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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오물에서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텃밭에 심은 복초이가 배추만큼 커졌다. 올해는 왜 이토록 실하게 자라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이른 봄에 닭똥과 소똥을 주었다고 한다. 매일 아침 나오는 계란 껍데기와 커피 찌꺼기도 썩혀서 같이 주었다고 하니, 역설적이지만, 배설물과 썩은 물질에서 생명이 쑥쑥 자란다는 말이 된다.   ‘오물에서 생명이 자란다.’   이 모순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인간의 배설물에서 인간이 자란다는 블랙 코메디를 쓴 작가가 있다. 정보라 작가의 『머리』라는 제목의 단편이다.   작가는 시간 강사로 십 년을 일했던 자신의 모교를 고소했다. 이유는 부당 노동 착취다. 약자가 당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랜 법적 투쟁을 벌여서 승소했다.   처음 읽고 나서 말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내용인즉슨, 변기에서 매일 버린 오물에서 생명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젊은 여자가 변기에서 자라는 머리 비슷한 오물을 보고 기겁한다. 그 머리처럼 생긴 것은 몇십 년 동안 자라서 인간의 형태를 갖춘다. 다 자란 오물은 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여자는 질색한다. “내가 왜 너의 어머니냐? 나는 너 같은 것을 낳은 적이 없다.” “아닙니다. 저는 어머니 몸에서 나온 것을 매일 먹고 자랐습니다. 그러니 저의 어머니입니다.” 형상을 갖춘 오물이 어느 날 변기에서 걸어 나왔다.   자세히 보니, 여자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여자의 몸은 이미 늙어 있었다. 가늘어진 머리칼과 거칠어진 피부를 보며 늙음을 한탄하는데,  자신의 젊은 모습이 변기 속에서 나왔다. 여자가 매일 내놓은 오물을 먹고 자란 여자는 아름답다.     ‘젊은 여자’는 발버둥치는 늙은 여자를 변기에 밀어 놓고, 변기 물을 내리고 뚜껑을 닫는다. 늙은 여자의 옷을 대신 입고 화장실을 빠져나간다.   작가의 ‘저주토끼’라는 단편집은 2022년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2023년에는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외국에서 먼저 알려져서 국내에서 뒤늦게 인정을 받은 경우다.   우리는 젊음에서 늙음으로 가는 몇십 년 동안 먹고 처리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연인들은 분위기 좋은 식당을 찾고, 자식은 고심하여 선택한 식당에서 부모님을 대접한다. 일상과 경사의 중심에는 음식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어디로 가는가. 다음날 아무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혼자 처리한다. 축제의 중심에 있었던 음식의 후처리 과정에서 간혹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단편에 등장하는 여자는 젊은 시절을 대충 살고 나서는 순식간에 젊음이 사라졌다고 허무해 한다. 그녀의 젊음은 어디로 갔는가? 빠져나간 오물 사이로 소비된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타난 생명을 적대시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봄에는 유달리 비가 많았다. 비가 너무 많이 온다고 불평하면 남편은 반대로 말한다. “올해는 대박 날 거야.” 하면서 비를 귀한 손님처럼 반긴다. 비가 닭똥과 소똥을 땅속으로 깊이 넣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텃밭의 복초이는 배설물과 썩은 것을 먹고 오늘도 쑥쑥 자란다.  김미연 / 수필가이 아침에 오물 오물 사이 사회 분위기 모순적 아이디어

2025-06-09

[사설] 동포 공약 0%가 정상인가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렸다. 80%에 육박한 투표율(79.4%)은 1997년 15대 대선 이후 28년 만의 최고치로, 국민적 염원의 무게를 실감케 한다. 이미 재외선거의 열기에서도 확인된 민심이었다. 118개국에서 ‘산 넘고 물 건너’ 투표한 재외국민 유권자 20만 5268명이 보여준 주권의 가치는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이재명 제21대 대통령은 “대통령의 책임은 국민을 통합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지극히 당연한 명제가 당선 일성이 된 현실이야말로 이번 대선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분열과 갈등을 넘어 ‘대동 세상’을 열겠다는 그의 포부에 거는 기대가 남다른 이유다.   그러나 정작 새 정부의 청사진에서 750만 재외동포 사회는 또 변방으로 밀려난 듯하다. 이 대통령의 ‘10대 공약집’을 뒤늦게 살펴봤다. 미래의 장밋빛 청사진으로 가득했지만 재외국민, 동포, 한인들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은 사실상 없었다.     20페이지 분량, 총 3428개 단어로 구성된 공약집에서 ‘재외국민’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단 한 문장이다. 네 번째 공약인 ‘외교·통상’ 분야의 ‘재외국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통한 권익과 안전 보호’라는 원론적 언급이 전부였다.   전체 공약의 0.2%에 불과한 이 한 문장이 과연 750만 동포사회의 염원을 담아냈다고 할 수 있을까. 국가가 자국민을 지원,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구체적으로 ‘언제’,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고민은 없다.     물론 이번 대선이 탄핵 정국 아래 치러졌기 때문에 준비가 미흡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나라 밖 한인들에 대한 무관심은 여야를 초월했다. 3개당 다른 후보들의 공약집에서도 ‘재외’, ‘동포’, ‘교포’, ‘한인’ 등의 단어는 하나도 없다. 이는 정책 부실의 수준을 넘어 무시하는 처사다.   재외 유권자 수는 약 200만 명으로, 대구 광역시에 버금가는 규모다. 이번 대선에서 후보들이 대구를 찾아 ‘우리가 남이가’ 목이 쉬어라 외친 열정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는 이들의 공약집에 담긴 재외 유권자 분량이 0% 라니 웬 말인가. 재외동포는 남인가.   후보들의 공약집에 빠지지 않는 단어는 ‘글로벌’이었다.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 글로벌화의 첨병 역할을 하는 한인들의 오랜 요청은 약속이나 하듯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정치권이 몰라서가 아니라 의지와 관심 결여의 결과다. 재외 한인들의 숙원은 검색 한번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먼저 이번 대선에서도 드러났듯 비효율적인 재외선거 시스템부터 전면 개선되어야 한다. 먼 투표소까지 여행 계획을 세우듯 오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해결할 우편투표 도입이 시급하다.   또 선천적 복수국적의 부작용도 해결 과제다. 한인 2세 남자들은 만 18세가 되는 해 3월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 만 37세까지 20년간 병역 의무가 부과된다.   포기 절차는 쉽지 않다. 준비 서류는 10가지가 넘는다. 과정도 상식적이지 않다. 애당초 포기할 한국 국적이 없으니 출생신고를 해서 국적을 만든 뒤 포기해야 한다.   꼭 20년 전 개정된 이 국적법은 원정 출산을 막기 위해 제정됐지만 엉뚱하게 한인 2세들이 피해를 입어왔다. 국적 이탈 시기를 놓친 한인 2세들은 한국 비자 발급이 거부되거나 미 정부 기관 취업에 불이익을 당해왔다. 이 법의 시행 전엔 미국 시민권 취득시 한국 국적을 자동으로 상실했다. 이 때문에 한인들은 이 ‘국적자동상실제’ 부활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10년 개정된 65세 이상에 대한 복수국적 허용 연령의 완화도 필요하다. 지난해 법무부는 ‘55세 이하’로 낮추는 것을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나온 대안은 없다.   차세대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장기적인 지원책 마련도 절실하다. 한국어 교육은 물론, 이민사 발굴 및 2세 역사 교육도 그중 하나다. 최근 본지가 ‘이민 선조 묘지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10대 공약을 “6월부터 준비하여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준비 과정에서 이제라도 750만 재외동포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재외동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가치를 최일선에서 높이는 소중한 자산이다. 부디 우리의 염원이 이번 정부에서는 더 이상 외면받지 않고 실현될 수 있기를 바란다.사설 동포 공약 재외국민 동포 재외동포 사회 재외국민 유권자

2025-06-04

고학력·영어 가능 비시민권자, 캐나다 떠날 확률 더 높다

 연방정부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시민권을 취득한 이민자 대부분은 캐나다에 장기적으로 정착해 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권 취득과 이민자의 정착 지속성’ 보고서는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입국한 이민자를 10년간 추적해, 시민권이 정착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로 분석했다.       2008년부터 2012년 사이에 캐나다에 입국한 25세~54세 이민자 가운데 시민권을 취득한 이들의 93%는 10년 후에도 세금 신고와 취업 등 사회활동을 지속하며 캐나다에 ‘실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건의 비(非)시민권자의 정착률은 67%에 그쳤다.       2003년부터 2007년 입국자 역시 동일한 흐름을 보였다. 시민권자는 91%가 정착을 유지했고, 비시민권자는 58%로 절반을 조금 넘겼다. 보고서는 시민권이 캐나다 내 삶에 더 깊게 뿌리내리도록 돕는 열쇠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정착률 격차는 특히 교육 수준과 언어 능력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 비시민권자 중 대학원 이상 고학력자는 고졸 이민자보다 캐나다에 머무를 확률이 16%포인트 낮았고, 입국 당시 영어 또는 프랑스어 구사자는 비구사자보다 정착률이 9~16%포인트 낮았다.       비시민권자 가운데 난민 출신은 경제 이민자보다 더 높은 정착률을 보였다. 이 차이는 최대 19%포인트까지 벌어졌다. 반면, 시민권을 취득한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학력이나 언어 능력, 이민 유형에 따른 정착률 차이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출신 국가별로는 차이가 두드러졌다. 미국에서 귀화한 이민자의 87%가 10년 후에도 캐나다에 거주 중이지만, 필리핀 출신 시민권자는 97%가 캐나다에 정착한 상태였다.       연방정부는 “시민권은 단기 체류의 도구가 아닌, 캐나다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는 신호”라며 이민자들의 정착 경향이 시민권 여부에 따라 뚜렷하게 갈린다고 강조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매년 약 37만 명 이상이 시민권을 취득했고, 2025년 1분기에만 8만7,765명이 새로 귀화했다. 귀화 직후 소폭의 정착률 감소(약 2%포인트)는 있지만, 비시민권자의 연평균 정착률 하락(약 3%포인트)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보고서는 고학력자이거나 언어 능력이 있는 비시민권자가 왜 캐나다를 떠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이민 정책의 다음 과제라고 지적했다. 밴쿠버 중앙일보비시민권자 고학력 비시민권자 가운데 캐나다 사회 연평균 정착률

2025-05-22

H마트, 시애틀 10호 매장 오픈…밸러드점 내달 5일 개점

미주 최대 아시안 수퍼마켓 체인 H마트가 시애틀 지역 10번째 매장을 개점한다. 시애틀 타임스는 H마트가 내달 5일 시애틀 밸러드(951 N.W. Ballard Way) 지역에 새 매장을 공식 오픈한다고 지난 20일 보도했다.     매장은 총면적 2만5000스퀘어피트 규모로 델리 코너, K뷰티 전문 섹션, 라이프스타일 잡화점 아트박스 등을 포함한 복합 쇼핑 공간으로 구성된다.   매장이 들어서는 해당 건물은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뉴시즌스 마켓으로 운영되다가 이후 아마존 고 매장으로의 전환이 무산되면서 장기간 공실 상태로 남아 있었다.     H마트는 올해 초 해당 부지에 대한 인허가를 마치고 본격적인 개장을 준비해왔다. 건물에는 약 70대의 차량이 주차가 가능한 전용 주차장도 갖춰져 있다.   시애틀에는 2017년 유니버시티 디스트릭트에 첫 매장을 연 이후, 린우드, 레드몬드, 타코마 등 다양한 지역에서 매장을 운영 중이다.   1982년 뉴욕 퀸즈에 1호점을 연 H마트는 현재 전국 18개 주에 1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약 6000명 이상 직원과 5개의 지역 물류센터 및 가공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고품질 아시안 식품과 생활용품 외에도 다문화 소비자들을 위한 제품을 제공하며, 델리, 수산, 정육, 청과, 캐더링 등 전문 서비스도 강화해 왔다.   지난 40여 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 온 H마트는 단순한 식료품점을 넘어 국내 한인 사회 및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한인 장학사업, 비영리단체 후원, 지역 사회 행사 참여 등 다양한 공익 활동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적십자사, 한인회, 박물관, 경찰서 등과 협력하며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은영 기자시애틀 마트 시애틀 지역 시애틀 타임스 지역 사회

2025-05-20

[사설] 비행기표, 라면기부 민망하다

최근 현대 자동차 미주법인이 LA도서관 재단(LFLA)에 1만 달러를 기부했다. 5월 아시아·태평양계 문화유산의 달(AAPI Heritage Month)을 맞아 아시안 커뮤니티의 문화 및 언어 관련 프로그램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현대는 지난 1월에도 LA산불 지원금으로 20만 달러를 쾌척하기도 했다. 현대의 선행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남는다. 미국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는 한국 대기업들이 그 성장 발판을 마련해준 한인 사회를 외면하고 있다는 씁쓸한 현실 때문이다.   한국 대기업들의 미국 시장 공략은 눈부시다. 매년 놀라운 성장세로 주류 경제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대기업의 북미 시장 매출은 전년 대비 20% 급증했으며, 매출을 공시한 319개 종속기업의 매출 총액은 무려 1590억 달러(약 226조 원)를 넘어선다. 가히 천문학적인 규모다.     문제는 이처럼 미국 시장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한국 대기업들이 과연 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특히 자신들의 성장 발판이자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한인 사회에 대한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기여나 대규모 환원 사례는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LA한인회에 따르면 매년 한인회 기금모금 행사에 꾸준히 기부하는 한국 기업은 대한항공, 아시아나, 농심, 코웨이 정도라고 한다. 1센트도 내지 않은 대기업도 있으니 이들은 그나마 칭찬받아야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부 내용은 민망할 정도다. 항공 티켓 몇 장, 라면 몇 박스에 기부금도 2000~3000달러 수준이라고 한다.   특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기부는 인색함의 단적인 예다. LA공항국에 따르면 LA국제공항(LAX)에서만 지난해 100만 명 이상이 두 항공사를 이용했다. 각 항공사 탑승객 수는 LAX 취항 40여 개 장거리 항공사중 9·10위다. ‘톱 10 글로벌 항공사’가 소규모 여행사나 할 법한 비행기표 기부로 체면치레나 해서야 되겠는가. 농심도 기부의 격이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2024년 4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906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8% 늘었다고 한다. 이런 큰 기업이 라면 기부가 웬 말인가.   한국의 대기업들이 일회성 행사 후원이나 소규모 기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기업의 사회 공헌 문화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최고 경영진의 의지와 솔선수범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최근 자신의 재산 대부분인 1070억 달러를 사회에 환원하고 2045년까지 게이츠 재단을 통해 2000억 달러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가 너무 많다.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면서 “부유하게 죽지 않겠다”고 사회적 책임의 모범을 보였다.   이에 비하면, 미국에서 수십 년간 성공을 구가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 한국 대기업 수장들과 그 미주법인들의 사회 환원 규모와 적극성은 초라하기만 하다.   한인들에게 대기업은 조국이고 고향이다. 1972년 4월19일 대한항공의 LA 노선 첫 취항일에 LA공항에는 한인 수천 명이 몰려 태극기를 흔들며 항공기와 승무원들을 환영했다고 한다.   1986년 울산 공장에서 생산된 현대의 첫 미국 수출차량 ‘엑셀’은 주류 사회에서는 ‘일회용 차’라는 오명을 얻었지만 한인들은 기꺼이 차를 구입했다. 우리 기업을 사랑하는 것이 곧 애국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짝사랑’에 가까운 지지와 성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기업의 성공은 단순히 재무적 성과나 주주 이익 극대화에만 있지 않다. 기업이 뿌리내리고 활동하는 지역사회, 특히 과거부터 현재까지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준 한인 사회에 대한 진정성 있고 ‘통 큰’ 환원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자 마땅히 다해야 할 윤리적 책무다. 이제라도 대기업들은 한인 교육, 문화, 복지, 소외 계층 지원 등 실질적인 필요가 있는 분야에 대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지원에 노력해야 한다.     당장 통 큰 환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비행기표나 라면 협찬 수준에서는 벗어나야 하지 않나.사설 비행기표 라면기부 한국 대기업들 한인 사회 한인회 기금모금

2025-05-14

"그대들은 한인사회의 귀감"…한마음봉사회 장한 어버이 시상

마음봉사회(회장 주수경)는 한국의 어버이날인 지난 8일 웨스트민스터의 OC한인교회에서 제29회 장한 어버이상 시상식을 열었다.   이날 박굉정(81)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미 남서부지회장, 김영수(77) 컬러컴 대표, 박문규(77) 전 세일실업 미국 지사장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자에게 상패, 부상인 금반지를 전달한 주수경 회장은 “자녀를 잘 키우고 사회봉사에 앞장선 수상자들은 우리 사회의 귀감”이라고 말했다.   박굉정 회장은 오렌지한인교회 장로이며, 월남전참전자회 미 남서부지회장도 역임했다. 김영수 대표는 은혜한인교회 장로이며 은혜기독실업인 회장, OC충청향우회와 OC장로협의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박문규씨는 가나안교회 한국어 학교를 개척해 120명의 학생을 가르쳤다.   정영태 회원이 사회를 맡은 시상식은 남성수 OC한인교회 담임목사의 기도로 시작됐다.   최석호 가주상원의원과 섀런 쿼크-실바 가주하원의원은 각각 보좌관을 통해 수상자에게 표창장을 전달했다. 조이스 안 부에나파크 시장, 노명수 OC백인회장, 김종대 OC장로협의회장은 축사를 통해 수상자들을 격려했다.   시상식 직후 이어진 축하 공연에서 한마음봉사회, 아리랑합창단은 합창 공연을 했다. 김창달 김스피아노 대표는 피아노 연주를 선보였다.   김성규, 송동진씨는 오찬이 진행되는 동안 각기 색소폰, 하프 연주를 했다.   한마음봉사회는 시그니처 행사인 장한 어버이 시상식 외에 아리랑축제 기간 중 장수 무대 개최, 홈리스를 포함한 불우이웃 돕기, 양로원 방문, 장학금 전달 등 다양한 봉사 활동을 펴고 있다. 글·사진=임상환 기자사회 귀감 한마음봉사회 아리랑합창단 김종대 oc장로협의회장 남서부지회장 김영수

2025-05-11

현대차 '거침없는 사회 환원'…아태계 문화유산의 달 맞아 LA 도서관재단 후원

한국차 브랜드들이 국내 판매량을 매달 경신하는 호실적을 기록하는 가운데, 기업으로서의 윤리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사회 환원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대자동차 미국판매법인은 지난 7일 LA중앙도서관(LAPL)에서 아시아·태평양계 문화유산의 달(AAPI Heritage Month)을 맞아 LAPL과 협력해 아시안 커뮤니티의 문화 교육과 언어 자원 확대를 지원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 현대차는 5월 LAPL과 협동 프로그램 등 주요 아태계 지원 방침을 발표하면서 도서관 운영을 맡은 LA도서관 재단(LFLA)에 1만 달러를 기부했다.   기부금은 도서관 내 국제언어센터의 아시안 문화 및 언어 관련 서적을 확충하고 관련 문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     존 사보 LAPL 도서관장은 “LA는 미국 본토에서 아태계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라며 “문화유산의 달을 맞아 LA의 다문화적 교육 자원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선 현대차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현대차 측은 이번 기부는 단순한 도서 지원을 넘어 지역사회의 문화적 포용성과 교육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브랜든 라미레즈 현대차 사회공헌 디렉터는 “한국 기업으로서 아태계 커뮤니티를 지원하게 돼 자랑스럽다”며 “교육과 문화는 커뮤니티 결속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역 주민들이 문화적 뿌리를 되새기고 공유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릭 토마스 현대차 다문화 마케팅 디렉터는 “현대차는 혁신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중심의 브랜드로 성장해 왔다”며 “이번 협력은 아태문화유산의 달을 맞아 AAPI 커뮤니티의 문화적 자산을 알리고, 지역 고객 및 가족들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하는 의미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현대차의 후원으로 LAPL에서는 5월 한 달간 다채로운 아시아 문화 행사들이 진행된다. 오는 17일에는 아시안 작가 강연과 한국 전통공연, 대만 과자 만들기 체험 등이 포함된 ‘AAPI Joy’ 축제가 열린다. 이날 참가자들에게는 후원 도서와 기념 토트백도 무료로 제공된다. 또한 현대차는 도서관의 소셜 미디어 채널과 뉴스레터를 통해 AAPI 관련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이다.   한편 현대차는 이 밖에도 재난 피해 지원, 의료, 청소년 교육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 실질적인 도움을 나누면서 사회 공헌에 앞장서고 있다.   전국의 딜러들이 함께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인 ‘현대 Hope On Wheels(HHOW)’는 지난 1998년 소아암 퇴치를 위한 연구 지원과 인식 제고를 목적으로 설립돼 현재까지 175개 기관에 총 1300건의 연구기금을 전달했다. 현재까지 현대차가 HHOW를 통해 기관들에 전달한 지원금은 규모는 약 2억7700만 달러에 달한다.     특히 남가주에서는 지난 3월 애너하임 청소년 클럽 교육 프로그램에 1만5000달러 기부, 지난해 7월에는 오렌지카운티 어린이병원에 소아암 연구 및 치료를 위해 2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1월 발생한 LA산불 피해자 지원을 위한 기금, 플로리다 허리케인 피해 복구 등 재난 상황 발생 시에도 적극적인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우훈식 기자현대차 도서관재단 태평양계 문화유산 아태계 커뮤니티 사회 환원

2025-05-07

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 은퇴하는 정치인들

최근 정계 은퇴를 발표한 딕 더빈 연방 상원 의원은 한인 사회와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한인 후원회가 조직돼 선거 때마다 지지를 표명하는 한인들이 많았으며 한인들로부터 다양한 요청 사항을 듣는 것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포괄적 이민 개혁 법안 중 하나인 드림액트였다. 민주당이 오랫동안 줄기차게 추진했지만 결국 무산된 바 있는 포괄적 이민 개혁 법안은 더빈 의원이 연방 상원으로 재임하는 동안 끈임없이 관심을 보였던 사안이다. 그리고 이 법안을 발의하는 데에는 한인 학생 테레사 리의 사례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부모와 함께 미국 이민을 왔지만 체류 신분이 없어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테레사의 사례를 접하고 의회에 포괄적 이민 개혁 법안인 드림액트를 발의한 것이다. 테레사는 추후 더빈 의원이 여러 차례 거론하며 이민법 개혁 필요성을 역설하곤 했고 자신도 직접 드림액트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결국 이 학생은 무사히 대학을 졸업한 뒤 정착했지만 부모와 함께 이민 온 다른 많은 이민 학생들은 체류 신분의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당시 미성년자로 미국에 입국한 서류미비자에 대한 구제책이 마련되긴 했으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민법 개혁에는 실패함에 따라 이들이 시민권을 취득해 보다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쉽지 않게 됐다. 만약 더빈 의원이 테레사의 사례에서 추진했었던 포괄적 이민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고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됐다면 현재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 서류미비자 추방 사태 등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아쉽다.     더빈 의원은 큰형이 한국전 참전 용사라는 사실도 공식 석상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예전 시카고의 한인사회복지회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더빈 의원은 “한국이라는 나라는 나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 한국전에 참전한 큰형이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오면 듣곤 했던 한국이라는 단어는 어렸던 나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가져다 주곤 했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큰형은 어떤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어떤 곳인지를 머리 속에 떠올리곤 했다. 그 이후 한국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나라가 됐다”고 언급한 것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더빈 의원의 정계 은퇴 선언이 나오고 약 2주 후에는 잰 샤코우스키 의원도 내년 선거 불출마 선언을 했다. 샤코우스키 의원은 9지구 연방 하원 의원으로 1999년 이후 무려 14선을 지냈다. 내년에 도전하는 15선을 포기하고 출마하지 않기로 공식 선언한 것이다. 9지구는 현재 선거구로는 시카고 북부 지역과 시카고 북서브 서버브 지역을 포함하고 있어 대표적인 한인 밀집지구다.     이런 이유로 샤코우스키 의원은 한인 사회 주요 이슈가 있을 때면 한인들과 만나 의견을 나눴다. 샤코우스키 의원을 개인적으로 처음 만난 것은 오희영 전 한인회 이사장의 노스브룩 자택에서 열린 후원의 밤 행사를 통해서였다. 당시 총영사를 비롯해 한인 사회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샤코우스키 의원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었다.     샤코우스키 의원은 여권 신장과 소비자 권익 보호, 총기 규제, 환경 문제 등에 관심이 많았고 일리노이주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그간 위상을 확고히 했다. 처음 연방 하원으로 당선될 때에는 일리노이주 여성 의원이 손꼽을 만큼 적었지만 지금은 태미 덕워스 연방 상원을 비롯해 로렌 언더우드, 매리 밀러, 로빈 켈리 의원 등 일곱 명의 여성 연방 의원이 재임 중이다. 샤론 정 일리노이 주하원을 비롯해 테레사 마, 제니퍼 공 거쇼위츠 등 아시안계 일리노이주 하원 의원들의 롤 모델이 샤코우스키 의원인 것은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두 명의 유력 일리노이 정치인들이 은퇴를 결심함에 따라 지역 정계도 큰 폭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미 후임 자리를 놓고 예비 후보들의 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더빈 의원의 후임으로는 줄리아나 스트랜톤 부주지사를 비롯해 라자 크리스나무티, 로빈 켈리 연방 하원 등이 출마 선언을 한 바 있다. 샤코우스키 의원 후임으로는 다니엘 비스 에반스톤 시장과 로라 파인 주 상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두 의원 모두 80세가 넘은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정계 은퇴가 그리 빠른 것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일리노이 정계를 이끌어 오던 리더십이 어떤 변화를 맞을까 기대감도 크다. 아울러 두 의원 모두 한인 사회와 가까워 후임자 역시 한인사회를 잘 알고 충분하게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이 당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예비 후보들 중에서는 비스 시장이 주하원 재임 당시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한 바 있어 그를 지지하는 한인들도 많았다. 파인 의원 역시 북서버브를 지역구로 하는 주하원으로 오랫동안 재임하면서 한인 세탁인들을 위한 법안을 여러번 처리하고 한인 단체 지원을 하는 등 한인 사회 이슈에 관심이 높았다. (편집국)    Nathan Park 기자시사분석 nathan 한인 사회 이민법 개혁 한인회 이사장

2025-05-07

"법률 도움 필요한 한인들에 버팀목 될 것"

"언제나 뒤돌아보면 든든하게 우뚝 서 있는 산처럼 미주 한인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습니다."   김재영 변호사와 마이클 이 변호사 등 두 명의 한인 변호사가 이끄는 '더산로그룹'(The Sann Law Group)이 샌디에이고 지역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더산로그룹은 LA를 중심으로 OC와 리버사이드, 샌버나디노까지 주 활동 영역이었다.   더산로그룹은 교통사고 등 개인상해법과 함께 비자, 영주권, 시민권 신청 등 이민법 그리고 고용과 해고 등 노동법 등 주로 한인 사회가 필요한 분야를 서비스하고 있다. 특히 변호사와 고객 간의 1:1 무료 상담, 24시간 한국어 상담, 다국어 지원(스페인어, 일본어 등) 등이 가능하다.   이날 두 변호사는 경기침체로 인해 노동법 관련 분쟁이 늘고 있고 보험사들이 기존 약관의 갱신을 거부하거나 해지하는 사례가 빈발해 소비자들이 부당함을 주장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것이 캘리포니아 법률 시장의 대표적 변화 현상이라고 짚었다.   또 한인들이 가장 자주 요청하는 자문 이슈로는 이민법을 꼽았다. 한인들 중 다수가 비자, 영주권에서 시민권까지 신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뜻이다. 두 변호사는 "추방 위기에서 벗어난 고객 중 한 분은 매년 아이의 성장 사진을 보내주신다"며 "고객의 케이스를 해결해 고객들의 삶이 훨씬 안정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목격할 때가 변호사로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밝혔다.     두 변호사는 "법은 복잡해도 우리의 약속은 단순하다"며 "복잡한 법을 쉬운 말로 설명하고 고객들이 겪고 계신 상황을 빠르고 정확하며 따뜻하게 도와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더산로그룹의 본사는 LA에 소재해 있고 샌디에이고 지역에도 에이전시를 두고 있다.     ▶문의: (213)677-2776/(213)926-3099, [email protected]   (24시간 한국어 상담) 글·사진= 박세나 기자버팀목 한인 한인 변호사 미주 한인사회 한인 사회

2025-05-06

[성서로 세상읽기] 초고령화 시대의 ‘은빛 청년들’

예상보다 빠른 속도다.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 속도를 이름이다. 유엔(UN)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기준으로 7% 이상 고령화 사회, 14% 이상 고령 사회, 20% 이상 초고령 사회로 구분한다.     한국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가 1024만4550명으로 전체 인구(5122만1286명)의 20%를 넘은 것으로 집계되어(2024년 12월 23일 기준)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이런 추세라면 한국은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2046년부터 일본을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며, 2062년에는 홍콩을 제치고 전세계에서 가장 고령인구 비중이 높은 나라가 될 것이다.     이런 초고령화 속도는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이다. 고령 사회에서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은 일본 10년, 독일 36년, 프랑스 39년이 각각 걸린 반면에 한국은 7년 만에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었다.   미주 한인사회의 역사는 한민족이 걸어온 근현대사의 축소판이자 미러 이미지(mirror image)다. 미주 한인사회와 한국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란 뜻이다. 한국의 국내 현실이 큰 여과 없이 그대로 미주 한인사회에 투영되어 왔음을 안다면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 국가가 된 한국 사회의 변화는 미주 한인 교계와 사회의 미래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인구조사국(U.S. Census Bureau)에 따르면 미국은 2015년 15%를 넘어 고령 사회로 진입했으며, 2030년엔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 1월 기준으로 미국의 100세 이상 인구는 세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많고, 향후 30년 동안 4배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한다. 미국 시장조사 전문기업 인사이더 인텔리전스(Insider Intelligence) 또한 2030년까지 모든 베이비붐 세대가 만 65세 이상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저출산, 초고령 사회는 머지않은 미래에 세계의 판도를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고령화 문제가 벽돌 더미처럼 미국을 강타할 것”이라고 했으며,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저출산에 따른 세계 인구 붕괴는 인류 문명에 지구 온난화보다 훨씬 큰 위험 요소”라고 주장했다.     초고령 사회로 전 세계가 재편되면서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을 분야는 경제다. 고령화에 휘감긴 지구촌의 어둔 풍경을 세계 경제에 덮치는 ‘은빛 쓰나미’라 표현할 정도다. 생산 가능 인구가 줄고 소비가 위축돼 국가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질 우려가 심각하다.     가족구조 변화와 은퇴 후 사회적 역할 축소 및 상실, 배우자 사망, 죽음에 대한 두려움, 신체기능 저하, 경제력 감소 등 노년기에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삶의 변화와 문제들이 우울, 외로움, 고립감, 자괴감 등을 유발한다. 급기야 스스로 사회적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 여겨 극단적 선택으로 치닫기도 한다.   “노인들을 어떻게 살릴 것이냐고 세상에 묻지 말고, 노인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를 물어야 할 때이다.” 스탠퍼드 장수연구센터(Stanford Center on Longevity)의 설립자이자 심리학자인 로라 L. 카스텐슨 교수의 말이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노년을 위한 기도를 다음과 같이 올린다. “내가 이제 늙어서, 머리카락에 희끗희끗 인생의 서리가 내렸어도 하나님, 나를 버리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팔을 펴서 나타내 보이신 그 능력을 오는 세대에 전하렵니다”(시 71:18 새번역).     하나님과 그 은혜 안에서 꿈꾸며 계속 성장하는 시니어는 나이는 들겠지만 늙지 않는다. ‘은빛 청년들(silver youth)’이다. 이들에게 있어 시간이라는 것은 어쩌면 일직선상으로 흐르는 크로노스의 물리적 시간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생애 동안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을 추구하고 싶은 질적이고 주관적이고 위로부터 임하는 카이로스의 시간 개념에 가깝다.   나이 듦은 하나님의 부름으로부터의 멀어짐이나 떠남이 아닌 그 안에서의 지속적 ‘머묾’과 ‘자람’이다. 시니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사역이 활성화되면 교회 안팎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다.     이런 새로운 변화에는 우리 한인 사회와 교계의 지원과 연대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 시니어 사역의 지속성과 함께 전문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소 늦었지만 이제라도 시니어의 영적, 정신적 성장을 도와 문화적 성숙과 영적 지혜로 교회와 세상을 섬길 ‘은빛 청년’ 시니어들을 양육할 수 있는 공동체가 곳곳에 세워져야만 할 때다. 이상명 /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총장성서로 세상읽기 초고령화 은빛 초고령화 사회 초고령화 속도 초고령 사회

2025-05-05

“매일이 후회와 고통…자식 지키지 못한 벌”

너무나 허망하게 떠났다. 자식이 곁을 떠난 지 어느덧 1년이다. 단순히 시간만 흘러간 게 아니다. 부모에게는 하루하루가 후회와 고통의 나날이었다.   교육 컨설턴트인 양민(사진) 박사는 지난해 5월 2일 경찰 총격에 둘째 아들 양용(당시 40세)씨를 황망하게 보냈다.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부모로서 가슴이 먹먹하다. 아직도 그의 쓰라린 심정은 ‘2024년 5월 2일’에 멈춰 있다. 양 박사는 “내가 느끼는 이 모든 슬픔은 자식을 지키지 못한 벌”이라고 자책했다.   만약 그때 정신건강국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경찰을 돌려보냈더라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뇌지만 죽은 아들을 살릴 수는 없다. 진실 규명을 위한 싸움도 외롭고 고단하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 누구도 책임지는 이가 없다.     지난 2일 양 박사를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아들이 숨진 곳이다. 아들의 총을 맞고 쓰러졌던 소파도, 손길이 닿았던 가구도 모두 그대로다.     부모는 아직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부모라도 안 싸우면 억울한 죽음 잊혀져”    한인사회의 침묵…너무나 섭섭 무관심 때문에 1주기 행사 안해  보상 바라며 싸우는 게 아냐 LAPD 반성·재발방지 나서길 양민 박사는 아들을 할리우드힐스 포리스트론에 안치했다.   생전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포리스트론 묘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서 하이킹을 즐겼다.   양 박사는 “용이가 하이킹을 즐기던 곳이라서 그곳의 풍경이 익숙할 것”이라며 “무덤 옆에 개울이 흐르는데 용이가 그 물소리를 들으면서 편안하게 잘 자면 좋겠다”고 했다.   1년이 지났다.   “아직 죽음에 대한 진상을 못 밝혔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지난 1년 동안 매일매일 아들이 죽은 ‘그날’을 살았다. 그동안 LA경찰국은 문제점에 대한 개선 의지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런 현실은 정의를 찾고자 발버둥치는 내게 분노와 절망감을 안겨줬다. 그럴수록 아들을 잃은 슬픔은 더욱 깊어졌다.”   어떠한 문제점인가. “용이가 죽기전에는 몰랐다. 무고한 시민이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는 일이 이 사회에서는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당국의 제도 자체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단, 이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이 문제다. 검찰은 LAPD의 사건 보고서와 징계 여부 등을 참고해서 기소를 결정한다. 그러나 LAPD와 경찰위원회가 제 식구를 감싸는 구조에서 검찰이 사건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가. 실제로 지난 2000년부터 2024년 사이 발생한 경관 총격 사건(OIS) 가운데 단 한 건도 경관이 기소된 적은 없다.”     사건 기록물을 아직도 보나. “가슴이 미어지고 속이 쓰라린다. 그러나 아들을 위해, 또 진실과 정의를 위해 억지로 참고 사건 당시 총을 쏜 경관의 보디캠 영상, 관련 문서들을 아직도 매일 보고 있다. 감정이 요동치지 않도록 일부러 아들의 모습보다는 사건 시각, 경과, 연루된 인물의 행동을 집중해서 본다.”     지역 사회의 반응은.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함께 슬퍼해 주고 목소리를 내줘 감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인 사회의 침묵이 너무나 섭섭하게 느껴진다. 이런 무관심 때문에 1주기 행사도 하지 않기로 했다. 나 혼자 떠들면 패배감만 더 느낄 것 같았다. 정부 기관도 마찬가지다. 용이는 한국 국적자인데 총영사관에서도 보여주기식 대응만 있었고 실질적인 도움은 하나 없었다.”     왜 무관심한 것 같나. “초기 한인 사회는 삶의 터전이 한인타운에 집중돼 있어서 결속이 강했지만, 지금은 각자의 삶이 다양해지고 거주 지역도 흩어지면서 공동체 의식이 약해졌다. 또한, 이민 1세대, 한국 국적자, 미국 태생 한인 등 서로 다른 정체성이 섞여 있다 보니 힘을 모으기가 어렵다. 특히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들은 ‘제도에 맞서선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강한 듯하다.”     외로운 싸움에 대한 주변 반응은. “많은 변호사가 경찰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이 싸움은 힘들다고 했다. 오히려 보상을 최대한 받아내는 게 현실적인 목표라는 조언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보상을 바라며 싸운 게 아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참담하고 비참하다.”   비판 여론도 있는데. “아들 관련 기사나 유튜브 영상에 ‘총 맞을 짓 했네’, ‘경찰이 잘 죽였다’ 등의 댓글을 보면 웃어넘기려고 해도 나도 사람인지라 기분이 상한다. 사건의 본질과 제도의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고 아들을 비난하는 건 너무나 경솔한 일이다. 누구나 제2의 ‘양용’이 될 수 있다.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고 생각을 같이 모아주지 않으면 이런 사건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LA카운티정신건강국의 한인 직원인 윤수태 씨는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 내게 아들에 관해 어떤 정보도 묻지 않았다. 아들과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지 않았다. 집 현관 앞 내 뒤에 숨어 권위적인 태도로 목소리를 높여 자신이 정신건강국 직원이라고만 밝혔다. 매우 비전문적이었다.”   당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은. “원래 후회하는 성격이 아닌데 모든 게 후회된다. 사건 전날 아들 집에 간 일, 아들이 지갑을 찾으러 내 집에 왔을 때 집에 있다가 가라고 한 일, 정신건강국 직원을 부른 것까지 전부 다 후회된다. 심지어 ‘LA에 이민을 오지 않았더라면’하는 생각도 자주 한다. 또 사건과 별개로 과거 타인의 아픔에 내가 얼마나 공감했는지도 돌아보게 됐다. 신문에서 볼법한 일을 내가 직접 겪어 보니 그동안 타인의 슬픔이나 힘든 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죽은 집에서 계속 사는데. “슬프다는 이유로 아들이 죽은 현장을 뒤로하고 떠나는 건 용이한테 못 할 짓이다. 자식이 죽어 힘들다고 떠나는 게 부모가 할 도리인가. 지금 사는 집 거실에 아들이 죽었다는 현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며 슬픈 감정이 많이 북받쳐 오르지만, 슬픈 감정을 많이 억누른 채 살고 있다. 아직도 사건이 발생한 집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가 슬퍼하며 사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들이 주로 언제 생각나나. “매일 생각난다. 아들과 함께 자주 갔던 그리피스 파크 하이킹 코스, 인앤아웃, 한식당 모두 지금은 일부러 피하고 있다. 또 용이가 생전에 LA 하이스쿨 인근에 살았는데 지금은 웨스턴이나 피코 인근을 일부러 안 가려고 한다. 아들과의 추억이 너무 선명해서 마음이 무너질까 봐 그렇다.”     아들 유품은 다 정리했나. “못 볼 것 같아서 거의 다 버렸다. 일부는 쌍둥이 형이 가져갔는데 성경 구절 카드나 일부 옷가지가 전부다. 쌍둥이 형이 동생을 기억하고 싶어서 일부러 용이 모자를 쓰고 다니기도 한다.”     아들 지인들과는 연락하나. “용이에게 친구가 많지 않았다. 그에게 세상은 무서운 존재였다. 그래서 사람들과 관계 맺는 걸 두려워했는데 죽기 얼마 전부터 친구를 많이 사귀려고 노력했다. 한인 테니스 동호회도 가입했었다. 지금은 용이 여자친구만 가끔 만나고 있는데 여전히 슬퍼하고 있다. 그래서 만나면 일부러 다른 대화를 한다.”   언제까지 싸울 것인가. “지금 상황에서는 기한이라는 게 없다. 계속하는 거다. LAPD를 상대로 한 민사 소송의 경우 최소 2~3년은 걸리는데 다른 방식의 행동이 필요하다면 계속 이어갈 것이다. 걱정스럽기도 하다. 내일모레면 일흔인데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부모라도 안 싸우면 아들의 억울한 죽음은 잊혀질 수 밖에 없다. 용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언제가 승리인가. “승리는 없다. 용이를 살려낼 수 없지 않은가. 우리 가족이 바라는 건 최소한 LAPD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반성과 결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당국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찰은 용이 사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변화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인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중의 목소리를 규합하고, 한인 사회를 결속 및 대변할 수 있는 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한인 단체들은 충분한 힘이 없는 것 같다. 또 한인 사회에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이를 부끄럽게 여기는 가족이나 사람이 많다. 그들을 돌보기 위한 열린 공간과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어떤 아들로 기억하고 싶나. “가엾지만 대견한 아들이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마음가짐과 실행력이 있었다. 죽기 전날에도 자신을 걱정하지 말라며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아이다.”   김경준 기자 [email protected]   양 박사는 지난달 29일 아들 양씨의 사망 1주기를 앞두고 자신의 소회를 작성해 본지에 보내왔다.    다음은 전문.   *아들 양용(Yong Yang)의 죽음과 아버지의 기록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   지난 2024년 5월 2일, 제 아들 양용은 LA경찰국(LAPD)의 총격으로 생을 잃었습니다. 당시 용은 평범하지 않은 정신적 상태 속에서 불안을 겪고 부모의 곁에 있고자 저의 집을 방문 중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최근 몇 년간 용이 기적적으로 회복 중인 과정에서 흔치 않은 증상들을 보며 그의 빠른 회복을 위해 의학의 힘을 빌리고자 했습니다.     마침 정신건강의 달인 5월을 맞아 핫라인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있던 LA카운티정신건강국(DMH)에 전화해 병원이송 지원 서비스를 요청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아들을 혼자 집 안에 남겨두고, 밖에서 DMH팀을 기다렸습니다.     용은 조용히 집 안에 있었고, 전날 저희 부부 집 방문 시부터 당일 사망 시까지 소란을 일으키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혼자 집안에서 무서워하며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날 현장에서 우리 가족이 마주한 미국의 경찰 시스템과 공공의료 시스템은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기보다는, 시스템의 무책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조 그 자체였습니다.       ▶DMH의 직무유기 DMH 직원 윤수태 씨는 현장에 도착하고 1시간 3분 동안 아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의료적 개입은 없었고, 불안한 환자가 있는 공간에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진입을 시도해 오히려 환자의 불안을 증폭시켰습니다. 현장 도착 직후, 그가 한 것은 소리 지르며 아들을 불안하게 한 것, 딱 그것뿐이었습니다. 용은 낯선 이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가라”고 소리치고 몸짓으로 거부 의사를 보인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윤씨는 이를 “폭력적이다”라고 단정하며 LAPD에 신고한 것이 이 끔찍한 결과의 시작이었습니다.       ▶LAPD의 과잉무력과 작전 수행  LAPD는 신고를 받은 후 현장에 출동하여 총 47분을 머물렀지만, 아들과의 직접적인 대화는 단 두 차례뿐이었습니다. 35초, 47초 등 총 1분 20여 초에 불과했습니다. 그 외에는 어떠한 설득도, 비폭력적인 중재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작전 수행을 지휘한 아라셀리 루발카바서전트는 생애 첫 현장 지휘라는 상황 속에서도 상관의 조언 없이, 무력 진입을 즉각 지시했습니다. 현행 범죄가 일어나고 있지도 않았으며, 이전에 범죄가 일어나지도 않아 체포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저와 제 아내가 아이를 체포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경찰은 아이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환자가 원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무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환자의 안전과 생명은 무시하고, 무력을 무리하고 신속하게 실행하였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 이후 발생한 살상 무기 사용과 살해조차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저는 물론 일반적인 시민들의 생각입니다.   총격을 가한 안드레스 로페즈 경관은 이미 지난 2021년에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무리한 대응으로 경관 총격 사건(OIS)을 일으킨 전력이 있으며, 당시에도 처벌 없이 넘어갔습니다. 이번에도 그는 앞장서 작전을 주도했습니다. 경찰들은 마치 군사작전처럼 움직였으며, 비치명적 무기를 가진 경찰들은 모두 후방에 배치되었습니다.   경찰은 사전에 조율된 작전처럼 단 6초 만에 진입했습니다. 진입 후 단 8초 만에, 그 중 1.19초 사이 3발의 총알을 발사해 용의 심장, 폐, 척추, 위, 췌장, 간, 장 등 주요 장기를 손상시키며 확실한 죽음을 초래했습니다. LAPD가 부른 응급구조대는 전문 응급의료서비스가 아닌 일반 소방관들이었고, 그마저도 총격 발생 8분 30초 후에나 도착했습니다. 현장에서 의료적 응급조치는 전무했고, 생명은 방치된 채 오직 작전 수행 통제만이 우선되었습니다.      ▶구조적 문제 – 헌법과 현실의 괴리 수정헌법 제4조는 모든 시민이 불합리한 수색과 체포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질환자를 포함한 소수자들은 이러한 권리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경찰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람 중 약 3분의 1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실제로 경찰에게 신체적 위협을 가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시민을 무력화하고, 사법체계는 이를 정당방위로 간주하며 거의 기소하지 않습니다.     특히 LAPD는 OECD 국가 중 민간 살상률 1위, 경찰의 치사율 최고 수준, 기소율은 사실상 0에 가까운 수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총기 소지를 헌법이 보장하고, 시민들도 경찰을 만나면 무서워해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시되는 미국 사회에서 경찰은 시민의 생명보다 자신들의 통제를 우선하는 구조에 깊숙이 안주하고 있습니다.     ▶침묵 속에서 이어진 싸움, 그리고 지치고 있는 가족들 아들 용이가 세상을 떠난 직후, 미국과 한국의 주요 언론들은 이 사건을 최소 1회 이상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용의 죽음은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제 가족은 침묵 속에 사라지지 않기 위해, 동문과 한인 사회가 중심이 된 시민 모임 JYYPC (Justice for Yong Yang), 이경원리더십센터, 젊은 NPO 활동가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휴고 소토-마르티네스(13지구) LA시의원도 저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었고, 함께 집회를 주관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서 앞 시위, LA 시청 광장 집회, 지역 언론 간담회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지만 지난해 9월 이후 우리 가족은 극심한 우울증과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무관심, 편견, 그리고 이중의 고통  이 싸움을 이어가는 동안 저희는 또 다른 고통을 마주했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정부 기관들, 그리고 수많은 한인 단체들조차도 이 사건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이런 일이 워낙 많아서", "잘했으면 그런 일 없었겠지", "오죽했으면 경찰이 그랬겠어". 심지어는 "죽을 만하니까 죽은 거겠지", "잘 죽었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건 그 자체로 충분히 고통스러웠던 가족에게 이런 사회적 무감각과 냉소는 또 다른 폭력이었습니다. 한 생명의 죽음 앞에 공감과 질문이 사라지고, 책임과 성찰 대신 침묵과 판단만 남아 있는 이 구조적 현실이 제 가족을 두 번, 세 번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 – 1년이 지나도록 가려진 진실   2025년 4월 29일,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아들 용의 사망 1주기(5월 2일)를 3일 앞둔 시점입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진실은 여전히 가려져 있고, 책임은 철저히 회피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LA카운티 수퍼리어법원은 LAPD에게 사건 연루 경관 전원의 보디캠 전체 영상 공개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LAPD는 이에 응하기는커녕, 4주에 걸쳐 단 몇 개의 보디캠 영상만을 찔끔찔끔 공개해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사건의 진상 파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장면들만 남기고 무음 처리한 것들 뿐이었습니다. 지난 4월 8일 LA시 경찰위원회 회의에서 결정은 또 다른 충격이었습니다.     사건 당시 작전을 지휘한 루발카바 서전트에게는 징계는커녕 다음과 같은 공식 칭찬이 주어졌습니다: "위원회는 루발카바 서전트가 사려 깊고 인내심이 강하며 유연하고 아파트 문을 열기 전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기다렸다는 점을 인정한다". 용이를 사살한 로페즈 경관에게는 총기 사용과 관련해 짐 맥도널 LAPD 국장은 다음과 같은 평가가 내려졌습니다: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로페즈 경관과 비슷한 훈련과 경험을 가진 경관이라면 상황이 치명적 무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 상황으로 확대되었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무력사용검토위원회(UOFRB)는 확인했고, 저도 동의합니다. 따라서 로페즈 경관의 치명적 무력 사용은 정책상 더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보입니다."     이것이 우리 가족이 마주한 현실입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찬사를 받으며, 당국은 스스로를 보호합니다. 아들의 죽음은 통계로 치부되고, 정의는 조직의 회의록 속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가해자는 마치 피해자마냥 거대한 경찰조직에 의해 보호되고 있습니다. 검찰도, 시 정부도, 카운티 정부도, 주 정부도, 물론 연방정부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마치 범죄자처럼 홀로 내동그라져 있습니다.       ▶정의는 무너졌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한 젊은이가 아무런 위협도 하지 않았는데, 1.19초 만에 3발의 총에 맞아 주요 장기가 파열되며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정당하며, 피해자의 죽음은 피해자 탓이라고 주장합니다. 법원은 전체 영상 공개를 명령했지만, 경찰은 진실을 내어주지 않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은 생명을 지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폭력을 감싸고 정의를 비웃고 있습니다. 저희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제도의 허점을 알리고, 진실을 기록하며, 정의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그동안 쉬지 않고 목소리를 내어주시고, 도와주시고 계시는 소수의 지지자 여러분들과, 특히 꾸준히 취재를 멈추지 않고 기사를 써주시고 계신 중앙일보 기자님들이 안 계셨다면 저희도 어쩌면 벌써 나가떨어졌지 싶습니다. 매일매일 용기가 줄어들다가도, 중앙일보 기사를 보게 되면 주먹이 쥐어지고 가슴이 뜁니다.     그러나 이렇게 정의를 위한, 그리고 변화를 위한 저희의 투쟁의 의지가 똘똘 뭉쳐 방패막이로 서로를 보호하는 제도권의 거대한 힘 앞에는 너무나도 나약해 보입니다. 진실과 정의를 위해 존재하는 사법기관의 절차들이 시간도 질질 끌고, 실제로는 편파적이고, 부실하게 처리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계속 발견하며 '이래서 모두 제도권과의 싸움을 끝내고 억울한 가슴을 부여잡고 공공의 시야에서 사라져 가는구나'를 알게 됩니다.     통계를 보면 1000명의 경관이 방아쇠를 당겨도 한 명의 경관도 기소되지 않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통계와 사법기관은 경관의 총알이 언제나 정당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LA에서는 범죄의 희생으로 죽을 확률보다는 경관에게 죽을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OECD에서 경관에게 죽을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 LA입니다. 전 세계에서 경관의 기소율이 압도적으로 최저인 곳이 LA입니다.   그날 저희 부부가 DMH에 전화하지 않았더라면. DMH가 윤수태가 아닌 다른 이를 파송하였다면. DMH가 열심히 노력하였거나, 아니면 차라리 손을 놓고 그냥 돌아갔더라면. "환자가 원하지 않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경찰이 그냥 돌아갔더라면. 로페즈 경관이 아닌 다른 경관들이 왔었더라면. 처음으로 지휘해보는 루발카바서전트가 아닌 다른 지휘관이 왔었더라면. 루발카바 서전트가 통화하려고 전화했던 피터 김 서전트(올림픽경찰서 상황반장)이 좋은 조언을 했더라면. SMART팀이 왔었더라면.     우리가 한인타운에 살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LA에 오지 않았더라면. 김경준 기자후회 고통 큰아들 양용 생전 아들 한인 사회

2025-05-04

33년 전 오늘 4·29 폭동, 한인 사회를 바꾼 그날의 기억

  ━   LA폭동 의미 새기고 행동해야 한인사회 성장     고 민병수 변호사 아내 캐롤 민 여사 회고 많은 한인 상점이 약탈당할 때 그날 경찰 어디 있었는지 의문 한인사회 폭동 상처 딛고 성장 젊은 세대 협력 분위기 강해져   33년 전 오늘, LA시를 휩쓴 폭동은 한인 사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수많은 한인 상점이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보호를 요청하는 한인들의 외침에도 경찰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인들은 고립된 채 홀로 생존을 위해 싸워야 했다. 단, 절망 속에서도 한인 사회는 무너지지 않았다. LA폭동은 오히려 한인 사회의 단결과 성장을 이끌어낸 전환점이 됐다. 4·29 폭동 33주년을 맞아 당시 한인 사회를 위해 누구보다 헌신했던 고 민병수 변호사의 아내, 캐롤 민 여사를 만나 그날의 기억과 이후 변화한 한인 사회의 모습을 들어봤다.   지난 1992년 4월 29일, 민 여사는 TV 뉴스를 통해 폭동 소식을 처음 접했다. 당시 그는 한인타운에서 약 3마일 떨어진 파크 라브레아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긴박한 뉴스를 본 민 여사는 곧장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한인타운 쪽을 바라봤다. 펼쳐진 광경은 참혹했다.   민 여사는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며 “살면서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폭동이 더 큰 규모로 번지지 않을까 두려웠다”고 덧붙였다.   민 여사는 남편 민 변호사와 함께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인 사회의 상황을 직접 목격했다. 당시 민 변호사는 즉시 11명의 변호사와 함께 남가주한인변호사협회(KABA) 산하에 법률 지원 조직을 결성하고 절도, 화재, 파손 등 각종 피해를 본 한인 업주들을 지원했다.   민 여사는 “당시 많은 한인 업주가 가게가 불타거나 약탈당하는 상황에서도 경찰을 기다렸지만, 끝내 그들은 오지 않았다”며 “지금도 경찰들이 그날 어디에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폭동 당시 민 변호사는 집에 머무는 날보다 한인 사회 복구를 위해 밖을 뛰어다니는 날이 더 많았다.   민 여사는 “남편이 집에 온 날을 세는 게 더 빠를 정도였다”며 “동료 변호사들과 피해 복구 방안을 논의하고, 직접 피해 현장을 발로 뛰며 꼼꼼히 확인했다”고 말했다.   민 여사는 늘 일에 매달리던 민 변호사가 자녀들에게 미안해했다고 했다.   그는 “남편이 늘 바쁘다 보니 두 아들과 보내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며 “아이 중 한 명은 ‘아빠가 나랑 시간을 더 보내주면 좋겠는데, 또 일하러 가버렸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민 여사 부부는 한인들이 무고한 피해자가 되었음에도, 주류 언론이 한인 사회를 폭동 발발의 원인처럼 몰아간 현실에 깊은 분노를 느꼈다.   민 여사는 “한인 사회는 폭동의 원인도, 문제의 당사자도 아니었는데 부당한 공격을 받았다”며 “한인 사회는 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한인타운이 불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흑인 사회가 자신들의 분노를 아무 관련 없는 한인들에게 폭력으로 표출한 것은 비합리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참혹했던 기억에도 불구하고, 민 여사는 4·29 폭동이 한인 사회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는 “폭동 이후 한인들이 한인타운을 떠나면서 구심점은 약해졌지만, 한인 사회의 정치력과 경제력은 눈부시게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인 출신 판사, 정치인, 고위 공직자들이 늘어난 것은 한인 사회 전체에 큰 동기부여가 됐다”고 평가했다.   또한 민 여사는 차세대 한인들의 협력과 연대 의식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과거에는 분열과 이권 다툼이 많았지만, 지금은 젊은 세대가 서로 돕고 협력하려는 분위기가 훨씬 강해졌다”며 “한인 사회가 한층 더 성숙해졌다”고 말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LA폭동의 의미와 기억이 점점 흐릿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했다.   민 여사는 “LA폭동은 한인 사회가 상처를 딛고 성장한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역사”라며 “한인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LA폭동은 반드시 기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준 기자폭동 아픔 한인 사회 사회 상처 한인 업주들

2025-04-28

잊혀진 4·29…기념행사 하나 없다

1992년의 오늘, LA는 폭풍 전야였다. 누적된 갈등과 분노는 결국 다음 날인 4월 29일, 광기로 변해 삽시간에 한인타운을 집어삼켰다.   ‘4·29’가 잊히고 있다. LA 폭동 33주년을 앞두고 잠잠한 분위기가 이를 방증한다.   매년 이맘때면 4·29의 의미를 기리는 행사가 한인 사회 및 LA 곳곳에서 진행됐지만, 올해는 소규모 모임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우선 LA시는 올해 간단한 성명 몇 줄만 발표할 예정이다. 캐런 배스 LA 시장은 지난해에도 별도 행사 없이 간단한 성명만 발표했었다.   김지은 LA 시장실 공보 보좌관은 “행사를 개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산불 재건 등 바쁜 시정 일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A 한인회(회장 로버트 안)도 일부 지역 정치인들과 함께 발표하는 성명 외에는 별다른 프로그램을 마련하지 않았다.   제프 이 한인회 사무국장은 “산불과 한국 조기 대선 준비 등으로 일정이 많았다”며 “흑인 커뮤니티와 공동 기념행사를 추진하려 했지만, 단체들 사정상 무산된 것도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한인타운 청소년회관(KYCC)을 비롯한 대부분의 한인 단체들에서도 올해 4·29 관련 행사는 전무하다. 정치인들을 비롯해 한때 저마다 단체명을 내세우며 LA 폭동이 담아내고 있던 의미를 선점하려 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4·29 이후 정기적으로 흑인 교계와 예배, 세미나 등을 통해 교류하던 한인 교계도 이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미주성시화운동본부 송정명 목사는 “LA 한인 폭동을 경험했던 1세대 목회자들이 이제 세상을 많이 떠났고, 한인 교계도 세대가 변했다”며 “아무래도 젊은 목회자들은 4·29와 같은 역사에 관심이 덜하다 보니 자연스레 흑인 교계와 갖던 교류도 이제는 아예 없어지고, 그 의미도 희석됐다”고 말했다.   4·29의 역사와 의미 등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려는 의지도 과거에 비하면 많이 약해졌다. 역사 교육의 구심점 역할을 할 만한 단체도 없다 보니 간간이 이벤트성 프로그램만 진행되는 실정이다.   한인 2세들의 봉사 단체인 화랑청소년재단(총재 박윤숙)은 오는 6월 진행되는 리더십 프로그램에서 LA 한인 폭동 이야기를 한 부분으로 다룰 예정이다.   박윤숙 총재는 “매년 4·29 시즌이 되면 관련 행사들을 진행했는데, 올해는 일정상 어렵게 됐다”며 “다른 단체들도 아마 상황이 마찬가지겠지만, 4·29가 점점 사람들의 관심 밖의 이슈가 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은 있다”고 전했다.   LA 폭동이 발생한 지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고, 그때를 경험했던 세대는 저물고 있다.   4·29 LA 기념재단도 한때 명맥을 유지하다 지금은 없어졌다.   이 재단에서 활동했던 제니 이(70대) 씨는 “당시 피해를 입었던 한인들은 이제 대부분 시니어가 되어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원 신세를 지는 경우도 많다”며 “한인 사회가 4·29의 아픈 역사를 잊고, 그 시대를 지나온 이들이 외면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행사 흔적 한인 사회 한인회 사무국장 공동 기념행사

2025-04-27

“한국 사회가 직면한 보편적 고민 담았다”

지난 4일 오후 3시 시카고 다운타운 더 화이트홀 호텔에서는 시카고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 팝업 시네마(Asian Pop-Up Cinema)의 ‘2025 한국 영화 쇼케이스’에 초청된 작품 ‘딸에 대하여’의 감독 및 배우와 함께 하는 특별 인터뷰가 열렸다.     영화 ‘딸에 대하여’는 2007년 출간된 동명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중년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 낸 작품이다.     이번 영화는 이미랑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이 감독은 “나이가 들어가는 삶의 과정 속에서 이 작품을 만나 의미 있었다”며 “문학 언어를 영화 언어로 어떻게 전환할지 고민하며 작업에 임했다”고 전했다.   ‘폭삭 속았수다’, ‘더 글로리’, ‘펜트하우스’ 등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한 주연 배우 오민애는 기존의 강렬한 이미지와는 달리 조용하고 현실적인 한국 엄마 역할을 맡으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는 “굉장히 섬세한 감정선이 매력적인 시나리오였다. 연기하면서도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는 인물로 10년 전 취득한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어 배우로서 자연스럽게 역할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영화 ‘딸에 대하여’는 딸의 동성 연애, 비정규직 문제, 노년의 고독 등 현대 한국 사회가 직면한 보편적인 고민들을 담아냈다. 이 감독은 “이 영화는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며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시대에 따뜻한 위로와 공감을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해외 영화제에서의 반응에 대해 이 감독은 “동성 연애라는 소재가 특별하게 부각되는 영화가 아니라 많은 관객이 엄마와 딸의 관계, 가족 같은 관계, 노년의 삶에 감정 이입하며 봐준 점이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향후 활동에 대해 이미랑 감독은 “이번 작품보다 더 성숙한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고 싶다”며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고, 오민애 배우 역시 “해외 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보고 싶다는 꿈을 진지하게 품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영화 ‘딸에 대하여’는 지난 6일 오후 3시, 시카고 AMC NEWCITY 14에서 아시안 팝업 시네마 ‘2025 한국 영화 쇼케이스’의 일환으로 상영됐다.     이날 상영회에는 오민애 배우, 이미랑 감독 외 김정한 시카고 총영사, 소피아 웡 보치오(Sophia Wong Boccio) 아시안 팝업 시네마 디렉터가 참석, 관객들과의 질의응답 세션도 마련돼 소통하는 시간도 가졌다.     Luke Shin한국 사회 한국 영화 한국 엄마 현대 한국

2025-04-07

[문예마당] 성공의 그늘, 양심의 무게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오래된 속담은 단순한 비유를 넘어, 삶의 진리를 담고 있다. 부모의 언행과 가치관은 마치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고스란히 자녀에게 투영되며, 때로는 부모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그들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더라도 정직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부모 밑에서는 자녀 역시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기 쉽다. 반대로, 부도덕한 방법으로 부를 쌓거나 남을 착취하는 행태를 보이는 부모의 영향 아래서는 자녀가 그릇된 길을 걸을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부모는 자녀에게 삶의 좌표를 설정해주는 나침반과 같기에, 그 책임은 막중하다.   대다수의 한인 이민자들은 자녀에게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머나먼 미국 땅을 밟는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 경제적인 어려움 등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굳건히 자녀를 키워내 사회적으로 성공시키고, 나아가 한인 사회 전체에 희망과 자긍심을 안겨주는 자랑스러운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이야기는 종종 언론을 통해 소개되며, 같은 이민자로서 큰 감동과 용기를 주곤 한다. 내 자식이 아닌 그들의 성공에도 마치 내 아이의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은, 그들의 노력이 곧 우리 모두의 노력이자 결실임을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탄탄한 기반을 가진 가정의 자녀들이 미국으로 유학 오거나, 기업 주재원이나 정부 관료의 자녀로 파견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비교적 풍족한 환경 속에서 어려움 없이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최근 하와이 한인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은, 풍요로운 환경이 반드시 올바른 인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한인 의사가 무려 100만 달러에 달하는 보험 사기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현지 언론의 상세한 보도에 따르면, 와이키키, 와이파후, 카일루아 등에서 오랫동안 진료 활동을 해 온 이 의사는 정부 및 민간 의료 보험사에 허위 또는 과장된 진료 기록을 제출하여 거액의 보험금을 부당하게 청구한 혐의를 받았다. 지난해 9월 기소된 후 끈질긴 법정 공방을 벌였으나, 결국 지난주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보석금을 납부한 채 석방되었다. 내년 1월로 예정된 그의 선고 결과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미 그의 범죄 행위는 하와이 한인 동포 사회 전체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오랜 기간 쌓아온 한인들의 신뢰와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긴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언어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한국인 의사를 찾았던 많은 한인 노인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이들은 자신의 건강을 믿고 맡겼던 의사로부터 오히려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에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다. 30분 남짓한 짧은 진료 후 3시간 진료를 받았다는 서명을 요구하는가 하면, 이에 항의하는 환자들에게 “정부에서 무료로 의료 혜택을 받으면서 불만이 많다”며 오히려 윽박지르는 몰상식한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병원 주차장에서 1시간밖에 주차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시간 진료비를 청구하는 황당한 사례까지 발생했다. 결국 그의 부도덕한 행위는 연방 정부의 수사망에 포착되었고, 그는 이미 구치소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으며, 의사 면허마저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의 범죄 기록은 연방 법원 기록에 영원히 남을 것이며, 이는 단순히 개인의 일탈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양심을 저버린 심각한 범죄 행위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탐욕과 일탈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의 부모 역시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자녀는 부모의 삶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가치관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고 명문 대학을 졸업했으며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할지라도, 가난하고 병든 동포들을 착취하는 삶을 살아온 그의 모습은 어쩌면 부모의 삶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결과일 수도 있다. 그는 결국 연방 정부에 의해 발각되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범죄 기록을 갖게 되었고, 이는 돈으로도 명예로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들의 범죄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버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는 소식이다. 자식의 잘못을 감싸려는 부모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진실을 외면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어리석은 행동처럼 느껴져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악은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내린 질병과 같아서,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치유될 수 있다. 그러나 부모가 끝까지 자녀의 죄를 변명하고 은폐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또 다른 죄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태도이다. 성경에도 주홍빛 죄라도 회개하면 눈처럼 희게 씻어주신다는 약속이 있지 않은가.   미국의 석유 재벌 록펠러 가문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끊임없이 짓게 되는 죄를 가능한 한 빨리 회개하여 죄로 인한 괴로움과 고통을 피해야 한다”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이러한 어머니의 가르침을 실천한 결과, 록펠러 가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부를 하는 자선 단체를 설립하여 사회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이는 진정한 회개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이민자로서 자녀의 성공은 개인과 가문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한인 사회 전체의 위상을 드높이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소외된 저소득층 동족들을 상대로 부당하게 과도한 의료비를 청구하여 착취하고, 결국 연방 범죄 단속반에 발각되어 벌금형과 함께 감옥살이까지 한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우리 한인 커뮤니티 전체가 깊이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뼈아픈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양심을 지켜야 한다. 특히 부모 된 우리는 타인에 대한 정직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한 점 부끄럼 없이 솔직해야 한다.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삶의 태도는 고스란히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내 속에 숨겨진 작은 악함조차 자녀는 무의식적으로 닮아갈 수 있다.     부모가 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고, 최소한 우리의 자녀가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가는 불행한 일을 겪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자신을 냉정하게 거울에 비춰보며,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직시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자신을 평가해야 할 때이다. 차덕선 / 수필가문예마당 성공 그늘 한인 사회 한인 의사 한인 이민자들

2025-04-03

"한인 사회와 동반 성장에 최선"…찰리 산티아고 대표

지난해 LA 한인타운 중심가로 사무실(3530 Wilshire Blvd)을 이전했던 뉴욕라이프 LA지사가 새로운 수장을 맞이했다.     지난달 부임한 찰리 산티아고 서부지역 대표다. LA지사의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향후 뉴욕라이프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LA로 부임한 소감은.   “지난달 처음 LA에 왔다. 이전에 방문한 적은 있지만 생활하는 것은 처음이다. 다가올 기회에 신나고 한편으로 두렵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 ”   -어떻게 보험업계에 입문했나.     “어렸을 때 뉴욕에서 바 매니저로 일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테네시 내쉬빌에 있는 뉴욕라이프에서 일하게 됐다. 2006년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고속 성장이었다. 2년 만에 파트너가 됐고 이후에 지사장 등으로 일했다. 이걸 꼭 강조하고 싶다. 뉴욕라이프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지금 현재 LA지사의 직원들도 운동선수부터 변호사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열정만 가지고 있으면 회사에 합류해서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빠르게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 어린 나이에 뉴욕라이프에서 일하기 시작해서 성장한 내자신 스스로가 그 증거라고 생각한다.”   -한인사회 중심에서 일하면서 느낀 게 있다면.   “사실 다른 지사에서 일할 때부터 한인 직원들과 많이 교류했기 때문에 한인사회의 문화에는 익숙하다. 일하면서 느낀 것은 한인들은 똑똑하다는 것이다. 어떤 제안이든지 합리적이라면 열린 마음으로 받아준다.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좋은 결정을 내리는 것을 자주 봤다. 내가 자라온 라티노 커뮤니티와 비교해보면 가족을 먼저 생각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음식은 정말 맛있다. 특히 한국식 회를 가장 좋아한다. 맛있는 회를 먹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     -LA지사에 부임한 이후 세운 목표는.   “재정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문지식으로 커뮤니티를 돕고 싶다. 통계에 따르면 생명보험을 들지 않은 소비자가 전체 인구의 72%에 달한다고 한다. 기본적인 재정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인구가 많다는 의미다. 미래에 대한 대비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뉴욕라이프가 도울 부분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한다. 고객들을 돕기 위해서는 LA지사의 규모도 키워야 한다. 현재 한인 직원이 70여 명이 있다. LA지역에서 가장 한인 에이전트가 많은 게 뉴욕라이프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LA의 한인사회와 함께 성장하기에는 부족한 숫자로 느껴진다. 향후 이를 200명 이상으로 늘려 나가는 것이 목표다.” 조원희 기자산티아고 한인 뉴욕라이프 la지사 찰리 산티아고 한인 사회

2025-04-03

[기자의 눈] 미국 사회의 변화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을 왔다. 벌써 20여년 전 이야기다. 대학을 다니면서 항상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들이 부러웠다. 특히 취업할 때가 되니 더 그랬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 미국은 금융위기 직후였기 때문에 경기는 극도로 침체해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외국인을 비자까지 줘가면서 고용할 회사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하던 기업의 최종면접까지 갔지만, 외국인이어서 탈락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영주권자가 되고 이후 시민권도 땄다. 시민권자가 되고 나서 처음 투표를 할 때는 감개무량했다. 한국영사관에 찾아가서 국적상실 신고를 할 때는 기분이 이상했다. 나라는 사람은 바뀐 게 없는데 정체성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국적’이 바뀌니 많은 일이 달라졌다.     내 주변에는 영주권을 취득하고 한참이 지났지만,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는 한인들도 있다. 이유도 다양하다. 영어 시험이 두려워서라는 사람도 있고 후에 역이민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다. 혹은 본인이 미국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음에도 한국인이라는 인식이 더 깊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최근 반드시 시민권자가 돼야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영주권자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한인 대학생 정윤수 씨의 이야기다.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공격에 반대하는 교내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영주권 박탈과 함께 추방 위기에까지 몰려서 많은 사람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현재 정 씨는 영주권 박탈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고 연방 법원은 추방 절차 중단을 명령한 바 있다. 하지만 정치적 입장 때문에 7살 때부터 살아온 나라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두려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주권자나 합법적 비자 소지자들이 외국에 나갔다가 미국으로 다시 입국할 때의 조사도 까다로워지고 있다고 한다. 심증 질문과 전자 기기 검사 등을 무차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런 소식을 접하고 미리 시민권을 취득하길 잘했다고 안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시민이 되겠다고 선서한 미국의 모습이 과연 이런 것이었나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에 반기를 들고 있다. 한인 앤디 김 연방 상원의원은 정 씨의 영주권 박탈을 정치적 보복으로 규정했고 데이브 민 연방 하원의원은 “이번 조치는 불법적이며 헌법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도 “다른 의견을 갖는다고 추방하는 것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미국은 동경의 대상 중 하나였다.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항상 미국은 지구를 지키는 국가였다. 가장 발전된 민주주의와 경제를 가진 선진국이 없다. 유학 시절부터 가까운 곳에서 본 미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다양성과 포용성이었다. ‘멜팅팟’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사람이 섞여 사는 이곳에서 다양성은 미덕의 하나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고부터는 이러한 경향이 쇠퇴하는 것 같다. 지난 20년간 미국에 살면서 본 모습과는 확실히 다르다. 시민권 선서를 할 때 생각했던 나라 와도 차이가 있다. 변화하는 미국을 시민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미국 사회 시민권 선서 영주권 박탈과 이후 시민권

2025-04-01

[필향만리] 和而不同 (화이부동)

‘화이부동(和而不同)’은 『논어』에 나오는 명언 중의 명언으로서 요즘에도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화합하되, 화합이라는 미명 아래 남과 다른 개성이나 소신까지 저버리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뜻으로 폭넓게 쓰이기도 한다. 이에 반해, ‘동이불화(同而不和)’는 필요에 따라 패거리 지어 화합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딴마음을 품는 것을 말한다. 전자는 군자의 처세이고, 후자는 소인의 처세이다. 시비 판단을 하지 않고 ‘화(和)’를 ‘화’로만 강조하면서 제 편이라는 이유로 덩달아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부화뇌동(附和雷同)’이라고 하는데, ‘부화뇌동’을 하지 않는 것이 곧 ‘화이부동’인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부화뇌동’으로 폭언과 폭력을 자행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이 벌어지고 있다. 과잉소통이라고 할 만큼 빠른 디지털 시대의 SNS를 통해 일부 패거리들이 악랄한 거짓말들을 유포하면, 그 거짓말을 바탕으로 패거리를 더욱 결집하고 심지어는 돈을 벌기 위해 더 강한 거짓말을 생산해 내기도 한다. ‘망한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거짓이 진실을 덮고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것을 말한다. 거짓과 불의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화이부동’의 이성과 품격을 갖추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병기 /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필향만리 화이부동 일부 패거리들 디지털 시대 우리 사회

202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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