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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박물관 산책-100] 프로스펙트파크 오두본센터

프로스펙트파크 오두본센터(Prospect Park Audobon Center)는 브루클린에 있는 프로스펙트파크 안에 있다. 오두본센터는 2002년 프로스펙트파크 공원 측과 뉴욕시 조류학 관련 학술단체인 오두본 뉴욕(Audobon New York)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조류학 관련 전시시설과 함께 자연, 생물, 환경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자연체험 학습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었다. 오두본뉴욕은 미국의 조류학회인 전국오두본소사이어티(NAS)의 뉴욕 지부. 현재 오두본센터가 있는 건물은 과거 보트를 타던 행락객들을 위한 보트하우스로 1905년 지어진 사적건물이기 때문에 공원 측과 오두본센터는 센터를 개장하기 전에 500만달러를 들여 원형을 그대로는 보존하는 형태로 부분 개보수했다. 오두본센터, 오두본 뉴욕, 전국오두본소사이어티 등에 들어 있는 인명 ‘오두본’은 미국 조류학의 개조로 불리는 존 제임스 오두본(1785-1851)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프랑스계인 오두본은 조류학자이면서 전문적인 사냥꾼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느 직업화가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뛰어난 화가였다. 그는 생전에 북미 곳곳을 다니면서 직접 새들을 잡고,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고, 분류를 해서 이를 책자로 만들었다. 특히 그의 조류 그림은 새의 특징을 잡아내는 능력뿐 아니라 색상과 구도, 생동감 등에서 회화적으로도 뛰어난 작품들로 평가되고 있다. 이 때문에 그가 쓴 글과 그림들이 실린 책자들은 미국 조류학의 토대를 놓은 것으로 현재 대단히 높은 가격의 매매되고 있다. 오두본센터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조류 등 자연과 생물 관련 전시 뿐 아니라 각종 체험 기회도 마련하고 있다. 특히 오두본센터 2층에는 버라이즌과 에너지기업 콘에디슨이 마련한 자연과 환경 관련 영상물을 상영하는 극장과 통신기업 버라이즌이 마련한 자연 학습 체험장도 설치돼 있다. 오두본센터는 이와 함께 새 소리를 듣는 투어, 매를 관찰하는 ‘호크 위크엔드(Hawk Weekend)’, 교사들을 위한 과학 워크숍 등 어린이와 청소년, 교사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와 함께 룰워터 호수가에 세워진 오두본센터는 자연체험 학습 외에도 뉴요커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오두본센터에서 출발해 ‘룰워터’ 호숫가를 한 바퀴 도는 ‘인디펜던스’ 보트는 전기로 작동되는데 프로스펙트파크의 뛰어난 경관을 둘러 볼 수 있는 인기 있는 관광상품이기도 하다. 또 오두본센터 안에 있는 기념품점에서는 새 등 각종 생물 모형과 장난감, 기념품, 관련 서적 등을 판매하고 있다. 오두본센터는 건물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다. 오두본센터는 16세기 베네치아에서 도서관 등 공공건물을 지을 때 적용하던 베네치안 건축 양식을 적용했다. 미국에는 현재 남아 있는 베네치아 양식 건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오두본센터는 미국 건축사에서도 중요한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박종원 기자

2010-08-13

[뉴욕 박물관 산책-99] 레퍼츠역사주택(Lefferts Historic House)

레퍼츠 가문 살던 집 시에 기증 1918년 플랫부시서 공원으로 이전 레퍼츠역사주택(Lefferts Historic House)은 브루클린에 있는 프로스펙트파크 안에 있다.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브루클린 지역에 있던 농장에서 살던 주민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주택과 생활 박물관이다. 특히 지역 주민들은 물론 뉴욕시 200년의 역사를 보존하는 귀중한 곳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레퍼츠역사주택이 지어진 때는 1783년이다. 그러나 주택의 연원을 따지자면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뉴욕시 인근 지역에 유럽계 이민자들, 특히 가장 먼저 정착한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뉴욕시 인근에 자리를 잡은 것은 17세기 중반이다. 이들 중에서 피터 잰슨 해지아웃(1621∼61)은 현재의 브루클린 플랫부시(Flatbush)에 자리를 잡고 농장을 일궜다. 현재의 플랫부시는 당시 네덜란드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네덜란드 말로 ‘Vlake Bos’로 불렸는데 아마도 당시 이 지역은 낮은 관목들로 덮여 있었기 때문에 ‘flat bush=wooded plain’을 뜻하는 이 같은 지명이 붙지 않았나 추정하고 있다. 어쨌든 해지아웃이 사망한 뒤 그의 후손이 이 집에서 계속 살았는데 1776년 독립전쟁이 일어나면서 집이 완전히 파괴됐다. 1776년 8월말에 플랫부시 근처에서 3만1000명의 영국군과 독일용병(헤시안 병정)과 2만여명의 애국군(대륙군) 사이에 벌어진 브루클린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 며칠 전 조지 워싱턴 장군이 지휘하던 애국군이 레퍼츠 가문이 살던 집을 불 태워 버렸다. 이것은 수세에 처한 애국군이 맨해튼 등으로 퇴각하면서 이 집이 영국군의 소유가 될 것을 우려해 군사적 근거를 없애려는 청야작전의 일환으로 파괴된 것이다. 그 후 독립전쟁이 끝난 뒤 1783년 해지아웃의 4대 손자인 피터 레퍼츠(1753∼92)가 농업과 상업으로 큰 성공을 거둬 현재의 주택을 다시 건축했다. 피터 레퍼츠는 독립전쟁 당시 육군장교로 참전했고 이후 킹스카운티(당시 브루클린의 지명) 법원 판사, 연방헌법을 비준한 뉴욕주의회 대의원 등 명사로 활동했다. 피터 레퍼츠의 후손은 이 집에서 1917년까지 대를 물려가며 살았다. 그러나 1917년 브루클린 지역이 개발되면서 집이 헐릴 위기에 처하자 레퍼츠 가문은 집을 뉴욕시에 기증하면서 주택을 북쪽으로 6블록 떨어진 프로스펙트파크 안, 곧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 달라고 요구했다. 뉴욕시는 이를 받아들여 집을 헐지 않은 채로 공원 안으로 옮겨 1920년 현재의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이후 브루클린의 생활상을 보존하는 주택박물관으로 각종 전시, 문화 역사 이벤트, 교육 프로그램 등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레퍼츠역사주택에는 18세기 당시 네덜란드 이민자 어린이와 흑인 노예 어린이, 인디언 어린이들이 즐기고 놀던 장난감과 게임 등과 함께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갖고 온 네덜란드 언어로 된 성경, 레퍼츠 가문의 토지 소유권을 증명하는 땅문서, 가구와 생활 도구, 생활용기와 공예품, 초상화 등 미술품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이들 전시품들은 피터 레퍼츠의 손녀딸로, 평생 동안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거투르드 레퍼츠 밴더빌트가 쓴 일기 등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중에는 실제 18세기 쓰였던 생활용기 등도 있고 일부는 그의 일기 등 기록을 토대로 수집되거나 모조품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레퍼츠역사주택은 이 같은 전시와 함께 추수감사절 축제, 옛날 어린이들이 부르던 노래와 이야기 낭송회, 양초와 버터 만들기 워크숍, 재봉기술 워크숍 등 미국 식민지 시절의 역사와 문화를 오늘에 전승하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10-08-02

[뉴욕 박물관 산책(61)] 엘리스아일랜드이민박물관

엘리스아일랜드이민박물관(The Ellis Island Immigration Museum)은 맨해튼 남쪽 엘리스아일랜드에 있는 이민 전문 박물관이다. 이민에 관한 박물관으로는 미국에서 가장 크다. 이민박물관에 가려면 2·3번 전철 등을 타고 맨해튼 남단 배터리파크에 가서 자유의 여신상-엘리스아일랜드로 가는 페리를 타야 한다. 과거 포병 기지로 사용됐던 클린턴 성(城) 안에 있는 매표구에서 표를 사면 된다. 그러나 이민박물관에 가려면 큰 마음을 먹고 나서야 한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배를 타기 위해 한 두 시간 땡볕에서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다. 공식적으로 엘리스아일랜드를 찾는 관광객은 한 해 200만명이 넘는다. 28에이커 넓이의 엘리스아일랜드는 17세기만 해도 굴이 많이 나와 ‘오이스터아일랜드’로 불렸다. 독립전쟁 때는 영국의 해군 함대가 주둔하기도 했고, 19세기 중반에는 뉴욕만에 진입하는 적함을 막기 위한 포대 기지로 사용됐다. 19세기 후반 미국이 유럽인들을 대상으로 이민 문호를 대폭 개방하면서 연방정부는 1890년 이 섬에 연방이민관리소를 만들었다. 지금의 박물관 건물은 당시 이민자들이 미국 입국심사를 받던 건물을 1984년 1억6000만달러를 들여 원형을 보존하면서 대대적으로 보수한 것이다. 연방이민관리소는 1892년 1월 2일 문을 열었는데, 최초의 이민 등록자는 아일랜드에서 가족들과 함께 이민 온 15세 소녀 애니 무어였다. 이후 60여년간 이곳 이민관리소를 통과한 이민자는 1200만명을 넘었고 어떤 날은 하루에만 5000여명이 입국허가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공식적으로 미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이곳 이민관리소를 통해 미국에 입국한 이민자의 후손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민박물관은 1965년 연방정부가 당시 소유권 분쟁이 벌어지던 엘리스아일랜드를 사들여 인근 자유의 여신상과 함께 묶어 국립공원으로 만든 뒤 1990년 문을 열었다. 박물관 1층에는 19세기 초반 이민자들이 갖고 들어왔던 이삿짐을 모아 전시하고 있고 뒤쪽에는 미국 이민을 인구학적으로 분석한 각종 자료를 모은 특별 전시실과 극장, 선조의 뿌리를 찾는 족보조사서비스 룸 등이 있다. 2층과 3층에는 입국심사를 받던 등록실과 의료시설, 식당 등이 보존돼 있다. 특히 2층 가운데 있는 등록실은 마피아 영화 ‘대부(God Father)’에서 1세대 빅터 콜리오네가 시실리에서 부모를 잃고 미국에 혈혈단신 입국해 벙어리 흉내를 내며 심사대를 통과, 유치장에 수용되는 장면 등에 잘 묘사돼 있다. 이민박물관은 볼 것도 많고 사람도 많다. 미국인들에게는 자신의 뿌리를 찾는 성지와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또 인근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도 함께 관람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이민박물관을 찾기 위해서는 간단한 점심을 준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두는 것이 좋다. 자세한 정보는 웹사이트 www.ellisisland.org/genealogy/ellis_island_visiting.asp 참조.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8-03

[뉴욕 박물관 산책-56] 숌버그흑인문화연구센터, 노예에서 대통령까지 흑인들의 고난 극복사 집대성

숌버그흑인문화연구센터(The Schomburg Center for Research in Black Culture·이하 숌버그센터)는 맨해튼 할렘에 있다. 2번이나 3번 전철을 타고 135스트리트역에서 내리면 바로 북서쪽 코너에 반듯한 5층 건물이 있는데 이곳이 숌버그센터다. 주위 길거리에는 흑인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는 데 흑인 거주지 특유의 생동감이 넘치는 환경이다. 숌버그센터는 뉴욕시가 운영하는 4개 연구 도서관 중 하나로 흑인들의 문화와 역사 관련 자료를 모으고 연구하는 곳이다. 흑인 관련 콜렉션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현재 공식적으로 파악된 소장품만 1000만점 이상으로 자료의 희귀성과 가치에 있어서도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숌버그센터는 1926년 흑인 서지학자였던 애트로 알폰소 숌버그가 현재의 자리에 있던 뉴욕시 역사인쇄물도서관에 자신의 소장품을 기증하면서 시작됐다. 숌버그는 당시 흑인과 관련된 수천권의 책과 미술품 등을 기증했는데 도서관은 그의 사후인 1940년 고인의 고귀한 뜻을 기리기 위해 도서관 이름을 숌버그센터로 바꾸고 흑인에 대한 전문 연구 도서관으로 탈바꿈했다. 숌버그센터 소장품은 방대하다. 자료 중에는 흑인들이 아프리카를 떠나 미국에 정착한 뒤 노예시대를 거쳐 도시 노동자, 20세기 초반 뉴욕의 할렘 르네상스로 대표되는 종족적 자각 시대, 민권운동 등을 거치면서 생성된 정치·경제·사회·문화·스포츠 등 흑인 각 분야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들어가 있다. 미국의 이탈리아인과 유대인들이 먼저 온 백인들이 갖고 있는 문명·종교·역사 분야의 상대적 열등감과 피해의식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면 흑인들은 처음부터 아예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취급을 받고 박해를 받았다. 숌버그센터에는 이러한 흑인들이 겪었던 고난과 박해의 역사, 이를 극복한 위대한 승리의 기록들을 담고 있다. 소장품 중에는 ▶희귀본 책과 기타 인쇄물(흑인 음악가의 원본 악보 등 포함해 1만5000여점) ▶흑인들의 노예와 도시 생활, 민권운동 등과 관련된 역사자료 ▶회화와 조각, 포스터 등의 미술품 ▶사진과 그래픽 등 이미지 자료(18세기부터 흑인 정치인, 예술인, 작가가 찍은 사진 등을 합쳐 50만점) ▶영상물(영화와 다큐멘터리물 포함)과 음반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리처드 라이트가 쓴 ‘네이티브 선(Native Son)’의 필사본은 물론 미국 미술사의 한 부분을 장식한 에드워드 미첼, 헨리 오사와 태너, 애런 더글러스 등 19세기와 20세기의 대표적인 흑인 미술가들 작품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숌버그센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현재도 미국과 전 세계에서 발행되는 흑인 관련 신문 400여종과 잡지 1000여종 등 다양한 자료들을 계속 모으고 있고, 흑인 미술가를 초청해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열고 작품을 구입해 소장하는 등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와 함께 숌버그센터는 뉴욕시 전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과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흑인 문화와 역사 전문가들을 초청해 강연회와 세미나 등을 열고 있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6-29

[뉴욕 박물관 산책-50] 미국 금융 박물관

미국금융박물관(Museum of American Finance)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맨해튼 월스트리트에 있다. 뉴욕증권거래소 앞에서 북쪽에 있는 페더럴홀을 바라보고 걸으면 월스트리트를 만나는데, 여기서 동쪽으로 한 블록 가면 왼쪽에 있다. 뉴욕시 최초의 은행인 뱅크오브뉴욕(Bank of New York)이 1998년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에 흡수되기 전 본부로 삼았던 36층짜리 건물 2층이다. 금융박물관은 미국이 수퍼파워로 자리 잡는데 근간을 제공한 금융시스템의 역사와 현황을 소개하고 있다. 소장품은 1만점 이상이며, 주로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170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의 ▶증권과 채권 ▶금융 관련 역사 자료 ▶사진과 회화 ▶주식 거래 장비와 도구 등이다. 이 중에는 18세기 말 미국이 건국하면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당시 대륙의회의 승인을 받아 발행한 조지 워싱턴 대통령 서명의 정부 건국채권, 달러 화폐가 처음 나올 때의 보존용 원본 달러, 태환화폐인 달러를 위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초기에 보관했던 30파운드 무게의 금괴(순금) 등 귀중한 자료들이 포함돼 있다. 금융박물관은 이 소장품을 한꺼번에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2층의 넓은 전시장 주위에 테마 전시실을 만들어 6개월에 한 번씩 주제를 바꿔 특별 전시를 여는 한편 중앙에는 증권과 선물시장의 역사와 현재, 미국 은행시스템의 발전 등과 관련한 전시를 열고 있다. 방대한 금융 관련 자료를 테마별로 분류해 돌아가면서 기획전시를 열고 있는 셈이다. 최근 열리고 있는 전시로는 ‘월스트리트에서의 거래(Trading on the Street)’가 대표적인데, 월스트리트가 어떻게 금융의 중심지로 발전했는가에 대해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전시다. 1700년대 후반 맨해튼 남쪽에 정착한 유럽 백인들이 인디언들과 곡물, 모피 등을 거래하는 것을 시작으로 초기 단계의 야외 옥션, 증권시장의 설립, 대공황, 20세기 월스트리트의 발전 등을 단계별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1700년대 후반 미국 건국 당시 초대 재무장관을 맡아 연방정부의 예산과 부채(채권발행), 은행 시스템, 조세제도 등을 확립한(당시 유럽과 비교해 대단히 파격적인 경제정책이었음) 알렉산더 해밀턴 전시실을 마련하고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 있다. 금융박물관은 다른 박물관에 비해 매우 부산한 편인데, 어린이부터 경영대학원 학생들까지 박물관에서 제공하고 있는 그룹 투어 교육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단체 관람객들이 줄을 이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4-27

[뉴욕 박물관 산책-49] 미국인디언박물관

미국인디언박물관(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은 맨해튼 남단 배터리파크 동쪽에 있다. 건축가 카스 길버트의 설계를 바탕으로 1907년에 만들어진 7층 높이의 고전적인 석조건물 양식의 연방 조세청 건물 안에 있다. 박물관이 이 건물 모두를 쓰는 것은 아니고 서쪽의 한 부분을 나눠 1층과 2층을 쓰고 나머지는 조세청과 뉴욕시 파산법원 등이 쓰고 있다. 박물관은 북쪽 입구로 들어가는 데 보안검색이 매우 까다로워 재킷을 벗는 것은 물론 시계와 지갑, 허리 벨트까지 모두 풀어놔야 한다. 건물 입구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뛰어난 예술성의 여성 군상 조각 4개가 서 있는데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과 아메리카 등 4대륙을 상징하고 있다. 워싱턴 DC에 있는 에이브러햄 링컨 기념관 내의 링컨 대통령 전신 조각으로 유명한 대니얼 체스터 프랜치가 만든 작품이다. 인디언은 본래 아시아 대륙의 황인종이었는데, 수십만년 전 베링해를 거쳐 미국 대륙으로 들어와 민족별로 나눠 살았다. 일부는 멕시코를 거쳐 남미로 들어가 잉카와 아즈텍, 마야 문명을 일으켰다. 미국인디언박물관은 전세계 박물관 중 이들 인디언 관련 유물, 역사 자료, 사진, 서적, 미술과 공예품 등을 소장한 콜렉션으로는 가장 큰 규모다. 2009년 현재 분류 목록 기준으로 26만6000여점(낱개로는 82만5000개)을 소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북미 대륙 각 지역의 부족과 민족들의 발흥과 역사전개 과정에서 만들어진 인류학적 고고학적 자료와 함께 캐리비언 지역과 남미 대륙 인디언 관련 자료까지 망라돼 있다. 지역적으로 분류하면 캐나다 인디언 관련 자료가 3.5%, 멕시코와 중미 인디언이 10%, 남미가 11%, 그리고 내용적으로는 전체의 절반 정도인 55%가 30만년에서 5000년 전까지 미국 대륙에서 진행된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 유물 자료다. 그러나 미국인디언박물관은 실제로는 박물관보다 전시장에 가깝다. 인디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료가 상설 전시돼 있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전시장에서 인디언과 관련된 미술과 역사 자료 등을 주제별로 전시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대륙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이 30만년 전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문화와 민족을 일으켰으며 유럽에서 온 백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스러져 갔는가, 또는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미국 대륙이 인디언 민족국가들에서 어떻게 미합중국으로 변화하게 됐는가 등에 대한 통시적 안목을 제공하는 데는 미흡하다. 현재는 17세기와 18세기 미 전역에 지역별로 나눠 살았던 인디언 민족들의 고유 의상 전시와 인디언 미술 전시가 열리고 있다. 우리와 같이 엉덩이에 푸른 반점이 있는 인디언들의 흥망사를 알고 싶어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 입장에서는 인디언 역사와 문화가 엔터테인먼트화되고 있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 깊은 회한을 느낀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4-19

[박물관 산책 -48] 니콜라스 로리치 박물관…명상·평화의 메시지 담은 곳

니콜라스 로리치 박물관은 맨해튼 107스트리트 서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 1874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1947년 인도의 클루에서 영면한 위대한 화가이자 저술가, 여행가였던 니콜라스 로리치의 삶과 예술을 기리는 개인 박물관이다. 박물관에는 로리치가 평생 그렸던 7000여점의 그림 중 대표작 수백점, 직접 집필한 여행기와 수상록, 그의 생애를 소개한 서적(영어, 러시아어, 힌두어, 일본어판), 인도와 부탄 등을 여행하면서 본인이 수집한 불경과 불상 등 동양학 자료, 말년에 사용하던 피아노와 테이블 등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1층 입구에는 기념품점이 있고 그림과 자료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부터 2층과 3층 전체에 촘촘히 배치돼 있다. 로리치는 동서양 미술사의 격동기라고 할 수 있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시기를 살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 독자적인 표현세계를 개척한 화가다. 이 시기에 미술사를 뒤흔든 것은 과학과 경제였다. 카메라 등 영상기기가 발달하면서 미술은 재현(再現)이라는 고유기능을 잃었고, 미술가는 자본주의 발달로 왕실과 귀족 등 고전적인 후원그룹을 상실하고 방황했다. 미술은 문화의 한 부분으로 생존하기 위해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활로를 찾아 나섰고 당연히 이 시기 많은 미술가들이 품었던 명제는 형식(style)이었다. 이것은 역사의 전통과 국가 체제의 특성상 일부 변화는 있지만 큰 틀로 보면 유럽이나 미국, 한국과 중국·일본 등 동서양 모두가 같았다. 로리치는 이러한 형식의 시대에 미술이 가진 인간 내면의 진수를 드러내고 담는 종교적 속성에 집중했다. 그에게 있어 그림은 절대자와 진리에 도달하는 매개체였다. 로리치의 그림에 히말라야의 장대한 자연과 동양의 지혜를 상징하는 불교적 소재가 수시로 등장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또한 로리치 작품들은 화면의 전체적인 구성과 색감, 인물과 풍경의 표현형식 등도 동양의 정(靜)적인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로리치박물관은 이러한 로리치 예술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전시하는 한편 정기적으로 미술과 문학이 만나는 시 낭송회도 개최한다. 또 생전 음악에 높은 찬사를 보내고 명상적인 선율의 피아노 곡을 연주했던 로리치를 기리기 위해 소규모 음악회도 열고 있다. 미술이 종교성을 담는 무한한 ‘바다’이자 ‘엄마’가 될 수 있다는 대단한 감동을 주는 곳이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4-12

[박물관 산책 -46] 프런시스 태번 박물관(Fraunces Tavern Museum)…격동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

프런시스 태번 박물관은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 동쪽 펄스트리트에 있다. 센트럴파크와 연접한 동쪽 도로를 따라 남북으로 메트로폴리탄미술박물관, 구겐하임박물관 등이 몰려 있어 ‘뮤지엄 마일’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데, 맨해튼 남단 월스트리트 근처도 만만치 않다. 20개 가까운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어 ‘뮤지엄 디스트릭트’로 불릴만한 곳이다. 뮤지엄 마일이 주로 미술 관련 박물관이라면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 부근은 역사 관련 박물관들이 많다. 프런시스 태번 박물관이라는 이름은 새뮤얼 프런시스(Samuel Fraunces)의 성 ‘프런시스’와 우리 말의 선술집 또는 연회장이 딸린 술집(주막)을 뜻하는 ‘태번(tavern)’에 중요한 자료와 물건을 모아 놓은 박물관이라는 말이 합쳐진 것이다. 그러나 태번 박물관은 단순히 오래된 선술집이나 여인숙의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역사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자료를 모아 놓은 박물관이자 사적지라고 할 수 있다. 태번 박물관은 원래 1762년 새뮤얼 프런시스가 선술집을 하던 자리다. 3층 붉은 벽돌로 지어진 프런시스 태번은 당시로 말하면 뉴욕은 물론 미국 북부와 남부, 유럽의 부자와 명사들이 뉴욕에 오면 한 번씩 들르는 사교 장소였다. 최고급 술집이자 연회장인 셈이다. 프런시스 태번은 이후 독립전쟁과 건국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를 지나면서 역사의 현장을 제공하고 지켜보는 중요한 장소가 된다. 여기서 뉴욕상공회의소가 설립됐고 독립전쟁 때는 대륙군의 전투를 지휘하는 장소와 병참 본부 역할도 했다. 이 때문에 1775년 뉴욕만에 배치돼 있던 영국 해군이 군함의 함포 수십발을 쏘아 프런시스 태번의 지붕이 크게 부서지기도 했다. 또 바로 근처에 있는 연방홀(44회 소개)에서 취임식을 한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주위의 호족과 군벌들의 ‘왕위 즉위’ 또는 ‘종신 대통령’ 권유를 물리치고 임기 8년을 마친 뒤 마지막 고별사를 한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워싱턴은 군 사령관과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자신을 3인칭으로 칭하는 등 유럽의 군주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버지니아주 자신의 장원에서 일하던 노예만 3000명에 이르고, 독립전쟁 때 동원한 사병이 1만5000명이나 된다.) 미국이 독립전쟁을 승리로 끝낸 직후인 1785년 뉴욕에서 대륙의회를 개최할 때 프런시스 태번은 외무부(Dept. of Foreign Affairs)와 재무부·국방부가 함께 입주한 정부 청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애국심과 영국에 대한 당시 식민지 미국인들의 증오를 상징하듯 프런시스 태번의 문장은 영국 여왕의 ‘잘려진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이후 프런시스 태번은 공용과 상용의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다 1904년 독립전쟁을 기리는 비영리단체가 매입해 1907년 비영리 역사 박물관을 만들었다. 이후 뉴욕 지역의 명사와 역사학자들이 보드멤버로 참가해 기금을 만들어 16세기부터 뉴욕시의 성립, 독립전쟁, 남북전쟁, 대외 해상진출 등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 정리했다. 특히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치르던 시기 조지 워싱턴 대통령(당시는 대륙군 총사령관)과 관련된 희귀 자료 등이 유명하다. 특히 프런시스 태번은 역사 박물관이면서도 한편으로 미국의 근대 미술과 공예, 생활, 군사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미국 역사와 관련된 기록화(미국 미술의 중요한 한 분야)와 판화 등 미술품은 물론 수백년 전에 사용됐던 선술집 관련 시설과 장비, 공예품, 독립전쟁 당시 사용됐던 무기류 등이 전시돼 있어 깊은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3-29

박물관 산책(45) 뉴욕시 경찰박물관

뉴욕시 경찰박물관은 지방자치단체 경찰로는 세계 최대 규모(2008년 현재 약 3만5000명)를 자랑하는 뉴욕시 경찰(NYPD)의 역사와 전통을 담고 있다. 맨해튼 남쪽의 월스트릿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동쪽으로 한 블록 가면 남북으로 나 있는 워터스트릿을 만나는데 여기서 우회전해 한 블록, 좌회전해 한 블록을 가면 왼쪽에 있다. 박물관 건물은 네오-이탈리안 르네상스 양식의 길쭉한 3층 건물로 1911년부터 73년까지 뉴욕시 경찰의 상징이었던 1 경찰서로 사용됐다. 현재는 뉴욕시 사적건물로 지정돼 있다. 경찰박물관은 뉴욕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파수꾼이자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곳이지만 한편으로는 미국 역사의 한 부분을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찰박물관에는 뉴욕시가 미국의 중심 도시였던 1600년대부터 9·11 참사가 일어났던 2001년까지 4세기 동안 뉴욕시민들과 직접 접촉하면서 치안을 담당했던 경찰 조직과 관련된 귀중한 역사 자료가 대거 소장돼 있기 때문이다. 경찰박물관은 3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1층에는 1600년대 이후 뉴욕시 경찰관이 입었던 각종 복장을 비롯해 텔레그래프와 구형 무전기 등 다양한 장비가 전시돼 있다. 특히 교통경찰 전시실에는 20세기 초반부터 뉴욕시 경찰이 사용했던 순찰차 등 각종 차량과 모터사이클이 전시돼 있다. 그러나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2층 전시실이다. 뉴욕시 경찰 역사실과 무기·범죄조직 전시실 등으로 나뉘어 있는데 무기·범죄조직 전시실에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뉴욕과 시카고 등을 무대로 활동하던 범죄조직 마피아 두목인 알 카포네, 프랭크 갈루시오 등이 사용한 무기가 범죄조직 인물 설명과 함께 전시돼 있다. 특히 알 카포네 갱단이 사용했던 원반형 탄창이 붙어 있는 기관총 실물을 볼 수 있어 당시의 ‘범죄 천국’ 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게 해 준다. 경찰박물관은 이 외에도 9·11 참사 때 위기에 처한 시민들을 구하려다 순직한 경찰관 관련 유품과 자료(한편에선 당시 상황과 생존 경찰관들의 증언을 담은 다큐멘터리 상영)와 함께 사방 10피트의 모의 감옥, 어린이들이 경찰 업무를 체험해 볼 수 있는 방도 만들어 놓고 있다. 또 역대 뉴욕시 경찰관들이 사용했던 권총(리볼버)과 장총(라이플), 기관총(머신건) 등 각종 총기와 도검류, 수사 전담 형사들의 범죄수사 장비 등 다른 데서는 도저히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진귀한 자료들이 일일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경찰박물관은 경찰 업무에 관심 있는 성인은 물론 앞으로 경찰과 검찰 등의 사법기관 또는 FBI와 CIA 요원이 되고 싶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많은 것을 얻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3-22

[박물관 산책 -44] 연방홀 국가기념비···'건국의 역사를 담고 있는 기념관'

연방홀 국가기념비(Federal Hall National Monument. 이하 연방홀)은 뉴욕시 맨해튼 남쪽의 월스트릿 증권거래소 옆에 있는 사적(史跡) 건물이다. 증권거래소를 정면으로 마주 보면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조지 워싱턴 대통령 동상과 함께 고대 그리스 신전 건축양식의 건물이 보이는 데 이 건물이 연방홀이다. 9.11테러 이후 증권거래소 주변에 대한 경계가 강화됐기 때문에 곳곳에 경찰 차량과 무장한 경찰관들이 서 있어 분위기가 썰렁하다. 연방홀도 경비가 엄하지만 특별한 검문 검색 없이 무료로 입장할 수 있고 일단 들어서면 건물 내부의 고전적인 건축 분위기와 고색창연한 자료들이 전시돼 있어 바깥의 분위기와는 달리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연방홀은 어쩌면 미국 역사의 핵과 같은 곳이다. 현재의 연방홀은 1842년 새로 지어진 것이지만 미국의 대영항쟁과 독립, 건국과 관련 가장 상징적인 역할을 한 곳이다. 일단 연방홀은 18세기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을 무렵 뉴욕시의 시청 건물이었다. 당시 미국의 중심이 뉴욕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식민지 미국의 정치 외교 행정의 중심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영국의 가혹한 식민통치가 계속되자 1765년 미국의 지역 유지(대의원이지만 사실상 사병과 장원을 소유한 군산복합 호족)들은 연방홀에 모여 유명한 ‘정치적 대표성 없이 과세는 없다’는 내용의 선언을 하고 결국 이것이 도화선이 돼 미국 건국의 토대가 된 독립전쟁에 들어간다.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군 사령관이던 조지 워싱턴을 초대 대통령(당시 일부 호족들은 워싱턴에게 왕위에 오르라고 종용)으로 추대했는데 워싱턴이 대통령 취임식을 갖고 선서를 한 곳도 연방홀이다. 연방홀은 1862년 연방중앙은행 건물로 바뀌었고 지하실에 국가 잉여 달러와 함께 태환 화폐인 달러 운용을 지원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을 보관하는 나라 금고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연방홀은 이후 기념관으로 개조됐는데 현재는 워싱턴 대통령의 취임사 원고, 남북 전쟁 당시의 무기와 자료, 뉴욕시의 역사와 발전 관련 자료, 연방준비은행 청사로 사용되던 당시의 자료 등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현재는 링컨 대통령 관련 유물 자료 전시 중. 특히 상설 전시되고 있는 자료 중에는 만주족이 화족(華族)을 지배하던 19세기 청나라 말기 미국에 먼저 와 있던 한 중국인 이민자가 북경에 있던 부인과 자녀를 초청할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색 바랜 가족사진과 이민 자료가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3-15

[박물관 산책 -43] 사우스스트릿 항구박물관…뉴욕항 역사 400년 집대성

사우스스트릿 항구박물관(South Street Seaport Museum)은 맨해튼 남동쪽 끝 사우스스트릿 항구에 있는 해양 전문 박물관이다. 지금의 맨해튼은 세계의 수도 뉴욕시의 중심지로 금융과 유통, 무역 등 각종 산업과 경제의 무대가 되고 있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적인 규모의 항구기도 했다. 1624년 네덜란드 서인도회사의 상인 그룹이 미국에 처음 들어와 정착한 곳도 현재의 17번 부두와 서쪽 월스트릿이 있는 곳이다. 이후 미국이 독립전쟁과 건국, 남북전쟁 등을 겪을 때도 17번 부두가 있는 사우스스트릿 항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은 18세기 광대한 자연환경을 토대로 목축과 농업의 1차 산업으로 국민들의 먹고 마시는 문제를 해결한 뒤 광업과 제조업으로 경제를 끌어올려 19세기부터 해양으로 본격 진출했다. 미국의 해양을 통한 대외개척과 유럽 등과의 무역을 하는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관문 역할을 한 곳도 바로 사우스스트릿 항구다. 엘리스아일랜드 이민청사가 만들어지기 전 19세기 많은 유럽 이민자들이 이곳을 통해 미국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항구박물관은 이러한 사우스스트릿 항구와 관련된 역사적인 자료를 수집, 연구해 일반에 전시하고 있다. 항구박물관은 옛 풀턴 수산시장의 남쪽에 있는데 1810년 선박회사와 무역을 하던 피터 슈머혼이 지은 주상복합 건물이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호텔과 레스토랑, 많은 가게들이 있던 큰 건물이었다. 몇 번의 증개축을 거치긴 했지만 과거 항구가 번성하던 시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1967년 뉴욕주가 사적 건물로 지정하면서 안에 항구박물관을 만들었다. 항구박물관은 그림과 사진, 선박 소형 모델, 선박 건조 장비와 도구, 항구의 역사 자료 등을 소장하고 있는데 특히 미국 해양화(海洋畵) 분야의 최고로 평가 받고 있는 제임스 에드워드와 던컨 맥팔레인의 콜렉션이 유명하다. 또 바다를 사랑해 직접 요트를 타고 해양 관련 수집품을 모으기도 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콜렉션(배와 얼굴 등이 그려진 해구 이빨 등)이 따로 있고 역사적 선박인 퀸 매리와 타이타닉 관련 자료도 전시돼 있다. 또 항구박물관과 함께 항구 역사구역에는 타이타닉이 침몰한 뒤 1913년 만들어진 ‘타이타닉 기념 등대’, 페킹(Peking)호 등 대형 범선들(부두에 정박돼 승선 가능), 스케이트장, 이스트리버와 브루클린브리지를 볼 수 있는 전망대, 기념품 쇼핑센터와 식당가 등이 있어 가족들이 함께 역사를 공부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3-08

[뉴욕 박물관 산책-42] P.S.1 컨템퍼러리 아트센터, 전위 예술가의 요람

P.S.1 컨템퍼러리 아트센터(P.S.1 Contemprary Art Center·이하 P.S.1)는 퀸즈 롱아일랜드시티에 있는 문화센터다. 1971년 앨라나 헤이스가 오래된 건물을 사서 개조해 ‘미술과 도시자원협회(Institute for Art and Urban Resources Inc.)’를 만든 것이 시초다. 당시에는 뉴욕시 경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곳곳에 버려진 건물이 많았다. 머리 좋은 헤이스는 헐값에 건물을 사서(거의 공짜로 소유권을 넘겨 받아) 미술가들에게 전시공간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비영리 회사를 만든 뒤 민간과 기업,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센터를 키웠다. 오래 전 학교로 쓰다 버려졌던 건물은 1997년 대대적인 재건축을 통해 현대적인 감각의 전시장으로 변했고 이어 발전의 여세를 몰아 2000년에는 맨해튼에 있는 현대미술박물관(MoMA·Museum of Mordern Art)의 자매 전시장이 됐다. 어떤 조건에 MoMA로 소유권이 넘어갔는지 모르지만 미국에서 박물관이나 문화센터 운영이 문화와 예술에 대한 영향력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헤이스는 예술사업가로 대단히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현재는 관장(거의 종신직)을 맡고 있다. P.S.1은 롱아일랜드시티 잭슨애브뉴의 랜드마크 건물인 씨티그룹 빌딩 근처에 있다. 롱아일랜드시티는 P.S.1이 있어서인지 과거 맨해튼과 브루클린에 살던 미술가들이 수년 전부터 많이 이주해 최근에는 예술가들의 스튜디오 건물과 개인 아트리에가 많아지는 등 예술가 타운으로 변했다. P.S.1은 인근 지역은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전 세계 젊은 미술가들에게 꿈의 공간이다. 설립 초기부터 현재까지 전위적 표현 양식의 현대미술을 위한 전문 전시공간임을 내세우고 있는 데다 실제로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해 50개 정도의 넘는 굵직한 개인전(행위예술 포함)과 기획전 또는 실험영화 상영, 음악과 무용(전위) 공연 등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특히 맨해튼에 있는 MoMA에서 소화하기 힘든 파격적인 표현(성적인 표현이 두드러지거나 전시장 벽을 뚫고 허무는 등)의 작품들도 전혀 문제 없이 전시되기 때문에 미국 화단에서 일종의 젊은 전위 미술가들의 주류 화단 진출을 위한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다. 한인으로는 지난 2001년 7월 여류 비디오 작가 김수자가 ‘바늘 여자(A Needle Woman)’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가졌고, 2006년 가을에 열린 국제 및 국내 프로젝트(International and National Projects Fall 2006) 그룹전에 정선택이 ‘Ich r us’라는 작품을 출품했다. 현재는 아르헨티나 작가로 전시장 바닥에 작은 수영장을 만들어 아래 층에서 수영장 바닥을 통해 위 층 모습을 볼 수 있게 한 작품(기존 미술의 물리학적 한계에 도전)을 전시한 리언드러 얼리히의 개인전 등이 열리고 있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3-01

[박물관 산책-41] 세계의 수도 역사 간직

뉴욕시 자료실(Municipal Archives of the City of New York)은 맨해튼 뉴욕시청 북쪽 건물 1층에 있다. 같은 층에 있는 시청 도서관(City Hall Library)과 함께 뉴욕시 시정(市政) 관련 자료를 수집,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부서다.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시 행정이나 문화, 사회, 역사, 생활과 관련된 사료를 모아 분류·보관하면서 이를 일반에 공개하는 일종의 준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 지하철 N·W 노선 등을 이용해 시청역에서 내린 뒤 북쪽 챔버스스트릿을 만나 시청을 끼고 동쪽으로 걷다 보면 왼쪽에 고색창연(현재 외장 공사 중)한 10층 정도 높이의 건물을 만난다. ‘세계의 수도’로 불리는 뉴욕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건물로 외장 조각은 물론 로비의 천정화, 고전주의 문양의 벽 부조 장식, 구석에 놓인 독수리 조각 등 건물 전체가 역사이자 뛰어난 예술품이다. 입구에서 자료실에 간다고 하면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데 반드시 사진이 붙은 신분증이 있어야 하고, 컴퓨터 카메라로 얼굴 촬영도 하고,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하는 등 보안검사가 엄격하다 자료실에는 16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20세기까지 뉴욕시와 관련된 ▷행정 문서 ▷부동산 개발 자료 ▷각 부서에서 발행한 도서와 간행물 ▷출생과 사망 기록 ▷역대 시장(市長) 관련 콜렉션 ▷자료 사진 등이 모아져 있다. 특히 수백년 전 뉴욕에 살았던 주민들의 사망과 출생 기록을 열람할 수 있어 자신의 족보와 혈통을 알고자 하는 뉴요커들이 많이 찾는다. 열람실 중앙에 놓인 컴퓨터를 이용해 콜렉션을 검색하고 각 보로의 지적도(地跡圖) 등을 열람하는 데는 무료지만 혈통 확인 등을 위해 마이크로 필름을 검색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5달러씩 내야 한다. 자료실에서 가장 관심 있는 것은 역시 뉴욕시 기록 사진 콜렉션이다. 디지털화돼 있어 컴퓨터로 검색(일부 사진은 온라인 검색 가능)할 수 있는데 현재 8만장 정도가 DB화돼 있다. 한국인과 관련된 사진은 유일하게 1965년 뉴욕시를 방문했던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뉴욕시청 근처에서 카 퍼레이드를 하면서 찍은 한 장이 올라 와 있어 깊은 사료의 골짜기를 찾은 방문객의 감회를 새롭게 한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2-20

[뉴욕 박물관 산책-40] 성(性) 박물관 (The Museum of Sex)···성(性)의 역사를 만나다

성(性) 박물관(The Museum of Sex)은 맨해튼 5애브뉴와 27스트릿 북동쪽 코너에 있다. 인간의 성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모으고 보존해 많은 사람들에게 성의 중요성과 의미를 알리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실제 성은 삼라만상 모든 생명체에게 영속성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 인간의 역사와 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인간에게 있어 성의 중요성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가정의 근간인 부부의 기반이 되는 것은 현대에 들어와 영화와 서적 등 각종 흥행산업, 예술과 문화, 사회와 법률, 종교와 철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다. 특히 고대 고분에서 다산을 기원하는 여인상과 남근상이 출토됐다면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해 인체의 감각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느끼는 사이버 섹스 개념까지 나오는 등 성은 인류 역사를 통해 더욱 넓은 분야에서, 더욱 다양한 얼굴로 계속해서 진화해 나가고 있다. 성에 관한 전문 콜렉션과 전시 시설로는 뉴욕에서 유일한 성 박물관은 주상 복합건물 1층과 2층을 사용하고 있다. 안내 책자에는 소장품 규모가 1만점 이상이라고 나와 있으나 실제 전시된 자료는 수백 점 정도다. 1층에는 테마별 전시를 개최하는 전시실과 기념품점이 있고 2층에는 영상 전시실과 자료 전시실이 있다. 한 층의 면적이 수십 평에 불과해 박물관 전체가 커다란 방 3개 정도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현재 1층에는 ‘동물의 성 생활(Sex Life of Animals)’ 전시가 열리고 있다. 원숭이와 노루, 팬다 곰 등의 성행위 모습 등이 조각으로 만들어져 있고 벽면에 그래픽으로 백과사전식 설명이 붙어 있다. 원숭이의 성기 등을 그대로 공격적이고 노골적인 조각들이 충격과 혐오감을 함께 불러 일으킨다. 2층 영상 전시실은 말이 전시실이지 포르노 숍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 유명한 역사적 포르노 필름, 성교 자세를 설명하는 필름 등을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모니터에서 상영하고 있는데 남녀 간 성행위의 적나라한 부분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영상들이 여기저기 돌아가고 있어 박물관이 아닌 포르노 숍에 들어온 느낌이다. 2층 동쪽의 자료 전시실에는 20세기 중반 학교에서 행했던 성교육 관련 책, 남녀 성기 모형과 유사 성행위를 위한 남녀 인형, 과거 상업적으로 판매됐던 포르노 사진, 남녀 성행위를 세밀한 필치로 그려낸 일본의 도색화 우끼요에, 미국 시장에 판매됐던 자위용 도구 콜렉션, 남녀의 성기를 그린 파블로 피카소의 스케치(진품인지는 확실치 않음) 등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안내서에는 18세 이상이 입장할 수 있다는 관람 규정을 두고 있다. 성은 중요한 것이다. 사랑(Love)이나 심정(Heart)의 형이상학적 세계와 다르지만 생명의 실체를 만들고 유지 구성하는 ‘핵(core)’이다. 성 박물관을 보면서 그러한 성의 역사적 중요성과 가치를 느낄 수 있다. 노골적인 성적 표현들 때문에 몸과 마음이 온통 요란할 수도 있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2-15

[뉴욕 박물관 산책-39] 옛 부자는 어떻게 살았을까

머천트 하우스 뮤지엄(Merchant’s House Museum)은 로어 맨해튼 동쪽에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3층 건물로 뉴욕시에 살았던 큰 부자의 집을 옛날 모습대로 보존하고 있다. 19세기에 지어진 뉴욕시 건물 중 박물관으로 개조돼 일반에 공개된 시설로는 유일하다. 현재는 연방정부에 의해 국가사적건물(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돼 있다. 건물은 1832년 지어졌고 현재는 지하실과 1, 2층의 침실과 거실 등 8개 방이 전시장으로 개방되고 있다. 당시 뉴욕의 부자들이 어떻게 생활했는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집에서는 당시 유럽과 미국 사이의 무역을 통해 큰 돈을 모은 아일랜드계 이민자 시버리 트레드웰(Seabury Tredwell)이 부인과 8자녀 등 가족과 함께 살았다. 1835년 당시 구입가격 1만8000달러. 시버리가 사망한 뒤 1840년 출생한 그의 막내딸 거트루드가 집을 지키며 살다 1933년 93세를 일기로 2층 침실서 사망했다. 거트루드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는데, 그가 죽은 뒤 집에서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이 건물은 미국 건축사에서는 19세기 양식을 보여주는 연구 대상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고, 생활도구와 장식품 등이 잘 보존돼 있어 당시의 생활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장소다. 집 외부는 미국의 19세기 부자 집에 많이 채용된 초기 페더럴 양식(Federal style)이고 내부의 침실과 거실 등은 그리스풍을 살린 그릭 리바이벌(Greek Revival) 양식으로 돼있다. 거실과 침실 등 방에는 당시 가구와 가재도구들이 옛날 모습대로 전시돼 있는데, 특히 캐비넷 등 가구 일부는 당시 최고의 명성을 날리던 목공예가 던컨 파이피(Duncan Phyfe·1768-1854)가 만든 작품들이다. 또한 가족들의 초상화와 사진들이 전시돼 있어 가족사의 전개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거실과 침실 등에 걸린 초상화와 풍경화도 당시 부자들의 기호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와 함께 집안의 여성들이 사용하던 호사스런 장갑과 모자, 가죽 구두, 목걸이 등 귀금속들도 전시돼 있어 당시 귀부인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색적인 것은 2층 거실 옆에 전시돼 있는 집안 일꾼들의 업무 관련 전시품들이다. 집 관리와 주방 요리사, 청소 등을 하는 하인들의 일과 시간 업무 내용 등을 적어 놓은 업무 관리표 등도 당시 모습대로 남아 있다. 집 뒤에는 작은 정원을 보존해 놓고 있다. 안내 책자에는 19세기 부자 집 정원을 원형대로 보존해 놓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보면 실망이다. 지하실 부엌 옆의 작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있는데 19세기가 아니라 최근에 나온 값싼 야외 의자에다 허물어져 내린 화단, 3면에 높이 올라가 있는 이웃 건물의 벽 하며…. 한마디로 세월무상을 느끼기에 충분한 모습이다. 부를 갖고 있을 때 적선과 적덕을 열심히 했더라면 이처럼 초라하게 보이지만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 찾아온 길손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2-08

[뉴욕 박물관 산책-38] 우크라이나 박물관, 후세에 역사·문화 알린다

우크라이나박물관(The Ukrainian Museum)은 맨해튼 남동쪽 뉴욕대(NYU) 근처에 있다. 맨해튼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한적한 2애브뉴와 3애브뉴 사이, 8스트릿에 있는데 허름한 주위 건물들과는 달리 아치형 지붕을 가진 동구풍의 건축 디자인으로 지어져 있다. 우크라이나박물관이 생긴 것은 1976년. 미국 내 우크라이나 커뮤니티 여성 단체인 우크라이나전국여성리그가 우크라이나의 역사 유물과 예술품을 수집, 보존해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키고 후세를 교육하기 위해 설립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1870년대 펜실베이니아주 금광 러시 때 처음으로 30만명 정도가 집중적으로 이민왔다는 것을 감안할 때 100여년 만에 박물관이 만들어진 셈이다. (현재 미 전국에 100만명 정도 거주) 우크라이나박물관의 콜렉션은 우크라이나 전통 민속품과 공예품, 의상, 회화와 조각 등 미술품, 역사적 유물, 서류와 인쇄물 등 사료, 기록 사진과 영화(주로 다큐멘터리) 등이다. 우크라이나박물관은 자체 소장품을 정리해 1층과 2층 전시장에서 기획전을 열기도 하고, 전 세계 유수의 박물관들과 협력해 초대전을 갖거나 미국 주요 도시들을 돌면서 순회전을 갖기도 한다. 특히 우크라이나박물관은 수집, 보존과 함께 전시와 교육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 달에 한두 번씩 전시 리셉션과 문화행사가 열려 전시장뿐 아니라 일종의 커뮤니티 문화공간, 민족교육을 하는 사회교육장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2층 전시장에서 우크라이나 근대 최고 화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되는 미카즈로 모로즈(1904-1992) 유작전이 열리고 있다. 모로즈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이민와 활동했던 화가로 우크라이나의 민족적 미감을 가장 잘 드러낸 화가로 추앙받고 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모로즈 유족들이 박물관에 기증한 120여점 중에서 추린 것인데, 모로즈의 자화상에서부터 프랑스 파리에 유학할 때 제작한 작품, 1940년대 뉴욕으로 이민온 뒤 뉴욕의 자연풍광을 그린 풍경화 등 역작들이 대거 나와 있다. 작품들은 붉은 색 등 원색의 배열, 힘이 느껴지는 강한 붓질과 함께 때론 동구의 동토를 연상시키는 고적한 정서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민족정서를 잘 담아내고 있다. 특히 그림들 중에는 유럽의 인상주의 화풍으로 뉴욕의 풍광을 ‘동양의 서예처럼 박진감 넘치는 붓질’로 그려낸 대단한 그림들이 많아 인상주의 화풍을 좋아하는 미술애호가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2-01

[뉴욕 박물관 산책 -37] 첼시미술박물관

첼시미술박물관은 맨해튼 서쪽 미술의 거리 첼시에 있다. 지하철을 타고 23스트릿에서 내려 2~3블록을 걷거나 M23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박물관 인근에는 100개가 넘는 화랑이 몰려 있기 때문에 편하게 둘러보면서 차 한 잔 마시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특히 1층에 쇼윈도처럼 전시장 내부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든 화랑이 많아 쉽게 미술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한편에서는 첼시 화랑가가 상업화된 소호를 피해 공장지대를 개척, 새롭게 만들어졌지만 최근 들어 또 다시 상업화에 빠졌다는 지적도 있다. 첼시미술박물관은 이 지역에 있는 몇 안 되는 박물관과 콜렉션 중 하나다. 프랑스 출신의 추상 화가 장 미오뜨(Jean Miotte. 1926-)가 지난 2002년 설립했다. 박물관 설립의 목적은 20세기 중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형성돼 현대미술의 핵심적인 미술사조의 하나로 떠오른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관련 작품을 수집 연구하고, 전시회를 통해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20세기 추상표현주의의 대가로 불리는 미오뜨는 큼지막한 평붓을 넓게 펴서 검은색과 붉은색, 노란색 등 물감으로 동양의 서예를 하는 것처럼 휘둘러 뜨겁고 격정적인 추상화를 그린 화가다. 프랑스에서는 추상표현주의를 ‘르아르 잉포메르(L’Art Informel)’라고 하는데, 박물관을 만든 동기 중 하나는 20세기 추상표현주의 원조 논쟁에서 세계미술의 메카를 자처하는 프랑스의 우위를 알리기 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첼시미술박물관은 3층 건물에 각 층마다 대형 전시장을 만들어 놓고 뉴욕과 유럽 등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초청해 초대전을 열고 미술과 역사, 인문 분야의 유명 콜렉션과 협력해 기획전을 열고 있다. 그러나 첼시미술박물관은 솔직히 박물관이라기 보다는 상업성을 띠지 않는 대형 화랑이나 전시장에 가까운 편이다. 박물관의 필수적인 기능은 역사적 유물이나 미술작품 등을 수집(객관적, 과학적으로)하고 이를 전시(공개적, 보편적)하는 것이다. 최소한 이 두 가지가 충족돼야 박물관이다. 그러나 첼시미술박물관은 주로 장 미오뜨 작품을 소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시도 외부 작가나 콜렉션을 위한 초대전이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20세기 중반 이탈리아와 이집트, 레바논 등 중동지역 미술가들의 회화 작품을 선보이는 ‘이탈리아라비아(ItaliaArabia)’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특히 1층 소전시장에서는 한인 2세로 미국 화단에서 최고의 블루칩 작가로 부상하고 있는 마이클 주(Micael Joo)가 ‘보디 옵버그캑터스(Bodhi Obfuscatus·깨달은 혼란)’이라는 어려운 이름의 설치작품전을 열고 있다. 외부 전시가 없을 때는 미오뜨의 작품 상설전시가 열리기 때문에 현대미술, 특히 뜨거운 추상표현주의 미술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1-25

[뉴욕 박물관 산책-36] 인트레피드 해양항공우주박물관

인트레피드 해양항공우주박물관은 맨해튼 서쪽 허드슨 강가 86번 부두(Pier 86)에 있다. 미 해군에서 활약하다 퇴역한 항공모함(항모)과 잠수함을 박물관으로 개조했다. 전 세계에서 항모를 전력화한 나라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태국(경항모) 등 소수인데 특히 항모와 잠수함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비록 항모와 잠수함이 구식이긴 하지만 군사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인트레피드 박물관 존재 자체가 미국에서만 누릴 수 있는 대단한 행운이다. 인트레피드 박물관은 1943년 취역해 약 30년간 임무를 수행하다 74년 퇴역한 미 해군 항모 인트레피드(USS Intrepid)에 만들어졌다. 인트레피드는 전장 912피트, 전폭 192피트, 흘수 27피트, 배수량 4만1400톤, 최대 시속 37마일, 승무원 3600여명으로 현재 미 해군이 주력으로 배치하고 있는 배수량 10만톤 내외의 니미츠급 원자력 항모와 비교하면 중형급이다. 인트레피드 박물관은 항모의 최상위 비행갑판에 항공기 전시장, 갑판 밑의 원 항공기 적재소에 주전시장, 승무원 거주지역과 임무실 공간에 작전상황실과 암호부서, 조종사 브리핑 룸 등 과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개별 전시장을 구석구석 갖추고 있다. 비행갑판 항공기 전시장에는 한국 공군의 주력기 중 하나인 KF-16의 원 모델인 F-16서부터 러시아 공군이 사용한 수호이 전투기, 미 해안경비대의 구조 헬기 등 10여대가 진열돼 있다. 주 전시장에는 항모 활동사진(대형 스크린과 영화관에서 기록영화 상영)과 2차 대전 당시 일본 해군과의 접전 기록과 기념품, 베트남 전쟁 참전 기록, 1960년대 인트레피드 항모가 태평양서 수거한 NASA의 우주인 지구 착륙 모듈, 근무 수병 복장과 앨범 등 각종 기념품 등이 전시돼 있다. 또 수기(手旗)와 모스 신호 등 선박 간 통신수단, 항공모함 내부의 의자와 침대, 임무와 시간 변경을 알렸던 종(鍾), 수천명의 식사를 준비했던 주방기구 등과 함께 어린이·청소년들을 위한 G-중력(항공기를 급속 발진할 때 느끼는 가중 압력) 체험시설, 항공기 조종석 모델 등도 갖추고 있다. 특히 2차 대전 당시 항모 조종사들이 조난을 당했을 때 영어를 모르는 지역 주민에게 보여주고 도움을 청하던 조난 전단도 소장품 중의 하나다. 이 색 바랜 전단 우측 하단에 한글로 “내 비행기가 깨졌다. 가까운 연합군 측에 나를 보내면 상금을 받는다”라는 내용의 글이 쓰여져 있어 당시 상황에 대한 깊은 감회를 느낀다. 입장료가 비싸긴 하지만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물론 군사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도 한 번은 가볼 만한 곳이다. 인트레피드 옆에 있는 3500톤급 그로울러 잠수함(USS Growler)은 역사상 최초의 디젤 전략 잠수함(핵탄두 미사일 발사)으로 현재 수리 중이라 올 봄 다시 문을 연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1-18

[뉴욕 박물관 산책-35] 만화미술박물관 '할아버지-손자가 함께 즐기는 곳'

만화미술박물관은 맨해튼 남부 브로드웨이 선상에 있다. 소호 지역을 동서로 가르는 하우스턴스트릿과 프린스스트릿 사이에 있는데, 일반 상점들 사이에 입구를 둔 주상복합건물 4층(401호)이어서 찾기 쉽지 않다. 밖에 표시가 없는 데다 건물 관리인도 박물관이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각오를 단단히 하고 찾아가야 한다. 미국은 보통 ‘만화의 고향’으로 불린다.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도 만화 문화가 발달했지만 전문가들은 ‘만화의 메카는 미국’이라고 말한다. 미국은 이미 19세기 중반부터 만화책은 물론 신문과 잡지의 연재만화, 정치적 풍자화, 인물 만화(캐리커처), 그림 소설(그래픽 노블), 책 삽화, 광고를 위한 일러스트레이션 만화 등이 쏟아져 나와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세기 중반부터는 월트디즈니의 ‘미키 마우스’로 대변되는 만화영화가 나와 미국인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요즘에는 FOX방송의 TV 애니메이션 프로그램 ‘심슨’, 만화 영화만을 전문으로 상영하는 카툰 네트워크 채널, 컴퓨터를 이용한 컴퓨터 제작 만화(컴퓨터 카툰),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교육 교양만화, 초호화 코팅지와 하드커버로 장정된 성인용 그래픽 만화, 컴퓨터와 X박스 등 게임기를 위한 프로그램 일러스트레이션 등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 이 같은 만화 형식들은 미국인들에게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즐기는 문화양식’으로 받아 들여져 높은 평가와 사랑을 받고 있다. 만화미술박물관은 이 같은 미국 만화 예술의 중요한 역사 자료를 수집해 보존·전시하고, 교육과 연구를 지원하는 전문 박물관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최근까지 미국 만화예술의 각 시대와 장르를 대표했던 작가들의 원본 그림과 만화책 초본, 풍자화를 담고 있는 신문과 잡지, 삽화 등을 소장하고 있다. 만화미술박물관은 소장품을 분류해 정기적인 전시를 하는 한편 매년 한 번씩 미국의 대표적인 만화가와 시사 카투니스트(신문 잡지 등에 정치 풍자 만화를 그리는 작가), 만화 출판사, 만화영화 제작사 등을 초청해 대규모 만화미술 박람회를 개최한다. 또 정기적으로 기금마련을 위한 경매를 하는데, 수십년 전에 나온 만화책 표지 원본 그림의 경우 2만달러 가까운 고가에 팔리기도 한다. 만화미술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 중 눈에 들어 오는 것은 한국계 3세인 그렉 박(Greg Pak)의 만화책 ‘헐크’ 시리즈다. 현재 미국 만화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인 그렉 박은 예일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로즈(Rodes) 장학생으로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뒤 NYU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NYU 다닐 때 한국인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실험영화로 ‘스튜던트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졸업한 뒤 영화제작자 겸 작가로 활동하면서 ‘아이론 맨’ ‘워 매칭’ 등 인기 만화 스토리를 썼고 현재는 미국의 대표적인 만화 출판회사 마블 코믹스와 계약을 맺고 ‘인크레디블 헐크’ 등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미국에서는 만화책을 만들 때 스토리 작가가 글을 쓰고 여기에 맞춰 만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 여러 명이 함께 그림을 그려 책을 만드는데, 보통 작가가 원저작자가 된다. 그렉 박이 스토리를 쓴 ‘헐크’ 만화책 시리는 권당 30~40달러씩의 고가임에도 요즘 만화 매니아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1-09

[뉴욕 박물관 산책-34] 어린이미술박물관 '어린이들의 꿈을 모은 곳'

어린이미술박물관(Children’s Museum of Arts·이하 CMA)은 맨해튼 남쪽 소호 근처의 라파옛스트릿에 있다. 과거에는 예술과 낭만의 거리였으나 최근에는 중국인 밀집지역인 차이나타운 경제권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중국인 상가로 변하고 있다. CMA 옆에도 중국인 가게들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박물관인지, 미술재료를 파는 상점인지 모를 정도가 됐다. 경제의 확장과 수축에 따라 사람과 미술, 역사가 흥하고 쇠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CMA는 미술교육가인 캐털린 슈나이더에 의해 1988년 설립된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어린이 미술 전문 박물관이다. 설립 취지는 1세부터 12세까지 어린이들의 미술작품을 모으고 전시하면서 한편으로 뉴욕시 인근 지역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전문가들을 초청해 수준 높은 미술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일종의 아웃리치(outreach) 프로그램이었는데, 최근에는 음악 교육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CMA는 다른 박물관과 달리 일단 들어서면 유아원 같은 분위기다. 탁 트여진 방과 공간에서 어린이와 부모들이 함께 그림을 그리고(회화), 종이를 자르고(공예), 진흙으로 무엇인가를 만든다(조각). 실제로 CMA에는 제이미 켈티, 크리스틴 오스만, 로니 왓슨 등 뉴욕 문화예술계에 잘 알려진 젊은 화가와 연주가들이 강사로 초빙돼 어린이들을 교육하고 있다. 일종의 미술 분야 영재교육 프로그램인 셈이다. CMA는 박물관의 기본 기능인 콜렉션과 전시를 위해서도 나름대로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설립 초기부터 CMA는 유럽과 아시아·아프리카 국가 어린이들의 작품을 수집했는데, 현재 2000점 정도를 소장하고 있다. 또 2003년 뉴욕시에서 열렸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한 양국 어린이들의 소망을 담은 연(鳶) 작품 콜렉션, 박물관에서 전시를 했던 작가들이 기증한 어린이 관련 미술품 콜렉션 등이 대표적이다. 또 CMA는 정기적으로 유명 미술가나 기부자들의 도움을 받아 기금 마련을 위한 미술 경매를 열고, 박물관의 트여진 공간에 어린이와 관련된 작품을 전시하기도 한다. 현재는 한인 미술가인 윤정미씨가 각종 장난감 등을 수집하고 있는 어린이들 모습을 연작 사진으로 찍은 ‘핑크 앤 블루 프로젝트’ 전시회를 하고 있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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