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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함께 읽으니 깊어졌다

지난 토요일 독서 모임에 다녀왔다. ‘한강 읽기 모임’이었다.   책을 많이 잘 읽고 싶은데 혼자는 한계가 있다. 읽다가 중단한 적이 많다. 수행하듯 읽으니 다른 재미있는 일에 치이기 일쑤다. 스스로 정한 목표치만 간신히 채우고 덮어버리곤 한다.   글을 쓰려 맘먹고부터 독서의 필요를 더욱 느끼고 있다. 어떻게 쓰는지 곁눈질했다. 고전을 읽으려 시도했다. 사람들이 살아낸 환경을 배우며 그네들을 이해하고 글 속의 주옥같은 표현도 닮고 싶었다.   읽을수록 내 부족한 점이 드러났다.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어렵게 읽은 책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해 아쉬웠다. 의지를 다해 읽어 내린 책은 곧 책꽂이에서 장식품이 됐고 나는 읽어냈다는 안도감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말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곤 한다. 생각은 입을 통해 밖으로 나와 객관화 과정을 거친다. 타인의 말을 들으며 내 맘을 깨닫기도 한다, 동의하는 혹은 반대하는 대화를 통해 제대로 알아간다. 책 속에 나오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내 기준에 갇히기 쉽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며 고정된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설득하기도 하고 설득당하며 폭이 넓어진다. 타인과 더불어 배울 수 있어 참 좋다.   멀지 않은 곳에서 독서 모임이 열린다니 가슴 뛰는 일이었다. 신문을 통해 알고 오신 분이 대부분이었다. 관심 있는 분들과 작품을 중심으로 생각을 나누고 곁가지도 듣고 왔다. 선물 하나 들고 갔다가 두 손 가득 선물 받고 왔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로 모임을 했다. 작품 배경인 제주 4·3사건에 대한 자료를 공부하고 책도 꼼꼼히 읽어 갔다. 독서 토론 경험이 없는 나는 책에 밑줄 쳐가며 읽었던 부분을 중심으로 의견을 말했다. 모임에는 제주에서 생활하신 분들이 있어 제주 살이에 대한 다양한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놀라운 점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한 집에 살더라도 각자의 부엌을 갖고 따로 살림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듣는 말이었는데 독립적인 여성들의 삶이 놀라왔다.   한강 작가를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젊은 여성인 그녀에게 호기심이 일어 몇 편을 읽었다. ‘아버지 영향으로 문단에 쉬이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라는 내 선입견은 사라졌으나 이상 문학상을 받은 ‘몽고반점’을 접하고는 난해한 작가라 여기고 그녀를 잊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후, 그녀 책을 다시 보고 있다.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시적 표현이 담긴 작품들에 유난히 마음이 끌린다.   한강 작가는 역사 뒤안길에서 잊혀져간 사람들 삶에 시선을 둔다. 나는 비겁하게 뒤로 빠져 적당히 살아가고 있으나 누군가 나와 주길 바랐다. 용기 있는 누군가를 기다렸다. 승자들이 써 내려간 역사 안에서 그녀는 소시민을 어루만진다. 그녀 책을 읽음으로 그녀를 응원하기로 했다. 다음 독서 모임이 기다려진다. 한 달에 한 번, 오렌지글사랑에서 진행되는 이 모임에 관심 있는 분들 함께했으면 좋겠다. 김현실 / 수필가이 아침에 독서 모임 독서 토론 다음 독서

2025-06-11

[삶의 향기] 별난 사람들 모임서 배운 존중의 미학

일행과 함께 LA에서 떨어져 살고 있는 지인을 방문했다. 일행 중 음식에 대해 유난히 까다로운 분이 있었다. 다들 가까운 사이인지라, 함께 간 남자분이 그분에게 “미스 별라”라는 별명을 지어 부르며 짓궂게 농을 한다. 그 말을 들은 집주인이 “사실 저도 한 별라합니다.” 하며 받는다. 오래전부터 알아 온 주인분 역시 성격이나 생활방식은 물론 인생 이력도 평범과는 거리가 먼 분이다.   식사를 하며 일생을 살펴보니, 별라 아닌 사람이 없어 보였다. 미스 별라라는 별명을 지어준 예의 그 남자분도 평범한 이력을 가졌지만, 범상치 않은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주위를 당황케 하곤 한다. 함께 갔던 교무님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을 잘 믿고, 세상에 긍정적이다. 하긴 그러니까 출가를 했겠지 하다가도 여전히 낯설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군대에서 꼴통 소리를 들을 만큼,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을 거쳐 대학에 입학한 것 치고는 상식과 동떨어진 엉뚱한 행동을 많이 했다. 하긴 출가보다 더 별난 사람인 것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또 있을까?   “저는 나중에 시골에 가서 농사지으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한동안 소박한 꿈의 대명사로 여겨져 왔지만, 지금은 다른 것 같다. 농사의 전문성을 무시한다는 비난은 이미 오래전부터 상식이 되었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잘 모르네 하며 한마디 거드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금처럼 이상기후가 일상화된 시점에서는 오히려 정상기후를 이상기후라 불러야 하는 것처럼, 별나지 않은 사람, 즉 평범한 사람을 별나다고 해야 할 판이다.   아무개는 자기 생각이 강해서 충고나 조언을 잘 안 들어, 아무개는 말하기는 좋아하는데, 들으려고는 하지 않아. 자기 생각이 강하지 않고, 자신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평소 조용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들도 가까이 지내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기 생각 없는 사람 없고, 특정 분야에서만큼은 고집이 보통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이건 맛있는 음식이야”, “저 색은 이쁜 색이야” 느낌의 표현을 넘어, 확신과 그에 기반한 강요 아닌 강요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맛이나 색감에 관해 시대와 지역이 갖는 보편 정서가 있음은 당연지사이지만, 이야말로 철저하게 기호의 영역 아닌가? 필자는 안심이나 살치살보다 가격이 십분의 일밖에 안 하는 익숙한 삼겹살이 더 맛있고, 아구찜은 라면보다 못하다. 왜 이 맛있는 것을 모르냐며 탓하거나 강요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왜 안 좋아하는지 이유를 말해보라는 지경에 이르면 황당할 뿐이다. “그냥이요” 이 이상의 설명이 가능할까?   “놔두세요, 그냥 이렇게 살다 죽게.” 상대방 충고나 조언에 대해 부담을 덜려는 목적의 체념 섞인 농담이지만, 천성에 대한 진리적 의미와 다름과 틀림의 차이 등에 관한 나름의 통찰도 담겨 있는 것은 아닌지. 함께 간 일행 모두 별난 사람들이었지만, 주로는 개성과 성향의 범위이지, 특별히 존중받거나 비난받을 내용은 아니다. 기호와 선호는 존중하고 그냥 두자. 인격 도야를 위해, 깨달음을 위해 진정으로 닦고 고쳐나가야 할 것들은 이 외에도 지천에 널렸다.   [email protected] 양은철 / 교무·원불교 미주서부훈련원삶의 향기 모임 존중 사람들 모임 인생 이력도 상대방 충고

2025-06-09

뉴욕한인회장 이·취임식 내달 12일 개최

38·39대 뉴욕한인회장 이·취임식이 내달 12일 개최될 전망이다.   4일 뉴욕한인회는 “전·현직 한인회장이 상의 끝에 내달 12일 뉴욕한인회 창립 65주년 기념식 때 이·취임식을 함께 개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뉴욕한인회 창립 65주년 기념식과 함께 개최되는 뉴욕한인회장 이·취임식은 퀸즈 베이사이드 KCS 뉴욕한인봉사센터(203-05 32nd Ave, Bayside, NY 11361)에서 열릴 예정이다.   1일부터 이명석 39대 뉴욕한인회장의 임기가 시작된 가운데, 39대 인수위원회는 이날 오후 마지막 인수인계위원회 모임을 갖고 전·현직 회장 및 인수인계위원장의 서명을 끝으로 모든 공식 인수인계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날 모임에는 임기 첫날을 맞이한 이 회장을 포함해 38대 김광석 회장, 곽호수 인수인계위원장과 여러 인수인계 위원들이 참석했다.     이 회장은 회장 이·취임식에 대해 김 전 회장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밝혔으며, 김 회장은 “2~3주 동안 여행 및 출장 일정이 있어 5월 이후로 미루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앞서 이명석 회장은 5월 1일 이·취임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가 “불가피한 상황이라 이·취임식이 취소됐다”고 전했다. 4월부터 뉴욕한인회 사무국 직원이 거의 없어 행사 준비가 어려웠고, 인수인계위원회 구성 및 인수인계 절차가 연기된 것 등이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과 김 전 회장은 이날 인수인계 서류에 서명한 이후 악수를 나누며 “뉴욕한인사회를 위해 힘을 함께 모으자”며 화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39대 집행부는 20명 내외의 부회장단과 임원, 5~6개의 특별위원회로 구성될 예정이다. 윤지혜 기자 [email protected]뉴욕한인회장 취임식 취임식 내달 인수인계위원회 구성 인수인계위원회 모임

2025-05-04

"기도가 세상을 비꾼다"…앤디 김 초청 코리안 리더십 모임

기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특히 정치인을 위한 기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뉴욕·뉴저지에서 활동하는 한인 기독교인들은 “그렇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을 행동으로 옮겼다.   세계한국인기독교총연합회(회장 김태수 목사, 이하 세기총)와 아시안아메리칸유권자연맹(대표 테렌스 박)은 오는 25일(금) 오후 5시 뉴저지 포트리 더블트리호텔 2층 그랜드볼룸에서 제1회 코리안아메리칸리더십 모임을 갖는다고 밝혔다.     이 모임이 특별한 것은 이날 250만 미주한인들의 염원으로 탄생한 첫 연방상원의원 뉴저지주 앤디 김 의원을 초대해 당선을 축하하고, 더 나아가 앞으로 이런 한인 정치인 리더들이 더 많이 탄생할 것을 염원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지지나 행사 후원과는 개념이 다르다. 한인 사회가 정계에 진출한 한인을 위해 영적으로 ‘전방에서 돕겠다’는 다짐이기 때문이다.   이날 모임은 만찬과 함께 한국전 참전용사 미국인 3명에 대한 메달 증정식이 있다. 이 메달은 한국 DMZ서 수거한 탄피로 만든 메달로서 오바마 당시 미국 정부도 6.25전쟁 메달로 공인한 바 있다.     이어서 한국 문화예술위원회 초대 이사장인 서효석 편강한의원 원장에게 공로패가 수여되고, 다음엔 앤디 김의 답사와 비전 발표가 있게 된다. 그 후에는 축도와 기도가 이어진다.   행사 홍보차 22일 뉴욕중앙일보를 방문한 세기총 김태수 회장은 "미래를 영적으로 보호하고 인도하는 기도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기드온 300용사처럼 미국 300명, 한국 300교회, 세기총 300명으로 기도 삼각편대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아시안아메리칸유권자연맹 테렌스 박 대표는 앤디 김 뿐만 아니라 앤디 김의 부친도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며 “그가 정의롭고 겸손한 지도자로 미국 정계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 기도회는 선거철의 떠들썩한 유세가 아니라, 무릎 꿇고 조용히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믿음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더욱 울림을 준다. 교회 안에서 울려 퍼지는 기도가, 정치의 중심까지 닿아 한인사회의 미래를 영적으로 보호하는 울림이 되기를 바라는 이들의 소망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이날 모임은 교파와 정파를 초월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신청을 원하는 사람들은 세기총 미동북부회 대회협력단장 이석범 장로에게 전화(201-983-3330)하면 된다. 글·사진=서만교 기자 [email protected]코리안 리더십 코리안아메리칸리더십 모임 이번 기도회 기도 삼각편대

2025-04-22

[문예마당] 대피령에 깨달은 진짜 귀중품

지난 1월7일은 LA카운티를 휩쓸고 간 사상 최대의 산불이 있었던 날이다. 전날 저녁에 불었던 돌풍이 엄청난 화재의 원인이 됐다.     우리 동네 글렌데일을 중심으로 동쪽 알타데나와 서쪽 퍼시픽 팰리세이즈에서 난 산불은 삽시간에 동네로 번져 마을 전체를 태우고 있었다. TV에서는 계속해서 화재 현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산골짜기 여러 곳에서도 조금씩 불길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러다간 LA 전체가 불바다가 될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해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리 동네만 빼놓고 온통 하늘이 컴컴했다. 에어 퀄리티 지수가 30정도가 정상인데 무려 10배가 넘는 380에 달했다. 바깥 출입도 자제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동쪽 알타데나와 같은 능선에 있는 모든 동네에 전기를 끊고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라크레센터 산 중턱에 사는 큰딸 식구가 모두 글렌데일 우리 집으로 대피해 왔다. 애들과 간단한 짐만 챙겨 왔다.     많은 학교에 휴교령이 내렸다. 동네가 탔으니 거기에 있는 초중고 학교도 탔다. 보통 산에 있는 집들이 화재를 당했지만 이번 경우는 동네로 불이 번졌다. 바람의 방향 때문이었다.     세계적으로 큰 뉴스였다. TV에서는 거의 모든 방송을 중단하고 집들이 불에 타 무너지는 장면을 계속해서 보여줬다. 영화 쿼바디스에서 봤던 로마의 화재가 연상됐다. 한국에 있는 친지들에게서 안부를 묻는 카톡이 왔다. 우리도 이글락까지 불이 번지면 대피해야 했다.   작은 가방 2개를 꺼내놓고 이틀 정도 입을 속옷과 양말, 겉 옷을 먼저 챙겼다. 액세서리는 집락에 부어 가방에 넣고 옷장을 열었다. 무엇을 골라야 할 텐데 골라지지가 않았다. 한참 생각하다가 밍크 코트와 밍크 목도리를 골랐다. 부피가 나간 것이라 가방에 넣으니 가득 찼다.     집 안을 둘러보니 그동안 내 손때 묻은 것들로 가득하다. 그들도 눈치를 챈 듯 모두 “나도! 나도!”하며 챙겨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벽에 걸려있는 내 그림들이며, 오랜 세월 벽장에 무수히 걸려있으며 철 따라 바꿔 입었던 옷가지들, 책들, 가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해야했다.     그래도 뭔가 허전해서 온 집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이민 와서부터 띄엄띄엄 써왔던 일기들이 생각났다. 대충 서너 권을 빼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차에 실어 놓았다. 일기장을 챙기고 나니 마음이 좀 푸근해졌다. 보석 한두개와 친지를 도우려고 샀던 밍크 코트와 목도리는 값만 비쌌을 뿐 큰 위로는 못되었다.   학창 시절에 읽은 기억이 난다. 교과서에 실렸던가. 외국 단편인데 가난한 친구 집에서 친구들 모임이 있었다. 모두 보석을 끼고 와서 자랑들을 해댔다. 집 주인 차례가 되었다. 가난한 친구는 방에 들어가 두 아들을 데리고 나온다. 그녀는 두 아들이 자기에게는 귀한 보물이라고 했다. 이번 LA 산불로 가족이 무사한 것으로 위로를 삼았을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었다. 그 슬픔과 절망은 말로 다 어찌 표현하겠는가.   산불이 있고난 얼마 후에 남편 친구들 모임이 있었다. 요즘은 거의 부부가 같이 모인다. 나이도 들고 오랫동안 만나니 여자들도 동창처럼 반갑다. 평소에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를 묻곤 하는데 그날은 보자마자 한 부인이 이번 화재로 그녀의 딸 집이 탔다고 했다.     당시 산불이 발생한 지 꽤 지났는 데도 여전히 전화만 하고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에어비앤비에 대피해 있는데 집 잃고 수습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날마다 바빠 전화도 자주 못하고 있다고 했다. 집에 물건들을 그대로 두고 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아이들 둘만 데리고 나왔다고 했다. 평소에 농담을 잘하셔서 주위를 재미있게 해주셨던 바깥 분은 끝까지 별말이 없이 초조한 표정이었다.   요즘도 TV에선 화마가 휩쓸고 간 빈 터를 가끔 보여준다. 아직도 까맣게 탄 잔해가 남아있다. 1만여 세대가 훨씬 넘은 피해 가정은 다 어디에서 기거하고 지낼까 걱정된다.     미국은 집 하나하나가 다 개성이 있다. 집 밖을 참 개성 있게 가꾼다. 처음에 미국에 왔을 때 높은 담이 없고 모두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집 앞뜰이 정말 아름답게 보였다. 남을 위하여 돈과 정성을 들여 꾸며 놓은 정원은 걷는 이의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 미국과 한국의 다른 점은 주택에서 가장 많이 구별된다. 그래서 동네를 걷는다거나 차를 타고 밖을 보면 특색있게 꾸민 집들을 구경하느라 지루하지가 않다.     집안에 있는 정들었던 물건들, 가구들, 사진들, 그림들, 오랜 세월을 거쳐 모아온 수집품들이 모든 것들을 놓고 나왔을 화재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며칠 전 어느 신문에 LA 주택 렌트 값이 많이 올랐다는 기사가 났다. 화재로 인해 수요가 급증해서 화재 난 지역 부근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 지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한 말이 생각난다.“나의 행복이 남의 불행을 딛고 일어선 것임을 이제야 알았다”고 겸손하게 고별사를 쓴 것을 보았다.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지금, 이런 후회의 말이 아닌“나의 조그마한 배려가 남에게 큰 행복이 될 줄 몰랐다”로 바꾸어 보고 싶다. 이영희 / 수필가문예마당 대피령 귀중품 집들이 화재 화재 현장 친구들 모임

2025-03-27

[열린광장] 문학의 ‘쓸모’에 관하여

오렌지글사랑 모임이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매월 공부해온 세월이 어느새 30년이 된 것이다. 도대체 문학이 무엇인가, 거기에 무슨 마력이 있어 그렇게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것일까.   중학 졸업 후 진학을 못하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였다. 앞날을 가늠할 수 없는, 참 막막한 시절이었다. 한 달에 한 번쯤 마을 이발소에 들렀다. 그곳에 밀레의 ‘이삭줍기’ 그림 한 폭과 푸시킨의 ‘삶’이라는 시 한 편이 걸려있었다. ‘생활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라 / 괴로운 날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 오리니 / 인생은 언제나 슬픈 것 /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매월 꼬박꼬박 만나게 되는 그 시 한 편이 가만가만 나를 어루만지며 위로하기 시작했다.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온다’는 대목을 되뇌며 힘든 날을 견뎌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만났던 한 편의 시가 지금까지도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 문학의 힘이다.   작년에 글사랑 회원 세 분이 수필집을 출간했다. 수필은 자신의 바닥을 내보이는 글이다. 쑥스럽고 부끄럽고 남세스러운 일까지를 빨랫줄에 걸어놓은 일이다.     밑바닥이 없는 사람은 없다. 남의 밑바닥 얘기를 들으면서 내 밑바닥을 생각하게 마련이다. 이야기 속의 나와 내 속의 이야기가 만나는 지점이다. 공감하고 감동한다. 밑바닥이 밑바닥을 만나면 부둥켜안고 울기 십상이다. 울음은 엉킨 가슴을 풀어주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준다. 문학의 힘이다.   쉬운 인생은 없다.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게 삶이다. 벼라 별일을 겪으며 살아가는 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 원망과 미움, 자책과 서러움 등이 차곡차곡 쌓인다. 들끓는 마음의 충동, 불안하고 어두운 자의식을 고백하기는 쉽지 않다. 글쓰기를 통해 내밀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밝은 세상이 보이듯, 글을 쓰고 나면 삶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글을 마친 다음 어느 작가는, ‘가슴에 맺혀있던 돌덩이 하나가 쑤욱 빠져나간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글쓰기를 통해 영혼을 위로받고 아픔이 치유되었다는 놀라운 체험을 얘기한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물론 독자에게도 위로와 위안을 준다. 문학의 힘이다.   최근, 한국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변론에 나선 변호인들의 주장을 TV를 통해 지켜보았다. 청구인과 피청구인 측을 대변하는 모든 변론 중, 장순욱 변호사의 변론이 단연 돋보였다. ‘헌법의 말과 헌법의 풍경’을 얘기한 그의 말은 정연하고 담백하고 아름다웠다. 헌재의 최종 결과와는 무관하게, 상대를 설득하여 공감하고 감동시키는데 문학적 표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입증해준 변론이었다. 그의 변론은 ‘문학의 힘’이 얼마나 큰지, 문학의 쓸모가 어디에 있는가를 일깨워 주었다.   문학은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다. 삶의 굽이굽이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잘 살아낼 수 있는가. 문학은 이야기를 통해 그 길을 조곤조곤 안내해 준다. 정찬열 / 시인열린광장 문학 문학적 표현 밑바닥 얘기 오렌지글사랑 모임

2025-03-12

[삶의 뜨락에서] 여보, 내 시를 읽어줘!

“여보, 내 시를 읽어줘”하고 부탁한다. 내 시가 좋다고 생각되니까, 아내한테 읽어보라고 한 것이다. 대개의 경우 아내는 ‘오케이’ 하고서 내 시를 읽는다. 그런데 아내의 기분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아내도 바쁘다. 아내도 해야 할 일이 많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도 있다. 이럴 때는 아내도 크게 반발한다. “여보, 나는 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 게다가 나는 시에 대해 전연 흥미도 없어. 당신이 시를 좋아하면 당신 혼자 시를 써. 왜 나를 못살게 굴어! 못살게 굴지 마.” 그리고는 내 시를 안 읽겠다고 거절한다.     아내를 달랜다. “여보, 당신이 나에게 부탁하면, 나는 얼른 당신의 부탁을 다 들어주었어. 그런데 당신은 내 부탁도 안 들어준다는 거야. 무정한데!” 그러고는, 아내 곁에 내 시를 놔두고 나는 아내 곁을 떠난다.     다행히도 아내의 짜증은 오래가지 않는다. 아내는 내 시를 읽는다. “내 시가 안 좋다”고 평한다. 나는 아내가 내 시를 읽고서, “아, 이 시, 아주 좋은데”하고 평해주기를 기대했었다. 그런데 내 시가 나쁘다고 말한다. 내 속이 확 상한다. “어디가 나쁘단 말이야? 지적해줘” 하고 화낸다. 아내의 지적을 듣고 있으면, 내가 화가 나 있어도, 그래도 아내의 지적이 옳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아내의 지적이 맞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 가라앉는다.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해준다. 고맙다는 나의 말을 듣고서 아내도 기분 좋아한다.     시를 써놓은 후, 나 혼자서 내 시를 읽어본다. 어떻게 보면 내 시가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내 시가 나쁘게 보인다. 문제는, 내가 내 시를 읽어보고, 내 시가 ‘좋다’ ‘나쁘다’ 하고 스스로 평가할 만큼 내가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력이 부족하니까, 나는 아내의 평에 의존해야만 한다. 다행히도, 세월이 흐를수록 시에 대한 안목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앞으로도 아내의 지적을 나는 계속 받을 것이다.   나는 ‘중앙일보 문학동아리’ 회원이다. 가끔 시(詩) 모임이 있다. 모일 때마다 회원들은 시 한 편씩 써서 가져온다. 돌아가면서 각자 자기 시를 낭독한다. 낭독한 후, 어떤 동기로 시를 쓰게 되었다는 등, 어떤 메시지를 독자에게 주고 싶다는 등, 각자 자기 시에 관해 설명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시를 읽고 난 후, 다들 “그 시 참 좋네요.” 하는 평을 듣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좋다는 평을 듣지 못하면 섭섭해한다. ‘좋지 않은 점’을 지적해주면, 자기를 ‘욕하고 있다’고 오해해서 화를 내기도 한다. 심지어 싸우려고 달려들기도 한다. 그러니, 회원들은, 남의 시의 나쁜 점을 지적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말로만 ‘좋네요’하고 간단하게 평해버리고 만다.     그러니, ‘좋다’는 말만 들으니, 다들 좋아한다. 좋아하는 거야 좋다. 그런데 빈말로, 좋다고 하는 평을 듣고서, 진짜로 자기 시가 좋아서 좋다고 한 걸로 오해해버릴 수가 있다. 그러면 자기도취에 빠진다. 자기도취에 빠지면, 어떻게 발전을 이룩해갈 수가 있단 말인가? 자기 시의 나쁜 점을 가끔은 비평받아야만 시(詩)가 발전해갈 수 있는 것이다.     다음 모임부터는, “나는 결코 화내지 않을 테니까, 내 시의 나쁜 점을 허심탄회하게 비평해주십시오” 하고 간청해야겠다. 조성내 / 시인·의사삶의 뜨락에서 자기 시가 중앙일보 문학동아리 다음 모임

2025-02-11

크림슨X·입실렌티 모여라…60주년 맞은 고대 교우회

고려대 남가주 교우회(회장 김용·이하 교우회)가 60주년을 맞았다. 본교 개교 120주년과 함께 뜻깊은 해를 맞이한 교우회는 동문 간 유대 강화와 사회적 기여 확대를 올해 주요 목표로 삼았다.   김용 회장은 “선후배 간 화합은 기본”이라며 “골프, 등산, 축구, 바둑 등 16개 소모임을 활성화하고, 지역 및 학번 모임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90~00학번 젊은 동문들의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크림슨X’(90학번)와 ‘입실렌티’(00학번) 모임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교우회는 올해 산불 피해 지원을 위한 성금 모금을 진행할 계획이다. 김 회장은 “구체적인 모금 방안과 지원 방법을 논의 중”이라며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돕기 위해 교우들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동문들의 사회적 참여 확대도 추진된다. 김 회장은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활성화하고 싶다”며 “앞으로 교우회 모임 전에 한두 시간씩 함께 봉사활동을 진행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녀를 둔 동문들을 위한 진로 및 취업 멘토링도 강화된다. 김 회장은 “젊은 동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며 “선배들이 후배와 자녀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지만, 동문들이 서로 교류하며 힘을 보태면 좋겠다”며 “대외 활동도 확대해 교우회의 역할을 더욱 확장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강한길 기자게시판 고려대 남가주 고려대 남가주 이하 교우회 학번 모임

2025-02-02

[이아침에] 죽음은 다리 하나 건널 뿐

캘리포니아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하늘은 빨갛게 타올랐다. 검게 물들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아직도 타는 듯한 냄새가 코에서 맴돌았고 잿가루가 차 지붕에 쌓였다. 을씨년스러운 산과 주위를 보며 프리웨이를 달렸다. 정체가 없어서 생각보다 일찍 할리우드 힐스 포리스트 론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이곳에 오면 마음이 무거웠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뭔가 겪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착잡한 마음으로 장례식에 참석하고 끝나 가기를 기다렸었다. 그러나 이젠 그렇지 않다.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별식으로 생각하게 됐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이 오지 않았다. 긴 의자는 등받이가 높았고 칸막이를 해 놓은 듯 보여 엄숙함을 더 하는 것 같았다. 조문객들은 조용히 마지막 작별을 하기 위해 앉아 있었다. 접수처에서 내 이름을 쓰고 있는데 누군가 내 등을 두드렸다. 밸리에 사는 문우였다. 오기로 한 문우들이 시작 시간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장례식 순서지를 보니 시와 수필이 실려있었다. 시는 추모하는 글이었고 수필은 그녀가 죽기 전에 써놓은 글이었다. ‘영혼의 이별식’인데 지인의 장례식에 다녀와서 쓴 것이다.     그녀는 “평소 즐기던 음악을 내 장례식에 참석한 지인들과 감상하고 영혼의 이별식 하루 만이라도 숙명적으로 낙엽인 된 나와의 결별을 슬퍼해 줄 몇 명의 진실한 가슴만 있다면 떠나는 길이 외롭지 않을 것이리라”고 썼다.   이제 내가 여기에 와있다. 그녀가 써놓은 수필의 손님으로 앉아 있다. 그녀는 작년 8월 달 동네방 글공부 모임에 나왔었다. 내가 밥을 산다고 했다. 그때는 4명만 나왔다. 그녀는 “밥을 산다고 하니 나와야죠” 하고 말했다. 약간 수척한 듯 보였지만 아픈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글에 대해 진지하게 평하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모임과 한강 노벨상 문학 축하 자리에 나왔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11월 달 줌미팅에서였다. 그때 한 회원이 그녀에게 말했다. “선생님, 나오기를 기다렸었는데 저번 때 나오지 않으셨더라고요. 선생님이 저번 때 평한 것을 가지고 제 작품을 많이 고쳤어요.”     그때에도 그녀가 많이 아프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지난달 6일 카톡으로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가 왔다. 어느 회원의 이메일을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체 이메일로 그녀가 그 회원의 작품에 대해 평한 것이 들어왔다. 아마도 건강이 허락지 않아 대면 모임에 나오기 힘들어서 보낸 것 같았다. 나중에 그녀가 갑자기 찾아온 암과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달 14일 동네방 글공부 대면 모임에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먼 거리에 사는 회원이 모처럼 나왔다. 그녀가 왜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어제 전화통화를 했다고 했다. 오늘 나올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 실감나지 않았다. 뜻밖이었다. 회원들은 놀랐다. 그녀가 그렇게 빨리 떠나갈 줄 몰랐다.     이제 마지막 작별을 하기 위해 그녀 앞에 와 있다. 그녀의 남편이 말했다.     “제 아내는 아직도 아름다워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잘 보고 가세요.”     그녀 앞에 다가갔을 때 평소 말하는 나직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 와 줘서 고마워요. 제가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겠어요.”   그녀는 단지 신호등의 교차로를 건너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차로를 건너가면 다른 거리가 보이고 다른 세상이 보인다. 죽음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 올지도 모르며 우리 곁에 있다. 그저 다리 하나 건너는 것뿐이다. 죽음이 무섭지 않고 두렵지 않게 다가왔다.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하고 하나의 연결로 생각하려면 살아 있는 동안에 오늘 하루를 충실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 될 것 같다. 그리고 가족, 친구, 지인을 포함해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살아 있는 순간 순간 충실해야 할 것 같다. 이정호 / 수필가이아침에 죽음 다리 대면 모임 동네방 글공부 다리 하나

202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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