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교차로] 직선과 곡선
이기희/윈드화랑 대표·작가
최근 네델란드의 건축회사 UN 스튜디오가 설계한 중동 모던아트 박물관(Museum of Middle East Modern Art)은 곡선의 미를 극대화한 건축물이다.
모래언덕을 연상시키는 설계로 두바이의 컬처 빌리지 내에 들어설 예정인데 건물의 형태는 사각이라는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웅대한 조형물이 될 것이다. UN 스튜디오는 뉴욕의 파이브 프랭클린 플레이스(Five Franklin Place) 대만의 타 리 플라자(Ta Lee Plaza) 등 곡선의 아름다움을 도시 미관과 잘 어울리게 조화한 건축물 설계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회사다.
미국에 살면서 제일 편한 건 길찾기다. 구획정리가 잘 돼 있어 가로 세로만 분별할 줄 알면 길찾기가 수월하다. 요즘은 맵퀘스트와 내비게이터가 있어 누워서 떡먹기다.
한국에서 국제 피플투피플 클럽에서 활동할 때 제일 난감했던 일은 외국인 친구들이 주소 두 줄 들고와서 집찾아 달라고 할 때였다. 거미줄처럼 얽혀 미로같이 돌고 도는 한국의 골목길을 귀신이 아니고야 어찌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골목길'하면 벌써 가슴이 싸해지며 따뜻해진다. 꼬불꼬불 꼬부랑 할머니 등같이 굽은 골목길은 내 유년의 추억 속에 있는 길이다. 개울에 멱감으러 가자고 숨가쁘게 동무네 싸릿문으로 달려가던 길이고 일만이 아재가 제일 먼저 핀 진달래꽃을 꺾어 건네주던 길이었다.
해지는 줄도 모르고 못치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숨바꼭질 땅따먹기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골목 어귀에 엄마가 나타나 저녁 먹자고 손짓을 했다.
누렁이 황소가 느릿느릿 길을 가로막는 골목길 끄트머리로 알록달록 장식한 꽃상여가 사라질 때면 알지 못할 슬픔에 차올라 홀로 울먹거렸다. 내 유년의 추억속엔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이 자리하고 있다.
꺾이거나 굽은데가 없는 선이 직선이다. 직선은 두 점사이를 가장 짧게 연결한다. 직선으로 통하는 길은 편리하고 가깝다. 직선으로 가면 빨리 도착한다.
직선은 인위적으로 창조한 선이다. 자연에 직선은 없다. 자연이나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은 곡선에서 시작된다. 샘물처럼 솟아나는 정(情)도 곡선이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건 부드러운 곡선에서 출발한다.
큐피트가 쏜 사랑의 화살은 짜릿했지만 너무 빨리 날아와 쉽게 사라졌다. 둥글게 포물선을 그리며 심장으로 파고든 사랑은 끈질기고 아름다웠다. 그 더디고 아둔한 사랑을 하며 들꽃의 생명이 소중한 것을 깨달았고 사랑이 별빛같은 슬픔이란 걸 알게 됐다.
굽으면 만난다. 작은 점이 되어 다시 만난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마주보고 허리굽히면 곡선되어 다시 만나게 된다. 마음의 허리를 굽히면 둥근 보름달로 원이 되어 한마음으로 손잡게 된다.
점은 그냥 점일 뿐이다. 두 점을 긋고 연결해야 선이 생긴다. 직선은 외롭다. 평행선은 만날 수 없다. 느리지만 기다리는 마음으로 생의 골목길을 돌아가면 보름달처럼 둥글게 차오르는 그대 모습을 볼 수 있으리. 자석처럼 끌어 당겨 영혼을 굽게하는 그대 속마음을 만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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