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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교차로] 딸에게 사랑을 말하다

Los Angeles

2009.02.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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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윈드화랑대표·작가
꽃만 피고 지는게 아니다. 사랑도 피고 진다. 보름달처럼 차오르고 그믐달처럼 기운다.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이었다면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첫 키스의 달콤한 추억과 설렘은 갈비뼈가 시린 저녁나절에 읖조리는 시가 되고 노랫말이 된다.

지는 것은 슬프다. 떨어지는 꽃 잎도 낙엽도 황홀한 빛을 뿜으며 꼬리를 감추는 낙조도 애잔하고 아프다. 그러나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찬란하게 불태우고 떠나는 것들은 제각기 약속의 말들을 주고 받는다.

꽃은 꽃씨로 봄을 기약하고 낙조는 다시 떠 오를 태양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켜 섰을 뿐이다. 낙엽은 겨울 나무들의 발 등을 제 온기로 덮으며 푸른 잎을 피울 시간을 기다린다. 사랑이 계절따라 피고 지고 열매맺는 것처럼.

사랑하는 딸아 아들아 오늘은 사랑에 대해 말하련다. 지는 것이 피어있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에 대해. 처음보다 더 깊어지는 마지막을 위하여.

사랑이 처음 가슴에 작은 씨앗으로 떨어지면 새 각시처럼 가슴이 콩닥거린단다. 뭉게 구름 속을 헤메며 오색찬란한 무지개를 꿈꾸게 되지. 봄 날의 정원처럼 따스하고 정겹단다. 빛나는 한 폭의 수채화에 그리움의 시를 새기게 되지. 그 작은 씨앗이 꽃 필 즈음 사랑이란 이름의 누군가를 만나게 될테지.

그 만남은 너무 달콤해서 감당하기 힘들거야. 뜨거운 태양 아래 녹아내리는 이스팔트처럼 엉겨붙고 눈까지 멀게 될지도 몰라. 한 번 삼키면 독약 바른 초콜릿처럼 온 전신이 마비되기도 하지. 사랑은 집착이 되고 올가미가 되기도 한단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결국은 하나가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한 여름밤의 별처럼 영원히 빛나는 아름다움은 없단다. 폭우가 쏟아지고 바바람이 몰아쳐 앞이 안 보일 때도 있단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지불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포근했던 유년의 고향으로 달아나고 싶어 질거야. 그래도 참아야 돼. 사랑이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고 상처를 덮어주는 반창고란 걸 네 스스로 알기 까진.

참고 견디면 사랑은 기적이 된단다. 생명의 경이로움을 담고 있지. 사랑이 없었다면 죽어 없어 질 목숨이 어떻게 생명을 잉태할 수 있었겠니? 내 속에서 작은 발 길로 네 존재를 알리는 순간부터 사랑은 생명이고 삶을 밝히는 영원한 빛이 됐단다. 아무리 큰 희생과 대가를 지불한다 해도 목숨보다 더 큰 사랑이 내 품에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돌아보면 모두가 사랑이었다. 살아있는 용기고 희망이었어. 정붙여 사는 모든 것이 사랑이었어. 생의 고비마다 애썼던 몸짓 손짓 발자취 속에 사랑의 말들을 적어 놓았단다. 계절따라 절망과 인고의 시간을 견뎌 낸 사랑의 힘을 믿어 보렴.

세상의 모든 딸아 아들아. 이젠 말할 수 있단다. 사랑으로 고통받고 사랑 때문에 넘어졌지만 사랑이 있었기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고. 피고 지고 스쳐 간 크고 작은 사랑이 모여 내 삶은 강물처럼 흘러왔다고. 사랑이 아늑한 강물되어 생의 밑바닥까지 따스하게 덮혀 주었다고.

사랑하는 딸아 아들아 지금 사랑의 이름표를 가슴에 달아라. 사랑없이 사는 백만년 보다 사랑하며 사는 하루가 더 아름답다.

떠난 사랑 못다한 사랑 잊혀진 사랑 상처 받은 사랑 때문에 눈물 흘리지 말아라. 지는 것은 다시 핀다. 사랑의 꽃씨를 품은 사람에겐 사랑은 영원히 지지않는 꽃이다. 사랑의 꽃은 꺾지 않으면 다시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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