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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학생 배척은 국가적 자해행위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시작된 미국 정치의 깜짝 쇼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중 가장 해괴한 것은 하버드 대학과 벌이고 있는 전쟁이다. 미국의 많은 일류 대학과 전반적 지식층 분위기가 그렇듯이, 하버드 대학은 트럼프 정권에서 미워하는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진보적 정책들을 취소하라는 정부의 요구에 하버드는 순순히 응하지 않았고 트럼프 정권은 그것을 찍어 눌러서 본보기로 삼겠다는 결심을 한 듯하다.   연구비 지원 중단으로 시작하더니, 이제는 하버드 대학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받지 못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은 일단 법원의 비상 개입으로 집행이 중지되었는데 정식 재판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유학생을 받을 수 없다면 연구비를 잃는 것보다도 더 심각한 위기이다. 하버드처럼 재정이 풍부한 대학에서는 필요하다면 자체적으로 연구비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학생을 없앤다면 그것은 대학의 정체성 그 자체를 바꿔버리는 일이 된다. 한국과 달리 미국의 일류 대학은 전 세계에서 훌륭한 학생과 교수들이 오는 것을 큰 자랑으로 생각한다. 그러한 외국인들을 환영하고 포용함으로써 이루어진 국제적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을 진정한 고등교육의 중요한 측면으로 여긴다. 그러한 세계적 차원을 말소하겠다는 협박은 대학교를 뿌리부터 흔들겠다는 의도이다.   외국인이 필요 없다는 충동적 생각은 트럼프식 정치의 핵심이다. 며칠 전 미국 국무부는 세계 각국에 있는 미국 대사관과 영사관에 유학생 비자 인터뷰를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비자 신청자들의 사상과 언행을 속속들이 점검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이 준비될 때까지 신규 비자를 발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중국 유학생들은 다시 심사하여 이미 받은 비자도 취소할 수 있다는 협박까지 하고 있다.     트럼프가 가진 유학생의 이미지란 공부는 안 하고 좌파적 선동을 일삼는 미국 혐오자들이다. 사실과는 동떨어진 생각이며 인종주의와 배타주의의 표출에 불과하다.   이러한 배타주의는 국가적 자해행위라 볼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 꿈을 품고 이민과 유학을 왔던 외국인들은 미국 과학기술의 눈부신 성장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인슈타인을 필두로 나치 정권 아래의 유럽에서 도피한 수많은 유대인 과학자들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2차대전 후에는 나치 정권과 협력했던 과학자들도 흡수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예는 로켓 공학의 선구자 베르너 폰 브라운이다. 정치적 성향에 상관없이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몽땅 흡수했다.     세르비아 출신의 전기공학자 테슬라는 20대 후반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유명한 에디슨의 회사에서 일하다가 독립하여 교류 전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고 여러 가지 기발한 발명품도 남겼다.     요즘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머스크가 소유한 전기차 테슬라 회사는 이 사람을 기리며 명명한 것이다. 머스크 자신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유학생으로 미국에 처음 왔고 그 후에 사업을 하며 정착했다.   이주민을 배척하는 배타주의는 과학의 기본 정신과 정반대이다. 경제적으로 볼 때 외국인들을 들여와서 필요한 일을 시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지만 과학에서 이루어지는 국제적 교류는 그 차원을 넘어선다. 자기의 연구에 필요한 배경 지식이나 기술적 설비는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 내었는지에 상관없이 수입한다. 과학이 가장 발달한 곳을 보면 인간관계도 국경 없이 이루어진다. 최고의 학생들과 연구자들을 차별 없이 모집하고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 협업하고 교류한다.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훌륭한 선생과 학교·연구소를 찾아 지구 곳곳으로 다닌다. 그러한 개방성이 없는 집단이 하는 과학연구는 곧 한계에 부딪힌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유학생이란 과학의 생태계에 아주 긴요한 일원이 된다. 자연과학뿐 아니라 다른 학문과 산업들도 이런 모습으로 발전한다.   하버드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하버드는 단순히 좋은 학교가 아니라 온 세계가 왜 미국을 부러워하는지를 상징한다. 하버드가 대표하는 미국의 고등교육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을 이해하고 미국을 사랑하게 된다. 그것은 미국이 누려온 ‘부드러운 힘(Soft Power)’에 크게 보태주는 역할을 해 왔다. 필자의 아버지도 패기만만한 젊은 공무원 시절 미국 정부 지원을 받아 하버드 법대 대학원에서 1년 동안 연수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그 후로 일생동안 미국에 대한 예찬과 애정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이런 사람들이 박혀 있다. 그런 전통과 그의 위력을 잘 알지도 못하고 파괴하려는 트럼프 정권의 작태를 보면 서글프기 그지없다. 장하석 / 케임브리지대 교수기고 자해행위 유학생 외국인 유학생 하버드 대학 트럼프식 정치

2025-06-11

[기고] 알래스카 천연가스 개발, 한국의 선택은

대한민국호는 불안정한 정치에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협상 압박 요구로 고뇌가 깊다. 이 가운데 알래스카의 천연가스 개발 프로젝트가 관세 압박을 풀어갈 대응 카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도 개발이 언급되었던 ‘ANWR(Arctic National Wildlife Refuge)’ 지역이 핵심이다. 이 지역은 알래스카 북극해와 연결되어 있으며, 캐나다 국경과도 접해 있다.   무엇보다 이 지역은 미국 내에서 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천연 상태 그대로의 가장 큰 생태 보호 지역이다. 따라서 천연가스 개발 추진 시 필연적으로 지구 환경 보호라는 첨예한 정책 이슈가 부상할 것이 예상된다.   천연가스 개발에 따른 수송 방식은 원유와는 다르다. 원유는 점성이 높아 파이프라인 내 유속 유지를 위해 사람 체온 수준으로 데워서 약 1500km 구간을 수송하며, 이를 위해 13개의 펌프 스테이션이 건설되었다 (트랜스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TAPS 사례). 반면, 대량의 천연가스를 효율적으로 수송하려면 압축 및 액화 과정이 필수적이므로 대규모 액화 장치와 시설이 요구된다. 현재 알래스카 내에서 진행 중인 ALASKA LNG 프로젝트처럼,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및 부대시설에는 예상 이상의 막대한 예산 투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주목할 점은 과거 1975년부터 1977년까지 건설된 원유 파이프라인에 필요한 강관을 전량 일본 제철소가 수주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태동기였던 포항제철은 입찰 참여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제 새롭게 추진될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관련 입찰에서는 한국 제철소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최근 포항제철이 중국의 저가 공세로 일부 고로 가동을 중단했다는 소식은 이러한 기대감에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한편, 1977년 당시 이 지역 개발 시도에 따른 후유증은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예를 들면 트럭 바퀴 자국 조차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 지역과 같은 극지 생태계는 자연 복원력이 극히 미미하여, 한 번 파괴되면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 손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형태를 갖춘 치즈가 열을 받아 녹으면 다시 원래 형태로 돌아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천연가스 개발로 인한 환경적 후유증은  어쩌면 영구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 동토층 융해 가속화, 대규모 온실가스 방출, 동식물의 생존 위협, 원주민 삶의 터전 파괴 등 그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만약 한국이 ANWR 천연가스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러시아 야말 반도 사례와 유사하게 북극해를 통한 가스 수송을 위한 대규모 접안 시설 건설이 필요하다. 삼성중공업이 러시아에 공급한 쇄빙 LNG선처럼, 한국의 세계 최고 수준 LNG선 기술이 활용될 수 있다는 기회도 있다. 다만, 이 지역 북극해 연안은 대륙붕이 발달해 있어 크루즈선과 같은 대형 선박의 접안을 위한 대규모 준설 작업, 즉 심수항(deep draft port) 건설이 필수적이다.   알래스카 ANWR 가스 개발 참여는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환경 문제, 기술적 난제, 안전 위험 등 여러 요소를 신중하게 고려해야한다. 대한민국호가 국가의 장기적 번영과 안정을 위해 최선의 현명한 선택을 하길 기대한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알래스카 천연가스 천연가스 개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알래스카 북극해

2025-05-22

[기고] 항공 MRO 산업, 지금이 골든타임

항공기는 고도의 정밀성과 신뢰성이 요구되는 교통수단이다. 정기적인 점검과 정비가 없으면 사고나 고장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철저한 점검과 정비를 통해 운항 중단을 예방해야 한다.     그리고 승객 안전과 서비스 품질은 항공사의 신뢰도와 직결되기에 항공기의 안전 운항을 위한 정비, 수리, 개조는 필수요건이다.     이러한 필수 요건을 충족시키는 산업 중 하나가 ‘항공 MRO(Maintenance, Repair, and Overhaul)’ 산업이다.     항공 MRO 산업은 항공사의 핵심 지원 산업으로 비행 중지 시간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항공사의 전체 운영비 중 정비비가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MRO는 곧바로 정비 비용 절감과 항공기 가동률 증가로 이어진다.     특히, 예측 정비(predictive maintenance)를 통한 체계적인 정비는 불필요한 정지 시간과 긴급 정비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지속 가능한 운항을 구현할 수 있다.   글로벌 항공 MRO 산업 전망은 항공기 증가, 노후 항공기의 유지 필요성, 디지털 기술 도입, 국방 및 우주 분야의 수요 증가에 따라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항공기 MRO 시장 규모는 향후 5년간 연평균 4-5%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2030년 항공 MRO 시장 규모는 대략 13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글로벌 항공 MRO 시장에서 아시아 지역의 비중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한국은 지리적으로 동북아 물류 허브로서 MRO 거점이 될 잠재력이 커졌다.   항공 MRO는 단순 정비를 넘어 항공기 개조, 부품 재제조, 항공 안전, 운영 효율, 기술개발을 위해 필수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연결된다. 이를 통해 수요가 적어 적자운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방공항의 활성화,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성장, 중소기업 기술력 향상, 부품 국산화 등 산업 전반의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항공 MRO 산업은 고가, 고정밀 자산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필수 산업인 만큼 항공뿐만 아니라 우주, 국방 등 국가 전략산업 전반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국방장비는 민간기기보다 사용 강도가 높고, 정비 주기도 엄격하게 관리되기 때문에 작전 가동률 유지를 위해서는 MRO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자국 내의 항공 MRO 역량 확보는 국방 안보 및 자주국방 차원에서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항공 MRO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제조업체(보잉, 에어버스 등) 및 MRO 전문기업 유치 인센티브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산학연 협력 유도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장기적 전략적 개발 로드맵과 안정적 투자계획이 절실히 요구된다. 특히, 항공 MRO 사업의 선행 개발 투자와 지원을 전담하며, 글로벌 경쟁이 가능한 수준으로 육성하기 위해 우주항공청 내에 ‘항공 MRO 기술전략센터’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사항은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산업육성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최고 통수권자의 리더십이다.     미국항공사들은 지금 인천공항에 주목하고 있다. 80개 아시아 도시로 이어져 여객, 물류 허브공항으로서 인프라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으로의 접근성도 좋아서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핵심 허브공항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기고 골든타임 항공 항공기 증가 항공기 가동률 글로벌 항공

2025-05-21

[기고] 美 기독교계가 환영하는 ‘션윈’, 한국 교계도 배척 아닌 관용 품어야

매년 12월이 되면 뉴욕, 런던, 도쿄, 시드니 등 세계 주요 대도시에선 한 여성 무용수가 고난도 동작을 하는 모습의 광고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바로 뉴욕의 션윈 공연이다. 션윈예술단(Shen Yun Performing Arts)은 2006년 설립 이래 현재까지 뉴욕 링컨센터를 포함한 전세계 200여개 극장에 매년 초대받아온 세계 정상급 예술단체다.     그런데 최근 국내 일부 기독교 단체가 션윈 공연 관람을 자제하라는 공문을 산하 단체에 발송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교회총연합(이하 한교총)이 션윈 공연이 파룬궁 수련의 종교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관람 자제를 경고한 것.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션윈 공연의 예술적 가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션윈 공연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나 시각과는 매우 동떨어진 편향된 시각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예술 범주에서 다뤄지는 인권탄압 션윈예술단은 공산주의 이전 중국의 순수 전통문화의 부흥을 목표로 고전 무용과 음악을 선보인다. 션윈예술단에 참여하는 상당수 예술가는 문화대혁명을 피해 중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했으며, 중국에서 사라진 전통 문화의 전수를 계승하고 펼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한교총의 ‘위장 포교’ 주장은 공연 중 일부 장면이 파룬궁의 박해를 다룬다는 점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은 전체 공연의 극히 일부(보통 1~2개 프로그램)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중국 공산당의 파룬궁 탄압을 비판하는 사회적 맥락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는 예술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보편적 방식으로, 기독교 예술에서도 순교나 박해를 주제로 한 작품이 흔히 등장하는 것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기독교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는 예수의 수난을 통해 신앙적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이를 포교로 단정 짓는 이는 드물다.     파룬궁에 대한 오해와 편견 일부 기독교 단체들은 파룬궁을 ‘이단’으로 간주하며 션윈 공연을 경계한다. 이러한 인식은 중국 공산당이 1999년 파룬궁을 불법화하고 ‘반사회적 이단’으로 낙인찍은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주장은 다분히 정치적 동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파룬궁이 폭력적이거나 강압적인 행위를 한 증거는 없다. 파룬궁은 불교와 도교의 전통을 바탕으로 명상, 기공 수련, 도덕적 가르침을 강조하며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이 평화롭게 수련하고 있다. 국내 일부 기독교 단체가 파룬궁을 ‘이단’으로 단정 짓는 것은 중국 정부의 선전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하는 결과일 수 있으며, 이는 신앙의 자유를 중시하는 기독교의 가치와 모순된다.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 션윈 관람을 금지하는 것은 다른 문화와 신앙의 표현을 배척하는 태도로 비칠 수 있다. 기독교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통해 타인의 믿음과 문화를 존중할 것을 강조한다(마태복음 22:39). 션윈 공연을 관람한다고 해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이 아니며, 이는 단순히 다른 문화의 예술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행위다. 예를 들어, 힌두교나 불교를 주제로 한 인도 전통 무용 공연을 관람하는 기독교인이 그 종교로 개종한다고 가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게다가 파룬궁은 스스로를 종교로 표방하지 않으며 동양 전통 문화에 기반한 수련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권과 신앙의 자유에 대한 지지 션윈 공연은 중국 내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박해를 간접적으로 다루며, 신앙의 자유와 인권을 옹호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1999년 이후 중국 정부는 파룬궁 수련자들을 체포, 고문, 감시하고 있으며 상당수가 구금 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박해는 국제사회에서 널리 비판받아 왔으며,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와 같은 인권 단체는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탄압을 기록해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소중히 여긴다. 중국 내 파룬궁 수련자들의 고난은 기독교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다. 션윈 공연이 이러한 박해를 예술적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이를 포교로 몰아가는 것은, 인권과 신앙의 자유를 위한 목소리를 억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션윈의 메시지를 통해 중국 내 종교적 박해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모든 신앙 공동체의 자유를 지지하는 데 동참할 수 있다.   기독교 국가에서의 폭발적인 반응 션윈 공연은 미국, 프랑스, 영국, 캐나다 등 기독교가 주류인 국가에서 큰 인기를 끌며 매년 전 세계 150개 이상의 도시에서 약 100만 명의 관객을 만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뉴욕의 링컨 센터, 워싱턴 D.C.의 케네디 센터, 프랑스에서는 파리의 팔레 데 콩그레 등 세계 최고의 공연장에서 공연이 열리며, 관객들로부터 “문화적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2023년 미국 공연 후기에서 관객들은 “중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깊은 영감”을 칭찬했으며, 종교적 논란보다는 예술적 완성도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기독교가 주류인 국가들에서는 션윈 공연에 대한 종교적 반발이 거의 보고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보수적 기독교 단체들이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만, 션윈 공연을 ‘포교’로 비판하거나 관람을 반대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는 션윈이 종교적 강요 없이 예술과 문화에 초점을 맞춘 공연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도 파리 공연은 매년 매진되며, 현지 언론은 션윈을 “중국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공연”으로 평가했다.   션윈이 전하는 신성 션윈 공연은 기독교가 주류인 국가의 기독교계 인사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아 왔다. 예를 들어, 미국 아칸소주 벤턴빌에서 션윈 공연을 관람한 팀 스튜어트 목사는 공연에 대해 "매우 계몽적이었다"며, "믿음과 자비, 인내가 악을 극복한다는 메시지를 아름답게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션윈이 전하는 신성과 인간의 연결이 자신의 신앙과도 공통점을 가진다고 언급했다. 피츠버그에서 션윈을 관람한 에릭 폭스 목사는 공연을 "절대적으로 아름답고 잊을 수 없는 경험"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공연이 자신을 주님께로 이끌었으며,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례들은 션윈 공연이 기독교적 가치와 상충되지 않으며, 오히려 신앙의 자유와 문화적 다양성을 지지하는 공연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션윈 공연에 대한 한국 기독교계의 배척은 글로벌 기독교 커뮤니티의 수용적 태도와 대조된다.   션윈은 예술을 통해 중국 전통문화를 알리고, 인권과 신앙의 자유를 옹호하는 공연이다. 미국, 프랑스 등 기독교가 주류인 국가에서 션윈은 종교적 논란 없이 큰 인기를 끌며, 기독교계 인사들의 지지도 받고 있다. 한교총은 이를 포교로 단정 짓기보다,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박해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션윈 관람은 신앙적 갈등이 아니라, 예술과 인권에 대한 열린 대화로 이어질 수 있는 선택이다. 기독교의 사랑과 관용의 정신은 션윈과 같은 예술적 표현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요구한다.   (기고자-김경일 감독(PD 작가 겸 방송진행자, 前 MBC 방송작가, ‘별이 빛나는 밤에’, ‘배철수의 음악캠프’ 등)       최지원 기자기고 기독교계 환영 기독교 단체 공연 관람 순수 전통문화

2025-05-07

[기고] 얼음 땅이 녹아내릴 때

최근 발표된 충격적인 연구 결과는 북극 전역의 연안 지역 사회와 기반 시설이 기후 변화의 거대한 위협에 직면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위성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밀하게 제작된 이 지도는 해안 시설의 심각한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내지만, 지면의 한계로 독자들에게 직접 선보일 수 없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류의 문명은 바닷가에서 꽃피워 왔다. 아름다운 해변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삶의 터전은 그 주변에 자리 잡았다. 우리 역시 해안가에 익숙하며, 그곳이 곧 생활 공간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기대어 살아온 해안선이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인공위성 관측 자료는 남북극 빙하의 해빙 속도가 최근 들어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이러한 변화는 과연 인간과 자연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중에서도 북극 해안 침식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이미 북극 일부 지역에서는 연간 최대 20미터에 달하는 해안선 후퇴가 관찰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앞으로 수십 년 안에 해수면 상승과 예측 불가능한 폭풍 패턴의 변화가 더욱 큰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 해안 영구 동토층의 융해는 또 다른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최근 연구 결과는 암울한 미래를 예고한다. 2100년까지 현재 북극 영구 동토층 해안에 위치한 318개 정착지 중 무려 21%가 해안 침식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수면 상승의 영향권 아래 놓일 지역은 45%에 달하며, 북극 기반 시설의 77%는 지반 침하와 붕괴로 인해 제 기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간 많은 과학자들이 북극권의 자연환경 변화에 주목해 왔지만, 정작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북극 해안을 따라 살아가는 인구는 적지만, 이들은 기후 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으며, 특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원주민 사회의 고통은 더욱 크다. 알래스카 원주민의 경우, 해안가에 주로 거주하는 에스키모는 고래 사냥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고, 내륙의 인디언은 육상 동물 사냥에 의존해 왔다.   북극 해안 침식은 수 세대에 걸쳐 삶의 터전을 일궈온 에스키모에게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고래를 잡으면 해안에서 해체 작업을 하고, 잡은 고래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분배된다. 이 모든 과정이 해안가에서 이루어지며, 조상들의 무덤 또한 해안 가까이에 있어 그들의 문화적, 정신적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다.   위성 및 다양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2030년, 2050년, 2100년의 해안 침식률, 해수면 상승 예측, 영구 동토층 온도 및 해빙률을 종합적으로 살펴본 이번 연구는 북극 지역 사회의 다양한 모습과 그들이 직면한 위협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북극 정착지의 53%는 여전히 사냥과 낚시에 기반한 에스키모 전통 사회이며, 광산 시설이 20%를 차지한다. 군사 시설, 관광 서비스, 연구 기지 등도 일부 존재한다.   새로운 지도는 해안 침식이 이들 공동체에 가장 큰 위협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북극 전체 해안선은 연평균 3미터씩 후퇴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연간 20미터라는 놀라운 속도로 침식이 진행되고 있다. 연구 결과는 이미 많은 건물과 도로가 해안 침식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2030년까지 그 범위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현재까지는 해안 침식이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지만, 해수면 상승의 잠재적 영향은 더욱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지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북극 전역에서는 빙하 질량 감소와 지반 융기 현상으로 인해 상대적인 해수면이 오히려 낮아지고 있어, 미래의 해수면 상승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대부분의 연구가 다른 지역의 해수면 상승에 초점을 맞추고 북극은 간과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더 많은 북극 정착지가 심각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번 연구는 또한 기상 패턴 변화, 지반 침하와 같은 다른 기후 위협들이 해안 침식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음을 강조한다. 알래스카, 캐나다, 시베리아 해안의 영구 동토층에 형성된 수많은 호수들은 침하와 침식으로 인해 균열이 발생하고, 이는 완전히 새로운 해안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미 알래스카에서는 해안 침식으로 인한 원주민 이주와 주거 시설 재건 사업이 막대한 예산 부담으로 인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침식으로 인해 노출된 해안 동토층에서 방출되는 메탄이 극지방 온난화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북극 연안 지역 사회의 위기는 곧 우리 모두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북극 해안 해안 침식 해안선 후퇴가

2025-05-01

[기고] “메디칼로 장례 되나요?”

최근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며칠째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목소리에서는 제법 연륜이 느껴지는 어르신이었다. 질문은 짧고도 명확했다. “메디칼이 있는데 장례를 해 줘요?”   순간 당혹감과 함께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메디칼(연방 메디케이드의 가주 정부 프로그램명)’이라는 정부 의료지원 프로그램이 장례 비용까지 책임지는가? 이민 와서 사는 어르신들의 장례 문제를 왜 미국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저소득층이라는 이유만으로 노후 생활은 물론 마지막 가는 길까지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메디칼 혜택 대상에서 아슬아슬하게 제외된 한인들의 억울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민 초창기부터 ‘코메리칸’으로서 고된 낮과 밤을 견디며 수십 년간 우체국, 공장, 혹은 적은 임금의 직장에서 일했던 많은 한인들은 대부분 격주로 빠듯한 급여를 받았다.     최저임금 수준의 수입에서 사회보장세까지 떼고 나면 생활은 더욱 팍팍했다. 그 돈으로 렌트 내고 자동차 할부금을 갚으며 겨우 생계를 이어갔다. 이제 은퇴하여 받는 사회보장 연금은 여전히 빠듯한 수준이지만, 서류상 ‘중산층’으로 분류되어 정부의 폭넓은 혜택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이 나라에서 오랜 세월 땀 흘려 일하고 세금을 낸 이들은 충분한 혜택을 받지 못하는데, 상대적으로 최근 이민 와서 일한 기록이나 사회보장세 납부 기록이 없고 소득이 없다는 이유로 메디칼이 제공하는 각종 혜택을 누리는 이들을 보며 쓰린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는 토로를 종종 듣는다.   미국의 정치사는 곧 이민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미국의 복지 제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1964년 린든 B. 존슨(Lyndon B. Johnson) 대통령은 ‘빈곤 없는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대대적인 사회 개혁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존슨 대통령은 취임 후 수백 가지의 대통령 직권 명령을 내렸는데, 그중 핵심적인 것이 바로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건강 의료보험 제도였다. 미국 경제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대부분의 국민은 공장에서 일하며 회사 단체 보험으로 의료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65세에 은퇴하면 의료비 부담이 고스란히 개인이나 가족에게 돌아갔다.     이에 노인 복지를 위한 국가적인 의료보험, 즉 메디케어가 탄생했다. 동시에 가난과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과 신체적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을 위한 국가 지원 의료 프로그램인 메디케이드도 함께 도입되었다.     교사 출신이었던 존슨 대통령은 가난한 학생들이 식사조차 거르는 현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극빈자 대상 푸드스탬프 제도도 이때 시작되었다. 흑인 아동의 백인 학교 입학 허용 등 교육 제도가 정비되었고, 전 국민의 투표권 보장 제도가 강화되었다.   이 ‘위대한 사회’ 정책의 일환으로, 백인 중심이었던 이민법도 개정되었다. 존슨 대통령은 영국과 서유럽 국가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타민족 이민을 억제했던 국가별 이민 쿼터 제도(1924년 이민법)를 폐지하고, 가족 초청 및 전문 인력 중심의 이민(1965년 이민 및 국적법)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 완화했다. 이 역사적인 정책 덕분에 우리 한국인들이 1970년대 초부터 미국으로 대규모 이민을 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메디케이드는 이처럼 1964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추구했던 ‘위대한 사회’ 정책, 즉 대대로 소외되어 그늘진 곳에서 살아온 흑인과 불평등한 대우를 받던 미국 시민들을 구제하고, 가난과 궁핍을 물리치며 최소한의 기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나라에 느즈막히 이민 와서 일하지 않고 인생 후반을 보내면서 당연하다는 듯 받고 있는 혜택을 넘어 본인의 장례까지 정부가 책임져 주지 않을까 기웃거리는 일부 한인들의 발상이 불편하고 안타깝다. 이효섭 / 동서장례 대표기고 메디칼 장례 메디칼 혜택 사회보장세 납부 정부 프로그램명

2025-04-30

[기고] 용기있는 한 사람이 만든 미래

중앙일보는 최근 ‘LA한인타운 녹지공간, 맨해튼 비해서도 태부족’이라는 제목으로, LA지역과 뉴욕지역의 공원 및 녹지공간 실태를 비교하는 기사를 1면 톱으로 실었다. 대단히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기획 기사였다.     과거 뉴욕시에서 다년간 거주했다. 맨해튼의 공원에 가 볼 기회가 많아서 뉴욕지역의 공원 실태를 잘 안다. 맨해튼 지역에는 유명한 ‘센트럴 파크’를 비롯해 한국전 참전비가 세워진 ‘배터리 팍(Battery Park)’ 등 크고 작은 공원이 30여개나 있다. 뿐만 아니라 뉴욕시 전체에서 공원국이 관리하는 공원 및 녹지대(Green spaces)는 무려 2000개나 된다.   뉴욕의 공원 시설들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창의적이고 헌신적인, 많은 뛰어난 사람들의 공헌에 의해 점차 개발, 발전하여 온 것이다. 그 중에 특히 미래를 정확히 내다볼 줄 아는 한 유명한 ‘주 건설자(master builder)’가 있었었다. 그 천재적인 도시 기획 및 건설자는 당시 뉴욕시 공원국장이었던 로버트 모제스(Robert Moses) 하버드대 박사다.   모제스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뉴욕시와 인근 지역을 현대화하는데 ‘주 건설자’ 역할을 했다.     그는 도시계획의 마술사였다. 뉴욕시에 수많은 공원을 만들고, 해안선도 변경시켰다. 최초로 고가도로를 세웠다. 그것은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당시 언론매체들은 그것을 ‘하늘 길(roadways in the sky)’이라 불렀다.   그의 뛰어난 노력과 감독하에서 35개의 하이웨이망(network) 도로와 12개의 거대한 다리와 수많은 공원 등이 건설되었다. 특히 모제스는 그 누구도 생각지못했던 ‘파크웨이(Parkway·공원도로)’라는 새로운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당시는 자동차 시대가 아니었으므로, 뉴욕시 의회는 모제스의 하이웨이 건설을 반대했다. 그러자 모제스는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시내에 하이웨이를 건설할 수 있는 기상천외한 방안을 찾아냈다.     ‘Parkway(공원 도로)’라는 이름으로 하이웨이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즉 공원으로 가기 위한 길을 내는 것은 뉴욕시의 공원 국장인 그의 고유권한이라고 주장하며 밀어붙인 것이다. 현재도 복잡한 도심을 가로질러 편리하게 달릴 수 있는 수많은 파크웨이들은 모두 그때 모제스에 의해 건설된 것들이다. 그의 미래를 보는 혜안과 뚝심이 없었다면, 오늘날 뉴욕시민들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불편한 상황에서 살아야 했을 것이다.   모제스가 사망했을 때, 뉴욕타임즈의 부고는 그에 대해 이렇게 썼다. ‘로버트 모제스, 주건설자, 도로, 해변, 공원, 교량, 주택의 건설자…한 사람이 어떻게 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는가!(How one man changed it)’   LA시에도 모제스 같은 뛰어난 도시 기획 건설자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용기 있는 한 사람이 ‘대부분’을 만든다(One man with courage makes a majority).”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의 명언이다. 김택규 / 트루스역사문제연구회 대표기고 용기 미래 로버트 모제스 공원 실태 하이웨이 건설

2025-04-23

[기고] 영향력 잃고 있는 미국의 소프트파워

한국과 미국 모두 국내 정치적으로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트럼프 2기 정부는 미국 현대사에 전례 없는 파괴적인 출발을 보여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특별고문이 ‘빨리 가려면 파괴하라’라는 실리콘 밸리의 모토를 추구하며 기존 제도·정책·규범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공격하자 의회·법원·언론과 국민은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트럼프의 행보가 법적·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관심이 쏠려 있다. ‘CRINK(중국·러시아·이란·북한)’ 국가들이 미국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충격과 공포’ 같은 국정 운영 방식이 미국의 힘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지 전략가들은 우려한다.   대규모 정부 예산 삭감 흐름 와중에도 미국 의회는 군 예산을 증액했다. 국방부는 유럽에 주둔하는 군보다 아시아에 주둔하는 해군과 공군력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하드파워가 증대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미국의 경제·외교와 소프트파워는 힘을 잃고 있다. 머스크는 정책에는 무지하지만, 알고리즘에는 강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재무부에 파견해 모든 정부 부처와 비영리단체 예산을 중단시켰다.   실제로 개혁이나 규모 축소가 필요했던 극히 일부 조직을 제외하면 많은 경우 갑자기 예산이 중단되면서 큰 타격을 봤다. 여기에는 미국국제개발처(USAID), 미국민주주의기금(NED), 자유아시아방송(RFA), 교육부의 국제교육기금 등과 세계보건기구(WHO)와 같은 국제기구에 대한 지원이 포함된다. 더 많은 기관과 조직이 타격을 입을 것이다.   소프트파워라는 개념을 만든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지금 상황을 ‘미국 소프트파워의 종말’이라 명명했다. 보수적 성향의 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자유아시아방송은 살려야 한다는 사설을 실었으며, 미국 의회는 민주주의기금 예산을 다시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많은 기관은 직원을 해고해야 했고, 앞으로 많은 기관이 사라질 것이다. 정부효율부는 중국·러시아가 허위정보와 부패, 그리고 일대일로(一帶一路) 기금을 이용해 아시아에서 입지를 강화하도록 길을 열어 줄 수도 있다.   트럼프의 갈팡질팡 관세 정책도 미국의 동맹과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캐나다·일본을 위시한 미국의 동맹국들은 트럼프의 강압적인 관세 정책에 불만을 갖고 있다. 미국 경제가 2월에 침체기에 접어든 큰 이유도 트럼프의 막무가내식 관세 정책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경제력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   미국 월가는 세금 감면, 규제 완화 등 친기업 정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지난해 11월 트럼프 당선 소식에 기뻐했다. 미국인들은 경제에 투표했고, 미국의 소프트파워 회복을 어느 정도 희생하더라도 트럼프 2기 정부에서 경제 회복을 기대했다. 그러나 관세 정책 등 트럼프의 정책이 물가 인상을 촉발하면서 미 국내 여론이 좋지 않다.   19세기 오토 폰 비스마르크 독일제국 초대 총리는 미국을 유약한 이웃 국가와 넘치는 자원으로 신의 축복을 받은 ‘특별한 섭리’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해 자유를 위해 싸운 미국이 단지 운이 좋아 지금의 위치에 섰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중국은 강력한 전략 경쟁국이다. 내부적 모순으로 가득한 트럼프 2기 정부의 국가안보 라인이 이견 없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지점은 아시아의 미래를 규정짓는 미·중 전략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전략 경쟁에서 필수적인 개발과 민주주의 분야의 주요 도구를 제거하고 있는 머스크의 정부효율부는 예외겠지만 말이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이 아시아에서 미국의 효율적인 전략 경쟁에 필요한 자원 통제권을 되찾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미국 정치 특성상 여론조사에서 인기없는 머스크는 자리를 오래 유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얼마 전에 필리핀 마닐라에서 발표한 동맹 중심의 정책이 트럼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및 우크라이나에 대한 적대적 생각이나 관세 정책을 바꿀 수 있을지도 봐야 한다. 이 모든 불확실성은 그 자체로 미국의 힘과 영향력에 잠재적 부담 요인이다. 마이클 그린 /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기고 미국 소프트파워 소프트파워 회복 민주주의기금 예산 관세 정책

2025-04-17

[기고] 무역 적자 ‘착취’ 프레임의 오류

아이오와 주립대 석좌 교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100일도 채 되기 전에 전 세계를 향해 무역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미국이 모든 국가로부터 착취당하고 있다”면서 물개와 펭귄만이 사는 무인도에까지 관세를 부과하는 해프닝(이후 실수를 인정했지만)을 연출했다. 그는 2024년 미국의 무역 적자가 1조 2000억 달러에 달한다며 미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주장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린 것은 당연하다. 만약 그의 주장을 풋볼경기와 비교한다면, 그것은 전반전 경기만 보고 후반전 경기는 묵인한 격이다. 현대 무역의 복잡성은 더 이상 단순한 ‘물건(goods)’의 교역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서비스 무역은 이미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했으며, 그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금융 서비스, 첨단 기술 소프트웨어, 대학 교육 및 전문 훈련, 컨설팅, 관광 등 수많은 서비스 분야에서 미국은 상당한 수출을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연방경제분석청(Bureau of Economic Analysis)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2024년 서비스 부문에서 2470억 달러의 무역 흑자를 달성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달러로 환산조차 어려운 막대한 규모의 ‘흑자’가 존재한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전 세계로부터 ‘무료’로 유입된 지적 자원, 특히 과학 기술 분야의 인적 자본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과학 노벨상 수상자의 35%는 이민자들이 차지했으며, 실리콘밸리의 혁신적인 첨단 기업들(Apple, Google, Microsoft, NVIDIA, Tesla 등) 역시 해외에서 건너온 인재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성장했다.     끊임없이 유입되는 유학생들과 H-1B 비자 프로그램은 미국의 연구 개발 역량을 강화하는 핵심적인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인적 자원의 축적은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의 국부를 무려 508%나 성장시키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2~3배나 높은 성장률이다.   결국,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착취(Rip-off)’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엄청난 혜택을 누려온 것이다. 대다수의 미국 국민들은 이러한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는 실질적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무역 적자라는 수치를 정치적인 슬로건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오로지 부의 증가만을 외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착취’ 주장은 냉정하게 말해 ‘탐욕’에 기반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탐욕은 또 다른 탐욕을 낳고, 결국 사회 전체의 부정부패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라도 좁은 시야의 탐욕에서 벗어나, 미국이 축적한 막대한 부의 일부를 어려움을 겪는 국가들을 돕는 데 사용하는 혜안을 보여야 한다.   이는 축복받은 부자들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도덕적 의무이다. 미국이 진정으로 존경받는 위대한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누려온 부의 혜택을 국제 사회와 공유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용식 / 아이오와 주립대 석좌 교수기고 프레임 무역 서비스 무역 무역 흑자 무역 적자

2025-04-16

[기고] 트럼프 2기에 유용한 ‘태권도 민간외교’

트럼프 2기 정부 출범과 함께 추진하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지구촌을 매섭게 몰아치는 중이다. 관세 폭탄,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불법 이민자 추방 등의 조치를 놓고 이해 당사국들의 반발과 논쟁도 뜨겁다.   대한민국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정치적 혼란 와중에 외교·안보 환경이 급변하면서 말 그대로 ‘내우외환’이 겹치는 양상이다. 트럼프 2기가 시작되면서 영원한 우방인 미국과의 한·미 동맹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 차원의 공식 외교도 중요하지만, 이를 보완해줄 민간 외교의 필요성도 커진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70여 년 많은 우여곡절에도 변함없이 한·미 동맹의 신뢰를 굳건히 구축해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태권도의 가치를 새삼 주목하게 된다. 태권도는 한·미 동맹의 신뢰와 양국 국민의 우의를 확인하는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태권도는 한·미 동맹의 결속을 강화하는 매개체로서 새로운 역할을 활발하게 모색하고 있다. 미국에는 약 2만5000개 태권도 도장에서 3000여만 명이 수련 중이다. 세계태권도본부인 국기원은 지난해 미국 지부 8곳을 선정하고, 현지 네트워크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64년 대한민국은 태권도 사범을 해외에 처음 공식 파견했다. 광복 80주년이자 태권도 해외 진출 61주년이 되는 올해는 태권도가 미국 땅에서 “얍! 얍! 얍!” 힘찬 기합 소리를 내며 ‘제2의 황금기’를 알리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오는 5월 18일 백악관 앞에서 ‘태권도 한마음 대축제’가 펼쳐진다. 국기원 버지니아 지부 주관으로 약 2000명이 참가해 영원한 한·미 동맹을 다짐하는 태권도 퍼포먼스를 펼칠 예정이다. 7월 17일에는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컨벤션센터에서 30주년을 맞은 최대 규모의 축제인 ‘세계 태권도 한마당’이 열린다. 50여 개국에서 5000여명이 참가하는 이 행사에서는 세계적 성악가 조수미 등 한류 스타들이 축하 공연도 한다. 이를 계기로 태권도는 공공 외교 역할을 톡톡히 수행할 것이다.   국기원은 그동안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 미국 대통령들에게 명예 9단증(블랙 벨트)을 수여, 한·미 우호를 증진해온 전통이 있다. 필자는 2021년 11월 플로리다주 팜비치 리조트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기원 명예 9단증을 수여했다. 당시 그는 “태권도는 최고의 무도(Martial Arts)”라 극찬하면서 “재선에 성공하면 태권도 도복을 입고 의회에서 연설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막내아들 배런도 태권도 유단자다.   이런 인연으로 필자는 지난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미국 방문을 계기로 만난 상·하원 의원들에게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우호적 협력을 당부했다. 외교위원장을 역임한 그레고리 믹스 하원의원(뉴욕)은 “태권도는 단순한 무도가 아닌 양국 신뢰 구축의 상징으로 작용해 왔다”고 평가했다. 11선의 팀 월버그 하원의원(미시간)은 “한국이 조속히 안정됐으면 좋겠다. 한·미 동맹은 굳건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며 응원해줬다.   국기원은 몇몇 상·하원 의원들에게 명예 단증을 수여했고, 지난 5일부터 상·하원 의원 7명을 대상으로 미국 의회에 태권도 교실을 개설했다. 유력 정치인들이 태권도를 배움으로써 한국 문화를 폭넓게 이해하고, 한·미 동맹과 우호 관계를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을 전환점으로 지구촌 2억여 명이 수련하는 세계적인 스포츠이자 문화콘텐트로 자리매김했다. 유엔 회원국과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은 각각 193개와 211개국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산하 세계태권도연맹(WT)은 회원국이 무려 214개국이고, 국기원 품증·단증을 발급받는 나라는 204개국이다.   태권도는 2018년 필자가 국회의원 재직 시절 의원 225명이 공동 발의한 ‘태권도 진흥 관련법’ 개정으로 대한민국 국기(國技)로서 처음 법적 지위를 갖게 됐다. 태권도는 나라 안팎에서 민간 외교 채널이자 플랫폼으로 순기능을 할 잠재력이 매우 크다. 앞으로도 태권도가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동력으로 작동하도록 우리 모두 마음과 지혜를 모으길 바란다. 이동섭 / 국기원장기고 민간외교 트럼프 세계 태권도 태권도 한마음 태권도 해외

2025-03-26

[기고] 사라진 제3의 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국 여권상의 성별 구분에서 ‘제3의 성’ 선택이 사라졌다. 생물학적 성별을 바꾼 이들은 난처하게 되었다.     트럼프 정부의 공식적인 성 개념은 보수적인 시각을 반영하여 출생 시 XX 염색체를 가진 사람을 여성으로 정의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성별은 정자가 항상 X 염색체를 포함하고 있는 난자에게 X 염색체를 주면 여성(XX)으로, 반면에 Y 염색체를 주면 남성(XY)으로 결정이 된다. 이러한 생물학적 원칙에 입각해서 트럼프 행정부는 법적 성별을 엄격히 규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성별 구분이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는가. 그 이유는 오바마 정부가 성소수자 인권 보호와 평등 증진을 위해 동성결혼 합법화, 군대 내 성소수자 차별 철폐, 성 정체성을 이유로 고용 차별 금지, 성소수자에 대한 의료 서비스 차별 금지, 성소수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학교 내 괴롭힘 방지 정책, 그리고 미국 외교 정책의 핵심 가치로 국제적 성소수자 인권 보호를 적극적으로 시행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성별 구분이 애매모호하게 되어서 단순한 이 질문에 대해 정확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서구사회와 동양사회의 역사적, 종교적 그리고 문화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서구사회에서 ‘사람 (man)’은 성별의 구분없이 인간이라고 부르는 생명체의 총집합을 의미하는 동시에 여자를 제외한 남자만을 의미한다.     여자가 제외되어야만 했던 가장 원천적인 이유는 구약 성경의 창세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진흙으로 ‘아담’을 빚어 만드시고,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그를 깊게 잠들게 한 후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다.     원래 ‘아담 (Adam)’이라는 말은 고유명사라기보다는 히브리어에서 ‘사람(man)’이라는 일반명사로 사용되었으며, 히브리어로 진흙을 뜻하는 ‘adamah’에서 유래한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은 아담이라는 남자였으며, 여자는 아담의 갈빗대로 만들어진 ‘아담의 짝’에 불과했다. 초기 기독교 문화에 나타난 여성관을 보더라도 여자는 남자를 위해 창조된 존재라는 주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서구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유목문화에서 여자의 위치는 매우 빈약했기 때문에 여자는 예속적이고 소외된 존재였다.     반면에 동양문화권에서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더 중요하며, 더 주체적 의미를 가졌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집단의 생사를 좌우하는 생산이었기 때문이다. 생산의 주체가 될 많은 자식을 낳는 여자가 생산성도 높일 수 있었기에 그 집단을 부강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동양의 농경문화에서 여자의 위치는 직접 생산수단을 소유할 뿐 아니라 집단의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불가결하기 때문에 여자는 존재의 독립적 기반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서구사회와 동양사회의 역사적 배경을 볼 때, ‘여자’에 관한 질문은 단순히 생물학적 성별을 구분하는 것을 넘어 여성의 시대와 문화, 종교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으로 확대되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하느냐가 심지어 정치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한 예로, 필자가 참석하는 교회의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전에는 한 목회자의 신학적 정통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삼위일체’에 관한 질문을 했었지만, 이제는 ‘여자란 무엇인가’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그 목회자의 신학적 정통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오늘날 성별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정책적 변화가 아니라, 서구와 동양의 역사, 문화, 종교가 얽힌 복합적인 문제다. 이에 대한 해석과 대응 방식 역시 각 사회의 역사적 배경과 철학적 관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성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가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화두로 남을 것이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기고 성소수자 차별 성소수자 인권 금지 성소수자

2025-03-25

[기고] 생존 한국인 피폭자 1622명의 소원

한국에서 원폭 피해자 1세와 2세들이 뉴욕에 왔다. 3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반핵운동가들과 함께 유엔 제3차 핵무기사용금지조약(TPNW) 당사국 회의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TPNW는 더 잘 알려진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한계를 넘어선 국제 협약이다. 핵무기 개발, 실험, 생산, 비축, 주둔, 이전, 사용 그리고 사용 위협과 이에 대한 지원을 전면 금지하는 조약이다. 2017년 129개국이 찬성했고 현재까지 94개국 서명, 73개국 비준까지 마쳤다.   이 조약을 이뤄낸 국제핵무기폐기운동(ICAN)은 2017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또 지난해에는 전 세계의 핵무기 폐기를 호소해온 ‘일본 원수폭 피해자 단체협의회’가 노벨평화상을 받으면서 TPNW가 관심을 끌었다.   뉴욕 방문에는 일본 단체 초청으로 지난해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함께 했던 이태제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회장, 일본에서 40여 년간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을 위해 활동한 이치바 준코 ‘한국원폭피해자 지원모임’ 대표도 함께했다. 또 내년 뉴욕에서 원폭 피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원폭피해자국제민중법정’ 개최를 준비 중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대표들도 왔다.   안타깝게도 TPNW에는 핵무기를 보유 국가들은 물론 미국 핵우산 아래 있는 한국, 일본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피폭자 70만 명(이 가운데 10%가 넘는 10만여 명이 한국인)이 미국의 핵폭탄 투하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했는데 정작 그 국가들은 TPNW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그런 까닭에 원폭 피해자들이 중심이 돼 반핵운동을 펼쳐 나가고 있으며 특히나 일본과 달리 전범 국가도 아닌 한국의 원폭 피해자들이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고, 미국의 원폭 투하 8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8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핵전쟁 위협은 가실 기미가 없다.   이태제 회장은 “한국인 원폭 피해 생존자가 1622명, 원폭 피해 후손이 3100여 명”이라며 “노벨평화상 시상식에서 한국인 피해 현실을 최대한 알렸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1세 피폭자인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정원술 회장과 함께 한복을 입고 시상식에 참여했다. 비록 상은 일본 단체가 받았지만 한국인 피해자들이 함께 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해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와 함께 한국은 노벨상 두 개를 받은 셈이다. 이분들의 소망은 2045년 원폭 100년이 되기 전 핵무기 없는 지구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바람과 달리 한국에서는 핵무장 지지 여론이 퍼지고 있다. 그리고 핵무기 관련 군비 제재 규정을 파기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겠다는 정치권의 어이없는 주장이 들리는 등 세상은 거꾸로 가는 듯하다.   한인사회와 미국의 평화운동가들이 원폭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행사가 7일 오후 7시 뉴욕 플러싱 글로우 컬처럴센터(문의 201-546-4657)에서 열린다.   미주한인평화재단은 지난해 미주한인단체로는 처음으로 ICAN에 가입했다. 그리고 원폭 피해자들의 활동을 힘닿는 대로 도울 계획이다. 미국의 시민단체가 인류 역사상 핵폭탄을 사용한 유일한 국가인 미국의 죄를 씻는데 나서야 하는 까닭이다. 김갑송 / 민권센터 국장기고 피폭자 생존 이태제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정원술 한국원폭피해자 지원모임

2025-03-05

[기고] 고 김병목 박사를 추모하며

지난해 11월6일 한인사회의 원로 김병목 박사가 향년 96세로 별세했다. 요즈음은 주변에 건강했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암에 걸렸다고도 하고, 심장 질환은 물론 이상한 증세로 부음을 알린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고 김 박사는 고령이셨지만 평소에 식사도 잘하시고 날마다 분주하게 사셨기에 100세를 거뜬히 넘기시리라고 기대했는데, 부인과 가족은 얼마나 놀라셨을까.     1981년에 추대를 받고 샌디에이고 한인회장을 역임한 후 평생을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했다. 의사 면허증을 연장하며 90세 넘도록 동갑내기 부부는 운전을 했다. 의료보험이 없는 한인들이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지 청진기를 들고 달려가 진찰과 처방을 해주던 따뜻한 인술가였다.   그는 경성의전(현 서울의대)을 다니다 당시 문교부 소속 고문이었던 미국인(로버트 깁슨)의 도움으로 1948년 미군함을 타고 유학왔다. 1958년 콜롬비아 의대를 졸업하고 1962년 샌디에이고 스크립스 클리닉에서 흉곽 내과 전문의자격을 취득했다. 1971년부터 샌디에이고 주립대학의 의대 임상교수를 시작으로 라호야에 정착했다.   김 박사는 학문과 독서를 사랑했다. 한국 방문 때마다 책을 사와 거실 한편에 쌓아두고 탐독하곤 했다. 또 집안 곳곳에 집안 어른들의 가족 사진들과 명화들이 걸려 있어 가족애와 예술적 감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아들 바이런이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을 때, 김 박사는 의사로서의 현실을 실감하며 아들의 선택을 오히려 반겼다. 그는 “요즘은 의사들도 병원에서 세일즈를 해야 하니, 차라리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늘 “의사의 본분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는 신념을 강조했다.   가족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장인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집으로 모셔와 지극정성으로 돌봤고, LA에 있는 아픈 처제와 처남을 찾아 장시간 운전하는 다정한 형부이자 매형이었다. 친척 간의 교류가 점점 줄어드는 현대사회에서 그의 따뜻한 가족애는 더욱 빛났다.   올해는 고 김 박사 부부의 결혼 70주년이 되는 해다. 지인들이 장례식을 문의했지만, 가족들은 조용히 애도하길 원했다.   그는 서대문 충정로에서 부친 김성환과 집안 어른들로부터 민족 교육을 받으며 역사와 소명 의식을 확고히 다진 애국자였다. 특히 인천의 맥아더 동상을 지키기 위해 매년 고국을 방문하며,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흔들리는 것을 깊이 염려했다.   한평생 한인사회와 조국을 위해 헌신한 김병목 박사의 삶은 그 자체로 귀감이 된다. 그의 헌신과 가르침은 후대에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최미자 / 수필가기고 김병목 박사 박사 부부 원로 김병목 샌디에이고 한인회장

2025-02-26

[기고] 정책의 일관성이 미래 경쟁력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위해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비밀리에 소련 핵과학자 영입을 추진했다. 당시 한 명의 소련 과학자 월급이 1만 달러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지속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김씨 왕조 체제를 유지하는 결정적 카드가 되었다.   이에 대응하는 대한민국의 정책은 정권에 따라 달랐다. 보수 정부는 한미 관계 강화를 통해 북한의 핵 개발을 강력히 견제하는 전략을 펼쳤다. 반면, 진보 정부는 대북 유화정책을 추진하며 마치 통일이 눈앞에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약화하기는커녕 더욱 강화되었다.     북한은 대남, 대미, 국제사회에 대한 일관된 전략 아래 체제 유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   이와 달리 대한민국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급변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보수와 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북한에 대한 정책이 일관되지 못했고, 그로 인해 효과적인 대응이 어려웠다는 점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 좋은 정책이 마련되더라도 다음 정부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은 대한민국의 정책적 연속성 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대북정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정책 전반이 단기적 성과에 집중되면서 장기적인 비전과 연속성이 부족하다. 이는 과학기술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선진국들이 AI, 로봇, 양자컴퓨터 등 미래 핵심 기술 분야에서 지속적인 연구와 투자로 성과를 내는 반면, 대한민국은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단절되거나 축소되면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기초과학이 무너지면 응용과학 또한 설 자리를 잃는다. 기초과학 연구는 학교와 연구소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연구비 투자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연구자들에게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함과 동시에, 연구 환경과 혜택을 보장하여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제적 특허 취득과 산업계로의 기술 이전이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출산율 저하로 인해 기초과학 인재 양성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기술 강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기초과학을 활성화하고, 연구자들이 AI와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최적의 연구 환경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경제 상황이 어려울수록 가장 먼저 삭감되는 것이 기초과학 연구비인데, 특히 기후변화 및 환경 연구에 대한 예산이 줄어드는 것은 큰 문제다.   선진국들은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일관된 정책을 유지한다. 새 정부는 이전 정부의 정책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며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 이러한 정책 연속성은 대한민국에서도 반드시 정착되어야 한다.   정치, 경제, 과학, 대북 정책을 포함한 모든 국가 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한다면,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도 흔들림 없는 국가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특히, 지난해 연구비 삭감으로 인해 과학계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점을 고려할 때, 일관된 정책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일관성 있는 정책은 국제적 변동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오히려 대한민국의 생존 능력을 배가시킬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정책 운영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필수적인 전략이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일관성 경쟁력 과학기술 정책 대북 유화정책 정책적 연속성

2025-02-25

[기고]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아이티 대지진이 나던 2010년에 처음 만난 브니엘고아원은 이후로 우리의 집중적인 지원 대상이 되었다. 원장인 마담 도리스는 워낙 신실하게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고, 자주 이사를 하는 형편 가운데서도 늘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일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이었다. 아이들에게 엄격했지만 그만큼 또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고 있어서 믿음이 더 가기도 했다.   우리가 식량 공급만큼 중점을 두는 교육 지원은 적잖은 예산이 필요하다. 해마다 여름이면 가을학기 수업료와 아이들 교복, 교과서 등이 큰 부담이 되었다.     브니엘고아원의 마담은 돋보기를 쓰고 재봉틀에 앉아 아이들 교복을 만들어 입혀 우리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해마다 50명 아이의 학비는 1만 달러를 넘었고, 이 금액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교육비 중에서 큰 부분이기도 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고아원 왕래가 힘들어지더니, 갱단 때문에 길이 막히고 연락이 끊어졌다. 그때 마담 도리스는 디렉터와 스태프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도미니카공화국을 거쳐 마이애미로 왔다고 했다. 갱단 때문에 우리 지원을 고정적으로 받기 어려워졌고, 연락 두절이 잦아지자, 마담은 미국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한때 65명까지 늘어났던 아이들의 생계와 학비를 책임지고 있었다.   캐나다로 간 우리 스태프 스티브가 한동안 애써서 마침내 마담과 연락이 되었을 때, 마담은 아이들 31명이 학교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칼로레아를 패스한 아이들 세 명이 아이티 북부 캡헤이션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대학에 간 아이들도 일단 수업료를 다 못 내서 계속 학교에 편지를 보내어 미루고 있다고 했다. 대학생 세 명이 캡헤이션의 마담 친구 집에 머무는데 한 달에 식비와 아이들 교통비 등으로 200달러가 든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우리와 연락이 끊어진 사이에 졸업해야 하는 고학년 아이들 학비는 마련했지만, 중학교와 초등학교 아이들 학비는 외상으로 했었는데, 학교에서 해가 바뀌면서 그만 나오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게다가 고아원 아이들 밥 먹이느라 모처럼 대학에 보낸 아이들 학비는 생각도 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우리가 좀 더 열심히 연락하고, 어떻게든 돌아가는 상황을 꼼꼼하게 알아보아야 했는데, 연락이 안 되자, 잘 있겠거니 하고 있었다. 마담이 미국에 갔다는 소식을 풍문처럼 듣고 난 후에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우리 짐을 더는 것이라고 무의식 속에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마담은 친척 집에 얹혀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얻은 수입으로 50명 아이의 먹거리와 교육을 오롯이 책임져야 했다. 아이들을 대학에도 보냈지만, 대학생 한 명당 800달러도 안 하는 일 년 학비를 버거워하고 있었다.   아이티 고아원은 외부의 도움이 없으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고아원의 홀로서기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는, 고아원 아이들을 먹이고 가르치려고 마담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막연히 하나님께서 돌보시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담이 수완이 좋으니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그냥 믿고 있었다.   마담에게 아이들 학비를 송금한다고 스티브에게 연락하면서 하나님께, 아이들에게, 마담 도리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어졌다. 늦었지만 다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라고 하면서 까닭 없이 부끄러웠다. 헨리 조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기고 미안 마담 도리스 아이티 고아원 마담 친구

2025-02-24

[기고] 과연 헌법재판소의 선택은

밥 에드워드와 스콧 암스트롱은 저서『The Brethren』을 통해 1969년부터 1976년까지 연방 대법원의 내부를 조명했다. 한국어로는 『지혜의 아홉 기둥』으로 번역된 이 책은 12명의 대법관 중 11명의 사무실에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는 과정과 판사들 간의 관계, 정치적 영향력, 그리고 법적 판단의 논리를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이 책에는 판사 간의 협력과 갈등, 그리고 법적 원칙과 정치적 압력이 얽힌 복잡한 과정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법적 판단이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과 현실의 괴리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미국의 보수와 진보는 서로 달라도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구사한다. 보수는 전통적 가치와 자유를 중요시하고 정부 개입을 최소화와 자유시장 경제를 지지한다. 정책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며, 전통적인 가족 모델이나 법과 질서를 유지하려는 정책이 우선이다.     반면 진보는 변화와 평등,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며 정부의 개입과 복지 확대를 지지한다. 환경 보호나 인권 보호, 사회적 안전망 확장 등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정책이 우선이라고 기술하고 있다.그러나 대법원 판사들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최대치를 구하고 협력한다.   한국의 보수(우파)와 진보(좌파)와는 다르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안보 문제에서도 큰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이념적 차이가 좌우로 인한 정치적 분열과 사회적 갈등은 국가의 발전과 사회적 통합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분단국가로 남북 관계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보수는 강경한 대북 정책을 선호한다. 북한의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을 강력히 반대하고, 안보 강화와 UN의 결의를 준수함과 동시에 한미일 안보협의체를 유지하는데 주력한다.   이에 반해 진보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이미 6·25 동란과 각종 군사 도발 그리고 미사일과 핵무기 등 북한의 대남전략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을 통한 평화는 북한에 이용만 당한 정책이었다.요즈음 세계가 한국의 헌법재판소에 쏠려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 동포사회에서도 탄핵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겁다. 특이한 것은 보수와 진보의 확연히 다른 주장이다.     진보는 윤 대통령이 시대착오적인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여 국정과 국격을 실추시킨 내란 우두머리로 낙인찍고 탄핵 찬성을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이에 맞서 보수는 부정선거와 중범죄 혐의를 받는 당 대표자를 지키려고 정부 관료 등 탄핵을 남발하고, 망국적 예산 폭거를 자행했다며 ‘비상계엄’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탄핵반대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 모두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린다. 문제는 어느 당 대통령에 의해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임명되었느냐에 따라 재판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염려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로 인해 재판관의 성향이 낱낱이 드러나고, 어느 쪽이냐에 타라 재판관에 대한 이념으로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헌법재판관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판결의 내용은 다양한 법적, 사회적 요소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개인적인 예측을 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념적인 굴레에 덮여 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사회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엄동설한에도 길거리로 나와 찬반을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헌법재판소는 헌법과 법률을 근거로 한 독립적인 기관으로, 재판관의 판결이 사상적 이념을 떠나 정치적인 압력과 외부의 영향도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럴 때 사회적 통합이나 갈등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 재판관 모두는 이념을 떠나 ‘The Brethren’의 재판관들처럼 공정하길 바란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기고 헌법재판소 선택 정치적 사회적 사회적 갈등 사회적 불평등

2025-02-11

[기고] 북극의 시한폭탄

최근 러시아 연구진이 북극의 영구 동토층에서 메탄가스 폭발을 예측하는 실험 장치를 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단순한 과학적 성과가 아니라, 기후 변화가 초래할 ‘시한폭탄’을 경고하는 신호다. 북극이 따뜻해지고 동토층이 녹으면서, 지하 깊숙이 갇혀 있던 메탄이 폭발적으로 분출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흔히 이산화탄소(CO₂)를 지목한다. 그러나 메탄(CH₄)은 이산화탄소보다 28배 더 강력한 온실가스로,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특히, 북극의 동토층에는 수백만 년 동안 축적된 막대한 양의 메탄이 갇혀 있다. 지금까지는 동토층이 마치 뚜껑 역할을 하며 가스를 차단해왔지만, 이제 그 뚜껑이 녹아내리면서 지구 대기 속으로 엄청난 양의 메탄이 방출되고 있다.   그동안 메탄가스 분출은 산발적으로 발생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에서 거대한 웅덩이와 분화구가 잇따라 발견되고 있으며, 과학자들은 이를 메탄 폭발로 인한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폭발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빈도가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이 과정이 ‘되돌릴 수 없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동토층에서 방출된 메탄은 온난화를 가속화하고, 더 빠른 동토층 해빙을 초래한다. 이는 더 많은 메탄을 방출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즉,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변화는 단순한 ‘지구 온난화’가 아니라, 폭발적인 기후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의미다.   러시아 연구진은 이번 실험을 통해 가스 분출을 예측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폭발이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지진이나 화산 폭발처럼 사전 모니터링을 통해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방법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를 완벽히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최근 연구에서는 동토층에서 생성된 메탄 마운드(지표면이 부풀어 오르는 현상)가 폭발의 주요 징후라는 점이 확인됐다. 2024년 8월 30일, 러시아 야말 반도에서 연구 중이던 두 개의 마운드 중 하나가 실제로 폭발했다. 이 마운드는 연간 50cm 이상 성장하며 위성으로도 관측될 정도로 컸다. 문제는 이런 마운드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북극 동토층 지하에 최소 60억 톤 이상의 메탄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 메탄이 한꺼번에 대기 중으로 방출될 경우, 현재의 기후 변화를 훨씬 더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메탄 폭발의 위력은 10톤 TNT 폭발과 맞먹는 수준으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대한 시한폭탄이 북극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우리는 두 가지 선택 앞에 서 있다. 하나는 과학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당장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라며 외면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금이라도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물론 개인이 동토층 폭발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각국 정부와 산업계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온난화 속도를 늦추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북극의 메탄 폭발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는 분명하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이 경고를 무시한다면,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도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시한폭탄 북극 메탄가스 폭발 북극 동토층 메탄 폭발

2025-02-03

[기고] 김종림의 순국 52주년을 추모하며

을사년 새해는 미주이민 122주년이며 광복 80주년의 해이다. 공군전우회는 독립운동가 김종림의 순국 52주년 추모행사와 신년 하례 모임을 지난 9일 열었다.   특별히 잉글우드 메모리얼파크에서의 헌화와 추모 행사는 오늘날 한국공군의 기원이 되는 북가주의 ‘윌로우스 비행학교’ 설립에 전폭적인 재정 후원을 한 미주독립운동가 김종림(1886~1973)의 삶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표시였다.     김종림은 일제 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동지회 대표 등을 역임한 애국지사다. 하와이 이민 후 1907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벼농사로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 명성을 얻었다. 1920년초에는 상해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을 만나 임시정부 수립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08년에는 전명운, 장인환 의사의 스티븐슨 저격 의거가 일어나자 공립신보의 인쇄원으로 동포 사회에 소식을 전했다. 또 이듬해 국민회(공립협회와 하와이 한인협성회 통합)의 교육업무에도 관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김종림은 1942년 56세의 나이에도 캘리포니아 예비군으로 입대했다. 2남1녀 자녀중 두 아들은 미 해군에 지원해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과 싸웠다. 큰아들 진원(제임스)은 알루샨 열도에서 통신부사관으로 복무했고, 둘째아들 두원(돈)은 해군 상륙정 승무원으로 필리핀 해역에서 교전을 치른 후 미국이 승리하자 점령군으로 일본에서 근무했다.   광복 후 예순의 나이에도 새크라멘토 밸리에서 벼농사를 지었고, 1946년 동지회 북미총회가 창립한 한미주식회사가 임페리얼 밸리에서 1000에이커의 벼농사 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농사 감독의 일을 맡아했다.     미주 한인사회의 복리증진에 힘썼고, 본인이 세운 1세대 이민자를 위한 양로원에서 1973년 1월26일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유해는 잉글우드에 있다.   그의 삶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이 목표였다. 당시 미주한인들이 항공력을 키워 일본을 공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비전을 세우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한 것은 조국과 동포 사회에 희망을 주었고 후손들에게 큰 자부심으로 기억된다.   김종림의 둘째 아들 두원(돈)과 친구 사이였던 도산 안창호의 막내아들 랄프 안 은 생전 인터뷰에서 “김종림은 미주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로 윌로우스 한인비행 학교의 모든 재정을 도맡아 운영했다. 이후 사업에 실패해 어려움도 있었지만 평생 위엄을 지키고 산 분으로 기억하며 존경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국립항공박물관은 지난 2020년 윌로우스 비행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아 개관 기념조형물을 제작했다. 이를 통해 오늘날 대한민국 공군의 상징적 기원으로 교육하고 있다.                                                                                               윌로우스 비행학교 설립을 가능케 전폭적 재정지원을 한 김종림의 삶에 존경을 표하며, 대한민국 공군전우회(회장 이계훈)는 그의 순국 52주년을 추모하며 머리 숙여 감사 드린다. 심인태 / 한국공군전우회 LA지회장기고 김종림 순국 미주독립운동가 김종림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동지회 추모 행사

2025-01-27

[기고] 정상과 비정상

1945년에 출간된 조지 오웰의 대표작인 ‘동물농장’은 역사적 정치 풍자 소설이다.   존스가 운영하는 ‘맨더빌 농장’의 동물들이 농장주의 압제에 대항하여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라는 구호를 앞세워 늙은 수퇘지 메이저의 부추김에 빠져 반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동물들은 ‘무릇 두 발로 걷는 자는 적’ ‘네 발로 걷는 자나 날개를 가진 자는 친구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등 ‘일곱 계명’을 주창한다. 모든 동물이 인간의 착취가 없는 평등한 이상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돼지의 지도자 나폴레옹이 스노볼을 내쫓은 뒤로부터 동물들은 옛날보다 더 혹독한 여건에서 혹사당하기 시작한다.   나폴레옹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서 동물들은 권력을 남용하는 돼지들에 의해 억압당하게 되었고, 그들은 점차 인간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애초 반란의 목적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리사욕에 빠졌다.     동물농장의 초기에 세운 ‘일곱 계명’은 동물들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돼지들은 이 계명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변경하면서 원래의 이상은 점차 희석되고 왜곡되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원칙은 결국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지 않다”는 계명으로 변하게 되었다. 농장에 살던 동물들은 대부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특히 개나 양처럼 돼지의 명령을 따르는 동물들은 현재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충성하는 모습만 보였다. 그러니 돼지들의 부패나 변칙적인 행동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지 않았다.   외부의 인간들이 ‘동물농장’을 위협하고, 자원을 분산시켜 내부의 안정감을 방해했다. 결국 인간들과의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한 타협과 배신으로 ‘동물농장’의 이상은 파괴되었다. 그들이 가진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들의 실패는 권력의 부패, 무지한 대중 그리고 배신이 결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동물농장이 풍자한 정치적 역사 배경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에 이르기까지 소련에서의 정치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혁명을 호소하는 늙은 돼지 메이저는 마르크스를, 독재자 나폴레옹은 스탈린을, 나폴레옹에게 내쫓기는 스노볼은 트로츠키를 상징한다.   성공한 혁명이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지,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이 어떻게 국민을 속이고 핍박하는지를 면밀하게 그린 이 우화는 현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물농장 속 나폴레옹과 돼지들은 모든 시대에 존재 가능한 교활한 권력자와 그 집단을 상징한다. 동물농장에서 권력 자체만을 목표로 하는 혁명은 주인만 바꾸는 것으로 끝날 뿐 본질적 사회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매서운 질타는 비관이 아니라 권력의 타락을 막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통찰도 동반하고 있다.     동물농장이 함축하는 또 다른 메시지는 동물들의 무지와 무기력함이 권력의 타락을 방조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권력에 맹종하고 아부하는 순간 사회는 병들어 가고 피폐해진다.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신념을 토로하고, 자유를 향한 인간 능력에 깊은 신뢰를 표명해야 한다.   권력 쟁취 자체만을 목표로 하는 혁명은 주인만 바꾸는 것으로 끝날 뿐 본질적 사회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하고 나락으로 추락할 뿐이다.   사람들이 권력에 맹종하고 아부하는 순간 사회는 좀먹는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는 특정인의 독점물이 아니라 함께 누리는 행복이다. 이것이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박철웅 / 일사회 회장기고 비정상 정상 지도자 나폴레옹 자유민주주의 가치 독재자 나폴레옹

2025-01-22

[기고] 준비 안된 이별의 빈자리

누나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날은 12월치고는 따뜻했지만, 잔뜩 흐렸다.     허겁지겁 먼길을 달려 버지니아 리치먼드의 한 병원 신경과학 중환자실에서 만난 누나는 혼수상태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여러 개의 주사를 맞고 있었다. 아무 반응이 없는 누나는 기계에 의지하여 숨을 이어갈 뿐 작은 움직임도 없었다.     수많은 기계가 시시각각 그의 상태를 점검하는 중에 산소와 알지 못할 약물들이 희망을 희석하더니 끝내 누나는 깨어나지 못했다.   하루를 지나 겨울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매형과 가족들이 모여 연명 치료를 중단하기로 동의했다. 산소호흡기가 제거된 후 14분이 지나자, 누나의 상태를 보여주던 모든 그래프가 수평선으로 바뀌었다. 조금씩 낮아지며 애태우던 숫자들이 파르르 떨며 꺼지더니 병실로 어둠이 들어왔다.     순식간에 슬픔보다 더 큰 이별의 무게가 우리를 누르고 있었다. 누나는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날까지 친지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서 보냈다. 워싱턴에 사는 아들은 고모가 병원에서 숨을 거둘 때 임종하고, 장례식 전에 집에 다녀온다고 갔다가 고모가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를 집에서 받았다며 또 통곡했다.   나보다 세 살 위의 누나는 사십여 년 전에 미국에 이민왔다. 그리고 부모님을 초청하고, 우리 형제가 다 미국에 자리를 잡는데 넉넉한 뒷배가 되어주었다. 신앙심이 깊어 이민 초기에 아버지를 도와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고, 찬양을 좋아하고 잘해서, 집이나 교회에서 찬양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교회 성도와 이웃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해서 인근에 누나의 밥을 먹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누나가 출석하던 교회는 매년 아이티 후원 헌금을 한다. 지난해 가을, 올해에는 예년보다 많은 헌금이 되었다며 누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아이티 고아들을 사랑하시는 증거라고 했다.     우리는 새해 1월에 누나의 교회를 방문하기로 약속했었는데, 누나는 성탄절을 불과 일주일을 앞두고 교회 회중 앞에 차갑게 누운 것이다.     장례 예배는 조문객들이 큰 예배당을 가득 메운 채 진행됐다. 모두 너무 놀라며 한결같이 슬퍼했다. 매형에게도 누나의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교회의 모든 이들에게 누나의 빈자리는 참 클 것이다. 그러나   누나는 나에게 가장 큰 빈자리를 남기고 갔다. 아이티 사역을 하면서 아내와 어머니와 누나의 기도가 큰 기둥이 되어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누나는 우리 아이티 사역을 더욱 세세히 묻고 기도했다. 아이티에 가면 가는 대로, 못 가면 못 가는 대로,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며, 서로 기도의 파트너가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서로에게 기도의 동반자였던 누나를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갑작스레 하늘 찬양대로 부르신 것이다.아이티가 갱단에 의해 폭력적 상황이 되어가고 있을 때, 일주일에 서너 번씩 누나는 문자 메시지로 아이티 상황을 물어왔고, 기도했다. 그렇게 가까이서 기도해 주던 기도의 동역자가 너무 서둘러 하늘로 간 것이다. 물론 우리는 누나가 천국에서도 여전히 우리와 아이티 고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리라 믿지만, 준비 안 된 이별의 빈자리는 너무 컸다.   그러나 지금도 수많은 기도의 동역자가 있어 그분들의 기도로 아이티 고아 구호 사역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하늘로 데려간 누나를 대신하여 사랑하시는 고아들을 위해, 앞으로 더 많은 기도의 동역자를 보내주시리라 믿는다. 우리 사역은 기도가 아니면 헤쳐 나갈 수 없는 일이므로. 헨리 조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기고 이별 아이티 고아들 아이티 상황 번씩 누나

202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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