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교차로] 우리의 시대는 끝나고 …
이기희/윈드화랑대표·작가
몸으로 때우는 일엔 나는 둔재 중에 둔재다. 그 중에도 뮤지컬 체어(Musical Chair)는 제일 못하는 게임 가운데 하나다. 음악소리에 맞춰 빙빙 도는 것 까진 잘하는데 노래가 멈추면 잽싸게 엉덩이를 들이밀지 못해 일찌감치 퇴출(?)당한다. 초장에 동반 탈락된 친구들과 노닥 거리며 즐기는데 비해 악착같이 살아남은 내 짝궁은 마지막 의자를 놓친 뒤 분을 못삭여 이를 박박 갈 곤 했다.
인생이라는 게임의 의자가 여럿이란 건 나중에 알게 됐다. 하나 뿐인 의자에 못앉아 안절부절 하는 것 보단 새로운 의자를 찾는게 수월했다. 이겨야 할 게임, 져야 할 게임, 빨리 끝내야 하는 게임, 포기하거나 져 주는 것이 이기는 게임, 아예 시작을 말아야 했던 게임들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어떤 표준에 의해 구분된 일정한 기간이 시대다. 시대란 말 속에는 함께 공유한 시간의 묶음이 담겨 있다. 함께 살았다 해도 시대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시대정신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시대정신(Zeitgeist)은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적으로 표출되는 정신적 태도나 양식 또는 이념을 뜻한다.
시대정신은 그 시대의 정의다. 시대 정신이 당대에서 보다 후대의 역사가에 의해 객관적으로 평가되는것도 이 때문이다.
서유럽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를 ‘르네상스 시대’라고 구분짓는다. 르네상스 시대란 200년이란 시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르네상스’라는 시대 정신을 가진 시간을 의미한다.
시대가 시대정신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이 시대를 구분짓게 된다. 헤겔은 시대 정신을 역사의 과정과 결부시켜 설명했다. 개인의 정신세계를 넘어선 보편적 정신 세계가 역사 속에서 자기를 전개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취하는 형태로 시대정신을 설명했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지 일년이 지났지만 불행히도 이명박 시대는 열리지 않고 있다. 시대 정신을 공유하지 않고 독점하려는 편견과 고집 때문이다. 역사는 개인의 발자취를 기록하길 원치 않는 데도 개인의 족적을 남기는데 연연했다.
주인이 바뀌면 세 든 시람들이 방을 빼주는 것이 도리인데, 오히려 주인 노릇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대의 흐름을 쫒아 청정하고 맑은 물이 흐르도록 물 꼬를 터주지 않으면 새로운 시대정신을 이끌어 내기 힘들다.
이제 오바마 시대가 열렸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기에 앞서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기대와 인내심을 갖고 오바마시대가 이룩할 새로운 시대정신에 희망을 걸 생각이다. ‘우리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자식들에게 또 후배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작정이다.
‘우리’라고 명칭한 세대들이 힘들게 만든 열쇠를 넘겨 줄 시간이 됐는지 모른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어떤 단체에서 너무 오래 눌러 있지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새로운 모델이 쌩쌩 달릴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주는게 현명하다.
한 시대의 끝은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솔선수범해서 잘 닦아 넘겨 주면 깨끗하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지 않겠는가. 때를 알고 사라질 줄 아는 노병의 뒷 모습은 정말 멋지다.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