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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미움에 대하여

조현용 교수

조현용 교수

감정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아이가 울면 다른 아이도 웁니다. 앞에 있는 사람이 웃으면 나도 웃음을 참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서로의 감정이 다르다면 충돌이 생깁니다. 함께 살기가 어려울 겁니다. 같은 감정을 지니고, 드러내며 사는 것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을 살아가기가 힘든 건 미운 감정 때문입니다. 미움은 받는 것도 힘이 들지만 미워하는 것도 힘이 듭니다.  
 
단순히 표현하자면 힘이 빠지는 일입니다. 언어적으로 보자면 힘이 들어갔으니 힘이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힘들다는 말은 힘이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미운 감정은 ‘헛된 힘’을 쓴 겁니다. 의미 있는 에너지 소비가 아니니 낭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움이라는 감정은 나쁜 감정입니다. 그러한 증거를 한자가 보여 줍니다. 미울 오(惡)라는 한자의 다른 독법은 나쁠 악(惡)입니다. 한자가 같습니다. 나쁜 것을 미워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미워하는 것은 나쁘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증오(憎惡)라고 할 때 미울 오의 용법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한자를 자세히 보면 많은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우리말에서는 ‘미워하다’에 해당하는 다른 말로는 ‘싫어하다’가 있습니다. 미워하다에 비해서는 감정이 조금 누그러진 느낌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우리말 ‘싫다’와 ‘슬프다’는 어원이 같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생각에 싫은 게 많은 건 슬픈 것이고, 슬픈 게 많은 건 싫은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슬픈 일은 모두 싫은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헤어지는 것은 슬픈 일기도 하지만, 생각하기도 싫은 일인 것도 맞습니다. 반면에 싫은 일이 많은 것도 생각해 보면 슬픈 일입니다. 세상을 아름답고 기쁘게 살아야 하는데, 싫은 일 속에서 산다니 정말로 슬픈 일이지요. 우울한 인생입니다.
 
살면서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면 답답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나도 그를 미워하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나 역시 그를 싫어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아주 드물게 나를 싫어하는 이를 내가 좋아하거나, 내가 싫어하는 이가 나를 좋아할 수 있겠으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이런 일이 있다면 그것도 슬픈 일이네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미움은 거울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게 차갑게 대하는데 따뜻한 반응을 하기는 힘듭니다. 반면에 내가 차갑게 대하는데 나를 따스하게 대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겁니다.  
 
감정은 서로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종종 어둠이 어둠을 낳는다는 말이 감정에도 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두운 감정은 어두운 감정을 부릅니다. 미움이 미움을 낳고, 사랑이 사랑을 낳는 거죠.
 
내가 만나기 싫어하는 사람은 그도 나를 만나려 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인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나도 인사하기가 싫습니다. 참으로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이런 생활을 바꾸려면 내가 먼저 인사하고, 내가 먼저 미소 짓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바뀌지 않는데 상대가 바뀌는 일은 없습니다. 감정은 거울입니다.
 
내 감정이 그대로 그에게 비춥니다. 길을 걷는데 나를 슬쩍 피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만난 게 아니라 스쳐 지나간 거네요. 사는 게 참 그렇습니다. 나도 피하고 싶은 사람이었으니 말입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많다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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