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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바보들의 천국

이기희/윈드화랑 대표·작가

진짜 바보와 가짜 바보는 다르다. 진짜 바보는 세상 물정을 모르지만 가짜 바보는 세상 물정을 훤히 꿰뚫고 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바보 노릇을 하는 것뿐이다.

‘바보들의 행진’은 UCLA 영화과에서 한국인으로 최초로 학위를 받은 유학파 하길종 감독의 대표작인데 1970년대 한국 대학가의 경직된 사회상과 젊은이들의 방황을 그린 영화다. 그 시대 답답한 현실 속에서 고뇌하는 대학생들의 꿈과 사랑, 좌절을 낭만적이고 애상적으로 담아 낸 화제작이다.

철학과에 재학 중인 병태(윤문섭)는 미팅에서 영자(이영옥)라는 불문과 여대생과 사귀게 되지만 영자는 병태가 돈도 없고 전망도 없다는 이유로 절교를 선언한다. 부잣집 외아들인 병태의 친구 영철(하재영)은 적성에 안 맞는 대학생활과 전국 대학에 내려진 휴교령으로 갈 곳 없는 친구들과 술만 퍼 마시며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술에 취하면 동해바다로 고래사냥을 가고 싶다던 영철은 어느 날 정말로 동해바다로 떠나 자살을 하고 병태는 군대를 가게 된다. 병태를 태운 입영열차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나타난 영자가 열차의 창문에 매달려 키스하는 장면은 불멸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최인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청년문화의 상징인 청바지·통기타·생맥주의 등장과 함께 큰 호응을 얻었는데 송창식이 부른 ‘고래사냥’은 그 시대를 살았던 청년들의 애환과 꿈을 담고 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중략)/ 간 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중략)/ 우리의 사랑이 깨진다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다 해도/ 모두들 가슴에 뚜렷이 있다 /한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살다 보면 바보처럼 살아야 할 때가 있다. 역사는 인간의 독선과 아집, 오만함에 경종의 메시지를 보내지만 인간은 바보처럼 그 실수를 되풀이한다.

‘지식인됨의 괴로움’은 문학과 지성사 대표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해 온 김병익 선생이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지식 사회 속에서 살아온 저자의 내면적 성찰과 사유의 행로를 적은 글이다.

저자는 그 시대의 지적 풍토를 돌이켜보며 젊은 시절의 억압적인 상황에 대한 고뇌, 변혁과 변화를 위한 이념들의 싸움을 관찰하며 느끼던 활력과 기대, 그리고 해체와 변모로 또다시 달라진 지식 사회의 정황을 바라보는 심안을 진지하게 서술하고 있다.

인생이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인생을 속인다. 속고 속이고 살면서도 그 속음을 넘어 희망의 씨앗을 가슴에 담고 사는 게 지식인 됨의 괴로움일 것이다.

해가 중천에 떠 있으면 뜨겁게 달아오른다. 청춘의 열기가 사라진 밤의 해변은 뭍 별들의 합창이 다정하게 울려 퍼진다.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꿈꾸는 것들 속에 있다. 비껴 갈 수 없는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 후회와 회한으로 지난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 해도 예쁜 고래 한 마리 키울 수 있다면 바보들의 천국에서 행진을 계속해도 무방할 것이다.

머무르고 싶은 순간들을 멈출 수 없다 해도 비늘 검푸른 고래 한 마리 가슴 속에 살아 퍼덕이면, 꿈을 찾아 언제든지 동해바다로 떠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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