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장수 업체] 옴니푸드 제임스 채 대표 '끊임없이 주류 입맛 연구 개발'
오하나 하우스(Ohana House) 브랜드를 생산하는 옴니푸드(대표 제임스 채)의 지난 27년은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의 연속이었다. 1981년 하와이에서 미국 최초로 만두 생산 공장으로 시작했다. 1966년 이민온 채경석 창업주는 당시 식당에서 손으로 빚어 만두를 판매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한정된 생산양을 대량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일본에서 보고온 만두 대량 생산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와이 호텔들에 만두를 공급하며 핑거푸드의 하나로 주류 시장에 소개했다. 비행기로 뉴욕에까지 만두를 보내기도 했다. 1993년 본사와 공장을 옮겨 남가주 파라마운트에 자리잡았다. 10년 정도 미주 유일의 만두 공장이었지만 일본계 데일리, 대만계 웨이첸 등이 남가주에 만두 공장을 세우면서 경쟁이 시작됐다. 고민 끝에 더 넓은 시장, 풍부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있는 남가주를 찾았다. 이때부터 휴즈 에어크래프트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큰아들 제임스 채 사장이 합류했다. 먼저 로컬화에 집중했다. 2004년에는 사우스 게이트에 국수 생산 공장을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만두에서 면류까지 주력 아이템이 늘어났다. 유통망을 확장하고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2005년에는 마케팅을 전공한 둘째아들 앤드류 채 마케팅 담당이사가 조인했다. 주류 시장 진출을 본격 착수했다. 한인 시장에서의 한계를 넘어 주류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2006년에도 변화가 많았다. 오개닉 만두를 런칭하며 오개닉 라인의 기반을 닦고 시장을 테스트했다. 11월에는 지분의 85%를 CJ에게 매각했다. 2007년 초부터 주류 시장에서 반응이 나타나더니 1년6개월 만에 성과를 거두고 있다. 채경석 창업주는 CJ에 지분을 매각하면서 옴니푸드를 제임스 맡기고 은퇴했다. CJ가 한인 및 아시안 시장을 담당하지만 회사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운영하기로 했다. 2008년 8월 현재 홀푸드 마켓 미전역 180여개 매장에서 오하나 오개닉 만두와 면류를, 코스트코 북가주 50개 매장에서는 오개닉 우동을 만날 수 있다. 코스트코 동부 매장에는 만두도 들어간다. 또 타겟 미전역 매장에는 조만간 올 내추럴 한입 크기 원톤(Bite Size Won Ton) 납품을 시작한다. 지역, 시장, 제품별로 테스트하는 과정을 거쳐 이제 2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2008년 8월 현재 새벽 5시30분부터 시작되는 옴니푸드 공장에서 쏟아지는 만두와 국수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공장은 각각 2만 스퀘어피트 규모로 하루 35~40만개의 만두가 생산된다. 한달이면 800~1000만개. 국수는 또 어떤가. 하루 2만 파운드, 그릇으로 치면 4만 그릇이 나온다. 한달이면 80만 그릇이다. 아이템은 수십가지. 만두만 해도 한인 시장에서는 고기, 부추, 야채 군만두와 물만두 등이 판매되고 주류 시장쪽에는 두부&버섯 교자 군만두를 비롯해 새롭게 개발한 한입 크기 원톤으로 야채 인도 카레, 치킨&실란트로 등을 선보였다. 옴니푸드가 생산하는 만두는 크게 일반 라인과 오개닉 라인, 원톤은 최근 올 내추럴 라인을 완성하고 다음달부터 시판한다. 여기에 주문자상표부착(OEM) 만두까지 하면 회사, 브랜드, 제품 이름은 다르지만 마켓에 나온 현지 생산 만두의 상당 부분은 옴니푸드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면류도 마찬가지다. 한인 시장에서는 칼국수 등이, 주류 시장에는 초메인 스타일, 재패니스 우동, 소바, 그리고 모찌 라이스 플래이크(떡국떡) 등이 있다. 반조리가 특징. 주류 시장에는 오개닉 참기름과 오개닉 간장도 출시했다. 지금까지 사업과 시장을 확장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한국 먹거리가 일본 제품을 대신해서 주류 소비자들에게 소개되고 호평을 받으면 흥분되는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주류 소비자들이 만나는 한국 먹거리가 불고기와 김치에서 아이템이 추가, 저변 확대에 보람을 느낀다. 큰 위기는 없었지만 2003년 만두 파동 당시에는 힘들었다. 만두 파동 이후 1개월동안은 제품이 진열대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지 생산이란 것이 알려지고 연방농무부(USDA) 검사관이 상주하고 가주보건국에서 추가로 검사를 받는 등 위생 면에서 엄격했던 부분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만두 파동의 반사 효과로 매출이 2배 이상 늘기도 했다. 지금은 오하나가 아니더라도 USDA 라이선스 번호를 통해 옴니푸드에서 생산한 것을 확인하는 소비자들이 생겼다. 27년을 장수할 수 있었던 것, 미주 최초이자 한인 유일의 만두 생산 공장으로 경험이나 노하우를 전수받거나 기댈 곳 없이 파이오니어(pioneer)로 앞서갈 수 있었던 것은 제품을 특화하고 틈새 시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주류 시장에 진입할 때에는 무조건 한국식을 고집한게 아니라 떡국떡으로 떡국을 만들기 보다는 간장 떡볶이로 맛을 보이는 등 주류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맛을 찾았다. 그동안 쌓았던 신용은 소비자, 협력업체들이 믿음을 보내게 했다. 2008년 8월 이후에도 옴니푸드의 변화와 도전은 계속된다. 먼저 냉동 식품을 다양화할 계획이다. 덮밥도 다시 시도하고 싶다. CJ의 계열사가 되면서 시스템도 체계적으로 잡히고 있다. 옴니푸드의 미주에서의 경험과 시장 및 유통망 노하우와 CJ의 기술력, 그리고 자본이 교류되면서 품질 향상과 제품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옴니푸드는 오늘도 제품과 포장 디자인 등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개발하면서 한인 시장에서 마련한 발판에 2세 등 젊은 피를 영입,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 이재희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