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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미국 대륙기행] 오하이오주 쿠야호가 밸리 국립공원

오하이오 주내 유일한 국립공원, 유서 깊은 '오하이오 이리 운하' 관통

모바일 홈리스(Mobile Homeless)가 된지도 달포가 다 돼간다. 이제 밤이 두렵지 않은 것이 내심 홈리스 1차 시험을 통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지난 한달여 남짓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우울증은 시커먼 어둠과 같은 얼굴을 하고선 밤마다 빠짐없이 찾아왔다.

그리고선 이렇게 묻곤 했다. "너 혼자지 그게 외톨이라는 거야 너는 세상에서 따돌려진 인간이야."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십일 넘게 밤마다 이런 식으로 '외로운 존재'라는 세뇌를 당했다.

경관보다 '정치 축복의 땅'으로

정을 나눌 상대가 없다는 게 사람을 이처럼 우울하게 만들 줄은 미처 몰랐다.

어느날 저녁인가는 문득 내 곁에 누군가 한 사람만 있어준다면 그가 온 세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울증이 깊어지다 보니 만사 의욕이 떨어진다. 역마살이니 집시 기질이니 하며 큰소리 치고 시작했던 떠돌이 생활 초기의 '기개'는 간데가 없다.

그렇게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된지 보름쯤 됐을까. 메인주 해변의 스콧 니어링의 생가를 돌아보고 다시 중서부 내륙으로 향하던 어느 날 오하이주의 고속도로 선상에서 갑자기 머리가 맑게 개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콧노래가 절로 이어졌다. 뭔가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온 듯한 기분이었다. 혼자라는 게 또 내 마음 내키는대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홈리스나 떠돌이 생활 초기에 찾아올 수 있는 우울증을 내 나름대로 극복한 것이다. "될대로 돼라" 하며 포기하니까 밑바닥까지 내려가 헤매고 있던 마음이란 놈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정상 수준으로 올라와 있었다. 짐짓 여유가 생긴다.

그러고 나니 '현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까지 혼자 여행하는 줄 알았다. 한데 그게 아니다. 마음 몸 자동차 이렇게 세 덩어리가 같이 움직인다. 이중 제일 싱싱한 놈이 몸이다. 잘 먹고 잘도 움직인다.

반면 제일 힘들어 한 것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건 우울증에 짓눌려 있을 때 얘기다.

당장 괴로워하는 것은 자동차다. 로키를 넘어올 때 브레이크 말썽으로 고생하더니 이제는 트랜스미션이 아무래도 중병에 걸린 것 같다.

9월 하순 뉴욕과 캐나다의 국경 부근에서였다. 자고 일어나 차를 후진시키는데 주차장 바닥에 어린아이가 오줌을 눈 것 마냥 적잖은 기름 같은 것이 고여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차밖으로 튀어 나와 차 밑을 점검해 보니 내 차에서 나온 액체인 것은 확실한데 어떤 종류인지 짐작이 안갔다.

후드를 열고 너댓 종류의 오일들을 일일히 체크해 봤다. 붉은 포도주 빛인 것이 대조해 보니 트랜스미션 액이 거의 확실했다.

트랜스미션이 말썽을 일으킨다면 차가 갑자기 길바닥에 서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아무리 예산이 빠듯해도 손을 봐야하는 문제였다.

내 힘으로 고칠 수는 없으므로 남은 문제는 바가지를 뒤집어 쓰지 않는 것이다.

자동차 수리 바가지는 미국에서 비일비재하다. 영어도 달리고 아는 사람도 없는 외지에서 어떻게 바가지를 안쓴다? 혹은 덜쓴다? 머리를 한참 굴렸다.

가까운 도시의 후미진 곳에 있는 정비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노인 정비사가 있는지를 찬찬히 살펴봤다.

한평생 자동차 정비로 밥먹고 살아왔다면 양심이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뉴욕의 워터타운(Watertown)이라는 도시에서 노인이 운영하는 정비소를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아니다 다를까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리프트가 4개 였는데 모두 차가 걸려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노인은 친절히 차를 봐줬다. 예상대로 트랜스미션 액이 새고 있었다. 노인 정비사는 그러나 당장은 여력이 없다며 리프트에 차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다음날이나 오라고 말했다.

갈길 바쁜 여행자라고 말하자 고개를 두어번 갸우뚱 하더니 다른 정비소를 추천해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런 고장은 잘못하면 큰 바가지 쓴다"고 귀띔한다.

노인이 추천하는 다른 정비소는 두어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역시 노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 또한 같은 진단을 내렸는데 문제는 이 집도 일거리가 수북히 밀려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일까지도 일이 밀려있으니 스티브네 집으로 가보라"고 했다. 스티브는 이 곳을 추천한 바로 그 노인이다.

스티브네 리프트가 꽉 차 이곳으로 왔다고 했더니 한참을 고민한다. 바가지 안씌울 만한 곳으로 추천할만한 데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덜 씌울 만한 정비소를 알려달라"고 사정 했더니 내키지 않은듯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로버트네 어쩌고 저쩌고 한다.

이왕 귀찮게 하는 것 노인에게 당신 같으면 얼마면 고치겠느냐 했더니 호스를 갈아끼우든 팬 통을 점검하든 인건비를 합쳐서 한 50달러쯤 받겠다고 한다. 나로서는 '표준 가격'을 파악한 셈이다.

로버트네에 가서 트랜스미션 액이 새는데, 수리비가 얼마나 될 것 같냐고 묻자, 100달러쯤이란다. 내가 정색을 하며 50달러면 될거라고 말하자, “세금 합해서 60달러 정도로 해보자”고 한발 물러선다.

그래서 수리를 한다고 했는데, 이튿날 자고 보니 차 밑 길바닥이 또 젖어 있었다. 로버트가 “틀림없이 잘 고쳤으니 걱정말라”고 했는데, 역시 헛돈을 썼다.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막다른 상황에 몰리면 대담해 진다. 트랜스미션 액을 사서 보충해가며, 한국 사람이 하는 정비소들이 있는 대도시 근처를 지날 때까지 버텨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자동차 관련 부품 가게에서 1쿼터에 4달러 안팎인 트랜스미션 액을 샀다. 그간 처럼 많이 새지 않을 경우 한방울씩 떨어지는 정도라면 1년내내 보충하면서 달려도 50~60달러면 될 것 같다는 계산이 섰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다. 오랜 우울증에서 벗어났다 싶었더니, 트랜스미션 액 누유가 신경을 거스르게 한다. 하루에도 수백마일씩 달리는데, 금세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한편으로 조마조마 했다.

9월하순 쿠야호가 밸리(Cuyahoga Valley) 국립공원을 찾았을 때 우울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으나 차 때문에 한편으로 마음이 찜찜한 상태였다. 그날 그날, 혹은 주 단위로 마음내키는대로 방향을 정해 차를 몰곤 하는데 이날 쿠야호가 밸리를 찾은 것은 이 곳이 국립공원이었기 때문이다.

도심 자리잡은 '생활속 국립공원'

미국의 국립공원들은 거의 예외없이 경탄을 자아낼 만한 풍광을 하고 있다. 미국의 큰 서점에 가면 제목도 무시무시한,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곳(The places to see before you die)’이란 류의 책들이 있는데 이들은 국립 공원 안내서나 다름없다. 가봐야 할 곳에 어김없이 국립 공원들이 망라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제목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미국 국립공원들의 경치는 훌륭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쿠야호가 밸리는 실망스러웠다. 눈여겨 볼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간 보고, 또 막연히 생각해 왔던 국립공원들과는 류가 달랐다.

한마디로 경관관 따지면 주립공원은 커녕 그 보다 한단계 아래인 카운티 파크 수준이었다. 탄성을 자아낼 만한 지형지물도, 기가막힌 수목도 없었다. 동물들 또한 다양하지도 않을 뿐더러 눈에도 잘 띄지 않았다.

외톨이 생활에 거의 유일한 낙이 아름다운 경관을 접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는 길 근처에 국립공원이 있으면 가능한 빼놓지 않고 둘러봤다.

한데 쿠야호가 밸리는 지금까지 봐왔던 그런 국립 공원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클리블랜드 메트로 공원국 산하 공원에서 국립 휴양지로 격상된 뒤, 지난 2000년 다시 국립 공원의 지위를 얻은, 정치력에 힘입어 탄생한 공원이었다.

확실히 땅의 명운은 정치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않다. 땅이 삶의 양식을 좌우하기도 하지만 때론 사람들이 땅을 변화시킨다. 쿠야호가 밸리 국립공원는 확실히 후자에 속했다.

쿠야호가 밸리는 어쨌든 국립공원으로 변신한지 4~5년만에 방문자 수가 거의 2배로 폭증했다. 50개가 넘는 미국의 국립공원 가운데 방문자 수에서 톱 10안에 든다.

국립공원화는 쿠야호가 밸리로서는 축복이다. 하지만, 쿠야호가 밸리의 존재가 다른 국립공원의 명성에 혹 먹칠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다. 정치 과잉은 자연은 물론, 나같은 홈리스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다.

▶ 쿠야호가 밸리 국립공원

쿠야호가 밸리 국립공원은 미국내 인구 7위의 오하이오주에 있는 유일한 국립공원이다. 내 관심을 끈 것은 ‘도심속의 국립공원’이라는 이 공원의 별칭이었다. LA메트로 면적의 20% 남짓한 곳이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우면 국립공원의 지위를 얻었을까 내심 궁금했다.

공원 남쪽에서 진입에서 10여분 가량 공원 한가운데로 난 길을 드라이브 했다.

한마디로 경관만으로 친다면 국립공원은 커녕 주립공원도 못미친다. 주립 공원보다 한단계 밑인 딱 카운티 파크 수준이다.

내 눈을 의심해야 할 만큼 평범한 동네급 공원이었다. 도대체 이 곳이 왜 국립공원인지 따져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관리 본부를 찾았다.

창구를 지키던 직원에게 “쿠야호가가 왜 국립공원지 설명을 듣길 원한다. 관계자를 보고 싶다”고 했다. 이 직원이 공원 해설 담당인 팻 메리 두얼리를 연결시켜 줬다.

팻에게 대뜸 “공격적으로 좀 묻겠다. 그러니 무례하더라도 좀 양해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불청객’의 갑작스런 방문과 연이은 질문에 좀 당황하는 빛을 보였다.

팻은 나름대로 열심히 쿠야호가 밸리가 왜 국립공원의 자격이 있는지를 설명한다. 서양 여성 가운데는 뭘 설명해달라면 기가 질릴 정도로 적극적인 사람이 있는데, 팻이 그런 타입이다.

팻은 각종 자료를 분주히 책상위에 내놓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큰 목소리로 설명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쿠야호가 밸리에는 유서깊은 ‘오하이오 이리(Ohio & Erie) 운하’가 있다. 둘째 미국의 다른 어느 국립공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생활속의 국립공원’이라는 독특한 개념의 공원이다.

오하이오 이리 운하는 19세기초 건설됐다. 한때 최장 길이가 300마일이 넘었다. 이런 운하는 뉴욕 등 다른 지역에도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오하이오 이리 운하처럼 폐기됐다. 그럼에도 ‘국가적 차원’의 유물이어서 보존 가치가 있고, 이 운하가 통과하는 쿠야호가 계곡 일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수긍할 수도 있는 설명이다.

좀 더 설득력 있는 대목은 두번째, 즉 생활속 공원이라는 개념이다. 그러고 보니, 팻을 찾아보기 전에 다른 국립공원에서라면 ‘못볼 것’들을 너무 많이 봤다.

공원 구석 구석을 비집고 들어서 있는 가정집에, 또 미니어처 같은 스키장도 있었다. 스키장의 슬로프는 가장 긴 것이 200야드도 채 안돼 보였다.

이런 얘기를 하자, 팻은 신이 났는지, 이 공원에는 유기농 농가가 있고, 와이너리까지 있다고 입에 침을 튀긴다. 특히 블러섬 뮤직센터라는 공연장은 겨울 한철을 제외하곤 주말 스케줄이 꽉 찰 정도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공원 운영의 일부분이란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경치로는 “아니올시다”였다. 현장 확인을 하기로 했다. 한나절이면 대충 둘러볼만큼 크기가 작은 공원이어서 둘러보는데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공원은 산책로가 특히 잘 발달돼 있었다. 평일 오전인데도 트레일마다 뛰고 걷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트레일 옆에는 군데 군데 폐기된 운하의 갑문이 성곽의 해자 처럼 남아 있었다.

크리스토퍼 러덤스키(48)와 패트릭 매클로스키(53)도 폐기된 갑문 자리중 한 곳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30년 지기인데 패트릭이 최근 심장 수술을 받아 휴식겸 산책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크리스토퍼는 친구와 산책 동반을 위해 이날 오전 휴가를 내놓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 “아무리 봐도 이건 국립공원같지 않다”고 했더니, 그렇잖아도 자신들도 그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고 말했다. 매클로스키는 “정치인들의 장난”이라고 단언했다.

국립공원으로는 창피한 수준이라며, 원래 카운티 급 정도의 공원이었는데 차츰 지위가 격상돼 국립공원이 됐다고 그는 주장했다. 크리스토퍼 또한 캘리포니아 등지의 다른 국립공원을 많이 가봤지만, 쿠야호가는 그에 비하면 국립공원이라고 할 수 없다고 친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시민들의 평가들의 요컨대 국립공원 급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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