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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바보들의 천국

진짜 바보와 가짜 바보는 다르다. 진짜 바보는 세상 물정을 모르지만 가짜 바보는 세상 물정을 훤히 꿰뚫고 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바보 노릇을 하는 것뿐이다. ‘바보들의 행진’은 UCLA 영화과에서 한국인으로 최초로 학위를 받은 유학파 하길종 감독의 대표작인데 1970년대 한국 대학가의 경직된 사회상과 젊은이들의 방황을 그린 영화다. 그 시대 답답한 현실 속에서 고뇌하는 대학생들의 꿈과 사랑, 좌절을 낭만적이고 애상적으로 담아 낸 화제작이다. 철학과에 재학 중인 병태(윤문섭)는 미팅에서 영자(이영옥)라는 불문과 여대생과 사귀게 되지만 영자는 병태가 돈도 없고 전망도 없다는 이유로 절교를 선언한다. 부잣집 외아들인 병태의 친구 영철(하재영)은 적성에 안 맞는 대학생활과 전국 대학에 내려진 휴교령으로 갈 곳 없는 친구들과 술만 퍼 마시며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술에 취하면 동해바다로 고래사냥을 가고 싶다던 영철은 어느 날 정말로 동해바다로 떠나 자살을 하고 병태는 군대를 가게 된다. 병태를 태운 입영열차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나타난 영자가 열차의 창문에 매달려 키스하는 장면은 불멸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최인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청년문화의 상징인 청바지·통기타·생맥주의 등장과 함께 큰 호응을 얻었는데 송창식이 부른 ‘고래사냥’은 그 시대를 살았던 청년들의 애환과 꿈을 담고 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중략)/ 간 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중략)/ 우리의 사랑이 깨진다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다 해도/ 모두들 가슴에 뚜렷이 있다 /한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살다 보면 바보처럼 살아야 할 때가 있다. 역사는 인간의 독선과 아집, 오만함에 경종의 메시지를 보내지만 인간은 바보처럼 그 실수를 되풀이한다. ‘지식인됨의 괴로움’은 문학과 지성사 대표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해 온 김병익 선생이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지식 사회 속에서 살아온 저자의 내면적 성찰과 사유의 행로를 적은 글이다. 저자는 그 시대의 지적 풍토를 돌이켜보며 젊은 시절의 억압적인 상황에 대한 고뇌, 변혁과 변화를 위한 이념들의 싸움을 관찰하며 느끼던 활력과 기대, 그리고 해체와 변모로 또다시 달라진 지식 사회의 정황을 바라보는 심안을 진지하게 서술하고 있다. 인생이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인생을 속인다. 속고 속이고 살면서도 그 속음을 넘어 희망의 씨앗을 가슴에 담고 사는 게 지식인 됨의 괴로움일 것이다. 해가 중천에 떠 있으면 뜨겁게 달아오른다. 청춘의 열기가 사라진 밤의 해변은 뭍 별들의 합창이 다정하게 울려 퍼진다.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꿈꾸는 것들 속에 있다. 비껴 갈 수 없는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 후회와 회한으로 지난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 해도 예쁜 고래 한 마리 키울 수 있다면 바보들의 천국에서 행진을 계속해도 무방할 것이다. 머무르고 싶은 순간들을 멈출 수 없다 해도 비늘 검푸른 고래 한 마리 가슴 속에 살아 퍼덕이면, 꿈을 찾아 언제든지 동해바다로 떠날 수 있다.

2011-05-25

[동서교차로] 인생이 꽃보다 아름다워

모든 예술은 혼으로 통한다. 예쁜 그림, 좋은 음악, 멋진 글이 예술이란 명찰을 달기 위해선 영혼을 불사른 흔적이 있어야 한다. 신명을 바쳐 혼을 불사르면 사랑이 운명이 되고 인생이 예술이 된다. 소피 바르스 감독의 ‘영혼을 빌려드립니다’는 사람의 영혼이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다는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블랙코미디다. 일상의 스트레스로 지친 유명한 배우 폴은 영혼을 바꿔 줄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자신의 영혼을 어느 러시아 여성의 영혼으로 바꾸지만 더욱 공허해지고 핍박해져 다시 자기의 영혼을 찾으러 간다는 내용이 줄거리다. 공상 과학소설(SF)적 상상력과 감수성이 탄탄한 시나리오, 연기파 배우 폴 지아마티, 에밀리 왓슨 등 탄탄한 캐스트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수작이다. 독일의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의학이나 공학이나 미술만이 예술이 아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예술이다”라고 했다. 인생만큼 복잡하고 어렵고 다양하고 총체적인 예술이 있을까? 프롬은 예술이 예술로서 생명력을 지니려면 개성과 독창성을 지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생이 예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타인과 구별되는 삶,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인생이 예술이 되면 지리멸렬하고 구태의연한 삶의 쳇바퀴에서 헤쳐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위한 예술(Artforlife'ssake)'을 주장하는 인생파 예술론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논리를 반박한다. 찌든 삶의 고통과 당장 직면한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고 예술지상주의 탐구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예술은 인생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정답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다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운신의 폭을 넓혀 준다. 같은 고통, 어려움을 당한다 해도 대처하는 방법이 유연해 진다. 예술지상주의와 인생중심주의 양극단의 출발은 인간이다. 인간만이 예술을 누릴 자격이 있고 인간 없이는 예술도 존재하지 않는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은 인생의 모방’이라 했고, 오스카 와일드는 ‘인생은 예술의 모방’이라는 헷갈리는 분석을 했다. 예술과 인생의 허상과 실상을 혼돈한 때문이다. 예술은 환타지를 추구한다. 허상을 통해 실상을 보려는 인간의 작업이다. 인생은 실상을 통해 허상 즉 판타지를 꿈꾸는 살아있는 행위다.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좋다’는 건 판타지를 꿈꿀 무엇이 인생이라는 단어 속에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명을 바쳐 살아야 할 그 무엇이 있는 삶은 아름답다. 인생과 예술은 동반자, 함께 가면 덜 힘들고 적게 외롭다. 인생이 예술이 되려면 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음식의 감칠 맛을 내게 하는 건 양념이다. 훌륭한 요리사는 원재료의 맛을 살리면서 조화롭게 양념을 섞어 맛을 낼 줄 안다. 양념을 너무 넣으면 본 재료의 신선도가 떨어진다.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기회는 달아나기 쉽고, 경험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며 판단은 어렵기만 하다”고 했다. 그 누구도 한 인간의 삶이 지리멸렬한 고행이었는지 예술인지를 속단할 수 없다. 일본군 위안부로 살아온 모진 고통을 딛고 평생 모은 돈을 장학금을 기부한 김군자 할머니 삶은 예술이다. 아무도 흉내내지 못할 가치 있는 무엇을 위해 향해 신명을 바쳐 살았기 때문이다. 인생이 예술이 되면 삶이 꽃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2011-04-06

[동서교차로] 리즈와 다이아몬드

만인의 연인은 한 사람의 연인이 되기 힘들다. 세기의 연인 할리우드의 전설로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수 천 만개의 별 빛을 담은 눈, 섹시함을 넘어선 도도한 자태, 고혹적인 미소로 연기와 미모,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리즈 만큼 대중의 관심을 받은 여배우는 없었다. “나는 평생 화려한 보석에 둘러싸여 살아왔어요. 하지만 내가 정말로 필요로 했던 건 그런 게 아니었어요. 누군가의 진실한 마음과 사랑 그 것뿐이었어요” 라고 말한 것을 보면 정작 본인은 진정한 사랑을 그리워하며 외롭게 살았던 것 같다. 리즈는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아리송한 말을 남기며 결혼과 이혼을 되풀이 해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의 사랑도 한 몸에 받은 배우다. 거침없이 자기가 원하는 것, 그것이 남자든 다이아몬드든지 선택한 그녀의 삶은 50~60년대 형식과 틀에 묶여 보수적인 시대를 살던 여성들의 숨통을 트게 했다. 여자의 삶도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빌미를 제공했다. 비록 그것이 그녀가 가진 미모나 외향적인 조건에 의해 가능했다 해도 결혼과 이혼이 남성위주의 권위적인 것에서 탈피해 여성의 자의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현금과 부동산, 보석 등 약 6700억원 정도의 재산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중에 상당한 부분이 값비싼 보석과 다이아몬드다. 뉴스에서 잠시 본 다이아몬드 콜렉션은 ‘억’하고 소리 지를 정도로 수 억 대를 넘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화려하다. 한 두 개를 빼고는 대부분이 그녀를 흠모하고 사랑했던 남자들이 바친 선물이라니 미모야 천차만별이라 해도 남자(?)로부터 평생 반반한 선물 한 개 받지 못한 나 같은 여자들은 배가 아플 지경이다. 영국 배우 리처드 버튼은 리즈에게 69캐럿 다이아몬드를 결혼 선물로 바치며 두 번씩이나 결혼했지만 남편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했다. “리즈에 한해서 다이아몬드가 남자보다 훨씬 오래 간다” 말에 전적으로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다이아몬드는 무적을 뜻하는 그리스어 ‘adamas’에서 나왔는데 ‘더 이상 굳은 것은 없다’‘정복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어떤 물질이 얼마나 단단한지는 그 물질의 분자구조가 얼마나 단단하게 이루어졌는가로 판명된다. 다이아몬드는 분자구조가 서로 강하게 얽혀서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영원불변의 사랑을 다짐하는 데 분리 불가능한 다이아몬드 만큼 의미 있는 예물은 없을 것이다. 영화평론가인 로저 에버트는 “마릴린 먼로가 섹스 심벌, 그레이스 켈리가 얼음여왕, 오드리 헵번이 영원한 말괄량이였다면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미의 화신이었다”며 리즈의 죽음을 깊이 애도했다. 시대의 로망이 되는 것은 영광이다. 일상의 고달픔을 달래주는 미의 화신으로, 다이아몬드의 빛나는 환상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리즈는 살별의 아름다움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태양이 식을 때까지, 별들이 늙어질 때까지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랑으로 그댈 사랑하리.”(윌리엄 섹스피어). 태양은 식지 않는다. 별은 영원히 반짝인다. 죽음과 이별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틈을 갈라 놓는다 해도 지구가 공전하는 한 사랑은 마르지 않는 생명으로 남게 된 것이다. 유성처럼 잠시 스쳐가는 빛의 황홀경이라 해도, 사랑의 중력으로 떨어지는 그 아픈 파멸을 누가 막으리!

2011-03-31

[동서 교차로] 봄 편지 보냅니다

기어코 오시는군요. 눈보라 한파 속에 모습조차 떠올리기 힘들어 혹시 안 오시나 마음 조렸어요. 가시덤불 속에 진 첫사랑처럼 속절없이 가버린 줄 알았어요. 마지막 편지, 혹은 두 켤레의 낡은 구두로 남은 초상화처럼 얼어붙은 계절 속에 파묻혀 버린 줄 알았어요. 떠난 것들은 먼지 낀 사진첩에서 빛 바랜 채로 흑백의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사랑도 청춘도 젊음도, 시간 속으로 떠나 간 것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언젠가 당신은 이별이 두려워 훌쩍이는 내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습니다. 떠나도 사랑은 늘 머무는 것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아픈 흔적은 지워지고 봄이 다시 돌아오듯 예쁜 사랑의 꽃망울 피울 수 있다고 했어요. 지난 겨울은 너무 잔인 했습니다. 중서부, 동부에 몰아친 폭설과 강추위로 심장마저 꽁꽁 얼어붙었지요. 추위 때문만은 아닙니다. 직장을 잃었거나 하루 벌어 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죽기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경제가 호전 된다고 하지만 온기를 느끼려면 한참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며칠간은 무척 슬펐습니다. 믿고 사랑하는 후배가 암 수술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후배는 멀리 있어도 가슴 속 깊이 자리하고 못 만나도 생생하게 눈에 밟히는 내 삶의 희비애락을 하소연하는 살아있는 동지고 친구였지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키모세라피 때문에 머리가 홀랑 빠졌다며 남의 얘기하듯 담담하게 소식을 전했겠어요. 너무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없잖아요. 나도 숨이 막혀 제대로 위로도 못하고 유리항아리 들고 널 뛰는 심정으로 안절부절 두서없이 전화를 끊었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믿고 나한테 큰일 안 생기면 전화조차 안 하는 내 나쁜 버릇 때문에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 달랑 보내고 1년 내내 연락을 안 했거든요. 사는 게 뭔지, 목숨 부지하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가슴 후벼 파는 아픔으로 한동안 넋을 놓고 헤맸습니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중략)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사랑하는 후배에게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보냅니다. 봄의 살찐 기운으로 봄의 신령으로 병마와 싸우길 바랍니다. 희망, 빛, 생명, 청춘, 젊음, 용기, 소망 그리고 내일이라는 미래의 모든 가능성이 봄의 단어 속에 담겨 있습니다. 아프고 할퀸 대지로 꽃신 신고 찾아오는 이 찬란한 봄을 맞기 위해 그 모진 겨울을 담담히 견뎌 낼 수 있지 않았겠어요? 지진이 땅을 갈라 놓고 쓰나미가 천지를 뒤덮어도 봄이 오는 발자취를 거역할 수 없습니다. 중동에서도 자유와 평화란 이름으로 ‘아랍의 봄’이 태동하고 있습니다. 봄은 희망이고 생명입니다. 어떤 재난과 박해, 절망의 골짜기에서도 봄은 생명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대지는 생명의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생명을 싹 틔울 사랑의 온기가 살아있는 한 봄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봄은 지금 희망의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암 치료로 민머리가 된 내 사랑하는 후배에게도 파릇파릇한 봄향기로 삼단 같은 긴 머리가 돋아나길 소망합니다. 두 팔로 가슴으로 당신의 봄을 부둥켜 안으십시오. 귀 기울이면 영원으로 피고 지는 생명의 목소리 들을 수 있습니다.

2011-03-24

[동서교차로] 불운을 딛고 나면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하다. ‘생사는 명(命)에 있다’는데 수 천 수 만명이 같은 시간에 떼죽음 당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천재지변이나 대형사고를 보면 산다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 발생한 지진과 쓰나미는 인간이 대 자연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요 사례다. 쓰나미는 해저에서의 지진, 해저 화산 폭발, 단층 운동 같은 급격한 지각변동이나 빙하의 붕괴, 핵실험 등으로 발생하는 파장이 긴 천해파를 말한다. 명실상부 일본은 ‘과학 선진국’이다. 이런 일본의 자존심도 천연재해 앞에선 한갓 바람에 날리는 휴지에 불과 했다. 일본은 천재지변과 같은 자연재해는 물론 인재로부터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세계적으로 잘 갖춰져 있는 나라로 꼽힌다. 하지만 진도 9의 지진과 쓰나미에는 속수무책, 자연과 인간, 자연과 과학의 쟁투는 자연의 '승리'로 끝났다. 자연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순리를 따르고 더 깊이 관찰하고, 이해하는 대상일 뿐이다. 겨울에 징후를 보이는 봄 날씨, 점점 더 녹고 있는 빙하, 집중호우와 폭염 등 온실효과 전조 등 기후 변화는 기후 붕괴로 이어져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할 태세다. 과학의 역사는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에서 출발했다. 과학이 없던 시절 자연현상은 신의 영역이었다. 천재지변은 신의 노여움이었고 인간은 그 노여움이 가라앉기를 속절없이 기다렸다. 과학은 천재지변을 포함한 자연현상을 인간의 영역에서 해결하고자 노력해 왔지만 그 한계점에 도달했다. 희귀병 조로증으로 아들을 잃은 쿠시너는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벌어질까’라는 책에서 자신이 겪은 슬픔과 분노를 인간의 삶과 종교의 역할을 통해 담담히 풀어 놓고 있다. 인간은 평소 선한 행위를 쌓고 그에 따른 상급을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불운이 잇따르는 경우도 있다. 그 불행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사건일 뿐 때로는 이 불완전성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그는 설명한다. ‘오웬과 음제’는 하마와 거북이의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포토 에세이다. 주인공 아기 하마 오웬은 동남아시아에 불어 닥친 끔찍한 쓰나미로 엄마 아빠를 잃고 두려움에 떨다 극적으로 구조된다. 오웬은 케냐의 한 동물원으로 이송되는데 그 곳에서 오랫동안 홀로 살아온 늙은 거북 음제를 만나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지구촌의 모든 나라가 손잡고 일본 국민을 위로 할 때다. 이번 지진 참사가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간 것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라는 어떤 목사의 발언이나 “천벌이 내린 것”이라는 정치인의 발언은 적절하지 않다. 노아의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린 하나님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창세기 8:21)라고 약속하셨다. 지은 죄 때문에 벌을 받아야 한다면 세상에 벌 받지 않을 자 누구 있을까? 세계는 지금 죽음의 공포 앞에서 일본인들이 보여준 의연하고 침착한 질서의식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이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진장한 미래의 국가 자산이다. 불가항력 불운 뒤에 다시 일어 설 일본의 밝은 내일을 본다.

2011-03-18

[동서교차로] 동화 속의 아이들

“엄마, 나 시집 갈래.” 직장 생활 2주만에 받은 통보다. 대학 졸업한 지가 엊그젠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벌써 남자 생겼어.” 콩닥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묻는다. “아니. 좋은 남자 생기면 곧 할 테니까 준비 단단히 하고 있어.” 제 시집 가는데 나보고 준비하라니 정말이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저처럼 '얼굴 반반하고 머리 차고 섹시(?)하고 능력 있는 아가씨'는 프라임 타임을 놓치면 독신으로 살 확률이 높아진다나. 혼기 안 놓치고 시집 갈테니 세기(?)의 결혼 올릴 만반의 준비를 해 놓으라는 명령(?)이다. 그래도 혼자 살겠다고 안하고 시집 간다는 말이 고마워 “등록금 댄다고 허리 삐쳤으니 좀 회복할 시간을 주세요” 라고 애교를 떤다. 산 너머 산이고 강 건너 태산인 게 자식 키우는 일이다. 4월에 있을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으로 벌써부터 지구촌이 시끌벅적하다. 신부가 될 케이트는 배송 전문 완구업체로 자수성가한 아버지와 여객기 승무원 출신의 어머니를 둔 평범한 중산층 출신이다. 영국 왕위 계승자가 귀족 아닌 평민과 결혼하는 것은 1660년 제임스 2세가 앤 하이드와 결혼한 이후 350년 만의 일이라 현대판 신데렐라 동화를 보는 기분이다. 21세기 동화 속 신부 미들턴은 화려한 마차를 타고 결혼식장에 도착했던 왕실 전통을 깨고 결혼식장까지 차량을 이용한다. 결혼식 장소인 웨스트민스터 성당은 1997년 윌리엄의 모친인 고 다이애나비의 장례식이 열려 수많은 영국인들의 심금을 울린 곳이다. 30년 전 ‘신데렐라’ 다이애나는 1만여 개의 진주가 박힌 아이보리색 가운을 입고 4륜 대형 마차를 타고 예식장에 도착했는데 웨딩드레스 길이만 8m로 당시 신데렐라를 꿈꾸는 뭇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다. 결혼식 비용은 지금의 화폐 가치로 100억원이나 들어간 초호화판이었는데 이번에는 경제적으로 힘든 영국민들의 상황을 고려해 ‘긴축형’으로 치른다고 한다. 초청 인원만 1900명이니 서민이 생각하는 ‘긴축형’하고는 판이 다르다. ‘신데렐라’의 작가 샤를 페로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동화작가로 프랑스 아동 문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1697년에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려고 민담을 모아 동화집을 냈는데 ‘옛날, 그리고 짤막한 이야기’라는 제목에 ‘어미 거위 이야기’라는 부제목을 달았다. 이 책에 너무나도 유명한 ‘신데렐라’‘장화 신은 고양이’‘빨간 모자’‘잠자는 숲속의 공주’‘푸른 수염’‘고수머리 리케’‘꼬마 엄지’ 등 여덟 편의 동화가 총망라돼 있다. 동화는 동화를 믿는 자에게만 살아 있는 이야기가 된다. 동화 속 신데렐라는 시련과 고통이라는 통과의식을 거쳐야만 신분상승의 기회를 얻는다. 21세기의 신데렐라들은 더 이상 요정의 주술에 목 매달지 않는다. 호박을 마차로 바꾸고 쥐들을 마부로 변신시키고 누더기를 드레스로 바꾸는 힘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청춘’‘젊음’이란 단어 속에는 동화같이 아름다운 내일을 꿈꿀 자격이 담겨 있다. 딸들이여! ‘생활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동화 속 신데렐라의 꿈을 버리지 않길 바란다. 신부 드레스 한 벌이 웬만한 집 한 채 값이고 다이아몬드 촘촘히 박힌 반지가 민초가 평생 벌 수 있는 돈을 능가해도 기죽지 말고 ‘내일’이라는 단어에 주술을 걸기 바란다. 달콤한 키스로 척박한 생의 힘든 주술을 풀어 줄 왕자를 만날 수만 있다면 풀반지 끼고 초원에서 평생을 약속한들 어떠리.

2011-03-10

[동서 교차로] ‘결혼신용’ 불량자

결혼은 은행계좌와 같다. 입금보다 인출이 많으면 부도가 난다. 자주 계좌를 열어보고 때 맞춰 입금을 하며 잔고를 챙겨야 한다. 한 번 입금했다고 계속 빼먹기만 하면 마이너스가 되는 건 시간 문제다. 신혼 때 열렬했던 불같은 사랑도 업데이트를 안하면 식은 죽처럼 맛이 없어진다. 가끔 낯 간지러운 사랑 고백을 하며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선물도 주고 받고 다독거리며 관계를 다져놔야 비상시에 펑크가 안난다. 매일 한 푼 두 푼 저축도 안하는 주제에 한꺼번에 큰 돈을 인출하면 단 번에 초비상사태에 돌입하게 된다. 서양 사람은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별거 아니다’며 내 반 쪽은 흉잡길 좋아하지만 입에 발린 소리라도 듣고 싶은 게 안 들어본 사람의 마음이다. 서로 마음만 알면 됐지 함께 살면서 무슨 선물질이냐고 얼렁뚱땅 넘기는 사람들도 양심에 구멍 난 간 큰 남자들에 속한다. 지금 잘 참는다고 영원히 참는다는 보장없고 여차여차해서 반란이라도 일어나면 어찌 감당할 건지 미래가 걱정된다. 은행도 잔고가 딸리면 처음 한 두 번은 봐준다. 하지만 부도가 잦으면 크레딧에 금이 간다. 부부 간에도 부도가 잦으면 신뢰에 금이 간다. 갖고있는 자산보다 부채비율이 커지면 크레딧 점수가 하락된다. 사랑보다 상처가, 믿음보다 불신이 커지면 빨간불이 켜진다. 그나마 비상시에 대처할 저축형 예금 종목을 사둔 사람은 모면할 구실이 생긴다. 자식, 부모, 형제, 직장, 친구, 동료, 이웃과의 관계에 점수를 따두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신뢰가 바닥이 나서 신용불량자로 찍히기 전에 점수를 축적해야 한다. 그러려면 평소에 내공을 쌓아 놓는게 가장 효과적이다. 한 푼 두 푼 저축하듯 정성스레 상대를 대하고 감싸주면 ‘사랑의 적금통장’에 잔고가 늘어날 것이다. 동양에서 인륜도덕의 시원이며 만복의 근원인 결혼의 유래는 서양에서는 탈환과 거래로 시작됐다. 신랑이 신부를 납치해 달아나면 친구들이 종족으로 부터 피신하도록 도와주었다. 신부가 임신해서 신부쪽에서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숨어지냈는데 ‘허니문’의 기원이 여기서 시작됐다고 한다. 웨딩(Wedding)의 웨드(Wedd)는 신랑이 신부에게 맹세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신랑이 신부 아버지에게 지불하는 돈을 말한다. 번식의 목적으로 신부를 샀다는 얘기다. 은행에 새 계좌를 열면 우유 팔러가는 처녀처럼 가슴이 설렌다. 우유 판 돈으로 달걀사서 병아리 까면 그 걸 키워 새 옷 사입고 축제에 갈 꿈을 꾼다. “남자들이 다투며 춤을 추자고 졸라도 ‘흥’ 하며 춤을 안 출거야”하며 머리를 흔드는 순간 우유통은 깨지고 꿈은 산산조각이 난다. 인생을 ‘꿈 깨’로 요약한 이솝 우화다. 망가진 꿈의 사금파리에 찔려 허우적 거리더라도 결혼이라는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계속 넣을 생각이다. 달콤한 밀어와 선물공세가 없었다고 더이상 닦달하지 않을 테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이들과 내게 버팀목으로 세월을 견텨 준 그 듬직한 어깨에 조용히 박수를 보내고 싶다. 목 돈 한 번 만지지 못하고 이 구멍 저 구멍 막느라 주름진 그 손에 사랑의 통장을 쥐어 줄 작정이다. 영원히 잔고가 마르지 않는 믿음의 통장을 줄테다. 처진 어깨가 더 내려가지 않도록 이번에는 내가 사랑을 저금할 차례다. 사랑을 내가 쏠 차례다.

2009-05-03

[동서 교차로] 사월의 합창

봄이 오고야 말았다. 첫사랑의 기억이 계절따라 찾아오듯 꽃향기에 묻어 봄이 다시 왔다. 꽃샘추위를 견디지 못한 여린 잎들이 바람에 흩어지더니 잦은 봄비에 물오른 나무들이 연푸른 옷을 입고 창을 두드린다. 하는 일도 없이 허둥대느라 제대로 눈 길 한 번 주지 않았는데도 하나씩 둘 씩 빈 정원을 채우고 있었던 게다. 뿌리는 살을 에는 고통에도 놓지 못한 모진 목숨 줄을 땅위로 밀어올리며 생명의 언어들을 대지에 적고 있다. 꽃들도 사계절의 첫 악장인 봄의 향연을 위해 연지곤지 찍고 분단장하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사계'는 비발디의 작품집 '화성과 착상의 시도'에 실린 12개의 콘체르토 중에 포함된 4개(봄 여름 가을 겨울)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다. 졸졸 흐르는 샘물소리와 함께 산들바람이 불며 봄의 서막을 알린다. 천둥 (트레몰로)과 번개(빠른 패시지와 삼화음 음형)가 치는 악천후가 지나면 새들이 다시 노래하고 나뭇잎과 풀잎들이 봄을 속삭인다. 끊기는 비올라는 개 짖는 소리를 표현하고 제1바이올린의 선율은 목동을 위한 자장가다. 피리 소리에 요정들과 목동들이 춤을 추고 목동은 꽃이 아름드리 핀 풀밭에서 사랑의 속삭임을 들으며 잠이 든다. 충만한 봄의 향연이다. 봄은 여인의 달이고 꽃의 달이다. 천경자 화백의 그림 속에 나오는 여인들은 화사한 꽃을 머리에 이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져 내릴 듯 우수에 찬 눈매로 담담하게 운명을 맞는다. '한 많은 여인이 머리에 꽃을 얹는다'는 그의 말처럼 여인들의 머리에 얹힌 꽃은 한이다. 세상의 무거운 짐이다. 생의 버거운 짐은 그 짐을 질 수 있는 사람에게 부여되는 꽃왕관일지 모른다. 비록 가시왕관이 돼 살을 찌르더라고 거부하지 않는 몸짓으로 받아들이는 생의 면류관이다. 천화백은 불타는 예술혼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화가였지만 이루지 못할 사랑으로 함께 극장을 가곤 했던 그 남자가 좋아하는 라일락을 여인의 머리에 담으며 붓과 화폭으로 사랑의 세레나데를 바쳤다. 나는 봄을 잘 타는 편이다. 실은 모든 계절을 잘 탄다. 주정뱅이가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술먹는 것 같이 내게 가슴 설레지 않는 계절은 없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중요한 사람에게 순간은 놓칠 수 없는 영원이다. 남은 시간이 지나간 시간보다 적은 것을 알면 하찮은 것이 축제가 된다. '다시는 되돌아 올 수가 없어서 /동으로 한 세상 서로 한 세상 /한 획이라도 더 긋고 싶어 /세찬 몸부림이라도 쳐 보았나요?' (배미순 시인의 '시간의 들판'중에서) 시간이 지나간 흔적은 잔인하지만 몸부림치며 오늘을 떠나보내야 하기에 부둥켜 안고 살만한 무엇이 내일 속에 있는 지도 모른다. 꽃피는 사월에는 '사월의 노래'를 부르리라.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기다리며 그대에게 꽃잎 연서를 띄우리라. 감춰 둔 오렌지색 드레스를 입고 '꽃다발을 든 여인'처럼 천개의 고독을 눈에 담고 그대에게 다가 가리라. 책갈피 속에 고이 넣어 둔 보고픈 이름들을 불러내 예쁜 종이학 접어 그리움을 담아 보내리라. 옛사랑의 숨길이 담긴 돌담길을 홀로 걸으며 외로워하지 않고 이 봄을 맞으리라. 황량한 계절의 모퉁이를 돌아 용케도 견뎌 온 그 인고의 시간들을 꽃잎 속에 알알이 새겨두리라.

2009-04-15

[동서 교차로] 직선과 곡선

곡선은 점이 평면이나 공간을 연속적으로 움직일 때 생긴다. 곡선은 평면곡선과 공간곡선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가장 일반적인 곡선은 원이다. 최근 네델란드의 건축회사 UN 스튜디오가 설계한 중동 모던아트 박물관(Museum of Middle East Modern Art)은 곡선의 미를 극대화한 건축물이다. 모래언덕을 연상시키는 설계로 두바이의 컬처 빌리지 내에 들어설 예정인데 건물의 형태는 사각이라는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웅대한 조형물이 될 것이다. UN 스튜디오는 뉴욕의 파이브 프랭클린 플레이스(Five Franklin Place) 대만의 타 리 플라자(Ta Lee Plaza) 등 곡선의 아름다움을 도시 미관과 잘 어울리게 조화한 건축물 설계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회사다. 미국에 살면서 제일 편한 건 길찾기다. 구획정리가 잘 돼 있어 가로 세로만 분별할 줄 알면 길찾기가 수월하다. 요즘은 맵퀘스트와 내비게이터가 있어 누워서 떡먹기다. 한국에서 국제 피플투피플 클럽에서 활동할 때 제일 난감했던 일은 외국인 친구들이 주소 두 줄 들고와서 집찾아 달라고 할 때였다. 거미줄처럼 얽혀 미로같이 돌고 도는 한국의 골목길을 귀신이 아니고야 어찌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골목길'하면 벌써 가슴이 싸해지며 따뜻해진다. 꼬불꼬불 꼬부랑 할머니 등같이 굽은 골목길은 내 유년의 추억 속에 있는 길이다. 개울에 멱감으러 가자고 숨가쁘게 동무네 싸릿문으로 달려가던 길이고 일만이 아재가 제일 먼저 핀 진달래꽃을 꺾어 건네주던 길이었다. 해지는 줄도 모르고 못치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숨바꼭질 땅따먹기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골목 어귀에 엄마가 나타나 저녁 먹자고 손짓을 했다. 누렁이 황소가 느릿느릿 길을 가로막는 골목길 끄트머리로 알록달록 장식한 꽃상여가 사라질 때면 알지 못할 슬픔에 차올라 홀로 울먹거렸다. 내 유년의 추억속엔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이 자리하고 있다. 꺾이거나 굽은데가 없는 선이 직선이다. 직선은 두 점사이를 가장 짧게 연결한다. 직선으로 통하는 길은 편리하고 가깝다. 직선으로 가면 빨리 도착한다. 직선은 인위적으로 창조한 선이다. 자연에 직선은 없다. 자연이나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은 곡선에서 시작된다. 샘물처럼 솟아나는 정(情)도 곡선이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건 부드러운 곡선에서 출발한다. 큐피트가 쏜 사랑의 화살은 짜릿했지만 너무 빨리 날아와 쉽게 사라졌다. 둥글게 포물선을 그리며 심장으로 파고든 사랑은 끈질기고 아름다웠다. 그 더디고 아둔한 사랑을 하며 들꽃의 생명이 소중한 것을 깨달았고 사랑이 별빛같은 슬픔이란 걸 알게 됐다. 굽으면 만난다. 작은 점이 되어 다시 만난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마주보고 허리굽히면 곡선되어 다시 만나게 된다. 마음의 허리를 굽히면 둥근 보름달로 원이 되어 한마음으로 손잡게 된다. 점은 그냥 점일 뿐이다. 두 점을 긋고 연결해야 선이 생긴다. 직선은 외롭다. 평행선은 만날 수 없다. 느리지만 기다리는 마음으로 생의 골목길을 돌아가면 보름달처럼 둥글게 차오르는 그대 모습을 볼 수 있으리. 자석처럼 끌어 당겨 영혼을 굽게하는 그대 속마음을 만날 수 있으리라.

2009-04-03

[동서 교차로] 그리운 것들은 돌아온다

돌아오는 게 메아리뿐만 아니다. 그리운 것들은 돌아온다. 마음의 풍경 속에서 추억의 되새김질을 한다. 계절이 바뀔 때 꽃향기가 뒤뜰을 적실 때 가랑잎이 발아래로 떨어질 때 까닭모를 슬픔이 차오를 때 그리운 사람은 그리운 추억되어 기억의 문을 두드린다. 나는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낙동강이 굽이쳐 돌아서는 나루터 끝머리에 현풍할매곰탕으로 유명한 동네가 있고 꼬불꼬불한 비포장도로를 엄마 등에 업혀 한 시간정도 가면 동지미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지금은 현풍시내에서 택시타면 5분정도 걸리지만 기억 속의 고향집은 하루에 두 번 오가던 삼천리 완행버스의 뽀오얀 먼지 속에서 가물거린다. 1년에 두 번 산과 들로 소풍가는 날은 신이나 밤잠을 설치곤 했다. 삶은 계란과 사이다에 김밥말은 봉지를 들고 산중턱에 오르면 조막손을 입가에 대고 제일 먼저 '야호'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산들은 약속이나 한듯 '야호'하고 대답을 했다. 동무들과 여럿이 소리를 지르면 발아래 모든 산들이 잇달아서 대답을 했다. 산은 말없는 산이 아니었다. 산들은 내가 부르기만 하면 언제든지 대답하며 다가오는 정겨운 모습이었다. 메아리는 산울림이다. '월인석보'에 '뫼사리'라는 말이 나오는데 'ㅅ' 탈락돼 뫼아리가 됐다. '뫼'는 산이고 '사리'는 소리와 어원을 같이한다. 메아리는 뫼소리 산의 소리라는 뜻이다. 메아리는 산이나 골짜기에서 소리가 진행하다가 다른 산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현상이다. 소리는 다른 매질을 만나면 흡수 반사 굴절 회절 등의 물리적 특성을 보인다. 대리석 강철같은 것은 잘 반사되지만 나무나 옷감은 소리를 흡수한다. 울창한 숲속보다 민둥산에 메아리를 잘 들을 수 있는 건 이 때문이다. 메아리는 반사한 음향이 음원에서 적당히 떨어져 있어야 생긴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메아리를 들을 수 없다. 사랑처럼. 사랑의 말들을 주고 받기 위해선 조금은 거리를 두어야 한다. 메아리가 대답하는 것처럼 들리는 건 반사된 소리가 원래의 소리와는 시간적으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사랑의 메아리를 가슴 속에 담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숲의 요정 에코는 나르키소스라는 미남 청년을 사모했으나 거절 당하는 아픔을 겪는다. 슬픔과 비통에 빠진 에코는 날로 몸이 여위어져 결국 흔적마저 없이 사라졌는데 연인을 애타게 부르는 에코의 소리가 메아리가 됐다는 신화다. 사랑은 메아리다. 돌아오지 않는 사랑이 사랑이 아니었던 것처럼. 추억의 되새김질로 가슴 저미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가까이 붙어있어도 너무 떨어져 있어도 사랑의 메아리를 들을 수 없다. 파동이나 입자가 물질을 통과할 때 마찰이 강해지고 거리가 멀어지면 흡수되거나 에너지나 입자의 수가 줄어드는 감쇠현상이 일어난다. 메아리는 대기 속에서 소리의 감쇠작용이 작을 수록 잘 들린다. 마음의 파문이 거세게 일고 욕망의 파도가 높아지면 마음 속 메아리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불러도 대답없는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 될지언정 나는 오늘도 메아리를 찾아 헤맨다. 여린 바람 속에 혹은 생의 거센 파도 속에 실려오는 그대 목소리를 듣기 위해.

2009-03-17

[동서 교차로] 동업을 망치는 도둑 심보

동업을 망치는 건 도둑 심보다. 노력없이 어떤 것을 얻으려 하거나 부당한 이익을 노리는 게 도둑 심보다. 도둑 심보가 발동하면 자기에게 배당된 몫보다 더 많이 챙길 궁리를 하게 된다. 작은 콩을 심고 큰 콩을 원하고 무우밭에서 인삼을 찾고 닭을 기르며 봉황이 되기를 노린다. 노력하지 않고 큰 수확을 바라는 자의 심중에는 도둑 심보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쾌활하고 활달한 청년 헤르메스는 도둑의 신이다. 태어나자마자 이복형인 아폴로의 소 50마리를 훔치는 솜씨를 보여주었다. 원래 길거리의 교통과 교역 및 길을 안내하는 전령신이었는데 수완이 좋아 상업의 신이 됐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도둑의 원조는 프로메테우스다. 하늘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죄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고통을 당하며 쇠사슬에 묶여 평생 참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살았다. 도둑 심보는 마음의 감옥에 탐욕의 뿌리를 내리고 도둑질을 하면 어둠 속에 자신을 가두게 된다. 중국 사람들은 잇속에 밝다고 한다. 모이면 먹는 얘기 아니면 함께 사업할 의논을 한다. 가족이건 친구든 상관없이 뜻만 맞으면 힘합쳐 동업할 계획을 세운다. 동업은 작은 자본금으로 큰 사업을 벌일 수 있고 사업이 망했을 경우 위험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동업이나 파트너십은 말 그대로 파트너로서 다른 사람과 함께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에게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과 함께 비즈니스를 할 경우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해 주고 부족한 부분을 체워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파트너십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수익금의 배분이다. 투자액과 기여도에 따라 배당금을 받는 것이 정한 이치인데도 상대가 받는 액수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상대 몫의 피자를 내 몫으로 착각하면 동업은 날샌다. 어차피 한 판에 담을 수 있는 피자의 양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하는 기분으로 적게 먹고 상대의 몫을 더 챙겨주며 신뢰를 쌓는 것이 파트너십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는 지름길이다. '초발심시 변정각(初發心時 便正覺)'이란 처음 불도를 깨닫고 널리 중생을 교화하려는 발심이 생겼을 때가 정각을 이룬 부처님과 다르바 없다는 말이다. 사람 마음만큼 한결같지 않는 것도 없다. 평범한 중생들은 처음의 깨우침을 오래 받들지 못한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항상 초발심으로 돌아가길 기원한다. 사랑이든 사업이든 인간관계든 시작은 순수하고 감동적이며 열정적이다. 하지만 시간에 지나면 타성에 젖어 초심을 버리게 된다. 초심을 잃어버리는 순간 탐욕이 생기고 은근슬쩍 상대의 몫을 넘보는 도둑 심보가 자리잡게 된다. 세상 살이는 공평하지 않을 때가 많다. 공평하지 않는 세상을 공평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도둑 심보를 줄이는 방법이다. 땀 흘리며 일하고 일한 만큼 수확을 거두는 농사의 법칙이 동업의 기본 덕목이다. 처음 의기투합했을 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배려와 양보로 성실함을 보이면 글로벌 파트너 시대의 일원으로 사업을 성공적으로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09-02-25

[동서 교차로] 소나무가 쓰러지던 날

겉이 멀쩡하다고 속이 든든하다는 보장은 없다. 간 밤에 토네이도 주의보가 있었는데 앞 뜰의 소나무가 무참하게 쓰러졌다. 둥치가 가늘고 키 큰 나무들도 잘 버텨냈는데 우람하던 소나무가 뿌리째 뽑혔다. 흰 눈이 내리면 다른 활엽수들이 앙상한 가지를 비비고 있는 동안 짙푸른 녹색을 온 몸에 두르고 독야청청한 모습을 뽐냈었다. 20년 전 새 집으로 이사 온 뒤 애들과 함께 작은 소나무를 사다 심었다. 핼로윈이 오면 나무 아래 호박도 갖다 놓고 크리스마스가 때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알록달록하게 등을 매달았다. 나무는 애들보다 훨씬 빨리 늠늠하게 키가 자랐다. 아이들이 대학에 간 후론 사닥다리 타고 오르기 힘들어 이젠 장식을 하지 않는다. 대신 솔잎 사이로 애들과 함께 매달았던 추억의 방울 소리를 듣는다. 애들이 모두 떠난 마당을 홀로 지키기 외로왔을까. 잎이 무성해 땅 속 깊히 뿌리를 내린 줄 알았는데 잔뿌리가 몹시 상해 있었다. 그토록 깊히 상하고 병들 때까지 나무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버티고 있었던 게다. 소나무의 '솔'은 나무 중에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수리'라고 부르다가 '술'로 바뀌었고 '솔'로 변했다. 유럽이 오크 지중해는 올리브 일본은 편백이라면 소나무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나무로 칭송을 받아왔다. 목재와 건축재료는 물론 뿌리 줄기 잎 꽃가루 나무 속껍질 새순 솔씨 송진 관솔 등 버릴 것이 없다. 죽어서도 소나무 관에 묻혔으니 민족의 삶 그 자체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소나무는 자기끼리 모여 살아야 잘 자란다. 소나무 뿌리에 살고 있는 공생균은 뿌리의 영양분을 분해시켜주는 역할을 하는데 다른 활엽수가 군락에 침입하면 이 균이 소멸된다. 그래서 소나무는 잎을 나무 아래로 떨어뜨려 두껍게 쌓아서 다른 나무의 씨앗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만일 다른 씨앗이 들어와 싹을 틔울 경우 송진을 분비하여 아예 싹을 죽여버린다. 겉으로 의젓하고 품위가 있어 보이지만 뿌리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뿌리는 식물의 몸이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역할을 감당한다. 땅 속의 물이나 무기 염류를 흡수하여 시들지 않고 잘 자라도록 하는 일종의 영양기관이다. 뿌리가 약하거나 병들면 꽃이 아무리 화려하고 잎이 무성해도 결국은 죽게 된다. 나무는 나무마다 향기가 다르다. 사람처럼. 살아 있을 때도 나무 고유의 향기가 있지만 죽어서도 향기를 남긴다. 싸리나무는 달콤하고 향나무는 향냄새가 나고 은행나무는 텁텁하고 소나무는 송진 냄새를 풍긴다. 소나무는 죽어 솔향을 남기는데 나는 무슨 향기로 기억될까. 쓰러진 소나무를 살릴 방도가 없으니 애들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겉보다는 속이 단단한 나무가 돼야 한다고 말해줘야 겠다. 다른 나무를 밀어내지도 말고 밀려나지도 않는 튼튼한 나무로 자라라고 부탁할 생각이다. 어디서 왔는지 널 존재하게 하는 뿌리의 근원에 대해 더 이상 아파하지도 상처받지 말라고 말해야 겠다. 속이 튼실한 건강한 뿌리내리는 아름다운 나무로 자라야 한다고. 잘 가거라 소나무야. 헤어짐을 위하여 만남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청춘의 푸른 꿈과 염원를 담았던 늘 푸르렀던 나의 소나무여. 뽑히지 않을 나무로 자랄 아이들이 있기에 눈물없이 너를 보낸다.

2009-02-19

[동서 교차로] 딸에게 사랑을 말하다

꽃만 피고 지는게 아니다. 사랑도 피고 진다. 보름달처럼 차오르고 그믐달처럼 기운다.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이었다면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첫 키스의 달콤한 추억과 설렘은 갈비뼈가 시린 저녁나절에 읖조리는 시가 되고 노랫말이 된다. 지는 것은 슬프다. 떨어지는 꽃 잎도 낙엽도 황홀한 빛을 뿜으며 꼬리를 감추는 낙조도 애잔하고 아프다. 그러나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찬란하게 불태우고 떠나는 것들은 제각기 약속의 말들을 주고 받는다. 꽃은 꽃씨로 봄을 기약하고 낙조는 다시 떠 오를 태양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켜 섰을 뿐이다. 낙엽은 겨울 나무들의 발 등을 제 온기로 덮으며 푸른 잎을 피울 시간을 기다린다. 사랑이 계절따라 피고 지고 열매맺는 것처럼. 사랑하는 딸아 아들아 오늘은 사랑에 대해 말하련다. 지는 것이 피어있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에 대해. 처음보다 더 깊어지는 마지막을 위하여. 사랑이 처음 가슴에 작은 씨앗으로 떨어지면 새 각시처럼 가슴이 콩닥거린단다. 뭉게 구름 속을 헤메며 오색찬란한 무지개를 꿈꾸게 되지. 봄 날의 정원처럼 따스하고 정겹단다. 빛나는 한 폭의 수채화에 그리움의 시를 새기게 되지. 그 작은 씨앗이 꽃 필 즈음 사랑이란 이름의 누군가를 만나게 될테지. 그 만남은 너무 달콤해서 감당하기 힘들거야. 뜨거운 태양 아래 녹아내리는 이스팔트처럼 엉겨붙고 눈까지 멀게 될지도 몰라. 한 번 삼키면 독약 바른 초콜릿처럼 온 전신이 마비되기도 하지. 사랑은 집착이 되고 올가미가 되기도 한단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결국은 하나가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한 여름밤의 별처럼 영원히 빛나는 아름다움은 없단다. 폭우가 쏟아지고 바바람이 몰아쳐 앞이 안 보일 때도 있단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지불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포근했던 유년의 고향으로 달아나고 싶어 질거야. 그래도 참아야 돼. 사랑이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고 상처를 덮어주는 반창고란 걸 네 스스로 알기 까진. 참고 견디면 사랑은 기적이 된단다. 생명의 경이로움을 담고 있지. 사랑이 없었다면 죽어 없어 질 목숨이 어떻게 생명을 잉태할 수 있었겠니? 내 속에서 작은 발 길로 네 존재를 알리는 순간부터 사랑은 생명이고 삶을 밝히는 영원한 빛이 됐단다. 아무리 큰 희생과 대가를 지불한다 해도 목숨보다 더 큰 사랑이 내 품에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돌아보면 모두가 사랑이었다. 살아있는 용기고 희망이었어. 정붙여 사는 모든 것이 사랑이었어. 생의 고비마다 애썼던 몸짓 손짓 발자취 속에 사랑의 말들을 적어 놓았단다. 계절따라 절망과 인고의 시간을 견뎌 낸 사랑의 힘을 믿어 보렴. 세상의 모든 딸아 아들아. 이젠 말할 수 있단다. 사랑으로 고통받고 사랑 때문에 넘어졌지만 사랑이 있었기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고. 피고 지고 스쳐 간 크고 작은 사랑이 모여 내 삶은 강물처럼 흘러왔다고. 사랑이 아늑한 강물되어 생의 밑바닥까지 따스하게 덮혀 주었다고. 사랑하는 딸아 아들아 지금 사랑의 이름표를 가슴에 달아라. 사랑없이 사는 백만년 보다 사랑하며 사는 하루가 더 아름답다. 떠난 사랑 못다한 사랑 잊혀진 사랑 상처 받은 사랑 때문에 눈물 흘리지 말아라. 지는 것은 다시 핀다. 사랑의 꽃씨를 품은 사람에겐 사랑은 영원히 지지않는 꽃이다. 사랑의 꽃은 꺾지 않으면 다시 핀다.

2009-02-11

[동서 교차로] 죽어도 살아있는 나무

소금 먹은 사람이 물 쓴다. 베풀면 넘치는 게 인생 묘법이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안 온다는 말은 개만도 못한 정승 얘기다. 정승도 정승 나름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산 자의 입을 통해 한 사람의 파란만장했던 생애가 펼쳐지게 된다. 장례식은 한 인간의 삶에 마침표를 찍는 모습을 증거하는 엄숙한 현장이다. 무얼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심은 만큼 거두고 뿌린 만큼 꽃 피고 베푼 만큼 백합꽃 향기로 남는다. 영정 앞에 머리 조아리는 것은 이룩한 업적 때문이 아니다. 진지하게 살고자 노력했던 한 인간이 남긴 크고 작은 발자취에 대한 존경의 표시다. '내가 죽거던 사랑하는 사람이여 /날 위해 슬픈 노랠 부르지 마오 /내 머리맡에 장미도 심지 말고 /그늘지는 사이프러스도 심지 마소서(중략). 원하신다면 날 기억 하시고/ 아님 잊으셔도 좋습니다.' 죽음이 갈라 놓는 이별의 단절과 망각을 노래한 영국 여류 시인 크리스티나 로젯티의 시다. '뜨지도 지지도 않는 황혼 속에서 /어쩜 당신을 기억할는지 /아님 영원히 잊을는지도 모릅니다'에 이르면 죽음이 영원한 이별의 끝이라는 환상을 지울 수 없다. 서른 여섯의 꽃다운 생이 끝날 즈음 황진이는 '어우야담'에 '내 생전 화려한 것을 좋아했으니 죽은 후에는 산에다 묻지 말고 대로변에 묻어 주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숭양기구전'에 '저는 천하의 남자를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자애할 수 없으니 제가 죽거던 금수의 관도 쓰지 말고 옛 동문 밖 물가 모래밭에 시신을 내 버려서 개미와 땅강아지 여우와 살쾡이가 내 살을 뜯어먹게 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경계 삼도록 해 주세요'라고 기록된 걸 보면 일부종사하며 필부로 살지 못한 여인의 한맺힌 몸부림이 절절이 담겨있다. 후회없는 삶은 없다. 완전한 삶이 없기 때문이다. 뻐꾸기는 둥지를 틀지 않고 혼자 산다. 수컷은 암컷과 교접을 한 뒤 날아가버리고 암컷은 때까치나 지빠귀 등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 뻐꾹뻐꾹 우는 뻐꾸기의 울음 소리가 구슬프게 들리는 건 둥지없이 떠도는 처량함 때문일 것이다. 천국에서 다시 만난다해도 극락 환생한다 해도 이 땅에서의 이별은 뻐꾸기 울음처럼 슬프다. 한 인간의 삶을 접는 순간에 애통해 하며 겸손해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의 일생을 요약하긴 쉽지 않다. 어쩌면 죽은 후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있는지 모른다. 장례식에서 간추린 몇 줄이 생의 이력서라면 적지 못한 채 꽃향기로 남는 것이 묘비에 새길 문구일 것이다. 어머님이 돌아 가신 후 딸과 자주 여행을 하기로 약속했다. 추억의 나무 심기를 할 작정이다. 어머니는 살아 생전에 내 삶 속에 크고 작은 나무들을 심어 주셨다. 가뭄과 거센 비비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단단하고 늘 푸른 나무들이 자라 우람한 숲이 되었다. 이제 내가 그 나무를 옮겨 심을 차례다. 영원히 죽지 않는 나무 한 그루를 딸 애 가슴에 심어 줄 생각이다. 죽어도 영원히 살아있는 별보다 더 빛나고 눈부신 사랑이란 이름의 나무 한 그루를.

2009-01-30

[동서 교차로] 죽어도 살아있는 나무

소금 먹은 사람이 물쓴다. 베풀면 넘치는 게 인생 묘법이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 성시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안 온다는 말은 개만도 못한 정승 얘기다. 정승도 정승 나름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산 자의 입을 통해 한 사람의 파란만장했던 생애가 펼쳐지게 된다. 장례식은 한 인간의 삶에 마침표를 찍는 모습을 증거하는 엄숙한 현장이다. 무얼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심은 만큼 거두고 뿌린 만큼 꽃 피고, 베푼 만큼 백합꽃 향기로 남는다. 영정 앞에 머리 조아리는 것은 이룩한 업적 때문이 아니다. 진지하게 살고자 노력했던 한 인간이 남긴 크고 작은 발자취에 대한 존경의 표시다. 작지만 진하게, 여리지만 깊숙하게, 자신보다 남을 위해 베푼 사람이 떠나는 길은 따뜻한 환송으로 넘쳐날 것이다.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사람이여/ 날 위해 슬픈 노랠 부르지 마오/ 내 머리맡에 장미도 심지 말고/ 그늘지는 사이프러스도 심지 마소서(중략) 원하신다면 날 기억 하시고 /아님 잊으셔도 좋습니다./ 죽음이 갈라 놓는 이별의 단절과 망각을 노래한 영국 여류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시다. 뜨지도 지지도 않는 황혼 속에서/ 어쩜 당신을 기억할런지/ 아님 영원히 잊을런지도 모릅니다란 대목에 이르면 죽음이 영원한 이별의 끝이라는 환상을 지울 수 없다. 서른 여섯의 꽃다운 생이 끝날 즈음 황진이는 ‘어우야담’에 “내 생전 화려한 것을 좋아했으니 죽은 후에는 산에다 묻지 말고 대로 변에 묻어 주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숭양기구전’에는 “저는 천하의 남자를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자애할 수 없으니 제가 죽거든 금수의 관도 쓰지 말고 옛 동문 밖 물가 모래밭에 시신을 내 버려서 개미와 땅강아지, 여우와 살쾡이가 내 살을 뜯어먹게 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경계 삼도록 해 주세요.” 라고 기록된 걸 보면 일부종사하며 필부로 살지 못한 여인의 한맺힌 몸부림이 절절이 담겨있다. 후회없는 삶은 없다. 완전한 삶이 없기 때문이다. 뻐꾸기는 둥지를 틀지 않고 혼자 산다. 수컷은 암컷과 교접을 한 뒤 날아가버리고 암컷은 때까치나 지빠귀 등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 뻐꾹 뻐꾹 우는 뻐꾸기의 울음 소리가 구슬프게 들리는 건 둥지없이 떠도는 처량함 때문일 것이다. 남의 둥지에 버리고 온 어린 새끼들이 눈에 밟혀 목놓아 우는 회한의 눈물이 아닐까. 천국에서 다시 만난다해도, 극락 환생한다 해도 이 땅에서의 이별은 뻐꾸기 울음처럼 슬프다. 한 인간의 삶을 접는 순간에 애통해 하며 겸손해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의 일생을 요약하긴 쉽지 않다. 어쩌면 죽은 후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있는지 모른다. 장례식에서 간추린 몇 줄이 생의 이력서라면 적지 못한 채 꽃향기로 남는 것이 묘비에 새길 문구일 것이다. 어머님이 돌아 가신 후 딸과 자주 여행을 하기로 약속했다. 추억의 나무 심기를 할 작정이다. 어머니는 살아 생전 내 삶 속에 크고 작은 나무들을 심어 주셨다. 가뭄과 거센 비비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단단하고 늘 푸른 나무들이 자라 우람한 숲이 되었다. 이제 내가 그 나무를 옮겨 심을 차례다. 영원히 죽지 않는 나무 한 그루를 딸 애 가슴에 심어 줄 생각이다. 죽어도 영원히 살아있는, 별보다 더 빛나고 눈부신 사랑이란 이름의 나무 한 그루를.

2009-01-28

[동서 교차로] 우리의 시대는 끝나고 …

앉을 자리, 설 자리, 누울 자리를 알면 살기가 한결 편해진다. 들어 설 자리, 나올 자리도 마찬가지다. 서두르거나 너무 늦게까지 눌러 있으면 일내기 십상이다. 때를 놓치면 일을 망치거나 망신당한다. 몸으로 때우는 일엔 나는 둔재 중에 둔재다. 그 중에도 뮤지컬 체어(Musical Chair)는 제일 못하는 게임 가운데 하나다. 음악소리에 맞춰 빙빙 도는 것 까진 잘하는데 노래가 멈추면 잽싸게 엉덩이를 들이밀지 못해 일찌감치 퇴출(?)당한다. 초장에 동반 탈락된 친구들과 노닥 거리며 즐기는데 비해 악착같이 살아남은 내 짝궁은 마지막 의자를 놓친 뒤 분을 못삭여 이를 박박 갈 곤 했다. 인생이라는 게임의 의자가 여럿이란 건 나중에 알게 됐다. 하나 뿐인 의자에 못앉아 안절부절 하는 것 보단 새로운 의자를 찾는게 수월했다. 이겨야 할 게임, 져야 할 게임, 빨리 끝내야 하는 게임, 포기하거나 져 주는 것이 이기는 게임, 아예 시작을 말아야 했던 게임들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어떤 표준에 의해 구분된 일정한 기간이 시대다. 시대란 말 속에는 함께 공유한 시간의 묶음이 담겨 있다. 함께 살았다 해도 시대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시대정신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시대정신(Zeitgeist)은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적으로 표출되는 정신적 태도나 양식 또는 이념을 뜻한다. 시대정신은 그 시대의 정의다. 시대 정신이 당대에서 보다 후대의 역사가에 의해 객관적으로 평가되는것도 이 때문이다. 서유럽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를 ‘르네상스 시대’라고 구분짓는다. 르네상스 시대란 200년이란 시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르네상스’라는 시대 정신을 가진 시간을 의미한다. 시대가 시대정신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이 시대를 구분짓게 된다. 헤겔은 시대 정신을 역사의 과정과 결부시켜 설명했다. 개인의 정신세계를 넘어선 보편적 정신 세계가 역사 속에서 자기를 전개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취하는 형태로 시대정신을 설명했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지 일년이 지났지만 불행히도 이명박 시대는 열리지 않고 있다. 시대 정신을 공유하지 않고 독점하려는 편견과 고집 때문이다. 역사는 개인의 발자취를 기록하길 원치 않는 데도 개인의 족적을 남기는데 연연했다. 주인이 바뀌면 세 든 시람들이 방을 빼주는 것이 도리인데, 오히려 주인 노릇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대의 흐름을 쫒아 청정하고 맑은 물이 흐르도록 물 꼬를 터주지 않으면 새로운 시대정신을 이끌어 내기 힘들다. 이제 오바마 시대가 열렸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기에 앞서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기대와 인내심을 갖고 오바마시대가 이룩할 새로운 시대정신에 희망을 걸 생각이다. ‘우리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자식들에게 또 후배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작정이다. ‘우리’라고 명칭한 세대들이 힘들게 만든 열쇠를 넘겨 줄 시간이 됐는지 모른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어떤 단체에서 너무 오래 눌러 있지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새로운 모델이 쌩쌩 달릴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주는게 현명하다. 한 시대의 끝은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솔선수범해서 잘 닦아 넘겨 주면 깨끗하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지 않겠는가. 때를 알고 사라질 줄 아는 노병의 뒷 모습은 정말 멋지다.

2009-01-21

[동서 교차로] 노병의 멋진 뒷모습

앉을 자리 설 자리 누울 자리를 알면 살기가 한결 편해진다. 들어 설 자리 나올 자리도 마찬가지다. 서두르거나 너무 늦게까지 눌러 있으면 일내기 쉽상이다. 때를 놓치면 일을 망치거나 망신 당한다. 몸으로 떼우는 일엔 나는 둔재 중에 둔재다. 그 중에도 뮤지컬 체어(Musical Chair)는 제일 못하는 게임 중의 하나다. 음악소리에 맞춰 빙빙 도는 것까진 잘하는데 노래가 멈추면 잽싸게 엉덩이를 들이밀지 못해 일찌감치 퇴출(?)당한다. 초장에 동반 실각(?)한 친구들과 노닥거리며 즐기는데 비해 악착같이 살아남은 내 짝궁은 마지막 의자를 놓친 뒤 분을 못삭여 이를 박박 갈곤 했다. 인생이라는 게임의 의자가 여럿이란 건 나중에 알게 됐다. 하나 뿐인 의자에 못 앉아 안절부절 못하는 것보단 새로운 의자를 찾는 게 수월했다. 이겨야 할 게임 져야 할 게임 빨리 끝내야 하는 게임 포기 하거나 져 주는 것이 이기는 게임 아예 시작을 말아야 했던 게임들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어떤 표준에 의해 구분된 일정한 기간이 '시대(Era)'다. 시대란 말 속에는 함께 공유한 시간의 묶음이 담겨있다. 함께 살았다 해도 시대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시대정신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시대정신(Zeitgeist)은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적으로 표출되는 정신적 태도나 양식 또는 이념을 뜻한다. 시대정신은 그 시대의 정의(Justice)다. 시대 정신이 당대에서 보다 후대의 역사가에 의해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 유럽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를 '르네상스 시대'라고 구분 짓는다. 르네상스 시대란 200년이란 시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르네상스'라는 시대 정신을 가진 시간을 의미한다. 시대가 시대정신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이 시대를 구분짓게 된다. 헤겔은 시대 정신을 역사의 과정과 결부시켜 설명했다. 개인의 정신세계를 넘어선 보편적 정신 세계가 역사 속에서 자기를 전개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취하는 형태로 시대정신을 설명했다. 불행하게도 이명박 정권이 탄생한지 1년이 지났지만 이명박 시대가 열리지 않았다. 시대 정신을 공유하지 않고 독점하려는 편견과 고집 때문이다. 역사는 개인의 발자취를 기록하길 원치 않는 데도 개인의 족적을 남기는데 연연했다. 주인이 바뀌면 세 든 시람들이 방을 빼주는 것이 좋은 데도 오히려 주인 노릇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대의 흐름을 좆아 청정하고 맑은 물이 흐르도록 물 꼬를 터주지 않으면 새로운 시대정신을 이끌어 내기 힘들다. 오바마 시대가 열렸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기에 앞서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기대와 인내심을 갖고 오바마시대가 이룩할 새로운 시대정신에 희망을 걸 생각이다. '우리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자식들에게 후배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작정이다. '우리'라고 명칭한 세대들이 힘들게 만든 열쇠를 넘겨 줄 시간이 된지 모른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어떤 단체에서 너무 오래 눌러 있지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새로운 모델이 쌩쌩 달릴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주는게 현명하다. 한 시대의 끝은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솔선수범해서 잘 닦아 넘겨 주면 깨끗하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지 않겠는가. 때를 알고 사라질 줄 아는 노병의 뒷 모습은 정말 멋지다.

2009-01-21

[동서 교차로] 호랑이 등을 타라

저지르고 보는 게 내 스타일이다. 덕분에 잃는 것도 많지만 남는 것도 있다. 열 번 저지르다 한 번만 성공하면 한 번도 시도 안 한 사람보다 낫다는 게 내 계산법이다. 요즘같은 불경기엔 일 벌리면 큰 일 난다. 가계든 사업이든 바짝 몸을 사리고 정신 차려야 살아남는다. 안 쓰고 안 입고 덜 먹는 것이 불경기를 견디는 방법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안 하는 것만이 극복하는 방법일까. '죽겠다'며 두 손 놓고 앉아 있으면 정말로 죽는 일이 발생할 지 모른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옛 말은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용기를 잃지 않으면 해결책을 찿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내 경우는 겁이 많아 호랑일 만나면 잡아 먹히기 전에 기절해 죽을 확률이 높다. 산에서 무서운 짐승을 만나면 보자기나 코트를 펼쳐 일단 덩치를 크게 보이게 한 후 자극을 주지 않는게 좋다고 한다. 호랑이에게 '형님 형님'하며 싹싹 빌어 풀려난 설화는 믿기 어렵지만 깜빡 잠든 사이 줄행랑을 칠 수도 있을 것이다. 풀리는 건 하나도 없고 뉴스를 보면 했던 말 반복하며 그 타령이 그 타령이다. 지루하다 못해 짜증이 난다. 바닥을 칠 때 까지 당분간은 이 짜증스런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들에겐 하루가 일 년처럼 길다. 불황기에는 마케팅 비용을 늘려야 한다는 학계 업계의 충고도 배부른 사람들의 얘기다. 매출이 줄고 수익이 없는 상황에서 결제할 대금조차 없는 사람들에겐 물 안 마시고 떡먹다 체 해 죽으라는 말과 같다. 내 가짜 별명은 원예의 귀재(Green Thumb)다. 우리집 실내에는 푸른 나무와 화분들이 많다. 지지리도 바쁜 내 일상을 아는 사람들은 의아해 하며 칭송(?)까지 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죽을 낌새가 보이면 얼른 갖다버리고 새 걸 구해다 놓는것. 그러니 실내 정원은 싱싱한 화초로 늘 가득하다. 물론 새로 사려면 돈 드니까 안 죽이려고 엄청 노력한다. 하지만 회생의 여지가 50%를 밑돌면 얼른 버린다. 알뜰한 내 친구는 말라 비틀어진 화분을 못 버리고 살리려고 애쓰다 남편 눈에 띄어 한소릴 듣는다. 나같은 사람도 약간의 문제성이 있지만 포기도 지혜고 용기일 때가 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결단이 필요하다. 무엇을 접고 뭘 펼쳐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려해야한다. 올 해 하반기까진 온 나라와 가정 직장과 사업체가 경제 비상 전시체제로 운영될 것 같다. 실속 위주로 덩치를 줄이고 불필요하거나 회생이 희박한 것은 과감하게 자르는 용기가 필요하다.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 있겠지만 고통을 통해 반성의 기회로 거듭날 수 있다. 멈춰서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을 정리하고 호흡을 조절하는 것도 좋다. 숨고르기를 잘하면 언덕 길을 올라가기가 한결 쉬워질 것이다. 이 참에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를 짚어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펼칠 계획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덜 피곤하게 위기를 맞을 수 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사람처럼 혼비백산 허둥대는 사람에겐 올해는 긴 시간이 틀림없다. 하지만 차분하게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사람에겐 소생의 기회로 역전이 가능하다. 호랑이에게 안 잡혀 먹히려면 호랑이 등에 뛰어오르는 수 밖에 없다. 하늘이 무너져 솟아 날 구멍 찿는 것보단 호랑이 등을 타는 게 쉽지 않을까.

2009-01-13

[동서 교차로] 마이너스에서 다시 시작을···

고백은 아무에게나 하는 게 아니다. 사랑 하지 않는 남자 어깨에 매달려 울어봤자 헛 고생일 뿐이다. 이심전심, 마음의 끈이 닿아있어야 상처를 드러낼 용기가 생긴다. 어릴 적엔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혼자있을 땐 울지 않았다. 마을 어귀로 달려가 프라타너스 나무 밑으로 엄마 얼굴이 보이면 그 때 엉엉 울기 시작했다. 살아가면서 속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상대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는 증거다. 3년 가까이 칼럼을 쓰면서 두 자식이 단골 메뉴로 등장했지만 큰 딸에 대한 얘기는 별로 쓰지 않았다. 굳이 감추고 덮어야 할 이유도 없지만 새라 페일린처럼 유세장에 안고 다니며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딸 리사는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났다. 새 해 첫 칼럼에 그 애 이야기를 쓰는 건 나보다 더 힘든 분들에게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후 12시간에 창자를 뚫는 수술. 심장 판막에 동전 크기의 구멍 확인. 발육부진 장애아. 움직이지 못하고 여덟 살을 못 넘긴다는 의사 진단. 18개월부터 장애아 센터에서 재활교육. 심장판막 이식수술 성공. 지능지수 70. 명문 고등학교 특수반 졸업. 장애아 올림픽 수영선수, 레고게임과 퍼즐맞추기 신동(?), 베이커리에서 10년 근무. 감성지수 150(?), 행복지수 만점, 대충 추린 큰 딸의 이력서다. 우리 식구는 새해를 ‘리사 구하기(?) 작전’으로 시작했다. 지난해 말부터 감기 증세가 있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방학이라 모처럼 집에 온 동생들과 늦게까지 비디오 보고 게임을 즐기며 다소 무리를 했는지 기관지염이 악화돼 폐렴 증상를 보이기 시작했다. 리사가 아프면 우리 식구는 긴장한다. 새해 전야제를 위해 준비한 캐비아와 샴페인 대신 항생제와 기침약을 들고 애들은 순번을 정해 밤 세워 간호를 했다. 온 식구가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응급실을 방불할 정도로 손 발이 척척 맞아 떨어졌다. 모두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콜록거리며 뜬 눈으로 밤을 세고 맞은 새 해 아침은 드없이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피곤했지만 너무 행복했다. 지키고 지켜줘야 할 가족들이 있다는 고마움에 목이 메였다. 그동안 허망하게 높히 쌓았던 욕망의 바벨탑을 부수며 낮은 곳에서 솟아오는 작은 희망의 목소리에 귀기울였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출발도 무성한 숲이 될거라는 희망의 목소리를 들었다. 첫 남편을 암으로 잃었을 때 호스피스 간호사가 ‘착한 사람에게 왜 나쁜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선물했다. 랍비인 저자 헤럴드 쿠쉬너는 조로증을 앓는 아들이 10대 초반에 죽은 뒤 이 책를 썼다. ‘선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진 짓하며 산 적도 없는데 왜 내게만 이런 불행이 일어났을까’라는 질문의 해답은 없다. 분명한 것은 내가 당하는 불행은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 옭아메는 죄의 덫에서 풀려나는 길은 스스로 죄의 덧에서 놓여나는 길 밖에 없다. 인생은 거래처가 아니다. 이만큼 잘했으니 잘 살고 복을 받아야 한다는 공식이 없다. 마이너스에서 출발한 딸의 삶이 많은 플러스를 선물했다. 리사는 짐이 아니라 우리를 묶어주는 단단한 끈이고 축복이다. 짐은 버거워 하는 자에겐 무겁고 힘들다. 하지만 그 무게를 감당하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의 삶엔 깊이와 용기를 준다. 아픔도 슬픔도 고통도 함께 껴안으면 털코트처럼 따뜻해진다는 바람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새해인사로 바친다.

2009-01-07

[동서 교차로] 나의 첫 딸 이야기

고백은 아무에게나 하는 게 아니다. 사랑 안 하는 남자 어깨에 매달려 울어봤자 헛 고생일 뿐이다. 이심전심의 끈이 닿아 있어야 상처를 드러낼 용기가 생긴다. 어릴 적엔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혼자있을 땐 울지 않는다. 엄마 얼굴이 보이면 그 때부터 울기 시작한다. 살아가면서 속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상대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는 증거다. 3년 가까이 칼럼을 쓰면서 두 자식이 단골 메뉴로 등장했지만 큰 딸에 대한 얘기는 별로 쓰지 않았다. 감추고 덮어야 할 이유도 없지만 세라 페일린처럼 유세장에 안고 다니며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큰 딸 리사는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났다. 새 해 첫 칼럼에 그 애 이야기를 쓰는 건 나보다 더 힘든 분들에게 위로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생후 12시간에 창자를 뚫는 수술. 심장 판막에 동전 크기의 구멍 확인. 발육부진 장애아. 움직이지 못하고 여덟 살을 못 넘긴다는 의사 진단. 18개월부터 장애아 센터에서 재활교육. 심장판막 이식수술 성공. 지능지수 70. 명문 고등학교 특수반 졸업. 장애아 올림픽 수영선수 레고게임과 퍼즐맞추기 신동(?) 베이커리에서 10년 근무. 감성지수 150(?) 행복지수 만점 대충 추린 큰 딸의 이력서다. 개인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식구는 새해를 '리사 구하기(?) 작전'으로 시작했다. 연말부터 감기 증세가 있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방학이라 모처럼 집에 온 동생들과 늦게까지 비디오 보고 게임 즐기며 무릴했는지 기관지염으로 악화돼 폐렴 증상를 보이기 시작했다. 리사가 아프면 우리 식구는 긴장한다. 새해 전야제를 위해 준비한 캐비아와 샴페인 대신 항생제와 기침약을 들고 애들은 순번을 정해 밤 새워 간호를 했다. 온 식구가 한 마음으로 똘똘 뭉쳐 응급실을 방불할 정도로 손발이 척척 맞았다. 모두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콜록거리며 뜬 눈으로 밤을 지내고 맞은 새해 아침은 더없이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피곤했지만 모두 행복해 보였다. 지켜줘야 할 가족들이 있다는 고마움에 목이 메였다. 그동안 허망하게 높이 쌓았던 욕망의 바벨탑을 부수며 낮은 곳에서 솟아오는 작은 희망의 목소리를 모두 들었다. 첫 남편을 암으로 잃었을 때 호스피스 간호사가 '착한 사람에게 왜 나쁜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선물했다. 랍비인 저자 헤럴드 쿠쉬너는 조로증을 앓는 아들이 10대 초반에 죽은 뒤 이 책을 썼다. '선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진 짓하며 산 적도 없는데 왜 내게만 이런 불행이 일어났을까'라는 질문의 해답은 없다. 분명한 것은 내가 당하는 불행은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 옭아매는 덫에서 풀려나는 길은 스스로를 놓아주는 길 밖에 없다. 인생에는 이만큼 잘했으니 의당 복받아야한다는 공식은 없는 것을 깨달았다. 개인적으로 마이너스로 출발한 나의 딸은 내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플러스를 선물했던 것이다. 개인적인 아픔 슬픔 고통 그리고 숨기고 싶은 것까지 꺼내어 나보다 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새해 희망과 무엇보다 다시 출발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싶어 새해인사로 이 칼럼을 선물하고 싶다.

2009-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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