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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전술 변화를 꿰한다고요?

요즘은 드라마나 스포츠 경기 등을 TV가 아닌 컴퓨터나 휴대전화 등을 통해 보면서 바로바로 댓글을 달 수 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여럿이 모여 드라마나 경기를 시청하면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듯해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지난달 축구 국가대표팀의 북중미 월스컵 아시아 지역 예선전에서도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스리백은 실패, 포백으로 전술 변화를 꿰해야 한다” “두 골을 실점한 뒤 포백으로 전술 변화를 꽤해 봤지만 나아지지 않는 걸 보니 전술이 아니라 투지 부족이 문제인 것 같다” 등 축구 팬들은 시시각각 나름의 의견을 개진했다.   어떤 일을 이루려고 힘을 쓴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 이처럼 ‘꿰하다’ 또는 ‘꽤하다’는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 ‘꿰다’나 ‘꽤’라는 낱말이 있기 때문에 ‘꿰하다’나 ‘꽤하다’가 어색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둘 다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꿰다’는 “실을 바늘에 뀄다”에서처럼 무언가를 뚫고 지나가게 할 때 사용할 수 있다. ‘꽤’는 “꽤 많다”에서와 같이 보통보다 조금 더한 정도를 나타낼 때 쓰인다.   ‘꿰하다’ ‘꽤하다’는 모두 ‘꾀하다’가 바른말이다. “전술 변화를 꾀해야 한다” “해외 시장 개척으로 기업 확장을 꾀했다” “가벼운 외출로 기분 전환을 꾀해 보자” 등처럼 사용된다.우리말 바루기 전술 변화 전술 변화 스포츠 경기 아시아 지역

2025-04-29

[우리말 바루기] 전극을 꼽을까, 꽂을까

인간의 뇌 구조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교통사고로 15년간 식물인간 상태였던 환자의 신경섬유에 전극을 심어 지속적으로 전기 자극을 줬더니 눈동자와 머리를 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깨어났다고 한다.   이를 소개한 기사를 보면 “뇌의 바깥쪽에 위치한 뇌 줄기에서 뻗어 나온 신경섬유에 전극을 꼽았다” “척추마비 원숭이의 뇌·척추 신경계에 탐침을 꽂아 사상 최초로 원숭이가 스스로 다리를 움직이게 했다” 등의 내용이 나온다.   이처럼 무엇을 박아 세우는 동작을 나타낼 때 ‘꼽다’와 ‘꽂다’ 중 어느 것을 써야 할까. “머리핀을 꼽았다” “책장에 책을 꼽았다” 등처럼 ‘꼽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꼽다’는 수를 세려고 손가락을 하나씩 헤아리는 일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손가락을 꼽아 가며 방학을 기다렸다”가 그런 예다. ‘꼽다’는 ‘골라서 지목하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이곳은 단풍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처럼 사용된다.   전극 ·머리핀·책 등 무엇을 쓰러지거나 빠지지 않게 박아 세우는 동작을 나타낼 때는 ‘꼽다’가 아니라 ‘꽂다’가 바른말이다. 따라서 “전극을 꽂았다” “책장에 책을 꽂았다”고 해야 한다. ‘꽂다’는 시선 등을 한곳에 고정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차가운 눈길을 상대에게 꽂았다”가 이런 경우다.우리말 바루기 전극 척추마비 원숭이 척추 신경계 전기 자극

2025-04-28

[아름다운 우리말] 세상을 떠난다는 말

우리에게는 죽음을 표현하는 많은 어휘가 있습니다. 일단 ‘죽다’가 대표적이죠. 죽었다는 말은 살았다는 말의 반대말입니다. 살아있지 않으니 죽었다는 말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죽었다는 말은 사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중립적인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에 감정을 싣습니다. 왠지 꺼리게 된 겁니다.     그래서 표현을 바꿉니다. 완곡하게, 둘러서 표현하고자 하는 겁니다. 이런 표현을 완곡 표현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뜨다, 세상을 떠나다’라고 표현하는 게 간단한 방법입니다. 죽었다는 말이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면 ‘뜨다’나 ‘떠나다’는 여전히 어디에선가 살아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왠지 안심이 됩니다.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 모르니 간 곳을 분명히 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때 쓰는 표현이 이승을 하직하고 저승으로 갔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저승은 저 생(生)을 의미합니다. 이쪽을 마감하고 저쪽에서 다시 사는 셈입니다. 저승을 저세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물론 저세상에도 종류가 있겠지요. 저승에는 지옥이 있을 수 있으니, 구체적으로 천국에 갔다거나 천당에 갔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희망 사항이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애매하게 하늘나라로 갔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소천(召天)하셨다는 쓰기도 합니다.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늘을 좋게 생각하는 것이죠.   언어권이나 문화권마다 죽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숨이 끊어졌다는 표현이나 눈을 감았다는 표현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표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숟가락을 놓았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숟가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언어권에 따른 죽음에 대한 표현만 비교해 보아도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가 있습니다.   종교에 따라서도 죽음을 표현하는 방식에 차이가 납니다. 어쩌면 종교야말로 죽음과 가장 관계가 깊을 겁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종교를 찾는 이유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승려라면 열반(涅槃)에 들었다는 표현을 합니다. 모든 번뇌를 벗어난 경지가 열반이니 어쩌면 최종 목표가 열반일 겁니다. 기독교에서는 앞에서 이야기한 소천이라는 표현을 주로 씁니다. 하늘나라로 가고 싶은 소원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선종(善終)이라고 표현합니다. 선종은 좋게 마무리했다는 의미입니다. 큰 죄 없이 세상을 떠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선종은 특별한 죽음은 아닌 셈입니다.   한국어에서는 주로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씁니다. 주로 죽었다는 말을 높일 때 씁니다. 어린 죽음 앞에서는 돌아갔다는 표현을 잘 안 합니다. 돌아가시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온 곳이 있다는 겁니다. 온 곳이 있기에 돌아갈 곳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 걸까요? 살면서 늘 온 곳을 생각하고, 돌아갈 곳을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자체로 철학이고, 종교네요.   우리는 누구나 온 날에서는 멀어지고, 돌아갈 날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모든 번뇌를 벗어나고, 좋은 저세상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그곳이 하늘이라면 하늘나라로, 그곳이 서방정토라면 서방정토로 가면 좋겠습니다. 선종을 꿈꿉니다. 돌아가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칩니다. 교황께서 선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사실 감정 최종 목표

2025-04-27

[우리말 바루기] ‘덧붙였다’ 유의 서술어 문제

“그는 ‘결과가 말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 혜택은 오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스 문장에서 ‘덧붙였다’는 쓰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는 ‘덧붙였다’ 대신 ‘했다’나 ‘밝혔다’를 쓰는 게 적절하다. ‘하다’와 ‘밝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만, ‘덧붙이다’는 그렇지 않다. ‘덧붙이다’는 앞에 한 말에 더 보탠다는 뜻이다. 추가로 붙이는 것이어서 중요성이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의미가 담긴다.   그럼에도 ‘덧붙였다’가 흔히 보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앞 문장의 서술어 ‘말했다’를 피하려고 한 거다. 같은 표현이 반복되면 지루해진다는 걸 의식했다. ‘했다’를 버린 건 밋밋하거나 흔해 보였기 때문일 수 있다. ‘덧붙였다’는 좀 더 선명하고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덧붙였다’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잊은 건 사실을 전달하는 언론 언어의 정확성과 가치중립이다. ‘혜택은 오래갈 것’이 덧붙인 말인지를 판단하는 건 독자의 몫이어야 한다.   ‘덧붙이다’는 다른 형태로도 나타난다. ‘부연하다’인데, 이 말 역시 정확하지도 가치중립적이지도 않다. “이어 ‘안전관리 체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부연했다.” 지나쳐 보인다. ‘부연하다’는 “설명을 덧붙여 자세히 말하다”는 뜻이다. 서술어의 다양화가 유행한다는 의심이 든다. 강조하지 않았는데도 ‘강조했다’고 하고, 설명이 아닌데도 ‘설명했다’고 쓴다. 사실 전달 기사의 서술어는 다양해질 필요가 없다.  우리말 바루기 서술어 유의 유의 서술어 뉴스 문장 안전관리 체계

2025-04-27

[우리말 바루기] 맞춤법 좀 틀려도 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해졌다. 그러다 보니 의사소통이 활발해지고 사회가 투명해지는 등의 장점이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말 측면에서 보면 좋은 점 못지않게 좋지 않은 점도 발생했다.   SNS로 주로 소통하는 젊은 세대가 줄임말을 자주 사용하다 보니 줄임말이 표준어를 압도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갑분싸’ ‘패완얼’ ‘낄끼빠빠’ ‘소확행’ 등은 많이 알려진 줄임말이지만 나이 든 세대 가운데는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렇게 줄임말은 세대 차이로 인한 의사소통의 문제를 가져오기도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맞춤법에 어긋나는 단어의 범람이다. ‘며칠(○)/몇 일(×)’ ‘구지(×)/굳이(○)’ 등을 틀리게 쓰는 예가 흔하다. ‘데/대’나 ‘든/던’, ‘있다가/이따가’ 등의 차이를 알고 쓰는 이가 드물 정도다. ‘하지 않았다’를 ‘하지 안았다’로 쓰는 사람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사적인 소통에서뿐만 아니라 자기소개서나 보고서 등과 같은 공적인 글쓰기에서조차 이와 같이 틀린 단어나 줄임말이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 업체의 임원은 자기소개서를 평가할 때 “맞춤법이 틀리면 기본 소양이 부족하거나 회사 생활을 건성으로 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좋지 않은 인상을 받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의사소통만 되면 되지 맞춤법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얘기하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맞춤법을 제대로 모르고 글을 쓴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기본 소양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우리말 바루기 맞춤법 줄임말이지만 나이 기본 소양 회사 생활

2025-04-24

[우리말 바루기] 촉촉히 vs 촉촉이

‘깨끗이’일까, ‘깨끗히’일까? 한글 맞춤법 제51항은 이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 “부사의 끝음절이 분명히 ‘이’로만 나는 것은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이’나 ‘히’로 나는 것은 ‘-히’로 적는다.” 분명히 ‘이’가 아니면 ‘히’를 붙이란다. 그렇다면 ‘깨끗히’일 듯한데, ‘깨끗이’가 맞춤법에 맞는다. 맞춤법 해설에 따르면 ‘ㅅ’ 받침 뒤에서는 무조건 ‘이’가 붙는다. 느긋이, 따듯이, 버젓이, 빠듯이, 산뜻이…. 여기에 어떤 시비도 붙지 않는다.   그럼 ‘솔직하다’의 ‘솔직’에는 ‘이’가 붙을까, ‘히’가 붙을까? 모두의 예상대로 ‘히’가 붙는다. 맞춤법은 ‘이’나 ‘히’로 나니 ‘솔직히’로 적으라고 한다. 맞춤법 해설에는 ‘엄격히’와 ‘정확히’도 제시돼 있다. 이 말들은 ‘ㄱ’ 받침 뒤다. 다시 말해 ‘하다’가 붙는 말의 ‘ㄱ’ 받침 뒤에는 ‘히’를 붙인 거다. 이런 예에 비춰 보면 ‘촉촉하다’의 ‘촉촉’에도 ‘히’가 붙어 ‘촉촉히’로 적어야 한다. 이런 예가 없더라도 ‘촉촉히’가 현실적이다. 그렇지만 ‘촉촉이’가 표준어다. 표준어를 따른다면 ‘비가 촉촉이 내린다’고 적어야 한다.   ‘깊숙하다’의 ‘깊숙’에도 ‘이’가 붙은 ‘깊숙이’가 표준어다.‘두둑이’ ‘빽빽이’ ‘삐딱이’ ‘수북이’라야 한다. 국어사전들이 이렇게 안내한다. 그런데 이 말들은 순우리말이고, ‘히’가 붙은 ‘솔직, 엄격, 정확’은 한자어다. 이 외 다른 한자어들에도 ‘히’가 붙는다. ‘가득히, 넉넉히, 똑똑히, 빼곡히, 아득히’는 순우리말인데도 ‘히’다. 일관성도 없고 이유도 뚜렷하지 않다. ‘촉촉하다’의 ‘촉촉’ 등에도 ‘히’를 붙이는 게 상식 같다.우리말 바루기 맞춤법 해설 한글 맞춤법 솔직 엄격

2025-04-22

[우리말 바루기] '햇나물'과 '해쑥'

‘햇나물’과 ‘해쑥’봄에는 ‘햇것’들이 가득하다.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할 때도 있지만 들판에는 새로 나온 쑥이 머리를 내밀고, 나무에는 푸릇푸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개나리·진달래·벚꽃 등도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다. 매년 돌아오는 모습이지만 새롭게 자라나는 것들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싱그럽게 한다.   “봄에는 햇나물로 비빔밥을 만들어 보자”에서 쓰인 ‘햇나물’과 같이 ‘해마다 나는 물건으로서 그해에 처음 나오는 것’을 가리킬 때 보통 접두사 ‘햇-’을 붙인다. ‘햇나물’ 외에도 ‘햇가지’ ‘햇과일’ ‘햇감자’ ‘햇곡식’ ‘햇솜’ 등 예로 들 수 있는 단어가 무척 많다.   그렇다면 그해에 새로 나온 쑥을 가리킬 땐 ‘햇쑥’이라고 하면 될까? ‘햇쑥’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해쑥’의 잘못된 표현이라고 나온다. 우리말에서 단어의 첫소리가 된소리(ㄲ, ㄸ, ㅃ, ㅆ, ㅉ)나 거센소리(ㅊ, ㅋ, ㅌ, ㅍ)로 날 때에는 ‘햇-’이 아닌 ‘해-’를 쓰도록 하고 있다. ‘쑥’의 경우 단어의 첫머리가 된소리인 ‘ㅆ’으로 시작되므로 ‘햇-’이 아닌 ‘해-’가 붙어 ‘해쑥’이 되는 것이다.   ‘팥’과 ‘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단어의 첫머리가 거센소리인 ‘ㅍ’과 ‘ㅋ’으로 시작되므로 ‘햇팥’ ‘햇콩’이 아닌 ‘해팥’ ‘해콩’으로 써야 바른 표현이 된다. ‘햇것’ ‘햇나물’ ‘햇병아리’ 등은 단어의 첫머리가 ‘ㄱ’ ‘ㄴ’ ‘ㅂ’으로, 거센소리나 된소리가 아니므로 ‘햇-’을 붙이면 된다.   내일은 햇나물로 만든 비빔밥, 해쑥으로 만든 부침개로 봄을 물씬 느껴 보는 건 어떨까.우리말 바루기 햇나물 햇나물로 비빔밥 첫머리가 된소리인 보통 접두사

2025-04-21

[아름다운 우리말] 모순과 집착

우리는 모순 속에서 삽니다. 나의 지향과 삶의 방향이 서로 엇갈리며 부끄러운 삶을 삽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새벽 일찍 잠에서 깨어 모순투성이인 나의 모습에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답답한 일입니다. 모순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우리는 물질적인 욕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지만, 물질적 풍요를 부러워합니다. 여태껏 살아온 삶이 그러하고, 앞으로의 삶도 그러할 겁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평생을 물질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지만, 문득 다가오는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갖고 싶은 게 많다기보다는 놓치지 않고 싶은 게 많습니다. 물욕은 집착에서 비롯됩니다.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지만 머릿속은 온갖 집착입니다.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 집착임을 알고 있지만, 살면서 오히려 집착이 늘어납니다. 집착 중에서도 제일 괴로운 집착은 자식에 대한 집착입니다. 떼어낼 수 없는 집착에 삶의 무게가 짙어집니다. 어쩌면 물욕의 근원에서도 자식에 대한 집착이 가장 큰 원인일 겁니다. 집착과 사랑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속하여, 자유를 잃습니다.   나이 들면서 집착은 고집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아는 것, 믿는 것이 유일한 가치인 양 생각하여 머리가 굳어갑니다. 유연성이 사라진 사고가 남을 가볍게 평가합니다. 젊은 사람의 행동을 퇴폐라고 진단하고 욕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세상을 몰래 엿보기도 합니다. 사고와 감정이 모순됩니다. 내가 내린 평가가 오히려 한없이 가볍습니다.   ‘요즘 것들은’이라고 쉽게 평가하면서도, 나의 과거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가벼운 음악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어느새 내 발은 박자를 맞추고 있습니다. 어깨를 들썩이기도 합니다. 젊은이의 옷차림을 비난하면서도 그런 모습을 힐끔거리며 쳐다봅니다. 젊음을 부러워하면서도 욕하는 모순 속에서 살고 있는 겁니다.   어쩌면 제일 심한 모순은 정치를 보면서 일어납니다. 정치가를 욕하고, 정치의 타락과 권력의 타락을 비난하지만, 권력에 기대고 맙니다. 나에게 돌아올 혜택을 반기고, 나에게 발생할 불이익에 화를 냅니다. 정치에 대한 기준이 나에게 있음을 발견할 때마다 부끄럽기도 합니다. 욕하면서 욕심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모순 속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삶 속에 가득한 모순을 덜어내는 방법은 없을까요? 철학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삶이 바빠서 철학에서 멀어졌다고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철학에서 멀어져서 삶이 바쁜 것일 수 있습니다. 최근에 읽은 철학책은 무엇이 있습니까? 오랫동안 나를 붙잡아주는 책이나 사상은 무엇이 있습니까?   저는 요즘 다양한 책을 보고, 다양한 강의를 듣습니다. 논어나 맹자, 도덕경이나 장자, 법화경이나 금강경, 요한복음 등 고전을 읽고, 또 읽습니다. 좋은 강의도 영상매체 속에 한가득 있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면서 삶의 지혜가 수천 년간 이어져 오고 있음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곧바로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립니다.   살고 싶은 삶과 살고 있는 삶의 모순이 참으로 큽니다. 모순으로 가득한 삶을 살기에 지난밤 꿈자리가 뒤숭숭했습니다. 식은땀을 한바탕 흘리고 나니 정신이 아득합니다. 아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남은 날을 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깊이 생각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모순과 집착은 불안의 원인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모순 집착 타락과 권력 금강경 요한복음 물질적 풍요

2025-04-20

[우리말 바루기] 몸무게가 준 이유

“몸무게가 많이 줄은 것 같죠?”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는 유명인의 경험담이 새로운 유행을 만들곤 한다. 간헐적 단식도 효과를 봤다는 여러 사례가 방송을 타면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체중과 관련해 “몸무게가 많이 줄은 것 같죠?”라고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줄은’은 ‘줄다’의 잘못된 활용형이다. ‘줄은’을 ‘준’으로 고쳐야 바르다.   어간이 ‘ㄹ’ 받침으로 끝나는 동사나 형용사에 ‘ㄴ’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결합할 때에는 어간 받침의 ‘ㄹ’이 탈락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줄다’의 어간 ‘줄-’과 어미 ‘-ㄴ’이 결합하면 어간 받침의 ‘ㄹ’이 탈락해 ‘준’이 된다.   “허리 사이즈가 좀 줄어들은 것 같아요”도 마찬가지다. ‘줄어들다’를 활용할 때 ‘줄어들은’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줄어든’으로 바루어야 한다.   ‘늘다’의 어간 ‘늘-’과 어미 ‘-ㄴ’이 결합할 때에도 어간 받침의 ‘ㄹ’이 탈락해 ‘는’이 된다. “체중이 좀 는 듯하네요”와 같이 사용해야 올바르다.   실제 언어생활에서 잘못된 활용형을 쓰는 경우가 많다. 동사 ‘날다’에 어미 ‘-는’이 결합하면 ‘나는’이 된다. “날으는 양탄자”가 아니라 “나는 양탄자”가 바른 표현이다.     노랫말에 나오는 “거칠은 들판” “낯설은 타향” “찌들은 내 마음” “녹슬은 기찻길”도 “거친 들판” “낯선 타향” “찌든 내 마음” “녹슨 기찻길”로 표현해야 된다. 발음을 편하게 하려고 습관적으로 ‘으’를 집어넣는 경향이 있으나 어법에 어긋난다. “검게 그을은 팔” “노랗게 물들은 잎” “땀에 절은 옷” “입안이 헐은 이유”가 모두 같은 유형의 표현이다. ‘그은’ ‘물든’ ‘전’ ‘헌’으로 각각 고쳐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몸무게 어간 받침 체중 감량 허리 사이즈

2025-04-17

[우리말 바루기] ‘헬스장을 끊다’?

친구가 “헬스장을 끊었다”고 했다. 헬스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뒀다는 것일까, 아니면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일까.   같은 말이 이렇게 정반대로 해석될 수 있다니 재미있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끊다’를 ‘등록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가 많을 것 같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끊다’의 뜻풀이 중 정확하게 이런 의미로 올라 있는 것은 없다.   사전을 보면 ‘끊다’는 “고무줄을 끊다”에서처럼 실·줄·끈 등의 이어진 것을 잘라 따로 떨어지게 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또한 “소식을 끊다” “교제를 끊다”에서처럼 관계를 이어지지 않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밥줄을 끊다” “담배를 끊다” 등에서와 같이 어떤 것을 중단하거나 하지 못하게 하는 일에도 ‘끊다’를 쓴다.   그렇다면 왜 ‘등록한다’는 뜻으로 ‘끊다’가 쓰이게 됐을까. ‘끊다’의 여러 가지 의미 중에는 “한복감을 끊다” “기차표를 끊다”에서와 같이 옷감이나 표 따위를 사다는 의미도 있다. 옷감을 잘라서 사는 것을 ‘끊다’고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차표 또한 종이 승차권을 쓰던 시절엔 ‘끊다’를 ‘구매한다’는 의미로 사용했던 것이다.   표를 구매하는 행위를 ‘끊다’고 표현하던 것이 굳어져 헬스장이나 수영장 등에 등록하는 일도 ‘끊다’고 표현하게 된 것이다. 헬스장 등에 입장할 수 있는 회원권을 구매하는 일이 ‘입장권을 사다’는 의미와 연결돼 ‘끊다’가 ‘등록하다’는 의미로 확장된 것이라 할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헬스장 가지 의미 종이 승차권

2025-04-16

[우리말 바루기] 구어체 표현 삼가야

요즘 들어 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표현이 ‘~거’라는 말이다. “괜히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거다”처럼 ‘거’나 ‘거다’ 표현이 많이 쓰인다. 여기에서 ‘거’ ‘거다’는 ‘것’ ‘것이다’를 입으로 말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즉 구어체 표현이다. 구어체(口語體)란 글이 아닌 일상적인 대화에서 주로 쓰는 말을 가리킨다. 말할 때는 편리하게 발음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것’이나 ‘것이다’ 대신 ‘거’나 ‘거다’로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글을 쓸 때는 주의해야 한다. 글에서 이런 표현이 나오면 맛이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글의 문장은 말보다 완전하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글에서 말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표현이 나온다면 글로서의 가치를 지니기 어렵다. 글을 쓸 때는 “괜히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처럼 적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자 메시지에서 줄임말을 많이 쓰거나 받침을 잘 적지 않는 버릇이 든 것도 이 같은 현상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문자 메시지에서는 속도가 생명이기 때문에 의미 전달만 가능하다면 정확성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해논 것이 없다” “따논 일이나 마찬가지다”처럼 ‘놓은’을 줄여 ‘논’으로 표현하는 것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해논’은 ‘해놓은’, ‘따논’은 ‘따놓은’의 줄임말이다. “재밌는 이야기들을 옮겨놨다”처럼 ‘재밌는’이나 ‘옮겨놨다’도 마찬가지다. 각각 ‘재미있는’과 ‘옮겨놓았다’의 축약어다. 우리말 바루기 구어체 표현 구어체 표현 문자 메시지 의미 전달

2025-04-15

[우리말 바루기] ‘오뚝한 코’가 된 사연

“오뚝한 코에 눈매가 매섭다.” “코가 우뚝하고 눈매가 날카롭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와 마주쳐 몽타주를 만드는 데 참여했던 버스기사와 안내원은 그의 생김새를 이렇게 기억했다.   유력한 용의자의 모습을 묘사할 때 사용된 “오뚝한 코” “코가 우뚝하고” 중 어떤 표현이 맞을까? ‘오뚝하다’ ‘우뚝하다’ 모두 도드라지게 높이 솟은 상태를 일컫는 말로 쓸 수 있다.   ‘오똑하다’는 표준어가 아니다. 한 매체가 공개한 용의자의 고교 때 사진을 보고 “몽타주처럼 눈매가 날카롭고 코가 오똑하네”라고 표현하는 이가 많다. 이때의 ‘오똑하다’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말이다. “코가 오뚝하네”나 “코가 우뚝하네”로 고쳐야 한다. ‘오뚝하다-우뚝하다’가 짝을 이루는 게 바르냐고 의아해하지만 ‘오뚝하다’ ‘우뚝하다’만 표준말로 인정하고 있다.   ‘오똑하다’를 취하지 않고 ‘오뚝하다’를 표준어로 삼은 이유는 양성모음이 음성모음으로 바뀌어 굳어진 단어는 음성모음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음성모음화 현상을 인정한 결과다. 우리말에는 양성모음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은 음성모음끼리 어울리는 모음조화 현상이 있는데 지금은 이 규칙이 많이 무너져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깡총깡총’이다. ‘깡총깡총’을 버리고 언어 현실을 반영해 ‘깡충깡충’을 표준어로 정했다. 발딱발딱 일어서는 아이들의 장난감도 ‘오똑이’가 아닌 ‘오뚝이’로 써야 한다. ‘-동이’도 ‘-둥이’가 표준어다. ‘-둥이’의 어원은 ‘동이(童-)’이지만 음성모음화를 인정해 ‘막둥이’ ‘쌍둥이’처럼 사용한다.우리말 바루기 사연 음성모음화 현상 음성모음 형태 모음조화 현상

2025-04-14

[우리말 바루기] ‘반나절’은 몇 시간일까

한국의 KTX가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KTX는 대부분의 목적지 역에 3시간 내외에 도착한다. 따라서 여기에서 얘기하는 반나절은 3시간을 의미한다. 한나절은 6시간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다음 기사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 반나절 만에 석방’이란 제목의 기사인데 기사 내용에는 “그가 6시간20분 만에 풀려났다”고 돼 있다. 여기에서는 반나절이 6시간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반나절이 3시간인지 6시간인지 저마다 달라 헷갈린다.   의문을 풀기 위해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한나절’을 ‘1)하룻낮의 반(半) 2)하룻낮 전체’ 두 가지로 풀이하고 있다. 또한 ‘반나절’은 ‘1)한나절의 반 2)하룻낮의 반=한나절’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하루를 낮과 밤 둘로 쪼개 하룻낮을 12시간이라고 본다면 ‘한나절’의 풀이 중 ‘하룻낮의 반’은 6시간, 또 다른 풀이인 ‘하룻낮 전체’는 12시간을 의미한다. ‘반나절’ 또한 사전 풀이에 따르면 ‘한나절의 반’인 3시간과 ‘하룻낮의 반=한나절’인 6시간을 뜻한다. 즉 ‘반나절’은 3시간, 6시간 모두에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KTX가 전국을 반나절(3시간) 생활권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나 반나절인 6시간 만에 ○○○을 석방했다는 기사 모두 맞는 말이 된다.   국립국어원은 실제 언중의 쓰임을 토대로 2011년 두 번째 풀이를 사전에 추가했다고 밝혔다. 현실을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다 보니 오히려 혼란을 초래한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든다. 수치와 관련한 기준은 정확할 필요가 있다.우리말 바루기 반나절 시간 반나절 생활권 다음 기사 기사 모두

2025-04-13

[아름다운 우리말] 한국어 교육의 여러 갈래

초창기의 한국어 교육은 재외동포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의 수는 매우 적었으며, 선교사나 군인 등의 특수 목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한국어 교육의 뿌리에는 힘들지만 모국어로서 한국어를 이어가려는 재외동포의 힘이 컸습니다.     한글학교를 비롯한 자치적인 교육기관이 주를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의 학회인 이중언어학회의 경우는 창간호부터 한동안의 학술지를 재외동포 특집으로 할애하고 있습니다. 소련, 중국, 일본, 미국 등 해외동포와 그 자녀의 한국어 교육이 주요 연구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재외동포 한국어 교육에 대한 관심은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이주 노동자가 급증합니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를 위한 한국어 교육의 수요가 높아지고, 이에 대한 연구도 시작됩니다. 이후에는 여성결혼이민자가 급증합니다. 역시 결혼이민자를 위한 연구가 급증하게 됩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진학 목적의 한국어 학습자의 증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대학에 진학하려는 외국인이 증가하면서 연구도 학문 목적 외국인 학습자를 위한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재외동포를 위한 한국어 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류라는 세계적 현상과 더불어 한국어는 재외동포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할 때입니다. 재외동포를 위한 한국어 교육 연구가 매우 부족함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는 재중동포 중에도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워야 하는 실정에 이르렀습니다. 해외입양아, 국제결혼 자녀, 중도입국 자녀 등 재외동포의 범위도 점점 넓어집니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이 한쪽 날개라면, 재외동포를 위한 한국어 교육도 한쪽 날개입니다. 균형 있는 연구와 지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한편 생각해 볼 점이 또 있습니다. 한국어를 영어로 하면 코리안 랭기지가 됩니다. 하지만 코리안 랭기지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면 한국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북한 즉, 조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코리안 랭기지는 ‘조선어’라는 단어로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정확히 하자면 노스 코리안은 조선어로, 사우스 코리안은 한국어로 번역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어와 조선어가 모두 코리안 랭기지임을 종종 잊습니다.     한국어 교육의 범위는 점점 확대되는 반면에 조선어교육의 범위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1992년 수교 이전에는 조선어교육이 주를 이루었지만, 현재 중국 대부분의 ‘조선어과’에서는 조선어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모두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폴란드, 체코를 비롯한 동유럽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현재 조선어를 가르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조선어교육에 대한 관심도 매우 낮은 편입니다. 북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조선어교육에 관하여 제한된 자료에 의거하여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남한의 국제통용 표준한국어 교육과정과 유사하게 북한에서는 조선어 소유급수기준에 의거하여 교재를 만들고 있는데, 이 기준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향후 연구에서는 한국어와 조선어라는 두 날개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겁니다.   한국어 교육은 하나가 아닙니다. 재외동포를 위한 교육이 있고, 외국인을 위한 교육이 있습니다. 또한 한국어 교육도 있고, 조선어교육도 있습니다. 연구해야 할 분야가 너무나 많습니다. 앞으로 각 분야의 연구자들이 더 많아지기 바랍니다. 특히 미주 지역의 재미동포를 위한 한국어 교육 연구를 기대해 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한국어 교육 한국어 교육 재외동포 한국어 국제통용 표준한국어

2025-04-13

[우리말 바루기] 전화번호 읽는 법

213-345-6789   위 전화번호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213 다시 345 다시 6789”라고 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전화번호뿐만 아니라 은행 계좌 번호를 읽을 때도 숫자 중간중간 ‘다시’를 넣어 읽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처럼 복잡한 숫자를 나열할 때 ‘-’ 표시가 나오면 ‘다시’라고 자연스럽게 읽곤 한다. 그러나 이 ‘다시’라는 표현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다시’는 영어 ‘dash’에서 온 말이다. 우리말로는 ‘줄표’를 뜻한다. 일본인들이 영어의 원래 발음인 ‘대시’가 아니라 ‘다시’라고 쓰던 것이 한국으로 넘어와 우리말처럼 굳어진 것이다. 따라서 영어 발음에 맞게 ‘대시’라고 하든가 우리말인 ‘줄표’라고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213 다시 345 다시 6789”라고 하든가 “213 줄표 345 줄표 6789”라고 읽어야 한다. 우리말인 ‘줄표’로 하면 좋겠지만 잘 쓰지 않던 말이라 다소 어색한 측면이 있다. “213에 345에 6789”로 읽거나 숫자와 숫자 사이를 잠시 쉬어 가며 읽으면 어떨까 싶다.   이와 같이 일본식 영어 발음이 우리말처럼 굳어진 예는 이 밖에도 많다. “따불로 드릴게요”와 같이 ‘따불’이란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double(더블)’의 일본식 발음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인조 가죽을 의미하는 ‘레자’는 ‘leather’, 재봉틀을 의미하는 ‘미싱’은 ‘machine’, ‘마후라’는 ‘muffler’, ‘빠꾸’는 ‘back’을 일본식으로 읽은 표현이다.우리말 바루기 전화번호 영어 발음 숫자 중간중간 숫자 사이

2025-04-10

[우리말 바루기] ‘딴죽 걸기’와 ‘딴지 걸기’

‘딴지’란 말이 부쩍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1998년 딴지일보가 창간되면서다. 이때만 해도 ‘딴지’는 표준말이 아니었다. 엄연히 ‘딴죽’이란 표준어가 있었지만 이 매체가 주목받으면서 “딴지를 걸다” “딴지를 놓다”처럼 표현하는 일이 더 늘어났다.   ‘딴죽’과 ‘딴지’란 말이 공존하는 현장은 서점에서도 쉽게 마주한다. “상식에 딴죽 걸다” 못지않게 “세상에 딴지 걸다” 같은 책 제목도 눈에 많이 띈다.   실생활에서 ‘딴지’란 단어가 빈번하게 사용되는데도 비표준어란 꼬리표는 늘 따라다녔다. 여전히 ‘딴죽’으로 고쳐 써야 한다고 알고 있는 이가 많다.   지금은 ‘딴지’와 ‘딴죽’ 모두 표준말이 됐다. ‘딴죽’만 계속 표준어로 인정해 오다 2014년 실제 언어생활에서 사용 빈도가 높은 ‘딴지’를 별도 표준어로 추가했다. 두 낱말의 뜻은 조금 다르다. ‘딴죽’과 더불어 ‘딴지’도 표준어로 인정하되 두 낱말의 미묘한 어감 차이를 반영해 사전에 올렸기 때문이다.   ‘딴죽’은 이미 동의하거나 약속한 일에 대해 딴전을 부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등재됐다. 주로 “딴죽 걸다” “딴죽 치다” 형태로 쓰인다. “오늘 결정한 안건에 대해 나중에 딴죽을 걸면 안 돼” “굳게 약속하고선 이제 와 딴죽을 치면 어떡하니?”처럼 사용한다.   ‘딴지’는 주로 걸다, 놓다와 함께 쓰여 일이 순순히 진행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거나 어기대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사전에 올랐다. 적극적인 참여 의사가 함축돼 있다. “무슨 일을 하든 꼭 딴지를 놓는 사람이 있지요” “이번 일에는 딴지를 걸지 않아야 할 텐데…”와 같이 사용한다.우리말 바루기 딴지 딴지 걸기 별도 표준어 사용 빈도

2025-04-09

[우리말 바루기] ‘카나리아색’은 어떤 색?

“카나리아색 좀 빌려줄래?” “카나리아색은 없는데. 대신 크롬노랑색을 빌려줄까?”   이처럼 ‘카나리아색’이나 ‘크롬노랑색’이란 얘기를 들으면 무슨 전문 용어인가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색연필이나 물감, 크레파스, 색종이 등 어린이나 청소년이 많이 사용하는 문구류에 적혀 있는 색이름이다.   무슨 의미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색이름은 이뿐이 아니다. ‘대자색’ ‘상아색’ 등도 이름으로 색깔을 유추해내기 어렵다. 그래서 국가기술표준원은 최근 문구류 산업표준(KS) 7종의 색이름을 보다 쉽게 바꾸어 공표했다.   ‘카나리아색’은 ‘레몬색’, ‘크롬노란색’은 ‘바나나색’, ‘대자색’은 ‘구리색’, ‘상아색’은 ‘연노랑’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레몬색’ ‘바나나색’이라 하면 그 색깔이 어떠한지 쉽게 연상될 뿐 아니라 표기나 발음도 쉬워 대부분 사람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외래어 대신 우리말로 표준색 이름을 바꾸었다는 의미도 있다.   이번에 바뀐 색이름 중에는 이름과 실제 색의 차이로 혼란을 유발하는 것도 포함됐다. ‘진보라’라고 하면 ‘진한 보라색’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진보라’는 연한 보라색을 지칭하고 있어 헷갈리기 십상이었다. 이번에 ‘진보라’를 ‘밝은 보라’로 바꿔 의미가 혼동되지 않고 의사소통이 원활해질 수 있도록 했다.   ‘진갈색’과 ‘진녹’도 마찬가지 이유로 ‘밝은 갈색’과 ‘흐린 초록’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 밖에 ‘연주황’은 ‘살구색’, ‘밝고 여린 풀색’은 ‘청포도색’, ‘녹색’은 ‘초록’, ‘흰색’은 ‘하양’, ‘개나리색’은 ‘진노랑’으로 바뀌었다.우리말 바루기 카나리아색 표준색 이름 진한 보라색 대신 크롬노랑색

2025-04-08

[우리말 바루기] 워라밸은 ‘일삶균형’

요즘 젊은 직장인들은 ‘워라밸’을 중요시한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영어의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에서 온 말이다. ‘Work-life balance’는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개인의 업무와 사생활 간의 균형을 묘사하는 단어로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워라밸’은 각 단어의 앞 발음을 딴 우리말 신조어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는 ‘워라밸 실천 기업’ 10개를 선정해 발표했다. 워라밸 점수가 높은 중소기업을 평가해 뽑는데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이렇게 정부기관까지 워라밸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이 단어가 더욱 널리 쓰이게 됐다. 일과 가정(퇴근 후 삶)의 균형을 찾는 경향을 ‘워라밸 트렌드’, 이러한 것을 추구하는 세대를 ‘워라밸 세대’라 부른다. ‘워라밸 기업’ ‘워라밸 정책’ ‘워라밸 열풍’ ‘워라밸 문화’ ‘워라밸 혼수 가전’ 등 ‘워라밸’이란 용어가 여기저기 나온다.   ‘워라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해마다 발표하는 ‘베터 라이프 인덱스(Better Life Index, BLI)’의 지표이기도 하다. OECD는 주거·소득·교육·환경 등 11개 영역으로 나누어 각국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긴다. 11개 영역에는 ‘Work-life balance’도 포함돼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BLI 순위, 즉 워라밸 순위는 41개국 가운데 35위였다.   ‘워라밸’이 관심사이다 보니 이 용어를 무리하게 끌어다 쓰는 경우도 있다. ‘호텔 워라밸 패키지’ ‘워라밸 단지 분양’ ‘워라밸 모바일 게임’ 등은 ‘워라밸’을 남용한 경우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처럼 ‘워라밸’은 콩글리시일 뿐 아니라 남용되거나 부적절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렵다 보니 ‘워라벨’이라 표기한 곳도 있다. 그럴 바엔 이를 번역한 우리말인 ‘일삶균형’ 정도로 부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언어의 우선적인 가치는 전달이다. ‘워라밸’은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전달력이 떨어진다.우리말 바루기 life balance better life 라이프 인덱스

2025-04-07

[우리말 바루기] 햇병아리, 해쑥, 햅쌀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파릇파릇 나무가 새 옷을 입고 햇병아리들이 나들이를 나오는 모습을 보니 봄이 완연하다. 봄은 이렇게 햇것들로 가득하다.   ‘햇병아리, 햇것’에서처럼 해마다 나는 물건으로 그해에 처음 나오는 것을 이를 때 접두사 ‘햇-’을 붙인다. 햇과일, 햇곡식, 햇나물 등 예를 들자면 수도 없이 많다.   봄에 제철을 맞는 ‘쑥’에 접두사를 붙이면 어떻게 될까. ‘햇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해쑥’이 바른 표현이다. 맞춤법 규정에 따르면 단어의 첫소리가 된소리(ㄲ, ㄸ, ㅃ, ㅆ, ㅉ)나 거센소리(ㅊ, ㅋ, ㅌ, ㅍ)로 날 경우엔 ‘햇-’이 아닌 ‘해-’를 쓰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쑥, 해콩, 해팥 등처럼 적는다.   그렇다면 ‘그해에 새로 나온 쌀’은 어떻게 표기해야 할까. 온라인상에는 ‘햇쌀’이라고 쓰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쌀’이 된소리(ㅆ)로 시작하기 때문에 어문 규정을 떠올리며 ‘해쌀’로 써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햇쌀’과 ‘해쌀’ 모두 잘못된 표현.   ‘쌀’의 경우 원래 중세 국어에서 단어의 첫머리에 ‘ㅂ’이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쌀’에는 ‘ㅂ’을 첨가해 ‘햅쌀’을 바른 표기로 삼고 있다. ‘벼+씨’를 ‘볍씨’로, ‘조+쌀’을 ‘좁쌀’ 등으로 표기하는 것도 같은 사례다.우리말 바루기 햇병아리 햅쌀 맞춤법 규정 햇과일 햇곡식 중세 국어

2025-04-06

[아름다운 우리말] 머리를 가슴으로, 가슴을 온몸으로

세상에 알아야 할 게 참 많습니다. 예전에 비해 지식의 폭이 훨씬 넓어지고 있습니다. 알아야 하는 과목도 늘었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지식도 끊임없이 솟아 나옵니다.     그럼 우리는 정말로 똑똑해졌을까요? 지식인은 많은데, 지혜로운 이는 적다는 한탄이 여기저기에서 나옵니다. 답답한 일입니다. 지식은 쌓여가는데 지혜는 오히려 옅어집니다.     지식인(知識人)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지식인이라는 말은 칭찬 같기도 하고, 나무라는 말 같기도 합니다. 지식인을 나무랄 때는 지식을 쌓아는 가지만, 지혜로 바뀌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세상에 지식(知識)이 넘쳐나니 지식인도 넘쳐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혜를 나타내는 한자 지(知)에는 날 일(日)이 더해 있습니다. 지식이 밝아져야 지혜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빛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식을 경쟁하고, 서로 잘났다고, 많이 안다고 하며 자신의 성적을 내세우는 세상, 자신을 숫자로 표현하는 세상은 어두운 세상입니다. 당연히 지혜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인공지능 앞에서는 무력한 사람들입니다. 인공지능의 속도와 정확성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아예 경쟁조차 되지 않습니다.     지식을 아는 것에 그치면 경영의 목표가 돈이 되고, 법의 목표가 돈이 되고, 의술의 목표가 돈이 됩니다. 모든 걸 돈에 초점을 맞추는 세상이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세상은 지식이 머리에 머물러 있는 세상입니다. 세상일을 머리 아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슴도 아파야 옳은 해결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는 세상에서, 지식이 감정으로 옮겨가는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정보라고 합니다.     정보(情報)는 사정(事情)을 알린다는 뜻이고, 정보나 사정이나 모두 감정(感情)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情)이 담긴 글자입니다. 이러한 세상이 바로 가슴으로 사는 세상입니다.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입니다. 무미건조한 정보가 아니라, 가슴으로 아파하는 정보입니다. 공감의 세상, 동감의 세상이란 머리에서 가슴으로 옮겨갔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가슴에서 다리로, 아니 온몸으로 퍼져나가서 핏줄이 돌 듯이 모세혈관까지 전해져야 합니다. 머리로 생각한 것을 가슴으로 옮기고, 가슴으로 느낀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겁니다.     사실 이 지점이 가장 어렵습니다. 책상 앞에서 생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멀리서 떨어져서 가슴 아파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뛰어들어 행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생각을 키우기 위해서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독서와 글쓰기가 내게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읽은 대로, 내가 쓴 대로 행동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글 읽기에서 이런 읽기를 체독(體讀)이라고 합니다. 온몸으로 생각하며. 행동하며 읽는 것입니다.     주로 경전을 이렇게 읽습니다. 종교의 경전은 그저 읽기만 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실천이 중요한 겁니다. 마찬가지로 쓰기에서도 체서(體書)가 필요합니다. 이 말은 제가 만든 말입니다.   글을 쓰면서, 책을 읽으면서 지식인인 척하는 스스로가 부끄럽습니다. 그야말로 저는 지혜는커녕 지식인도 못 되었습니다. 배운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삶도 노력해야겠습니다. 세상을 위해서 행동하는 삶이 되기 위해 체독의 삶, 체서의 삶, 체학(體學)의 삶을 생각해 보는 오늘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가슴 모두 감정 해결 방향 칭찬 같기

202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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