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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필 기자가 만난 사람] '와싸다' 횟집 김기태 사장

Los Angeles

2006.10.0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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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해야 돈 번다 '아이디어 즉각 실현해야 힘'
“어디서 많이 뵌 것 같은데요?”
“ ‘온달’에서 보셨겠죠.”
“온달이요?”
“8가 해밀턴호텔 1층에 있는 식당이요.”
“아하! 그렇네요.”
얼마전 웨스턴 길에 새로 문을 연 ‘와싸다’ 횟집에서 고객과 업소 주인 사이에 오고 간 대화다.

고객이 알아 본 주인공은 김기태(54)씨. 꽃게와 아구찜으로 미식가들의 입맛을 돋우던 ‘온달식당 김사장님’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작지만 다부진 체격의 김 사장은 영락없이 '소시적 한가락 했던 사람'으로 보인다.

어떻게 '종목'이 다른 횟집 오픈을 생각하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1초도 안돼 "하면 될 것 같아서"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의 사업방식도 이렇듯 속전속결이다. 아이디어가 떠 오르면 바로 실행에 옮긴다.

패밀리 비즈니스

"어느 장군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전진이냐''후퇴냐'를 1초이상 생각하지 말라고요. 지휘관이 망설이는 사이에 수많은 전사자가 생긴다는 거죠. 결국 싸워 보기고 전에 패하고 만다는 말이겠죠."

그의 이런 추진력은 온달을 3년만에 '유명식당' 반열에 올려 놓았고 동생 세명을 독립시켰고 와싸다 횟집을 오픈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온달은 음식 맛 외에도 '가족경영'으로 잘 알려진 업소였다.

김 사장 부부를 비롯해 남동생 부부와 여동생 2명의 부부 등 총 8명이 모든 일을 도맡았다.

그러다 보니 직원채용 문제나 인건비 부담 없이 사업 초기의 어려움을 넘길 수 있었다. 가족 노동력이 훌륭한 '밑천'이 된 셈이었다. 게다가 동생들이 모두 한국에서 구이집한정식집분식집 등 식당을 운영해 본 경험들이 있어 손발이 척척 맞았다.

자금은 김 사장 부인이 6년간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며 모아둔 돈과 지인들에게서 융통한 것으로 충당했다.

이렇듯 자금은 본인이 조달했지만 이익은 동생들과 공평하게 4등분으로 나눴다.

"아무리 형제지만 한 업소에서 일을하다 보니 가끔 사소한 마찰이 왜 없었겠어요. 그러나 모두 한 목표를 향해 열심히 일하다 보니 다 덮어진거죠."

온달이 자리를 잡으면서 김사장은 동생들을 하나씩 분가를 시켰다. "공평하게 일정액씩 사업자금을 줬죠.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각자 알아서 조달하라고 했구요."

이렇게 해서 '온달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은 가든그로브의 온달타운 올림픽의 꽃게랑아구랑 등 3곳으로 늘었고 남동생도 크렌셔 쪽에 식당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이민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패밀리 비즈니스' 성공 사례의 하나인 셈이다. 김 사장은 한국에서 3번의 부도를 경험했다. 마지막으로 부도가 난 것은 90년대 초반 운송업을 할 당시.

"실패두렵지 않다"

'범아육운'이라는 회사를 운영했던 그는 대형 트레일러를 49대나 보유하는 등 꽤 잘 나가는 운송사업가였다. 그런데 독점 운송권을 갖고 있던 한보철강이 부도를 내는 바람에 김 사장도 그야말로 쫄딱 망했다.

"당시 돈으로 42억원이었어요. 집까지 팔아 직원들 월급 등을 줬더니 남는 게 한푼도 없더군요."

심정이 어땠냐고 물었더니 '이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한다. 보통사람은 부도 후유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김 사장은 '두번 망해 본 경험이 있는데 세번이면 어떠랴'하고 버텼다고 회상했다.

그리고는 곧이어 지인들의 도움으로 '건축자재 재활용'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2년여 사업체를 운영하다 96년 도미했다.

앞서 부도를 겪으면서 김 사장은 '보험용 부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비즈니스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수익 다변화'를 꾀한 것.

특이해야 돈 번다

"식당을 하면 다른 사업이 부조도 나더라도 먹을 것 걱정은 안해도 되잖아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꽃게 전문점이었다.

"서울서 유명한 단골 꽃게 전문점이 있었어요. 주인한테 먼 곳에다 차릴테니 비법 좀 알려달라고 했죠."

그렇게 시작한 '온달' 식당이 LA까지 이어진 것이다.

김 사장은 원래 미식가다.한국에서부터 맛 있다고 소문난 식당은 거리를 불문하고 찾아다녔다. 비밤밥 하나를 먹기 위해 서울서 속초까지 달려간 적도 있다고 한다. 어찌보면 식당업이 천직인 셈이다. 본인 입 맛이 까다롭다 보니 '특이한 것 남이 하지 않는 것'에 관심이 많다.

꽃게 전문점을 생각한 것도 횟집을 하며 단가가 비싼 '제주산 광어'만을 고집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다음 비즈니스로도 'LA에는 없는 맛'을 계획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 사장의 식당 경영철학은 맛은 기본이고 푸짐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손님이 좋은 기억을 갖게 되고 한번 왔던 손님을 단골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경쟁이 심하지만 시장은 있습니다. 남과 똑같이 해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죠. '특이한 것'을 선보이는 것이 경쟁에서 이기는 비결이죠."

“통 큰 사장님에 놀랄 때 많아요”

◇주방에서 본 김사장


주방을 맡고 있는 ‘강 부장’은 김 사장의 큰 손때문에 놀랄 때가 많다고 전한다.

한번은 투고를 한 손님으로부터 항의 전화가 왔다. 포장에 몇 가지가 빠졌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 사장은 그 손님에게 ‘다시 오시라’고 하더니 회를 비롯한 모든 것을 다시 포장해 주더라는 것.

“빠진 것만 다시 싸주실 줄 알았는데 놀랐다”는 강 부장은 “손 큰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정도 일줄은 몰랐다”고 혀를 내두른다.
또 음식 재료를 아끼면 혼이 난다고 한다.
항상 푸짐하고 넉넉하게 하라고 주문한다는 것.

가끔 제주도에서 비행기로 공수해 오는 광어가 떨어질 때가 있는데 그때면 주방은 오히려 더 바빠진다.
광어가 없어 그냥 가는 손님은 할 수 없지만 남은 손님들에게는 수족관 속의 해산물들을 아낌없이 서비스로 내 주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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