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수출신용보증국(ECGD) 국장을 만나고 나온 정주영 회장은 낙담만 하고 있을 수 없어 다시 애플도어사의 롱바톰 회장을 만나야 했다. 이 시점에서 정 회장이 흥정할 수 있는 자산이라고는 세 가지뿐이었다. 울산 미포만의 황량한 백사장 부지를 찍은 사진 한 장 그곳을 측정할 수 있는 5만분의 1 지도 한 장 스콧 리스고에서 만들어준 26만t짜리 유조선 도면 한 장이었다. 그러니 있지도 않은 조선소에다가 만들지도 않은 배 그림만 들고 선주를 찾겠다고 했으니 자신이 생각해도 완전히 '봉이 정선달'이더라는 것이다.
정주영 회장은 일찌감치 정몽준 의원에게 현대중공업을 물려줬다. “몽준이는 연애를 못해서”라는 이유가 흥미롭다. 사진은 1980년대 말 울산 현대중공업 현장을 순시 중인 정몽준 의원(오른쪽).
"내가 강원도 통천에서 내려와 가지고 광화문만 한 집을 짓고 살 테니 두고 보라고 했던 것부터 남들이 들으면 봉이 정선달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가 않았지 뭘 그래 하하항. "
롱바톰 회장도 ECGD 국장이 선주 없이 차관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자기도 그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는 거지요. 나도 미처 선주가 있어야 한다는 예상은 못했으니까요. 그분한테 얘기를 죽 하니까 무릎을 탁 치면서 뒤늦게 국장 말이 맞다는 거예요. 롱바톰 회장이 나중에 자세히 알고 보니까 애플도어에서 단순히 회장만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영국 총리 밑에서 하원의원으로 있었는데 쟁쟁한 분이었어요. 사실 능력 있는 사람은 절대 자신의 과거 얘기는 안 하거든?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미래가 없는 사람이 자기가 왕년에 뭘 했고 하면서 잔뜩 과거 얘기만 늘어놓잖아요. 롱바톰 회장은 과거를 얘기 안 하니 몰랐는데 좌우간 그렇게 됐다면 선주를 찾아보자는 거예요.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을 총동원해서라도 그리스 선주를 찾아봐야겠다고 말이지."
"말뚝이라도 박아놨어야지" 왜 하필 그리스 선주입니까?
"아 그분의 처가가 그리스였어요. 그 당시 세계 해운업계의 흐름이 그리스가 잡느냐 스칸디나비아 제국이 잡느냐 하는 경쟁 분위기였거든. 그러니까 과거 수백 년간 세계 해운업계를 주도했던 나라가 그리스였는데 그리스 해운사들이 가지고 있는 주력선들이 아주 낡고 노후해서 비틀거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 판국인데 스칸디나비아 제국의 해운사들이 그 무렵 막 추격을 해온 거지요. 그러니 그리스에서는 새로운 선박들을 구입해야 경쟁력을 복원할 거 아니에요. 그것을 최대한 활용해보자는 전략이었지요. 그래놓고 선주를 찾는 동안 일단 나는 서울로 잠시 들어왔어요."
국내가 불안해서였다. 운이 좋아서 이내 선주를 찾는다고 할 경우 그들이 조선소 부지라도 보자고 한다면 즉시 안내를 해야 하는데 전갑원(전 현대건설 부사장)에게 맡겨놓은 일이 어찌 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닦달하듯 궁금해 하는 부총리도 만나봐야 했다. 그동안의 협상 내용도 보고해야 했지만 선주를 찾아서 차관이 된다면 정부 보증이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울산 현장은 속이 뒤집힐 노릇이었다. 토목 공사쯤은 마쳤을 것으로 믿고 있었던 조선소 부지가 아직도 확정 되지 않은 상태로 줄곧 파일만 박아보는 처지였다. 난리였다. 정 회장의 성격에 초상집이 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여태 함마링(해머링.Hammering)도 안 하고 뭣 하고 자빠져 있는 게야! 전갑원이 어디 있어!"
전갑원 차장은 또박또박 이유를 내세웠다. 부사장을 끝으로 현대를 떠났으나 당시에 부장급만 됐어도 겁에 질려 찍소리 못했을 텐데 겁없는 차장급이라 현장 상황을 곧이곧대로 내세웠다. "회장님께서 사진 찍어서 나가셨던 부지부터 사실은 암반 조사를 해보니까 암반이 나오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곳을 다시 실사했는데도 역시 아니고…."(전갑원)
"임마! 너는 계속 아니라는 소리만 하고 다시 찾은 곳도 또 아니라는 소리 아니야! 롱바톰 회장이 현장도 와보고 사진까지 찍어서 보여주고 왔는데 거기가 아니면 어쩌자는 거야?"(정주영)
"두 번째 부지도 아닌데 어떡합니까? 아무리 박아도 암반이 나오지 않습니다."
"안 나오면 나올 때까지 찾아서 말뚝이라도 박아놨어야지! 내일 당장 선주가 온다고 하면 어쩔 작정이야?"
"제 마음대로 박습니까?"
"박아 임마! 박는 건 네 책임이라고 했잖아! 박았는데 안 나오는 것도 네놈 책임이야!" 훗날 주베일 산업항 공사 수주를 위해 정인영 사장과 담판을 짓기도 하는 전갑원이라는 인물은 해외 건설 경험이 당시로서는 가장 많았고 토목 공사에서는 베테랑이었다. 게다가 그는 캐나다로 조선소 견학을 다녀온 입장이어서 그의 시각으로 부적합한 부지라고 할 땐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봐야 했다.
물론 그 이유가 뒤에 드러났지만 지반과 지형이 조선소 부지로는 부적합했다는 것이다. 결국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최종 선정한 장소가 지금의 현대중공업이 들어선 미포만 일대다. 태초에 잡았던 자리는 지금 현대자동차 공장이 세워져 있다.
당초 조선소 부지엔 현대차가 김학렬 부총리는 그때까지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을 것 아닙니까?
"서울로 돌아왔다고 연락을 하니까 자기 방에서 만나지 말고 당장 대통령 앞에서 만나자는 거예요. 된다는 소리만 듣겠다 이거지 하하항. 그래도 뭐 설명을 안 할 수 없고 우선 선박을 발주할 선주를 찾는 게 시급하다고 그게 된다고 해도 정부 보증이 있어야 차관을 해준다고 하더라 그런 얘기를 죽 했어요. 근데 뭐 다른 얘기는 들을 생각도 안 해. 아이고 잘 됐다고 정부 보증은 차관만 되면 열 장이라도 끊어줄 테니 됐고 차관으로 조선소 건설 자금을 해결했다는 그런 소문만 나버리면 선박 주문이야 얼마든지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아 이러면서 당장 각하한테 보고 드리러 가자는 거예요. 완전히 거꾸로 해석을 해버리면서 너스레를 떠니 미치겠는 거라 하하항."
대통령한테 갔습니까?
"가긴 어떻게 가요. 지금은 반반이다 그러니 선주를 찾는다는 전제를 하고 부총리가 경제부총리니까 확실히 보증을 보장해줄 수 있겠느냐고 그걸 다짐해 달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되레 큰소리야. 열 장이라도 끊어준다고 하지 않느냐고 말이야! 하하항. 근데 그 양반도 보통이 넘는 사람이에요. 뭐라고 하는고 하니 정 회장 건설 사업은 앞으로 별 볼일 없다 날 샜다 조선 사업 같은 중공업이 대안이니까 이걸 꼭 잡으라고 말이야 아 이러네? 어떡하든 조선소를 하겠다는 정부 야심 때문에 저런 소리를 하는구나 싶으면서도 내 주력 사업이 건설인데 경제부총리가 날 샜다고 하니 얼마나 흔들리겠어. 다시 물었지. 앞으로 별 볼일 없고 날 샜다면 그게 정부 정책이라서 그러냐고. 그랬더니 이 양반이 어찌나 빠른지 얼른 정 회장 같이 다방면에 유능한 사람은 제외하고! 이러잖아 하하항. 그러니까 조선소밖에 생각하는 게 없었던 거야."
사실 정 회장도 조선 산업이 하나의 대안이라는 것에는 공감하고 있었다. 건설업은 공사를 수주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기업은 활력이 넘쳐나지만 공사가 끝나면 썰물 빠지듯 흩어지고 만다. 새로운 공법과 아이템을 개발하지 않는다면 단순 건설로는 기업의 장래를 낙관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60년대 말 전체 외화수입의 20% 넘게 차지했던 월남 특수도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정부의 중화학공업 정책에 편승하고 연관 산업도 내다보면서 새로운 사업의 돌파구를 열 수 있다면 역시 조선 산업이었다. 더구나 풍부한 노동시장이 있고 그동안의 건설 경험까지 살려 도전해본다면 해외의 조선 물량도 넘볼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정 회장이 살아생전 재산분배를 할 때 유학을 시킨 정몽준(현 국회의원)에게 "바다는 네가 먹는다 생각하고 공부를 해보란 말이야"라고 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조선하고는 조금 다른 얘깁니다만 몽준 회장이 조선에 관심이 많았습니까?
"우리 아이들은 뭘 맡겨도 다 잘하게끔 돼있어. 내 피를 물려받았고 내 유전자(DNA)를 가지고 있는데 2등 기업을 하겠어? 하하항. 근데 몽준 의원은 연애를 잘하지 못해서 중공업을 맡긴 거예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데 연애를 못하니까 항구를 가져야 할 거 아니야. 중공업이 미포항 일대를 다 먹은 거 아니겠어? 하하항."
선박왕 오나시스 처남 만나
그 후에 다시 런던으로 가시지 않았습니까? 선주는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까?
"쉽게 되는 일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어요. 온갖 정보를 다 수집하고 별별 사람 다 만나보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결국은 찾았는데 그게 선박왕이라는 오나시스의 처남인 리바노스라는 선주였어요."
리바노스를 만나게 되는 배경이 있었다. 롱바톰 회장의 친구인 선박 브로커가 리바노스를 소개하기도 했지만 때마침 리바노스는 싼값에 발주할 수 있는 조선회사를 찾고 있었다. 그는 국제 해운업계를 주름잡고 있던 그리스 선단의 대표급 집안으로 1세기 이상 해운업을 해온 그리스에서도 몇 안 되는 선주였다.
그러나 당시는 저물어가는 그리스 해운업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그동안 일본에서 값싼 배를 몇 번 구입해 재미를 톡톡히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마침 신생 조선국에서 선주를 찾고 있다는 정보를 듣자 현대가 싸게 해준다면 협상해 볼 용의가 있다고 한 것이다.
훗날 두 척을 발주해놓고 달러가가 상승하자 온갖 핑계를 다 대면서 한 척은 인수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도 싼값 흥정의 맛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정 회장이 만난 리바노스는 '스타브러스 리바노스'가 사망하고 뒤를 이어 가문을 이끌고 있던 '요르거스 리바노스'였다.
그 사람도 그리스의 대표적인 선주인데 신생 조선회사에 선뜻 발주를 하겠다고 응했습니까?
"장난감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응하겠어요? 우리가 가지고 간 울산 백사장 찍은 사진하고 스콧 리스고에서 만들어준 26만t짜리 유조선 도면을 꺼내놓고 잔뜩 설명을 하는 거지요. 그러고 뭣보다 애플도어 회장이 권했고 조건도 좋으니까 유조선 두 척을 발주하겠다고 '일단은 오케이'를 했어요. 근데 오케이면 오케이지 일단은 뭐냐고 했지. 그랬더니 영국에서 상담을 하고 계약을 하면 자기가 배를 인수해 와도 세금이 왕창 붙게 돼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세금이 안 붙게 자기 별장이 있는 스위스 중립국으로 가자고 그러잖아요. 그러면서 자기네 자가용 비행기를 영국으로 불러요. 그땐 나도 자가용이 없는데 되게 건방지대 하하항.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의 리바노스 별장으로 갔지요. 몽블랑 산모리츠 소재의 그 별장이 또 스위스에서 유명한 스키장이래요. 돈 꾸러 나가서 별 곳 다 댕긴 거지요 하하항."
〈계속> 이호 객원기자, 작가