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아일랜드 끝 시골집 43년을 살아온 뒷마당에 아직 겨울잠이 채 가시기 전 봄은 또 어김없이 찾아 왔다. 매년 4월 20일이 지나야 왔던 강남 갔던 제비, 올해는 4월 15일 꿈에도 생각지 못한 42년의 역사를 만들어 고향 집에 짝을 짓고 돌아왔다. 너무도 놀랬다. 이렇게 일찍 돌아온 해는 한 번도 없었고 지난해는 4월 17일에 왔었다. 우리 인간은 그들의 계획을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그들은 자연의 순리대로 어김없는 생존의 기지를 잘 알고 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을까. 십여일이 지날 때까지 그들은 봄샘 추위에 떨었고 마침내 후속대가 합세했다. 재잘대는 그들의 언어는 다 알 수는 없지만 42년 동안 지켜온 차고 둥지의 경험을 통해 새끼들에게 내리는 경계의 소리는 알 수 있다. 천적이 나타나면 “째재잭”하고 소리를 낸다. 둥지 속으로 숨으라는 경고에 모두 쏘옥 숨는다. 가족들이 다 모였다. 짝들을 짓는다. 처음 온 두 마리가 알을 품고 고행의 길에 들어갔고 다른 가족들은 둥지 3개를 보수하고 새 둥지도 2개를 만들었다. 봄의 꽃잎들이 바람에 날리고 많은 다른 새들도 모여들어 봄을 노래하고 있었다. 올해는 특이하게 네 쌍이나 조금 늦게 알을 품었다. 이따끔씩 엄마 제비의 짧은 외출이 필요할 때는 아빠 제비가 잠깐 교대를 해주지만 엄마의 고행은, 쪼그린 무릎과 다리는 얼마나 힘에 겨울까? 머리만 둥지 밖을 내다보며가슴 털은 따스한 온도를 유지한 채 13~17여일(포란 기간)이 지나면 부화가 이루어지며 어미의 자세가 어정쩡 어색함을 나타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때 가슴 털 밑의 움직임을 누를 수가 없다. 새끼들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첫 둥지에 새 생명이 태어날 즈음에 다른 세 둥지가 알을 품었다. 새끼들이 태어나면 어미들은 먹이 사냥에 바쁘다. 24여일 동안을 키워야 한다. 어릴 때는 파리, 모기, 벌 등을 먹이고 크면 나비, 잠자리, 이화명충 나방 등을 먹고 자란다. 올해는 한 번에 여러 둥지에 새 생명을 부화했는데 불행한 일이 몇 가지 일어났다. 북쪽 둥지에 4마리가 태어났지만 두 마리가 무더운 기후에 허우적대다가 떨어졌다. 두 마리 모두 둥지 속에 다시 넣어주었지만 한 마리는 끝내 죽어서 땅에 묻어주었다. 동쪽 둥지에서 2마리는 잘 자라서 하늘을 정복했고 앞쪽 둥지엔 4마리가 건강하게 잘 자랐다. 일반적으로는 한여름에 두 번 번식한다. 그런데 올해에는첫 번째로 품었던 짝만 다시 알을 품었다. 좀 늦은 감이 있었다. 계속 관찰을 했는데 3마리가 태어났다. 그중에서도 빨리 자라는 새끼는 늘 부산스럽다. 그래서 떨어지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그날도 제일 큰 새끼가 떨어져 숨을 거두어 또 묻어 주었다. 올해는 특이하게 네 둥지에 다섯번의 부화가 있었고 두 마리가 희생되었다. 마지막 태어난 형제는 어렵게 하늘을 정복했지만 과연 무난히 제2의 고향에 안착이 될까 걱정이다. 강행군의 비상 훈련 속에 시간이 흘렀다. 모든 식구가 지붕 위의 창공을 수없이 돌고 돌았다. 그들은 평균적으로 8월 25일이면 떠났다. 그런데 8월 20일 아침 집을 선회했던 모습이 마지막 날인 줄을 몰랐다. 다음 날 아침 늘 요란스럽게 재잘대던 그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빈 하늘 삼각형의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찡했다. 그다음 날도 그랬다. 너무 일찍 온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 보내는 마음과 내년 봄의 기다림이 나를 위로 했다. 그 먼 길 얼마나 힘겨웠을까. 두 번째 태어난 두 마리가 눈에 선하다. 잘 무사히 도착했을까? 43년의 역사는 다시 이루어질까? 오광운 / 시인삶의 뜨락에서 한여름 제비 엄마 제비 앞쪽 둥지 북쪽 둥지
2025.09.15. 21:38
‘숲속의 두 갈래 길(The Road Not Taken)’이란 명시를 남긴 로버트 프로스트의 다른 시에 Mending Wall이 있다. 이 시에 ‘좋은 울타리는 좋은 이웃을 만든다. (Good Fence Makes Good Neighbors)’ 라는 말이 나온다. 시에 등장하는 이웃은 처음에 소를 키우고 있었다. 소의 주인이 누군지, 소들이 서로 놀다가 섞이고 달아나다 보면 구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두 이웃은 울타리를 만들어 자기 소를 보호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은 더는소를 키우지 않았다. 그래도 울타리는 허물지 않았다. 두 집 사이에는 여전히 경계가 필요한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다니엘 디포우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 브라질에서 출발해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잡아 오려던 배는 폭풍우로 어느 무인도에 표류했다. 혼자 외딴 섬에 고립된 주인공은 큰 바위 밑에 움막을 짓고 동물들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방안에 큰 벽을 쌓았다. 섬에는 사람은 없었으나 야생동물은 살았다. 그는 울타리를 만들어 동물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잡아서 먹었다. 불과 150~200년 전만 해도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국경 개념이 약했다. 전쟁에서 이긴 나라가 패전국의 땅을 빼앗아 말뚝을 막고는 자기 땅이라고 주장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 가인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에 따르면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등을 빼앗았다. (샌디에이고 밑에 멕시코령 바하칼리포르니아가 있다) 전쟁에서 이긴 후 백인 지배계급은 허허벌판에 말뚝을 박고는 자기 땅이라고 우겼고, 나중에 자기들끼리 만든 법으로 이를 합법화했다. 지주들은 오클라호마, 서부 텍사스 등지에서 이주 노동자를 모아 캘리포니아 농장에 데려다 저임금으로 착취했다. 서부 개척 시대, 캘리포니아의 오렌지, 포도, 목화 농장은 불쌍한 노동자들이 흘린 ‘분노의 눈물’로 재배한 것이었다. 요즘 같이 외국 노동자들을 데리고 온 것이 아니었다. 가뭄으로 농토를 잃은 동족을 울린 수치스러운 노동력 착취였다. 미국은 당시 군사적 위협으로 여러 섬나라를 합병하고 루이지애나, 알래스카를 각각 프랑스와 러시아로부터 사들였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베를린 연설에서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벽을 허무세요” 하고 선언했다. 이후 소련연방 사이의 벽이 하나둘 무너지고 소련연방은 붕괴하였다. 세계사에 남는 ‘가장 큰 벽’이 없어진 것이다. 프로스트는 그의 시에서 사람과 사람, 이웃 사이의 장벽은 임의적이고 불필요한 것으로 은유하고 있다. 자연은 사람이 만드는 벽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는 벽을 높이 쌓고 허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장벽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철조망을 넘어온 사람들은 검거돼 낯설고 무서운 나라로 추방되고 있다. 돌아보면 지난 행정부 시절, 너무 많이 들어왔다. 뉴저지 인구보다 많은 사람이밀입국했고그중에는 범죄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두 나라 간의 울타리는 튼튼하지 못하고 구멍이 많았다. 좋은 울타리가 아니었다. 두 이웃 나라가 사이좋게 만든 좋은 울타리였다면 좋은 이웃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어느 정도의 울타리(경계)는 필요할 것 같다. 우리 주변에는 남의 사생활을 침범하고, 개인 정보를 훔쳐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 할 수 없이 벽을 쌓고 이중 삼중으로 보호망을 구축해야 한다. 울타리는 단단한가. 자주 점검해 구멍이 발견되면 보수해야 한다. (Mending Wall) 울타리가 필요 없는 시대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울타리 이웃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사람 이웃 멕시코령 바하칼리포르니아
2025.09.10. 21:47
내가 평생 다니는 직장에서도 동료들이 은퇴하면 제삼의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한다. 그중 우선순위는 따뜻한 장소와 생활비가 저렴한 곳이다. 아무래도 노인은 추위에 약하고 제한된 수입에 의존해 살기 때문이리라. 나도 은퇴 후 어디서 내 남은 생을 마감할까 많이 고민해 본 결과 결국 지금 사는 이 집이 가장 편안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내가 사는 글렌코브는 내가 필요로 하는 많은 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맨해튼까지는 한 시간, 내 직장까지는 25분, 플러싱까지는 35분이면 되고 우선 동네가 조용하고 나무가 많다. 주위에 수목원이 많아 경관이 수려하고 수영할 수 있는 바닷가가 3분 이내에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날마다 운동할 수 있는 YMCA가 4분 이내에 있다. 아무리 운동을 좋아하고 하고 싶어도 장소가 멀면 귀찮아 가지 않게 된다. 일단 나는 내 집에 정을 주고 사랑하기로 했다. 이 집에 이사 온 지도 올해로 22년째다. 사람 몸처럼 20년 이상을 날마다 쓰면 집도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마련이다. 전에 살던 집에서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낡은 짐 처리 문제로 곤욕을 치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당시 이 집이 새집이어서 새 가구를 마련하려고 모든 가구와 살림살이를 그대로 두고 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새 집주인은 집을 깨끗이 비워주기를 요구했다. 덤스터를 하나 주문해 짐을 치우기 시작했으나 두 번째 세 번째까지 불러 겨우 낡은 짐들을 치울 수 있었다. 그 중노동에서 겨우 살아남은 나는 이사 가는 새집에서는 미니멀리스트로 살겠다고 결심했었다. 이번에 화장실을 새로 고치기로 했다. 시작 동기는 간단했으나 결국 대 공사가 되고 말았다. 컨트랙터는 초대형 크기의 덤스터를 미리 갖다 놓았다. 난 처음에 그 덤스터의 크기에 압도당했었으나 이번 기회에 20년 묵은 집안 물건들을 정리하고자 마음먹었다. 서랍과 옷장 구석구석에 그동안 얼마나 물건들을 사재고, 쌓아놓았는지 숨이 막혔다. 그리고 정말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나에게 쇼핑 벽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항상 스스로 낭비가 아닌 합리적인 쇼핑한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내 나이 또래의 지인들은 이제 사는 것은 그만하고 있는 물건들을 정리한다고들 한다. 나 자신도 매해 1월이 되면 정리를 시작하다가 끝도 없고 표도 나지 않는 이 작업을 결국 포기하고 만다. 차라리 치우는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훨씬 행복하다. 지금까지 사들인 물건들은 할 수 없지만 앞으로는 사재기를 자제하는 것만이 답이다. 하지만 평생 몸에 밴 이 사재기 습관을 과연 버릴 수 있을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자녀들과 지인들을 불러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가고 나머지 물건들은 다 덤스터에 버리라고 말하련다. 버리고 버려도 끝이 없는 이 작업을 겪으면서 ‘삶이란 온갖 쓰레기를 모으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죽을 때 하나도 가져갈 수 없는 이 물건들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감에 괴리감을 느낀다. 이번에는 내 주변에 있는 보이는 물건 정리에 초점을 두었지만, 이 기회에 내 뇌(brain)도 한번 되돌아보며 정리하고 싶다. 지난 평생 내 뇌 안에 계속 쌓여 나를 혼동하게 하고 어지럽히는 생각, 기억을 이번에 깔끔하게 정리 정돈 하고 싶다. 앞으로 남은 내 생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만 남겨두고 남아있는 내 생을 위해 여백을 남겨두고 여유롭게 살고 싶다. 남아있는 삶은 실생활에서나 정신적으로도 아름답고 행복한 꽃을 피우며 살고 싶다. 내가 가진 자산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만 있다면 더 이상의 바람은 없겠다. 그동안 나를 지배해온 어둡고 무거운 기억의 파장과 혼란을 모두 비우고 새롭고 아름다운 꽃봉오리들로 꽃피우고 싶다. 워즈워스는 ‘우리 영혼은 불멸의 바다 풍경을 품고 있다’라고 했다. 인생은 물음을 던지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시인이 될 수 없다면 시처럼 살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작업 집안 물건들 물건 정리 나머지 물건들
2025.09.08. 21:53
차정은 시인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를 썼다. 지금은 20세다. 그녀의 시 ‘시인 키우기’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작은 시인은 어느새 훌쩍 자라나/ 자신이 꿈꾸는 사랑으로 집을 짓는다/ 팔리지 않아도 괜찮아/ 멋쩍은 내 글짓기 실력으로 건네는 위로/ 온갖 더위에 먹음직스러운 시집이 되어/ 내 집을 지어 준 것도 아닌데/ 리어카 위에 갓 구운 시를 싣고 판매원을 자처한다” 시를 써놓고 그리고 ‘팔리지 않아도 괜찮아’ 해놓고는 ‘리어카 위에 갓 구운 시를 싣고 판매한다고 했다. 아마 판매의 덕택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지금 그녀의 시집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로서 인기리에 잘 팔리고 있다. 마종기 시인의 산문집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에 보면, 한국에 시인이 4만 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런데 1년에 한 편의 시를 발표할 수 있는 시인은 백 분의 일이될까요?”라고 말했다. 백 분의 일이라는 말은 400명의 시인을 말한다. 이 중에서 200명 정도만 원고료를 받을 거라고 했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일 년에 한 편의 시도 쓰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일 수도 있다. 왜냐면 모든 문예지는, 문예지도 돈을 벌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유명하지 않은 시인들한테는 시를 써달라고 청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인은 발표할 지면이 없으니까, 쓰고 싶은 의욕이 사라지고 만다. 나부터도 글을 쓰는 이유는, 발표해주는 신문사나 잡지사가 있기 때문이다. 차정은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거꾸로 나는 80세에, 김정기 선생님의 지도 아래, 시 공부를 시작했다. 여기에 나의 시 ‘80에 시공부하다’ 한 토막을 적어본다. “여기는 시 학습교실/ 어느 사람이 묻는다/ 몇 살이요?/ 80/ 늙은 나이에 시 공부는 왜 합니까? 편안하게 사시다가 죽을 채비나 하시는 게 나을 텐데요/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시공부하니 내 삶이 더 편안해진 것 같습니다.” 나는 생사윤회와 인과응보를 믿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시를 아주 잘 쓴다. 천재시인으로 태어난 것이다. 불교에서는 전생의 업을 믿는다. 전생에 시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으면, 태어날 때 천재시인으로 태어난다. 나는 늙었다. 은퇴했다. 시간이 남아 돌아가기에, 지금 시 공부를 하고 있다. 내가 죽은 후, 다음 세상에서 어느 정도의 시 천재성을 갖고 태어나리라고 믿고 있다. 왜 시를 택했는가? 시는 짧아서 쓰기가 쉽고, 읽기가 쉽다. 소설은 너무 길어서 쓰기도 어렵고 또한 읽기도 힘이 든다. 그래서 나는 시를 선택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차정은 시집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시에 대한 그리고 시를 쓰는 느낌이나 감정은 젊은이나 늙은이나 거의 같다는 것을 알았다. 차정은이는 젊으니까 시를 ‘리어카에 싣고 다니면서 팔아야만 하지만’, 나는 늙었기에, 취미로 시를 쓰니까, 팔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다르다. 대부분의 나이 먹은 시인들은 자기 돈을 써가면서 시를 쓴다. 왜? 시 쓰는 것을 취미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 자기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나태주는 말한다. “‘어디 시가 밥 먹여주나?’고 묻는 세상을 향해 영혼의 허기를 채워준다고 답한다.”고 했다. 영혼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시를 쓴다?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리어카 마종기 시인 김정기 선생님 글짓기 실력
2025.09.04. 17:50
일요일 아침이다. 편안하고 시원한 운동복을 골라 입고 운동화 끈을 조이고 밖으로 나오면 저절로 달리게 된다. 오랫동안 습관이 되었는지 문밖 공기 탓인지 구분이 안 되지만 자연스럽게 한 발 한 발 빠르게 움직인다. 90도가 넘는 햇볕이 살갗에 닿으면 벌에 쏘인 느낌을 받는다. 오늘도 14마일 연습 목표다. 단조로운 일상생활에 일요일 아침에 달리기 연습은 잔잔한 호수에 돌 하나 던져 보고 싶은 충동이다. 일주일을 치열하게 살아온 나에게 주는 다독임이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내 등을 밀어주는 바람과 아스팔트의 단단함에 무딘 내 발이 압력으로 느끼는 무게를 실감하면서 속도를 내본다. 고개를 들어 눈을 찡그리고 눈 부신 해를 마주한다. 쉼 없이 앞으로 나가는데도 해는 여전히 그 자리다. 조금 더 속도를 내 본다. 심박 수가 오르면서 귓속으로 심장의 박동 음이 전해져 온다. 내가 한걸음 내밀 때마다 해는 조금씩 내 뒤로 멀어진다. 마치 내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내 발과 내 리듬으로 이제 내 발을 감싸는 땅의 촉감이 제법 익숙해진다. 앞서 난 발자국들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 지나간 걸까 누가 지나간 걸까 여러 모양의 발자국들이 뒤섞여 이 길이 커다란 판화 같다. 흙 위에 오롯이 남은 개의 발자국에 속도를 늦추고 뒤를 돌아본다. 나의 발자국은 선명하지 않다. 이 개는 얼마나 힘차게 발을 내디뎌서 이렇게 또렷한 발자국을 남긴 걸까. 시원한 공기에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그저 좋아서 달리는 개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구름이 몽글몽글하다. 머물러 있는 건지 떠다니는 건지 소리도 없고 정해진 모양도 없이 그저 그렇게 자기만의 것들이 보인다. 매미들의 요란한 합창의 계절이다. 정확하게 7월 초부터8월 말까지 울어댄다. 조용한 숲 공원에서 한 마리가 소리를 내면 덩달아 가까이에 있는 매미들이 한목소리로 함성을 지르며 장단을 맞춰가며 자기들의 있음을 과시하는 것 같다. 비가 내리지 않는 데다 90도 이상의 기온이 한 달 이상 계속되어 공원 잔디밭은 노랗고 밟으면 잔디 부스러지는 소리가 난다. 나무들도 목이 말랐는지 이파리가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 날씨가 화창하고 무덥지 않으면 개와 같이 산책하는 무리가 많은데 더운 날씨에는 개를 끌고 나오는 사람도 드물다. 산 중턱에 나무 그늘로 가려지지 않은 땅에서 살고 있던 지렁이가 모두 길가로 기어 나와서 죽어있다. 땅속이 뜨거우니까 밖으로 기어 나왔는데 길바닥은 더 뜨거워 죽을 수밖에 없다. 비가 오지 않고 기온이 올라가면 자연에서 생식하는 많은 생물도영향을 받는 것 같다. 지나가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졸졸졸 흐르던 냇가도 메말라 흐르는 물 양옆으로 잡풀들이 자라고 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물이 가득 차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했고 물안개를 날리며 산책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했었다. 냇가 주변으로 작은 꽃과 풀들은 예쁘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설사 이름이 없더라도 변함없이 청초하다. 그저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에서 움튼 작은 생명이 이리 고울까. 이리저리 뒤엉켜 자라나는 것들은 그 나름의 사랑스러움이 있다. 아무렇게나 빛 따라 비 따라 자라고 피어난 꽃들의 싱그러움을 부러워하며 다시 달린다. 이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내 발을 품어주는 흙과 내 등을 쓰다듬는 햇살을 응원 삼아 달리기는 나를 채우는 시간이다. 개똥에도 너그러워지고 바지런히 움직이는 벌레에도 애정이 생긴다. 뛰다 잠깐 멈춰 서서 보게 되는 작고 다정한 것들에 마음을 쏟으며 충만함을 가득 느낀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다정 공원 잔디밭 달리기 연습 나무 그늘로
2025.08.26. 17:27
올여름엔 특별한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았었는데 땡 더위가 기습을 하자 뉴욕에서 탈출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한 지인이 버킷리스트 일 순위로 미국 내 국립공원을 샅샅이 돌아보고 싶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 캐나다 로키산맥으로 정했다. 일단 뉴욕에서 시애틀로 날아가 밴쿠버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밴쿠버 시내와 브리티시 콜럼버스의 수도인 빅토리아 시티에 페리를 타고 다녀왔다. 이 아담하고 예쁜 도시는 유럽의 아기자기한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지금도 캐나다는 영연방과 깊은 관련이 있어 영국풍의 건물, 거리, 시가지가 고풍스러운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운 좋게도 나는 그토록 환상적인 빅토리아시를 수채화로 그리고 있는 화가를 만나 그의 화법에 넘어가 작품 몇 점을 사서 왔다. 다음에 들린 곳은 그 유명한 캐필라노 현수교였다. 이 흔들다리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에서 제일 순위의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다. 원주민의 토템으로 시작되는 이 흔들다리는 1889년에 지어졌는데도 관리를 워낙 잘해와 지금도 안전하게 이용되고 있다. 이 다리는 깊은 숲속에 450피트 길이의 아찔한 흔들다리로 지어졌으며 그 주변의 생태학적인 환경을 고려해 지은 교육실습 현장으로 다 돌아보는데 2시간 이상이 걸린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끝없이 펼쳐진 정글 참나무 숲과 계곡이 만나 이루는 광경은 나의 고개를 숙이게 했다. 밴쿠버에서 다음 코스인 재스퍼 국립공원까지는 8시간 장거리여서 중간에 하룻밤을 쉬고 계속 달려 도착했다. 재스퍼는 밴프와 비교해 볼 때 조금 덜 개발된 국립공원으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울울창창한 침엽수림 사이사이로 흐르는 강물이 계곡을 이루고 계곡이 모여 거대한 폭포가 되어 부서진다. 산 위쪽은 빙하가 서서히 녹아 얼음물로 흘러내려 호수를 이루고 호수는 온통 터키옥(turquoise) 색이다. 물색도 날씨의 영향을 받아 시시각각 변하고 감히 인간이 아니 화가도 흉내 낼 수 없는 신비로운 색채다. 가장 근접하게 옥색이나 에메랄드색이라고들 하지만 난 동의할 수가 없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트레일은 숨이 막히는 경관으로 많은 하이커를 유혹한다. 계곡은 계속 옥빛을 품어내 폭포가 되고 찬란한 옥빛 물보라가 되어 춤을 추며 하늘로 올라간다. 폭포 뒤로 보이는 먼 산은 눈에 덮여있거나 빙하로 흰 녹색의 빛이 화창한 햇빛에 반사되어 영롱하다. 재스퍼를 떠나 밴프로 달린다. 밴프는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에 꼭 꼽히는 곳이다. 워낙 유명한 곳이다 보니 구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미지가 많다. 하지만 사진으로도 매우 아름답지만 실제로 보면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고 할 말을 잃게 된다. 모레인 호수, 루이스 호수, 페이토 호수, 에메랄드 호수 등 가는 곳마다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호수가 많아 세상은 온통 Turquoise World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많이 녹아내렸지만, 설상차를 타고 올라가 빙하 위를 걷는 기분은 지구가 아닌 하늘과 맞닿은 우주를 걷는 듯했다. 자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겸손이다. 이런 무공해의 자연을 벗 삼고 있으면 나의 눈은 정화되고 머리는 맑아지며 가슴은 뻥 뚫리고 마음은 맑은 호수가 된다. 명랑한 하늘에 경이로운 구름이 시시각각 그리는 수채화를 배경으로 황홀한 신록을 뚫고 그 사이사이로 스쳐 나오는 향긋한 바람이 나를 흔들면 나는 비틀거린다. 찬란한 태양 아래 하늘과 구름, 참나무 숲과 바람으로 물든 나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호수 속으로 퐁당 빠진다. 일본인 유키 구라모토가 레이크 루이스를 방문하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작곡한 곡이 있다. 그 음악을 들으면서 그의 재능이 한없이 부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리의 스승인 자연을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안타깝다. 정명수 / 시인삶의 뜨락에서 turquoise world turquoise world 에메랄드 호수 호수 페이토
2025.08.25. 20:21
젊었을 때 나는 직장에서 분주하게 일했다. 사회봉사 활동도 많이 했었다. 늙어지리라는 생각 없이 살았었다. 그런데 늙어지고 말았다. 나이가 90에 가까워지니, 눈앞에 죽음이 아련하게 서 있는 게 보이는 것 같다. 유튜브에서 동물들의 삶에 대한 영상을 가끔 본다. 사자나 호랑이는, 먹이를 잡아서 먼저 죽여 놓은 후 뜯어 먹는다. 그런데 독수리 같은 맹금류는 다르다. 이네들은 먹이를 죽일 줄을 모른다. 그냥 살아있는 먹이를 뜯어 먹는다. 그러니, 먹이는, 살아 있는 채, 뜯겨 먹히니, 얼마나 아파하면서 죽어가겠는가! 아프리카 들개나 하이에나도 마찬가지다. 먹이를 죽여 놓은 후 뜯어먹지 않는다. 먹이가 살아 있는 채, 여럿이 함께 뜯어먹는다. 그러니, 먹이의 죽음은 얼마나 고통이었을까. 사람도 마찬가지다. 예수도 살아 있는 채, 몸에 못이 박히고 십자가에 매달린 채 죽었다. 예수의 죽음은 정말로 처절하게 아픈 죽음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심하게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서 혹은 칼로 난자하게 찔리어서 죽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전쟁터에서 폭탄의 파편이나 총알에 맞아, 피를 많이 흘리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젊은이들도 있다. 이런 죽음은 결코 좋은 죽음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은 늙어서, 병이 들어서, 집에서나 병원에서 편안하게 죽는다. 복 받은 죽음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건강하게 장수하고 편안하게 죽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사고(事故)로, 혹은 병이 들어서, 일찍 불운하게 죽는가? 이 문제를 놓고 수없이 오랜 세월 동안 생각해보았다. 이 세상은 연기(緣起)로 운영되고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어짐으로 저것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연기는 인과응보이다. 이 세상은 인과응보에 의해 운행(運行)되고 있다. 사람이 못된 짓을 했으면, 그 과보가 즉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안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기어코 나타난다. 이 세상에서 과보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음 세상에서 나타나게끔 돼 있다. 내일도 다음 세상이고 그리고 저승도 다음 세상이다. 몹시 나쁜 짓을 저질렀으면, 죽은 후, 지옥에 떨어진다고 했다. 『방등경』에 보면, 태자가 부처에게 “무슨 인연으로 보살은 장수하고 무병하며 이별이 없습니까?”하고 물었다. 부처는 대답하셨다. “보살은 자비심으로 살생하지 않았으므로 장수함을 얻고, 흉기로 사람을 상하게 아니했음으로 병이 없으며, 다른 사람의 싸우는 것을 보면 권하여 화합하게 하였으므로 이별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아끼지 않았으므로 재물을 잃거나 도둑맞지 않고, 남의 재산을 탐내거나 시기하지 않았으므로 장자(부자)의 집에 나며, 살생하거나 교만이 없었으므로 존귀한 집에 태어나는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은, ‘잘 죽으라는’ 말이 아니다. ‘저승에서 잘 살 준비를 미리 해놓으라는’ 말이다. 저승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살생, 도둑질, 간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부처는 말했다. 젊었을 때, 뭣 모르고 못된 짓을 저질렀으면, 지금 참회한다. 남을 해치려는 나쁜 마음을 버린다. 그 대신 남을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면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여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게 바로 ‘죽음의 준비’인 것이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죽음 살생 도둑질 아프리카 들개 사회봉사 활동
2025.08.14. 22:28
“I came in heavy, but now I am in light” 환자 아들이 ‘Palliative Care Meeting’을 마친 후 바로 한 말이다. 갑자기 정원 일을 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가 거의 뇌사에 빠졌다. 지난 5일 동안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그가 경험한 시간은 절망과 좌절, 무기력과 혼돈의 절정이었다. 82세의 M은 고혈압 말고는 건강한 편으로 교회와 지역 사회에 많은 봉사활동을 하며 정원 가꾸기가 취미였다고 한다. 사고가 난 그날 오전에도 정원에 새로 사 온 모종을 심다가 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소파에 앉자마자 구토하면서 쓰러졌다. 엠블런스에 실려 응급실에 도착, 바로 인공호흡기를 꽂고 CT Scan을 해보니 뇌의 3곳에 심한 출혈이 있었다. 조속하게 응급처치했으나 24시간 만에 뇌 탈장이 왔다. 환자는 이미 의식을 잃고 동공은 풀렸으며 팔다리 경직 증세도 보였다.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호흡과 맥박도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생명이 위독한 응급상황이 되었다. 거의 뇌사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오직 한 가지 살아있는 증후로는 자가 호흡이 2~5번 정도 있었다. 의사는 가족에게 환자의 회복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고 언질을 주었다. 환자는 남편과 아들, 딸을 각각 하나씩 두고 있었다. 가족 간의 사랑이 넘치고 화목함을 첫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일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질병만큼이나 다양한 가족관계(family dynamic)를 경험하게 된다. 상상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관계부터 비인간적인 냉혈한 행위들도 쉽게 만난다. 하루하루 평화롭게 일상을 이어가던 가족에게 이 환자와 같은 갑작스러운 사고는 가족을 엄청난 충격에 빠뜨린다. 가족 멤버 셋은 입원 당시부터 지금까지 5일 동안 줄 곳 환자 곁에 머물렀다. 적당히 병실에서 구겨서 자고 먹고 했다. 5일 동안 환자 상태가 호전을 보이지 않자, 의사는 Palliative Care Meeting을 주선했다. 간호사들도 그 미팅에 참석할 수 있지만 우리는 또 다른 환자도 돌보아야 하므로 보통 참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번에는 꼭 참석하고 싶었다. 미팅은 한 시간을 훌쩍 넘었다. 먼저 의사는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고 난 다음 가족 일원 개개인에게 그들이 현재 상황을 어떻게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지 물었다. 참 우연이지만 이 가족은 모두 고등학교 교사였다. 환자와 환자 남편은 물론 은퇴했고 아들과 딸은 현역이다. 환자는 평소에 자상하고 너그럽고 베푸는 타입이어서 많은 사람한테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지난 며칠 동안 환자를 방문한 수십 명의 지인만 보아도 그녀가 얼마나 많은 사람한테 사랑을 받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집은 항상 열려 있었고 지역 사회 모임에 중요하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왔다고 한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요즘처럼 화창한 날씨, 뺨을 어루만지는 달콤한 바람, 손에 들어온 맛있는 음식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사람과의 교류를 진심으로 즐겨왔다고 딸이 울먹이며 전한다. 또한 환자는 회생 가망성 없는 생명을 기계에 의존하며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유서에 명시해 놓았다. 가족은 한결같이 이성적으로는 환자의 뜻을 존중해야 함을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 생명 장치를 제거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인지 한없이 밀려오는 죄책감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의사는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 환자와 작별 인사가 필요한 지인들에게 연락하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치료책이 없는 지금은 증상 완화 방법으로 진통제, 안정제, 가래 말리는 약 등을 처방해 놓겠다고 설명한 후 미팅을 마쳤다. 그때 환자 아들이 ‘I came in heavy, but now I am in light“하며 긴장을 풀었다. 이처럼 Quality Time을 함께한 우리는 무거웠지만 가볍게, 서로 깊은 포옹을 했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heavy leave 환자 아들 환자 남편 in light
2025.08.11. 21:54
우리 가게 옆으로 조그마한 미국 교회가 있다. 여러 민족이 다양하게 모이는 곳이다. 그 교회에서는 매월 둘째 주 넷째 주에 교인들이 음식을 손수 만들어 지역 내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원하는 사람에게는 두 손 모아 기도를 해준다. 봉지에는 여러 가지 콩으로 만든 수프와 사과나 바나나·오렌지 하나, 초콜릿 바 하나 물병 냅킨에 스푼과 포크를 싸고 성경 말씀과 교회 안내서가 한장 들어있다. 교인들이 번갈아 봉사한다. 우리 가게 앞 사거리에서 음식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길거리를 다니면서 나누어 주기도 한다. 음식을 받은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웃으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교인들이 아침 일찍 모여 음식을 만들고 포장해서 나누기까지 정성을 들인 모양새가 저절로 배어난다. 어느 날 손님이 그 배송 음식을 나에게 준다. 받아서 먹어보니 여러 가지 콩 종류에 특별한 양념을 다 집어넣었는지 맛있었다. 미안하고 고마워 그 손님을 통해 정기적으로 후원하게 되었다. 가게 옆이고 손님들이고 동네 사람들이다 보니 교인은 아니지만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내 삶이 훌륭하다고 생각지도 않고 그렇다고 걱정할 만큼 내 삶의 질이 떨어져 있지도 않다. 물론 나는 나만을 위한 욕망은 많이 내려놨지만 오히려 그러고 나자 더 충만한 행복과 평안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삶을 산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치 않는다. 나도 이와 비슷하다. 내 삶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큰 사랑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너희 영혼을 높이 끌어 올렸는가? 무엇이 그대의 영혼을 가득 채우고 기쁨을 주는가? 프리드리히 니체의 질문에 가만히 답을 하다 보면 내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사람들이 살면서 허무하다고 느끼는 때를 보면 자신의 삶이 또는 자신이 이루어 나간 것이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이다. 타인을 돕거나 누군가의 힘이 되어줄 때 우리는 우리 존재의 의미를 실감하고 순수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 즉 봉사라는 삶은 우리에게 또 다른 삶의 활력이 되어줄 수 있다. 가게 손님 루시는 항공사에서 25년 일하고 정년퇴직했다. 오랫동안 어린이 암 치료 병원에 매달 20달러를 보낸다. 아이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생활이 넉넉하지도 어렵지도 않지만 꼬박꼬박 우체국에 가서 돈을 부친다. 나는 삶 속에서 행하는 작은 선의의 봉사와 기부는 균형 있는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나 자신만을 위한 욕망과 돈을 밤낮으로 쫓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세계의 부자라는 사람은 결혼식에 사람들이 놀랄 만큼 돈을 뿌려댄다. 결혼식 비용의 1만분의 1이라도 가자지구에 먹을 것이 없어 배급을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식량이라도 나누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욕망은 채우면 채울수록 마음은 더욱 공허해진다. 현대인이 갖는 불안과 공허를 잘못된 방법으로 극복하려 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만이 아닌 타인이나 다른 생명체를 위해 작은 일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내가 얻는 것이 많다. 나를 희생하는 이타심이라기보다는 나에게 있는 것을 조금 나눈다는 생각의 봉사는 장담컨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충만함을 선사할 것이다. 조금씩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은 어쩌면 더 희망차게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봉사 배송 음식 결혼식 비용 교회 안내서
2025.08.07. 18:07
독일 여행, 투어 가이드는 일행을 베를린의 한 주차장으로 데리고 갔다. 자동차 30~40대를 세울 수 있는 크지 않은 곳이었다. 왜 이곳에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지 의아했다. 독일인 현지 가이드는 한참 머뭇거린 후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가 히틀러 지하 벙커입니다. 2차 대전이 독일의 패망으로 끝나기 직전, 히틀러는 소련군이 베를린 외곽에서 곧 여기를 덮칠 것을 알았습니다. 히틀러는 벙커에서 삶을 같이했던 여인과 아이들을 먼저 죽인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는 부하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불에 태워달라고 말했고 그를 신처럼 따랐던 부하들은 유언대로 가솔린으로 불을 질러 그와 선전상, 가족을 모두 태웠습니다. 나는 히틀러의 시신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가이드의 대답, 히틀러는 치아가 좋지 않아 구별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나의 암울한 관광은 이보다 훨씬 전에 시작되었다. 뉴욕 한인 언론에서 근무하던 시절, 신문사의 배려로 미국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가이드는 우리 일행을 홀로코스트 뮤지엄으로 안내했다. (예루살렘인지 텔아비브였는지 오래돼서 분명치 않음) 컴컴한 홀, 유대인들이 쓰는 모자(?)를 썼다. 이곳에는 2차 대전 때 학살당한 수백만 명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야말로 암울한 관광이었다. 눈물이 났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후 유럽 여행을 할 때마다 홀로코스트 뮤지엄을 찾았고 여행기를 써서 세기적인 비극을 독자들에게 전했다. 발칸 반도, 발틱 3개국, 독일, 이탈리아, 유럽에 홀로코스트 뮤지엄이 없는 곳이 드물다. 나는 먹고 마시면서 즐기는 여행보다 역사여행에 관심이 많다. 캄보디아 여행 때 내전으로 죽은 자의 유골을 쌓아 놓은 작은 뮤지엄을 보았다. 왜 동족끼리 그렇게 많은 사람을 무차별로 죽였을까. 가이드의 말, 저기 머리뼈를 보세요. 어떤 것은 흰색, 다른 머리는 약간 붉으스럼 하지요. 출산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두개골 색깔이 다릅니다. 어린 학생들은 아무런 감동 없이그냥 지나치듯 듣고 있었다. 소설(생스빌의 그 언덕)을 쓰기 위해 레바논을 여행했다. 1970년대 이 나라는 내전으로 수십만 명이 학살당했다. 구덩이를 파고, 한 줄로 세워 사살한 후 흙으로 덮었다. 7월 7일 아침, 뉴욕타임스에 실린 가이아나 존스 집단 자살 기사를 읽었다. (가이아나는 남미 상단에 있는 작은 나라. 인도계가 다수이고 영어를 공용어로 한다. 아프리카에 있는 가나 공화국과 이름은 비슷하나 완전히 다르다) Jim Jones는 사교 집단을 만들어 인디애나에서 캘리포니아로 옮겨 세력을 확장하다 당국에 쫓겨 가이아나 밀림으로 도망간다. 이 사교 집단에 가입하면 모든 재산을 헌납하고 무조건 교주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마지막 운명의 날이 다가오는 것을 안 존스는 50년 전 1000명의 신도에게 사약을 나누어 주고 자신과 함께 집단 자살한다. 가이아나 관광 당국이 우선 소수를 초청해 어두운 역사 투어를 시작했다는 기사다. 이 스토리를 읽고 이 에세이를 쓰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검은 관광’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이다. 왜 어두운 과거를 찾아야 하는가. 과거의 아픔을 알지 못하면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할 위험성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tourism 관광 홀로코스트 뮤지엄 여행 투어 히틀러 지하
2025.07.23. 22:21
살아있는 모든 생물체는, 살아있기 위해서는 계속 먹여야 한다. 먹는다는 말은 다른 약한 생명체를 잡아먹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먹힌 자는 영원히 없어진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영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육신(肉身)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구름이 죽어야 비가 된다. 비가 죽으면 물이 된다. 물이 죽으면 수증기가 된다. 수증기가 죽으면 구름이 된다. 여기서 ‘죽는다’는 말이 안 좋으면 ‘변한다.’ 라는 말로 바꾸어 쓸 수도 있다. 구름이 변해서 비가 되고, 비가 변해서 물이 된다고.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힌다. 썩는다. 거름이 되어 풀로 자란다. 소나 양이 풀을 뜯어 먹는다. 풀이 소나 양의 뱃속에 들어가 소나 양의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정자 난자가 된다. 그래서 풀이 소나 양으로 태어난다. 사람이 소나 양을 먹는다. 먹힌 소가 사람의 뱃속에 들어와서 사람의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정자 난자가 만들어진다. 소나 양이 사람으로 태어난다. 혹은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힌다. 벌레가 먹는다. 벌레의 몸속에 들어가 벌레의 살이 되고 피가 된다. 벌레의 정자 난자가 된다. 사람이 벌레가 된다. 닭이 벌레를 먹는다. 벌레가 닭이 된다. 사람이 닭을 먹는다. 닭이 사람의 뱃속에 들어와서, 사람의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정자 난자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닭이 사람으로 태어난다. 간단하게 말하면, 먹히는 자가 먹는 자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벌레에 먹히면 사람이 벌레가 된다. 벌레가 닭에게 먹히면 벌레가 닭이 된다. 닭이 사람에게 먹히면 닭이 사람이 된다. 누가 먹느냐에 따라서, 먹히는 자는, 인연이 닿으면, 먹는 자가 된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지는 게 아니다.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게 무척 어렵다. 그렇다면 나의 생명의 근원은 무엇일까? 나는 어머니로부터 태어났다. 부모들이 음식을 먹는다. 부모들이 소며, 돼지, 닭, 물고기, 채소 등 여러 음식을 먹는다. 먹은 음식에서 정자, 난자가 만들어진다. 다시 말하면 정자 난자는 음식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닭고기에서 정자 난자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소고기에서 정자 난자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채소에서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여튼 부모들이 먹음 음식에서 정자 난자가 만들어진다. 어느 날, 엄마의 자궁에서 정자하고 난자가 만난다. 정자하고 난자는 내 것이 아니다. 부모의 것이다. 부모의 것일까? 부모의 것도 아니다. 하여튼 내 것이 아닌 정자하고 난자가 만난다. 이게 자라서 태아가 되고 그리고 ‘나’로 태어난다. 내가 태어난 후, 나는 계속 먹는다. 내 몸뚱이는 내가 먹은 음식물로 점점 커진다. 다행히도 내 몸뚱이에는 두뇌라는 게 있다. 두뇌는 생각하는 기능이 있다. 알고 보니 나는 “생각하는 음식 덩어리”인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생각하는 음식 덩어리’인 것이다. 부모가 먹었던 닭고기에서 정자 난자가 만들어져, ‘나’가 만들어졌다면? 나의 선조는 누구일까? 당연히 닭일 것이다. 만약 부모가 먹었던 음식 중에 채소에서 정자 난자가 만들어졌다면? 나의 선조는 당연히 채소일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는 나를 만들어준 일종의 생산 기계 역할을 했었을 뿐이다. 하지만 부모가 나에게 젖을 먹여주었고 나를 길러주었기에…, 부모의 은혜는 엄청 큰 것이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정자 난자 음식 덩어리 물고기 채소
2025.07.16. 21:44
나 자신은 참 한심한 엄마다. 주위에 있는 엄마들을 보면 일등 엄마의 표창장을 주고 싶은 분들이 많다. 물론 그들이 무슨 보상을 바라거나 주위에 자랑하고 싶어서는 아니다. 단지 그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결국 그 딸들 몫이니 안쓰러워서 내 몸이 부서지는 내리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엄마 A는 딸이 임신하자마자 딸 집으로 출퇴근하며 산전 간호를 시작하더니 산후조리까지 당연히 맡아서 하다가 지금 손자들이 10살, 6살인데 아직도 여기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새벽 6시에 집에서 출발, 밤 8시에 모든 일과를 끝내고 퇴근한다. 식사 준비, 청소, 빨래는 물론 심리상담도 주요 업무의 하나다. 엄마 B는 딸이 세 아이를 출산하는 동안 산후조리 기간을 계속 늘리더니 이제는 아예 5명분의 일주일 분량의 음식을 준비해 배달서비스까지 한다. 엄마 C는 두 자녀가 모두 다른 도시에 살고 있어 주기적으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 순회업무를 본다. 음식을 배달받아 먹는 그들의 한결같은 코멘트는 “할머니 음식 최고!” 이제 식당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언젠가 남편에게 이 지인들 이야기를 하면서 이 엄마들 모두 일등 엄마들이야! 하자 ‘당신은 한 12등 정도 되나?’ 하며 약을 올린다. 곰곰이 듣고 있으니, 부화가 올라온다. ‘3등도 아니고 12등?’ 하며 독기 찬 눈으로 째려보니 남편이 꽁지를 내린다. 취중 진담처럼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12등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본다. 그렇다. 난 은근히 직장인임을 핑계로 시간이 없다며 양해를 구해왔다. 그래도 첫 손자가 태어났을 때 3주 휴가를 받아 생전 처음 입주 산후조리라는 것을 해보았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음식 준비, 청소, 빨래에 정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결국 나의 고질병인 허리 디스크가 재발하고 눈 망막 수술도 하게 되었다. 그 산후조리 마지막 날 딸아이가 건네는 thank you card에 적은 진심 어린 감사의 말에 내 심장은 녹아내렸다. 직장에 복귀해야 하는 딸아이를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지만 결국 아이를 3개월째부터 육아원에 보내기로 결정을 보았다. 손자가 한 살이 되기 전에 아주 힘들게 딸아이를 설득해 브루클린에서 롱아일랜드로 이사 오게 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차로 25분 거리에 살고 있는 딸네와는 자주 왕래하며 지내고 있다. 항상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나에게 딸아이는 ‘항상 우리는 quality time을 중요시한다’라며 나를 위로한다. 나는 음식 하는 일을 즐기지 않는다.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 놓은 음식은 먹으면 끝이다. 상당히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다. 반면에 내가 좋아하는 책 읽기, 글쓰기, 그림 그리기 등은 생산적이고 결과를 오래 간직할 수가 있다. 주위 사람들이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난 요리를 못 한다. 부엌을 싫어한다.’ 미리 떠벌리지만 그래도 가족이나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온다고 하면 어느새 부엌에서 허둥대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난 음식을 평가 절하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고맙게 생각하고 만든이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음미하면서 먹는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내 딸아이도 음식 만들기에 전혀 관심이 없고 만들기 쉬운 음식으로 영양가를 고려해서 식사 문제를 해결한다. 손자들이 8살, 5살인데 한국 음식을 전혀 모르고 파스타, 피자만 좋아한다. 이 모두 내 탓이 아닌가 미안하고 죄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주위에 있는 우리 2세들을 보면 자녀 교육방식이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 우리 세대의 ‘못 말리는 엄마들’에 비하여 올바른 시민의식을 가르치는 진정한 교육법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정명숙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엄마 이세 일등 엄마 엄마들 모두 엄마 c
2025.07.14. 21:38
딸 식구들이 여행을 떠나면 딸 집에서 여유로운 나만의 휴가를 즐긴다. 넓은 집에 나 혼자 독차지하고 거리낌 없고 누가 귀찮게 하는 말 한마디 없는 이 귀중한 시간이다. 뜨거웠던 낮과는 달리 저녁 무렵은 선선하다. 손자 방 창문을 열고 커튼을 올려 버리면 길 건너 큰 상수리나무 사이로 별 하나가 반짝인다. 어제도 그 자리에서 반짝이며 나타났겠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인다. 잡생각을 하며 누워있는데 보름달이 내 가슴으로 안긴다. 보름달을 정면으로 보면서 불을 끄고 달맞이를 했다. 그 잠깐을 즐기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전화벨이 울린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받았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한다. 받지 않으면 메시지를 남기면서 자기 전화는 아무리 바빠도 받으라고 간곡히 애원한다. 우울하고 외로워서 숨이 막힌다고 투덜거린다. 젊었을 때는 센트럴파크에서 달리기도 많이 했고 비즈니스를 아주 잘 운영하여 은퇴 후에도 여유롭게 생활을 하고 있다. 바쁘게 살다 은퇴하고부터 조금씩 이상 증후가 나타났는데 이제는 상태가 많이 진전되어 씁쓸한 생각이 든다. 전화를 받으면 말이 없다가 내가 왜 전화했냐고 물으면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새로운 재미있는 이야기 없느냐고 물으면 그냥 매일 똑같지 뭐라고 대답한다. 맛있는 음식 먹었느냐고 아니면 어느 식당에 맛있는 것 있느냐고 물어도 입맛이 없다고 대답한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숙한다, 어느 날 우연히 의료 인문학 강좌에서 인상 깊게 들었다. 삶의 끝자락에서도 웃을 수 있는 질병이 성숙의 계기가 된다고 했다. 아픔의 순간은 늘 고통으로 시작 되지만 아프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위로도 있고 아프지 않았다면 해보지 못했을 생각도 있다. 이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성숙함과 담담함에 놀랄 때가 종종 있다. 오락가락 하면서도 희망을 찾지 못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하루를 살아내는 그에게는 내일이란 어떤 의미인 것일까? 도심의 불빛을 뚫고 반짝이는 창밖의 별은 오늘도 내일도 그 자리에서 떠 있을 것이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때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하늘에서 깜박였다. 보이는 것만 믿으려는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전화를 내려 놓은 지 1시간도 안 되었는데 또 전화벨이 울린다. 너무 늦은 시간이다. 많은 일들이 갑자기 일어난다. 갑자기 아프고 갑자기 떠난다. 이미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개개인에게 주어진 숙제다. 앞날을 마냥 두려워하는 태도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껏 걱정하다가 맞이한 미래는 잘 되어도 나쁜 상황을 피했다는 안도감을 줄 뿐이다. 오히려 미래를 기대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인간도 앞날을 예측할 수는 없으므로 마음대로 상상하고 기다려보는 데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다른 사람이 기대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기대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면 맛보는 만큼 삶이 풍성해질 것이다. 그 맛을 찾아내고 알아 가는 것도 또한 세상을 창조한 분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말이 우리의 미래를 제한할 수는 없다.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은 일어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예외는 끝없이 보고된다. 인간은 바늘구멍으로 책을 보듯 바라볼 뿐이다. 그 책의 다음 페이지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령 뜻하지 않는 미래가 오더라도 별은 여전히 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변해도 변치 않을 우리의 미래가 아름다운 기대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기대 자기 전화 의료 인문학 상수리나무 사이
2025.07.07. 22:07
조국을 떠나 타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디아스포라에게 조국에 대한 좋은 평가를 들을 때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요즈음에는 주위에서 아예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하고 말을 걸어오는 낯선 이들이 있다. 한국의 국력을 실감하는 중이다. 아주 오래전에 ‘한국인의 두뇌 자원’이라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여서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글로 풀어냈던 기억이 난다. 지구본에서 보면 한국은 너무나도 작은 나라이다. 땅이 작으니, 천연자원이 적은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한국은 땅이 작지만, 두뇌 자원은 무한하다, 이를 개발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소멸한다’라고 강조했었다. 한국인의 파워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설 (lunar new year)과 김치의 날(11월 22일)이 연방 기념일이 되었다. 한류가 뜨기 시작한 지 한참 되었고 요즘에는 K-food와 K-문학이 한창 물오르고 있다. 왜 한국인은 우수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던 중 [작은 땅의 야수들]-김주혜-을 읽게 되었다. 실은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큰 기대를 하고 읽었으나 그 당시 나의 큰 기대만큼 실망하게 되었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노력하는 만큼 얻는다고 했던가. 이번에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읽기를 도전해 보니 거기에 주옥같은 한국인만의 야수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인만의 끈질기고,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이 바로 오늘의 한국을 만들지 않았는지 생각한다. 이 책으로 많은 상을 받게 된 작가는 ‘우리의 유산인 호랑이를 한국 독립의 상징이라고 세계적으로 알릴 기회가 되고 우리 문화와 역사의 긍지를 높일 수 있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작가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독립운동을 도왔던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자라 한국의 독립운동과 근대사가 먼 역사가 아니라 삶의 한 부분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 책은 1917-1964까지 한국의 가장 격동적인 시대에 그 작은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고 야수들인 우리 선조들은 어떤 방법으로 나라를 되찾았는지를 많은 등장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주인공 옥희는 기녀 수습생으로 시작해 정식 기녀가 되고 스승이자 은인인 기녀들이 독립운동에 자금을 대주는 독립군임을 배우게 된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정호(명사수인 사냥꾼의 아들) 또한 경성에 오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결국 깡패의 두목이 된다. 기녀들의 거리 행진에서 처음으로 옥희를 본 정호는 사랑에 빠지지만 옥희는 가난한 고학생 한철에게 사랑을 느낀다.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화려했던 기녀에서 배우로 성공한 옥희는 더 이상 먹을 것도 없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정호는 옥희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주지만, 옥희의 도움으로 대학을 마친 한철은 부잣집 딸과 결혼하게 된다. 한편, 정호는 옥희의 사랑을 얻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다가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한 공산당 당원이 된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삶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기 내면에 있는 야수를 만나 용감하게 살아내고 결국 조국은 독립을 맞게 된다. 그 후 그들은 그들의 행위에 대한 재판을 받게 되고 작은 땅의 야수였던 정호는 사형을 받게 된다. 모든 것을 다 잃고 경성에 환멸을 느낀 옥희는 제주로 내려가 외롭게 살아간다. ‘삶은 견딜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해 주기 때문에’라고 독백하며 이 책은 끝난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 소설이지만 재미있게 읽힌다. 이 책 속에는 처절하고도 비참한 일제 강점기를 견뎌낸 선조들의 삶, 사랑 방식, 전쟁, 돈, 명예 등 그 시대에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신 속의 야수성을 만나 독하고 맵게 살아내는 그들만의 정신이 있다. 이 정신이 바로 내가 오랫동안 찾고 있던 한국인의 우수성의 뿌리가 아닐까? 정명숙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사랑 방식 한국 독립 자라 한국
2025.06.30. 17:37
아침마다 우리 가게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맨해튼으로 출근한다. 햇볕이 따스하게 비추는 사거리 모퉁이에는 일용직 구직원이 모여 있다. 가게 문을 열고 커피를 내리고 대충 정리를 하고 아침을 먹으려고 재봉틀 앞에 앉으면 구직자나 출근자들의 발걸음이 뜸하다. 아침을 먹고 나서 밖을 내다보면 매일같이 비슷한 시간에 노인 부부가 큰 수레를 끌고 쓰레기통을 뒤져 소다 캔과 물병과 플라스틱 물병을 주워 담는다. 두 사람 손에는 고무장갑이 끼어있다. 맨손을 본적이 없다. 하루에 몇 마일을 걷는지 모르지만, 저녁 시간이 되면 소형차 크기의 자루에 넣은 병들을 2개씩 싣고 팔러 가는 것 같다. 아침에는 할아버지가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지만 큰 짐을 싣고 팔러 갈 때는 할머니가 앞서고 뒤에서 할아버지는 할머니 자루가 떨어지지 않나 살피면서 수레를 끌고 간다. 가끔 나는 물병을 모아 큰 플라스틱 백을 가득 채워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전하지만 고맙다고 인사하거나 그 흔한 땡큐 소리도 하지 않는다. 미국에 온 지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자그마한 체구에 걷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 더운 날씨에는 줍는 양이 많아 자루가 꽉 채워 무척 크지만, 비가 오거나 쌀쌀한 날은 자루가 크지 않다. 이상하게 몇 주째 두 노인 부부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 가게 같은 건물에 사람들이 음식 주문을 하고 픽업하는 중국 식당이 있었다. 온 가족이 가게에서 일했다. 두 딸을 낳아서 학교에 보내고 친정엄마까지 불러들여 아이들을 돌보고 5~6년 가게를 운영했는데 갑자기 문을 닫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관리인에 따르면 비자가 만료되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도 않고 주방기구 하나 가져가지 않고 가게를 닫은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작년 가을이었는데 지난 3월 갑자기 우리 가게에 이민세관단속국(ICE) 직원 두 명이 왔다. 나는 ICE 카드가 두 사람 목에 걸렸는데 무엇인지도 모르고 가만히 서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나에게 이민세관단속국에서 왔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깜짝 놀랐다. 나는 여기에 오래 살았고 불법 체류자가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랬더니 중국 음식점을 이야기하며 언제 문을 닫았고 누구누구 일을 했느냐고 묻는다. 나는 중국 사람도 아니고 중국 음식을 좋아하지 않고 그 가게에 가지 않아 모른다고 대답했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불법체류자 단속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내 앞에 ICE 직원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놀라 넘어 질뻔 했다. 죄도 없이 덜덜 떨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정말 뉴스에서 듣던 사실을 현실로 접하고 나니 반세기가 지나도록 영주권 보자는 사람이 없었다. 영주권이나 여권은 해외여행 시나 필요했지 일상생활에서는 쳐다보지도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어느 누가 말했던가. 영주권이 없는 사람은 오밤중에 소방차가 윙윙 소리를 내고 지나가도 자기 잡으러 오나 싶어 집에서도 숨는다고 했다. 이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용직이나 서류미비자 들이 쥐구멍에서 숨을 쉬고 있다. 가게 앞을 지나치던 많은 사람들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 서로서로 연결되어 집 청소를 하거나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개나 고양이 돌봐주는 일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멕시코 친구는 일하는 사람들이 영주권 가진 자가 없어 한밤중에 일을 하고 새벽이 되기 전에 퇴근시킨다고 했다. 영주권은 없지만 주어진 일터에서 일하고 세금 내고 정상적으로 사는 사람들마저 불안에 떨고 있는 지금이 자유로운 미국은 아닌 것 같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미비자 서류 서류 미비자들 할머니 자루가 일용직 구직원
2025.06.23. 22:04
재봉틀을 신주처럼 보관하던 시절이 있었다. 전쟁이 터지고 우리는 아버지(박목월 선생)를 기다리다 한 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자 어머니는 세 아이를 데리고 남으로 피난하기로 했다. 큰아들(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인 내가 앞장섰다. 먹을 것이 없어 남의 집 호박잎을 따서 죽을 끓였다. 어머니는 신주처럼 여기던 재봉틀을 쌀 한 보따리와 교환했다. 맏이였던 내가 쌀 주머니를 맸다. 한참 가는데 어떤 아저씨가 무거워 보이니 대신 운반해 주겠다고 했다. 아저씨는 쌀을 가지고 어디론지 사라졌다. 우리는 가보처럼 모셨던 재봉틀을 잃었다. 돌아가신 우리 장모님은 6·25사변 때 원산에서 어린 두 딸을 데리고 피난선을 탔다. 남편은 배가 출항하기 전 잠깐 집에 다녀오겠다고 한 후 생이별을 했다. 장모님은 수복이 되면 빨리 원산으로 돌아갈 마음으로 휴전선에서 가까운 속초에 정착했다. 장모님은 피난 올 때 가져온 재봉틀로 남의 옷을 만들어 두 딸을 먹여 살리고 학교에 보냈다. 큰 딸인 아내가 한 말, 외삼촌은 술꾼이었어요. 술 마실 돈이 떨어지자 누이의 전 재산인 재봉틀을 훔쳐다 팔았어요. 나는 외삼촌을 미워했어요. 전쟁 후 부산 철길 옆에서 살다 상경해 판자촌에서 움막을 쳤습니다. 엄마는 재봉틀로 바느질해서 아이들을 공부시켰습니다. 어린 나는 엄마의 바느질을 도와주었습니다. (민병임 장편 소설 ‘꿈’에서) 조선 여인(한국 여자)들은 키가 작고 몸은 연약하지만 예로부터 바느질 솜씨가 뛰어났다. 마을 아낙네들은 삼베 풀을 베어 뜨거운 물에 짜서 한 올, 한 올 실을 뽑아내 삼베옷을 만들었다.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나는 동네 부인들이 모여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길쌈을 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 어머니도 바느질했고 나이가 많아져 눈이 침침해지자 나에게 바늘귀를 찾아달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국의 수출 증대는 섬유업이 주도했다. 시골 처녀들은 공단에서 밤낮없이 재봉틀을 밟았다. 바느질 기술이 좋은 어머니 밑에서 은연중 재능을 전수하였을 것이다. 1970년대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으로 남미 이민이 시작되었다. 뉴욕한국일보 기자 시절 브라질 취재에서 들은 이야기. 농업이민으로 왔지만 처음부터 농장에서 일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민 보따리에 넣고 온 옷을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더는 팔 옷이 없어지자 옷을 뜯어 본을 뜨고 제품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남미에는 잠바라는 옷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소개했습니다. 바느질 기술이 월등한 부인들이 제품업으로 성공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제 2세들은 현지인을 고용하면서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첨단 패션을 배워 의류업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이민 온 동포들은 한때 세탁업에 많이 종사했다. 코리언 부인들의 테일러잉(옷 수선)은 고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즐겨 입던 옷을 맡기면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고 마음에 들게 고쳐주었다. 매직 터치였다. 드라이클리닝 업이 쇠퇴한 지금도 한인 업소들은 옷 수선으로 수입을 올리고 있다. 할머니,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가 은연중에 후손들에게 이어졌을 것이다. 이민 온 지 오래돼 할머니가 된 지금도 딸들이 옷을 사 오거나 입던 옷을 고쳐달라고 부탁하면 순식간에 해내는 부인들, 바느질을 통해 가족 간의 사랑과 신뢰가 이어지고 있다. 1851년 미국인 Isaac Singer가 재봉틀을 발명했다. 바느질을 많이 하는 한인 가정은 이 신비한 기계를 너도나도 사들였다. 재봉 일은 어려웠던 시절, 생계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바느질은 섬유산업을 일으켰고, 남미의 제품업을 성장시켰다. 희미한 전등불 아래서 재봉틀을 밟던 어머니들, 그 정성과 사랑을 잊을 수 없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재봉틀 바느질 솜씨 바느질 기술 할머니 어머니
2025.06.18. 19:50
얼마 전에 드라마 ‘폭싹속았수다’를 보았다. 속았다는 말은 ‘속임을 당했다’는 말이 아니란다. 제주도 말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애순이는 문학소녀였다. 소학교 때, 학교에서 시를 잘 썼다고 해서 상을 받았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상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엄마는 칭찬은커녕, 시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먹고 사는 게 우선이다. 엄마는, 바닷물 깊숙이 들어가서 물질한다. 따온 전복을 손질하는데 바빴다. 가난한 사람에게 있어 시는, 먹고 사는 데 있어서 오히려 방해가 되는가 보다. 애순: “딸내미가 시를 써서 상을 탔다는 데도 전복만 쳐다봐!” 엄마: “시를 왜 써, 시를 쓰면 전복이 나오나 구제기(소라)가 나오나?” 엄마에게 있어서 시는 사치(奢侈)인 것이다. 아니, 시는 오히려 가난한 삶을 더 가난하게 해주는 요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애순이는, 서울 남자 만나 결혼해서, 대학에 가서 문학 공부를 하고 싶어 했었다. 그녀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실은 아주 가난했다. 먹고 사는 게 우선이다. 애순이는 시 공부를 포기했다. 제주도 남자하고 결혼했다. 자식들을 낳아 길렀다. 남편을 도와 열심히 일했다. 고생고생하면서도 삶은 서서히 좋아졌다. 어느덧 할머니가 되었다. 남편도 죽었다. 혼자 시를 쓰기 시작했다. 딸이 그녀의 시를 모아서 ‘푹 속았수다’라는 시집을 출판해주었다. 할머니 애순이는 신문사나 혹은 문학지를 통해서 시인이 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시집 한 권 발간함으로써 저절로 시인이 되었다. 여러 탁상을 들판에 갖다 놓았다. 마을 노인들을 모이게 했다. 한글도 가르치고 시를 쓰도록 지도해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시인 선생이라고 불렀다. 할머니 애순이는 말한다. “마음에 담아준 말 있잖아요.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쓰면 그게 시지요.” 그러면서 노인들에게, 마음에 담아준 말을 그냥 그대로 쓰라고 알려주었다. 이때 정공례 할머니는 “어제는 사위하고 식당에 갔다. 나 먹을 거 나가 시켰다. 너(애순) 덕이다”하고 말하고는 시 한 편을 썼다. 제목은 ‘까막눈이’다. 물질현다 학교 못 가 나 평생 챙피하였다/ 메뉴 피고 뭐 시킬래 물으면/ 가심 철렁 하였다/ 그런데 어제는 나 먹을 거 내가 시켰다/ 특초밥 시켰다/ 꿀거치 맛났다. 나도 늙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 시모임에는 15여명의 회원이 있다. 새로 들어온 회원을 지도해줄 수 있는 애순이 할머니가 필요하다. “하고 싶은 말을 시 형식으로 쓰라”고 일러주는 할머니 말이다. “생각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그 좋은 생각을 얼른 종이에 적어놓으라고” 말해주는 할머니 말이다. 한번 떠오른 생각을 즉시 잡아놓지 않으면, 그 생각은 없어진다. 한번 없어지면, 그 생각을 다시 찾아내기는 어렵다. 처음부터 좋은 시는 써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좋은 시를 쓰려고 하다가 오히려 좌절만 당한다. 그냥 시를 쓰기만 하면 된다. 몇 개월 몇 년, 한참 쓰다 보면 저절로 좋은 시가 써지는 것이다. 시가 잘 안 써질 때는 고통스럽다. 그러다가 한 편의 시가 써지면 엄청 기쁘다. 시를 쓰는 것은 두뇌를 활성화해 치매 예방에도 좋다. 시 모임에 자주 참여하면 외로움도 없어진다.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마을 노인들 서울 남자 문학 공부
2025.06.17. 23:01
이번 크루즈 여행은 싱가포르에서 끝났다. 3월 27일 막 방콕을 떠나자마자 방콕에서 지진이 났다. 크루즈 여행의 가장 불편한 점은 WiFi가 없다는 점이다. 바다 위여서 와이파이를 구매해도 속도가 느리고 비싸다. 이 끔찍한 소식도 모른 채 하루 종일 싱가포르를 관광하고 밤늦게 호텔에 와서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나서야 뉴욕에 있는 가족들이 패닉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딸아이가 방콕으로 날아올 생각까지도 했다고 한다. 한편, 우리는 가이드와 함께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싱가포르를 누비며 즐기고 다녔다. 싱가포르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질서와 청결이었다. 빌딩 숲과 나무숲이 잘 정돈되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싱가포르는 중국계가 74%, 말레이계가 13%, 인도계가 9.1%, 기타 3.3%여서 중국계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싱가포르의 공용어는 영어이고 도시국가이다. 싱가포르는 6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계속되는 간척사업으로 현재는 한국의 부산과 크기가 거의 비슷하다. 이 나라는 적도와 인접해 있어 연중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많은 전형적인 열대 우림 기후이다. 기온은 섭씨 23도에서 32도로 연중 고른 기후를 갖고 있다. 에어컨은 싱가포르 성공의 일등 공신으로 무더운 기후로 업무와 생활에서 효율성이 떨어짐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 무한정 쓰도록 한 것이 경제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싱가포르는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모두 세계 1위를 기록한다. 다른 블루 존은 전통문화 속에서 장수 환경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지만, 싱가포르는 블루 존 개념을 도시계획에 반영해 정책적으로 설계한 장수마을이다. 이 나라는 GDP가 8만9000달러가 넘는 부유한 나라다. 주요 생산품은 전자, 석유화학, 기계공학과 의약품 제조다. 이 나라 문화는 원주민인 말레인과 3대에 걸친 중국인, 이민으로 유입된 아랍인 등 여러 민족의 문화가 섞인 복합적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다. 특히 영국 식민지 시절과 페라나칸(Peranakan, 해협 중국인 사회)의 문화가 주류를 이룬다. 국교는 없으나 불교 31%, 기독교 19%, 이슬람교 16%, 힌두교 5%, 도교 9%로 세계 종교 박람회에 온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최근에는 기독교와 무종교인의 수가 늘고 있다고 한다. 싱가포르는 관광산업에 많은 투자를 하며 관광객 유치에 큰 노력을 하고 있다. 이 도시의 야경은 세계 제일의 수준이고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빛의 향연을 과시하는 마리나 베이의 분수 레이저 쇼는 화려함의 극치로 15분간 진행되어 관광객들을 무아지경으로 이끌었다. 이 도시는 초현대식 건물로 지어졌지만, 건물들 하나하나가 개성이 있고 특징이 있다. 도시 전체가 빼어난 조경산업으로 어디를 둘러보아도 녹색 장원이 있고 심지어 건물 맨 위에도 훌륭한 정원이 있어 ‘정원 속의 건물’로 표현된다. 국토가 극히 제한되어 건물이 위로 솟을 수밖에 없고 위성사진으로 보면 녹지가 절반을 차지할 정도이다. 공항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jewel city라는 이름으로 돔을 사용하여 방대한 온실로 되어있다. 볼거리 제1순위는 Garden by the Bay로 세계에서 제일 큰 규모의 실내 정원이다. 축구장 두 배의 크기로 35m 높이의 폭포가 일 년 내내 작동하고 있고 실내 온도 23도 습도 60%를 항시 유지한다. 희귀한 식물과 꽃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뽐내고 있는 쾌적하고 싱그러운 분위기였다. 특히 센토사섬은 고급 휴양지로 인간이 만든 관광자산의 최고봉이라 불린다고 한다. 섬 전체 인구가 2000명밖에 안 되는 부촌이고 환상의 섬으로 불리며 2018년도에 김정은과 트럼프가 북미 정상회담을 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에메랄드빛 해변과 wax museum, 바다 위의 레이저 쇼는 과연 인간의 창조력에는 제한이 없음을 상기시켜주기에 충분한 멋진 장관이었다. 싱가포르는 돈을 쓰기를 강요하지 않고 관광객 스스로 지갑을 열게 하는 재주가 있는 나라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싱가포르 blue 싱가포르 성공 나라 문화 장수 환경
2025.06.16. 21:41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4년, 4년, 도합 8년, 2번의 임기를 마치고, 자발적으로 물러났다. 그 당시 조지 워싱턴은 국민으로부터 인기가 좋았다. 워싱턴은 3선, 4선도 무난하게 당선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워싱턴이 계속 대통령을 하다가 독재자가될까 봐 두렵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워싱턴은 두 임기(8년)를 마치고, 자발적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의 물러남이 엄청나게 훌륭한 일이었다. 이게 전통이 되어서 미국의 대통령은 두 임기뿐이다. 엄청 훌륭한 일이 또 생겼다. 베네딕토 16세는, 77세, 2005년 4월에 교황으로 즉위하였다. 8년 후, 85세, 2013년 2월에 교황직에서 스스로 사임했다. “고령인 데다가…, 너무나 빠른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고…, 최근 몇 달 동안 심신이 쇠약해지면서 제게 맡겨진 이 사도직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교황직에서 사임했던 것이다. 어느 누가 권좌에서 물러나고 싶어 하겠는가.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으려고 온갖 악랄한 짓을 하는 이 세상에! 정적들을 죽이고, 그리고 국민을 탄압하면서, 독재하려고 하는 판국에. 그렇구나, 권좌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일! 그래 맞아, 권좌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이 어려운 일! 이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게 ‘엄청 훌륭한 일’이라는 것은 나는 깨달았다. 교황은 물러난 후, 9년 동안 바티칸 내 에클레시아 수도원에서, 매일 기도와 책을 쓰면서 조용하게 살았다. 죽기 몇 시간 전에, “주님이시여,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간호사가 전했다. 베데딕트 16세 교황이 8년 정치하고 물러났기에, 다음 교황들도, 이분의 본을 따라, 교황들이 10년 정도 정치를 하고서 스스로 물러나 주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간 대부분의 고통과 가난과 부패는 독재자의 횡포에서 생긴 것이다. 독재자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일한다고 입으로는 마구 떠들어대고 있지만, 실은 자기 개인의 욕심을 위해서 나라를 망치고 국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심지어 어떤 독재자들은, 남의 나라까지 먹고 싶은 탐욕에, 옆 나라를 침공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죽인다. 만약 독재자들이, 워싱턴 대통령처럼 그리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처럼, 몇 년간 정치하고 자발적으로 물러난다면? 그 나라는 보다 더 부유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을 보라. 지금 수많은 세계의 굶주린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살고자 한다. 왜 미국에 와서 살고자 하는가? 미국은 부자이고 그리고 자유가 있는 나라이다. 왜 그런가? 수많은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에는 독재자가 없다. 독재자가 없는 대신에, 그 자리에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독재자가 없기에 부패가 없다. 그래서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되었고 계속 최강의 나라가 되어 갈 것이다. 베네딕토 16세의 은퇴를 보고서, 고려말 나옹선사(1320~1376)의 시가 생각이 나서 여기에 적어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노여움도 내려놓고 아쉬움도 내려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워싱턴 대통령 초대 대통령 대통령 자리
2025.06.03. 17:45
이번 크루즈 여행 중 베트남 다음으로 방문한 나라는 태국이다. 내가 그들에게 받은 인상은 그들은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예의 바르다고 느꼈다. 그들은 느긋하고 여유로우며 두 손을 모아 공손하게 인사한다. 또한 그들은 가족 간의 유대 관계를 매우 중요시한다. 이 나라는 입헌 군주제에 입각한 민주주의를 고수하고 태국 헌법상 국교는 없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태국문화에서 불교는 압도적으로 전체 인구의 95%가 불교 신자이다. 법으로 강요하지는 않지만, 태국에서 성인 남자가 일생에 한 번 전통적으로 삭발하고 떠나는 단기 출가는 성인식 대신이 되기도 한다. 기후는 열대 몬순기후라서 우기(5월에서 10월) 때마다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산이 없이 지형이 평평해 홍수 피해가 많은 편이다. 홍수 문제는 교통 혼잡을 불러와 국가의 큰 과제라 한다. 태국민은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 열강의 식민 통치를 받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였다는 큰 자존심이 있다. 이 나라는 적도에 인접해 있어 일 년 내 여름이지만 북부지방에서는 최저기온이 12월과 1월 사이 밤에는 59도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외국인들은 이 나라에는 오직 세 개의 여름, 즉 여름, 더운 여름, 아주 더운 여름만 있다고 표현한다. 또한 습도가 85%에 달해 체감온도는 훨씬 높아 숨이 탁 막힐 정도로 무덥고 습해 중동이나 아프리카 사막지대보다 훨씬 덥게 느낀다. 작열하는 태양과 푹푹 찌는 날씨가 태국의 여름 방문을 피하게 한다. 보통 12월 전후로 해안가 휴양지는 지중해성 기후와 비슷해 여행하기에 최적의 시기이다. 태국은 수도권인 방콕과 휴양도시인 파타야가 관광지로 유명하다. 방콕은 현대식 건물로 가득 차 있으며 명품쇼핑을 즐기는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반면, 이 나라를 대표하는 왕궁과 유적지들이 많이 있다. 이 나라 여행의 제1순위인 왕궁(프라 보롬 마하랏차왕 - Grand Palace)은 과거 국왕들이 거주했던, 라마 1세에 의해 1782년에 건립된 왕실 궁전으로 방콕의 심장부이다. 여러 사원과 황금 탑, 불상, 벽화 등 다양한 색채의 향연은 적도의 태양 아래 눈부셨다. 과거에는 국왕들이 거주했으나 지금은 태국의 제1순위 관광지이다. 건축물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작품으로 혼이 들어간 장인 정신에 압도되어 94도의 불볕더위에 비처럼 흐르는 땀을 닦기도 미안했다. 이 왕궁 방문 하나만으로도 태국의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예술과 건축물을 한꺼번에 본 셈이다. 태국은 그들만의 종교색이 짙은 풍부한 문화와 숨을 멎게 하는 자연경관, 특색있는 음식과 생동감 있는 야경으로 관광객을 유혹한다. 이번에 방문한 코사무이 섬은 수면이 얕아 크루즈 배를 댈 수 없어 바다 한가운데서 작은 배로 갈아타고 들어갔다. 아직 사람 손을 많이 타지 않아 천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그 섬은 그림엽서 같은 해변이 섬 전체를 두르고 있었다. 90%의 관광객이 이스라엘과 유럽인이라고 한다. 태국 음식은 많은 애호가를 갖고 있다. 난 그들의 특이한 향에 민감해서 별로 즐기지 못했지만, 동행한 사람들은 팟타이(새콤, 달콤, 짭짤한 맛이 어우러진 태국식 볶음 쌀국수), 파파야 무침(파파야, 마른 새우, 고추, 땅콩 가루를 빻아 만든 샐러드)을 얼마나 잘 먹는지 부러웠다. 태국은 또한 동물들이 많아 코끼리, 원숭이, 악어 쇼가 유명하다. 태국의 상징인 코끼리는, 특히 흰 코끼리는 이 나라에서 아주 귀하게 대접받는다. 마야 부인이 석가모니를 낳기 전 태몽으로 여섯 개의 상아가 달린 흰 코끼리 꿈을 꾸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코끼리에도 등급이 있어 우직한 애들은 밀림에서 통나무를 나르는 일을 하고 영리한 애들은 훈련을 거친 후 쇼에 나와 재롱을 부리기도 한다. 악어 쇼에서는 그들이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 입을 한번 벌리면 수련사의 머리나 팔뚝이 들어와도 계속 입을 벌린 채로 졸고 있었다. 명연기였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태국 미소 태국 헌법상 나라 여행 여름 방문
2025.06.02. 2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