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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이것 저것 손에 안 잡히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무력해지는 날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집안 구석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다. 십 분이면 끝낼 일을 한시간이나 뒤적거리고 할 일은 태산 같은데 시작할 엄두도 못 내고 허둥댄다. 이 일 하다가 저 일 꺼내며 갈피를 못 잡고 헷갈리며 무력해진다.     생각의 태엽이 너무 탱탱하게 감겨 오류가 발생했나. 벽시계는 매 순간 잘 돌아 가는데 일상의 태엽은 중요한 순간에 떡 가래처럼 늘어지고, 죽치고 멍청하게 허탈한 날엔 등 푸른 생선처럼 퍼덕거리며 꼬리를 흔든다.   머리도 몸도 마음도 휴식이 필요한 시간인가. 괜히 슬퍼지고 가슴으로 눈물이 방울져 내린다. 이런 날엔 사고의 바다에서 멸치 꺼내 육수를 우려내서 국수를 말아먹는다.   가슴 속 흐르는 눈물은 닦을 손수건이 없다. 멍 때리고 앉아 창밖을 무심히 바라본다. 매일 똑 같은 자리에서 바라다보는 풍경인데 항상 새롭다. 하늘은 단 한차례도 같은 색의 물감을 하늘 바다에 풀지 않는다.     칠흙 같은 어둠을 헤치고 제일 먼저 어둠을 깨우는 것은 짙은 파랑색(Navy)다. 여명의 빛이 나무숲 가지 사이로 안개를 피우듯 번지기 시작하면 하늘은 청옥색 사파이어(Sapphire)에 보랏빛 자수정(Amethyst)을 수놓으며 하늘 바다로 떠오른다. 그 사이로 맑고 푸른 눈의 터키옥색(Turquoise)이 청록색의 물감을 풀어낸다. 곧이어 진홍색 빨강이 번져 나오고 비슬산 참꽃을 닮은 뜨거운 핑크색(Hot Pink)이 무지개를 그리며 한편의 오작교를 완성한다.   그 황홀함에 빠져 아무 생각도 없이 다가오는 천상의 조화에 빠져 든다. 이승에서 새겨진 상처와 고뇌, 회환과 슬픔이 흐릿한 무채색으로 번져 나간다.   존재의 살아있음을 잊어버리고 시간을 멈추고 멍 때리며 보내는 시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는 온전한 자유로움은 창조의 원동력 된다. 움켜진 정신 줄을 내려 놓으면 경의로운 발견을 체험한다. 살아있는 존재의 아픔을 잠시라도 잊어버리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축복인가.   ‘멍 때리다’는 영어로 ‘Space out, Zone out’으로 표현한다. 집중력을 잃고 멍한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멍하게 있거나 무의미하게 어떤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상태를 말한다.   2025 ‘한강 멍 때리기 대회’가 서울에서 열려 80팀, 총 126명이 참가했다. 이 대회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도 가치 있는 행위’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2016년 시작됐는데 매년 외신의 주목을 받으며 화제를 모은다. 참가자는 90분 동안 어떤 행동이나 생각을 하지 않고 ‘멍 때리기’를 가장 잘한 사람이 우승자가 된다. 참가자들은 심박 측정기를 착용하고 15분마다 측정된 심박수와 시민 투표로 점수를 받는다. CNN은 “한국의 초경쟁 사회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휴식처”라고 평가했다.   돌덩이처럼 무겁게 하늘과 땅이 가라앉는 날, 너를 지우고 나를 잊어버리는 시간은 엄마가 무릎에 발라주던 아까징끼처럼 굳은 살이 박혀 치유의 강을 건너게 될 것이다. 몸도 마음도 무겁고 힘든, 일상의 짐 내려놓고 훨훨 날아오르고 싶은 날, 영혼도 무거운 옷 벗고 맑은 폭포수에 목욕 하고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진다.   이유도 없이 울컥 울고 싶은 아침, 회전목마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망각의 강을 건너는 시간은 영혼의 조용한 반란이다.   속박과 억눌린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놓아주는 시간은 자유와 해방으로 창조된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하늘 바다 청옥색 사파이어 보랏빛 자수정

2025-05-13

[이 아침에] 잡초

온 세상이 초록빛이다. 기다리던 봄비가 마음껏 와준 덕분이다. 우리 집 나무들이 싱그럽게 연한 잎을 뿜어내고 물기 머문 꽃들이 꽃망울을 품는다. 작년 겨울에 선물 받아 심은 개나리가 더욱 선명한 노란 빛을 드리운다. 추운 겨울을 견뎌 지나온 탓이리라.   은퇴 후 우리 집 한 모퉁이에 만들어진 텃밭은 우리 부부의 일터다. 텃밭을 돌보는 건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우리에게 수고 이상의 기쁨을 주는 곳이다. 생명의 성장을 눈으로 확인하며 결실의 희열을 몸 전체로 맛보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도 초록빛으로 자라 젊어지는 듯하다.   거름을 주어 옥토를 조성했다. 잎의 성장에 좋은 것, 꽃을 피우게 하는 것,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것 등 용도에 맞는 여러 가지 거름을 뿌렸다. 누렇던 떡잎이 짙푸르게 자라는 모습에 흐뭇해진다. 오이와 호박은 넝쿨을 내밀어 뻗어나려 한다. 고추는 흰 꽃, 가지는 보랏빛, 토마토는 노란 꽃을 맺는다. 그런데 불청객이 힘을 얻어 왕성하게 곁에서 같이 자란다. 그 모습을 보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바로 잡초다.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니?   하는 수 없이 군데군데 모종을 심고 가까이에 있는 잡초만 뽑아 주었다. 잡초를 하루 뽑고 나면 사흘 동안 팔다리가 아파 절절매는 형편이다. 아∽ 며칠이 지나면 여전히 잡초로 뒤덮이고 만다. 미처 뽑지 못한 잡초가 때를 만난 듯 마구 자란다. 노란 꽃까지 피워내 야생화 동산으로 변하는 걸 막을 수 없다. 텃밭이 유난히 넓어 보이는 건 무슨 이유일까.     생존하려는 질긴 근성을 막을 수 없어, 그냥 너도 같이 자라라고 어쩔 수 없는 아량을 베풀어야 할까? 지인의 조언대로 필요하지 않은 풀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검정 비닐로 덮어야 하나? 아니면 제초제를 뿌려야 할지? 우후죽순 올라오는 잡초만큼이나 나의 머릿속도 헝클어진다. 어지러운 혼돈 속에서 호미는 해결사로 한몫한다. 잡초는 날카로운 호미 날에 뽑히고 말 처지다.   소중히 여겼던 노란 민들레가 지천으로 흔하다. 초록 잔디밭 가운데 노란 꽃들이 수를 놓는다. 영토를 넓혀갈수록 하찮은 존재로 여겨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필요와 수요에 의해 가치가 정해지는 건가? 어떤 게 들꽃이고 잡초인가? 기준이 모호해진다.   잡초는 이름 없이 향기도 없이 사랑받지 못한다. 생존했다는 것만으로 의미를 주지 못한다. 우리의 삶 역시 같은 비유가 되지 않을는지. 윤택하지 못한 환경에서 억세게 살아가는 사람이 뽑히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어려움을 극복해 사회의 일원으로 자기 몫을 다한다면 언젠가 꽃을 피울 것이다. 분명 소중한 가치를 지닐 테니까.     옥토가 아닌 곳에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성실한 생명체가 있다. 심고 거두는 자에게 기쁨을 나누게 해 준다. 이것이 잡초와 구분되는 경계라 생각한다. 목적에 맞게 이루어 가는 삶이리라. 이희숙 / 수필가이 아침에 잡초 보랏빛 토마토 초록 잔디밭 야생화 동산

2024-06-04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보고 싶은 사람

보고 싶운 사람을 만나러 로즈힐 세미터리로 간다. 옆에 계실 때에도 돌아서면 서글프고 아련했던 사람. 내 유년의 시절을 사랑으로 보듬어주신 사람. 용기 잃지 말라고 환한 미소를 지어주셨고, 따뜻한 손길을 아낌없이 표현하셨던 사람. 그 사랑으로 자라고 그 보살핌으로 작은 꽃들을 피울 수 있었던 지난 시간들. 이젠 이방인의 땅에 뿌려져 끝도 없는 넓은 가슴이 되었다. 꽃이 피는 뒤란의 오후는 그런 당신의 품같이 포근하고 아련했다.     청초한 꽃대 하얀 부추꽃 / 다소곳이 피어난 정갈한 과꽃 / 손 모아 기도하는 달맞이 꽃 / 당신 모습을 닮았네요 // 낮은 잔디를 쓸어주고 / 돌에 새겨진 이름 석자 서글퍼 / 붉은 장미, 안개꽃 내려 놓고 / 돌아 오는 길 // 석양 향해 걷고 있는 나를 / 마중하러 비가 내린다 / 꽃이 지는 뒤란의 오후 / 부디 그곳에서 평안하시라     햇빛 쨍한 날에 비가 내려요 / 잠시 생각이 지나갔을 뿐인데 / 올려다보니 당신이 있네요 // 홀로 남아 지난 일 떠 올리면 무엇 하겠어요 / 엎드리는 8월 호수가 서글퍼요 / 물새가 낮게 물결 위를 날아요 / 파도 속삭임에 마음 빼았겼어요 / 무엇 하나요 해 지는데 // 석양이 내려앉은 보랏빛 하늘가로 / 하나 둘 부서지는 물살의 구애 / 몇 일 찬비가 내리고 바람도 심한데 // 홀로 남아 지난 날 떠 올리면 무엇 하나요 / 뱃길 비추는 따뜻한 불빛 / 당신 잠깐 머물렀던 시간 내내 / 물결도 그리움마냥 출렁이는데 / 무엇 하나요 별 뜨는데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말은 내가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의 마음은 아픔을 견디고 평안할거란 생각이 든다. 그 마음에는 오해와 갈등의 어려운 시간을 오랫동안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고통을 변화시켜 축복으로 바꾸어내는 신통이 있기 때문이다. 4자녀를 가진 청상과부였던 내 어머니의 삶이 그랬다. 죽음 후에 승리가 찾아 온다는 아이러니한 말이 성경에 쓰여 있다. 이미 죽었으니 그 후의 삶에 승리가 찾아온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혹이 따라 오는 것은 당연하다. 죽음을 끝으로만 여기지 말고 죽음으로 연결 되어진 과정의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감사가 있고 소망이 있고 사랑이 있었다면 그 죽음은 죽음을 넘어서는 승리의 또 다른 삶으로 연결 되어지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묘 앞에서 나는 늘 ‘고난이 축복이었고, 죽음 후 승리가 그곳에 있다’라는 역전의 삶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간의 개념이 바뀌어진다는 말이 아니다. 시간은 상대적으로 길게도 혹은 짧게도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고통이 축복일 수 있고, 죽음이 승리일 수 있다는 말이다.     내 안으로 충실해질 때 사람도 꽃을 피운다. 내 어머니가 그러셨다. 이름도 없고 존재도 없었지만 어머니란 모습으로 충실해졌을 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올곧은 꽃대를 내밀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겠는가? 사람의 향기가 나야 사람인 게다. 그 향기는 오랫동안 멀리 퍼져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히 적신다.     비 오는 오후, 느슨해진 시간 / 뒤란에 비 내린다 / 마른 마음 적시고 / 산 등성이 그림자 몰고 오는 / 안간힘의 그리움이 희미한 잔상으로 기억 된다면 / 이별은 홀연해야겠지 / 숨겨둔 말 울림되 퍼지기 전 // 죽어야 사는 세상에 비 내린다 / 뽑힌 뿌리 하나 떠내려 갔던 / 한때, 무지개를 꿈꾸었던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물결도 그리움 로즈힐 세미터리 보랏빛 하늘가

2023-09-11

[글마당] 내 마음의 섬

울릉도에서 죽도를 마주 보면서 뱃길로 15분   멀리서 보면 파도에 흔들릴 것 같이 작게 보이는 섬이나   깎아내린 수직의 절벽은 쉽게 가까이할 수 없는 위엄   세상의 추함이 들어올 틈이 없는 요새다       367개 계단을 나선형으로 한 걸음씩따라 오르면서   들고 온 세상의 것들을 하나씩 떼어내어   몸과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질 때쯤이면   절벽에 핀 노오란 유채꽃 무더기들이 환하게 밝혀준다       계단을 다 오르면 대나무 숲이 기다리고 있다   숲은 차츰 대나무 동굴로 변하며 어두워지고   동굴 끝에 빛이 들어와 상상의 나래를 그칠 즈음엔   현실 밖의 아득한 다른 세상으로 문이 열린다       밝은 빛이 그려내는 눈부신 정경에 탄식이 쏟아진다   우리가 꿈꾸던 낙원의 한 장면인가   잘 가꾸어진 정원과 잔디밭   각 색깔로 수놓은 꽃나무를 배경으로   전면의 푸른 유리창으로 서양식 외양을 갖춘   아름다운 저택은 이 섬을 지키는 한 가정의 보금자리       노란 유채꽃이 만발한 들판 옆에서   더덕밭을 일구며 허리 굽혀 캐던 팔뚝만 한 더덕   고랭지의 최적 조건으로 7년을 키워   최상품을 수확하는 농부의 각별한 수고를   한여름에 만발하는 보랏빛 초롱꽃이 위로한다       오지의 무인도가 낙원으로 이루어지기까지   한 가족의 평생이 바쳐졌다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세상 떠나신 어머니와   더덕밭 일구며 집 공사와 정원 만들기로 일만 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섬을 잇기 위해   아들이 혼자서 지켜낸 죽도 살이   지독한 외로움 끝에 이젠 세 식구가 되어   울릉도의 삼선암을 바라보는 전망대에 오른다   절경에 빠져 암석이 된 세 선녀를 감싸 안은   짙푸른 바다가 평안을 선물한다. 최양숙 / 시인·웨스트체스터글마당 마음 대나무 동굴 무인도가 낙원 보랏빛 초롱꽃

2023-06-23

[김상진 기자의 포토 르포] 보랏빛 자카란다를 그리며

올해는 유난히 옅어진 보랏빛 색채가 아쉽다. 만개하지 못한 자카란다 탓이다. 이맘때면 LA를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였던 자카란다가 올해는 잘 보이지 않는다.   꽃은 물을 먹고 핀다. 올해는 많은 비가 내려 들판의 야생화가 만발했다. 꽃구경 가기 좋게 자연은 ‘수퍼 블룸’으로 보답했다.     반면, 자카란다는 여느 꽃과 다르다.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일조량 때문에 개화시기를 놓쳤다.   자카란다의 원산지는 본래 남미다. 날씨 좋은 남가주, 플로리다, 텍사스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드문 꽃이다. 보랏빛의 자태를 가진 자카란다는 관상수다. 20세기 초 여성 원예가 케이트 세션스가 남아메리카에서 이곳으로 가져왔다. 다른 꽃에 비해 자카란다는 주목받지 못하는 꽃이었다. 꽃이 지자 바닥에 쌓였고, 거리마다 넘치는 썩은 꽃잎 때문에 보랏빛의 매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LA는 다시 자카란다를 찾았다.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팜트리가 가뭄의 영향으로 기운을 잃자 LA시는 가로수를 자카란다 나무로 교체했다.   맑은 날씨가 이어지는 LA에서 자카란다는 최적화된 나무다. 보랏빛이 LA에 가져다준 선물은 한두개가 아니다. 가뭄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아름답게 잘 핀다. 일조량이 증가할수록 그늘을 제공하기 때문에 열섬 현상도 해소한다. LA지역에는 그렇게 100여년에 걸처 15만 그루의 자카란다 나무가 심겼다.   김상진 사진부장 [email protected]김상진 기자의 포토 르포 보랏빛 보랏빛 색채 남가주 플로리다 케이트 세션스

2023-06-16

[하루를 열며] 이렇게 좋은 날엔

새 옷으로 갈아입은 들판이며 나무들이 보드라운 바람에 흔들거린다.   파아란 하늘에서는 햇볕이 축복처럼 쏟아지고, 발밑에는 얼마든지 있는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보랏빛 제비꽃, 노란 민들레, 이름도 알 수 없는 배꽃을 닮은 흰색의 작은 꽃들이 무리 지어 흔들리고 있다.    이런 날, 누가 슬프다더냐. 누가 얼굴에 근심을 담을 수 있다더냐. 하늘은 모두에게 공평한 은혜를 내리고 있다. 이런 날은 아무도 아프지 않고, 아무도 배고프지 않고, 아무도 고독하지 않을 것 같다. 모두가 행복한 기분 좋은 날이 될 것이다. 빈 가지에  뾰족뾰족 아기 손가락 같은 잎을 열어 성글었던 가지를 초록으로 채워가고 있는 나무들은 점점 배태(胚胎)한 여인을 닮아간다.     청둥오리 한 쌍, 잔잔한 강물 위에 부채 물살을 그리며 나간다. 비단결 같은 머리를 곱게 빗어 내린 숫오리의 머리털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담청색으로 보였다가 담녹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강가의 풀들은 더 신이 난 듯 내려 비추는 햇살을 향해 큰 웃음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공원 펜스의 철망을 들락이며 놀고 있는, 참새보다도 몸집이 작은 가슴에 노오란 털을 가진 새가 얼마나 예쁜지 얼른 사진 몇 컷을 찍었다. 쪽쪽거리는 그의 지저귐 소리도 곱고 귀엽다. 어쩌면 세상은 이리도 아름다울까? 이 기묘한 자연을 어찌 다 알겠는가. 봄을 수 십번을 지나왔는데도 나는 아직 신기하고 놀라운 자연의 경이로운  섭리를 가늠할 수가 없다.     아이, 젊은이, 노인들 모두 생명력 가득한 들로 나가자. 찬 겨울 어두움을 이겨내고 다시 살아나는 봄의 정기를 몸속 가득히 불어넣자. 그동안 집에 갇혀 움츠렸던 뼈마디 쭉 펴보고 휘휘 팔도 저어보자. 초록 바람 핑계 대고 뺨을 후려치고 달아나는 머리카락이 장난을 건다. 온통 새것들의 비릿한 풀향기에 취해서 저 푸른 하늘 흰 구름 한 점 걷어다 덮고 들잠을 청해볼까?     이제 응달의 선뜻함이 가신 완연한 봄이다. 아침 일찍부터 햇살이 포근하게 온 세상을 비추고 있다. 나는 아침을 먹자마자 공원으로 달려나가려던 참인데 마침 친구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왔다. “이렇게 좋은 날엔 뭘 해야 할까요, 앉아있기도, 서 있기도 아까운 날이네요.” 오늘을 그렇게 표현한 그녀는 어쩌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주 행정명령이 시행된 지얼마 되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병균이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어떻게 공격해올지 모르는 두려운 시간이 먼 외계의 이야기처럼 까맣게 지나갔다. 목까지 조여드는 두려움을 느끼며 숨 한 번 크게 쉴 수 없었던 이 황당한 세월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끝날 수 있을까 하던 불안을 다행히 병균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되어 마음이 조금 놓인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고통받았는지… 주변의 많은 사람의 억울할 만큼 슬픈 이야기들에 산 자들은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   하늘은 인류의 그 아픔을 위로하듯 더없이 아름다운 봄을 열어주고 있다. 여기저기 봄나물도 눈에 띈다. 통통하게 살 오른 쑥 한 줌 뜯어다가 저녁에 쑥국을 끓여볼까? 오늘은 쑥국을 먹어야 내 몸이 몽땅 봄으로 채워질 것 같다.   이렇게 좋은 날엔 봄 이야기 왁자한 들판으로 나가보자. 이경애 / 수필가하루를 열며 공원 펜스 보랏빛 제비꽃 카톡 메시지

2022-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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