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월이 오면 내가 일하고 있는 중환자실은 알코올 중독자들로 붐비는데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환자 수가 늘었다. 연말연시가 되면 아무래도 모임과 파티가 많아서라고 생각된다. 한편, 7월 초에는 병원이 한산하다. 일설에 의하면 막 의대를 졸업한 인턴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란다. 난 가끔 인간은 왜 알코올을 발명했을까? 묻고 싶다. 왜냐하면 직업상 알코올의 긍정적인 힘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훨씬 다 많이 접하기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는 찾아보지 않았지만, 실제 내 경험만으로도 문제점이 많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두 가지로, 첫째 축하할 일이 있어 기분 좋게 마시고 즐기기 위해, 둘째는 힘든 현실을 피하고 잊고 싶어서가 아닐까. 문제는 알코올이 체내에 들어가면 혈중알코올농도가 급격히 상승해 판단 능력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진다. 어제 67세인 내 환자는 술에 취해 길바닥에 쓰러져 있다가 경찰에 발견되어 구급차에 실려 왔다. 얼마나 심하게 넘어졌으면 목등뼈 1, 2번이 골절되어 목등뼈 보호대를 하고 일반 병실에 입원했었다. 이 환자는 곧바로 금단현상이 나타났다. 보통 금단증상은 혼돈이 오고 손이 떨리며, 말과 행동이 거칠어진다. 이 환자는 이 증상이 최고조에 달해 자신은 물론 스태프들에게도 해를 끼쳐 사자를 묶고 또 경비원까지 동원했다. 환자는 결국 호흡곤란이 와 인공호흡기를 꽂게 되었다. 보통은 안정제 투여한 후 4~5일 푹 자고 나면 금단증상이 지나간다. 이때를 기다려 인공호흡기를 제거한다. 이 환자는 지금 2주가 되었는데도 가래가 너무 많아 호흡기를 뗄 수가 없다. 결국 이 환자는 기관지 절개술을 하고 양로원에 가야 할 수도 있다. 34세인 나의 또 다른 환자는 알코올 중독자로 간이 완전히 기능을 잃어 정말 어렵고도 힘든 과정을 거쳐 1년 4개월 전에 간이식을 받았다. 본인 말로는 이번 연말연시까지만 술을 마시고 스스로 AA(Alcoholics Anonymous -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의 모임)에 가입해 재활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새 삶의 기회마저 놓쳐버렸다. 이식받은 건강한 간조차도 완전히 기능을 잃어버렸다. 계속 피를 토하고 수혈해도 소용이 없고, 간의 가장 중요한 해독작용이 마비되어 혈중 암모니아가 내려오지 않아 코마에 빠졌다. 한 2주 코마에 빠져 Anoxic brain injury(뇌세포가 산소부족으로 죽어가는 상태)로 진단받았다. 뇌사가 오면 벌써 NY Live On (NY 장기 기증 단체)는 그의 장기 기증을 종용한다. 간을 제외한 그 외 장기들은 모두 건강하고 그 장기들로 여러 생명을 살릴 수 있기에 환자의 가족들과 계속 면담이 진행되고 있다. 간이식을 받은 환자의 가족들이 결국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다. 또 한 경우는 투석 환자로 일 주에 3번씩 정규적으로 투석을 받고 있었다. 그 환자는 연례행사처럼 Happy New Year Party 직후에 입원해서 엑스트라 투석으로 튠업을 받고 기분 좋게 퇴원하곤 했다. 그렇게라도 술을 마시며 연말을 즐기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꼭 연말이 아니어도 알코올 중독자들은 실은 너무 많다. 알코올 중독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인간 차별도 없고 국경도 없다. 남녀노소도 차별하지 않는다. 21세 이상만 되면 술 구매가 가능하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알코올 중독자는 구강기(oral personality)에 고착된 성격유형에 속한다. 유아의 성장 시기 중 최초인 0~18개월에 속하며 이때는 입을 통해 모든 만족을 얻게 되고 부모의 양육 방식에 따라 다른 성격이 나온다. 즐거움의 영역인 입으로의 만족이 충족되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입을 통한 만족 추구에 집착하는 특성이 된다. 술, 담배에 의존하거나, 과식 또는 지나치게 말이 많은 경우, 혹은 손톱을 물어뜯는 예도 있다. 반대로 과잉 충족되면 성장해서 의존적이고 수동적으로 된다. 그렇다면 적정선은 어디인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이다. 참 어렵다. [삶의 뜨락에서] 알코올 중독자들의 아픔삶의 뜨락에서 알코올 중독자 알코올 중독자들 직업상 알코올 투석 환자
2026.02.23. 21:58
지난 1월 말 뉴욕을 비롯한 미 동부 지역에 12~18인치 이상의 폭설이 내렸다. 나중에 알게 된 뉴스지만 러시아 캄차카반도에는 60년 만에 2.5미터 이상의 폭설이 건물 3~4층까지 덮어 지하 얼음 동굴 같은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나와 같은 필수 인력(essential worker)는 그 어떤 천재지변, 코로나19와 같은 이변에도 현장에 나가야만 한다. 폭설 일주일 전부터 하늘은 준비 작업에 들어간 듯 싸하고 을씨년스러운 잿빛을 날마다 흩뿌리고 있었다. TV만 틀면 공포를 조성하는 불안한 긴장감이 부풀어갔다. 올겨울 나는 유난히도 운이 없는지 꼭 내가 근무하는 날마다 눈보라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번, 이 눈사태로 잔뜩 긴장하고 조심조심 준비하던 중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혹시 병원에서 하룻밤을 자겠냐고 그렇지 않으면 일요일 밤 퇴근에 월요일 새벽 출근을 해야 했으므로 나는 Yes! 하고 외쳤다. 난 로또에 당첨된 듯 행복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일요일 새벽에 집을 나섰으나 세상은 벌써 하얗게 덮였고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눈은 아직 얼어붙지 않아 시속 20마일로 병원에 무사히 또 제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일단 안도의 숨을 내쉬고 중환자실 병동에 입성하자 밤 근무 동료들이 일제히 박수로 환영한다. 이 의식은 우리 동료들 사이에 무언의 전통이 되어있다. 극악한 상황에서 그들을 구제해 줄 교대팀의 출현이 눈물겹게 고마운 것이다. 일단 인계를 받고 나의 하룻밤을 지낼 곳을 알아본 결과 나는 다시 한번 기쁨에 깡총했다. 거의 2년 전에 새로 지어 이사 온 현재의 중환자실은 5성급 호텔이다. 에어 매트리스, 대형 텔레비전, 컴퓨터, 아이패드, 현대식 화장실, 한 면으로 다 뚫린 대형 창문을 통해 밤새 아름다운 설경을 즐길 셈이다. 하루 종일 기분 좋게 일을 마치고 열 걸음 만에 환상의 내 방으로 퇴근했다. 그날 밤 퇴근길과 다음 날 아침 출근길의 전쟁터에서 갑자기 내려온 신의 선물로 나는 눈물겨웠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움인가! 먼저 향기로운 얼그레이 차를 들고 나의 황홀한 밤을 위해 창가에 기댔다. 특유의 아로마가 코를 유혹하고 입안에 들어온 첫 모금은 안개처럼 퍼져 나의 눈을 사르르 감게 한다. 목으로 넘어가는 부드러운 감촉은 가볍게 나를 안아 환상의 세계로 데려가 준다. 어렸을 적 그리고 아직 운전하기 전까지 눈은 신비 그 자체였고 가슴을 뛰게 했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요술 방망이였다. 눈으로 덮인 하얀 어둠 속에는 고요와 나만이 존재하는 참혹하게 아름다운 빛나는 세상이었다. 하얀 숨이 입에서 새어 나가자마자 하얗게 부풀다가 사라지곤 했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히는 소리가 좋아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환상의 세계에서 태어난 고요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열린다. 눈송이 하나하나에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팝콘처럼 터진다. 예쁜 이야기들을 토해낸다. 하얀 숨 덩어리와 하얀 눈 덩어리가 한데 어울려 큰 그림을 그린다. 창밖도 아름답고 내 마음도 아름답다. 미국에 오고 나서 바로 운전을 시작한 나는 눈과 설경이 선물하는 아름다운 감성 대신 전쟁터로 향하는 전투사로 변신해 있었다. 오늘 밤 운전에서 해방된 안도감이 나에게 설원의 나라를 마음껏 날게 해 주었다. 온 세상이 걱정과 염려 속에 불안하게 잠자리에 들었을 때 나는 나만의 찬란한 세계를 유영하고 있었다. “Things happen for the better”라는 속담이 딱 맞았다. 1월이 2월 속으로 질주하고 있다. 이번 겨울은 겨울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기회라 생각한다. 난 이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뉴욕이 좋다. 한 계절이 지루해질 때면 다음 계절이 어느새 발아래 당도해 있는 뉴욕을 정말 사랑한다. 아직도 2월 한 달은 충직한 겨울이고 3월은 겨울과 봄의 힘겨루기가 시작될 것이다. 겨울이 남긴 잔설에서 움이 트는 계절도 저 먼발치에서 아른거릴 날도 머지않았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선물 일요일 새벽 이번 겨울 중환자실 병동
2026.02.09. 21:47
일주일 전부터 폭설 주의보가 있었다. 그냥 지나갈 수도 있어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틀 전도 똑같고 내일부터 눈사태가 일어난다고 슈퍼마켓 앞에는 파킹장이 꽉 찼고 안에는 벌써 없어진 물건들이 많았다. 식구가 많은 가정은 재빨리 쇼핑하지 않으면 입맛대로 찾아 먹는 아이들을 달래야 하는 곤욕이 따른다. 토요일 일을 마치고 운이 좋으면 월요일도 가게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뉴스를 접하고 마켓에 갔다. 이틀이나 집에 있으려면 맛있고 평소에 먹고 싶었던 간식거리를 잔뜩 샀다. 일요일 5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그치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소낙비처럼 쏟아진다. 작년 재작년 눈이 오지 않았고 따뜻한 겨울을 보낸 기억으로 살을 베는 듯한 이번 추위는 견디기가 매우 힘들다. 우리 동네는 14인치가 쌓였다. 다행히 우리 집은 드라이브웨이와 데크에 쌓이는 눈을 3번에 나누어 치웠다. 한꺼번에 치우는 일은 무척 힘들다는 것을 이미 터득했었다. 아들이 미처 치우지 못한 계단이나 모서리에 흘린 눈이라도 치우고 싶어 나가면 언제 따라왔는지 눈삽을 빼앗으며 안으로 들어가라고 야단이다. 놀아본 사람이 논다고 이틀 동안 집에 있으려니 죽을 맛이다. 새우깡 봉지를 뜯고 사람들이 미쳐 날뛰는 풋볼 경기라도 보려고 TV 앞에 앉았다. 평소에 관심 없던 사람이 풋볼에 흥미가 솟아날 리 없고 추운 날씨에 짧은 소매 입은 선수들이 추위를 어떻게 견디나 의심이 같다. 일하면서 먹는 것도 먹고 싶고 배도 고프다는 것을 느낀다. 식탁 위에 늘어놓은 알록달록한 먹거리도 보기 싫어 치워버렸다. 화요일 가게에 도착했다. 차 파킹이 문제다. 유로 파킹하는 곳은 이미 꽉 차 있어 문전 박대다. 가게 문 앞은 1피트 넘게 눈이 쌓여 철문을 열 수가 없다. 바람이 모든 눈을 철문 앞으로 밀어 버렸다. 길 건너 가게주인의 도움으로 눈을 치우고 문을 열었다. 문제는 가게 앞 거리 치우기다. 바닥이 꽁꽁 얼어 한숨을 내뱉으며 한 삽 한 삽 떠서 길 가장자리로 밀어붙였다. 겨우 한 사람씩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드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힘들게 삽질을 하는 나에게 지나가는 남자들이 삽으로 땅을 꽝꽝 두세 번 때려 얼음을 깨주면 길을 내고 또 지나가다 삽자루를 빼앗아 얼음을 깨주고, 세상은 좋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 사회가 움직이는 것 같다. 한 사람이 지나가는 길에 앞에서 다른 사람이 오면 젊은 사람과 남자들이 모서리나 옆으로 서서 오는 사람이 먼저 지나가도록 양보를 한다. 힘 있는 사람들은 눈 위로 가면서 길을 비켜주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배려를 한다. 바쁜 사람들은 눈 속으로 푹푹 빠지면서 건너가 발을 땅에 탕탕 치며 눈을 떨고 간다. 25년 동안 이곳에 있었지만 이번같이 눈을 치우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시장이 12년 동안 장기 집권을 하였으니 타운에 예산이 바닥이 난 것 같다. 취임 열흘밖에 되지 않은 시장이 이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 완전히 무너진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인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평했겠느냐마는 큰길은 차가 많이 다녀 불편이 덜 하지만 골목길은 눈이 얼음으로 변하여 운전하는 것도 위험수위다. 폭설이 내려도 날씨가 포근하면 자연스럽게 녹지만 야속하게도 몹시 추운 영하의 온도다. 그래도 주민들이 참고 언제쯤 날씨가 따뜻해질까 일기예보를 주시하고 있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폭설 풍경 폭설 주의보 월요일도 가게 화요일 가게
2026.02.05. 21:24
맨해튼 어느 지하철이다. 예수를 믿으라면서 전도지를 준다. 안 받고 그냥 지나가려고 했더니, 그 여인이 쫓아온다. 왜 안 받느냐고 짜증을 낸다. 내 손에 억지로 전단지를쥐여준다. 지하철에서 위로 올라가 길을 걷는다. 두세 명의 젊은이가 ‘예수 믿으라’고 소리 지르는 것이 보인다. 어떤 기독교 친구는 주로 남미로,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선교를 간다. 대략 이주 혹은 한 달 정도 선교하고 돌아온다. 여행, 숙박, 먹는 것 등 모든 비용을 다 자기가 부담한다. 자기 돈까지 써가면서 외국에 가서 선교한다는 것은 보통 훌륭한 일이 아니다. 기독교는 예수를 믿으면 예수의 아버지 하느님이 기독교 신자들을 천국에 보낸다. 거기서 영생토록 행복하게 살게 해준다. 그런데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으로 간다. 지옥에서 영생토록 고통을 받는다. 지옥에서 고통을 받게 해서는 안 된다. 지옥에 가지 못하도록 구원해주어야 한다. “전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신앙의 의무가 있는 게 기독교다. 그래서 성의껏 선교한다. 선교한 후, 선교했었기에 구원을 받는 사람들을 보고서 기쁨을 느낀다. “아, 내가 지옥에 갈 사람들을 예수를 믿게 하고, 그래서 이분들이 천국에 가도록 해주었으니!” 하고 즐거움을 느낀다. 불교는 자력 신앙이다. 불교는 자기 스스로가 닦아서 스스로가 해탈해야 하는 종교이다. 부처를 믿으면 해탈하는 방법을 배우지만, 부처를 믿는다고 해서 부처가 해탈시켜주지는 않는다. 부처를 믿는다고 해서 죽은 후에 하늘나라에 가게 해주지는 않는다. 당신 스스로가 계(戒)를 지키면서 남들에게 선한 행위를 하면 당신 스스로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다. 당신이 못된 짓을 저질렀으면 그 못된 행위 때문에 당신 스스로가 지옥에 가는 것이다. 부처를 믿고 안 믿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옥에 가면 지옥에서 죗값을 다 치르고 나면, 혹은 지옥에서 남들에게 선한 행위를 했으면 다시 인간으로 혹은 하늘나라에 태어난다. 잘되고 못 되고는 다 자기 하기나름이다. 그런데 불교는 “불교 믿으세요.” 하고 포교를 하고 다닌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가 포교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도 포교를 하고 있다. 포교 방식이 많이 다르다. 한국불교는 주로 미국이나 유럽 등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스님들이 와서 포교한다. 먼저 절을 지어놓는다. 불교에 흥미가 있으면 절에 스스로 찾아와서 불교를 믿으라는 것이다. 근래에는 주로 불교책이 불교를 많이 포교하고 있는 것 같다. 인도로 망명을 온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있다. 그는 많은 책을 썼다.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불교가 널리 포교 되고 있다. 또 베트남에서 쫓겨나 지금은 프랑스에서 사는 틱낫한 스님이 있다. 그도 베스트셀러 책을 많이 썼다. 그의 책을 통해서 또한 불교가 널리 퍼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의 책들이 많이 팔린다. 불교는, 죽으면 다시 태어나고, 또 죽으면 다시 태어난다고 믿고 있는 종교이다. ‘죽고 태어나고…’ 하다 보면 금생에 안 믿어도 다음 생에서는 불교에 귀의해서 도를 닦게 된다는 게 불교이다. 다행히도 미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기에, 불교책을 통해서 불교가 많이 퍼지고 있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조교수삶의 뜨락에서 선교 포교 불교도 포교 포교 방식 정도 선교
2026.02.02. 21:40
새해 아침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를 즐기며 책상 앞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바깥은 영하 7도의 차가운 날씨인데도 찬란한 햇빛을 머금은 하늘 전부가 쏟아진다. 나만의 공간인 책상 앞에는 남동쪽으로 난 두 개의 창문을 뚫고 눈 부신 햇살이 떼창으로 몰려온다. 창밖 오른쪽으로는 거대한 실물의 크리스마스트리(Holly Tree)가 붉고 화려한 열매로 온갖 새들을 유혹한다. 새들도 오늘과 같은 축복의 기회를 맘껏 즐기고자 신명이 났다. 갑자기 나무 한 줄기가 휘청댄다. 둘러보니 다람쥐 한 쌍이 신나게 장난치며 나에게 즐거운 아침을 선물한다. 아! 정말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다. 행복한 아침이다. 우리 집에는 유난히 키가 큰 나무들이 많아 지난 11월에 폭풍과 눈사태가 염려되어 큰 나무 6그루 이상을 베어냈다. 마음이 정말 아팠지만, 그런대로 상록수와 나목이 겨울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지켜 주어 고맙게 생각한다. 참 신기하다! 12월 말이었던 지난주만 해도 정신없이 분주하고 시간에 쫓기며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다. 단 며칠 사이 새해라는 이유만으로 이토록 마음이 차분해질 수 있는 것일까. 미국 생활에서는 여름방학이 끝나고 가을 학기가 시작되면서 바빠지기 시작한다. 거리에는 벌써 차량이 많아지고 학교 버스 천국이 된다. 10월 말이면 핼러윈, 11월엔 추수감사절,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눈앞에 벌써 와있다. 크리스마스는 성탄절이라는 본래의 의미보다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중대한 의식이 되었다. 흩어져 있던 가족이 모이고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렇게 절정을 향해 치닫던 연말을 보내고 나면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몸과 마음에서 기와 진이 다 빠져나가고 몸살을 앓게 된다. 준비의 여부와 상관없이 새해는 벌써 우리보다 먼저 우리 앞에 당도해 있다. 새해 아침에 찾아온 고요, 고요는 평화를 부르고 평화는 내 마음에 평온을 부른다. 1월은 2월 속으로 질주할 것이다. 모두 몸을 움츠리며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꾸역거리게 된다. 이때다. 1월은 나에게 집중하며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다. 겨울나무가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히 겨울잠만 자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이토록 거칠고 척박한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견디기 위해 치열하게 사투하고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온갖 뿌리들은 지하조직에서 연락망을 통해 상생의 길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이 겨울만 잘 견뎌보자고 서로 어깨를 껴안고 있을 것이다. 오는 봄에 피울 꽃과 잎을 생각하며 이 추운 겨울에 죽을힘을 다해 버텨보자며 서로 위로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자연의 순리를 생각하면 겨울은 참으로 따뜻한 계절이다. 야외생활을 하다 보면 시선과 관심이 분산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나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주위에 널려있는 물건들, 나 자신, 그리고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이들을 한 번씩 시나브로 연상해 본다. 평소 지나쳤던 시선에 애정을 담아본다. 올해의 작은 소망을 다짐해 본다. 모든 순간을 진심으로 대하고 섬세하고 예리하고 곱게 나 자신을 연마하고 싶다. 나의 오감을 존중하고 음미하며 나에게 이 감각을 선물한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삶이란 고귀한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쉽게 묵과할 수 없다. 모든 것에는 존재 이유가 있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다. 천천히 관심을 두고 바라보고 들어주어 그들만이 품어내는 향기를 음미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정제하고 싶다. 원석에서 최고의 빛이 나는 다이아몬드를 정제하듯, 백지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자신을 담아내는 노력, 생의 최고 걸작은 뼈를 깎는 고통과 인내 없이는 쉽게 얻을 수 없다. 새해 아침 고요한 시간을 맞아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시간 시간 자신 새해 아침 주위 사람들
2026.01.26. 22:16
행복은 마음먹은 만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늘어나는 주름만큼 마음도 가벼워지고 가벼워진 만큼 행복한 순간도 자연스레 늘어난다. 무언가를 더 얻기보다는 덜어내는 쪽으로 삶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나는 문득 어깨 위에 내려앉은 조용한 행복을 발견하곤 한다. 젊은 날에는 앞만 보고 달렸다. 이뤄야 할 목표, 증명해야 할 존재, 멈추면 안 된다는 강박, 그 시절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천천히 시야에 들어온다. 눈이 6인치 이상 내린 토요일 딸에게 전화했다. 나를 너희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9살 된 손주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눈이 많이 내리면 둘이서 눈사람을 만들기로 했다. 집에 내가 도착하니 손주가 너무 좋아했고 벌써 스키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나도 대충 두꺼운 재킷과 스키 신발로 갈아 신고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추웠지만 손주와 나는 눈을 굴리다가 힘이 들어 더럭 눈 위에 누워 버렸다. 조금 쉬운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 쓰레기통을 가져와 눈을 듬뿍 쓸어 담았다. 서로 꾹꾹 눌러가면서 담아서 뒤엎어 눈을 빼냈다. 다음은 조금 작은 쓰레기통을 사용했고 제일 윗부분은 큰 화분을 이용했다. 손주는 너무 신나고 좋은지 뛰어가 옆집 친구들을 불러 왔다. 모두 모인 아이들이 눈사람 만드는 것이 처음이라서 서로 만져보고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한 아이에게는 솔방울 두 개를 주면서 눈을 붙이라고 코는 긴 당근을 주면서 입은 조그마한 자두를 주고 만들어 보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간격도 조화 있고 보기 좋게 만들면서 웃고 난리가 났다. 오래된 마후라를 목에 걸치고 모자를 씌워 주었다. 아이들이 눈을 손으로 뭉쳐 서로 던지고 맞고 야단법석이다. 너무 놀아 지쳤는지 눈 위에 누워 눈으로 덮어 달라고 주문한다. 아이들이 나란히 눈 이불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눈과 같이 호흡하고 눈 인양 좋아한다. 소박하지만 잊지 못할 순간들이었다. 눈 위에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누웠는데 문득 허탈함 속에서 잃어버린 일상을 되짚게 되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복권에 당첨된 사람과 큰 사고를 겪은 사람의 1년 후 행복지수는 거의 같다고 한다. 외부 자극은 일시적일 뿐 우리는 결국 익숙한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즉 행복은 어느 지점에서 얻는 무언가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다. 집안으로 들어온 손자 친구들에게 따뜻한 코코아차를 만들어 주고 서랍 속에 있는 쿠키를 내어주었다. 마시고 먹으면서 재잘거리는 소리도 귀엽고 빨개진 볼이 보기 좋았다. 오후 햇살은 창틀에 머물고 바람은 커튼을 가볍게 흔들었다. 이 평온한 시간이 행복이라는 말이 마음 깊은 곳에서 새어 나왔다. 특별하지도 않고 거창한 성취도 없는 날 그저 평화롭지만 심심한 시간 속에서 내가 나를 만나는 순간 행복은 복을 행한다는 뜻인 것 같다. 복은 하늘이 내리는 선물이고 행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행복은 삶을 누리는 능력이며 지금 이 자리에서 그것을 알아채는 감각이다. 주행 중 푸르게 바뀐 신호등, 반가운 문자 알림, 내 호의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준 친구, 행복은 그렇게 일상의 틈마다 조용히 숨어있다. 행복은 얻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삶을 감사의 눈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드러난다. 때로는 불행의 그림자를 지난 자리에 조용히 앉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행복 발견 친구 행복 순간 행복 옆집 친구들
2026.01.15. 17:40
사람 팔자는 알 수가 없다니까! 새해를 맞이해서 즐겁게 지냈고, 다음날 2일에는 중국의 특사 대표단을 만났다. 마두로는 “올해에는 온 힘을 다해 베네수엘라 경제를 부흥시키겠다” 하고 굳게 마음을 먹고서 침대에 들어가 잠을 잤다. 그런데 난데없이 미군이 들어와서 그를 체포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사람이란 내일 일을 모른다고 했는데, 바로 마두로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미군이 전격적으로 마두로를 체포해버린 것을 보고서, 푸틴(러시아 대통령)의 속마음은 어떠했었을까. 한편 부러워했겠지. 그리고 통탄했겠지! 왜 자기는 트럼프처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에, 젤린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를 전격적으로 미리 체포하지 못했었는지, 왜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는지! 크게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중국의 시진핑은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를 보고서, “아, 이것 참 좋은 아이디어구나.” 군대를 보내서 대만을 점령할 게 아니라, 트럼프식으로, 라이칭더(대만 총통) 한 사람만을 전격적으로 체포해버리면 되겠구나! 그래서 그런 작전을 짜라고 시진핑이는 군부대에 명령을 내릴지도 모를 일이다. 반면에, 잠자는 사이에 혹시 체포되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대만의 라이칭더이나 북한의 김정은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우리가 보기에 마두로가 그냥 쉽게 체포돼버린 것 같은데, 그것은 오해이다. 마두로를 그냥 쉽게 체포한 것은 결코 아니다. 치밀한 계획에 따라 체포를 했었다. 미국은 수개월 전에 중앙정보국, 국가안보국 등 요원들을 미리 보냈다. 이들은 마두로의 일과부터 반려동물에 이르기까지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해놓았다. 마두로가 잠을 자는 ‘안전가옥’을 그대로 본뜬 모형까지 제작해 시뮬레이션 하는 등 체포 작전을 철저하게 준비했었다. 트럼프의 개시 명령을 받고서 군대는 기습 공격했다. 총 150대 이상의 전투기, 폭격기 등 항공 자산이 동원됐다. 체포부대가 카라카스(수도)에 접근하자 합동 공군부대가 베네수엘라 방공시스템에 폭탄을 던져 무력화시켰다. 체포부대는 3일 오전 1시 1분 마두로의 은신처에 도착했다. 마두로 은신처 문을 폭파했다. 마두로 대통령이 있는 곳까지 3분 만에 도착했다. 건물 진입 약 5분 만에 신병을 확보했다. 침실에서 자고 있던 마두로 부부를 체포해서 미국함대로 옮겼다. 트럼프 대통령의 작전 개시 명령을내린 지 143분 만에 작전은 끝났다. 체포과정에서 저항도 치열했다고 했다. 마두로 대통령의 경호 인력과 민간인을 포함해 약 8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미군 사망자는 없다고 했다. 마두로가 체포된 이유는 마두로가 마약을 미국에 몰래 밀수했다는 것 혹은 베네수엘라 석유를 뺏기 위해서라는 것 혹은 중국의 남미 진출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것, 그런가 하면 금년도 중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마두로를 체포했다는 설도 있다. 아마 다 맞는지도 모른다. 내가 흥미를 가진 부분은 옆 나라를 침공해서 점령하고자 하는 독재자들에게 이번 트럼프의 기습작전은 아마 아주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주고 있지나 않았나? 하는 게 나의 관심사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기습작전에 성공했다고 해서 다른 독재자들이 그리 쉽게 성공하리라고는 나는 믿지 않는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푸틴 통곡 마두로 대통령 마두로 은신처 마두로 부부
2026.01.13. 20:27
연말이 되어 Albany 근교에 사는 아들 Danny가 다녀갔다. 오기 며칠 전부터 전화로 이번에 엄마를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며 크게 기대할 만하다고 나를 들뜨게 했다. 그가 집에 도착해 집 앞에 주차하고 짐을 꺼내려 차 문을 여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한 마리의 거대한 독수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할 태세를 취하는 물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매의 날개 문(Falcon Wing Door)을 가진 테슬라 SUV 신형 모델 X였다. 이 차는 독특한 방식의 디자인으로 뒷문이 위로 열리며 이는 마치 매가 날개를 펼치는 모습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더욱 놀란 것은 출발에서 도착까지 거의 3시간 동안 완전 자율 주행에 주차까지 맡기고 왔단다. 그는 테슬라를 한 5년 동안 애용해 왔지만, 이번 모델은 완전히 업그레이드되어 그에게 이제 운전이란 game changer가 되었다며 신바람이 나서 행복해했다. 그러면서 시승을 적극 강요(?)했다. 2.5초 내 시속 60마일의 속도를 낼 수 있다며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나는 현기증에 아찔했다. 그가 말한 깜짝 선물이란 내가 좋다고만 하면 최신형 테슬라를 사주겠단다. 이제 엄마는 나이 들어 운전하기 싫을 때도 있고 특히 밤 운전이나 궂은 날씨에 사고 위험도 있으니, 이번에야말로 차를 바꿀 최적의 기회가 아니냐며 나를 설득하려 땀을 흘리고 있다. 한 30분 정도 시승해 주면서 테슬라 판매원보다 더한 테슬라 홍보대사가 되어 이 차를 팔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팔고 있었다. 그때였다. 자율 주행하던 차가 갑자기 적색 신호등에서 파란색으로 바뀌자 갑자기 차가 턱에 걸린 듯 덜컹덜컹하며 멈칫댄다. “OMG, What happened?” 나는 소리쳤다. Danny는 “Nothing” 하며 옆에서 들어오는 길에 적색 신호등이 있어 차가 순간적으로 혼동했지만, 곧바로 스스로 알아차려 다시 주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난 순간 본능적으로 가슴이 철렁했다. Danny는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당황하지 말고 main screen으로 들어가 해결책을 찾으라고 한다. 난 바로 Danny에게 너의 성의는 백번 고맙지만, 이 선물은 사양하겠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Danny는 나에게 천천히 생각해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며 포기할 기세가 없다. 기계는 배우면 되고 몸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니 조급해하지 말라 한다. 일단 몸에 익숙해지면 말 잘 듣는 비서처럼 충분히 가치가 있다며 전혀 물러설 기세가 안 보인다. 영어 속담에 ‘You can’t teach an old dog new tricks’직역하면 나이가 많거나 기존 습관에 익숙한 사람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치거나 변화시키기 힘들다는 의미다. 이 속담이 지금, 이 상황에 딱 맞는 말이다. 특히나 운전처럼 사람의 목숨과 관련이 있는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나처럼 나이가 들어 운전 경력이 있는 사람은 직접 손은 핸들에 발은 가속 페달이나 브레이크에 놓을 때 비로소 안심된다. 요즘엔 한 달이면 전에 일 년과 맞먹을 정도의 새로운 기술이 쏟아져나온다. 전혀 무시하고 아날로그식으로 살 수는 없지만 최신형 테슬라 모델 X SUV는 감히 내가 시도해 볼 엄두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Danny는 이 차의 빼어난 장점과 편리함을 계속 주장하지만 나는 왠지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해결하기 전에 공황 상태에 빠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결국 이 차는 전기차다. 만에 하나 Power를 잃으면 모든 기능이 정지되고 이 차는 거대한 쇳덩어리의 괴물이 된다. 얼마 전에 함께 운동하던 친구가 갑자기 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 친구는 심한 폭풍우로 집에 정전이 되어 차고 문을 열 수 없어 차를 쓸 수가 없었다고 했다. 젊고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즐길 수 있으련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자신이 안타깝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하나의 지혜라 믿는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thank thank you no thank 최신형 테슬라
2026.01.12. 22:23
가게 가까이에 사는 지인이 점심시간에 맞추어 하얀 쌀밥에 시금치나물과 무나물을 보자기에 싸 들고 왔다. 밥에서 김이 나오고 시금치나물과 무나물 위에는 깨소금이 뿌려져 있다. 지인이 반찬 위에 뿌려진 깨소금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깨소금의 뜻? 뭐 깨소금에는 소금이 안 들어가지만 풍미를 돋우지 않나. 요즈음에는 소금 들어간 깨소금도 있을까. 나는 빈약한 지식을 주절주절 읊었다. 내가 답다운 답을 내놓지 못하자 지인은 시금치나물을 가리키며 이 깨소금은, 이 시금치나물 네가 처음 먹는 거라는 뜻이라고 했다. 나를 위해 지금 막 만든 음식이고 이렇게 톡톡 뿌려 놓으니까 막 완성한 것 같고 먹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요리한 사람의 마음. 아 대접받는 거네. 어쩐지 깨를 뿌린 반찬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곰곰 따져보면 막 조리한 온기 있는 음식에 뿌려진 깨소금은 쉽게 눅눅해지거나 향을 잃기 때문에 음식을 내기 직전에 뿌려야 그 신선한 맛과 향이 온전히 지켜진다. 그래야 음식을 만든 사람과 그 음식을 먹는 사람 사이를 향긋하고 풍미 있게 이어준다. 그렇게 푸릇한 시금치 위에 별처럼 뿌려진 깨소금을 떠올려 본다. 우선 깨소금을 뿌린 반찬이 시야에 들어오면 먹기도 전에 기분이 좋아진다. 설령 상 위에 한두 가지 반찬뿐이라고 한들 정갈하게 느껴진다.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가져오면 혀끝에 순간 음식의 풍미가 입속에서 터지듯 퍼진다. 깨소금을 씹는 오독한 식감은 또 어떤가. 깨소금은 시금치 무침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는 마음의 마지막 붓 터치가 아닐까 싶다. 깨소금은 미리 만들어둔 반찬을 대충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맛이 살아있는 최상의 상태로 차려낸 정성의 표현이다. 주인공이야 당연히 시금치지만 깨소금은 시각, 향, 식감으로 음식의 감각적인 요소를 끌어올려 원재료의 맛이 잘 전해지도록 돕는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한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먹는 이에게 가 닿도록 돕는 깨소금이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 필수 불가결의 조연이다. 깨소금에 담겨 전해지는 감성이 풍부해서 좋다. 요리에서 원재료가 가진 맛처럼 사람의 본성이 깨소금을 타고 쏟아진다. 우리 가게 손님 무하마드는 가나에서 이민을 왔다. 20년 동안 어린 딸과 함께 살았다. 아파트가 좁은지 여름옷을 가져오면 다음 해 여름에 찾아간다. 겨울옷도 마찬가지다. 궁색해 보이지만 가나가 프랑스 지배를 받아서인지 옷 모두가 프랑스에서 만든 옷이다. 집에서 세탁해도 아무렇지 않을 옷을 가게에 맡기는 이유는 세탁 방법을 몰라서일 것이다. 꼬마 딸이 커서 친구와 룸메이트로 뉴욕으로 이사했다. 항상 어깨가 축 늘어져 피곤해 보이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가 조금은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몇 주 전 바지 두 개를 가져와 급하게 세탁을 부탁했다. 웬일인지 궁금했는데 너무 좋아 싱글벙글하면서 이야기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데이트한다고 수줍어하며 웃는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젊은 청춘 혼자 외롭게 딸을 키우고 이제는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 같아 나도 기뻐해 주었다. 바지를 찾으러 왔다. 바지 주머니에 돈을 조금 넣어 아무 말 하지 않고 내주었다. 바지 위에 깨소금을 함박눈 내리듯 쏟아붓고 소낙비 내리듯 쏟아부어 주었다. 내 마음속으로.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깨소금 마음 순간 음식 바지 주머니 프랑스 지배
2025.12.31. 17:10
어느덧 올해도 끝자락에 와있습니다. 일 년 중 가장 많은 감정이 오가는 가슴 벅찬 12월입니다.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한 달 한 달 되새겨봅니다. 즐겁고 행복했던 일도 많았고 힘들고 아팠던 일들도 유난히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정신없이 달려온 올 한 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아 아쉽습니다. 오는 새해 또한 욕심부리지 않고 겸손하게 희망으로 맞으려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제아무리 노력해도 피해 가기 어려운 과제가 있습니다. 바로 생로병사! 인간은 태어나서 늙어가고 병들어 죽는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100세 시대라고 슬프게 떠들고 있지만 어쩌면 이 사실이 더 비극일 수도 있습니다. 한 독립된 개체로서 자기 몸과 영혼을 주도하지 못하고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짐이 된다면 이보다 더 큰 비극이 있을까요. 평생을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대하면서 살아온 내가 요즘에는 내 나이가 환자의 평균나이보다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움찔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은퇴하기가 겁이 납니다. 제 주변에서도 안타깝고 슬픈 소식을 자주 듣게 됩니다. 대부분의 내 환자들은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습니다. 우리는 숨을 쉰다는 자체의 고마움을 전혀 모르고 살지만, 이 환자들에 숨쉬기는 생사가 달린 절박한 문제인 것입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어서는 건강이 당연하다고 믿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몸의 여기저기서 이상 증후가 나타납니다. 아무리 고귀한 정신이라도 담는 그릇이 부실하면 의미가 없게 됩니다. 아무리 지혜롭고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그 재능은 종종 육체의 고통 앞에서 무력해지곤 합니다. 모든 지적 활동은 육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건강한 육체를 통해 꽃을 피우고 빛을 내게 됩니다. 몸이 멈추면 머리도 멈춥니다. 몸이 건강해야만 정신도 맑아지고 생기도 넘치기 마련입니다. 꾸준한 운동이야말로 중요한 지적 과업을 이루기 위한 가장 단단한 토대가 됩니다. 과도한 정신노동의 해악을 막으려면 적절한 운동과 휴식의 조절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은 일찍 도착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버리고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몸이 피로하면 신체 건강 유지에 적신호가 와 기능이 떨어지고 마음도 우울해집니다. 운동으로 육체의 근육을 단련시키듯 정신 근육의 단련도 중요합니다. 규칙적인 집중시간이 끝나면 무리하지 않도록 정신도 정기적으로 쉬게 해줘야 합니다. 적절한 휴식과 집중하는 습관의 조화가 규칙적인 리듬을 타야 합니다. 아침은 수면으로 정신이 새롭게 단장되고 아직 외부의 자극에 흔들리지 않은 고요한 시간입니다. 가장 컨디션이 좋은 시간에 가장 중요한 일을 하면 두뇌와 신체 상태가 더 좋아지고 몸에 오는 스트레스가 줄어듭니다. 휴식이 없다면 정신적 기력은 회복되지 못하고 어느 순간 무너집니다. 공감이 없다면 정서가 메마를 것이고 사랑이 없다면 삶의 모든 빛깔이 바랠 것입니다. 즐기는 마음과 유머 감각을 잃으면 젊음의 특권인 쾌활함도 사라집니다. 쉴 때는 고요한 물처럼 깊이 쉬어야 합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타협에 익숙해지는 순간입니다. 관심이나 유행에 따르지 않고 자신에 맞는 생활 방식을 찾음으로써 자신의 지적 생활을 최고 수준으로 이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정신생활을 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단력이 필요하고 자신에게 유일한 방식으로 생활을 조절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고매한 영혼의 소유자라 해도 이를 담고 있는 육체가 병들면 그 영혼은 방황하게 되어 슬픕니다. 우리는 당연히 영혼의 집을 잘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항상 당신을 가로막는 것은 당신입니다. 많이 읽고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어떻게 소화하고 활용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백번 각오하고 다짐하는 것보다 한번 제대로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혜로운 삶이란 제대로 숙성되고 발효된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단상 정신 근육 신체 건강 지적 생활
2025.12.29. 22:42
은퇴하고 나서, 내 나이 80세에 시 공부를 시작했다. 시 한 편을 쓰기 위해서 많은 시를 읽었다. 동시에 많은 소설이며 수필도 읽었다. 중앙일보에 시도 써서 발표했고 수필도 써서 발표했다. 내 생활이 바빠졌다. 이런 생활이 좋았다. 그런데 친우들을 만날 때마다, 친우들은 주식(株)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를 한다. 한 친우는 “이번에 주식을 하나 샀는데, 이게 예상한 대로 값이 팍 올랐단 말이야” 하면서 좋아한다. 어떤 주식을 사면 오를 거라는 등, 어떤 주식은 장래가 없으니까, 얼른 팔아버리는 게 나을 거라는 등,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 친구들은 주식을 사고팔면서, 삶을 즐길 뿐만 아니라, 은근히 돈도 벌고 있다. 옆에서 보기에 부럽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돈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매일 신문도 있고, 경제에 관한 책도 읽는다. 그러니 매일이 바쁘고, 매일이 흥분이다. 주식이 올라가면 기분이 썩 좋다. 주식이 내려가면 속이 상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오를 거라고 믿고 있으니, 오를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코 떼돈을 벌기 위해서 큰돈을 투자해서는 안 된다고 나에게 주의를 여러 번 준다. 이런 친우들한테 시(詩)에 관해서 이야기를끄집어낼 수가 없다. 내가 시(詩)에 대해 말을 끄집어내기만 하면, 이맛살을 싹 찌푸리고 고개를 획 돌려버린다. 그러니 이런 친구들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시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그 대신 이분들이 좋아하는 주식 이야기를 내가 들어주어야만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시 쓴다고, 내 돈 써가면서 시 공부를 하고 있다. 삼 년 전에 시집을 한 권 발간했다. 아무 누구도 사가지 않으니, 내 시집을 내가 가까운 친우들에게 메일로 우송했다. 대부분은 받았다는 소식도 없다. 서너 명만 내 시를 읽었다고 전해왔다. 두세 명만 내 시가 좋았다고 칭찬해주었다. 나머지는 내 시를 읽었는지, 혹은 쓰레기통에 버렸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시모임 회원들을 식당으로 모두 불렀다. 내 시집 발간을 축하해달라면서 내 돈으로 축하파티를 열었다. 그래서 시를 공부하고 시집을 발간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모아 내 돈 소비가 많다. 주식은 생산적인 취미인 것 같다. 이에 비해 시는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취미인 것 같다. 그런데 친우가 하는 말이, 주식을 취미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거라고 말한다. 주식은 직업이라는 것이다. 그래 맞다. 돈을 벌기 위한 것은 다 직업이다. 자기 돈을 써가면서 재미로 하는 일은 다 취미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시집을 발간해서 돈을 벌려고 하면 그것은 직업이 돼버린다. 친우가, 만약 내가 주식에 흥미가 있으면, 나를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내가 너무 늙었기에, 배우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그 대신 나는 계속 시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주식은 돈을 벌 수가 있겠지만, 동시에 아차 잘못 하면 큰돈을 잃어버릴 위험도 있다. 그런데 시는 내 돈을 써가면서 나의 삶을 즐기기에 큰돈을 잃을 가능성은 전연 없다. 하지만 재수 좋으면 시집이 잘 잘려 돈을 벌 수는 있을 수 있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삶의 뜨락에서 stock 주식 이야기 시집 발간 세계 경제
2025.12.25. 17:06
지긋이 웃으면서 나이 드신 백인 할머니가 카트에 겨울옷을 잔뜩 싫고 들어온다. 옷장 안에 걸려있는 입지 않은 옷들이다. 세탁해서 주위에 있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한다고 했다. 세탁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개의치 않았다. 우리도 입지 않은 옷들이 얼마나 많은가. 귀찮기도 하고 정리하기도 싫고 조금은 아깝다고 생각도 한다. 언젠가는 정리를 해야지 하면서도 미루다가 1년이 지나간다. 어떤 손님은 많은 옷을 가지고 세탁을 주문하면서 선불을 한다. 그리고 세탁을 해서 필요한 사람이나 홈리스에게 아니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한다. 연말이 되면 모든 사람이 가진 것을 나누며 어려운 사람들에게 조금의 보탬이라도 주고 싶어 한다. 나는 꽃을 키우는 일이 재미있다. 봄에 씨앗을 뿌려 새싹이 나오면 조그마한 화분에 옮겨 심고 여름 내내 물을 주고 가꾸어 교회나 양로원에 주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도마도 나무냐고 묻는다. 이름은 모르지만 조그만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그린 색 열매가 오렌지로 바뀌고 마지막으로 빨간색으로 변한다. 이탈리아 손님이 보고 자기 나라에서 키웠던 식물이라며 기뻐하면서 몇 개를 사서 갔다. 올해는 그 식물을 조그마한 것은 5달러 큰 것은 10달러를 붙여 가계 밖에 내놓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좋아하고 관심을 가졌다. 2달 동안에 50개 정도 팔았다. 우리 가게 옆 미국 교회에서는 매월 첫째 세 번째 토요일에 교회에서 직접 만든 콩 수프와 사과 1개, 물 한 병, 쿠키 1팩, 냅킨으로 스푼과 포크를 싸고 성경 말씀과 교회를 알리는 표지를 백에 넣어 홈리스와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어쩌다 우리 가게에 배달되어 먹었는데 수프에는 여러 가지 콩과 옥수수, 그린 빈이 들어있어 맛있었다. 그 뒤로 가끔 손님을 통해 후원했는데 꽃을 판매한 대금이 조금 모여 그것을 그 교회에 후원했다. 추수 감사절 전후로 우리 동네 홈리스들이 지난여름에 던져 놓고 간 겨울옷들을 찾으러 온다. 홈리스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옷이 있고 그 옷을 꼭 나에게 맡긴다. 그 많고 냄새나는 옷들을 여름에 물세탁을 해서 가게 뒤 울타리에 걸쳐 햇볕에 말린다. 냄새도 없어지고 뽀송뽀송 감촉도 좋다. 하나하나 박스에 넣어두었다가 찾으러 오면 내준다. 홈리스들도 가족이 있다. 명절에는 그 깨끗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어딘가에 사는 그 누구를 만나러 가는 뒷모습이 가슴 한쪽을 아리게 한다. 일 년 내내 방황하고 길가에서 구걸하지만 가슴 속에는 그 사람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다가 용기를 내어 대문을 두드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 해 동안 찾아가지 않은 옷들이 있다. 주섬주섬 챙겨 비닐 백에 넣어 놓고 홈리스 센터 담당자에게 전화한다. 매년 보내는 곳이다. 이때쯤이면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필요 없고 값진 옷은 아니어도 그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옷들이다. 무조건 사이즈가 크고 입고 벗기에 편리하면 좋아한다. 이번에는 두꺼운 재킷들이 제법 있어 유용할 것 같고 이불도 5개나 있다. 정신없이 살 거나 이사를 했거나 잊어버리고 찾으러 오지 않은 옷이나 이불이지만 하나하나 내 손끝이 만지작거린 정성을 들인 옷들이다. 그래도 누군가 입고 덮을 수 있다는 기쁨으로 짐을 꾸린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홈리스 센터 세탁 비용 가슴 한쪽
2025.12.16. 22:06
‘아니다’라는 답으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현대 의학에서는 환자와 보호자가 원하면 생의 마지막(end of life)을 고통 없이 편안하게 맞이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전문 분야로 통증 완화팀(Palliative Care)은 환자의 통증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 대부분 말기 암 환자나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통증을 치료한다. 견디기 힘든 통증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힘들 때 전문가의 도움으로 통증 문제를 해결해 삶의 질을 높인다는 의도이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를 감명 깊게 보았다. 초등학교 때 만난 이 둘은 경쟁자였다가 절친이었다가 서로 동경하다 미워하며 일생에 걸쳐 서로 얽히고설킨다. ‘선망과 원망’이라는 부제에 맞게 이들의 친구 관계는 우정, 미움, 질투, 동경을 경험하며 그들 사이에 교차하는 심층 변화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두 사람의 우정은 분노와 오해를 남기고 몇 번의 절교를 맞이하지만 무슨 악연인지 계속 또 만나게 된다. 10년의 공백을 깨고 40대에 재회한 상연은 은중에게 자신이 시한부 인생의 말기 암 환자여서 안락사를 택해 스위스로 가기로 했는데 동행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은중은 이 모든 사실을 믿지 않고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쇼를 벌이나 천대하며 밀쳐낸다. 그리고 이것은 “폭력이야”라고 외친다. 결국 은중은 상연의 요청을 수락하며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기 위해 스위스로 간다. 그들은 과거의 오해와 갈등을 서로 되짚어가며 서로의 감정을 이해해 보려 애쓴다. 그동안 묻어두었던 진실을 털어놓고 우정의 의미를 되새긴다. 홀어머니와 가난하게 살아왔던 은중은 자존심이 강하고 화사한 성격에 친구가 많았으나 반면 부잣집에서 태어나 뛰어난 두뇌와 미모를 타고났지만, 계속되는 불운한 가정사로 늘 사랑에 목마르고 혼자였던 상연은 은중과 비교하며 서로 가지지 못한 그것에 대해 선망하고 선망은 질투를 낳고 질투는 원망을 낳아 이 둘은 평생 애증 관계로 고통스러워했음을 서로 고백하고 오해를 풀어간다. 은중이 상연에게 꼭 이 선택(안락사)을 했어야만 했는지, 후회는 없는지 묻는다. 상연은 동성연애자였던 오빠의 자살과 말기 암 환자로 너무 괴로워 괴성을 지르는 엄마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자신은 이 결정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상연이 찾아간 스위스의 안락사 장소는 디그니타스(Dignitas)라는 비영리 단체다. 이 단체는 실제로 존재하며 외국인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한다. 엄격히 말하면 안락사가 아닌 조력자살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돕는다. 의사나 간호사가 약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고 환자 자신이 구강으로 마시거나 정맥주사의 밸브를 열어 수면 상태로 유도한 다음 혼수상태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디그니타스 비영리 단체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먼저 이 단체의 회원이 되어야 하며 가입비와 연회비를 내고 정신적 올바른 판단력이 있어야 하며 최소한의 체력과 이동성이 있어야 한다. 의사의 진단서와 소견서도 필요하며 간단한 자신의 일대기를 보내고 승인을 기다린다. 일단 서류로 승인되면 스위스에 가서 의사와 인터뷰를 마친 후 최종 승인을 받는다. 이 준비 과정에 따르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까다로운 과정이고 준비할 서류도 무척 많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과 큰 비용에도 불구하고 이를 선택하는 경우는 자기 죽음에 대해 자율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마지막 자존감이 아닐까? 맞다. 그 어떤 죽음에도 정신적인, 신체적인 고통이 따른다. 다만 인간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위해서 현대 의학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한 지인이 “난 죽음은 두렵지 않은데 죽을 때 고통스러울까 너무 두렵다”라고 고민한다. 아직 의식이 있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가족에게 본인의 의사를 전달하면 된다. 평생 많은 죽음을 목격해온 나 자신이 독자들에게 꼭 전달해 주고 싶은 내용이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죽음 고통 자기 죽음 현대 의학도 통증 완화팀
2025.12.15. 22:18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젊었을 때 유행되었던 ‘하숙생’노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입에서 중얼중얼 나올 때가 많다. 내 나이가 90에 가까워지니까, 잠재의식적으로, 나더러 죽음을 준비하라고 일러주고 있는 것 같다. 늙었으니까 멀지 않아 죽을 텐데. 그냥 무작정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죽을 준비를 미리 해놓은 후 죽는 게 좋을 것 같다. 준비라니? 무슨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예수는, 기독교 신자로서, 계명(살인·간음·도둑질·거짓 증언을 하지 않는 것)을 지키면, 죽어서 천당에 가서 영생한다고 말했다. 부처는, 계율(살생·간음·도둑질·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을 지키라고 했다. 살생은 사람뿐만 아니라, 어떤 생명체든 죽이지 말라는 말이다. 계명을 지키면, 죽은 후 하늘나라에 태어나거나 혹은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했다. 계명을 어기면, 짐승이나 지옥에 태어난다고 했다. 불교는 태어나고 죽고,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가면서 영원히 윤회한다고 했다. 도를 닦아서 도를 깨치면 생과 사의 윤회에서 벗어나 열반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부처와 예수, 두 분의 말씀이 다 맞는지 혹은 다 틀린지? 혹은 두 분 중에 한 분만 맞는지?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의 말씀이 옳다고 할 것이다. 반면에, 불교인들은 부처의 말씀이 옳다고 할 것이다. 태어나는 아이들을 볼 것 같으면, 어떤 아이는 미남미녀로, 총명하고 건강하고 부잣집에서 태어난다. 반대로, 어떤 아이는 우둔하고 못생긴 얼굴로, 병약하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다. 같은 사람으로서 태어나는데, 왜 동등하게 태어나지 못할까? 이왕이면 다음 생에서는, 좋은 복을 갖고 태어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이 세상은 인과법칙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선한 행동을 하면 좋은 업(Karma)을 짓는다. 나쁜 행동을 하면 나쁜 업을 만든다. 부처는 마음(생각)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마음을 곱게 먹으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곱다. 고운 마음에 고운 말을 하면, 자연히 하는 행동이 선하다. 그런데 생각(마음)이 나쁘면, 입에서 나오는 말도 안 좋다. 하는 행동도 거칠고 나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처는 항상 선한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처는 말했다. “사람으로서 사람을 죽이면 지옥이나 동물로 떨어지겠지만, 만약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수명이 짧게 태어난다. 왜냐하면 남의 목숨을 해쳤기 때문이다. 도둑질하면 가난하게 태어난다. 왜냐하면 남의 물건을 훔쳤기 때문이다. 나쁜 말을 많이 하면 추남추녀로 태어난다. 이게 다 인과법칙이다.” 다시 말하면, 다음 생(生)에서, 장수하고 싶으면 살인을 하지 않는다. 부자로 태어나고 싶으면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 미남미녀로 태어나고 싶으면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남들에 대해 좋은 말을 한다. 좋은 복을 많이 받고 태어나고 싶으면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한 행동을 많이 하면 된다. 젊었을 때 뭣 모르고 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다면? 부처는 말했다. “사람이 악행을 지었더라도 허물을 뉘우치면 차츰 엷어지나니, 날로 뉘우쳐 쉬지 않으면 죄의 뿌리는 아주 뽑히리.”(증일아함경). 나는 늙었다. 과거에 저지른 나의 잘못을 참회한다. 남들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될 수 있으면 선한 일을 하면서 여생을 살아갈 것이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기독교 신자들 사의 윤회 거짓 증언
2025.12.02. 18:24
APEC 2025 경주 정상회담에서 행해진 젠슨 황의 특별 연설은 대한민국 국민을 가슴 벅차게 만든 순간이었다. 그는 한국을 AI 주권 국가로 평가하면서 한국은 소프트웨어 역량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며 그 개발자와 IT 인프라를 소유하고 있다. 제조 경쟁력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로봇 분야에서 글로벌 표준을 선도하고 있다. AI 기술력은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인공지능 산업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한국은 혁신 DNA를 가진 나라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AI 생태계가 있다. 기술의 혁신은 문화와 사람이 함께 할 때 완성된다. AI 미래는 로봇이 로봇을 조율하고 로봇 제품을 제조하는 공장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로봇이 되는 시대가 된다. 전기와 인터넷이 필요하듯 전 세계에 AI 공장이 세워질 것이며 한국이 가장 많은 AI 인프라를 보유한 국가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안개 속에 싸여 있는 단어, AI라는 단어만으로도 울렁증이 오고 더는 피할 수 없어 결국 ‘AI 강의 2025’ (박태웅)을 집어 들었다. 책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 본다. 2022년 11월 챗GPT 등장 이후 우리의 일상생활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이 책은 인공지능의 기본 원리를 쉽게 설명하고 AI 트랜드에 대해 깊이 있게 소개하면서 AI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전망한다. AI를 이끄는 세계적인 엘리트들의 사상적 배경과 이 분야에서 활약하는 리더들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포럼 내용과 논문을 링크로 실어 신뢰도를 높였다. AI가 우리 삶에 미칠 실질적인 영향을 6가지로 풀어간다. ①운영 체제화된 AI는 더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모든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가 AI와 함께할 것이며 AI는 우리의 일성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이다. ②맥락 인터페이스 (Contextual Interface)는 정보 검색의 시대를 지나 이제 AI는 맥락을 파악해 스스로 정보를 분류하고 처리하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발전한다. ③AI는 이제 인간의 모든 직업에서 필수적인 파트너로서 단순한 보조 역할을 넘어 인간과 AI가 협력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④AI는 이제 Multimodal AI로 텍스트, 이미지, 음성, 동영상 등 다양한 형식을 동시에 처리하고 GPT-4를 넘어선 차세대에는 AI Multimodal 에서 Omni modal로 발전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⑤AI 성능은 더욱 저렴해지고, 더 빨라지고 더 작아지고 있다. 개인용 AI 에이전트가 보편화되고 스마트 폰에서도 AI가 강력하게 작동한다. ⑥휴머노이드 (Humanoid) AI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보고 듣고 움직이며 학습 능력을 갖추게 된다. 저자는 AI가 사회에 미치는 부작용과 데이터 편향, 개인정보 침해 등의 문제점을 심도 있게 다루며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책임 있는 관리와 통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또한 한국이 미친 속도로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으며 세계 최고의 양상 기술을 가진 제조 강국이 되어 ‘눈 떠보니 선진국’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제 한국이 원천 기술과 기초과학의 빈약함을 지적하고 능력 있는 인재들을 해외에 뺏기지 않고 잘 돌봐줄 정책이 심각하다며 ‘눈 떠보니 후진국’이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AI는 입력된 데이터로 잠재된 패턴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기계이다. 입력된 자료만으로 일을 처리하는 AI보다 4살의 어린아이가 훨씬 많은 정보를 얻는다고 한다. AI는 입력된 단어 숫자를 바탕으로 지능이 활성화되지만 4세의 어린이는 깨어 있는 시간 내내 두 개의 눈으로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만큼의 정보가 축적되기 때문이다. AI로 대체되는 직업이 많아질 거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AI로 인해서 창출되는 직업 또한 기대된다. AI 다음 세대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로 스스로 코딩해서 문제 푸는 방법 자체를 배운다. 인간은 머릿속 정보를 타인에게 직접 전달하지 못하지만, AGI에서는 인공 신경망의 데이터를 복사함으로써 정보교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참으로 놀랍고도 두려운 세계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혁명 인류 인공지능 산업 맥락 인터페이스 ai 미래
2025.12.01. 20:59
사람들은 말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있다.” 그래서 오늘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게 맞는 말일까? 호랑이는 포식동물이다. 배가 고프면, 먹이를 찾으러 다닌다. 그리고 잡아서 먹는다. 배가 부르면 빈둥빈둥 논다.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다시 먹이를 찾으러 다닌다. 내일이라는 게 없다. 내일 먹을 양식을 미리 준비해놓지 않는다. 호랑이는 오늘 일해서 오늘 먹고 그리고 오늘을 즐기면서 오늘을 살고 있다. 하지만 어떤 날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기도 했었을 것이다. 반면에 다람쥐는 다르다. 내일(겨울)의 양식을 저축해놓기 위해서, 다람쥐는 오늘을 열심히 일한다. 땅을 파고, 나무 구멍을 찾아다니며 도토리를 모은다. 다람쥐는 내일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것이다. 다람쥐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사는 것이다. 호랑이는 늙어지면, 사냥하지 못한다. 그래서 굶어서 죽는다. 다람쥐는 늙어지면, 아파서 죽는다. 혹은 다른 포식자에게 잡혀 죽어도 결코 배가 고파 굶어서 죽지는 않는다. 다람쥐처럼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랑이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오늘 공부하면서도, 어떤 학생들은 졸업 후의 삶을 계획한다. 졸업한 후, 사회에 나와서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어서 잘 먹고 잘살 수 있을까 하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오늘 열심히 공부하면서 실력을 쌓고 있다. 쉽게 말하면 다람쥐처럼 내일을 위해서 오늘 열심히 사는 것이다. 호랑이처럼 사는 학생들도 물론 있다. 나도, 학교 다닐 때 미국에 올 꿈을 꾸었었다. 밤늦도록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했었다. 다행히도 미국에 올 시험에 합격했었기에 미국에 이민을 올 수가 있었다. 미국에 와서도, 내 실력을 쌓기 위해서, 또한 매일 부지런히 일했다. 어떤 노인들은 늙었어도, 내일을 위해서, 오늘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친우들에게 그냥 주기도 하고 혹은 팔기도 한다. 어떤 노인들은 시 공부를 한다. 앞날 시집을 발간하기 위해, 오늘 열심히 시를 쓰고 있다. 오늘도 중요하고 내일도 중요하지만, 내일을 위해 사는 오늘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내일을 미리 준비해놓아야 삶이 윤택해지고 또한 인생발전을 가져올 수가 있는 것이다. 나의 시 한 편을 여기에 적는다. “꽃이 핀다 아름답다 그러나 꽃은 오늘의 아름다움을 위해 피지 않는다 벌을 부르기 위해 벌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온 힘을 다해 피어 있는 것이다 오늘의 아름다움은 내일의 열매를 위한 과정일 뿐 아름다움조차 목적이 아닌 생명의 이치다.” -‘꽃이 핀다’ 전문 꽃의 아름다움은 벌을 유혹해서, 내일의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내일을 위한 삶을 살다 보면, 우리는 자기의 삶에 의미(意味)를 갖는다. 내일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내일을 위한 일을 오늘 해야 하니까, 삶이 더 바빠질 수밖에 없다. 토마스 머튼은 “즐겁게 살 돼 아무렇게나 살지는 말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내일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즐겁게 살 돼, 아무렇게나 살지는 않을 것이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조교수삶의 뜨락에서 앞날 시집 나무 구멍
2025.11.18. 17:36
5만9000명이 참가한 축제의 뉴욕시티 마라톤 대회 날이다. 나에게는 연중행사다. 14241 번호표를 받아들고 20번째 출전이다. 햇빛이 빛나는 그야말로 좋은 날씨다. 15번 이상 뉴욕마라톤 메달을 받은 사람들은 많은 특혜 중에서도 허허벌판 추운 곳에서 기다리지 않고 체육관에서 따뜻한 커피, 물, 베이글 등 먹을 것과 화장실도 있어 편안하게 쉬면서 기다릴 수 있다. 베라자노브리지 중간쯤 가면 2~3시간대 뛰는 젊은이들이 쏜살같이 지나가면 나의 독무대였다. 사진 찍고 연기를 하면서 경관들과 담소하고 추위도 잊어버리고 달렸는데 올해는 전혀 다른 광경이 벌어졌다. 기부자들에게도 제일 먼저 출발하는 특전을 부여했다. 그분들은 마라톤을 연습하고 달리는 힘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한 번쯤 마라톤이 어떤 것인지 또 그 환경과 이치를 알기 위해서 참가한 사람들이다. 브루클린 4가에 들어서니 또 빨리 달리는 다른 팀이 오고 있다. 그 무리를 따라 스피드를 내다보니 숨이 차올랐다. 바로 스피드를 줄이고 내가 연습한 상태로 몸을 조절했다. 포니테일이 달랑거리고 짧은 바지에 소매 없는 셔츠까지 그래도 등 뒤에서 땀이 흐른다. 1마일마다 물을 공급해 주는데 그냥 스치고 앞만 보고 달리는 젊은이들 무리에 힘을 받는다. 3시간대 달리는 사람들은 연습도 많이 했고 마라톤에 진가를 터득한 마니아들이다. 뉴욕마라톤 한 번 완주하는 것이 다른 마라톤 대회보다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첫 번째 완주한 사람들의 반은 계속해서 마라톤을 이어가고 나머지 반은 포기한다고 통계에 나와 있다. 작년에 나에게 꽃을 사 온 켈리는 운 좋게 당첨되어 뛰었는데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 회사 일도 바쁘고 연습도 어렵고 코스가 언덕이 많아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도전 정신을 배웠고 아주 좋은 인생 경험과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젊은 청년이 갑자기 쓰러졌다. 길가에 반드시 눕히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도와준다. 눈을 감고 몸을 옆으로 당겼다가 느슨하게 풀고 움직여보지만 얼굴색이 변하고 호흡곤란으로 힘들어하는 사이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당뇨병 환자가 당이 떨어져 털썩 주저앉은 것은 보았지만 젊은 청년이 쓰러지는 것은 처음 보았다. 자기 스피드보다 빨리 뛰거나 호흡 조절이 안 되어 다리에 쥐가 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젊은 남성들이 뛰다가 전봇대에 기대어 다리를 스트레칭하거나 다리 운동을 하면서 걸어가는 경우도 있다. 퀸즈브리지 앞이 14마일이다. 그때는 허기를 느낀다. 친구가 모지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맛있고 긴요한 요기인지 모른다. 입가에 모지 하얀 설탕 가루가 묻어있는 것을 보고 바로 옆에 있던 백인 남자가 티슈를 내민다. 감사함과 포만감으로 쉽게 다리를 건너 1가에 도착했다. 응원 함성이 저절로 등을 미는 것 같다. 날씨도 좋아 양쪽 길을 빼곡히 메웠다. 76가에서 식구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응원 열기로 브롱스를 향해 전진한다. 길가에서 물을 나누어 주는 자원봉사자들도 피곤을 모르고 물컵을 내밀면서 응원한다. 두 다리 대신 의족으로 달리는 사람 다리 하나와 크러치를 이용해서 달리는 사람, 한 사람은 휠체어를 밀고 두 사람은 양옆에서 보호하면서 휠체어에 앉아 두발은 열심히 걷는다. 장애인 팔을 자원봉사자 어깨에 얹고 끌리다 걷다 반복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종점을 통과하는 사람, 다리가 아파 기어서 마치는 사람, 절룩거리면서 뛰고 걷고 자원봉사자가 밀고 앞에서는 당기고 그래도 환한 웃음으로 끝마치는 사람. 이 모든 이들을 “You are amazing”이라고 함성을 지르는 응원객 틈에 끼어 두 손을 번쩍 들고 전광판을 보니 7:00:22가 나를 반긴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amazing 이상 뉴욕마라톤 마라톤 대회 뉴욕시티 마라톤
2025.11.10. 22:04
Burning Man을 공부하면서 Default World라는 단어와 조우하게 되었다. 이 단어 또한 엄청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원래 디폴트란 단어는 기본 설정값을 의미한다. 경제적으로 채무 불이행으로 쓰이고 컴퓨터에서는 초기 설정값, 게임에서는 기본 설정을 의미한다. 원래의 뜻은 이렇지만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고 많은 신조어를 낳기도 한다. Burning Man의 주제는 탈 사회 문화예술 축제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 Default World에서 벗어나 무한한 가능성을 재량껏 표현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이벤트다. 난 요즘 버닝맨의 증후군을 앓고 있다. 조금만 일찍 이 행사를 알았더라면 주저 없이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핑계일지 모르겠지만 열악한 환경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사막 지대에서 밤낮 기온이 낮에는 100도 이상의 불볕더위와 뜨거운 모래 폭풍이, 밤에는 서늘한 기온으로 극심한 일교차를 보이고 2023년도에는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행사가 엉망이 되고 진흙 축제가 되기도 했다. 주거시설은 텐트나 캠핑카를 직접 마련하고 식수, 음식, 잠자리 등 기본 생필품을 준비하고 모래 폭풍에 대비해 고글과 마스크는 필수품이라고 한다. 화장실과 목욕시설이 불편한 환경에서 내가 과연 일주일을 견뎌낼 수 있을까. 그렇다. 우리는 이미 디폴트 세상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와 생년 월일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리고 부모님의 보호 아래 또 그들의 가치관에 따라 교육받고 양육되어 진다.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유독 인간만이 한 개체로 독립하기까지 제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16년의 학창 시절을 보낸다. 그 후 전문직을 위해 더 공부하거나 아니면 직장을 구한다. 마음 맞는 상대를 찾아 결혼하고 애 낳고 그렇게 Circle of Life는 계속된다. 우연히 좋은 부모 만나고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다면 그것은 당신의 운이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족한 환경에서 태어나 더 노력해서 성공한 사례가 훨씬 많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은 우리가 디폴트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규격화(pre set world) 되어있는 디폴트 세계에서 끓어오르는 창작열을 주체하지 못해 분출구를 찾는 이들이 버닝맨이다. 버닝맨 축제에 참석했던 사람을 버너(Burner)라 부른다. 버너들은 디폴트 세계에서 불협화음이나 부조화를 경험하고 버닝맨 축제에 열광하고 기대한다. 버너들은 축제가 끝난 뒤 디폴트 세계에 돌아가는 것을 힘들어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세계에서 현실 세계로의 복귀는 또 다른 후유증을 유발한다. 심할 때는 우울증(Post Playa Depression)에 빠지기도 한다. 갑자기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기도 한다. 그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들만의 감정에 갇혀 살기도 한다. 이들을 위한 모임이 지역사회에서 활발하게 활성화되어 있다고 한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새로운 세계, 흥미로운 세계를 알게 되어 이 축제를 알려준 그 친구에게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모르고 죽을 수도 있었으니 나는 행운아다. 정말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알게 마련이다. 하루살이는 이 세상 모든 생물이 하루살이라 믿고 우물 안 개구리는 보이는 하늘이 전부라고 믿는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이 코끼리 뒷다리 정도에 해당하지 않는지 생각하니 두렵기도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 이미 세상은 AI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인간의 두뇌 자원은 무궁무진해서 지금도 두뇌의 10% 정도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하니 앞으로 어떤 세계가 열릴지 크게 기대된다. 우리는 이제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기에 벅찬 나이가 되었지만 이미 탄 기차에서 하차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답은?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default world default world 디폴트 세계 버닝맨 축제
2025.11.03. 21:47
지인 중에 정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있다. 나의 경우는 별명이 교과서였고 항상 teacher’s pet으로 살아왔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알고 있는 세상 밖에 호기심과 관심이 더 많이 갔고 그 세상은 무한대임을 배우게 되었다. 지금도 나의 기본 생활권은 모범생의 틀에 갇혀있으나 나의 내부에서는 항상 새로운 경험과 변화를 원한다. 가끔 나에게 주어진 의무에서 벗어나 나의 내부에서 원하는 beat에 따라 행군하고 싶을 때가 많다. 나는 현재에 충실하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주어진 삶을 열정적으로 살고 두려움 너머 호기심을 갖고 제한을 넘어 자유롭게 도전해 보는 삶이 바로 free spirit이 아닐까. 결국 혼자일 때 편안해서 생각하고 창조하고 내부 세계를 탐험할 수 있어 자신을 찾고 내부 성장을 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 지인한테서 갑자기 메시지가 날아왔다. “I am going to Burning Man!!! I can’t wait. It’s going to be a feast of the eyes!” “Burning Man?” 뭐지? 어느 장소인가? 아니면 어떤 행사를 말하는 건가? 처음 들어보는 단어여서 바로 구글 해 보았다. WOW! Burning Man에 대해 줄줄이 나오는 정보에 계속 놀람의 연속이었다. 내가 어떻게 지금까지 이런 행사를 모르고 있었지? 호기심이 많은 나는 항상 나의 오감과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많이 보고 듣고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편이다. Burning Man Festival은 198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고 매년 8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서 노동절까지 미국 네바다주 Black Rock Desert에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생활 공동체인 도시를 세우고 행사가 끝나면 단 한 점의 쓰레기도 남기지 않고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참여자들은 거대한 건축물과 독창적인 조형물을 세우고 예술 작품을 창조하고 개성 있는 운송 수단을 만든다. 행사 마지막 날 전야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조형물을 태우면서 하늘 높이 치솟은 불길과 함께 분위기는 절정에 이른다. 이 의식은 우리의 삶은 소유가 아닌 경험을 중요시함을 상징한다. 혁신적인 기업문화를 창출한 구글의 두 창업자,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등이 좋아하는 축제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다양성과 창의를 추구하는 실리콘밸리의 정서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그 외 할리우드 스타들, 전위 예술가, 음악인, 댄서, 요기들이 자기표현에 전력투구한다. 참여자들은 태어나면서 저절로 속하게 된 세상을 벗어나 내가 스스로 선택한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세상을 추구하는 이들이다. 여기서는 무엇을 표현하든 자유를 보장받는다. 참가자들은 수동적이 아닌 적극적인 행위자가 된다. 해마다 7만 명 이상의 엘리트와 예술인이 허허벌판인 사막에 신기루와 같은 도시를 건설한다. 주최 측에서는 간이 화장실, 긴급 의료지원, 얼음과 커피를 제공하고 화폐는 통용되지 않는다. 오직 아이디어, 발명품, 창작 활동으로 물물교환이 가능하고 매일 밤 열리는 파티에서 자유롭게 교류한다. 어떤 이는 이를 탈 사회 문화예술 축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곡을 연주하고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곳곳에 댄스클럽과 요가 강의도 있다. 참가자는 각자 잠자리 (Motor Home, 혹은 텐트)와 음식을 준비한다. 낮에는 100도 이상의 폭염과 밤의 냉기에 알맞은 옷가지들과 모래폭풍을 견디기 위한 고글과 마스크는 필수다. 그렇다면 이토록 적대적인 환경과 만만치 않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열광할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 눈과 뇌를 자극하는 예술 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 공간과 그들을 편견 없이 보아줄 관객이 있다는 사실에 모두 매혹되고 압도당하기 때문이다. 사막에 가능성의 문화를 경험하고 꿈꾸는 자와 행동하는 자에게 힘을 실어준다. 오늘, 이 축제에서 돌아온 이 지인과 꿈같은 시간을 가지면서 free spirit의 그녀가 한없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spirit free free spirit burning man 사회 문화예술
2025.10.13. 18:57
아마 삼사년 전인가 보다. 어떤 총장이 65세에 은퇴했다. 그리고 이럭저럭 살다 보니 어느새 95세가 되었다. 은퇴 전에 총장은, 무엇을 해야겠다 하고 인생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서 열심히 연구하고 일했다. 그래서 총장까지 되었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서, 아무 일도 뚜렷하게 해놓은 게 없이 그냥 95세가 되어버렸다. 지난 30년을 허송했다고 그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러면서, 우리더러는 은퇴하거든 즉시 무언가 목적을 세우라고 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번에, 10명 이상의 시니어 노인들이 시를 공부하겠다고, ‘뉴욕 중앙 시문학’에 참여했다. 장한 일이다. 여생을 허송하지 않고, 그 대신, 무언가 해보겠다는 의욕이 좋다. 대부분의 시인은 어렸을 때부터 즐겨 시를 읽었고 어려서부터 시를 써오고 있다. 하지만 늙은 나이에 시 공부를 시작해도 절대 늦지 않다. 우리가 시를 쓰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시로 표현하고 싶어서, 그리고 깊이 쌓인 원한과 분노를 시로 노출해 승화시키자는 것이다. 시를 써서 유명해지고 싶겠지만, 유명해지려고 일부러 애를 쓰면 좋은 시는 써지지 않을 것이다. 그냥 쓰고 싶어서, 좋아서, 시를 쓰다 보면 좋은 시가 저절로 써지는 것이다. 하지만, 늙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해서 유명해지지 않으란 법은 또한 없다. 일본의 시바타 도요(1911~2012)는, 아들의 권유로, 92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아들은 문학인이었다. 아들은 매주 토요일에 어머니를 방문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써놓은 시를 놓고, 둘이서 토론을 해가면서 시를 수정했다. 그녀가 죽으면 장례비용으로 쓸 그 돈으로, 98세에 첫 시집을 발간했다. 그게 일본에서 100만 권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 그리고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그러니 약해지지 마”라고 그녀는 힘차게 말했다.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라는 그녀의 말이 내 마음에 든다. 나도 80세에 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85세에 첫 시집을 발간했다. 그래, “인생이란 지금부터야”라는 말은, 아무리 늙었어도, 지금이라도 시를 쓰겠다고 마음을 즐겁게 먹고 시를 쓰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좋은 결실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시 공부를 시작할 때, 왜 내가 시 공부를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목표가 뚜렷하면, 시를 쓰다가 괴로울 때 중단하지 않는다. 계속 시를 쓸 가능성이 높다. 시작부터 자기 마음에 드는 시를 쓴다는 게 쉽지는 않다. 자기 마음에 드는 시가 안 써질 때는 고민이고 고통이다. 어떻게 처음부터 좋은 시가 써지겠는가. 시간이 걸린다. 나부터도, 시가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왜 내가 이런 고생을 해야 하지? 그만둬버릴까 하고 여러 번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다가 며칠 지나면 내 생각이 달라진다. 이전에 내가 시를 썼지 않았나, 전에 내 마음에 드는 시를 썼으니까, 좀 기다리면 다시 쓸 수가 있겠지 하고 스스로 위안을 한다. 모든 창조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고통 없이 어떻게 시를 창조해낼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고통은 오래가지 않는다. 하나의 시를 완성하고 나면 그만한 기쁨이 꼭 따라오기 마련이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공부 인생 목표 자기 마음 원한과 분노
2025.10.08. 2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