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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남용되는 영어

Los Angeles

2003.07.1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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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캘스테이트 도밍게즈힐스 교수>
한국어에서의 영어 사용은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느낌이다. 대중언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반 신문을 봐도 영어는 이미 현대 한국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관광 안내소에서 어느 식당을 찾으니 안내원은 “두 블록 더 가서, 코너에서 오른쪽으로 턴하세요”라고 대답했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즐겨쓰는 방식의 한국어다.

찾던 식당에 들어서니 종업원은 “테이블이요, 상이요”하고 묻는다. 물론 영어인 ‘테이블’도 알고 한국어인 ‘상’도 잘 알고 있었지만 순간적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몰라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듣는 질문인 동시에 테이블과 상 모두 탁자를 의미하는 동의어임에도, 식당 종업원이 영어와 한국어를 차별화해서 사용하는 데는 분명한 의미론적 동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언어는 바뀐다. ‘아주머니’가 부모 항렬인 여자를 부르는 순수 한국어인데도 불구하고 현대 한국어에서는 ‘숙모’를 아주머니라고 부르면 마치 비칭인 듯 인식되고 있다.

언어가 시대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데는 사회적 가치관이 반영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순수 한국어보다는 한자어에 더욱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 근래에 들어서는 어학적 관심이 한자어에서 영어로 전환되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자어와 달리 한국어에서의 영어가 미치는 영향은 단순한 어휘적 응용에 국한돼 있지 않다. 영어는 한국어의 구문론, 음운론, 의미론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더구나 일본을 거쳐 들어오는 영어는 그 어원과 응용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일본식 영어가 대중 한국어에 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화 그리고 전산화 시대에서 어느 정도의 영어 사용은 불가피하다. 물론 중국에서처럼 필요에 따라 적절한 낱말을 자국어로 새로 만들어 낼 수도 있지만 모든 전문 용어를 한국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미국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영어인 까닭에 영어를 일일이 번역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영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편리할 뿐 아니라, 생각이나 감정을 더욱 정확히 표현하는 데 용이할 때도 있다.

다만 영어를 한국어와 병행해서 사용한다면 이에 대한 체계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내용상 영어 사용이 불가피하다면 영어 사용에 대한 동기나 목적이 뚜렷해야 하는 것이다.

간혹 영어가 더 세련되었다는 느낌만으로, 혹은 지적인 인상을 준다는 생각만으로 영어를 남용한다면 본인의 한국어에 대한 가치관과 한국적인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심각히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영어권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경우에 따라 영어를 한국어 발음으로 사용할 때도 있고,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한인 신문에서는 Affirmative Action을 ‘어퍼머티브 액션’이라고 사용하기도 하고 ‘소수민족 우대정책’으로 번역해 사용할 때도 있다.

그런데 Affirmative Action을 한글로 표기하면 영어의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고, 또 한국어 번역도 정확하지 않다. Affirmative Action은 소수민족이나 특정 부류에 속하는 사람을 우대한다는 정책이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 국민에게 평등한 대우를 실행하자는 진보적인 정책으로서 사회적 권익에 관한 방책이다.

언어가 사회의 풍조를 반영하는 만큼 언어는 또한 습관에 의한 것이다. “오늘은 침대를 만들었어요”라고 하면 문장 구성상 한국어이지만 영어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우리는 한국어에서의 영어 사용에 대해 의식적으로 검토하고 이에 대한 동기나 목적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습관이 지속되면 변화가 오고, 변화는 곧 문명에 영향을 주는 만큼 언어사용에 있어서 신중을 기할 때다.

문의 (310)243-2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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