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천트 하우스 뮤지엄(Merchant’s House Museum)은 로어 맨해튼 동쪽에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3층 건물로 뉴욕시에 살았던 큰 부자의 집을 옛날 모습대로 보존하고 있다. 19세기에 지어진 뉴욕시 건물 중 박물관으로 개조돼 일반에 공개된 시설로는 유일하다. 현재는 연방정부에 의해 국가사적건물(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돼 있다.
건물은 1832년 지어졌고 현재는 지하실과 1, 2층의 침실과 거실 등 8개 방이 전시장으로 개방되고 있다. 당시 뉴욕의 부자들이 어떻게 생활했는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집에서는 당시 유럽과 미국 사이의 무역을 통해 큰 돈을 모은 아일랜드계 이민자 시버리 트레드웰(Seabury Tredwell)이 부인과 8자녀 등 가족과 함께 살았다. 1835년 당시 구입가격 1만8000달러. 시버리가 사망한 뒤 1840년 출생한 그의 막내딸 거트루드가 집을 지키며 살다 1933년 93세를 일기로 2층 침실서 사망했다. 거트루드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는데, 그가 죽은 뒤 집에서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이 건물은 미국 건축사에서는 19세기 양식을 보여주는 연구 대상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고, 생활도구와 장식품 등이 잘 보존돼 있어 당시의 생활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장소다. 집 외부는 미국의 19세기 부자 집에 많이 채용된 초기 페더럴 양식(Federal style)이고 내부의 침실과 거실 등은 그리스풍을 살린 그릭 리바이벌(Greek Revival) 양식으로 돼있다.
거실과 침실 등 방에는 당시 가구와 가재도구들이 옛날 모습대로 전시돼 있는데, 특히 캐비넷 등 가구 일부는 당시 최고의 명성을 날리던 목공예가 던컨 파이피(Duncan Phyfe·1768-1854)가 만든 작품들이다.
또한 가족들의 초상화와 사진들이 전시돼 있어 가족사의 전개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거실과 침실 등에 걸린 초상화와 풍경화도 당시 부자들의 기호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와 함께 집안의 여성들이 사용하던 호사스런 장갑과 모자, 가죽 구두, 목걸이 등 귀금속들도 전시돼 있어 당시 귀부인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색적인 것은 2층 거실 옆에 전시돼 있는 집안 일꾼들의 업무 관련 전시품들이다. 집 관리와 주방 요리사, 청소 등을 하는 하인들의 일과 시간 업무 내용 등을 적어 놓은 업무 관리표 등도 당시 모습대로 남아 있다.
집 뒤에는 작은 정원을 보존해 놓고 있다. 안내 책자에는 19세기 부자 집 정원을 원형대로 보존해 놓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보면 실망이다. 지하실 부엌 옆의 작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있는데 19세기가 아니라 최근에 나온 값싼 야외 의자에다 허물어져 내린 화단, 3면에 높이 올라가 있는 이웃 건물의 벽 하며…. 한마디로 세월무상을 느끼기에 충분한 모습이다.
부를 갖고 있을 때 적선과 적덕을 열심히 했더라면 이처럼 초라하게 보이지만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 찾아온 길손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