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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플레이스] '황혼의 덫'

Los Angeles

2005.07.2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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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필 논설실장
로널드 레이건의 애칭은 '테플론'(Teflon). 한때 그의 정적이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지어줬다. 계속 열을 가해도 들러 붙지 않는 프라이팬이 바로 테플론이다. 1980년대 초 듀폰이 개발해 주방기구에 혁명을 일으킨 첨단 소재다. 대형 스캔들이 터져 나와도 이미지에 타격을 입지 않는 레이건. 카터에게는 이런 레이건이 테플론 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아무리 덧칠해도 때가 묻지 않는다는 찬사가 아닐까.

레이건이 '테플론'으로 불리게 된 건 그의 뛰어난 화술과 타고난 유머 감각 때문이 아닌가 싶다. 퇴임을 앞두고 베데스다 해군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을 때의 일화가 지금도 기억난다. 레이건은 주치의에게 자신의 건강에 세가지 이상 조짐이 생겨났다고 운을 뗐다. "이보게. 한가지는 요즘 나이가 먹어서인지 가끔 깜박 깜박 한다네. 그리고 나머지 두가지는… 글쎄 금방 잊어버렸지 뭔가." 폭소가 터져 나온 건 당연했다. 치매 증상이 있다는 걸 감지한 레이건은 이를 우스개로 슬쩍 귀띔해 준 것이다.

결국 알츠하이머 진단이 나오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TV 앞에 섰다. "저는 이제 황혼으로 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삶을 망각과 죽음으로 치닫게 한다는 치매. 레이건은 메모지에 쓴 고별사를 또박 또박 읽어 내려갔다. 그러고는 미국인들에게 사랑의 키스를 보내며 역사의 무대를 떠났다.

'황혼의 덫'이라는 치매와 10년을 싸웠던 레이건.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조차 기억못한 채 투병해야 했다.

병 간호는 가족의 몫. 낸시 여사는 레이건을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 격리해 보호했다. 남편의 업적이 치매로 얼룩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자식 복이 없었던 레이건이었지만 치매가 가족을 사랑으로 뭉치게 했다. 재임시절 레이건의 속을 가장 썩혔던 건 큰 딸 모린. 아버지를 전쟁광으로 몰아 붙이는가 하면 백악관 정문에서 '제국주의자 물러가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 딸이 아버지와 화해를 한 것. 병상을 지키며 아버지의 몸을 씻겼다.

10년의 세월이 오죽 고통스러웠으면 낸시 여사가 "참으로 길고 긴 이별의 시간이었다"는 말을 했을까.

어쩌면 B급 영화배우를 A급 대통령으로 만든 것도 낸시 여사의 헌신 덕분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품위있게 죽음을 맞도록 했으니 사람들은 치매로 약해진 레이건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강한 지도자 그리고 '테플론'으로서만 기억하게 된 것이다. 취임 때보다 퇴임 때 더 인기를 얻은 대통령 그리고 세상을 떠나면서 더 더욱 사랑을 받았던 레이건이 아닌가.

미국의 대통령도 이처럼 고통스럽게 살다 가는데….

"나는 할머니처럼 망령나면 혀 깨물고 죽을 거야. 자식한테 짐되는 거 정말 싫어. 다른 병은 다 걸려도 망령 만큼은 안 날 거야." 어느 한국 TV 드라마에서 친정 엄마가 치매 걸린 사돈 할머니에게 퍼붓는 장면이다. 시할머니 병간호에 시달리는 딸을 보다못해 함께 죽자며 악담을 하는 친정 엄마.

얼마전 치매 걸린 안사돈을 살해하고 자신도 목을 매 자살한 60대 한인도 드라마 속의 친정엄마와 비슷한 심정은 아니었을까.

살아있되 살아있다고 볼 수 없는 치매 환자. 한인가정의 비극을 보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는 과연 어디까지 일까 잠시 생각해 본다.

품위 있는 임종…. 어쩌면 인간의 영원한 숙제일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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