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동서 교차로] 나의 첫 딸 이야기

이기희/윈드화랑 대표·작가

고백은 아무에게나 하는 게 아니다. 사랑 안 하는 남자 어깨에 매달려 울어봤자 헛 고생일 뿐이다.

이심전심의 끈이 닿아 있어야 상처를 드러낼 용기가 생긴다. 어릴 적엔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혼자있을 땐 울지 않는다. 엄마 얼굴이 보이면 그 때부터 울기 시작한다.

살아가면서 속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상대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는 증거다. 3년 가까이 칼럼을 쓰면서 두 자식이 단골 메뉴로 등장했지만 큰 딸에 대한 얘기는 별로 쓰지 않았다. 감추고 덮어야 할 이유도 없지만 세라 페일린처럼 유세장에 안고 다니며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큰 딸 리사는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났다. 새 해 첫 칼럼에 그 애 이야기를 쓰는 건 나보다 더 힘든 분들에게 위로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생후 12시간에 창자를 뚫는 수술. 심장 판막에 동전 크기의 구멍 확인. 발육부진 장애아. 움직이지 못하고 여덟 살을 못 넘긴다는 의사 진단. 18개월부터 장애아 센터에서 재활교육. 심장판막 이식수술 성공.

지능지수 70. 명문 고등학교 특수반 졸업. 장애아 올림픽 수영선수 레고게임과 퍼즐맞추기 신동(?) 베이커리에서 10년 근무. 감성지수 150(?) 행복지수 만점 대충 추린 큰 딸의 이력서다. 개인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식구는 새해를 '리사 구하기(?) 작전'으로 시작했다. 연말부터 감기 증세가 있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방학이라 모처럼 집에 온 동생들과 늦게까지 비디오 보고 게임 즐기며 무릴했는지 기관지염으로 악화돼 폐렴 증상를 보이기 시작했다.

리사가 아프면 우리 식구는 긴장한다. 새해 전야제를 위해 준비한 캐비아와 샴페인 대신 항생제와 기침약을 들고 애들은 순번을 정해 밤 새워 간호를 했다. 온 식구가 한 마음으로 똘똘 뭉쳐 응급실을 방불할 정도로 손발이 척척 맞았다.

모두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콜록거리며 뜬 눈으로 밤을 지내고 맞은 새해 아침은 더없이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피곤했지만 모두 행복해 보였다.

지켜줘야 할 가족들이 있다는 고마움에 목이 메였다. 그동안 허망하게 높이 쌓았던 욕망의 바벨탑을 부수며 낮은 곳에서 솟아오는 작은 희망의 목소리를 모두 들었다.

첫 남편을 암으로 잃었을 때 호스피스 간호사가 '착한 사람에게 왜 나쁜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선물했다.

랍비인 저자 헤럴드 쿠쉬너는 조로증을 앓는 아들이 10대 초반에 죽은 뒤 이 책을 썼다. '선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진 짓하며 산 적도 없는데 왜 내게만 이런 불행이 일어났을까'라는 질문의 해답은 없다. 분명한 것은 내가 당하는 불행은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 옭아매는 덫에서 풀려나는 길은 스스로를 놓아주는 길 밖에 없다.

인생에는 이만큼 잘했으니 의당 복받아야한다는 공식은 없는 것을 깨달았다. 개인적으로 마이너스로 출발한 나의 딸은 내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플러스를 선물했던 것이다.

개인적인 아픔 슬픔 고통 그리고 숨기고 싶은 것까지 꺼내어 나보다 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새해 희망과 무엇보다 다시 출발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싶어 새해인사로 이 칼럼을 선물하고 싶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