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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도그빌]영화이길 거부한 영화

Los Angeles

2004.03.2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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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구성 연극처럼
덴마크 감독 라스 폰 트리에는 ‘도그빌’(Dogville)에서 연극 영화를 실험한다. 1930년대 미국, 인구 15명의 산골마을 ‘도그빌’은 영화면서도 영화임을 거부한다. 영화는 가장 사실적인 장르다. 예를 들어 기차가 달리는 모습을 묘사한다면 영화는 태생적으로 음악이나 미술, 문학, 연극이 따라올 수 없는 사실성을 갖고 있다.

폰 트리에의 ‘도그빌’은 의도적으로 영화의 사실성을 거부한다. 2시간 58분의 사건이 진행되는 마을은 선과 가구 몇 개가 전부다. 길 이름을 써놓았으니 길이고 누구의 집이라고 써놓았으니 집이다. 벽도 지붕도 없다.

어떻게 봐도 이건 영화의 세트가 아니라 연극의 무대다. 구성 자체도 프롤로그와 9개의 막으로 나뉘어져 있다. 연극과 다른 게 있다면 관객의 시선이다. 연극에서 관객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와 같은 거리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관객의 시선을 대신해 소품이나 배우와의 거리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나마 카메라는 움직이지만 역동적이지 않다.

비사실적 세트, 움직임을 자제하는 카메라, 중간 중간 몇 번 째 챕터인지 알려주는 자막은 관객들에게 “당신은 지금 가공의 인물과 이야기를 보고 있습니다”라고 일깨운다. 극영화는 관객을 이야기에 몰입시키고 등장인물과 동일시하도록 애쓴다. 하지만 폰 트리에는 습관적으로 영화에 몰입하려는 관객의 환상을 깬다. “이건 영화야. 진짜가 아니야.”

잘 알려진 것처럼 ‘도그빌’은 ‘맨덜레이’, ‘워싱턴’으로 이어지는 미국 비판 3부작의 첫번째 작품이다. 정체불명의 여자 그레이스(니콜 키드먼)가 마을 사람들에게 처참하게 파괴되어 가는 충격적인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왜 개같은 마을인지 알게 된다.

사실성을 의도적으로 무너뜨린 ‘도그빌’은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지 말고 미국을 보라고 외친다. 영화는 손가락일 뿐이고 손가락이 가르키는 것은 미국이다.

‘도그빌’은 미국의 폭력성 혹은 이중성 아니면 노예제를 가르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반영화적인 형식이고 이런 형식의 의도는 관객들의 의식을 흔들어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26일 개봉. 등급 R. Laemmle’s Sunset 5(323-848-3500) 상영.

안유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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