 밖에 호기심과 관심이 더 많이 갔고 그 세상은 무한대임을 배우게 되었다. 지금도 나의 기본 생활권은 모범생의 틀에 갇혀있으나 나의 내부에서는 항상 새로운 경험과 변화를 원한다. 가끔 나에게 주어진 의무에서 벗어나 나의 내부에서 원하는 beat에 따라 행군하고 싶을 때가 많다. 나는 현재에 충실하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주어진 삶을 열정적으로 살고 두려움 너머 호기심을 갖고 제한을 넘어 자유롭게 도전해 보는 삶이 바로 free spirit이 아닐까. 결국 혼자일 때 편안해서 생각하고 창조하고 내부 세계를 탐험할 수 있어 자신을 찾고 내부 성장을 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 지인한테서 갑자기 메시지가 날아왔다. “I am going to Burning Man!!! I can’t wait. It’s going to be a feast of the eyes!” “Burning Man?” 뭐지? 어느 장소인가? 아니면 어떤 행사를 말하는 건가? 처음 들어보는 단어여서 바로 구글 해 보았다. WOW! Burning Man에 대해 줄줄이 나오는 정보에 계속 놀람의 연속이었다. 내가 어떻게 지금까지 이런 행사를 모르고 있었지? 호기심이 많은 나는 항상 나의 오감과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많이 보고 듣고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편이다.   Burning Man Festival은 198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고 매년 8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서 노동절까지 미국 네바다주 Black Rock Desert에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생활 공동체인 도시를 세우고 행사가 끝나면 단 한 점의 쓰레기도 남기지 않고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참여자들은 거대한 건축물과 독창적인 조형물을 세우고 예술 작품을 창조하고 개성 있는 운송 수단을 만든다. 행사 마지막 날 전야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조형물을 태우면서 하늘 높이 치솟은 불길과 함께 분위기는 절정에 이른다. 이 의식은 우리의 삶은 소유가 아닌 경험을 중요시함을 상징한다.   혁신적인 기업문화를 창출한 구글의 두 창업자,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등이 좋아하는 축제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다양성과 창의를 추구하는 실리콘밸리의 정서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그 외 할리우드 스타들, 전위 예술가, 음악인, 댄서, 요기들이 자기표현에 전력투구한다. 참여자들은 태어나면서 저절로 속하게 된 세상을 벗어나 내가 스스로 선택한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세상을 추구하는 이들이다.     여기서는 무엇을 표현하든 자유를 보장받는다. 참가자들은 수동적이 아닌 적극적인 행위자가 된다. 해마다 7만 명 이상의 엘리트와 예술인이 허허벌판인 사막에 신기루와 같은 도시를 건설한다. 주최 측에서는 간이 화장실, 긴급 의료지원, 얼음과 커피를 제공하고 화폐는 통용되지 않는다. 오직 아이디어, 발명품, 창작 활동으로 물물교환이 가능하고 매일 밤 열리는 파티에서 자유롭게 교류한다. 어떤 이는 이를 탈 사회 문화예술 축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곡을 연주하고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곳곳에 댄스클럽과 요가 강의도 있다. 참가자는 각자 잠자리 (Motor Home, 혹은 텐트)와 음식을 준비한다. 낮에는 100도 이상의 폭염과 밤의 냉기에 알맞은 옷가지들과 모래폭풍을 견디기 위한 고글과 마스크는 필수다.     그렇다면 이토록 적대적인 환경과 만만치 않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열광할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 눈과 뇌를 자극하는 예술 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 공간과 그들을 편견 없이 보아줄 관객이 있다는 사실에 모두 매혹되고 압도당하기 때문이다. 사막에 가능성의 문화를 경험하고 꿈꾸는 자와 행동하는 자에게 힘을 실어준다. 오늘, 이 축제에서 돌아온 이 지인과 꿈같은 시간을 가지면서 free spirit의 그녀가 한없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spirit free free spirit burning man 사회 문화예술

2025.10.13. 18:57

[삶의 뜨락에서] 늙었어도 시 공부는 지금이다

아마 삼사년 전인가 보다. 어떤 총장이 65세에 은퇴했다. 그리고 이럭저럭 살다 보니 어느새 95세가 되었다. 은퇴 전에 총장은, 무엇을 해야겠다 하고 인생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서 열심히 연구하고 일했다. 그래서 총장까지 되었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서, 아무 일도 뚜렷하게 해놓은 게 없이 그냥 95세가 되어버렸다.     지난 30년을 허송했다고 그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러면서, 우리더러는 은퇴하거든 즉시 무언가 목적을 세우라고 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번에, 10명 이상의 시니어 노인들이 시를 공부하겠다고, ‘뉴욕 중앙 시문학’에 참여했다. 장한 일이다. 여생을 허송하지 않고, 그 대신, 무언가 해보겠다는 의욕이 좋다.     대부분의 시인은 어렸을 때부터 즐겨 시를 읽었고 어려서부터 시를 써오고 있다. 하지만 늙은 나이에 시 공부를 시작해도 절대 늦지 않다. 우리가 시를 쓰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시로 표현하고 싶어서, 그리고 깊이 쌓인 원한과 분노를 시로 노출해 승화시키자는 것이다. 시를 써서 유명해지고 싶겠지만, 유명해지려고 일부러 애를 쓰면 좋은 시는 써지지 않을 것이다.     그냥 쓰고 싶어서, 좋아서, 시를 쓰다 보면 좋은 시가 저절로 써지는 것이다. 하지만, 늙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해서 유명해지지 않으란 법은 또한 없다.     일본의 시바타 도요(1911~2012)는, 아들의 권유로, 92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아들은 문학인이었다. 아들은 매주 토요일에 어머니를 방문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써놓은 시를 놓고, 둘이서 토론을 해가면서 시를 수정했다. 그녀가 죽으면 장례비용으로 쓸 그 돈으로, 98세에 첫 시집을 발간했다. 그게 일본에서 100만 권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 그리고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그러니 약해지지 마”라고 그녀는 힘차게 말했다.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라는 그녀의 말이 내 마음에 든다. 나도 80세에 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85세에 첫 시집을 발간했다. 그래, “인생이란 지금부터야”라는 말은, 아무리 늙었어도, 지금이라도 시를 쓰겠다고 마음을 즐겁게 먹고 시를 쓰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좋은 결실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시 공부를 시작할 때, 왜 내가 시 공부를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목표가 뚜렷하면, 시를 쓰다가 괴로울 때 중단하지 않는다. 계속 시를 쓸 가능성이 높다.     시작부터 자기 마음에 드는 시를 쓴다는 게 쉽지는 않다. 자기 마음에 드는 시가 안 써질 때는 고민이고 고통이다. 어떻게 처음부터 좋은 시가 써지겠는가. 시간이 걸린다.     나부터도, 시가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왜 내가 이런 고생을 해야 하지? 그만둬버릴까 하고 여러 번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다가 며칠 지나면 내 생각이 달라진다. 이전에 내가 시를 썼지 않았나, 전에 내 마음에 드는 시를 썼으니까, 좀 기다리면 다시 쓸 수가 있겠지 하고 스스로 위안을 한다. 모든 창조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고통 없이 어떻게 시를 창조해낼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고통은 오래가지 않는다. 하나의 시를 완성하고 나면 그만한 기쁨이 꼭 따라오기 마련이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공부 인생 목표 자기 마음 원한과 분노

2025.10.08. 22:17

[삶의 뜨락에서] 이슬람 문명의 이해와 존중

이번에는 이슬람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이 아닌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 편협된 고정관념을 벗어나 그들의 찬란한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예찬하고 싶다. 그동안 튀르키예, 알람브라 궁전 그리고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유명한 모스크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장대하고 웅장한, 섬세한 기교에 머리로는 경외감이 일었으나 마음에 감동이 일렁이지는 않았다. 아마 내 마음에 그들의 진가를 알아보고 이해할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회는 항상 준비된 자들에게 온다. 아는 만큼 보이고 준비된 만큼 배우기 마련이다. 이번에 ‘도시로 보는 이슬람 문화’를 읽고 나니 그들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혹자는 그 위험한 곳을 왜?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외국인들은 한국을 훨씬 더 위험한 나라로 알고 있다. 한국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이기에 언제 북한이 공격해 올지 불안하다는 말이다.     전 세계 인구의 1/4을 차지하고 57개국 나라의 20억 인구가 이슬람교도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역시 내면의 평안과 세계의 평화를 지향한다. 실제로 테러 집단은 이슬람교에서도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중동 이슬람권과 적대적인 나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이다. 우리는 당연히 미국이 제공하는 미디어만 접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만 갖게 되었다. 상업을 중요시하고 생활과 종교가 밀착된 이슬람 교인들은 도시를 중심으로 이슬람 문명의 뿌리를 내린다. 도시를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문화유산인 건축물과 그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는 전통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천 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이슬람 도시의 매력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적어냈다.     저자는 이슬람을 대표하는 도시탐방을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로 시작한다. 20억 이슬람 교인들이 평생 꿈꾸는,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아야 하는 순례지이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세 종교의 공동 성지로 겸손한 인간으로 돌아가게 하는 회개의 공간이다.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서 당시의 찬란한 기독교(동로마교회) 전통과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5000년 전 고대문명이 태어난 곳이자 로마와 이슬람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웠던 곳이고 중동의 진주로 불린다.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는 사막에 세계 최대의 스키 리조트를 만들고 뉴욕과 파리를 넘어 세계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향로의 도시, 오만의 살랄라, 시가지 전체가 박물관인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이슬람의 종교적 영성이 가득한 신비주의 도시인 코나, 페르시아 문화의 당당한 후예인 이란의 테헤란, 17세기에 세상의 부와 문화를 다 모아들인 세상의 절반이라고 하는 이스파한, 지식과 문화가 넘치는 실크로드를 자랑하는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파키스탄의 고도, 라호르 성채는 이슬람과 힌두문화의 만남이 이루어낸 작품이다.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 타지마할은 화려하고 우아한 무굴예술의 극치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의 카이로는 고대문명의 집산지, 리비아의 트리폴리는 로마 시대의 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고대도시이며,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튀니스는 이미 나의 버킷리스트에 올려놓았다. 카뮈와 지드의 소설의 산실인 알제리, 모로코의 마라케시, 스페인의 코르도바, 그라나다는 인류 최고의 보석으로 알려진 알람브라 궁전을 자랑하고 있으며 기독교 세력에 무너져가던 위기감 속에서도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완성한 이슬람 문명의 결정체다.     이슬람교에서는 우상숭배가 금기되어 있어 사람이나 동물의 형태 대신 모든 건축물에 기하학적 문양이나 꽃을 모자이크 형식으로 표현한다. 그들은 또한 수학, 건축학, 천문학, 과학을 고대 시대부터 생활에 적용해 왔으며 종교와 생활의 일치를 주장하고, 인류의 공존과 세계 평화를 기원한다. 중동의 전쟁은 왜 멈추지 않는 것일까.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이슬람 문명 이슬람 문명 이슬람 문화 이슬람 도시

2025.10.06. 21:53

[삶의 뜨락에서] 편견이 왜곡된 역사를 쓰게 한다

중동 지역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전쟁과 세계 최첨단의 도시 두바이에 관한 관심은 현대인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하다. 난 개인적으로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잘랄루딘 루미와 19세기 레바논 시인 칼릴 지브란을 좋아한다. ‘우리의 삶은 지금 이 순간과의 결혼이다.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고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영혼을 자유케 한다.’라는 이 진리는 내 인생의 모토가 되었다.     이슬람 문화를 공부하기 위해 내가 속해 있는 독서 클럽에서 ‘도시로 보는 이슬람 문화’(이희수)를 읽게 되었다. 저자는 국내 최고의 이슬람 문화 연구자로 튀르키예 이스탄불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아랍 여러 지역에서 현장 연구를 수행했다. 그는 21개 이슬람 문명을 형성한 주요 도시들을 통해 이슬람 세계의 이해를 돕고자 각 도시의 건축물 특징과 민중의 삶을 배울 수 있는 시장과 뒷골목 등을 직접 보고 듣고 머물며 이슬람의 역사와 현재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37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다 읽고 나서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갖고 사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어렸을 적 역사 시간에 4대 인류 문명의 발상지(BC 4000~3000년경)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거대 신전을 짓고 태음력, 60진법과 과학의 기초를 세웠으며 함무라비 법전과 쐐기 문자로 국가 기반을 마련했고 바빌로니아 왕국을 세웠다고 배웠다. 우리는 천일 야화와 같은 중동을 배경으로 한 모험담들의 모음집, 동방박사, 페르시안 카펫 등 아랍인들의 문명과 문화를 배우면서 자랐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소녀 시절에는 ‘비잔티움(지금의 이스탄불)’이 주는 깊고 무게감 있는 어감에 매혹되어 언젠가는 이 도시를 꼭 방문하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나는 가끔 미국에서의 삶이 길어감에 따라 한국에서 살았던 25년이 나의 전생이지 않았나?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꿈을 꾸며 미래에 대한 준비 기간이었다면, 미국에서의 생활은 현실이었다. 큰 병원에서 일하다 보니 놀랍게도 나는 많은 아랍 출신 의사들과 일할 기회가 많았다. 그들과 가깝게 지낼수록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오히려 그들은 정이 많고 우정을 매우 중요시하고 믿음과 신뢰 또한 중시함을 배웠다.     난 2011년부터 진지하게 여행을 시작했다. 당연히 이스탄불과 이즈미르(Izmir·city in Turkey)도 방문했다. 미국에 오래 살면서 아랍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했던 나는 어렸을 적에 기대했던 ‘비잔티움’에 대한 환상은 까마득하게 잊고 눈요기만 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BC 11세기에 지어진 Izmir Ephesus Ruins를 보며 이슬람 건축물의 규모, 기술, 정교함에 넋을 잃고 말았다.     이번에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머릿속에 번개가 스쳐 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 년의 중세 암흑기는 바로 이 이슬람 역사가 아니었을까? 암흑시대라는 관념은 로마의 멸망으로부터 르네상스 사이의 유럽을 지적인 암흑시대였다고 폄하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우리가 배운 지식의 통로가 십자군 전쟁 이래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권 세력이 그 당시 막강한 경제 세력이었던 이슬람권의 도전적인 이미지를 부정하는 지극히 유럽 중심적인 인식 체계를 바탕으로 역사를 썼기 때문이다.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식민지 약탈은 정당화시키고, 확장해 나가고 번성해 황금기를 맞는 이슬람 문명과 문화는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슬람 교인은 57개국 19억 인구로 세계 인구의 1/4을 차지하는 단일 문화권이다.     지금도 세계는 이슬람 교인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이고 배타적이다. 테러, 전쟁, 종교만이 그들의 관심사이고 일상인 양 그들을 배척한다. 이는 유럽 서구권의 역사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세계사일 뿐이다. 잘못되고 편협된 지식은 편견을 가져온다. 세상의 지식은 너무나 방대해서 우리는 전부 다 흡수할 수는 없다. 다만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3차원으로 확장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편견 왜곡 이슬람 문화 이슬람 문명 이슬람 세계

2025.09.2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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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제비의 한여름

롱아일랜드 끝 시골집 43년을 살아온 뒷마당에 아직 겨울잠이 채 가시기 전 봄은 또 어김없이 찾아 왔다. 매년 4월 20일이 지나야 왔던 강남 갔던 제비, 올해는 4월 15일 꿈에도 생각지 못한 42년의 역사를 만들어 고향 집에 짝을 짓고 돌아왔다. 너무도 놀랬다. 이렇게 일찍 돌아온 해는 한 번도 없었고 지난해는 4월 17일에 왔었다. 우리 인간은 그들의 계획을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그들은 자연의 순리대로 어김없는 생존의 기지를 잘 알고 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을까.   십여일이 지날 때까지 그들은 봄샘 추위에 떨었고 마침내 후속대가 합세했다. 재잘대는 그들의 언어는 다 알 수는 없지만 42년 동안 지켜온 차고 둥지의 경험을 통해 새끼들에게 내리는 경계의 소리는 알 수 있다. 천적이 나타나면 “째재잭”하고 소리를 낸다. 둥지 속으로 숨으라는 경고에 모두 쏘옥 숨는다. 가족들이 다 모였다. 짝들을 짓는다. 처음 온 두 마리가 알을 품고 고행의 길에 들어갔고 다른 가족들은 둥지 3개를 보수하고 새 둥지도 2개를 만들었다. 봄의 꽃잎들이 바람에 날리고 많은 다른 새들도 모여들어 봄을 노래하고 있었다.     올해는 특이하게 네 쌍이나 조금 늦게 알을 품었다. 이따끔씩 엄마 제비의 짧은 외출이 필요할 때는 아빠 제비가 잠깐 교대를 해주지만 엄마의 고행은, 쪼그린 무릎과 다리는 얼마나 힘에 겨울까? 머리만 둥지 밖을 내다보며가슴 털은 따스한 온도를 유지한 채 13~17여일(포란 기간)이 지나면 부화가 이루어지며 어미의 자세가 어정쩡 어색함을 나타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때 가슴 털 밑의 움직임을 누를 수가 없다. 새끼들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첫 둥지에 새 생명이 태어날 즈음에 다른 세 둥지가 알을 품었다. 새끼들이 태어나면 어미들은 먹이 사냥에 바쁘다. 24여일 동안을 키워야 한다. 어릴 때는 파리, 모기, 벌 등을 먹이고 크면 나비, 잠자리, 이화명충 나방 등을 먹고 자란다. 올해는 한 번에 여러 둥지에 새 생명을 부화했는데 불행한 일이 몇 가지 일어났다. 북쪽 둥지에 4마리가 태어났지만 두 마리가 무더운 기후에 허우적대다가 떨어졌다. 두 마리 모두 둥지 속에 다시 넣어주었지만 한 마리는 끝내 죽어서 땅에 묻어주었다. 동쪽 둥지에서 2마리는 잘 자라서 하늘을 정복했고 앞쪽 둥지엔 4마리가 건강하게 잘 자랐다.     일반적으로는 한여름에 두 번 번식한다. 그런데 올해에는첫 번째로 품었던 짝만 다시 알을 품었다. 좀 늦은 감이 있었다. 계속 관찰을 했는데 3마리가 태어났다. 그중에서도 빨리 자라는 새끼는 늘 부산스럽다. 그래서 떨어지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그날도 제일 큰 새끼가 떨어져 숨을 거두어 또 묻어 주었다. 올해는 특이하게 네 둥지에 다섯번의 부화가 있었고 두 마리가 희생되었다. 마지막 태어난 형제는 어렵게 하늘을 정복했지만 과연 무난히 제2의 고향에 안착이 될까 걱정이다.     강행군의 비상 훈련 속에 시간이 흘렀다. 모든 식구가 지붕 위의 창공을 수없이 돌고 돌았다. 그들은 평균적으로 8월 25일이면 떠났다. 그런데 8월 20일 아침 집을 선회했던 모습이 마지막 날인 줄을 몰랐다. 다음 날 아침 늘 요란스럽게 재잘대던 그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빈 하늘 삼각형의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찡했다. 그다음 날도 그랬다. 너무 일찍 온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 보내는 마음과 내년 봄의 기다림이 나를 위로 했다. 그 먼 길 얼마나 힘겨웠을까. 두 번째 태어난 두 마리가 눈에 선하다. 잘 무사히 도착했을까? 43년의 역사는 다시 이루어질까? 오광운 / 시인삶의 뜨락에서 한여름 제비 엄마 제비 앞쪽 둥지 북쪽 둥지

2025.09.15. 21:38

[삶의 뜨락에서] 좋은 울타리는 좋은 이웃을 만든다

‘숲속의 두 갈래 길(The Road Not Taken)’이란 명시를 남긴 로버트 프로스트의 다른 시에 Mending Wall이 있다. 이 시에 ‘좋은 울타리는 좋은 이웃을 만든다. (Good Fence Makes Good Neighbors)’ 라는 말이 나온다. 시에 등장하는 이웃은 처음에 소를 키우고 있었다. 소의 주인이 누군지, 소들이 서로 놀다가 섞이고 달아나다 보면 구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두 이웃은 울타리를 만들어 자기 소를 보호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은 더는소를 키우지 않았다. 그래도 울타리는 허물지 않았다. 두 집 사이에는 여전히 경계가 필요한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다니엘 디포우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 브라질에서 출발해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잡아 오려던 배는 폭풍우로 어느 무인도에 표류했다. 혼자 외딴 섬에 고립된 주인공은 큰 바위 밑에 움막을 짓고 동물들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방안에 큰 벽을 쌓았다. 섬에는 사람은 없었으나 야생동물은 살았다. 그는 울타리를 만들어 동물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잡아서 먹었다.     불과 150~200년 전만 해도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국경 개념이 약했다. 전쟁에서 이긴 나라가 패전국의 땅을 빼앗아 말뚝을 막고는 자기 땅이라고 주장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 가인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에 따르면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등을 빼앗았다. (샌디에이고 밑에 멕시코령 바하칼리포르니아가 있다) 전쟁에서 이긴 후 백인 지배계급은 허허벌판에 말뚝을 박고는 자기 땅이라고 우겼고, 나중에 자기들끼리 만든 법으로 이를 합법화했다. 지주들은 오클라호마, 서부 텍사스 등지에서 이주 노동자를 모아 캘리포니아 농장에 데려다 저임금으로 착취했다. 서부 개척 시대, 캘리포니아의 오렌지, 포도, 목화 농장은 불쌍한 노동자들이 흘린 ‘분노의 눈물’로 재배한 것이었다. 요즘 같이 외국 노동자들을 데리고 온 것이 아니었다. 가뭄으로 농토를 잃은 동족을 울린 수치스러운 노동력 착취였다. 미국은 당시 군사적 위협으로 여러 섬나라를 합병하고 루이지애나, 알래스카를 각각 프랑스와 러시아로부터 사들였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베를린 연설에서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벽을 허무세요” 하고 선언했다. 이후 소련연방 사이의 벽이 하나둘 무너지고 소련연방은 붕괴하였다. 세계사에 남는 ‘가장 큰 벽’이 없어진 것이다.     프로스트는 그의 시에서 사람과 사람, 이웃 사이의 장벽은 임의적이고 불필요한 것으로 은유하고 있다. 자연은 사람이 만드는 벽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는 벽을 높이 쌓고 허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장벽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철조망을 넘어온 사람들은 검거돼 낯설고 무서운 나라로 추방되고 있다. 돌아보면 지난 행정부 시절, 너무 많이 들어왔다. 뉴저지 인구보다 많은 사람이밀입국했고그중에는 범죄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두 나라 간의 울타리는 튼튼하지 못하고 구멍이 많았다. 좋은 울타리가 아니었다. 두 이웃 나라가 사이좋게 만든 좋은 울타리였다면 좋은 이웃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어느 정도의 울타리(경계)는 필요할 것 같다. 우리 주변에는 남의 사생활을 침범하고, 개인 정보를 훔쳐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 할 수 없이 벽을 쌓고 이중 삼중으로 보호망을 구축해야 한다. 울타리는 단단한가. 자주 점검해 구멍이 발견되면 보수해야 한다. (Mending Wall) 울타리가 필요 없는 시대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울타리 이웃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사람 이웃 멕시코령 바하칼리포르니아

2025.09.10.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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