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장수 업체] 고바우…족발·보쌈 '변치않는 명성'
주인이 직접 소스 말들고 기본 재로도 손질
청기와 올린 식당 지어 한국 맛·멋 알리고파
고바우는 1983년 베벌리와 웨스턴이 만나는 곳에 콩비지와 빈대떡으로 한인타운에 문을 열었다.
백금인 사장은 "데판야끼를 하던 곳이라 후드와 그릴이 있어 시설에 맞게 빈대떡을 메뉴로 정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백 사장이 미국에 온 것은 76년. 여행을 유난히 좋아하던 백 사장은 한국에서 다니던 수출회사 사장에게 부탁해 미국 비자를 어렵게 받아 여행을 위해 멀리 태평양을 건너왔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혈혈단신 호기롭게 낯선 땅을 밟았지만 먹고 사는 일마저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래도 당시는 사람사이 따뜻한 정이 있던 시기라 현재 한인타운 인근 아파트를 얻어 일하면서 여러 한인들과 정답게 생활했었다고 한다.
백 사장이 기억하는 70년대는 한 마디로 '남청여재'의 시대다. 당시 한인들은 약 3만명 정도로 직업도 많지 않아 대부분 남자는 청소부 여자는 재봉하는 것이어서 이런 말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에도 자주 듣는 누가 공항에 마중나왔는가에 따라 이민생활의 생업이 결정된다는 것도 그 당시부터 시작된 전설(?)이라고.
백 사장이 요식업을 시작한 것은 아내를 만나고 난 후. 결혼 6개월 뒤 벨플라워에 있는 한 햄버거가게를 인수해 지금까지 식당업에 종사하게 됐다.
스테이크를 길쭉하고 맛나게 구운 '스테이크샌드위치'의 명성 덕분에 힘든 이민생활을 빨리 정착할 수 있었다. 자신감을 얻은 백 사장은 서울 종로 YMCA 근처에서 최초의 요리학원을 세운 김 할머니를 LA로 초청해 주방장을 맡겨 한식당을 열었다.
맛난 음식을 좋아했지만 요리는 잼병이었던 백 사장은 김 할머니의 솜씨를 믿고 주방을 맡겼던 것. 그러나 학원에서 가르치는 맛과 식당에서 서비스하는 맛의 차이는 현격했다. 결국 손님들이 하나둘씩 줄어들자 백 사장이 직접 주방에 들어갔다.
몇날며칠을 맛에 대해 연구해 백 사장은 마침내 주방일을 직접 맡는 수준에 이르렀고 그러던 중 베벌리길의 일식 데판야끼 집이 비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계약했다.
가게이름은 고바우로 정했다. 당시 신문의 4컷 시사만화 주인공 '고바우영감'의 서민적인 이미지에서 가게이름의 영감을 받았다고.
백 사장은 "당시 서슬이 시퍼렇던 전두환정권 시절에도 서민을 대변하던 고바우영감의 시원한 장면들이 눈에 선하다"면서 "고바우영감처럼 이민생활로 고달픈 한인들에게 맛으로라도 위안을 주고 싶어 메뉴도 보쌈 족발로 정했다"고 말했다.
평안도 출신이라 돼지고기에 자신있던 것도 백 사장이 메뉴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맛이 소문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자 메뉴를 추가했다. 한인타운에서 처음으로 순두부를 서비스하기 시작했다는 것. 고바우는 날로 번창해갔고 13년전인 9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원래 샤브샤브 전문집이었지만 5년간 주인이 3번이나 바뀔 정도로 고전하던 곳이지만 한인타운 중심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렌트비도 당시 저렴했던 것도 옮긴 이유다.
백 사장이 오랜동안 터줏대감으로 한인타운을 지키니 에피소드도 많다. 백 사장은 어느 날 한 중년부부가 고등학생된 자녀를 가리키며 "우리 부부가 고바우 다니며 연애하고 결혼해서 낳은 애가 이 애"라고 인사받았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또한 84년 LA올림픽 때는 한국 대표팀에 김치를 공급해 주었던 것도 보람찬 일이었다고 백 사장은 기억한다.
고바우의 장수비결은 음식의 맛이 세월이 흘러도 옛 맛 그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바우의 보쌈과 족발 맛이 꾸준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백 사장이 주방장으로 모든 음식 레서피를 만들기 때문이다. 25년간 직접 소스를 만들고 기본재료를 손질하니 맛이 한결같을 수밖에 없고 손님은 예전의 그맛을 찾아 다시 온다는 게 백 사장의 설명이다.
백 사장은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 우선은 평안도 출신답게 냉면을 메뉴로 추가하고 싶다고 한다. 더 큰 목표는 한국의 자랑스런 문화를 한인 사회 나아가 미국 사회에 전파하는 것이다.
"헐리우드에 일본을 상징하는 야마시로 식당이 있고 뉴욕 플러싱에는 전통 한정식집 금강산이 있다"면서 "한인규모가 가장 큰 LA에 제대로 된 한정식집이 없다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고 백 사장은 역설했다.
고서화와 그림 도자기 등에도 조예가 깊은 백 사장은 고바우를 한국의 맛과 문화를 알리는 식당을 만들고 싶어 2000년 한국에 들어갔었다. 오래된 한옥의 청기와 등을 미국에 가져오려고도 했던 것. 하지만 당시 LA 한인타운의 건물가격이 너무 비싸 실현할 수 없었다고 백 사장은 회고한다.
백 사장은 "한인타운에 건물을 구입해 푸른 기와를 얹어 자랑스런 한국 전통의 미와 맛을 알릴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며 "가격이 아니라 전통 한정식을 서비스하는 것이 오랜 꿈"이라고 말하며 살며시 웃어 보였다.
백정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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