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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HYM '땀의 10년'

지난 금요일부터 사흘간 하나로교회(강일용 목사)에서 LA동부지역의 16개 교회를 포함 40여개의 교회의 한어권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HYM이 주관하는 제20회 남가주 청년연합집회가 열린 것입니다. 저도 담임목사이지만 이민교회에서 한어권 청년들은 2세 목회에 비해 관심이나 투자면에서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있는 형편입니다. HYM사역은 이것을 마음 아파하던 더글라스 김 집사를 중심으로 남가주일원의 한어권 청년들의 연합과 영적 각성 그리고 헌신을 통한 영적부흥에 목적을 두고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꿈을 꾸며 한걸음씩 걸은 걸음이 올해 10년이 되었고 20회 정기집회를 개최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단체를 일 년 이 년 이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10년은 쉽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로 열악한 풍토에서 열심으로 연합집회를 한 번 두 번은 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해 봄가을로 20회째라면 열심만으로 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이 사역이 귀한 것은 대형교회 위주가 아니라 중소형 교회의 청년연합 집회이기 때문입니다. HYM 사역자들의 10년의 수고로 40여개의 교회 한어권 청년부가 동참하는 오늘의 사역을 일구어냈습니다. 이제는 모든 교회가 이 사역에 동참하고 동역할 때입니다. 10년을 지켜봤으면 됐습니다. 이제는 교회들이 특별히 중소형 교회들이 수고한 분들의 흘린 눈물과 땀방울을 닦아 주어야 합니다. 연합집회를 한 번이라도 참석해보신 분들은 HYM이 단순한 한 단체가 아니라 우리 이민교회들이 공유해야할 소중한 자산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리로이 아임스는 말합니다.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말의 적용성은 제자훈련을 넘어 모든 분야에까지 미칩니다. 우리 주변에서 자기 분야에 뛰어난 사람들을 보면 태어날 때부터의 탁월함과 천재성이 빛을 본 경우도 없지야 않겠지만 대부분은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것입니다. 만들어진다고 할 때 특별히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는 꾸준함입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입니다. 목표를 가지고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꾸준히 나가다 보니 어느새 전문가도 되고 지도자가 되기도 합니다. 같은 출발선을 떠난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포기합니다. 힘들어서 멈추고 실패에 좌절해서 멈춥니다. 멈추는 사람은 머물게 됩니다. 멈출 때 그 사람의 크기도 그곳에서 결정됩니다. 다른 또 하나는 환경입니다. 사람을 키우고 리더를 키우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농담 아닌 농담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배구를 좋아한다. 누군가 조금 떠오르려고 하면 가차 없는 강 스파이크로 땅에 메어꽂기 때문이다.' 인물을 키우는 일에 인색함을 비유한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좋은 사람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영적으로 잘 준비된 좋은 인물을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과 사랑으로 사람을 키워서 들보로 사용하는 이민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토양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선한 의도가 있었다면 때때로 실수까지도 눈감아 주는 아량 좋은 자질을 갖춘 사람이 만개할 때까지 때를 기다려 주는 넉넉함이 있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해주고 띄워줄 줄 아는 겸손함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당신의 꿈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 소인배들은 언제나 그렇게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들은 당신 역시 위대해질 수 있음을 느끼게 한다."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의 말입니다. HYM 사역자들의 수고에 늘 감사하고 그 눈물과 땀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09-04-21

[신앙의 샘] 토끼만 있는 부활절

미국에서 부활절을 지나면서 토끼의 유래가 궁금했습니다. 길거리마다 상점마다 형형색색 토끼로 가득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유래가 기가 막힙니다. 몇 백년전 독일의 한 과부가 부활절에 자녀들과 동네 아이들에게 줄 선물이 없어 고민하다가 달걀을 예쁘게 색칠해서 밭 곳곳의 건초 아래 숨겨놓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모아 에그 헌팅(Egg Hunting) 보물찾기를 하게 했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어떤 건초를 들추니 거기서 토끼가 뛰어나왔습니다. 그 아래에 예쁜 달걀이 보이자 순진한 이 아이는 토끼가 달걀을 낳았다고 믿었습니다. 바로 이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부활절의 아이콘이 토끼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세상은 놀라우리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눈에 보이는 것들로 바꿔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성경에서도 이 세상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현장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떠나 광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계속해서 그들은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우상으로 만들고 싶어했고 하나님은 그 근성을 버리고 오직 들려지는 말씀을 따르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동일한 광야에서 성령에 이끌려서 눈에 보이는 떡 사람들의 인기 천하 제국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 사이에서 시험을 거치셨습니다. 사도바울이 하나님께 사용받기 위해서 거친 과정은 3일간의 암흑이었고 그는 눈을 감고 지내는 시간을 통해 완전히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시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하다." 이런 말씀의 본류를 묵상하다가 현대교회의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면 약간 다르다 못해 완전히 다른 것을 믿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현대교회는 주인되신 주님을 섬김보다 그리스도를 통한 성공과 병고침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신앙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들은 아직도 그리스도를 통한 성공과 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인격과 관련이 깊은데 눈에 보이는 은사 영원하지 못할 은사에 집착합니다. '부흥'이라는 말은 한 사람의 내적인 변화가 아니라 자리수를 채우는 동원의 개념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진정한 예배와 나눔보다 마켓팅 방법과 같은 전도법들과 프로그램이 교회 스케줄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총동원 주일에 초청받고 다음 주에 잊혀진 존재가 될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세상 사람들조차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볍다'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시는 한 분을 만났습니다. 너무나 열심히 사시기에 물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려고 그렇게 돈을 열심히 버시나요?" "걱정없이 먹고 살고 남으면 교회 하나 짓고…." 제자도의 후안 카를로스 목사님은 분주한 우리에게 질문했습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돈을 버나요?" "먹고 살아야지요." "왜 먹지요?" "그야 돈을 벌기 위해서지요." "그럼 돈을 왜 벌지요?" "먹고 살기 위해서지요…." 보이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삶의 연속일뿐입니다. 부활절만이 아니라 날마다 부활의 신앙으로 사는 우리가 붙잡는 것은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우리 집이 아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의 가치를 배불뚝이 산타로 대체해버린 이 세상이 부활절에도 다시 토끼 한 마리 마켓팅으로 보기좋게 영원의 가치를 퇴색시킴을 바라보며 눈에 보이는 전쟁보다도 더 치열한 영적 세계의 싸움을 바라봅니다.

2009-04-21

[특별 기고] '기도하면 다 된다고요?'

경제 사정이 어려워서 괴로워하는 가정에 목사님과 권사님들이 방문해서 위로 했다. "집사님 기도하세요. 기도하면 다 됩니다." 무조건 기도하라고 했다. 다 해결해 주실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 분은 아무리 기도해도 안 되었다. 금식하며 기도하고 새벽마다 교회 나가 기도했다. 가정에서 기도하고 심지어 차 안에서 까지 기도했다. 정말 평생 그렇게 열심히 기도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사정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갈등이 생겼다. "기도하면 다 된다고 했는데 상황이 더 나빠지다니." " 잘 될 줄 믿었는데." 그는 너무나 실망이 컸다. 하나님에 대해 실망하고 교회에 대해 실망했다. 기도에 대해 의심을 가지게 되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나의 이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셔야 하지 않겠는가. 기도하면 다 될까? 아니다. 기도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도대로 다 된다면 아마 이 세상은 기도하는 사람으로 꽉 찰 것이다. 기도 소리가 세상을 진동할 것이다. 교회도 설교보다 기도를 더 중요시하고 기도원마다 만원사례로 넘칠 것이다. 목사님들이 기도하라고 설교하지 않아도 저들이 알아서 열심히 기도 할 것이다. 기도대로 다 된다면 하나님은 없어도 될 것이고 기도대로 척척 된다면 자신이 다 하나님이 될 것이다. 기도가 요술방망이가 되어 금나오라 뚝딱 기도하면 금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기도대로 다 되지 않는다. 기도하면 다 된다고요? 그렇지 않다. 그런데 교회에서 기도하면 다 된다고 가르친다. 목사님들이 그렇게 설교한다. 나이 많은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신앙적 권면을 한다. 기도하면 다 된다고. 기도 열심히 하라고.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스스로 속고 있는 걸까. 듣기 좋으라고 그냥 해 보는 말일까. 신앙 선배로서 체면 유지하려는 걸까. 그런가? 아니다. 그들의 가르침이 옳다. 기도하면 다 된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 지금도 의지한다는 신앙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기도는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했다. 이것이 기도의 근본정신이다. 그러니 기도하다가 실망하지 말 것이다. 내가 기도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에 내게 항상 최선을 주신다. 기도해도 소용없더라? 그런가? 그렇지 않다. 기도하면 소용 있다. 기도대로 되는 일이 더 많다. 기도하고 있는가. 지금 이 상황이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으로 주신 최선의 상황임을 믿자.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으로 베스트를 주신다. 그것이 내게 가장 나쁜 것일지라도. 아무리 기도해도 교회 부흥이 안 되고 사업이 안 되고 직장을 잃고 병이 낫지 않고 죽고 싶은 일을 만나도 기도해 보자. 기도하면 하나님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목사님 기도하면 다 됩니까?" "예 다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다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주소서." 기도해 보자. 세상은 불황이라도 마음은 호황을 누릴 것이다. 내 기도대로 다 되지 않고 당신의 뜻대로 다 이루시는 하나님 앞에 오늘도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기도드린다.

2009-04-21

[사목의 향기] 이혼하고 싶으세요

"대단하십니다. 한 남자와 25년을 살았으니. 지루하지도 않습니까?" 어느 신자가 백인 여성과 대화를 나눌 때 들은 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 미국 여자는 이혼을 당연한 것으로 보는 것 같애요"라고 했다. 우리 주위에 이혼한 사람들도 많고 이혼할 위기에 있는 이들도 있고 계류 중에 있는 이들도 많다. 이혼? 교회법이 엄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천주교회의 신자들도 요즈음은 옛날 같지 않은 모양이다. 이혼할 구실을 찾는 신자들이 한 둘이 아니니 말이다.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가르치는 성경과 교회의 법이 그들에게는 우의독경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싫은데 뭐…."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 남편이 이혼하자는 말을 하기에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유학 와서 만난 남성인데 연애하다가 둘이 너무 사랑하여 결혼했고 20여년을 살면서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그 한 마디. 남편은 이 말을 하려고 오랫동안 벼르고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다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는 여성들이 있다. 미친다는 말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마음 속은 모른다고 하더니 바로 그 말이 현실이 되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부부생활이 힘들긴 힘든 모양이다. "이혼 그거 순간적입니다"라고 말하는 부부가 한 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순간들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지혜롭게 넘기는 이들도 있고 부부들을 도와주는 참으로 좋은 교육이 있는 것을 알고는 참가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이를 "제2의 하니문"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약자로 M.E.(marriage encounter)라고 한다. 이 과정을 이수한 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내 남편 내 부인은 내 인생의 영원한 반려자이자 동반자라고. 종교와 상관없이 무신론자도 결혼한지 5년 이상 되는 부부면 누구라도 참가할 수 있는데 2박 3일 함께 지내는 과정을 통해서 부부의 사랑을 재확인한다. 사제들도 이 교육을 받는데 그것은 부부들의 삶을 도와주기 위해서다. 어떤 때는 목사님 부부도 스님들도 이 교육을 받았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들 하는 말이 "이런 교육도 있습니까?"라고 한다고들 한다. 이혼을 고려 중인 부부들은 모두 오래 전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너 없이는 못 산다"고들 하여 결혼한 것이다. 그런데 세월의 흐름 속에 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 보이던! 아내의 얼굴이 보기 싫어지고 그렇게도 믿음직스럽게 보이던 남편이 싫어지니 마음이 변한 것이다. 권태기인가?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 직장 경제 사정 건강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여 부부사이를 예전 같지 않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유혹들은 부부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한다. "내가 이 남자(여자)와 일생을 계속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하다가 마지막에는 갈라지자는 해서는 안 되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M.E. 과정을 이수한 부부들도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극복할 수 있었다. 특별 휴가를 내어 이 과정을 이수하는 이들도 있다. 부부생활이 직장이나 돈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느낀 그들은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하여 하는 말은 "신혼여행 한 번 더 갔다 왔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이다. 아담은 하와를 보고 너무나 사랑스러워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창세기 223)라고 외쳤다. M.E.를 다녀온 부부들도 이렇게 소리친다니 부부들이 한번쯤은 이를 맛볼만하다고 본다.

2009-04-21

[지혜의 향기] 마당 쓸기

어느 때 부처님께서 기원정사를 나서려는데 한 사내가 울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대중 가운데 바보로 소문난 판타카였다. 왜 우느냐고 물어 보니 자기는 머리가 너무 아둔해서 승가에서 가르쳐 주는 아무런 글귀나 게송도 욀 수가 없으니 이제 수행승의 길을 단념하고 그만 집으로 되돌아가라고 도반들이 다들 권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부처님은 판타카더러 걱정 말라며 너는 앞으로 내 곁에 있으면서 빗자루를 들고 열심히 대중들의 처소를 쓸기만 하여라 그러면서 '쓰는 빗자루'란 말만 열심히 외고 이 말만 늘 생각하라고 당부하셨다. 그 날부터 판타카는 빗자루를 들고 열심히 정사 안팎을 쓸면서 이 말을 외려 했지만 '쓰는'이란 말을 외면 '빗자루'란 말이 생각나지 않고 '빗자루'란 말이 떠오르면 '쓰는'이란 말이 그새 어디로 갔는지 캄캄하였다. 그 때마다 대중들은 판타카를 위하여 '쓰는 빗자루!' '쓰는 빗자루!' 하며 큰 소리로 함께 외쳐 주었다. 날이 가고 달이 흘러 마침내 판타카는 이 두 낱말을 이어서 욀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의 깊은 속뜻도 함께 생각하게 되었다. 쓰는 빗자루란 티끌을 쓸어내는 빗자루란 뜻이렷다. 티끌은 무엇이고 쓸어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맞아. 우리를 괴롭히는 번뇌가 티끌이고 그것을 쓸어내는 빗자루는 바로 지혜다. 내가 지금 티끌이 쌓인 마당을 쓸듯이 나는 지혜의 빗자루로 내 마음 속 번뇌를 말끔히 쓸어내리라. 그리하면 본래부터 맑고 깨끗한 내 마음이 환히 드러날 것이다. 기쁨에 넘친 판타카는 부처님께 달려가 자신의 이러한 깨침을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대견스레 말씀하셨다. 좋구나 판타카여! 너는 이제 눈을 떴구나! 이렇듯 부처님은 참으로 포기를 모르시는 분이시다. 아무리 머리가 안 돌아가는 이도 행실이 엉망이었던 이나 마음보가 괘씸했던 이도 버리지 않으시고 스스로 뉘우치고 깨칠 수 있도록 자긍심과 용기를 주시고 알맞은 방편을 내어 주신다. 참으로 밝은 교육자요 슬기로운 치료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훌륭하신 스승을 가졌던 기원전 6세기의 문화 수준이 어찌 보면 서구화된 오늘날의 우리 수준보다 나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교육 문제의 질곡에 빠진 우리 고국과 동포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성 즉 좋은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음을 우리는 잘 인정하지도 않고 그 싹이 꽃피도록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지도 않는다. 그저 획일적이고 한 번 뿐인 시험으로 결론을 내고는 그 사람에 대한 값을 매겨 버린다. 한 번 미끄러지면 일찌감치 포기의 대상이 되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러니 모든 게 시험 위주다. 만약 지금 서울의 길거리에 부처님이 나타나신다고 하더라도 학부형들은 물러가라고 데모를 할 것이다. 아이들 수능 시험에 방해가 될 테니까. 우리가 이 나라에 처음 왔을 때 고국보다 좀 더 앞서 있구나 하고 느낀 점이 무엇일까? 이곳 사람들은 부처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장애아나 저능아에 대해 남세스러워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일일이 거두어 주며 전 사회가 온갖 방편을 제공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아니던가? 다행히 우리 대부분은 판타카보다 훨씬 긴 문장을 욀 수 있다. 그러니 판타카마저 얻은 그 깨침을 우리 스스로 포기할 이유가 없다. 지금부터라도 틈만 나면 지혜의 빗자루를 들고 열심히 내 마음의 티끌을 하나하나 쓸어내야겠다.

2009-04-21

[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저울로도 못 다는 무게

시인 소동파(小東坡.1036~1101)를 아세요? 당송(唐宋) 9대 문장가 중 한 사람이죠. 당시(唐詩)는 매우 서정적인데 그의 시는 매우 철학적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의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죠. 학식이 높았던 소동파는 웬만한 스님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쥐뿔도 모르면서 '대사(大師)'란 소리만 듣는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 소동파가 당대의 큰스님이었던 승호(承皓) 스님을 찾았습니다. 승호 스님이 물었죠. "그대의 존함은 무엇인가." 소동파는 '저울 칭'자를 쓰며 답했죠. "저는 '칭(秤)'가입니다." 사실 중국에 '칭(秤)'이란 성씨는 없습니다. 잠시 후 소동파는 "세상의 내로라하는 도인들을 달아보는 저울입니다"라고 말했죠.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승호 스님은 벼락같은 소리를 '버럭' 질렀죠. "하~알!" 깜짝 놀란 소동파가 뒤로 '벌렁' 나자빠졌습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승호 스님이 물었죠. "이 소리는 몇 근이나 되는가?" 천하의 소동파도 말문이 막히고 말았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동파는 이렇게 읊었다고 합니다."산색(山色)'은 그대로가 법신(法神)이고 물소리는 그대로가 설법이다." 이 일화는 스님의 '한판승'입니다. 그럼 소동파의 급소는 뭘까요. 바로 '저울'입니다. 소동파의 저울은 뭔가요. 학식 즉 배움과 앎이죠. 소동파는 '내가 배운 것'과 '내가 아는 것'으로 상대의 무게를 쟀던 겁니다. 그런 저울은 상대도 '배움과 앎'으로 똘똘 뭉쳤을 때만 상대적인 무게를 따질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승호 스님은 딴판이었죠. 배움을 넘은 자리 앎을 여읜 자리에 서 있었던 겁니다. 한마디로 무게가 없는 자리죠. 동시에 온 우주를 담은 무게이기도 합니다. 푸른 산 흐르는 물 날아가는 새 묵묵한 소나무 들녘에 핀 숱한 꽃들이 모두 '나'를 여읜 자리에 있으니까요. 이들을 몽땅 저울에 올려야만 무게가 나오겠죠. 세상에 그런 저울이 있을까요. 어떤 저울이 이 무한대 온 우주를 담을 수 있을까요. "할! 이 소리가 몇 근이나 되느냐"는 물음에 소동파는 그걸 깨친 게 아닐까요. 그래서 "산색은 '그대로가' 법신"이라고 했겠죠. '나'라는 저울을 빼고 있는 그대로 봐야만 부처의 나라를 볼 수 있으니까요. 거기선 '졸졸졸'하는 물소리가 그대로 설법이니까요. 어디 물소리 뿐인가요. 새소리 바람소리 빗소리 모두가 부처의 음성이죠. 부처에게서 나오는 소리니까요. 그럼 소동파의 저울만 급소일까요. 우리의 저울도 급소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저울'로 세상의 무게를 달고 비교하고 평하고 상처까지 주고 받는지 늘 살펴야죠.

2009-04-21

[목회 칼럼] 크리스천의 재정 테스트

요즘 젊은이들 중에 카드 빚에 심각하게 눌려 있는 수가 적지 않다. 사실 목회자로서 교회의 젊은 집사님들이 모는 차가 고급화되고 사는 집이 쾌적해지는 것을 보면 감사가 우러나온다. 그러나 만약 이들이 수입보다 과하게 소비하고 있다면 그리고 이런 소비가 겉 모습을 치장하여 '꿀리지 않는 나'를 보이고 싶은 동기라면 목회자는 이들에게 어떤 권면해야 할까? 하나님은 당신 백성들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서 이들의 재정 사용 원칙을 테스트 하신다. 하나님의 테스트는 자녀들을 실패자로 낙인찍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약점을 보완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원을 맡길 충성된 청지기들을 찾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재정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돈'의 문제점과 유익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돈'은 엄청난 파괴력과 생산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과용하면 '약'도 '독'이 되고 적절하게 사용한 '독'은 오히려 '명약'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우선 돈은 사람을 지배하는 파괴력이 있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며(골 3:5)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인데 돈을 사랑하면 '미혹을 받아 믿음을 떠나게' 된다(딤전 6:10). 교회의 일체감이 '돈' 때문에 깨지는 경우는 허다하다(행 5:1-11; 약 2:1-6). 반면 재물의 바른 사용은 복음 전진하는 곳에 함께 있었다(눅 8:3; 롬 16:2의 '보호자'). 바울은 자신들도 어렵지만 성의껏 헌금한 빌립보 교회의 헌물을 통해 이들이 성숙하고 있음을 확인하였기에 감사했다. 재물의 바른 사용은 신앙의 성숙을 보여주는 확실한 지표다. 재정 테스트에 패스하지 못한 '성화'는 없다. 우리가 넘어야 하는 재정 테스트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규모있는 소비다. 우리가 수입을 모두 자신을 위해 소모하는 재정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물론 현재 수입으로 기본 생활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하지만 수입에 비해 비싼 차와 집을 구입하여 할부금에 허덕이고 하루에 4달러 가까운 커피를 반드시 두 잔 이상 마셔야 한다면 자기 수입에 맞춰 사는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어떤 목사님은 성도들은 수입의 70%만을 사용하는 재정 구조를 익혀야 한다고 한다. 나머지 10%는 십일조 10%는 은퇴준비 그리고 마지막 10%는 남을 돕고 어려운 시기를 위한 자금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두번째는 재정의 윤택을 기도할 때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이다. 재물이 늘면 근심이 늘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잠 10:22). 그 재물들은 항상 그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래성과 같이 그리고 터진 웅덩이의 물과 같이 빠져나간다(렘 2:13). 재물이 내 손에만 머물지 않고 파이프로 흘러갈 때에 하나님의 가치가 나타남을 배워야 한다. 특히 쌓이는 재물을 보면서 그것에서 만족을 느끼고 쌓아둠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성경이 경고하는 어리석음 중에 으뜸이다(눅 12;15-20). 창세기 22:14에는 '여호와 이레'의 축복에 관한 교훈이 있다. '하나님의 공급'에 담긴 은혜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은 순종했던 아브라함을 위해 아들 이사악 대신 숫양 한 마리를 예비해 두셨다가 때를 맞추어 공급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짜 공급은 '숫양'이 아니다. '인정'이다.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 하나님의 공급은 당신이 인정한 자녀들에게 무한정으로 제공된다. '여호와 이레'의 공급을 받으면 근심이 함께 오지 않는다. 쌓아둘 창고를 늘리지 않아도 되며 강도가 훔쳐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의 재정 테스트는 우리의 믿음 테스트이기도 하다.

2009-04-14

[기독교인의 삶] The Letter 'A'

"수 놓은 장식을 가슴에 달고 다니는 저기 저 여자 보이세요?" "바느질 솜씨 하나는 기가 막히네." 구경꾼 가운데 한 여자가 말했다. "뻔뻔스런 화냥년이 아니고서야 어떤 여자가 저런 걸 보여주려고 안달하겠어!" 이야기는 17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간음혐의를 받은 피고 헤스터에 대한 재판이 열린다. 판사들은 헤스터와 간음한 남성이 누구인지를 묻지만 그녀는 끝까지 답변하지 않는다. 간음을 뜻하는 A라는 낙인을 찍인 채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서도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헤스터는 자신도 삯바느질을 해서 딸 펄과 단 둘이 먹고 사는 어려운 처지였지만 가난한 이웃들을 섬기기 시작한다. 물론 그녀의 섬김을 받는 이웃들은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은 채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만 생기면 그녀를 찾게 되었고 주홍글씨의 'A'자를 본래의 의미대로 해석하려 들지 않았다. 해스더 프린이 여자면서 강인하여 그녀의 가슴에 주홍글씨가 '유능함(Able)'을 뜻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죄와 수치의 낙인은 바로 이 사람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는 무서운 기세로 말을 이었다. 그렇게 모든 비밀을 다 털어놓을 작정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셨습니다!" "천사들 또한 언제나 그 낙인을 가리켰지요!" 악마도 낙인이 있는 걸 알고 불타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건드려 그의 마음을 끊임없이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교묘하게 사람들을 잘도 속이고 순결한 영혼을 지닌 사람인 척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 사이를 지나 다녔습니다. 죄 많은 세상에 저 혼자 너무 순결해 슬프다는 듯! 그렇지만 죽음이 임박한 지금 이 순간. 그가 여러분들 앞에 서 있습니다. 그가 여러분에게 헤스터의 주홍글씨를 다시 한 번 봐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감히 말합니다. 주홍글씨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지만 그의 가슴에 찍힌 낙인에 비하면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혹시 여기에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의심을 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걸 보십시오! 여기 심판에 대한 무서운 증거가 있습니다!" 그는 발작을 일으키듯 사제복 위에 두른 띠를 가슴 앞에서 끌러내렸다. 그러자 목사가 말한 낙인이 드러났다. "가슴에 주홍글씨를 달고 죄인으로 사는 헤스터 프린과의 간음으로 괴롭고 두려웠던 딤스 테일러 목사의 가슴에도 주홍글씨가 피로 새겨져 죄의 고통을 고백하는 부르짖음이다."(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 시쯤 되었더라 /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요한복음4:5-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요한복음4:15-19) 죽었던 나뭇가지는 봄이라는 미약한 온기를 받고 소생한다. 땅속 깊숙이 묻혔던 나무뿌리는 춥고 깊은 어둠 속에도 살아있었다. 세상에는 헤스터처럼 가슴에 'Adultery'라는 낙인으로 살다 'Able'로 인식되는 것처럼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부활하시는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돌아가셨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Amazing Grace 찬송가 405장)

2009-04-14

[사목의 향기] 마틴 루터 킹

최근 CNN의 '마틴 루터 킹의 암살'(The King Assassination)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목격 증인들을 중심으로 엮여진 비사를 잘 보았다. 흑인 대통령의 출현으로 미국 내 흑인들의 활동이 조용히 확대되고 있음을 여러 측면에서 감지할 수 있는데. 이번 방영도 그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이 나라의 법정 공휴일 중 매년 1월 셋째 월요일은 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를 기리는 날이다. 1983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마르틴 루터 킹의 날로 제정되었고 18년 동안 50개 주에서 국경일 수요 여부에 대해 논란을 거듭해 오다가 2002년이 되어서야 모두 수용하였다. 그의 이름을 딴 거리만도 미국에서 730개나 된다고 하니 대단히 유명한 인물임엔 틀림없다. 그는 비폭력 민권 운동가였다. 많은 연설 중 "나는 하나의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을 읽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비단 나만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너무나 훌륭한 연설이라 이 나라에서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Gettysburg Address)에 버금간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성경적이며 당하고 당한 흑인들의 애환과 분노 그리고 염원이 담겨있어 인권이 무엇이라는 것을 논하는 사람들이나 어떤 모양으로든지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연설문이라 뭇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왔다.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 나라가 언젠가는 깨어 일어나 진정한 의미의 건국! 이념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자명한 진리대로 살아갈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옛 노예와 주인의 아들들이 함께 형제의 식탁에 앉게 되리라는 꿈이 있습니다…언젠가는 불평등과 압제의 열기로 시들어가는 미시시피주까지도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로 변모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언젠가 나의 네 어린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그들의 인격에 의해 인정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될 날이 오리라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1963년 8월 26일 워싱턴 디씨 링컨 기념관 앞에서 25만명이나 되는 청중의 심금을 울린 연설이다. 그 자리에는 사방에서 몰려든 흑인들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유명세에 걸맞게 백인들도 다수 모였다. 그는 흉탄에 쓰러지기 바로 전 날 멤피스의 메이슨 교회에서 또 하나의 유명한 연설을 하여 청중을 울렸다. 그 제목은 '나는 산상에 올랐습니다.'(I've been to the Mountaintop)였다. 이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그의 마지막 연설이 되었다. "이제 정작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문제가 안 됩니다. 나도 오래 살고 싶습니다. 오래 산다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을 둘 수 없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를 원할 뿐입니다. 하느님은 저에게 산상에 오르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위에서 나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거기에 펼쳐진 약속의 땅을 나는 보았습니다…." 심금을 울리는 연설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백인들의 협박이 수시로 그를 괴롭히고 있었으니 인간으로서 두려움이 없었을까마는 그래도 자기의 뜻보다는 하늘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한 그의 강한 신념은 죽음의 공포까지도 극복할 수 있게 했다. 그는 30대 중반 젊은 나이에 총탄에 맞아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 24)라는 성경말씀 그대로 그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인해 이 나라는 흑인들이 인간 대접 받는 세상으로 바뀌어지고 있지 않는가?

2009-04-14

[지혜의 향기] 겁의 세월

현겁은 현재의 일대겁의 호칭이다. 천불 천오백불 등 많은 성인이 출세하여 중생을 구제하기 때문에 이렇게 칭하기도 한다. 과거 천불의 세계를 장엄경이라 하고 현재의 천불의 세를 현겁이라 하면 미래의 천불의 세를 성숙겁이라고 한다. 또한 3겁의 1 세계는 인간 수명 8만4000세부터 100년을 지날 때마다 1세씩을 감하여 수명이 10세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1세씩을 더하여 수명이 8만4000세에 이르며 이렇게 일증일감하는 것을 20회 돌아가는 동안 즉 20소겁이 4회 되풀이하는 동안을 우주의 성주괴공의 1순회가 된다. 겁이란 불교 용어로 인간의 숫자 개념으로는 측정하기 극난한 시간 세월을 총칭해서 쓰는 용어다. 현겁은 인간이 살고 있는 현재의 주겁을 말하며 현재 인간이 만들어 놓은 역사를 보면 가장 긴 역사가 단기로 4300여년이고 불기는 2500여년 서기는 2000여년에 불과한데 언제 천명의 부처님이 출세하여서 인간을 제도하셨단 말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님은 석가세존 부처님 한 분 뿐이다. 그러나 우주의 역사는 무시무종으로 깨달은 성장의 안목이 아니면 처음도 끝도 알 수 없는 일임에 분명하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주겁의 수명은 200억년(20소겁)인데 과거 인간이 살아간 세월은 50억년이 지났다. 그리고 현겁 중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세월은 앞으로 150억년이 남은 것이다. 과거의 겁도 그러하거니와 미래의 겁도 마찬가지로 인간이 호흡을 하고 생존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러나 지구는 5만년마다 한 번씩 지각변동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지내는 것이다. 이 지구에 인간이 살아가기 적당한 숫자는 30억명 정도라고 하는데 인구가 계속 팽창해서 70억명으로 배가 넘었다고 가정했을 때 지구는 기생충(인간)에 의하여 병이 늘게 되고 지상이나 지하나 오염되어서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울 때는 자연치유를 해야 한다. 지구의 자가 치유의 방법은 지진 해일 화산폭발 등의 지각변동으로 인하여 이루어진다. 지구상의 생명체로서는 어마어마한 자연재해가 되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생명 순환의 이치인 것이다. 인간이나 각종 동물 등 겨우 극소수만 남아서 종족 번식의 본능에 의하여 원시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5만년이란 세월이 지나면 인간의 수가 늘어나고 전기를 발명하고 문화생활이 극에 달하면 또 다시 지구를 오염시킨다. 각종 오염에 의하여 지구가 병이 들면 지구는 다시 지각변동으로 기생충을 제거해야만 지구 본래의 주겁의 수명을 유지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대서양 어느 섬에서는 과거 5만년전 레무리아 문명 시대의 어느 도시의 문화유산 석조물을 인양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오래 전에 읽은 기억이 난다. 현겁 중 과거 50억년을 5만분하면 10만이 되는 것이니 5만년에 한 번씩 인간의 문명이 지켜졌다고 할 경우 무려 10만의 부처님이 출세하신 것이지만 그러나 지각변동의 폭이 얼마난 크고 작으냐에 따라 5만년이 10만년 혹은 20만년으로 늘어날 수도 있는 것이니 이것을 과연 누가 통달하여 시원히 말할 것인가. 깨달은 성자는 말씀을 아니하시고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격으로 우자가 감히 졸필을 난휘하는구나.

2009-04-14

[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크리스천? 불자? 어느쪽이죠?

사람들은 묻습니다. “크리스천이세요, 아니세요?” 혹은 “불자(佛者)세요, 아니세요?”라고 말이죠. 짧고 가벼운 물음이죠. 그러나 그 안에는 종종 ‘칼날’이 숨겨져 있습니다. 상대의 삶과 지향을 이해하고자 던진 물음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대답에 따라 ‘내 편’과 ‘네 편’으로 ‘쩍!’ 갈라지고 말죠. 그런데 예수님은 “크리스천이 되라”고 하지 않으셨죠. 부처님도 마찬가지죠. “부디스트가 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내가 너희 안에 거하듯,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 부처님도 “‘나’를 비워서 부처(Budda)의 자리에 들라”고 했습니다. 왜냐고요? ‘간격’ 때문이죠. 나와 예수님, 나와 부처님 사이에는 간격이 존재하니까요. ‘크라이스트(Christ)’와 ‘크리스천(Christian)’, ‘붓다(Budda)’와 ‘부디스트(Buddist)’, 그 사이에는 어김없이 커다란 강물이 흐르니까요. 어떤 이의 강폭은 ‘태평양’보다 넓고, 어떤 이의 강폭은 동네 개울보다 좁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부처를 믿는 일은 ‘해바라기’가 아닙니다. 몸을 땅에 박은 채 평생 하늘만 쳐다보는 방식은 아닙니다. 강의 이쪽에 서서 평생 저쪽만 바라보는 식은 아니라는 거죠. 왜냐고요? 강을 건너지 못하면 살아있는 부처, 숨 쉬는 예수를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해바라기는 어찌해야 할까요. 땅에 박힌 뿌리를 뽑고서 태양을 향해 날아가야 할까요?. 그럼 10분도 못 가 말라죽고 말겠죠. 그럼 어찌할까요. 어찌해야 태양 안에 해바라기가 거하고, 해바라기 안에 태양이 거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나’를 열어야죠. 그런데 “열려라, 참깨!”한다고 열리는 게 ‘나’가 아니죠. ‘나’를 여는 일은 강고하기 짝이 없는 ‘에고’를 여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에고’를 찾아야 합니다. ‘열지 못하는 나’를 찾아야죠. 그리고 회개를 해야죠. ‘열지 않으려는 나’를 찾아 참회를 해야죠. 그리고 끝내 ‘열게 해주는 신(예수 혹은 부처)’에 대해 감사해야죠. 이 모두가 가슴의 밑바닥, 에고를 뽑은 자리에서 절절하게 올라와야죠. 해바라기는 그제야 자신을 열 수 있죠. 그렇게 열린 통로로 태양의 빛과 에너지가 들어오죠. 열린 만큼 들어오고, 들어온 만큼 차는 거죠. 그렇게 차고, 차고, 또 차서 해바라기는 빛과 에너지로만 차게 됩니다. 그때는 간격이 없어지죠. 해바라기가 태양이 되고, 태양이 해바라기가 되니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거하는 거죠. 그러니 묻지 마세요. “크리스천이냐, 아니냐” “불자냐, 아니냐.” 밖을 향해 묻지 마세요. 안을 향해 물으세요. 자신을 향해 물으세요. ‘나는 그리스도를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붓다에게 다가서고 있는가’, ‘한 발짝씩 내딛은 만큼 실제로 가고 있는가’라고 말이죠.

2009-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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