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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재의 살며 생각하며] 그 나라와 의를 먼저 구했을 때

Washington DC

2003.10.2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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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표팀 세계태권도대회출전기(1)
최근 독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 선수권 대회의 미국 대표팀 감독을 맡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내게는 미국 대표팀 감독을 맡은 것보다, 이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어 개인적으로 더욱 의미있는 시간으로 남아있다.

필자는 지난달 24일 부터 독일 가미쉬-파킨쉬탠시에서 열린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에 미국 대표선수들을 인솔하고 17일에 출국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막상 짜여진 일정표를 손에 받아 쥐고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몇 개월 전에 이미 계획된 뉴욕에서의 대 전도 집회에 참석하기로 한 일정과 겹쳐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러 차례 생각을 해보았지만 대표팀 감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인솔해야 하는 책임을 미루고 선수단과의 동행을 거부하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교회의 인도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는 성경말씀을 따라 독일행 일정 변경을 연맹에 통보하고 집회에 단 하루라도 참석하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결정이 큰 대회를 앞두고 있는 나 자신이나 대표팀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미안한 마음과 함께 연맹에 이를 통보했더니 비행기표 일정 변경에 따르는 벌금은 나더러 지불하고 가능하면 속히 현지에 도착해 줄 것을 부탁해 왔다. 먼저 비행기표 변경 벌금을 지불하고 워싱톤이 아닌 뉴욕에서 뮌헨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여행사에 부탁했더니 비행좌석이 없다고 했다. 처음엔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기도해보니 전도 집회에 참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었다.

나는 여행사 직원에게 내 이름을 대기석 리스트에 올려놓으라고 부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여행사 직원의 예견과는 전혀 다르게 한시간 이내에 한 자리가 생겼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이 순간부터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살아 계시는 하나님. 그러나 또 한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마침 동북부에 불어닥친 허리케인 이사벨로 인해 뉴욕까지의 여행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허리케인 이사벨은 오히려 여행을 순조롭게 했다. 금요일 아침 워싱턴에서 출발한 우리가족은 불과 4시간 30분 만에 뉴욕의 집회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동안 수차례 워싱턴과 뉴욕을 오갔지만 이때처럼 한산한 고속도로는 처음이었다. 비워둔 집에도 다행이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없었다. 일기예보를 통해 볼 때 그 당시 먼길을 떠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집회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발길을 옮긴 우리 일행을 도우셨다는 마음이 들어 참으로 감사했다. 제 아무리 험한 허리케인이라도 하나님의 복음 진보를 위한 이 집회를 방해할 수 없었다.

나는 일정상 집회를 다 마치지 못하고 다음날 저녁 가족들과 헤어져 독일로 향했다. 일년만에 다시 찾은 독일은 유럽 국가들 중 가장 미국과 비슷해 보이는 풍경을 지니고 있다. 뮌헨공항에 도착하여 기대치 않았던 벤츠 승용차를 손수 운전하게 되었다. 이 차는 원래 다른 사람이 사용하기 위하여 빌린 것인데 그의 일정이 바뀌어 내가 시합이 열리는 도시까지 운전하게 되었다.

난생 처음 오토반 길을 시속 210킬로미터로 한시간 반여를 달리는 기회를 얻었다. 가미쉬시는 뮌헨에서 약 두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경험이 있는 산 아래 위치해 있었다. 오뚝 솟은 뒷산이 마치 병풍처럼 도시를 감싸고 있는 아주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인근 도시로는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르크와 음악의 거장들의 산실이기도 한 짤스버그가 위치해 있었다. 다만 군데군데 위치한 각국팀들의 호텔들이 많이 떨어져 있어 서로의 왕래가 아주 불편했다. 더욱이 미국팀이 머물고 있었던 호텔은 그야말로 절경의 산밑에 위치하고 있어 산장에 휴가를 온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도시와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일정을 마치는 날까지 이차를 직접 사용하게 된 일은 큰 행운이었다. 이것이 다 뉴욕집회에 참석하느라 도착일정을 뒤로 미룬 결과의 부산물이었다. 이렇게 나의 현지 기동력을 높여주신 하나님의 면밀하신 손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현지에 도착해 보니 태권도 용품회사에서 그 회사의 제품 전자호구를 세계태권도 연맹 가맹국 기술심의회에 소개해야 하는데 프레젠테이션을 하도록 예정된 사람의 도착이 늦어져 마땅한 사람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었다.

마침 내가 그곳에 도착하니 여러 사람을 통하여 내게 부탁을 해왔다. 이 일을 통해서 일정에 없었던 국제회의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혀 예상치도 그리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그 대가를 받았다. 집회에 참석하고 오기 위하여 비행기표를 변경하느라 벌금을 지불했더니 하나님은 그 몇 배로 갚아 주셨다.

이렇게 정확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나는 이 일들을 계획해 놓으신 이가 하나님인 것을 시간이 흐른 후에야 깨달은 그런 둔한 사람이다. 하긴 내가 감사를 모르고 사는 일이 어디 좀 많아야지….

나는 봉사하는 직책에 불과한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대회를 마칠 때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간직할 수 있었던 사실이 무엇보다도 감사했다. 살면서 봉사한다는 말을 흔히들 하지만 이를 실천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은 것 같다. 누군가를 섬긴다는 그 봉사의 마음은 절대로 내 스스로의 속에서는 나올 수가 없다. 만약 누군가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가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누군가에게로부터 섬길 수 있는 마음을 먼저 흘려 받았을 때 이 마음을 돌려 줄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대표팀 감독직을 봉사하는 자세로 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먼
저 나의 마음을 낮추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벌써 15년도 넘는 나의 허물을 누구의 입을 통해서 들추어 내셨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화가 나고 불평하는 그런 형편없는 자이지만 이는 나의 본 모습을 다시 한번 인식시키려는 하나님의
작업임을 알고나니 이 일을 야기한 상대에 대한 불평이 오히려 감사로 바뀌고 이를 포옹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나의 경험이나 위치를 내세워서 팀을 리드하는 것 보다 섬기는 마음으로 일들을 대하도록 이끌어 주셨다. 낮아진 마음에는 부딪침보다는 화합이 따르고, 어려움이 있을 때 불평보다는 그 일을 두고 간구와 감사가 가능케 한다. 이런 나의 마음은 나의 본 마음이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을 교회와 그의 종들을 통하여 흘려 받은 마음이었다.

경기를 하기 전날 선수들은 먼저 계체를 한다. 태권도는 체중으로 체급을 나누어하는 경기라서 각자가 속한 그 한계체중에 들어서지 않으면 경기에 임하기도 전에 실격을 당한다. 따라서 선수들은 식사 량을 조절해야만 한다. 첫 경기를 치를 미국의 두
선수는 식사를 두끼나 거르고 난 후에야 계체에 통과할 수 있었다.

계체장소에 가기 전부터 치킨을 튀긴 음식을 먹겠노라고 그 음식점으로 데려다 달라고 몇 번이나 졸랐다. 오죽 배가 고팠을까. 과거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그 심정을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감독인 나로선 계체를 통과한 후에야 두 선수를 음식점에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차안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 두 선수 모두 양팔에 한아름씩 음식을 안고 나오면서 입이 함박만하게 벌어진 그들의 미소를 보면서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저들의 뒷바라지를 할 수 있는 사실에 감사했던 것이다. 나는 이 대회 과정을 통해서 팀내 이긴 선수에게는 겸손과 감사를, 그리고 경기에 패한 선수들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마음을 다해 전하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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